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왕하19장 ---[405.주의친절한팔에..406, “곤한 내 영혼 편히 쉴 곳과”(1-7)] [543. '어려운 일 당할 때'] [ 413.. “내 평생에 가는 길(8-19)] [393. 오 신실하신 주(20--37)]
===왕이 이사야의 충고를 듣고자 하다 1. 히스기야 왕이 듣고 그 옷을 찢고 굵은 베를 두르고 여호와의 전에 들어가서 2. 왕궁의 책임자인 엘리야김과 서기관 셉나와 제사장 중 장로들에게 굵은 베를 둘려서 아모스의 아들 선지자 이사야에게로 보내매 3. 그들이 이사야에게 이르되 히스기야의 말씀이 오늘은 환난과 징벌과 모욕의 날이라 아이를 낳을 때가 되었으나 해산할 힘이 없도다 4. 랍사게가 그의 주 앗수르 왕의 보냄을 받고 와서 살아 계신 하나님을 비방하였으니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혹시 그의 말을 들으셨을지라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들으신 말 때문에 꾸짖으실 듯하니 당신은 이 남아 있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소서 하더이다 하니라 .....@남은자 = "페르슈임" <פרשׂים,...페이-레이시-신(좌)_요드-멤>..=베레시트-엘로힘-페리 =엘로힘-페리슈트..말씀이신 Q, '베레시트' 이루시는분, 그 실제의 영께서 낳아 맺은 열매들인바, Q의 모든 속성-형상-진리의 부으심이 육화됨, 곧 [성령과 동심합치 이뤄] 그의 육체 안에 [교통하시는 주님-머리-주인으로서 "달렛", 그 머리로서]거하시게 하며 바로 그분의 거처로서 그분의 움직이심따라, 그분이 말하게 하시는것만 (그분께서 친히 말씀하시도록 해드림) 말하며 살아가는 담지자-그릇인자들 5. 이와 같이 히스기야 왕의 신복이 이사야에게 나아가니 6. 이사야가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너희 주에게 이렇게 말하라 여호와의 말씀이 너는 앗수르 왕의 신복에게 들은 바 나를 모욕하는 말 때문에 두려워하지 말라 7. 내가 한 영을 그의 속에 두어 그로 소문을 듣고 그의 본국으로 돌아가게 하고 또 그의 본국에서 그에게 칼에 죽게 하리라 하셨느니라 하더라 ===앗수르가 또 위협하다 8. ○랍사게가 돌아가다가 앗수르 왕이 이미 라기스에서 떠났다 함을 듣고 립나로 가서 앗수르 왕을 만났으니 왕이 거기서 립나와 싸우는 중이더라 .....@립나....라기스(헤브론 서북서쪽)와 함께 블레셋지방인 쉐펠라 지대에 속함...립나는 라기스 북방 8km, 예루살렘 서쪽 30Km 지점...앗수르 산헤립은 BC701<1차 침공>, 애굽 원정길에 나서면서 먼저 라기스를 점령한 후 히스기야의 항복을 받아내었고, 거기에 군대를 주둔시켰음....BC.699년 2차 침공때는 (구스와의 동맹 결성 소식 접함을 빌미삼아 원정에 나서게 됨) 라기스 북방의 립나를 공격하면서 동시에 예루살렘에 사자를 보내어 히스기야의 항복을 종용했으나 거절당함.. ..한편, 히스기야에게 도달한 이사야의 예언 전달내용 그대로!! 그날밤 여호와의 사자의 손에 18만5천명 몰사 + 구스왕 디르하가의 참전(군대 이동)의 풍문 듣고, 니느웨로 철군, 거기서 암살당함.. 9. 앗수르 왕은 구스 왕 디르하가가 당신과 싸우고자 나왔다 함을 듣고 다시 히스기야에게 사자를 보내며 이르되 10. 너희는 유다의 왕 히스기야에게 이같이 말하여 이르기를 네가 믿는 네 하나님이 예루살렘을 앗수르 왕의 손에 넘기지 아니하겠다 하는 말에 속지 말라 11. 앗수르의 여러 왕이 여러 나라에 행한 바 진멸한 일을 네가 들었나니 네가 어찌 구원을 얻겠느냐 12. 내 조상들이 멸하신 여러 민족 곧 고산과 하란과 레셉과 들라살에 있는 에덴 족속을 그 나라들의 신들이 건졌느냐 13. 하맛 왕과 아르밧 왕과 스발와임 성의 왕과 헤나와 아와의 왕들이 다 어디 있느냐 하라 하니라 14. ○히스기야가 사자의 손에서 편지를 받아보고 여호와의 성전에 올라가서 히스기야가 그 편지를 여호와 앞에 펴 놓고 15. 그 앞에서 히스기야가 기도하여 이르되 그룹들 위에 계신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는 천하 만국에 홀로 하나님이시라 주께서 천지를 만드셨나이다 16. 여호와여 귀를 기울여 들으소서 여호와여 눈을 떠서 보시옵소서 산헤립이 살아 계신 하나님을 비방하러 보낸 말을 들으시옵소서 17. 여호와여 앗수르 여러 왕이 과연 여러 민족과 그들의 땅을 황폐하게 하고 18. 또 그들의 신들을 불에 던졌사오니 이는 그들이 신이 아니요 사람의 손으로 만든 것 곧 나무와 돌 뿐이므로 멸하였나이다 19. 우리 하나님 여호와여 원하건대 이제 우리를 그의 손에서 구원하옵소서 그리하시면 천하 만국이 주 여호와가 홀로 하나님이신 줄 알리이다 하니라 ===이사야가 왕에게 보낸 여호와의 말씀 20.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가 히스기야에게 보내 이르되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네가 앗수르 왕 산헤립 때문에 내게 기도하는 것을 내가 들었노라 하셨나이다 21. 여호와께서 앗수르 왕에게 대하여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처녀 딸 시온이 너를 멸시하며 너를 비웃었으며 딸 예루살렘이 너를 향하여 머리를 흔들었느니라 22. 네가 누구를 꾸짖었으며 비방하였느냐 누구를 향하여 소리를 높였으며 눈을 높이 떴느냐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에게 그리하였도다 23. 네가 사자들을 통하여 주를 비방하여 이르기를 내가 많은 병거를 거느리고 여러 산 꼭대기에 올라가며 레바논 깊은 곳에 이르러 높은 백향목과 아름다운 잣나무를 베고 내가 그 가장 먼 곳에 들어가며 그의 동산의 무성한 수풀에 이르리라 24. 내가 땅을 파서 이방의 물을 마셨고 나의 발바닥으로 애굽의 모든 강들을 말렸노라 하였도다 25. 네가 듣지 못하였느냐 이 일은 내가 태초부터 행하였고 옛날부터 정한 바라 이제 내가 이루어 너로 견고한 성들을 멸하여 무너진 돌무더기가 되게 함이니라 26. 그러므로 거기에 거주하는 백성의 힘이 약하여 두려워하며 놀랐나니 그들은 들의 채소와 푸른 풀과 지붕의 잡초와 자라기 전에 시든 곡초 같이 되었느니라 27. 네 거처와 네 출입과 네가 내게 향한 분노를 내가 다 아노니 28. 네가 내게 향한 분노와 네 교만한 말이 내 귀에 들렸도다 그러므로 내가 갈고리를 네 코에 꿰고 재갈을 네 입에 물려 너를 오던 길로 끌어 돌이키리라 하셨나이다 29. ○또 네게 보일 징조가 이러하니 너희가 금년에는 스스로 자라난 것을 먹고 내년에는 그것에서 난 것을 먹되 제삼년에는 심고 거두며 포도원을 심고 그 열매를 먹으리라 30. 유다 족속 중에서 피하고 남은 자는 다시 아래로 뿌리를 내리고 위로 열매를 맺을지라 31. 남은 자는 예루살렘에서부터 나올 것이요 피하는 자는 시온 산에서부터 나오리니 여호와의 열심이 이 일을 이루리라 하셨나이다 하니라 32.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앗수르 왕을 가리켜 이르시기를 그가 이 성에 이르지 못하며 이리로 화살을 쏘지 못하며 방패를 성을 향하여 세우지 못하며 치려고 토성을 쌓지도 못하고 33. 오던 길로 돌아가고 이 성에 이르지 못하리라 하셨으니 이는 여호와의 말씀이시라 34. 내가 나와 나의 종 다윗을 위하여 이 성을 보호하여 구원하리라 하셨나이다 하였더라 ===산헤립이 죽다 35. ○이 밤에 여호와의 사자가 나와서 앗수르 진영에서 군사 십팔만 오천 명을 친지라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보니 다 송장이 되었더라 36. 앗수르 왕 산헤립이 떠나 돌아가서 니느웨에 거주하더니 37. 그가 그의 신 니스록의 신전에서 경배할 때에 아드람멜렉과 사레셀이 그를 칼로 쳐죽이고 아라랏 땅으로 그들이 도망하매 그 아들 에살핫돈이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 [NASB]제19장
1. And when King Hezekiah heard [it,] he tore his clothes, covered himself with sackcloth and entered the house of the LORD. 2. Then he sent Eliakim who was over the household with Shebna the scribe and the elders of the priests, covered with sackcloth, to Isaiah the prophet the son of Amoz. 3. And they said to him, "Thus says Hezekiah, 'This day is a day of distress, rebuke, and rejection; for children have come to birth, and there is no strength to [deliver.] 4. 'Perhaps the LORD your God will hear all the words of Rabshakeh, whom his master the king of Assyria has sent to reproach the living God, and will rebuke the words which the LORD your God has heard. Therefore, offer a prayer for the remnant that is left.' " 5. So the servants of King Hezekiah came to Isaiah. 6. And Isaiah said to them, "Thus you shall say to your master, 'Thus says the LORD," Do not be afraid because of the words that you have heard, with which the servants of the king of Assyria have blasphemed Me. 7. "Behold, I will put a spirit in him so that he shall hear a rumor and return to his own land. And I will make him fall by the sword in his own land." '" 8. Then Rabshakeh returned and found the king of Assyria fighting against Libnah, for he had heard that the king had left Lachish. 9. When he heard [them] say concerning Tirhakah king of Cush, "Behold, he has come out to fight against you," he sent messengers again to Hezekiah saying, 10. "Thus you shall say to Hezekiah king of Judah, 'Do not let your God in whom you trust deceive you saying," Jerusalem shall not be given into the hand of the king of Assyria. " 11. 'Behold, you have heard what the kings of Assyria have done to all the lands, destroying them completely. So will you be spared? 12. 'Did the gods of those nations which my fathers destroyed deliver them, [even] Gozan and Haran and Rezeph and the sons of Eden who [were] in Telassar? 13. 'Where is the king of Hamath, the king of Arpad, the king of the city of Sepharvaim, and [of] Hena and Ivvah?' " 14. Then Hezekiah took the letter from the hand of the messengers and read it, and he went up to the house of the LORD and spread it out before the LORD. 15. And Hezekiah prayed before the LORD and said, "O LORD, the God of Israel, who art enthroned [above] the cherubim, Thou art the God, Thou alone, of all the kingdoms of the earth. Thou hast made heaven and earth. 