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하8장.((행12장 참조))....[288.예수로나의구주삼고]..세상흔들리고.
***[[주님께서 베푸신 진리를 따라 고백하며 찬양하라... 거룩하신 하나님을 계시하심 바로 그대로 자유하신 분으로 믿고 의지하며!!, 주님의 보혈-말씀-성령은 원수대적의 모든 방해공작(후욕-박해-거짓/협박-박해-멸절 위협 등으로부터 분별 가능케 하심으로써 영생 바라고 소망함의 흔들림 없는 견고한 심지의 평강 안으로 이끄심 얻게 하시리니]]...이중적 방면에서!!...원수대적 사탄마귀의 궤계를 잘 알고 깨어 있어야 한다....십자가 대속 진리, 그 능력과 권세를 참되게 깨닫고 발휘-주장함으로써 원수를 주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대적하라...그대는 십자가로 이미 승리하신 구주JC와 하나이기에, 원수대적 사탄마귀는 그대에 대해 더 이상 주장할 수 있는 그 어떤 권세도 없다!!... 바로 그 사실을 믿음으로 JC이름으로 선포-대적하고, 무자갱으로 떠나라/십자가 밑으로 떠나라고 명령하라!!] 원수대적 사탄마귀 (육신-세상-옛사람 본체)는, 주와 하나된바 거듭난 믿는이가 마땅히 이루도록 안배하신 Devine destiny-Original Design을 이루지 못하도록!!, 이중적 방면에서 빛되신 주님 영광의 충만에 도달함을 가리고 방해하려 한다 ........ *1)붙듦-하나됨-교통하는 믿음(지금도 살아계신 분, 영생하시는 창조주, 전지전능의 여호와 하나님, 곧 Faith and Truth 이신 분, 바로 그분과 하나됨-교통-상호 거함) 믿는이의 믿음의 견고함을 흔들어 놓으려 함 ........ *2)내려놓고-열어-비워-내어드림의, (주로 주 되시게 하는) 신뢰하여-맡기고-따라감으로써 동행하는 믿음 ::: 제한 받지 아니하시는 하나님, 천지의 주재 여호와 하나님의 일하심 경험-체득의 크기는 믿는이의 전적으로/참되게 주님 신뢰함, 곧 그가 발휘하는, 생생한 산 믿음의 크기와 비례함 ===>보혈-말씀-성령은 믿는이가 전적인 신뢰=의지함으로 그 자신을 열어-비워-내어드리며 맡길 때...그 모든 부정적 의미의 영적 수건을 (주님 체험을 가로막는바, 믿는이의 영혼을 덮고 있는, 세상[=사탄 체계]의 모든 가스라이팅) 깨뜨리고 제하여 주심으로써 빛 되신 주님 영광 그데로 보고 득고 경험하여 이루실 바 성화-영화, 그리스도의 장성-성숙한 분량의 충만에 이르도록 하심이니!!
*세상에서 벌어지는 참상들...모든 사고/사건들, 전쟁-기근-지진-온역......하나님의 허락하심 아래에 있음.....그 의미를 알고 주님 마음 알도록 주께 구하라....그분의 영원하신 긍휼-자비 베푸심 되도록 주님의 예정하신 뜻 바르게 받듦이 중요함.....타락-방종-방심으로 영혼이 잠들어 있는 [구원받기로 예정된] 당시대의 모든사람마다 깨어나 주 이름 부르며 주께 돌이켜 구원 얻게 하는 계기 되도록 중보하라!!....믿음의 선한 싸움!!
*오직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빛-소금이신 분, 다바르/로고스이신 주님, 그분이 거듭난 내 존재 중심과 하늘로부터, 늘 새로이 넘치도록 채워 공급하사 공급케 하시는 은혜-긍휼-자비, 바로 그)사랑으로 역사하는 (시공 초월하여 그분과 하나 됨/주님으로 주인되시게 함 안에서 동거-동주-동행함의) 믿음*
===[시종일관,성실하신 여호와의 미리 언약하심 그대로, 여호와께서 친히 이기게 하시므로] 다윗이 (서-->동-->북-->남)어디로 가든지 이기다 :: 수신제가치국평천하.. -----[하나님 경외함--하나님 순종--다바르/로고스 주님의 십자가 도(=내가 아니라 그리스도), 그 기준과 원칙하에 정의/공의 행함, 이것이 참생명 리더의 덕목 ...이 시대의 진정한 리더!!, 리더란 섬김의 목자-인도자-지도자일진대, 생명 구원함에 이르는 참 리더는 누구인가 ...주인이신 주님의 좋은 동반자-팔로워라야!! 주님이 인정하시는, 주님을 공급하는 참생명의 리더들인것!!] [고전15:25..*25.그가 모든 원수를 그 발 아래에 둘 때까지 반드시 왕 노릇 하시리니] [롬6:12, 13..*12.그러므로 너희는 죄가 너희 죽을 몸을 지배하지 못하게 하여 몸의 사욕에 순종하지 말고 *13.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무기로 죄에게 내주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난 자 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무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갈5:13-26...*13.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 노릇 하라 *14.온 율법은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 같이 하라 하신 한 말씀에서 이루어졌나니 *15.만일 서로 물고 먹으면 피차 멸망할까 조심하라 *16.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17.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18.너희가 만일 성령의 인도하시는 바가 되면 율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리라 *19.육체의 일은 분명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20.우상 숭배와 주술과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열함과 이단과 *21.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 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22.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23.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24.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25.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또한 성령으로 행할지니 *26.헛된 영광을 구하여 서로 노엽게 하거나 서로 투기하지 말지니라] [엡6: 10-20...*10.끝으로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 *11.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 *12.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 *13.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14.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 띠를 띠고 의의 호심경을 붙이고 *15.평안의 복음이 준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16.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불화살을 소멸하고 *17.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18.모든 기도와 간구를 하되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라 *19.또 나를 위하여 구할 것은 내게 말씀을 주사 나로 입을 열어 복음의 비밀을 담대히 알리게 하옵소서 할 것이니 *20.이 일을 위하여 내가 쇠사슬에 매인 사신이 된 것은 나로 이 일에 당연히 할 말을 담대히 하게 하려 하심이라] -------- @@야샤 --구원하다, 구출하다, 구조하다...이기게 하시다.. 야샤(동사)는 기본어근이며, '구원하다, 구출하다, 구조하다'를 의미한다. 아랍어 어근의 의미는 '넓게 만들다'나 '충분하게 하다'이다. 이 어근은 '제한되다'나 '고통을 야기시키다'를 의미하는 차라르(좁은 narrow)와 대조된다. 넓은 것은 고통으로부터의 자유와 자기 자신의 목표물을 추구할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한다. 고통에서 벗어나서 안전을 얻기 위해서는 구출이 필요하다. 일반적으로 구출은 압제 당하는 사람들의 편 이외의 어떤 곳에서부터 행해져야 한다. 구약성경에서, 국가적인 것이든 개인적인 것이든, 고통의 종류에는 원수들, 전염병이나 기근 같은 자연 재해들도 포함되어 있다. 구원을 가져오시는 분은 "구세주"로 알려졌다. 그렇지만 이 말은 신학적 의미와는 무관하게, 일상생활에서 사용되기도 하였다. 예를 들어 모세는 우물에서, 르우엘의 딸들이 목동들에 의해 쫓겨나는 것에서부터 구해주었다(출 2:17). 그러나 일반적으로 구약성경에서 이 말은 종교적인 의미를 강하게 지닌다. 왜냐하면 구원을 행하신 이는 여호와이셨기 때문이다. 이리하여 그는 "우리 구원의 하나님"으로 알려졌다(시 68:19이하, H20이하). 비록 구원이 인간 대리자를 통해서 행해지기도 했지만 이것은 하나님께서 대리자에게 권한을 주셨다는, 오직 그 이유 때문이었다. 신약성경에서 구원의 개념은 주로 죄의 용서, 죄의 권능으로부터의 구원, 그리고 사탄의 패배를 의미한다. 비록 구약성경이 이런 방향으로 향하기 시작하긴 했지만 구원에 관한 대부분의 언급들은 여호와께서 실재적인 원수와 실재적인 재해로부터 구출해주신다는 것에 대한 것이다. (a) 구원의 종류: 여러 번, 다른 나라들의 압제를 당한 이스라엘은 자유를 얻고 계속 유지해 나가기 위해 싸우러 나가야 했다. 이 전쟁들에서, 이 민족은 도움을 받기 위해 하나님께로 돌아섰다. 그들은 전쟁의 결과가 여호와께 속한다고 믿었다(삼상 17:47). 그래서 그들은 감히 승리의 결과를 확신했다. 구약성경에서 하나님의 구원 행위의 초점은 애굽의 속박에서 이스라엘이 구원 받는 것이었다(출 14:30). 그리하여 그들은 여호와의 구원을 받은 백성으로 알려지게 되었다(신 33:29). 이런 구원 행위는 미래 세대들에게 뿐만 아니라 주변 국가들에게도 여호와의 주권을 나타내주는 증거가 되었다(참조: 시 106:8, 삼상 4:6이하). 후에 이스라엘인들이 약속의 땅으로 들어갈 것을 기대했을 때, 모세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는 너희와 함께 행하시며 너희를 위하여 너희 대적을 치고 너희를 구원하시는 자"라고 말했다(신 20:4). 하나님은 여호수아를 통해서 이 약속을 성취하셨다. 여호수아는 가나안을 소유하도록 백성들을 인도하였다. 후에 이스라엘이 주변 국가들 중의 한 국가에 의해 압제 당했을 때, 하나님은 사사를 통해서 그들을 구출하셨다(삿 2:16). 일반적인 형태는 하나님께서 사사에게 자기의 영을 부여하여 이스라엘의 원수들을 쳐부수게 하는 것이었다. 