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21.05.07 작성자 : 양시영
제   목 : 딤전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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딤전1장  [455.주님의마음을본받는자]

===인사

1.  우리 구주 하나님과 우리의 소망이신 그리스도 예수의 명령을 따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된 바울은

2.  믿음 안에서(절대긍정-절대기쁨-절대확신신뢰로 열어드린 마음에 작동되는, Faithful ans True이신 주님이 공급하시는 Q의 전능한 믿음 , 그 안에서 주께 순복함 안에서) 참 아들 된 디모데에게 편지하노니 하나님 아버지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로부터 은혜[내주하시는 Q말씀, 구주JC의 무한 풍성 공급-젹심]와 긍휼[새롭게 하심-회복-완성]과 평강[연합한 한 영으로 동거동주동행, 누림-빼어닮게 하심-JC의 영혼구원사역 통로됨...destiny, original design이룸]이 네게 있을지어다


....###육체의 가시, 사탄의 사자(고소거리..세상의 거리낌) --, 육체의 허약이나 상대적 필요들 = 외모나 질병, 병약...그로 인해 침울-우울-행동 제약 요소가 될 만한 모든 것들### 

[고후12:1-10....*1.무익하나마 내가 부득불 자랑하노니 주의 환상과 계시를 말하리라   *2.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사람을 아노니 그는 십사 년 전에 셋째 하늘에 이끌려 간 자라 (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느니라)   *3.내가 이런 사람을 아노니 (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느니라)   *4.그가 낙원으로 이끌려 가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말을 들었으니 사람이 가히 이르지 못할 말이로다   *5.내가 이런 사람을 위하여 자랑하겠으나 나를 위하여는 약한 것들 외에 자랑하지 아니하리라   *6.내가 만일 자랑하고자 하여도 어리석은 자가 되지 아니할 것은 내가 참말을 함이라 그러나 누가 나를 보는 바와 내게 듣는 바에 지나치게 생각할까 두려워하여 그만두노라   *7.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탄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   *8.이것이 내게서 떠나가게 하기 위하여 내가 세 번 주께 간구하였더니   *9.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10.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내가 어리석은 자가 되었으나 너희가 억지로 시킨 것이니 나는 너희에게 칭찬을 받아야 마땅하도다 내가 아무 것도 아니나 지극히 크다는 사도들보다 조금도 부족하지 아니하니라...사도의 표가 된 것은 내가 너희 가운데서 모든 참음과 표적과 기사와 능력을 행한 것이라...내 자신이 너희에게 폐를 끼치지 아니한 일밖에 다른 교회보다 부족하게 한 것이 무엇이 있느냐 너희는 나의 이 공평하지 못한 것을 용서하라...보라 내가 이제 세 번째 너희에게 가기를 준비하였으나 너희에게 폐를 끼치지 아니하리라 내가 구하는 것은 너희의 재물이 아니요 오직 너희니라 어린 아이가 부모를 위하여 재물을 저축하는 것이 아니요 부모가 어린 아이를 위하여 하느니라...내가 너희 영혼을 위하여 크게 기뻐하므로 재물을 사용하고 또 내 자신까지도 내어 주리니 너희를 더욱 사랑할수록 나는 사랑을 덜 받겠느냐...하여간 어떤 이의 말이 내가 너희에게 짐을 지우지는 아니하였을지라도 교활한 자가 되어 너희를 속임수로 취하였다 하니...내가 너희에게 보낸 자 중에 누구로 너희의 이득을 취하더냐...내가 디도를 권하고 함께 한 형제를 보내었으니 디도가 너희의 이득을 취하더냐 우리가 동일한 성령으로 행하지 아니하더냐 동일한 보조로 하지 아니하더냐...너희는 이 때까지 우리가 자기 변명을 하는 줄로 생각하는구나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 앞에 말하노라 사랑하는 자들아 이 모든 것은 너희의 덕을 세우기 위함이니라...내가 갈 때에 너희를 내가 원하는 것과 같이 보지 못하고 또 내가 너희에게 너희가 원하지 않는 것과 같이 보일까 두려워하며 또 다툼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비방과 수군거림과 거만함과 혼란이 있을까 두려워하고...또 내가 다시 갈 때에 내 하나님이 나를 너희 앞에서 낮추실까 두려워하고 또 내가 전에 죄를 지은 여러 사람의 그 행한 바 더러움과 음란함과 호색함을 회개하지 아니함 때문에 슬퍼할까 두려워하노라]


===다른 교훈을 가르치지 말라 ....I'm Nothing, NoBody!!,그 의미를 온전히 알고, 그 자리에 머물라, 오직 주님 은혜 충만 공급의 그릇됨만 바라라

3.  ○내가 마게도냐로 갈 때에 너를 권하여 에베소에 머물라 한 것은 어떤 사람들을 명하여 다른 교훈을 가르치지 말며

4.  신화와 끝없는 족보에 몰두하지 말게 하려 함이라 이런 것은 믿음 안에 있는 하나님의 경륜[시대적 계획-안배]을 이룸보다 도리어 변론을 내는 것이라

5.  이 교훈의 목적은 (거듭난 새 존재의) 청결한[보혈에 씻기운, 회개한, 주께 합당한, 그리스도의 ] 마음과 선한 양심[내주하시는 CJ의 어떠하심, 곧 그분의 선하심 빼어닮음 충만]과 거짓이 없는[Q이 붙드시고, 거듭난 이가 붙들어 부종함으로써 상호 하나됨의 믿음(다바크) 안에서 공급 받는 순결-순전-완전-온전-정직한, 전능 Q의] 믿음에서 나오는 사랑[영혼구원에 이르는 아가페 사랑]이거늘

.....모든 참 가르침이란 진실로 !! 곧 부활하사 내주하시는 성령님, 곧 그리스도 예수, 그분의 어떠하심 그대로 "the Love of Faith and Truth"이신 분과 하나되어 그분을 믿고 받고 누리며 공급함으로써 유일한 참 교회, 곧 Q의 영광 그대로 살며 나타내는 그분의 참 소유-거처, 우주적 그리스도의 몸 건축함ㅡ 그분 속성의 완전함에 이르도록 살아내며 공급함이라야 함.

6.  사람들이 이에서 벗어나 헛된 말에 빠져

7.  율법의 선생이 되려 하나 자기가 말하는 것이나 자기가 확증하는 것도 깨닫지 못하는도다

8.  그러나 율법은 사람이 그것을 적법하게만 쓰면 선한 것임을 우리는 아노라

9.  알 것은 이것이니 율법은 옳은 사람을 위하여 세운 것이 아니요 오직 불법한 자와 복종하지 아니하는 자와 경건하지 아니한 자와 죄인과 거룩하지 아니한 자와 망령된 자와 아버지를 죽이는 자와 어머니를 죽이는 자와 살인하는 자며

10.  음행하는 자와 남색하는 자와 인신 매매를 하는 자와 거짓말하는 자와 거짓맹세하는 자와 기타 바른 교훈을 거스르는 자를 위함이니

.....이 율법을 통해 점검할 바는 주 보시기에, 버릴 바와 취할 바를 알고 행함ㅡ 주님의 영광의 그릇으로 삼으신 바, 지금 자기의 그릇됨이 주님 없이는 흑암 중의 맹목-공허-혼돈 그 자체요 오로지 불쏘시개에 지나지 않음을 알고 인정해드리면서 오히려 주님 마음을 따라 부종하며, 그렇게 자신을 성령의 거룩한 불로 불살라 철저히 재가 되게 하시고, 재창조 하신 바, 나는 죽고 오직 영광의 주님이 주신 성령 내주하시는 새 영, 그리스도의 새 마음[생각-감정-의지(모든 행함에 있어서 주와 합한 근본동기-뜻과 심지, 의향, 태도, 자세)]으로 거듭난 자로되 몸은 부어주시는 바 그분의 사랑과 믿음 충만함으로 거룩케 하시는 분의 손에 의탁하고, "TUQ의 에하드" 이루사 그 하나됨 안에 참생명줄로 기업 삼아 교통함으로 살게 하신대로, 그리스도로 그리스도를 살며,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실존-현존의 영광 충만의 히루하루 살아가는, 죄-마귀-세상이 거둡난 내게 대해, 거듭난 내게 대해 세상이 십자가로 처리되었음을 매일 매순간 확인하고 주와 더불어 걷는 사랑과 순종의, "그리스도의 의"를 세상에 영광의 복음을 따라 삶을 공급하기 위함..

