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20.08.09 작성자 : 양시영
제   목 : 시52.HS안에서교통하며동행하는JC로사는진복자.지혜총명명철올바름의 행보.그열매로알게되는마무의어떠함
첨부파일 :

==시52. 다윗의 마스길, 인도자를 따라 부르는 노래, 에돔인 도엑이 사울에게 이르러 다윗이 아히멜렉의 집에 왔었다고 그에게 말하던 때에==


나의믿음약할때374.나는갈길모르니375.나그네와같은내가376그누가나의괴롬알며372...모든염려내게맡겨라.누군가널위하여. 너는내아들이라.짐이무거우냐.수고하고문거운.괴로울때주님의얼굴보라.오직의인은믿음으로.너는마음에 노래가있느냐.....마음속의 두려움과 염려까지도 Q께 아뢰어 인도함받기[여호와의손이 짧으냐]사26:3.[네믿음이 어디있느냐][네믿음대로될찌어다][네입을크게열라내가채우리라]


*1.포악한 자여(Q말씀 거절하여 Q부르기를 잊고 사탄의 미혹-속임에 넘어가 스스로 사로잡힌 악의 주구..육을따라 삶) 네가 어찌하여 악한 계획을 스스로 자랑하는가 하나님의 인자하심은 항상 있도다

*2.네 혀가 심한 악을 꾀하여 날카로운 삭도 같이 간사를 행하는도다

*3.네가 선보다 악을 사랑하며 의를 말함보다 거짓을 사랑하는도다 (셀라)...(HS따라 Q임재의식으로 살때에만 언행심사의 온전함과 정직을 유지 가능)

*4.간사한 혀여 너는 남을 해치는 모든 말을 좋아하는도다(마음의생각-언행심사는 그 사람됨을 드러냄)

*5.그런즉 하나님이 영원히 너를 멸하심이여 너를 붙잡아 네 장막에서 뽑아 내며 살아 있는 땅에서 네 뿌리를 빼시리로다 (셀라)

*6.의인이 보고 두려워하며 또 그를 비웃어 말하기를

*7.이 사람은 하나님을 자기 힘으로 삼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 재물의 풍부함을 의지하며 자기의 악으로 스스로 든든하게 하던 자라 하리로다

*8.그러나 나는 하나님의 집에 있는 푸른 감람나무 같음이여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영원히 의지하리로다

*9.주께서 이를 행하셨으므로 내가 영원히 주께 감사하고 (의인의 누림은 오직 주Q이름, 선하시고 인자하신 그분 영광의 모든 것)주의 이름이 선하시므로 주의 성도 앞에서 내가 주의 이름을 사모하리이다(Q을 감사하며 증거하는 자가 곧 사모하는자임!!...상호 선순환의 시너지 누림!!)

--------------

오, 용사여, 너는 어찌하여 악한 일을 자랑하느냐? 너는 어찌하여 경건한 사람에게 저지른 악한 일을 쉬임 없이 자랑하느냐?

너, 속임수의 명수야, 너의 혀는 날카로운 칼날처럼, 해로운 일만 꾸미는구나.

너는 착한 일보다 악한 일을 더 즐기고, 옳은 말보다 거짓말을 더 사랑하는구나. (셀라)

너, 간사한 인간아, 너는 남을 해치는 말이라면, 무슨 말이든지 좋아하는구나.

하나님께서 너를 넘어뜨리고, 영원히 없애 버리실 것이다. 너를 장막에서 끌어내어 갈기갈기 찢어서, 사람 사는 땅에서 영원히 뿌리 뽑아 버리실 것이다. (셀라)

의인이 그 꼴을 보고, 두려운 마음을 가지고 비웃으며 이르기를

"저 사람은 하나님을 자기의 피난처로 삼지 않고, 제가 가진 많은 재산만을 의지하며, 자기의 폭력으로 힘을 쓰던 자다" 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하나님의 집에서 자라는 푸른 잎이 무성한 올리브 나무처럼, 언제나 하나님의 한결같은 사랑만을 의지하련다.

주님께서 하신 일을 생각하며, 주님을 영원히 찬양하렵니다. 주님을 믿는 성도들 앞에서, 선하신 주님의 이름을 우러러 기리렵니다.

-------------------

Why do you boast in evil, O mighty man? The lovingkindness of God endures all day long.

Your tongue devises destruction, Like a sharp razor, O worker of deceit.

You love evil more than good, Falsehood more than speaking what is right. Selah.

You love all words that devour, O deceitful tongue.

But God will break you down forever; He will snatch you up and tear you away from your tent, And uproot you from the land of the living. Selah.

The righteous will see and fear, And will laugh at him, saying,

"Behold, the man who would not make God his refuge, But trusted in the abundance of his riches And was strong in his evil desire."

But as for me, I am like a green olive tree in the house of God; I trust in the lovingkindness of God forever and ever.

I will give You thanks forever, because You have done it, And I will wait on Your name, for it is good, in the presence of Your godly ones.

----------------

Futility of Boastful Wickedness.

