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하16장...[342.너시험을당해] 온세계위에온세계위에..주 선한능력으로 날 안으시고..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성도가 억울한 일 참고 끝까지 주 앙망하며 견디는 이유....눅16장을 보라..((내가 저지른 죄악보다 더 죄악된 것은 결코 없으니, 그 어떤 고난도 기꺼이 도우시는 임마누엘 주 바라보며 신뢰하고 의지함으로 감수함+끝까지 동행함!!...주님은 필요하다 여기시면 (형통이든지 애매한[원인모를]/또는 분명한[악을 삼은 결과로서]고난이든지) 허락하시는 바!! (분명한 이유없이 다만 주님 믿고 의지하며 견뎌내면서 그들의 무리에 귀속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까닭없이 영문 모를 악을 자행하는 타인으로부터 수욕 당함 + 불의하게 수모 당함을 주 앙망하며 끝까지 견뎌냄 통해!! --이것을 [그 박해하는자나]타인을 위한 사랑 베풂으로 여겨주심)) ....주 믿는 내가 (주와 함께 일절 오래 참음으로 감당한 고난의 의미란) 애매히 당한바 그 악을 장차 (다른 사람 구원이라는!!) 선으로 갚아주실 것....마16:15-23 그리스도 예수님은!! 나와 우리를 포함한 타인의 죄 감당 위한 - 그분의 십자가 고난 당함을 반대하는 베드로에게 "사탄아 물러가라!! 너는 Q의 일이 아니라 사람의 일을 생각하고 있다" 하시며 꾸짖고 계셨다, Q의 일 완성을 바로 JC께서 세상에 오신 이유였으니!! 거듭난 믿는이마다 오직 주의 일에 힘쓸 바 더 크고 깊이 생각함 인해 복음과 Q나라를 위해 기꺼이!! 고난 받으라 하신다!!) JC 주님은 온 인류의 죄 대속 위해 당신의 십자가 고난 당함은 당연하다고 여기고 계셨다!!
===다윗과 시바 1. 다윗이 마루턱을 조금 지나니 므비보셋의 종 시바(사울의 종 시바[여자와 돈에 약함]<아들 15형제, 하인 20명>, 다윗은 사울의 절름발이 아들 므비보셋에게 다시 청지기로 주었다) 가 안장 지운 두 나귀에 떡 이백 개와 건포도 백 송이와 여름 과일 백 개와 포도주 한 가죽부대를 싣고 다윗을 맞는지라 2. 왕이 시바에게 이르되 네가 무슨 뜻으로 이것을 가져왔느냐 하니 시바가 이르되 나귀는 왕의 가족들이 타게 하고((*안장 지운 나귀란 본래 주인-귀인이 타는 것인데, 다윗의 상에서 함께 먹던 친구 대접하던 그 주인은 없고...무엇인가 께름칙하다!!고 느끼기에 충분했지만!!....속내를 알지못하는 자로부터 주어진 선물은 항상 분별이 중요하다..시종일관 사회적-절차적 공의와 질서따름도 중요하다...이 시점에 주님께 여쭘으로써 분별했어야 했다...(므비보셋에 대해 평소 그의 진심을 분명히 경험했을 다윗!!) 아마도 제안은 시바가 했고 맞이 비용은 흔쾌히 므비보셋이 다 지불했을것이지만 정작 그날에 이르러서는 그자신의 계획대로 (므비보셋이 공궤를 반대했다고 고발하면서) 마치 자기가 마련한 것인것처럼!! 가지고 와서 고발-험담하고 있었다.)) 떡과 과일은 청년들이 먹게 하고 포도주는 들에서 피곤한 자들에게 마시게 하려 함이니이다......*여기서!!, 시바는 ((화목/화평 + 이타적/자기희생 감수하는 사랑의 그리스도의 제자가 아니라...진정한 회개 통한 생명-사랑-경건의 하나됨 안에 머무르지 못했다)) 험담하고 다니면서 성도 사이에 풍파/미움/분쟁/분란 일으키는 사탄의 가라지 같은 교인(종교인)의 전형이라 할 수 있을것이다* 3. 왕이 이르되 네 주인의 아들(=므비보셋)이 어디 있느냐 하니 시바가 왕께 아뢰되 예루살렘에 있는데 그가 말하기를 이스라엘 족속이 오늘 내 아버지의 나라를 내게 돌리리라 하나이다 하는지라 ......(지금 눈앞에 없는)남의 험담 늘어놓는 자는 사단이다!!--왕적 제사장이여!! 듣기만 하고!!, 결단코 결정은 금하라/신중하라 = 코람데오!! 마음과 입술 보전하라)....[잠18:17..송사에서는 먼저 온 사람의 말이 바른 것 같으나 그의 상대자가 와서 밝히느니라((송사에서는 먼저 말하는 사람이 옳은 것 같으나, 상대방이 와서 그 내용 보충상세 들어봐야만 사실이 밝혀진다))].....[잠17:9..허물을 덮어 주는 자는 사랑을 구하는 자요 그것을 거듭 말하는 자는 친한 벗을 이간하는 자니라((허물을 덮어 주면 사랑을 받고, 허물을 거듭 말하면 친구를 갈라놓는다.))] ....[고후2:7-,11...그런즉 너희는 차라리 그를 용서하고 위로할 것이니 그가 너무 많은 근심에 잠길까 두려워하노라...그러므로 너희를 권하노니 사랑을 그들에게 나타내라 너희가 범사에 순종하는지 그 증거를 알고자 하여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썼노라 너희가 무슨 일에든지 누구를 용서하면 나도 그리하고 내가 만일 용서한 일이 있으면 용서한 그것은 너희를 위하여 그리스도 앞에서 한 것이니 이는 우리로 사탄에게 속지 않게 하려 함이라 우리는 그 계책을 알지 못하는 바가 아니로라] 4. (취소할 수 없는 공인 나기드/멜렉(왕)의 발언..., 이는 Q앞에서 한 언약!!-Q 이름으로 약속한 요나단과의 언약, Q 앞에서 므비보셋에게 한 공적 약속!! 그 영광의 무게 망각하고 있었다!! ...결코 당장의 느낌/감정따라 발언 말고 주님 이름 먼저 중심으로 불러보라! 주님이 일러주심대로 동일 심정으로 반응하며 말하는, 관계를 깨뜨리기 위해 모함하여 격동시켜 그 사이에서 자기유익 취하는 자의 의도대로 격동되어 넘어가 버려서는 절대 안된다!!)왕이 시바에게 이르되 므비보셋에게 있는 것이 다 네 것이니라 하니라 시바가 (이 말을 받아 도장찍듯..남아일언중천금!! 하며 도장 찍어버리고 있다!!) 이르되 내가 절하나이다 내 주 왕이여 내가 왕 앞에서 은혜를 입게 하옵소서 하니라 .....[삼하19:24-30...*24.사울의 손자 므비보셋이 내려와 왕을 맞으니 그는 왕이 떠난 날부터 평안히 돌아오는 날까지 그의 발을 맵시 내지 아니하며 그의 수염을 깎지 아니하며 옷을 빨지 아니하였더라 *25.예루살렘에서 와서 왕을 맞을 때에 왕이 그에게 물어 이르되 므비보셋이여 네가 어찌하여 나와 함께 가지 아니하였더냐 하니 *26.대답하되 내 주 왕이여 왕의 종인 나는 다리를 절므로 내 나귀에 안장을 지워 그 위에 타고 왕과 함께 가려 하였더니 내 종이 나를 속이고 *27.종인 나를 내 주 왕께 모함하였나이다 내 주 왕께서는 하나님의 사자와 같으시니 왕의 처분대로 하옵소서 *28.내 아버지의 온 집이 내 주 왕 앞에서는 다만 죽을 사람이 되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러나 종을 왕의 상에서 음식 먹는 자 가운데에 두셨사오니 내게 아직 무슨 공의가 있어서 다시 왕께 부르짖을 수 있사오리이까 하니라 *29.왕이 그에게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또 네 일을 말하느냐 내가 이르노니 너는 시바와 밭을 나누라 하니 *30.므비보셋이 왕께 아뢰되 내 주 왕께서 평안히 왕궁에 돌아오시게 되었으니 그로 그 전부를 차지하게 하옵소서 하니라] .....특히 (이단에 속한 자들이 대부분 그렇지만) 아직 성숙하지 못한 초신자도 얼마든지 그럴 수 있다....기도(방언)-헌금-사역 모두 다 능하지만, 목자 사이, 목자-직분자, 목자-성도 성도-성도 사이에 험담과 이간질과 분열/분쟁 유발시키는 자 ....그동안 시바가 바라고 바란 것은 무엇이었을까..."[사울-요나단이 죽어서 나머지 일가가 힘을 못쓸 그 때는 마치 사울의 재산이 자기의 소유인것처럼, 주인 노릇했었던 그였으니], 종으로 사는데서 벗어나 보란듯이 떵떵 거리며 홀로 거함"을 회복하려 함 아니었을까..기회를 잡은 그 때, [자기도 모르게]궤휼을 사용하고 있다. ......**아쉬움이 남는것은 삼하19:24-3에서, 므비보셋으로부터 그간의 전후사정을 다 듣고도(실은 안장 얹은 나귀 둘, 기타 상당히 많은 분량의 공궤할 음식들..은 므비보셋이 친히 명령하여 준비하고 더불어 왕께 공궤할 음식을 준비했던 것이지만, 시바가 므비보셋만 남겨 제외시켜두고 마치 시바 자신이 충심으로 그 모든 것을 마련하고 다윗에게 바친 것처럼 속였고+ 결국 므비보셋 그 자신을 모함한 것임을 분명히 고하였음에도) "(시바 소환-자초지종을 추궁하여 정황 정리하고 원상회복시켜 주는 것이 아니라, 절박했던 그 당시 압살롬에게 간 것 아니라 자기편으로 와서 도움 제공했던 바 그 당시의 고마웠던 느낌 그 위에서 마음 두는바 그 고마왔던 느낌따라!!) 시바와 밭을 서로 나누라"고 함으로써 사면+자유케 하고 있음이다..(어찌해야 합당한 결정이 되었을까..공적 약속이었기에 취소할 수는 없다..그렇다면 [차후에라도] 다윗 자기소유 밭을 조금 내어주어서라도 므비보셋에게 시바가 나누어 가진 분량만큼은 더 보상해 주려함이었을까??!!)...이에, [취소할 수 없는 왕명의 무게를 참되게 알고 있는, 생명-사랑-경건으로, 코람데오로 행하고 있는!!] 므비보셋은 "왕이 무사히 돌아오셨으니..저는 더 바랄 것 없고, 시바, 그가 내 모든 소유 다 차지해도 좋습니다((다윗왕, 그리고 왕과 함께 하고 계신 Q자체가 내 상급입니다))"라고 오히려 말함으로써 다윗의 오해가 풀린 것만 감사하고 있다...그러므로 섣부르게 남을 정죄하려 말자.. [그가 느끼는 바 어떤 특정한, 시간 다투는 촉급/긴박한 상황에 처해 있었다면] 섣부르게 단정-판단해서는 안되리니, 그 상황하에서라면 누구라도 잘못 판단하여 사곡히 행할 수 있다(겉보기에 그 어느누구라도 잘못할 수 있다=죄 범할 수 있다)고 너그러이 이해하고 보아주어 용납하고 있다....다윗은 바로 그런 마음 아니었을까..."그러한 환경에 처해 있노라면, 보통의 상식인이라면 그 누구라도 그리 행동할 수 밖에 없으리라"는 "진리따라" 이해하여!! 오늘날의 시바를" 정죄하지 않고 너그러이 참고 받아들여 줌이 중요하다....[이것이 다윗-주님의 마음인데...(다윗의 됨됨이 경험-앎-신뢰하기에 이르른!!) 므비보셋은 그의 (스마일-윙크!!)표정 보자마자 참되게 이해하여 즉각적으로!! 한발짝 더 나아가 "다윗 왕을 구원해 주신 주님께 대한 감사로" 긍정적으로 반응하고 있다].....[부정적으로 보자면] 시바는 사울의 종으로서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을 못본체 버려두었다가(사울의 재산으로 마치 주인인양 살다가) 다윗이 찾는다는 소식에 급거 므비보셋이 남아있음을 알렸고, 므비보셋의 아들을 공궤하는 청지기 종으로 살고 있다가, 다윗의 곤란한 지경을 틈타 (다시 기회를 잡으려고!!) 옛 생각과 버릇 그대로 사곡함으로 행하고 있었던 것이지만...다윗은 (바로잡으실 분에게 후일-상급이나 보수-을 맡기고!!) 지금 긍정적 측면만 기억하려 한다..."대저 사람의 마음이 어떠하면 그 위인도 그러한즉!!" 경계 분별력은 잃지 말자!! .......**그대가 참되게 주님 믿는이라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기도하지 않았던 것이든 아니든간에 어떤 부가적 소득에 대해서, 또는 주어진 기도 응답에 대해서조차 [주님의 성품과 말씀따라!!] 