16. "Incline Thine ear, O LORD, and hear; open Thine eyes, O LORD, and see; and listen to the words of Sennacherib, which he has sent to reproach the living God. 17. "Truly, O LORD, the kings of Assyria have devastated the nations and their lands 18. and have cast their gods into the fire, for they were not gods but the work of men's hands, wood and stone. So they have destroyed them. 19. "And now, O LORD our God, I pray, deliver us from his hand that all the kingdoms of the earth may know that Thou alone, O LORD, art God." 20. Then Isaiah the son of Amoz sent to Hezekiah saying, "Thus says the LORD, the God of Israel, 'Because you have prayed to Me about Sennacherib king of Assyria, I have heard [you.]' 21. "This is the word that the LORD has spoken against him: 'She has despised you and mocked you, The virgin daughter of Zion; She has shaken [her] head behind you, The daughter of Jerusalem! 22. 'Whom have you reproached and blasphemed? And against whom have you raised [your] voice, And haughtily lifted up your eyes? Against the Holy One of Israel! 23. 'Through your messengers you have reproached the Lord, And you have said, "With my many chariots I came up to the heights of the mountains, To the remotest parts of Lebanon; And I cut down its tall cedars [and] its choice cypresses. And I entered its farthest lodging place, its thickest forest. 24. "I dug [wells] and drank foreign waters, And with the sole of my feet I dried up All the rivers of Egypt." 25. 'Have you not heard? Long ago I did it; From ancient times I planned it. Now I have brought it to pass, That you should turn fortified cities into ruinous heaps. 26. 'Therefore their inhabitants were short of strength, They were dismayed and put to shame; They were as the vegetation of the field and as the green herb, As grass on the housetops is scorched before it is grown up. 27. 'But I know your sitting down, And your going out and your coming in, And your raging against Me. 28. 'Because of your raging against Me, And because your arrogance has come up to My ears, Therefore I will put My hook in your nose, And My bridle in your lips, And I will turn you back by the way which you came. 29. 'Then this shall be the sign for you: you shall eat this year what grows of itself, in the second year what springs from the same, and in the third year sow, reap, plant vineyards, and eat their fruit. 30. 'And the surviving remnant of the house of Judah shall again take root downward and bear fruit upward. 31. 'For out of Jerusalem shall go forth a remnant, and out of Mount Zion survivors. The zeal of the LORD shall perform this. 32. 'Therefore thus says the LORD concerning the king of Assyria, "He shall not come to this city or shoot an arrow there; neither shall he come before it with a shield, nor throw up a mound against it. 33. "By the way that he came, by the same he shall return, and he shall not come to this city," 'declares the LORD. 34. 'For I will defend this city to save it for My own sake and for My servant David's sake.' " 35. Then it happened that night that the angel of the LORD went out, and struck 1850000 in the camp of the Assyrians; and when men rose early in the morning, behold, all of them were dead. 36. So Sennacherib king of Assyria departed and returned [home,] and lived at Nineveh. 37. And it came about as he was worshiping in the house of Nisroch his god, that Adrammelech and Sharezer killed him with the sword; and they escaped into the land of Ararat. And Esarhaddon his son became king in his place. ====== ..열왕기하 19장 (개요) 우리는 앞장에서 예루살렘의 큰 곤경을 읽었다. 예루살렘은 포위되고, 모욕과 위협을 받고, 놀라게 되고, 마침내는 앗수르 군대에게 막 넘어갈 참이었다. 그러나 본장에서는 예루살렘이 영광스러운 구원을 맞이하는 기록을 본다. 그러나 그것은 칼과 활로써가 아니라, 기도와 예언, 그리고 천사의 손에 의한 구원이었다. 1. 큰 근심 중에 히스기야는 선지자 이사야에게 사람을 보냈다. 그의 기도를 바랐기 때문이다(1-5). 그리고 그에게서 평화의 대답을 받았다(6-7). 2. 산헤립은 히스기야에게 항복하라는 경고를 편지로 써보냈다(8-13). 3. 그러자 히스기야는 매우 진실한 기도로써, 그 사정을 의로운 재판관이신 하나님께 아뢰었다. 그리고 하나님의 도움을 빌었다(14-19). 4. 하나님은 이사야를 통해 그에게 위로의 메시지를 보내고, 구원을 보장한다(20-34). 5. 앗수르의 군대는 모두 천사에 의해서 죽임을 당하고, 산헤립은 자기 아들에게 살해된다(35-37). 그래서 하나님 자신은 영광을 받게 되었고 그 백성들은 구원을 받게 되었다. ---------- 이사야를 찾아간 히스기야(왕하 19:1-7) 랍사게의 말의 내용이 히스기야에게 전해지자, 그가 다음과 같이 했으리라고 기대할 것이다(랍사게도 그랬을 것이다). 히스기야가 전쟁 자문회의를 소집하고, 조건부 항복을 하는 것이 최선의 일인지 아닌지를 논의했을 것이라고. 성이 포위되기 전에 그는 “방백들과 용사들로 더불어 의논하였다”(대하 32:3). 그러나 지금은 그렇게 하고자 하지 않았다. 그의 최대의 위로는, 자기가 그 앞에 나아갈 수 있는 하나님이 있다는 점이다. 이때에 히스기야와 그의 하나님 사이에 일어난 일의 기록이 있다. Ⅰ. 히스기야는 랍사게의 모독적인 언사가 하나님께 가한 치욕을 깊이 우려했다. 그가 그 말을 들었을 때―간접적으로 전해들었지만― “그 옷을 찢고 굵은 베를 입었다”고 했다(1절). 훌륭한 사람들은 하나님의 이름에 어떤 불명예가 돌아갔다는 소식을 들으면, 역시 그렇게 할 것이다. 그리고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위대한 하나님의 명예에 침해되는 일에 동조하더라도 그것이 자기들에게는 아무런 비방거리도 아니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왕의 옷이 너무 훌륭해서 찢어질 수 없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이 모욕을 당하고 자기의 예루살렘성이 존폐의 위기에 당했을 때에라도, 왕의 육체는 너무 훌륭해서 굴욕적인 굵은 베옷을 입을 수 없는 정도는 아니다. 하나님은 지금 바로 그런 것을 요구하셨다. 그리고 그러한 마음의 감동을 받지 않은 자들을 기뻐하지 않으셨다(사 22:12-14). “기뻐하고 즐거워하여 소를 잡고 양을 죽였다.” 그러나 그때는 “이상(異像)의 골짜기에 분요와 환난이 있던 날이었다”(사 22:5). 이 말씀은 바로 이 사건을 말하는 것이다. 왕은 굵은 베옷을 입었지만, 많은 그의 신하들은 부드러운 옷을 입고 있었다. Ⅱ. 그는 “여호와의 전에 올라갔다.” 그것은 시편 저자의 본을 따른 것이다. 시편 저자는 그가 악한 자의 번성과 높아짐으로 탄식할 때,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갔고”, 그리고 거기서 “그들의 마지막을 보았다”(시 73:17). 그도 하나님의 전으로 가서 묵상하고 기도하였다. 그래서 그 동요는 지나가고 그의 정신의 안정은 돌아왔다. 그는 무슨 답변을 랍사게에게 할지 생각하고 있지 않았다. 단지 하나님에게 그 사실을 아뢰었을 뿐이다.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대신하여 대답하소서”―허버트(Herbert). 여호와의 전에서 그는 휴식처와 피난처를 찾았다. 또 보물창고, 화약고, 회의실, 그리고 그가 필요한 모든 것이 하나님 안에 있었다. 교회의 원수들이 매우 대담하고 위협적일 때, 교회의 친구들은 하나님께 의지하고 호소하며 그들의 주장을 하나님께 맡기는 것이 지혜로운 일이요 또 의무이다. Ⅲ. 그는 선지자 이사야에게 품위 있는 사절을 보냈다. 그것은 그가 이사야를 크게 존중하고 있다는 증거였다. 그래서 그의 기도를 요구했다(2-4절). 엘리야김과 셉나는 랍사게의 말을 들었던 자들 중의 두 사람으로서, 누구보다도 이사야에게 사건을 더 잘 알리고 감동시킬 수 있었다. 제사장들 중 연로한 자들은 환난의 때에 그 백성들을 위해 스스로 기도해야 한다(욜 2:17). 그러나 그들은 이사야의 기도를 받으러 가야 했다. 왜냐하면 이사야는 그 누구보다 더 잘 기도할 수 있었고, 하늘과 더 깊은 관계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사절들은 굵은 베옷을 입고 갔다. 그것은 그들이 굵은 베옷을 입은 왕을 대표하는 자들이었기 때문이었다. 1. 그들이 이사야에게 간 목적은, “당신은 이 남아 있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소서” 하는 것을 전하는 것이다(4절). 즉 유다를 위해서였다. 열 지파(이스라엘)가 멸망한 지금, 유다는 야곱의 유일한 자손이다. 그리고 예루살렘을 위해서였다. 성벽이 있는 유다의 모든 성읍이 빼앗긴 지금으로서는, 예루살렘은 유일한 잔존 도성이었다. 다음 사실을 명심하자. (1) 우리가 환난을 당하고 있을 때에는, 우리의 친구들의 기도를 받는 것이 바람직하며, 그것은 또한 마땅히 바라야 한다. 