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삿17장 [[503, 세상 모두 사랑 없어] ===미가 집의 제사장...이름으로만이 아닌, 그 마음 중심에 주님의 참 믿음-사랑-소망으로 순종함의 행위가 있는가.. 1. 에브라임 산지에 미가(=미카예후..누가 하나님과 같으랴)라 이름하는 사람이 있더니 2. 그의 어머니에게 이르되 어머니께서 은 천백을 잃어버리셨으므로 저주하시고 내 귀에도 말씀하셨더니 보소서 그 은이 내게 있나이다 내가 그것을 가졌나이다 하니 그의 어머니가 이르되 내 아들이 여호와께 복 받기를 원하노라 하니라 3. 미가가 은 천백을 그의 어머니에게 도로 주매 그의 어머니가 이르되 내가 내 아들을 위하여 한 신상을 새기며 한 신상을 부어 만들기 위해 내 손에서 이 은을 여호와께 거룩히 드리노라 그러므로 내가 이제 이 은을 네게 도로 주리라 4. 미가가 그 은을 그의 어머니에게 도로 주었으므로 어머니가 그 은 이백을 가져다 은장색에게 주어 한 신상을 새기고 한 신상을 부어 만들었더니 그 신상이 미가의 집에 있더라 5. 그 사람 미가에게 신당이 있으므로 그가 에봇과 드라빔을 만들고 한 아들을 세워 그의 제사장으로 삼았더라 6. 그 때에는 이스라엘에 왕이 없었으므로 사람마다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7. ○유다 가족에 속한 유다 베들레헴에 한 청년[모세의 손자 요나단, 곧 그의 아비는 게르솜]이 있었으니 그는 레위인으로서 거기서 거류하였더라 8. 그 사람이 거주할 곳을 찾고자 하여 그 성읍 유다 베들레헴을 떠나 가다가 에브라임 산지로 가서 미가의 집에 이르매 9. 미가가 그에게 묻되 너는 어디서부터 오느냐 하니 그가 이르되 나는 유다 베들레헴의 레위인으로서 거류할 곳을 찾으러 가노라 하는지라 10. 미가가 그에게 이르되 네가 나와 함께 거주하며 나를 위하여 아버지와 제사장이 되라 내가 해마다 은 열과 의복 한 벌과 먹을 것을 주리라 하므로 그 레위인이 들어갔더라 11. 그 레위인이 그 사람과 함께 거주하기를 만족하게 생각했으니 이는 그 청년이 미가의 아들 중 하나 같이 됨이라 12. 미가가 그 레위인을 거룩하게 구별하매 그 청년이 미가의 제사장이 되어 그 집에 있었더라 13. 이에 미가가 이르되 레위인이 내 제사장이 되었으니 이제 여호와께서 내게 복 주실 줄을 아노라 하니라 ----------- -----모세의 아들 게르솜(거기서 객/나그네 되었다), 게르솜의 아들 요나단(여호와께서 주셨다) :: 즉, 모세 사후 2세대 지난 시점에, 에브라임 산지 미가의 제사장이 되었다...아마도 요나단의 모친이 유다 지파여서 거기 친족들과 함께 오래 머물렀었거나, 어떤 일로 인해 거기 오래 머물렀었다고 봐야 하리라------ ((본래 그핫족속이기에, 모세의 손자 요나단에게 있어서 할당받은, 합당한 그의 거처는 <에브라임 지파 =에브라임 산지> 세겜, 게셀, 깁사임, 벧호론...<단지파> 엘드게, 깁브돈, 아얄론, 가드 림몬, <므낫세 반지파> 다아낙, 가드 림몬...이라야 했는데, 어떤 이유에서였든지...유다 베들레헴에 [장기간!!] 거류하고 있다가 떠나서 거류할 곳을 찾아...에브라임 산지, 미가의 집에 이르게 되었다..)) <수21:20-26>레위 사람인 그핫 자손 중에 남은 자들의 가족들 곧 그핫 자손에게는 제비 뽑아 에브라임 지파 중에서 그 성읍들을 주었으니...곧 살인자의 도피성 에브라임 산지 세겜과 그 목초지이요 또 게셀과 그 목초지와...깁사임과 그 목초지와 벧호론과 그 목초지이니 네 성읍이요...또 단 지파 중에서 준 것은 엘드게와 그 목초지와 깁브돈과 그 목초지와...아얄론과 그 목초지와 가드 림몬과 그 목초지이니 네 성읍이요...또 므낫세 반 지파 중에서 준 것은 다아낙과 그 목초지와 가드 림몬과 그 목초지이니 두 성읍이라...그핫 자손의 남은 가족들을 위한 성읍들은 모두 열 성읍과 그 목초지들이었더라 ------ ...... 본문인 사사기 17장은 사사 시대 미가의 집에서 일어난 일들의 기록인데, ‘신앙의 기준이 없다’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가? 를 보여 줍니다. 그것을 사사기는 한마디로 “그때에는 이스라엘에 왕이 없었으므로 사람마다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삿 17:6) 라고 하였습니다.... 상당한 부자였던 미가의 어머니나 미가가 의도적으로 하나님을 부인하거나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지는 않았습니다. 오히려 하나님 앞에서 거룩하려고 했고 하나님이 복을 주시기를 갈망하였습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하나님께서 진노하실 일만 골라서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하여 너무나 무지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미가의 어머니가 거액의 돈을 잃었다가 되찾았을 때, 그 돈으로 신상을 만들면서, “내 손에서 이 은을 여호와께 거룩히 드리노라” (:3)라고 말했습니다. 또 하나님께 제사할 신당을 자기 집에 두고 제사할 도구로 에봇과 드라빔을 만들고 자기 아들 중 하나를 제사장 삼으려 하다가 (:5) 나그네된 레위인 소년을 만나 자기 집의 제사장으로 고용하였습니다.....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없었다면 이렇게 했을 리가 없는 것입니다. 그렇게 우상을 만들고 마음대로 자기 집 안에 제사장을 세우고는 “이제 여호와께서 내게 복 주실 줄을 아노라” (:13) 좋아했습니다. 이런 신앙생활이 무서운 것입니다. 열심은 있는데 말씀이 없는 것입니다. 이런 신앙에 대하여 호세아 선지자가 탄식했습니다. 호 4:6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 네가 지식을 버렸으니 나도 너를 버려 내 제사장이 되지 못하게 할 것이요 네가 네 하나님의 율법을 잊었으니 나도 네 자녀들을 잊어버리리라" 미가 집 사람들의 죄는 세상 사람들이 자기들의 신을 섬기는 방식대로 하나님을 섬겼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의 영적 상태였다는 말인데, 가나안 땅에 들어갔던 부모 세대가 자녀 세대들에게 제대로 신앙을 전해 주지 못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도, 하나님께서 지시하신 말씀도 모르는 후손들은 세상 방식으로 살 수 밖에 없었고 영적으로도 타락할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의 가정이 이런 영적인 형편에 처해 있습니다. 사사기 17장에 나오는 미가라는 이름 대신 우리 이름을 넣어도 무방합니다. 사사기를 읽는 우리에게 주님은 “너의 삶은 어떠냐? 나는 너의 지금에 관심이 있다”고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기를 원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함은 없다면 미가 집 안과 같은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영적 타락은 당시 하나님의 말씀을 맡고 제사의 직무를 감당하였던 레위인들의 타락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고 먹고 살 길을 따라 움직이고 돈을 받고 한 개인의 제사장이 되어 버리는 수준이었으니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 수 없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지금도 목회자들의 타락이 너무나 마음 아픕니다. 결국 한국 교회의 문제는 목회자의 문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한국 교회 목회자를 위한 기도는 너무나 막막하고 답답하기만 합니다. 그렇지만 포기하면 안됩니다. 바실래아 슈링크가 말했습니다. "당신의 기도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자복하고 회개하지 아니한다면 이는 주께서 당신으로 하여금 통회하고 자복하기를 기다리고 계신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종 한사람이 회개할 때마다 그가 섬기는 사람들도 역시 회개로 인도됩니다." 중보기도는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과 연합되어 기도대상자를 자기 자신으로 여기고 자기 문제로 여기며 기도하는 것입니다. 아무 죄 없으신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우리 죄를 지시고 죽으신 것은 우리도 죄된 사람과 그의 문제와 연합하여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그 전제는 우리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 앞에서 우리 자신이 먼저 정결한 사람으로 서는 것입니다. 거룩하신 주님과 연합한 상태가 우리의 기도의 상태가 될 때 주님은 우리 기도를 통해 역사하실 것입니다. 사사기 당시 종교지도자들과 일반 백성들의 삶이 말할 수 없이 타락하였지만 하나님 아버지는 돌이킬 기회를 주고 계십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포기하지 않으시는 사랑이 오늘 우리에게 있는 소망의 근거입니다. 하나님의 인내가 우리로 하여금 돌이킬 기회가 됩니다. "하나님, 오늘 우리가 회개해야할 그것을 친히 가르치시고 지적하여 주십시오. 회피하지 않게 하십시오. 정직하게 조목조목 회개할 수 있게 하십시오" -----------
