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22.05.11 작성자 : 양시영
제   목 : 왕하1.아합_아하시야의길/엘리야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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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하1장[524.갈길을밝히보이시니] 

.....사명의 인생 산다함은 곧 구원 이룸이니, "믿음으로 산다" 함은!! 고난의 떡과 쓴 물 마심이로되!!, "주님 자신이 그 사람, 자체의 영광 되어주고 계심"을 알라! 엘리야의 사명-<말씀 대언/전함>..그때마다 실지로 쫓겨다니며 박해가 뒤따랐음을 기억/명심하라!!...한편, 에녹은 " 자신 그 자체인" 자녀들을 낳았고, 그래서인지 그냥 "주와 동행했다"고만 기록함으로써 [자녀 고난]이야말로 그 얼마나 위대한 고난인지, 주님 자신이 증거하여 주고 계시는 듯 하다!!  머물러서는 안될 때와 그 자리가 있음을 아는자, 주께 반드시 여쭈어야 한다. ---외로움은 혼자 있는 고통이기에 타인을 배려할 수 없지만, 진실한 고독자란 혼자 있는 즐거움을 누리는 사람, 그대는 어떠한가..

.....#방언...[לָשׁוֹן라숀...천사의 말]...라메드-쉰-바브-눈 (불신세상은 모름....십자가로 처리-장사됨-부활승천안에 연합한 하나 됨 입고 제자된 영혼, 곧 주님만 바라보는 겸손한 영혼안에.. 주께서 그분 자신을 옮겨부어 Q생명 충만으로 채워주시는바 교통/분배/공급/경배 위해  구비케 하신 하늘 언어).)

......[다바르 = 명령/약속/경고/추궁/위협/노래하다...상명하복/신상필벌-공식적-관계]..[아마르...(생각을)대화/설명/서술하다....상호 평등 관계]


@@왕하1-14장의 분열왕국 대조표@@

[남]여호람((여호사밧의 아들, 8년))...왕하8:16~24...오바댜, 엘리야

[북]아하시야((아합의 아들, 2년)) 왕상22:51-왕하1:18 --엘리야의 승천 +엘리사

[북]여호람((아합의 아들, 12년 :: 남유다 여호람 섭정5년째<단독통치2년째>에 등극))....엘리사

[북]예후((님시의 손자, 아합 휘하 군대장관, 28년)) 왕하3:1-9:26, 9:1-10:36...엘리사

[남]아하시야((여호람의 아들, 1년))...왕하8:25~9:29

[남]아달랴 여왕((아합의 딸, 아하시야의 어머니, 6년))...왕하11:1~20

[남]요아스((40년))...왕하11:21-12:21.....요엘

[북]여호아하스((예후의 아들, 17년)) 왕하13:1-9....엘리사

[북]요아스((여호아하스의 아들, 16년))....왕하13:10-14, 25...14:8-16...엘리사

[남]아마샤(요아스의 아들, 29년)) 왕하14:1-20....익명의 선지자들.. 

[북]여로보암2세((요아스의 이들, 41년))..왕하14:23-29...요나, 아모스, 호세아

==엘리야와 아하시야 왕 

1.  [다윗의 일편단심으로 YHWH 바라봄 인해 베풀어 주신, Q의 은혜의 풍성하심따라 남유다 전성기를 구가하였으되, 곁길로 나가서 우상 숭배 만연시켰으나 결국 회개하고 돌아온, 솔로몬의 세상영화에 비견될바, 곁길로 나아간 아들 돌아오기 바라고 애타하며 눈물짓는 Q의 긍휼하심 입었으나 끝내 회개하기를 거절한] 아합אַחְאָֽב(아버지의 형제..알렙-헤트-알렙-베이트)이 죽은מוּת 후에 [자신이야말로 야곱의 적자라 비교하며 뻐기던 북왕국이스라엘(에브라임)의 교만!!..유다는 며느리와의 간음 통해 자손 얻은 수치스런 죄인이요, 모압은 딸과의 근친상간으로 태어난, 상종못할 후레자식이라고 멸시당해오던]모압이 이스라엘을 배반하였더라..אַחְאָֽב(아합)  אָהֵב(아하브) 아하바흐(사랑) אַהֲבָה 

......##Q=엘, 또는 엘로아흐..알렙-라마드[목자/스승]-(바브)-헤이[영]//(바브 = 십자가 : 육 처리) 여기에-요드[감동/사역]-멤[마음/그릇/지성소]이 연결되면 엘로힘... אֱלוֹהִים , אלהים..  ##"사랑 = 아하바흐 = 아가페"는 알렙-헤이(영)-베이트-헤이(영).. ...그러므로, 엘로힘을 얻기 원하시는분, 여호와 하나님은 사람을 신성한 참 인성의 제자 만들며 십자가 사랑으로 결합한 하나 이루고 계심 의미.

.......모압은 이미 아합 사후 (아하시야 등극) 독립하고 있음..여호사밧이 아합과 함께 원정하였던 길르앗라못 전쟁에서 패하여 돌아 온 후(아합 전사) , 내치에 전심 전력 다하고 있던 중, 모압-암몬-에돔-갈멜족속 연합군이 침범, 여호와께 찬송 중에 이루어 주신 브라가 골짜기 승리 후, 에돔에는 섭정을 두어 섭정 통치체제에 돌입--에시온게벨 사용 가능해짐.., 

2.  [보고듣고자란바 이세벨의 치마폭에 감싸여 살며, 일평생 Q 떠난 아비 아합 판박이]아하시야 אֲחַזְיָ֜ה(아버지가붙잡아새롭게함..알렙-베이트-자인-요드-헤이)가 사마리아[שומרון]에 있는 그의 다락 난간에서 떨어져 병들매 사자를 보내며 그들에게 이르되 가서 에그론[예루살렘의 서남서34km, 사마리아-에그론 간 142km, 사마리아-예루살렘 간은 56km]의 신 바알세붑[--파리의 대왕..파리의 원조 = 똥파리!!...더 깊숙히 근원적 우상 숭배에 빠져있음을 암시]에게 이 병이 낫겠나 물어 보라 하니라

3.  יְהוָ֗ה 여호와의 사자 וּמַלְאַ֣ךְ 말라크 예호와.가 디셉사람 엘리야에게 이르되דִּבֶּר֙-다바르 너는 일어나 올라가서 사마리아 왕의  וּמַלְאַ֣ךְ 사자를 만나 그에게 이르기를 이스라엘에 하나님[엘로힘.אֱלֹהִים.]이 없어서 너희가 에그론의 신 바알세붑에게 물으러 가느냐

4.  그러므로 여호와의 말씀 אָמַ֣ר יְהוָ֔ה..아마르 예호와.이 네가 올라간 침상에서 내려오지 못할지라 네가 반드시 죽으리라 하셨다 하라[--그 일어난바 어떤 사건에 대해 말씀 주심은!! 분수령적 회개로 주께 돌이키라는!!, 회개의 기회 주시는 은혜의 마지막 때임을 깨달으라! 하심임을 알아야 한다!] 엘리야가 이에 가니라

.......@@하나님의 사람이 걸어 가야 하는 길들  데라크(믿음으로 걷는길..데레크/다라크) + 마갈(좁은길...마길)

[잠4:26-27...네 발이 행할 길을 평탄하게 하며 네 모든 길을 든든히 하라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고 네 발을 악에서 떠나게 하라] [잠5:21..대저 사람의 길은 여호와의 눈앞에 있나니 그가 그 사람의 모든 길을 평탄하게 하시느니라] [잠4:11-12...내가 지혜로운 길을 네게 가르쳤으며 정직한 길로 너를 인도하였은즉 다닐 때에 네 걸음이 곤고하지 아니하겠고 달려갈 때에 실족하지 아니하리라] 

== <길>을 히브리어로 <데라크דרך<...(좁은/생명)길(데레크 דֶּרֶךְ)..<데라크דרך<는 처음부터 길이 아니었다 믿음으로 밟으면서 만들어진 길.. 믿음 없이는 길이 만들어지지 않는다 그 믿음으로 약속의 땅을 밟으며 한 걸음씩 나아갈 때 길을 만들어 주실 것... 믿음으로 한 걸음씩 나아갈때 만들어지고 넓어 지는 길 아무 것도 보이지 않을 때 하나님은 말씀으로 약속을 하신다. 그 약속을 믿고 나아갈 때 열려 지는 길이 <데라크דרך<인것....== (그 길 걸을 때) 또 하나의 길이 더 있다 히브리어로 마갈 ..좁은 길을 말한다 . 하나님께서 미리 정해 두신 의의 길... 하나님의 부르심과 뜻을 위해서 달려 가야 하는 그 길을 <마갈 . 세상이 보기에 어렵고 힘든 길이지만 하나님께서 주신 기쁨으로 걸어 가는 길이 <마갈이다. 하나님의 사람들이 걸어 가야 하는 길 그러나 세상은 이해하지 못하는 길... 예수께서 걸어가셨던 골고다의 길... 자신을 부인하며 오직 십자가만 바라 보며 따라가야 하는 그 길 그 길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함께 걸어 주실 것. ...오늘도 아무 것도 보이지 않지만 믿음으로 걸어야 가야 하는 그 길<데라크דרך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서 십자가를 지고 따라 가야 하는 길<마갈.마갈(מַעְגָּלָה) 체데크(צֶדֶק).<에 하나님께서 특별한 은혜를 부어 주실 것

----##[하늘/영에 속한자의, 날마다/매일 선택할바, 성령 인도 따름의, 지고지선의 생명삶 행보 방식]..(좁은/생명)길(데레크 דֶּרֶךְ) : 달렛(십자가죽음/육 처리됨의 하나)-레이시(성령충만교통)-카프(실행/적용)...십자가상에서부터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 이루어 끝까지 동행-동거-=동주....“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을 지켜 그 길로 행하며”(열왕기상 2:3) 

----##[중보/중재하시는 생명 그리스도로 살며, 살아내며, 공급하는 길..]마갈(מַעְגָּלָה) 체데크(צֶדֶק)_ 마갈(길....생명진리말씀 잘배워 익히고 충만 공급함) : 멤-아인-김멜-라메드-헤이..체데크(의....매순간 샘솟는바 내주하시는 그리스도와 하나 됨의 궁극 이룸, 이로 인해 매순간 참 믿음으로 영-진리로 예배함) : 체데-달렛-코프

