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22.06.27 작성자 : 양시영
제   목 : 하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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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알려주신 <성경적, 히브리적> 묵상, 하가HAGAH)]] 

@1.KEY QUESTION.....하나님은 가나안을 앞둔 여호수아에게 왜 ‘하가(HAGAH)’를 강조하셨을까요? (1)

하나님이 가나안 땅을 약속하셨습니다. 하지만 그 땅을 이미 점령하고 있던 원주민과 전쟁을 치러야만 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여호수아가 모세의 뒤를 이어 백만 명이 넘는 이스라엘 백성을 이끕니다. 분명 두려움과 부담이 있었을 것입니다. 

온통 눈앞에 닥친 현실에 매몰되어 있던 여호수아에게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은 전쟁 비책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전쟁과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묵상’ 얘기를 꺼내셨습니다.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안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며 네가 형통하리라 (여호수아 1:8)”

여기에 사용된 ‘묵상하다’가 바로 히브리어로 ‘하가(HAGAH)’입니다. 성경에서 ‘하가’란 단어가 처음 사용된 곳이기도 합니다. 

이 당시 여러 언어가 존재했지만, 하나님이 자신의 마음을 알리기 위해 선택한 언어는 히브리어였습니다. 

하나님은 약속의 땅을 앞두고 있던 여호수아에게 특별한 메시지를 전해주고 싶으셨습니다. 그리고 수많은 히브리어 단어 중 ‘하가’란 단어를 선택하셨습니다. 

여호수아에게 ‘하가’가 필요했다면 오늘날 약속의 분깃을 향해 전진하는 우리에게도 ‘하가’가 필요할 것입니다. 

‘하가’란 단어를 선택하신 하나님의 의도를 아는 것이 중요해 보입니다.

다른 종교에서도 묵상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자기계발 분야에서도 묵상을 강조합니다. 일반적으로 묵상이란 단어를 들으면 소리 없이 깊이 생각하는 것을 떠올립니다. 

국어사전에서는 묵상을 다음과 같이 정의합니다.((묵상(默想)=눈을 감고 말없이 마음속으로 생각함))

하지만 하나님이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신 ‘하가’는 눈을 감고 말없이 마음속으로 깊이 생각하는 것과는 전혀 다릅니다. 

‘하가’는 입을 움직이고 중얼거려 소리를 내는 것에 초점이 맞춰진 단어입니다. 

만일 아무 소리 없이 조용히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생각하기 원하셨다면 ‘하가’ 대신 다른 단어를 선택하지 않으셨을까요? 

이미 ‘묵상’이란 단어가 가진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하나님이 여호수아에게 강조하시려던 의도에 초점을 맞추고자 히브리어 ‘하가(HAGAH)’를 그대로 사용할 예정입니다.

가나안...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가나안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골 1:12~14......12. 우리로 하여금 빛 가운데서 성도의 기업의 부분을 얻기에 합당하게 하신 아버지께 감사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13.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14.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속량 곧 죄 사함을 얻었도다”

가나안은 좋은 땅입니다. 주님이 함께 하시는 약속의 땅입니다. 바로 이 땅이 이스라엘 자손들의 분깃(portion, 할당받은 땅)이요 기업이었습니다. 

그들은 흑암의 권세가 붙들던 애굽을 탈출하여 좋은 땅으로 옮겨졌습니다. 

바울은 골로새서를 쓰면서 모형론(模型論, typology)에 근거하여 바로와 애굽으로 예표된 ‘흑암의 권세’에서 좋은 땅(가나안)으로 예표된 ‘아들의 나라’로 옮겨진 성도를 언급하며 그들에게 할당된 ‘기업의 부분’이 있음으로 인해 감사하기를 원했습니다.

다른 말로 얘기하면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이 약속한 분깃이 있듯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모든 것을 포함한 그리스도 안에서의 분깃이 있다는 것입니다. 

약속의 분깃을 얻기 위해 가나안에 들어가려면 ‘하가’가 매우 중요한 것임을 말씀하신 하나님의 의도를 알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약속의 분깃은 그들만의 얘기가 아닌 나에게도 해당하는 얘기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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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을 머금은 말씀의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를 측량할 수 있을까요? 만일 말씀이 식상하다고 느껴진다면 그것은 말씀이 아닌 내 마음이 식상해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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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KEY QUESTION...가나안에 들어오기를 더 원하신 분은 주님이었지요. 그런 주님이 가나안을 앞둔 여호수아에게 지키기 어려운 것(하가)을 강조하셨을까요?

1. 하가의 첫 단추

말씀을 통해 무언가를 얻으려고 하는 것은 자기중심적인 태도입니다. 

때로는 위로를, 때로는 깨달음을, 때로는 지식을. 하지만 ‘하가’는 지식과 깨달음을 목적으로 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하가의 과정에서 얻는 부산물일 뿐. 사랑한다면 상대방을 통해 얻으려고 하는 게 먼저가 아니죠. 

더 가까워지고 싶고, 더 알고 싶고, 더 교제하고 싶은 마음이 첫 번째일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상대방을 통해 무언가를 얻는다면 그것은 부산물일 뿐 목적일 수는 없습니다. 하가도 다르지 않습니다. 

주님은 말씀이요 인격입니다. 말씀이신 주님과 더 가까워지고 싶고, 더 알고 싶고, 더 교제하고 싶어 ‘하가’를 할 때 그 과정에서 위로와 깨달음과 지식이 따라올 수 있습니다.

말씀이신 주님을 사랑하고, 그 말씀이 내 안에 거하게 하고, 그 말씀이 내게 말하는 것에 귀를 기울이려는 태도. 이 태도가 모든 방법을 넘어서게 합니다. 

진짜 사랑한다면 모든 제약을 넘어서듯이요. ‘하가’가 어렵다고 한다면 말씀을 교제의 대상이 아닌 자신에게 도움을 줄 그 무엇으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일 겁니다. 

누군가와 교제하려면 배려하고, 존중하고, 다름을 인정하고, 함께 하는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는 말씀을 배려해야 하며, 존중해야 하며, 내가 추구하던 가치관과 다를 수 있음을 인정해야 하며, 함께 하는 시간을 갖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말씀이 인격인데, 어찌 이런 과정 없이 친해질 수 있겠습니까? 

말씀과 교제하고 싶은 마음만 있다면 결코 ‘하가’는 어렵지 않습니다. 먼저 사귀기를 원하는 주님이 결코 어렵게 만들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만 돌이킨다면요.

2. 하가는 되새김질하는 것입니다

되새김질하는 동물을 반추동물이라 부릅니다. 

‘젖소’는 대표적인 반추동물이죠. 사람과 달리 위가 4개나 있습니다. 젖소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가리지 않고 최대한 먹어 둡니다. 

4개 위 중 첫 번째 위에 이렇게 먹은 것을 보관합니다. 보관하던 음식을 입안으로 끄집어 올려 되새김질한 후 다시 다른 위로 보냅니다. 

이런 과정을 반복하여 젖소는 풀에 있던 진액을 영양가 있는 우유로 바꿉니다. 소는 풀을 잘 먹고 다시 끄집어 올려 되새김질할 뿐인데 그 결과로 우유를 얻습니다. 

우유를 얻으려면 되새김질을 해야만 합니다. 되새김질은 ‘하가’를 설명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비유입니다. 

말씀이 처음부터 우유로 바뀌지 않습니다. 영양가 있는 우유를 얻으려면 기회 있을 때마다 말씀을 듣고 보관해야 합니다. 

‘하가’의 질을 결정하는 것은 재료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하지만 재료를 보관하고 있고, 많이 안다고 해서 말씀으로부터 우유를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많은 말씀을 듣고, 은혜도 많이 받았음에도 삶이 쉽게 변하지 않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말씀을 되새김질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되새김질 없이는 평안, 기쁨, 건강, 형통과 같은 우유를 얻을 수 없습니다. 그 순간 큰 감동이 있었던 말씀도 되새김질을 하지 않으면 스쳐 지나갈 뿐입니다. 

그 말씀이 내 삶을 변화시키지 못합니다. 하지만 감동이 있던 말씀을 계속해서 되새김질을 한다면 그 말씀은 내 삶에 영향을 미칩니다. 

나를 변화시키는 것은 되새김질하여 우유로 바꾼 말씀입니다.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운전 중입니다. 길이 꽉 막혀 있습니다. 약속 시각에 늦을 것 같아 마음이 불안합니다. 

멈춤 신호가 켜지기 전에 교차로를 건너야겠단 생각에 속도를 내고 있는데 바로 내 앞에서 멈춤 신호가 켜졌습니다. 늦었다는 불안함 때문에 마음이 불편해졌습니다. 

