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21.08.16 작성자 : 양시영
제   목 : 알레고리적해석.회개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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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202 조덕영 박사의 창조신학...[성경을 알레고리와 모형론으로 해석해도 될까?]  
***개인적 느낌 -- 오직 하나님의 성품((출34장, 마11:28. 갈5:22-23)) 과 뜻-안배-경륜-섭리, 곧 지고지선의 구속 목적이라는 패러다임따라,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 이미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 가시는, 그렇게 전개하며 이루실 하나님의 마음을 들여다 보고 따름이 합당한 입장이 아닐까!!

상징과 알레고리의 차이를 보편과 특수의 범주로 설명... 괴테에 따르면 알레고리는 보편적인 것을 표현하기 위한 사례나 표본으로서 특수한 것을 표현하는 형상화 방식이며, 그와 달리 상징은 특수한 것 자체 내에서 보편적인 것이 발현될 수 있도록 표현하는 방식이다.
https://www.puts.ac.kr/js_nondan/files/05_%EC%96%91%EC%8B%A0%ED%98%9C.pdf
1. 알레고리적 해석
풍유(諷喩), 우의(寓意), 우화(寓話) 등으로 번역되는 알레고리(allegory)는 헬라어 알레고리아(allegoria, 다른 이야기라는 뜻)에서 유래한 말로 추상적인 개념을 직접 표현하지 않고 다른 구체적인 대상을 이용하여 표현하는 문학형식을 말한다. 
본래 이 말은 헬라어의 ‘다른’이라는 단어인 'allos'와 ‘공공장소에서 말하다’라는 'agoreuein'이라는 말의 합성어로 어원적으로는 ‘다르게 말하는 하나의 방식’을 지칭한다.
어떤 내용을 표현할 때 직접적으로 표현하지 않고 말하려는 대상의 본체를 감추고, 간접적으로 암시하는 방법의 종류로는 알레고리(풍유, 우의, 우화, 수수께끼) 말고도 다양하다. 
비슷한 성질이나 모양을 가진 두 사물을 ‘같이’, ‘처럼’, ‘듯이’와 같은 단어로 결합하는 직유(直喩, simile), 
사물의 상태나 움직임을 암시적으로 표현하는 은유(隱喩, metaphor), 
어떤 사물이나 관념을 나타내는 말을 경험적으로 그것과 밀접하게 연관된 다른 사물이나 관념을 나타내도록 표현(예를 들어 ‘흰옷’으로 우리 민족을, ‘백의(白衣)의 천사’로 간호사를 표현)하는 대유(代喩, synecdoche), 
사물을 그것의 속성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다른 낱말을 빌려서 표현하는 환유(換喩, metonymy) 같은 비유법이 있는데 알레고리는 신학에서 관심을 갖는 표현기교 가운데 하나이다.
그럼 성경의 알레고리란 무엇일까? 
성경의 알레고리적 해석이란 성경의 문자(rhete) 혹은 분명한 것(phanera) 이면(裏面)에 담긴 구절의 실제적 의미(hyponaia)가 존재한다고 믿는 해석 방법을 말한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알레고리 해석을 확대된 은유(metaphor)라고 정의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신명기 14장 21 후반절에 보면 "염소 새끼를 그 어미의 젖에 삶지 말지니라"는 계명이 나온다.((출 23:19; 34:26; 신 14:21....개인적 느낌 - 직관적으로 누구나 깨달을 수 있는 바, 어미의 젖, 곧 생명 양육 위한 것을 개인적 쾌락, 사리사욕과 탐욕 만족을 위해 비인도적으로 무정하게, 무분별하게 오남용하여 부도덕에 치우침을 금함...비인도적 + 풍요 기원의 우상승배적 행위였음))  
온갖 재료와 향신료가 제한 없이 마구 섞이는 짬뽕이나 비빔밥류를 즐기고 별다른 음식 계명이 없이 살아온 우리 민족은 이 계명이 왜 그렇게 중요한지 도무지 수긍하지 못할 수도 있다. 또한 염소 새끼를 어미 젖과 섞어 삶을 일도 거의 없다. 만인에게 주신 하나님 말씀에 이렇게 별로 중요해 보이지도 않고 시급하지도 않은 일을 굳이 기록하신 이유는 무얼까? 
성경이 유대인에게만 적용되는 말씀이라 그런 것일까? 우리 사회라면 어미 젖 이슈보다는 아마 도축법에도 없는 강아지를 법을 어겨가면서까지 목사나 성도들이 함부로 영양탕으로 즐겨도 될까하는 문제가 더 쟁점이 될지 모르겠다. 하지만 중요하니까 하나님께서 반드시 지키라는 계명으로 주신 것이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염소 새끼와 어미 젖에 담긴 좀 더 확대된 중요한 해석이 있지 않겠는가? 
여기에서 [기록된 성경말씀의 계명에 대해, 어떤 것<곧 하나님의 생명과 사랑, 하나님의 성품의 패러다임>을 규준으로 삼아 ] 알레고리적 성경해석을 어떻게 합당히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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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적 이윤을 극대화 위해 처치하기 힘든 늙고 병든 소를 육골분 사료로 만들어 어린 송아지에게 먹임으로써 발생한 광우병을 기억하라 : 풍요를 위한 비인도적인 우상 숭배적 관습 금지 = 경제부흥 명목의 이웃 착취 불허  ::: “네가 만일 이 책에 기록한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지켜 행하지 아니하고 네 하나님 여호와라 하는 영화롭고 두려운 이름을 경외하지 아니하면 여호와께서 너의 재앙과 네 자손의 재앙을 극렬하게 하시리니 그 재앙이 크고 오래고 그 질병이 중하고 오랠 것이라. 여호와께서 네가 두려워하던 애굽의 모든 질병을 네게로 가져다가 네 몸에 들어붓게 하실 것이며 또 이 율법 책에 기록지 아니한 모든 질병과 모든 재앙을 너의 멸망하기까지 여호와께서 네게 내리실 것이니 너희가 하늘의 별 같이 많았을지라도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치 아니하므로 남는 자가 얼마 되지 못할 것이라.” (신명기 28:58~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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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의 알레고리적 해석법은 고대 헬라와 유대 사이의 교류를 통해 자연적으로 시작되었다고 본다. 아리스토불루스(Aristobulus, 주전 170-60년) 같은 학자는 호메로스, 피타고라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등의 헬라 철학이 오히려 구약, 특히 모세의 율법에서 알레고리 기법을 가져왔다고 주장할 정도였다. 유대의 필로(Philo, 주전 약 20년-주후 약 54년)는 유명한 유대의 알레고리주의자였다.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나 오리겐, 제롬 등은 알레고리 해석에 능한 초대 기독교 학자들이었다. 
성경은 반드시 해석되어야 하는 책이다. 설교도 결국 해석의 적용이다. 따라서 성경 시대의 상황과 풍습에 능하지 못한 21세기 한반도에 사는 우리들은 과거 유대, 기독교 학자들의 알레고리 해석에 대해 어디까지 수용해야 할 것인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2. 모형론적 해석
모형론(typology, 유형론, 예표론)적 해석은 구약 성경의 역사는 진리가 그림자처럼 나타난 것이라 보는 해석을 말한다. 즉 구약 성경의 그림자 같은 역사는 그 원형(原型)이나 구현이 신약성경의 계시에 나타나게 되는 것으로 보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구약의 말씀, 사건, 인물 그리고 제도들은 모형들(Typen)로 간주되고, 그 모형들과 상응(相應)하는 것이 신약에 있다는 입장이다. 
모형론적 해석은 이러한 모형(模型, Typos: 구약)과 원형(原型, Antitypos: 신약)의 대조를 통하여 구원역사의 연속성을 살펴보게 된다. 
(여기에도 주의할 점이 있다!!) 어떤 학자는 극단적으로 치우쳐서 구약의 모든 사건과 역사를 모형으로 해석하여 실제 역사를 무시하기도 한다.
모형을 나타내는 신약의 단어들로는 튀포스(모형, 롬 3:14; 고전 10:6,11), 스키아(그림자, 골 2:17; 히 8:5; 10:1), 휘포데이그마(사본, 히 8:5; 9:23), 세메이온(표적, 마 12:39), 파라볼레(비유, 히 9:9; 11:19) 등과 같은 용어들이 있다. 모형론을 폭넓게 보아 알레고리의 영역에 넣어 다루려는 학자들도 일부 있기는 하다. 확대 해석하면 그렇게 볼 여지도 있다. 하지만 엄격히 구분하면 약간 그 성격이 서로 다르므로 구별하는 게 좋다고 본다.
모형은 예수님도 친히 말씀하신 것(예를 들어 노아 홍수 사건과 소돔성의 롯의 때를 인자의 재림 사건에 대한 모형으로 언급한 누가복음 17장 26-30절을 참조할 것)이므로 연구 가능한 해석 모델이다. 다만 모형론 해석이나 연구를 하려면 다음 몇 가지를 먼저 잘 숙지해야 한다.
