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21장 [338. 내 주를 가까이 하게 함..더 가까이 갈 때, 그보다 더 가까이 오심]
[Q이 보시기에 죽을만한 죄를 지은 적 없는 자란 의미에서] 무죄한 (자의) 피를 흘리지 말라고 명령하시는 이유는 피가 곧 생명이며, 그 생명은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 ....무죄한 피를 흘린다는 것은 결국 하나님의 형상을 파괴하는 것이자, 그의 생기를 말살하는 것이기에 반드시 그 고살자를 찾아내어 죽여야 하지만...결국 찾지 못하는 경우를 예로 들고 있다. ... (여기서 형제에게 폭언/무시/모욕/멸시-저주-조롱하는 행위까지도 지옥불에 들어갈만한 행위, 곧 사형 당할 만한 행위, 즉 내적인 살인 행위에 해당됨을 가르치셨음...마5:21-23) ....[너희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그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곧 "나 JC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그렇게 나 JC를 사랑하며) 너희도 서로 먼저 사랑하도록 하라"의 황금율이 그 배경에 깔려 있다.. ....외국인과 나그네, 고아와 과부를 선대하라고 하시는 Q의 마음을 읽을 수 있어야 한다. (결국 모든 시대에 걸쳐 만민 한 사람 한사람마다 이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요, 고아와 과부들인 것이다!!).. Q 말씀을 벗어나서 오히려 상대적 약자인 그들을 학대함으로써 무죄한 이의 눈물을 흘리게 한다는 것은 곧 하나님의 창조사건을 부정하는 행위..... 이런 점에서 사회적 공동복리증진에 대한 책임이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의 [당리당략-사리사욕에 치우쳐 오히려 사회정의와 공정 원칙을 훼손하고, 더 나아가 공동체를 호도하기 위해 침략전쟁을 유발-개시하는] 행동에 대한 심판은 이미 그 자체가 [사회적 정언 명령을 거스르는 거역이요, 결국 무고한 수많은 희생자들의 피흘림이 뒤따를 것이기에... 우주와 맞먹는 무게가 있는 것이다. 자칫하면 무죄한 피를 흘리고, 무죄한 눈물을 흘리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남에게 대접받고 싶은대로 남을 대접하라.]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인간관계에 대한 교훈으로 먼저, 판단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둘째는 개돼지에게는 진주와 거룩한 것을 주지 말라 하십니다. 예수님은 이제 기도응답에 대해 말씀하시고 황금율을 가르치십니다. 예수님은 황금율을 말씀하시기 전 기도응답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마태복음 7장 7-11절을 보십시오. “7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8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 9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는데 돌을 주며 10생선을 달라 하는데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11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이 말씀은 ‘제자들이 기도하면 하나님의 응답하신다’는 약속입니다. 기도하면 응답하신다는 말씀을 6번 반복하셨습니다. 사람들이 악해도 자식에게 좋은 것을 주는데, 하물며 하나님은 제자들에게 좋은 것을 줄 것이라 하십니다. 제자들은 이를 믿고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가장 좋은 것, 곧 성령을 주시리라> 이 말씀을 하시고 ‘그러므로’ 란 접속사를 쓰셔서 황금율을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황금율의 말씀은 사실 예수님의 주시는 기도 응답을(곧 성령을!!) 받는 사람만이 순종할 수 있는 말씀이란 뜻입니다. 마태복음 7장 12절을 보십시오. “12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누가복음에선 황금율이 ‘원수를 사랑하고 너희를 핍박하는 자들을 선대하라’는 말뒤에 위치하기에 황금율은 원수를 사랑하라는 취지의 말씀으로 볼 여지도 있습니다.)) 하지만 마태복음에서는 황금율이 기도 응답의 약속 뒤에 위치하며 인간관계의 일반 원리에 관한 말씀으로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을 받지 말라’는 말씀과 관련되어 메아리의 법칙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비판은 메아리와 같아 비판을 하면 비판을 받게 되고, 자신의 사용하는 비판의 잣대로 자신이 비판을 받습니다. 누가복음은 이런 인간관계에 관한 말씀을 자세히 기록했습니다. ‘비판을 하지 말라. 그리하면 비판을 받지 않을 것이요, 정죄하지 말라. 그리하면 정죄를 받지 않을 것이요. 용서하라. 그리하면 용서를 받을 것이요. 주라. 그리하면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너희에게 안겨주리라.’ 한마디로 인간관계는 준대로 받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황금율은 이 말씀들과 공통되는 정신을 가지고 있습니다. 황금율을 다시 보면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So in everything, do to others what you would have them do to you, for this sums up the Law and the Prophets.)“ 좀더 깊이 생각해 보면, 황금율은 두가지 요소로 구성됩니다. 먼저는 다른 사람이 나에 대해서 해 주길 원하는 것, 혹은 내가 다른 사람에게 시키길 원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어떤 사람이 나에 대해 해 주길 원하는 요구 내지 요구수준입니다. 다음은 내가 행하는 나의 행위 내지 행위 수준입니다. 모든 일에 있어((JC는 십자가 희생으로 자기를 내어주셨다!!) 다른 사람에게 요구하는 <바로 그대로 먼저 섬기고> 행하는 것이 황금율입니다. 남이 나를 사랑하길 원하면 사랑을 해주고, 남이 나에게 존경하길 원하면 존경하고, 인정을 받길 원하면 남을 인정해 주라는 말입니다. 비판을 받기 싫으면 비판하지 말고, 정죄를 받기 싫으면 다른 사람을 정죄하지 말아야 합니다. 용서를 받고 싶으면 용서를 하고, 다른 사람에게 받고 싶으면 주라는 이야기입니다. 낯선 곳에서 길을 물어볼 때 친절한 답변을 원한다면 우리에게 길을 물어주는 사람에게 친절하게 답변을 해 주라는 말입니다. 황금율은 2자간의 관계만이 아니라 3자간에도 적용이 됩니다. 우리는 나의 권위 아래 있는 사람이 나의 권위에 순종하길 원한다면 나도 권위를 가진 사람에게 순종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이 자식에게 효도받기를 원한다면 그는 자기 부모에게 효도해야 합니다. 황금율은 보기에 별 것이 아닌 것 같지만 황금율을 참되게 깨닫고 그 의미 그대로 순종하고자 할 때 우리는 엄청난 요구에 직면합니다. 특히 이상주의자들이나 눈이 높은 사람들은 스스로에게 감당할 수 없는 요구를 하고 있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날마다 부딪히는 구체적인 상황과 사람들에게 자신의 원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을 먼저 해 주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다 자기중심적입니다. 우리는 남의 아픔에 대해서 공감하고 다른 사람의 입장이 되기에 서툰 사람들입니다. 황금율은 그런 우리에게 공감을 요구합니다. 역지사지를 요구합니다. ((상대방의 입장에서 최고의 효율성과 유익 얻기 위해 필요한 수준을 충분히 관심을 두고 최대한 이해하려 해 보고나서야 비로소 자기 의견을 개진할 기회를 가지게 되고, 서로간에 양보할 수 있는 타당한 수준까지 타협점을 찾는 노력이 있게 됩니다. 특히 이것은 중재를 해야 하는 입장에서는 특히 더 중요합니다...왜냐하면 믿는이마다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그분의 모든 풍성-부요-충만을 가지고> 이 땅에 보냄받은 화목의 대사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어떤 사람의 허물을 알게 알았을 때 자신의 동일한 상황이라면 정죄가 아니라 불쌍이 여김을 받길 원한다면 우리는 그를 불쌍이 여겨야 합니다. 