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14장 [389내게로 오라 하신 주님의] [ 545.이 눈에 아무 증거 아니 뵈어도][393.오신실하신주]...하나님한번도나를
@@가나안 정복 전쟁 기간 = 7년으로 보는 것이 합당(갈렙의 요단도하는 78세...헤브론 요구 당시 나이 85세<여호수아는 92세....110세에 사망>
===요단 서쪽 기업의 분배 1. 이것은 이스라엘 자손이 가나안 땅에서 받은 기업 곧 제사장 엘르아살(--애칭 = 나사로)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자손 지파의 족장들이 분배한 것이니라 2.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그들의 기업을 제비 뽑아 아홉 지파와 반 지파에게 주었으니 3. 이는 두 지파와 반 지파의 기업은 모세가 요단 저쪽에서 주었음이요 레위 자손에게는 그들 가운데에서 기업을 주지 아니하였으니 4. 이는 요셉의 자손이 므낫세와 에브라임의 두 지파가 되었음이라 이 땅에서 레위 사람에게 아무 분깃도 주지 아니하고 다만 거주할 성읍들과 가축과 재산을 위한 목초지만 주었으니 5.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것과 같이 행하여 그 땅을 나누었더라 ===갈렙이 헤브론을 기업으로 받다. ......각 지파가 땅 분배를 받았던 바, 분배받은 땅으로 나아가서 (주님 인도따라, 주만 바라봄으로써!!) 각자의 소유 삼는 (또 하나의) 전쟁에 나서기를 [설렘과 일말의 두려움..이것은 바로!! 여호수아가 이미, 모세의 임종 후 경험했던 감정이었다!!] 주저하고 있었다!!..누군가가 선봉, 곧 모델이 될 필요가 있었다!!..주님은 예비해두셨다!!..주님의 그 갈망을 깨닫게 해 주셨기에!! 갈렙은 [약속하신 말씀이 이미 있었고 그 때를 위해 대망-해낼 수 있도록 주 앞에서 그 자신을 훈련하며 준비하고 있었기에] 이제!! 이루어드리려 하고 있으며, 겸손히 요청하고 있다.<진정 주님의 마음을 시원하게 해 드리는 자의 모델이다!!...또한, <주님께 감사함으로써..> 그가 얻은 바 헤브론을 도피성으로 내어드리고 (그는 시골에 머무르고) 있었다..헤브론은 다윗시대 맨처음 왕도로 쓰이고 있다...아멘> 6. ○그 때에(=요단 서쪽 기업 분배에 있어서 맨 처음 유다 자손으로 하여금 제비뽑도록 하려하여, 그들이 나아 온 시점에, 그 직전에 갈렙이 성령 감동 가운데 언약에 신실하신 주님 확신함 안에서 [주께서 모세를 통해 주신 말씀 그대로 이룰 때가 왔음을 깨닫고!!, 유다 자손의 기업과 상관 없이 따로 그의 기업 주시기를] 발언하고 있고, 그것을 여호수아는 신실하신 주의 약속 이룸이기에!! 기쁘게 받아들이고 있다) 유다 자손이 길갈에 있는 여호수아에게 나아오고 그니스 사람 여분네의 아들 갈렙이 여호수아에게 말하되 여호와께서 가데스 바네아에서 나와 당신에게 대하여 하나님의 사람 모세에게 이르신 일을 당신이 아시는 바라 7. 내 나이 사십 세에 여호와의 종 모세가 가데스 바네아에서 나를 보내어 이 땅을 정탐하게 하였으므로 내가 성실한 마음으로 그에게 보고하였고 8. 나와 함께 올라갔던 내 형제들은 백성의 간담을 녹게 하였으나 나는 내 하나님 여호와께 충성하였으므로 9. 그 날에 모세가 맹세하여 이르되 네가 내 하나님 여호와께 충성하였은즉 네 발로 밟는 땅은 영원히 너와 네 자손의 기업이 되리라 하였나이다 10. 이제 보소서 여호와께서 이 말씀을 모세에게 이르신 때로부터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방황한 이 사십오 년(=38년+7년) 동안을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나를 생존하게 하셨나이다 오늘 내가 팔십오 세로되 11. 모세가 나를 보내던 날과 같이 오늘도 내가 여전히 강건하니 내 힘이 그 때나 지금이나 같아서 싸움에나 출입에 감당할 수 있으니 12. 그 날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이 산지를 지금 내게 주소서 당신도 그 날에 들으셨거니와 그 곳에는 아낙 사람이 있고 그 성읍들은 크고 견고할지라도 여호와께서 나와 함께 하시면 내가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그들을 쫓아내리이다 하니 13. ○여호수아가 여분네의 아들 갈렙을 위하여 축복하고 헤브론을 그에게 주어 기업을 삼게 하매 14. 헤브론이 그니스 사람 여분네의 아들 갈렙의 기업이 되어 오늘까지 이르렀으니 이는 그가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온전히 좇았음이라 15. 헤브론의 옛 이름은 기럇 아르바라 아르바는 아낙 사람 가운데에서 가장 큰 사람이었더라 그리고 그 땅에 전쟁이 그쳤더라 .....기럇 아르바 Kiriath-arba...키르야트아르바는 '4성읍'을 의미한다...기럇 아르바는 헤브론의 옛 이름이며(창 23:2, 창 35:27), 아르바의 이름을 따라 기럇 아르바라고 불렀다(수 15:54)....여호수아가 갈렙에게 기업으로 주었으며(수 14:14) 아르바의 아들인 아낙의 소생들이 거하였는데(수 15:14), 갈렙이 아낙 자손을 쫓아 내었다(수 15:14)....후에 유다 지파에서 레위 자손 그핫 가족에게 주었으며(수 21:11), 도피성으로 지정되었다(수 20:7). ...(갈렙이 속한) 유다가 이곳에 거한 가나안 사람을 쳐서 정복했다. 수 15:13-14에 의하며 헤브론의 정복은 갈렙의 업적인데, 갈렙은 여기서 유다 지파에 속한 것으로 간주된다.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유다 자손의 일부가 이곳에 정착했다(느 11:25). -------- KJV]제14장 1. And these are the countries which the children of Israel inherited in the land of Canaan, which Eleazar the priest, and Joshua the son of Nun, and the heads of the fathers of the tribes of the children of Israel, distributed for inheritance to them. 2. By lot was their inheritance, as the LORD commanded by the hand of Moses, for the nine tribes, and for the half tribe. 3. For Moses had given the inheritance of two tribes and an half tribe on the other side Jordan: but unto the Levites he gave none inheritance among them. 4. For the children of Joseph were two tribes, Manasseh and Ephraim: therefore they gave no part unto the Levites in the land, save cities to dwell in, with their suburbs for their cattle and for their substance. 5. As the LORD commanded Moses, so the children of Israel did, and they divided the land. 6. Then the children of Judah came unto Joshua in Gilgal: and Caleb the son of Jephunneh the Kenezite said unto him, Thou knowest the thing that the LORD said unto Moses the man of God concerning me and thee in Kadeshbarnea. 7. Forty years old was I when Moses the servant of the LORD sent me from Kadeshbarnea to espy out the land; and I brought him word again as it was in mine heart. 8. Nevertheless my brethren that went up with me made the heart of the people melt: but I wholly followed the LORD my God. 9. And Moses sware on that day, saying, Surely the land whereon thy feet have trodden shall be thine inheritance, and thy children's for ever, because thou hast wholly followed the LORD my God. 10. And now, behold, the LORD hath kept me alive, as he said, these forty and five years, even since the LORD spake this word unto Moses, while the children of Israel wandered in the wilderness: and now, lo, I am this day fourscore and five years old. 11. As yet I am as strong this day as I was in the day that Moses sent me: as my strength was then, even so is my strength now, for war, both to go out, and to come in. 12. Now therefore give me this mountain, whereof the LORD spake in that day; for thou heardest in that day how the Anakims were there, and that the cities were great and fenced: if so be the LORD will be with me, then I shall be able to drive them out, as the LORD said. 13. And Joshua blessed him, and gave unto Caleb the son of Jephunneh Hebron for an inheritance. 14. Hebron therefore became the inheritance of Caleb the son of Jephunneh the Kenezite unto this day, because that he wholly followed the LORD God of Israel. 15. And the name of Hebron before was Kirjatharba; which Arba was a great man among the Anakims. And the land had rest from war. -------- Joshua 14 Amplified Bible ===Caleb’s Request 1 Now these are the territories which the tribes of Israel inherited in the land of Canaan, which Eleazar the priest, and Joshua the son of Nun, and the heads of the households of the tribes of Israel apportioned to them as an inheritance, 2 by the lot of their inheritance, as the Lord had commanded [a]through Moses, for the nine tribes and the half-tribe. 3 For Moses had given an inheritance to the two tribes and the half-tribe beyond the Jordan; but he did not give [any territory as] an inheritance to the Levites among them. 4 For the sons of Joseph were two tribes, Manasseh and Ephraim, and no portion was given in the land to the Levites except cities in which to live, with their pasture lands for their livestock and for their property. 