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22.05.11 작성자 : 양시영
제   목 : 삿16..일향 미쁘신 Q, 그분이 넣어주시는 참 믿음!! 그 Q 신뢰하는 참 나실인..눈먼 포로 된 삼손 안에서 자라나고 있는J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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삿16장 [268장 '죄에서 자유를 얻게 함은] [310.아 하나님의은혜로]

...그대의 그리스도께 합당히 행하라..(영원하신 그리스도를 만홀히 여기지 말라!!)...그분에게까지 범사에 자라가라...오직 주님 발견함, 구하고-찾고-두드림!! 전적으로 의지하고 회개함으로 태워지고 씻겨진 새사람, 주님 소유!!, 영생 안으로!!

===삼손이 가사에 가다...자행자지함??((자기과신-자기 힘자랑-만용))

1.  삼손이 가사에 가서 거기서 한 기생을 보고 그에게로 들어갔더니<여리고 정탐꾼처럼 정탐 목적?>

2.  가사 사람들에게 삼손이 왔다고 알려지매 그들이 곧 그를 에워싸고 밤새도록 성문에 매복하고 밤새도록 조용히 하며 이르기를 새벽이 되거든 그를 죽이리라 하였더라

3.  삼손이 밤중까지 누워 있다가 그 밤중에 일어나 성 문짝들과 두 문설주와 문빗장을 빼어 가지고 그것을 모두 어깨에 메고 헤브론 앞산 꼭대기로 (당당하게!!)가니라

===삼손과 들릴라

4.  ○이 후에 삼손이 소렉 골짜기의 들릴라라 이름하는 여인을 사랑하매..

......오직 임마누엘 주 앙망함으로 살았던 요셉과는 그 삶의 태도가  정반대로 행하고 있었다..(시1) 1.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2.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3.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   4.악인들은 그렇지 아니함이여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  5.그러므로 악인들은 심판을 견디지 못하며 죄인들이 의인들의 모임에 들지 못하리로다   6.무릇 의인들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들의 길은 망하리로다....자기 신분에 합당하지 않은 자리라면 그 자리를 떠나라..대적의 "개구리 삶기 계략"에 당하게 된다.

......여태 자행자지하고 있을는지도 모르나.. 그대 안에 여전히 작동되는, 풍성-부요-충만이신 주 하나님 아버지, 그분의 은혜로 주어진 은사, 곧 탁월함은, 그야말로 그분의 신실한 약속따른 은전이로되, (완전하신 뜻과 구원 이루시려!!) 거두어 가실 수도 있는 것임을 분명히 깨닫고, 회개하라, 주님 그분과 참사랑-믿음-소망의 하나됨으로써 그분 사랑 안에 거함-동행함으로 걸으라!!

5.  블레셋 사람의 방백들이 그 여인에게로 올라가서 그에게 이르되 삼손을 꾀어서 무엇으로 말미암아 그 큰 힘이 생기는지 그리고 우리가 어떻게 하면 능히 그를 결박하여 굴복하게 할 수 있을는지 알아보라 그리하면 우리가 각각 은 천백 개씩을(=노동자1인 10년 품삯...총50년 품삯) 네게 주리라 하니

....삼손의 힘에 대해 그 원천을 알고 싶어 하는바 이중적 의미가 깔려있다...하나는 그를 제압하여 부정적 영향에서 벗어나고자 함이요, 두번째는 가능한한 모든 방법을 다 동원해서라도, 동일한 그 힘을 얻고서 그들 자신을 강화하고자 함.....마술사 시몬이 그러했었다..

....JC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얻는 오직!! 무조건적 은혜로((= "미쁘신 하나님의 믿음, 그분이 주신 바로 그 믿음의 비밀임)), 그 은혜로 인해 한량없이 베풀어 주시는, 무한한 사랑 안에서 임하는 바 값없이 주시는 성령 은사임을 모르고.... 재물이나 기타 수단을 써서라도....심지어[헌금, 40일-백일기도?..일천번제??]등으로라도 동일한 은사를 그 대가로 얻고자 하는 것이야말로... 세상의 생명 없는 거짓 종교적 = 마귀적 접근이랄 수 있음..

6.  들릴라가 삼손에게 말하되 청하건대 당신의 큰 힘이 무엇으로 말미암아 생기며 어떻게 하면 능히 당신을 결박하여 굴복하게 할 수 있을는지 내게 말하라 하니

7.  삼손이 그에게 이르되 만일 마르지 아니한 새 활줄 일곱으로 나를 결박하면 내가 약해져서 다른 사람과 같으리라

....삼손도 그의 힘의 비밀에 대해서는 어쩌면 오해하고 있었던 것 아닐까?

....[일단 구원 안으로 들이신 자마다, 그 자신이 몸과 영혼 스스로 끝내버림의 전인적 자살로 자신을 끝내버리지 않는 한, 결코 버리지도 포기하지도 않으시는 전지전능하신 Q이 그분의 특별히 뜻하심따라,  곧 무조건적 관계적 은혜로 넣어주신바] Q으로부터 주어진 믿음의 비밀로 인한 은사라는 것을 완전히 깨닫고 이해함 아니라 그의 이해나 깨달음은 불완전하였던 걸까!!, 그들과 마찬가지로 [마지막으로 여전히 남아있는 머리털 때문에 그의 힘이 지속되고 있다고!!]..미신적으로!! 오해하고 있었다.

...그랬었기에!! 주님은 그를 참되게, 온전히 구원하시려고!! 그에게 부여하신 그분의 힘을 일시적으로 거두셔야 했다!!. 

...오, 주님의 다함없는 지혜여!!..미쁘신 그분의 무조건적인 완전한 구원...그것은 진정 머리털 자라남의 문제가 아니었으니.. 그분에게로 향한 참 믿음과 사랑의 회복 통한 나실인, 주 JC의 [참 사랑과 믿음의 하나됨] 서원 = 곧 주 앙망하는 산 믿음을 회복시키고 계셨다!!...보라,.마지막 순간을..육체적 힘은 아직 원래대로 회복되지 않은 상태였으나, 주님은 그의 기도를 들으시고 더 큰 힘 주심으로 응답해 주고 계셨으니..즉, 머리털과 힘 문제는 다만 부차적으로 덧붙여 주신 선물에 불과하였었다고 봐야 하리라!!,

8.  블레셋 사람의 방백들이 마르지 아니한 새 활줄 일곱을 여인에게로 가져오매 그가 그것으로 삼손을 결박하고

9.  이미 사람을 방 안에 매복시켰으므로 삼손에게 말하되 삼손이여 블레셋 사람들이 당신에게 들이닥쳤느니라 하니 삼손이 그 줄들을 끊기를 불탄 삼실을 끊음 같이 하였고 그의 힘의 근원은 알아내지 못하니라

10.  ○들릴라가 삼손에게 이르되 보라 당신이 나를 희롱하여 내게 거짓말을 하였도다 청하건대 무엇으로 당신을 결박할 수 있을는지 이제는 내게 말하라 하니

11.  삼손이 그에게 이르되 만일 쓰지 아니한 새 밧줄들로 나를 결박하면 내가 약해져서 다른 사람과 같으리라 하니라

12.  들릴라가 새 밧줄들을 가져다가 그것들로 그를 결박하고 그에게 이르되 삼손이여 블레셋 사람이 당신에게 들이닥쳤느니라 하니 삼손이 팔 위의 줄 끊기를 실을 끊음 같이 하였고 그 때에도 사람이 방 안에 매복하였더라

13.  ○들릴라가 삼손에게 이르되 당신이 이 때까지 나를 희롱하여 내게 거짓말을 하였도다 내가 무엇으로 당신을 결박할 수 있을는지 내게 말하라 하니 삼손이 그에게 이르되 그대가 만일 나의 머리털 일곱 가닥을 베틀의 날실에 섞어 짜면 되리라 하는지라

14.  들릴라가 바디로 그 머리털을 단단히 짜고 그에게 이르되 삼손이여 블레셋 사람들이 당신에게 들이닥쳤느니라 하니 삼손이 잠을 깨어 베틀의 바디와 날실을 다 빼내니라

15.  ○들릴라가 삼손에게 이르되 당신의 마음이 내게 있지 아니하면서 당신이 어찌 나를 사랑한다 하느냐 당신이 이로써 세 번이나 나를 희롱하고 당신의 큰 힘이 무엇으로 말미암아 생기는지를 내게 말하지 아니하였도다 하며

16.  날마다 그 말로 그를 재촉하여 조르매 삼손의 마음이 번뇌하여 죽을 지경이라

17.  삼손이 진심을 드러내어 그에게 이르되 내 머리 위에는 삭도를 대지 아니하였나니 이는 내가 모태에서부터 하나님의 나실인이 되었음이라 만일 내 머리가 밀리면 내 힘이 내게서 떠나고 나는 약해져서 다른 사람과 같으리라 하니라

......네 머리털로도 맹세하지말라(네 주 하나님을 시험해 보려 하지 말라) 하셨다...(그 머리털이 삼손의 힘 근원이라 하신 것은 아니요 오히려 "머리털을 삭도로 밀지말라" 하신 말씀의 참 의미란...<사도바울도 그렇게 이해하고 있듯이> 말씀대로 순종할바 그에게는 진정한 머리요 주님-왕이신 분의 권위를 따라 살고 있음을 공표하는 표징으로서 의미일뿐이다!!), 진정한 믿음, 날마다 새로와지며 더 하나되어가는 산 믿음-사랑의 진보 없이는!! 한낱 표징에 불과한 머리털 신뢰함은 결국 우상숭배에 지나지 않는다...이는 선물로 주신 모든 것에 대해서도 적용할 진정한 기준이 될터인데..그것을 선물로 주신 분, 그 뜻따라 그것을 선용하도록 주님 임재 아래서 행하고(드리고-사랑으로 나누고-돕고-베풀고) 누릴 때라야 최상-최선의 생명 복 누림이 됨을 의미한다!!...그럴 때 깨닫는 감사 그 자체가 지고지선의 생명 복락이다

....."삭도로 머리털을 밀지말라" 하심에 대해..그 원뜻을 곰곰이 여쭈어 보라...이는 제단 쌓을 때 토단으로 쌓거나 자연석으로 쌓게 하셨음을 생각해보라. = 영과 진리로 예배드림!!

[[다듬은돌로쌓지말라(출20:25)]]...예배를 위한 제단은 장소에 상관없이 토단이면 충분하였다(24절). 나중에 돌단으로 바뀐 것으로 보인다. 

제단 규정은 “네가 내게 돌로 제단을 쌓거든 다듬은 돌로 쌓지 말라 네가 정으로 그것을 쪼면 부정하게 함이니라”(출 20:25)와 신명기 27장에 약간 다른 방식으로 언급된다. 

“곧 돌단을 쌓되 그것에 쇠연장을 대지 말지니라 너는 다듬지 않은 돌로 네 하나님 야웨의 제단을 쌓고 그 위에 네 하나님 야웨께 번제를 드릴 것이며 …”(신 27:5-6). 

여호수아가 에발산에 제단을 쌓을 때(수 8:31), 특히 솔로몬의 성전 건축 과정에도 충실히 따른다. “이 성전은 건축할 때에 돌을 뜨는 곳에서 다듬고 가져다가 건축하였으므로 건축하는 동안 성전 속에서는 방망이나 도끼나 모든 철 연장 소리가 들리지 아니하였다”(왕상6:7)...이후 이스라엘 역사에서도 제단 규정은 상당히 엄격하게 준수되어왔다. 

