작성일 : 2021.02.19 작성자 : 양시영
제   목 : 마26.베다니도유.유다의배신.성만찬제정.겟세마네기도.체포되심.제자들도망.공의회판결.베드로의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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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역개정]마26장


....((목요일 만찬 후 밤 중에 겟세마네동산에서 체포되시고 금요일 새벽 3시경 열린 산헤드린 공의회 결정을 거쳐 오전6시경 빌라도에게 넘겨진 후, 오전9시에 십자가에 달리심--오후3시에 운명하심...(오후5시-다음날<토요일> 오후5시까지는 안식일....AD.29년은 유월절과 안식일이 겹치는 해여서 큰 안식일로 지켰었음)..안식 후 첫날<주일> 새벽 부활 하심))..유대 사전을 볼 때, 유월절과 안식일이 겹치는 날은 "큰 날"이라 하여, 이런 경우에는 유월절을 하루 앞당겨서 전 날에 지키고 다음 날을 안식일로 지켰기에 A.D. 29년에는 안식일과 유월절이 겹쳐져서 유월절을 1월 13일 금요일에 지키고, 다음 날 1월 14일이 안식일이 되었다.

((AD29년은...유월절과 안식일이 겹쳐졌음을 의미...이 안식일은 무교절의 첫날을 말함...모세 때는 유월절 날 다음날이 안식일이자 무교절의 첫날로 지켜졌음<총7일간>))........[목요일 저녁 만찬 --금요일 오전3시 산헤드린 공의회 소집/사형 결정--오전 6시 빌라도의 사형 언도] ==> 금요일 오후3시에 돌아가신 후.[금요일 오후6시 되기전에 장사 지냈음]-->안식후 첫날 새벽(토요일에서 주일로 넘어가는 시점에 부활하셨기에 30-32시간이지만 사흘로 치고 있음).....목요일 저녁 만찬에 쓰인 떡은 무교병<아쥐모스.행12:3, 고전5:8>이 아니라 유교병<아르토스...마4:3, 막2:26>로 보이며, 당시 어린 양은 준비되어 있지 않았다.

[요 19:14..*14  이 날은 유월절의 예비일이요 때는 제 육시(로마 시간..아침6시)라 빌라도가 유대인들에게 이르되 보라 너희 왕이로다 ]  

[막15:42-43   *42 이 날은 예비일 곧 안식일 전날이므로 저물었을 때에  *43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 와서 당돌히 빌라도에게 들어가 예수의 시체를 달라 하니 이 사람은 존귀한 공회원이요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자라]


===예수를 죽이려고 의논하다

1.  예수께서 이 말씀을 다 마치시고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2.  너희가 아는 바와 같이 이틀이 지나면 유월절이라 인자가 십자가에 못 박히기 위하여 팔리리라 하시더라

3.  그 때에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이 가야바라 하는 대제사장의 관정에 모여

4.  예수를 흉계로 잡아 죽이려고 의논하되

5.  말하기를 민란이 날까 하노니 명절에는 하지 말자 하더라

===예수의 머리에 향유를 붓다

6.  ○예수께서 베다니 나병환자 시몬의 집에 계실 때에

7.  한 여자가 매우 귀한 향유 한 옥합을 가지고 나아와서 식사하시는 예수의 머리에 부으니

8.  제자들이 보고 분개하여 이르되 무슨 의도로 이것을 허비하느냐

9.  이것을 비싼 값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줄 수 있었겠도다 하거늘

10.  예수께서 아시고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어찌하여 이 여자를 괴롭게 하느냐 그가 내게 좋은 일을 하였느니라

11.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거니와 나는 항상 함께 있지 아니하리라

12.  이 여자가 내 몸에 이 향유를 부은 것은 내 장례를 위하여 함이니라

13.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이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서는 이 여자가 행한 일도 말하여 그를 기억하리라 하시니라

===유다가 배반하다

14.  ○그 때에 열둘 중의 하나인 가룟 유다라 하는 자가 대제사장들에게 가서 말하되

15.  내가 예수를 너희에게 넘겨 주리니 얼마나 주려느냐 하니 그들이 은 삼십을 달아 주거늘

16.  그가 그 때부터 예수를 넘겨 줄 기회를 찾더라

===마지막 만찬

17.  ○무교절의 첫날에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서 이르되 유월절 음식 잡수실 것을 우리가 어디서 준비하기를 원하시나이까

18.  이르시되 성안 아무에게 가서 이르되 선생님 말씀이 내 때가 가까이 왔으니 내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을 네 집에서 지키겠다 하시더라 하라 하시니

19.  제자들이 예수께서 시키신 대로 하여 유월절을 준비하였더라

20.  저물 때에 예수께서 열두 제자와 함께 앉으셨더니

21.  그들이 먹을 때에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의 한 사람이 나를 팔리라 하시니

22.  그들이 몹시 근심하여 각각 여짜오되 주여 나는 아니지요

23.  대답하여 이르시되 나와 함께 그릇에 손을 넣는 그가 나를 팔리라

24.  인자는 자기에 대하여 기록된 대로 가거니와 인자를 파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리로다 그 사람은 차라리 태어나지 아니하였더라면 제게 좋을 뻔하였느니라

25.  예수를 파는 유다가 대답하여 이르되 랍비여 나는 아니지요 대답하시되 네가 말하였도다 하시니라

26.  그들이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받아서 먹으라 이것은 내 몸이니라 하시고

27.  또 잔을 가지사 감사 기도 하시고 그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28.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29.  그러나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이제부터 내 아버지의 나라에서 새것으로 너희와 함께 마시는 날까지 마시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30.  ○이에 그들이 찬미하고 감람 산으로 나아가니라

===베드로가 부인할 것을 예언하시다

31.  ○그 때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오늘 밤에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 기록된 바 내가 목자를 치리니 양의 떼가 흩어지리라 하였느니라

32.  그러나 내가 살아난 후에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리라

33.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모두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결코 버리지 않겠나이다

34.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밤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35.  베드로가 이르되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 하고 모든 제자도 그와 같이 말하니라

===겟세마네에서 기도하시다

36.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겟세마네라 하는 곳에 이르러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저기 가서 기도할 동안에 너희는 여기 앉아 있으라 하시고

37.  베드로와 세베대의 두 아들을 데리고 가실새 고민하고 슬퍼하사

38.  이에 말씀하시되 내 마음이 매우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 하시고

39.  조금 나아가사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여 이르시되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40.  제자들에게 오사 그 자는 것을 보시고 베드로에게 말씀하시되 너희가 나와 함께 한 시간도 이렇게 깨어 있을 수 없더냐

41.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하시고

42.  다시 두 번째 나아가 기도하여 이르시되 내 아버지여 만일 내가 마시지 않고는 이 잔이 내게서 지나갈 수 없거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시고

43.  다시 오사 보신즉 그들이 자니 이는 그들의 눈이 피곤함일러라

44.  또 그들을 두시고 나아가 세 번째 같은 말씀으로 기도하신 후

45.  이에 제자들에게 오사 이르시되 이제는 자고 쉬라 보라 때가 가까이 왔으니 인자가 죄인의 손에 팔리느니라

46.  일어나라 함께 가자 보라 나를 파는 자가 가까이 왔느니라

===잡히시다

47.  ○말씀하실 때에 열둘 중의 하나인 유다가 왔는데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에게서 파송된 큰 무리가 칼과 몽치를 가지고 그와 함께 하였더라

48.  예수를 파는 자가 그들에게 군호를 짜 이르되 내가 입맞추는 자가 그이니 그를 잡으라 한지라

49.  곧 예수께 나아와 랍비여 안녕하시옵니까 하고 입을 맞추니

50.  예수께서 이르시되 친구여 네가 무엇을 하려고 왔는지 행하라 하신대 이에 그들이 나아와 예수께 손을 대어 잡는지라

51.  예수와 함께 있던 자 중의 하나가 손을 펴 칼을 빼어 대제사장의 종을 쳐 그 귀를 떨어뜨리니

52.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칼을 도로 칼집에 꽂으라 칼을 가지는 자는 다 칼로 망하느니라

53.  너는 내가 내 아버지께 구하여 지금 열두 군단 더 되는 천사를 보내시게 할 수 없는 줄로 아느냐

54.  내가 만일 그렇게 하면 이런 일이 있으리라 한 성경이 어떻게 이루어지겠느냐 하시더라

55.  그 때에 예수께서 무리에게 말씀하시되 너희가 강도를 잡는 것 같이 칼과 몽치를 가지고 나를 잡으러 나왔느냐 내가 날마다 성전에 앉아 가르쳤으되 너희가 나를 잡지 아니하였도다

56.  그러나 이렇게 된 것은 다 선지자들의 글을 이루려 함이니라 하시더라 이에 제자들이 다 예수를 버리고 도망하니라

===공회 앞에 서시다

57.  ○예수를 잡은 자들이 그를 끌고 대제사장 가야바에게로 가니 거기 서기관과 장로들이 모여 있더라

58.  베드로가 멀찍이 예수를 따라 대제사장의 집 뜰에까지 가서 그 결말을 보려고 안에 들어가 하인들과 함께 앉아 있더라

59.  대제사장들과 온 공회가 예수를 죽이려고 그를 칠 거짓 증거를 찾으매

60.  거짓 증인이 많이 왔으나 얻지 못하더니 후에 두 사람이 와서

61.  이르되 이 사람의 말이 내가 하나님의 성전을 헐고 사흘 동안에 지을 수 있다 하더라 하니

62.  대제사장이 일어서서 예수께 묻되 아무 대답도 없느냐 이 사람들이 너를 치는 증거가 어떠하냐 하되

63.  예수께서 침묵하시거늘 대제사장이 이르되 내가 너로 살아 계신 하나님께 맹세하게 하노니 네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인지 우리에게 말하라

64.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말하였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후에 인자가 권능의 우편에 앉아 있는 것과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 하시니

65.  이에 대제사장이 자기 옷을 찢으며 이르되 그가 신성 모독 하는 말을 하였으니 어찌 더 증인을 요구하리요 보라 너희가 지금 이 신성 모독 하는 말을 들었도다

66.  너희 생각은 어떠하냐 대답하여 이르되 그는 사형에 해당하니라 하고

67.  이에 예수의 얼굴에 침 뱉으며 주먹으로 치고 어떤 사람은 손바닥으로 때리며

68.  이르되 그리스도야 우리에게 선지자 노릇을 하라 너를 친 자가 누구냐 하더라

===베드로가 예수를 알지 못한다고 하다

69.  ○베드로가 바깥 뜰에 앉았더니 한 여종이 나아와 이르되 너도 갈릴리 사람 예수와 함께 있었도다 하거늘

70.  베드로가 모든 사람 앞에서 부인하여 이르되 나는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지 못하겠노라 하며

71.  앞문까지 나아가니 다른 여종이 그를 보고 거기 있는 사람들에게 말하되 이 사람은 나사렛 예수와 함께 있었도다 하매

72.  베드로가 맹세하고 또 부인하여 이르되 나는 그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 하더라

73.  조금 후에 곁에 섰던 사람들이 나아와 베드로에게 이르되 너도 진실로 그 도당이라 네 말소리가 너를 표명한다 하거늘

74.  그가 저주하며 맹세하여 이르되 나는 그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 하니 곧 닭이 울더라

75.  이에 베드로가 예수의 말씀에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심이 생각나서 밖에 나가서 심히 통곡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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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26장 (개요)

그리스도의 죽음과 고난에 대해서는 모든 사복음서 기자들이 그의 역사의 어느 부분보다도 더욱 특별하게 또한 완전하게 그 서술을 기록하고 있다. 우리는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이외에 그 무엇에 대하여 알기를 바라겠는가? 본 장(章)은 기억할 만한 이야기로부터 시작하고 있다. 구속받은 자의 해(year)가 지금 이르렀고, 작정된 70주(육십이 이레)가 지금 성취되었으며, 그 때에 왕이신 영원한 의로움이 소개되어질 것이다(단 9:24, 26). 그 두려운 장면이 여기에 소개된 것은 존경과 거룩한 두려움으로 읽도록 하기 위함이다. 본 장(章)을 내용별로 살펴본다면,

Ⅰ. 그리스도의 고난에 대한 전조 또는 서곡.

1. 그리스도께서 그의 제자들에게 내리신 명백한 주의(1, 2).

2. 그리스도에 대한 통치자들의 음모(3-5).

