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삿13장 [524.갈 길을 밝히 보이시니] [ 389. 내게로 오라 하신 주님의] [423. 먹보다도 더 검은]
삼손<소라..소렉골짜기 인근> BC.1095-BC.1055 ::: 사무엘<라마다임소빔..에브라임 산지>BC1103-사망BC1017 (엘리 BC1177-BC1080)
.....사사의 참된 표상이신 유일무이한 참 나실인이신 JC...앞에 등장하였던 사사들 중 여럿은...[성령으로 시작하여 육으로 망해버리는] 용두사미의 패턴으로 끝나버렸었다..그러나, 삼손의 경우는 대적에게 체포-구금-억류됨 통해 고난과 역경 중에 그나마 회개하고 성령께 사로잡혀 (20년 동안 사사로서 자유로이 행보할 그 때보다 더 크게!!) 대적을 멸함의 최후를 맞이하고 있다!!...그런 점에서 (비록 그 시대상을 따라 행한바 "겉보기에는" 전형적인 자행자지 패턴을 보이고 있다 할수 있으나!!...거룩한 주님의 소유요 기업으로서 "화이부동의 생육-번성-충만-정복-다스림"의 마땅한 자리를 떠나 )...[영적 무기력과 무지무각, 혼돈의 잠에 취한, 세상과 전혀 구별 안되는 교회를 흔들어 깨워 일어나 서게 하심, 곧 성령의 불로 밝혀 정결하도록 태우시며 말씀의 물로 씻으사 블레셋, 곧 세상과의 불화( = 곧 성별됨의 회복) 케 함의 거륵한 영적 전쟁을 선포하며 영적 무장을 새로이 하며 분연히 일어나게 하고 계심의!!, 중간중간 드러나는 성령감동따라 행하는 그의 생애를 통해서!!,,,또한 의도하신바대로 주님은 그의 회개를 받으시고 비록 육적인 힘 잃고 체포-구금되어 두눈이 뽑힌 상태로 대적의 조롱-노리개감이 되게 하셨지만 ...오히려 (고난과 역경가운데 주님을 새로이 참되게 알아가며...바울과 실라도 그러했다!!) 주께 회개하며 기도함의 소통 통해 구원의 새로운 차원과 영역을 경험하는 가운데, 최후의 소원 아룀을 가납해 주심따라 성령충만함으로써 대적과 함께 동귀어진함의 마지막 순종의 독특함을 보여주고 계신다...이제, 신약시대를 사는 , 거듭난 참 믿는이마다 ((진정한 영적 의미에서 보자면)), 누구나 참 나실인으로서 [나는 날마다 십자가에 못박고!!] 오로지 그리스도를 살아가며, 그분과 하나됨으로써 그분이 친히 왕-주인-머리시요, 믿는이의 영혼몸 그 자체가 그분의 것이요, 심지어 그분 자신으로 대치된 삶 살게 하신바, 작은 그리스도로 삶 이루되, 시종일관 주 앞에 서는 그 날까지 오로지 날마다 새로이 자신을 부어주사 샘솟아 터져나와 공급하시는, 동시에 영원히 함께 계셔서 떠나지도 버리지도 않으시는 하나님 생명의 성령, 곧 그리스도 예수의 영으로 날마다 오늘 하루하루를 살 수 있게 하셨으니,,,
===삼손이 태어나다 1. 이스라엘 자손이 다시 여호와의 목전에(코람데오!!) (우상숭배, 곧 간음이라는)악을 행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그들을 (가장 긴 기간!!)사십 년 동안 (철기문명의 해양족속의 정착민들로 대치된)블레셋 사람의 손에 넘겨 주시니라 ......그 당시의 시대적 영적 상황은 오늘날의 교회와도 같아서 제소견에 옳은대로 행하였던바, [눈이 멀어버렸고 귀가 둔하여지고 극한 방탕에 정력을 다 낭비해버린 상태로 취하여 잠들어 있음의!!] 영적 타락에 자신을 습관적으로 방임하여 포로됨 인해 영적 둔감함과 극도록 무기력해져 있는 [주님의 소유요 기업, 그분의 아내된 보배!!] 그것을 인식하고 영적 참 실상대로 주께 토설하고 회개할 기력조차 잃어버린 상태!! 주께 회개나.. 심지어 부르짖음조차 없었다!!..구원의 전제조건은 오로지 하나님의 주권적 작정하심 가운데 있기에 부르짖거나 회개가 구원을 도래케 함이 구원을 가져오는 것은 아니로되!, ((자녀가 애타게 애원하며 부르짖어도 (애가 탈지라도, 진정한 참 부모라면!!)도와주기를 거절해야할 때도 있는 법이지만..그래도 "주님의 원하시는 뜻을 여쭈고 주님 뜻 이루시도록 믿음으로!! 그리해주시기를 구하여야 할지니라"고 말씀하고 계신다.)) 2. ○소라 땅에 단 지파의 가족 중에 마노아(누아흐=안식, 안식처)라 이름하는 자가 있더라 그의 아내가 임신하지 못하므로 출산하지 못하더니 .....인간의 소망이 끊어진 곳, 불가능한 상황에서부터 Q의 역사하심이 시작되고 있다...사라-한나-엘리사벳-마리아...Q의 경륜 이룸 위한 주권적 불임이다!! 3. 여호와의 사자가 그 여인에게((모든 믿는 이마다 여성이다!!)) 나타나서 그에게 이르시되 보라 네가 본래 임신하지 못하므로 출산하지 못하였으나 이제(예정한 때가 되었으니!!) 임신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4. 그러므로 너는 삼가 포도주와 독주를 마시지 말며 어떤 부정한 것도 먹지 말지니라 5. 보라 네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의 머리 위에 삭도를 대지 말라 이 아이는 태에서 나옴으로부터 하나님께 바쳐진 나실인이 됨이라 그가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시작하리라 하시니 ......[민6:2-8..2.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하여 그들에게 이르라 남자나 여자가 특별한 서원 곧 나실인의 서원을 하고 자기 몸을 구별하여 여호와께 드리려고 하면 3. 포도주와 독주를 멀리하며 포도주로 된 초나 독주로 된 초를 마시지 말며 포도즙도 마시지 말며 생포도나 건포도도 먹지 말지니 4. 자기 몸을 구별하는 모든 날 동안에는 포도나무 소산은 씨나 껍질이라도 먹지 말지며 5. 그 서원을 하고 구별하는 모든 날 동안은 삭도를 절대로 그의 머리에 대지 말 것이라 자기 몸을 구별하여 여호와께 드리는 날이 차기까지 그는 거룩한즉 그의 머리털을 길게 자라게 할 것이며 6. 자기의 몸을 구별하여 여호와께 드리는 모든 날 동안은 시체를 가까이 하지 말 것이요 7. 그의 부모 형제 자매가 죽은 때에라도 그로 말미암아 몸을 더럽히지 말 것이니 이는 자기의 몸을 구별하여 하나님께 드리는 표가 그의 머리에 있음이라 8. 자기의 몸을 구별하는 모든 날 동안 그는 여호와께 거룩한 자니라] ......머리털(=섬기는 왕이 있음) 밀지 말 것...시체 접촉 금지(유일무이한 참 생명이시요 생명 근원이신 하나님께 쓰임받음)....., 포도 류 섭취 금지(맨 정신)...이는 오직 거룩하신 하나님을 합당하도록 섬김 위함...[또 하나의].삼손을 위해, 즉 참나실인은 오직 JC밖에 없으나, 그분과 함께 동행할 바, 그 나실인을 원하시기에!! 자녀가 진정 주께 드려지는 나실인으로 준비되게 하려면 부모가 먼저 당연히 (진정한 의미에서 주와 하나됨으로 그리스도를 살아내는!!) 영적 참 나실인으로서 먼저 동참해야 함을 의미!! ......삼손의 수태고지를 통해 주시는바 영적 메세지의 적용 :::: 이미 주의 백성마다 가나안에 들어온 후 모든 날이 [성막 안의 언약궤로서] 함께 계신 그분 임재를 의식함으로 그분 앞에서 살며(코람데오) 임마누엘의 힘과 능력으로 살도록 주께 드려진바 되었기에, ((오늘날 영적 거듭남의 의미를 깨닫는, 참되게 믿는이의 일생이란, 야하드/헨이자)) 진정한 나실인의 일생임을 의미함...그러므로 당연히!! "이 세대를 본받지말고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의 말씀을 살기를 원하고 계심..!! 6. 이에 그 여인이 가서 그의 남편에게 말하여 이르되 하나님의 사람이 내게 오셨는데 그의 모습이 하나님의 사자의 용모 같아서 심히 두려우므로 어디서부터 왔는지를 내가 묻지 못하였고 그도 자기 이름을 내게 이르지 아니하였으며 7. 그가 내게 이르기를 보라 네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이제 포도주와 독주를 마시지 말며 어떤 부정한 것도 먹지 말라 이 아이는 태에서부터 그가 죽는 날까지 하나님께 바쳐진 나실인이 됨이라 하더이다 하니라 8. ○마노아가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르되 주여 구하옵나니((기드온의 기도도 그리하였지만!! 그런즉 진정 분명히 더 깊은 만남과 지도를 통해 참되게 분별함으로써 주님을 알아감=경외함의 확신 주시기를 구함의 이 기도는 오히려 주님 기뻐하시는!! 확신의 기도요, 결코 불신앙이 아니다!!, 그러므로 전해 듣는 이마다 마땅히 직접 주님께 바로 이 "주님 뜻을 더 분명히 알기 원함의" 기도를 드림으로써 주를 뵈옵게 되기를!!))주께서 보내셨던 하나님의 사람을 우리에게 다시 오게 하사 우리가 그 낳을 아이에게 어떻게 행할지를 우리에게 가르치게 하소서 하니 9. 하나님이 마노아의 목소리를 들으시니라 여인이 밭에 앉았을 때에 하나님의 사자가 다시 그에게 임하였으나 그의 남편 마노아는 함께 있지 아니한지라 10. 여인이 급히 달려가서 그의 남편에게 알리어 이르되 보소서 전일에 내게 오셨던 그 사람이 내게 나타났나이다 하매 11. 마노아가 일어나 아내를 따라가서 그 사람에게 이르러 그에게 묻되 당신이 이 여인에게 말씀하신 그 사람이니이까 하니 이르되 내가 그로다 하니라 12. 마노아가 이르되 이제 당신의 말씀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이 아이를 어떻게 기르며 우리가 그에게 어떻게 행하리이까 13. 여호와의 사자가 마노아에게 이르되 내가 여인에게 말한 것들을 그가 다 삼가서 14. 포도나무의 소산을 먹지 말며 포도주와 독주를 마시지 말며 어떤 부정한 것도 먹지 말고 내가 그에게 명령한 것은 다 지킬 것이니라 하니라 ......((나실인의 삶을 온전히 완전히 이루어 보여주신!! 주 예수님의 오늘도 걸으심이 걸음마다 나타나는, 영적으로 활기 찬 성령 운행하심-일하심으로 영적 후사 산출하는 산 교회!!)) 제사장의 옷은 성막과 동일한 베와 청색 자색 홍색실로 만들었고(제사장의 의복은 곧 성소 자체를 의미하고 있으며), 그가 거닐 때마다 주님이 친히 걸으심을 의미하는 "소리내는 방울"이 달려있으며, 관에는 여호와께 성결이라 쓰여있음을 명심/기억하라...이것이 주님의 교회의 참 실상이라야 한다..그 때 "세상을 참되게 품고 변화시킴, 곧 진정한 대각성-부흥의 전도-선교가 있게 될 것.." 15. ○마노아가 여호와의 사자에게 말하되 구하옵나니 당신은 우리에게 머물러서 우리가 당신을 위하여 염소 새끼 하나를 준비하게 하소서 하니 16. 여호와의 사자가 마노아에게 이르되 네가 비록 나를 머물게 하나 내가 네 음식을 먹지 아니하리라 (그보다 더 우선해야 할바는 주님이 누구신지를 알게 하시는 바, 주께 네 자신을 영적 참 번제로 드림이라야 하리니!!, 그 후에야 드릴 바 너의 살아낸 그리스도 드림의 ) 번제를 준비하려거든 마땅히 여호와께 드릴지니라 하니 이는 그가 여호와의 사자인 줄을 마노아가 알지 못함이었더라 17. 마노아가 또 여호와의 사자에게 말하되 당신의 이름이 무엇이니이까 당신의 말씀이 이루어질 때에 우리가 당신을 존귀히 여기리이다 하니 18. 여호와의 사자가 그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내 이름을 묻느냐 내 이름은 기묘자(사9:6..His Name's Wonderful!!,놀라운-기이한...Wonderful-Counseller!!..유일무이한 참 상담자요 교사이심..즉, 모든 상담과 가르침은 JC없이는, 그분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다 헛됨)라 하니라 19. 이에 마노아가 염소 새끼와 소제물을 가져다가 바위 위에서 여호와께 드리매 이적이 일어난지라 마노아와 그의 아내가 본즉 20. 불꽃이 제단에서부터 하늘로 올라가는 동시에 여호와의 사자가 제단 불꽃에 휩싸여 올라간지라 마노아와 그의 아내가 그것을 보고 그들의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리니라 21. ○여호와의 사자가 마노아와 그의 아내에게 다시 나타나지 아니하니 마노아가 그제야 그가 여호와의 사자인 줄 알고 22. 그의 아내에게 이르되 우리가 하나님을 보았으니 반드시 죽으리로다 하니 23. 