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22.05.10 작성자 : 양시영
제   목 : 민27.슬로브핫의 딸들, 모세의 계승자 여호수아(12-23). 우림 둠밈..두려움의 종교냐 신성한 샘명 교통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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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27장  [380. 나의 생명 되신 주] [289.주예수 내맘에 들어와]


사26:19..고전15:51-58

[사26:19-21...*19.주의 죽은 자들은 살아나고 그들의 시체들은 일어나리이다 티끌에 누운 자들아 너희는 깨어 노래하라 주의 이슬은 빛난 이슬이니 땅이 죽은 자들을 내놓으리로다   *20.내 백성아 갈지어다 네 밀실에 들어가서 네 문을 닫고 분노가 지나기까지 잠깐 숨을지어다   *21.보라 여호와께서 그의 처소에서 나오사 땅의 거민의 죄악을 벌하실 것이라 땅이 그 위에 잦았던 피를 드러내고 그 살해 당한 자를 다시는 덮지 아니하리라] 

[고전15:51-58..*51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 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되리니   *52.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고 우리도 변화되리라   *53.이 썩을 것이 반드시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   *64.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때에는 사망을 삼키고 이기리라고 기록된 말씀이 이루어지리라  *55.사망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네가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56.사망이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57.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58.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


***슬로브핫([요단 동쪽의 므낫세 반 지파]요셉의 아들 므낫세의 가족 중 하나) 딸들의 요구.

.....(아비를 참되게 알고 생명 교통<그 교통의 내용은 오직 Q과 그리스도> 안에 머무는) 자녀가 많을수록, 더 많아질수록 아비의 생명의 다양성 표현은 그만큼 더 잘 표현될 수 있음

.....여인들이 그 땅의 기업을 얻는 판결 율례의 영적 의미.....생명 안에 합당한 생명 근원에 속한 생명의 교통 안에 <믿음-소망-사랑으로 머물러>있었음을 의미

---성경에서 기업의 분배는 생명의 계보에 따라 결정되고 있었으니... 계보는 생명의 문제요 이 생명은 지파들과 집들과 가족들에 밀접하게!! 관련되고 있었다.

[신30:11-14...*11.내가 오늘 네게 명령한 이 명령은 네게 어려운 것도 아니요 먼 것도 아니라   12.하늘에 있는 것이 아니니 네가 이르기를 누가 우리를 위하여 하늘에 올라가 그의 명령을 우리에게로 가지고 와서 우리에게 들려 행하게 하랴 할 것이 아니요   *13.이것이 바다 밖에 있는 것이 아니니 네가 이르기를 누가 우리를 위하여 바다를 건너가서 그의 명령을 우리에게로 가지고 와서 우리에게 들려 행하게 하랴 할 것도 아니라   *14.오직 그 말씀이 네게 매우 가까워서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은즉 네가 이를 행할 수 있느니라....11 “For this commandment which I am commanding you today is not too difficult for you, nor is it [c]out of reach. 12 It is not [a secret hidden] in heaven, that you should say, ‘Who will go up to heaven for us and bring it to us, so that we may hear it and obey it?’ 13 Nor is it beyond the sea, that you should say, ‘Who will cross the sea for us and bring it to us, so that we may hear it and obey it?’ 14 But the word is very near you, in your mouth and in your heart, so that you may obey it.]

[롬10:6-10...*6.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는 이같이 말하되 네 마음에 누가 하늘에 올라가겠느냐 하지 말라 하니 올라가겠느냐 함은 그리스도를 모셔 내리려는 것이요   *7.혹은 누가 무저갱에 내려가겠느냐 하지 말라 하니 내려가겠느냐 함은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모셔 올리려는 것이라   *8.그러면 무엇을 말하느냐 말씀이 네게 가까워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다 하였으니 곧 우리가 전파하는 믿음의 말씀이라   *9.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10.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6 But the righteousness based on faith [which produces a right relationship with Him] says the following: “Do not say in your heart, ‘Who will ascend into Heaven?’ that is, to bring Christ down; 7 or, ‘Who will descend into the abyss?’ that is, to bring Christ up from the dead [as if we had to be saved by our own efforts, doing the impossible].” 8 But what does it say? “The word is near you, in your mouth and in your heart”—that is, the word [the message, the basis] of faith which we preach— 9 because if you acknowledge and confess with your mouth that Jesus is Lord [recognizing His power, authority, and majesty as God], and believe in your heart that God raised Him from the dead, you will be saved. 10 For with the heart a person believes [in Christ as Savior] resulting in his justification [that is, being made righteous—being freed of the guilt of sin and made acceptable to God]; and with the mouth he acknowledges and confesses [his faith openly], resulting in and confirming [his] salvation. ]

[신8:3...*3. 너를 낮추시며 너를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3 He humbled you and allowed you to be hungry and fed you with manna, [a substance] which you did not know, nor did your fathers know, so that He might make you understand [by personal experience] that man does not live by bread alone, but man lives by every word that proceeds out of the mouth of the Lord.]

[마4:4...*4.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새로운 날에 합당한, 그 날 그날 날마다 새로운 만나<만나의 내용은 영적 생명과 건강 유지에 필요충분한 만족과 영양분>...이는 Q의 다함 없이 깊은 사랑<은혜와 긍휼>의 선하심과 영원불변의 신실하심<진실-성실-충성>을 따라 베푸심...오 진정, 기대하는 자마다 더 새로이 그 참됨 누리게 될지니..그분은 항상 새로운 -샘솟는 생명 기쁨 안으로 이끄시리.)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니...4 But Jesus replied, “It is written and forever remains written, ‘Man shall not live by bread alone, but by every word that comes out of the mouth of God.’”]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관련된 모든 것은 (유한한) 우리가 (무한하신, 영원 자존-영생하시는)그분 안에서 받은 생명 JC를<알파와 오메가, 처음이자 나중이심> 포함하는데, 이 생명은 분명하게 그 근원을 가지고 있으며, 생명은 특별하고 특정한 통로를[="Q 말씀"...여호와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것] 통해 일정한 방식[마음에 믿고 입으로 시인함의 = 발휘되는 "믿음"...아멘-아만-에무나-에메트이신 분 Q이신 "말씀"을 붙좇음]으로 우리에게 공급-영접되고 있음이다

.....좀 더 얘기해 보자면 그리스도 안의 모든 믿는 이들로서 우리는 모두 신성한 생명을 영접했지만, 우리가 이 생명을 영접하는 수단이나 통로에 있어서는 서로 간에 다소 차이가 있는데, 신성한 생명을 영접하는 수단은 우리의 영적인 가족의 <참 생명, 그 생명 공급 누림> 문제에 직접 관련되기 때문에 매우 중요하다.  

생명 근원과 생명을 영접하는 수단 모두에 관련된 민수기의 예표에 따르면 우리가 누구이며 장차 어떻게 될 것인가 하는 것은 실은 우리 생명의 가족에 달려 있음을 의미한다. 좀 더 깊게 얘기하자면 우리가 누구를 통해 구원 받았으며 주 예수를 영접했는가 하는 것은 엄청난 문제인데, 그리스도인의 생활과 그 활동들의 참됨 여부는 결국 생명의 근원과 생명의 공급 통로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민수기에서 좋은 땅 분배를 위해 계수함이 "그들의 조상 집을 따라 수행되었다.". 하였던 것처럼, 집이 없는 자라면 즉, 누구든지 비록 그가 참된 이스라엘이라 할지라도 계보가 없으면 결코 계수 될 자격이 없었음에 주의하라...이스라엘이 계수 받기 위해서는 생명 근원과 생명의 통로에 관련된 강한 입지를 가져야 했다.)...그 원칙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동일하다. 우리는 생명의 근원에 강한 근거를 가져야 하며 또한 신성한 생명을 받기 위해 합당한 공급 받는 통로를 가져야 한다. 이 통로는 우리를 신성한 생명 안에 존재하게 하는 수단이기 때문이다.

....민27장 4절에서 슬로브핫의 딸들인 다섯 여자들의 요구가 나온다.. .여자들이란 보다 연약한 자들을 상징한다....[Q 보시기에 우리는 모두 여자들, 즉 자신들 안에서 모두 보다 연약한 자들, 심지어 가장 연약한 자들이기도 하다는 뜻이다. (오직 그리스도만이 강한 분이시다)  ....영적으로 말해서, 온 우주 안에는 유일한 남자- 그리스도 안에 체현되신 하나님-가 있고, 형제들을 포함한 모든 믿는이들은 모두 여자들이다. Q의 창조에 있어서 그대가 남자라 하더라도, Q의 새창조 , 곧 영적 새 피조물에 있어서 그대는 여자라는 것이다.]

....슬로브핫의 다섯 딸들은 우리를 예표하며, 그들의 요구는 우리 모두를 위한 것이다.....슬로브핫의 딸들은 조상들의 기업을 소유하려는 갈망을 가졌다. 예표로 볼 때 이것은 Q이 주신 기업-곧 은혜, 동시에 따라 오는 그 영적 조상의 이름-을 존중함을 상징하며 Q의 은혜를 기업으로 받으려 하는, 즉 Q이 우리에게 주신 은혜이신 그리스도를 기업으로 받으려는 갈망을 상징한다. 우리의 누림이신 그리스도를 소유하려는 갈망은 놀라우며 그것은 진정 Q을 기쁘게 한다. 

---겉 보기에는 그녀들은 그들 자신을 위하여 요구하고 있엇지만(Q은 우리 자신들을 위한 요구에는 기뻐하시지 않는다) 그러나 사실상 그들은 조상을 위하여<거슬러 올라가 보면.. 참 생명에 있어서 유일무이한 아버지이신 Q 그분 자신을 위하여!!...오늘날 우리에게 오셔서 우리에게 구원의 근원이 되신 Q 이름은 JC이심을 붙들어야 한다!!> 무엇인가를 구하고 있었다. (그 조상들은 아들들이 없었고 딸들만 있었다..(4절.상)) ...율법에는 [수혼법이라 함] 만일 결혼한 남자가 아들 상속자가 없이 죽으면, 형의 기업과 형의 아내가 그의 동생에게 가야 했으며 동생은 형의 아내에게서 첫째 형을 위하여 아들을 낳아야 했다. (첫째 형의 아내와 둘째 동생에게서 난 아들은 둘째에게 속한 이름이 아닌, 첫째에 속한 이름을 지어주어 첫째 형의 이름이 Q 백성들 가운데 남아 있게 했다...이런 식으로 첫째를 기억할 수 있는 후손이 이어지곤 했다) 

....그녀들의 염려는 그들의 아버지의 이름이 그 가족에게서 없어지고 그 기업이 가족 밖의 누군가에게 갈 것이라는데 있었기에, 그들은 아버지의 이름이 그의 지파들 가운데 기억될 수 있도록 그를 위하여 태어난 누군가에게 돌아가기를 원했다. 그러기에, 그녀들의 요구는 그 자신들을 위함이 아니라 그들의 아버지를 위한 것이었다. 그래서 [Q의 갈망하신 그대로 Q 마음을 따라 요구한 것이기에], Q은 기쁘셨다....그리고 그 다섯 딸들은 그들의 조상의 형제 가운데서 기업을 받았다.(기업을 받아 그 기업의 정수를 완전하게 받아 누릴 때, 그 누린 바 기업의 근원이신 생명  JC를 그 다음 세대에 물려줄 수 있게 된다!!) 그러나, 한 가지 조건, 곧 제한된 규정이 [나중에] 따라왔으니 그 딸들이 그 지파 밖에서는 결혼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었다(36:2-3, 6-7) [...오늘날 우리가 속한 바, 우리의 지파는 (그 이름은) 다름 아닌 그리스도와 교회임을 꼭 명심해야 한다!!].

