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22.05.11 작성자 : 양시영
제   목 : 삿18.단지파의 레셈(= 레센 = 라이스)진출-게르솜의 아들, 모세의 손자 요나단 (사신우상에게 속한, 자의적 제사장) 합류, 정로 아닌 곁길로 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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삿18장  [527. 어서 돌아오오][324. 예수 나를 오라 하네]

.....((십자가 보혈, 말씀, 성령!!..오직 임마누엘 주님, 코람데오-에하드-코이노니아, 페리코레시스)) 다시 새로이...네오스-카이노스-아나네오오-쉼모르포스


===미가와 단 지파...(왕께 여쭘 없이 임의대로 행하여!!) 자기 위치를 벗어나 떠나간 자

1.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었고 단 지파는 그 때에 거주할 기업의 땅을 (스스로..자기소견따라..교오자태방..세상가치!!)구하는 중이었으니 이는 그들이 이스라엘 지파 중에서 그 때까지 기업을 분배 받지 못하였음이라

2.  단 자손이 소라와 에스다올에서부터 그들의 가족 가운데 용맹스런 다섯 사람을 보내어 땅을 정탐하고 살피게 하며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가서 땅을 살펴보라 하매 그들이 에브라임 산지에 가서 미가의 집에 이르러 거기서 유숙하니라

3.  그들이 미가의 집에 있을 때에 그 레위 청년의 음성을 알아듣고 그리로 돌아가서 그에게 이르되 누가 너를 이리로 인도하였으며 네가 여기서 무엇을 하며 여기서 무엇을 얻었느냐 하니

4.  그가 그들에게 이르되 미가가 이러이러하게 나를 대접하고 나를 고용하여 나를 자기의 제사장으로 삼았느니라 하니라

5.  그들이 그에게 이르되 청하건대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께 물어 보아서 우리가 가는 길이 형통할는지 우리에게 알게 하라 하니

6.  그 제사장이 그들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너희가 가는 길은 여호와 앞에 있느니라 하니라

7.  ○이에 다섯 사람이 떠나 라이스에 이르러 거기 있는 백성을 본즉 염려 없이 거주하며 시돈 사람들이 사는 것처럼 평온하며 안전하니 그 땅에는 부족한 것이 없으며 부를 누리며 시돈 사람들과 거리가 멀고 어떤 사람과도 상종하지 아니함이라

8.  그들이 소라와 에스다올에 돌아가서 그들의 형제들에게 이르매 형제들이 그들에게 묻되 너희가 보기에 어떠하더냐 하니

9.  이르되 일어나 그들을 치러 올라가자 우리가 그 땅을 본즉 매우 좋더라 너희는 가만히 있느냐 나아가서 그 땅 얻기를 게을리 하지 말라

10.  너희가 가면 평화로운 백성을 만날 것이요 그 땅은 넓고 그 곳에는 세상에 있는 것이 하나도 부족함이 없느니라 하나님이 그 땅을 너희 손에 넘겨 주셨느니라 하는지라

11.  ○단 지파의 가족 중 육백 명이 무기를 지니고 소라와 에스다올에서 출발하여

12.  올라가서 유다에 있는 기럇여아림에 진 치니 그러므로 그 곳 이름이 오늘까지 마하네 단이며 그 곳은 기럇여아림 뒤에 있더라

13.  무리가 거기서 떠나 에브라임 산지 미가의 집에 이르니라

14.  ○전에 라이스 땅을 정탐하러 갔던 다섯 사람이 그 형제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이 집에 에봇과 드라빔과 새긴 신상과 부어 만든 신상이 있는 줄을 너희가 아느냐 그런즉 이제 너희는 마땅히 행할 것을 생각하라 하고

15.  다섯 사람이 그 쪽으로 향하여 그 청년 레위 사람의 집 곧 미가의 집에 이르러 그에게 문안하고

16.  단 자손 육백 명은 무기를 지니고 문 입구에 서니라

17.  그 땅을 정탐하러 갔던 다섯 사람이 그리로 들어가서 새긴 신상과 에봇과 드라빔과 부어 만든 신상을 가져갈 때에 그 제사장은 무기를 지닌 육백 명과 함께 문 입구에 섰더니

18.  그 다섯 사람이 미가의 집에 들어가서 그 새긴 신상과 에봇과 드라빔과 부어 만든 신상을 가지고 나오매 그 제사장이 그들에게 묻되 너희가 무엇을 하느냐 하니

19.  그들이 그에게 이르되 잠잠하라 네 손을 입에 대라 우리와 함께 가서 우리의 아버지와 제사장이 되라 네가 한 사람의 집의 제사장이 되는 것과 이스라엘의 한 지파 한 족속의 제사장이 되는 것 중에서 어느 것이 낫겠느냐 하는지라

20.  그 제사장이 마음에 기뻐하여 에봇과 드라빔과 새긴 우상을 받아 가지고 그 백성 가운데로 들어가니라

21.  ○그들이 돌이켜서 어린 아이들과 가축과 값진 물건들을 앞세우고 길을 떠나더니

22.  그들이 미가의 집을 멀리 떠난 때에 미가의 이웃집 사람들이 모여서 단 자손을 따라 붙어서

23.  단 자손을 부르는지라 그들이 얼굴을 돌려 미가에게 이르되 네가 무슨 일로 이같이 모아 가지고 왔느냐 하니

24.  미가가 이르되 내가 만든 신들과 제사장을 빼앗아 갔으니 이제 내게 오히려 남은 것이 무엇이냐 너희가 어찌하여 나더러 무슨 일이냐고 하느냐 하는지라

25.  단 자손이 그에게 이르되 네 목소리를 우리에게 들리게 하지 말라 노한 자들이 너희를 쳐서 네 생명과 네 가족의 생명을 잃게 할까 하노라 하고

26.  단 자손이 자기 길을 간지라 미가가 단 자손이 자기보다 강한 것을 보고 돌이켜 집으로 돌아갔더라

27.  ○단 자손이 미가가 만든 것과 그 제사장을 취하여 라이스에 이르러 한가하고 걱정 없이 사는 백성을 만나 칼날로 그들을 치며 그 성읍을 불사르되

28.  그들을 구원할 자가 없었으니 그 성읍이 베드르홉 가까운 골짜기에 있어서 시돈과 거리가 멀고 상종하는 사람도 없음이었더라 단 자손이 성읍을 세우고 거기 거주하면서

29.  이스라엘에게서 태어난 그들의 조상 단의 이름을 따라 그 성읍을 단이라 하니라 그 성읍의 본 이름은 라이스였더라

30.  단 자손이 자기들을 위하여 그 새긴 신상을 세웠고 모세의 손자요 게르솜의 아들인 요나단과 그의 자손은((모세의 자손들은 (성소 내 물품 관리를 전담하는) 분명히 고핫 자손 레위 지파에 속하지만...고핫 자손 중에서도 아론과 그의 아들들에게만 부여해 주신 바로 그 주 앞에서 대대로 섬기는, 고유한 제사장 자격을 주신 것은 아니었다)) 단 지파의 제사장이 되어 그 땅 백성이 사로잡히는 날까지 이르렀더라

31.  하나님의 집이 실로에 있을 동안에 미가가 만든 바 새긴 신상이 단 자손에게 있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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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기 18장은 단 지파가 여호수아로부터 배정받은 지중해 연안의 비옥한 땅을 떠나 북쪽 헐몬산 근처의 라이스에 정착하는 이야기입니다.

단 지파가 약속받은 땅을 점령하지 못한 것은 그곳에 살던 족속들이 강하였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단 지파가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그 땅을 정복하려는 확고한 의지가 없이 편하게만 살려는 나약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은 그들이 쉽게 빼앗을 수 있는 땅을 찾으려고 다섯 정탐꾼을 보내게 되었는데, 그들이 에브라임 산지에 있는 미가의 집에 들러 그 집에 고용된 젊은 레위인 제사장을 만나게 됩니다. 

그에게 자신들이 가는 길에 대하여 하나님께 물어달라고 요청을 하였는데, 그 제사장이 진정한 하나님의 제사장이었다면 하나님이 주신 약속의 땅으로 돌아가라고 호통을 쳤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단 지파 정탐꾼들이 듣고 싶어하는 말만 해 주었습니다.

그들은 마침내 라이스라는 성읍에 다다랐는데, 평온하고 땅도 넓고 부족함이 없고 부를 누릴 만하여 매우 좋아 보였습니다. 

그래서 돌아가 단 지파 600명의 용사를 데리고 다시 라이스로 가던 중 미가의 집에 있던 신상과 제사장을 생각하여 제사장과 신상과 에봇과 드라빔을 탈취하여 나옵니다. 

그 신상과 제사장이 함께 있으면 하나님의 능력도 함께 할 줄로 생각한 것입니다.

미가는 항의하려 뒤 쫓아 왔지만 위세에 눌려 돌아가 버립니다. 

그들은 결국 라이스를 점령하고 그곳에 정착하였는데, 단 지파 안에 미가가 만든 신상이 있게 되고 그 레위 제사장은 단 지파의 제사장이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사사기 18장에서 우리는 네가지 중요한 질문을 만나게 됩니다.

첫째는 단 지파 정탐꾼이 미가 집 안의 제사장으로 있던 레위인에게 “네가 여기서 무엇을 하느냐?”고 물은 것입니다. (:3) 

이것은 사명의 자리를 떠나 돈과 편안함만 따라 가는 이들을 향한 하나님의 질문이기도 합니다. 우리도 ‘지금 하나님의 부름에 순종하고 있느냐?’ 라는 질문으로 들어야 합니다. 

둘째는 단 지파 족속들이 에브라임 산지를 정탐하고 온 정탐꾼들에게 “너희가 보기에 어떠하더냐?”고 물은 것입니다. (:8)

그들은 오직 자기들의 눈에 좋아 보이는 대로 보고했습니다. 이것이 사람들이 실족하는 이유입니다. 

아브라함의 조카 롯도 눈에 보기에 좋은 대로 소돔과 고모라를 택하여 망했습니다.

우리는 모든 것을 하나님의 눈으로 보고 있는지, 영적으로 바로 분별하고 사는지 돌아 보아야 합니다.

셋째는 미가 집안의 레위 제사장이 단 지파로부터 받은 “네가 한 사람의 집의 제사장이 되는 것과 이스라엘의 한 지파 한 족속의 제사장이 되는 것 중에서 어느 것이 낫겠느냐?” 는 질문. (:19)

이 제안을 듣고 레위 제사장은 마음에 기뻐하였다고 했습니다. 그의 판단 기준은 오직 좀 더 부유하고 좀 더 크고 좀 더 성공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을 귀신 섬기듯 하였습니다. 그것이 얼마나 두려운 일인지 깨닫지 못하였습니다.

그대 자신이  기쁜 곳은 어디 입니까? 자기를 기쁘게 하는 자리를 따라 살면 안됩니다. 

주님이 기뻐하실 일을 따라 살아야 합니다. 주님과 동행함이 기쁨이고 주님의 일을 하는 것이 기쁨이 되어야 합니다.

넷째는 자기가 만든 신상과 에봇과 드라빔과 제사장까지 탈취당한 미가가 단 지파 사람들에게 “이제 내게 오히려 남은 것이 무엇이냐?” 라고 항변하며 던진 질문입니다.    

자기 마음대로 하나님을 믿고 우상을 만들고 제사장까지 고용하여 하나님께 복을 빌었지만 남은 것이 하나도 없게 되었다는 탄식입니다.

이것이 자기 생각에 옳은대로 행하는 자가 직면하게 되는 마지막 순간입니다.

이렇게 허무하게 삶을 마치는 이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참으로 두려운 것입니다.

하나님만 믿고 순종하는 자는 다 잃어 버린 것 같은 순간에도 담대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다 가져가도 좋아! 나에게는 하나님이 계셔! 나는 예수님 한 분이면 충분해!” ...이것이 우리의 고백이요 확신이어야 합니다.

영적 싸움을 회피하고 편안한 길만 가려 했던 단 지파는 엄청난 죄악을 저지릅니다. ... 우상 숭배의 씨를 품은 것입니다.