그의 아내가 그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우리를 죽이려 하셨더라면 우리 손에서 번제와 소제를 받지 아니하셨을 것이요 이 모든 일을 보이지 아니하셨을 것이며 이제 이런 말씀도 우리에게 이르지 아니하셨으리이다 하였더라 24. 그 여인이 아들을 낳으매 그의 이름을 삼손이라 하니라 그 아이가 자라매 여호와께서 그에게 복을 주시더니(=바라크.צריף) .....[바라크].무릎을 꿇다, 축복하다, 복을 주다, 찬양하다 바라크(동사)는 기본어근이며, '무릎을 꿇다, 축복하다(복을 주다), 찬양하다'를 뜻한다.. 한편, 다른 의미로는 주로 하나님에 대하여 '저주하다, 욕하다'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왕상 21:10, 왕상 21:13, 욥 1:11, 욥 2:5). 기본적으로 바라크는 '유익한 능력을 부여하다'라는 의미를 지닌다. 구약성경에서 '축복한다'는 것은 '성공, 번영, 생산, 장수 등을 위한 능력을 부여한다'를 의미한다. 이 의미는 그 모든 긍정적 능력을 부여하는 과정과 부여 받는 상태를 모두 포함하고 있다. 우리는 여기서 진정 하나님이 주시는 복이 어떤 것인지를 알게 된다. 또한 바라크의 의미를 보면 무릎을 꿇는 것과 축복이나 복을 받는 것은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보여준다. (1) 무릎을 꿇는 것, 곧 기도하는 것은 축복을 받는 비결이다. 대하 6:13(참조: 왕상 8:14, 왕상 8:54)을 보면 솔로몬은 성전 봉헌에서 놋대 위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했다. 하나님의 복은 백성들이 예배가 끝나고 자기 집으로 돌아갈 때 그들에게 내려졌다. 이렇게 하여 이 복은 그들의 일상 생활에 실현된다. 아브라함의 늙은 종은 이삭의 신부를 구해오라는 주인의 부탁을 받고 메소포타미아 나홀의 성에 이르러 낙타를 그 성밖 우물 곁에 무릎을 꿇게 하고 하나님께 기도했다. 그 종의 기도로 주인과 종은 하나님의 은혜로 이삭의 좋은 신부감을 얻는 복을 받은 것이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복을 주신다. 열심히 기도하자. (2) 무릎을 꿇는, 곧 여호와를 경배하는 것은 복을 받는 비결이다. 시 95:6이하에서 시인은 "오라 우리가 굽혀 경배하며 우리를 지으신 여호와 앞에 무릎을 꿇자 대저 저는 우리 하나님이시요 우리는 그의 기르시는 백성이며 그 손의 양이라 너희가 오늘날 그 음성을 듣기를 원하노라"(빌 2:10, 빌 2:11)라고 말했다. 시인은 시 115:2이하에서 "여호와께서 우리를 생각하사 복을 주시되 이스라엘 집에도 복을 주시고 아론의 집에도 복을 주시며 무론 대소하고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에게 복을 주시리로다... 우리는 이제부터 영원까지 여호와를 송축하리로다 할렐루야"라고 노래했다. (3) 신앙 공동체는 자기가 받은 복에 대하여 여호와를 찬양함으로서, 곧 "여호와를 찬송할지어다"라는 외침으로 응답했다. 시 28:6, 시 28:7에서 다윗은 "여호와를 찬송함이여 내 간구하는 소리를 들으심이로다. 여호와는 나의 힘과 나의 방패시니 내 마음이 저를 의지하여 도움을 얻었도다. 그러므로 내 마음이 크게 기뻐하며 내 노래로 저를 찬송하리로다"라고 노래했다. 여러분 바라크라는 말을 기억하라. 바라크 -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것이다. 바라크 - 무릎을 꿇고 경배하는 것이다. 바라크 - 하나님이 복을 주시는 것이다. 바라크 - 받는 복을 감사하며 찬양하는 것이다.(참조: H. -G. LINK; TBC). [[바라크]] 그리스어/헬라어에서 "복"이란 단어는 'εὐλογία(유로기아)'인데, εὐ (좋은) + λογία(말/말하다)의 합성어로 "상대에게 좋은 말을 하다"라는 뜻으로, 현대 영어의 eulogy(고인에 대한 추모사)가 이 단어에서 왔다. 라틴어 'benedicere(베네디케레)' 역시 bene (좋은) + dicere (말하다)의 합성어로 그 뜻은 그리스어와 동일하다. 예배 시 '축도'를 뜻하는 benediction이 이 단어에서 온 것이다. 영어 'bless'는 이와는 달리 blood(피)와 연관된 단어이다. 축복이란, <고대 게르만족 풍습에서는> 사람 혹은 사물에 동물의 피를 뿌림으로써 주어지는 것을 의미했는데, 동물의 피를 뿌려서 악귀를 축출하는 고대 게르만족의 풍습에서 유래된 것으로 보이며,.... 문설주에 피를 바르는 출애굽 사건과 연관 짓기에는 좀 거리가 있다. 한자의 "福"에 대해서는 아주 여러 설명들이 있지만, 그 중 많은 동의를 얻고 있는 해석을 하나 들자면, 지붕 아래 먹을 것이 있고 밭이 있고 걸칠 의복이 있다는, 즉 의식주 문제에 걱정이 없는 상태를 나타낸다고 한다...(또는 하나님이 그 자신을 그릇/항아리에 가득 채워 주심). ....."복"에 대한 고대인들의 개념들을 정리해 보면, 1) 덕담 같은 좋은 말을 해주거나 듣는 것 2) 재앙 등 나쁜 것으로부터의 보호 3) 먹고 사는 것에 걱정이 없는 상태 과연 "복을 주다/축복하다"라는 의미로 번역되는 히브리어 ברך(바라크) 는 이 중에 어떤 뜻과 가장 가까울까? 정답부터 말하자면 그 어느 것도 아니다. 오히려, ברך(바라크)의 기본적인 뜻은 "무릎을 꿇다(kneel down)"이니.... 시편 95편 6절의 "오라 우리가 굽혀 경배하며 우리를 지으신 여호와 앞에 무릎을 꿇자"에서 "무릎을 꿇자"가 바로 이 단어인 것이다. 히브리어의 "복"은 이 "무릎을 꿇다"라는 기본적인 뜻에서 파생된 것으로, "복을 주다"라는 의미의 히브리적 표현은 "상대방을 무릎 꿇은 상태로 만들다(문법적으로는 피엘 동사의 factitive 용법)"라는 뜻이니....복을 받기 위해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리는(구하는) 장면을 상상하면 좋겠다. 이 히브리어의 축복이 다른 언어들의 축복과 근본적으로 다른 지점은 크게 두 가지인데.... 첫째, 축복을 하는 사람의 행위("좋은 말을 하다" 혹은 "피를 뿌리다")를 기준으로 하지 않고, 복을 받는 자의 자세를 묘사하고 있는 점. 둘째, 복을 받는 자가 과연 무엇을 받을 것인지 설명하고 있지 않다는 점(좋은 말/덕담이나 피 뿌림, 기본 의식주 등과는 달리)이다. 성경이 말하는 복은, 흥미롭게도, 그 복을 주시는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되는 행위가 아니요,. 오히려 주님 앞에 무릎 꿇고 엎드리는 우리의 자세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무엇을" 주실까 하는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어떤 자세로" 있는가 하는 것이 관건이을 의미한다. 그리하여 히브리어의 ברך(바라크)를 한자로 옮기자면, "복 福"자가 아니라 "엎드릴 伏"자에 더 가깝다!!. --------- ■ [창12:23...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찌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하신지라] <복>은 히브리어로 <바라크 ברך<입니다 무릎 꿇다 엎드리다 하나님께 축복을 구하다 찬미하다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바라크 ברך<의 근본 의미는 하나님 앞에 엎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구하는 것이 축복입니다.... 하나님을 간절히 찾는 것이 <바라크 ברך<입니다.... 이 땅에서 누리는 세상의 복을 뛰어 넘는 개념입니다....모든 것이 하나님으로부터 오기에 창조주 하나님을 먼저 찾는 것이 복의 기본적인 개념입니다.... 아무리 많은 것을 이 땅에서 누리더라도 하나님을 찾지 않으면 <진복 = 바라크>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하나님께 엎드리는 복을 누리는 영혼에게 하나님께서 축복하실 것입니다 <바라크 ברך<는 하나님을 구하는 영혼에게 축복하시는 그 복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하나님께 엎드릴 때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복이 <바라크>입니다 ....그 영혼은 하나님을 찬송하게 될 것입니다 ....<바라크 ברך<에는 찬미와 찬송의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찬양하는 영혼에게 하나님께서 축복하시는 <바라크>의 복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얼굴을 찾는 영혼이 <바라크>의 은혜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하나님의 존 전에 무릎 꿇는 그 은혜가 축복중의 가장 큰 복입니다 하나님을 누리고 있기에… 25. 소라와 에스다올 사이 마하네단에서 여호와의 영이 그를 움직이기 시작하셨더라(감동하시니라 = 파암..(פעם)) .....블레셋과 단지파 사이의 경계선에 해당되는, 소라와 에스다올 밑에는 소렉 골짜기가 이어짐...소렉 골짜기 바로 건너편 남쪽 밑에는 벧세메스(Beth-Shemesh)가 있고, 골짜기 북쪽에 소라(Zorah), 오른쪽 위, 즉 동북쪽에 에스다올(Eshtaol)이 있다. 또한 소렉 골짜기 남쪽 건너 벧세메스에 이르러, 골짜기를 따라 왼쪽 위, 즉 서북쪽 길로 가면 딤나(Timnah)가 있다. 딤나 왼쪽 아래, 즉 서남쪽에는 블레셋의 다섯 성읍 중 하나인 에그론(Ekron)이 있다. 에그론의 아래쪽, 즉 남쪽에는 가드(Gath)가 있다....소렉 골짜기를 기점으로 ((소라와 에스다올은 단지파 경계선)) 이스라엘과 블레셋 족속이 서로 맞대고 있다. ....오늘, .누가 끝까지 일편단심 주 성령 감동따라 그 강력으로, 합당하게 주 생명을 살 것인가!!, 주여 나로 주 안에 머무르는 은혜, 그 은혜로 이끄소서!!. 언제 어디서나 주님 발견하게 하소서. .--------- [[파암...감동하다]]몰아대다(치다), 재촉하다, 압박하다 파암(동사)은 기본어근이며, '밀치다, 찌르다, 몰아대다, 치다, 재촉하다, 압박하다'를 의미한다. 구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5회 나온다. 1. 칼형에서 '몰아대다, 재촉하다'를 의미한다. 삿 13:25에서 여호와의 신 곧 성령이 삼손을 몰아대거나 재촉하여 그가 가만히 있지 못하고 행동하게 만든다: "소라와 에스다올 사이 마하네단에서 여호와의 신이 비로소 그에게 감동하시니라". 2. 니팔형에서 '불안하거나 번민하다'라는 의미를 나타낸다. 이것은 칼형의 의미에 반응을 나타낸다(창 41:8, 시 77:4, 단 2:1, 단 2:3). (참조: BDB 등). ------ “여호와의 영이 그를 움직이기 시작하셨더라’(삿13:25). ‘움직이다’로 번역된 히브리어 ‘파암’(פָּעַם)은 ‘두드리다’, ‘치다’라는 태생적 의미를 가진 용어입니다. 구약성서는 ‘파암’을 5번 사용하지만, 사사기 외에는 불안하다, 또는 번민하다 등 소극적으로 사용되었습니다. 그러나 여호와의 영이 우리를 ‘파암’하시면, 내 영혼이 여호와의 손가락으로 두드림을 받고, 그리하여 두근거림과 함께 감동되어 여호와의 길로 다가가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하기에, 하나님의 영이 삼손을 파암하셨을 때, 비로소 삼손의 역사가 시작되었습니다. 우리 삶의 모든 순간들이 여호와의 영으로 파암되기를 소망합니다. 그럴 때, 당신의 삶이 하나님의 길에서 새롭게 출발될 것입니다. ------- ■ [신7:12....너희가 이 모든 법도를 듣고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언약을 지켜 네게 인애를 베푸실 것이라] [신6:17...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명하신 명령과 증거하신 것과 규례를 삼가 지키며 여호와의 보시기에 정직하고 선량한 일을 행하라 그리하면 네가 복을 얻고 여호와께서 네 열조에게 맹세하사 네 대적을 몰수히 네앞에서 쫓아내리라 하신 아름다운 땅을 들어가서 얻으리니 여호와의 말씀과 같으리라] .....