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왕하23장 [190. 성령이여 강림하사(1-3)][545.이 눈에 아무 증거 아니 뵈어도(4-22)].. [463. 신자되기 원합니다] [487.어두움후에빛이오며]
@샵바트=안식일שַׁבָּת<쉰(우)-베이트(중)_타브>=쉬다/멈추다/안식하다(שָׁבַת, 샤밧) ..이쉬<알렙-요드-쉰(우)...진리/말씀/불/빛..>, CJ께로 돌이킴으로써 옛사람을 끝냄=곧 십자가 적용=+하다쉬<헤이트-달렛-쉰(우)>의 현존[=하다쉬카..<헤이트-달렛-쉰(우)-쿠프>의!! 새로운 삶(매일-매순간 이루는바 영생의 날(=욤)-영생의 매순간) 살기 = 거듭난 실존이로되!!, 이 땅 걷는 인생이라..매순간 혼의 구출이 필수적인바, "네샤마 하임"곧, 주예수님 이름부름으로 들이마실바, 그분의 생명 생기 순환이 반드시 필요--매일이 바로 그렇게 영위됨으로 인해"하_욤"을 살게 되는바, 바로 "Q의 참생명으로 살아낸" 그 날들과 마음판에 새겨진 바 "주관적 다바르"를 카운트 하실것!! ..
@여호아하스< יְהֹֽואָחָז֙..요드-헤이-바브(상)_알렙-헤이트-자인>..여호와의 생명-인격으로, 그분 삶..부활생명의 영께서 빚어 다루심.. @엘리아김<אֶלְיָקִ֣ים..알렙-라멛-요드_코프-요드-멤> ::전능 Q의 목양해내신바 참제자, 그분의 소망을 그대로 따름..-->@여호야김<יְהֹויָקִ֑ים..요드-헤이-바브(상)_요드-코프-요드-멤>..여호와의 생명-인격으로 사는바, 그분의 소망을 그대로 따름
===요시야가 이방 예배를 없애다 1. 왕이 보내 유다와 예루살렘의 모든 장로를 자기에게로 모으고 2. 이에 왕이 여호와의 성전에 올라가매 유다 모든 사람과 예루살렘 주민과 제사장들과 선지자들과 모든 백성이 노소를 막론하고 다 왕과 함께 한지라 왕이 여호와의 성전 안에서 발견한 언약책의 모든 말씀을 읽어 무리의 귀에 들리고 3. 왕이 단 위에 서서 여호와 앞에서 언약을 세우되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여호와께 순종하고 그의 계명과 법도와 율례를 지켜 이 책에 기록된 이 언약의 말씀을 이루게 하리라 하매 백성이 다 그 언약을 따르기로 하니라 4. ○왕이 대제사장 힐기야와 모든 부제사장들과 문을 지킨 자들에게 명령하여 바알과 아세라와 하늘의 일월 성신을 위하여 만든 모든 그릇들을 여호와의 성전에서 내다가 예루살렘 바깥 기드론 밭에서 불사르고 그것들의 재를 벧엘로 가져가게 하고 5. 옛적에 유다 왕들이 세워서 유다 모든 성읍과 예루살렘 주위의 산당들에서 분향하며 우상을 섬기게 한 제사장들을 폐하며 또 바알과 해와 달과 별 떼와 하늘의 모든 별에게 분향하는 자들을 폐하고 6. 또 여호와의 성전에서 아세라 상을 내다가 예루살렘 바깥 기드론 시내로 가져다 거기에서 불사르고 빻아서 가루를 만들어 그 가루를 평민의 묘지에 뿌리고 7. 또 여호와의 성전 가운데 남창의 집을 헐었으니 그 곳은 여인이 아세라를 위하여 휘장을 짜는 처소였더라 8. 또 유다 각 성읍에서 모든 제사장을 불러오고 또 제사장이 분향하던 산당을 게바에서부터 브엘세바까지 더럽게 하고 또 성문의 산당들을 헐어 버렸으니 이 산당들은 그 성읍의 지도자 여호수아의 대문 어귀 곧 성문 왼쪽에 있었더라 9. 산당들의 제사장들은 예루살렘 여호와의 제단에 올라가지 못하고 다만 그의 형제 중에서 무교병을 먹을 뿐이었더라 10. 왕이 또 힌놈의 아들 골짜기의 도벳을 더럽게 하여 어떤 사람도 몰록에게 드리기 위하여 자기의 자녀를 불로 지나가지 못하게 하고 11. 또 유다 여러 왕이 태양을 위하여 드린 말들을 제하여 버렸으니 이 말들은 여호와의 성전으로 들어가는 곳의 근처 내시 나단멜렉의 집 곁에 있던 것이며 또 태양 수레를 불사르고 12. 유다 여러 왕이 아하스의 다락 지붕에 세운 제단들과 므낫세가 여호와의 성전 두 마당에 세운 제단들을 왕이 다 헐고 거기서 빻아내려서 그것들의 가루를 기드론 시내에 쏟아 버리고 13. 또 예루살렘 앞 멸망의 산 오른쪽에 세운 산당들을 왕이 더럽게 하였으니 이는 옛적에 이스라엘 왕 솔로몬이 시돈 사람의 가증한 아스다롯과 모압 사람의 가증한 그모스와 암몬 자손의 가증한 밀곰을 위하여 세웠던 것이며 14. 왕이 또 석상들을 깨뜨리며 아세라 목상들을 찍고 사람의 해골로 그 곳에 채웠더라 15. ○또한 이스라엘에게 범죄하게 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이 벧엘에 세운 제단과 산당을 왕이 헐고 또 그 산당을 불사르고 빻아서 가루를 만들며 또 아세라 목상을 불살랐더라 16. 요시야가 몸을 돌이켜 산에 있는 무덤들을 보고 보내어 그 무덤에서 해골을 가져다가 제단 위에서 불살라 그 제단을 더럽게 하니라 이 일을 하나님의 사람이 전하였더니 그 전한 여호와의 말씀대로 되었더라 17. 요시야가 이르되 내게 보이는 저것은 무슨 비석이냐 하니 성읍 사람들이 그에게 말하되 왕께서 벧엘의 제단에 대하여 행하신 이 일을 전하러 유다에서 왔던 하나님의 사람의 묘실이니이다 하니라 18. 이르되 그대로 두고 그의 뼈를 옮기지 말라 하매 무리가 그의 뼈와 사마리아에서 온 선지자의 뼈는 그대로 두었더라 19. 전에 이스라엘 여러 왕이 사마리아 각 성읍에 지어서 여호와를 격노하게 한 산당을 요시야가 다 제거하되 벧엘에서 행한 모든 일대로 행하고 20. 또 거기 있는 산당의 제사장들을 다 제단 위에서 죽이고 사람의 해골을 제단 위에서 불사르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왔더라 ===요시야 왕이 유월절을 지키다 21. ○왕이 뭇 백성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이 언약책에 기록된 대로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유월절을 지키라 하매 22. 사사가 이스라엘을 다스리던 시대부터 이스라엘 여러 왕의 시대와 유다 여러 왕의 시대에 이렇게 유월절을 지킨 일이 없었더니 23. 요시야 왕 열여덟째 해에 예루살렘에서 여호와 앞에 이 유월절을 지켰더라 ===요시야의 나머지 개혁 24. ○요시야가 또 유다 땅과 예루살렘에 보이는 신접한 자와 점쟁이와 드라빔과 우상과 모든 가증한 것을 다 제거하였으니 이는 대제사장 힐기야가 여호와의 성전에서 발견한 책에 기록된 율법의 말씀을 이루려 함이라 25. 요시야와 같이 마음을 다하며 뜻을 다하며 힘을 다하여 모세의 모든 율법을 따라 여호와께로 돌이킨 왕은 요시야 전에도 없었고 후에도 그와 같은 자가 없었더라 26. ○그러나 여호와께서 유다를 향하여 내리신 그 크게 타오르는 진노를 돌이키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므낫세가 여호와를 격노하게 한 그 모든 격노 때문이라 27.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이스라엘을 물리친 것 같이 유다도 내 앞에서 물리치며 내가 택한 이 성 예루살렘과 내 이름을 거기에 두리라 한 이 성전을 버리리라 하셨더라 ===요시야가 죽다 28. ○요시야의 남은 사적과 행한 모든 일은 유다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29. 요시야 당시에 애굽의 왕 바로 느고가 앗수르 왕을 치고자 하여 유브라데 강으로 올라가므로 요시야 왕이 맞서 나갔더니 애굽 왕이 요시야를 므깃도에서 만났을 때에 죽인지라 30. 신복들이 그의 시체를 병거에 싣고 므깃도에서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그의 무덤에 장사하니 백성들이 요시야의 아들 여호아하스를 데려다가 그에게 기름을 붓고 그의 아버지를 대신하여 왕으로 삼았더라 ===유다 왕 여호아하스 31. ○여호아하스가 왕이 될 때에 나이가 이십삼 세라 예루살렘에서 석 달간 다스리니라 그의 어머니의 이름은 하무달이라 립나 예레미야의 딸이더라 32. 여호아하스가 그의 조상들의 모든 행위대로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더니 33. 바로 느고가 그를 하맛 땅 립나에 가두어 예루살렘에서 왕이 되지 못하게 하고 또 그 나라로 은 백 달란트와 금 한 달란트를 벌금으로 내게 하고 34. 바로 느고가 요시야의 아들 엘리아김을 그의 아버지 요시야를 대신하여 왕으로 삼고 그의 이름을 고쳐 여호야김이라 하고 여호아하스는 애굽으로 잡아갔더니 그가 거기서 죽으니라 35. 여호야김이 은과 금을 바로에게 주니라 그가 바로 느고의 명령대로 그에게 그 돈을 주기 위하여 나라에 부과하되 백성들 각 사람의 힘대로 액수를 정하고 은금을 징수하였더라 ===유다 왕 여호야김 36. ○여호야김이 왕이 될 때에 나이가 이십오 세라 예루살렘에서 십일 년간 다스리니라 그의 어머니의 이름은 스비다라 루마 브다야의 딸이더라 37. 여호야김이 그의 조상들이 행한 모든 일을 따라서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더라 ------- [NASB]제23장
1. Then the king sent, and they gathered to him all the elders of Judah and of Jerusalem. 2. And the king went up to the house of the LORD and all the men of Judah and all the inhabitants of Jerusalem with him, and the priests and the prophets and all the people, both small and great; and he read in their hearing all the words of the book of the covenant, which was found in the house of the LORD. 3. And the king stood by the pillar and made a covenant before the LORD, to walk after the LORD, and to keep His commandments and His testimonies and His statutes with all [his] heart and all [his] soul, to carry out the words of this covenant that were written in this book. And all the people entered into the covenant. 4. Then the king commanded Hilkiah the high priest and the priests of the second order and the doorkeepers, to bring out of the temple of the LORD all the vessels that were made for Baal, for Asherah, and for all the host of heaven; and he burned them outside Jerusalem in the fields of the Kidron, and carried their ashes to Bethel. 5. And he did away with the idolatrous priests whom the kings of Judah had appointed to burn incense in the high places in the cities of Judah and in the surrounding area of Jerusalem, also those who burned incense to Baal, to the sun and to the moon and to the constellations and to all the host of heaven. 6. And he brought out the Asherah from the house of the LORD outside Jerusalem to the brook Kidron, and burned it at the brook Kidron, and ground [it] to dust, and threw its dust on the graves of the common people. 7. He also broke down the houses of the [male] cult prostitutes which [ were] in the house of the LORD, where the women were weaving hangings for the Asherah. 8. Then he brought all the priests from the cities of Judah, and defiled the high places where the priests had burned incense, from Geba to Beersheba; and he broke down the high places of the gates which [were] at the entrance of the gate of Joshua the governor of the city, which [were] on one's left at the city gate. 9. Nevertheless the priests of the high places did not go up to the altar of the LORD in Jerusalem, but they ate unleavened bread among their brothers. 10. He also defiled Topheth, which is in the valley of the son of Hinnom, that no man might make his son or his daughter pass through the fire for Molech. 