황금율을 순종하려면 먼저 그의 입장이 되어 봐야 합니다. 이상적인 사람이라면 황금율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요구수준은 엄청난 것이므로 황금율을 순종할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한편으로 황금율은 우리의 요구수준을 낮춥니다. 황금율은 ‘우리가 다른 사람에 대한 요구수준대로 행하라’는 말씀인 동시에 우리의 (할 수 있는) 행위수준만큼 요구하라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행동수준만큼 요구해야 하고 자신이 살아내지 못하는 것을 다른 사람에게 요구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우리는 요구수준만큼 살아내야 하며, 살아내는 수준만큼 요구해야 한다는 것이 황금율입니다. 황금율은 어떤 상황에든, 누구에게든 적용되는 진리입니다. 황금율은 메아리의 원리입니다. 자신의 허물에 대해서 정죄를 받고 싶지 않은 사람은 남을 정죄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잘못을 하더라도 다른 사람들에게 용서를 받기를 원한다면 다른 사람의 잘못을 용서해야 합니다. 심지어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주라. 그리하면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주리라.’ 먼저 주라 그러면 받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황금율은 진정한 의미에서 "먼저 <진정한 의미에서 유익하도록>주는 정신"입니다... 내가 간절한 필요를 가지고 구할 때 거절받기를 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므로 우리는 간절한 필요를 가진 사람에게 먼저 주어야 합니다. 황금율을 실천하는 삶은 구체적인 상황 속에서 ((코람데오의)) 지극히 선한 삶을 사는 것입니다....즐거워 하는 자와 함께 즐거워 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우는...진정한 의미에서의 역지사지의 정신으로 살아감 .....오늘 이 시대에 필요한 것은 바로 황금율의 정신입니다. 역지사지의 정신이요, 황금율에 순종하여 선을 행하는 정신입니다. 오늘 한국 사회는 황금율의 정신보다는 분열과 갈등으로 부글부글 끓고 있습니다. 지역감정, 진보와 보수의 갈등, 가진 자와 갖지 못한 자의 갈등, 청년과 노인의 갈등, 최근에는 남녀사이의 갈등이 가장 첨예한 문제가 되어 가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는 이런 갈등으로 부글부글 끓고 있고 갈등을 부추기고 강화시키는 분파주의자들이 득세합니다. 자신의 입장만을 주장하고, 자기 이익만을 추구하는 지역이기주의, 직역이기주의가 팽배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세상에서 예수님의 제자들은 황금율을 순종하여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더 깊이 묵상하고 붙들고 순종해야 합니다. 저도 이 말씀을 순종하여 살길 기도합니다. 내가 이 분열적이고 갈등이 많은 세상에서 조금이라도 ‘평화를 만드는 자’로 살길 기도합니다. 예수님은 이미 산상수훈에서 ‘화평케 하는 자들은peacemaker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컫음을 것임이요’ 이러 말씀을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은 화평케 하는 자들이며 황금율을 실천하는 자들입니다. 우리는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대접을 하는 사람일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이 가르쳐 주신 황금율에 순종하여 참된 제자의 삶을 살길 기도합니다
===죽인 자를 알지 못하거든 1.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어 차지하게 하신 땅에서 (보수자에 의한 것이 아닌 경우)피살된 시체가 들에 엎드러진 것을 발견하고 그 쳐죽인 자(=고살자)가 누구인지 (주님 임재 앞에서 세밀히 조사하여서도 결국) 알지 못하거든 2. 너희의 장로들과 재판장들은(백부장-오십부장-십부장 등 유사) 나가서 그 피살된 곳의 사방에 있는 성읍의 원근을 잴 것이요 3. 그 피살된 곳에서 제일 가까운 성읍의 장로들이 그 성읍에서 아직 부리지 아니하고 멍에를 메지 아니한 암송아지를 취하여 4. 그 성읍의 장로들이 물이 항상 흐르고 갈지도 않고 씨를 뿌린 일도 없는 골짜기로 그 송아지를 끌고 가서 그 골짜기에서 그 송아지의 목을 꺾을 것이요(이 멍에 매지 아니한 암송아지는 무죄하신 JC를 의미...예물이 아니라 "고살자를 주께서 그 언젠가 드러내실 바, 반드시 본 그대로 목이 꺾이리라"고 선포하는 행위임...성읍민에게 확실-정직한 경고의 의미) 5. 레위 자손 제사장들도 그리로 갈지니 그들은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사 자기를 섬기게 하시며 또 여호와의 이름으로 축복하게 하신 자라 모든 소송과 모든 투쟁이 그들의 말대로 판결될 것이니라 6. 그 피살된 곳에서 제일 가까운 성읍의 모든 장로들은 그 골짜기에서 목을 꺾은 암송아지 위에(위에서) 손을 씻으며 7. 말하기를 우리의 손이 이 피를 흘리지 아니하였고 우리의 눈이 이것을 보지도 못하였나이다 8. 여호와여 주께서 속량하신 주의 백성 이스라엘을 사하시고 무죄한 피를 주의 백성 이스라엘 중에 머물러 두지 마옵소서 하면 그 피 흘린 죄가 사함을 받으리니 9. 너는 이와 같이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정직한 일을 행하여 무죄한 자의 피 흘린 죄를 너희 중에서 제할지니라 ===여자 포로를 아내로 삼는 규정 ...아내가 이미 있으되?, 원방의 포로라 해서 당장의 욕정 따라 함부로 대해서는 결코 안됨<곧 욕정대로 제멋대로 함부로 성적 착취와 학대를 금하는 엄격한 규정이다> 10. ○네가 ((원방에))나가서 적군과 싸울 때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을 네 손에 넘기시므로 네가 그들을 사로잡은 후에 11. 네가 만일 그 포로 중의 아리따운 여자를 보고 그에게 연연하여 아내를 삼고자 하거든 12. 그를 네 집으로 데려갈 것이요 그는 그 머리를 밀고 손톱을 베고...스스로 머리 밀고 손톱 베는 의식은 이방인들이 그토록 귀히 여겼던 습속을 벗어버림을 의미 13. 또 포로의 의복을 벗고 네 집에 살며 그 부모를 위하여 한 달 동안 애곡한 후에(이 때 남편감의 됨됨이를 경험할 기회를 부여함이다) 네가 그에게로 들어가서 그의 남편이 되고 그는 네 아내가 될 것이요 14. 그 후에 네가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거든(이 때에도 이혼서가 필요하였다) 그의 마음대로 가게 하고 결코 돈을 받고 팔지 말지라 네가 그를 욕보였은즉 종으로 여기지 말지니라 ===장자의 상속권...이 자녀 산출 순서는 주께서 정하신 바이니, 주님의 주권을 존중하라..나머지에 대해서는 주께 맡겨드리라..영적 자녀 또한 그러하다.. 15. ○어떤 사람이 두 아내를 두었는데 하나는 사랑을 받고 하나는 미움을 받다가 그 사랑을 받는 자와 미움을 받는 자가 둘 다 아들을 낳았다 하자 그 미움을 받는 자의 아들이 장자이면 16. 자기의 소유를 그의 아들들에게 기업으로 나누는 날에 그 사랑을 받는 자의 아들을 장자로 삼아 참 장자 곧 미움을 받는 자의 아들보다 앞세우지 말고 17. 반드시 그 미움을 받는 자의 아들을 장자로 인정하여 자기의 소유에서 그에게는 두 몫을 줄 것이니 그는 자기의 기력의 시작이라 장자의 권리가 그에게 있음이니라 ===패역한 아들에게 내리는 벌...3대가 같이 살면서 Q경외하기를 가르쳤다!!...무엇보다도 매순간 <내주하여 계신> 주 바라보고 주 이름 불러 교통하며 <합당하게> 따르기, 18. ○사람에게 완악하고 패역한 아들이 있어 그의 아버지의 말이나 그 어머니의 말을 순종하지 아니하고 부모가 징계하여도 순종하지 아니하거든 19. 그의 부모가 그를 끌고 성문에 이르러 그 성읍 장로들에게 나아가서 20. 그 성읍 장로들에게 말하기를 우리의 이 자식은 완악하고 패역하여 우리 말을 듣지 아니하고 방탕하며 술에 잠긴 자라 하면 21. 그 성읍의 모든 사람들이 그를 돌로 쳐죽일지니 이같이 네가 너희 중에서 악을 제하라 그리하면 온 이스라엘이 듣고 두려워하리라 ===기타 규정 ...이처럼 오늘날 <나는 날마다 죽노라>의 실행이 중요..