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창25장
@블레셋 평야 경계 :: <서>욥바(텔 아비브)-아스돗(Jrs 맞은편 대해 연안)-아스글론-가사, <남> 가사- 그랄-시글락(브솔시내) <동>시글락-가드/에그론-가드림몬-아벡 <북>욥바-아벡....아벡과 브솔시내, 미스바 에벤에셀 참조 @블레셋 지역 :: 욥바에서 가사(브솔시내)--그랄--시글락, 시글락--가드/에그론--가드림몬--아벡, 아벡--욥바에 이름 @아말렉 지역은 브솔시내에서 애굽시내, 블레셋과 에돔지역과의 경계는 가데스바네아에서 소알을 잇는 선(또는 아다람길....아다람길은 가데스바네아(인근에 아론이 사망한 호르산이 있음)에서 아랏, 헤브론으로 이어짐
...장자권을 <야곱에게>주시려는 주권적 하나님의 갈망---그것을 얻으려는 <주님이 불어 넣어주신, 야곱의>갈망이 서로 합치된다.. :: 그렇다 하더라도, 우리의 갈망을 만족시킴과 동시에 하나님의 의도를 성취시키기 위하여, 우리가 가진 바 천연적인 힘과 능력을((이것을 사용하게 되면 반드시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사용하지 않기의 공과를 <반드시> 배워야 함..... <또 하나의 야곱인 우리를 변화시키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주권적으로 안배해 두신 바를 친히 이루시도록 (시간이 너무 걸리는 것 같아서 그대 마음이 힘들더라도!!) 신뢰-앙망함으로 기다리라!!> ...영적 장자권 :: 주관적으로 체험된 그리스도, 내주하시는 말씀과 성령님을 통해 그리스도의 성분과 요소로 내적 사람이 변화받고 (그리스도의 어떠하심으로)조성되어 가는, 주 앞에 서는 단독자, 주님 생명 충만한 작은 그리스도들.... 이들의 유기적 생명 공동체인 그리스도 교회, 곧 집단적 그리스도-그리스도의 몸, 어린양의 아내-그리스도의 신부-새 예루살렘을 이룸... 그들은 각자 하나님의 기업에 누리며 참여하는 상속자(후사)---하나님의 형상 그대로 표현하는 제사장---하나님을 대표하는 왕(다스림과 통치,,,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공동왕), 그 권세가 영적 장자권이요, 이는 오늘날의 왕국 생활인 교회생활에서 실지로 드러난다. ...그러므로, 믿음 통해 영적 장자권을 실지로 누리고 있는 이마다 명심할 바는, 영의 생각이 아닌 육적 느낌을 따라 기호-선호-취미-편애함에 치우치거나, 자의적 판단으로 육체의 일시적 즐거움/오락 탐닉에 내어줌으로써 <영의 냉담함 초래케 됨 인해> 제사장으로서의 합당한 주님 표현을 방해하거나, 공동왕으로서의 주님 다스리심 베풂을 훼방/좌절시키거나, 주님 왕국-기업 누림과 참여를 제한할 수 있는, (영적 장자권을 경홀히 여김이거나 방기하는 것임) 장자권자에 합당치 못한 그 어떤 생각이나 원수의 시도를 불식시키도록 하자...우리의 영적 장자권을 위해 필요하다면 그 언제라도 기꺼이 세상의 것을 무가치한, 죽은 것으로 여겨 멸시함이 옳다!! --- @@@야곱 Jacob(인) bqo[}y"(3290, 야아코브) --야아코브는 '발꿈치를 잡은 자, 훼방/방해/경쟁/탈취/찬탈-속이는 자, 대신 들어 앉은 자(찬탈자)'를 의미한다(창 25:21 이하). 구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약 350회 나온다. [개인적 느낌<Q 추구, 발견하여 마침내 얻고, 거하며, 누리는 자>..***잠8:16...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 ***마7:7,8....*7.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8.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사65:1...*1.나는 나를 구하지 아니하던 자에게 물음을 받았으며 나를 찾지 아니하던 자에게 찾아냄이 되었으며 내 이름을 부르지 아니하던 나라에 내가 여기 있노라 내가 여기 있노라 하였노라.] 1. 이삭의 아들 야곱 (a) 야곱의 출생과 성장- 그는 이삭과 리브가 사이에서 출생한 에서의 동생이며(창25:20,21,26, 대상 1:34), 이삭의 기도에 대한 응답으로 출생했다(창 25:21). 그는 출생시 형 에서의 발꿈치를 잡고 나왔으며(창 25:26), 장년에 하나님과 힘을 겨루었다(호12:3). 그는 에서와는 다르게 장막에 거하였고(창25:27), 리브가가 그를 편애하였다(창 25:28). 그는 에서로부터 장자의 명분을 샀으며(창 25:31-34, 창 27:36). 그는 리브가의 제안에 따라(창27:8-10), 변장하고(창 27:15,16), 거짓 말로 아버지 이삭을 속이고 에서 대신 복을 받았다(창27:18-20, 창 27:22-24,30). 그는 그 축복을 인하여 에서의 원한을 사고 자기를 죽이려는 에서의 계획을 알고(창27:41), 에서를 피해 하란으로 가게 되었다(창27:42-45). 이삭이 야곱을 불러 그에게 축복하고 또 부탁하여 밧단아람으로 가서 너의 외조부 브두엘 집에 이르러 거기서 너의 외삼촌 라반의 딸 중에서 아내를 취하라고 했다(창28:1-3,5). (b) 야곱의 도피생활(환상과 서원) - 그는 돌베개를 베고 자던 중에 환상을 보았다. 하나님의 사자가 사닥다리 위를 오르락 내리락하고(창28:10-12), 아브라함의 언약을 확증받았다(창 28:13-15). 그는 아침에 일찌기 일어나 베개하였던 돌을 가져 기둥으로 세우고 그 위에 기름을 붓고 그곳 이름을 벧엘이라 명명했다(창 28:16-19). 그리고 그는 하나님께 안전의 보장을 요구하고 십일조에 관한 서원을 했다(창28:20-22). (c) 야곱의 결혼 - 그는 하란의 우물가에서 라헬을 만나고(창 29:10-12), 라반과 한 달을 함께 거하였다(창 29:3,14). 그는 라헬과 결혼을 위하여 칠년동안을 수일 같이 여기며 봉사했는데(창29:15,18-20), 라반이 그를 속이고 레아를 그에게로 들어가게 했다(창 29:21-23,25). 그는 칠일을 채우고 라헬을 취한 후 다시 칠년을 봉사했다(창 29:27-30). (d) 야곱의 자녀 그는 레아와의 사이에서 여섯 아들을 얻었으며(창29:32-35, 창 30:18-21, 창35:23), 라헬의 시녀인 빌하와의 사이에서 두 아들을(창30:3,5-8, 창35:25), 레아의 시녀인 실바와의 사이에서 두 아들을 얻었다(창 30:9-13, 창35:26). 그리고 그는 라헬에게서 요셉을 낳고(창 30:22-24), (e) 야곱의 사업 - 그는 성실히 일하였으며(창31:38-40), 라반에게 큰 번영을 가져다 주었다(창30:27-30). 그는 품삯을 열번이나 변역당했으며(창 31:7,41), 라반에게서 떠나기를 구하였고(창 30:25,26), 재물을 위해 꾀를 부려 많은 재물을 얻었다(창30:32-43). (f) 야곱의 귀향(라반과의 결별) - 그는 고향으로 돌아가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받았다(창 31:3,13). 그는 거부가 되어 몰래 귀향길에 올랐다(창 31:20-22,창 31:42, 창32:10). 라반이 그를 뒤쫓아 만나고(창31:23-43), 라반과 언약을 세워 증거를 삼았다(창 31:44-47). (g) 야곱은 에서와의 해후함 - 그는 귀환길에 하나님의 사자를 만나 힘을 얻었다(창 32:1,2). 그는 에서에게 사자들을 보내어 은혜 받기를 원하였다(창32:3-5). 그는 간절한 기도하였고 응답을 받았다(창 32:9-12). 그는 에서에게 예물을 보내고(창32:13,16-18), 그의 가족과 종들이 얍복 나루를 건네고(창 32:21-23), 얍복강가에서 홀로 하나님의 사자와 씨름을 했다(창 32:24, 호 12:4). 그는 사자와의 씨를에서 환도뼈가 위골(違骨)되었으며(창32:25), 하나님의 사자에 축복을 간청하고 그 사자로부터 축복받았으며, 이스라엘이란 이름을 얻었다(창 32:26-29, 창32:28, 창 35:9,10). 그는 사자와 씨름한 곳을 브니엘이라 명명했다(창32:30-32). 그는 에서를 만났고 에서는 그를 환영하였다(창 33:1,3-5). 그는 에서를 강권하여 예물을 받게 하였다(창33:8-11) (h) 야곱의 귀환후 일들 - 그는 숙곳에 이르러 집과 우릿간을 짓고(창 33:17), 세겜 성에 이르러 성 앞에 그 장막을 치고 그 장막 친 밭을 세겜의 아비 하몰의 아들들의 손에서 은 일백개로 사고 거기 단을 쌓고 그 이름을 엘엘로헤 이스라엘이라 하였다(창 33:18-20). 그의 딸인 디나가 그 땅 여자를 보러 나갔다가 히위 족속중 하몰의 아들 그 땅 추장 세겜에게 강간을 당하였다(창 34:1-4). 이 일로 야곱의 아들들이 심히 노하여(창34:7), 그의 아들들이 복수하였다. 세겜의 통혼제안을 할례를 조건으로 받아들이는 척하고(창34:8-10,15,16), 그들이 고통할 때 시므온과 레위가 세겜성을 엄습하여 그 모든 남자를 죽이고 칼로 하몰과 그 아들 세겔을 죽이고 디나를 세겜의 집에서 데려 오왔으며(창34:25,26), 아들들이 재물과 아이, 여인들을 약탈했다(창 34:27-29). 이 일로 야곱이 심히 번민하여 "시므온과 레위에게 이르되 너희가 내게 화를 끼쳐 나로 이 땅 사람 곧 가나안 족속과 브리스 족속에게 냄새를 내게 하였도다 나는 수가 적은즉 그들이 모여 나를 치고 나를 죽이리니 그리하면 나와 내 집이 멸망하리라고 말했다(창34:30). 그는 다시 벧엘로 가서 단을 쌓다(창 35:1,5-7). 그는 어머니의 유모 드보라를 벧엘 아래상수리나무 밑에 장사하고 그 나무 이름을 알론바굿이라 불렀다(창35:8). 그들이 벧엘에서 발행하여 에브랏에 이르기까지 얼마 길을 격한 곳에서 라헬이 임산하여 베냐민을 낳고 죽으매 에브랏 곧 베들레헴 길에 장사되었다(창35:16-19). 라헬의 묘에 비를 세웠다(창35:20). 그의 아들 르우벤이 서모인 빌하와 통간하였고 이스라엘이 이를 들었다(창 35:22). 그는 에서와 함께 그 아비 이삭을 장사했다(창35:27-29). (i) 야곱의 말년 - 그는 요셉을 편애하였고(창 37:2-4), 아들들이 요셉을 미워하여 은 이십개에 그를 이스마엘 사람들에게 팔매 그 상고들이 요셉을 데리고 애굽으로 갔다(창 37:26-28). 그는 요셉의 실종(失踪)으로 애통해 하였다(창 37:33-35). 그는 양식을 위하여 베냐민을 제외한 아들들을 애굽에 보내어 곡식을 사왔으며(창42:1-4), 양식을 위하여 베냐민을 포함한 아들들을 애굽에 다시 보내었다(창 43:2,6,7,13). 그는 베냐민을 편애했다(창44:29). 그는 요셉의 소식을 듣고 기운이 소생하였다(창45:9-11,27). 그는 애굽에로 이주했다. 그는 브엘세바에서 하나님의 위로를 받고(창46:1-4), 모든 가족을 이끌고 애굽으로 내려갔다(창46:5-7, 시 105:23, 행 7:12,14,15). 요셉과 상봉하고(창46:28-30), 바로를 만나 축복하였다(창47:7,10). 그는 고센 땅에 거하였고, 이스라엘 족속이 애굽 고센 땅에 거하며 거기서 산업을 얻고 생육하며 번성하였다(창47:11,12,27). (j) 야곱의 임종 그는 죽을 기한이 가까울 때 그를 선영(先塋)에 장사토록 요셉으로 맹세케 하였고(창 47:29-31), 요셉의 두 아들을 축복하고(창 48:9,14-16), 아모리 족속에게서 빼앗은 땅을 요셉에게 물려주었다(창48:22, 요4:5). 그는 임종에 이르러 아들들에게 축복하고(창49:1-28), 애굽에서 숨을 거두었다(창 49:29-31,33). 그의 시신에 향재료를 넣었으며(창50:2), 애굽사람들이 그를 위하여 칠십일 동안 애곡하였다(창 50:3). 그의 아들들이 부명(父命)을 좇아 가나안땅 막벨라굴에 장사했다(창 50:12-14) (k) 신약성경에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이라는 문구는, 유대인의 자랑이자 그들이 특권으로 여긴 하나님과의 특별한 관계를 나타낸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은 이스라엘을 대표하는 세 명의 족장이며, 하나님께서 이 세 족장과 언약을 맺으셨다. 그러므로 이 표현은 신실하고 참된 이스라엘의 상징이다. 바리새인들은 이 상징을 특별히 자신들에게 적용시켰다. 그들은 스스로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였으며, "하늘의 멍에"를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언약으로 말미암아 신실한 유대인은 다가오는 하나님의 나라를 보증 받았으며, 하늘나라의 시민권을 가졌다. 