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21.04.28 작성자 : 양시영
제   목 : 롬14.성도의행위준거=그리스도의평강!!_절대진리말씀(HS안에서의와평강과희락)냐 서로다른개인적상대적가치냐 분별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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롬14장    ...[545이눈에아무증거]

===형제를 비판하지 말라    ...성도의 마땅한, 유일한 행위 판단 준거는 [지고지선의 뜻 이루실 하나님 자신을 신뢰함으로써 그리스도의 평강으로 인도하시는 HS!!...성령께서 개인 가정교사가 되셨다...성령님을 따라 배우라!!] 성도 각자를 죄인되었을 때, 그대로 받아들여주신 주님처럼, 먼저 성도 각자가  성령따르며 십자가고난과 부활승천 통해서, 전가하시고 전이/분배해 주신 그리스도의 의(그리스도 자신의 영광, 곧, 이름, 능력, 성품)를 붙들고 실지로 사랑-희락-화평 누림안에 교통함의 상호 거함 이루며, 바로 그렇게 HS의 인도하심 따라 성도 상호간에 있는 그대로 서로 받아주고, 일절 오래참으며 너그러이 용서하고 기다려주며 용납하며 화평안에서 세우며 도와 일으킴으로써 그리스도의 성령으로 완전해 지기를  축복하고 기도함이 중요하다!! 


1.  믿음이 연약한 자를 너희가 받되 그의 의견을 비판하지 말라

2.  어떤 사람은 모든 것을 먹을 만한 믿음이 있고 믿음이 연약한 자는 채소만 먹느니라

3.  먹는 자는 먹지 않는 자를 업신여기지 말고 먹지 않는 자는 먹는 자를 비판하지 말라 이는 하나님이 그를 받으셨음이라

4.  남의 하인을 비판하는 너는 누구냐 그가 서 있는 것이나 넘어지는 것이 자기 주인에게 있으매 그가 세움을 받으리니 이는 그를 세우시는 권능이 주께 있음이라

5.  어떤 사람은 이 날을 저 날보다 낫게 여기고 어떤 사람은 모든 날을 같게 여기나니 각각 자기 마음으로 확정할지니라

6.  날을 중히 여기는 자도 주를 위하여 중히 여기고 먹는 자도 주를 위하여 먹으니 이는 하나님께 감사함이요 먹지 않는 자도 주를 위하여 먹지 아니하며 하나님께 감사하느니라

7.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8.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9.  이를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셨으니 곧 죽은 자와 산 자의 주가 되려 하심이라

10.  네가 어찌하여 네 형제를 비판하느냐 어찌하여 네 형제를 업신여기느냐 우리가 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리라

11.  기록되었으되 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살았노니 모든 무릎이 내게 꿇을 것이요 모든 혀가 하나님께 자백하리라 하였느니라

12.  이러므로 우리 각 사람이 자기 일을 하나님께 직고하리라

===형제로 거리끼게 하지 말라

13.  ○그런즉 우리가 다시는 서로 비판하지 말고 도리어 부딪칠 것이나 거칠 것을 형제 앞에 두지 아니하도록 주의하라

14.  내가 주 예수 안에서 알고 확신하노니 무엇이든지 스스로 속된 것이 없으되 다만 속되게 여기는 그 사람에게는 속되니라

15.  만일 음식으로 말미암아 네 형제가 근심하게 되면 이는 네가 사랑으로 행하지 아니함이라 그리스도께서 대신하여 죽으신 형제를 네 음식으로 망하게 하지 말라

16.  그러므로 너희의 선한 것이 비방을 받지 않게 하라

17.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18.  이로써 그리스도를 섬기는 자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사람에게도 칭찬을 받느니라

19.  그러므로 우리가 화평의 일과 서로 덕을 세우는 일을 힘쓰나니

20.  음식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업을 무너지게 하지 말라 만물이 다 깨끗하되 거리낌으로 먹는 사람에게는 악한 것이라

21.  고기도 먹지 아니하고 포도주도 마시지 아니하고 무엇이든지 네 형제로 거리끼게 하는 일을 아니함이 아름다우니라

22.  네게 있는 믿음을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가지고 있으라 자기가 옳다 하는 바로 자기를 정죄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23.  의심하고 먹는 자는 정죄되었나니 이는 믿음을 따라 하지 아니하였기 때문이라 믿음을 따라 하지 아니하는 것은 다 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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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준새번역]제14장

==형제자매를 비판하지 말아라

1.  여러분은 믿음이 약한 이를 받아들이고, 그의 생각을 시비거리로 삼지 마십시오.

2.  어떤 이는 모든 것을 다 먹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믿음이 약한 이는 채소만 먹습니다.

3.  먹는 이는 먹지 않는 이를 업신여기지 말고, 먹지 않는 이는 먹는 이를 비판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그를 받아들이셨습니다.

4.  우리가 누구이기에 남의 종을 비판합니까? 그가 서 있든지 넘어지든지, 그것은 그 주인이 상관할 일입니다. 주께서 그를 서 있게 할 수 있으시니, 그는 서 있게 될 것입니다.

5.  ○또 어떤 이는 이 날이 저 날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또 어떤 이는 모든 날이 다 같다고 생각합니다. 각각 자기 마음에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6.  어떤 날을 더 존중히 여기는 이도 주님을 위하여 그렇게 하는 것이요, 먹는 이도 주님을 위하여 먹으며, 먹을 때에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먹지 않는 이도 주님을 위하여 먹지 않으며, 또한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7.  ○우리 가운데는 자기만을 위하여 사는 이도 없고, 또 자기만을 위하여 죽는 이도 없습니다.

8.  우리는 살아도 주님을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님을 위하여 죽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살든지 죽든지 주님의 것입니다.

9.  그리스도께서 죽으셨다가 살아나신 것은, 죽은 사람에게도 산 사람에게도, 다 주님이 되려고 하신 것입니다.

10.  ○그런데 어찌하여 우리는 형제나 자매를 비판합니까? 우리는 모두 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될 것입니다.

11.  성경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6)"주께서 말씀을 하신다. 내가 살아 있으니, 모든 무릎이 내 앞에 꿇을 것이요, 모든 입이 나를 하나님으로 고백할 것이다."

12.  그러므로 우리는 각각 자기 일을 하나님께 사실대로 아뢰어야 할 것입니다.

==형제자매가 걸려 넘어지지 않게 처신하라

13.  ○그러므로 이제부터는 서로 남을 판단하지 마십시다. 형제자매 앞에 장애물이나 걸림돌을 놓지 않겠다고 결심하십시오.

14.  내가 주 예수 안에서 알고 또 확신하는 것은 이것입니다. 무엇이든지 그 자체로 부정한 것은 없고, 다만 부정하다고 여기는 그 사람에게는, 그것이 부정한 것입니다.

15.  여러분 각자가 음식 문제로 형제자매의 마음을 상하게 하면, 그것은 이미 사랑을 따라 살지 않는 것입니다. 음식 문제로 그 사람을 망하게 하지 마십시오. 그리스도께서 그 사람을 위하여 죽으셨습니다.

16.  그러므로 여러분이 좋다고 여기는 일이 도리어 비방거리가 되지 않게 하십시오.

17.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일과 마시는 일이 아니라, 성령 안에서 누리는 의와 평화와 기쁨입니다.

18.  그리스도를 이렇게 섬기는 사람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사람에게도 인정을 받습니다.

19.  그러므로 우리는 서로 평화를 도모하는 일과, 서로 덕을 세우는 일을 힘씁시다.

20.  음식 때문에 하나님의 일을 무너뜨리지 마십시오. 모든 것이 다 깨끗합니다. 그러나 어떤 것을 먹음으로써 남을 넘어지게 하면, 그러한 사람에게는 그것이 해롭습니다.

21.  고기를 먹는다든가, 술을 마신다든가, 그 밖에 무엇이든지, 형제나 자매를 걸려 넘어지게 하는 일은, 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22.  여러분 각자가 지니고 있는 신념을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간직하십시오.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면서 스스로를 정죄하지 않는 이는 복이 있습니다.

23.  의심을 하면서 먹는 이는 이미 정죄함을 받은 것입니다. 그것은 믿음에서 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믿음으로 하지 않는 것은 다 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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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성경]제14장

==약한 사람, 강한 사람

1.  여러분은 믿음이 약한 사람을 받아들이되 그의 견해를 논쟁거리로 삼지 마십시오.

2.  어떤 사람은 모든 음식을 먹을 만한 믿음이 있으나 믿음이 연약한 사람은 채소만 먹습니다.

3.  먹는 사람은 먹지 못하는 사람을 업신여기지 말고 먹지 못하는 사람은 먹는 사람을 판단하지 마십시오. 이는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받으셨기 때문입니다.

4.  여러분이 누구기에 남의 종을 판단합니까? 그의 서고 넘어지는 것이 자기 주인에게 달려 있습니다. 주께서 그를 세우실 수 있으니 그가 세움을 받을 것입니다.

