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21.03.21 작성자 : 양시영
제   목 : 눅1.서문.세례요한출생통고.예수탄생통고.마리아의찬가.세례요한출생.사가랴의예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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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주JC의 부활 승천-성령 강림/내주하심으로써, 거듭난 참 제자-증인들에게  이미 임한, 참 믿는이라면 그 누구아 누림 가능한 하나님 나라의 본질!!.... 희년을!! 희년의 복음을 선포하라 ((레위기 25:8~12))]

.....너는 일곱 안식년을 계수할지니 이는 칠 년이 일곱 번인즉 안식년 일곱 번 동안 곧 사십구 년이라 일곱째 달 열흘날은 속죄일이니 너는 뿔나팔 소리를 내되 전국에서 뿔나팔을 크게 불지며 너희는 오십 년째 해를 거룩하게 하여 그 땅에 있는 모든 주민을 위하여 자유를 공포하라 이 해는 너희에게 희년이니 너희는 각각 자기의 소유지로 돌아가며 각각 자기의 가족에게로 돌아갈지며 그 오십 년째 해는 너희의 희년이니 너희는 파종하지 말며 스스로 난 것을 거두지 말며 가꾸지 아니한 포도를 거두지 말라 이는 희년이니 너희에게 거룩함이니라 너희는 밭의 소출을 먹으리라​

===이 땅에 대언할 생기, 희년

올 해를 시작하며 우리로 생기를 대언하라 말씀하신 주님은, 우리의 외침을 더 분명한 선포가 되게 할 또 다른 키워드, ‘희년’을 주셨습니다. 

사실, ‘쥬빌리(Jubilee)’는 한번쯤 들어봤을 익숙한 성경 속 단어입니다.  이제, 우리는 ‘쥬빌리(Jubilee)’란 단어를 구속해야 합니다. ‘Jubilee’, 곧 ‘희년’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 아버지의 애틋한 마음에서 비롯되는 자유와 회복의 은혜를 상징합니다. 

오늘 본문 레위기 25장을 봅니다. 이스라엘 전역에서 나팔을 불며 시작되는 희년은 히브리어로 ‘요벨’이라 하는데, 이는 ‘나팔소리’, ‘가져오다’, ‘생기게 하다’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일주일에 하루 안식일을 지킬 뿐 아니라 7년마다 1년씩 안식년을 갖는데, 그 안식년이 일곱 번째 오는 해, 즉 49번째 안식년이 올 때 그 다음 해인 50번째 해를 희년으로 선포합니다. 그리고 Jubilee에 행해야 하는 규례들을 따르는데, 이 때 노동을 금하는 안식과 토지의 반환, 종들의 속량 등이 행해집니다. 빚이 탕감되고, 묶인 자들이 자유케 되며, 이전의 것들이 새로워지는 은혜의 날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희년의 선포 –첫째, 안식

희년의 규례들 중, 첫 번째로 안식에 대해 나눕니다. 

속죄일에 전국에서 뿔나팔을 불며 희년이 선포되면, 이스라엘은 49번째 안식년에 이어 또 다시 노동을 하지 않는 안식의 일 년을 더 보내야 합니다. 사람의 계산과 판단으로 이러한 안식의 시간을 생각한다면, 이는 위험천만한 행위입니다. 2년을 연달아 땅을 경작하지 않을뿐더러 희년이 지나고 다음 해가 왔을 때 파종을 시작해도 그 농작물이 수확되기까지 일년에 가까운 시간을 또 기다려야 하기 때문입니다. 즉 이스라엘은 3년에 가까운 긴 시간을 소출 없이 버텨내야 하는 위험부담을 감수해야 합니다. 그럼에도 주님은 파종을 금하나 주리지 않을 것이라 약속하시며 믿음의 삶을 도전하십니다. 

기쁨에 겨워 믿음으로 자원하여스스로 위험을 맞이하는 행위 속에서 하나님의 공급하심을 경험케 하시는 것입니다. 

안식일의 진짜 의미가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에게 진정한 안식의 의미는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예배하는 백성으로 부르셨습니다. 

.......그런데 예배하도록 택함 받은 이스라엘이 밭을 일구고 수확물을 쌓아가다가 정체성을 잊어갑니다. 이방 민족의 농경 사회에서나 보는 우상의 문화와 풍속에 젖어들다가 부르심을 잊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안식일과 안식년에 하나님을 예배하게 하십니다. 잃어버렸던 예배와 잊었던 율법들을 행함으로 하나님 나라의 백성됨을 기억하게 하십니다. 이스라엘에게 안식년은 예배의 해입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해입니다. 

우리에게 안식은 무엇을 의미하고 있습니까? 취미생활입니까? 여행입니까? 잠입니까? 하나님을 만날 때 진정한 안식을 경험합니다. 예배의 자리에서 우리의 영혼과 육이 새로워지는 회복을 경험합니다. 그리고 주님의 임재안에서 우리는 부르심을 상기합니다. 소망을 회복합니다. 여호와를 경외하고 주를 예배함으로 새로운 출발선에 다시 서는 것입니다. 이것이 이 땅에서 우리가 누릴 수 있는 진정한 안식, 우리의 마음과 의지와 육체가 새롭게 되는 주 안의 안식입니다.

===희년의 선포 –둘째, 토지 무르기

희년의 날에 지켜야 할 의무에 또한 토지 무르기가 있습니다. 본문 23~34절까지가 그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 들어갔을 때, 각 지파와 가문 별로 땅을 나누어 주셨습니다. 레위지파를 제외한 모든 가족들이 땅의 분깃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가며 그들 중에서 땅을 빼앗기는 자가 생겨납니다. 본문은 그렇게 땅을 빼앗긴 가난한 자, 또는 스스로 땅을 무를 수 없는 자들이 어떻게 땅을 찾아올 수 있는지에 대해 말합니다. 그리고 그 어느 조건도 충족시키지 못하는 자들에게 희년을 약속하십니다. 앞서 말한 어떤 방법들로도 땅을 무를 수 없던 자들에게 희년이 되면 아무런 조건 없이 하나님께서 원래 분배하셨던 땅을 회복시켜 주는 것입니다. 

여기에 우리가 기억할 하나님 나라 백성의 고백이 있습니다. 모든 땅의 소유가 하나님께 있듯이, 우리의 모든 소유도 여호와께 속하였다는 것입니다. 성도에게 삶의 주인은 내가 아닌, 여호와 이십니다. 

땅의 소유가 주께 있음을 고백하며 선포하는 이 위대한 희년의 행함을 토지 공개념으로 잘못 해석하고 차용하는 조지스트들은 명백한 오류를 범하였습니다. 

성경은 결코 토지가 정부에 귀속되어야 한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오직 여호와만이 땅과 하늘의 주 되십니다. 희년의 대로 성회를 지나오는 이 한 주, 특별히 이 말씀에서 하나님 아버지의 애틋한 마음이 부어졌습니다. 여러분은 정말 주님의 것입니까? 여러분에게 주어진 모든 소유가 여호와의 소유입니까? 그렇다면 희년에 잃었던 땅을 되찾아 주시는 여호와의 마음 안에서, 형통할 것을 믿으며 선포합시다. 기복신앙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무슨 이유에서든, 땅을 빼앗기고 기업을 무를 수 없게 된 자들에게 그들의 것을 되찾아 주시는 주님의 마음으로 희년을 취하라는 것입니다. 희년이 되면 여호와가 땅을 나누셨던 처음으로 되돌아가듯 우리의 소유가 주께 속해 있음을 고백한다면, 희년의 축복을 취해야 합니다. 이것이 희년을 베푸시는 아버지의 마음이며, 성도가 회복할 은혜입니다.

===희년의 선포 –셋째, 종의 속량

희년에 행하는 일, 세 번째로 종의 속량이 있습니다. 이는 본문 35절 이후로 이어지는 내용의 대부분에 해당됩니다. 

팔려갔던 자들, 그래서 종 노릇을 하던 자들이 조건없이 놓임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어떤 이는 운 좋게도 종으로 팔린 지 하루 만에 희년을 맞이했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반면에 어떤 이들은 수십년의 세월 동안 종의 삶을 살아가며 자유인으로 살던 기억들을 잊었을지도 모릅니다. 이미 종의 삶에 익숙해져서, 능동적인 의지는 꺾여 지고 스스로 선택하는 것을 두려워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어떠한 상황에 놓여 있든, 희년이 선포되면 모두가 자유롭게 됩니다.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어느 날 울려 퍼지는 나팔 소리와 함께, 매였던 삶에서 놓임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을 기억하게 합니다. 우리가 과거에 어떠한 죄를 얼마나 지었던, 그리고 앞으로 어떠한 죄를 얼마나 질 것이던, 주님은 모든 죄를 용서하셨습니다. 죄의 종 노릇하던 우리를 십자가에서 흘리신 보혈로 구속하셨습니다. 죄의 저주에 매여있던 우리를 자유케 하사 모든 결박에서 해방을 선포하신 것입니다. 이 은혜에 날마다 감사하는 심령이 있길 축복합니다.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내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는 어리석은 자가 되지 않길 축원합니다. 우리의 힘과 노력으로 벗어날 수 없던 종의 삶에서 자유를 선포하신 주님의 은혜를 기억할 때, 함께 주님을 따라가는 공동체 안에서 진정한 희년의 감격을 누릴 수 있습니다.

