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22.05.11 작성자 : 양시영
제   목 : 삼상7..[주님을 사는 Q-사람] 선지자-중보자(제사장)-사사 사무엘 생존 동안 주의 손이 친히 이스라엘의 침노당함을 막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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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상7장   [263.이세상험하고] [401.주의곁에있을때] [549.내주여뜻대로행하시옵소서][586.어느민족누구게나] [508.우리가지금은나그네] 나의모습나의소유..세상의유혹시험이내게...약할때강함되시네...주나의모든것되시도다 내맘에한노래있어..주님큰영광받으소서..나의기도하는것보다..내눈주의영광을보네..주님의영광나타나셨네..영광의주님찬양하세...살아계신주...모든감사와찬양을아버지께..감사로제사드리는자가..나의모습나의소유....이땅의황무함을보소서..아무도예배하지않는..


[왕하10:15...*15...내 마음이 네 마음을 향하여 진실함과 같이 네 마음도 진실하냐 하니 여호나답이 대답하되 그러하니이다 ...] 

 

::::: 임마누엘 나의 주여, 주님께서 절대적 진실-신실-거룩하심 같이..보혈-말씀-성령으로 오소서!!... 새롭게 하신 오늘 하루, 매순간마다.. 주께 대해, 그리고 모든 이 하나하나에 대해 그러하도록!! 오직 주님이면 족하오니...열린 하늘로부터 새로이 주님 영광 부어 적셔 점유-충만 감동하심으로 운행하사 저를 일깨우소서...주님의 기쁘신 뜻 온전히 이루소서...하나되신 주 임재 움직임 더 새로이 생생히 알리시며 주님 생각과 마음-심정 일러주시며 보이시며 깨닫게 하소서,,, 친히 주장하사 이끄시며 일하시며 행하소서...나의 그리스도 주님께서 친히 거듭난 내 안에 사심 이루사, 그리스도 주님을 살며 주님의 입의 말씀으로 내 입에 채우시는 바 감동따라 하게 하시는 말씀만 담대히 하도록 이끄소서 ::::


1.  기럇여아림(숲의 성읍, 또는 항아리 성읍, 벧세메스 북동14km지점, 예루살렘 북서12km) 사람들이 와서 여호와의 궤를 옮겨 산에 사는 (레위인)아비나답(=나의 아버지는 고귀하다)의 집에 들여놓고 그의 아들 엘리아살(=엘르아살)을 거룩하게 구별하여(consecrated...참 제사장 직분 합당히 행함으로써) 여호와의 궤를 지키게 하였더니

.......이로부터 70년이 지난 후, 다윗왕 때 언약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김에 있어서 어깨에 메지 않고 소가 이끄는 새 수레에 싣고 이동하는 중에 소가 날뜀 인해 웃사가 언약궤에 손들 대었고 그자리에서 즉사하게 되는, [베레스 웃사]사건의 웃사는 (아효와 함께) 아비나답의 손자나 증손자로 보고있음

2.  궤가 기럇여아림에 들어간 날부터 이십 년 동안(총20년7개월 지난 시점에 미스바 성회 소집) 오래 있은지라 이스라엘 온 족속이 여호와를 사모하니라

.......= '나하(נָהָה)'....."사모하다"...마땅한 지고지선의 진복에서 어긋나고 멀어졌음 인식한바, 비로소 제정신을 차리고 빗겨나갔음을 슬퍼하며 통곡하며 자책하며 안타까이 여기며 참된 길로 들어서기 위해 어찌해야 할지 궁구함으로써!! 마음을 온전히 돌이킴으로써 마땅한 참 길 걷기로 돌아가고자 함 = "사모하다"라는 히브리어는 '나하(נָהָה)'...이 단어는 '슬픔이나 고통, 절망으로 인해 통곡하고 부르짖다(wail, lament)'라는 뜻.. 과거의 잘못으로 인해 현재의 고통이나 환난을 통해 애통하며 하나님께 부르짖는 행위에 사용. 에스겔 32:18에서 "애곡하다"라고 쓰였고, 미가 4:2에서는 "애통하다"로 번역됨

===사무엘이 이스라엘을 다스리다(30세부터 공식적 선지사역 시작..)

3.  ○(주님의 말씀하심따라 권하는 바)사무엘이 이스라엘 온 족속에게 말하여 이르되 만일 너희가 전심으로 여호와께 돌아오려거든(돌아와 그분과 참 하나 안으로 들어와 생명 교통 안에 살며 머무름의 은혜 누리려거든) 이방 신들과 아스다롯을 너희 중에서 제거하고 너희 마음을 여호와께로 향하여 그만을 섬기라 그리하면 너희를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건져내시리라......@@건져내다....히브리어 나찰(נצל)... 사로잡힌 포로-강탈/탈취-억압의 모든 상황/형편으로부터 구하여 건져냄으로써 (벗기고 제거하여) 자유를 주어 해방하다 (A에서 B로 옮기다)

4.  이에 이스라엘 자손이 바알들과 아스다롯을 제거하고 여호와만 섬기니라

5.  ○(50세)사무엘이 이르되 온 이스라엘은 (베냐민 산지)미스바로 모이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모세처럼, 전존재와 영원생명-목숨 걸고...끝까지 주뜻 이루시도록...JC이름으로!!]여호와께 기도하리라 하매 

.....@@기도하다 = 팔랄.ללָפָּ..  여기서 "~를 위하여 기도하리니"는 주님의 지고지선의 뜻이 대상자에게서 온전히 이루어지도록 요청(중보)하는 기도를 "주님이 친히 명하심따라!!" 드리겠다는 뜻이 됨.. = 이는 결국 주님 자신의 영광을 공급해 주시도록, 주님과 영원히 하나됨 안에 머무름으로써 주님의 갈망대로 그분의 영원한 짝이자 백성, 자녀/권속, 아내, 신부 되게 하는 최상의 축복 기도가 된다!!

[골4:2...기도를 항상 힘쓰고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 ... [고전14:15... 그러면 어떻게 할꼬 내가 영으로 기도하고 또 마음으로 기도하며 내가 영으로 찬미하고 또 마음으로 찬미하리라] ...[삼상1:27... 이 아이를 위하여 내가 기도하였더니 여호와께서 나의 구하여 기도한바를 허락하신지라]

<기도하다>의 히브리어는 <팔랄 ללָפָּ<....명사형 <기도>는 <테필라 להָּפִתְּ<..

==((무릎 기도!!))== 자신의 가장 깊은 존재 중심을 자르고 갈라 드러내야 함(=자아죽임) --주 이름 불러 그분의 임재 앞에 nothing, nobody인정하며 엎드림 =순복, 순종 ---유일무이한 참 생명샘물/강수이신 Q 음성 듣기를 전존재를 집중하여 갈망하고 절대적으로 간구함 ---Q자신이 절대적 최우선 순위이신 바 오직!! 주님이면 충분함 -- 자신이 봉착한 문제를 올려드리는바, 주님께서 마음의 근본동기를 살펴 성령의 조명하심 아래 말씀을 열어 보게 하사 깨닫게 하시며, 깨우쳐 주시고 일깨워 참된 생명, 영생의 길로 이끌어 지도해 주시도록 ::: 이로써 Q을 참되게 알고 존숭하며, Q마음의 영원한 경륜 이룸의 갈망따라 함께 동행-동참하는 삶에로 나아감

**<팔랄 ללָפָּ<의 뜻에는 자르다의 의미가 들어있다... 절대자 Q 앞에서 <내>자아를 죽이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 앞에서 <내>모습을 깊이 돌이키는 데서 <기도 팔랄>는 시작되는 것이다 **<팔랄 ללָפָּ<은 엎드려 절하다의 뜻이 담겨 있다... 하나님 앞에 자신의 소원을 간구하기에 앞서서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리는 데서 시작됨이니, 곧 순종과 순복으로 시작됨이다 ...결국, 하나님 앞에서 아무 것도 아닌 존재임을 고백하는 데서 <기도, 팔랄>는 시작되어야 함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팔랄 ללָפָּ<은 분별하다 구별하다의 뜻이 있다.  이 땅에 살고 있지만 하나님의 음성에 귀기울이는 것을 의미함이다.. 목마른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처럼((사슴이 목마름을 강하게 느끼는 그 때는 물을 충분히 마시지 못하면 조만간 죽고말 것이라는 긴박-초조감에 휩싸이는바, 조만간 헛것을 보게됨 인해 정처없이 헤메다가 지쳐 쓰러져 죽음에 이르게 되며, 게다가 대적에게 쉽게 노출되어 잡아먹힐 수도 있음이니) 마치 목 마른 사슴이 시냇물 찾기에 갈급함의 그 때의 자세란, 바로 가장  하나님의 말씀에 간절함으로 나아가는 그 태도/자세를 의미한다.. 

**<팔랄 ללָפָּ<은 깨뜨리다의 의미가 있다... 하나님 앞에서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을 먼저 깨뜨려야 함을 의미하는 것으로,  하나님 보다 소중한 것이 없음을 고백하는 데서 <기도-팔랄>는 시작됨을 의미한다..  

**<팔랄 ללָפָּ<은 재판을 청구하다의 뜻이 있습니다 절대자 하나님 앞에 주님 자신이 중재해 주시기를 요청하는 것이다... 하나님 앞에 자신의 문제를 올려 드리며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것이 <기도-팔랄>의 시작이다 ... 하나님 앞에 인생의 모든 주권을 드리는 데서 무릎 기도는 시작됨을 의미한다 .... 기도는 하늘 보좌를 움직이게 할 것이다  기도는 하나님 앞에 <내>가 죽고 예수 그리스도가 사는 것을 고백하기 때문이다 ... 하나님 앞에 모든 주권을 올려 드리며 하나님의 뜻을 구하기 때문이니... 하늘의 강력한 능력을 보게 하실 것이다..

6.  그들이 미스바에 모여 (말씀따라) 물을 길어 여호와 앞에 붓고(=초막절 공식행사가 됨...합당한 사죄의 은총/정결케 하심 입기 위한 전심 쏟는 회개 의미) 그 날 종일 금식하고 거기에서 이르되 (일깨우사 마음에 깨닫는 죄마다 고백하고 토설하며) 우리가 여호와께 범죄하였나이다 하니라 사무엘이 미스바에서 (공동체의 하나됨 위해 분별/판단대로 실행함으로 얻는 화평한 하나됨 위해) 이스라엘 자손을 다스리니라

....다스리다 :: שָׁפַט (샤파트). 사사judge로 세우신 분, 바로 그 Q의 왕 되심 인해, 하나이신 Q 안에서 그분과 함께 경청하고, 그분의 권위를 위임받은 바, Q을 대표하여 임마누엘 주님 앞에서 CORAM DEO, 그분의 지식-지혜와 총명-모략따라 수행할 바  "의와 공평으로" righteousness and justice 분별-판단-치리함으로써 공동체 내의 갈등 조정하여 Q의 소유이자 기업으로서 거룩한 하나의 공동체 되게 함)

7.  이스라엘 자손이 미스바에 모였다 함을 블레셋 사람들이 듣고 (단순한 오해였을까??..아니면, 침략-멸절 기회로 여김??...오직 주 앙망하라!!) 그들의 방백들이 이스라엘을 치러 올라온지라 이스라엘 자손들이 듣고 블레셋 사람들을 두려워하여

8.  이스라엘 자손이 사무엘에게 이르되 당신은 우리를 위하여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Q의 사람 모세가 그리하였듯이!!]쉬지 말고 부르짖어 우리를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서 구원하시게 하소서 하니

9.  사무엘이 (주님 지시따라!!...대속 구주 JC 기억하시도록...이스라엘의 영적 어떠함인바) 젖 먹는 어린 양 하나를 가져다가 온전한 번제를 여호와께 드리고 이스라엘을 위하여 (친히 일어나 움직여 일하사 앞서 싸워주시도록!!)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응답하셨더라

10.  사무엘이 번제를 드릴 때에 블레셋 사람이 이스라엘과 싸우려고 가까이 오매 그 날에 여호와께서 블레셋 사람에게 큰 우레를 발하여 그들을 어지럽게 하시니 그들이 이스라엘 앞에 패한지라 = 미스바 전투(BC1082..사무엘50세)

11.  이스라엘 사람들이 미스바에서 나가서 블레셋 사람들을 추격하여 벧갈 아래에 이르기까지 쳤더라

12.  ○사무엘이 돌을 취하여 미스바와 센 사이에 세워 이르되 여호와께서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셨다 하고 그 [돌 기념비]이름을 에벤에셀이라 하니라

....참 에벤에셀 (= Q 왕국/나라/친히 머리되신 CJ 주님의 교회, 장차 나타날 새예루살렘의 모퉁이돌이자 관석이신 분 JC..신령한 산 돌, !!)회복!!