불편함이란 일차적 감정이 먼저 올라온 상태에서 신호등이 빨리 바뀌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신호등을 계속 응시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무엇을 보게 되면 반드시 무엇을 한다’처럼 ‘어떤 상황에 부닥치면 반드시 하가를 한다’와 같은 하가를 위한 트리거(trigger)를 설계해 보란 글을 읽고 ‘신호등을 볼 때마다 하가를 해야지’ 결심했던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그 주간에 ‘하가’하던 말씀은 시편 23편이었습니다. 

불편한 마음 가운데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중얼거려 봅니다. 

시편 23편1절 전체도 아닌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부분만 끄집어 올려 입안에서 데굴데굴 굴리며 되새김질했습니다. 

이미 하가하던 말씀을 끄집어 올려야겠다 생각했을 때부터 불편한 감정이 말씀 앞에 머리를 숙이고 더는 나에게 무엇인가를 요구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신호가 바뀌고 계속 운전을 하며 가는 동안에도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를 반복했습니다. 

그런데 몸은 운전하고 있지만, 불현듯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아… 그렇지… 주님이 나의 목자이신데… 다른 사람의 목자가 아닌 바로 <나>의 목자이신데… 내가 어떤 상황에 있든 내 상황을 가장 잘 아시는 <나>의 목자이신데…’란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길이 막혀 비록 약속에 늦는다 할지라도 바로 <나>의 목자이신 주님이 그 어떤 부족함 없이 나를 이끄시리란 믿음이 들어오자 한순간 평안함이 밀려 옵니다. 

길은 여전히 꽉 막혀있지만, 그 상황과 상관없는 평안을 경험합니다. 말씀을 되새김질하여 평안이란 우유를 얻은 예입니다.

3. 되새김질하는 것, 그게 사랑입니다

누군가를 사랑하고 친밀히 교제하기 원한다면 따로 시간을 내 함께 만나 추억과 재료를 쌓아야 합니다. 그 재료의 질이 일상생활에 영향을 미칩니다. 

너무 소중했던 시간을 되새김질하는 것만으로 충만한 감정을 가져다줍니다. 이 감정이 충만할수록 그 어떤 것도 사랑을 방해할 수 없습니다. 

하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따로 시간을 내 말씀과 함께 좋은 추억과 재료를 쌓아야 합니다. 그 재료의 질이 하가의 질을 결정합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길을 걷다가도, 설거지를 하다가도, 사람을 만나기 위해 기다리다가도, 신호가 멈춘 그 짧은 순간에도 너무 소중했던 재료를 끄집어 올려 되새김질을 계속 해야 말씀을 통한 사랑의 결과를 경험합니다.

말씀 안에 이미 결과가 들어있지만, 되새김질 없이는 그 결과를 경험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사실 ‘하가’는 이게 전부입니다. 

인격이신 말씀이 너무 소중해서 아주 평범한, 아주 사소한 일상의 특정 한 시점에 그 말씀을 끄집어 올려 되새김질하는 것. 그게 사랑입니다. 그 사랑이 나를 변화시킵니다.

가나안에 들어오기를 더 원하신 주님이 여호수아에게 주야로 ‘하가’할 것을 강조하셨다면 그것이 어려운 것은 아닐 겁니다. 

만일 ‘하가’가 어렵다면 그것은 인격이신 말씀과의 친밀한 사귐이 없기 때문이겠죠. 

가나안을 앞둔 여호수아에게 주야로 하가할 것을 강조하신 이유는 결국 중얼거리는 행위가 아닌 말씀을 향한 마음 중심을 보기 위함이었습니다. 

진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면 주야로 생각하지 않는 것이 더 어려운 일일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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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KEY QUESTION...하나님은 수 많은 히브리어 단어 중 왜 소리를 강조한 '하가'를 선택하셨을까요?

하나님이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신 히브리어 ‘하가’에는 ‘생각하다, 사색하다’의 뜻도 들어 있긴 합니다. 

하지만 이 단어는 ‘중얼거리다(murmur, mutter)’ 혹은 ‘신음을 내다(moan)’로 더 많이 사용하는 단어입니다. 즉 소리와 깊은 연관이 있는 단어입니다. 

조용히 눈을 감고 말없이 마음속으로 생각하는 묵상의 국어사전 정의와는 사뭇 다릅니다. 

‘하가’를 사용한 다른 성경 구절을 살펴보면 하가의 근원적 의미를 더 잘 알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너희에게 말하기를 주절거리며 속살거리는(하가) 신접한 자와 마술사에게 물으라……Seek unto them that have familiar spirits, and unto wizards that peep, and that mutter:

…길하레셋 건포도 떡을 위하여 그들이 슬퍼하며(하가) 심히 근심하리니…for the foundations of Kirhareseth shall ye mourn; surely they are stricken.

…큰 사자나 젊은 사자가 자기의 먹이를 움키고 으르렁거릴(하가) 때에……Like as the lion and the young lion roaring on his prey…

나는 제비 같이, 학 같이 지저귀며 비둘기 같이 슬피 울며(하가)…Like a crane or a swallow, so did I chatter: I did mourn as a dove:…

나의 혀가 주의 의를 말하며(하가) 종일토록 주를 찬송하리이다 And my tongue shall speak of thy righteousness and of thy praise all the day long.

'하가'를 사용한 성경 구절 보기...

‘하가’를 사용한 다른 성경 구절들을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 이사야 8:19 - 속살(중얼)거리는 * 이사야 16:7 - 슬퍼하며  * 이사야 31:4 - 으르렁거릴  * 이사야 38:14 - 슬피 울며 * 시편 35:28 - 말하며

위 구절들에서 ‘중얼거리다(mutter), 슬퍼하다(mourn), 으르렁거리다(roar), 슬피 울다(mourn), 말하다(speak)’의 히브리어는 모두 ‘하가’입니다. 

묵상과 어울리지 않는 사자와 비둘기 울음소리에도 ‘하가’를 사용했습니다. 

하나님이 여호수아에게 강조하신 묵상(默想)은 눈감고 조용히 말씀을 깊이 생각하라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사자가 먹이를 움켜잡고 으르렁대듯이, 사자처럼 말씀을 움켜잡고 으르렁대며 중얼거리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곧 ‘하가’입니다.

‘하가’를 사용한 다른 성경 구절을 통해 ‘하가’가 소리와 깊은 연관이 있는 것을 봤습니다. 

하나님이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신 묵상에 있어 ‘소리’가 매우 중요한 요소임을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만일 아무 소리 없이 조용히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생각하기 원하셨다면 ‘하가’ 대신 다른 단어를 선택하셨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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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KEY QUESTION...하나님은 가나안을 앞둔 여호수아에게 왜 '하가(HAGAH)'를 강조하셨을까요? (2)

1. ‘하가’할 말씀 안에는 하나님의 소리가 담겨 있습니다

하나님이 빛이 있으라 말씀하시니 빛이 있었습니다. 

‘소리’로 세상을 창조하신 거죠. 세상을 창조하셨던 하나님의 그 ‘소리’가 말씀 안에 들어 있다는 것이 놀랍지 않습니까? 하가는 이 하나님의 소리를 풀어내는 작업입니다.

예수님은 말씀을 ‘영’이요 ‘생명’이라고 하셨습니다. 말씀을 중얼거릴 때 처음부터 감동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말씀 자체에 능력이 있음을 믿고 딱딱한 말씀을 씹듯이 계속 중얼거립니다. 

내가 하가를 하면서 중얼 거리는 소리 진동이 말씀 안에 감춰져 있던 하나님의 소리가 갖고 있던 고유 진동수와 일치하는 어느 한순간 공명이 일어납니다. 

이때 단단한 말씀 껍질을 깨고 말씀 안에 있는 영과 생명이 새어 나오기 시작합니다. 

이렇게 영과 생명이 새어 나올 때 말씀 안에 있는 계시가 풀립니다. 그 계시가 곧 영의 생각입니다.

* 딱딱한 코코넛 껍질과 딱딱한 말씀 껍질?..* 딱딱한 코코넛 껍질.. * 코코넛 안에 있는 생명..*딱딱한 말씀 껍질..* 말씀 안에 있는 생명

코코넛은 아주 단단한 껍질로 둘러싸여 있습니다. 껍질을 깨지 않는 이상 코코넛을 맛볼 수 없습니다. 

내가 코코넛을 맛볼 수 없다고 해서 단단한 껍질로 둘러싸인 이 코코넛을 코코넛이 아니라고 할 수 없습니다. 이것은 틀림없이 코코넛입니다.