11.  이 교훈은 내게 맡기신 바 복되신 하나님의 영광의 복음을 따름이니라

===은혜를 감사하다

12.  ○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함은 나를 충성되이 여겨 (이것은 상호 여김이니...미리 창세전에 택하고 예정하여 두신 바, 바울로 거듭나게 하시고!! 그분의 영광으로 덮어 새롭게 하사, 섬기게 하심으로 여기고 감사함으로써 달음질하고 있다 ) 내게 직분(복되신 Q 영광의 복음 섬김이 공급 역할)을 맡기심이니

13.  내가 전에는 비방자요 박해자요 폭행자였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

14.  우리 주의 은혜가(=늘 Q 영광의 적셔짐-충만-역동적 변화/성화-영화로 사는, 그분의 증거자 삼으심)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과 함께 넘치도록 풍성하였도다

15.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16.  그러나 내가 긍휼을 입은 까닭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먼저 일체 오래 참으심을 보이사 후에 주를 믿어 영생 얻는 자들에게 본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17.  영원하신 왕 곧 썩지 아니하고 보이지 아니하고 홀로 하나이신 하나님께 존귀와 영광이 영원무궁하도록 있을지어다 아멘

18.  ○아들 디모데야 내가 네게 이 교훈으로써 명하노니 전에 너를 지도한 예언을 따라 그것으로 선한 싸움을 싸우며

19.  믿음과 착한 양심을 가지라 어떤 이들은 이 양심을 버렸고 그 믿음에 관하여는 파선하였느니라

20.  그 가운데 후메내오와 알렉산더가 있으니 내가 사탄에게 내준 것은 그들로 훈계를 받아 신성을 모독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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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Timothy 1  Amplified Bible

==Correcting False Teaching

1 Paul, an apostle (special messenger, personally chosen representative) of Christ Jesus by the commandment of God our Savior, and of Christ Jesus (the Messiah, the Anointed) our Hope [the fulfillment of our salvation],

2 to Timothy, my true son in the faith: Grace, mercy, and peace [inner calm and spiritual well-being] from God the Father and Christ Jesus our Lord.

3 As I urged you when I was on my way to Macedonia, stay on at Ephesus so that you may instruct certain individuals not to teach any different doctrines, 

4 nor to pay attention to legends (fables, myths) and endless genealogies, which give rise to useless speculation and meaningless arguments rather than advancing God’s program of instruction which is grounded in faith [and requires surrendering the entire self to God in absolute trust and confidence]. 

5 But the goal of our instruction is love [which springs] from a pure heart and a good conscience and a sincere faith. 

6 Some individuals have wandered away from these things into empty arguments and useless discussions, 

7 wanting to be teachers of the Law [of Moses], even though they do not understand the terms they use or the subjects about which they make [such] confident declarations.

8 Now we know [without any doubt] that the Law is good, if one uses it lawfully and appropriately, 

9 understanding the fact that law is not enacted for the righteous person [the one in right standing with God], but for lawless and rebellious people, for the ungodly and sinful, for the irreverent and profane, for those who kill their fathers or mothers, for murderers, 

10 for sexually immoral persons, for homosexuals, for [a]kidnappers and slave traders, for liars, for perjurers—and for whatever else is contrary to sound doctrine, 

11 according to the glorious gospel of the blessed God, with which I have been entrusted.

12 I thank Christ Jesus our Lord, who has granted me [the needed] strength and made me able for this, because He considered me faithful and trustworthy, putting me into service [for this ministry], 

13 even though I was formerly a blasphemer [of our Lord] and a persecutor [of His church] and a shameful and outrageous and violent aggressor [toward believers]. Yet I was shown mercy because I acted out of ignorance in unbelief. 

14 The grace of our Lord [His amazing, unmerited favor and blessing] flowed out in superabundance [for me, together] with the faith and love which are [realized] in Christ Jesus. 

15 [b]This is a faithful and trustworthy statement, deserving full acceptance and approval, that Christ Jesus came into the world to save sinners, among whom I am foremost. 

16 Yet for this reason I found mercy, so that in me as the foremost [of sinners], Jesus Christ might demonstrate His perfect patience as an example or pattern for those who [c]would believe in Him for eternal life. 

17 Now to the King of the ages [eternal], immortal, invisible, the only God, be honor and glory forever and ever. Amen.

18 This command I entrust to you, Timothy, my son, in accordance with the prophecies previously made concerning you, so that [inspired and aided] by them you may fight the good fight [in contending with false teachers], 

19 keeping your faith [leaning completely on God with absolute trust and confidence in His guidance] and having a good conscience; for some [people] have rejected [their moral compass] and have made a shipwreck of their faith. 

20 Among these are Hymenaeus and Alexander, whom I have [d]handed over to Satan, so that they will be disciplined and taught not to blaspheme.

==Footnotes

1 Timothy 1:10 I.e. those who exploit other people for evil or selfish reasons.

1 Timothy 1:15 An unusual clause used only five times in the NT. See also 3:1; 4:9; 2 Tim 2:11; Titus 3:8.

1 Timothy 1:16 Or were destined to believe. 

1 Timothy 1:20 I.e. expelled from the safety of the chur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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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모데전서(서론)

이제까지 나온 바울의 서신들은 교회들에게 보낸 것이었다. 그러나 다음에 나오는 것들은 특별한 인물들에게 보낸 것인데 디모데에게 두 권, 디도에게 한 권, 빌레몬에게 한 권이었다. 그들은 모두 전도자들이었다. 

디모데와 디도는 복음 전도자들이었는데, 이들은 에베소 4장 11절에 “혹은 선지자로 혹은 사도로 혹은 복음 전하는 자로”라고 씌어진 말씀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사도들보다는 낮은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의 사명과 일은 사도들과 거의 같은 것이었는데 교회를 세우고 세워진 교회에 물을 주는 일이었다. 

그러기 위하여 우리가 본서 디모데에게서 볼 수 있는 것처럼 그들은 순회 전도여행을 하였다. 

디모데는 바울에 의하여 개종한 사람이었으므로 바울은 그를 믿음의 아들이라고 불렀다. 디모데의 회심에 대해서는 사도행전 16장 3절에서 읽을 수 있다. 

이 두 서신들의 전체 개요는 복음 전도자로서의 디모데가 에베소에서 어떻게 그의 의무를 수행할 것인가에 대한 방향을 제시해 준 것이다. 

디모데는 지금 에베소에 있었다. 바울은 그에게 그 곳에 얼마 동안 머물러 있으면서 바울이 거기서 시작해 놓은 선한 사업을 완성시키라고 하였다. 

바울은 그 곳 교회의 일상적인 목회의 일을 사도행전 20장 28절에서 보듯이 장로들에게 엄숙히 위임하였다. 거기서 그는 장로들에게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치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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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표제

 초기의 헬라어 사본들은 이 책의 이름을 단순히 “디모데에게 Ⅰ”이라고 한다. 후에 그 이름에 여러가지 수식어들을 첨가하여 흠정역에서와 같은 성경에는 “디모데에게 보내는 사도 바울의 첫번째 서한”이라는 긴 표제를 가지게 되었다.

 2. 저자

 이 편지서는 바울을 그것의 저자로 말하고 있다 (딤전 1:1).

 3. 역사적 배경

디모데 전서가 기록되던 당시의 상황과 그 편지의 역사적 배경은 그 편지 가운데 기록된 부수적인 언급들에 기초하여 추정(推定)할 수 밖에 없다.

 4. 주제

 이 편지서는 디모데가 에베소 교회의 목사로 있는 동안에 그에게 보내진 편지이며, 따라서 그 내용은 주로 교회의 지도자로서의 그에게 주어진 교훈들로써 구성되어 있다. 그리하여 이 편지서는 목회 서신으로 분류된다. 

이 편지서에서 바울은 디모데에게 그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방법으로, 그리고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양무리에게 도움이 되는 방법으로 행동할 것을 훈계하고, 또한 말씀을 전파하고 그것의 교훈들을 옹호할 엄숙한 책임을 그에게 부하(負荷)시킨다. 

이 편지서는 교회의 조직과 행정에 대한 꽤 완벽한 계획을 나타내주고 있다. 

디모데전서와 그 밖의 목회 서신들에 있어서 교리가 매우 강조되어 있다는 사실은(딤전 4:6, 13, 16; 딤후 3:14-17; 4:1-4; 딛 1:9; 2:1, 7), 신약 전체에서 21번 사용된 헬라어 단어 “디다스칼리아”(didask-alia-교리, 교훈, 가르침)가 디모데전·후서와 디도서에서 15번이나 사용되었다는 점으로 충분히 입증될 수 있다.