5 The Israelites did just as the Lord had commanded Moses, and they divided the land. 6 Then the [tribe of the] sons of Judah approached Joshua in Gilgal, and Caleb the son of Jephunneh the Kenizzite said to him, “You know the word which the Lord said to Moses the man of God concerning me and you in Kadesh-barnea. 7 I was forty years old when Moses the servant of the Lord sent me from Kadesh-barnea to scout the land [of Canaan], and I brought a report back to him as it was in my heart. 8 My brothers (fellow spies) who went up with me made the heart of the people melt with fear; but I followed the Lord my God completely. 9 So Moses swore [an oath to me] on that day, saying, ‘Be assured that the land on which your foot has walked will be an inheritance to you and to your children always, because you have followed the Lord my God completely.’ 10 And now, look, the Lord has let me live, just as He said, these forty-five years since the Lord spoke this word to Moses, when Israel wandered in the wilderness; and now, [b]look at me, I am eighty-five years old today. 11 I am still as strong today as I was the day Moses sent me; as my strength was then, so is my strength now, for war and for going out and coming in. 12 So now, give me this hill country about which the Lord spoke that day, for you heard on that day that the [giant-like] Anakim were there, with great fortified cities; perhaps the Lord will be with me, and I shall drive them out just as the Lord said.” 13 So Joshua blessed him and gave Hebron to Caleb the son of Jephunneh as an inheritance. 14 Therefore, Hebron became the inheritance of Caleb the son of Jephunneh the Kenizzite to this day, because he followed the Lord, the God of Israel, completely. 15 The name of Hebron was formerly Kiriath-arba [city of Arba]; for Arba was the greatest man among the [giant-like] Anakim. Then the land had rest from war. ===Footnotes Joshua 14:2 Lit by the hand of. Joshua 14:10 Lit behold. === 여호수아 14장 (개요) 앞 장에 이어져 가나안에서 취한 기업을 이스라엘 지파에게 분배하는 이야기가 계속된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땅을 분배하는 데 대한 전반적 방법(1-5). 2. 약속에 따라 갈렙은 헤브론을 자기 소유로 줄 것과 기업의 분배에 포함시키지 않도록 해 달라고 요구한다(6-12). 그리고 여호수아가 그 요구를 들어준다(13-15). 이 일은 그들의 본부가 아직 길갈에 있을 때 이루어졌다. ------ 가나안의 분배 (2)(수 14:1-5) 앞 장에서 요단 강 동쪽의 땅을 분배한 이야기를 서술한 후에, 이 역사가는 이제 가나안 땅에서 되어진 일들을 이야기한다. 이 땅들이 폐허로 버려져 “시랑의 굴과 타조의 처소”(사 34:13)가 되라고 정복한 것은 아니었다. 이 때까지 한 덩어리로 뭉쳐 밀접하게 진을 치고 살아왔고, 그래서 이들 대부분이 이와 같은 삶의 방법 외에는 다른 길을 모르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제는 제각기 흩어져서 새로 점령한 이 땅들을 채워 나가야 한다. “여호와께서 헛되이 창조치 아니하시고 사람으로 거하게 지으신지라”(사 45:18)라고 땅에 관해서 말씀하고 계신다. 만일 사람이 거하지 않게 된다면 가나안은 헛되이 정복한 것이 될 것이다. 그러나 모든 백성이 다 자기가 원하는 곳에 가서 거주할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해도 벨렉의 시대에 노아의 자손들 가운데 질서 있고 합법적인 거주지의 구분이 있었던 것과 같이(창 10:25, 32), 지금 야곱의 아들들 가운데도 이와 같은 가나안 땅의 구분이 있게 되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이 땅을 어떻게 분배할 것인지를 지시하셨고, 그 지시들은 여기서 엄격하게 지켜진다(민 26:53 이하). Ⅰ. 이 큰 일을 관리하는 자들은 총사령관 여호수아와 대제사장 엘르아살과 이제 자기들의 기업을 받게 되는 지파들 가운데서 하나씩 뽑힌 열 족장이었다. 이들은 하나님께서 수년 전에 이미 지정하셨다(민 34:17 이하). 그리고 그들 모두가 자기들의 대표를 한 사람씩 뽑아 이 일에 참여시켰기 때문에 이 일은 그들 모두가 만족하는 공정한 분배가 되었고, 보다 만족스럽게 각자의 기업에 거주하게 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Ⅱ. 이 배당이 이루어진 지파는 아홉 지파 반이었다. 1. 두 지파 반은 이미 정주하고 있었으므로 제외되었다(3절). 그들도 지금 가나안이 얼마나 아름다운 땅이며 그 땅이 얼마나 효과적으로 정복되어 가는지 직접 보게 되었다. 따라서 그들 중 더러는 자기들이 선택한 것을 후회하고 무슨 조건이든 간에 기꺼이 자기들이 요단 저편에서 얻은 바를 포기하고 자기 형제들과 함께 기업을 받았으면 하는 욕망을 가졌을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허락될 수가 없었다. 그들은 취소할 수 없는 선택을 했고 그들의 운명도 이제는 결정이 나 있었다. 그들 스스로가 그것을 결정했으므로 자기들의 선택을 지켜야 한다. 2. 레위 지파도 제외되었다. 이들을 위해서는 다른 방법이 마련되었다. 하나님께서는 이들을 따로 세우시고 그들을 다른 지파들보다 높이셨다. 그들은 다른 지파들 속에 섞여 들어가도 안 되고 그들과 함께 제비를 뽑아도 안 된다. 그렇게 되면 그들은 이 세상의 삶의 문제로 얽매이게 될 것이며 마땅히 해야 될 거룩한 기능을 감당할 수 없게 될 것이다. 3. 그러나 요셉이 므낫세, 에브라임의 두 지파를 이루었다. 그것은 요셉의 두 아들을 야곱이 양자로 삼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비록 레위 지파가 여기에 이야기되고 있는 바와 같이 빠졌다고 해도 지파의 수는 열둘을 유지하게 되었다. “레위 사람에게 아무 분깃도 주지 아니하고, 요셉 자손은 두 지파가 되었음이라”(4절). 그러므로 레위 지파가 없이 열두 지파가 되었다. Ⅲ. 그들이 택한 방법은 제비뽑기였다(2절). 제비를 “작정하기는 여호와께 있다”(잠 16:33). 이 일은 비중이 큰 경우에 사용되었으며, 그 외의 다른 방법으로는 모든 조건을 충족시킬 수 없을 때 사용되었다. 그리고 이 일은 하나님께 상소하는 엄숙한 종교적 예식으로 집단의 동의를 얻어 사용되었다. 제비를 뽑아 나누는 데 있어서, 1. 그들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지혜와 주권에 이 일을 맡기고서 그들 스스로가 결정하는 것보다 더 좋은 결정을 그들에게 내려줄 것으로 믿었다. “그가 우리를 위하여 기업을 택하시느니라”(시 47:4). 2. 그들은 그 결정에 따라 기꺼이 살겠다고 맹세했다. 각자는 자기 제비를 뽑아야 한다. 그리고 그것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성경은 이것과 비유해서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기업”을 얻을 것을 이미 기대하고 있다(엡 1:11). ejklhrwvqhmen(2820)이라는 말은 “우리가 제비 뽑아 얻었다”를 의미한다. 이것은 하나님의 작정에 의해서만 얻어지기 때문이다. 우리의 여호수아이신 그리스도는 “자기에게 주어진” 사람들은 누구에게나 영원한 생명을 주신다(요 17:2). -------- 갈렙의 청원(수 14:6-15) 각 지파의 몫을 결정하는 제비가 던져지기 직전에 갈렙의 특별한 몫이 그에게 할당되었다. 그는 여호수아 다음으로 이스라엘 모든 사람 가운데서 가장 연장자일 뿐만 아니라 그들 누구보다도 20년이나 더 나이가 많았다. 그가 40세였을 때 20세 이상의 모든 사람은 광야에서 죽었다. 그러므로 이 불사조와 같은 나이의 그가 이 땅을 나누는 일에 있어서 어떤 특별한 존귀의 표지를 부여받아야 한다는 것은 가당한 처분이었다. Ⅰ. 갈렙은 헤브론을 자기에게 주어 소유를 삼게 해 달라고 청원하며, 그것을 “이 산지”라고 불렀다(12절). 또 그 땅을 다른 부분들과 함께 제비에 포함시키지 말 것을 요청했다. 그리고 이 요구를 정당화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오래전에 모세를 통해서 그에게 바로 “이 산지”를 약속해 주셨음을 상기시켜 주었다. 이 문제에 대한 하나님의 뜻이 이미 알려졌기 때문에, 이 일을 가지고 더 이상 물어보기 위해서 제비를 뽑는다는 것은 쓸데없는 것이었다. 제비란, 이 일과 같이 이미 결정된 그런 일들이 아니라 우리가 달리 결정할 수 없는 그런 경우에 하나님께 상소하는 것이다. 갈렙은 여기서 “그니스 사람”이라고 불리고 있는데, 이것은 마치 로마에서 아프리카나 게르만과 같은 나라들을 점령한 위대한 장군에게 그 지역의 칭호를 붙여 주는 것과 같이, 여호수아가 그니스 사람들을 정복한 놀라운 승리 때문에 붙여진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1. 자신의 요청을 실현하기 위해서, (1) 갈렙은 유다 자손, 즉 그 지파의 두령들과 요인들을 데리고 나와 이 일을 제안했다. 유다 지파들은 이렇게 해서 자기 부족의 자랑거리인 그에게 기꺼이 자기들의 존경을 표했고 갈렙이 단독으로 몫을 받아야 한다는 데 동의를 표시했다. 갈렙은 땅을 나누는 일에 종사하도록 하나님께서 그 지파로부터 선택한 사람이었다(민 34:19). 그러므로 그는 자신의 사적인 유익과 만족을 위해서 위원으로서의 자기 권리를 이용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자기 형제들을 이끌고 나왔다. 그는 자신의 권리를 포기하면서까지 오히려 자기 지파의 이익에 관심하는 자처럼 보였다. (2) 갈렙은 자기의 청구에 관한 진술의 진실성을 여호수아 자신에게 호소했다. “당신이 아시는 바라”(6절). (3) 갈렙은 모세에 대해서 아주 정중하게 언급했다. 그리고 이 일이 여호수아에게도 결코 불쾌하게 들리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그도 알고 있었다. “하나님의 사람” 모세(6절), 그리고 “여호와의 종” 모세(7절)라고 했다. 