기도를 받기 원하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영광되게 하며, 기도를 영광되게 하고, 우리의 형제들을 영광되게 하는 것이다. (2) 우리가 타인에게 기도를 바라는 동안은 우리 자신은 우리를 위해 기도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히스기야는 이사야에게 자기를 위하여 기도해 달라고 사람을 보내고 나서, 그 자신도 기도하려고 “여호와의 전으로 들어갔다.” (3)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에게 전해 주는 자에게, 우리를 대신하여 하나님께 말씀드려 달라고 특별히 부탁해야 한다. 그러면 “그는 선지자라. 너희를 위하여 기도할 것이다”(창 20:7). 위대한 선지자는 위대한 중재자이다. (4) 하나님께 기도를 “올리는” 자, 즉 마음을 다 바쳐 기도하는 자는 하나님을 이길 것이다. (5) 하나님의 교회의 세력이 낮아져서, 소수의 친구들과 악한 자들만이 남았을 때는, “그 남은 자들을 위하여 우리가 기도를 드려야” 할 때이다. 2. 이사야는 두 가지를 위해 기도해 달라고 부탁 받았다. (1) 그들이 원수를 두려워한다는 것이다(3절). “그는 거만하고 건방지다. 지금은 책벌과 능욕의 날이다. 우리는 멸시를 받고 있다. 하나님도 수치를 당하고 있다. 이런 것을 생각해 볼 때 지금은 환난의 날이다. 우리는 결코 그러한 왕과 왕국의 지배와 압제를 받은 적이 없다. 우리의 영혼은 오만한 자의 경멸로 차고 넘친다. 그리고 그들이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확신을 비난하는 것을 듣는 것은 우리의 뼈 속의 칼이다. 그리고 그들은 지금 너희 하나님이 어디 있는가 하고 말한다. 또 설상가상으로 우리는 우리 자신을 스스로 구제할 방도와 이 치욕에서 벗어날 방도를 전혀 모르고 있다. 우리의 명분은 훌륭하다. 그리고 우리의 백성들은 신실하다. 그러나 우리는 수적으로 적에게 압도된다. 어린 아기가 출생하고 있다. 지금이 바로 우리가 구원되어야 할 그 결정적인 시기이다. 원수에게 성공적으로 일격이 가해진다면, 우리의 소원은 이루어질 것이다. 그러나 슬프게도 우리는 그렇게 할 수 없도다. 해산할 힘이 없도다. 여인이 진통으로 완전히 힘을 소비하면 해산할 기력을 잃어버리듯이, 우리의 처지가 바로 그런 슬픈 지경이다. 신속한 도움이 필요하도다(이것과 호세아 18장 13절을 비교해 보라). 우리는 멸망 직전에 있다. 만일 너희가 어떤 일이든 할 수 없다면, 우리를 불쌍히 여기고 우리를 도우라.” (2) 그들은 하나님에게 희망을 걸고 있다. 그들은 하나님을 바라보고 있으며 그를 의지한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위해서 나타나 주시기를 기다린다. 하나님께서 한 마디만 말씀하시면, 전세를 역전시킬 것이고, 쓰러져 가는 남은 자를 구원할 것이다. 만일 하나님께서 랍사게의 말을 꾸짖어만 준다면(즉 그들을 반증하기만 한다면. 4절) 다시 말해서, 하나님께서 그 모독자가 죄를 깨닫도록 해 주시고 그를 당혹케 하신다면 만사는 잘 될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의 공로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의 명예를 위해서 이 일을 하시리라고 믿고 있다. 왜냐하면 랍사게가 “살아 계신 하나님을 비난했으며”, 하나님을 귀먹고 벙어리인 우상들과 같은 수준에 두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 문제가 잘 해결될 것이라고 능히 생각할 수 있었다. 그 까닭은, 이 문제가 하나님과 관련된 것이기 때문이다. “오, 하나님이여! 일어나서 주의 원통을 푸소서”(시 74:22). 그들은 이사야에게 말한다. “그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로다. 그는 너의 것이다. 너는 그의 영광에 관여되어 있다. 그리고 너는 그의 은총에 관계되어 있다. 그는 랍사게의 망령된 말을 듣고 아신다. 그러므로 그 말을 듣고 꾸짖을 것이다. 우리는 그가 그렇게 하길 바란다. 그의 앞에 그 사정을 아뢰는 너의 기도로 우리를 도우라. 그러면 우리는 그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만족할 것이다.” Ⅳ. 하나님은 이사야를 통해서 히스기야에게 전했다. 하나님은 앗수르를 멸망시켜 영광을 받으시기 원하신다는 점을 알리려는 것이다. 히스기야는, 많은 사람들이 하듯이(“내가 회복된 것인가?” 등등) 그 사건에 관해 묻기 위해서가 아니라, 의무를 다하려는 일을 도와달라고 부탁하려고 사람을 이사야에게 보냈다. 그가 바랐던 것은 바로 이것이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자기의 의무를 행하려는 그의 뜻에 보상하여 그 사건의 결과도 그에게 알려 주셨다(6-7절). 1. 하나님 자신이 그 사건과 관련되어 있었다. “너희는 나를 망령되게 하였다.” 2. 하나님은 대단히 낙심한 히스기야를 격려했다. “너희가 들은 말들로 인하여 두려워 말라.” 그 말들은 단순히 말에 지나지 않는다(비록 과장되고 신랄한 말들이긴 하지만). 그리고 그 말들은 바람에 불과하다. 3. 하나님은 랍사게가 히스기야를 놀라게 한 것보다 더 앗수르 왕을 놀라게 하리라고 약속했다. “나는 그에게 한 줄기 바람을 보내었다(그것은 앗수르의 군사를 살해할 역병을 내는 바람이다). 그리고 공포가 그를 사로잡아 그를 자기 나라로 몰아갈 것이며, 거기에서 죽음이 그를 맞을 것이다.” 하나님의 입에서 나온 이 짤막한 위협은 실행될 것이며, 그때에는 랍사게의 입에서 나온 무력한 모든 협박들이 허공으로 사라져 버릴 것이다. --------- 산헤립의 2차 사절단(왕하 19:8-19) 랍사게는 메시지를 보내고, 아무 답변을 받지 못했다(그가 이 침묵을 승인으로 간주했는지 혹은 무시해 버리는 것으로 생각했는지는 나타나 있지 않다). 그래서 그는 예루살렘 앞에 있는 그의 군대들을 다른 장군들의 지휘에 맡기고, 자신은 또 다른 명령을 받고자 그의 왕을 만나러 갔다. 그는 앗수르 왕이 립나를 포위하고 있는 사실을 알았다. 립나는 유다를 배반한 성읍이었다(8:22). 그가 라기스를 탈취했는지 않았는지는 분명치 않다. 어떤 이는 그가 라기스를 취하는 일이 실행 불가능함을 알고 떠나갔다고 생각한다(8절). 그러나 그도 아랍 사람들과 변경을 접하고 있는 구스 왕이 대군을 이끌고 그를 대항하여 나오고 있다는 소문을 듣고 놀랐다(9절). 이리하여 그는 아주 신속히 예루살렘을 얻고자 애썼다. 무력으로 예루살렘을 탈취하는 데는 필요 이상의 시간과 인원을 많이 희생하게 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므로 그는 히스기야에게 순순히 예루살렘을 포기하라고 새로이 종용했다. 산헤립은 이전에 히스기야가 “당신이 내게 지우는 것을 내가 감당하리이다”라고 말했을 때에는 그를 퍽 다루기 쉬운 사람이라고 생각했다(18:14). 그래서 그는 다시 히스기야가 놀라 항복하기를 바랐으나 헛일이었다. Ⅰ. 산헤립은 히스기야로 예루살렘을 포기하도록 권고하기 위해, 그를 조롱하고 하나님을 모독하는 불경스런 편지를 보냈다. 그로서는 그들이 끝까지 버티리라고 생각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의 편지는 랍사게의 말과 동일한 취지였다. 그 안에는 새로운 것이 전혀 제시되어 있지 않았다. 랍사게는 백성들에게 말했다. “히스기야에게 속지 말라”(18:29). 산헤립은 히스기야에게 이런 편지를 썼다. “너희는 네 하나님에게 속지 말라”(10절). 그들의 도움을 구할 야곱의 하나님을 모신 사람들과 그의 희망이 여호와 하나님 안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에게 속을까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이방인들은 자신들의 신에게 속을까 두려워한다. 산헤립은 히스기야를 놀라게 하며, 그의 닻에서 그를 몰아내기 위해, 자신과 자신의 공적을 과장한다. 그가 무엇을 거만하게 뽐내는지 살펴보자. 1. 그는 땅을 정복했다고 했다(11절). “온 땅이 완전히 파괴되었도다. 그가 정복한 작은 언덕들이 큰 산에 이르기까지 부풀었도다.” 당시의 그는 구스의 온 땅도 정복하지 못했고, 구스의 왕 디르하가를 두려워하고 있는 형편이었다. 우리는 오만한 사람들이 자찬하는 가운데서는 으레 엄청난 과장법을 보게 된다. 2. 그는 신들을 정복했다고 했다. “정복된 각 민족에게는 저마다 신이 있었다. 그러나 그 신들은 결코 그들을 구원할 수 없었다. 그 신들은 그들과 함께 넘어졌다. 그런데 너희 하나님이 너희를 구원하겠느냐?” 3. 그는 왕들을 정복했다고 했다(13절). 곧 “하맛 왕과 아르밧 왕”을 정복했다. 그가 군왕에 대해서 말하든 우상에 대해서 말하든, 그는 자기가 그 어느 것보다도 더 위대하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기는 가공할 만한 인물이란 것이다. 그리고 “산 자들의 땅에 있는 용사들의 두려움”이었다는 것이다. Ⅱ. 히스기야는 그 편지를 다른 한 편지, 곧 기도와 신앙의 편지 속에다 동봉했다. 그리고 그것을 왕 중의 왕에게 보냈다. 그는 곧 신들의 심판자이시다. 히스기야는 비록 그 편지의 수신인 성명이 자기에게 합당한 칭호를 붙이지 않았을 것이 뻔하지만, 그 편지를 거절할 정도로 오만하지는 않았다. 또 그가 그 편지를 받았을 때는, 그것을 읽지 않을 만큼 부주의하지도 않았다. 그가 그것을 읽고 났을 때는 똑같은 자극적인 말로 답장을 쓸 만큼 열정도 없었다. 그러나 그는 곧 성전에 올라가서 “여호와 앞에 그 편지를 폈다”(14절). 그 편지를 하나님께 나타내 보이는 것이 필요해서가 아니라(하나님은 히스기야가 편지를 보이기 전에 그 안에 무엇이 있는지를 아신다), 그로써 그가 매사에 하나님을 인정한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그리고 그는 원수가 입힌 상처를 악화시키기를 원치 않았고, 그것을 보다 더 치명적인 것으로 나타내고 싶어하지도 않았던 것이다. 오직 그러한 피해가 참 빛 안에 드러나기를 바랐을 뿐이다. 그리고 그는 모든 문제를 하나님과 그의 의로운 심판에 의뢰했다. 또한 그리하여 그는 성전에 가 기도에 전념하고 싶었을 것이다. 우리에게도 그러한 의무로 우리를 자극해 줄 온갖 도움이 필요하다. 히스기야가 이 편지에 대해서 했던 기도에 관하여 다음의 사실들을 생각할 수 있다. 1. 히스기야는 산헤립이 망령되이 했던(15절) 그 하나님을 경모하고, 그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라고 부른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은 그의 선택한 백성이기 때문이다. 그를 “그룹들 사이에 계신 하나님”이라고 부른다. 그 이유는 지상에 그의 영광이 거하는 선택된 장소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산헤립이 생각했던 것처럼, “이스라엘만의 하나님”, 그리고 성전에 유폐된 하나님이 아니라, “온 땅의 하나님”이라고 그에게 영광을 돌린다. “그들이 원하는 것을 말하게 하소서. 주는 절대이신 여호와시니이다. 땅의 모든 나라의 보편적 주시요, 공의로운 여호와이시기 때문입니다. 주는 하늘과 땅을 만드셨기 때문입니다. 모든 존재의 창조자이시니, 주는 만물의 절대적 소유주요, 지배자이십니다.” 2. 그는 산헤립의 오만과 불경성에 관하여 하나님께 호소한다(16절). “여호와여! 들으소서. 여호와여! 보소서. 여기에 그의 편지가 있나이다.” 히스기야는 자기만 욕을 먹었다면, 그것을 간과해 버렸을 것이다. 그러나 체면이 손상된 분은 바로 살아 계시고 질투하시는 하나님 자신이다. “여호와여! 주는 주의 큰 이름을 위하여 무엇을 하시렵니까?” 3. 그는 산헤립이 이교도의 신들을 이긴 사실을 인정하지만, 그런 신들과 이스라엘 하나님을 구분한다(17-18절). 산헤립은 과연 “그 신들을 불에 던졌다.” 왜냐하면 “그들은 신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 신들은 그들 자신과 그 예배자들을 도울 수 없었다. 그러므로 산헤립이 그것들을 파괴한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산헤립 자신은 몰랐지만 그가 그들을 파괴한 것은, 사실상 이스라엘 하나님의 공의와 질투심에 봉사한 것이다. 하나님은 이방의 모든 신을 제거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그 신들이 너무 강하여 하나님은 감당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스스로 속는 것이다. 하나님은 결코 인간이 손으로 만든 어떠한 신이 아니다. 오히려 그는 친히 만물을 지으셨다(시 115:3-4). 4. 