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149] 1.할렐루야 새 노래로 여호와께 노래하며 성도((하시드..경건한 자))의 모임 가운데에서 찬양할지어다 2.이스라엘은 자기를 지으신 이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사마흐...기뻐하다)) 시온의 주민은 그들의 왕으로 말미암아 즐거워할지어다((길...즐거워하다)) 3.춤 추며 그의 이름을 찬양하며((할랄...드러내어 자랑/찬송하다)) 소고와 수금으로 그를 찬양할지어다((자마르...연주하다)) 4.여호와께서는 자기 백성을 기뻐하시며((라차...열납하다...기뻐 자랑하며, 흐뭇해 하시며 받다)) 겸손한 자를((아나우....고난통과한/온유/겸손/유순/가난한 자)) 구원으로((예슈아...구원, 구조, 구출, 해방)) 아름답게 하심이로다((파아르...아름답게-영광스럽게-자랑스러워 하다, 관 씌우다)) 5.성도들은 영광 중에((카보드...하나님의 모든 풍성-부요-충만 맛봄-누림)) 즐거워하며((샤마흐)) 그들의 침상에서((마쉬카브...침실, 또는 묘실)) 기쁨으로 노래할지어다((길)) 6.그들의 입에는 하나님에 대한 찬양이((로메마...경험적 체득 통해 하나님 높임=존영=존귀와 영광돌림의 찬양/찬송)) 있고 그들의 손에는 두 날 가진 칼이 있도다 7.이것으로 뭇 나라에 보수하며((네카마....복수, 앙갚음)) 민족들을 벌하며((토케하...견책, 징계)) 8.그들의 왕들은 사슬로, 그들의 귀인은 철고랑으로 결박하고((아사르....매다, 결박/감금하다)) 9.기록한 판결대로((미슈파트... 심판/재판/법령/공의)) 그들에게 시행할지로다((아사...행하다)) 이런 영광은((하다르...장식/광채/장려/위엄)) 그의 모든 성도에게 있도다 할렐루야 Praise the LORD! Sing to the LORD a new song, And His praise in the congregation of the godly ones. Let Israel be glad in his Maker; Let the sons of Zion rejoice in their King. Let them praise His name with dancing; Let them sing praises to Him with timbrel and lyre. For the LORD takes pleasure in His people; He will beautify the afflicted ones with salvation. Let the godly ones exult in glory; Let them sing for joy on their beds. Let the high praises of God be in their mouth, And a two-edged sword in their hand, To execute vengeance on the nations And punishment on the peoples, To bind their kings with chains And their nobles with fetters of iron, To execute on them the judgment written; This is an honor for all His godly ones. Praise the LORD! -------------------- ---------------------- 하나님을 찬양하는 이스라엘(시 149:1-5) 우리는 여기에서 다음과 같은 것을 볼 수 있다. Ⅰ. 하나님의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찬양의 소명. 앞에 나온 시편에서는 “하나님의 모든 기사”로 “여호와를 찬양하라”고 재촉되었다. 그러나 여기에서 그의 성도들은 특별한 방법으로 그를 찬양하라고 요청 받고 있다. 1. 누가 하나님을 찬양하라고 부르심 받았는가? 일반적으로는 교회의 몸인 “이스라엘”, 구체적으로 다른 이스라엘 사람들보다 하나님을 친근히 하는 “시온의 자민”들이 부르심을 받았다. 하나님의 말씀과 규례를 가까이하며, 그것들을 멀리하지 않은 자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하나님을 더욱 찬양하도록 기대된다. 모든 진실한 그리스도인들은 “시온의 자민”들이라고 불릴 것이다. 우리가 믿음과 소망으로 “시온 산에 이르게” 되기 때문이다(히 12:22). 성도들은 하나님을 찬양해야 하며, 직업을 가진 성도나 권세를 가진 성도도 그를 찬양해야 한다. 