13.  이에 블레셋 사람들이 굴복하여 다시는 이스라엘 지역 안에 들어오지 못하였으며 여호와의 손이 (Q의 사람, 기도자)사무엘이 사는 날 동안에 블레셋 사람을 막으시매

14.  블레셋 사람들이 이스라엘에게서 빼앗았던 성읍이 에그론부터 가드까지 이스라엘에게 회복되니 이스라엘이 그 사방 지역을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서 도로 찾았고 또 이스라엘과 아모리 사람 사이에 평화가 있었더라

15.  ○(주께서 그분의 말씀을 실로에서 나타내시고, 선지사역의 기름부음 주신 때<특별히 궤의 사로잡힘과 실로성소파괴시점>부터)사무엘이 사는 날 동안에 이스라엘을 다스렸으되

16.  해마다 벧엘과 길갈과 미스바로 순회하여 그 모든 곳에서 이스라엘을 다스렸고

17.  (실로가 아니라)라마로 돌아왔으니 이는 거기에 자기 집이 있음이니라 거기서도 이스라엘을 다스렸으며 또 거기에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을 쌓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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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준새번역]제7장

1.  기럇여아림 사람들이 와서 주의 궤를 옮겨, 언덕 위에 있는 아비나답의 집에 들여 놓고, 그의 아들 엘리아살을 거룩히 구별해 세워서, 주의 궤를 지키게 하였다.

===사무엘이 이스라엘을 다스리다

2.  ○궤가 기럇여아림에 머문 날로부터 약 스무 해 동안, 오랜 세월이 지났다. 이 기간에 이스라엘의 온 족속은 주를 사모하였다.

3.  사무엘이 이스라엘 온 족속에게 말하였다. "너희가 온전한 마음으로 주께 돌아오려거든, 이방의 신들과 아스다롯 여신상들을 없애 버리고, 주께만 마음을 두고 그분만을 섬겨라. 그러면 주께서 너희를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건져 주실 것이다."

4.  이 말을 듣고 이스라엘 자손이 바알과 아스다롯 신상들을 없애 버리고, 주만을 섬겼다.

5.  ○그 때에 사무엘이 이스라엘 사람들을 모두 미스바로 모이게 하였다. 그들의 죄를 용서하여 달라고 주께 기도를 드리려는 것이었다.

6.  그들은 미스바에 모여서 물을 길어다가, 그것을 제물로 삼아 주 앞에 쏟아붓고, 그 날 종일 금식하였다. 그리고 거기에서 "우리가 주를 거역하여 죄를 지었습니다!" 하고 고백하였다. 미스바는, 사무엘이 이스라엘 자손 사이의 다툼을 중재하던 곳이다.

7.  ○이스라엘 자손이 미스바에 모였다는 소식이 블레셋 사람에게 들어가니, 블레셋 통치자들이 이스라엘을 치려고 올라왔다. 이스라엘 자손은 그 소식을 듣고, 블레셋 사람들을 두려워하였다.

8.  그들이 사무엘에게 가서 "주 우리의 하나님이 우리를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건져내 주시도록, 쉬지 말고 기도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하고 간청하였다.

9.  사무엘이 젖 먹는 어린 양을 한 마리 가져다가 주께 온전한 번제물로 바치고, 이스라엘을 구원하여 달라고 주께 부르짖으니, 주께서 그의 기도를 들어 주셨다.

10.  사무엘이 번제를 드리고 있을 때에, 블레셋 사람이 이스라엘과 싸우려고 다가왔다. 그러나 그 때에 주께서 큰 천둥소리를 일으켜 블레셋 사람을 당황하게 하셨으므로, 그들이 이스라엘에게 패하였다.

11.  이스라엘 사람이 미스바에서 나와서, 블레셋 사람을 벳갈 아래까지 뒤쫓으면서 무찔렀다.

12.  ○사무엘이 돌을 하나 가져다가 미스바와 센 사이에 놓고 "우리가 여기에 이르기까지 주께서 우리를 도와 주셨다!" 하고 말하면서, 그 돌의 이름을 에벤에셀이라고 지었다.

13.  그래서 블레셋 사람들이 무릎을 꿇고, 다시는 이스라엘 지역으로 들어오지 않았다. 사무엘이 살아 있는 동안에는 주의 손이 블레셋 사람을 막아 주셨다.

14.  블레셋 사람이 이스라엘에게서 빼앗아 간 성읍들, 곧 에그론과 가드 사이에 있는 성읍들도 이스라엘에 되돌아왔으며, 성읍에 딸린 지역도 이스라엘이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되찾았다. 이스라엘은 또 아모리 사람과도 평화롭게 지냈다.

15.  ○사무엘은 살아 있는 동안 이스라엘을 다스렸다.

16.  그는 해마다 베델과 길갈과 미스바 지역을 돌면서, 그 모든 곳에서 이스라엘 사람 사이의 분쟁을 중재하였다. 

17.  그리고는 자기 집이 있는 라마로 돌아와서, 거기에서도 이스라엘의 사사로 활동하였다. 그는 라마에 주의 제단을 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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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JV]제7장

1.  And the men of Kirjathjearim came, and fetched up the ark of the LORD, and brought it into the house of Abinadab in the hill, and sanctified Eleazar his son to keep the ark of the LORD.

2.  And it came to pass, while the ark abode in Kirjathjearim, that the time was long; for it was twenty years: and all the house of Israel lamented after the LORD.

3.  And Samuel spake unto all the house of Israel, saying, If ye do return unto the LORD with all your hearts, then put away the strange gods and Ashtaroth from among you, and prepare your hearts unto the LORD, and serve him only: and he will deliver you out of the hand of the Philistines.

4.  Then the children of Israel did put away Baalim and Ashtaroth, and served the LORD only.

5.  And Samuel said, Gather all Israel to Mizpeh, and I will pray for you unto the LORD.

6.  And they gathered together to Mizpeh, and drew water, and poured it out before the LORD, and fasted on that day, and said there, We have sinned against the LORD. And Samuel judged the children of Israel in Mizpeh.

7.  And when the Philistines heard that the children of Israel were gathered together to Mizpeh, the lords of the Philistines went up against Israel. And when the children of Israel heard it, they were afraid of the Philistines.

8.  And the children of Israel said to Samuel, Cease not to cry unto the LORD our God for us, that he will save us out of the hand of the Philistines.

9.  And Samuel took a sucking lamb, and offered it for a burnt offering wholly unto the LORD: and Samuel cried unto the LORD for Israel; and the LORD heard him.

10.  And as Samuel was offering up the burnt offering, the Philistines drew near to battle against Israel: but the LORD thundered with a great thunder on that day upon the Philistines, and discomfited them; and they were smitten before Israel.

11.  And the men of Israel went out of Mizpeh, and pursued the Philistines, and smote them, until they came under Bethcar.

12.  Then Samuel took a stone, and set it between Mizpeh and Shen, and called the name of it Ebenezer, saying, Hitherto hath the LORD helped us.

13.  So the Philistines were subdued, and they came no more into the coast of Israel: and the hand of the LORD was against the Philistines all the days of Samuel.

14.  And the cities which the Philistines had taken from Israel were restored to Israel, from Ekron even unto Gath; and the coasts thereof did Israel deliver out of the hands of the Philistines. And there was peace between Israel and the Amorites.

15.  And Samuel judged Israel all the days of his life.

16.  And he went from year to year in circuit to Bethel, and Gilgal, and Mizpeh, and judged Israel in all those places.

17.  And his return was to Ramah; for there was his house; and there he judged Israel; and there he built an altar unto the LO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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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Samuel 7 Amplified Bible

===Rescue from the Philistines

1 So the men of Kiriath-jearim came and took up the ark of the Lord and brought it into the house of Abinadab on the hill, and they consecrated Eleazar his son to care for the ark of the Lord. 

2 And from that day the ark remained in Kiriath-jearim for a very long time, for it was twenty years [until the reign of King David]; and all the house of Israel lamented (wailed) and grieved after the Lord.

3 Then Samuel said to all the house of Israel, “If you are returning to the Lord with all your heart, remove the foreign gods and the Ashtaroth (pagan goddesses) from among you and direct your hearts to the Lord and serve Him only; and He will rescue you from the hand of the Philistines.” 

4 So the Israelites removed the Baals and the Ashtaroth and served the Lord alone.

5 Samuel said, “Gather all Israel together at Mizpah and I will pray to the Lord for you.” 

6 So they gathered at Mizpah, and drew water and poured it out before the Lord, and fasted on that day and said there, “We have sinned against the Lord.” And Samuel judged the Israelites at Mizpah.

7 Now when the Philistines heard that the Israelites had gathered at Mizpah, the lords (governors) of the Philistines went up against Israel. And when the Israelites heard it, they were afraid of the Philistines. 

8 And the sons of Israel said to Samuel, “Do not cease to cry out to the Lord our God for us, so that He may save us from the hand of the Philistines.” 

9 So Samuel took a nursing lamb and offered it as a whole burnt offering to the Lord; and Samuel cried out to the Lord for Israel and the Lord answered him. 

10 As Samuel was offering up the burnt offering, the Philistines approached for the battle against Israel. Then the Lord thundered with a great voice that day against the Philistines and threw them into confusion, and they were defeated and fled before Israel. 

11 And the men of Israel came out of Mizpah and pursued the Philistines, and struck them down as far as [the territory] below Beth-car.

12 Then Samuel took a stone and set it between Mizpah and Shen, and he named it Ebenezer (stone of help), saying, “Thus far the Lord has helped us.” 

13 So the Philistines were subdued and they did not come anymore into Israelite territory. And the hand of the Lord was against the Philistines all the days of Samuel. 

14 The cities which the Philistines had taken from Israel were restored to Israel, from Ekron to Gath; and Israel recovered the cities’ territory from the Philistines. Also there was peace between Israel and the Amorites.

===Samuel’s Ministry

15 Now Samuel judged Israel all the days of his life. 

16 He used to go annually on a circuit to Bethel, Gilgal, and Mizpah, and he judged Israel in all these places.  

17 Then he would return to Ramah, because his home was there; and there he judged Israel, and there he built an altar to the Lo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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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상 7장 (개요)

본 장의 내용은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1. 하나님의 궤가 기럇여아림에 여러 해 동안 처박히게 됨으로 그 궤의 영광이 사라진다(1, 2).