KJV]제17장 1. And there was a man of mount Ephraim, whose name was Micah. 2. And he said unto his mother, The eleven hundred shekels of silver that were taken from thee, about which thou cursedst, and spakest of also in mine ears, behold, the silver is with me; I took it. And his mother said, Blessed be thou of the LORD, my son. 3. And when he had restored the eleven hundred shekels of silver to his mother, his mother said, I had wholly dedicated the silver unto the LORD from my hand for my son, to make a graven image and a molten image: now therefore I will restore it unto thee. 4. Yet he restored the money unto his mother; and his mother took two hundred shekels of silver, and gave them to the founder, who made thereof a graven image and a molten image: and they were in the house of Micah. 5. And the man Micah had an house of gods, and made an ephod, and teraphim, and consecrated one of his sons, who became his priest. 6. In those days there was no king in Israel, but every man did that which was right in his own eyes. 7. And there was a young man out of Bethlehemjudah of the family of Judah, who was a Levite, and he sojourned there. 8. And the man departed out of the city from Bethlehemjudah to sojourn where he could find a place: and he came to mount Ephraim to the house of Micah, as he journeyed. 9. And Micah said unto him, Whence comest thou? And he said unto him, I am a Levite of Bethlehemjudah, and I go to sojourn where I may find a place. 10. And Micah said unto him, Dwell with me, and be unto me a father and a priest, and I will give thee ten shekels of silver by the year, and a suit of apparel, and thy victuals. So the Levite went in. 11. And the Levite was content to dwell with the man; and the young man was unto him as one of his sons. 12. And Micah consecrated the Levite; and the young man became his priest, and was in the house of Micah. 13. Then said Micah, Now know I that the LORD will do me good, seeing I have a Levite to my priest. ==== 사사기 17장 (개요) 본 장을 비롯해 본서의 나머지 이야기는 모두 해설자의 설명이 종종 보여 주듯이, 삼손 이후에 되어진 일이 아니라, 삼손보다 훨씬 전에, 심지어는 여호수아가 죽은 직후 엘르아살의 아들 비느하스 시대(20:28)의 이야기를 말해 준다는 데에 모든 학자들은 의견을 모으고 있다. 그러나 사사들의 역사를 일괄적으로 기록하기 위해 여기서 비로소 그 이야기들이 나오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앞부분에서 사사들이 다스렸던 시대가 얼마나 행복했나를 알 수 있게 된다. 17장에서 21장에 이르는 사사기 나머지의 이야기는 대강 다음과 같다. 1. 사사들이 사라지자마자 미가의 집에서 우상 숭배가 행해지기 시작했다(17장). 2. 이것은 곧 단 지파에까지 퍼졌다(18장). 3. 베냐민 지파의 기브아에서 범죄가 행해졌다(19장). 4. 그 때문에 베냐민 지파는 전멸당하게 되었다(20장). 5. 그러고 나서 그 지파를 다시 복구시키기 위해 괴상한 작전이 행해졌다(21장). 그러므로 정부를 가지고 있는 오늘날 우리들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자들이다! 17장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에브라임 산지에 사는 미가가 그의 신상을 만들었다(1-6). 2. 그의 제사장으로 한 레위인을 맞아들였다(7-13) -------- 미가의 우상 숭배(삿 17:1-6) Ⅰ. 미가와 그의 어머니 사이에 불화가 있었다. 1. 아들이 어머니의 돈을 훔친 것이다. 이 늙은 여인은 근근이 생활해 가면서 오랫동안 저축해 은 1천1백이나 되는 많은 돈을 모았다. 아마도 이 돈은 그녀가 죽은 후 아들에게 남겨 주려고 한 것인 듯싶다. 그리고 그동안 그 돈을 잘 보관하고 또 세어 보았을 것이다. 이 젊은 아들에게는 제사장이 될 만한 연령의 아들이 있었던 것을 보면(5절), 그는 아이들과 함께 가정을 이루고 있었던 것 같다. 그는 그의 어머니가 죽을 때까지 그 돈을 기다리고 있을 수가 없었고 어머니보다 자기가 더 돈이 필요할 것이라고 생각해 어머니만 알고 있던 장소에서 몰래 돈을 빼냈다. 돈이 필요한 자식에게 인색함으로써 아들이 부모의 죽음을 바라게 되는 것은 부모의 잘못이긴 하지만, 부모로부터 훔치려는 나쁜 생각과 부당한 방법으로라도 부모의 것을 모두 자기 것으로 만들 수 있다는 사악한 생각은 결코 용서받을 수 없다. 2. 그 어머니는 그 아들 혹은 돈을 가져간 자를 저주했다. 그녀는 자기 아들을 더 의심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녀가 저주를 퍼부을 때는, 그의 아들이 있는 곳에서 매우 크게, 그리고 매우 분노에 가득 찬 목소리로 말해 그 아들을 괴롭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돈을 사랑하는 일이 얼마나 큰 재앙을 초래하며 가족의 의무와 평온을 어떻게 파괴하는가를 보라. 미가로 하여금 불효한 자식이 되어 돈을 훔치게 한 것은 돈을 사랑하는 마음 때문이었고, 그의 어머니로 하여금 아들에 대한 애정을 버리고 그를 저주하게 한 것도 바로 돈 때문이었다. 선한 사람은 그들이 물건을 잃어버렸을 때에 기도를 하나, 악한 사람은 저주를 퍼붓는다. 그녀의 은은 신상을 위해 내놓기 전에도 이미 그녀에게 신이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녀가 돈을 잃었다고 해서 관대하고 경건하라는 율법을 잊어버릴 만큼 또 어길 만큼 그렇게 저주를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횃불을 던지며 살을 쏘아서 사람을 죽이는 미친 사람”처럼(잠 26:18) 저주를 마구 퍼붓는다는 것은 매우 어리석은 일이다. 그 저주가 바로 그들이 가장 아끼는 사람에게 내려질는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Ⅱ. 미가와 그의 어머니는 화해했다. 1. 아들은 어머니의 저주에 두려움을 느껴 돈을 돌려주었다. 비록 그는 그 돈을 훔쳐야 할 정도로 어머니로부터 충분한 도움을 받지 못했지만, 어머니의 저주를 듣고도 그 돈을 갖고 있으려고 하지는 않았다. 그가 어머니의 돈을 가졌다는 것을 변명하지도 않았고 주인이 주장하는 돈을 구태여 계속 지니고 있으려고 하지도 않았다. 악을 행하지 않는 것이 가장 좋으나, 일을 저질렀을 때는 회개하고 그것을 올바로 돌려주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다. 어린아이들로 하여금 부모가 기도로써 그들을 책하는 것을 두려워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아무 이유 없이 저주가 나오는 것이 아니지만, 그것이 아주 고상치 못하고 분노에 가득 찬 것일 때라면 그 저주는 마땅히 두려운 것이기 때문이다. 2. 아들이 회개하자 어머니는 매우 기뻐하며 그 저주를 거두어들였다. 뿐만 아니라 그 아들의 번영을 위해 기도드렸다. “내 아들이 여호와께 복 받기를 원하노라.” 잘못을 저지른 자가 솔직하게 고백하고 잘못을 뉘우쳤을 때, 우리는 잘못을 계속 꾸짖고 비난하기보다는 회개한 그들을 칭찬해 주어야 한다. Ⅲ. 