3. 그리스도께서 베다니에서 저녁 식사하실 때 머리에 기름부음을 받으심(6-13).

4. 그리스도를 배신하기 위하여 유다가 제사장들과 계약을 맺음(14-16).

5. 그리스도께서 제자들과 더불어 유월절을 잡수심(17-25).

6. 그리스도께서 성만찬을 제정하시고 그 후 제자들과 담화하심(26-35).

Ⅱ. 그가 고난 가운데 들어가신 것과 그것들의 몇 가지 특별한 사항들.

1. 동산에서의 그의 번민(36-46).

2. 유다의 도움을 입어 관원들이 그를 체포함(47-56).

3. 대제사장 앞에서 심문 받으시고 법정에서 정죄 받으심(57-68절).

4. 베드로가 그를 부인함(69-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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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제사장들의 음모(마 26:1-5)

여기에 보면,

1.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고난이 가까이 이르렀음을 그의 제자들에게 주지시키신 것(1, 2절)과

2. 그의 원수들이 그를 괴롭힐 준비를 하고 있는 동안, 그리스도와 그의 제자들은 그에 대한 준비를 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그리스도께서는 종종 그의 고난이 머지 않아 있을 것임을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으며, 여기에서는 그 고난이 바로 임박했음을 말씀하고 계시다. 즉 "이틀 지나면" 오게 될 것임을 말씀하고 계시다. 

여기에서 유의할 것..., 이전에도 많은 고난들을 겪는 가운데 주님을 주시하면서 그 의미를 주께 묻고 해석하면서 경과한 다음에도 그리스도 빼어닮기 위한 우리의 성숙과 성장을 위해, 그리고 또한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위해서는 여전히 새로운 고난들을 필요로 한다는 사실이다. 몇 가지로 살펴본다면,

(1) 그가 이러한 경고를 하신 "시기"는 "그가 이 말씀을 다 마치신 때"였다.

① 그가 마치시기 전까지는 모든 말씀을 하셔야만 하였다(그가 하셔야 할 말씀이 있는 한 그것은 끝마친 것이 아니다─역주). 

여기에서 유의할 것... 그리스도의 증거자들은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증거하도록 주신 바] 자신들의 증거를 끝마치기까지는 죽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선지자로서의 자신의 임무를 다 마치셨을 때 비로소, 제사장으로서의 자신의 직무를 수행하시는 일을 시작하셨다. .. [사도바울 자신도 사도요 교사요 전도자의 사명을 완수함과 더불어, 교회를 위해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자신의 몸에 채우는 바, 그리스도의 제단에 전제로 부어짐 되기를 소원했다 !!]

② 그가 바로 앞에 있는 말씀들을 마치신 후에, 그의 제자들에게 이제 다가오는 비 서글픈 시간들과 속박들과 고통들을 대비하여 마음의 준비를 갖추도록 명하셨으며, 그 때에 그들에게 "인자가 팔리우리라"고 말씀하고 계시다. 

이것은 그들에게도 닥치는 바 고난은 그리스도자신이 당하는 것 그이상의 고난은 아니 며  찔림에 있어서도 그리스도께서 찔림받음과 별 차이가 없을 것임을 나타내기 위함이다. 

여기에서 유의할 것... 그리스도와 함께, 또한 그리스도를 위하여 고난을 받는 기독자는 고난받으시는 그리스도를 생각함으로써 큰 용기와 격려를 얻게 된다는 사실이다.

(2) 그리스도께서 그들에게 유의하도록 하신 것은 "인자가 팔리우리라"는 것이다. 

그 일은 확실하고 가까이 있었기 때문에 행해진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여기에서 유의할 것... 아직 닥쳐오지 않은 고난들을 현재 우리 앞에 있는 것으로 여기는 것은 매우 유익하다는 사실이다. 

그가 팔리우신 것은 유다가 그 때에 그를 배신하기 위하여 음모를 진행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2. 우리 주 예수님을 죽이기 위하여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 백성의 장로들이 꾸민 음모(3-5절). 

....그리스도를 죽이려는 많은 음모가 일찍이 행해졌었다. 그러나 이 음모는 지금까지의 어떤 것보다 더욱 심각하게 세워졌다. 왜냐하면 귀족 고관들이 모두 이에 가담하고 있기 때문이다. 

....교회의 문제들을 관장하였던 대제사장들, 소송문제를 심판하였던 장로들, 율법학자로서 이 두 부류의 사람들의 고문이었던 서기관들, 이들은 나라를 다스렸던 산헤드린 또는 큰 공의회를 구성하였으며, 또한 이들은 그리스도를 대적하는데 있어서 결속이 되어 있었다. 

몇 가지로 살펴보면,

(1) 그들이 모였던 "장소." 

그 곳은 이러한 사악한 음모에 있어서 그들의 연합한 모임의 주동자였던 "대제사장의 아문"이었다.

(2) 음모 그 자체. 

그것은 "예수를 궤계로 잡아죽이기 위한"것이었다. 그의 피, 즉 그의 생명의 피 이외에는 그들을 만족시킬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을 것이다. 

그리스도와 그의 교회의 원수들의 계획은 그와 같이 잔인하고 피흘리는 것이었다.

(3) 그 음모자들의 정책.

 "명절에는 하지 말자." 그 이유는 무엇인가? 그 시기의 거룩성을 생각하거나 또는 그 날의 종교적인 예배가 방해를 받게 될까봐 그렇게 했는가? 아니다. 그것은 "민요가 날까"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 절기와 큰 연관성을 가지고 있었던 백성들이 그리스도와 연관되어 있는 것을 알고 있었으며 또한 그들이 모두가 선지자로 여긴 그리스도에게 난폭한 행동을 한다면 백성들이 자기들을 대항하여 폭동을 일으킬 위험이 있다는 사실에 대하여도 잘 알고 있었다. 

그들이 두려워한 것은 하나님을 경외해서가 아니라 백성들을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그들의 모든 관심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안전을 도모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들은 원래 명절에 그 일을 해치우려고 하였다. 왜냐하면 "모든 이스라엘로 하여금 보고 두려워하도록"하기 위하여 악행하는 자, 특히 반역자나 사기꾼을 세 절기 중의 어느 한 절기에 사형에 처하곤 했던 것이 유대인의 전통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위에 기술한 바로 그런 염려때문에) "명절"에는 하지 않기로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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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께서 베다니에서 기름부음을 받으심(마 26:6-13)

이 이야기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사실들을 찾아 볼 수 있다.

Ⅰ. 선한 여자가 우리 주님의 머리에 기름을 부음으로써 그에게 대한 단순한 호의를 나타냄(6, 7절). 

그 일은 예루살렘에서 그리 멀리 않은 "베다니"에 있는 문둥이 시몬의 집에서 있었다. 아마도 문둥이 시몬은 우리 주 예수님에 의해 이적적으로 자신의 문둥병을 치유 받은 자이며 그리스도를 환대함으로써 그에 대한 감사를 나타내려고 한 것 같다. 

그리스도께서는 그와 더불어 대화를 나누고 또한 그와 함께 식사하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으셨다. 그는 깨끗케 되었지만 아직도 "문둥이 시몬"이라고 불리웠다. 추잡한 죄를 범한 자들은 비록 그 죄가 사함을 받는다고 할지라도 그에 대한 비난이 그를 따라다니며 또한 완전히 없애지 못하게 될 것임을 알게 된다. 

이 일을 행하였던 여자는 마르다와 나사로의 동생인 마리아가 아닌가 한다. (라이트푸트(Lightfoot) 박사는 그 여자가 "막달라 마리아"와 동일인이 아닐까 생각하고 있다.) 그녀는 "매우 귀한 향유한 옥합"을 가지고 있었으며 그리스도께서 식사하실 때 그것을 그의 머리에 부으셨다. 

우리들에게 있어서 이러한 물건은 이상한 진상품(compliment)이 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그 때에 가장 값진 것으로 여겨졌다. 왜냐하면 그 냄새는 매우 상쾌한 것이고 또한 그 기름은 머리를 참신하게 만들 수 있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다윗은 "그의 머리에 기름부음"을 받았다(시 23:5; 눅 7:46). 그런데 이것은 다음과 같은 것으로 간주할 수 있다.

1. 우리 주 예수님을 기름 부으신 자인 그리스도, 즉 메시야로 믿는 신앙의 행동으로써 그녀는 그를 하나님께서 왕으로 세우신 그의 기름 부으신 자로 믿고 있다는 사실을 나타내기 위하여 기름을 부었으며 또한 그를 자신의 왕으로 삼았다. 

그들은 "한 두목을 세우게 될"(호 1:11) 것이다. 이것은 "그 아들에게 입맞추는"것이다.

2. 그에 대한 사랑과 존경의 한 행동이었다.

어떤 사람은(라이트푸트) 생각하기를, 이 여자는 처음에 "많이 사랑하여 눈물로 그리스도의 발을 씻었던"(눅 7:38, 47) 바로 그 여자이며, 또한 그녀는 첫사랑을 버리지는 않았으며 지금도 그녀가 초신자였을 때 했던 것처럼 장성한 기독자가 되어서 그 봉사를 애정이 넘치게 하고 있는 것이라고 한다. 

여기에서 유의할 것... 마음속에 예수 그리스도에게 대한 참된 사랑을 가진 사람은 그에게 드리기에 너무나 아까운 좋은 것이 하나도 없다는 사실이다.

Ⅱ. 그 제자들이 이것을 보고 화를 내며 행한 공격. 

그들은 "분을 내었다"(8, 9절). 즉 그들이 다른 곳에 썼으면 더 좋을 것으로 여기는 이러한 기름들을 이렇게 허비하는 것을 보고 화를 내었다.

1. 그들이 이것을 보고 어떻게 자신들의 분노를 나타내었는가? 

그들은 "무슨 의사로 이것을 허비하느뇨?"라고 말하였다. 이것은 다음과 같은 뜻을 나타내고 있다.

(1) 그녀의 과잉 친절(그렇게 생각되었다)이 낭비일 것이라고 해석한 나머지 이 선한 여자에게 대한 호의가 결여됨. 

자비는 우리들에게 그것이 지니게 될 모든 것을 특히 "선행을 하는데 있어서 열렬히 감동을 받은" 자들의 말과 행동에 대해, 비록 어찌보면 그러한 언행들이 전혀 신중하지 못하다고 생각될지라도 그것들을 최선의 것으로 해석할 것을 가르치고 있다. 

정말 잘했다 칭찬받을 정도로 잘하는 일이라 하더도 [겉보기에는] 지나쳐 도에 넘치게 하는 일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은 물론 사실이다. 그러나 [더 이상 판단하지 말고] 거기에서 멈추도록 하는 편이 낫다.. 오직 오히려 극단에 치우쳐 다른 사람을 비방하거나 비방을 받지 않도록 스스로 조심하기를 배워야만 한다. 왜냐하면 우리가 보기에는 분명 사려분별이 부족한 것으로 여길 수 있는 것조차 하나님께서는 풍성한 사랑의 한 본보기로 받아들이실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 사람들이 종교적으로 너무 열심히, 너무 많이 일한다. 그 사람은 우리보다 더 많이 일한다"고 말하지 말고 [참되게 자신을 돌아보아 자신을 격려함으로써 분발하여] 우리들도 그들이 하는 것만큼 더 일할 수 있도록 목표를 세워야만 한다.

(2) 그들의 주인인 바 그리스도에 대한 존경심의 결핍. 

우리가 그것에 대해 [최대한으로] 생각할 수 있는 것은 그들의 주인이 육신의 모든 즐거움에 대하여 완전히 죽은 자라는 사실을 그들이 [이미] 알고 있다는 것이다.

"요셉의 환난을 인하여 많이 근심한"자는 "귀한 기름을 몸에 바르는"것(암 6:6)을 개의치 아니하였다.  그러므로 그들은 이러한 즐거움이 그들 가운데서 그의 즐거움을 취하지 않으셨던 분에게 잘못 주어진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그것이 그리스도에 대한 존경심에서 나온 것임을 생각해 본다면, 그들이 주님께서 그것을 친구의 사랑과 존경의 표식으로써 인정하시고 받아들이셨다는 것을 알았을 때 그것을 "허비"라고 함부로 말한 것은 합당한 표현이 되지 못하였다. 