하나님과 완전히 다른 길을 가면서도 스스로는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고 산다고 생각하는 것이 참으로 두려운 일입니다.

“주여, 우리에게 영적 분별을 주소서” 

“영이 깨어나 진정한 실상을 보게 하소서” 

“모든 거짓과 우상에서 벗어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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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JV]제18장


1.  In those days there was no king in Israel: and in those days the tribe of the Danites sought them an inheritance to dwell in; for unto that day all their inheritance had not fallen unto them among the tribes of Israel.

2.  And the children of Dan sent of their family five men from their coasts, men of valor, from Zorah, and from Eshtaol, to spy out the land, and to search it; and they said unto them, Go, search the land: who when they came to mount Ephraim, to the house of Micah, they lodged there.

3.  When they were by the house of Micah, they knew the voice of the young man the Levite: and they turned in thither, and said unto him, Who brought thee hither? and what makest thou in this place? and what hast thou here?

4.  And he said unto them, Thus and thus dealeth Micah with me, and hath hired me, and I am his priest.

5.  And they said unto him, Ask counsel, we pray thee, of God, that we may know whether our way which we go shall be prosperous.

6.  And the priest said unto them, Go in peace: before the LORD is your way wherein ye go.

7.  Then the five men departed, and came to Laish, and saw the people that were therein, how they dwelt careless, after the manner of the Zidonians, quiet and secure; and there was no magistrate in the land, that might put them to shame in any thing; and they were far from the Zidonians, and had no business with any man.

8.  And they came unto their brethren to Zorah and Eshtaol: and their brethren said unto them, What say ye?

9.  And they said, Arise, that we may go up against them: for we have seen the land, and, behold, it is very good: and are ye still? be not slothful to go, and to enter to possess the land.

10.  When ye go, ye shall come unto a people secure, and to a large land: for God hath given it into your hands; a place where there is no want of any thing that is in the earth.

11.  And there went from thence of the family of the Danites, out of Zorah and out of Eshtaol, six hundred men appointed with weapons of war.

12.  And they went up, and pitched in Kirjathjearim, in Judah: wherefore they called that place Mahanehdan unto this day: behold, it is behind Kirjathjearim.

13.  And they passed thence unto mount Ephraim, and came unto the house of Micah.

14.  Then answered the five men that went to spy out the country of Laish, and said unto their brethren, Do ye know that there is in these houses an ephod, and teraphim, and a graven image, and a molten image? now therefore consider what ye have to do.

15.  And they turned thitherward, and came to the house of the young man the Levite, even unto the house of Micah, and saluted him.

16.  And the six hundred men appointed with their weapons of war, which were of the children of Dan, stood by the entering of the gate.

17.  And the five men that went to spy out the land went up, and came in thither, and took the graven image, and the ephod, and the teraphim, and the molten image: and the priest stood in the entering of the gate with the six hundred men that were appointed with weapons of war.

18.  And these went into Micah's house, and fetched the carved image, the ephod, and the teraphim, and the molten image. Then said the priest unto them, What do ye?

19.  And they said unto him, Hold thy peace, lay thine hand upon thy mouth, and go with us, and be to us a father and a priest: is it better for thee to be a priest unto the house of one man, or that thou be a priest unto a tribe and a family in Israel?

20.  And the priest's heart was glad, and he took the ephod, and the teraphim, and the graven image, and went in the midst of the people.

21.  So they turned and departed, and put the little ones and the cattle and the carriage before them.

22.  And when they were a good way from the house of Micah, the men that were in the houses near to Micah's house were gathered together, and overtook the children of Dan.

23.  And they cried unto the children of Dan. And they turned their faces, and said unto Micah, What aileth thee, that thou comest with such a company?

24.  And he said, Ye have taken away my gods which I made, and the priest, and ye are gone away: and what have I more? and what is this that ye say unto me, What aileth thee?

25.  And the children of Dan said unto him, Let not thy voice be heard among us, lest angry fellows run upon thee, and thou lose thy life, with the lives of thy household.

26.  And the children of Dan went their way: and when Micah saw that they were too strong for him, he turned and went back unto his house.

27.  And they took the things which Micah had made, and the priest which he had, and came unto Laish, unto a people that were at quiet and secure: and they smote them with the edge of the sword, and burnt the city with fire.

28.  And there was no deliverer, because it was far from Zidon, and they had no business with any man; and it was in the valley that lieth by Bethrehob. And they built a city, and dwelt therein.

29.  And they called the name of the city Dan, after the name of Dan their father, who was born unto Israel: howbeit the name of the city was Laish at the first.

30.  And the children of Dan set up the graven image: and Jonathan, the son of Gershom, the son of Manasseh, he and his sons were priests to the tribe of Dan until the day of the captivity of the land.

31.  And they set them up Micah's graven image, which he made, all the time that the house of God was in Shilo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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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19:40-48...일곱째로 단 자손의 지파를 위하여 그들의 가족대로 제비를 뽑았으니..그들의 기업의 지역은 소라와 에스다올과 이르세메스와...사알랍빈과 아얄론과 이들라와..엘론과 딤나와 에그론과...엘드게와 깁브돈과 바알랏과..여훗과 브네브락과 가드 림몬과..메얄곤과 락곤과 욥바 맞은편 경계까지라...그런데 단 자손의 경계는 더욱 확장되었으니 이는 단 자손이 올라가서 레셈과 싸워 그것을 점령하여 칼날로 치고 그것을 차지하여 거기 거주하였음이라 그들의 조상 단의 이름을 따라서 레셈을 단이라 하였더라...단 자손의 지파가 그에 딸린 가족대로 받은 기업은 이 성읍들과 그들의 마을들이었더라...)...And the seventh lot came out for the tribe of the children of Dan according to their families....And the coast of their inheritance was Zorah, and Eshtaol, and Irshemesh,...And Shaalabbin, and Ajalon, and Jethlah,...And Elon, and Thimnathah, and Ekron,...And Eltekeh, and Gibbethon, and Baalath,...And Jehud, and Beneberak, and Gathrimmon,...And Mejarkon, and Rakkon, with the border before Japho....And the coast of the children of Dan went out too little for them: therefore the children of Dan went up to fight against Leshem, and took it, and smote it with the edge of the sword, and possessed it, and dwelt therein, and called Leshem, Dan, after the name of Dan their father....This is the inheritance of the tribe of the children of Dan according to their families, these cities with their villages......이 과정과 결과에 대해 수19장의 기자은 단 자손의 지경이 너무 좁다고 여겨서 라이스(레셈)까지 진출하여 단 자손의 경계가 확장되었다고 긍정적으로 묘사했지만...사사기 기자는 그 상세 설명을 통해 그 부당성과 부정적 측면을 분명히 고발하여 기술하고 있다. 

((삿1:34-36.. 아모리 족속이 단 자손을 산지로 몰아넣고 골짜기에 내려오기를 용납하지 아니하였으며...결심하고 헤레스 산과 아얄론과 사알빔에 거주하였더니  요셉의 가문의 힘이 강성하매 아모리 족속이 마침내는 노역을 하였으며...아모리 족속의 경계는 아그랍빔 비탈의 바위부터 위쪽이었더라..<....단자손의 본래 지역<소라와 에스다올 주변>은 그후 결국 에브라임 자손에게 흡수되었다고 보여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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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기 18장 (개요)

우리는 앞 장에서 어떻게 미가의 집안에서 우상 숭배가 행해졌는지를 보았다. 본 장에서는 이것이 어떻게 단 지파에게 전해져서 거기에 뿌리박게 되었는지를 기술하고 있다. 작은 불씨가 얼마나 엄청난 결과를 초래하는지를 보자. 단 지파는 거할 땅이 없어 곤란을 겪던 중 모든 지파 중에서 가장 늦게 가나안 북쪽 구석 땅을 차지하게 되었다. 그 곳은 레센 또는 라이스라 불리고 있었다(수 19:47).

본 장에서는 다음과 같은 문제에 접하게 된다.

1. 단 지파는 정탐꾼을 보내 거할 땅을 살피도록 했으며, 그들은 우연히 미가의 제사장을 알게 되었다(1-6).

2. 정탐꾼들은 용기를 주는 소식을 갖고 돌아왔다(7-10).

3. 단 지파는 라이스 땅을 정복하기 위해 군대를 보냈다(11-13).

4. 도중에 그들은 미가의 집에 있는 신상들을 약탈했다(14-26).

5. 단 지파는 쉽게 라이스를 정복했고, 정착하자 우상의 형상을 세웠다

    (2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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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처를 찾는 단 지파(삿 18:1-6)

Ⅰ. 단 지파 사람들은((그들 중 일부는)) 라이스 지방에 마음을 두었다. 그러나 이는 전부가 아니라 단 지파의 일부에 속한 사람들이었다. 라이스는 (수19장에 의하면) 가나안 땅 중에서 단 지파에게 할당된 성읍이었다.((그들에게 할당된 지경이 너무 좁다고 여겨서 더 적극적으로 조사했던 바 그들의 지경으로 수19장에서 인정-기록하고 있다)) 그들은 본래 그들의 지경으로 분배된 소렉골짜기를 중심으로 하는 지경에서 아모리족속을 축출하지 못하여 결국 그때까지 정착하지 못했기에, 그 땅을 차지하지 못하고 ((그들의 형제들과 함께 거주하고 있었는데, 그 형제들은 유다 지파와 블레셋 족속 사이에 있는 땅을 차지하고 있었다)). 단 지파 사람의 일부는 그들의 성읍으로 돌아가려 하지 않았다. “이스라엘에” 그들을 다스리는 “왕이 없었기” 때문이다(1절). 그들의 땅은 다른 지파의 땅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고 게다가 전부 적의 수중에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자기 땅에 거하려고 하기보다는 형제의 집에 의지해 살려고 했다. 그러나 드디어 곤경에 몰린 단 지파는 그들 스스로 들고일어나 살 땅을 찾기 시작했다. 다른 사람에게 매달려 사는 것보다는 아무리 보잘것없을지라도 자기의 집에서 사는 편이 훨씬 낫다.

Ⅱ. 이 단 지파 사람들은 라이스를 탐지했다. 그들은 “다섯 사람을 보내어 땅을 살피게” 했다(2절). 그래서 그 곳이 살기에 적합한 곳인지, 사람들이 어떤 태세를 갖추고 있는지 자기들이 그 땅의 주인이 되는 일이 가능한 것인지, 그 땅을 점령하기 위해서 얼마만한 힘이 필요한지, 또 어떤 방법으로 공격해야 하는지 등 그 곳의 상황을 자세히 살피고 오도록 했다. 그 땅을 탐지하기 위해 용맹스러운 남자들을 보낸 것은 그들이 적을 만났을 경우 잘 이겨 낼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다. 뛰기 전에 살펴보는 것이 지혜로운 일이다. 단 사람들은 그 세밀함에 있어 “길의 뱀”과도 같았고(창 49:17), 그 용기에 있어서는 “바산에서 뛰어나오는 사자의 새끼”(신 33:22)와 같았다.

Ⅲ. 정탐꾼들은 미가의 제사장과 아는 사이였으며 그들은 이것을 이용했다. 그들은 이 레위인이 떠돌이 생활을 했을 때 그를 만났던 것 같다. 비록 얼굴 모습이 변했다 할지라도 그들은 목소리를 듣고 그를 알아보았다(3절). 그들은 그가 이렇게 먼 데까지 온 것을 보고 놀라 왜 여기에 있는지를 물었고, 레위인은 그가 여기서 어떤 일을 행하고 있으며 어떤 대우를 받고 있는지를 말해 주었다(4절). 그가 신당에서 신탁을 맡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그들이 지금 행하고 있는 일이 어떻게 될 것인지 알아봐 달라고 부탁했다(5절). 그들이 하나님과 그의 섭리에 대해 얼마나 경솔하고 관심이 없는지를 보라. 만일 그 레위인이 드라빔에 관한 얘기를 꺼내지 않았다면 이들은 하나님께 문의해 볼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을 것이다.