첫째, 신약성경에서 분명하게 언급하고 있는 모형과 오늘날 주석가들이 주장하는 모형을 구분할 것
오늘날 주석가들이 주장하는 모형을 전면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예수님이나 바울 등이 분명하게 모형이라고 말하는 것과 학자들이 임의적으로 모형이라 말하는 것을 구분해야 혹시 발생할 지도 모르는 그릇된 해석을 분별할 수 있다.
둘째, 교리와 관련된 모형과 교리와 상관없는 모형을 구분할 것
요나가 큰물고기 뱃속에서 살아난 것은 그리스도께서 친히 자신의 부활의 모형임을 예표해주셨다(마 12: 40). 
하지만 요나가 육지에 다시 선 것을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팔레스틴)에서 회복 될 것이라는 예표로 쓰면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예수님께서 “무화과 나무의 비유를 배우라”(마 24:32) 말씀하셨다. 
그렇다고 무화과를 이스라엘로 해석하고 이스라엘이 독립한 1948년에 50년 희년을 더하여 1998년을 종말로 해석한 것도 그릇된 적용이요 해석이다. 
무화과 나무는 구약에서 이스라엘만 상징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알레고리적 요소를 담고 있으므로 이것을 단순하게 신약 시대의 이스라엘을 상징하는 알레고리로 해석하면 엉뚱한 시한부 종말론 교리를 만들어내게 되는 것이다. 마태복음 24장의 예수님 말씀은 종말의 때를 잘 분별하라는 말씀이지 시한부 종말론의 날짜를 계시하려는 의도가 전혀 아니다.
셋째, 모형에도 핵심적인 것과 부차적인 부분이 있음을 명심할 것
너무 지엽적인 주장을 핵심적인 것으로 몰고 가면 성경 해석의 큰 실수를 범할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또한 부차적인 부분을 핵심적인 것으로 집착하는 실수도 조심해야 한다. 
일부 이단적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바로 이들 본질적 핵심과 부차적 부분을 구분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이 있다.
넷째, 완전히 성취된 모형도 있고 부분적으로 성취된 모형도 있으며 미래 또는 내세에 이루어질 모형들(주로 요한계시록 예언들)도 있음을 명심할 것.
다니엘서 2장에 나타난 열 발가락을 과거 일부 신학자들이나 목사들이 EC 공동체 10개국으로 해석하여 이 내용을 종말론적으로 성취된 것으로 오해한 것은 잘못 해석한 대표적인 경우이다.
3. 나가면서
과거 일부 사람들이 알레고리와 모형 해석을 확대 적용하여 그릇된 성경 해석으로 나아가는 바람에 알레고리와 모형 해석에 대한 일부 반감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분명 성경에는 알레고리와 모형적 요소가 모두 들어있음을 알아야 한다. 다만 이들 알레고리와 모형에 대한 바른 해석이 중요하다. 
물론 성경 전체가 알레고리나 모형론으로 해석될 수 있는 책도 아니다. 일부가 그렇다는 말이다. 여기서 신앙의 학문인 신학의 필요성과 중요성이 대두 된다. 
과거 기독교의 역사 속에서 기독교의 근간을 흔들던 이단들과의 치열한 싸움에서 성경 해석의 중심을 잡아 준 것은 하나님의 사람들 덕분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모두 탁월한 신학자들이었다.
지금 한국 교계는 무엇이 진리인지조차 구별이 어려울만큼 심각한 포스트모던적 담론만이 난무하는 시대적 혼돈상을 경험하고 있다. 
성령의 사람들이 하나님의 역사 속에서 싸우고 지켜온 참 신앙과 신학과 교리는 무시하고 마치 영적 사사기 시대처럼 각자가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판단하고 행하려 한다. 
한국 교계가 바로 서는 길은 과거 탁월한 하나님의 사람들이 무엇을 지켜왔는 지, 그 지나 온 길을 다시 되돌아보고 성경에 대한 바른 해석으로부터 출발해야 할 것이다. 
최근 한국 교회가 주님의 음성을 듣고 주님이 말씀하시는 바른 길을 찾으려는 일은 등한시하고 너무 대중들이 우루루 몰려가는 넓은 길로만 걸어가는 것은 아닌지 우려되는 점이 없지 않다.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다는 예수님의 말씀이 가볍게 들리지 않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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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여호와의 성민(聖民)이라(신 14: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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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14장(개역개정) 1-21절
==금지된 애도법
1.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자녀이니 죽은 자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베지 말며 눈썹 사이 이마 위의 털을 밀지 말라
2.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성민이라 여호와께서 지상 만민 중에서 너를 택하여 자기 기업의 백성으로 삼으셨느니라
==정한 짐승과 부정한 짐승
3.  ○너는 가증한 것은 무엇이든지 먹지 말라
4.  너희가 먹을 만한 짐승은 이러하니 곧 소와 양과 염소와
5.  사슴과 노루와 불그스름한 사슴과 산 염소와 볼기가 흰 노루와 뿔이 긴 사슴과 산양들이라
6.  짐승 중에 굽이 갈라져 쪽발도 되고 새김질도 하는 모든 것은 너희가 먹을 것이니라
7.  다만 새김질을 하거나 굽이 갈라진 짐승 중에도 너희가 먹지 못할 것은 이것이니 곧 낙타와 토끼와 사반, 그것들은 새김질은 하나 굽이 갈라지지 아니하였으니 너희에게 부정하고
8.  돼지는 굽은 갈라졌으나 새김질을 못하므로 너희에게 부정하니 너희는 이런 것의 고기를 먹지 말 것이며 그 사체도 만지지 말 것이니라
9.  ○물에 있는 모든 것 중에서 이런 것은 너희가 먹을 것이니 지느러미와 비늘 있는 모든 것은 너희가 먹을 것이요
10.  지느러미와 비늘이 없는 모든 것은 너희가 먹지 말지니 이는 너희에게 부정함이니라
11.  정한 새는 모두 너희가 먹으려니와
12.  이런 것은 먹지 못할지니 곧 독수리와 솔개와 물수리와
13.  매와 새매와 매의 종류와
14.  까마귀 종류와
15.  타조와 타흐마스와 갈매기와 새매 종류와
16.  올빼미와 부엉이와 흰 올빼미와
17.  당아와 올응과 노자와
18.  학과 황새 종류와 대승과 박쥐며
19.  또 날기도 하고 기어다니기도 하는 것은 너희에게 부정하니 너희는 먹지 말 것이나
20.  정한 새는 모두 너희가 먹을지니라
21.  ○너희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의 성민이라 스스로 죽은 모든 것은 먹지 말 것이나 그것을 성중에 거류하는 객에게 주어 먹게 하거나 이방인에게 파는 것은 가하니라 너는 염소 새끼를 그 어미의 젖에 삶지 말지니라
-----[매튜헨리 주석]------------
모세는 여기에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다음 사실들에 대해 말하고 있다.
Ⅰ.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그들을 특별한 백성으로 고귀하게 하셨는가? 
그들에게는 세 가지 두드러진 특권이 주어졌는데, 그것은 그들의 명예이며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베푸시는 천상의 영적 축복의 상징이다.
1. 여기에는 선택이 나타나 있다. “여호와께서 너를 택하여”(2절). 
그들 자신의 공로 때문이 아니며 하나님께서 그들 중에 당신의 능력과 은총의 풍성함을 크게 하고자 하셨기 때문이다. 
그들 자신이 다른 민족들보다 더 하나님께 헌신하고 순종했기 때문에 그들을 택하신 것이 아니고, 그 분의 은혜로 말미암아 그들이 그렇게 되도록 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그들을 택하셨다. 그리고 믿는 자들도 그렇게 선택되었다(엡 1:4).
2. 여기에는 양자의 결연이 나타나 있다(1절).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자녀니, 그 분에 의해 한 백성을 이루었고, 그 분으로 말미암아 그 백성으로 인정되었으며, 아니 어떤 다른 사람보다도 그를 가까이하는 백성(시 148:14), 즉 그 분의 가족이 되었다.” 
“이스라엘은 내 아들 내 장자라”(출 4:22). 
이는 하나님이 자녀들이 필요하셨기 때문이 아니요, 그들이 고아였으므로 아버지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모든 이스라엘 사람은 참으로 하나님의 자녀요, 그 분의 성품과 애호의 참여자이며, 그 분의 사랑과 축복의 동참자이다. 