===희년의 선포로 침노하는 하나님의 나라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 ...이에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되 이 글이 오늘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 하시니.” 

구약의 희년은 신약으로 넘어와서 십자가와 성령으로 완성되는 예수님의 사역의 결과, 곧 하나님의 나라로 기록됩니다. 희년이 오면 이스라엘이 보았던 구속과 해방이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놀라운 하나님의 나라 안에 있는 것입니다. 이제, 십자가에서 이미 희년이 선포되었음을 기억합시다. 우리를 구속하시고 모든 결박에서 자유케 하신 희년의 축복을 취하여 누리시길 축원합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희년을 선포할 때, 하나님의 나라가 나의 삶 뿐 아니라 이 나라와 열방에서 확장되는 것을 볼 것입니다.

***merry : wonderful, youthful, joyful,delightful, cheerful, pleasant, exsuberant<가득하여 넘치는> :: 성령으로 잉태되어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베들레헴 말구유에서 태어나신 아기 예수, 바로 그분은 영원무궁히 살아계신 주님-주인-왕이신 나의 하나님....아버지의 사랑과 기쁨됨의 인침, 성령으로 기름부음 받아 머무르는 성령충만 넘침 공급으로  이땅을 사신 분,  사랑-기쁨/열락/열납-평강의 왕 : 화해-화목-화평-평안을 위함, 온유-겸손-긍휼의 그릇안에 담긴 진실-실상-실재/실체/실재를, 아버지께서 보이시고 들려주신 그대로 말함, 대속제물로 자신을 내어주사 십자가대속의 죽음-부활-승천을 거쳐 이제 참되게 믿는 이의 생명과 생명공급의 모든 것이 되신 분, 생명말씀, 곧 생명의 떡과 생명수(음료), 살과 피를 믿어들어감으로 누림이 되심(은혜 위에 은혜) === 내주하시는 그리스도, 성령으로 계시며 임마누엘이심 :: 주인-주님-왕의 뜻과 심정, 마음을 헤아려 그분의 임재 앞에서 행하는,  순종-절제하는 참된 종이요 주께서 보내신 화목의 직분자, 바로 그  자각,  그 기쁨과 감사로 오늘 행하기...왕이신 나의 하나님, 내주 같은 분 없네, 하나님께로 더 가까이, 주 품에, 주께 가까이, 주나의 모든 것. 내손을 들고, IworshipYou.IloveYouLord.나의안에거하라   

......@@belief/believe into((attach to, adhere to, cling to/ trust, confidence) ==> 하나님의 전능한 & 미쁘신 (참) 믿음 = faith/faithful [믿는 이 마음에 내주하여 계시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일하심은 반드시 지고지선, 최상의 그 열매가 맺혀짐.....주님은 지혜의 영/총명의영/모략의 영/재능의 영/지식의 영/경외함의 영] ==>serene/serenity[고요/평온/청명]  ==> serendipitous/serendipity [전문가적, 책임적 자세로 분투노력 지속 + 긍정적인/깨어 있는/개방성-창의성-탄력성 있는/섬광같이 떠오른/.돌발적인-예기치못한-우연한 발견의 준비가 되어 있는...예기치못한 발견/돌파/성취/해결]

@@@하나님의 입으로 발하여진 말씀이신 로고스<영원히 항상 있는 말씀>와 레마<지금 하시는, 현재 베풀어주시는 즉각적인 말씀, 바로 그 말씀 믿고 준행하는 이마다에게 바로 그대로 그분의 능력과 어떠하심 경험-체득케 하심 : 곧 로고스이시며 동시에 레마이심>이신 분.. (((로고스와 레마이신 분이 뜻하신 것을 입으로 발하여 낸 바 이것이 기록된 것이 그라페(그라마)...기록된 말씀)))...<호흡보다 의식보다 더 가까우시며 영혼몸 곧 전존재의 모든 영역과 세포 하나하나마다에 하나되어 계시기에, 친밀한 신뢰로 주이름 불러 여쭈고 응답함 통해 상호간에 참되게 이해-교통 가능케 하셨음>...영원과거전부터 영원미래에까지 참되게 믿는이의 생명이자, 믿는이에게 끊임없이 솟구쳐 공급하는 생명<=생명공급>이로되, 성육신-십자가대속의 죽음-부활-승천의 모든 과정 거쳐 믿는 이의 영에 성령(그 영)으로 내주하시는 그리스도 = 생명 공급하시는 하나님이시며, 하나님의 참 생명 자체이심.....살아 생동하는 본질적 생명의 떡과 음료로서, 생명이란 관계적 여호와 하나님의 관계적 인격<구약성경의 여호와의 어떠하심, 신약성경의 성령의 9가지 열매 --> 그리스도의 온유-겸손-한량없는 긍휼과 자비로 표출>
==로고스는 진술(마 5:37), 말이나 언사(마 12:32; 눅 20:20), 질문(마 21:24), 명령(눅 4:36), 보고나 소문(행 11:22; 눅 5:15), 강화(마 15:12), 기록된 말(행 1:1), 성경의 말씀(고전 15:54), 선포나 가르침(눅 4:32; 요 4:41)로 사전적 일반적으로 정의하고 있으나, 말씀이신 예수(요 1:1, 14) 그분자체를 지칭하기도 한다. 즉, 로고스(logos)란 기독교의 선포 전체를 지향하는 말을 말한다.
==레마(rhema)는 [그 반면에] 개별적인 말 혹은 발언들 하나하나와 결부되어(마 12:36) 케리그마적인 특징을 띠며 발하여진 그 말씀에 대한 성취가 [반드시] 뒤따른다(눅 1:37; 5:5-8). 누가복음과 요한복음에 많이 사용되었다.
==글롯사(glossa...방언)는 일반적으로 몸의 지체인 혀(눅 16:24; 계 16:10)를 뜻하는 말로서 [하나님이 약속하신, 참되게 주를 믿는 이마다에게 부어주시마 하신 ]성령 세례의 한 표현이요 성령의 은사인 방언을 가리키는데, 신약에서 구약의 예언이 성취되고 구원 시대의 도래를 알리는 표적으로 간주되었다(행 2:16-21과 욜 2:28-32, 고전 14:21과 사 28:11 이하 등). 또한 성령의 새롭게 하시는 권능을 알리고 제자들에게 임한 불의 혀(행 2-3장)로서 성령의 역사하심을 나타내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송하고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고백하는(빌 2:11) 일도 혀를 통해 이루어졌다.
==한걸음 더 더 나아가 살펴 보면, 설교는 그 내용에 따라 흔히 케리그마와 디다케로 나뉜다.
----케리그마는 '비기독교 세계에 대한 복음, 곧 기독교의 공중선포로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 부활, 재림, 심판, 회개, 천국과 지옥, 성령과 악령의 싸움 같은 내용들의 선포요, 디다케는 케리그마의 기초 위에 선포되는  '개심자들에 대한 마땅한 윤리적 교훈, 곧 교훈-책망/경책/경계/권면-바르게함/의로 교육함'이다


누가복음(서론)

우리는 이제 “누가”(Luke)라는 이름을 가진 또 다른 복음서 기자에 관한 연구의 문턱에 들어서게 되었다. 

그 복음서의 일부는 안디옥 출신인 성(聖) 제롬(Jerome)이란 이름이 그러하듯이, “루킬리우스”(Lucilius....빛나다)란 이름의 요약 형식을 취하고 있다. 

(*어떤 사람은 생각하기를, 모든 성경 기자들 중에서 이스라엘인이 아닌 유일한 인물로서, 헬라인인 그는 유대교 개종자이며, 추측컨데 안디옥에서 바울의 전도로 인하여 기독교로 전환한 것으로 보기도 한다.--소수의 의견임.)

(*고대의 어떤 학자라고 하는 사람들은 누가가 화가라고 말하면서, 그가 동정녀 마리아의 초상을 그렸다고 한다.--소수의 의견임.. 그러나 휘트비(Whitby) 박사는 그러한 억측은 아무 믿을 만한 근거가 없다고 했다.)

(*또 어떤 사람은 생각하기를, 바울이 고린도전서 8장 18절에서, “이 사람은 복음 전하는 일에 있어서 그리스도의 모든 교회에서 칭찬을 받는 자요”라고 한 바로 “그 형제”라고 한다. 마치 그가 “이 복음”을 저술함으로 인해서 “모든 교회의” 찬사를 받았다는 것으로 본다. 나아가 바울이 로마서 2장 16절에서 “그의” 복음을 이야기했을 때에, 이것을 의미했다고 보는 것이다.--소수의 의견임.. 그러나 이러한 사실들은 모두가 아무런 근거가 없는 것이다.)

[공통적 견해로 여겨지는 것을 소개하자면] 그는 마게도니아에서부터 항상 전도하는 바울과 항상 함께 동행하는 수행원이 되었다(행 16:10). 그는 의술의 연구에 전념한 의사이기도 했기에 바울은 그를 골로새서 4장 14절에서 “사랑받는 의사 누가”라고 불렀다. 