여기에서 유의할 것... 우리는 다른 사람이나 우리자신에 의해 주님께 드려진 바 그 모든 것에 대해 그 어느하나라도 허비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에 대하여 정말 조심을 해야만 한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봉사에 사용되는 시간을 허비라고 생각해서는 안 되며 또한 경건한 일에 투자되는 돈을 허비라고 생각해서도 안 된다. 왜냐하면 비록 그것이 물이나 강에 던져지는 것처럼 보인다 할지라도 우리는 "여러 날 후에" 유익하게 "그것을 다시 찾을 수 있을"것이기 때문이다(전 11:1)

2. 그들은 그것을 보고 분노한 것에 대해 어떤 구실을 붙여 변명을 하였는가? 

"이것을 많은 값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줄 수 있었겠도다." 

여기에서 유의할 것..., 나쁜 감정을 특별한 덮개 아래에 감춘다는 것은 새삼스러운 일이 못된다는 사실이다. [[도가도 비상도, 명가명 비상명...다만 근본동기는 숨겨진 탐욕이 아닐까??]]

또한 사람들이 경건의 일들을 자선이라는 미명하에 덮어두는 것도 새삼스러운 일이 못된다.

Ⅲ. 그리스도께서 그의 제자들이 이 선한 여자에 대해 분을 내는 것을 보고 그들을 책망하심(10, 11절). "너희가 어찌하여 이 여자를 괴롭게 하느냐?" 

다음의 사실에 유의하라. 선한 사람들의 선행이 비난을 받고 오해를 받는 것은 선한 그들에게 큰 괴로움이 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그렇게 하는 것을 몹시 못마땅하게 여기신다. 

비록 제자들이 그 나름대로의 어떤 이유들을 가지고 있었을지라도 주님께서는 여기에서 그의 제자들보다는 이 선하고 정직하고 선의를 지닌 여자의 편을 들고 있다. 주님께서는 진심으로 "업신여김을 당한 소자들"(마 18:10)의 입장을 지지하고 있다.

그의 이유를 살펴 보라. "가난한 자들은 너희와 항상 함께 있느니라."

선을 베풀 기회의 종류에 대한 다음의 사실에 유의하라.

1. 선을 베풀거나 행하는 어떤 기회가 있는데, 그러한 것은 항시 있으며 우리는 그것을 잘 향상시킬 수 있도록 늘 유의를 해야만 한다. 

우리는 언제나 성경들을 가지고 있으며, 언제나 안식일을 가지고 있으며 또한 "가난한 자들도 항상 우리와 말게 있다." 

여기에서 유의할 것..., 선릉 행하려는 마음을 가지고 있는 자들은 결코 기회가 부족하다는 불평을 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이다. 

가난한 자는 이스라엘 땅에서 결코 없어지지 아니할 것이다(신 15:11). 우리는 이 세상에서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자인 우리의 자비로운 원조를 구하는 자, 그가 자신에게 자비를 베푼 것으로 간주하시게 될 그리스도의 가난한 지체들을 [마음만 먹으면] 항상 찾아 볼 수 있다.

2. 선을 베풀고 행할 수 있는 또 다른 특별한 기회가 있는 바, 이것은 흔치 않으며, 짧고도 불확실하며, 그것들을 합당하도록 준비하고 향상시키는데는 특별한 근면이 필요하며, 또한 다른 것들보다도 먼저 우선순위로 해야만 하는 것들이다. "나는 항상 함께 있지 아니하리라. 그러므로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 나를 위하여 사용하도록 하라." 

다음의 사실에 유의하라.

(1) 그리스도께서 "육신으로서" 이 세상에 계시는 것은 영구적인 것이 아니었다. 

그가 조만간 이 세상을 떠나실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었다. 

그가 "성체"(역주:천주교에서는 그가 떡과 포도주로 존재하신다고 함) 가운데 "실제로" 현존하여 계신다 함은 맹신적이고도 근거 없는 생각에 불과하며 또한 그가 여기에서 "나는 항상 함께 있지 아니하리라"는 말씀과도 모순이 된다.

(2) 경건과 헌신의 특별한 일들은 일반적인 자비의 일들보다 우선적으로 행해져야만 한다. 

가난한 자는 그리스도를 도적질해서는 안 된다(그를 빙자해서 빌어막는 것을 허용해서는 안 된다....부지런히 스스로 일해서 자기의 먹을 것을 마련해야 한다). 그러는 한편, 우리는 모든 사람에게, 특히 "믿음의 가정"에 대해 선을 베풀어야만 한다.

Ⅳ. 그리스도께서 이 선한 여자의 호의에 대해 시인하시고 칭찬하심. 

그의 종들과 그들의 봉사에 대해 사람들이 시비를 걸면 걸수록, 그는 그의 종들을 자신이 인정하고 받아들인다는 사실을 더욱 분명히 나타내 주신다. 

그는 그것을 "좋은 일"(10절)이라고 부르고 계시며 또한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칭찬을 그에게 하고 있다. 특별히,

1. 그 의미는 신비적인 것이었다(12절). "이 여자는 내 장사를 위하여 그 일을 하였다."

(1) 어떤 사람은 생각하기를 그녀는 바로 그와 같은 "의도"로 그 일을 하였으며, 또한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죽음과 고난에 대해 말씀하신 것을 사도들보다 더 잘 이해하였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그의 부활의 첫 증인이 되는 영광으로 보상이 되었기 때문이다.

(2) 어쨌든 그리스도께서는 그것을 그렇게 해석하셨다. 

또한 그는 언제나 그의 백성들의 선의의 말과 행동들을 긍정하시며 기꺼이 만족하려고 하신다. 그리스도의 영적 해석을 말하자면 그리스도의 머리에 부어진바 그 여자의 향유는 그리스도의 몸에 향유를 바르는 것과 다름이 없었다. 그가 죽으신 후에 그렇게 기름을 바르려고 해도 부활로 말미암아 그 일을 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에 앞서 이 일이 행해진 것이라 보고계시다. 비록 그가 죽음에 의해 승리하게 될 것으로 보였을 때에도 그가 여전히 메시야이셨다는 사실을 보여 주기 위하여 그것이 어떤 때에 행해져야만 한다. 

그 제자들은 주님의 머리에 기름을 붓는 것은 허비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그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계시다. "만일 너희의 나라의 관습대로 죽은 시체 위에 그렇게 많은 기름이 부어진다면, 너희는 그것을 아까워하거나 또는 그것을 낭비라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이것도 실제적으로는 그러한 것이다. 그녀가 기름을 부은 몸은 죽은 몸이나 다름이 없으며 또한 그녀의 호의는 그 목적에 매우 어울리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것을 허비라고 부르지 말고 값있는 것으로 여기도록 하라."

2. 그것에 대한 기념은 영광스러운 것이 될 것이다(13절). "이 일을 말하게 기념하라." 

이 믿음과 사랑의 행동은 매우 탁월한 것이기 때문에 십자가에 못박히신 그리스도의 전파자들과 그의 고난 역사에 대해 영감을 받아 기록한 저자들은 이 구절에 특별히 유의하지 않을 수 없었으며, 그 기사를 선포하고 그 기억을 영원히 간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또한 이러한 기록들에 채택되었으므로 그것은 마치 "쇠로 된 철필과 납으로 영원히 바위에 새긴 것"과 같으며 또한 능히 잊어버릴 수 없는 것이다. 가장 이름이 있는 나팔수라 해도 영원한 복음과 같이 크게 그리고 오래 소리를 낼 수는 없다. 다음의 사실에 유의하라.

(1) 그리스도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는 비록 비극적인 것이기는 하지만 복음이며 좋은 소식이다. 왜냐하면 그는 우리들을 위해 죽으셨기 때문이다.

(2) 복음은 전 세계에 전파되었다. 

유대뿐만 아니라 모든 나라와 모든 피조물에게까지 전파되었다. 그리스도께서는 제자들에게 용기를 주시기 위하여 그들의 목소리가 땅 끝까지 이를 것임을 주지시키고 계신다.

(3) 그리스도에 대한 영광이 원래 복음 속에 분명히 의도되었지만, 그렇다고 그의 성도들과 종들에 대한 영광이 완전히 간과된 것은 아니다. 

그 여자에 대한 기념은 그에게 성전을 봉헌하거나 그녀를 위해 연례적인 축제를 하거나 그녀의 깨어진 옥합의 단편을 성물함에 보관함으로써 보존되는 것은 아니다(역주:천주교나 정교회에서는 그렇게 하고 있다). 

오히려 다른 사람에 대한 본보기로(히 6:12) 복음을 전파할 때 그녀의 신앙과 경건을 언급함으로써 보존되고 있는 것이다. 

이로 말미암아 영광은 그리스도 자신에게 되돌아가고 있다. 그는 이 세상에서나 장차 오는 세상에서 "그의 성도들 가운데서 영화롭게" 되실 것이며 또한 "믿는 모든 자들 가운데서 찬미를 받으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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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룟 유다의 배신(마 26:14-16)

 그리스도에게 행해진 가장 큰 호의의 한 실례가 보여지고 난 다음에 즉각적으로 가장 큰 불친절의 한 실례가 뒤따르고 있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 가운데는 선인과 악인이 이렇게 혼합되어 있다. 그리스도께서는 각각 신실한 친구들과 거짓되고 위선적인 자들을 거느리고 계신다. 

유다가 대제사장들에게 그리스도를 팔기 위하여 그들과 더불어 여기에서 체결한 이 계약들보다 더 비열한 것이 있을 수 있겠는가?

Ⅰ. 그 배반자는 가룟 유다였다. 

그는 그의 비행이 더욱 두드러지도록 하기 위해 "열 둘 중의 하나"라고 말해지고 있다. "제자들의 수가 더하여 갈"(행 6:1) 때 그들 중에는 수치와 고민거리가 된 자들도 있었다고 한다면 그것도 놀라워할 것은 되지 못한다. 

그러나 열 둘 중에서 하나가 "마귀"였다고 한다면 정녕 우리는 이 지상에 있는 어떤 단체가 완전히 순수하다고 기대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열두 제자들은 그리스도의 특별한 은혜의 특권을 가진 그의 선택된 친구들이었다. 그들은 언제나 그를 따르는 자들로서, 그와 더불어 가장 친밀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장점을 가지고 있었고 또한 무엇보다도 그를 사랑하고 그에게 신실해야 할 이유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 중의 한 사람은 그를 배반하였다. 

여기에서 유의할 것..., 의무나 감사의 쇠사슬이 귀신을 가진 자를 붙잡아 맬 수 없다(막 5:3, 4)는 사실이다.

Ⅱ. 여기에는 유다가 대제사장에게 제의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그가 대제사장들에게 가서 말하되 너희가 나에게 얼마나 주려느냐 하니"(15절). 

그들이 유다에게 사람을 보내거나 또는 그에게 제의를 한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그리스도 자신의 제자들 중의 하나가 그를 배반할 것이라고는 생각을 하지 못하였다. 

다음의 사실에 유의하라.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 가운데에도 어떤 사람들이 기대하는 것보다 더 사악하며 또한 그것을 보여 줄 기회만을 노리는 자가 있다.

1. 유다는 무엇을 약속하였는가?

 "내가 예수를 너희에게 넘겨주리라. 나는 너희에게 그가 있는 곳을 가르쳐 줄 것이며, 또한 너희가 아무런 소동이나 소란 없이 그를 붙잡을 수 있도록 적당한 시간과 장소에 너희를 그에게로 데려다 주겠다." 

그들이 그리스도를 잡아죽이려고 했을 때 그들이 마음속에 염려하고 주저한 것이 바로 이것이었다(4, 5). 그들은 공중 앞에서 그에게 덤벼들려고 하지 않았으며 또한 그를 개인적으로 찾을 수 있는 장소를 알 수 없었다. 하여, 그 일은 잠시 중단되었고 그 어려움은 극복할 수가 없어 보였다. 이것은 유다가 와서 그들에게 조력을 제의했을 때까지 계속되었다. 

여기에서 유의할 것..., 마귀가 인도하는 대로 자신을 내어 맡겨버린 자들은 유다가 대제사장들에게 자원해서 나아가 제안했던 것처럼 자신들이 생각한 것보다는 훨씬 순조롭게 마귀의 일이 진행된다는 것을 발견하고 득의양양하게 될 것이다. 

비록 통치자들이 자신들의 힘과 세력으로써 그를 그들의 손아귀에 넣을 때에 죽일 수 있다고 생각할지라도 한 사람의 제자가 그를 배반하지 않았다면 결코 하지 못하였을 것이다. 