많은 사람이 기회주의자처럼 불가피하게 되었을 때에만 믿음을 생각한다. 그들은 거룩한 계명에도 아주 무지해 하나님께서 신상을 세워 놓는 것을 금하고 계시다는 것조차 모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이 신상과 그들의 일을 의논하고, 그대로 평안할 것이라는 답을 얻었다. “그들이 내게 묻기를 내가 조금인들 용납하랴?”(겔 14:3) 그들은 하나님의 우림보다도 미가의 드라빔을 더 신뢰하고 있는 듯했다. 왜냐하면 이들이 실로를 지날 때 하나님의 귀한 제사장에게 묻지 않고 미가의 집에 있는 보잘것없는 레위인에게 물었기 때문이다. 그는 그의 평상시 방법대로 드라빔에게 의논해 보는 척했다. 그리고 정탐꾼들이 믿건 안 믿건, 하나님께서 그들의 성공을 약속하시고는(6절) 격려의 대답을 그에게 주셨다고 그럴듯하게 말했다. “평안히 가라. 너희의 일이 안전하고 쉽게 이루어지리라. 너희의 행하는 길은 여호와 앞에 있느니라.” 즉 “의인의 길은 인정하시고(시 1:6) 응낙하시는 하나님께서 그 일을 찬성하셨느니라. 그러므로 그는 그 일을 번성케 해 주시며 항상 너희를 보살피고 길을 안내해 주실 것이다. 그리고 너희의 행하는 길이 형통하게 해 주시리라.” 우리는 우리가 가려는 길이 하나님께서 찬성하시는 길인지 잘 검토해 보아야 한다. 만일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것이면 우리는 “평안히 가면” 된다. 만일 하나님께서 우리를 돌보시면 우리는 모든 염려를 그 분께 맡기고, 하나님께서 “우리 앞에 가시니” 결코 길을 잃을 염려가 없다는 사실을 확신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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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정군의 출정(삿 18:7-13)

Ⅰ. 단 지파는 정탐꾼을 보내 라이스 성읍과 그 곳 사람들의 상황을 탐지해 오도록 했다(7절). 그 곳은 다스리는 사람도 없었고 그 땅을 지키는 사람도 없었으므로 침입해 들어가기에 매우 쉬운 곳이었다.

1. 사람들이 저마다 사악할 대로 사악해졌는데도 그것을 다스리는 권력자가 없었다. 그 곳에는 권세를 잡은 자, 즉 이들을 다스릴 후계자가 없었기 때문에 그들은 “무슨 일에든지 괴롭게 함이 없고” 그들을 “죽일”(20:13) 사람도 없었다. 그러므로 극악무도한 행위로 하나님의 분노를 불러일으켰으며, 이웃을 해하여 서로 파멸을 가져오게 했다.

(1) 치리자들의 직무는 무엇인가? 그들은 “제재의 상속자”다. 즉 그들이 살고 있는 곳의 상속자로서 계속해 권력을 잡아야 할 자들이요, 그 권력으로 악을 그 땅에서 제재해야 할 임무를 맡고 있는 자들이다. 그들은 “제재권의 소유자들”이며, 그것을 위해서 권력이 부여되어 있다. 그래서 그들은 사악한 모든 일을 견제하고 억압하며 “행악자들에게는 두려움”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롬 13:3). 타락한 인간의 마음을 깨끗하게 해 줄 수 있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총뿐이다. 권세를 잡은 자들은 그들의 악한 행실을 바로잡아 사람들이 해를 입지 않고 죄악에 물들지 않도록 제재하는 직책을 맡고 있다. 비록 재판의 칼이 악을 근절할 수는 없다 하더라도, 그것은 그 가지를 자르고 더 자라거나 퍼져 나가지 못하게 한다. 악은 언제나 제재를 받고 있으며 그럴수록 악은 더욱 대담하고 위험스러운 세력을 뻗쳐 사람들 속에 스며 들어온다.

(2) 이 사악함은 어떤 방법으로 막을 수 있는가? 죄지은 자는 수치를 당해야 한다. 하나님 앞에서나 또는 그들의 양심에 의해 죄의 수치를 당하지 않은 자들은 사람들 앞에서 처벌의 수치를 받게 함으로써 악을 제재해야 한다. 그래서 어떻게 해서든지 악을 몰아내고 그것을 경멸하도록 해야 한다. 또한 항상 덕행을 드러내 칭찬해 줌으로써 사람들로 하여금 게으름, 술 취함, 속임, 거짓말 등의 죄악을 부끄러워하도록 해야 한다.

(3) 악을 제재할 수 있는 권세를 잡은 자가 아무도 없을 때 사람들은 얼마나 비참해지며 얼마나 쉽게 파멸의 구렁텅이로 빠져 들겠는가! 그 때에는 “악인이 처처에 횡행하게 된다”(시 12:8). 이것을 볼 때 훌륭한 율법과 훌륭한 국가 안에서 살고 있는 우리들은 얼마나 행복한가!

2. 라이스 땅의 사람들은 허술한 방비 태세를 갖추고 있었다. 그들은 문들을 다 열어 놓고 집은 수리도 하지 않은 채 태평스럽고 조용하게 지내고 있었으며, 그들의 악이 너무 커서 하루하루 하나님의 보복이 다가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떤 위험도 느끼지 못한 채 편안히 살고 있었다. 탐지하러 온 자들은 처음에는 두려움을 느꼈으나, 그들이 게으르고 비겁한 자들이며 그 곳의 방비가 매우 허술해 그들이 쉽게 점령할 수 있으리라는 것을 알았다. 그 곳은 내륙에 위치해 있고 개방되어 있는 마을이긴 했지만 “시돈 사람(그들의 땅은 바다로 둘러싸여 있었고 인공적으로나 자연적으로 잘 방어되어 있었다)같이 평안히 살고 있었다.” 그러나 “시돈 사람과 상거가 멀기” 때문에 시돈 사람들은 그들을 도울 수가 없었고, 위험에 처한다 할지라도 아무도 그들을 도와줄 사람이 없었다.

끝으로, “그들은 아무 사람과도 상관하지 않고” 아무 일도 않고 있거나(그들은 하는 일도 없이 하루하루를 게으르고 호화롭게 보냈으므로 결국은 그들 자신을 방어할 힘도 잃게 되었다) 남과 어울리지 않고 혼자 있기를 즐겼다. 또 그들은 이웃에 의존하거나 연합하는 것을 경멸했기 때문에 아무도 그들을 도와주려 하지 않았다. 그들은 남을 돕지 않았고 이웃들도 그들을 돕지 않았다. 이런 것이 라이스 사람들의 상태였다.

Ⅱ. 탐지하러 갔던 자들은 희망적인 소식을 가지고 돌아왔다(8-10절). 아마도 단 사람들은 이 일을 매우 힘든 일로 여겨 그들이 라이스의 주인이 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오랫동안 주저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먼 곳까지 위험을 무릅쓰고 갈 만한 가치가 없는 땅이라고 생각해 더러는 이곳에 탐지하는 자들을 보내는 데 반대했을 것이다. 이 정탐꾼들은 다음과 같은 소식을 가지고 돌아왔다.

1. 그 곳이 살기 좋은 곳이라고 진술했다. “너희들이 우리의 말을 믿는다면, 우리가 그 땅을 본즉 매우 좋더라(9절). 그리하여 우리가 블레셋 사람들에게 몰리게 되어 살게 된 이 산지의 땅보다 훨씬 낫더라. 그 곳에는 세상에 있는 것이 하나도 부족함이 없기 때문에(10절), 우리는 거기서 편히 살 수 있느니라.” 가나안의 북쪽 맨 구석에 자리잡고 있는 이 성읍도 이렇게 살기 좋은 곳이거늘 가나안 땅은 얼마나 기름진 곳인가.

2. 그 땅을 얻을 수 있다고 진술했다. 그들은 전혀 의심치 않고 하나님의 축복과 함께 그들이 그 땅을 차지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들은 평안한 백성이니라”(10절). 안심하고 있을수록 더욱 위험하다. “하나님이 그것을 너희 손에 주셨으므로 너희가 그것을 얻을 것이다.” 그들은 그 일을 할 것을 선동했다. “일어나서 그들을 치러 올라가자. 망설이지 말고 어서 빨리 가자.” 그들은 사람들이 지체하는 것을 재촉했으며 게으름을 부리는 것을 꾸짖었다. “너희는 가만히 있느냐? 그 땅 얻기를 게을리 말라.” 사람들은 자기들에게 이익이 되는 일조차도 남이 선동해야 한다. 천국은 매우 좋은 나라로서 “그 곳에는 하나도 부족함이 없다.” 우리의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우리 손에 붙이실” 것을 약속하셨다. 우리는 그것을 확신하는 데 게으르지 말고 “참된 생명을 취하며”(딤전 6:19), 오직 “들어가기를 힘써야”(눅 13:24) 한다.

Ⅲ. 단 사람은 라이스를 치러 갔다. 그들의 몫으로 그 곳을 차지하기 위해 드디어 떠났다(11-13절). 단 지파 사람들이 가나안 땅으로 들어갔을 때는 그들의 수가 6만 4천 명이었으나(민 26:43) 이에 100분의 1도 못 되는 6백 명의 사람들만이 병기를 들고 쳐들어갔다. 그 지파의 형제나 또는 다른 지파 사람들이 그들을 도우러 오지 않았다는 것은 이상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지파들 사이에 공동 관심사나 공통 정신이 생겨 협동하게 된 것은, 이스라엘 사람이 가나안에 들어오고 나서 오랜 후의 일이었다. 그러므로 그전에는 이들은 거의 서로 돕지 않았으며 그런 일에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이 6백 명만이 그 곳에 정착하기 위해 떠났던 것 같다(21절). 그들은 “어린아이들과 가축”(18:21), 즉 가족들과 재물들을 데리고 오면서 분명 그들이 성공하리라는 것을 확신했을 것이다. 다른 지파 사람들은 그들의 땅을 지날 때 단 사람들을 자유롭게 통과시켜 주었다. 단 사람들은 첫날 기럇여아림에 진을 치고 밤을 지냈는데, 그 일로 해서 그 곳을 마하네단, 즉 단의 진영이라 일컫게 되었으며, 그들이 처음 행진한 소라와 에스다올 사이도 똑같은 이름이 붙여졌다(13:25).

둘째 날에 그들은 미가의 집이 있는 에브라임 산지에 다다르게 되었다(13절). 여기서 그들은 잠시 머무르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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빼앗긴 미가의 신상들(삿 18:14-26)

단 사람들은 그들이 살 만한 땅을 찾아보도록 정탐꾼들을 미리 보냈다. 

그들은 부지런히 살피고 돌아다녔고 그러다가 미가의 집에도 이르게 되었다(정탐꾼들은 미가의 집에 관해 미리 자기 지파 사람들에게 이야기해 주지 않았던 것 같다). 

이제 단 지파의 무리가 미가의 집에 다다랐고 정탐하러 왔던 사람들은 신상들이 있다는 사실을 비로소 단 사람들에게 이야기해 주었다. 

“이 집에 우리들이 갖고 있지 않은 에봇과 드라빔이 그 밖의 여러 가지 예배의식에 필요한 것들과 함께 있다. 그런즉 이제 너희는 마땅히 행할 것을 생각하라(14절). 

우리가 우리의 일에 대해 그 신상에게 물어보았을 때 좋으리라는 응답을 얻었다. 그것들을 가지고 있을 만하다. 아니 그보다 우리가 그것을 훔치는 게 나을 것이다. 우리가 그 신상들을 차지하면 더욱 번영할 수 있고 또한 라이스의 주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이 의를 행하는 한은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 계실 것을 기대할 수 있다. 그러나 비참하게도 이들은 (각시놀음에나 딱 알맞을) 이 신상들을 하나님의 임재의 표적으로 삼으려 했다. 

그들은 이 신상들이 그들의 사업에 좋은 길잡이가 되어 급한 일이 있을 때마다 정확한 신탁을 해 주리라고 생각했다. 

그들은 실로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정착하려 하고 있었으며, 실로 근처에 살고 있는 미가보다는 그들 자신에게 더욱 신당이 필요하리라고 생각했다. 

그런 목적으로라면 에봇과 드라빔을 자기들의 힘으로 충분히 만들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널리 알려져 있는 이 신당에 대해 (비록 그 평판은 잠시뿐이었지만) 이상한 존경심과 호기심을 갖고 있었다. 