5.  어떤 사람은 이 날을 저 날보다 중요하게 생각하고 어떤 사람은 모든 날이 똑같다고 생각합니다. 각자 자기 마음에 확신을 가지십시오.

6.  어떤 날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주를 위해 중요하게 생각하고 먹는 사람도 주를 위해 먹으니 이는 그가 하나님께 감사하기 때문입니다. 먹지 않는 사람도 주를 위해 먹지 않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7.  우리 중에 아무도 자기만을 위해 사는 사람이 없고 자기만을 위해 죽는 사람도 없습니다.

8.  우리는 살아도 주를 위해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해 죽습니다. 그러므로 죽든지 살든지 우리는 주의 것입니다.

9.  이를 위해 그리스도께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셨으니 이는 죽은 사람과 산 사람의 주가 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10.  그런데 그대는 왜 그대의 형제를 판단합니까? 왜 그대의 형제를 업신여깁니까? 우리가 모두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설 텐데 말입니다.

11.  기록되기를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살아 있으니 모든 무릎이 내 앞에 꿇을 것이요, 모든 혀가 하나님께 찬양할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사45:23

12.  이와 같이 우리가 각각 자기의 일을 하나님께 사실대로 말씀드릴 것입니다.

13.  그러므로 우리가 이제부터는 서로 남을 판단하지 맙시다. 형제 앞에 걸림돌이나 장애물을 두지 않기로 결심하십시오.

14.  내가 주 예수 안에서 알고 확신하는 것은 이것입니다. 무엇이든지 그 자체로 부정한 것은 없고 다만 부정하다고 여기는 그 사람에게만 부정한 것입니다.

15.  만일 음식 문제로 여러분의 형제가 근심하게 되면 그대는 더 이상 사랑을 따라 행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위해 죽으신 그 형제를 음식 문제로 망하게 하지 마십시오.

16.  그러므로 여러분의 선한 것이 비방을 받지 않도록 하십시오.

17.  하나님의 나라는 먹고 마시는 것이 아니라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기쁨입니다.

18.  그리스도를 이렇게 섬기는 사람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사람에게도 인정을 받습니다.

19.  그러므로 화평을 이루고 서로 세워 주는 일에 힘씁시다.

20.  음식 문제로 인해 하나님의 일을 망치지 않도록 하십시오. 모든 것이 다 깨끗하나 다른 사람을 넘어지게 하면서 먹는 그 사람에게는 불결합니다.

21.  고기도 먹지 않고 포도주도 마시지 않고 형제를 넘어지게 하는 어떤 일도 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22.  그대가 가지고 있는 믿음을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견고히 지키십시오.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면서 스스로 자신을 정죄하지 않는 사람은 복이 있습니다.

23.  그러나 의심하며 먹는 사람은 이미 정죄를 받았습니다. 이는 믿음에서 나온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믿음으로 하지 않는 것은 다 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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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mans 14 Amplified Bible

==Principles of Conscience

*1. As for the [a]one whose faith is weak, accept him [into your fellowship], but not for [the purpose of] quarreling over his opinions. 

*2. One man’s faith permits him to eat everything, while the weak believer eats only vegetables [to avoid eating ritually unclean meat or something previously considered unclean]. *3. The one who eats [everything] is not to look down on the one who does not eat, and the one who does not eat must not criticize or pass judgment on the one who eats [everything], for God has accepted him. 

*4. Who are you to judge the servant of another? Before his own master he stands [approved] or falls [out of favor]. And he [who serves the Master—the Lord] will stand, for the Lord is able to make him stand.

*5. One person regards one day as better [or more important] than another, while another regards every day [the same as any other]. Let everyone be fully convinced (assured, satisfied) in his own mind. 

*6. He who observes the day, observes it for the Lord. He who eats, eats for the Lord, since he gives thanks to God; while he who abstains, abstains for the Lord and gives thanks to God. 

*7. None of us lives for himself [for his own benefit, but for the Lord], and none of us dies for himself [but for the Lord]. 

*8. If we live, we live for the Lord, and if we die, we die for the Lord. So then, whether we live or die, we are the Lord’s. 

*9. For Christ died and lived again for this reason, that He might be Lord of both the dead and the living.

*10. But you, why do you criticize your brother? Or you again, why do you look down on your [believing] brother or regard him with contempt? For we will all stand before the judgment seat of God [who alone is judge]. 

*11. For it is written [in Scripture], “As I live, says the Lord, every knee shall bow to Me, And every tongue shall give praise to God.”

*12. So then, each of us will give an account of himself to God.

*13. Then let us not criticize one another anymore, but rather determine this—not to put an obstacle or a stumbling block or a source of temptation in another believer’s way. 

*14. I know and am convinced [as one] in the Lord Jesus that nothing is unclean [ritually defiled, and unholy] in itself; but [nonetheless] it is unclean to anyone who thinks it is unclean. 

*15. If your brother is being hurt or offended because of food [that you insist on eating], you are no longer walking in love [toward him]. Do not let what you eat destroy and spiritually harm one for whom Christ died. 

*16. Therefore do not let what is a good thing for you [because of your freedom to choose] be spoken of as evil [by someone else]; 

*17. for the kingdom of God is not a matter of eating and drinking [what one likes], but of righteousness and peace and joy in the Holy Spirit. 

*18. For the one who serves Christ in this way [recognizing that food choice is secondary] is acceptable to God and is approved by men. 

*19. So then, let us pursue [with enthusiasm] the things which make for peace and the building up of one another [things which lead to spiritual growth]. 

*20. Do not, for the sake of food, tear down the work of God. All things indeed are [ceremonially] clean, but they are wrong for the person who eats and offends [another’s conscience in the process]. 

*21. It is good [to do the right thing and] not eat meat or drink wine, or do anything that offends your brother and weakens him spiritually. 

*22. The faith which you have [that gives you freedom of choice], have as your own conviction before God [just keep it between yourself and God, seeking His will]. Happy is he who has no reason to condemn himself for what he approves. 

*23. But he who is uncertain [about eating a particular thing] is condemned if he eats, because he is not acting from faith. Whatever is not from faith is sin [whatever is done with doubt is sinful].

==Footnotes

Romans 14:1 Some Jewish believers may have struggled with abandoning all the old requirements of the Law regarding eating things considered unclean, while some Gentile believers may have been overly sensitive to anything associated with paganism, such as eating meat offered to ido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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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mans 14 New King James Version

==The Law of Liberty

*1. Receive one who is weak in the faith, but not to disputes over doubtful things. 

*2. For one believes he may eat all things, but he who is weak eats only vegetables. 

*3. Let not him who eats despise him who does not eat, and let not him who does not eat judge him who eats; for God has received him. 

*4. Who are you to judge another’s servant? To his own master he stands or falls. Indeed, he will be made to stand, for God is able to make him stand.

*5. One person esteems one day above another; another esteems every day alike. Let each be fully convinced in his own mind. 

*6. He who observes the day, observes it to the Lord; [a]and he who does not observe the day, to the Lord he does not observe it. He who eats, eats to the Lord, for he gives God thanks; and he who does not eat, to the Lord he does not eat, and gives God thanks. 

*7. For none of us lives to himself, and no one dies to himself. 

*8. For if we live, we live to the Lord; and if we die, we die to the Lord. Therefore, whether we live or die, we are the Lord’s. 

*9. For to this end Christ died [b]and rose and lived again, that He might be Lord of both the dead and the living. 

*10. But why do you judge your brother? Or why do you show contempt for your brother? For we shall all stand before the judgment seat of [c]Christ. 

*11. For it is written:  “As I live, says the Lord, Every knee shall bow to Me, And every tongue shall confess to God.”

*12. So then each of us shall give account of himself to God. 

*13. Therefore let us not judge one another [d]anymore, but rather resolve this, not to put a stumbling block or a cause to fall in our brother’s way.

==The Law of Love

*14. I know and am convinced by the Lord Jesus that there is nothing unclean of itself; but to him who considers anything to be unclean, to him it is unclean. 

*15. Yet if your brother is grieved because of your food, you are no longer walking in love. Do not destroy with your food the one for whom Christ died. 

*16. Therefore do not let your good be spoken of as evil; 

*17. for the kingdom of God is not eating and drinking, but righteousness and peace and joy in the Holy Spirit. 

*18. For he who serves Christ in [e]these things is acceptable to God and approved by men.

*19. Therefore let us pursue the things which make for peace and the things by which one may [f]edify another. 

*20. Do not destroy the work of God for the sake of food. All things indeed are pure, but it is evil for the man who eats with [g]offense. 

*21. It is good neither to eat meat nor drink wine nor do anything by which your brother stumbles [h]or is offended or is made weak. 

*22. [i]Do you have faith? Have it to yourself before God. Happy is he who does not condemn himself in what he approves. 

*23. But he who doubts is condemned if he eats, because he does not eat from faith; for whatever is not from faith is [j]sin.

==Footnotes

Romans 14:6 NU omits the rest of this sentence.

