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애굽//유월절 준비와 준수, 무교절 계시, 양떼 무리가 필연적으로 영광의 Q을 만나뵘 통해 언약 맺고, Q의 교회와 군대로 새로이 정비될 시내산까지의 도달 여정 (출12~17장)..이후는 세상가치-구습-노예근성 버리고 Q의 교회-군대로 훈련성장성숙되어가는 과정...옛사람을 장사지낸, 새 창조인 영적 참자아로서 성령을 따라 이루게 될 가나안정복을 통해 영토와 주권, 백성 모두 갖추게 됨.. 월요일(아빕월10일)저녁 : 어린양 예비일 .......금요일(아빕월14일) 저녁 유월절 시작(수컷어린양 희생--쓴나물+무교병과 함께 뼈를 꺾지 않은채 어린양을 구워먹음<대속제물+화목제물>) //애굽장자들의 죽음 .......유월절아침 출애굽 개시...무리 지어 이동 //에담에서부터 불기둥, 구름기둥으로 인도하심..... .......유월절 다음날저녁(안식일 시작...안식일임에도 구원자하나님의 일<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파케 하심..포로된 자에게 자유를(대속주) 눈먼자에게 다시 보게함을(YH.라파. 인도자) 선포하며 눌린자를 자유케 하고(구주) 주의 은혜의 해를 선포하게 하심(은혜-평강의 왕)>을 진행하시고 홍해의 광야길로 인도하신 그 백성을 보호, 승리를 주심) 숙곳-->홍해광야 끝 에담에 도달하여 장막을 치는 백성들에게 더 진행하여 홍해와 믹돌(망대) 사이, 즉 바알스본 맞은편 바닷가에 장막을 치라(이동하라)하심//추격하는 애굽병마대 장막 친 근처까지 도달,,,한 밤중에 홍해앞 믹돌에서 Q말씀에 순종하여 모세가 손을 내밀어 홍해를 가리킬 때, 두 진영을 구름기둥과 흑암/불기둥으로 분리시키심.... 한밤중~새벽까지 갈라져서 마른 땅으로 변한 홍해를 이스라엘백성 모두/모세까지 안전하게 도하(바알스본 도달), 반면에 새벽녁에 갈라진 홍해 안으로 들어선 애굽 병마대는 모세가 손을 거두매 전멸당함......안식일아침 수르광야 진입(당일 저녁은 무교절시작 첫날<주일:성회>~일곱째날<안식일:성회> ===<옛자아로 사는 포로된 삶 끝내고 성령따라 사는 새창조함 받은 영의 참자아로 사는 참살이 삶을 의미하는>이 절기예식은 약속의 땅 도달시에 지키라 하셨음) ......사흘길을 걸어 마라(쓴 물) 도달//YH이 지정하신 나무를 물에 던지니 단물(생명수)로 변함=Q말씀 청종하고 의를 행하는 이스라엘백성에게 치료하시는 하나님(여호와 라파)을 계시하심 ......물샘12과 종려나무 70그루가 있는 엘림에 이르러 장막을 치게 하심 --->둘째달15일(45일째) 시점에 신광야에 도달 : 만나와 메추라기 공급- --->르비딤에 장막을 침 : 물이 없어서 항의하면서 YH의 임마누엘 여부에 대해 의심하는(YH시험함=므리바) 백성들에게 먹일 물 주기 위해 반석을 쳐서 물을 내게 하심//아말렉이 공격해 옴....산위에서 중보기도하는 모세를 도와 아론-훌은 양쪽에서 손을 붙들어 올림//여호수아는 모세의 말을 따라 나가서 싸움....승리 : 여호와닛시 제단을 쌓음 ---> 시내산에 도달.. 광야노정 가운데 42번의 진친 곳 http://champyungan.com/bbs/board.php?bo_table=5_3&wr_id=162 166 172 178 180 1. 숙곳 (뜻 : 오두막집들, 작은 양의 우리 / 무교병을 먹이심 / 민수기 33:5) 2. 에담 (뜻 : 성벽, 방벽 / 구름기둥과 불기둥이 처음 나타남 / 민수기 33:6) 3. 믹돌 앞 (뜻 : 요새, 망대 / 홍해를 건너기 바로 직전 / 민수기 33:7) 4. 마라 (뜻 : 쓴, 쓴맛 / 민수기 33:8) 5. 엘림 (뜻 : 힘, 나무 / 민수기 33:9) 6. 홍해가 (뜻 : 갈대의 바다 / 출애굽 후 식량이 거의 떨어짐 / 민수기 33:10) 7. 신광야 (뜻 : 가시잡목, 습지, 점토 / 만나가 내리기 시작함 / 민수기 33:11) 8. 돕가 (뜻 : 공작석, 가축, 두드리다, 내어몰다 / 민수기 33:12-13) 9. 알루스 (뜻 : 거친 땅, 나는 반죽할 것이다 / 민수기 33:13) 10. 르비딤 (뜻 : 평야, 휴식처, 등불, 횃불 / 민수기 33:14) 11. 시내 광야 (가시나무숲) ================================ **다베라(큰 불....악한 말로 원망)/기브롯핫다와/하세롯==바란광야에 포함되나 아카바만(홍해)에 인접..기브롯핫다아와 바로 직전. 12. 기브롯 핫다아와 (탐욕의 무덤, 욕심의 종말) 13. 하세롯 (울타리, 마을들, 정착지) : 바란광야에 포함되나 아카바만 인근....모세가 구스여자 취함...기브롯핫다아와 욧바다사이 ===바란광야 가데스 도달 : 가나안에 정탐군 파견/보고사건 후 홍해길따라 광야(신광야)로 들어가라고 지시하심//말씀 거역하여 아다림길?로 진입한 백성들이 호르마전투에서 패배====고라 다단 아비람 사건--염병 사건 14. 릿마 (로뎀나무, 묶다, 붙잡아 매다) 15. 림몬베레스 (갈라진 석류, 파괴된 석류, 충돌한 석류) 16. 립나( 새하얀, 흰빛, 희다) 17. 릿사(파멸, 깨어짐, 무덤) 18. 그헬라다(모임, 집회) 19. 세벨산(우아함, 아름다움) 20. 하라다(떠는, 두려워하는, 공포) 21. 막헬롯(모임, 회중) 22. 다핫(밑바닥, 밑부분) 23. 데라(체류하다, 지체하다)....14~23.은 가데스 남서방향 지점.. 수르광야(북)-신광야(서)-바란광야(남)-신광야(동)로 둘러싸인 지점들 24. 밋가(감미로움, 단샘, 감천) 25. 하스모나(열매가 풍성함, 부유함, 살찜,옥토) 26. 모세롯(징계, 멍에, 응징) 27. 브네야아간(꼬불꼬불한, 구부러진)....24, 25, 26, 27은 호르산(가데스 북동쪽에 위치) 인근 28. 홀하깃갓(깃갓의 동굴, 깃갓의 구멍) :아카바만/에시온게벨로 향하는 홍해길의 중간지점 29. 욧바다(즐겁다, 만족하다, 기쁘게 하다) : 에시온게벨 서남쪽 30. 아브로나(통로, 이주) : 에시온게벨 인근 서북쪽 31. 에세온게벨(용사의 등, 거인의 척추) ===========================--직접 가데스로 이동 32. 가데스(거룩히 구별된 곳, 심판의 샘) : 미리암 사망....**므리바물 사건 33. 호르산(산중의 산, 산악지대, 장엄한 산맥... 가데스바네아 북서쪽 자발 마두라) : 아론 사망 34. 살모나(그늘짐, 어두움) **호르산에서 출발하여 홍해길로 내려와서 아라바길 아닌 에돔땅을 우회하는 길을 선택....불평으로 인해 불뱀 사건 발생?? ---------<에시온게벨 근처까지 내려온 후 터닝, 모압평지 향해서 사막길 거쳐 광야길로 진입>----- 35. 부논(해가 지다, 광산 구덩이) 36. 오봇(가죽 부대들) 37. 이예아바림(폐허의 길) ::: 세렛골짜기??(에돔-모압경계) 38. 디본 갓 (그리워 함, 황폐) :::아르논강 건너편 39. 알몬 디블라다임 (무화과 뭉치들을 숨김, 두 무화과 과자의 이정표) 40. 아바림산 (건너편 지역, 강 저쪽 지방) : 요단동편 41. 모압 평지 (아비의 소생, 그의 아버지로부터) : 요단동편 ---벳여시못, 싯딤 42. 길갈 (애굽의 수치를 너희에게서 굴러가게 하였다) : 요단서편
**애굽에서 시내산까지(2개월)~시내산에 총1년 머무름(제2년 첫째달엔 두번째 유월절 지킴..둘째달엔 인구조사/군대정비), 시내산 출발..가데스바네아에 도착.....가데스바네아 떠남(출애굽에서 만2년째)<제2세대로 교체기간인>가데스바네아에서 떠나 세렛시내에 이르기까지38년(신2:14)
**가데스바네아 : 위치--서남쪽로는 바란광야, 동쪽으로는 신광야 사이....***이스라엘의 영토로 정해주신 지경은 민수기에는 애굽시내--가데스바네아 남방--페트라근처 서쪽의 세일산지--사해--요단강--갈릴리바다---바다 북단 스밤--하셀핫디곤--하셀에난--스닷(하맛지방)--지중해연안 레바논의 하맛(곶), 에스겔서에는 애굽시내--가데스바네아--다말(신광야 끝, 사해남단, 에돔의 경계)---사해---요단강---갈릴리바다--하셀핫디곤--브로다--하맛지방 스맛--지중해연안 레바논의 아앱데만(레바논 전역 포함) **가데스 바네아와 호르 산의 위치를 판단할 수 있는 근거들이 다음과 같이 확인되었다. ①가데스 바네아는 바란 광야와 신 광야에 걸쳐 있고, 신 광야는 바란 광야의 오른쪽에 있다. ②신 광야는 네겝 광야와 인접해 있고, 에돔의 경계는 신 광야에 인접해 있다. ③에돔에 큰길(왕의 대로)이 있고, 그 길로 지나가면 에돔의 가운데를 통과한다. ④호르 산 정상에서 아론이 죽는 것을 회중이 바라보고, 그를 위해 30일간 애곡했다. ⑤호르 산은 가데스 바네아와 아랏 사이에 있고, 에돔의 경계에 있다. ⑥네겝 광야에는 아랏과 호르마가 있고, 가나안 지방에 위치해 있다. ⑦므리바의 물은 신 광야의 가데스 바네아에 있다. ⑧호르 산에서 돌이켜 바란 광야의 홍해 길로 가면 에돔 땅을 우회한다. ⑨세일 산에서 돌이켜 엘랏과 에시온 게벨 곁을 지나서 광야 길로 들어가 북으로 나아간다. ⑩하나님께서 세일 산은 에서(에돔)에게 기업으로 주었으니 다투지 말라고 하셨다. ⑪이스라엘의 남쪽 경계가 사해 남쪽 끝에서 왼쪽으로 다말, 아그랍빔 언덕 남쪽, 신 광야 가데스의 므리바 샘, 그리고 에돔의 경계에 인접한다. ⑫에돔 자손은 세일 산지의 바위틈에 거주하며, 높은 산악 지역에 살았다. ⑬에돔의 북동쪽 경계는 세렛 시내까지이고, 남쪽은 아카바 만까지였다.