[520 듣는 사람마다 복음 전하여] [525.돌아와 돌아와]

5.  ○사자들이 왕에게 돌아오니 왕이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어찌하여 [이토록 빨리]돌아왔느냐 하니

6.  그들이 말하되 한 사람이 올라와서 우리를 만나 이르되 너희는 너희를 보낸 왕에게로 돌아가서 그에게 고하기를 여호와의 말씀이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없어서 네가 에그론의 신 바알세붑에게 물으려고 보내느냐 그러므로 네가 올라간 침상에서 내려오지 못할지라 네가 반드시 죽으리라 하셨다 하라 하더이다

7.  왕이 그들에게 이르되 올라와서 너희를 만나 이 말을 너희에게 한 그 사람은 어떤 사람이더냐

8.  그들이 그에게 대답하되 그는 털이 많은 사람인데 허리에 가죽 띠를 띠었더이다 하니 왕이 이르되 그는 디셉 사람 엘리야로다

9.  ○이에 ["감히, 경망스럽게-저주의 말 함부로 지껄였다고" 체포해 오도록...]오십부장과 그의 군사 오십 명을 엘리야에게로 보내매 그가 엘리야에게로 올라가 본즉 산 꼭대기에 앉아 [기도하고] 있는지라 그가 [(함께 가기를 원하시는지, 기도로 교통함 가운데 주께 묻고 있었다!!) 산꼭대기까지 올라와서 옆에서 조용히 기도가 끝나기까지 기다려야 합당하다!!, 그런데!! 합당한 예의의 정중함이란  전혀 없이 산 아래 서서 외치고 있는바 --기도를 방해한셈이다!!--]엘리야에게 이르되 하나님의 사람이여 왕의 말씀이 내려오라 하셨나이다(..오십부장 그 스스로는, 겉과 속이 전혀다른바, 입에발린 대로 피상적으로/또는 건방떨며 말하고 있다..."Q의 사람"이란 칭호에 참되고 합당한 깨달음으로 취할바 중심의 진실한 경외감 전혀 없이 함부로 말하고 있다.)

10.  엘리야가 오십부장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만일 하나님의 사람[이쉬 엘로힘.אֱלֹהִים֙  אִ֤ישׁ]이면 불[에쉬 אֵשׁ֙].이 하늘[하샤마임.הַשָּׁמַ֔יִם ].에서 내려와 너와 너의 오십 명을 사를지로다 하매 불이 곧 하늘에서 내려와 그와 그의 군사 오십 명을 살랐더라...이 때 불은 이중적이다..CJ 십자가 보혈 구속 믿어 속량 얻은자에게는 구원의 정결함과 함께, 생명 살리는 온기와 빛을 가져다주는 불이로되, 불신세상에게는 태워 살라 멸하는 심판/멸망의 불이다.

11.  왕이 다시 다른 오십부장과 그의 군사 오십 명을 엘리야에게로 보내니 그가 엘리야에게 말하여 이르되 하나님의 사람이여 왕의 말씀이 속히 내려오라 하셨나이다 하니

12.  엘리야가 그들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만일 하나님의 사람이면 불이 하늘에서 내려와 너와 너의 오십 명을 사를지로다 하매 하나님의 불이 곧 하늘에서 내려와 그와 그의 군사 오십 명을 살랐더라

13.  왕이 세 번째 오십부장과 그의 군사 오십 명을 보낸지라 셋째 오십부장이 올라가서 엘리야 앞에 이르러 그의 무릎을 꿇어 엎드려 간구하여 이르되 하나님의 사람이여 원하건대 나의 생명과 당신의 종인 이 오십 명의 생명을 당신은 귀히 보소서

14.  불이 하늘에서 내려와 전번의 오십부장 둘과 그의 군사 오십 명을 살랐거니와 나의 생명을 당신은 귀히 보소서 하매

15.  여호와의 사자가(말라크מַלְאַ֤ךְ 예호와יְהוָה֙) 엘리야에게 이르되(다바르וַיְדַבֵּ֞ר) 너는 그를[아하시야를] 두려워하지 말고 함께 내려가라 하신지라 엘리야가 곧 일어나 그와 함께 내려와 왕에게 이르러

16.  말하되 여호와의 말씀이 네가 사자를 보내 에그론의 신 바알세붑에게 물으려 하니 이스라엘에 그의 말을 물을 만한 하나님이 안 계심이냐 그러므로 네가 그 올라간 침상에서 내려오지 못할지라 네가 반드시 죽으리라 하셨다 하니라

.......불-빛/생기-진리-호흡/영-말씀(테훔-자각케 된바, 혼돈/공허/어둠 상태인, 존재 심연 바닥-에 도달하면 그곳이 변하여 영생의 생명수 근원인 생명샘 터침) [요4:14..(오직 주이름 불러, 회개함-영접함-믿음으로 , 듣는바 말씀따라 토설함!!)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17.  ○왕이 엘리야가 전한 여호와의 말씀대로 죽고 그가 아들이 없으므로 여호람이 그를 대신하여 왕이 되니 유다 왕 여호사밧의 아들 여호람의 둘째 해였더라

......북이스라엘의 아하시야 왕 다음은, 그의 형제 여호람 등극....남유다왕 여호람(섭정시점부터는 5년)단독 통치2년째

18.  아하시야가 행한 그 남은 사적은 모두 이스라엘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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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SB]제1장

1.  Now Moab rebelled against Israel after the death of Ahab.

2.  And Ahaziah fell through the lattice in his upper chamber which [was] in Samaria, and became ill. So he sent messengers and said to them, "Go, inquire of Baal-zebub, the god of Ekron, whether I shall recover from this sickness."

3.  But the angel of the LORD said to Elijah the Tishbite, "Arise, go up to meet the messengers of the king of Samaria and say to them, 'Is it because there is no God in Israel [that] you are going to inquire of Baal-zebub, the god of Ekron?'

4.  "Now therefore thus says the LORD, 'You shall not come down from the bed where you have gone up, but you shall surely die.'" Then Elijah departed.

5.  When the messengers returned to him he said to them, "Why have you returned?"

6.  And they said to him, "A man came up to meet us and said to us, 'Go, return to the king who sent you and say to him," Thus says the LORD,' Is it because there is no God in Israel [that] you are sending to inquire of Baal-zebub, the god of Ekron? Therefore you shall not come down from the bed where you have gone up, but shall surely die.' "'"

7.  And he said to them, "What kind of man was he who came up to meet you and spoke these words to you?"

8.  And they answered him, "[He was] a hairy man with a leather girdle bound about his loins." And he said, "It is Elijah the Tishbite."

9.  Then [the king] sent to him a captain of fifty with his fifty. And he went up to him, and behold, he was sitting on the top of the hill. And he said to him, "O man of God, the king says, 'Come down.'"

10.  And Elijah answered and said to the captain of fifty, "If I am a man of God, let fire come down from heaven and consume you and your fifty." Then fire came down from heaven and consumed him and his fifty.

11.  So he again sent to him another captain of fifty with his fifty. And he answered and said to him, "O man of God, thus says the king, 'Come down quickly.'"

12.  And Elijah answered and said to them, "If I am a man of God, let fire come down from heaven and consume you and your fifty." Then the fire of God came down from heaven and consumed him and his fifty.

13.  So he again sent the captain of a third fifty with his fifty. When the third captain of fifty went up, he came and bowed down on his knees before Elijah, and begged him and said to him, "O man of God, please let my life and the lives of these fifty servants of yours be precious in your sight.

14.  "Behold fire came down from heaven, and consumed the first two captains of fifty with their fifties; but now let my life be precious in your sight."

15.  And the angel of the LORD said to Elijah, "Go down with him; do not be afraid of him." So he arose and went down with him to the king.

16.  Then he said to him, "Thus says the LORD, 'Because you have sent messengers to inquire of Baal-zebub, the god of Ekron-- is it because there is no God in Israel to inquire of His word?-- therefore you shall not come down from the bed where you have gone up, but shall surely die.'"

17.  So Ahaziah died according to the word of the LORD which Elijah had spoken. And because he had no son, Jehoram became king in his place in the second year of Jehoram the son of Jehoshaphat, king of Judah.

18.  Now the rest of the acts of Ahaziah which he did, are they not written in the Book of the Chronicles of the Kings of Isra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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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하(서론)

본서는 열왕기상의 연속이다(70인역은 사무엘서부터 계산하여 본서를 “열왕기 제4서”라고 칭했다). 그리고 혹자는 본서의 시작이 열왕기상 마지막 장 51절이 되었더라면 더 좋았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 이유는, 거기에서부터 아하시야 왕의 통치 이야기가 시작되기 때문이다. 열왕기상은 찬란한 출발을 했다. 당시는 이스라엘 나라가 통일된 왕국의 영광을 자랑하고 있었던 때다. 반면에 본서는 서글픈 결말을 맺고 있다. 곧 오랫동안 분열되어 오던 두 왕국 중 먼저 이스라엘이 패망하게 되고, 그 뒤를 이어 유다도 멸망하고 말기 때문이다. 분열되어 싸우는 나라마다 멸망하고 마는 법이다. 그러나 열왕기상의 후반부에는 엘리야의 능력 있는 역사(役事)가 그 책을 아름답게 빛내 주고 있듯이, 본서의 전반부에서는 엘리사의 능력이 또한 찬연히 빛나고 있다. 이들 선지자들은 그 영광에 있어서 왕들을 능가했다. 그러므로 그들이 살아 있는 한, 성경 역사는 그들을 중심으로 쓰여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1. 엘리야가 하늘에서 불을 내려오게 하는 일과 불 가운데서의 그의 승천 기사(1, 2).

2. 엘리사가 왕과 백성들, 이스라엘인들과 이방인들을 위해 베푼 큰 역사들(3-7).

3. 하사엘과 예후가 기름 부음 받은 사건. 전자는 이스라엘을 개혁하고, 후자는 아합가(家)와 바알 숭배를 파괴하는 사명을 맡는다(8-10).

4. 유다와 이스라엘의 몇몇 왕들의 통치 기사(11-16).

5. 10지파가 포로로 됨(17).

6. 히스기야의 영예로운 선정(18-20).

7. 므낫세의 악정과 요시야의 선정(21-23).