따라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은 "하나님 나라의 아들들"을 나타내는 어구로 간주될 수 있다. 더 정확하게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을 조상으로 가진 자들은 "하나님 나라의 아들들"이었다. 따라서 마 8:11 병행구의 말씀은 바리새인들에게 이제까지 들어본 적이 없는 불합리한 말로 여겨질 수밖에 없었다. 언약의 외인들(믿지 않은 자들)이 하나님 나라의 아들들이 되고, 아들들 자신들은 쫓겨났다고 말하였다. 후기 유대교에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이라는 문구는 토라와 선지자들에게서 발견된다. 이 표현과 결합되어 있는 사상은 마카베오이서 1:2에 함축적으로 나타나 있다: "하나님께서 너에게 선을 베푸시고, 그의 신실한 종들, 곧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맺으신 그의 언약을 기억하시리라". 세 명의 족장 안에 언약의 백성 이스라엘과의 하나님의 관계(dealings)의 원형이자 보증이 들어있다: "...주 우리 하나님께 감사하자, 그는 우리를 그가 우리 조상들에게 행하신 것과 같이 시험하신다. 그가 아브라함에게 행하신 것을 기억하라. 또 그가 이삭을 얼마나 크게 시험하셨는지를, 또 야곱에게 일어난 모든 일을 기억하라..."(유딧 8:26). 이 문구는 낱낱의 예를 들 필요가 없을 만큼 랍비 문헌에 너무나 흔히 나온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의 하나님의 관계는 언약의 백성들과의 하나님의 관계의 원형이자 보증임은 자명한 전제인 것이다. 이 사상은 또한 막 12:26; 마 22:32; 눅 20:37에서 출 3:2; 출 3:6에 대한 해석학적 호소에서 전제되어 있다. 행 3:13도 참조하라. 결론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이 죽은 자들로부터 다시 살아나는 것을 우리가 확실히 가정해야 하는 바와 같이 그들의 자손들에게도 역시 확실하다는 것이다. 행 3:13의 요점은 예수님을 거룩하게 하시고 생명의 주로 만드신 분은 바로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시므로 유대인들이 그리스도를 거부하는 것은 그들 자신의 하나님을 거부하는 것이 된다는 말씀이다. 세 명의 족장들의 이름의 결합은 제한의 목적을 지닌다. 모든 유대인들은 아브라함의 자손들이고, 또 스스로를 아브라함의 자손들이라고 부른다. 따라서 그들은 아브라함에게 주어진 약속들에 이르른다. 하지만 아브라함이나 이삭의 모든 후손들이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인 것은 아니다. 언약의 백성을 한정하는 것은 바로 야곱이라는 이름이다. 그리하여 히 11:9에서 이삭과 야곱은 아브라함과 함께 약속의 후사들인 것이다. 이러한 계승적 제한은 행 7:2-8에 반영되어 있다. 참조: 토빗 4:12: "우리는 선지자들, 즉 노아, 아브라함, 이삭과 야곱의 후손들이다". (l) 바울은 참된 이스라엘, 하나님의 참 자손은 야곱의 후손들이라는 이러한 사상을 버린다. 바울에게 있어서는 유대인인든 이방인이든 그리스도인들이 아브라함의 참 자손이요, 그에게 주어진 약속의 후사들이다. 바울은 구약성경을 인용하면서 육신을 따라 난 이스라엘을 지칭하기 위해 단 한번 야곱을 사용한다(롬 11:26). 그러나 바울은 유대적 사상에 반하여, 야곱을 선택하고 에서를 거부한 구약성경의 기사를 사용하여 하나님의 뜻은 출생의 권리에 의존하지 않음을 보여준다(롬 9:13). (o) 이스라엘을 뜻하는 "야곱의 집"이라는 표현(눅 1:33; 행 7:46)-구약성경에서 그런 의미로 이미 사용되었음-도 역시 야곱이라는 이름의 제한적 의미와 연관된다. (p) 클레멘트일서 31.4 이하도 위의 사상의 범위에 속한다: "야곱은 그의 형으로 인해 비천하게 고향을 떠나 도망하였다... 그리고 그에게서 이스라엘의 열 두 지파가 일어났다. 만약 이것을 보다 더 좁은 의미로 생각해보면 그가 부여 받은 선물들의 위대성이 깨달아질 것이다. 그로부터 하나님의 제단을 섬기는 모든 제사장들과 레위인이 나왔다. 그로부터 주 예수께서 육신을 따라 났으며, 그로부터 왕과 통치자들과 방백들이 유다를 통하여 나왔다". 기자에게 있어서 야곱은 육적 이스라엘의 축도요 예수님도 육신을 따라서는 대제사장으로서 야곱에게 예속한다. 기자(32.2)가 즉시 창 15:5; 창 22:17에 따라 아브라함에게 준 약속을 야곱과 연관시키는 것도 주목할 만하다. 야곱과 그의 자손들, 그들만이 아브라함의 참 자손들이다.(참조: Odeberg). 2. 예수님의 족보에 나타난 요셉의 아버지 야곱 마 1:15-16.
롬8장 ===생명의 성령의 법 *1.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2.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3.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로 말미암아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4. 육신을 따르지 않고 그 영을 따라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5.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6.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7.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8.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9.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10. 또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면 몸은 죄로 말미암아 죽은 것이나 영은 의로 말미암아 살아 있는 것이니라 *11.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12.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빚진 자로되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니라 *13.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14.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15.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 *16.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 *17.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모든 피조물이 구원을 고대하다 *18.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 *19. 피조물이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는 것이니 *20. 피조물이 허무한 데 굴복하는 것은 자기 뜻이 아니요 오직 굴복하게 하시는 이로 말미암음이라 *21.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 노릇 한 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 *22.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을 우리가 아느니라 *23. 그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 될 것 곧 우리 몸의 속량을 기다리느니라 *24.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25.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지니라 *26.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27. 마음을 살피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29.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30.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그리스도의 사랑 하나님의 사랑 *31.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32.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33. 누가 능히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을 고발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34.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35.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36. 기록된 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며 도살 당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37.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38.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39.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 **아브라함의 생명 성숙 정도 : 사라의 죽음 후에 이르러조차, 생명 안에서 볼 때, 아직 결함이 있는, 생명으로 충만 변화됨 안에 머무름은 없이 <천연적 원함따라 행함의> 여전히 미숙한 상태였음을 알 수 있음(물론 하나님은 이 조차 선용하고 계신다) ::::: 여전히 천연적 요소가 다 처리됨 없었고 오히려 더 강해졌던 것 같고, 그로 인해 재혼함을 본다..(더 많은 이스마엘들 산출) ...1)생명 안에서의 성숙은<타인들을 차별없이 축복하며, 자신을 복의 통로로 내어드리게 함>으로 나타나게 됨... <죽음의 기록이 나타나기까지...그 누구를> 아브라함이 축복하였다는 기록은 전혀 없음....25장의 기록에서는 단지 재혼의 기록뿐임....아브라함의 삶을 요약해 보면, 이스마엘과 함께 한 부분, 이삭과 함께 한 부분, 여섯아들과 함께 한 부분으로 나눌 수 있음...첫번째의 [육적 선택]에 의해 <젊은 육은> 하갈에게서는 한 아들 이스마엘을 얻었으나, 이제 두번째의 육적 선택으로 <늙은 육은> 그두라에 의해 여섯 아들..(더 많은 이스마엘들)을 얻었음.. ...2)아브라함은 자기 소유 모두를 이삭에게 주었음<주님의 선택자는 그두라의 여섯아들이 아님을 분명히 알고 있었음>....즉, [하나님이 인정하신 바] 이삭만이 진정하고 유일한 상속자임을 <주님 마음에 비추어 보고> 공식 인정했음을 의미(5, 6) ...3)분명히 아브라함은 사라와 함께 막벨라 굴에 장사되기는 했으나, <믿음-은혜-생명 체험의 성숙 면에서> 그의 완성과 온전함을 위해서는, <이삭과 야곱>이 필요하게 되었다는 의미.....곧 부활 생명의 영생하시는 하나님 그 영은 세 하나님이 아니라 유일하신 하나님이신데, 그분의 칭호[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라 하신 그 칭호]에는 아쉽게도 반드시 <야곱과 이삭>이 필요하게 되었음을 본다.... 결국, 우리는 지금, 아브라함을 볼 때, 하나님 아버지를 이삭을 볼 때 하나님 아들을 야곱을 볼 때 하나님 그영을 보게 되는데, 실은 한 분 안에서 셋이신 아버지와 아들과 그 영은 유일한 한분 TUQ이시다.... 이런 원칙에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은 세명이로되 하나인 사람(Triune person)으로서, 한 사람 안의 세 명으로 나타났어야 온전한 사람이라 할 수 있었던 것이지만 아쉽다......오늘 나는 주님 앞에서 어떠한가.