후에, 왕정 하에서 이스라엘은 여호와에게서 기름부음을 받고 도움을 받은 의로운 왕에 의해 원수들을 쳐부쉈다(삼상 9:16, 시 20:6, H7). 진실한 믿음을 가진 지도자는 요나단의 말, "여호와의 구원은 사람의 많고 적음에 달리지 아니하였느니라"(삼상 14:6)라는 정신으로 감히 전진해 나갔다. 하나님에게서 오는 구원은 왕의 영광이었으며 백성들에 대한 그의 권세를 확고하게 세워주었다(시 21:5, H6). 이 민족의 힘이 강해지고 명성을 떨칠 때, 왕과 백성들이, 구원은 강한 군사들에 의해 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권능으로부터 온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시 44:1-8, H2-9). 비록 하나님께서 구원을 행하기 위해 일반적으로 인간 대리자를 사용하시긴 하지만, 장애물 정복은 의심할 여지없이 하나님 자신의 특별한 도우심이 있어야 할만큼 매우 극적인 것이었다(참조: 잠 21:31). 여기에는 지상에서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면서도 그의 백성들의 특성을 세우는, 하나님의 행동과 인간의 반응 사이의 창조적인 긴장이 있다. 때로 하나님께서 전적으로 이 일을 행하시므로, 모든 사람들은 여호와의 강한 행동을 기다리고 바라보는 일을 해야 한다(대하 20:17, 참조: 호 1:7). 카리스마적 지도자를 통한 하나님의 구원 행위라고 하는 이런 역사적인 형태를 세움으로써, 하나님의 영으로 기름부음 받은 왕의 역할을 성취하실 미래의 구세주 개념이 생겨났다(참조: 렘 23:5이하). 구원은 공격적일 뿐만 아니라, 방어적이기도 하다. 적대적인 것이 다가올 때, 사람들은 안전한 피난처로 물러서기도 한다. 하나님은 자주 그의 백성들을 위한 이런 피난처로 간주되곤 한다: "나의 구원과 영광이 하나님께 있음이여 내 힘의 반석과 피난처도 하나님께 있도다"(시 62:7, H8). 구원을 경험한 사람은 내적 근심으로 괴로워할 필요가 없다. 그가 적대 세력을 견뎌내야 할 것은 사실이나 하나님은 그의 대적들이 그를 파멸시키지 못할 것을 보증하실 것이다. 구원의 보호적 성격은 다른 개념들로 나타난다. 즉 "구원의 방패"(시 18:35, H36), "구원의 투구"(사 59:17, 엡 6:17), "구원의 옷"(사 61:10). 이처럼 구원은 단순히 전장에서의 순간적인 승리가 아니다. 이것은 또한 수많은 위험을 두려워하지 않고 생명을 유지시키는데 필요한 안전과 방위 수단이기도 하다. 구약성경이 마지막 때의 하나님의 도성을 기대할 때, 구약성경은 그 도성의 벽이 '구원'이라고 불리워질 것으로 예상한다(사 60:18). 이 도시는 오직 의인들을 위해서만 존재하며, 이 도시는 구원을 수반하는 모든 안전을 제공해준다(사 26:1). (b) 영적인 의미: "구원하다"라는 단어는, 하나님께서 죄를 용서해주시고 개인의 성품을 변화시키심으로써 구원하신다는 점에서, 신학적인 의미를 발전시켰다. 예를 들면, "내가 그들을 그 범죄한 모든 처소에서 구원하여"(겔 37:23). 다윗은 이점을 깨닫고 "하나님이여 나의 구원의 하나님이여 피 흘린 죄에서 나를 건지소서"(시 51:14, H16, 참조: 시 79:9)라고 기도하였다. 렘 17:14에서 "구원하다" save는 "치유하다" heal와 병행된다. 즉 구원은 정서적이며 신체적인 안녕을 가져오는 역동적인 힘이 된다. (c) 구원과 의: 여호와의 모든 구원 행위는 의에 의거하고 있으며, 이것은 "의"와 "구원"이 종종 병행되어 나오곤 한다는 사실에 나타나있다(예: 사 51:8). 비록 모든 구원 행위에 심판이 포함되어 있긴 하지만, 심판을 받는 사람들은 죄인이며 따라서 이런 재판을 받아 마땅하다(참조: 시 76:8, H9이하). 다른 한편, 하나님은 언약에 신실하시며, 그리고 인간의 원초적인 불순종으로부터의 구원의 수단을 인간에게 제공해주심으로써, 자기 자신의 형상으로 만든 피조물인 인간에게 신실하시다. 이런 점에서 하나님은 구세주를 통하여, 구원자로서의 그의 책임을 이행하신다. 이리하여 여호와는 "공의를 행하며 구원을 베푸는 하나님"으로 알려진다(사 45:21). (d) 계시된 하나님의 특성: 하나님께서 이루신 구원은 그의 우주적인 통치를 드러낸다(참조: 사 33:22). 그의 왕국이 온 세상 위에 펼쳐질 것이므로 그는 그가 원하는 누구에게든지 구원을 가져다 주신다. 더구나 구원행위는 종종 바다와 해룡으로 의인화되곤 하는 악의 권세의 목적을 파괴한다(시 74:12이하). 따라서 모든 승리는 그의 모든 백성들을 위한 마지막 구원을 향해 움직이고 있다.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은 인간에게 그를 예배할 근거를 마련해준다. 즉 구원해줄 수 있는 신만이 예배를 받을만한 가치가 있다. 따라서 자주 대두되는 우상숭배에 대한 논쟁은 다른 신들에게 그들의 압제 받는 추종자들을 구원해보라고 도전하는 것이다(사 46:7, 삿 6:31). 그들이 응수하지 못했다는 사실은 이 신들이 헛되며 여호와 외에는 구세주가 없다고 고백하게 만든다는 점을 입증해준다(사 43:11, 호 13:4). 확실한 것은 구원행동이 단순한 역사와 우연으로 간주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여호와는 구원행동을 하시기 전에 그가 행하려고 했던 것을 계시하신다(사 43:12). 뿐만 아니라, 그는 그 일을 행하셨다는 점에서 볼 때, 자기의 말에 신실하시다. 나중에 이 행동은 해석되고 선포되었다. 게다가 구원 행동은 각 세대들이 여호와와 관계를 맺는데 있어서 결정적인 것이며, 그 행위에 대한 선포는 이 관계를 수립하고 계속 유지시키도록 신앙을 불러일으킨다(참조: 사 52:7). 더구나 구원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돌보신다는 사실에 대한 증거가 된다. 구원은 그의 사랑에서부터 흘러나온다(참조: 신 7:7 이하). 신실한 사람들은 하나님의 끊임없는 사랑을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 그들은 어려울 때, 구원을 받기 위해 그에게로 돌아선다(시 6:4, H5, 시 109:26). 이처럼 구원은 행동으로 표시된 하나님의 사랑이다. 구원은 또한 그의 백성 사이에 계시는, 그리고 그의 지도자들과 함께하시는 하나님의 적극적인 임재에 대한 증거이기도 하다. 일을 위임 받은 많은 사람들은 특별한 방식으로 그의 임재를 약속 받았다. 하나님은 예레미야에게, "내가 너와 함께하여 너를 구원하리라"(렘 1:8, 렘 1:19, 참조: 마 28:20)고 약속하셨다. 예레미야는 후에 감옥에 갇혔으며 여러 번 그의 생명이 위협을 받았으나 그의 적대자들은 결코 그를 파멸시키지 못했다. 모세도 이 약속으로 인하여 성공하였다(출 3:12). 이처럼 그의 백성들 가운데 하나님께서 임재하심으로써, 그들은 적과 고통으로부터 구원을 받았다. (e) 백성들의 준비와 반응: 회개와 믿음: 인간은 하나님의 구원을 받기 위해 스스로 준비해야 한다. 고통 중에 있을 때, 인간은 기도로 하나님을 구해야 한다(예: 삿 3:9, 시 69:1, H2). 즉 그는 자기의 위급을 깨닫고 하나님 앞에서 회개하는 심정으로 낮아져야 한다(참조: 욥 22:29, 시 34:18, H19). 하나님께로 돌아서는 것에는 죄를 내버리는 것이 포함된다. 왜냐하면 죄는 하나님께서 곤궁에 처한 사람들을 도와주지 못하도록 방해하기 때문이다(사 59:1 이하). 인간이 일단 진심으로 하나님께로 돌아섰다면, 그는 구원을 기다림으로써, 하나님에 대한 그의 확신을 표현해야 한다(사 30:15). 하나님은 행동하실 시기를 선택하신다. 인간은 소망 가운데 기다려야 한다. 하나님은 자기가 구원을 행하기에 가장 적합한 때를 선택할 것이므로, 백성들이 믿음으로 어려운 상황을 견뎌내 주기를 바라신다. 사람들이 구원을 기다리고 있는 동안, 그는 적극적으로 의를 추구하며 사랑을 표현하신다(사 56:1, 호 10:12, 호 12:6). 찬양의 노래. 실제적이든, 예기적이든, 하나님의 구원 행위에 대한 인간의 즉각적인 반응은 찬양의 노래에 있다. 홍해 구원에 바로 뒤이어 바다의 노래가 작곡되어 불리워졌다(출 15:1-8). 장차 오실 메시야에 의한 구원에 관한 이사야의 기술 다음에는 사 12장에 노래가 나오며, 세편의 종의 노래는 노래하는 것으로 끝난다. 사 42:10이하, 사 49:13이하, 사 54:1이하. 노래하는 것은 하나님의 구원에 참여하는 기쁨을 나타내준다. 기쁨은 자주 하나님의 승리에 대한 인간의 내적 반응으로 언급되곤 한다(예: 시 13:5, H6). 더구나 여호와의 도움을 받은 사람들은 그것을 다른 사람들과 공유해야 한다고 느낀다: "내가 주의 의를 내 심중에 숨기지 아니하고 주의 성실과 구원을 선포하였으며"(시 40:10, H11). 이처럼 하나님의 구원은 생을 의미와 기쁨으로 가득채운다. (e) 미래의 구원: 이스라엘이 포로지에서 돌아온다는 사실은 구원의 언어로 예기되었다. 여호와는 "내가 너를 원방에서 구원하리라"(렘 30:10, 슥 8:7)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은 백성들을 자기의 양떼로 생각하시므로, 그는 "내가 내 양떼를 구원하여 그들로 다시는 노략거리가 되지 않게 하실 것이라"고 선언한다(겔 34:22). 여호와 외에는 구원이 없으므로, 그는 초대를 확장하여, "땅끝의 모든 백성아 나를 앙망하라 그리하면 구원을 얻으리라 나는 하나님이라 다른 이가 없음이니라"(사 45:22, 참조: 시 67:2, H3)고 말씀하신다. 선지자들은 구원이 만방에 효력을 미쳐 영원히 지속될 날을 고대한다. 이사야는 이 구원이 고통 당하는 종을 통해서 올 것으로 예상한다. 이 종이 고난을 참는데 까지 순종하기 때문에, 하나님은 "내가 너로 이방의 빛을 삼아 구원을 베풀어서 땅끝까지 이르게 하리라"(사 49:6)고 약속하신다. 바꿔 말하면, 구약성경에서의 구원 행동들은 모든 백성들을 구원의 가능한 축복아래에 포함시킬 마지막 구원 행동을 위해 이룩된 것이다(사 52:10). ------- 성서의 ‘구원’은 무엇인가? ‘구원하다’란 히브리어 동사는 <야샤 יָשַׁע>이다. 이 동사는 ‘구원하다/구출하다/승리를 안겨주다/돕다/복수하다/보존하다’ 등으로 다양한 의미로 번역할 수 있다. 그 아랍어 어원은 ‘넓히다/넉넉하게 하다’란 뜻인데, 그 반대말 <사라르,차라르>는 ‘좁다/제한되다/억압하다’란 뜻이다. 넓힌다는 것은 억압으로부터의 자유를 의미하며 제한을 받지 않고 마음대로 행동할 수 있는 자유를 의미한다. 히브리어 성경에 동사 <야샤>와 그 파생어들은 353회 언급된다. 동사의 빈도수를 살펴보자. 토라에 5회, 너비임에는 137회[여호수아 2회, 사사기 18회, 사무엘-열왕기서 32회, 이사야 25회, 예레미야 17회, 에스겔 3회, 열두소예언서 15회], 커투빔에 89회[시편 72회, 욥기 6회, 잠언 2회, 역대기 8회, 느헤미야 1회] 언급된다. 명사 <여슈아יְשׁוּעָה >는 성서에 77회 언급된다. 빈도수는 토라에 4회, 너비임에 24회[신명기역사서 4회, 이사야 18회, 열두소예언서 2회], 커투빔에 48회[욥기 2회, 시편 48회, 역대기 2회]로 나타난다. 