기원전 2세기 예루살렘 성전은 시리아의 안티오커스 4세에 의해 완전히 짓밟혔다. 건물은 파괴되지 않았으나 이교도 의식이 거행되고 성전으로서 기능을 잃고 더럽혀지고 말았다. 마카비 혁명으로 성전을 회복하자 유다는 이방인들로 인해 부정하게 된 제단을 헐어 한 쪽에 쌓아두었다. 율법의 지시를 따라 “자연석을 가져다가 전의 제단과 같은 제단을 새로” 세웠던 것이다(마카비상4:47). 한편 요세푸스는 헤롯 성전에 관한 보고를 남겼다. 헤롯이 제단 건립하는 동안 율법이 제시한대로 쇠 연장을 활용하지 않았다고 전한다.<유대전쟁사 5.5,7>

동사 가자(הזג(의 용례는 많지 않고 시편에서 ‘내 어미의 배에서 나를 갈라놓으셨다’(시 71:6)에 한 번나온다. ‘자르다, 다듬다’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렇다면 자연석을 활용하여 제단을 쌓으라는 뜻일까? 문제는 ‘다듬은 돌’로 번역된 명사 가지트(תיזג(에 대한 이해와 기준이다(왕상 7:9; 사 9:9; 겔40:42; 암 5:11; 애 3:9). 

보통 ‘다듬은 돌’이라고 말할 때 인위적인 도구를 통해 변형시킨 상태를 가리킨다고 볼 수 있는데 어떤 도구를 활용했는지가 관건이다. ‘다듬은 돌’은 쇠로 만든 연장, 예컨대 망치, 도끼, 또는 정 등으로 자연석을 가공한 것이다. 본문은 철제 금지가 아니라 ‘칼’ 또는 ‘돌을 뜨는 도구’로 해석되는 헤레브(ברה(를 사용하여 ‘부정하다’는 결과를 알려준다. 

그렇다면 제단을 쌓을 수 있는 돌은 자연석을 포함하여 채석장에서 떼어낸 바위일 가능성이 많다. 고대인들이 바위를 쪼개는 방식을 알면 이해가 쉽다. 그들은 바위를 갈라내기 위해 먼저 바위의 결을 따라 나무못을 일정한 간격으로 박고 물을 몇 차례 붓는다. 수분을 충분히 빨아들인 나무못이 팽창하면서 단단한 바위에 틈새가 생기면 저절로 떨어진다.  약간의 인공적인 위력이 들어가지만 고대인들에게는 자연석에 가깝다. 그러므로 출애굽기 20장의 ‘다듬은 돌’이란 철제 연장을 통해 정교하게 작업한 상태라고 봐야 한다. ‘다듬은 돌’과 열왕기상에 언급된 ‘채석장의 완벽한 돌’의 차이는 분명하다(왕상 6:7). 후자는 예배를 위한 제단 건립에 합당하고 전자는 부정하다. 이처럼 다듬지 않은 돌을 고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미슈나는 여기에 몇 가지 근거들을 제시한다. 첫째, 제단의 건립은 하나님 예배와 평화를 기원하는 것인데 공격용 무기에 쓰이는 철제 도구를 활용한다는 것은 그 목적과 정신에 위배된다. 둘째, 제단과 성전에서 사람의 안녕을 기원하지만 철제 도구는 전쟁을 목적으로 한다. 셋째, 돌을 다듬는다는 것은 우상을 새기는 일이기 때문에 어떤 형상이라도 섬기지 말라는 계명에 어긋난다. 넷째, 철로 만든 칼은 지상의 권력을 상징하며 영적인 삶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18.  ○들릴라가 삼손이 (자신이 이해하고 전적으로 그렇게 믿고 붙드는바대로<주님 보시기에는 주 말씀의 진의를 오해함을 따라 말한 것이라 해도> 그 효과는 어느정도 나타나기도 함) 진심을 다 알려 주므로 사람을 보내어 블레셋 사람들의 방백들을 불러 이르되 삼손이 내게 진심을 알려 주었으니 이제 한 번만 올라오라 하니 블레셋 방백들이 손에 은을 가지고 그 여인에게로 올라오니라

19.  들릴라가 삼손에게 자기 무릎을 베고 자게 하고 사람을 불러 그의 머리털 일곱 가닥을 밀고 괴롭게 하여 본즉 그의 힘이 없어졌더라

20.  들릴라가 이르되 삼손이여 블레셋 사람이 당신에게 들이닥쳤느니라 하니 삼손이 잠을 깨며 이르기를 내가 전과 같이 나가서 몸을 떨치리라 하였으나 여호와께서 이미 자기를 떠나신 줄을 깨닫지 못하였더라

21.  블레셋 사람들이 그를 붙잡아 그의 눈을 빼고 끌고 가사에 내려가 놋 줄로 매고 그에게 옥에서 맷돌을 돌리게 하였더라

22.  그의 머리털이 밀린 후에 다시 자라기 시작하니라

===삼손이 죽다

23.  ○블레셋 사람의 방백들이 이르되 우리의 신이 우리 원수 삼손을 우리 손에 넘겨 주었다 하고 다 모여 그들의 신 다곤에게 큰 제사를 드리고 즐거워하고

24.  백성들도 삼손을 보았으므로 이르되 우리의 땅을 망쳐 놓고 우리의 많은 사람을 죽인 원수를 우리의 신이 우리 손에 넘겨 주었다 하고 자기들의 신을 찬양하며

25.  그들의 마음이 즐거울 때에 이르되 삼손을 불러다가 우리를 위하여 재주를 부리게 하자 하고 옥에서 삼손을 불러내매 삼손이 그들을 위하여 재주를 부리니라 그들이 삼손을 두 기둥 사이에 세웠더니

26.  삼손이 자기 손을 붙든 소년에게 이르되 나에게 이 집을 버틴 기둥을 찾아 그것을 의지하게 하라 하니라

27.  그 집에는 남녀가 가득하니 블레셋 모든 방백들도 거기에 있고 지붕에 있는 남녀도 삼천 명 가량이라 다 삼손이 재주 부리는 것을 보더라

28.  ○삼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어 이르되 주 여호와여 구하옵나니 나를 생각하옵소서 하나님이여 구하옵나니 이번만 나를 강하게 하사 나의 두 눈을 뺀 블레셋 사람에게 원수를 단번에 갚게 하옵소서 하고

29.  삼손이 집을 버틴 두 기둥 가운데 하나는 왼손으로 하나는 오른손으로 껴 의지하고

30.  삼손이 이르되 블레셋 사람과 함께 죽기를 원하노라 하고 힘을 다하여 몸을 굽히매 그 집이 곧 무너져 그 안에 있는 모든 방백들과 온 백성에게 덮이니 삼손이 죽을 때에 죽인 자가 살았을 때에 죽인 자보다 더욱 많았더라

31.  그의 형제와 아버지의 온 집이 다 내려가서 그의 시체를 가지고 올라가서 소라와 에스다올 사이 그의 아버지 마노아의 장지에 장사하니라 삼손이 이스라엘의 사사로 이십 년 동안 지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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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쁘신 하나님, 미쁘신 말씀]] 

= 신실과 참이신 하나님..Faithful and True, I'm Nothing, NoBody in myself, but I'm everything in Christ.

나는 타락한 피조물, 죄인으로서 그 자체가 결코 신실하지 못하다는 것을 인정할 수 밖에 없음 =자기 부정....동시에 자기를 부인함 (=자기 홀로는 무가치함, 아무데도 쓸모 없으며, 단지 지옥의 불쏘시개감에 지나지 않음을 진실로 인정함) 없이는((.또한 .분명한 것은 내게 주신 모든 선한 것마다 모든 것이, 하나되어 내주하시는 주님께서 주신 것이지 그 어떤 것 하나라도 나로부터 난 것이 아님을 인정함...내게 있는 모든 것이란 진실한 의미에서 볼 때 내 것 아니요 머리-왕-주인이신 주님의 것, 주님이 맡기신 것이라고 말함 = 이것이 진정한 자기 부인의 참 의미)) 곧 자기 부인할 때에만((끝까지 유일무이한 영존하시는 영원 생명이신 하나님, 그분 손 안에 붙들림으로써만!!... 즉, 내게 사는 이는 내가 아니라 주님이셔야만 진짜 [그분의 그릇됨 인해] 주님 생명을 사는 것이니..내안에 계시는 주님이 손수 주님 뜻대로 하셔야만 합니다!!)) 주 보시기에 참되게 언약을 끝까지  지킬 수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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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모데후서 2:8-13...1미쁘다 이 말이여 우리가 주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함께 살 것이요 12참으면 또한 함께 왕 노릇할 것이요 우리가 주를 부인하면 주도 우리를 부인하실 것이라 13우리는 미쁨이 없을지라도 주는 일향 미쁘시니 자기를 부인하실 수 없으시리라(딤후 2:8-13)]

디모데 후서는 바울이 순교 직전에 믿음의 아들 디모데에게 보낸 마지막 서신이다. 사도 바울은 많은 사람들에게 말씀을 전해주었으며 또 말씀을 기록하여 교회들을 격려하였다.

이제 우리가 주목하고자 하는 바는 정작 그는 순교를 눈앞에 두고 무슨 말씀을 묵상했으며 순교 형장으로 걸어가면서 무슨 말씀을  붙잡고 있었을까? 하는 점이다. 

그로 하여금 장엄한 순교를 하도록 지탱시켜 준 힘은 어느 말씀에서 온 것일까? 그것은 우리들에게도 원동력이 될 수 있는 말씀임에 분명한 것이다.

디모데 후서는 바울 사도가 순교 직전에 사랑하는 믿음의 아들 디모데에게 보낸 그의 마지막 서신입니다. 

“관제와 같이 벌써 내가 부음이 되고 나의 떠날 기약이 가까왔도다”(4:6)고 순교가 목전에 다다랐음을 말합니다. 이 서신을 기록할 당시 바울은 착고에 채인 몸으로 로마의 어느 지하 감방에 갇혀 있었을 것입니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하고 이제까지의 사역을 한마디로 요약하고 정리합니다.

그러나 그와 함께 복음 전파에 참여하였던 자들 중에는 완주(完走)하지 못하고 그의 곁을 떠난 자들도 있었습니다. 

“아시아에 있는 모든 사람이 나를 버린 이 일을 네가 아나니”(1:15)합니다. 마지막 장에서는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고 그레스게는 갈라디아로 디도는 달마디아로 갔고 누가만 나와 함께 있느니라”고 말씀합니다. 

“내가 처음 변명할 때에 나와 함께 한 자가 하나도 없고 다 나를 버렸으나 저희에게 허물을 돌리지 않기를 원하노라.”(4:16)고 말합니다.

“너는 어서 속히 내게로 오라”고 요청합니다. 편지로는 다 말할 수 없는 마지막 권면을 주기 위해서였을까요? 아니면 자신의 당당한 순교의 모습을 제자의 망막에 사진 박아 주고 싶어서였는지도 모릅니다. 아무튼 위대한 사도 바울의 만년의 모습은 너무나 초라하고 외로워 보이기까지 합니다. 