==1.생명의 온전한 체험을 경륜 관점에서 본다면, 생명 안에서 선택하심-부르심-성숙함으로 요약해 볼 수 있다...그런데, 보라, 온전한 사람의 영적 체험을 대표함은<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 모두를 포함해야 하는데, 창세기의 기록에서 특징적으로 드러나는 실제 측면들을 생각해 본다면...아브라함의 시작은 선택하심이 먼저 나오는 것이 아니라 <부르심으로>시작된다... 그러나, 하나님은 부르심 그 전에 먼저 <창세 전에, 곧 영원 과거에 아브라함은 선택되었고 갈대아 우르에서 부르심 받은 바> 선택하심이 있었음이 분명한데.... 그 선택하심에 대한 기록은 아브라함에게서가 아니라 야곱의 선택 기록 안에 있다....야곱의 선택 기록 안에 (아브라함의 선택됨이 포함되어) 함께 나오고 있는 것이다...<달리 표현하자면 야곱의 부르심은, 그 기록이 없지만 영적 측면에서 볼 때 아브라함안에서 아브라함과 함께 부르심 받았다는 뜻이다> .....아브라함의 산출한 바, 하갈에게서 난 이스마엘도, 그두라에게서 난 여섯아들들도 하나님이 원하신 자가 아니었음을 분명히 하고 계신다...심지어 기도해서 낳은 바 된 이삭의 아들들 중에서도 에서가 아니라 말썽꾸러기 탈취자로 회자되던 야곱이 선택된다...이것이 하나님의 주권이다....여기서 의미하는 바는, 주님의 주권적 선택하심은 때가 되면 그 어떤 상황 조건에서라도 상관없이 <다루심의 연단 통한 친자녀이자 제자됨의 훈련과정 통해 반드시 생명의 성숙 충만한, 하나님의 기업 받을 영적후사-상속자, 하나님 형상 표현하는 제사장, 하나님을 대표하여 다스리고 통치하는 왕으로의 합당한 생명 성숙으로 이끄신다는 것>.... 성숙되지 않은 생명은 항상 헛되이 수고함이 되고 만다는 것이다.. .....생명 안에서의 성숙을 표현함인 <다른 이들을 주님 이름으로 축복함>의 예를 든다면 단연코 히브리서에서 그리스도로 예표되고 있는 <멜기세덱>이었다.(.창14:18-19)....그 다음에는 이삭이지만, 그는 소경 상태에서 축복하고 있는 바, 속임 당해서 불분명하게, 그리고 축복 받아 마땅한 자가 아니라 오히려 다른 이에게 축복했고 장자권을 에서 대신 야곱에게 주었다.(창27).이삭은 어느정도 성숙했으나 생명의 성숙함 안에서 풍성이 부족했기에 분별치 못하고 축복한 것이다.....그러나, 창세기의 끝에서 <야곱도 육안은 희미했으나, 오히려 영은 더욱 활력이 넘친 그 상태에서 생명 충만하여 분명하게....그가 받은 생명 성숙함따라 축복 받은 바로 그대로> 그가 만난 모든 사람에게 가는 곳마다 축복하는 자로 나타난다. [생명이 성숙한 야곱은 오직 축복하기 위해 태어난 자 같았다!!...이것이 바로 생명 성숙함의 표시이다]...또한 그의 자녀들을 축복하고 있는 바, 주님 인도하시는 바로 그대로 온전하고 투명하게 축복하고 있는데, 이는 그분의 모든 자녀들에게 하나님의 경륜을 예언하는 것이었다. 결국, 야곱은 하나님의 표현인 이스라엘이 되었다....생명 안에서 성장성숙한 사람은, 그의 빼앗던 그 손이 [가장 극악한 사람들까지도 두루 포함하여] 축복하는 손이 된다!! ==2.기업을 누림의 관점에서 본다면... .....아브라함의 온전함을 위해서는 또한, 기업을 누린 이삭이 필요했다.(24:36, 25:5)...아브라함의 삶은 <빼앗기는 삶의 연속이었다>, 아브라함이 부르심 받은 그 날부터 하나님은 그의 것들을 하나씩 빼앗아 가기 시작하셨다...그의 형제, 그의 아버지, 롯, 엘리에셀을 거절하시고, 이스마엘을 내쫓으시며, 심지어 이삭조차도 제단에 드리라 하셨고, 이삭이 돌아 온 뒤에는 사라가 죽었다. .....반대로, 이삭의 삶은 누림 충만한 삶이었다. 이삭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고 그는 다만 그의 아버지가 가진 모든 것을 물려 받았다...(보라, 아브라함의 삶과 이삭의 기록은 서로 겹쳐진, 하나인 것을 볼 수 있어야 한다....그리스도인의 삶에 있어서 밤과 낮은 우리의 왼손과 오른 손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믿는 우리 모두는 야곱처럼 선택 받았고 아브라함처럼 부르심 받아서 믿었다....<오직 살아 생동하는 믿음 발휘함으로써 주 안에 거하며> 아브라함처럼 빼앗기고 이삭처럼 누릴 때, 우리는 그 어느날 야곱처럼 성숙할 것이다...이 셋 사이에 나뉨이 없음을 기억하라..하나님께는 아브라함-이삭-야곱이 오직 하나인 사람이다...그러므로 누구를 험담하여, 야곱이라 하거나 아브라함이나 이삭이라 말해서는 안됨에 주의하라 ) ....**<믿는이들의 (천연적-종교적 생각에 따른) 편견 중 하나는> 하나님의 은혜 누림을 결정짓는 필수적인 그 어떤 전제 조건여하에 달려 있다 [= 곧 영적 선함] 생각하는 경향이다...즉, 천연적 약점을 가지고 천연적 생명을 사는 사람은 결코 하나님의 은혜를 누릴 수 없다고 추정하는 것이다.....그러나, 이와 반대로 [ 은혜를 물려 받아 그의 전 생애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오직 안식과 은혜 누림을 향유했던 바] 이삭은 하나님의 은혜를 누린 본이요 전형이었지만...이삭은 <육을 따라 이중적으로 행하는 아브라함처럼>천연적 약점을 가지고 <천연적 기호따라 편애하는 야곱처럼>천연적 생명 가운데 살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이토록 누릴 수 있었던 사람도 없다.. 이는 이삭의 은혜 누림에 있어서는 하나님이 주권적으로 그렇게 정하셨기 때문이다... 오직 주님은 임마누엘이시요 말씀과 성령으로 당신 자신을 온통 내어주시니 그분의 임재, 곧 나타나심이 있는, 그분이 있으라 하시는 합당한 곳에 합당한 각도, 태도-자세, 주님 부어주시는 믿음 소망 사랑을 유통하며 발휘하며 기도-기대-앙망함으로써 주 안에 거하라...오직 인도해 가시는 곳 어디에서나 살아 생동하는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 의롭다 하심을 실지로 행함과 끊임없는 주 은혜 누림, 전심으로 주 앙망하며 그 안에 살아감 인해 그리스도 공급하라....<어디든지 예수 나를 이끌면>..==><나 어느곳에 있든지>..
***이삭은 은혜 안에서 태어났고, 그 안에서 자랐고, 그 은혜의 상속자가 되었다...그의 생활은 <고통의 기록이 없는...즉, 블레셋인들이 우물을 쟁취하기 위해 싸움을 걸어 오는 등 외부에서 고통을 가할 지라도 결코 <좀체로 몸과 마음이 탈진되거나 고민거리 될 만한 문제로 괴롬 당하지 않는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요동없는 평강)...요동치 않는 평강..이것은 구주 영접한 순간부터 실상 그 누구에게나 열려져 있는데, 오히려 세상과 원수의 속임과 기만때문에 누리지 못하며 깨닫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안식하고 누리는 생활이었다...좀 더 전진해 보자, 안식과 묵상은 괴롬과 고통 중에서가 아니라 지속적인 안식(평안)과 은혜 누림의 상태로 전환되고 난 후에라야 가능하다는 것이 세상의 속삭임이지만, 믿는 우리는 고통 중에서도 생생하게 발휘되는 산 믿음 통해 하나님의 기뻐하심, 그분의 임재 안에 머무를 수 있기에 그 어떤 환난-곤고-핍박-기근-적신-위협-칼 한복판에서도 주 임재(=곧 은혜!!)의 달콤한 위로를 경험하기에, 단호히 <아니, 결코 그렇지만은 않다>라 담대히 말할 수 있음을 알며, 그러므로 산이 무너지더라도 그 가운데서도 안식과 묵상이 가능함을 안다...그리고, 또한 이미 믿는우리는 <아브라함-이삭-야곱> 안에 있으며, <아브라함-이삭-야곱>의 하나님 안에서 믿음으로 하나되어 살아가는 이들이다..그러므로, 환난 중에서도 <누리는 바 우리에게 부어주시는 주님의 사랑-희락-화평 인해> 즐거워 함이 가능해 지는 것이다!! [롬5:1-11]==의롭다 하심을 받은 사람의 삶 **1.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 *2.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 *3.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이것은 믿는이의 그리스도 누림<곧, 은혜 누림의 달콤함>은 실지로 경험되는, 결코 제한 받지 않는, 초월적인 것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는 환난은 인내를, *4.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5. 소망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 *6.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하지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7.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9. 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의 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받을 것이니 *10.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 화목하게 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것이니라 *11. 그뿐 아니라 이제 우리로 화목하게 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서 또한 즐거워하느니라
@@[진리와 생명] ...신약경륜에 있어서 특별한 진전은, 하나님이 사람되심(성육신) + 구주 십자가 구속과 부활로 인해 열어주신 것, 곧 참되게 믿는 이로 하여금 그리스도 안에서 참된 인성 회복 + 회복된 인성 안에서 그의 생명과 본성이 하나님을 온전히 닮아감 통해서 <하나님의 증거인 증거궤가 지금은 2.5-1.5-1.5규빗으로서 온전수인 5와 3의 반쪽인 바, 증거궤의 나머지 반쪽으로 여겨지는> 그리스도의 신부-어린양의 아내를 오게 함으로써 하나님과 연합한 하나된 새 예루살렘을 완성하는 것.. @@[은혜의 개념, 그 확장] ---신약에 따르면, 은혜는 사실상 우리의 누림을 위해 우리를 향한, 우리에게 도달하신 하나님 자신의 어떠하심이다(요 1:16-17, 고후 12:9). 사실 은혜는 우리의 체험 안에서 우리의 누림을 위해 우리 존재 안으로 분배되어 도달하고 체험되신 그리스도, 그분 안의 하나님이시다. 요한복음 1장 17절은 은혜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왔다고 말한다. 이것은 은혜가 어느 정도 어떤 인격과 같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은혜의 인격화(personification)는 하나님 자신이시다. 바울은 “내가 아니라, 나와 함께한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라고 말했을 때(고전 15:10) 이것을 깨달았었다. 바울에게는 은혜가 하나의 살아있는 인격이었으며, 바울 안에서 이 인격이 그로 하여금 수고하게 한 바로 그 은혜가 되었다. ---우리의 소망을 은혜에 둠 베드로는 … 우리의 소망을 온전히 은혜에 두라고 권한다(벧전 1:13). 이 소망은 [내주하시는 은혜이신 그리스도로 인해 믿는이의 혼에까지 두루 미침 통해 일어나는 거룩함으로 인해 나타날, 영광의 소망, 믿는 도리의 소망인데] 거듭남에서 산출된 살아있는 소망이요 그 자체가 또한 은혜인 바 영으로부터 시작되어 혼에까지 두루 이루시는 구원의 완성이다(3절).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우리에게 주실 은혜에 온전히 우리의 살아있는 소망을 두어야 한다. 이 은혜는 … 하나님의 완전한 구원의 완성이 될 혼의 구원을 가리킨다(5절, 9-10절). 은혜는 주님의 첫 번째 오심에 의해 우리에게 왔다(요 1:17). 그 은혜는 주님의 두 번째 오심에 의해 완성될 것이다. 우리는 이런 은혜에 우리의 소망을 두어야 한다. 벧전1:13절의 끝 부분에서 베드로는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심, 곧 드러나심(unveiling)에 관해 말한다. 현재 우리는 [다른 믿는이들 대다수가 보지는/눈치채지는 못하고 있지만] 너울(veil) 아래서 주 예수님을 미리 맛봄으로 누리고 있다. 그러나 너울이 벗겨질 날이 다가오고 있다. 우리가 주님과 함께(!!!) 너울 아래 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은 우리가 무엇을 하는지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의 누림은 감추어져 있으며 똑같은 체험이 없는 다른 사람들은 그것에 관해 전혀 알 수 없다. 그러나 어느 날 주 예수님이 드러나실 것이요 드러내실 것이다. 그때 다른 사람들은 우리가 주 예수님을 누려 왔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드러남은 TUQ의 완전한 구원의 완성인 장래의 은혜일 것이다. 만일 우리가 주 예수님을 미리 맛봄으로 누리고 있지 않다면 우리는 그분이 우리의 완전한 맛봄으로 드러나실 것이라는 소망을 가질 수 없을 것이다. … 미리 맛봄을 누릴 때 우리에게는 그런 소망이 있다. 따라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드러나실 때에 우리에게 주실 은혜에 우리의 소망을 온전히 둘 필요가 있다.