분명히 영적 분별이 이루어져야 하고 그 결과를 어떻게 취사선택할지조차 주께 신중히 여쭈어야 함을 절대 잊어서는 안된다.....가령, 그가 "그의 마음에 일어나는 어떤 갈망따라 드린" 기도, 그 자신은 분명히 하나님께 드렸다고 생각하지만, 그 기도를 사탄이 듣고 가로채어 Q 뜻대로가 아니라 그의 육적 갈망 그대로(차선으로 주어져) 이루어졌다면!!, 그냥 기도가 이루어졌다고 기뻐하며 좋아할 일이 아니라!! 더 기다려야 할지를 주께 여쭈라!!...오히려 길-진리-생명되시는 분!! 그분의 이름과 성품을 따라 주님께 여쭈어보라...미6:8, 롬8:28을 기준 삼으라..[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다윗과 시므이 5. ○다윗 왕이 바후림(예루살렘 근처 베냐민지파의 땅으로 재취한 미갈의 정혼남편 발디엘의 고향..발디엘은 울며 배웅하였었다...다윗은 정략적 결혼의 아내였으되 재혼한 미갈과 오손도손 금슬 좋은 결혼생활 가운데 있었던바 그 결혼을 깨뜨리고 다시 강탈한 것에 대해!! Q은 바로 생명-사랑-경건따라 행치 않았던 그 일을 회개케 하셨다)에 이르매 거기서 사울의 친족 한 사람이 나오니 게라의 아들이요 이름은 시므이라 그가 나오면서 계속하여 저주하고 6. 또 다윗과 다윗 왕의 모든 신하들을 향하여 돌을 던지니 그 때에 모든 백성과 용사들은 다 왕의 좌우에 있었더라 7. 시므이가 저주하는 가운데 이와 같이 말하니라 피를 흘린 자여 사악한 자여 가거라 가거라(이 땅 떠나라) 8. 사울의 족속의 모든 피를 여호와께서 네게로 돌리셨도다 그를 이어서 네가 왕이 되었으나 여호와께서 나라를 네 아들 압살롬의 손에 넘기셨도다 보라 너는 피를 흘린 자이므로 화를 자초하였느니라 하는지라 .......종교적 프레임 안에 스스로 갇혀서 그것을 강조-주장하는, 자기 관점따라서만 보고, 그것을 고집하며 그 안경 쓰고서, 그것을 통해서만 받아들이려 하는자...사울과 요나단의 죽음, 이스보셋의 암살, 아브넬의 죽음 등, 이 모든 것에 대해 자기 관점에서만 일방적으로 보고 [다 다윗과 연결시켜보면 분명히 일리가 있다 생각하고, 자기 생각따른 의분에 차서 Q께 열심히 그 때까지 부르짖었을 것]...(돌에 맞아 죽기에 합당한 자로 여기고 있음...그 당시 간음-신성모독-반역자들을 돌로 쳐 죽였음 ) ......시므이의 패턴은 "거 봐라 조심하라 했잖아 ~~하더니, 결국 이렇게 된 거 아니냐, 네 꼬라지 좀 봐라" 하며 형제자매를 쉽게 판단하며 정죄를 쉽게 하는 사람들!!, 자기나름대로는 "자칭-타칭 선지자/예언자, 기도굴의 사람!!" .기도 많이 한다고 인식하는 자로서 "자기 프레임에 갇힌 채 자기 스스로 세우고 그 안에 갇힌 바 이념-사상-관점을 Q 신앙으로 포장하는 일방적/독선적 명분주의자의 모습((이것은 우상숭배에 지나지 않음)).."생명따라 기도-중보-중재함이나 Q-왕-형제자매 존중함이 전혀 없다!!"... 9. ○스루야의 아들 아비새가 왕께 여짜오되 이 죽은 개가 어찌 내 주 왕을 저주하리이까 청하건대 내가 건너가서 그의 머리를 베게 하소서 하니 ......Q 앙망함 아니라!! Q의 뜻을 절대적으로 따르기 보다는!! Q 뜻과 어긋나더라도!! 기즘 당장 눈에 보이는!!, 자기가 모시는 상관의 뜻만 중요한, 맹종하는 사람..((.히틀러 휘하 사람들이 그러했다!!)) 10. 왕이 이르되 스루야의 아들들아 내가 너희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왜 네가 나서는 것이냐!!...나는 이 상황 가운데 말씀하시는 Q 바라보고 있노라!!) 그가 저주하는 것은 여호와께서 그에게 다윗을 저주하라 하심이니 (= 비로소 코람데오!! 제 정신이 든 다윗..애매한 고난-까닭 모를 비난과 저주...그러한 악한 말의 의도 배후, 곧 공중권세 잡은 자, 더 나아가서 그 발언조차 허락하고 계시는 하나님과 그분의 의도를 볼 수 있어야 함...Q의 허락하신 것이기는 하지만 Q이 그러신 것 아니라 악한 영에 붙들린 자의 말이니..이 또한 Q이 진복에로 회복하심을 위해 =그분의 지고지선의 뜻 이룸 위해 허락하심이다!!..."그분의 허락하심"의 이해함에서는 부정-긍정 양면에서 다 바라보고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박해를 통해서 그분을 더 넓고 깊게 얻도록 해주시기도 한다!! -- 그래서 주님을 참되게 알기를 힘쓰는 자마다 박해하는 자에게 대해 결코 맞상대하지(복수하거나 욕하지) 않는다!!) 네가 어찌 그리하였느냐 할 자가 누구겠느냐 하고 ......듣는 이는 기억할지니, 자기가 범한 죄악보다( 자기의 악함 그 자체보다!!) 분노와 저주로 수모-능욕 끼치는 자는 결코 더 심하게 욕하고 저주하지는 못한다는 것을 명심하고 오히려 감사하라!!...지존-광대하신 Q께서 친히 갚아주시겠다 함을 믿고 붙들고 끝까지 길이 참으라 11. 또 다윗이 아비새와 모든 신하들에게 이르되 내 몸에서 난 아들도 내 생명을 해하려 하거든 하물며 이 베냐민 사람이랴 여호와께서 그에게 명령(=허락)하신 것이니 그가 저주하게 버려두라 12. 혹시 여호와께서 나의 원통함을 감찰하시리니 오늘 그 저주 때문에 여호와께서 선으로 내게 갚아 주시리라 하고 ......Q앙망함으로 주 뜻 붙듦..미6:8, 롬8:28 13. 다윗과 그의 추종자들이 길을 갈 때에 시므이는 산비탈로 따라가면서 저주하고 그를 향하여 돌을 던지며 먼지를 날리더라 14. 왕과 그와 함께 있는 백성들이 다 피곤하여 한 곳에 이르러 거기서 쉬니라(지친 백성을 돌아보며 배려함!!) .....네맘과 정성을 다하여서.((Q안에서 함께 동행하며, 뒤따르는 이를 배려하여 위로하며 쉬게 하는자, 재촉하지 않는자, 이것이 참된 지도자 상이다!!)) 이 기록 말씀에 진정 위안 받는가..?? ......[히12:1-17(12-14).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너희가 피곤하여 낙심하지 않기 위하여 죄인들이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이를 생각하라 *너희가 죄와 싸우되 아직 피흘리기까지는 대항하지 아니하고 *또 아들들에게 권하는 것 같이 너희에게 권면하신 말씀도 잊었도다 일렀으되 내 아들아 주의 징계하심을 경히 여기지 말며 그에게 꾸지람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가 받아들이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라 하였으니 *너희가 참음은 징계를 받기 위함이라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버지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친아들이 아니니라 *또 우리 육신의 아버지가 우리를 징계하여도 공경하였거든 하물며 모든 영의 아버지께 더욱 복종하며 살려 하지 않겠느냐 *그들은 잠시 자기의 뜻대로 우리를 징계하였거니와 오직 하나님은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그의 거룩하심에 참여하게 하시느니라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단 받은 자들은 의와 평강의 열매를 맺느니라 *12 그러므로 피곤한 손과 연약한 무릎을 일으켜 세우고 *13.너희 발을 위하여 곧은 길을 만들어 저는 다리로 하여금 어그러지지 않고 고침을 받게 하라 *14.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따르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 *15.너희는 하나님의 은혜에 이르지 못하는 자가 없도록 하고 또 쓴 뿌리가 나서 괴롭게 하여 많은 사람이 이로 말미암아 더럽게 되지 않게 하며 *16.음행하는 자와 혹 한 그릇 음식을 위하여 장자의 명분을 판 에서와 같이 망령된 자가 없도록 살피라 *17.너희가 아는 바와 같이 그가 그 후에 축복을 이어받으려고 눈물을 흘리며 구하되 버린 바가 되어 회개할 기회를 얻지 못하였느니라] ===압살롬의 입성과 후새의 위장 전향(16:15-17:14.모략과 역모략)...오직 그대에게 맡기신 사람(백성)들을, 그대를 찾아와 처방 의뢰하는 그들의 구원에 주의하라!! ....압살롬으로서는 생각지 않았던 형통(악인의 형통이었다!!), 무혈 입성, 아히도벨 얻음-후새 얻음 등..여러 긍정적 조짐과 형통 인해 만면에 득의의 미소 가득했을 압살롬....아히도벨은 잠24장을 염두에 두었어야 했다(압살롬 곁에 가는 이유가 공공문제, 즉 국가 경영 실패-재정 공황 등 실정, 외침 문제가 아니었다..단지 개인적 원수 갚기 위함이었다고 보여진다(주께 맡겨드려야 했다)..!!...압살롬에 가야 할 필충조건 충족 상태가 아니었다!!) .....***한 공동체의 지도자가 갖추어야 할 참 자격은 지략가들의 지략을 듣고 그 무엇이 최상-최선인지 알기를 구함의, 곧 Q뜻을 분별 선택하는 분별 능력에 있다!!...그 누구보다도 그리스도인이야말로 경외하며 사랑함 안에서 Q의 마음을 잘 알고 있기에, 어떤 지략을 택해야 하는지 잘 아는 사람인 것이다*** [삼상24:9-15.(([백성을 위하고-아끼는] 다윗은 악을 행하는 자, 악한 자가 되기를 원치 않았다!! --이것이 압살롬과 다윗의 차이였다))..*다윗이 사울에게 이르되 보소서 다윗이 왕을 해하려 한다고 하는 사람들의 말을 왕은 어찌하여 들으시나이까 *오늘 여호와께서 굴에서 왕을 내 손에 넘기신 것을 왕이 아셨을 것이니이다 어떤 사람이 나를 권하여 왕을 죽이라 하였으나 내가 왕을 아껴 말하기를 나는 내 손을 들어 내 주를 해하지 아니하리니 그는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이기 때문이라 하였나이다 *내 아버지여 보소서 내 손에 있는 왕의 옷자락을 보소서 내가 왕을 죽이지 아니하고 겉옷 자락만 베었은즉 내 손에 악이나 죄과가 없는 줄을 오늘 아실지니이다 왕은 내 생명을 찾아 해하려 하시나 나는 왕에게 범죄한 일이 없나이다 *여호와께서는 나와 왕 사이를 판단하사 여호와께서 나를 위하여 왕에게 보복하시려니와 내 손으로는 왕을 해하지 않겠나이다 *옛 속담에 말하기를 악은 악인에게서 난다 하였으니 내 손이 왕을 해하지 아니하리이다 *이스라엘 왕이 누구를 따라 나왔으며 누구의 뒤를 쫓나이까 죽은 개나 벼룩을 쫓음이니이다 *그런즉 여호와께서 재판장이 되어 나와 왕 사이에 심판하사 나의 사정을 살펴 억울함을 풀어 주시고 나를 왕의 손에서 건지시기를 원하나이다 하니라] ...((세상의 견해와 주님이 보시는 관점은 현저히 차이가 있음을 기억하라)) 악한 일을 했기에 선인이 악인 되는 것 아니요, 악한 사람이 하는 일이기 때문에 그의 행위마다 악한 일뿐이며, 의인이 죄 저질러서 죄인 되는 것이 아니라 죄인이 하는 일마다 다 죄짓는 일뿐인 것....그러므로!! 거듭난 믿는이마다 매순간 순간마다 회개하기를 잊지말라, 이로써 주와 하나로 삶 이룸이 마땅하다!! ...**거듭난 사람답게 사는것은 세상과는 달라야 하는바[리차드 포스터에 의하면] ....세속인들은 매순간 돈-섹스-권력(파워) 외에 생각 없다!!** ....[380.