다음의 사실에 유의하라. 사람들이 신앙 고백을 더욱 훌륭하게 하고 그들이 그것을 연구하고 봉사하는데 전념을 하면 할수록 그들의 마음이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고 있지 않다면 그들이 악행을 저지를 수 있는 기회는 더욱 많아진다는 사실이다. 

만일 유다가 사도가 아니었더라면 그는 배반자가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만일 그가 사람이 행할 바 의의 길을 알지 못하였다면 그것을 함부로 오용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내가 예수를 너희에게 넘겨주리라." 유다는 그들이 그리스도를 고소할 증거를 필요로 했을 때 그리스도를 거스리는 증거자로 나서려고 자청하거나 또는 그들이 그에게 그렇게 해 줄 것을 설득하지도 않았다(59절). 

만일 그들이 그리스도가 사기꾼이라는 증거를 내세울 만한 어떤 구실을 찾으려 한다면, 그리스도가 그러함을 가장 잘 입증할 수 있는 사람은 바로 옆에서 같이 지켜보며 생허ㅏㄹ하고 동행했던 자, 유다였으리라. 그러나 그리스도의 교훈과 생활 태도를 잘 알고 있었으면서도 그를 배반하려 하는 유다조차도 비록 자기 마음에 거스리는 바 그 어떤 것이 그 자신의 배반을 정당화하는 데 도움을 주었을지는 몰라도 그가 구체적으로 어떤 죄를 지었다고 고소할 근거는 결코 찾을 수는 없었다. 이 사실은 또한, 우리 주 예수님의 무죄성에 대한 명확한 증거이다.

2. 이러한 일을 수행하는 대가로 그는 무엇을 요구하였는가? 

"너희가 나에게 얼마나 주려느냐?" 이것이 바로 유다가 그의 주인을 배반했던 유일한 목적이었다. 그는 그렇게 하여 돈을 벌려고 하였다. 

그의 주인은 그가 "마귀를 가졌다"는 사실을 처음부터 알고 있었지만 그에게 조금도 화를 내지 않으셨다. 아마도 그는 다른 제자들에게와 마찬가지로 유다에게 동일한 친절을 나타내어 보였으며 또한 그에게 노여움을 불러 일으킬 수 있는 불쾌한 표정조차도 짓지 않으셨다. 게다가 주님께서는 [인정과 신뢰를 받고 있다 느끼며 그렇게 여기도록] 그를 기쁘게 할 수 있는 자리에 앉혔다. 가지 그를 돈 맡은 자로 삼았다. 그리고 그가 비록 공금을 착취했다고 할지라도(왜냐하면 그는 "도적"이라고 불리우기 때문이다. 요 12:6) 우리는 유다가 그것을 계산하도록 호출을 당하는 위험에 직면했었다는 사실을 찾아 볼 수 없다. 또한 그가 복음이 속임수라고 의심했다는 사실도 나타나지 않고 있다. 아니 그것은 그의 주인을 미워하거나 다투었기 때문이 아니라 순전히 돈을 사랑하였기 때문이다. 그것이 곧 유다를 배반자로 만든 것이었다.

"얼마를 주려느냐?" 그는 무엇을 원하였는가? 그것은 먹을 빵이나 입을 옷이나 일용품이나 도구가 아니었다. 그는 그의 주인이 있는 곳에서 영접을 받지 못하였는가? 그는 받아야 할 대우를 잘 받지 못하였는가? 그는 베다니에 있는 문둥이 시몬이 집에서 바로 지금 풍족한 대우를 받았으며 바로 조금 전에는 마르다가 시중드는 식사를 들면서 환대를 받지 않았는가? 그러나 이 욕심 많은 가엾은 유다는 이에 만족할 수 없었으며, 비열하게 제사장들을 찾아가 굽신거리며 "얼마를 주려느냐?"고 말하였던 것이다. 

여기에서 유의할 것..., 만악의 뿌리, 특히 그리스도에게서 떠나는 배교의 뿌리는 돈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돈을 "사랑하는" 것이라는 사실이다. 

데마가 이 사실을 증명하고 있다(딤후 4:10). 사탄은 우리 주님을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마 4:9)는 미끼를 가지고 유혹을 하였다. 그러나 유다는 그것에 스스로 미혹될 것을 자청하고 있다. 그는 마치 그의 주인이 자신의 손에 들고 있는 상품인 것처럼 '얼마를 주려느냐?"고 묻고 있다.

Ⅲ. 여기에는 대제사장들이 그와 더불어 맺은 계약이 기록되어 있다. 

"그들은 은 삼십을 달아 주었다." 은 삼십은 약 3파운드 8실링, 또는 3파운드 15실링이 된다고 한다. 아마도 이 금액은 유다가 제안한 금액인 것 같으며 그들은 기꺼이 주려고 하는 것을 받으려고 했던 것 같다. 그는 다음에 더욱 형편이 나빠질까 두려워한 나머지 처음에 준 것을 받고 있다. 유다는 큰 장사를 해 본 일이 없다. 그러므로 작은 돈도 그에게는 큰 효과가 있었다. 

율법에 의하면(출 21:32)은 삼십은 노예가 값이었다. 이 값은 그리스도가 평가된 적절한 가격이었다(슥 11:13). 시온의 아들들이 좋은 금에 비유되었지만 시온의 왕 자신이 이와 같이 과소평가가 될 때 흙으로 만든 주전자에 불과하게 될 것임은 결코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들은 "그에게 달아 주었다." 즉 i{sthmi ─그들은 지불하였다(appenderunt). 어떤 사람은 그렇게 해석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그를 안심시키고 격려하기 위하여 그의 손에 노임을 쥐어 주었다.

Ⅳ. 여기에는 유다가 그의 계약을 수행하기 위해 애쓰는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16절). 

"그가 예수를 넘겨 줄어들 기회를 찾더라." 즉 어떻게 하면 효과적으로 그 일을 수행할 것인가를 궁리하였다. 다음의 사실에 유의하라.

1. 범죄한 기회를 찾거나 악행을 저지른 궁리를 하는 것은 매우 사악한 일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마음에 악을 행하거나 고의적인 악행을 저지를 생각이 가득 차 있는 것을 입증하기 때문이다.

2. 비록 사악한 것이라고 하는 것처럼 생각한다. 

유다는 사악한 계약을 맺고 난 다음에도  회개하거나 또는 그것을 철회할 시간적인 여유를 분명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 그의 계약에 의해 마귀는 그가 가졌던 것보다 하나 더 밧줄을 그에 대하여 가졌으며 또한 헤롯이 요한을 "맹세 때문에" 목을 베어야만 했던 것처럼 비록 그것이 자기의 주인을 배반하는 것이었다고 할지라도 마귀는 유다를 향해 자신의 말을 지킬 것을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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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께서 유다의 배반에 대해 예언하심(마 26:17-25)

우리는 여기에서 그리스도께서 유월절을 지키신 기사에 대해 읽어 볼 수 있다. 율법 아래에 놓이셨으므로 그는 율법의 모든 규율에 순응하셨으며 또한 무엇보다도 이 유월절에 순응하셨다. 

유월절은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구출된 것을 기념하는 백성들의 생일이었다. 유대인들의 전통에 의하면 그들은 메시야의 날들 중에서 특히 애굽에서 나왔던 바로 그 날에 구원을 받게 될 것이라고 예언되었다. 그것은 정확하게 성취되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는 그들이 행사를 시작했던 유월절 다음 날에 돌아가셨기 때문이다.

Ⅰ. 그리스도께서 유월절만찬을 잡수신 시간은 하나님에 의해 지정되고 또한 유대인들에 의해 준수되었던 일상적인 시간이었다(17절). 

즉 "무교절의 첫날"이었는데, 이 날은 오늘날의 목요일에 해당하는 그 주간의 다섯째 날에 행하여졌다. (*어떤 사람들은 우리 주 예수님께서 다른 사람들보다 더 일찍이 이 날에 유월절을 축하하셨다고 추측한다. 그러나 박식가인 휘트비 박사는 이를 전적으로 부인하고 있다.)

Ⅱ. 특별히 그리스도께서 그의 제자들의 물음에 대답하여 지시하신 장소(17절). 

그들은 "우리가 어디서 예비하기를 원하시나이까?"라고 물었다. 아마 유다도 이 질문(그가 어디서 유월절을 먹게 될 것인가)을 한 자들 중의 하나였을 것이다. 이는 그가 자신의 계획을 잘 수행할 수 있는 방법을 알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그 나머지 제자들은 늘 그러했듯이 자신들의 의무를 다 하기 위하여 그렇게 물었다.

1. 그들은 주님께서 이때에 대제사장들에 의해 박해를 받고 또한 그의 생명이 그들에 의해 수소문되고 있었다고 할지라도 그가 유월절을 잡수실 것이라는 것을 기정사실로 여겼다. 

그들은 외부의 협박과 내부의 두려움 때문에 그리스도 자신의 임무를 회피하시지는 않을 것임을 알고 있었다. 

많은 고민거리들과 원수들을 가지고 있고 두려움과 염려 때문에 성만찬, 즉 우리의 복음적 유월절에 참예하지 않았다고 변명하는 자들은 그리스도의 모범을 따르려 하지 않는다.

그러한 때, 그러한 상황들일수록 기독자들은 자신들의 두려움을 해소시키거나 염려와 근심에서 벗어나 흔들림 없는 평강 얻기 위해, 원수들을 용서하는 데 도움을 주며 자신들의 염려를 오로지 하나님께 맡기기 위하여 그러한 모범을 보이신 JC를 따라야 할 것이다.

2. 그들은 유월절을 위하여 준비를 해야만 하며 또한 준비를 하는 것이 그의 종으로서 마땅함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우리가 어디서 예비하기를 원하시나이까?" 

여기에서 유의할 것... 엄숙한 예식이 있기 전에 엄숙한 준비가 있어야만 된다는 사실이다.

3. 그들은 주님이 유월절을 잡수실 그 자신의 집을 가지고 있지 않으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여기에서도 다른 일들과 마찬가지로 "그는 우리 때문에 가난해지셨다." 시온의 모든 궁전에는 시온의 왕을 위한 것이 하나도 없었다. 그러나 그의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하여 있지 않다(요 1:11 참조).

4. 그들은 주님의 명령이 없이 그 장소를 선정하려고 하지 않았으며 또한 그에게서 그들은 명령을 받았다. 

주님께서는 "아무 사람"(18절)에게 그들을 보내셨는데, 아마 그는 주님의 친구나 제자였으며 또한 주님과 그의 제자들은 그의 집에 초대를 받았던 것 같다.

(1) "내 때가 가까웠다"고 그에게 말하라. 

때는 그의 죽음의 때를 의미하고 있는데, 그 이외의 곳에는 "그의 때"(요 8:20; 13:1)라고 불리우고 있다. 즉 그때, 그 시간은 하나님의 작정에 의해 정해진 때로써 여기에 그의 마음이 놓여져 있고 또한 이 때에 대하여 그는 자주 언급하셨다. 

주님께서는 그 때가 가까웠음을 아셨으며 따라서 매우 분주하게 되셨다. 우리는 "우리의 때를 알지 못한다"(전 9:12). 그러므로 우리의 경각심을 늦추어서는 안 된다. 

"그의 때가 가까웠으므로" 그는 "유월절을 지키시려고" 하셨다는 사실에 유의하라. 죽음이 점점 임박하고 있다는 사실을 생각함으로써 우리는 우리의 영혼을 위하여 가능한 모든 기대를 최대한으로 활용하는 데 열심을 다하여야만 한다. 우리의 때가 가까워졌고 영원이 바로 우리 앞에 놓여져 있지 않은가? " 그 때에 우리는 진실함의 누룩 없는 떡으로 절기를 지키도록 하자." 

여기에서 살펴 볼 수 있는 것... 우리 주 예수님께 이 선한 사람의 집으로 자기와 제자들을 초청하도록 하실 때, 그는 자신의 때가 가까웠다는 것을 바로 그 집 주인에게 알리도록 하셨다는 사실이다. 

또한 여기에서 유의할 것..., 그리스도의 비밀은 그를 자신의 마음속에 영접하는 자들과 함께 있게 된다는 사실이다(요 14:21; 계 3:20 비교).

(2) "유월절을 네 집에서 지키겠다." 