이 때 바울 사도는 무엇을 생각하고 있었을까? 잠수 당하는 순간에 그는 무슨 말씀을 붙잡고 있었을까? 무엇을 믿고 무엇을 의지하고 있었을까? 그로 하여금 장엄한 순교를 하도록 지탱시켜 준 힘은 어디서 온 것이었을까를 생각하게 합니다.

이는 “말세에 고통하는 때”(딤후 3:1)를 살아가는 오늘의 그리스도인들에게도 큰 깨달음과 힘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언제인가 형제가 맞이하게 될 임종 머리에서도 큰 안위가 될 것입니다.

===미쁘다 이 말이여

이 점에 대하여 본문은 빛을 비춰주고 있다 하겠습니다. 11절에서 바울 사도는 “미쁘다 이 말이여”하고 감격을 발하고 있습니다. 

“미쁘다”는 말은 “믿을 만하다, 신실하다, 확신하다, 진실하다”는 뜻입니다. 미쁘다는 말이 13절에서도 “우리는 미쁨이 없을지라도 주는 일향 미쁘시니”하고 더욱 강조되어 있습니다.

상상을 초월한 극한 상황 속에서도 “미쁘다 이 말이여”하고 바울로 하여금 감격을 폭발하게 한 미쁘신 말씀이 무엇이었을까요? 

“우리가 주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함께 살 것이요 참으면 또한 함께 왕 노릇할 것이요 우리가 주를 부인하면 주도 우리를 부인하실 것이라”(11-12)고 사도는 고백하며 확신합니다.

사도가 처한 상황에 비추어 볼 때에 가장 적합한 말씀이 그에게 주어졌으며 사도는 이 “미쁘신 말씀”을 붙잡고 의지하고 확신하고  고백하면서 잠수의 현장으로 걸어 나갔을 것을 상상하기에 어렵지 않습니다.

우리는 사도의 마지막 고백이요, 확신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이 말씀을 좀 더 음미해 보아야만 합니다. 

원문에는 “미쁘다 이 말이여” 앞에 “왜냐하면”이라는 접속사가 붙어 있습니다. 이는 본문이 앞에 문장과 연결된 말씀임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앞에 문장을 더듬어보면 8절에서 “나의 복음”이라는 말씀을 만나게 됩니다. 

나의 복음이란 바울 자신이 창안해 낸 복음이란 뜻이 아니고 이를 증언하는데 목숨을 걸었던 “내가 전한 복음”(갈 1:11)을 의미합니다. 

바울이 전한 복음이란 다윗의 씨로 오셔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으신 예수 그리스도”(8)였던 것입니다. 

이 “복음을 인하여 내가 죄인과 같이 매이는 데까지 고난을 받았으나 하나님의 말씀은 매이지 아니하니라”(9)고 진술합니다.

사도는 다름 아닌 이 “복음을 인하여” 매인바 되었으며 고난을 받고 있으며 순교를 당하게 된 것입니다. 

만일 사도가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였다면 이 모든 고난이 그에게 닥칠 이유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사도는 “택하신 자를 위하여 모든 것을 참음은 저희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원을 영원한 영광과 함께 얻게”(10)하기 위해서 순교를 각오하고 복음을 전파하였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말씀을 이렇게 정리할 수가 있습니다.

"사도는 복음을 전파하다가 그로 인하여 순교를 당하게 되었다. 그는 이제까지는 다른 사람들을 구원과 영광에 참여하게 하기 위해서 복음을 증언하여 왔다..

그러나 지금은 자신이 증언한 “나의 복음”을 “미쁘다 이 말이여”하고 자신의 것으로 고백하고 확신하며 의지하고 붙잡고 순교에 임하고 있는 것이다"라고!!

우리가 주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함께 살 것이요 참으면 또한 함께 왕노릇할 것이요

우리가 주를 부인하면 주도 우리를 부인하실 것이라

우리는 미쁨이 없을지라도 주는 일향 미쁘시니 자기를 부인하실 수 없으시리라  - 딤후 2:11-13 -

그러므로 바울 서신의 많은 말씀 중에 이는 사도 바울의 옥중 고백이요 순교 고백이라고 부를 만합니다. 바울 사도는 이 말씀을 고백하고 믿고 붙잡고 순교 당하였던 것입니다.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이 점에서 우리는 심각하게 그리고 엄숙한 마음으로 생각해 보아야만 합니다. 사도는 고린도 교회에 보낸 편지에서 “내가 아무 것도 아니나 지극히 큰 사도들보다 조금도 부족하지 아니 하니라 사도의 표된 것은 내가 너희 가운데서 모든 참음과 표적과 기사와 능력을 행한 것이라”(고후 12:11-12)고 자신의 사도 됨을 옹호한 바 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순교를 목전에 둔 바울은 “표적과 기사와 능력”을 붙잡고 있지 아니합니다. 

그리고 어느 날인가 형제가 임종을 맞이하게 되었을 때에 죽음의 공포를 물리치게 해주고 소망을 주며 견고케 붙들어줄 수 있는 것도 표적이 아닙니다. 

기사와 이적이 아닙니다. 능력이 아닙니다. 지금 바울이 붙잡고 의지하고 “미쁘다 이 말이여”라고 고백하는 하나님의 미쁘신 “말씀”인 것입니다.

사도가 순교 직전에 최종적으로 확신을 주고 붙잡고 있는 것은 “미쁘다 이 말이여”한 하나님의 말씀인 것입니다. 

바울의 손을 통하여 행하던 표적도 기사도 지나갔습니다. 

사도 베드로도 “풀은 시들고 꽃은 떨어지되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하였으니 너희에게 전한 복음이 곧 이 말씀이니라”(벧전 1:24)고 “미쁘신 말씀”의 불변성을 증언하고 있습니다.

이 “미쁘신 말씀”은 매이지 않습니다. 이 말씀은 죽임을 당하지 않습니다. 이 말씀은 천지가 변하여도 “미쁘다 이 말이여”입니다. 이 말씀이 신앙의 마지막 근거요 보루요 권위입니다.

===주는 일향 미쁘시니

사도는 순교를 목전에 두고 “주는 일향 미쁘시니”하고 하나님을 “미쁘신 하나님”으로 고백하고 있습니다. 

“일향 미쁘시다”는 말은 항상 미쁘시고 언제나 미쁘신 즉 신실하시다는 말입니다. 이러한 고백은 이곳에만 나타나는 것은 아닙니다.

로마서 3:3절 “어떤 자들이 믿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하리요 믿지 아니함이 하나님의 미쁘심을 폐하겠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사람은 다 거짓되되 오직 하나님은 참되시다 할지어다”고 말씀합니다.

고린도전서 10:13절에서는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합니다. 

고린도후서 1:18절에서도 “하나님은 미쁘시니라”고 증언합니다. 데살로니가 교회에 보낸 서신에서도 “너희를 부르신 이는 미쁘시니 그가 또한 이루시리라”(살전 1:24)고 말씀합니다. 

이루시리라는 말은 그 약속을 지켜 주시리라는 뜻입니다. 주는 일향 미쁘십니다.

===미쁘신 말씀

미쁘신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은 또한 “미쁘다 이 말이여”인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디모데 전 후서를 통해서 “미쁘다 이 말이여”라는 말을 5번이나 강조하고 있습니다(딤전 1:15, 3:1, 4:9, 딤후 2:11, 2:13). 사도는 하나님을 미쁘신 분으로 그 분의 말씀을 미쁘신 말씀으로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이를 인하여 내가 또 이 고난을 받되 부끄러워하지 아니함은 나의 의뢰한 자를 내가 알고 또한 나의 의탁한 것을 그날까지 저가 능히 지키실 줄을 확신함이라”(1:12)고 확신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앞에서 표적도 기사도 능력도 다 지나가는 것이라고 말씀 한 것은 그것을 작은 일로 여겨서가 아니라 그런 것들은 미쁘신 하나님과 미쁘신 말씀을 증언하기 위한 방편이기 때문입니다.

사도는 미쁘다 이 말이여 하면서 첫째로 꼽는 것이 “우리가 주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함께 살 것이요”를 꼽고 있습니다. 지금 사도 바울이 처한 상황에서 가장 필요 적절한 말씀인 것입니다. 

사도는 자신이 죽임을 당한다 하여도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미쁘신 하나님께서 자신도 살려주실 것을 확신하는 부활신앙에 견고하게 서 있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함께 죽었으면”하고 만치 자신은 이미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며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갈 2:20)고 죽음 앞에 초연함을 나타내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미쁨이 없을지라도 주는 일향 미쁘시니 자기를 부인하실 수 없으시리라”고 말씀합니다. 

이것이 핵심이요, 결론이라고 말씀드릴 수가 있습니다. 우리 인간은 믿을 만하지 못한 반면 하나님은 “일향 미쁘시니”, 즉 언제나 믿을 만한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사람에게만 “미쁘신” 것이 아닙니다. 그 보다 우선하는 것이 말씀이신 하나님, 말씀하시는 하나님 자신에 대해서 “미쁘신” 것입니다. 

히브리서에서는 하나님의 약속과 맹세로 보증하여 주신 것을 가리켜 “이는 하나님이 거짓말을 하실 수 없는 이 두 가지 변치 못할 사실”(히 6: 18)이라고 말씀합니다.

얼마나 신실하신가 하면 창세기 2:17절에서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즉 죄 값은 사망이라고 선언하신 그 말씀에 충실하시기 위해서 우리를 용서하시되 그냥 용서하시지를  못하시고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사 우리 대신 죽음을 당케 하시고야 우리를 용납하실 수가 있으셨던 그토록 “미쁘신 하나님, 미쁘신 이 말이여”인 것입니다.

이것이 주는 일향 미쁘시니 “자기를 부인하실 수 없으시리라”의 뜻입니다. 

만에 하나라도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을 지키지 아니하신다면 사람에게 거짓을 하신 것 보다 우선하여 “자신을 부인”하신 것이 되고야 말 것입니다. 

바울은 이토록 “미쁘신 하나님과 미쁘신 말씀”을 믿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만일 “미쁘신 하나님과, 미쁘신 말씀”을 부인한다면 “우리가 주를 부인하면 주도 우리를 부인하실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참으면 또한 함께 왕 노릇할 것”을 믿었습니다. 이런 바울을 하나님께서 어찌 바울을 부인하실 수가 있으시겠습니까?

바로 이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순교 마당에서 미쁘신 하나님과 미쁘신 말씀을 붙잡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와의 만남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기까지 복종하신 최우선적인 목적은 “하나님의 미쁘심”을 위해서였습니다. “이 때를 면하게 하여 주옵소서 그러나 내가 이를 위하여 이때에 왔나이다 아버지여 아버지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옵소서”(요 12:27-28)하고 아버지의 영광, 즉 미쁘심을 위하여 대속제물이 되시기를 거절치 아니하셨습니다.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내가 이루어 아버지를 이 세상에서 영화롭게 하였사오니”(요 17:4)하고 이 점을 거듭 말씀합니다.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주셨습니다(빌 2:9).