이상하게도 성서의 중심이 되는 주제로서는 그 명사의 빈도수가 그리 많지 않다. 명사와 동사의 빈도수를 종합해 보면 이상한 점이 두드러진다. 명사와 동사가 모두 시편과 이사야에 집중되어 나타나는 점도 이상하지만 성서에서 가장 비중이 높은 부분이 토라(오경)에 그 빈도수가 도합 9회로서 너무나 낮게 나타난다는 점은 더욱 이상하다. 토라에 명사는 4회(창49:18; 출14:3; 15:2; 신32:15), 동사는 5회 나온다(출2:17; 14:30; 민10:9; 신20:4; 33:29). 토라에 언급된 경우에 구원은 모두가 사회적 억압으로부터의 해방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구약성서에서 ‘구원’의 바탕이 되는 기본 개념은 사회적 구원이라고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점을 염두에 두면서 이 단어의 실제적인 용례를 살펴서 그 개념을 분명하게 잡아 보도록 하자. 개인과 개인 뿐만 아니라 국제관계에서도 침략한 지배자를 물리치고 독립하는 것도 구원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 경우에 구원을 가져다 주는 사람을 ‘구원자/구주’라고 부른다. 여호수아의 이름이 ‘구원자’란 뜻이다. 사사기에 나오는 사사들이 이스라엘을 우상숭배자들의 억압으로부터 구원한 구원자들이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에는 하나님이 ‘구원자’이며 시편에도 ‘구원의 하나님’이라는 표현이 많이 나온다(시68:19~21). ‘구원자’가 사람인 경우에도 그로 하여금 구원하도록 힘을 주신 분이 하나님으로 고백된다. 신약성서에는 구원은 죄의 용서를 통하여 사탄이 쳐놓은 죄의 올무에서 벗어나는 것을 가리킨다.사탄 또는 마귀의 억압으로부터의 구원은 영적인 의미로 발전한 개념이다. 하지만 구약성서에서 구원은 대부분 원수의 억압이나 자연재해로부터 벗어나는 것을 의미한다. 이처럼 현실적인 구원의 관념이 예수를 구주로 고백하는 신학에도 깔려 있다. 예수의 십자가 고난은 로마제국의 식민지 억압과 헤롯과 예루살렘성전의 지배체제라는 이중삼중의 사회적 수탈구조를 고려하지 않고서는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 구원의 정신적 해석은 신약성서뿐만 아니라 구약성서에서도 이미 진행되고 있었다. 이민족의 지배를 물리치고 독립을 쟁취할 때 야훼의 도움으로 전쟁을 수행함으로써 자유를 회복한다. 이 때 그 공로는 야훼께 온전히 돌리도록 헤렘법을 준수했다. 전쟁에서 얻은 전리품 등 모든 이득을 야훼께로 돌려야 한다(삼상17:47). 억압자를 물리치지 못하고 후퇴할 때에는 야훼께서 피난처가 되어 주신다(시62:7). 이 때 야훼는 구원의 방패(시18:35), 투구(사59:17), 갑옷(사61:10)이라고 표현한다. 그렇다면 구원은 승리할 때나 패배할 때에나 언제나 감사하는 신앙인의 고백이 된다. 구원을 경험한 사람의 영성에는 어떠한 경우에도 패배가 없다. 마지막 날에는 하나님의 도성이 ‘구원자’로 기다리고 있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사60:18). 이러한 고백에서 구원의 영적인 의미가 개진된다. 예수께서 십자가 상에서 희생제물로 죽으심으로써 모든 죄인을 구원하셨고, 사흘만에 부활하심으로써 죽음의 권세를 물리치고 승리하셨기에 죽음의 저주 아래에 있는 모든 사람을 죽음의 세력으로부터 구원하셨다는 고백이 기독교 신앙의 요체이다. 예수는 십자가 죽음과 부활로 인하여 로마제국을 물리친 것은 아니었다. 애굽제국의 억압을 물리치셨고, 다윗왕조의 타락한 우상숭배 왕권을 물리쳤으며, 바빌론제국의 억압도 물리치고 자기 백성을 구원하신 구약성서의 야훼 하나님과는 매우 다른 것이 신약성서의 구원이다. 로마제국의 억압을 물리치지 않으시고 독생자 예수로 하여금 고난을 감내하게 하는 하나님의 구원 방식은 유대인과 이방인, 자유인이나 노예, 남자나 여자를 포함하여 만민을 위한 구원의 길을 열어주시기 위해서이다. 이러한 신약성서의 신비한 구원관은 믿는 자에게 깊은 묵상을 요구하며 세심한 성서독서를 요청한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영혼구원의 고백이 지닌 깊은 영성 때문에 구원을 지나치게 영적인 의미로만 이해하고 그것이 지닌 역사성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영혼구원만을 강조하는 교회들이 신비주의의 종교성에 빠져 잘못되기 십상이다. 이 점을 방지하고 교회로 하여금 역사성을 바탕으로 고백하는 올바른 구원관을 견지하기 위해서 구약성서가 우리에게 주어져 있다. 사회적 구원을 힘주어 강조하고 있는 구약성서의 원초적인 구원 개념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참된 구원의 바탕에는 모든 사회적 억압으로부터의 해방이라는 현실적인 구원이 깔려 있다.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는 마지막 종말의 날에 사회적 구원은 완성될 것이지만, 그 과정에서 사회적 억압체제 하에서 고난 받는 성도의 구원은 조금도 유보될 수 없다. 성도는 예수를 구주로 믿는 믿음을 통하여 온전한 구원을 전취할 수 있다. 죄와 죽음의 권세로부터 벗어나는 온전한 구원이 종말 이전에 은혜로써 성도의 삶 속에서 계속 구현되어야 하는 것이다. Sola Gratia! -------- @@니카오....이기다 be victorius. 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 동사 니카오(Homer 이래)는 니케(nivkh, 3529: 승리)에서 유래했으며, (a) `이기다', (b) `패배시키다'를 의미한다. 이 단어는 실제적, 법적 의미에서나 은유적 의미에서나 전쟁이나 싸움에 있어서 승리나 우월을 의미한다. 또한 이 동사는 `능가하다, 정복하다, 더 강하다'는 의미로 번역되기도 한다. 2. 70인역본의 용법 니카오는 약 25회 나오며, 합 3:19에서 나차흐(영속하다, 뛰어나다, 감독자이다)의 역어로, 시 51:4에서 자카(깨끗하다, 순결하다)의 역어로, 잠 6:25에서 하마드(탐하다, 원하다)의 역어로 사용되었다. 그리고 외경에서 `이기다'나 `패배시키다'는 의미로 사용되었다(집회서4:2; 16:10; 18:22; 마카베오이서 3:5; 8:6 등). 3. 신약성경의 용법 니카오는 신약성경에서 28회 나오며, 거의 항상 하나님 또는 그리스도와 이에 대항하는 마귀 세력들과의 투쟁을 전제로 한다. (a) 눅 11:22에서 더 강한 자가 강한 자를 `이긴다': "더 강한 자가 와서 저를 이길 때에는 저의 믿던 무장을 빼앗고 저의 재물을 나누느니라". (참조: 병행구, 마 12:29; 막 3:27에는 `결박하다') 더 강한 자가 강한 자를 이기고 그의 무장을 해체시키고 그의 것을 약탈한다. 이 은유는 마귀의 능력들을 압도하는 예수님의 우월성을 설명한다. "그러나 내가 만일 하나님의 손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눅 11:20). 지상의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행동들로서 자신이 하나님께 대항하는 세력들을 압도하는 숨겨진 승리자이심을 증거하셨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죄와 사망과 마귀를 정복하시고 마지막 승리를 거두심은 부활 이후였다. (b) 요 16:33에서 예수님의 결정적인 승리를 언급한다: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하시니라". 요한은 하나님께 반항하는 세력들을 코스모스(kosmos: 세상)라는 술어로 요약한다. 예수님의 오심과 고난과 아버지께로 돌아감은 세상을 이기심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 승리는 완료 시제로 표현된다(요 16:33). 악한 자, 곧 세상의 지배자는 예수님에 의해 그의 능력을 제한당하였다. 이는 더 강한 자이신 예수님께서 자신의 백성을 악한 자의 지배로부터 자기 백성을 자유롭게 하셨기 때문이다. 따라서 싸움이 아직 끝나지는 않았지만 이미 판결이 나있는 것이다. 믿음으로 기독교인들은 이 승리에 참예하므로 스스로 세상을 이기시는 위치에 놓여있다. 그러므로 주님은 담대하라고 하신다. (c) 롬 3:4에서 니카오는 법정에 기소 당할 때나 기소할 때 소송에서 `이긴다'라는 의미를 나타낸다: "그럴 수 없느니라 사람은 다 거짓되되 오직 하나님은 참되시다 할지어다 기록된 바 주께서 주의 말씀에 의롭다 함을 얻으시고 판단받으실 때에 이기려 하심이라 함과 같으니라". (d) 요한계시록에서 세상에 재앙을 가져오는 세력들의 승리에 대하여 언급한다. 계 6:2, "내가 이에 보니 흰 말이 있는데 그 탄 자가 활을 가졌고 면류관을 받고 나가서 이기고 또 이기려고 하더라". 계 11:7, "저희가 그 증거를 마칠 때에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오는 짐승이 저희로 더불어 전쟁을 일으켜 저희를 이기고 저희를 죽일 터인즉". 계 13:7, "또 권세를 받아 성도들과 싸워 이기게 되고 각 족속과 백성과 방언과 나라를 다스리는 권세를 받으니". 그러나 이러한 승리들은 `허락된' 것이고, 따라서 한정된 것이다. (e) 계 5:5에 의하면 악의 세력들의 승리들이 두려운 것일지라도 사자가 이미 최후 승리를 거두었다: "장로 중에 하나가 내게 말하되 울지 말라 유대 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가 이기었으니 이 책과 그 일곱 인을 떼시리라 하더라". 계 17:14에서도 그리스도와 그에 속한 자들의 승리를 언급한다: "저희가 어린 양으로 더불어 싸우려니와 어린 양은 만주의 주시요 만왕의 왕이시므로 저희를 이기실 터이요 또 그와 함께 있는 자들 곧 부르심을 입고 빼내심을 얻고 진실한 자들은 이기리로다". 계 15:2에서 짐승을 이긴 자들은 유리 바다가에 서서 하나님을 찬양한다: "또 내가 보니 불이 섞인 유리 바다 같은 것이 있고 짐승과 그의 우상과 그의 이름의 수를 이기고 벗어난 자들이 유리 바다 가에 서서 하나님의 거문고를 가지고". 그러므로 모든 교회의 이긴 자들에게는 약속이 주어진다(계 2:7, 계 2:11, 계 2:17, 계2:26; 계 3:5, 계 3:12, 계 3:21). 이 승리는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성취될 것이다(계 21:7). 이 승리는 종말론적인 것이지만 그리스도께서는 그의 피로 이미 승리하셨고(계 3:21; 계 12:11), 그의 청소년들은 악한 자를 이기었고(요일 2:13-요일 2:14), 악은 선에게 정복 당한다(롬 12:21). 믿음으로 그리스도인들은 이 승리에 참예하므로 스스로 세상을 이기시는 위치에 놓여 있다. 믿음은 세상을 이기는 승리인 것이다(요일 5:4이하). 이 승리의 근거는 세상보다 큰 하나님이시다(요일 4:4이하).