.....그리하여 더 전진된 방면의 새로운 판결 율례를 갖게 되었다... 어떤 이스라엘인이 아들이 없이 죽었다면, 그의 기업은 그의 딸들에게 주어질 것이다(8). 그의 아버지가 형제가 있다면, 그의 기업은 그의 형제에게 주어질 것이다(9). 형제가 없으면 그의 기업은 그의 아버지의 형제들에게 주어질 것이다(10).그의 아버지가 형제가 없다면 그의 기업은 그의 가족의 가장 가까운 친척에게 주어질 것이다(11). 

이것은 그리스도의 누림에 대한 소유가 생명 안에서의 유리의 관계에 근거를 두어야 함을 예표한다.  결론적으로, 우리가 가진 생명 안에서의 관계 유형이 우리가 소유하게 될 누림의 유형을 결정하게 될 것이다.  그리스도에 대한 누림은 유형에 있어서와 그 정도에 있어서 다를 수가 있는데, 만일 우리의 생명 체험이 높고 무한하다면, 우리의 그리스도 누림 또한 높고 무한하게 될 것이다(그 반대의 경우에는 반대로 나타날 것이다) 즉, 그리스도에 대한 누림은 우리의 생명 체험에 의해 측정된다.

........여자가 그 땅을 유업으로 받기 위한 판결 율례에 대한 민수기의 이 부분은 사실상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한 것이다. ....예표에 있어서 좋은 땅은 그리스도를, 좋은 땅의 기업은 우리의 그리스도에 대한 누림을 상징한다. 교회는 아버지의 집으로 상징되는데, 오늘날 교회는 Q의 집이며(딤전3:15), 한 때 이방인들이자 나그네였던 우리는 이제 Q의 권속의 구성원들이 되었다(엡2:19). 우리 모두는 아버지 집의 구성원들이다. Q의 권속의 구성원들로서 우리는 생명의 참된 근원과 생명 공급을 받는 통로 수단을 가지고 있다.

.......비록 우리가 좋은 땅의 기업을 누릴 권리를 가지고 있다 할지라도(=Q 아들들의 명분), 이 권리를 집행하기 위해서는 우리에게 집과 통로가 필요하다. 집과 통로가 없다면 우리는 기업에 대한 우리의 권리를 행사할 수 없기에 우리는 근원과 통로를 필요로 한다. 집은 근원이자 생명이요 통로는 생명의 교통이니, 우리 중 많은 이들이 교회 안에서 우리가 신성한 생명을 영접했으며 신성한 생명의 교통을 누려왔음을, 이로 인해 그리스도를 누리고 있음을  간증할 수 있다. 그리스도 누림에 있어서 균형 잡히고 합당한 누림은 항상!! 생명의 생산성 증대, 곧 열매 맺음과 시기적절한 풍성한 수확으로 나타나게 된다.

-----본래 코이노니아(κοινωνια) 영어 번역 성경에서는 relationship이란 단어를 쓰고 있지만,,, 그 보다는 [믿는이 각자가 살아낸,  주관적 체험으로 체득된 (당신의 모든 것을 부어주신) 참 생명 그리스도의 모든 어떠하심, 넘쳐나는 그 풍성과 능력 누림을 감사함으로써 드리고-나누고-베풀고-누림으로 그분의 몸 세움을 위해 상호 교통/유통함]의 fellowship(그분의 몸 한 새 사람 안에서 지체 간의 생명 누림 위한 교통/교제/사귐/친교) + participation(몸의 지체로서 함께 공동/공통으로 JC 나눔에 참여/동참) + impartation(전이/전달/유통/나누어 줌...그리스도의 몸을 생명의 그영으로 합당하게 세워나감)으로 바꾸어 읽으며 묵상해 보라!!

fellowship + participation + impartation = in-him reality 

.[in-him reality..의, 유기적 참 생명 공동체인 교회 <한 새 사람, 그리스도의 몸>에 참여함 = 코이노니아, 그 바른 이해] = 고린도전서 1:9의 코이노니아(κοινωνια)에 대한 묵상

koinonia는 믿는이들에게 꽤 친숙한 헬라어 단어 중 하나이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koinonia의 뜻이 "친교"라는 것도 알고 영어로 fellowship으로 번역할 수 있다는 것도 안다. 

디아코니아가 "봉사"라는 것만큼이나 코이노니아가 "친교"라는 것은 알려져 있기에, 흔히 교회의 신도회들은 디아코니아와 코이노니아에서 자신들의 신도회가 존립해야 하는 두 가지 가치를 찾기도 한다. 그런데, koinonia의 뜻이 "친교"라고 할 때, 그 "친교"의 의미는 무엇일까? 

중고등부 시절, 회원들의 친목을 꾀하며 많은 "친교회"를 2부 순서로 가졌었다. 내가 자란 교회에서 "친교회"는 큰 쟁반에 과자를 잔뜩 담아 놓고 사박자 게임 등을 하며 노는 "친목"의 시간이었다. 그때만큼 신나고 즐거운 시간도 없었다. koinonia는 그렇게 노는 것을 말하는 것일까? 남여신도회에서도 친목을 목적으로 여러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koinonia는 친목을 목적으로 하는 그런 만남을 뜻하는 것일까?

koinonia를 흔히 "친교"로 번역하지만, 이때 "친교"란... [그 단어 의미대로 엄밀히 정의해 본다면] "친목"과는 전혀 무관하고 그 차원이 다르다. 

엄밀한 의미에서, 헬라어 koinonia는 "함께 공동의 무엇에 참여하는 것"을 뜻한다. 즉, 2자 간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제3의 무엇에 함께 참여하는 것을 뜻한다는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아래와 같은 구절에서는 "친교" 혹은 "사귐"이라는 말이 나타나지 않았지만, 그 구절 안에서 koinonia가 사용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로마서 15: 26 마케도니아와 아가야 사람들이 기쁜 마음으로, 예루살렘에 사는 성도들 가운데 가난한 사람들에게 보낼 구제금을 마련하였기 때문입니다.]

[고린도후서 9:13 여러분의 이 봉사의 결과로, 그들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입니다. 그것은 여러분이 하나님께 순종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고백하고, 또 그들과 모든 다른 사람에게 너그럽게 도움을 보낸다는 사실이 입증되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밑줄 친 부분에 koinonia가 사용되었는데, "(유일한 하나인, 그분의 몸의 지체로서)헌금하는 일에 함께 참여하였다"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헌금하는 일"이 앞서 말한 "제3자"이고 거기에 함께 참여한 것이기에 koinonia인 것이다.  그리스도의 "고난에 함께 참여하였다"고 할 때도 koinonia가 사용되었다. 

koinonia를 "친교"로만 번역하면 아래 구절에 koinonia가 사용되었다는 것을 상상조차 하기 어렵지만, 분명히 이 구절에는 koinonia가 사용되었다.

[빌립보서 3:10 내가 바라는 것은, 그리스도를 알고, 그분의 부활의 능력을 깨닫고, 그분의 고난에 동참하여, 그분의 죽으심을 본받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13:13이 말하는 "성령의 사귐"에도 koinonia가 사용되었는데 이는 "성령에 함께 참여하는 것" 즉, 같은 성령을 받는 것을 말한다. 

고린도전서 10:16에서 말하는 "그리스도의 피에 참여"하는 것이나 "그리스도의 몸에 참여"하는 것에도 마찬가지로 koinonia가 사용되었는데, 이 구절의 한글 번역 자체가 잘 보여주듯이 제3의 실재인 그리스도의 피와 몸에 "함께 참여하는 것"을 뜻한다. 정리하여 말하자면, koinonia는 "친목"이 아니라, "제3의 무엇에 함께 참여하는 것"이다. 

영어로는 fellowship보다는 participation in으로 이해하는 것이 더 쉽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koinonia를 정리하고 나면, 바울 서신의 아주 중요한 테마인 "그리스도 안에"(in Christ)라는 표현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하게 된다. 

교회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개개인들이 이룬 한 새 사람, 유일한 그리스도의 몸, 유기적 참 생명 공동체로서 교회의 머리는 그리스도이시다!!. 

여기서 "그리스도 안에"라는 표현은,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참여한" 혹은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산"이라는 의미이다. 

고린도전서 1:9은 이렇게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부르셔서 그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친교(교제, 친교, 사귐)를 가지게 하여 주셨습니다." 

이 때 "그리스도와의 친교"는 다른 무슨 뜻이 아니라, 한 사람 한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 들어감으로 이루어진 연합 혹은 연대라는 의미이다. 이것이 교회이다. 

교회는 그냥 사람들의 모임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 참여한 사람들"(participating in Christ)의 연합이다. "그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의 친교"가 날마다 풍성하여지길 빈다.

[예수여 오소서..저희에게 오소서..주님 몸소 나눠주신 그 빵을 주소서....울고있는 형제여 내곁으로 오시요..식탁에 빵은 많으나..그대가 없네]

-----주께는 (야다-에셰르-다바크의] 사랑 겨운 순종을, 형제 사이에는 긍휼-겸손/온유/오래참음-용납/용서/사랑-기쁨/평강 안에서 생명의 코이노니아를 -----

@@교통/사귐/교제 fellowship, 동참/참여 participation, 전이/전달/유통/나누어줌 impartation  .... koinwniva(2842, 코이노니아) 

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 

명사 코이노니아(Plind. 이래)는 코이노노스(koinwnov", 2844: 동료, 참여자)에서 유래했으며,

(a)  '참여' participation, (b)  '나누어줌' impartation., (c)  '친교, 교제' fellowship. (d)  '자선품이나 기부금'을 의미한다.

==이 단어는 목적 속격(나누는 것), 주격 속격(나누는 사람 또는 물건), 여격(수령자)과 함께 사용되거나 전치사 및 목적 속격(참여하고 있는 자)과 함께 사용되었다.

==인간 생활-나눔은 여러 분야에서 일어난다. 

예를 들면 사업, 법률관계, 결혼 등, 또한 헬라인에게 있어서 친교의 최고의 표현이 우정이다. 시민권 또한 중요하다. 왜냐하면 사회의 보존과 실로 세계(cosmos)의 보존은 정치적, 세계적 나눔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제의적 언어-원시 사상에 의하면 먹고 마심에서 신비한 신적 능력을 내적으로 받아들인다. 

이런 개념은 제의적인 축제나 심지어 성적인 결합을 통하여 신과 연합한다는 헬라 개념에도 잔존해 있다. 철학은 이 개념을 순화한다. 따라서 플라톤에게 있어서 신과의 교제는 친교의 최고 형태이다. 반면에 완전한 우주에 대한 이상을 가지고 있는 스토아 철학은 인간 사이의 친교와 신과의 모든 인류의 친교를 강조한다. 신비주의는 친교를 합일(union)로 대체한다.