히스기야는 하나님이 산헤립을 격파하고, 그의 손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심으로써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기를 기도한다(19절). “그러므로 이제 우리를 구원하소서. 만일 우리가 정복당하면, 다른 나라와 같이, 그들은 주를 정복당했다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여호와여, 주께서 스스로 구별되듯이, 우리를 구별하소서. 그리하여 주께서 여호와 하나님이시요, 자존하시고 지고하신 하나님이시요, 그리고 주만이 유일하신 분임을 온 세상이 알게 하시고, 고백하게 하소서. 그리고 신을 가장하는 모든 것은 헛되고 거짓됨을 알게 하소서.” 기도 중의 최고의 탄원 제목은 하나님의 영광을 생각하며 드리는 탄원임을 기억하자. 그러므로 주기도문은 “주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옵소서”로 시작해서 “영광이 주께 있사옵나이다”로 끝맺는다. ---------- 예언된 산헤립의 몰락(왕하 19:20-34) 하나님이 히스기야의 기도에 응답하신 은혜롭고 풍부한 답변이 나와 있다. 히스기야가 보냈던 바로 그 사람의 손으로(6-7절) 다시 전달돼 온 메시지는 그의 기도에 충분한 응답이라고 생각된다. 그가 큰 위안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두 가지의 불변하는 사실로 그가 격려를 받았다는 사실이다. 즉 “하나님은 거짓말하실 수 없으시다”는 사실 때문이다(히 6:18). 전체적으로 보면, 하나님은 산헤립에 대한 히스기야의 기도를 들으셨음을 그에게 확인해 주셨다(20절).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께 고소하는 기도의 대상자들은 비참한 것이다. 왜냐하면 압박 당하는 자들이 압제자를 향하여 하나님께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들으실” 것이기 때문이다(출 22:23). 하나님은 들으시고 응답하신다. “그 오른손의 구원하는 힘으로” 들으신다(시 20:6). 이 메시지는 두 가지 사실을 말해 주고 있다. Ⅰ. 산헤립과 그의 군사는 혼란과 수치를 당한다. 그가 낮아지고 꺾여지리라고 예언되었다. 이사야 선지자는 산헤립의 말씨처럼 그에게 고상하게 말한다(사 10:5). “오, 앗수르인이여, 나의 진노의 막대기로다!” 이 메시지는 산헤립에게 보내진 것이 아니다. 그 사건의 결과로 인해 그가 이 사실을 알게 되는 것이다. 섭리자 하나님은 증인과 더불어 그에게 그것을 말하셨다. 아마 산헤립 자신의 마음이 이 사실을 자신에게 속삭여 주었을 것이다. 하나님은 죄인들에게 당신의 분노를 여러 가지 방법으로 전달하실 수 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노를 발하며 진노하시기도” 하신다(시 2:5). 산헤립은 여기에서 다음과 같은 자로 표현되어 있다. 1. 예루살렘이 그를 경멸한다(21절). 그는 자기가 단정하고 아름다운 처녀인 시온의 딸들의 두려움이라고 자부하고 있었고, 위협으로 그녀를 강제로 굴복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아버지 집에 있어서 그의 보호를 받는 처녀는 너를 대항하고, 너를 멸시하고, 너를 비웃어 경멸한다. 너의 무력한 협박은 조소거리에 지니지 않는다. 하늘에 앉으신 그가 너를 비웃으신다. 그러므로 그의 그늘에 거하는 자도 그같이 하느니라.” 하나님은 이 말로써 히스기야와 백성의 두려움을 진정시키려고 하였다. 육의 눈에는 원수가 방대하게 보였지만, 신앙의 눈에는 그들이 보잘것없이 보였다. 2. 하나님의 원수라고 했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그가 비참하게 될 충분한 조건이 된다. 히스기야는 이 점을 역설했다. “여호와여! 그가 주를 비방하였나이다”(16절). 하나님이 말씀하셨다. “그는 실로 그리했느니라. 나도 그것을 내 자신에 항거하는 것으로 생각했도다(22절): 네가 누구를 꾸짖었느냐?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분이 아니냐? 그의 명예는 그에게 귀중한 것이요, 그는 그의 명예를 변호할 힘을 가졌느니라. 그러나 이교도의 신들은 그럴 능력이 없느니라.” “나를 노하게 하는 자는 반드시 벌을 받으리라”(Meno me impune lacesset). 3. 거만하고 자만심 강한 바보라고 표현되었다. 그는 크게 과장된 공허한 말을 지껄이고, 위협과 허세로써 여호와를 비방하며, 거짓 재능을 과시했다. (1) 그는 자기의 공적을 분수 이상으로, 실제 이상으로 과장했다(23-24절). “너는 이런 저런 것을 말했다.” 이 사실은 그가 쓴 편지에는 들어 있지 않았다. 그러나 하나님은 친히 거기에 쓰여진 내용을 알고 계시며, 다른 곳에서, 아마 그의 회의나 군사들에게 행한 연설에서 말한 것도 다 알고 계신다는 사실을 히스기야에게 알려 주셨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들의 자랑을 주목하시고, 그것들을 언젠가는 헤아리신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들을 발견하여 낮출 것이다”(욥 40:11). 산헤립은 자기가 얼마나 위대한 장수라고 생각했던가! 그는 가장 높은 산꼭대기에 전차를 몰아 가고, 숲과 강을 뚫고 달리며, 모든 난관을 돌파하고, 자기 마음에 생각하는 모든 것의 주인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아무것도 그의 앞에서 견딜 수 없으며, 물러날 것이라고 생각했다. 어떤 언덕도 높아서 오르지 못할 리 없겠고, 어떠한 나무도 그가 쓰러뜨릴 수 없을 만큼 강하지 않을 것이고, 어떤 강물도 말릴 수 없을 만큼 깊지 않을 것이다. 그는 마치 하나의 신적인 권능을 가진 자처럼 행동했다. (2) 그는 그 위대한 일을 한 영광을 스스로에게 돌렸다. 그러나 그것은 모두 “여호와께서 하신 일”이다(25-26절). 산헤립은, 그의 편지에서, 히스기야도 그 사실을 들었다는 점을 역설했다(11절). “너희가 앗수르 왕이 행한 일을 들었도다.” 그러나 그것에 대한 회신은 하나님이 옛날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일, 즉 홍해를 말리고, 그들을 광야로 인도하시고, 가나안에 정착시킨 일을 그에게 상기시켜 주었다. “이것을 위하여 너희가 행한 것은 도대체 무엇이냐? 그리고 너희가 땅, 특히 유다 땅을 황량하게 한 일에 대하여는 너희가 하나님의 손에 들린 도구, 즉 단순한 연장에 불과했던 것이다. 그것을 이룬 자는 바로 나다. 내가 너희에게 힘을 주었고, 너희에게 성공을 주었고, 현재의 너희가 되게 하였고, 너희를 일으켜 견고한 성읍을 황폐케 하였다.” 그래서 그들의 악을 벌하였고 “그로 인하여 그 거민은 약세에 몰렸도다.” 그가 행한 것은 모두 하나님의 뜻과 섭리 아래 된 일인데, 그가 자신을 하나님보다 높다고 생각하고 하나님과 대적하다니, 그것은 얼마나 어리석고 오만한 일인가! 산헤립의 허풍은 이사야 10장 13-14절에 상세히 설명되었다. “나의 손의 힘으로 내가 그것을 행했다. 그리고 나의 지혜로……” “도끼가 어찌 찍는 자에게 스스로 자랑하겠느냐?” 하는 것이 그들에 대한 대답이다. 수레바퀴 위의 파리가, “내가 먼지를 피우는구나!” 하고 말하는 것과 손에 들린 칼이 “내가 하는 것을 보라!” 하고 말하는 것은 분명히 불합당한 말이다. 행해진 모든 일의 중심 동인(動因)이 하나님이시라면, 자랑이란 일체 부당한 것이다. 4. 그가 망령되게 말했던 바로 그 하나님의 견제와 견책을 받고 있다. (1) 그의 모든 동작은 하나님의 인지(認知) 아래 있다(27절). “나는 너의 주거(住居)를 안다. 네가 비밀히 계획하고 도모하는 것, 들어오고 나가는 것, 전진과 후퇴, 나와 나의 백성에게 대한 너의 분노, 너의 열정의 동요, 네가 일으키는 잡음과 소요, 이 모든 것을 내가 안다”는 것이다. 그것은 적의 동태를 알기 원했던 히스기야가 알고 있는 사항 이상의 것이다. 하나님의 눈이 그를 끊임없이 감찰하신다면, 이것에 대하여 무슨 부족이 있을까?(대하 16:9) (2) 그의 모든 동작은 하나님의 관할 아래 있다(28절). “거대한 바다 짐승 같은 너의 코에다 내가 갈고리를 꿰고 거대한 악어 같은 너희 입에다 재갈을 먹이겠다. 나는 너를 제어하고, 너를 다스리고, 내가 원하는 길로 돌이키고, 너를 바보와 같은 인간으로 돌아가게 하겠고 너의 목적을 좌절시키겠다(re infecta).” 하나님께서는 그의 모든 원수들의 코에다 갈고리를 꿰고, 그 입에 재갈을 먹이고, 그들의 노(怒)를 하나님께 대한 찬양과 봉사가 되게 하시며, 그것을 기억하지 못하게 하실 수 있다는 사실은, 교회를 사랑하는 모든 자들에게 큰 위로가 된다. “이리하여 그 도도한 물결은 조용해질 것이다.” Ⅱ. 히스기야와 그의 백성에게 구원과 기쁨이 있을 것을 말해 주고 있다. 이것은 그들에게 하나님의 은총의 표시가 될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이 그들과 화해하셨다는 표시이다. 또 그의 노(怒)가 사라졌다는 표시이다(사 12:1). 그것은 그들의 눈에 놀라움(표적이란 때로 이것을 의미한다)이요, 선의 표지이며, 하나님이 그들을 위해 간직하셨던 보다 큰 자비의 보증이며, 모든 면에서 그들의 고통이 좋을 결말을 가져오리라는 증거였다. 1. 식량은 귀해지고 비쌌다. 그리고 식량 조달을 위해 그들은 아무 일도 할 수 없었다. 땅의 소산은 앗수르 군대가 다 먹어버렸다(사 32:9-10 이하). 이유는 그들이 그땅에 거하며, 실제로 “양식을 공급받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그들을 구원하신다면, 그들을 굶어죽게 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고 기근으로 죽게 하지도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때에 그들은 칼을 피할 것이다. “너희는 이 해에 절로 자란 것을 먹으라. 그러면 너희는 그것을 풍족히 얻을 것이다. 앗수르 사람들이 너희가 뿌린 것을 수확했느냐? 너희는 뿌리지 않은 것을 수확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 다음 해는 안식년이었다. 그때는 그땅이 쉼을 얻는다. 그래서 경작을 할 수 없다. 그러면 그들은 그 해에 무엇을 해야 하는가? 그러나 “여호와 이레”―여호와께서 공급하실 것이다. 하나님의 축복은 씨와 노동을 절약할 것이며, 그 해에는 또 땅이 절로 내는 소출이 그들을 부양하며, 기경하는 사람이 있기 전 땅이 소출을 내었다는 것을 기억하게 해 줄 것이다(창 1:11). 2. 그 나라는 황폐되었고, 가정은 붕괴되고, 산산이 흩어졌고, 그리고 모든 것은 혼란되었다. 그러한 군대의 침략이 전국에 밀어닥쳤을 때는 달리 또 어떻게 되겠는가? 이것에 대해, “유다의 집을 피한 남은 자는” 다시 자기의 집에, 즉 본토에 정착되어, 뿌리를 내리고, 번성하고, 번영하리라는 약속을 받는다(30절). 그들의 번성함을 어떻게 묘사했는지 보라. 그것은 뿌리를 내리고 과실을 맺고, 정주하여, 자신을 위하여 양식을 공급하며, 그리고 손님을 대접한다고 했다. 영혼의 번성함도 그렇다. 그것은 믿음으로 그리스도 안에 뿌리를 내리고, 의의 열매를 풍성히 맺는다. 3. 성읍이 폐쇄되고, 아무도 나오거나 들어가지 않는다. 그러나 그때 시온과 이스라엘에는 남은 자들이 자유로이 나다닐 것이며 그들을 막거나 위협할 자가 아무도 없을 것이다(31절). 도시나 시골 어디에나 큰 파괴가 있었다. 그러나 어디에나 도피한 남은 자들이 있어서, 그들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구원받은 남은 자를 대표했다(로마서 9장 27-28절과 바로 이 사건을 말하는 이사야 10장 22-23절을 비교해 보면 알 수 있다). 그리고 그 남은 자들은 하나님의 자녀가 누릴 영광스런 자유를 얻게 될 것이라고 했다. 4. 앗수르 사람들이 예루살렘으로 진격하고 있었고, 예루살렘은 잠깐 사이에 포위되어 그들의 수중에 떨어질 초미지급(焦眉之急)의 위험에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두려워했던 그 포위에서 보호되리라고 약속되었다. 적군이 그 성읍 앞에 진을 쳤다 할지라도 결코 “그 성안으로 들어오지” 못할 것이며, 그곳에 “화살 하나도 쏘지” 못할 것이다(32-33절). 원수들은 수치를 당하고 물러가서, 수없이 자기 일을 후회하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이라고 약속하셨다. 