2. ‘하가’를 강조하신 이유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여러 차례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다른 대안을 주신 게 아니라 ‘하가’를 강조하십니다. 왜 그랬을까요?

일반적으로 자아는 생각의 주도권을 쉽게 내려놓지 않습니다. 생각하는 것이 곧 자아니까요. 생각을 내려놓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상황과 사건을 해석하는 생각이 바뀔 때 두려움이란 감정도 바뀌는 것을 경험합니다. 그렇듯 생각이 바뀌면 감정과 태도와 해석과 행동 모두 바뀔 수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생각이 누구에게도 쉽게 복종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신기한 것은 이 생각이 살아있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 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한 하나님의 말씀을 만나면 고개를 숙인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여호수아에게 ‘하가’를 강조하신 이유는 두려운 감정을 일으키는 생각에 말씀이 영향을 미치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말씀은 하나님의 소리를 머금은 진리 그 자체지만 딱딱합니다. 이해하기도 어렵고 소화하기도 어렵습니다. 

여호수아에게 ‘하가’하라고 하신 데에는 이유가 있을 것이란 믿음을 갖고 믿음으로 순종하여 딱딱한 말씀을 소리내 중얼거립니다. 

감동이나 깨달음이 없어도 말씀 자체에 능력이 있음을 믿고 계속 중얼거리며 녹여낼 때 말씀 자체의 소리가 내 ‘이성(理性)’에 부딪힙니다. 

처음에는 아무 변화가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계속 말씀 그 자체의 소리가 이성에 충격을 가할 때 어느 한순간 이성이 말씀 앞에 굴복하는 것을 경험합니다.

두려움에 놓인 사람이 있습니다. 상황이 자신의 감정을 압도합니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믿음으로 말씀 한 구절을 택하여 계속 ‘하가’하기 시작합니다. 

처음에는 두려움의 감정이 말씀보다 컸습니다. 그러나 말씀으로 상황을 밀어내겠다는 마음으로 ‘하가’하는 것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하가’하는 말씀을 입에서 떨어뜨리지 않고 계속 중얼거리는 어느 한순간 말씀의 한 부분이 툭 튀어나와 내 심령에 부딪힙니다. 

뻣뻣하던 내 생각이 한순간 그 말씀 앞에 복종함을 경험합니다. 이성이 말씀 앞에 굴복하는 순간 감정을 붙들고 있던 두려움도 사라지는 것을 경험합니다. 

예를 들면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를 시종일관 입에서 떨어뜨리지 않고 중얼거리던 어느 한순간 지식처럼 알고 있던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란 말씀이 나를 멈춰 세우고 나와 함께 하고 계신 주님의 실제를 강한 확신처럼 느끼게 하는 식입니다. 말씀을 ‘하가’하는 사람에게 자주 일어나는 일입니다. 

하지만 조용히 한두 번 묵상하는 것만으로는 경험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일상생활에서 그 말씀을 입에서 떨어뜨리지 않고 계속 중얼거려보지 않는다면 마치 우연처럼 빛을 드러내는 말씀을 경험하기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신 후 주야로 말씀을 ‘하가’할 것에 관해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가’를 통해 말씀이 생각에 영향을 미칠 기회를 얻는 것입니다.

‘하가’는 기록된 말씀(로고스)에서 직접 퍼 올린 소리(레마)입니다. 말씀 안에 담긴 하나님의 음성을 내 이성에 들려주는 것과 같습니다. 

욥기 37장 2절은 ‘하가’를 다음과 같이 사용합니다.

"하나님의 음성 곧 그의 입에서 나오는 소리(헤게, from하가)를 똗똑히 들으라(욥37: 2)"

모든 죄와 시험은 생각에서 비롯합니다. 생각을 지키는 가장 좋은 방법은 말씀을 씹는 것입니다. 

딱딱한 말씀을 되새김질하듯 중얼거리며 말씀을 씹을 때 말씀 안에 있는 하나님의 생명이 풀려 내 생각을 적십니다. 

이 ‘하가’의 소리가 감정과 행동과 태도에 영향을 미치는 육신의 생각을 잠식할 때 비로소 영의 생각이 활성화됩니다.

보이지 않는 생각에서 승리해야 물리적인 가나안 전쟁에서 승리합니다. 하나님이 여호수아에게 밤낮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하가’하라고 강조하신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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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말씀을 ‘하가’하며 풀어낸 기도야 말로 하나님께 가장 잘 상달됩니다. Prayer that is born of meditation upon the Word of God is the prayer that soars upward most easily to God’s listening ears. – R.A. 토레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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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KEY QUESTION....그렇다면 '하가(HAGAH)'는 일반 묵상과 어떤 부분이 비슷하고 어떤 부분이 다를까요?

기존 ‘묵상’이란 단어가 가진 고정관념에서 벗어나기 위해 하나님이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셨던 ‘하가(HAGAH)’란 단어를 그대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가는 일반 묵상과 어떤 부분이 비슷하고 어떤 부분이 다를까요? 가장 다른 부분은 역시 암송을 전제로 중얼거려야 하는 데 있습니다.

1. 중얼거려야 합니다

‘하가’가 일반 묵상과 가장 다른 부분은 소리를 내 중얼거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내 마음이 내 속에서 뜨거워서 작은 소리로 읊조릴(하기그 from하가) 때에 불이 붙으니 나의 혀로 말하기를 (시편 39:3) My heart grew hot within me, and as I meditated, the fire burned; then I spoke with my tongue: (NIV)”

마음 속에 불이 붙은 뜨거운 감동으로 중얼거리며 말씀을 읊조릴 때 자아를 붙드는 고집센 나의 이성이 잠잠해집니다. 

그 중얼거리는 말씀을 재료삼아 성령님의 계시가 임할 확률이 높아집니다.

2. 언제, 어디서나 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가’는 시간을 정해두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QT 시간, 기도 시간, 성경을 펴 놓는 시간에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일상의 모든 순간이 ‘하가’를 할 수 있는 시간입니다.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가)하여 그 안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며 네가 형통하리라 (여호수아 1:8)”

감동 받은 말씀을 되새김질 하지 않으면 받은 감동을 쉽게 잊어버립니다. 

감동을 유지하고 더 큰 계시를 사모한다면 그 구절을 수시로 ‘하가’하여 입에서 떠나지 않게 해야 합니다. 

걸어 다니면서, 회의 전에, 설거지하면서, 버스 안에서, 신호 대기 중에, 잠자기 전에, 일어나자마자와 같은 일상의 모든 순간이 ‘하가’할 만한 순간입니다. 

심지어 상대방과 대화를 하다 발생하는 아주 짧은 몇 초의 공백 마저도 ‘하가’를 할 수 있는 시간입니다. 늘 의식하고 있는 사람에게는 모든 순간이 하가의 대상입니다. 

이렇게 할 때 비로소 주님이 여호수아에게 ‘말씀이 입에서 떠나지 않게 하라’고 하신 의미를 이해하게 됩니다. 

마음이 간절한 사람에게는 ‘시간’과 ‘장소’가 ‘하가’의 장벽이 될 수 없습니다.

3. 암송해야 합니다

일반 묵상은 암송이 필수는 아닙니다. 하지만 ‘하가’는 암송을 기본 전제로 합니다. 

‘시간’과 ‘장소’ 상관없이 언제 어디서나 ‘하가’하려면 말씀을 암송하고 있는 것이 훨씬 유리하기 때문입니다. 

운전하면서 성경책을 펴고 묵상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하지만 말씀을 암송하고 있다면 그 말씀을 운전하면서 중얼거리는 것은 할 수 있습니다. 

말씀을 암송하고 있으면 화장실에서도 잠깐 ‘하가’를 하는 것이 어렵지 않습니다. 건널목 건너기 전 신호를 기다리면서도 말씀을 ‘하가’할 수 있습니다. 

암송하고 있는 구절의 한 단어만 갖고도 중얼거리며 훌륭한 ‘하가’를 누릴 수 있습니다. 

암송이 ‘하가’는 아닙니다. 하지만 암송이 ‘하가’의 시작은 맞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이 암송을 통해 토라 말씀을 세대에서 세대로 전했습니다. 

암송은 ‘하가’에 있어 매우 중요한 시작 지점입니다.

예수님은 ‘하가’란 단어를 이미 알고 계셨습니다. 일상 속에서 혼자 말씀을 중얼거리고 계신 예수님의 모습을 상상해 봅니다. 