11. And he did away with the horses which the kings of Judah had given to the sun, at the entrance of the house of the LORD, by the chamber of Nathan-melech the official, which [was] in the precincts; and he burned the chariots of the sun with fire. 12. And the altars which [were] on the roof, the upper chamber of Ahaz, which the kings of Judah had made, and the altars which Manasseh had made in the two courts of the house of the LORD, the king broke down; and he smashed them there, and threw their dust into the brook Kidron. 13. And the high places which [were] before Jerusalem, which [were] on the right of the mount of destruction which Solomon the king of Israel had built for Ashtoreth the abomination of the Sidonians, and for Chemosh the abomination of Moab, and for Milcom the abomination of the sons of Ammon, the king defiled. 14. And he broke in pieces the [sacred] pillars and cut down the Asherim and filled their places with human bones. 15. Furthermore, the altar that [was] at Bethel [and] the high place which Jeroboam the son of Nebat, who made Israel sin, had made, even that altar and the high place he broke down. Then he demolished its stones, ground them to dust, and burned the Asherah. 16. Now when Josiah turned, he saw the graves that [were] there on the mountain, and he sent and took the bones from the graves and burned [them] on the altar and defiled it according to the word of the LORD which the man of God proclaimed, who proclaimed these things. 17. Then he said, "What is this monument that I see?" And the men of the city told him, "It is the grave of the man of God who came from Judah and proclaimed these things which you have done against the altar of Bethel." 18. And he said, "Let him alone; let no one disturb his bones." So they left his bones undisturbed with the bones of the prophet who came from Samaria. 19. And Josiah also removed all the houses of the high places which [were] in the cities of Samaria, which the kings of Israel had made provoking the LORD; and he did to them just as he had done in Bethel. 20. And all the priests of the high places who [were] there he slaughtered on the altars and burned human bones on them; then he returned to Jerusalem. 21. Then the king commanded all the people saying, "Celebrate the Passover to the LORD your God as it is written in this book of the covenant." 22. Surely such a Passover had not been celebrated from the days of the judges who judged Israel, nor in all the days of the kings of Israel and of the kings of Judah. 23. But in the eighteenth year of King Josiah, this Passover was observed to the LORD in Jerusalem. 24. Moreover, Josiah removed the mediums and the spiritists and the teraphim and the idols and all the abominations that were seen in the land of Judah and in Jerusalem, that he might confirm the words of the law which were written in the book that Hilkiah the priest found in the house of the LORD. 25. And before him there was no king like him who turned to the LORD with all his heart and with all his soul and with all his might, according to all the law of Moses; nor did any like him arise after him. 26. However, the LORD did not turn from the fierceness of His great wrath with which His anger burned against Judah, because of all the provocations with which Manasseh had provoked Him. 27. And the LORD said, "I will remove Judah also from My sight, as I have removed Israel. And I will cast off Jerusalem, this city which I have chosen, and the temple of which I said, 'My name shall be there.'" 28. Now the rest of the acts of Josiah and all that he did, are they not written in the Book of the Chronicles of the Kings of Judah? 29. In his days Pharaoh Neco king of Egypt went up to the king of Assyria to the river Euphrates. And King Josiah went to meet him, and when [ Pharaoh Neco] saw him he killed him at Megiddo. 30. And his servants drove his body in a chariot from Megiddo, and brought him to Jerusalem and buried him in his own tomb. Then the people of the land took Jehoahaz the son of Josiah and anointed him and made him king in place of his father. 31. Jehoahaz was twenty-three years old when he became king, and he reigned three months in Jerusalem; and his mother's name was Hamutal the daughter of Jeremiah of Libnah. 32. And he did evil in the sight of the LORD, according to all that his fathers had done. 33. And Pharaoh Neco imprisoned him at Riblah in the land of Hamath, that he might not reign in Jerusalem; and he imposed on the land a fine of one hundred talents of silver and a talent of gold. 34. And Pharaoh Neco made Eliakim the son of Josiah king in the place of Josiah his father, and changed his name to Jehoiakim. But he took Jehoahaz away and brought [him] to Egypt, and he died there. 35. So Jehoiakim gave the silver and gold to Pharaoh, but he taxed the land in order to give the money at the command of Pharaoh. He exacted the silver and gold from the people of the land, each according to his valuation, to give it to Pharaoh Neco. 36. Jehoiakim was twenty-five years old when he became king, and he reigned eleven years in Jerusalem; and his mother's name [was] Zebidah the daughter of Pedaiah of Rumah. 37. And he did evil in the sight of the LORD, according to all that his fathers had done. ======== ..열왕기하 23장 (개요) 본장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 요시야의 선정(善政)의 다행스런 지속, 그리고 그가 시작한 개혁의 전진, 곧 율법의 낭독(1-2), 언약의 갱신(3), 성전 청결(4), 그리고 그의 권력이 미치는 한도 내의 모든 장소에 있는 우상의 각종 유물과 함께 우상과 우상숭배를 근절함(5-20), 엄숙한 유월절 준수(21-23), 마술의 마을 소탕 따위이다(24). 그리고 그는 비상한 열정으로 이 모든 일을 행한다(25). 2. 그의 때아닌 죽음으로 그의 통치는 불행한 종말을 고했다. 이는 예루살렘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가 존속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이다(26-30). 3. 그의 뒤를 이은 그의 두 아들, 여호아하스와 여호야김의 악한 통치로 인해 그의 죽음은 보다 불행한 결과를 초래했다(31-37). ------ 다시 찾은 하나님의 말씀(왕하 23:1-3) 요시야는 하나님에게서 메시지를 받았으나, 예루살렘의 멸망은 막지 못하고 자기의 영혼만을 구원해야 했다. 그러나 그가 하고자 하는 모든 것을 할 수 없다고 절망 가운데 주저앉아서, 자기의 나라를 위하여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고 결심하지는 않았다. 그는 오히려 자기 의무를 다하려고 했고, 그 일을 하나님께 맡겼다. 공적인 개혁 사업은 이미 결의된 사실이었다. 만일 어떤 일이 이미 경고된 그 파멸을 막을 수 있었다면, 그것은 바로 이 일이었음에 틀림없다. 그리고 여기서는 그 개혁 사업을 위한 준비를 엿보게 된다. Ⅰ. 그는 총회를 열었다. 즉 대신들과 장로들과 장관들, 혹은 유대와 예루살렘의 대표자들을 소집하여 “여호와의 전에서”, 제사장들과 선지자들, 곧 일반 사역자들과 특별 사역자들을 총망라하여 함께 모았다. 그래서 그들이 모두 그 일에 개입함으로써, 그 일이 국가적 행사가 되게 했다. 따라서 더욱 국가의 심판을 막을 수 있었다. 그들은 모두 출석하라는 소환을 받았다(1-2절). 그래서 그 사업은 보다 엄숙하게 될 수 있었고, 그들이 모두 그 일을 돕고 조언할 수 있음으로써, 나아가 그 일에 반대했던 자들도 이제는 다른 반대를 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의회란 훌륭한 왕들의 세력과 명예에 피해가 되는 것이 아니라 큰 도움이 된다. Ⅱ. 왕은 이 협의회에서 연설을 하는 대신 그들에게 율법책을 읽어 들려주라고 명했다. 아니 그 자신이 그것을 읽었던 것 같다(2절). 율법에 큰 감동을 받은 자들은, 역시 자기들도 읽어보고 싶어하는 법이다. 요시야는 자기가 율법을 낭독한다고 하여 자기 자신을 격하시킨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솔로몬도 자기가 설교자가 되는 것이 자기를 격하시킨다고 생각하지 않았으며, 다윗도 자기가 하나님의 집 문지기가 되어도 격하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는 이렇게 요인들의 협의회를 여는 외에는, “유다의 사람들과 예루살렘의 거민들”의 회합을 열어 그 율법을 읽어 듣게 하였다. 제왕들이 자기 나라 안에 성경 지식을 장려하는 일은 진실로 그들의 이익이 된다. 만일 요시야가 율법에 의해 통치하려는 결심처럼, 그 백성들도 그렇게 확고하게 율법을 좇아 순종하기로 결심하게만 된다면, 그 나라는 행복하게 될 것이다. 모든 사람들은 성경을 알려고 애써야 한다. 그리고 권세 잡은 모든 자들은 그 지식을 보급하려고 애써야 한다. Ⅲ. 그는 그들의 의무를 확증하기 위해 율법을 제안하는 대신에, 그들이 모두 일심으로 하나님과 약속해야만 할 한 회합을 제안했다(3절). 그 율법책은, 만일 그들이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면, 하나님은 그들의 하나님이 되신다는 것을 약속한 언약의 책이었다. 