[오리겐, 에피파누스, 그리고 매튜헨리까지도 찬동하는 의견으로는, (대다수가 인정하는 바)] 누가는 70 전도인 제자들 중의 일원이었을 것이며, 그는 그리스도가 생존시에 그의 추종자였을 것이다. (그렇다면 누가는 나면서부터 이스라엘 사람일 것이다.) 

바울과의 전도여행을 [2차전도여행때 드로아에서 합류하여 빌립보까지, 3차때는 빌립보에서부터 그 후 계속] 같이 하는 동안, [바울이 가이사랴 감옥에서 2년부터 로마감옥1, 2차까지 투옥되었을 그 모든 당시조차, 그를 떠나지 않고 자원해서 감옥에 함께 하여 그를 돌보았었다] 그의 지시에 의해서 누가가 이 복음서를 썼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 복음서의 저술 시기는 확실하지는 않지만 대개 추측이 가능하다. 

---어떤 사람은 이 복음서는 그리스도의 승천 후 17년(다른 견해로는 22년)에 걸쳐서 그가 바울과 여행하던 중에 씌어졌다고 말한다. 

---또 다른 사람들은 [널리 인정되는 견해임] 누가가 그의 역사서 “사도행전”(누가복음의 연속임)을 쓰기 얼마 전에 로마에서 썼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그 시기는 아마도 사도행전 역사의 끝맺음으로 추측컨데 바울이 갇힌 감옥에서 설교하던 중에, 누가가 그와 함께 있을 때이다. 그 때에 바울은 디모데후서 4장 11절에서, 누가만이 자기와 함께 있었다고 말하였다. 

::: 누가가 자원해서 바울과 함께 옥에 갇혀 있을 때에, 그는 이 두 역사서의 자료를 수집할 여유를 가졌던 것이라고 추측해 볼 수 있다(교회의 많은 훌륭한 저작들은 교회를 위해 투옥된 죄수들에게 빚진 것이다). 그렇게 가정한다면 이 누가복음은 그리스도 승천 이후 27년, 곧 네로의 제위 제4년 경에(AD58년경) 씌어진 것이다.

케이브(Cave) 박사는 "누가의 저술 방법은 정확, 세밀하며, 문체는 부드럽고 우아하고 웅장하며 고상하여, 지금까지도 그 의미가 분명하며, 다른 어떤 성경 기자보다도 더욱 순수한 헬라적인 기질로 자기를 표현했다"고 평했다. 

이처럼 그는 다른 복음서 기자보다 더욱 풍부한 사실을 다채로운 어휘로 구사해 준다. 

특별히 그는 JC의 제사장적 직능에 관련되어 있는 것들을 그렇게 취급하고 있다.

제롬은 말하기를, 그는 84살이 죽었으며, 독신이었다고 한다. 

어떤 사람은 누가가 순교했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그가 언제, 어디에서 죽었는지는 확실하지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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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 시리아 안디옥 또는 빌립보 출생. 다소에서 의사로 개업하고 있을 때 사도 바울의 전도로 그리스도교로 개종(改宗).

(교부들 중 몇사람은 70인전도자중 하나로 보기도 함) 

이후 바울의 2차 전도여행 중 드로아에서 바울-실라-디모데 일행과 함께 빌립보까지 동행했음, 

약 6년 후인, 바울로의 3차 전도여행 때 다시 빌립보에서 바울과 합류 그 이후 2차 로마감옥 투옥동안에도 계속 함께 함

== 2년 동안 가이사랴 감옥에서 그와 함께 옥고를 치렀고 로마(1차, 2차 수감시)까지 동행. 

이때 (가이샤랴에 함께 있을 때부터)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의 자료를 모은 것으로 추측한다. 그는 당시 그리스어에 능통한 교양인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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눅1장

===데오빌로 각하에게

1.  우리 중에 이루어진 사실에 대하여

2.  처음부터 목격자와 말씀의 일꾼 된 자들이 전하여 준 그대로 내력을 저술하려고 붓을 든 사람이 많은지라

3.  그 모든 일을 근원부터 자세히 미루어 살핀 나도 데오빌로 각하에게 차례대로 써 보내는 것이 좋은 줄 알았노니

4.  이는 각하가 알고 있는 바를 더 확실하게 하려 함이로라 ::: *세례요한의 탄생-생활/사역-순교. 은혜의 구주JC의 탄생, 생활, 사역, 가르침, 부활과 승천에 관한 사건 기록들임

===세례 요한의 출생을 예고하다

5.  ○유대 왕 헤롯 때에 아비야 반열에 제사장 한 사람이 있었으니 이름은 사가랴요 그의 아내는 아론의 자손이니 이름은 엘리사벳이라

6.  이 두 사람이 하나님 앞에 의인이니 주의 모든 계명과 규례대로 흠이 없이 행하더라

7.  엘리사벳이 잉태를 못하므로 그들에게 자식이 없고 두 사람의 나이가 많더라

8.  ○마침 사가랴가 그 반열의 차례대로 하나님 앞에서 제사장의 직무를 행할새

9.  제사장의 전례를 따라 제비를 뽑아 주의 성전에 들어가 분향하고

10.  모든 백성은 그 분향하는 시간에 밖에서 기도하더니

11.  주의 사자가 그에게 나타나 향단 우편에 선지라

12.  사가랴가 보고 놀라며 무서워하니

13.  천사가 그에게 이르되 사가랴여 무서워하지 말라 너의 간구함이 들린지라 네 아내 엘리사벳이 네게 아들을 낳아 주리니 그 이름을 요한이라 하라

14.  너도 기뻐하고 즐거워할 것이요 많은 사람도 그의 태어남을 기뻐하리니

15.  이는 그가 주 앞에 큰 자가 되며 포도주나 독한 술을 마시지 아니하며 모태로부터 성령(구약적 표현은 holy spirit이 아니라  the spirit of holiness임 :: 즉, 세레요한은 신약시대 최초로 성령 충만 받아 살았던 사람)의 충만함을 받아

16.  이스라엘 자손을 주 곧 그들의 하나님께로 많이 돌아오게 하겠음이라

17.  그가 또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으로 주 앞에 먼저 와서 아버지의 마음을 자식에게, 거스르는 자를 의인의 슬기에 돌아오게 하고 주를 위하여 세운 백성을 준비하리라

18.  사가랴가 천사에게 이르되 내가 이것을 어떻게 알리요 내가 늙고 아내도 나이가 많으니이다

19.  천사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하나님 앞에 서 있는 가브리엘이라 이 좋은 소식을 전하여 네게 말하라고 보내심을 받았노라

20.  보라 이 일이 되는 날까지 네가 말 못하는 자가 되어 능히 말을 못하리니 이는 네가 내 말을 믿지 아니함이거니와 때가 이르면 내 말이 이루어지리라 하더라

21.  백성들이 사가랴를 기다리며 그가 성전 안에서 지체함을 이상히 여기더라

22.  그가 나와서 그들에게 말을 못하니 백성들이 그가 성전 안에서 환상을 본 줄 알았더라 그가 몸짓으로 뜻을 표시하며 그냥 말 못하는 대로 있더니

23.  그 직무의 날이 다 되매 집으로 돌아가니라

24.  ○이 후에 그의 아내 엘리사벳이 잉태하고 다섯 달 동안 숨어 있으며 이르되

25.  주께서 나를 돌보시는 날에 사람들 앞에서 내 부끄러움을 없게 하시려고 이렇게 행하심이라 하더라

===예수의 나심을 예고하다

26.  ○여섯째 달에 천사 가브리엘이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아 갈릴리 나사렛이란 동네에 가서

27.  다윗의 자손 요셉이라 하는 사람과 약혼한 처녀에게 이르니 그 처녀의 이름은 마리아라

28.  그에게 들어가 이르되 은혜를 받은 자여 평안할지어다 주께서 너와 함께 하시도다 하니

29.  처녀가 그 말을 듣고 놀라 이런 인사가 어찌함인가 생각하매

30.  천사가 이르되 마리아여 무서워하지 말라 네가 하나님께 은혜를 입었느니라

31.  보라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32.  그가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어질 것이요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왕위를 그에게 주시리니

33.  영원히 야곱의 집을 왕으로 다스리실 것이며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

34.  마리아가 천사에게 말하되 나는 남자를 알지 못하니 어찌 이 일이 있으리이까

35.  천사가 대답하여 이르되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이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어지리라

