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편 22편 [개역개정] ....큰환난과핍박중에도336.내모든시험무거운짐을337.[십자가를내가지고341].큰영광중에계신주. 영광스런주를보라 주님의뜻을이루소서..정결한마음주시옵소서..보혈을지나..은혜없이는살아갈수가없네. 은혜로만들어가네.고개들어주를맞이해.주님의성령지금이곳에.기도들으시는하나님.잊으라시네
**[엘리 엘리 라마 아자브타니...시22:1]
אלי אלי למה עזבתני ...엘리-엘리(알렙-라멛-요드 : 친히 목양/양육하시는 그대로, 친히 사역하여 이루시는 분 하나님, 주 뜻 친히 이루소서) + 라마(라멛-멤-헤이 : 말씀 진리(=Q속성-형상-생명=에트.. 그대로 살아내시는 실존) + 아자브타니(아인-자인-베이트_타브-눈-요드 : 분명한 대속의 목적으로 -가장 귀중한-자신의 목숨 내어드림(=아자브...내려놓음+내어드림).... 에메트+아멘의 마지막 글자의 조합이 "탄(타브-눈..십자가의 확장) ..친히 행하여 이루심 = 요드..."타니"=친히 뜻 이루소서)
1 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 어찌 나를 멀리 하여 돕지 아니하시오며 내 신음 소리를 듣지 아니하시나이까
2 내 하나님이여 내가 낮에도 부르짖고 밤에도 잠잠하지 아니하오나 응답하지 아니하시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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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이스라엘의 찬송 중에 계시는 주여 주는 거룩하시니이다
4 우리 조상들이 주께 의뢰하고 의뢰하였으므로 그들을 건지셨나이다
5 그들이 주께 부르짖어 구원을 얻고 주께 의뢰하여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였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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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나는 벌레요 사람이 아니라 사람의 비방 거리요 백성의 조롱 거리니이다
7 나를 보는 자는 다 나를 비웃으며 입술을 비쭉거리고 머리를 흔들며 말하되
8 그가 여호와께 의탁하니 구원하실 걸, 그를 기뻐하시니 건지실 걸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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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오직 주께서 나를 모태에서 나오게 하시고 내 어머니의 젖을 먹을 때에 의지하게 하셨나이다
10 내가 날 때부터 주께 맡긴 바 되었고 모태에서 나올 때부터 주는 나의 하나님이 되셨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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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나를 멀리 하지 마옵소서 환난이 가까우나 도울 자 없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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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많은 황소가 나를 에워싸며 바산의 힘센 소들이 나를 둘러쌌으며
13 내게 그 입을 벌림이 찢으며 부르짖는 사자 같으니이다
14 나는 물 같이 쏟아졌으며 내 모든 뼈는 어그러졌으며 내 마음은 밀랍 같아서 내 속에서 녹았으며
15 내 힘이 말라 질그릇 조각 같고 내 혀가 입천장에 붙었나이다 주께서 또 나를 죽음의 진토 속에 두셨나이다
16 개들이 나를 에워쌌으며 악한 무리가 나를 둘러 내 수족을 찔렀나이다
17 내가 내 모든 뼈를 셀 수 있나이다 그들이 나를 주목하여 보고
18 내 겉옷을 나누며 속옷을 제비 뽑나이다
19 여호와여 멀리 하지 마옵소서 나의 힘이시여 속히 나를 도우소서
20 내 생명을 칼에서 건지시며 내 유일한 것을 개의 세력에서 구하소서
21 나를 사자의 입에서 구하소서 주께서 내게 응답하시고 들소의 뿔에서 구원하셨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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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내가 주의 이름을 형제에게 선포하고 회중 가운데에서 주를 찬송하리이다
23 여호와를 두려워하는 너희여 그를 찬송할지어다 야곱의 모든 자손이여 그에게 영광을 돌릴지어다 너희 이스라엘 모든 자손이여 그를 경외할지어다
24 그는 곤고한 자의 곤고를 멸시하거나 싫어하지 아니하시며 그의 얼굴을 그에게서 숨기지 아니하시고 그가 울부짖을 때에 들으셨도다
25 큰 회중 가운데에서 나의 찬송은 주께로부터 온 것이니 주를 경외하는 자 앞에서 나의 서원을 갚으리이다
26 겸손한 자는 먹고 배부를 것이며 여호와를 찾는 자는 그를 찬송할 것이라 너희 마음은 영원히 살지어다
27 땅의 모든 끝이 여호와를 기억하고 돌아오며 모든 나라의 모든 족속이 주의 앞에 예배하리니
28 나라는 여호와의 것이요 여호와는 모든 나라의 주재심이로다
29 세상의 모든 풍성한 자가 먹고 경배할 것이요 진토 속으로 내려가는 자 곧 자기 영혼을 살리지 못할 자도 다 그 앞에 절하리로다
30 후손이 그를 섬길 것이요 대대에 주를 전할 것이며
31 와서 그의 공의를 태어날 백성에게 전함이여 주께서 이를 행하셨다 할 것이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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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준새번역] 시22편...오직 영으로 주바라기, 거하기, 견뎌내기:::선함-인자함-신실하심의 내Q,지고지선의 진복_지복직관의거함:누림:기업:소유,내모든것,나의참생명영복,전지전능자.임마누엘,체휼의구주, 보호자, 피난처,반석_아빠,교통,동참,절대긍정과절대신뢰절대기쁨의영광 :::십자가동참과JC빼어닮기...섭리의때를대망하며견딤((중보의 기회로 삼기!!))