**광야 행군시 선두 : 법궤--유다기(유다, 잇사갈, 스불론) :녹색(녹주옥), 사자 ---게르손/므라리( 장막 위장과 말뚝) --르우벤기(르우벤, 시므온, 갓): 사람, 홍색(--고핫(성물)--에브라임기(에브라임, 므낫세, 베냐민):황색, 소--단기(단, 아셀, 납달리): 백홍색(벽옥), 독수리
레위지파 성 경: [신33:7-11] [모세의 축복-레위 지파에 대한 축복 ] 여기서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축복을 말하며 그들의 삶의 방향성을 말하고 있는 것은 이스라엘 지파가 누리게 될 하나님의 사랑과 은총을 말하는 것이며 또한 가나안땅에 들어가서 해야 하는 정복 전쟁에서 용기와 희망을 주기위해서 이와 같이 축복기도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그리스도와 더불어 하나님의 자녀의 권위를 회복한 우리들에게도 준비된 축복입니다. 영화롭고 신비한 하나님의 은총을 맛보기 위하여 우리에게도 준비되어 있습니다. 오늘은 12파중에서 레위지파에게 내려진 축복을 들어 보겠습니다. 레위는 레아의 몸에서 낳은 3번째 아들입니다. 레위는 묘한 인물입니다 창세기 34장에서 레위는 시므온과 함께 누이 디나가 강간당한 것에 대한 보복으로 세겜의 모든 남자들이 할례를 받은 지 3일 후에 쳐들어가 남자들을 죽이고 재물을 빼앗아 갔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레위 후손은 시내산에서 금송아지를 만들고 하나님편에 서지 않은 3천 명을 죽인 금송아지 이야기에 출현되는 지파이기도 합니다.(출애굽 32:25~29). 그리고 레위인은 성막과 언약궤를 보호하는 역할을 하였습니다(민수 1:53). 어느 때는 군사적인 행동으로 호전적이고 어느 때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서 평화적으로 섬기는 사역을 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항상 그들은 의롭고 항상 하나님 편에 서 있었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성향을 가진 이들에게 어떤 복이 이어졌나를 살펴보겠습니다. 8절 - [경건한 자로 선택]둠밈과 우림 - '둠밈'(Thummim)의 뜻은 '온전함'입니다. 그리고 '우림'(Urim)의 뜻은 '빛'입니다. 이것들의 재료나 모양이 어떠한지는 분명치 않으나, 하나님의 뜻을 묻고자 할 때 대제사장이 사용하던 일종의 제비(lot) 뽑기 도구였습니다.. 이것을 누가 가질 것이라 하셨나요? [경건한 자] - '경건한'에 해당하는 원어 '하시드'(*)는 원래 '자비한 것'을 가리킵니다. 그러나 여기서는 종교적인 의미로 사용되는 것으로서 '구별된 것' 또는 '거룩한 것'(시 16:10)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여기 '경건한 자'란 넓은 의미로는 '레위 지파'를, 좁은 의미로는 그 중에서도 특히 '대제사장'을 가리킵니다. 결국 실제로 둠밈과 우림은 레위 지파의 대제사장이 맡아 보관 하였었습니다(출 28:29, 30). 이렇게 이들에게 축복한 이유의 두 사건이 있습니다. 8절 하반절에보면 맛사에서. 시험하시고 므리바 물가에서...다투셨도다 - 모세에게 가장 힘들 어려웠던 대표적 사건은 맛사 생수 사건(출 17:1-7)과 므리바(뜻:여호와와 다투었다) 반석 사건(민20:2-13)입니다 그래서 이 축복을 말하기 전에 그것을 회고하는 것입니다. 두 사건이 다 같이 물이 없는 것 때문에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대적했었던 사건입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출애굽기 17장과 민수기 20장에는 백성들이 모세와 하나님을 대적하였습니다. 이때 모세와 아론은 어떻게 했나? 즉 레위계열은 어떻게 했나를 보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여기에는 하나님이 레위를 시험하시고 다투신 것으로 나옵니다 출애굽기 17:1-3절에도 이렇게 기록하여 놓았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온 회중이 여호와의 명령대로 신광야에서 떠나 그 노정대로 행하여 르비딤에 장막을 쳤으나 백성이 마실 물이 없는지라 백성이 모세와 다투어 가로되 우리에게 물을 주어 마시게 하라.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어찌하여 나와 다투느냐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를 시험하느냐 거기서 백성이 물에 갈하매 그들이 모세를 대하여 원망하여 가로되 당신이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어서 우리와 우리 자녀와 우리 생축으로 목말라 죽게 하느냐”고 항의하고 있습니다. 민수기 20장에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회중이 물이 없으므로 모여서 모세와 아론을 공박하니라 백성이 모세와 다투어 말하여 가로되 우리 형제들이 여호와 앞에서 죽을 때에 우리도 죽었더면 좋을 뻔하였도다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의 총회를 이 광야로 인도하여 올려서 우리와 우리 짐승으로 다 여기서 죽게 하느냐 너희가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나오게 하여 이 악한 곳으로 인도하였느냐 이곳에는 파종할 곳이 없고 무화과도 없고 포도도 없고 석류도 없고 마실 물도 없도다’고 기록해 놓았습니다 당시 모세와 아론은 첫 번째 므리바사건인 맛사(Massah)에서의 어려움은 잘 견뎌냈었습니다. 그러나 38년을 돌아 두 번째 므리바(Maribah)에 도착하여서도 변함없이 항의하고 하나님을 모독하는 백성들을 보고 모세는 그만 격정을 이기지 못하여 하나님의 거룩함을 드러내지 못하고 말았었습니다(민 20:12). 한편 여기서 이 두 사건을 동시에 언급하고 있는 이유는 인간의 행적에 상관없이 거룩한 직분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강조하기 위해서입니다. 즉 제사장의 직분을 가지는 것은 모세와 아론 뿐 아니라 전체 레위 지파에게도 오로지 하나님의 은혜로 선택되어 거룩한 직무를 받은 것이라는 것을 말하면서 12지파중에서 레위지파가 선택된 이유를 말하고 있습니다. [신33:9]-레위지파가 선택된 이유 그 부모...그 형제들...그 자녀를 알지 아니한 것 - 이 말은 (출 32:25-29)의 .금송아지 숭배 사건때 레위 지파가 하나님의 뜻을 수행하기 위하여 그 형제에게 칼을 빼든 의로운 열정 및 전적 헌신을 언급하고 있는 말입니다 결국 이 어려운 결단으로 인해 레위 지파는 "이스라엘 중 나뉘고 흩어지리라"(창 49:7)던 아버지 야곱의 저주를 축복으로 승화시켰던 것입니다. 초기 연동교회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게일 선교사가 담임목사로 시무할 때 1,2,3대에 이르러 백정출신들이 장로가 되었습니다. 그때 양반이었던 이원궁이라는 법무협판을 비롯하여 후에 부통령이이 되고 목사가 된 함태영의 아버지들이 반기를 들었습니다. 그리고 나가서 양반들의 교회인 안동교회를 세움니다. 그러나 당시 청년이었던 함태영은 아버지를 따라 가지 않고 교회와 게일 선교사를 돕습니다. 그에게는 하나님의 놀라운 은총이 임하여 목사가 되고 부통령이 되어 한국초대교회사에 한 획을 긋습니다. 마찬 가지입니다. 레위의 이런 행동은 "주의 말씀을...지킴을 인함이로다 -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구별된 레위인들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을 준행하는 일이 부모와 형제와 자녀에 대한 동정이나 연민보다도 더 중요했기에 이것이 인정 된 것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훗날 예수께서도 부모나 자녀를 자신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하늘나라에 합당치 않다고 가르치셨습니다(마 10:37;19:29;눅 14:26).[신33:10]-레위지파의 사역...주의 법도를...가르치며 주 앞에 분향하고 - 레위 지파의 영광스러운 중보(仲保)직임 두 가지를 받았습니다.. 1. 하나님의 율법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르치는 말씀 교육의 직임이고, 2. 하나는 백성들을 대신하여 하나님께 희생 제사를 드리는 예배봉사의 직임입니다. 다시 정리 해보면 일찍이 레위 지파는 시므은과 함께 레위의 세겜 사건(창 34:25-29)으로 인하여 야곱의 저주를 받았었습니다.(창 49:7),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이처럼 저주가 축복으로 전환되었습니다. 그 이유는 금송아지 사건시(출 32:25-29)의 의로운 열정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아뭏든 이후 레위 지파는 이스라엘 온 백성을 위한 이 두 직임(職任)을 감당하기 위해 이스라엘 각 지파 중에 흩어져 사역을 하지만 의로운 열정은 하나님곁에서 일하는 영광스러운 사역자로서의 축복을 받은 것입니다(민 35:1-8). [신33:11] - 레위의 그밖에 축복들....그 재산을 풍족케 하시고 - 하나님의 성막 봉사를 의해 구별된 레위 지파는 가나안 정복 후 다른 지파들과는 달리 기업을 받지 못했습니다(10:9;18:1). 따라서 그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바치는 십일조(十一條)에만 의지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그 재산을 풍족케 하시고'란 말은 결국 '이스라엘 모든 지파의 재산을 풍족케 하시고'라는 의미도 되는 셈입니다. 그 손의 일 - 레위 지파의 손을 통해 행해지는 모든 일, 즉 말씀 교육과 예배 봉사의 일을 가리킵니다. 그러므로 이일을 하나님은 기쁨으로 "받으소서(*, 라차) - 곧 아주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라는 말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를 대적하여...미워하는 자 - 레위 지파가 수행하는 말씀 교육과 예배 행위를 반대하는 모든 자들을 가리킵니다(Keil, Matthew Henry, Lange). 이는 곧 하나님을 대적하는 행위이니 결단코 용서받지 못한다.는 말입니다. 의도적으로 레위지파가 하는 일을 방해 하는 것은 곧 하나님의 일을 방해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종들의 위치를 말합니다. 그럼으로 하나님의 나라가 진전되는데 걸림돌이 된 일을 해서는 안됩니다 레위지파의 축복의 그들의 의로운 성향 때문이요 이와 함께 백성들이 축복을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진정으로 우리를 살리는 힘을 붙들어야합니다. .그 힘이 무엇인지 명확히 알고 거기에 집중하여야합니다. 그리고 지금걱정을 십자가에 묻어 버려야합니다 그리고 나머지 걱정은 모두 버리면 됩니다. 이렇게 하면 무너졌던 것들이 회복되는 은혜를 맛보게 될 것입니다. 레위지파 처럼 우리도 어느상황에서 든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생명 줄인 십자가를 붙들고 걱정을 묻어 버리고 하나님의 축복을 맛보기 바랍니다. 뜻 : 친함 [1] 레아가 낳은 야곱의 3자로 레위 지파의 조상이다(창 29:34). [2] 예수의 선조중 한 사람으로 시므온의 아들이다(눅 3:29).관련인물 >> [시므온] [맛닷] [3] 예수의 선조중 한 사람으로 멜기의 아들이다(눅 3:24).관련인물 >> [멜기] [맛단] [4] 알패오의 아들인데 아마 세리 마태와 동일인인 것 같다(막 2:14, 눅5:27-29). 다윗은 제사장들의 시종인 레위인들로 성가대와 오케스트라를 조직하였다.이것은 암스텔담 성경 박물관에 있는 모형이다. [1] 레위는 레아가 낳은 야곱의 셋째아들이며 그의 이름의 뜻은 [연합]이라는 의미이다. 레아는 남편과의 완전한 연합 즉, 부부일심동체가 되지 못하여 항상 고민한 여자였으며 따라서 그녀의 마음의 한은 [어떻게 하면 남편과의 완전한 연합을 이룰수 있을까]에 있었다. 그러던중 셋째아들 레위를 낳으므로 남편의 사랑받는 행복한 아내가 될 수 있었다. 레위에게 세 아들이 있었는데 그들의 이름은 게르손, 고핫, 므라리이다. 출애굽기에 등장하는 모세, 아론, 미리암 삼남매는 레위의 장자 고핫의 후손 아므람의 자녀들이다. 하나님께선 레위와 아론의 후손을 택하여 장막과 성전에서 제사드리는 제사장직을 맡게 하셨으며, 성전에서 나는 것을 먹고 살도록 거룩하게 구별하셨다. [레위]라는 이름의 뜻 그대로 하나님과 인간, 인간과 인간 사이에 연합을 이루며 사는 것이 그들의 사명이었다. 그러나 창세기 34장에 보면 레위는 이웃 부족을 살해한 살인자였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어떤날 그의 동생 디나가 히위족속이 사는 마을에 들 어갔다가 그 땅의 추장인 하몰의 아들 세겜에게 성폭행을 당하게 되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하몰과 세겜은 야곱의 장막을 찾아와서 서로가 사돈지간 이 되어 상부상조하면서 살 것을 제안했다. 