모세가 말한 것은 하나님 자신이 말씀하신 것으로 그는 받아들였다. 모세는 하나님의 입이며 하나님의 대리자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일도 선하게 이루어져야 한다는 기대와 소망을 가지고 있었음이 당연하다. 하나님의 사랑의 표시보다 더 간절히 소원할 것이 과연 무엇이겠는가? 하나님의 약속의 이행보다 더 확실하게 기대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 2. 갈렙의 요청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들어 있다. (1) 이스라엘의 운명을 바꾸어 놓은 중대한 일, 즉 그 땅을 정탐하는 일에 있어서 그가 성실했던 점을 양심의 증거로 설명한다. 갈렙은 이 일을 맡고 파송되었던 열둘 중의 하나였다(7절). 그리고 그는 지금 그 일을 기쁘게 회상하며 이야기했다. 그러나 그것은 자만에서가 아니라 자기에게 양도된 땅을 생각하면서 이 이야기를 그 간청 속에 끼어 넣을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① 그는 그의 마음에 생각하는 그대로 보고했다. 즉 그가 가나안 땅에 대해서 아주 훌륭하게, 그리고 하나님이 그들로 하여금 그 땅을 소유하게 하실 것이라는 데 대해서는 아주 확신 있게, 또 가나안 자손들 특히 아낙 자손들이 그들을 대항할 반격에 대해서는 아주 경멸하는 자세로 이야기했는데, 이것은 자기가 생각하는 바를 진실하게 말한 것일 뿐이었다(우리는 그가 이렇게 한 것을 민 3:30; 14:7-9에서 볼 수 있다). 그는 이 일을 단순히 모세를 기쁘게 하기 위해서나 혹은 백성들을 진정시키기 위해서, 그리고 더더욱 동료들을 부정하는 마음에서 한 것이 아니었다. 자기가 말하는 바에 대한 완전한 확신과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확고한 신앙에서 그랬던 것이다. ② 이 일에 있어, 그는 “하나님 여호와를 온전히 좇았다.” 즉 그는 자기 의무에 충실했고 성실하게 이 일에 하나님의 영광을 목적했다. 그는 하나님의 사랑을 목적하고 하나님의 뜻을 따랐다. 그는 이 증거를 바로 하나님께로부터 얻어냈다(민 14:24). 그러므로 그가 이렇게 말한 것은 그 안에 있는 헛된 영광에서가 아니었다. 마찬가지로 자기들이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을 “성령이 친히 저희 영으로 더불어 증거하시는”(롬 8:16)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의 영혼을 위해서 행하신 바를 겸손하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이야기해 주어서 그들을 격려한다. 젊었을 때 온 마음으로 하나님을 순종하는 자들은 늙어서 명예와 위로를 소유하게 되며, 천국 가나안을 영원한 보상으로 소유하게 될 것이다. ③ 그는 또한 여호수아를 제외한 모든 형제와 동료들이 이 일에 반대 입장을 취할 그 때에 이와 같이 행동했다. “그들이 백성들의 간담을 녹게 하였으나”(8절)라고 했다. 이 결과가 얼마나 무서운 형벌이었는지는 너무나 잘 알려져 있다. 다른 사람들이 하나님을 버리고 그에게 듣지 않을 때 만일 우리가 그에게 순복한다면 하나님을 따름의 영광도 더욱 커진다. 갈렙은 이 일에 있어서 여호수아의 처신을 구태여 언급할 필요가 없었다. 그것은 너무나 잘 알려져 있었고, 그에게 아첨하는 것처럼 보이고 싶지도 않았을 것이다. “여호와께서 나와 당신에게 대하여 이르신 일을 당신이 아시는 바라”(6절)라고 이야기하는 것으로 충분했다. (2) 오늘날까지 한결같이 자기를 향한 하나님의 선하심을 받아 누려 온 경험을 이야기한다. 비록 그가 광야에서 잔존자들과 함께 방랑 생활을 하고, 그들이 그랬던 것처럼 38년이나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살아왔지만─그것은 그가 끝까지 막으려고 했던 죄 때문이었으며, 그는 이 죄에 전혀 관계가 없었다─그는 이 일을 불평하는 대신에 두 가지 면에서 그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자비를 언급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 ① 그 지겨운 행진 가운데서 당하는 보편적인 위험과 피로에서뿐만 아니라 그 자신과 여호수아를 제외하고 온 이스라엘 세대가 이런저런 방법으로 죽어 없어지는데도 불구하고, 광야에서 살아남게 해 주신 데 대해서 그가 하나님의 선하심을 얼마나 고맙게 느꼈을 것인가!(10절) “보소서. 여호와께서 이 사십오 년 동안을 나를 생존케 하셨나이다.” 광야에서의 38년 동안은 사막의 위험을 거치며 살아왔고 또한 전쟁의 위험 속에서 가나안의 7년을 살아왔다! 명심해 두자. 첫째로, 우리가 살아 있는 동안 우리를 살아 있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그는 능력으로 우리를 죽음에서 보호하시며 그 분의 풍성하심으로 끊임없이 생의 살 것과 위로를 공급해 주신다. 그 분은 “우리 영혼을 살려 두신다”(시 66:9). 둘째로, 우리가 더 오래 살면 살수록 우리 삶을 허락해 주시는 하나님의 선하심과 우리의 연약한 삶을 연장시켜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과 우리의 몰수된 삶을 참아 주시는 하나님의 인내를 더 깊이 깨달아야 한다. 그 분은 이 45년 동안 나를 살아남게 하셨는가? 이 45년간만 그 분은 우리와 함께하시는가? 혹은 더 오래 그렇게 하시는가? 혹은 덜 그런가? “여호와의 자비로 우리가 진멸되지 아니함이니이다”(애 3:22)라고 당연히 말해야 한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에 신세진 것이 얼마인가? 우리는 그것을 어떻게 갚을 것인가? 이토록 하나님의 섭리에 따라서 주어지는 삶을 그 분의 영광을 위해 바쳐야 하지 않겠는가? 셋째로, 우리 주변의 수많은 사람들의 죽음은 우리들로 하여금 우리를 남겨 두시는 하나님께 더 감사하게 하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우리의 좌우편에서 수천의 사람이 죽어 가는데도 우리 자신을 남겨 두셨다. 이 특별한 사랑은 우리들에게 오직 순종뿐이라고 하는 강력한 의무를 부과시킨다. ② 지금 그가 가나안 경내에 있을 뿐만 아니라 또 그 일을 할 수 있기 때문에 비록 85세의 나이지만 40세의 사람처럼 정력적이고 활달했다(11절). “나의 힘이 그 때나 이제나 일반이라.” 이것은 약속의 열매요 또한 그 이상이었다. 하나님께서는 그 분이 약속하시는 바를 주실 뿐만 아니라 더 주신다. 약속에 의한 삶은 생명과 건강과 힘, 그리고 약속된 그 삶을 축복과 위로로 만들어 주는 전부를 있게 해 줄 것이다. 모세는 그의 기도에서(시 90:10) “우리의 연수가…… 강건하면 80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갈렙은 이 규칙에서 제외되었다. 85세의 그의 건강은 편안과 기쁨이었다. 그는 “여호와를 온전히 좇음”으로써 이것을 얻었다. 여기서 갈렙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그리고 거인들의 손에서 빼앗아야 하는 자기가 요구한 몫에 대한 증명으로 이것을 이야기한다. 여호수아가 갈렙에게 “너의 구하는 것을 네가 알지 못하는도다”(막 10:39)라고 말할 수는 없다. 그는 자기에게 자격을 달라고 한 그 소유를 획득할 수 있는가? “그렇다”라고 그는 말한다. “왜 못 하는가? 나는 옛날이나 마찬가지로 지금도 싸울 수 있다.” (3) 이 산을 가지라고 모세가 하나님의 이름으로 그에게 약속했던 바를 이야기한다(9절). 이 약속이 그의 첫째 가는 주장이며 그가 믿고 있는 바다. “그의 갔던 땅으로 내가 그를 인도하여 들이리니 그 자손이 그 땅을 차지하리라”(민 14:24). 그러나 갈렙의 요구에는 보다 더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것 같고 여호수아는 그것을 알고 있었다. 쌍방이 다같이 이 산을 알고 있었고, 갈렙은 지금 이것에 대한 지정된 청원인이 되어 있는 것이다. 이 산은 정탐꾼들이 정보를 얻어 냈던 곳이었고, 여기서 그들은 아낙 자손들을 만났으며(민 13:22), 거인 같은 아낙 자손들의 모습이 정탐꾼들에게 부정한 인상을 심어 주었다(민 13:33). 갈렙은 거인들이 주둔하고 있는 이 도시 헤브론을 정복하는 일의 난관을 역설했지만, 큰 두려움으로 인해 온 땅을 점령하는 것조차도 실제로 실행 불가능하다고 추측하는 백성들의 이야기를 관찰한 후에 이들의 의견에 반대하고 자기가 생각하는 바를 이야기했던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 자기 몫으로 할당된 소위 이 “무적의” 도시를 탈취하게 해 달라고 용감하게 요구한 것이라고 상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내가 그것을 맡아 정복하겠습니다. 만일 내가 그것을 나의 기업으로 만들 수 없다면 나는 기업이 없이 살겠습니다.” “좋다”라고 모세는 말했다. “그 성은 그 때에 가서 너의 소유가 될 것이다. 싸워 이기고 그것을 차지하라.” 갈렙은 난공불락의 요새이기 때문에 이 곳을 선택했을 정도로 고상한 영웅적 정신의 소유자였고, 그것으로써 형제들을 고무시키기를 원했다. 그리고 45년이 지난 지금도 그의 정신은 물론 몸까지도 기력을 잃지 않았고, 그의 선택에 대한 마음도 한결같았다. (4) 비록 아낙 자손이 그 성을 소유하고 있다고 해도 그는 자기가 이 성의 주인이 되겠다고 하는 소망을 이야기한다(12절). “여호와께서 혹시 나와 함께하면 내가 그들을 쫓아내리이다.” 헤브론 도시는 여호수아가 이미 점령했다(10:37). 그러나 아낙 자손들이 거주하고 있던 이 성에 속한 산은 아직 정복되지 않고 있었다. 비록 헤브론에 사는 아낙 자손들이 멸망당한 것으로 이야기는 하고 있지만(11:21), 그것은 역사가가 모든 군사적 행동을 일괄해서 이야기를 하기 때문이고, 실제로는 땅을 분배하기 시작한 후에까지도 정복되지 않고 있었던 것 같다. 그가 아낙 자손들을 몰아내리라는 소망은 함께하시는 하나님의 현존에 근거한다. 그는 자기의 개인적인 용기를 의지해서 “나는 지금 40대 때와 마찬가지로 건강하여 싸움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그들을 쫓아내고야 말겠습니다”라고 이야기하지 않는다. 또한 그는 이 말을 하는 데 배석하고 있고 틀림없이 그를 도와줄 용맹무쌍한 유다 지파에게 자기 일을 의지하지도 않는다. 또한 그는 “만일 당신이 나와 함께하시면 내가 그것을 취할 수 있을 것입니다”라고 여호수아의 조력을 구하거나 힘입으려 하지도 않는다. “여호와께서 나와 함께하시면”이라고 할 뿐이다. 여기서 ① 그는 하나님이 자기와 함께하시는 일을 약간 회의적으로 이야기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의 선하심과 성실하심에 대한 어떤 불신에서가 아니다. 그는 이스라엘과 함께하시는 하나님의 현존을 일말의 주저도 없이 말했다(민 14:9).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하시느니라.” 그러나 그 자신으로는 이와 같은 사랑을 받을 가치가 없다는 겸허한 생각을 품고 “여호와께서 나와 함께하시면”이라는 표현을 빌린 것이다. 갈대아역에는 이 말이 “만일 여호와의 말씀이 나의 조력자가 되시면”이라고 되어 있다. 그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다. 그리고 때가 찼을 때 육신을 입으신 우리의 구원의 대장이시다. ② 그러나 그는 만일 하나님이 그와 함께하신다면 아낙 자손들을 정복할 수 있다고 하는 확신을 주저없이 표현한다. “만일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시면, 즉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롬 8:31) 누가 우리를 대적하여 이길 수 있겠는가?” 