“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주셨는고!”(요일 3:1)
3. 여기에는 성화(聖化)가 나타나 있다(2절): “너희는 하나님을 위해 분리되고 성별된 성민이라. 그 분을 섬기기 위해 바쳐졌으며, 그 분의 찬양을 위해 예정되었고, 거룩한 율법에 의해 통치되고, 성막을 통해 은총이 주어지며, 성막과 관계된 거룩한 규례로 말미암아 은혜가 베풀어지는 백성이다.” 
하나님의 백성은 거룩해져야 할 강한 의무를 지고 있다. 그리고 그들이 거룩하게 되었다 할지라도, 그것은 그들을 그렇게 되게 하신 하나님의 은혜 덕분이다. 
여호와께서는 당신 자신을 위해 그들을 성별하시고, 당신을 섬기고 기뻐하도록 자격을 부여하셨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들을 당신을 위해 거룩하게 하셨다.
Ⅱ. 그들은 진지한 특이성을 가지고 그들 자신을 주위에 있는 모든 민족과 어떻게 구별해야 하는가?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그들을 존귀하게 했으므로, 그들은 우상 숭배자들의 미신적인 관습들을 받아들임으로써 스스로를 천하게 만들어서는 안 되며, 그들 자신을 저들과 같이 만듦으로써 저들과 같은 수준에 놓지 말아야 한다. 
“너희는 여호와 하나님의 자녀가 되라”(70인역은 이렇게 되어 있다)는 말은 “너희 자신이 하나님의 자녀가 된 자들답게 행하고, 그 영광을 욕되게 하고 그 관계의 특권을 잃게 하는 행동은 아무것도 행치 말라”는 것이다. 
그들은 다음의 두 가지 사실에서 자신들을 특별히 구별하지 않으면 안 된다.
1. 상(喪)을 당하여. 
“너희는 자기 몸을 베지 말며.” 
이것은 (혹자가 생각하는 바와 같이) 그들의 슬픔을 나타내기 위해서든지, 혹은 피를 흘림으로 지옥의 신들을 진정시키기 위해 장례식에서 몸을 베는 것뿐만 아니라, 바알 선지자들이 한 것과 같이(왕상 18:28) 그들의 신들을 예배하기 위해 자신들의 몸에 상처를 내고 칼로 베는 것이나 그런 따위의 신들을 예배하기 위해 칼로 몸에 흠을 내는 것을 금하고 있다. 
이런 것은 할례의 표시로 그들의 여호와 하나님의 인치심을 그들 몸에 지니고 있는, 그들에게 있어서는 다른 어떤 것보다도 용서할 수 없는 범죄가 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1) 그들은 어떤 경우든지 그들 자신의 몸을 흉하게 만들거나 상해하는 것을 금지당하고 있다. 
이것은 칼을 가지고 놀기 좋아하는 어리석고 부주의하고 고집 센 어린아이들에게 하는 부모의 말과 같이 생각된다. 즉 “자녀들아, 자기 몸을 베지 말라.” 
이는 우리 자신을 부정하라고 요구하는 계명들에 담긴 의도다. 만일 우리가 그 계명들을 바르게 이해한다면 그 계명들이 가지고 있는 참된 의미는 “너 자신을 해치지 말라”는 말로 나타날 것이다. 
그래서 우리를 가로막고 있는 이 섭리의 의도는 역시 우리 자신을 해칠 위험이 있는 것들로부터 우리를 떠나게 하기 위한 것이다. 
우리 자신을 다치게 하지 않기 위해서 우리에게서 칼을 치워 버리자. 거룩한 백성으로서 하나님께 몸을 바친 자들은 자신을 해치는 일은 조금이라도 해서는 안 된다. 몸은 여호와를 위해 있고, 그 분의 뜻에 따라 사용되어야 한다.
(2) 그들은 가깝고 사랑하는 친지들을 잃었다고 지나치게 슬퍼하여 그들 자신의 마음을 혼란케 하거나 괴롭히는 것을 금지당하고 있다.
“너희는 아무리 슬픈 경우에라도 너희 자신을 베고 너희 미간의 털을 자름으로써, 소망 없는 자들과 같이 격분하고, 죽은 자에 대한 슬픔으로 마음이 굳은 사람들 같이 되어, 너희 슬픔을 더욱 악화시키지 않도록 하라”(살전 4:13). 
우리의 친지들의 죽음에 대한 과도한 슬픔을 금하는 율법으로서 이 말씀을 잘 이해한 유대 저술가들의 말로부터 에인즈워드가 여기서 인용하고 있는 구절은 탁월한 것이다. 즉 “만일 너희의 아비(예를 들어)가 죽으면 너희는 너희 몸을 베지 말라.” 말하자면 “너희는 타당한 이상 슬퍼하지 말라. 왜냐하면 너희는 아비 없는 자가 아니며, 크시고 살아 계시고, 영원하시며 거룩하신 축복의 하나님 아버지를 갖고 있는 사람이다.” 
너희는 바로 그 분의 아들이다(1절). 
그러나 “불신자는 (그가 말하는 대로) 자기가 곤궁할 때에 그의 아비가 죽으면, 그를 도울 수 있는 아비가 없게 된다. 그는 나무를 향하여 너는 나의 아비라 하며 돌을 향하여 너는 나를 낳았다(렘 2:27)고 말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는 울고 몸을 베며 털을 깎는 것이다.” 
하나님을 소망하며 천국을 소망하는 우리는 이런 모든 무거운 짐을 그 소망으로써 견뎌 나가야만 한다.
2. 그들은 그들의 음식물에서 특이성을 가져야만 한다. 다음을 관찰해 보자.
(1) 충분히 건강에 유익하고 다른 사람들이 보통 먹는 많은 종류의 고기를 그들은 종교적으로 불결하다는 이유로 삼가지 않으면 안 된다. 
이 율법에 대해서는 레위기 11장 2절에서 자세히 설명되었다. 그것은, 이 말씀과 연관시켜 볼 때, 이스라엘 백성의 특수성을 나타내고자 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왜냐하면 그들이 그것을 준행함으로써, 이웃 민족들과 섞여 살더라도 뚜렷이 구별되어 보이며, 이웃 민족들의 우상 숭배에 물들지 않도록 그들을 보호해 줄 것이기 때문이다.
① 짐승들에 관해서는, 여기에는 그들이 먹도록 허락된 것이 레위기에서보다 더욱 구체적으로 열거되어 있다. 
이는 소위 푸줏간의 고기라고 부르는 것(4절)뿐만 아니라, 비록 하나님의 제단에는 가져올 수 없어도 그들의 식탁에는 허락되어 있으며(12:22 참조) 가나안에 풍부히 있는, “사슴과 노루와 불그스럼한 사슴”(5절) 같은 많은 종류의 사냥 고기가 허락되었으므로, 돼지고기와 산토끼, 그리고 집토끼 고기(이런 것은 모두 그 때는 금지되었으나 지금은 보통 사용되고 있다)를 먹는 것이 제한되었다고 해서 그들이 불평할 이유가 없음을 나타내 보여 주기 위함이었다. 
이 모든 것을 그들이 자유로이 먹도록 허락되었음에도(“동산 모든 나무의 실과를”[창 3:1] 먹을 수 있었던 아담과 같이), 반역의 식욕을 채운다든가 우상에게 영광을 돌린 것이나 우상의 제물에 가담한 것을 먹는 자나 “돼지고기를 먹으며 가증한 물건의 국을 그릇에 담아” 먹는 자(사 65:4)는 용서받을 수 없는 자들이다.
② 물고기에 관해서는, 단지 전반적인 규칙이 주어지고 있다. 
즉 지느러미와 비늘이 없는 것은 무엇이나(갑각류와 뱀장어 그 외에 거머리와 합당한 음식이 아닌, 물에 사는 다른 동물들) “부정하고 금지”된 것들이다(9, 10절).
③ 조류에 관해서는, 일반적인 규칙이 주어져 있지 않다. 
그러나 그들에게 불결할 수 있는 것들이 구체적으로 언급되어 있고, 여기서 금지된 것들 중에 지금 일반적으로 먹는 것은 거의 없거나 전혀 없다. 그러므로 명백하게 금지되지 않은 것은 무엇이나 허락된 것이다(11-20절). 즉 “무릇 정한 새는 너희가 먹을지니라”.
④ 그 밖에 금지된 것들이 있다.
첫째로, 저절로 죽는 어떤 동물의 고기를 먹는 것이다. 
왜냐하면 피가 그 고기에서 분리되어 있지 않고, 율법이 규정하고 있는 의식법상의 부정이 그대로 남아 있을 뿐만 아니라, 그것은 건강에 좋지 아니한 음식이고, 빈민들 외에 우리 중에서는 보통 먹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다.
둘째로, “염소 새끼를 그 어미의 젖에 삶지” 말도록 했다. 
그것을 진미라고 생각하여 그들 자신의 사치를 만족시키기 위해서 그렇게 한다든지 이교도들의 어떤 미신적인 관습을 따라 하기 위해 그렇게 하는 것을 금했다. 
시리아역 성경은 이것을 “너희는 고기 요리와 우유 요리를 함께 먹지 말라”로 해석한다. 즉 이것은 어떤 고기에 버터를 양념으로 발라 먹는 것을 금하는 것이었을 것이다.
(2) 이제 그들의 음식에 대한 이 모든 명령에 관하여,
① 그런 것들은 오직 유대인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이며, 도덕적이라든가 영구적인 것은 아니라는 것이 율법 그 자체에서 명백하다. 왜냐하면 그것이 보편적인 의무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즉 그들 자신은 먹을 수 없는 것을 나그네나 할례는 행하지 않았지만 우상 숭배를 끊고 개종하여 그들 가운데서 살도록 허락받은 사람에게는 줄 수 있었고, 혹은 그들의 나라 안에 상업 관계로 들어오기는 하지만 그 안에 정주할 수는 없는 단순한 이방인에게는 그것을 팔 수 있었기 때문이다(21절). 
이스라엘 사람들이 만질 수도 없는 것을 이방인들이 먹을 수 있었다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의 특수성과 그들이 거룩한 백성임을 나타내는 명백한 실례다.
② 복음에서는 그런 것들은 이제 모두 옛것이요, 폐지된 것이 사실이다. 
“하나님의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나니”(딤전 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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삿14장 ((10-14))