이때 야곱과 그의 아들은 하몰과 세겜에게 히위족속의 남자들이 전부 할례를 받으면 응하겠다고 했다. 이들이 돌아가서 직접 할례를 행 하고 부족도 할례를 받게한 후 통증이 멎을때까지 장막에서 휴식하고 있을때 시므온과 레위 두 형제가 칼을 들고 하몰의 장막을 찾아가서 세겜과 히위족속의 남자들을 모두 죽여버리고 말았다. 이 일로 레위는 아버지로부터 저주에 가까운 유훈을 받게 된다. [시므온과 레위는 형제요 그들의 칼은 잔해하는 기계로다 내 혼아 그들의 모의에 상관하지 말지어다 내 영광아 그들의 집회에 참예하지 말지니다 그들이 분노대로 사람을 죽이고 그 혈기대로 소의 발목 힘 줄을 끊었음이로다](창 49:6-7). 이것을 보아 레위의 후손은 죄값을 지불키 위한 제사장들이며 그들의 제사는 참제사가 아님을 알 수 있다 구약의 창조이야기에서 가장 인상에 남는 문구가 바로 하나님이 자신의 형상과 모양을 따라 인간을 만들었다는 것이다(창1:26). 인간 창조에는 온 우주 만물을 창조할 때 나타나는 창조의 공통적 구조나 말씀창조의 도식이 나타나지 않고 특별 창조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지난 회의 흙으로 친히 빚으사 생기를 불어 넣었다는 사실과 오늘 말하려는 하나님의 형상대로의 창조사건이 독특한 것이다. 우리 자신이 바로 사람인데 여기서 말하는 하나님의 형상이란 도대체 무엇을 말하고 나는 그것을 어떻게 내 자신에서 발견할 수 있을까. 첫째로 여기서 하나님이 "우리"라고 한 것에 대해 하나님 자신을 향해 말한 주체와 객체가 일치하는 것으로 보기도 하고,천사들과 의논했다거나, 장엄성을 나타내는 강세적 복수로,혹은 하나님의 삼위일체로 보는 여러가지 해석이 있다. 하여튼 삼위일체 하나님의 사역이 창조에 개입하셔서 인간을 만드셨는데, 그의 형상과 모양대로의 창조이다. 어원상으로 ⑴형상(첼렘)은 "깎다" "조각하다"에서 나온 말로 실체(영광)의 그림자, 사본을 뜻하고 ⑵모양(네무트)는 비슷함, 비교, 견본들을 나타내어 법, 형, 물건의 종류를 의미한다. 즉 형상에 대한 닮은 모양은 형상을 한정한다. 사람은 바로 하나님 형상 그 자체가 아니라 하나님을 그대로 빼어닮은 형상(의 피조물...즉 하나님의 성품에 적셔진 담지자요 그 영광을 그대로 가감없이 비추어 내는 거울로서 하나님 성품에 참여하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형상에 대한 해석을 정리해 보면 첫째 내부적 모양인 인간에게 있는 인간의 정신능력이나 우월성 이성 창의력 영성 등 하나님과 교통하는 채널의 요소를 말한다. 그래서 에베소서 4장24절에「하나님을 따라서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음을 받은 자가 됨이라」고 말한다. 사람이 하등동물에서 진화되었다는 진화론은 이 창조원리에 어긋난다. ---추>JC안에서 하나님이 이미 품고 계셨던 사람을 하나님이 흙으로 빚으시고 그 코에 생기를 불어 넣으셔서 창조하신바 그 사람 이 아담안에 있던 하와를 하나님이 분리해내시어 이끌어 오셨을 때 하와에게 (마치 아담에게 하나님이 선하심과 인자하심으로 달콤하게 말씀하시듯)<내안에 너 있었다...너는 곧 나다...네 아픔은 내 아픔이요, 네 죽음은 내 죽음이다>고 아담은 고백한다...JC께서 십자가로 회복시키신 바 참사람인 모든 신자들은 이제 그분안에서 모든 인류에 대해 <너와 나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창세전에 하나님안에 이미 있었다>고 고백하며 그렇게 살아갈 수 있도록 하셨기에 참살이, 즉 하나님나라를 살아감에 대한 새로운 패러다임은 하나님의 가족인 하나님-사람으로서 바라보며 너그러이 서로 사랑함이며 이로 인해 열려진 부의 공동소유 현상은 당연한 열매일 것이다 레위는 '연합된 (자)'를 의미한다. 레위는 족장 야곱과 그의 아내 레아 사이의 셋째 아들이며(창 29:34), 이스라엘 중 그의 이름을 지니는 지파의 창시자이다. 레위는 형 시므온과 연합하여 누이 동생의 치욕을 갚기 위해 세겜성 남자들을 살해(창 34:25 이하)하는 잔인한 복수를 했다. 레위는 이 사건으로 인하여 그의 후손들이 이스라엘 중에 흩어질 것이라는 예언을 받았다(창 49:5-7). 레위의 자손들은 성전을 섬기는 자가 되었으며, 제사장 직무를 맡았다(출 2:1 이하; 출 6:20; 출 32:25 이하; 신 33:9 이하). 레위는 신약성경에서 3회 히브리서와 요한계시록에만 나온다. (a) 히 7:5, "레위의 아들들 가운데 제사장의 직분을 받는 자들이 율법을 좇아 아브라함의 허리에서 난 자라도 자기 형제인 백성에게서 십분의 일을 취하라는 명령을 가졌으나". 히 7:9, "또한 십분의 일을 받는 레위도 아브라함으로 말미암아 십분의 일을 바쳤다 할 수 있나니". 이 구절들에서 레위는 구약의 합법적인 제사장들의 조상이다. 예수님은 아브라함에게서 십일조를 받은 족보도 없는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은 제사장이라는 근거에서 예수님의 제사장 직분은 레위의 제사장 직분보다 우월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그 근거는 시 110:4이다: "여호와는 맹세하고 변치 아니하시리라 이르시기를 너는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아 영원한 제사장이라 하셨도다". 예수님은 유다의 자손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완전한 제사장 직분은 불완전하고 일시적인 레위의 제사장 직분을 대신하신다. (b) 계 7:7, "시므온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레위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잇사갈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이 구절은 레위의 특별한 지위에 대해 아무런 관심도 보이지 않는다.(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H. Strathmann). 어원은 불확실하나 일반적으로 「점착(粘着)하다, 같이 되다, 연합하다」 등의 뜻이다. [1]야곱과 레아 사이의 제3자이다(창 29:34). 야곱이 밧단아람에서 가나안 땅세겜 성에 이르렀을 때 레위의 여동생 디나가 히위 족속 중 하몰의 아들 그 땅 추장세겜에게 능욕되었으므로 그는 형 시므온과 더불어 하몰˙세겜, 그리고 그들의 모든남자에게 할례를 시행하는 조건으로 디나를 준다고 속여 그들을 전부 죽여 복수를 했다(창 34:25-31). 야곱은 임종때 이 잔인한 행위를 눈앞에 생생히 상기하면서 혐오하고 이들을 저주했다(창 49:6,7). 레위의 세 아들은 게르손˙고핫˙므라리이다. 137세에 애굽에서 죽었다(출 6:16). 이 세 아들들은 각각 씨족의 시조(始祖)가 되었다(창46:11,출 6:16,민 3:17,대상 6:16-48). 모세와 아론, 그리고 미리암 3남매는 레위의 아들 고핫 계통의 아므람의 아들이다(출 6:16,18,20,26). 레위 사람들은 가나안에 들어가서 성소의 관리를 맡았다. 아론과 그 아들들은 제사장직으로 성별되었으며,그 직무는 세습적이었다. 그러나 성막의 관리와 그 봉사에는 특수한 방법이 채용되었다. 성소의 관리와 운반, 예배용 기구의 준비는 한 사람이나 한 종족이 감당할 수 있는 일이 아니어서 이 봉사에는 보조자가 필요했다. 성막의 관리는 영광스러운 사명이었으므로 장자가 봉사하게끔 되어 있었다. 장자는 하나님의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 확신은 애굽으로부터의 해방과 관련되어 점점 굳어졌다. 애굽의 장자들이 죽임을 당할때 이스라엘 사람은 그 장자를 같은 운명으로부터 지키기 위해 출입문의 문설주에 양의 피를 바르지 않으면 안되었다. 이리하여 장자는 여호와의 특별한 소유로 되고 기념으로써 하나님에게 바쳐졌다(출 13:1116).그러나 전 지파의 장자 대신에 레위 지파가 성소의 봉사를 위해 선정 되었다. 그 이유는, 이스라엘 백성이 금송아지를 부어 만들어 여호와의 계약을 어겼을 때 레위 사람만이 돌아와 충성을 맹세하여 하나님께 열정을 나타냈기 때문이다(출 32:26-29,민 3:9,11-13,40,41,45-51, 8:16- 18). 시내 광야에서 행한 인구 조사에서 이스라엘사람의 처음난 남자의 명수는 레위 사람을 제외하고 22,273이었다(민 3:43,46). 레위사람의 총 수는 22,000명(민 3:39)이었으나, 22, 28, 34절을 합하면 22,300명이 된다. 이것은 오사(誤寫)했거나 300명은 레위 사람의 처음 난 아이로서 타지파의 장자를대신할 수 없었든지, 그 어느 것이었을 것이다. 2,200명이 대신이 되었으나, 이스라엘자손의 처음 난 자가 레위인 보다 273명이 더한데, 이 이스라엘 사람 한 명에 대해 은5세겔로 속(贖)했다(민 3:46-51).레위인의 임무는 이동할 때 법막과 그 부속품을 운반하는 것이었다. 숙영할 때 장막을치고 그 관리를 하고, 또 제사장의 보조자로서 여러 가지 일을 했다(민 1:50-53,3:6-9,25-37,4:1- 33, 삼상 6:15,삼하 15:24). 아론의 아들들은 레위인이고 제사장이었으므로 종종 `레위' 또는 `레위 사람'이라고 불리웠다(신 33:8-10,수 14:3,24:1,4,말 3:3). 또, 레위 사람은 그 관계 직무 여하를 불문하고 적절히 이것을 자발적으로 수행했다. 봉사의 직무 연령은 30세(민 4:3,대상 23:35)부터 시작되었으나, 25세(민 8:24), 20세(대상 23:24,27)부터 시작되는 경우도 있었다. 이것은 시대의 변천에 따라서 습관이 달라진 것으로 생각된다. 연령을 내리거나 올리는 것은 광야에서 방랑하는 중 모세에 의해 행해졌을 것이다. 다윗도 연령의 변경을 행했다. 그러나 민수기와 역대기에 의하면 30세가 인상된 연령이라고 생각된다. 또, 민수기 4장에서는 30세의 레위인의 임무에는 "회막 봉사와 메는 일에 입참하여 일할만한 모든 자, 곧 그계수함을 입은 자가"라는 설명이 가해지고 있으며(민 4:47), 사실 전장(全章)이 특정한 봉사를 상술하고 있다. 따라서 30세가 되면 비로소 레위인은 영광스러운 성소 본래의 임무, 곧 장막과 부속물의 운반, 행진, 후대에 숙영의 배치에 있어서 필요한 성속(聖俗)의 구별, 지혜, 사려, 분별에 적합하게 된 것으로 추정된다(민 4:1-33,대상23:3-5). 그러나 레위인의 일반적인 봉사는 최초 25세에서 시작하여, 상기 예외를 제외하고, 여러 가지 임무를 수행했다. 중요한 임무에는 연령에 대해서 아무 것도 언급되고 있지 않다(민 8:24-28,대상 23:25-32). 다윗은 연령을 인하시켰다. 이유는 간단한데, 임무를 부과하는 것을 적당하다고 생각했다는 것과, 이스라엘 사람의 병역 의무 연령, 즉 20세에 준하도록 명령했기 때문이다(대상 23:24,27). 또, 언약궤의 운반이 불필요하게 되어(대상 23:25,26) 성소의 직무도 결정되고, 정기적인 종교 의식의 준비에는 일정한 기간 지도를 받은 자를 써야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레위 사람이 봉사를 시작하는 법적 연령은 20세였다(대하 31:17,스 3:8). 이 연령으로제사장이나 레위인의 보조자로서 봉사를 시작했으나(대상 23:28-31,대하 29:34,35:11) 30세가 되기까지는 숙련자, 문지기, 성전 악기 연주자의 일원, 재판관 등의 중요한 임무에 적합한 자로는 간주되지 않았다(대상 23:3-5). 그들은 50세에 현직을 물러났으나 성소 임무의 후계자로 된 레위인을 돕는 것은 자유였다(민 8:25,26).레위인이 입는 공복(公服)은 규정되어 있지 않았으나, 중요한 행사 때는 세마포 예복을 입었다(대상 15:27,대하 5:12). 1세기에 옷이 일신되어 레위인과 성가대원은 아그립바 왕의 허가와 공회의 재가를 얻은 다음 제사장이 일상적으로 입고 있는 것과 같은 세마포 옷을 입도록 되어있었다(고대사). 그들은 성소 가까이에 살았으나, 상근(常勤)할 것을 요구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가나안의 분배 후 각 지방에 분산되었다(수 21:2040). 제사장이었던 레위인에게 분배되었던 성읍은 모두 유다˙시므온˙베냐민에게 있었는데(13), 이것을 제외하면 레위인의 성읍은 35이며, 북방과 동방에 살고 있던 자녀 제부족간에 산재했다(수 21:5-7).레위인은 한 부족으로서 "모든 이스라엘 사람을 위해 온전히 주께 바쳐져" 장막 봉사에 임명되었다. 그러나 북방 지방에는 레위인인 제사장이 정주하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우상숭배자 미가와, 그 후 이주해 온 같은 우상숭배자인 단 사람이 저급한 레위인의 계층에서 제사장을 선택한 것은 당연하다고 말할 수 있다(삿 17:8-13,18:18,20,30,31). 다윗 시대에 레위 사람은 4계급으로 나뉘어졌다. ⓧ 제사장의 보조자, ⓨ관리와 서기관, ⓩ 문지기, ① 성가대. 각 계급은(ⓨ는 제외) 24반차로 나뉘어서 교대로 봉사했다(대상 15:16-24,24장 26장, 대하 19:8-11,30:16,17,스 6:18,느13:5). 왕국 분열 후 많은 레위인과 제사장(베냐민에서)은 북왕국을 떠나 유다와 예루살렘으로 이주했다(대하 11:13-15). 또, 바벨론에서 귀환 후에는 예루살렘에 거주하였고, 예수 당시에는 서기관과 교법사 중에 레위인이 많이 있었다하며, 특히 세례요한도 이 지파 아론의 자손이다(눅 1:5,8).