그것이 저희의 성화(聖化) 목적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영광에 헌신하며, 하나님의 은총에 의해서 새롭게 되었다. 그들은 “그에게 이름과 영광을 돌릴 것이다.” 2. 무엇이 이러한 찬양의 원칙이어야 하는가? 그것은 하나님 안에서의 거룩한 즐거움이다. “이스라엘은 즐거워하며, 시온의 자민은 즐거워할지어다.” 그리고 “성도들은 영광 중에 즐거워할지어다.” 우리의 하나님 찬양은 하나님의 속성과 그와의 관계에서 우러나오는 기쁨과 승리로 가득 찬 마음으로부터 흘러나와야 한다. 마음이 경건하게 되는 큰 능력은 하나님을 우리의 가장 큰 즐거움으로 삼고, 그에게서 위로를 받는 데에 있다. 그리스도에 대한 우리의 신앙은 그에 대한 우리의 즐거움으로 묘사된다. 우리는 우리가 그에게서 기쁨을 취할 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 우리는 “영광 중에”, 즉 우리의 영광이 되시는 그에게서, 우리가 그에게서 갖는 감흥에서 “즐거워해야 한다.” 하나님 안에서 즐거워하는 자들이 됨을 우리의 영광으로 간주해야 한다. 3. 이러한 찬양의 표현이 어떠해야 하겠는가? 우리는 모든 합당한 방법으로 하나님의 찬양을 나타내야 한다. “여호와께 노래하라.” 우리는 “그를 찬양하며”(3절), “기쁨으로 노래하면서”(5절) 즐거워해야 하고, 그의 이름을 선포해야 한다. 우리는 찬양을 부끄러워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크게 확대하는 자들과 같이 마음을 다해 시편들을 찬송해야 한다. 우리는 모든 특별한 경우에 새롭게 작곡된 “새 노래로” 노래해야 하며, 비록 단어들이 전에 사용된 것이라도 노래를 새롭게 하는 새로운 감정으로 노래해야 한다. 노래가 진부하게 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 구약시대의 교회 초기에 사용한 것에 따라서(출 15:20) 하나님을 “춤추며 소고와 수금으로 찬양할지어다.” 우리는 구약시대에 하나님을 “소고와 수금으로” 찬양한 것을 발견한다. 이로부터 경건한 예배에서 음악의 사용을 강권하는 자들은, 같은 규칙으로 춤추는 것을 소개해야 한다. 왜냐하면 다윗이 법궤 앞에서 춤춘 것과 같이 동시에 이루어진 것이기 때문이다(삿 21:21). 신약에 있는 많은 성서들이 노래를 복음의 의식으로 지키는 데 반해, 아무도 노래와 춤의 보존을 위해 성직자로 임명되지 않는다. 성시송독(聖詩頌讀)을 위한 복음의 법규는 “성령과 예지로 노래하는 것”이다. 4. 하나님을 찬양하기 위해 어떤 기회가 마련되어야 하겠는가? 어떤 기회도 놓치지 말아야 한다. 그러나 특별히 다음의 경우는 놓치지 말고 찬양해야 한다. (1) 대중 속에서, “거룩한 집회에서”, “성도의 회중에서”(1절) 하나님을 찬양해야 한다. 찬양은 많을수록 더욱 좋다. 찬양은 하늘보다 더 좋은 것이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이름은 세상 앞에 고백되어야 한다. 예배에는 장엄성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상호 협동해 예배에 감화되어야 한다. 우리가 경건한 집회에 함께 모이는 원리와 목적과 의도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일에 연합하고자 함이다. 예배의 다른 부분도 이를 따라야 할 것이다. (2) 우리는 개인적으로 그를 찬양해야 한다. “성도들은” 밤에 깨었을 때, 다윗과 같이(119:62) 하나님의 찬양으로 충만한 “저희 침상에서 기쁨으로 노래할지어다.” 하나님의 이스라엘이 평화롭게 안정되었을 때, 하나님께 감사함으로 즐거워해야 한다.” 하나님의 휴식에 들어가고,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안정을 찾은 진실한 신앙인들은 더욱더 큰 기쁨으로 즐거워하며, 노래해야 한다. Ⅱ. 하나님의 이스라엘에게 찬양을 위해 주어진 이유를 관찰해 보자. 1. 그들을 위해 하나님께서 행하심. 그들은 하나님을 즐거워하며, 그의 영광에 헌신하고, 그의 예배에 힘써야 할 이유를 갖고 있다. 왜냐하면 그들을 지으신 자가 바로 그분이시기 때문이다. 그는 우리에게 인간으로서의 생명을 주셨다. 우리는 그로 인해 그를 찬양해야 할 이유를 가지고 있다. 