그들은 자기들의 역할을 다하기로 약속했다. 물론 그때에는 하나님도 당신의 역할을 다하시리라는 것을 결코 의심치 않았다. (1) 그 언약은, 그들이 여호와를 좇아 행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즉 그의 뜻과 규례와 섭리에 응하여 그의 모든 부르심에 응답하고, 그의 모든 활동에 참여해야 한다는 것이다―그들은 하나님의 모든 계명 곧 도덕적, 의식적, 재판상의 모든 계명들을 인식하고,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모든 가능한 관심과 주의, 성실과 열심, 용기 그리고 결단력을 다하여 그것을 준수해야만 하고, 나아가 이 언약의 약속에 의지하면서 이 언약의 조건들을 성취해야 한다. (2) 먼저 언약한 자는 왕 자신이었다. 그는 기둥 곁에 서서(11:14), 자기는 이 언약에 동의한다는 뜻을 공표했다. 그래서 그는 그들에게 모범을 보이고, 그들에게 하나님의 보호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통할과 특히 그들이 순종하면 하나님의 권능이 그들에게 줄 수 있었던 모든 장래를 확신시켰다. 하나님께 구속되는 것이 군주 자신들의 자유를 박탈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리하여 또 “모든 백성들이 그 언약을 좇기로 했다.” 즉 언약에 대한 그들의 승인을 나타냈고, 그것을 지키기로 약속했다. 최대한 엄숙하게 우리 자신의 의무를 지키는 것이 좋다. 그리고 특히 이 악명 높은 죄와 타락에로의 퇴행이 있은 후에 시기 적절하게도 이 일이 있었다는 사실은 좋은 일이다. 정직한 생각을 품는 자는 적극적인 언약에서 물러서지 않는다. 즉 단단히 단속하면, 잃는 법이 없다. ------ 우상숭배의 타파(왕하 23:4-24) 우리는 과거 유다 역대 왕들의 전 역사를 통해서 일찍이 당면해 보지 못했던 개혁에 관한 기록을 보게 된다. 그것은 모두 가증스런 것들을 제거해 버리고 영광스러운 선(善)을 수립해 나가는 개혁인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나는 두 가지 사실을 의아하게 생각지 않을 수 없다. 쩈 여기에 제거된 것으로 나타난, 그렇게 수많은 사악한 것들이 허용되어 왔고 또한 그처럼 오래도록 지속되어 왔다는 사실이다. 쩉 이런 사악한 것들을 제거해 버렸음에도 불구하고, 또한 이 희망적인 정리 사업에 의해서 그처럼 행복한 전망을 볼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예루살렘이 2-3년 내에 완전히 멸망해 버렸고, 이러한 개혁조차도 예루살렘을 구원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그것은 결국 대부분의 백성들이 개혁을 싫어했기 때문이었다. “단련하는 자의 일이 헛되게 되느니라.” 그러므로 “사람들이 그들을 내어버린 은이라 칭하리라”(렘 6:29-30). 여기서 다음의 사실들을 살펴보자. Ⅰ. 수많은 사악한 것들이 그 당시 유다와 예루살렘에 있었다. 그것은 오래 전부터 있었던 것들이다. 하나님이 알려졌던 유다에, 그의 명성이 떨쳐졌던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거하셨던 살렘이나 시온에 그와 같은 가증한 것들이 있다면 믿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요시야 왕은 18년 간 통치했고, 그 자신이 백성들에게 선정을 베풀었고, 율법에 따라 신앙을 유지했다. 그러나 그가 우상숭배를 조사하고 나서 파괴해 버린 그 엄청난 쓰레기더미는 좀처럼 믿을 수 없을 정도이다. 1. 솔로몬이 세웠던 성전으로서, 이스라엘의 하나님에게 영광을 돌리고 예배를 드리는 여호와의 집에서까지도 바알과 “아세라 상 및 하늘의 일월성신”에게 제사를 드리는 데 사용된 그릇이나 여러 가지 용기들이 발견되었다. 비록 요시야 왕이 우상숭배를 금지했지만, 여전히 우상숭배를 위해 제작된 그릇들은 성전에서조차도 귀중히 보존되었고, 금령이 해제되면 언제나 다시 사용될 수 있도록 보관되었다. 아니 아세라 목상도 성전에 여전히 그대로 있었다(6절). 어떤 사람은 그것을 아세라 목상과 같은 비너스의 상이라고 생각한다. 2. 바로 “여호와의 전의 입구에” 종교적인 목적에 쓰이는 말들을 위해 마구간(생각이나 할 수 있으랴!)을 마련했다. 마치 “달리기를 기뻐하는 용사”(시 19:5)에게 말이 필요하듯이, 태양에게도 말이 필요한 양 “태양을 위해 드린”(11절) 거룩한 말들을 위한 마구간이 있었다. 어쩌면 그들이 그토록 감탄해 마지않던 그 태양의 신속성을 그런 식으로 과시하려 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신앙은 없더라도 조그마한 철학(생각)이라도 지니고 있는 자라면 능히 알아채고 부끄러워할 그런 수치들, 곧 태양의 병거에 대한 시적 공상에다 자기들의 신앙을 맞추었던 것이다. 어떤 자들은 말하기를, 그들이 그 말들을 매일 아침마다 솟아오르는 태양을 추앙하기 위해 타고 나갔었다고 한다. 그들은 태양을 향해 달리는 전차를 몰고 나갔으며, 그 전차들을 숭상했다. 이상한 것은, 하나님의 기록된 말씀을 가지고 있는 자들까지도 이처럼 “그 생각이 어리석어졌다”(롬 1:21)는 점이다. 3. 바로 “여호와의 전 옆에 소돔 사람들의 신당들이 있었다.” 그 신당에서는 가장 변태적인 여러 가지 음탕하고 더러운 행위들이 자행되었으며, 심지어 종교 의식이란 구실 아래, 그들의 불결한 신들을 기념한다는 명목으로 자행되었다. 육체적이고 영적인 매음 행위가 함께 자행되었으며, 백성들이 단념하게 되었던 그 부도덕의 결과는 결국 그들의 망상에 대한 형벌이 되었다. 그들의 하나님을 욕되게 한 자들은 그들 자신들을 욕되게 하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으니, 그것은 당연한 귀결이다(롬 1:24 이하). 아름다운 비너스 상을 둘러쌀 천막의 휘장을 짜는 여인들이 있었으며(7절), 그곳에서 우상 숭배자들은 음란한 행위를 행했고, 또한 “하나님의 전에서도” 그렇게 했다. 그러한 행위들은 바로 아버지의 집을 장사꾼의 집으로 만들어버린 사악한 행위였고, 더욱 나쁜 것은 강도의 소굴로 만들어버린 것이며, 최악의 것은 하나님과 성전의 거룩성을 뻔뻔스럽게 무시해 버리고 창녀의 소굴로 만들어버린 데 있다(Horrendum dictu!―말하기도 무섭도다!). 바울 사도가 그들을 “가증스러운 우상 숭배자들”이라고 칭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4. 궁전에서나 “아하스의 다락방 지붕에서”(12절) 발견된 수많은 우상숭배의 제단들이 있었다. 그들의 지붕은 평평했기 때문에, 집들을 산당으로 만들어 우상숭배 제단(렘 19:13; 습 1:5), 즉 가정 제단을 만들었다. 유다 왕들도 그렇게 했으며, 요시야 왕도 가령 제단을 사용치는 않았지만 여전히 그 당시까지 그것들은 잔존해 있었다. 므낫세 왕은 하나님의 전 안에다 우상을 위해 제단을 세웠다. 그가 회개하고는 그 제단을 옮겨서 “도시 바깥으로 내버렸지만”(대하 33:15), 그 모든 제단들을 파괴하지는 않았으며, 그 아들 암몬이 아마 그 제단을 성전 뜰로 다시 가져왔을 것이다. 그런데 요시야는 그 제단들을 발견하고는 “그것들을 파괴해 버렸다”(12절). 5. 예루살렘 바로 근처에 있는 “힌놈의 아들 골짜기에 도벳”이란 데가 있었는데, 거기에는 (음란하게 더럽고 잔인한 신) 몰록의 상이 세워져 있었다. 그 몰록의 상에다 희생제물로 자기들의 자녀들을 바쳐 불 속을 통과하게 하는 자들이 있었으며, 다른 자들은 자녀들을 바쳐서 불에 타 죽게 했다. 이것이야말로 “불탈 것으로 수고하는” 것이다(합 2:13). 도벳(Tophet)은 “북”이라는 뜻의 toph에서 왔을 것이다. 이것은 그들이 자기 자녀들을 불태우면서 그 비명을 듣지 않으려고 북을 쳤기 때문이리라. 6. “예루살렘 앞에 솔로몬이 세운 여러 산당들이” 있었다(13잘). 그 산당들에 있는 제단과 주상들은 아마도 선대의 경건했던 왕들이 옮겨 놓았거나, 솔로몬 자신이 죄를 회개하고 나서 옮겨 놓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 건물들의 일부는 요시야 왕 때까지도 그대로 존속해 왔다. 종교에 타락을 끌어들이는 자들은 그 타락이 얼마나 멀리까지 미치며, 또 얼마나 오래도록 계속되는가를 알지 못한다. 유구하다는 것이 진리의 확실한 증거는 아니다. 전국에 걸쳐 산당이 있었으니, “게바에서부터 브엘세바까지며”(8절), “통치자 집의 문전 입구와 성문에도 산당이 있었다.” 이러한 산당에서 우상을 숭배하는 왕들은(패트릭 주교의 생각에 의하면) 성읍의 보호를 수호신에게 부탁하여 빌면서 번제를 드렸다. 아마도 성읍의 통치자에게도 자기의 “가정 수호신”(penates)을 위한 개인 제단이 있었을 것이다. 7. 우상숭배를 하는 제사장들도 있었는데, 그들은 이 모든 우상숭배의 제단에서(5절) 그마림, 곧 검은 사람들―검은 옷을 입은 자들―을 시중했다(습 1:4 참조). 오시리스 신에게 희생제물을 드리는 자들, 또는 담무스를 위해 애곡하거나(겔 8:14) 지옥의 신들을 숭배하는 자들은 애도자처럼 검은 옷을 입었다. 유다의 왕들은 우상숭배를 하는 제사장들을 기용하여 “산당에서 번제를 드리도록 임명했다.” 아마도 그들 중에 아론 집안의 제사장들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이렇게 하여 자기들의 신을 모독했다. 그리고 전혀 제사장 직의 권리를 가지지 못한 자들도 임명되었는데, 그들은 바알에게 분향을 드렸다. 8. 마술사와 박수, 그리고 “신접한 자”와 같은 자들이 있었다(24절). 마귀를 자기들의 신으로 예배하는 자들이 마귀들의 신탁을 따른다는 것은 조금도 놀라운 일이 아니다. Ⅱ. 의로운 요시야 왕은 우상숭배의 온갖 유적을 철저하게 파괴했다. 이와 같은 처사는 만군의 여호와께 대한 충성심과 그 하나님을 거스르는 모든 것들에 대한 거룩한 의분에 의한 것이었다. 하나님을 거스르는 것은 어떤 것도 그 앞에 설 수 없다. 율법은(신 7:5) 가나안 족속의 우상숭배 유적들을 모두 철저히 파괴하라고 명령했는데, 하물며 이스라엘 족속의 우상숭배 유물이야 어떠했겠는가? 이스라엘 민족의 우상숭배 유적들은 보다 더 사악하고, 속되고, 불경스런 것들이었다. 1. 그는 힐기야와 다른 제사장에게 성전을 깨끗이 청소하라고 명령했다. 이것은 그들이 해야 할 직분이었다(4절). 바알을 위해 만들어졌던 모든 그릇들은 다 내다 버렸다. 그런 그릇들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데 다시는 사용될 수 없었고, 더욱이 일상적인 용도로도 다시는 사용되지 않게 했다. 그들은 모두 불태워졌으며,재는 모두 벧엘에다 뿌렸다. 벧엘은 우상숭배의 공통적인 원천이 되어 왔었다. 그 이유는 그곳에 송아지 우상이 하나 세워지자―그곳은 유다 가까이 있었다― 그 나쁜 영향이 나라 전체에 퍼지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요시야 왕은 벧엘을 우상의 쓰레기장으로 만들었다. 즉 모든 오물을 그리로 갖다 쌓았다. 아마 그러한 처사는 우상숭배를 즐겨오던 사람들에게는 불쾌한 일이었을 것이다. 2. 우상을 숭배하던 제사장들을 모두 축출해 버렸다. 아론의 집안이 아닌 자들로서 바알이나 거짓 신에게 희생 제사를 드린 자들은 율법에 따라 죽임을 당했다(20절). 요시야 왕은 “그들의 제단에서 그들을 죽였다.” 이것은 이제껏 바쳐진 제물 중에서 가장 훌륭한 제물이었다. 즉 하나님의 정의의 제물이 된 그들 자신을 드린 셈이다. 아론의 후손들이면서 참 하나님께도 분향을 했지만, 산당에서 분향을 드렸던 자들에 대해서는 용서했다. 그러나 다시는 여호와의 전에 나가지 못하게 금했다. 즉 그들은 명예를 박탈당했다(9절). 그는 그들이 다시는 옛 우상숭배 의식을 비밀리에 지킴으로써 그 나라에 재앙을 가져오지 않도록, 그들을 “유다의 성읍 밖으로 몰아내었다”(8절). 그러나 그들에게 “형제와 더불어 무교병(소제물의 빵. 레 2:4-5)은 먹을 수 있도록” 허락했으니, 그들은 형제와 함께 거룩하게 되었고, 그들의 감시 하에 있음으로써 남들에게서 피해를 입지 않게 되었고, 좋은 교육을 받을 수도 있게 되었다. 또한 그 떡, 곧 무교병(딱딱하고 맛이 없는)은 그들로서는 받을 자격이 없는 훌륭한 양식이었으며, 그들을 살아가게 하는 데 충분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부정한 제사장들처럼(레 21:22) 모든 희생 제물들―그것은 주로 “그들의 하나님의 떡”이라고 일컬어졌다―을 먹을 수 있었는지, 그것은 적이 의문스럽다. 3. 모든 우상은 산산이 파괴되어 불태워졌다. 아세라 상(6절)과 다른 신상들은 재로 변했고, “그 재들은” 그 성읍의 공동묘지에 있는 “평민의 무덤에 뿌려졌다”(6절). 율법에 의하면, 무덤에 접촉하면 의식법상 부정을 타게 된다. 따라서 그 재를 무덤에 매장함으로써, 이 자리에서 요시야 왕은 그 재는 가장 불결하다고 선포한 셈이다. 그러므로 어느 누구도 자기들이 부정해지지 않고서는 그 재에 손을 댈 수 없게 되었다. (갈대아역에 의하면) “그는 재를 무덤에다 버렸다.” 그것은 모든 우상들을 마치 구역질나는 물건처럼 눈에 보이지 않게 매장함으로, 죽은 자가 잊혀지듯이(14절) 아주 잊혀지게 되기를 원했다는 뜻이다. 그는 “사람의 해골로 아세라 목상이 있던 곳을 채웠다.” 그는 모든 주상들의 재를 가지고 가서 죽은 사람의 해골과 섞었듯이, 우상들이 세워져 있던 곳에는 죽은 자의 해골을 가져다가 그 빈터를 메웠다. 이 두 가지 방식은 모두 우상숭배는 흉측한 것임을 보여주기 위함이며, 또한 사람들이 그 우상들의 티끌이나 자기들이 예배하던 그 우상들이 있던 장소까지도 가까이 하지 않기 위함이다. 죽은 자와 죽은 신은 서로 비슷하므로, 같이 있는 게 적합하다. 4. 사악한 모든 집들, 즉 우상 숭배자들을 숨겨 주었던 불신앙의 은신처와 소돔 사람들의 집들을 헐어버렸다(7절). “그들을 때려 부셔라. 그들을 때려 부셔라. 그들을 밑바닥까지 부셔 버려라.” 산당도 그렇게 허물어져서, 결국에는 평지가 되었다(8절). 