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22.05.11 작성자 : 양시영
제   목 : 삼상29.섭리하시는 하나님의 도우심..보혜사!!
첨부파일 :

삼상29장  [391.오놀라운구세주예수내주]...날마다숨쉬는순간마다


[요일4:18...“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 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 

[고전10:12, 13.. *12.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13.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가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12 Therefore let him who thinks he stands take heed lest he fall.   *13. No temptation has overtaken you except such as is common to man; but God is faithful, who will not allow you to be tempted beyond what you are able, but with the temptation will also make the way of escape, that you may be able to [d]bear it.]

“[임계점-비등점!!!]을 기억하라!!...정말 잘 몰랐으나, 돌아보면...무기력감과 자기연민에 싸여... 힘이 부쳐 포기하고 싶었던, 그냥 주저앉고 싶었던, 가장 중요한 순간에!!. 오직 돌파하시는 주님, 주 이름을 부르짖으라!!... 최선을 다해 완성-성취-완결하여 끝내도록 권고-격려하사 힘과 용기와 담대함 주신 주님을 감사 송축할 수 있게 되기를!!.”

[성령께서!!  지고지선의 아버지 뜻 이루시도록,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중보하심 인해] 가서는 안되는 길을 손수 막으시고, 가고 싶지 않은 길은 선하신 뜻 이루심 위해 등을 떠밀어서라도 가게 하심으로써!!

[롬8:18-30(28)((모든 피조물이 구원을 고대하다))...*18.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  *19. 피조물이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는 것이니  *20. 피조물이 허무한 데 굴복하는 것은 자기 뜻이 아니요 오직 굴복하게 하시는 이로 말미암음이라  *21.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 노릇 한 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  *22.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을 우리가 아느니라  *23. 그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 될 것 곧 우리 몸의 속량을 기다리느니라  *24.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25.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지니라  *26.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27. 마음을 살피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29.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30.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네오스-카이노스-아나네오오-쉼모르포스!!...새로이 오늘을 열어주신 분은 주님이시니, 새로운 날, 날마다 더 새로와지는 그대여, 더욱 주께 가까이 나아가 날마다 십자가 죽음 안에 머무름 통해 그리스도의 부활생명으로만 살라-그분과 더욱 더 하나되라,  

.....그대안에 계신 주님과 상의하며 하나 됨으로써 일하고 행하고 이루라.... 오늘은 오늘뿐이니...게으름 피우며 눈가림으로 하지말고...무엇을 하든지 주님이 하시듯(그분의 창조와 운영을 완전무결하게 이루셨고 이루어 나가고 계시는 분에 합당하게, 그분을 경외함 안에서 = 아버지 뜻 완수하신 아드님이 그리 하셨듯이...그분의 지식-지혜-총명-모략-재능과 능력으로) 하고, [주님 공급하시는 바로 그 믿음-소망-사랑으로] 주께 순종-청종-준행함으로써 행하고 일하라.

.... 이 세상에서 사는 모든 삶이란  곰곰이 생각해보면 내 자신의 살 집을 손수 짓는 것과 같으니....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도와주고 하는 모든 것이 남을 위한 것이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을 위한 것이로다... 어떻게 오늘을 살았는가, 하루 하루를 어떻게 살아가는가에 따라서 참 삶이 결정되기 때문이라..


[마7:18-27(:24)...*18.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19.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느니라  *20.이러므로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21.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22.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23.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24.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25.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추를 반석 위에 놓은 까닭이요  *26.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27.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

[고전3:9-15...*9.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들이요 너희는 하나님의 밭이요 하나님의 집이니라  *10.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 내가 지혜로운 건축자와 같이 터를 닦아 두매 다른 이가 그 위에 세우나 그러나 각각 어떻게 그 위에 세울까를 조심할지니라  *11.이 닦아 둔 것 외에 능히 다른 터를 닦아 둘 자가 없으니 이 터는 곧 예수 그리스도라  *12.만일 누구든지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나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이 터 위에 세우면  *13.각 사람의 공적이 나타날 터인데 그 날이 공적을 밝히리니 이는 불로 나타내고 그 불이 각 사람의 공적이 어떠한 것을 시험할 것임이라  *14.만일 누구든지 그 위에 세운 공적이 그대로 있으면 상을 받고  *15.누구든지 그 공적이 불타면 해를 받으리니 그러나 자신은 구원을 받되 불 가운데서 받은 것 같으리라]  


“사랑에는 두려움이 없다“...내가 하나님께 받는 그 사랑으로 인해서 내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그 사랑으로 인해서 두려움이 없는 삶을 살게 되는 것이니

....."오늘 하루 한 영혼을 아프게 했는지, 길을 잃고 방황하며 헤메었는지, 오늘 하루 공허하고 헛되었는지, 원치 않는 마음이라 피하였는지...나의 의지대로 삶을 영위했다면...오, 주여 용서하여 주소서, 온전하게 나의 마음 모두 드리는, 이 밤..주여 평안 주소서.."..읊조려 보라...

....온전한 사랑이 우리로 심판 날에 담대함을 가지게 한다..사랑 안에는 두려움이 없다...[더 이상 죄의 속박 없는, 거듭난 생명 안의 자유, 그 진리 인해 참 자유 누리는 부활 생명으로 낳으신 바 된 자녀가 드리며 서로 사랑하는 바, 자녀 안에 거하시는 분, 바로 그 하나님 경외하는] 온전한 사랑은 그런 ((잘못 한 바 드러나 추궁당할까봐 두려워하는, 노예가 갖는!!)) 두려움을 내어 쫓기 때문이라


===블레셋 사람들이 다윗을 좋아하지 아니하다

1.  블레셋 사람들은 그들의 모든 군대를 아벡에 모았고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스르엘에 있는 샘 곁에 진 쳤더라