8. 바벨론 왕에 의한 예루살렘 파괴(24, 25)

본서에 나타나 있는 기록의 여러 부분은 “의(義)는 나라를 영화롭게 하여도, 죄는 백성을 욕되게 하느니라”(잠 14:34)는 솔로몬의 말이 진리라는 것을 확증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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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하 1장 (개요)

아하시야는 아합 왕의 뒤를 이어 이스라엘 왕위를 계승한 아합의 친아들이다. 아하시야의 통치는 2년을 계속하지 못했다. 모압의 반란 이후, 그는 그의 왕가의 몰락과 더불어 죽게 된다(1). 여기에서 우리는 다음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1. 그 무렵 그는 에그론의 신에게 신탁을 물으러 사람을 보낸다(2).

2. 그는 이스라엘 하나님에게 메시지를 받는다(3-8).

3. 하나님의 메시지를 보낸 선지자를 잡으려고 사자들을 보내지만, 그들은 두 번 다 죽임을 당한다(9-12).

4. 세 번째 사자는 겸손했고 자기의 임무를 다하여, 마침내 왕에게 메시지를 전달한다(13-16).

5. 아하시야의 죽음(17, 18).

이러한 이야기 속에서, 그 선지자가 얼마나 위대한 인물이었으며, 아하시야 왕은 얼마나 미약한 존재인가 하는 것을 엿볼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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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하시야의 병(왕하 1:1-8)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서, 이스라엘의 악한 왕 아하시야가 하나님의 섭리와 선지자, 그리고 그의 말씀과 채찍으로 견책을 받고 있음을 알게 된다.

Ⅰ. 아하시야 왕에게 개인적인 곤경이 닥쳤다. “여호와 보시기에 악한 일을 행하며, 그를 분노하게 만든” 자들이 어찌 잘되기를 바랄 수 있으랴! 그가 하나님을 대적하여 배반하고 하나님께 대한 충성을 거절하자, 모압도 이스라엘을 대적하여 배반하고 이스라엘 왕들에게 오랫동안 바쳐 오던 충성을 거절했다(1절).

유다의 국경 지대에 자리잡고 있던 에돔 족속은 유다의 왕들에게 곡물을 바치는 속국이었는데, 앞 장 47절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계속 유다의 속국으로 있었으나, 악한 왕 요람이 즉위하자 그 멍에를 꺾어 버렸다(8:22). 그런데 이제 바로 모압 족속이 그렇게 하는 것이다.

만일 사람들이 우리와 맺은 계약을 파기하여 그들의 임무를 다 수행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우리도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위배하고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의식을 소홀히 하고 있지나 않은지 반성해 보아야 한다. 죄는 우리를 약화시키고 파멸시킨다.

모압에 관해서는 3장 5절에 가서 알게 될 것이다.

Ⅱ. 아하시야는 어떤 신체적인 원인에 의해서가 아니라 치명적인 사건을 당해 병에 걸렸다. 즉 그는 “떨어져서 병들었다”. 추락 사고로 인해 타박상을 입은 것이다. 아마 그 사고는 열병까지 몰고 온 것 같다(2절). 우리가 어디에 있든, 죽음과 우리 사이는 한 발자국의 거리밖에 안 된다. 인간의 집은 그에게 있어서는 성(城)과 같은 곳이나, 그것이 하나님의 심판을 막아 주지는 못한다. 부서진 창살(KJV에는 창살 때문에 떨어졌다고 되어 있음─역주)이 그 아들, 아하시야에게 그렇게도 치명상을 주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렇게 되도록 하셨기 때문이니, 모험적으로 당긴 우연의 화살이 그 아버지 아합에게 그렇게 치명상을 준 것과 같은 경우다. 아하시야는 적어도 전장에서 죽지 않기 위해서, 모압을 진압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집 안에 처박혀 있었지만, 안전하지 못했다.

왕궁이 언제나 튼튼한 터전이 되지는 못한다. 죄인들이 스스로 생각하기를 가장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바로 그 곳에, 죄인들을 기다리는 함정이 도사리고 있는 법이다(욥 18:9, 10). 인간의 죄 때문에 신음하고 있는 모든 피조물이, 이 왕국의 창살처럼, 마침내는 그 중량 때문에 견디지 못하여 무너져 버릴 날이 올 것이다. 하나님의 원수가 된 자들은 결단코 안전할 수 없다.

Ⅲ. 곤경에 빠진 왕은, 자기의 병이 나을 것인지 아닌지를 물어보도록, 에그론 신에게 사자를 보냈다(2절).

1. 그의 질문은 매우 어리석었다. “이 병이 낫겠는가?” 사람이라면 누구나 차라리 이렇게 물을 것이다. “내가 무슨 수단을 써야 낫겠느냐?” 그러나 그는 자기의 장래도 모르고 의무도 모르면서, 그저 조급한 나머지, “이 병이 낫겠는가?”라고만 물었다. 그런 문제라면 시간이 조금만 지나면 해답이 있을 것이다.

우리는 어떻게, 언제, 그리고 어디서 죽을 것인가에 대해서보다는 사후에 우리가 어떻게 될 것인가에 대해서 더 생각해야 하며, 또 병에서 나을 것인지 아닌지보다는 병중에 어떻게 처신할 것이며 그 병으로 우리의 영혼에 어떤 유익을 얻을 수 있는지에 대하여 더욱 알려고 해야 한다.

2. 그가 바알세붑에게 사람을 보냈다는 사실은 지극히 잘못된 일이었다. 아마 근래에 새로 건립되었을 죽어 있고 벙어리인 우상(우상 숭배자들은 새로운 신을 좋아한다)을 자기 신탁의 의뢰처로 삼았다는 사실은 자기의 신앙에는 물론이요 바로 자기의 이성에도 모욕인 것이다. 바알세붑이란 “파리의 주(主)”라는 의미인데, 그들의 바알 신의 일종이었다. 아마 바알세붑은 큰 파리가 윙윙거리는 소리와 같은 시끄러운 소리를 마귀의 권세를 통해서나 바알 제사장을 통해서 내었을 것이고, 그 소리로써 자기의 답변을 전달했을 것이다. 아니면 그 나라에 들끓던 파리 떼들을 제거했거나(이것은 그들의 망상이다) 또는 파리 떼들이 가져오는 어떤 유행성 열병을 그들에게서 제거해 주었을 것이다. 아마 이 쓰레기 같은 신이 먼 훗날 그리스의 델포스 신탁처럼 당시에는 이름을 날렸을 것이다. 신약성경에서는 “바알세붑”을 “마귀의 왕”이라고 했다(마 12:24). 이방 신들은 모두 마귀인데, 그 중에서도 이 신이 제일 유명해졌기 때문일 것이다.

Ⅳ. 엘리야는 하나님의 지시를 받고 왕이 보낸 사자들을 만나서 에그론 신에게로 가는 수고를 덜어 주는, 한 답변을 주어서 그들을 되돌려 보냈다. 아하시야가 겸손한 태도로 엘리야에게 사람을 보내어 그의 기도를 부탁했더라면, 아마 평화의 응답을 받았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아니라 에그론의 신에게 사람을 보냈으니, 그것은 사울 왕이 무녀에게 찾아갔던 것과 같이, 그의 죄악의 분량을 가득 채우게 되었을 뿐이다. 그리하여 결국 사형 선고를 받게 되고 마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평안을 삼으려 하지 않는 자들은, 본인들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놀라게 될 것이다.

1. 엘리야는 왕의 죄를 충심으로 비난했다(3절). 이스라엘에는 하나님이 “없기 때문에”(즉 그들은 그렇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에는 전혀 신이 없기 때문이냐?”라고도 읽을 수 있다) “에그론―팔레스틴의 아주 초라한 마을이었고(슥 9:7) 이스라엘에게 이미 오래전에 패배한 마을―의 신에게 물으러 간단 말이냐?”

(1) 마땅히 하나님께 돌려야 할 영광을 마귀에게 돌렸다면 그 죄는 지극히 악한 것이다. 그런데 그들은 그 마귀에게 제사를 드렸을 뿐만 아니라 신탁까지 청한 것이다. 어떤 경우든, 또는 어떤 회개를 하든, 마귀와 의논을 한다는 것은 지극히 사악한 일이라는 것을 명심하자. 이러한 사악한 행위는 이방 세계에서 횡행하고 있으며(사 47:12, 13), 심지어는 기독교 세계 속에도 많이 남아 있다. 마귀들의 세계라는 것은 바로 그와 같은 행위로 인해 존속되는 것이다.

(2) 엘리야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거기에 해석을 가했는데, 그와 같은 행위는 더욱 사악한 일이라고 말했다. 즉 “너는 이스라엘의 신은 도대체 너에게 말을 해줄 수 없는 분일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에는 전혀 하나님이 계시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런 일을 한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네가 어찌 신의 응답을 구하기 위해서 그렇게 먼 곳으로 사람을 보냈단 말인가?”라고 했다. 실제적이고 구조적인 무신론은 우리가 하나님을 떠난 연고요, 그 결과로 생기는 사악성 때문이다. 우리가 막연하게 살거나 육체로 우리의 무기를 삼으며 이 세상 일을 추구할 때는 “이스라엘에는 하나님이 없다”고 생각하기 마련이다.

2. 그는 왕의 운명을 분명히 말해 주고 있다. 가서 그가 “분명히 죽으리라”고 일러 주라(4절). “즉 그는 자기의 운명을 알려고 그렇게 극성이었으니, 이제 그것을 알려 주라. 그리고 그가 이것을 최대한 선용하게 하라.” 그렇게 공포 속에서 메시지를 찾는 자들은 마침내 그 메시지가 가져오는 심판과 분노로 인해 가슴이 사무치게 될 것이다.

Ⅴ. 이러한 메시지가 그의 하인들을 통해서 왕에게 전달되자 왕은 누가 자기에게 그 메시지를 보냈느냐고 물었고, 그 신하들의 말을 따라서 그는 틀림없이 엘리야라고 결론지었다(7, 8절).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그들이 말하는 선지자의 옷차림이 그가 자기 아버지의 궁정에서 보았던 엘리야의 옷차림과 같았기 때문이다. 그는 털이 난 옷을 입고 있었고 허리에는 가죽띠를 두르고 있었다. 즉 그의 옷차림은 검소하고 소박했다. 신약성경의 엘리야인 세례 요한도 여기에 나온 엘리야와 비슷했다. 옷은 털옷이었고, 그의 띠는 가죽띠였다(마 3:4). 성령으로 옷 입은 사람은 온갖 부귀와 아름다운 옷을 경멸한다.