보호하다의 히브리어는 <샤마르מרַשָׁ<입니다 지키다 게으르지 않다 유심히 보다 성실하다 삼가 조심하다의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약속의 백성을 보호하시고 지키실 때 그 성실하심을 표현하는 단어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두려워하며 떨며 지키려고 하는 그 태도 또한 <샤마르>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영혼은 말씀을 들으려고 합니다 말씀을 믿으려고 합니다 그 말씀을 지키려고 합니다 자신을 하나님 앞에서 지키려는<샤마르 מרַשָׁ <태도가 삶 속에서 크게 흘러 나올 것입니다 .....그러한 영혼은 하나님의 보호하시는 <샤마르 מרַשָׁ <큰 축복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그 무엇을 해도 하나님의 성실을<샤마르 מרַשָׁ <보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며 보호하며 지키시는<샤마르 מרַשָׁ <것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샤마르 מרַשָׁ<에는 하나님의 꿈이 담겨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행하려는 그 마음 중심에 하나님의 기쁨이 있으시기 때문입니다 지키다<샤마르 מרַשָׁ<와 섬기다<아바드דבע<에는 예배 드리다의 제사의 태도가 담겨 있습니다....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려는 영혼은 하나님 앞에서 온 마음으로 예배 드리게 될 것입니다 예배가 인생의 기적의 문을 여는 Key 입니다 -------- [시42:11...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하여 하는고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나는 내 얼굴을 도우시는 내 하나님을 오히려 찬송하리로다] [계4:2.. 내가 곧 성령에 감동하였더니 보라 하늘에 보좌를 베풀었고 그 보좌 위에 앉으신 이가 있는데] [민27:18..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눈의 아들 여호수아는 신에 감동된 자니 너는 데려다가 그에게 안수하고] ....히브리어 <파암עםַפָּ<은 두드리다 때리다 강타하다의 의미가 있습니다.... 긍정적인 뜻으로 <파암עםַפָּ<이 사용되면 하나님의 손이 마음을 두드리다 울리다 감동을 주다의 의미가 있습니다....하나님께서 사람의 마음을 깊이 감동하실 때 <파암עםַפָּ< 의 두드리시는 은혜를 주시면 그 영혼은 큰 변화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그 시간부터 예수 그리스도와의 깊은 만남이 있을 것입니다....<파암עםַפָּ<이 부정적으로 사용되면 불안이 마음을 때리다 초조한 심령이 마음을 괴롭히다의 의미로 사용됩니다 ....불안 초조 두려움이 올라와서 견딜 수 없는 마음의 상태가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분명합니다 명확하십니다 ....성령께서 하나님의 살아 있는 말씀으로 심령을 두드리실 때 깊은 감동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은혜 위에 은혜를 부어 주시는 시간이 되게 될 것입니다 다시 일어서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놓치면 은혜 대신 불안으로 마음이 힘들어 질 것입니다...영적인 진공 상태는 없습니다 오로지 은혜 아니면 불안입니다 은혜로운 심령 아니면 강퍅한 마음입니다 ...그러므로 성령께서 오늘도 마음을 깊이 만져 주셔야 합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의 은혜의 손으로… ====== ......[사9:1-7...*1.전에 고통 받던 자들에게는 흑암이 없으리로다 옛적에는 여호와께서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이 멸시를 당하게 하셨더니 후에는 해변 길과 요단 저쪽 이방의 갈릴리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2.흑암에 행하던 백성이 큰 빛을 보고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주하던 자에게 빛이 비치도다 *3.주께서 이 나라를 창성하게 하시며 그 즐거움을 더하게 하셨으므로 추수하는 즐거움과 탈취물을 나눌 때의 즐거움 같이 그들이 주 앞에서 즐거워하오니 *4.이는 그들이 무겁게 멘 멍에와 그들의 어깨의 채찍과 그 압제자의 막대기를 주께서 꺾으시되 미디안의 날과 같이 하셨음이니이다 *5.어지러이 싸우는 군인들의 신과 피 묻은 겉옷이 불에 섶 같이 살라지리니 *6.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7.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왕좌와 그의 나라에 군림하여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지금 이후로 영원히 정의와 공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 ----메시야의 약속(사 9:1-7) 본장의 서두에 있는 말들은 모든 일이 어둡고 우울하게 보였던 전 장(前章)의 끝부분을 분명히 가리키고 있다. 즉 전 장에는 "보라, 환난과 흑암과 고통의 흑암 뿐이로다" 고 했다. 이것은 매우 암담하나, 그렇게 극심하지는 않다. 왜냐하면 "정직한 자에게는 흑암 중에 빛이 일어나며" (시 112:4), "어두워 갈 때 빛이 있게 되고" (슥 14:7), 전에는 고통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질적으로나 정도에 있어서) 그러한 흑암이 없으리로다" 라고 했기 때문이다(1절). 최악의 사태에도, 하나님의 백성은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이 말이 한글 성경에는 불분명함) 그들의 고통을 어느 정도 완화시키고 진정시킬 수 있는 위로를 얻게 되리라는 것을 명심하자. 그들은 핍박을 당하여도 버린 바 되지는 아니하며(고후 4:9),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한다(고후 6:10). 상황이 가장 흑암 중에 있을 때에도, "빛을 지으시고 어두움도 창조하신" (45:7) 자가 그들의 한계를 정하시어, 서로 대조되게 하셨다는 것(창 1:4)은 우리에게 위로를 주는 일이다. 그 하나님은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여지껏 흑암이 있었고 그것은 매우 오래 지속되었다. 그러나 이제는 더 이상 있지 않게 될지니라." Ⅰ. 여기에 다음 세 가지 사실이 약속되어 있다. 그 모두는 결국 복음의 은혜를 가리키고 있다. 그 당시의 성도들은 어둡고 흐린 날에는 그 은혜에 대한 소망으로 자신들을 위로해야 했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고통 중에는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소망 - 비록 그것이 지금은 그 당시의 그리스도의 첫번째 강림과는 큰 차이가 있을 지라도 - 으로 우리 자신을 위로해야 한다. 그와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말일에 교회를 위해 모아 두신 그 긍휼은, 교회가 당하는 현재적 재난으로 인해 교회와 함께 애통하고 있는 자들에게 힘이 될 것이다. 우리는 여기에서 다음에 관한 약속을 볼 수 있다. 1. 영화로운 빛에 대한 약속이다. 그것은 흑암을 점차로 축출할 것이며, 그 빛은 이전에 때때로 있었던 빛과는 다르리라고 했다. "전에 고통하던 자에게는" 그런 고통이 없으리라고 했다. 이제는 이전과 같이 어두운 때는 없을 것이다. 즉, "옛적에는 여호와께서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으로" (그 땅들은 외딴 곳에 있었으므로, 이웃의 대적들의 침입을 가장 많이 당했다), "멸시를 당케 하셨더니 후에는 해변 길과 요단 저편 이방의 갈릴리를 영화롭게 하셨다" 고 했다(1절). 아마도 이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찢으시고 그 사방을 치신" (왕하 10:32) 그 때를 가리키는 것 같다. 하나님은 더 큰 심판을 백성들에게 내리시기 전에 보다 작은 심판을 내려 그들의 반응을 시험하신다. 그러나 가벼운 고통이 겸손케 하고 개혁하는 데 소용이 없게 되면, 우리는 더 심한 고통을 당할 것을 예상해야 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심판하실 때에는, 항상 그가 이기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스불론과 납달리 땅에는 흑암 시대가 있다. 그리고 "이방인들의 갈릴리에는 고통의 흑암" 이었다. 그것은 그들이 무지하다는 점에서도 그러하며(그들은 "율법과 증거의 말씀" 을 쫓아 말하지 않았다. 따라서 그들에게는 "빛이 없었다." 8:20) 그들이 당하는 고생과 외면적인 일에 대한 그들의 절망적인 마음가짐에서 볼 때도 그러하다. 우리는 그 두 가지 사실을 동시에 읽을 수 있다(대하 15:3, 5). "이스라엘에는 참 하나님과 가르치는 예언자가 끊어졌으니, 그 시대에는 평강이 없었도다" . 그러나 경고된 그 흑암(8:22)이 그 정도로까지 크게 미치지는 않을 것이라고 했다. 왜냐하면, "흑암에 행하던 백성이 큰 빛을 보았기" 때문이다(2절). (1) 그 예언자가 살아 있을 때에 유다와 이스라엘에는 많은 예언자들이 있었는데, 그들의 예언은 율법과 증거의 말씀을 신봉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지시와 위로를 주는 큰 빛이었다. 기록된 말씀 이외에도 그들에게는 예언이 있었다. 그들에게 이런 일이 얼마나 오래갈는지를 알려 준 예언들이 있었다(시 74:9). 그것은(외부적인 고생이라는 점에서 보면) 그들이 "흑암 중에 앉아, 그늘진 땅에 거하던" 때에는 커다란 위안이 되었다. (2) 이것은 우리 주 예수께서 하나의 예언자로서 나타나기 시작했을 때, 그리고 스블론과 남달리 땅에서 또 이방인의 갈릴리에서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을 때, 완전히 이루어지게 되어 있었다. 그리고 구약의 예언자들은 그리스도에 대한 증인이었을 뿐만 아니라 그의 모형이었다. 그가 오셔서 스불론과 납달리 지경에 거하셨을 때, 그때에 이 예언이 이루어졌다고 일컬어지고 있다(마 4:13-16). 다음 사실들에 주목하자. ① 복음을 모르는 자들은 흑암 속에서 행하며, 자기들이 무엇을 행할지 또 어디로 가야할지를 모른다. 그리고 그들은 사망의 그늘의 땅에, 짙은 흑암과 극도의 위험 속에 거한다. ② 복음이 어떤 곳에나 사람에게 들어오면, 빛 곧 큰 빛이요 더욱 더 빛을 발할 찬란한 빛이 들어오는 것이다. 흑암 속에 있는 자들에게는 빛이 반갑듯이, 우리는 복음을 반가운 것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준비된 마음으로 그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왜냐하면, 그것이 우리에게 최고로 유용하기 때문이며, 또한 그 자체를 증거해 주기 때문이다. 진실로 이 빛은 즐겁다. 2. 영화로운 번영과 그것으로 인한 전 인류의 기쁨에 대한 약속이 있다(3절). "하나님이시여, 주께서 이 나라를, 곧 주께서 긍휼을 예비해 두신 이 유대 민족을 창성케 하셨나이다. 