아침마다 새로운 아침이라야 22. ○사람이 만일 죽을 죄를 범하므로 네가 그를 죽여 나무 위에 달거든 23. 그 시체를 나무 위에 밤새도록 두지 말고 그 날에 장사하여(=밤을 주신 이유는 마땅한 죽음을 선포하고, 자고 쉼으로써 새 생명의 새로운 아침 맞도록 함이니)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시는 땅을 더럽히지 말라 나무에 달린 자는 하나님께 저주를 받았음이니라 ---------- 1. "If a slain person is found lying in the open country in the land which the LORD your God gives you to possess, [and] it is not known who has struck him, 2. then your elders and your judges shall go out and measure [the distance] to the cities which are around the slain one. 3. "And it shall be that the city which is nearest to the slain man, that is, the elders of that city, shall take a heifer of the herd, which has not been worked and which has not pulled in a yoke; 4. and the elders of that city shall bring the heifer down to a valley with running water, which has not been plowed or sown, and shall break the heifer's neck there in the valley. 5. "Then the priests, the sons of Levi, shall come near, for the LORD your God has chosen them to serve Him and to bless in the name of the LORD; and every dispute and every assault shall be settled by them. 6. "And all the elders of that city which is nearest to the slain man shall wash their hands over the heifer whose neck was broken in the valley; 7. and they shall answer and say, 'Our hands have not shed this blood, nor did our eyes see [it.] 8. 'Forgive Thy people Israel whom Thou hast redeemed, O LORD, and do not place the guilt of innocent blood in the midst of Thy people Israel.' And the bloodguiltiness shall be forgiven them. 9. "So you shall remove the guilt of innocent blood from your midst, when you do what is right in the eyes of the LORD. 10. "When you go out to battle against your enemies, and the LORD your God delivers them into your hands, and you take them away captive, 11. and see among the captives a beautiful woman, and have a desire for her and would take her as a wife for yourself, 12. then you shall bring her home to your house, and she shall shave her head and trim her nails. 13. "She shall also remove the clothes of her captivity and shall remain in your house, and mourn her father and mother a full month; and after that you may go in to her and be her husband and she shall be your wife. 14. "And it shall be, if you are not pleased with her, then you shall let her go wherever she wishes; but you shall certainly not sell her for money, you shall not mistreat her, because you have humbled her. 15. "If a man has two wives, the one loved and the other unloved, and [both] the loved and the unloved have borne him sons, if the first-born son belongs to the unloved, 16. then it shall be in the day he wills what he has to his sons, he cannot make the son of the loved the first-born before the son of the unloved, who is the first-born. 17. "But he shall acknowledge the first-born, the son of the unloved, by giving him a double portion of all that he has, for he is the beginning of his strength; to him belongs the right of the first-born. 18. "If any man has a stubborn and rebellious son who will not obey his father or his mother, and when they chastise him, he will not even listen to them, 19. then his father and mother shall seize him, and bring him out to the elders of his city at the gateway of his home town. 20. "And they shall say to the elders of his city, 'This son of ours is stubborn and rebellious, he will not obey us, he is a glutton and a drunkard.' 21. "Then all the men of his city shall stone him to death; so you shall remove the evil from your midst, and all Israel shall hear [of it] and fear. 22. "And if a man has committed a sin worthy of death, and he is put to death, and you hang him on a tree, 23. his corpse shall not hang all night on the tree, but you shall surely bury him on the same day (for he who is hanged is accursed of God), so that you do not defile your land which the LORD your God gives you as an inheritance. ======== 신명기 21장 (개요) 본 장에는 다음과 같은 규정이 나와 있다. 1. 살인을 행한 자가 도망하여 처벌할 수 없을 때, 그 피의 죄책을 이스라엘 땅에서 제거하는 방법에 관해(1-9). 2. 포로로 잡은 여자의 존귀를 보호해 주는 것(10-14). 3. 비록 총애를 받지 못하는 자라도, 그가 장자이면 그 권한을 부여해 주라는 것(15-17). 4. 반역하는 아들에게는 제재와 벌을 가하라는 것(18-21). 5. 아주 극악한 자의 몸일지라도 사슬에 묶어 두지 말고 정중히 묻어야 한다는, 인간의 육신에 대한 존엄성(22, 23). ----------- 숨겨진 죄악도 버리라(신 21:1-9) 극악한 살인자를 엄격하고 효과적으로 처벌하는 법이 앞에서(19:11 이하) 언급되었다. 그런 극악한 죄를 지은 자들은 잡아죽임으로써 이 땅에서 피의 죄책을 제거하라는 것이었다. 만일 살인한 자가 발견되지 않아 이렇게 처벌할 수 없을 때에는, 살인자가 처벌되지 않은 것이 그들의 태만 때문이 아니므로, 그 땅이 아무런 오염도 당하지 않으리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이럴 때에는 중대한 의식을 베풀어 그 죄에 대한 두려움과 증오를 나타냄으로써, 그 죄에 대한 죄책을 제거해야 한다. Ⅰ. 