2.  블레셋 사람들의 수령들은 수백 명씩 수천 명씩 인솔하여 나아가고 다윗과 그의 사람들은 아기스와 함께 그 뒤에서 나아가더니

3.  블레셋 사람들의 방백들이 이르되 이 히브리 사람들이 무엇을 하려느냐 하니 아기스가 블레셋 사람들의 방백들에게 이르되 이는 이스라엘 왕 사울의 신하 다윗이 아니냐 그가 나와 함께 있은 지 여러 날 여러 해로되 그가 망명하여 온 날부터 오늘까지 내가 그의 허물을 보지 못하였노라

4.  블레셋 사람의 방백들이 그에게 노한지라 블레셋 방백들이 그에게 이르되 이 사람을 돌려보내어 왕이 그에게 정하신 그 처소로 가게 하소서 그는 우리와 함께 싸움에 내려가지 못하리니 그가 전장에서 우리의 대적이 될까 하나이다 그가 무엇으로 그 주와 다시 화합하리이까 이 사람들의 머리로 하지 아니하겠나이까

5.  그들이 춤추며 노래하여 이르되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 하던 그 다윗이 아니니이까 하니

6.  ○아기스가 다윗을 불러 그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네가 정직하여 내게 온 날부터 오늘까지 네게 악이 있음을 보지 못하였으니 나와 함께 진중에 출입하는 것이 내 생각에는 좋으나 수령들이 너를 좋아하지 아니하니

7.  그러므로 이제 너는 평안히 돌아가서 블레셋 사람들의 수령들에게 거슬러 보이게 하지 말라 하니라

8.  다윗이 아기스에게 이르되 내가 무엇을 하였나이까 내가 당신 앞에 오늘까지 있는 동안에 당신이 종에게서 무엇을 보셨기에 내가 가서 내 주 왕의 원수와 싸우지 못하게 하시나이까 하니...이러한 [겉 다르고 속 다른, 이중적 속뜻을 내포하고 있는!!] 언어적 유희는 주님이 어찌 보실까..오직 "코람데오"로 행하자!!...주여 용서하소서!!

9.  아기스가 다윗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네가 내 목전에 하나님의 전령 같이 선한 것을 내가 아나 블레셋 사람들의 방백들은 말하기를 그가 우리와 함께 전장에 올라가지 못하리라 하니

10.  그런즉 너는 너와 함께 온 네 주의 신하들과 더불어 새벽에 일어나라 너희는 새벽에 일어나서 밝거든 곧 떠나라 하니라

11.  이에 다윗이 자기 사람들과 더불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서 떠나 블레셋 사람들의 땅으로 돌아가고 블레셋 사람들은 이스르엘로 올라가니라

------------

[NASB]제29장

1.  Now the Philistines gathered together all their armies to Aphek, while the Israelites were camping by the spring which is in Jezreel.

2.  And the lords of the Philistines were proceeding on by hundreds and by thousands, and David and his men were proceeding on in the rear with Achish.

3.  Then the commanders of the Philistines said, "What [are] these Hebrews [doing here]?" And Achish said to the commanders of the Philistines, " Is this not David, the servant of Saul the king of Israel, who has been with me these days, or [rather] these years, and I have found no fault in him from the day he deserted [to me] to this day? "

4.  But the commanders of the Philistines were angry with him, and the commanders of the Philistines said to him, "Make the man go back, that he may return to his place where you have assigned him, and do not let him go down to battle with us, lest in the battle he become an adversary to us. For with what could this [man] make himself acceptable to his lord? [Would it] not [be] with the heads of these men?

5.  "Is this not David, of whom they sing in the dances, saying, ' Saul has slain his thousands, And David his ten thousands'?"

6.  Then Achish called David and said to him, "[As] the LORD lives, you [have been] upright, and your going out and your coming in with me in the army are pleasing in my sight; for I have not found evil in you from the day of your coming to me to this day. Nevertheless, you are not pleasing in the sight of the lords.

7.  "Now therefore return, and go in peace, that you may not displease the lords of the Philistines."

8.  And David said to Achish, "But what have I done? And what have you found in your servant from the day when I came before you to this day, that I may not go and fight against the enemies of my lord the king?"

9.  But Achish answered and said to David, "I know that you are pleasing in my sight, like an angel of God; nevertheless the commanders of the Philistines have said, 'He must not go up with us to the battle.'

10.  "Now then arise early in the morning with the servants of your lord who have come with you, and as soon as you have arisen early in the morning and have light, depart." 

11.  So David arose early, he and his men, to depart in the morning, to return to the land of the Philistines. And the Philistines went up to Jezreel.

