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심, 회개와 금식에의 도전.
#생명에 이르는 회개, 읽을 말씀 행2:37-42
-참생명에 이르게 하는, 거듭남(중생)의 표상인 회개는 곧 구원을 얻게 하는, 깨우쳐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는다. 이로 말미암아 죄인이 자기 죄를 참으로 알고, 또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깨달아, 자기 죄를 원통히 여기고 미워함으로 죄에서 떠나 사랑과 긍휼의 하나님께로 완전히 돌이키고, 그분을 신뢰하고 끝까지 따르기로 마음에 굳게 결심하고 마음과 힘을 다하여 새로이 믿음의 순종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이 최초의 단회적인 참된 회개와 믿음을 <회심>이라고 특별히 말한다. 주예수님께서 성도에게 주시는 바, 성령의 기름부으심을 위한 첫단계이다. 자신이 참으로 죄인됨과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만이 자신을 구원하심과 그 예수님을 나의 주, 나의 하나님으로 영접하며 고백하는 회심과 동시에 이미 성령은 그 영에 임하셔서 내주하시는데, 이는 성령의 열매의 나타남으로 삶에서 증명되어지고, 임재하심 후에 순종으로 말미암는 지속적인 충만하심외에 기름부으심이 있다. 물론 어려서부터 신앙가운데서 자란 이들의 경우에는 회심의 순간이 언제였는지 알 수 없을 때도 있다. 사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지금 내가 성령의 충만케하심을 따라서 그리스도 품안에 거하고 있느냐, 즉 (매일 세례의 영적의미를 심령에 재연함으로써) 매일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 하나님의 비전에 대한 묵상(관상)과 참여, 곧 예배가운데서 살고 있느냐가 더 중요하다. 기름부으심에는 순서에 따라 깨끗게하심(성결, 정결)=택하심의 기름부음, 제사장으로서의 기름부음, 왕으로서의 권세를 위한 기름부음의 3중 기름부으심이 있다. 그러나 성령의 임재하심, 그 후에도 지속적으로 회개의 삶이 있어야 한다. 날마다 십자가에서 죄가 그쳤고, 성도 개개인이 육체에 빚진 것이 없으며, 죄가 더이상 자신과 상관없음과, 타락한 옛사람이 -타락한 자아와 언행심사가, 육체가 육적본성과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음을 선언할 뿐아니라 예수님의 보혈로 씻김받은 선한 양심, 깨어있는 양심이 파숫군이 되어 생각과 마음의 동기를 감찰하고 경고할 수있도록 하고, 그 근본에서부터 죄의 경향을 대적하며 회개해야 한다. 그것은 성도안에 성령의 임재하심을 유지하도록 한다. 그러나 알면서 의도적으로 범하는 죄는 임재하심과 기름부으심을 위축시키고 떠나가게 한다. 회개의 여지가 없음을 잊지말고 짐짓죄를 대적해야 한다. <히6:4-6 한번 비췸을 얻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예한바 되고 :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 :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케 할 수 없나니 이는 자기가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현저히 욕을 보임이라> ...삶의 모든 영역, 언행심사의 크고 작은 모든 잘못이 드러나야 한다. 성령님, 주예수님의 빛가운데 드러나도록 하여 주옵소서. 깨닫게 하여 주소서. ...기도 중단, 말씀읽기 소홀, 주님을 무시함, 불순종, 임재하심의 선물을 가볍게 여김, 일상대화에서 주님을 빼놓은 것 까지도. 그외에 모르고 지은 죄마저도..<회개하는 심령, 정한 마음을 주옵소서>.<하나님의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heart)과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soul)입니다.> <주의 성령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 <이 세상의 것들을 사랑했던 것을 용서하소서> <나의 미지근한 신앙을 , 열심없는 신앙을 용서하소서> <내 주하나님과 나 사이에 어떤 죄악도 , 그 그림자나 흔적도 남아있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주님의 거룩한 아름다우심 그대로 내가 알며 사랑하기 원합니다>하며 기도해야한다. 회개는 죄를 자복하고 끊어버림이다(잠28:13) 다시는 범하지 않기로 결단함이요, 주님께 자신을 내어맡기고 자아의, 육신의 죽음, 죄의 몸이 멸하여졌음을 믿음으로 고백하며 선포함에 다름아니다. <내게 죄를 사랑함이 아직도 있습니다. 나는 죄를 정말 미워하고 끊어버리기를 원합니다. 나혼자서는 할 수 없으나 내목숨보다 귀하신 내사랑, 내생명이신 주님, 주님은 모든 것이 가능하십니다. 주님께 전적으로 순종하오리니 나를 도우소서, 홍수로도 끌 수없는 주님사랑에로 나를 타오르게 하사 주님의 임재로 나를 충만케 하시고 붙들어 주소서. 내가 주예수님의 이름으로 죄를 대적하나이다. 나의 양심을 가르치소서.>.. 이것은 매일매일 체험적으로 이루어져야만 한다. (잠28:13, 행11:18, 2:37, 욜2:13, 고후7:11, 렘31:18,19행26:18, 시119:59, 눅1:77-79, 고후7:10, 롬6:18).