 비록 바울은 그의 다른 동료들보다도 디모데에게 더욱 친근한 느낌을 가졌던 것으로 보이기는 하지만(빌 2:19, 20), 이 편지에서 미루어 볼 수 있는 디모데라는 인물은 온유한 기질을 지니고 있으면서 바울이 바라고 있던 만큼 적극적이지 못한 성격을 소유한 사람이었다. 따라서 사도는 그의 젊은 목회 동역자에게 보다 강력한 지도력을 가지도록 격려하고 있다. 

바울과 디모데의 사이가 참으로 친밀한 관계였기 때문에 그 사도는 아무 거리낌없이, 그리고 솔직하게 에베소 교회의 목사인 디모데에게 대한 자신의 소원과 권면과 목적들을 피력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것이 하나의 다정한 권고의 편지이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조직적인 체계가 결여된 것은 사실이다. 이 편지는 목회 활동의 여러가지 측면들 가운데서 사도의 마음에 떠오르는 대로 조조(條條)이 기록한 것임에 틀림없다.

 5. 개요

Ⅰ. 인사 1:1, 2

Ⅱ. 왜곡된 교리를 가르치는 자들을 견책하라는 명령 1:3-20

     1. 율법의 오용은 논쟁을 일으킴 1:3, 4

     2. 율법의 선용은 성품을 계발함 1:5-11

     3. 바울의 생애는 율법을 선용한 결과를 확증해 줌 1:12-17

     4. 디모데에게 강력한 지도력을 발휘할 것을 촉구함 1:18-20

Ⅲ. 그리스도인 예배의 보편성 2:1-15

     1. 모든 사람을 위한 기도 2:1-3

     2. 모든 사람을 위한 구원 2:4-7

     3. 모든 사람을 위한 예배 절차 2:8-15

Ⅳ. 그리스도인 지도자들의 선결 조건 3:1-13

     1. 감독의 특성 3:1-7

     2. 집사의 특성 3:8-13

Ⅴ. 그리스도교의 기별 3:14-4:5

     1. 그리스도교의 본질적인 기별 3:14-16

     2. 그리스도교 내부에 있는 거짓 기별 4:1-5

Ⅵ. 보다 열성적인 봉사를 위한 실제적인 제안들 4:6-16

     1. 건전한 교리를 연구할 것 4:6

     2. 추론과 공론을 피할 것 4:7

     3. 경건의 모본이 될 것 4:8-16

Ⅶ. 교회 행정자로서의 목사 5:1-6:19

     1. 노유 신자들에 대한 관계 5:1, 2

     2. 과부들에 대한 관계 5:3-16

     3. 택함을 받은 장로들에 대한 관계 5:17-25

     4. 그리스도인 노예들에 관한 교훈 6:1, 2

     5. 그릇된 교리를 가르치는 자들에 대한 관계 6:3-5

     6. 세상 재물에 대한 관계 6:6-10

     7. 모든 사람에게 모범적인 성품을 보여줄 책임 6:11-16

     8. 그리스도인 부자들에 대한 관계 6:17-19

Ⅷ. 디모데에게 주는 바울의 마지막 부탁 6:20,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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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모데전서 1장 (개요)

인사말을 쓴 후에(1,2).

Ⅰ. 디모데에게 보내는 부탁의 말씀(3,4).

Ⅱ. 율법의 참된 목적(5-11). 여기서 그는 율법의 복음과 전적으로 일치하는 것임을 설명하였다.

Ⅲ. 바울은 사도로서 부름을 받은 자신의 소명을 언급하고 이에 대하여 감사를 표하였다(12-16).

Ⅳ. 송영(17).

Ⅴ. 디모데에게 대한 부탁을 다시 하고(18) 후매내오와 알렉산더에 관하여 언급하였다(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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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모데에게 주는 경고의 말씀(딤전 1:1-4)

Ⅰ. 이 서신의 서문.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인 바울" 곧 "우리 구주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명령에 의하여 사도로 세움을 입은" 바울이었다.  

바울의 신임장은 의심할 여지가 없는 것이다.  

바울은 위임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명령을 받았으며 우리 구주 하나님에게서 뿐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로부터 받았던 것이다.  

바울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전도자였으며 그리스도의 왕국의 사역자였던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구주이시요, 그리스도 예수는 우리의 소망이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그리스도인들의 소망인 것을 명심하자.  

우리의 소망은 세워진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안에 거하신 영광의 소망이시다(골 1:27).  

바울은 디모데를 자기 아들이라고 불렀다.  

왜냐하면 바울이 디모데의 회심을 도운 사람이었고 디모데는 바울을 위해 봉사하고 복음을 위해 일하는 아들이었기 때문이었다(빌 2:22).  

디모데는 바울에 대한 아들의 의무를 감당함에 있어서 부족이 없었고 바울은 아버지로서 디모데를 돌보는 친절과 다정함에 부족이 없었다.

Ⅱ. 축복의 말씀.  

"하나님 아버지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로부터 은혜와 긍휼과 평강이 네게 있을지어다"(2절).  

어떤 사람은 교회에 보내는 모든 서신들에서 사도의 축복은 "은혜와 평강"이고 디모데에게 보낸 두 서신과 디도서에서는 "은혜와 긍휼과 평강"이라고 되어 있음을 지적한다.  마치 목회자들은 다른 사람보다 더 하나님의 긍휼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목회자는 자기들의 의무를 충실히 수행하기 위해 다른 사람보다는 좀더 은혜를 필요로 하며, 또한 잘못을 용서받기 위해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은 자비를 필요로 한다.  

만약 그렇게도 뛰어난 목회자인 디모데가 하나님의 긍휼을 입은 자였고 또 그것을 더욱 많이 계속 받았어야 했다면 그의 탁월한 정신에 너무나도 못미치는 우리 현대 목회자들에게는 얼마나 필요하겠는가?

Ⅲ. 바울은 디모데에게 이 일에 그를 임명한 목적이 무엇인가를 설명하였다.  

그러므로 본문에 "내가 마게도냐로 갈 때 너를 권하여 에베소에 머물라고 한 것은…"이라고 말씀되고 있다.  

디모데는 바울과 함께 마게도냐로 가려고 하였다.  즉,  바울의 보호 아래서 떠나기를 싫어하였다.  그러나 바울은 떠날 것을 명령하였다.  

여러 사람을 섬기기 위하여서는 그것이 필요했다.  내가 너를 권하여라고 바울은 표현하였다.  

비록 바울이 자기의 권위로 강제할 수 있다고 하여도 사랑 때문에 디모데에게 권고하는 방법을 택하였던 것이다.  

디모데의 할 일은 목회자들과 교회의 성도들 양자 모두를 확고하게 세워야만 하는 일이었다.  

"어떤 사람을 명하여 다른 교훈을 가르치지 말도록 하며 :: 교회안에서 그리스도의 복음이 아닌 다른 교훈을 <임의로> 가르치려는 사람들을 발견할 때 마다, 그것을 금지하라!!, 허용하지 말라!!" 

즉 그들이 이미 받아들인 기독교 교훈에 다른 어떤 교훈을 더하지 말도록 하는 것이며 복음을 발전시킨다는 구실이나 그 결점을 보완한다는 구실로 다른 교훈을 가르치지 않도록 하는 것이며 그들이 복음을 변경시키지 말 것과 그들에게 주어진 그대로 전수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다음을 명심하라.

1. 전도자들은 복음의 참된 교훈을 전하여야 할 뿐 아니라 다른 교훈을 전하지 아니하도록 할 것이다.  

"그러나 혹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고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이외의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갈 1:8).

2. 사도 시대에는 기독교를 방해하려는 공격을 많이 받았다(고후 2:17).  

그렇지 아니한다면 디모데에게 보내는 이러한 명령은 쓸 데 없는 염려가 되기 때문이다.

3. 디모데는 다른 교훈을 전하지 아니하도록 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의 복음 위에 다른 사람의 다른 교훈을 첨가하지 못하게 하며, 그 다른 복음에서 아무것도 취하지 못하게 하며, 다만 그들이 복음을 순수하게 방해받지 아니하고 전해야 하는 것이었다.  

또한 신화와 끝없는 족보를 가르치지 않고 어리석은 변론을 삼가야 했다.  이 말씀은 디도서에서 볼 수 있는 것과 같이 디모데 전후에서도 자주 볼 수 있다(딤전 4:1; 6:4; 딤후 2:23 을 보라).  