나의생명되신주][375.나는갈길모르니]...(마음이상한자를)의에주리고목이마르니 ......[시37:1-40(1.2)..*1.악을 행하는 자들 때문에 불평하지 말며 불의를 행하는 자들을 시기하지 말지어다 *2.그들은 풀과 같이 속히 베임을 당할 것이며 푸른 채소 같이 쇠잔할 것임이로다 *3.여호와를 의뢰하고 선을 행하라 땅에 머무는 동안 그의 성실을 먹을 거리로 삼을지어다 *4.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그가 네 마음의 소원을 네게 이루어 주시리로다 *5.네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를 의지하면 그가 이루시고 *6.네 의를 빛 같이 나타내시며 네 공의를 정오의 빛 같이 하시리로다 *7.여호와 앞에 잠잠하고 참고 기다리라 자기 길이 형통하며 악한 꾀를 이루는 자 때문에 불평하지 말지어다 *8.분을 그치고 노를 버리며 불평하지 말라 오히려 악을 만들 뿐이라 *9.진실로 악을 행하는 자들은 끊어질 것이나 여호와를 소망하는 자들은 땅을 차지하리로다 *10.잠시 후에는 악인이 없어지리니 네가 그 곳을 자세히 살필지라도 없으리로다 *11.그러나 온유한 자들은 땅을 차지하며 풍성한 화평으로 즐거워하리로다 *12.악인이 의인 치기를 꾀하고 그를 향하여 그의 이를 가는도다 *13.그러나 주께서 그를 비웃으시리니 그의 날이 다가옴을 보심이로다 *14.악인이 칼을 빼고 활을 당겨 가난하고 궁핍한 자를 엎드러뜨리며 행위가 정직한 자를 죽이고자 하나 *15.그들의 칼은 오히려 그들의 양심을 찌르고 그들의 활은 부러지리로다 *16.의인의 적은 소유가 악인의 풍부함보다 낫도다 *17.악인의 팔은 부러지나 의인은 여호와께서 붙드시는도다 *18.여호와께서 온전한 자의 날을 아시나니 그들의 기업은 영원하리로다 *19.그들은 환난 때에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며 기근의 날에도 풍족할 것이나 *20.악인들은 멸망하고 여호와의 원수들은 어린 양의 기름 같이 타서 연기가 되어 없어지리로다 *21.악인은 꾸고 갚지 아니하나 의인은 은혜를 베풀고 주는도다 *22.주의 복을 받은 자들은 땅을 차지하고 주의 저주를 받은 자들은 끊어지리로다 *23.여호와께서 사람의 걸음을 정하시고 그의 길을 기뻐하시나니 *24.그는 넘어지나 아주 엎드러지지 아니함은 여호와께서 그의 손으로 붙드심이로다 *25. 어려서부터 늙기까지 의인이 버림을 당하거나 그의 자손이 걸식함을 보지 못하였도다 *26.그는 종일토록 은혜를 베풀고 꾸어 주니 그의 자손이 복을 받는도다 *27.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라 그리하면 영원히 살리니 *28.여호와께서 정의를 사랑하시고 그의 성도를 버리지 아니하심이로다 그들은 영원히 보호를 받으나 악인의 자손은 끊어지리로다 *29.의인이 땅을 차지함이여 거기서 영원히 살리로다 *30.의인의 입은 지혜로우며 그의 혀는 정의를 말하며 *31.그의 마음에는 하나님의 법이 있으니 그의 걸음은 실족함이 없으리로다 *32.악인이 의인을 엿보아 살해할 기회를 찾으나 *33.여호와는 그를 악인의 손에 버려 두지 아니하시고 재판 때에도 정죄하지 아니하시리로다 *34.여호와를 바라고 그의 도를 지키라 그리하면 네가 땅을 차지하게 하실 것이라 악인이 끊어질 때에 네가 똑똑히 보리로다 *35.내가 악인의 큰 세력을 본즉 그 본래의 땅에 서 있는 나무 잎이 무성함과 같으나 *36.내가 지나갈 때에 그는 없어졌나니 내가 찾아도 발견하지 못하였도다 *37.온전한 사람을 살피고 정직한 자를 볼지어다 모든 화평한 자의 미래는 평안이로다 *38.범죄자들은 함께 멸망하리니 악인의 미래는 끊어질 것이나 *39.의인들의 구원은 여호와로부터 오나니 그는 환난 때에 그들의 요새이시로다 *40.여호와께서 그들을 도와 건지시되 악인들에게서 건져 구원하심은 그를 의지한 까닭이로다 ] [잠24:1-12(1,2)...*1.너는 악인의 형통함을 부러워하지 말며 그와 함께 있으려고 하지도 말지어다 *2.그들의 마음은 강포를 품고 그들의 입술은 재앙을 말함이니라 *3.집은 지혜로 말미암아 건축되고 명철로 말미암아 견고하게 되며 *4.또 방들은 지식으로 말미암아 각종 귀하고 아름다운 보배로 채우게 되느니라 *5.지혜 있는 자는 강하고 지식 있는 자는 힘을 더하나니 *6.너는 전략으로 싸우라 승리는 지략이 많음에 있느니라 *7.지혜는 너무 높아서 미련한 자가 미치지 못할 것이므로 그는 성문에서 입을 열지 못하느니라 *8.악행하기를 꾀하는 자를 일컬어 사악한 자라 하느니라 *9.미련한 자의 생각은 죄요 거만한 자는 사람에게 미움을 받느니라 *10.네가 만일 환난 날에 낙담하면 네 힘이 미약함을 보임이니라 *11.너는 사망으로 끌려가는 자를 건져 주며 살륙을 당하게 된 자를 구원하지 아니하려고 하지 말라 *12.네가 말하기를 나는 그것을 알지 못하였노라 할지라도 마음을 저울질 하시는 이가 어찌 통찰하지 못하시겠으며 네 영혼을 지키시는 이가 어찌 알지 못하시겠느냐 그가 각 사람의 행위대로 보응하시리라] 15. ○압살롬과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이 예루살렘에 이르고 아히도벨도 그와 함께 이른지라 16. 다윗의 친구 아렉 사람 후새가 압살롬에게 나갈 때에 그에게 말하기를 왕이여 만세, 왕이여 만세 하니(왕의 이름 거론 없다) 17. 압살롬이 후새에게 이르되 이것이 네가 친구를 후대하는 것이냐 네가 어찌하여 네 친구와 함께 가지 아니하였느냐 하니 18. 후새가 압살롬에게 이르되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내가 여호와와 이 백성 모든 이스라엘의 택한 자에게 속하여 그와 함께 있을 것이니이다 19. 또 내가 이제 누구를 섬기리이까 그의 아들이 아니니이까 내가 전에 왕의 아버지를 섬긴 것 같이 왕을 섬기리이다 하니라 .....이때. 이 말을 (겉으로) 듣는 압살롬은 (그토록 원했던!!) 정통성까지 확보했다 싶어서 득의만만했을 터!! ..조심하라!! 주 안에서가 아니라 세상적 관점에서 자기를 돌아볼 그 때!! 가장 취약한 부분(아쉬운 부분이라 느끼는 그 부분...주님이면 충분하지 않다고 느끼는가??)을 사기꾼들은 뚫고 들어오는 법이다!! 20. ○압살롬이 아히도벨에게 이르되 너는 어떻게 행할 계략을 우리에게 가르치라 하니 21. 아히도벨이 압살롬에게 이르되 왕의 아버지가 남겨 두어 왕궁을 지키게 한 후궁들과 더불어 동침하소서 그리하면 왕께서 왕의 아버지가 미워하는 바 됨을 온 이스라엘이 들으리니 왕과 함께 있는 모든 사람의 힘이 더욱 강하여지리이다 하니라 .....[삼하12:9-12...*9.그러한데 어찌하여 네가 여호와의 말씀을 업신여기고 나 보기에 악을 행하였느냐 네가 칼로 헷 사람 우리아를 치되 암몬 자손의 칼로 죽이고 그의 아내를 빼앗아 네 아내로 삼았도다 *10.이제 네가 나를 업신여기고 헷 사람 우리아의 아내를 빼앗아 네 아내로 삼았은즉 칼이 네 집에서 영원토록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고 *11.여호와께서 또 이와 같이 이르시기를 보라 내가 너와 네 집에 재앙을 일으키고 내가 네 눈앞에서 네 아내를 빼앗아 네 이웃들에게 주리니 그 사람들이 네 아내들과 더불어 백주에 동침하리라 *12.너는 은밀히 행하였으나 나는 온 이스라엘 앞에서 백주에 이 일을 행하리라 하셨나이다 하니] .....르우벤이 서모 빌하와 동침으로 인해 장자권 상실한 기억을 잊고 있었다!!...[창49:3,4..*르우벤아 너는 내 장자요 내 능력이요 내 기력의 시작이라 위풍이 월등하고 권능이 탁월하다마는 *물의 끓음 같았은즉 너는 탁월하지 못하리니 네가 아버지의 침상에 올라 더럽혔음이로다 그가 내 침상에 올랐었도다] .....아히도벨(밧세바의 조부)의 소인배적-개인적 심정과 입장이 반영되어 있다(그 자신이 바로 다윗의 친구였던 바 그것을 도외시 하고 밧세바를 범한 다윗에 대해 무력했던!! 자괴감에 대해 보복함의 동기가 공의의 탈을 쓰고 있었다!!..말씀으로 세워진 하늘에 속한 왕국 아니라 육적 군주국 세우기 위해!! 부자지간 관계 완전히 끊어지게!![후궁 범함은 아비의 하체 범함이었다!! -- 마땅히 죽을 죄..레20장], 동시에 다윗 편에 남아있던 사람들마저 자포자기 심정 들도록 의도했다!!) .....[삼하20:3..다윗이 예루살렘 본궁에 이르러 전에 머물러 왕궁을 지키게 한 후궁 열 명을 잡아 별실에 가두고 먹을 것만 주고 그들에게 관계하지 아니하니 그들이 죽는 날까지 갇혀서 생과부로 지내니라] 22. ((그 자리에 후새는 없었던 것 같다!!)) 이에 사람들이 압살롬을 위하여 옥상에 장막을 치니 압살롬이 온 이스라엘 무리의 눈앞에서 그 아버지의 후궁들과 더불어 동침하니라 23. 그 때에 아히도벨이 베푸는 계략은 사람이 하나님께 물어서 받은 말씀(=직통계시에 치우침의 폐단...회개-말씀과 기도에 철저히 기반 두어야 함!!)과 같은 것이라 아히도벨의 모든 계략은 다윗에게나 압살롬에게나 그와 같이 여겨졌더라
------------ [NASB]제16장 1. Now when David had passed a little beyond the summit, behold, Ziba the servant of Mephibosheth met him with a couple of saddled donkeys, and on them [were] two hundred loaves of bread, a hundred clusters of raisins, a hundred summer fruits, and a jug of wine. 2. And the king said to Ziba, "Why do you have these?" And Ziba said, " The donkeys are for the king's household to ride, and the bread and summer fruit for the young men to eat, and the wine, for whoever is faint in the wilderness to drink. " 3. Then the king said, "And where is your master's son?" And Ziba said to the king, "Behold, he is staying in Jerusalem, for he said, 'Today the house of Israel will restore the kingdom of my father to me.'" 4. So the king said to Ziba, "Behold, all that belongs to Mephibosheth is yours." And Ziba said, "I prostrate myself; let me find favor in your sight, O my lord, the king!" 5. When King David came to Bahurim, behold, there came out from there a man of the family of the house of Saul whose name was Shimei, the son of Gera; he came out cursing continually as he came. 6. And he threw stones at David and at all the servants of King David; and all the people and all the mighty men were at his right hand and at his left. 7. And thus Shimei said when he cursed, "Get out, get out, you man of bloodshed, and worthless fellow! 