==삼손과 딤나의 여자

1.  삼손이 딤나에 내려가서 거기서 블레셋 사람의 딸들 중에서 한 여자를 보고

2.  올라와서 자기 부모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가 딤나에서 블레셋 사람의 딸들 중에서 한 여자를 보았사오니 이제 그를 맞이하여 내 아내로 삼게 하소서 하매

3.  그의 부모가 그에게 이르되 네 형제들의 딸들 중에나 내 백성 중에 어찌 여자가 없어서 네가 할례 받지 아니한 블레셋 사람에게 가서 아내를 맞으려 하느냐 하니 삼손이 그의 아버지에게 이르되 내가 그 여자를 좋아하오니 나를 위하여 그 여자를 데려오소서 하니라

4.  그 때에 블레셋 사람이 이스라엘을 다스린 까닭에 삼손이 틈을 타서 블레셋 사람을 치려 함이었으나 그의 부모는 이 일이 여호와께로부터 나온 것인 줄은 알지 못하였더라

5.  ○삼손이 그의 부모와 함께 딤나에 내려가 딤나의 포도원에 이른즉 젊은 사자가 그를 보고 소리 지르는지라

6.  여호와의 영이 삼손에게 강하게 임하니 그가 손에 아무것도 없이 그 사자를 염소 새끼를 찢는 것 같이 찢었으나 그는 자기가 행한 일을 부모에게 알리지 아니하였더라

7.  그가 내려가서 그 여자와 말하니 그 여자가 삼손의 눈에 들었더라

8.  얼마 후에 삼손이 그 여자를 맞이하려고 다시 가다가 돌이켜 그 사자의 주검을 본즉 사자의 몸에 벌 떼와 꿀이 있는지라

9.  손으로 그 꿀을 떠서 걸어가며 먹고 그의 부모에게 이르러 그들에게 그것을 드려서 먹게 하였으나 그 꿀을 사자의 몸에서 떠왔다고는 알리지 아니하였더라

10.  ○삼손의 아버지가 여자에게로 내려가매 삼손이 거기서 잔치를 베풀었으니 청년들은 이렇게 행하는 풍속이 있음이더라

11.  무리가 삼손을 보고 삼십 명을 데려와서 친구를 삼아 그와 함께 하게 한지라

12.  삼손이 그들에게 이르되 이제 내가 너희에게 수수께끼를 내리니 잔치하는 이레 동안에 너희가 그것을 풀어 내게 말하면 내가 베옷 삼십 벌과 겉옷 삼십 벌을 너희에게 주리라

13.  그러나 그것을 능히 내게 말하지 못하면 너희가 내게 베옷 삼십 벌과 겉옷 삼십 벌을 줄지니라 하니 그들이 이르되 네가 수수께끼를 내면 우리가 그것을 들으리라 하매

14.  삼손이 그들에게 이르되 먹는 자에게서 먹는 것이 나오고 강한 자에게서 단 것이 나왔느니라 하니라 그들이 사흘이 되도록 수수께끼를 풀지 못하였더라

15.  ○일곱째 날에 이르러 그들이 삼손의 아내에게 이르되 너는 네 남편을 꾀어 그 수수께끼를 우리에게 알려 달라 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너와 네 아버지의 집을 불사르리라 너희가 우리의 소유를 빼앗고자 하여 우리를 청한 것이 아니냐 그렇지 아니하냐 하니

16.  삼손의 아내가 그의 앞에서 울며 이르되 당신이 나를 미워할 뿐이요 사랑하지 아니하는도다 우리 민족에게 수수께끼를 말하고 그 뜻을 내게 알려 주지 아니하도다 하는지라 삼손이 그에게 이르되 보라 내가 그것을 나의 부모에게도 알려 주지 아니하였거든 어찌 그대에게 알게 하리요 하였으나

17.  칠 일 동안 그들이 잔치할 때 그의 아내가 그 앞에서 울며 그에게 강요함으로 일곱째 날에는 그가 그의 아내에게 수수께끼를 알려 주매 그의 아내가 그것을 자기 백성들에게 알려 주었더라

18.  일곱째 날 해 지기 전에 성읍 사람들이 삼손에게 이르되 무엇이 꿀보다 달겠으며 무엇이 사자보다 강하겠느냐 한지라 삼손이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내 암송아지로 밭 갈지 아니하였더라면 내 수수께끼를 능히 풀지 못하였으리라 하니라

19.  ○여호와의 영이 삼손에게 갑자기 임하시매 삼손이 아스글론에 내려가서 그 곳 사람 삼십 명을 쳐죽이고 노략하여 수수께끼 푼 자들에게 옷을 주고 심히 노하여 그의 아버지의 집으로 올라갔고

20.  삼손의 아내는 삼손의 친구였던 그의 친구에게 준 바 되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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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34장[개역개정]

==여호와께서 원수들을 벌하시리라

1.  열국이여 너희는 나아와 들을지어다 민족들이여 귀를 기울일지어다 땅과 땅에 충만한 것, 세계와 세계에서 나는 모든 것이여 들을지어다

2.  대저 여호와께서 열방을 향하여 진노하시며 그들의 만군을 향하여 분내사 그들을 진멸하시며 살륙당하게 하셨은즉

3.  그 살륙당한 자는 내던진 바 되며 그 사체의 악취가 솟아오르고 그 피에 산들이 녹을 것이며

4.  하늘의 만상이 사라지고 하늘들이 두루마리 같이 말리되 그 만상의 쇠잔함이 포도나무 잎이 마름 같고 무화과나무 잎이 마름 같으리라

5.  여호와의 칼이 하늘에서 족하게 마셨은즉 보라 이것이 에돔 위에 내리며 진멸하시기로 한 백성 위에 내려 그를 심판할 것이라

6.  여호와의 칼이 피 곧 어린 양과 염소의 피에 만족하고 기름 곧 숫양의 콩팥 기름으로 윤택하니 이는 여호와를 위한 희생이 보스라에 있고 큰 살륙이 에돔 땅에 있음이라

7.  들소와 송아지와 수소가 함께 도살장에 내려가니 그들의 땅이 피에 취하며 흙이 기름으로 윤택하리라

8.  이것은 여호와께서 보복하시는 날이요 시온의 송사를 위하여 신원하시는 해라

9.  에돔의 시내들은 변하여 역청이 되고 그 티끌은 유황이 되고 그 땅은 불 붙는 역청이 되며

10.  낮에나 밤에나 꺼지지 아니하고 그 연기가 끊임없이 떠오를 것이며 세세에 황무하여 그리로 지날 자가 영영히 없겠고

11.  당아새와 고슴도치가 그 땅을 차지하며 부엉이와 까마귀가 거기에 살 것이라 여호와께서 그 위에 혼란의 줄과 공허의 추를 드리우실 것인즉

12.  그들이 국가를 이으려 하여 귀인들을 부르되 아무도 없겠고 그 모든 방백도 없게 될 것이요

13.  그 궁궐에는 가시나무가 나며 그 견고한 성에는 엉겅퀴와 새품이 자라서 승냥이의 굴과 타조의 처소가 될 것이니

14.  들짐승이 이리와 만나며 숫염소가 그 동류를 부르며 올빼미가 거기에 살면서 쉬는 처소로 삼으며

15.  부엉이가 거기에 깃들이고 알을 낳아 까서 그의 그늘에 모으며 솔개들도 각각 제 짝과 함께 거기에 모이리라

16.  너희는 여호와의 책에서 찾아 읽어 보라 이것들 가운데서 빠진 것이 하나도 없고 제 짝이 없는 것이 없으리니 이는 여호와의 입이 이를 명령하셨고 그의 영이 이것들을 모으셨음이라

17.  여호와께서 그것들을 위하여 제비를 뽑으시며 그의 손으로 줄을 띠어 그 땅을 그것들에게 나눠 주셨으니 그들이 영원히 차지하며 대대로 거기에 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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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준새번역] 사34장

===하나님께서 원수들을 벌하실 것이다

1.  민족들아, 가까이 와서 들어라. 백성들아, 귀를 기울여라. 땅과 거기에 가득한 것들아, 세상과 그 안에서 사는 모든 것들아, 들어라.

2.  주께서 모든 민족에게 진노하시고, 그들의 모든 군대에게 분노하셔서 그들을 진멸시키시려고 하신다. 그들이 살해당하도록 버려 두시기로 작정하셨다.

3.  죽은 자들이 내동댕이쳐져서, 그 시체에서는 악취가 솟아오르며, 홍수처럼 흐르는 피에 산들이 무너져 내릴 것이다.

4.  해와 달과 별들이 떨어져서 가루가 되고, 하늘은 마치 두루마리처럼 말릴 것이다. 포도나무의 잎이 말라 떨어지듯이, 무화과나무의 잎이 말라 떨어지듯이, 하늘에 있는 별들이 떨어질 것이다.

5.  "나의 칼이 하늘에서 흡족하게 마셨으니, 그 칼이 이제 에돔을 칠 것이다. 내가 나의 칼에게, 에돔을 심판하여 진멸시키라고 명하였다."

6.  제물을 잡은 주의 칼이 어린 양과 염소의 피에 흥건히 젖고, 숫양의 콩팥에서 나온 기름이 그 칼에 엉겨붙듯이, 주의 칼이 그들의 피에 흥건히 젖고, 그 기름이 그 칼에 엉겨붙었다. 주께서 보스라에서 그 백성을 희생제물로 잡으시고 에돔 땅에서 그 백성을 크게 살육하신 것이다.

7.  백성이 들소처럼 쓰러질 것이다. 송아지와 황소처럼 쓰러질 것이다. 땅이 핏빛으로 물들고, 흙이 기름에 엉길 것이다.

8.  이 때가 바로, 주께서 복수하시는 날이니, 시온을 구하여 주시고 대적을 파멸시키시는 해, 보상하여 주시는 해이다.