물론 그 성읍의 지사에게 속했던 산당도 그렇게 되었다. 어떤 사람의 지위나 권력도 그 자신을 우상숭배나 신성모독에서 보존해 줄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통치자들이 먼저 개혁에 복종토록 하라. 그러면 피지배자들은 곧 영향을 받게 될 것이다. 요시야는 산당을 훼파했다(8절과 13절). 그는 산당을 증오하는 온갖 일을 다했다. 그리고는 바알의 집이 우상숭배의 집결지가 되었을 때 예후가 행한 것처럼(왕하 10:27), 요시야는 산당에 대한 과대망상에서 백성을 건져냈다. 다른 우상숭배의 장소와는 달리 골짜기에 위치해 있던 도벳―다른 우상 제단은 언덕이나 높은 지역에 위치해 있었다―도 역시 같은 모욕을 당하여(10절), 성읍의 공동묘지가 되었다. 이에 관해서는 예레미야 19장 1-2절 등에서 전해진 설교 전체를 볼 수 있는데, 거기에는 “그들이 도벳에 장사될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성읍 전체가 도벳과 같이 될 위협에 직면하게 되리라고 했다. 5. 태양신에게 드려졌던 말들은 도로 찾아서 일반적인 용도로 돌렸다. 그리하여 그 말이 종속되어 있던 그 허망함에서부터 그들을 건져내었다. 태양의 병거들(이스라엘의 병거와 마병이 되어야 할 것들이 그런 꼴이 되었으니 이 얼마나 가슴 아픈 일인가!)을 요시야는 불태웠다. 태양이 불꽃이라면, 그 병거들이 불에 타는 병거가 되었을 때에야 진정 태양을 닮았던 것이다. 6. 신접한 자들과 마술사들은 축출 당했다(24절). 아마 요시야는 마술에 걸린 자들도 죽였을 것이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마귀 같은 행실을 좇지 못하도록 막았을 것이다. 이러한 모든 일은, 그가 최근에 발견한 “그 책에 기록된 율법의 말씀”(24절)에 진실한 관심을 가지고 행한 것이다. 그는 그 율법을 자기 통치의 법으로 삼았고, 이 개혁을 완수하는 데도 그 율법을 유념했다. Ⅲ. 그의 통치권이 미치고 있는 한도 내에 있던 이스라엘의 성읍들에게까지도 그의 열의가 퍼져나가게 되었다. 열 지파(이스라엘)는 사로잡혀 끌려갔고, 앗수르의 주민들이 그 나라의 전체를 뒤덮고 있지는 못했으므로, 아마도 많은 이스라엘의 성읍들은 유다 왕들의 보호 아래 있었던 것 같다(대하 30:1, 36:6). 요시야는 자기의 개혁을 수행하기 위해서, 이스라엘 성읍들을 방문하고 있다. 우리의 영향력이 미치는 한도까지, 선을 행하려는 우리의 노력은 행사되어야 하며, 사악한 자들의 악이 종말을 고하도록 애써야 한다. 1. 그는 산당과 아세라 목상과 더불어 벧엘에 있던 여로보암의 제단을 파괴해 버렸다(15-16절). 확실히 금송아지는 이미 없어진 것 같다. “오, 너 송아지 같은 사마리아여, 너는 쫓겨났도다.” 그러나 제단은 있었다. 저 유서 깊은 우상숭배에 결합된 그 제단은 여전히 사용되어 왔던 것이다. (1) 바로 그것이 더렵혀졌다(16절). 요시야는, 그의 경건한 신앙심의 열성에서, 우상숭배의 옛터를 샅샅이 찾았고, 산에 있는 무덤까지 수색했다. 아마 우상숭배를 하던 제사장들이 그 무덤에 매장되어 있었고, 그 무덤에서 멀지 않은 곳에 그들이 집전하던 제단이 있었을 것이다. 그들은 너무나 그 제단을 좋아했기 때문에 자기들의 유골이 그 제단 옆에 안치되기를 원했던 것이다. 그는 그 무덤을 열고 뼈를 끄집어내어 “제단에서 그 뼈를 불살랐다.” 그것은 산 채로 그 제사장들을 발견했을 경우 요시야가 어떻게 그들을 처치했을까 하는 것을 보여주는 처사였다(20절). 이와 같이 그는 그 제단을 더럽혀 모독했으며, 그 제단을 가증스럽게 만들었다. “그들의 뼈가 태양 앞에서 뿌려질 것이라”는 경고가 우상 숭배자들에게 주어져 있었다(렘 8:1-2). 그때 주어진 경고가 여기서 실행된 사실(“그들의 죄악이 그들의 뼈에까지 사무치리라”고 했다. 겔 32:27)은 사후의 형벌에 대한 암시이다. 곧 죄를 짓고 살다가 회개치 않고 죽은 자들이 벌을 받으리라는 사실을 예시한 것이다. 그런 자들의 뼈를 태우는 일이 전부라면 그 형벌은 오히려 가벼운 일이다. 그러나 그것이 더 무서운 불꽃 가운데서 당할 영혼의 고통을 상징한 것이라면(눅 16:24), 그 형벌은 정말 무서운 것이다. 요시야의 행동에서와 같이, 이 일은 매우 갑작스러운 결단의 결과인 것 같다. 우연히 그런 결심을 하고 무덤을 수색하지 않았더라면, 그는 그런 일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 제단이 여로보암에 의해 처음으로 세워졌던 350여 년 전에, 이미 이러한 사실이 예고되었었다(왕상 13:2). 하나님은 언제나 미래를 예견하시고, 때때로 우리에게는 너무나 우연하게 생각되는 것도 확실히 예고해 주신다. “왕의 마음은 여호와의 손안에 있도다.” 요시야 왕의 마음도 그러했다. 그래서 그는(“부지중에.” 아 6:12) 이 일을 하려는 뜻을 세우게 되었던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한 마디도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 (2) 그 제단은 파괴되었다. 그는 제단과 그에 딸린 모든 부속 시설물을 헐어버리고(15절), 불에 탈 수 있는 것은 모두 태워버렸다.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우상은 아무것도 아니므로, 그는 할 수 있는 한 모든 우상들을 말살했다. 그는 “그것을 빻아서 가루로 만들어” “바람에 날리는 먼지처럼” 날려보냈다고 했기 때문이다. 2. 그는 “사마리아의 성읍에”(19절) 있는 사단의 모든 회당들, 곧 산당의 온갖 집들을 파괴해 버렸다. 이스라엘 왕들이 이것들을 세웠다. 그러나 하나님은 유다 왕인 요시야를 들어서 그들을 파괴해 버렸다. 이것은 그 열 지파가 배반했던 다윗의 옛 집의 영예를 위해서였다. 그가 그 제사장들을 “그들 자신의 제단에”(20절) 제물로 바친 것은 정당한 처사였다. 3. 그는, 유다로부터 나온 한 왕이 이 일을 이루리라는 사실을 예언하기 위해 유다에서 온 하나님의 사람의 무덤을 주의 깊게 보존했다. 그 무덤은 바로 “벧엘 제단을 향하여(요시야 왕이) 행한 이 일들을 선포했던” 그 선한 선지자의 무덤이었다. 그러나 그 선지자 자신은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했기 때문에 사자에게 물려 죽임을 당했다. 그러나 그 선지자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하심은 그의 죽음으로 인해 끝났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하나님은 그의 주위에 있는 무덤이 소란을 당할지라도 그의 무덤만은 안전하게 보존되게 하여(17-18절), 어떤 사람도 그의 뼈를 옮기지 못하도록 했다. 그 선지자는 평안에 들어갔다. 그러므로 그는 그의 침대에서 쉬게 되었다(사 57:2). 저 늙은 거짓 선지자가 가능한 한 그 의로운 선지자 근처에 매장되기를 원했던 것은 그가 미리 자기의 운명을 알고 있었기 때문인 것 같다. 즉 그의 티끌도 그 선한 선지자의 티끌과 함께 있음으로 인해서, 그 선한 선지자 덕분에 잘 보존된 것이다(민 23:10 참조). Ⅳ. 요시야 왕과 그의 백성들은, 이 모든 일을 다 마친 후에, 유월절을 아주 엄숙하게 지켰다는 것을 여기에서 알 수 있다. 그들은 옛 누룩의 나라를 깨끗이 청소하고 난 후에, 유월절을 지켰다. 예후는 바알 숭배를 폐지하고 나서도, 하나님의 계명과 규례를 준수하는 데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었다. 그러나 요시야 왕은 그러한 것을 신중히 했으니, 우리도 그것을 배워야 하리라. 즉 그는 악행을 중지하려고만 하지 않았다. 그리고 모든 가증스러운 습관을 막는 길은 제정된 모든 규례를 준수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레 18:3 참조). 그러므로 그는 모든 백성에게 유월절을 지키도록 명령했다. 그 유월절은 그들이 애굽에서 구출된 것을 기념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그들을 구출해 낸 하나님께 그들 자신들을 봉헌하고 자기들이 하나님과 교제한다는 징표였던 것이다. 그는 “율법의 책”에서 유월절을 발견했다. 그 책을 여기서는 “언약의 책”이라고 했다. 그 이유는, 비록 하나님의 권위는 인간을 절대적인 명령으로 다스릴 수 있으나, 하나님의 은총은 겸비하게도 상호적인 거래를 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요시야는 유월절을 지켰다. 히스기야 시대에 있어서와 같이 이 유월절에 대한 구체적 기록은 없다(대하 30장). 그러나 일반적으로 보면, 선대의 어떤 통치에서도 그처럼 “유월절을 지킨 일은 없다”고 말했다. 아니 “사사 시대 이래로” 그런 예는 없었다(22절). 그런데 이 사실은, 사사기가 말해 주고 있는 이스라엘 국가의 상황이 비록 우울한 감을 주고는 있지만, 그래도 그때가 황금시대였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 유월절은 참여자들의 수효나 헌신, 그들의 희생과 헌물, 또 율법의 철저한 준수라는 점에 있어서 아주 특별한 예식이 되었다. 또 히스기야 시대의 유월절에서와 같지 않았다. 즉 히스기야 시대에는 성소의 결례법에 따라 몸을 정결하게 하지 않은 자들이 많았었다. 그리고 레위 사람들에게도 제사장의 업무를 하도록 허락을 해 주었다. 요시야 왕의 통치의 남은 기간 중에도 아마 줄곧 신앙은 번성했고, 여호와의 절기가 매우 충실하게 준수되었다고 능히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이 최근에 되찾았던 그 언약에서 찾은 만족과, 그것에 따른 개혁 사업, 그리고 오래도록 무시되어 왔거나 부주의해 왔던 율법책에 있는 본래적인 하나님의 규례의 재흥 등이 이 유월절을 통해서 거룩한 기쁨을 더하게 해 주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도 우상을 파괴하는 데 대한 그들의 열성에 기꺼이 보답하여, 하나님의 임재와 은총을 특별히 보여주셨다. 이러한 모든 일들은 이 유월절을 월등하게 뛰어나게 했다. ---- 요시야의 죽음(왕하 23:25-30) 우리는 이 대목을 읽을 때마다 다음과 같이 말할 수밖에 없다. “주의 의는 큰 산과 같도다. 곧 분명하고, 확실하며, 논쟁의 여지가 없도다. 그러나 주의 공의는 깊은 바다와 같도다.” 곧 깊이를 헤아릴 수도 없고, 생각조차 할 수도 없다(시 36:6). 우리가 이에 대해서 무엇이라 말할 수 있으리요! Ⅰ. 본문에서 보면, 요시야 왕은 다윗 왕조를 이어 받았던 가장 훌륭한 왕들 중의 한 사람임이 인정되고 있다(25절). 히스기야가 곤경 중에도 여호와 하나님을 의지하는 신앙에 있어서는 필적할 자가 없었던 것처럼(18:5), 요시야 왕은 개혁 사업을 수행하는 그 성실성과 열성에 있어서 둘도 없는 사람이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그는 그의 선조들이 반역해 오던 “그 여호와께로 향하였기” 때문이다. 우리가 선택하고 사랑하여 하나님께로 향해 돌아가는 것이 참 신앙이다. 그는 나라도 역시 여호와께로 돌아가게 하려고 최선을 다했다. 2. 그는 “마음과 뜻을 다하여” 이 일을 했기 때문이다. 그가 그런 일을 행한 이유와 목적이 의로웠다. 마음을 다하여 하지 않는 일은 신앙에 아무 소용이 없다. 3. 그는 “마음을 다하여, 성품을 다하여, 힘을 다하여”, 즉 온 힘을 기울여 용기 있게, 결단력을 가지고 수행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그는 여러 가지 어려운 문제로 인하여 포기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우리가 힘과 마음을 다해 일한다면, 하나님을 위해 얼마나 위대한 일을 성취시킬 수 있으랴! 4. 그가 “모세의 모든 율법에 따라” 그 율법을 철저히 준수하고, 그 율법에 실제적인 관심을 가지고 이 일을 수행했기 때문이다. 그는 열성을 낸다 하여 결코 어떤 불법적인 일에 말려들지는 않았다. 그는 오직 온 힘을 다하여 규칙대로 행했다. Ⅱ. 이와 같은 일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한창 시절에 횡사를 했고, 그의 나라는 그후 2-3년 이내에 멸망했다는 사실을 주목하자. 이와 같은 개혁에 따를 당연한 결과는 왕조와 왕국의 번영과 영광이 틀림없다고 흔히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정반대로 그 양쪽에 모두 구름이 뒤덮인 것을 보게 된다. 1. 나라가 개혁되었지만, 여전히 계속 멸망으로 운명지어졌다. 이 모든 사실에도 불구하고 “여호와께서 그 크게 타오르는 진노를 돌이키지 아니하셨기” 때문이다(26절). 하나님은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해서(렘 28:7-8), 만약 멸망으로 예정된 어떤 민족이 그 “죄악에서 떠나 돌이킨다면”, 하나님은 형벌하시기로 한 “악을 돌이키시겠다”고 말씀하신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우리는 요시야 왕 치하의 백성들은 비록 요시야의 권력에는 복종했지만 중심으로는 요시야의 근본 방침에 동화하지 않았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그들은 억지로 돌아왔으나, 자발적으로 “악한 길에서 떠나지는” 못했다. 그래서 여전히 그들의 우상에 애착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인간의 마음을 알고 계시는 여호와께는 그 선고를 취소하실 수 없었다. 즉 그 선고는, 이스라엘처럼, 유다도 포로가 될 것이요 예루살렘도 버림을 받으리라는 것이었다(27절). 그러나 이러한 멸망의 본의는 그들을 효과적으로 개혁하려는 것이었다. 따라서 우리는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다. 