유대인들 가운데 기독교 교훈에 유대 교훈을 도입한 사람들이 있는 것처럼 이방인들 가운데서 기독교 교훈에 이교도의 교훈을 도입한 사람들이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것들을 주의하고 경계하라.  아니면 그러한 교훈들은 너희의 믿음을 방해하고 헛되게 할 것이다.  왜냐하면 이단적-사이비적 교훈들이란 전도자들에게 있어서 <전도에 도움, 곧>이로움을 주기보다 오히려 <그리스도의 복음이 도를 변호하기 위한, 어떤 의미에서는 바위에 대고 말하듯, 무익한 혼란과 끝없는>변론을 야기시키기 때문이다"라고 바울은 말하였다.  

그것들은 의심에 가득 찬 혼란을 주기 때문에 교회를 건설하는데 유익하기 보다는 오히려 파괴하는 일을 하기 때문이요, 같은 이유로 나머지 다른 일에 있어서도 목회자들의 의심은 거룩한 덕성을 감소시키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사도 시대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연속적으로 계승되어 온 감독자들의 배열과 목회자들의 성례의 타당성이나 유효성에 대한 <사적 견해로 함부로 덧붙여 제기하는>견해는 유대인들의 신화나 끝없는 족보를 따지는 것만큼 나쁜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이 우리에게 풀리지 않는 어려움으로 되어 단지 그리스도인의 소망의 기초를 흔들리게 할 뿐이며 그의 마음에 복잡한 의심과 두려움을 가득차게 할 뿐이다.  

거룩한 덕성은 목회자들이 모든 분야에서 <최우선적으로>추구해야만 할 최종적인 목표인 바, 그것으로 기독자들은 경건을 연습하게 되고 하나님의 형상을 점점 닮아가는 것이다.  

경건의 연습은 <오직 하나님의 영광의 복음을>믿음 안에서 추구되어져야 한다는 것을 명심하라.  복음은 우리가 그 위에 서야만 할 근거가 되는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께로 먼저 나아오는 것은 오로지 믿음에 의해서 가능한 것이다(히 11:6). 또한 동일한 믿음의 원리, 같은 방법으로 경건의 연습을 하여야 한다.  

다시 말해서 목회자들은 <소모적인>논쟁을 피하여만 할 것이요, 믿음의 실제적인 점들은 논쟁을 일으킴 없이 <성령 인도따라>잘 가르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위대하고 필수적인 진리에 관한 논쟁은 <그 어떤 의도에서 비롯되었든지 사단에게 틈을 주어> 기독교의 주요한 교훈으로부터 마음을 멀어지게 하는 결과가 될 수 있 때문이요, 또한 종교의 생동감을 상실하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 가능하게 되는 것이다.  

진실로, 그 종교의 생동감은 믿음 안에서처럼 실천하며 순종하는 가운데 얻어지는 것이다.  

우리의 불의 가운데서 진리를 잡을 수는 없다.  오직 순수한 양심 안에서 믿음의 비밀을 지킬 수가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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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법의 역할(딤전 1:5-11)

여기서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어떻게 유대인 선생들을 경계하며 신화와 끝없는 족보를 복음에다 섞는 자들을 어떻게 경계할 것인가를 가르치고 있다.  

또한 바울의 율법의 용도와 복음의 영광을 가르쳐 주고 있다.

Ⅰ. 바울은 율법의 목적과 용도를 가르쳐 주고 있다.  

그것은 사랑을 증진시키기 위한 것이었는데 왜냐하면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되기 때문이다.

1. "율법의 목적은 사랑를 이루는 것이다"(롬 13:8).  

하나님의 율법이 뜻하는 가장 중요한 목적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사랑하여 인간을 사랑하게 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대한 사랑과 형제에 대한 사랑을 약하게 만드는 것은 무엇이나 계명의 목적을 파괴하는 것들인 것이다.  

따라서 우리에게 원수까지 사랑하라고 하며 또 우리를 미워하는 자에게도 선을 베풀어 주라(마 5:44)는 것을 요구하는 복음이 계명(계명의 목적 역시 사랑인데)을 무시한다거나 계명을 대신하려 한다는 것은 전혀 맞지 않는 말인 것이다.  

오히려 복음은 우리에게 "우리가 모든 좋은 은사를 가지고 있다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된다"고 가르쳐 주고 있다(고전 13:1).  또 이르기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요 13:35)고 하셨다.  

그러므로 율법에 대한 지식이 있다고 자랑하면서 그 지식을 복음 전도를 방해하는 구실로 사용하는 자들은(이들은 율법에 대해 열심을 낸다는 미명 아래 교회를 분리시키며 혼란시킨다)계명의 참 목적 곧 사랑을 파괴하는 자들인 것이다.  

그런데 이 사랑은 첫째, "청결한 마음" 즉 믿음에 의해 정결하게 되어 더러운 정욕의 때가 묻지 않은 양심에서 나온다.  

그리고 이 거룩한 사랑을 지키기 위해서 우리의 마음에서 모든 죄에 대한 사랑이 제거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이 사랑은 둘째, "선한 양심"에서 즉 죄가 없는 양심에서 나온다고 하였다.  

따라서 선한 양심을 보존하는 사람들은 계명을 완성하는 사람들이라 하겠다.  그런데 이 선한 양심은 하나님의 진리 말씀에 대한 참된 믿음에서 나온다.  

그러므로 셋째, 이 사랑은 "거짓이 없는 믿음"에서 나온다고 한 것이다.  

이같이 본문에는 놀라운 은사인 사랑의 필수적인 부수물로 세 가지가 언급되는 것을 보게 된다.  

a. 그것은 청결한 마음이다.  

사랑은 청결한 마음이 있어야 거기서 사랑이 우러나올 수 있는 것이다.  

b. 다음은 선한 양심이다.  

우리는 선한 양심을 지니고 매일의 생활을 해 나가야 할 것이다.  그래야 우리는 사랑을 소유할 수 있고 뿐만 아니라 그것을 지켜 나갈 수 있다(행 24:16). 

c. 사랑에 수반되는 또 한 가지는 거짓없는 믿음이다.  

왜냐하면 기독교의 사랑은 위장 없는 사랑이기 때문이다.  또한 이 사랑에 의해 역사하는 믿음도 위장이 없이 순수하며 성실한 데서 솟아 나와야 한다.  

그런데 율법의 선생이라고 자칭하는 몇몇 사람은 계명의 참 목적에서 빗나가고 있었다.  그들은 율법의 수호자인 체하지만 그들의 변론은 무익한 말다툼에 불과한 것이었다.  그들은 선생이라고 자칭하였지만 그러나 사실은 자신도 알지 못하는 것을 다른 사람에게 가르치는 체할 뿐인데 불과하였다.  

오늘날도 교회가 그런 선생들에 의하여 썩어져 가고 있다면 우리는 그것을 하나도 이상히 여길 것이 못된다.  왜냐하면 초대 교회 때부터 그러했기 때문이었다.  

다음 사실을 기억하자.

(1) 사람들 특히 전도자들이 계명의 목적인 위대한 사랑의 법으로부터 빗나갈 때 그들은 무익한 말다툼만 일삼케 된다는 사실이다.  

사람이 길을 가다가 목적지와 위치를 잃어 버리게 되면 가면 갈수록 정로에서 이탈된다는 것은 기이한 일이 아닌 것이다.

(2) 말다툼 특히 신앙의 문제에 있어서의 말다툼은 무익한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것은 선한 모든 일에 있어서 부적당하며 불필요한 것이다.  말다툼은 대단히 악한 것이며 해로운 것이다.  

그러나 아직도 믿는 많은 사람들이 무익한 말다툼만 일삼는 것을 볼 수 있다.

(3) 무익한 다툼을 일삼는 사람은 남들을 가르치는 선생이 되기를 좋아하며 선생이 되고자 하는 욕심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가르치는 직책을 원한다(즉 열망한다).

(4) 사람들이 알지도 못하는 말을 지껄이므로써 사역자의 직책을 침해하는 경우가 허다히 많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자기가 말하는 바를 이해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자기들이 확언하는 것조차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이 이러한 무지를 가지고 자기들의 말을 듣고 있는 사람들을 교화시키려고 한다니 이 얼마나 기가 막힌 일인가!

2. 율법의 바른 사용법.  

