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롬15장 [220.사랑하는주님앞에] ===선을 이루고 덕을 세우라 1. 믿음이 강한 우리는 마땅히 믿음이 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고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할 것이라 2. 우리 각 사람이 이웃을 기쁘게 하되 선을 이루고 덕을 세우도록 할지니라 3. 그리스도께서도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하셨나니 기록된 바 주를 비방하는 자들의 비방이 내게 미쳤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4. 무엇이든지 전에 기록된 바는 우리의 교훈을 위하여 기록된 것이니 우리로 하여금 인내로 또는 성경의 위로로 소망을 가지게 함이니라 5. 이제 인내와 위로의 하나님이 너희로 그리스도 예수를 본받아 서로 뜻이 같게 하여 주사 6. 한마음과 한 입으로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하노라 7.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받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심과 같이 너희도 서로 받으라 8. 내가 말하노니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진실하심을 위하여 할례의 추종자가 되셨으니 이는 조상들에게 주신 약속들을 견고하게 하시고 9. 이방인들도 그 긍휼하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하심이라 기록된 바 그러므로 내가 열방 중에서 주께 감사하고 주의 이름을 찬송하리로다 함과 같으니라 10. 또 이르되 열방들아 주의 백성과 함께 즐거워하라 하였으며 11. 또 모든 열방들아 주를 찬양하며 모든 백성들아 그를 찬송하라 하였으며 12. 또 이사야가 이르되 이새의 뿌리 곧 열방을 다스리기 위하여 일어나시는 이가 있으리니 열방이 그에게 소망을 두리라 하였느니라 13. 소망의 하나님이 모든 기쁨과 평강을 믿음 안에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사 성령의 능력으로 소망이 넘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나님의 복음의 제사장 직분 14. ○내 형제들아 너희가 스스로 선함이 가득하고 모든 지식이 차서 능히 서로 권하는 자임을 나도 확신하노라 15. 그러나 내가 너희로 다시 생각나게 하려고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더욱 담대히 대략 너희에게 썼노니 16. 이 은혜는 곧 나로 이방인을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의 일꾼이 되어 하나님의 복음의 제사장 직분을 하게 하사 이방인을 제물로 드리는 것이 성령 안에서 거룩하게 되어 받으실 만하게 하려 하심이라 17.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일에 대하여 자랑하는 것이 있거니와 18. 그리스도께서 이방인들을 순종하게 하기 위하여 나를 통하여 역사하신 것 외에는 내가 감히 말하지 아니하노라 그 일은 말과 행위로 19. 표적과 기사의 능력으로 성령의 능력으로 이루어졌으며 그리하여 내가 예루살렘으로부터 두루 행하여 일루리곤까지 그리스도의 복음을 편만하게 전하였노라 20. 또 내가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곳에는 복음을 전하지 않기를 힘썼노니 이는 남의 터 위에 건축하지 아니하려 함이라 21. 기록된 바 주의 소식을 받지 못한 자들이 볼 것이요 듣지 못한 자들이 깨달으리라 함과 같으니라 ===바울의 로마 방문 계획 22. ○그러므로 또한 내가 너희에게 가려 하던 것이 여러 번 막혔더니 23. 이제는 이 지방에 일할 곳이 없고 또 여러 해 전부터 언제든지 서바나로 갈 때에 너희에게 가기를 바라고 있었으니 24. 이는 지나가는 길에 너희를 보고 먼저 너희와 사귐으로 얼마간 기쁨을 가진 후에 너희가 그리로 보내주기를 바람이라 25. 그러나 이제는 내가 성도를 섬기는 일로 예루살렘에 가노니 26. 이는 마게도냐와 아가야 사람들이 예루살렘 성도 중 가난한 자들을 위하여 기쁘게 얼마를 연보하였음이라 27. 저희가 기뻐서 하였거니와 또한 저희는 그들에게 빚진 자니 만일 이방인들이 그들의 영적인 것을 나눠 가졌으면 육적인 것으로 그들을 섬기는 것이 마땅하니라 28. 그러므로 내가 이 일을 마치고 이 열매를 그들에게 확증한 후에 너희에게 들렀다가 서바나로 가리라 29. 내가 너희에게 나아갈 때에 그리스도의 충만한 복을 가지고 갈 줄을 아노라 30. ○형제들아 내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의 사랑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기도에 나와 힘을 같이하여 나를 위하여 하나님께 빌어 31. 나로 유대에서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들로부터 건짐을 받게 하고 또 예루살렘에 대하여 내가 섬기는 일을 성도들이 받을 만하게 하고 32. 나로 하나님의 뜻을 따라 기쁨으로 너희에게 나아가 너희와 함께 편히 쉬게 하라 33. 평강의 하나님께서 너희 모든 사람과 함께 계실지어다 아멘 ------- Romans 15 New King James Version ==Bearing Others’ Burdens *1. We then who are strong ought to bear with the [a]scruples of the weak, and not to please ourselves. *2. Let each of us please his neighbor for his good, leading to [b]edification. *3. For even Christ did not please Himself; but as it is written, “The reproaches of those who reproached You fell on Me.” *4. For whatever things were written before were written for our learning, that we through the [c]patience and comfort of the Scriptures might have hope. *5. Now may the God of patience and comfort grant you to be like-minded toward one another, according to Christ Jesus, *6. that you may with one mind and one mouth glorify the God and Father of our Lord Jesus Christ. ==Glorify God Together *7. Therefore receive one another, just as Christ also received [d]us, to the glory of God. *8. Now I say that Jesus Christ has become a [e]servant to the circumcision for the truth of God, to confirm the promises made to