미가와 그의 어머니는 그 돈으로 신상을 만들기로 결정해 그의 집안에 우상을 세워 놓게 되었다. 이들은 여호수아와 그보다 오래 산 장로들이 죽은 이후 하나님에게 반기를 든 첫 번째 이스라엘 사람이었다. 그러므로 이 일이 특별히 언급되었다. 비록 이들이 형상을 만든 것은 참된 하나님을 숭배하기 위한 일이라 하더라도, 이것은 제2계명에 어긋나는 일이며, 다른 신들 곧 바알이나 수풀과 같은 것을 섬길 수 있는 문을 열어 놓게 되어, 결과적으로 첫째되며 가장 중요한 계명을 범하게 된 것이다. 여기서 다음의 사실을 살펴보자. 1. 그 어머니가 이 일을 생각해 냈다. 그녀는 돈을 잃기 전부터 그것을 여호와께 드리기로 마음먹고 있었기에, 아들이 돈을 훔쳐 갔을 때 매우 슬퍼하면서 그렇게 저주를 퍼부은 것 같다. 돈을 잃고 난 후에 만일 그 돈을 되찾게 되면 그것을 하나님께 바치겠다고 맹세했으므로 하나님께서 그 맹세를 들으시고 은총을 베푸시어 다시 찾도록 해 주신 것같이 행동했다. 그러므로 돈을 찾았을 때 그녀는 “그것을 여호와께 거룩히 드리는” 것처럼 가장했다(3절). 그녀는 아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 돈은 내 것이지만, 네가 마음을 두고 있었다. 그러나 이제 이것을 우리 둘 다 가지지 말고 우리의 믿음을 위해 형상을 만들기로 하자.” 만일 그녀가 진정 하나님을 영예롭게 하기 위해 이 돈을 사용했다면 이것은 그들 사이를 화목하게 하는 좋은 방법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실상 그들의 계획은 사악한 것이었다. 아마도 이 여자는 애굽으로부터 온 사람으로서, 거기에서 본 대로 형상을 만들려 했을 것이다. 그녀는 옛날의 어리석음을 되풀이하려 하고 있으며, 그녀의 아들에게는 이렇게 형상을 만들어 숭배하는 것이 옛날에 있었던 믿음의 한 형태였다고 말했을 것이다. 2. 그 아들은 어머니의 계획에 응했다. 그는 제2계명을 알고 있었으므로 어머니가 처음 이 일을 제안했을 때 주저했을 것이다. 그래서 어머니가 아들을 위해 형상을 만들겠다고(3절) 말했을 때, 그는 그 형상을 만드는 것을 꺼려 돈을 어머니에게 돌려주었다. 그녀는 주저하는 아들을 나무라면서 그 돈을 주조자에게 주어 새긴 상과 부어 만든 상을 만들게 했다(4절). 그러나 상이 만들어졌을 때 어머니의 권유대로 그는 그 일에 찬성했을 뿐만 아니라, 매우 기뻐하며 그 일을 행했다. 이상하게도 사람들은 이렇게 우상 숭배에 몰두하게 되고 “조상에게 물려받은 행실”로 해서(벧전 1:18; 렘 44:17) 우상 숭배는 더욱 확고히 굳어진다. 미신에 대한 마음뿐 아니라 그녀의 욕심 또한 얼마나 큰지를 살펴보자. 그녀는 신상을 만들기 위해(3절) 은 1천1백을 다 바치기로 했으나, 그 신상은 그의 5분의 1도 채 못 되는 2백 세겔로 완성되었다(4절). 그녀는 그만한 돈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사실 거짓 선생인 형상을 만드는 데는 이 돈도 너무 많이 들인 셈이다. 만일 이것이 진정 하나님께 영광 돌리기 위한 것이었다면, 그녀는 그만한 돈도 아까워 내려 하지 않았을 것이며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경우에서처럼 그렇게 하는 일이 모욕이라 생각해 몹시 분노했을 것이다. 다음 사실을 관찰해 보자. (1) 신상을 통해서 어떤 악행이 저질러졌는가?(5절) 미가는 신당 또는 하나님의 집(70인역은 그렇게 되어 있다)을 가지게 되었다. 그는 그 신당이 실로에 있는 것만큼 훌륭하다고 생각했다. 아니 자기가 고안했고 자기의 것이므로 그것보다 더 좋다고 생각했다. 사람들은 이처럼 그들 자신이 만든 종교를 좋아하며, 자기 마음대로 그것을 다스리려 한다. 그러나 시리아역에 해석된 대로, 이것은 실상 오류의 집이었다. 이것은 참된 진리의 길에서 벗어나서 모든 거짓된 것들을 끌어들였다. 우상 숭배는 커다란 속임수이며 가장 악한 행위다. 그가 처음부터 계획했던 일인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그는 우상 숭배의 형식에 있어서 하나님의 신탁과 그 규례를 모두 모방했다. ① 미가의 신탁. 그의 신전 안에 드라빔이라는 작은 형상을 만들어 놓고는, 일이 있을 때면 그 형상과 의논하고 정보를 전해 듣고 그것이 지시하는 대로 행했다. 우림과 둠밈은 방백과 백성에게 판결을 일러 주었다면, 이 드라빔은 그의 가족들에게 판결을 알려 주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지배하고 계시므로 거짓 신상들로 하여금 대답을 하도록 만드셨고, 그들로 하여금 악마를 의존케 하고 거기에 봉사하도록 하신다는 것을 알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을 영예롭게 하는 것처럼 했지만(3절), 미가의 제도는 이스라엘 사람들을 철저하게 마귀를 숭배하도록 만들었다. ② 미가의 규례. 그는 종교의식을 거행하기 위해 그의 집안에 장소를 만들어 그것을 하나님의 집 또는 성전이라고 지정해 놓았다. 그는 또한 여기에 그의 맏아들로 보이는 한 아들을 제사장으로 세우고 하나님의 성전에서 행해지는 형식을 본떠 에봇 곧 제사장의 예복을 만들어 입혔다. 신상을 만들어 그것을 숭배하는 자가 그의 마음대로 제사장을 세워 일을 행한다는 것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본문에는 이 은으로 만든 신상들을 영예롭게 하기 위한 어떤 제단이나 제물, 향과 같은 것들에 대해서는 아무 언급도 없지만, 그가 드라빔을 세운 목적이 라반과 같지 않는 한(라반이 드라빔을 세운 까닭은 충고를 얻기 위한 것이었지 그것을 숭배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제사장을 세운 것으로 보아 이런 것들도 물론 갖추어 놓았을 것이다. 그러나 우상 숭배를 시작하는 일은 다른 죄악과 마찬가지로 “물이 새는 것 같아”(잠 17:14), 둑을 부수고 홍수를 이루게 된다. 이래서 이제 우상 숭배가 시작되었고 그것은 전염병처럼 번져 나갔다. 라이트푸트 박사는 다음과 같은 사실에 우리의 주목을 끌게 했다. 우상을 만드는 데 바쳐진 은 1천1백은 삼손을 파멸시키기 위해 블레셋 방백이 사용한 은 1천1백과 마찬가지로 종교를 타락시켰고, 특히 삼손의 지파였던 단 지파 내에서(이에 대해서는 곧 알게 될 것이다) 더욱 심한 타락을 초래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2) 이렇게 타락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그 때에는 이스라엘에 왕이 없었다.” 또 사사나 군주들도 없었으므로 이렇게 상을 만들어 세우는 자들을(물론 이 일은 곧 널리 퍼졌을 것이다) 제재하여 우상들을 부숴 버리도록 명할 자도 없었다. 또한 미가의 이 잘못을 충고하거나 벌 주는 자도 없었기 때문에 이 일은 전염병처럼 삽시간에 번져 나갔다. 그러므로 사람마다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6절) 행했고, “하나님이 보시기에 악한” 일을 행했다. 그들에게 다스리는 왕이 없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집을 저버리게 되었고 제사장을 중히 여기지 않았으며, 모든 것들이 멸망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다. 정부가 있다는 것은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인해 감사해야 한다(딤전 2:1, 2). 이처럼 정치적 통치와 신앙의 사역, 이 두 가지 제도를 올바로 이루어 나가는 것보다도 더욱 하나님께 대한 믿음을 굳건히 세워 주는 것은 이 세상에 없다. ------ 미가의 제사장(삿 17:7-13) 미가는 그의 재산을 상속받을 아들이 제사장의 직책을 맡기에는 너무 아깝다고 생각했기 때문인지 또는 하나님의 지파가 아니므로 이 일을 맡기에는 부족하다고 생각해서였는지 한 레위인을 그의 제사장으로 삼았다. 다음의 문제를 살펴보자. Ⅰ. 어떻게 이 레위인이 미가의 집까지 오게 되었는가? 어머니가 유다 사람이었으므로 어머니의 친족들과 함께 베들레헴에 살고 있었거나(베들레헴은 레위인의 성읍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아니면 어떤 일로 해서 여행자로서 그곳에 머무르게 되었을 것이다(7절). 그러나 그는 다시 “거할 곳을 찾으러” 그 곳에서부터 나와 돌아다니다가 에브라임 산지에 있는 미가의 집까지 오게 되었다(8절). 1. 베들레헴에서 학대와 모욕을 당했거나 무시당하고 굶어 죽게 된 그가 하는 수 없이 다른 곳으로 가게 되었으므로, 그것은 매우 유감된 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하나님은 전에는 레위인에게 풍족한 식량을 주셨다. 그러나 백성들은 그들에게 나누어 주어야 할 식량을 자기네들이 차지하고서 레위인들을 돕지 않았다. 레위인들은 곤경에 처하게 되었고 아무도 그들을 돌보아 주지 않았다. 이스라엘인이 레위인을 저버리기 시작했을 때 그들은 하나님에게도 소홀해졌다. 그래서 그들은 그런 일에 대한 경고를 받아야 했다(신 12:19). 하나님의 훌륭한 종들이 무시되고 식량난에 허덕인다는 것은 믿음이 쇠퇴해 가고 있다는 증거다. 그러나, 2. 그가 떠돌아다니기를 좋아해 살던 곳과 친구들을 저버리고 돌아다니면서 행운이나 만나기를 즐겨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이라면 그것은 그의 잘못된 생각이었고 어리석은 짓이었다. 