(1) 구원을 얻는 은혜 (딤전2:15).
(2) 자기 죄를 인식함 (눅22:6).
(3) 하나님의 긍휼을 기다림 (단9:18).
(4) 죄에 대한 통애 (눅18:13).
(5) 죄와 이별 (렘14:6).
(6) 하나님께로 돌아감 (삼상7:2).
(7) 새로 순종 (롬6:16).
# 해설
1. 회개의 개념
(1) 구약의 용어로는 나캄(뉘우친다)과 슈브(돌아선다)가 있고 신약의 용어로는 메타노이아(마음의 변화)와 에피스트로페(행동의 변화)가 있다. 곧 회개는 죄를 뉘우치고 하나님께로 향한 마음과 행동의 돌이킴을 의미한다.
(2) 회개의 과정을 통하지 않고 구원 얻을 인간은 없다(잠29:1). 그러나 회개는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이다(행11:18, 딤후2:25). 그러므로 생명에 이르는 회개는 항상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만 가능하다 (시51:4).
(3) 성경에 나타난 회개에는 국민적 회개(욘3:1-10), 일시적 회개(딤전1:19-20)( 진정한 회개(눅19:8-9), 반복적 회개(시51:1-19)등이 있다. 돌아온 탕자(눅15:11-24)와 사마리아 여인(요4:29-39)의 회개를 보라.
2. 회개의 요소
(1) 지성적 요소 : 이것은 생각의 변화이다. 곧 죄에 관한 지식이다.(롬3:20) 과거의 생활이 죄와 오염과 절망을 안고 있는 죄의 생활이었음을 알지 못하고서는 그 자리를 떠나려고 하지 않는다. 탕자가 아버지께로 돌아갈 수 있었던 것은 그의 현실을 직감했던 까닭이 아니었던가?
(2) 감정적 요소 : 이것은 감정의 변화이다. 곧 거룩하고 의로우신 하나님을 반역하여 범한 죄에 대하여 슬퍼하는 것을 뜻한다. 그러니까 그것은 <경건의 비애>(고후7:9-10)이다. 또 죄에 대한 통곡도 된다 (시51:7).
(3) 의지적 요소 : 이것은 목적의 변화이다. 곧 죄에서 떠나려는 내적 전환 사죄와 성결을 추구하려는 성향을 뜻한다 (행2:38, 롬2:4). 그러니까 이것은 <의지의 결단>(눅15:18-20)이다.
3. 회개의 결과
(1) 기쁨이 생긴다 (눅15:7,10). 하늘에도 기쁨이요 땅에도 기쁨이다 (시126:5-6). 회개의 뿌리는 쓰다. 그러나 그 열매는 달다.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 (마3:8).
(2) 사죄를 얻는다 (행3:19). 회개는 사죄를 가져오고 죄를 없이 한다 (시55:7, 눅24:47). 요일1:9의 약속을 믿고 감사하라. 동이 서에서 먼 것 같이 너의 죄가 멀리라 (시103:12).
(3) 성령을 받는다 (행2:38-39). 따라서 성령의 열매를 맺는다 (갈5:22-23). 그러니까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갈5:16).
###오늘날 교회에 주시는 금식에 대한 권고 - 메리 백스터 (Mary K. Baxter)
#금식에 대한 게으름
-주님께서는 마귀가 하나님의 백성들이 금식하지 못하도록 온갖 종류의 유혹과 시험으로 방해하고 있는 것을 계시를 통해 보여주셨습니다. 금식은 오늘날 교회에서 유행이 지난 것처럼 되어 버렸습니다. 많은 크리스챤들은 금식 자체를 전혀 하지 않고 있습니다. 어떤 이들은 금식을 불편한 것으로 여기며, 또 어떤 이들은 한 끼의 식사도 놓치려고 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바로 많은 신자들의 삶 가운데서 육체가 영을 좌지우지하고 있다는 한 단면을 보여줍니다다. 영적인 전쟁에서 전투력 있는 군사가 되려면 우리는 금식을 규칙적인 습관으로 삼고 심지어 매년 일정 기일을 따로 정해서 계획된 특별기도와 금식을 해야 합니다.
#금식의 태도
-우리는 금식할 때 어떠한 태도를 가져야 할까요?
첫째, 모든 금식은 단순한 꾸밈이나 말뿐이 아닌 겸허함과 죄의 고백을 수반해야 합니다. 이사야서에서 주님은 탄식하셨습니다. <이 백성들이 입으로는 나에게 가까이 나아오고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나, 그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사 29:13)>
둘째, 우리의 금식과 기도가 능력있게 되기 위해서, 우리는 관대하여 가난한 자들을 돕는 습관을 가져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왜 그들이 금식해도 하나님께서 이를 알아주시지 않냐고 물었을 때 하나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이르기를 우리가 금식하되 주께서 보지 아니하심은 어찜이오며 우리가 마음을 괴롭게 하되 주께서 알아주지 아니하심은 어찜이니이까 하느니라(사 58:3)>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일꾼에게 삯을 주지 아니하고 다투고 논쟁하기 위해 금식하고 있음을 책망하셨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기 위해 금식한 것이 아니였습니다.(사 58:3-4)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금식의 목적이 사람을 비참하게 하고 영혼을 고통스럽게 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상기시켜주셨습니다. (사 58:5)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금식이 어떤 것인지를 설명하셨습니다.