2. 엘리야가 전달한 메시지는 왕의 아버지에게 전달되었던 메시지와 비슷했다. 그는 한 번도 좋은 것을 예언하지 않았고 오직 나쁜 일만 예언해 주었다. 엘리야는 지상의 거민들을 여전히 괴롭히고 있는 증인들 중의 하나다(계 11:10). 아합의 눈에 가시와 같았던 자는, 그의 아들이 여전히 악한 길을 답습하고 있는 한, 그 아들에게도 역시 가시 노릇을 할 것이다. 그 왕은 이제 자기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나의 대적이여, 네가 나를 찾았느냐?”라고 소리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죄인들은 “열조를 삼가라”는 그 말은 아직도 힘이 있고 강하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슥 1:6; 히4:12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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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을 내린 엘리야(왕하 1:9-18)

Ⅰ. 왕은 이제 엘리야를 체포하라는 영장을 발부했다. 만일 에그론의 신이 그는 죽으리라고 말했다고 하면, 그는 아마 그 예언에 순응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여호와의 선지자가 그렇게 말하자―그것은 그 왕의 죄를 책망하는 것이고 그에게 이스라엘의 죄를 상기시켜 주는 것이다―그는 그 예언을 참을 수 없었다. 아하시야 왕은 자기에게 주어진 경고를 선용할 생각은 조금도 하지 않고 그 선지자에 대해서 화를 냈다. 그의 질병이나 죽음에 대한 생각도 결코 그에게 어떤 좋은 영향을 주지 못했으며, 그에게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도 주지 못했다. 어떠한 외적 경고도 죄인들을 놀라게 하거나 그들의 마음을 부드럽게 해 주지 못한다. 더욱 그들을 격노하게 할 뿐이다. 이 아하시야 왕은 엘리야가 선지자, 곧 참선지자라고 생각이나 했는가? 만약 그가 참선지자라는 것을 알았다면, 어찌하여 그를 감히 박해하려고 했던가? 왕은 엘리야가 일반 사람과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한 것일까? 엘리야를 사로잡기 위하여 그와 같은 군대를 보냈다는 사실은 어떤 이유 때문인가?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 주 예수께서도 일단 병사들에 의해서 체포되어야 했다.

Ⅱ. 자기의 부하 오십 병사를 데리고 엘리야에게 보내진 오십부장은, 엘리야가 산꼭대기(어떤 사람은 갈멜 산이라고 생각한다)에 앉아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아하시야 왕의 이름으로 항복을 명령했다. 그런데 엘리야는 이번에는 전과 같이 동굴 속에 숨어 자취를 감추지 않고, 오히려 그 산꼭대기에서 대담한 모습을 하고 나섰다. 하나님의 보호를 경험한 사람은 더욱 담대해지는 법이다. 그 오십부장은 그를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그것은 그가 엘리야를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믿었거나 그를 존경해서가 아니고, 단지 통상적으로 부르는 칭호였을 뿐이다. 그 오십부장이 진실로 엘리야가 선지자라는 것을 알았다면, 그는 결코 그를 체포하려고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또한 엘리야를 하나님의 말씀을 위임받고 있는 자라고 생각했더라면, 그는 결코 왕의 명령으로 엘리야에게 명령하는 과장은 떨지 않았을 것이다.

Ⅲ. 엘리야는 하늘에서 불을 내려 이 거만한 죄인들을 불사르게 했다. 그러나 그것은 자신의 신변을 보호하기 위해서이거나(그는 다른 방법으로도 능히 그렇게 할 수 있었을 것이다) 또는 복수를 하기 위해서(엘리야의 행동은 자기 자신만의 이유 때문은 아니었다)가 아니라, 자기의 사명을 입증하며 “불경스럽고 불의한 인간들에 대해서 하늘로부터 내리는 하나님의 진노를 보여 주기” 위해서였다. 오십부장은 아주 냉소적으로 그를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불렀던 것이다. 엘리야는 이렇게 말했다. “내가 진정 그러하다면 너는 그러한 농담에 대해 값비싼 대가를 치러야 할지니라.” 오십부장은 자기의 사명을 자랑했다(왕이 “내려오라”고 말했느니라). 그러나 엘리야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왕보다 위대하시며, 그의 명령을 실행할 수 있는 더 큰 권력을 가지고 계시다는 사실을 그 오십부장에게 알리려 했던 것이다. 이와 같은 사건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의 죄를 위한 속죄 제물을 받아 주신다는 표시로 그 제물을 불사르기 위해서(왕상 18:38) 엘리야가 하늘에서 불을 내린 사건이 있은 후 얼마 되지 않아서였다. 그러나 그들은 그 같은 사실을 무시했고, 그것 때문에 이제 불은 제물이 아니라 바로 그 죄인들의 머리 위에 내리게 되었던 것이다(10절). 여기서 다음과 같은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1. 선지자들은 하늘과 특별한 관계가 있다. 그 선지자들 안에 계신 하나님의 영은 하나님의 권능을 나타내기를 원하신다. 엘리야는 다만 말만 했지만, 그 말은 실제로 이루어졌다. 전에는 하늘에서 물을 내리게 했던 그가 이번에는 불을 내리게 했다. 오, 과연 기도의 권능은 얼마나 큰가! “네 손으로 한 일에 대해서 너는 내게 부탁하라”(사 45:11).

2. 하늘도 선지자들과 이해관계가 있다! 하나님은 언제나 선지자들의 사건을 해결해 줄 준비를 갖추고 있으며, 그들에게 가해진 피해를 복수할 준비를 갖추고 계신다. “왕들은 그들 때문에 책망을 받을” 것이다. 그리고 “그(하나님)의 선지자들을 해하지 말라”는 책망(시 105:15)을 받을 것이다. 하나님에게 있어서는 엘리야 한 사람이 오십부장 일만 명과 그들의 오십 병사들보다 훨씬 더 귀중했던 것이다. 물론 엘리야는 하나님의 명령으로 이런 일을 했지만, 우리 구주께서는 그의 제자들에게 전례와 같이 그런 일을 하도록 허락하지는 않으셨다(눅 9:54).

그 장소는 신약의 엘리야인 세례 요한이 하나님을 분노케 하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이 정의의 행동을 하던 장소, 그리고 그와 비슷한 경우를 당해 하나님을 격노케 한 저 사마리아인들에게 불을 내리자고 요청했던 그 장소와 그렇게 멀지 않다. 그 때 그리스도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니다. 너희들은 너희들이 어떠한 영을 받았는지 결코 알지 못하고 있느니라.” 그것은 다음과 같은 뜻이다.

(1) “너희는 어떠한 영을 받았는지 모르고 있도다. 제자들의 직분을 너희들은 받았느니라. 그러므로 너희들은 구약성경의 율법시대의 영과 너희들의 영이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 하느니라. 공포의 율법과 문자의 율법에 있어서는 그것이 충분히 합당하다. 즉 그런 시대에는 엘리야가 불을 요구할 수 있었다. 그러나 성령의 시대와 은총의 시대에 있어서는 결코 그렇게 할 수 없느니라.”

(2) “너희들은 너희들이 이 때를 당하여 행동하는 그 정신이 어떤 것인지를 모르고 있으며 그 정신이 엘리야의 정신과 얼마나 다른지를 모르고 있느니라. 즉 엘리야는 거룩한 열성 때문에 그렇게 했지만 너희들은 감정으로 그렇게 하려 하느니라. 엘리야는 하나님의 영광을 염두에 두었지만 너희들은 네 자신들의 명성만 생각하고 있느니라. 하나님은 사람들의 행실을 그 사람들의 원칙에 의해서 판단하시며, 따라서 하나님의 판단은 진실에 의거한 것이니라.”

Ⅳ. 이와 같은 사건이 다시 한 번 반복되어 있다. 누가 이런 일을 생각할 수 있겠는가?

1. 아하시야는 다시 한 번 엘리야에게 체포령을 내렸다(11절). 그는 마치 자기에게는 전능한 힘이 있어서 결코 좌절될 수 없다는 결의를 보인 것이다. 완악한 죄인은 결국 하늘에서 내린 지옥불에 의해서 자기의 죄를 깨닫게 되고 정복당하게 되는 것이다. 그들은 결코 하늘의 불이 자기들을 정복할 수 없을 것처럼 생각한다.

2. 다른 한 오십부장이 자기의 오십 부하를 데리고 나타났다. 그는 그 선지자에게 대해서 맹목적인 분노를 가지고 있었고, 자기의 왕에게 대해서는 맹목적인 복종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지난 사건 때 있었던 그 치명적인 운명에 다시 도전하게 된 것이다. 이번에도 지난번 사건 때처럼 역시 경솔한 짓이고 위험한 짓이다.

그러나 보다 더 서둘러 진행되었다. “더 이상 버티지 말고 속히 내려오라”고 말했을 뿐만 아니라 어떠한 사실이 일어나고 있었는지에 대해서 그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속히 내려오라, 머뭇거리지 말라. 왕이 용무가 급하니라. 내려오라. 내가 너를 끌고 내려가리라.”

3. 엘리야는 조금도 측은히 여기지 않았다. 단지 다시 한 번 하늘의 불을 요청했다. 그리하여 그 오십부장과 그의 부하들은 즉석에서 죽임을 당했다. 남들과 같은 죄를 지으려는 자들은 그들과 같은 수난을 또한 각오해야 한다. 하나님은 변함없이 공의로우시기 때문이다.

Ⅴ. 제3의 오십부장은 겸손한 자세로 하나님과 엘리야의 자비를 구했다. 물론 아하시야 왕이 직접 그렇게 하라는 명령을 내린 것 같지는 않다(그의 완악한 마음은 전과 동일했다. 그는 여호와를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았고, 따라서 하나님의 진노가 출현한 사실에 대해서도 전혀 무반응이었다. 그래서 그는 자기 부하들의 목숨을 아끼지 않았고, 결국 엘리야를 자극하는 동일한 메시지를 주어서 제3의 사자를 보내기에 이른 것이다). 그러나 그 사자는 자기 선임자들의 운명에서 경고를 받았다. 아마 그들의 시체를 눈으로 보았을 것이다. 그는 선지자더러 내려오라고 하는 대신에, 자기가 그 앞에 무릎을 꿇었고, 자기와 자기 병사들의 목숨을 살려 달라고 간청했다. 그는 자기들의 죄악이 받아야 할 벌을 시인하면서 엘리야의 권능을 인정한 것이다(13, 14절). “나의 생명을 당신은 귀히 보소서”라고 했다.