36.  보라 네 친족 엘리사벳도 늙어서 아들을 배었느니라 본래 임신하지 못한다고 알려진 이가 이미 여섯 달이 되었나니

37.  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하지 못하심이 없느니라

38.  마리아가 이르되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하매 천사가 떠나가니라

===마리아가 엘리사벳을 방문하다

39.  ○이 때에 마리아가 일어나 빨리 산골로 가서 유대 한 동네에 이르러 :::유대산지는 [수20:1-9]도피성이자 제사장의 분깃인 헤브론으로 보는 견해에서 엔케렘으로 바뀌고 있음,(엔케렘은 예루살렘 남서쪽 8km..요단강을 따라서 열려있었던 요단동편길(베레아길)로 갔다면... 갈릴리 호수에서 사해까지는 약 96㎞으로서, .:: 예루살렘-나사렛 간 직선거리와 비슷, 여리고 -예루살렘 간은 대략 36km (요단동편 베다니로부터는 약 38-40km로 보면 됨)...벳산은 요단강 길이의 상2/3 지점이므로 요단동편길을 택한다면 도보로 나사렛-데가볼리의 벳산-요단동편베다니-예루살렘-엔케렘까지는 약150km로 보면 될 것 :: 군대 행군시는 하루 약33km까지 가능하므로 적어도 5일길 ==마리아가 엔케렘 방문시는 편도로 약7일 소요되었을 듯.....한편 엔케렘은 예루살렘과 베들레헴 사이에 있으며, 예루살렘-베들레헴사이는 10km거리

40.  사가랴의 집에 들어가 엘리사벳에게 문안하니

41.  엘리사벳이 마리아가 문안함을 들으매 아이가 복중에서 뛰노는지라 엘리사벳이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42.  큰 소리로 불러 이르되 여자 중에 네가 복이 있으며 네 태중의 아이도 복이 있도다

42.  큰 소리로 불러 이르되 여자 중에 네가 복이 있으며 네 태중의 아이도(=the fruit of thy womb. : 태중의 아기는 생명나무의 그 열매란 뜻) 복이 있도다

43.  내 주의 어머니가 내게 나아오니 이 어찌 된 일인가 :: 성령에 의해 알게된 지식에 의한 고백임

45.  주께서 하신 말씀이 반드시 이루어지리라고 믿은 그 여자에게 복이 있도다

===마리아의 찬가

46.  마리아가 이르되 내 영혼이 주를 찬양하며

47.  내 마음이 하나님 내 구주를 기뻐하였음은

48.  그의 여종의 비천함을 돌보셨음이라 보라 이제 후로는 만세에 나를 복이 있다 일컬으리로다

49.  능하신 이가 큰 일을 내게 행하셨으니 그 이름이 거룩하시며

50.  긍휼하심이 두려워하는 자에게 대대로 이르는도다

51.  그의 팔로 힘을 보이사 마음의 생각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셨고

52.  권세 있는 자를 그 위에서 내리치셨으며 비천한 자를 높이셨고

53.  주리는 자를 좋은 것으로 배불리셨으며 부자는 빈 손으로 보내셨도다

54.  그 종 이스라엘을 도우사 긍휼히 여기시고 기억하시되

55.  우리 조상에게 말씀하신 것과 같이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영원히 하시리로다 하니라

56.  마리아가 석 달쯤 함께 있다가 집으로 돌아가니라

===세례 요한의 출생

57.  ○엘리사벳이 해산할 기한이 차서 아들을 낳으니

58.  이웃과 친족이 주께서 그를 크게 긍휼히 여기심을 듣고 함께 즐거워하더라

59.  팔 일이 되매 아이를 할례하러 와서 그 아버지의 이름을 따라 사가랴라 하고자 하더니

60.  그 어머니가 대답하여 이르되 아니라 요한이라 할 것이라 하매

61.  그들이 이르되 네 친족 중에 이 이름으로 이름한 이가 없다 하고

62.  그의 아버지께 몸짓하여 무엇으로 이름을 지으려 하는가 물으니

63.  그가 서판을 달라 하여 그 이름을 요한이라 쓰매 다 놀랍게 여기더라

64.  이에 그 입이 곧 열리고 혀가 풀리며 말을 하여 하나님을 찬송하니

65.  그 근처에 사는 자가 다 두려워하고 이 모든 말이 온 유대 산골에 두루 퍼지매

66.  듣는 사람이 다 이 말을 마음에 두며 이르되 이 아이가 장차 어찌 될까 하니 이는 주의 손이 그와 함께 하심이러라

===사가랴의 예언

67.  ○그 부친 사가랴가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예언하여 이르되

68.  찬송하리로다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여 그 백성을 돌보사 속량하시며

69.  우리를 위하여 구원의 뿔을 그 종 다윗의 집에 일으키셨으니

70.  이것은 주께서 예로부터 거룩한 선지자의 입으로 말씀하신 바와 같이

71.  우리 원수에게서와 우리를 미워하는 모든 자의 손에서 구원하시는 일이라

72.  우리 조상을 긍휼히 여기시며 그 거룩한 언약을 기억하셨으니

73.  곧 우리 조상 아브라함에게 하신 맹세라

74.  우리가 원수의 손에서 건지심을 받고

75.  종신토록 주의 앞에서 성결과 의로 두려움이 없이 섬기게 하리라 하셨도다

76.  이 아이여 네가 지극히 높으신 이의 선지자라 일컬음을 받고 주 앞에 앞서 가서 그 길을 준비하여

77.  주의 백성에게 그 죄 사함으로 말미암는 구원을 알게 하리니

78.  이는 우리 하나님의 긍휼로 인함이라 이로써 돋는 해가 위로부터 우리에게 임하여

79.  어둠과 죽음의 그늘에 앉은 자에게 비치고 우리 발을 평강의 길로 인도하시리로다 하니라

80.  아이가 자라며 심령이 강하여지며 이스라엘에게 나타나는 날까지 빈 들에 있으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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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1장 (개요)

누가복음 기자가 그리스도의 생활을 대해서 우리에게(누가를 통해서 하나님이 우리에게)주는 이야기는 마태나 마가보다도 더욱 초기의 이야기부터 시작한다. 

우리는 사복음서 기자들 모두를 인해서 하나님께 마땅히 감사를 드려야 한다. 

그것은 우리가 그리스도의 사역자들의 모든 은사와 은혜를 인하여 감사해야 함과 같다. 

그들은 하나에게 부족한 것을 다른 하나가 보완해 주고 있으며, 그러는 동안에 그 모두가 합하여 하나의 조화를 이루기 때문이다. 

본 장(章)에서는 이런 내용을 살필 수 있다.

Ⅰ. 누가가 자기의 복음서에 붙인 서언, 곧 그의 친구인 데오빌로에게 바치는 서간문적 헌사가 있다(1-4).

Ⅱ. 그리스도의 선구자 역할을 한 세례 요한의 잉태에 대한 예언과 그 역사(5-25).

Ⅲ. 동정녀 마리아에 대한 예고, 즉 그녀가 메시야의 어머니가 될 것이라는 통고(26-25).

Ⅳ.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와 요한의 어머니 엘리사벳은 다같이 임신 중이었고, 저들이 잉태하고 있는 그 아기와 그 때의 예언에 대해 서로 이야기를 나눈다(39-56).

Ⅴ. 그리스도 보다 6개월 먼저 세례 요한이 출생하고 할례를 받는다(57-66).

Ⅵ. 사가랴는 요한 출생과 예수의 탄생을 전망하여 찬양을 올린다(67-79).

Ⅶ. 세례요한의 성장에 관해 간략한 서술이 나온다(80). 

---그리고 이러한 이야기는 흥미 있는 해설문 이상의 것을 우리에게 준다. 즉 하나님이 육신으로 나타나신 거룩한 신비를 이해할 수 있도록 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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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의 서문(눅 1:1-4)

성 누가는 그의 복음을 자기의 친구 데오빌로에게 보낸다. 

비록 데오빌로가 높은 직위의 사람이었으나, 그를 자기의 "후원자"로서가 아니라 복음을 배우고 지켜야 할 자기의 한 "생도"로서의 데오빌로에게 헌사한 것이다.

"하나님의 친구"란 이름을 가진 이 데오빌로가 누구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어떤 사람은 그 이름이 어느 특정한 사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하나님의 사랑하는 자"를 가리킨다고 생각한다.

(*하몬드(Hammond) 박사는 어떤 고대의 글을 인용하여 그렇게 이해하고 있다.)

참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마땅히 그리스도 복음, 그 복음의 계획과 의도를 참되게 잘 이해한 그 바탕위에서 진실한 믿음으로 JC를 영접하고 복음을 기꺼이 받아들여야 할 것임을 가르쳐 주고 있는데, 바로 그 그리스도의 복음이 우리를 하나님께로 이끌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편, 데오빌로란 인물은 실존했던 어떤 정치인을 가리키는 특정인으로 생각된다. 

왜냐하면 여기에서 누가가 그에게 붙여 준 호칭은 바울이 총독인 "베스도"에게 주었던 호칭 파라티스테(2903)바로 그것이기 때문이다(행 26:25).

그것을 사도 행전에서는 "가장 고귀한 베스도"라고 번역하였고, 여기에서는 "가장 훌륭한 데오빌로"라고 번역했다(한글 성경은 모두 "각하"라고 함-역주). 

참된 종교는 바르고 합당한 아름다운 존경과 예절을 파괴하려 하지 않으며, 오히려 우리들의 국가사회의 관습에 따라서 "영광을 받아 마땅한 사람들에게 영광을 부여하라"고 가르쳐 주고 있음에 유의하라.

이제 이런 것들을 생각해 보자.

Ⅰ. 왜 누가는 이 복음서를 썼는가? 