2. 사무엘의 영광이 그의 공적인 생활의 시작과 함께 나타났다. 그는 이스라엘의 마지막 사사가 되었다.

본 장에는 그의 장년기의 기사가 실려 있다. 먼저 나왔던 그의 기사(2, 3장)는 그의 어린 시절의 이야기였으며 다음에 나오는 기사(8:1 이하)는 그의 노년기의 이야기이다. 우리는 여기서 그의 다음과 같은 활동들을 볼 수 있다.

   (1) 이스라엘로 하여금 우상 숭배에서 돌이키게 했다(3, 4).

   (2) 그들에게 여호와 신앙을 부흥시켜 주었다(5, 6).

   (3) 블레셋 사람들의 침공을 받고 이스라엘을 위해 하나님께 기도했다(7-9). 그리고 하나님은 기도를 들으시고 이스라엘에게 영광스러운 승리를 주셨다(10, 11).

   (4) 승리를 감사하는 기념비를 세웠다(12).

   (5) 이스라엘의 승리를 보다 더 확실히 했다(13, 14).

   (6) 이스라엘을 바르게 다스렸다(15-17). 이러한 것들이 하나님께서 일찍부터 그에게 은혜를 끼치사 그를 통해서 이룩하고자 하셨던 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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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럇여아림에 간 하나님의 궤(삼상 7:1-2)

여기서 기럇여아림에 있는 하나님의 궤에 대한 기사를 보고는 약 50년 후 다윗이 그 궤를 옮겨 갈 때까지(대상 13:6) 다만 한 번 이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14:18).

Ⅰ. 벧세메스 사람들은 그들의 어리석음으로 말미암아 그들의 축복이 될 수 있었던 것을 그들의 짐거리로 만들었다. 

그러나 이제 하나님의 궤는 “죽음에서 죽음에 이르는 향기”가 아니라 “생명에서 생명으로 이르는 향기”가 되게 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로 가게 되었다.

1. 기럇여아림 사람들은 기쁨으로 궤를 그들에게로 옮겨갔다(1절). 

“그들이 와서 여호와의 궤를 옮겼다”는 말씀이 맨 처음에 나왔다. 그들의 이웃인 벧세메스 사람들은 하나님의 궤를 받아들일 때만큼 그것을 떠나보낼 때는 기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 궤로 말미암은 벧세메스에서의 살육은 자의적인 힘에 의한 것이 아니라, 마땅한 응보였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며, 살육을 당한 자들은 하나님의 궤를 원망할 것이 아니라, 자신의 부끄러움을 깨달아야 하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나의 노를 격동치 말라. 그리하면 내가 너희를 해치 아니하리라”(렘 25:6)라고 하신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서 이 문제를 생각해야 한다.

하나님의 성례를 더럽히는 자에 대한 그의 심판은 그 성례를 두렵게 생각지 않게 하고, 오히려 그것들을 더럽히게 하며, 잘못 사용하게 하는 데서부터 시작된다.

2. 그들은 하나님의 궤를 모실 때 참으로 귀한 손님을 환영하며 맞이하듯이 존경과 외경, 그리고 참으로 사랑하는 마음으로 정중하게 환대하는 가운데 모시고 갔다.

(1) 그들은 궤를 모실 만한 합당한 장소를 준비했다. 

그들에게는 궤를 안치할 공적인 건물이 없었다. 그러나 아비나답의 집에 모셨는데 그 집은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었으며, 아마 그 성읍에서 제일 좋은 집이었을 것이다. 또 아마 그 집주인은 그 성읍에서 가장 경건하며, 하나님의 궤를 매우 사모하는 사람이었을 것이다.

벧세메스 사람들은 들판에 있는 돌 위에 하나님의 궤를 그대로 방치해 두었으며, 제사장의 성읍임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자기 집에 그것을 모시려고 하지 않았다. 

그러나 기럇여아림 사람들은 이스라엘의 평민들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집안으로 모셨는데, 아마 그 집에서 가장 좋은 방으로 모셨을 것이다.

① 하나님은 그 궤를 안치할 곳을 찾아내신다. 한 사람이 그것을 몰아내면 다른 사람의 그것을 모셔 들이고자 마음이 동한다.

② 하나님의 궤가 개인의 집에 들어가게 된 것은 결코 새로운 사건이 아니다. 

그리스도와 그의 사도들이 아직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는 공적인 장소를 구하지 못했을 때, 그들은 집에서 집으로 돌아다니며 설교했다.

③ 때로는 이스라엘의 평민들이 신앙적인 면에서 제사장들보다 더 잘 할 때가 있으며 그들을 부끄럽게 할 때가 있었다.

(2) 그들은 하나님의 궤를 모시기에 합당한 사람을 준비했다. “그들은 그의 아들 엘리아살을 거룩히 구별하여 여호와의 궤를 지키게 하였다.” 

그 아버지가 아니었다. 그것은 아마 그가 나이가 많아 허약했기 때문이거나 또는 자기의 집을 돌보아야 하는 일 때문에 그 일을 시키지 못했는지 모른다. 

그러나 그의 아들은 아마 신앙이 깊고 경건한 젊은이이며 동시에 그러한 최상의 일을 할 만큼 열심이 있었을 것이다.

엘리아살의 일은 심술궂은 블레셋 사람들에게 궤를 빼앗기지 않도록 지키는 것일 뿐 아니라, 호기심에 가득 찬 이스라엘 사람들이 만지거나 들여다 보지 못하도록 하는 일이었다. 그는 궤가 놓인 방을 깨끗이 청소하고 늘 고상하게 꾸미는 일을 해야 했다. 

그것은 하나님의 궤가 비록 궁벽한 곳에 안치되어 있기는 해도, 아무도 돌봐주는 이가 없는, 무시된 상태로 내버려진 것으로 보여서는 안 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엘리아살은 레위 족속, 더욱이 아론의 후손이라고 나와 있지 않다. 또 그가 꼭 그래야 할 필요도 없다. 왜냐하면 여기에는 번제를 드리거나 향을 피울 제단이 없었기 때문이다. 아마 몇몇 경건한 이스라엘 사람들이 하나님의 궤 앞에 와서 기도했을 것이며 그는 그때마다 그들을 도와주었을 것이다.

이러한 목적을 위해 그들은 그를 성별했으며, 그의 동의를 얻어 그로 하여금 이 일을 하도록 시켰으며, 늘 이 일에 종사하도록 구분했다. 

그리고 그 성읍에 있는 모든 이름들 가운데서 그를 따로이 세웠다. 물론 이것은 원칙에 어긋나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당하고 있는 난점에 비추어 볼 때 능히 용서받을 수 있는 처사이다. 

하나님의 궤가 금방 포로에서 해방된 것과 같은 상황에서는 급작스럽게 정식으로 엄숙한 가운데 모시기는 기대하기 어렵고, 있는 형편에 따라서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다.

Ⅱ. 하나님의 궤를 여기에 그대로 둔다는 일은 서글픈 일이다. 

다시금 실로에 잘 모셔야 되는 것이 바람직한 일이기는 해도 그곳은 아직 황량한 채로 있었다(렘 7:14). 아니면 놉이나 혹은 기브온, 그것도 아니면 회당과 제단이 있는 다른 곳에 모시는 것이 바람직한 일이었다. 그러나 궤는 애국심에 불타는 사람이 일어나서 바른 장소로 모셔갈 때까지 그곳에 그대로 있어야만 했던 것으로 보인다.

1. 하나님의 궤가 여기에 계속 머물러 있었던 기간은 매우 오랜 기간이었다. 

하나님의 궤는 40년 이상이라는 매우 긴 기간 동안 멀리 떨어지고, 궁벽한 곳에 자리잡고, 찾아오는 이들도 없으며, 거의 무시된 오히려 삼림의 성읍에 머물러 있었다(2절). 다윗이 옮겨가기까지의 “오랜 기간 동안 하나님의 궤는 기럇여아림에 있었다.” 

그것은 곧 이스라엘 사이에 거룩한 열심이 쇠잔했다는 증거인데, 이상하게도 사무엘이 다스리고 있는 동안에도 하나님의 궤가 지성소로 옮겨지지 않았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그렇게 되도록 묵인하셨다고 보여진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그 궤가 제자리에 있을 때 그것을 무시했던 죄를 벌하고자 하시기 때문이었으며, 또 하나님의 궤를 설정한 그 제도의 중심은 다만 그것이 그리스도의 모형이었다는 것과 그리고 “나중에 올 좋은 것이 곧 진동치 못할 것”임을 보여 주고자 하시기 때문이었다(히 9:23; 12:27). 

그것은 제사장들에게, 그들에게서 나오지 않은 한 사람을 성별하여 그 궤를 지키게 했다는 것을 책망하기 위한 것이었다.

2. 20년이 지나서 비로소 이스라엘 온 족속은 하나님의 궤의 필요성을 깨닫게 되었다. 

70인역 성서는 오늘 우리가 읽는 성서보다 그 뜻을 보다 더 분명히 밝혀준다. 거기에는 이렇게 되어 있다. “20년이 지났다. 그리고 이스라엘 온 족속이 다시금 여호와께 대하여 알아보았다.” 그처럼 오랫동안 하나님의 궤는 사람들의 관심 밖에 놓여 있었다. 

그런데도 이스라엘 사람들은 아무런 불편을 깨닫지 못하고, 그것이 어디 있는지, 또 어떻게 되었는지 알아보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궤가 성전에 없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특별하신 임재의 표시가 없는 가운데 그들은 날마다 드리는 속죄의 제사를 제격식대로 드릴 수가 없었다.

형식적인 교수들이 외형상의 꾸밈새에 만족하듯이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나님의 임재나 열납의 표시가 없는, 하나님의 궤가 없는 제단에 대해 만족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드디어 이스라엘 사람들이 스스로의 처지를 생각해 보고 하나님을 찾아 헤매며, 탄식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아마 하나님의 성령께서 특별히 역사하신 사무엘의 설교를 들었기 때문인 것 같다. 

이제 회개와 갱신의 경향이 온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나타났으며, 그들이 “그 찌른 바 그를 바라보고, 그를 위하여 애통하기를”(슥 12:10) 시작했다. 

라이트푸트 박사는 우리가 가진 성서 가운데서 이것을 가장 주목할 만한 사건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사건과 비견할 만한 것을 찾는다면 사도행전 2, 3장의 일대 회심 사건뿐이라고 본다.

(1) 하나님께서 정해 주신 의식의 귀한 가치를 아는 자는 그러한 의식이 결여되었다는 것은 통탄할 일이라고 단정할 수밖에 없다.

(2) 참다운 회개와 회심은 하나님을 찾아 탄식하는 데서부터 시작된다. 

우리의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우리로부터 멀리 떨어져 계시며, 우리가 계속 하나님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한 우리는 파멸이며, 하나님의 은혜를 회복하며 하나님으로 하여금 우리에게 은혜 가운데 다시 임하시게 하시지 못하는 한 우리에게는 안식이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이스라엘 사람들로서는 하나님의 궤를 소유하고, 그것을 들여다 보거나, 다만 자랑거리로 삼을 때보다는 차라리 하나님의 궤를 바라며, 그것을 찾아 탄식할 때가 더 좋은 때였다. 은혜의 방법이 너무 흔해서 사람들이 그것을 천시하는 것보다는, 그것이 부족하여 사람들이 애써 찾아 헤매는 모습을 보는 것이 더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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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상을 제하고 미스바로(삼상 7:3-6)

사무엘의 이름이 4장 1절에 나오고 지금까지 한 번도 언급이 되지 않았는데 , 그 동안 사무엘은 어디 갔었으며 무엇을 했을까? 