the fathers, *9. and that the Gentiles might glorify God for His mercy, as it is written: “For this reason I will confess to You among the Gentiles, And sing to Your name.” *10. And again he says: “Rejoice, O Gentiles, with His people!” *11. And again: “Praise the Lord, all you Gentiles! Laud Him, all you peoples!” *12. And again, Isaiah says: “There shall be a root of Jesse; And He who shall rise to reign over the Gentiles, In Him the Gentiles shall hope.” *13. Now may the God of hope fill you with all joy and peace in believing, that you may abound in hope by the power of the Holy Spirit. ==From Jerusalem to Illyricum *14. Now I myself am confident concerning you, my brethren, that you also are full of goodness, filled with all knowledge, able also to admonish [f]one another. *15. Nevertheless, brethren, I have written more boldly to you on some points, as reminding you, because of the grace given to me by God, *16. that I might be a minister of Jesus Christ to the Gentiles, ministering the gospel of God, that the offering [g]of the Gentiles might be acceptable, sanctified by the Holy Spirit. *17. Therefore I have reason to glory in Christ Jesus in the things which pertain to God. *18. For I will not dare to speak of any of those things which Christ has not accomplished through me, in word and deed, to make the Gentiles obedient— *19. in mighty signs and wonders, by the power of the Spirit of God, so that from Jerusalem and round about to Illyricum I have fully preached the gospel of Christ. *20. And so I have made it my aim to preach the gospel, not where Christ was named, lest I should build on another man’s foundation, *21. but as it is written: “To whom He was not announced, they shall see; And those who have not heard shall understand.” ==Plan to Visit Rome *22. For this reason I also have been much hindered from coming to you. *23. But now no longer having a place in these parts, and having a great desire these many years to come to you, *24. whenever I journey to Spain, [h]I shall come to you. For I hope to see you on my journey, and to be helped on my way there by you, if first I may enjoy your company for a while. *25. But now I am going to Jerusalem to [i]minister to the saints. *26. For it pleased those from Macedonia and Achaia to make a certain contribution for the poor among the saints who are in Jerusalem. *27. It pleased them indeed, and they are their debtors. *28. For if the Gentiles have been partakers of their spiritual things, their duty is also to minister to them in material things. *28. Therefore, when I have performed this and have sealed to them this fruit, I shall go by way of you to Spain. *29. But I know that when I come to you, I shall come in the fullness of the blessing [j]of the gospel of Christ. *30. Now I beg you, brethren, through the Lord Jesus Christ, and through the love of the Spirit, that you strive together with me in prayers to God for me, *31. that I may be delivered from those in Judea who [k]do not believe, and that my service for Jerusalem may be acceptable to the saints, *32. that I may come to you with joy by the will of God, and may be refreshed together with you. *33. Now the God of peace be with you all. Amen. ==Footnotes Romans 15:1 weaknesses Romans 15:2 building up Romans 15:4 perseverance Romans 15:7 NU, M you Romans 15:8 minister Romans 15:14 M others Romans 15:16 Consisting of Romans 15:24 NU omits I shall come to you and joins Spain with the next sentence. Romans 15:25 serve Romans 15:29 NU omits of the gospel Romans 15:31 are disobedient ======== 로마서 15장 (개요) 다소 사소한 문제에 대한 상호간의 관용에 대한 앞 장의 얘기를 본장에서 결론짓고 있다. 그리스도인들 사이에 이처럼 의견의 차이, 애정의 거리가 생겼을 때의 이 열기를 식히고 보다 침착한 상태를 되찾기 위해 훈계에 훈계가 필요하다. 사도는 못을 박아도 튼튼하게 박기 위해 그의 망치질을 계속하는 가운데 그의 주제를 계속 끌고 있다. 본장에서 우리는 다음 몇 가지를 살필 수 있다. Ⅰ. 그들에 대한 그의 교훈. Ⅱ. 