지휘자의 지휘를 따라 '새벽 암사슴'의 가락으로 부르는 다윗의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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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22장 (개요)
선지자들 속에 계신 그리스도의 영은 이 시편에서, 구약 속 어느 곳에나 있는 것처럼 분명하고 충분하게, “그리스도의 고난과 후에 얻으실 영광”(벧전 1:11)을 증거한다.
다윗이 자신이나 다른 사람들에 관해서가 아니라, 그리스도에 관해 언급하고 있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이 시편의 많은 부분이 신약에서 그리스도께 특별히 적용되어 있다. 이 시편 전체가 그리스도에게 적용될 수 있으며, 어떤 구절은 오직 그에 대한 것으로서만 풀이해야 한다.
다윗에 관한 하나님의 섭리는 너무 특이해 우리는 그 당시 그를 장차 오실 자의 표상으로서 간주하지 않을 수 없었던 일부 지혜롭고 선한 자들이 있었을지도 모른다고 추측할 수 있다.
그러나 특히 이 시편을 지을 때 그는 자신의 생각이나 의도를 훨씬 능가한 예언의 영에 의해 놀랍게 이끌리고 있는 그 자신을 발견했으며, 이 시편은 곧 자신이 메시야의 선조일 뿐만 아니라, 그에 대한 예표라는 사실에 대한 만족감을 가지고(우리는 이렇게 짐작할 수 있다) 지어진 것이다. 이 시편에서 그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말하고 있다.
1. 그리스도의 겸손에 대해(1-21).
---=여기에서 그리스도의 모형인 다윗은 그가 여러 면으로 당하고 있는 극심한 환난 상태를 원망하고 있다.
(1) 그는 원망하고 있으며, 그 원망에 위로를 혼합하고 있다. 즉 그는 원망하고(1-2), 그 자신을 위로하다가(3-5), 다시 원망하고(6-8) 또 스스로를 위로하고 있다(9-10).
(2) 그는 원망하고 있으며, 그 원망에 기도를 곁들이고 있다.
즉 그는 그의 대적들의 힘과 분노를(12-13, 16, 18), 그리고 그의 육신적인 연약함과 쇠약함을(14-15, 17) 원망하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로부터 멀리 떠나 있지 않기를(11, 19), 하나님께서 그를 건지시고 구하시기를(19-21) 간구하고 있다.
2. 그리스도의 높이 들리심에 대해.
---즉 그의 사업은 하나님의 영광과(22-25), 그의 백성들의 구원과 기쁨(26-29), 그리고 그의 나라의 영원함을(30-31) 위한 것이 될 것이다.
이 시편을 노래함에 우리는 그리스도에 대해 확고한 생각을 지녀야 하며, 그의 고난에 감동되어 그와 같은 체험을 할 정도가 되어야 한다. 또한 그의 은혜에 감동되어 그 능력과 영향을 체험할 정도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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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의 밤
감각의 밤은 거짓 자아를 정말 거의 무력하게 만든다.
그러나 영적인 기능들 안에 남아 있는 거짓 자아의 찌꺼기는 여전히 남아있을 수 있는데, 그것들 중 하나는 우리가 하나님의 특별한 은총이나 거룩한 부르심을 받았다는 비밀스런 만족감으로 나타난다.
겉으로는 “나는 하나님께 모든 것을 빚지고 있다.”라고 말하지만 속으로는 “하나님이 나에게 이러한 은총을 주셨어!” 라고 말하고 싶다.
영적 경험 차원에서 그 은총을 영원히 간직하고 싶어하는 바램조차도 주님 보시기에는 정화과정을 거쳐서 처리되어야 하는데, 그 이유는 주께서 예비하신 바 더 나은 연합과 일치의 과정을 향해 더 나아가야 하기때문이다.