만일 이 신상이 어떻게 해서 만들어지게 되었으며 그 동기가 거룩한 것이었는가 하는 것을 알았다면 당장 그 신상들을 팽개쳐 버렸을 것이다. 

이 신상들을 갖기 위해 그들이 어떻게 제사장을 꾀어 그것들을 훔쳐 냈으며 어떻게 미가를 협박했는지 살펴보자.

Ⅰ. 미가의 집의 위치와 상황을 잘 알고 있는 5명의 남자들이 에봇과 드라빔, 그리고 그 외의 부속물들을 훔쳐 내기 위해 들어가 있을 동안, 6백 명의 단 사람들은 병기를 가지고 문 입구에서 제사장과 이야기하고 있었다(16-18절). 

이 비열한 제사장이 그의 신들에 대해 얼마나 관심이 없는지를 보라. 그의 보물들이 없어질 동안 그는 문간에서 어슬렁거리며 이 낯선 사람들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 신들은 또한 얼마나 무력한가? 그것들 자신이 도난당하는 것을 막지 못했다. 

그래서 우상들은 다른 것들도 구해 내지 못하고 “자기도 잡혀갔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사 46:2). 

오, 단 사람들의 추행이여! 자기들 자신도 지키지 못해 잡혀가는 이 우상들이 어떻게 그들을 보호해 줄 수 있다는 말인가! 

그들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임재로는 불충분하다는 듯, 또한 하나님이 임재를 나타내기 위해 표적들을 지니고 있는 성전으로는 만족할 수 없다는 듯, 부어 만든 이 신상들을 취했으나 그것들은 실상 아무 일도 못하고 단지 “그들을 인도할 신들”(출 32:23)에 지나지 않았다. 더욱이 그들은 그들 자신이 만들지도 않고 그것들을 훔쳐 냈다.

한 오페라의 서곡과도 같이 우상 숭배는 도둑질과 함께 시작되었다. 그들은 제2계명을 깨뜨리기 위해 제8계명부터 어겨 이웃의 물건을 취해 그들의 신으로 만들었다. 

거룩하신 하나님께서는 “번제를 바치기 위해 훔쳐오는 것을 싫어하시나”(사 61:8, KJV) 마귀는 그것을 좋아한다. 

만일 단 사람들이 그 우상들을 부숴 버리고 그 제사장을 처벌했다면 그들은 참된 이스라엘 사람의 도리를 행할 수 있었을 것이며 그들의 조상들과 같이 그들의 하나님을 위해 진노를 나타냈을 것이다(수 22:16).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도 않고 사람을 눈여겨보지도 않아 경건함과 영예로움을 완전히 잃어버리고는 이렇게 그들 마음대로 우상들을 취해 중죄를 범하게 되었다.

Ⅱ. 그들은 이제 제사장에게 그 신상뿐만 아니라 그도 그들이 함께 데리고 가겠다고 듣기 좋게 설득했다. 

그들은 그 신들을 어떻게 이용하는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다음을 살펴보자.

1. 그들은 어떻게 제사장을 유혹했는가?(19절) 그들은 그에게 지금 받고 있는 것보다 더 좋은 대우를 해 주겠다고 약속했다. 

일개 가정의 성직자로 한 개인을 위해 일하는 것보다는 “한 지파”의 성직자가 되는 것이 제사장에게는 더욱 명예롭고 유익한 일이었다. 

그가 그들에게로 간다면 그는 더욱 많은 신봉자들을 거느리게 되고 그의 제단에는 더욱 많은 제물이 쌓이게 될 것이며 그는 드라빔과 의논한 대가로 미가의 집에 있을 때보다 더 넉넉한 보수를 받을 수 있었다.

2. 그들이 어떻게 제사장을 설득할 수 있었는가? 단 몇 마디의 설득으로 제사장은 마음에 기뻐했다(20절). 

그들의 권유는 한곳에 머물러 있지 못하는 그에게 기쁨을 주었고 그의 탐욕과 야망을 만족시켜 주었다. 그는 이 곳을 떠나야 할 특별한 이유를 갖고 있지 않았다. 

미가는 “그를 속여 품삯을 변역하지”(창 31:7) 않았다. 그러나 그는 아무런 양심의 거리낌도 없이 그 신상들과 함께 떠나는 것을 응락해 주었다. 

만일 그가 레위인의 의무대로 하나님의 제사장이 되기 위해 실로로 갔다면 그는 그 곳에서 환영받고(신 18:6) 그가 떠나온 것을 칭찬받았을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는 우상을 짊어지고 가서 모든 성읍에 우상 숭배를 퍼뜨려 놓았다. 그 자신이 미가를 떠났다는 것만 해도 미가에게는 몹시 부당하고 미안한 일이었으나, 그는 더욱 무례하게도 미가가 그리 소중히 여기던 신상들을 함께 가져가 버렸다. 하나님의 집을 버린 자가 어떻게 다른 집을 지킬 수 있겠는가? 그는 “마음에 기뻐하여” 떠났으므로, 강제로 타의에 의해 가게 되었다고 변명할 여지가 없다. 홀 주교의 말대로 단 지파 사람들이 제사장을 10세겔을 주고 유혹할 수 있었다면, 11세겔을 주는 자가 있으면 그를 잃게 될 것이었다. 선한 양심이 파괴된 자에게 무엇을 신뢰할 수 있을 것인가? “고용인은 그가 단지 돈을 받고 있는 자이므로 언젠가는 달아나 버릴 것이다.” 그 제사장과 우상들은 “그 백성 중으로” 들어갔다. 제사장을 백성들 가운데에 서서 가게 한 것은 그가 마음이 변해 도망치거나 혹은 미가가 따라와서 그를 잡아갈 것을 막기 위해서였는지도 모른다. 아니면 광야를 지날 때 법궤와 제사장을 무리 가운데 모시던 이스라엘의 행진의 규칙을 모방해 그렇게 한 것인지도 모른다.

Ⅲ. 미가가 자기의 신상들을 찾으러 그들을 추적해 왔을 때, 그들은 그를 위협해 물러가게 했다. 미가는 그의 신당이 약탈당하고 그의 제사장이 도망했다는 사실을 알고는 곧 그가 할 수 있는 최대의 힘을 모아 약탈해 간 자들을 추적했다(22절). 그의 소작인들도 그와 함께 예배의식을 가졌던 사람들로 보이며 그들은 이런 일이 생기면 돕도록 되어 있었다. 그러므로 이들은 곧 모여서 어린아이들과 가축들을 그들 앞에 두고 진행하는(21절) 그 약탈자들을 뒤쫓았다. 단 지파는 천천히 가고 있었으므로 미가의 무리들은 그들을 곧 잡을 수 있었다. 그러나 단 지파의 사람들은 워낙 그 수와 힘이 많았기 때문에 미가의 무리는 그들의 힘으로 싸우기보다는 이치를 따져서 그들이 빼앗긴 것을 되찾기를 바랐다. 추적한 사람들은 단 사람에게 말을 걸었다. 그 때 맨 뒤에 서서 가던(공격에 대비해 맨 뒤에는 가장 힘세고 용맹스러운 자를 두었던 것 같다) 단 사람들이 낯을 돌려 미가에게 웬일로 그들을 부르는가고 물었다(23절). 그는 그들과 논쟁을 벌여 그의 물건을 돌려주어야 하지 않느냐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들은 힘을 내세우며 물건을 돌려달라는 미가를 위협했다. 힘이 정당한 권리를 능가한다는 것은 통속적인 일이다.

1. 미가는 그들이 자기에게 분명히 잘못을 행했다고 주장했다(24절). “너희들은 나의 신들을 취하여 갔다. 내 자신이 그것을 나의 하나님의 상으로 만든 고로 나는 그것을 매우 소중히 여기고 있으며, 그것을 잃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된다. 이것들을 잃으면 내게 더 이상 바랄 것이 무엇인가?”

(1) 이것은 우리에게 우상 숭배하는 자들의 어리석음과 그들에게 역사하고 있는 사탄의 권세를 보여 주고 있다. 우리는 오로지 우리를 만드신 하나님만을 숭배해야 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미가가 손수 만들었다고 해서 그것들을 그의 신들이라고 부르는 것은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 어리석은 자들은 이처럼 무익한 것에 마음을 쏟으며, 그것을 잃었을 때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듯이 생각한다.

(2) 이것은 우리에게 영적인 우상 숭배를 보여 주고 있다. 우리가 어떤 창조물에 우리의 행복을 걸고 거기에 지나친 집착을 지니며 그것으로부터 결코 떨어지려 하지 않고서 “내게 오히려 있는 것이 무엇이냐” 하고 말하게 될 때, 우리는 바로 그것을 우상화하는 것이 된다. 우리가 우리의 생명, 위안, 희망, 행복, 그리고 그 모든 것을 거는 것이 우리의 신이요, 하나님의 자리를 찬탈하는 것이다.

(3) 그러나 만일 모든 사람이 자기들의 신을 따라서 그렇게 열심히 행한다면 하물며 우리는 진실하신 하나님께 그렇게 깊은 애착으로 행해야 되지 않을까? 우리는 하나님께 관심을 기울이며, 그와의 교제를 지극히 중히 여기며, 하나님을 잃게 되는 것을 가장 큰 슬픔으로 느껴야 할 것이다.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떠나시면, 더 이상 기대할 것이 무엇이겠는가? 하나님을 떠나 비탄에 잠겨 있는 비참한 영혼들은 미가처럼 방황할 것이며, 우리는 이런 자들에게 무슨 일이 있는지를 물어야 한다. 하나님의 은총의 표적이 의심되고 위로를 잃고 나면, 우리에게 남는 것은 무엇이겠는가?

2. 미가가 그의 물건을 되돌려 줄 것을 요구했을 때, 단 사람들은 그에게 피해를 끼치겠다고 위협했다. 그들은 미가의 말을 들으려 하지도 않았고 공평한 처사를 행하려 하지도 않았다. 그들은 그 신상들에 대해 값을 지불하려 하지도 않았으며 그들이 원정해 온 목적을 이루고 그들 자신을 위해 그런 신상을 만든 후 약탈해 온 신상들을 돌려주겠다는 약속도 하지 않았다. 만일 그들이 조금만이라도 그를 측은하게 여겨 주었다면 그는 그렇게 비탄에 빠져 슬퍼하진 않았을 것이다. 그들은 그에게 위로의 말을 해 주기는커녕 만일 그가 즉시 그의 요구를 철회하고 물러가지 않는다면 그를 죽이겠다고 위협해, 그들의 도적질한 행위를 정당화했다(25절). “노한 자들이 너희를 쳐서 네 생명을 잃게 되지 않도록 주의하라. 네 생명을 잃는 것은 네 신들을 잃는 것보다 더 나쁜 일이다.” 사악하고 사리를 분간 못 하는 사람들은 의로운 행위를 하라고 충고받을 때 매우 화를 내며 의로운 것과 합당한 것을 대적할 수 있는 힘을 기르려고 애쓴다. 미가의 죄란 단지 자기의 물건을 요구한 것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것으로 해서 그는 그의 생명과 그의 가족의 생명을 위협받았다. 미가는 이 모든 위험을 무릅쓰고 그의 신들을 구할 만한 용기도 없었고 그 신들이 그를 지켜 주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다는 데 대한 확고한 이유도 거의 갖고 있지 않았으므로 순순히 그것들을 포기했다. “그는 돌이켜 집으로 돌아갔다”(26절). 우상을 잃게 된 것을 계기로 그가 그 신들의 헛됨과 무능함을 깨닫고 그것들에게 그리 집착했던 자신의 어리석음을 뉘우쳐 자신이 배반했던 진실하신 하나님께로 돌아갈 수 있었다면, 무력으로 그것들을 취해 갖고 간 자보다 미가가 훨씬 유익했을 것이다. 우상을 잃고 그에 대한 상처를 치료받고서 “우리가 더 이상 우상과 무슨 상관이 있으랴” 하고 말할 수 있게 되었다면, 그 손실은 분명 이로운 것이다(사 2:20; 30:22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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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스의 정복(삿 18:27-31)

Ⅰ. 단 사람들은 라이스를 점령했다. 