그가 지으신 우리가 고상하고 우수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는 이스라엘이 하나의 백성과 교회가 되게 하셨고, 그들은 그것으로 다른 나라들과 완전히 구별되는 것으로 삼았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를 찬양해야 한다. 그는 자기를 위해 그들을 “그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는”(사 43:21) 목적으로 지으셨다. 이스라엘은 “그 지으신 자를 즐거워할지어다”(원문에는 이렇게 되어 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들자”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어떤 이들은 여기에 삼위일체의 신비가 나타나 있다고 생각한다. 2. 그들에 대한 하나님의 지배. 이 대목은 전자를 따르는 것이다. 그가 그들을 지으셨다면 그는 저희의 왕이시다. 생명을 주신 자는 의심할 여지없이 율법을 주실 것이다. 우리가 이렇게 지혜롭고 권능 있는 왕의 지휘와 보호를 받게 됨은 우리의 기쁨과 찬양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시온의 딸아, 크게 즐거워할지어다. 하나님께서 시온의 거룩한 산에 정하신 왕, 메시야, 즉 네 왕이 오시는 것을 보라. 시온의 모든 자민은 그를 즐거워하며, 호산나로 그를 영접할지어다”(슥 9:9). 3. 하나님께서 그들에게서 취하시는 즐거움. 그는 사랑으로 다스리는 왕이시다. 그러므로 찬양을 받아야 한다.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을 기뻐하신다.” 여호와는 그들의 예배와 번영과 그들과의 교통을 기뻐하시며, 그들에게 그의 은총 주시기를 기뻐하신다. 자신의 기쁨 속에서 무한히 행복하시며, 그 지복을 계승할 자가 필요 없으신 하나님은 다만 은혜롭게 “그의 백성들을 기뻐하시기 위해서”(147:11) 하감하신다. 4. 그들에게 관한 하나님의 뜻. 그가 그들에게서 취하는 현재의 만족 이외에도 그들의 미래의 영광을 위해 예비하셨다. 그는 “겸손한 자”와 연약한 자, 낮은 자와 마음을 뉘우치는 자, 그의 말씀에 떨며 복종하는 자와 고난을 인내하며 “모든 사람들에게 겸손함을 나타내는 자를” “구원으로 아름답게 하신다.” 이러한 사람들은 중상과 비방을 받지만, 하나님은 그들을 정당화해 주시며, 저희의 훼방을 씻어주실 것이다. 아니, 하나님은 그들을 아름답게 해주실 것이다. 그들은 세상 앞에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부여하신 깨끗한 아름다움으로 나타난다. 그는 그들을 구원으로, 통속적인 구원으로 아름답게(하나님은 그의 백성을 위해서 “양우리에 누울 때에 그 날개를 은으로 입힌 비둘기같이” 특별한 구원을 행하신다. 68:13), 특히 영원한 구원으로 아름답게 하실 것이다. 의로운 자들은 그날 “해같이 빛나게” 아름다워질 것이다. 이러한 소망 속에서 가장 어두운 날에 그들은 “새 노래로 노래할지어다.” -----------------------
찬양을 권면받은 이스라엘(시 149:6-9) 여기에서 하나님의 이스라엘이 저희 대적자들에게 승리하는 것이 묘사되었다. 그것은 저희 찬양의 대상이며(저희로 하여금 하나님께 그 승리의 영광을 돌리도록 해야 한다), 저희 찬양의 보답이다. 저희의 평온을 인해 하나님께 진실로 감사하는 자들은 승리로 축복 받게 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저희 찬양의 발전된 표현으로 간주될 수 있다(6절). “그 입에는”, 그의 영광을 위한 거룩한 열심에는 “하나님의 존영이요”, 그의 나라의 적들에 대한 그의 전투에 가담하는 “그 수중에는 두 날 가진 칼이로다.” 이제 이 대목은 다음과 같은 경우에 적용될 수 있을 것이다. Ⅰ. 하나님이 그의 백성 이스라엘을 축복하사 그들을 멸망시키려고 노력했던 가나안의 열방들과 다른 나라들에 대한 많은 승리를 가져온 것에. 이는 이스라엘에게 “여호와의 존영”을 돌리며, “수중에는 두 날 가진 칼”을 동시에 가지라고 가르친 모세와 여호수아에게서 시작되었다. 다윗 역시 그러했다. 그는 이스라엘의 훌륭한 찬양가였으나 동시에 그들 군대의 대장이었다. 그는 유다의 자손에게 활의 사용법을 가르쳤고(삼하 1:18), 하나님이 그에게 가르치신 것과 같이 저희의 손을 전쟁에 쓰이도록 가르쳤다. 그와 그의 백성들은 여호와의 싸움을 싸우고, 그들을 압박하는 자들에게 이스라엘의 전투로 복수해 계속 승리했다. 