1. 그 후에 다윗이 블레셋 사람들을 쳐서 항복을 받고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서 메덱암마를 빼앗으니라 .....메덱 암마[=모성의 굴레:: 어머니 성읍 중심으로 띠를 이룸, 메덱(고삐)-암마(팔)..블레셋5부족연합의 머리는 가드성읍 --이것을 빼앗았다 함은 날마다 거듭남 이루사 죄 정복케 하시는 구주 JC이름으로 죄성/육신-옛자아/세상(-근원은 사탄마귀)에게 십자가로 이룬 승리를 주장- 선포-대적하여 이기고, 그 사실을 붙듦으로 누림 의미] 2. ○다윗이 또 모압을[=절제-조절/복종 가능한 몸의 욕동(본래 중립적-합목적적임)을 오남용-악용하여 유전시킬 가능성 있는자들만 끊어버림으로써[=몸을 쳐서!!] 복종케 함)...주님은 가나안 진군시 에돔-암몬-모압 땅은 건드리지 말고 곁으로 지나가되 우회하고 그대로 보전하여 두라 하셨었다(그래서 우회했었다)!!] 쳐서 그들로 땅에 엎드리게 하고 줄로 재어 그 두 줄 길이의 사람은 죽이고 한 줄 길이의 사람은 살리니 모압 사람들이 다윗의 종들이 되어 조공을 드리니라 3. ○르홉의 아들 소바 왕 하닷에셀이[기회주의-쾌락-탐욕-이기주의-상대주의-우상숭배자 ] 자기 권세를 회복하려고 유브라데 강으로 갈 때에 다윗이 그를 쳐서 4. 그에게서 마병 천칠백 명과 보병 이만 명을 사로잡고 병거 일백 대의 말만 남기고 다윗이 그 외의 병거의 말은 다 발의 힘줄을 끊었더니 5. 다메섹의 아람 사람들이 소바 왕 하닷에셀을 도우러 온지라 다윗이 아람 사람 이만 이천 명을 죽이고 6. 다윗이 다메섹 아람에 수비대(북방...기회주의-이기주의-쾌락/탐욕:육신의 정욕-안목의 정욕-이생의 자랑)를 두매 아람 사람이 다윗의 종이 되어 조공을 바치니라 다윗이 어디로 가든지 여호와께서 이기게 하시니라 7. 다윗이 하닷에셀의 신복들이 가진 금 방패를 빼앗아 예루살렘으로 가져오고 8. 또 다윗 왕이 하닷에셀의 고을 베다와 베로대에서 매우 많은 놋을 빼앗으니라 .....[삼하8:3-8 배경 설명] 삼하10-12장까지 이어지는 1,2차 암몬(멸절정복) 원정 전쟁에 있어서 [아람 소바 왕 하닷에셀은]아람 동맹의 수괴로서 개입하고 있는바 처음에는 도움 요청하는 암몸네 용병만 파견(패전 소식 듣게됨], 다음해 봄에는 아예 욕심을 내어 다에섹 아람 만을 제외한(후원-보충-보급군으로 남김) 동맹군 총동원하여 적극적 총력전으로 나서지만 완전히 패전-다메섹 아람도 거들었지만 별무신통으로-몰락하고 말았으며, 결국 암몬은 수도 랍바성(외성은 물의 성-내성은 왕성의 이중구조의 견고한 구조였음)은 최종 함락되고 만다. = (밧세바 사건은 진행 중-분수령적 회개가 있기전이었음에도 그러했다....이는 마치 [신자들이 걸림돌 되는 바=시37편참고.., "불신자의 승승장구와도 같은 장면이다!!) @@나기드(#군장....[여호와 멜렉] 왕 JC께서 기름부어 임명하사, 백성들을 직접 통솔하고 이끌며 그들을 위해 앞장서서 [여호와 멜렉] 왕 JC의 싸움을 하는자...이때 합당한 때에 왕으로서 기름부어 JC의 대리왕으로서의 그 백성 다스림 역할 맡기심)와 @@코헨(#제사장, 고문, 조력자, 중보/중재자...나기드와 백성을 주께로, 주님을 백성에게로 이끌어 공급함) @@나비(#선지자/선견자--군장과 대리왕의 백성 위한 출입-결정에 대한 주님 마음 전달자) 모두 주님께서 기름부음으로써 지정하고 임명하고 계심에 유의하라@@
9. ○하맛 왕 도이가 다윗이 하닷에셀의 온 군대를 쳐서 무찔렀다 함을 듣고(하맛은 우브라데강 남서쪽, 아람 소바는 유브라데강 남동쪽으로 주도권 다툼 전쟁 중이었었다) 10. 도이가 그의 아들 요람을 보내 다윗 왕에게 문안하고 축복하게 하니 이는 하닷에셀이 도이와 더불어 전쟁이 있던 터에 다윗이 하닷에셀을 쳐서 무찌름이라 요람이 은 그릇과 금 그릇과 놋 그릇을 가지고 온지라 11. 다윗 왕이 그것도 여호와께 드리되 그가 정복한 모든 나라에서 얻은 은금 12. 곧 아람과 모압과 암몬 자손과 블레셋 사람과 아말렉에게서 얻은 것들과 소바 왕 르홉의 아들 하닷에셀에게서 노략한 것과 같이 드리니라 13. ○다윗이 소금 골짜기에서 에돔 사람 만 팔천 명을 쳐죽이고 돌아와서 명성을 떨치니라 14. 다윗이 에돔에 수비대(남방..제멋대로 방종-하나님 없다 하며 육을 추종)를 두되 온 에돔에 수비대를 두니 에돔 사람이 다 다윗의 종이 되니라 다윗이 어디로 가든지 여호와께서 이기게 하셨더라 ---......결코 잊어서는 안되는 것은 -- 일상에서의 회개는, 평생 매순간 지속되어야 할 삶의 방식 = 곧 자기 내면에 늘 도사리고 있는 죄를 꿰뚫어 직시함으로 인정함( 피조물인 자신의 약함과 부족함 참되게 알아야 함) ==> "말씀 생명 빛 비추임 아래서 거함 통해, 자기 죄를 깨달아 알며 구주 이름부르는 자는 죽은사람을 일으키는자보다 더 위대하고, 자기죄 인해 한시간을 진실로 울부짖는자는 온세상을 가르치는 자보다 더 위대하며, 자기 약함 아는자는 천사를 볼 수 있는자 보다 더 위대하다"(사막의 영성). ----수신제가치국평천하---주 앞에 바로선 자마다 참생명 리더이다!!....통치체계 정립 ::: (수신...오로지 밧세바 사건 기점의 분수령적 회개가 있고난 후, 일상에서 그 자신의 무지-무각-연약-무능-무력한자, 오직 죄중에 태어나서 죄악을 물같이 먹고 마시며 사는 동안 죄만 지을 수 밖에 없는 존재로되, 주께서 열어 알게 해 주신 참 생명과 지혜의 길 걸음(시51)..곧, 거듭난 자로서의 자각 안에서 주님 말씀으로 그의 생각자리를 채워 묵상함+24시간 주 앙망-동행하며 주 이름 부르며 주 임재 의식 안에 깨어 있어서 주님과의 하나됨의 생명 교통으로 호흡-동행-회개함) (제가, 즉 가정 다스림에 있어서...편애하지 않는 사랑-돌봄 + 합당한 징계-위로) 처첩을 많이 두었던 다윗은 자녀들의 모친에 대해 한 사람 한 사람 마음 다해 돌아봄-방문-경청-위로에 차별적-상대적일 수 밖에 없는바, 소홀할 수 밖에 없었고, 이는 자녀 심성 교육의 소홀-일그러진 심성/빗나감의 결과로 나타나고 있었으며, 스스로 잘못하였던 일들에 대한 미안한(?) 마음때문에 합당한 징계를 머뭇거림으로써 자녀들의 참신앙과 내적 사람의 성장-성숙을 제대로 도모하지 않고 있음).,,다만, 치국-평천하 면에서는 상대적으로 참생명 리더 됨의 길로 나아가고 있었다고 봄.
15. ○다윗이 온 이스라엘을 다스려 다윗이 모든 백성에게 정의와 공의를 행할새 16. 스루야의 아들 요압은 군사령관이 되고 아힐룻의 아들 여호사밧은 사관이 되고 17. 아히둡의 아들 사독과 아비아달의 아들 아히멜렉은 제사장이 되고 스라야는 서기관이 되고 18. 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는 그렛 사람(=왕명 집행자)과 블렛 사람(특사-전령-보발꾼)을 관할하고(=왕궁시위대장) 다윗의 아들들은 대신들이 되니라 -----대신 = 코헨 = 제사장 = 진실한 마음으로 돕는 조력자------- .... @@코헨) ...제사장, 주요공직자 혹은 우두머리 통치자 코헨(명남)은 카한(@h'K; , 3547)의 능동분사이며, '제사장, 주요공직자 혹은 우두머리 통치자'를 의미한다. 1. 제사장(구약 및 이스라엘 역사) 코헨은 70인역본에서 헬라어 히에류스로 번역되었다. (a) 가장 초기의 자료에서 이스라엘 제사장의 직무는 원래 제사라기보다 신탁의 전달이었다. 신탁 예언, 제비에 의한 신탁이 모세 시대와 사사 시대에 이미 보여진다(출 17:9, 출 33:7-11, 삿 17:5 이하, 삿 18:30, 삼상 14:41, 삼상 28:6). 신 33:8-11에서 레위인들의 기본 임무는 우림과 둠밈을 관리하는 것이다(참조: 겔 21:21의 활의 신탁). 그 다음으로는 여호와의 정의와 율법을 가르치는 것이다. 마지막에야 비로소 희생 제사 임무가 언급된다. .....모든 가장은 희생 제사를 하나님께 드릴 수 있었다(참조: 창 8:20, 창 31:54). 그러므로 그들은 어떤 특별한 특권 계급을 나타내지 않는다. 시내산 계시 이전에 제사장이 존재했다(출 19:22, 출 19:24). 모세는 레위인이며 제사장 직무를 이행했다. 아론도 레위인이다(출 4:14). 모세의 장인이자 미디안의 제사장(출 2:18 이하, 출 3:1)인 이드로는 시내산에서 번제와 희생 제사를 드렸다. 그는 이스라엘의 장로들과 공동 식사를 나누고 모세에게 율법의 규례에 관하여 조언했다(출 18:12 이하). 레위인 제사장이란 공식적 표현은 신명기에서 처음 발견된다(참조: 신 17:9). 레위인들이 특히 여호와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었으며(신 10:9, 삿 17:13), 그들만이 진정한 제사장직에 부름 받았다고 주장하였다(출 32:25 이하, 신 33:8 이하). 레위인들은 토지를 소유하지 않았으며(신 10:9, 삿 17:7, 삿 19:1). 부족의 조직에 속했으며, 신성한 율법의 전통을 돌보았다(신 27:14-26, 신 31:24 이하, 신 33:10). 모세는 레위 족속에 속한다. 제사장직은 레위 족속에 속한 모세로부터 시작되었다. 모세는 하나님이 위임한 권세로서 아론과 아론의 아들들을 성별하여 제사장으로 세웠다(출 28:1). 그리하여 그들은 희생 제사를 관할하는 의무를 맡아 수행했다(레 9장). 오직 아론의 가계와 그 후손만이 제사장이 될 수 있었다(출 28:1, 출 28:43, 출 40:12-15, 민 16:40, 민 17장, 민 18:1-8, 신 10:5, 왕상 8:4, 스 2:36). 아론의 자손은 특별한 법적 하자가 없는 한 제사장이 될 수 있었다(레 21:16). 아론은 레위인이었기 때문에 이스라엘의 제사장직은 오로지 레위인 안에서 계승되었다. 모든 합법적인 제사장들은 예외 없이 레위인이었다. 아론과 그의 아들들이 제사장 직분을 취한 후에 전체 레위 지파가 구별되었다. 그들은 장자들을 대신하여 성소에서 봉사하는 직무를 수행하게 되었다(민 3:5 이하). 레위인은 세 그룹으로 구성되었다(게르손 자손, 고핫 자손, 므라리 자손). 그들에게는 각각 특수한 임무가 부여되었다(민 3:14-38). 고라와 그의 추종자들이 아론의 권위에 대해 정면으로 도전했을 때(민 16장) 그들은 모두 죽임을 당하고 아론의 제사장직은 더욱 확고해졌다. 성막이나 성전의 제단에 봉사하는 자, 우림과 둠밈을 사용하는 자는 모두 아론의 가계에 속한 자가 아니면 안되었다. ......