Romans 14:9 NU omits and rose

Romans 14:10 NU God

Romans 14:13 any longer

Romans 14:18 NU this thing

Romans 14:19 build up

Romans 14:20 A feeling of giving offense

Romans 14:21 NU omits the rest of v. 21.

Romans 14:22 NU The faith which you have—have 

Romans 14:23 M puts Rom. 16:25–27 he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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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14장 (개요)

사도는 앞 장에서 권력자들과의 관계에 있어서 우리가 서로 지켜야할 행동을 지시하고 공동 사회의 일원인 우리들이 지켜야 할 공의, 화평, 그리고 질서의 거룩한 법칙을 그 방으로 내놓은 다음에 본장과 다음 장에서는 신앙과 양심에 직접 관계가 있는 우리의 생활 태도를 얘기해 주고 있다. 

특별히 그는 사소한 문제에 대한 의견차이를 어떻게 다룰 것인가 하는 데 대해서 일반적인 규칙을 제시하고 있는데 당시 로마 교우들간에 이 문제를 싸고 잘못된 점이 있었던 모양이다. 

이 점을 그는 교정해 주고 있다. 그러나 여기 제시된 규칙은 앞 장에서 율법의 성취로써 강조한 그리스도인의 임무를 보존하는데 있어 전반적으로 필요한 것이다. 

기독교 사회에 있어서 그 구성원들의 분쟁과 의견 충돌보다 더 치명적인 것은 없다. 여기서 입는 상처로 말미암아 신앙의 진수가 사라져가고 만다. 

본장에는 길르앗의 향유가 있으니 사도는 마치 명의처럼 훌륭한 처방을 제시하고 있다.

"왜 나의 백성의 딸의 상처가 낫지 않는가?" 그의 지시를 따르지 않기 때문이 아닌가? 

본장의 말씀을 제대로 이해하고, 제대로 이용하며, 그대로 살아가면 만사가 제대로 될 것이요 우리 모두가 치료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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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평무사할 것을 권고함(롬 14:1-23)

Ⅰ. 당시 교회에 일어났던 공교로운 다툼에 대한 얘기. 

우리 주님께서도 이런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미리 말씀하셨었지만, 이것이 오고야 만 것은 그들 가운데 불화를 막고 통일을 유지하려 하는 [주 영, 곧 <성도 각자의 가정교사이신>성령께 묻고 경청한 그대로 성도 상호간의 하나됨 추구하는 섬김의 사랑-온유-겸손-친절-환대-용납-일절 오래참음-화평-축복의 교통 위한] 지혜와 사랑이 결여되어 있었기 때문인 것 같다.

1. 그들 가운데 음식과 날자의 구별 문제에 있어서 의견 차이가 있었다. 

이 두가지사항이 가장 심각한 문제를 일으켰기에 대표적으로 지목되었지만 다른 비슷한 문제도 많이 있었을 것이다. 내용은 이렇다. 

로마 교회 교인들 가운데는 본래 이방인들과 유대인들이 섞여 있었다. 로마 유대인들이 믿었다는 기록도 있다(행 28:24). 

이 유대인들은 어릴 적부터 음식과 절기에 관한 의식 율법을 지켜왔다. 이 습관이, 곧 몸에 베어버린 이것이 그들이 그리스도인이 되고 난 후에도 여전히 [참된 생명 주는 십자가복음과 부활신앙안에서 붙들어야 할 바, 그 진리를 참되게 믿고 붙드는 그리스도인의 자유]를 아직 제대로 깨달아 알지 못하였기에 [사문화 된 음식과 절기에 관한 의식적 율법 준수의] 육신적 옛관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그대로 따르고 있었으니 특별히 과거에 집착한 나머지 쉽사리 그걸 버리지 못하는 사람들의 경우가 그렇다. 

이들은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의식 율법이 사문화되었다는 걸 모르고 있었다. 

그러기에 다른 신자들은 이 점을 잘 알고 그다지 문제 삼지 않았지만 이들은 계속 의식을 지키며 실천해 왔다.

(1) 음식에 대해서(2절). 

"어떤 사람은 아무 것이나 먹을 수 있다고 믿지만"(새번역). 

이 사람, 사도 바울은 깨끗하고 더러운 음식을 구별하는 의식적인 구별이 더 이상 통용되지 않으며 하나님의 온갖 피조물은 좋은 것이요 아무 것도 피할 게 없다는 걸, 곧 "그 자체가 더러운 것은 하나도 없다"(14절)는 걸 확신하는 것이다. 그가 이것을 확신한 것은 복음의 전체적인 흐름에서뿐 아니라 할례의 사도인 베드로가 이 목적으로 받은 계시에서다(행 10:15, 28). 

이것을 믿음이 [상대적으로!] 강한 그리스도인들은 분명히 알고 있었기에 자기 앞에 놓여진 음식은 양심에 물어볼 필요도 없이 먹을 수 있었다(고전 10:27). 

반면, "연약한 자"는 이점에서 불만을 품고 율법이 금한 음식은 아직도 여전히 불결한 것이라서 그걸 멀리하기 위해 고기를 전혀 먹지 않고 "채소를 먹는다." 

곧 이 흙에서 나온 열매만으로 만족하는 것이다. 연약한 양심이 얼마나 절제하고 자기를 부정하고 있는가를 보라. 

이것을 체험해 보지 않고는 [각 개인의] 양심의 억제력과 강제력이 얼마나 큰가를 알 수 없다.

(2) 날자에 대해서(5절). 

아직도 자신들이 의식 율법에 메여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이 날을 다른 날보다 낫게" 여겼으니 유월절, 오순절, 새 절기, 장막절 같은 걸 지키면서 이 날들이 다른 날보다 중한 것으로 생각하고 특별한 절차를 지켜 거룩하게 여기는 가운데 스스로 이런 날에는 종교적인 안식과 행사에만 집착하였다. [절대적으로 지켜야 할 것은 주일, 시공을 넘어서는-제한 받지 않는- <영과 진리로 드리는> 참생명의 예배이며, 나머지는 <다른 이들의 구원에 있어서 최우선 순위로 삼아야 할 것들> 곧, 보다 더 중요한 것, 그 다음은 급한 것을 처리함이다!! ]

한편 이 모든 것이 그리스도의 오심으로 철폐되고 무효화되었다는 것을 아는 자들은 모든 날을 똑같이 여겼다. 

우리는 주일을 제외하고는 모든 날을 똑같이 취급해야 하니, 주일만은 모든 신자들이 만장일치로 지켰다. 그밖에 유대인들의 캐캐묵은 절기는 관심도 두지 않고 거들떠 보지도 않았다. 

여기서 말하는 사도의 의견은 이런 음식과 절기의 문제는 그것이 일부 사람들의 습관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사소한 문제에 불과하며 따라서 이들도 이러한 음식과 절기 문제를 무시해도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본래 이방인이었다가 유대 교사들의 감화로 그런 구별을 믿고 실천할 뿐 아니라 그게 구원에 필수적인 것으로 알고 믿으며 유대 절기를 공공연하게 지키던 갈라디아 교우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는 이 논지가 뒤바뀌어 얘기되고 있음에 주의하라. 곧 이들은 [이미 복음안의 참 자유를 가져다 준  진리 따름으로 얻은 자유에 머물러 있기 보다 율법 준수를 강요하는 유대인 교사들의 율법적 의식 준수에 미혹되어!] 복음의 의도를 무시하고 은혜에서 떨어져가는 자들이라고 지탄을 받고 있다(갈 4:9-11). 

로마인들은 그것을 연약해서[복음안에 있는 절대 진리를 믿음으로 얻는 바, Q이 주시는  새로운 영적 관점에서 피조물을 다룸의 참지식과 개인적 깨달음과 결단이 아직 없었기에], 율법교사들의 의식율법 준수 지켰지만 갈라디인들은 고의적으로 사악한 가운데 지켰다. 그래서 사도는 이들에게 각각 다르게 대하고 있다. 

사도는 의식 율법이 점차적으로 사라져가 명예로운 매장으로 끝날 것을 원했던 것 같다. 

이 로마인들로 말하면 이들은 울면서 이 율법이 무덤에 이르기까지 따라간 자들이요 갈라디아인들은 다시 무덤을 파헤치는 격이었다.

2. 불씨는 의견 차가 아니라 이 의견 차를 잘못 다룬 데 있다.

(1) 믿음이 강하고 그리스도인의 자유를 충분히 알고 있는 자들은 그렇지 못하고 약한 자들을 멸시했다. 

그런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고 우정으로 도와 부축해 줘야 할텐데 이들이 합법적인 것으로 조심스러워하는 걸 어리석고 미신적인 사람들로 우습게 보고 짓밟은 것이다. 

이처럼 지식을 가진 자들은 거기에 들뜬 나머지 동료 형제들을 깔보고 조롱하기가 쉽다.