하나님 자신이 그 성을 보호하는 일을 맡으셨다(34절). 그러니 하나님의 보호를 받고 있는 그 사람들과 장소가 안전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5. 하나님의 명예와 진리가 이 모든 일을 행하는 데 개입된다. 이것은 과연 위대한 일들이지만, 어떻게 실행될 것인가? 그러나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리라”(31절). 만군의 여호와이신 그는 모든 피조물을 그의 손짓으로 좌우하신다. 그러므로 그는 그것을 하실 수 있다. 그는 “예루살렘을 위하여 크게 질투하신다”고 했다(슥 1:14). 정숙한 처녀와 결혼한 남편이, 그 여자가 학대받는 것을 보면 참고 견디겠는가?(21절) “너희는 스스로 생각하기를, 이런 큰 일들을 너희를 위하여 할 만큼 가치가 없다고 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하나님 자신의 열심이 그것을 행하실 것이다.” (1) 그의 열심은 자기 명예를 위한 것이다(34절). “내가 나를 위하여 그 일을 할 터인데, 이는 내 이름을 영원히 빛내기 위함이다.” 하나님이 자비를 베푸시는 그 이유들은 그 자신 안에서 나온다. (2) 그의 열심은 자기의 진리를 위해서이다. “나는 내 종 다윗을 위하여 그 일을 행한다. 이것은 그의 공로 때문이 아니라 그와 맺은 약속과 그와 맺은 언약, 즉 다윗에게 보장한 자비 때문이다.” 그러므로 교회의 모든 구원은 다윗의 자손, 그리스도 때문에 이루어진다. ------ 앗수르 군대의 파멸(왕하 19:35-37) 때때로 예언이 성취되고 약속이 실행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 그러나 여기서는 그 말이 나오자마자 곧 시행되었다. Ⅰ. 앗수르의 군대는 완전히 패주했다. 히스기야에게 이 메시지를 보낸 다음날 밤에, 적들은 곧 그 성읍 앞에 진을 치고, 참호를 열려고 준비하고 있었다. 그런데 바로 그 날 밤에 적군의 주력 부대가 그 장소에서 천사에 의해서 살육되었다(35절). 히스기야는 그들을 역습하고 그들의 진영을 공격할 만한 병력을 유지하고 있지 못했다. 그리고 하나님은 칼과 활로 그들을 살육하지 않으셨다. 그는 그의 천사 곧 파멸시키는 천사를 한밤중에 보내어 그들을 강습케 했다. 그리고 그 파수병들은 그 천사를 볼 수도 저항할 수도 없었다. 앗수르의 군대가 엎어진 것은 “용사의 칼이나 어떤 평범한 인간의 칼에 의해서”가 아니었다. 즉 전혀 어떤 인간의 칼에 의해서 된 것이 아니라, 애굽의 처음 난 자들을 살해했던 그러한 천사의 칼에 의해서였다(사 31:8). 조세푸스(Josephus)는 그것이 역병으로 인해 일어난 일이라고 말한다. 그 역병은 그들을 즉사케 했다. 살해된 숫자는 엄청나서 18만 5천 명이었다. 아마도 랍사게는 잔존자들 중에 끼었던 것 같다. 포위되었던 자들이 아침 새벽에 “일어났을 때는, 그들이 모두 죽은 시체들이 되었다.” 그들 중에 생존자는 거의 한 사람도 없었다. 어떤 이는 시편 76편이 이때에 씌어졌다고 생각한다. 거기에 보면, “마음이 강한 자는 탈취를 당하여, 자기의 잠” 즉 최후의 긴 잠을 “잤도다”라는 구절이 나온다(시 75:5). 거룩한 천사들의 힘과 능력이 얼마나 큰지를 보라. 한 천사가 하룻밤에 그렇게 큰 살육을 할 수가 있었다. 인간들 중에서는 최대로 강한 자라도 전능하신 하나님 앞에서는 얼마나 연약한가를 보라. 그 누가 하나님에게 대항하여 완악하게 행하고도 성공하였는가? 왕의 교만과 망령됨은 그의 군대의 파멸로 징벌된다. 이 모든 생명들은 하나님의 영광과 시온의 안전을 위해 희생된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이 큰 집결이 이루어지기를 즉 “그들이 곡식단과 같이 타작 마당에 모아지기”를 기다리셨다고 미가 선지자는 말한다(미 4:12-13). Ⅱ. 앗수르 왕은 극도의 혼란에 빠졌다. 그가 아무리 교만스럽게 자랑했지만, 그후에는 자신을 대하기가 부끄럽게 되었고, 전쟁에 패하였고, 정복을 추구할 수도 없게 되었고, 자기의 병력(아마 이때가 최강성기였을 것이다)도 구하지 못하게 되었다. 그리고 계속하여 자신이 그러한 타격을 받을까봐 두려워했다. “앗수르 왕 산헤립이 떠나 돌아가서 니느웨에 거하니라”고 했다(36절). 즉 이 표현 방식은 그의 마음이 혼란에 빠져 심란해졌다는 것을 암시한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산헤립)의 두 친아들”의 손을 통하여 그를 살해하게 한 것은 그후 얼마 되지 않은 때의 일이었다. 1. 마땅히 보호할 의무가 있는 아들들이 자기들의 친아버지를 죽였다는 것은 매우 악한 짓이다. 얼마나 극악한 무리들인가! 2. 그러나 하나님은 의로우셨다. 아버지가 자기를 지은 하나님께 거역할 때, 그 자식들이 또한 그 아버지를 거역하도록 허용되는 것은 정당한 귀결이다. 자기 자녀들이 불효한 사람들은, 자기들이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그렇게 하지 않았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당신만이 유일하신 참 하나님이라는 것과, 그러므로 당신은 마땅히 예배되어야 할 분이심을 산헤립에게 충분히 보여주셨다. 그러나 그는 우상 섬기는 일을 계속 고집했다. 그리고 불가항력적인 하나님께 대항하여 자기의 거짓 우상에게서 보호받기를 구했다. 그는 우상숭배가 어리석다는 것을 보여주는 명백하고 값비싼 대가를 치른 증거를 보고도 자기의 죄를 깨닫지 못했기 때문에, 정당하게도 그의 피가 희생 제물의 피에 혼합된 것이다. 그를 살해한 아들들은 도피했고 아무도 그들을 추적하지 않았다. 그리고 아마 그의 신하들도 그러한 오만한 자의 통치에 싫증을 느끼고, 그들 자신도 그를 제거하려고 생각했었을 것이다. 그리고 패트릭(Patrick) 주교가 제의하는 바와 같이, 산헤립 왕이 자기 신에게 그 아들들을 산 제물로 바칠 것을 맹세했었음이 사실이라면, 그의 자식들의 행위는 그래도 변명의 여지가 있다. 그들이 아버지를 희생시킨 것은 그들 자신의 보존을 위해서였다. 산헤립의 계승자는 다른 한 아들 에살하돈이었다. 그리고 그는 자기 아버지와 같이 자기의 정복지를 확장하려고 하지 않고, 오히려 그 정복지들을 잘 활용할 생각을 가졌다. 앞에서도 언급되었지만(17:24), 그가 제일 처음 한 일은, 앗수르의 식민들을 사마리에 이주하도록 한 것이었다. 에스라 4장 2절에 보면, 사마리아 사람들은 “자기들을 그리로 데려온 자는 에살하돈이다”라고 말한다고 했다. ========= ===호크마=== ..열왕기하 19장 1 히스기야왕이 듣고 그 옷을 찢고 굵은 베를 입고 여호와의 전에 들어가서 2 궁내대신 엘리야김과 서기관 셉나와 제사장 중 장로들에게 굵은 베를 입혀서 아모스의 아들 선지자 이사야에게로 보내매 ㅇ그 옷을 찢고 굵은 베를 입고 - 이는 곧 극한 슬픔과 원통함 그리고 겸비함을 나타내는 행위이다. 18:37 주석 참조. 그런데 히스기야가 이러한 감정을 토로(吐露)하였던 것은 랍사게가 하나님을 모독하였기 때문이다(18:33-35). 즉 히스기야에게 있어 무엇보다도 참을 수 없었던 것은 앗수르의 예루살렘 포위도, 백성들이 당하는 어려움도 아닌 바로 여호와의 이름이 이방인에 의해 모독당한 것이었다. ㅇ여호와의 전에 들어가서 - 앗수르의 위협과 조롱에 직면하며 보여 준 히스기야 왕의 이와 같은 태도는 똑같은 위기 상황에 처하였어도 달리 행동한 아하스나 시드기야, 여호야김 왕들에 비해 상당히 대조적이다(16:1-20;23:34-24:5;24:17-25:7). 즉 히스기야는 그들과 같이 군대나 무기의 힘으로 원수들을 대적하지는 않고 기도와 눈물과 겸비함으로 여호와께 매달렸으며 하나님의 사람 이사야를 찾았던 것이다(2절).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이와 같은 히스기야의 신앙 자세를 보시고서 그를 한란 가운데서 건져내셨다. ㅇ궁내 대신 엘리야김과 서기관 셉나 - 18:18 주석 참조. ㅇ제사장 중 장로들 - 여기서 '장로들'이란 제사장 중에서 탁월하며 나이가 든 사람을 가리킨다(렘19:1). 신 21:1-4강해. '성경에 나타난 장로직' 참조. 그런데 히스기야가 이들을 이사야 선지자에게 파견한 것은 자신의 신앙적 자세를 확인시키기 위해서이며 또한 하나님의 뜻을 구하기 위해서이다. 한편 지금까지 제사장들이 이와같이 왕의 일을 돕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선 경우는 별로 없다. 그러나 이번 만큼은 히스기야에게 적극 조력(助力)하고 있음은 앗수르의 침공으로부터 예루살렘을 지켜야 한다는 그들의 굳은 결의에서 나타난 양상으로 추측된다. ㅇ아모스의 아들 선지자 이사야 - 열왕기서에서 처음으로 이사야(Isaiah) 선지자가 소개되고 있다. 그러나 그의 부친 아모스(Amoz)는 선지자 아모스(암1:1)와는 동일 인물이 아니다. 선지자를 소개할 때 이처럼 그 부친의 이름과 함께 소개하는 것은 성경상의 관례였던 것 같다(14:25;왕상16:7). 선지자 이사야에 대한 보다 자세한 사항은 이사야 서론을 참조하라. 3 저희가 이사야에게 이르되 히스기야의 말씀이 오늘은 곤란과 책 벌과 능욕의 날이라 아이가 임산하였으나 해산할 힘이 없도다 ㅇ곤란과 책벌과 능욕의 날이라 - 여기서 '곤란'(차라)은 전쟁의 재난을 당해 곤경에 처하였음을 가리키고, '책벌'(토케하)은 슈다 백성의 죄악에 대해 하나님께서 징계하셨음을 가리킨다. 그리고 '능욕'(네아차)은 하나님께서 유다 백성을 버리시므로 원수에게 모욕을 당하게 하셨음을 가리킨다. 이와같이 히스기야 왕은 그때의 상황올 신앙의 눈으로 올바로 판단하는 지혜가 있었다. 성경에 의하면 이러한 올바른 시대적 판단은 대개 하나님의 구원 및 약속과 연결됨을 볼 수있다(삿10:14;삼상10:8;26:24;삼하4:9;왕상1:29). ㅇ해산할 힘이 없도다 - 여인이 임신하여 해산할 능력이 없다면 아이도 산모도 모두 위태하게 된다. 여기서 이는 유다 민족이 환란을 당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해결할 능력 및 방법이 없음을 의미한다. 이와 유사한 비유는 호13:13에서도 나타난다(Keil &Delitzsch Commentary, Vol. III, p442). 이처럼 히스기야는 당시의 상황에 대한 올바른 신앙적 인식은 있었으나 자신에게 그것을 헤쳐 나갈 능력이 없음을 호소하고 있다. 4 랍사게가 그 주 앗수르 왕의 보냄을 받고 와서 사신 하나님을 훼방하였으니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혹시 저의 말을 들으셨을 지라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으신 말을 인하여 꾸짖으실듯하니 당신은 이 남아 있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소서 하더이다 ㅇ혹시 저의 말을 들으셨을지라 - 이말은 히스기야의 절망적인 탄원이다. 여기서 '혹시'(올라이)라는 추측의 말은 자신과 백성들의 죄악은 랍사게의 말대로(18:25)심판받아 마땅하지만 그리할지라도 하나님을 모독하는 랍사게의 말을 들으시고 하나님께서 이 탄원에 응답하시기를 간절히 원하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즉 히스기야는 하나님께 우리의 죄악은 보지 마시고 원수들의 모독의 말에 분노하셔서 옹답해 주실 것을 빌고 있는 것이다. 이와같이 히스기야는 원수들의 막강함과 희롱의 말에 좌절하지 않고 오직 여호와의 공의에 호소하는 길만이 살길이라고 믿고 있었다. ㅇ이 남아있는 자를 위하여 - 여기 '남은 자'(remnant)사상은 바벧론 포로기 이후에 주로 등장하던 것이다. 그러나 성경은 포로기 이전에도 실상 이 같은 사상이 있었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예를 들면 이사야의 아들 '스알야숩'(Shear-Jashub)의 이름의 뜻이 '남은 자가 돌아오리라'는 것임이 그 일례이다(사7:3). 그리고 본장의 끝부분에 나오는 이사야의 예언에도 '남은 자'에 대한 특별한 개념이 등장하고 있다(30,31절). 한편 당시의 시대 상황으로 볼 때 남은자는 직접적으로 북이스라엘 10지파와 산헤립의 1차 침입시 멸망한 46개 이상의 성읍 거민(18:13)을 제외한 예루살렘 백성들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엄밀한 의미에 있어서 이는 히스기야와 같이 믿음으로 여호와께 의지한 신앙인들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 이와 관련된 보다 자세한 사항은 이사야10장 강해, '남은자 사상'을 참조하라. 5 이와 같이 히스기야왕의 신복이 이사야에게 나아가니 ㅇ이사야에게 나아가니 - 얼핏보기에는 이 말이 3절의 '저희가 이사야에게 이르되'라는 말과 중복되어 불필요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당시에 왕의 명령은 주로 서신으로 전달되었으니 본절은 그 편지를 이사야에게 전하는 장면으로 보인다(Hobbs). 