그들은 계속 행진했으나 아무런 피해를 받지 않았으므로, 아마 미가의 집에서 도적질한 것이 잘못된 일이 아니었다고 단정했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번영했다는 사실로써 자신들의 사악한 행위를 정당화한다.

1. 라이스의 성읍과 그 주위에 있는 사람들의 태도는 어떠했는가? 

그들은 조용하고 방심한 상태에 있었으므로, 그들을 염탐하러 온 다섯 명을 경계하지 않았고 그들의 적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도 도무지 눈치채지 못했다. 

그래서 단 사람들은 그들을 쉽게 쳐부술 수 있었다(27절). 많은 사람들은 방심함으로써 파멸하게 된다. 사탄은 우리가 방심해 경계하지 않고 있을 때 우리를 이용한다. 

그러므로 항상 경계하고 있는 자는 복된 자다.

2. 단 사람들은 라이스에서 완전히 승리를 거두었다. 

단 사람들은 “칼날로 그들을 치며” 허름해 다시 지어야 할 성읍들을 불살랐으나(27, 28절), 아무도 이에 대해 저항하지 않았다. 

가나안 사람들의 죄악의 그릇은 완전히 채워졌으나, 단 사람들의 죄악은 이제 채워지기 시작할 뿐이었다.

3. 어떻게 이 정복자들은 그 땅에 기거했는가?(28, 29절) 

그들은 성읍을 세우고 낡은 건물을 새로 짓고 “그 성읍을 단이라 이름하여” 비록 그들이 형제들과 멀리 떨어져 있을지라도 단 지파의 태생이라는 것을 표하고자 했다. 

우리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맺는 특권을 잃지 말고 지니도록 노력해야 하며, 우리들 자손에게 그 특권을 기억하도록 해야 한다.

Ⅱ. 그 곳에 즉시 우상이 세워졌다. 

하나님은 은혜롭게도 당신 약속을 이루어 주시어, 단 사람들의 몫이 된 땅을 얻을 수 있게 해 주셨고, 따라서 그들은 은혜를 베푸신 하나님께 충성을 해야 했다. 하나님은 “민족들의 수고한 것을 소유로 취하게 하셨으니 이는 저희로 그 율례를 지키게 하려 함이었다”(시 105:44, 45). 그러나 그들이 정착한 후 행한 첫 번째의 일은 하나님의 율법을 범하는 것이었다. 그들은 정착하자마자 “새긴 신상을 세워”(30절) 사악하게도 그들의 모든 성공의 영광을 그 신상에게 돌렸다. 만일 하나님께서 무한한 인내를 지니고 계시지 않았다면 이것들을 즉시 부숴 버리셨을 것이다. 이 번영하는 우상 숭배자들은 계속 죄를 범해 “그들의 힘으로 자기 신을 삼았다”(합 1:11). 제사장의 직책을 맡은 레위인의 이름이 여기서 밝혀지고 있는데, “마나세(우리 성경은 모세)의 손자, 게르손의 아들인 요나단”이었다. 원본에는 마나세라는 단어 앞에 “1”(n)자가 첨가되어 있는데, 유대인 율법 학자에 의하면, 이 문자는 빼 버려야 하는 것이므로 마나세는 곧 모세라는 이름과 같은 것이다. 또한 그들의 말에 의하면, 이 레위인은 유명한 모세의 손자이며 모세는 실제로 게르손이라는 아들을 갖고 있었다. 이 율법 학자들은 역사가들이 모세의 명예를 손상시키지 않기 위해 그 이름에 다른 문자를 삽입해 마나세라는 이름으로 만들어 놓았다고 말하고 있다. 라틴어역은 그것을 모세라고 읽었다. 만일 모세에게 정말 이런 사악한 손자가 있어 우상 숭배를 했다 할지라도 위대하고 훌륭한 사람에게 타락한 후손이 있었다는 것은 그리 희귀한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패트릭 주교는 이것은 율법 학자들의 근거 없는 이야기이며 요나단이라는 이름을 가진 레위인이 또 다른 가문에 있었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면 이런 타락이 어떻게 지속되었는지를 눈여겨보자.

1. 요나단과 그 자손들은 라이스에 정착한 단 지파의 제사장이 되어, 그 백성이 다른 민족에게 정복되는 날까지 일했다(30절). 

미가의 신상이 제거되고 난 후에도 이들은 제사장의 신분을 지니고 있어 성읍 사람들의 존경을 받았다. 그러므로 여로보암이 금송아지를 만들어(이것이 단 사람들에게 환영받았을 것이며 하나님의 제사장과 아무 상관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큰 인기를 모았을 것이다) 세웠을 때에도 이들을 불러 그의 제사장으로 세웠다는 것은 매우 있음직한 일이다. 

2. 이 새긴 신상은 사무엘의 시대가 오기 전 “하나님의 집이 실로에 있을 동안” 계속 단 자손에게 있었다. 아마도 사무엘의 시대에는 특별한 관심을 기울여 우상 숭배를 억압하고 그것을 파괴했을 것이다. 

영적인 병은 쉽게 걸리지만 치료는 그만큼 더 어렵다는 것을 생각하면, 그 병에 감염되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를 알 수 있다.