그에게 말하라. 이것은 "주인"이신 그의 권위의 한 실례로써, 아마 이 사람도 그것을 인정하였을 것이다. 그는 자신의 목적을 위하여 이 집을 사용하도록 간청하시지 않도록 명령을 하셨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께서 성령으로 기독자 각람의 마음속에 들어오실 때, 그는 마치 그 마음을 소유하시고 거부당할 수 없는 주인과 같이 허락을 명령하시며 또한 마음을 지배하시고 항거 받을 수 없는 자처럼 허락을 받으신다. 

만일 그가 "내가 이러한 영혼 속에서 절기를 지키려 하노라"고 말씀하신다면 그는 그렇게 하실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일하고 계시며 또한 아무도 그 일을 방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의 백성도 기꺼이 그리 하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그가 그들을 그렇게 하도록 만드시기 때문이다. "내가 내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을 지킬 것이다." 

다음의 사실에 유의하라. 그리스도께서 영접되시는 곳은 어디든지 그는 그의 제자들도 함께 될 것이라는 사실이다. 

우리가 하나님을 우리의 하나님으로 삼을 때 우리는 그의 백성들을 우리의 백성으로 삼게 된다.

Ⅲ. 제자들에 의해 행해진 준비(19절). 

"제자들은 예수의 시키신 대로하였다." 다음의 사실에 유의하라. 

복음적인 유월절에 그리스도께서 자신들과 함께 있기를 원하는 자들은 그의 규칙들을 엄격히 준수해야만 하며 또한 그가 명령하시는 대로 행해야만 한다. "그들은 유월절을 예비하였다." 

그들은 성전 마당에서 잡은 어린양을 취하여 그것을 구웠으며, 쓴 나물을 준비하고 빵과 포도주를 마련하였으며, 유월절에 입을 옷을 챙겨 두었고, 그밖에 이 엄숙한 절기에 소용되는 모든 것을 빈틈없이 예비하였다.

Ⅳ. 그들은 율법을 따라 유월절을 먹었다(20절). 

그는 한편으로 비스듬히 눕는 자세(역주:유대인이 식사하는 자세)를 취하지 않으시고 일상적인 식사 자세인 앉은 자세를 취하셨다. 왜냐하면 그러한 눕는 자세는 먹거나 마시는데 불편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마 낮게 앉으셨기는 하셨을 것이다. 

이 말은 다른 식사 때에 그가 취하신 자세를 묘사하는데 사용되고 있다(마 9:10; 눅 2:37; 마 26:7). 대부분의 사람들은 생각하기를 "허리에 띠를 두르고 신을 신고 손에 지팡이를 가지고" 먹은 것은 애굽에서의 첫 유월절뿐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러한 것들도 앉은 자세로 먹을 수가 있었을 것이다. 그가 앉으셨다는 것은 마음의 평온함을 나타내며, 그 때에 그는 이 의식을 본격적으로 집행하셨다. 

"그는 열 두 제자와 함께 앉으셨으며" 유다도 예외는 아니었다.  율법에 의하면 그들은 "각 가족대로 식구를 위하여 어린양을 취해야만"(출 12:3)하였다. 그것은 열보다는 많지만 열 둘 이상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그의 식구들이었다. 

여기에서 유의할 것...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그의 식구들이었다. 

여기에서 유의할 것... 하나님께서 가족들을 맡기신 자들은 그들과 함께 자신들의 집을 하나님을 섬기는 곳으로 삼아야만 한다는 사실이다.

Ⅴ. 유월절 식사 때에 그리스도께서 제자들과 이야기를 하심. 

이 예식에서 일상적안 대화의 주제는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구출된 내용이었다(출 12:26, 27). 그러나 이제 위대하신 유월절 어린양은 드려질 준비가 되어 있으며, 그것에 대한 모든 이야기를 삼키고 있다(렘 16:14, 15). 여기에 보면,

1. 그리스도께서 제자들 중에서 있게 될 배반할 제자에 대해 암시를 주심(21절). 

"너희 중의 한 사람이 나를 팔리라." 여기에서 살펴 볼 수 있는 것은,

(1) 그리스도께서는 그것을 아셨다. 

우리는 어떤 고통이 우리에게 떨어질지 또는 그것들이 어디서 오는지를 알지 못한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것을 아셨다. 이것은 그의 진지성을 입증할 뿐만 아니라 그의 사랑을 돋보이게 한다. 즉 그는 그에게 일어날 모든 일들을 아셨지만 그대로 내버려두셨다. 

비록 그가 그들 가운데 유다가 있었음을 아셨지만 그에게 주어진 자들을 잘 보살피셨다. 또한 주님께서는 어떤 자가 "그들의 사신 주님을 부인"할 것인가를 아셨지만 우리의 구속의 대금(속전)을 지불하려고 하셨다. 그는 자신의 피가 "불결한 것으로 발아래 짓밟힌"것이라는 사실을 아셨지만 그 피를 흘리셨다.

(2) 기회가 있을 때마다 그는 그의 주위에 있는 사람들에게 그 사실을 알게 하셨다. 

그는 종종 그들에게 인자가 팔리우리라는 것을 말씀하셨다. 이제 그는 그들 중의 하나가 그 일을 할 것이라고 말씀하고 계시다. 

이는 그들이 이 사실을 보았을 때 덜 놀라게 할뿐만 아니라 그들의 믿음이 그 안에서 위로를 받도록 하기 위함이다(요 13:19; 14:29).

2. 이 때의 제자들의 느낌(22절). 그들은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였는가?

(1) "저희가 심히 근심하니라."

① 그들의 주님이 팔리울 것이라는 말을 듣고 그들은 매우 근심을 하였다. 

베드로가 맨 처음 그것에 대해 들었을 때 그는 "그리 마옵소서"라고 말하였다. 따라서 그렇게 팔리우는 것이 "가까이" 이르렀다는 말을 들었을 때 베드로와 그 나머지 사람들은 매우 근심했을 것은 틀림이 없다.

② 그들 중의 하나가 그 일을 할 것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그들은 더욱 근심하였다. 

한 사도가 배반자임이 입증된다는 것은 한 단체에 대한 비난이 될 것이며 이것이 그들을 괴롭게 하였다. 

은혜 받은 영혼들은 다른 사람들의 죄, 특별히 평범한 신앙고백 이상의 것을 한 자들의 죄에 대하여 근심을 한다(고후 11:29).

③ 그들을 무엇보다도 더욱 근심하게 한 것은 그들 중의 누구가 이 일을 할 사람인지를 알지 못하였기 때문이며 또한 하사엘이 말한 것처럼(왕하 8:13) 그가 바로 "이런 큰 일을 행한 개"가 되지나 않을까 하여 가자가 두려워하였던 것이다. 

유혹하는 자의 힘과 간교함, 또한 그들 자신의 연약함과 어리석음을 알고 있는 자들은 "많은 사람들의 사랑이 식어지리라"는 말을 들었을 때 괴로워하지 않을 수 없다.

(2) "각각 여짜오되 주여 내니이까?"

① 그들은 쉽사리 유다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비록 그는 "도적"이었지만, 아마도 그는 자신의 일을 그럴 듯하게 수행하였기 때문에 그와 친근한 자들은 그에 대하여 질투하지 않았던 것 같다. 아무도 유다를 바라보며 그라고 생각하거나 "주여, 그 사람이 유다입니까?"라고도 말하지 않았다. 

여기에서 유의할 것...외식자는 능히 눈에 띄거나 의심을 받지 않고 세상을 살아나갈 수 있다는 사실이다. 

이는 나쁜 돈(위조지폐)이 교묘하게 모조된다고 할지라도 아무도 그것을 의심하지 않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다.

② 그들은 자신들을 의심하였다. "주여, 내니이까?" 

그들은 그러한 경향을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지를 스스로 알아차리지는 못하였지만(이러한 생각을 그들은 전에 가져 본 일이 전혀 없었다). 그러나 그들은 최악의 상태를 두려워하였으며, 우리 자신들보다 우리에 대하여 더 잘 아시는 주님께 "주여, 내니이까?"라고 물었다. 

여기에서 유의할 것...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언제나 특히 시험의 때에 경건한 경계심을 가지고 자신에 대하여 방심하지 않는 것이 합당하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우리가 얼마나 강력하게 시험을 받게 될 것인가와 또한 하나님께서 얼마나 오랫동안 우리를 내버려두실 것인가를 알지 못한다. 그러므로 "높은 마음을 품지 말고 두려워해야만" 한다. 

주목할 것은 우리 주 예수님께서 성만찬을 제정하시기 전에 우리에게 "자신을 시험하고 판단하여 그 떡을 먹고 그 잔을 마실 것"을 가르치시기 위하여 그의 제자들에게 자신들에 대하여 이러한 시험과 의심을 하도록 하셨다는 사실이다.

3. 이 일에 대하여 그들에게 계시하신 또 다늘 교훈(23, 24절). 

여기에서 그리스도는 그들에게 다음과 같은 것을 말씀하고 계시다.

(1) 그 배반자는 친근한 친구이다. 

"나와 함께 그릇에 손을 넣는 그," 즉 나와 함께 식사를 하고 있는 너희들 중의 하나이다. 그가 이것을 말씀하신 것은 그 배반이 더욱 큰 죄임을 나타내시기 위함이다. 

여기에서 유의할 것... 거룩한 성례식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외적인 교제를 하는 것은 그에 대한 우리의 잘못을 한층 더 심화시킨다는 사실이다. 

그리스도와 함께 그릇에 손을 넣으면서도 그를 파는 것은 파렴치한 행동이다.

(2) 이것은 그렇게 할 것이라는 성경 말씀 대로였다. 

시편 61편 9절에는 그렇게 기록되었다. 즉 "나의 신뢰하는바 내 떡을 먹던 나의 가까운 친구도 나를 대적하여 그 발꿈치를 들었나이다." 우리가 고통 중에 성경 말씀이 성취되는 것을 보면 볼수록 우리는 그 고통들을 더욱 참을 수 있게 될 것이다.

(3) 그것은 배반자에게 매우 소중한 계약임을 입증할 것이다. 

"인자를 파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리로다." 그가 이것을 말씀하신 것은 유다의 양심을 일깨우고 그로 하여금 회개하고 그의 계약을 취소할 것을 깨닫게 할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이 유다처럼 죄를 짓지 말것을 경고하기 위함이다. 

비록 하나님께서 사람들의 범죄에 의해 자신의 목적에 이바지하도록 하실 수 있으시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죄인들의 상태를 덜 무서운 것으로 만들지는 못한다. "그 사람은 차라리 나지 아니하였더라면 제게 좋을 뻔하였느니라." 

여기에서 유의할 것... 그리스도를 파는 자들에게 뒤따르는 파멸은 너무도 큰 것이기 때문에 이렇게 비참한 지경에 빠지게 되는 것보다는 차라리 전혀 나지 않은 편이 더 바람직하다는 사실이다.

4. 유다의 깨달음(25절).

(1) 그가 "내니이까?"라고 물은 자신이 침묵을 지킴으로써 범죄 했다는 의심을 받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유다는 그것이 바로 자기임을 잘 알고 있었지만. 이러한 음모를 전혀 모르는 사람으로 나타내기를 원하였다. 다음의 사실에 유의하라. 

자신의 양심이 자신을 정죄하는 많은 사람들이 사람들 앞에서 자신들을 정당화시키려고 노력하며, 또한 "주여, 내니이까?"라고 말함으로써 좋은 얼굴을 나타내 보이려고 한다. 

그는 그리스도께서 알고 계신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자신의 위엄을 더 많이 신뢰하였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그는 이것을 감추어 왔으며 건방지게 그로 하여금 이를 말하도록 하였기 때문이다. 

아마도 그는 너무도 불신의 세력 아래에 놓여져 있었으므로 마치 "여호와가 보지 못할 것이라"(시 94:7)고 말하면서 "그가 능히 어두운 구름을 통해 심판하시겠느냐?"고 반문한 자들처럼 그리스도가 그것을 알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을는지 모른다.

(2) 그리스도께서는 곧 이 질문에 대답하셨다. "네가 말하였도다." 

즉 네가 말한 대로이다. 이것은 나단이 말한 "당신이 바로 그 사람이라"는 것처럼 명백하게 말씀하신 것이 아니다. 그 말씀은 그를 깨닫게 하기에 충분하였으며, 만일 그의 마음이 그렇게 강퍅하지 않았다면 자신의 정체가 주님에게 탄로가 났을 때 그 음모의 계획을 능히 취소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여기에서 유의할 것..., 그리스도를 팔려고 노력하는 자들은 언젠가 자신들을 팔게 될 것이며 또한 "그들 자신들의 혀가 자신들에 대해 말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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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만찬의 제정(마 26:26-30)...