그는 이 복음서를 "쓰도록"하는 것뿐만 아니라 저술하는 "중에도" 성령에 의해 감동되었다는 것이 확실하다.

그러나 그 가운데서 그는 이성적인 피조물로서 감동 받은 것이지 단순한 기계처럼 움직여진 것은 아니다. 그는 다음과 같은 것을 생각할 수 있었다.

1. 그가 기록하는 것은 "모든 그리스도인들 중에 가장 분명히 믿어져 왔던"(우리 성경에는 "우리 중에서 일어났던" -역주) 것이 무엇인가, 따라서 그들이 무엇을 믿는지 알 수 있도록 가르쳐야 할 것, 그리고 후손들에게 꼭 전해 주어야 할 것(후손들도 우리 이상으로 거기에 관심이 많다)이 무엇인가를 생각했다. 

그리고 그러한 목적을 위해서는 저술을 하는 수밖에 없었으니, 저술이야말로 후대들에게 지식을 전달해 주는 가장 분명한 방식이기 때문이다. 

누가는 "회의적인 논쟁," 즉 그리스도인들이 서로 의견을 달리하고 해결을 지을 수 없는 그런 문제들을 쓰려고 했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확실히 믿던" 바요, 또 확실히 믿어야 될 것들, 즉 페플레로포오레메논(4135) 그리프라그마톤(4229) 즉 실행된 것들을 기록하려 했다. 

즉, 그리스도와 그의 사도들이 실행했던 바요, 그리고 그 사건들이 실제적으로 일어났던 주위 환경으로서 영원히 신빙성이 있는 것만을 추려내어 기록했다. 

우리들의 신조의 조항들이 긴 시간을 두고 "가장 확실히 믿어져 왔던"것이라는 사실이 우리의 신앙의 기초는 아니라 하더라고 그 기초를 튼튼히 해주는 도움을 주고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그리스도의 가르침은 수천의 가장 현명하고 훌륭한 사람들이 가장 위대한 확신과 만족감을 가지고 "자기들의 영혼들을 걸고 모험해 왔던 것이다."

2. 그것들을 "차례대로" 써야 한다는 사실을 생각했다. 

즉 그리스도의 생애의 역사는 보다 신빙성 있게 전달되기 위하여서는 "순서 있게 되어야" 하고, 기록이 되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사건들이 "차례대로" 정리되어 있을 때 우리는 "우리 자신의" 유익을 위하여 "그것들을"어디서 "발견해 내고," 나아가 "다른 사람들의" 유익을 위해 그것들을 어떻게 간수할 수 있을지 그 방법을 그만큼 더 잘 알게 되는 법이다.

3. "그리스도의 생애"에 대한 해설을 "저술한" 많은 사람들이 있었고, 그들은 선의에서 우러나와 그런 일을 했으며, 훌륭히 "구성"을 했고 "훌륭히" 수행했으며, 또한 그들이 저술한 바는 "선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들 모두가 하나님의 영감을 받지는 못했으며, 또한 항상 흡족하게 기술한 것도 아니며 영원한 미래를 위해 저술된 것도 아니란 사실을 감안했다.) 다음 사실을 주목하자.

(1) 그리스도의 복음에 관한 타인들의 작업이 ─ 만일 충실하고 정직하다면 ─ 비록 많은 결함 때문에 책망을 들어야 할지라도, 그것을 "무시"할 것이 아니라 "찬사"를 보내고 "격려해야"함이 마땅하다.

(2) 타인들의 그리스도에 대한 봉사는 우리들의 봉사를 대신하는 것으로 여겨서는 안 된다. 

오히려 그것을 보고 용기를 얻어 우리도 그런 봉사를 해야 하는 법이다.

4. 누가는 자기가 기록해야 했던 사실들의 진실성은 그 사실들에 대한 정확한 증인들의 "공통된 증언"에 대해 "확증"된다는 사실을 생각했다. 

즉 그것은 이미 저술되었고, 이제 누가가 처음부터 "말씀의 목격자와 일꾼들"이었던 자들에 의해서 몇 번이고 되풀이되어 구전(口傳)으로 설명되어 왔던 것과 일치하게 기록하려는 것이다(2절).

다음 사실들을 명심해 두자.

(1) 사도들은 그리스도의 "말씀의 일꾼들(ministers)"이다. 

그리스도가 바로 "그 말씀이다"(라고 혹자는 이해한다). 또한 그들은 그리스도의 가르침의 일꾼들이다. 

그들은 자기들이 그 말씀을 받아들였기 때문에 또한 다른 사람들에게 그것으로 봉사했다(요일 1:1).

그들은 교사가 되기 위해[양육 위해] 복음을 가진 것이 아니라, 일꾼으로서 전파하기 위해[전파-건축위해] 복음을 가진 것이다.

(2) 그 말씀의 일꾼들은 그들이 전파하는 것의 "목격자"들이요, 또한 귀로 들은 증인들(ear-winesses)이기도 하다. 

그들 자신이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듣고," 그의 기적을 "보았다." 

그들은 그 사실들을 소문이나 간접적으로 전해들은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자기들이 "보았고, 들었던" 사실들을 지극히 큰 확신으로 말하지 않을 수 없었다(행 4:20).

(3) 사도들은 그리스도의 사역의 "처음부터" 그러했었다(2절). 

그리스도는 그의 첫 번째 기적을 행할 때에도 제자들과 같이 계셨다(요 2:11). 제자들은 "그가 그들 가운데에서 행하실 때 늘 그를 따랐다(행 1:21). 

그래서 그들은 자기들의 신앙을 튼튼하게 하기에 충분한 모든 사실을 보고 들었을 뿐 아니라, 만일 그 신앙에 충격을 주는 어떤 사건이 있었다 하여도 신앙을 밝혀낼 수 있는 기회를 소유했다.

(4) 우리가 "오늘날"까지도 소유하고 있는 이 "기록된" 복음은 교회의 "첫 날에" 선포되었던 복음과 정확하게 일치한다.

(5) 누가 그 자신은 그가 쓴 "내용을 처음부터 완전히 이해하고" 있었다(3절. 한글 성경과 다수 다름-역주). 

[비록 12제자에 들지는 않았으나, 그리스도의 공생애 기간중 그리스도를  직접  따라 다녔었고, 70인제자들로 이루어진 전도팀 중 일원으로 파송되었던 제자들 중의 한사람으로서,  또한 그리스도의 승천 후  바울사도와  일정기간 계속 함께  전도여행에 동참해 왔기에, 자기가 보고 듣고  깨닫고 토론하며  묻고 이해하고 숙지한 바 그리스도의 출생부터 시작하여 공생애 중에 일어난 사건들과 그  영적 의미들에 비추어 볼 때,  이미 씌여진 복음서의 내용들만으로는  충분해 보이지 않는,  아직 무엇인가 부족한 점들, 즉 영적의미가 있는 사건들을 군데군데 빠뜨렸다거나 그 순서가 어긋났거나, 그 영적 의미들을  하나하나 제대로 충분히 다 이해하여 기술한 것으로 보기에는 아직 어딘가 부족한 점들이 있어 보였던 것 같으며 그에 대한 영적 부담감을 가지고 있던 중, 로마 감옥에서 투옥된 바울사도를 돌보는 기간중에 HS의 감동따라 기록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모든 것들의 정확한 지식"을 a[nwqen ─ 즉 위로부터(이 말을 흠정역과 한글 새 번역 등은 "처음부터"의 뜻으로, 한글 개혁은 "근원부터"라고 풀이했음-역주) 획득하는 것이 "내게 좋은 줄 알았도다"는 뜻이리라. 내 생각으로는 그렇게 번역해야 될 것 같다. 왜냐하면 누가가 a[nwqen 이란 단어로 "처음부터"(2절에 나옴)란 뜻을 나타내고자 했다면 같은 단어를 썼을 것이기 때문이다.

① 그는 이 모든 일들을 "자세히 살폈고"(또 문자 그대로의 의미처럼) "추적했다." 

마치 구약의 예언자들이 "연구하고 부지런히 살폈던"것과 같다(벧전 1:10). 그는 그 이전에 저술해 왔던 다른 사람들처럼, 사실들을 용이하게 또 피상적으로 수집하지 않고, 관심 있는 특정 인물에게 그 자신을 알리는 것을 그의 사업으로 삼았다.

② 그는 다른 사람들이 그랬듯이 전승에 의해서만이 아니라, 계시에 의해서 그 전승을 굳게 다지고 그것을 기록함에 있어서 어떠한 실수나 착오가 생기지 않도록 했다. 

그는 지식을(문자적 의미대로) "위로부터" 찾았고 거기서부터 그것을 얻었다. 그리하여 엘리후처럼, 아득히 먼 곳으로부터 "그의 지식을 가져왔다." 

그는 그의 역사서를 모세가 기록하듯이 전승으로 "보고된" 것을 썼으나, 영감에 의해서 "확증된" 것만을 썼다.

③ 그러므로 누가는 이 모든 사건들을 자기가 "완벽히 이해했다"고 말할 수 있었다(한글 개역에는 나타나 있지 않음-역주).