(2) 믿음이 약하고 그리스도인의 자유를 쓸 줄 모르던 자들은 강한 자들을 심판하고 정죄하였으니 마치 이들을 방종한 그리스도인, 육적인 사람들, 자기들의 하는 일을 돌보지 않고 온갖 모험을 감행할 뿐, 한 군데도 정착하지 않는 자들로 취급했다. 

그들은 이들을 율법을 어기는 자로, 하나님의 법도를 멸시하는 자로 여긴 것이다. 이런 정죄는 서로 큰 감정을 불러 일으켜 사랑에 금이 갈 뿐이다. 바로 이것이 병이었다. 

오늘날도 교회에 그 뿌리가 [여전히]남아 있다. 마찬가지로 [자라난 배경, 교육, 환경, 경험 등의 서로 다름이나 차이, 문화인류학적, 사상적 배경, 역사관의 차이 따른]의견차, 마찬가지의 잘못된 태도가 교회의 화평을 깨뜨리고 있는 것이다.

Ⅱ. 그러나 우리에게는 이 다툼을 달래고 악영향을 방지하는 데 필요 적절한 지침과 안내가 제시되어 있다.  

명의의 처방처럼 사도의 지침은 합리적인 것이다....[너도 과거에 그러하였었다...주께서 일절 오래참음으로 기다려 주사 합당한 때에 깨달아 알고 결단케 하사 자유 누림안으로 이끄셨다] 

그는 양쪽을 다 처벌없이 다 설득시킴으로 쌍방이 [성령안에서 주께 여쭈며 지도받아 먼저 주님과 하나됨 통해 주님의 용납하심따라]참고 받아주며 기다려 줄 것을 것을 종용하고 있다. 

훌륭한 중재인처럼  복음안의 자유, 그 가치를 제대로 알고 붙드는, 믿음의 이해가 넓기에 정말 중요한 것 외에는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 바, 스스로 믿음이 강하다 여기는 이들에게는 상대적으로 그 이해의 폭이 아직 넓지 못하고 스스로 제한하고 있는 바, 믿음이 약해 보이는 이들을 너무 깔보지는 말라는 식으로 , 곧 약한 자나 강한 자 모두들에게 자기와 다르다고 너무 단죄하지만 말고 절대적으로 붙들어야 할 바 곧 주님과의 개인적 하나됨의 믿음안에서 열어주시는 이해와 깨달음에 순복하는 믿음을 인정해주고 너그러이 기다려 주며 축복해 주는 절대긍정과 기쁨 상호관용의 형제애를 발휘함으로써 하나됨의 연합한 한 몸됨을 견지하라는 식으로 나오고 있다. 

분쟁 당사자들이 이 공정한 중재를 따르며 각자의 주장을 버리고 의견차를 은혜에 희생할 것 같으면 만사는 쉽게 회복될 것이다. 

그의 규칙을 살펴 보자. 강한 자에게는 어떻게 나오며 약한 자에게는 어떻게 나오며 또 이 둘을 다 상대로 할 때는 어떻게 나오는가를 살펴 보자.

1. 약한 자들은 "받되 그의 의심하는 바를 비판하지 말라"(1절)

(그들이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정죄하려는 태도를 [부정적 감정적 충동따라 예민하게 잔응하며 튕겨 대적하여 논쟁거리로 삼지말고, 먼저 주께 사정 아뢰며 묻고, <그 형제를 위해서라도, 그들의 말을 일단 가납해 주고> 자신의 언행심사를 오직HS안에서 좀 더 신중함으로 절제하며 기라려줌으로써 ],.."얼마든지 그렇게 여길 수 있다"고 받아들이고 <기다려 주라!> 의심스러운 다툼거리에 내버려 두지 말라). 이것이 일반적인 규칙이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모두 <최우선적으로> 일치하는 일에 정성을 쏟을 것이지 <개인적 측면에서 거리낌 되는, 긴가민가 하는, 상대적인> 의심스러운 문제를 가지고 왈가왈부할 게 아니다. 

"그를 영접하라"(프로슬람바네스데). 곧 "그를 네가 데려가라." 지극한 애정과 온정으로 그를 초대하라. 그를 돕고 격려하도록 "네 손을 그에게 뻗치라"(porrigite manum). 네 친구라 맞아 얘기를 주고 받으며 온갖 정성을 다해 환대해 주라. 

[사람은 누구나 완전하지 못하다!!...오직 주께서 일깨워 깨닫게 해 주시기를 중보하라]그를 받아들이되 그와 싸우려고 역설적인 문제를 가지고 의견 충돌을 하려고 그래서 그의 머리에 쓸데없는 생각을 불어 넣어 그를 당황케 하고 신앙을 털어버리게 하기 위해서 불러들이지는 말라. 

네 교우로서의 우정과 교제가 그런 쓸데없는 말의 실랑이와 논쟁으로 산만하게 되지 않도록 하라. 

"그의 의심하는 바를 비판하지 말라." 그의 약한 데를 찔러 그를 단죄하고 정죄하지 말라는 얘기다. 

그를 발가벗기려는 뜻에서가 아니라 그를 가르쳐 강하게 하기 위해서 [기다려 주라...네게 주께서 그리하셨듯이 친히 그렇게 하시리라!!] 그를 받아들이라(고전 1:10; 빌 3:15, 16).

2. 강한 자들은 약한 자들을 멸시해서는 안 되며 약한 자들은 강한 자들을 [함부로!!]판단해서도 안 된다(3절). 

이것은 양쪽을 다 지목하는 말이다. 양쪽에 모두 잘못이 있어서 서로 잘못을 깨우쳐야 하는 경우는 드문 일이다. 

그는 우리가 형제를 멸시해도 판단해서도 안 된다고 주장한다. 왜 그런가?

(1) 하나님께서 그를 받아들이셨으며 그가 받아들인 자들을 우리가 거절하는 건 그분에게 수치가 되기 때문이다. 

믿음이 약하다해서 참된 은혜를 가진 자를 하나님은 결코 내쫓지 않으신다.. 상한 갈대를 결코 꺾지 않으시는 하나님이다. 

강한 신자나 약한 신자나, 먹는 자나 먹지 못하는 자나 그들이 참된 신자라면 다 제각각 하나님의 [전적인 가납하심과] 인정을 받고 있다. 

우리는 우리 형제들을 깔보거나 멸시하고 단죄하고픈 시험을 받을 때 "하나님은 이들을 받아들이지 않으셨는가? 그렇다면 내가 감히 그들을 거절할 수 있겠는가?"하고 스스로에게 말하도록 하자. ...아니, 하나님은 그를 받으셨을 뿐 아니라 게다가 "저를 세우셨다"(4절). 

어쩌면 염려하는 자로서 너는 먹는 자는 그의 방자함으로 넘어지고 먹지 못하는 자는 그의 공포와 걱정으로 가라앉을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으리라.

그러나 이들에게 참 신앙이 있다면, 곧 하나님을 바라보는 눈이 있어서 한 사람은 그리스도인의 자유를 지혜있게 잘 쓰고 다른 한 사람은 억지로 그걸 참는다면, 이 둘은 다 세움을 받을 것이다. 곧 한쪽은 정직함으로 다른 한쪽은 그의 위로로 세움을 받을 것이다. 이 소망은 하나님의 능력에 근거한 것이다. 

왜냐하면 "저를 세우시는 권능이 주께 있음이라."  따라서 그는 자신의 백성을 지키기 위해서 이 능력을 행사하실 것이다. 

우리 혹은 남의 영적 난제와 위험에 있어서 우리의 대부분의 위로와 소망은 이 하나님의 능력에 근거하고 있다(벧전 1:5; 유 24)....이것을 유의하고 명심하자!!

(2) 그들은 [오직!!] 자기 주인의 종들이기 때문이다(4절). 

"남의 하인을 판단하는 너는 누구뇨?" 

우리는 남의 하인들을 붙잡고 늘어지며 트집잡고 단죄하는 건 실례로 여긴다. 

신자들은 약하든 강하든 우리들의 형제지 우리 하인이 아니다. 이런 못된 판단은 선생이 많아서는 안 된다는 식으로 경계하고 있다(약 3:1). 

우리가 우리 형제들을 판단하려 드는 건, 특별히 우리 눈에 안 보이는 그들의 생각과 의중을 판단하고 그들의 인격과 사람됨을 몇 가지 안 되는 실례를 가지고 판단하는 건 우리 스스로 형제들의 주인이 되어 사실상 하나님의 자리에 올라서는 격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보시는 것은 우리와 다르며 그분만이 그들의 주인이지 우리가 아니다. 우리 형제들을 판단하고 단죄하는 가운데 우리는 우리 소관이 아닌 걸 가지고 덤벼드는 격이 된다. 

우리 할 일도 많지 않은가. 정 그런 실력을 발휘하고프면 각자 자기 자신의 마음과 행동을 상대로 하는 게 좋다. 

"그 서는 것이나 넘어지는 것이 제 주인에게 있다." 그의 운명은 그 주인에게 달린 것이지 우리에게 달린 게 아니다. 