=======
사무엘상 29장 (개요)
전 장에서 하나님의 버림을 받은 사울은 그 자신의 생각대로 따르다가 더욱더 곤란한 지경에 처하게 된 기록을 우리는 읽어 보았다. 
본 장에서 우리는 다윗이 하나님과 함께하매, 어려운 지경에 처할 때에도 그 자신이 어떤 궁리를 짜내지 않아도 하나님의 섭리가 그를 구해 주는 것을 볼 수 있다. 
여기서 우리는 다윗의 이런 일들을 볼 수 있다.
1. 다윗이 블레셋 사람들과 함께 싸움터로 나갔다(1, 2).
2. 다윗은 블레셋의 방백들에 의해 싸움에 출전하는 것을 반대 받았다(3-5).
3. 다윗을 난처하게 만들었지만, 어떻게 해서 그것을 피할는지는 몰랐던 그런 일에서 아기스는 다행히 그를 제외시켜 주었다(6-11).
---------
블레셋 사람들과 함께한 다윗(삼상 29:1-5)
Ⅰ. 다윗은 매우 난처한 입장에 처하게 되었다. 
그런데도 다윗은 하나님의 층고를 구했다거나, 그런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한 어떤 노력을 시도했다는 기사를 우리는 보지 못한다. 
블레셋과 이스라엘 두 군대는 서로 진영을 치고 전투 준비를 완료했다(1절). 
다윗에게 친절을 베풀었던 아기스는 다윗에게 군대를 이끌고 와서 자기를 도와달라고 간곡히 부탁했다. 
그 말에 따라 다윗은 왔으며, 열병식에서 아기스 뒤에 서 있는 것이 사람들의 눈에 띄었다(2절).
1. 만일 두 군대가 서로 싸울 때, 다윗이 물러나며 제자리를 지키지 않는다면 그는 비겁자요 배반자란 비난을 받을 뿐만 아니라, 그를 보호해 주고, 그에게 은혜를 끼쳤고, 그를 매우 신임했으며 또 그에게 매우 명예로운 사명을 주었던 아기스에 대해 배은망덕한 자라는 비난을 면치 못하게 될 것이다. 
이런 파렴치한 행동은 그로서는 도저히 할 수 없었다.
2. 그렇다고 해서, 아기스가 기대한 대로 블레셋을 도와 이스라엘과 싸운다면 그는 하나님의 이스라엘의 원수는 조국에 대한 배반자라는 비난을 면치 못하게 될 것이며, 그의 백성들이 그를 중오하게 될 것이며, 이구동성으로 그가 이스라엘 사람으로서 합당치 않음으로 왕위에 오르는 것을 반대할 것이며, 무할례자의 깃발 밑에서 싸운 자로서 이스라엘의 왕에 도저히 오를 수 없는 사람이라고 할 것이다. 또 만일 이 싸움에서 사울이 죽임을 당한다면 다윗이 그를 죽였다는 비난을 받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이렇게 해도, 저렇게 해도 죄와 비난을 받도록 되어 있었다. 이것이 바로 그가 처하게 된 어려운 입장이었다. 
의인 앞에 환난이 놓인 것보다 죄가 놓였다는 것이 그를 더 난처하게 만든다. 
다윗은 유다 땅을 떠나 무할례자들과 함께 살면서 누구의 충고도 듣지 않고 이 난처한 입장에 자신을 몰고 들어갔다. 
악인들과 밀접하게 관련을 가진 사람들이 만일 죄책감을 가지거나 한스러운 마음을 가지지 않고, 일이 잘 되어 간다면 이는 이상스러운 일이다.
여기서는 다윗이 스스로가 어떤 일을 하겠다고 나선 것으로는 나오지 않고 있다. 
아마 다윗은 직접 이스라엘 사람들을 공격하는 일에는 가담하지 않고, 다만 왕의 머리를 지키는 자로서 지명된 것으로 보인다. 
이 직책은 이미 그에게 지명된 적이 있다(28:2). 그러나 죄의 가장자리까지 근접하고도 그 죄 속에 빠지지 않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의 어리석음을 책망하기 위해 그를 이런 어려움 속에 몰아넣으셨지만, 그의 마음이 하나님을 향해 바로 서 있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가 감당치 못할 시험을 주시지 않으셨고, 그리고 또한 피할 길을 주셨다”(고전 10:13).
Ⅱ. 다윗에게는 이 어려움에서 피해 나갈 길이 열려졌다. 
하나님은 블레셋 방백들의 마음을 충동하여 그들이 다윗의 출전을 반대하셨고, 그를 돌려 보내도록 주장하게 하셨다. 
이처럼 그의 친구들이 그에게 어떤 도움을 주지 못할 때 하나님은 오히려 다윗의 원수들의 반목이 그를 도울 수 있게 해 주셨다.
1. 군대를 열병할 때 블레셋의 방백들이 한 질문, 곧 “이 히브리 사람들이 무엇을 하려느냐?”(3절)라는 질문은 타당한 질문이었다. 
그 말은 “우리가 그들을 어떻게 믿을 수 있으며, 우리가 그들에게 어떤 도움을 기대할 수 있겠느냐” 하고 묻는 것이다. 
“한 히브리 사람이 자기의 고장을 떠나면”, 그가 히브리인의 정신을 가지고 있을 때, “그는 활동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 
다시 말해서 그가 블레셋 사람들의 진중에서는 불안할 수밖에 없다. 다윗은 “행악자의 집회를 미워하였다”(시 26:5). 그런데 지금 다윗은 그런 사람들 가운데 있다.
이 경우에도 아기스는 다윗을 명예롭게 보증하여 주었다. 아기스는 다윗이 자기의 조국에서 악독한 핍박을 받아 도망쳐 나온 피난인으로 보았다. 
그리고 그를 보호하여 주었다. 그리하여 아기스는 다윗을 보호할 의무가 자기에게 있다고 보았고, 또 그에게 일을 맡겨도 좋으리라고 보았다. 
“그가 나와 함께 있은 지 여러 날, 여러 해로다”라고 아기스는 말했다. 즉 아기스는 다윗이 상당한 기간 동안 그의 궁전에서 그와 함께 있었건마는 어떤 허물을 그에게서 찾을 수가 없었고, 불충한 점도 보지 못했고, 오직 그가 충심으로부터 자기를 섬긴 것으로 보였다고 말했다.
아기스의 말을 통해 우리는 다윗이 매우 신중하게 처신했으며 그의 마음속에 여전히 자리잡고 있던 자기 백성에 대한 사랑을 조심스럽게 숨겨 왔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우리는 “미련한 자들에게 가까이 갈 때는 지혜롭게 걸으며, 우리 앞에 악인들이 있을 때는 우리의 입을 다물어야 하며” 과묵해야 할 필요가 있다.