그들을 위한 그의 기도. Ⅲ. 그들에게 편지 쓰는 이유. Ⅳ. 자기 자신과 자기 일에 대한 설명. Ⅴ. 그들을 만나려는 목적. Ⅵ. 자신을 위한 기도 부탁. ======== 겸손과 자기 부정(롬 15:1-4) 사도는 여기서 두 가지 교훈과 그것을 강조하는 이유를 제시하고 강한 그리스도인이 약한 그리스도인을 생각하고 공손히 대할 것을 권하고 있다. Ⅰ. 우리는 "마땅히 연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해야 한다"(1절). 우리는 모두 약점이 있다. 그러나 연약한 자들은 더욱 그러하니 지식과 은혜에 약한 자들이다. 곧 상한 갈대요 꺼져가는 등불이다. 우리는 이들을 깔아 뭉갤 것이 아니라 격려하고 약점을 같이 나눠야 한다. 혹 그들이 약하기 때문에 우리를 판단하고 단죄하며 악평한다 해도 우리는 이들을 참고 동정해야지 그들에 대한 우리의 애정이 식어서는 안 된다. 그들의 약점을, 그들은 어찌할 도리가 없지 않는가! 이처럼 그리스도께서도 그의 약한 제자들을 참아 주시고 관대하게 대하셨다. 우리는 그들의 약점을 참아 주고 기회 닿는 대로 이들에게 관심을 가져 주고 이들의 힘을 북돋아 줘야 한다. 이것이 서로의 짐을 져 주는 것이다. Ⅱ. 우리는 우리 자신을 기쁘게 하지 말고 우리 이웃을 기쁘게 해야 한다(1, 2절). 우리는 언행심사, 그 모두에 있어서 범사에 우리의 형제의 연약과 약점을 생각해야 한다. 우리만의 기분만 심중에 두어서는 안된다. 1. 그리스도인들은 [자기 소욕 따름으로써] 자기 자신들을 기쁘게 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우리 마음의 사소한 욕망이나 갈증을 다 채우려 들지 말아야겠다. [범사에 신중함안에서, 이웃사랑에 히스며] 자제하는 게 좋다. 그러다 보면 남들이 우리를 향해 더 잘 참아 주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기분만 달래다보면 아도니야처럼 버릇 없게 되고 말 것이다. 여기서 맨 먼저 배워야 할 교훈은 자신을 부정하는 것이다(마 16:24..자기를 부인하고 자기십자가를 지고 JC따름). 2.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의 형제들을 기쁘게 해야 한다. 기독교의 목적은 자기 영혼을 누그러뜨리고 부드럽게 하여 고분고분하게 호의를 베푸는 법을 가르치는 데 있다. 어떠한 종류의 것이든, 정욕의 노예가 되지 않고 우리 형제들의 필요와 약점을 돌봐 주는 것이다. 곧 할 수 있는 한 선한 양심을 가지고 우리가 상대하는 사람과 일치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호감이 가도록 힘써야 한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자유(이것은 우리의 쾌락을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과 타인의 유익, 그리고 덕을 위해 주어진 것이다)를 우리를 기쁘게 하기 위해 사용해서는 안 되고 우리 이웃을 기쁘게 하도록 해야 한다. 기독자들이 서로 상대방을 물고 뜯으며 훼방하는 열심을 가지고 서로를 기쁘게 하려고 힘쓴다면 얼마나 화기애애하고 살기 좋은 사회가 될 것인가! "이웃을 기쁘게 하되," 모든 면에 있어서 다 이웃을 기쁘게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것은 무제한한 규칙이 아니다. 각사람마다 그의 "선을 이루고", 곧 그의 영혼의 선을 이루도록 하기 위해서 그리하라는 말이다. 이웃의 사악한 뜻을 도와 기쁘게 하거나 악한 방법으로 기분을 달래 주거나 그의 꾀임에 동조하거나 그에게 죄가 돌아가게 내버려 두는 일등은 우리 이웃의 영혼을 파멸로 이끄는 방향에서 기쁘게 해 주는 야비한 방법이다. 우리가 이런 식으로 사람들을 기쁘게 한다면 우리는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다. 그러지 말고 그의 선을 위해 그를 기쁘게 해줘야 한다. 세속적인 선(이익)을 바라고 그의 밥이 되라는 게 아니라 그의 영적 선을 위해 그를 기쁘게 해 주라는 얘기다. "덕[JC의 몸으로서, 그분의 탁월한 성품, 그 어떠함으로 상호 공급-유통하여 한 몸됨 이룸]을 세우도록 할지니라." 그의 유익뿐 아니라 타인의 유익을 위해서도, 곧 서로 호감을 보이는 가운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도록 하기 위해 그러라는 얘기다. 돌이 서로 밀착되어 있으면 밀착되어 있을수록 서로 잘 맞대어 있게 마련이요 그만큼 그 건물은 튼튼하게 마련이다. 이제 그리스도인들이 자기 자신을 기쁘게 해서는 안 되는 이유를 들어 보자. "그리스도께서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하셨나니." 우리 주 예수의 자아부정이야말로 그리스도인들의 이기심을 막는 최선의 논리다. (1)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의 일을 돌보지 않으셨다. 그는 자신의 세상적 명예, 안일, 안전, 쾌락을 돌보지 않으셨다. 그는 자기 머리 둘 곳도 없었으며 남의 손에 살았으며 왕이 되는 것도 싫어하셨으며 무엇보다도 "주님, 몸을 아끼소서"하는 말을 싫어하셨다. 자신의 뜻을 추구하지 않으셨으며(요 5:3) 자기 제자들의 발을 씻으셨으며 자기에 대한 죄인들의 반박을 참으셨으며 스스로 괴로워하셨으며(요 11:33) 자신의 명예를 추구하지 않으셨으니 한 마디로 자신을 텅비우시고 자기 명성을 생각치 않으셨다. 이것도 모두 우리를 위한 것이니 우리에게 의를 가져 오고 우리에게 모범이 되시려는 뜻에서였다. 그의 전 생애는 자기를 부정하는 삶이었으며 스스로 불쾌한 길을 걸어간 삶이었다. 그는 약자들의 약점을 담당하셨다(히 4:15). (2) 여기에 성경의 성취가 있다. "기록된 바 주를 비방하는 자들의 비방이 내게 미쳤나이다." 이것은 시편 69편 9절에서 인용한 것으로 전반부는 그리스도에게 적용되고, "주의 집을 위하는 열성이 나를 삼켰나이다"(요 2:17) 후반부는 여기에 인용되고 있다. 다윗은 그리스도의 모형이었으며 그의 고통은 그리스도의 고통을 예시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 구절이 여기 인용된 것은 JC께서 [오직 사랑으로 대속하는 자기희생적 섬김을 위하여 !!]자신을 기쁘게 하기는커녕 자신을 불쾌하게, 고통스럽게 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그의 임무 전반이 그에게 힘겨운 일, 고통스러운 일로 여기지 않으시고, 그는 그 일을 [사랑하는 아버지를 바라보고 그분의 뜻 이루기 위해 대속사역을 자원함으로써!!!]기꺼워하셨다. 그의 [사람으로서]타고난 성향 만족 추구를 억제하고 부정하셨다[곧,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십자가를 지고 자원하여 대속사역을 짊어지셨다]는 점을 보여 주기 위한 것이다. 그는 자신의 안이와 쾌락보다는 우리의 유익을 앞서 생각하신 것이다. 이것을 인용하는 이유는 성경을 가지고 입증하기 위해서다. 하나님의 영의 일을 설명하는데 있어 성령의 말씀보다 더 좋은 게 또 있겠는가? "주를 비방하는 자들의 비방이 내게 미쳤나이다." ① 그리스도께서 당하신 비방의 수모. 하나님에게 어떠한 불명예가 돌아가든 그건 주 예수에게는 진실로 고통이었다. 그는 백성의 마음의 완악함을 보고 슬퍼하셨으며 죄악의 도시를 슬픔과 눈물로 바라보셨다. 성도들이 받는 그 핍박을 바로 자신의 일로 받아들이시며 괴로워하신 그리스도다.