[2]사도 마태의 별명이다(비교 마 9:9-13,막 2:14-17,눅 5:27-32). →마태. [3]멜기의 아들이며, 예수의 조상의 한 사람이다(눅 3:24). [4]시므온의 아들이며, 예수의 조상의 한 사람이다(눅 3:29,30).
고핫 자손들의 직무(민 4:1-20)...<고핫 -집회/모임...레위의 2자> 여기에 레위 지파의 제2차 소집이 기록되어 있다. 모든 이스라엘 중에서 하나님께서 레위 지파를 특별히 택하셔서 그 지파의 중년 남자들은 회막 일에 수종들도록 채용되었다. Ⅰ. 이 수에 포함될 자는 30세에서 50세까지의 모든 남자다. 다른 지파에 있어서는 전쟁에 나가도록 계수되는 사람들이 20세 이상이었다. 그러나 레위 지파에 대해서만은 30세에서 50세까지였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일에 수종드는 데는 최선의 강한 힘이 필요하며 처음이시며 최상이 되시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우리의 생애 중 황금 시기만이 어느 때보다 더 요긴한 까닭이다. 훌륭한 사역자가 되기보다는 좋은 군인이 되는 것이 시간적으로 훨씬 빠른 법이다. 1. 그들이 30세가 되기까지 채용되지 않은 이유는, 30세까지는 어린이와 같고 청년처럼 혈기가 있어 위험성을 지니고 있어 봉사할 만한 위엄을 소유하지 못하여 레위인으로서의 명예를 지니지 못했던 까닭이다. 25세가 되면 보좌하는 역할을 담당하는 견습생으로 들어가 일했다(8:24). 그리고 다윗 시대에 가서는 할 일이 많아져서 20세부터 일했다(대상 23:24; 스 3:8). 그러나 그들은 5년간 배우고 기다리며 봉사할 수 있는 사람이 되도록 자신을 훈련시켰다. 그러나 다윗 시대는 20세부터 30세까지 10년간 준비 기간이 있었던 것이다. 세례 요한이 그의 공적 전도를 시작하고 그리스도가 공생애를 시작한 것은 30세였다. 이것을 문자적으로 생각하여, 오늘 복음의 사역자들이 마치 30세까지는 복음 사업을 시작해서는 안 되며 꼭 50세가 되면 그 일을 그만두고 떠나라는 명령으로 여겨서는 안 된다. 그러나 이 사실은 우리에게 두 가지 좋은 규칙을 제시해 준다. (1) 하나님의 사역자는 풋내기가 되어서는 안 된다(딤전 3:6). 그 일에는 노련한 판단이 필요하고 보다 안정을 필요로 한다. 따라서 지식적으로 아직 어린아이와 같이 유치한 상태를 벗어나지 못한 사람은 하나님의 사역자로서는 적합하지 않다. (2) 가르치기 전에 배워야 하며, 다스리기 전에 봉사해야 한다. 따라서 “먼저 시험하여 보아야” 한다(딤전 3:10). 2. 50세에는 봉사하는 데 있어 힘든 일을 하지 않도록 했다. 특히 회막을 운반하는 일은 맡기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것은 여기에서 그들이 감당해야 할 특별한 봉사며 이런 일은 광야에 있을 동안에만 주로 있었던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노년기에 접어들면 면직되었다. (1) 그들 자신이 좋다고 하여 그들의 힘이 쇠약해지기 시작했는데도 불구하고 지나치게 일하게 할 수는 없었다. 사람에게 있어서 20년간의 선한 봉사는 아주 적합하게 생각되었다. (2) 그 일을 명예롭게 하여 연령에 제한 없이 느리고 움직임이 어려운 사람들이 그 일을 하도록 허락하지 않았다. 우리가 가장 활동적이며 적극적인 체격 조건을 가졌을 때 하나님께 봉사해야 한다. 늙어서 회개하겠다고 회개를 미루는 사람은 이 점을 생각하지 못한 자요, 따라서 최상의 일을 최악의 시기에 가서 하려고 버려 두는 셈이 된다. Ⅱ. 그들의 사역에 대한 설명. 그들은 “군사가 될 만한”(개역에는 없음―역주) 또는 “회막의 일에 참가할 만한” 자들이라고 했다. 하나님의 일은 “선한 일”이다(딤전 3:1). 사역자들은 명예뿐 아니라 노동도 해야 하며, 삯을 받을 뿐 아니라 일을 하기 위해서 부름을 받는 자들이다. 하나님을 섬기는 일은 또한 “선한 싸움”이다(딤전 1:18). 봉사하려는 자들은 하나님의 역사(役事)에 참가한다는 생각을 가져야 하며 자신이 “좋은 군사”임을 시인해야 한다(딤후 2:3). 고핫 자손이 할 일을 세부적으로 살펴보자. 1. 그들은 회막을 이동하는 일을 맡았다. 후에 회막이 고정되었을 때에는 다른 일을 지시받았다. 그러나 이것은 그 당시의 할 일이었다. 이스라엘 진이 가는 어느 곳이든 여호와의 회막이 그들과 함께 있었고, 회막을 운반하기 위해 상당한 관심과 염려가 함께 따랐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가 어디를 가든지 우리와 함께하는 믿음을 소유해야 함을 깨닫고, 믿음의 일은 어느 부분이든지 망각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명심하자. 고핫 자손들은 회막의 거룩한 기구들을 모두 운반했다. 전에는 그들이 회막의 모든 일(3:31)을 맡았다. 그러나 여기에 보면 그들에게 보다 특별한 지시가 내려진다. (1) 아론과 그의 아들들 제사장들은 여기에서 지시한 대로 고핫 사람들이 운반해야 할 물건들의 짐을 꾸려야 했다(5절 이하). 전에 하나님께서 아무도 지성소에 들어올 수 없다고 지시하셨다. 그러나 단지 아론만은 일 년에 한 번씩 분향의 연기 속에 들어갈 수 있도록 허락되었다(레 16:2). 그러나 회막이 안정되지 못한 상태에서 지성소에 들어갈 일이 그 외에도 생길 수밖에 없으며, 그 율법은 여기에서는 폐지된다. 그래서 이동할 때마다 아론과 그의 아들들은 지성소에 들어가 법궤를 꺼내어 운반할 수 있도록 꾸렸다. 패트릭 주교의 말에 따르면, 속죄소 위를 덮고 있던 하나님의 엄위, 곧 쉐키나는 구름 기둥이 되어 같이 운행하게 됨으로써 떠나 있게 된다. 따라서 이동시에는 법궤(속죄소는 법궤 윗자리다―역주)에 접근해도 위험이 없었다고 한다. (2) 거룩한 모든 기물은 모두 덮어야 했다. 법궤와 진설병 상은 세 겹으로 덮고, 그 외의 다른 것들은 두 겹으로 덮어야 했다. 거룩한 불을 주의 깊게 보존하여 긁어 모으며, 단의 재는 버리고 자색 보를 폈다(13절). 성소에서는 놋단이 누구나 볼 수 있도록 개방되어 있었다 할지라도 운반할 때는 덮었다. 이렇게 성물을 덮어서 운반한 데는 이유가 있다. ① 안전을 유지하기 위함이다. 이 거룩한 물건들이 바람으로 펄럭여 주름 잡히거나 더럽혀지지 않도록 하며, 비로 인해 훼손되지 않고 햇빛으로 인해 퇴색하지 않게 하여, 아름답게 보존할 수 있기 위함이다. “그 모든 영광 위에 천막을 덮으실 것이며”(사 4:5). 두텁고 질긴 해달의 가죽으로 된 덮개로 비에 젖지 않도록 방지했다. 이 세상의 광야를 통과하는 우리는 우리의 여정에 있어서 어떤 날씨를 만나든 대비하는 배려를 기울여야 한다(사 4:5, 6). ② 단장과 장식을 위해서다. 이 물건들의 대부분은 청색 또는 자주색, 진홍색 보자기를 덮었다. 그리고 법궤는 “순청색” 보자기를 덮었다(6절). 혹자는 말하기를 이것은 우리와 높은 보좌 사이에 휘장과 같이 펴 있는 하늘의 상징이라고 한다(욥 26:9). 하나님에게 신실한 자들은 역시 사람들 앞에서도 진실하게 보이도록 노력하여 “우리 구주 하나님의 교훈을 빛나게”(딛 2:10) 해야 한다. ③ 은폐하기 위해서다. 그것은 구약 시대의 어두움을 나타낸다. 오늘날 복음에 의해 밝혀지고 어린이에게도 계시된 것이 예전에는 지혜로운 자들과 지각 있는 자에게도 감추어졌다. 그들은 단지 덮개만 보았지 거룩한 것 그 자체는 보지 못했다(히 10:1).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는 “열방의 그 덮인 휘장을 제하셨다”(사 25:7). (3) 성물은 모두 덮어서 고핫 사람들이 어깨에 메고 운반했다. 채를 꿴 것들은 채로 운반했다(6, 8, 11, 14절). 채가 없는 것들은 메는 틀 위에 올려놓거나 수레 위에 올려놓고 운반했다(10, 12절).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임재하신다는 표식은 모두 얼마나 유동적인 것인가를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움직일 수 없는 나라를 바라보아야 한다. 2. 아론의 맏아들 엘르아살은 이 일에 있어서 고핫 사람들을 감독하는 자로 지명되었다(16절). 그는 빠뜨린 것이 있거나, 남겨 두거나 다른 것으로 바꾸어 놓지 않도록 하는 데 주의를 기울여야 했다. 제사장으로서 그는 레위 사람보다 큰 명예를 가졌다. 그러나 그는 후에 더 많은 염려를 해야 했다. 그의 염려는 다른 레위인들이 어깨에 메었던 짐보다 그의 마음에 더 무거운 짐이 되었을 것이 분명하다. 회막을 맡는 일보다는 회막의 일을 하는 것이 더 용이하며, 다스리는 것보다 순종하는 것이 더 용이하다. 3. 레위 지파 사람들의 생명을 보존하기 위해 관심을 많이 기울였다. 즉 지성물에 적합하지 않은 불경한 것들의 접근을 금해야 했다. 그리하여 “너희는 고핫 족속을 끊어지게 말라”(18절)고 하셨다. 타인이 범죄하지 않도록 막지 않는 자들은 그들을 죽음의 길에 들어서게 하는 일임을 명심하자. (1) 제사장이 성물(聖物)을 덮기까지는 고핫 사람들이 성물을 건드려서는 안 된다(15절). 여호와의 기물을 나르는 사람까지도 그들이 무엇을 나르는지 몰랐다. 마찬가지로 율법을 해석해 주어야 할 의무가 있는 자들까지도 복음에 대해서는 눈이 멀었던 것이다. (2) 성물이 덮여 있을 때도 그들은 만질 수 없었다. 심지어 법궤도 만질 수 없었다. 이런 것들을 “거룩한 것”이라고 불렀다. 이것들을 만지면 죽음의 벌을 당하게 되었다(15절). 웃사는 이 법을 위반했으므로 죽었다. 이처럼 여호와를 섬기는 사역자들도 당시에는 공포 가운데 있었고, 그 시대는 암흑 같은 공포의 시대였다. 그러나 지금은 그리스도로 인해 그 사정이 변했다. 즉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눈으로 본 바요 주목하고 우리 손으로 만진 바라”(요일 1:1). 그리고 우리로 하여금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가게”(히 4:16) 하신다. 