만일 그의 잘못으로 인해 여기 오게 된 것이 아니라면 그 레위인이 그 곳을 떠날 정도로 가난하게 되었다고는 상상할 수가 없다. 사정이 그렇게 허락하지 않아 그 곳을 떠나게 된 자는 마땅히 불쌍히 여겨져야 하나, 그 곳에 머무를 수 있는 조건인데도 있으려 하지 않는 자는 벌을 받아야 한다. 우리는 보통 정착하지 않게 되면 끊임없이 불안을 느끼는데, 이스라엘인이, 특히 레위인이 떠돌아다니기를 좋아했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Ⅱ. 미가는 레위인 제사장에게 무엇을 약속해 주었는가? 만일 미가가 그의 아들을 제사장으로 세우는 데 그리 만족하지 못했다면, 레위인을 구하러 자신이 나가거나 누구를 보냈을 것이다. 그러나 레위인은 제 발로 걸어왔다. 그리고 우상 숭배하는 일에 대해 별로 관심이 없는 듯이 보였다. 아마도 그는 마을에 와서 미가의 집에 “신당”이 있는데, 거기에 “새겨 만든 상과 부어 만든 상을” 두고 섬긴다는 이야기를 들었는지도 모른다. 만일 그가 레위인다운 기풍을 지니고 있었다면, 그가 미가에게로 왔을 때 우상 숭배하는 일이 어떻게 하나님의 율법에 어긋나는 일이며 이 일에 대해 하나님의 심판이 있으리라는 것을 말하며 미가를 책망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오히려 야비하고 타락한 지파의 자손처럼 그 곳으로 와서, “너희 집에서 레위인으로서 일할 것이 있느냐? 나는 지금 할 일이 없으며 거할 곳을 찾고 있노라”라고 말했다. 그가 원하는 것은 단지 식량이었지 훌륭한 일을 하는 것은 아니었다(9절). 미가는 그를 집으로 끌어들여(10절) 다음과 같은 것을 약속해 주었다. 1. 높이 세워 주었다. “나를 위하여 아비와 제사장이 되라.” 비록 그가 젊은이였고 문에서 만난 자였지만, 그가 제사장이 되어 주면, 하인이 아니라 조상같이 받들겠다는 것이다. 미가는 그가 제사장이 될 자격이 있는지, 그가 최근에 어떻게 지냈는지조차 묻지 않았다. 비록 그가 레위인이긴 했지만 그가 나쁜 성격을 지닌 자라면 미가의 가정에 피해를 주고 불명예를 남기게 된다는 것도 고려하지 않았다. 단지 미가는 그 레위인이 아주 대담한 방탕자였더라도, 르호보암의 제사장이 된 “보통 백성”(왕상 12:31)처럼 이 신상을 섬기는 제사장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우상을 섬기는 자가 자기 마음대로 제사장을 세우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2. 생활비를 약속해 주었다. 미가는 아마 그에게 (난외에 있는 것과 같이) “식량과 음료와 평상복과 양복 한 벌”을 주었을 것이다. 평상복은 평일에 입도록, 양복은 거룩한 날에 입도록 하고 1년간 쓸 돈으로 10세겔을 약속했다. 그러나 이것은 성스러운 일을 행하는 레위인에게 하나님이 마련해 주시는 것에 비해 너무도 빈약한 보수였다. 하나님의 사업을 저버린 자에게는 유익한 일이 없을 것이며 좋은 주인도 만나지 못할 것이다. 교역은 가장 훌륭한 직책이나 이 세상에서는 가장 불리한 직업이다. Ⅲ. 레위인은 미가와 함께 있기로 했다(11절). 그는 “미가와 함께 거하기를 만족히 여겼다.” 비록 그가 행해야 할 일은 미신적인 것이었고 그의 보수는 수치스러운 것이었으나, 이에 대해 아무런 불평도 하지 않았고 그가 그렇게 좋은 집에 거하게 된 것을 행복하게 여겼다. 미가는 마치 레위인에게 그의 건물을 주고 이 성전을 기증하는 것처럼 행해 거기에서 일할 자를 임명했을 뿐만 아니라 아무런 자격도 갖추지 않은 레위인에게 모든 의식을 맡겼다. 그리고 그는 이 레위인을 조상같이 존경해 주었고 아들같이 자비를 베푸는 듯이 대해 주었으나, 실지 그에게 주는 보수에서는 매우 인색했다. Ⅳ. 미가는 이 일을 행한 것을 만족하게 여겼다(13절). “이제 여호와께서 내게 복 주실 것을 아노라” (그는 이 새로운 신당으로 인해서 이웃 사람들에게 명성을 얻게 되고 그 제단에 모이는 돈을 나누어 가짐으로써 이익을 보리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아니 그보다도 하나님께서 그가 한 일을 기쁘게 여기시어 복을 내려주실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레위인이 내 제사장이 되었기 때문이니라.” 1. 미가는 레위인이 그의 문에 들어서게 된 것은 하나님께서 그와 그의 신상에 은총을 베푸신 증거라고 믿었다. 이렇게 환상에 잡혀 있는 자들은, 하나님의 섭리가 예기치 못했던 일을 베풀어 줌으로써 그들을 더욱 악한 길로 들어서게 하지만, 그것을 보고 하나님께서 자기들의 소행에 기뻐하고 계시는 것이라고 생각하기가 쉽다. 2. 미가는 새기고 주조해 만든 신상을 여전히 갖고 있으면서도, 자기의 제사장 제도에 잘못되었던 점들이 모두 수정되어 아주 잘 되었다고 생각했다. 많은 사람들이 일부분만 시정해 놓고는 모든 것이 바로 고쳐진 듯 자신을 속이고 있다. 그들은 한 가지 잘못을 고침으로써 나머지 것들이 속죄되는 것처럼 착각하며, 이전에도 그리 잘못된 것은 아니나 이제 일부를 고쳐 아주 완전하게 모든 것을 바로잡아 놓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3. 그는 레위인을 제사장으로 세운 것이 매우 칭찬할 만한 일이었다고 생각했으나, 이것이야말로 퍽 가증스러운 일로서 하나님을 노하시게 만드는 것이었다. 자만과 무지와 아첨으로 가득 찬 사람들은 거룩한 특권을 침해하고 이에 대해 아주 불경스러운 일을 행했으면서도 그것을 정당화할 뿐만 아니라 찬미하고 신성시하기까지 한다. 미가는 자신만만해 “이제 내가 레위인을 끌어들여 내가 만든 신상을 섬기도록 만들어 놓았으니, 하나님이 나를 저주한다고 해서 내가 두려워하겠는가?” 하고 말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이런 일을 행하고서도 하나님께서 그에게 복을 내려 주시기를 바라고 있었다. 4. 미가는 그가 레위인을 그의 집에 데리고 있으므로 하나님께서 반드시 그에게 거룩한 은총을 내려 주실 것이라고 생각했다. 현세적인 사람들은 겉으로 드러난 특권을 내세우기 쉬우며, 그들이 경건한 믿음을 지닌 부모를 가지고 있고 열심히 기도하는 집안에 속하며 사회적으로도 좋은 직위를 갖고 있고 사역자들과 친밀한 관계를 갖고 있기 때문에, 분명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축복을 내려 주실 것이라고 단정해 버리기 쉽다. 그러나 그런 모든 것은 레위인으로 자기들의 제사장을 삼고 있는 것과 다를 바 없어서, 본인들이 선한 사람이 되고 자기들의 특권을 선용하지 않는 한, 하나님께서 복을 내려 주시리라는 것을 조금도 보장해 주지 못한다. ===호크마=== =====17:1 본장에서부터 시작되어 다음 장까지 연결되는 우상 숭배 및 제사장 사건은 그 정확한 발생 시기를 추정하기 어렵다. 그러나 대부분의 학자들은 이를 삼손 이후가 아닌 사사 시대 초기로 보는데 그 가운데서도 대개 사사 옷니엘(3:9 -11) 당시인 것으로 본다(keil, Wycliffe, Pulpit Commentary). 에브라임 산지 - 에브라임 지파가 차지하고 있었던 팔레스틴 중부의 구릉(丘陵) 지대를 가리킨다. 이곳에는 이스라엘의 정치, 종교의 중심지인 실로(Shiloh))및 벧엘(bethel)도 위치해 있다. 보다 자세한 내용은 3:27 주석을 참조하라. 미가 - 이 이름은 '미카예후'(* )의 단축형으로 그 뜻은 '누가 여호와와 같으리요'이다. 성경에는 서로 인물은 틀리나 이와 같은 이름을 소유하였던 자들이 여럿 나온다(삼하 9:12 ; 대상 5: 5 ; 대하 34:20 ; 느 10:11 ; 미 1:1). =====17:2 어미에게서 많은 돈을 훔친 미가가 그 어미의 저주의 말을 듣고 돈을 다시 되돌려 주는 장면이다. 어머니께서...저주하시고 - 여기서 '저주하다'에 해당하는 '알라'(* )는 본래 신에게 '탄원하다', '간청하다'는 뜻이다. 미가는 어미가 돈을 잃고서 신께 탄원한 이 같은 간구 자체에 어떤 주술적 신통력이 있는 줄로 굳게 믿고 있었다. 은 일천 일백 - 삼손을 유혹하는 대가로 들릴라가 블레셋 방백들에게서 받기로 약속한 돈의 액수와 동일하다. 16:5 주석 참조. 미가가 레위 소년에게 일년에 은 열을 주겠다고 약조한 것만 보더라도(10절) 이 은 일천 일백은 엄청난 금액이었음을 알 수있다. 내가 그것을 취하였나이다 - 미가는 어떤 용도를 위해서였는지 모르겠으나 처음에는 어미의 수중에서부터 거액의 돈을 훔치고서도 회개의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가 그 어미가 자기 돈을 훔친 도둑에게 저주하는 말을 듣고서야 비로소 이처럼 어미에게 돈을 돌려주며 자신이 도둑임을 자백했다. 고대 사회에서 저주는 하늘의 심판으로 여겨졌으며 단순히 입술을 통하여 난 소리가 아니라 마음에 원하는 것을 그대로 성취시켜 주는 대리자로 여겨졌다(J.V. Motyer). 그리고 다들 저주는 그에 상응하는 축복의 말을 함으로써 저주의 덫에서 풀려지게 되는 줄로 믿었다. 본절에서 미가의 어미가 '내아들이 여호와께 복받기를 원하노라'고 말한것도 그녀의 여호와 신앙에서 나온 말이 아니라 바로 이러한 고대의 주술적인 미신에서 비롯된 것이다. 한편 분명 이는 성경에서 가르쳐 주고 있는 저주의 개념과는 차이가 있다. 이에 대해서는 본장 1-6절 강해, '저주에 대하여' 및 신 28:15-19 강해 , '저주와 시련의 차이점'을 보다 참조하라. =====17:3 내가...