그들의 죄악이 극도에 달해서 곧 멸망할 때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그 질병이 최악의 상태에 도달하여 곧 치료를 받아야 할 절박한 순간에 놓여졌다고 말이다. 그리고 그 치료 처방은 실효를 거두어 죄악까지도 제거하게 될 것이었다. 2. 이러한 사실의 증거로서, 개혁을 단행하고 있는 왕도, 한창 시절에 죽게 되었으니, 그것은 오히려 그에게는 하나의 자비였다. 즉 그들의 파멸의 한 서곡으로서 요시야 왕이 죽게 되었으므로, 하나님께서 그 백성과 나라에 대해서 내리시는 재앙을 살아서 보게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마 애굽 왕은 앗수르 왕과 전쟁을 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바벨론 왕이 부름을 받았다. 요시야 왕국은 그들 나라의 틈바구니에 놓여 있었다. 그러므로 요시야 왕은 애굽 왕에 대항하여, 한창 증대하고 있는 위협적인 애굽 왕의 권력을 견제하려고 결심했다. 비록 당시에 애굽 왕은 요시야 왕을 칠 계획이 없었다고 단언했지만, 만약 애굽 왕이 애굽 강과 유프라데스 강을 통합할 수 있게 되면, 유다 나라도 순식간에 그들의 수하에 들어올 수 있는 그런 처지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요시야 왕은 애굽 왕에 대항하여 싸웠고”, 첫 교전에서 전사했다(29-30절). (1) 우리는 여기에 나타난 요시야의 처사를 정당하다고 주장할 수는 없다. 그에게는 이 전쟁에 참전하라는 분명한 소명도 없었고, 그 전쟁에 관해서 선지자들에게 하나님의 뜻을 묻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그가 앗수르 왕의 우방이나 동맹군의 자격으로 나서 싸워야 했었는가? “그가 신앙 없는 자들을 도우며, 여호와를 미워하는 자들을 사랑해야 했는가?” 만약에 애굽과 앗수르 왕들이 서로 싸우고 있었다면, 하나님께서 그들을 이용하여 서로의 힘을 약화시킴으로써, 왕 자신과 자기 백성에게 어떤 유익을 가져다 주리라고 그가 생각해야 당연했을 것이다. 그래서 그가 “평안히 무덤에 장사되리라”고 한 약속은, 이 문제 처리에 나타난 실책으로 인해, 어느 의미에서는 실현되지 않았으며, 그는 사실상 그 약속의 은덕을 잃었다고 보는 자들도 있다. “우리의 모든 길에서” 우리를 지키시겠다고 약속하셨는데, 만약 우리가 우리의 길에서 떠난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보호에서 스스로 떠나게 되는 것이다. 나는 그 약속이 성취되었다고 이해한다. 요시야는 하나님께 대해서나 자신의 양심에 대하여 “평화한 가운데서 죽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갈대아 사람들에 의한 유다와 예루살렘의 멸망을 직접 보지 않고 죽은 것이라고 본다. 그러나 나는 하나님의 그 섭리는 경솔한 그의 처사에 대한 책망임에도 또한 틀림없다고 본다. (2) 우리는, 진가를 알지 못하여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에게 주어진 보석을 하나님이 다시 빼앗아버리는 것은 하나님의 정의로 알고 찬양해야 한다. 예레미야가 요청한 바이지만, 그들은 요시야 왕의 죽음을 심히 통애했다(대하 35:25). 예레미야는 그들에게 그의 죽음이 무엇을 뜻하며 얼마나 무서운 징조가 되는지를 말해주었다. 요시야의 생존이 가져다 주는 그 은덕을 마땅히 선용해야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그 점에 실패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요시야를 일찍 데려가심으로써 그 은덕의 진가를 가르쳐 주신 것이다. ------ 유다 왕 여호아하스와 여호야김(왕하 23:31-37) 예루살렘은 요시야 왕이 무덤에 장사된 이후로 하루도 좋은 날을 보지 못했다. 그후 22년만에 예루살렘은 마침내 완전히 멸망되고 말았다. 여기에는 그의 두 아들의 통치에 관한 짧은 기사가 실려 있다. 한 아들은 포로가 되었고, 다른 한 아들은 애굽 왕에게 공물을 바쳤다. 두 아들 모두 통치 초기부터 그렇게 되었다. 이 애굽 왕은, 비록 유다를 치려는 계획은 하지 않았었으나, 요시야 왕이 대적하므로 격분하여 그를 살해했다. 그러므로 그는 이제 요시야 가족과 그 나라에 대해 자기의 전력을 기울여 경계를 편 것 같다. 만약 요시야의 아들이 요시야의 발자취를 따라갔다면, 그의 신앙심으로 인해 보다 좋은 생활을 누렸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 길을 빗나갔기 때문에, 그의 경솔한 처사로 인해 더욱 나쁜 운명을 겪고 말았다. Ⅰ. 요시야의 아들 중 동생이었던 여호아하스가 “그 나라 백성들”에 의해서 먼저 왕이 되었는데, 아마 그가 그의 형보다는 더 활동적인 전쟁 영웅의 기질이 있어, 애굽 왕에 대항하여 아버지의 죽음을 복수할 수 있는 지도자가 될 수 있다는 점이 주목을 끌었기 때문이리라. 그리고 백성들은 그 아버지의 개혁 정책을 유지하고 계속하는 것보다는 오히려 그 아버지의 명예를 회복하는 점에 더 관심을 쏟고 있었다. 따라서 문제가 생겼다. 1. 여호아하스는 악을 행했다(32절). 그는 훌륭한 교육을 받았고, 훌륭한 모범을 보았고, 또한 우리가 생각하기로 많은 훌륭한 기도가 그를 위해 올려졌을 것이다. 그러나 역시 그는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다.” 또한 그가 아버지가 생존시에 이미 악행을 시작했다는 사실은 무서운 일이다. 따라서 결국 그의 통치 기간은 너무도 짧게 되었다. 이것은 그의 성품을 잘 나타내 주는 것이다. 그는 “그 열조들의 모든 행위대로” 악을 “행했다.” 비록 그에게는 많은 시간이 주어지지는 않았지만, 자기가 본을 받고 따라가고 있는 자들이 어떤 자들인가를 그는 보여주었다. 그러므로 그는 그가 따르려 했던 조상들의 모든 악행을 그대로 행했다고 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청년들이 자기들의 모범으로 누구를 택하여 모방하려 하는가 하는 문제는 매우 중대한 결과를 낳는다. 그 선택을 잘못하면 치명적인 결과를 당한다(빌 3:17-18). 2. 그는 악을 행했기 때문에, 불운을 당했다는 것이 조금도 이상하지가 않다. 그는 단지 세 달 동안 왕위에 있었고, 그후에는 포로가 되어 포로생활을 하다가 죽었다. 애굽 왕은 그를 사로잡아다가, 소란을 피우지 못하도록 줄로 묶어서(33절), 애굽으로 데리고 갔다. 그런데 그는 애굽에서 곧 죽고 말았다(34절). 이 여호아하스는 에스겔이 “이스라엘 왕들(방백)을 위한 애가”라고 말할 때 언급했던 그 젊은 사자이다. 그 젊은 사자는 “먹이를 움키고 사람을 삼키는 법을 배웠다”고 했다(이것이 바로 여호아하스가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행했던 악이었다). 그러나 “이방이 듣고 함정으로 그를 잡아 갈고리로 꿰어 끌고 애굽 땅으로 갔다”고 했다(겔 19:1-4; 렘 22:10-12 참조). Ⅱ. 요시야의 다른 아들인 엘리아김은 애굽 왕에 의해서 왕위에 올랐는데, “여호아하스를 대신하여” 오른 것이 아니고(그의 통치는 너무나 짧아서 거의 계산에 넣지 않았다) “요시야를 대신하여” 올랐다고 했다. 지금까지 유다의 왕관은 언제나 아버지에게서 아들에게로 물려졌었다. 그러나 지금은 형제에게로 이양되었다. 아합의 집안에서는 그런 계승이 있었으나 다윗 집안에서는 지금이 처음이다. 애굽 왕은 자기의 권력으로 그를 왕으로 만들었고, 더욱 그의 이름까지 바꾸게 했다. 즉 여호와라는 이름과 관련을 지어서 “여호야김”이라 부르게 했다. 이것은 애굽 왕이 그에게 그의 나라의 종교를 포기하게 하거나 잊어버리도록 할 계획은 없었기 때문이었다. “모든 백성은 자기들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행할 것이니, 그에게도 그렇게 하도록 하라.” 그러나 바벨론 왕은 자기가 이름을 바꾸어준 자들에게 그렇게 하도록 내버려두지 않았다(단 1:7). 이제 여호야김에 대하여 이야기하자. 1. 애굽 왕은 그에게서 “100달란트의 은과 1달란트의 금”을 공물로 요구했다(33절). 그래서 여호야김은 어려움을 무릅쓰고 백성들을 쥐어짜서 바로에게 바쳤다(35절). 이전에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애굽인들을 노략했으나, 이제는 애굽 사람들이 이스라엘 사람들을 노략했다. 죄가 얼마나 무서운 변화의 결과를 가져오는가 보라. 2. 그러한 조공은 그를 가난하게는 했지만, 행복하게는 못했다. 그는 하나님의 섭리로 인해 징계를 받고 있는 중이므로, 그것을 깨닫고 겸비한 태도를 가지고 회개했어야 했지만, 여전히 그는 “여호와 하나님 보시기에 악을 행했다”(37절). 그러므로 보다 더 큰 심판을 자초하게 되었다. 작은 심판이 뜻을 못 이루면, 하나님은 더 큰 심판을 보내어 그 뜻을 이루게 하시기 때문이다.
=====호크마=== ..열왕기하 23장 1 왕이 보내어 유다와 예루살렘의 모든 장로를 자기에게로 모으고 ㅇ모든 장로를 자기에게로 모으고 - 왕조 시대에 장로들은 어떤 지파의 우두머리이거나 전통이 깊은 가계(家系)의 가장으로서 비록 제한적이긴 하지만 어느 정도 정치적 힘을 가지고 있었다(Hobbs). 그래서 어느 한 성이나 나라의 중대사가 있을때 종종 장로들의 회동(會同)이 있었던 것이다(10 : 1, 5). 본장 1-3절 강해, '장로가 지역 사회에 미치는 영향' 참조. 한편 본절에서 요시야가 유다 전지역의 장로들을 불러 모은 것은 앞서 성전 수리시 발견된 율법책의 말씀(22 : 8-11)을 그들과 온 백성에 게 들려주기 위함이었다(2절). 2 이에 여호와의 전에 올라가매 유다 모든 사람과 예루살렘 거민과 제사장들과 선지자들과 모든 백성이 무론 노소하고 다 왕과 함께한지라 왕이 여호와의 전 안에서 발견한 언약책의 모든 말씀을 읽어 무리의 귀에 들리고 ㅇ언약책의 모든 말씀을 읽어 - 22 : 8에서는 '언약책'이 '율법책'으로 나와 있다. '언약'(베리트)과 '율법'(토라)은 신명기적인 글에서 서로 밀접하게 연관 되는 단어이긴 하지만 동일한 의미는 아니다. 그런데 본절에서 저자가 역대기 저자와 마찬가지로(대하 34 : 30) '언약책' 이란 용어를 사용한 것은 다음두 가지 목적에서였을 것이다. 1)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과 맺었던 '언약'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2) 동시에 이제 그언약을 재확립하려는 상황을 설명하기 위함이다(출 24 : 7). 3 왕이 대 위에 서서 여호와 앞에서 언약을 세우되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여호와를 순종하고 그 계명과 법도와 율례를 지켜 이 책에 기록된 이 언약의 말씀을 이루게 하리라 하매 백성이 다 그 언약을 좇기로 하니라 ㅇ왕이 대 위에 서서 - 여기서 '대 위에'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알 하모드'로서 문자적으로는 '그 기둥 옆에' 로 해석된다. 그러나 대하 6 : 13을 보면 여기서 말하는 '대'(column)란 기둥처럼 생긴 사열대 임을 알 수 있다. 이에 관한 보다 자세한 내용은 11 : 14주석을 참조 하라. ㅇ여호와 앞에서 언약을 세우되 - 여기에 기록된 요시야의 행위와 유사하다.즉, 출24 : 7을 보면 모세가 "언약서를 가져 백성들에게 낭독하여 들리매 그들이 가로되 여호와의 모든 말씀을 우리가 준행하리이다" 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본절에 기록된 상황과 매우 유사한 것이다. ㅇ마음을 다하고...율례를 지켜 - 이는 신명기가 가르치고 있는 근본 교훈이다. 즉, 쉐마 본문(신 6 : 4-9)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마음과 힘과 성품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며 그의 계명을 지킬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는 곧 하나님께 대한 인간의 전적인 헌신과 사랑을 의미하는 바 율법의 제일가는 계명이다(마 22 : 37, 38). 때문에 요시야도 백성들 앞에서 무엇보다 이를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4 왕이 대제사장 힐기야와 모든 버금 제사장들과 문을 지킨 자들에게 명하여 바알과 아세라와 하늘의 일월 성신을 위하여 만든 모든 기명을 여호와의 전에서 내어다가 예루살렘 바깥 기드론 밭에서 불사르고 그 재를 벧엘로 가져가게 하고 ㅇ버금 제사장 - 혹자는 이를 스바냐와 같은 부제사장(25 : 18)을 가리킨다고 한다(Ho-bbs). 그리고 랍비들은 이를 대제사장의 대리 들을 뜻한다고 했다. 그러나 여기서 '버금 제사장' 이란 대제사장과 구별되는 어린 제사장, 또는 일반 제사장들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Keil, Bahr). ㅇ문을 지킨자들 - 이들은 곧 성전 바깥 무가을 지키고 보호하는 임무를 맡았던 레위인들(22 : 4;대상 23 : 5)이다. 레위인들은 각자 맡은 일에 따라 하나님께 봉사하였는데도 곧 사무관, 유사, 재판관, 문지기, 찬양 대원 등 으로서였다(대상 23 : 4, 5). ㅇ바알과 아세라 - 유다가 앗수르의 지배를 받을 당시, 즉 므낫세와 아몬의 시대(B.C. 697-640)에는 바알과 아세라 숭배를 포함한 온갖 가나안 우상들이 범람했다(21 :1-7, 21). 그러나 요시야 시대에 이르러 앗수르의 여향력이 쇠퇴하자 이제 요시야는 유다의 자주성(自主性)을 회복하기 위해서도 그같은 이방의 우상을 척결하고 있는 것이다. 22 : 3 주석 참조. ㅇ하늘의 일월 성신 - 이에 대해서는 21 : 1-18의 강해 '자연신론의 제형태'를 참조하라. 