피살한 시체를 발견하고 그 쳐 죽인 자가 누구인지 알지 못하는 경우(1절). 하나님의 섭리는 때로 놀랍게도 흑암 속에 숨겨진 일들을 밝혀 내셨으며, 죄는 이상하게 그 정체를 드러내고야 말았다. 그리하여 “살인자는 반드시 밝혀지고야 만다”는 속담이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항상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 때로 마귀는 이들의 죄를 감춰 가며 이 세상에서 처벌받지 않으리라는 약속을 그럴듯하게 이행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것은 잠시 동안일 뿐이다. 살인자의 비밀이 드디어 밝혀지리니, “땅이 그 위에 잦았던 피를 드러낼” 것이다(사 26:21). 그리하여 정의가 보상되리라. 그리고 이 세상에서 처벌받지 아니한 자는 하나님의 의로운 심판 아래 영원히 서게 될 그 날이 오고 있다. 수많은 살인자와 사악한 자들이 이 세상에서 처벌되지 않더라도, 이들에게는 “이미 지난 것을 다시 찾으시는”(전 3:15) 심판의 날이 올 것이다. Ⅱ. 이럴 때에 할 일에 관한 지시. 1. 살인자를 찾기 위해서 목격자의 말을 들어보고 그 일의 전후를 엄밀히 조사할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리하여 죄지은 자를 찾아내기도 한다. 그러나 만일 어떠한 실마리도 잡을 수 없고 또한 누구를 문책할 수도 없을 때는, (1) “가까운 성읍의 장로들이” 이 일에 관여하게 되어 있었다(성읍에는 23개의 법정이 있었다). 만일 어느 성읍이 제일 가까운 성읍인지 의심스러울 경우에는 산헤드린 공회가 사람들을 보내어 정확하게 원근을 재도록 했다(2, 3절). 백성을 대표하는 자는 백성의 이익을 추구해야만 한다. 그리하여 성읍에서 권력과 명예를 지닌 자는 불평의 제거에 전념해야 하며, 지방과 나라에서 잘못되고 있는 것들을 시정해야 한다. 그러기에 가장 가까운 성읍에 있는 사람들은, 선을 위해 일하는 하나님의 종으로서 선한 영향력을 가장 크게 미쳐야 한다. (2)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도 이 엄숙한 일을 돕고 또 주재해야 한다(5절). 그리하여 이들은 율법에 따라 모든 일을 주관하며, 백성들을 대신하여 무죄한 피를 주의 백성 안에 머물러 두지 말기를 구하는 기도를 드려야 한다(8절). 이스라엘의 왕이신 하나님은 이들을 재판장으로 삼으사 모든 소송과 투쟁을 그들의 말대로 판결하도록 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이런 안내자와 감독자, 그리고 통치자를 두어 모든 경우에, 특히 앞에서 언급된 성스러운 일들에 대해, 그들의 의무를 다할 수 있었다는 것은 이스라엘의 한 특전이었다. (3) 이들은 암송아지를 험하고 경작하지 않는 골짜기로 끌고 가서 죽였다(3, 4절). 이것은 제물이 아니었다(왜냐하면 그것은 제단에 바쳐진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것은, 만일 그들이 살인자를 잡았을 때는 이렇게 하겠다는 엄숙한 선언이다. 그 암송아지는 멍에를 멘 일이 없는 송아지라야 했다. 어떤 자들은 이것은 그 살인자가 벨리알의 자손이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암송아지를 험한 계곡으로 끌고 왔다는 것은 그 사람의 흉악성을 의미하며, 이 땅에 피를 흘리는 불경으로 인해 그 땅이 불모로 변해 버린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만일 이후에도 살인자가 발견되지 않았다면, 암송아지가 죽은 이 골짜기에는 씨를 뿌릴 수도 없었고 경작할 수도 없었다고 말한다. (4) 장로들은 죽은 암송아지 위에서 물로 “손을 씻으며”, 그들이 이 무죄한 피를 흘리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누가 범죄했는지도 알 수 없다는 고백을 했다(6, 7절). 뿐만 아니라 살인자를 알고도 감추어 주어 도망할 수 있도록 도와주거나 권고한 일이 없다고 고백했다. 이런 관례로 다윗은 “내가 무죄하므로 손을 씻는다”고 말하고 있다(시 26:6). 그러나 만일 빌라도가 그것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면(마 27:24), 그는 이 의식을 악용하여, 무죄한 줄 알면서도 그리스도를 비방하고, 이 무죄한 피에 대해 자신은 아무런 죄가 없다고 주장한 것이다. “사실과 맞지 않는 항의는 무용한 것이다”(Protestatio non valet contra factum). (5) 제사장은 그 나라와 민족을 위해 기도해야 했다. 즉 하나님께 그들에게 자비하셔서 숨겨진 살인자가 받아야 할 심판을 그들에게 내리시지 않게 해 달라고 기도한다. 그 살인자는 그 성읍의 사람이거나 혹은 그 성읍 속에 지금 숨어 있다고 추측할 수 있다. 그러므로 제사장들은 그가 사람들 중에 섞여 더 이상 잘못된 일을 저지르지 않도록 기도해야 한다(민 16:22). “여호와여, 주의 백성 이스라엘을 사하소서”(8절). 우리가 사악한 자의 악한 행실을 들었을 때는, 그들의 악행으로 떨며 신음하는 우리 국토를 위해 하나님의 자비를 진심으로 간구해야 한다. 다른 사람들은 그들의 죄악으로 자기들의 피의 그릇을 채우고 있더라도, 우리는 용서의 기도를 드림으로써 죄의 그릇을 비워야 한다. 2. 하나님은 다음과 같은 의식을 행하도록 명하셨다. (1) 의식을 행함은 백성들에게 살인자에 관한 말을 들려줄 수도 있는 기회가 되어 어떠한 방법으로든지 그를 찾아내는 데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2) 그 피를 흘린 사람의 양심뿐만 아니라 그 피가 흘려진 땅도 부정하게 하는(우리 모두가 다윗처럼 “피 흘린 죄에서 나를 건지소서”[시 51:14]라고 기도해야 한다) 피 흘린 죄의 공포가 사람들을 사로잡을 것이다. 피로 물든 땅은 울면서 재판장에게 올바른 조치를 요구할 것이며, 그렇게 되지 않을 때 하늘에게 땅을 심판해 달라고 다시 요구한다. 살인자가 드러나지 않았을 때 그 나라를 죄에서 구해내기 위해 철저한 주의가 필요하다면, 살인자가 밝혀졌으나 처벌하지 않고 있는 경우에는 나라를 죄악에서부터 구출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이런 의식이 행해짐으로써 사람들은 알게 되고, 주의하게 되고, 그리고 살인자를 찾아내어 처벌하게 되었을 것이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선원들까지도 피 흘리는 죄는 두려워했다(욘 1:14). (3) 우리는 남의 죄에 동참하지 말고, “사후(事後)에”(ex post facto) 죄인들을 격려함으로써 공범자가 되지 말며, 사실에 대해 거짓 증거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만일 우리가 이들을 책하지도 않고 항의하지도 않는다면, 우리는 “열매 없는 어두움의 일에 참예하게”(엡 5:11) 된다. 하나님이 명하신 의식이 의미하듯이, 많은 사람 가운데 어떤 한 사람이 죄를 범했을 때, 고린도 교회는 회개했다. 그로 말미암아 사람들은 조심스러워지고 그들 자신을 깨끗이 하려 했으며, 거룩한 의분과 두려움과 복수심을 가지게 되었다(고후 7:11). --------- 포로 된 여인의 문제(신 21:10-14) 여기 나온 율법에 의하면 싸움터에 나갔던 자는 만일 그가 원한다면 그가 사로잡은 포로와 결혼할 수 있도록 허용되었다. 그들의 마음의 완고함으로 인해 모세는 이들에게 이러한 것을 허락해 주었다. 만일 이들에게 이렇게 결혼하는 일이 허용되지 않았다면, 이들은 자기들의 욕정대로 그들과 결혼하여 자기들을 불경스럽게 만들 것이고, 그리하여 군대는 곤경에 부딪히게 될 것이다. 이들은 이미 아내를 가지고 있었을 것이며, 유대인들의 말대로 다른 여인을 취하여 둘째 부인을 삼았을 것이다. 지나친 욕정으로 타락하게 되는 일은 여러모로 모세의 율법을 능가하고 있는 그리스도의 계명에 결코 합당치 않다. 복음서에는 아내를 가진 자가 또 다른 여인을 취하는 것이 허용되어 있지 않다. 왜냐하면 “본래는 그렇지 아니하기”(마 19:8) 때문이다. 아무리 어여쁜 여인일지라도 그 여인에게 욕정을 품는 것을 복음서는 금하고 있으며, 비록 오른팔을 잘라내는 것처럼 어렵기는 하나 모든 음흉한 욕망을 물리치고 극복하도록 명하고 있다. 그리하여 유대인의 신앙 이상으로 우리의 성스러운 기독교 신앙은 우리의 정절을 지키고, 영이 육(肉)을 다스려 영생을 발견하고, 더 나은 소망을 갖도록 권하고 있다. 그러나 이 병정들에게 이런 자유가 주어졌을지라도 그들은 이것을 남용해서는 안 된다. Ⅰ. 아무리 포로로 잡힌 여인이 탐나더라도 성급하게 그녀에게 달려가서 자신을 악용해서는 안 된다. “네가 만일 그 여자를 아내를 삼고자 하거든(10, 11절), 물론 그 여자의 부모의 허락을 받지 않아도 된다. 