본문에 보면 "사람이 율법을 법있게 쓰면 율법은 선한 것이라"(8절)고 하였다.  

유대인들은 율법을 불법적으로 사용하였다.  그들은 율법을 교회를 분열시키기 위한 동력으로 또한 그리스도의 복음을 반대하기 위한 구실로 사용하였다.  

그들이 율법에 내세운 것은 정당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그것을 불법적으로 사용하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도 율법을 제껴 놓으려고 생각해서는 안 되고 옳게 사용함으로 죄를 억제해야 하는 것이다.  

율법을 잘못 사용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해서 율법 자체가 나쁜 것이라고 할 수는 없다.  

하나님의 계명의 악용될 때는 바른 사용법을 깨우치고 악용하는 관습을 제거해야 한다.  

왜냐하면 율법은 아직도 생활의 규범으로써 대단히 유익한 것이기 때문이다.  

비록 우리가 율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언약의 사업 아래 있으나 무엇이 죄이며 무엇이 의무인가를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데 대단히 유익한 것이다.  

율법은 의인을 위하여 생긴 것이 아니다.  즉 율법은 준수할 사람을 위하여 생긴 것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만약 우리가 율법을 지킬 수 있었다면 율법에 의하여 의롭게 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갈 3:21).  

그러나 율법은 악한 사람들에 대하여 그들을 억제하고 금하고 악과 더러움을 그치도록 하기 위하여 만들어졌다.  

인간의 마음을 변화시키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이다.  그러나 율법의 공포는 그들의 손을 묶어 놓고 그들의 혀를 금지하는 역할을 하였다.  

그러므로 의로운 사람은 사악한 자들에게나 필요한 이러한 제제를 원치 아니한다.  

따라서 율법은 원칙적으로, 기본적으로 의로운 사람을 위하여 만들어진 것이 아님을 알수 있다.  

오로지 죄의 경중을 막론하고 저지른 갖가지 죄인들을 위하여 만들어진 것이다(9,10절).  

죄인들의 죄를 논함에 있어서 바울이 특별히 언급할 것은 이웃에 대한 우리의 의무를 위반하는 것이었다.  

즉 제 5계명과 6계명을 어기고 아버지와 어머니를 죽인 자들과 살인자들, 제 8계명을 어기고 도둑질하며, 제 9계명을 어기고 거짓말하여 거짓 맹세한 자들을 말하고 있다.  바울은 그러한 죄명을 든 후 다음과 같은 말로 끝을 맺는다.  

"기타 바른 교훈을 거스리는 자를 위함이니"(10절) 

어떤 주석자는 위의 말씀을 정권자들에게 주는 말씀으로 이해한다.  

즉 정권자들에게 위의 지정된 죄인들을 처형하는 법을 제정하고 또 그 법을 집행하게 하기 위하여 주어진 말씀이라고 본다.

Ⅱ. 바울은 복음의 영광과 은혜를 보여 준다.  

본문에는 바울의 특징들이 나타나 있고 표현되어 있다.  

자주 이런 구절을 볼 수 있는데 그것은 바로 "복되신 하나님의 영광과 복음을 좇음이니라"(11절)는 말씀이다.  

여기서 우리는 다음의 것을 배울 수 있다.

1. 그가 하나님을 복되신 하나님이라고 불렀다는 사실이다.  

즉 이 말은 하나님이 자신의 자족하심과 완전하심을 통하여 누리시는 복을 말하는 것이다.

2. 복음을 영광스러운 복음이라고 불렀다는 사실이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많은 영광이 창조와 섭리에서 나타나지만 더 많은 영광이 복음 안에 나타나며, 그 복음의 영광이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서 비친 때문이었다.  

바울은 이 영광스러운 복음이 자기에게 위탁되었음을 큰 영광이요 큰 은혜라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복음은 그 성격상 이 세상 아무에게나 주어지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복음 안에 있는 구원의 약속은 확실히 실현하는 것 즉 하나님 자신이 하실 일이다.  

그러나 복음을 이 세상에 전하는 것은 사도들과 복음 전도자들에게 위임된 것이다.  

다음의 것을 명심하시라.

(1) 목회는 위임(entrust)이라는 사실이다.  

따라서 복음이 바울에게 위탁되었던 것이다.  복음 사역은 능력의 직분인 동시에 위임되는 직분이다.  

그리고 전자의 의미보다는 후자의 의미가 더 중요한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목회자들이 청지기라고 불리우는 것이다(고전 4:1).

(2) 목회는 영광스러운 위임이다. 

그 이유는 그들에게 위임된 복음은 영광스러운 복음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대단히 중대한 위임인 것이다.  

하나님의 영광은 그의 사역자들의 사역에 의하여 영향을 받으신다.  그런데 주님께서 이 놀라운 직분을 우리에게 맡기신 것이다.  

우리가 이 위대한 위임에 신실하기 위해서는 많은 은혜를 필요로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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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의 감사(딤전 1:12-17)

여기서 사도 바울은

Ⅰ. 자기들 전도자로 세우신 예수 그리스도께 다시 감사를 드리신다.

1. 인간들을 전도자로 삼으시는 분은 예수 그리스도이시다(행 26:16, 17).  

하나님께서는 다음의 말씀으로 유대인들 가운데 있는 거짓 선지자들을 책망하셨다.  "내가 그들을 보내지 아니하였으나 그들이 달려갔고 내가 그들에게 말하지 아니하였으나 그들이 예언하였다"(렘 23:21).  

목회자들은 <자기 임의로> 다른 사람을 목회자로 만들 수는 없다.  더욱이 자기 자신을 목회자로 만들 수는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교회의 왕과 머리가 되시며 선지자와 선생이 되시는 예수님께서 주어진 권한이기 때문이다.

2. 주께서는 자신의 목회자로 삼으시는 아들에게 또한 그 일을 합당하게 감당할 능력도 주신다.  

주님은 택하시고 또 그 택함을 입은 사람에게 자격도 부여하신다.  비록 다른 은사와 은혜를 받았다 할지라도 그들의 사역에 적합한 자격이 없고 그것을 할 수 있는 역량도 없는 목회자라면 그 사람은 그리스도께서 세우신 목회자가 아니다.

3. 그리스도께서는 그가 전도자를 선택하신 사람들에게 능력을 주신 뿐만 아니라 충성심을 주신다.  

그러므로 바울은 "주께서 나를 충성되이 여겨"라고 말씀하고 있다.  그런데 주께서 신실하게 만드신 사람 이외에는 아무도 신실하게 될 수는 없다.  

그리스도의 목회자들은 신실한 종들이며 또 그렇게 되어야만 한다.  왜냐하면 그들에게 그같이 크고 참된 위임이 주어졌기 때문이다.

4. 목회자로 부르심을 받은 것은 크나큰 은총이다.  

그러므로 그것에로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은 "나를 목회자로 만들어 주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게 감사를 드리나이다"라고 감시해야 할 것이다.

Ⅱ. 목회자로 부르신 그리스도의 은혜를 더욱 찬양하기 위하여 바울은 자신의 회심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다.

1. 회심이기 이전에 바울은 "훼방자요 핍박자요 포행자였다." 

사울은 주님의 제자들을 대적하여 위협과 살기가 등등하였다(행 9:1).  그는 교회를 잔멸하였다(행 8:3).  

그는 하나님을 모독한 자였고 성도들을 박해하는 자였고 하나님과 성도들에게 유해한 자였던 것이다.  

위대하고 훌륭한 봉사를 하고자 계획된 사람들이 회심하기 전에는 대단히 사악하였었던 것을 종종 볼 수 있는데 이는 하나님이 자비로 그들을 용서해 주심으로 하나님의 영광이 더 드러나고 그들의 거듭남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더욱 더 드러내고자 해서인 것이다.  

아무리 큰 죄라도 진실로 회개한다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용납하시고 그가 하나님의 일을 위해 고용되는데 방해가 될 수 없는 것이다.  다음을 명심하자.

(1) 훼방이나 핍박이나 포행이 대단히 흉악한 죄이며 그 죄를 저지른 사람은 바로 하나님에서 큰 죄를 범한 죄인이라는 사실이다.  

하나님을 훼방하는 것은 하나님을 직접적으로 공격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자녀를 박해하는 것은 측면을 통하여 하나님을 해치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포행자가 된다는 것은 모두 사람을 대적하였고 또 모든 사람이 대적하였던 이스마엘과 같은 사람이 된다는 말이다.  

그런 일들을 하나님의 특권을 침입하고 동료 피조물들의 자유를 침해하게 된다.