즉 그는 그 사건들을 ajkribw'", 즉 자세하고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위로부터 이 사실을 받았으니 그것을 전해 주는 것이 좋은 줄을 알았노라." 왜냐하면 이러한 재능을 묻어 두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Ⅱ. 왜 누가는 "데오빌로"에게 이 복음서를 보냈는가?

 "내가 당신에게 차례대로 이것들을 적어보냄은 당신으로부터 나의 저술에 대한 칭송을 얻고자 함이 아니라, 이 복음서로 당신이 교화되게 하고자 함이니라. 즉 이는 당신으로 그 배운 바가 확실함을 알게 하려 함이로라"(4절).

1. 이것은, 그가 세례 받기 전에는 그 후에, 혹은 그 전후에 규율에 따라 이러한 일들에 대하여 "가르침을 받고" 있었다는 사실을 암시한다(마 28:19, 20). 

아마도 누가는 그에게 세례를 주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가 얼마나 훌륭히 가르침을 받았는가를 잘 알고 있었다.

‘페리(4012) 온(3739) 카테케데스(2727) ─즉 그대가 교리 가르침을 받은 것에 관해서 잘 알고 있었다(문자적 의미는 그렇다).

가장 지력(知力)있는 기독교인들도 신앙 문답을 배움으로부터 시작된다.

데오빌로는 사회적으로 높은 가문이나 귀인이었다. 

그런 자들이 젊었을 때부터 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의 원리를 가르쳐 주는 수고를 많이하면 많이 할수록, 그들은 세상의 높은 지위에 있을 때에도 유혹에 대해 강한 무장을 하게 되고, 기회 있는 대로 좋은 일을 할 수 있는 자질을 갖추게 되는 법이다.

2. 데오빌로로 "그 일들의 확실성을 알고," 좀 더 뚜렷이 이해하고 더욱 더 확실하게 믿게 하려는 것이 그 의도였다. 

그리스도의 복음의 "확실성"이 있다. 즉 우리는 그리스도의 복음 위에다 확실성을 수립할 수 있다. 

또 젊었을 때 하나님의 일들에 대해 훌륭히 가르침을 받아왔던 사람들은 나중에 그 사건들의 "확실성을 알기 위하여," 즉 우리가 믿고 있는 내용뿐만 아니라, 우리가 그것을 왜 믿는지를 알기 위하여 부지런히 노력하여야 할 것이다. 그래야 우리는 "우리들 속에 있는 희망의 이유"를 말할 수 있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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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례 요한의 출생 통고(눅 1:5-25)

누가복음 앞에 있는 두 복음서 기자들은 다같이 요한의 세례와 그의 사역으로 복음서를 시작하고 있다. 

요한의 사역은 JC의 공생애 보다 6개월 전에 시작된다(그러나 이때는 위기가 다가오고 있으므로, 이전에는 "짧은"기간이었던 6개월이 당시는 "긴" 시간이었다). 그러므로 이 복음서 기자는 이제까지 있었던 구세주의 잉태와 탄생에 대한 기사보다도 더욱 자세한 설명을 하려는 구상을 하면서, 잉태에 있어서나 탄생에 있어서 그리스도의 선구자요, 선주자인 동시에 의(義)의 태양을 위한 샛별인 세례요한의 이야기부터 기록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이 복음서 기자가 이와 같이 하는 것은, 나중에 가서 위인들로 입증된 사람들의 출생과 초기 생활에 대한 것을 다소 알아야 만족하는 것이 일반의 경향이기 때문에서일 뿐만 아니라, 처음부터 기적적인 사건들이 있었고, 나중에 가서 알려진 사건들의 전조들이 들어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 대목에서 영감을 받은 이 역사가(누가)는 세례 요한의 잉태라는 아주 초창기부터 시작한다.

이제 다음과 같은 것을 관찰해 보자.

Ⅰ. 그의 부모에 관한 설명(5절)을 보자. 

그들은 "헤롯 왕 당시에"살았는데, 헤롯은 외국인이었으며, 나중에 유대나라를 로마 제국의 한 부속 지역으로 만들어 버린 로마 제국의 대리인이었다. 

이것은 홀(왕권)이 유다를 완전히 떠났다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한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는 야곱의 하여금 예언(창 49:10)에 의하여 실로가 오실 때가 된 것임을 말해 준다. 

다윗 왕의 가문은 몰락되었으나 이제 메시야에게서 다시 일어나고, 번성할 때가 되었다. 

비록 정치적 자유가 완전히 상실된 때라도, 종교의 번영과 부흥에 대해서는 그 누구도 실망하지 말아야 한다는 사실을 주목하자. 

이스라엘은 노예가 되었지만, 바로 그 때에 이스라엘의 영광이 다가오고 있었다.

세례 요한의 아버지는 "사가랴"라고 이름하는 아론의 아들이며 제사장이었다. 

이 세상의 어떤 가문도 아론과 다윗의 가문처럼 그렇게 하나님의 영예를 받는 가문은 없다. 

한 가문에는 왕권에 대한 계약이 주어졌다. 그런데 그들은 모두 그러한 영예를 엎어버리고 말았었다.

그러나 이제 그들의 후세에 복음이 다시 영예를 주고 있다. 

즉 세례 요한에게서 아론의 집안에, 그리스도에게서 다윗의 집안에 영예가 부여된 것이다. 그리고 그 후에는 그것들이 모두 소멸되고 사라졌다.

그리스도는 다윗가의 출신이요, 그의 선주자는 아론가의 출신이었다. 

왜냐하면 요한의 제사장직인 기능과 힘이 그리스도의 왕 적 권위나 직위에 이르는 길을 닦아야 했기 때문이다. 

이 사가랴는 "아비아 반열"의 한 사람이었다. 

다윗 당시에 아론의 가게는 여럿이었으나 다윗은 그들의 직무를 보다 더 질서정연하게 수행하기 위하여 그들을 24 반열로 나누었다. 

그래서 그 직무는 일손이 모자라서 "소홀히 되는"일이 없었고, 소수인에 의해 "독점될"수도 없었다. 

그들 중 제 8조가 "아비아" 반열이었는데(대상 24:10), 아비아는 아론의 맏아들인 엘르아살의 후손이었다. 

(*그러나 라이트푸트(Lightfoot) 박사는 제사장 집안의 많은 사람들이 포로로 잡혀가서 결손 되었으므로, 다시 돌아온 후로는 다른 집안의 사람들을 택하여 각 반열의 두령의 이름을 붙여 주었다고 보고 있다.)

사가랴의 아내 역시 아론의 딸 중에 한 사람이며, 그녀의 이름은 "엘리사벳"인데, 엘리사벳이라는 이름은 아론의 아내 "엘리세베"와 같은 이름이다(출 6:23). 

(*조세푸스(Josephos)는 말하기를, 제사장들은 자기들의 집안 내에서만 결혼하는 데 철저했으므로, 그들은 제사장직의 품위를 계속 유지하여, 그 집안에는 다른 피가 흐르지 않았다고 한다.)

이제 사가랴와 엘리사벳에 관해 살펴보자.

1. 그들은 지극히 경건한 부부였다(6절).

 "그 두 사람은 하나님 앞에 의로운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우리가 확신하는 바로는, "사실에 입각한" 하나님의 판단에서 볼 때 그러했으리라고 생각된다. 

그들은 진실로 의로운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노아가 그 당대에 그랬던 것처럼(창 7:1), "하나님 앞에서" 의로운 자들이었다. 

그들은 그 자신들을 "하나님에게 입증했으며," 하나님께서도 그들을 은혜롭게 받아들여 주셨다. 

결혼으로 서로 연합한 부부가 모두 "주께 연합되어"있다면 그것이야말로 행복 된 일이다. 

특별히 주님의 사역자인 제사장과 멍에를 같이 메는 자들은 "하나님 앞에서 의로워야 될 "필요가 있다. 

그래야 그들은 "사람들에게 모범"이 될 것이요, 저들의 마음을 즐겁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주의 모든 계명과 규례대로 행했다."

(1) 그들이 "하나님 앞에서 의로운" 자들이었음은 그들의 생활의 방향과 방법에 의해 입증되었다. 

즉 그들은 말이 아니라 자기들의 "행실로" 보여 주었다. 즉 그들이 행하는 길과 그들이 행할 때 통제 받은 법칙으로써 의로움을 입증했다.

(2) 그들은 자신들과 합일했다. 

즉 그들은 그들의 신앙과 생활이 일치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거룩한 예배와 연관되어 있는 주의 "규례"대로 행했을 뿐만 아니라, 선한 생활의 모든 실례(實例)를 말해 주는 주의 계명대로 행했다.

(3) 그들은 한결같이 복종적이었다. 

그들은 그들의 의무에 "부족한" 행동을 전혀 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오히려 의무를 "열심히" 이행하려고 계속적인 관심과 노력을 기울였다.

(4) 이런 점에서, 그들이 "죄가 없지는"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흠이 없는"사람들이었다. 

아무도 그들에게서 드러난 어떤 추악한 죄로 그들을 비난할 수가 없다. 그들은 "정직하고" "악의 없이" 살았다. 