우리가 그 분과 함께 죽었으니 그분과 함께 살 것이고 우리가 끝까지 참고 견디면 그분과 함께 다스리게 될 것이다

우리가 그 분을 모른다고 하면 그분도 우리를 모른다고 하실 것이다 우리는 진실하지 못해도 그분은 언제나 진실하시어

약속을 어길 줄 모르시는 분이시다 이것은 믿을 만한 말씀입니다.  - 공동번역에서-

바울 사도는 자신이 증언한 복음이 “미쁘신 말씀”이라는 점을 순교를 통해서 마지막으로 증언했던 것입니다. 

그가 전한 복음을 듣고 믿는 형제들을 “주와 및 그 은혜의 말씀에 부탁하노니”(행 20:32)하고 떠났습니다.

성도 여러분, 미쁘신 하나님과 그 분께서 약속하신 미쁘신 말씀을 붙잡읍시다. 

환난과 고난과 죽음 앞에서는 표적도 기사와 이적도 능력도 축복도 도움을 주지 못할 것입니다. 

"미쁘신 하나님, 미쁘신 말씀"을 붙잡지 못하기 때문에 "하나님은 우리를 버리셨다"는 말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주는 일향 미쁘시니 자기를 부인하실 수 없으시리라”한 미쁘신 말씀만이 나의 반석입니다. 

나의 요새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산성이요. 최후의 보루입니다. 이것이 "미쁘신 하나님, 미쁘신 말씀"입니다.

==이눈에 아무증거 아니죄어도==

당신의 거룩함을 두고 맹세한 주 하나님 아버지는 참 미쁘다

 그 귀한 모든 약속 믿는 자에게 능치 못할 무슨 일이 있을까

 걸어가세 믿음 위에 서서 나가세 나가세 의심 버리고 

 걸어가세 믿음 위에 서서 눈과 귀에 아무 증거 없어도 (545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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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마 정신을 주의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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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로새서 4:14..사랑을 받는 의사 누가와 또 데마가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빌레몬서 23-24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와 함께 갇힌 자 에바브라와 또한 나의 동역자 마가, 아리스다고, 데마, 누가가 문안하느니라

디모데후서 4:10-11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고 그레스게는 갈라디아로, 디도는 달마디아로 갔고 누가만 나와 함께 있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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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은 옥에 갇혀 있을 때마다 데마를 언급합니다. 골로새서와 빌레몬서는 서기 62년경에 바울이 로마 감옥에 처음으로 갇히게 되면서 쓴 서신입니다. 

디모데후서는 바울이 로마 감옥에 두번째로 갇혔을 때 쓴 마지막 서신으로서 서기 67년경에 기록된 서신입니다.

주목되는 것은 바울이 로마 감옥에 첫번째 갇혔을 때, 즉 서기 62년 경에 쓴 골로새서와 빌레몬서에서는 데마라는 사람이 크게 칭찬받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는 바울과 절친한 사이였으며 바울과 함께 전도 여행을 하는 일행이었습니다. 특히 바울은 빌레몬서에서 그를 “나의 동역자 데마”라고 부를 정도로 귀중하게 여겼습니다.

그러나 그후 5년 후인 서기 67년 경에 바울이 로마 감옥에서 마지막으로 쓴 디모데후서를 보면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고”(딤후 4:10)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분위기는 매우 슬프고 괴롭고 안타까운 여운을 남기고 있습니다. 마치 주께서 가룟 유다를 향하여 “네가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더 좋았을 것을”이라 하시며 나타내신 안타까움이 연상됩니다.  

디모데후서를 쓸 때의 바울의 상태는 매우 늙고 힘이 없는 상태에 있었습니다. 춥고 배고픈 깊은 감옥에서 죽음을 기다리고 있는 상태였습니다. 

디모데후서 4장 6절을 보니 “전제와 같이 내가 벌써 부어지고 나의 떠날 시각이 가까웠도다”라고 고백합니다. 이는 죽음이 코 앞에 다가 온 것을 의미합니다. 또한 바울은 디모데에게 서신을 통해, 지금 너무 추우니 올 때 따뜻한 겉옷을 가져다 달라고 부탁하고 있습니다. 인간적으로 볼 때 우리는 로마 감옥에 갇혀있는 연약하고 불쌍한 노사도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죽음을 코 앞에 둔 이러한 비참한 상황 가운데서 바울의 마음을 더욱 고통스럽게 하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사람들에게 버림을 당하는 아픔이었습니다. 

디모데후서 4장 14절을 보면 “구리 세공업자 알렉산더”라는 사람이 바울을 버립니다. 더욱이 그는 바울에게 많은 해를 끼쳤습니다. 

구리 세공업자 알렉산더가 어떤 해를 끼쳤는지 성경에는 구체적으로 나와 있지 않지만 분명한 것은 알렉산더는 바울의 마음에 큰 상처와 피해와 아픔을 남겼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에게 버림 받는 괴로움 중에서 가장 큰 아픔을 준 사람은 데마였습니다. 왜냐하면 일반 사람들에게 버림을 받는 것은 있을 수 있는 일이지만 데마는 그러한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바울에게 있어서 데마라는 사람은 오른 팔과 같은 사람이었고 매우 신실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귀한 동역자가 지난 5년 이상의 진실한 우정과 동역을 저버리고 갑자기 완전히 딴 사람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그는 세상을 사랑한 나머지 바울을 버렸습니다. 그래서 추운 감옥에서 죽음을 기다리는 바울에게 가장 큰 고통과 실망을 준 사람이 되었습니다.  

데마는 바울을 버리고 세상을 따라 떠났습니다. 데마는 잠깐 세상을 따른 것이 아닙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누구든지 사탄의 유혹에 져서 잠깐 동안 세상을 따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데마는 그런 경우가 아닙니다. 데마의 경우는 5년 이상 바울과 함께 지내본 후에 주님을 ‘완전히’ 떠난 것입니다. 이를 신학적 용어로 ‘재타락’이라고 합니다. 

베드로후서 2장 22절은 재타락에 대해 표현합니다.

“개가 그 토하였던 것에 돌아가고 돼지가 씻었다가 더러운 구덩이에 도로 누웠도다.”

히브리서 6장 역시 재타락에 대해 언급합니다.

“한 번 빛을 받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여한 바 되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도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하게 할 수 없나니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드러내 놓고 욕되게 함이라”(히 6:3-6).

빌립보서 3장도 재타락한 자들에 대해 말합니다.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말하였거니와 이제도 눈물을 흘리며 말하노니 여러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느니라. 그들의 마침은 멸망이요 그들의 신은 배요 그 영광은 그들의 부끄러움에 있고 땅의 일을 생각하는 자라”(빌 3:18-20)

예수님께서는 씨뿌리는 비유로 데마와 같은 자들이 되지 말라고 경고하셨습니다. 천국 말씀을 듣고 잠깐 즐거워 하지만 시간이 흐름에 따라 말씀을 잃어버리고 말씀을 싫어 하는 자들은 ‘길 가에 뿌리운 자’요, 또는 말씀을 듣고 한동안 기쁨으로 받되 환란이나 핍박이 생기면 말씀을 버리고 도망가는 자는 ‘돌밭에 뿌리워지는 자요’, ‘가시밭 같은 자’들은 세상의 쾌락과 돈의 유혹과 이생의 염려로 서서히 하나님의 나라에 관심을 잃어가는 자들이라고 하셨습니다. 이러한 자들은 구원을 얻지 못했든지 아니면 재타락의 과정에 있는 자들을 의미합니다.

우리 주변을 돌아보면 재타락한 자들을 많이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한때는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며 열심히 성경을 사랑하고 기도하며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였습니다. 그런데 어느새 주를 사랑하기보다는 다시 세상이 좋아서 세상을 추구하는 자들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처음 믿을 때는 모든 것을 새 출발하며 참된 신앙 생활을 하는 것 같이 보였습니다. 사치와 허영을 버리고, 술도 끊고, 음란한 관심도 끊고, 폭언과 욕설을 버리고, 거짓말과 남을 미워하는 마음과 시기하는 마음과 교만한 마음을 멀리하며 회개한 것 같았습니다. 말씀을 전하는 자들을 존경하며, 교회도 열심히 다니고, 성경을 매일 읽는 것 같았습니다. 

기도 응답을 받고 기뻐하였습니다. 성경을 읽을 때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심지어 하늘의 신령한 은사를 체험하고 방언 등과 같은 신앙 체험도 하였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서서히 과거로 돌아갑니다. 먹고 사는 일이 더 급하다보니 예배를 멀리합니다. 그러면서 시간이 지날수록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 이전 상태와 점점 같아집니다. 성경을 멀리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의심하고 예수님만이 구원의 길임을 믿지 않으며 다시 교만하여집니다. 차차 술도 하고 음란하여지고 사치와 방탕에 젖어듭니다. 세상의 유익을 위해 거짓말을 쉽게 내뱉으며 세상 쾌락을 좇으며 다시 세상을 사랑합니다. 결국은 예수님을 믿기 이전의 부패한 삶으로 돌아갑니다. 그리고 결국 주님을 떠납니다. 교회를 떠납니다. 이것이 재타락입니다.

혹시 예수님을 믿기 이전의 과거 상태와 삶의 관습으로 다시 돌아가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믿음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질문은 주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분인가 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데마의 재타락을 다루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질문은 바로 이 질문입니다. 즉, 데마가 무엇을 ‘가장’ 사랑했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 대답으로는 데마는 세상을 주 예수님보다 더 사랑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재타락의 뿌리입니다. 

재타락의 원인은 다른데 있지 않고, 궁극적으로 내가 가장 사랑하는 대상이 무엇이냐에 달려있습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분명히 알기 위하여 데마를 유혹했던 ‘세상’에 대하여 바르게 이해하여야 합니다. 

원본을 보면 데마가 “세상을 사랑했다”고 하는데 여기서 ‘세상’은 “아이온”이라는 원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 정확한 뜻은 그 세대를 사랑했다는 말입니다. 

로마서 12장 1절에서 “너희는 이 세대를 본 받지 말고…”라고 하는데 그 구절에서 ‘세대’는 ‘아이온’이라는 똑같은 단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어거스틴은 그의 책 에서 이 세상, 즉 “아이온”은 세상을 이끌고 나가는 정신이라고 설명합니다. 세상 정신은 하나님 나라의 정신과 정반대가 된다고 말합니다. 

세상의 정신은 높은 자가 되는 것이지만, 하나님 나라의 정신은 낮은 자가 되는 것입니다. 

세상의 정신은 뭐든지 남의 것을 빼앗는 착취하는 정신이지만 하나님 나라 정신은 뭐든 은혜로 나누는 정신입니다. 

하나님 나라 정신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자신을 부인하는 자리로 나가는 정신으로서 그 특징은 자기 희생과 자기 부인과 겸손이지만 세상을 이끄는 정신은 자신을 사랑하기 위해 하나님을 무시하고 경멸하는 자리로 나아갑니다. 그러므로 세상을 사랑한다는 것은 자기를 사랑하기 위해 자기 이익을 추구하고, 자기를 높이며, 자기를 선전하고, 자기 만족을 위하여 사느라 주 예수 그리스도를 멸시하고 멀리하고 무관심해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요한일서 2장 15-17은 ‘세상’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정의합니다.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안목의 정욕은 눈에 보이는 세계를 추구하는 것을 말합니다. 

눈을 즐겁게 하기 위해 사치스럽고 현란하고 선정적인 것들을 향해 갖는 정욕을 말합니다. 사진, 영화, 그림, 쇼, 외모, 명품 등, 일반적으로 상업과 깊게 관련되어 있습니다. 