===아브라함이 죽다..137세에 그두라와 재혼, 175세로 Abr의 임종시까지 38년간 이삭은 브엘라해로이와 헤브론을 오갔을것, Abr임종후 이삭은 브엘라해로이에 100세까지 줄곧 머무르고 있음..이삭이 100세 때 에서의 첫 결혼, 가나안 2차 기근이 발생함.
Abr의 아내감에 대한 원칙(가나안 족속과 애굽 족속 배제, 하나님 경외하는 셈-에벨(히브리)에 속한 본 족속이라야 함)에 따랐다고 보면 그두라는 그 자신이 속한 벨렉<서부 히브리 민족> 계열이 아닌 <동방으로 떠난, 동부 히브리민족들인> 욕단 계열 자손이라고 추정되는 바 Abr 생존 상태에서 그두라의 소생 6형제를 따로 재산을 주어 동쯕 땅으로 보내고 있는데 어떤 이유에서인지 그들은 아라비아반도 북쩍에 머무른 것으로 보고 있다....아마 그두라는 아브라함의 나머지 생애 내내 함께 했으리라..
1. [435나의영원하신기업]아브라함이 후처를 맞이하였으니 그의 이름은 그두라[=향기, 향연]라....출신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으나 (상식적으로) 히브리<아람 계열> 사람으로 보이지는 앟는다...모친이 히브리 인이면 자녀도 당연히 히브리 인으로 치게되어 있었기 때문...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여기에 그두라에 대해 기록해 두셨을까 생각해 보라.....은혜 통해 그리스도 계보에 오른 여인들을 기억해 보라...아모리여인 여리고성의 기생 라합, 모압여인 룻, 아히도벨의 손녀 밧세바.. 2. 그가 시므란과 욕산과 므단과 미디안과 이스박과 수아를 낳고 3. 욕산은 스바와 드단을 낳았으며 드단의 자손은 앗수르 족속과 르두시 족속과 르움미 족속이며 4. 미디안의 아들은 에바와 에벨과 하녹과 아비다와 엘다아이니 다 그두라의 자손이었더라 5. 아브라함이 이삭에게 자기의 모든 소유를 주었고 6. 자기 서자들에게도 [따로]재산을 주어 자기 생전에 그들로 하여금 자기 아들 이삭을 떠나 동방 곧 동쪽 땅으로 가게 하였더라 7. 아브라함의 향년이 백칠십오 세라 8. 그의 나이가 높고 늙어서 기운이 다하여 죽어 자기 열조[=음부의 낙원...생명의 열조들..아담, 에노스, 에녹, 노아]에게로 돌아가매... 임종 직전에 자녀들에게 예언적 축복을 하는 야곱의 생명 충만 흘러넘침을 Abr에게서와 이삭에게서도 볼 수 있었더라면...하는 아쉬움은 여전히 남는다. 9. 그의 아들들인 이삭과 이스마엘이 그를 마므레 앞 헷 족속 소할의 아들 에브론의 밭에 있는 막벨라 굴에 장사하였으니 10. 이것은 아브라함이 헷 족속에게서 산 밭이라 아브라함과 그의 아내 사라가 거기 장사되니라 11. 아브라함이 죽은 후에 하나님이 그의 아들 이삭에게 복을 주셨고[Abr에게 하신 그 언약 그대로 이루시는, 신실과 참이신 주님] 이삭은 브엘라해로이 근처에 거주하였더라 ===이스마엘의 후예 12. ○사라의 여종 애굽인 하갈이 아브라함에게 낳은 아들 이스마엘의 족보는 이러하고 13. 이스마엘의 아들들의 이름은 그 이름과 그 세대대로 이와 같으니라 이스마엘의 장자는 느바욧이요 그 다음은 게달과 앗브엘과 밉삼과 14. 미스마와 두마와 맛사와 15. 하닷과 데마와 여둘과 나비스와 게드마니 16. 이들은 이스마엘의 아들들이요 그 촌과 부락대로 된 이름이며 그 족속대로는 열두 지도자들이었더라 17. 이스마엘은 향년이 백삼십칠 세에 기운이 다하여 죽어 자기 백성에게로[=음부의 고통 받는 곳...마귀에 속한 자이다] 돌아갔고 18. 그 자손들은 하윌라에서부터 앗수르로 통하는 애굽 앞 술[애굽 동북부경계지역의 수르, 수르 길 종착지점..고센(라암셋에서 숙곳을 거쳐서 수르광야 중앙을 지나서 수르로 이어지고 거기서 애굽시내 건너서 가나안 남동부의 브엘세바로 연결되고 거쳐서 헤브론으로 이어지는 것이 수르길,,,계속 진행하면 다메섹 거쳐서 앗수르로 이어지게 됨.., 출애굽 당시 주님은 블레셋 해변 길도, 수르 길도 택하지 않으시고 시내광야 길을 택하셨는데, 해변 길에는 블레셋, 수르 길에는 아말렉-이스마엘이 섞여 거주하고 있었고 모두 호전적이었다]까지 이르러 그 모든 형제의 맞은편에 거주하였더라 ....이스마엘 자손의 거처는 이미 아브라함시대부터 알려져 있었던 바(가나안 남5국북4국 전쟁 당시 북쪽 엘람왕 그돌라오멜에 의해 정복당한 족속 중에 처음 언급되었음) , 옛적 아말렉 지역(아말렉은 원래 블레셋에 인접한 술 광야 인근에 살던 족속 이름이었고...나중에 에서의 장자 엘리바스의 아들인 아말렉이 그 지역을 점령하여 아말렉지역으로 본격적으로 불리게 됨...)...그 지경은 애굽 앞 술에서부터 시작하여 사해 하방의 에돔 영역 세일산지의 페트라 아래쪽의 호르산(하룬산)을 중심으로한 하윌라(정금 산지로서 에덴의 발원지와는 다르다고 봐야 함...페트라를 수도로 삼은 에돔 지역의 아라바광야 하부와 에시온게벨 사이라고 할 수 있으며, 왕의 대로 근방으로서, 그 하방에는 아랍반도 북서쪽의 미디안족이 사는 지역이었음)지역에까지에 아말렉은 퍼져 있었는데, 이스마엘 족속은 그들 가운데 섞여 살았음..(한편 브엘세바와 애굽시내 사이에는 겐족속도 나중에 이동해 와서 시므온지파,유다지파와 함께 섞여 살게 됨)..아말렉은 출애굽 때 왕의 대로(애굽의 시내반도-->에시온게벨<엘랏>-->요단 동쪽 길-->다메섹-->앗수르에 이르는 무역대상로)를 따라 이동하는 이스라엘진의 후미를 르비딤에서 급습하였기에 모새는 영원히 대대로 멸절하라는 주님의 명령을 받게 됨. ......아다람길(사해 중서부 연안의 아랏~가데스 선)은 아말렉과 에돔 지역의 경계선(주된 경계선은 엘랏-소알선)지역, 한편 아말렉과 가나안의 경계선은 가자-그랄-브엘세바-호르마-소알을 잇는 선의 약간 아래쪽이었음....즉, 아말렉족속은 애굽 앞 술 지역에서부터 에시온게벨 우상부지역인 하윌라까지 퍼져 살았음...<왕의대로> <가나안과 그 주변사람들,6>참조 [블레셋 해안길] ::: *1)다메섹-->갈릴리-->욥바(텔 아비브)-->가사...*2)가데스바네아(가데스)-->그랄-->가사 ===>가사--(해안길)-->페투시엄-->라암셋-->카이로 @한편 에돔지역은 에시온게벨(엘랏)--소알 연장선 중심으로 왼쪽은 (아말렉지역의 오른쪽으로서 신광야, 엘랏-소알 연장선 오른쪽은 아라바광야, 수도 페트라는 아라바광야에 속하며 페트라 하부지역에서 에시온게벨에 이르는 그 하부지역이 하윌라이다, ===에서와 야곱이 태어나다...브엘라해로이에 거주하고 있었을 때 출생함... 19. ○[380나의 생명되신주]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의 족보는 이러하니라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았고 20. 이삭은 사십 세에 리브가를 맞이하여 아내를 삼았으니 리브가는 밧단 아람의 아람 족속 중 브두엘의 딸이요 아람 족속 중 라반의 누이였더라 21. 이삭이 그의 아내가 임신하지 못하므로 그를 위하여 여호와께 간구하매 여호와께서 그의 간구를 들으셨으므로 그의 아내 리브가가 임신하였더니...믿는자의 자녀 임신- 출산은 하나님이 주권이며, 그 시기는 하나님의 마음과 믿는이의 마음이 일치하는 바로 그 때 드리는 기도로 인해 주어진다!! 22. 그 아들들이 그의 태 속에서 서로 싸우는지라 그가 이르되 이럴 경우에는 내가 어찌할꼬 하고 가서 여호와께 묻자온대 23.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두 국민이 네 태중에 있구나 두 민족이 네 복중에서부터 나누이리라 이 족속이 저 족속보다 강하겠고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셨더라 24. 그 해산 기한이 찬즉 태에 쌍둥이가 있었는데 25. 먼저 나온 자는 붉고 전신이 털옷 같아서 이름을 에서라 하였고 26. 후에 나온 아우는 손으로 에서의 발꿈치를 잡았으므로 그 이름을 야곱이라 하였으며 리브가가 그들을 낳을 때에 이삭이 육십 세였더라 ===에서가 장자의 명분을 팔다. ..에서가 결혼하기 직전 (약 37-39세?) 브엘라해로이에 있을 때 장자권-팥죽 사건이 발생함, 40세에 에서는 헷족속 여인 둘을 얻어 아내를 삼았다....이삭은 100세때 2차 가나안 기근으로 인해 그랄로 이동했고 마침내 브엘세바에 정착하고 있다...장자의 축복 가로채는 사건은 장자권-팥죽 사건이 있은지 40년 경과 시점, 브엘세바에 거주하고 있는 중인, 이삭의 나이130세, 야곱77세 때 였다. 27. ○그 아이들이 장성하매 에서는 익숙한 사냥꾼이었으므로 들사람이 되고 야곱은 조용한 사람이었으므로 장막에 거주하니 28. 이삭은 에서가 사냥한 고기를 좋아하므로 그를 사랑하고 리브가는 야곱을 사랑하였더라 29. 야곱이 죽을 쑤었더니 에서가 들에서 돌아와서 심히 피곤하여 30. 야곱에게 이르되 내가 피곤하니 그 붉은 것을 내가 먹게 하라 한지라 그러므로 에서의 별명은 에돔이더라 31. 야곱이 이르되 형의 장자의 명분을 오늘 내게 팔라 32. 에서가 이르되 내가 죽게 되었으니 이 장자의 명분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리요 33. 야곱이 이르되 오늘 내게 맹세하라 에서가 맹세하고 장자의 명분을 야곱에게 판지라 34. 야곱이 떡과 팥죽을 에서에게 주매 에서가 먹으며 마시고 일어나 갔으니 에서가 장자의 명분을 가볍게 여김이었더라 ------- Abraham’s Death.25. 1 Abraham took another wife, whose name was Keturah. 2 She gave birth to Zimran, Jokshan, Medan, Midian, Ishbak, and Shuah. 3 Jokshan was the father of Sheba and Dedan. The sons of Dedan were Asshurim, Letushim, and Leummim. 4 The sons of Midian were Ephah, Epher, Hanoch, Abida, and Eldaah. All these were the sons of Keturah. 5 Now Abraham gave [a]everything that he had to Isaac; 6 but to the sons of his [b]concubines [Hagar and Keturah], Abraham gave gifts while he was still living and he sent them to the east country, away from Isaac his son [of promise]. 7 The days of Abraham’s life were a hundred and seventy-five years. 8 Then Abraham breathed his last and he died at a good old age, an old man who was satisfied [with life]; and he [c]was gathered to his people [who had preceded him in death]. 