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레17장 [268. 죄에서 자유를 얻게 함은]
.....그대에게 대해 절대적이신 주 하나님께 대해 절대적이기를 진정 원하는 가, 그분이 그대를 아끼고 귀히 여기며 사랑하고 모든 것 다 내어주고 그대를 얻으실만큼 진정 그대도 주께 대해 그러한가 깊이 생각해 볼 일이다 .....Q께 합당한 경배 처소(그분의 지혜로 미리 지정해 두셨음)는 (살아계시는 주 임재의 곳)인 ((번제단이 있는)) 회막문 = 마16:18에서는 "그리스도의 교회....몸의 생활이 그곳에 반드시 있어야 함, 이를 통해 한 새 사람[우주적 교회]은 그리스도의 몸이요, 그분의 신부이자 전사로 삶" (주 그리스도, 살아계신 Q의 아들의 임재와 고백-교통이 반드시 있음...줄여서 "교회"로 약칭하기도 하지만..;). 에클레시아(히브리어로는 카할의 역어로 사용....쉬나고그( :: 회당, 회중...창세기에서 민수기까지 , 예레미아 등에서 사용), 쉬스타세이스(모임, 연합), 오클로스(군중, 다수), 플레도스(큰 수, 회중, 무리) ---[유일한 교회]이기에 그 앞에 수식하는 군더더기들이란 전혀 필요없음..(나라-족속-지역명-소속 교파 등) ==>>오늘날, 주 예수님께서는 Q 경배함은 장소가 문제가 아니라 [성육신-인생-십자가죽음-장사지냄-부활-승천의 모든 과정 거치신, 십자가 보혈 흘려 대속 이루신] 그리스도를 믿고 거듭남(그분과 연합한 하나로 삶을 누림)의 문제요, 이제, 거듭난 그의 영이 성령으로 충만함 안에서, 참-진실함-정직함으로 경배/예배함의 문제라고 말씀하고 계심.. [요4:21-24....*21.Jesus said to her, Woman, believe Me, an hour is coming when neither in this mountain nor in Jerusalem will you worship the Father. *22.You worship that which you do not know; we worship that which we know, for salvation is of the Jews. *23.But an hour is coming, and it is now, when the true worshippers will worship the Father in spirit and truthfulness, for the Father also seeks such to worship Him. *24. God is Spirit, and those who worship Him must worship in spirit and truthfulness. ...21.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여인이여, 나를((..ego.."내 말을"이라 대개 번역했지만 "나를"이 가장 적정하다...먼저 그리스도를 믿어야 깨달음과 이해가 열린다)) 믿으십시오. 이 산도 예루살렘도 아닌 데서 여러분이 아버지께 경배할 때가 오고 있습니다. 22.여러분은 알지 못하는 것에 경배하고, 우리는 아는 것에 경배합니다. 이것은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나오기 때문입니다. 23.그러나 참된 경배자들이 [그의] 영 안에서 진실함(=참/참됨sooth, 정직honest, 진리와 실제truth and reality =진실함truethfulness. )으로 아버지께 경배할 때가 오고 있는데, 바로 지금입니다. 왜냐하면 아버지는 이렇게 경배하는 사람들을 찾으시기 때문입니다. 24.하나님은 영이시니, 경배하는 사람들은 영 안에서 진실함으로 경배해야 합니다.”........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내 말을((ego..="나를"이 가장 적정한 번역임) 믿으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 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하노니 이는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남이라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오직Q만 섬길 것, 전에 (제 입맛에 따라 행했던 영적 간음인 우상 숭배인) 음란히 섬기던 수염소 귀신(수염소 우상들, 사탄 마귀) 제사 금지 ......스스로 죽은 것(영웅처럼, 자기 과신이나 특정 목적 달성 위해 스스로 결단하여 자살 감행한 자), 들짐승에게 찢겨 죽은 것(자기가 믿는 것을 끝까지 관철하다가 타인에 의해 죽음 당한, 일명 순교적 희생자들),...즉 오늘날 세상의 종교들은 주로 레위기 17장 13절 상반절에 예표된 두 가지 중에 하나를 근간(根幹)으로 형성되어 있다. 그 종교들은 다른 사람의 유익을 위하여 자신을 희생했던 사람이나 순교당했던 사람을 근본으로 한다. 미국에는 사람들로 바탕을 둔 여러가지 많은 종교들이 있다. 그런 것을 바탕으로 종교를 형성하는 것은 다른 피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예를 들어 부처를 바탕으로 한 종교를 형성한 사람들은 부처의 피를 마신다. 마찬가지로 마호멧을 바탕으로 한 종교에 근거한 사람들은 마호멧의 피를 마신다. 이것으로 우리는 여러가지 신앙, 여러 가지 종교가 여러 사람 곧 여러가지 피를 바탕으로 함을 볼 수 있다. ===>이런 것을 먹은 자들은 저녁까지(공동체를 부정케 만들 위험성 있음을, 그 문제의 심각성을 절감하고 주 앞에서 돌이켜 회개하고 돌아섬으로써 거기에서 벗어나기까지) 부정함.
===제물을 드릴 곳 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2. 아론과 그의 아들들과 이스라엘의 모든 자손에게 말하여 그들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명령이 이러하시다 하라 3. 이스라엘 집의 모든 사람이 소나 어린 양이나 염소를 진영 안에서 잡든지 진영 밖에서 잡든지 4. 먼저 회막 문으로 끌고 가서 여호와의 성막 앞에서 여호와께 예물로 드리지 아니하는 자는 피 흘린 자로 여길 것이라 그가 피를 흘렸은즉 자기 백성 중에서 끊어지리라 5. 그런즉 이스라엘 자손이 들에서 잡던 그들의 제물을 회막 문 여호와께로 끌고 가서 제사장에게 주어 화목제로 여호와께 드려야 할 것이요 6. 제사장은 그 피를 회막 문 여호와의 제단에 뿌리고 그 기름을 불살라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가 되게 할 것이라 7. 그들은 전에 음란하게 섬기던 숫염소에게 다시 제사하지 말 것이니라 이는 그들이 대대로 지킬 영원한 규례니라 8. ○너는 또 그들에게 이르라 이스라엘 집 사람이나 혹은 그들 중에 거류하는 거류민이 번제나 제물을 드리되 9. 회막 문으로 가져다가 여호와께 드리지 아니하면 그는 백성 중에서 끊어지리라 ===피를 먹지 말라 10. ○이스라엘 집 사람이나 그들 중에 거류하는 거류민 중에 무슨 피든지 먹는 자가 있으면 내가 그 피를 먹는 그 사람에게는 내 얼굴을 대하여 그를 백성 중에서 끊으리니 11.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음이라 내가 이 피를 너희에게 주어 제단에 뿌려 너희의 생명을 위하여 속죄하게 하였나니 생명이 피에 있으므로 피가 죄를 속하느니라 12. 그러므로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기를 너희 중에 아무도 피를 먹지 말며 너희 중에 거류하는 거류민이라도 피를 먹지 말라 하였나니 13. 모든 이스라엘 자손이나 그들 중에 거류하는 거류민이 먹을 만한 짐승이나 새를 사냥하여 잡거든 그것의 피를 흘리고 흙으로 덮을지니라 14. 모든 생물은 그 피가 생명과 일체라 그러므로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어떤 육체의 피든지 먹지 말라 하였나니 모든 육체의 생명은 그것의 피인즉 그 피를 먹는 모든 자는 끊어지리라 15. 또 스스로 죽은 것이나 들짐승에게 찢겨 죽은 것을 먹은 모든 자는 본토인이거나 거류민이거나 그의 옷을 빨고 물로 몸을 씻을 것이며 저녁까지 부정하고 그 후에는 정하려니와 16. 그가 빨지 아니하거나 그의 몸을 물로 씻지 아니하면 그가 죄를 담당하리라 ------------AMP.Lev.17. ===Blood for Atonement 1Then the Lord spoke to Moses, saying, 2 “Speak to Aaron and his sons and all the children of Israel, and say to them, ‘This is what the Lord has commanded, saying, 3 “Any man from the house of Israel who kills an ox or lamb or goat in the camp, or kills it outside the camp 4 and has not brought it to the doorway of the Tent of Meeting to [a]offer it as an offering to the Lord before the tabernacle of the Lord, that man shall be guilty of bloodshed. He has shed blood and shall be cut off from his people [excluding him from the atonement made for them]. 5 This is so that the sons of Israel may bring their sacrifices which they were sacrificing [to idols] in the open field [where they killed them], that they may bring them in to the Lord, at the doorway of the Tent of Meeting to the priest, and sacrifice them as sacrifices of peace offerings to the Lord. 6 The priest shall sprinkle the blood on the altar of the Lord at the doorway of the Tent of Meeting and offer the fat up in smoke as a sweet and soothing aroma to the Lord. 7 So they shall no longer offer their sacrifices to goat-idols or demons or field spirits with which they have played the prostitute. This shall be a permanent statute for them throughout their generations.”’ 