상업적인 는 언제나 변함없이 안목의 정욕을 자극합니다. 육신의 정욕은 쾌락 그 자체를 육체로 누리는 것들을 말합니다. 술, 마약, 성적인 부패, 담배, 춤 등의 방탕을 뜻합니다. 

이생의 자랑은 인기와 권력과 학벌과 돈과 명예와 감투 등, 자기 자랑을 추구하는 것을 뜻합니다.

그러므로 데마가 세상을 사랑했다는 말은 그 시대의 정신을 좇아간 것으로서 하나님을 사랑하기보다 자기 자신을 더 사랑하여,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을 추구하며 살았다는 뜻입니다. 이는 궁극적으로 볼 때 그의 마음의 가장 깊은 중심에는 주 예수님을 향한 사랑이 아니라 자기 사랑 및 세상을 향한 사랑이 자리잡고 있었다는 뜻입니다.

사실 데마는 몇 년 동안 로마에서 바울과 함께 주님의 나라를 위하여 살아보았습니다. 그러면서 바울이 제시하는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눈으로 보는 로마 제국을 비교하게 되었습니다. 

현재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나라와 당장 눈에 화려하고 웅장하게 솟아 오른 세상 나라 로마가 비교되었습니다. 

오직 믿음으로 경험되는 나라와 반면에 손만 펼치면 만질 수 있는 육감적이고 쾌락적이며 이생의 자랑으로 가득찬 현란한 세상 나라인 로마를 보았습니다. 

데마는 이 두 나라 사이에서 갈등하더니 어느날 결단을 내리고 세상을 사랑하여 데살로니가로 간 것입니다.

그 당시 데살로니가는 로마 제국의 가장 큰 도시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데살로니가는 상업 중심지로서 돈과 사치와 쾌락과 우상이 만연한 곳이었습니다. 

즉, 데마가 데살로니가로 갔다는 말은 이제 노골적으로 하나님의 나라가 아니라 세상을 위하여 살기로 작정했다는 뜻입니다. 

더 이상 예수님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마음이 아니라 자신의 명예와 돈과 인기를 위하여 발 벗고 나섰다는 뜻입니다. 

데마는 보이는 이 세상의 부요함과 쾌락과 방종을 좇아 과거의 생활로 다시 돌아간 것입니다. 그리고 더 이상 주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지 않는 것입니다. 

그는 어쩌면 데살로니가로 가기 전에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실상은 주 예수님과의 인격적인 교제가 차단되어 있는 불신자의 상태에 있었습니다.

이제 그는 마음 속에 결단을 내렸습니다.

‘주 예수를 좇아서 따라와 보니 나만 손해 보는 것이구나. 내 친구들은 지금 영광을 누리고 큰 집도 사고, 기가 막힌 승용차와 술과 쾌락으로 살고, 여러 첩들을 두고 신나게 사는데 예수를 좇은 내 인생은 오히려 형통하지 않았구나. 알고보니 예수를 좇아봐야 좋은 것이 아무 것도 없구나. 또한 예수 그리스도만을 믿는다는 것은 사람들에게 배척을 당하는 길이구나. 내가 그분만이 구세주인 것을 어떻게 알랴. 바울을 보니 고생만하고 세상의 권력 앞에서 비참하게 되는구나. 오늘 더 잘먹고 잘사는 것이 내게 더 시급하다. 하나님 나라와 천국이 지금 내게 무슨 소용이랴!’

데마는 소위 “예수를 믿으면” 자기가 원하는 것들을 얻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기다렸을 것입니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자신이 원하는 것보다는 오히려 핍박과 가난과 고난과 자기 부정이 요구되는 것을 보면서 결국 오랜 기간의 고민 끝에 이제 하나님의 말씀과 사도들의 가르침를 저버린 것입니다. 그리고 다시 세상의 방법과 정신과 목적을 따르기 시작한 것입니다.  

특히 자기가 존경했던 바울은 가장 명문대인 가말리엘을 졸업했고, 그가 말할 때마다 수백, 수천명이 와서 듣는 것을 보면서 데마는 바울이 누리던 영광을 보며 바울을 좇았습니다. 그러면서 언젠가 자신도 그러한 영광을 누릴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믿던 바울이 감옥을 들락거리더니 이제는 사형 선고를 받는 상황에 이른 것입니다. 그러므로 데마는 바울을 통하여 더 이상 기대할 것이 없기에 매우 낙망하고 실망하였습니다. 그래서 바울이 감옥에 갇혀 있는 동안에 바울을 떠난 것입니다. 

그는 환락과 상업의 도시인 데살로니가로 갔습니다. 그토록 자신을 사랑하고 믿던 바울을 배신하고, 나아가 주 예수 그리스도를 저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습니다. 

아마도 데마의 입장에서는 자기가 바울에게 속았고 예수에게 속았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는 데살로니가로 가면서 옳은 결정을 내렸다고 확신했을 것입니다.

세상 정신에 묻혀 살 때 감옥에 갇힌 바울이 부끄럽게 느껴지며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에 대해 관심을 잃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서 세상 사람들이 추구하는 것을 부러워하며 따라가게 될 것입니다. 데마는 어쩌면 바울을 버리고 데살로니가에 가서 세상적으로는 그럭저럭 잘 먹고 잘 살았을지도 모릅니다. 또는 유명한 사람이 되어 한 세상 호화를 누렸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에서 볼 때는 데마는 실패자입니다. 배도자이며 재타락한 자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으로부터 영원히 버림 받은 자가 된 것입니다.

예수님의 12제자로 있던 가롯유다도 주님을 떠났습니다. 왜 떠났습니까? 성경은 그가 예수님보다 돈을 더 사랑했다고 증거합니다.

“그는 도둑이라 돈궤를 맡고 거기 넣는 것을 훔쳐 감이러라”(요 12:6).

롯의 처가 왜 소금 기둥이 되었습니까? 그녀는 주의 말씀을 따르는 것보다 소돔과 고모라의 쾌락과 부귀와 안락을 더 좋아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녀는 데마처럼 한동안 구원을 받은 것 같이 보였지만 결국 그 마음속에 남아 있던 세상을 향한 미련으로 인해 뒤를 돌아보아 영원히 멸망하게 된 것입니다. 

혹시 우리도 세월이 지나면서 하나님의 말씀보다 세상이 더 즐거운 것은 아닙니까? 주 예수님과 함께 하는 것보다 세상에서 즐기는 오락과 사치와 방탕과 영광이 더 좋아지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혹시 세상의 영광을 기준으로 하여 교회를 판단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그리스도의 보혈 교회에 복음이 있으며 하나님의 영광이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왠지 대형 교회를 다니는 신자들이나 세상의 불신자들 앞에게 이 거룩한 교회를 자랑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그렇다면 데마 정신에 빠져든 것입니다.

우리 주 예수께서 말씀하십니다.

“자기의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릴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의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전하리라”(요 12:25).

사람들은 얼마든지 기독교라는 탈을 쓰고 자기를 사랑할 수 있습니다. 기독교라는 탈을 쓰고 세상의 정신을 가지고 평생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즉, 교회를 다니면서도 얼마든지 데마가 될 수 있으며, 심지어 성경 공부를 하면서도, 기도를 드리면서도 자기 사랑과 세상 사랑으로 얼마든지 데마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금식과 구제와 제사에 힘썼던 바리새인들을 가증히 여기셨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모든 종교 행위가 사람에게 보이려는 것이며 그들 모두가 데마였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겉으로 보이는 신앙 생활을 통하여 자신들을 드러내고 자신들의 영광을 추구하였습니다. 

예수께서는 바로 그 중심을 아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주께서는 그들의 위선을 보시며 가증하다 말씀하셨고, 회칠한 무덤이며 사탄의 자녀라고 부르셨습니다. 

나아가 여우와 뱀으로 묘사하셨습니다. 바로 이러한 위선자들이 교회 안에 있는 데마들인 것입니다.  

우리 마음 속에는 데살로니가로 가고 싶어하는 데마가 다 있습니다. 홍해를 지나는 출애굽의 기적을 체험한 이스라엘 백성은 한없는 찬양과 영광을 여호와 하나님께 돌렸습니다. 

그러나 광야에서 배고프고 목이 마르니 당장 애굽을 그리워합니다.

“이스라엘 자손도 다시 울며 이르되 누가 우리에게 고기를 주어 먹게 하랴. 우리가 애굽에 있을 때에는 값없이 생선과 오이와 참외와 부추와 파와 마늘들을 먹은 것이 생각나거늘 이제는 우리의 기력이 다하여 이 만나 외에는 보이는 것이 아무 것도 없도다 하니 만나는 깟씨와 같고 모양은 진주와 같은 것이라”(민 11:4-7)....이것이 데마 정신입니다.

우리 안의 데마를 봅시다. 인생을 바꾸고 참 신자가 되기로 결심하였을 때 그때 버렸던 세상! 이생의 자랑과 쾌락과 육체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을 버린다며 눈물 흘리던 때가 엇그제 같은데, 어느새 다시 이생의 자랑과 육신의 안일함을 추구합니다. 

말씀 자체에서 누리던 기쁨 대신에, 성도의 거룩한 교제를 통해 나누던 풍성함 대신에, 어느새 데살로니가를 사랑하여 기독교라는, 그리고 교회라는 곳에서, 세상으로부터 장소만 옮겼을 뿐이지, 다시 세상의 유혹을 받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자기 사랑과 세상 사랑을 추구합니다. 

그것이 우리 안에 살아있는 데마이며, 궁극적으로 그 데마가 우리의 삶 전체를 주관한다면 그가 바로 재타락한 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들은 교회 내에서 끊임없이 인기를 추구하고 권력을 추구하고 더 좋은 집, 더 좋은 수입을 바라며 하나님을 불러댈 것입니다. 그러나 주께서 만일 그들을 사랑하신다면 오히려 고난을 주시고 망하게 하실 것입니다. 

만일 참 신자라면 주의 징계를 받으면서 “아, 내가 데마가 되어가고 있었구나, 데살로니가로 가고 있었구나”하며 회개할 것입니다. 사실 주의 사랑의 채찍이 아니었다면 우리 모두가 이미 데마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의 사랑의 징계로 인하여 우리는 정신을 차리고 다시 바울과 동행하길 원하는 마음을 찾게 되는 것입니다.

바울과 동행하는 마음은 주님과 동행하는 마음입니다. 그 마음은 복음을 위하여 이 세상에서 고난을 받겠다고 각오하는 마음입니다. 

바로 영원한 나라인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이 세상에서 좋아 보이는 모든 것들을 내려놓는 정신을 의미합니다. 주님과 동행하는 마음은 이생의 자랑과 안목의 정욕과 육신의 정욕을 구하는 대신에, 이제는 더욱 한 영혼을 사랑하기 때문에 복음을 증거하며, 존귀하신 하나님의 이름이 높여지도록 하기 위해 우리의 삶을 선하고 바른 삶으로 사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모든 환경을 초월하는 하나님 나라의 참된 평안과 기쁨을 누리며, 또한 그 기쁨을 체험하였기에 세상 기쁨이 아닌 복음의 기쁨을 우리 이웃들에게 소개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저와 여러분의 삶이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 시간에 주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나라를 기억합시다. 주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영원히 멸망하는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보내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그분은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우리의 죗값을 대신 치르심으로 인하여 우리는 영원한 천국에 들어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천국은 다름아닌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주 하나님과 영원한 자녀와 시민으로 살아가는 곳입니다. 이 땅에서의 주를 향한 모든 수고와 희생에 억만배로 갚아주시는 영광스러운 곳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 우리가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고후 4:16-18).