9 So his sons [d]Isaac and Ishmael buried him in the cave of Machpelah, in the field of Ephron the son of Zohar the Hittite, which is east of Mamre, 10 the field which Abraham purchased from the sons of Heth; there Abraham was buried with Sarah his wife. 11 Now after the death of Abraham, God blessed his son Isaac; and Isaac lived at Beer-lahai-roi. ===Descendants of Ishmael 12 Now [e]these are the records of the descendants of Ishmael, Abraham’s son, whom Hagar the Egyptian, Sarah’s maid, bore to Abraham; 13 and these are the names of the [twelve] sons of Ishmael, named in the order of their births: Nebaioth, the firstborn of Ishmael, and Kedar, Adbeel, Mibsam, 14 Mishma, Dumah, Massa, 15 Hadad, Tema, Jetur, Naphish, and Kedemah. 16 These are the sons of Ishmael and these are their names, by their settlements, and by their encampments (sheepfolds); twelve princes (sheiks) according to their tribes. 17 Ishmael lived a hundred and thirty-seven years; then he breathed his last and died, and [f]was gathered to his people [who had preceded him in death]. 18 Ishmael’s sons (descendants) settled from Havilah to Shur which is [g]east of Egypt as one goes toward Assyria; he [h]settled [i]opposite (east) of all his relatives. ===Isaac’s Sons 19 Now these are the records of the descendants of Isaac, Abraham’s son: Abraham was the father of Isaac. 20 Isaac was forty years old when he married Rebekah, the daughter of Bethuel the Aramean (Syrian) of Paddan-aram, the sister of Laban the Aramean. 21 Isaac prayed to the Lord for his wife, because she was unable to conceive children; and the Lord granted his prayer and Rebekah his wife conceived [twins]. 22 But the children struggled together within her [kicking and shoving one another]; and she said, “If it is so [that the Lord has heard our prayer], why then am I this way?” So she went to inquire of the Lord [praying for an answer]. 23 The Lord said to her, “[The founders of] two nations are in your womb; And the separation of two nations has begun in your body; The one people shall be stronger than the other; And the older shall serve the younger.” 24 When her days to be delivered were fulfilled, behold, there were twins in her womb. 25 The first came out reddish all over like a hairy garment; and they named him Esau (hairy). 26 Afterward his brother came out, and his hand grasped Esau’s heel, so he was named Jacob ([j]one who grabs by the heel, supplanter). Isaac was sixty years old when Rebekah gave birth to them. 27 When the boys grew up, Esau was an able and skilled hunter, a man of the outdoors, but Jacob was a quiet and peaceful man, living in tents. 28 Now Isaac loved [and favored] Esau, because [k]he enjoyed eating his game, but Rebekah loved [and favored] Jacob. 29 Jacob had cooked [reddish-brown lentil] stew [one day], when Esau came from the field and was famished; 30 and Esau said to Jacob, “Please, let me have a quick swallow of that red stuff there, because I am exhausted and famished.” For that reason Esau was [also] called Edom (Red). 31 Jacob answered, “First sell me your [l]birthright (the rights of a firstborn).” 32 Esau said, “Look, I am about to die [if I do not eat soon]; so of what use is this birthright to me?” 33 Jacob said, “Swear [an oath] to me today [that you are selling it to me for this food]”; so he swore [an oath] to him, and sold him his birthright. 34 Then Jacob gave Esau bread and lentil stew; and he ate and drank, and got up and went on his way. In this way Esau scorned his birthright. ===Footnotes Genesis 25:5 As the legal firstborn, Isaac was entitled to at least a double share of his father’s estate. Genesis 25:6 See note 22:24. Genesis 25:8 This expression is a reference to the Old Testament belief in a life after death and to the expectation of a reunion with loved ones. Genesis 25:9 Isaac was seventy-five and Ishmael nearly ninety years of age when their father died. Jacob and Esau were fifteen, and may have been present. Genesis 25:12 Lit these are the generations of. Genesis 25:17 See note v 8. Genesis 25:18 Lit before. Genesis 25:18 Lit fell over against his brothers. Genesis 25:18 Or in defiance. Genesis 25:26 Another meaning may be protect, i.e. may God protect. Genesis 25:28 Lit game was in his mouth. Genesis 25:31 In later times, this was the right of the firstborn to take over as head of the family and to receive a double share of the inheritance (cf Deut 21:17). The rewards given to Jacob appear to have been even greater (Gen 27:37). Furthermore, in Jewish tradition it was reported that before the tabernacle was set up, sacrifices were offered by the firstborn of a family. ===== 창세기 25장 (개요) 이 신성한 역사를 기록한 역사가는 본 장에서 이런 기록을 남겼다. 1. 아브라함의 별세를 다음과 같은 사실과 더불어 기록했다. (1) 그의 다른 아내에게서 난 자식(1-4). (2) 그의 유언(5, 6). (3) 그의 나이와 죽음과 장례(7-10). 2. 이스마엘의 죽음에 대해서는 다음 사실과 아울러 간략히 언급했다. (1) 그의 자손들(12-16). (2) 그의 나이와 죽음(17, 18). 3. 다음으로 이삭의 역사를 기록했다. (1) 이삭의 번영(11). (2) 하나님의 특별하신 말씀과 더불어 잉태되고 태어난 두 아들(19-26). (3) 그 두 아들의 서로 다른 성격(27, 28). (4) 에서가 야곱에게 장자의 명분을 판 일(29-34). ========== 아브라함의 죽음(창 25:1-10) 아브라함은 이삭이 결혼한 후 35년 동안 살았다. 그 동안 아브라함이 어떻게 살아왔는지는 거의 기록이 없다. 특별히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시거나 그를 시험하신 일도 이제는 더 찾아볼 수가 없다. 아무리 훌륭하고 위대한 성인이라 할지라도, 일생의 모든 날이 다 눈에 띌 수는 없기 때문이다. 소리도 없이 사라져 버리는 날도 있으며, 오고 감을 아무도 깨닫지 못할 시절도 있는 것이다. 아브라함의 말년이 바로 그러했다. 여기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볼 수가 있다. Ⅰ. 사라가 죽은 다음에 아브라함이 결혼한 그두라에게서 태어난 자식들. 아브라함은 자기 생애에서 가장 귀한 동반자였던 사라를 장사 지내고, 이삭을 결혼시킨 다음 극히 외로웠다. 자기를 보살펴 줄 사람이 필요했고, 그 집안에는 주부가 필요했다. 그리고 아브라함이 이렇게 홀로 지내는 것은 좋지 않았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그두라와 결혼을 한 것이다. 아마 그두라는 아브라함의 수석 여종이었을 것이며, 그 집에서 태어났거나 돈을 주고 사온 여종이었을 것이다. 나이가 많다 해서 결혼을 하지 말란 법은 없다. 그두라에게서 아브라함은 여섯 아들을 낳았다. 그들을 통해 아브라함의 자손이 크게 번성하리라는 약속이 부분적으로 성취된 것이다. 