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그리스도께서는 몸소 더 할 수 없는 분노를 참으셨으며 그의 받으신 고통에도 많은 비난이 따랐다. ② 그리스도께서 속량하시려고 돌아가신 이 비방의 죄. 많은 사람들이 이 구절을 이런 식으로 해석한다. 온갖 죄는 일종의 하나님에 대한 비방으로 여겨지며, 특별히 고의적인 비방죄가 그러하다. 이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한 죄 속량의 희생 제물, 속죄물이 되셨을 때 이 비방의 죄책이 그에게 떨어졌다. 주님께서 우리의 모든 죄를 담당하시고 나무 위에서 달리셨을 때 이 모든 죄악이 마치 담보물처럼 그에게 떨어졌다. "내게 그 저주를 내리소서." 이것은 더할 수 없는 최대의 자기 비하다. 그의 무한한 순결과 거룩, 아버지의 그에 대한 무한한 사랑, 아버지의 영광에 대한 그의 영원한 관심을 생각하면 이보다 더 곧 죄가 되어 우리를 위한 저주가 되고 하나님의 비방을 몸소 당하는 것보다 더 불리한 일은 없을 것이다. 특별히 그가 자신을 누구를 위해 이처럼 낮추셨는가, 곧 그의 원수요 배반자들이다. 그를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벧전 3:18). 이것이 우리가 약자들의 약점을 나눠져야 할 이유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기쁘게 해서 안 되는 이유는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기쁘게 하지 않으셨기 때문이요 우리가 약자들의 약점을 나눠 줘야하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을 비방하는 자들의 비방을 담당하셨기 때문이다. 그는 죄책을 담당하셨으며 거기서 오는 저주를 받으셨지만 우리는 거기서 오는 아주 작은 몫을 담당하라는 것뿐이다. 그는 악한 자들의 뻔뻔스런 죄를 담당하셨지만 우리는 양자들의 약점을 참고 견디라는 것뿐이다. "그리스도께서", 스스로 무한히 행복하시기에 우리나 우리의 봉사가 필요 없는 그분이, 곧 하나님과 동등하게 되는 것도 과분이 아니며, 자기 자신의 일만 돌보고 우리에게 관심을 가질 필요가, 아니 우리를 위해 아픔을 당할 필요가 없는 그러한 분이, 자신을 기쁘게 하시지 않고 우리의 죄를 담당하셨다. 그런데 우리가 겸손하지 않고 자기를 부정하지 않을 수 있으며 서로 지체가 되는 자들의 일을 먼저 생각하지 않아서야 되겠는가? (3) 그러므로 우리도 이와 같이 되어야 한다. "무엇이든지 전에 기록한 바는 우리의 교훈을 위하여 기록된 것이니." ① 그리스도, 곧 그의 자아부정과 고통에 관해 기록한 것은 "우리의 교훈을 위해서"다. 그가 우리에게 모범을 보이신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자기를 부정하셨다면 우리도 감사한 마음에서 아니 그의 형상을 닮기 위해서 우리를 부정해야 한다. 그리스도의 행적과 말씀의 모범은 우리더러 본받으라고 기록되어 있다. ② 구약 성경에 기록되어진 것은 일반적으로 우리의 교훈을 위해서다. 다윗이 일인칭으로 얘기한 것을 바울은 여기서 그리스도에게 적용하고 있다. 이것이 성경을 악용하는 것 같은 인상을 받을까 봐 그는 곧 바로 모든 구약은(신약은 말할 것도 없이) 우리의 교훈을 위해 기록된 것이요 개별적으로 해석할게 아니라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구약 성도들에게 일어났던 일은 일종의 예표로서 그들에게 일어났으며 구약 곳곳에 보면 이것이 성취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 성경은 우리에게 상규(常規)로서 기록되어 있다. 그것이 "기록된" 것은 우리가 늘상 사용하고 혜택을 입도록 하려는 뜻에서다. 첫째, 우리의 교훈을 위해서다. 성경에는 배울 점이 무궁무진하며 이 샘에서 파낸 것만이 최선의 교육이다. 성경에 정통한 사람만이 최고의 교육을 받은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성경의 문자적인 의미뿐 아니라 우리에게 유익이 되는 것을 배우도록 힘써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 돌을 굴러내는 일뿐 아니라 물을 긷는 데 있어서도 - 대부분의 우물은 깊기 때문이다 - 도움을 받을 필요가 있다. 비판적인 강론보다는 실제적인 관찰이 더 필요하다. 둘째, 이것은 "우리로 하여금 인내로 또는 성경의 안위로 소망을 가지게 함이니라." 영원한 생명을 그 목적으로 하는 소망이 성경 연구의 목적으로 계시되어 있다. 성경이 기록된 목적은 우리가 하나님에게서 뭘 어떻게 , 어떤 근거로 소망해야 하는가를 가르쳐 주기 위해서이다. 여기서 성경은 그리스도인의 소망에 특별한 친구라는 점을 배울 수 있다. 이 소망을 얻는 방법은 "인내와 성경의 위로를 통해서"다. 인내와 위로라는 말에는 고통과 슬픔이라는 말이 그 밑바닥에 깔려 있다. 이게 성도들의 이 세상에서의 운명이다. 그렇지 않다면 인내하고 위로받을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 둘은 우리 영혼의 생명되는 소망의 친구들이다. 인내는 체험을 가져 오고 체험은 부끄럽게 하지 않는 소망을 가져온다(5:3-5). 고통 가운데서 더 인내하면 인내할수록 우리는 이 고통을 통해 소망으로 앞을 내다 볼 수 있으니 조급해하는 것보다 소망에 파괴적인 것은 없다. 그리고 "성경의 안위" 곧 하나님 말씀에서 발원하는 위로(이것이야말로 가장 확실하고 위한 위로다)는 소망의 대지주요 손에 쥐어진 담보물이다. 보혜사로서의 성령은 우리 유업의 담보물이다. ------------ 그리스도인의 통일(1)(롬 15:5-6) 사도는 두 가지 교훈을 제시하고, 더 나아가기 전에 지금까지 말한 것이 그대로 되기를 기도하고 있다. 충성된 사역자들은 그들은 설교에 기도의 물을 뿌릴 줄 안다. 왜냐하면 누가 씨를 뿌리는 그걸 수확하는 분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귀에다 대고 말하는 건 우리의 일이지만 마음 속 깊숙이 말하는 건 하나님만의 대권이다. Ⅰ. 하나님에 대한 명칭. "인내와 안위의 하나님." 곧 그가 모든 성도의 인내와 안위의 원저지요 원천이라는 얘기다. 그분만이 인내의 은혜를 주시고 안위의 하나님으로서 그 인내를 확증해 주시고 유지시켜 주신다. 왜냐하면 성령의 위로는 신자들을 북돋아 주고 모든 난관에서 격려하고 즐겁게 해 주기 때문이다. 사도는 사랑과 통일의 영을 부어 달라고 기도하는 데 있어서 하나님을 인내와 안위의 하나님으로 부르고 있다. 곧 1. 우리를 참고 견디시며 위로하는 하나님으로서 부르고 있으니 그런 하나님은 우리가 뭘 잘못하는가 하는 것만 눈여겨 보지 않고 낙심해 하는 자들을 곧장 위로해 주시는 하나님이다. 이것은 우리도 이처럼 형제들에게 사랑을 증거하고 서로 참고 위로 하는 가운데 통일성을 유지하라는 의미에서다. 2. 또한 우리에게 인내와 위로를 주시는 하나님으로 묘사하고 있다. 이미 성경의 인내와 위로에 대해서는 말한 바 있으므로(4절) 여기서는 하나님을 인내와 안위의 하나님으로 바라보고 있다. 이 인내와 위로는 마치 수도관과 같은 성경을 통해서 저수지 되는 하나님에게서 흘러 나오는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위로와 인내를 받으면 받을수록 그만큼 더 우리는 서로를 사랑할 수 있게 된다. 조급해하고 투정대며 짜증내는 우울한 기질보다 화평을 잘 깨뜨리는 것도 없다. Ⅱ. 