(2) 선한 목적을 위하여 봉사하고자 참으로 회개한 사람들은 예전 상태로 다시는 돌아가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이 위대한 사도 바울까지도 자기의 이전 생활에 대하여 자주 고백하였던 것을 명심하자(행 22:4; 26:10, 11).

2. 하나님이 바울에게 베푼 크나큰 은총, 이에 대하여 바울은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것은 커다란 은총이며 축복이었다.  그렇게 악명높은 반역자가 그의 임금으로부터 긍휼을 입게 된 것이다.

(1) 만약 바울이 그들이 하나님의 백성인 것을 알면서도 그리스도인들을 고의로 박해하였다면 아직도 그것은 결코 용서받을 수 없는 죄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무지와 불신으로 인하여 이같이 하였기 까닭에 바울은 긍휼을 얻었던 것이다.  다음을 유의하자.

① 우리가 알지 못하여서 행한 것은 알고 행하는 것보다는 가벼운 죄가 된다는 사실이다.  

무지의 죄도 죄는 죄인 것이다.  그러나 주인의 뜻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였기 때문에 죄를 저질렀다면 채찍을 맞더라도 적게 맞게 될 것이다(눅 12:48).  

어떤 경우에 있어서 무지는 비록 죄를 없이 할 수는 없으나 죄를 가볍게는 할 수 있을 것이다.

② 죄인들이 알지 못하여서 저지르는 죄의 밑바닥에는 불신이 도사리고 있는 사실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두려우심을 믿지 않기 때문에 자기들이 하여야 할 것을 못하는 것이다.

③ 바울이 긍휼로 얻은 것은 이러한 이유 때문이었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그는 "도리어 내가 긍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13절)고 말한다.

④ 훼방자들과 핍박자들과 포행자들에게도 긍휼이 주어진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바울은 "나는 훼방자였음에도 도리어 긍휼을 입었다"고 말한다.

(2) 여기서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풍성한 은혜를 설명하였다(14절).  

크나큰 죄인의 회심과 구원은 그리스도의 은혜와 풍성한 자비를 힘입음으로 가능하다.  그런데 이 은혜는 그리스도의 영광된 복음 가운데 나타난다(15절).  

그러므로 그는 "미쁘다. 이 말(복음)이여"하고 말한다.  여기서 우리는 전체 복음이 요약되어 표현된 말씀을 볼 수가 있다.  

그것은 즉 "그리스도 예수께서 세상에 임하셨다"는 말씀이다.  하나님의 아들은 우리들의 본성을 입으시고 육신이 되사 우리 가운데 가하셨다(요 1:14).  

또한 주께서 이 세상에 오신 것은 "의인을 부르기 위해서가 아니라 죄인은 회개시키기 위해서인 것이다"(마 9:13).  

그가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내서 구원하시려는 것이었다(눅 19:10).  

따라서 바울의 "미쁘다, 모든 사람들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라는 말은 이것을 인정하는 말이다.  

복음은 모든 사람들이 받을 만한 좋은 소식인 것이다.  또한 좋은 소식일 뿐 아니라 진실한 소식이다.  왜냐하면 복음은 틀림 없는 말씀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신실한 말씀이므로 믿는 자의 가숨에 품을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다.  그것은 모든 사람이 받아들일 가치가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거룩한 사랑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이 사실은 앞의 단원에서 취급하였다.  거기 보면 그리스도의 은혜가 믿음과 사랑 안에서 풍부하게 됨이 말씀되고 있다.  

이 구절의 끝에 바울은 자신에 대하여 언급하기를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고 하였다.  

바울은 일급 죄인이었다.  바울은 자기가 그러한 인물임을 알고 있었다.  

왜냐하면 자기가 이전에 주의 제자들을 향하여 위협과 살기가 동등하였었기 때문이었다(행 9:1, 2).  

박해자들은 죄인중의 가장 악한 죄인들이다.  바울도 그런 사람이었다.  본문의 말씀은 "내가 용서받은 죄인 중에 괴수니라"는 말씀으로 볼 수도 있는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바울의 위대한 겸손을 볼 수 있다.  

다른 곳에서 바울은 자신을 일컬어 모든 성도들 중에 가장 작은 자라고 말하였고(엡 3:8) 여기서는 자신을 죄인들 중에 괴수라고 말하였다.  다음을 유의하라.

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셨다는 사실이다.  

그가 오시리라고 한 예언은 이제 성취된 것이다.

② 주께서는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오셨다는 사실이다.  

주께서는 자기 스스로 구원할 수 없는 자들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이 세상에 오신 것이다.

③ 훼방자들과 박해자들은 죄인들 중에 괴수라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바울은 그들을 그렇게 취급하였던 것이다.

④ 죄인들 중의 괴수도 성도들 중 가장 큰 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바울이 그러한 사람이였다.  왜냐하면 바울은 사도들보다 조금도 뒤떨어지지 아니한 사도가 되었기 때문이며 또 그리스도께서는 죄인 괴수를 구원하려 오셨기 때문이다.

⑤ 이것은 위대한 진리이며 신실한 말씀이라는 사실이다.  

이 말씀은 의지할 만한 진실하고 신실한 말씀이다.

⑥ 그것은 우리의 위로와 용기가 되기 때문에 우리 모두가 받아드리고 믿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3) 바울은 그가 회심하기 이전에 대단히 큰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긍휼을 입었음을 말하고 있다.

① 그는 이 말은 다른 사람들이 회개하고 믿도록 격려하기 위해서 하였다.  

그러므로 그는 "그러나 내가 긍휼을 입은 까닭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가 먼저 일절 오래 참으심을 보이사 후에 주를 믿어 영생 얻는 자들에게 본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16절)고 하였다.  

바울이 그렇게 대단한 박해자였음에도 그리스도께서 그를 참으셨다는 사실은 그리스도가 오래 참으시는 분이심을 보여 주는 본보기인 것이다.  

즉 바울에 대한 참으심은 가장 큰 죄인일지라도 하나님의 긍휼을 받을 수 있음을 모든 사람에게 보여 주기 위한 표본이었던 것이다.  

다음을 기억하자.  

첫째, 사도 바울은 기독교로 돌아 온 가장 첫 번째의 큰 죄인 중한 사람이었다는 사실이다.  

둘째, 바울이 회개하고 긍휼이 여김을 얻게 된 것은 자기 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구원을 위한 것이었다는 사실이다.  

셋째,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큰 죄인들도 회개할 때까지 오래 참고 기다리신다는 사실이다.  

넷째, 긍휼을 얻은 사람들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히 11:6).  

다섯째,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은 그가 영원히 사심을 믿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영혼의 구원을 믿어야 한다.(히 10:39).

② 바울이 이 말을 한 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서였다.  

하나님께로부터 얻은 긍휼에 대하여 언급한 후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베풀어 주는 선하심에 대하여 감사하는 뜻을 표하지 않고는 이 편지를 계속할 수가 없었다.  

그러므로 기록하기를 "만세의 왕 곧 썩지 아니하고 보이지 아니하고 홀로 하나이신 하나님께 존귀와 영광이 세세토록 있을지어다.  아멘"(17절)이라고 하였다.  

다음을 명심하자.  

첫째, 하나님이 우리를 위로하시기 위해 주신 은혜에 대하여 우리는 감사함으로 영광을 돌려야 한다는 사실이다.  

하나님의 긍휼과 은혜에 대하여 의무를 다하고자 하는 사람은 자기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찬송을 돌려야 한다.  

본문은 그 하나님에 대하여 "만세의 왕, 썩지 아니하시고 보이지 아니하시는 주님"이라는 표현으로 찬송을 돌리고 있다.  

둘째, 우리가 선하신 하나님을 알게 되었을 때 우리는 그분의 위대하심을 선언하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이다.  

우리를 향한 주님의 친절하심은 그의 위대하심을 감소시키지 않고 오히려 더 증가시킨다.  

하나님께서는 바울에게 특별한 관심을 가지시고 긍휼을 베푸시고 당신과 교통하도록 하시었다.  그럼에도 바울은 주를 "만세의 왕"이라고 칭하였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시는 은혜로운 돌보심은 주님의 영광스러운 속성을 찬송하는 찬송을 우리 속에 충만케 한다.  

하나님은 시작한 날이 없으시며, 끝이 없으시며, 변하시지 않는 영원하신 분이다.  하나님은 고대로부터 계셨다(단 7:9).  