아마 아브라함은 다시 결혼을 할 때 이 사실을 염두에 둔 것 같다. 아브라함에게는 하나님의 약속으로 받은 정력이 여전히 남아 있었다. 이것은 하나님의 약속의 혜택이 자연적인 능력의 한계를 초월할 수 있다는 것을 잘 보여 준 것이다. Ⅱ. 아브라함이 재산을 분배했다(5, 6절). 이 여섯 아들이 태어난 후에 아브라함은 신중하고 공평하게 집안을 정리했다. 1. 아브라함은 이삭을 그의 상속자로 삼았다. 그것은 당연한 일이기도 했고, 첫 아내이며 본부인인 사라에게 대한 올바른 일이기도 했으며, 상속자가 되리라는 확신으로 이삭과 결혼한 리브가에게 올바른 일이기도 했다(24:36). 그가 이삭에게 상속한 이 모든 것에는 가나안 땅에 대한 약속과 언약 상속권이 포함되어 있었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미 이삭을 약속의 상속자로 결정하셨기 때문에, 아브라함이 이삭을 자기 재산의 상속자로 삼았는지도 모른다. 우리의 애정과 선물은 하나님의 사랑과 선물을 실행하는 것이어야 한다. 2. 아브라함은 다른 아들들에게도 재산을 나눠 주었다. 즉 처음에 빈손으로 내쫓았던 이스마엘과 그두라가 낳은 아들들에게도 나눠 주었다. 그들에게도 나눠 주는 것이 공평하고 올바른 일이었다. 이 점에 있어서 아브라함을 본받지 않는 부모들은 불신자들보다 더 악한 사람들이다. 또한 그 아들들을 이삭과 멀리 떨어진 곳에 정착시킨 것도 깊은 생각에서 우러나온 신중한 태도였다. 그렇게 해야 그들이 이삭의 재산을 분배하자고 주장하거나, 이삭이 그들을 보살피거나 그들 때문에 많은 지출을 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아브라함은 자기가 죽은 다음에 잘못되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 “자기 생전에” 이 모든 일을 처리했다. 해야 할 일을 손수 하고, 할 수 있다면 살아 있는 동안 할 일을 하는 것이 현명한 처사임을 명심하자. 아브라함은 “자기의 서자”들을 가나안 동쪽에 있는 땅으로 보냈다. 그들의 후손들은 “동방 사람”이라 불렸고, 그 수가 많은 것으로 유명했다(삿 6:5, 33). 그들이 그렇게 많은 수로 불어난 것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그의 씨를 한없이 많게 하겠다고 하신 약속의 결과였다. 아브라함이 재산을 분배해 주었듯이, 하나님은 당신의 복을 나누어 주신 것이다. 즉 일상적인 축복은 이 세상의 자녀, 즉 여종의 자녀들에게 내려 주시는 반면, 언약의 축복은 약속의 상속자를 위해 보존하고 계신다. 하나님께서 가지고 계신 것은 모두 약속의 상속자들의 것이다. 그 상속자들은 모두 하나님의 이삭과 같은 사람들이며, 그 외의 사람들은 영원토록 이들과는 구분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Ⅲ. 아브라함의 나이와 죽음에 대한 기록이 있다(7, 8절). 그는 175년을 살았다. 아브라함은 가나안에 온 지 꼭 100년이 되는 해에 죽었다. 그처럼 오랫동안 이방 땅에서 우거하는 자로 지냈다. 오랫동안 훌륭하게 살았고, 또한 선한 일을 행했으며, 병 없이 지냈지만 결국 아브라함도 죽은 것이다. 그의 죽음이 여기에 어떻게 묘사되어 있는지 살펴보자. 1. 그는 “기운이 진했다”(문자적으로는 “영을 포기했다”). 그의 생명이 강제로 그에게서 떠난 것이 아니라, 그 자신이 쾌히 그 생명을 내려놓은 것이다. 자기에게 영을 주신 모든 영의 아버지의 손에 드린 것이었다. 2. 그는 “수가 높아서 죽었다.” 이미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그대로였다. 죽음은 나이가 주는 무거운 부담에서 그가 풀려나는 것이었다. 노인은 그런 식으로는 계속 살아가기를 원치 않는다. 또한 나이가 많다고 하는 것은 영광의 면류관이기도 했다. 3. 그는 “나이가 많았다.” 곧 생이 (공급될 만큼 공급되어) 가득 찼다는 것이다. 삶의 모든 편안함과 안락함을 누렸다는 뜻이다. 그는 세상이 그를 싫증낼 만큼 오래 산 것이 아니라, 그가 세상이 싫증날 만큼 오래 살았다. 다시 말해 충분히 살았기 때문에 세상에서 더 오래 살고 싶은 생각이 없었던 것이다. 나는 충분히 살았노라(Vixi quantum satis est). 선한 사람은 늙어서 죽지 않았다고 해도, 이 세상 삶에 만족하고 더 좋은 곳에서 살아갈 삶을 동경하면서 충분히 살고 죽는 것이다. 4. 그는 “자기 열조에게로 돌아갔다.” 그의 몸은 죽은 자의 무리에게 돌아갔겠지만, 그의 영혼은 축복받은 자의 무리로 돌아갔다. 죽음은 우리를 열조에게 돌아가게 한다는 것을 기억하자. 그 열조가 하나님의 백성이거나 이 세상의 자녀이거나 간에, 죽음은 우리가 열조에게 돌아가게 한다. Ⅳ. 아브라함의 장례(9, 10절). 여기에는 그의 장례의 성대한 의식이나 행사에 대한 아무런 기록이 없다. 다만 우리는 다음과 같은 사실만 들을 뿐이다. 1. “그 아들 이삭과 이스마엘이” 그를 장사 지냈다. 장례는 아들들이 인자한 아버지에게 표할 수 있는 마지막 존경이었다. 이전에는 이삭과 이스마엘 사이에 거리가 있었다. 그러나 아브라함이 살아 있는 동안에 직접 두 아들 사이를 다정하게 만들었든지, 아니면 아브라함의 죽음이 그들 둘 사이를 화해시켰든지, 이제는 사이가 좋아졌다. 2. 아브라함은 자기가 사서 사라를 장사 지낸 자기 땅에 묻혔다. 살아 있는 동안 서로 사랑하던 사람들은 함께 묻히기를 바란다. 그것은 순결한 일인 동시에 칭찬할 만한 일임을 기억하자. 그들은 죽어서도 서로 나뉘기를 바라지 않고 있으며, 함께 부활하리라는 희망의 표징을 가지고 함께 묻히기를 원한다. --------- 이스마엘의 족보(창 25:11-18) 아브라함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한 후 곧 이어서 모세는 이삭의 이야기를 시작한다(11절). 이삭이 어디에서 살았고 하나님께서 그에게 어떻게 특별한 은총을 베푸셨는가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아브라함이 하나님께로 받은 축복은 그의 죽음과 더불어 사라진 것이 아니며, 모든 약속이 자녀들에게 그대로 전해졌다는 사실을 명심하자. 그러나 저자는 여기에서 이삭 이야기를 잠시 접어두고, 이스마엘 이야기를 간략하게 소개한다. 이스마엘도 아브라함의 아들이고, 그에 관해서도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바가 있으며 또 그 약속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를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여기에서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언급한다. Ⅰ. 이스마엘의 자손에 대해. 그에게는 열두 아들이 있었다. 그들은 “십이 방백(princes)”이라고 불렸는데(16절), 모두가 족장이었고 후에 제각기 다른 나라와 족속이 되어 그 수가 심히 많아졌다. 그들은 대단히 큰 대륙을 차지하여 번성했는데, 그 땅은 애굽과 앗수르 사이에 있는, 아라비아라고 불린 곳이다. 그 열두 아들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다. 미디안과 게달은 성경에서 흔히 보이는 이름이다. 나란히 적혀 있는 세 이름(14절)의 의미를 밝히는 주석가들도 있다. 미스마, 두마, 맛사라는 이름이 나란히 있는데, 이것은 들으라, 침묵하라, 참으라는 좋은 충고를 우리에게 들려준다는 것이다. 야고보서 1장 19절에 보면, 이 세 가지 말이 같은 순서로 기록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며 성내기도 더디 하라.” 이스마엘의 후손들은 평화로운 때 재물을 축적해 놓을 수 있는 장막을 들판에 가지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전쟁이 일어났을 때 스스로 방어할 수 있는 도시와 성곽들을 가지고 있었다(16절). 이스마엘의 집안이 수적인 세력에 있어서 확장된 것은 하갈에게 이스마엘에 대해 행하신 하나님의 약속의 결과며(16:10) 또한 아브라함에게 행하신 약속의 결과다(창 17:20; 21:13). 약속 있는 언약에 대해서는 이방인들 중에도 경건하던 자기 조상들 덕분에 외적인 번성이라는 복을 받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기억하자. “부요와 재물이 그 집에 있음이여”(시 112:3). Ⅱ. 이스마엘 자신에 대해. 여기에 이스마엘의 나이 이야기가 나온다. 그는 “일백삼십일 세에 죽었다”(17절). 이는 아브라함이 “이스마엘이나 하나님 앞에 살기를 원하나이다”라고 한 기도(17:18)의 효능을 보여 주기 위한 기록이다. 여기에는 또한 그의 죽음에 대한 언급도 있다. 이스마엘도 “자기 열조에게로 돌아갔다.” 그러나 그처럼 오래 살았는데도 이스마엘이 수를 다했다는 기록은 없다. 그는 그의 인자한 아버지와는 달리, 세상에 싫증나지도 않았고 세상을 떠나고 싶어하지도 않았던 것이다. 그가 “그의 형제들의 목전에서 넘어졌다”(한글개역 성경에는 “맞은편에 거했다”)는 죽었다는 뜻이거나 또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듯 그의 운이 다했다는 뜻이겠지만, 그것은 “그의 모든 형제의 목전에서(한글개역 성경에는 “동방에서”) 살리라”고 하갈에게 하신 말씀(16:12)이 성취되었음을 보여 주기 위한 것이다. 그 말씀은 그가 그 모든 형제들 중에서 가장 번영하고 탁월한 사람이 되며, 자기 소유를 끝까지 지키게 되리라는 의미다. 그가 자기를 위로해 주는 많은 친구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세상을 떠났다는 뜻인지도 모른다. ------ 에서와 야곱의 출생(창 25:19-28) 여기에서 우리는 이삭과 리브가에게서 태어난 쌍둥이 아들 야곱과 에서의 출생에 대한 이야기를 읽게 된다. 그들이 이 세상에 태어난 (범상하지 않은) 이야기는, 그들에 대한 이야기 중에서도 가장 주목할 만한 대목이다. 이삭에 대해서는 그의 아버지가 생존해 있는 동안과, 그 후에 그의 아들들이 이야기될 때에 언급이 되고 있으나, 그 자신에 대해서는 많은 언급이 없다. 이삭은 활동적이거나 많은 시련을 겪은 사람이 아니라 그의 생애를 평온하고 조용하게 보낸 사람인 것 같다. 여기에서 볼 수 있는 야곱과 에서의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Ⅰ. 그들은 기도한 결과로 얻은 아들들이다. 그들의 부모들이 오랫동안 아이가 없자 하나님께 간구하여 얻은 것이다(20, 21절). “이삭은 40세에 리브가를 취하여 아내를 삼았다”(20절). 이삭이 외아들이었고 그를 통해 약속의 씨가 태어날 사람이었지만, 그는 결혼을 서두르지 않았다. 이삭이 두 아들을 낳은 것은 예순 살이 되었을 때다(26절). 그러니 결혼한 후 20년 동안 아이가 없었던 것이다.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는 언제나 확실하다. 