하나님과 다투어서는 아무 득이 없다는 것을 명심하자. 우리가 하나님을 이기고 싶으면, 그에게 간구를 드리는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남들이 고집을 부리다가 어떤 결과를 당하는지를 보았으면, 거기에서 스스로를 겸비케 할 줄 아는 법을 배우는 자들이 지혜로운 자들이다.

Ⅵ. 엘리야는 이 제3의 오십부장이 요구한 것 이상을 허락했다. 하나님은 그 앞에서 끝까지 버티는 자들에게는 그토록 가혹하시지만, 스스로 통회하며 복종하려는 자들에게는 즉각적으로 자비를 보이신다. 이 오십부장은 목숨을 구했을 뿐만 아니라, 자기의 뜻을 달성하게 되었다.

엘리야는 천사의 명을 받아서 “그와 함께 왕에게 내려갔다”(15절). 그리하여 이전에 그가 내려가기를 거절한 것은 아하시야 왕이나 궁궐이 무서워서가 아니라, 그러한 전제적 강요를 당하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임을 알 수가 있다. 그렇게 하면 그것은 자기의 주인의 명예를 깎아 버리는 것이 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그의 직임을 크게 했다”고 했다.

그는 왕에게 담대히 나아가서, 그의 면전에서 이야기했다. 즉 그는 그가 전에 왕에게 보냈던 메시지를 다시 이야기했다(16절). 그 내용은 왕이 분명히 머지않아 죽으리라는 것이었다. 엘리야는 왕의 분노가 두렵거나 또는 그의 불행을 동정하여, 이 선고를 지체하지 않았다. 이스라엘 하나님께서 이미 그에게 선고를 내리셨다. 그러므로 이제 에그론의 신이 그를 구원해 줄 수 있는가를 알아보도록 하자.

이 메시지는 아하시야에게 청천벽력 같았다. 그 말이 엘리야의 입에서 직접 나오자, 그 왕이나 그 주위의 어떤 신하들도 감히 엘리야에게 폭력을 가하지 못했다. 심지어는 아무 대꾸도 못 했다. 그리하여 엘리야는 다니엘처럼 그 사자 굴 속에서 무사히 빠져 나올 수 있었던 것이다. 하나님이 보호해 주시는 자를 누가 감히 해하랴!

끝으로, 그 예언은 며칠 안 있어서 실현되었다. 아하시야는 무자(無子)한 채로 죽었고(17절), 그의 나라는 그의 형제 여호람에게 넘어갔다. 그의 아버지는 22년 간 악정을 했으나, 그는 불과 2년간도 못 다스렸다.

때로는 “악한 자들이 살아 장수할 뿐 아니라, 권세를 얻는다.” 그러나 그것으로 인해 불경스러운 그 인간들은 스스로에게 이르기를 자기가 번영하고 있다고 하나, 실상은 스스로 속는 것이다. 홀 주교가 여기에서 지적했듯이, “어떤 죄인들은 오래 살아서 자기들의 심판을 가중케 하나, 어떤 죄인들은 빨리 죽음으로써 그들의 심판을 재촉한다”는 사실 때문이다. 아무튼, “재앙이 죄인을 좇아갈 것이요”, 조만간 그들을 따라가 잡을 것이라는 사실만은 확실하다. 저 아하시야의 치명적인 죄악, 곧 마귀의 신탁을 중히 여기고 하나님의 신탁을 증오하는 그 죄악만큼, 죄악의 그릇을 빨리 채우는 것도 또 없다.

===호크마===

열왕기하 1장


1 아합이 죽은 후에 모압이 이스라엘을 배반하였더라

ㅇ본절은 이스라엘 역사의 새로운 국면을 시사하는 것으로서 당시의 배경과 이스라엘의 역사적 정황을 다음과 같이 간략하게 묘사하고 있다. 첫째, 북이스라엘이 창건된 이래 최고의 전성기를 누렸던 오므리 왕가(왕상 16:15-29)가 아합 왕의 죽음(왕상22:29-40)으로 그 세력이 급격히 약화 되었음을 보여 준다. 앗수르 왕 살만에셀(Shalmaneser)이 남긴 기록을 보면 당시 아합 왕은 2,000대의 전차와 10,000명의 군사를 지휘했다고 언급되어 있다. 이것으로 미루어 볼 때 아합 왕의 막강함을 짐작해 볼 수 있다. 둘째, 이 막강한 아합 왕의 죽음으로 인해 이스라엘이 약해지자 모압이 반기를 들었음을 보여 준다. 모압 왕 메사(Mesha)가 남긴것으로 전해지는 모압 비문(Moab's epitaph)에 보면 모압이 이스라엘 왕국에 반기를 들기 시작한 것은 오므리의 아들 때부터라고 한다. 그런데 오므리의 아들은 곧 아합 왕을 말한다(왕상 16:28). 결국 모압은 다윗에 의하여 정복을 당한 뒤(삼하 8:2) 계속 이스라엘의 속국이 되어 조공을 바쳐오다가 아합 왕 때부터 서서히 반기를 들기 시작하여 아합 왕이 죽은 후에는 완전히 이스라엘을 배반한 것이다(Keil & Delitzsch, Wycliffe, Pulpit Commentary). 한편 모압이 이스라엘을 반역한 기사는 3:4-27에 다시 나온다. 그러니 보다 상세한 내용은 그곳 주석을 참조하라.

2 아하시야가 사마리아에 있는 그 다락 난간에서 떨어져 병들매 사자를 보내며 저희더러 이르되 가서 에그론의 신 바알세붑에게 이병이 낫겠나 물어 보라 하니라

ㅇ다락 난간 - 팔레스틴 지방의 다락은 대개 평평한 지붕 위에 꾸민 방으로 보통 방으로 보통 방에 비해 크다(눅 22:12;행 1:13;9:37;20:8). 그리고 그곳을 오르내리는 계단은 건물밖에 있다. 대하 33:1-11 강해, '히브리인의 주거 형태' 참조. 한편 다락방에는 하나의 창문이 있는데 창은 외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창살이 나 있고 그 창살은 격자무늬로 되어 있다. 본절의 '난간'에 해당하는 원어 '사바크'도 그 원의(原義)는 '창살'이다. 이 다락에서는 멀리까지도 조망할 수 있었는데 아하시야 왕은 바로 이곳 창문에서 밖을 내려다 보다가 그만 체중을 못이겨 밖으로 떨어졌을 것이다.

ㅇ떨어져 병들매 - 높은 곳에서 떨어져 심한 타박상 및 골절(骨折)을 입은 것을 가리킨다. 거기에다 합병증까지 발생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ㅇ에그론 - 에그론(Ekron)은 블레셋 평원에 있는 다섯 성읍 중에 하나(수 13:3)로서 가장 북쪽에 위치한다. 따라서 이스라엘과는 상대적으로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는 도시이다. 오늘날 이곳은 아키르(Akir)로 불리우고 있는데 옛날 폐허의 자취를 아직도 지니고 있다. 여호수아 13:3 주석 참조.

ㅇ바알세붑 - '바알세붑'(Baal-zebub)에서 '바알'은 '주'(Lord), '소유주', '남편' 등을 의미하며, '세붑'(제붑)은 '파리, 날벌레'라는 뜻이다(사7:18;전 10:1). 그러므로 '바알세붑'은 '파리의 주', '날벌레의 주'라는 뜻이 된다. 혹자(G. Rawlinson)는 '바알세붑'을 '베엘 사멘'(Beel-Samen)과 동일한 신으로도 보았다. '바엘 사멘'은 베니게인(Phoenician)들이 섬기던 '하늘의 주'이다(PulpitCommintary). 그러나 이것은 어원적인 자료의 지지를 받지 못한다. 그런데 70인역(LXX)은 '바알세붑'을 '바알 뮈안' 또는 '데온 뮈안'으로 번역하였다. 이와 관련해 혹자는 '데온 뮈안'을 파리 형상으로 된 신으로서 질병을 보내기도 하고 파리로부터 오는 질병을 지켜 주기도 하는 신이라고 주장하였다(Starke). 한편 신약에서는 '제붑'이 '제불'(Zebul)로 읽혀지고 있는데(마10:25), '제불'은 '왕'이라는 뜻이다. 이러한 사실은 '바알세불', 즉 '바알 왕'이라는 칭호가 '바알세붑'의 본래의 칭호라는 간접적인 증거가 된다. 또한 바알세붑은 후대 랍비들에 의하여 '바알세벨'(Ball-Zebel)이라고 불리워지기도 하였는데 이것은 '분토(糞土)의 왕'이라는 뜻이다. 이것으로 보아 왕이라는 뜻의 '세불'이 점차 '세붑', '세벨' 등으로 불리워진 것은 될 수 있는 대로 우상에 대하여 나쁜 인상을 심어 주려 한 탓으로 짐작된다(Keil & Delitzsch Commintary, Vol. , p.285). 따라서 후에 '바알세불'은 여호와의 적대자인 사단의 칭호로도 쓰이게 되었다(마 10:25;막 3:22;눅11:15).

ㅇ이 병이 낫겠나 물어 보라 - 아하시야의 어리석음이 잘 나타나 있는 말이다. 그는 우상에게 자신의 쾌차(快差) 여부를 묻기에 앞서 먼저 자신의 병을 치유하기 위한 갖은 노력을 다 기울였어야 마땅했다. 그리고 그와 더불어 겸손히 하나님의 긍휼을 간구하여야 했다. 왜냐하면 그의 사고와 질병을 계속 아비 아합과 어미 이세벨의 우상숭배의 길, 여로보암의 길로 행하는 죄악(왕상 22:51-53)을 깨닫게 하여 하나님과의 정상적인 관계를 회복시키려는 하나님의 징계의 채찍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아하시야는 계속 우상의 마술적 신탁(oracle)에만 의지하였으니 결국 하나님의 징계의 채찍은 심판의 채찍으로 화(化)하고 말았다(4, 16, 17절).