8 “Then you shall say to them, ‘Any man from the house of Israel or any of the strangers living temporarily among you, who offers a burnt offering or sacrifice 9 and does not bring it to the doorway of the Tent of Meeting to offer it to the Lord shall be cut off from his people [excluding him from the atonement made for them]. 10 ‘Any man from the house of Israel, or any stranger living temporarily among you, who eats any blood, against that person I shall set My face and I will cut him off from his people [excluding him from the atonement made for them]. 11 For the [b]life of the flesh is in the blood, and I have given it to you on the altar to make atonement for your souls; for it is the blood that makes atonement, by reason of the life [which it represents].’ 12 Therefore I have said to the sons of Israel, ‘No person among you may eat blood, nor may any stranger living temporarily among you eat blood.’ 13 So when any Israelite or any stranger living temporarily among them, catches [c]any ceremonially clean animal or bird when hunting, he shall pour out its blood and cover it with earth. 14 “For in regard to the life of all flesh, its blood is [the same] as its life; therefore I said to the Israelites, ‘You are not to eat the blood of any flesh, for the [d]life of all flesh is its blood. Whoever eats it shall be cut off [excluding him from the atonement made for them].’ 15 Every person who eats an animal which dies [of natural causes] or was torn by a predator, whether he is native-born or a stranger, he shall wash his clothes and bathe in water, and be [ceremonially] unclean until evening; then he will become clean. 16 But if he does not wash his clothes or bathe his body, he shall bear his guilt [for it will not be borne by the sacrifice of atonement].” ===Footnotes Leviticus 17:4 At this point the Israelites were not permitted to eat meat at will. But, after the animal was offered as a burnt offering, most of it was returned to the owner as a gift from God. Leviticus 17:11 Lit soul. Leviticus 17:13 Lit an animal or bird which may be eaten. Leviticus 17:14 Lit soul. -----------NASB 1. Then the LORD spoke to Moses, saying, 2. "Speak to Aaron and to his sons, and to all the sons of Israel, and say to them, 'This is what the LORD has commanded, saying, 3. "Any man from the house of Israel who slaughters an ox, or a lamb, or a goat in the camp, or who slaughters it outside the camp, 4. and has not brought it to the doorway of the tent of meeting to present [it] as an offering to the LORD before the tabernacle of the LORD, bloodguiltiness is to be reckoned to that man. He has shed blood and that man shall be cut off from among his people. 5. "The reason is so that the sons of Israel may bring their sacrifices which they were sacrificing in the open field, that they may bring them in to the LORD, at the doorway of the tent of meeting to the priest, and sacrifice them as sacrifices of peace offerings to the LORD. 6. "And the priest shall sprinkle the blood on the altar of the LORD at the doorway of the tent of meeting, and offer up the fat in smoke as a soothing aroma to the LORD. 7. "And they shall no longer sacrifice their sacrifices to the goat demons with which they play the harlot. This shall be a permanent statute to them throughout their generations." ' 8. "Then you shall say to them, 'Any man from the house of Israel, or from the aliens who sojourn among them, who offers a burnt offering or sacrifice, 9. and does not bring it to the doorway of the tent of meeting to offer it to the LORD, that man also shall be cut off from his people. 10. 'And any man from the house of Israel, or from the aliens who sojourn among them, who eats any blood, I will set My face against that person who eats blood, and will cut him off from among his people. 11. 'For the life of the flesh is in the blood, and I have given it to you on the altar to make atonement for your souls; for it is the blood by reason of the life that makes atonement.' 12. "Therefore I said to the sons of Israel, 'No person among you may eat blood, nor may any alien who sojourns among you eat blood.' 13. "So when any man from the sons of Israel, or from the aliens who sojourn among them, in hunting catches a beast or a bird which may be eaten, he shall pour out its blood and cover it with earth. 14. "For [as for the] life of all flesh, its blood is [identified] with its life. Therefore I said to the sons of Israel, 'You are not to eat the blood of any flesh, for the life of all flesh is its blood; whoever eats it shall be cut off.' 15. "And when any person eats [an animal] which dies, or is torn [by beasts], whether he is a native or an alien, he shall wash his clothes and bathe in water, and remain unclean until evening; then he will become clean. 16. "But if he does not wash [them] or bathe his body, then he shall bear his guilt." == 레위기 17장 (개요) 대제사장이 모든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송아지와 염소의 피로 회막에서 드리는 속죄제에 대한 율법은 이미 다루었다. 이제 본 장에서는 속죄의 영예를 보존하기 위해 지켜야 할 두 가지 금령을 다룬다. 1. 제사장 외에는 아무도 어느 제사도 드릴 수 없고, 회막 문 외에는 아무데서도 드릴 수 없다. 만약 그렇게 하면 사망을 면치 못할 것이다(1-9).\ 2. 피를 먹으면 안 된다. 이를 범하는 날에는 동일한 벌을 받을 것이다(10-16). -------- 제사 금지령(레 17:1-9) 본문의 율법은, 모든 이스라엘인은 제물을 하나님의 제단으로 가져와서 제사 드리라고 명령한다.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은 사실을 고려해야 한다. Ⅰ. 이 율례가 있기 전에는 어떠했는가? 1. 백성들 누구나, 자기가 원하는 곳에서 제단을 쌓고 하나님께 제사를 드릴 수 있었다. 아브라함은 장막을 치는 곳마다 제단을 쌓았고, 모든 집안의 가장들은 그 집안의 제사장이었다. 욥도 그랬다(욥 1:5). 2. 이런 자유는 우상 숭배를 하는 계기가 되었다. 각자가 제사장이고, 자기 제단을 갖고 있었다. 점차 그들의 생각은 허황해져 자기들 마음대로 신을 만들고 “숫염소에게 제사했다”(7절. KJV에는 “악마에게 제사했다”로 되어 있음). 악마라는 말의 어원은 “거친” 혹은 “털 많은 숫염소”인데, 이것은 아마 악마의 영들이 종종 숫염소의 모양으로 묘사되었고, 숫염소에게 제사를 드렸기 때문이다. 악마는 하나님을 반역한 이래 지금까지 계속, 하나님의 대적자가 되어 하나님께 속한 거룩한 영광을 가로채려고 한다. 