이제 주께 진심으로 이러한 기도를 합시다.

“주님만이 나의 모든 기쁨이 되시옵소서. 우리 남은 삶이 주님의 기쁨될 수 있게 하소서. 이 세상을 사랑하지 않게 도와 주소서. 데마가 되지 않게 해 주소서. 정신을 차리게 하소서.”

쏜살 같이 지나가는 우리 인생! 지금 내 인생은 주님께 어떤 기쁨을 드리고 있는지 점검해 봅시다. 내 삶이 정녕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쁘게 해 드리고 있습니까? 이 시간 주의 심령으로 진정으로 선포합니다. 오직 주님만이 우리의 모든 기쁨이 될 때에 그때야 우리는 안전하게 데마의 길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주님이 우리의 진정한 기쁨이 되지 않으면 우리는 반드시 데마가 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데살로니가로 내려가는 우리의 마음을 다시 주께로 향하는 계기로 삼기 바랍니다. 데살로니가로 내려가지 말고 천국을 향하여 계속 달려가길 원합니다. 복음으로 인해 잠깐 받는 이 땅에서의 고난과 불편을 이 세상에서 누리는 모든 쾌락보다 더 기뻐하길 소원합니다. 다시 한 번 주님만을 사랑하기로 다짐하는 가운데 오직 주께로만 온전히 믿음을 회복하는 그러한 주의 백성이 되시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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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JV]제16장

1.  Then went Samson to Gaza, and saw there an harlot, and went in unto her.

2.  And it was told the Gazites, saying, Samson is come hither. And they compassed him in, and laid wait for him all night in the gate of the city, and were quiet all the night, saying, In the morning, when it is day, we shall kill him.

3.  And Samson lay till midnight, and arose at midnight, and took the doors of the gate of the city, and the two posts, and went away with them, bar and all, and put them upon his shoulders, and carried them up to the top of an hill that is before Hebron.

4.  And it came to pass afterward, that he loved a woman in the valley of Sorek, whose name was Delilah.

5.  And the lords of the Philistines came up unto her, and said unto her, Entice him, and see wherein his great strength lieth, and by what means we may prevail against him, that we may bind him to afflict him; and we will give thee every one of us eleven hundred pieces of silver.

6.  And Delilah said to Samson, Tell me, I pray thee, wherein thy great strength lieth, and wherewith thou mightest be bound to afflict thee.

7.  And Samson said unto her, If they bind me with seven green withes that were never dried, then shall I be weak, and be as another man.

8.  Then the lords of the Philistines brought up to her seven green withes which had not been dried, and she bound him with them.

9.  Now there were men lying in wait, abiding with her in the chamber. And she said unto him, The Philistines be upon thee, Samson. And he brake the withes, as a thread of tow is broken when it toucheth the fire. So his strength was not known.

10.  And Delilah said unto Samson, Behold, thou hast mocked me, and told me lies: now tell me, I pray thee, wherewith thou mightest be bound.

11.  And he said unto her, If they bind me fast with new ropes that never were occupied, then shall I be weak, and be as another man.

12.  Delilah therefore took new ropes, and bound him therewith, and said unto him, The Philistines be upon thee, Samson. And there were liers in wait abiding in the chamber. And he brake them from off his arms like a thread.

13.  And Delilah said unto Samson, Hitherto thou hast mocked me, and told me lies: tell me wherewith thou mightest be bound. And he said unto her, If thou weavest the seven locks of my head with the web.

14.  And she fastened it with the pin, and said unto him, The Philistines be upon thee, Samson. And he awaked out of his sleep, and went away with the pin of the beam, and with the web.

15.  And she said unto him, How canst thou say, I love thee, when thine heart is not with me? thou hast mocked me these three times, and hast not told me wherein thy great strength lieth.

16.  And it came to pass, when she pressed him daily with her words, and urged him, so that his soul was vexed unto death;

17.  That he told her all his heart, and said unto her, There hath not come a razor upon mine head; for I have been a Nazarite unto God from my mother's womb: if I be shaven, then my strength will go from me, and I shall become weak, and be like any other man.

18.  And when Delilah saw that he had told her all his heart, she sent and called for the lords of the Philistines, saying, Come up this once, for he hath showed me all his heart. Then the lords of the Philistines came up unto her, and brought money in their hand.

19.  And she made him sleep upon her knees; and she called for a man, and she caused him to shave off the seven locks of his head; and she began to afflict him, and his strength went from him.

20.  And she said, The Philistines be upon thee, Samson. And he awoke out of his sleep, and said, I will go out as at other times before, and shake myself. And he wist not that the LORD was departed from him.

21.  But the Philistines took him, and put out his eyes, and brought him down to Gaza, and bound him with fetters of brass; and he did grind in the prison house.

22.  Howbeit the hair of his head began to grow again after he was shaven.

23.  Then the lords of the Philistines gathered them together for to offer a great sacrifice unto Dagon their god, and to rejoice: for they said, Our god hath delivered Samson our enemy into our hand.

24.  And when the people saw him, they praised their god: for they said, Our god hath delivered into our hands our enemy, and the destroyer of our country, which slew many of us.

25.  And it came to pass, when their hearts were merry, that they said, Call for Samson, that he may make us sport. And they called for Samson out of the prison house; and he made them sport: and they set him between the pillars.

26.  And Samson said unto the lad that held him by the hand, Suffer me that I may feel the pillars whereupon the house standeth, that I may lean upon them.

27.  Now the house was full of men and women; and all the lords of the Philistines were there; and there were upon the roof about three thousand men and women, that beheld while Samson made sport.

28.  And Samson called unto the LORD, and said, O Lord God, remember me, I pray thee, and strengthen me, I pray thee, only this once, O God, that I may be at once avenged of the Philistines for my two eyes.

29.  And Samson took hold of the two middle pillars upon which the house stood, and on which it was borne up, of the one with his right hand, and of the other with his left.

30.  And Samson said, Let me die with the Philistines. And he bowed himself with all his might; and the house fell upon the lords, and upon all the people that were therein. So the dead which he slew at his death were more than they which he slew in his life.

31.  Then his brethren and all the house of his father came down, and took him, and brought him up, and buried him between Zorah and Eshtaol in the buryingplace of Manoah his father. And he judged Israel twenty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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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기 16장 (개요)

삼손의 이름은 작은 태양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이 태양은 매우 찬란하게 떠올랐으며 그의 아침 햇볕은 강하고도 명료했다. 그가 한낮의 태양이었을 때는 사사로서 20년간 이스라엘을 다스려 이름을 떨쳤다. 그러나 본 장에 나오는 이야기는 우울한 황혼기에 접어든 삼손의 생활을 적어 놓고 있다. 

결국 이 작은 태양은 구름에 가려지게 되었지만 아직 한 줄기의 눈부신 빛을 발해 죽음을 이기신 예수님의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1. 삼손이 한 기생과 친해져 몹시 위험한 상태에 이르렀다(1-3).

2. 그후 삼손은 들릴라와 사랑에 빠져 완전 파멸에 이르게 된다.

   (1) 삼손은 자신의 욕정으로 인해 그녀로부터 배신을 당하게 되었다(4).

   (2) 삼손은 그녀로 해서 철천지원수인 블레셋 사람들에게 배반당했다. 그래서 이 블레셋 사람들은,

     ① 그녀를 이용해 삼손의 힘이 무엇으로 말미암은 것인지 드디어 알아내고 말았다(5-17).

     ② 그러고 나서 삼손의 머리카락을 밀어 냄으로써 그의 힘을 빼앗아 버렸다(18-20).

     ③ 또한 삼손을 잡아 눈멀게 하고는 학대하고 옥에 가두었다. 그리고 엄숙한 축제에서 재주를 부리도록 했다(21-25). 

         그러나 마지막으로 삼손은 그들에게 복수하고 함께 죽었다(2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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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문을 옮긴 삼손(삿 16:1-3)

Ⅰ. 삼손은 죄를 범했다(1절). 

그가 처음 블레셋 여자를 아내로 취했다는 것은 어느 정도 용서할 수 있는 일이나, 그것보다도 그가 우연히 한 기생을 만나 그녀와 연합했다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으로서, 나실인으로서 그의 영예를 더럽힌 일이었으며 또한 극히 수치스러운 일이었다. “이 일을 가드에 고하지 말라”(삼하 1:20). 

이 사악한 음행은 나실인의 우아한 얼굴을 “숯보다 더 검게” 만들어버렸다(애 4:7, 8). 삼손이 가사에서 어떤 일을 하고 있었는지는 밝혀지지 않고 있다. 

만일 그가 기생을 찾기 위해 그 곳으로 간 것이라면 이스라엘의 여자 중에는 기생이 없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삼손이 블레셋을 치기 위해 그들이 어떤 상태에 있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그 곳으로 갔다고 보고 있다. 

만일 그랬던 것이라면, 그는 그의 임무를 잊고서 그들의 올가미에 걸려든 것이었다. 

그의 죄악은 눈에서 시작이 되었으며, 그는 정욕을 잘 제재했어야 옳았다. “한 기생”을 보자, 그가 품었던 정욕은 죄를 낳고 말았다. “그는 그녀에게로 들어갔다.”

Ⅱ. 삼손은 위험에 처하게 되었다. 

삼손은 배반 잘하는 한 기생에 유혹되어 그 마을에 머물러 있었으며, 그 때 가사 사람들이 그를 목격하고는 그를 포위했다(2절). 

아마도 그는 변장을 하거나 또는 어두워져 가는 저녁 무렵에 이 기생이 유숙하고 있는 여관이나 주막집에 찾아갔을 것이다. 

그 곳 사람들은 삼손이 눈치채지 못하도록 성문을 잠근 후 거기에 매복해 조용히 지켰다. 이제 그들은 삼손을 감옥으로 끌고가 내일 아침 죽이리라고 생각했다. 

보라! 이처럼 술이나 부정한 일에나 정욕에 사로잡혀 있는 모든 자들은 그들의 영적인 적에 의해 포위당해 마침내 파멸하게 되고 마는 법이다. 

이런 자들은 그만큼 쉽게 빠져들수록 그만큼 더 헤어날 수 없게 되며, 위험은 더 커지게 된다.

Ⅲ. 삼손은 도망쳐 나왔다(3절). 

그는 한밤중에 깼다. 아마도 그를 보호하는 천사나 아니면 그 자신의 의식이 침상에서 깊이 잠든 그를 깨웠을 것이다(욥 33:15). 

깨어난 그는 이제 그가 저지르려는 죄악을 깊이 회개하고 그 일을 하려던 자신을 증오하면서, 결코 그런 죄를 짓지 말아야겠다는 경건한 결심을 했다. 

그 집의 맨 윗자리에서 자고 있던 그는 자신이 위험에 처해 있다는 것을 지각하고는 자기 자신에게 다음과 같이 묻고 있었다. “이 침상이 나실인에게 합당한 잠자리인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이 이렇게 더럽혀질 수 있겠는가? 내가 이런 죄악 속에 있어도 온전할 수 있을까?” 