===호크마
=====18:1
그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었고 - 17:6에 이어 본서 기자는 여기서 또다시 왕정 제도의 필요성을 시사하고 있다. 그러나 이 둘간에는 강조점의 차이가 있다. 
즉 앞서17:6에서는 개개인의 종교적 타락을 방지하기 위해서 왕정 제도의 필요성을 시사했었다. 반면 본절에서는 자기 기업을 지키지 못하고 외세에 밀려나는 약한 지파를 왕정제도에 의해 강대하게 함으로써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를 온전케 보존할 필요성이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이에 관한 보다 자세한 내용은 17:6 주석을 참조하라.
기업의 땅 분배함을 얻지 못하였음이라 - 본래 단 지파는 여호수아 생존 시에 기업을 분배 받았었다(수 19:40-46). 그러나 가나안 정착 초기에 분배받은 땅을 차지하지못하고 도리어 아모리 족속에 의해 쫓겨난 타 지파의 땅에 분산 거주하거나 새로운 정착지를 떠도는 신세가 되었던 것이다(1:34). 
한편 1:34에서 본서 기자는 단이 분배받은 기업을 차지하지 못한 것은 요셉 족속이나 유다 지파처럼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했기 때문임을 암시했었다. 그런데 본절에서는 그 이유를 왕이 없는 것과 연관시키고 있다. 따라서 왕정 제도의 필요성에 대한 주장은 단순히 본서 기자의 주석이 아니라 그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지고 있던 보편적인 견해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18:2
단 자손이 소라와 에스다올에서부터 - 삼손의 고향이자(13:2-5, 24) 단 지파의 기업이던 소라와 에스다올(수 19:41)은 유다 지파와 단 지파의 경계 지역으로서, 아모리 족속 거주지였고 삼손은 소라에서 태어났고, 그 시점에서는 아모리 족속이 아니라 더 강력한 철제무기를 가진 블레셋과 경계를 이루는 지역이 되고 있었다. 
이중 소라는 예루살렘 동쪽 약 65km 지점에 위치한 성읍이며 에스다올은 소라의 동북쪽 약2.5km 지점에 위치한 성읍으로 바로 아래 소렉골짜기를 사이에 두고 건너편에 벧세메스가 위치해 있었다. 
한편 본래 이 소라와 에스다올은 유다 지파의 기업이었는데(수 15:33) 훗날 기업을 재조정하면서 단 지파에게 분배되었다. 
그러나 단 지파는 이곳에 안주(安住)치 못하고 많은 수가 새로운 정착지를 찾아 이주하였는데(11절)전술(前述)한 바와 같이(끈질기게 버티며 저항하며 준동하는) 아모리족의 침입 때문이었다...나중에 에브라임 자손이 그들을 몰아내고 그 영토를 자기에게 귀속시키게 된다. 1:34 주석 참조.
다섯 사람을 보내어 땅을 탐지하고 - 
단 지파는 그들이 정착하기에 적합한 땅을 찾기 위해 그들의 씨족 가운데서 용맹한 다섯 사람을 미리 정탐꾼으로 파견하는 등 나름대로 치밀한 계획을 세웠다. 
아마도 단 지파는 이러한 준비를 하면서 마치 여호수아의 가나안 정복을 재현하는 듯한 꿈에 젖었는지도 모른다(수 2:1). 
하지만 약속의 유업조차 제대로 간수하지 못한 자들이 신개척지를 얻는다 하여 거기서 신실한 언약 백성의 모습을 존속시킬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강한 의구심으로 남겨질 수 밖에 없다. 
사실상 의구심 그대로 그들의 불순하고 패역한 자태는 본장에 확연히 기록되고 있다(5, 30절등). 
한편 단 지파의 북쪽 이주에 대한 기사를 요약하고 있는 수 19:47에서는 이 사건으로 인하여 단 지파의 지경이 확장되었다고 기록하고 있다.(KJV에서는 그 영토가 너무 작다고 보았음을 덧붙이고 있다)
=====18:3
레위 소년의 음성을 알아듣고 - 정탐꾼들은 소라와 에스다올에서 북쪽으로 가던 도중 에브라임 산지에 있는 미가의 신당(17:1, 5) 옆을 지나게 되었는데 이때 레위 소년의 음성을 듣고 발을 멈추게 되었다. 이들이 어떻게 레위 소년의 음성을 금방 알아들었는지는 분명치 않으나 다음 두 가지 경우로 추측해 볼 수 있다. (1) 이 레위 소년이 베들레헴을 떠날 때(17:8) 소라와 에스다올 지역을 지나쳐 왔기 때문에 정탐꾼들과 친분이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Wycliffe, Matthew Henry). (2) 에브라임의 방언은 특색이 있는데(12:6) 이 소년은 에브라임 방언을 쓰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이상하게 여겨졌을가능성도 있다(A.C. Hervey). 
한편 이 밖에도 혹자는 단 사람들이 밤에 미가의 집에서유숙하고 아침에 일어났을 때 제물을 드리는 제사장의 종소리(출 28:35)를 듣고 레위인이 거기에 있다는 것을 알았을 것으로 추측하나(Cassel) 본절은 분명히 단사람들이 미가 집을 발견하고선 그곳에 유숙하러 가다가 레위 소년을 만났음을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그 같은 추측은 개연성(蓋然性)이 없다.
네가 여기서 무엇을 하며 여기서 무엇을 얻었느냐 - 이 구절로 볼 때 단 사람들은레위 소년이 생계 수단을 구하기 위해 떠돌아 다녔던 사정을 잘 알고 있었던 듯하다.
이는 정탐꾼들이 레위 소년을 금방 알아본 이유가 이전에 이미 안면이 있었기 때문일 가능성을 한층 짙게 해준다.
=====18:4
나를 고빙하여 - 여기서 '고빙하다'에 해당되는 '사카르'(* )는 임금을 주고 고용하는 것을 가리킨다. 즉 본절에서 레위 소년은 자신이 삯을 받고서 제사장으로 고용된 것을 자랑스럽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당시 종교인들이 얼마나 부패했던가를 보여 주는 단적인 증거이다. 
즉 제사장이라는 직분은 하나님께로부터 세우심을 받는 성직(聖職)인데도 불구하고 레위 소년은 이에 대하여 천박한 직업 의식을 드러내었던 것이다. 
한편 오늘날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모든 성도들 또한 왕 같은 제사장들로서 복음을 증거하고 그 안에서 서로 교제하는 성스러운 일을 감당해야 할 사명이 있다(마 28:19;벧전 2:9). 
그리고 이러한 사명을 감당함에 있어서 상업적 이해 관계가 개입되어서는 아니되며, 다만 서로 사랑하는 마음에서 피차의 부족함을 채우는 일이 요청된다(고후 8:14). 
왜냐하면 성도들이 누리는 복음은 값없이 은혜로 주어진 것이기때문이다(고전 9:18). 
특히 교회의 교직자(敎職者)들은 자칫 천박한 직업 의식에 빠져 거룩한 복음 사역에 차질을 빚지 않도록 주의해야 하며 삯꾼이 아니라 선한 목자로 봉사하기를 힘써야 한다(요 10:11, 12). 
그리고 교회에 소속된 모든 성도들은 교직자로 하여금 복음 사역에 전무할 수 있도록 적극 협조하여야 한다(행 6:4).
=====18:5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께 물어보아서 - 1:1에서는 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와'(* )께 신탁을 구했는데 본절에서는 단 사람들이 '엘로힘'(* )께 신탁을 구하고 있다. 
그것은 아마 이 레위 소년이 에봇과 드라빔(17:5)을 사용하고 있었기때문인지도 모른다(Cassel). 
한편 단 사람들이 하나님을 '엘로힘'으로 호칭한 것으로보아 그들은 이 레위인이 섬기는 신이 이스라엘의 언약의 하나님 여호와가 아닌 가나안의 어떤 신인 것으로 생각했는지도 모른다(Goslinga). '여호와'와 '엘로힘'이란 신명(神名)의 차이점에 대해서는 창 1:1 주석을 참조하라.
=====18:6
너희의 행하는 길은 여호와 앞에 있느니라 - 단 사람들과 달리 이 레위 소년은 '여호와'(* )라는 명칭을 사용하고 있다. 
이것은 그가 간접적이나마 단 사람들에게 자신이 여호와께 신탁을 구할 자격이 있는 합법적인 제사장임을 강조한 것이라고 볼수 있다. 
한편 여기서 '그 길이 여호와 앞에 있다'는 말은 여호와께서 그 길을 주장하고 계시니 모든 것이 형통할 것이라는 뜻이다(Matthew Henry). 
공동 번역은 이를 '그들이 가는 길이 환히 트이도록 야훼께서 보살펴 주실 것이라'로 번역하고 있다.
=====18:7
라이스에 이르러 - 라이스(Laish) 또는 레센(Leshen, 수 19:47)이라고도 하는 이곳은 오늘날의 '텔 엘 카디'(Tell el Qadi)에 해당된다. 
팔레스틴 최북단에 위치한 이곳은 헬몬 산에 가려 아람과 단절되어 있고, 레바논 지역에 의해서 페니키아와도 단절되어 있어서 외침(外侵)을 받을 염려가 거의 없는 안전한 곳이었다. 
그리고 요단 강에서 흘러나오는 물로 인하여 용수(用水) 또한 충분했기 때문에 힘이 약한 단 지파의 정착지로서는 안성마춤이었다. 
더욱이 원주민들은 이러한 천연적인 조건에 타성이 젖어 외침에 대해 무방비 상태일 뿐만 아니라 군사력도 빈약했으므로 단 지파가 정복하기에는더할 나위 없이 좋은 곳이었다.
시돈 사람같이 한가하고 - 여기서 '한가하다'에 해당하는 '쉐케트'(* )는 '풍족한 가운데 여유를 즐기는 상태'를 의미한다. 공동 번역은 이를 '아쉬운 것 없이'로 번역하고 있다. 실제로 시돈인들은 동서 교역의 중개지로서 또한 상아 제품 제조 산업따위로 많은 부(富)를 벌어 들여 풍족한 경제 생활을 구가하였다. 따라서 라이스 거민들이 이러한 시돈 사람 같은 경제 생활을 누렸다 함은 그들이 상당히 여유 있는 생활을 즐겼음을 의미한다(Goslinga, Pulpit Commentary).
권세 잡은 자가 없어서 - 여기서 라이스 사람이 한가하고 평안했던 이유 중의 하나로 권세 잡은 자가 없음을 들고 있다. 당시 고대 근동 지역의 왕들은 대체로 세습에 의한 독재자들이었고 이들은 외침을 막고 부강한 나라를 만든다는 이유로 많은 세금을 징수하고 사람들을 징용에 끌어 넣었다. 그러나 라이스는 천연적인 요새(要塞)에 가까웠기 때문에 이러한 고통에 시달리지 않았던 것이다.
시돈 사람과 상거가 멀며 - 당시 라이스는 시돈의 통치하에 있었다. 그러나 시돈은 레바논 산맥의 장애로 인해 라이스를 관리하는 데 있어서 어려움을 겪었고 또한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안정세를 누렸으므로 굳이 라이스에까지 간섭할 필요를 느끼지못하였다. 따라서 라이스는 천연 방벽을 의지하여 사실상 독립된 생활을 누리고는 있었으나 자체 내의 방어 체제를 구비하지 못한 상태였으므로 뒤에가서 단 자손의 침입을 막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28절).
=====18:8,9
일어나서 그들을 치러 올라가자...매우 좋더라 - 본절에서는 단 지파가 라이스를 공격하게 된 직접적인 동기가 무엇인가를 보여 주고 있다. 그 동기는 여호수아와 갈렙이 제시한 가나안 정벌의 신앙적 동기(민 14:6-9)와 비교해 볼 때 완전히 대조적인 것이었다. 그들은 일단 외형적으로 보기에 좋기 때문에 그 땅을 정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와 같이 신앙이 없는 자들은 안목의 정욕을 따라 자신의 행동 방향을 결정하게되는 것이다.
=====18:10
평안한 백성 - 이에 해당하는 '암보테하'(* )는 '방심한 백성'이란 뜻이다. 이는 라이스 거민들이 물질적 풍요와 천연적 방어벽을 과신하여 안이한 심경에 젖어 있었음을 나타내 준다.
하나님이 너희 손에 붙이셨느니라 - 일반적인 성전(聖戰)의 구호에서는 하나님의 명칭을 '여호와'(1:2;2:13;수 2:24;6:2;10:8;삼상 7:8)로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여기서 단 사람들은 '엘로힘'(* )이라는 명칭을 사용하고 있는데 그것은 아마 레위 소년에게 신탁을 구한 것과 관계 있을 것이다. 5절 주석 참조. 따라서 본절에 기록된 성전 구호는 단순히 형식만 따랐을 뿐 그 내용에 있어서는 본래의 성전 구호와 비길 수 없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단 지파의 전쟁이 하나님의 뜻과는 상관없이 자신들의 정욕을 쫓아 행하는 전쟁임을 분명히 알 수 있다. 
즉 그들은 기업으로 받은 땅을 저버리고(11절) 심지어 우상 숭배에 깊이 젖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30, 31절) 마치 하나님의 성전(聖戰)을 수행하고 있는 양 행동하였던 것이다. 
한편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Soli Deo Gloria !)라는 표어는 모든 성도들에게 영원히 적용되어야 마땅하다(고전 10:31). 그러나 현실의 복잡 다양한 제반 상황들에 적응하다 보면 그러한 표어가 한갖 공허한 추상적 원리로 머물 때도 있으며 심지어는 그와 전혀 상반되는 일을 하면서도 그 표어대로 살고 있는 양 착각하는 경우마저 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늘 스스로를 돌아보아 그러한 표어가 실제적이고도 구체적인 측면에서 자신의 존재 근거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렇게 할 때 하나님의 크신 권능이 함께 하사 모든 대적들을 성도의 손에 붙이게 될 것이다(고후 10:4).
=====18:11
단 지파 가족 중 - 여기서 '지파'와 '가족'은 동의어로 사용되고 있는데 그 이유는 단 지파에는 오직 한 가족, 즉 '수함 가족'(민 26:42)만 있었기 때문이다. 13:2 주석참조. 