그는 뻔뻔스럽게도 우리의 거룩하신 구주에게 “내게 엎드려 경배하라”고 속삭였다. 이스라엘인들은 애굽에서 마귀를 섬기는 법을 직접 배웠다.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그렇게 영광스러운 임재를 보이고 그들과 함께하셨는데도, 이스라엘 중에는 마귀 숭배를 계속한 사람들이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여기서 그들이 악마를 “음란히 섬겼다”는 말씀이 주어진 것이다. 음행이 결혼 서약을 위반하는 것이듯이, 그들의 행위는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위반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은 우상 숭배에 길들고 깊이 중독되어 있어, 마치 자신을 음란함에 내어주며 “모든 더러운 것을 욕심으로 행하는”(엡 4:19) 자들처럼 되었다. 그러므로 이와 관련하여 하나님은 당신을 “질투하는 하나님”이라 칭하신 것이다. Ⅱ. 이 율법은 어떻게 정해졌는가? 1. 혹자는 이스라엘 자녀들에게만 이런 금령을 주셨다고 생각한다. 즉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지내는 동안에는 먹을 것을 위해서조차도 “회막 문”이 아닌 곳에서는 소나 양이나 송아지나 어린 양이나 염소 같은 짐승을 죽일 수 없었으며, 이 율법에 따라서 회막 문에서만 제물을 잡아 피와 기름은 하나님의 제단에 드리고 그 고기는 화목 제물과 마찬가지로 제물을 가져온 자가 먹도록 되돌려 주었다는 것이다. 이런 견해가 일리가 있는 이유는 본문에서는 소와 양과 염소 따위를 죽이는 일에 관한 일반적인 사례를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3, 4절). 커드워드(Cudworth) 박사는 회막이 진 한가운데 있어서 그들과 아주 가까이 있을 동안에는 하나님께 먼저 드리고 난 후에 고기를 먹을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그들이 가나안에 들어가게 되자 이 율법은 바뀌었고(신 12:21) 집에서도 노루나 사슴이나 소나 양, 염소 따위를 잡을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일 년에 세 번만 하나님의 회막에 나아가 그 앞에서 먹고 마시면 된다고 했다. 가나안에 들어가기 전 광야에서는 아마 화목 제물의 고기 외에는 고기를 먹을 기회가 거의 없었던 것 같다. 그러므로 그들이 만나에 싫증이 나서 고기를 달라고 우는 소리를 할 때 모세는 그들을 다 먹이려면 자기들이 소유하고 있는 “양떼와 소떼”를 다 잡아도 부족할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민 11:4, 22).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가축을 보존하여 번성케 하기 위해 이 율법을 주셨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율법을 “영원한 규례”(7절)라고 언급하는 것으로 보아 이것이 일시적인 것이라고 볼 수는 없다. 2. 그러므로 이 율법은 하나님의 제단이 아닌 곳에서는 희생 제물을 잡지 말라는 명령으로 보아야 한다. 전과 같이 “들에서”(5절) 제사를 드려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참되신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지 말라는 말이 아니라, 하나님께 드릴 제물은 제사장을 통해 여호와의 제단 위에서만 드려야 한다는 말이다. 또한 제사장과 제단을 통해서만 제사를 지내라고 제한한 이 엄숙한 의식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는 것이 나중에 증명되었다. 이 율법은 이스라엘인뿐 아니라 할례받고 이스라엘 가운데 거하던 개종자들이나 이방인들에게도 해당된다. 그들도 역시 자기들이 이전에 지켜오던 예배방식을 고수할 위험이 있었던 것이다. (1) 이 율법을 어기고 회막이 아닌 곳에서 제사를 드리면 그 죄가 매우 크다. “피 흘린 자로 여길 것이라. 그가 피를 흘렸은즉”(4절). 비록 짐승 한 마리를 죽이더라도 하나님께서 정하지 않으신 곳에서 죽이면 그 사람을 살인자로 여기신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하등 피조물을 죽일 자유를 허락하셨으나 하나님께서 지정하신 자유의 한계를 지키지 않으면 우리는 그 특권을 누릴 수 없다. 그것은 잔인하거나 미신적 관습을 따를 때는 누릴 수 없는 권리다(창 9:3, 4). 우상으로 삼거나 우상을 섬기기 위해 짐승을 죽이는 일만큼 짐승을 악용하는 일은 없다. 사도 바울이 피조물이 허무한 데 굴복하며 썩어짐의 종노릇을 하고 있다고 말한 것은, 아마 특별히 이런 사실을 염두에 둔 말일 것이다(롬 8:20, 21; 레 1:23, 25 참조). 우상 숭배로 제물을 드리는 것은 음행으로 여길 뿐만 아니라 살인으로 간주되었다. “소를 잡아 드리는 것은 살인함과 다름이 없고”(사 66:3). (2) 이 율법을 어기고 회막이 아닌 곳에서 제사를 드리면 그 형벌은 가혹하다. “자기 백성 중에서 끊쳐지리라.” 그런 범죄가 드러나 악명이 높아지면 재판관은 그를 처형해야 한다. 그렇게 분명하게 처벌받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친히 치실 것이다. 그 범죄자는 하나님이 공의로 치실 때 즉시 끊쳐질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왜 이렇게 그들의 모든 희생 제물을 일정한 장소에서만 드릴 것을 엄격하게 명령하셨는가? 거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① 우상 숭배와 미신을 막기 위해서다. 그들은 “하나님의 집”의 종인 제사장들의 손으로 제물을 드려야 하며, 모든 것이 하나님의 규례대로 지키도록 보살피는 자, 곧 “하나님의 집” 지도자인 대제사장이 보는 가운데서 드려야 한다. 그래야 율법대로 제물을 드릴 것이며, 자기들 생각대로 드리지 않게 될 것이다. ② 하나님의 성전과 제단의 영광을 보존하며, 특히 아무데서나 제사를 드리게 되면 퇴락해 버릴지도 모르는 그 제사의 특별한 위엄을 보존하기 위해서다. ③ 한 집안의 자녀들이 모두 한 식탁에서 만나듯이 모든 이스라엘이 한 제단에 모임으로써, 이스라엘의 단일성과 형제애를 보존하기 위해서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들은 서로 형제처럼 사랑하고 여호와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을 수 있었던 것이다. Ⅲ. 이 율법은 어떻게 준수되었는가? 1. 이스라엘 사람들이 스스로 순결을 지키는 동안에는 이 율법에 열심을 내어 관심을 크게 기울여서 존중했다. 르우벤 자손과 갓 자손과 므낫세 반 지파가 자기들 마음대로 건립한 제단을 파괴하는 데에 보여 준 대단한 열심과 비교될 수 있다. 그 제단을 다른 이스라엘 지파들은 한 번도 사용하지 않았으며, 그것은 제사나 예물을 위해서 설계된 것이 아니므로 결코 용납할 수 없다는 듯이 그 제단의 존립 자체도 허용하려 하지 않았던 것이다(수 22:12). 2. 이 율법은 여러 세대를 거치는 동안에 많이 범해졌으며, 그것이 유대 교회의 수치이며 회복될 수 없는 부패가 되었다. 훌륭한 왕들의 기록에서도 “그러나 산당이 제거되지 아니하였다”는 증언이 자주 나온다. 3. 그러나 이 율법은 특별한 경우에는 예외를 인정했다. 기드온의 제사(삿 6:26), 마노아의 제사(삿 13:19), 사무엘의 제사(삼상 7:9; 9:13; 11:15), 다윗의 제사(삼하 24:18), 그리고 엘리야의 제사(왕상 18:23) 따위는 통상적인 장소에서 드리지 않았지만 열납되었다. 그러나 이런 제사들은 모두 천사의 명령이 있었거나 선지자들이 드린 경우다. 실로가 폐허로 변해 성전이 건립되기 전, 아직 법궤와 제단이 안치되기 전에는 어디에서라도 제사를 드릴 수 있었다고 이해하는 사람도 있다. Ⅳ. 우리는 이 율법을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 1. 분명히 우리가 드릴 영적 제사는 일정한 장소에서만 드리라는 제한을 받지는 않는다. 우리의 구주께서는 이 점을 명백히 말씀하셨고(요 4:21), 사도 바울도 “각처에서 내 이름을 위하여 분향하며”(말 1:11)라는 예언을 뒷받침해 주었다(딤전 2:8). 우리에게는 이제 예물을 거룩하게 해 주는 성전이나 제단이 없으며, 복음의 하나됨은 어느 한 장소에 매여 있지 않다. 그러나 인간의 마음속에 그것이 있으니, 곧 “영의 하나됨”이다. 2. 그리스도는 우리의 제단이며, “참장막”이시다(히 8:2; 13:10). 그 분 안에서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에 거하시며, 오직 그 분 안에서만 우리의 제사가 하나님께 열납될 수 있다(벧전 2:5). 다른 중보자를 두거나 다른 제단을 세우거나 다른 속죄물을 바치면, 사실상 다른 신을 세우는 것이다. 그리스도는 하나됨의 중심이시니, 그 안에서 하나님의 모든 영적인 이스라엘이 만난다. 3.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께 드리는 공중예배를 존중해야 한다(히 10:25). 여호와께서는 “야곱의 모든 거처보다도 시온의 문들을 더 사랑하신다”(시 87:2; 겔 20:40 참조). 하나님께서는 가정에서 드리는 우리의 예물을 은혜로이 받으시지만, 그렇다고 해서 회막 문을 경홀히 여기면 안 된다. ---------- 피를 금함(레 17:10-16) Ⅰ. 피를 먹지 말라는 율법이 반복되었다. 우리는 이런 금령을 노아의 계명(창 9:4) 말고도 이미 레위기의 율법에서 두 번이나 보았다(3:17; 7:26). 1. 그러므로 이 금령이 본문에 반복되면서, 그런 의미에서 이미 앞에서도 말했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기를 너희 중에 아무도 피를 먹지 말며 하였나니”(12절).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어느 육체의 피든지 먹지 말라 하였나니”(14절). 우리는 이 율법이 매우 강조되어 있음을 쉽게 엿볼 수 있다. 2. 이 율법은 “이스라엘 집 사람”뿐 아니라 “그들 중에 우거하는 타국인”(10절)에게도 적용되었다. 따라서 이방인 개종자들에게 피를 금하기 위해서 그 당시 그렇게 강력히 충고한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행 15:29). 3. 이 법에 따르는 벌은 매우 가혹했다. “내가 그 피 먹는 사람에게 진노하여 그를 백성 중에서 끊으리니”(10절). “무릇 피를 먹는 자는 끊쳐지리라”(14절). 하나님의 진노는 죄인들이 자초하는 것임을 명심하자. 하나님께서 진노의 얼굴을 보이시는 자는 멸망하거니와, 영원히 멸망할 것이다. 