<나의 기뻐하는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풀어 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주며 압제 당하는 자를 자유케 하며 모든 멍에를 꺾는 것이 아니겠느냐 또 주린 자에게 네 식물을 나눠 주며 유리하는 빈민을 네 집에 들이며 벗은 자를 보면 입히며 또 네 골육을 피하여 스스로 숨지 아니하는 것이 아니겠느냐 (사 58:6-7)>
진정한 금식은 하나님과 사람을 자원하여 섬기기 위해 자아를 드리는 것입니다. 음식을 먹지 않고 지내는 것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놀라우심을 깨닫게 할 뿐만 아니라, 생필품이 없이 계속해서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을 생각나게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배고픈 자들과 음식을 나누고 노숙자들을 돌보도록 가르쳐주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이 불쌍한 마음을 가지고 가난한 자들과 소외된 자들에게 손을 내밀도록 감동을 주실 것입니다. 올바른 동기를 가지고 금식을 하는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여러분이 인정을 받도록 하며 다른 이들을 위해 영적 전쟁에 참여하도록 여러분을 준비시켜줍니다.
#금식과 영적 전쟁
금식은 또한 영적 전쟁에서 강력한 무기입니다. 금식은 우리가 하나님의 능력의 보고에 들어가도록 해줍니다. 하나님께서 영적 전신갑주, 기도와 금식에 대해 말씀을 주실 때, 고린도후서의 말씀을 참고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성경구절을 통해서, 원수의 영적인 강한 진을 파할 수 있는 금식의 능력에 대해 새로운 깨달음을 얻을 수 있습니다:
<우리의 싸우는 무기는 육신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오직 어떤 견고한 진도 무너뜨리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모든 이론을 무너뜨리며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무너뜨리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하게 하니 너희의 복종이 온전하게 될 때에 모든 복종하지 않는 것을 벌하려고 준비하는 중에 있노라(고후 10:4-6)>
마태복음에서 우리는 금식이 깨트릴 수 있는 견고한 진의 한 예를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한 소년으로부터 간질병의 귀신을 쫓아낼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귀신을 쫓아내신 후,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왜 그들이 스스로 귀신을 쫓아내지 못한 이유를 설명해주셨습니다. <이르시되 너희 믿음이 작은 까닭이니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에게 믿음이 겨자씨 한 알 만큼만 있어도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겨지라 하면 옮겨질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 그러나 기도와 금식에 의하지 않고서는 이러한 종류는 나가지 않느니라.(마 17:20-21)>
### 금식기도에 대하여
기도의 종류 가운데 금식하며 기도하는 금식 기도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리새인들이 금식할 때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일부러 얼굴에 슬픈 기색을 띠어 흉하게 한다고 그 의식을 지적하시고, 제자들에게 금식할 때에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얼굴을 씻으라고 가르치셨습니다. 그것은 금식이 은밀한 중에 하나님께 보이기 위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에는 금식 기도의 많은 사례가 나타납니다. 이스라엘 백성과 사무엘은 미스바에서 전민족적으로 회개하는 금식 기도를 드렸고, 다윗이 밧세바의 일로 회개할 때도 금식하였습니다. 에스더와 전유다 민족도 민족적 위기 상황에서 금식하여 기도하였습니다. 성경에 나타나는 가장 오랜 금식 기간은 모세와 예수님의 40일입니다.