왜냐하면 그 여자는 네 포로이기에 마음대로 처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1. 너는 그 여자와 결혼하기도 전에 그 여자와 간음해서는 안 된다.” 이렇게 허용하는 것은, 이성과 덕을 배신하고 분노와 열기 속에서 짐승 같은 무지한 욕정을 만족시키라는 뜻이 아니라, 아무리 어려운 곤경에 빠지더라도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사람에게는 존귀하고 관대한 사랑을 베풀어야 한다는 것을 말해 주기 위함이다. 만일 그가 원한다면 그 여자를 아내로 삼아도 된다. 그러나 그 여자를 “창녀같이 대우”해서는 안 된다(창 34:31). 2. “너는 서둘러서 그 여자와 결혼하지 말고 그 여자를 너의 집에 몇 달간 그냥 있게 해야 한다”(12, 13절). 그동안 그는 이렇게 행하도록 한다. (1) 그는 그 여자와의 정을 멀리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 여자와 결혼한다 하더라도 나쁜 것은 아니지만(그 율법은 유효했다), 그 여자를 홀로 내버려 두는 편이 훨씬 좋은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 여자의 머리를 깎아 버리게 하여, 그 여자의 머리에 매혹당하지 않아야 한다. 그리고 손의 아름다움을 손상시키기 위해 “그 여자의 손톱을 자르게 하라”(난외에는 이렇게 읽었다)고 했다. “우리를 무절제한 사랑으로 유혹하는 것에 대한 우리의 애착을 조절해야 한다”(Quisquid amas cupias non placuisse nimis). (2) 이런 행동은, 그 여자가 우상 숭배를 버리고 유대교로 개종하겠다는 표적이었다. 그 여자가 머리를 자르고 손톱을 깎아 외모를 변경시킨다는 것은, 그 여자가 무지했기 때문에 타락했던 이전의 상태를 벗어나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다는 것을 뜻한다. 그 여자는 집에서 하나님을 배우며 그 분을 존경하는 것을 배워야 한다. 그리하여 만일 그 여자가 그것을 거부하고 우상 숭배를 계속 고집하면, 그는 그 여자와 결혼해서는 안 된다고 유대인들은 말한다. 믿는 자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하지 말라고 한 고린도후서 6장 14절의 말씀을 기억하라. Ⅱ. 불쌍한 포로를 학대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1. 그 여자의 나라에서 귀하게 나서 귀하게 키워졌지만 이제 하나의 평범한 이스라엘 군인과 결혼하려고 하나, 아무런 허락도 축복도 빌 수 없이 헤어져 있는 그녀의 “부모를 위하여 애곡하는” 시간을 갖도록 해야 한다. 이 슬픔이 정돈되어 다소 사라지기 전에나 그 여자가 포로 되어 있는 그 나라를 이해하고 받아들이기 전에 결혼을 강요하는 것은 퍽 불친절한 일이었을 것이다. 그 여자는 우상을 멀리하는 것을 애통하게 받아들이기보다는 기쁘게 여겨야 한다. 그리고 그녀에게 가깝고 귀중한 친척들에게만 자신의 정성을 기울일 수 있어야 한다. 2. 두 번째로 그 여자와 결혼할 뜻으로 그 여자를 그의 집에 들여왔으나, 마음이 변했을 때는 여느 죄수처럼 그 여자를 팔지 말고, 그가 처음엔 결혼하려 하여 그 여자를 기쁘게 하고자 하다가 나중에 실망시킨 것인즉, 만일 그 여자가 자기 나라로 돌아가기를 원하거든 자유로이 가게 해야 한다(14절). 그 여자를 조롱하여 괴롭히지 말아야 한다. 이것은 의와 명예의 율법이 특별히 사랑의 요구와 애정의 구애, 그리고 결혼의 약속에 있어서 얼마나 구속력이 있는지를 암시하고 있다. 그런 일들은 아주 엄숙한 일로서 신성시되어야 하고, 결코 조롱 삼아 하는 일이 되어서는 안 된다. ------------ 존귀한 장자권(신 21:15-17) 이 율법에서는 정당한 이유 없이 아버지가 맏아들에게 재산 상속을 거부하는 것에 대해 제재를 가하고 있다. Ⅰ. 여기에 나온 구절(15절)은 매우 교훈적이다. 1. 이것은 일부다처제의 단점을 나타내고 있는데, 모세의 율법은 일부다처제에 제한을 가하지 않았다. 그러나 일부다처제가 대단히 불편하다는 것을 알게 되자, 마침내는 이것을 폐지하게 되었고, 그것을 자기들의 율법으로 삼았다. 여기에 나타난 것을 살펴보기로 하자. 천 명 중에 한 명이긴 하지만 만일 어떤 남자가 두 아내를 가졌다고 하면 둘 중 한 아내는 사랑받는 자이며, 하나는 야곱이 레아를 미워했듯이 미움 받는 아내가 될 것이다(분명 한 사람은 사랑을 덜 받을 것이다). 이들은 서로 다투고 시기하고 혼란을 일으키고 사악한 일을 하여, 이들의 남편은 항상 불안하고 괴로워할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죄와 고통 중에 빠지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이들에게는 탐욕 속에 몸을 내어 맡기는 것보다 하나님의 율법에 따라 순종하며 만족하는 것이 훨씬 좋은 일이다. 2. 여기에는 또한 하나님의 섭리는 일반적으로 가장 약한 자들을 돕고 있다는 사실이 잘 나타나 있다. 그 분은 “부족한 지체에게 존귀를 더하신다”(고후 12:24). 왜냐하면 여기에서 말하는 장자는 “미움을 받는 자”의 아들이라고 가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야곱의 집안 역시 그러했다. “여호와께서 레아에게 총이 없음을 보셨다”고 했기 때문이다(창 29:31). 집안의 훌륭한 가장은 이 두 아내에게 현명하게 즐거움을 나누어 주어야 한다. 즉 한 아내에게 사랑을 받는 영예를 주었다면, 다른 한 아내에게는 장자의 어미가 되는 명예를 주어야 한다. Ⅱ. 부모들에 관한 율법. 부모는 자손에게 편견이 없어야 하고 공평을 기해야 한다. 여기서는 맏아들이 비록 사랑을 적게 받는 자의 아들이지만, 장자 상속권의 특권을 갖도록 되어 있어서, 아버지의 재산 중에서 다른 아들보다 두 몫의 재산을 받는다. 왜냐하면 그는 그 아비의 기력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그 아들은 가문을 지속시킬 것이며 “장사의 수중의 화살”처럼 큰 힘을 발휘할 것이다(시 127:4). 그러므로 장자의 권리가 그에게 있다(16, 17절). 그러나 야곱은 르우벤에게서 사실상 장자의 권리를 박탈했는데, 그것은 르우벤이 “미움을 받는 자의” 아들이었기 때문이 아니라 그가 근친상간을 범했기 때문이다. 야곱의 처사는 공평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이것을 전례로 삼아 부당한 처사를 내려서는 안 된다. 그리하여 아버지가 자손들에게 자기의 유언을 내리거나 재산을 상속하려 할 때, 조금 덜 사랑하는 자의 아들이라고 해서 어머니의 불행을 아들에게도 지울 수는 없는데, 그 이유는 그것이 그 아들의 잘못은 아니기 때문이다. 다음의 사실을 명심하자. 1. 하나님이 은총을 만인에게 골고루 내리시듯, 부모들은 그들의 사랑을 공평하게, 아무런 차별 없이 자녀들에게 나누어 주어야 한다. 2. 상속하는 것은 하나님의 섭리이므로, 이 일은 하나님의 섭리대로 따라야 한다. 하나님으로부터 명백하게 버림받지 않은 이상, 어떤 아들도 자기 아버지의 버림을 받아서는 안 된다. 살아 있는 자는 누구도 하나님에게 버림받았다고 감히 말할 수 없다. ----------- 패역한 자식은 처벌하라(신 21:18-23) Ⅰ. 패역한 아들을 처벌하는 것에 대한 율법. 부모가 자녀의 권리를 빼앗아서는 안 된다는 것을 첫 번째 율법이라 한다면, 그 다음 율법으로는 부모들의 은혜를 입은 자녀들은 그들의 부모에 대한 공경과 의무를 저버려서는 안 된다는 것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율법에는 불공평함이 없기 때문이다. 1. 여기에서 말하는 범죄자란 어떤 자인가? “완악하고 패역한 아들”이다(18절). 아이들이 나쁜 길로 들어서게 되는 것은 능력이 부족하거나 이해력이 느리고 둔하기 때문이다. 만일 어떤 자녀가 그의 부모에게 오만불손하고, 부모의 권위를 경멸하며 부모의 타이름이나 훈계를 받기 싫어하고, 그의 가족에 수치를 주며 그들을 애통하게 만들고, 가산을 탕진하고 또 방탕한 생활로 부모의 지위를 몰락시키려 한다면, 그는 “완악하고 패역한” 자다. 특히 “방탕하며 술에 잠긴” 자가 그러하다고 했다. 이것은 다음의 어느 것을 의미하고 있다. (1) 부모가 특별히 훈계하고 있던 죄를 저지른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여기서 그가 부모의 말씀에 순종치 않았다는 것을 분명히 알 수가 있다. 르무엘 왕이 바로 이런 훈계를 그의 어머니로부터 받고 있다(잠 31:4). 자녀들을 교육하는 데 있어서 부모는 그들이 술 취하고 싶어하는 욕망을 제어하고 술의 유혹을 받지 않도록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는 것을 명심하자. 