2. 그러나 블레셋의 방백들은 다윗이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단호하게 주장했다. 
그리고 그들은 그들의 주장이 옳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해 다음과 같은 이유를 들었다.
(1) 다윗은 블레셋의 오랜 원수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것을 증명하기 위해 그들은 다윗이 블레셋 사람들을 쳐서 이겼을 때 불려진 노래, 즉 “사울의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라는 노래를 들먹였다(5절). “그처럼 우리의 백성들을 많이 죽인 사람을 숨겨 주고 그를 신임한다는 것은 우리의 수치입니다. 그리고 그가 그때에는 그처럼 활기 있게 자기를 도와준 사울과 진정으로 대항해서 싸울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없습니다.”
(2) 다윗이 그들에게는 사울의 모든 군사들보다도 더 위험한 대적이 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가 전장에서 우리의 대적이 될까 하나이다. 그리하여 그들의 군인들은 우리의 앞에서 우리와 싸우는 동안, 그들이 우리의 뒤에서 우리를 칠까 두렵습니다. 그리고 또 그는 우리를 배반함으로 자기의 주인과 화해하는 길을 모색할는지도 모릅니다. 충분히 그럴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가 자기의 나라를 사랑하는지 아니하는지는 여하간에, 우리를 배반하는 것이 자기의 이익이 된다고 생각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을 우리가 어떻게 믿을 수 있습니까?” 항복한 적을 신임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
블레셋 사람들과 헤어진 다윗(삼상 29:6-11)
아기스가 다윗을 신임하는 이유가, 방백들이 왜 다윗을 믿지 못하는지 밝힌 이유를 보다 훨씬 더 강한 것이라 할지라도, 아기스는 비록 방백들 중의 우두머리이며 왕이라는 호칭으로 일컬어지는 유일한 사람이지만, 이 문제를 위해 모인 작전 회의의 결정에 따라서 그가 아무리 다윗을 좋아한다고 해도 그를 돌려 보낼 수밖에 없었다. 
왕들이라고 해서 언제나 자기들 하고 싶은 대로는 하지 못한다.
Ⅰ. 아기스는 다윗을 돌려 보내되, 매우 명예롭게 보냈다. 그리고 아주 보낸 것도 아니었다. 다만 이 일만 하지 않도록 했다.
1. 아기스는 다윗의 행동이나 말에 대해 대단히 만족했다는 것을 표시했다. “네가 내 목전에 하나님의 사자같이 선한 것을 내가 안다”(9절). 
지혜롭고 선한 사람은 어디가나 모든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는다. 아기스가 다윗을 두고 한 말은, 하나님께서 선지자를 통해 “다윗의 족속”을 두고 하신 말씀과 같다(슥 12:8). 그들은 “여호와의 사자”와 같을 것이라고 하셨다. 그러나 전자는 다만 왕의 칭찬에 불과하며 후자는 하나님의 약속이다.
2. 아기스는 다윗의 훌륭한 처신을 증명해 주었다(6절). 
그의 찬사는 매우 충분하고도 정중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너는 정직하였으며, 네 모든 처신은 내가 보기에 매우 좋았다. 그리고 나는 너에게서 어떤 잘못을 찾을 수가 없다.” 다윗은 아기스에게 보다 훨씬 더 사울에게 잘했다. 그러나 사울에게서는 그런 칭찬을 들어보지 못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그들이 상종하는 모든 사람들로부터 좋은 칭찬의 말을 들을 수 있도록 잘해야 한다. 우리는 우리를 칭찬해 주는 사람들에게 빚을 지고 있다. 그들을 위해서라도 우리는 잘해야 한다.
3. 아기스는 그를 돌려 보내는 잘못이 전적으로 방백들, 곧 다윗이 계속 진중에 머물러 있는 것을 싫어하는 방백들에게 있다는 것을 말했다. 
“왕은 그대를 매우 사랑한다. 그래서 그의 생명까지라도 그대의 손에 맡기고자 하였다. 그러나 방백들은 그대를 좋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데 우리는 그들의 말을 들어야 하며, 반대할 수가 없다. 그러므로 그대는 평안히 돌아가라.” 
아기스는 그의 장군들 사이에 증오심을 일으키게 하거나, 그의 군대 사이에 폭동이 야기되게 하는 것보다는 그가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다. 
아기스는 그들이 왜 그렇게 불안해 하는지 그 이유를 밝혀 주었다. 아기스는 그것이 다윗 자신에게 있다고 하기보다는, 그의 “주인(즉 사울)의 신하들”이라고 부르는(10절) 다윗의 부하들 때문이라고 했다. 그들은 다윗은 믿을 수 있으나 그의 부하들은 믿을 수 없다는 것이다.
4. 아기스는 다윗에게 새벽에, 날이 밝자마자 떠나라고 했다(10절). 
그것은 다윗이 우물쭈물하다가는 앞으로 더 많이 받게 될지도 모르는 의혹과 질투를 막아 주기 위한 것이었다.
Ⅱ. 다윗은 아기스의 이야기를 정중하게 받아들였다. 
그런데 내 생각에 는 다윗의 그러한 태도에는 약간의 위선이 없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윗은 이렇게 말했다. 
“내가 무엇을 하였기에 내 주 왕과 헤어져야 합니까? 더욱이 내 주 왕이 전쟁터에 나가려고 하는 이때 말입니다. 왜 나는 가서 내 주 왕의 원수와 싸우지 못합니까?”(8절).
다윗은 이런 판국에 아기스를 돕기가 무척 걱정이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아기스가 그 사실을 알기를 원치 않았다. 