3 여호와의 사자가 디셉 사람 엘리야에게 이르시되 너는 일어나 올라가서 사마리아 왕의 사자를 만나서 저에게 이르기를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없어서 너희가 에그론의 신 바알세붑에게 물으러 가느냐

ㅇ여호와의 사자 - 역사에는 '여호와의 사자'(the angel of the Lord)라는 문구가 흔하지 않다(K.Koch). 그렇다고 해서 이것을 편집자에 의한 삽입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Hobbs). 왜냐하면 엘리야와 관계된 기사들 속에서 '여호와의 사자'의 역할은 대단히 중요하기 때문이다(왕상 19:7). 특히 본장에서 '여호와의 사자'는 아하시야 왕이 보낸 '왕의 사자'와 좋은 대조를 이루고 있음을 절대로 간과해서는 안 될것이다. 한편 당시 엘리야가 만난 '여호와의 사자'는 천사가 아니라 여호와 자신이었던 것으로 보여진다. 사실 성경 가운데는 '여호와의 사자'라는 말이 화육(化肉, incarnation)하시기 전의 그리스도, 즉 구약의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용어로 많이 사용되고 있다. 따라서 본절에 나타난 '여호와의 사자'도 구약의 그리스도라고 봄이 타당할 것 같다. 특히 구약의 그리스도가 이스라엘 민족의 보호자로 직접 나타나심과 같이(출 23:20, 21;사63:9) 본절의 '여호와의 사자'도 우상을 숭배하는 이스라엘을 징계하기 위해 나타났다는 점에서 더욱 그러하다. 뿐만 아니라 '여호와의 사자'라는 표현은 엘리야의 사역과 관련하여 세번 밖에 언급되지 않았으며(왕상 19:7, 15;왕하 1:3) 그 이외에는 하나님의 계시를 가리켜 주로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다'(16절), '여호와의 말씀이 임했다'(왕상 17:2;9:9)라고 표현하고 있다. 따라서 이러한 표현 역시 본절의 '여호와의 사자'가 삼위의 하나님 중 한 분인 구약의 그리스도라는 증거가 된다. 이와 관련한 보다 자세한 내용은 창 16:7-16 강해, '여호와의 사자'를 참조하라.

ㅇ디셉 사람 엘리야 - '엘리야'라는 이름의 뜻은 '여호와는 나의 하나님이시다'라는 뜻이다. 구약에서는 엘리야라는 이름이 대단히 많이 언급되어 있는데(대상 8:27;스10:21,26) 대개 히브리인들의 '여호와 신앙'의 반영(反映)이다. 한편 디셉(Tishbe)은 요단 동편의 길르앗 지경에 위치한 한 성읍으로(왕상 17:1) 오늘날 길르앗 북쪽의 산악 지대인 리스딥(Listib)과 동일한 성읍인 것으로 추정된다.

ㅇ이스라엘에 하나님이 없어서...물으러 가느냐 - 강한 역설적 표현이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 즉 산 자의 하나님이시며 이스라엘 전 역사를 통해 나타나신 바된 능력의 하나님이시다(출 3:15;마 22:32). 뿐만 아니라 그분은 자기가 택한 백성 이스라엘과 항상 함께 계시면서 그들을 보호하셨던 하나님이시다. 그러한 증표로서 하나님은 솔로몬으로 하여금 예루살렘 성전을 건축하도록 하셨으며(삼하 7:13; 왕상 6:1 이하) 끊임없이 선지자들을 보내셔서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계심을 나타내셨다. 따라서 이상과 같은 사실에도 불구하고 아하시야가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기위해 이방인의 우상인 바알세붑을 찾았다는 것은 하나님을 전적으로 배반한 행위가 아닐 수 없다. 한편 오늘날 극도로 문명이 발달되고 이기주의가 판치는 세상에 사는 성도들에게는 주변의 모든 것이 우상이 되기 쉽다. 그러므로 더욱더 경성함으로 행여 하나님보다 다른 무엇을 더 의지하는 잘못을 범치 말아야 할 것이다(마 10:37;요일5:21).

4 그러므로 여호와의 말씀이 네가 올라간 침상에서 내려오지 못할 지라 네가 반드시 죽으리라 하셨다 하라 엘리야가 이에 가니라

ㅇ그러므로 - 여기서 '그러므로'(therefore)라고 번역된 히브리어는 '라켄'으로서 결과를 나타내는 부사이다. 즉 이는 이제 아하시야의 우상 숭배죄 때문에 그에게 죽음의 심판이 임하였음을 보여 준다(Pulpit Commentary). 이와 같이 하나님의 심판에는 항상 분명한 이유가 있으니 우리가 그 이유를 분명히 알 때 하나님의 징계에 대하여 불평하지 않게 될 것이다(약 1:13, 14).

ㅇ엘리야가 이에 가니라 - 이처럼 엘리야는 아하시야가 반드시 죽으리라는 엄청난 소식을 듣고서도 그 소식을 아하시야의 사자들에게 전달하기 위하여 지체없이 길을 떠났다. 이것은 엘리야의 위대한 신앙의 모습일뿐 아니라 하나님께 대한 즉각적인 순종의 자세인 것이다. 왜냐하면 일국(一國)의 절대 권력을 행사하고 있는 왕에게, 더군다나 악하기로 소문나 있는 아하시야(왕상 22:52)에게 그의 죽음 소식을 알린다는 것은 웬만한 신앙과 용기가 아니고서는 행하기 힘든 일이기 때문이다. 즉 엘리야는 하나님의 명령을 수행하기 위하여 자신의 생명의 위험도 무릅쓴 신앙의 용장이었던 것이다.

5 사자들이 왕에게 돌아오니 왕이 이르되 너희는 어찌하여 돌아왔느냐

ㅇ사자들이...돌아오니 - 그렇게 짧은 시간으로는 분명 에그론에 다녀올 수 없었는데 왕의 사자들이 돌아온 시간은 의외로 빨랐다. 아하시야 왕이 '어찌하여'라고 놀람을 표현한것은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다. 그런데 왕의 사자들은 엘리야를 만난 후 왕에게로 즉시 돌아오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이유는 첫째, 엘리야가 갑자기 왕의 사자들을 찾아와서 책망을 하며 놀라운 심판을 선언했기 때문이다(6절). 엘리야는 왕의 사자들이 무엇때문에 에그론으로 가는지 전혀 묻지도 않았으면서 그 이유를 이미 다 알고 있었던 것이다. 둘째, 엘리야의 외모에서 풍겨 오는 신적 권위에 압도되었기 때문이다. 왕의 사자들은 엘리야의 외모를 자세히 살펴본 것 같다. 이는 그들이 왕에게 보고하는 장면에서 분명히 알 수 있다(8절).

6 저희가 고하되 한 사람이 올라와서 우리를 만나 이르되 너희는 너희를 보낸 왕에게로 돌아가서 저에게 고하기를 여호와의 말씀이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없어서 네가 에그론의 신 바알세붑에게 물으려고 보내느냐 그러므로 네가 올라간 침상에서 내려오지 못할지라 네가 반드시죽으리라 하셨다 하라 하더이다

ㅇ한 사람이 올라와서 - 왕의 사자들 중 그 누구도 당시에 널리 알려져 있던 선지자 엘리야를 보고 못알아 보았을리는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엘리야를 가리켜 '한 사람' 이라고 표현한 데에는 다음과 같은 이유가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첫째, 엘리야를 보호해 주려는 의도 때문이다. 그들이 처음 엘리야를 만났을 때 그의 신적 권위에 압도되었다는 사실이 이런 주장을 유력하게 해준다. 둘째, 자신들의 신변의 안전을 도모하기 위해서이다. 즉 그들은 엘리야로부터 저주의 말을 듣고서도 엘리야를 그냥 놓아준 일로 인해 아하시야로부터 노여움을 살까봐 두려워하였던 것이다(왕상18:7-15).

7 왕이 저희에게 이르되 올라와서 너희를 만나 이 말을 너희에게 고한 그 사람의 모양이 어떠하더냐

ㅇ모양이 어떠하더냐 - '모양'이라는 말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미쉬파트'이다. 그런데 여기서는 특별한 용법으로 사용되고 있다. 본래 '미쉬파트'는 법적인 용어로서 '심판', '공의'라는 뜻이다. 그래서 70인역(LXX)은 이것을 '심판이 무엇이냐'(티스 헤 크리시스)로 번역하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여기서 '미쉬파트'는 일개인의 '특징'이나 '습관' 그리고 '생김새'를 의미한다. 그러므로 KJV는 이를 '외양이 어떠하냐'(What was the appearance)로, RSV는 '어떤 종류의 사람이더냐'(What kind of man was he)로 번역하고 있다. 그리고 Living Bible은 '어떻게 생겼느냐'(What did he look like)로, 공동 번역은 '어떻게 차린 사람이더냐'로 각기 번역하고 있다. 이로 보아 아하시야는 엘리야의 외모 뿐만 아니라 그의 습관이나 특징등을 모두 포함하여 그가 누구인가를 충분히 판단할 수 있는 상세한 답변을 요구하였음을 알 수 있다. 그러면 아하시야가 사자들로부터 엄청난 소식을 듣자 이처럼 제일 먼저 그 말을 한 사람이 누구인지를 알고 싶어한 까닭은 무엇이겠는가? 아마도 첫째, 그사람이 정말로 죽음을 예언할 만큼 권위 있는 사람인지 아니면 거짓 예언자나 미친 사람에 불과한지를 알고자 했기 때문일 것이다. 왜냐하면 이는 자신의 생사(生死)와 관련된 문제였기 때문이다. 둘째, 혹 그가 바로 자기 부친 아합에게 저주를 선포했던 엘리야(왕상 21:20-22)가 아닌가 하고 추측했기 때문일 것이다. 즉 아하시야는 사자들의 보고를 접한 순간 엘리야가 또다시 활동하는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을 수 있다(Wycliffe, Pulpit Commintary).