비록 그것이 연이은 쓰라린 심판에 의해 감소되었을지라도, 이제 주께서 그것을 다시 창성케 하시기 시작했습니다." 만일 다수의 사람이 근면하다면 그 민족의 수효는 그 민족의 힘이며 재산이 된다. 그리고 민족들을 커지게 하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그러나 다음과 같은 말이 뒤따르고 있다. "주께서는 그 즐거움 - 정욕적인 기쁨과 환락, 그리고 그런 즐거움의 대상과 원인이 되는 것들 - 을 더하게 하시지 않았나이다(개역 한글판에는 "더하게 하셨나이다" 로 되어있음. 역주).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주의 앞에서 즐거워하였나이다. 즉 그들 중에는 진지한 영적 기쁨이, 하나님을 바라봄으로써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는 기쁨이 풍성하게 있습니다." 이것은 2절에 언급되어 있는데, 복음의 빛이 비치는 시대에 매우 잘 적용될 수 있다. 그때에는 하나님이 그 나라, 곧 복음의 이스라엘을 창성케 하셨다. (마소라 텍스트에 의하면)" 주께서 그 기쁨을 크게 하셨으니, 곧 그 빛을 받는 모든 사람에게니이다." 다음의 말들은 그러한 해석을 뒷받침 해 준다. "그들이 주(主) 앞에서 즐거워하나이다. 그들이 거룩한 의식 가운데 주 앞에 나와 크게 기뻐하나이다. 그들의 희락은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는 이스라엘의 것과 같지 아니하며(주께서는 그런 즐거움을 더하게 하지 아니하셨나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은총과 주의 은혜의 표적 안에 있습니다." 복음이 빛과 능력으로 들어올 때는 기쁨도 동반해 온다는 것을 명심하자. 그리고 그 복음을 올바로 받는 자들은, 그것을 기뻐하며 또 기뻐할 것이다. 그러므로 열방의 전향이 이렇게 예언되어 있다(시 67:4). "열방을 기쁘고 즐겁게 노래할지라" (시 116:11 참조). (1) 그것은 거룩한 즐거움이다. "그들이 주 앞에서 즐거워 하나이다" 고 했다. 그들은(그리스도처럼, 눅 10:21) 영으로 기뻐하며 더욱이 하나님 앞에서 기뻐한다. 세상의 눈에는 그들이 항상 슬프게 보일지라도,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그들이 항상 기뻐하고 있다(고후 6:10). (2) 그것은 큰 즐거움이다. 그것은 "추수하는 즐거움 같다" 고 했다. 즉 눈물로 씨뿌리고 땅의 귀한 열매를 오래 참음으로써 기다려 온 자들이 기쁨으로 추수하는 즐거움 같다. 그리고 군인이 위험한 전투 후에 "탈취물을 나누는" 때의 즐거움과 같다. 복음은 그것과 함께 풍성함과 승리를 가져온다. 그러나 그 기쁨을 얻고자 하는 자들은 추수의 즐거움을 얻기 전의 농부처럼, 힘든 일을 각오해야 하며, 탈취물을 나누는 즐거움을 얻기 전의 군인처럼 전투를 각오해야 한다. 그러나 그 즐거움이 왔을 때는, 즐거움이 수고에 대한 충분한 보상이 되어 줄 것이다(행 8:8, 39 참조). 3. 영광스러운 자유와 해방에 대한 약속이 있다(4, 5절). "그들이 주 앞에서 즐거워할 것이며, 거기에는 좋은 이유가 있는데, 이는 그들의 무겁게 멘 멍애를 꺾으시어, 그들을 편케 하셨고, 더 이상 노역을 하지 않게 만드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주께서 그 어깨의 채찍과 그 압제자의 막대기, 곧 오랫동안 의인에게 머물러 있던 악인의 막대기를 꺾으셨기 때문입니다." 마치 미디안의 멍에가 기드온의 힘으로 이스라엘의 목에서 꺾어져 나갔던 것과 같다. 만일 하나님께서 이전에 베푸신 구원의 역사를 우리를 위해 역사할 사건에 대한 모형으로 삼으신다면, 우리는 거기서 격려를 얻어 하나님에게 소망을 두고 그를 찾아야 한다(시 83:9). "주는 미디안에게 행하신 것 같이 저희에게도 행하소서!" 본문에서 언급하고 있는 현세적인 구원이 무엇인지는 확실치 않으나, 아마도 산헤립이 예루살렘의 주인이 되지 못하도록 한 사건이었을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직접적인 손에 의해 "미디안의 때와 같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른 싸움들은 보통 매우 소란스럽고 많은 피의 댓가로써 승리를 얻지만, 그 승리는 조용하게, 그리고 시끄럽지 않게 이루실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여기서는 산헤립을 뜻함 - 역주)의 영광 밑에다가 불을 놓으실 것이다" (10:16). 그리하여 "사람이 피우지 않은 불이 그를 멸하리라" (욥 20:26). 그러나 의심할 바 없이 본문은 더 앞의 사건 곧 흑암 속에 있는 자들에게 찾아올 저 큰 빛의 복된 열매와 결과를 내다보고 있다. 그것은 자유를, 곧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눅 4:18) 가져올 것이다. (1) 복음의 의도와 그 은혜의 의도는 죄와 사탄의 멍에를 꺾는 것, 죄와 타락의 짐을 제거하고 우리를 그 압제자의 막대기에서 자유케 하여,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영광스러운 자유 가운데로 들어갈 수 있게 하는 것이다. 그리스도는 형식적인 율법의 멍에를 꺾으시사(행 15:10; 갈 5:1) 우리를 "원수의 손에서" 건지시어, 우리가 그를 "두려움 없이 섬기게" 하셨다(눅 1:74, 75). (2) 이것은 불같이 역사하시는 성령에 의해 행해진다(마 3:11). 그것은 전투하는 용사들이 어지러이 싸우는 것처럼 그렇게 행해지지는 않는다. 우리 싸움의 무기는 현세적인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 싸움은 심판하는 영과 소멸하는 영으로 수행된다(4:4). 그것은 사람의 마음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에 의해 "미디안의 날(때)과 같이" 된다. 진정, 그리스도는 우리의 기드온이시다. 이적을 행하는 것은 그의 칼이다.[오직 참된 절대 긍정적 관점과 그 의미에서!!..."사사 기드온의 육적-부정적 측면까지 포함하여 가리켜 말함이 결코 아니다.., 주의 영으로, 그분의 말씀따라 대적 멸절 통해 영적 이스라엘의 해방을 가져오셨음을 가리키는 바..] Ⅱ. 그러한 교회를 위해 이 큰 일들을 수행하고 성취시킬 자는 누구이며 어디에 있는가? 이사야 예언자는 그 위대한 일들이 메시야를 통해서 되리라고 했다(6, 7절). 그는 이사야가 예고한 대로 처녀의 아들로서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 이라 했다(7:14). 그는 예언자들의 문체를 따라, 그것이 이미 이루어진 일인 것처럼 말하고 있다. "한 아이가 났다." 그 사실은 마치 이미 이루어진 것처럼 확실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그의 성육신 전에도 교회는 "여자의 후손" 에 관한 첫번째 약속 덕분에(창 3:15) 메시야의 업적에서 오는 큰 이득과 혜택을 이미 받아왔기 때문이다. 그는 죽임을 당한 어린 양이었던 것과 동시에 "창세 때부터" 태어난 아이였다(계 13:8). 하나님께서 구약의 교회를 위해 베푸신 모든 큰 위업은 영생의 말씀인 메시야를 통해서 된 일이며, 중보자인 그 때문에 된 일이다. 그는 하나님의 기름 부음 받은 자였고, 하나님께서 살피시는 자였다(시 84:9).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 얼굴 빛을 그의 성소에 비추시는 것은, 우리 주님 곧 주 그리스도를 인함이다(단 9:17). 유대 민족, 특히 다윗의 집은 그 축복을 간직한 자들이므로, 여러 차례 절박한 멸망에서도 보존되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지극히 큰 긍휼을 그의 교회를 위해 보존해 두셨고, 그 교회는 하나님의 섭리의 특별한 배려 아래 있다. 그러므로 어떻게 하나님의 교회가 이보다 더 안전할 수 있었겠는가? 갈대아 의역본은 그것은 영존할 자 곧 그리스도에 대한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그리고 이 본문 구절은 그와 그의 나라에 대한 유명한 예언이다. 의심할 바 없이 주로 이 구절에 근거하여 있는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린 자들은 때때로 이것을 되돌아보았고 즐겁게 이것을 읽었다. 1. 스스로를 낮추신 그를 보라. "전능하신 하나님" 이신 바로 그가 "한 아이로 태어 나셨다." 신이 잠간 동안의 생을 사는 아기로 되셨다. "영존하시는 아버지" 는 "우리에게 주신 바 된 아들" 이시다. 이러한 것이 우리의 모습을 취하신 그의 겸양이시다. 이처럼 그는 그 자신을 낮추시고 비우심으로써, 우리를 높이시고 채우셨다. 그는 우리 인간 세상에 태어 나셨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셨다." 그는 타락한 상태에 있는 우리의 입장이 요구하는 모든 것이 되시기 위해 값없이 우리에게 주어졌다. 그는 "우리에게 났다." 우리에게, 곧 죄지은 천사들에게가 아니고 우리 인간을 위해서 주신 바 되었다. 이 사실은 매우 의기양양하게 언급되어 있으며, 그 천사가 "오늘날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다" (눅 2:11)고 말하면서, 메시야가 오신 것을 목자들에게 전한 것은 바로 이 말씀을 주목하여 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스도가 태어 나시어 우리에게 주신 바 된 것은 가장 큰 슬픔과 두려움의 날에도 우리 소망의 큰 초석이며, 우리 기쁨의 초석이라는 것을 명심하자. 2. 높이 들리우신 그를 보라. 우리에게 주신바 된 이 아이, 이 아들, 이 하나님의 아들, 이 인자(人子)는 우리에게 큰 자비를 베푸실 능력을 지니고 있다. 왜냐하면 최고의 존귀와 능력을 부여 받으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가 우리의 친구가 되신다면, 우리는 행복하지 않을 수 없다. (1) 그가 도달하게 된 위엄과 모든 이름 위에 있는 그의 이름을 보라. 그는 "기묘자, 모사" 등으로 불리워질 것이다(그리고 우리도 그가 그렇게 불리우고 있는 것과 불리워질 것을 확신한다). 그의 백성은 이 이름을 통해 그를 알고 섬길 것이다. 그리고 그 이름에 충분히 응하는 자답게 그들은 그에게 복종하며 의지할 것이다. ① 그는 "기묘자요 모사" 이다. 그가 "기묘자" (wonderful)라 불리우는 것은 마땅하다. 왜냐하면 그는 하나님인 동시에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의 사랑은 천사들과 영화롭게 된 성도들의 경탄의 대상이다. 즉 그의 탄생, 사망, 부활, 그리고 승천에서 그는 실로 놀라우셨다. 끊임없는 경이(이적)가 그를 따랐고 논쟁할 여지도 없이 그에 관한 경건의 비밀은 심대했다. 그는 "모사" (counsellor) 이시다. 왜냐하면, 그는 영원 전부터 하나님의 계획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는 인생들에게 훈계하시며 그 속에서 우리의 번영을 도모하신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훈계하" 시는 것은 그를 통해서이다(시 16:7; 계 3:18). 그는 아버지의 지혜이시며, 또 하나님으로부터 우리에게 지혜를 주신다. 혹자는 이것을 함께 연결시키고 있다. 즉 그는 기묘한 모사, 모사들의 기묘 또는 기적이라고 보는 것이다. 다른 점에서와 마찬가지로, 그는 모사(상담자)라는 점에서 아주 탁월하시며, 아무도 그와 같이 가르칠 수 없다. ② 그는 "전능하신 하나님 - 하나님, 전능자" 이시다. 그는 자기의 사업을 수행하실 지혜를 가지고 계시듯, 또한 힘을 가지고 계신다. 그는 가장 완전한 구원을 이루실 능력이 있다. 