이 세상 어느 피조물이 조물주와 대결할 수 있으리요! 4. 이 율법을 주신 이유가 제시되어 있다. “피가 죄를 속하느니라”(11절). 이처럼 피로 속죄하라고 지시하신 이유는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기” 때문이다. 죄인은 죽어 마땅하다. 그래서 희생 제물이 대신 죽어야 하는 것이다. 피가 생명이기에 사람 대신 짐승을 죽여서 그 짐승의 피가 완전히 흘러나오게 했다. 이것은 사람의 생명의 속전으로서 짐승의 생명을 하나님께 바치는 것을 상징한다. 이 사실을 분명히 하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그 희생 제물의 피를 제단에 뿌리거나 바르라고 지시하셨다. “피 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히 9:22). 이런 이유 때문에 그들은 피를 먹으면 안 되었던 것이다. (1) 그것은 당시에 매우 타당한 이유가 되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식으로 당신이 명하신 속죄의 방식에 대한 존중의 마음을 지속하고자 하셨고, 모든 사람의 마음속에 그 제도에 대한 경외심을 갖게 하셨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피가 언약의 가시적인 대상이었으므로, 어떤 피든지 먹거나 일상적인 물질처럼 함부로 밟아서는 안 되었다. 하나님께서 당신을 위해 만들라고 명령하신 향유와 관유를 함부로 사용할 수 없던 것과 마찬가지다. (2) 그러나 지금은 그 이유의 시효가 끝났다. 그 율법 자체가 의식적인 것이었으므로 이제는 효력이 없다. 유일하게 사람의 죄를 속하는 그리스도의 피로, 당시 희생 제물의 피는 이것을 상징하는 하나의 불완전한 그림자에 불과했다. 실체가 오면 그림자는 사라지게 된다. 짐승의 피는 이제 대속의 능력을 상실했다.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써만 대속이 가능하다. 이제 우리는 결코 다른 것을 찾을 필요가 없다. 그러므로 이제는 피에 대한 금령이 있어야 할 이유가 없어졌으며, 그것을 지금도 유지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할 수는 없는 것이다. 몸의 건강을 위해 그 금령을 주신 것이 아니라면, 피는 이제 우리의 몸을 위한 양식이 될 수 있다. 이제는 피가 우리를 위한 대속물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3) 그러나 그것은 아직도 유용한 의의가 있다. 생명은 피에 있다고 한다. 피는 동물의 혼이 들어 있는 매개체다. 하나님께서는 당신 백성들이 짐승의 피까지 존중하기를 원하셨다. 하나님은 당신 백성이 짐승의 피에 대해 잔인하거나 냉정하게 굴지 않기를 바라셨다. 그런 피를 야만스럽게 또 경솔히 취급하는 일을 금하신 것이다. 그들은 결코 피에 굶주린 사람처럼 되어서는 안 된다. 그 당시에는 짐승의 피가 상징적으로 죄를 대속했으나, 지금은 그리스도의 피가 실제적으로 죄를 대속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율법을 존중해, 피를 평범한 것으로 여겨서는 안 된다. 그렇게 하는 자에게는 하나님께서 진노하심으로써 그가 생명을 잃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히 10:29). Ⅱ. 어떤 다른 계율이 이 율법에 부가되어 있어서, 이 율법의 울타리 역할을 하고 있다. 1. “사냥하여 잡은” 짐승의 피는 흙으로 덮으라고 하셨다(13절). 피를 먹지 못할 뿐만 아니라, 피를 흘려서 정중히 묻어야 한다. 이것은 이런 율법의 이면에 깊은 뜻이 있었음을 그들이 믿었다는 증거다. 유대인들은 이것을 매우 엄중한 계명로 지켰고, “당신의 계명으로 우리를 거룩하게 하시고, 우리로 그 피를 덮으라 명하신 분을 찬양하리로다” 하고 말하며 피를 묻었다고 한다. 2. “스스로 죽은” 짐승이나 “찢겨 죽은” 짐승은 먹지 말라고 하셨다(15절). 그런 짐승에서는 피가 전혀 나지 않거나 적어도 피가 정상적으로 나지는 않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당신 백성들이 음식에 주의 깊은 관심을 갖기를 바라셨을 것이다. 그것은 육적인 욕심을 만족시키기 위한 호기심이 아니라, 그 음식을 조심하고 삼가는 관심을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당신 백성들이 욕심대로 마구 먹게 하지 않으시고, 그들 앞에 놓여 있는 것을 부지런히 분별하여 마음에 거리끼는 것이 있는지 살피도록 하셨다. “탈취한 물건에 달려가는” 자들은 죄를 짓는 것이다(삼상 14:32, 33). 만일 모르고, 또는 부주의로 정당하게 죽지 않은 짐승의 고기를 먹은 사람은, “그 옷을 빨고 물로 몸을 씻을 것이며” 그렇지 않으면 “죄를 당하리라”(15, 16절)고 경고하셨는데, 그 더러움은 의식상의 부정이었으므로 그것을 정결케 하는 것도 의식이었다. 그러므로 지정된 정결 처방을 경솔히 여기거나 복종하지 않을 때는, 그 불복종 때문에 도덕적 죄책을 범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구제(치료)하는 율법의 성질이다. 거기에 복종한 자는 그 율법의 혜택을 입는다. 그렇게 하지 않는 자는 의식상의 죄책이 그대로 남아 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은총의 처방을 모욕한 죄가 가중되어, 그 구제책을 거스르는 죄를 범하게 되는 것이다. ======== 17장: 피를 먹지 말 것 [1-4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아론과 그 아들들과 이스라엘 모든 자손에게 고하여 그들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명령이 이러하시다 하라. 무릇 이스라엘 집의 누구든지 소나 어린양이나 염소를 진 안에서 잡든지 진 밖에서 잡든지 먼저 회막문으로 끌어다가 여호와의 장막 앞에서 여호와께 예물로 드리지 아니하는 자는 피 흘린 자로 여길 것이라. 그가 피를 흘렸은즉 자기 백성 중에서 끊쳐지리라[무릇 이스라엘 집의 누구든지 소나 어린양이나 염소를 진 안에서 죽이든지 진 밖에서 죽이든지, 여호와의 장막 앞에서 여호와께 예물로 드리기 위해 회막문으로 가져오지 않는 자는 피 흘린 자로 여길 것이라. 그가 피를 흘렸은즉 자기 백성 중에서 끊어지리라]. 본문은 사람들이 소나 양이나 염소를 하나님께 예물로 드릴 때에 [반드시!!] 회막 앞에 가지고 나아와야 할 것을 규정한 것이라고 본다. 사람들이 소나 양이나 짐승의 고기를 먹고자 하면 어디에서나 죽여 먹을 수 있었다. 신명기 12:15, 21,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신 복을 따라 각 성에서 네 마음에 즐기는 대로 생축을 잡아 그 고기를 먹을 수 있나니 곧 정한 자나 부정한 자를 무론하고 노루나 사슴을 먹음같이 먹으려니와,” “너는 여호와의 주신 우양을 잡아 너의 각 성에서 네가 무릇 마음에 좋아하는 것을 먹되.” 그러나 제사 장소의 법은 엄격하여 이 법을 어기는 자는 그 백성 중에서 끊어질 것이라고 경고되었다. 그것은 제사의 부패를 방지하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오늘날도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는 사람 중심적이거나 경박하거나 형식적이서는 안된다. ‘그 백성 중에서 끊어진다’는 말은 사형이나 출교 또는 하나님의 직접적 징벌을 의미한다고 본다. [5-9절] 그런즉 이스라엘 자손이 들에서 잡던 희생을 회막문 여호와께로 끌어다가 제사장에게 주어 화목제로 여호와께 드려야 할 것이요 제사장은 그 피를 회막문 여호와의 단에 뿌리고 그 기름을 불살라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레아크 니코아크 )[유화(속죄)의 향기]가 되게 할 것이라. 그들은 전에 음란히 섬기던 숫염소에게 다시 제사하지 말 것이니라. 이는 그들이 대대로 지킬 영원한 규례니라. 너는 또 그들에게 이르라. 무릇 이스라엘 집 사람이나 혹시 그들 중에 우거하는 타국인이 번제나 희생을 드리되 회막문으로 가져다가 여호와께 드리지 아니하면 그는 백성 중에서 끊쳐지리라. 제사장은 그 제물의 피를 회막문 여호와의 단에 뿌리고 그 기름을 불살라 여호와께 유화(속죄)의 향기가 되게 해야 했다. 또 사람들은 전에 음란하게 섬기던 ‘숫염소 귀신들’(세이림 )(NASB, BDB)에게 다시 제사하지 말아야 했다. 또 무릇 이스라엘 집 사람이나 혹시 그들 중에 우거하는 타국인도 번제나 다른 제사를 드릴 때 회막문에 가져와 여호와께 드리지 않으면 그는 백성 중에서 끊어질 것이다. [10-13절] 무릇 이스라엘 집 사람이나 그들 중에 우거하는 타국인 중에 어떤 피든지 먹는 자가 있으면 내가 그 피 먹는 사람에게 진노하여 그를 백성 중에서 끊으리니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음이라. 내가 이 피를 너희에게 주어 단에 뿌려 너희의 생명을 위하여(알 나프쇼세켐 )[너희의 영혼들을 위하여](KJV, NASB) 속하게 하였나니 [이는] 생명이 피에 있으므로(반네페쉬 )[생명 때문에](ASV, NASB) 피가 죄를 속하느니라. 그러므로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기를 너희 중에 아무도 피를 먹지 말며 너희 중에 우거하는 타국인이라도 피를 먹지 말라 하였나니 무릇 이스라엘 자손이나 그들 중에 우거하는 타국인이 먹을만한 짐승이나 새를 사냥하여 잡거든 그 피를 흘리고 흙으로 덮을지니라. 이스라엘 백성은 피를 먹지 말아야 했다. 본장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피를 먹지 말라고 하신 명령을 반복해 기록한다(10,12, 14절). 또 피를 먹지 말아야 할 이유는 피가 생명이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셨다(11, 14, 14절). 이 명령을 하시면서, 하나님께서는 피가 죄를 속한다는 귀한 진리를 밝히 증거하셨다.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고 이 피를 단에 뿌려 우리의 생명을 위해 혹은 우리의 영혼을 위해 죄를 속하게 한다. 생명이 피에 있기 때문에 피가 죄를 속한다. [14-16절] 모든 생물은 그 피가 생명과 일체라. 그러므로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어느 육체의 피든지 먹지 말라 하였나니 모든 육체의 생명은 그 피인즉 무릇 피를 먹는 자는 끊쳐지리라. 무릇 스스로 죽은 것이나 들짐승에게 찢겨 죽은 것을 먹은 자는 본토인이나 타국인이나 물론하고 그 옷을 빨고 물로 몸을 씻을 것이며 저녁까지 부정하고 그 후에 정하려니와 그가 빨지 아니하거나 몸을 물로 씻지 아니하면 죄를 당하리라. 하나님께서는 피를 먹지 말아야 할 이유로서 피가 생명임을 다시 강조하셨다. 