To the Chief Musician. A skillful song, or a didactic or reflective poem. A Psalm of David, when Doeg the Edomite came and told Saul, “David has come to the house of Ahimelech.”52 

1 Why do you boast of evil, O mighty man? The lovingkindness of God endures all day long.

2 Your tongue devises destruction, Like a sharp razor, working deceitfully.

3 You love evil more than good, And falsehood more than speaking what is right. Selah.

4 You love all words that devour, O deceitful tongue.

5 But God will break you down forever; He will take you away and tear you away from your tent, And uproot you from the land of the living. Selah.

6 The righteous will see it and fear, And will [scoffingly] laugh, saying,

7 “Look, [this is] the man who would not make God his strength [his stronghold and fortress], But trusted in the abundance of his riches, Taking refuge in his wealth.”

8 But as for me, I am like a green olive tree in the house of God; I trust [confidently] in the lovingkindness of God forever and ever.

9 I will thank You forever, because You have done it, [You have rescued me and kept me safe]. I will wait on Your name, for it is good, in the presence of Your godly ones.

=============

 다윗이 아비아달에게 “네 아비 집의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 나의 연고로다”(삼상 22:22) 하고 말했을 때, 의심할 바 없이 그는 매우 큰 근심 속에 있었다. 그들은 도엑의 사악한 보고로 인해 죽음을 당했을 것이다. 

근심을 토로하고 그 아래 눌려 있는 그의 마음을 위로하기 위해 그는 선지자로서 이 시편을 썼다. 그러므로 그는 지금 마치 보좌 위에 있는 왕처럼 큰 권위를 가지고 말한다.

1. 도엑에게 그가 행한 것을 규탄하고 있다(1).

2. 그는 그를 고소하고, 그에게 유죄판결을 내려, 범죄를 중하게 하고 있다(2-4).

3. 그는 그에게 판결을 내리고 있다(5).

4. 그는 형을 집행하는 가운데 의인의 승리를 예고하고 있다(6-7).

5. 그는 하나님의 긍휼로, 그리고 그가 여전히 하나님을 찬미하게 되리라는 확신으로 자기 자신을 위로하고 있다(8-9).

----우리는 거짓된 죄에 대한 증오감을 품어야 하며, 그것을 고집하는 자들의 멸망을 예견하고, 거짓된 것의 아비, 사탄의 자손들의 모든 악한 계획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교회와 백성이 보존되리라는 확신으로 즐거워해야 한다

===============

도엑의 사악함(시 52:1-5)

이 표제는 이 시편과 관련된 이야기를 간단하게 언급하고 있다. 

다윗은 두 번이나 자기를 죽이려고 한 사울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드디어 궁궐을 떠나 자신의 안전을 위해 피신할 필요성을 느꼈다. [나는 주께 여쭈며 HS인도따라 동행하는가]

다윗은 무기와 식량을 얻지 못했으므로, 계략을 써서, 제사장 아히멜렉으로 하여금 자기에게 이 모든 것을 공급하도록 만들었다. [매사에 내 마음의 근본동기의 어떠함을 주께 묻고 주님 의지하며 그분의 정직과 올곧음따라 사랑안에서 참된 것을 말하는가.....근본동기가 그릇되면 그 결과는 엄청나다!!...JC의 것이요 천지에 충만하시며 내안에 친히 사시는 나의 주인 JC안에서 내가 악을 선택하는 것이 전혀 온당치 못하다!!]

에돔 사람 도엑이 우연히 이것을 목격하고는, 사울에게 아히멜렉이 그와 반역을 공모했다고 고했다. 

이 혐의를 근거로 해 사울은 모든 제사장들을 죽이라는 피비린내나는 명을 내렸고, 고발자인 도엑이 그 일의 집행자가 되었다(삼상 22:9 이하).

Ⅰ. 다윗은 이 교만하고 강포한 자와 정당하게 시비를 논하고 있다(1절). 

....물리적인 면에서는 도엑이 강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 하더라도, 그는 무장하지 않은 여호와의 제사장들을 쉽게 물리친 것으로 명성을 얻지는 못했다. 

칼을 찬 자들이 예복을 입은 자들을 호통치는 것은 영예로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그는 직책상 “강한 자”(한글 개역에는 “강포한 자”─역주)였다. 왜냐하면 사울의 종들, 의전관들을 감독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사람은, 자기가 재앙을 끼칠 수 있는 권력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과 그들에게 끼친 재앙을 자랑하는 사람이었다. 

....악을 행하는 것은 나쁘다. 즉, 사악한 행위를 부끄러워하지 않을 뿐 아니라, 그 행위를 정당화하고, 정당화할 뿐만 아니라 찬미하고 귀하게 여기는 것은 더욱 나쁘다는 사실을 명심하자. 죄를 자랑하는 자들은 자기들의 수치를 자랑하는 셈이다. 그리고 그렇게 될 때에 그 일은 더욱 수치스럽게 된다. 강한 자는 흔히 해를 끼치며 “마음의 소욕을 자랑한다”(10:3).