위대한 사람들을 섬기는 사람들은 그들이 듣기 좋아하는 말만을 말하고자 하는 강한 유혹에 빠지며, 그것을 피하기가 매우 어렵다.
Ⅲ. 하나님의 섭리는 다윗의 곤경을 지혜롭고도 은혜롭게 해결하여 주셨다. 
다윗은 올가미를 벗어났으며, 곤경에서 해방되었을 뿐만 아니라, 그 자신의 성읍을 구원할 수 있었다. 
다윗은 자기의 성읍이 위험한 지경에 놓여 있었다는 것을 몰랐다. 이처럼 블레셋의 방백들이 그에게 준 불명예는 오히려 그에게 큰 도움을 여러 가지로 줄 수 있었다. 
“의인의 발걸음을 하나님께서 지켜 주시매, 그는 그 길을 기쁘게 걸어 갈 수 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어떻게 하실는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그러나 분명히 그 결과는 좋을 것이다.
========
========
===호크마===
사무엘상 29장
1 블레셋 사람들은 그 모든 군대를 아벡에 모았고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스르엘에 있는 샘 곁에 진 쳤더라
ㅇ본 절의 내용은 28:1, 4에 대한 또 다른 각도에서의 언급이다.
ㅇ블레셋 사람들은...군대를 아벡에 모았고 - 블레셋 사람들의 1차 군사 집결지는 '아벡'(Aphek)이었다. 블레셋 족속은 특별히 다섯 방백에 의하여 다스려지는 부족 연합 성격의 정치 체제를 소유하고 있었기 때문에(5:8), 이처럼 집결지를 정해 그곳으로 각 부족의 군사들이 총집결했던 것이다. 
한편 '아벡'은 '요새'란 뜻으로, 이와 동일한 지명이 팔레스틴 여러 곳에 있다. 혹자들(Keil, Fay, Conder)은 여기 '아벡'을 잇사갈 지파에 속하는 오늘날의 '엘 아풀레'(el-Afuleh)로 추정하여, '수넴'과 멀지 않은 곳이라고 보고 있으나 확실치는 않다. 어쩌면 엘리 제사장 시절, 이스라엘을 공격할 때 블레셋 족속에 의하여 이미 병력 집결지로 사용되었던 '에벤에셀' 근처의 '아벡'일 가능서도 배제할 수 없는 것이다(4:1).
ㅇ이스르엘에 있는 샘 곁에 진 쳤더라 - '이스르엘'(Jezreel)은 '하나님께서 씨를 뿌림'이란 뜻인데, 헬라식 이름으로는 '에스드라엘론'(Esdraelon)이다. 이곳은 길보아 산악 지대의 북쪽 기슭에 자리잡고 있으며(28:4), 기손 강의 영향으로 토지는 비옥하고, 길게 평원 지대를 형성하고 있다. 한편 여기의 '샘'(아인)은 '이스르엘'동남쪽 약 2.8km 지점에 있고, 길보아 산지 북쪽에 수원(水源)을 갖고 있는 우물로서, 오늘날의 '아인 잘루드'(Ain Jalud, '골리앗의 샘'이란 뜻)와 동일 지역으로 인정되고 있다(Robinson). 그런데 이 우물은 화강암 절벽에서 흘러 내려온 물에 의하여 형성된 큰 웅덩이의 모양으로 되어있다고 다(Conder). 
한편, 70인역(LXX)은 여기 '샘'을 '엔돌'로 번역하고 있는데 타당성이 없다(Keil, Smith, Fay).
2 블레셋 사람의 장관들은 수백씩 수천씩 영솔하여 나아가고 다윗과 그의 사람들은 아기스와 함께 그 뒤에서 나아가더니
ㅇ블레셋 사람의 장관들 - 여기서 '장관들'(세렌)은 본서의 다른 부분에서는 '방백'으로 번역된 단어이다(5:8, 11;6:4, 12, 18;7:7). 
즉 이들은 블레셋의 다섯 부족들을 그들의 수도 곧 가사, 가드, 아스글론, 아스돗, 에그론(수 13:3)을 중심으로 다스리는 최고 지도자들을 가리킨다(5:1-12).
ㅇ수백씩 수천씩 영솔하여 나아가고 - 이것은 블레셋의 다섯 방백들 밑에는 천부장과 백부장이 있어서, 병력이 그들에 의하여 관리되고 있었음을 말해 준다. 또한 이같은 언급은, 블레셋의 군대가 병력도 많을 뿐만 아니라 제법 규모가 잡혀 있었음을 강력히 암시해 준다. 
한편 여기의 '영솔하여 나아가고'(오브림)는 '건너가다', '목적지를 향해 어느 곳을 통과하다'란 의미를 갖는 동사 '아바르'의 분사형이다. 따라서 이것은 블레셋 군대의 행진이 중단없이 계속되고 있었음을 의미한다(Davidson). 그런데 여기의 '영솔하여'는 원문에는 없는 말로서 문맥상의 의미를 보강하기 위한 번역자의 삽입이다. 그렇다면 이때 블레셋의 군대는 어디서 어디로 가는 중이었을까? 이때 블레셋 군대는 자신들의 1차 집결지인 '아벡'<1절>을 떠나 자신들의 진(陳)칠 곳인 '수넴'<28:4>으로 가는 중이었다. 우리가 이같이 보아야 할 이유는 다음과 같다. 즉 (1) '나아가고'(아바르)라는 동사는 먼 거리를 진행하는 행동을 나타낼 때 주로 사용되며(창 33:3;민 13:32;신 29:16), (2) 다윗이 '아기스'를 제외한 다른 블레셋 방백들의 거부에 의하여 회군(回軍) 하였을 때, 그당시 그 자신이 위치했던 지점에서 '시글락'(27:6)까지 삼일만에 도착했다는 사실(30:1) 때문이다. 만일 다윗이 그당시 '수넴'(Shunem, 28:4)에 있었다면, 자신의 거주지인 시글락까지 결코 삼일만에 도착하지 못하였을 것이다(Smith). 그러나 '아벡'에서 '시글락'까지는 약 75km 정도이므로, '아벡'에서 '수넴' 쪽으로 조금 진행한 지점에서 다윗의 군사가 다시 시글락까지 회군(回軍)하는 데 삼일 걸렸다는 사실은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ㅇ다윗...아기스와 함께...나아가더니 - 다윗의 이같은 행동은, 다윗에 대하여 절대적인 신뢰를 갖고 있던 아기스의 요청에 따른 것이었다(28:1). 가드 왕  아기스는 그때 다윗을 자신의 영원한 사역자로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27:12).
ㅇ그 뒤에서 - 다윗과 그의 일행은 아기스의 후군(後軍)이 되어 본전투에 참여하였음을 암시한다.
3 블레셋 사람의 방백들이 가로되 이 히브리 사람들이 무엇을 하려느냐 아기스가 블레셋 사람의 방백들에게 이르되 이는 이스라엘 왕 사울의 신하 다윗이 아니냐 그가 나와 함께 있은지 여러 날 여러 해로되 그가 망명하여 온 날부터 오늘까지 내가 그의 허물을 보지 못하였노라