우리는 여기에서 위대한 복음적인 성만찬의 예식이 제정된 것을 찾아 볼 수 있는데, 이것은 주님께 받은 것이다. 몇 가지로 살펴보면,

Ⅰ. 성만찬이 제정된 시기 ─ "저희가 먹를 때에." 

그 상이 치워지기전, 나아가 유월절 식사의 마지막 때에 제정이 되었는데, 그 이유는 희생 제사를 드리는 유월절이 그 예식을 대신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구속을 이루신 유월절 희생 제물이시다(고전 5:7). "우리의 유월절 양 그리스도께서 희생이 되셨느니라." 

이 예식은 우리들에게 유월절 식사이며, 이로 말미암아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구출된 것보다 더 큰 구출에 대해 적용이 되고 기념이 되는 것이다. 

속죄를 위한 율법적인 모든 제사들은 그리스도의 죽음에서 결산이 되고 폐지가 되었으므로 즐거움을 위한 모든 율법적인 절기들도 이 성례식에서 결산이 되고 폐지가 되었다.

Ⅱ. 성만찬의 제정. 

성례식은 제정되어야만 한다. 그것은 도덕적인 예배의 한 부분이 아니며 또한 자연의 빛에 의해 지시된 것도 아니며, 신적인 제정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졌고 따라서 그 중요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성례식을 명하신 것은 계약을 제정하신 자의 특권이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이 예식에 대해 언급하면서(고전 11:23 등) 계속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도 "주"라고 부르고 있다. 왜냐하면 계약의 "주"로서, 교회의 "주"로서 그는 이 예식을 제정하셨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1. 그리스도의 몸은 떡으로 묘사되어 있다. 

그는 이전에 "나는 생명의 떡"(요 6:35)이라고 말한 적이 있는데, 이 비유에 근거하여 이 성례식은 제정되고 있다. 육신의 생명이 떡으로 말미암아 공급이 되듯이(그러므로 떡은 모든 육체의 영양이 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마 4:4; 6:11). 영혼의 생명은 그리스도의 중개에 의해 공급되고 유지된다.

(1) "떡을 가지사." 

─ 즉 떡덩이 즉, 그 목적에 적합한, 이미 손에 드신 어떤 떡덩이, 이 떡덩이는 아마도 누룩을 넣지 않은 떡이었던 것 같다. 그러나 그 상황이 그렇게 중요한 것이 되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는 몇몇 희랍 정교회가 하는 것처럼 누룩 없는 떡으로만 해야 할 필요는 없다. 

그는 엄숙하게 떡을 가지셨으며, 아마도 그와 함께 앉은 자들이 볼 수 있도록 이러한 자세를 가지고 행하신 것은 그 제자들이 그 예식을 행하는 데 있어서 평범한 것 이상의 것을 기대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와 같이 주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구속을 수행하기 위하여 신적인 사랑의 의도를 가지시고 시작하셨다.

(2) "축복하시고." 

기도와 감사로써 이 일을 시작하셨다. 우리는 이 경우에 그가 사용하신 어떤 정해진 문귀를 찾아 볼 수 없다. 그러나 그가 말씀하신 것은 의심할 여지없이 손에 들고 있는 직무, 즉 이 예식에 의해 확증되고 비준된 새로운 계약에 알맞은 내용의 것이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제 칠일을 축복하신 것"(창 2:3)과 같았으며, 이 날(제 칠일)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구별되었으며 모든 사람들이 이 날을 축복된 날로 준수하도록 되었다. 

그리스도는 축복을 명령하실 수 있으시며 또한 우리는 그의 이름으로 담대하게 축복을 간구 할 수 있다.

(3) "떼어." 

이것은 아음과 같은 뜻을 나타내고 있다.

① 우리가 쓰기에 좋도록 그리스도의 몸을 우리에게 떼어 주시는 것. 

"그는 곡식이 부숴 지는 것" 같이 "우리의 불법 때문에 부숴 지셨다"(사 28:28). 비록 "그의 뼈가 꺾이우지는 않았지만"(왜냐하면 그가 모든 것이 꺾이워진다고 영약해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의 몸은 "다시 꺾고 다시 꺾었으며" 그의 상처는 더욱 많아졌으며(욥 9:17; 16:14), 그것이 그를 고통스럽게 하였다. 

하나님께서는 그가 죄인들의 "음란한 마음"(겔 16:14)으로 깨어진 것을 한탄하시며 또한 그와 맺은 우리의 계약이 깨어짐으로 그의 율법이 깨어진 것을 한탄하신다. 

이제 공의는 "파상은 파상으로 할 것"(레 24:20)을 요구하고 있으며 그리스도께서는 그 요구를 만족시키시기 위하여 꺾이우셨다.

② 가정의 아버지가 자녀들에게 떡을 떼어 주듯이 그리스도의 몸이 우리에게 떼어 분배됨.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떼어 주실 것은 우리가 손쉽게 그것을 먹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모든 것은 하나님의 말씀의 수여와 그의 은혜의 작용에 의해 우리들을 위해 예비 되어 있다.

(4) 그는 가정의 주인으로서 또한 이 줄어들기의 주인으로서, "그것을 제자들에게 주셨다." 

비록 그들은 사도들이었으며 이전에도 종종 그렇게 불리웠지만 그것을 "사도들에게" 주었다고 기록되지 않고 "제자들에게" 주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모든 제자들은 이 의식을 행할 자격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참으로 그의 제자가 된 자는 그 특권을 소유할 수 있다. 

그는 자신이 오병이어를 가지고 떡을 나누어주시던 것처럼 그들에게 나누어진 떡이 그를 따르는 모든 자들에게 나누어지도록 떼어 주셨다.

(5) "가라사대 받아 먹으라. 이것이 내 몸이니라"(26절). 

그는 여기에서 그들에게,

① 그것을 가지고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를 말씀하고 계시다.

 "받아 먹으라. 그리스도가 너희에게 주어진 것처럼 그를 받으라. 속죄를 받으라. 그것을 시인하라. 그것에 동의하라. 그 특권이 너희에게 제의된 조건을 타협하기 위하여 오라. 그의 은혜와 그의 지배에 순응하라." 

그리스도를 믿는 것은 "그를 받아들이는 것"(요 1:12)과 "그를 먹는 것"(요 6:57, 58)으로 표현되고 있다. 고기를 바라보기만 한다고 영양이 되거나 또는 아름답게 꾸며진 접시가 우리에게 영향을 주지는 못한다. 그것은 반드시 먹어야만 한다. 그리스도의 교훈도 이와 같이 먹어야 한다.

② 그들은 왜 그것을 가져야만 하는가? "이것이 내 몸이니라."  

─즉 이 떡이 아니라 몸이다 ─즉 이 먹는 것과 마시는 것. 믿음은 우리의 영혼에 대한 그리스도의 죽음의 모든 효력을 가져다준다. "이것"은 영적으로나 의식적으로 "내 몸"이다. 즉 이것은 내 몸을 의미하며 나타낸다. 

주님은 이와 같이 의식적인 언어를 구사하고 계시다(출 12:11). "그것은 주님의 유월절이다." 이 말들의 의미들을 왜곡한 나머지 로마 교회는 터무니없는 화체설(化體設)을 주장하고 있다. 그 설에 의하면 단지 떡만이 남는데도 불구하고 그 떡이 그리스도의 몸의 본체로 변화한다고 한다. 이것은 그리스도를 모독하는 것이며, 성례식의 본질을 파괴하고, 우리의 감정을 속이는 것이다. 

우리가 태양의 빛을 받게 되는 것은 우리가 손을 태양의 몸 전체에 넣기 때문이 아니라 그 광선이 우리에게 비추기 때문이다. 마찬가지고 우리가 그리스도에게 참예하는 것은 그의 은혜와 또한 그의 몸을 떼신 축복된 열매에 의해서이다.

2. 그리스도의 피가 포도주로 묘사되어 있다. 

완전한 축제가 되도록 하기 위하여 여기에는 힘을 내게 하는 떡과 "마음을 즐겁게 하는"(27, 28절) 포도주가 있다. "그는 잔" 즉 은혜의 잔을 "가지셨다." 

이 잔은 유월절에 유대인의 습관을 따라 감사를 드리고 난 후에 마시기 위하여 준비되었다. 그리스도께서는 이것을 취하셔서 성례의 잔으로 만드셨으며, 따라서 그 용도를 그와 같이 변경하셨다. 그것은 "축복의 잔"(유대인들은 그렇게 불렀다)을 의미하였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우리"가 축복하는 축복의 잔과 "그들"이 축복하는 축복의 잔과를 열심히 구별하려고 하였다. 

"그가 사례하신 것"은 우리들에게 모든 예식에서만 아니라 예식의 각 부분에서도 하나님만을 목표로 할 것을 가르쳐 주시기 위함이다. 이 잔을 그는 제자들에게

(1) 명령으로써 주시고 계시다. "그것을 받아 먹으라." 

이와 같이 그는 자신이 탁자에 온 그의 손님들을 환영하고 있으며, 그들로 하여금 그의 잔을 마실 것을 요구하고 계시다. 

왜 주님께서는 그들에게 마실 것과 또한 다른 예식의 부분보다 이 점에 대하여 더욱 강조하여 명령하시고 계시는가? 분명히 그것은 오랜 후에 이 의식에 그 명령에도 non obstante ─즉 불구하고라는 표현에 의해 평신도에게는 잔을 금지함으로써 해체될 것임을 주님께서 미리 아셨기 때문이다(역주:천주교에서는 오늘도 그렇게 한다, 즉 축복의 잔[성례의 잔]은 사제만 마신다).

(2) 설명하시면서 주셨다. "이것은 새로운 언약의 피"이다. 

그러므로 그것을 갈망하고 즐거움으로 마시라. 왜냐하면 그것은 매우 좋은 감로주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그리스도의 피는 동물의 피, 즉 실제적인 피로 묘사되어 왔다. 그러나 그 피가 실제로 흘러진 이후로 그것은 포도의 피, 즉 상징적인 피로 묘사되었다. 

그리스도에 대한 구약의 예언에서도 그렇게 불리우고 있다(창 49:10, 11). 그러면 그리스도께서는 성례식에 제시된 그의 피에 대해 어떻게 말씀하고 계시는지를 살펴보기로 하자.

① "이것은 나의 새로운 언약(신약)의 피니라." 

옛 언약(구약)은 "송아지와 염소의 피"(히 9:19, 20; 출 24:8)에 의하여 확증되었다. 그러나 새로운 언약(신약)은 그리스도의 피에 의해 확증되었다. 

이것은 여기에서 그것과 구별되고 있다. "이것은 나의 새로운 언약의 피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와 더불어 맺기를 기뻐하시는 언약과 또한 그것의 유익과 특권들은 그리스도의 죽음의 공로에 기인하고 있다.

② "흘리는 바." 

그 피는 그 다음 날에 흘려지는 것이 아니라 지금 흘려지는 상태에 있으며 또 흘린 것과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다. "너희가 이 예식을 반복, 또 다시 행하기 전에 그 피는 흘려지게 될 것이다." 그는 "지금 드려질 준비가 다 되었으며" 또한 속죄를 이루는 희생 제물의 피와 같이 자신의 피가 흘려질 준비가 다 되었다.

③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그리스도께서는 "많은 사람으로 더불어 언약"(단 9:27)을 굳게 정하시며 또한 그의 죽음의 취지가 인정받도록 하기 위하여 오셨다. 

구약의 피는 몇 사람을 위하여 흘려졌다. 그 피는 주님께서 "우리와 더불어 맺은 언약"(모세가 한 말)을 확증하였다(출 24:8). 그 속죄는 다만 "이스라엘 자손만을 위하여" 행하여졌다(레 16:34). 그러나 예수그리스도는 "온 세상의 죄를 위한" 화목제물이시다(요일 2:2).

④ 이것은 "죄사함을 얻게 하려고 흘리는 바," 

즉 우리를 위하여 죄를 면제하도록 하기 위하여 흘리는 피니라. 우리가 그의 피로 말미암아 가지게 된 구속(속전)은 "죄를 사하는 것"이다(엡 1:7). 