그러므로 스스로 죽은 것이나 들짐승에게 찢겨 죽은 것도 먹지 말아야 했다. 혹 그런 것을 먹은 자는 몸을 정결케 해야 했다. 우리는 피를 먹지 말라는 법을 포함하여 모든 의식법이 신약시대에는 폐지되었다고 믿는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19:3은 모든 의식법들이 신약 아래서 폐지되었다고 진술하였다. 골로새서 2:16-17,“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월삭이나 안식일을 인하여 누구든지 너희를 폄론[판단]하지 못하게 하라. 이것들은 장래 일의 그림자이나 몸은 그리스도의 것이니라.” 사도행전 15장에 기록된 예루살렘 총회의 결정 중에 이방인 신자들에게 우상의 제물과 피와 목매어 죽인 것을 멀리하라는 규례는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이 섞여 있었던 초대교회를 위한 임시적 조치이었다고 이해해야 할 것이다. 본장 11절에 증거된 피의 속죄 개념은 우리의 구원에 직접 관계되는 매우 중요한 개념이다. 피의 중요성은 하나님께서 에덴 동산에서 아담과 하와에게 가죽옷을 입혀주실 때부터 암시되었고, 그것은 그 후 아벨이 양의 첫 새끼로 드린 제물을 하나님께서 받으셨을 때도 증거되었다. 인류역사 초기로부터 행해진 번제는 피의 중요성을 암시하였다. 모세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제사 제도는 피의 중요성을 증거하였다. 제사장은 제물의 피를 번제단에 뿌리고 또 성소나 지성소에 들어가는 경우에는 지성소의 휘장이나 지성소 안의 속죄소에도 일곱 번 뿌려야 했다. 이 속죄의 피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사역을 예표한 것이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에 못박혀 피 흘려 죽으셨다. 그의 속죄 사역은 피 흘리신 사역이었다. 그는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날 밤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 저녁식사를 하실 때 포도즙 잔을 나누시며, “이것은 죄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고 말씀하셨다(마 26:28). 예수 그리스도의 피는 많은 사람의 죄사함을 이루는 속죄의 피이며 이것이 하나님의 구원의 방법이었다. 사도 바울은 피의 속죄를 밝히 증거하였다. 로마서 3:25,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유화제물]로 세우셨으니.” 히브리서 9:12는,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고 증거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은 자신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신 제사이었다. 그는 하나님 앞에서 속죄제물로 죽으셨다.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 모두는 그의 속죄제사로 말미암아 죄씻음과 의롭다 하심의 구원을 얻었다. 사도 베드로는 베드로전서 1:18-19에서 증거하기를,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의 유전한 망령된 행실에서 구속(救贖)된 것은 은이나 금같이 없어질 것으로 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이니라”고 말하였다. 사도 요한은 요한일서 1:7에서 증거하기를, “저가 빛 가운데 계신 것 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라고 말했다. 이와 같이, 성경은 피의 속죄를 증거한다. 생명이 피에 있으므로 피가 죄를 속한다. 짐승 제물의 피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위에서 흘리신 속죄의 보혈을 예표하였다. 구주 예수께서는 보혈을 흘리셨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의 보혈을 믿자. 또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은혜를 깨닫고 그를 위해 거룩하고 순종하는 삶을 살자. === === =========== 메시지 33 - 제사장들을 위한 공과와 규례들 (1) (( 레위기 10:1-11)) 레위기 1장부터 9장까지에서 우리는 제물들과 그 제물들의 규례들과 아론과 그 아들들의 헌신과 제사장 봉사의 시작과 제사장 봉사의 결과를 보았다. 제사장 봉사의 결과에는 하나님의 나타나심과 하나님의 영광의 나타나심과 백성들의 축복하는 것과 하나님 앞에서 나와서 번제물을 소멸시키는 불(9:24)이 있다. 이 소멸하는 불은 하나님의 거룩을 나타내는 것으로 하나님은 이것을 두 방면, 즉 적극적인 방면과 소극적인 방면에서 사용하신다. 적극적인 면에서, 우리가 하나님을 위하여 어떤 것을 가지고 그것을 그분께 드릴 때, 그분은 불로 그것을 소멸하심으로 열납하신다. 이 소멸은 적극적인 것이며 우리의 어떠함, 우리의 행한 것,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 가지는 것을 받아들이는 신성한 열납이다. 소극적인 면에서, 거룩한 불은 심판으로서 하나님에게서 나온다. 그러한 소극적인 경우-나답과 아비후의 경우-는 레위기 10장 1절부터 11절까지에서 발견되며 우리는 이 메시지에서 이 부분을 살펴볼 것이다. 10 장 1절부터 11절까지의 나답과 아비후의 경우는 지난 장의 사건들과 함께한다. 이 비참한 사건은, 『불이 여호와 앞에서 나와 단 위의 번제물과 기름을 사를』(24절)때 일어난 것 같다. 아론의 아들들인 나답과 아비후는 선하게 보이는 어떤 것을 했다. 즉 그들은 하나님께 무엇인가를 드렸다. 그러나 그들은 하늘에서 나온 불이 아닌 「다른 불(strange fire)」, 일반적인 불(속된 불)을 드렸다. 하나님은 다른 불을 드린 두 제사장들을 불태우심으로 이 다른 불을 드린 것을 심판하셨다. 이것은 한면으로 하나님은 긍휼이 많으시며 자비로우시지만, 다른 한면으로 그분은 매우 엄정하시며 엄격하심을 우리에게 보여 준다. 9장에 있는 그 탁월하고 영광스러운 날, 곧 하나님께서 그분의 백성들의 누림을 위해 그리스도를 그들에게 처음 적용하기 시작하는 날의 축복이 있은 후, 아마 우리는 10장의 기록된 실수를 묵인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묵인하지 않으셨다. 하나님은 축복을 하신 그 직후 심판하셨다. 하늘의 불로 제물들을 소멸하는 것은 전적으로 적극적인 것이다. 그 소멸은 하나님이 참되시며 살아계신 하나님이시며 그분이 그분의 백성들, 곧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하심을 보여주는 강한 확증이었다. 더 나아가서 불로 소멸하는 이것은 모세가 행했던 것과 그가 백성들에게 하나님에 대해 말했던 것의 확증이었다. 그 이전에 이스라엘 자손들은 그들이 경배하는 하나님이 어떠한 분이신가를 궁금히 여겼을 것인데 이는 그들이 그분을 보지 못하고 모세를 통해서만 그분에 대해 들었기 때문이다. 이제 모든 율법과 규례와 제물들이 형식화 되고 공식화 되는 특정한 날이 있었다. 이 날에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났으며 그분의 축복이 그분의 백성들에게 내려졌다. 더우기 이 날에는 제물들을 받는 신성한 열납이 있었다. 이 열납은 소멸하는 불의 형태로 왔다. 이 불은 하늘로부터 내려온 것이지 땅에서 온 것이 아니었으며, 이스라엘 자손에게서 비롯된 것이 아니었다. 불이 하늘로부터 나와 제물들에 있었으며 제물들이 소멸되던 곳인 바로 그 지점-단-에 이르렀을 때 백성들은 그것을 보고 소리지르며 엎드렸다(9:24下). 얼마 지나지 않아 소멸하는 불은 다시 나타났다. 그러나 이번은 소극적인 면에서 나타났다. 거룩한 불은 열납하는 대신 심판했다. 9장의 거룩한 불은 열납하는 의미에서 불살랐으나, 10장에서는 심판하는 면에서 불살랐다. 나답과 아비후에 관해 10장 2절은, 『불이 여호와 앞에서 나와 그들을 삼키매 그들이 여호와 앞에서 죽은지라』고 말한다. 사도행전에도 이와 유사한 일이 있다. 오순절날 하나님의 영광이 하늘로부터 나왔으나(행 2:1-4), 얼마 지나지 않아 한 부부가 성령을 속인 결과 죽었다(행 5:1-11). 레위기 10장의 경우, 거룩하지 않고 일반적이며 세상적인 불을 드림은 심판을 초래했다. 거룩하고 하늘에 속한 불이 나답과 아비후를 불살라 그들은 죽었다. 우리가 나답과 아비후의 경우를 살펴보면 볼수록, 우리는 하나님이 긍휼이 풍성하신 분일 뿐만 아니라 거룩한 분이며, 자비로우신 분일 뿐 아니라 엄한 분이심을 더 깨닫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분을 섬기는 데 있어 부주의하거나 신성한 것들을 <제멋대로 함부로>만져서는 안 된다. 레위기 10장 9절과 10절은, 『너나 네 자손들이 회막에 들어갈 때에는 포도주나 독주를 마시지 말아서 너희 사망을 면하라 이는 너희 대대로 영영한 규례라 그리하여야 너희가 거룩하고 속된 것을 분별하며 부정하고 정한 것을 분별하고』라고 말한다. 이 명령은 나답과 아비후가 다른 불을 드린 것은 그들이 필경 포도주로 취해 있었다는 것을 가리킨다. 이것은 그들을 느슨하고 부주의하게 만들었으며 그들로 두려움을 가지지 않은 채 행하도록 만들었다. 그 결과 그들은 하나님의 거룩한 심판을 받았다. 구약과 신약 모두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데 부주의하거나 신성한 것을 만지는 것의 결과는 원칙에 있어 동일하다. 나답과 아비후와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경우, 결과는 죽음이었다. 이것은 신성한 것을 부주의하게 만지는 것은 심각한 일이며 죽음을 초래할 수도 있다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신약에 따르면 이 죽음은 육체적인 죽음이 아니라 영적인 죽음이다. 이제 나답과 아비후의 사건을 자세히 살펴보자. Ⅰ. 나답과 아비후의 공과 10 장 1절부터 11절까지에서 우리는 나답과 아비후의 공과를 본다. 나답과 아비후가 소멸된 것은 아마도 9장에 기술된 영광과 축복의 날 끝무렵에 일어났을 것이다. 아론의 이 두 아들에게 일어났던 것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분명한 공과이다. A. 나답과 아비후는 여호와 앞에 다른 불을 드림 『아론의 아들 나답과 아비후가 각기 향로를 가져다가 여호와의 명하시지 않은 다른 불을 담아 여호와 앞에 분향하였더니』(1절). 이것은 사람의 천연적인 열심과 천연적인 애정과 천연적인 힘과 천연적인 능력이 하나님께 드려진 것을 의미한다. 