그러나 그 성취가 더디고 하나님의 섭리와는 어긋나고 모순되는 것 같아서 믿는 사람의 믿음이 시련을 받고 그들이 한없는 인내로 견뎌야 하는 때가 종종 있으며, 또 그러다가 오래 기다렸던 자비가 실현되었을 때는 더욱 기쁘게 그 자비를 맞이하게 된다는 것을 기억하자. 이 하나님의 은총이 지연되는 동안, 이삭은 아브라함이나 야곱과는 달리 여종의 침실에 접근하지 않았다. 리브가를 사랑했기 때문이다(24:17). 1. 오히려 이삭은 기도했다. 아내를 위해 여호와께 간구했다. 하나님께서 그의 집안 사람 수를 무수히 많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셨지만, 이를 위해 또다시 간절히 기도한 것이다. 하나님의 약속은 우리의 기도를 불필요하게 하는 것이 아니다. 그 약속에 의해 우리의 기도는 더욱 힘을 얻게 되고, 우리의 믿음의 바탕이 더욱 튼튼하게 된다. 이삭은 자주 이 약속하신 은총을 베푸시기를 기도했고, 이 간청을 여러 해 동안 끊임없이 아뢰었다. 그러나 기도한 것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해서 기도를 중단하지는 않았다. 사람은 항상 기도하되, 낙망치 말아야 하기 때문이다(눅 18:1). 또한 쉬지 말고 기도하며 문이 열릴 때까지 두드려야 한다. 그는 그의 아내를 위해 기도했다. 어떤 사람들은 그의 아내와 함께 기도했다고 해석하기도 한다. 남편과 아내는 함께 기도해야 함을 잊지 말자. 그래야 그들의 기도가 “막히지 않는다”고 베드로 사도는 조심스럽게 충고한다(벧전 3:7). 이삭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그의 자손이 한없이 많게 되리라고 약속하신(22:17) 모리아 산에 가서 아내와 함께, 아내를 위해 기도했으며, 그 약속이 바로 그 곳에서 이루어지게 해 주실 것을 간구했다는 유대인의 전설이 있다. 2. 하나님께서 이삭의 기도와 간구를 들으셨다. 자녀들은 하나님의 선물임을 명심하자. 이삭처럼 끊임없이 간절하게 기도한 사람들은 마침내 그들이 “헛되이 찾지” 않았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사 45:19). Ⅱ. 그들이 태어나기 전에 이미 예언이 있었다. 그들이 태어나기 전에 주어진 그 예언에는 신비스러운 일들이 담겨 있었다(22, 23절). 오랫동안 이삭은 아들을 주시기를 기도했다. 그 오랜 기다림은 보상을 받아서 그의 아내는 두 아들을 잉태했다. 이처럼 하나님은 우리가 기도한 것 이상으로 일을 성취하신다. 우리가 간구하고 생각할 수 있는 것 이상으로 주시는 분이다. 이제 리브가는 두 아들을 잉태했다. 다음 사실을 살펴보자. 1. 리브가는 지금 자기 상황에 무척 당황했다. “아이들이 그의 태 속에서 서로 싸웠기” 때문이다. 리브가가 느낀 동요는 아주 특이했다. 그래서 몹시 불안했다. 이 해산이 곧 자기의 죽음이라고 느꼈든지, 속이 뒤틀려 지쳐버렸든지 아니면 이것은 좋지 않은 징조라고 생각했는지 어쩐지 모르지만, 리브가는 아이를 갖지 말았든지, 아예 죽어 버려서 이렇게 싸우는 아이는 낳지 않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품은 것 같다. 리브가는 “이 같으면 내가 어찌할꼬?” 했다(22절). 이전에는 아이가 없다는 것이 괴로웠다. 그러나 이제는 그 아이들의 싸움 때문에 괴로운 것이다. 다음 사실을 명심하자. (1) 우리가 가장 간절하게 바라던 위로가, 때때로 우리가 예상하지 못한 어려움과 불안 가운데 이루어지는 수가 있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우리가 해 아래 있는 모든 사물 위에 깃들인 허무를 깨닫도록 하신다. (2) 우리는 받은 불안 때문에 그 불안과 함께 오는 위로에 너무 쉽게 불만을 품을 때가 있다. 우리는 자신이 언제 기쁜지를 모른다. 궁핍에 처하는 법도 모르고, 풍요에 처하는 법도 모른다. 태 안에서 일어난 야곱과 에서의 싸움은 하나님의 나라와 사탄의 나라 사이에 끊임없이 계속되는 싸움을 나타낸다. ① 이 싸움은 이 세상에서 벌어지고 있다. 여인의 자손과 뱀의 자손은 그 사이에 적의가 심어진 이후(3:15)로 끊임없이 다투어 오고 있다. 그리고 이 사실이 인간들 사이에 영원히 불안을 조성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 그 분은 이 세상에 “불을 던지고” 이 세상이 “분쟁케 하려고” 오셨다(눅 12:49, 51). 이런 갈등이 우리에게 장애물이 되어서는 안 된다. 거룩한 전쟁은 악마의 궁정에서 누리는 평화보다 훨씬 좋은 것이다. ② 이 싸움은 신자들의 마음속에서 벌어지고 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영혼에 임재하시자마자 영육간 싸움이 시작된다(갈 5:6). 치열한 싸움이 없으면 이런 흐름은 바뀌지 않는다. 그러나 그 싸움으로 우리는 낙심하지 말아야 한다. 죄악과 더불어 싸움을 하는 것은, 힘없이 죄에 굴복하는 것보다 훨씬 좋은 것이다. 2. 리브가가 그 불안에서 벗어났다. 리브가는 “가서 여호와께 물었다.” 어떤 사람들은 멜기세덱에게 하나님의 신탁을 물었거나, 또는 나중에 판결의 흉배에 사용한 우림이나 드라빔으로 하나님의 뜻을 알고자 했다고 한다. 매우 당황했을 때는 하나님께 묻는 말이나 기도가 큰 위안을 가져다 준다는 것을 기억하자. 우리의 모든 사정을 주님 앞에 털어놓고 그의 입에서 나오는 의견을 구하는 것은 마음에 참으로 큰 위로가 된다. “성소로 들어가라”(시 73:17). 3. 여호와께서 리브가의 질문에 답하셨다. 그 답변은 리브가의 의문을 해명해 주었다. “두 국민이 네 태중에 있구나”(23절). 리브가는 두 아기를 임신하고 있을 뿐 아니라, 두 민족을 임신하고 있는 것이요, 이 둘은 태도와 성품뿐 아니라 이해 관계도 크게 상반되므로 서로 싸워야 하는 운명이었다. 그리고 그 싸움의 결과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길 것이다. 이것은 에돔 사람이 오랜 세월 동안 다윗 집안의 지배에 놓임으로써 성취되었다. 그 복종은 그들이 반란을 일으키기까지 계속되었다(대하 21:8). 다음의 사실을 살펴보기로 하자. (1) 하나님께서는 그의 은총을 베푸시는 데 있어서 아무 간섭도 받지 않으시는 자유로운 분이다. 아직 선이나 악을 행하지 않은 사람들을 구별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특권인 것이다. 바울 사도의 말도 이런 것을 두고 한 말이다(롬 9:12). (2) 은총과 죄악의 영적 싸움에 있어서, 은총은 죄악보다 어린 자이지만 마침내 큰 자를 쳐부수고 승리할 것이 확실하다. Ⅲ. 그들은 태어났을 때, 이미 그 사이에 큰 차이가 있었는데 이 사실은 미리 예언된 것(23절)을 뒷받침하는 것이다. 또한 그 차이는 그 말씀이 성취되리라는 것을 보여 주는 전조였고 그 유형을 잘 말해 준다. 1. 그들은 체격이 크게 달랐다(25절). 에서는 태어났을 때 마치 이미 장성한 사람처럼 거칠고 털이 나 있었다. 그래서 그의 이름은 에서, 곧 이루어졌다라고 했으니, 이미 다 자랐다는 뜻이다. 이것은 그가 체격이 대단히 튼튼했다는 것을 암시한다. 그리고 그가 대단히 건강하고 용감하며 활동적인 사람이 되리라는 기대를 주었다. 그러나 야곱은 다른 아이들처럼 부드럽고 털이 없었다. 이런 것을 기억해 두자. (1) 인간의 능력이 서로 다르고, 그 결과 그들이 이 세상에 사는 형편이 서로 다르게 되는 것은, 선천적인 체질의 차이다. 선천적으로 활동성과 영예를 얻을 수 있는 분명한 가능성이 엿보이는 사람들이 있다. 반면에 눈에 띄게 모습이 연약한 사람도 있다. 섭리의 세계에 나타난 하나님의 주권의 이런 실례는, 은총의 세계에서 나타날 하나님의 주권에 관한 교리를 더욱 잘 이해할 수 있게 해 준다. (2)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여 강한 것들을 이기게 하시는 것은 하나님께서 늘 쓰시는 방법이다(고전 1:26, 27). 2. 그들은 태어날 때에 분명한 경쟁을 보여 주었다. 더 강한 에서가 먼저 태어났다. 그러나 야곱의 손은 “에서의 발꿈치를 잡고” 태어났다(26절). 이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의미한다. (1) 야곱은 장자의 권리와 축복을 추구하고 있다. 처음부터 야곱은 그 권리와 축복을 잡으려고 손을 뻗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가능하면 형이 그것을 붙잡지 못하도록 하려 한 것이다. (2) 시간이 지남에 따라 마침내 야곱이 형을 이기고 장자의 명예를 차지한다. 그러므로 그의 이름 야곱은 속이는 자라는 뜻으로 말해지기도 한다(27:36 참조). 3. 그들은 서로 기질이 완전히 달랐고 선택한 생활 방식도 완전히 달랐다(27절).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은 성격이 완전히 다르다는 것이 드러났다. (1) 에서는 이 세상일을 좇는 사람이었다. 그는 사냥꾼이었기 때문에, 사냥에 몰두한 사람이었다. 그는 또한 생활의 기지를 아는 사람이었다. 교활한 사냥꾼이었기 때문이다. 오락이 그의 직업이었다. 따라서 그는 그 오락 기술을 익히고 자기의 모든 시간을 거기에 썼다. 그는 책이나 집안일을 싫어했다. 그는 니므롯이나 이스마엘과 같이 사냥을 위해서만 살고, 사냥하러 나갈 때 외에는 즐겁지 않았다. 한 마디로 말하면 신사나 군인이 될 만한 사람이었다. (2) 야곱은 다른 세상의 일을 좇는 사람이었다. 그는 훌륭한 정치가나 위대한 사람은 아니었다. “종용한 사람”이었고 “장막에 거하는” 사람이었다. 항상 선하고 공평하고 정직한 사람이었다. 고독과 조용한 은둔의 참된 기쁨을, 번거롭고 소란한 오락에서 얻는 외면적인 기쁨보다 더 즐기는 사람이었다. 그는 장막에 머물렀다. ① 야곱은 목자였다. 양을 지키는 안전하고 조용한 일을 했다. 그리고 자기 자녀들도 그렇게 키웠다(46:34). ② 야곱은 배우는 사람이었다. 야곱이 멜기세덱이나 에벨의 장막에 자주 들러 그들로부터 거룩한 일에 대해 배웠다고 하는 사람도 있다. 그런데 바로 이 아들이 언약을 상속받은 이삭의 아들이었던 것이다. 4. 그들은 부모의 애정에 대한 관심도 서로 달랐다. 이삭과 리브가에게는 이 두 아들밖에 없었다. 한 아들은 아버지의 사랑을, 다른 아들은 어머니의 사랑을 받은 것 같다(28절). (1) 이삭은 활발한 사람은 아니었으나(그가 들에 나간 것은 사냥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명상하고 기도하기 위한 것이었던 것 같기 때문이다) 활발한 아들을 사랑했다. 에서는 어떻게 해야 아버지 이삭을 기쁘게 할 수 있는지를 알았다. 그리하여 가끔 사냥한 고기를 대접함으로써 아버지께 경의를 표하여, 그 인자한 노인에게서 온갖 사랑을 받을 수 있었다. (2) 리브가는 야곱을 더 사랑하신 하나님의 예언을 언제나 마음에 두고 있었기 때문에 그를 더 사랑했다. 만약 어떤 이유에서든지 부모가 자녀들을 다르게 대해야 한다면,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자녀를 사랑한 리브가의 태도가 분명히 옳은 일이었다. ------- 장자권을 팔다(창 25:29-34) 여기에서 우리는 야곱과 에서가 장자의 권리를 놓고 흥정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장자의 권리는 하나님의 섭리에 의하면 에서의 것이지만, 하나님의 약속에 의하면 야곱의 것이었다. 