8. "The LORD has returned upon you all the bloodshed of the house of Saul, in whose place you have reigned; and the LORD has given the kingdom into the hand of your son Absalom. And behold, you are [taken] in your own evil, for you are a man of bloodshed!" 9. Then Abishai the son of Zeruiah said to the king, "Why should this dead dog curse my lord the king? Let me go over now, and cut off his head." 10. But the king said, "What have I to do with you, O sons of Zeruiah? If he curses, and if the LORD has told him, 'Curse David,' then who shall say, 'Why have you done so?'" 11. Then David said to Abishai and to all his servants, "Behold, my son who came out from me seeks my life; how much more now this Benjamite? Let him alone and let him curse, for the LORD has told him. 12. "Perhaps the LORD will look on my affliction and return good to me instead of his cursing this day." 13. So David and his men went on the way; and Shimei went along on the hillside parallel with him and as he went he cursed, and cast stones and threw dust at him. 14. And the king and all the people who were with him arrived weary and he refreshed himself there. 15. Then Absalom and all the people, the men of Israel, entered Jerusalem, and Ahithophel with him. 16. Now it came about when Hushai the Archite, David's friend, came to Absalom, that Hushai said to Absalom, "[Long] live the king! [Long] live the king!" 17. And Absalom said to Hushai, "Is this your loyalty to your friend? Why did you not go with your friend?" 18. Then Hushai said to Absalom, "No! For whom the LORD, this people, and all the men of Israel have chosen, his will I be, and with him I will remain. 19. "And besides, whom should I serve? [Should I] not [serve] in the presence of his son? As I have served in your father's presence, so I will be in your presence." 20. Then Absalom said to Ahithophel, "Give your advice. What shall we do?" 21. And Ahithophel said to Absalom, "Go in to your father's concubines, whom he has left to keep the house; then all Israel will hear that you have made yourself odious to your father. The hands of all who are with you will also be strengthened." 22. So they pitched a tent for Absalom on the roof, and Absalom went in to his father's concubines in the sight of all Israel. 23. And the advice of Ahithophel, which he gave in those days, [was] as if one inquired of the word of God; so was all the advice of Ahithophel [ regarded] by both David and Absalom. ====== 사무엘하 16장 (개요) 전 장 마지막 부분에서 압살롬의 입성과 다윗의 망명을 보았다. 1. 서글픈 다윗의 망명 생활을 본 장에서 발견할 수 있다. (1) 시바에게서 속음(1-4). (2) 시므이의 저주와 그의 인내(5-14). 2. 압살롬의 개선과 그의 모습을 여기서 볼 수 있다. (1) 후새에게 기만 당함(15-19). (2) 아비의 후궁에게 들어가라는 아히도벨의 천인공노할 음모(20-23). -------- 시바의 야욕(삼하 16:1-4) 다윗은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에게 얼마나 많은 호의를 베풀었으며 그의 사환 시바에게까지 정중하게 대했던가(9:10 참조), 그것은 매우 잘한 것이다. 그러나 시바는 므비보셋 재산관리하는 종의 신분으로 만족하지 않았다. 그는 므비보셋의 재산을 맡은 주인이 되고 싶었다. 그래서 그는 다윗이든 압살롬이든 왕관을 쓴 자로서 자기가 주인이 되는 것을 허락만 한다면 하고 자신이 그렇게 될 수 있는 기회가 이때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마치 거친 물 속에서 낚시질을 하려고 했던 것이다. 1. 시바는 다윗을 환영하는 뜻으로 가장 필요한 선물을 제공했다. “선물은 사람의 길을 너그럽게 하고”(잠 18:16) 그는 이것으로 자기의 길이 너그럽게 풀리도록 하려는 것이었다. 그것은 뇌물은 아니였다(잠 17:8 참조). 다윗은 시바가 매우 현명하고 관대한 사람이며 주인의 총애를 받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시바는 생각을 많이 하고 다윗에게 이 선물을 가져왔다. 가난한 자를 동정하면 부활 때 갚아 주실 줄 믿지만(눅 14:14) 부자에게 인심 쓸 필요가 무엇일까? 그러나 이것을 통해서 그가 직면한 고통 가운데서 어떤 좋은 일이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2절). 포도주는 왕을 위한 것이 아니라 곤비한 자나 신하들을 위한 것이었다. 포도주는 일반인이 다 사용하는 것 같지 않다. 다만 쇠약해지는 사람을 위해 강장제로 사용했던 것이다. “독주는 죽게 된 자에게, 포도주는 마음에 근심하는 자에게 줄지어다”(잠 31:6). 압살롬이 술을 이용해서 암논을 죽인 것처럼 그런 취태가 아니라(13:28 참조) 다윗이 이용한 것처럼 당신의 귀족들이 기력을 보충하려고 적당한 때 먹는 것이 좋은 일이다(전 10:17). ...시바가 이 선물로 어떤 흉계를 가졌던지 하나님의 뜻은 다윗에게 이것을 보내고자 함이였다. 하나님은 나쁜 사람의 음모를 통해서도 그의 백성을 위한 선한 목적으로 사용하신다. 그는 까마귀까지 동원하셔서 고기를 보내시기도 한다. 2. 선물을 통해서 다윗의 환심을 얻으려 했고 신용을 얻으려 했다. 자기 목적 달성을 위해서 시행해야 할 다음 일은 므비보셋을 비난하여 다윗을 격분시키려는 것이었다. 그래서 다윗이 그에게 므비보셋의 안부를 물을 때에 "그가 다윗의 왕위에 계승될 것이라 하더이다"라고 거짓말을 했다(3절). 사환들의 거짓된 입술이 주인에게 엄청난 손상을 입히는 경우가 흔히 있는 일이다. 다윗은 므비보셋이 야심가가 아니라는 것은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지금 궁중에서 압살롬과 그의 통치 하에서 신임을 얻고 있다는 것이며 절름발이이지만 고관직에 오를 수 없을 만큼 허약하지는 않았다. 그래서 다윗은 그의 비방을 듣고 생각할 여지도 없이 므비보셋의 반역을 인정하고 몰수하는 바 그의 땅을 뺏으라고 시바에게 권한을 부여했다. “므비보셋에게 있는 것은 다 네 것이니라”(4절) ...진리가 빛 앞에 드러나면(19:29 참조) 후에 부끄러워할 것인데 그는 경솔한 판단을 내렸다. 다윗은 이런 소리를 듣고 참을 수 없었다. 그러나 율법이 말했듯이 사람들은 은혜를 헛되이 받는 버릇이 있다. 그러므로 시바가 다윗을 속인 것처럼 악의를 품은 사람들은 경계하고 참된 사람을 찾도록 가능한 모든 방법을 사용해야만 한다. 시바는 그의 계략대로 새로운 신분을 얻었으므로 다윗왕의 고지식함을 비웃고 자기 목적에 승리함을 기뻐했다. 므비보셋의 재산을 얻은 것보다 더 가치있는 왕의 칭찬을 듣고 그를 떠났다. “나로 왕 앞에서 은혜를 입게 하옵소서. 그러면 족하겠나이다.” 속는 위인들이란 언제나 우쭐하는 성격의 소유자다. 사람은 본래 양편 말을 들을 수 있도록 두 개의 귀를 가지고 있다. -------- 시므이의 저주(삼하 16:5-14) 우리는 여기서는 그래도!! 시바의 아첨 못지 않은 시므이의 저주를 다윗이 견뎌내는 훌륭한 모습을 읽을 수 있다. 시바에 의한 다윗은 타인을 잘못 인정했으나 시므이에 대해 그는 자신을 바로 판단할 수 있었다. 세상의 미소는 찡그림보다 더 조심할 일이다. 생각해보자. Ⅰ. 시므이가 얼마나 오만하고 난폭했던가. 그는 다윗의 재난을 통해 자신의 적개심을 폭발시켰다. 다윗이 망명 중에 베냐민성 바후림에 이르렀다. 그곳은 시므이가 살았던 곳이다. 시므이는 사울의 집안이다. 하나님의 섭리에 의하여 사울이 몰락될 때 그의 문중이라는 이유 때문에 시므이는 모든 관직에서 떨어졌다. 그는 (어쩌면!!)사울의 후계자로 물망되던 자였다. 그래서 그는 다윗에 의해 뼈에 맺힌 원한을 품게 되었다. 다윗이 번영하고 권력이 왕성하면 할수록 시므이는 그를 더욱 미워하게 되었다. 그가 말로 표현한 저주보다 더 무서운 저주가 그의 마음 속에서 발산하고 있었다. 그래서 시므이는 다윗을 날조할 수 있는 모든 나쁜 말로 그에게 저주를 퍼부었다. 1. 