그리하여 그들이 추악한 죄를 미워하고, 그런 일을 범하지 않도록 가르쳐야 한다. (2) 아들이 “방탕하며 술에 잠긴” 자가 되는 것은, 그가 부모에 대해 오만하고 완고하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서 술 취하는 것보다 더 치명적이고 뚜렷하게 사람을 사악한 행위로 이끌어가서 그것을 습관화시키는 것은 없다는 사실을 주목하자. 사람이 술에 취하면 법을 잊게 되고(잠 31:5), 부모를 공경하라는 근본적인 율법조차도 잊어버리게 된다. 2. 이 범죄자는 어떻게 처벌되는가? 그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고발인이 된다(19, 20절). 부모 스스로가 그 아들을 죽일 수 없을지 모르나, 그들은 성읍의 장로들에게 그의 죄를 고해야 하는데, 정말 애통하는 심정으로 “우리의 이 자식은 완악하고 패역합니다”라고 고발해야 한다. 악에 물들고 회개하기를 거부하는 자들은 자기들의 가장 가까운 친족과의 자연적인 애정의 관계마저 박탈당한다는 것을 명심하자. 그들의 존재(탄생)의 도구가 되었던 자들이 저들의 파멸의 도구가 되고 마는 것이다. 부모에 대한 의무를 저버린 자녀들은, 부모들의 애정을 받지 못한다 하더라도, 자기 탓으로 여겨야 하며 결코 부모를 원망해서는 안 된다. 어진 부모들은 자녀들이 반역아가 되어 정당한 벌을 받는 것을 보면 그 마음이 얼마나 아프겠는가! 그러나 하나님의 의의 심판이 임하는 날에는, 본능적인 사랑이 하나님의 사랑 속에 삼켜져서, 그들은 그 아들이 처벌을 받을지라도 그 심판에 복종하게 되리라. 왜냐하면 그 심판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게 되기 때문이다. 3. 그의 벌은 무엇인가? 공적으로 “그 성읍의 모든 사람이 그를 돌로 쳐 죽이게” 되어 있다(21절). 그리하여, (1) 부모의 권위가 살아나고, 인류 공동의 아버지이신 하나님께서도 부모의 권위를 질투하듯 중히 여기신다는 것을 보여 주게 된다. 부모의 권위란 모든 능력의 근원이신 하나님 자신에게서 파생되어 나온 최초의, 가장 역사 깊은 강물이기 때문이다. (2) 정당하게 처벌이 내린다면, 이 율법은 “아침마다 이 땅의 모든 악인을 멸하게” 되고(시 101:8), 그 땅에서 악한 것을 다 끊어 버려 타락이 번지지 않도록 막아 주리라는 것이다. 집안에서 올바르지 못한 자는 사회에서도 좋은 성원이 될 수 없다. (3) 이런 처벌은 의무를 제대로 행하지 않은 자녀들에게 두려움을 안겨 주었을 것이며, 이들은 두려운 마음으로 그들의 부모에게 순종했을 것이다. “온 이스라엘이 들으리라.” 유대인들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그를 처벌한 장로들은 어느 날 어느 법정에서 아무개가 완악하고 패역한 아들이었으므로 돌로 쳐 죽였다는 글을 써서 전국에 보내도록 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장로들이 내린 판결과 처벌을 공공연하게, 그리고 믿을 만하게 인쇄하여 각 곳에 보내어 “모든 사람이 듣고 두려워하였듯이”(in terrorem), 우리 법정에도 죄인의 판결문을 정확히 기록하여 “그 기록이 결코 분실되지 않도록”(in perpetuam rei memoriam) 했으면 좋겠다고 나는 가끔 생각해 본다. Ⅱ. 목매달아 죽인 악인을 매장하는 율법(22절). 나무 위에 매달아 죽기까지 버려두었던 시체들을, 우리도 그렇듯이 유대인들도 그대로 버려두지 못하게 했다. 신성 모독죄나 그 밖의 어떤 중죄를 지어 법정의 판결로 돌로 쳐 죽인 자의 시체는 종종 나무 위에 매달아 두기도 했다. 그리하여 그런 일을 세상에 알리고 그의 추행을 밝혀, 다른 사람의 마음에 두려움을 주며, 듣고 놀랄 뿐 아니라 직접 보고 두려워하게 했던 것이다. 그러나 나무에 단 시체를 밤새도록 두지 말고, 해가 지기 전에 묻도록 했다. (율법은 이르기를) “그런 자에게는 이런 처벌을 내리는” 것으로 족하다고 한다. 이것으로 일을 끝냈다. 그리하여 죄지은 자를 그의 죄와 함께 무덤 속에 묻어 버렸다. 1. 하나님은 이처럼 인간의 육신을 존중하고 극악한 죄인에 대해서도 관대히 대하려 하신다. 매질의 수를 율법으로 제한한 이유와 똑같은 이유로, 시체를 그대로 노출시켜 두는 시간은 율법으로 한정되어 있었다. 곧 “네 형제로 천히 여김을 받게 할까 하노라”(25:3). 사후(死後)의 처벌은 하나님께서 당신 자신에게 보류해 두신다. 우리 인간은 이에 대해 어떤 일도 할 수가 없다. 육신의 부활을 믿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 죄인의 몸을 사슬로 매단다거나 머리와 사지를 결박하는 일이 좋은 일인가 하는 것은 생각해 볼 만한 일이다. 2. 이런 행동에는 분명히 어떤 의식적(儀式的) 요인이 있다. 모세의 율법에 의하면 죽은 자의 몸에 손을 대는 것은 불경스런 일이었다. 마찬가지로, 죽은 육신은 땅을 더럽히므로 시체를 나뭇가지에 그대로 두지 않도록 했다. 3. 그러나 거기에는 그리스도와 관련된 어떤 이유가 주어져 있다. 즉 “나무에 달린 자는 하나님께 저주를 받았음이니라”는 것이다. 이것은 인간이 당하는 가장 끔찍한 치욕이고 모욕이다. 그리하여 다른 중죄의 처벌과 마찬가지로 이런 처형은 그 범인을 하나님의 저주 아래 두는 것이다. 하늘과 땅 가운데 매달려 있는 그를 본 자는 그가 이 하늘과 땅에서 버림받고 무가치한 자가 되었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므로 이 일이 너무 멀리까지 전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그를 밤새도록 매달아 놓아서는 안 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어떻게 우리를 위해 저주를 받으시고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해 주었는가를 알려 주기 위해 사도 바울은 나무에 달려 죽은 이 낙인찍힌 자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비교하여 예증하고 있다(갈 3:13). 모세는 가장 추악한 것을 의미할 때 “하나님께 저주를 받았음”이라는 구절을 성령에 의해 사용하고 있다. 후에 이 구절이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에 적용되었는데, 그 속에서 그리스도가 우리를 율법의 저주에서 속량해 주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하여 우리는 그 분의 사랑이 얼마나 커다란 힘인가를 느끼며, 그 분께 대한 우리의 믿음을 더욱 확고히 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박학한 패트릭 주교가 잘 관찰한 바대로 이 구절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에 적용된다. 이 죄인이 하나님의 저주를 받은 것과 같이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짊어지고 대신 치욕을 당하셨을 뿐만 아니라, 죄인을 해가 지기 전에 매달려 있던 나뭇가지에서 끌어내린 것과 마찬가지로 예수님도 저녁 때 저주받은 십자가에서 끌어내려지고 묻히시게 되었다(유대인들은 이것을 똑똑히 목격했다. 요 19:31). 그것으로 말미암아 죄는 사해졌고 율법은 완성되었다. 그리고 그에게 내려졌던 저주도 멈추게 되었다. 죽은 육신이 묻혀졌을 때 이스라엘이 맑고 깨끗하게 되었듯이,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온전한 속죄로써 교회는 깨끗하게 되었다. --- ---호크마 ===21:1 피살한 시체 - 이는 '고엘 법칙'에 따라 정당하게 죽임당한 자의 시체가 아니라<민35:19>, 불의한 죽임을 당한 시체를 가리킨다. 이는 곧 '살인하지 말라'(출20:13)는하나님의 계명이 파괴된 경우에 해당되는데, 더욱이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기업으로 주신 거룩한 땅 가나안에서 일어난 일이니 그 죄악이 더욱 크다. 들에 엎드러진 것 - 모세 율법은 들에서 죽임당한 시체를 아주 부정한 것으로 간주, 그 시체에 접촉된 자는 의식상(儀式上) 7일 동안 부정하다고 규정하였다(민19:16) 쳐죽인 자...알지 못하거든 - 이처럼 그 누군가가 범죄하였어도 사람들 사이에서는끝까지 범인이 밝혀지지 않을 수 있다. 이런 경우 일반 이방 국가에서는 영구 미제(未濟) 사건이 되어 흐지부지 끝나고 말지만, 선민 이스라엘 사회에서는 반드시 그 사건을 해결해야 했다. 즉 이는 이스라엘이 하나님 중심의 신정국가(神政國家)이니 만큼 그 피흘림에 대한 사건 해결도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뜻대로 처리되어야 함을 의미한다. 한편 본절의 상황은 하나님께서 살인자에 대한 실제적인 심판을 유보하신 탓이지 결코 의식상의 절차로 마무리 지으려 한 것은 아니다. 