다른 두 집안의 임무(민 4:21-33) 본문은 레위 족속 중 다른 두 가문의 역할에 대해 언급한다. 고핫 집안같이 그렇게 영광스럽지는 않으나, 그래도 그 역할은 꼭 필요한 것이며 질서 있게 실행되어야 할 일이었다. Ⅰ. 게르손 <뜻--축출/추방(나그네 됨)...레위의 1자>자손은 성막의 모든 휘장과 앙장과 빗장과 해달의 가죽 덮개를 취급하는 책임을 맡았다(22-26절). 구름이 움직일 때 그들은 회막을 헐어서 법궤와 다른 거룩한 물건들을 운반하고, 구름이 멈추는 곳에 옮겨 다시 쳤다. 아론과 그의 아들들은 그들에게 각기 사명을 나누어 맡겼다. 즉 “너희들은 휘장에 책임을 다하라. 또 너희들은 앙장에 대한 책임을 다하도록 노력하라. 따라서 모두가 자기의 과업을 알아야 한다. 그렇게 되면 혼돈이 없을 것이다”(27절). 이다말이 특별히 그들을 감독하게 되었다(28절). Ⅱ. 므라리 <뜻--쓰다/아픔...레위의 3자>자손들은 무거운 짐을 운반할 직무를 맡았다. 장막의 널판들과 빗장과 기둥들과 받침들과 말뚝과 줄들을 운반해야 했다. 이런 것들을 이름을 열거하여 그들에게 지시했다(31, 32절). 이렇게 목록이 그들에게 특별히 주어져 있는 것은, 성막을 다시 세울 때 미리 준비하여 없어서 찾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함이다. 성소 안에 있는 것보다는 덜 중요한 것같이 보이나 이처럼 주의 깊게 취급함으로, 모든 거룩한 기물들이 정결하고 온전하게 보전되어 조금도 손실되지 않도록 주의를 갖도록, 최대로 치밀해야 할 것을 우리에게 교훈한다. 이 사실은 역시 하나님께서 그 분의 교회에 대해, 또 교회의 모든 권속에 대해 관심을 갖고 살피시고 계심을 암시한다. 선한 목자는 “자기 양의 이름을 각각 불러”(요 10:3) 인도한다. 실제로는 그렇게 많은 사람까지는 필요 없을 것이나, 수천 명이 이 봉사를 위해 채용되었다. 그러나 성막을 헐고 아주 멀리 가서 다시 세우고 하는 것은 불가피했는데, 특별히 각자가 자기 일을 알고 있을 때 여러 사람이 노력하여 빨리 일을 할 수가 있었다. 그들은 각자 자기들의 장막도 있어, 언제나 갖고 다녔다. 그러나 아마 30세 이하의 청년과 50세 이상의 노인들이 그들을 도왔을 것이다. 하나님의 집은 언제나 우리의 집보다 우선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그들의 개인 장막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다. 하나님의 집은 황폐케 되었는데도, 자기의 집을 건축하고 내부 단장을 하는 자들의 관심은 앞뒤가 전도된 것이다(학 1:4, 9). 성도의 죽음을 장막이 허물어지는 것으로 표현했다(고후 5:1). 또 장막을 벗어나는 것으로 표현하기도 한다(벧후 1:14). 불멸의 영혼은 지성물처럼 먼저 덮여서, 천사들에 의해 보이지 않게, 또 우리의 엘르아살이신 주 예수의 돌보심하에 운반된다. 몸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피부와 살은 성소(또한 성막/성전)의 휘장이요, 뼈와 근육은 (성막의 틀과 기초인)빗장과 기둥이니, 하나도 빠짐이 없이 관심을 기울여야 거룩하게 보존되어야 마땅하다.(살전5:23) 계명은 성전된 몸 전체의 어떠함에 대한 것이며, 계약은 그 근본바탕이 티끌인 사람과 더불어 맺어진 것이기에, 이것들은 지성소에 안전하게 보관되어 있다가 재림주의 심판 날에 새로이 장막을 건축하는데 적용될 것이며, 그날에 이 육체는 결국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몸처럼 될 것이다. 제사장과 레위인들의 할 일(민 18:1-7) 본 장의 내용과 앞 장의 내용은 놀랄 만한 일치점을 보이고 있다. Ⅰ. 앞장의 끝에서는, 그 백성들이 역경을 불평하다가 생명의 위험을 느낀다. 즉 하나님께 가까이 가는 것은 자기들에게는 무서운 일이었으며, 자기들 가운데 있는 회막이 자기들에게 공포와 파멸을 가져다 주기보다는 기쁨과 영광을 가져다 주기를 희망했다. 이제 이러한 불평의 응답으로, 제사장들이 그들을 대신하여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리라는 것을 그들에게 이해시켜 주었다. 그러므로 백성들이 일정한 거리를 지켜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조금도 치욕과 피해를 입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과의 즐거운 친교가 제사장들의 매개를 통해 지속되었다. Ⅱ. 하나님은 바로 전에 아론에게 많은 영예를 주셨다. 그의 지팡이에는 싹이 나고 꽃이 피게 하고, 다른 우두머리들의 지팡이는 그대로 있게 하여 열매나 아름다움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는 아론이 자기의 풍성한 영예와 자기의 지위를 지지해 준 그 기적을 뽐내지 않게 하기 위해서, 그에게는 무거운 짐도 있으며 의무도 있다는 것을 알려 주셨다. 아론은 자기에게 주어진 사명의 중차대함과 그 사명의 정확한 수행의 어려움을 생각하면서, 자기의 승진을 자랑하기보다는 두려움과 떨림으로 그 직능의 영예를 받으려 했을 것이다. “높은 마음을 품지 말고 도리어 두려워하라”(롬 11:20). 1. 하나님은 아론에게 그의 직위에 따르는 위험성도 이야기해 주셨다(1절). (1) 제사장들과 레위인들(“너와 네 아들들과 네 종족”)은 “성소에 대한 죄를 담당”해야 하느니라. 즉 성소가 이방인의 침입이나 부정한 사람들의 개입으로 모독되면, 그 책임은 레위인들과 제사장들이 져야 한다는 것이다. 고의로 그런 죄를 짓는 죄인들은 자기의 죄 때문에 죽어야 하거니와, 그의 피는 파수꾼의 손에서 찾게 된다. 또는 더 일반적인 말로 바꿀 수도 있다. “성소의 어떤 의무나 직무가 소홀히 되거나, 어떤 의식이 율법에 따라 제때에 거행되지 않거나, 성소의 이동시에 잃어버리는 것이나 잘못 놓이는 것이 생기게 되면, 너희는 거기에 책임을 지고, 생명으로 답하게 되리라.” (2) 제사장들 자신들은 “제사장 직분에 대한 죄를 담당”한다. 즉 그들이 자기들의 일을 소홀히 하거나 남들이 대신하도록 허용하거나 자기들의 일을 잊게 되면, 거기에 대한 책임을 그들이 져야 한다는 것이다. 맡은 일과 권력이 크면 클수록 그 사명을 헛되이 하거나 배신하면, 거기에 대한 죄와 처벌도 그만큼 커진다는 것을 명심하자. 이것이 우리가 남의 영예를 부러워하지 말아야 하며 스스로 높은 지위에 오르려고 욕심을 부리지 말아야 할 훌륭한 이유다. 즉 높은 직위는 큰 죄를 범할 기회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성소의 일을 맡은 자들은 거기에 대한 책임도 중하다. 누가 무거운 걱정을 지는 자들의 지위를 부러워하랴? 2. 하나님은 아론에게 그의 직위에 따른 의무도 일러 주셨다. (1) 아론과 그의 아들들은 “증거의 장막 앞에”서 섬겨야 한다(2절). 패트릭 주교가 설명하는 바대로, 이 사실은 “지성소 앞에서” 일하라는 것을 말한다. 지성소에는 법궤가 있었는데, 그들은 회막의 바깥 휘장 밖, 회중의 회막 문 안에서 일하라고 한 것이라고 보고 있다. 그들은 금단, 식탁, 촛대에 시중을 들어야 한다. 일반 레위인들은 거기에 가까이 올 수 없었다. 그러나 너희는 “섬기라”(7절). “너희는 지배하라”는 것이 아니다(즉 그들이 하나님의 유업을 받아 주인 노릇 하라는 뜻이 결코 아니다). 오히려 “너희는 하나님과 회중을 섬기라”는 것이다. 제사장직은 섬기는 일이라는 사실을 명심하자. “감독의 직분을 얻으려 하면 선한 일을 사모한다 함이로다”(딤전 3:1). 사역자들은 자기들이 일하는 자들임을, 즉 겸손하고 부지런하고 신실해야만 하는 종들이라는 사실을 상기해야 한다. (2) 레위인들은 아론과 그의 아들들을 도와서 “회막의 직무”를 보좌해야 한다(2-4절). 그러나 결코 그들이 성소의 기물에 가까이 가거나 제단에 나가서 번제물을 태운다거나 피를 뿌리는 중대한 의식에 개입해서는 안 된다. 아론의 집안은 매우 소수였다. 그래서 그들의 수효가 증가하면 이스라엘의 다른 지파의 사람들의 수효도 증가할 것이므로, 제사장들의 손만으로는 회막의 모든 예식을 다 하기에 부족했다. 그래서 (하나님은 말씀하시기를) “레위인은 너와 합동”하라고 하셨다(2, 4절). 레위라는 이름이 “합동된”이라는 뜻을 의미하는 것도 이 때문인 듯하다. 많은 레위인이 최근 아론에게 거역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이 진실한 마음으로 아론의 이해 관계와 정에 연합하여 다시는 싸우지 않도록 하셨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마음을 움직이셔서 아론까지도 인정하도록 만드신 것은, 하나님께서 아론을 인정하셨다는 좋은 징조이기도 했다. 하나님은 레위인들을 제사장들에게 선물로 주었다고 했다(6절). 우리에게 하나님의 일을 돕는 자들이 있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큰 선물인 줄을 알아야 함을 잊지 말자. (3)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은 다같이 힘을 모아 신성한 것들이 모독을 받지 않도록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레위인들은 “회막의 직무를 지킬” 것이다. 그러나 “외인(성소의 접근이 불허된 자들)은 가까이” 못 할 것이라고 했다(4절). 그리고 그런 외인이 있으면 죽이라고 했다(7절). 또 제사장들은 “성소의 직무”를 지켜야 한다(5절). 그들은 일반인들에게 지켜야 할 거리를 지키도록 가르치고, 고라와 그의 패거리들처럼 한계를 범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했다. 즉 그래서 “진노가 다시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미치지 아니”하도록 해야 한다. 죄를 막는 것이 진노를 막는 일이다. 죄가 가져온 피해는 우리에게나 남에게 다시는 죄를 짓지 않게 하는 경고로 받아들여야 한다.