그것이 바로 중보자의 과업이니,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 이하의 것은 그것을 이룰 수 없다. ③ 그는 "영존하시는 아버지" 또는 "영원의 아버지" 이시다. 그는 하나님이시며 영원 전부터 영원까지 계시는 아버지와 함께 한 자이시다. 그의 백성에 대한 그의 아버지다운 배려와 자상함은 영원하다. 그는 그들에 대한 영생과 행복의 창조자이시다. 따라서 그들에 대해서 거룩하시고 영원하신 아버지이시다. 그는 천사들에게가 아니라 그에게 복종케 된(히 2:5) "장차 오는 세상의 아버지" (칠십인 역은 그렇게 해석했다), 곧 복음의 나라의 아버지이시다. 그는 영원 전부터 위대한 구속 사업의 아버지이셨다. 그는 늘 그것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구원은 "모사" 로서 그의 지혜의 소산이었고, "영존하시는 아버지" 로서 그의 사랑의 소산이었다. ④ 그는 "평화의 왕" 이시다. 왕으로서 그는 그의 나라에 평화를 보존하시며, 평화를 명하신다. 아니 그는 평화를 창조하신다. 그는 우리의 평화이시다. 그리고 그의 백성들의 마음을 지키며 주관하는 것은 그의 평화이다. 그는 평화를 애호하는 왕이시며 그의 통치자 평화로울 뿐 아니라 모든 선의, 곧 그의 백성들에게 있어서 현재와 미래의 축복이 되는 모든 평화의 창시자이며 수여자이시다. (2) 그가 도달된 주권과 모든 주권 위에 있는 그의 보좌를 보라(6절). "그 어깨에는" 또 오직 그의 어깨에만, "정사를 멜 것이다." 그는 자기 어깨에 권력의 뱃지(" 다윗 집의 열쇠" 22:22)를 달게 될 뿐만 아니라, 그 권력의 짐을 지게 될 것이다. 그 아버지께서 그에게 그 짐을 지우실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결코 양도될 수 없는 통치권을 갖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는 그것을 수행하실 것이다. 따라서 분명 그의 나라는 잘 다스려질 것이다. 그가 정권을 어깨에 메실 것이며, 모세처럼 자기의 짐이 중하다고 결코 불평하지는 않으실 것이기 때문이다. "나 혼자는 이 모든 백성을 질 수 없나이다" 라고 모세는 불평했었다(민 11:11, 14). 그리스도의 통치에 관해 영광스러운 것들이 여기에 언급되어 있다(7절). ① 그것은 번창하는 나라가 될 것이다. 그것은 증가될 것이다. 그의 나라의 영역은 더욱 더 확대될 것이며 날마다 많은 사람이 거기에 더하여질 것이다. 그 광채가 더하여질 것이며, 그것은 이 세상에서 더욱 더 눈부시게 빛날 것이다. 지상의 군주들은 모두 그에게 비하면 초라한 자들이다. 따라서 금으로 시작되어 철과 진흙으로 끝나고, 각 군주국은 점차로 시들어 버린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나라는 성장하는 나라이며 마침내는 완전케 될 것이다. ② 그것은 평화의 왕이신 그의 성품에 합당한 평화로운 통치가 될 것이다. 그는 사랑으로 다스릴 것이며 사람의 마음을 다스릴 것이다. 그러므로 그의 통치가 있는 곳은 어디에나 평화가 있을 것이며, 그의 나라가 번창함에 따라 평화가 더할 것이다. 우리가 그리스도께 복종할수록 우리는 더 편하고 안전하다. ③ 그것은 의로운 통치가 될 것이다. 다윗의 아들인 그가 다윗의 위에 앉아서 그에게 맡겨진 나라를 다스릴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위를 저에게 주실 것이라" 고 했다(눅 1:32, 33). 유대인과 이방인이 연합되는 복음의 교회는 그리스도께서 군림하시는 거룩한 산 시온이다(시 2:6). ④ 그 나라는 신중하게 또 정의롭게 다스려져, 그 통치의 위대한 목적에 부합될 것이다. 바로 이것이 그 나라의 기초이다. "그가 그것을 굳게 세우고 공평과 정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다." 그리스도의 나라에서 모든 일은 잘 처리되고 있으며 또 처리될 것이다. 그리고 그의 백성 중 어느 누구도 결코 불평할 이유가 없게 될 것이다. ⑤ 그것은 영원한 나라가 될 것이다. "그 정사(government)의 더함이 무궁할 것이라" 했다(그것은 계속 성장할 것이다). 평화의 더함이 무궁할 것이다. 왜냐하면 이 나라 백성들의 행복이 영원토록 지속될 것이며, 아마도 in infinitum - 영원히 진보될 것이다. 그는 "지금부터 영원토록" 다스리실 것이다. 즉 모든 세대를 통해서 뿐만 아니라 그 나라가 하나님 곧 아버지께 넘겨 질 때까지 구속자와 구속함을 얻은 사람들 모두의 영광은 영원히 계속될 것이다. ⑥ 하나님께서 친히 이 모든 것을 수행하셨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즉 그 손에 모든 능력을 지니시고 모든 창조물을 지휘하시는 여호와께서 이를 이루시리라. 다윗의 위에 평화의 왕이 거기에 앉혀질 때까지, 다윗의 위를 보존하실 것이다. 그의 열심이 그것을 행하실 것이다. 그 자신의 영예, 그의 약속의 신빙성, 그리고 그의 교회의 유익에 대한 그의 빈틈없는 배려가 그것을 행하실 것이다." 하나님은 사람들 중에 있는 그리스도의 나라의 진보에 크게 마음을 기울이신다는 것을 잊지 말자. 이 사실은 그 나라가 잘 되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매우 큰 위안이 된다.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 이 모든 도전을 극복할 것이다. ---- 삼손=쉬므손...태양같은, 태양의 사람..세메쉬(태양)에서 유래..마노아의 거처는 벧세메스 근처였다.(a) 삼손은 이스라엘 사사로 이십년을 지내었다(삿 16:31). 이 유명한 단 족속의 이스라엘 마지막 사사는 소라에 살았고, 소라와 에스다올 사이 그의 아버지 마노아의 장지에 장사되었다(삿 16:31). 당시 블레셋 족속은 가자에서 갈멜산에 이르는 해안 평야를 점유하고 강한 유격 부대를 배치하여 철을 독점함으로써 이스라엘인들이 무기를 만들지 못하도록 하였다(삼상 13:19 이하). 블레셋인들은 이스라엘인들에게 세금을 과중하게 부과하지는 않았으나 여호와에 대한 마음과 신앙을 약화시켰다. 이러한 상황에서 삼손이 등장하였다. (b) 삿 13-16장에 따르면 삼손의 생애는 다음과 같다. 삼 손은 잉태치 못하던 미노아의 아내에게서 태어났다. 그의 출생 전에 여호와의 사자가 나타나서 삼손이 태에서 나옴으로부터 나실인으로 바쳐질 것이라고 말해주었다(삿 13:2-24). 삼손은 엄격한 나실인 규범에 따라 살도록 고무받았다(참조: 삿 16:17). 삼손의 거의 초자연적인 힘은 혁혁한 공을 세웠다: 사자를 맨손으로 찢은 일(삿 14:5 이하), 사자의 시체의 꿀에 관한 수수께끼를 푼 일로 딤나의 블레셋 족속에게 약속한 대가를 지불하기 위해 에스글론에서 30명의 사람을 한 손에 쳐 죽인일(삿 14:12-19), 나귀 턱뼈로 블레셋인 1,000명을 죽인 일(삿 15:14-17), 가사의 분짝들을 헤브론 앞산 꼭대기로 옮긴 일(삿 16:30) 등이다. 삼손의 간교한 꾀는 두마리 여우(재칼?) 꼬리 사이에 횃불을 매달아 블레셋 사람의 곡식 밭과 감람원을 불사름으로써 장인의 백성에게 복수한 책략에서 잘 드러난다(삿 15:4 이하). 삼손의 도덕적 성품의 나약함은 여자와의 관계, 딤나의 여자(삿 15:1 이하), 가사의 창녀(삿 16:1 이하), 소렉의 들릴라(삿 16:4-20)와 관계에서 나타난다. 특히 이 들릴라는 블레셋 방백들이 삼손을 파멸시키려고 그 힘의 비밀을 알아내기 위해 이용한 도구였다(삿 16장). 삼손은 위기의 때에 이스라엘 백성들의 참된 지도자들이었던 다른 사사들과는 분명히 구별되는 인물이었다. 그는 하나님과의 신비적인 교제를 거의 가지지 않았다. 아마도 자신의 깊이 있는 도덕적 신념의 결여는 그의 실패의 이유가 될 것이다. 그는 자신을 결코 사사라고 주장하지 않았다. 삼손은 이스라엘을 블레셋인의 손에서 벗어나게 못했으며, 어릿 광대극을 보는 것 같다. 그러나 삼손의 죽음은 그의 마지막 영웅적인 행위로 장식되었다(삿 16:28-31). (c) 삼손의 생애에 관한 기록이 가지는 역사적 중요성의 하나는 히브리 왕조 이전 시대의 사회적 풍습에 관하여 얼마간 알려준다는 것이다. 몇날 동안 먹고 마시고 수수께끼를 풀면서 잔치가 계속되는 결혼 예식(삿 14:9 이하), 아들의 아내를 구함에서 부모의 역할(삿 14:2-4), 탐탁지 않은 아내를 다른 사람에게 주는 일(삿 15:2), 블레셋 방백들에게 이용된 한 여자의 효과적인 계략(삿 16:5 이하), 다곤 신에게 행한 블레셋 족속의 희생 제사의 사회적 측면(삿 16:23) 등이다. (d) 삼손의 생애에 관한 기록이 가지는 다른 하나는 종교적 중요성이다. 첫째로 삼손의 사명은 그가 생존한 폭력의 시대에서 생의 싸움터에서 싸우는 힘은 오직 하나님께로서만 온다는 것을 그 시대 사람들에게 보이는 것이다. 삼손은 나실인 서원을 위반하고 하나님께 불순종했으며, 바로 여기에 그의 종교적인 중요성이 있다. 그의 생애는 비극적이었지만 영웅적인 최후를 마친 카리스마적인 지도자의 부정적인 하나의 실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에 대한 그의 부분적인 승리는 그의 이름을 믿음의 영웅들과 나란히 열거할 만한 이유가 되었다: "내가 무슨 말을 더 하리요 기드온, 바락, 삼손, 입다와 다윗과 사무엘과 및 선지자들의 일을 말하려면 내게 시간이 부족하리로다"(히 11:32). 삼손의 생애를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는데 ① 욕망으로 파멸하고, ② 회개와 고백으로 회복하고, ③ 순교로 승리하였다.(참조: HBD; PEB). ------- KJV]제13장 1. And the children of Israel did evil again in the sight of the LORD; and the LORD delivered them into the hand of the Philistines forty years. 2. And there was a certain man of Zorah, of the family of the Danites, whose name was Manoah; and his wife was barren, and bare not. 3. And the angel of the LORD appeared unto the woman, and said unto her, Behold now, thou art barren, and bearest not: but thou shalt conceive, and bear a son. 4. Now therefore beware, I pray thee, and drink not wine nor strong drink, and eat not any unclean thing: 5. For, lo, thou shalt conceive, and bear a son; and no razor shall come on his head: for the child shall be a Nazarite unto God from the womb: and he shall begin to deliver Israel out of the hand of the Philistines. 6. Then the woman came and told her husband, saying, A man of God came unto me, and his countenance was like the countenance of an angel of God, very terrible: but I asked him not whence he was, neither told he me his name: 7. But he said unto me, Behold, thou shalt conceive, and bear a son; and now drink no wine nor strong drink, neither eat any unclean thing: for the child shall be a Nazarite to God from the womb to the day of his death. 