왜 시므이는 자기의 분노를 이 기회에 발산했는가. (1) 이때가 가장 안전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만일 다윗이 도전자에게 분을 발할 수 있었다면 시므이는 당장 처단되었을 것이다. (2) 이 때가 다윗이 가장 심한 고통을 당하고 있기 때문에 그의 슬픔에 고충을 더하기 위해 그의 상처에 초를 치려고 생각했던 것이다. 하나님의 처신자에게 슬픔을 더하는 것은 가장 야만인이다(시 69:26 참조). (3) 이 때가 자기의 비난을 다윗에게 표현함으로써 하나님께로부터 인정을 받을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다윗의 당면한 고통은 자기 자신이 자진해서 저지른 죄악임을 증명해 준다고 생각했다. 욥의 세 친구들도 이런 잘못된 원리에서 그를 저주했다. 하나님의 은혜 중에 책망듣는 사람은 왜 하나님은 선인에게 악인을 보내서 비난받게 하시는가를 이상하게 생각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이 그를 버리셨으니 지금 따라가 그를 잡으라”(시 71:11)라고 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쓰러지는 자를 아주 짓밟아 없애려는 기질을 가지고 있다. 2. 그의 악의가 어떻게 표현되었는가를 생각해 보기로 하자. (1) 비참하게 된 자에게 어떻게 했는가. 그는 다윗에게 돌을 던졌다(6절). 마치 그가 개나 되는 것처럼 취급했다. 유대인은 가장 악한 죄인을 만나면 그가 죽을 때까지 돌을 던졌다. 아마 그가 던진 돌이 다윗이 있는 곳까지 미치지 못한 먼 곳에 떨어져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그가 힘만 있었다면 어떻게 하겠다는 의사를 보여 주기에 충분한 거리였다. “그가 돌을 던지며 티끌을 날리더라”(13절). 그가 저주한 저주가 자기에게로 돌아 간 것같이 그가 날린 티끌이 자기 눈속으로 들어 갔을 것이다. 시므이가 다윗을 미워하면 할수록 자신의 증오는 더욱 무기력함을 느끼게끔 했다. 하나님을 반역하는 자가 미워는 할 수 있을지라도 그를 해칠 수는 없는 것이다. “네가 범죄한들 하나님께 무슨 영향이 있겠으며 네 죄악이 관영한들 하나님께 무슨 관계가 있겠느냐”(욥 35:6). 다윗이 좌우에 장대한 호위병과 함께 있을 때 시므이의 무기력함이 드러나므로 그의 분노는 더욱 악화되었다. 그가 생각하기에는 다윗이 버림받고 박해 중에 고난당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처럼 그렇게 절망적인 상태로 보이지 않고 오히려 전과 다름없이 여전하고 오히려 그 신하들은 더욱 열성적이었다. (2) 그가 한 말이 무엇인가? 그는 돌을 던지며 악한 말을 했다(7, 8절). “너는 재판장을 욕하지 말라”(22:28). 다윗은 명성있는 양심의 사람이요 의롭고 선한 분이라는 여론이 있었다. 어떻게 그런 저주의 말이 그의 입에서 나왔을까? 그가 잊을 수 없는 것 중에 하나는 사울의 집에 있을 때에 갈망하던 것이 다윗 때문에 패배자가 되었다는 것으로 인하여 이렇게 다윗을 비난했던 것이다. 우리는 사람을 함부로 판단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 기질 때문에 우리는 불의한 생각만 가졌어도 늘 의롭다가도 한 번만 악에 이용되어도, 그를 악인이라고 규정짓는 경향이 있다. 이것보다 더 잘못된 것은 없다. 우리는 너무 일방적이고 부분적이다. 사울의 집에서 순결한 피를 빼앗을 자가 없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다윗의 집에서 순결한 피를 뺏을 자 또한 없는 것이다. 사울이 다윗의 생명을 노릴 때 다윗은 사울의 생명을 살려 주었다. 사울과 그의 자녀들이 블레셋 사람에 의해 살육당했다는 소식을 다윗이 수마일 떨어진 곳에서 들었을 때 매우 슬퍼했다. 아브넬과 이스보셋의 모살자로부터 다윗은 충분히 혐의가 밝혀졌으나 사울의 집에 피 흘린 자는 모두 그의 집 문에 남아 있었음에 틀림 없다. 악의가 없는 사람은 거짓과 악함에 대해서도 방벽이 없다. 악한에게 도전을 당해도 이상하게 생각지도 않고 신중을 기해서 자신을 지키려고도 하지 않는다. 아마도 그것은 사람이 재판장이 될 수 없고 진리를 따라 판단하시는 하나님만 믿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사울의 피 값을 불법으로 다윗에게서 찾으려 했다. 여기서 몇 가지 생각해 보자. ① 그의 성품을 나타냄으로 다윗보고 벨리알의 사람 “피 흘린 자여”라고 이름을 붙였다(7절). 그가 벨리알의 사람이라면 의심할 여지가 없이 피흘린 자다. 벨리알이라 불리는 사람은 악마의 후예이기 때문이다(고후 6:15 참조). 그는 창시 때부터 살인자다. 피흘린 자란 가장 흉악한 자라는 말이다. ② 다윗에게 고통을 더해 줌으로써 사울의 피 값을 찾으려 했다. 다윗을 왕위에서 쫓아 내고 광야로 방황하게 한 것은 사울의 피 값이라는 것이였다. 당시 사람들은 어떤 사람이 만일 자기에게 잘못을 저질렀거나 하면 그에게 고통이 찾아오고 큰 손상을 당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섭리를 어리석음이나 불의의 원한에 이용하려 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인간의 분노는 하나님의 의를 행할 수 없고 하나님의 의는 인간의 분노를 도와 주지도 않는다. ③ 그의 왕위가 다시 회복될 수 없도록 망하기를 그는 원했다. “많은 사람이 있어 나를 가리켜 말하기를 저는 하나님께 도움을 얻지 못한다 하나이다”(시 3:2). 하나님은 압살롬의 손의 나라를 므비보셋에게 옮기실 것이라는 꿈에도 생각지 않은 말을 시바에게서 들었던 것처럼 시므이는 다윗에게 너는 피를 많이 흘렸고 많은 파괴를 했다고 저주를 했다. Ⅱ. 심한 모욕을 당하면서도 참고 유순하게 대하는 다윗을 생각해 보자. 스루야의 아들 아비새 장군이 특별히 그의 칼로 다윗의 명예를 유지하려고 했다. “이 죽은 개가 어찌 내 주 왕을 저주하리이까”(9절)라고 날카롭게 이를 방어하려 했다. 만일 다윗이 허락만 한다면 아비새 장군은 그의 목을 잘라 저주하는 일을 조용하게 했을 것이다. 그의 존경하는 왕에게 돌을 던지는 것은 죽음을 자처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왕은 결코 그렇게 하지 않았다. “내가 너와 무슨 상관이냐 그로 저주하게 두라”라고 했다. 예수님께서도 명예를 좋아하는 제자들이 사마리아 성에서 치욕당하는 것을 생각하고 하늘로부터 불을 명하여 저들을 멸하자고 할 때 그들을 책망하셨다(눅 9:55). 다윗이 어째서 침묵을 지키게 했나 생각해 보자. 1. 침묵한 첫째 이유는 자기의 고난이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진실로 참회하는 자는 할 말이 없다. 어떤 경우에도 참회자의 반성은 말 같은 것은 전혀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시므이는 사울의 피에 관해 다윗을 몹시 비난했다. 양심으로는 다윗을 저주할 만한 것이 없어 무죄로 인정되지만 그러나 우리아의 피를 그에게 부담되었다. 그의 말은 거짓이지만 그러나 다윗은 그 비난도 참된 말이라고 생각했다. 겸손하고 부드러운 마음의 소유자는 언제나 비난의 소리도 좋은 충고로 믿는다. 그래서 그들을 선하게 대해준다. 2. 그는 모욕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손길을 관찰했다. “여호와께서 저에게 다윗을 저주하라 하심이니”(10절) “하나님이 명하신 것을 막을 자가 누구겠느냐?” (11절) 그의 말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고 그의 악한 마음 속에서 나온 것이거나 악마로부터 온 것이라면 그것은 시므이의 죄가 되기 때문에 하나님의 긍휼을 받을 수도 없고 핑계나 참작의 여지가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죄는 예수를 죽는 데 내어 준 사람들의 죄만큼 악한 것이다(행 2:23; 4:28 참조). 그러나 다윗이 고통을 느끼도록 하는 악은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다. 다윗은 욥과 같이 약탈자로부터 그의 것을 뺏겼을 때 주께서 뺏어갔다고 인식했다. 은혜스러운 사람은 고통 속에서도 말이 없다. “주께서 이루셨으므로 내가 입을 열지 아니하였나이다.” 입술의 저주도 하나님의 회초리가 된다. 3. 그는 위인을 생각하고 고통 속에서도 침묵을 지켰다. “내 몸에서 난 아들도 내 생명을 해하려 하거든 하물며 이 베냐민 사람이랴”(11절). 경건한 사람은 재난이 인내를 낳게 한다. 견디면 견딜수록 더욱 훌륭한 인내력이 생긴다. 우리의 인내심을 키우면 재난을 개선할 수 있게 된다. 고통에서 연단을 하면 할수록 고통을 당해도 놀라지 않게 하고 이상하게 생각지 않게 된다. 원수가 해하지 않는다고 안심하지 말라. 친구가 불친절하다고 이상히 여기지 말며 자녀들이 불효한다고 이상하게 생각지 말라. 4. 그는 하나님이 어떤 방법으로든지 그의 고통을 몰아내고 좋은 것을 허락하실 줄 믿고 또 그가 직면한 고통자체가 통제되고 그의 재난으로부터 인내함으로 보상이 있을 것을 믿고 위로를 받았다. “여호와께서 그의 저주대신 선한 것으로 내게 갚으시리라” 생각했다. 만일 하나님이 시므이에게 그를 슬프게 만들라고 명하셨다면 다윗은 이 시련으로 그를 연단시킨다고 생각하고 더욱 위로를 받았으며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로 생각했을 것이다. 우리는 전능하신 하나님께 전적으로 의지해야 한다. 그를 높이기 위해서 고통 중에서도 그를 의지해야 한다. 다윗은 바후림에 머무른다(14절). 거기서 원기를 회복하고 사소한 말을 회피한다. ------ 아히도벨의 음모(삼하 16:15-23) 압살롬은 다윗과 그의 약간의 수행원들이 철수하자 예루살렘에 몇 사람의 동지들을 급히 파견하고 방해하는 자가 없으므로 그는 기쁨으로 예루살렘을 점령했다. 문은 열려 있고 대항하는 자는 한 사람도 없었다. 그래서 그는 지체없이 예루살렘에 도착할 수 있었다(15절). 그가 계획을 세울 때는 큰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 예상했으나 처음부터 쉽게 성공하게 되므로 아주 기분이 상기되었다. 그가 가장 원하는 것은 예루살렘의 왕자가 되어 모든 국민이 자기 뜻을 따르는 것이었다. 악인들이 자기의 음모가 기대 이상으로 잠깐 성공을 거두게 되어도 그들의 실망이 더 큰 슬픔과 수치를 당할 것이므로 하나님은 괴로워하신다. 가장 높이 추대된 정치인은 아히도벨과 후새였다. 아히도벨은 그가 예루살렘에도 동행했으나(15절) 후새는 예루살렘에서 만난 사람이다(16절). 그는 이 두 사람의 모사를 가진다면 틀림없이 성공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법궤는 자기와 함께 있었으나 거기에는 염두도 두지 않았다. 