늘 말씀을 소중히 여기고, 말씀과 함께 사셨던 예수님이 공생애 시작 전 마귀의 시험을 받습니다. 이 때 세 번 모두 신명기 말씀을 끄찝어 올려 마귀를 물리치셨습니다. 

마귀의 공격이 있을 때 성경책을 펴가며 말씀을 찾지 않으셨습니다. 평소 하가하던, 암송한 말씀으로 마귀를 물리치셨습니다. 

말씀을 암송하고 있다면 어떤 특정 상황에서 성령님이 적절하게 꺼내 사용할 수 있는 강력한 도구가 됩니다. 예수님도 그렇게 하셨음을 기억해야 겠습니다.

4. 말씀을 기도로 연결해야 합니다

‘하가’의 목적은 깨닫고 많이 아는 것이 아닙니다. ‘하가’를 통해 감춰져 있던 주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그 주님이 내게 나타나 주님의 마음을 알고 내 마음이 뜨거워져 반응할 수 밖에 없는 것. 모든 시작이 주로부터 말미암기를 갈망하는 마음. 이것이 하가를 하는 이유입니다. 

일상의 삶에서 말씀을 수시로 중얼거리다 보면 어느 순간 ‘하가’하는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마음이 훅 들어올 때가 있습니다. 그때 기도해야 합니다. 

가장 좋은 기도는 말씀으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암송하고 있으면 암송한 말씀을 기도로 풀어내기가 훨씬 쉽습니다. 

말씀을 기도로 풀어내며 중얼거리는 것. 이 자체가 훌륭한 ‘하가’입니다. 

내 생각으로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말씀을 녹여 그것을 기도로 올릴 때 계시가 풀어집니다. 이렇듯 ‘하가’는 말씀과 기도와 계시를 연결하는 역할을 합니다.

5. 깊이 사색해야 합니다

‘하가’를 피상적으로 하다 보면 암송하는 것으로 끝날 때가 있습니다. 중얼거리다 말고 어느새 끝납니다. 

영의 깊은 영역에서 하나님의 마음을 길어 올리려면 ‘하가’의 깊이도 더 깊어져야 합니다. 이전 ‘하가’에서 누리던 만족으로 하나님의 깊이를 제한하면 안됩니다. 

‘하가’의 끝은 어디일까요? 하나님 마음의 거리 만큼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은 어느 정도 깊이일까요? 영원 만큼이나 깊습니다. 

‘하가’를 통해 하나님의 마음을 알았다고 단정할 수 없는 이유입니다. 

우리는 영원 앞에, 말씀 앞에 겸손해야 합니다. 내가 조금 아는 자라고 생각했지만 영원을 머금은 말씀의 계층적 깊이를 경험할 때 그 어떤 것도 모르는 자임을 깨닫게 됩니다. ‘하가’의 삶이 깊어질수록 더욱 그러합니다. 이미 잘 알고 있는 말씀 조차도 ‘하가’를 하다보면 완전히 새로운 각도에서 깨달음을 얻습니다. 

우리는 그 어떤 말씀도 이미 안다고 생각하며 ‘하가’를 해선 안됩니다. 이미 알고 있는 말씀 조차도 마치 처음 보는 말씀처럼 대해야 합니다. 

내가 이미 알고 있는 것은 낡아지지만 성령님은 늘 새롭습니다. 그 성령님이 날마다 말씀으로 나를 새롭게 하기 원하십니다. 

익숙한 말씀을 하가할 때 조차 이 말씀에 무엇인가 더 깊은 것이 있다는 믿음으로 깊이 사색해야 합니다. 

이것은 말씀의 한 단어 혹은 짧은 한 문장만으로 하루 종일 ‘하가’하며 사색할 수도 있음을 의미합니다. 그 어떤 것도 그냥 기록된 말씀은 없습니다. 

이미 안다고 생각한 것에 더 깊은 보물이 숨어있을 수 있음을 의식해야 합니다. 

‘하가’를 통해 이런 보물을 길어 올리려면 계란 프라이 요리같이 빨리 하고 다음으로 넘어가는 것이 아니라 몇날 몇 일을 푹 고아야 깊은 맛이 우러나는 곰국같이 한 말씀을 갖고 오랜 시간을 붙들고 있어야 할 때도 있음을 기억해야 겠습니다.

6. 감동을 기록합니다

소리는 사라집니다. 생각도 쉽게 사라집니다. ‘하가’하며 받은 감동도 마찬가지입니다. ‘하가’를 하며 받은 감동이 있다면 꼭 기록으로 남기는 습관을 가지십시오. 

받은 계시와 감동을 한 곳에 기록하고, 모아놓은 기록을 정기적으로 살펴보다 보면 큰 의미를 부여하지 못했던 점과 같은 기록들이 어느새 서로 연결되어 내 인생을 이끌고 계신 하나님의 궤적을 보는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됩니다. 만일 기록하지 않았다면 결코 알기 어려웠을 내용들입니다. 

또한 하가하는 구절과 그 감동을 기록하다 보면 중얼거릴 때와는 또 다른 계시가 풀리는 것을 경험합니다. 이런 기록을 데일리하가에서는 ‘저널링(Journaling)’이라고 부릅니다.

7. 감동을 나눕니다

‘하가’는 말씀에서 생명을 길어 올리는 과정입니다. 생명의 영역은 나눌 때 고갈되지 않고 늘어납니다. 

하가를 하며 받은 감동을 겸손과 온유와 절제 아래 다른 사람과 나눌 때 그 감동은 배가 됩니다. 

특별히 같은 커뮤니티에 속한 사람들끼리 동일한 구절로 한 주간 ‘하가’를 한 후 서로 만나 일상에서 경험한 은혜를 나눌 때 그 말씀이 더 풍성해지는 것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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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을 묵상하는 것을 아는 배우지 못한 사람이 묵상하는 것을 모르는 많이 배운 사람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압니다.  An unschooled man who knows how to meditate upon the Lord has learned far more than the man with the highest education who does not know how to meditate. – Charles Stanley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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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가 실행, 어떻게 시작하는 것이 좋을까]]]]===

@1. KEY QUESTION...'하가'가 무엇인지 이해했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시작하면 좋을까요?

하가를 처음 시작하는 사람은 우선 이것만 기억하셔도 되겠습니다. 하가는 얼마나 많은 구절을 암송하느냐에 초점을 맞추지 않습니다. 

한 절의 말씀이라도 그 말씀이 내 삶에 얼마나 영향을 미치는가에 초점을 맞춥니다. 그래서 데일리하가는 한 절의 말씀으로 일주일 사는 것을 돕는 과정을 제공하기도 합니다.

시편 16편 8절 말씀 한 절로 일주일 동안 ‘하가’한다고 생각해 보겠습니다. 

"내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심이여 그가 나의 오른쪽에 계시므로 내가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 (시편 16:8) I have set the LORD always before me; because he is at my right hand, I shall not be shaken. (ESV)”

우선 이 말씀을 틈나는 대로 암송합니다. 그리고 암송한 말씀을 일상에서 언제 어디서든, 어떻게든 수시로 중얼거립니다. 

말씀이 익숙해질수록 아래와 같은 상상과 활동을 해보세요. 말씀을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묵상하라고 하신 주님의 권면을 살아내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하가(HAGAH)....말씀 구절을 암송하고 일상에서 수시로 중얼거린다

^*상처난 곳에 연고를 잘 스며들게 바르듯 내 심령에 말씀을 잘 스며들게 바른다는 생각으로 중얼거려 보십시오.

^*연고를 바를 때 직선 방향으로 한 번 바르고 끝내지 않습니다. 손가락을 원형 모양으로 돌려가며 잘 스며들 때까지 바릅니다. 말씀도 잘 스며들게 바르려면 이런 방식으로 중얼거려야 합니다. 시편 16편 8절 말씀을 예로 들면, ‘내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심이여(한 번 쭈욱 바르고), 내가 여호와를 항상, 내가 여호와를 항상, 내가 여호와를 항상(말씀을 원형 모양으로 돌린다 생각하며 반복하고), 항상…항상… 항상… (특정 단어에 감동이 있으면 집중적으로 그 단어를 반복하며 스며들게 합니다)’

^*내게 너무 익숙한 말씀일지라도, 내게 너무 어려운 말씀일지라도, 내 상황과 전혀 맞지 않는다고 여겨지는 말씀일지라도 그것은 나의 편견일 뿐입니다. 