9.  에돔의 강들이 역청으로 변하고, 흙이 유황으로 변하고, 온 땅이 역청처럼 타오를 것이다.

10.  그 불이 밤낮으로 꺼지지 않고 타서, 그 연기가 끊임없이 치솟으며, 에돔은 영원토록 황폐하여, 영원히 그리로 지나가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11.  펠리컨과 고슴도치가 그 땅을 차지하겠고, 부엉이와 까마귀가 거기에서 자리를 잡을 것이다. 주께서 에돔을 '혼돈의 줄'과 '황무의 추'로 재실 터이니, 에돔을 창조 전처럼 황무하게 하실 것이다.

12.  거기에는, 나라를 세울 통치자들이 없을 것이며, 백성을 다스릴 지도자도 없을 것이다.

13.  궁궐이 있던 곳마다 가시나무가 돋아나고, 그 요새에는 쐐기풀과 엉겅퀴만 무성할 것이다. 그 곳은 승냥이 떼의 굴이 되고, 타조들의 집이 될 것이다.

14.  거기에서는 들짐승들이 이리 떼와 만나고, 숫염소가 소리를 내어 서로를 찾을 것이다. 밤짐승이 거기에서 머물러 쉴 곳을 찾을 것이다.

15.  부엉이가 집을 만들어 거기에 깃들고, 그 알을 낳아 까서, 제 몸으로 그늘을 만들어 덮을 것이다. 솔개들도 제 짝과 함께 그리로 모일 것이다.

16.  주의 책을 자세히 읽어 보아라. 이 짐승들 가운데서 어느 것 하나 빠지는 것이 없겠고, 하나도 그 짝이 없는 짐승은 없을 것이다. 주께서 친히 입을 열어 그렇게 되라고 명하셨고 주의 영이 친히 그 짐승들을 모으실 것이기 때문이다. 

17.  주께서 친히 그 짐승들에게 땅을 나누어 주시고, 손수 줄을 그어서 그렇게 나누어 주실 것이니, 그 짐승들이 영원히 그 땅을 차지할 것이며, 세세토록 거기에서 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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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aiah 34  Amplified Bible

==God’s Wrath against Nations

1  Come near, you nations, to hear; and listen, O peoples!

Let the earth and all that is in it hear, and the world and all that comes forth from it.

2  For the Lord is angry at all the nations, And His wrath is against all their armies; He has [a]utterly doomed them, He has given them over to slaughter.

3 So their slain will be thrown out, And the stench of their corpses will rise, And the mountains will flow with their blood.

4 All the host of heaven will be dissolved, And the skies will be rolled up like a scroll; All their hosts [the stars and the planets] will also wither away  As a leaf withers from the vine, And as a fig withers from the fig tree.

5 For My sword is satiated [with blood] in heaven;  Indeed, it will come down for judgment on Edom  And on the people whom I have doomed for destruction.

6 The sword of the Lord is filled with blood [from sacrifices], It drips with fat, with the blood of lambs and goats, With the fat of the kidneys of rams.  For the Lord has a sacrifice in Bozrah (Edom’s capital city)  And a great slaughter in the land of Edom.

7 Wild oxen will also fall with them  And the young bulls with the strong bulls;  And their land will be soaked with blood,  And their dust made greasy with fat.

8  For the Lord has a day of vengeance,  A year of retribution for the cause of Zion.

9  The streams [of Edom] will be turned into pitch,  And its dust into brimstone,  And its land will become burning pitch.

10  The burning will not be quenched night or day;  Its smoke will go up forever.  From generation to generation it will lie in ruins;  No one will ever again pass through it.

11  But the pelican and the porcupine will take possession of it;  The owl and the raven will dwell in it.  And He will stretch over it (Edom) the measuring line of desolation  And the plumb line of emptiness.

12  Its nobles—there is no one there  Whom they may proclaim king—  And all its princes will be nothing.

13  Thorns will come up in its fortified palaces,  Nettles and brambles in its fortified cities;  It will be a haunt for jackals,  An abode for ostriches.

14  The creatures of the desert will encounter jackals  And the [b]hairy goat will call to its kind;  Indeed, [c]Lilith (night demon) will settle there  And find herself a place of rest.

15  There the arrow snake will make her nest and lay her eggs,  And hatch them and gather her young under her protection;  Indeed, the birds of prey will be gathered there [to breed],  Every one with its own kind.  

16 Seek from the book of the Lord, and read:  Not one of these [creatures] will be missing;  None will lack its mate.  For His mouth has commanded,  And His Spirit has gathered them.

17 The Lord has cast the lot for them,  And His hand has divided and apportioned [d]Edom to the wild beasts by measuring-line.  They will possess it forever;  From generation to generation they will dwell in it.

==Footnotes

Isaiah 34:2 Lit put them under the ban.

Isaiah 34:14 Or demon satyr.

Isaiah 34:14 Thought by some to be a female demon associated with the night. 

Isaiah 34:17 Lit it to th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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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레고리의 대표적 예로서 [삼손의 수수께끼], 그안에서 취할 바 올바른 (구속사적)영적 교훈과 회개!!----------

^^^삼손의 수수께끼

세상의 인간 관계는 강자와 약자라는 구조로 형성되어 있습니다. 인간관계만 강자와 약자로 형성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동물의 관계도 강자와 약자로 형성되어 있습니다. 굳이 호랑이가 토끼를 잡아먹는 먹이사슬이라는 관계가 아니라 해도 같은 집단에서도 강자와 약자는 뚜렷하게 존재합니다.

강자는 먹는 자, 약자는 먹히는 자입니다. 강자는 지배하는 자, 약자는 지배받는 자입니다. 그러므로 힘없는 약자는 항상 강자에 의해서 빼앗기는 위치에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만약 약자가 강자에게서 뭔가를 얻어낸다면 그것은 이미 강자가 강자의 힘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약자 스스로 강자를 이길 수는 없기 때문에 누군가가 약자를 대신해서 강자를 패배시켰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오늘 본문이 바로 이러한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본문은 삼손의 이야기 중의 하나인 수수께끼 사건입니다. 수수께끼 사건이 일어난 배경은 이렇습니다. 10절에 "삼손의 아비가 여자에게로 내려가매 삼손이 거기서 잔치를 배설하였으니 소년은 이렇게 행하는 풍속이 있음이더라"는 말씀을 보면 삼손의 아비와 삼손이 딤나로 내려가서 결혼을 위한 잔치를 배설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10절에서 그렇게 하는 것이 풍속이었음을 언급한 것을 보면 아마 블레셋 사람들은 신랑이 신부집에 와서 결혼 잔치를 했던 것 같습니다.

결혼 잔치에 블레셋 사람들이 30명의 젊은 사람들을 청해서 삼손의 친구가 되게 합니다. 이런 가운데 삼손이 블레셋 사람들에게 수수께끼를 내게 된 것입니다.

12,13절에 보면 "삼손이 그들에게 이르되 이제 내가 너희에게 수수께끼를 하리니 잔치하는 칠 일 동안에 너희가 능히 그것을 풀어서 내게 고하면 내가 베옷 삼십 벌과 겉옷 삼십 벌을 너희에게 주리라 그러나 그것을 능히 내게 고하지 못하면 너희가 내게 베옷 삼십 벌과 겉옷 삼십 벌을 줄지니라 그들이 이르되 너는 수수께끼를 하여 우리로 듣게 하라"고 말합니다. 즉 삼손은 블레셋 사람들에게 베옷 삼십 벌과 겉옷 삼십 벌을 걸고 내기를 합니다. 그리고 블레셋 사람들은 주저 없이 삼손의 내기를 받아들입니다.

^^^하나님은 왜 우리에게 삼손의 수수께끼를 말씀하십니까?

우리는 이러한 성경의 내용을 보면서 삼손의 수수께끼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알아보기 전에 먼저 생각할 것은, 왜 하나님은 오늘 우리에게 삼손의 수수께끼를 말씀하고 계시느냐는 것입니다. 과연 삼손이 블레셋 사람들과 수수께끼를 가지고 내기를 거는 것이 다만 잔치의 즐거움을 위한 것이었겠습니까? 아니면 수수께끼에 자신이 있었기 때문에 베옷 삼십과 겉옷 삼십을 벌고 싶은 욕심 때문이었을까요?

우리는 삼손이 누구인가를 잘 압니다. 삼손은 자연스런 부부관계에 의해서 태어난 사람이 아닙니다. 자식이 없는 집안에 하나님에 의해서 보냄 받은 삼손입니다. 날 때부터 나실인으로 태어난 사람입니다.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위해서 하나님에 의해서 보냄을 받은 삼손이라면 삼손의 모든 일은 하나님의 일과 연관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즉 하나님에 의해서 일어난 사건이라는 것입니다.

삼손과 사자의 사건도 역시 같습니다. 삼손이 사자를 만난 것은 우연한 사건이 아니라 하나님에 의해서 일으켜진 사건입니다. 그러므로 삼손이 사자를 이긴 것도 역시 하나님에 의해서 되어진 것입니다. 이것을 증명하는 것이 '여호와의 신에게 크게 감동되어'라는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수수께끼 사건도 역시 하나님께서 무엇인가를 가르치고자 하시는 계시의 사건임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계시란 시대와 환경과 문화와 문명의 제약을 받지 않습니다. 다시 말해서 어떤 상황과 문화와 문명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되어 나타나는 것이 계시인 것입니다.