결국 살인자에 대한 하나님의 보응은 반드시 실현되고야 만다. 왜냐하면 그분은 결코 악을 간과하지 않으시며, 이미 지나간 일도 다시 찾아서 끝까지 심판하시는 공의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전 3:15;사 26:21). ===21:2 장로들과 재판장 - 이 중 '장로'(* ,자켄)는 각 지파 및 성읍에서 덕망이 높고 나이가 많아 모든 일에 대표자 역할을 감당하던 자이다(보다 자세한 내용은 본장1-9절 강해 '성경에 나타난 장로직'을 참조하라). 그리고 '재판장'(* ,솨파트)은 당시 백성들의 분쟁을 맡아 처리하던 행정관인 천부장, 백부장, 오십부장 및 십부장을 가리킨다(출18:25,26). 이들은 유사시 군대 장교로서의 역할도 감당하였다. 한편 이들 장로들과 재판장들은 살인 사건이 일어난 곳의 인근 성읍에서 파견되어 졌다(Josephus). 각 성읍의 원근을 잴 것이요 - 물론 이는 주검과 제일 가까운 성읍에 살인자가 있음을 뜻하지는 않는다. 단지 그 성읍이 피살된 시체로 인하여 가장 많이 부정함을 입었음과 또한 피흘린 죄에 동참했을 가능성이 가장 농후함을 의미할 뿐이다(Keil). 그러므로 그 성읍은 살인자의 죄책(罪責)을 대신 책임지고 제거해야 할 대속(代贖)의 의무가 있었다. ===21:3 멍에를 메지 아니한 암송아지 - 여기서 '암송아지'는 피흘린 죄를 위한 대속(大贖)제물이다. 그리고 '멍에'는 수레나 쟁기를 끌도록 소나 말의 목 부분에 메는 기구이다. 따라서 이 멍에를 멘 소나 말은 자유를 상실한 채 주인의 뜻대로 움직일 수 밖에없다. 그러므로 이러한 상태는 곧 죄로 말미암아 고통을 당하며, 자유 의지가 결여된채 죄의 종 노릇하고 있는 인간을 연상시켜 준다(롬6:15-20). 결국 그 같은 멍에를 메지 아니한 암송아지란 '흠 없고 온전한' 대속 제물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이는 죄인들을 위하여 대속 죽음을 당하신 '흠 없고 죄 없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한다(히4:15;벧전2:22-25). 민19:2 주석 참조. ===21:4 물이 항상 흐르고 - 팔레스틴에는 지형적으로 물이 흐르는 좁은 골짜기가 많이 있다(1:24;수13:16). 이러한 곳으로 암송아지를 끌고 가 죽인 것은 송아지의 피로 대속된 살인자의 죄악(罪惡)을 이스라엘 공동체로부터 흐르는 물에 영구히 떠내려 보내는 것을 의미한다(Lange). 갈지도 심지도 못하는 골짜기 - 인간의 손으로 경작할 수 없는 험한 골짜기를 가리킨다. 이러한 곳에서 송아지를 잡아 피흘리게 한 이유는, 땅에 뿌리워져 땅속으로 스며든 대속(代贖)의 피가 인간이 그 땅을 경작하므로 말미암아 다시금 밖으로 노출되는 사례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다(Keil, Pulpit Commentary). 송아지의 목을 꺾을 것이요 - 대속의 제물인 송아지의 피를 흘리게 하기 위함이다.이 '피흘림'은 죄를 속하는 데 있어서 없어서는 안 될 필수요소이다(히9:22).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땅 가나안을 피로써 더럽힌 살인죄에 대하여서도 역시 그 살인자의 피를 반드시 흘려야만 다시금 성결을 회복할 수 있었다(창9:5). 따라서 송아지의 목을 꺾어 피흘려 죽임은, 곧 알려지지 않은 그 살인자에 대한 처형의 상징이었다(Keil). 이와 관련하여 혹자는 "이 의식은 만약 살인자가 잡힐 경우 송아지에게 행한대로 그를 취급하겠다는 하나의 엄숙한 선언이다"라고 주장하기도 하였다(Mathew Henry). ===21:6 장로들은...암송아지 위에 손을 씻으며 - 공동 번역은 '암송아지 위에'를 '암송아지에 대고'로 번역하였다. 그러나 이로써는 어떠한 식으로 손을 씻었는지 분명치 않다. 아마 암송아지 위에 물그릇을 두고 거기에 손을 씻은 것 같다. 한편 장로는 한 성읍을 대표하는 자이다<1-9절 강해, 성경에 나타난 장로직>. 그러므로 장로들이 대속(代贖) 죽음을 당한 암송아지의 주검 위에 손을 씻은 것은 자신의 성읍이 피흘린 일에 대하여 무죄함을 선포하는 상징적 행위였다. ===21:7 말하기를(* , 아마르) - '확언하다', '명령하다', '요구하다' 등과 같은 다양한 뜻을 지니고 있는 단어로, 여기서는 어떠한 일에 대하여 증언하거나(RSV, testify) 선언하는것(NIV, declare)을 의미한다. 우리의 손이...우리의 눈이 - 의역하면 "저희들은 살인을 하지 않았고 살인한 자를알지도 못합니다"인데, 이는 장로들이 성읍을 대표하여 살인 사건에 대한 무죄(無罪)와 결백을 하나님께 증언하는 내용이다. 이 피 - 혹자(Lange)는 암송아지의 피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기도 하지만 타당치 않다. 이는 불의하게 살해당한 자의 피를 가리킨다(1절). ===21:8 속량하신(* , 파다) - 원뜻은 '끊다'이다. 이는 누구에게 얽매여 있는 자를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고 풀어 주는 행위를 가리킨다. 아울러 이는 원래의 권리를 회복시켜 주는 것을 뜻하는데, 여기서는 애굽에서 종 노릇하던 이스라엘을 하나님께서 해방시켜 주신 사건을 가리킨다(7:8;13:5). 사함을 받으리니(* ,카파르) - 원뜻은 '덮다'이다. 이는 암송아지의 피가 무죄한 자의 피흘린 허물을 덮어 가리워 줌으로써, 살인자의 죄책을 진 성읍 거민들이 마치 죄 없는 것인 양 인정되는 '대속의 원리'를 잘 나타내 준다. 우리가 예수의 보혈로 인하여 하나님께 죄 없다 인정함을 받는 것도 바로 이러한 원리 때문이다(엡1:7). ===21:9 여호와의 보시기에 정직한 일 - 여기서 '정직한'에 해당하는 '야솨르'(* )는'기뻐하다', '공평하다'는 뜻도 지니고 있다. 따라서 본절은 '하나님의 보시기에 기뻐하는 일'로 번역함이 더 낫다. 왜냐하면 이는 바로 피흘림을 통한 죄사함의 의식(儀式)을 가리키기 때문이다. 한편 Living Bible은 이를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행하는 일'로 의역하였다. 피 흘린 죄를...제할지니라 - 살인자가 누구인지 도무지 모를 경우, 이스라엘 공동체는 '순결한 암송아지 의식'(2-8절)을 통하여 무죄한 자를 피 흘리게 한 죄를 씻어낼수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의식으로 비록 죄사함 받았다고 하여 실제 살인자의 죄책마저 면제되는 것은 아니었다. 만일 이러한 의식을 치른 후에라도, 살인자가 잡혔을 경우 그는 살인죄의 대가를 치러야 했다(Talmud, Keil, Herxheimer, Knobel). ===21:10 대적과 싸움함을 당하여 - 여기서의 '대적'은 가나안 족속을 제외한 이방인들, 곧 약속의 땅 가나안에서 멀리 떨어진 성읍에 사는 족속들을 가리킨다(20:15). 그들을 사로잡은 후 - 여기서 '그들'에는 성인 남자가 포함되지 아니한다. 이스라엘은 이방 족속과 전쟁할 경우 여자들과 어린아이들은 포로로 사로잡을 수 있지만, 성인 남자는 다 진멸하도록 되어 있었다(20:13,14). ===21:11 포로 중...아내를 삼고자 하거든 - 이와 같이 이스라엘 백성이 다른 이방 여인과 결혼하는 것은 금지되지 아니하였다. 그러나 가나안 여인과 결혼하는 것만은 철저히 금지되었다(7:3). 그 까닭은 가나안 족속의 경우 그들의 돌이킬 수 없는 우상 숭배 풍습 때문이었다. 따라서 거기에 물드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가나안 족속과 전쟁할 경우 여인과 유아일지라도 포로로 사로잡지 말고 아예 그 성읍과 함께 진멸해 버리도록 지시하였었다(20:16). 한편 이스라엘인 중 가나안 이외의 이방 여인과 결혼한 대표적인 인물로는 구스 여자를 취한 모세(민12:1), 애굽 여인과 결혼한 요셉(창41:45), 모압 여인 룻을 아내로 맞아들인 보아스(룻4:13)등을 들 수 있다. ===21:12 집으로 데려갈 것이요 - 전쟁에서 얻은 노획물이나 포로를 개인 소유로 삼을 수 있다는 것은 이미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사항이다(20:14). 그렇지만 포로된 여자를 자신의 집으로 데려갔다고 해서 곧바로 아내로 삼을 수는 없었다. 정해진 규례와 법도를따라 그 여인으로 하여금 성결을 유지케 한 다음 이스라엘 공동체의 일원으로, 또한 자신의 아내로 삼을 수 있었다. 그 머리를 밀고 - 성경에서 머리털을 미는 행위는 대개 회개와 속죄를 상징한다(레14:9;욥1:20). 따라서 이는 종종 성결(聖潔) 예식으로도 이용되었다(민6:18,19). 여기서도 포로 된 여인의 머리를 미는 것은 자신의 옛 이방 모습을 벗어 버리고, 이스라엘 사회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는 의식적 행위로 볼 수 있다(Keil, Pulpit, Comme-ntary). 