그 권리는 탁월한 권위와 능력이 포함되어 있으며, 아울러 재산도 갑절이나 차지할 수 있는 영적 특권이었다(49:3). 당시 장자권에는 그 권리에 따르는 많은 축복과 언약의 상속권까지 포함되어 있던 것 같다. 다음 사실들을 살펴보기로 하자. Ⅰ. 장자권에 대한 야곱의 경건한 욕망. 그는 평범한 사람인 자기의 성품에는 어울리지도 않는 우회적인 방법으로 장자권을 얻으려고 했다. 야곱이 장자권을 탐낸 것은 자만심이나 야망에서 우러난 것이 아니다. 에서는 들판에서 지내면서 미처 깨닫고 있지 못했으나, 야곱은 장막에 머물러 있으면서 친숙히 알게 된 영적 축복을 염두에 둔 것이다. 야곱은 최선의 선물을 간절히 탐냈기에 칭찬받을 수 있다. 그러나 형의 절박한 사정을 이용해 형과 매우 난처한 흥정을 한 것은 정당화할 수 없다. “형의 장자의 명분을 오늘날 내게 팔라”(31절). 이 문제에 관해서 두 사람 사이에 이미 말이 오간 것 같다. 그래서 여기에서 야곱의 그런 제안에 에서가 그리 크게 놀란 것 같지는 않다. 아니면 에서가 장자의 권리와 그에 속한 여러 조건을 가볍게 여기는 말을 자주 했기 때문에, 야곱이 에서에게 이런 제안을 할 용기가 생겼는지도 모른다. 만일 그렇다면, 자기 목적을 이루기 위해 야곱이 한 행위는 어느 정도 변명의 여지가 있다. 단순하고 경건하고 정직하게 말하며, 세상적인 지혜가 없는 평범한 사람들이, 영혼과 영원에 관해서는 가장 지혜로울 때가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자. 저 세상에 대해 현명한 사람이 참으로 현명한 사람이다. 야곱의 지혜는 두 가지로 나타났다. 1. 그는 가장 알맞은 때를, 즉 기회를 잡았다.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2. 흥정을 하고 나서는, 그것을 분명히 하기 위해 에서로 하여금 맹세하게 했다. “오늘 내게 맹세하라”(33절). 에서가 마음속으로 바라고 있을 때 맹세하게 함으로써 그 흥정을 번복할 여지를 남겨 두지 않았다. 이런 성질의 일을 하는 데 있어서는 확실히 해 두는 것이 좋다. Ⅱ. 에서는 장자의 권리를 경멸했고, 그것을 어리석게 팔아 버렸다. 그는 이 때문에 “망령된 에서”라고 불렸다(히 12:16). 왜냐하면 “한 그릇의 식물(食物)을 위해 장자의 명분을 팔았기” 때문이다. 금단의 열매를 먹은 이래로 인간은 이렇게 한 그릇의 음식을 좋아하게 된 것이다. 나중에 후회했으나 이미 너무 늦었다. 에서가 한 것 같은 어리석은 흥정은 일찍이 한 번도 없었다. 그런데도 그는 자기 계획을 높이 평가했고, 재주 좋은 사람이라는 인정을 받고 있었다. 어쩌면 때로는 자기 동생 야곱을 나약하고 단순한 사람이라고 놀리기도 했을 것이다. 세상에는 지혜는 몇 푼밖에 없으면서 어리석음은 수천 냥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보다는 꾀가 많지만, 자기가 놓은 덫에 걸리고 마는 교활한 사냥꾼과 같은 사람들이다. 그들은 사탄의 계교에 사로잡혀 사탄이 원하는 대로 끌려다니는 사람들이다. 다시 말하지만, 하나님은 세상의 어리석은 자를 택하사, 그들로 하여금 지혜롭다 하는 자를 부끄럽게 하신다. 평범한 야곱이 교활한 에서를 바보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에서의 어리석음을 살펴보기로 하자. 1. 에서의 식욕은 대단히 강했다(29, 30절). 가련한 야곱은 사냥해 온 고기도 없이 겨우 몇 개의 떡과 팥죽으로(34절) 저녁을 먹고 만족해서 앉아 있었는데, 에서는 사냥하러 갔다가 주리고 지쳐서 돌아왔다. 아마 에서는 아무것도 잡지 못했던 것 같다. 그런데 야곱의 팥죽을 보니, 이제까지 즐기던 사냥감보다 더 좋아 보였다. 원전에 의하면, 에서는 “그 붉은 것, 붉은 것을 내게 좀 달라”고 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것은 그의 피부 색깔과 잘 어울리는 것이었다(55절). 이 일 때문에 사람들은 그를 비난하여 이후부터 에돔, 즉 붉다라고 불렀다. 에서는 결코 스스로 음식을 만들어 먹을 수 없을 정도로 지쳐 있었던 것 같지도 않고, 자기를 도와줄 수 있는 종이 없던 것도 아닌 것 같다. 그런데도 동생에게 음식을 달라고 간청한 것이 분명하다. 다음 사실을 명심하자. (1) 오락에만 몰두하는 사람은 “헛된 일로 곤비하게 되고” 만다(합 2:13). 그런 어리석은 쾌락을 따르는 데 드는 수고와 어려움의 반만 들여도, 그들은 가장 필요한 일을 할 수 있을 것이고, 최대의 이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2) 침착하고 조용하게 일하는 사람들은 소란을 떨면서 사냥을 하는 사람보다 더 지속적으로, 평안히 식량을 갖출 수가 있다. 빵은 언제나 세상일에 밝은 사람만 얻는 것이 아니다. 주님을 믿고 선을 행하는 사람도 빵을 얻는다. 진실로 그런 사람들은 주리지 않을 것이니 일용할 양식을 먹을 것이다. 결코 에서와 같이 어느 때는 잔치를 하듯 먹어대고, 어느 때는 주려 죽을 지경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3) 감각적인 식욕의 만족은 수많은 귀한 영혼들을 몰락하게 했다. 에서가 정말 배가 고프고 지쳤더라도 장자의 권리를 팔지 않고서도 그보다 값싸게 좋은 고기를 구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에서는 무턱대고 팥죽의 빛깔을 보고 좋아했고, 한 그릇 먹고 싶은 욕망을 참지 못해 거기에 따르는 대가를 생각지도 못했다. “마음이 그의 눈을 따르고”(욥 31:7), 자기 배를 섬기는 사람에게는 기대할 것이 아무것도 없다. 음식이 붉다든지 잔이나 그릇에 붉은―이것은 가장 유혹적인 색깔이다―술이, 또는 에서처럼 팥죽이 있다면 쳐다보지도 말라고 했다(잠 23:31). 우리가 스스로 자기를 부정할 수만 있다면, 그 때 우리는 가장 두려운 유혹의 힘을 쳐부순 것이다. 2. 에서의 논리는 지극히 빈약했다(35절). “내가 죽게 되었으니.” 만약 이것이 사실이었다면, 그를 살려 낼 음식이 없었을 것이다. 더구나 팥죽 한 그릇으로 어떻게 그가 살아날 수 있단 말인가? 라이트푸트 박사가 생각하듯이, 그 땅에 기근이 들었다 할지라도(41:56), 이삭이 그 정도로 가난했거나 또 그처럼 굶주릴 정도로 리브가가 살림을 제대로 못했을 리 없다. 그러므로 에서에게는 필요한 정도의 음식은 늘 제공되었을 것이며, 장자의 권리를 팔 정도는 아니었을 것이다. 다만 식욕이 에서를 사로잡은 것이다. 에서는 간절히 바라고 있던 터이므로 붉은 것, 즉 붉은 팥죽 외에는 아무것도 그를 만족시킬 수 없었다. 이 욕망을 채우기 위해, 자기는 죽을 지경이라고 가장한 것이다. 사실 그렇게 죽을 지경이었다면, 불명예 속에서 사는 것보다는 영예롭게 죽는 것이, 저주 아래 사는 것보다는 축복 아래 죽는 것이 더 낫지 않았을까? 장자의 권리는 먼저 태어난 자들의 교회가 지니는 영적 특권을 상징한다. 에서는 장자의 권리를 어떻게 평가하고 있는지를 시험받은 것이다. 그런데 그는 다만 현재 자기가 처한 어려움에만 관심이 있을 뿐이었다. 즉 그 어려움에서 벗어나려고만 하지 장자의 권리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이에 비하면, 나봇은 더 훌륭한 원리에 입각해 행동한 사람이었다. 나봇은 자기 포도원을 파느니 죽음을 택했던 것이다. 가나안 땅에 있는 자기 땅은 하늘나라에서 자기가 받을 분깃을 상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왕상 21:3). (1) 에서의 장자권이 다만 현세적인 이득을 주는 것으로만 본다면, 에서의 말에는 일리가 있다. 즉 우리가 가장 좋아하는 이 세상의 즐거움조차도 죽는 순간에는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한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시 49:6-8). 이 세상의 즐거움은 죽음의 엄습을 피하게 하지도 못하고 극심한 고통을 덜어주지도 못하고 찌르는 듯한 아픔을 제거해 주지도 못한다. 에서가 신사로 성장했다면 그런 영예를 그처럼 싸게 팔아 버리지 말고, 더 크고도 고상한 정신을 소유했어야 했다. (2) 그러나 영적인 견지에서 보면 에서가 장자의 권리를 경홀히 여긴 것은,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최대의 불경이다. 이 세상의 부나 명예나 즐거움 때문에 하나님과 그리스도와 하늘나라에 대한 관심을 저버린 것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어리석은 짓임을 알자. 그것은 죽 한 그릇에 장자의 권리를 팔아 버린 에서의 흥정과 같이 가장 어리석은 흥정이다. 3. 에서의 눈에는 후회의 빛이 전혀 없다. “에서가 먹으며 마셨다”(34절). 자기의 입을 즐겁게 했다. 소원 성취를 기뻐했다. 맛있는 음식을 먹었다고 자축했다. 그러고 나서는 아무 생각 없이 일어나서 갈 길을 갔다. 자기가 한 계약에 대해 진지한 반성을 해보거나 후회의 빛을 보이지 않았다. 이렇게 에서는 장자의 권리를 경멸했다. 그 계약을 취소하기 위한 어떤 방법도 사용하지 않았다. 이 일에 대해 아버지에게 호소하지도 않았다. 절박한 사정으로 맺은 (그렇다고 우리가 가정한다면) 계약이 그 일 후에(ex port facto) 에서가 불경한 사람임을 확증한 것이다. 그러고 나서도 자기 행동을 스스로 변명해 버림으로써, 그 계약을 다시는 생각지 않았다. 사람들은 잘못을 저질러서라기보다는, 잘못을 저지르고 나서도 회개하지 않고 그런 일을 계속해서 하며, 자기가 잘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패망한다는 것을 명심하자. === === ============ 25장: 이삭의 두 아들 ===1-11절, 아브라함의 후년의 삶 [1-4절] 아브라함이 후처(잇솨 )[아내]를 취하였으니 그 이름은 그두라라. 그가 시므란과 욕산과 므단과 미디안과 이스박과 수아를 낳았고 욕산은 스바와 드단을 낳았으며 드단의 자손은 앗수르 족속과 르두시 족속과 르움미 족속이며 미디안의 아들은 에바와 에벨과 하녹과 아비다와 엘다아니 다 그두라의 자손이었더라. 아브라함은 사라가 죽고 아마 이삭이 결혼한 후 그두라라는 이름의 후처를 취하였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기력을 주셨고 그의 아내 그두라는 아브라함에게 여섯 아들을 낳았다. 그의 자손들 중 에는 스바, 드단, 앗수르 등 성경에 나오는 지역 혹은 종족의 이름들이 있다. 그러나 성경에는 같은 이름의 사람들이나 종족들이 있으므로(창 10:7, 22, 28) 그것을 확인하는 것은 어려워 보인다. [5-6절] 아브라함이 이삭에게 자기 모든 소유를 주었고 자기 서자들(베네 핫필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