고대 애굽인들이나 가나안족 등은 해와 달, 별들을 우주에 거하는 여러 신들의 분신(分身)으로 보고 숭배하였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그것들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물체에 불과하는바 성경은 그것들에 대한 숭배 해위를 엄급하고 있다(신 4 : 19). ㅇ바깥 기드론 밭에서 불사르고 - 기드론(Kidron)은 다윗 성 동쪽에 있는 계곡이다. 길이는 약 5km로서 예루살렘 성벽과 감람 산 사이에 위치하고 있다. 이기론 계곡은 예루살렘 성보다 낮은 곳에 위치해 있었으니 우상 숭배에 쓰인 모든 기명들을 끌어내어 불태위 버리기에 적절한 곳이었을 것이다. 아사왕도 바로 이 기드론 골짝기에 있는 시냇가에서 우상을 불태운 적이 있다(왕상 15 : 13). ㅇ그 재를 벧엘로 가져 가게 하고 - 벧엘(Bethel)은 북이스라엘이 왕국 분열 시대부터 금송아지를 세웠던 우상 숭배의 본거지이다(왕상 12 : 27-33). 요시야가 파괴하여 불사른 우상의 재를 이 벧엘로 가져가게 한것은 아마 이로써 북이스라엘 멸망의 원인이 되었던 우상 숭배를 영원히 종식 시키고자 하는 상징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었을것이다. 5 옛적에 유다 왕들이 세워서 유다 모든 고을과 예루살렘 사면 산당에서 분향하며 우상을 섬기게 한 제사장들을 폐하며 또 바알과 해와 달과 열두 궁성과 하늘의 모든 별에게 분향하는 자들을 폐하고 ㅇ우상을 섬기게 한 제사장들을 폐하며 - 여기서 '제사장들'에 해당되는 히브리어'케마림'은 특별히 우상을 숭배하는 제사장을 가리키기 위해 사용된 단어이다. 이러한 용례는 호 10 : 5과 습 1 : 4에도 나타난다. 그러나 이것은 반듯시 바알의 제사장이나 선지자들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여기서는 므낫세와 같은 유다 왕들에 의해 산당의 제단에서 분향하도록 임명된 제사장들을 가리킨다. 한편 성경에서 여호와의 참된 제사장을 가리키는 단어는 대개 '코헨'이다(8절;왕상 2 : 27;창 14 : 18;출 19 : 22;레 1 : 5;신 18 : 3). ㅇ열 두 궁성 - 여기거 '궁성'(마잘로트)의 문자적인 의미는 '저택들', '머무는 장소들'이다. 아람(수리아)에서 이는 하늘의 12성좌(星座)를가리키나 메소포타미아에서는 천체들이 차지하고 있는 하늘의 전영역을 가리킨다(Bahr). 6 또 여호와의 전에서 아세라 상을 내어 예루살렘 바깥 기드론 시내로 가져다가 거기서 불사르고 빻아서 가루를 만들어 그 가루를 평민의 묘지에 뿌리고 ㅇ여호와의 전에서 아세라 상을 내어 - 므낫세는 하나님께 회개한 후 자신이 여호와의 전에 세웠던 아세라 목상(21 : 3, 7)을 제거했었다(대하 33 : 15). 그러나 그 후 그의 아들 아몬에 의해 다시 아세라 목상이 세워졌다(대하 33 : 22). 이제 요시야는 바로 그 우상을 다시금 작파(作破)하고 있는 것이다. ㅇ불사르고 빻아서 가루를 만들어 - 이로 보아 아세라(Asherah) 상 (像)은 나무로 만든 후 그 위에 도금(鍍金)한 것이었음을 알 수 있다. 한편 이와같이 우상을 부수어 가루로 만드는 행위는 출 32 : 20에서 모세가 금송아지를 없앨 때 사용했던 방법이다. 그리고 아사 왕도 태후 마아가의 우상을 이와 동일한 방법으로 제거했었다(왕상 15 :13). ㅇ평민의 묘지에 뿌리고 - 히브리인들의 무덤은 일반적으로 천연동굴 또는 연한 암석이나 산허리를 깍아서 만든 동굴이다(창 23 : 19, 20;마 27 : 60;요 11 : 38). 그러나 그러한 굴을 마련하지 못한 하층민들은 그냥 땅을 파서 사체를 매장 하기도 하였다. 창 23 : 3-20 강해, '매장과 화장' 참조. 한편 고대로부터 기드론 골짜기(4절)에는 히브리인들의 공동 묘지가 있었는데 히브리인들에게 있어서 그러한 묘지는 보통 부정한 곳으로 간주되었다(민 19 : 16). 그러므로 요시야가 이곳에 우상의 가루를 뿌렸다는 것은 곧 우상이 부정한 것임을 의미한다. 더군다나 요시야는 이와같이 부정한 것을 무덤에 없애버림으로써 다시는 백성들 가운데서 그러한 가증스런 이들이 되풀이되지 않기를 바랬을 것이다(겔 37 : 1-14;사 14 : 19) 7 또 여호와의 전 가운데 미동의 집을 헐었으니 그곳은 여인이 아세라를 위하여 휘장을 짜는 처소이었더라 ㅇ미동의 집 - '미동'에 해당되는 히브리어 '하카데쉼'은 남창(男娼)들을 가리킨다(신 23 : 17;왕상 14 : 24 ; 15 : 12 ; 22 : 46). 이들은 고대 근동 지방의 우상 숭배 의식때, 그곳 여제사장들과 의식상의 성관계를 맺거나 그렇지않으면 남색(homosexuality)하는자들의 상대 역활을 하였다. 그런데 율법상 남색행위는 사형에 해당되는 추행으로 금지되어 있었다(레 18 : 22 ; 20 : 13).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다 백성들이 여호와의 전 부근에 이 미동(美童)의 집을 만들어 주고 우상을 숭배하며 남색을 즐겼다는 사실은 그만큼 그들이 패역해졌다는 의미이다. ㅇ그곳은 여인이 아세라를 위하여 휘장을 짜는 처소이었더라 - 여기서 '여인' 은 아세라(Asherah)의 여사제들을 가리킨다. 앞서의 미동들은 항상 이여사제들과 함께 거처하였다(Rawlinson). 한편 이 여인들은 휘장을 만들어 우상을 꾸미거나 우상 신전을 장식하며 그곳에서 행음하였는데 이에 대해서는 겔 16 : 16 이하에 잘 나타나 있다. 8 유다 각 성읍에서 모든 제사장을 불러오고 또 제사장이 분향하던 산당을 게바에서부터 브엘세바까지 더럽게하고 또 성문의 산당들을 헐어 버렸으니 이 산당들은 부윤 여호수아의 대문 어구 곧 성문 왼편에 있었더라 ㅇ본절은 이제 요시야의 왕의 개혁이 예루살렘에서 온 유다에로 확산되었음을 보여준다. ㅇ유다 각 성읍에서 모든 제사장을 불러오고 - 요시야는 각도처에 흩어져 있는 산당들에서 더이상 불법한 우상 숭배 의식이 시행될 수 없도록 모든 제사장들을 예루살렘으로 불러 모았다. 즉, 이는 각 산당에서 이루어지던 우상 숭배를 청산하기 위한 것이며 또한 예루살렘 중앙 성전에서 거국적(擧國的)으로 유월절을 지키기위한 것이었다.(21-23절). ㅇ게바에서부터 브엘세바까지 - 게바(Geba)는 오늘날의 '야바'(Jaba)에 해당되며 예루살렘에서 북쪽으로 몇 마일 되지 않는 곳에 위치해 있다.이곳은 본래 베냐민 지파의 성읍이었는데 훗날 레위 지파의 기업이 되었다(수 21 : 17;대상 6 :60). 한편 이곳은 벧엘과도 인접했으며 오히려 벧엘보다도 더 우상 숭배가 극심했던 곳으로 알려지고 있다(Rawlinson). 다음으로 브엘세바(Beersheba)는 유다의 최남단에 위치한 성읍이다(삿20 : 1;삼상 3 : 20). 그런데 전하는 바에 따르면 이곳 역시 게바와 동일하게 우상 숭배가 성행했었다고 하다(Y. Yadin). ㅇ성문의 산당들 - 여기서 성문은 예루살렘 성문을 가리킨다. 이곳은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의 공공 집회 장소로 사용되던 넓은 장소이다. 그런데 이곳에까지 산당이 세워졌음을 볼 때 므낫세와 아몬 당시 얼마나 우상 숭배가 극심했는지를 알 수 있다. 한편 혹자는 이 산당이 이방인들이 기도하며 예물을 드리도록 하기 위해 세위졌다고 한다(Bahr). 그러나 그 사실 여부에 대해서는 확인할 길이 없다. ㅇ여호수아의 대문 - 구약에서 '여호수아의 문'을 언급한 곳은 이곳 밖에 없다. 그러나 예루살렘 성문 부근이라는 사실 외에는 오늘날까니도 그문의 정확한 위치에 대해서 알려진 바가 없다. 9 산당의 제사장들은 예루살렘 여호와의 단에 올라가지 못하고 다만 그 형제 중에서 무교병을 먹을 뿐이었더라 ㅇ상당의 제사장들은 예루살렘 여호와의 단에 올라가지 못하고 - 산당에서 예배를 집행했던 제사장들이 이처럼 그들의 직무를 거의 박탈당했다. 요시야가 산당의 제사장들을 예루살렘으로 불러 모아 이러한 징계를 가했던 것은 아마 1 우상 숭배를 하지 않은 제사장들의 사기를 드높임과 동시에 2 사이비적(似而非的)인 예배를 완전히 제거하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ㅇ다만 그형제중에서 무교병을 먹을 뿐이었더라 - 율법에 따르면 개인적인 결함으로 제사장의 자격을 잃은 자들은 예배에 참여할 수는 없었으나 하나님의 전에 바친 성물만은 먹을수 있었다.(레 21 : 21-23). 본절에서 직무를 정지당한 제사장들이 다른 제사장들과 더불어 식사에만은 참여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때문이다. 10 왕이 또 힌놈의 아들 골짜기의 도벳을 더럽게 하여 사람으로 몰록에게 드리기 위하여 그 자녀를 불로 지나가게 하지 못하게 하고 ㅇ힌놈의 아들 골짜기의 도벳 - '힌놈의 아들 골짜기'는 약칭하여 '힌놈의 골짜기'(Hinnom Valley)로도 불리운다(수 15 : 8;18 16). 이곳은 예루살렘 성밖, 서쪽에서 남쪽으로 둘려 있는 계곡이다. 다음으로 도벱(Topheth)은 이 힌놈의 골짜기 가운데 하시드 문 근처의 토기장이 밭 부근에 위치한 산당이다(렘 7 : 31,32). 이 일대는 본래 가나안 사람들이 신성시 하던 곳인데 후에 타락한 유대인들에 의하여 바알과 몰록을 숭배하는 우상의 중심지가 되었다(렘 32 : 35). 한편 도벳에 해당되는 히브리어 '토페트'의 뜻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학자들 간에 해석이 매우 다양하다. 1) '북'이라는 뜻으로 보는 사람이 있는데 거기에서 아이들을 불에 태울 때 북소리를 크게 울려 아이들의 울음소리가 들리지 아니하게 하였기 때문이라고 한다(Rawlinson, Matthew He-nry). 2) '침뱉음'이라고 보기도 하는데(Keil) 그곳은 경건한 사람들의 혐오의 대상이 되었기 때문이라고 한다(욥 17 : 6). 3) '용광로'라는 뜻으로 보는 이도 있는데(Gesenius, Bahr, Ho-bbs), 그것은 그곳에서 몰록을 숭배할 때 아이들을 불로 태웠기 때문이라고 한다(사 30 : 33). 11 또 유다 열왕이 태양을 위하여 드린 말들을 제하여 버렸으니 이 말들은 여호와의 전으로 들어가는 곳의 근처 시종 나단멜렉의 집곁에 있던 것이며 또 태양수레를 불사르고 ㅇ태양을 위하여 드린 말들 - 태양신에 대한 숭배는 이미 오래 전에 애굽에서 유행했었다. 그리고 B.C. 8세기경 아람어로 기록된 진질리(Zinjirli)비문에도 태양신인 샤마쉬(Sha-mash)와 관련이 있는 레쿠벨(Rekubel) 신이 언급되어 있다. 그런데 그 비문에 태양이 바알하닷과 함께 숭배된 것으로 나와 있는 바 앗수르인들 역시 가나안 사람들처럼 태양 숭배와 우상 숭배를 병행했었음을 알 수 있다. 아마 성경이 대개 우상 숭배와 관련하여 '태양상'에 대하여 어급하고 있음도 그러한 연유에서일 것이다(레 26 :30; 대하 14 :5; 34: 4, 7; 사 17 : 8; 27 : 9; 겔 6 : 4, 6). 17 : 16 주석 참조. 한편 태양에게 말을 바치는 관급은 고대 여러 민족들 가운데 행해졌다(J. Austel). 그런데 이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말과 마차가 함께 드려지던 의식은 바사(Persia) 시대에 유행했다(Pulpit Co-mmentary). ㅇ이 말들은...시종 나단멜렉의 집 결에 있던 것이며 - 나단멜렉(Nathan-Melech)의 집은 성전의 물품들과 기명(器皿)들을 저장해 두는 성전 창고들 중의 하나였던 것 같다. 왜냐하면 성전의 많은 창고들이 때로는 사람들의 거처로도 사용되었기때문이다(느13 : 7). 그리고 그 창고들 가운데 일부는 마굿간으로도 사용되었다(Keil &Delitzsch). ㅇ태양 수레를 불사르고 - 태양 수레는 태양을 숭배하는 의식을 해할 때 행군용으로 사용되던 것이다(Keil & De-litzsch Commentary, Vol. p. 486). 요시야는 이와 같이 천체 숭배나 우상 숭배에 의하여 더럽혀진 물건이나 동물들을 모조리 제거하였다(4,6, 15절). 12 유다 열왕이 아하스의 다락지붕에 세운 단들과 므낫세가 여호와의 전 두 마당에 세운 단들을 왕이 다 헐고 거기서 빻아내려서 그 가루를 기드론 시내에 쏟아버리고 ㅇ아하스의 다락 지붕에 세운 단들 - '아하스의 다락방'이 어디에 위치해 있었는지 정확히는 알 수 없으나 본절 전후 문맥이성전 내에 설치된 우상 숭배의 기명들을 다루고 있는 것으로 봐서 성전 경내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혹자는 보다 더 상세하게 그 다락방이 문쪽에 있는 성전 마당의 건물들 중 하나인 다락방으로 보고 있다(Thenius). 그렇다면 그 건물은 아하스가 성전으로 들어가는 입구 및 낭실(廊室)을 제하였을 때(16 : 18) 세워졌던 것으로 추측된다(Keil). 왜냐하면 렘 35 : 4에 따르면 그 문에 있는 건물은 다락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한편 '유다 열왕' 이 우상을 위한 단들을 다락 지붕에 세웠다고 했는데 그것은 곧 아하스가 세운 다락방의 단들이 히스기야의 종교 개혁(18 : 1-6)에 의하여 제거된 후 므낫세와 아몬에 의해 다시 복구된 사실을 의미하다(21장). 그 단들이 요시야 당시까지 널리 알려져 있었다는 사실은 예레미야와 스바냐의 증거에 의해 알 수 있다(렘 19 : 13;습 1 : 5). ㅇ므낫세가 여호와의 전 두 마당에 세운 단들 - 21 : 5에 따르면 므낫세는 성전 뜰에 하늘의 일월 성신(日月星辰)을 위한 단을 쌓은 것으로 나와 있다. 이에 관해서는 그곳 주석을 참조하라. 한편 므낫세가 회개할 때에 이단들을 성전 마당에서 제거하긴 하였으나(대하 33 : 15) 부수지 않고 단지 성밖에 던져 두기만 했었다.그래서 므낫세의 아들 아몬은 그단을 다시 본래 위치에 쉽게 세위둘 수 있었을 것이다(대하 33 :22). ㅇ기드론 시내 - 앞서 언급된 기드론 골짜기(4절)에 비가 내리면 그 계곡은 간헐천(間歇川)을 이루는데 바로 이를 가리키는 말이다. 