나답과 아비후는 하나님을 위하지 않은 것을 행함으로 심판받은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천연적인 생명에 따라 행했기 때문에 심판받았다. 그들은 하나님을 위하여 어떤 것을 행했으나 그것을 천연적으로 행했다. 그들은 하나님을 사랑했었겠지만 천연적으로 그분을 사랑했다. 우리는 주님을 위하여 불사름이 되어야 하며 뜨거워야 한다. 그러나 우리의 뜨거움은 천연적인 것이 아니라 영적인 것이 되어야 한다. 우리는 십자가의 길을 취함으로 천연적인 데서 영적으로 진보한다. 천연적인 생명 안에서의 우리의 모든 어떠함은 없어져야 한다. 천연적인 사람은 이미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다. 이제 그리스도인의 생활과 행함 안에서 우리는 우리의 천연적인 사람이 십자가에 못 박혔다는 것과 천연적인 사람은 반드시 제쳐져야 한다는 태도를 고수해야 한다. 천연적인 생명은 이미 정죄받았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도 그것을 정죄해야 한다. 우리는 우리의 천연적인 사람이 십자가 위에서 하나님에 의해 심판받았음을 깨달아야 한다. 이는 그것을 귀히 여기거나 존귀히 여겨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교회 안에서 우리가 봉사하는 것과 집회에서 간증하는 것은 쉽게 천연적이 될 수 있다. 우리가 집회에서 천연적으로 말한다면, 우리는 다른 불 혹은 일반적인(속된) 불을 드리게 될 것이며 이 드림은 영적 사망을 초래할 것이다. 우리가 천연적으로 간증할 때마다 우리 존재는 죽게 되며 집회 분위기도 죽게 된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거룩한 것을 천연적인 생명으로 만지지 않는 것을 배워야 한다. 어떤 일이 합당해야 할 뿐 아니라 하는 방법도 합당해야 한다. 단지 합당한 것을 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우리는 합당한 것을 합당한 방법으로 행해야 한다. 다른 불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은 합당한 것을 그릇된 방법으로 드리는 것이며 이것은 사망의 심판을 초래한다. 천연적인 것에서 정결케 되기란 쉽지 않다. 우리는 종종 우리의 천연적인 열심과 천연적인 애정과 천연적인 힘과 혹은 천연적인 능력을 사용한다. 우리 안에 있는 천연적인 모든 것은 처리되어져야 한다. 모세의 생애는 천연적인 사람의 처리받음을 보여주는 예화이다. 모세는,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시 90:10)고 말한다. 그의 이해에 따르면, 팔십이 사람의 생명의 끝이다. 그러므로 모세가 그의 나이 팔십에 하나님에 의해 부르심받았다는 것은 의미심장한 것이다. 이것은 모세의 천연적인 생명이 끝났으며 그가 하나님을 위하여 했던 모든 것이 부활 안에 있었음을 가리킨다. 팔십 세에 모세는 새로운 시작을 가졌으며 그 때부터 그는 그의 천연적인 생명에 따라 행한 것이 아니라 부활의 영으로 행했다. 우리의 나이와 상관없이 우리 모두는 천연적인 힘으로, 천연적인 능력에 의해 천연적인 애정을 위하여 어떤 것을 행하거나 말하지 않기를 배워야 한다. 우리는 천연적인 모든 것을 뱀 곧 독으로 여겨야 한다. 나답과 아비후에 의해 드려진 불은 일반적인(속된) 불이었다. 즉 그것은 단으로부터 나온 불이 아니었다. 제물들을 접촉한 단에서 나온 불은 거룩하며 또한 성결했다. 그러나 나답과 아비후는 거룩케 되고 성결케 된 불을 드리지 않고 일반적인 불을 드렸다. 이 불은 여호와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라 사람에게서 나온 것이었다. 즉 그것은 하늘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땅에서 나온 것이며 속죄의 기초(근거)를 갖지 못했다. 속죄가 없이는 사람과 하나님과의 상황이 진정되지 않으며 사람과 하나님 사이의 문제가 그대로 남게 된다. 천주교와 오순절주의의 영향으로 인해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을 경배하고 섬기는 데에 느슨하고 부주의하다. 그들은 이러한 경배와 봉사를 심각하게 여기지 않으며 그 결과는 영적인 사망을 가져오는 천연적인 생명을 사용하는 것이다. B. 불이 여호와 앞에서 나와 그들을 소멸하여 여호와 앞에서 죽음 레위기 10장 2절은, 『불이 여호와 앞에서 나와』 나답과 아비후를 태워, 『그들이 여호와 앞에서 죽었더라』고 말한다. 이 불은 일반적인 불과 정반대이다. 이 불은 사람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게서 나온 것이다. 즉 그것은 땅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하늘에서 나온 것이며 열납을 위한 것이 아니라 심판을 위한 것이다. 2 절에 있는 불은 또한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그분의 섬기는 자들이 하나님을 거룩케 하기 위한 불이다(3下). 나답과 아비후의 죽음은 하나님을 거룩하게 했다. 그들의 죽음은 우리에게 하나님은 일반적인 분이 아니라 거룩한 분이시며 우리는 이 거룩한 하나님께 어떤 일반적인 것도 드려서는 안 된다는 것을 말한다. 나답과 아비후의 죽음에서 우리는 하나님은 거룩한 하나님으로 존귀히 여기심을 받아야 한다는 것을 배운다. 만일 우리가 그분께 진지하지 않다면, 우리는 심판받을 것이며 우리에게 임한 그분의 심판은 그분을 거룩케 하는 것이 될 것이다. 2 절에 있는 불은 또한 그분의 백성들 앞에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기 위한 것이었다(3下). 아론과 백성들은 소멸하는 불이 단지 형벌과 심판일 뿐 아니라 하나님과 함께한 이 불이 그분을 영화롭게 하는 것임을 느꼈을 것이다. C. 나답과 아비후의 시체는 성소 앞에서 진 밖으로 메어 내짐 『모세가 아론의 아자비 웃시엘의 아들 미사엘과 엘사반을 불러 그들에게 이르되 나아와 너희 형제들을 성소 앞에서 진 밖으로 메어 가라 하매 그들이 나아와 모세의 명대로 그들을 옷 입은채 진 밖으로 메어 내니』(4-5절). 이것은 거룩하지 않은 죽음은 하나님의 거룩의 영역에서, 또한 하나님의 백성들의 규제, 교통에서 없어져야 함을 의미한다. D. 제사장들은 그들이 죽음을 면하고 하나님이 온 회중에게 진노하시는 것을 면케 하기 위하여 그들의 친척에게 임한 하나님의 죽음의 심판에 대해 머리를 풀거나 옷을 찢지 못함 『모세가 아론과 그 아들 엘르아살과 이다말에게 이르되 너희는 머리를 풀거나 옷을 찢지 말아서 너희 죽음을 면하고 여호와의 진노가 온 회중에게 미침을 면케 하라』(6절). 이것은 친척들에 대한 하나님의 죽음의 심판이 그분의 섬기는 자들이 그리스도의 머리 되심에 복종하는 데 혼란하게 되고 그들의 행위의 온전함을 무너지게 하는 것이 되어서는 안 됨을 의미하며, 그들이 영적인 생명 안에서 사망을 맛보지 않음으로 하나님이 그분의 백성들에게 진노하시지 않게 됨을 의미한다. 6 절의 요구는 우리가 하나님께 진지해야 함을 가리킨다. 그분께 나아가고 그분의 봉사와 일을 만지는 데 있어서 우리는 반드시 진지해야 한다. 비록 하나님의 죽음의 심판으로 인해 친척들을 잃는다 하더라도 우리는 우리 자신의 관심에 주의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관심에 주의해야 한다. 그러한 상황에서 우리가 상심하지 않은 것처럼 행하는 것은 우리가 그리스도의 머리 되심 아래 있음을 보여준다. E. 이스라엘 온 족속이 여호와의 치신 불로 인하여 슬퍼함 레위기 10장 6절 하반절은, 『오직 너희 형제 이스라엘 온 족속이 여호와의 치신 불로 인하여 슬퍼할 것이니라』고 말한다. 이것은 하나님의 백성의 온 몸이 그분을 섬기는 자들의 거룩치 못함에 내린 하나님의 심판에 대해 슬퍼해야 함을 의미한다. F. 제사장들은 죽음을 면하기 위해 회막 문으로 나가지 못하는데, 이는 여호와의 관유가 그들에게 있기 때문임 『여호와의 관유가 너희에게 있은즉 너희는 회막문을 나가지 말아서 죽음을 면할지니라』(7上). 제사장들은 심지어 장례식에 참석할 때조차도 회막 문을 떠날 수 없었는데 이는 과정을 거치신 TUQ을 예표하는 거룩한 관유가 그들 위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것은 하나님의 성령을 지니고 있는 하나님의 섬기는 자들은 영적인 사망을 맛보지 않기 위해서 교회 생활의 문을 떠나서는 안 됨을 의미한다. G. 제사장들은 회막문으로 들어갈 때는 어떤 포도주도 마셔서는 안되는데 이는 그들이 죽음을 면하고 거룩하고 속된 것을 분별하며 부정하고 정한 것을 분별하고 여호와의 모든 규례를 백성들에게 가르치기 위해서임 『너나 네 자손들이 회막에 들어갈 때에는 포도주나 독주를 마시지 말아서 너희 사망을 면하라 이는 너희 대대로 영영한 규례라 그리하여야 너희가 거룩하고 속된 것을 분별하며 부정하고 정한 것을 분별하고 또 여호와가 모세로 명한 모든 규례를 이스라엘 자손에게 가르치리라』(8-11절). 이것은 교회 생활 안으로 들어온 하나님의 섬기는 자들은 세상적인 누림과 육적인 관심과 천연적인 흥분의 어떤 것도 마시지 말아야 함을 의미하는데, 이는 그들이 영적 사망을 맛보지 않고 거룩하고 일반적인 것(속된 것)을 분별하며 정한 것과 부정한 것을 분별하고, 하나님의 규례를 그분의 백성들에게 가르치기 위해서이다. 만일 우리가 나답과 아비후의 공과에 주의한다면, 우리는 많은 것을 배우게 될 것이다. 이 공과는 분명히 하나님에 관한 것을 만질 때 우리를 통제할 것이다. =========== 메시지 34 - 제사장들을 위한 공과의 규례들 (2) (( 레위기 10:12-20 )) 지난 메시지에서 우리는 제사장들을 위한 공과를 살펴보았다. 이번 메시지에서는 제사장들을 위한 규례들을 살펴볼 것이다. Ⅱ. 제사장들을 위한 규례들 비록 영광의 날, 축복과 누림이 가득한 날에 아론에게 엄중한 일이 일어났었으나(10:1-11), 우리는 10장 12절에서 더 전진된 하나님의 긍휼과 은혜의 표현을 본다. 『모세가 아론과 그 남은 아들 엘르아살에게와 이다말에게 이르되 여호와께 드린 화제 중 소제의 남은 것은 지극히 거룩하니 너희는 그것을 취하여 누룩을 넣지 말고 단 곁에서 먹되』라고 말한다. 이 구절은 번제물이나 속죄 제물이나 속건 제물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소제물을 말한다. 여기서의 소제물은 하나님의 긍휼과 은혜의 문제이다. 우리의 관념으로는 10장 1절부터 11절까지의 교정이 있은 직후에, 아론과 그의 아들들에게는 속죄 제물이 필요했다. 그러나 모세는 그들에게 소제물을 먹으라고 말한다. 아론과 그의 아들들이 먹도록 어떤 것이 그들에게 주어졌다. 필요한 때에 다른이들이 먹도록 어떤 것을 주는 것은 그들에게 긍휼을 나타내는 것이다. 나답과 아비후를 소멸한 거룩한 불은 심판을 위한 것이었다. 이 심판은 믿지 않는 이들에게 행해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행해진 것이었다. 