하지만 그가 백성들 사이에서 행한 수고가 비록 언급은 되지 않았어도 이제 그 열매를 맺고 있다. 

사무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와를 사모하기 시작하였다”는 것을 깨닫자, 쇠는 달았을 때 쳐야 하듯이, 하나님의 충실한 종이며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의 충실한 친구로서 그들을 위해 두 가지 일을 힘써 노력하기 시작했다.

Ⅰ. 개혁은 “우상을 제거하는 데서부터” 시작해야 하기 때문에 사무엘은 그들로 하여금 우상을 제하게 하는 일에 힘썼다. 

그는 “이스라엘 온 족속에게 말했다”(3절). 그는 순회 전도자처럼 이곳저곳으로 돌아다니며 말했던 것 같다(5절에 가서야 그들이 모인 것을 보아서 그렇게 추측할 수 있다). 어디에 가나 그는 이렇게 말했다. 

“너희가 하나님으로부터 떠나 있는 것을 슬퍼하는 것을 볼 때 나는 너희가 진심으로 여호와께 돌아오려고 하고 있다고 본다. 그렇다면 너희가 이것들을 알라.”

1. “너희는 우상을 제하여 버리라. 너희는 이방 신들을 멀리하라. 너희의 하나님은 경쟁자를 원치 않으신다. 그들을 멀리하라. 너희 각자가 먼저 그렇게 하고, 온 나라에서 그들을 제하여 버리라. 이방신 바알들을 제하고, 이방 여신들인 아스다롯들도 그렇게 하라.” 

이런 우상들을 이스라엘 사람들은 섬기고 있었다. 그리고 특별히 아스다롯이라는 이름이 나온 것은 그것이 가장 사랑받는 우상이었으며, 많은 사람들이 거기에 매혹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참다운 회개란 제일 매혹적인 죄를 내려치는 것이며, 특별한 열심과 각오를 가지고 “쉽사리 달라붙는” 죄를 떨쳐 버리는 것이다.

2. “너희는 하나님께 엄숙히 돌아오라. 그리고 신중히 생각하고 단단한 결심을 가지고 그렇게 하라. 왜냐하면 그 두 가지는 모두 너희의 마음을 하나님께 향하게 하고, 드러나게 하고, 굳건히 하게 하는 그런 마음가짐 속에 모두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3. “너희는 전적으로 하나님만을 섬기라. 다만 그를 섬기고 다른 것은 섬기지 말라. 그렇지 못하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 그를 섬긴다고 할 수 없다.”

4. “이것만이 축복과 구원을 위한 유일하고도 확실한 길이다. 오직 너희는 이 길을 따르라.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너희를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서 구원하시리라. 왜냐하면 너희가 하나님을 저버리고 다른 신들을 섬겼으므로 하나님께서 너희를 그들의 손에 붙였던 것이기 때문이다.”

이상이 사무엘의 설교의 취지였다. 그리고 그 설교의 효과는 놀라울 정도로 매우 컸다(4절). “이에 이스라엘 자손이 바알들과 아스다롯을 제하였다.” 

그들은 그들에 대한 예배를 그만 두었을 뿐만 아니라, 그 우상들을 부셔 버렸고, 제단을 훼파하고, 완전히 그들 사이에서 제하여 버렸다. 

“우리가 우상들과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호 14:8; 사 30:22)

Ⅱ. 사무엘은 이스라엘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향하게 하며 그를 섬기게 하는 데 힘썼다.

1. 사무엘은 온 이스라엘을 미스바로 모이게 했다(5절). 

온 이스라엘이란 적어도 그들을 대표하는 장로들은 빠짐없이 모이게 한 것이라고 본다. 

거기서 그는 그들을 위해 기도하리라고 약속했다. 

그들이 방방곡곡에서 부터 모여 사무엘과 함께 하나님의 은혜를 얻고자 기도하는 것은 매우 잘하는 일이다. 

사역자들은 하나님의 은혜로 그의 설교가 효과 있는 설교가 되도록, 설교를 듣는 이들을 위해 기도하여야 한다. 

신앙 집회에서 우리는 설교를 듣는 것 이상, 함께 공동 기도에 참여하는 것도 우리의 중요한 일이라는 것을기억해야 한다. 

사무엘은 하나님의 은혜로 그들이 우상을 버리고, 또 그럼으로써 하나님의 섭리로 블레셋 사람들로부터 구원을 받을 수 있도록 기도했을 것이다. 

사역자들이 교인들을 위해 도움을 더욱 주는 길은 오직 그들을 위해 기도하는 길 뿐이다.

2. 온 이스라엘은 사무엘의 부름에 응해서 모였다. 그런데 그들은 단지 모이기만 하지 않고, 열심과 호의를 나타냈다(6절).

(1) “그들은 물을 길어 여호와 앞에 부었다.”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뜻이 있다.

① 그들은 땅에 쏟은 물이 다시 거둘 수 없는 것같이 보잘것없고, 불쌍한(삼하 14:14; 시 22:14), 죄로 말미암은 창피한 자기들의 꼴을 고백하는 것이다. 

아랍어로 보면 이 말은 이렇게 읽을 수 있다. “그들은 여호와 앞에 회개하며 그들의 마음을 쏟아 놓았다.” 

그들은 하나님 앞에서 그를 바라보았기 때문에 눈물이 강물같이 흘러나오고 경건한 슬픔에 사로잡혔던 것이다.

② 그들은 하나님의 자비를 열심히 기도하며 간구했다. 기도하는 영혼은 자신을 하나님 앞에 토한다(시 62:8).

③ 그들은 철저하게 개혁했다. 그들은 그릇에서부터 쏟아져 나온 물과 같이, 그들의 모든 죄와 결별하며, 다시는 그러한 죄에 연연하며 매어달리지 않겠다는 결심을 나타냈다. 그들은 철저하게 회개했으며, “그들의 모든 죄과를” 버리기로 단단히 결심했다. 이스라엘은 이제 “우상으로부터 떠나는 세례를 받았다.”고 라이트푸트(Lightfoot) 박사는 보았다.

④ 어떤 사람은 이것이 하나님의 자비를 바라는 그들의 기쁨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보았다. 

사무엘이 그들에게 확신을 주었다는 것이다. 이 의식은 초막절의 의의를 살리는 의식으로 사용되었다(요 7:37, 38; 사 12:3 참조). 

그러한 의미로 생각한다면 그것을 이렇게 읽을 수 있다. “그들은 금식하고 나서 여호와 앞에 물을 부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불쌍한 모습을 고백하고 나서는 마지막에 용서해주시고, 다시 화해하여 주시기를 원했다.

(2) “그들은 금식하였다.” 그들은 음식을 멀리함으로 그들의 영혼을 일부러 괴롭히며, 이로써 그들의 회개를 표시하며, 그들의 헌신을 나타냈다.

(3) 그들은 공공연히 “우리가 여호와께 범죄하였나이다.”라고 고백했다. 이렇게 하여 그들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스스로는 부끄러움을 알았다. 

이처럼 우리도 우리의 죄를 고백하면 우리의 하나님은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의 죄를 용서하신다.”는 것을 알게 된다.

3. 사무엘은 그때 미스바에서 이스라엘 자손들을 다스렸다. 

이로써 사무엘은 그들이 회개함으로 하나님께서 그들의 죄가 용서함 받았다는 것과 그리고 하나님께서 다시 그들과 화목의 길을 터놓아 주셨다는 확신을 그들에게 주었다. 그것은 용서의 다스림이었을 것이다. 아니면 그들이 아직 우상을 버리지 않았다는 정보를 듣고, 율법에 따라서 그들을 고소한 것인지 모른다. 

스스로를 다스리지 못하는 자를 그는 다스렸다. 그는 재판정을 차리고 그 기간을 지정하고 나중에(16절)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순회 재판도 시행했다. 

이제 그는 활동을 개시했다. 그는 다만 한 사람의 예언자로 활동하기에 앞서, 그들로 하여금 일단 버렸던 그러한 죄로 다시는 빠져 들어가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치리자로서 활동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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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레셋의 침공와 이스라엘의 승전(삼상 7:7-12)

Ⅰ. 블레셋 사람들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회개와 기도를 위해 모인 것을, 마치 전쟁을 준비하기 위해 모인 것으로 보고 불쾌하게 생각하여 침공을 개시했다(7절). 

그리하여 그들은 자기의 나라로 군대가 쳐들어 오는 것보다는 쳐나가는 것이 현명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들은 이러한 의심을 품을 만한 정당한 이유가 없었다. 

그러나 다른 사람에게 악을 행하고자 하는 자는 쉽사리 언제나 다른 사람이 자기에게 악을 행하고자 한다고 그릇 추측한다.

1. 때로 선에서 악이 나오는 것처럼 보인다. 

이스라엘이 미스바에 모인 신앙적인 집회가 블레셋 사람으로부터 화근을 불러들였다. 

그리하여 그들은 그들의 집에 있었다면 좋았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사무엘이 그들을 불러 모은 것에 대해 원망하고 싶어졌을는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길에 들어서서도 재난을 당하는 경우가 있다. 

아니, 죄인이 회개하면 사탄은 더욱 맹렬하게 기승을 부리면서 자기에게 있는 모든 방법을 총동원하여 그들의 기를 꺾어 놓으려고 한다.

2. 그러나 선은 드디어 악과 구분이 된다. 

이스라엘은 가장 좋은 때에 적의 위협을 받았다. 그들은 회개하고 기도하고 있었다. 그들은 적을 맞이할 준비가 가장 잘 되어 있었다. 

블레셋은 가장 불리한 때에 이스라엘을 침공해 왔다. 왜냐하면 그때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나님과 화목한 관계를 맺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로 하여금 그 일을 그대로 감행하도록 만들어 주셨다.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의 갱신을 기쁘게 받으셨다는 표시를 재빨리 보여 주며, 또 그들에게 만일 그들이 회개하면 “하나님께서 그들을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건져 주시리라”라고 한 그의 사자의 말이 틀림없다는 확증을 보여 주는 기회로 삼고자 하셨다. 

Q은 인간의 분노 소리를 찬양의 소리로 바꾸어 놓으시며, 원수들의 악한 계략을 가지고 Q의 백성을 향한 자기의 은혜로우신 목적에 봉사하도록 만드신다(말 4:11, 12).

Ⅱ. 재난을 당하자, 이스라엘 사람들은 사무엘을 하나님 다음 가는, 가장 귀한 친구로 생각하고 그에게 달라붙었다. 

사무엘은 군사도 아니요, 용맹으로 유명한 사람도 아니었지만, 블레셋이 무섭고 저들은 도저히 상대가 될 수 없다고 생각되어 사무엘에게 달라붙어 “우리를 위하여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쉬지 말고 부르짖어 달라”고 부탁했다(8절). 

그들은 무장을 하지 않았다. 그들은 전쟁을 준비하기 위해 모인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금식과 기도를 위해 모였다. 

그리하여 그들의 대부분은 기도와 눈물을 그들의 무기로 삼았으며 이를 의지하게 되었다. 

그들은 사무엘이 하나님의 큰 힘을 의지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그에게 그러한 사실을 입증해 달라고 열심히 매어달렸다. 그들은 그것을 기대할 만한 이유가 있었다. 