2. 70인역본의 용법. 

명사 코이노니아는 70인역본에서 3회 나오며, 레 6:2에서 '담보'라는 의미로, 지혜서 8:18에서 물질적 참여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3. 신약성경의 용법. 

명사 코이노니아는 신약성경에서 19회 나오며, 3회를 제외하고는 모두 바울 서신에 사용되었다.

1. 코이노니아는 '함께 나누는 것'을 나타낸다.

(a)  ① 고전 1:9에서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아들과 친교하도록 초청받았다: "너희를 불러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로 더불어 교제케 하시는 하나님은 미쁘시도다". 이런 친교에는 신비적 합일이 없으니 이 친교는 그들의 생명과 그의 생명(그리스도의)과 동일시하는 믿음으로 인한 것이다. 이 친교는 현재 얻게 된다 할지라도 미래에 완성될 것이다(참조: 살전 4:17).

② 빌 1:5에 보면 이 친교에는 복음에의 참여가 수반되며, "첫날부터 이제까지 복음에서 너희가 교제함을 인함이라"(참조: 고전 9:23),

③ 믿음의 교제가 수반된다: "이로써 네 믿음의 교제가 우리 가운데 있는 선을 알게 하고 그리스도께 미치도록 역사하느니라"(몬 1:6).

(b)  고전 10:16 이하에서 코이노니아는 주의 만찬에서 일어나는 교제에 대한 매우 중요한 표현에 사용되었다: "우리가 축복하는바 축복의 잔은 그리스도의 피에 참예함이 아니며 우리가 떼는 떡은 그리스도의 몸에 참예함이 아니냐".

바울은 주의 만찬에서 가지게 되는 친교에 대해 코이노니아를 매우 의미심장하게 사용하였다. 기본적으로 완전히 믿음 안에서 알게된 그리스도에게 참예하는 일은 어떠한 교리와도 연관되지 않은 채 성례전에서, 고양된 형태로 이루어지고 경험된다.

먼저 바울은 주의 만찬을 유대교와 이교의 제사 의식과 구별한다. 고대의 일반적인 신앙에 따를 때 제의적 식사에 참여하는 자들은 그 신과 함께 하는 자들이 됨은 자명한다. 따라서 유대의 희생 제물을 먹는 자들은 "제단에 참예하는 자"(고전 10:18)가 된다. "제단"은 분명 하나님을 가리켜 사용된 것이다. 제단은 하나님의 임재를 나타내고 보증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이교 제사에 참여하는 자들은 "귀신과 교제하는 자"(고전 10:20)들임이 분명하다. 유추적으로 주의 만찬에 참예하는 자들은 그리스도의 동류들인 것이다. 주의 만찬에서 생기는 진정한 교제는, 그리스도인들이 이방인들의 의무 가운데 하나인 제의적 식사를 피해야만 한다는 매우 당연한 종교적 결론을 수반한다(고전 10:21).

따라서 바울은 주의 만찬의 성격을 그리스도의 인격과의 교제의 견지에서 설명한다. 즉 그의 몸과 피에 참예하는 것(코이노니아)이라고 한다(고전 10:16). 유대의 제단이 하나님의 임재를 보증하는 것이듯이 떡과 포도주(잔)는 그리스도의 임재의 방편이다. 떡과 잔에 참예함은 하늘의 그리스도와 연합(함께함)하는 것이다. 바울에게 있어 높임받으신 그리스도는 몸과 피를 가진 지상의 역사상의 그리스도와 동일하신 분이다. 코이노니아는 내적 합일(연합)을 표현하는 것이다. 바울은 이것을 이 의식에서 중요한 것으로 생각한다. 바울에게 있어서 높임 받으신 그리스도와의 진정한 합일은 그의 사망으로 말미암아 얻으신 용서의 축복을 반드시 포함하는 것임이 자명하다.

제의적 식사에서 이러한 합일이 어떻게 일어나는지에 대해서 바울은 귀신과의 교제에서도 그리스도인의 교제에서도 우리에게 말하지 않는다. 바울이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이 유사한 친교 방식의 성격이 아니라 친교의 사실 그 자체이다.

고전 10:17절에 삽입된 진술에서 바울은 희생 제사에서와 마찬가지로 주의 만찬에서도 참여자들 사이에 친교가 존재한다는 것을 선언한다. 이것은 그리스도로부터 떨어져 있지 않다. 그것은 그리스도가 한 개의 떡으로 표현되는 바와 같이 그리스도와의 공통적인 연합에서 생겨난다.

(c)  빌 3:10,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예함을 알려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바울에 의하면 그리스도와의 친교는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의 삶에 참여하는 것을 의미한다(참조: 롬 6:8; 롬 8:17; 롬 6:6; 딤후 2:12; 고후 7:3; 골 2:12-골 2:13; 엡 2:5-엡 2:6). 여기에는 두가지 측면의 교제가 있는데, 첫째는 그리스도의 수치(굴욕)와의 친교이며, 둘째는 그의 높임 받으심과의 친교이다. 바울은 그의 생애와 사역에서 그리스도의 전체 고난에 동참한다(빌 3:10; 참조: 골 1:24). 그러나 그는 마찬가지로 예수님의 영광에도 참여하기를 소망한다(빌 3:10; 참조: 롬 8:17).

(d)  성령에 참여는 그리스도인의 표시이다.

① 고후 13:13,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찌어다". 성령으로 그리스도는 신자들에게 오신다. 우리가 여기서 가지는 것은 성령에 참여이다.

② 빌 2:1,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 무슨 권면이나  사랑에 무슨 위로나 성령의 무슨 교제나 긍휼이나 자비가 있거든". 여기서 '성령의 교제'(코이노니아 프뉴마토스)는 '긍휼이나 자비'와 같이 사람에게 있는 어떤 것과 같이 성령 안에서 친교(교제)이며, 성령이 실행하는 친교(교제)가 아니다.

(f)  요일 1:3; 요일 1:6; 요일 1:7, "3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니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함이라 6 만일 우리가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 하고 어두운 가운데 행하면 거짓말을 하고 진리를 행치 아니함이거니와 7 저가 빛 가운데 계신것 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여기에서 코이노니아는 그리스도 및 하나님과의 신비적 결합을 언급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 안의 교제를 언급한다.

이 사귐은 여기서 시작하여 이후에 완성될 동거함(참조: 요일 3:2; 요일 3:24; 요일 4:13)에 의하여 성부 및 성자와의 친교로 시작한다(요일 1:3; 요일 1:6). 이 사귐은 신자들의 가족적 교제를 가져온다(요일 1:3).

그 근거는 역사적 예수님에 대한 사도의 설교와 빛 안에서의 행함과 모든 죄를 씻기시는 예수님의 피에 있다. 따라서 이것은 성육신을 부정하고 죄의 특성을 잘못 전달하는 분파적인 자만심을 배격한다.

2. 코이노니아는 '어떤 것을 나누어 주는 것'을 나타낸다.

(a)  행 2:42에서 코이노니아는 독립적인 의미의 예배 생활의 필수 부분으로 간주될 수 있다: "저희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 기도하기를 전혀 힘쓰니라". 코이노니아는 '참여, 함께 나눔(나누어줌), 교제(친교)'라는 의미에서 보면 '그리스도의 피"(빌 2:1)와 복음 사역에서의 협동(빌 1:5), 가난한 자들을 위한 헌금(고후 8:4; 고후 9:13) 등에 참여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여기에서 코이노니아의 정확한 의미에 관한 다양한 견해가 있다. 그것은 행 2:44에 있는 재산의 분배를, 혹은 신자들의 공동체 안에서의 한 마음을, 혹은 친교적 의미에 있어서의 주의 만찬(고전 10:16)을, 혹은 공동 식사에 참여해서 나누는 교제, 혹은 아가페(애찬)를 말할 수도 있다.

코이노니아는 새롭고 독립적인 어떤 것을 나타낸다. 곧 성령에 의해 전달된 일치와 연합을 나타낸다. 개인은 이 공동체에 의해 완전한 후원을 받았다.

(b)  고후 9:13에서 바울이 예루살렘에 가져온 기부금, 곧 가난한 자들을 위한 헌금은 교회들의 교제를 나타내주는 확실한 표현이다: "이 직무로 증거를 삼아 너희의 그리스도의 복음을 진실히 믿고 복종하는 것과 저희와 모든 사람을 섬기는 너희의 후한 연보를 인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이 기부는 종교적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왜냐하면 이것은 유대인과 이방인을 결합하는 하나의 복음으로부터 발생되었고 바울이 롬 15:26에서 말하는 것과 똑같은 영적이며 물질적인 주고 받음에 속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예루살렘에는 실제적인 궁핍이 있었다. 예루살렘 성도들 중에는 가난한 이들이 대다수였다. 예루살렘으로부터 흘러나오는 "영적인 은사들"의 시냇물은 "세상의 선물들"의 마주쳐 흐르는 시냇물로 응답되었다.

초대 교회의 이 모범은 단절된 채로 남게 되었다. 이 모범을 모방하는 것은 요구되지도 않았고 행해지지도 않았다. 사유 재산의 보전은 모든 교회들에서 당연한 일로 간주되었다. 기독교는 새로운 사고 방식을 가져온 것이지 새로운 사회 질서를 가져온 것이 아니다. 1895년의 복음 사회 협의회(Evangelical Social Conference)에서 프리드리히 나우만(Friedrich Naumann)은 '종교의 관점에서 경제 체계에 이르는 것은 가능한 일이 아니다'고 말했고, 반면에 에른스트 트뢸취(Ernst Troeltsch)는 기독교에 독립적인 혁명적 요소가 있으나 혁명을 선동할만한 뜻은 없다고 지적하였다(The Social Teaching of the Christian Churches, 1, 1931, 3969).