하지만 금식은, 어떤 연유에서 하건 기간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떠한 마음가짐으로 하느냐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금식할 때 매우 겸허한 태도로 할 것을 명하고 있습니다.'이사야'는 겸손과 경건이 없는 금식은 하나님께 상달되지 못함을 다음과 같이 역설하고 있습니다. <이르기를 우리가 금식하되 주께서 보지 아니하심은 어찜이오며, 우리가 마음을 괴롭게 하되 주께서 알아주지 아니하심은 어찜이니이까 하느니라. 보라! 너희가 금식하는 날에 오락을 찾아 얻으며 온갖 일을 시키는도다(사 58:3)> 금식 기도는 매우 유익하고 응답이 빠르지만 태도가 그릇될 때는 무가치한 것임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아무튼 성도에게 있어 금식 기도가 요구되고 있는 것은..1) 예수님께서 이 금식 기도를 하라고 명하셨으며, 2) 예수님께서도 금식 기도를 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은혜 가운데서 평안할 때에는 금식할 필요가 없지만, 환난이 닥치고, 역경에 처하게 될 때에는 금식하고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금식 기도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취할 수 있는 위기 속에서, 가장 현명한, 가장 위력 있는 수단인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몸소 친히 이 금식 기도를 행하셨습니다. <그때에 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사, 사십 일을 밤낮으로 금식하신 후에 주리신지라(마 4:1,2)> 예수님께서 이같이 금식 기도를 하신 이유는 1) 메시야로서의 공생애를 시작하실 때가 되었기 때문이며, 2) 죄와 죽음을 정복하기 위한 인류의 최대의 위업을 바야흐로 착수한다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의 메시야 사역은 금식 기도를 통하여 사탄과의 대결에서 이기는 데서부터 시작하셨습니다. 사탄과의 대결에서 승리하기 위하여 예수님께서는 금식하시며 기도하신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인간의 삶에 어떤 비상 시기가 도달했을 때에는 금식 기도를 해야 한다는 것을 교훈 받을 수 있습니다. 바로 여기에 금식 기도의 필요성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금식 기도를 해야 할까요? 이에 대하여 성경은 식음을 전폐하고 만사를 폐지하였다고 말합니다. <사람이나 짐승이나, 소떼나 양떼나 아무 것도 입에 대지 말지니, 곧 먹지도 말 것이요, 물도 마시지 말 것이며(욘 3:7)> 선지자 요나의 멸망에 대한 선포를 듣게 된 니느웨의 백성들과 짐승들은 다 금식하였습니다. 그들은 아무 것도 먹지 않았으며, 물도 마시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굵은 베옷을 입고 하나님께 부르짖었으며, 악한 길과 강포에서 떠나 근신했습니다. 이처럼 금식 기도하는 방법은 가장 이상적인 형태는 모든 음식물, 즉 물까지도 마시지 않는 식음 전폐의 기도이며, 육적 삶을 일시적으로 유보하고, 하나님께 부르짖는 데만 전념하는 기도입니다. 그러나 사흘를 넘어서면 생수를 마셔주어야 합니다. 하루에 약 7~8컵 정도는 마셔야 합니다. 건강이 안좋은 경우나 일을 해야하는 등 개인의 필요에 따라 주스나 차는 마실 수는 있습니다. 일체의 곡기는 끊는 것이 좋습니다. 그렇다면 금식 기도를 함에 있어서 이와 같은 방법이 왜 필요할까요? 그것은 1) 하나님께만 온 마음을 바치기 위해서입니다. 2) 기도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모든 방해 요소를 제거하기 위함이며, 3) 하나님의 응답이 있기까지는 결코 일어나지 않겠다는 결의를 전제하는 것이며, 4) 자기의 죄와 허물을 반성하고 참회하는 데에는 아주 적절한 자아 탐색의 수단이 되기 때문입니다. 즉, 음식보다도, 잠보다도, 사업보다도, 사람들과의 교제보다도, 어떤 삶의 연락보다도 하나님을 더 필요로 하고 원하기 때문인 것입니다.
이러한 금식 기도를 통하여 우리는 1) 환난에서 하나님의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2) 자기의 죄와 허물을 발견하고 철저히 회개할 수 있습니다. 3) 하나님의 지시를 받을 수 있습니다. 4) 권능을 얻을 수 있습니다. 금식 기도는 자신의 마음 깊숙이 숨어 있는 죄악도 철저히 드러내 놓고, 하나님의 용서를 얻을 수 있는 가장 좋은 기회이며 수단입니다. 그것은 인간이 죄에서 승리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위대한 은총입니다. 또한 금식 기도는 계시에 접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여건을 만들어 줍니다. 금식 기도는 타락한 신앙을 회복시킬 뿐만 아니라 초자연적 권능을 얻게 합니다.
다만 여기서 금식 기도를 함에 있어 주의해야 할 것은, 1) 준비 기도 없이 해서는 안 되며, 2) 공명심으로 해서도 안 되며, 3) 의도적으로 큰 권능을 받기 위해서 해서도 안 되며, 4) 금식 기도 후에는 건강 회복에 주의해야 하고, 5) 사람들의 칭찬에 겸손해야 하며, 6) 능력을 시험하는 자들 앞에서 조심해야 하고, 7) 받은 권능을 사욕의 도구로 삼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진정한 의미에서 금식 기도는 '하나님 앞에서 기도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 부딪쳤을 때' 오직 기도에만 전념하기 위해 먹는 일조차 거르는 것을 의미합니다. 금식의 수양을 행하는 것을 자랑으로 여기려는 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사람에게 보이려고 금식 기도하는 자는 기도의 대상이 '하나님'이 아니라 그가 의식하는 '사람'이 되고 맙니다. 그러나 진실한 금식은 하나님과의 영적인 교제를 위하여 기도에 열중함으로써 저절로 식음(食飮)이 전폐되는 것입니다. 금식 기도의 위선은 곧 하나님 앞에서 신앙의 위선이며 신앙의 위선은 살아계시는 인격적인 하나님께 대한 모독인 것입니다. 외식하는 자 곧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회당이나 거리에 서서 손을 높이 들고 기도하기를 좋아하였습니다. 이러한 모습과는 대조적으로 주님은 우리에게 문을 닫고, 골방에서 기도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진실한 기도는 골방에서 아무도 모르게 행해진다 하더라도 하나님 아버지께서 들으시고 모두 응답해 주십니다. 회당이나 거리에서 기도하기를 좋아하는 자들은 기도 그 자체보다도 '기도의 모습'을 보이기 위한 위선자들입니다. 그러나 골방에서 은밀한 중에 기도하는 자는, 기도의 대상을 살아계신 하나님을 아버지로 알고, 하나님만 의지하는 신앙 가운데, 믿음으로 감사와 고백과 간구를 하는 것입니다.