사무엘이 “그들을 위해 기도하겠다”고 약속했으며(5절),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구원하실 것”이라는 약속을 했으며(3절), 그가 한 말은 모두 여호와께서 하신 말씀이란 것을 알고 있었다.

이처럼 그리스도에 대해 그가 율법을 주시고 또 이에 따라서 심판하시는 분으로 순종하는 자는 그의 개입으로 크게 힘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의심할 필요가 없다. 

그들은 사무엘이 기도를 그치지 않도록 간절히 원했다. 

만일 그들에게 어떤 군사적인 준비가 있었다면 그것을 믿고 그처럼 간절히 기도해 달라고 매어달리지 않았을 것이다. 

그들은 아마 모세가 손을 내리면 아말렉을 이기지 못했던 일을 기억했을 것이다. 

우리의 위대한 중보자가 하늘에 계시며, “언제나 하나님의 보좌 앞에서” 끊임없이 우리를 위해 중보하시니, 우리 모든 믿는 자들에게 크신 위로가 되신다!

Ⅲ. 사무엘은 번제를 드림으로써 하나님께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중재의 기도를 드렸다(9절). 

그는 젖먹는 어린양을 취하여 “온전한 번제를 여호와께” 드렸다. 

그리고 번제물이 타며 그 연기가 하늘에 오를 때 이스라엘을 위한 사무엘의 기도도 따라서 하늘로 상달되었다.

1. 그는 중재기도를 위해 번제를 드렸다. 

그리스도께서는 그 자신을 제물로 드리면서 중재의 기도를 드렸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모든 기도를 드릴 때, 그 위대한 제물을 눈여겨 주목해야 한다. 

그로 말미암아 우리의 기도는 들으심을 받을 수 있다. 사무엘이 기도 없이 제물만 드렸다면 그것은 한갖 헛된 그림자에 불과했을 것이다. 

그리고 제물 없는 기도를 드렸다면 효과 없는 기도가 되었을 것이다. 

사무엘이 두 가지를 함께 드렸다는 사실은 그리스도의 희생을 믿으며 드리는 기도를 통해서 우리는 많은 것을 하나님께로부터 응답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가르쳐 준다.

2. 순전히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드리는 제사는 번제였다. 

그러므로 사무엘이 그의 기도를 드릴 때 의지했던 근거는 하나님 자신의 명예였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그리하여 “여호와여, 당신의 이름을 인하여 이제 당신의 백성을 구하여 주소서”라고 기도했을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께 당신의 영광을 돌려 드리려고 애쓸 때 하나님은 당신 자신의 영광을 위해 활동하시면서 우리의 기도를 응답하시리라고 기대할 수 있다.

3. 그가 드린 제물은 단 한 마리의 젖먹는 어린양이었다. 

하나님은 제물의 크기나 그 수량을 보지 않으시고, 그 마음 중심의 태도를 보신다. 

하나님은 신앙이나 기도 없이 드리는 수천 마리의 산양이나 황소의 제물보다는 (하나님의 어린양을 나타내는) 한 마리의 어린양을 더 즐겨 열납하신다. 

사무엘은 제사장이 아니나, 레위 사람이요, 선지자였다. 이것은 특별한 경우에 해당된다. 그가 제사를 드린 것은 특별한 지시에 의한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열납하셨다. 이것은 제사장들을 책망하는 것이었는데, 그것은 그들이 스스로 멸망의 자리로 몰고 갔기 때문이다.

Ⅳ. 하나님은 사무엘의 기도를 자비로써 응답해 주셨다. “여호와께서 응답하셨더라”(9절). 

하나님께 기도한 사람은 사무엘 자신이었다. 하나님은 그의 모든 기도를 자비로써 응답하셨다. 

기도의 아들들은 기도하는 데 유명하다. “사무엘은 그 이름을 부르는 자 중에 있었다”(시 99:6). 

그 응답은 실제적인 응답이었다. 하나님은 블레셋 사람들을 어지럽게 하셨다(10, 11절). 그들은 완전히 패주했다. 

사무엘의 기도는 기대 이상으로 응답받았으며, 이스라엘의 용기가 충천했다.

1. 사무엘의 기도는 영광을 입게 되었다. 

사무엘이 번제를 드리며 그와 동시에 기도를 올리자마자 전쟁은 시작되었으며, 블레셋 사람들과 즉시 대항해서 싸우게 되었다. 

따라서 “그가 아직 말하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는 들으셨으며”, 우뢰 소리로 대답하셨다(사 65:24). 

하나님은 이로써 사무엘의 기도와 번제를 열납하셨다는 것을 보여 주셨다. 

그리고 지난번 블레셋과의 싸움에서는, 그처럼 불경한 두 제사장이 하나님의 궤를 메고 나오기만 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줄 알았던 그들의 오만한 생각을 벌주고자 하셨다는 사실을 여기에 보여 주고자 하셨다. 

그리하여 이제 하나님은 그들이 경건한 선지자의 입과 심령에서부터 나오는 신앙적인 기도를 절대 의지하는 겸손을 기쁘게 받으셨다는 것을 보여 주셨다.

2. 하나님의 능력이 영광을 입게 되었다. 

이 일을 하나님께서 직접 행하시는 가운데 그들을 패주시켰다. 

그런데 이번에는(수 10:11과 같이) 큰 우박덩이를 가지고 하신 것이 아니라, 큰 우뢰 소리를 가지고 그들을 어지럽히셨다. 

우뢰 소리가 그들을 공포에 질리게 하고 놀라 도망치게 만들었다. 그들은 쉽사리 이스라엘의 칼날 앞에 밥이 되었으며, 그들은 혼비백산하여 크게 살육을 당했다. 

조세푸스는 우뢰 소리의 공포 외에도 그들이 싸움을 시작하자, 블레셋 사람들의 발 밑에서 지진이 일어나 도처에 땅이 입을 벌려 그들을 삼켰으며, 불길이 일어나 그들의 얼굴과 손을 태웠으며 재빨리 도망가게 만들었다고 덧붙여 설명했다. 이처럼 그들은 하나님 자신의 직접적인 개입에 의해 낭패를 당하게 되었는데, 그들은 하나님의 궤를 무서워했던 것과 같이(4:7) 하나님 자신을 그렇게 무서워했던 것 같지는 않다.

3. 영광은 이스라엘의 군사들에게도 주어졌다. 

그들은 완전한 승리를 쟁취하는 데 쓰임을 받았다. 그리고 자기들을 압제하는 자들을 이기는 기쁨을 누렸다. “그들은 블레셋 사람들을 따라가며, 그들을 쳤다.” 

어쩌면 그렇게 빨리 그들은 회개하고 갱신하며 하나님께 돌아간 그 혜택을 입었던가! 

그들은 이제 하나님으로 하여금 그들 사이에 계시므로 그들의 원수들이 감히 그들 앞에 서지 못하게 만들었다.

Ⅴ.사무엘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이스라엘 사람들을 격려하기 위하여, 승전을 감사하는 기념비를 세웠다(12절). 

그는 “도움의 돌, 에벤에셀”을 세웠다. 만일 백성들의 완악한 마음이 이러한 하나님의 섭리를 잃어버리면 그것을 일깨워 주게 하고자 했으며, 계속 감사하는 마음을 품으며, 은혜를 잊어버리지 않도록 계속 증언해 주게 하고자 이 돌을 사무엘은 세웠다.

1. 그 기념비가 세워진 장소는  미스바와 센 사이에 세웠고, 20년 전 이스라엘 사람들이 블레셋 사람들에 의해 크게 살육당한 바로 그 장소의 이름을 붙였다. 

그때의 싸움이 에벤에셀 근처에서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다(4:1). 

전번에 패전을 초래케 한 죄가 그들의 회개로 인하여 용서를 받았는데, 그 용서는 그들이 패전했던 바로 그 장소에서 크게 이김으로 이를 확증시켜 주셨다(호 1:10 참조).

2. 사무엘은 이 기념비를 세우는 데 손수 애썼다. 

사무엘은 자기가 직접 애써 기도함으로 그 은혜를 입게 되었다고 보았기 때문에 그것을 기념하는 이 일에는 자기가 직접 개입하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3. 사무엘이 그러한 이름을 붙인 까닭은, “여호와께서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셨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한 것이었다. 

이러한 내용을 통해 사무엘은 과거에 내려 주신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승리에 대해서만 감사를 표하고, 장래에 대해서는 명확하게 말하고 있는 것 같지 않다. “지금까지는 모든 것이 순조로웠다. 그러나 앞으로는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실는지 우리는 모른다. 우리는 그것을 알고 싶다. 그러나 지금까지 우리에게 행하신 바에 대해서만이라도 하나님을 찬양하자.” 

우리에게 베풀어 주신 은혜와 구원에 대해서는 아직 그것이 완전히 끝난 것이 아니며, 더욱이 명확한 것이 아니더라도 할 수 있는 대로 그 구원부터 미루어서 감사를 드려야 한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아 내가 오늘까지 서서 증거한다”라고 바울은 말한 바가 있다(행 2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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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의 선정(삼상 7:13-17)

여기에는 그 후 이스라엘에 베푼 사무엘의 선정에 관한 기사가 있다. 

그는 그의 선정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 돌아오게 했으며, 보다 많은 하나님의 은총을 받도록 만들어 주었다. 이처럼 굉장한 일을 하며 그들에게 축복을 가져다 주었지만 자신에 관해서는 기록을 남기지 않았다. 

여기에는 그런 기록을 볼 수 없지만, 다른 곳(대하 35:18)에 보면 사무엘의 시대에 선지자와 이스라엘 백성들은 비록 하나님의 궤가 멀리 있고, 실로와 많이 떨어진 곳에서지만 유월절 절기를 보통 이상으로 정성을 다해 지켰다고 되어 있다. 

그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 많은 일을 했다는 것이 명백하다. 그러나 여기서는 다만 그가 하나의 보조자로서 일한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그러면 그가 일한 것들은 어떤 것들인가?

Ⅰ. 그는 국가의 평화를 안전하게 수호했다(13절). “사무엘의 사는 날 동안에 블레셋 사람들이 다시는 이스라엘 경내에 들어오지 못하였다. 그리고 그들을 공격하거나 침략하지 못했다. 그들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위해 싸우시며, 하나님의 손은 블레셋을 치고 계신다는 것을 알았으며, 이것을 두려워하는 가운데 더 이상의 진노를 면하고 있었다.” 

사무엘은 이스라엘의 수호자요 구원자였다. 그러나 그는 기드온과 같은 칼의 힘이나, 삼손과 같은 팔의 힘이 아니라,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의 힘과 백성들을 갱신시키는 활동력을 가지고 이런 일을 했다. 신앙과 경건은 한 나라를 안전하게 지키는 최선의 방책이다.

Ⅱ. 국가의 권리를 회복시켜 주었다(14절). 

사무엘의 영향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용기를 얻고, 블레셋 사람들이 부정하게 그들에게서 탈취하여 오랫동안 점령하고 있던 성읍들을 되돌려 달라고 요구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블레셋 사람들은 매우 이해 관계가 큰 것들이지만 어느 것 하나만 내놓겠다고 반항하지 못하고 그 요구에 순순히 굴복했다. 

(어떤 사람은) 비록 나중에 도로 빼앗기기는 하지만 그 지역의 중심지라고 할 수 있는 에그론과 가드까지 회복했다고 보았으며, 그 두 성읍 사이에 있는 작은 성읍들을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서 도로 찾은 것이라고 또 다른 사람들은 보고 있다. 