고린도전서 11장 27절부터 32절까지에 따르면, 이 심판은 파멸시키기 위한 심판이 아니라 징계의 벌, 긍휼이 넘치는 교정이다. 아론의 두 아들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은 그분의 백성들에게 그분의 긍휼을 끝내는 것이 아니다. 레위기 10장 12절이 시사하는 바와같이 여기서 하나님의 긍휼은 그분의 징계와 교정에 함께 했다. A. 아론과 그의 아들들은 여호와께 드린 화제 중 소제의 남은 것을 누룩을 넣지 않고 단 곁 거룩한 곳에서 그들의 분깃으로 먹음 아론과 그의 아들들은 여호와께 드린 화제 중 소제의 남은 것을 누룩을 넣지 않고 단 곁 거룩한 곳에서 그들의 분깃으로 먹었다(12-13절). 이것은 우리의 소제물이신 인성 안에 계신 그리스도의 남은 부분은 신약의 제사장들인 우리의 분깃으로 우리가 누리기 위한 것임을 의미한다. 레위기 2장에 따르면, 소제물의 최상의 부분은 유향과 함께 불로 태워서 하나님께 드려졌다. 소제물의 남은 것은 제사장들을 위한 것이었다. 소제물이신 그리스도는 먼저 하나님의 만족을 위한 분이며 그런 다음에는 우리의 누림과 만족을 위한 분이시다. 12절과 `13절에 있는 소제물이 나답과 아비후의 징계적인 심판이 있은 직후에 오는 것은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시사한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강조하고 싶다. 이 죽음의 심판이 있은 후 모세는, 『아론, 너는 잘못을 범했으므로 이제는 네가 하나님께 속죄 제물을 드릴 때다.』라고 말하지 않았다. 아론과 그의 아들들에게 속죄 제물이나 혹은 번제물을 드리라고 말하는 대신에 모세는 소제물의 남은 것을 먹으라고 그들에게 말했다. 이것은 심판하시고 교정하시는 하나님이 이어서 긍휼하시는 분이 됨을 가리킨다. 지극히 거룩한 소제물은 거룩한 곳, 즉 하나님이 계시는 곳에서 먹어야 했다. 이것은 소제물이 하나님의 임재 안에서 먹어져야 함을 뜻한다. 더욱이 그것은 십자가(단) 곁에서 먹어야 했다. 우리는 십자가 없이는 그리스도의 어떤 것을 누릴 위치를 갖지 못한다. 또한 소제물은 하나님의 거룩의 불로 그분에 의해 열납될 수 있도록 제물로서 죄(누룩) 없이 먹어야 했다. B. 요제로서의 백성들의 화목 제물의 가슴과 거제로서의 뒷다리는 정결한 곳에서 제사장들이 먹은 기름과 함께 화제로 여호와께 드려짐 요제로서 백성들의 화목 제물의 가슴과 거제로서의 뒷다리는 정결한 곳에서 제사장들이 먹은 기름과 함께 화제로 여호와께 드려졌다(14-15절). 이것은 신약의 제사장들인 우리가 믿는이들의 화목 제물이신 그리스도의 어떤 방면들을 하나님과 함께 나눔을 의미한다. 요제의 가슴은 부활 안에 계신 그리스도의 사랑하는 능력을 상징한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사랑과 함께 사랑하는 특별한 능력을 갖고 계신다. 그분의 사랑하는 능력은 천연적인 생명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부활 안에 있다. 거제의 뒷다리는 승천 안에 계신 그리스도의 강건케 하는 능력을 상징한다. 우리의 육체 중에 가장 강한 부분은 넙적다리이다. 넙적다리는 서 있게 하는 능력일 뿐 아니라 강건케 하는 능력이다. 오늘날 그리스도는 승천 안에서 우리를 강건케 하고 계신다. 가슴과 뒷다리는 정결한 곳에서 먹었는데, 정결한 것은 죄나 소극적인 것에서 벗어난 정결한 상태를 상징한다. 더욱이 그것들은 그분의 거룩의 불로 하나님에 의해 열납될 수 있는 제물로서 먹어야 했다. C. 지극히 거룩한 속죄 제물(그 피는 제단 뿔에 바르고, 뒤이어 성소의 향단뿔에 바르고-속죄소 앞에 일곱번 뿌렸음,,고기-가죽 포함한 일체는 제단 동쪽의, 재 버리는 정결한 곳에서 모두 불살랐음)외의, 그 피를 (제단 뿔에만 바르고 제단 밑에 쏟은, 즉) 지성소 안으로 들여오지 못하는 속죄 제물의 제육을 제사장들은 거룩한 곳에서 먹어야 하는데, 이는 그들이 회중의 죄를 지고 여호와 앞에서 그들을 위해 속죄하기 위함임 지극히 거룩한 속죄 제물 외의, 그 피를 (제단 뿔에만 바르고 제단 밑에 쏟은) 지성소 안으로 들여오지 못하는 속죄 제물의 제육을 제사장들은 거룩한 곳에서 먹어야 했는데 이는 그들이 회중의 죄를 지고 여호와 앞에서 그들을 위해 속죄하기 위해서였다(17下-18절). 이것은 신약의 제사장들인 우리가 믿는이들의 속죄 제물이신 그리스도에 참예함을 의미한다. 이 참예함은 우리의 생명 공급이신 그리스도의 생명, 곧 다른이들의 죄들을 짊어지는 생명에 참여하는 것이며 이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들의 문제를 짊어질 수 있기 위함이다. 우리는 이 제물에 참예하여 그리스도의 죄를 처리하는 생명을 믿는이들에게 공급하여 그들의 죄들을 처리할 수 있게 한다. 그런 처리함의 목적은 믿는이들과 하나님의 상황을 진정시키고 하나님과 끊어진 그들의 교통을 회복하는 것이다. 17 절은 백성들을 위해 속죄하는 것을 말한다. 구약의 속죄는 그리스도에 의해 성취되고 완결된 구속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구약의 속죄는 그리스도의 구속을 가리키는 예표이다. 「속죄하다」로 번역된 히브리어는 「덮다(to cover)」를 의미하는 카파르(kaphar)이다. 이 단어의 명사형은 16장 2절과 13절부터 15절까지에 있는 「속죄소」로 번역되어 있으며, 그것은 증거궤의 덮개를 말한다. 어떤 사람이 하나님을 접촉하려고 나아갈 때, 그 즉시로 지성소의 궤 안에 있는 십계명이 그의 죄 있는 상황을 드러내며, 이것은 이 죄 있는 사람과 의로운 하나님 사이에 문제가 있음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이 양자 사이에는 화목이 없다. 그러나 속죄 제물의 피가 궤를 덮는 덮개에 뿌려졌으며 이것은 하나님을 접촉하려고 나아오는 사람의 죄가 덮여졌음을 의미한다. 구약 시대에 그리스도는 아직 오시지 않았으나 그분을 가리키는 예표가 있었다. 그 예표는 속죄 제물로서 하나님께 드려진 희생 동물이었다. 속죄일에 동물은 죽임당했으며 그 피는 지성소 안으로 가져와 궤 덮개 위에 뿌려졌다. 이런 식으로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문제는 덮여졌지만 해결된 것은 아니었다. 이 덮음은 일시적으로 하나님의 요구를 만족시켰다. 이것이 빚을 지고 있는 편이 요구하는 편을 만족시키기 위해 속죄하고 진정시키는 어떤 것을 하는 것이며 그럼으로써 두 편 사이에는 화목이 생기게 된다. 히브리서 9장 12절은 그리스도의 구속에 대해 분명하게 말한다. 「 오직 자기 피로 」 그리스도께서 『영원한 속죄(구속)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 그리스도의 성취되고 완성된 구속은 그분이 그분의 피를 하늘로 가져가서 하늘에 뿌렸던 때에 획득되었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는 구속을 마련하셨고 얻으셨고, 획득하셨다. 구속은 십자가 위의 그리스도에 의해 성취되었으며 그것은 구속하시는 하나님의 손으로부터 그리스도에 의해 획득되었다. 오늘날 우리가 받는 것은 단지 속죄나 일종의 진정시키는 것이 아니라 성취되고 완성된 구속이다. 이제 우리는 그러한 구속을 누리고 있다. 레위기 10장 17절과 18절은 신약의 제사장들인 우리가 우리의 생명 공급으로서 다른이들의 죄들을 짊어지는 생명,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들의 문제를 짊어질 수 있는 생명인 그리스도의 생명에 참예하는 점에서 믿는이들의 속죄 제물이신 그리스도에 참예함을 가리킨다. 속죄 제물이신 그리스도를 취하고자 한다면 우리는 그런 그리스도를 먹은 후에 하나님의 백성들의 문제를 짊어져야 함을 깨달아야 한다. 먹는 것은 만족을 위한 것일 뿐 아니라 또한 일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살후 3:10). 우리가 우리의 속죄 제물, 곧 우리를 위해 구속을 성취하시고 하나님과 우리의 문제를 해결한 제물이신 그리스도를 먹는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들의 문제들을 해결하는 책임을 져야만 한다. 만일 어떤 형제가 죄 문제를 갖고 있음을 알게 된다면, 먼저 그를 위해 기도할 부담을 가져야 하며 그런 다음 그 영의 인도하심에 따라 그를 방문하여 그를 정죄하거나 그의 실패를 지적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주님의 임재 안으로, 주님의 긍휼과 은혜의 느낌 안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그와 교통할 수 있어야 한다. 당신이 하나님의 빛 안으로 그를 이끌 수 있다면 그 빛은 그 위에서와 그의 안에서 비추일 것이며 그는 그의 죄와 잘못과 결점을 보게 될 것이다. 죄 있는 사람을 드러내거나 직접적으로 그의 결점을 지적함으로 그를 도우려고 해서는 안 된다. 이렇게 하면 당신은 그를 모욕하는 것이 된다. 모든 죄인은 자신의 위신을 붙잡고 있다. 당신이 어떤 형제의 죄를 지적한다면, 그는 그것을 자백하지 않고 자신의 위신을 붙잡을 것이다. 더구나 그 형제를 빛 안으로 이끄는 대신 당신은 그를 격분시켜 문제를 더 야기시킬 것이다. 죄 지은 형제를 돕는 가장 좋은 길은 <먼저!! 그대가..주께 그대 자신을 주께 내어드려 올인함으로써, 주님으로 충만-풍성케 채워지고 하나됨>주님의 교통 안에 사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런 다음 당신이 그런 형제를 방문할 때 당신은 그를 하나님의 빛비춤이 있는 교통 안으로 이끌 것이다. 이 교통으로 그는 빛비춤 받을 것이며, 하나님의 긍휼과 은혜를 만질 것이다. 신성한 생명의 긍휼과 은혜는 그의 강팍한 마음을 녹일 것이며 그의 냉담한 마음을 따뜻하게 할 것이다. (왜냐하면 죄 지음으로 마음이 강팍해지고 냉담해져 있기 때문에 죄지은 형제의 마음을 부드럽게 하고 따뜻하게 하는 것이 필요하다). 부드럽게 하고 따뜻하게 하는 하나님의 빛 안에서 그 형제는 그의 죄를 보고 그것을 자백할 것이다. 당신이 그 죄를 말할 필요가 없게 될 것이다. 죄 지은 형제를 돕는 이 길은 지혜로운 사람의 길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들의 문제를 짊어지고자 한다면 우리는 우리의 속죄 제물이신 그리스도에 대한 풍성한 누림을 가져야 한다. 그런 다음 기도를 많이 하고 숙고한 후 우리는 사랑 안에서 지혜롭게 다른 이들을 접촉하여 그들이 그들의 죄들을 처리할 수 있도록 그리스도의 죄를 처리하는 생명을 공급해야 한다. 이렇게 다른이들을 접촉한다면 우리는 그들이나 교회를 손상시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들의 문제를 짊어지는 일을 하게 될 것이다. D. 