하나님에게 자비를 그는 구하고 있다. "너희로 그리스도 예수를 분받아 서로 뜻이 같게 하여 주사." 1. 그리스도인의 사랑과 화평의 기초는 한 마음, 같은 판단, 같은 애정에 있다. "동일한 것을 마음 먹는 것"(토 아우토 프로네인, 15:5) 곧 모든 의견차의 계기가 제거되고 모든 분쟁이 거둬지는 것이다. 2. 이 한 마음은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은" 것이어야 한다. 곧 그리스도의 교훈, 사랑의 법칙, 그리스도의 모범에 일치한 것이어야 한다. 아니면 "그리스도가 네 통일의 중심이 되게 하라. 진리에 있어서 일치할 것이지 오류에 있어서 하나가 되지 말라." 그들의 힘과 능력을 짐승에게 바친 자들의 마음은 저주받을 일치와 조화를 이루는 경우가 있다(계 17:13). 이것은 그리스도를 본받은 한 마음이 아니라 바벨탑을 쌓는 자들처럼 반역에 있어서 한 마음을 가진 자들이었다(창 11:6). 우리의 기도는 먼저 진리에 입각해야 하고 다음에 화평을 이루는 것이어야 한다. 위에서부터 오는 지혜는 "첫째 성결하고 다음에 화평"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는 한마음이다. 3. 그리스도 예수를 본받아 그리스도인들 간에 한 마음을 품는 것은 하나님의 선물이요 이것은 아주 귀한 선물이니 이를 위해 우리는 전심으로 구하는 기도를 아끼지 않아야겠다. 그는 "영혼들의 아버지"로서 인간의 마음을 똑같이 지으셨으며(시 33:15) 구하는 자에게 이해력을 열어 주시며 마음을 부드럽게 하시며 애정을 북돋아 주시며 사랑의 은혜를, 아니 사랑의 영을 주신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이 지상에서도 이뤄질 것을 기도하라고 배웠다. 저 하늘에서는 그 뜻이 한 마음으로 찬양하고 봉사하는 천사들에게서 이뤄지고 있으니 우리 성도들도 그렇게 되도록 열심히 바라고 기도해야겠다. Ⅲ. 그의 소원의 목적은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게 되는 것이다(6절). 이것은 기도로 하나님께 아뢰는 그의 탄원이자 그들에게는 그것을 추구하라는 부탁이다. 우리는 우리의 기도에 있어서 하나님의 영광을 마음에 두어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의 으뜸가는 기원은 "당신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옵소서" 하는 것이어야 한다. 그리스도인들 가운데 한 마음을 지녀야 하는 이유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되 1. "한 마음과 한 입으로" 하게 하려는 목적에서다. 그리스도인들이 매사에 하나가 되어야 하는 이유는 바로 이것 때문이니 곧 하나님을 함께 찬양하기 위한 것이다. 그렇게 될 때만이 홀로 한 분이요 그 이름도 하나이신 하나님의 영광에 큰 도움이 된다. 입만 하나되는 것 가지고는 부족하고 마음이 하나되어야 한다. 하나님은 마음을 들여다 보시기 때문이다. 마음이 하나되지 못한 곳에 입이 하나 될 리 없으며 이 둘이 서로 하나 되지 않는 곳에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실 리 만무하다. 하나님의 진리를 고백하고 그의 이름을 찬양하는 일에 있어서 한 입이어야 하고 거룩한 성회에서 한 소리 한 합창이 나와야 한다. 서로 물고 뜯으며 다투는 일에 있어서 한 입이어서는 안 된다. 2.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로서 영광을 돌려 드려야 한다. 이것은 신약의 방법이다. 하나님은 이제 복음의 법칙에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자신을 계시하신 그대로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받으셔야 한다. 그는 그리스도안에서 우리의 아버지이시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들의 통일성은"하나님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로" 영광스럽게 해드리시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 통일성은 아버지와 아들 사이의 통일을 대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걸 바라고 그걸 위해 기도하라고 가르침을 받고 있다. 곧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저희도 다 하나가 되는 것"(요 17:21)이다. 성도들의 통일성에 대한 아름다운 표현이다. 뒤이어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소서" 하는 말씀이 따르고 있다. 이처럼 하나님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로서 영광을 받으셔야 한다. ------------ 그리스도인의 통일(2)(롬 15:7-12) 사도는 여기서 다시 그리스도인들에게의 권고를 시작하고 있다. 여기서(7절) 말하는 것은 전술한 바의 반복이지만 사도의 마음이 얼마나 거기에 집착되어 있는가를 보여 주기 위해서 그는 이러 되풀이하고 있다. "힘 닿는 대로 서로 받아들여 우정을 나누고 같이 행동하라." 그는 앞에서 강한 자들에게 약한 자를 받아들이라고 권고하더니(14:1) 여기서는 "서로 받으라"고 권고한다. 왜냐하면 강한 그리스도인의 교만이 약한 자를 부끄럽게 하고 약한 그리스도인의 편견이 강한 자를 부끄럽게 하는 때가 더러 있기 때문이다. 모두가 곁길로 가는 처사다. 그리스도인들은 서로 부둥켜 안고 받아들어야 한다. 믿음으로 그리스도를 받아들인 자들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을 형제애로 받아들여야 한다. 네 형제들이 세상에서 가난하고 핍박을 받고 멸시 받아도, 그들을 받아들이는 게 비방과 위험을 가져와도, 하찮은 율법 문제에 있어서 의견 차이가 있어도 서로 사사로운 감정 대립이 있더라도 이 모든 것을 접어 두고 "너희도 서로 받으라." 그는 우리가 서로를 받아들여야 하는 이유를 그리스도의 우리에 대한 공손한 사랑에서 찾고 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받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심과 같이.".. 이보다 더 함축적인 논리가 있을 수 있는가?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는 사랑을 베푸셨는데 우리는 그리스도의 것인 그들에게 사랑을 베풀지 않겠는가? 그는 우리를 받아들이는데 그처럼 적극적이었는데 우리는 우리 형제들을 받아들이는데 소극적이겠는가? 그리스도는 우리를 더 할 수 없이 밀접한 관계로 받아들이셨으니 곧 그의 우리로, 그의 가족으로, 양자로, 우정의 계약 관계로, 아니 자신과 혼인 계약 관계로 받아들이셨다. 우리가 이방인이요 원수로서 탕자 노릇을 하고 있을 때 그는 우리를 받아 자기와 우정과 교제를 나누게 하셨다. "하나님께 영광"(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이란 말에는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받아들이심과(이것은 우리의 귀감이다), 우리끼리 서로 받아들임 (이것은 그 귀감에 따른 우리의 실천이어야 한다)이 포함되어 있다. Ⅰ.