ㅇ이 히브리 사람들 - 다윗과 그의 휘하 병력을 가리킨다. 여기서 블레셋 방백들이 이들을 이같이 '히브리 사람'(이브림)이라고 표현한 까닭은, 방백들이 이들에 대하여 매우 부정적 시각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었다(13:7).
ㅇ이스라엘 왕 사울의 신하 다윗 - 아기스의 이 말은 다윗이 전에는 사울의 신하였으나 지금은 그와 원수가 되어 아기스 자신의 신하가 되었음을 암시하는 말이다.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 뿐만 아니라 심지어 블레셋 사람들까지도 다윗이 사울과 원수 관계가 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바로 이같은 사실로 인하여,  아기스는 자신의 말이 다른 방백들에게 설득력을 가질 것으로 보았던 것이다.
ㅇ나와 함께 있은지 여러 날 여러 해 - 여기서 '여러 날 여러 해'란 표현은 다윗이 충실한 신하로서 아기스 자신과 함께 오래 있었음을 강조하기 위한 독특한 표현이다. 실제로 다윗이 아기스와 함께 한 기간은 '일 년 넉 달'이었다(27:7).
ㅇ내가 그의 허물을 보지 못하였노라 - 이는 아기스가 그때까지, 다윗이 자신 몰래 그술, 기르스, 아말렉 등 이스라엘 적대 세력들을 침노했던 사실을 알지 못했음을 시사해 준다(27:8, 12). 그리고 사실 다윗은 이러한 남방 민족들을 아기스 몰래 침노한 사실 이외에는 아기스에게 충성을 다하여 큰 신임을 얻었던 것 같다(Smith).
4 블레셋 사람의 방백들이 그에게 노한지라 블레셋 방백들이 그에게 이르되 이사람을 돌려보내어 왕이 그에게 정하신 그 처소로 가게 하소서 그는 우리와 함께 싸움에 내려가지 못하리니 그가 전장에서 우리의 대적이 될까 하나이다 그가 무엇으로 그 주와 다시 화합하리이까 이 사람들의 머리로 하지 아니하겠나이까
ㅇ블레셋 사람의 방백들이 그에게 노한지라 - 이는 다윗을 두둔하는 가드 왕 아기스에 대한 블레셋 방백들의 반발이다. 즉 블레셋의 다른 네 방백들은, 아기스가 자신들의 말보다 다윗을 더 신뢰하는 데 대하여 이같이 날카로운 반응을 보인 것이다. 한편 여기의 '방백'(사르)은 '군주', '우두머리', '지휘관' 등의 의미로서, 왕보다는 낮은 계급의 소유자를 지칭할 때 사용된다(창 12:15;출 1:11;삼하 2:8). 아무튼 본절은 블레셋 방백 회의의 모습을 보여주는데, 당시 블레셋에는 5인의 방백이 있었으며, 그 방백들 중에서 한 명이 블레셋 연방 체제(聯邦體制)를 대표하는 왕이 되었다(6:4,16;수 13:3;삿 3:3). 하지만 이 왕은 절대적 왕권을 갖지 못하고 방백 회의에서 결정된 사항을 따라야 했으며, 방백들의 제의를 무시하고 자의(自意)로 통치권을 행사하지는 못했다(6:1-16). 여기서 아기스는 가드의 방백이면서 위와 같은 제한적 왕권을 지닌 블레셋의 왕이었다. 따라서 블레셋 방백들이 다윗의 참전 문제에 거세게 항의하면서 아기스 왕의 뜻을 꺾고 다윗을 되돌려 보내게 된 것은 바로 이러한 블레셋의 독특한 통치 체제게 기인한다. 그러나 다윗이 길보아 전투에 참전할 수 없었던 궁극적인 이유는 그를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강권적인 역사 때문이었다.
ㅇ왕이...정하신 그 처소 - 즉 가드 왕 아기스가 다윗에게 식읍(食邑)으로 부여한 '시글락'(Ziklaq)을 가리킨다(27:6).
ㅇ그는 우리와 함께 싸움에 내려가지 못하리니 - 이 말은 구체적으로 이스라엘 군대가 진치고 있는 곳의 맞으편 언덕에 위치할 자신들의 진지에서, 전투를 위하여 이스라엘 군대와 자신들의 군대 사이의 계곡 혹은 들판으로 내려가는 행위를 가리킨다(Keil,Smith, Fay).
ㅇ전장에서 우리의 대적이 될까 하나이다 - 이 말은 다윗이 막상 싸움에 임하여서는 블레셋을 배반하고 사울의 편에 서서 오히려 블레셋을 역공격하는 것을 뜻한다. 아마도 블레셋 방백들은 이전에 믹마스에서 이스라엘과 전투할 때(13:5) 많은 이스라엘인들이 투항하였지만, 그들이 다시 블레셋에 대항했던(14:21) 뼈아픈 경험을 잊어버릴 수가 없었을 것이다. 한편 여기서 '대적'(사탄)은 정관사(하)와 더불어 고유 명사로 쓰일 때는 악령의 두목 '사단'의 의미로 사용되는 단어이다(대상 21:1;욥1:6;시 109:6;슥 3:1). 그러나 이 단어의 원래 의미는 '평강을 방해하는 자', 혹은 '은밀하게 대적하는 자'란 뜻이다(Hertzberg).
ㅇ그가 무엇으로 그 주와 다시 화합하리이까 - 이는 다윗이 사울의 편에 다시 서기위하여 어떤 예물을 그에게 가져갈 것이라는 확신적 질문이다. 
여기서 '화합하리이까'(이트라체)는 '기쁘게 하다', '화해하다'란 의미를 갖는 동사 '라차'의 재귀적(再歸的) 사역형이다. 따라서 여기의 '화합하리이까'는 자신의 이기적 욕심을 만족시키기 위하여 사울을 즐겁게 하는 것, 즉 블레셋을 배반한 후 도리어 사울을 도와서 블레셋에 역공(逆功)을 펼치는 것을 가리킨다. 
한편 또한  여기서 '그주'는 사울 왕을 가리키는데, 이는 블레셋 방백들이 사울 왕에 대한 다윗의 신실함에 대해 의혹을 끝까지 떨쳐버리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시사해 준다. 그리고 이같은 사실은, 아기스가 다윗을 자신의 '영원한 사역자'로 간주하고 있었던 것과는(27:12) 크게 대조된다.
ㅇ이 사람들의 머리로 하지아니하겠나이까 - 이것은 다윗이 사울과 화해하기 위하여, 즉 사울을 즐겁게 하기 위하여 많은 블레셋 병사들의 머리를 그에게 예물로 바칠 것이라는 뜻이다. 이전에 다윗은 사울의 사위가 되기 위하여, 즉 사울을 즐겁게 하기 위하여 블레셋 사람들의 양피 이백을 그에게 바친 일이 있었다(18:27). 