여호와께 거룩히 드리노라 - 이처럼 미가의 어머니는 아들을 저주의 덫에서 풀어내기 위해 가증스러운 신상(神像)을 만들어 숭배하면서도, 그것을 여호와에 대한 간절한 신앙의 표현인 양 여겼다. 이는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를 복종치 않는' 행위이며(롬 1:23).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금수와 버러지 형상의 우상으로 바꾼' 가증스러운 범죄였다(롬1:23). 아뭏든 이것은 당시 이스라엘 백성이 얼마나 영적으로 무지하며 부패해 있었는가를 단적으로 보여 준다. 한 신상을 새기며 한 신상을 부어 만들 차로 - 우상이 하나인지 아니면 둘인지에 대해서는 학자들마다 견해가 다양하다. 여기서 '한 신상을 새기며'에 해당되는 '페셀'(* )은 돌이나 나무를 깍아 새긴 우상을 가리킨다(신 7;25). 그리고 '한 신상을 부어'에 해당되는 '마세카'(* )는 아론의 송아지 우상처럼 주조하여 만든 우상을 가리킨다(출 32:4). 이로 볼 때 미가의 어미는 분명 두 개의 우상을 만든 것처럼 보인다(Hervey). 그러나 이와 관련 4절에서 '그 신상'이라고 하여 단수로 표현되어있고 18:20, 30에서도 '새긴 우상'이라 하여 단수로 표현되어 있는 점에 의거하면 미가의 어미가 만든 우상은 하나 뿐이었던 것으로 보여진다(Cundall, Keil). 따라서 혹자는 이 양자의 견해를 절충, 미가의 어미가 먼저 은으로 주조한 뒤에 끌로 다듬고 조각하여 하나의 우상을 만들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아뭏든 그 우상은 암송아지 형상을하고 있었을 것으로 추측되는데 아론의 금송아지에서 힌트를 얻어 만들었을 것이다. 이스라엘 역사를 살펴보면 훗날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도 이러한 금송아지 형상의 우상을 만들어 단과 벧엘에 각각 하나씩 세운 적이 있다(왕상 12:28-30). 한편 대부분의 학자들은 아론 이후 이스라엘 백성들이 섬겨왔던 금송아지는 불가시적인 여호와를 가시적인 형상으로 구체화한 것으로 본다. 어쨌든 그 같은 행위는 하나님의 뜻에 어긋난 짓이었는데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였다. (1) 이것은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라'고 한 하나님의 계명을 어긴 것이다(출 20:4, 23 ; 신 4:16).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친히 천지 만물을 조성(조성)하신 분이긴 하나 그분은 그 어떠한 형상으로도 규정될 수 없는 참된 신이시다. 따라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같은 하나님을 지상의 어떤 피조물의 형상으로 나타낸것은 결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행위가 되지 못하였다. (2) 여호와를 송아지 형상으로 만든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와 하나님을 애굽의 아피스(Apis)신과 같은 여타 신들 중의 하나로 본 것이니 이는 일종의 불경죄(不敬罪)에 해당된다. 이에 관한 보다 자세한 내용은 출 32:4 주석을 참조하라. =====17:4 어미가 그 은 이백을 취하여... - 미가는 훔친 돈 은 일천 일백을 어미에게 돌려주었다. 그런데 레 6:5에 의하면 도적이 훔친것을 주인에게 돌려줄 때는 훔친 것에다가1/5가치를 더하여 돌려주도룩 되어 있다. 그래서 혹자는 본절에 언급되어 있는 은 200세겔은 미가가 은 일천 일백에 더하여 속죄금으로 지불한 바로 그 돈일 것으로 추정한다(Bertheau). 그러나 다른 이들은 이 은 200세겔은 미가가 어미에게 되돌려 준 은 일천 일백 가운데서 떼어낸 것일 뿐이라고 주장한다(#Cassel). 즉 그들은 레 5:24의 율법이 여기에 적용되지 않았다고 본 것이다(Keill). 전후 문맥상 이 두 견해중 보다 더타당한 견해는 후자로 볼 수 있다. 은장색 - 원어 '차라프'(* )는 '제련하는자', '세공하는 자'란 뜻이다. 곧 은을 재료로 하여 여러 가지 장신구나 물건을 만들어 내는 장인(匠人)을 의미하는 말이다. =====17:5 미가에게 신당이 있으므로 - 미가의 신당은 하나님의 법궤가 안치되어 있는 실로(수 18:1 ; 삼상 4:3, 4)에서 그리 멀지 않은 에브라임 산지에 있었다. 1절 주석 참조. 이것은 그 당시에 실로가 종교적 중심지로서의 역할을 감당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단적인 증거가 된다. 그리고 미가가 하나님의 성소 가까운 곳에서 이렇게 파행적으로 개인적인 신당을 소지했다는 것은 당시 이스라엘이 종교적으로 얼마나 문란했던가를 입증해 준다. 에봇과 드라빔을 만들고 - '에봇'(ephod)은 금실, 청색실, 자색실, 홍색실로 짜 어깨에 걸치는 의복으로 대제사장이 입는 예복이다(출 28:6-8). 그런데 이 에봇이 우상처럼 숭배된 것은 기드온 때이다(삿 8:27). 기드온은 미디안 사람에게서 전리품으로취한 모든 금으로써 에봇을 만들어 하나님의 놀라운 기적을 기념하려고 했는데 이러한 기드온의 선한 의도와는 달리 온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것을 음란히 섬겼던 것이다(삿8:27). 본문에서 미가가 다시 에봇을 만들어 우상 숭배에 사용한 것도 아마 그 같은 영향을 받았기 때문일 것이다. 한편 '드라빔'(teraphim)은 가정의 수호신 상으로서 고대로부터 근동 지방의 각 가정에서 숭배되던 우상이었다(창 31:19 ; 삼상 19:13, 16 ;왕하 23:24 ; 호 3:4, 5). 에스겔은 바벨론 왕이 점을 칠 때 이 드라빔을 사용했다고말하고 있으며(겔 21:21), 스가랴는 이 드라빔에서 거짓 예언이 발생한다고 지적했다(슥 10:2). 이로 볼 때 드라빔은 미가가 세운 제사장이 점을 치는데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든것 같다(Mattew Henry). 한 아들을 세워 제사장을 삼았더라 - 이스라엘의 제사장 제도는 하나님께서 친히 세우신 것으로서 레위 지파 아론의 자손들이 그 직분을 세습토록 되어있다(출 28:1). 그런데도 에브라임 사람 미가가 이처럼 독단적으로 자기 아들을 제사장으로 세운 것은 곧 하나님에 대하여 월권(越權) 행위를 저지른 것일 뿐 아니라 죽어 마땅한 대역죄를저지른 것이라 하겠다. 여기서도 우리는 당시의 타락한 이스라엘 사회의 한 단면을 엿볼 수 있다. =====17:6 그때에는 이스라엘 왕이 없으므로 - 이러한 표현은 이후에도 여러 차례 나타나는데(18:1 ; 19:1 ; 21:25) 여기에는 왕정 제도에 대한 긍정적 의미와 부정적 의미가 동시에 내포되어 있다. (1) 부정적 측면 : 당시 이스라엘에는 전민족을 통솔하는 정치지도자가 없었으나, 통치법(統治法)은 있었다. 그 통치법은 바로 율법이었고 입법자는하나님 당신 자신이셨다. 이는, 이스라엘의 궁극적 통치자는 하나님이시고 이스라엘은 응당 하나님의 율법에 순종하여 그 통치에 순응해야 함을 의미한다. 그렇게 할때 전백성의 결속은 자연히 이루어질 것이며 하나님의 보호하심은 늘 함께 하기 마련이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진 않고 단지 이방 나라들의 세속적 왕정(王政)제도를 통해 당면 과제들을 해결하고자 했던것이다. (2) 긍정적 측면 :시일이 흐르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인구가 늘어가고 그로 인해 여러 부차적 문제들이 증가함에 따라 하나님의 통치를 구체적으로 대행할 지도자가 실제적으로는 강력히 요청되었다. 왜냐하면 전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언약에 순종하여 자발적으로 한 마음 한 뜻으로 결집하기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하나님께서 더 잘 아셨기 때문이다(히4:15). 요컨데 이러한 요청에 따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 왕정을 허락하였으나, 당신의 우려하신 바대로 이스라엘의 왕정사(王政史)는 수많은 오점들로 얼룩지게 되었다. =====17:7 본절에서 13절까지는 미가가 자기 아들을 제사장으로 삼은 것(5절)을 폐기하고 대신 한 레위인 소년을 제사장으로 삼은 경위에 대하여 기록하고 있다. 유다 가족에 속한...레위인 - 모세의 율법에 따르면 레위인들에게는 여섯 도피성과 40여개의 성읍을 각 지파에서 떼어 주도록 되어 있다(민 35:6 ; 수 21:1). 그러나 사사기 시대는 정치적, 사회적, 종교적 무질서의 시대였기 때문에 이러한 규정이 제대로 시행될리가 없었다. 그래서 본래 유다 지파의 땅에 살고 있던 이 레위인 소년도 자신이 거할 적절한 장소를 물색하기 위하여 이곳 저곳으로 방랑 생활을 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와중에서 자신의 본분을 잘 지키지 못하고 생계의 방도를 찾기에만 급급했을 것이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말씀이 무시되고 율법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은시대에는 하나님의 사람들 역시 타락하거나 곤욕을 당하게 되기 마련이다(Matthew Henry). =====17:8 미가의 집에 이르매 - 한때 베들레헴에 우거하던 이 레위인은 베들레헴을 떠나 에브라임 산지로 여행하던 중 우연히 미가의 집에 이르게 된다. 