제사장의 직무는 주로 세가지였다. (1) 여호와 앞에 있는 성소와 제단에 봉사하는 일(민 16:40, 민 18:5). (2) 하나님의 율법을 백성에게 가르치는 일(대하 15:3, 렘 18:18, 겔 7:26, 미 3:11), (3) 백성을 위해 하나님의 뜻을 묻는 일(우림과 둠밈을 통해, 출 28:30, 스 2:63), 이 밖에도 소송을 취급하고, 전쟁시에는 양각 나팔을 불고 언약궤를 메는 일, 문둥병자를 식별하는 일 등을 임무로 하였다. 제사장들은 지켜야 할 율법이 있었다(레 10:8 이하). 제사장들은 법적으로 순수한 유대 혈통을 이은 처녀라야 하는 엄격한 조건으로만 결혼할 수 있다(레 21:7, 레 21:14, 스 10:18, 스 10:19). 제사장들의 성별도 대제사장의 성별식과 같았으나 그보다 간략했으며(출 29장, 레 8장), 기름을 붓지 않았다. 대제사장은 기름부은 제사장이었다. 제사장들은 몸의 여러 부분에 기름과 피를 뿌렸다(출 29:21, 레 8:30). 예복은 제사를 집행할 때만 입었다. 제사장은 베로 만든 고의를 입고 겉옷에 띠를 띠고 관을 썼다(출 28:42, 출 29:8, 출 29:9, 레 8:13). 제사장직에 대한 전통적 견해는 이 성직 제도에 세 계급 즉 대제사장, 제사장, 레위인이 있었다. 이 제도는 포로 시대 후에도 계속 이어져 내려 갔으며 이스라엘의 전체 역사에 걸쳐 있었다. (b) ① 한편 군주 통치 이전 시대의 제사장들은 에브라임 미가 신당과 같은 성소와 관련해서만 찾을 수 있다(삿 17장). 이 미가의 제사장은 레위인이었으며, 그는 자기의 신상과 함께 단(Dan)으로 이끌려 갔다(삿 18장). 단 지파의 제사장직은 삿 18:30에서 모세에까지 거슬러 올라감으로써 합법화되고 있다. 실로(Shiloh)에 있는 언약궤의 성소에서 엘리의 가족은 제사장의 직분을 수행했으며, 그 직무는 희생과 번제물을 드리고 신탁 예언을 하는 것이었다(삼상 1:3, 삼상 2:27 이하). 실로에 있는 엘리의 가족이 내리막길로 치달은 후 그 가족 구성원에 대한 언급이 놉(Nob)에서 나타난다(삼상 21:27, 삼상 22:9-23). 선지자 사무엘은 제사장의 일을 보았다(삼상 9:13-25). 제사를 드린 성소는 실로, 놉, 기브온, 브엘세바, 헤브론, 단, 아나돗, 벧엘 등이었다. ② 다윗이 여부스족에게서 예루살렘을 빼앗아 수도로 만든 후로 예루살렘은 여러 세기 동안 제사 중심지가 되었다. 제사장들의 수가 증가하여 다윗은 24반으로 편성했다. 큰 절기의 행사에는 전부가 참가하지만, 보통 때는 한 반이 한 주일씩 봉사하고, 안식일 저녁의 희생 제사가 드려지기 전에 교대했다(대상 24:1-19, 왕하 11:19). 솔로몬이 죽고 나라가 남북 왕국으로 분열된(주전 922) 후는 북 왕국의 벧엘이 예루살렘과 대립했으며 왕이 제사장을 겸했다(왕상 12:33, 왕상 13:1-4). ③ 요시야의 개혁과 함께 높은 곳들의 성소(산당)는 없어지고 예루살렘이 예배의 중심지가 되었다. 제사의 중앙집중화에 대한 무조건적인 요구는 622년 요시야의 개혁에서 처음으로 나타난다. 여기서 모세 전통을 대표하는 레위인들과 선지자들 양자 모두에 의해 옹호되어 온 것, 즉 형상, 제의적 방종, 죽은 자에 대한 제사, 주술의 금지가 근본적으로 요구된다. 해결책은 우상숭배의 완전한 폐지와 산당의 제사장들의 완전한 축출에서 찾아진다. 이 목적을 위해 시온에 있는 여호와의 전이 유일한 합법적인 제사 중심지로 선언된다. 예루살렘 밖의 레위인들은 사독 가문을 옹호하여 합법성을 인정받지 못하고 그들의 정당성이 도전 받는다. 이후로부터 그들은 성전에서 더 낮은 임무만을 맡게 된다(왕하 23:5-9). 그러나 이러한 발전은 크나큰 위험도 수반한다. 여호와의 율법에 지시되어 있는 교훈은 희생 제사에 의해 무색해진다. 선지자들의 태도는 제사 의식에 대한 비평과 함께 그 지위에 날카로운 빛을 던진다. 하지만 프로페티즘(prophetism)이 이 전반적인 제사 제도의 발달을 저지할 수 없었으며, 다만 이 영역 내에서 여호와의 기본적인 요구에 대한 더 깊은 성찰을 보여줄 수 있을 뿐이었다. 그것은 여호와 신앙에 대한 가나안의 영향력을 거부하는 일에 있어서 제사장 직무와 일치한다. ④ 포로기 이후의 재건으로 사독 후손에 대제사장직이, 아론의 후손에 일반 제사장직이, 레위 후손에 성전 지키는 일이 요구되었다(대상 24장). 포로에서 돌아온 후에 에스라는 토라에 기초하여 공동체의 확고한 재건을 이룬다. 제사장직의 임무는 여호와의 법령을 지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임무는 또한 서기관들에게도 요구되는 것이다. 서기관은 제사장과 나란한 지위를 가진다. 서기관은 제사장을 율법의 지배 아래 둔다. 율법은 기록으로 고정되어 있으나 학자들의 해석도 역시 필요로 하는 것이다. 만약에 모든 더 이상의 발달이 히에류스(제사장)와 그람마튜스(서기관)의 제휴로 특징지워진다면 우리는 또한 서기관의 권위가 제사장의 권위를 능가해감을 주목해야 한다. 제사장은 성전 직무의 기관으로서 그 중요성을 유지한다. 정치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고 사회적으로 높임받는 귀족 신분의 제사장 계급은 산헤드린에서 영향력을 가진다. 그러나 서기관들은 토라를 선포한다. 그들은 종교적 가르침과 감독을 책임진다. 그들은 심지어 제사장들도 가르친다. 제사장들은 단지 제의의 직무자일 뿐이다. 이리하여 서기관들은 제사장들의 경쟁자가 된다. 조만간 제사장의 영향력은 상대적으로 감소된다. 제사장직에 대한 낮은 평판이 이 과정에 기여한다. 이와 같이 에스라가 희생 제사 직무 뿐만 아니라 여호와의 율법을 책임 맡게 됨에 따라 성경 전문가 집단이 대두하여 제사장 직분을 무색하게 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었다. 이런 사실은 아보스(Aboth) 6:6의 '제사직과 왕직보다 율법을(익히는 것이) 더 위대하다'라는 구절과 '율법에 관심있는 비유대인은 대제사장과 같다'(B. Sanh. 59a)라는 구절에 반영돼 있다. (c) 예수님 시대에는 사회적인 격차가 대제사장과 일반 제사장으로 양분시켰다. 후자는 포로에서 돌아온 4반열(24반열 중에서)을 다시 24반열로 나누어 편성했다(대상 24장, 눅 1:5, 눅 1:8). 나누어진 반열별로 한 번에 일주일씩 차례로 성전에서 그들의 임무를 수행했다. 나머지 시간동안 제사장들은 주변 땅에서 임무를 수행했다. 그들은 제식의 순수성 문제에 대한 전문가적 판단을 내릴 수 있었으며, 회당 예배 시간에 율법을 낭독하고 상세히 설명하는 일을 자주 행했다. 제사장 직위는 세습적이었다. 성결과 결혼에 대한 엄격한 규례가 그들에게 실행되었다(레 21). 레위인들은 성전 찬양대와 성전 봉사자(대상 6:16-33)로 나뉘었으며, 마찬가지로 24반열로 임무 분할이 이루어졌다. 그들은 제단에 접근하지 못했으며(민 18:3), 여호수아 21장에 보면 그들은 레위인들의 성읍들에 살았다.(참조: G. E. Ladd). 2. 주요공직자 혹은 우두머리통치자 코헨의 기본적인 동사 어근은 구약성경에서 나타나지 않으며, 어원이 알려져 있지 않다(KB, p. 424). 이 단어의 초기의 세속 용법의 견지에서 볼 때, khn의 개념은 "사역자로서 봉사하는"이란 뜻일 것이다(참조: S. R. Driver). 네 가지 개요는 통일왕국시대에 관한 것으로, 레위인 계열의 대제사장과, 동시에 코헨과 유사하게 지칭된 직책을 맡은 자들을 언급한다(왕상 4:5, 삼하 8:18, 삼하 20:26, 대상 18:16, 대상 18:17). 나단의 아들 사붓은 솔로몬 치하의 "대신"이었다(왕상 4:5, KJV). 다윗 시대의 초기와 후기 목록 사이에 코헨 직분의 두 번째 형태의 점유는 다윗의 아들로부터(삼하 8:18) 야일의 사람 이라에게로 옮겨지게 된다(삼하 20:26). 이것은 이중적인 의미를 지니게 되는데 그 이유로 전자의 경우는 필연적으로 비레위인 계통이었으며 후자에 의한 대치는 왕의 아들들의 개입 실패로 인하여 역으로 영향을 끼친 책임을 물은 것을 시사한다. 따라서 코헨은 "친밀한 충고자"를 의미하는 것처럼 보이며(KD, Samuel p. 369), 따라서 병행구절로서 사붓이 "왕의 벗"이라는 묘사와 다윗의 아들들이 "왕의 대신들"이라는 문자적인 묘사를 참조하면 좋을 것이다(대상 18:17, n. b., 여기에서 진보주의 해석자들은 역대기를 근본적으로 비레위인 계통의 제사장을 감추려는 후기의 시도로 본다, ICC, Samuel, p. 310). 다른 하나의 가능성은 우가릿어로 khn이 "제사장"을 뜻한다는 사실과 그 압도적 용법을 고려하여 고찰될 수 있을 것이다. 이 네 성구 모두가 각각 다르게 해석될 수 있다. 대상 18:17은 다윗의 아들에 대한 코헨의 지칭이 결여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병행구절인 삼하 8:18에 대한 70인역본도 그것을 결여하고 있다. 삼하 8:18의 히브리어는 잘못된 것 같다. 기록된 그대로 이 성구를 판독하는 것이 용이하지 않다: "그리고 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와 그렛 사람과 블렛 사람 그리고 다윗의 아들들은 제사장이 되었다"(개역성경은 "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는 그렛 사람과 블렛 사람을 관할하고 다윗의 아들들은 대신이 되리라"로 번역함). 그 밖에 어떤 곳에서도 언급되지 않는 야일 사람 이라(삼하 20:26)는 아비아달이 행했던 것처럼 특별히 그리고 개인적으로 다윗을 섬긴 제사장이었던 것 같다(참조: 삼상 30:7). 끝으로 사붓(왕상 4:5)도 역시 그 밖에 어떤 곳에서도 언급되지 않았다. 그는 아마도 개인적으로 솔로몬을 섬기는 제사장이었는지는 알수 없다. 혹은 여기에서 "제사장"이라는 말은 심지어 사붓의 아버지, 나단을 언급할 수도 있다. 실제로 70인역본의 대부분의 사본은 "제사장"이라는 단어를 생략하고 있으며 이들이 오히려 정확할 수 있다. 최소한, 이 네 구절만이 코헨이 각기 다른 직위를 언급한다는 것을 시사한다는 점은 흥미로운 일이다.(참조: J. B. P).