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받으셨다. 그리스도의 우리 영접 목적은 우리가 이 세상에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그리스도와 함께 오는 세상에서 영화롭게 되기 위해서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받으셨을 때 마음에 두셨던 것은 하나님의 영광과 우리의 그 영광의 향유였다. 우리는 그리스도에 의해서 영원한 영광에로 부르심을 받았다(요 17:24). 그가 우리를 받아 데려 가는 곳은 모든 이해를 초월하는 행복에로요, 그가 우리는 받아들이는 목적은 아버지의 영광을 위해서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모든 경우에 이런 목적이 같이 하고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겠다. Ⅱ.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서로를 받아들여야겠다. 우리의 모든 행위에 있어서 하나님의 영광이 우리의 최대 목표여야 하는데 이것을 가져 오는 것은 신앙을 가진 자들이 서로 사랑하는 것보다 더 한 것이 따로 없다. "한 마음과 한 입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하노라"(6절). 이전에 유대인과 이방인의 투쟁거리는 먹고 마시는 것에 대한 서로 다른 이해였다. 이제 이런 차이를 방지하기 위해서 그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유대인고 이방인 양자를 어떻게 받아들이셨는가를 보여 주고 있다. 그분 안에서 유대인과 이방인둘은 하나이니 "한 새 사람"(엡 2:14-16)이다. 이제 그것은 하나의 규칙이다. "제삼자(JC)안에서의 각자가JC와 일치할 때, 그리스도안에서 서로 일치한다."...이것을 명심하고 기억하라!! (먼저 간접성 통해 직접상을 이룬다!!)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며 위대한 통일의 중심체인 [에너지의 근원이시며 모든 에너지를 끌어들이는 만유와 만물의 중심]그리스도 안에서 일치하는 자들은 서로 간에 잘 일치할 수 있는 것이다. JC와 기독교 안에서의 유대인과 이방인의 연합은 바울의 마음을 너무도 압도하는 것이기에 좀 더 이에 대한 설명과 해석을 덧붙이지 않을 수 없다. 1. 그는 유대인들을 받아들이셨다(8절). 그러므로 어느 누구도 원래 유대이던 자들, 비록 약해져 있지만 그들의 옛 유대주의의 명성을 지키고 있는 그들을 욕하거나 깔보지 말라. (1) 예수 그리스도는 "할례의 수종자" 였기 때문이다. 그가 "수종자" 곧 종 ‘디아코논’이었다는 점은 그의 뛰어난 공손의 예(example)를 증명해 주는 것으로 그 수종 자체를 영광스럽게 해 준다. 그러나 그가 할례의 수종자로 몸소 할례를 받으시고 율법 아래 처하게 되셨으며 똑같이 할례받은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파하셨다는 바로 이 점이 겉보기와는 달리 유대인을 무시못하게 하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유대 민족들과 함께 행동하셨으며 그들을 축복하셨으며 스스로를 "이스라엘집의 잃어버린 양"에게 곧 "아브라함의 자손을 붙들어 주려" 보냄을 받은 것(히 2:16) 여기셨으며 말하자면 인류 전체를 대표하는 그들에 의해서 붙잡힌 바 되셨다. 그리스도의 사역은 그들을 우선적으로 하는 것이었다. 물론 이것을 그후 사도들이 확대하였지만 말이다. (2) 그가 이렇게 되신 이유는 하나님의 진리를 위해서였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그가 전파한 것은 진리였다. 그는 이 세상에 이 진리를 증거하러 오셨기 때문이다(요 18:37). 그리고 본인 자신이 진리였다(요 14:6). 하나님의 진리를 위해 왔다는 말은 Q께서 후손들을 위해 마련해 놓으셨다고 조상들에게 약속한 특별 은혜에 대한 약속을 실현시키러 오셨다는 말이다. 그들 유대인들이 이처럼 특출하게 된 것은 유대인들의 공로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진리 때문이다. 곧 하나님께서 자신의 말씀에 신실하시다는 걸 입증해 보여 주시기 위해서다." 조상들에게 주신 약속들을 견고케" 하려고 이다. 약속에 대한 최선의 확증은 그것에 대한 실천이다. 아브라함의 후손 안에서 모든 민족이 축복을 받고, 살로가 유대인들 발 밑에서 나오며 이스라엘에게서 주권자가 나오며 시온에서 율법이 나온다는 등등의 모든 약속이 이들을 상대로 한 것이었다. 이 약속을 무력케 하고 이 백성을 치명적으로 멸망시키는 과도기적인 심리현상들이 중간에 있었으나 왕되신 메시야께서 때가 차서 할례의 수종자로 오시게 되자 모든 약속이 확증되고 이 약속들의 진실성이 드러나게 되었다. 왜냐하면 신구약에 있는 하나님의 모든 약속은 그리스도 안에서 예요 아멘이기 때문이다. "조상들에게 주신 약속들"이라는 말을 구약 시대에는 희미하게 집행되었으나 이제 복음 아래서 밝히 드러난 은혜 언약의 전체로 이해할 때 이 언약을 확증하는 것이 그리스도의 위대한 사명이었다(단 9:27). 그는 언약의 피를 흘림으로 이것을 확증하셨다. (1) 이방인들을 받아들여 하나님을 찬양하게 하는 그리스도의 은총을 주의해 보라. 이것이 곧 교회의 일이요 하늘에서 받을 삯이다. 그리스도의 또 다른 위대한 목적은 이방인들도 마찬가지로 회개하여 그리스도의 신비한 몸 안에서 유대인과 하나가 되게 하는 것이었다. 이것은 또한 어떤 그리스도인이 그가 전에 이방인이었다 해서 그를 못하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좋은 이유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는 이미 그를 받아들이셨기 때문이다. 여기에 이들의 회개가 표시되어 있다. "이방인으로 그 긍휼하심을 인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심이라." ① 그들에게도 찬양할 합당한 이유가 있으니 곧 하나님의 자비다. 이방 세계가 처해 있던 비참하고 통탄스러운 상태를 곰곰히 살펴 생각하면 이들을 받아들이는 문제가 유대인을 받아들이는 것보다 더 큰 은혜의 행위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참으로 이들은 "로루하마" 곧 긍휼히 여김을 받지 못한 자요 "로암미" 곧 내 백성이 아닌 자였다(호 1:6, 9; 2:23). 어떠한 백성에게든 하나님께서 보여 주시는 가장 큰 자비는 이들을 하나님 자신과의 언약 관계로 받아드려 주시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받아들이는 데 있어 보여 주시는 하나님의 자비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② 그들에게 하나님을 찬양할 마음이 생길 것이다. 회개치 않은 죄인들은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것하고는 전혀 무관하다. 그러나 회개케하는 은혜는 한 영혼에게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언행의 성품을 낳는다. 오래 전부터 그의 영광을 욕되게 하던 이방인들에게서 영광의 추수를 하기로 계획하신 분은 하나님이시다. (2) 여기에 드러난 성경의 성취. 