초대교회 성도들도 일주일에 두 번씩, 수요일과 금요일 낮 동안에 금식을 했습니다. 독일의 종교개혁가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 ; 1483~1546)'는 “금식의 의미를 모르는 사람들을 어떻게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라고 말했습니다. 프랑스의 신학자 '칼뱅(Jean Calvin ; 1509~1564)'도 “우리는 경험으로 잘 안다. 음식을 많이 먹으면 마음이 하나님께로 향해지지 않고 열정적으로 기도해지지 않는다.”라고 말했습니다. 때로는 하나님 앞에 금식하며 기도하는 신앙의 자세가 있어야 합니다. 영국의 영적 지도자 '존 웨슬리(John Wesley ; 1703~1791)'는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축복들을 얻게 하는 방편으로써 금식을 지시하셨다.”라고 말했습니다. 성경말씀에 보면 금식과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도우심과 축복을 받은 사람들이 많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모세'도 40일 동안 금식기도를 했습니다.(출 34:28) '한나'도 금식기도를 하고(삼상1:10~11), '사무엘'도 금식기도를 했습니다.(삼상 7:5~6) '엘리야'도 40일 금식기도를 하고(왕상 19:8), '아합왕'도 금식기도를 하고(왕상 21:27), '여호사밧왕'도 금식기도를 했습니다.(대하 20:3) ''에스라'의 금식(스 10:6), '느헤미야'의 금식(느 1:4), '에스더'의 3일 금식(에 4:16), '다니엘'의 21일 금식(단 10:3), '요나'의 3일 금식(욘 1:17~2;2), '니느웨 백성'의 금식(욘 3:5), '예수님'의 40일 금식(마 4;1~2), '마가'의 다락방에서 성도들 120명이 성령을 받은 금식(행 1:14~15), '바울'의 3일 금식(행 9:8~9) 등 성경에는 수많은 금식사건들이 있었습니다.
<금식, 실험의 한 가지 방법>
기도는 악과 싸우는데 가장 필요하고 또 확실한 무기다. 그뿐 아니라 기도의 목적 자체가 악에서 구원하는 데 있다. 따라서 기도와 금식으로 전능하신 하나님께 구함과 하나님을 신뢰함에 대해 말하는 성경 본문들은 사실상 이 싸움이 있다고 공언한다. 동시에 악을 이길 것이라고 약속하고 있다. 따라서 과부의 기도 비유에서, 기도하는 교회를 상징하는 절박한 과부 하나님과 '함께 하고자하든 열정뿐아니라 적을 '대항하는' 열정도 가지고 있다 그녀는 나의 적에게 복수해 주소서 하고 말한다. 우리의 적은 '마귀'다. 베드로는 우리에게 말한다. <근신하고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처럼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는다 (벧전 5:8).>
<야곱, 모세, 다니엘>
금식은 야곱의 씨름을 통해서도 볼 수 있다. 우리 구주 예수님처럼 야곱은 밤을 '새워' 금식했다. 그 고독의 시간에 그가 누구를 만나도록 허락되었는지는 성경에 정확하게 나타나 있지 않다. 하지만 그가 씨름한 하나님이 그에게 씨름할 힘을 주셨고, 마침내 그에게 징표를 주셨다. 마치 그가 이겼던 하나님께 굴복함으로써만 이길 수 있었음을 보여 주듯이 말이다 그렇게 힘을 받은 그는 아침이 올 때까지 견뎌 낸 후 축복을 구했다. 하나님은 그에게 복을 주시며 야곱의 성공을 기억하는 의미로 새 이름을 주셨다. <'그 사람이 가로되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사람으로 더불어 겨루어 이기었음이니라' (창 32 :28). > 이와 마찬가지로 모세도 금송아지를 바친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회개와 중보 기도를 하며 40일 금식 기간의 일부를 보냈다. <그때에 여호와께서 너희를 멸하겠다 하셨으므로 내가 여전히 사십 주야를 여호와 앞에 엎드리고 여호와께 간구하여 가로되 주 여호와여 주께서 큰 위엄으로 속하시고 강한 손으로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신 주의 백성 곧 주의 기업을 멸하지 마옵소서 (신 9 :25-26). > 또 성경에 기록된 다니엘의 두 번의 금식 기간은 모두 축복으로 끝났다. 첫 번째 금식은 자기 민족을 위한 중보였으며, 그 응답으로 그는 70주 동안 예언을 했다. 두 번째 금식 역시 예언으로 응답을 받았다.