우리가 상호간의 판단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롭고 틀림이 없는 판단에 따라 서고 넘어진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한 일인지 모른다. 

이것이야말로 진리대로 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대 형제의 송사가 그대 판단에 달려 있다면 그건 재판관이 아닌 자의 손에 놓여진 것이다. 하늘의 법정이야말로 유일한 시험의 법정이니 그곳에서의 심판만이 확정적이요 정확하다. 그리고 양심이 바르다면 그대의 못된 단죄에서부터 이 하늘법정으로 상고하시는 게 낫다."

(3) 어느쪽이든지 그들이 진정한 신자요 요점에 있어서 올바르다면 하나님을 바라보는 눈이 있고 그들의 하는 일에서 그를 인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6절). 

"날을 중히 여기는 자," 곧 유대 금식과 절기를 지키면서도 그걸 남에게 강요는 하지 않고 자기 생각에 그 날은 세상 일을 쉬고 하나님을 예배해도 아무 지장이 없다고 생각하기에 기꺼운 마음으로 그렇게 하는 자는 잘하는 일이다. 

다른 면에 있어서 이 사람이 훌륭한 그리스도인으로서 행동하는 걸 봐서도 이 면에 있어서도 그의 눈은 한 눈이요 "주를 위하여 중히 여긴다"는 걸 알 수 있다. 

따라서 하나님은 그가 절기 지키는 면에 있어서 다소 실수가 있다해도 그의 정직한 의도는 받아들이실 것이다. 

머리가 허약하고 부족하다고 해서 마음의 성실과 정직이 배척받는 건 아니다. 우리는 이처럼 훌륭한 주인을 모시고 있다. 

다른 한편 "날을 중히 여기지 않는 자"는, 이 날 저 날을 구별하지 않는 자, 곧 이 날은 거룩하고 저 날은 평일이다. 

이 날은 운이 좋고 저 날은 재수가 없다 하는 식이 아니라 모조리 똑같은 날로 취급하는 데 그는 앞서 지적한 형제를 멸시하거나 반대하기 위해서 그렇게 하는 게 아니다. 

선량한 그리스도인이라면 그러한 원칙에서 행동할 리가 없다. 따라서 우리는 "그가 주를 위해서 날을 중히 여기지 않는다"고 결론 내릴 수 있다. 

그는 하나님께서 아무런 구별을 두지 않는다 걸 알기에 그런식으로 날자를 구별하지 않는 것이다. 따라서 모든 날을 그에게 바침으로 그를 영화롭게 하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뒤에 나오는 예도 마찬가지다. 자기 앞에 놓여진 게 뭣이든, 그게 피든 돼지고기든 먹을 수만 있다면 "먹는 자도 주를 위하여 먹는다." 

이 사람은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허락하신 자유를 알고서 그의 영광을 위해 활용하는 자로서 복음 시대에 허락된 우리의 자유를 확대하고 율법의 제약의 멍에를 벗어버리는 자다. 

이런 사람은 그가 먹을 수 있는 다양한 음식과 그걸 먹을 수 있는 자유, 그리고 이 모든 일에 있어서 그의 양심이 얽매이지 않은 점을 "하나님께 감사한다." 

다른 한편 의식 율법이 금하는 음식을 "먹지 않는 자도 주를 위하여 먹지 않는다." 

그것이 하나님을 위한 일이라는 이유는 그의 생각에 금지된 것으로 확신하는 걸 먹음으로 하나님을 거스릴까봐 두려워하기 때문이요, 그가 "하나님께 감사하는" 이유는 그것 말고도 달리 먹을 것이 많이 있기 때문이다. 

자기 생각에 금지된 열매인 줄로 아는 걸 의식적으로 먹지 않으면서도 그는 정원에 다른 과일들을 자유롭게 먹을 수 있는 걸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것이다. 

이처럼 양쪽이 다 자기들 하는 일에 있어서 하나님을 안중에 두며 정직하게 하는데 그 어느 편이고 심판하거나 욕할 이유가 뭔가? 

우리가 고기를 먹든 채소를 먹든 그것은 다 우리의 모든 은혜의 원저자요 시혜자며 그걸 성결하게 해주시고 맛있게 해 주시는 분인 하나님께 대한 감사의 표시인 것이다. 

샌더슨 감독도 34번째 디모데 전서4장 4절 본문 설교에서 이런 똑같은 얘기를 하고 있다. 여기서 보건데 식사 전후에 하는 "식사 기도"는(고전 10:30) 약한 자나 강한 자나 가릴 것 없이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행하는 당시 교회의 일반 습관이었다. 곧 그리스도를 본받아 교회 대대에 걸쳐 실시되는 전통적이요 사도적이며 훌륭한 그리스도인의 습관이다(마 6:11; 마 26:26, 27; 행 27:35). 우리가 피조물들을 사용하기 전에 하나님의 이름으로 이것을 감사하는 것이나 후에 이걸 주신 데 감사하여 하나님의 이름에 감사를 돌리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율로게인(2127)’이나 ‘유카리스테이(2168)’은 뒤섞여 쓰이는 단어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속단하여 멸시하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 그는 우리 자신이 아니라 하나님을 바라보는 게 참기독교에 있어서 얼마나 중요한가를 보여 주고 있다. 

따라서 반대현상이 명백히 들어나기 전에는 사소한 차이가 있는 자들이라도 다 받아들일 줄 알아야겠다. 

참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그는 그 목표와 목적(7, 8절) 그리고 동기에서 다루고 있다(9절).

① 우리의 목표와 목적은 우리 자신이 아니라 주님이다. 

특수한 목적이 그 행동을 규정하듯이 마찬가지로 일반적인 윤곽과 경향은 그 상태를 규정한다. 

우리가 무슨 길을 걷고 있는가를 알려면 우리가 무슨 목표를 향해 걷고 있는가를 보면 된다.

첫째,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다. 

우리는 자아 부정에 대해서 일찍이 배운 바 있다.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다" 이것이 모든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로 일치하는 점이다. 

다른 여러 면에서는 제 아무리 의견을 달리하더라도 말이다. 어떤 자는 약하고 어떤 자는 강해도 모두가 자기를 의해서 살지 않는 다는 점에서는 일치한다. 

자기이름을 그리스도에게 내어 맡긴 자 치고 자기 유익 추구하는 자는 없다. 

그런 사람이 있다면 그런 사람은 분명히 참된 기독교의 바탕에 위배된 사람이다.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의 주인이 아니요 소유주가 아니니 우리 맘대로 우리를 쓸 수 있는 입장에 있는 게 아니다. 

우리 삶의 임무는 우리를 기쁘게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것이다. 

우리가 날마다 직면하면서도 구출받고 있는 우리 죽음의 임무는 우리 자신을 떠들어대는 게 아니다. 

우리는 날마다 죽어가는 처지에 무모하게 그런 위험을 무릅쓰는 게 아니다. 우리가 실제로 죽음에 직면한다 해도 그것 역시 우리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다. 

곧 그것은 단지 우리가 몸의 옷을 벗고 육신의 짐을 벗어버리는 데만 그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주를 위한 것이니 

곧 우리가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주님의 면전에 있기 위한 것이다.

둘째, "주를 위하여"다(8절). 

곧 우리의 모든 권력과 심판이 위임되고 그분 안에서 우리가 모든 선한 일을 하는(골 3:17) 주 그리스도를 위함이니 우리의 규칙으로서의 그리스도의 뜻을 생각해서요 우리의 목표로서의 그리스도의 영광을 위해서다(골 1:21). 그리스도는 우리가 사나 죽으나 목표로 하는 우리의 소득이다. 

우리가 사는 것은 모든 생활에 있어서 그를 영화롭게 하기 위해서요 우리가 죽는 것도, 그것이 자연사든 급사든, 그를 영화롭게 하며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해서다. 그리스도는 우리 모두의 중심부이시니 생사의 모든 선이 일치하는 곳이다. 그리스도를 모든 일에 있어서 전부로 모시는 것만이 참된 기독교다. 

따라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그에게 바쳐진 몸이요 그에게 의지하는 몸이요 그를 위해 설정되어 있으며 그분을 중심으로 방향 설정하는 몸이다. 

더러는 약하고 더러는 강하지만, 곧 사소한 일에 있어서는 키가 다르고 능력이 다르고 이해력이 다르며 실제 생활이 다르지만 그러나 모두는 주님의 것들이다. 

곧 모두가 그리스도를 생각하며 그를 섬기고 그를 위해 자신들을 활용하며 그에 따라 그에게 마땅히 받아들임을 받는 자들이다. 

그런데도 마치 우리들은 그들의 주인이요 그들은 우리를 기쁘게 하는 자들이요 그들의 서고 넘어짐이 우리 손에 달린 것마냥 이들을 판단하고 멸시하는 게 당연한 노릇인가.

② 이 동기(9절). 

그것은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의 열매요 목표인 그의 절대 주권과 지배에 근거하고 있다.  