이것은 또한 만일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하시지 않으면 비록 이스라엘의 온 군대가 그를 도와준다고 해도 그는 이 곳을 점령할 수 없을 것이라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우리가 무슨 일을 맡든 간에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의 은총의 현존만이 성공의 전부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것을 간절히 구하며 조심해서 그것을 확인하며, 우리 스스로도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살아가도록 해야 한다. 우리는 또한 그 은총에 의지하며 어떤 난관에 처하게 될지라도 용기를 얻어내야 한다. 3. 전체적인 면에서 갈렙의 요구는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 하는 것이다(12절). (1) 그것은 이미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이기 때문이며, 이스라엘로 하여금 그가 그 약속을 얼마나 귀하게 여기고 있는지를 알게 하기 위해서였다. 비록 다른 사람들과 같이 제비를 뽑는다면 더 좋은 몫이 그에게 돌아올 수도 있겠지만, 그가 “그 날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이 산지를” 주장한다는 것은 가장 바람직한 것이다. 믿음으로 사는 사람들은 자연의 섭리를 통해서 받는 것보다 약속에 의해서 받은 것을 훨씬 더 귀하게 본다. (2) 비록 그 곳은 지금 아낙 자손들이 소유하고 있다고 해도 그가 그 원수들을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이스라엘로 하여금 알게 하여 자기를 본보기로 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계속해서 정복해 나가는 일에 활기를 불어넣기 원해서였다. 여기서 갈렙은 자기 이름으로 응답했는데, 그 이름은 “온 마음”을 뜻한다. Ⅱ. 여호수아는 그의 청원을 허락했다(13절). “여호수아가 그를 축복하고,” 그의 용기를 칭찬하며 그의 요청을 성원해 주고, 그가 요청하는 바를 들어주었다. 여호수아는 또한 그를 위해서, 그리고 그가 맡게 된 아낙 자손을 공격하는 일에 성공하도록 기도해 주었다. 여호수아는 족장인 반면 또한 예언자이기도 하다. 따라서 이 두 직책에서 여호수아가 갈렙을 축복해 주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무릇 작은 자가 큰 자에게 축복을 받기 때문이다. 헤브론은 갈렙과 그의 상속자들이 거주하게 되었는데(14절), 그것은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온전히 좇았기” 때문이다. 우리도 그 분을 따르면 행복해질 것이다. 한 마음의 경건은 한 마음의 사랑으로 관 씌워지게 될 것이다. 1. 우리는 여기서 헤브론이 아르바의 도시라고 하는 말을 듣게 되는데, 아르바는 아낙 사람 가운데서도 가장 큰 사람의 이름이다(15절). 우리는 사라가 죽어 묻힌 곳이 기럇 아르바(창 23:2)라는 것도 발견하게 된다. 이 주변을 돌며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이 생의 대부분을 가나안에서 살았으며, 그 가까이에 그들이 묻힌 막벨라 동굴이 있다. 아마도 갈렙이 이 땅을 정탐하러 왔을 때 이리로 오게 되었고, 그래서 다른 어떤 부분보다도 더욱 이 곳을 욕심내게 되었을는지도 모른다. 2. 우리는 이후의 역사에서 헤브론이 어떻게 되었는지 들어보자. (1) 그것은 제사장들에게 속한 성읍들 중의 하나가 되었고(수 21:13), “도피성”이 되었다(수 20:7). 갈렙이 그 산을 소유하게 되었을 때 그는 그 주변의 마을들로 만족하고, 자기 것을 하나님께 바치는 것이 결코 작은 일이 아니며 이보다 더 좋은 증여는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생각하고 그 성을 자기 자손에게 물려주지 않고 하나님을 섬기는 자들인 제사장들에게 기꺼이 바쳤다. (2) 이 성은 왕도였고 다윗의 통치 때부터는 유다 왕국의 수도가 되었다. 사람들은 다윗을 만나기 위해 이 성으로 드나들었고 다윗은 거기서 7년을 다스렸다. 이처럼 갈렙의 성은 높이 존귀를 받았다. 그러나 그의 가계 안에 오랜 후에 나발과 같은 오점이 생겨났다는 것은 참으로 유감된 일이다. 그는 “갈렙의 집안”을 이어받은 사람이었다(삼상 25:3). 아무리 갈렙과 같이 선한 사람이라고 해도 자기의 공덕을 후대에 계속 상속시킬 수는 없었다. -------- ===호크마== =====14:1 엘르아살과...여호수아와...지파의 족장들 - 가나안 땅의 기업 분배 담당자는 대제사장 엘르아살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 그리고 각 지파 족장들로 구성되었다. 이처럼 이들이 기업 분배를 맡게 된 것은 민 34:16-18에 따른 것으로, 그곳에서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이들이 기업 분배를 맡아야 할 책임자들임을 이미 지시해 주셨다. 그런데 이들은 전체 이스라엘 공동체를 대표하는 자들로서, 곧 엘르아살은 종교적인 면에 있어서, 여호수아는 정치.군사적인 면에 있어서, 그리고 족장들은 혈연적인 면에 있어서 이스라엘의 대표들이다. 이와같이 기업 분배에 있어서 대표자들이 적절히 선발된 것은전체 이스라엘의 국가적인 일치와 연합을 보여준다. 따라서 기업 분배는 편파적이거나 분쟁을 일으키지 않고 은혜스러운 분위기 속에서 모든 백성들에게 공평하고 만족스럽게 수행되었을 것이다(Pulpit Commentary). 엘르아살 - 이 이름을 가진 사람이 구약 성경에는 6명, 신약 성경에는 1명이 나오는데, 여기서의 엘르아살은 아론의 세째 아들로서(출 6:23), 아론의 사후에 대제사장직을 수행한 자를 일컫는다(민 20:25-28;신 10:6). 엘르아살(Eleazar)은 광야 행진 도중에는 언약궤와 성소 기구들을 맡은 고핫 사람들을 지휘하였고(민 3:30-32), 또한 성막과 성소의 모든 기구와 등유와 분향할 향품 등을 관리할 책임을 맡았다(민 4:16). 그는 고라와 다단과 아비람의 반란 이후에 유명해졌으며(민 16:25-40), 여호수아를 이스라엘의 새로운 지도자로 안수하였다(민 27:19-23). 그리고 그의 아들 비느하스가 미디안을 정복하고 전리품을 가져왔을 때, 나머지 반을 회중에게 나누어준 적이 있다(민 31:25-27). 모세 사후 가나안 정복 후에는 여호수아를 도와 가나안 땅 분배 작업을 하였으며(17:4;민 34:27), 죽은 후에 에브라임 산지에 장사되었다(24:33). 여호수아 - 출 17:9;민 13:16 주석 참조. 이스라엘 자손 지파의 족장들 - 이들은 열 지파에서 선발된 족장들로서 곧 10명이었는데, 그 자세한 명단은 민 34:19-28에 구체적으로 나타나 있다. 그런데 이스라엘 12지파 중 10지파의 족장들만이 여기 언급된 것은 두 지파(엄밀히는 두 지파 반)는 이미 요단 동편에서 땅을 분배받았으므로(12:6;13:8), 여기 요단 서편 땅 분배에서는 제외되었기 때문이다(3절). 분배한 것이 이 아래와 같으니라 - 이 구절은 14:1-19:51에 기록되어 있는 가나안 땅 분배에 관한 내용의 서론이다. 즉 12장까지는 가나안 땅의 정복에 관해서, 그리고 13장에서는 요단 동편 땅의 분배에 대해서 각각 기록되어 있는데, 드디어 본장에서부터는 여호수아의 지휘 하에 그들이 정복한 요단 서편 땅의 분배가 아홉 지파 반을 대상으로 시작된 것이다. =====14:2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대로...제비 뽑아 - 기업 분배의 방법이 제시되고 있는데, 그 방법은 곧 '제비 뽑기'였다. 이와같이 제비 뽑기로 기업을 분배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민 26:52-56;33:54;34:13 등에 이미 규정되어 있었다. 그 규정에 의하면, (1) 이스라엘 백성들의 각 지파는 그들의 인구 비례에 따른 기업 분배를 원칙으로 하되, (2) 우선적으로 인구의 많고 적음에 관계없이 제비뽑기로 기업을 분배 해야 하며, (3) 그리고 결정된 땅은 각 지파 조상의 이름을 따라 얻어야 했다(민 26:52-56). 한편, 제비를 뽑는 방법을 확실히 알 수는 없지만, 카일(Keil)은 랍비들의 견해에 동의하여 두 개의 항아리를 사용하여 제비 뽑기를 하였을 것으로 추측하였다. 즉 항아리 하나에는 각 지파의 명칭을 기록한 쪽지를 넣고, 다른 하나에는 지파 수에 맞게 각각 상이한 기업에 대하여 기록한 쪽지를 넣어서, 지파의 명칭을 기록한 쪽지를 넣은 항아리에서 먼저 제비를 뽑고, 다음에 기업에 대하여 기록한 쪽지를 넣은 항아리에서 제비를 뽑아 이 둘로써 지파와 기업을 연결시켜 기업 분배를 결정짓게 된다는 것이다(Keil & Deli-tzsch, Vol. 2. p. 145). 이와같이 제비 뽑기를 통해 기업을 분배한 것은 기업 분배가 결코 인간의 생각이나 권위에 의해 좌우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절대 주권에 의해 되어지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당시 백성들은 이러한 사실을 의심없이 받아들였다(잠 16:33;시 47:4). 실제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처럼 제비 뽑기로 결정된 것에 대하여 잘 순종하였다. 그리고 여기서 우리가 알아두어야 할 또 하나의 사실은 당시의 제비 뽑기는 단지 대략적인 지역의 위치에 관한 것이었지, 처음부터 정확한 지역의 범위를 설정한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따라서 각 지파의 뚜렷한 경계선은 이후 각 지파가 땅을 소유하고 정복해가는 과정을 통해 점차적으로 설정되어졌던 것이다(Calvin, Keil, Clericus). 아홉 지파와 반 지파에게 주었으니 - 본래 이스라엘의 지파수는 야곱의 12아들들의 수에서 기인한 것이었다(창 35:22-26). 그런데 그중 '레위 지파'는 하나님께 온전히 바쳐진 지파로 간주되어 공식적인 지파수에는 들지 않게 되었다. 대신 요셉이 두 지파몫을 감당하게 되었는데, 곧 그의 두 아들 므낫세와 에브라임을 통해서였다(창 48:5, 6). 따라서 이스라엘은 여전히 12지파로 구성되었는데, 그중 두 지파 반(르우벤 갓, 므낫세 반 지파)은 요단 동편 지역(Trans-Jordan)의 땅을 이미 모세로부터 분배받았기 때문에(12:6;13:8;민 32:33), 여기 요단 서편 지역의 땅을 여호수아로부터 분배받을 수 없었다. 따라서 요단 서편 땅을 분배받을 지파는 나머지 아홉지파 반이었다. 그리고 제비를 뽑은 순서는 (1) 유다 --> (2) 에브라임 --> (3) 므낫세 반 --> (4) 베냐민 --> (5) 시므온 --> (6) 스불론 --> (7) 잇사갈 --> (8) 아셀 --> (9) 납달리 --> (10) 단 지파 순이었다. =====14:3 두 지파와 반 지파의 기업은 모세가 요단 저편에서 주었음이요 - 여기서 '요단 저편에서'란 요단 강 동편 땅을 가리킨다(13:8-13). 그리고 두 지파 반 중에서 '르우벤 지파'는 13:15-23에, '갓 지파'는 13:24-28에, 그리고 '므낫세 반 지파'는 13:29-31에 그 분배받은 땅이 각기 기록되어 있다. 따라서 자세한 내용은 해당 부분을 참조하라. 레위 자손에게는...기업을 주지 아니하였으니 - 이미 13:14, 33절에서 언급된 말인데 여기에서 다시 한번 언급되고 있다. 이처럼 거듭 언급되고 있는 것은 어떻게 해서 요단 서편의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차지하게 될 지파가 아홉 지파 반인가(2절)를 설명하기 위해서이다(J.J. Lias). 즉 야곱의 아들들은 모두 12명으로, 이들 가운데 11명은 각각 1지파씩으로만 구성되었으나, 요셉만은 그의 두 아들, 즉 므낫세와 에브라임의 2지파로 구성된다(창 48:5). 따라서 이스라엘은 실제 13지파 였다. 