아마도 미가의 신당은큰 길가에 있어서 여행자들의 눈에 쉽게 띄었는지도 모른다. =====17:9 유다 베들레헴의 레위인으로서 - 베들레헴은 본래 레위인들에게 할당된 성읍들 중에 하나가 아니다. 그러므로 이 레위인 소년이 베들레헴에서 살게 된 것은 자신들에게 할당된 땅이 당시 블레셋의 치하에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Goslinga). 그러나 혹자는이를 근거로 하여 그가 레위인이 아니었으며 다만 레위인과 같은 역할을 베들레헴에서 행했을 뿐이라고 주장한다(Cundall). 그러면서 이에 대한 실증적인 예를 들기를 사무엘은 에브라임 태생이지만(삼상 1:1) 실로의 성전에서 제사장의 교육을 받아 레위인의 반열에 오르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는 잘못된 주장이다. 왜냐하면 사무엘의 아버지 엘가나는 분명 레위 지파 중 고핫 가문의 사람이니 그 아들 사무엘도 당연히 레위인이 되기 때문이다(대상 6:16-34). 따라서 우리는 본절에 나오는 소년도 레위인임이 분명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사실 만일 이 소년이 베들레헴에서 교육을 받아 레위인행세를 했다면 굳이 그가 베들레헴을 떠났을 이유가 없다. 또한 그가 단지 레위인으로서의 역할만 행했던 비레위인이었다면 미가가 자기 아들을 폐위하고 대신 그를 제사장으로 세우지도 않았을 것이다. 미가가 그를 제사장으로 세우고 지극히 만족할 수 있었던 것은 어디까지나 그가 바로 율법에 정한 그 레위인이었기 때문임에 틀립없다(11-13절). =====17:10 나를 위하여 아비와 제사장이 되라 - 여기서 '아비'는 '우두머리'란 뜻으로 남을지도하며 권고하는 위치에 있는 자를 높여 칭하는 말이다(Hrvey, Gosilinga). 창 45:8에서는 요셉에게, 왕하 6:21에서는 엘리사에게, 그리고 사 22:21에서는 엘리아 김에게이 '아비'라는 호칭이 사용되었었다. 반면 이에 상대적인 용어는 '아들'인데 이것은피교육자를 지칭하는 것이다(왕하 8: 9 ; 잠 4:10, 20). 한편 예수님께서는 '땅에 있는 자를 아비라 하지 말라'(마 23:9)고 하셨는데 이것은 하나님보다 인간을 높이는 자들을 경계하기 위한 가르침이다. 한편 본절에서 '아비'와 '제사장'이란 말은 서로 밀접한 관계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 '제사장'(코헨, * )이라는 말 속에는바로 시민의 지도자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는바(삼하 8:18 ; 20:26 ; 왕상 4:5 ; 대상 18:17 ; 욥 12:19 의미가 '아비'라는 개념 속에도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내가...주리라 - 일정한 거처 없이 생계에 곤란을 느꼈던 이 소년에게 해마다 일정한 봉급이 주어진다는 것은 매우 만족스런 일이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와 같이 돈으로 성직자를고용하거나 고용되는일은 물질 만능적인 타락한 세태를 반영하는 것이라 하겠다. 시대를 막론하고 오직 하나님의 일에 전념하는 성직자들은 보수보다 일 자체에 관심과 기쁨과 보람을 가져야 한다. 따라서 비록 보수가 적더라도 그일이 자신에게 맡겨진 하나님의 사명이라면 즐거운 마음으로 순종해야한다. 여기 레위 소년은그러한 사명감과는 상관없이 보수에만 관심을둔 타락한 성직자였으니 이에서 역으로 경성(경성)할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하다. 의복 한벌 - '한벌'에 해당하는 '에레크'(* )는 가지런히 놓여져 있는 것을가리키며 출 40:23에서는 '진설병'을 의미하기도 했다. 그래서 혹자는 이 '에레크'를 옷의 단위로 보고 열두 벌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Pulpit Commentary). 그러나KJV나 개역 성경처럼 이는 곧 상의와 하의 한 벌을 가리킨다고 봄이 타당하다. =====17:11 미가의 아들 중 하나같이 됨이라 - 혹자는 본절의 의미를 레위인 소년이 미가의 아들(5절)과 같은 종류의 비정상적인 제사장이 된 것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하기도 한다. 그러나 정작 본절의 의미는 레위 소년이 미가의 아들처럼 호의적인 대접을 받고그의 집에서 편히 살게 되었다는 뜻이다. =====17:12 레위인을 거룩히 구별하매 - 이에 해당하는 원문을 직역하면 '미가가 레위인의 손을 채웠다'라는 뜻이 된다. 이로 보아 아마 미가는 출 29:24에 나오는 것과 같은 제사장의 임명에 따른 성별 의식을 이 레위 소년에게 행한것으로 생각된다(Lange). 그러나 제사장의 성결 의식만을 흉내낸 이러한 임명식은 완전히 율법에서 어긋난 것이다. 5절주석 참조. 여기서도 우리는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이 얼마나 율법에 무지했던가를 발견하게 된다. =====17:13 이제 여호와께서 내게 복 주실 줄을 아노라 - 이러한 미가의 말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당시 하나님을 가나안의 우상과 동일 선상에서 미신적인 대상으로 섬겼음을 분명히 알수 있다. 미가는 파행적인 방법으로 세운 레위인을 합법적인 제사장으로 여겼을뿐만 아니라 12절과 같이 행한 제사장 임명식을 정당하다고 생각했음이 분명하다. 비록 아론의 자손들만이 제사장이 될 수 있다는 규례가 있다 할지라도(출 28:1 ; 민 17장) 미가는 레위인이면 모두 제사장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리고 레위인을 통하여 미가는 이제 어머니로부터 받은 저주(2절)가 자기에게 임하지 않을 것이며 여호와께서 자기 가정을 번영케 하실 것이라고 믿었던 것이다. 즉 미가에게 있어서 여호와는 드라빔과 같은 일개 가정의 수호신에 불과하였다(Goslinga). 이처럼 당시 이스라엘 사회에서는 하나님에 대한 의식이 우상 숭배로 인한 혼합주의에 의하여 크게 왜곡되어 있었다. ----------- 본서 기자는 지금까지 사사들을 중심으로 이스라엘의 종교적, 사회적, 정치적 배경들을 서술해 왔다. 그러자 본장에서부터 본서 기자의 초점은 사사들이 아닌 평범한이스라엘 백성들의 일상사에 맞춰져 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인식이 없고 사람마다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던 때(6절)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떠한 생활을 해왔는가를 조명해 주고 있다. 그중 먼저 본장에는 에브라임 산지에 살던 미가의가정이 소개된다. 즉 미가의 가정을 통하여 그 당시의 타락한 이스라엘백성들이 부와 종교와 명예에 대하여 가지고 있던 일반적인 관렴이 무엇인가를 보여준다. 이제 이를 하나하나 살펴볼 것 같으면 곧 다음과 같다. (1) 황금 만능주의의 팽배 : 본장은 어미의 돈을 훔친 미가와 돈을 훔친 자를 저주하는 그 어미의 대화로 시작되고 있다(1, 2절). 그리고 후반부에는 부유한 미가가 돈과 재물로 레위 소년을 자기 가정의 사적인 제사장으로 고용하는 기사가 나온다(7-13절). 이러한 황금 만능주의적 경향은 본장 뿐만 아니라 18장에서도 지배적으로 대두되는데 미가의 제사장은 후에 좀더 좋은 조건을 제시하는 단 지파의 제사장으로 자리를 옮기게 된다(18:19, 20). 이로 볼 때 타락한 시대의 대표적인 양상들이 그 당시의 이스라엘에서도 팽배하였음을 알 수 있다. (2) 종교의 혼합주의화와 타락 : 당시의 이스라엘의 종교는 여호와 종교로서의 모양은 있으나 실상은 가나안 종교와 완전히 혼합 변형된 것이었다. 예를 들면 돈으로 우상을 만듦으로써 그 돈을 여호와께 바치는 것처럼 여긴다거나(3, 4절), 가정 수호신인 드라빔을 가졌다고 해서 여호와의 제사장인 것처럼 행세한다거나 하는 것 등이다(5절). 특히 미가 어미의 저주는 복술(卜術), 점(占), 마술(魔術) 등과 함께 이방 종교에서 주로 사용되는 우상 숭배적 행위로서(2절) 성경적 의미의 저주와는 다른 것이다 <1-6절 강해, 저주에 대하여 ; 신 28:15-19 강해, 저주와 시련의 차이점>. 이로 볼때 당시 여호와의 종교가 이방 종교의 사상으로 인해 얼마나 많이 변질되었는가를 알수 있다. (3) 지나친 명예 추구 : 미가는 재물이 많았을 뿐만 아니라 개인적인 신당까지 두고 있어서 주위 사람들의 부러움을 독점하는 그런 사람이었다(5절). 그러나 그는 그것에 만족하지 않고 성막과 법궤가 있는 실로에서만 세울 수 있는 제사장을 개인의 가정에 둠으로써 만족을 추구했다(7-13절). 특히 제사장도 아닌 미가는 레위 소년을 제사장으로 세우면서 그를 거룩히 구별하는 의식을 행했는데(12절) 이는 곧 자신을 사이비종교의 교주(敎主)와 같은 위치로 끌어 올린 행위이다. 이러한 미가의 행위를 볼 때우리는 그 당시 사람들이 얼마나 현세적인 명예 추구에 골몰했는가를 가히 짐작할 수있다. 1. 미가의 새긴 우상과 신당(17:1-6) 에브라임 사람 미가가 신상을 만들어 숭배하게 된 배경과 과정이 설명되어 있는 부분이다. 이제 이를 발단 및 전개, 결과 별로 살펴볼 것 같으면 곧 다음과 같다. (1) 발단 : 미가의 우상이 만들어지게 된 발단은 미가가 그 어미에게서 훔친 돈으로부터 시작된다. 