육백 명이 병기를 띠고- 여기서 600명은 병기를 가지고 전쟁을 치를 수 있는 장정들을 가리킨다. 그리고 나머지는 아내와 어린 자녀들로서 이들 앞에 가도록 되어 있었다(21절). 따라서 현재 라이스 정복 길에 나선 단 지파의 총 인원은 어림잡아 이, 삼천명 정도였던 것 같다(Hervey). 
이와 같이 단 지파의 인구 수가 과거 장정만 6만 여 명가량(민 1:39;26:43)에서 이토록 현저히 줄어든 것은 아마 그동안 아모리 족속과 블레셋 족속들의 압박에 의해 인원이 크게 축소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아니면 이는 아직 소라나 에스다올에 그대로 머물러 있는 사람들의 수는 계산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인구 수가 급격히 즐어들었다고 해도 그 차이가 심한 것으로 보아이 두 견해 중 후자가 보다 더 타당성 있는 견해라 하겠다(Matthew Henry).
=====18:12
유다 기럇여아림에 진치니 - 단 지파가 라이스를 향하여 북쪽으로 길을 떠난 뒤 처음으로 휴식을 취하기 위해 머문 곳은 예루살렘에서 몇 시간 걸리지 않는 거리에 있는 '기럇여아림'(Kirjath-jearim)이었다. 이곳은 예루살렘에서 욥바로 가는 도로상에서약 14.4km 떨어진 지점이다. 일찍이 이곳 기럇여아림은 교활한 간계로 여호수아와 동맹을 맺어 멸망을 피했던 기브온족의 네 도시 중 하나이기도 하다(수 9:17). 이 지역은 단 지파에 의해 '마하네단'(Mahaneh-dan), 즉 '단의 장막'이라는 명칭을 얻게 되었는데 소라와 에스다올 사이 유다 지경 내에 위치한 이곳은 삼손이 처음 여호와의 신께 감동되었던 곳이기도 하다(13:25). 
한편 혹자는 본절과 관련 단 지파가 이곳에서 상당기간 정착했다고 주장한다(Keil). 
그러나 본절 이후의 사건은 본절과 분리된 것이 아니라 연속된 사건인 점에 비추어 볼 때 단 지파는 이곳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 뒤 이내 라이스 정복길에 나선 것으로 보아야 한다.
=====18:13
거기서 떠나서 에브라임 산지 미가의 집에 이르니라 - 기럇여아림에서 미가의 집이있는 에브라임까지는 약 20km 정도의 거리이다. 이는 곧 걸어서 5시간 정도면 충분히 도착할 수 있는 거리이다.
=====18:14
이 집에 - 이에 해당하는 '바바팀'(* )은 복수형이다. 그래서 KJV, NIV,RSV 등은 이를 '이 집들에'(in these houses)로 번역하고 있다. 이것은 미가의 집이여러 건물들로 구성된 집이었음을 시사해 준다(Goslinga).
에봇과...부어 만든 신상 - 미가가 개인적으로 소유하던 각종 우상들이다. 이에 대한 보다 자세한 내용은 17:3, 5 주석을 참조하라.
=====18:15
소년 레위 사람의 집...이르러 - 미가의 집 중에서도 레위 소년이 머물고 있던 집은 따로 떨어져 있었던 것 같은데 그곳은 아마 미가의 신당일 것이다(17:5). 본절을 통해서 보더라도 미가의 집은 많은 건물들로 상당히 복잡하게 이루어져 있음을 알 수있다.
문안하고 - 단 지파의 다섯 정탐꾼들은 이전에 레위 소년을 만났었기 때문에(3-6절) 그의 건강을 묻는 등 우호적인 표를 했을 것이다. 그리하여 무리를 이루어 들이닥친 자신들 때문에(16, 17절) 레위 소년이 놀라지 않도록 안심시켰을 것이다.
=====18:16
문 입구에 서니라 - 본절에서 18절까지는 도적떼의 모습을 생생하게 연상시켜 준다. 문 입구에 선 무장한 600명의 단 사람들은 만일의 사태를 대비하여 그들의 동료들이 일을 마치고 미가의 집을 나올 때까지 파수하고 있었다. 
한편 이로 볼 때 미가는 어느 정도 군사력이 있는 소부족의 부족장 정도의 지위에 있는 사람이었던 것 같다. 22절에서 '미가의 이웃집 사람들'이 단 지파의 뒤를 좇았던 것도 어느 정도 이를 뒷받침해 준다.
=====18:17
그리로 들어가서 - 다섯 사람의 정탐꾼들은 레위 소년을 잘 설득하여 동료들이 있는 문 밖으로 내보내어 함께 있게 하고 신당 안으로 들어갔을 것이다(1절). 
한편 여기서 '들어가서'에 해당되는 원어는 '알라'(* )로서 '올라가다'라는 뜻이다. 왕하23:12이나 렘 19:13을 보면 '아하스의 다락 지붕'에 제단이 있었다는 표현이 있는데 미가의 신당도 다락방이나 2층 건물에 있었음이 분명하다(Keil, Hervey).
문 입구에 섰더니 - 여기서 '섰더니'에 해당하는 원어 '나차브'(* )는 '배치하다'라는 뜻도 지닌다. 이로 보아 단 자손들은 미가의 우상을 강탈하기 위해 600명의 군사로 삼엄한 경계를 폈음이 분명하다.
=====18:18
제사장이 그들에게 묻되 너희가 무엇을 하느냐 - 단 사람이 신당으로 들어갈 때까지도 아무런 반응이 없던 레위 소년이 자기 주인의 우상들을 다 집어내는 것을 보고서야 이제 놀라서 '너희가 무엇을 하느냐'고 묻는다. 
아마 이전까지는 단 사람들이 미가의 신을 경배하려고 신당에 들어간 줄로 그는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러나 혹자는 이에 대해 이 레위 소년은 돈으로 고용된 제사장이었기 때문에 미가의 신상에 함부로 손 댄것을 불경하게 여기지 않고 단지 도의적으로 주인의 물건을 훔치는 것을 탓했을 뿐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Cassel).
=====18:19
네 손을 입에 대라 - '잠잠하다'는 말의 반복으로 '아무말도 하지 말라'(Don't saya word, NIV)는 뜻이다.
우리의 아비와 제사장이 되라 - 본서 기자는 단 사람들의 이러한 제안을 적기 이전에 벌써 17절과 18절에서 레위 소년을 '제사장'이라고 적고 있다. 이것은 단 사람들이 레위 소년을 문안할 때부터(15절) 이미 그를 '제사장'으로 깍듯이 예우하고 있었음을 시사해 준다. 한편 '아비'에 대해서는 17:10 주석을 참조하라. 이는 지도자적 위치에있는 자를 높여 부르는 존칭어이다.
=====18:20
제사장이 마음에 기뻐하여 - 여기서 레위 제사장의 타락한 본성을 또다시 보게 된다. 
처음에 그는 생계를 잇기조차 궁색한 때 의식주 문제를 해결해 주겠다던 미가의 제안에 감격하여 한 개인의 제사장으로도 크게 만족했었다. 그리고 이 레위 소년은 미가에게서 아들과 같은 사랑도 받았었다(17:10, 11). 그러나, 단 사람들의 새로운 제안은 단순히 경제적인 충족 뿐만 아니라 한 지파의 제사장이 되는 명예까지 부여하겠다는 것이었기 때문에 그는 그 제안을 기쁘게 수락했던 것이다. 이와 같이 한번 물질에 혹했던 사람은 보다 나은 것을 추구하게 되고 그러한 자기 욕구를 채워 줄 대상이 나타나면 언제든지 이전의 은인까지도 배반하는 법이다.
에봇과 드라빔과 생긴 우상을 취하고 - 이처럼 보다 나은 조건에 미혹된 제사장은 본래 주인과의 의리와 계약을 헌신짝처럼 버리고 자기가 앞장서서 우상과 종교 기물들을 훔쳐 낸다. 그리고 단 지파와 동행한다. 이렇게 하여 미가의 가정을 타락시켰던 이 제사장은 이제 한 지파 전체를 잘못된 우상 숭배의 길로 이끄는 역할을 하게 된다(30,31절).
=====18:21
그들이 돌이켜서...진행하더니 - 단 지파는 다시 라이스 땅을 향하여 출발했다. 그들은 어린아이들과 가축과 물품을 앞에 두고 진행하였는데 그것은 아마 미가와 그의 이웃들이 뒤에서 따라와 공격하리라는 것을 미리 짐작한 조치였을 것이다(22절).
어린아이들과 가축과 물품 - 여기서 '어린아이들'에 해당되는 '하타프'(* )는 실족할 수 있는 '연약한 자들'을 가리키는 것으로 어린아이들 뿐만 아니라 여자와 노인들 그리고 보호를 필요로 하는 환자들까지도 포함하는 말이다. 다음으로 '물품'에 해당되는 '케부다'(* )는 시 45:13에서와 같이 '값진 것' 또는 '영화로운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KJV에서는 이것을 '탈 것'(carriage)으로 번역하고 있고, RSV에서는 한글 개역 성경과 마찬가지로 '물품'(goods)으로 번역하고 있다. 그리고 혹자는 '케부다'라는 단어가 '무거운', '힘든'이라는 뜻의 '카베드'(* )에서 파생된 것이기 때문에 귀중한 물건을 가리키기 보다는 무거운 짐들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기도 한다(Cassel). 어쨌든, 이 물품들은 수레 같은 운반 수단에 의해 옮겨지고 있었을 것이다.
=====18:22
모여서 단 자손을 따라 미쳐서는 - 미가는 제사장과 자기 신상이 없어진 것을 한참후에 알고는 곧장 추격대를 조직하여 단 자손을 따라갔다. 
배경은 다르지만 이 장면은마치 라반이 야곱을 추적하는 장면(창 31장)과 유사하다. 특히 둘 다 가정의 수호신을훔쳐갔다는 점(창 31:19)어서 그러하다. 아무튼 미가는 추적길에 나선 지 얼마 안 되어 단 사람을 따라 잡을 수 있었다. 그것은 단 사람들이 어린아이들과 짐승들과 물품들로 인해(21절) 빨리 진군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18:23
네가 무슨 일로 이같이 모아가지고 왔느냐 - 여기서 '모아가지고'에 해당하는 원어는 '도움을 호소하다'라는 뜻의 동사 '자아크'(* )의 수동태로서 '함께 부름을 받다' 또는 '함께 모이다'라는 뜻이다. 따라서 본절에서 '네가 무슨 일로 이같이 모아가지고 왔느냐'라는 단 사람들의 질문의 뜻은 '우리가 너희를 부르지도 않았고 너희 도움을 필요로 하지도 않는데 모여왔느냐'라는 뜻이다(Pulpit Commentary). 이것은 미가가 자신들의 뒤를 추격해 온 이유를 잘 알면서도 단 사람들이 능청스럽게 시치미를 떼고 있음을 보여 준다.
=====18:24
나의 지은 신들 - 이처럼 미가는 은으로 만든 신상과 에봇, 가정의 수호인이 드라빔(17:4, 5)들을 가리켜 스스럼없이 '나의 신들'이라고 부르고 있다. 이는 참된 신이신 여호와 하나님을 제대로 인식치 못한 영적 무지의 발로(發露)로 볼 수 있다. 7:2,3 주석 참조.
=====18:25
노한 자들이 너희를 쳐서 - 여기서 '노한 자들'이란 새끼를 빼앗긴 곰처럼 금방이라도 공격해 올 것 같은 사람들을 가리킨다(삼하 17:8). 단 지파 사람들은 힘의 우위를 내세워 자신들이 미가의 소유물 뿐만 아니라 미가와 추격대 전원의 생명까지도 빼앗을 수 있다고 위협하고 있는 것이다.
=====18:26
단 자손이 자기보다 강한 것을 보고 - 본래 하나님께 대한 참된 믿음이 없이 단지 자기 손으로 만든 신상을 소유하는 것에서 복을 받으리라고 기대했던 미가(17:13)였기때문에 이처럼 그는 자기보다 강한 자와 대적하면서까지 신상을 되찾을 생각을 하지못하였다. 사실 현세적인 복에 몰두했던 미가로서는 자신의 목숨에 대해 남다른 애착심을 가졌을 것이다.
=====18:27
한가하고 평안한 백성을 만나 - 본서 기자는 라이스 거주민들에 대해서 거듭 이와같은 수식어를 붙이고 있다. 7절 주석 참조. 아마도 이것은 본서 기자가 그러한 라이스 거민들을 습격한 단 지파의 잔인함을 돋보이게 하기 위한 목적에서인 듯해 보인다(Hervey). 한편 '...을 만나'에 해당되는 '보 알'(* )은 어떤 사람을 갑자기 덮치는 것을 가리킨다(창 34:25).
칼날로 그들을 치며 불로 그 성읍을 사르되 - 이것은 여호수아가 가나안을 정복할때 수행하던 성전(聖戰)의 전형적인 표현이다(수 6:4;8:19;11:11). 단 지파는 처음 라이스를 향하여 출발할 때부터 이 전쟁을 '성전'의 개념으로 이해하고 있었는바(10절) 라이스를 정복할 때도 철저히 그러한 의식으로 수행한 듯하다. 한편 이에 대하여 수19:47에서는 '영토 확장'이라는 측면에서 긍정적으로 기록하고 있으나 본서 기자는 여기서 어느 정도 부정적으로 적고 있음이 분명하다. 왜냐하면 라이스 당은 본래 단 지파의 영토가 아니므로 그들이 그렇게 잔인하게 정복해야 할 정당한 이유를 발견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는 자신의 본래 기업을 차지하지도 못한 채 약한 민족을 공격하는 침략적 속성을 그대로 드러낸 것으로 당시 단 지파의 타락상의 일면을 보여주는 것으로도 이해할 수 있다.
=====18:28
본절에서 본서 기자는 다시 라이스의 지형적 여건을 상세하게 기술하고 있는데 그이유는 라이스에 대한 단의 뜻 아니한 침략이 부당함을 강조하기 위함인 듯하다.
베드르홉 가까운 골짜기에 있어서 - '베드 르홉'(Beth-rehob)이란 지명의 뜻은 '르홉의 집'이다. 민 13:21과 삼하 10:6에 따르면 이 지명은 소바 왕 하닷에셀의 아비 르홉의 이름에서 따온 것임을 알 수 있다. 이곳은 아셀 지파의 지경(地境)인 훌레(Huleh) 평지 윗쪽에 위치한 곳으로 이 골짜기를 통하여 흐르는 물은 요단 강에 이르게 된다.
상종하는 사람도 없음이었더라 - 여기서 '상종하다'에 해당하는 '다바르'는 '친밀히 교제하다'는 뜻 외에도 '사업상 교류하다'는 뜻이 있다. 이로 보아 라이스 거민들은 지형상 외부와 격리되어 있어 국가간의 외교적 친선 도모나 경제적 교류 따위를 꾀하지 못했던 것 같다.
=====18:29
그 성읍을 단이라 하니라 - 이곳 라이스는 가나안의 최북단에 위치하고 있다. 7절주석 참조. 그래서 이곳을 단이라고 칭한 이후 부터는 이스라엘의 전영토의 경계를 말할 때에 '단에서 브엘세바에 이르기까지'란 말을 쓰게 되었다(20:1). 
여기서 '브엘세바'는 팔레스틴 최남단에 위치한 유다 지파의 기업이다(수 15:28). 한편 이때부터 실제로 단 지파는 단 지역의 사람과 소라 땅에 남아 있던 사람들로 분리되게 된 듯하다.11절 주석 참조. 아무튼 이후로 성경에선 이들 지파에 대한 기록을 찾아보기 힘든데 역대기에도 단 지파에 속한 인물에 대해서는 한 명도 언급되어 있지 않다(Cassel). 그리고 요한계시록에도 열 두 지파 가운데 단 지파의 이름은 기록되어 있지 않다(7장). 결국 하나님께서 기업으로 주신 땅도 제대로 차지하지 못하고 이분(二分)되었던 단 지파는 영적인 이스라엘의 족보에서조차 사라진 셈이다. 대개의 학자들은 그 원인을 단지파의 거족적인 우상 숭배 탓으로 이해하고들 있다.