그러나 지파 수를 13지파로 언급한 곳은 성경 그 어디에도 없다. 그것은 이스라엘의 열 두 지파를 언급할 때 이와 같이 레위 지파가 제외되었기 때문이다. =====14:4 요셉 자손은...두 지파가 되었음이라 - 그 기원은 임종 전 야곱이 요셉에게 베푼 축복에 근거한다(창 48:5). 즉 요셉은 기근으로부터 야곱의 가족을 구한 그의 공적 때문에 그의 두 아들 에브라임과 므낫세가 마치 르우벤과 시므온 처럼 야곱의 아들로 격상, 입양되어 각각 한 지파가 될 것이라는 축복을 야곱으로부터 받았던 것이다. 레위 사람에게...오직 거할 성읍들과 가축과 재물을 둘 들만 줄 뿐으로 - 레위 지파에게는 기업으로 비록 땅은 주어지지 아니 했을지라도 그들이 거주할 성읍과 가축을 방목할 목초지는 주어졌다. 그런데 이 성읍들과 목초지는 다른 지파들이 그들의 기업 중에서 레위 지파에게 일부 할당해 준 것이었다. 민 35:1-8에 따르면, 레위인에게는 목초지와 함께 여섯 도피성을 포함한 48성읍이 주어지도록 되어 있는데, 이에 대해서는 20-21장에 상세히 설명되어 있다. 한편, 여기서 '들'은 소를 몰고 나가 풀을 먹이는 목초지(민 35:2;대상 13:2)를 뜻하는 말로서(Pulpit Commentary), 영역본 RSV, NIV, Living Bible 및 공동 번역은 모두 '목지'(牧地, pasture lands)로 번역하였다. =====14:5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것 - 민 26:52-56;33:54 주석 참조. =====14:6 길갈 - 이스라엘이 요단 강을 도하한 후 최초로 진(陣) 친 곳으로, 그때 이후 '길갈'(Gilgal)은 가나안 정복 전쟁의 본영(本營)이 되었다. 그리고 가나안 정복이 일단락 된 후 기업 분배도 이곳 길갈에서 행해졌다. 4:19 주석 참조. 그니스 사람 여분네의 아들 갈렙 - '그니스 사람'(the Kenezite)이란 본래 일찍부터 팔레스틴 주변에 거주하고 있었던 에돔 족속 중 하나(창 36:11, 15)로, 아마 이 족속 중 일부가 이스라엘의 유다 지파에 합류되었던 것 같다. 따라서 갈렙(Galeb)도 순수 히브리 혈통은 아니었다. 그러나 정탐꾼으로서(민 13:6), 가나안 정복 전쟁의 용사로서 갈렙은 이스라엘 중에서 큰 역할을 감당했다. 민 34:19 주석 참조. 여호와께서...모세에게 이르신 일 - 이 말은 정탐 귀환 보고시 갈렙이 여호수아와 더불어 하나님을 온전히 순종하였으므로, 그는 가나안 땅을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가 요구한 땅을 기업으로 얻게될 것이라고 약속하신 민 14:24;신 1:36의 내용을 가리킨다. 가데스 바네아 - 신 1:2 주석 참조. =====14:7 내 나이 사십 세에...정탐케 하므로 - 갈렙은 사십 세 때, 즉 그의 현재 나이로부터 약 45년 전에, 가데스 바네아에서 모세가 가나안에 파견한 12정탐꾼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민 13:6). 당시 갈렙은 정탐을 마친 후 여호수아와 함께 담대히 가나안 공격을 주장하였으나(민 14:6-9), 겁에 질려 공격하지 못하도록 주장한 나머지 열 정탐꾼들 때문에 오히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돌에 맞아 죽을 뻔 하기도 했다(민 14:10). 이때 하나님께서는 그의 신실한 종들인 갈렙과 여호수아만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 원하는 땅을 기업으로 차지하게 될 것이라고 약속하셨던 것이다(민 14:24;신 1:36). 내 마음에 성실한 대로 -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카아쉐르 임-레바비'(* )는 곧 '마음에 있는 그대로'란 의미이다. 따라서 KJV, RSV는 '내 마음 안에 있는 대로'(as it was in my heart), NIV는 '나의 확신에 따라'(according to my convictions), 그리고 공동 번역은 '마음에 믿어지는 바를'이라고 각각 번역하였다. 이는 갈렙이 가나안 땅 정탐을 마친 후에 돌아와 보고할때, 백성들의 반응을 의식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께 대한 그의 신앙과 확신에 따라 자신이 목격한 가나안 땅의 실정을 있는 그대로 보고한 것을 의미한다. =====14:8 나와 함께 올라갔던 내 형제들 - 이들은 가데스 바네아에서 모세에 의해 선택된 각 지파의 12명의 정탐꾼 중 갈렙과 여호수아를 제외한 나머지 10명의 정탐꾼들을 가리킨다(이들의 명단은 민 13:4-15에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이들 10정탐꾼들은 가나안 땅을 탐지한 후 그 원주민의 기세에 눌려 악평과 더불어 불신앙적인 보고를 함으로써(민 13:31-33) 백성들을 크게 낙담케 했다. 그 결과로 이들은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 모두 죽고 말았다(민 14:36, 37). 한편, 그럼에도 불구하고 갈렙이 여기서 그들을 가리켜 '내 형제들'(my brothers)이라고 부른 사실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곧 이는 갈렙의 겸손한 일면을 드러내는 말이다. 나는 나의 하나님 여호와를 온전히 좇았으므로 - 민 14:24에 보면 하나님께서도 친히 '오직 내 종 갈렙은 나를 온전히 좇았은즉'이라고 갈렙의 신앙을 칭찬하신 적이 있다. 따라서 여기서 갈렙이 자신의 성실성을 내세운 것은 결코 자만심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성실히 순종한 자로서의 진정한 긍지의 표현이며, 나아가 지금 요구하고자 하는 내용 역시 결코 사심(私心)이 없는 것임을 나타내고자 함이다. 한편 여기서'온전히'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말레'(* )는 '충만하다', '만족시키다'란 뜻으로서, 곧 '온전히 좇았다'란 말은 '하나님께서 만족하실 정도로 충분히 그분의 뜻에 순종했다'란 의미이다. =====14:9 그 날에 모세가 맹세하여...네 발로 밟는 땅은...너와 네 자손의 기업이 되리라 - 이 구절을 해석할 때 약간의 어려움이 있다. 즉 이와 동일한 내용을 모세가 직접 갈렙에게 맹세한 곳이 모세 오경 어디에도 발견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표면적으로 볼 때 이 구절의 말은 민 14:24의 '내가 그를 인도하여 들이리니 그 자손이 그 땅을 차지하리라'는 말씀과 신 1:36의 '그가 밟은 땅을 내가 그와 그의 자손에게 주리라'는 말씀과 흡사하다. 하지만 카일(Keil)은 본 구절의 말과 이들 두 구절과는 전혀 상관이 없다고 주장하였다. 즉 그에 따르면, 성경에 문자적으로 기록되어 있지는 않지만 하나님께서 갈렙에게 헤브론 땅을 기업으로 주시겠다고 약속을 하셨으며, 갈렙은 그 약속을 상기하여 이 말을 여호수아에게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갈렙이 그 약속을 받은 근거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를 대적하여 일어났을 때에 갈렙이 백성들을 진정시킨 다음 '우리가 곧 올라가서 그 땅을 취하자 능히 이기리라'(민 13:30)고 한 말에 있다는 것이다. 즉 다른 정탐꾼들은 헤브론에 거하는 아낙 자손들을 보고 두려워 하였지만, 갈렙은 이와같은 말을 자신있게 함으로 하나님께서는 그의 신앙을 가상히 여겨 바로 그 헤브론 땅을 갈렙에게 기업으로 주겠다고 약속을 했다는 것이다(Keil & Delitzsch, Vol. 2. p. 149). 그러나 이러한 카일(Keil)의 주장은 지나친 억측이다. 오히려 우리는 앞에서 말했던 민 14:24;신 1:36의 두 구절과 본절이 형식적으로 꼭 일치하지는 않지만 내용상 일치하고 있기 때문에, 모세가 하나님의 약속을 선포한 것을 그 자신이 맹세로 말한 것인 양 기록한 것으로 보아도 크게 문제될 것이 없을 것이다. 따라서 본절의 내용은 이 두 구절에 근거한 것으로 보는 것이 합당하다(Pulpit Commentary). =====14:10 사십 오년 동안을...생존케 하셨나이다 오늘날 내가 팔십 오세로되 - 여호와께서 일찍이 모세를 통해 갈렙에게 가나안 땅을 약속하신 때는 갈렙의 나이 40세 때로서(7절). 곧 출애굽 제2년째 되던 해(B.C. 1445년)였다(민 14:24). 그로부터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징계로 38년 동안을 광야에서 유리 방황한 후 마침내 요단 강을 건넜을 때는 출애굽 제40년째 되던 해(B.C. 1406년)의 정월로서(4:19), 곧 갈렙의 나이로는 78세가 되던 때였다. 그런데 가나안 정복 전쟁이 종료되고 기업 분배할 당시에 갈렙이 자신의 나이를 85세로 밝히고 있음을 볼 때, 요단 강 도하 후로부터 시작된 가나안 정복 전쟁은 7년 동안 수행되었다는 사실을 충분히 추론할 수 있다(Theodoret, Keil, Lias). 따라서 당시는 출애굽 제47년째 되던 해로서 대략 B.C. 1400년 경임을 알 수 있다<출애굽기 서론, 8. 출애굽 연대>. =====14:11 모세가 나를 보내던 날과 같이 - 모세는 가데스에서 12지파의 대표자들을 뽑아 가나안 땅을 탐지하도록 보내었는데, 당시 갈렙은 유다 지파를 대표하여 정탐꾼으로 파견되었다(민 13:6). 그때 그의 나이는 40세로서(7절), 45년 전의 일이었다. 강건하니 나의 힘이...감당할 수 있사온즉 - 갈렙은 10절에서 자신의 생명이 45년 동안 보존되었음을 말했는데, 본절에서는 45년 전의 젊었을 때와 마찬가지로 힘도 그대로 보존되었음을 말하고 있다. 여기서 '힘'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코아흐'(* )는 단지 육체적인 힘만을 뜻하지 않고 정신적인 담력도 뜻한다. 따라서 갈렙은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강한 힘을 소유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14:12 그 날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이 산지 - 여기서 '산지'(* , 하르)는 일찍이 갈렙이 가나안 땅을 정탐할 때 보았던 헤브론의 산악 지대를 가리킨다(민 13:22). 당시 하나님께서는 갈렙이 당신을 온전히 좇았기 때문에, 그 땅을 그에게 주실 것이라고 약속하셨다(민 14:24). 아낙 사람 - '아낙 족속'(the Anakim)은 헤브론을 중심으로 가나안 남부의 산간 지대에 주로 거주했던 가나안 족으로, 키가 크고 거대 했으며 힘이 센 거인족이었다. 따라서 이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큰 두려움의 대상으로 여겨졌다(신 9:2). 민 13:22 주석 참조. 여호와께서 혹시 나와 함께 하시면...쫓아내리이다 - 여기서 '혹시'에 해당하는 '울라이'(* )란 말은 '만약', '혹시'라는 가정과 의심의 뜻도 있지만, 아울러 '정녕', '필시'라는 소망과 확신의 뜻도 지닌다. 여기서는 후자의 의미로 쓰여 갈렙의 확고한 신앙을 보여주고 있다. 실로 갈렙은 가데스 바네아의 정탐 사건 이후, 38년 동안의 광야 생활 기간과 7년 동안의 가나안 정복 전쟁 기간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면 어떤 일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그 누구보다도 뼈저리게 경험하고, 또한 확신했을 것 이다. 정녕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창 21:22), 이삭(창 26:28), 야곱(창 28: 20;31:5;35:3;48:21), 모세(1:5, 17;출 3:12;4:12, 15), 여호수아(1:5, 7)와도 함께 하심으로 그들을 형통케 하셨다. 