"이를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죽었다가 다시 살으셨으니"(그는 다시 살아 나심으로 이전에 가졌던 영광 곧 하늘의 생명을 찾으신 것이다) 

"곧 죽은 자와 산 자의 주가 되려 하심이니라." 

다시 말해 그가 우주적인 군주, 만군의 주(행 10:36), 곧 생물 무생물을 총망라한 주인이 되기 위해서다. 그가 모든 것의 머리되심은 교회를 위해서다. 

그는 만물을 다스리도록 살아 있는 자들의 주이자 죽어서 이것들을 받아들이고 다시 일으키는 자들의 주이기도 하다. 

이것이 그의 굴욕의 대가로 그에게 하나님께서 주신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빌 2:8, 9)이다.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다"(마 28:18)고 말씀하신 것도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신 후에 하신 말씀이니 이 능력을 힘입어 제자들에게 만천하에 전도할 것을 위탁하고 있다(19, 20절). 

그리스도께서 영혼들과 양심을 지배하기 위해 그처럼 값비싼 대가를 지불하셨으며 이 지배권을 행사하시는 데 있어 정당하고 이론의 여지가 없는 권리를 행사한다면 우리는 형제들의 양심을 심판하므로 그 지배권을 침범하는 일이 없어야겠다. 

이미 죽은 자들의 이름과 기억에 욕을 돌리고 싶어질 때 우리는 그리스도께서는 산 자들의 주이시자 죽은 자들의 주도된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그들이 이미 죽었으면 그들이 계산은 끝난 것이요 그걸로 충분하다. 여기에서 우리는 심판하지 말고 멸시하지 말아야 할 또 다른 이유를 찾게 된다.

(4) 왜냐하면 이 사람이나 저 사람이나 조만간 결산을 봐야 하기 때문이다(10-12절). 

저 큰 심판의 날을 믿는 눈으로 바라보는 자는 성급한 판단을 내리지 않을 것이다. 

약한 "네가 어찌하여" 강한 "네 형제를 판단하느뇨?" 그리고 강한 너는 "어찌하여" 약한 네 "형제를 업신 여기느뇨?" 왜 믿는 자들끼리 물고 뜯으며 서로 단죄하고 심판하긴가? 

"우리가 다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드러나리라"(고후 5:10). 

그리스도께서 대심판이 되실 것이요 인간들의 영원한 상태를 그들의 행위에 따라 결정한 권위와 능력이 그에게 주어져 있으니 우리는 우리의 최종 운명에 대해 그분의 판단만 기다릴 뿐이다. 이것을 설명하기 위해서 그는 그리스도의 우주적 주권과 지배를 말하는 구약 성경 구절을 인용하고 있다(11절). 

"내가 살았노니 모든 무릎이 내게 꿇을 것이요." 

이것은 이사야 45장 23절에서 인용한 것이다. 거기에는 "내가 나를 두고 맹세하였다"는 말이 여기서는 "내가 살았노니"하는 말로 바뀌었다. 

하나님께서 "내가 살았노니"하고 말씀하시는 것은 자기 자신을 두고 맹세하는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자신에게 생명이 있다는 건 하나님에 대권에 속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을 입증하기 위해서 "나의 입에서 의로운 말이 나갔다"는 말을 덧붙이고 있다. 

이것은 일반적으로 그리스도의 지배에 대한 예언으로 최후 심판의 날의 심판에 이것이 연결되어 있는데 이 지배권의 가장 두드러진 행사는 그때 가서 이뤄질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그리스도의 신성(Godhead)의 입증이니 그는 여호와요 하나님이시니 성부 하나님과 동일하시다. 그분에게도 신의 존경이 드려져야 마땅하다. 

이것은 중보자인 그분을 통해서 하나님께 드려지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를 들어 세상을 심판하실 것이다(행 17:31). 

무릎을 끓고 입으로 고백하는 것은 내면의 숭경과 찬양의 외면적 표현에 불과하다. "모든 무릎과 모든 혀가" 자유로든 강제로든 무릎을 꿇고 고백할 것이다.

① 그의 모든 친구들은 그것을 자유로 하거나 그의 능력의 날에 자발적으로 될 것이다. 

은혜는 예수 그리스도에게 드리는 영혼의 자발적이요 전반적인 복종이다.

첫째, 그에게 무릎을 꿇는 일에 있어서 이해는 그의 진리에 무릎을 꿇고 의지는 그의 율법에 무릎을 꿇으며 온 몸이 그의 권위에 무릎을 꿇는 것이다. 

무릎을 꿇는다는 것은 숭경과 찬양의 자세다. 우리 요셉 앞에서도 "엎드리라"하는 명령이 내려졌었다(창 41:43). 

육체의 단련 그 자체만으로는 유익이 없지만 그것이 내면의 경외와 존경으로 이어질때는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둘째, 그에게 고백한다는 말은 그의 영광, 은혜 그리고 위대하심을 인정한다는 말이요 반면에 우리의 천함과 더러움을 인정한다는 말이니 우리의 죄를 그에게 고백한다는 말이다. 

이런 식으로 이 구절을 보는 이들도 있다.

② 그의 모든 원수들도 좋든 싫든 그렇게 하게 되고 말 것이다. 

그가 구름을 타고 오실 때면 아니 그 이전에 그의 원수들에 대한 승리와 그들의 그에 대한 복종에 대한 모든 예언이 완전히 성취되고 말 것이니 그때 가서 이들은 그의 발등상이 되고 말 것이요 땅의 흙을 핥게 될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그는 이렇게 결론을 내리고 있다(12절). 

"우리 각인이 자기 일을 하나님께 직고하리라." 

우리가 남의 이야기를 해 줄 필요도 남이 우리 얘기를 해 줄 필요도 없다. 오직 각자의 일을 각자가 직접 얘기할 것이다 

우리의 시간을 어떻게 보냈으며 우리의 기회를 어떻게 선용했으며 우리의 행동과 그 방법을 다 고하게 될 날이 올 것이다. 그러므로

첫째, 우리는 남을 판단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 

그들도 우리에게 상관이 없고 우리도 그들에게 상관이 없기 때문이다(갈 2:6). 

"본래 어떤 이들이든지 내게 상관이 없으며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취치 아니 하시기 때문이다." 

그들의 상태가 어떠하든 그들의 행동이 뭐든 그들의 자기들의 주인에게 고할 것이지 우리에게 고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들이 어떻게 해서든 그들의 기쁨에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잘하는 일이겠지만 그러나 우리에게는 그들의 신앙에 대한 지배권이 없다.

둘째, 우리는 우리 자신을 판단할 일이 너무도 많다. 

우리 스스로 숙고해야 할 일만으로도 벅차다. "각각 자기 일을 살피라"(갈 6:4). 

자신의 계산을 해 보라. 자신의 마음과 삶을 뒤져 보라. 여기에 골머리를 앓아 보라, 그러면 자신을 판단하고 낮추는 자는 자기 형제를 쉽사리 판단하고 업신여기려 들지 않을 것이다. 이 모든 차이점은 마지막날 그리스도의 손에 맡겨 드리자.

(5) 기독교의 강조점이 이런 문제에 있지도 않지만 또 여기에 둘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런 것들은 우리 신앙에 필수적인 것이 아니요 이 쪽 사람이나 저쪽 사람 모두에게 마찬가지다. 이래서 그는 다음의 권고를 하게 되는 것이다(17,18절). 

왜 너는 네 열심을 신앙에 있어서 그렇게 사소한, 일고의 가치고 없는 문제를 가지고 찬반 어쩌고 하며 시간을 허비하겠는가? 하는 식이다. 

어떤 이들은 이것이 이처럼 불상사를 초래하기 때문에 그리스도인의 자유를 스스로 억제해야 한다는 식으로 해석하지만 그러나 사도는 이 양쪽 사람들에게서 볼 수 있는 이런 사소한 문제에 대한 열기를 겨냥하고 있음에 틀림 없다.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이하.

① 진정한 기독교의 본질. 

그것은 "하나님의 나라"다. 그것은 우리를 다스리는 종교요 왕국으로써 하나님의 능력과 지배에 충심으로 복종의 관계에 서 있다. 

복음 세대는 특수한 의미에서 구약 율법 세대와 구별되는 "하나님의 나라"다(마 3:2; 4:17).

첫째, 그것은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다." 

그러한 음식을 먹거나 마시거나 안 먹거나 안 마시는 데 있는 게 아니다. 기독교는 먹고 마시는 일에 있어서 어떤 법칙을 제시하지 않는다. 

유대교에서는 음식규정이 까다로와(히 9:10) 제물에 있어서 어떤 것은 못 먹게 하고(레 11:2) 어떤 것은 여호와 앞에서 먹게 하는 등 가리는 게 많았으나 이 모든 조항이 이제는 철폐되고 무효화하고 말았다(골 2:21, 22). 이제 이 문제는 방임 상태에 놓여 있다. 

"하나님의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다"(딤전 4:4). 