따라서, 이 모든 영적 경험들을 주신 그분께 감사하되 소유하려 집착하지 말고 오직 주께서 원하시는 바 일신우일신, 과감하게 더 새로운 지경[은총 베푸시는 주님만이 모든 것Everything이요, 의미요, 전부요, 주님없는 자신은 전적인 무 Nothing,죄덩이요 벌레요 먼지뿐임을 참되게 인식, 주님이 바라시는 상호 기업-소유-누림-거처됨의 지고지선을 위해서는 온전히 자신을 내려 놓고 열어 비워 내어드리며 연합과 일치 안에서 그분의 말씀과 심정, 뜻 알아드리며 자원하여 기쁨으로 동행함]로 이끌림받아 나아가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영의 밤이 진행되는 동안에 처리되는 일이다.
따라서 십자가의 성 요한이 신성한 일치의 시작이라고 부르는 영의 밤은 더 깊은 정화를 하는 더 높은 단계의 전환기인 셈이다.
우리는 무의식 안에서 감각의 밤에도 교정되지 않고 남아 있는 거짓자아의 파편들, 예를 들면 마음이 (자기만족에 도취되어서) 습관적으로 산만해진다든지, 문화적 조건화의 잔재가 되살아나든지(갑자기 엄습하는 두려움이나 불안감의 혼돈감), 특별한 체험에 대한 영적 자부심 같은 것들이 남아 있음을 인식하게 된다.
이러힌 것들을 처리하기 위해 예비된 영적여정((영의 밤))은 무의식에 남아있는 거짓 자아의 잔재들을 직면하고 마침내 이를 [겸손과 믿음으로]이겨내도록 함으로써 우리로 하여금 마침내 [변형하는 일치의 삶]를 살도록 이끈다.
영의 밤이 시작되면 하나님에 대한 ‘느껴지던’ 모든 신비한 체험들이 줄어들고 사라져, 기쁨에 찬 길로 인도되었던 사람들은 그 체험들이 다시 돌아오기를 간절히 바라는 상태에 들어간다.
이전에 받았던 영적 위안에 비례하여 이제는 하나님임재감각을 잃어버린 듯한 황홀한 위로와 기쁨 결핍의 고통스런 체험을 하게 되는 것이다.
영의 밤은 [오직 겸손과 불굴의 믿음, 절대긍정과 절대신뢰를 발함으로써 통과해야 할]하나님과의 일치로 나아가기 위해 마지막으로 거쳐야 하는 필수적 관문이다.
이러한 거짓자아 편린들의 정화 과정 없이는 거짓 자아가 결과적으로 처리되지 않기 때문에 무의식 속에 잠재해 있던 영적인 원시 상태가 다시 솟아올라 원래의 그 상태로 되돌아갈 위험이 항상 있다.
기쁨에 찬 신비의 길로 이끌리던 사람들은 유혹에 넘어갈 기회가 더욱 많다. 심령의 혹은 영적인 선물을 받은 경험을 가지고 있으면서 그 은사가 자신의 이미지를 미화하도록 만들수 있게 된 것이다.
인간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총은 부부임에도 불구한데 하나님 아닌 바로 그것에 자신을 동일시하고자 하는 유혹을 받는 것이다.
영의 밤을 거치면 이러한 유혹의 정체를 간파하고 오직 주님 이름을 부르며 주께서 주장하시도록 맡겨드림으로써 거짓자아의 발호가 저절로 차단되도록 만들게 된다. 그 이유는 정화의 활동을 거치면서 깨달은 바, 자신이 모든 악을 저지를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체험하기 때문이며, 동시에 개인적인 죄를 피하거나 죄로 이끄는 거짓 자아의 잔재를 피하기 위해서는 다만 겸손하게 오로지 말씀과 하나님의 이름을 붙들고 온전히 하나님께 의존해야만 한다는 것을 깨닫게되기때문이다. ---이러할 때, 아바지의 뜻을 깨닫고 순종하시되, 아버지께 끊어지는 단절조차 감내하시면서도 절대 긍정과 절대신뢰를 끝까지 붙드심으로써 부활생명능력으로 다시살아나신 그리스도에 관한 시22편말씀들이 비로소 이해되어질 것이며, 삶속에 그리스도의 고난의 자취가 나타남조차 기뻐했던 사도들과 바울사도의 고백에 동참할 수가 있을 것이다.
영적 여정은 결국 또하나의 자랑거리(거짓자아)인 성공담이 아니라 자아를 축소시키는 일의 연속인 셈이다.
12세기 클래보의 성 버나드는 거룩하신 분의 임재의식안에서 자신을 합당하게 낮추는 것이 찹된 겸손에 이르는 길이라고 하였다.
겸손이란 다만 신성한 빛으로부터 오는 경험적 인식 결과로서, 우리가 하나님의 보호 없이는 모든 죄를 지을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인정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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