그 어떤 말씀도 그 말씀 자체에 내 생활을 변화시킬 수 있는 무한한 능력이 있습니다. 내가 말씀을 이해하고 해석해서 내 삶에 적용하려는 시도를 멈춥니다. 내가 비록 이해를 못 할지라도 말씀 자체에 능력이 있기에 그저 순종하는 마음으로 계속 중얼거립니다. 내 지각과 감정과 상관없이 하가를 멈추지 않는 어느 순간 그 말씀이 내 삶을 해석하고 적용하는 빛을 비춰주는 것을 상상해 보십시오.

^말씀을 언제, 어디서든 암송하며 중얼거립니다. (더 자세한 내용 보기)

^말씀을 어떻게든 암송하며 중얼거립니다. (더 자세한 내용 보기)

^하가를 더 풍성하게 해줄 재료를 확보합니다. (더 자세한 내용 보기)

###FOCUS

하가의 기본은 암송입니다. 하지만 암송 자체가 하가는 아닙니다. 하가에 있어 말씀을 암송하며 중얼거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지만 말씀을 중얼거리기만 한다고 해서 하나님이 의도하신 하가를 제대로 했다고 단정 지을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하가를 하면서 말씀을 암송하고 중얼거리는 것에 초점을 맞추는 이유는 말씀을 매개로 성령님이 내 삶에 영향을 미치실 수 있게 하기 위함입니다. 

하가를 할 때마다 이 말씀을 매개로 인격이신 말씀과 교제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암송하며 중얼거리기를 소망합니다.

하가에 있어 암송이 왜 필요할까요? 하가의 성공은 일상의 모든 순간에 말씀이신 주님을 모시는 여부에 달렸습니다. 

걸어 다니는 것과 같은 일상에서 하가를 하기 위해 성경책을 펼 수는 없습니다. 일상에서 말씀을 하가하려면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암기하는 것은 아니더라도 그 말씀을 보지 않고 어느 정도 입술로 풀어낼 수 있을 정도로 암송하고 있는 것이 큰 도움이 됩니다.

예수님도 말씀을 암송하셨을까요? 예수님도 일상에서 말씀을 중얼거리셨을까요? 유대인이셨던 예수님은 하나님이 왜 여호수아에게 ‘하가’를 강조하셨는지와 ‘하가’를 향한 하나님의 의도를 정확히 알고 계셨을 겁니다. 예수님은 ‘하가’를 어떻게 하셨을지 궁금하다면 아래 글을 읽어 보세요.

***하가’를 하신 예수님***예수님도 하가를 하셨을까요?

예수님은 공생애를 앞두고 성령에 이끌려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십니다. 사십 일을 밤낮으로 금식하신 후 주리신 예수님께 마귀가 나아와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명하여 이 돌들로 떡 덩이가 되게 하라’고 시험합니다. 예수님의 일상에 마귀가 기회를 엿보고 공격한 것입니다. 마귀를 물리치기 위해 예수님은 성경책을 찾지 않으셨습니다. 대신 암송하고 있던 신명기 8장 3절 말씀을 입으로 끄집어 올려 마귀의 공격을 무력화시키십니다.

"너를 낮추시며 너를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신 8:3)"

이후에도 두 번의 공격이 더 있었지만 모두 신명기 말씀을 끄집어 올려 마귀의 공격을 물리치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와 똑같은 인성을 가지셨습니다. 우리와 똑같은 마귀의 시험을 받으십니다. 하지만 다른 것으로 이 시험을 이기신 게 아니라 늘 암송하며 중얼거리며 하가를 하셨을 그 말씀으로 물리치신 것이 아닐까요? 

(이런 상상도 해 봅니다.... 마귀의 시험이 있을 것을 생각하지 않고 그 주간 예수님은 신명기 말씀을 중심으로 하가를 하고 계셨습니다... 하가를 하던 말씀이 마귀의 공격에 대응하는 말씀이라고 전혀 생각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내가 말씀을 이해하고 해석하며 삶에 적용하는 것이 아니라 말씀 자체에 능력이 있음을 믿고 말씀이 내 삶을 해석하고 기회를 얻기 바라는 마음으로 하고 계셨을 당시 마침 마귀가 예수님을 공격한 겁니다. 예수님이 하가하던 말씀이 순간 영감을 줍니다. 그리고 그 말씀으로 마귀를 물리치십니다. 만일 예수님이 그 주간에 신명기 말씀이 아닌 다른 말씀을 하가하고 계셨다면 그 다른 말씀으로 마귀를 물리치치 않으셨을까요? 물론 어디까지나 상상입니다)

하지만 어떤 말씀이라도 말씀 자체에 능력이 있음을 믿고 순종하며 하가하는 자에게 자주 일어나는 일이기에 그런 상상도 가능하다고 봅니다.

===하가 실행의 단계들==

하가의 유익은 일상에서 드러납니다. 말씀을 인식하는 것만큼 말씀이 내 삶에 기회를 얻기 때문입니다. 일상에서 언제, 어디서나, 어떻게든 하가를 하고자 할 때 기억하면 도움이 될 4단계를 소개합니다. 하가를 하기 위한 자세한 방법이라기보단 하가의 중심을 잡아줄 4가지 단계라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일상에서 ‘하가’를 하기 위한 4단계 ::: 인식하고, 올리고, 씹고, 기다린다!

-----인식합니다!

((태도))

하가의 성공은 ‘언제, 어디서든, 어떻게든’에 달려 있습니다. 인격이신 주님을 존중하는 첫 번째는 말씀으로 나와 함께 하고 계심을 인식하는 겁니다. 의식하지 않으면 말씀이신 주님이 내 삶에 영향을 미칠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가의 첫 단추도 나와 함께 하고 계신 말씀을 인식하는 데서 시작합니다. 말씀이신 주님은 연인(戀人)만큼이나 실제입니다. 모든 관계는 상대의 존재를 인식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합니다.

((실행))

길을 걷다가도, 전철을 타고 목적지를 향해 가다가도, 화장실에서 거울을 보다가도, 회의하다가도, 스마트폰을 보고 있다가도 하가를 떠올려야 합니다. 가장 사소하고 평범한 순간일지라도 내가 인식하는 그 자리에 주님은 언제나 함께 하십니다. 인식이 하가의 ‘반(半)’입니다. 보이지 않는 것을 경험하는 첫 번째는 존재의 인식과 믿음입니다.

----올립니다.

((태도))

되새김질의 기본은 안에 있는 것을 입으로 끄집어 올리는 겁니다. 하가하려는 말씀을 입까지 올리지 못하면 하가는 할 수가 없습니다. 받은 은혜(여물)를 생명의 실제(우유)로 바꾸는 것은 되새김질(하가)입니다. 평범한 일상에서 하가하고 있는 말씀을 인식하는 것과 그것을 입까지 끄집어 올리는 것이 가장 큰 영적 전쟁임을 기억해야겠습니다.

((실행))

하가의 기본은 암송입니다. 완벽하게 외우지는 못하더라도 보지 않고 그 말씀이 의미하는 것을 자신의 말로 표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렇게 안에 들어와 있는 말씀을 되새김질하듯 입까지 끄집어 올립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말씀을 인식하고 그 말씀을 입까지 끄집어 올리는 것이 곧 말씀이신 주님을 내 앞에 모시는 것입니다(시편16:8).

----씹습니다.

((태도))

되새김질을 통해 우유를 만들려면 한번이 아닌 계속 씹어야 합니다. 씹을수록 말씀에서 물이 흐릅니다. 그 어떤 말씀도 무한하고 영원하며 능력이 있습니다. 지금 하가하고 있는 말씀도 예외일 수 없습니다. 이 믿음으로 멈추지 않고 중얼거리며 씹고 있는 어느 한순간 성령님이 기회를 얻어 빛을 비춰주십니다. 그때의 감동과 계시가 역사를 일으키는 믿음을 산출합니다. 

((실행))

단단한 껍질 안에 있는 코코넛 생명의 물을 마시려면 그 껍질을 깨야 합니다. 단단한 말씀 껍질을 깨는 가장 좋은 방법은 생명의 물이 나올 때까지 계속 반복하여 중얼거리며 씹는 것입니다.

말씀 자체가 능력이며 내가 이 말씀을 계속 씹을 때 그 안에 있는 물이 나올 것이란 확신을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때 선형(線型)적으로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이렇게 암송하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여호와는 나의, 여호와는 나의,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내게,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부족함이 없으리로다…’와 같이 단어와 구를 반복하며 그 각각에 잠시 멈춰 음미하는 가운데 성령님의 인도를 받으려는 마음을 갖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것을 반복하며 감동이 있을 때 자연스레 그 말씀을 풀어 기도로 연결할 수 있습니다.

----기다립니다!