다른 문제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니  그것은 할례도 무 할례도 아니다(갈 5:6; 6:15; 고전 7:19). 

우리는 하나님께 천거하는 것은 사소한 문제에 있어서 이 편을 드느냐 저 편을 드느냐에 달린 것이 아니다. 

최후 심판날에는 "누가 고기를 먹었느냐? 누가 채소를 먹었느냐?" "누가 거룩한 날을 지키고 누가 안지켰느냐?" "누가 정통이요 누가 비정통이냐?"하는 식의 질문이 아니라, "누가 하나님을 경외하고 의를 행하고 누가 그러지 않았느냐?"하는 질문만이 있을 뿐이다. 

하나님 나라를 겉 모양과 습관 그리고 상황에 결부시키는 나머지 본질적인 것을 불식하는 죄보다 더 파멸적인 것은 없다.

둘째, 그것은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이런 것들이 기독교 본질의 일부이니 우리들 하나님의 백성들은 이것을 추구하는 데 열성을 다 할 것이요 그것만을 염두에 둘 것이다. 

의, 평강 희락은 아주 함축적인 말로써 신앙의 바탕과 철학(superstructure)을 내포하고 있다. 외람되이 본인이 이 말의 의미를 규정해 본다면 이런 식이 될 것이다. 

하나님에게 있어서 우리의 지대한 관심은 "의"다. 

곧 그리스도의 죽음의 공로로 의롭게 되고 그의 은혜의 성령으로 성화되어 하나님 앞에 입고 나타날 의다. 의로우신 하나님께서는 의를 사랑하시기 때문이다. 

우리 형제에게 있어서, 우리의 지대한 관심은 "평강"이다. 

곧 이들과 평화롭게 사랑으로 사는 것이요 모든 인간과 더불어 평화를 추구하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위대한 화해자(peace-maker)가 되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셨다. 

우리 자신에게 있어서 우리의 지대한 관심은 "성령 안에서 희락"이다. 

곧 복되신 성령에 의해서 우리 믿는 자들의 마음 속에 이뤄지는 영적 기쁨이나 믿는 자들은 하나님을 그들의 화해된 아버지로, 하늘을 돌아갈 집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과 하나가 된 다음에는 그 분 안에서 하나가 되고 그분으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는 게 신앙의 본질이어야 한다. 

분명히 우리에게는 우리 신앙의 본질인 평강과 희락을 주시는 좋은 주인이 있다. 

기초가 놓여진 다음에라야, 오직 그 때 가서야, 우리는 성경 안에서의 평강과 희락을 기대할 수 있다(사 32:17).

셋째, 하나님의 나라는 이 모든 일을 통해서 "그리스도를 섬기는 것"(18절)이다. 

곧 그리스도를 우리의 중보자로 그의 뜻을 우리의 법칙으로 그의 영광을 우리의 목적으로 삼고 이 먹고 마시는 일을 하는 것이다. 

우리의 선행이 받아들여지는 이유는 그걸 행하는 데 있어 그리스도를 염두에 두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그의 뜻과 계획을 섬겨야하니 그의 뜻과 계획이란 무엇보다도 우리를 하나님과 화해시키는 것이요 다음에 우리를 서로를 화해시키는 것이다. 그리스도를 섬기는 일 말고 기독교의 할 일이 뭔가? 

우리를 위해 우리의 구원을 위해 종의 모습을 취하신 그분을 섬기는 것은 우리의 마땅한 본문이 아닐 수 없다.

② 하늘 나라의 혜택. 이것을 체대로 지키는 자는

첫째, 하나님에게 인정을 받는다. 

그런 사람은 우리의 표준에는 안 맞을지라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자다. 하나님의 사랑과 총애를 독차지하는 사람이니 그 사람됨과 그의 행동이 하나님의 인정을 받는 것이다. 

우리가 우리를 즐겁게 할 필요가 더 이상 없다. 하나님께서 그대의 행위를 인정하면 그대는 그대의 음식을 즐겁게 먹어도 좋다. 

하나님 자신으로 더불어 가장 기뻐하는 그런 자를 하나님은 제일 반가워하신다. 이러한 자들이야말로 성령 안에서 얻어지는 평화와 기쁨을 만끽하는 자들이다.

둘째, 그런 사람은 인간들의 인정을 받는다. 

하나님의 인정을 받을 만한 사람은 우리의 인정을 받게 마련이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걸 우리가 기뻐하지 않을 수 있는가? 

성화라는 게 하나님의 마음에 드는 일이 아니고 뭣인가? 인간들의 인정을 무시해서 안 된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우리의 하는 일이 모두 인간들 보기에 정직하고 좋은 평판이 되는 일이어야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첫째로 바랄 것은 하나님의 인정이다. 왜냐하면 조만간 하나님께서는 모든 세상을 그의 마음에 들도록 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3. 여기에 주어진 또 하나의 규칙은 의심스러운 문제에 있어서 각자는 하나님께서 깨우쳐 주신 빛에 따라 행동해도 좋을 뿐 아니라 그것에 따라 행동하는 게 마땅하다는 것이다. 이것이 5절에 주어진 것이다. "각각 자기 맘에 확정할지니라." 

곧 "이런 문제에 있어서는 네 자신의 판단에 따라 실천하고 남들도 역시 그렇게 하도록 내버려 두라. 타인들의 실천을 [함부로!!] 단죄하지 말라. 그들도 그들의 의견을 따르게 내버려 두라. 만약에 그들이 그렇게 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확신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면 그들을 정죄하지 말고, 오직 [그리스도의 평강안에서 분별한 바] 네 온건한 견해로 봐서 틀리거든 그들의 실천을 네 규범으로 삼지 않으면 되는 것이요 그 거꾸로도 마찬가지다. 의심하는 [거리낌이 있는] 문제는 양심의 명령에 반대되는 행동을 하지 않도록 조심하라. 먼저 행동을 취하기 전에 네가 하고자 하는 것이 합당한가 하는 문제를 확신하도록 하라." 

의심스러운 문제에 있어서는 확실한 쪽 울타리에서는 게 현명하다. 

만약에 믿음이 약한 그리스도인이 고기를 먹는 게 합당한가 하고 의심스러워 한다면 그는 [의심스러운]그 문제에 있어서 확신을 얻을 때까지 그걸 금하는 게 상책이다. 우리는 우리의 [개인적 신념]을 남에게 강요할 필요도 없지만 남들의 실천을 우리의 규범으로 삼을 필요도 없으며 오직 우리 자신의 이해력이 [성령께서 이르시는 바로 그것. 그]명령에 따를 뿐이어야 한다. 

이 목적을 위해 그는 14절과 23절에서 이 이론을 펴고 있다.

(1) 잘못 알고 있는 양심의 명령에 거슬려 행동하지 말 것(14절). ....[그리스도인이라면!!, 아직 이해가 부족하더라도 먼저 양심의 명령을 따르라!!...깨달음 열어주실 주께 맡기라...]

어떤 일이 사소해서 그걸 하지 않는 그 자체가 죄가 되지 않을 때 곧 그걸 행하는 게 죄가 된다고 확신하고 있으면, 남들에게는 그렇지 않아도 우리에게는 죄가 된다. 

왜냐하면 이 때 우리는 비록 착각하고 있고 오해하고 있는 양심이지만 이 양심을 거슬려 행동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① 이 문제에 있어서 사도 자신의 확신. 

"내가 알고 확신하는 것은 곧 나의 그리스도인으로서의 나의 자유를 익히 알고 있는데 무엇이든지 속된 것이 없다는 점이다. 그것이 인간 신체를 위한 음식이라면 어떠한 의식 율법에 의해서 불결하게 되거나 금지된 음식이 될 수 없다는 점이다." 

유대인들은 그들이 특수한 민족이 되기 위해서 다른 면에서도 마찬가지였지만 음식에 있어서 금지 조항이 않았다(레 11:44; 신 14:2, 3). 죄가 모든 피조물에게 저주를 초래한 것이다. 

"땅은 너로 인하여 저주를 받고"하는 말씀처럼 피조물 사용과 그것들에 대한 지배권이 없어지게 되어 결과적으로 이것들 모두가 인간에게 불결하게 되었다(딛 1:15). 

이것의 증거로 하나님께서는 의식 율법을 통해 어떤 것은 사용을 금하셨다.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이 저주를 제거하셨기 때문에 이 문제는 다시 자유롭게 되었으며 금지조항도 없어졌다. 그러므로 바울은 이 확신의 원저자이자 그 동기가 되시는 주 그리스도에 의해서 확신하게 되었다고 말하고 있다. 

이 확신은 저주를 제거해 버리고 피조물 전반에 대한 우리의 권리를 회복시켜 주며 특별히 구별하는 금지 조항에 종지부를 찍은 그리스도의 죽음의 효력에 바탕을 둔 것이다. 

그 결과 이제는 아무 것도 그 자체로서는 불결한 것이 없게 되었다. 하나님의 온갖 피조물은 선하다. 그 어느 것도 "속된" 것이 없다(우덴 코이논, 14:14). 