그리스도의 피에 의하여 얻어지고 확증된 새 언약은 하나님과 사람 사이를 화목케 하기 위한 용서의 헌장이며, 면책의 행동이다. 왜냐하면 죄는 분쟁을 이룬 유일한 원인이었고 또한 "피흘림이 없으면 사함이 없기"(히 9:22) 때문이다. 

죄사함은 주의 만찬 때에 모든 참된 신자들에게 부여된 위대한 축복이다. 그것은 모든 다른 축복의 기초이며 영원한 위로의 샘이다(마 9:2, 3). 이제 포도나무에서 난 열매는 먹지 않는다고 말해지고 있다.(29절). 

그리스도와 그의 제자들은 지금 구약과 신약의 축제에서, fibula utriusque Testamenti ─ 즉 두 언약 사이를 연결하는 띠에서 많은 위로 가운데서 함께 즐기고 있다. 이 초막은 얼마나 온화하였는가 ! 여기에 있는 것이 얼마나 좋은가 ! 이 식탁에 있는 것과 같은 지상천국에 결코 있을 수 없다. 그러나 그것은 영구히 지속하기 위한 것은 아니었다. 이제 그는 그들에게(요 16:16), "조금 있으면 너희가 나를 보지 못하겠고 또 조금 있으면 나를 보리라"고 말씀하셨으며, 이것은 여기에서 설명되고 있다.

첫째, 그는 이러한 교제를 작별하고 있다. 

"나는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이제부터 마시지 아니하리라." 즉 이제부터 나는 이 세상에 있게 되지 않을 것이다(요 17:11). 나는 그것을 충분히 먹었으며 또한 그것을 떠날 생각을 하니 즐겁다. 즉 이것이 마지막 식사라고 생각하니 즐겁다. "이 포도나무의 열매," 이 유월절 잔, 이 성례식의 포도주여, "잘 있거라." 

임종하는 성도들은 성례식과 또한 그들이 이 세상에서 즐기던 다른 교제의 예식들에 대하여 작별을 한다. 왜냐하면 그들이 들어가게 될 즐거움과 영광이 그것들보다 훨씬 우월한 것이기 때문이다. 태양이 떠오르면 촛불들은 작별을 해야만 한다.

둘째, 주님께서는 그들에게 마침내 그들을 만나게 될 것을 확신시키고 계시다. 

그것은 오랜 작별이지만 그렇다고 영원히 작별하는 것이 아니다. "새 것으로 너희와 함께 마시는 날까지"이다.

1. 어떤 사람은 이것이 그가 "아버지의 나라로" 들어가는 첫 단계인 그의 부활의 후에 제자들과 함께 가졌던 상면(interviews)에 대한 것이라고 해석한다. 

비록 그는 40일 동안에 제자들과 더불어 전과 같이 그렇게 계속적으로 대화를 하시지는 않으셨지만, 그러나 "그는 그들과 더불어 함께 먹고 마셨다"(행 10:41). 이것은 그들의 믿음을 굳게 했을 뿐만 아니라 의심할 여지없이 그들의 마음을 크게 위로하였다. 왜냐하면 그들은 이를 보고 크게 즐거워했기 때문이다(눅 24:41).

2. 어떤 사람은 이것이 여기에서 "포도주의 연회"의 즐거움에 의해 기술된 주 예수님과의 영원한 교제 가운데서 모든 성도들이 참예하게 될 미래의 즐거움과 영광에 대한 것이라고 해석한다. 

그것은 그의 아버지의 나라에 있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그 때에 그 나라는 그에게 맡겨질 것이기 때문이다. "위안의 포도주"(렘 16:7)는 오래 보관된 포도주처럼 맛이 없거나 신 것이 아닌 언제나 새로운 것일 것이다. 

또는 과음한 자에게의 포도주처럼 매스껍거나 불쾌한 것이 아니라 영원히 신선한 것일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이 그 즐거움에 참예하실 것이다. 그것은 "그 앞에 놓인 즐거움"이었으며, 그는 이 즐거움을 바라보셨으며 또한 그의 모든 신 친구들과 추종자들은 그와 함께 이 즐거움에 참예하게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여기에는 찬미로 맺은 엄숙한 끝마침이 기록되어 있다(30절). 그들은 "찬미"나 시편을 노래하였다. 

유대인들은 대개 유월절 식사를 마칠 때에는 시편을 노래하였다. 유대인들은 대개 유월절 식사를 마칠 때에는 시편을 낭송했는데, 그것을 "위대한 할렐"이라고 불렀는데, 그 시편은 113편과 그 이후의 다섯 편이다. 또한 이 경우에 어떤 새로운 찬미가 불리워졌는지는 불확실하다. 나는 앞의 것이라고 생각한다. 만일 그것이 새로운 것이었다면 요한이 그것을 빠뜨렸을 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다음의 사실에 유의하라.

1. 시편을 찬미하는 것은 복음적인 예식이다. 

그리스도께서 유월절의 끝에서 주의 만찬의 끝으로 찬미를 옮기신 것은 분명히 그가 이러한 예식이 그의 교회에서 계속되어야만 한다는 것을 명백히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즉 그 찬미가 의식적인 법으로 말미암아 생기지 않는 것과 같이 그것은 그 법과 함께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2. 그 찬미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서 우리의 즐거움을 나타내며 또한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사랑하신 그 위대하신 사랑에 대해 감사하는 표식으로써 주의 만찬 후에 불러진 것은 매우 합당한 일이다.

3. 그 찬미를 슬픔과 고난의 때에 부르는 것은 매우 합당하다. 

제자들은 슬픔 가운데 있었으며 또한 그리스도께서도 그의 고난 가운데로 들어가고 계셨다. 그렇지만 그들은 함께 찬미를 부를 수 있었다. 우리의 영적인 즐거움이 외적인 고통으로 말미암아 좌절되어서는 안 된다.

이 일을 마쳤을 때 그들은 "감람산으로 나아갔다." 주님께서는 그 집주인에게 고통을 주게 되지나 않을까 염려한 나머지 그 집에 더 이상 머물어 있으려고 하지 않으셨다. 또한 그가 성에 그대로 머물러 있지 않으신 것은 민요가 날 것을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는 인접한 곳에 있는 감람산으로 가셨는데, 이 산은 다윗이 고통 가운데서 "울며 올라 갔던"(삼하 15:20) 바로 그 산이다. 

그들은 이 때에 달빛을 받으면서 걸어갈 수 있었다. 왜냐하면 유월절은 언제나 만월 때에 있었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유의할 것은, 우리가 성만찬을 지낸 다음에는 기도와 명상을 하거나 또는 하나님과 더불어 홀로 있기 위하여 물러가 있는 것이 좋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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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께서 제자들의 도망갈 것을 예언하심(마 26:31-35)....찬325, 549

우리는 여기에서 그리스도께서 제자들과 함께 감람산으로 가시는 도중에 그들과 더불어 대화하신 것을 찾아 볼 수 있다. 몇 가지로 살펴본다면,

Ⅰ. 그리스도와 그의 제자들이 이제 함께 거쳐야 할 시련에 대한 예언. 그는 여기에서,

1. 그들을 흩어버릴 불운의 폭풍이 이제 일어나고 있음을 예언하고 계신다(31절).

(1) 그들은 "그 밤에 그를 인하여 다 실족하게 될 것이다" (역주:개역 성경에는 "다 나를 버리리라"고 되어 있음). 

다시 말하면 그들은 모두 그 고난에 대해 매우 놀라기 때문에 그와 함께 있을 용기를 가지지 못하고 다 비겁하게 그를 떠날 것이다. "오늘 밤에 나 때문에," 즉  나 때문에, 오늘 밤 때문에 그렇게도 읽을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오늘 밤 내게 일어나는 일 때문에, 다음의 사실에 유의하라.

① 실족케 되는 일이 시련과 유혹의 때에 그리스도의 제자들 가운데 있게 될 것이다. 

그들은 그렇게 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그들은 연약하고 사탄은 분주하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실족케 되는 일을 허락하신다. 마음이 올바른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종종 실족하여 넘어지게 된다.

② 몇몇 유혹과 실족케 되는 일이 있다. 

즉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흔히 일반적으로 저지르는 일들이 있다. "너희가 다 실족케 되리라"라 그리스도께서 조금 전에 제자들에게 유다의 배반에 대해 알게 하셨다. 그러나 그 나머지는 안전할 것이라고 하지 않으셨다. 

배반자는 한 사람에 불과할 것이지만 그 나머지 제자들은 모두 "버리는 자"가 될 것이다. 

주님께서 이것을 말씀하신 것은 그들로 하여금 경각심을 가지도록 일깨우기 위한 것이다.

③ 우리는 삽시간에 엄청나게 닥쳐 올 급작스런 시련에 만반의 준비를 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리스도와 그의 제자들은 평안함과 고요함 가운데서 함께 그들의 식사를 잘 하였다. 그러나 바로 그 밤이 이러한 실족의 밤으로 입증되었다. 

얼마나 빨리 폭풍은 일어나고 있는가? 우리는 언제 어느 밤에 생기게 될는지를 모르며 또한 임신한 태 속에 잠시 동안에 어떤 큰 일이 일어날는지를 알지 못한다(잠 27:1).

④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그의 제자들로 간주되는 많은 사람들에게 큰 거침돌이 된다. 

그는 우리를 위해 십자가를 지셨으며(고전 1:23). 또한 우리가 지고 가도록 부르심을 받은 그 십자가를 지셨다(마 16:24).

(2) 여기에서 그 성경말씀은 성취되고 있다. "내가 목자를 치리니(슥 13:7)."

① 그리스도께서 고난받으심으로써 목자가 매를 맺은. 그 하나님께서는 그의 사랑하시는 아들에 대하여 그의 진노의 검을 일으켜 세우고 계시며, 그는 매를 맞고 있다.

② 이로 말미암아 제자들이 도망감으로써 그 양들이 흩어짐. 

그리스도가 그의 원수들의 손에 붙잡히셨을 때, 제자들은 혹 이 길로, 혹 저 길로 뿔뿔이 도망쳐 버렸다. 자기 힘으로 변통해 나가는 것은 각자의 책임이었으며 십자가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자가 가장 안전한 자였다.

2. 주님께서는 그들에게 이러한 폭풍이 지난 후 다시 함께 모일 수 있을 것이라는 위로를 주고 계시다(32절).

 "내가 살아난 후에 너희보다 먼저 가리라. 너희가 나를 버릴지라도 나는 너희를 버리지 않을 것이다. 너희가 넘어질지라도 나는 너희가 마지막까지 넘어지지 않도록 돌볼 것이다. 우리는 갈릴리에서 다시 만나게 될 것이며, 나는 목자가 양보다 앞서 가는 것처럼 너희보다 먼저 가리라." 

어떤 사람은 그 예언(슥 13:7)의 마지막 부분, 즉 "작은 자들 위에는 내가 내 손을 드리우리라"는 말씀을 여기에 있는 말씀과 동일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의 손이 데려 오지 않고서는 그들을 다시 데려 올 수 없다. 

여기에서 유의할 것..., 우리의 구원의 대장은 그들이 겁을 먹어 뿔뿔이 헤어졌을 때에도 다시 그의 군대들을 정렬시키는 방법을 알고 계신다는 사실이다.

Ⅱ. 어떤 일이 있더라도 자신의 위신을 지킬 것이라고 베드로가 장담함(33절).

 "다 주를 인하여 실족할지라도 나는 언제든지 실족치 않겠나이다"(개역 성경에는 다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언제든지 버리지 않겠나이다"로 되어 있음). 

베드로는 큰 확신을 가지고 있었으며 또한 어느 경우에든지 혼자 앞장서서 말하였다. 그것은 종종 주님께 호의를 나타내기도 하였지만 여기에서와 같이 그를 실망시킨 일도 있었다. 여기에서 몇 가지로 살펴본다면,

1. 그는 자신이 결코 그런 그리스도를 버리지 않겠다는 약속을 굳게 하였다. 

오늘밤 뿐만 아니라 어느 때에도 결코 버리지 않겠다고 약속하였다. 만일 이 약속이 그리스도의 은혜에 겸손히 신뢰함으로써 맺어진 것이었다면 그것은 매우 훌륭한 말이었을 것이다. 

주의 성만찬 전에 그리스도의 대화는 그들로 하여금 "주여, 내니이까?"라는 말로 자신들을 "시험하도록" 진행되었다. 왜냐하면 그것이 우리가 준비해야 할 의무가 되기 때문이다. 