유다지파 유다지파는 장자가 아니다. 그렇지만 항상 앞에 선다. 대제사장의 흉패의 열 두 보석 중 첫 번째 줄의 첫 보석이 유다의 보석이다. 출애굽하여 광야의 행진을 할 때도 유다지파가 제일 앞에 서서 나아간다. 더 나아가 유다 지파를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가 태어난다. 어떻게 이런 영적 축복을 누렸을까? 이제 유다의 출생부터 살펴보며 영적 교훈을 찾아보자. ==유다의 출생 (창 29:31)여호와께서 레아에게 총이 없음을 보시고 그의 태를 여셨으나 라헬은 무자하였더라 (창 29:32-34)레아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르우벤이라 ...그 이름을 시므온이라 하였으며...그 이름을 레위라 하였으며 (창 29:35)그가 또 잉태하여 아들을 낳고 가로되 내가 이제는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하고 이로 인하여 그가 그 이름을 유다라 하였고 그의 생산이 멈추었더라 유다라는 단어의 뜻은 ‘찬송’이다. 레아는 유다를 낳으면서 “내가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라고 외쳤다. 여기에는 자신의 남편과의 관계 향사에 대한 소망은 언급되지 않고 있다. 레아는 남편의 애정을 누릴 수는 없지만 하나님께서 네 명의 아들을 주신 것에 분명 감사하고 있다. 그래서 비탄은 찬양으로 변화되는 것이다. 고난은 축복의 통로이다. 시편의 많은 부분이 시인 내면의 고난을 하나님 안에서 찬양으로 승화시키고 있다. 이것은 우리들에게 신앙의 길이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신앙은 고난을 넘어 찬양으로 나아가는 길이다. 고난이 없이는, 비탄이 없이는 진정한 찬양을 할 수 없는 것이다. 유다를 낳음으로 레아의 생산이 멈추었다고 말한다. 왜 이렇게 기록할까? 분명한 것은 일시적으로 불임을 겪는다. 이는 부부 생활이 중단되었다는 의미로 읽은 것이 바람직하다. 비록 부부생활은 멈춰 섰지만 네 자녀가 그녀와 함께 하고 있다. 레아에게서 르우벤, 시므온, 레위, 유다 등 네 자녀가 태어난다. 그런데 여기에서 세 자녀가 하나님과 관련된 이름을 갖는다. (창 29:32) ... 르우벤 ... 여호와께서 나의 괴로움을 권고하셨으니 (창 29:33) ... 시므온 ... 여호와께서 나의 총이 없음을 들으셨으므로 (창 29:35) ... 유 다 ... 내가 이제는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자녀들의 출생은 인간적인 성취가 아니라 하나님의 선물임을 보여준다. 그러기에 아름답지도 않고 사랑스럽지도 않은 레아 역시 하나님의 복을 받는다. 하나님이 선물로 주신 우리 자녀들을 우리는 어떤 관점으로 대하는가? 그들이 하나님의 선물이며, 하나님이 주셨음을 인정하는가? 그러면 자녀에 대한 우리들의 태도가 어떠해야 할까? 하나님이 주시는 도전을 마음에 새기고 자녀를 ‘하나님의 선물’, 하나님이 바로 내게 주신 것임을 고백하며 자녀를 통해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도록 살자. ==야곱의 축복 중에서 유다 (창 49:8)유다야 너는 네 형제의 찬송이 될지라 네 손이 네 원수의 목을 잡을 것이요 네 아비의 아들들이 네 앞에 절하리로다 (창 49:9)유다는 사자 새끼로다 내 아들아 너는 움킨 것을 찢고 올라 갔도다 그의 엎드리고 웅크림이 수사자 같고 암사자 같으니 누가 그를 범할 수 있으랴 (창 49:10-12) 10)홀이 유다를 떠나지 아니하며 치리자의 지팡이가 그 발 사이에서 떠나지 아니하시기를 실로가 오시기까지 미치리니 그에게 모든 백성이 복종하리로다 11)그의 나귀를 포도나무에 매며 그 암나귀 새끼를 아름다운 포도나무에 맬 것이며 또 그 옷을 포도주에서 빨며 그 복장을 포도즙에 빨리로다 12)그 눈은 포도주로 인하여 붉겠고 그 이는 우유로 인하여 희리로다 먼저, 8절은 유다의 우월성에 대한 예언이다. (창 49:8)유다야 너는 네 형제의 찬송이 될지라 네 손이 네 원수의 목을 잡을 것이요 네 아비의 아들들이 네 앞에 절하리로다 유다에게 ‘네 형제의 찬송이 될지라’고 축복한다. “네 형제의 찬송이 될지라”는 말씀을 보면 하나의 일관된 흐름을 읽을 수 있다. 어머니는 아들을 낳으면서 ‘하나님을 찬양하리로다’ 외쳤다. 아주 특이하게 사람이 찬양 받고 있다. 일반적으로 하나님이 그분의 이름이 찬양의 대상이 되는데 인간이 찬양을 받고 있다. 여기의 찬양은 유다가 지도자가 됨으로써 그의 형제들에 의해 찬양을 받게 된다는 의미이다. 야곱은 ‘네 아비의 아들들이 네 앞에 절하리로다’고 축복한다. 야곱의 축복대로 유다는 후일에 이스라엘을 지도하는 지도자가 된다. 유다는 매일 접촉하는 가정 생활에서 날마다 그의 성실함을 통하여 그 형제들의 존경을 얻게 되었다. 그래서 그들은 환경의 강요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원하는 마음으로 그를 찬양하고 그 앞에 머리를 숙였던 것이다. 그의 마음 속에 도사린 이기적인 경향에 대하여 투쟁하고 승리하는 생애가 “유다야, 너는 네 형제의 찬송이 될지라”는 말씀 속에 함축되어 있다. 르우벤이 장자권을 상실한 것은 어떤 대중에게 범한 죄 때문이 아니라 가정생활에 신실치 못했기 때문이다.(대상 5:1) (대상 5:1)이스라엘의 장자 르우벤의 아들들은 이러하니라 (르우벤은 장자라도 그 아비의 침상을 더럽게 하였으므로 장자의 명분이 이스라엘의 아들 요셉의 자손에게로 돌아갔으나 족보에는 장자의 명분 대로 기록할 것이 아니니라 (대상 5:2)유다는 형제보다 뛰어나고 주권자가 유다로 말미암아 났을지라도 장자의 명분은 요셉에게 있으니라) 그는 자기 가족으로부터의 존경받는 일에 대해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다. 그의 아버지와 형제들은 그의 사생활에 대해 신뢰하지 못했다. 동일한 유혹들과 현경에 쌓여 있었던 유다는 먼저 가족들에게 신뢰를 받았다. 유다는 형제들 중 신임을 얻었을 뿐만 아니라 선봉 역할을 했다. 베냐민에 대한 보증인이 되겠다고 제안했을 때 야곱은 르우벤의 제안을 거절하지만 유다의 제안을 받아들여 베냐민을 애굽으로 데려가도록 허락한다.(창 43:8-13, 42:37-38) 또한 야곱과 그의 가족들이 애굽에 도착했을 때 야곱은 유다를 요셉에게 미리 보내어 자기를 고센으로 인도하게 했다.(창 46:28) 애굽의 총리가 볼모로 베냐민을 요구하여 야곱의 아들들이 심한 곤경에 빠졌을 때, 간곡히 호소하여 마침내 요셉이 더 이상 자기의 정체를 감출 수 없도록 한 사람도 유다였다.(창 44:14-34, 45:1-3) 제비를 뽑아 땅을 분배할 때에도 유다지파가 제비에 제일 먼저 뽑힌다. 유다지파는 헤브론을 중심으로 남쪽의 넓은 땅을 차지했다. 대부분 이미 점령된 땅이었다. 요셉의 자손인 에브라임 자손과 므낫세 반지파 자손도 대부분 점령된 북부지역을 중심으로 땅을 차지했다. 모세가 예언한 대로 되었다. ‘네 손이 네 원수의 목을 잡을 것이요’라고 했는데 이는 적들에게 승리했음을 보이는 행동이다. 둘째, 9절에서 유다는 사자로 묘사된다. (창 49:9)유다는 사자 새끼로다 내 아들아 너는 움킨 것을 찢고 올라 갔도다 그의 엎드리고 웅크림이 수사자 같고 암사자 같으니 누가 그를 범할 수 있으랴 사자는 동물들 중 왕이다. 유다 지파의 강력한 권위와 힘을 읽을 수 있다. 감히 그 누구도 그를 범할 수 없는 사나운 사자의 모습에 비유된다. 사자는 구약에서 100번 언급되는 동물이다. 성경 시대의 이스라엘과 중동에서는 흔한 동물이었으며, 왕들은 사자를 사냥할 때 보이는 용맹을 비문에 남겨 자랑하고 있으며, 궁정벽화에 묘사하고 있다. 사자는 십자군 이후 팔레스타인에서 사라져 갔으며 1950년에는 단지 몇 마리만 유프라테스 상류 지역과 아라비아 사막의 고립지역에서 발견되었다. 역사적으로 보면 유다지파에서 태어난 다윗 왕의 군사적 성공은 이러한 축복의 성취로 볼 수 있다. ‘홀이 유다를 떠나지 아니하며’라는 말씀에서 홀이란 통치권과 그 능력을 상징하는 말이다. 그의 삶이 ‘하나님을 찬양합시다’라는 고백 속에서 시작되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하나님을 찬양하는 사람이 찬양의 대상이 되고 있다. ‘네 손이 네 원수의 목을 잡을 것이요’라는 야곱의 축복은 승리에 대한 약속이다. ‘네 아비의 아들들이 네게 전할 것’이라는 야곱의 축복은 유다를 통해서 메시야가 오실 것에 대한 하나의 예언적인 말씀이다. 사도 요한은 계시록 5장에서 심판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주만물이 심판 받는 장면을 묘사하고 있다. (계 5:4-5) 4)이 책을 펴거나 보거나 하기에 합당한 자가 보이지 않기로 내가 크게 울었더니 5)장로 중에 하나가 내게 말하되 울지 말라 유대 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가 이기었으니 이 책과 그 일곱 인을 떼시리라 하더라 4절에서 인간 가운데는 심판할 자가 없다는 것이고, 5절은 그 심판할 자가 유다 지파의 후손 가운데 나온다는 말씀이다. 사자의 이미지로 상징된 예수 그리스도가 인류를 심판하시기에 합당한 심판의 주님이라는 것을 이 사실을 통해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다. 셋째, 10-12절은 지도자로서의 유다지파에 대한 축복이다. (창 49:10-12) 10)홀이 유다를 떠나지 아니하며 치리자의 지팡이가 그 발 사이에서 떠나지 아니하시기를 실로가 오시기까지 미치리니 그에게 모든 백성이 복종하리로다 11)그의 나귀를 포도나무에 매며 그 암나귀 새끼를 아름다운 포도나무에 맬 것이며 또 그 옷을 포도주에서 빨며 그 복장을 포도즙에 빨리로다 12)그 눈은 포도주로 인하여 붉겠고 그 이는 우유로 인하여 희리로다 유다 지파가 권위의 상징인 ‘지팡이’와 ‘홀’을 지닐 것을 말한다. 