(c)  바울도 예루살렘 교회를 위한 모금과 관련하여 이 의미를 사용한다. 이 모금은 두 부류의 기독교인 간의 친교를 보여주는 분명한 형태이다(갈 2:9; 롬 15:26). 이 모금은 신실하고(고후 8:4) 마음에서 우러난 나눔(고후 9:13)으로 섬기는 교제의 의의를 지닌다. 히 13:16에서도 적극적인 나눔을 뜻한다. (참조: J. Schattenmann; F. Hauck; Walter Bauer; J. H. Thay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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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수기의 예표는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의 풍성에 참여하여 그리스도를 우리의 기업으로 제대로 참되게 누리려면, 반드시 [생명 근원인 아버지의 집, 생명 공급과 상호 교통의 통로가 있는] <그리스도의 사랑-믿음-소망 안에서> 유기적 참 생명 공동체로서 교회, 그 교회 생활을 가져야 함을 계시해 준다. ...그리스도를 누리려면 우리는 교회 생활을 가져야 한다. 교회 생활은 우리와 가까운 사람들과 우리와의 교통에 어느정도 관련된다.(어느 정도라고 말하는 이유는 최우선적으로 먼저 각자가 그리스도와의 생명 교통이 절대적이어야 함을 전제로 하고 있고, 그 다음 우선순위가 성도 간의 교통임을 의미한다)

....분명히 짚고 넘어가고자 하는 것은 (([교회는 관계이다]라고 표현하지만, 생명 차원의 진정한 의미를 드러내기에는 너무 약하고, 핵심되는 생명에서 상당히 많이 벗어난 표현이다!!)) 일반적인 사람 간의 단어인 관계 (relationship)라는 단어를 신성한 단어인 교통(fellowship + participation in = in-him reality)으로 대치하는 것이 더 중요하고 더 적합하고 더 좋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볼 때) 교회 안에서 다른 성도들과의 교통에서조차 일종의 사회적/피상적 관계relationship에 그치는 경우가 많은데,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에 대한 진정한 생명 공급과 그 누림을 가지려 한다면 우리는 <이미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 각자 Q 아들들로서 합당한 명분에 이르기까지, 즉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의 충만에 이르기까지 자라나 그분을 닮도록(주님과 그분 몸의 지체는 서로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닮은 하나 되기를 원하셨다)  예정하심 따라 마땅히> 반드시 이러한 특별한/독특한 마음-영혼, 곧 내적 사람의 <그분의 몸 안에서 생명 상호 교통(fellowship + participation in = in-him reality) =코이노니아를 가져야만 한다. (모든 성도 된 이마다 주님 보시기에는, 그리스도의 신성한 생명 누림과 생명 공급 통로된 지체들로 삼으신 바 되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성도들과의 교통을 잃어버린다면, 우리는 또한 그리스도에 대한 우리의 누림을 잃어버리게 될 것이다. 그러기에, 교회 생활을 포기하는 것은 너무나도 위험하고 위태로운 일임을 본다. 교회 생활과 생명의 교통을 포기한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그리스도의 누림을 기업으로 받을 권리를 상실하게 되어 버린다. 우리 모두가 이러한 중대한 문제에 대해 빛 비춤 받고 성도들과의 생명의 교통 안에서 Q의 대 가족의 일원으로 남아있기를 기도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신앙이란 [영원한 분깃, 생명 그리스도 = 참 생명 (그리스도로) 삶의 생생한 산 믿음]이라 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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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통(fellowship + participation in : in-him reality)이란 헬라어로 ‘코이노니아(koinonia)’로서 [영원한 분깃, 생명 그리스도 = 참 생명 (그리스도로) 삶 = 천국] 공동 참여를 뜻한다. 

그것은 영원한 생명의 흘러나옴이며, 사실상 신성한 생명을 영접하고 소유한 모든 믿는 이들 속에 있는 영원한 생명의 흐름이다.

그것은 새 예루살렘에서 생명수의 흐름에 의해 예시(例示)된다(계 22:1). 그러므로 모든 참된 믿는 이들은 다 이 교통 안에 있다(행 2:42). 

그것은 우리의 거듭난 영 안에 계신 그 영에 의해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그것은 ‘성령의 교통’(고후 13:13), ‘(우리)영의 교통’(빌 2:1)이라고 불린다.

아버지와 아들의 모든 어떠하심과 우리를 위해 행하신 모든 것에 우리 믿는 이들이 참여하는 것은 바로 이 영원한 생명의 교통 안에서이다. 

즉 우리는 그 영의 교통으로 말미암아 아버지의 사랑과 아들의 은혜를 누린다. 그러한 교통은 먼저 그 영을 통해 아버지와 아들을 누리고 있는 사도들의 분깃이었다. 

그러므로 그것은 ‘사도들의 교통’(행 2:42), 아버지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하는 ‘우리(사도들)의 교통’(요일 1:3)이라 불린다. 

그것은 하나의 신성한 비밀이다. 이 영원한 생명의 비밀스런 교통이 본 서신의 주제로 여겨져야 한다.

교통이란 공동 참여, 공통 참여이다. 그러므로 교통을 갖는다는 것은 어떤 것에 단체적으로 참여하는 것이다. 신성한 생명의 교통은 신성한 생명의 흘러나옴이요, 흐름이다. 신성한 생명은 유기적이고, 풍성하고, 움직이고, 활동적이기 때문에 그것은 어떤 특별한 흘러나옴, 즉 어떤 종류의 결과를 갖는다. 신성한 생명의 흘러나옴 곧 결과는 생명의 교통이다.

신성한 생명의 교통은 계시록 22장 1절에 분명하게 묘사되어 있다. 

이 구절에서 우리는 새 예루살렘에서 생명수의 강이 하나님과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흘러나오는 것을 본다. 

하나님과 어린 양의 보좌는 구속하시는 하나님 곧 어린 양-하나님의 보좌이다. 

창세기 1장 1절에는 하나님이 나오지만 계시록 22장 1절에는 어린 양과 함께 있는 하나님이 나온다. 

창세기에는 창조하시는 하나님이 나오지만, 계시록에서는 구속하시는 하나님이 나온다. 

근원이신 이 구속하시는 하나님으로부터 생명수의 강이 흘러나온다. 생명수의 강의 흐름은 생명의 교통이다. 

이것은 교통이 구속하시는 하나님 속으로부터 나오는 신성한 생명의 넘쳐흐름임을 뜻한다. 

계시록에 있는 그림에 의하면, 새 예루살렘의 강은 그 성의 열두 문에 도달할 때까지 나선형으로 흘러내려간다. 

이로써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새 예루살렘 성 전체가 이 생수의 흐름에 의해 공급받는다는 것이다. 즉 성 전체가 생명의 교통에 의해 공급받는다. 

신성한 생명의 교통은 하나님으로부터 흘러나와서 새 예루살렘으로 최종 완성될 그리스도의 몸의 각 지체에게 도달하기 위해 그분의 백성들을 통해 흐른다.

===그 영의 교통

신성한 생명의 교통, 혹은 신성한 생명의 흐름은 그 영의 교통이다. 

고린도후서 13장 13절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이 너희 모두에게 있을지어다”라고 말한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은 근원이고, 그리스도의 은혜는 통로이고, 그 영의 교통은 그 통로의 흐름임을 본다. 

우리의 누림을 위해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에게 가져다주는 것은 바로 이 흐름이다. 그러므로 신성한 생명의 교통은 성령의 교통이라 불린다.

===믿는 이들과 사도들 사이

신성한 생명의 교통은 믿는 이들과 사도들 사이의 교통이다(요일 1:3하, 행 2:42). 

이것은 믿는 이들과 사도들 가운데 삼일 하나님의 공동 누림이 있다는 뜻이다. 믿는 이들과 사도들은 서로 접촉을 가질 필요가 있다. 합당한 접촉이 있을 때 거기에 쌍방 왕래(two way traffic)가 있게 될 것이며, 이 왕래는 교통(fellowship), 곧 공동 참여이다. 이 쌍방 왕래를 가질 때 우리는 우리 속에 있는 신성한 생명을 누린다. 

이것은 우리가 교통을 가질 때 신성한 생명의 누림을 갖는다는 뜻이다. 

이 쌍방 왕래를 많이 가지면 가질수록 더더욱 좋을 것이다. 사도들을 접촉할수록 더욱더 우리는 신성한 생명을 누린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사도들이 더 이상 우리와 함께 있지 않다고 지적할지도 모른다. 이것이 옳은 말이지만, 우리는 여전히 사도들의 글을 갖고 있다. 

사도들의 글을 대할 적마다 우리는 사도들과의 교통 안으로 인도되고 또 우리와 그들 사이의 쌍방 왕래를 누린다는 느낌을 갖게 될 것이다. 

그럴 때, 이 왕래 안에서 우리는 그들과 함께 신성한 생명을 누리게 된다.

===믿는 이들과 아버지와 그분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사이 

신성한 생명의 교통은 믿는 이들과 아버지와 그분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사이에 있다. 

요한은 먼저 믿는 이들이 신성한 생명을 통해서 사도들과 교통을 갖는다고 말한다. 그런 다음 그는 사도들이 아버지와 아들과 교통을 갖는다고 말한다. 

이로써 우리는 교통이 믿는 이들을 사도들에게로, 또한 아버지와 아들에게로 연결시킨다는 것을 본다. 

그러므로 이 교통 안에는 신성한 생명의 온전한 하나가 있다. 전기의 흐름은 신성한 생명의 교통에 대한 좋은 예이다. 

전기는 발전소에서부터 건물로 흘러들어간다. 전류는 발전소를 건물에 연결시킨다. 더욱이 건물 안에 있는 불 켜진 어떤 방의 천정에서 각각의 전등들은 전류의 흐름에 의해 서로 연결되어 있다. 전류의 흐름 없이는 천정의 전등들이 분리된다. 그러나 전기의 흐름으로 말미암아 전등들은 서로서로 하나의 ‘교통’ 안으로 인도되는데, 그 이유는 그들이 모두 전기의 한 흐름 안에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사도들과 믿는 이들이 신성한 생명 안에서 함께 교통을 누린다는 사실을 보여 주는 예이다.   

===믿는 이들간의 교통

신성한 생명 안에서 믿는 이들은 서로 간에 교통을 갖는다(1:7, 빌2:1). 

마치 방 천정의 전등들이 그들 속에 흐르는 전류를 갖고 있는 것처럼, 우리도 다 우리 속에 흐르는 신성한 흐름을 갖고 있다. 

이 신성한 흐름 안에서, 이 신성한 생명을 통해서 우리는 신성한 생명을 누리기 위한 교통을 갖는다. 

우리 속에 흐르는 신성한 생명을 가지면 가질수록 더욱더 우리는 신성한 생명을 누린다. 

1장 3절에서는 오직 아버지와 아들만 언급되고 그 영은 언급되지 않는데, 그 이유는 그 영이 교통 안에 암시되어 있기 때문이다. 

사실 영원한 생명의 교통은 믿는 이들이 오늘과 영원 안에서 누릴 수 있도록 삼일 하나님-아버지와 아들과 영-이 그들의 유일한 분깃으로 그들 안으로 분배되는 것이다.


===슬로브핫의 딸들

1.  요셉의 아들 므낫세 종족들에게 므낫세의 현손 마길의 증손 길르앗의 손자 헤벨의 아들 슬로브핫의 딸들이 찾아왔으니 그의 딸들의 이름은 말라와 노아와 호글라와 밀가와 디르사라

2.  그들이 회막 문에서 모세와 제사장 엘르아살과 지휘관들과 온 회중 앞에 서서 이르되

3.  우리 아버지가 광야에서 죽었으나 여호와를 거슬러 모인 고라의 무리에 들지 아니하고 자기 죄로 죽었고 아들이 없나이다

4.  어찌하여 아들이 없다고 우리 아버지의 이름이 그의 종족 중에서 삭제되리이까 우리 아버지의 형제 중에서 우리에게 기업을 주소서 하매

5.  모세가 그 사연을 여호와께 아뢰니라

6.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7.  슬로브핫 딸들의 말이 옳으니 너는 반드시 그들의 아버지의 형제 중에서 그들에게 기업을 주어 받게 하되 그들의 아버지의 기업을 그들에게 돌릴지니라

8.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사람이 죽고 아들이 없으면 그의 기업을 그의 딸에게 돌릴 것이요

9.  딸도 없으면 그의 기업을 그의 형제에게 줄 것이요

10.  형제도 없으면 그의 기업을 그의 아버지의 형제에게 줄 것이요

11.  그의 아버지의 형제도 없으면 그의 기업을 가장 가까운 친족에게 주어 받게 할지니라 하고 나 여호와가 너 모세에게 명령한 대로 이스라엘 자손에게 판결의 규례가 되게 할지니라

===모세의 후계자 여호수아

12.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이 아바림 산(느보 산, 비스가 산)에 올라가서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준 땅을 바라보라

....(눈귀입 여소서-손 듭니다) (영원이전~영세이후에 이르도록, 삼층천~지옥까지 모두 주께 속한 것) (주님과 함께 순종-충성함 통해 이루실 바  믿음의 동행-돌파 오늘 걷고 취할 바, 감사 드립니다)

13.  [너는 충분히 익었으니...라고 말씀하심을 알아들었다]본 후에는 네 형 아론이 돌아간 것 같이 너도 조상에게로[주께서 보이신 것을 본 자마다 그리스도의 몸, 교회 근원자 주께로 돌아가야 한다] 돌아가리니(아사프 = gathering, 수확-추수, 모음)

.....@@돌아가다. 모으다, 제거하다, 거두어 들이다.....#s'a;(622, 아사프) 

아사프(동사)는 기본어근이며, '모으다 gather, 옮기다, 제거하다, 떠나가다 remove, 거두어 들이다 gather in'을 의미한다.