((태도))

(1) 말씀을 인식하고, 끄집어 올리고, 계속 씹는 것을 통해 큰 감동이 있다 할지라도 그 모든 주체는 여전히 ‘나’일 수 있습니다. 말씀을 통해 깨닫는 것이 클수록 주어의 자리에서 내려와야 합니다. 그래서 계속 중얼거리며 하가를 하다가도 잠시 멈춰 영이신 주님이 주어의 자리에 서시도록 기다리려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내가 말씀을 읽는 것이 아니라 말씀이 나와 내 상황을 읽을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내가 주체가 되면 나의 한계만큼만 역사하지만, 말씀이 주체가 되면 내 한계를 초월한 말씀의 역사를 경험합니다.

((실행))

예수님을 내 삶의 모든 영역에 주인(the LORD)으로 모시려는 시도가 주되심(LORDSHIP)의 핵심입니다.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시는 가장 실제적인 실천 중 하나가 말씀을 주어로 모시는 삶입니다. 내가 말씀을 읽는 것이 아니라 말씀이 나를 읽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내가 말씀을 하가한 후 기다리는 과정이 필요함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하가를 하는 가장 큰 이유는 주님과 사귀고 주님의 마음을 알기 위함입니다. 그러려면 내가 해석한 말씀이 아닌 말씀이 내 삶을 해석한 것을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려면 ‘주님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란 마음으로 기다리는 것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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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KEY QUESTION...일상에서 '하가'를 하는 구체적인 예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1)

언제든(WHEN) 어디서나(WHERE) – 시간과 장소 상관없이...%%안으로 들어온 말씀을 삶 속에서 녹여내는 과정

하가의 핵심은 말씀을 입에 그림자처럼 달고 다니면서(Shadowing) 하나님의 마음을 구하며 성령님께 주도권을 내어 드리는 것입니다. 

하가는 특정 시간에 하는 것이 아니라 기회 될 때마다, 특정 장소에서만 하는 것이 아니라 어디서든, 지겹거나 하기 싫다고 생각이 들 때면 어떤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야 이런 훈련 과정을 통해 여호수아처럼 말씀을 입에서 떨어뜨리지 않고 주야로 하가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말씀이신 주님과 동행하는 삶이 아닐까요? 그래야 내 생각으로 살지 않고 말씀을 통해 주시는 하나님의 생각과 지혜로 살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언제든(WHEN) 어디서나(WHERE) – 시간과 장소 상관없이

1. 일어나자마자

아침에 눈을 뜨는 것은 어둠에서 빛으로, 죽음에서 생명으로의 전환입니다. 

매일 아침 눈뜰 때마다 이 세상에 없던 새로운 하루가 창조되어 눈앞에 나타납니다. 얼마나 경이로운 일인지요. 

이 하루를 우리에게 선물로 주신 주님께 아침마다 감사와 찬양으로 높여 드립시다. 모든 과거의 부정적인 것은 다 떨쳐 버리십시오.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아멘.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가장 먼저 말씀을 중얼거리며 하루를 시작해 보는 것은 어떨지요? 내 숨이 밖으로 나오기도 전에 말씀의 숨이 세상을 향해 던져지게 하는 것은 어떨지요? 

이번 주는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시편 16:8 말씀 ‘내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심이여… 내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심이여…’를 반복해서 중얼거리며 하루를 시작해 보십시오. 이 훈련을 며칠 하고 나면 말씀을 중얼거리며 깨는 자신을 보고 놀랄 것입니다. 말씀이신 주님과 함께 잠에서 깨는 것, 생각만 해도 행복하지 않습니까?

2. 잠자기 전에

오늘 하루가 행복했습니까? 아니면 힘들었나요? 좋은 것들만 추려 선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실패와 수치와 낙망까지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주님을 찬양합시다.

잠자기 전 모든 것을 주님의 발 앞에 내려놓읍시다. 그날의 수고와 근심과 염려는 물론 그날의 은혜와 기쁨과 영광까지도요. 

잠자기 전 나만의 ‘리츄얼(ritual, 儀式)’을 계발하는 것은 어떨까요? 

하루를 마감하며 과거의 후회와 미래의 염려가 나를 붙들지 않도록 모든 것을 주님 앞에 리셋(reset)시킨다고 고백해 봅시다. 

그리고 새로운 날에 대한 소망을 품어 봅니다. 틀림없이 그날 그날 족한 은혜를 주실 것이라 기대합니다. 그리고 한 주간의 말씀을 ‘하가’하며 잠들어 보십시오. 

복잡한 생각과 함께 잠드는 것이 아니라 말씀을 중얼거리며 잠드는 겁니다. 

말씀이신 주님과 함께 잠들고 꿈에서도 말씀이신 주님과 함께 하는 것을 상상해보세요. 주님이 얼마나 기뻐하실까요? 

시편 내용을 보면 다윗은 이렇게 말씀을 읊조리며 잠이 든 사람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자에게 잠을 주시는 말씀의 능력을 경험해 보십시오. 잠을 자는 동안에 상한 마음과 몸까지 치유시키실 주님을 기대해 보십시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입니다.

3. 걸어 다닐 때

‘하가’를 하기 가장 좋은 시간은 걸어 다닐 때입니다. 성경 암송대회에 나가려고 말씀을 암기하는 것은 아닐 겁니다. 

성경책을 보기 어려운 상황에서도 말씀 자체를 중얼거리며 묵상할 수 있기 때문이겠죠. 

출퇴근할 때, 사람을 만나러 나갈 때, 식사하러 가면서, 산책하면서 암기한 말씀을 중얼거리고, 읊조리며, ‘하가’해 보십시오. 

발걸음 리듬에 맞춰 ‘하가’할 때 심장 박동과 함께 혈액을 타고 말씀이 흐르는 것을 상상해 보세요. 말씀에서 갓 짠 보혈이 내 천연적 피를 덮을 것입니다. 

걸을 기회가 있을 때마다 혼자가 아님을 의식하십시오. 말씀이신 주님이 언제나 나와 함께 하기 원하십니다. 

걸으면서 ‘하가’를 한다는 것은 말씀이신 주님과 동행(同行)하는 것입니다. 업무 중, 집안일 중, 공부 중일 때 일부러라도 잠시 짬을 내 걷는 시간을 가져 볼 것을 꼭 추천해 드리고 싶습니다. 목적을 정해 두고 바쁘게 걷는 것이 아니라 순전히 말씀이신 주님과 교제하고 싶은 갈망으로 걸어보십시오. 

걸으면서 말씀을 입에 올립니다. ‘저는 정말 주님과 친밀히 교제하고 싶어요. 주님을 더 알고 싶어요.’란 마음으로 입에 올린 말씀을 중얼거립니다. 

말씀을 중얼거릴 때 영적인 에너지가 흘러나옵니다. 걸으면서 ‘하가’를 하는 것은 몸과 영혼 모두에 건강이 될 것입니다.

4. 미팅 직전에

하루에도 수많은 만남이 있습니다. 믿는 사람과의 미팅일 수도, 믿지 않는 사람과의 미팅일 수도 있고, 공식적인 미팅일 수도, 편한 사람들과의 미팅일 수도 있습니다. 

이제 막 태어난 아기의 모든 순간순간에 부모는 관심을 기울입니다. 주님도 이런 마음으로 나의 모든 것에 관심을 두고 계십니다. 

당연히 내가 만나는 모든 만남에도 관심을 두고 계십니다. 

모든 만남 전에 ‘내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심이여… 주님… 제가 주님을 이 만남에 모십니다…’라고 하가하며 고백해 보십시오. 

이렇게 말씀을 하가하고 기도하는데 10초도 안 걸립니다. 영의 영역은 내가 믿는 만큼 실재입니다. 

아주 짧은 고백이지만 주님은 들으시고 그 만남 가운데 함께 하십니다. 주님은 모든 것의 주인이십니다.

5. 일하는 중간마다

일에 몰입해 있으면 성령님이 개입할 틈이 없습니다. 원고를 쓰다가도, 문서 작업을 하다가도, 디자인에 몰두하다가도, 설거지하다가도, 아이들을 가르치다가도 중간중간 말씀을 떠올려 보십시오. 이 짧은 순간은 사실 몇 초도 되지 않습니다. 내 물리적인 눈으로는 여전히 컴퓨터를 보고 있고, 그릇을 보고 있고, 아이들을 보고 있지만, 마음의 눈은 언제든 주님을 향할 수 있습니다. 훈련만 된다면, 어렵지 않습니다. ‘주님을 이 자리에 모십니다’란 고백은 아주 순간적이지만 영원(永遠)과 맞닿게 합니다. 하가를 통해 일상의 멈춤(pause) 버튼을 누를 수 있다면 주님이 내 시간의 보좌 위에 ‘주(主, Lord)’로 좌정하실 것입니다. 주를 향한 마음의 갈망을 품고 이 멈춤의 시간을 훈련한다면 일하는 중간중간 하가를 하는 것이 어렵지 않음을 깨닫습니다. 이 과정을 통해 모든 것의 ‘주되심(Lordship)’을 인정하는 태도를 배웁니다.