한편 이와같이 히스기야가 사신들에게 서신을 주어 보냈다는 것은 그가 선지자 이사야에게 사신을 보냄에 있어서 얼마나 심사 숙고하여 사려깊게 행했는지를 짐작케 해준다. 6 이사야가 저희에게 이르되 너희는 너희 주에게 이렇게 고하라 여호와의 말씀이 너는 앗수르 왕의 신복에게 들은바 나를 능욕하는 말을 인하여 두려워하지 말라 ㅇ앗수르 왕의 신복 - 이처럼 이사야는 랍사게(4절)를 가리켜 앗수르 왕의 '신복'(나아레)이라고 표현했다. 일반적으로 왕의 사자를 가리키는 용어는 '에베드'로서 자신을 헌신하여 드리는 종이란 뜻이다.그러기에 '여호와의 종'이라고 할 때도 이 단어를 쓴다(10:23). 그러나 본절에 사용된 '나아레'는 '젊은 아이'. '몸종'을 가리키는 단어 '나아르'의 복수형으로서 이 단어를 사용한 것우 멸시적인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2:23;4:12). ㅇ나를 능욕하는 말을 인하여 두려워하지 말라 - 이사야 선지자는 히스기야의 질문에 대해 하나님으로부터 즉각적인 영감을 받아 이같이 대답했다. 여기서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들에게 평강을 약속하시는 성경의 독특한 용어로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창15:1), 이삭(창26:24), 야곱(창46:3), 여호수아(수1:8))등을 향해 사용되었다. 또한 이 말은 신약에서도 게속하여 성노들을 위로하기 위해 사용되고 있다(마14:27;행27:24;계1:17). 이처럼 하나님께서 성도들을 향하여 '두려워 하지말라'고 말씀하심은 당신께서 친히 성도들과 함께 하시고(사7:14), 성도들을 지키시고, 인도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이다(롬8:31-39). 그러므로 성도들은 하나님께서 성도들에게 주신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근신하는 마음이라는 사실을 께닫고(딤후1:7), 여호수아처럼 강하고 담대하게 닥쳐오는 모든 어려운 환란에 대처해야 한다. 한편 '능욕하는 말'(기데푸)은 4절에 나오는 '훼방하였으니'(하래프)와 동의어인 것으로(Hobbs), 신성 모독적인 조롱의 말을 가리킨다. 7 내가 한 영을 저의 속에 두어 저로 풍문을 듣고 그 본국으로 돌아가게 하고 또 그 본국에서 저로 칼에 죽게 하리라 하셨느니라 ㅇ내가 한 영을 저의 속에 두어 - 여기서 '저'는 분명 랍사게가 아닌 앗수르 왕 산헤립을 의미한다(35-37절). 그러나 본절의 정확한 의미는 분명하지 않다. 다만 학자들은 본절의 '한 영'을 '두려운 마음' 또는 '겁많은 영'으로 이해, 하나님께서 산헤립의 마음속에 겁약(怯弱)과 공포심을 불러일으킨 것을 뜻한다고 추측한다(Thenius,Rawlinson). ㅇ풍문을 듣고 - 여기서 '풍문'(쉐무아)이란 단순히 '소식'을 뜻하는 말이다. 이 말은 9절에 나오는 구스 왕 디르하가의 진군 소식을 가리킨다(Lange,Keil). 어떤 학자들은 이 풍문을 35절에 기록된 앗수르의 몰살(沒殺) 사건에 관한 소식으로 보고있는데(Rawlinson) 이는 타당하지 않다. 왜냐하면 여호와의 사자가 앗수르 군대를 쳤을 당시 앗수르 왕 자신도 그의 군대와 함께 있었으므로 소식을 듣기 보다는 직접 목격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ㅇ저로 칼에 죽게 하리라 - 산헤립의 죽음에 관한 예언은 37절에서 성취되었다. 이에 관한 자세한 내용은 그곳 주석을 참조하라. 8 랍사게가 돌아가다가 앗수르 왕이 이미 라기스에서 떠났다 함을 듣고 립나로 가서 왕을 만났으니 왕이 거기서 싸우는 중이더라 ㅇ이미 라기스에서 떠났다 함을 듣고 - 산헤립은 라기스에서 예루살렘을 공격하겠다던(18:17) 최초의 목표를 바꾸어 '럽나'로 떠났다. 그것은 예루살렘을 공격하는 것보다 우선 자신의 뒤를 공격해 오는 구스 왕 디르하가의 공격을 막는 것이 더 급하였기때문일 것이다(Keil &Delitzsch). ㅇ립나 - 립나(Libnah)는 라기스(Lachish)의 북쪽에 위치한 오늘날의 '키르벱 텔엘사피'(Khirbet Tel el-Safi)와 동일한 곳이다. 이곳은 예루살렘 남서쪽 약 40km 지점이다. 오늘날 이곳에서 석회 명판(名板)이 발견되었는데 산헤립 통치 때의 것임이 판명되었다. 한편 미1:10-16을 보면 산헤립은 마롯과 라기스를 주요 군사 활동 지역으로 장악하고 예루살렘 향하여 진군할 준비가 다되어 있었음을 알 수있다(Hobbs) 9 앗수르 왕이 구스 왕 디르하가가 나와서 더불어 싸우고자 한다 함을 듣고 다시 히스기야에게 사자를 보내며 가로되 ㅇ구스 왕 디르하가 - 최근의 연구에 의하면 디르하가(Tirhakah)는 B.C. 710년경에 태어나 B.C. 699년경에 구스 왕위에 올랐다고 한다. 그러나 그때 그는 약 12세 정도의 어린 나이였기 때문에 그의 형제 사바타가(Shabataka)의 도움을 받았다. 그런데 디르하가는 비단 구스(Cush) 왕일 뿐만 아니라 애굽의 25대 왕조 중 세번째 왕으로서 애굽 왕들 가운데 가장 뛰어난 인물로 손꼽혔다. 그러나 성경에서 그를 애굽왕이라 하지 않고 구스 왕이라고 한 것은 그가 본래 구스 출신이었기 때문이다. 한편 당시 수많은 소국(小國)들로 나뉘어져 있던 애굽은 구스히 피앙카에 의해서 대부분이 정복돼었고 디르하가에 의해 그 실제적인 지배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B.C. 699년경 앗수르가 히스기야를 공격하자 디르하가는 히스기야를 돕기 위해 산헤립을 공격하였다. 10 너희는 유다 왕 히스기야에게 이같이 말하여 이르기를 너의 의뢰하는 네 하나님이 예루살렘을 앗수르 왕의 손에 붙이지 않겠다 하는 말에 속지 말라 ㅇ너의 의뢰하는 네 하나님이...하는 말에 속지 말라 - 히스기야에게 보낸 산헤립의 두번째 편지의 내용은 첫번째의 그것에 비해 상당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즉 18:19-35의 내용은 대단히 포괄적이나 여기서는 오로지 공격과 비난의 초점이 히스기야의 여호와 신앙에로 모아졌다. 이것은 산헤립이 첫번째 사자들 히스기야에게 보낸 이후로 히스기야가 더욱더 여호와께 간구하고 선지자를 찾았다는 사실 산헤립이 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앗수왕은 히스기야가 여호와께 의뢰하는 것을 집중적으로 힐난하고 있다. 즉 산헤립이 이같이 공박한 이유는 히스기야가 군사력의 절대적인 열세에도 불구하고 오직 여호와 신앙에 입각, 끝까지 항복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마도 산헤립은 히스기야가 여호와께 대한 믿음을 버리기만 한다면 아무 희생을 치루지 않고서도 예루살렘을 점령, 남은 병력을 디르하가와의 전투에 집중시길 수 있다고 생각하였을 것이다. 11 앗수르의 열왕이 열방에 행한바 진멸한 일을 네가 들었나니 네가 어찌 구원을 얻겠느냐 ㅇ본절에서 산헤립은 역사적인 사실 둘을 근거로 들어 히스기야가 여호와께 의뢰하는 것이 헛됨을 지적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역사적인 유비(analogy)는 하나님의 불변하심과 공의를 설명하는 방법으로 구약 성서에서 자주 사용되고 있다(신4:32-40;29:2,3;수23:3,4). 그리 역사적인 사실들을 들어 그 신용 여부를 따지더라도 산헤보다는 여호와 하나님이 훨씬 더 의뢰할 만 할 것이다. 사실 여기서 산헤립이 말하는 앗수르의 열왕이란 고작 디글랏 빌레셀, 살만에셀, 사르곤 정도이다. 그리고 앗수르가 강대국으로 부상한 것도 기껏해야 50여년을 넘지 않는 형편이다. 따라서 산헤립이 그 같은 열왕들의 정복 역사를 들먹이면서 히스기야에게 조상 대대로 전수받은 여호와 신앙을 버리도록 종용(慫慂)하고 있음은 참으로 가소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12 내 열조가 멸하신 열방 곧 고산과 하란과 레셉과 들라살에 있는 에덴 족속을 그 나라의 신들이 건졌느냐 ㅇ고산과...나라의 신들이 건졌느냐 - 산헤립은 또다시 역사적 사실을 들어 고산, 하란, 레셉, 들라살과 같은 성읍의 이방신들이 각기 자기 성읍들을 앗수르의 손에서 건지지 못하였음을 주장하고 있다. 한편 고산, 하란, 레셉, 들라살 등의 성읍들은 모두 메소포타미아의 북서쪽에 위치해 있다(Hobbs). 이 중 고산(Gozan)은 오늘날의 '델 하라프'(tel Halaf)로 추정되는 성읍이다. 17:6 주석 참조. 그리고 하란(Haran)은 메소포타미아와 헷 족속의 땅을 연결하는 중요한 상업 도시로 과거 아브라함의 제2의 고향이다(창11:32). 다음으로 레셉(Rezeph)은 유프라테스 강 상류에 위치한 오늘날의 루사파(Rusafa)이다. 마지막으로 에덴 족속이 있는 들라살(Telassar)은 B.C.856년경 앗수르나 시르팔(Asshur-nasirpal) 2세에 의해 정복된 오늘날의 빗 아디니(Bit Adini)이다(J. B. Prichad, Ancient Near Eastern Texts). 그리고 그곳의 '에덴 족속'은 본래 '베드에덴의 아들들'(the sons of Betheden)이란 뜻으로 베드에덴의 잔존거민을 가리킨다. 베드에덴은 암1:5에 나오는데 유프라테스 강 북쪽,하란 남쪽 지역이다. 그런데 이상의 모든 성읍들은 B.C 9세기경 앗수르의 해외 정복과 관련이 있다. 13 하맛 왕과 아르밧 왕과 스발와임성의 왕과 헤나와 아와의 왕들이 다 어디 있느냐 하라 하니라 ㅇ하맛...아와 - 이 모든 지역들에 관해서는 이미 17:24과 18:34에서 상세히 언급하였다. 그러니 자세한 사항은 그곳 주석을 참고하라. 14 히스기야가 사자의 손에서 편지를 받아보고 여호와의 전에 올라 가서 그 편지를 여호와 앞에 펴놓고 ㅇ편지를 받아 보고 - 본절에서 처음으로 편지에 관해서 언급되고 있다. 그러나 당시에도 편지는 국가간의 외교적인 활동에서 사용되는 공식적인 주요 수단 중 하나였다(5:5;20:12;대하2:11;느2:9). 아마도 앗수르는 자신들의 입장을 분명히 하기 위해 이러한 편지를 사용하였을 것이다. ㅇ여호와 앞에 펴놓고 - 여기서 히스기야의 신앙의 진지함과 여호와를 훼방하는 자들에 대한 강한 증오심을 발견할 수 있다. 즉 히스기야가 성전에서 산헤립의 편지를 펴놓은 것은 하나님께서 그 글에 나타나 있는 산헤립의 교만과 불경(不敬)을 보시고서 그를 책벌하시며 또한 유다 백성을 구원해 주시기 염원하는 마음에서였던 것이다. 15 그 앞에서 기도하여 가로되 그룹들의 위에 계신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여 주는 천하 만국에 홀로 하나님이시라 주께서 천지를 조성하셨나이다 16 여호와여 귀를 기울여 들으소서 여호와여 눈을 떠서 보시옵소서 산헤립이 사신 하나님을 훼방하러 보낸 말을 들으시옵소서 ㅇ여호와여 귀를...눈을 떠서 보시옵소서 - 이런 내용의 글들은 주로 슬픔과 탄원의 기도 가운데 많이 나타난다(시17:6;71:2;86:1;102:13;116:2). 그리고 귀로 듣고 눈으로 보는 이러한 신인 동성 동형론적(神人同性同形論的)인 표현은 기도의 간절함을 나타내 보여 준다. 이에 관한 자세한 내용은 삼하2:4-20 강해, '신인 동형 동성론'(Anthropomorthpism)을 보다 참조하라. 한편 여기서 재미있는 것은 '눈'(에네카)은 복수형으로 사용되었고, '귀'(오즈네카)는 단수형로 사용되었다는 점이다. 사람들이 무엇을 자세히 볼 때는 대개 양눈을 크게 뜨지만 무엇을 자세히 듣기 위해 귀를 기울일 때는 한 쪽 귀만을 듣고자 하는 쪽으로 향하여 기울이기 때문에 이런 표현이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Keil &Delitzsch Commentary. Vol. III, pp.447f) 17 여호와여 앗수르 열왕이 과연 열방과 그 땅을 황폐케 하고 ㅇ앗수르 열왕이 과연...하고 - 본절에서 히스기야는 산헤립이 오만해 하는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음을 이처럼 인정하고 있다. 사실 열방들을 정복한 앗수르의 막강함을 인정했기 때문에 히스기야는 더욱더 여호와께 의뢰할 수 있었을 것이다. 18 또 그 신들을 불에 던졌사오니 이는 저희가 신이 아니요 사람의 손으로 지은 것 곧 나무와 돌 뿐이므로 멸하였나이다 ㅇ또 그 신들을 볼에 던졌사오니 - 17절에 이어 또한 히스기야는 산헤립이 주장하는 것처럼 이방신들 가운데 어떤 신도 앗수르에 대항하여 이기지 못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있다. 