그리고 그들은 “열방에 보수하며”(블레셋, 모압, 암몬 등. 삼하 8:1), “민족들을 벌하였다.” 그들 모두 하나님의 백성에게 악을 행했기 때문이다(7절). 저희 왕들과 귀인은 포로로 취해졌고(8절), 그들에게 기록된 판단이 시행되었다. 여호수아는 가나안 왕들에 대한, 기드온은 미디안의 방백들에 대한, 사무엘은 아각에 대한 판단을 시행했다. 이러한 영광이 하나님의 이스라엘의 모든 자에게 주어졌다. 그들은 저희를 그들의 손에 붙이신 자에게 완전하게 할렐루야로 그 영광을 돌린다. 여호사밧의 군대는 동시에 “그 입에는 하나님의 존영”을 “그 수중에는 두 날 가진 칼”을 갖고 있었다. 그들은 하나님의 찬양을 노래하면서 전쟁터에 나갔고, 저희의 검을 시행했다(대하 20:23). 어떤 사람들은 이 부분을 유대인들이 저희의 박해자들에게 큰 승리를 얻었던 마카비의 시대에 적용한다. 겸손한 자들이 그 성품에도 불구하고 왕들과 귀인들에게 이와 같이 혹독하게 대하는 것이 이상하게 느껴진다면, 그들을 정당화해 줄 만한 말씀을 보면 될 것이다. 그것은 “기록한 판단”이다. 그들은 개인적인 악함과 복수로 행하는 것이 아니라, 혹은 그들이 스스로 다스리는 피를 부르는 정책에서 행하지 않고, 하나님의 명령과 그의 지휘와 그의 위임에 따라 행한다. 사울은 이러한 성격의 명령에 불복종함으로써 그의 왕국을 잃었다. 이와 같이 신약의 바벨론 멸망에 쓰일 땅의 왕들은 다만 “기록한 판단대로 시행할 것이다”(계 17:16-17). 그러나 이제 그러한 특별한 위임이 주어지지 않았는데도 신앙을 가장하고 왕에 대해서 신하가, 신하에 대해서 왕이, 이웃간에 서로 폭력을 사용하는 것은 어떤 점에서도 정당하지 않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는 그의 복음이 불에 의해 전파되거나, 인간의 진노에 의해 이룩되거나, 의로 전파되기를 의도하시지 않았다. 하나님의 존영이 우리의 입에 있을 때, 우리는 우리의 손에 평화의 감람나무 가지를 들어야 할 것이다. Ⅱ. 그의 복음과 은총의 능력으로 모든 영적인 대적자들을 이기시는 그리스도의 승리에 모든 믿는 자들은 더욱 정복하는 자들이 된다. 하나님의 말씀은 “좌우에 날선 검”(히 4:12)이며, “성령의 검”(엡 6:17)이다. 그것은 우리의 병기고에 가지고 있는 것으로 충분한 것이 아니다. 우리는, 우리의 주님께서 가지셨던 것처럼, 우리 손에 그것을 지녀야 한다. 그는 그것을 “기록된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1. 복음을 처음 전파한 자들은 이 좌우에 날선 검으로 어둠의 권세들에 대한 영광스러운 승리를 얻었다. 오랫동안 저희의 숭배자였던 자들의 확신과 회개로 말미암아, 그리고 회개하지 않는 자들의 낭패와 놀라움으로 말미암아(계 6:15) 이방의 신들에게 보수가 시행되었다. 사단의 요새는 붕괴되었다(고후 10:4-5). 거대한 사람들도 그 말씀에 떨게 되었다(벨릭스). 이 세상의 신인 사단은 그에게 주어진 판단대로 추방된다. 저희의 거룩한 신앙이 승리한 것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영광이다. 2. 믿는 자들은 이 좌우에 날선 검으로 자신들의 타락과 싸우며, 하나님의 은총을 통해서 그것을 복종시키며 극복한다. 그들을 지배했던 죄가 십자가에 못박힌다. 전에 왕으로 정좌했던 자아가 사슬에 결박되고, 그리스도의 멍에를 지게 된다. 유혹자는 저희의 발아래 밟히고 더럽혀진다. “이런 영광은 그 모든 성도에게 있도다.” (3) 완전한 성취는 심판날에 이루어질 것이다. 그때에 “주께서 그 수만의 거룩한 자와 함께 임하시고 뭇사람을 심판하러” 오실 것이다(유 14-15). 그때에 복수가 열방에게 시행되며(9:17), 그 백성들에게 “심판이”, 영원한 심판이 시행될 것이다. 그리스도의 통치의 맨 것과 결박을 벗어버리는(2:3), “왕들과 귀인들은” 그의 진노와 정의의 사슬과 철고랑을 벗어던질 수 없게 될 것이다. 그리고 “기록한 판단대로” 시행될 것이다. “인간의 비밀은 복음에 따라 판단될 것이다.” 모든 성도들은 그리스도의 계승자로서 이러한 영광을 갖게 될 것이며, “세상을 판단할 것이다”(고전 6:2). 그러한 것을 전망하면서 그들로 여호와를 찬양하게 하며, 저희의 생명이 다하는 날까지 그리스도의 신실한 종과 군사가 되도록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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