사도행전 10장 14절에 있는 ‘아카다르톤’(169)이란 말도 마찬가지다. 그 어느 곳도 "속되거나 불결한 것"이 없다. 

바울이 그 어느 것도 속되다거나 불결하지 않다는 확신을 가지게 된 것은 이 문제에 대한 베드로에게의 계시뿐 아니라 일반적으로 그리스도의 죽음이 보여 주모든 의도와 복음의 경향에서 얻어진 것이다. 이것이 바울의 확신이었으며 그는 자기가 얻은 확신, 이에 따라 실천하였다.((주께서 깨달음을 열어주신 바, 오직 양심의 명령을 따르라!!))

② 그러나 자기처럼 확신을 갖지 못한 자들에게 그는 경고하고 있다. 

"다만 속되게 여기는 그 사람에게는" 그게 그 사람 자신의 잘못에 불과하더라도 "속되니라." 

이 특별한 경우가 일반적인 규칙을 낳는다. 곧 그 문제 자체로서는 어떠하든 자기 자신이 그걸 정말 부당한 것으로 믿는 걸 행하는 자, 그에게 있어서는 그게 죄가 된다. 

이것은 우리의 창조 법칙에 의한 것이니 우리의 의지는 그 선택, 동기, 방향이 모든 점에 있어서 우리 이해(NOUS...영원지성...주님음성깨닫고 이해하여 따름..이것이 보혈로 씻긴, 주와 교통하는 양심)의 명령을 따라야 한다. 

이것은 자연의 질서이기도 하니 우리의 이해가(비록 잘못된 이해라도) 그건 죄라고 말하는데, 그걸 행하면 이 질서가 깨어지고 마는 것이다. 

이것은 악을 행하고자하는 "의지"가 된다. 왜냐하면 그것이 우리에게 죄로 보이는 것이라면 그걸 죄로 알고 행하는 우리의 의지에는 똑같은 타락이 깔려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걸 행하지 말아야 한다. 이것은 이 행동 그 자체를 바꿀 수 있는 능력이 어느 인간의 양심에 달려 있다는 뜻이 아니라 자기 자신과의 관계 설정은 바꿀 수 있다는 얘기다. 

각자 판단과 의견이 그 자체로서는 선한 것을 자기 자신들에게 악한 것으로 만들지라도 그들 자신은 그 자체로서 악한 것을 그 자체나 그들과의 관계에 있어서 선하게 만들 수는 없다. 어떤 사람이 만일 자기 아버지의 축복을 구하러 항하는 게 좋지 않다고 확신하고 있다면 이 잘못된 확신으로 그게 본인에게는 악의 되지만 그러나 자기 아버지를 저주하는 게 좋다고 확신하는 사람에게는 이 확신이 그것을 선하게 만들 수 없는 노릇이다. 바리새인들은 "고르반"으로 자기 부모를 부양의 거절 구실을 삼아도 좋다고 가르쳐 왔다(마 15:5, 6). 

그러나 바울의 잘못된 양심이 기독교에 대한 그의 분노나(행 26:9) 그들의 분노(요 16:2)를 정당화할 수 없듯이 이것도 더 이상 통용이 되지 않는 얘기다.

(2) 우리는 [긴가민가] 의심하는 양심의 명령을 거슬러 [자행자제함으로써, 섣부르게!!]행동해서는 안 된다. [오직 주께 여쭈라!!...그리스도의 평강을 따르라]

하지 않아도 죄가 아닌 줄 알지만 그걸 행하는 게 합당한가 하는 문제에 있어서는 분명치 않은 것은 그 의심가운데 머물러 있는 동안은 행하지 않아야 한다. 

왜냐하면 "의심하고 먹는 자는 정죄되기" 때문이다(23절). 곧 그에게는 그것이 죄로 되어 그가 "저주받기 "때문이다(카타케크리타이, 2638). 

그의 양심이 정죄받는 것은 그가 "믿음으로 쫓아하지 아니한 연고"다. 곧 합법적으로 해도 된다는 확실한 확신이 없는 걸 행하기 때문이다. 

가령 돼지 고기를 먹는 게 합당한가 하는 걸 그는 확실히 알지 못하면서도 남들이 먹는 걸 보기 때문에 자기 식욕을 채우기 위해서 그렇게 해도 지탄을 받지 않을 거라는 생각에 끌려 그걸 먹게 된다 하자. 이런 경우 자기 자신의 양심은 그를 범법자로 정죄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의 규칙은 우리가 알고 있는 선에서 행동할 것이지 그 이상은 초과하지 말자는 것이다(빌 3:15, 16). 

"믿음으로 쫓아 아니하는 것은 모든 것이 죄니라." 

이것을 일반적으로 취하자면"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히 11:6)는 말씀과 동일하다. 

우리가 종교 생활에 있어서 무슨 일을 하든 그게 믿음의 원리에 입각해서, 곧 그리스도의 뜻을 우리의 규범으로, 그리스도의 영광을 우리의 목표로, 그리고 그리스도의 의를 우리의 유일한 탄원으로 믿는 마음에서 행하는 게 아니라면 잘했다는 평판을 듣지 못하게 되고 말 것이다. 이것이 여기서는 보다 더 엄격한 것 같다. 

뭐든 믿음에 의한 것이 아니면(곧 그 행동의 합당성 여부를 확신하지 않고 행하면) 그것은 양심에 위배되는 죄다. 

사실은 죄가 아닌 것이지만 양심이 부당하다고 말하는 걸 행하는 자는 그게 실제로 죄인 경우에 양심이 그건 부당하다고 말해도 행하기 쉬운 자다. 

인간의 영혼은 하나님의 촛불로써 양심을 타락시키고 압력을 가하는 것은 그것이 실수에 의한 것일지라도 위험한 일이다. 

이것이 "자기의 옳다 하는 바로 자기를 책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22절)하는 말씀의 의미인 것 같기도 하다. 

자기 자신의 양심과 판단으로는 해서는 안 된다고 저주하는 것을 실천하는 사람은 너무도 많다. 곧 쾌락, 이익 추구나 습관 때문에 그렇게 자신에게 관대하게 나오는 것이다. 그러나 그가 그것을 행하고 있는 동안에도 그의 마음은 거짓말을 하며 그의 양심은 그것 때문에 자신을 저주하는 것이다. 

자신의 양심의 도전과 비난을 받지 않게 행동을 가리며 자신의 마음을 자신의 원수로 삼지 않는 자는 복이 있다. 내면의 안정과 평온이 있는 자는 복이 있다. 

고난의 때에 양심의 증거야말로 크나큰 위로가 되기 때문이다. 

인간들이 우리를 저주해도 우리의 마음이 우리를 저주하지 않는다면 그것으로 족하다(요일 3:21).

4. 또 다른 규칙은 이 문제를 분명히 알고 있으며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자유를 잘 알고 있는 자들에게 해당하는 것으로 약한 형제를 넘어지게 하지 않도록 조심하라는 것이다. 이것이 13절에 기록되어 있다. 

"그런 즉 우리가 다시는 서로 판단하지 말자." "지금까지 사랑의 덕을 이루지 못하는 일에 머물러 있었던 것만으로 충분하니 더 이상 거기에 머물러 있지 않도록 하자." 

그는 이 권고를 좀 더 자세히 설명하기 위해서 자기 자신도 여기에 포함하고 있다. 

"…말자." 이것은 마치 "이것은 나로서도 반대해왔던 것이니 너도 그걸 포기하도록 하라.  

대신 남의 실천을 단죄하는 대신에 우리 자신의 경우를 드려다 보고 도리어 부딪힐 것이니 거칠 것으로 형제 앞에 두지 아니할 것을 판단하라.  

우리 형제가 넘어지게 하는 계기가 될 것을 행하지 않도록 조심하자.

(1) 우리 형제에게 슬픔을 주지 않도록 조심하자. 

"마음이 약해서 그런 음식을 먹는 건 부적당하다고 생각하는 자는 자기 생각에 금한다고 보는 율법을 준수하는 마음과 그대가 그걸 범함으로 그대 영혼이 해를 본다고 생각하기에 갖는 그대 영혼에 대한 관심 때문에 그는 그대가 그걸 먹는 걸 보고는 몹시 괴로워하는 것이다. 특별히 그대가 그대의 약한 형제에게 만족을 주려는 생각에서 상냥하게 나오지 않고 고의적으로 나올 때 그러하다." 

그리스도인들은 서로를 슬프게 하거나 그리스도의 소자(小者)등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일을 저지르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마 18:6,10)

(2) 우리 형제에게 죄책을 주지 않도록 조심하자. 

"거칠 것" 곧 우리 형제를 깜짝 놀라게 하며 크게 실망케 하는 것이요 이것은 "넘어지게 하는 계기"(프로스콤마 에 스칸달론, 14:13)다. 

"네 약한 형제가 순전히 네 본을 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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