이방인들에 대한 하나님의 은총은 자비뿐 아니라 진리였다. 이들에게는 유대인들 조상에게처럼 직접 약속이 주어진 것은 없지만 그들의 소명, 교회에로의 불러들임에 대한 예언은 많이 있다. 이 중에 일부를 여기서 소개하는 것은 유대인들이 그걸 믿으려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렇게 해서 곧 구약을 인용한 사도바울은 그들의 이방인들에 대한 증오감을 누그러뜨리고 알력 당사자들을 회개하도록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① 이방인들에게도 복음이 전파될 것이라는 것이 예언되어 있다. "내가 열방 중에서 주께 감사하리다(9절). 곧 당신의 이름이 이방인들 가운데서 알려지고 소유되며 복음의 은혜와 사랑이 찬송되리로다." 이것은 시 18 : 49에서 인용된 것이다. "여호와여, 이러므로 내가 열방 중에서 주께 감사하리다." 하나님의 이름을 감사히 부르고 찬송하는 일이야말로 남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알고 찬양하도록 이끄는 비결이다.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이름을 그의 형제들에게 선포하는 것을 가리켜 "회중가운데에서 주를 찬송하는 것"(시 22:22)으로 말하고 있다. 이 말을 다윗이 말로 이해하면 그건 그가 노년에 죽어가면서 말한 것이니 다윗 자신이 이방인을 상대로 얘기한 것일 수는 없다. 그러나 다윗의 시편이 하나님의 찬양과 영광을 위해 이방인들 가운데서 읽혀지고 노래되어질 때 다윗은 "열방 중에서 주께 감사하고 그의 이름을 노래하고 있다"고 볼 수 있겠다. 이스라엘의 애송 시인이 이제는 이방인의 애송시인으로 된 것이다. 회개의 은사는 사람들로 하여금 다윗의 시편을 사랑하게 만든다. 이 시편들을 다윗의 자손인 그리스도 말씀으로 받아들이면 모든 찬양하는 성도들의 마음에 그의 영이 믿음을 통해 내주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누구라도 이방인들 가운데서 하나님의 이름을 감사하며 주께 찬송드린다면 그것은 그 사람 자신이 아니라 그들 속에 거하는 그리스도와 그의 은혜다.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마찬가지로 이제는 내가 찬양하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찬양하시는 것이다....[[HS께서 부르시는 찬양-기도와 합하라, 그분의 말씀을 말하라!!]] ② 이방인들이 "주의 백성과 함께 즐거워할 것이라"는 것이 예언되어 있다(10절). 이것은 모세의 노래를 인용한 것이다(신 32:43). 그의 백성으로 편입된 자들은 그의 백성과 함께 즐거워하는 것이다. 어떠한 백성의 기쁨도 그들 가운데 복음이 능력 가운데 오는 것보다 더 기쁜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방인에게 편견을 가진 저 유대인들은 자기들의 기쁜 잔치에 자기들외엔 아무도 들어올 수 없다고 생각한다. 마음의 즐거움에 타인이 [그것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는 이방인들은] 참예할 수 없다는 게 그들이 지론이기 때문이다(잠 14:10). 그러나 휘장이 내려졌기에 이방인들은 이 백성과 함께 기쁨을 나누도록 환영받고 있다. 일단 교회로 들어온 이상 그들은 그 고통을 같이 나누며 환란과 인내의 동참자가 되고 이것을 보상하는 의미에서 이들은 또한 기쁨에도 동참하게 된다. ③ 이들이 하나님을 찬양하리라는 것이 예언되어 있다(11절). "모든 열방들아 주를 찬양하라." 이것은 시편 117편 1절의 인용이다. 회개의 은혜는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찬양케 만들어 놓으니 찬양할 건덕지를 풍성하게 제공하며 그럴 마음을 준다. 이방인들은 수 세기에 걸쳐서 나무와 돌로 만든 우상을 찬양해 왔으나 이제는 하나님을 찬양하게 된 것이다. 이것을 다윗은 영으로 내다 보고 얘기하고 있다. 모든 민족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찬양하라고 요청하는 것은 그들이 하나님을 알게 될 것이라는 얘기이기도 하다. ④ 그들이 그리스도를 믿을 것이 예언되어 있다. 이것은 이사야 11장 10절의 인용이다. 첫째, 이방인의 왕으로서의 그리스도. 여기서는 그를 가리켜 "이세의 뿌리"라고 부르고 있으니 다윗 족속의 생명과 힘이 되는 가지라는 얘기다(사 11:1 비교). 그리스도께서는 다윗의 주였지만 그러나 그는 또한 다윗의 자손이었다(마 22:45). 그는 "다윗의 뿌리요 자손"이기 때문이다(계 22:16).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자격으로서는 다윗의 뿌리요 인간으로서는 다윗의 자손이었다. "열방을 다스리기 위하여 일어나시는 이," 이것이 선지자의 상징적인 표현을 설명한다. 그는 "만민의 기호로 설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일어나셔서 높임을 받은 것은 이방인들을 다스리기 위해서였다. 둘째, 이방인들의 의지의 대상. " 열방이 그에게 소망을 두리라"(이방인들이 그를 신뢰 할 것이다). 신앙은 영혼의 그리스도에 대한 확신이며 그에게의 의존이다. "열방이 그에게로 돌아 오리니"하고 이사야 선지는 덧붙이고 있다. 신앙의 비결은 우선 그리스도에게 돌아서서 그를 구주로 받아들이며 그 구원 능력을 확신하고 그를 신뢰하는 데 있다. 그를 아는 자들은 그를 신뢰할 것이다. 아니면 이 돌아서서 찾는다는 일은 신뢰의 결과인지도 모른다. 기도로 열심히 그를 구하며 노력하는 것이다. 신뢰는 어머니요 노력은 그 딸이다.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이 이처럼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 통일되었는데 서로의 사랑 안에서는 통일되지 못할 이유가 뭔가? ---------------- 소망의 하나님(롬 15:13) 여기서는 하나님을 소망의 하나님으로 부르고 있으니 전자와 마찬가지로(5, 6절) 영적 축복을 갈구하는 기도다.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바라고 기도해야 할 최선의 축복이 아리 수 없다. Ⅰ. 그는 하나님을 "소망의 하나님"으로 부르고 있다. 우리는 우리의 사명에 맞는 하나님의 명칭, 속성을 기도할 때 내세울 필요가 있다. 그렇게 되면 그 일에 대한 우리의 신앙이 북돋아진다. 기도의 마디 마디는 일종의 탄원이어야 한다. 이처럼 대의명분이 섰으면 이에 대한 대책이 입에 가득 채워져 있어야 한다. 하나님은 소망의 하나님이시다. 우리의 소망이 서 있는 기초요 이 소망을 몸소 일으켜 세우는 건축자이시니 그는 이 소망의 대상이자 원저자이시다. 하나님께 붙잡혀 있지 않는 소망과 그가 우리 속에서 일하지 않는 소망은 환상에 불과한 것으로 우리를 속일 뿐이다. 우리에게는 이 둘이 다 있다(시 119:49). "주의 종에게 하신 말씀" 할 때 그건 우리의 소망의 대상으로서의 하나님이요, "주께서 나로 소망이 있게 하셨나이다"할 때 그건 우리의 소망의 저작자로서의 하나님이다(벧전 1:3). Ⅱ. 그는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들을 위해서 하나님께 구하고 있다. 1. "모든 기쁨과 평강을 믿음 안에서 너희에게 충만케 하사." 