그가 이렇게 자기 자신을 검토해 보지도 않은 채 자리에 누워 있었다면 그것은 옳지 못한 일이었을 것이며, 옳지 못한 일이라는 것을 알고서도 계속 누워 있으려 했다면 더욱 잘못된 일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즉시 일어나 성문으로 갔다. 거기서 호위병들이 졸고 있는 것을 보고 그들을 깨우지 않기 위해 문을 부수지 않았다. 대신 그는 아주 거대하고 무거운 성 문짝들과 설주와 빗장을 빼어들고는 “앞산 꼭대기로” 가면서 그를 포위하던 블레셋 사람들을 비웃었다. 

이래서 그는 다시 블레셋 사람과 맞서 이겼을 뿐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위대한 힘을 입증했고, 사망의 무덤을 이긴 그리스도의 승리를 예시함으로써 그의 백성들에게 훌륭한 일을 해냈다. 

그리스도는 성문의 돌을 굴려 빠져나왔을 뿐 아니라, 무덤의 문과 빗장 등을 멀리 날라다 놓음으로써, 무덤을 열린 감옥으로 만들었다. 

그 감옥은 그를 언제까지나 가두어 둘 수는 없었다.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고전 15:55) 너의 문은 어디 있는가? 그리스도께서는 친히 승리하셨을 뿐 아니라 우리에게도 그 승리를 나누어 주셨으니, 그에게 감사할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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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릴라의 배신(삿 16:4-17)

불에 덴 아이는 불을 두려워한다. 그러나 보통 남자들보다 더 큰 힘을 가지고 있는 삼손은 그의 지혜에 있어 이 어린아이보다도 못했다. 

그가 여인을 사랑하고 정욕을 품음으로써 커다란 재난과 위험을 당했지만 그는 아직도 여자를 경계하지 않아 다시 똑같은 함정에 빠지게 되었다. 

그러나 이 세 번째 여인으로 인해서 그는 자기의 잘못에 대한 모든 대가를 지불하게 되었다. 

솔로몬이 음녀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부정한 일을 경계하라고 한 것은 바로 이 삼손의 일을 두고 한 말 같다. “음녀로 해서 많은 사람이 상하여 엎드러지게 되었나니 그녀에 의해 죽은 자가 허다하니라”(잠 7:26). 또 “음란한 계집은 귀한 생명을 사냥하는도다”(잠 6:26). 

삼손을 망친 이 음란한 여자의 이름은 들릴라였으며, 이 불명예스러운 이름은 친절을 가장하고서 재앙과 파멸을 가져다 주는 사람을 표현할 때 사용된다.

Ⅰ. 삼손은 들릴라를 사랑했다(4절). 

들릴라는 그의 아내였으므로 그녀를 그의 집으로 데리고 가려 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고, 그가 그녀를 아내로 만들기 위해 구애한 것이라고 주장하는 자들도 있다. 그러나 아무튼 그가 그녀에게 악한 애정을 품고 그녀와 더불어 추악한 생활을 했다고 생각할 수 있는 요인들이 많이 있다. 

그녀가 이스라엘인인지 혹은 블레셋인인지는 명확하게 나타나 있지 않다. 

그러나 매우 희박한 일이긴 하지만 만일 그녀가 이스라엘인이었다 하더라도, 그녀의 마음은 블레셋인이었다.

Ⅱ. 블레셋 방백들은 들릴라가 삼손을 배반하게 만들었다(5절).

1. 그들은 그녀에게 단지 삼손의 교만을 꺾고 그를 괴롭힐 생각밖에는 없다고 말했다. 

그래서 삼손이 자기들을 해할 수 없도록 할 뿐이지 그 외에 달리 상처 입히진 않겠다고 약속했다. 

그리고 아마도 그들은 삼손의 목숨이 그들의 수중에 달렸을 때일지라도, 그의 머리카락을 자른 삭도로 그의 목을 벨 수 있을 때일지라도 결코 그를 죽이지는 않겠다고 약속했을 것이다.

2. 그들은 삼손의 힘이 어디서 나오는지 또 어떻게 해야 그것을 막을 수 있는지를 알고 싶어했다. 

어쩌면 그들은 그가 어떤 마술이나 주문을 지니고 있어 그런 큰 일을 할 수 있었으리라 생각했을 것이다. 

그래서 만일 그들이 그것을 없애버리면 그를 다루기 쉬울 것이라고 믿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전에도 비밀을 알고자 하여 음흉한 일을 했던 이들이 이번에는 두 번째 수수께끼를 알고자 하여 다시 그의 암소로 밭을 갈게 되었다. 

이들은 들릴라에게 이 수수께끼의 해답을 알아다 줄 것을 요청하면서, 그것이 블레셋 사람에게는 매우 이로운 일이며 그렇게 한다고 해서 그녀와 삼손에게는 어떤 재앙도 오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확신시켜 주었다.

3. 이 일을 하도록 그녀에게 명하면서 그들은 그녀에게 각각 은 1천1백, 합해서 5천5백을 주기로 약속했다.

 이것은 1천 파운드가 넘는 액수다. 이 돈으로 그녀를 배반하는 일에 고용했던 것이다. 이처럼 돈을 사랑하는 것이 얼마나 끔찍한 악을 초래하는지를 보라. 

우리의 구주도 친히 친구라고 부르던 자에게 배반당했는데, 그 자는 돈에 유혹되어 구주에게 입맞춤을 했다. 

들릴라처럼 정숙하지 못한 사람이 부정한 일을 한다는 것은 별로 놀라운 일이 아니다. 한 번 정직을 잃은 자는 또다시 정직을 잃게 된다.

Ⅲ. 삼손은 그의 수완으로 하루 이틀 그녀의 요청을 지연시키며 그의 비밀을 지키려 했다. 

그녀는 그에게 “그의 큰 힘이 무엇으로 말미암아 있는 것인지”, 또 어떻게 해야 그의 힘을 막아 괴롭힐 수 있는 것인지를 물었다(6절). 

그러면서 그녀는 그것이 단지 자기의 호기심을 채우기 위한 것이며 그녀 외에는 아무도 그의 힘을 막을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처럼 긴장했다.

1. 그녀가 삼손을 몹시도 조르자,

(1) “푸른 칡 일곱”으로 하면, 그를 결박할 수 있다고 말했다(7절). 

이 말을 듣고 그녀는 곧 그대로 행해 보았으나 이루어지지 않았다(8절). “삼손이 그 칡 끊기를 불탄 삼실을 끊음같이 하였다”(9절).

(2) 그녀가 다시 끈덕지게 요청하자 그는 새 줄 두 가닥으로 그를 결박하면 그가 다른 사람과 같이 되어 다루기 쉬울 것이라고 말했다(11절). 

그녀는 곧 이 일을 시험해 보았으나 또 실패했다. 그 “새 줄은” 그의 팔에서 “실같이” 끊어져 버렸다(12절).

(3) 그녀가 그의 비밀을 알려 달라고 집요하게 요청하면서, 그가 그렇게 오랫동안 그녀를 희롱하는 것은 몰인정한 일이라고 비난하자, 그는 그의 머리털 일곱 가닥을 짜면 그를 결박할 수 있으리라고 말했다(13절). 이것은 그가 여지껏 말했던 어느 얘기보다도 사실에 가까운 말이었지만, 이것으로도 그를 결박할 수는 없었다. 그녀가 이 일을 시험해 보았을 때 , 그의 머리의 힘은 더욱 강해진 것 같았으며 그는 “직조 틀의 바디(beam)와 위선(緯線)을 다 빼어내 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2. 이 모든 실험을 행한 일에서 삼손의 힘이 약해졌다든가 들릴라가 더욱 사악해졌다든가 하는 말은 아직 할 수가 없다.

(1) 그러나 만일 사실이 누설되면 삼손의 생명이 위협받게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의 비밀을 캐내기 위해 끊임없이 그리고 타당치도 않게 추근덕거리는 것보다 더 사악한 일이 있을 수 있을까? 그를 사랑한다는 여자가 그의 머리를 자신의 무릎 위에 올려놓고 그를 배반해 철천지원수가 되는 것보다 더욱 비열하고 사악하고 그릇된 일이 또 어디 있을까?

(2) 한눈에 반해 버렸던 그 여자가 자신에게 재앙을 주려고 계획하고 그를 해할 수 있는 방법을 알기 위해 무례한 간청을 하는데도 이렇게 오랫동안 그녀와 함께 있었다는 것은 또 얼마나 우둔한 일인가? 그리고 그에게 힘이 없어지면 즉시 결박하기 위해 내실안에 사람들을 매복시켜 놓았다는 것을 알고서도, 더욱이 그가 그녀의 무릎을 베고 누웠을 때 “삼손이여, 블레셋 사람이 당신에게 미쳤느니라” 하면서 빈번히 놀라게 했는데도 방심한 채 그녀와 함께 있었다는 것은 얼마나 우유부단한 일인가? 삼손처럼 어떤 생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이렇게 완전히 여자에게 빠진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매음은 “마음을 빼앗는”(호 4:11) 일 중의 하나다. 그녀가 그를 약하게 할 수 있는지 또 고통을 줄 수 있는지를 시험해 보도록 하여 그가 그녀를 괴롭힌 것은 어떤 의도에서였는지 말할 수가 없다. 삼손은 그 자신의 힘이 무엇으로 인한 것인지를 잘 몰랐으나, 그가 그녀에게 그를 약하게 하는 방법을 말해 주었을 때 비로소 그도 알게 되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래서 여기에 적혀 있듯이 “그는 진정을 토하게” 되었다. 삼손은 그녀를 희롱하면서 농담으로 그녀의 간청을 물리칠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또 내실에 “매복하고 있던” 사람들이 하려는 일을 방해하면서 그들을 조롱하려 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가 그 땅을 차지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서도 즉시 물러나지 않았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었다.

Ⅳ. 드디어 삼손은 중대한 비밀을 토로했다. 

자기의 파멸을 추구하는 사람 앞에서 자기의 비밀을 지킬 능력이 없는 자는, 그 비밀의 폭로가 치명적인 피해를 가져오더라도, 스스로 감수하지 않으면 안 된다. 

“무릇 새가 그물을 치는 것을 보면 헛일이겠거늘”(잠 1:17), 삼손의 시야에도 이 그물은 펼쳐져 있었다. 그런데도 그는 그 자신이 그것을 뒤집어쓰고 말았다. 

블레셋인이 그의 눈을 빼기 전에 그가 눈이 멀지 않았다면 그는 분명 그 자신이 배반당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을 것이다. 

들릴라는 소비자라는 뜻을 지닌 이름이었는데, 그녀는 삼손에게 있어서 바로 그런 여자였다. 다음 사실을 관찰해 보자.

1. 그녀는 삼손을 얼마나 괴롭혔던가. 

만일 삼손이 이 일을 알려 주지 않는다면 그녀를 사랑한다는 사실을 믿을 수가 없다고 말했다(15절). “당신의 마음이 내게 있지 아니하면서” 즉 당신이 나를 믿지 못해 비밀을 말하지 않으면서, “당신이 어찌 나를 사랑한다 하느뇨?” 