아무튼 블레셋 방백들의 이같은 언급은 그들이, 만일 다윗을 전쟁터로 데려가면 그가 블레셋 사람들에게 큰 손실을 입힐 것임을 확신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시사해 준다.
5 그들이 춤추며 창화하여 가로되 사울의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 하던 이 다윗이 아니니이까
ㅇ본절은, 다윗이 전에 골리앗을 꺾은 엘라 골짜기 전투(17장)에서 사울과 함께 블레셋에게 군사적으로 엄청난 손실을 입혔던 장본인이었음을 상기시키기 위한 언급이다(21:11). 이전에도 가드 왕 아기스는 바로 이같은 언급을 부하들로부터 전해 들음으로써, 자신에게 망명왔던 다윗에 대하여 의심을 품기 시작하였었다(21:12). 
아무튼 다윗의 무공을 칭송하는 이스라엘 여인들의 이 노래는 당시의 민심(民心)이 반영된 채 이스라엘 인근 지역의 국가들 사이에도 익히 알려졌던 것 같다.
ㅇ사울의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 - 18:7 주석 참조.
6 아기스가 다윗을 불러 그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사시거니와 네가 정직하여 내게 온 날부터 오늘까지 네게 악이 있음을 보지 못하였으니 나와 함께 군중에 출입하는 것이 나의 소견에는 좋으나 장관들이 너를 좋아하지 아니하니
ㅇ여호와께서 사시거니와 - 자신의 말의 신실성(信實性)을 강조적으로 표현하는 히브리적 맹세의 한 방식이다(26:10). 그러나 여기에 언급되는 아기스의 이 맹세는, 그가 히브리인의 하나님 여호와를 믿었음을 시사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아기스는 신실한 맹세를 하고자 할 때 히브리인들은 바로 이같이 맹세한다는 것을 다윗으로부터  배운 후, 이제 오히려 그는 자신의 심경을 진지하게 표출하는 이 마당에서 도로 다윗에게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ㅇ네가 정직하여 - '정직하여'(야솨르)는 어떠한  악의(惡意)나 사심(私心)없이 곧고 바르게 행동하는 것을 가리킬 때 사용되는 형용사이다(출 15:26;신 12:28;수 9:25).
ㅇ네게 악이 있음을 보지 못하였으니 - '네가 정직하여'와 동일한 의미이다. 아기스는 이같은 동의어를 반복 언급함으로써 다윗의 의로움을 강조적으로  칭찬하고 있다.  한편 아기스의 이러한 말을 통해 우리는 당시 이방 사회에 거주하던 다윗이 어떠한 생활을 하였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즉 비록 이방 땅으로 피신하는 실수를 저지르기는 했으나, 다윗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답게 신중하게 생활했다. 
이 사실은 우리 기독교인들에게 다음과 같은 성경적 삶의 원리를 일깨워 준다. (1) 성도의 어느 곳에 처하든지 정직하고 진실한 삶으로써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어야 한다(마 5:13-16). (2) 하나님을 믿지 않고, 또한 까다롭게 대하는 상전들에게도 성도는 하나님을 섬기듯 진실하게 봉사해야 한다(벧전 2:18). 이처럼 언제 어느 곳에서든지 실천적  삶으로써 하나님을 바로 섬기는 자가 산 믿음을 소유한 자요(약 2:26), 하나님과 사람에게  칭찬을 받는 자이다(롬 14:18).
ㅇ군중(마하네) - 군대의 진영 혹은 진지(陣地)를 가리킨다(4:3;13:17;17:1).
7 너는 돌이켜 평안히 가서 블레셋 사람의 장관들에게 거슬려 보이게 말라
ㅇ너는 돌이켜 평안히 가서 - 사실 이 같은 아기스의 명령은, 다윗에게는 매우 기다려지던 바였다. 사실 다윗은 그때 블레셋 군대와 합세하여 자신의 동족 이스라엘과 절대로 싸우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어떻게 해서든지 그 전투에 참여치 않으려 노력했었다(28:2). 그러므로 그때 다윗을 시글락으로 되돌려 보내기 위하여 이같은 말을 하는 가드 왕 아기스는 다윗에 대하여 대단히 미안한 마음을 갖고 있었겠지만, 그 당사자인 다윗은 하나님의 섭리에 감사하였을 것이고, 내심으로 쾌재를 불렀을것이다.
ㅇ장관들에게 거슬려 보이게 말라 - 문자적으로는 '장관들의 눈에 악함이 보이지 않도록'이란 뜻이다. 이러한 당부는 아기스가 다윗을 앞으로도 계속 자신의 '사역자'로 삼고 싶은 마음을 갖고 있었음을 시사해 준다. 즉 만일 다윗이 다른 블레셋 방백들에 의하여 더이상 눈 밖에 나게 된다면, 아기스도 다윗을 계속 자신의 휘하에 두고 싶더라도 그럴 수 없기 때문이다.
8 다윗이 아기스에게 이르되 내가 무엇을 하였나이까 내가 당신의 앞에 오늘까지 있는 동안에 당신이 종에게서 무엇을 보셨기에 나로 가서 내 주 왕의 원수와 싸우지 못하게 하시나이까
ㅇ본절에 나타난 바 다윗의 이 항변은 분명히 그의 양심에 반(反)하는 것이었다. 사실 다윗은 앞으로 이스라엘의 왕이 되어야 하는 입장에서, 이스라엘과 전투를 할 수도 없었고, 또한 전투를 하고 싶은 마음도 결코 없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윗이 이같은 거짓된 말을 한 까닭은, (1) 블레셋 방백들의 의심으로부터 자신을 변호하고, (2) 또한 아기스가 한 말의 진실성을 시험해 보기 위함이었다(Keil). 만일 그때 다윗이 잠잠히 있었다면, 아기스는 다윗을 고소한 다른 방백들의 말(4, 5절)을 참말로 받아들였을 가능성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ㅇ내 주 왕의 원수 - 여기서 '내 주'는 다윗의 의도를 따른다면, 사울을 가리킬 것이 분명하다(McCarter). 이처럼 다윗은 '내 주 왕'을 내심 사울에게 적용시켰지만, 아기스는 다윗의 교묘한 말투에 의하여 '내 주 왕'을 자신에 대한 명칭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다윗은 이같은 말투를 사용함으로써, 아기스가 자신에 대하여 일말의 의심도 품지 못하도록 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양심에 대해서도 가책이 없도록 하려고 하였다. 