6. 식사하면서

식사 전후는 ‘하가’하기 좋은 시간입니다. 예수님은 내 살과 피를 먹고 마시지 않으면 자신과 관계가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말씀은 영의 양식입니다. 육신의 욕구를 채울 때 영의 갈망도 함께 떠올리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지금까지 먹은 것이 곧 육신의 ‘나’입니다(You are what you eat!). 

무엇을 먹는지가 내 육신의 성분을 결정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나오게 하신 후 하나님은 애굽의 음식에 길든 그들의 식성을 다루셨습니다. 

그리고 광야 생활 내내 ‘말씀’을 상징하는 ‘만나’를 먹게 하셨습니다. 

육은 땅의 음식이 필요하지만, 영은 하늘의 음식이 필요합니다. 우리의 속사람이 말씀의 능력으로 강건해질 필요가 있습니다. 

식사 시간마다 ‘하가’하는 말씀이 나를 둘러싼 모든 염려와 스트레스를 삼켜 버리는 상상을 해보십시오. 

식사 전 빵으로만 살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아가게 해달라고 기도하십시오. 하루에 몇 번이나 기도하시는지요? 적어도 식사 시간 때만큼은 ‘하가’를 놓치지 마시기 바랍니다. 짧은 시간이라도 ‘하가’하는 말씀을 통해 지혜와 계시의 영을 부어 달라고 기도해 보십시오. 

수련회 가면 식사 전 성경 암송을 해야 밥을 먹었습니다. 이제는 시켜서가 아니라 주님을 너무 사랑하여 자원하는 기쁨으로 식사 전 하가를 하지 않으면 밥을 먹지 않겠다고 다짐해보는 것은 어떨지요?

7. 어려운 상황 중에

어떤 어려운 상황에서든 구원을 베푸시는 주님의 이름을 부르십시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로마서10:13)”

문제를 바라보지 않고 문제 위에 계신 주님을 바라봐야 합니다. 

베드로가 주님을 바라볼 때 물 위를 걸을 수 있었으나 자신을 삼킬 것 같은 파도를 바라볼 때 물속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주님은 물 위에 계십니다. 

나를 삼킬 것 같은 문제 위에 계십니다. 문제를 바라보면 문제에 빠지지만, 주님을 바라보면 그 문제 위를 걸을 수 있습니다. 

주님을 바라보는 가장 좋은 방법은 무엇일까요? 말씀이신 주님을 하가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하가하며 영의 눈으로 주님을 바라보십시오. 

불안과 염려와 걱정을 제압하시며 그 위를 걷고 계신 주님을 바라보십시오. 

문제를 내가 해결하려 하면 그 문제에 대한 책임은 내가 져야 합니다. 하지만 그 문제를 주님께 맡기면 그 문제에 대한 책임은 주님이 지십니다.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베드로전서 5:7)”

내가 밟고 있는 땅의 관점으로 문제를 보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이 문제를 어떻게 보고 계실까요? 하늘 위에서 이 문제를 바라보고 계신 하나님의 믿음을 구하십시오. 나의 믿음으로는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지만, 하나님의 믿음이 들어올 때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믿음이 언제 들어옵니까? 믿음은 들음에서 옵니다.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습니다(로마서 10:17). 말

씀을 통해 그 문제를 이길 수 있는 믿음이 들어 오도록 소리로 중얼거리며 하가하십시오. 그 하가의 소리를 타고 한순간 문제를 푸는 믿음의 열쇠가 들어올 것입니다.

8. 운전 중에

운전을 정기적으로 한다면, 자동차 안 만큼 하나님과 교제 나누기 좋은 장소는 없습니다. 큰 소리로 찬양하고 기도해도 뭐라 할 사람이 아무도 없는 곳입니다. 

자동차는 내 태도에 따라 가장 최상의 예배 장소로 만들 수 있는 곳입니다. 자동차 안에서 하가하는 말씀을 큰 소리로 선포해보십시오. 

그 소리에 마음 중심을 실어 보십시오. 그 소리가 자동차의 공기를 바꿀 것입니다. 말씀 자체에 능력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임재가 하가 소리를 타고 그 자리에 풀릴 것입니다. 말씀이 영이요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선포하는 것만큼 좋은 기도는 없습니다. 말씀 자체를 소리 내 풀면 그것이 가장 좋은 기도입니다. 

자기 생각으로 기도하기보다 암송하고 있는 여러 말씀을 계속 선포하십시오. 선포하는 중에 감동 주시는 것이 있으면 그 감동을 고백과 기도로 바꿔 보십시오. 

이런 흐름을 타고 목적지 도착 전까지 하가로 계속 기도하다 보면 자동차가 곧 지성소임을 경험합니다. 자동차는 하나님과 나만의 추억을 쌓는 가장 귀한 예배 장소입니다. 

신호 대기 중에 우두커니 기다리지 마십시오. 멈춤 신호가 켜지면 ‘하가’하라는 뜻입니다. ‘내가 여호와를 지금 이 순간, 이 자리에… 항상 모십니다’ 고백해 보세요. 자동차 핸들은 내가 붙들고 있지만 내 인생의 핸들은 주님이 붙들고 계심을 깨달을 것입니다.

9. 가장 사소한 일 가운데

예수님의 이름이 또 하나 있습니다. 바로 ‘임마누엘’입니다. 그 뜻은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은 만유에 편재(遍在, omnipresence)하십니다. 그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의 영으로 누추한 우리 안에 거하기로 하셨습니다. 

거듭났다는 것은 이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 거하심을 의미합니다. 그 영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완전히 새로운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 영의 이름이 바로 임마누엘입니다. 

내가 어디를 가든, 무엇을 하든, 어떤 상황에서든 나와 함께 하십니다. 

임신한 여인은 모든 상황에서 조심합니다. 임신 초기 태동이 없어도 자신이 임신한 것을 의식합니다. 

자신과 언제나 함께 하는 태중의 생명을 늘 인식하기 때문에 먹는 것, 말하는 것 등 모든 상황에서 조심합니다. 

거듭난 자 안에 하나님의 생명(조에, zoe)이 있습니다. 생명을 품은 자는 생명을 인식해야 합니다. 이 생명을 인식하는 것이 곧 생명의 통제를 받는 것입니다. 

이 생명의 영에 통제를 받는 것을 ‘영적(프뉴마티코스, 靈的)’이라고 합니다. 

임신한 여인이 모든 순간 태중의 생명에 통제를 받듯, 하나님은 내 인생의 모든 순간이 하나님의 생명의 영에 통제받기를 원하십니다. 이것이 바로 영적인 삶입니다. 

이 생명의 영에 통제를 받는 순간 하나님이 임마누엘로 드러나십니다. 자신이 생각하기에 가장 사소한 일을 떠올려 보십시오. 

신문 보는 일? 손톱 깎는 일? 드라마를 보는 일? 설거지? 화장실에 앉아 있는 일? 과연 이런 일에도 주님이 함께 하실까 하는 바로 그곳에 주님은 함께 하십니다. 

그동안 인식을 못 했을 뿐입니다. 인식하는 만큼 나타나십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히11:6)"

화초에 물을 주며 왜 하가할 생각을 해보지 않았는지요? 손톱을 깎으며 왜 하가할 생각을 못 해봤는지요? 자신이 생각할 때 가장 사소하다고 여겨지는 일 중에 태중의 생명을 인식한 여인처럼 하나님의 생명을 인식하며 하가하는 훈련을 의도적으로 해보십시오. 이런 훈련을 통해 가장 사소한 순간에도 나와 함께 하시는 주님의 임재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10. 모든 시간 속에서

나는 영적인 존재입니다. 주님은 영이십니다. 영과 영의 연결은 한순간입니다. 

이성적으로, 감정적으로 준비하고 노력해서 절차에 따라 연결하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은 마음 중심을 꿰뚫어 보십니다. 

주를 향한 마음속 갈망이 주님을 터치할 때 주님은 나의 마음을 터치하십니다. 

주님이 아니고서는 그 어떤 것도 할 수 없는 자인 것처럼 마음 중심으로 ‘주님~’이라고 부를 때 영과 영의 연결은 0.5초도 안 걸릴 수 있습니다. 