이 단어는 니팔형에서 (죽음에 의해) '모이다, 화합하다, 제거되다, 멸망하다', 푸알형은 '모이다', 히트파엘형은 '스스로 모이다'를 의미한다. 

구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199회 나온다.

(a)  이 단어는 죽음에 의해 '모이다'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열조에게로 모이다' gathered to he fathers(한글개역, '열조에게로 돌아가매)라는 어구는 자주 '죽다' die 혹은 '죽음' death이란 뜻으로 사용되었다(창 25:8, 창 25:17, 창 49:29, 창 49:33, 신 32:50, 왕하 22:20).....학자들 중에는, 이 어구가 비록 불분명하고 애매하기 하지만, 사랑하는 사람이 내세에 있으리라는 인식과 함께 죽음 이후의 삶에 대한 초기 신앙을 암시하는 것이라고 지적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렇지만 이것은 뚜렷한 신학적 의미가 없이 죽음에 대한 완곡어법일 수도 있다. ---이 단어는 저축하는 것(창 6:21), 사람들을 모으거나(출 3:16, 출 4:29), 사람들이 모이는 것(창 29:8), 사람을 가두는 것(창 42:17), 메추라기를 모으는 것(민 11:32), 손님을 영접하는 것(삿 19:15, 삿 19:18), 생명이 제거되는 것(삿 18:25), 병을 고치는 것(제거)(왕하 5:3 이하), 민족들이 회집하는 것(사 43:9) 등을 묘사한다.

(b)  이 단어의 주된 사용은 추수와 관련되어 있는데 추수를 뜻하는 일반적인 단어는 카치르이다. .

....이스라엘이 농경 민족이었으므로 그들에게 있어 이 추수(카치르)는 큰 의미를 지녔다(창 8:22, 창 45:6). 추수에서 유래했거나 아니면 추수와 관련된 여러 사건들이 있었다(창 30:14, 수 3:15, 삿 15:1, 룻 1:22, 룻 2:23, 삼상 6:13, 삼하 21:9, 삼하 23:13). 유대 종교 달력의 주요한 세 절기는 세 번의 추수 계절과 관련되어 있었다(출 23:16, 출 34:21-22). 유월절은 맥추 때에 있었고, 오순절은 밀 수확 때에 있었고(출 34:22), 그리고 연말에 거행되었던 장막절은 과일 수확기에 있었다. 보리 수확과 밀 수확기의 사이에는 몇 차례의 소나기가 내려서 밀 수확을 증가시켜 주었다(참조: 암 4:7). 밀 수확기에서부터 과일 수확기까지는 비가 내리지 않는다(삼하 21:10), 렘 5:24). 모세 율법에서는 추수가 이삭줍기(레 19:9), 첫 열매(레 23:10), 그리고 노동해서 얻은 것이 아닌 농작물 수확의 금지(레 25:5)에 관한 특정한 법률들과 관련되어 나온다.---게셀의 달력은 고대 이스라엘의 추수 계절들을 나타내준다. 올리브는 9월 중순부터 11월 중순 사이에 수확되었다. 이 때에 긴 막대기로 나무를 때렸다(신 24:20, 사 17:6). 삼은 3, 4월에 수확되었는데, 마당에서 삼을 잘라내어 다음에 이슬이나 수증기로 그 줄기를 부드럽게 만들었다(물에 담그기라고 불리움 2:6). 4월이나 5월 초에는 보리 수확이 행해졌고, 5, 6월에는 밀 수확이 행해졌다. 무화과, 포도, 그리고 석류, 여름 과실들의 수확은 8, 9월에 행해졌다.

비유적인 용법들도 있다. 추수의 파괴는 하나님의 징벌을 나타내는 것이었다(욥 5:5, 사 16:9, 렘 5:17). "추수 때"는 종종 멸망의 시기를 나타내곤 하였다(렘 51:33, 호 6:11, 욜 3:13). 

추수의 즐거움은 큰 기쁨을 나타내는 것이었다. 나일의 추수는 풍성한 수확을 의미했다(사 23:3). 추수할 때가 지났다는 것은 기회를 잃어버려서 돌이킬 수 없음을 나타내는 것이다(렘 8:20). (참조: BDB; C. L. Feinberg). 

14.  이는 신 광야에서 회중이 분쟁할 때에 너희가 내 명령을 거역하고 그 물 가에서 내 거룩함을 그들의 목전에 나타내지 아니하였음이니라 이 물은 신 광야 가데스의 므리바 물이니라(출애굽제40년)

.....왜 주님은 명확하게 모세의 실수 그 시점을 지적하여 말씀하고 계시는가..??..(아마도, 그 때 그 일이 없었더라면..<경륜적 징계는 없었을 것이요>  에녹처럼 <부활체 입고 영광 가운데> 주께 들리움 받았을 수도 있었음을 암시하고 계신 것은 아닐까??)..비록 Q 경륜에 따르지 않고 오히려 그 자신의 육적 충동과 혈기 따라 행함으로써, 백성을 따라 동행하는 반석을 <물 내기 위해> 두번 <짜증과 성질 부리면서> 지팡이로 내리쳐 물을 공급함의, 심각한 실패(민20:10-14)로 인해 가나안으로 들어가는 권리를 잃었지만 천년 왕국에 참여하고 있음을 마16:28-17:4에서 확인할 수 있다....비록 <실수로 인해> 임종의 종말은 영광스럽지 못하였으나, 그의 사역은 영광스러웠다.!!

15.  모세가 여호와께 여짜와 이르되

16.  여호와, 모든 육체의 생명의 하나님이시여 원하건대 한 사람을 이 회중 위에 세워서

17.  그로 그들 앞에 출입하며 그들을 인도하여 출입하게 하사 여호와의 회중이 목자 없는 양과 같이 되지 않게 하옵소서

.....모세의 관심은 그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그는 그렇게 많이 자신을 관심하고 자신의 상황을 관심하는 그런 유형의 사람이 아니었음....(지고지선의 주님을 완전히 신뢰하기에!! 전적으로 주님의 처분을 따르면서!!) 진정으로 백성들의 목자가 필요함을 주께 말씀드리고 있다.

18.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눈의 아들 여호수아는 그 안에 영이(the Spirit...루아흐..창1:2..the Spirit of God.) 머무는[=신에 감동된...Q이 불어넣으신, 그분의 영이 친히 그 안에 머무는 ] 자니 너는 데려다가 그에게 안수하고....모세는 시내산에서부터 시작하여 이미 40 여년간 내내 Q의 <영광의> 영으로 적셔지고 있었음을 기억하라...그 모세의  곁에는 늘 여호수아가 수종하고 있었기에...그는 <모세 통해 공급 받는 바> 저절로 Q의 영으로 적셔지고 있었다..((이처럼, 주님 바라보며, 그분 곁에 함께 있는 자마다 그분의 영으로 적셔지고 점유되고 <그분의 거처 되어> 채워져 충만케 되며, 성화-영화의 감화 됨 저절로 이루게 되리라.))

19.  그를 제사장 엘르아살과 온 회중 앞에 세우고 그들의 목전에서 그에게 [안수 통해]위탁하여

20.  네 존귀[honour/authority, exaltation = majesty 위엄 = <비천에서 세워진, 외적/공식적 직분의>대표 권위/영예 honour+ <영적 직분/신분에 합당한 ~다움...곧, (주님의 어떠함으로 채움 받은) 내적 사람의 어떠함과 됨됨이> 영광glory...이는 진실로 (이 땅에서 걷는 동안, 주 앞에서 I'm nothing, Nobody임을 알기에) JC처럼 겸비하고 온유한, 긍휼이 무엇인지 아는 참된 종, 주의 종을 (특별히) 높여 주심의 특별한 상급이다!!]를 그에게 돌려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을 그에게 복종하게 하라

....^^존귀(Authority, Honor) ::: 지위나 신분 따위가 높고 귀한 것을 말한다(창34:19). 존귀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다양한데 ‘호드’(hod)는 영광, 아름다움을 의미하여 존귀(민27:20), 존영(잠5:9), 위엄(대상29:11) 등으로 번역되었고, ‘카보드’(kabod)는 본래 무게를 뜻했는데 영광(삼상2:8), 존귀(민24:11;대상17:18)등으로 번역되었다. ---존귀는 하나님께 속해 있고 하나님 자신이 [급원적으로] 존귀하신 분이시며(대상16:27;시111:3;딤전6:16)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으로부터 존귀와 영광을 받으신 분이시다(벧후1:17). [존귀의 시여자로서] 하나님은 사람에게 존귀로 관을 씌워주시며(시8:5), 겸손한 자에게는 존귀를 상급으로 주시기도 하지만(잠15:33) 때로는 어떤 사람을 존귀치 못하게 막으시기도 한다(민24:11). 그외에 존귀히 여김을 받는 대상으로는 가정의 자녀들(창34:19;욥14:21), 하나님의 교훈(사42:21) 등이 있다.

....Q을 존귀케 해 드리는 삶<자원하여 남에게 유익한 것 더해 줌으로 주님을 시원하게 해 줌 =  엑스트라 마일을 더 하는 삶 = Q을 존귀케 하는 삶 = Q이 또한 그를 존귀케 하심>

....[시75:6, 7..*6.무릇 높이는 일이 동쪽에서나 서쪽에서 말미암지 아니하며 남쪽에서도 말미암지 아니하고   *7.오직 재판장이신 하나님이 이를 낮추시고 저를 높이시느니라....For not from the east, nor from the west, Nor from the desert comes exaltation.  7 But God is the Judge; He puts down one and lifts up another.] [삼하7:9...*9.네가 가는 모든 곳에서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 모든 원수를 네 앞에서 멸하였은즉 땅에서 위대한 자들의 이름 같이 네 이름을 위대하게 만들어 주리라...9 I have been with you wherever you have gone, and have cut off all your enemies from before you; and I will make you a great name, like that of the great men of the earth. ]

.....@@존귀:: 빛남, 광채, 장려, 위엄, 영광, 영예.....d/h(1935, 호드) 

호드(명남)는 '빛남, 광채, 장려, 위엄, 영광, 영예'를 의미한다. 구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24회 나온다.