한편 여기서 다윗이 특별히 '내 주'라는 말을 사용한 것은, 블레셋의 다른 방백들이 사울을 다윗의 '주'로 말했던 것<4절>에 항의하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아무튼 다윗의 이같은 말투는 상대를 속이려는 의도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에서 '명예스럽지 못한 테크닉'(word-play)이라 볼 수 있다.
9 아기스가 다윗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네가 내 목전에 하나님의 사자 같이 선한 것을 내가 아나 블레셋 사람의 방백들은 말하기를 그가 우리와 함께 전장에 올라가지 못하리라 하니
ㅇ하나님의 사자 같이 선한 - 여기서 '하나님의 사자'는 '하나님의 천사'를 의미하는 데, 아기스의 이같은 표현은 하나님께서 보낸 천사는 항상 인간들을 위하여 좋은 일만 한다는 일반적 관념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따라서 이 표현은 다윗의 정직함과 의로움을 강조하는 말임이 분명하다.
ㅇ내가 아나 - 여기의 '아나'(야다)는 체험적으로 깨달아 자세히 아는 것을 뜻하는 단어이다.
ㅇ그가...전장에 올라가지 못하리라 - 이것은 블레셋의 집결지 '아벡'으로부터 그들이 진을 칠 곳인 '수넴'까지 진군하는 것을 가리킨다(28:4). 
한편 '올라간다'는 말은 북상(北上)한다는 뜻과 아울러 블레셋의 진지인 '수넴'이 '모레 언덕'이라는 고지대(高地帶)에 자리잡고 있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10 그런즉 너는 너와 함께 온 네 주의 신하들로 더불어 새벽에 일어나라 너희는 새벽에 일어나서 밝거든 곧 떠나라
ㅇ네 주의 신하들 - 이것은 말할 나위 없이 다윗의 휘하 병력들을 가리킨다. 그런데 여기서 이들을 이와 같이 표현한 까닭은, 다윗의 추종 병력들이 원래는 사울의 휘하에 있었으나  이후 다윗에게로 넘어온 자들이었기 때문일 것이다(22:2;23:13;대상12:19-21).
ㅇ새벽에 일어나라 - 이는 블레셋의 방백들이 다윗의 참전(參戰)에 대하여 이의(異議)를 제기한 때가 거의 밤이었음을 암시해 준다.
ㅇ밝거든 곧 떠나라 - 이같은 아기스의 명령은 다윗으로 하여금 블레셋의 다른 방백들의 눈에 더이상 띄지 않도록 하려는 의도에 따른 것이었다. 즉 날이 밝은 그 다음날 아침에도 다윗이 블레셋 방백들에 의하여 발견된다면, 다윗은 또다시 그들의 구설수에 오르게 되고, 급기야는 블레셋 땅에서 완전히 떠나야만 하는 상황에 도달할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7절).
11 이에 다윗이 자기 사람들로 더불어 일찌기 아침에 일어나서 떠나 블레셋 사람의 땅으로 돌아가고 블레셋 사람은 이스르엘로 올라가니라 
ㅇ다윗이...블레셋 사람의 땅으로 돌아가고 - 다윗이 이처럼 자신의 동족 이스라엘과 싸우지 않고 시글락으로 되돌아가게 된 것은, 블레셋 방백들로 하여금 다윗의 참전에 대하여 이의를 제기케 하신 하나님의 섭리 때문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역사하심으로써, (1) 다윗이 장차 이스라엘의 왕위에 오르는 데 있어 장애가 없도록 하셨으며, (2) 또한 때마침 아말렉의 침공에 의하여 납치되었던 자신의 가족등을 구출하도록 역사하신 것이다.
ㅇ일찌기 아침에 일어나서 떠나 - 다윗은 진퇴 양난의 위기에서 결국 동족  이스라엘에게도 전혀 죄를 짓지 아니하고, 또한 아기스 왕에게도 전혀 의심받지 않은 상태로 자신의 거처인 시글락으로 떠났다. 한편, 본절은 B.C. 1010년에 발발한 길보아 전투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데, 이 전투를 계획했던 블레셋 왕 아기스는 그당시 다윗을 상당히 신임하고 있었던 터라 다윗을 그 전투에 참가시키려 했던 것이다. 따라서 다윗은 어떠한 행동을 취하든 결과는 반역자가 될 수 밖에 없는 궁지에 몰리고 말았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비록 당신의 뜻을 저버리고 이방인의 신하가 되어 있던 다윗이었지만, 그를 들어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사용하시려는 당신의 계획을 포기하지 않으신다는 표시로 절박한 상황에 놓여 있던 다윗에게 그 전투에 참전할 수 없도록 섭리하셨던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같은 사실들을 통해 (1) 인간의 실수와 절망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당신의 뜻을 성취해 가신다는 것(마 26:14-29)과 (2) 당신이 택하신 자를 결코(그가 범죄의 자리에 있다 하더라도) 버리지 않으실 뿐 아니라 피할 길을 예비해 주신다는 진리를 배울 수 있다(고전 10:13).
ㅇ이스르엘 - 1절 주석 참조


이전글 : 삼상28
다음글 : 삼상30..주께 직접 여쭈어 듣고 바로 그대로 준행하기!!...긍휼히 여기는자 복이 있나니...성령충만한리더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