여기서 갈렙도 그러한 '임마누엘' 신앙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한편 구약에서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과 함께 하신다는 임마누엘 개념은 출 33:16;민 23:21;신 2:7 등 여러 곳에서 발견되는데, 이와같은 임마누엘 개념은 다음과 같은 뜻을 갖고 있다. 즉 (1) 하나님께서 결코 저버리시거나 방치해 두시지 않는다는 뜻(1:5, 7;3:7;신 31:6;왕상 8:57;대상 28:20), (2) 적을 두려워하거나 절망할 필요가 없이(신 31:8;대상 28:20;대하 20:17) 언제 어디서나 강하고 담대할 수 있다는 뜻(신 31:23). (3) 어떠한 상황 가운데서도 아무런 부족함이 없다는 뜻(신 2:7) 등이다. =====14:13 여호수아가...축복하고 헤브론을 그에게 주어 - 여호수아는 갈렙의 신실한 신앙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의 요청에 어떠한 거부나 조건도 없이 축복과 더불어 흔쾌히 응해 주었다. 즉 여호수아는 갈렙이 받은 하나님의 약속에 근거하여, 그리고 믿음의 용사 갈렙이 능히 아낙 족속을 쫓아낼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하고 헤브론을 그에게 주었다. =====14:14 헤브론이...갈렙의 기업이 되어 - 여기서 '헤브론'은 헤브론을 중심하여 그에 딸린주변의 많은 촌락들과 그 산간 지대를 의미한다. 여호와를 온전히 좇았음이며 - 8절 주석 참조. =====14:15 헤브론의 옛 이름은 기럇 아르바라 - 헤브론의 본래 지명은 기럇 아르바(Kirjath -Arba)인데, 헤브론이란 이름으로 구약 성경에 50번 정도 나오고, 기럇 아르바로는 5번 정도 언급되어 있다(15:13;창 23:2;35:27;삿 1:10). 그런데 갈렙이 공들여 정복한 이 헤브론은 나중에 레위 지파에게 할당되고(21:11), 또한 도피성으로 지정받는다(20:7). 한편 '기럇 아르바'는 '아르바의 성읍'이란 뜻으로 '아르바'는 아낙 자손의 조상이자 이 족속의 가장 위대한 영웅이었다. 본서는 그를 가리켜, '아낙사람 가운데 가장 큰 사람'이며, '아낙의 아비'(15:13;21:11)라고 묘사하고 있다. 그는 자기 이름을 딴 견고한 성읍을 창건했는데, 이것이 처음에는 '기럇 아르바'로 명명되다가, 후일 '헤브론'으로 바뀐 것이다. '헤브론'(Hebron)에 대해서는 10:3 주석을 참조하라. 그 땅에 전쟁이 그쳤더라 - 이 표현은 11:23에서도 언급된 적이 있는데, 그 의미는 이스라엘이 가나안을 완전 정복하였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가나안 족속이 더이상 이스라엘을 대항할 수 없을만큼 그 세력이 약화되어 이스라엘이 평화를 느끼게 되었음을 뜻한다. 보다 상세한 내용은 11:23 주석을 참조하라. --------------------------------- 요단 동편 땅의 분배(13장)에 이어 이제 가나안 본토인 요단 서편 땅을 분배하기 위해 본격적으로 채비를 갖추는 장면이다. 이러한 본장은 내용상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곧 땅 분배 책임자(1절), 땅 분배 방법(2절)및 땅 분배 대상(2-5절)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는 전반부와 갈렙이 여호수아에게 자신의 기업을 요청, 이를 허락 받는 후반부(6-15절)이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수 있는 점은 먼저 여호수아가 가나안 서편 땅을 분배함에 있어서 제비 뽑기 방식을 택하였다는 사실이다. 이는 특정 지파에 대한 편애를 지향하고 공정성을 유지하려는 의도에서였기도 하겠지만 무엇보다 각 지파에게 돌아가는 기업은 어디까지나 하나님께서 당신의 뜻대로 주시는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 신앙에 입각한 행위였을 것이다. 이에 대한 보다 자세한 내용은 뒤에 나오는 주제 강해, '제비 뽑기와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참조하라. 다음으로 우리가 주목할 수 있는 또 한가지 사실은 갈렙이 제비뽑음 없이 헤브론 땅을 기업으로 달라고 요청한 점이다. 이는 일견 보기엔 갈렙이 자신의 사욕만을 채우려 한 이기적인 행동으로 오해받을 수도 있으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그의 이러한 요청은 어디까지나 과거 모세로부터 받은 약속에 근거한 정당한 요구였기 때문이다(9절). 또한 그가 그 땅을 요구한 것은 자신의 힘으로 그 땅에 살고 있는 이스라엘의 대적 아낙 자손을 정복하려 한 충성심에서였기 때문이다(12절). 이상과 같이 요단 서편 땅의 경계는 전혀 인간적인 욕심이나 분쟁이 없이 하나님의 뜻과 방법대로 순조롭게 분배되었다. 이는 오늘날 우리들에게 모형론적(typological)인 의미를 던져 주는데 곧 하늘 가나안인 천국 역시 하나님께서 당신의 뜻대로 주시고자 하는 자들에게 공정히 유업으로 주실 것이라는 점이다(요 14:1-3). 1. 요단 서편 땅의 분배(14:1-5) 본장에서부터 19장까지에 걸쳐 진행되는 요단 서편 땅 분배의 서론 부분이다. 이러한 본문은 여호수아와 대제사장 엘르아살 그리고 각 지파의 족장들이 땅 분배의 공동 책임자로 봉사하였음을 보여 준다(1절). 이중 족장들은 아마 자기 지파의 인구를 계수함으로써 공정한 땅 분배가 이루어지도록 도왔으며 또한 분배 과정에서 생기는 세부 문제들을 맡아 처리하는 역할을 감당하였을 것이다. 아무튼 땅 분배는 에브라임, 므낫세 반, 베냐민, 시므온, 스불론, 잇사갈, 아셀, 납달리, 단 지파의 순서대로 아홉 지파 반에게 되었다(15-19장). 여기서 이스라엘 12지파 중 두지파 반이 빠진 것은 그들이 이미 요단 동편에서 기업을 받았기 때문이다(3절). 그리고 레위 지파는 받을 기업이 없기 때문에 제외되었으나(3, 4절) 대신 요셉 지파가 므낫세와 에브라임 두 지파로 취급되어(4절) 여전히 그 수는 아홉 지파 반을 이루었다. 한편 이때 땅을 분배하는 방식으로는 제비 뽑기가 채택되었는데(2절) 이는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물론 당시 이방인들 간에서도 점령지를 제비 뽑아 나누는 풍습이 성행하였으나 그것은 모든 것을 운명에 맡기는 일종의 도박 행위였다. 그러나 여기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제비뽑기를 한 것은 그와 달리 전적으로 모든 것을 하나님의 뜻에 맡기는 것을 의미한다. 즉 그들은 가나안을 정복함에 있어 하나님의 뜻을 좇았듯 이제 그 분배 과정에 있어서도 오직 하나님의 뜻을 좇은 것이다. 이에 관한 보다 자세한 내용은 다음 주제 강해를 참조하라. 제비뽑기와 하나님의 절대 주권 - 본문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각 지파들에게 땅을 분배하기 위하여 제비를 뽑은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2절). 즉 그들은 각 지파에 해당하는 땅을 정하고 분배하기 위하여 어떤 상의나 타협의 방식을 취하지 않고 각 지파별로 제비를 뽑는 방식을 취한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이 제비를 뽑아 결정된 것을 하나님의 뜻으로 인정하고 그 결과대로 순종한 것이다. 이와 같이 제비 뽑기를 땅 분배만이 아니라 구약 시대에 하나님의 뜻을 알아내고 그 뜻대로 일을 결정하는 수단으로 자주 사용되었다<민 26:52-56 강해, 제비 뽑기>. 그들이 하나님의 뜻을 알아내고 그 뜻대로 실행하기 위하여 제비를 뽑는 방법을 택한 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믿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그들은 비록 제비는 인간의 손으로 뽑지만 이 제비 뽑기를 통해서 최후로 일을 결정하시는 분은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확신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사람이 제비는 뽑으나 일을 작정하기는 여호와께 있느니라"(잠 16:33)고 잠언 기자의 신앙 고백에서도 밝히 드러난다. 사실 제비를 뽑는 제도는 사람들의 공로를 따라 갚아 주는 논공 행상(論功行賞)의 원리가 아니고 하나님의 절대 주권에 의한 은총의 원리이다. 구약에서 이러한 하나님의 주권 사상이 가장 잘 나타나 있는 구절은 이사야 64:8과 예레미야 18:6이다. 이곳에는 하나님께서는 토기장이로, 인간은 진흙으로 비유되어 있는데, 이는 하나님께서 절대 주권자임을 잘 말해 주고 있다. 신약 시대의 바울은 이 비유에 근거하여 로마서 9:19-21에서 다음과 같이 하나님의 절대 주권에 대하여 잘 표현해 주었다. "혹 네가 내게 말하기를 그러면 하나님이 어찌하여 허물하시느뇨 누가 그 뜻을 대적하느뇨 하리니 이 사람아 네가 뉘기에 감히 하나님을 힐문하느뇨 지음을 받은 물건이 지은 자에게 어찌 나를 이같이 만들었느냐 말하겠느뇨 토기장이가 진흙 한 덩이로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 하나는 천히 쓸 그릇을 만드는 권이 없느냐". 다시 말해서 이말은 하나님은 토기장이와 같은 절대 주권자이므로 진흙과 같은 우리 인간을 어떻게 하시든지 우리는 하나님께 힐문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하나님의 절대 주권 사상은 구약에서 다니엘의 다음과 같은 말에도 잘 나타나 있다. "땅의 모든 거민을 없는 것같이 여기시며 하늘의 군사에게든지, 땅의 거민들에게든지 그는 자기 뜻대로 행하시나니 누가 그의 손을 금하든지 혹시 이르기를 네가 무엇을 하느냐 할 자가 없도다"(단 4:35). 이 말은 느부갓네살 왕이 하나님의 절대 주권의 범위와 성격에 관해 고백한 것이다. 이와 같은 다니엘의 진술은 하나님의 절대 주권이 그의 백성인 이스라엘에게 뿐만 아니라 이방 국가에까지 미치고 있음을 보여 준다. 이러한 하나님의 절대 주권은 우리의 삶과 죽음에도 관련이 있는바(시 68:20), 우리가 구원을 받고 못 받는 것 역시 이 같은 하나님의 절대 주권에 달려 있다(출 33:19 ; 롬 9:15). 2. 갈렙의 기업 요청(14:6-15) 이스라엘 아홉 지파 반이 가나안 땅을 분배 받기 위해 제비뽑는 일을 시작하려는 무렵에 갈렙이 유다 자손들과 함께 여호수아에게 와서 그의 기업을 요구하여(6-12절) 기업을 얻게 될 것이라는 약속을 받은 적이 있는데, 이제 그는 이 약속을 내세워 제비뽑지 않고 헤브론 땅을 차지하기를 원했던 것이다(7-10절; 민 14:24, 30; 신 1:36, 38).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주지해야 할 점은 이러한 갈렙의 요구가 단순히 옛 약속에 근거한 특권 의식(特權意識)의 소산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대신 헤브론에 거하고 있던 아낙 족속들을 한시라도 빨리 격멸, 그곳을 정복함으로 일찍히 아브라함에게 주셨던 하나님의 언약(창 13:15) 성취에 일조하려는 희생 정신의 소산이라는 점이다. 한편 이상과 같은 갈렙의 희생 정신을 오늘날 이 땅에 하나님 나라 확장이라는 막대한 사명을 걸머지고 있는 우리 모든 성도들에게도 마땅히 요구된다(마 6:10, 33). 정녕 한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썩지 아니하면 열배, 백배의 결실이 있을 수 없듯(요 12:24) 하나님 나라 역시 자신의 몫에 태워진 십자가를 감내하는 성도의 희생과 봉사 정신이 없고서는 확장될 수 없기 때문이다. 아무튼 신앙 행위에 대해서는 다음의 주제 강해를 참조하라. 갈렙의 신앙 - 본문에는 여분네의 아들 갈렙이 여호수아에게 헤브론을 기업으로 요청, 이를 승낙받는 장면이 나온다. 그런데 이러한 사건이 지니고 있는 이면적(裏面的)의미를 완해(完解)하기 위해서는 성경 전반을 통시적으로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렇게 할 때 우리는 본 사건과 관련된 갈렙의 불변적 순수 신앙을 이해할 수 있다. 