8 저희가 대답하되 그는 털이 많은 사람인데 허리에 가죽 띠를 띠었더이다 왕이 가로되 그는 디셉 사람 엘리야로다

ㅇ털이 많은 사람 -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바알 사아르'로서 '어떤 털의 소유자'(a certain possessor of hair)라는 뜻이다. 그러나 이 말만으로는 그 정확한 뜻이 모호한데 대개 다음 두 가지 의미로 해석된다. 첫째, '머리털이 많이 난 사람'이라는 뜻이다. 혹자는 엘이야의 특징이 바로 그 머리털에 있었다고 한다(Hobbs). 70인역(LXX)도 이같은 견해를 따라 본절을 '머리털이 많은 사람'(아네르 다쉬스)으로 번역하고 있다. 둘째, '털옷을 입은 사람'이라는 뜻이다. 이에 따라 RSV는 본절을 '그가 털로 만든 겉옷을 입었다'라고 번역하고 있다. 혹자는 당시 엘리야가 무두질하지 않은 털가죽 옷을 입고 머리는 어깨 위로 길게 늘어뜨린 채 다녔다고 주장하기도 한다(Dake, Rawlinson). 그런데 이상의 두 견해 중 보다 보편적인 주장은 후자이다. 왜냐하면 예수님 당시 세례 요한이 약대 털옷을 입었던 점(마 3:4)이 이같은 사실을 뒷받침 해 주기 때문이다. 특히 거짓 선지자들 조차 사람의 눈을 속이기 위하여 털로 된 겉옷을 입고 다녔던 점(슥 13:4)으로 보아 당시 선지자들에게 있어서의 털옷은 '사명자의 표시'임과 동시에 '권위'를 상징했던 듯하다.

ㅇ허리에 가죽띠를 띠었더이다 - 여기서 '허리'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마트나임'은 두 가지 뜻이 있다. 1)띠나 속옷으로 둘러싸는 곳으로 '요부'(腰部) 전체를 가리킨다. 2)신체의 한 가운데 부분으로 인체의 힘이 집중되어 있는 '허리'를 가리킨다. 다음으로 '띠'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에조르'로서 '마트나임'을 둘러싸는 천이나 혁대를 가리킨다. 공동 번역은 이를 '아랫도리를 가린 것'으로 번역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이스라엘 사람들은 가죽띠가 아닌 무명이나 면 같은 천으로 만든 띠를 두르고 다녔다(Keil & Delitzsch Commentary, Vol. , p. 286). 그리고 대제사장이 매는 띠는 금실과 청색, 자색, 홍색 그리고 가늘게 꼰 베실로 만든 세마포 띠였다(출 28:8). 그 반면에 가죽띠는 매우 거칠어 착용하기 불편하였으므로 주로 가난한 사람들과 고행자들이 착용하였다(Pulpit Commentary). 따라서 엘리야의 옷차림은 대부분의 사람들과 아주 대조적인 것으로서 죄악된 세상으로부터의 분리와 죄악된 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상징한 것으로 보여진다(Keil, Rawlinson).

ㅇ왕이 가로되 그는...엘리야로다 - 이처럼 아하시야가 사자들로부터 외양적인 설명만을 듣고서도 그가 엘리야라는 사실을 안 것으로 보아 아하시야는 평소 엘리야에 대하여 잘 알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아하시야가 평소 엘리야를 알고 있었다는 것은 엘리야가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것과 그가 전한 말도 하나님의 말씀이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는 뜻이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하시야가 자신의 죄악을 뉘우치지 않고 도리어 엘리야를 체포하려 했던 것(9-13절)은 그가 얼마나 강퍅한 인간이었는가를 잘 보여 준다.

9 이에 오십부장과 그 오십인을 엘리야에게로 보내매 저가 엘리야 에게로 올라가서 본즉 산꼭대기에 앉았는지라 저가 엘리야에게 이르되 하나님의 사람이여 왕의 말씀이 내려오라 하셨나이다

ㅇ오십부장과 그 오십 인을 엘리야에게로 보내매 - 각 부장 제도는 모세의 장인 이드로의 충고에 따라 모세가 처음으로 세운 이스라엘의 준(準)군사 체제이자 행정 조직이다(출 18:21-25). 이때 세움받은 부장들은 곧 십부장, 오십부장, 백부장, 천부장인데 이러한 군대 조직의 체계는 고대 근동에 있어 다른 나라들도 마찬가지였다(참고;H. W.F. Saggs, The Greatness That Was Babylon, p. 254). 한편 아하시야 왕이 오십부장과 그 오십인을 엘리야에게로 보낸 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이다. 첫째, 엘리야가 순순히 따라오지 않을 경우, 강제로 끌고 오기 위해서이다. 그렇지 않고 아하시야가 선의(善意)를 가지고 있었다면 한 사람의 사자만 보냈어도 충분하였을 것이다. 둘째, 하나님의 사람 엘리야의 초인적인 능력을 의식했기 때문이다(요 18:3). 이처럼 아하시야는 선지자 엘리야에 대한 강한 적의를 품었을 뿐만아니라 의식적으로 하나님께 당돌하게 대항하려고 했던 것이다.

ㅇ산 꼭대기에 앉았는지라 - 여기서 '산'이란 뜻의 '하르'에는 어떤 특정한 대상을 가리키는 정관사 '하'가 붙어있다. 이것은 본절의 '산'이 앞서 엘리야가 왕의 사자들과 만났던 바로 그 산(3절)임을 의미한다. 따라서 본절은 엘리야가 여호와의 사자의 명령대로 시행한 후(3,4절) 도망하지 않고 아하시야가 취할 다음 단계의 행동을 조용하고 냉정하게 기다리고 있었음을 보여 준다(Dake). 한편 분명하지는 않으나 일부 학자들은 엘리야가 앉아 있던 산이 갈멜 산이었던 것으로 추정하기도 한다(Baker, Delitzsch). 사실 갈멜 산은 엘리야가 바알의 선지자들과 싸우던 곳으로서(왕상 18장) 본장의 주제와 깊은 연관성을 가지고 있다. 그 주체는 바로 하나님의 사자와 왕의 사자 간의 싸움인데 그 싸움의 승패를 결정짓는 심판자는 앞서의 경우와 마찬가지로(왕상 18:38) 바로 하늘에서 내려온 불이었다(10, 12절).

ㅇ이르되 하나님의 사람이여...내려오라 하셨나이다 - 여기서 '내려오라'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레다'로서 '싸우려 산에서 내려오다', 또는 '홍수처럼 급히 내려오다'라는 뜻의 동사 '야라드'의 능동태 명령형이다. 따라서 이는 아하시야가 일국의 왕으로서 엘리야에게 명령하고 있는 말임을 알 수 있다. 다음으로 '하나님의 사람이여'는 선지자를 부를 때 흔히 쓰는 호칭이다(삼상 2:27;9:6,10). 그러나 아하시야가 엘리야를 '하나님의 사람'으로 대우하지 않은 점으로 보아 여기서는 엘리야를 빈정대는 말임을 알 수 있다. 즉 엘리야를 향하여 명령을 내리는 아하시야 왕의 태도는 존경보다는 경멸에 가까운 것이었다. 한편 '이르되'로 번역된 히브리어 '예다베르'는 피엘형(Piel;강조형 능동)으로서 '거듭거듭 말한다'라는 뜻이다. 이처럼 동일한 말을 두번 세번 반복함으로써 엘리야의 감정을 자극한 것으로 보아 오십부장 역시 아하시야의 명령을 전달함에 있어서 동일한 경멸의 자세를 취하였음이 분명하다.

10 엘리야가 오십부장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내가 만일 하나님의 사람이면 불이 하늘에서 내려와서 너와 너의 오십인을 사를지로다 하매 불이 곧 하늘에서 내려와서 저와 그 오십인을 살랐더라

ㅇ내가 만일 하나님의 사람이면 - 이말은 자신의 권위를 실제로 증명해 보이겠다는 일종의 선포이다. 즉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이제 엘리야는 왕의 권위보다 더 큰 하나님의 권위를 그들에게 증명해 보이겠다는 말인 것이다. 한편 이러한 권위 증명의 문제는 신약 시대 당시 예수께서도 서기관과 제사장들에 의해서 제기받은 적이 있으시다(막 11:27-33).

ㅇ불이 하늘에서 내려와서 - '불'을 뜻하는 히브리어 '에쉬'는 문자적으로 자연적인 불을 의미한다. 그러나 특별한 경우에 있어서는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며(출 3:2;13:21,22;19:18) 비유적으로는 '진노의 심판'을 나타낸다(계 20:14,15). 소돔과 고모라는 여호와께서 내리신 '유황과 불'로 멸망했고(창 19:24), 예수께서도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지우느니라"(마 7:19)고 심판의 말씀을 선포하셨다. 따라서 엘리야가 "내가 만일 하나님의 사람이면"이라고 한 가정적인 표현의 말은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불을 내려주심으로 말미암아 그 신적 권위가 증명된 것이다. 한편 이처럼 엘리야가 아하시야의 오십부장에게 불심판을 선고한 까닭은 두가지 이유에서였다. 첫째는 오십부장의 불손한 태도를 징치(懲治)하기 위함이며, 둘째는 아하시야왕의 완악함을 경고하기 위함이다.

11 왕이 다시 다른 오십부장과그 오십인을 엘리야에게로 보내니 저가 엘리야에게 일러 가로되 하나님의 사람이여 왕의 말씀이속히 내려오라 하셨나이다

ㅇ왕이 다시...보내니 - 아하시야가 왕이라는 공직자의 위치에서 두 번이나 같은 행위를 시행했다는 것은 이미 개인적인 차원을 떠나 국가적인 의지를 표명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물론 그 배후에는 아하시야의 행위를 막을 만한 신하들이 없었던 탓도 있을것이다. 어쨌든 엘리야에 대한 아하시야 왕의 도전적인 태도는 더욱더 완강해져 갔다. 이는 곧 어리석음과 완악함의 극치가 아닐 수 없다.

ㅇ속히 내려오라 - '속히'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메헤라'로서 '서둘러서', '빨리'라는 뜻이다. 이것은 '내려오라'는 말을 더욱 강조해 주는 것으로서 권위주의 의식(意識)이 잔뜩 배어 있는 말이다. 사실 왕이 사자를 보낼 때는 공식적인 용어를 쓰기 마련이다. 따라서 본절에 나타난 이러한 용어는 선지자 엘리야의 권위에 대한 경멸과 하나님의 권위에 대한 정면 도전으로 보여진다. 즉 아하시야는 하늘로부터 불이 임하는 심판을 당하고서도(10절) 회개하지 않고 오히려 더욱더 교만한 자세로 엘리야와 하나님을 대적한 것이다(Keil, Matthew Henry, Wycliffe).