그 돈은 은 일천 일백 세겔인데 이것은 일반 노동자들이 십년 동안쓰지 않고 모아야 모을 수 있는 엄청난 액수였다<성경 총론, 성경의 도량형과 화폐 및월력>. 미가가 이렇게 큰 돈을 어미에게서 훔친 것이나 그 돈을 훔친 자를 저주하는그 어미의 모습을 볼 때(2절), 모자(母子) 간에 재산 때문에 모종의 암투가 있었지 않았나 하는 추측을 하게 된다. (2) 전개 : 일다가 미가가 그 어미의 저주를 두려워하여 어미에게 돈을 돌려주므로서 재산 때문에 있어 왔던 모자 간의 갈등은 해소된다(3, 4절). 이처럼 그들이 우상을만들게 된 것은 한번 저주한 돈으로 인하여 당할 화를 면하려는 미신적인 사고 방식때문이었다. 한편 그들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에봇과 드라빔까지 만들었는데(5절) 이것은 저주를 면하는 것 뿐만 아니라 현실의 복을 구하는 기복 현상에서 비롯된 것이다. 결국 그러한 그들의 행위는 우상 숭배자의 종교적 심성을 잘 나타내 보여 준다. (3) 결과 :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우상은 결과적으로 개개인의 우상 숭배 대상으로 탈바꿈하게 된다(5절). 물론 미가의 어머니는 신상을 만들어 숭배하면서 그것이 여호와께 대한 간절한 신앙의 표현인양 여겼지만(3절) 결과적으론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금수와 버러지 형상의 우상으로" 만든 행위와 다름없었던 것이다(롬 1:23),. 그리고 미가 또한 신당을 만들고 자기 아들을 제사장으로 삼는등 어느 정도의 종교적 외양은 구비하였으나 그것 역시 하나님과의 신령한 교제나 참다운 헌신이 없는(요 4:24 ; 롬 12:1) 한갖 종교 놀이에 불과했던 것이다. 그런데 현대에도 이처럼 한갖 '놀이'에 불과한 종교적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그것은 모두 종교를 빙자하여 자신의 부와 명예와 종교심을 만족시키기 위한 숭배 행위에 불과하다. 하나님께서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며 '통회하는 마음'이지(시51:17) 결코 종교적인 외양은 아닌 것이다. 저주에 대하여 - 본문에는 미가의 어머니가 잃어버린 돈 때문에 저주를 하는 장면이 나온다(2절). 그리고 그 돈을 훔친 도둑이 자기 아들이라는 것을 알고선 은으로 상(神象)을 만들어 저주를 풀려고 하는 것을 보게 된다(3, 4절). 여기서 우리는 고대인들이 가지고 있던 일반적인 저주관(詛呪觀)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러면 이제 이와 관련 '저주'에 대하여 좀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도록 하자. (1) 정의 : 저주는 축복의 상대어로서 어떤 주술적인 행위나 말로써 타인에게 재난이나 질병등의 징벌이 가해지기를 기원하며 선포하는 것이다. 고대인들은 저주를 신의심판으로 여겼기 때문에 한번 저주를 선언하면 그것이 그대로 실현된다고 믿었다. (2) 용도 : 저주는 보복이나 징벌의 수단이었기 때문에 국제적인 관계에서의 협정이나 조약, 또는 각 지파들간의 계약 등에서는 반드시 저주 조항을 삽입했다. 특히 구약에서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들 간에 언약에서도 저주 조항이 나타나는데 이스라엘이 여호와의 주권(Lordship)을 받아들이지 않을 때 저주가 임하리라는 것이다(9:15 ;신 27:15, 16 ; 28:15-19, 20-36 ; 삿 9:15). 그리고 모세의 율법에서도 저주 조항이나타나는데 간음이나 살인, 도덕질과같은 비도덕적 행위를 하는 자에게는 저주가 임하리라고 되어있다(민 5:18-27). (3) 저주의 결과 : 한번 저주가 내리면 인간 자신이 해를 입기도 하고 그가 지닌 재산에 송해가 가기도 한다. 이와 관련 성경은 "악인의 집에는 여호와의 저주가 있거니와 의인의 집에는 복이 있느니라"(잠 3:33)고 하였다.. (4) 저주의 효과 : 저주의 효과는 이방인의 저주와 신앙인의 저주가 다르다. 이방인의 저주는 주로 단순한 보복의 수단으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그로 인한 파급효과는 저주하는 당사자의 마음의 위안거리 밖에 되지 않는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신앙인에게 가하는 저주는 진노의 심판이 아니라 징계의 채찍이기 때문에 받는 자에게 있어선 윤리적인 각성이나 신앙심의 진작(振作)이 된다.<신 28:15-19 강해, 저주와 시련의 차이점>. 예레미야 선지자가 시두기야와 그의 고을과 백성과 가족이 저주을 받을 것이라고 경고한 것 역시 그들로 하여금 각성하여 하나님께로 돌이키게 하기 위한것이었다(렘 24:9 ; 25:18 ; 42:18). (5) 기타 : 이외에도 어떠한 사실을 부인하거나 주장하기 위해 스스로에게 저주하는경우도 있다. 예수님으로 인한 곤경을 면하기 위해 도무지 예수님을 알지 못한다고 저주하며 맹세한 베드로의 경우가 바로 그런 예이다(마 26:74). 한편 성경에서는 남을 모해(謨害)하는 마음에서 함부로 저주하는 것을 금하고 있다(출 22:28 레 19:14). 또한 하나님을 저주하는 자는 죽임을 당할 것이라고 했다(욥 2:9).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오히려 "너희를 저주하는 자를 위하여 축복하며 너희를 모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눅 6:28)고 말씀하셨다. 뿐만 아니라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축복하라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롬 12:14, 15)고강한 어조로 말씀하셨다. 여기서 우리는 저주에대하여 취해야 할 성도의 바른 자세를 배우게 된다. 2. 가짜 제사장 레위 소년(17:7-13) 미가가 레위 소년을 자기 집 제사장으로 세운 사건을 통하여 새로운 차원의 시대적 타락상을 소개하고 있는 부분이다. 즉 앞서 미가는 자기 아들을 제사장으로 세우긴 했으나(5절) 그것이 율법에 저촉된다는 사실(민 8:19)을 알고는 늘 불만에 처해 있었다. 그러던 차에 그는 베들레헴 떠나 생활의 궁여 지책(窮餘之策)을 찾아 헤메는레위 소년을 만나(7-9절)그를 자기 가정의 제사장으로 세운다(10-13). 이는 곧 타락한 백성과 타락한 성직자의 야합의 결과인바 본서 기자는 이에 대하여 '그때에는 이스라엘의 왕이 없으므로'(6절)라는 안타까운 심정의 주석을 가하면서 기록하고 있다. 이제 이러한 본문 가운데서 발견할 수 있는 저들의 타락상을 살펴보면 곧 다음과 같다. (1)미가와 레위 소년 간에 주고 받은 흥정은 모세의 율법을 완전히 무시한 처사였다는것이다. 왜냐하면 우선 이 레위 소년은 제사장이 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제사장 자리를 수락하는 어처구니 없는 일을 범하였기 때문이다. 사실 제사장직은 아론의 자손만이 수행할 수 있는 직분이면(민 18:1) 이들은 하나님에 의해서 거룩히 구별된다<민8:14-22 강해, 레위인의 제사장직>. 다음으로 제사장들은 온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하여 예배를 책임지며 성막이나 성전의 일을 돕게 되는데 이 레위 소년은 우상을 앉혀놓은 미가의 사당에서 일하는 것을 전혀 개념치 아니하고 만족하여 수락했기 때문이다(10절). 그 뿐 아니다. 제사장을 거룩히 구별하는 예식은 반드시 선임 제사장의 기름 부음에의해서 치루어지는데(출 29:29), 이 레위 소년은 일개 백성인 미가에 의해서 제사장예식을 받았기 때문이다(12절). 이것은 바로 호세아 선지자가 탄식하여 말한 대로 여호와에 대한 지식이 없어 멸망을 초래케 하는 망령된 행위들이었다(호 4:6). 그런데오늘날에도 하나님의 성직을 부여받는 것을 가볍게 여기고 겉치례적인 의식으로 목사안수가 주어지며 목사의 직분을 하나의 직업으로 생각하는 불경한 사람들이 많다. 이 또한 시대적 타락상의 일면이라고 할 수 있으니 새로운 종교 개혁 운동이 절실히 요구된다 하겠다. (2) 타락한 성직자 뒤에는 묵인한 백성이 있고 성직자들을 업수이 여기는 사람들이있다는 것이다. 레위인에 관한 율법에 따르면본래 레위인의 생계는 이스라엘의 각 지파에서 담당하게 되어 있다(민 18:21). 그런데 본문에서는 레위인의 생계의 방도를구하기 위해 여기 저기를 방황하며 유리하는 모습을 보게 되는데 백성들의 이러한 무책임함이 레위인들로 하여금 본연의 사명을 떠나도록 만든 것이다. 한편 13절에 언급된 미가의 말은 그 당시의 미신적인 여호와 숭배의 표본이라고 할수 있을 것이다. 즉 그는 우상을 만들어 여호와를 향한 경배의 대상으로 삼고 제사장을 세우는 등 외형적 종교 의식만 갖추면 하나님께로부터 무한한 축복을 받을 줄로 착각하였던 것이다. 미가가 거하던 에브라임 산지(1절)는 당시 하나님의 성막이 있던 실로(수 18:1)에서 아주 가까운 곳에 위치하였다. 그런데도 미가가 이러한 잘못을 범한 것으로 보아 당시 이스라엘 백성드르이 종교적 혼합주의가 얼마나 심각했는지를 가히 짐작할 수 있다. 그리스도인의 물질관(物質觀) - 세상 사람들과는 달리 그리스도인들은 재물을 개인이 배타적으로 독점하는 것이 아니라 재물에 대한 인간의 권리는 잠정적인 것임을 안다. 