사역자들과 그 가족들은 각별히 주의하여 "자기들"이 비난을 들음으로써 그 직무가 비난을 받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2. 그들은 오랫동안 "아이가 없었다"(7절). 

자녀들은 "여호와의 유업"이다. 그러나 결혼은 했으나 아직 그들에게 이"유업"이 없는 가정들이 많이 있다. 

자녀는 값어치있고 바람직한 축복이다. 

"하나님 앞에 의로운" 사람이 자녀를 가지면 그들을 하나님을 두려워하도록 양육시킬 것이지만 아직도 자녀를 갖지 못한 자들이 많은가 하면, "이 세상의 사람들"은 "자녀를 많이" 가지고 있어서(시 17:14), "양떼같이 자기들의 아이를 내어 보내는" 자들도 많이 있을 수 있다(욥 21:11).

엘리사벳은 수태하지 못했다. 그래서 그들은 영영 아이를 갖지 못하리라고 실망하기 시작했다. 

왜냐하면 그들은 모두 "나이가 많았고," 아이를 가장 많이 낳을 수 있는 여인도 "아이 낳기를 그치는"때가 되었기 때문이다. 

이삭, 야곱, 요셉, 삼손, 사무엘, 그리고 세례 요한처럼 오랫동안 아이를 못 낳던 어머니에게서 훌륭한 아들이 태어난 수가 많다. 

그것은 그들의 출생을 더욱 뚜렷이 돋보이게 해주고, 또 하나님이 그의 자비로 그 백성을 오래 기다림으로 지켜왔을 때, 마침 내 다가온 그 자비의 값어치를 "갚기로" 함으로써, 그들의 인내에 보상해 주시는 것을 즐겨하신다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해서이다.

Ⅱ. 요한의 아버지 사가랴가 성전 안에서 제사 드리고 있을 때에 나타나 한 천사의 출현(8-11절)을 보자. 

예언자 스가랴는 천사와 교분이 있었던 구약의 마지막 인물이며, 제사장 사가랴는 신약에서 첫 번째로 천사와 교분을 가진 인물이다. 

이제 다음 사실들을 관찰해 보자.

1. 어떻게 사가랴가 하나님 봉사에 쓰여졌는가?(8절) 

그는 "그의 반열의 순서대로, 하나님 앞에서 제사장의 직무를 수행하였다"고 했다. 그때에는 그가 "시중들 주간"이요, 그의 "직무"때였다. 

비록 그의 가정이 이룩되거나 성장하지는 못했지만, 아직도 그는 그 자신의 위치와 그의 날에 해야 할 일을 양심 있게 해 내었다. 

우리는 비록 우리가 "바라던 자비"를 받지 못했다해도, 계속 우리는 "주어진 봉사"에 집중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들이 부지런하고 변함이 없이 충실히 봉사하면, 자비와 위안이 찾아올 것이라는 희망을 가질 수 있다.

이제 아침과 저녁으로 향을 피우는 일이 제비뽑기에 의해 그에게 떨어졌다. 다른 일은 역시 제비뽑기에 의해 다른 제사장들에게 떨어졌다. 

예배는 제비뽑기로 분담했다. 그것은 어떤 사람들이 소홀히 하거나 또 독점하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다. 

"제비는 주님의 뜻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므로, 그 직무에 대한 거룩한 부름에 그들은 만족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 일은 구세주의 탄생 시기를 이것으로써 알아내려고 연구해왔던 사람들이 맹목적으로 생각했던 것처럼, 속죄일에 대제사장이 분향하는 그런 일이 아니었다. 

그 분향은 대제사장이 지성소에 들어가서 드린 것이 아니라, "성소에" 있는 "분향의 제단", 곧 성소의 향단에서 매일 드리던 분향(11절)임이 분명하다.

유대인들은 한 제사장이 자기가 담당한 모든 기일 내에 2번 분향할 수 없으며, 최소한 한 주간 동안에 한 번만 분향할 수 있다고 한다.

아마 이 분향이 "안식일"에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 그 이유로 거기에 참석하는 "사람이 많았기" 때문이다(10절). 

평일에는 그렇게 많지 않았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은 "자기의 날을" 영예롭게 하셨다.

사가랴가 성소에서 분향하고 있는 동안 "모든 백성은 밖에서 기도하고" 있었다(10절). 

(*그리고 만일 라이트푸트(Lightfoot) 박사가 계산한 대로 5월과 6월중의 일부에 해당하는 시반달(月), 즉 제 3월달, 17일째 되는 날이 아비아 반열이 제사를 시작하는 날이라고 생각한다면, 이 날 회당에서 읽혀졌던 그 율법과 예언서는 당시 성전에서 행해지는 일과 아주 잘 어울린다는 사실을 주목하는 것이 좋으리라. 즉 나실인에 관한 율법(민 6장)과 삼손의 잉태(삿 13장)에 대해 읽은 것이다.)

(*라이트푸트 박사는 말하기를, 제사 드리는 차례가 되면 제사장들은 기도하는 시간에 늘 성소에 있었고, 만일 그 날이 안식일인 경우에는 지난 한 주간 동안 집무해 오던 제사장들 모두가 성전에 있어야 하고, 그 제사장들 밑에서 거들던 레위인들 그리고 랍비들이 일컫는 것처럼 "그 처소의 사람들"도 대기했었다 한다.)

그리고 제사장들은 백성들의 대표가 되어 제물의 머리에 안수하는 자들이다. 

그밖에도 많은 사람들이 대기했었는데, 그들은 하나님 예배에 참석하기 위해서 자기들의 직업을 잠시 떠나 있던 감동어린 자들이었다.  

그들이 "커다란 무리"를 이루었을 것이고, 안식일과 절기 때에는 특히 더 했으리라.

그런데 이들은 모두 경건한 기도를 드리고 있었고, 종이 울림으로써 제사장이 분향하러 성소에 들어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영적 기도를 드리므로 그들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이제 그 사실을 살펴보자.

(1) 하나님의 진정한 이스라엘 백성은 늘 "기도하는" 사람들이다.

기도는 우리가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그로부터 은혜를 가져오는, 또한 그 앞에서 우리의 친교를 간직하는 예배의 중대한 원칙적의 한 부분이다.

(2) "그 때에는," 예식과 의식의 법이 완전히 유효하던 때였다. 

물론 도덕적이고 영적인 의무가 그에 병행될 것이 필요했고, 또 주요하게 탐구되었다. 

다윗은 그가 제단으로부터 떨어져 있을 때에는 자기의 기도가 "분향 없이도" 응답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왜냐하면, 그 기도는 "분향처럼" 하나님 앞에서 수행되었기 때문이다(시 141:2). 

그러나 그가 "제단 주위"에 있을 때에는, 속없는 조개껍질처럼, "기도 없는" 분향은 받아들여질 수 없었다는 것을 알았다.

(3) 우리들의 마음이 [영과 진리로, 영이신 하나님, 살라계신 하나님, 자기를 찾는 이에게 상주시는<자신을 온전히 내어주시는>분께 경배함의] 예배에 깊이 전심으로 합일되는 것이 참된 예배이다.

그렇지 않는다면, 모든 분야에서 그저 사역자들을 따르기만 한다면, 단순히 우리가 하나님을 예배하고 있는 장소에 있더라도 헛것이다. 

만일 에배사역자가 진실로 HS안에서 합당하며 지혜롭고, 살아 생동하는 기도로써 참되게 분향하였다 하더라도, 우리가 그와 연합하여 " 살아계신 주께 기도"하지 못한다면, 우리에게 그 무엇이 유익할까?

(4) 이 세상에서 우리가 하나님에게 드리는 모든 기도는, 위에 계신 하늘의 성전에서 드려지는 그리스도의 중보의 분향 덕택으로만 하나님께 허락될 수 있고, 훌륭히 될 수 있다. 

성전 예배에 대한 계시록의 언급은 이러한 사실을 말해 주고 있는 것 같다(계 8:1, 3, 4). 

그곳에 보면, "반시간 동안" 성전에서 기도가 드려졌고, 그 동안 백성들은 자기들의 심령을 하나님께 "조용히" 아뢰고 있는 동안 "하늘에는 고요가 있었다"는 사실을 엿보게 된다. 그리고 거기에는 "보좌 앞에서 모든 성도의 기도로 많은 분향을" 올리고 있는 "천사" 곧 계약의 천사가 있다고 했다.

우리가 만일 "기도하지" 않으며, 또 "우리의 영으로" 기도하고 꾸준히 기도하지 않는다면, 그리스도의 중보의[그분의 분향하심의] 특혜를 기대할 수 없다. 

또한 우리는 "영원히 생존하시사 중보해 주시는" 그리스도의 중재가 없이는 아무리 기도가 훌륭해도 응답이하심이나 평화의 해답을 가져오리라고 기대할 수 없다.

2. 사가랴가 그렇게 쓰임 받았을 때, 그는 하늘에서 그에게 파송된 특별한 사자를 맞이하는 영광을 받았다(11절). 

"주의 천사가 그에게 나타났다"고 했다. 