12 엘리야가 저희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내가 만일 하나님의 사람이면 불이 하늘에서 내려와서 너와 너의 오십인을 사를지로다 하매 하나님의 불이 곧 하늘에서 내려와서 저와 그 오십인을 살랐더라

ㅇ완강해진 왕의 거만한 태도에 비해 엘리야 선지자의 태도는 어떠한가? 엘리야는 처음과 동일하게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여 선지자의 권위를 나타낼 뿐이다. 이러한 본절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교훈을 발견할 수 있다. 1)엘리야는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된 태도를 취함으로써 하나님의 종으로서의 신분을 잘 지켰다는 점이다. 이런 점은 과거 모세가 크게 한번 실수하므로서(민 20:11)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2)엘리야는 더욱더 거만해진 두번째 오십부장의 불손함을 잘 견딤으로써 하나님의 사람으로서의 면모를 잃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와같이 '하나님의 종'된 자로서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겸손함과 일관된 자세를 잘 유지하는 것은 현대의 사역자들에게 도 요청되는 필수적인 기본 덕목이다.

13 왕이 세번째 오십부장과 그 오십인을 보낸지라 세째 오십부장이 올라가서 엘리야의 앞에 이르러 꿇어 엎드려 간구하여 가로되 하나님의 사람이여 원컨대 나의 생명과 당신의 종인 이 오십인의 생명을 당신은 귀히 보소서

ㅇ올라가서 엘리야의 앞에...엎드려 간구하여 가로되 - 여기서 반드시 주목해야 할 사실은 앞의 두 오십부장(9,11절)과 다른 세번째 오십부장의 겸손한 태도이다. 특히 이는 두번째 오십부장의 태도와 좋은 대조를 이루고 있다. 즉 두번째 오십부장은 전임자가 징벌을 받은 사실을 알면서도 산 아래에서 엘리야에게 내려오라고 큰 소리쳤었다. 그러나 세번째 오십부장은 두 전임자를 교훈삼아 할 수 있는 한 최대한도로 엘리야에게 공손한 태도를 표하고 있는 것이다.

ㅇ나의...생명을 당신은 귀히 보소서 - 여기서 '귀히 보소서'란 말은 히브리어 '티카르'를 번역한 것이다. 이 단어는 '귀하게 여기다', '존중하다'라는 뜻의 동사 '야카르'의 미완료 변형으로서 어떻게든 긍휼을 베풀어 달라는 간절한 청원이다. 그런데 세번째 오십 부장의 이러한 간구와 겸손함은 아하시야왕의 의도와는 전혀 상관이 없다. 왜냐하면 아하시야는 두 차례에 걸친 하나님의 심판에도 불구하고(9-12절)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은 채 또다시 엘리야를 체포하러 세번째 군사들을 파송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번째 오십부장은 엘리야의 권위와 하나님의 권능을 깨닫고 선 아하시야의 명령과 상관없이 엘리야의 발 앞에 무릎꿇은 것이다(Matthew Henry'sCommintary, Vol. p. 709).

14 불이 하늘에서 내려와서 전번의 오십부장 둘과 그 오십인들을 살랐거니와 나의 생명을 당신은 귀히 보소서 하매

ㅇ불이...살랐거니와 - 본절은 세번째 오십부장이 두 전임자들에게 내려진 하나님의 징벌을 자신의 교훈으로 삼았음을 보여 주고있다. 이것은 계속되는 하나님의 징벌에도 불구하고 아무것도 깨닫지 못하고 더욱 완악해져가는 아하시야 왕의 태도와 좋은 대조를 보여준다. 그런데 이처럼 하나님의 심판을 깨닫고 두려워하는 자는 반드시 구원을 얻기 마련이다(15절;시 149:4).

15 여호와의 사자가 엘리야에게 이르되 너는 저를 두려워 말고 함께 내려가라 하신지라 엘리야가 곧 일어나 저와 함께 내려와서 왕에게 이르러

ㅇ여호와의 사자가 엘리야에게 이르되 - 3절에서 언급되었던 '여호와의 사자'가 본절에서 다시 등장하고 있다. 이것은 여호와께서 바로 지금까지 엘리야를 보호하고 계셨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사람'으로서의 그의 권위를 지탱해 주셨음을 의미한다.

ㅇ저를 두려워 말고 함께 내려가라 - 여기서 '저'가 가리키는 사람은 아하시야 왕이다. 그리고 '저'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미파나이우'로서 '그의 면전에'라는 뜻이다. 즉,여호와의 사자는 엘리야로 하여금 아하시야 왕 앞에 나아가는 것을 두려워 말라고 권고하시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왜 하나님은 두 번의 징벌을 내리시고 난 후 지금에 와서야 엘리야를 아하시야 앞에 보내시는 걸까? 그 이유는 다음과 같이 추론해 볼 수 있다. 첫째, 이제는 아하시야에게 직접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함에 있어 방해가 되는 외적인 장애물이 제거되었기 때문이다. 둘째, 이제는 하나님의 심판에 대해 백성들이나 신하들이 모두 분명하게 인식하였기 때문이다. 즉, 두차례에 걸친 심판으로 인해(9-12절) 이제는 백성들이나 신하들 가운데 세번째 오십부장과 같이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많아졌을 것임에 틀림없다. 이와같이 하나님은 당신의 심판을 행하심에 있어서 단지 징벌만을 하지 않으신다. 그 심판 속에는 후대의 하나님의 백성들 뿐만 아니라 당대의 백성들에게 주는 귀한 교훈이 담겨 있는 것이다.

16 고하되 여호와의 말씀이 네가 사자를 보내어 에그론의 신 바알세붑에게 물으려 하니 이스라엘에 그 말을 물을만한 하나님이 없음이냐 그러므로 네가 그 올라간 침상에서 내려오지 못할지라 네가 반드시 죽으리라 하셨다 하니라

ㅇ본절은 3,4절의 반복일 뿐만 아니라 왕의 사자들에 의해 왕에게 전달된 동일한 말이다(6절). 그러나 이제 아하시야 왕 앞에서 엘리야 선지자가 이 말씀을 직접 선포한 것은 대단히 의미가 깊다. 즉 엘리야는 우상을 섬기는 포악한 아하시야 왕을 향해서 그의 불신앙을 선포함으로써 어떠한 상황에 처할지라도 굴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조금도 변경함이 없이 담대히 외쳤던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맡은 자의 참된 용기와 담대함을 발견하게 된다(고후 5:6).

17 왕이 엘리야의 전한 여호와의 말씀대로 죽고 저가 아들이 없으므로 여호람이 대신하여 왕이 되니 유다 왕 여호사밧의 아들 여호람의 제 이년이었더라

ㅇ엘리야의 전한 여호와의 말씀대로 - 여기서 '대로'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전치사'케'로서 '...와 동일하게', '...처럼'이라는 뜻이다. 즉 이는 엘리야가 선포한 하나님의 말씀이 하나도 틀림없이 그대로 성취되었음을 가리킨다. 이와같이 열왕기서에 기술된 역사의 전반을 살펴볼 때 선지자가 선포한 예언이 그대로 성취된 것은 곧 하나님께서 그 선지자의 권위를 보증해 주고 계신다는 분명한 증거가 된다(왕상14:18; 22:13;왕하 2:22; 10:17; 24:2).

ㅇ여호람이 대신하여 왕이 되니 - 70인역(LXX)과 수리아역(Peshitta)과 라틴어 역본(Vulgate)에는 '여호람'(Jehoram)이란 말 뒤에 '그의 형제'라는 말이 덧붙여져 있다.  그리고 공동 번역, Living Bible, RSV 등도 이것을 옳은 것으로 보고 그대로 따르고 있다. 그러나 맛소라 히브리 본문에는 이 말이 생략되어 있다. 아마도 맛소라 본문이 그렇게 한 것은 '여호람'이 '아하시야'의 형제라는 사실을 당대에는 누구나 다 아는 일반적인 상식에 속한다고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70인역(LXX)등이 '그의 형제'라는 단어를 삽입해 주므로서 오늘날의 우리들에겐 많은 유익이 되고 있다. 즉, 이는 당시 아하시야에게 아들이 없었다는 사실과 여호람이 그의 형제라는 사실을 동시에 보여 주는 주석적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ㅇ유다 왕...여호람의 제 이 년이었더라 - 본절과 달리 3:1에서는 유다 왕 여호사밧(Jehoshaphat)의 제 18년에 이스라엘왕 여호람이 왕위에 오른 것으로 되어 있다. 그 반면 8:16에는 유다 왕 여호람이 왕위에 오른 해가 이스라엘 왕 여호람의 제 5년이었다고 되어 있다. 즉 한 곳에서는 이스라엘 왕 여호람이 유다 왕 여호람보다 약 4년 먼저 왕위에 올랐다고 기록되어 있고 다른 한편에서는 약 1년 늦게 왕위에 올랐다고 서로 모순되게 기록되어있다. 그런데 이처럼 서로 엇갈리는 연대 기록은 성경 기자들의 기록상의 오류로 인한 것이 아니다. 대신 그 원인은 근복적으로 이스라엘의 섭정 제도(regency)에 있다. 즉 성경의 연대 기록은 어떤 왕의 섭정 개시 년도부터 계산되기도 하고 또 어떤 때는 정식으로 등극한 해부터 계산되기도 한다. 따라서 아하시야의 형제 여호람이 이스라엘의 왕위에 오른 연대를 계산함에 있어서도 본절에서는 유다 왕 여호람이 섭정을 시작한 해를 기준으로 계산한 반면, 8:16에서는 유다 왕 여호람이 정식 등극한 해를 기준으로 계산한 것으로 보면 아무런 문제가 없게 된다(Keil & Delitzsch Commentary, Vol. , pp. 288f).

18 아하시야의 남은 사적은 모두 이스라엘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ㅇ아하시야의 남은 사적은...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 성경에는 아하시야의 사적이 엘리야와 관련해서 죄를 범했다는 본장의 기록밖에 없다. 그러나 성경에 기록되지 않은 많은 사건이 이스라엘 왕 역대 지략에 기록되었고 본서가 기록될 당시 사람들은 아하시야의 여타 사적에 대하여 잘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아무튼 성경의 기록에서 분명히 알 수 있는 사실은 그가 심히 악을 행하였다는 것이다(대하 20:35). 

ㅇ이스라엘 왕 역대 지략 - 이 책(the book of the chronicles of the kings of Israel)은 신구약 성경 66권 중의 한 권인 역대기(歷代記)가 아니다. 대신 이는 본서저자가 활용한 자료들 중의 하나인 이스라엘 왕들의 국정 일지(國政日誌)를 가리킨다.  이에 대한 보다 자세한 내용은 왕상 14:19 주석을 참조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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