이것들을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들의 갱신과 신앙을 통해 얻었으며, 원수들의 근거지를 빼앗고, 그들의 형세를 유리하게 전개시켰다.

여기에 또 추가하여 “이스라엘과 아모리 사람 사이에 평화가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아모리 사람이란 나머지 원주민인 가나안 사람들이다. 이스라엘이 그들과 동맹을 맺은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잠잠했으며, 전에 가끔 그랬던 것처럼 이스라엘에 대해 위협을 끼쳐오지 않았다. “사람의 행위가 여호와를 기쁘시게 하면 그 사람의 원수라도 그로 더불어 화목하게 하시며” 그에게 해를 끼치지 못한다(잠 16:7).

Ⅲ. 그는 백성을 다스리며 재판을 주관했다(15, 16절). “사무엘은 이스라엘을 다스렸다.” 

선지자로서 그는 그들의 책임을 가르쳤으며, 그들의 죄를 꾸짖었다. 이것을 일컬어 “다스렸다(judged)”고 했다(겔 20:4; 22:4 참조). 

모세는 “하나님의 율례와 법도를 알게 하였을 때” 이것을 두고 이스라엘을 “판단하였다(judged)”라고 했다(출 18:16). 

이처럼 사무엘은 사울이 임금이 된 뒤에도 계속 일생 동안 이스라엘을 다스렸다. 

그리하여 사울이 정식으로 왕위에 취임한 뒤에도 사무엘은 “나는 너희에게 선하고 의로운 도를 가르치는 일을 쉬지 않겠다”고 약속했다(12:23). 

치리자로서 사무엘은 하급 재판의 상소를 받아 이를 판단하여 주었으며, 율법에 따라서 소송의 사유를 심문하여 이를 판단하기도 했으며, 죄인들을 심문하여 무죄를 선언하기도 하고, 유죄를 선고하기도 했다.

이 일을 그는 나이가 많아서, 휴직하고 사울에게 직무를 이양한 뒤까지라도, 일생 동안 행했다. 

그리고 나중에 그는 요청이 있자 다시금 그의 권위를 발동하여 아각과 사울까지도 재판했다. 

그리고 그가 한창 활동하던 때에는 국가의 이익을 위해, 적어도 그가 영향을 끼치던 지역들은 모조리 순회하며 재판했다. 

그는 벧엘과 길갈과 미스바 그리고 모든 베냐민의 족속들 사이에 재판정을 설치했다. 그러나 그는 언제나 조상의 성읍인 라마에 상주하고 있었다. 

거기서 그는 이스라엘을 다스렸으며,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러 지역으로부터 그들의 문제들을 가지고 거기까지 가서 사무엘의 판결을 받았다(17절). 

Ⅳ. 국민들의 신앙을 진작시켰다. 사무엘은 자기가 사는 곳에 여호와를 위한 제단을 쌓았다. 그런데 그것은 놉이나 기브온 또는 어떤 다른 회당이 있는 지역의 제단을 무시하고자 해서 그런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하늘의 의가 맡겨졌던 실로는 황폐해졌고, 그들의 제물을 드릴 장소가 아직 그들에게 주어지지 않았다(신 12:11). 그는 율법을 볼 때 그들에게 택하여 주리라 한 장소가 보류되고 있음을 알고, 선지자로서 하나님의 지시에 따라, 족장들이 행한 것과 같은 일을 행했다. 그는 자기가 살고 있는 곳에 자기 가족과 그리고 국가의 이익을 위한 제단을 하나 쌓았다. 훌륭한 사람들은 자기들의 재물과 능력과 이익을, 자기들이 살고 있는 고장의 신앙을 계속 부흥시키는 데 사용했다.