이제 이를 하나하나 정리하면 곧 다음과 같다. (1) 그는 젊었을 때부터 훌륭한 신앙을 갖고 있었다. 즉 가데스 광야에서 가나안 정탐을 다녀온 갈렙과 여호수아는 하나님께 대한 신앙으로 가나안 족속을 물리쳐 이길 것이라고 확신하였다. 하지만 다른 모든 사람들은 아낙 자손들의 광대함 때문에 두려움에 사로 잡혔었다(민 13:27-33). 이 때문에 당시 이스라엘 백성 중 갈렙과 여호수아만이 가나안에 들어갈 수 있는 특권을 얻었으며 그때 갈렙은 헤브론을 기업으로 약속받았던 것이다(민 14:24 ; 신 1:36). (2) 하나님께서는 그 이후 45년 동안 갈렙을 건강하게 하시어 이제 마침내 그 땅을 차지하도록 하고 계신다(10절). 즉 하나님께서는 45년 전 광야에서 하신 약속이 이제 성취 되도록 갈렙을 축복하시는 것이다. 물론 그 동안 갈렙 역시 신실하게 하나님을 좇았으며 반드시 이스라엘이 가나안을 정복할 것이며, 또한 자기의 기업도 얻게 되리라고 믿어 왔음에 틀림없다. (3) 이제 갈렙은 백발이 성성할 정도로 늙었지만 본문은 아직도 그가 그 땅 곧 헤브론 성읍을 정복하겠다는 강력한 믿음을 지니고 있음을 보여준다(11, 12절). 사실 비록 그가 아직 젊었다 할지라도 헤브론을 정복할 수 있다는 믿음이 없으면 그와 같은 일을 감행할 수 없을 것이다. 더구나 그곳에는 45년 전 정탐꾼들을 두렵게 하여 가나안 침공을 하지 못하도록 한 아낙 사람들이 여전히 살고 있었고 그들의 성읍들은 크고 견고하였다(12절). 그러나 이러한 일을 자세히 알고 있으면서도 믿음의 용사 갈렙은 아낙 족속을 징벌하는 것이 자신의 임무라고 생각, 여호수아에게 이 일을 자기가 할 것이라고 요청하고 있는 것이다. (4) 이상과 같은 갈렙의 신앙은 실로 우리가 본받을 만한 것이다. 젊었을 때나 늙었을 때나 한결같이 흔들리지 않는 신앙을 소유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본문에 나타난 갈렙의 짧은 말 속에는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가 두 번이나 나타나고 잇다(10, 12절). 그는 이 약속의 말씀을 45년 동안 가슴 속에 품으면서 설사 이 약속의 실현이 더디다고 할지라도 반드시 이루어질 것을 믿었다. 이처럼 그의 신앙은 막연한 신앙이 아니라 철저히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한 신앙이었다. 바로 이러한 신앙을 본받아 그의 자손들은 가나안의 남은 사람들을 쫓아내는 데 앞장섰다(삿 1:1-10). 마찬가지로 우리 신자들도 난공 불락(難攻不落)처럼 보이는 어떠한 역경도 돌파할 갈렙과 같은 담대한 용기와 믿음을 가져야 한다. --- ===여호수아 제14장 강해: 요단 서편 분배 및 갈렙의 요구=== 본 장에서는 땅 분배 책임자, 분배 방법 및 대상에 대하여 전반적 원칙을 기록한 전반부와, 유다 지파부터 각 지파별 땅 분배에 들어가지 전에, 비록 개인적으로는 유다 지파지만 신 1:36의 특별 약속을 받은 갈렙이 모세에게 약속 받은 기업을 요구(6-12)한 사실 및 이에 대해 여호수아가 헤브론 땅을 허락한 내용(13-15)을 기록하고 있는 후반부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본 장에서 매우 중요한 하나님의 통치 원리를 두 가지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의 일을 맡은 자에게 요구되는 것은 오직 충성이며(고전 4:2), 그에 따른 보상은 절대 하나님의 주권에 달려 있다는 것입니다. 이는 특별히 이스라엘의 땅 분배 과정에서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즉 가나안을 정복함에 있어 이스라엘 열 두 지파가 함께 수고했으나, 그들에게 기업을 분배할 때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주권에 따른 제비뽑기 방법에 의해 분배된 것입니다. 이처럼 보상에 관한 한 철저하게 하나님의 주권으로 정하시는 이유는 인간들이 단지 상급을 받기 위한 얄팍한 목적에서 선을 행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위해서(마 6:33) 하나님께 온전히 충성하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사 64:8; 렘 18:6; 고전 4:5). 둘째 하나님은 약속하신 복은 반드시 주심으로써 백성들이 전적으로 신뢰할 수 있게 만드십니다(민 23:19). 각 지파에게 기업을 분배하기 직전에 갈렙이 개인적 기업을 요구한 것은 매우 당돌하게 생각이 되지만, 그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약속하신 보상(민 14:24, 30)은 반드시 주어진다는 사실이 백성들에게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신약 시대의 성도들도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바가 더디게 성취된다고 불평하지 말고(벧후 3:9) 하나님의 약속을 끝가지 신뢰하며 맡은 바 책임에 충성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요 14:1-3). ----- 1-5절: 여호수아가 요단 서편 땅을 백성들에게 분배한 사실이 기록되기 시작합니다. 그 가운데 본문은 서론격으로 땅 분배 책임자와 땅 분배 방법이 언급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꼭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여호수아가 땅을 분배하면서 자신의 자의적 생각이나 독단으로 하지 않고 제사장 엘르아살 및 각 지파의 족장들이 입회한 상태에서 제비를 뽑아 공정하게 시행했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 제비뽑기 방식은 땅 분배 이후 혹시라도 있을 수 있는 불만과 부작용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조처로써 일찍이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명하셨던 방법입니다(민 26:55, 56). 여호수아가 그대로 시행한 것은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을 인정하고 그것에 순복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1: 이스라엘 자손이 가나안 땅에서 취한 기업 곧 제사장 엘르아살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자손 지파의 족장들이 분배한 것이 이 아래와 같으니라. 민 34:16-29을 보면 가나안 땅에 대한 분배는 이미 엘르아살과 여호수아와 그리고 매 지파에서 선발된 10명의 족장들에 의해서 행해지도록 명령되었습니다. 바로 이 명령이 그대로 지켜지고 있습니다. 제사장 엘르아살은 종교적 측면에서, 여호수아는 국가의 우두머리로 정치적인 면에서, 그리고 족장들은 국가의 연합적인 면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대표입니다. 따라서 땅의 분배는 편파적이거나 시기심이 없이 원만하게 수행되었을 것입니다. 특히 대표 중에서 제사장이 제일 먼저 거론된 것은 땅을 분배함에 있어서 하나님과 상의하는 것이 제일 첫 단계였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는 땅 분배를 하나님의 뜻에 따라 행했다는 것을 말합니다. 2: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대로 그들의 기업을 제비 뽑아 아홉 지파와 반 지파에게 주었으니 제비뽑기는 첫째 각 지파에게 분배된 기업이 하나님께서 그 지파의 특성이나 전반적인 성격 등 모든 면을 초려하여 지정해 주신 것을 깨닫게 하고, 감사함으로 그 땅에 정착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둘째로 그 땅이 기름지거나 그렇지 않은 박토의 땅이라도 그것으로 인한 시비나 분쟁을 미리 방지하기 위함입니다. 셋째 땅을 나누는 일이 인간의 계획이나 힘에 의해 좌우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계획에 의해 결정된 것임을 깨닫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러나 제비를 뽑는 구체적인 방법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알 수가 없습니다. 일반적으로 랍비들이 추측하기로는 두 개의 항아리에 지파 수 만큼의 자갈을 각각 넣었을 것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한 항아리의 자갈에는 각 지파의 이름을, 그리고 또 한 항아리의 자갈에는 각 지파의 이름을 적은 후 먼저 지파의 이름을 적어 넣은 항아리에서 제비를 뽑고, 그 뽑힌 순서에 따라 지명을 적어 넣은 항아리에서 제비를 뽑았을 것이라고 합니다. ‘아홉 지파 반’ 3절에 의하면 여덟 지파와 반 지파입니다. 그러나 레위 지파가 빠진 대신 요셉의 지파가 므낫세와 에브라임의 두 지파로 여겨졌으므로(4절: 창 48:5), 결과적으로는 아홉 지파와 반 지파가 됩니다. 3: 두 지파와 반 지파의 기업은 모세가 요단 저편에서 주었음이요 레위 자손에게는 그들 가운데서 기업을 주지 아니하였으니 모세에 의해 요단강 동편에 기업을 얻은 므낫세 반 지파와, 르우벤, 갓 지파의 영토를 ‘요단 저편’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요단 저판의 영토는 미디안과의 싸움에서 정복한 땅인데, 가나안 정복 정착 전쟁 시 그들이 선봉에 서서 싸우고, 또한 요단 서편에서는 분깃을 포기한다는 조건으로 주어진 땅입니다. 4, 5: 요셉 자손은 므낫세와 에브라임의 두 지파가 되었음이라 이 땅에서 레위 사람에게 아무 분깃도 주지 아니하고 오직 거할 성읍들과 가축과 재물을 둘 뜰만 줄 뿐으로,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것과 같이 행하여 그 땅을 나누었더라. 야곱은 임종 직전에 베푼 축복에서 요셉의 두 아들, 므낫세와 에브라임을 양자로 삼고 그들의 신분을 르우벤과 시므온과 같은 아들의 위치로 격상시켰습니다(창 48:5). 이는 기근으로부터 야곱의 가족을 구한 요셉의 공적에 대한 배려였습니다. 그러므로 레위 지파가 그들의 임무로 인하여 땅 분배에서 빠졌다 해도 땅을 분배받은 지파는 총 열 두 지파가 되는 것입니다. 레위인들에게는 도피성을 비롯하여 모두 48개의 성읍이 주어졌습니다(민 35:1-8). 그리고 가축과 재물을 주었는데, 이것들을 둘 수 있는 목초지는 함께 주어졌습니다. 레위 지파에 이러한 최소한의 소유를 준 것은 레위지파는 오직 성전에 봉사하도록 했기 때문입니다. 또한 늘 십일조와 감사예물이 드려진다고 해도 때에 따라 많고 적음이 있으므로, 만약의 때를 위해 예비적 성격으로 이 가축들과 재물들을 주셨던 것입니다. ---------- 6-15절: 갈렙의 기업 청원의 내용입니다. 갈렙은 유다 지파의 족장으로 45년 전에 여호수아 및 다른 10명의 정탐꾼들과 함께 가나안을 정탐하고(민 13:7), 여호수아와 더불어 신앙적인 보고를 함으로써 모세로부터 헤브론을 기업으로 약속 받았습니다(민 13:22). 그러므로 이제 갈렙은 모세의 계승자인 여호수아에게 그 약속을 이행하도록 요청하고 있습니다. 이는 갈렙의 개인적인 욕심이 아니라, 자신의 신앙적인 보고대로 아낙 자손을 좇아내고 헤브론을 기업으로 삼고야 말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는 점령한 아름답고 비옥한 땅을 요구하지 않았다는 것에서도 증명이 되고 있습니다. 이 같은 갈렙의 신앙, 용기, 겸손 등은 오늘날 하나님 나라의 확장이라는 사명을 맡은 그리스도의 군사 된 성도들에게 귀중한 모본이 아닐 수 없습니다. 물론 신앙은 결코 만용이어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정녕 하나님을 믿는 자에게는 결코 능치 못할 일이 없습니다(막 9:23; 빌 4;13). 