나답과 아비후에게 임한 하나님의 죽음의 심판에 대한 약함으로 인해 아론과 그의 아들들은 속죄 제물을 먹기에 적합하지 않음 나답과 아비후에게 임한 하나님의 죽음의 심판에 대한 약함으로 인해 아론과 그의 아들들은 속죄 제물을 먹기에 적합하지 않았다(레 10:16-17上, 19-20). 이것은 우리와 친밀하고 가까운 섬기는 자들에게 임한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들이기에 우리가 약하다면(속상한 느낌-삭막한 사망의 느낌이 아직 채 처리되지 못했다면...그분의 충만한 사랑의 품 안에 거하는 느낌이 잠시 사라진 그 때는..상황/환경을 따라 주님 주시는 지혜로 행하라!!.. 주만 앙망하면서 먼저 거리낌 없어지기를 기다리라!), 그리스도를 믿는이들에게 죄를 처리하는 생명으로 공급하기 위한 우리의 생명 공급이신 그분의 죄를 처리하는 생명을 취한다는 점에서 우리가 우리의 속죄 제물이신 그리스도에 참예할 수 없을 것임을 의미한다. 『모세가 속죄제 드린 염소를 찾은즉 이미 불살랐는지라 그가 아론의 남은 아들 엘르아살과 이다말에게 노하여 가로되 이 속죄제 희생은 지극히 거룩하거늘 너희가 어찌하여 거룩한 곳에서 먹지 아니하였느뇨』(16-17上). 이 속죄 제물의 피는 안쪽 곧 지성소 안으로 들여가지 못했으므로 그들은 모세가 명한대로 그것을 거룩한 곳에서 먹어야 했다(18절). 때문에 모세는 그들이 그렇게 하지 않음으로 그들을 꾸짖었다. 그러나 아론은 모세에게, 『오늘 그들이 그 속죄제와 번제를 여호와께 드렸어도 이런 일이 내게 임하였거늘 오늘 내가 속죄 제육을 먹었더면 여호와께서 어찌 선히 여기셨으리요』(19절)라고 말한다. 한면으로 아론과 그의 아들들은 하나님의 죽음의 심판에 대해 연약했으나, 또 한면으로 아론은 합당한 생각을 가졌다. 이는 그와 그의 아들들이 슬퍼했고 비참했으나 그런 환경들 아래에서 속죄 제물을 먹는 것은 주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론은 모세에게 그들의 슬픔 때문에, 자신들은 속죄 제물을 먹기에 합당치 못하다고 말했다. 『모세가 그 말을 듣고 좋게 여겼더라』(20절). 아론의 대답은 하나님을 대표하는 모세를 기쁘게 했으므로 하나님도 분명히 기쁘셨을 것이다. 이 사건은 하나님의 정하신 규례들을 지키는 것에 있어서 하나님의 긍휼 안에는 우리의 환경들을 참작하는 여지가 있음을 가리킨다. 아론과 그의 아들들은 법대로 하나님의 규례를 지키지 않았다. 그들은 신성한 규례를 불순종함으로 따르지 않은 것이 아니라 그들의 환경을 적극적으로 고려하는 데서 따르지 않았다. 이 구절들은 또한 우리가 하나님의 규례를 성급하게 지키지 말아야 함을 보여 준다. 아론과 그의 아들들은 서둘러 신성한 규례를 따르는 대신에 그들의 상황과 환경을 고려하여 규례를 법대로 지키지 않았다. 아론과 그의 아들들이 행한 것은 하나님의 규례를 어긴 것처럼 보이나 실제로는 지혜로 행한 것이었다. ============= 메시지 35 - 제물들과 제사장 직분에 대한 결론의 말 (( 히브리서 1:2-3, 2:14, 3:1, 4:14-15, 6:20, 7:22, 25-26, 8:1-2, 9:11-12, 24-28, 10:5-7, 9-10, 19-21, 12:2, 24, 13:21)) 레위기를 해설한 히브리서에 초점을 맞춘 이번 메시지는 제물들과 제사장 직분에 관한 앞의 메시지들 모두를 결론짓는 말이다. ===히브리서에 계시되어 있는 만유를 포함한 그리스도 히브리서는 레위기를 많이 언급하며 특히 제물들과 제사장 직분을 언급한다. 예를 들어 레위기는 종종 대제사장에 대해 말한다. 다른 어떤 신약의 책도 히브리서만큼 그리스도를 대제사장으로 많이 말하는 책이 없다. 레위기 자체에서는 우리가 제물들로 누리는 그리스도가 얼마나 위대하고 탁월하고 놀랍고 만유를 포함하고 무한하신지를 볼 수 없다. 레위기에서 우리는 모든 제물들이 그리스도를 예표한다는 것을 볼 수 있으나 그리스도가 얼마나 위대하신 분인가는 깨달을 수 없으며 느낄 수 없다. 어떠한 말로도 모든 제물들이신 그리스도의 위대함을 표현해 줄 수 없다. 그리스도의 만유를 포함하심을 계시받기 위해서는, 히브리서로 가야 한다. 이제 히브리서에 계시되어 있는 그리스도의 방면들을 간단하게 살펴보자. ===창조자, 붙드는 자, 후사 히브리서 1장 2절과 3절은 그리스도께서 우주를 만드신 분, 창조자이시며 또한 그분은 그분이 창조하신 우주를 붙들고 계시는 분임을 말한다. 더 나아가서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우주 만물의 후사가 되도록 정하셨다.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며 그분의 본체의 형상 3 절에서 우리는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이시며 그분의 본체의 형상임을 본다.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는 태양 빛의 비췸 혹은 빛남과 같다. 그리스도는 아버지의 영광의 비췸, 빛남이다. 하나님의 본체의 형상은 도장을 찍은 것과도 같다. 아들 그리스도는 아버지 하나님의 어떠하심의 표현이다. ===마귀를 없애는 자 『자녀들은 혈육에 함께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한 모양으로 혈육에 함께 속하심은 사망으로 말미암아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없이 하시며』(2:14). 우주를 만든 분이신 놀라운 분은 마귀를 없이 하기 위해, 즉 그를 끝내기 위해 혈육에 참예하셨다. 때가 찰 때 하나님의 아들은 처녀에게 나심으로 (갈 2:2) 육신이 되어 오셨으며(요 1:14, 롬 8:3) 이는 그분이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사람의 육신 안에 있는 마귀를 없이하기 위함이었다. ===사도와 대제사장 히브리서 3장 1절에서 우리는 그리스도가, 『우리의 믿는 도리의 사도시며 대제사장』이심을 본다. 사도이신 그리스도는 하나님으로부터 그리고 하나님과 함께 우리에게로 보내심 받은 분이다. 대제사장이신 그리스도는 우리에게서부터 그리고 우리와 함께 하나님께로 다시 돌아가신 분이다. 사도이신 그리스도는 하나님을 우리에게 분배하여 우리로 신성한 생명과 본성과 충만에 참예하도록 하나님과 함께 우리에게 오셨다. 대제사장이신 그리스도는 하나님께 우리를 드려 그분이 모든 상황을 완전히 돌보실 수 있도록 우리와 함께 하나님께 가셨다. 그러므로 4장 14절과 15절은, 『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있으니 승천하신 자 곧 하나님 아들 예수시라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지어다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고 말한다. 그와 같은 대제사장이신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임재 안에서 우리를 맡고 계시며 우리의 모든 필요를 돌보신다. ===앞서 달린 자 히브리서 6장 20절은 그리스도가 우리의 앞서 달리는 분임을 계시한다. 앞서 달리는 자이신 주 예수님은 폭풍의 바다를 통과하는 것에 앞장서셨으며 우리를 위한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른, 인성과 신성 둘 다 안에 있는 제사장 직분의 반차에 따른 대제사장이 되시기 위해 하늘에 속한 항구, 즉 「휘장 안으로」(19절) 들어가셨다. 앞서 달린 자이신 그분은 영광 안으로 길을 닦으셨다. ===더 좋은 언약의 보증 『이와 같이 예수는 더 좋은 언약의 보증이 되셨느니라』(히 7:22). 이 구절에서 그리스도는 더 좋은 언약의 보증이시다. 그리스도가 더 좋은 언약의 보증이 되심은 그분이 사시고 영구한 대제사장이라는 사실에 근거한다. 여기서의 「보증」이라는 단어는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새 언약과 우리 모두에게 보증하셨음을 의미한다. 그분은 새 언약을 성취하기 위해 필요한 모든 것을 하겠다는 보증인이요 담보자이다. ===끝까지 우리를 구원하실 수 있는 대제사장 『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은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서 저희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이러한 대제사장은 우리에게 합당하니 거룩하고 악이 없고 더러움이 없고 죄인에게서 떠나 계시고 하늘보다 높이 되신 자라』(히 7:25-26). 하늘을 통과하시고(4:14), 하늘보다 높게 되신(7:26) 후 주 예수님은 항상 살아서 우리를 위하여 중재하고 계신다. 그분은 우리를 대신해 하나님 앞에 나타나셔서 우리로 구원받고 하나님의 영원한 목적 안으로 완전히 이끌려질 수 있도록 우리를 위해 기도하신다. ===하늘에 있는 사역자 『이러한 대제사장이 우리에게 있는 것이라 그가 하늘에서 위엄의 보좌 우편에 앉으셨으니 성소와 참 장막에 부리는 자라 이 장막은 주께서 베푸신 것이요 사람이 한 것이 아니니라』(8:1-2). 하늘에 속한 그리스도는 사람에 의해서가 아닌 주님에 의해 베풀어진 장막 안에서 사역하고 계신다. 이 장막, 이 성소는 삼층천, 곧 하늘에 속한 지성소 안에 있다. 참장막(하늘에 속한 장막)의 사역자이신 그리스도는 하늘을(그것은 장소일 뿐 아니라 생명의 상태이기도 함) 우리 안으로 공급하여 땅 위에 계셨던 동안에 그분이 행하신 것처럼 우리도 이 땅에서 하늘에 속한 생명을 살 수 있게 하신다. ===하늘에 있는 지성소 안으로 들어가고 영원한 구속을 이룬 자 『그리스도께서 장래 좋은 일의 대제사장으로 오사 손으로 짓지 아니한 곧 이 창조에 속하지 아니한 더 크고 온전한 장막으로 말미암아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히 9:11-12).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어린양으로서 영단번에 속죄 제물로 십자가에 자신을 드림으로써(히 9:14, 10:12) 이 세상의 죄를 지고 가셨기 때문에(요 1:9), 그분이 하늘에 속한 장막에 뿌린 피는 우리를 위한 영원한 구속을 완성하셨다. 이것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는 『영원한 구속을 이루셨다』. 여기의 「이루다(found)」는 실제로 획득하다, 얻다라는 의미이다. 하나님 앞에서 그분의 피를 하늘에서 뿌림으로 인해 그리스도는 우리를 위한 영원한 구속을 이루셨고 획득하셨고 얻으셨다. ===우리를 위해 하나님 앞에 나타나는 자 그리스도는 우리의 죄와 죄들을 없애기 위해 처음 나타나셨으며 두 번째는 죄와 상관없이 나타나실 것이다(히 9:24-28). 히브리서 9장 24절은 그리스도가 『이제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 앞에 나타나시고』라고 말한다. 그분은, 『이제 자기를 단번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