성경의 말씀은 어떤 문화와 문명에서도 동일하게 계시로서 적용됩니다. 비록 성경이 기록된 시대와 상황과 문명이 다르다고 할지라도 우리는 성경에서 그때와 동일한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성경의 비밀이요 신비입니다.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것은 본문의 수수께끼를 단순히 삼손과 블레셋 사람들의 내기로 보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 자신을 그때 그 상황에 있는 블레셋 사람으로 생각해 봅시다. 지금 우리가 삼손에 의해서 그때의 수수께끼를 듣고 있다고 생각하고 이 본문을 생각해야 합니다.

과연 하나님은 왜 삼손을 통해서 그러한 수수께끼를 내는 것입니까? 과연 삼손의 수수께끼에는 어떠한 하나님의 계시가 담겨 있겠습니까?

^^^삼손의 수수께끼는 세상의 그 어떤 지혜를 동원해도 풀 수 없는 것입니다.

14절에 "삼손이 그들에게 이르되 먹는 자에게서 먹는 것이 나오고 강한 자에게서 단 것이 나왔느니라 그들이 삼 일이 되도록 수수께끼를 풀지 못하였더라"는 이것이 삼손이 낸 수수께끼입니다. '먹는 자에게서 먹는 것이 나오고 강한 자에게서 단 것이 나왔다' 이것이 뭐냐는 것입니다. 

사실 문제의 배경을 알고 보면 황당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 문제는 삼손이 딤나의 포도원에서 사자를 죽이고 그 몸에서 꿀을 얻은 사건을 배경으로 한 문제입니다. 즉 삼손 자신의 체험을 문제로 만든 것입니다. 이것을 수수께끼라고 말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삼손에게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모르는 블레셋 사람들로서는 삼손의 수수께끼를 푼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말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삼손의 수수께끼는 세상 그 어떤 지혜를 다 동원해도 풀 수가 없습니다. 세상 법칙에 따른 문제가 아니고 인간의 지식과 상식에서 나온 문제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말한 대로 사자를 죽인 삼손의 체험은 하나님에 의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삼손만이 그것을 체험했습니다. 그러므로 삼손의 수수께끼는 삼손과 같은 체험을 하지 않고서는 풀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성경을 통해서 수수께끼의 답을 알고 있기 때문에 삼손의 수수께끼에 대해서 어렵다는 생각이 없을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삼손의 수수께끼는 문제의 답을 맞추라는 의미로 주어진 것이 아닙니다. 만약 문제의 답을 맞추는 것이 중요하다면, 본문은 계시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누구나 성경을 보면 답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누구나 알 수 있는 답을 계시라고 말할 수는 없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당시 블레셋 사람들도 결국 삼손의 아내를 이용해서 답을 알아내게 됩니다. 그러나 그들이 수수께끼의 답을 알았다고 해서 달라진 것이 무엇입니까? 답은 알았지만 그들은 여전히 수수께끼에 담겨 있는 의미는 알지 못합니다. 여전히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블레셋 사람일뿐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수수께끼에 담겨 있는 하나님의 계시를 발견하는 것이 오늘의 답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만약 우리가 삼손의 수수께끼에서 '답은 사자와 꿀이다'는 것으로 끝난다면 우리 역시 답을 알았으나 하나님은 알지 못한 블레셋 사람과 다를 바가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수수께끼의 답이 사자와 꿀이라는 것이 오늘 우리 자신들과 무슨 상관이 있겠습니까?

문제의 답은 사자와 꿀이 아닙니다. 바로 우리의 현실이 어떤가가 수수께끼에 담겨 있는 것입니다. 그것을 발견하는 것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수수께끼를 말씀하신 이유입니다.

^^^삼손의 수수께끼는 이스라엘이 그 어떤 강한 존재에 붙들려 있다는 현실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과연 수수께끼는 우리들의 어떤 현실을 보여주고 있습니까?  "당시 이스라엘에게 사자와 같은 강한 존재는 누구입니까?. 

이스라엘을 붙들고 지배하고 다스리는 강한 사자와 존재는 블레셋입니다. 그 강한 존재를 여호와의 신에 감동한 삼손이 죽입니다. 이 사건을 통해서 우리에게 말씀하는 것은 이스라엘에게 있어서 진심으로 강한 존재는 블레셋이 아니라 바로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을 붙들고 있는 블레셋이 강한 존재가 아니라 그 블레셋을 이기시는 하나님이 진심으로 강한 존재이며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강하심으로 인해서 꿀을 얻어먹는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 삼손과 사자 사건의 내면에 감추어져 있는 의미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삼손은 바로 이러한 사건의 의미를 아는 자로서 수수께끼를 내는 것입니다. 즉 너희가 이스라엘을 붙들고 있다고 해서 너희가 강한 자가 아니라 하늘에 계시는 하나님이 강한 분이시고 하나님에 의해서 너희가 망하고 그로 인해서 이스라엘이 산다는 것을 암시하는 수수께끼인 것입니다.

이것을 삼손의 수수께끼 문제를 통해서 살펴보겠습니다. 수수께끼 문제 그대로를 다시 보자면 '먹는 자에게서 먹는 것이 나오고 강한 자에게서 단 것이 나온다'는 것입니다. 

이 문제를 보면 먹는 자에게서 먹는 것이 나온다는 것과 강한 자에게서 단 것이 나온다는 것으로 구분됩니다. 즉 동일한 의미의 구절이 반복되어 있는 것입니다. 즉 먹는 자와 강한 자가 같은 의미로 쓰여지고 있고, 먹는 것과 단 것도 같은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앞서 말한 대로 삼손의 체험에서 강한 자는 사자로 등장하지만 이스라엘의 상황에서는 블레셋입니다.

그런데 강한 자에게서 단 것이 나왔습니다. 즉 삼손이 사자에게서 꿀을 얻었습니다. 

이것이 가능한 일입니까? 이것이 가능하려면 사자가 죽어야 합니다. 죽은 몸에서 꿀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먹는 자에게서 먹는 것이 나온다는 것은 강한 자가 패배한 것을 의미하고 있는 것입니다. 강한 자에게서 단 것이 나온다는 것도 역시 강한 자가 패배했을 때의 결과를 말해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수수께끼가 블레셋 사람들에게 전해졌다는 것은 그들의 멸망을 의미하는 것이고, 승리자는 바로 하나님이신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결국 이것은 이스라엘의 현실을 담고 있는 수수께끼였습니다. 블레셋에게 붙들려 있는 이스라엘의 현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현실에서 이스라엘에게 있어서 진심으로 강한 자는 그들을 붙들고 있는 블레셋이 아니라 곧 하나님이심을 계시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블레셋은 자신들이 강한자인줄로 알고 살아갑니다. 자기 힘을 믿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은 삼손의 배후에 강하신 하나님이 계심을 보고 살아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다만 자신들을 붙들고 있는 블레셋을 강한 존재로 보고 살아갑니다. 즉 이스라엘이나 블레셋이나 같은 수준이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을 붙들고 있는 것은 하나님이었는데 이스라엘은 다만 블레셋만을 보고 살았던 것입니다.

^^^세상의 현실 역시 어떤 강한 존재에게 붙들려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면 이제 삼손의 수수께끼가 오늘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를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이스라엘을 붙들고 있던 강한 자가 누구인가를 물었던 것처럼 '오늘 우리 자신을 붙들고 있는 강한 존재가 누구인가?'를 묻겠습니다. 누가 여러분에게 강한 자입니까? 여러분을 붙들고 있는 존재가 누구라고 생각하십니까?

세상은 여러분보다 더 강한 자가 여러분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그가 누구입니까? 회사의 상사입니까? 아니면 권력이 있는 자입니까? 여러분 자신이 누구에게 매어 있는가를 알려면 여러분의 행동에 무엇에 의해서 결정되고 움직여지는가를 생각하시면 됩니다.

사람의 행동은 자신의 유익을 위해서 움직입니다. 행동의 모든 기준이 자기 이익이라는 것입니다. 사람이 체면 때문에 하고 싶은 것을 못하는 것도 역시 자신에게 매어있기 때문입니다. 상사에게 굴복하는 것도 결국 그것이 자신에게 득이 되기 때문에 싫으면서도 굴복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사람은 자기 자신에게 매어 산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강한 자가 바로 자기 자신입니까? 그것은 아닙니다.  강한 자란 바로 자기 이익을 위해서 살아가도록 하는 사고방식의 주인입니다. 그가 바로 사단입니다. 

수차에 말씀을 드렸지만 사람이 선악과를 따먹고자 한 마음이 든 것은 선악과를 먹으면 하나님 같이 된다고 하는 사단의 유혹 때문입니다. 하나님같이 된다는 것이 곧 자신에게 좋은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을 말합니다. 다시 말해서 사단의 유혹에 빠진 인간은 하나님의 말씀을 위해서 존재한다는 사고방식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위해서 살아가야 한다는 사고방식으로 살아가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신을 위해서 산다는 것이 곧 사단에게 붙들려 있다는 증거인 것입니다. 결국 사람은 사단에게 붙들려 있고 사단이 강한 자인 것입니다.