열정으로 사랑하고 있는 자는 자기의 사랑이 의심받는 것을 견디지 못해, 자기의 진실을 의심받기보다는 차라리 다른 고통을 즐겨 택한다. 

들릴라는 이런 약점을 이용하고 있었다. 사랑을 얻으려는 자는 속삭이는 달콤한 말보다도 그 참된 마음을 획득해야 한다는 충고는 정말 큰 진리에 근거한 것이다. 위장되지 않은 사랑은 없다. 그러나 마음이 가지 않는 자를 사랑한다고 하는 것은 커다란 거짓이며 아첨이다. 

우리의 마음이 그에게 있지 않으면서 어떻게 우리가 우리의 형제를 사랑한다고 할 수 있겠으며 우리의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할 수 있겠는가? 

그녀는 여러 날을 두고 끈질기게 그를 재촉해 괴롭혔으며 그 때문에 삼손은 그녀와 함께 있는 것이 조금도 즐겁지 않았다(16절). 

그렇다면 왜 그는 그녀를 떠나지 않았는가? 그것은 그가 사랑의 힘에 붙잡혀 있었기 때문이고, 나쁘게 말하자면 정욕의 포로가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그는 완전히 정욕에 매혹되었고 취해 버렸다.

2. 그녀는 삼손을 손아귀에 넣게 되었다(17절). 

그는 “진정을 토하였다.” 그의 이 어리석은 행위로 말미암아 하나님은 그에게서 떠나셨고 욕정으로 더럽혀진 그를 징벌하셨다. 

그의 출생을 말해 준 천사는 그의 커다란 힘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단지 그가 나실인이 될 것이며 특히 “그의 머리에 삭도를 대지 말 것을”(13:5) 부탁했다. 그는 그의 힘으로 하나님께 봉헌했다. “그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성령의 “영광 힘을 좇아 능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즉 그의 힘은 본능적인 것이 아니라 믿는 자에게 역사하시는 약속된 성령의 힘이었다(골 1:11, 29). 

하나님은 그 분에 대한 헌신의 표적으로 그에게 힘을 약속해 주셨다. 만일 그가 헌신을 하지 않게 되면 그는 그의 힘이 몰수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만일 내가 삭도질을 당하면 나는 더 이상 나사렛 사람이 될 수가 없고 나의 힘은 없어질 것이다.” 

그의 힘이 선천적인 것이 아니라 그의 머리에서 나왔다는 것을 볼 때 우리는 거룩한 힘을 찬미하게 되고 하나님의 은총을 바라게 된다. 

그리고 계속 그 은총을 받기 위해 우리는 그 분이 우리에게 명하신 대로 그 분의 말씀을 읽고 성찬에 참예하고 기도를 드린다. 

이 질그릇 속에 이렇게 진귀한 보화가 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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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극에 빠진 삼손(삿 16:18-21)

삼손은 그의 어리석음으로 해서 그의 힘을 잃게 되는 치명적인 결과를 맞게 되었다. 그는 그의 어리석음에 대한 무서운 징벌을 곧 받게 되었다. 

“음녀는 깊은 구렁이요”(잠 23:27), “여호와의 노를 당한 자는 거기 빠지리라”(잠 22:14). 삼손이 바로 그 함정에 빠지게 되었다.

Ⅰ. 들릴라는 돈을 틀림없이 받기 위해 세심한 주의를 기울였다. 

이제 그녀는 삼손의 말하는 태도로 보아 그가 “진정을 토했다”는 것을 알고서, 이 비열한 일을 하기 위해 매복시켰던 블레셋 방백들을 불러들였다. 

그리고 틀림없이 “그들 손에 은”을 가지고 오도록 했다. 이렇게 삼손 모르게 의롭지 못한 일이 대가가 지불되었다. 

삼손과 같이 지극히 용맹스러운 자가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처럼(사 53:7) 팔려간다는 것은 참으로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런 것을 볼 때 인간의 영광은 얼마나 보잘것없으며, 강한 자가 자기의 힘을 자랑한다는 것은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

Ⅱ. 그녀는 흥정한 대로 삼손을 그들에게 넘겨주었다. 

이 세상에는 들릴라와 같은 많은 자들이 있어, 그들이 존경하고 있는 것처럼 받들던 자를 팔기도 한다. 그러므로 “이웃을 믿지 말며 친구를 의지하지 말라”(미 7:5). 그녀가 어떻게 배반하는지를 보라(19절). “들릴라는 삼손으로 자기 무릎을 베고 자게 했다.” 

요세푸스는 그녀가 그를 술로 취하게 하여 잠들게 만들었다고 말했다. 그녀가 그의 컵에 어떤 마취제를 넣었는지는 모르나, 우리는 삼손이 그것을 알고서도 포도주나 독주를 마셨다고는 생각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가 독주를 마시는 것은 그의 머리를 잘리는 것과 마찬가지로 나실인의 자격을 잃는 일이 되기 때문이다. 

그녀는 그를 이렇게 해할 때조차도 매우 친절한 태도를 꾸몄으나, 그녀는 그를 잠재우지 않고서는 목적을 이룰 수 없었다. 방심한 자에게 오는 이 치명적인 재난을 보라. 사탄은 잠자는 자들을 교란시키고, 그들에게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말고 염려하지도 말고 오직 그들의 안전만을 꾀하라고 속살거린다. 

그리고 그들의 힘과 영예를 빼앗고서 사탄의 마음대로 그들을 조롱하며 파멸의 길로 이끈다. 우리가 잠자고 있을 때라도 우리의 영적 원수들은 잠자지 않는다. 

삼손이 잠이 들었을 때, 그녀는 사람을 시켜 그의 머리를 조용히 그리고 빨리 깎도록 했다. 삼손이 깨지는 않았지만 고통이 있었을 것이다. 

삼손이 잠들었을 때에는, 그의 영조차도 아주 깊이 잠에 빠져 있었다. 만일 삼손이 그 일을 방조하지 않았고 어떤 악한들에 의해서 감행되었다면, 아마 그에게 이렇게 이상한 결과가 일어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를 징계한 것은 바로 그 자신의 사악함이며, 그의 부정한 행위 자체였다. 만일 그렇지 않았다면 그는 이렇게 끔찍스러운 재난을 당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Ⅲ. 삼손은 그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거의 알지 못했다(20절). 

그가 깨어났을 때, 이미 그의 머리카락은 잘려 있었다. 그러나 그는 깨어난 후 “내가 전과 같이 나가서 몸을 떨치리라” 혹은 “블레셋 사람들이 나를 치러 왔던 지난번처럼 내가 그들을 남김없이 무찌르리라” 하고 말했다. 아마도 그는 더욱 쉽게 몸을 떨칠 수 있으리라 생각했을지도 모르며, 그의 머리가 더 가벼워졌다고 느꼈을지도 모른다. 이제 그의 머리카락이 잘려져 그만큼 자신에게 어떤 변화가 생겼다는 것을 느꼈으나, 아직도 “여호와께서 이미 자기를 떠나신 줄을 깨닫지 못하였다.” 

그는 그것이 그의 몸에 이상이 생기게 된 이유라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은혜로우신 하나님의 임재를 상실하고 있으며, 그런 사실조차도 모르고 있다는 것을 명심하자.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이 그들에게서 떠나 주시기를 간청하며, 그것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버려두신다는 것을 모르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이들은 하나님이 그들을 떠나신 것을 슬퍼하지도 않는다. 

그들의 영혼은 나태해지고 점점 약해지며 그들에게 준 선물은 시들고 그들의 모든 일들이 그릇된 방향으로 나아가게 된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 올바른 이유를 찾지 못하고 있다. 즉 그들은 하나님께서 이미 그들을 떠나셨다는 것을 알지 못하고 있으며, 하나님께로 다시 돌아가 그 분의 은총을 회복하려는 생각도 하지 않고 있다. 하나님이 우리를 떠나시면, 우리는 전처럼 행할 수 없게 된다.

Ⅳ. 블레셋 사람들은 이 기회를 얼마나 신속히 활용했던가!(21절) 

하나님께서 삼손을 떠나셨을 때에 그들은 그를 잡았다. 하나님의 보호 밖으로 내던져진 자는 쉽게 적의 먹이가 된다. 

만일 우리가 우리 욕정을 베고 잠든다면, 우리가 깨어났을 때는 이미 블레셋 사람의 손에 잡혀 있게 될 것이다. 

물론 그들은 들릴라에게 삼손을 죽이지는 않고 단지 그가 그들을 대적할 수 없도록 만들 뿐이라고 약속해 주었다. 

그들이 삼손을 손아귀에 넣고 그들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 첫 번째 일을 행했는데, 그것은 아랍역에 적혀진 대로 “불로 지져 그의 눈을 빼는 것이었다.” 그들은 그의 머리카락과 마찬가지로 다시는 그의 시력이 회복될 수 없으리라고 생각했으며, 그를 안내해 주는 눈이 없다면 그의 팔은 무용지물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므로 한 번 그의 눈을 빼 버리면 그는 영원히 장님이 될 것이라고 믿었다. 

그의 눈은 죄악을 끌어들였다. 그는 가사에서 한 기생을 보고 그녀를 좇아 갔다(1절). 그래서 그는 지금 이런 벌을 받게 된 것이다.

블레셋 사람들이 그를 눈멀게 한 일을 계기로 그는 그가 전에 그의 정욕으로 인해서 얼마나 눈이 멀었는가를 상기해야만 했다. 

허영된 것을 물리쳐 버림으로써 우리는 우리의 눈을 잘 보존할 수 있어야 한다. 

그들은 “그를 끌고 가사로 내려가” 그의 힘을 약하게 만들었고, 그가 물리쳐 버린 자들의 조롱거리가 되게 했다. 

전에는 그 자신의 죄악의 끈을 끊을 수 있었던 그가 이제는 놋줄로 묶이게 되었고, 옥중에서 맷돌을 돌려 일을 하게 되었다. 

이렇게 함으로써 블레셋 사람들은 그를 벌 줄 수도 있었고 이용할 수도 있었다. 

이처럼 마귀는 죄악을 뿌려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케 하고”(고후 4:4), 그들을 사로잡아 마귀의 일을 하도록 만든다. 가엾도다. 너 패망한 삼손이여! 

그의 영예는 더럽혀지고 말았다. 이스라엘을 보호하고 영광스럽게 하던 삼손은 블레셋 사람들에게 괴롭힘을 받게 되고 그들로 하여금 개가를 부르게 해 주었다. 

“그의 머리에서 면류관이 떨어졌사오니 오호라 그의 범죄함을 인함이니이다”(애 5:16). 삼손의 일을 보고 우리는 우리 자신을 정결히 지키도록 주의해야 하며, 육체의 정욕을 경계해야 한다. 우리가 하나님과의 맹세를 더럽히고 그를 떠나게 되면, 삼손과 같이, 우리의 영광은 사라지고 우리를 보호해 주던 힘은 떠나 버리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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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손의 최후(삿 16:22-31)

삼손의 생애의 마지막 단계는 영광스럽지도 못하며 거기에는 베일이 드리워져 있다고도 볼 수 있지만, 여기에 나와 있는 그의 죽음에 대한 기록은 그의 마지막 생애에 대한 치욕을 경감시켜 줄 수 있을 것이다. 그의 죽음은 명예로웠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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