8. Then Manoah intreated the LORD, and said, O my Lord, let the man of God which thou didst send come again unto us, and teach us what we shall do unto the child that shall be born. 9. And God hearkened to the voice of Manoah; and the angel of God came again unto the woman as she sat in the field: but Manoah her husband was not with her. 10. And the woman made haste, and ran, and showed her husband, and said unto him, Behold, the man hath appeared unto me, that came unto me the other day. 11. And Manoah arose, and went after his wife, and came to the man, and said unto him, Art thou the man that spakest unto the woman? And he said, I am. 12. And Manoah said, Now let thy words come to pass. How shall we order the child, and how shall we do unto him? 13. And the angel of the LORD said unto Manoah, Of all that I said unto the woman let her beware. 14. She may not eat of any thing that cometh of the vine, neither let her drink wine or strong drink, nor eat any unclean thing: all that I commanded her let her observe. 15. And Manoah said unto the angel of the LORD, I pray thee, let us detain thee, until we shall have made ready a kid for thee. 16. And the angel of the LORD said unto Manoah, Though thou detain me, I will not eat of thy bread: and if thou wilt offer a burnt offering, thou must offer it unto the LORD. For Manoah knew not that he was an angel of the LORD. 17. And Manoah said unto the angel of the LORD, What is thy name, that when thy sayings come to pass we may do thee honor? 18. And the angel of the LORD said unto him, Why askest thou thus after my name, seeing it is secret? 19. So Manoah took a kid with a meat offering, and offered it upon a rock unto the LORD: and the angel did wonderously; and Manoah and his wife looked on. 20. For it came to pass, when the flame went up toward heaven from off the altar, that the angel of the LORD ascended in the flame of the altar. And Manoah and his wife looked on it, and fell on their faces to the ground. 21. But the angel of the LORD did no more appear to Manoah and to his wife. Then Manoah knew that he was an angel of the LORD. 22. And Manoah said unto his wife, We shall surely die, because we have seen God. 23. But his wife said unto him, If the LORD were pleased to kill us, he would not have received a burnt offering and a meat offering at our hands, neither would he have showed us all these things, nor would as at this time have told us such things as these. 24. And the woman bare a son, and called his name Samson: and the child grew, and the LORD blessed him. 25. And the Spirit of the LORD began to move him at times in the camp of Dan between Zorah and Eshtaol. ====== 사사기 13장 (개요) 본 장에서는 이스라엘의 마지막 사사이며 엘리 대제사장 바로 직전에 활동했던 삼손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삼손에 관해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매우 놀랍고 특별한 내용이 담겨져 있다. 또한 대부분 사사들의 이야기는 그들이 이름을 떨치기 시작할 때부터 기록되었으나 삼손의 이야기는 출생부터, 아니 천사가 그의 잉태를 알리는 때부터 시작된다. 이것은 후세의 세례 요한과 그리스도의 일생을 기록한 한 모형이 되었다. 1. 이 때에는 블레셋 사람들이 이스라엘을 지배하고 있었다(1). 2. 한 천사가 마노아의 아내에게 나타나 삼손의 출생을 미리 알려 주었다 (2-5). 3. 그녀는 이것을 남편에게 알렸다(6, 7). 4. 부부가 함께 다시 그 천사의 말을 듣게 되었을 때(8-14), 그들은 천사에게 경의를 표했으며(15-18), 천사가 그들에게서 떠날 때 주의 사자라는 것을 알고 매우 놀랐다(19-23). 5. 마침내 삼손이 태어났다(24, 25). ------------ 삼손의 잉태(삿 13:1-7) 우리는 곳곳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큰 곤경에 처하게 되었다는 기록을 보게 되며, 그 곤경이 구원자를 탄생케 하는 하나의 계기가 됨을 발견했다. 이런 사실이 1절에 간략하게 언급되어 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와의 목전에” 다시 악을 행하게 되자, 여호와께서는 전과 같이 그들을 원수들의 손에 넘겨 버렸다. 죄악이 없었다면, 우리의 구주 또한 필요치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죄악이 많은 곳에 하나님의 은총이 더욱 풍성하다. 하나님은 이들을 이웃 백성 중 가장 타락했던 블레셋 사람들에게 정복당하게 하셨다. 곧 이스라엘 자손 중 전쟁을 알지 못하는 자에게 “그것을 가르쳐 알게 하려 하사 블레셋 다섯 방백을 남겨 두셨다”(3:1, 3). 블레셋 사람들은 이스라엘 백성과 비교할 때 보잘것없는 민족으로서, 단지 다섯 성읍만이 약간의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하나님이 블레셋 사람들로 하여금 이스라엘 백성을 지배하게 했을 때, 이들은 매우 사납고 잔인하게 변해 있었다. 그리고 이들의 지배는 다른 때보다 더 오래 지속되어, 근 40년간 이스라엘 백성을 지배했다. 이스라엘이 이런 고통을 겪고 있을 때 천사가 나타나 삼손이 태어날 것을 알려 주었던 것이다. Ⅰ. 삼손의 혈통. 삼손은 단 지파의 혈통에서 태어났다(2절). 단이라는 이름은 사사 또는 심판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창 30:6). 야곱이 임종할 당시 “단은 그 백성을 심판하리로다”라는 말을 남겼다. 이것은 아마도 삼손을 두고 한 말로서 비록 단은 이스라엘 지파에 사는 한 여종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그의 아들 삼손이 그 백성을 심판하리라는 예언이었을 것이다(창 49:16). 단이 속해 있는 지파의 운명은 블레셋 사람들의 수중에 달려 있어서 속박을 당해야 했다. 삼손의 부모는 오랫동안 자식이 없었다. 이삭, 요셉, 사무엘, 세례 요한과 같은 훌륭한 사람들의 부모들은 오랫동안 자식을 낳기 위한 축복을 기다렸고 하나님의 큰 은사로 자식을 얻게 되었다. “잉태치 못하며 생산치 못한 너는 노래할지어다”(사 54:1). 오랫동안 하나님의 은총을 기다린 자는 때때로 풍성하고 귀한 은총을 얻게 되며, 이를 본 자들로 소망 속에서 하나님의 은총을 기다릴 수 있는 힘을 얻게 한다. Ⅱ. 단 지파에 살고 있던 마노아라는 자의 아내는 그녀가 곧 아들을 잉태하리라는 기쁜 소식을 들었다. 이것을 알려 준 자는 하나님의 천사 또는 선지자의 용모를 지닌 “여호와의 사자”였다(3절). 18절에 보면, 패트릭 주교의 의견대로, 이 천사는 주님 곧 그리스도로서 구주가 될 분이었다. 그의 이름은 기묘(wonderful, 18절)요 여호와(19절)라고 했기 때문이다. 이 위대한 구주는 상징적인 속죄자인 삼손과 특별한 관련을 맺고 있다. 이렇게 놀라운 소식이 전해진 것은 단 지파에 속한 마노아와 그의 아내를 위한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을 위한 것이었고(삼손은 이스라엘을 구해야 할 운명을 가지고 있었다), 이것은 장차 나타날 메시아를 위한 것이기도 했다. 이처럼 삼손은 그리스도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천사들이 그의 탄생을 미리 예언해 준 한 모형이 되었던 것이다. 1. 여호와의 사자는 그녀의 고통을 잘 알고 있었다. “보라, 네가 본래 잉태하지 못하므로 생산치 못하였노라.” 이 말을 들은 그녀는 전에 한 번도 본 일은 없지만 그녀의 슬픔을 잘 알고 있는 것으로 보아 그가 아마 선지자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 사자가 이 말을 한 것은 그녀를 질책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아마 이때 그녀는 자기에게 자식이 없음을 실제로 괴롭고 슬프게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리라. 하나님은 그 분의 백성이 극심한 곤경에 처해 괴로워하고 있을 때, 그들을 위로하신다. “지금 너는 잉태치 못하나 그리 오래지 않아 곧 자식을 낳을 것이니라.” 2. 여호와의 사자는 그녀가 잉태해 아들을 낳으리라는 것(3절)을 말해 주었고 거듭 말하며(5절) 확신시켜 주었다. 사라가 믿음으로 잉태의 힘을 얻어 이삭을 낳은 것과 같이(히 11:11; 갈 4:23), 이 낯선 사자는 그녀에게 거룩한 말씀의 증거로 자식을 잉태하게 될 것을 약속했다. 오랫동안 잉태하지 못하던 많은 여자들은, 하나님의 섭리에 의해서 아들을 낳았다. 그러나 구약성경의 성도들이 오랫동안 믿음으로 기다려 왔던 그 약속의 씨의 상징이 되는 삼손은 약속에 의해 태어나게 되었다. 3. 여호와의 사자는 그 아이가 태어날 때부터 나실인이므로, 그 어머니는 나실인의 율법에 순종해야 하며(비록 그녀가 나실인의 서약을 한 일은 없더라도) 아이가 어머니의 몸에서 영양을 섭취하고 있는 동안은 “포도주와 독주를 마시지 말” 것을 지시했다(4, 5절). 이스라엘을 구원할 자는 거룩함의 본보기로서 하나님께 온전히 바쳐져야 한다는 것을 주목하자. 하나님께서 당신의 젊은이들 중에서 나실인을 세워 주심은 그 백성에 대한 당신의 친절이라고 한다(암 2:11). 다른 사사들도 하나님을 배신한 이스라엘의 멸절을 교정해 주었다. 그러나 삼손은 어떤 사사보다도 더욱 온전히 하나님께 성별된 사람이었다. 