=====18:30
본절에서는 단이 라이스에 정착한 이후 독자적으로 행한 우상 숭배에 대해 기록하고 있다.
모세의 손자 게르손의 아들 요나단 - 여기서 '요나단'은 본래 미가의 집 제사장이었으나 후에 단 지파의 제의를 받고서 단 지파의 제사장이 된 '레위 소년'(14-20절)이라는 데에는 학자들간에 이견이 없다(Wycliffe, Keil & Delitzsch). 그런데 그 외에는 약간의 문제점이 있다. 왜냐하면 히브리어 본문에는 모세라는 이름을 '므낫세'로 읽도록 모세(* )라는 히브리어 문자 사이에 작은 문자 '눈'(* )을 삽입하여 므나쉐(* )로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KJV에서는 본절을 '므낫세의 손자'(theson of Manasseh)로 번역하고 있다. 그러나 탈무드나 70인역(LXX), 수리아역 등을 볼때 이것은 분명히 '모세의 아들'(the son of Moses)로 읽어야 한다는 주장이 지배적이다(Keil). 
한편 히브리어 성경 필경사들이 이와 같이 '모세'를 '므낫세'로 읽도록'눈'(* )을 첨가한 것은 아마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 였을 것이다. (1) 모세의 이름을신성시하던 히브리인들이 '모세'란 이름을 다른 이름으로 명기함으로써 불경죄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이다(Wycliffe). (2) 단 지파를 우상 숭배죄로 몰고 간 요나단을 모세와 같은 레위 지파 출신으로 인정하기를 거부했기 때문이다.
이 백성이 사로잡히는 날까지 이르렀더라 - 본절의 의미에 대하여 학자들간에는 상당한 이견(異見)이 있다. 대부분의 학자들은 이것을 바벨론 포로 유수나 디글랏 빌레셀에 의한 앗수르 포로 유수로 생각한다(왕하 15:29;17:6;25:8). 그러나 유대인 학자 데이빗 킴치(David Kimchi)나 오늘날 많은 학자들은 이것을 엘리 시대 때 블레셋이 법궤를 탈취해 갈 때(삼상 4:17)로 생각한다(Keil, Hervey, Lange). 그러한 주장은 다음과 같은 사실들에 비추어 볼 때 상당히 일리가 있다. (1) 31절에 '하나님의 집이 실로에 있을 동안에'라는 언급이 나오기 때문이다. 실로의 회막은 여호수아 때에 세워진것으로(수 18:1) 사무엘 때까지 그곳에 있었고(삼상 1, 3장;4:3) 사울 때에는 놉에(삼상 21장), 그리고 다윗 때에는 기브온에 있었다(대상 16:39;21:29). (2) 미가의 새긴우상이 앗수르의 침략 때까지 계속 해서 그곳에 있었다면 분열 왕국 시대에 여로보암이 그곳에 다시 금송아지를 세우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여로보암이 단에 금송아지를 세운 것은 어디까지나 미가의 전통을 따라 행한 것이다(Keil). 17:3 주석 참조.(3) 이스라엘의 기강이 바로 잡힌 사무엘, 다윗, 솔로몬 시대에까지 한 지파 전체가그러한 우상 숭배를 계속하도록 용납되었다고 볼 수가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단 자손이 '사로잡힌 날'이란 블레셋의 침략으로 인해 법궤가 빼앗기고 이스라엘이 내외적으로 연약해졌을 때를 가리킴에 분명하다.
=====18:31
하나님의 집이 실로에 있을 동안에 - 이러한 본절의 기록은 본서가 사무엘 시대 이후에 기록되었음을 암시해 준다(Goslinga). 왜냐하면 회막이 엘리 시대까지는 실로에 있었으나 블레셋에 의해 하나님의 법궤를 빼앗긴 이후부터(삼상 4:21, 22) 실로에 없었기 때문이다. 혹자는 사무엘에 의해 실로의 회막이 라마로 옮겨졌을 것이라 보고 있으나(삼상 7:17) 확실치는 않다(Hervey).
새긴 신상이 단 자손에게 있었더라 - 당시 이스라엘의 종교 중심지는 성막이 보관되어 있던 실로였다. 따라서 온 이스라엘 백성들은 특정한 절기 때에나 기타 개인적으로 종교적 의무를 이행할 필요가 있을 때에 실로에 모였다(삼상 3:21). 이러한 관습은 철저히 하나님과의 언약에 기초한 것으로서, 모든 지파가 하나님의 동일한 언약 공동체라는 사실을 함축하고 있다. 솔로몬 왕에 의하여 예루살렘에 성전이 건축될 때까지 실로는 바로 이러한 공동체의 결속을 다지는 중심지였던 것이다. 따라서 단 자손이 단에 신상을 세우고 섬긴 것은 언약 공동체를 파괴시키는 매우 가증한 죄악이었다(수2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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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장(前章)에서 우리는 이스라엘의 한 가정, 미가의 집에서 어떻게 우상 숭배가 행해졌는가를 살펴보았다.  
그런데 이제 본장에서는 블레셋 족속의 압제를 피해  북쪽으로 이주한 단 지파가 어떻게 미가 가정의 우상을 자기 지파의 우상으로 숭배하게 되었는가를 보여 주고 있다.
 가나안 정착 초기에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된 기업을 차지하고 못히고 아모리  족속에 의해 쫓겨난 이래로(1:34) 적당한 정착지를 찾아 헤매던 단 지파는 소라와 에스다올에 일시 정착했었다.  
그러나 그들은 새로운 적을 만나 끝내 그곳에서도 정착하지 못하고 또 다시 블레셋의 압제를 피해 북쪽으로 이주를 고려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래서  용맹있는 다섯 정탐꾼을 파송, 새로운 정착지를 찾도록 하는대 중도에 이들은 에브라임 산지 미가의 집에 유숙케 된다(1-6절).  
그리고 계속해서 길을 떠나 평안한 땅 라이스를 발견하니 이로써 단 지파의 이동은 시작된다(7-10절).
 그런데 이러한 단 지파의 이동에는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즉 본래의 이스라엘의 영토가 아닌 곳으로 이주하기를 꺼리는 사람들의 반대에 부딪쳤던 것이다.   
그래서  단지파는 여호수아의 가나안 정복과 같이 이주의 정당성을 백성들에게 주입시킬  필요성이 있었다.  
그리하여 단 지파의 이주를 주최하는 주역들은 백성들에게 여호수아의 가나안 정복을 재현하는 듯한 인상을 심어주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라이스 땅을 자신들의 손에 붙이셨다고 강조한다(10절).  
그리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좀 더 가시화(可視化) 하기 위하여 일전에 미가의 집에서 보았던 우상과 드라빔을 탈취, 마치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상징하는 증표인 양 백성들에게 제시한다.  
또한 미가의  거센  항의를 받지만 강력한 힘으로 항의를 묵살해 버린다(21-26절).
 이상은 마치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둘이 모세가 십계명을 받으러  산에  올라갔다가 더디 내려옴을 보고 아론에게 "우리를 인도할 신을 우리를 위하여 만들라"(출 32:1)고 할 때 아론이 금송아지를 만들어 여호와라고 말한 것과 유사하다.  아무튼 과거의  이러한 선례로 인하여 단 지파가 미가의 우상을 백성들 앞에 세우자 무리들은 그대로 믿고 가나안을 정복한 것처럼 성공적으로 라이스를 정복한다.  
그리고 그 땅을 조상  단의 이름을 따라 단이라 이름 짓고 그곳에 미가의 우상과 제사장을 세운다(27-31절).
 한편 이러한 단 지파의 이주 사건에 대한 평가는 성경 어느 곳에서도 발견할  수  없다.  
그러나 이후 이스라엘 역사 속에서 단 지파의 흔적은 사라지고 역대기의 족보(대상 2장)에도 나타나지 않는 것으로 보아 성경은 이 사건을 부정적으로 보고 있음이 틀림없다.  
이와 같이 일시적으로 백성들을 오도하여 역사를 바꾸어 보려는 악한 자들의 음모가 일견 성공한 듯이 보이지만 역사는 그에 대하여 어떠한 평가도 가하지  않음으로써 오히려 그들의 악함과 무익함을 낱낱이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특히 계시록 7장의 하나님께로부터 구원받은 자들인 십 사만 사천의 명단에는 이스라엘의 열 두  지파 가운데 유독 단 지파만 언급되어 있지 않다.  
이로 미루어 볼 때 그들은 그들의  사악함과 우상 숭배 죄등으로 인하여 영적 족보에서 제외되었음이 분명하다.
1. 거할 기업을 찾는 단 지파(18:1-10)
새로운 이주지를 찾던 단 지파가 북쪽으로 용맹한 다섯 정탐꾼을 파견하여  라이스라는 지역을 정탐하고 오는 장면이다.
 먼저 다섯 정탐꾼은 새로운 기업을 찾아 각지를 여행하던 중 에브라임  산지  미가의 집에 이르러 레위 소년을 조우(遭遇)한다.(1-4절).  
그리하여 그에게서 자신들의  여행이 형통할 것이라는 희망적 말을 듣고서는 다시금 길을 떠난다(5, 6절).  그 결과  그들은 라이스 땅을 발견하고 백성들에게 돌아와서는 만족스런 보고를 올린다(7-10절).
 그런데 본서 기자는 단 지파의 이주 사건을 기술하면서 '그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었고'(1절)라는 시대적 배경을 주석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것은 단 지파의 이주 동기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옳지 않은 파행적인 것으로 미가의 타락과 동일선상에 두고 있음을 나타낸다(17:6).  사실 그들은 일찍이 하나님께로부터 자신들의 기업을 할당받았었다(수 19:40-46).  따라서 그들은 설사 각종 악조건과 외부로부터의 강력한  도전에 부딪힌다 하더라도 그것을 극복하고 자신들의 기업을 수호하여야 했다.   
그런데도 그들은 대적들에게 기업을 내주고 쫓겨더니기에 급급했으니 잘못이 아닐 수 없다.  즉 그들의 행위는 인본적인 패배 주의의 소산일 뿐 아니라 가나안 땅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지 못한 불신앙적 행위였다.  따라서 그러한 그들이 뒤에 가서 우상  숭배에 빠지는 우매하고 참담한 죄악을 범한 것은 오히려 당연한 일이다(30, 31절).
이상에서 우리는 한 가지 귀한 교훈을 얻게 된다.  즉 성도 각자에게는 하나님께로부터 부여받은 고유한 신앙적 과업이 있기 마련인데 현실적 고충이 있다 하여 그것을 내팽개쳐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참다운 신앙은 역경 중에서도 물러서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극복할 때에 진가가 드러나는 법이다.  그러기에 하나님께서도 우리들에게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계 2:10)고  말씀하고 계시지 않은가 !
이스라엘 왕정 제도의 필요성과 부정성(不正性) - 본서에는 '그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었고'라는 표현이 계속적으로 나온다(1절 ; 17:6 ; 19:1 ; 21:25).  
이는 곧  사사 시대를 끝으로 이스라엘에 수립될 왕정 제도를 예고해 주는 말인 동시에 그 필요성을 조심스럽게 암시하는 말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근본적으로 하나님께서 직접 당신 백성을 다스리시는 소위 신정국(神政國)이다<욥 1장 강해, 신정론 이해>.  
그런데도 불구하고 본서 기자가  계속해서 왕정 제도를 암시하고 있는 까닭은 무엇일까 ?   이제 이와 관련, 이스라엘 왕정 제도의 필요성과 아울러 부정적 측면을 살펴보자.
 (1)  왕정 제도의 필요성 : 본서 기자가 암시하고 있는 왕정 제도의  필요성은  크게 세 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다.  
첫째, 이스라엘 백성들 각 개인의 도덕적 타락과 우상숭배에 대한 외인적 제제 조치로서의 필요성(17장).  
둘째, 단 지파와 같이  한  지파전체가 종교적으로 와해(瓦解)되는 것을 막는 장치로서의 필요성(18장).  
세째,  성직자들의 타락을 경계할 장치로서의 필요성(19장) 등이다.
 즉 이스라엘의 가나안 정착에 따른 급격한 인구 증가와 사유 재산의 증식 등은  여러 부차적적인 문제들을 발생시켰는데 그중에 대표적인 것이 가나안 종교의 혼합으로  인한 종교적 타락이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주신 율법하에 백성을 다스리고 그 스스로 본을 보일 강력한 통치자가 요청되었는바 이에 하나님께서는  왕정(王政)을  요구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요구를 허락하셨다(삼상 8:4-9).
 (2) 부정적 측면 : 이상과 같이 이스라엘 왕정 제도는 백성들의  타락을  외견적으로 견제하는 장치라는 어느 정도의 긍정적 측면은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제도의 필요성과는 달리 거기에는 근본적으로 다음과 같은 부정적 측면이 내포되어 있었다.
 첫째,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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