<천사 같은 조력자들>
다니엘이 금식을 하는 중 천사가 나타났다. 또 예수님이 금식하실 때도 천사가 와서 도와주었다. 지금도 금식으로 하나님을 구하는 사람에게는 특별히 천사를 보내신다는 것을 믿고, 그런 생각만으로 우리는 위로 받을 수 있다 다니엘뿐 아니라 엘리야도 금식 중 천사의 도움으로 힘을 얻었다. 고넬료가 금식하고 기도할 때에도 천사가 나타났다 믿음이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가질 수 있는 이러한 소망을 확증하는 예가 주위에 충분히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저가 너를 위하여 그 사자들을 명하사 네 모든 길에 너를 지키게 하심이라 (시 91 :11).> 마귀가 유혹할 때 이 말씀을 사용한 것을 보면 마귀도 분명 이 약속을 알고 있다 마귀는 우리의 힘이 어떤 힘인지, 그리고 자신의 약함이 어떤 건지 잘 알고 있다. 따라서 전능하신 하나님의 그림자 안에 거하는 동안 우리가 두려워할 것은 없다. <천인이 네 곁에서, 만인이 네 우편에서 엎드러지나 이 재앙이 네게 가까이 못하리로다 (시 91 :7).>
<그리스도 안에서 안전함>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을 때는 안전함을 누린다. 예수님은 사탄의 힘을 꺾으셨다 예수님이 <사자와 독사를 밟으며 젊은 사자와 뱀을 발로 누르리로다 (시 91:13). >악한 영은 진정한 그리스도인 앞에서 힘을 쓰기는커녕 겁을 낸다. 마귀는 진정한 그리스도인들의 주인이 되는 힘을 그리스도인들이 자신 안에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안다. 그리고 만약 그분이 원하기만 한다면 마귀들을 조소하여 도망가게 할 수 있다는 사실도 안다. 마귀들은 이 사실을 아주 잘 알며, 이것을 명심하고 그리스도인을 공격한다. 마귀는 오직 죄로만 그리스도인을 이길 수 있다. 다른 방법으로는 그리스도인을 이길 방법이 없음을 안다. 마귀의 목적은 그리스도인이 죄를 짓게 하거나 놀라게 해서 죄에 빠지게 하는 것이다. 위험한 것처럼 보이는 상황을 만들어서 겁을 주어 그리스도인을 놀라게 한다. 하지만 불시에 그를 놀라게 하는 것 외에 마귀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그러므로 형제자매들이여, 저들의 책략에 무지하지 말자. 그리고 그 책략을 알고 깨어서 금식하고 기도하며 전능자의 날개 아래에서 가까이 붙어 지내자. 그리하여 하나님이 우리의 방패가 되시게 하자. 우리에게 하나님을 알려 주시도록 기도하자. 그리고 우리의 허물을 깨닫게 해 주시고, 하나님의 뜻에 불순종하게 되는 일로부터 지켜 달라고, 그리고 영원한 길로 인도해 달라고 기도하자.
#영성 훈련 1
특정 음식이나 행동 중에서 절제하거나 금식하기에 너무 힘들지 않은 것 하나를 정해서 실천에 옮기라. 끝까지 하기에 너무 부담스럽지 않도록 계획하라. 금식을 힘들게 하거나 못하게 하는 경우가 생기더라도 가능한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해 보라. 그 과정에서 일어나는 유혹이나 힘든 상황들을 기록하라.
#말씀묵상 1 - 창세기 32:24-30
<(사58:6-12)*내가 기뻐하는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풀어 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 주며 압제 당하는 자를 자유하게 하며 모든 멍에를 꺾는 것이 아니겠느냐 *또 주린 자에게 네 양식을 나누어 주며 유리하는 빈민을 집에 들이며 헐벗은 자를 보면 입히며 또 네 골육을 피하여 스스로 숨지 아니하는 것이 아니겠느냐 *그리하면 네 빛이 새벽 같이 비칠 것이며 네 치유가 급속할 것이며 네 공의가 네 앞에 행하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뒤에 호위하리니 *네가 부를 때에는 나 여호와가 응답하겠고 네가 부르짖을 때에는 내가 여기 있다 하리라 만일 네가 너희 중에서 멍에와 손가락질과 허망한 말을 제하여 버리고 *주린 자에게 네 심정이 동하며 괴로워하는 자의 심정을 만족하게 하면 네 빛이 흑암 중에서 떠올라 네 어둠이 낮과 같이 될 것이며 * 여호와가 너를 항상 인도하여 메마른 곳에서도 네 영혼을 만족하게 하며 네 뼈를 견고하게 하리니 너는 물 댄 동산 같겠고 물이 끊어지지 아니하는 샘 같을 것이라 *네게서 날 자들이 오래 황폐된 곳들을 다시 세울 것이며 너는 역대의 파괴된 기초를 쌓으리니 너를 일컬어 무너진 데를 보수하는 자라 할 것이며 길을 수축하여 거할 곳이 되게 하는 자라 하리라>