손톱을 베고 - 고대인들이 머리털 다음으로 소중히 여겨 함부로 베지 않던 것이 곧 손톱이다. 그런데 이러한 손톱을 깍는다는 것은 머리털을 미는 것과 마찬가지로 외면적 변화를 통해 이방인으로서의 이전 생활을 청산한다는 것을 뜻한다(Matthew Henry). ===21:13 포로의 의복을 벗고 - 이는 포로된 여인이 자신의 삶의 위치를 완전히 바꾸는 것을 상징한다. 즉 이제 그녀가 포로의 몸에서 자유의 몸으로, 이방인의 신분에서 이스라엘인의 신분으로 전환하는 것을 의미한다. 일찍이 세겜에 살고 있던 야곱 가족도 신앙 개혁을 단행할 때 이와 유사하게 의복을 바꾸어 입고 옛 관습들을 버렸었다(창35:2). 마찬가지로 오늘날 성도들 역시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새 사람을 입어야 한다(엡 4:22,23). 부모를 위하여...애곡한 후에 - 이처럼 남편 될 사람의 집으로 인도된 여인에게 자신의 부모를 위해 한 달 동안 애곡할 수 있는 기간이 주어진 것은 아마도 다음 두 가지 이유에서일 것이다. (1)이 기간을 통하여 그 여인이 자신의 고향이나 가족을 떠난 슬픔을 정돈하고 자신의 앞날을 준비할 수 있게 하기 위함이다. (2)특히 한 달이란 기간은 그 여인이 남편 될 자의 사랑이나 신실성 및 순수성 등을 알아보기 위해서도꼭 필요하였을 것이다(Lange). ===21:14 그 후에 - 정확히 어느 시점을 가리키는지 분명치 않다. 포로 된 여인이 한 달 동안 애곡한 후일 수도 있고, 두 사람이 부부가 된 후일 수도 있다. 다만 뒤에 '그를 욕보였은즉'이란 말이 나오는 것으로 보아 후자일 가능성이 크다. 기뻐하지 아니하거든 - '기뻐하다'에 해당하는 '하페츠'(* )의 정확한 의미는'마음에 들다', '좋아하다', '원하다'이다. 그러므로 공동 번역은 본절을 '더 이상 마음에 들지 않거든'으로 번역하였다. 아뭏든 이와 같은 자세는 처음의 '연련하던 상태'(11절)와 좋은 대조를 이룬다. 돈을 받고 팔지 말지라 - 즉 주인의 의사대로 자유롭게 매매할 수 있는 노예 중의 하나로 취급하지 말라는 뜻이다. 일단 그녀를 아내로 취하거나 취하려 한 이상, 어떠한 경우에든 그녀에게 그에 걸맞는 대우를 해주는 것이 기본 윤리이기 때문이다. 욕보였은즉 - 이에 해당하는 '아나'(* )는 '모독하다', '괴롭히다', '강탈하다' 등의 뜻이다. KJV는 이를 '비천하게 다루다'(humble)로, RSV는 '창피를 주다'(humiliate), 그리고 NIV는 '치욕을 주다'(dishonor)로 각기 번역하였다. 그런데 공동 번역은 보다 강경한 말인 '몸을 버려 놓다'로 번역하였는데, 이는 결국 그녀에게 입힌 육체적, 정신적 피해를 가리키는 것으로 봄이 옳다. 즉 그 여자를 아내로 취하거나 취하려 해놓고도 다시 버리므로 그녀에게 이중적인 상처를 입힌 것을 의미한다. ===21:15 두 아내를 두었는데 - 한 남자가 두 아내를 거느리는 것은 분명 하나님의 창조 질서에 위배되는 일이다(창2:24). 그러므로 본절에 나타나는 일부 다처제(一夫多妻制)는 당 시대의 악함과 계시의 미발전으로 인하여 잠정적으로 묵허(默許)된 것일 뿐임을알아야 한다. 이하에 나오는 규례는 이러한 기본 전제하에서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의실천 윤리로 주어진 것으로서, 곧 일부 다처제로 말미암아 빚어질 수 있는 불행한 사태에 대한 예방책을 미연에 제시해 주고 규례이다. 하나는 사랑을...하나는 미움을 - 당연한 결과이다. 유한한 인간은 그 마음을 두곳에 동시에 균등하게 집착할 수 없다. 장자 - '태를 열다'는 뜻의 '바카르'(* )에서 온 말로 '초태생'으로도 번역된다(출13:2;민8:16). 고대 사회에서 이러한 맏아들은 한 집안의 중추적인 역할자이자(창27:29) 그 아비의 으뜸가는 영광으로서(창49:3) 그 지위상 많은 혜택을 받았다.예를 들면 다른 아들들보다 두 배의 상속을 받는 특권(17절), 아비의 축복을 받는 특권(창27:36), 동생들에 대한 감독권(창37:22) 등이 있다. ===21:16 기업으로 나누는 날 - 곧 '유산을 아들들에게 상속시켜 주는 날'을 가리킨다. 이때 가장(家長)은 유언을 통하여 재산을 양도했는데, 사사로운 감정이나 편견을 떠나당시의 율법과 관습을 좇아 공평하게 유산을 분배하여야 했다. 즉 개인적인 미움이나사랑에 관계없이 장자(長子)로부터 시작해서 그 서열대로 순차에 맞게 유산을 나누어주어야 했다. 그런데 이때 만일 아들이 없는 경우에는 딸들로부터 시작하여 고인(故人)의 형제들, 고인의 숙부들 순으로 유산이 분배되었다(민 27:8-11). ===21:17 장자로 인정하여 - 물론 이스라엘 사회에 있어서도 생득적인 장자권이 후천적인 이유로 인하여 다른 아들에 넘어가는 경우가 있었다. 곧 에서의 경우처럼 장자권을 양도하거나(창25:29-34), 르우벤처럼 부도덕한 행실로 인하여 장자권을 상실하는 경우이다(창49:3,4;대상5:1). 그러나 아비의 편견이나 편애로 인하여는 장자의 마땅한 권리를 다른 아들에게 돌릴 수 없다는 것이 본절의 요지이다. 두 몫을 줄 것이니 - 유대 전승에 의하면, 장자에 대한 두 몫의 상속은 그 장자가죽었더라도 장자의 가족들에게 돌아갔지 결코 살아 있는 아들 중 최연장자에게 돌아가지는 않았다고 한다. 기력의 시작이라 - 부모에게 있어 장자는 그의 후손을 세상에 퍼뜨리는 첫번째 계기가 됨을 의미한다(창 49:3). 장자의 권리 - 창 25:31 주석 참조. ===21:18 완악하고 패역한 아들 - 부모에게 오만 불손할 뿐 아니라 그 권위를 무시하는 불효자를 가리킨다. 순종치 아니하고...듣지 아니하거든 - 자식에 대한 부모의 권위는 어느 시대, 어느곳을 막론하고 부정되어질 수 없는 신성한 것이다. 더욱이 신정(神政) 국가인 이스라엘 사회에서 부모의 권위는 십계명 속에서도 보장된(출20:12) 인륜(人律)의 제 1법칙으로서, 곧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다(5:16). 따라서 부모에 대한 불순종은 인륜을 저버리는 배은망덕한 짓이기도 하지만, 그 이전에 먼저 하나님의 법 질서를 파괴하는신성 모독 행위였다. ===21:19 성문에 이르러 - 이스라엘의 공공생활 중심지인 성문(창19:1)에서 공개적으로 아들의 잘못을 재판하기 위함이다. 성읍 장로 - 한 성읍의 주민을 대표하는 자로서 백성들간에 분쟁이나 문제가 발생하였을시, 재판을 관장하는 권한이 있었다<1-9절 강해, 성경에 나타난 장로직>. ===21:20 방탕하며 - 기본 동사 '잘랄'(* )은 '떨다', '흔들리다'란 의미이다(사64:1).이는 곧 도덕적으로 비천하여 스스로를 주체하지 못하고 해이한 모습으로 인생을 허비하는 상태를 일컫는다. 술에 잠긴 자 - 이에 해당되는 히브리어 기본형 '사바'(* )는 '들이키다','비틀거리다'란 뜻으로서, 곧 술로 고주망태가 되어 목불인견(目不忍見)의 추태를 부리는 상태를 가리킨다. 이는 고대 히브리 사회에서도 오늘날과 마찬가지로 술의 폐해가 심했으며, 술이 도덕적인 타락의 한 원인으로 작용했음을 보여 주는 말이다(창9:21;잠 31:5). ===21:21 돌로 쳐죽일지니 - 패역한 아들의 죄악은 비단 그 가정 뿐 아니라, 이스라엘 전체를 오염시킬 수 있는 것이므로 단호히 이를 징벌하여 이스라엘의 성결을 유지해야 했다. 온 이스라엘이 듣고 두려워하리라 - 유대 전승에 의하면, 이러한 처형이 있은 후그 성읍 장로는 '어느 날, 어느 법정에서, 어떠한 이유로 누구의 아들을 돌로 쳐죽였다'는 글을 써서 전국에 회람(回覽)시키도록 되어 있었다고 한다(Mattew Henry'sCommentary, Vol.I.p.813). ===21:22 그를 죽여 나무 위에 달거든 - 이미 처형당한 자의 시신(屍身)을 또다시 나무 위에 매달아 두는 것은 (1)죽은 자에게 모욕과 수치를 더할 뿐 아니라 (2)주위 사람들에게죄악에 대해 엄중히 경고를 주기 위함이다(창 40:19;민 25:4). ===21:23 밤새도록 두지 말고 - 히브리인에게 있어서 주검은 그 자체가 부정한 것이었다(민6:11). 그러므로 모든 주검은 어떤 형태로든 거룩하고 정결한 땅 가나안에서 계속 방치될 수 없었다. 더군다나 가증한 범죄로 인하여 처형당한 시체는 더욱 당일 땅 속에묻어 그 부정함을 이스라엘 사회로부터 깨끗이 제거하여야 했다(수8:29;10:26,27). 나무에 달린 자는 하나님께 저주를 - 하늘과 땅 가운데 매달려 있는 시체는 인간의저주는 물론 하나님의 저주하에 있음을 의미한다. 한편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신것도 바로 이러한 의미를 지니는 바, 따라서 그 죽음이 얼마나 치욕스러운 것이었는지를 알 수 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그 치욕스런 사건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오묘하고 은혜스런 십자가의 비밀을 밝히 드러내었다(갈 3: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