그는 썩지 않으시며 불멸의 근원이 되시는 분이다.  주님은 죽지 않으시기 때문에 오직 그 분만이 불멸의 존재이신 것이다(딤전 6:16).  

영으로 거하시기 때문에 육신의 눈에는 보이시지 않으신다.  그러므로 아무도 주를 볼 수도 없으며 본 적도 없다(딤전 4:16).  

또한 그는 "유일하신 지혜의 하나님이다"(유 1:25).  오직 그만이 무한히 지혜로우시고 모든 지혜의 근원이 되신다.  

그러므로 바울은 "하나님께 존귀와 영광이 세세토록 있을지어다"라고 말한다.  

즉 "나로 하여금 천천의 무리가 한 것처럼 영원히 주께 영광과 존귀를 돌리도록 하옵소서"(계 5:12, 13)라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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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모데에게 주는 바울의 경계의 말씀(딤전 1:18-20)

바울은 위의 구절에서 디모데에게 확고하게 그의 일을 한 것을 경고하였다(18절).  

여기서 다음의 것을 알 수 있다.  즉 복음은 목회자들에게 위임된 명령이다.  

복음은 전도자들의 신실함에 위임된 것이다. 

즉 그들에게 복음의 의미와 뜻을 따라 또한 복음을 주신 이의 뜻을 따라 복음이 적당히 사용되도록 살필 책임이 위임된 것이다.  

이전에 디모데에 대한 예언의 말씀이 있었던 것 같다.  즉 그가 복음 사역에 종사하게 될 것과 또 그 일을 위해 그가 크게 기여하리라는 예언이 있었던 것 같다.  

이러한 예언이 있었기 때문에 바울은 디모데에게 복음의 사역을 맡길 수 있었던 것이다.  

다음 사실을 명심하자.

1. 사역은 하나의 전쟁이라는 사실이다.  

그것은 죄와 사탄에게 대항하는 선한 싸움인 것이다.  

또한 사역자들은 우리의 구원의 대장이실 주 예수의 군기 아래서 주를 위하여 그의 대적자들과 결전하는 특별한 일을 위하여 고용된 사람들이다.

2. 목회자들은 선한 싸움을 싸워야 할 것이며 온갖 반대와 좌절케 하는 시련에도 불구하고 부지런히 용기있게 그들의 직책을 지속해 나가야 한다는 사실이다.

3. 이전에 디모데에게 주어졌던 예언이 디모데로 하여금 자기 의무를 활기있고 양심적으로 수행하도록 용기를 북돋아 주기 위하여 다시 언급되었다는 사실이다.  

타인들의 우리에 대한 격려의 말은 우리로 하여금 자기 의무에 열중하게 하여 준다.  

그러므로 본문에 "전에 너를 지도한 예언을 따라 그것으로 선한 싸움을 싸우며"라고 하였다.

4. 우리는 믿음과 착한 양심,  이 두가지를 다 가져야 한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본문 19절에서 믿음과 착한 양심을 가지라고 하였다.  선한 양심을 버린 사람의 믿음은 곧 파선당해 버린다.  

우리는 새로워진 양심의 지시를 따라 살아야 하며 거리낌이 없는 양심을 지켜야 하며(행 24:16) 양심이 악덕과 죄로 더렵혀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또한 이것이 우리의 믿음을 흠없이 보조하는 방법이 될 것이다.  

우리는 믿음과 마찬가지로 양심을 지켜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믿음의 비밀은 순수한 양심 가운데서 보존되기 때문이다(3:9). 

믿음이 파선된 자들에 대하여 바울은 두 사람을 들고 있기 때문이다.  "후매네오와 알렉산더"이다.  

그들은 기독교 신앙을 고백한 사람들이었으나 그 고백을 저버린 자들이었다.  

바울은 그들을 사단에게 내어 주고 또 그들이 사단의 왕국에 속하였음을 선언하였다.  

또한 바울은 어떤 주석자의 말과 같이 특별한 권능으로 그들을 사탄에 의해 괴롭힘을 받도록 내어 주었다.  

그가 그렇게 한 것은 그들로 하여금 훼방하지 않게 하려고 즉 그리스도의 교훈과 주의 선한 길을 욕하고 부정하지 않게 하게 위해서였다.  

초대 교회에서 출교한 주된 목적은 그 이상의 죄를 막고 죄인들을 교정하기 위한 높은 뜻에서였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이러한 징계는 육신을 파괴하여서 영혼이 주 예수의 날에 구원을 받게 하기 위함이었다(고전 5:5).  다음 사실을 명심하자.

(1) 사탄의 일이나 사탄에게 봉사하기를 즐기는 자는 사탄의 권세에 내어 주는 것이 마땅한 일이라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바울은 "내가 저들을 사단에게 내어 주었다"고 할 것이다.

(2) 하나님께서는 원하시기만 하면 처벌을 통하여 그 반대의 효과를 거두실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본문에 보면 후매내오와 알렉산더는 사탄에게 내어 준 바 되었는데 그것은 그들이 훼방하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인간의 상식대로 이 말씀을 판단한다면 그들을 사탄에게 내어 주면 훼방하는 것을 더 배울 것으로 생각되는데 하나님의 섭리는 그렇지 않으신 것이다.

(3) 양심을 버리고 믿음이 파선된 사람은 어떤 일에도 꾸준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훼방하는 일까지도 그들은 꾸준할 수 없다.