그가 가지고 있는 이 두 모사들은 모두 미천한 존재들이다. 생각해 보자. Ⅰ. 후새는 압살롬에게 좋은 지혜로운 조언을 하지 않을 것이다. 사실은 그의 적이기 때문이다. 그는 그를 돕는 척하다가 그를 배반하기로 되어 있다. 그러므로 압살롬은 참으로 위험하지 않을 수 없었다. 1. 후새는 압살롬에게 “왕이여 만세, 왕이여 만세”(16절)라는 말로 사실은 그를 환영하고 싶지 않았다. 인간적인 지혜로 다스리는 사람들이 시침미를 떼는 술책에 얼마나 유혹을 받았던가! 사탄의 함정을 모르고 경건하고 단순한 대화를 가진 사람이 얼마나 행복한 사람인가를 알아야 한다. 2. 압살롬은 예루살렘 성에 들어갔을 때 다윗의 가장 친하고 신임이 두터운 친구 후새를 만났을 때 놀랐다. 그가 묻기를 “이것이 네가 친구를 후대하는 것이냐?”(17절) 후새는 직책상 그를 찬양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압살롬은 그의 성실을 의심하지 않았다. 다윗의 신복인 그가 제일 먼저 그를 찬양할 기회를 얻을만큼 성실을 보여 주었다(욥 3). 3. 후새는 압살롬을 위하여 열심히 하려는 신념을 더욱 굳게 했다. 왜냐하면 다윗은 자기 친구지만 압살롬은 사실상 왕권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었다(18절). “택한 자에게 속하여 거할 것이니이다”라는 말을 들을 때 하나님은 웃으셨을 것이다. 떠오르는 태양이신 왕을 섬기겠다고 했다(19절). 그가 그의 아버지를 사랑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의 시대는 지나갔으니 그의 후계자를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래서 그는 마음 속으로 꺼리는 것을 거짓으로 말했다. Ⅱ. 아히도벨은 압살롬에게 악한 조언을 했다. 그가 책략적으로 거짓을 말하게 했던 것처럼 다윗을 효과적으로 배반하도록 조언했던 것이다. 거짓으로 조언하는 사람은 그를 해치려는 사람이다. 죄로 나라를 건설하는 것은 모래 위에 나라를 세우는 것이다. 1. 아히도벨은 지혜로운 정치가로 인정받았던 것 같다. 그의 조언은 마치 하나님의 계시를 물어서 받은 것처럼 인정되었다(23절). 그는 국사에 총명하고 신기하다는 평판이 있었다. 그래서 그는 비밀 모사가 되었고 선악간 모든 문제에 관해서 다윗도 압살롬도 그의 충고를 들었던 것이다. 백성들은 아히도벨을 하나님의 계시의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분별있는 사람과 지혜있는 사람을 비교해 보자. 아히도벨의 정책적인 두뇌를 관찰해 보자. (1) 세상 사람들은 영적 은혜가 전혀 결핍된 세상적 지혜를 찬양한다. 자기 생각에 고착된 사람은 하나님의 계시를 경멸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세상의 어리석은 것들을 택하셨다. 위대한 정치가 중에는 위대한 성자가 드물다. (2) 위대한 정치인 중에는 자신을 위해서 가장 어리석은 일을 행하는 수가 있다. 아히도벨은 하나님의 계시라고 소리쳤지만 그것은 어리석은 자의 말이었다. 그는 횡령자요 경솔한 청년 압살롬을 지지하는 말이다. 전혀 선하지 않은 거짓 예언은 결국 신임을 잃게 되었다. 정직은 최고의 정책이며 정직이라야 오래 지속될 수 있는 정책이 될 수 있다. 2. 그의 목적 달성을 위한 정책이 왜 좌절되었는가를 연구해 보자. (1) 악한 조언을 압살롬에게 주었다. 궁을 지키라고 남겨둔 다윗의 처첩들을 발견했을 때 그들과 동침하라고 조언을 했다(21절). 하나님의 율법에는 이런 죄를 가장 무서운 죄로 규정하고 있다(레 20:11 참조). 바울은 이런 음행은 이방인 중에라도 없는 것이라, “누가 그 아비의 아내를 취하였다 하는도다”(고전 5:1)라고 말했다. 르우벤이 이 죄 때문에 장자권을 박탈당했다. 그러나 아히도벨은 정책적으로 이것을 압살롬에게 종용했다. 이것으로 모든 이스라엘 사람에게 증거를 삼으려고 했던 것이다. 음란의 소문보다 더 빨리 그리고 널리 전파되는 것은 없다(역자 주). ① 전임자에게 속한 것은 무엇이건 압살롬의 것이라는 것을 확신시키고 널리 알리려고 한 것이다. ② 다윗과 화해할 수 없도록 그의 분을 격발시키려고 했다. 다윗 시대는 평화가 없었다는 것을 보이기 위해서였다. 이 일로 칼을 들었으며 자기 세력을 강화했다. 이것이 아히도벨의 악한 술책이었다. 이것은 하나님의 계시라기보다는 악마의 계시였다. (3) 이런 모사에도 고분고분한 압살롬은 악하고 추잡한 그의 마음에 맞기 때문이다. 구실로 연기하지 않았다(22절). 기괴한 하나의 반란이 오페라가 된다면 이처럼 흉칙한 욕망이 전주곡이 될 수 있겠는가? 그가 양심이 마비되지 않았다면 이런 끔찍한 것은 생각조차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일을 통해 시도하려던 아히도벨의 계획은 무너졌다. 이로 인해 그의 명예와 덕망을 완전히 잃어 버렸다. 소돔성에서 있었던 것처럼 그의 죄악을 고의로 뻔뻔스럽게 공개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이 여기서 성취되었다. 다윗이 밧세바를 더럽혔기 때문에 그의 부인들이 백주에 욕을 당할 것을 나단 선지자를 통해 책망한 일이 있다(12:11, 12). 밧세바는 아히도벨의 손녀딸이다. 그는 상처를 입힌 보복으로 이런 흉계를 조언했다. 밧세바는 엘림의 딸이요(11:3), 엘림은 아히도벨의 아들이다(23:34). 음란죄에 대해 욥은 이렇게 말했다. “언제 내가 여인에게 유혹되어 이웃의 문을 엿보아 기다렸던가. 그리하였으면 내 처가 타인의 매를 돌리며 타인이 더불어 동침하는 것이 마땅하니라” (욥 31:9, 10)(호 4:13, 14 참조). 이런 악을 당한 다윗의 처첩들은 무슨 생각이 났을까는 알 수가 없다. 그러나 압살롬이 얼마나 불의한 자라는 것을 생각했을 것이다. 하나님은 의로우시니 그의 말씀은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
==호크마== ..사무엘하 (16 : 1~23) 1 다윗이 마루턱을 조금 지나니 므비보셋의 사환 시바가 안장 지운 두 나귀에 떡 이백과 건포도 일백송이와 여름 실과 일백과 포도주 한 가죽부대를 싣고 다윗을 맞는지라 ㅇ다윗이 마루턱을 조금 지나니 - 여기서 '마루턱'(top of hill)이란 감람 산 마루턱 곧 감람 산 꼭대기를 의미한다. ㅇ므비보셋의 사환 시바 - 본래 사울의 종이었으나 다윗의 명에 의하여 사울의 아들 므비보셋을 섬기게 된 자이다 (9:2, 9-11). 그는 성품이 간사하고 교활하였는데, 그의 그 같은 성품은 본장에서도 유감 없이 발휘되고 있다. ㅇ여름 실과 - 여름이 끝나갈 무렵 완전히 익은 열매를 가리킨다(암 8:1,2). 이 실과는 열매 야자수인 것으로 추정되는데, 70인역(LXX)에서는 '대추야자'(포 이닉스)로 번역하고 있다. 전하는 바에 의하면 열대 지방이나 중동 지방의 사람들은 오늘날에도 여행시에 종종 이것으로 갈증을 해소한다고 한다(Keil, Pulpit Commentary). 2 왕이 시바에게 이르되 네가 무슨 뜻으로 이것을 가져 왔느뇨 시바가 가로되 나귀는 왕의 권속들로 타게 하고 떡과 실과는 소년들로 먹게 하고 포도주는 들에서 곤비한 자들로 마시게 하려 함이니이다 ㅇ시바가 가로되...마시게 하려 함이니 이다 - 시바가 현재 압살롬의 반란(15:10-12)을 피해 피난 길에 나선 다윗 왕에게 이처럼 음식물을 공궤한 것은, 아마 압살롬의 반란이 결국 실패하게 될 것이라고 예견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훗날 다윗 왕의 호의를 얻기 위하여 이같이 많은 음식물을 날라 온 것으로 추정된다(The Interpreter's Bible). 3 왕이 가로되 네 주인의 아들이 어디 있느뇨 시바가 왕께 고하되 예루살렘에 있는데 저가 말하기를 이스라엘 족속이 오늘 내 아비의 나라를 내게 돌리리라 하나이다 ㅇ저가 말하기를...내 아비의 나라를 내게 돌리리라 하나이다 - 이와 같은 시바의 말은 철저한 위증(僞證)이다(19:26, 27). 왜냐하면 므비보셋은 지금까지 왕위 찬탈을 위한 어떠한 준비도 하지 않은데다, 그는 절뚝발이로서 이미 이스라엘의 왕이 될 수 없는 결격 사유(缺格事由)를 지닌 자였기 때문이다(4 :4 주석 참조) 따라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바가 마치 므비보셋에게 왕위 찬탈에 대한 야욕이 있는 것처럼 꾸며댄 것은 물욕(物慾) 때문이었음이 분명하다. 즉 시바는 피난 중에 경황이 없는 다윗을 흥분시켜 므비보셋의 모든 소유를 자신이 차지 하려는 사악한 목적 하에서 이같은 모함을 일삼고 있는 것이다(4절). 4 왕이 시바더러 이르되 므비보셋에게 있는 것이 다 네 것이니라 시바가 가로되 내가 절하나이다 내 주 왕이여 나로 왕의 앞에서 은혜를 입게 하옵소서 하니라 ㅇ므비보셋에게 있는 것이 다 네 것이니라 - 이는 시바의 악한 의도를 간파하지 못한 다윗 왕의 경솔한 결정이다. 그런데 평소 지혜로운 다윗 왕이 이처럼 경솔한 결정을 내리게 되었던 까닭은 아마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였을 것이다. (다윗은 현재 압살롬에게 쫓기는 입장(15:14)이므로 깊이 생각할 겨를이 없었기 때문이다. (2) 시바가 공궤한 음식(1, 2절)이 다윗을 감동시켜 공정성을 잃게 하였기 때문이다. (3) 다윗에게 다소나마 사울가의 부상(浮上)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작용했기 때문이다(Lange, TheInterpreter's Bible, Keil). 아무튼 다윗이 미처 사실 여부도 확인해 보지 않은 채 이처럼 실언(失言)을 한 것은 크나큰 실수가 아닐 수 없었다. 결국 여기서도 우리는 다시금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며 성내기도 더디 하라"(약 1:19)는 성경말씀을 기억하게 되는데, 실상 아무리 조심하여도 지나치지 않은 것이 곧 언행(言行)의 신중성이다. 5 다윗왕이 바후림에 이르매 거기서 사울의 집 족속 하나가 나오니 게라의 아들이요 이름은 시므이라 저가 나오면서 연하여 저주하고 ㅇ바후림 - 바후림(Bahurim)은 예루살렘에서 감람 산을 넘어 요단 강으로 내려가는 길목에 위치하고 있는데, 예루살렘에서 동북쪽으로 약 6km지점이다. 15:17 지도 참조. 이곳은 베냐민 지파의 성읍으로서, 과거 다윗이 옛 아내인 미갈을 당시의 남편 발디엘로부터 취하여 왔을 때 발디엘이 올며 따라오다가 되돌아간 역사적인 성읍이기도 하다(3 :16). ㅇ게라의 아들...시므이 - 사울의 친족 중 한사람으로 여겨지는 시므이(Shimei)는 자기 지파와 가문에 대하여 상당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던 듯하다. 그리하여 그는 유다 지파인 다윗이 사울의 뒤를 이어 이스라엘의 왕됨을 시기하고, 이제 다윗이 쫓기는 신세가 되자 이를 반기면서 다윗을 저주하였던 것이다. 