예식을 마치고 나서 그의 대화는 가까이 걸어가시면서 그들로 하여금 그렇게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도록" 이끌어 나가고 있다. 왜냐하면 그것이 계속적으로 해야 할 의무가 되기 때문이다.

2. 베드로는 그 자신이 다른 어떤 사람들보다 유혹을 물리칠 준비가 더 잘 되어 있다고 생각하였다. 

이것이 그의 약점이요 어리석음이다. "다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언제든지 버리지 않겠나이다." 이것은 하사엘이 말한, "무엇이라고요 ! 당신의 종이 개라고요" 보다 더 나쁜 것이었다. 왜냐하면 베드로는 그 일이 그렇게 하기 힘든 것이므로 아무도 그것을 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베드로는 "어떤 사람," 아니 "모든 사람이 실족케 될 수는 있어도 그는 그 어떤 사람들보다 더 잘 피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여기에서 유의할 것..., 우리 자신이 모든 사람들에게 공통적으로 놓여있는 유혹이나 타락에서 안전하게 피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엄청난 자만과 자기 신뢰를 입증한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오히려 다른 사람들이 실족케 된다면 역시 우리도 그렇게 될 위험이 있다고 말해야만 한다. 그러나 흔히 보면 자신에 대하여 좋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을 쉽게 의심한다(말 6:1 참조).

Ⅲ. 베드로가 한 말에 대하여 그리스도께서 특별히 경고하심(34절). 

베드로는 시험받을 때에 그 어떤 사람들보다도 더 잘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였지만 그리스도께서는 그가 더 잘 실패할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다. 그 경고는 엄숙한 서언(誓言)으로써 시작되고 있다.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즉 네가 자신을 알고 있는 것보다 더 너를 잘 알고 있는 내 말을 들으라." 주님께서는 그에게,

1. 그가 자기를 부인할 것이라고 말씀하고 계신다. 

베드로는 결코 그를 버리거나 떠나지 않을 것이라고 약속하였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그가 얼마 못되어 그를 버릴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는 다른 사람들보다 더 빨리 그 일을 행하였다.

2. 주님께서는 그가 얼마나 빨리 그 일을 행할 것인가를 말씀하고 계시다. 

즉 "오늘 밤, 내일이 오기 전에 아니 닭 울기 전에" 사탄의 유혹은 "화전"(엡 6:16)으로 비교되고 있는데, 그 화전은 우리가 알기 전에 상처를 내고야 말 것이다. 즉 "사탄은 갑자기 쏘는 것이다." 

우리가 언제 고통을 받게 될는지 알지 못하는 것처럼 우리가 언제 범죄 하게 될는지를 알지 못한다. 만일 하나님께서 우리를 내버려두신다면 우리는 언제나 위험 가운데 있게 될 것이다.

3. 주님께서는 그가 얼마나 자주 이 일을 할 것인가를 말씀하고 계시다. 

즉 "세 번," 베드로는 자신이 이런 일을 한 번도 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그가 여러 번 그 일을 할 것이라고 말씀하고 계신다. 왜냐하면 우리의 발이 한 번 미끄러지기 시작하면 다시 일어서기는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죄의 시작은 물을 엎지르는 것과 같다."

Ⅳ. 베드로가 자신의 확고한 결심을 되풀이함(35절).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베드로는 그가 "다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버리지 않겠나이다"라고 말했을 때 그 유혹이 매우 강한 것임을 예상하였다. 그러나 여기에서 그는 그것이 더 강한 것임을 예상하고 자신의 생명의 위험을 무릅쓸 것을 이야기하고 있다.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그는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것보다는 그와 함께 죽는 것이 제자 된 도리(눅 14:26)임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어떤 일이 있더라도 그의 주님을 배반하지 않겠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그가 어떤 사람인가를 곧 입증이 되었다. 

멀리서 죽음에 대하여 담대하게 또는 무관심하게 말하기를 매우 쉬운 일이다. "나는 이러한 일을 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죽고 싶다." 그러나 그러한 경우가 닥치고 죽음이 본색을 드러낼 때는 자신의 말한 대로 행하기를 쉬운 일이 아니다.

베드로는 한 말에 대하여 나머지 제자들도 동조하였다. "모든 제자도 이와 같이 말하니라." 

다음의 사실에 유의하라.

1. 선한 사람들 마음속에도 자신의 힘과 견고성에 대해 지나치게 자만하는 과오가 있다. 

우리는 자칫하면 자신들이 강한 시험과 더불어 맞붙어 싸울 수 있으며, 어려운 일을 능히 해낼 수 있으며 그리스도를 위하여 어려운 고통들을 참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가 자신들을 알지 못한 데서 비롯된다.

2. 자신에 대해 큰 자심감을 가지고 있는 자들이 종종 더 빨리 그리고 더 비열하게 넘어진다. 

가장 안심하는 자가 가장 불안정하다. 사탄은 이렇게 미혹하는 데 가장 활동적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경계를 가장 소홀히 하며 또한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겸손케 하시려고 내버려두신다(고전 10:12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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겟세마네 동산에서의 고민(마 26:36-46)

지금까지 우리는 그리스도의 고난에 대한 준비들을 봐왔다. 이제부터 우리는 피흘리는 장면으로 들어가게 된다. 

여기에서는 주님께서 겟세마네 동안에서 고민하시는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다. 이것은 우리 주 예수님에게 있어서 슬픔의 시작이었다. 이제 "여호와의 검"은 "그의 친구였던 자"를 향하여 일으켜 세우시기 시작하였다.

여호와께서 어떻게 그것을 못하게 할 수 있겠는가? 그 구름이 잠시 동안에 모여 검게 보여졌다. 주님께서는 몇 날 전에 "지금 내 마음이 민망하니"(요 12:27)라고 말씀을 하셨다. 그러나 이제 폭풍은 본격적으로 불기 시작하였다. 

그는 그의 원수들이 자신에게 어떤 고통을 주기 전에 자신이 이 고통을 미리 맛보려고 하셨는데, 이는 그 자신 자발적인 번제물이심을 보여 주기 위함이다, 그의 생명은 억지로 강요된 것이 아니라 "스스로 버리셨다"(요 10:18). 몇 가지로 살펴본다면,

Ⅰ. 이 위대한 고민을 하신 장소. 

그 곳은 "겟세마네라 하는 곳"이었다. 겟세마네라는 이름은 torculus olei ─ 즉 감람 공장, 즉 포도주 틀과 같이 감람나무 열매를 짖누르는 곳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데, 거기에서 사람들은 기름을 짜기 위해 틀에 가 넣은 "감람나무 열매를 짓밟았다"(미 6:15). 

기드론시내를 건너서 감람산으로 올라가는 감람산의 밑 부분에 있는 이 곳은 이러한 일을 하기에는 매우 적합한 곳이었다. 거기에서 우리 주님은 자신의 수난을 시작하셨다. 그 곳에서 주님은 자신을 부수고 깨뜨리심으로써 신선한 기름을 모든 사람들에게 흘려 보내셨으며, 우리로 하여금 "좋은 감람유"의 근원과 부요함에 참예케 하셨다. 거기에서 그는 그의 아버지의 진노의 포도주 틀을 혼자서 밟으셨다.

Ⅱ주님께서 이러한 고민을 하실 때 그와 함께 간 동반자.

1. 주님께서는 이 때에 다른 일에 채용되어 분주했던 유다를 제외하고 모든 제자들을 동산으로 데리고 가셨다. 

비록 늦은 밤, 잠을 잘 시간이 거의 된 밤이었지만 그 제자들은 달빛을 받으면서 그와 함께 계속하여 걸었다. 이는 마치 엘리사가 그의 주인이 머지 않아 들어올림을 받게 될 것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그의 인도를 받으면서 자신을 버리지 말라"고 간청한 것과 같다. 이와 같이 이 제자들은 어린양이 가는 곳은 어디든지 뒤따라갔다.

2. 그는 베드로와 야고보, 요한만을 데리고 그가 고민을 하신 동산 어귀로 돌아갔다. 

주님은 그 나머지 제자들은 얼마간 떨어진 곳, 아마 동산 입구 어귀에 남겨 두시면서 "내가 저기 가서 인도할 동안에 너희가 여기 앉아 있으라"고 분부하셨다. 이는 아브라함이 그의 "사환들"(창 22:5)에게 "너희는 여기서 기다리라. 내가 저기 가서 경배하리라"고 말한 것과 흡사하다.

(1) 그리스도께서는 근래에 그의 제자들과 기도하셨지만(요 17:1) 지금은 홀로 기도하러 가셨다. 

여기에서 유의할 것..., 우리가 가족들과 함께 기도한다고 해서 그것이 우리의 은밀한 기도라고 말할 수는 없다는 사실이다.

(2) 주님께서는 그들에게 "내가 저기에 가서 기도하는 동안 (너희는)여기에 앉으라" 명령하셨다. 

여기에서 유의할 것... 우리의 하나님과 은밀한 교제를 가지기 위하여 물러가 있는 자들을 방해하거나 소란케 하지 않도록 유의해야만 한다는 사실이다. 

그가 이 세 제자를 대동하신 것은 그들이 변화산에서 변형되실 때 그 영광을 목격한 증인(마 17:1, 2)일 뿐만 아니라 또한 그들을 자신의 고민에 대한 종으로 준비시키려고 하셨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유의할 것..., 믿음으로 그의 영광을 보고 또한 거룩한 산에서 영광스럽게 된 성도들과 교제를 가진 자들은 그리스도와 함께 고난을 받도록 예비 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고난을 받으면, 그와 함께 왕노릇하게 될 것이다." 또한 만일 우리가 그와 함께 왕노릇하기를 원한다면 왜 우리는 그와 함께 고난을 받을 것을 기대하지 아니하는가?

Ⅲ. 그가 처해 있던 고민. "그는 고민하고 슬퍼하셨다." 

그것은 번민(눅 22:44), 즉 고통이라고 불리워지고 있다. 그가 처해있는 것은 어떤 육체적인 고통이나 괴로움은 아니었다. 그를 손상시킬 것은 하나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그것이 어떤 것이었든지간에 그 고민은 속으로부터 연유하였다. 

그는 민망히 여기셨다(요 11:33). 여기에서 사용되고 있는 단어는 매우 강조적이다. 그는 슬퍼하며 당황하셨다. 후반에 있는 단어는 자신이 진정 원하지 않는 슬픔과 함께 느껴지는 바, [우울-불안의 극단적 상태인 당장 존재가 끊겨질 것 같은 공황감을 나타낸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자신의 심령이 마치 무거운 납덩이를 매단 것과 같고, 진정 즉을 것 같으셨다. 의사들은 이 말을 학질에 걸린 사람이 어지러워하거나 열이 시작될 때에 유사한 말로 사용하고 있다. ((과연 공황발작이라 할 만하다!!)) [[공황 발작 = 강렬한 공포나 불편과 함께 다음의 신체적 감정적 증상 중 최소 4개의 증상이 갑자기 나타날 때 진단함... 흉부 통증 또는 불편감, 질식감, 어지럼증-불안정함-또는 현기증, 죽음에 대한 두려움 엄습, 미칠 것 같은 두려움이나 통제력 상실의 두려움, 비현실감-기묘한 기분-환경과의 분리, 상기됨 또는 오한, 구역- 복통 또는 설사, ㅡ무감각/마비감 또는 저린 느낌, 심계항진 또는 심박수 증가, 숨참-질식감, 발한, 미진 또는 떨림의 느낌]]

이제 시편 22편 14절에 있는 말씀이 성취되었으니, 곧 "너는 물같이 쏟아졌으며, 내 모든 뼈는 어그러졌으며 내 마음은 촛밀 같아서 내 속에 녹았나이다." 또한 다윗이 자신의 영혼의 슬픔에 대해 불평하고 있는 시편에 있는 모둔 구절들이 성취되었다(시 18:4, 5; 42:7; 55:4, 5; 69:1-3; 88:3; 116:3). 또한 요나의 불평이 성취되었다(욘 2:4, 5).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의 이유는 무엇이었는가? 무엇이 그로 하여금 이러한 고민 가운데로 들어가게 했는가? 예수님이시여, "어찌하여 당신은 내던짐을 받으셨으며, 어찌하여 불안하여 하셨나이까?' 분명히 그것은 그의 아버지에 대해 실망하거나 불신하는 것이 아니었고 더욱이 그와 논쟁하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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