##마음과 영혼의 거듭남과 치유
원죄로 말미암는 생존/안정, 사랑/존중, 힘/통제 욕구들의 채워지지 않은 결핍의 느낌으로 오는 원마음의 상태들은 죄의식이나 열등감(패배감), 거절감(불신, 불안, 두려움, 고독감, 소외감, 무기력. 무가치함, 부적당감), 사랑의 긂주림(불만족), 분노(원망, 원한,적대감)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마귀에 의해 증폭되어 세상의 유혹의 욕심을 좇는 욱체의 일-육신의 정욕(쾌락을 좇음), 안목의 정욕(부하고자 하는 탐욕), 이생의 자랑(세상의 명예와 영광을 구함)의 욕구가 됩니다. 일차적 욕구의 불만족의 느낌에서 파생된 이차적인 마음의 상태들은 분열된(부서지고 깨뜨려진, 상한, 이중적인) 마음, 상실된 느낌을 따라 자신을 방치하는 포로된(사로잡힌, 중독된)마음, 갇힌마음(자기의 벽속에 숨어버린, 완벽주의적인 마음, 자랑, 교만, 하나님을 대적하여 높아진 모든 것들)입니다. 이와 더불어, 잠재의식으로 도피하거나 불안 회피 방어기제 속에 숨어버리거나, 관계, 일, 사람, 취미, 재물에 몰입함으로써 주님을 믿는다고는 하지만, 실제로는 상실한 마음 상태로 쓴 물과 흙탕물을 내는 마음의 뿌리들을, 그대로 십자가보혈과 성령님 앞에 드러내어 매일 영적예배 가운데서 치료하시는 사랑의 손길 위에 올려드립니다. 이 모든 것들은 이미 예수님의 십자가로, 우리의 영원한 만족함의 근원이 되신 예수 안에서 완전히 단번에 영원히 해결되어 충족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원수의 흔적을 없애기 위한 영적 여정, 곧 주께서 주신 회복하심-치유하심-파송하심의 성전예배와 팔복, 출애굽, 엘리야 승천에 동행한 엘리사의 성령의 권능 입음의 예표 과정을 따라갑니다. ***성전은 회막앞의 회막뜰 또는 성전 뜰-번제단과 물두멍이 놓여 있음-과 성전 또는 회막-성소와 지성소로 이루어짐-으로 구성됨. 성전문은 동쪽으로 나 있고, 번제단(백성의 지도자나 백성 개개인의 속죄를 위하여 안수한 제물의 피를 번제단 뿔에 바르고 나머지는 번제단 밑에 쏟음)과 제사장들의 손을 씻고 성소로 들어가기 위한 물두멍, 성소 안에는 북쪽의 진설병 떡상, 남쪽의 등대, 지성소 휘장 바로 바깥에는 향단(제사장과 백성 전체의 속죄를 위하여 안수한 제물의 피를 성소의 휘장에 일곱번 뿌리고 향단뿔에 바름, 나머지 피는 번제단 밑에 쏟음)이 놓여 있고 휘장을 지나면 지성소 안에 법궤(모세의 지팡이와 만나가 십계명돌판과 함께 들어 있고, 그 위의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인 그룹이 덮는 속죄소 곧 시은좌가 있는)가 놓여 있음.
--가난한 마음<애굽의 수치스런 생활,길갈 - 성전 문 밖, 불신생활>
죄 가운데 있는 자연인의 상태 -성령께서 깨닫게 하시는 은혜의 말씀을 통해 다가오는, 강한 죄책감과 무거운 죄짐의 의식 가운데서 오직 보혈외에 해결책이 없음을 통감하며 이때까지 거짓된 안정감을 주었던 세상을 뒤로 하고 하나님 거룩하심 앞에 나의 진실된 영의 죄악되고 상한 모습 그대로, 모든 것을 내려 놓고 나아가 주님을 예배하기 원하며,
--애통하는 마음 <홍해를 건넘 - 번제단, 세례>: 제1의 은혜의 역사.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주예수님의 다시오실 것과 예수님을 개인의 구주로 심령에 믿고 입으로 시인함의 고백을 통해 예수님과 연합하여 죄, 사망, 마귀에 대해 죽고 거듭남. *택하심의 기름 부음 :세례로 체현되고 입증되어짐 -- 전혀 하나님 앞에 설 자격이 없는 죄인이 주님의 은혜로운 부르심과 초청의 말씀에 따라 성전에 들어가서 번제단에 나아가, 마귀를 떨어져 나가게 하고 죄와 사망을 죽이는 죽음의 십자가에서 주님과 연합하여 영혼이 깊이 죄를 애통해하며 죽음을 경험함.