그런데 갓(God)과 아스돗(Ashdod)의 신들에 대한 사르곤 2세(Sargon II)의 기록을 보면 앗수르는 그 같은 우상들을 불태우지 않고 노획물로 탈취하여 자기들 수호신으로 삼았다고 한다(J.B.Pritchard). 따라서 본절의 '불에 던졌다'는 기록은 그러한 우상들에 대한 본서 기자의 거부감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라고 볼 수있다(23:11). ㅇ이는 저희가 신이 아니요 - 여기서 히스기야는 앗수르가 열방들을 파괴하고 그 신들을 없앨 수 있었던 것은 결과적으로 앗수르가 그만큼 위대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 신들이 실제로 생명과 능력을 지닌 신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즉 히스기야는 비록 앗수르가 인간의 손으로 만든 나무와 돌 따위의 신은 대적하여 이길 수 있었으나 살아계시는 참된 신 여호와 하나님16절)을 이길 수는 없음을 하나님 앞에서 확신하고 있었던 것이다. 19 우리 하나님 여호와여 원컨대 이제 우리를 그 손에서 구원하옵소서 그리하시면 천하 만국이 주 여호와는 홀로 하나님이신줄 알리이다 하니라 ㅇ이제 우리를 그 손에서 구원하옵소서 - 여기서 '이제' 또는 '그러므로 이제'(웨아타)라는 전치사는 대단히 중요하다(시39:8). 왜냐하면 이는 곧 지금까지 드린 기도의 내용에 의거해 하나님께서 반드시 응답해 주실 것을 간구하는 일종의 마지막 쐐기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께 필사적으로 매달리는 히스기야의 간절함을 엿볼 수 있다. 한편 이와같이 여호와에 대한 참된 신앙을 무기로 하여 이방의 위협과 대결한 역사적인 사례로는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삼상17:46). 갈멜 산에서 엘리야와 바알 선지자들과의 싸움(왕상18:37) 등을 들 수 있다. 이런 면에서 볼 때 히스기야의 힘있는 기도가 유다의 운명을 바꾸어 놓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20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가 히스기야에게 기별하여 가로되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네가 앗수르 왕 산헤립 까닭에 내게 기도하는 것을 내가 들었노라 하셨나이다 ㅇ본절에서 이사야가 히스기야에게 기별하여 온 히스기야의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의 말씀은 다음 세 가지로 나타난다. (1)히스기야의 간절한 기도를 들으셨다는 것이다.(2)산헤립의 교만함을 보셨다는 것이다. 그리고 (3)이제 산헤립에 대하여 여호와께서 당신의 뜻을 행하시겠다는 것이다. 이와같이 여호와께서 들으시고, 보시고, 행하셨다는 연속적인 응답은 츨3:7,8에서도 잘 나타난다. 이와같이 하나님은 히스기야의 기도에 3중적으로 분명하게 응답하셨다. 그러기에 이제 본절 이하에 나오는 산헤립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은 앞서 랍사게가 큰소리쳤던 내용(18:17-35)과는 완전히 대립된다. 이와 관련해서는 평행 기사인 사35:21-35을 보다 참조하라. 21 여호와께서 앗수르 왕에게 대하여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처녀 딸 시온이 너를 멸시하며 너를 비웃었으며 딸 예루살렘이 너를 향하여 머리를 흔들었느니라 ㅇ처녀 딸 시온 - 땅이나 성읍들을 가리켜 '딸' 또는 '처녀'로 비유하는 것은 시가서나 예언서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시적(詩的)표현이다(사23:12;47:1;렘46:11;애1:15). 그리고 '시온'(Zion)은 일명 '다윗 성'이라고도 불리운 예루살렘 성읍을 가리키킨다. (삼하5:7 주석 참조. ) 그런데 여기서 시온 성을 가리켜 '처녀 딸'이라고 한 것은 잦은 외침에도 불구하고 히스기야 때까지 한번도 이방인의 발에 완전히 짓밟혀 본 적이 없는 사실을 곧 숫처녀에 비유하기 위함이다. ㅇ멸시하며...비웃었으며 - 여기서 '멸시하며' (라아가)와 '비웃었으며'(비자)는 사실상 동의어이다. 민 15:31에서 이 단어는 하나님의 말씀을 멸시하고 스스로 범죄함으로써 율법을 파괴하는것을 말할 때 사용되었다. 그리고 렘 20:7에서는 사람들이 예레미야롤 조롱하는 것을 가리킬 때, 삼상 17:42에서는 불레셋이 다윗을 업신여기는 것을 가리킬 때 사용되었다. 따라서 여기서 이 단어는 산헤립의 주장에 대한 부정과 그의 손재에 대한 조롱의 뜻을 담고 있다고 볼수 있다. ㅇ머리를 흔들었느니라 - 이것은 거절의 표시로 좌우로 머리를 혼드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조롱과 멸시의 뜻으로 머리를 상하로 끄덕이는 것을 가리킨다(시22:7;109:25;렘18:16) 22 네가 누구를 꾸짖었으며 훼방하였느냐 누구를 향하여 소리를 높였으며 눈을 높이 떴느냐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에게 그리하였도다 ㅇ본절에서는 앗수르가 예루살렘을 조롱하고 비난한 것은 곧 여호와를 비난하고 조롱한 것과 같음을 시사하고 있다. ㅇ이스라엘 의 거룩한 자 - 이 용어는 이사야가 가장 즐겨 쓰는 표현으로 이사야서에는 무려 20여 차례나 기록 되었고(사5:24;41:14;43:14;47:4;49:7;54:5;60:9,14등) 그외 다른 성경에는 단지 서너 번밖에 기록되지 않았다(시71:22;렘51:5;60:9,14등) 아무튼 이 단어의 중요성은 여호와 하나님의 유일성과 거룩성, 그분의 의로우심과 구원의 능력 등을 강조하는 단어라는 점이다. 23 네가 사자로 주를 훼방하여 이르기를 내가 많은 병거를 거느리고 여러 산꼭대기에 올라가며 레바논 깊은 곳에 이르러 높은 백향목과 아름다운 잣나무를 베고 내가 그 지경 끝에 들어가며 그 동산의 무성한 수풀에 이르리라 ㅇ네가 사자로 -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 원문의 문자적인 뜻은 '사자의 손으로'이다. 여기서 '손'(야드)이라는 용어는 '사자'(使者)를 가리키기도 하지만 구약에서는 일반적으로 '자기 뜻을 펼쳐 행하는 행위'를 상징적으로 나타낸다(Garadon). 따라서 이 구절은 랍사게와 그의 동료들의 행위 뿐만 아니라 그들의 군사적인 움직임(18:17)까지도 지칭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Hobbs). ㅇ여러 산꼭대기에 올라가며 - 일반적으로 앗수르인들은 병거를 타고 평지에서 싸웠기 때문에 산꼭대기에 올랐다는 표현은 좀 어색한 감이 있다. 그러나 앗수르 열왕 중에 딱 한번 레바논 산을 오른 왕이 있었기 때문에 이들은 이것을 굉장한 위업으로 기리고 찬양했던 것이다(Luckenbill). 그 앗수르 왕은 바로 살만에셀 3세(B.C859-824)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ㅇ레바논 깊은 곳 - 이는 곧 레바논의 내륙지(內陸地)에 있는 높은 산들을 가리킨다. ㅇ높은 백양목과 아름다운 잣나무를 베고 - 앗수르 군대는 팔레스틴을 침공할 때 산악 지대의 나무를 베는 습관이 있었다. 그 까닭은 거주민들에게 해를 끼치고 곤궁에 처하게 하기위해 그런 일을 행하기도 했지만 주된 목적은 건축 재료로 쓰기 위해서였다(Pulit Commentary). 하지만 여기서 특별히 벌목 사실을 언급하고 있는 것은 일종의 제유법적(提喩法的)인 표현이라고 볼 수 있다. 즉 하나님의 창조의 아름다움을 대표하는 '높은 백양목과 아틈다운 잣나무'를 벤다는 것은 그 나무들이 상징하는 팔레스틴 지방식 번영과 영예를 황폐케 하는것을 의미한다(Keil). ㅇ그 지경 끝에 들어가며 - '그 지경 끝'에 해당되는 히브리어는 '멜룬 키초'이다. 그런데 이사야 1:8에는 이 용어가 '상직막'으로 번역되어 있다. 여기서 상직막(上直幕)이란 채소밭에 일시적으로 지어놓은 일종의 원두막 같은 것을 가리킨다. 그러나 New English Bible은 이를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기슭'(fathest comers)으로 번역하고 있는데 전후 문맥상 이것이 좀더 적절한 해석으로 보인다(Hobbs). 24 내가 땅을 파서 이방의 물을 마셨고 나의 발바닥으로 애굽의 모든 하수를 말렸노라 하였도다 ㅇ내가 땅을 파서 이방의 물을 마셨고 - '땅을 파서...물을 마셨다'라는 표현은 병행구절인 이사야 37:25과 본절에만 나타나는 독특한 표현이다. 그런데 여기서 '땅을 판다'는 것은 적이 도망가면서 메워버린 우물을 다시 판다는 말(Thenius)이 아니고 물이 솟아날 만한 땅은 모두 파서 그 물을 취하였다는 뜻이다. 이처럼 당시 타인의 영역에 들어가 그곳에 우물을 판다는 것은 곧 그 지역을 정복하고 소유했다는 의미이다. ㅇ나의 발바닥으로 애굽의 모든 하수를 말렸노라 - 이것은 애굽에 있는 모든 강들을 정복했다는 뜻이다. 앗수르 군대는 외국 정벌시(征伐時) 그곳 강의 제방들을 파괴하여 온통 강을 망쳐놓음으로써 강을 통하여 얻는 문명의 이익을 누리지 못하게 하는 것이 습성이었다.(Hobbs) 그러나 그의 아들 에살핫돈(B.C.681-669)은 B.C671년경, 애굽에 진근, 멤피스를 포위한 적이 있다. 따라서 단지 본절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히스기야가 팔레스틴 해안 지역의 평야를 짓밟은 것처럼 애굽에 대해서도 그렇게 할 수 있다는 점일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당시 산헤립이 얼마나 오만했던가를 충분히 알 수 있다. 25 네가 듣지 못하였느냐 이 일은 내가 태초부터 행하였고 상고부터 정한 바라 이제 내가 이루어 너로 견고한 성들을 멸하여 돌무더기가 되게 함이니라 ㅇ이제 본절에서부터는 산헤립의 오만과 자만스런 자기 자랑에 대한 여호와 하나님의 반박이 시작된다. 여기에 나타나는 내용들은 이사야 10장에 기록된 내용과 많은 유사점이 있으니 참조하라. ㅇ내가 태초부터 행하였고 상고부터 정한 바라 - 이것은 열국(列國)의 응망성쇠를 좌우하는 분은 곧 여호와이지 산헤립이 아니라는 말이다. 즉, 이는 잠시 하나님께서 산헤립을 도구로 사용하셔서 범죄한 백성들을 심판한 것 뿐인데 산헤립은 그것을 알지도 못하고 스스로 능력이 있어 행한 것인냥 자랑하니 얼마나 어리석은가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사10:5-11). 한편 이와같이 하나님이 천하 만국의 주재자이시며 모든 역사의 배후에 그분의 섭리가 작용한다는 사상은 후기 선지서에서 더욱 분명히 나타난다(사41:2;암9:7,8) 26 그러므로 그 거한 백성의 힘이 약하여 두려워하며 놀랐나니 저희는 마치 들의 풀 같고 나물 같고 지붕의 풀 같고 자라기 전에 마른 곡초같으니라 ㅇ그 거한 백성의 힘이 약하여 - '힘이 약하여'에 해당하는 히브리 원문의 문자적인 뜻은 '손이 짧아서'이다. 이는 곧 '할 능력이 없어서'라는 뜻이다(Pulpit Commentary). ㅇ들의 풀 같고 - 근동 지역의 풀은 여타 지역에 비해 수명이 짧고 특히 뜨거운 봄바람을 잘 견며내지 못한다. 때문에 오늘 있다가 내일 말라 버리는그 같은 풀은 성경에서 종종 인생의 연약함과 허무함에 비유되곤 한다(시37:2;102:11;사40:6,8:약1:11) ㅇ나물 같고 - 여기서 '나물'은 '연한 풀'을 가리킨다. 팔레스틴에서는 매년 3월경 늦은 비가 내린 후 새로 푸른 풀이 돋아나는데 그것이 바로 연한 풀이다. ㅇ지붕의 플같고 - 지붕 위에 풀이 나는 경우는 근동 지역에서 오늘날에도 여전히 볼 수 있다. 그러나 흙으로 지은 작은 집 지붕 위에 핀 풀은 뿌리를 깊게 내릴 수 없기때문에 곧 시들어 죽기 마련이다. ㅇ자라기 전에 마른 곡초 같으니라 - 그레이(Gray)는 '자라기 전에'를 '동풍이 불기 전에'로 수정하여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대부분의 주석가들도 이를 따르고 있다(Hobbs). 그렇다면 본절은 곡초의 싹이 땅에서 오르자마자 뜨거운 바람에 타죽는 것을 가리킨다 하겠다. 아무튼 이상과 같은 본절이 뜻하고 있는 바는 앗수르가 열방을 쉽게 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께서 그 백성들의 힘을 다 빼앗아 버렸기 때문이라는 점이다. 27 네 거처와 네 출입과 네가 내게 향한 분노를 내가 다 아노니 ㅇ내가 다 아노니 - 시139-2에도 본절과 유사하게 하나님의 전지(全知)하심에 대하여 언급되어 있다. 