삼하 15 : 23 주석 참조. 13 또 예루살렘 앞 멸망산 우편에 세운 산당을 더럽게 하였으니 이는 옛적에 이스라엘왕 솔로몬이 시돈 사람의 가증한 아스다롯과 모압사람의 가증한 그모스와 암몬 자손의 가증한 밀곰을 위하여 세웠던 것이며 ㅇ멸망 산 - 이것은 예루살렘 앞, 감람산 남쪽 끝 지역을 지칭하는 것으로서 오늘날 의 '실완'(Silwan)이라는 아랍 마을에 해당되는 곳이다. 과거 솔로몬은 이방 여인들과 결혼하면서 우상 숭배에 빠져 이곳에 모압, 암몬 등 여러 이방인들의 신들을 모시는 산당을 세웠다(왕상 11 : 5, 7, 33). 그러므로 그 후 이곳은 히브리인 들이 죽은 자들의 뼈를 버리는 등 대단히 부정한 곳으로 간주되었다. ㅇ시돈 사람의 가증한 아스다롯 - '아스다롯'(Ashtaroth)은 '아세라'(Ashe-rah)와 더불어 풍요-다산- 사랑 또는 쾌락의 여신이다. 과거에는 아세라와 아스다롯이 동일한 신인 것으로 오해되었으나 최근의 연구 결과 엄연히 구분되는 다른 두 신임이 판명되었다. 한편 아스다롯은 고대 근동의 여러 지방에서 두루 숭배되었느데 그가운데서도 특히 두로 (Tyre)와 시돈(Sidon) 백성들이 열렬히 숭배하였다. 이 아스다롯은 지역에 따라 여러 명칭으로 불리웠는데 헬라에서는 아프로디테(Aphrodite), 로마에서는 비너스(Vinus)로 알려져 있다. ㅇ모압 사람의 가증한 그모스 - 그모스(Chemosh)는 모압인들이 민족신으로 섬기던 전쟁의 신이다. 때문에 성경에서 모압인들은 종종 '그모스의 백성' 으로 불리우고 있다(민 212 : 29;렘 48 : 46). 그런데 그모스를 가리켜 '가증한 그모스'라고 칭하는 까닭은 그모스에게도 몰록처럼 인간 제사가 드려졌기 때문이다(Mesha Tablet). ㅇ암몬 자손의 가증한 밀곰 - 밀곰(Milcom)은 일명 몰렉(Moloch), 몰록(Moloch), 말감(Malcam)으로 불리우던 암몬인들의 민족신이다. 이 신을 섬기는 제의(祭義)의 특징은 인신(人身) 제사에 있었는바 성경에서 가장 가증한 신으로 언급되고 있다(레 20 :1-5). 레 26 : 1-13 강해, '가나안 땅의 신들' 참조. 14 왕이 또 석상들을 깨뜨리며 아세라 목상들을 찍고 사람의 해골로 그곳에 채웠더라 ㅇ석상들...아세라 목상들을 찍고 - 요시야의 이러한 행위는 곧 율법의 가르침에 따른 것이다. 즉, 신 7: 5;12 : 3;16 : 21, 22에서는 이와 같은 것들을 모두 제거할 것을 가르치고 있다. ㅇ사람이 해골로 그곳에 채웠더라 - 민 19 : 16-19에서 보는 바와 같이 죽은 사람의 시신(屍身)에 닿는 것은 곧 '부정함' 을 뜻한다. 따라서 요시야가 이와같이 행한 것은 우상의 신과 그 신들을 섬겼던 자들을 모독하기 위함이었다고 하겠다. 6절 주석 참조. 15 이스라엘로 범죄케 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이 벧엘에 세운 단과 산당을 왕이 헐고 또 그 산당을 불사르고 빻아서 가루를 만들며 또 아세라 목상을 불살랐더라 ㅇ이제 요시야의 개혁은 베냐민 땅인 벧엘에 까지 확산되었다. 여기서 요시야가 북방국 이스라엘 땅이었던 벧엘에까지 개혁을 확산 시켰다고 해서 이상하게 생각할 것은 없다. 왜냐하면 이곳 베냐민 땅은 과거 유다 왕국에 소속된 적이 여러번 있었기 때문이다(대하 11 : 12). 그리고 당시 앗수르는 쇠퇴기에 있었기 때문에(22장 강해 참조) 자신들의 식민지인 이스라엘에 관심을 기울일 수 없었을 것이다. ㅇ여로보암이 벧엘에 세운 단과 산당 - 이에 대해서는 왕상 12 : 25-33과 13 : 2을 참조하라. 한편 여로보암(Jeroboam, B.C. 930-910) 시대부터 벧엘은 송아지 우상 숭배의 중심지였다. 그런데 이곳에 다른 이방의 우상들이 언제 세워졌는지는 정확히 알수 없다. 다만 추측컨대 17 : 24-41에서 보는 바와 같이 이방인들의 이주에 의해서 송아지 숭배와 우상 숭배가 혼합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Rawlinson). ㅇ그 산당을 불사르고 - '산당'(바마)은 일반적으로 '높은 장소'를 지칭하며 영어에서도 단지 high place로 번역하고 있다. 따라서 혹자는 단지 높은 장소인 그곳을 불살랐다는 말이 어울리지 않는다고 하여 본절의 후반부를 성서 편집자의 편집에 의한 것으로 본다(Montgomery). 그러나 오늘날 고고학적 발굴에 의해 과거 그곳에는 대리석으로된 제단과 함께 부수적인 건물들이 있었음이 판명되었다(Keil, Bahr, Rawlinson). 그런데 그건물들은 본절에 언급되어 있듯 요시야가 불사르고 돌이나 금속으로 된 것은 모두 빻아서 가루로 만들었던 것이다. 16 요시야가 몸을 돌이켜 산에 있는 묘실들을 보고 보내어 그 묘실에서 해골을 취하여다가 단 위에 불살라 그 단을 더럽게 하니라 이 일을 하나님의 사람이 전하였더니 그 전한 여호와의 말씀대로 되었더라 ㅇ산에 있는 묘실 - 추측컨대 이는 벧엘 부근 동산에 있던 공동 묘지인 듯하다. 그런데 이곳에는 과거 벧엘에 살던 늙은 선지자의 묘실(왕상 13 : 30)도 있었다(17,18절). ㅇ그 묘실에서 해골을 취하여다가 단 위에 불살라 - 이처럼 요시야가 묘실에서 뼈를 가져다가 단 위에서 불사른 것은 벧엘의 단을 모독케 하기 위함이다. 그런데 혹자는 15절에서 이미 단이 파괴되었는데 어떻게 단 위에서 뼈들을 불사를 수 있었는가를 의문시 한다(Thenius). 그러나 이미 잘게 부수어진 단 위에 그 뼈들을 태윙다고 본다면 충분히 본절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Bahr). ㅇ이 일을 하나님의 사람이 전하였더니...말씀대로 되었더라 - 이것은 본서 기자가 본절에 나타난 것과같은 요시야의 행위에 대해 역사적으로 해석한 글이다. 즉, 다시말하면 본절에 기록된 요시야의 행위는 왕상 13 : 2에서 '하나님의 사람'이 예언했던 대로의 성취하기 위해 의식적(意識的)으로 그처럼 행동한 것은 아니다. 그리고 요시야가 이러한 예언에 대해서 안 것도 실상 이 일을 행한 이후이다(17절).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서 요시야를 통해 그 같은 예언이 실제적으로 실현되었던 것이다. 사실 왕상 13 : 2을 보면 약 300여년 전에 이미 '요시야'라는 이름까지 구체적으로 명시하면서 그가 벧엘의 단을 더럽힐 것이라고 예언되어 있다. 17 요시야가 이르되 내게 보이는 저것은 무슨 비석이냐 성읍 사람들이 고하되 왕께서 벧엘의 단에 향하여 행하신 이 일을 전하러 유다에서 왔던 하나님의 사람의 묘실이니이다 ㅇ유다에서 왔던 하나님의 사람의 묘실 - 여기에서 '유다에서 왔던 하나님의 사람'이란 과거 여로보암 당시 여로보암의 우상 숭배 행위에 대한 하나님의 경고 및 심판을 선포하기 위해 유다에서 벧엘로 나아왔던 무명(無名)의 선지자를 가리킨다(왕상 13: 20-26). 그러자 노선지자가 그 시신을 거두어 자기 묘실에 장사지내 주었는데(왕상13 : 27-32) 본절에서 말하는 묘실은 바로 이 묘실을 가리킨다. 18 가로되 그대로 두고 그 뼈를 옮기지 말라 하매 무리가 그 뼈와 사마리아에서 온 선지자의 뼈는 그대로 두었더라 ㅇ사마리야에서 온 선지자 - 북왕국의 새로운 수도(首都)인 사마라아(Samaria) 성이 세워진 것은 오므리 시대이다(왕상 16 : 24). 이후 '사마리아'는 이스라엘 전체를 가리키는 별칭으로 통용되었다. 17 : 24-41 강해, '사마리아' 참조. 한편 본절의 '사마리아에서 온 선지자'란 왕상 13장에 나타나는 '벧엘에 사는 한 늙은 선지자' 를 가리킨다. 그런데 본절에서 요시야가 유다에서 온 선지자와 사마리아에서 온 선지자의 뼈를 그 묘실에 그대로 두게 한 것은 하나님의 사람에 대한 예우였다고 볼 수 있다. 즉, 요시야는 과거에 노선지자가 했던 말(왕상 13 : 31, 32)을 기억하고선 그 말을 존중하는 의미에서 그들의 뼈를 훼손시키지 않았을 것이다(Rawlinson). 19 전에 이스라엘 열왕이 사마리아 각 성읍에 지어서 여호와의 노를 격발한 산당을 요시야가 다 제하되 벧엘에서 행한 모든 일대로 행하고 ㅇ사마리아 각 성읍...산당을 요시야가 다 제하되 - 대하 34 : 6, 7에는 요시야가 통치 제 12년에 종교 개혁을 단행했던 사마리아가 각 성읍, 즉 이스라엘 각성읍들의 이름이 나온다. 그것은 곧 므낫세, 에브라임, 시므온, 납달리 및 사면 황폐한 성읍들이다. 그런데 당시 앗수르의 식민지 치하에 있던 사마리아 왕국에 대해 요시야가 무슨 권한 권한으로 이러한 종교 개혁을 단행할 수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확실히 알 수 없다. 단지 추측할 수 있는 것은 앗수르가 앗술바니팔(Ashurbanipal, B.C. 669-626) 왕이 죽은 후 메대와 바벧론으로부터 협공을 당할 정도로 국력이 급격히 쇠퇴했다는 것이다(22장 강해 참조). 그래서 요시야는 앗수르의 간섭을 받지 않고 사마리아 땅까지 쉽게 관여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와 관련 혹자는 요시야가 사마리아 땅까지 영토를 확장하였다고도 한다(Ewald). 아무튼 요시야가 유다 백성에게서와 마찬가지로 북쪽 이스라엘 지역에 남아 있는 자들에게도 세금을 부과할 수 있었던 것으로 봐서(대하 34 :9) 당시 요시야의 행정력이 사마리아 땅까지 미치고 있었음은 분명하다(Pulpit Commentary). 20 또 거기 있는 산당의 제사장들을 다 단 위에서 죽이고 사람의 해골을 단 위에 불사르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왔더라 ㅇ산당의 제사장들을 다 단 위에서 죽이고 - 산당 제사장들의 이 같은 죽음 역시 이미 왕상 13 : 2에서 예언한 대로이다. 유다에서와는 달리 이스라엘 산당의 제사장들은 여로보암 통치 이래 레위 자손이 아닌 보통 백성 들이었다(왕상 12 : 31). 그래서 이스라엘 산당의 제사장들은 유다 산당의 제사장들과는 달리 정직(停職) 조처(9절)를 당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죽임을 당했느데 이것은 율법에 의한 것이다. 즉, 모세 율법은 레위 지파 중 아론 자손만이 제사장직을 맡도록 규정하고 있으니(출 28 : 1) 이를 어기고 스스로 제사장으로 행세하는자들은 당연히 제거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한편 요시야가 불법 제사장들을 제거한 행위는 바알 제사장들을 죽였던 예후(10장)와 여호야다(11 : 17-19)의 전통과도 연결된다(Hobbs). ㅇ사람의 해골을 단 위에 불사르고 - 우상을 빻아 무덤 위에 뿌린 것과 유사한 행동으로(6절) 우상 제단을 모독함과 동시에 그 단이 부정한 것임을 강조하는 행위이다. 6절 주석 참조. 21 왕이 뭇백성에게 명하여 가로되 이 언약책에 기록된대로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유월절을 지키라 하매 ㅇ본절로부터 23절에 기록된 유월절 기사는 평행 구절인 대하 35 : 1-19에 비해 매우 간략하다. 역대기의 기록에 의하면 요시야에 의해 시행된 유월절은 다음과 같은 성격을 지녔음을 알 수 있다. 1 유다 백성들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들까지도 참여했다는 점이다(대하 35 : 18). 2 모세의 율법이 명하는 모든 의식들이 적법하게 준수되었다는 점이다. 여기서 그 유월절이 율법에 적법했다는 것은 신명기의 내용 뿐만 아니라(신 16 : 1-18) 보다 많은 내용을 담고 있는 출애굽기에 기록된 유월절 규례까지 지켰다는 뜻이다(출 12 : 3-20 ; 13 : 5-10). 따라서 앞서 힐기야 제사장이 발견한 율법책(22 : 8)은 모세 5경 전부를 포함하고 있었음이 틀림없다(Rawlinson). 22 사사가 이스라엘을 다스리던 시대부터 이스라엘 열왕의 시대에든지 유다 열왕의 시대에든지 이렇게 유월절을 지킨 일이 없었더니 ㅇ사사가 이스라엘을 다스리던 시대 부터...이렇게 유월절을 지킨 일이 없었더니 - 과거 히스기야 시대에도 유월절은 시행되었으나 그 때에는 율법에서 명하는 유월절 규례와 어긋나는 점이 많았다. 예를 들면 1 율법이 정한 때에 시행되지 않았고(대하 30: 2, 3), 2 규정된 정결 의식을 행하지 않은 채 유월절 양을 먹은 점(대하 30 : 18) 등을 들 수 있다. 이러한 면에서 볼때 요시야 때에 행한 유월절은 실로 뜻깊은 것이다. 본절의 '이렇게'라는 부사 역시 지금까지 요시야와 같이 율법의 규정대로 완전하게 유월절을 지킨 적이 없음을 강조해 준다. 한편 이외에도 요시야가 행한 유월절의 특징으로는 다음과 같은 점을 들 수 있다. 1) 거국적인 차원에서 시행되었다는 점(대하35 : 18), 2) 예루살렘에서 실시되었다는 점(대하 35 : 1), 3) 역대기 제사장들의 역할을 활성화시켰다는 점(대하 35 : 2, 10-14)등이다. 23 요시야왕 십 팔년에 예루살렘에서 여호와 앞에 이 유월절을 지켰더라 ㅇ요시야 왕 십 팔 년에 - 22 : 3에 이어 요시야 18년이 두번째로 강조적으로 표기되었다. 이것은 본서 기자가 요시야 18년을 역사적 으로 매우 중요하게 보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즉, 요시야 12년에도 종교 개혁이있었으나 (대하 34 : 1-7)본서 기자는 보다 대대적인 종교 개혁이 시행되었던 요시야 18년을 더욱더 중요시여기고 있는 것이다. 이에 관해서는 22 : 3주석을 보다 참조하라. 24 요시야가 또 유다 땅과 예루살렘에 보이는 신접한 자와 박수와 드라빔과 우상과 모든 가증한 것을 다 제하였으니 이는 대제사장 힐기야가 여호와의 전에서 발견한 책에 기록된 율법 말씀을 이루려 함이라 ㅇ본절에서 보여주는 바와 같이 요시야는 공적(公的)인 예배의 완전한 개혁을 성취한 후 사적(私的)으로 개인들의 가정에서 행해지던 모든 미신과 우상 숭배를 폐지하는 일을 계속했다(Thenius). ㅇ신접한 자와 박수 - 21 : 6 주석 참조. ㅇ드라빔 - 이것은 고대에서부터 이스라엘을 포함한 근동 각지의 사람들이 각자 가정에서 섬기던 신이다(창 31 : 19). 이는 사사시대나(삿 18 : 14) 왕조 시대에도 매우 성행하였으며(삼상 19 : 13) 심지어 포로 귀환 이후에도 숭배되었던 것으로 나타난다(슥 10 2). 