===호크마
=====7:1
기럇여아림...여호와의 궤를 옮겨 - '블레셋에서 돌아온 법궤를 이스라엘 백성들이 왜 성막이 있는 실로(Shiloh)로 옮겨가지 아니했는가?' 하는 문제에 대해 우리는 다음과 같은 이유들을 고려해 볼 수 있다. (1) 아벡 전투(4:9-11) 결과, 블레셋 족속에 의해 당시 실로까지 철저히 파괴되었기 때문이다(Ewald). (2) 실로 성소가 여호와께 더럽혀진 결과 법궤를 빼앗긴 것으로 간주하고, 당시 백성들이 법궤 보관 장소로 실로 성소를 기피하였기 때문이다(Keil). (3) 되도록이면 큰 성읍에서 멀리 떨어진 안전한 곳에 법궤를 보관하고자 했기 때문이다(Hengstenberg). 한편 '기럇여아림'에 대해서는 6:21 주석을 참조하라. 
산에 사는 아비나답의 집 - 여기서 '아비나답'(Abinadab)은 레위인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비록 이 성읍이 레위인에게 할당된 성읍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그렇게 봐야 할 까닭은 다옴과 같다. (1) 사사 시대에는 레위인들이 자신들의 성읍을 이탈하여 다른 지역에서 생활한 경우가 흔했으며(삿 17:12), (2) 후일 아비나답의 후손들이 언약궤를 옮기는 일에 공식적으로 참여했기 때문이다(삼하 6: 3). 한편 '산에 사는'( , 바기아)이란 말은 직역하면 '산지에 있는'(in the hill, KJV) 또는 '산지 위에'(on the hill, NIV)란 뜻인데, 이는 곧 아비나답의 집이 기럇여아림 성읍의 교외 산지에 위치했었다는 사실을 암시 한다. 
들여 놓고 - 아비나답의 집은 언약궤를 보관하기에 적당했던 것 같다. 그 까닭은 그의 집이 기럇여아림의 교외 고지에 위치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 아들 엘리아살 - '엘리아살'(Eleazzr)은 '하나님은 도우시는 자'란 뜻으로, 이 사람은 아론의 아들로서 아론의 뒤를 이어 차기 대제 사장이 된 엘르아살(Eleazzr, 출 6:23;민 20:25-28)과는 동명 이인이다. 그런데 이러한 이름의 소유자는 위의 두 사람 이외에는 성경에 나타나지 않는다. 이와 같은 사실은 아비나답의 아들 엘리아살이 레위 지파의 후예임을 은연중 시사한다. 
거룩히 구별하여 - 이 말은 제사장을 임직할 때 사용하는 말이다(출 28:3, 41). 따라서 이러한 표현은 엘리아살이 혈통상 제사장 가문의 후예가 아니었음을 암시한다. 그러나 당시의 특별한 상황은 제사장적 직분을 감당할 사람이 반드시 필요하였다. 따라서 그가 비록 제사장 가문의 후예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레위 지파였으므로 그곳 주민들은 그를 제사장으로 세운 듯하다. 
=====7:2
궤가...이십 년 동안을 오래 있은지라 - 여기서 '이십 년 동안'은 다윗에 의하여 언약궤가 예루살렘으로 완전히 옮겨진 때까지를 의미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궤를 빼앗겼던 아벡 전투(혹은 에벤에셀 전투)는 B.C. 1075년에 있었고, 다윗이 언약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겨간 때는 그가 예루살렘에서 통치를 시작한 직후인 적어도 B.C. 1003년 이후일 것이기 때문이다(Leon Wood). 따라서 여기의 '이십 년 동안'은 사무엘이 최초로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공개적으로 회개를 촉구한 때까지의 기간을 가리킨다(3절). 비록 하나님의 언약궤는 일찍이 이스라엘로 돌아왔지만(6:14), 20년이란 기간 동안 이스라엘 사람들은 자유로운 여호와 섬김 활동을 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당시는 이스라엘이 블레셋 족속들에 의하여 정치적으로 여전히 압력을 받고 있었으며(4 :10), 또한 언약궤는 비록 이스라엘 땅이긴 하지만 여전히 블레셋의 깊숙한 영향권 아래 있는 기럇여아림 땅에 보존되고 있었기 때문이다(6 :21). 
이스라엘 온 족속이 여호와를 사모하니라 - 여기서 '사모하다'( , 나하)란 말은 본래 '크게 울다', '부르짖다'란 뜻이다. 따라서 성경에서 이 말은 흔히 신세를 몹시 한탄하거나 과거의 잘못을 깊게 뉘우쳐 크게 울면서 부르짖는 행위를 가리킬 때 사용되었다(렘 9:10;31 :15; 겔 32:18; 암 5:16; 미 2:4). 그런데 이와 같은 일은 하나님을 향한 신앙 활동을 이방 족속 블레셋에 의해 오랜 기간 동안 강제로 억제당했던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있어 나타날 수 밖에 없었던 당연한 현상이었다. 
그러나 그 이면에 깃들어 있는 사무엘의 분투적인 노력과 활동을 우리는 간과할 수 없다. 즉 일찍이 이스라엘의 선지자로 명망이 높았던(3 :19, 20) 사무엘이 이 오랜 시기 동안 잠자코 있었다고는 도무지 생각할 수 없다. 
비록 성경은 이 점에 대해 침묵하고 있지만 우리는 여러 일의 결과를 통해 다음과 같이 추측할 수 있다. (1) 아벡 전투의 결과로 말미암은 실로 성소 파괴 이후, 아마도 사무엘은 성막을 놉(Nob)으로 이전하는 일에 깊이 관여 했을 것이다(21 : 1-9). (2) 대제사장 엘리와 그의 두 아들 사망이후, 사무엘은 실질적인 이스라엘의 정치, 종교 지도자로서 사회 질서를 바로 잡고 타락된 제사 예식의 기강을 수립하는 일에 매진하였을 것이다. (3) 블레셋의 위협을 무릅쓰고 사무엘은 이스라엘 곳곳을 돌며 여호와 신앙을 고취시키고 죄의 회개를 부르짖는 등 신앙 각성 운동을 전개하였을 것이다
=====7:3
사무엘이...일러 가로되 - 여기서 드디어 사무엘의 활동이 본격적으로 언급되기 시작한다. 
비록 공식적이며 전면적인 것은 아니었지만 사무엘의 신앙 부흥 운동이 그동안 계속 되어 왔음은 틀림없는 사실일 것이다(3 :19-21 ; 4 : 1). 
그러나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적절한 때를 포착한 사무엘은 본격적이고도 공개적으로 이스라엘의 정치. 종교 지도자로서의 활동을 시작하였던 것이다. 
한편 이때 사무엘의 나이는 32세 쯤 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렇게 볼 수 있는 근거는 사무엘은 아벡 전투(4 : 5-11)가 있었던 약 12살에 소명되었고(3:1-14), 활동 당시는 그 전투 직후 궤를 빼앗긴 때로부터 20년이 지난 시기이기 때문이다.
전심으로...돌아 오려거든 - 여기서 '돌아오다'( , 슈브)란 말은 '회복하다', '돌아가다', '전향하다', '회개하다'란 뜻으로서 곧 성경에서 이 단어는 죄에서 돌이켜 회개함을 가리킬 때 주로 사용 된다(왕상 8 :33, 48; 대하 6:24; 느 1: 9; 렘 3:10). 
한편 '전심으로'( - ,베콜레바브켐)는 '너의 마음 송두리채'란 뜻으로서, 이는 회개의 순수하고 진정한 성격을 강력히 암시해 주는 문구이다. 
이방 신들과 아스다롯을...제하고 - 우상을 제하는 일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와께 돌아와 여호와만을 섬기기 위한 전제 조건으로서, 최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이었다(출 20:3-6). 여기의 '이방 신'( , 엘로헤 하네카르)은 문자적으로는 '낯선 신들'(the strange gods, KJV)이란 의미이다. 그러나 4절의 언급으로 미루어 짐작할 때 구체적으로는 '바알 신'을 가리킴이 분명하다. 
이 '바알'(Baal)은 '주'(主)라는 의미인데, 가나안 땅에서 이 바알 신은 원래 '엘(EL) 신'의 아들로 비와 풍년을 가져다 주는 신으로 간주되었다. 그러나 그는 죽음의 신인 '못(Mot) 신'에 의하여 죽임을 당하였는데, 그후 7년의 세월이 지난 후 그의 누이이자 아내인 전쟁의 여신 '아낫'(Anat)이 그의 시체를 찾아 그를 다시 살렸다고 한다. 
한편 '아스다롯'(Ashtaroth)은 예레미야서에서 '하늘의 여신'으로 언급되는 여신이다(렘 44:19). 이 여신은 가나안 사람들에 의하여 미(美) 와 유연성을 지닌 '성(性)의 여신'으로 간주되 었다. 그런데 그당시 바알 신과 아스다롯 신은 보통 가나안 사람들에 의하여 함께 모셔졌고, 이스라엘 사람들에 의해서도 그런 경우가 많았다. 그러므로 이러한 우상 신들에 대한 숭배 의식에는 위의 두 우상의 성격에서 살펴볼 수 있듯이 필연적으로 성적 음란이 뒤따르게 되어 있었다. 따라서 이방의 우상 숭배는 하나님을 멀리 하도록 했다나 중요한 이유 외에 성적 음란을 조장했다는 점에서 하나님의 백성을 타락시키기에 충분하였다(민 25:1, 2; 왕상 14: 24;15:12; 22:46). 이에 따라 성경에서는 바알과 아스다롯을 함께 묶어 이스라엘 백성이 절대로 금해야 할 숭배의 대상으로서 언급하였다(삿 2 :11 ;3 : 7; 왕하 23: 4). 
너희 중에서 제하고 - '제하고'( , 하시루)는 '제껴두다', '뽑다', '떠나다'란 뜻의 '수르'( )에서 파생된 말로, 이 말은 구약 성경에서 특히 우상을 그 흔적까지도 없앤다는 뜻으로서 많이 사용된 단어이다(창 35: 2 ;수 24:14; 왕상 15:14 ;왕하 12: 3 )
=====7:4
이에...제하고 여호와만 섬기니라 - 본절은 사무엘이 선지자로서 백성들에 의하여 크게 신임되고 있었음을 분명히 보여 준다(3: 19-21; 4 :1). 
사무엘의 회개 촉구에 순히 응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이같은 행동은, 그들이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것이 자신들을 자유케 하는 지름길임을 체험적으로 깨달았기 때문일 것이다. 결국 이것은 그동안 힘써 노력해 온 사무엘의 신앙 각성 운동이 열매를 맺은 것이요, 또한 블레셋의 압제에서 구원받기를 간절히 소원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결코 저버릴 수 없는 유일한 선택이었던 것이다(삿 3 :8, 9) 바알들과 아스다롯 - 3절 주석 참조.
=====7:5
온 이스라엘은 미스바로 모이라 - 이같은 대성회는 전에도 국자적으로 중차대한 문제가 발생했을 때 이루어졌었다(삿 20:1;21: 5,8). 더구나 중앙 성소였던 실로(Shiloh)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던 그 당시의 상황에서 볼 때 미스바 모임의 의의는 실로 크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미스바'( , Mizpah)는 '파수대'(watchtower)라는 뜻을 가지며, 오늘날의 '텔 엔-나스베에'와 동일 지역으로서 해발 784m의 고지에 위치하였다. 그리고 이곳은 예루살렘 북쪽 약 13km지점에 위치한 베냐민 지파의 땅이었다. 한편 이 성읍의 역사적 존재 사실은 1920년부터 1935년 사이에 실시된 탐사를 통하여 B.C. 1100-400년경의 많은 유적들이 이 지역에서 발굴됨으로써 충분히 입증되었다. 그런데 사무엘이 많은 성읍 중 이곳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모이도록 한 이유는 아마도 미스바가 온 이스라엘이 모이기에 지리적으로 가장 좋은 지점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아무튼 미스바 모임의 목적은 다음 두 가지였다. 
(1) 대회개 운동을 통하여 국운을 회복하고 신앙을 회복하기 위한 거국적 성회였다. (2) 블레셋으로부터 정치.종교의 자유와 독립을 회복하기 위한 거국적 거사였다(Keil, Smith). 그리고 미스바 성회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1) 지도자 중보 기도를 하기 위해 추진한 성회였다. (2) 백성들은 금식하고 회개함으로써 동참한 성회였다. 
아울러 미스바 성회가 가지는 의의는 다음과 같다. (1) 타락하고 피폐해진 이스라엘 사회를 하나님의 왕국답게 혁신하는 대개혁의 모임이었다. (2) 파괴된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의 언약 간계를 새롭게 회복하는 대전환의 모임이었다. 
내가 너희를 위하여...기도하리라 - 사무엘의 이 말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악에 대한 중보의 기도임이 분명하다(12:19; 시 99:6; 렘 15:1). 따라서 이 일은 마땅히 이스라엘의 대제사장이 할 일이었지만, (1) 당시는 대제사장이 뚜렷이 없었고 또한 제사 의식마저 제대로 행해지지 않았으며 (2) 사무엘은 이스라엘에 새로운 질서를 세우도록 하나님에 의하여 특별히 부름받은 인물이었다는 점에서(2:35;3:19-21) 사무엘에 의해 수행될 수 밖에 없었다.
=====7:6
물을 길어 여호와 앞에 붓고 - 이처럼 '물을...붓는' 행위는 마치 물을 부어 쏟듯이 자신의 마음 전부를 다 내어놓고 회개한다는 것을 뜻하는 상징적 행동이며(시 22:14), 아울러 자신의 슬픔을 외적으로 모두 토로해 낸다는 것을 표현하는 상징적 행동이다(애 2: 18,19). 따라서 반대로 '물을 길어 올리는' 행위는 기쁨과 즐거움을 뜻 하는 상징적 행동이다(사 12:3). 
금식하고 - '금식하다'에 해당하는 '춤'( )운 본래 '입을 덮다'란 뜻이다. 여기서는 여호와께 진정과 겸손으로 회개한다는 구체적인 표시로 '금식'(fast)란 방법이 채택되고 있다(사 58: 6-9). 아울러 여기 '금식'은 애통과 회개와 기도 등을 모두 함축하는 말이다(삿 20:26; 삼하 12:16-23; 왕상 21:27). 
우리가...범죄하였나이다 - 이말은 구약 성경에 나오는 여러 가지 회개에 대한 묘사 중 가장 전형적인 형태이다(출 32: 31 ;신 1: 41; 삿 10:10; 삼하 24:10;왕상 8:47; 왕하 18:14). 여호와를 향한 이스라엘 백성의 이와 같은 죄에 대한 진정한 회개는 그들이 블레셋의 압제에서 구원 받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요인이었다(삿 3:9, 15;4:3;6:6). 
사무엘이 미스비에서...다스리니라 - 여기의 '다스리니라'( , 이쉬포트) 는 '재판하다'란 의미이다(출 18:16, 22;사 2 : 4; 렘 5:28; 단 9:12). 즉 이스라엘의 종교 개혁을 주도한 사무엘은 이제 종교적인 일 뿐만 아니라, 또한 정치적인 지도자로서 백성들의 생활 태도 전반을 교정시키고 감독하며 재판해야 하는 사사(士師)로서의 역할도 감당해야 했다.
=====7:7