삼손은 하나님이 세우신 나실인이므로, 그의 생활을 통해서 나실인의 요건(민 6:2)이 되는 의식을 실증했으며, 나실인으로서 합당하게 자기 몸을 “구별하여 여호와께 드렸다”고 생각할 수 있다. 다른 사람을 구하려는 자들은 보다 훌륭한 믿음의 본을 보여야 한다. 이스라엘을 블레셋으로부터 구한 사무엘은 그 어머니의 맹세에 의해 나실인이 되었다(삼상 1:11).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지시에 의해 삼손은 나실인이 되었다. 그러므로 성별된 자의 어머니는 그녀 자신을 겸손하게 극기하고 부정한 음식을 먹지 말아야 했다. 또한 다른 시대에는 합당했던 일들이 이들에게는 금해졌다. 믿음으로 이런 약속을 얻은 것과 마찬가지로 그녀는 또한 이런 계율에 복종해야 했다. 여자들은 그들 몸의 열매인 자식들의 건강을 위해 해로운 것이면 무엇이든지 피해야 한다. 삼손은 나실인이 될 뿐 아니라 위대한 인물이 되어야 하므로 그의 어머니는 이것을 위해 포도주와 독주를 마셔서는 안 되었다. 4. 여호와의 사자는 삼손이 그의 나라를 위해 어떤 일을 하리라는 것을 알려주었다. “그가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시작하리라.” 우리의 자녀들이 하나님께 열심으로 봉사할 뿐 아니라 다른 사람의 유익을 위해 일하고 그 자손들에게 덕을 끼치는 것은 매우 바람직한 일이다. 그러므로 “말 아래” 있는 것이 아니라 “등경 위에서” 밝게 빛나는 촛불이 됨은 매우 훌륭한 일이다. 그가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시작하리라”는 말을 다시 살펴보자. 이 말은 블레셋이 오랫동안 이스라엘을 지배하리라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삼손이 자라나 이스라엘을 구원할 힘을 기르기 전에는 그 누구도 이스라엘을 구하지 못하리라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삼손조차도 완전히 이스라엘을 구할 수 없었다. 그는 단지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시작할” 뿐이었다. 이것은 이스라엘의 고통이 더 지속되리라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하나님은 서서히, 그리고 여러 사람의 손을 통해서 당신의 일을 이루신다. 어떤 자는 기초를 마련하고, 어떤 자는 그 기초 위에 집을 짓고, 또 다른 자는 지붕을 올려 일을 완성시킨다. 삼손은 그리스도의 한 모형이었다. (1) 삼손은 나면서부터 나실인이었다. 비록 우리 주 예수께서 나실인은 아니었지만, 그 분은 모든 죄에서 벗어난 깨끗한 존재로 하나님을 영광되게 했으므로 나실인으로 상징되었던 것이다. “육신으로 하면 그리스도가” 유대 교회에게서 “나셨다.” 그리스도에 대한 약속은 그들과 관계되어 있기 때문이다(롬 9:4, 5). 이 약속에 의해, 말하자면 그리스도는 오랫동안 유대 교회라는 태중에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수세대 동안 그리스도를 잉태하고 있던 유대 교회는, 삼손의 어머니와 같이 잉태기간 중에 거룩한 민족이요 특정한 민족이 되어야 했으므로, 때가 차면 오게 될 그리스도 “그를 위하여 부정한 것에 가까이하지 못하게” 엄격한 제한이 가해졌던 것이다. (2) 삼손은 이스라엘의 구원자였다. 즉 삼손은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신 구주 예수와 같이 이스라엘을 구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삼손은 단지 이스라엘을 구하기 시작했을 뿐이었고(완전히 블레셋 사람을 멸하고 이스라엘을 구한 마지막 인물은 다윗이었다) 우리 주 예수는 삼손과 다윗의 역할을 홀로 감당해, “우리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가 되셨다(히 12:2). Ⅲ. 자기에게 기쁜 일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소식을 들은 마노아의 부인은 급히 남편에게 달려가 그것을 전했다(6, 7절). 아마도 그녀는 혼자 믿음에 대한 깊은 생각이나 기도 속에 몰두해 있을 때 이 소식을 들은 것 같다. 그녀는 그것을 숨길 수가 없었고 달려가 남편에게 들려주었다. 1. 주의 사자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것은 여호와의 사자였다(6절). 그녀의 말에 의하면, 그 사자는 매우 두렵게 생겼다. 즉 그 사자는 위엄 있는 표정을 지니고 있었으며, 빛나는 눈동자와 환한 얼굴은 강한 존엄과 경건의 힘을 지니고 있었다. 그녀로서는 그의 이름이 누구인지 이스라엘의 어느 지파 혹은 어느 성읍에 살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가 알려 주려 하지 않았고 그녀 또한 그의 모습에 압도되어 감히 물을 수 없었다. 그녀는 하나님의 종이 이런 기쁜 일을 들려주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함에 넘쳐 더 이상 묻지 않았다. 2. 사자가 전한 소식을 이야기했다. 그녀는 잉태하리라는 약속과 그것을 위해 계율을 지키라는 말을 남편에게 전하고(7절), 앞으로 그녀가 계율을 잘 지킬 수 있도록 도와줄 것을 부탁했다. 이렇게 배우자는 하나님과의 교제에 대한 체험을 나누고, 하나님 안에서 서로를 키워 나가 “거룩한 길이라 일컫는”(사 35:8) 길 안에서 돕도록 해야 한다. --------- 다시 내방한 천사의 소식(삿 13:8-14) 하나님의 사자가 다시 찾아와 마노아와 그 아내를 만났다. Ⅰ. 마노아는 진지하게 이 일을 위해 기도드렸다(8절). 그는 아내가 들려준 말을 조금도 의심치 않았다. 그는 그녀가 현숙한 여자라는 것을 알고 있었으므로, “그 남편의 마음은 그를 믿었다”(잠 31:11). 요세푸스는 그의 아내가 낯선 사람과 이야기한 것을 질투했다고 말하고 있지만, 그것은 허황한 일이다. 마노아는 그의 아내가 그를 속이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1. 오히려 그는 때가 오면 약속된 자식이 탄생하리라는 사실을 당연한 일로 받아들이고, 주저함 없이 “태어날 아기”에 대해 말하고 있다. 제사장 스가랴가 주의 제단에서 천사를 만났을 때 그는 이 정직한 단 지파의 사람인 마노아같이 “이만한 믿음을 만나보지 못하였다”(마 8:10). 마노아처럼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다”(요 20:29). 2. 낳을 아기에게 “그들이 어떻게 행할 것인가” 하는 것이 마노아의 모든 관심이었다. 선한 사람은 그 사건이 자신에게 어떤 영향을 줄 것인가 하는 일보다는 자신이 행해야 할 임무를 더욱 알고자 한다는 것을 주목하자. 임무는 우리가 행해야 할 것이고 사건은 하나님이 주관하시는 것이기 때문이다. 선한 사람이 경건하게 묻는 것은, 그가 어떻게 “행해야” 할 것인가이지 무엇을 “취할 것인가” 하는 것이 아니다(전 2:3). 3. 그러므로 그는 약속받은 기쁨에 넘쳐서 그의 아내가 계율을 어기고 잘못을 저지를까 염려해, 전에 보내셨던 그 사자를 다시 보내 나실인으로 태어날 아이에게 어떻게 그들이 행해야 할 것인지를 자세히 알려 주도록 하나님께 간구했다. “주여, 주의 보내셨던 하나님의 사람을 우리에게 다시 임하게 하소서. 우리는 그의 말을 더욱 잘 알고자 하나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자는 더욱 듣기를 원하며 또다시 그의 사자와 만나기를 원하지 않을 수가 없다. 우리는 마노아가 주의 사자를 찾기 위해 밖에 나가거나 종을 보내지 않았다는 사실을 주의 깊게 받아들여야 한다. 즉 마노아는 그를 만나기 위해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기도드렸으며, 그래서 주의 사자를 찾고 만나게 되었다. 우리는 우리에게 합당한 말씀을 전해 주고 가르쳐 줄, 복음을 전하는 하나님의 사역자를 원하고 있는가? 우리에게 이런 자들을 보내시어 가르치도록 “하나님께 빌자”(롬 15:30, 32). Ⅱ. 하나님은 은혜롭게 그의 기도를 들어주셨다. “하나님이 마노아의 목소리를 들으시니라”(9절). 하나님은 자기들의 임무를 알고자 하며 가르침을 받고자 하는 자들을 결코 버려두시지 않는다(시 25:8, 9). 1. 그녀가 혼자 양떼를 돌보며 들에서 쉬고 있을 때 천사가 다시 나타났다. 홀로 있는 시간은 때때로 하나님과 만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된다. 하나님을 믿는 훌륭한 자들은 그들이 혼자 있을 때라도 하나님과 함께 있기 때문에 홀로 있다고 생각지 않는다. 2. 그녀는 급히 이 일을 알리려고 남편에게 갔다. 아마 그 사자에게 자기가 남편과 함께 돌아올 때까지 기다려 줄 것을 간청하고 갔을 것이다(10, 11절). 그녀는 그 사자에게 남편이 있는 곳으로 함께 가도록 요청하지 않고, 남편을 사자가 있는 곳으로 데리고 왔다. 하나님을 만나고자 하는 자는 하나님이 즐겨 나타나시는 곳에 있어야 한다. 그녀는 남편에게 기쁨이 넘쳐 “오, 보소서. 당신의 기도가 이루어졌나이다. 전일에 내게 임하였던 사람이 또 나타나 저쪽에 있나이다”라고 말했다. 어떤 사람은 “전일”이라는 단어가 원본에 나와 있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이것은 바로 그 날 이루어진 것이라고 보고 있다. 같은 날, 같은 곳에서 그녀가 사자를 다시 만난 것이라고 말한다. 하나님의 사자는 그녀가 자기 남편을 불러오는 것을 기뻐하셨다(요 4:16). 하나님의 역사를 잘 아는 자는 다른 사람도 그곳으로 데리고 와 보이고자 한다(요 1:45, 46). 비록 하와가 아담을 악한 일로 유인했고 아담은 그녀에게 아주 간단히 넘어가고 말았지만 그 일이 영예롭고 훌륭한 일이라면 남편이 아내를 따르는 것이 결코 수치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3. 사자에게 급히 달려온 마노아는 아내에게 나타났던 바로 그 천사라는 것을 알고 매우 기뻐했다. (1) 그러므로 그는 겸손한 마음으로 약속된 말씀을 환영했다(12절). “당신의 말씀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이 말은 그의 소망을 나타낼 뿐 아니라 성모 마리아처럼(눅 1:38) 하나님에 대한 참된 믿음을 말해 주고 있다. “주여, 당신의 말씀대로 이루소서. 나는 당신의 말씀을 믿고 의지하오니 그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2) 마노아는 사자에게 아내에게 내린 지시를 다시 말해 줄 것을 요청했다. “우리가 아기에게 어떻게 행하오리이까?” 그는 아내가 약속된 자식을 위해 하나님의 지시를 잘 지키도록 자기가 도와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이가 하나님께 바쳐질 그 위대한 일을 위해 이들은 서로 주의하고 최선을 다해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마노아의 물음에서 다음과 같은 것을 생각해 볼 수 있다. ① 일반적으로 보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셨을 때 어떻게 해야 잘 받아들이는 것인지 조심스럽게 살펴야 한다. 그 축복이 올바로 관리되었을 때에만 그것이 우리에게 참된 은혜가 될 수 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몸과 영혼과 물질을 주셨다. 그러면 우리는 이것을 어떻게 다스려야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될 것인가? ② 특히 하나님이 보내 주신 자식을 가진 부모라면 세심한 관심을 기울여 자식들을 잘 훈계하고 그들 자신의 행동도 주의해야 한다. 또한 자녀들의 “마음에 얽혀 있는”(잠 22:15) 어리석음을 몰아내게 해 주고 “마땅히 행할 길을 가르쳐야”(잠 22:6) 한다. 