--온유한 마음<광야 생활, 벧엘-여리고 - 성전안의 바깥뜰, 교회생활> : 예수님과 더불어 부활한 자로서 그 품에 안겨 하늘의 안식과 기쁨을 맛봄
먼지나는 땅을(광야를) 밟으면서, 주님이 주시는 안아주심-용납하심-용서하심-자유함의 꿈같은 황홀을 처음으로 경험하게 됨. 동시에 아직 완전히 처리되지 않은 자아 중심의 육에 속한 그리스도인인 자아인으로서 살면서 때로는 주님께 순종할 때 새신자된 이와 하나님 간의, 성도간의 용납하심, 교통의 축복을 경험하는 롬8장의 승리를 경험하지만 주로 자행자제하는 자아에 이끌려 좌절과 실패로 미끄러짐의 롬7장의 반복적인 경험을 함,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살아감의 지식에 대해 동시에 배워 가는 과정으로 참자아와 거짓자아의 혼재 과정의 시작(거짓 자아와 참자아 사이의 갈등을 경험하는 과정) **정화의 길의 시작 : 하나님 사랑의 길을 찾기, 죄에 대항하는 <능동적 정화> 단계 시작됨 **영적 회복
**의식주(생존/안전)-애정/존중-힘/명예 욕구에 대한 애착을 내려놓기를 배우기 시작.
** 집단 공동체 초자아의식(집단에 과잉 동일시)에서 벗어나기를 배워 감.
--의에 주리고 목마름 <요단강을 건넘-성전안의 물두멍,>: 제2의 은혜의 역사. 거짓 자아가 처리되어 참자아로 사는 삶이 어떤 것인지를 배우고 결단함.
날마다 말씀으로 수족, 곧 육체가 새로 씻김을 받으며(육신의 죽음과 새롭게 몸을 주님의 성전과 의의 병기로 드림의 결단)- 예수님의 새 생명으로 새롭게 창조된 새 영이 용서, 용납하심과 사랑과 은혜의 보좌에서 믿음, 사랑과 기쁨, 평강으로 커감, 모든 영역에서 승리는 오직 하나님의 주인되심에 있음을 깨닫는 제2의 은혜의 역사를 체험함. 그럼으로써 더이상 자아인으로 사는 것이 아닌 생명이요, 빛이요, 하나님의 말씀이신 그분께 삶의 보좌를 내어 드림으로써 자신의 자아가 완전히 성령께 순복하는 종의 자리에 내려가 진정한 영에 속한 그리스도인으로서 주님의 그릇이요, 종이요 열매맺는 산 가지로서, 순종하는 그리스도의 종인 참 자아로 살아감이 어떤 것인지를 배움 (롬8장의 온전한 승리 가운데로 들어섬)
--긍휼히 여김<주님과의 연합으로 인한 주님의 가나안 정복전쟁의 시작 - 성소> **조명의 길로 들어섬 : 하나님을 사랑하기의 시작, 진정한 관상의 시작.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는 < 수동적 정화 -감각의 밤 >단계
**보혈로 인해 자유한 정신 자아인으로 살아감-영적독서와 관상기도의 가치를 알고 적용하기 시작
아가페사랑 그자체인 완전한 성삼위 하나님과의 연합을 이룸- 성소에 들어가서 성소의 진설병의 생명의 떡상에서, 불켜진 금촛대의 생명의 빛인 예수님과 연합되어서 성령의 인도하심에 온전히 자신을 맡기고 예수님만을 추구하며 기준삼고 그분과 하나되며, 성소의 금향단에서 참된제물로 자신의 전존재를 향으로 올려 드리는 가장 내밀한 마음의 기도, 성령의 기도, 영의 기도(관상기도)로 주님께 나아감, 자신이 하나님 자신인 아가페 사랑을 채워 넘치게 하는 그릇임을 배우고 제사장의 기름부으심으로 , 성령의 하나되게 하심을 따라 지체로서 연합한 교회를 온전히 섬기고 중보함. 온전한 믿음의 인내와 견딤의 열매를 맺어 감. **내적치유 시작
--청결한 마음<지성소> **관상의 <수동적 정화 - 영의 어둔밤>단계, 영에 남아 있던 원수의 마지막 흔적(영적 교만)의 제거.
자신의 십자가와 남은 고난을 믿음과 소망 가운데 인내와 견딤과 참음을 통해 그리스도의 장성한, 도가니에 일곱번 단련된 은처럼 연단된 인격의 분량에 이름. *휘장이 찢어진 지성소의 법궤로 상징된, 충만하신 하나님의 영광가운데서 왕으로서의 권세의 기름부으심을 입음,
**내적 자유, 초월적인 직관적 자아인으로 살아감-온전한 일치의 기도
--화평케 하는자<세상으로의 파송>-가나안 정복의 진행 **합일의 길로 들어섬: 하나님과의 사랑나누기의 시작. 관상의<변형적 일치>단계
왕권을 가지고 세상으로 나아가 오직 성령님께 완전히 자신을 종으로 내어 드려 만민에게 화목과 평강의 복음을 전파하고 영혼을 구원함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음<세상>-〕정복의 완성 **합일의 상태 : 관상의 <지혜의 일치> 단계
죽기까지 충성을 다하는 아가페사랑, 용서와 온유함을 통해 사랑의 지혜 그자체인 주님의 증인으로 살아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