주님은 내 모든 시간과 공간에서 나와 함께 하십니다.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심이여’란 마음 중심의 고백에 반응하기 위해 언제나 대기 중이십니다. 말씀을 입에서 떨어뜨리지 말고 주야로 ‘하가’하라고 하신 분은 하나님입니다. 나를 귀찮게 하려고 하신 말씀이 아닐 겁니다. 하나님 자신을 위해 하신 말씀이 아닐 겁니다. 나를 도와주고 싶으셔서입니다. 내가 ‘하가’할 때 영이 도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모든 시간 속에서 ‘하가’하길 원하시는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이 내 심령 가운데 부어지길 기도합시다. 말씀 자체가 내 모든 시간과 삶 전부를 주장할 때 하나님은 나의 삶을 형통하게 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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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KEY QUESTION....일상에서 '하가'를 포기하지 않고 계속 방법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하가의 핵심은 말씀을 입에 그림자처럼 달고 다니면서(Shadowing) 하나님의 마음을 구하며 성령님께 주도권을 내어 드리는 것입니다. 

하가는 특정 시간에 하는 것이 아니라 기회 될 때마다, 특정 장소에서만 하는 것이 아니라 어디서든, 지겹거나 하기 싫다고 생각이 들 때면 어떤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야 이런 훈련 과정을 통해 여호수아처럼 말씀을 입에서 떨어뜨리지 않고 주야로 하가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말씀이신 주님과 동행하는 삶이 아닐까요? 그래야 내 생각으로 살지 않고 말씀을 통해 주시는 하나님의 생각과 지혜로 살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어떤 방법으로든(HOW) – 형편과 상황 상관없이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쉬지 말고 ‘하가’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호수아는 언제까지 순종했을까요? 며칠 열심히 하다 그만뒀을까요? 여호수아는 백십 세까지 장수하며 큰 축복을 누렸습니다. 하가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되고 형통하리라고 한 하나님의 약속이 그대로 여호수아에게 이뤄졌습니다. 여호수아는 죽는 그 순간까지도 시간과 장소 상관없이 말씀을 중얼거리며 하가했을 것이란 상상이 무리일까요? 여호수아라고 매 순간 하가하는 것이 즐겁지는 않았을 겁니다. 여호수아 역시 어떤 상황 속에서도 말씀을 하가하기 위한 자신만의 노하우를 갖고 있었을 것이라 상상해 봅니다. 시편 1:2는 하나님의 말씀을 즐거워하여 그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가 복 있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시편 1:2)”

시편 저자는 ‘즐거워하여’라고 했습니다. 똑같은 일을 해도 어떤 사람은 모든 것에 불평하고, 어떤 사람은 모든 것에 즐거워합니다. 그 일을 대하는 태도가 감정을 결정합니다. 천재는 노력하는 자를 못 이기고, 노력하는 자는 즐기는 자를 못 이깁니다. 

말씀이 ‘즐거워하여’라고 했으면 내가 즐거워할 수 있음을 믿고 시작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감정이 생길 때까지 기다리지 마십시오. 믿으면 감정이 따라옵니다. 말씀을 끊임없이 내 입술에서 떨어뜨리지 않고 그림자처럼 붙어 있게(shadowing) 할 만한 자신만의 방법들을 꾸준히 찾아보십시오. 다음은 몇 가지 예 입니다.

1. 부착물

포스트잇이나 종이에 ‘하가’하려는 말씀을 써보십시오. 컴퓨터, 냉장고, 문 앞, 화장실 등 보이는 곳곳에 붙입니다. 사람은 환경의 영향을 받습니다. 눈에 보일 때마다 하가를 하겠다고 스스로 다짐해보십시오. 눈에 보이는 부착물에 정성을 쏟으면 그만큼 애착이 가기도 합니다. 부착물을 만드는 시간도 하가와 함께 할 수 있습니다. 만드는 과정 자체가 귀한 시간일 수 있는 겁니다.

2. 스마트폰 배경화면

‘하가’하려는 말씀을 스마트폰 배경화면으로 만들어 보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스마트폰만큼 접근성이 좋은 것도 없을 겁니다. 하가 말씀을 배경 화면으로 하면 언제 어디서든 볼 수 있습니다. 포토샵과 같은 프로그램을 활용해도 좋고, 종이에 쓴 것을 사진 찍어 배경화면으로 활용해도 좋겠습니다.

3. 말씀 카드

스마트폰이 나오기 전 말씀을 암송할 때 가장 많이 사용한 것은 역시 말씀 카드였습니다. 디지털 기술이 점점 더 발전해 가고 있지만, 손으로 쓴 말씀 카드는 또 다른 감성을 제공합니다. 말씀 카드를 만드는 동안 외울 수 있다는 장점도 있습니다. 하가를 하며 떠오르는 소중한 사람에게 말씀 카드를 만들어 선물하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4. 말씀을 음성으로 듣기

성경 말씀을 들을 방법이 많아졌습니다. 하가를 진행하는 구절들만 따로 음성 파일로 만들어 보십시오. 출퇴근이나 이동 중에 반복해서 들으면 효과적으로 암송할 수 있습니다. 음성 파일을 구하기 어렵다면? 자신이 직접 녹음해서 듣고 다니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내 안에 성우 본능이 있을지 누가 알겠습니까?

5. 알람 활용

의식하지 않으면 흘러가는 대로 삽니다. 하가를 하기로 마음을 먹었어도 바쁘게 살다 보면 생각조차 못 하고 하루를 마무리할 때도 있습니다. 다니엘은 하루 세 번 시간을 정하여 창문을 열고 기도했습니다. 다니엘처럼 하루 세 번 시간을 정해보면 어떨까요? 나만의 하가 시간을 정하여 알람을 맞춰 보십시오. 알람과 함께 나만의 하가 시간을 갖고 짧게 기도한다면 시간의 주권을 주님께 드릴 수 있을 것입니다.

6. 함께 하기

하가를 할 때 가장 좋은 것은 주변에 있는 사람들과 함께 하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같은 구절로 하가하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하가를 진행하며 받은 은혜를 서로 나눌 때 말씀의 힘은 배가 됩니다. 또한, 서로를 통해 하가를 계속하게 하는 큰 동기부여를 받습니다. 특별히 같은 공간에 있는 사람이라면 식사 시간 등의 특정 시간을 정하여 함께 암송하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7. 자신만의 트리거(TRIGGER) 계발

개에게 먹이를 주기 직전 종을 치면 나중에 종만 쳐도 침을 흘립니다. 이를 ‘조건반사’라고 하죠. 어떤 상황 속에서도 ‘하가’를 하려 할 때 이 조건반사 원리를 활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어떤 특정 조건일 때 반드시 ‘하가’를 하는 겁니다. 무엇인가를 일으키는 특정 조건을 트리거(trigger)라 부릅니다. ‘하가’에 대한 자신만의 트리거(trigger)를 설계해보십시오. 예를 들어 ‘이빨을 닦을 때’, ‘샤워를 할 때’, ‘버스를 탈 때’, ‘일하기 싫을 때’ 등의 조건을 설정하고 그런 조건이 발생하면 무조건 ‘하가’를 하겠다고 마음먹는 것이죠. 이런 특정 조건에서 무조건 하가를 하는 훈련을 일정 기간 반복하다 보면 그런 조건일 때 ‘하가’를 하지 않으면 스스로 어색함을 느낍니다. 어느새 습관이 됐기 때문입니다. 이런 이유로 습관을 바꾸기 위한 훈련 방법으로 트리거 설계를 많이 이용합니다. 자신만의 트리거를 설계해보십시오. 매우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나올 수 있습니다.

다음은 트리거 설계 샘플입니다.

8. 하가 트랙커(TRACKER) 활용

자신만의 트리거를 효율적으로 관리하고 습관으로 정착시키려는 방법으로 ‘트랙커(tracker)’를 많이 이용합니다. 트랙커는 설계한 트리거를 일자별로 잘 수행하고 있는지 한눈에 보이도록 관리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설거지를 하면 무조건 하가를 한다’고 트리거를 설계했으면 일자별로 잘한 날에 스탬프를 찍거나 예쁜 스티커를 붙여 줍니다. 3일 정도 열심히 하루도 거르지 않고 빈칸을 채우다 보면 약간의 고비를 만나도 채워진 칸을 보며 일주일을 끝까지 도전해봐야겠단 도전 의식을 갖게 됩니다. 빈칸을 다 채운 후에는 스스로를 칭찬하고 자신에게 작은 선물을 주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다음은 하가 트랙커 샘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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