이럴 때 믿음이 있는 부모는 하나님의 도움을 간구할 것이다. “주여, 우리 자식들이 나실인이 되어 온전히 당신께 바쳐질 수 있게 하기 위해 우리가 어떻게 그들을 인도해야 되는지 알려 주옵소서.” 4. 사자는 그가 전에 알려 준 지시를 다시 말해 주었다(13, 14절). 내가 금한 “모든 것을 그 여자로 하여금 알게 하라.” 그리고 “내가 명한 것들을 지키도록 하라.” 우리들 자신이 올바로 행하고 자식들에게 좋은 교육을 행하기 위해서 우리는 주의하고 매우 세심하게 살펴야 한다. 깨닫고 그것을 지키라. “포도주나 독주”를 마시지 않도록 주의할 뿐 아니라 “포도나무의 소산을 먹지” 않도록 하라. 자신을 깨끗이 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죄를 범하기 쉬운 일조차도 멀리해야 한다. 그 여자가 나실인의 아기를 잉태했을 때, 그녀는 부정한 것은 아무것도 먹을 수 없었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의 형상을”(갈 4:19) 품은 자도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케”(고후 7:1) 하도록 주의해야만 하며, 그 새사람에게 조금이라도 해로운 일은 하지 않아야 한다. ------- 주의 천사가 승천함(삿 13:15-23) Ⅰ. 마노아와 하나님의 사자는 좀 더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나 사자는 친절하게도 그가 하나님의 사자인 것을 감추었다. 만일 마노아가 그가 하나님의 사자라는 것을 알았다면 두려움 때문에 감히 그 사자와 이야기할 수 없었을 것이다(16절). “마노아는 그가 여호와의 사자인 줄 알지 못하였다.” 마찬가지로 예수 그리스도가 “세상에 계셨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다”(요 1:10). “진실로 주는 숨어 계시는 하나님이시니이다”(사 45:15). 우리에게는 가려지지 않은 거룩한 영광을 볼 수 있는 힘이 없다. 하나님은 선지자나 목사와 같이 인간을 통해 말씀하시며 그 분의 사자를 보내실 때에도, 그 분의 아들을 보내실 때에도 그들에게 인간의 형상을 입히셨다. 1. 여호와의 사자는 마노아의 대접을 거절하고, 그것을 여호와께 드리라고 말했다. 마노아는 이 기쁜 소식을 가져다 준 자비로운 나그네에게 감사한 마음과 경의를 표하기 위해 함께 음식을 들자고 요청했다(15절). “당신을 위하여 염소새끼 하나를 준비하게 하소서.” 기쁜 소식을 받은 자는 그 소식을 보낸 자를 생각해 사신에게 친절히 대해야 한다(살전 5:13). 그러나 하나님의 사자는 기드온에게서와 같이(6:20, 21) “너의 식물을 먹지 아니하리라”고 했을 뿐만 아니라 그것을 여호와께 드리도록 지시했다. 천사는 음식을 먹거나 마실 필요가 없다. 그리스도와 마찬가지로(요 4:34)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것이 이들의 양식이기 때문이다. 비록 우리는 양식과 마실 것 없이는 살아갈 수 없지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 먹고 마신다. 그러므로 우리들의 일상적인 양식도 하나님께 대한 제사가 되는 것이다. 2. 여호와의 사자는 그의 이름 말하는 것을 거절했다. 마노아의 호기심을 만족시켜 주지 않았다. 마노아는 그의 이름을 알기 원했고(17절) 어느 지파 사람인지를 알고자 했는데, 이것은 마노아가 그의 말을 의심해서가 아니라 좀 더 알고 지내기를 원했고(훌륭한 사람이나 목사와 깊은 친교를 갖는 것은 좋은 일이다), 더 나아가 사자를 위해 다음과 같은 일을 행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당신의 말씀이 이룰 때에 우리가 당신을 존숭하리이다. 그리하여 당신을 참된 선지자로 찬양하고 장차 태어날 아기에게 당신의 이름을 지어 주어, 당신이 이렇게 거룩한 예언을 하신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겠나이다. 또한 우리가 선물을 드려 하나님께서 영예로움을 내려주신 당신을 존경하겠나이다” 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 사자는 그의 호기심을 제지하며 그의 청을 거절했다. “어찌하여 이를 묻느냐?”(18절) 야곱도 역시 자기를 축복해 준 자의 이름을 알 수 없었다(창 32:29). 뭔지도 모르고 묻는 것에는 해답을 얻지 못한다. 마노아의 물음은 순수했지만 거절당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그의 이름을 알려 주셨는데(출 3:13, 14), 그것은 알려야 할 특별한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다. 여기서는 그럴 필요가 없었다. 마노아는 그가 해야 할 일을 이미 들었다(12, 13절). 그러나 호기심을 만족시키기 위해 물었을 때 사자는 그것을 거절했다. 하나님은 말씀 속에서 우리들에게 충분한 지시를 하고 계신다. 우리가 호기심을 충족시키거나 변론을 하기 위해 물을 때는 그 어떤 말씀도 들을 수 없게 된다. 하나님의 사자는 그가 대답하기를 거절한 이유를 이렇게 말하고 있다. “내 이름은 기묘니라.” 사람들이 천사들을 우상으로 숭배하는 것을 막기 위해 천사들은 자기들의 이름을 결코 밝혀 주지 않았다. 바벨론 포로기 이후 교회가 우상 숭배를 다 버렸을 때에는, 천사들이 다니엘에게 자기들의 이름이 미가엘과 가브리엘이라는 것을 밝혔다. 또한 사가랴가 이름을 묻기도 전에 하나님의 사자는 그의 이름을 알려 주었다(눅 1:19). “나는 가브리엘이라.” 그러나 여기서 그 사자는 자기의 이름을 비밀 또는 기묘라 칭했다. 그리스도의 여러 이름 중 하나도 기묘라고 했다(사 9:6). 그리스도의 이름은 오랫동안 비밀 속에 묻혀 있었지만, 복음의 등불이 켜지면서 그 분의 이름은 구주 예수로 밝혀졌다. 마노아가 알아서는 안 되는 일이었기 때문에 마노아는 그것을 물어서는 안 되었다. 다음 사실을 주목하자. (1) 세상에는 우리에게 속하지 않은 비밀스러운 일이 있으며, 이 세상에 있을 동안은 그것에 대해 불확실한 채로 만족할 줄 알아야 한다. (2) 그러므로 우리는 이것을 캐어내기 위해 헛된 호기심 속에 빠져 들어서는 안 된다(골 2:18). “우리의 거룩하신 주님이 가르치지 않으시는 것을 기꺼이 모르는 채로 있는 자는 지혜로운 자다”(Nescire velle quae Magister maximus docere non vult erudita inscitia est). 3. 여호와의 사자는 마노아와 그 아내가 그에게 제물을 바치려 하자, 그들을 떠나기 전에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게 했다. 그는 이 번제를 하나님께 바치도록 권했다(16절). 하나님께 찬미를 올리는 것이 천사들의 가장 큰 기쁨이다. “하나님께 경배하라”(계 22:9 참조). 마노아는 제사장도 아니었고 여호와의 제단도 갖고 있지 않은 사람이었지만, 그는 훌륭한 권능을 가진 자로서 “소제물을 반석 위에서 여호와께 드렸다”(19절). 그는 제물을 드리면서 “주 여호와여, 여기에 제물을 드리오니, 주께서 기쁘신 대로 하소서” 하고 말했다. 이렇게 우리는 우리의 마음을 살아 있는 제물로서 하나님께 바쳐야 하며, 그 분의 성령이 인도함에 따르도록 해야 한다. 이제 모든 것이 준비되었고, (1) 그 분의 이름이 기묘이듯이 “사자가 이적을 행하였다.” 아마도 그는 기드온에게 행한 것과 같은 이적을 행했고 하늘이나 반석에서 불꽃이 나와 제물을 태웠을 것이다. (2) 사자는 “단 불꽃 가운데로 좇아 올라가”(20절) 하늘로 갔다. 이로써 그는 이들이 생각하듯이 단순히 사람이 아니라 하늘로부터 내려온 사자라는 것이 밝혀졌다. 그가 하늘로 올라간 것으로 보아 또한 분명 거기서 내려왔을 것이다(요 3:13; 6:62). 이 일은 하나님이 그들의 제물을 받으시는 것을 뜻하며, 그 분의 사자가 한 약속이 이루어지리라는 것을 나타낸다. 또 다른 천사는 “많은 향을 성도의 기도들과 합하여 보좌 앞에 드린다”(계 8:3). 기도는 우리의 열이 하나님께로 올라가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참된 믿음을 갖고 있을 때에만 기도는 향기로운 것이 되어 하나님께 바쳐질 수 있다. 그리스도가 없이는 우리의 기도는 한갓 검은 연기에 지나지 않으며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을 때라야 그것은 불꽃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그리스도는 당신의 제물에 의해 불꽃 속에서 승천했다. 그러므로 “자기 피로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다”(히 9:2). 마노아와 그의 아내는 사자의 이적을 분명히 그들의 눈으로 보았으므로, 사실은 증명되어 뚜렷해졌다. 사자가 이 일을 행했을 때 그들은 보고만 있었다. 그러나 사자가 하늘로 올라갈 때 그들은 물론 약속된 일에 대해 감사의 기도를 드렸고 앞으로 있을 일에 대한 소망을 갖게 되었다. 그러나 사자가 사라졌을 때, 그리스도의 승천을 목격한 사람들이 그랬듯이 그들은 하늘을 응시하고 서서 감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이윽고 그들은 거룩한 두려움과 경의를 품고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렸다. ① 이제서야 그들은 “그가 여호와의 사자인 줄 알았다”(21절). 그가 불꽃 속으로 올라갈 때 아무 해도 입지 않은 것을 보고 그들은 그가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그가 불꽃 속으로 사라지는 것을 보고, 그가 하나님의 사자라는 것을 알았다. 하나님은 “그의 천사들을 바람으로 만드셨고 그의 사역자들을 불꽃으로 삼으셨기”(히 1:7) 때문이다. ② 그 사자는 다시는 나타나지 않았다. 예언자처럼 오랫동안 머무르게 하여 이야기를 나누지 못하고, 즉시 떠나갔다는 것은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다. 그들은 이제 그 사자가 한 말을 잘 기억해 지켜야 했으며, 더 이상 들으려고 기대해서는 안 되었다. Ⅱ. 이 광경을 본 마노아와 그의 아내는 매우 놀랐다. 사자가 이적을 행하는 것을 보자 그들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우리도 역시 하나님의 기사를 주의 깊게 관찰하게 되면 그 앞에서 침묵을 지키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사자가 이처럼 사라졌을 때, 이들은 잠시 이 일을 되새겨볼 수 있었다. 1. 이것을 보고 난 후 마노아는 “큰 두려움”을 느꼈다(22절). 그는 그들이 곧 자식을 갖게 되리라는 것을 굳게 확신할 수 있었지만(8, 12절), 바로 이 일을 목격하고는 그의 믿음을 위로받고 격려받기는커녕 혼돈을 일으켜 그들이 곧 죽을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우리가 반드시 죽으리로다.” 유대인들은 그 당시 일반적으로 하나님이나 그 분의 사자를 본 자는 즉시 죽는다는 통속적인 견해를 갖고 있었는데, 이런 생각이 기드온의 경우와 같이(6:22) 마노아의 믿음을 지배하고 있었다. 2. 그의 아내의 마음속에는 커다란 믿음이 있었다(23절). 여기서 보는 바와 같이 연약한 자가 더 강한 믿음을 갖고 있었다. 천사가 두 번씩이나 그녀에게 나타난 것은 바로 그 믿음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 일을 겪고서 마노아는 두려움을 느끼고 실의에 빠지기 시작했으나, 그의 아내는 그를 위로했다. 두 사람의 힘은 한 사람의 힘보다 낫다. 그러므로 한 사람이 슬픔과 낙심 속에 있을 때 다른 한 사람은 그를 위로하고 도와줄 수 있다. 이처럼 배우자들도 경건한 마음으로 서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