(*어떤 사람의 관찰로는, 사가랴에서의 이 경우를 제외하고, 하나님의 메시지를 가지고 오는 천사가 성전에서 나타났다는 것은 결코 성서에서 읽어볼 수 없다고 한다. 그 이유는 "성전에서" 는 하나님이 그룹들 사이에서 나는 작은 소리에 의해서나 우림과 둠밈을 통해서 자기의 마음을 알릴 수 있는 다른 방법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제 2 성전에는 언약궤와 신탁이 없었다. 

그러므로 성전에 있는 제사장에게 분명한 뜻을 전하기 위해서는 천사가 쓰임 받게 되었고 복음도 그렇게 소개되어야 했다. 

왜냐하면, "율법"처럼, "그" 복음은 처음에는 주로 "천사들의 역사(役事)"를 통해서 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복음서와 사도행전 속에서 천사들의 등장을 종종 읽게 된다. 

그러나 율법과 복음의 공통된 구상은 모두가 완전해지고 났을 때에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보다 영적인 다른 교통법을[HS의 내주하심!!] 마련하려는 것이었다.

이 천사는 사가랴의 오른편, 그 제단의 북쪽, "분향 제단의 오른쪽에" 있었다. 

이 사건을 스가랴 3장 1절과 비교해 보라. 그 곳에 보면, 제사장 여호수아의 오른편에 사탄이 여호수아를 방해하기 위해 서 있었으나, 사가랴의 경우는, 그에게 용기를 북돋아 주기 위해 그의 오른편에 서 잇는 선한 천사를 만났던 것이다. 

(*어떤 사람은 생각하기를 이 천사가 "지성소에서 나왔다"고 본다. 그래서 그 천사가 그를 제단의 오른편에 서도록 인도했다고 보는 것이다.)

3. 이 사건이 사가랴에게 어떤 감명을 주었는가 보자(12절). 

"사가랴는 천사를 보고" 놀랐다. 그는 "무서울" 정도로 놀랐다. "놀라며 무서워했다." 

비록 그는 자기 생활에 "부끄러움"이 없고, "하나님 앞에서 의로운" 자였지만, 그 용모와 모양으로 보아 "인간" 이상의 존재임을 말해 주는 그런 분을 보자, 그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인간은 모두 죄인인지라, 그의 마음은 그런 영광스런 계시를 감당할 수 없었고, 그의 양심은 어떤 좋지 못한 소식이 있지나 않을까 두려워했다. 

다니엘도 이러한 것을 감당할 수 없었다(단 10:8). 

이런 이유 때문에 하나님은 우리를 "무섭게 하지 않기 위해" 우리와 같은 사람을 통해서[예 : 모세..지금은 주의 사역자들]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방법을 택하셨다.

Ⅲ. 그 천사가 사가랴에게 전해야 했던 소식은 무엇인가? 

그 천사는 천사들이 일반적으로 하듯, "두려워 말라"는 말로 메시지를 시작했다. 

아마도 사가랴가 "분향"하는 차례가 되기 전에 일어난 일은 결코 아닐 것이다. 

그리고 그는 대단히 진지하고 양심적인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가 그 분향을 "잘" 드렸을 것이라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아마도, 그가 천사를 보자, 자기가 자기의 어떤 실수나 실책으로 인해서 천사로부터의 힐책을 받지나 않을까 두려워했던 것 같다. 

그래서 천사는 "두려워 말라"고 말하고, "나는 그대에게 좋지 못한 소식은 하나도 가져오지 않았다"고 말하고, "두려워 말라. 그러나 침착하여 내가 너에게 설명해야 할 메시지를 영으로 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것이 무엇인가를 살펴보자.

1. 그가 종종 드리던 "그 기도"가 "평안한 대답"을 들었다는 것이다.

"두려워 말라. 사가랴야 ! 네 기도가 응답되었도다."

(1) 만일 자기의 가문을 이룰 "아들을" 달라고 한 그의 특별한 기도를 뜻한다면, 필경 그러한 자비를 얻기 위하여 이전에 드렸던 그 기도가 이루어진 것을 말해 줌이 틀림없다. 그래서 그는 이제 아이를 갖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들 부부는 모두 "매우 늙었다." 

그리고 그들은 자식을 기대하는 만큼 또한 그것을 위해 기도해 왔을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래서 그 기도가 모세의 경우처럼 "그들에게 족했고," "그들은 그 일로는 더 이상 하나님께 고하지 않았다"(신 3:26).

그러나 하나님은 이제 이러한 자비를 주시려 하고 있으며, 사가랴는 이삭과 그의 아내의 경우처럼 그의 아내와 함께 오랫동안 행해 왔던 그 기도에 대한 위대한 응답을 받게 된 것이다(창 25:1). 

믿음의 기도는 그 기도한 것이 비록 당장에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해도, 하늘에 "쌓이며," 거기서는 잊혀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명심하자. 

어렸을 때, 세상에 태어날 때에 드린 기도는 늙어서, 또 세상을 하직할 때에라도 응답될 것이다.

(2) 그러나 만일 "지금 드리고 있는 기도," 분향으로 드리는 그 기도를 천사가 말한 것이라면, 그의 기도는 그의 지위에 맞는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과 그들의 평안, 그리고 메시야와 그의 나라에 관해 지금까지 약속해 온 것을 성취시켜 달라는 기도였음이 분명하다. 

바로 "그대의 기도가 이제 상달되었도다. 그래서 너의 아내는 곧 메시야의 선주자인 자를 잉태하게 될 것이다."

(*유대 학자들 중 어떤 자들은 사가랴 제사장은 분향 드리면서 "전 세계의 구원"을 위해 기도했으며, 그 기도가 상달되었다고 말한다.)

(3) 혹은 일반적으로 말해서, "지금 네가 하고 있는 기도와 너의 모든 기도가 하나님께 받아들여졌으며, 그 앞에 기념물로 올려졌다"는 뜻이다(마치 고넬료에게 찾아왔던 천사가 말한 것과 같다. 행 10:30, 31 절). 

"그리고 이것이 하나님이 너의 기도를 받아들이셨다는 징조이니, 곧 엘리사벳이 아들을 낳을 것이다." 

자기들의 "기도"가 하나님께 "상달"된다는 것을 아는 것은 기도하는 자들에게는 지극히 즐거운 일이며, 이러한 자비가 기도에 대한 응답으로 주어진 것이라면, 그것은 갑절로 복된 것이다.

2. 그는 노년에, 그것도 오랫동안 수태하지 못 했던 그의 아내를 통해서 아들을 얻게 될 것이요, 기적적인 일이나 "다름없는" 그의 출생으로 인해서 백성들이 "완전히" 기적적인 사건, 곧 처녀가 아들을 낳는 일조차도 인정하게 될 준비를, 그는 노년에 아들을 낳는 일을 총해, 인정하게 될 준비를 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는 아들을 "요한"이라고 명명하라는 명령을 들었다. 

그 이름은 우리가 구약에서 가끔 만나게 되는 이름, 곧 히브리어로는 "요하난"이라고 하는 이름이다.

"그를 요한이라 부르라."

 "요한"이란 이름은 "은혜스러운"이란 의미이다. 제사장은 "하나님이 은혜스럽게 여겨질 자를 하나님 앞에 간구 해야"했다(말 1:9). 

그리고 "백성들에게' 그런 "축복을 기원"해야 했다(민 6:25). 

이때 사가랴는 그렇게 기도하고 있었으며 천사는 그에게 그의 기도가 응답되어졌고 그래서 그의 기도의 응답의 징표로 아들을 얻을 것이며, 그는 "은혜스러운 자"즉 "주가 은혜를 베푸시리라"는 이름으로 불릴 것이라(사 30:18, 19)고 일러주었다

3. 그 아들은 그의 가족과 모든 친척들 간에 기쁨이 될 것이라 했다(14절). 

그는 또 하나의 이삭 곧, 너의 웃음이 되리라 했다. 혹자는 "요한"이라는 그의 이름에 부분적으로 그러한 뜻이 들어 있다고 본다. 

그는 "환영받는 아이"가 되리라는 것이다. 때문에 "너는 기쁨과 즐거움을 가지게 되리라"는 것이다. 

오랫동안 "갈망해 왔던" 긍휼이 "드디어" 현실로 도래하면, 더욱 즐겁게 받아들여진다는 것을 명심하라.

"그는 너의 기쁨의 이유가 되는 아들이 될 것이다. 많은 부모들은 자기 자녀들이 장차 되어질 일을 미리 알 수 있다면, 그들의 출생을 기뻐하기보다는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네 아들이 어찌 될지를 말하겠는데, 너는 - 사람은 아무리 기쁜 일에라도 그래야 하지만 - 그의 출생에 대해 두려워하면서 기뻐할 필요는 없게 되리라. 아니 나이가 많은 사람들이 그의 탄생을 기뻐할 것이다. 네 집안의 모든 친척들과 그 일에 대한 모든 지지자들도 그의 탄생을 함께 즐거워하리라. 왜냐하면 그의 탄생은 그 집안의 영광과 위안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58절). 

모든 선한 사람들은 사가랴와 엘리사벳 같은 경건한 자들이 아들을 낳으면 기뻐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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