이에 관한 보다 자세한 내용은 창 31 : 19 주석을 참조하라. 25 요시야와 같이 마음을 다하며 성품을 다하며 힘을 다하여 여호와를 향하여 모세의 모든 율법을 온전히 준행한 임금은 요시야 전에도 없었고 후에도 그와 같은 자가 없었더라 ㅇ전에도 없었고 후에도 그와 같은자가 없더라 - 이는 곧 이스라엘 열왕들 중에 요시야만큼 온전하게 율법을 준행한 자가 없었다란 의미이다. 그런데 본서 저자는 앞서 히스기야 왕에 대해서도 이와 유사하게 평가한 적이 있다(18 : 5). 그러나 엄밀한 의미에서 그 평가 내용을 분석해 보면 1 히스기야가 어느 왕보다도 하나님을 의뢰하였다면 2 요시야는 하나님의 율법을 준행함에 있어서 열왕들보다 더 완전했다라는 의미로 구분된다. 그렇지만 이러한 평가는 다시 '그 조상 다윗과 같이' 정직히 행했다는 공통된 평가로 요약될 수 있다(18 : 3 ; 22 : 2). 따라서 본서 저자는 히스기야나 요시야가 다른 열왕들에 비해 하나님 보시기에 더 정직하게 행했다는 사실을 강조하기위해 '전에도 없었고 후에도 그와 같은 자가 없었더라'는 평을 첨부했던 것이다. 18 : 5주석 참조. 한편 본절에서 '마음을 다하며 성품을 다하며 힘을 다하여'라는 표현은 신 6: 5에 기록된 쉐마(Shema) 본문에 의거한 평가이다. 3절 주석 참조. 그리고 '모세의 모든 율법을 온전히 준행한'이란 표현은 다윗이 솔로몬에게 누차 당부했던 말들(왕상2 : 1, 3 ; 6 : 11-13;8 : 25, 26; 9 : 1-9) 속에서도 여러번 나타나는데 이것은 율법준수에 대한 요시야의 철저한 면을 보여 준다. 한편 구약 외경서 가운데 하나인 집회서 49 : 4에는 다윗과 히스기야와 요시야를 제외한 모두 유다의 왕들이 범죄하므로 멸망당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Pulpit Commentary). 26 그러나 여호와께서 유다를 향하여 진노하신 그 크게 타오르는 진노를 돌이키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므낫세가 여호와를 격노케 한 그 모든 격노를 인함이라 ㅇ그러나...진노를 돌이키지 아니하셨으니 - 요시야가 행한 많은 개혁과 선한 행위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유다를 멸망시키고자하는 하나님의 진노를 돌이킬 수는 없었다. 본문에 보면 그 이유는 선왕(先王) '므낫세의 죄' 때문이었다고 한다(21 : 1-16 ; 24: 3 ; 렘 15 : 4). 여기서 '므낫세의 죄'라고 하는 것은 지금까지 유다가 하나님 앞에서 행한 모든 죄를 통틀어 가리키는 표현임과 동시에 유다가 필연코 멸망 될 수 밖에 없는 이유를 단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그것은 마치 과거 북왕국 이스라엘이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죄'로 인해 멸망한 것과 같다(17 : 21-23). 그런데 이 모든 사실은 멸망으로 예정된 어떤 백성이 그 죄악에서 돌이킬 때 하나님께서 심판의 뜻을 돌이키신다고 약속하신 말씀과 서로 상반되는 듯한 인상을 준다(렘 29 : 12-14).그러나 이 두 가지 사실은 다음과 같이 조화될 수 있다. 1) 이것은 허다한 결함 투성이의 이스라엘을 폐하는 대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영원한 이스라엘을 다시금 일으키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섭리에 기인한 것이다(렘 31 : 31-34 ; 겔 37 : 25-28 ; 마 3 : 9 ; 롬 9 :6-8 ; 갈 6 : 15, 16). 2) 요시야 왕의 완벽한 순종 행위와는 달리 유다 백성들의 마음은 여전히 변하지 않고 므낫세 때의 구습(舊習)을 쫓아 행하고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심판은 불가피하였다는 점이다. 이러한 사실은 예레미야서와 스바냐의 예언서를 보면 분명히 알 수 있다(렘 2-13, 16-19장 ; 습 1장).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더 이상 심판을 연기하거나 돌이키실 수가 없었던 것이다. 이와같이 하나님은 당신의 오래 참으심을 무시하고 계속 죄에 거하는자들에 대해서는 아모리 족속을 위시한 가나안 족속들을 그 땅에서 쫓아내셨듯이(21 : 11 ; 창 15 : 16 ; 왕상 21 : 26)그 땅에서 쫓아내거나 멸망시키실 것이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하나님의 진노가 더 크게 타오르기 전에 죄에서 돌이키는 결단을 보여야 하겠다. 27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이스라엘을 물리친 것 같이 유다도 내 앞에서 물리치며 내가 뺀 이 성 예루살렘과 내 이름을 거기 두리라 한 이 전을 버리리라 하셨더라 ㅇ내가...버리리라 - 이처럼 본절에서 여호와께서는 유다와 예루살렘 성을 버리시겠다고 말씀하신다. 그리고 유다의 범죄가 이스라엘의 범죄와 동일하다고 판단하신다. 이것은 이스라엘의 범죄를 이방인들의 범죄와 동일한 것으로 규정했던 17 : 8, 15절의 말씀과 연결된다. 지금까지 하나님께서는 유다와 이스라엘백성을 전적인 은혜 가운데 택정하사 당신의 눈동자같이 아껴 주시고 보호해 주신다(신 32 : 8-10).그러나 이제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죄악으로 인해 택하신 유다와 예루살렘을(19 : 34 ; 21 : 7) 버리시겠다고 하신 것이다(렘 6 : 30). 이것은 포로 이전 시기 유다인들의 죄악상이 얼마나 심각했는가를 단적으로 보여 준다. 28 요시야의 남은 사적과 모든 행한 일은 유다 왕 역대지략에 기록 되지 아니하였느냐 ㅇ요시야의 남은 사적...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 요시야의 통치에 대한 이러한 결론은 너무 간략해서 이상하게 보인다. 실상 평행 구절인 대하 35 : 20-27에서는 보다 자세하게 요시야의 행적을 마무리하고 있다.아마도 본서 기자가 요시야의 통치에 대한 결론을 이와같이 간단하게 취급하고 있는 것은 26, 27절에 기록된 것과 같이 요시야의 비극적인 죽음이 그의 말년을 어둡게 했기 때문인 것으로 추측된다. 29 요시야 당시에 애굽 왕 바로느고가 앗수르 왕을 치고자하여 유브라데 하수로 올라가므로 요시야 왕이 나가서 방비하더니 애굽 왕이 요시야를 므깃도에서 만나본 후에 죽인지라 ㅇ애굽 왕 바로느고 - 역사상 '바로느고'(Pharaoh Neco)에 대해서는 아주 잘 알려져 있다. 이에 대해서 간단히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그는 니느웨(Nineveh)가 멸망한 후 3년째 되던 해인 B.C. 609년에 애굽의 왕이 되었다. 왕이 된 그는 당시 앗수르를 장악하고 있던 바벨론 왕 나보폴라살(Nabopolassar)과 격전을 벌였으나 승부를 내지 못하고 유다 땅을 침략 하기 시작했다. 그 이후 B.C. 605년 경에 다시 나보폴라살을 공격했는데 이때에 나보폴라살의 아들 느부갓네살Nebuchadnezzar)이 갈그미스 전쟁에서 (대하 35 : 20) 애굽을 격파했다. 이것으로 애굽의 세력 확장은 중단되었다. ㅇ앗수르 왕을 치고자 하여...올라가므로 - 느고가 왕위에 오른 때(B.C. 609)는 이미 앗수르가 바벨론의 수중에 떨어진 때(B.C. 610)이다. 따라서 느고가 앗수르 왕을 치러 유브라데 강가로 올라갔다는 말은 역사적 정황과 맞지 않는다. 따라서 본절은 느고가 바벧론 왕을 치러 갔거나 아니면 바벧론과 싸우는 앗수르 잔류군을 돕기 위해 갔다는 말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ㅇ요시야 왕이 나가서 방비하더니 - 평행 구절인 대하 35 : 20- 27은 요시야와 애굽왕 바로느고와의 전투 기사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1) 전투의 원인 : 당시 팔레스틴에서는 앗수르가 멸망하고(B.C. 610년) 바벧론 제국이 세력을 장악하고 있었다. 그러나 옛 앗수르 영토에는 아직도 앗수르 잔류군이 남아 있었고 바벧론도 본격적으로 세력을 확장하고 있지는 않았다. 따라서 이때야 말로 애굽으로서는 팔레스틴에 대한 지배권을 회복하고 옛 앗수르의 영토를 회복하는 데 더 할 나위 없는 호기라고 생각하였다. 이에 요시야는 팔레스틴에 대한 애굽의 지배권이 부활되는 것을 저지하기 위해서 군대를 동원함으로써 '므깃도 전쟁'이 발발하게 되었다. 2) 경과 : 애굽 군대는 가사와 아스글론을 점령하고 점차 북상(北上)하여 므깃도에 이르렀다. 요시야의 군대도 갈멜 산맥을 통과하여 므깃도에 도착하였는데 이곳에서 양군간의 전투가 벌어졌다. 결국 하나님의 말씀(대하 35 : 21)을 거부하고 전쟁을 수행하던 요시야는 전사하고 유다군은 패퇴하였다. 이에 느고의 군대는 계속 북진하여 하란 공성(攻成)을 시도하였으나 실패하였다. 그러나 이 전쟁으로 애굽은 팔레스틴과 수리아에 대한 지배권을 확보하여 수년간 통치하였다. 3) 의의 : 이전쟁은 유다의 멸망에 대한 전조(前兆)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이 전쟁의 패배로 인해 유다는 앗수르 대신 애굽의 속박을 받아 사실상 국권(國權)을 상실 하였기 때문이다. 실제로 유다 왕 여호아하스는 바로느고에 의해 리블라(Riblah)로 호출되어 폐위당했으며, 엘리아김 같은 왕은 애굽 왕에게 충성을 표하기 위해 여호야김으로 개명(改名)을 해야만 했다(32-35절). 그러나 유다를 지속적으로 지배하던 바로느고도 결국 갈그미스 전투에서 바벧론 군대에게 결정적인 패배를 당해 애굽으로 퇴각함으로써(24 : 7 ; 렘 46 : 2) 유다는 바벨론에게 망하였다. ㅇ므깃도 - 이곳은 오늘날의 '텔 엘 뭇셀린'(Tell el Mutsellin)에 해당되는 곳으로 이스르엘 평야에 위치한 청동기 시대의 성읍이다(슥 12 : 11). 이곳은 애굽에서 메소포타미아로 통하는 주요 간선 도로상에 위치하였는바. 그런데 요시야가 예루살렘에서 북쪽으로 이렇게 멀리까지 올라온 것은 전투 중 행여 유다 성읍에 어떠한 위험이라도 미치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었을 것이다(Rawlinson). 30 신복들이 그 시체를 병거에 싣고 므깃도에서 예루살렘으로 돌아와서 그 묘실에 장사하니 국민이 요시야의 아들 여호아하스를 데려다가 저에게 기름을 붓고 그 부친을 대신하여 왕을 삼았더라 ㅇ그 시체를 병거에 싣고 - 대하 35 : 20-24에는 요시야가 므깃도(Megiddo)에서 치명적인 부상을 입은 후 예루살렘에 돌아와서 죽은 것으로 나와 있다. 따라서 그것은 본절의 기사와 서로 상치되는 듯하다. 그러나 카일(Keil)의 견해에 따르면 역대기 기록은 요시야가 예루살렘에 돌아온 후 죽은 것으로 해석할 수 없으며 므깃도에서 예루살렘으로 가는 도중 하다드림몬 (Hadad-rimmon) 쯤에서 죽은 것이 분명하다고 한다(슥12 : 11). ㅇ국민이 요시야의 아들 여호아스를 데려다가 - 본서에 따르면 정치적인 일에 있어서 유다 '국민' 의 역할은 매우 두드러졌는데 특히 다윗 계통의 유다 왕을 선택하여 세우는 일에 있어서는 더욱 그러하였음을 알 수 있다(11 : 12 ; 21 :24). 한편 '여호아하스'라는 이름은 '여호와께서 붙드신다'라는 뜻으로서 렘 22 :10-12에서는 살룸(Shallum)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리우고 있다. 그런데 국민들이 무슨 근거로 그의 형 엘리아김(34전)을두고 그를 왕위에 추대했는지는 알 수 없다. 혹자는 백성들이 동생 여호아하스를 더 유능한 자로 여겼기 때문이라고 하고(Keil), 또 다른 사람은 형 엘리아김이 요시야를 따라 므깃도로 나갔다가 느고에 의해 포로로 잡혔기때문이라고도 하나(Rawlinson) 분명한 근거가 없다. 31 여호아하스가 위에 나아갈 때에 나이 이십 삼세라 예루살렘에서 석달을 치리하니라 그 모친의 이름은 하무달이라 립나 예레미야의 딸이더라 ㅇ예루살렘에서 석달을 치리하니라 - 여호아하스의 이처럼 짧은 통치는 요시야가 죽은 이후 정국(政局)이 얼마나 혼란했는지를 간접적으로 시사해 준다. ㅇ그 모친의 이름은 하무달이라 - 유다 왕들의 약력을 소개할 때는 이처럼 모친에 대한 소개가 대개 포함되는 것이 한 특징이다(18 : 2 ; 21 : 1 ; 22 : 1). 한편 '하무달'(Hamutal)이라는 이름의 뜻은 분명치 않다. 그런데 혹자는 '안개의 사촌' 이라는 뜻이라고도한다(Hobbs). ㅇ립나 예레미야의 딸이더라 - 립나(Libnah)라는 지명은 하무달의 아버지가 선지자 예레미야와는 동명 이인(同名異人)임을 알려준다. 왜냐하면 선지자 예레미야는 아나돗 (Ana-thoth)출신이기 때문이다(렘 1 : 1). 한편 '립나'는 오늘날의 '텔엘 바이드(Tell el Beide)에 해당되는 성읍으로(Grid)유다 평지에 위치하였다. 그런데 이 도시는 세펠라(Shephe-lah) 변방의 도시이기 때문에 자주 영토의 소유국이 바뀌었다. 혹자는 유다가 이 성읍을 차지한 것은 유다가 요시야 통치하에 크게 확장 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나 (Oded)분명한 근거가 없다(Hobbs). 32 여호아하스가 그 열조의 모든 행위대로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더니 ㅇ여호아하스가...악을 행하였더니 - 이처럼 국민의 뜻에 의해 세움받은 여호아하스왕(30절)은 그 열조의 모든 행위대로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했다. 이러한 사실은 이미 26, 27절에서 언급되었듯이 하나님의 심판의 불가피성을 보여 준다. 이에 대한 보다 자세한 내용은 26, 27절 주석 참조하라. 33 바로느고가 저를 하맛 땅 립나에 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