[NASB]제8장
1. Now after this it came about that David defeated the Philistines and subdued them; and David took control of the chief city from the hand of the Philistines. 2. And he defeated Moab, and measured them with the line, making them lie down on the ground; and he measured two lines to put to death and one full line to keep alive. And the Moabites became servants to David, bringing tribute. 3. Then David defeated Hadadezer, the son of Rehob king of Zobah, as he went to restore his rule at the River. 4. And David captured from him 17000 horsemen and 200000 foot soldiers; and David hamstrung the chariot horses, but reserved [enough] of them for 100 chariots. 5. And when the Arameans of Damascus came to help Hadadezer, king of Zobah, David killed 220000 Arameans. 6. Then David put garrisons among the Arameans of Damascus, and the Arameans became servants to David, bringing tribute. And the LORD helped David wherever he went. 7. And David took the shields of gold which were carried by the servants of Hadadezer, and brought them to Jerusalem. 8. And from Betah and from Berothai, cities of Hadadezer, King David took a very large amount of bronze. 9. Now when Toi king of Hamath heard that David had defeated all the army of Hadadezer, 10. Toi sent Joram his son to King David to greet him and bless him, because he had fought against Hadadezer and defeated him; for Hadadezer had been at war with Toi. And [Joram] brought with him articles of silver, of gold and of bronze. 11. King David also dedicated these to the LORD, with the silver and gold that he had dedicated from all the nations which he had subdued: 12. from Aram and Moab and the sons of Ammon and the Philistines and Amalek, and from the spoil of Hadadezer, son of Rehob, king of Zobah. 13. So David made a name [for himself] when he returned from killing 180000 Arameans in the Valley of Salt. 14. And he put garrisons in Edom. In all Edom he put garrisons, and all the Edomites became servants to David. And the LORD helped David wherever he went. 15. So David reigned over all Israel; and David administered justice and righteousness for all his people. 16. And Joab the son of Zeruiah [was] over the army, and Jehoshaphat the son of Ahilud [was] recorder. 17. And Zadok the son of Ahitub and Ahimelech the son of Abiathar [were] priests, and Seraiah [was] secretary. 18. And Benaiah the son of Jehoiada was over the Cherethites and the Pelethites; and David's sons were chief ministers. ======= 사무엘하 8장 (개요) 다윗은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구했다. 그리고 자신이 안정되자마자 법궤를 안전한 곳에 옮겼다. 그리고 났을 때 다윗에게 추가된 모든 일들을 여기서 엿보게 된다. 1. 정복에 관하여, (1) 블레셋을 이겼다(1). (2) 모압을 이겼다(2). (3) 쇼바 왕을 이겼다(3,4). (4) 아람을 이겼다(5-8,13). (5) 에돔을 이겼다(14). (6) 그에게 들어온 예물과 그가 정복한 나라들에게서 가져온 재물―그는 이것을 하나님께 봉헌했다(9-12). 2. 그의 조정에 관하여, 즉 행정관들(15절), 그리고 주요 관리들(16-18). 이 기록은 다윗 왕정의 흥성이 어떠했던가를 짐작케 해 준다. ------------ 다윗의 정복기(삼하 8:1-8) 하나님은 다윗에게 도전하던 모든 적들에게서 다윗을 평안케 해주셨다. 그리고 그는 그 평안을 활용했다. 그러자 그에게 그들을 칠 위임을 받았다. 그리고 그 동안 이스라엘을 괴롭혀 온 원수를 갚아야 했다. 아직 그들은 하나님이 그들에게 주시기로 약속된 땅을 완전히 점령하고 있지는 못했던 것이다. Ⅰ. 다윗은 블레셋을 완전히 섬멸했다(1절). 다윗이 약하리라고 생각되었을 때, 그들은 다윗을 공격했었다(17절). 이제는 다윗이 자기의 강성함을 알게 되자, 그들을 쳐 그 땅의 주인이 된 것이다. 블레셋은 오랫동안 이스라엘을 괴롭혀 왔다. 사울도 그들에게 꼼짝못했다. 그러나 다윗은 이스라엘을 완전히 블레셋의 손아귀에서 구출해 냈다. 그것은 이미 삼손이 오래 전에 시작해 놓은 일이었다(사 13:5). “메덱암마”는 “가드”였다(블레셋의 수도였다...."능력[팔]의 굴레"란 의미). 그리고 블레셋 가드 부족의 부족 도시였고 그들에게는 (기브온의 서난서방향) 암마 산 위에 상주하여 지키는 수비대가 있었다(삼하 2:24). 그리고 그것은 “메덱” 곧 이스라엘에 대한 “굴레”(문자적 의미이다)나 “고삐”이다. "암마"는 "팔"이란 의미..그런데 다윗은 그것을 그들의 손에서 빼앗아, 그들을 제어하는 굴레로 삼은 것이다. 이처럼 강한 자가 무장 해제되면, 그 가졌던 무기는 그를 치는 데 사용된다(눅 11:22). 이스라엘이 블레셋에게 당하듯이, 성도들이 흑암 권세에게 오랫동안 자주 고난을 받은 후에, 다윗의 아들이 저들을 발 아래 짓밟게 되면, 성도들을 정복자 이상으로 만드신다. Ⅱ. 다윗은 모압을 쳐서, 이스라엘의 조공국이 되게 했다(2절). 그는 그 나라를 셋으로 나누어, 그 중 둘은 완전히 전멸시키고, 하나는 살려 두어, 이스라엘의 종이 되게 했다. 라이트푸트는 말한다. “다윗은 모압인들을 땅에 눕히고, 줄을 재어서, 죽일 자와 살려 둘 자를 구별했다.” 그래서 “숙곳 골짜기를 측량하리라”고 했던 것이다(시 60:6). 유대인들에 의하면, 다윗이 그들을 그토록 잔인하게 다룬 데는 이유가 있다. 즉 자기가 유랑 중에 있을 때, 부모와 형제를 모압 왕에게 맡겼었는데, 그가 그들을 살해해 버렸기 때문이라 한다(삼상 22:3, 4). 다윗이 그렇게 한 것은 정당한 일이었다. 모압인은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에게는 항상 위험스런 적이었기 때문이다. 정책적인 일이었다. 그들을 버려두면, 계속 못된 일을 할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비록 2/3는 죽어버려야 했지만, 줄로 한 자밖에 안 되는 자들은 살려 두라고 명령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의 길이를 충분히 늘이도록 하자. 그래서 우리의 자비의 줄을 멀리까지 뻗치게 하자. 사면 행위는 은혜를 베푸는 것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이리하여 발람의 예언이 실현되었다. “이스라엘에서 홀이 일어나 모압의 모퉁이들을 치리니”, 죽음의 줄이 뻗친 곳에까지 라는 예언이다(민 29:17). 아합 왕이 죽을 때까지 모압인들은 계속해서 이스라엘에 조공을 바다(왕하 3:4, 5). 그 후에는 반역해 버렸고, 다시는 속국이 되지 않았다. Ⅲ. 다윗이 아람 혹은 수리아군을 쳤다. 시편 60편의 제목에 있는 대로 거기에는 두 왕국이 있었다. 즉 “아람 나하라임”―즉 “강변의 수리아”이다. 그 수도는 다메섹이었다. 그리고 그 강으로 유명했다(왕하 5:12). 그리고 다른 하나는 “아람 소바”이다. 이 왕국은 앞의 왕국에 병합되어 있었으나. 유브라데까지 뻗쳐 있었다. 이들이 두 남방 왕국이다. 1. 다윗은 소바의 아람군부터 쳤다(3, 4절). 다윗이 유브라데강까지 자기의 국토를 확장하려 했을 때(하나님은 아브라함과 그의 자손에게 거기까지 허락하셨다. 창 15:18), 소바 왕은 다윗에게 반대를 했다. 그는 이스라엘에게 속한 나라를 자기가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윗은 그의 군대를 패주시켰다. 병차와 마병을 노획했다. 여기서는 노획한 마병이 700(우리 성경에는 “천 칠백”이다―역주)이라 했으나, 역대상 18장 4절에는 7천이라 했다. 만일 병마를 10필 1중대로 편성했다면, 거기서의 숫자가 맞을 것이다. 즉 대장과 중대는 700이나, 마병은 7천이었을 것이다. 다윗은 말의 힘 줄을 끊어서, 최소한 전쟁 때는 못써먹게 해버렸다. 하나님이 “말의 숫자를 많이 하지 말라”고 하셨기 때문이다(신 17:16). 다윗은 자기가 쓸 병차 100개만 남기고 다른 말의 힘 줄은 끊어버렸다. 그는 자기의 병차나 병마에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살아계신 하나님을 의지하기 때문이다(시 20:7). 그리고 자기의 경험으로부터 이렇게 쓰고 있다. “말은 안전을 위해서는 헛 것이라”(시 33:16, 17). 2. 소바 왕과 연합하고 있던 다메섹의 아람군이 소바 왕을 구하러 왔다. 이 전쟁에서 2만 2천 명이 죽었다(5절). 때문에 다윗이 그 나라의 주인이 되기는 쉬웠을 것이다(6절). 하나님의 적들은 서로 동맹하고 안심하여 있지만, 결국에는 저들의 확신이 잘못되었음이 판명되고 만다. “너희는 모이라. 그리하면 낱낱이 파괴하리라”(사 8:9). Ⅳ. 이 모든 전쟁을 통해서도 1. 다윗은 보호를 받았다. “다윗이 어디로 가든 여호와께서 이기게 하시니라.” 아마 다윗은 개인적인 일로나 하나님과 이스라엘을 위한 일로나, 늘 선봉에 섰다. 그러나 하나님은 전쟁의 날에도 그의 머리를 감추어 주셨고, 후일 다윗은 이것을 일컬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 2. 그는 부자가 되었다. 그는 하닷에셀의 신하들이 가졌던 금방패를 빼앗았다(7절). 