(4) 그러므로 우리가 훼방하지 않으려면 선한 양심과 믿음을 가져야 한다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한 번 이것들을 놓치면 다시 찾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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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모데전서 제 1장
=====1:1
@우리 구주 하나님 - '구주'에 해당하는 헬라어 '소테로스'(* )는 이방신과 로마의 황제 숭배에도 사용되었던 호칭이다(Guthrie). 
바울은 여기에서 '우리'라는 말을 첨가함으로써 하나님이 사도 바울 자신뿐만 아니라 모든 성도들을 구속하시는 분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그리스도 예수의 명령을 따라...사도 된 바울 - '사도'(* ,아포스톨로스)는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파송된 사람'이라는 뜻이다(고전15:8, 9 ; 갈 2:8). 
처음엔, 사도는 예수의 공생애(公生涯) 기간에 함께 생활한 제자들을 일컫는 말이었는데(눅 6:13), 나중에는 사도의 조건이 예수의 생활과 죽음과 부활을 전할수 있는 사람으로 발전했다(행 1:23-26). 
바울은 여기에서 사도적 권위를 가지고 디모데에게 맡겨진 사역을 잘 감당하도록 격려하고 있다. 
'사도'라는 칭호는 당시 바울 외에 복음 사역에 헌신하였던 바나바, 디도, 아볼로, 실라, 디모데에게도 동일하게 사용되었다(행 14:14 ; 고전 4:6 ; 빌 2:25 ; 살전 2:6).
=====1:2
@믿음 안에서 참 아들 된 디모데 - 디모데가 바울의 아들이 되었다는 것은 신앙 안에서 디모데가 바울의 영적 아들이라는 뜻이다. 
혹자는 '종속적 원리'에서 바울과 디모데의 관계를 생각하지만(Calvin) 여기서는 '선생과 제자' 사이의 관계로 봄이 타당하다. 
왜냐하면 당시에는 '선생과 제자'의 관계를 나타낼 때 '아버지와 아들'이라는 용어가 널리 사용되었기 때문이다(Guthrie). 
바울은 2차 전도 여행 때 루스드라에서 그리스도인의 유대인 모친과 헬라인 부친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 디모데를 만났다(행16:1-3). 그때 디모데는 바울의 전도 여행을 따라다니면서 신앙 교육을 철저히 받았다. 그리고나서 바울이 가장 신임하는 동역자 중의 한 사람이 되었기 때문에 바울이 디모데를 영적으로 양육(養育)한 아들로 보는 것은 타당하다(빌 2:19-22).
@은혜와 긍휼과 평강이 네게 있을지어다 - 바울은 그의 서신에서 일반적으로 '은혜와 평강'이라는 말을 인사말로 썼다(고전 1:3 ; 고후 1:2 ; 갈 1:3 ; 엡 1:2 ; 빌 1:2; 골 1:2 ; 살전 1:1 ; 살후 1:2 ; 딛 1:4 ; 몬 1:3). 그러나 본문에서는 '긍휼'이라는 말을 덧붙이고 있다. 이처럼 '긍휼'이 서신의 인사말에 언급된 경우는 본서 외에 딤후 1:2 ; 요이 1:3 ; 유 1:2에만 해당된다. 
'긍휼'의 의미는 하나님이 인간의 모든 상황을 지배하시고 한없는 사랑과 위로를 베풀어 주신다는 것이다(Hendriksen). 
그러므로 긍휼은 죄인들을 고통에서 구원하여 항상 새롭게한다. 
한편 '은혜'는 하나님이 값없이 주신 구원의 선물이며, '평강'은 죄인이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은혜의 결과이다. 이렇듯 은혜와 긍휼과 평강은 하나님으로부터 온다.
=====1:3
@내가 마게도냐로 갈 때에 너를 권하여 에베소에 머물라 한 것은 - 바울은 로마에서 2년간 옥에 갇혔다가 석방된 후에 디모데를 데리고 그레데 섬을 지나 에베소까지 왔으나 계속 동행하지 못하고 디모데를 그 곳에 남겨둔 채 마게도냐로 떠났다. 
바울이 마게도냐를 방문한 것은 정확하지 않다. 그러나 바울이 디모데를 '권하여' 에베소에 머물도록 한 이유는 에베소 교회에 거짓 교사들의 미혹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신실한 동역자요, 믿음의 아들인 디모데가 아니면 복음 사역을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에 그를 머물도록 한 것이다(Hervey, Calvin). 
'권하여'의 헬라어 '파레칼레사'(*)는 '간청하다', '간절히 원하다'는 의미로 디모데가 바울과 같이 마게도냐로 가기를 원했으나 에베소에 머물도록 했음을 시사한다.
@다른 교훈을 가르치지 말며 - '다른 교훈'에 해당하는 헬라어 '헤테로디다스칼레인'(* )은 '거짓 교훈', 즉 정통 교훈과 배치(背馳)되는 이단적 사상을 의미한다. 이것은 초대 교회에 이미 공인된 기독교 교리가 있었음을 암시한다(Guthrie).
=====1:4
@신화와 끝없는 족보 - '신화와 족보'는 하나의 표현으로 나누어서 생각해서는 안된다(Hendriksen). 
유대인들에게는 모든 만물에 영(靈)이 있다는 영지주의 사상이 있었다(Earle). 이 영지주의자들과 유대교의 학자들은 가문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유대의 문화권 속에서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끝없는 족보가 있다고 생각하였고, 그리하여 구약 인물들에 대한 가상적 족보를 만들었다. 특히 아브라함과 모세, 대제사장들을 중심으로 족보와 전기를 만들어 개개의 자신들을 그들의 후예로 만들었다(Hervey, Hort). 이러한 특색은 당시 유대교의 묵시 문학에서 발견되었다(Earle).
@믿음 안에 있는 하나님의 경륜을 이룸보다 도리어 변론을 내는 것이라 - '경륜'에 해당하는 헬라어 '오이코도미안'(* )은 '청지기' 즉 복음 사역을 위한 '직분'을 의미하지만(stewardship, RSV) '계획'으로도 번역할 수 있다(plan,LB). 
그러므로 '믿음 안에 있는 하나님의 경륜'은 복음이 하나님의 계시에 의해서만 전달되고 사람들이 믿음으로서만 받아들여질 수 있음을 의미한다(Hervey). 
이에 반해 신화와 족보는 첫째, 끝없는 논쟁을 불러일으킴은 물론 영지주의자들 스스로 유식 계급이라고 자처(自處)하게 하며, 둘째, 일반 성도들로 하여금 그것을 이해할 수 없는 것으로 만들어 버린다. 그러므로 바울은 신화와 족보는 마침내 하나님의 교회에 계급주의와 분파 운동을 불러 일으켜 변론만 일삼게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1:5
@경계의 목적은...사랑이거늘 - '경계'에 해당하는 헬라어 '파랑겔리아스'(*)는 '계명'을 의미한다(commandment, KJV). 
이것은 디모데가 하나님의 청지기로서 그리스도인의 도덕적 책임을 다해야 함을 시사한다. 
즉 하나님의 말씀을 맡은 사역자는 성도들을 그릇된 이단 사상에 미혹되지 않도록 권고해야 하며 그 권고의 동기는 '아가페' 사랑에 두어야 한다(Guthrie). 
이러한 사랑은 '청결한 마음과 선한 양심과 거짓이 없는 믿음'으로부터 온다(Robertson). 
여기서 '거짓이 없는 믿음'이란 자신의 권위와 이익을 위해 불순한 동기로 믿는 것이 아니라, 신실한 동기를 가지고 믿는 믿음을 말한다(행 15:9). 
당시의 거짓 교사들은 자신의 이득을 위해 쓸데없는 신학 논쟁을 일삼으며 가식적인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1:6
@이에서 벗어나 헛된 말에 빠져 - '벗어나'의 헬라어 '아스토케산테스'(*)는 '표적을 벗어나다', '잘못 맞추다'는 의미이다(have gone off, JB). 
또한 '헛된 말'에 해당하는 '마타이올로기안'(*)은 신약성경을 통틀어 본절에만 나오는 단어로 '공허한 지껄임'을 의미한다. 따라서 본절은 불행하게도 어떤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의 신앙 생활의 기초인 청결한 마음과 선한 양심과 거짓이 없는 믿음에서 벗어나 쓸모없고 무의미한 말만 늘어 놓았다는 뜻이다.
=====1:7
@율법의 선생이 되려 하나 - 거짓 교사들은 자신들의 논리를 펴서 율법 선생이 되려고 했다. 
그러나 그들은 모세 율법에 대한 연구가 아니라 유대주의자들과 영지주의자들이 가졌던 신화와 헛된 족보를 전파하여 공중 앞에서 자신들의 권위를 세우고자 하였다(Earle, Simpson). 그들은 이미 그리스도인이 가져야 할 사랑의 계명을 버렸기 때문에 그들의 말은 헛된 궤변에 불과하였다. 따라서 바울은 그들의 헛된 교만을 꾸짖고 있는 것이다.
@자기의 말하는 것이나 자기의 확증하는 것도 깨닫지 못하는도다 - 헛된 궤변을 남발하는 자들의 말은 성경의 권위에서 벗어났기 때문에 진리가 아니다. 
또한 그들이 말하는 것이나 확증하는 것은 사랑의 진리나 율법에 대한 신성한 목적에서 벗어났기 때문에 무의미한 잡담(雜談)에 불과하였다(Guthrie). 
성경의 심오한 진리를 깨닫지 못하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성경에 대한 해석을 늘어놓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결국 그와 같은 어리석음을 범하는 것과 같다.
=====1:8
@율법은 선한 것인 줄 우리는 아노라 - 바울은 여러 곳에서 율법은 선하고 거룩한 것이라고 말하였다(롬 7:12 ; 갈 3:24 ; 4:4, 5). 
또한 본절에서 바울은 율법을 원목적(原目的)에 맞게 사용할 때 그 효용성이 발휘된다는 점에서 율법이 선하다고 말하고 있다. 
실상 율법은 인간의 구원을 완성시킬 수 없으나 인간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알려준다는 점에서 선한 직능이 있다(롬 7:7). 
이러한 의미에서 율법은 인간을 구원으로 인도하는 '몽학 선생'으로 묘사되었다(갈 3:24). 율법의 직능(職能)에 대한 상세한 내용은 갈 3:15-29 주제 강해 '율법과 복음의 비교' 및 '율법의 제한성과 연속성'을 참조하라.
=====1:9
@법은 옳은 사람을 위하여 세운 것이 아니요 - 바울의 주장은 모든 불의를 열거하는 것에 목적이 있지 않았다. 
다만 그가 의도한 바는 율법이 세워진 목적을 주장하려는 것이다. 
당시 에베소에 있는 거짓 교사들은 율법에 관해서 갖고있는 그들의 잘못된 견해들을 그대로 성도들에게 가르치고 있었으며, 그로 인해 성도들은 미혹을 당하고 있었다. 그래서 바울은 율법이 가지고 있는, 범죄를 억제하는 기능과 고발의 기능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세상의 법도 악한 범죄를 다스리기 위하여 존재하는 것이지 결코 의로운 사람의 행동을 제약하기 위하여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율법 또한 행악자를 위하여 있는 것이지 의로운 자를 위하여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것은 의로운 사람이 율법 없이 살아간다는 것을 의미하지도 않는다(Lenski). 혹자는 본절의 '법'(*, 노모스)을 '모세의 법'과 연관되는 것으로 설명한다. 그러나 이 견해는 타당치 않다. 왜냐하면 '노모스'가 정관사를 수반하고 있지 않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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