6: 때에 유다 자손이 길갈에 있는 여호수아에게 나아오고 그니스 사람 여분네의 아들 갈렙이 여호수아에게 말하되 여호와께서 가데스 바네아에서 나와 당신에게 대하여 하나님의 사람 모세에게 이르신 일을 당신이 아시는 바라. 길갈은 여리고 부근에 있는 지역으로 이스라엘이 요단을 건넌 후 최초로 진을 쳤던 곳입니다. 또한 가나안 땅의 분배가 이루어진 것도 이곳입니다. 그러므로 길갈은 가나안 정복 정착 전쟁의 시발지이면서 완결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갈렙(כלב)’은 개라는 뜻으로 종의로서의 충성과 애정을 나타냅니다. ‘그니스 사람’은 일찍이 팔레스틴 주변 지역에 거주하고 있었던 에돔 족속 중의 하나입니다. 그런데 민 13:6에는 갈렙이 ‘유다 지파’로 나와 있어서 서로 모순이 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할 수도 있지만, 갈렙의 가계는 순수한 히브리 혈통은 아니었으며, 그의 가계가 유다 지파로 유입되었던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도 이스라엘 공동체는 폐쇄성으로 일관된 철저한 혈통주의적인 공동체는 아닌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가데스 바네아’는 팔레스틴 남부의 변두리에 위치한 오아시스 지역입니다.(수 15:3). 창 14:7에는 ‘엔미스밧’(미스바의 샘)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곳은 이스라엘이 가나안 정복을 위한 거점으로 삼았던 곳이기도 합니다.(민 20:1-21 참고하세요.) 7: 내 나이 사십 세에 여호와의 종 모세가 가데스 바네아에서 나를 보내어 이 땅을 정탐케 하므로 내 마음에 성실한 대로 그에게 보고하였고 ‘내 나이 사십 세에’ 히브리어 원문에는 ‘내가 40세 된 아들이었을 때’라고 되어 있습니다. ‘아들’은 사람을 나타내는 일반적 표현이라고 합니다. 또한 ‘젊었을 때’를 나타내는 표현이기도 합니다. 현재 갈렙의 나이가 85세이므로 45년 전의 일을 회고하고 있는 것입니다. 자신의 과거를 회고함에 있어 조금도 부끄러움이 없이 하나님의 명령대로 충실히 행했음을 여호수아 앞에서 간증하고 있는 것입니다. 신앙인의 고백, 그것은 사람 앞에서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뜻과 명령을 좇아 살았다는 진실한 고백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내 마음에 성실한 대로’(카아쉐르 임레바비: כאשׁר עם־לבבי)는 ‘내 마음에 있는 대로’라는 뜻입니다. 영어 번역에서는 “내 확신에 따라(according to my convictions)”로 번역이 되었습니다. 이는 철저히 하나님을 의뢰하는 자의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확신과 결단을 말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의뢰하며 하나님의 뜻대로 움직이는 자에게는 언제나 하나님이 함께 하십니다. 그러므로 갈렙의 말과 행동이 인간의 추함과 더러움에서 나오지 않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말미암았던 것입니다. ‘가나안을 치자’고 주장한 것은 갈렙의 말이었지만 실제로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뜻이었던 것입니다. 성도의 말과 행동이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합당하기 위해서는 그 속에 먼저 하나님께로 향하는 신실한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이런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갈렙은 백성들의 반응을 전혀 의식하지 않고 자신의 신앙에 따라 가나안 정탐의 결과를 보고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8: 나와 함께 올라갔던 내 형제들은 백성의 간담을 녹게 하였으나 나는 나의 하나님 여호와를 온전히 좇았으므로 당시 여호수아와 갈렙은 다른 10지파의 대표들과 함께 정탐했습니다. 이들은 가나안 사람들의 강성함을 복 두려워하여 가나안 정벌을 포기할 것을 건의했습니다. 그들은 대표로 뽑힐 정도로 특출한 자들이었지만 하나님을 의뢰하는 신앙이 부족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갈렙이 이들을 ‘내 형제’라고 부르는 것은 비록 그랬을지라도 가나안 정복에는 이스라엘의 통일된 힘이 무엇보다도 필요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가나안 정복은 이스라엘 모두에게 맡겨진 하나님의 약속이며, 명령이었던 것입니다(민 13:30;14:7-9;신1:36 참고) ‘백성의 간담을 녹게 하였으나’ 여기서 ‘간담(렙: לב)’은 마음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10지파의 보고를 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두려움에 떨게 되었음을 말합니다. 그들은 당지 현재 이스라엘의 처지와 비교해서 가나안 족속들의 기골이 장대함과 강성함만을 보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넉넉히 이기게 하실 것이라는 신앙이 결여되어 있었기 때문에 이스라엘은 좌절과 두려움에 떨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성도가 느낄 수 있는 것은 갈렙과 다른 열 정탐꾼들과의 마음 상태가 다르다는 것에서 신앙의 행동이 다르게 나타났다는 것입니다. 갈렙은 하나님을 신뢰하는 신앙을 가지고 ‘마음에 성실한 대로’ 말할 수 있었지만, 다른 정탐꾼들은 불신앙의 마음으로 백성들을 두려움 속으로 몰아넣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갈렙은 여호와를 온전히 좇았습니다. ‘온전히’(말레:מלא)는 ‘채우다, 만족시키다’는 뜻입니다. 이는 갈렙의 신앙 상태를 가장 잘 표현해 주고 있습니다. 9절과 14절에도 나타납니다. 9: 그 날에 모세가 맹세하여 가로되 네가 나의 하나님 여호와를 온전히 좇았은 즉 네 발로 밟는 땅은 영영히 너와 네 자손의 기업이 되리라 하였나이다. ‘그 날’은 12명의 정탐꾼이 가데스 바네아로 돌아와 보고를 마친 날입니다(민 14:24; 신 1:36). 민 14:20과 신 1:34에서는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라고 기록되어 있으나 여기에서 모세가 맹세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종’으로서 모세가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갈렙도 모세를 하나님의 사람으로 불렀으므로, 모세의 말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였던 것입니다. 10: 이제 보소서 여호와께서 이 말씀을 모세에게 이르신 때로부터 이스라엘이 광야에 행한 이 사십 오년 동안을 여호와께서 말씀하신대로 나를 생존케 하셨나이다. 오늘날 내가 팔십 오세로되 갈렙이 40세에 가데스 바네아에서 가나안 정탐꾼으로 파견된 때로부터 현재 가나안 정복이 거의 끝난 때까지의 45년으로써, 정탐꾼을 파견한 때가 출애굽 2년째이므로, 광야 생활 전체를 40년으로 계산하면 갈렙이 말하는 45년 중 38년은 광야에서의 기간입니다. 그리고 나머지 7년은 가나안 정복 정착 전쟁에 소요된 기간이라고 하겠습니다(7절: 수 11:18 참고).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사람과 맺은 언약을 변치 않고 지키십니다. 갈렙이 지난 45년 동안의 치열한 전투 가운데서도 무사했던 것은 하나님께서 그가 기업으로 받을 가나안 땅에 들어갈 때까지 살아 있을 것이라고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11: 모세가 나를 보내던 날과 같이 오늘날 오히려 강건하니 나의 힘이 그때나 이제나 일반이라 싸움에나 출입에 감당할 수 있사온즉 갈렙의 강건함은 45년 정탐꾼으로 파견될 때와 다르지 않았습니다. 45년이라는 시간적 차이가 있어서 기력이 예전 같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온전히 좇는 믿음’이(8,14절) 그를 더욱 강하게 하였을 것입니다. 실제로는 그는 아낙 자손을 헤브론에서 내어 쫓는데(삿 1:20), 이것은 비록 늙어도 하나님을 의뢰하는 자가 얼마나 강한 힘을 발휘할 수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의 힘은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가 얻는 새 힘입니다(사 40;31). 12: 그 날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 당신도 그 날에 들으셨거니와 그곳에는 아낙 사람도 있고 그 성읍들은 크고 견고할지라도 여호와께서 혹시 나와 함께 하시면 내가 필경 여호와의 말씀하신 대로 그들을 쫓아내리이다.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 산지는 아낙 자손의 거주지인 헤브론의 산악 지대를 가리킵니다(민 13:22). 갈렙이 굳이 이 지역을 요청한 것은 그가 정탐하고 정복할 수 있다고 보고한 자신의 판단을 실제로 입증해 보이는 것입니다. 이런 태도야말로 자신의 말을 책임있게 수행하는 진정한 신앙인의 태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혹시~ 함게 하시며’ ‘혹시: 울라이(אולי)’는 의심을 나타내는 데 사용이 되지만, 여기에서는 ‘~하기만 하면’이라는 강한 소망과 확신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아낙 자손은 강하고 성읍이 견고하지만, 자신은 늙고 연약합니다. 그러나 이 모든 조건들을 뛰어넘을 수 있는 단 하나의 길은 ‘임마누엘’(עמנואל)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심’이라는 사실을 갈렙은 역설하고 있는 것입니다. 13: 여호수아가 여분네의 아들 갈렙을 위하여 축복하고 헤브론을 그에게 주어 기업을 삼게 하매 축복을 하였다는 사실이 땅을 준 사실에 선행하고 있습니다. 이는 갈렙의 불굴의 신앙에 대한 축복입니다. 그리고 이 축복은 구체적으로 하나님의 약속에 따른 기업의 분배로 이어진 것이므로, 갈렙의 신앙대로 거대한 아낙 자손을 쫓아내고 헤브론을 점령할 수 있는 여호와의 능력이라고 하겠습니다. 14: 헤브론이 그니스 사람 여분네의 아들 갈렙의 기업이 되어 오늘날까지 이르렀으니 이는 그가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온전히 좇았음이며 ‘오늘날까지 이르렀으니’ 이 말은 여호수아 서(書)가 기록된 때입니다. 15: 헤브론의 옛 이름은 기럇 아르바라 아르바는 아낙 사람 가운데 가장 큰 사람이었더라. 그 땅에 전쟁이 그쳤더라. ‘기럇 아르바’는 ‘아르바의 성읍’이란 뜻으로, 사라가 이곳에서 죽었으며, 막벨라 굴 근처에 위치한 헤브론의 옛 이름입니다(창 23:2; 35:27). ‘그 땅에 전쟁이 그쳤더라.’ 이는 수 11:23에도 언급된 표현으로, 가나안 땅이 완전히 정복되었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다만 잔존 가나안 족속들의 세력이 약화되어 이스라엘 대해 전쟁을 일으켜 이스라엘을 내쫓고 그 땅을 다시 되찾을 만함 힘이 없었음을 말합니다.(수 11:23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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