이 구절만으로는 유다가 단지 한 지파의 지도자가 될 것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그러나 8절을 보면 유다는 자신의 지파의 지도자가 모든 지파를 이끌게 되리라는 약속을 받는다. ‘그 발 사이에서’란 말은 유다의 후손들을 언급한다. 원래 ‘발’은 비밀스런 부분에 대한 완곡한 표현이다. (삿 3:24)에훗이 나간 후에 왕의 신하들이 와서 다락문이 잠겼음을 보고 가로되 왕이 필연 다락방에서 발을 가리우신다 하고 (삼상 24:3)길 가 양의 우리에 이른즉 굴이 있는지라 사울이 그 발을 가리우러 들어가니라 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그 굴 깊은 곳에 있더니 (사 7:20)그 날에는 주께서 하수 저편에서 세 내어 온 삭도 곧 앗수르 왕으로 네 백성의 머리털과 발털을 미실 것이요 수염도 깎으시리라 ‘그의 나귀를 포도나무에 매며’, ‘그 옷을 포도주에 빨며’ 포도나무가 많다는 것을 보여 주는 이미지이다. 이는 황금시대를 갖게 될 것이라는 미래에 대한 축복이다. 이는 궁극적으로 메시야 시대가 이렇게 풍성한 시대임을 묘사하고 있다. ‘그 눈은 포도주보가 붉겠고, 그 이는 우유보다 희겠다’는 표현은 지도자의 아름다움을 언급하는것이다. 좀더 나아가 이는 앞으로 도래할 왕 앞에서 포도와 우유가 풍성해질 것에 대한 또 다른 언급이다. 아라비아 속담에서 ‘포도주로 인해 붉다’는 것은 매우 부유함을 상징하는 것이다. 지도자로서 유다 지파가 섬길 때 그 부유함과 풍성함을 보여주는 축복이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손길이 닿을 때에도 이렇게 유다지파처럼 풍성함과 부유함의 복이 있으면 좋겠다. 모세의 축복 (신 33:7)유다에 대한 축복은 이러하니라 일렀으되 여호와여 유다의 음성을 들으시고 그 백성에게로 인도하시오며 그 손으로 자기를 위하여 싸우게 하시고 주께서 도우사 그로 그 대적을 치게 하시기를 원하나이다 하나님이 유다의 음성을 들으실 것이며, 백성들은 그의 지도력에 순종할 것이고, 그들은 백성들을 인도하게 될 것이며, 그들은 승리할 것이라는 내용으로 요약할 수 있다. 찬양의 이미지로 상징된 유다 지파의 음성을 하나님께서 기쁘고 즐겁게 들으시며, 이 백성과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그들을 승리의 길로 인도하신다는 약속이 유다 지파에게 주어졌다. 유다는 독립된 족속이었다. 사울이 죽은 후 그들은 다른 족속들이 다윗을 왕으로 인정하기를 기다리지 않고 다윗을 유다의 왕으로 삼았다. 그래서 다윗은 온 이스라엘을 다스리기 전에 칠 년 반 동안 그들을 다스렸다. (삼하 2:4)유다 사람들이 와서 거기서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유다 족속의 왕을 삼았더라 혹이 다윗에게 고하여 가로되 사울을 장사한 사람은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이니이다 하매 (삼하 2:11)다윗이 헤브론에서 유다 족속의 왕이 된 날 수는 일곱해 여섯달이더라 솔로몬이 죽은 후에도 유다와 베냐민 족속은 다윗의 후손에게 충성스럽게 남아서 유다 왕국을 이루었다. 이 왕국은 북방 이스라엘이 앗시리아에게 멸망한 후 142년이나 더 지속되었다. (왕하 17:6)호세아 구년에 앗수르 왕이 사마리아를 취하고 이스라엘 사람을 사로잡아 앗수르로 끌어다가 할라와 고산 하볼 하숫가와 메대 사람의 여러 고을에 두었더라 (대하 36:17-20) 17)하나님이 갈대아 왕의 손에 저희를 다 붙이시매 저가 와서 그 성전에서 칼로 청년을 죽이며 청년 남녀와 노인과 백발노옹을 긍휼히 여기지 아니하였으며 18)또 하나님의 전의 대소 기명들과 여호와의 전의 보물과 왕과 방백들의 보물을 다 바벨론으로 가져가고 19)또 하나님의 전을 불사르며 예루살렘 성을 헐며 그 모든 궁실을 불사르며 그 모든 귀한 기명을 훼파하고 20)무릇 칼에서 벗어난 자를 저가 바벨론으로 사로잡아 가매 무리가 거기서 갈대아 왕과 그 자손의 노예가 되어 바사국이 주재할 때까지 이르니라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구별되게 살아가기 원하는 모든 성도는 충돌과 역경에 대비해야만 한다. 우리의 승리은 우리들이 무엇을 잘함으로 인한 승리가 아니다. 무엇보다 그때마다 하나님이 선봉에서 싸우시고, 하나님이 강한 권능의 보호자가 되시기에 승리할 수 있는 것이다. 이 세상에서 승리의 삶을 살 수 있는 길을 생각해 보자. 오늘도 하나님 앞에 내려놓자. 하나님 앞에 서자. 지파를 상징하는 보석 (출 28:15)너는 판결 흉패를 에봇 짜는 법으로 금실과 청색 자색 홍색실과 가늘게 꼰 베실로 공교히 짜서 만들되 (출 28:16)장광이 한뼘씩 두 겹으로 네모 반듯하게 하고 (출 28:17)그것에 네 줄로 보석을 물리되 첫 줄은 홍보석 황옥 녹주옥이요 (출 28:18)둘째 줄은 석류석 남보석 홍마노요 첫 번째 등장하는 홍보석이 유다지파를 상징하는 보석이다. 홍보석의 히브리어 본래 뜻은 ‘아주 붉고 풍성하다’는 뜻이다. 붉은 상태도 단순히 붉은 것이 아니라 아주 화려한 색을 나타내는 모습이다. 이것은 이 보석을 통해서 상징된 유다 지파의 삶의 풍성함과 아름다운 이미지를 보여 주는 말씀이다. 화려하고 풍성한 이미지는 유다의 삶에 그대로 나타났다. 유다는 요셉을 제외하고는 열 두 아들들 가운데 가장 자주 성경에 언급되어 있다. 유다는 다섯 아들들 중 세 아들이 자녀를 낳았는데 이들의 수를 시내광야에서 계수할 때 74,600명으로 가장 강성한 지파를 형성했다. 싯딤의 반역에 동참했지만 가나안에 들어갈 때 그 지파의 총 수는 76,500명(민 26:19-22)이었다. 성경의 위대한 영웅들이 유다지파에서 많이 배출되었다. 여분네의 아들 갈렙이 유다 지파 출신이었다(민 13:6) 옷니엘은 갈렙의 조카로서 40년간 이스라엘의 사사였다(삿 3:9-11) 베들레헴의 입산은 7년간 이스라엘의 사사였다(삿 12:8-10) 유다 지파에서 나온 왕들 - 다윗, 솔로몬, 여호사밧, 히스기야, 요시야 등이 모두 유다 지파 출신 왕이었다. 무엇보다 유다지파에서 그리스도가 나셨다(계 5:5) 만일 행위에 의해서라면 유다는 축복과 거리가 먼 부정한 사람이었다. 그는 가나안 여인을 아내로 취했으며, 그 사이에 태어난 두 아들은 하나님의 진노로 죽임을 당하였고, 유다 자신도 자부 다말과의 불륜의 관계로 베레스와 세라가 태어났다. 메시야의 족보는 유다를 거쳐 이 베레스로 이어져 내려왔다. 여기서 얻는 교훈은 하나님은 자랑할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는 사람은 택하여 하나님의 백성을 삼으셨다. 그렇지만 그러한 조건 조차도 택함의 조건은 아니다. (고전 1:28)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간교한 사탄은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을 공격하지만 하나님은 이에 방해 받으심 없이 계획하신 바를 도도하게 추진해 나아가신다.
잇사갈 지파 잇사갈은 레아가 야곱에게 낳은 일곱 번째(실바에게 난 두 아들을 빼면 다섯 번째), 야곱에게는 아홉 번째 아들이다. 자녀는 돌라, 부와, 욥, 시므론이 있다.(창 46:13) (창 46:13)잇사갈의 아들 곧 돌라와 부와와 욥과 시므론이요 잇사갈 자손은 그의 네 아들의 자손을 4대 족속으로 하는 한 지파를 형성했다(민 26:23,24). 모세에게 인도 되어 애굽을 나올 당시 이 지파의 두령은 수알의 아들 느다넬이었고(민 1:8, 2:5, 7:18, 10:15), 마지막 무렵에는 앗산의 아들 발디엘이었다(민 34:26). 출애굽 후 최초의 인구조사에서 이 지파의 전투할 수 있는 사람의 수는 54,400명(민 1:28,29), 두 번째 조사에서는 64,300명(민 26:25), 다윗이 다스리는 시대에는 87,000명에 달했다(대상 7:5). 이 지파는 점점 더 성장하고 커지는 지파였음을 알 수 있다. 후에 도도의 손자 사사 돌라는 잇사갈 출신이었다.(삿 10:1,2) (삿 10:1)아비멜렉의 후에 잇사갈 사람 도도의 손자 부아의 아들 돌라가 일어나서 이스라엘을 구원하니라 그가 에브라임 산지 사밀에 거하여 (삿 10:2)이스라엘의 사사가 된지 이십 삼년만에 죽으매 사밀에 장사되었더라 이십 사년간 북방 왕국을 다스린 바아사도 잇사갈 지파 출신이다. 그는 여호와 앞에 악을 행함으로 왕권이 잇사갈 지파를 떠나게 된다.(왕상 15:27-34, 16:1- 14) 탈무드(Talmud)에 의하면 산헤드린의 가장 우수한 의원은 잇사갈 출신이었다고 한다. 즉 잇사갈 지파에서 뛰어난 사람들도 나왔던 것이다. 인내심 있고 강하며 시대를 내다보는 뛰어난 사람들이 어떻게 나왔을까? 그러면 이제 잇사갈의 출생부터 살펴보면서 하나님의 주시는 교훈을 생각해 보자. ==잇사갈의 출생과 교훈 (창 30:14)맥추 때에 르우벤이 나가서 들에서 합환채를 얻어 어미 레아에게 드렸더니 라헬이 레아에게 이르되 형의 아들의 합환채를 청구하노라 (창 30:15)레아가 그에게 이르되 네가 내 남편을 빼앗은 것이 작은 일이냐 그런데 네가 내 아들의 합환채도 빼앗고자 하느냐 라헬이 가로되 그러면 형의 아들의 합환채 대신에 오늘 밤에 내 남편이 형과 동침하리라 하니라 (창 30:16)저물 때에 야곱이 들에서 돌아오매 레아가 나와서 그를 영접하며 이르되 내게로 들어오라 내가 내 아들의 합환채로 당신을 샀노라 그 밤에 야곱이 그와 동침하였더라 (창 30:17)하나님이 레아를 들으셨으므로 그가 잉태하여 다섯째 아들을 야곱에게 낳은지라 (창 30:18)레아가 가로되 내가 내 시녀를 남편에게 주었으므로 하나님이 내게 그 값을 주셨다 하고 그 이름을 잇사갈이라 하였으며 잇사갈의 출생 과정을 설명하면서 합환채 이야기가 나온다. 합환채는 중동지역에서 의학적으로 여자들의 불임증을 치료하는 고대 의약품의 재료로 사용되던 꽃뿌리이다. 레아가 계속적으로 자녀들을 낳고 있는 동안에도 라헬은 자녀가 없었기 때문에 합환채가 필요했다. ※ 합환채(Mandrakes) : 원어 [두-나-임]은 연애에 연유된 이름으로서, 흔히 loveapple로 알려진다. 합환채로는 여러 가지가 말해지는데, 가지과의 식물인 [연가자](mandrake 학명 Mandragora officinarum)로 보는 것이 가장 타당하게 여겨지고 있다. 