호드는 역시 '위엄' 혹은 '영예'를 의미하는 동족어 하다르와 함께 흔히 병렬적으로 사용되는데, 항상 호드 웨하다르의 순서로 나온다: 시 21:6, 시 45:3, 시 96:6(=대상 16:26), 시 104:1, 시 111:3, 욥 40:10(7회). 70인역본은 호드를 독사(doxa, 7회)나 엑소몰로게시스(4회), 그 외의 여러 단어들로 번역한다. 다른 셈족 언어들에서는 지금까지 호드의 동족 어근이 발견되지 않았다. 그것은 유일하게 히브리어에만 존재한다. 호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의 특성이나 속성으로 사용된다.

(a)  사람: 민 27:20, 모세와 여호수아; 잠 5:9, 지혜로운 아들; 단 10:8, 다니엘(KJV는 '아름다움' comeliness으로, RSV는 '빛나는 용모' radiant appearance로 번역한다); 호 14:7, 회개하고 여호와의 축복을 회복한 후의 이스라엘 백성; 여호야김(렘 22:18).

(b)  동물들: 특히 말, 욥 39:20, 슥 10:3.

(c)  식물들: 감람 나무, 호 14:7.

호드는 하나님과 연결되어 사용된다. 하나님의 위엄은 창조물에서 볼 수 있다: 시 8:2, "주의 영광이 하늘 '위에서' 울려 나온다". 

혹은 여기에서 우리가 천상의 음악을 염두에 둘 경우에는 "주의 영광이 하늘로 '말미암아' 울려 퍼진다".

시 148:13, "하나님의 영광이 땅과 하늘 위에 있으시다"(한글개역 - "그 영광이 천지에 뛰어나심이로다"). 합 3:3, "하나님의 영광이 하늘을 덮는다".

성경 기자들이 우주에서의 하나님의 손의 역사를 볼 때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하지 않을 수 없다: "대대로 주의 행사를 크게 칭송하며 주의 능한 일을 선포하리로다"(시 145:4). 

이 영광은 하나님의 옷자락의 일부이다(시 104:1). 우리는 그것을 들을 수 있다(시 30:30, 시 8:2).

하나님께서는 자기와 교제하며 살아가는 사람에게 이것을 물려 주신다: 시 21:6, 대상 29:25(솔로몬). 

최종적으로 이 속성은 성전을 세우시고 왕의 영예를 지니실 메시야에게 적용된다: "그가 여호와의 전을 건축하고 영광도 얻고 그 위에 앉아서 다스릴 것이요 또 제사장이 자기 위에 있으리니 이 두 사이에 평화의 의논이 있으리라 하셨다 하고"(슥 6:13).(참조: V. P. Hamilton; BDB). 

21.  그는 제사장 엘르아살 앞에 설 것이요 엘르아살은 그를 위하여 우림의 판결로써 여호와 앞에 물을 것이며 그와 온 이스라엘 자손 곧 온 회중은 엘르아살의 말을 따라 나가며 들어올 것이니라

.....판결 흉패 :: : 흉패 위의 보석에 쓰인  12 이름들에는 히브리어 알파벳 22자중에 18자가 포함되어 있어 우림이라 불리어 조명기 역할을 했고, 나머지 4자는 둠밈(완전케 하는, 온전케 하는 자들)에 부착되어 (흉패 주머니 안에 넣어져) 있었음

22.  모세가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명령하신 대로 하여 여호수아를 데려다가 제사장 엘르아살과 온 회중 앞에 세우고

23.  그에게 안수하여 위탁하되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하였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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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우림과 둠밈을 통하여 말씀하심

출애굽기 28장 30절은, 『너는 우림과 둠밈을 판결 흉패 안에 넣어 아론으로 여호와 앞에 들어갈 때에 그 가슴 위에 있게 하라 아론이 여호와 앞에서 이스라엘 자손의 판결을 항상 그 가슴 위에 둘지니라』고 말한다. 

^^^데이빗 베런(David Baron)의 저서 「고대의 성경과 현대의 유대인(The Ancient Scriptures and Modern Jew)」에는 우림과 둠밈에 관한 글을 담고 있는 부록이 있다. 

이 글에 의하면 흉패 위에 있는 열 두 이름은 히브리어 알파벳의 스물 두 자 가운데 열 여덟 자를 포함하였다. 나머지 네 자는 둠밈이라 부르는 부분품에 부착되었다. 히브리어 단어 둠밈은 「완전케 하는 자들」, 또는 「온전케 하는 자들」을 뜻한다. 

그러므로 둠밈이라 부르는 추가적인 부분품을 지닌 흉패 위에서 모두 스물 두 자의 히브리어 알파벳을 볼 수 있다. 타자기 키위에 있는 스물 여섯 자의 영어 알파벳이 단어나 구절이나 문장이나 단락을 형성하는 데 사용될 수 있듯이 흉패와 둠밈 위에 있는 스물 두 자의 히브리어 알파벳은 단어들이나 문장들을 판독하는 데 사용될 수 있었다.

더 나아가, 이 글에 의하면 우림은 열 두 보석 아래 있는 흉패 안으로 삽입된 조명기였다. 히브리어로 우림이라는 단어는 빛을 뜻한다. 

데이빗 베런의 책에 있는 글은 우림이 연소를 위한 기름을 담을 수 있었다는 것과 이 기름을 태우는 데 사용된 불이 제단으로부터 왔다는 것을 말한다. 

이 글을 쓴 권위 있는 그 히브리 학자는 또한 흉패 위에 있는 각 보석 조각을 비추기 위하여 각 보석마다 하나씩, 열 두개의 조명기들이 있었음을 말했다. 

그럼으로써 평상시에는,  투명한 보석들은 빛을 발할 수 있었다. ((인도하심을 구할 때에는..??...<부정적 측면에서는> 문제가 있는 지파의 보석 빛을 꺼뜨리시거나, <긍정적 측면에서는> 어떤 지파를 지명하시는 경우에는 그 지파 보석의 빛을 더 밝히심으로 지명하셨을 수도 있다))

우림과 둠밈이 흉패에 더해질 때 그것들은 흉패로 하여금 판결 흉패가 되게 했다. 그것들이 더해지기 전에 흉패는 단지 기념을 위한 것이었다. 

하나님은 그분의 백성을 광야로 인도하셨을 때 모세를 통하여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대면하여 말씀하셨다. 

그러나 모세가 죽은 후 여호수아는 하나님으로부터, 그분이 모세에게 말씀하신 방법인 직접적인 말씀하심을 통해서가 아니라 대제사장이 입은 흉패 위의 우림과 둠밈을 통해서 인도를 받았다. 그러므로 여호수아는 백성들의 움직임에 관한 인도가 필요할 때마다 우림과 둠밈을 통하여 하나님으로부터 인도를 받은 대제사장에게 가야 했다. 

그러면 하나님은 우림과 둠밈을 통하여 말씀하셨다.

이 글의 저자는 여호수아와 아간의 사례를 언급하면서 우림과 둠밈의 기능을 예증한다. 이스라엘 자손은 아간의 죄로 인해 아이에서 패배당하였다(수 7장). 

어떻게 아간의 죄가 발견되었는가? 이 글에 의하면 열 두 지파의 각 대표가 성막으로 와서 흉패를 착용하고 있던 대제사장 앞에 섰다. 갑자기 흉패 위의 열 두 조각 가운데 하나가 어두워졌다. 그것은 유다 지파의 보석이었다. 이렇게 하여 유다가 뽑혔다. 여호수아 7장 16절부터 18절은, 『이에 여호수아가 아침 일찌기 일어나서 이스라엘을 그 지파대로 가까이 나아오게 하였더니 유다 지파가 뽑혔고 유다 족속을 가까이 나아오게 하였더니 세라 족속이 뽑혔고 세라 족속의 각 남자를 가까이 나아오게 하였더니 삽디가 뽑혔고 삽디의 가족 각 남자를 가까이 나아오게 하였더니 유다 지파 세라의 증손이요 삽디의 손자요 갈미의 아들인 아간이 뽑혔더라』고 말한다. 흉패 위의 어떤 보석이 어두워짐으로 인해서 결국 가족과 그 사람이 발견되었다. 이 상황에서 흉패는 아간의 이름을 찍어 내는 하늘에 속한 영적 타자기와 같은 기능을 하였다.

이 글은 우림과 둠밈의 사용에 관한 예를 인용한다. 그것은 여호수아가 우림과 둠밈을 통하여 지파들에게 땅을 분배하였다는 것과(수 18:6-10) 우림과 둠밈을 통해 알려진 하나님의 인도에 따라 원수들을 대항하여 싸웠다는 것을(삿 1:1-12, 20:18, 27, 민 27:21) 말한다. 

더 나아가, 사울 왕이 하나님께 신실하지 않게 되었을 때 하나님은 형제 자매 우림과 둠밈을 통하여 그에게 대답하려 하시지 않았다(삼상 28:6). 

제사장들이 사울에게 죽임을 당하였을 때 그 아들들 중 한 사람이 다윗에게로 도망했으며 그때 다윗은 우림과 둠밈을 통하여 주님을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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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흉패가 판결 흉패라 불리웠다는 것을 지적하였다. 신명기 33장 8절과 10절은, 『레위에 대하여는 일렀으되 주의 둠밈과 우림이 주의 경건한 자에게 있도다 … 주의 법도를 야곱에게 주의 율법을 이스라엘에게 가르치며』라고 말한다. 우림과 둠밈은 제사장들인 레위인들과 함께 있었으므로 그들은 백성에게 하나님의 율법뿐만 아니라 그분의 판결을 가르칠 수 있었다. 우리가 지금까지 우림과 둠밈에 관해 다룬 것은 학문에 의한 몇 가지 역사적인 사실들이다. 

우리는 아직 우림과 둠밈의 영적인 적용에 관하여 아무 것도 보지 않았다. 역사적인 사실에 대해 말하는 것이 이번 메시지에서의 나의 부담이 아니다. 

나의 부담은 오히려 영적인 적용을 보여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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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들을 읽음

흉패는 하나의 실체로 함께 건축된 모든 믿는이들이 함께하는 교회를 상징한다. 

교회인 그리스도의 몸으로 알려진 하나의 실체가 되기 위해 건축된 모든 변화된 믿는이들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시기 위한 글자들이다. 

이것은 오늘 신약 시대에 하나님이 모든 성도들을 통하여 교회에게 말씀하심을 뜻한다. 우리는 이것을 바울의 여러 서신이 기록된 방식에서 볼 수 있다. 

어떤 교회에 편지할 때 바울은 그 지역에 있는 교회에 있는 성도들을 생각하였다. 다른 말로, 그는 그 지역에 있는 성도들의 상태와 상황을 고려하였다. 

그리고나서 그는 성도들의 상태와 상황을 서신을 작성하기 위한 영적인 알파벳의 문자로 이용하였다. 

바울은 그의 편지의 어느 것도 공허한 사상을 지닌 추상적인 방법으로 쓰지 않았다. 