그리고 아람의 여러 도시에서 많은 놋을 가져왔다(8절). 전쟁에서 이겼기 때문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명령과 아브라함의 자손의 옛 권한에 의해서는, 다윗에게는 그럴 만한 권한이 있었다. ------------ 다윗의 정복기(삼하 8:9-14) 1. 하맛 왕이 다윗을 알현했다. 아마 이때 하맛 왕은 소바 왕과 교전 중에 있었던 것 같다. 그는 자기의 원수를 다윗이 쳐부수었다는 소식을 듣고, 자기 아들을 다윗에게 사신으로 보내어(9, 10절), 그의 승리를 축하하게 했고, 자기가 두려워하고 있던 나라를 쳐부수어 준 은공에 대한 감사의 답례를 하게 했으며, 우방이 되자고 청하도록 했다. 이리하여 그는 자신의 안전과 강성을 도모했다. 그리고 다윗도 그 작은 나라를 보호해 준다하여 손해 볼 것은 하나도 없었다. 옛 로마군들도 이 비슷한 정책을 썼던 것이다. 이리하여 정복한 나라들에게서 가져온 재물과 조공과 감사의 예물에 의해서 그는 부유하게 되었다. “금 그릇, 은 그릇”을 예물로 가져왔다. 자의로 바친 것이 강제 징수한 것보다 더 나았다. 2. 다윗은 자기에게 들어온 약탈물과 예물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다. 그는 모든 것을 하나님께 봉헌했다(11, 12절). 이것이 다윗의 승리를 더욱 빛나게 해 주었다. 다윗이 시저나 알렉산더 대왕과의 다른 점은, 그는 자기의 영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구했다는 점이다. 이 점에서는 그는 그들보다 뛰어나다. 그가 차지한 모든 물건은 이미 작성된 것이었다. 즉 하나님의 성전을 위해서 봉헌된 것이었다. 적시에 이방인들의 자선이 있었고, 만반을 위해 기도할 하나님의 집의 건축을 돕는 일이 생기고, 그 성전이 이방 민족의 전리품과 예물로 지어질 수 있게 되었다는 것도 좋은 전조이다. 이것을 예로 들어, “땅의 임금들이 새 예루살렘에 영광과 찬양을 돌린다”고 했다(계 21:24). 그들은 금신상을 태워버렸다(삼하 5:21). 그러나 그들의 금그릇은 봉헌했다. 이와 같이 다윗의 아들은 은총으로 영혼을 정복한 다음, 하나님께 반대되는 것은 파괴한다. 즉 모든 정욕은 십자가에 못박는다. 그러나 하나님께 영광 올릴 수 있는 것은 바친다. “상품들과 상속인”도 “여호와께 거룩한 것”이어야 한다(사 23:18). 그 이득은 “온 땅의 여호와께 성별하여 바쳐야 한다.”(미 4:13). 그렇게 하는 것이 실로 우리의 행복이 된다. 3. 아람과 그의 동맹국을 이김으로써 다윗은 특별히 이름을 얻었다. 아마 시편 60편은 그 때에 썼을 것이다(13절). “다윗이 이름을 얻었다.” 그의 처신과 용맹은 모든 사람들의 찬미거리가 되었다. 거기에 무슨 특별한 일이 있다면, 그에게 많은 영광이 돌아왔지만, 그는 신중하게 그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렸다는 점이다. 아마 이 때에 시편을 썼던 것 같다(12절). 우리가 용맹해질 수 있는 것도 하나님을 통해서이다. 4. 그는 에돔을 쳐서 이겼다. 그들은 모두가 다윗의 종이 되었다(14절). 이제야 비로소 이삭의 축복이 이뤄졌다. 야곱이 에서의 주인이 되리라 한 축복이다(창 27:37-40). 그리고 그후 계속 에돔은 유다 왕들에게 조공을 바쳤다. 그리고 요람의 시대에 이스라엘의 왕에게 조공을 바쳐야 할 입장이 되자, 그들은 반란을 했다(대하 21:8). 그것은 에서가 시간이 흐른 뒤에 자기의 멍에를 꺾어버리리라고 미리 예언했던 그대로이다. 이리하여 다윗은 이 정복을 통해서 (1) 자기 아들에게 평화를 보장해 주었다. 그래서 아들은 성전을 지을 시간을 번 것이다. (2) 아들에게 부를 축적해 주었다. 그는 집을 지을 재물을 가지게 된 것이다. 하나님은 자기의 종들을 여러 가지로 쓰신다. 이런 자는 영적 싸움에서, 또 어떤 자는 영적 건축에서, 또 어떤 자들은 그들을 위해서 수고하게 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 모두를 통해서 영광을 받으신다. 다윗의 모든 승리는 사탄에 대한 복음의 승리의 한 진행이다. 그 때에는 다윗의 아들이 앞으로 나아가, 이기고 또 이기며, 거역하는 모든 왕들을 발 아래 굴복시킬 것이며, 모든 권세자들을 제압하고 말 것이다. 그리고 다윗의 아들은 다윗처럼(2절), 죽이는 사자요, 구원하는 사자(lion)이다. 같은 복음이 어떤 자에게는 생명에서 생명에 이르는 향기가 되고, 어떤 자에게는 죽음에서 죽음에 이르는 향기가 된다. --------- 다윗의 정치 기구(삼하 8:15-18) 다윗은 국내 정치를 등한시할 만큼 그렇게 국외의 전쟁에 몰두하지는 않았다. Ⅰ. 그의 통치는 그의 영토 전역에 미쳤다(15절). “다윗이 온 이스라엘을 다스리니라.” 그에게는 온 지파를 다스릴 권리가 있었을 뿐 아니라, 그는 실제로 그렇게 했다. 그들은 모두 다윗의 보호 하에 안전을 누렸고, 그의 선정(善政)의 열매를 향유했다. Ⅱ. 다윗은 편견없는 공정한 손으로 다스렸다. “그는 모든 백성에게 공(公)을 행했다. 그는 잘못을 행하거나 권리를 보류해 두는 일이 없었다.” 즉, 1. 임무에 부지런히 헌신했고, 모든 탄원은 그에게 어려움 없이 전달될 수 있었다는 뜻이다. 아무리 비천한 자라도, 아무리 비천한 지파 출신이라도 언제든 왕과 자문할 수 있었다. 2. 법을 집행할 때의 불편 부당성을 뜻한다. 어떤 자에게 호의를 베풀거나 무시를 했기 때문에 법 시행을 그르치는 일이 없었다. 그는 이 점에서 그리스도의 한 전형이다. 신실하고 진실했다. 그는 “의롭게 재판하고 전쟁했다”(계 19:11 ; 참조 시 72:1, 2). Ⅲ. 다윗은 조정의 질서를 잡고, 훌륭한 대신들을 두었다. 확고 부동한 정치 기구를 가지기는 다윗이 처음이다(사울의 왕위는 짧았고 불확정했었다). 그래서 그는 행정 기구를 구상했다. 사울 시대에는 아브넬보다 더 높은 관원이 없었다. 그는 군대장관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다윗은 더 많은 관원을 임명했다. 1. 두 군사 관원. 요압은 군대 장관이었고, 브나야는 그렛인들과 블렛인들을 관할하는 군대장이었다. 그렛인들과 블렛인들은 시민군(市民軍:갈대어 역에는 궁술군과 투석군으로 되어 있다)이나 자위대, 혹은 왕을 지키는 상비군이나 친위대들이었을 것이다. 이들은 국내 일을 도울 준비를 했고, 사법 행정을 조력하고, 민중의 평화를 보존했다. 그들이 솔로몬을 데려오는 일에 임명된 것을 알 수 있다(왕상 1:38). 2. 교회 관계원 두 사람. “사독과 아히멜렉은 제사장이었다.” 즉 그들은 대제사장 아비아달 밑에서 제사장직을 수행할 자들이었다. 3. 두 시정관. 그 중 하나는 사무관 곧 보고자였다. 왕에게 때에 맞는 일을 하도록 그 업무를 상기시켜 준다(그는 국무대신이었다. 물론 왕의 양심을 보호해 주는 자는 아니었지만, 그의 업무를 상기시켜 주는 자였다). 다른 하나는 서기관, 곧 내무장관이었다. 그는 공중 질서를 다스리고 재판을 기록했다. 4. 다윗의 아들은 자라서 업무에 임할 수 있게 되자 방백들이 되었다. 그들은 각자의 재능에 맞게 군대나, 국내 일에나 사법부의 일에서 요직을 맡았다. 그들은 왕을 모신 대신들이라고도 할 수 있다(역대상 18:17 에는 그렇게 되어 있다). 그래서 왕 가까이에 있어서, 그의 지휘를 받았다. 우리 주 예수께서도 자기 나라에 관원을 임명하셨다. 그래서 그 나라가 번영할 수 있게 하셨다. 그가 높은 데로 올라가셨을 때, “이 은사들을 주셨다”(엡 4:8-11). 그래서 “모든 사람들이 그의 일을 할 수 있게 했다”(막 13:34). 다윗은 자기 아들들을 대신으로 삼았다. 그러나 모든 신도들, 그리스도의 영적 자손은 더 좋은 자리에 있다. 그들은 하나님께 대하여 왕이요, 제사장들이기 때문이다(계 1:6). ...====== ==호크마== 사무엘하 (8 : 1~18) 1 이 후에 다윗이 블레셋 사람을 쳐서 항복 받고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메덱암마를 빼앗으니라 ㅇ이후에 - 우리는 이 말을 보는 순간 본장의 다윗의 정복 사업(征服事業)이 7장에 언급된 다윗 언약 이후에 일어난 일인 줄로 착각하기 쉽다. 그러나 그렇게 생각할 경우에는 다윗이 모든 대적을 파한 후 평안히 궁에 거했을 때 다윗 언약을 받았다고 한7:1에 혼란이 따르게 된다. 따라서 우리는 여기서 '이후에'란 용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와예히 아하레 켄'이 반드시 시간적인 전후 관계를 의미하는 말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사실 이 용어는 서로 다른 두 내용을 서로 연결시켜 주는 단순 접속어로 많이 사용되었다(2:1;10:1;13:1;15:1;삿 16:4;대상 18:1;19:1;대하 20:1). 그러므로 이 용어는 여기서 내용 전개가 서로 다른 두 기사(記事)를 연결시키기 위해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사실 다윗이 다윗 언약을 받은 때는 본장에서와 같은 정복 사업이 성공적으로 끝난 다윗 통치 말기의 일임을 이미 앞에서 살펴본바이다. 7:1 주석참조. 한편, 혹자들은 본장에 기록된 다윗의 정복 사업은 5장에 이미 언급한 바 있는 예루살렘 정복 사건 이후의 일이라고 주장한다(Payne, J. W.Wevers). ㅇ메덱암마를 빼앗으니라 - 여기에서 '메덱암마'는 어느 한 지명(地名)을 의미하지 않고, 블레셋 사람들에게 속한 여러 성읍들을 나타내는 말일 것이다. '메덱암마'(Metheg-ammah)란 '어머니의 굴레'라는 뜻을 가진 단어이기 때문이다. 즉 (1)고대근동 지방에서는 한 나라의 수도를 가리켜 '어머니'라고 불렀다(Keil, Lange, Gesenius). 또한 성경에서도 한 나라의 수도의 통치를 받는 주변 성읍들을 그 수도의 '딸들'이라고 기록하였다(수 15:45, 47). 이렇게 볼 때 "메덱암마", 곧 '어머니'란 용어가 의미하는 바는 블레셋 사람들의 다섯 성읍 중 주도권을 장악했던 '가드'(Gath)를 가리킴에 틀림없다(삼상 27:2, 5;29:2-4, 6, 7). (2)그리고 여기서 '굴레'라는 말은 누구에겐가 종속(從屬)된 상태를 의미한다(Gesenius). 따라서 이 말은 가드에 종속된 블레셋의 네 성읍들(가사, 아스돗, 아스글론, 에그론, 수 13:3)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Wycliffe) 이상과 같은 사실에 의거할 때 결론적으로 다윗이 메덱암마를 빼앗았다는 말은 다윗이 블레셋 사람들의 연맹 도시들, 즉 수도인 가드와 나머지 네 성읍 모두를 빼앗았다는 의미라고 하겠다(대상 18:1). 따라서 이날의 다윗의 승리는 블레셋에 대한 완전한 승리였음을 알 수 있다. 2 다윗이 또 모압을 쳐서 저희로 땅에 엎드리게 하고 줄로 재어 그 두 줄 길이의 사람은 죽이고 한 줄 길이의 사람은 살리니 모압 사람이 다윗의 종이 되어 조공을 바치니라 ㅇ모압 - 사해 동쪽에 위치했던 모압(Moab)은 이스라엘과는 비교적 좋은 우호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으며(신 2:9;룻 1:1) 다윗이 사울 왕에게 쫓겨 다녔을 때 그에게 큰친절을 베푼 나라이기도 하다(삼상 22:3, 4). 그런데 다윗이 이러한 나라를 정복하고 잔혹한 방법으로 다스린 것을 보면, 아마도 그 이후 다윗을 알지 못하는 자가 모압의 새로운 왕으로 등극, 다윗과 이스라엘을 크게 위협하였을 것이라는 추측을 가능케 한다(Lange, Leon Wood). 