세상의 현실에 대해서 말씀을 드린 바 대로, 보이는 현실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또 다른 현실이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과 사단과의 싸움입니다. 사단은 인간으로 하여금 자기를 위해서 살도록 합니다. 그것이 곧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계를 방해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창조하신 원래의 세상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피조물이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단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의 영광을 위해서 살아가라고 합니다. 결국 사단의 지배를 받은 인간은 자기를 위해서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삼손의 수수께끼는 우리를 붙드신 강한 분은 바로 하나님임을 말합니다. 이것을 이해한 자가 하나님이 창조하신 새로운 세상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삼손의 수수께끼는 진실로, 실지로 강하신 분은 하나님이심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우리 역시 같습니다. 지금 이 시간 삼손의 수수께끼가 우리에게 말하고 있는 것은 강하신 분은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승리하시고 하나님에 의해서 우리를 붙들고 있는 강한 자가 패배를 당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바라보고 의지할 분은 오직 하나님이지 그 어떤 것도 아님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들의 삶은 진심으로 강하신 하나님을 보지 않고 살아갑니다. 그저 나보다 돈있고 권력있으면 강한자로 여깁니다. 그리고 그에게 잘보여서 득을 보려고 합니다. 자신에게 득이 되는 길을 가려다 보니까 결국 하나님에 의해서 주어진다는 것에 눈을 돌리지 않습니다. 보이는 것이 전부인 것으로 여겨버리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수수께끼의 의미를 알 수 없습니다. 마치 블레셋 사람들과 같습니다. 즉 보이지 않는 세계에 대해서 관심이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세상입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에 새로운 세상을 만드셨습니다. 그것이 곧 마귀에게 승리하시고 자기 백성을 구출하신 것입니다. 자기를 위해서 사는 사고방식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기를 원하는 사고방식으로 바뀐 자들이 있는 것입니다. 이들이 바로 성령이 임한 자들이며 신자입니다. 그러므로 신자된 자는 보이지 않는 영적 전쟁에 대해서 마음을 두고 살아갑니다. 자신의 이익과 기쁨을 위해서 살아가는 것이 곧 마귀의 사고방식임을 순간순간 깨닫습니다. 그리고 스스로 마귀를 이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승리하시고 나를 건지신다는 것을 믿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 삼손의 수수께끼입니다.

우리의 구출은 그리스도로 이루어졌습니다. 가장 약하게 보이신 분이 가장 강하신 분으로 증거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의지할 분은 죄악 가운데 있고 실패한 우리를 위해서 피흘리신 그리스도입니다. 세상의 그 무엇도 강한 것으로 여기지 말고 오직 그리스도를 강하신 분으로 여기고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삶을 살아가라는 것이 수수께끼가 선포하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의 것이 나를 강하게 한다는 사고방식으로 사는 사람은 삼손의 수수께끼를 이해할 수 없습니다. 삼손의 수수께끼는 보이지 않는 나라,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사랑하고 살아가는 새로운 나라를 말하기 때문입니다.

====[이단 신천지 교리 상담] 알레고리적 해석과 짝 교리

**알레고리 : 표면적인 이야기나 묘사 뒤에 어떤 정신적·도덕적 의미가 암시되어 있는 비유로서, 수수께끼, 풍유, 은유로도 번역,    

...어떤 교훈을 드러내고자 할 때,  간접적으로 말하되 그 참된 속성과  의미를 직관적으로  깨달아  알게 하여 주는 비유와는 달리, 독자의 상상에 맡겨 호소하는 소통 방법의 일종 

...때때로 소통하려는 저자의 의미와는 아주 다른 의미로 해석되어 버릴 소지가 다분히 있는 소통법이라 할 수 있음

...우화는 [나름대로의 교훈을 담고 있는] 일종의 알레고리라 고도  할 수 있을 것.

...대표적으로는 삼손의  개인적 체험 통해 만들어 낸 수수께끼를 예로 들수 있다.(삿14:14...먹는 자에게서 먹는 것이 나오고 강한 자에게서 단 것이 나왔다...<이것이 무엇이냐 = 이것의 본래적  의미는, 더 나아가   영적 의미는 무엇이냐>) 

...신약성경 막13장에는 바닷가에서 베푼  예수님의 강화는 거의 비유가 아니면 말씀하지 않으셨다고 했으며(분명히 무엇에 대한 말씀인지 전제해 주심으로써 마음을 열어 듣고 믿기 원하는 자들은 누구나 알아들을 수 있도록 친절히 가르쳐 주셨다), 전형적인 알레고리에 속하는 성경 기사로는 삼손의 수수께끼가 대표적인 예가 있는데, 사실적  사건과 상황에 대해 실존적 의미보다  영적 의미를 극대화 하여 해석하려는 시도가 알레고리적 해석이라 할 수 있을 것...  

**개신교의 주된 성경해석법은 역사적-문법적-비평적 해석의 바탕 위에서 전개되는 모형론<유형론>적 구속사적 해석 관점인데 반해,  가톨릭의 성경해석의 주된 방법론은  알레고리적 성경해석법을 채택하고 있음..., 

**이 알레고리적 해석법은 본래, <플라톤철학의 우의적 접근법에 정통한 사람으로서>  초기 교회의 교부 오리겐이 헬라철학세계에 속한 이들을 구원으로 인도하기 위해  (철학적 접근방법과는 다른 기독교 나름의..<사실상 바울사도의 영적 성경해석법을 충실히 차용하고 있었다고도 보여지기도 함>)  독특한  성경해석법의 일환으로 사용했었으나(오리겐의 저서는 거의 6천여권에 달했었음)  치우친  나머지<실재하는 구약성경속의 사건들을  그 영적 의미만을 강조하면서 비실재화 하는 오류 + 성삼위일체간의 차이성 인정하는 오류..??>때문에 니케아종교회의에서  이단으로 규정되어 모든 서적이 불살라졌음... 주로 한편, 작금의 이단에서 이 알레고리적 성경해석을 주로 사용하고 있는 이유는 [영적 의미 해석에 뛰어나다는 이유로] 교주 개인의 신격화에 용이하기때문임(심지어 "이만희는 보혜사다"라고 주장.)

=====[이단타파] 교리상담-5 "말씀의 짝이 있다고?"..... 김평강 컬럼리스트...2020-1/8

신천지는 1952년에 번역된 개역한글 버전만 성경책으로 인정하고 다른 번역버전을 일절 사용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이만희가 하나님으로부터 계시받아 먹은 책이 <개역한글성경의 요한계시록>이라는 이유때문입니다.

개역한글성경은 부정확한 번역과 시대에 맞지않는 용어사용 등이 여러 곳에서 드러나 오늘날에는 거의 사용하지 않고 있는데, 신천지에서만 유독 고집하고 있는 이유는 잘못되거나 애매모호한 번역을 악용하여 본래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고자 하는 의미를 왜곡시켜 이만희를 신격화하려는 사악한 의도가 숨겨있습니다.

대표적인 왜곡 구절이 이사야서 34:16 입니다. 소위 "말씀에 짝이 있다"며 대한민국에서 비유풀이로 방구 깨나 뀐다는 모든 사이비들이 즐겨 사용하는 구절인데, 말씀의 짝을 찾아 비밀을 풀어야 하며 그 짝을 찾아 푼 사람이 바로 자기이므로 자기한테 와야만 구원을 받는다는 미혹의 좋은 소재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말씀에 짝이 있다”는 교리는 사이비 이단들 뿐 아니라, 한 때 정통교회 목회자들도 설교시간에 자주 인용하곤 하던 내용이었는데, 그에 대한 바른 해석을 가르치지 않아 많은 성도들이 잘못 알고 있는 실정입니다. 특히 신천지는 한술 더 떠, "그 짝의 실체가 있다"면서 비유풀이와 연결시키기 때문에 상담하면서 사34:16 이 말씀의 짝이 있다는 의미가 아니라는 것만 확실히 깨닫게 해주면 매우 효과적입니다.

===상담의 순서 및 핵심

먼저 신천지에서 사용하는 개역한글 버전의 이사야 34장 전체를 통독한 뒤, 사34:16의 '이것들이'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집중적으로 설명합니다. 특히 바로 앞에 나오는 11~15절을 자세히 읽어본 후 뒤이어 나오는 "16절의 <이것>이 말씀을 가리키는 것인지, 짐승을 가리키는 것인지"를 분별하느냐에 따라 상담의 성공이 좌우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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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분별의 키워드는 바로 뒤에 나오는 17절의 “그것들을 위하여 제비를 뽑으시며 친수로 줄을 띠어 그 땅을 그것들에게 나눠 주셨으니 그것들이 영영히 차지하며 대대로 거기 거하리라”라는 말씀에 있는데, 문맥상 16절의 “이것들”이 17절의 “그것들”과 동일하므로 17절의 “그것들”을 말씀으로 해석하게 되면 말씀을 제비뽑고 줄을 띄며 나눠 주게되는 이상한 의미가 되버립니다.

따라서 '이것들이', '그것들을'이라는 표현은 성경말씀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고, 앞에 나오는 예언(11-15절)에 기록된 짐승들이 하나도 빠짐없이 후일에 짝을 이루어 그 땅(에돔)을 차지하게 되리라는 의미입니다.