또한 모든 재물의 참 소유주는 하나님이시며 인간은 그것을 위탁받아 관리하는청지기에 불과함을 안다(눅 12:13-21). 그리고 또 성경이 가르쳐 주는바 재물 자체는 악한 것이 아니며 인간의 태도에 따라 얼마든지 선하게 사용될 수 있음도 어=가다(행2:44, 45).. 이제 이와 관련하여 신구약 성경에 나타난 물질관을 살펴봄으로 이제 그리스도인이 마땅히 지녀야 할 물질관을 재정립해 보도록 하자. 1) 구약의 물질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재물이나 재산에 대한 개념이 생겨난 것은 가나안에 정착한 후였다. 본장을 통하여 볼 때 가나안 정착 후 이스라엘 백성들은 개인적으로 상당한 재력(財力)을 소유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2, 10절). 한편 이스라엘의 전형적 재물관은 토지에 대한 율법에서 발견할 수 있다. 모세의 율법에서는 토지에 대한 독점적인 소유권을 갖지 못하도록 하기 위하여 안식년과 희년을 제정하였다. 즉 안식년에는 토지를 놀림으로써 토지 남용으로 인한 황폐를 방지하였으며 희년에는 이전에 팔렸던 토지가 본래의 주인에게 돌아가게 함으로써 부의 편중을 막았다(레 25:1-7, 23-25). 이로 볼때 구약 시대에도 물질에 대한 청지기 의식이 철저했으며 그렇다고 해서 금욕주의처럼 재물을 경시하지도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잠언 기자는 개미처럼 열심히 일하여 얻는 재물을 귀하게 보았으며(잠 10:4 ; 13:4), 선하게 재물을 모으는 데는 반드시 여호와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보았다(잠 16:3). 그런데 본장에서 미가의 경우, 그는 지나친 재물의 소유로 인하여 누구보다 더 타락한 행위를 일삼았다. 따라서 올바르게재물을 획득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재물을 선하게 사용하며 그로 인해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일이 더욱 중요함을 알 수 있다. 2) 신약의 물질관 신약의 물질관은 재물에 대한 예수님의 가르침에서 잘 나타난다. 첫째, 그분은 하나님을 섬기는 것과 재물을 사랑하는 것이 상충적이며 재물을 사랑하는 것이 생의 주 목적이 될 수 없다고 가르치신다(마 6:24 ; 눅 8:14). 그래서 예수님께서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한다'고 단언하신 것도 이러한 의미에서이다. 둘째, 그분은 재물을 진실하고 참되게 써야 하는데 그 이유는 바로 재물이 이웃과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가르치셨다(마 19:21 ; 눅 12:21). 셋째, 그분은 올바른 재물 선용을 통해 진정한 사랑의 정신을 고양할 수 있다고 가르치셨다. 예수께서 가난한 자들에게 재산을 나누어 준 삭개오에게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눅 19:9)라고 하신 것도 그것을 진정한 형제애가 물질보다 중요하며 이웃의 궁핍을 함께 나누는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한 표현임을 분명히 알고 있었다. 결론적으로 그리스도인들은 물질을 악한 것으로 보아 기피해서는 안 되며 오히려 적극적으로 물질을 선한 목적에 상용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리고 물질의 노예가 되지 아니하고 물질을 통하여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는 데 힘써야 할 것이다. === 삿17:1-13 내 속에 숨겨진 우상은 무엇인가 17-21장까지 마치 부록 같다. 사사기 초기에 쓰인 기록물이다. 연대기적으로가 아니라 사건의 패턴을 가지고 상세히 기록된 책이다. 에브라임 산지, 미가 두 이름을 기억하라. 이름, 지명은 한 번씩 짚어볼 문제들이 있다. 에브라임은 여호수아를 배출한 지파다. 요셉의 가문의 요셉 족속의 두 지파를 강성하게 하셨다. 북쪽은 에브라임, 남쪽은 유다가 담당할 정도로 컸다. 기드온 전쟁 때는 왜 늦게 불렀다고 에브라임이 항의하는 쪼잔한 모습을 보인다. 입다 때도 왜 전쟁 때 안 불렀느냐고 항의해 싸움이 나 에브라임 지파 42,000명이 죽었다. 에브라임 지파는 못난 모습으로 사사기에 기록되어 있다. 꾸짖고 싶어 하는 하나님의 의도가 들어있을 수 있다. 그 지파 소속의 미가, 원문에 “미카예후(누가 여호와와 같은가?)”라는 뜻이다. “하나님 외에 더 큰 이가 있겠느냐? 없다”“ 라는 뜻이다. 미가가 엄마돈 은 1100을 훔친다. 누가 훔쳐 간지 모르고 엄마가 도둑놈에게 저주를 한다. 미가가 듣고 긴장해서 그 화가 자기에게 미칠까 봐 다시 엄마에게 돌려준다. 잃어버렸던 은을 돌려준다. 어머니가 다시 “내 아들이 여호와께 복 받기를 원한다.” 라고 축복으로 바꾼다. 액땜하듯이 저주가 아들에게 임할까봐 노심초사하며 다시 복을 빈 것이다. 그렇게 하면서 그의 어머니가 그 은 200으로 한 신상을 주조해서 만든다. 두 개의 신상이 등장한다. 하나님께 거룩히 예배하겠다면서 신상을 만드는 것이다. ----------- 4. 미가가 그 은을 그의 어머니에게 도로 주었으므로 어머니가 그 은 이백을 가져다 은장색에게 주어 한 신상을 새기고 한 신상을 부어 만들었더니 그 신상이 미가의 집에 있더라 5. 그 사람 미가에게 신당이 있으므로 그가 에봇과 드라빔을 만들고 한 아들을 세워 그의 제사장으로 삼았더라 ------- 5절에 “미가에게 신당이 있으므로”는 원어적으로 “그리고 그 사람 미가 그에게는 신들의 집이 있었다.”는 의미이다. 그 신당에는 여러 신들이 있었다. 은 1100 때문에 2개의 신상을 만들었는데 그 외에도 다른 신상들이 있었다는 말이다. 5절부터는 이름에서 예후를 뺐다. 단순하게 미가만 나온다. 이런 사람의 이름에 여호와를 집어넣으면 이상하니까 예후를 뺀 것이다. 한 사건이 끝난다. ---------- 6. 그 때에는 이스라엘에 왕이 없었으므로 사람마다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 사사기 핵심은 누가 왕이냐 하는 것이다. 인간의 왕 세워봐야 소용이 없다. 만왕의 왕 여호와가 왕이 되는 것이다. --------- 7. 유다 가족에 속한 유다 베들레헴에 한 청년이 있었으니 그는 레위인으로서 거기서 거류하였더라 8. 그 사람이 거주할 곳을 찾고자 하여 그 성읍 유다 베들레헴을 떠나 가다가 에브라임 산지로 가서 미가의 집에 이르매 9. 미가가 그에게 묻되 너는 어디서부터 오느냐 하니 그가 이르되 나는 유다 베들레헴의 레위인으로서 거류할 곳을 찾으러 가노라 하는지라 ----------- 한 떠돌이 청년이 등장한다. 레위 청년은 원래 고향이 있었는데 고향을 떠나 베들레헴에 계속 살았었다. 하나님이 레위인들에게 주신 성읍이 48개가 있었다. 베들레헴은 거기에 속하지 않는다. 엄밀히 따지면 거기에 거주할 수 없는 지역이다. 그쪽으로 갔다는 것은 새로운 잡을 구하기 위해서일까? 여의치 않았던지 다시 에브라임 산지로 왔다. 레위인은 제사장 지파다. 레위지파는 분깃을 나누어줄 때 받지 못했다. 각 지파가 흩어져서 거류했다. 거주가 아닌 거류다. 떠돌아다니기도 하고 정착하지 못한다. 제사장의 직분을 감당해야 한다. 제사장으로 부름 받지 못한 청년이다. 30세 미만은 될 수 없다. 그냥 한 청년의 이름으로 등장한다. 이 사람이 떠돌다가 미가를 만나 그 집안의 제사장이 된다. 레위인이 없어서 아들 중의 하나를 제사장을 삼았었는데, 이 레위인을 제사장으로 삼으면 명분이 되겠다 싶어서 제사장으로 삼는다. 제사장이 되어달라고 요청하며 은 10과 의복 한 벌을 주고 생활하게 해 주겠다는 제안을 한다. 그 청년이 만족해하면서 그의 아들들 중의 하나 같이 되어 그 집에 머물기로 한다. 하나님 예배해야 하는 제사장이 미가와 같은 모습으로 서 있다. 미가가 제사장을 거룩하게 구별하매 그 청년이 그 집에 있었다. 거룩하고 구별되는 것은 유일하신 하나님께 드려야 하는 건데 혼재되어 있다. 미가는 “레위인이 제사장이 되었으니 이제 여호와께서 내게 복 주실 줄을 아노라”하고 생각한다. 이들이 정착하면서 가나안 문화를 접하기 시작하고 철기문화, 농경문화 받아들이면서 그들의 우상을 취한다. 여호와도 섬기고 그들의 대상 바알과 아스다롯을 섬기는 형태를 취한다. 산당에 에봇과 드라빔은 같이 제사장이 예배할 때 갖춰입는 의복이다. 드라빔은 근동 지방에 가정의 수호신이다. 주술적 행위를 할 때 취하는 물건을 동시에 산당에 두었다. 그만큼 혼합종교 다원주의로 빠져들고 있었다. 이 이야기는 사사기 초기에 있었던 이야기다. 12명 사사 거쳐가면서 ‘다른 세대’로 바뀌어간다. 우리는 다 믿음의 사람들이지만 우리가 갖고 있는 여러 가지 숨겨진 우상들이 많다. 신약시대에 들어와 바리새인들, 율법적인 사람들, 종파 그들에게 무엇이 문제였는가? 율법에 더하기를 했다. 장로들의 유전, 관습. 전통 습관 들을 율법인 것처럼 더하면서 그게 마치 하나님이 세우신 말씀과 같은 것이라고 받아들였다. 결국 그걸 못마땅해하신 예수님을 죽이기까지 한다. 우리 안에 말씀, 믿음 외에 더하기하는 게 있나? 근심걱정, 염려도 더하기다. 걱정하지 말라 하시는데 왜 걱정하나? 진로, 건강, 염려하고 걱정하는 것도 다 우상으로 다가오는 한 가지의 유혹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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