물론 시므이는 훗날 압살롬의 반란이 수습되자 다윗 왕을 찾아와 이와 같은 과거의 망령된 행실을 시인하고 다윗의 용서를 받긴 하였다(19:16-23). 하지만 그는 결국 솔로몬 왕 때에 왕명을 어겨 참수를 당하고 말았다(왕상 2:36-46). 우리는 여기서 극단적인 지파주의자 또는 혈통주의자(血統主義者)의 편협한 사상과 그의 비참한 말로를 볼 수 있다. 즉 우리는 오늘날 가문, 혈통, 지연(地緣) 등 소아(小我)에 사로잡혀 대아(大我)를 버리고 하나님의 뜻을 거스리는 어리석은 사람들의 표상으로 이 시므이를 들 수 있는 것이다. 6 또 다윗과 다윗왕의 모든 신복을 향하여 돌을 던지니 그 때에 모든 백성과 용사들은 다 왕의 좌우에 있었더라 ㅇ다윗과 다윗 왕의 모든 신복을 향하여 돌을 던지니 - 여기서 돌을 던진 행위는 상대방에 대하여 참을 수 없는 극도의 분노를 표시한 행위이다(Wycliffe). 그런데 시므이가 이처럼 다윗과 그 신복들을 저주하며 돌을 던진 까닭은 다윗이 사울가의 피를 흘렸다고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8절). 물론 여기서 '사울가의 피'란 사울 왕의 비참한 죽음이 아닌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과 사울의 군장 아브넬의 죽음을 의미 한다. 왜냐하면 사울 왕의 죽음은 블레셋과의 전투인 길보아 전투에서 생긴 죽음으로(삼상31장) 다윗 왕과 직접적으로 연관되지 않았으나, 이스보셋과 아브넬의 죽음은 어느 정도 다윗 왕과 연관이 있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3:27;4:6). 즉, 시므이는 여기서 다윗 왕이 과거 이스보셋과 아브넬을 죽인 장본인이며 따라서 베냐민 지파의 쇠퇴와 사울가의 몰락의 책임이 바로 다윗에게 있다고 믿으면서 돌을 던지고 있는 것이다(Hertzberg). 그러나 이러한 시므이의 비방은 전혀 근거가 없다. 왜냐하면 다윗은 사울가의 어느 누구도 살해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다윗은 사울의 손자 므비보셋을 마치 자기 아들처럼 예우하며 아껴주었을 뿐이다(9: 9,10). 따라서 시므이의 이같은 행위는 그릇된 자기 선입견(先入見)의 결과였음을 알 수 있는 바, 우리는 여기서 선입견의 무서운 실상을 보게 된다. 7 시므이가 저주하는 가운데 이와 같이 말하니라 피를 흘린 자여 비루한 자여 가거라 가거라 ㅇ비루한 자여 -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이쉬 하벧리야알'을 직역 하면 '벨리알의 사람아'란 뜻이다. 여기서 벨리알이란 말은 무익한 것, 무가치한 것, 또는 파괴, 파멸이란 뜻을 갖는다. 따라서 이 말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놈아', 또는 '파괴를 일 삼는 자식아'란 뜻이다(Wycliffe). 이렇게 볼 때 시므이의 욕설은 보통 사람이면 도저히 참기 어려운 독설(毒舌)이었음을 알 수 있다. 한편, 후일 신약 시대에 이르러 벧리알(Belial)이란 말은 사단을 지칭하는 말로 발전되었다(고후6:15). ㅇ가거라 가거라 - 이는 약속의 땅에서 떠나 이방인의 땅으로 가라는 욕설이다. 이와같은 욕은 약속의 땅 가나안(창 13:14-17))을 자신 들의 영원한 기업으로 믿고 있었던 히브리인들 에게는 아주 악랄한 저주였다. 8 사울의 족속의 모든 피를 여호와께서 네게로 돌리셨도다 그 대신에 네가 왕이 되었으나 여호와께서 나라를 네 아들 압살롬의 손에 붙이셨도다 보라 너는 피를 흘린자인고로 화를 자취하였느니라 ㅇ사울의 족속의 모든 피를 여호와께서 네게로 돌리셨도다 - 지금 벌어지고 있는 압살롬의 난(15:10-12)이 이스보셋과 이브넬을 죽인 다윗에 대한 하나님의 형벌이라는 뜻이다. 이처럼 시므이는 여기서 하나님의 이름을 빌어 다윗을 정죄하고 있지만 실상 그의 정죄는 정하지 못하며, 지극히 감정적이그 무지에 거한 것이다. 왜냐하면 이스보셋과 아브넬의 죽음은 다윗의 책략에 의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에 의한 것이었기 때문이다(삼상 15:28). 그리고 지금 벌어지고 있는 압살롬의 난 역시 다윗의 사적(私的)인 범죄로 말미암은 하나님의 형벌이었기 때문이다(12:10, 11). 9 스루야의 아들 아비새가 왕께 여짜오되 이 죽은 개가 어찌 내 주 왕을 저주하리이까 청컨대 나로 건너가서 저의 머리를 베게 하소서 ㅇ아비새 - 요압의 동생으로(2:18), 다윗 왕의 조카이자 그의 충성스런 신하이다(3:30;10:10). ㅇ죽은 개 - 가장 보기 싫고 하찮은 인간을 뜻하는 히브리적 은어(隱語)이다(3:8;9:8주석 참조). 10 왕이 가로되 스루야의 아들들아 내가 너희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저가 저주하는 것은 여호와께서 저에게 다윗을 저주하라 하심이니 네가 어찌 그리하였느냐 할 자가 누구겠느냐 하고 ㅇ스루야의 아들들아 - 스루야(Zeruiah))는 아비새의 어미이다(2 :18). 그런데 여기서 '아들들'이란 복수(plural number)로 보아 아비새 곁에는 그의 형 요압도 함께 있었던 것에 분명하다. 요압은 아마도 시므이를 단칼에 목 베어 버리자는 아비새의 의견(9절)을 지지했을 것이다. ㅇ내가 너희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 아비새의 제의(9절)를 일축해 버리는 말로서, '나의 생각과 너희의 생각은 본질적으로 다르다'는 함축적 의미를 가진다(왕상 17:18;수 22:24). ㅇ여호와께서 저에게 다윗을 저주하라 하심이니 - 시므이의 악독한 저주를 신앙 안에서 받아들이는 다윗의 모습이다. 즉 다윗은 압살롬의 반역은 물론 시므이의 저주까지 포함하여,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런의 모든 사건들이 결코 우연한 것이 아니라 과거에 저질렀던 그의 용서받지 못할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12:10-12)임을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이 상황에서 다윗은 자기를 괴롭히는 어느 누구에 대해서도 보복하거나 불평하기 보다는, 자신을 하나님의 징계를 받아 마땅한 죄인으로 여기고 철저히 근신(謹愼)하는 자세를 취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분명 과거 실수한 자리에서 벗어나, 이제 인간에게 당하는 억울함 보다는 하나님 앞에서 저질렀던 자기의 추악한 죄를 먼저 생각하는 다윗의 새로운 신앙 자세가 아닐 수 없다. 11 또 아비새와 모든 신복에게 이르되 내 몸에서 난 아들도 내 생명을 해하려 하거든 하물며 이 베냐민 사람이랴 여호와께서 저에게 명하신 것이니 저로 저주하게 버려두라 ㅇ내 몸에서 난 아들도...이 베냐민 사람이랴 - 이는 시므이의 저주 역시 하나님의 징계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다윗의 역설(力說)이다. 즉 자신의 아들 압살롬도 자신에게 반기(反旗)를 들었는데(15:10-12), 하물며 다른 지파 출신인 시므이가 자신에게 저주 한 마디 한 것쯤이야 하나님의 징계치고는 대수로운 것이 아니지 않겠느냐는 반문이다. 12 혹시 여호와께서 나의 원통함을 감찰하시리니 오늘날 그 저주 까닭에 선으로 내게 갚아주시리라 하고 ㅇ나의 원통함...그 저주 까닭에...갚아주시리라 - 다윗이 하나님의 자비를 바라고 있는 본 구절에는 '원통함'과 '저주'라는 용어가 서로 대조되고 있다. 이 중 '원통함'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아인'은 죄, 사악한 행동을 의미하는 말로서 여기서는 과거 다윗이 실제로 범했던 죄(11장)를 의미한다. 반면, '저주'는 시므이가 다윗에게 행한 저주를 의미하는 바, 곧 다윗이 사울가의 어느 누구도 죽이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사울가의 피를 흘린 자라는 저주(7, 8절)를 받은 것을 가리킨다. 따라서 다윗은 자기가 이러한 수욕(受辱)을 묵묵히 감수하다 보면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가해진 과다한 저주를 기억하셔서 자기를 궁휼히 여겨 주실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다윗이 현재 자기의 억울한 형편을 정확히 살펴보시는 하나님을 믿으며, 또한 일정한 징계의 기간이 지나면 하나님께서 자기를 이 위기 가운데서 구원해 주실 것이라는 강한 확신을 지니고 있음을 알 수 있다. 13 다윗과 그 종자들이 길을 갈 때에 시므이는 산비탈로 따라가면서 저주하고 저를 향하여 돌을 던지며 티끌을 날리더라 ㅇ저를 향하여...티끌을 날리더라 - 여기서 '티끌을 날리다'는 말은 '먼지를 일으키다'는 뜻이다(공동 번역). 즉 시므이는 다윗 앞서 행하면서 다윗을 모독하는 의미로 짐짓 그 앞길에 먼지를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분명 그 흙먼지는 다윗은 물론 시므이 그 자신의 머리 위에도 덮였을 것이다. 이와 관련 우리는 시므이가 다윗에게 퍼부은 저주 역시 흙먼지와 같은 성격을 지닌다는 사실에 유념해야 한다. 즉 그것은 시므이가 다윗에게 퍼부은 저주가 합당치 아니한 것일 때 그 저주는 도리어 저주를 발했던 시므이에게로 되돌아갈 뿐이란 사실이다(12절). 삿 17:1-6 강해, '저주에 대하여' 참조. 14 왕과 그 함께 있는 백성들이 다 곤비하여 한곳에 이르러 거기서 쉬니라 ㅇ곤비하여 - 이 말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아예핌'은 '피곤하다'는 뜻의 동사 '아이프'의 형용사형으로, '피곤하여'라고 해석할 수 있는 단어이다(KJV). 그런데 혹자는 '아예핌'이 여기서는 지명(地名)을 가리키는 고유 명사로 사용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그듸은 그 근거로 본절에서 '샴' 이라고 하는 지시 부사가 사용되었음을 든다. 즉 이 '샴'이란 용어는 '거기에서'란 뜻으로, 다윗과 그 일행이 휴식을 취한 한 장소를 지시하고 있다는 주장이다(Keil, Lange, PulpitCommentary, The Interpreter's Bible). 이 중 어느 견해가 보다 타당한지는 판단키 어렵다. 그러나 둘 중 어느쪽을 취하여도 문맥에 큰 변동은 없다. 다만 '아예핌'을 고유 명사로 볼 경우, 17:18, 21에 의거할 때 '아예핌'은 바후림을 지나 요단 강 근처에 위치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곳이 정확히 어디에 위치했는 지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15 압살롬과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이 예루살렘에 이르고 아히도벨도 저와 함께 이른지라 ㅇ압살롬과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 - 여기서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이란 압살롬을 지지하는 이스라엘 모든 지파 백성들을 의미한다(19:9, 10). 