미스바에 모였다 함을...듣고...치러 올라온지라 - 이스라엘에 대한 블레셋 사람들의 공격은 단순히 이스라엘 사람들이 미스바에 모였다는 사실 자체 때문이 아니었다(삿 20: 1). 블레셋 사람들은 사무엘의 영도하에 이스라엘이 미스바에서 거행한 의식(儀式)을 이스라엘 사람들이 다시 하나로 뭉쳐 성전(聖戰)을 준비키 위한 행위로 파악했기 때문에, 그러한 움직임이 더 확장되기 전에 먼저 선제 공격을 감행한 것이다(Klein). 사실 오랫동안 블레셋의 정치적 영향권 하에 있던 이스라엘이 이방 신상을 제거하고 민족 신앙을 고취시키는 거국적 집회를 개최한다는 것은, 곧 블레셋의 압제로부터 정치 . 종교의 자유와 독립을 선언하는 명백한 도전 행위임은 분명했다(Smith). 
이스라엘 자손이...두려워하여 - 블레셋 족속에 의하여 숱한 세월 동안 압제를 당해왔던 이스라엘 사람들로서는 블레셋의 공격 소식에 이같은 반응을 보임은 당연하였다(출 14:10, 13; 수 10:8). 더군다나 당시 이스라엘은 싸울 무기나 조직 조차 변변치 못한 반면에, 블레셋 족속은 강력한 철병기로 중무장한 조직된 군대가 아니었던가?
=====7:8
쉬지 말고 부르짖어 - 여기서 '부르짖다'( ,자아크)는 극한의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한 간절한 호소를 가리킨다(삿 6: 7 ; 대상 5:20; 렘 11: 11). 따라서 '쉬지 말고 부르짖어'라는 말은 어려운 고비를 벗어날 때까지 하나님께 간절히 간구하는 행위를 멈추지 말라는 뜻이다. 결국 이것은 (1) 이스라엘 백성들이 사무엘을 하나님과 자신들 사이의 중보자로 인정 하고 있으며(왕하 3: 11-19). (2) 백성들이 하나님만이 전쟁의 승패를 좌우하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시인하고 또한 의뢰하고 있음을 보여 주는 말이다.
=====7:9
젖 먹는 어린 양을 취하여 - 이 어린 양은 태어난 지 최소한 7일 이상은 된 양일 것이다(레 22:27). 한편 이처럼 사무엘이 성숙하지 아니한 어린 양을 희생 제물로 택한 이유는, 무엇보다도 이방 신상을 제하고 회개한 이스라엘이 이 순결한 어린 양처럼 새롭게 거듭 태어났음을 상징하고자 했기 때문이었다(Keil). 
온전한 번제를 여호와께 드리고 - 이것은 희생 의식 절차에 있어서의 완전성을 의미하기 보다는, 오히려 헌신하는 마음 자세의 완전성을 뜻한다. 또한 실제적으로는 어린 양 한 마리 전체가 온전히 화제(火祭)로 불살라졌다는 것을 뜻하기도 할다. 한편 여기서 사무엘이 여러 가지 제사 형태 중에서 번제를 드린 이유는 '번제'가 전적 헌신의 제사이기 때문이었다<레 1 : 3-9 강해, 번제에 대하여>. 따라서 사무엘과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같은 번제를 통하여 하나님께 온전한 헌신을 다짐하므로써 (1) 자신들의 회개의 진실성을 강조하며(6절), (2) 자신들이 구원 받아야 할 간절한 필요성을 호소하였다(8절). 
여호와께서 응답하셨더라 - 이것은 진실하면서도 간절한 전적인 헌신의 기도가 얼마나 큰 능력을 갖고 있는지를 잘 보여 주는 말이다(약 5 : 16).
=====7:10
블레셋 사람이...가까이 오매 - 본절의 장면은 생생하다. 즉 미스바 제단에서 어린 양은 번제로 계속 불타고 있었고, 사무엘은 전심 전력으로 여호와께 부르짖고 있었다. 때에 철무기로 무장한 블레셋 군대는 득의 앙양하여 미스바 산지의 아래에서부터 이스라엘 사람들이 집결해 있는 고지로 서서히 접근해 오고 있었던 것이다. 이스라엘은 도저히 군사력으로는 감당 해 낼 수 없었던 몰사의 위기에 직면해 있었다. 오로지 하늘의 도우심만 의뢰하고 바랄 뿐이었다. 바로 그러한 순간에 하나님께서는 우뢰로써 기도에 응답하셨다. 
큰 우뢰를 발하여 그들을 어지럽게 하시니 -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헌신과 기도에 대하여 우뢰(雨雷)로써 응답하셨다. 즉 여기서 '우뢰'는 블레셋 군대를 쳐부수는 하나님의 무기로 사용되었던 것이다(2 :10 ; 삼하 22: 14). 한편 하나님께서는 이외에도 번개(삼하 22:15; 왕상 18: 38), 우박(수 10:11), 흑암(수 24: 7), 심지어 별(삿 5:20)과 질병(5:6)까지도 당신을 대적하는 자들을 징벌하시는 당신의 무기로 사용하신다. 여기서도 하나님께서는 자연계를 당신의 의지에 따라 주장하셔서 '우뢰'라는 자연 현상을 유발시키셨던 것이다. 사실 고대인들은 이 우뢰를 하나님의 목소리로 생각했었다. 여하튼 때맞춰 하늘로부터 터져나온 이 '우뢰' 소리로 인하여 블레셋 족속은 두려움에 떨게 되었고, 혼비 백산(魂飛魄散)하게 되었을 것이다.
=====7:11
이스라엘 사람들이...블레셋 사람을...쳤더라 - 득의 양양하게 진군해 와서 이스라엘을 공격하려던 순간에 갑자기 하늘로부터 터져나온 큰 우뢰 소리에 놀라 혼비 백산한 블레셋 군대를 이스라엘이 사기충천하여 파죽지세로 몰아쳤다는 의미이다. 한편 타민족에 대한 이스라엘 민족의 승리 장면은 사사기 16장을 끝으로 여기서 처음 언급된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승리가 항상 그렇듯, 이 승리 역시 철저하게 여호와 하나님의 능력에 의해 거두어들인 것임에 틀림없다. 왜냐하면 당시 블레셋 족속들은 철병기를 소유하였으며, 이러한 블레셋 군대를 이스라엘의 군사력으로서는 절대로 이길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승리의 헌장에 다만 은혜로 참여하였을 뿐이다(수 10:10). 한편 우리가 아벡 전투(4 : 5-11)를 B.C. 1075년 경으로 본다면(Leon Wood), 여기 미스바 전투는 그로부터 20년 후인(7: 2) B.C. 1055년 경에 발발한 것으로 볼 수 있다. 8 : 1 주석 참조. 
벧갈( , Bethcar) - '어린 양의 집' 혹은 '초원의 집'이란 뜻으로, 이 '벧갈'의 위치는 확실치는 않으나 미스바 서쪽 약 13km 지점에 위치했을 것으로 추측된다(Klein). 한편 요세푸스는 오늘날 이 벧갈의 위치를 여리고와 벧스안 사이의 '코라이온'(Korraion)으로 보고 있다(Josephus, Antiquities, VI. 2, 2).
=====7:12
돌을 취하여...세워 - 구약 성경에서 '돌을 취하여 세우는 일'은 특별한 사건을 후대에까지 기념 혹은 기억케 하기 위한 목적으로 이루어졌다(창 31: 44-47; 수 4:6-7). 
미스바와 센 사이 - '미스바'(Mizpah, '망대' 또는 '파수대'란 뜻)는 예루살렘 북쪽 약 13km 지점에 위치한 베냐민 지파의 땅이다. 7 : 5 주석 참조. 한편 '센'( , Shen)은 '치아'(齒牙)란 뜻으로서, 그 지역이 불쑥 불쑥 날카롭게 튀어 나온 바위들이 많은 험준한 곳이었음을 시사해 준다(Fay, Keil). 한편 이곳은 미스바 북동쪽 약 13km지점의 '여사나'(대하 13:19)와 동일한 지역으로 주장되기도 한다(Reed). 그러나 블레셋 족속들은 이스라엘의 반격을 받아 서쪽으로 도주하였을 것이므로, 위의 주장은 받아들여질 수 없다(Klein). 사무엘과 이스라엘은 패주 하는 블레셋을 추격하여 미스바의 서쪽으로 향했고, 그리고 그들이 진격해 간 곳 근처 어디에 돌을 세웠을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돌이 세워진 곳은 '벧갈'(11절)과 가까운 곳으로 볼 수 있다. 
여호와께서...우리를 도우셨다 - 이 말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 다음과 같은 의미가 내포된 말이라 할 수 있다. 즉 (1)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에 대한 감사, (2) 계속적인 은혜 공급의 간절한 요청, (3) 하나님의 은혜 안에만 계속 머물겠다는 전적인 헌신의 각오 등이다. 
여기까지 - '여기'( , 헨나)는 구체적으로 그때 사무엘과 이스라엘이 블레셋을 추격해 갔던 서쪽 한계를 가리킴이 분명하다. 그런데 사실 근 40년간 블레셋의 압제에 시달리던(삿 13: 1) 이스라엘이 싸움에 이겼을 뿐만 아니라, 블레셋 족속의 영역권인 가나안 서쪽까지 막강한 블레셋 군대를 공격하면서 쫓아갈 수 있었던 것 오직 하나님의 절대적인 도우심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 이름을 에벤에셀이라 하니라 - '에벤에셀'( , '도움의 돌'이란 뜻)은 미스바 전투의 승리가 오직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말미암았다는 사실을 오고오는 세대에 증거하기 위해 세운 기념석(記念石)으로서, 이스라엘이 블레셋 군대를 추격해 간 장소에 세워졌다. 한편, 그런데 여기 '에벤에셀'(Ebenezer)은 4:1의 에벤에셀과는 다르다. 그 이유는 (1) 그 위치에 있어서 다르며<4:1 주석 참조> (2) 4:1의 에벤에셀은 한 지역의 명칭인 반면, 여기의 에벤에셀은 다만 '둘'의 이름이기 때문이다.
=====7:13
이에 - 이 말은 본절의 내용이 12절의 결과(미스바 전투의 대승리)임을 강력히 시사 하는 접속사이다. 
블레셋 사람이 굴복하여 - 여기의 '블레셋 사람의 굴복'은 이스라엘 백성에 대한 완전한 항복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왜냐 하면 블레셋 족속들은 이스라엘 영내 일부에 자신들의 총독부 및 수비대를 계속 두고 있을 정도로(10:5), 이스라엘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9: 16). 따라서 여기 이 말은 미스바 패전 이후 불레셋은 더이상 이전처럼 이스라엘과의 전투에서 승리하지 못하고 그 세력이 약화되어 갔다는 것을 뜻한다. 물론 이 기간 동안 이스라엘은 블레셋에게 빼앗겼던 많은 성읍을 도로 회복할 수 었었다. 
여호와의 손이...막으시매 - 이것은 미스바 전투(10, 11절) 이후에도 이스라엘 백성에 대한 블레셋의 파상적 공격이 계속되었음을 보여주는 말이다. 그러나 그때마다 하나님께서 친히 블레셋의 공격을 막아주셨기 때문에 이스라엘은 평화를 누릴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하나님의 도우심도 '사무엘의 사는 날 동안에'라는 단서가 붙음으로써, 사무엘 사후 이스라엘에 밀어 닥칠 격랑(激浪)을 예상케 한다. 사무엘이 사는 날 동안에 - 이 말은 사무엘이 이스라엘의 사사로서 통치하고 있을동안을 가리키는 말로, 이 기간은 사울이 왕이 된 후의 약 5년을 포함하는 기간이었다. 실제로 사울은 이 5년 동안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많은 전공을 남길 수 있었다(14: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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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레셋 사람이...빼앗았던 성읍 - 이 '성읍'들은 대부분 아벡 전투(4:5-11)의 패배로 말미암아 블레셋에 빼앗긴 곳들이었다. 
에그론부터 가드까지...회복되니 - 이 말은 이스라엘이 블레셋의 주요 성읍인 에그론과 가드까지 정복했다는 뜻이 아니다. 이 말은 에그론과 가드를 잇는 블레셋 경계의 동쪽 성읍을 회복 했다는 뜻이다(Keil, Fay, Smith). 사실 이 부근의 이스라엘 성읍들은 오랫동안 블레셋의 통치와 압제하에 있었으나, 사무엘 시대에 다시 되찾은 것이다. 
이스라엘과 아모리 사람사이에 평화가 있었더라 - 이 두 민족은 역사적으로 계속 앙숙지간의 관계에 있었다. 특별히 '아모리 사람'(the Amorites)은 가나안의 여러 족속 중 가장 강력한 족속으로서, 출애굽 이후 계속적으로 이스라엘을 괴롭혀온 족속이었다. 그러나 사사 사무엘의 시대에는 이들간에 평화가 유지되었는데, 이처럼 아모리 사람들이 이스라엘 백성들과 평화 관계를 유지코자 한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는, 블레셋의 강력한 군대가 이스라엘에 의하여 패퇴당하는 것을 아모리 족속이 분명 목도하고 그 위세에 눌렸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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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이 사는 날 동안에...다스렸으되 - 여기서는 사무엘의 사사직 수행이, 사울이 왕으로 세워진 이후에도 계속 수행되었다는 사실이 애써 강조되고 있다(13절 ; 12: 11; 13:13; 15:1). 즉 사무엘은 사울이 왕으로 기름부음 받은 이후에도 이스라엘의 선지자요 사사로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 것이다. 이것은 사울의 타락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 즉 당시 사울은 백성들의 지도자로 세워지기는 하였으나 (11 :14,15), 그는 하나님의 뜻과는 다른 지도자였다(8장; 9:16). 따라서 하나님께서 진정으로 기뻐하시는 왕이 세워지기까지, 새로운 신정 왕국(神政王國) 건설을 준비해야 할 사무엘은 자신의 사사직을 계속 수행해야만 할 필요성이 있었다.
=====7:16
해마다...순회하여 - '해마다'는 '적어도 1년에 한 차례씩'의 의미이다. 그리고 '순회하다'( , 사바브)는 '에워싸다', '돌다', '왕래하다' 등의 의미이다(수 6 : 15 ; 시 22: 12; 전 12 :5), 한편 그당시 사무엘은 이같은 일을 사울이 왕으로 세워질 때까지 적어도 5년간은 계속했을 것이다(Leon Wood). 
벧엘과 길갈과 미스바로 - '벧엘'(Bethel)은 예루살렘 북쪽 약 16km지점의 에브라임 지파에게 속한 지역으로, 이곳은 일찍이 아브라함과 야곱이 단을 쌓는 등의 역사적 사실로 말미암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하나의 성지(聖地)로 여겨 졌다(10: 3 ;창 12:8; 28:17-19; 수 7: 2; 왕상 12:29). 한편 '미스바'(Mizpah)는 예루살렘 북쪽 13km 지점, 곧 예루살렘과 벧엘 사이의 베냐민 지파의 성읍이다. 5절 주석 참조. 그리고 '길갈'(Gilgal)은 이스라엘이 요단을 건넌 직후 집단적으로 할례를 받은 곳으로서(수 5:8), 요단 서쪽 약 6km 지점이다(수 4:19). 이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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