그렇다. 그의 서신들은 항상 어떤 지역에 있는 성도들의 상태와 상황에 근거하였다. 그리하여 그러한 성도들이 서신의 영적인 식자에 있어서 바울이 사용한 글자가 되었다.

이것은 오늘 우리에게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은 바로 각지 교회 안에서 인도하는 자들은 성도들의 실제적인 상황과 상태를 읽음으로써 주님의 인도를 구해야 함을 뜻한다. 

예를 들어, 가령 교회가 복음 전파를 위한 집회를 가져야 하는가 아닌가를 인도하는 자들이 고려하고 있다 하자. 

결정을 내리기 전에 그들은 성도들의 상태가 어떠한지를 묻고 그들의 지방에 있는 성도들을 고려해야 한다. 

그때 성도들의 상태와 상황을 읽음에 근거하여 인도하는 자들은 주님의 인도를 가질 것이다. 

이것은 그들로 하여금 그 당시 그들이 복음집회를 가져야 하는가 아닌가를 알게 한다.

이스라엘 자손은 대제사장이 하나님의 임재 안에서 우림과 둠밈을 지닌 흉패를 읽은 것으로부터 받은 인도를 통하여 전진하였다. 

오늘 모든 인도하는 자들이 그들의 지역에 있는 성도들의 상태와 상황을 읽는 것은 중요하다. 이런 식으로 그들은 교회의 전진을 위한 주님의 인도하심을 받을 것이다.

오늘 우리에게 있어서, 흉패는 교회이며 흉패 위의 보석들은 성도들이다. 모든 성도는 어떤 글자들을 지닌다. 

그러므로, 성도들에게서 우리는 하늘에 속한 영적인 알파벳 문자를 본다. 더 나아가 성도들의 상태와 상황을 읽음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어떤 「단어들」을 가질 수 있다. 

이러한 단어들이 종합될 때 우리는 온전한 문장, 온전한 사상을 가진다. 이것이 문자들인 그분의 구속된 성도들을 통한 하나님의 말씀하심이다. 

이러한 방법을 통해 주님의 회중은 어떻게 전진하는가를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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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림과 둠밈))...‘우림’의 히브리어 뜻은 바로 ‘빛을 냄’이라는 뜻이다. ‘둠밈’은 ‘완전함’의 뜻이다. 

대제사장이 판결 흉패를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 하나님의 빛이 비치고, 빛이 비칠 때 하나님의 뜻이 완전히 나타난다...

((우림과 둠밈을 소유하기 위한 조건))..열 두 보석, 이 보석들 위에 지파들의 이름을 새기는 것, 보석들이 하나의 실체로 건축되는 것, 사슬들로 연결되고 결합하는 것, 끈들, 고리들, 견대들을 지닌 에봇은 우림과 둠밈이 흉패에 더해지기 위해서 필수적인 항목이다. 

만일 하나님의 구속된 사람들인 우리가 변화되지 않는다면, 우리가 우리의 존재 안으로 새겨진 그리스도를 얻지 못한다면, 우리가 하나의 실체로 건축되지 않는다면, 우리가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을 통하여 그분의 표현에 연결되지 않는다면 우리는 우림과 둠밈을 위한 기초를 얻지 못한다. 

만일 우리의 상태가 많은 그리스도인의 상태처럼 형편없다면 우림과 둠밈을 위한 근거와 기초가 전혀 없을 것이다....

((우림과 둠밈의 사용에 관한 예))..아간의 죄의 발견(수7:16-21),  지파들에게 땅을 분배함(수 18:6-10), 하나님의 인도에 따라 원수들을 대항하여 싸움(삿 1:1-12, 20:18, 27, 민 27:21),  사울 왕이 하나님께 신실하지 않게 되었을 때 하나님은 그에게 대답 하시지 않음(삼상 28:6), 제사장 아히멜렉이 여호와께 묻고 사울을 피하여 도망하던 다윗에게 떡과 칼을 주어 도왔다(삼상 22:9.10,15)

.....흉패의 기능은 빛을 발하는 보석의 투명도에 달렸으므로 육체, 자아, 옛사람, 세상에 속한 것을 일소하고 깨끗케 됨으로 하나님의 인도를 받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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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Then the daughters of Zelophehad, the son of Hepher, the son of Gilead, the son of Machir, the son of Manasseh, of the families of Manasseh the son of Joseph, came near; and these are the names of his daughters: Mahlah, Noah and Hoglah and Milcah and Tirzah.

2.  And they stood before Moses and before Eleazar the priest and before the leaders and all the congregation, at the doorway of the tent of meeting, saying,

3.  "Our father died in the wilderness, yet he was not among the company of those who gathered themselves together against the LORD in the company of Korah; but he died in his own sin, and he had no sons.

4.  "Why should the name of our father be withdrawn from among his family because he had no son? Give us a possession among our father's brothers."

5.  And Moses brought their case before the LORD.

6.  Then the LORD spoke to Moses, saying,

7.  "The daughters of Zelophehad are right in [their] statements. You shall surely give them a hereditary possession among their father's brothers, and you shall transfer the inheritance of their father to them.

8.  "Further, you shall speak to the sons of Israel, saying, 'If a man dies and has no son, then you shall transfer his inheritance to his daughter.

9.  'And if he has no daughter, then you shall give his inheritance to his brothers.

10.  'And if he has no brothers, then you shall give his inheritance to his father's brothers.

11.  'And if his father has no brothers, then you shall give his inheritance to his nearest relative in his own family, and he shall possess it; and it shall be a statutory ordinance to the sons of Israel, just as the LORD commanded Moses.' "

12.  Then the LORD said to Moses, "Go up to this mountain of Abarim, and see the land which I have given to the sons of Israel.

13.  "And when you have seen it, you too shall be gathered to your people, as Aaron your brother was;

14.  for in the wilderness of Zin, during the strife of the congregation, you rebelled against My command to treat Me as holy before their eyes at the water. "(These are the waters of Meribah of Kadesh in the wilderness of Zin.)

15.  Then Moses spoke to the LORD, saying,

16.  "May the LORD, the God of the spirits of all flesh, appoint a man over the congregation,

17.  who will go out and come in before them, and who will lead them out and bring them in, that the congregation of the LORD may not be like sheep which have no shepherd. "

18.  So the LORD said to Moses, "Take Joshua the son of Nun, a man in whom is the Spirit, and lay your hand on him;

19.  and have him stand before Eleazar the priest and before all the congregation; and commission him in their sight.

20.  "And you shall put some of your authority on him, in order that all the congregation of the sons of Israel may obey [him.]

21.  "Moreover, he shall stand before Eleazar the priest, who shall inquire for him by the judgment of the Urim before the LORD. At his command they shall go out and at his command they shall come in, [both] he and the sons of Israel with him, even all the congregation."

22.  And Moses did just as the LORD commanded him; and he took Joshua and set him before Eleazar the priest, and before all the congregation. 

23.  Then he laid his hands on him and commissioned him, just as the LORD had spoken through Mos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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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수기 27장 (개요)

본 장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슬로브핫의 딸들의 고소를 들어줌(1-11).

2. 모세의 죽음에 대한 주목(12-14).

3. 그의 후계자에 대한 조처.

   (1) 모세의 기도가 있었다(15-17).

   (2) 하나님의 지명이 있었다(18 이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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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로브핫의 딸들의 순진성(민 27:1-11)

앞 장 33절에서 슬로브핫의 딸들이 고소했던 사실에 대해 언급되어 있다. 

그것이 특별히 주목되고 있는 것으로 보아 가장(家長)이 아들 없이 딸들만 거느린 이 경우는 유일한 것으로서, 이와 같은 경우는 그 당시 전 이스라엘에도 아직 일어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들의 경우는 다시 한 번 다른 조항에서 거론된다(36장).

그리고 그들은 이 판결대로, 기업을 소유하게 되는 것을 볼 수 있다(수 17:3, 4). 

혹자는 그들의 개인 사정이 그들의 경우를 한결 심각하게 만드는 그러한 것이었고, 따라서 그처럼 번번이 주목을 끌었다고 본다.

Ⅰ. 그들 자신에 의해 진술된 그들의 사면과 최고 법정에 제시된 탄원. 

그 법정은 왕으로서의 모세, 족장으로서의 방백들, 그리고 평민으로서 회중 또는 백성들의 대표로 선택된 장로들로 구성되었다(2절). 

이 엄숙한 회의는, 그들이 어려운 상황에 처했을 때 의논할 수 있었던 “회막 문” 부근에서 열렸다. 

이 젊은 여자들은 바로 그 회의에 문의했다. 왜냐하면 “고아를 위하여 판단하는” 것이 재판장들의 의무이기 때문이다(시 82:3). 

우리는 그들을 위해 옹호해 줄 어떤 사람들이 그들에게 있었다는 말을 발견할 수가 없다. 그러나 그들은 매우 슬기롭게 그들 자신의 소송을 처리했다. 

그런데 그 소송은 명백하고 정직하며, 그 자체가 변호가 되기 때문에, 그들은 그것을 더 잘 행할 수 있었다. 다음을 주목하라.

1. 그들의 탄원은 무엇인가? 

그들은 그들의 “아버지의 형제”가 차지한 가나안의 땅 중에서 자기들의 기업이 있게 해 달라는 것이었다(4절).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을 때(26:53), 그는 그 백성들에게 가나안 땅은 지금 계수된 자들에게만 분배해 주라는 것을 성실하게 알렸다. 

그러나 이 딸들은 자기들이 계수되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므로 그들은 이 규정에 의하면 기업 받을 것을 기대할 수 없었다. 

비록 그들의 아버지에게 이 딸들이 있었을지라도, 그 가족은 근절된 것으로 간주되고, 자손이 없는 것으로 기록되어야 했던 것이다. 

그들은 이것을 가혹하게 여겼다. 그러므로 그들은 자기들의 아버지에게 상속을 허락해 주고, 그에게 기업에 대한 권리를 달라고 간청했다. 

만일 그들에게 남자 형제들이 있었다면, 그들은 (그리스도께 부탁한 자처럼. 눅 12:13) 그에게 상속권을 명해 주도록 모세에게 부탁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남자 형제들이 없었기 때문에 그들은 소유권을 청했다. 여기서 다음과 같은 그들의 태도를 알 수 있다.

(1) 가나안 땅을 이스라엘에 주는 일에 관련되어 있는 하나님의 능력과 약속에 대한 강한 신념. 

비록 그 땅이 아직 정복되지 않았고, 손대어지지 않았고, 본토인이 완전히 점령하고 있었지만, 그들은 마치 그것이 이미 모두 그들 자신의 것이 된 것처럼, 그들의 몫을 신청했다. “하나님이 그 거룩하심으로 말씀하시되 길르앗이 내 것이요 므낫세도 내 것이며”(시 60:6, 7 참조).

(2) 약속된 땅에 장소와 이름을 차지하려는 진지한 열망. 

그 땅은 천국의 모형이었다. 그리고 만일 그들이 혹자의 견해대로 그것을 염두에 두었다면, 그리고 이 요구에 의해 영생을 소유했다면, 그들은 진정 슬기로운 다섯 처녀였다. 그리고 그들의 본보기는 우리가 온갖 열심을 품고 천국의 기업에 대한 우리의 소유권을 확신하도록 격려해 줄 것이다. 