한편 압살롬 반역 사건과 관련, 본서 저자는 압살롬을 지지하는 자들을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로, 다윗을 지지하는 자들을 '모든 백성'으로 표현하고 있다(15: 17, 23, 24;17:2, 3) 그런데 본 저자가 이와 같이 표현한 까닭은 이스라엘의 모든 성읍이 압살롬을 왕으로 받아들여 압살롬의 세력은 이스라엘 건국에 걸쳐 확장된 반면, 다윗의 경우에는 각 지파들로부터 소수의 지지자들만이 그를 따랐음을 강조하기 위함인 듯하다(Pulpit Commentary). ㅇ예루살렘에 이르고 - 15:37에서 언급한 상황을 다시 한번 반복, 묘사하고 있다. 다윗과 그 일행이 황급히 예루살렘에서 탈출하자(15:14) 압살롬이 반역의 도배(徒輩)들을 이끌고 헤브론(15:9-13)에서 예루살렘으로 무혈 입성(無血入城)한 것을 가리킨다. ㅇ아히도벨도 저와 함께 이른지라 - 이는 압살롬과 함께 예루살렘에 입성한 아히도벨로 말미암아 모종의 일이 일어나게 될 것임을 암시 하고 있는 전조(前兆) 구절이다. 즉 이는 아히도벨의 사주로 압살롬이 다윗의 후궁들을 겁탈하는 사건(20-23절)이 일어나게 되었음을 시사하는 도입 구절이다. 한편 아히도벨(Ahithophel)의 신앙에 관하여서는 15:12 주석을 참조 하라. 16 다윗의 친구 아렉 사람 후새가 압살롬에게 나아올 때에 저에게 말하기를 왕이여 만세, 왕이여 만세 하니 ㅇ아렉 사람 후새 - 아히도벨에 버금가는 다윗의 모사(謀士)이다. 다윗의 명을 좇아 압살롬에게 거짓 투항한 그는(15:32-37) 아히도벨의 모략을 꾀하는 데 성공하므로써 (17:1-23), 압살롬의 반역을 종식시키는 결정적 역할을 하였다(18장). 15:32 주석 참조. ㅇ왕이여 만세 - '왕이여 만세수(萬世壽)를 하옵소서'란 뜻이다. 공동 번역은 이를 "임금님, 만수무강을 빕니다"로 번역하고 있다. 그러나 압살롬에 대한 후새의 이와 같은 환영은 앞으로 압살롬의 조변에서 지내면서 다윗을 위해 활약할 자신의 정체를 철저히 숨기기 위한 가식적인 행동일 뿐이다(Wycliffe). 17 압살롬이 후새에게 이르되 이것이 네가 친구를 후대하는 것이냐 네가 어찌하여 네 친구와 함께 가지 아니하였느냐 ㅇ이것이 네가 친구를 후대하는 것이냐 - 자기를 환영하는 후새에게 일단 의심을 품고 그의 진의(眞意)를 떠보기 위해 질문하는 압살롬의 조롱섞인 말이다. 즉 이 말은 "네가 내 밑에 들어오는 것은 네 친구인 다윗을 배반하는 처사가 아니냐"는 의미이다. 18 후새가 압살롬에게 이르되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내가 여호와와 이 백성 모든 이스라엘의 택한 자에게 속하여 그와 함께 거할 것이니이다 ㅇ여호와와 이 백성 모든 이스라엘의 택한 자 - 자기에 대한 압살롬의 의심을 불식(拂拭)시키기 위해 후새가 압살롬의 정권을 합법적인 것으로 인정하고 있는 말이다. 따라서 후새가 이같은 말을 했다고 해서 진심으로 압살롬 정권의 정통성을 인정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다만, 마치 하나님이 선택하신 왕처럼 이스라엘 대중들에게 인기를 얻고 있었던 당시 압살롬의 상황(15:6, 12) 만을 주관없이 전달 함으로써 자기의 의중(意中)를 감추고자 했던 것이다. 다시 말해서 후새에게 있어서 압살롬은 어디까지나 하나님과 이스라엘 온 백성에게 인정받지 못한 단순한 반란자였올 뿐인 것이다. 그렇지만 이와 같이 표면적으로 압살롬 정권의 정통성을 인정하는 듯한 후새의 대답은 반란 주모자인 압살롬의 마음을 충분히 흐뭇하게 할 만한 것이었다. 즉 압살롬은 후새의 아첨에 마음이 동하여 그를 측근에 두고 만 것이다(17:5). 19 또 내가 이제 누구를 섬기리이까 그 아들이 아니니이까 내가 전에 왕의 아버지를 섬긴 것 같이 왕을 섬기리이다 하니라 ㅇ내가 전에 왕의 아버지를 섬긴 것 같이 왕을 섬기리이다 - 자신이 전왕(前王) 다윗에 이어 압살롬을 새 왕으로 모신다는 것은 왕위 계승법상(繼承法上) 아주 당연한 것이라는 후새의 그럴 듯한 주장이나. 즉, 압살롬은 당시 다윗의 장자였기 때문에 다윗을 이어 왕이 된다는 것은 당시 주변 국가들의 경우를 보더라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않는다는 의미이다. 물론 이같은 주장은 아직 이스라엘의 왕 다윗이 엄연히 생존해 있다는 점에 비추어 볼 때 그릇된 주장이다. 그러나 후새의 말에서 자신이 이스라엘의 왕 행세를 할 수 있는 그럴 듯한 정당성을 발견한 압살롬은 더이상 후새를 의심하지 아니하였다. 20 압살롬이 아히도벨에게 이르되 너는 어떻게 행할 모략을 우리에게 가르치라 ㅇ모략을 우리에게 가르치라 - 여기서 '가르치라'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동사 '하부'는 복수형이다. 따라서 이 말은 '너희 들은...가르치라'는 뜻으로 해석해야 한다. 이렇게 볼 때 압살롬은 아히도벨 뿐만 아니라 그 주변에 있던 다른 여러 모사들에게도 모략을 베풀라고 명하였음을 알 수 있다(12-23절). 그렇지만 여러 사람들의 여러 모략중 압살롬에 의해 세종적으로 채택된 모략은 아히도벨의 모략이었음이 분명하다(21-23절). 한편, 여기서 압살롬이 신하들에게 모략을 베풀라고 한 것은 곧, 자신이 탈취한 왕권을 계속 유지하는 데 필요한 모략을 일러달라는 의미이다. 21 아히도벨이 압살롬에게 이르되 왕의 아버지가 머물러 두어 궁을 지키게한 후궁들로 더불어 동침하소서 그리하면 왕께서 왕의 부친의 미워하는바 됨을 온 이스라엘이 들으리니 왕과 함께 있는 모든 사람의 힘이 더욱 강하여지리이다 ㅇ왕의 아버지가...궁을 지키게 한 후궁들 - 다윗이 예루살렘 성을 빠져나갈 때 궁을 관리하고 지키게 할 목적으로 남겨 두었던 열명의 후궁들을 가리킨다(15:16). ㅇ후궁들로 더불어 동침하소서 - 아히도벨의 이러한 모략은 다윗의 폐위(廢位)를 명확히 함과 동시에 압살롬의 왕권을 완전히 굳히기 위한 작전이었다. 즉, 왕위 찬탈자들이 자신의 왕권을 가시적(可視的)으로 나타내 보이기 위하여 전왕(前王)의 후궁들을 취해 동침하는 것은 고대 근동의 보편적 관례였다. 따라서 아히도벨은 이러한 당시 근동 지방의 관례에 따라 압살롬으로 하여금 다윗의 후궁들과 동침케 함으로써 그의 왕권을 가시화 하고자 하였던 것이다. 3 : 7 주석 참조. ㅇ왕께서 왕의 부친의 미워하는 바 됨을...강하여 지리이다 - 이와같은 아히도벨의 말은 그의 모략 속에 압살롬의 왕권의 가시화 외에 다음과 같은 또 다른 음흉한 목적이 있었음을 보여 준다. (1) 아히도벨의 모략은 압살롬의 왕권의 가시화 뿐만 아니라 다윗과 압살롬 간의 부자지정(父子之情)을 완전히 끊어놓기 위함이었다. 즉 만일 압살롬이 부친의 첩들을 취한다면, 이것이 야말로 부자지간의 상봉(相逢)을 완전히 끊어버릴 수 있는 확실한 계략이 되는 것이었다(창 35:22;49:4). (2) 그리하여 압살롬과 함께 반역에 동참한 모든 자들의 우려를 말끔히 해소하고자 하기 위함이었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우려란, 다름아니라 다윗과 압살롬이 화해라도 하는 날에는 자기들이 모조리 반역자로 몰리어 처벌되고 말 것이라는 염려를 가리킨다. 따라서 아히도벨은 압살롬 추종자들이 안심하고 새 왕을 좇을 수 있도록 새 왕권의 완전한 독립성을 획책하였던 것이다. (3) 그밖에도 아히도벨의 이러한 모략은 다윗 왕에 대한 자신의 개인적인 원한을 갚으려는 의도일 수도 있다. 즉 아히도벨은 밧세바의 조부라는 사실이 거의 분명하므로(11:3 주석 참조), 우리는 아히도벨이 밧세바를 강탈하고 그녀의 남편 우리아까지 모살한 다윗 왕(11장)에게 개인적인 원한을 가지고 있다가 기회가 오자 다윗에게 복수하고자 했던 것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한편, 아히도벨의 이와 같은 모략은 세상 사람들의 관례에 비추어 볼 때에는 정당하다고 평가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는 다음과 같은 점에 의거할 때 분명 사악한 궤계가 아닐 수 없다. (1) 근친상간(近親相姦)을 금하고 있는 하나님의 율법을 무시했다는 점이다(레 18:7, 8) (2)다윗에게 기름 부어 왕으로 세우신 하나님의 주권(삼상 16:1-13)에 정면으로 도전했다는 점이다. 22 이에 사람들이 압살롬을 위하여 지붕에 장막을 치니 압살롬이 온 이스라엘 무리의 눈앞에서 그 부친의 후궁들로 더불어 동침하니라 ㅇ지붕에 - 이 지붕은 다윗이 목욕하던 밧세바를 바라보고 음욕을 불태웠던 곳인 다윗 성의 왕궁 지붕(11:2), 바로 그곳일 것이다. ㅇ장막을 치니 - 따가운 햇볕을 괴하면서 시원한 바람을 즐기기 위해 평평한 지붕위에 텐트(tent)를 친 것을 의미한다. 한편 이와 관련 당시 팔레스틴의 가옥 구조에 대하여서는 대하 33:1-11강해. '히브리인의 주거 형태'를 참조하라. ㅇ온 이스라엘 무리의 눈 앞에서...더불어 동침하니라 - 나단 선지자의 예언이 그대로 성취되는 순간이다(12:11). 즉 하나님께서는 다윗이 밧세바를 범한 죄에 대한 징계로서 장차 그의 처들이 백주(白晝)에 겁탈당할 것이라고 선고 하셨는데, 이제 아히도벨의 불의한 모략에 의하여 그같은 심판이 그대로 성취되고 만 것이다. 23 그 때에 아히도벨의 베푸는 모략은 하나님께 물어 받은 말씀과 일반이라 저의 모든 모략은 다윗에게나 압살롬에게나 이와 같더라 ㅇ아히도벨의 베푸는 모략은...이와 같더라 - 여기서 '하나님께 물어 받은 말씀'이란 대제사장이 우림과 둠밈을 통하여 알아낸 하나님의 뜻을 의미한다(5 :19, 23;삿1:1;18:5;20:18, 23, 27). 따라서 아히도벨의 모략이 하나님께 물어 받은 말씀과 일반이라는 말은, 그의 모략이 대제사장의 우림과 둠밈을 통해 받음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처럼 다윗과 압살롬에게 절대적인 영향력을 미치는 것이었다는 의미이다. 하지만 그같은 아히도벨의 모략은 비록 다윗에게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이스라엘을 통치하는 데 도움을 주었을런지 모르나, 압살롬에게는 악정(惡政)을 일삼도록 만든 촉진제 구실을 하였을 뿐이다. 왜냐하면 아히도벨이 현명한 머리는 지니고 있었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선한 양심은 지니고 있지 못했기 때문이다. 즉 아히도벨의 지혜는 병든 양심에 사로잡힌 것이었으므로 그가 베푼 지혜는 필연적으로 파괴적일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