또한 34:8부터 에돔에 관한 예언의 말씀을 하시다가 마지막 부분에 하신 것이므로 “모든 짐승을 에돔 땅으로 불러모아 그들의 소굴(영역)이 되게 하실 것”이라는 경고의 말씀인 것입니다. 즉 '페트라(Petra)'라고 부르는 견고한 요새지역에 살고있는 에돔이 심판받아 승냥이와 이리가 우글거리고, 부엉이와 솔개가 짝을 이루어 둥지를 틀듯이 황량하게 될 것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래야 10절의 “ ...세세에 황무하여 그리로 지날 자가 영영히 없겠고” 말씀과 연결되면서 하나님의 메시지가 올바로 전해지게 됩니다.

((에돔이 거주하던 페트라의 모습. 도시전체가 바위로 만들어진 둥지와 같다. 성안으로 들어가는 길은 오로지 한 곳 뿐이었고 그 길도 겨우 두 세사람만이 지나갈 수 있을 정도로 좁다고 한다. 에돔은 그들의 수도가 그처럼 적이 공격하기 어렵고 방어하기 유리한 지형이라는 사실을 믿고 교만을 떨다가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된 것이다.))

==신천지 교재

이처럼 자세히 읽지않고 개역한글성경의 '짝' 부분을 읽어보면 정말로 말씀에 짝이 있는 것처럼 착각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신천지는 이 구절을 근거로 하나님의 말씀에는 짝이 있다면서, 그 짝을 찾아 맞춰야 비밀을 알 수 있다고 미혹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만희 교주가 지은 <성도와 천국> 26쪽과 <감추었던 만나> 16쪽에 그 내용에 대해 가르치고 있습니다.

==정리하기

이 구절의 바른 의미는, 이사야 34:11-15에서 황무한 에돔땅에 수많은 동물들이 짝을 이루며 살게 될 것이라고 예언하고, 하나님께서 그 짐승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에돔 땅으로 불러모아 그들의 소굴(영역)이 되게할 것이라는 경고(예언)의 말씀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짐승들(11-15에 나오는)로 하여금 저주 받은 땅 에돔에 살게 하기위해 제비를 뽑으시기까지 확실하게 예언을 이루실 것이라는 의미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만일 신천지식으로 그것들을 말씀으로 해석하면 전혀 문맥상 맞지않고 이상하게 변질되어 34장 1절부터 나오는 하나님의 에돔에 대한 심판계획이 왜곡되고 마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원어를 충실하게 번역한 최신 번역성경으로 보면 더욱 확실하게 알 수 있습니다.

==장막성전 출신 다른 사이비이단들의 짝 교리

그런데 이러한 성경번역의 모호함을 이용하여 성경의 짝을 찾아 비유와 비사를 알아야만 구원이 있다고 주장하는 사이비교주가 이만희 외에도 더 있습니다. 이만희 교주와 걸어온 길이 똑같은 (박태선 전도관→과천장막성전→각자 개업) 김풍일 前교주와 구인회 교주도 똑같은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같은 곳에서 배워서 자기 것인 것처럼 써먹고 있기 때문입니다. ↓ 

【주】 김풍일에 대해서는 아래 국민일보 기사 참조

대한예수교장로회(예장) 합동(총회장 전계헌 목사)이 임보라(섬돌향린교회), 김성로(춘천한마음교회) 목사, 이인규(감리교 권사)씨에 대해 참여 및 교류를 금지하고 김풍일씨, 정동수(사랑침례교회) 목사에 대해선 1년간 예의 주시하기로 결의했다. 스웨덴의 기독교 신비운동가 임마누엘 스베덴보리(Emanuel Swedberg)는 이단으로 규정했다.

이대위는 “김풍일씨가 7년 전 회개하고 사과문을 낸 후로 자신의 이단성 있는 교리를 수정했으며 자신의 교리 책자를 폐기하고 판매 금지했다고 해명했지만 이 같은 문제들이 분명하게 밝혀 질 때까지 그에 대한 판단을 유보하고 예의 주시하기로 한다”고 보고했다. [출처] - 국민일보

즉 말씀의 짝교리가 신천지의 전유물이 아니고 신천지보다 먼저 개업한 김풍일과 구인회도 토씨 하나 다르지 않은 교리를 사용하고 있다는 자료를 보여주면서 신천지의 짝교리가 잘못된 것임을 깨닫게 해줍니다.

이 주제의 상담을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이사야 34:16의 <이것들>이 말씀이 아니라 짐승이라는 것을 납득시키는 일입니다. 따라서 미리 이사야 34장을 A4용지에 큰 글씨로 복사하여 준비한 다음, 상담자와 피상담자가 번갈아 읽어가며 설명하면 효과적입니다. 짝교리가 잘못 된 것임을 깨닫게 되면 신천지가 자랑하는 비유풀이 교리도 허구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위 상담내용을 좀 더 깊이 들어가자면,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주변열방의 죄악으로 인하여 분노하시는데 특히 에돔은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 처음 들어갈 때부터 하나님의 계획에 적대적이었기 때문에(민 20:14~21), 하나님께 더 준열한 심판을 받게 됩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진노가 에돔에 임하게 되고 에돔은 당아와 고슴도치, 부엉이 까마귀, 시랑과 타조 등이 그 땅을 차지하는 황무한 땅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심판에 에돔사람들은 코웃음을 치는데, 이에 하나님은 ‘사람은 살 수 없고, 동물들이 짝을 이루며 살게 된다"는 말씀으로 에돔의 멸망을 강하게 선포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사야 34:16의 ‘짝’은 말씀의 짝이 아니라 앞서 언급힌 짐승들이 빠진 것이 없이 모두 짝이 있을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신천지 상담초기에는 이 주제가 매우 효과적이었으며 신천지도 딱히 반증할 꺼리가 없어서인지, 최근에는 가르치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과거 자료를 바탕으로 적극적으로 상담에 임하면 당장 회심이 되지 않더라도 나머지 상담과정이 순조롭게 진행될 수 있습니다.

개인적인 경험이긴 하지만, 상담과정에서 이런 경우가 있을 수 있습니다. 즉 언어분별력이 현저히 떨어져 누가 뭐래도 16절 한 절만 보겠다거나, 도무지 짐승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이유는 신천지가 자기들의 거짓이 드러나는 것이 두려워 “오직 개역한글 경만이 무오한 번역”이라고 교육시켰기 때문인데, 이 경우는 필자의 다른 글(성경이 우리에게 오기까지)을 인용하여 설명하면서 개역한글버전이 완전무결한 번역이 아니라는 인식을 심어주어야 합니다.

그래도 안되는 경우는 상담자가 그 영혼을 위해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실제로 비유풀이에 미혹되어 오직 신천지만이 진리라는 프레임에 갇혀 한발짝도 움직이지 않으려는 신천지인들이 의외로 많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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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217 대신하여 드리는 회개기도(단9:3~15)_
다니엘, 대속, 대신 회개기도, 대신 회개기도의 효과, 모세, 스데반, 예수님
정말 성경에도 누군가가 대신 기도하고 대신 회개한 사례가 있는 것일까? 그리고 만약 그런 일이 있었다면 누가 그러한 기도를 드렸으며, 그 결과는 어떠했던 것일까?
  성경을 통틀어 대신 기도하고 대신 회개했던 사례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그리 많은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그 기도의 위력은 대단했다. 대표적인 사례를 고르라고 한다면, 구약시대 때에는 모세와 다니엘이 드린 대신 회개기도가 있으며, 신약에 와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스데반이 드린 대신 회개기도 있다. 그렇다면 이들은 과연 무엇 때문에 대신 기도를 했으며, 그렇게 기도한 결과는 어떠했던 것일까?
  먼저, 다니엘 9장에 나오는 다니엘의 회개기도의 경우를 살펴보자(단9:3~15). 
다니엘은 B.C.605년 바벨론에 의해 제1차포로로 끌려간 소년이었다. 당시 그의 나이는 15세였다. 그런데 그가 대신 회개기도를 드리던 때는 그로부터 많은 세월이 흘러간 뒤였다. B.C.539년 그가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간지 벌써 66년이 지나고 있었다. 그때 그는 바벨론을 무너뜨린 메대(메디아)와 바사(페르시아)제국의 제 3대총리 중 수석총리로 일하고 있었는데, 바로 그때 그는 자기의 조상인 이스라엘 민족이 범죄한 것에 대해 대신 회개하며 대신 기도하였던 것이다.
  사실 그가 그렇게 굳이 기도할 필연적인 이유는 없었다. 왜냐하면 자신이 직접 죄를 지은 것도 아니고 자신의 조상들이 지은 죄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제 그는 메대와 바사제국의 수석총리가 되었으니 편안한 노후가 보장되어 있는 상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는 그는 하나님 앞에 자복하며 금식하며 눈물로 회개기도를 드린다.
  그는  왜 그런 기도를 드렸을까? 자기 민족에게 그때까지도 여전히 들고 계신 하나님의 징계의 팔을 중단키시고 싶어서였을까? 아니면 회복시켜주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바라는 마음에서였을까? 아니면 자기 민족을 사랑하는 충정심에서 그렇게 한 것일까? 틀린 것은 아니지만 정확한 해답은 이렇다. 다니엘서 9장 2절에 보니, 다니엘은 그때 예레미야서를 읽고 있었다. 그런데 거기에 "예루살렘의 황폐함이 70년만에 그치리라(렘25:11~12, 렘29:10)"는 약속의 말씀이 들어 있었던 것이다. 이제 약속의 때를 얼마남겨두지 않았지만 그는 하나님의 약속이라도 누군가 기도해야 성취된다는 것을 알았기에(겔36:37), 그가 대신하여 회개기도하며 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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