은혜의 언약에 따라오는 기업의 시여(施輿)에는 남녀의 차별이 없다(갈 3:28).

(3) 그들의 아버지에 대한 참된 존경과 경의. 

지금 그들의 아버지는 죽었지만 그의 이름은 그들에게 소중하고 귀했다. 그러므로 그들은 그것이 “그 가족 중에서 삭제되지” 않게 해 달라고 애원했다. 자손들이 그들의 부모를 기억하여 갚아야 할 빚이 있는데, 그것은 제5계명이 요구하고 있는 바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

2. 그들의 해명은 무엇인가? 

그들의 아버지는 권리를 박탈당할 죄를 짓고 죽지 않았으므로, 그의 재산을 박탈당하고 죄를 더럽혔다고 할 수 없다. 

그는 단지 “자기 죄에 죽었다”(3절). 그러나 모세에 대한 어떤 반란이나 폭동에, 특히 고라와 그 무리의 행위에 가담하지는 않았다.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죄에 어떤 면으로도 가담하지 않았다. 그는 단지, 인간이 범하는 일반적인 죄에 대해서만 책임이 있었다는 얘기다. 

그 일반적인 죄에 대해서는 그 자신이 그의 주님 앞에 서든지 쓰러지든지 하게 될 것이었으나, 그것으로 인해서 그 자신이 모세와 족장들 앞에서 공개 재판을 받을 필요는 없었던 것이다. 그는 결코 그의 자손들의 권리 요구를 상실케 할 만한 어떤 일을 범하지는 않았다. 

부모들에게 있어서, 그들이 죽을 때, 비록 그들이 자기 자신의 죄에 대해 벌을 받을지라도 하나님께서 그 자손들을 징계할 만한 죄악을 그들이 범하지 않았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다면, 그것은 그들에게 위로가 될 것이다.

Ⅱ.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해결된 그들의 호소. 

모세는 그 자신이 판단을 내리는 무례함을 범하지 않았다. 

비록 그들의 요구가 정당하고 이치에 맞게 보였을지라도 그의 특명은 계수된 남자들에게만 그 땅을 나누어 주도록 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는 “그 사연을 여호와께 품하고” 그 분의 결정을 기다렸으며(5절), 하나님께서 그것에 대해 친히 판단을 내리셨다. 

하나님은 그 형편, 곧 나라의 형편뿐만 아니라 각 가정의 형편을 인지하시며, 그 자신의 뜻의 도모를 따라 그들에게 판단을 내리신다.

1. 그 청원은 인정되었다(7절). “딸들의 말이 옳으니 그들에게 돌릴지니라.” 

약속된 땅에서 기업을 구하는 자들은 그 구하는 것을 얻을 것이며, 그밖의 것들도 얻을 것이다. 

이러한 것들은 하나님께서 장려하시고 영예롭게 하실 요구다.

2. 그 문제점은 앞으로의 모든 경우를 위해 해결되었다. 

슬로브핫의 이 딸들은 그들 자신의 안위함과 그들 가문의 명예뿐만 아니라 여성의 영예와 행복도 고려했다. 

이 특별한 경우에 대해 어떤 사람에게 아들이 없을 때에는 그 재산이 그의 딸들에게로 돌아가야 한다는 일반적인 법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8절). 

그것은 장자에게처럼 그 맏딸에게 상속되는 것이 아니라 딸 모두에게 공통 상속되어 모두 같은 몫을 받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경우에 그 딸들에게 귀중한 배려를 해 주지 않으면서 단지 그 가문의 이름만을 지니게 하기 위해 그들의 권리를 박탈하는 자들은, 땅에 대한 그 딸들의 상속권올 그 땅에게 주어질 축복에 대한 상속권보다 더 귀중하게 만들게 될 것이다.

기업의 분배에 관해 더 자세한 지시가 있다(9-11절). 

“만일 어떤 사람에게 자손이 전혀 없다면 그의 재산은 그 형제에게 돌릴 것이요, 형제가 없다면 그 아비의 형제에게로 돌릴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자도 없다면, 그 때에는 그의 가장 가까운 친족에게 주어 얻게 할지니라.” 

우리(영국)의 법률도 이것과 정확히 일치하고 있다. 그리고 유대인 학자들은 여기에서, 만일 어떤 사람에게 자손이 없다면 그의 아버지가 생존해 있는 경우 그의 재산은 그의 형제들에 앞서 그의 아버지에게 돌아가리라는 것으로 그것을 해석하고자 하지만, 이 율법에는 전혀 그런 언급이 없다. 

그리고 우리(영국)의 일반 법률은 재산이 직계 조상에게로 돌려질 수 없다는 특별한 규정을 지니고 있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이 토지를 무조건 상속지로서 획득하고서, 그의 아버지의 생존시에 자손 없이 죽었을 때, 그의 아버지가 그 상속인이 될 수는 없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후사를 정하셨는가를 보라. 우리는 그의 섭리에 순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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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통고받은 모세(민 27:12-14)

Ⅰ. 하나님은 모세에게 그의 과오를, 즉 그가 다툼의 물가에서 경솔하게 말했던 사실을 들려주시고 있다. 

거기에서 그는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명예를 존중하여 신중하게 표현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하지 않았던 것이다(14절). 

비록 모세가 여호와의 종, 충성스러운 종이었을지라도, 그는 한때 그 분의 “명을 거역하고” 그의 의무를 다하지 못했다. 

그리고 비록 매우 존경할 만한 종이었고 높이 총애를 받았지만, 그는 실책에 대해 들어야 했고, 모든 세상도 역시 그것에 대해 거듭거듭 들을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죄에 대한 그의 진노를 보이실 것이며, 심지어 그에게 가장 가깝고 가장 소중한 자들에게까지도 그러하실 것이다. 

“지혜와 명예로 인하여 존경받는”(전 10:1, KJV) 자들은 항상 그들의 말과 행실에 조심하여, 언제나 그들이 말하거나 행하는 것이 그들의 안위나 신망, 혹은 그 양자(兩者)를 오랜 후에라도 감소시키지 않도록 해야 할 필요가 있다.

Ⅱ. 하나님은 모세에게 그의 죽음에 대해 말씀하고 계신다. 

그의 죽음은 그의 죄에 대한 벌이었다. 그러나 그 선고를 경감하고 완화시키는 데에, 그리고 그로 하여금 그것을 달게 받도록 하는 데에, 가장 도움이 될 수 있게 하기 위해 그것을 그에게 통고하고 있는 것이다.

1. 모세는 죽어야 한다. 그러나 그는 먼저 약속된 땅을 보는 만족을 누리게 될 것이다(12절). 

하나님은 그로 하여금 가나안을 보고 애타게 만들거나 그로 하여금 거기에 못 들어가도록 만든 그의 어리석음을 책망하려는 의도를 지니시지는 않았다. 뿐만 아니라 그것은 그에게 그러한 종류의 느낌을 주지도 않았다. 

단지 하나님은 그것을 명하셨고, 모세는 그것을 은총으로서 받아들였는데, 그의 시력은(우리는 그렇게 생각할 만한 이유를 갖고 있다) 놀랍게도 강하게 되고 확대되어, 그의 악의 없는 호기심을 충분히 만족시킬 정도가 되었다. 그래서 그 땅을 완전히 그리고 뚜렷이 볼 수 있었다. 

가나안의 이 풍경은 좀더 나은 나라에 대한, 즉 죽어서 가는 성도들을 매우 안위해 주는 천국에 대한 그의 믿음의 전망을 의미했다.

2. 모세는 죽어야 한다. 그러나 죽음이 “그를 끊지” 못한다. 

죽음은 단지 그를 그의 열조에게로 돌아가게 할 뿐이다. 그를 그보다 앞서 간 거룩한 족장들과 함께 안식하도록 데리고 갈 뿐이다. 

아브라함, 이삭, 그리고 야곱은 그 분이 택하여 사랑하신 백성이었고, 사망은 그를 그들에게로 돌아가게 했다.

3. 모세는 죽어야 한다. 그러나 그것은 단지 그보다 먼저 죽은 아론의 경우와 같을 뿐이다(13절). 

그리고 모세는 얼마나 쉽사리, 그리고 즐겁게 아론이 먼저 그의 제사장직을 벗어버리고 그 육신을 벗어버렸는가를 보았다. 

그러므로 모세는 죽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다. 단지 아론처럼 그의 열조에게로 돌아가는 것에 불과했다. 

이처럼 우리의 가깝고도 소중한 친족들의 죽음은 우리에 의해 다음과 같이 선용되어야 한다.

(1) 우리로 하여금 자주 죽음에 대해 생각하게 만드는 일로서, 우리는 우리의 조상이나 형제보다 나을 것이 없다. 

그들이 죽었다면, 우리도 죽어가고 있다. 그들이 이미 돌아갔듯이, 우리도 곧 돌아가게 된다.

(2) 우리로 하여금 두려움 없이 죽음에 대해 생각하도록, 심지어는 그것에 대한 생각을 스스로 즐기도록 격려하는 것으로서, 우리가 그들이 살았던 것처럼 살고 있는 것이라면, 죽음은 이러한 자들이 죽은 것처럼 죽는 것에 불과하다. 그리고 그들의 마침은 평화요, “기쁨으로 그들의 길을 다 달려간 것이다”(행 20:24, KJV 참조). 그렇다면 왜 우리가 음침한 골짜기에서 해 받음을 두려워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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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세의 후계자로 지명된 여호수아(민 27:15-23)

Ⅰ. 모세는 후계자를 달라고 기도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그가 죽어야 한다는 것을 말씀하셨을 때, 다른 곳에서는 그가 좀 더 살게 해 주시기를 간청한 사실이 나타나 있을지라도(신 3:24, 25), 그것을 허락받지 못했을 때, 그는 비록 그 자신이 하나님의 사업을 완수하는 영광을 얻지 못하더라도, 그것이 계속 수행될 수 있기를 진심으로 간구했다. 

투기하는 마음은 자기의 후계자를 사랑하지 않는다. 그러나 모세는 그런 마음을 가진 자가 아니었다. 

우리는 자라나는 세대를 위한 우리의 기도와 노력에 관심을 기울여, 우리가 음부에 있을 때에도 그들의 신앙이 융성해지고 사람들 중에 있는 하나님 나라의 세력이 보존되고 향상될 수 있게 해야 한다. 이 기도 속에서 모세는 다음과 같은 마음을 나타내고 있다.

1. 이스라엘 백성에 대한 자상한 관심. “여호와의 회중으로 목자 없는 양과 같이 되지 않게 하옵소서.” 

우리 구세주는 이 비유를 선한 목자가 없는 백성에 대한 연민으로 사용하시고 있다(마 9:36). 

재판장들과 사역자들은 백성의 목자다. 이들이 없을 때, 또는 이들이 제 직분을 다하지 못할 때, 백성들은 유리하여 흩어지기 쉽다. 

그리고 적들의 공격 대상이 되기 쉬우며, 목자 없는 양과 같이 양식이 모자라게 되고 서로를 해할 위험성이 있다.

2. 하나님을 “모든 육체의 생명의 하나님&rdqu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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