이것은 지중해 연안 지방에 널리 자생하고 있는 다년생 초본으로, 3-4월경 농자색의 꽃을 피우고, 5월에 오렌지색 또는 붉은 빛을 띤 익은 과실을 맺는다. 살이 많고, 가지정도의 크기인데, 향기 있고, 식용으로 되나, 종자는 독이 있다. 뿌리는 한국 인삼처럼 갈라진 뿌리가 있고, 때로는 인체의 모양을 한 것이 있다. 고대인은 미약(성욕증진제), 심지어 수태력 증진의 효력이 있는 것으로 믿었다. 오늘날도 팔레스티나의 토착민은 이것을 [투파 - 엘마자닌 Tuffah el-Majanin](狂人의 사과), 또는 [베이드 에진 Baid ej-Jinn](진, 즉 악마의 달걀)이라 불러, 미약으로 삼던 흔적을 남기고 있다. 본문 이외에 아가서에는 사랑하는 자를 위해 향기 높은 합환채를, 좋은 실과와 함께 간직한 것이 기록되어 있다(아 7:13). 야곱의 사랑을 받으면서도 사랑받는 이의 자식을 낳을 수 없다는 고민이 라헬을 계속해서 괴롭혔을 것이다. 이런 마음 아픈 고민을 가지고 있는데 르우벤이 합환채를 얻어서 그 어머니 레아에게 주는 광경을 보고 있던 라헬은 자신의 영원한 사랑의 경쟁자였던 레아에게 합환채를 내게 줄 수 없느냐고 청구한다. 그리고 그 합환채를 받는 조건으로 “오늘 밤은 야곱을 형님에게 양보하겠습니다”는 제안을 한다. 우리들의 삶의 현장에서 일어나는 아주 자연스러운 모습이다. 조금은 치사하게 보이기도 하지만 성경은 그런 이야기까지 감추지 않고 기록한다. 이는 하나님께서 사용하실 수 없는 사람은 없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일지라도 하나님이 사용하실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잇사갈이란 ‘값’이라는 의미이다. ‘값을 지불하고 무엇을 얻었다’는 뜻이다. 합환채를 주고 그 값으로 남편을 되찾아서 얻어진 아들이 바로 잇사갈이다. 그런데 본문을 보면 레아는 이뿐만 아니라 자신의 시녀에 대한 대가로 얻은 아들이라고 고백한다. (창 30:18)레아가 가로되 내가 내 시녀를 남편에게 주었으므로 하나님이 내게 그 값을 주셨다 하고 그 이름을 잇사갈이라 하였으며 값을 지불하고 무엇을 얻었다는 의미는 아무 것도 거저 얻어질 수 없다는 교훈을 우리에게 준다. 또 하나 중요한 교훈은 라헬과 레아는 임신이 합환채의 효험으로 가능하다고 생각했지만 본문에서는 자녀가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합환채를 포기한 레아는 이어서 아들을 낳지만 라헬은 3년이나 더 아이를 가지지 못한 채 기다려야 했다. 하나님의 선물이 아니면 자녀는 없다. 우리들의 자녀를 바라보는 시각을 생각해 보자. 선물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가? ==잇사갈에 대한 야곱의 축복 (창 49:14)잇사갈은 양의 우리 사이에 꿇어 앉은 건장한 나귀로다 (창 49:15)그는 쉴 곳을 보고 좋게 여기며 토지를 보고 아름답게 여기고 어깨를 내려 짐을 메고 압제 아래서 섬기리로다 야곱의 축복은 자녀가 그렇게 되기를 바라며 축복하는 유언(遺言)으로서 ‘예언적’ 성격이 있다. 본문에서 보는 잇사갈 지파의 별명은 양의 우리 안에 꿇어앉은 ‘나귀’의 모습으로 묘사되어 있다. 짐을 지고 그 밑에 웅크리고 앉아 있는 인내심이 강한 나귀에 비유했다. 이 나귀는 보통 동물이 아니라 건장한 동물로 묘사된다. 첫째, 이는 잇사갈 지파의 강인함을 암시해 주는 것이다. 므깃도 전쟁에서 드보라와 바락이 칭찬하듯 이 지파는 싸움에서 강한 면모를 보였다. (삿 5:15)잇사갈의 방백들이 드보라와 함께 하니 잇사갈의 심사를 바락도 가졌도다 그 발을 좇아 골짜기로 달려 내려가니 르우벤 시냇가에 큰 결심이 있었도다 이 표현을 보면 잇사갈은 바락보다 더 큰 힘을 가진 것으로 읽을 수 있다. 둘째, 섬기고 일하는 잇사갈 지파의 모습을 보여준다. 양의 우리라는 단어는 두 개의 짐으로도 번역할 수 있는 단어이다. 이는 두 개의 큰 짐을 지고 불평할 수 있는데 두 배의 짐을 지고서도 불평하지 않고 인내하며 승리하는 지파가 잇사갈 지파이다. 그런데 보통 힘이 있다면 지혜가 없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잇사갈은 힘과 더불어 지혜도 함께 가지고 있었다. (대상 12:32)잇사갈 자손 중에서 시세를 알고 이스라엘이 마땅히 행할 것을 아는 두목이 이백명이니 저희는 그 모든 형제를 관할하는 자며 위 본문을 보면 잇사갈 지파는 ‘모든 형제를 관할하는 자’로 서 있었다. 그런데 지도자로 서 있기 위해 꼭 필요한 부분이 무엇일까? 먼저, 시세를 알고 있었다. 때를 분별하는 지혜는 일군에게 꼭 필요한 부분이다. 시대의 흐름을 읽고 앞을 내다보며 이끌어가는 사람이 진정한 지도자이다. 그런데 바로 잇사갈 지파가 바로 그런 지파였다. 또한 ‘마땅히 행할 것을 알았다’고 하였다. 무엇을 해야 할지 그것을 분명히 아는 것은 중요한 지혜이다. 무엇인가를 해야 하는데 무엇을 해야 할지 알지 못해 마음 아픈 경우가 많은데 바로 그 때 필요한 것이 할 일을 분별하는 지혜이다. 셋째, 잇사갈이란 이름이 ‘대가를 지불하고 무엇을 얻는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보상 개념이 있다. 비실비실한 나귀가 아니라 ‘건장한 나귀’라는 묘사를 통해 ‘에너지의 충만함, 일하려고 하는, 약동하는 생명력으로 충만한’ 그런 나귀의 이미지를 연상할 수 있다. ‘쉴 곳을 보기 좋게 여긴다’는 표현 속에서 쉼을 생각하게 된다. 쉼이라는 표현은 매일 노는 사람에게는 그다지 의미가 없다. 땀 흘려서 열심히 일하는 사람 정말 노동을 값지게 알고 애쓰는 사람에게 있어서 모처럼의 휴식이야말로 아름다운 행복을 선물하는 것이다. 나귀는 약간 고집스럽기는 하지만, 동시에 지혜롭기도 하고 잘 길들여지기만 하면 충성스러운 동물이기도 하다. 따라서 ‘양의 우리 사이에 꿇어 앉았다, 어깨를 내려서 짐을 메고 압제 아래서 섬긴다’는 표현은 자기의 자리를 지키면서 일하고 있는 이미지를 연상시켜 주는 말씀이다. 어느 곳에나 이런 사람이 필요하다. 제 자리를 지키면서 꾸준히, 열심히 땀을 흘려 일하는 사람이 필요하다. ==잇사갈에 대한 모세의 축복 (신 33:18)스불론에 대하여는 일렀으되 스불론이여 너는 나감을 기뻐하라 잇사갈이여 너는 장막에 있음을 즐거워하라 본문에는 스불론과 잇사갈이 동시에 나온다. 모세는 스불론은 나가서 일하는 지파이며, 잇사갈은 장막 안에서 일하는 지파가 될 것을 말한다. 여호수아가 가나안 땅을 제비 뽑아 분배했을 때(수 18:10) 그들은 네 번째로 자신들의 산업을 뽑았다. 북은 스불론과 아셀 지파의 땅과 접했고, 남과 서는 므낫세와 아셀 땅 접하였으며, 동쪽은 요단강을 경계로 하는 지역을 가업으로 받았다.(수 19:17-23) (수 19:17) 네째로 잇사갈 곧 잇사갈 자손을 위하여 그 가족대로 제비를 뽑았으니 (수 19:18) 그 지경 안은 이스르엘과 그술롯과 수넴과 (수 19:19) 하바라임과 시온과 아나하랏과 (수 19:20) 랍빗과 기시온과 에베스와 (수 19:21) 레멧과 언간님과 엔핫다와 벧 바세스며 (수 19:22) 그 경계는 다볼과 사하수마와 벧 세메스에 미치고 그 끝은 요단이니 모두 십 륙 성읍이요 또 그 촌락이라 (수 19:23) 잇사갈 자손 지파가 그 가족대로 얻은 기업은 이 성읍들과 그 촌락이었더라 성경에서 주목되는 여러 장소들이 잇사갈의 영토 내에 있었음을 볼 수 있다. 바락과 드보라가 므깃도 물가 다아낙에서 위대한 승리를 거둔 곳도 잇사갈의 땅에서였다(삿 5:19). 집이 협소하여 하나님의 거룩한 사람 엘리사를 영접할 수 없어서 마침내 집을 이어 지어서 그를 모실 수 있었던 특권을 누린 수넴의 경건한 여인의 집이 있던 곳도 바로 그곳이었다(왕하 4:8-10). 그의 생애에 임한 풍성한 축복을 통하여(왕하 4:12-37) 그녀는 "여기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마 25:40)란 말씀의 진실됨을 깨닫게 되었다. "가까이 오사 그 관에 손을 대시고, … 청년아,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 하시매, 죽었던 자가 일어나 앉은 곳"(눅 7:11-17)도 잇사갈의 경계에 있는 나인 성문에서였다. 이런 하나님의 은혜와 기적을 체험하는 장소이기도 하였지만 대조적으로 사울이 무당을 찾아가 그 생애의 결정적 실수를 범하여 완전히 하나님을 떠나 마귀의 밥이 되어 버린 곳인 엔돌도 잇사갈의 땅이었다(삼상 28:7-25). 사울은 "신접한 자에게 가르치기를 청"하므로 죽임을 당하였다(대상 10:13-14). 잇사갈 지방은 이세벨 세력의 중심지로, 그녀에 의해 도입된 바알 숭배는 그가 죽은 후에도 오랫동안 남아 있었다. 잇사갈이 앗시리아의 살만에셀(Shalmaneser)에게 포로로 잡혀가기(왕하 17:3-6) 약 5 년 전에 히스기야는 예루살렘에서 대대적인 유월절 행사를 가졌다. 이때 잇사갈 지파는 에브라임과 므낫세와 스불론과 더불어 참된 경배로부터 너무 멀리 빗나가 있었기 때문에, 자신들의 정결의 필요성을 깨닫지 못했다. 그러나 그들 가운데 얼마가 그 초청에 응하여 행사에 참석은 하였으나 그 의식에 참예하기에는 부적당한 상태였다. 히스기야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진실되게 섬기는 것이 어떤 의식이나 형식보다 더 중요함을 충분히 알 정도로 하나님과 가까운 사이였기 때문에, 그들에게 유월절 음식을 먹도록 허락하고 다음과 같은 기도를 드렸다. (대하 30:18)에브라임과 므낫세와 잇사갈과 스불론의 많은 무리는 자기를 깨끗케 하지 아니하고 유월절 양을 먹어 기록한 규례에 어긴지라 히스기야가 위하여 기도하여 가로되 선하신 여호와여 사하옵소서 (대하 30:19)결심하고 하나님 곧 그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를 구하는 아무 사람이든지 비록 성소의 결례대로 스스로 깨끗케 못하였을지라도 사하옵소서 하였더니 이때 여호와께서는 그의 "기도를 들으시고 백성을 고쳐"(대하 30:20) 주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