기쁨과 평강은 하나님의 나라를 구성하는 두 요소다(14:17). 하나님 안에서의 기쁨과 양심의 평강은 모두 우리의 칭의 받은 의식에서 생기는 것이다(5:1, 2). 우리 마음 속의 기쁨과 평강은 우리 형제들과의 통일성과 연대성을 한층 증진시키기 마련이다. (1) 이 기쁨과 강은 충만하다. 육적인 기쁨은 영혼을 들뜨게 할 뿐 그것을 충만하게 하지는 못한다. 그러기에 웃으면서도 마음은 씁쓸하다는 말이 나온다. 참된 하늘의 기쁨은 영혼을 가득 채우는 것으로 그 자체에 만족이 따르고 있으며 영혼의 무한하고 의로운 욕망을 다 채워 주고도 남는다. 이렇게 하나님은 지쳐 있는 영혼을 만족시켜 주시는 것이다. 이 기쁨을 가진 영혼은 이것이 아니면 가질 생각을 않으며 이걸 더 갖고자하며 영광 가운데 이걸 완성하려 들 뿐이다(시 4:6, 7; 36:8; 63:5; 65:4). (2) 이 기쁨을 얻는 방법 ① 기도. 우리는 이것을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해야 한다. 기도는 영적 기쁨과 평화를 가져다 준다. ② 믿음. 이것이 그 방편이다. 환상의 결과는 헛되고 일시적인 기쁨 뿐이요 참된 기쁨은 믿음의 결과다.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벧전 1:8). 우리에게 기쁨과 평강이 그렇게도 부족한 것은 우리 신앙의 연약성 때문이다. 오직 믿기만 하라. 그리스도의 선하심을 믿고 그리스도의 사랑을 믿고 언약의 약속을 믿고 하늘의 기쁨과 영광을 믿으라. 믿음만이 이 모든 것의 본질과 증거가 되도록 하라. 그 결과는 필연코 기쁨과 평강이다. "모든"기쁨과 평강이란 말을 주목하라. 모든 종류의 참된 기쁨과 평강이 따를 것이다. 우리가 기도로 하나님께 나아갈 때는 우리의 욕심이 커져야 한다. 하나님 안에서 움츠러들 필요가 없다면 왜 스스로 움츠러 들고 있는가? 모든 기쁨을 구하라. 그대 입을 활짝 열어 놓으라. 그가 채워 주시리라. 2. "성령의 능력으로 소망이 넘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신자들의 기쁨과 평강은 먼저 그들의 소망에서 나온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것은 그들을 위해 준비해 놓은 것에 비하면 형편없이 적다. 따라서 그들의 소망이 크면 클수록 그들의 소유-누림도 그만큼 커진다.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큰 것을 소망하고 또 이 소망을 확신할 때 우리의 소망은 넘치기 마련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소망이 풍성하기를 기도해야 한다. 그런 일로 부끄러움은 당하지 않는다. 이것은 성령의 능력을 통해서 가능하다. 은혜를 일으키는 똑같은 전지한 능력이 이 소망을 낳고 또 보강하는 것이다. 우리 힘만으로는 그걸 따라 잡을 수 없다. 그러므로 이 소망이 있고 또 그것이 풍성한 곳에서 복된 성령에게 모든 영광이 돌려져야 마땅하다. ------------- 형제들의 칭찬(롬 15:14-16) Ⅰ. 그는 이들 그리스도인들을 더 할 수 없이 칭찬하고 있다. 그는 이 서신을 시작하면서 그들을 칭찬하고 나섰다(1:8). "너희 믿음이 온 세상에 전파됨이로다." 중간에 그들을 너무도 심하게 꾸중하였기에 이제 그들을 누그러뜨리고 친구로서 헤어지기 위해 서론에서와 같이 칭찬으로 결론을 마무리하고 있다. 이것은 마치 웅변가와 같은 방식이다. 그것은 하잘 것 없는 아첨과 입발림이 아닌, 그들의 가치와 그들 속에 있는 하나님의 은혜에 대난 올바른 평가다. 우리는 타인에게 있는 장점과 칭찬할 만한 점을 관찰해서 칭찬하는 데 있어 적극적이어야겠다. 이것이 그들이 현 세상에서 누리는 덕과 효용성에 대한 보상이자 타인들로 하여금 거룩한 선의의 경쟁에 나서게끔 하는 가치를 지닌다. 로마인들이 그만한 판단력과 정직의 사람인 바울에게 칭찬을 받는다는 것은 이들의 영예에 관계되는 일이다. 그는 속임을 당하기엔 너무 재줏군이요 아첨을 하기엔 너무 정직한 인물이다. 물론, 바울은 이들과 직접 교류해서 알게 된 앎이 있는 게 아니고 소문으로만 들었지만 이들의 장점을 확신하고 있다고 말한다. 때때로 남의 말을 그대로 믿을 정도로 너무 단순해서도 안 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아무것도 믿지 않을 정도로 회의적이어서도 안 된다. 우리는 남의 선을 적극적으로 믿어줄 줄 알아야 한다. 이런 경우에 사랑은 모든 것을 바라고 모든 것을 믿으며(이런 경우에서처럼 가능성이 강할 때는) 확신하기도 하는 것이다. 이런 점에 있어서 잘못을 저지르는건 오히려 안전하다. 그들의 칭찬거리를 살펴 보자. 1. 그들은 "선함이 가득했다." 그러기에 그들은 더욱 사도의 글을 좋게 받아들이며 그걸 친절로 여기며 그걸 실천할 수 있었으리라. 특별히 의견차이의 치유와 그들의 통일에 관한 권유에 있어서 그러하다. 서로 잘 이해하고 서로 좋은 생각을 품는 것이야말로 분쟁의 실마리를 푸는 해결책이다. 2. "모든 지식이 차서." 선함과 지식을 동시에 다 갖추다니! 정말 희귀한 일치. 새로운 인간의 머리와 마음의 뛰어난 일치다. 모든 지식 곧 그들의 영원한 평화에 관계된 모든 지식을 로마의 믿는이들은 다 갖추고 있었다. 3. "능히 서로 권하는 자." 또 다른 특별 은사가 꼭 필요한데 곧 지혜로운 화술의 은사다. 선함과 지식을 갖춘 자는 가진 것을 남들에게 효용이 되도록 전달할 줄 알아야 한다. 여러 은사에 뛰어난 너희들은 나의 교훈을 필요로 하지 않을 정도다 하는 식이다. 충성된 사역자들이 그들의 일보다 자기 교우들의 은사와 은혜가 뛰어나게 좋은 걸 보는 것은 큰 위로다. 교우들이 서로 자기들끼리 권고할 수 있고 또 자발적이라면 얼마나 기쁘겠는가! 모든 주의 백성이 선지자라면 좋지 않겠는가. 그러나 누구에게나 관계되는 일을 [자기의 전력을 다해] 열심히 하는 사람은 없기에(every body's work is nobody's work.). Ⅱ. 그는 자기 소관이 아닌 걸 쓸데없이 간섭하고 있지 않다는 걸 분명히 하고 있다(15절). 그는 그들에게 아주 깊은 애정을 가지고 얘기하고 있다. "내 형제들아"(14절) 하는 말 다음에 또 "형제들아"(15절) 하는 밀이 잇따르고 있다. 자신이 공손할 줄 알 뿐 아니라 남에게도 그걸 가르쳐 주고 있다. 그가 그들을 가리켜 모두 그의 형제들이라고 부르는 것은 그들에게 서로 사랑하도록 가르치기 위해서다. 그가 더욱 정중하게 쓰지 않을 수 없던 것은 로마인들은 궁정에 가까이 살기에 그만큼 예절바른 시민이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여러 사람에게 여러 모양으로 나타나는 바울은 여기서는 문체를 공손하게 함으로 그들을 기쁘게 해 주려고 한 것이다. 그가 "어떤 부분에서는 매우 담대하게"(새번역) (톨메로테론 아포 메루스, 15:15)쓴 것을 인정하고 있는데 이것은 뻔뻔스럽고 주제넘게 보일지도 모르게 글을 썼다는 얘기다 . 그러나 1. 그가 그렇게 한 것은 그들의 기역을 되살리려는 의미에서 그렇게 한 것뿐이다. " 너희로 다시 생각나게 하려고," 바울의 겸손한 태도를 보라. 그처럼 지식에 뛰어난 그이지만 그들이 모르는 걸 말하는 게 아니고 그들이 이전에 다른 사람에게서 교훈받은 것을 다시 기억나게 하는 정도에 그친다는 식이다. 베드로도 마찬가지였다(벧후 1:12; 3:1) 흔히들 우리들은 목사는 전에부터 우리들이 알고 있는 것 이상의 새로운 걸 말해 주지 않기 때문에 들으나마나 라는 식으로 변명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