특히 본절에서 '거처', '출입', '분노' 등에 대해 하나님께서 다알고 계셨다는 것은 인간의 모든 행위와 그 마음을 다 아셨다는 뜻이다. 이와 관련 시4:4에서는 인간의 심중에서 말하는 것까지 여호와께서 아시므로 두려워하라고 말하고 있다. 28 네가 내게 향한 분노와 네 교만한 말이 내 귀에 들렸도다 그러므로 내가 갈고리로 네 코에 꿰고 자갈을 네 입에 먹여 너를 오던 길로 끌어 돌이키리라 하셨나이다 ㅇ본절은 앗수르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과 저주에 대하여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앗수르에 대한 심판은 그들의 교만 때문임을 본서 기자는 분명히 말하고 있다. ㅇ내가 갈고리로 네코에 꿰고 자갈을 네 입에 먹여 - 이것은 앗수르인들이 행하던 행습을 본따서 하는 말이다. 실제로 고대 앗수르 지역에서 출토된 비문을 보면 본절이 말하는 것과 같은 모습으로 정복된 이방의 왕들이 끌려가는 행상이 부조되어 있다(암4:2), 즉 에살핫돈의 비석에 부각(腐刻)된 그림에는 정복자가 애굽의 디르하가와 두로왕 발로의 코에 끈을 꿰어 그 끈을 쥐고 가는 장면이 나온다. 이로 보아 훗날 므낫세도 앗수르왕 에살핫돈에게 이런 모습으로 끌려간 것이 아닌가 짐작된다(대하33:11). ㅇ오던 길로 끌어 돌이키리라 - 본절은 7절의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과 서로 연관된 듯하다. 자세한 내용은 그곳 주석을 참조하라. 29 또 네게 보일 징조가 이러하니 너희가 금년에는 스스로 자라난 것을 먹고 명년에는 그것에서 난 것을 먹되 제 삼년에는 심고 거두며 포도원을 심고 그 열매를 먹으리라 ㅇ본절에서부터는 히스기야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축복의 말씀이다. 즉 하나님께서 히스기야의 기도에 응답하사 환난 가운데서 유다 백성을 지켜 주실 것이니 그들이 안연(晏然)히 거하게 돼리라는 약속이다. ㅇ스스로 자라난것 -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사파아흐'는 '넘쳐흐르다'라는 뜻의 기본형 동사 '사파흐'에서 파생된 명사이다. 이는 다름아니라 씨를 뿌리거나 경작하지도 않았는데 저절로 식물의 씨주머니에서 씨가 터져나와 땅에 떨어져 자라나는 곡식을 가리킨다. ㅇ그것에서 난 것 -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사히쉬'는 위에서 언급된 '스스로 자라난 것'이라는 뜻의 '사파아흐'와 동의어이다. 한편 유다 백성들이 첫 해와 그 다음 해는 자연적으로 자라난 식물을 먹고 제 3년에 가서야 비로소 경작한 식물을 먹게 될 것이라는 본절에 대해서는 학자들간에 다음과 같이 견해가 다양하다. (1)제 1년과 2년은 각각 안식년과 회년(레25:5)이었기 때문에 율법을 따라 그렇게 명령했다는 것이다(Rawlinson). (2)앗수르 군대가 패망한 것(35절)은 이사야 선지자가 예언한 바로 그 해에 일어난 일이 아니며 2년이 지난 후에 앗수르가 퇴각했기때문에 그렇게 예언했다고 보는 견해이다(Keil). (3)앗수르는 이사야의 예언이 있은 그 해에 바로 물러났으나 그동안 땅이 황무하게 되었고 또한 많은 백성들이 잡혀갔거나 죽거나 도망갔기 때문에 정상적인 회복을 하는데 약 2년 정도의 기간이 소요되었다는 견해도 있다(Bahr). 우리는 이 세 가지 견해 중에서 어느 것이 꼭 옳다고 단정지을 수는 없다. 그러나 제 3년 되는 해에 포도나무를 심고 그열매를 먹게 될 것이라는 말씀을 볼 때 이는 분명 제 3년 되는 해에는 전쟁의 상흔(傷痕)이 자취를 감추고 이전과 같은 풍요함을 누리게 된다는 예언임에 틀림없다. 따라서 이러한 회복의 예언은 확실히 히스기야에게 큰 기쁨이되는 하나님의 축복이었을 것이다. 30 유다 족속의 피하고 남은 자는 다시 아래로 뿌리가 서리고 위로 열매를 맺을지라 ㅇ유다 족속의 피하고 남은 자 - 앗수르의 침입은 북왕국 이스라엘과 아람의 예루살렘 침입과 마찬가지로(16:5;사 7장) 유다에 내린 하나님의 심판이었다. 그런데 이제 본절에서는 그 같은 하나님의 심판 속에서 건짐을 받은 '남은 자'가 다시 하나님 앞에서 견고히 서게 될 것을 말하고 있다. 이에 관해서는 4절주석을 보다 참조하라. ㅇ뿌리가 서리고...열매를 맺을지라 - 이는 곧 유다가 앗수르의 침입에 의해 멸절되지 않고 다시 번영할 것을 가리킨다. 이러한 번영에 대한 하나님의 예언은 요시야 왕 치세 때 실제로 성취되었다(23:1-25). 31 남은 자는 예루살렘에서부터 나올 것이요 피하는 자는 시온산에서부터 나오리니 여호와의 열심이 이 일을 이루리라 하셨나이다 ㅇ남은 자는 예루살렘에서부터...시온산에서부터 나오리니 - 본절은 반복법을 사용하면서 유다의 구원을 다시 한번 강조한다. 즉 산헤립의 침입으로 인하여 시온 산과 예루살렘 성안으로 피신했던 유다 백성들이 이제 다시 성에서 나와 각기 처소로 돌아가 생업에 종사하게 될 것을 예언하고 있다. ㅇ여호와의 열심이 이 일을 이루리라 - 동일한 표현이 사9:7과 사37:32에도 나타난다. 이러한 구절들은 유다백성의 구원의 근거가 여호와의 열심에 있음을 단적으로 증거해 준다. 그런데 그 같은 열심은 당신 백성들과의 언약에 대한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관련된다(슥1:14) 32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앗수르 왕을 가리켜 이르시기를 저가 이 성에 이르지 못하며 이리로 살을 쏘지 못하며 방패를 성을 향하여 세우지 못하며 치려고 토성을 쌓지도 못하고 ㅇ본절에서 마지막 절까지는 알에서 언급된 모든 내용의 결론 부분이다. 여기서 이사야 선지자는 여호와께서 예루살렘 성을 지키시고 앗수르를 징벌할 깃이기 때문에 그들은 유다 백성들이 있는 그 성에 대하여 어떠한 해도 끼칠 수 없다고 못박고 있다. ㅇ살...방패...토성 - 당시 성을 포위하고 함락시키는 3단계의 과정을 보여 주는 구절이다. 즉 당시 성을 포위하고 공격하는 첫 단계는 공병(工兵)을 엄호하며 화살을 쏘는 일이었다. 그 다음으로 방패를 앞세운 공병대가 접근 사다리를 세우며 마지막으로 성을 공략하기 위해 성벽에 마주 대하여 토성을 쌓고 공성추를 설치하였다(Rawlinson) 33 오던 길로 돌아가고 이 성에 이르지 못하리라 하셨으니 이는 여호와의 말씀이시라 ㅇ오던 길로 돌아가고 - 7절과 28절 주석 참조. 이는 여호와의 맡쏨이시라. 이사야의 이러한 강조적인 선언은 18:19의 '대왕 앗수르 왕의'과 본장 10-13절에 언급된 산헤립 왕의 말과 잘 대조가 된다. 34 내가 나와 나의 종 다윗을 위하여 이 성을 보호하여 구원하리라 하셨나이다 하였더라 ㅇ나와 나의 종 다윗을 위하여...구원하리라 - 본절은 하나님께서 유다 족속을 구원하고자 하시는 근거를 밝히고 있다. 믈론 여기서 말하는 구원은 앗수르의 공격으로부터의 구원을 가리킨다. (1)하나님 당신을 위해서 : 예루살렘의 구원은 유다 백성이나 히스기야의 공로에 의해서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 당신의 영광을 위해서이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시고 섭리하시는 제 1의 목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모든 피조물들이 당신에게 영광 돌리기를 바라신다(고전10:31). (2)다윗을 위하여 : 이것은 다윗의 개인적인 신앙을 기리는 말이기 이전에 그와 맺은 언약을 지키시려는 하나님의 신실성을 의미하는 말이다(상하7:12,16). 이러한 하나님의 신실성은 오늘날 그리스도롤 통하여 하나님과 영원한 언약관계를 맺은 모든 성도들에게도 적용된다(마26:28;히13:21) 35 이 밤에 여호와의 사자가 나와서 앗수르 진에서 군사 십 팔만 오천을 친지라 아침에 일찌기 일어나 보니 다 송장이 되었더라 ㅇ본절에서부터 마지막 절까지는 본장의 클라이막스 부분으로서 이사야의 예언의 말씀(7절)이 성취되는 장면이다. 이와 관련 헤로도투스(Herodotus)와 요세푸스(Josephus)도 산헤립이 유다에서 퇴각한 것은 분명히 어떤 극심한 재난 때문이었다고 천명(闡明)한다. ㅇ여호와의 사자가 나와서 - 여기서 '여호와의 사자'(angle of the Lord)는 애굽에서 장자를 쳤던(출12장) 천사이자 다윗의 인구 조사때 이스라엘에 온역을 내렸던 바로 그 천사(삼하24:15,16). 하나님께서 이제 앗수르를 징계하시기 위해 앗수르 군대에 그 천사를 보내신것이다. 한편 '여호와의 사자'에 대해서는 1:3주석을 참조하라. ㅇ십 팔만 오천을 친지라 - 이 수치로 볼 때 당시 앗수르 군대의 규모를 능히 짐작할 수 있다. 한편 이처럼 앗수르의 군인들이 일시에 십 팔만 오천이나 죽은 데 대해서는 역병, 광야의 돌풍, 구스 왕 디르하가(9절)의 기습 등 여러 가지 까닭 때문으로 추측한다. 그러나 그것들은 추측에 불과할 뿐이고 다만 분명한 것은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역사의 결과였다는 점이다(Pulpit Commentary). 36 앗수르 왕 산헤립이 떠나 돌아가서 니느웨에 거하더니 ㅇ니느웨에 거하더니 - 니느웨(Nineveh)는 티그리스 강 건너편 동쪽 언덕에 위치한 성읍이다. 이곳은 B.C. 12세기부터 주목을 받긴했으나 그곳이 일약 앗수르의 수도(首都)로 발전한 것은 산헤립 때부터였다. 한편 산헤립은 귀국후 이곳에서 상당한 기간을 지냈던 것 같다. 왜냐하면 일반적으로 성경에서 '거하더니'(야솨브)라는 용어를 사용할 때는 바로 그러한 의미로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곧 산헤럽이 죽을때까지 다시는 유다에 대하여 어떠한 새로운 원정(遠征)도 획책하지 않았음을 암시해준다. 37 그 신 니스록의 묘에 경배할 때에 아드람멜렉과 사레셀이 저를 칼로 쳐죽이고 아라랏 땅으로 도망하매 그 아들 에살핫돈이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ㅇ그 신 니스록의 묘에 경배할 때에 - 여기 '니스록'(Nisroch)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려진 바가 없다. 혹자는 이것을 독수리 신으로 보고 있으나(Keil) '니스록'과 '독수리'(네쉐르)는 어원학상 너무 거리가 멀어 신빙성이 없는 것으로 판명났다(Rawlinson). 요세푸스는 '니스록'을 신명(神名)이 아닌 신전 이름으로 보고 있는데 그리하여 그는 그것을 헬라어로 옮기기를 '아라스케스'라고 하였다(Keil &Delitzsch). ㅇ아드람멜렉과 사레셀이 저를 칼로 쳐죽이고 - 아드람멜렉(Adrammelech)과 사레셀(Sharezer)은 에살핫돈(Esarhaddon)과 더불어 산헤립의 아들들이다(사37:38). 그런데 산헤립이 자기 아들들에게 암살당했다니 참으로 비극적이다. 한편 일반적으로 산헤립의 죽음을 B.C.681년경으로 보고 있으나 분명치 않다. 산헤립이 암살되었다는 사실에 대해 그의 손자인 앗술바니팔(Asshurbanipal)의 비문에 어느정도 나타나 있기는 하나 자세한 것은 알 수가 없다. 이에 따르면 에살핫돈은 산헤립이 죽은 후 후계자 계승 문제를 놓고 암투를 벌인 것으로 되어 있다. 즉 에살핫돈은 산해립의 가장 어린 아들로서 아버지를 죽인 다른 형제들과 싸운 것이다. ㅇ아라랏 땅으로 도망하매 - 아라랏(Ararat)은 티그리스 강과 유프라테스 강 상단에 위치한 아르메니아(Armenia) 지역이다. 이곳과 관련해서는 과거 노아 홍수시 노아의 방주가 아라랏 산에 머문 사건을 상기할 수 있다(창8:4). 그런데 산헤립을 시해한 그 아들들은 결국 아라랏에서 에살핫돈에게 잡혀 죽임을 당한 것 같다. ㅇ에살핫돈이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 에살핫돈(B.C.681-669)은 자기 아버지 산헤립이 다하지 못한 정복전쟁을 계속하여 애굽의 멤피스까지 함락시켰다. 유다와의 관계에 있어서 그는 지독히 악랄한 통치자로 여겨졌다. 그 이유는 그가 므낫세의 통치기간 중 유다틀 침공하여 므낫세를 쇠사슬로 결박하여 바벧론으로 끌고 갔기 때문이다.(대하33:11). 니느웨에서 발견된 B.C. 8세기 무렵의 한 편지에는 '유대인들이 은 10마나를 보냈다'고 기록되어 있는바, 여기에는 므낫세의 이름도 나온다. 뿐만 아니라 그는 유다와 베냐민 족속의 상당수를 포로로 잡아가거나 강제 이주시켰다(스4:2). 이처럼 이스라엘 백성을 괴릅혔던 그는 애굽 내지(內地)에서 얼어난 반란을 진압하던 중 병사했으며, 앗술바니팔이 그뒤를 이어 왕위를 계승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