아무튼 이처럼 다윗이 모압을 정복하고 그들을 조공국으로 삼은 것은 발람의 예언(민 24:17)이 성취된 사건이라는 의의를 지닌다. ㅇ줄로 재어...살리니 - 여기서 다윗이 죽인 '두 줄 길이의 사람'은 장정(壯丁)을 가리킨다. 그리고 '한 줄 길이의 사람'은 주로 소년과 노약자를 가리킨다. 따라서 다윗은 싸움에 임할 수 없는 자들은 살려 주고 대신 싸움에 임할 수 있는 자들만을 죽임으로써 모압 사람들의 씨를 말리지 않으면서도 그들의 세력을 약화시켰음을 알 수 있다. 이와 관련 대부분의 주석가들은 다윗이 모압 사람 2/3는 죽이고 1/3은 살려 주었을 것으로 추측한다(Keil & Delitzsch, Matthew Henry). 한편 유대 전승(Midrash)은 이러한 다윗의 행위를 가리켜 정당한 복수였다고 주장한다. 즉 과거 다윗이 도피 생활 중에 있을 때 자기 부모를 모압 왕에게 의탁한 적이 있는데(삼상 22:3, 4) 그때 저들이 다윗의 부모를 살해하였으므로 이제 다윗이 그 원한을 갚은 것이라 한다(Keil, Pulpit Commentary, Matthew Henry's Commentary, Vol. II, p. 485). 그러나 이는 성경적 근거가 없는 전승에 불과하므로 그 사실성 여부를 확인할 길이 없다. 3 르홉의 아들 소바 왕 하닷에셀이 자기 권세를 회복하려고 유브라데강으로 갈 때에 다윗이 저를 쳐서 ㅇ소바 - 소바(Zobah)는 다메섹 북쪽과 레바논 산지의 동쪽에 위치했던 아람 소국(小國)이다. 다윗의 통일 이스라엘 왕국 당시 아람인들은 강력한 통일 국가를 이루지 못하고 여러 개의 소국가로 분립되어 있었다. 그런데 그중 가장 강력했던 소국이 바로 소바로서 그 영향력은 유브라데 강 유역에까지 뻗쳐 있었다. 즉 당시 소바는 요단 동편과 수리아의 통치권을 놓고 이스라엘과 다툴 정도로 최강적이었다. 때문에 소바는 사울, 다윗, 솔로몬에 이르기까지 이스라엘과 자주 접전하였다(10:16-18;삼상 14:47;왕상 11:23, 24;대하 8:3). ㅇ하닷에셀 - 소바 왕 하닷에셀(Hadadezer)의 이름의 뜻은 '도움은 하닷이시다'이다. 그런데 '하닷'(Hadad)은 당시 수리아의 태양신의 이름이었으니 우리는 그가 이방 신을 숭배하던 자였음을 알 수 있다. ㅇ자기 권세를 회복하려고 - 본절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는 분명치 않다. 때문에 학자들은 저마다 다른 의견을 내세우고 있는데 곧 다음과 같다. (1)삼상 14:47에 의하면, 소바 왕이 사울 왕과 싸워 패배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그때 잃은 지역을 회복하기 위하여 그가 다윗에게 도전했다는 견해이다(Bunsen, Ewald, Lange). 그러나 이 주장은 옳지 않다. 왜냐하면 사울 왕의 말기(末期)에 이스라엘의 군사력은 극도로 쇠약해져 블레셋군에게 위협 당하는 입장이었는데(삼상 28-31장), 소바 왕이 그때를 놓치고 다윗 왕 때에 비로소 그 잃은 지역을 회복하려 했다는 것은 좀처럼 납득이 가지않기 때문이다. (2)본절의 주어를 하닷에셀이 아닌 다윗으로 보는 견해이다(Keil &Delitzsch). 즉, 다윗은 과거 하닷에셀에게 빼앗겼던 유브라데 강 지역을 회복하기 위해 나아갔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견해 또한 다윗이 이전에 유브라데 강 지역을 한번이라도 장악했던 사실이 없었던 점으로 미루어 보아 옳지 않다. (3) 자기의 동맹군이 다윗과의 전투에서 패배하자 수치를 느낀 하닷에셀이 제 2차로 군사를 모집하여 다윗에게 도전한 것이라는 견해이다(Keil, Leon Wood). 그런데 이 견해는 같은 사건을 보다 상세하게 보도하고 있는 10장의 기록과 부합된다. 즉 거기에 보면, 암몬 자손이 다윗과의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아람 소국들과 동맹한 사실이 나타난다. 그런데 그 동맹군은 다윗 앞에서 패주하였고 그 동맹군 중 가장 강력한 나라인 소바 왕 하닷에셀은 수치를 느끼게 되었다. 그 결과 그는 군대를 재정비하여 다윗에게 도전하러 나아왔던 것이다(10:15-17). 4 그 마병 일천 칠백과 보병 이만을 사로잡고 병거 일백승의 말만 남기고 그 외의 병거의 말은 다 발의 힘줄을 끊었더니 ㅇ마병 일천 칠백 - 평행 구절인 대상 18:4에는 '병거 일천 승과 기병 칠천'(athousand chariots and seven thousand horsemen)으로 나와 있다. 따라서 70인역(LXX)도 본절을 대상 18:4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추측컨대 본절은 혼동하기 쉬은 히브리어 철자를 착각한 필사자의 오기(誤記)인 듯하다. 즉 여기서 '기병'(레켑)이란 말이 탈락된 탓에 '칠천'을 가리키는 숫자가 '칠백'을 가리키는 숫자와 착각되었을 수도 있는 것이다(Keil & Delitzsch, Lange, Matthew Henry, PulpitCommentary). ㅇ병거의 말은...힘줄을 끊었더니 - 다윗이 이같이 한 이유는 산악 지대가 많은 팔레스틴의 지형상 병거가 적합치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보다 궁극적인 이유는 그가 하나님의 말씀(신 17:16)을 존중하였기 때문이다. 즉 일찍이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왕된 자는 말을 많이 두지 말라'고 명하셨는데 이에 따라 다윗은 말을 의지하기 보다는 하나님을 보다 더욱 의지하고 있는 것이다(Matthew Henry's Commentary,Vol. II, p.485). 5 다메섹 아람 사람들이 소바 왕 하닷에셀을 도우러 온지라 다윗이 아람 사람 이만 이천을 죽이고 ㅇ다메섹 아람 사람들이...도우러 온지라 - 다메섹(Damascus)은 소바(Zobah)의 바로 아래(남쪽)에 위치하고 있는 도시로 아람의 수도이다. 아마도 이곳의 아람인들은 처음에는 동맹군에 가담하지 않고 있다가 다윗이 하닷에셀의 패주병들을 끈질기게 쫓아 그들의 지역에까지 이르게 되자 위기감을 느끼고 소바 왕을 지원하게 되었을 것이다. 아무튼 이들은 이스라엘 역사상 여간 성가신 존재가 아니었는데 솔로몬 당시에는 다메섹 왕 르손이 이스라엘을 침입했었다(왕상 11:23-25). 그리고 분열 왕국 시대에는 벤하닷이 침입해 왔으며(왕상 15:20) 그 후에도 끊임없는 침입이 있었다(왕상 20:1-12;왕하 8:25-29;10:32, 33;12:7, 18;16:5). 6 다메섹 아람에 수비대를 두매 아람 사람이 다윗의 종이 되어 조공을 바치니라 다윗이 어디를 가든지 여호와께서 이기게 하시니라 ㅇ수비대 - 이에 해당하는 '네치브'는 '나차브', 즉 '공고히 하다', '배치하다'는 말에서 파생된 단어이다. 이는 내정 간섭을 위한 총독부나 통치 기관이 아니라 군사적인 도전을 막기 위한 군사 기지(軍事基地)를 의미한다(삼상10:5;13:3). ㅇ아람 사람이...조공을 바치니라 - 전쟁에서 패배한 나라가 승리한 나라에 조공을 바치는 것은 고대 근동지방에서 널리 성행했던 계약 관계였다. 즉, 그당시 국가 관계를 보여 주는 헷족속(Hittite)의 계약 문서를 보면 속국의 왕(vassal king)은 종주국의 왕(suzerain king)에게 충성을 맹세하고 조공을 바침으로써 종주국의 불가침 조약(不可侵條約)을 보장받을 수 있었다. 이렇게 하여 속국의 왕은 여전히 자주권을 가지고 자기 나라를 통치할 수 있었는데 대신 그 계약을 반드시 이행하여야만 했다. 한편 이상에서처럼 다윗이 유브라데 강 유역에까지 세력을 뻗치고 있던 아람족을 정복하며 다메섹에 수비대를 두며 또한 그들로부터 조공을 받게 된 것은 일찍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셨던 언약의 성취가 아닐 수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장차 이스라엘의 지경(地境)이 유브라데 강 유역에까지 이를 것이라고 약속하셨기 때문이다(창15:18). 7 다윗이 하닷에셀의 신복들의 가진 금방패를 빼앗아 예루살렘으로 가져오고 ㅇ하닷에셀의...금방패 - 여기서 '방패'에 해당하는 '쉘레트'는 성경에서 대개 '방패'(Shield)로 번역되어 있다(왕하 11:10;대상 18:7;대하 23:9;아 4:4;렘51:11;겔 27:11). 그러나 '쉘레트'는 비단 방패 뿐아니라 각종 무기류나 기타 여러 도구들을 가리키는 말이기도 하다. 따라서 수리아역(the Syriac Peshitta)은 본절의 '금방패'를 '금화살통'으로, 공동 번역은 '금장신구'로 각기 번역하고 있다. 아마도 다윗은 하닷에셀을 격파한 후 (3-6절) 그와 그 신하들의 각종 무기류 및 장신구 등을 전리품(戰利品)으로 획득하였을 것이다. 8 또 하닷에셀의 고을 베다와 베로대에서 매우 많은 놋을 빼앗으니라 ㅇ베다와 베로대 - 이들 지명에 대해 확실히 알려진 것은 없다. 그런데 같은 내용의 기록인 대상 18:8에는 '베다'(Betah)가 '디브핫'(Tibhath)으로, '베로대'(Berothai)가 '군'(Chun)으로 표기되어 있다. 추측컨대 이곳은 다메섹 부근에 위치했던 성읍들인 것같다. 아무튼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다윗의 군대가 이스라엘 지경에서 상당히 먼 지역인 아람 소바의 주요 도시들까지 장악했다는 사실이다. 1-14절 지도 참조. ㅇ많은 놋을 빼앗으니라 - 대상 18:8에서는 이 많은 놋이 솔로몬 때에 성전 건축을 위해 사용되었음이 밝혀져 있다. 이러한 사실로 보아 다윗은 성전 건축을 위해 많은 놋을 빼앗아온 것이 틀림없다. 9 하맛왕 도이가 다윗이 하닷에셀의 온 군대를 쳐서 파하였다 함을 듣고 ㅇ하맛 - 하맛(Hamath)은 아람 소바 바로 윗쪽(북쪽)에 자리잡고 있었던 아람 소국이다. 즉 이 나라는 오론테스 강(the river Orontes) 유역에 건설된 도시 국가였으며 아람 소바와 더불어 유브라데 강으로부터 레바논에 이르기까지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던 나라이다. 따라서 선지자 아모스는 이를 '큰 하맛'이라고 불렀다(암 6:2). ㅇ도이 - 이름의 뜻은 '방황하다'이다. 일명 '도우'(Tou)라고도 하는데 이는 '웃는 것'이란 뜻이다(대상 18:9, 10). 10 그 아들 요람을 보내어 다윗왕에게 문안하고 축복하게 하니 이는 하닷에셀이 도이로 더불어 전쟁이 있던 터에 다윗이 하닷에셀을 쳐서 파함이라 요람이 은 그릇과 금 그릇과 놋 그릇을 가지고 온지라 ㅇ그 아들 요람을 보내어 - 대상 18:10에는 요람(Joram)이 하도람(Hadoram)으로 나와 있다. 그런데 이와 같이 한 사람의 이름이 둘로 나타나고 있는 것은 하나는 히브리식발음이며, 또 하나는 아람식 발음이기 때문이다. 즉, 하도람에서 '하도르'(Hador)는 수리아의 신(神)의 이름으로서 이는 아람식 발음이며, 요람은 '여호와는 높으시다'는 뜻으로 히브리식 발음인 것이다(Keil, Lange). 한편, 도이가 한 나라의 왕자를 사절로 보냈다는 사실은 그가 다윗 왕에게 최고의 경의를 표한 것을 의미한다. ㅇ축복하게 하니 - 여기서 '축복하다'에 해당하는 '바라크'는 '송축하다','축복하다', '축하하다', '찬양하다'는 등의 다양한 뜻을 지니고 있는 말이다. 그러나 도이가 다윗의 승전(勝戰)을 축하하기 위해 사절단을 보낸 점에 의거할 때 '축하하다'로 번역함이 가장 무난하다(공동번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