....어떻게 해서 여기에 다음의 말이 들어오게 되었는지는 불분명하다. 즉, “하나님의 인자하심은 항상 있도다” 하는 말이다. 

(*어떤 사람은 이 말을 질문에 대한 악인의 대답으로 보고 있다.) 

....하나님의 인내와 참으심은(그것은 그의 선하심의 큰 증거다) 죄인들이 그들의 마음을 완고하게 해 사악한 길로 행함으로써 남용하는 빌미가 된다. 왜냐하면 그들의 악행에 대한 형벌이 곧 집행되지 않기 때문이다. 아니, 하나님께서 계속 그들에게 선을 행하시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악행을 자랑한다. 

그들은 사악함 속에서 그들이 형통하는 것을, 그 속에 어떤 해로움도 없는 것처럼 여긴다. 

....그러나 이 말은 오히려 다음과 같은 사실을 보여 그에게 논박하기 위한 것으로 간주되어야 한다.

1. 그의 죄의 사악함. 

---“하나님은 끊임없이 선을 행하고 계신다. 하나님은 그것을 자랑할 수 있다. 그러나 그대는 끊임없이 악을 행하며, 전혀 하나님과는 다른 자요, 하나님께 거역하면서도, 하나님의 자비가 있음을 자랑하는도다.”

2. 그것의 어리석음. 

---“너는 네가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는 재앙으로써(그 재앙은 매우 공교하게 계획되었고 매우 성공적으로 수행되었다) 하나님의 백성들을 쓰러지게 하고 멸망시켰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너는 네 자신이 실수했음을 발견할 것이다. 하나님의 인자하심은 항상 그들을 보호하시므로, 그들은 사람이 그들에게 무엇을 행하든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우리가 하나님의 긍휼을 자랑하는 반면에, 대적들은 허탄하게도 자기들의 악행을 자랑한다.

Ⅱ. 그는 사울의 궁전에서 아히멜렉에 대한 큰 책망을 내렸던 것과 같이 하늘의 궁전에서 그에 대한 큰 책망을 내리고 있다(2-4절). 

....그는 그의 혀의 사악함(그 다루기 힘든 악, 치명적인 독이 가득함), 그리고 그 증거였던 그의 마음의 사악함에 대해 그를 비난하고 있다. 그를 책망하고 있는 네 가지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악의. 

....그의 혀는 바늘처럼 찌를 뿐만 아니라, “날카로운 삭도같이” 자르면서 “심한 악”을 행한다. 그는 비웃으며 야유하는 말 정도로는 만족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는 삼키는 말, 곧 자기가 미워하던 여호와의 제사장들을 파멸시키는 그런 말들을 사랑했다.

2. 거짓됨. 

....그가 이러한 악을 행한 도구는 “간사한 혀”였다(4절). 그는 거짓말을 사랑했다(3절). 그리고 그 날카로운 삭도는 “간사를 행했다”(2절). 즉, 그는 제사장들에 대한 그의 악의가 발각되기 전에 그들에 대해 매우 그럴 듯하게 감추었다. 비록 그가 에돔 사람이었지만, 그는 이스라엘 사람처럼 점잖게 제단에 참석했고 제물을 바쳤으며, 제사장들에게 경의를 표했다. 그는 이러한 것들을 강제로 행했으나(왜냐하면 그는 “하나님 앞에 억류된” 자였기 때문이다), 이처럼 더 큰 악을 행할 기회를 얻었다. 

....또는 여기서 말하는 혀는 그가 아히멜렉을 죽이려고 한 그 보고 자체를 가리키는 것일지도 모른다. 일의 진상은 사실이었지만, [자기마음으로부터 무언가 덧붙였기에 오도되고 가장되어 있었으므로] 그가 거짓을 사랑하고 간사한 혀를 가졌다고 일컬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는 사실을 말했지만, 증인으로서는 마땅히 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사실 전부를 말하지는 않았다. [그러므로 주의하라, 하부로 판단/예단말라..오직 주님경외함안에서만 참된 언행심사를 이룰 수 있으니..모든 사람이 하는 말은 다 불완전하며, 근본동기와 그 모든 사실의 참된 진상은 오직 주만이 아신다!!...도가도비상도 명가명비상명]

....다윗이 아히멜렉으로 하여금 그런 일을 행함은 사울의 심부름이라고 믿게 만들었다는 사실을 그가 말했다면, 아히멜렉이 다윗에게 베푼 호의는 곧 사울에 대한 반역이 아니라, 오히려 사울에게 경의를 표하는 일임이 알려졌을 것이다. 

....우리가 말한 것은 “어느 정도 사실이야” 하고 말할 때, 우리가 그것을 악용하고, 사실과는 다른 것으로 나타나게 만든다면, 우리는 거짓말한 죄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3. 죄의 음흉함. 

....“네 혀가 심한 악을 꾀하는도다. 즉, 그것은 네 마음이 계획한 극심한 악을 나타내는도다.” 사악함 속에 교묘함과 계략이 많으면 많을수록, 그 속에는 마귀적인 요소가 더 많다.

4. 죄에 대한 애착. 

....“네가 선보다 악을 사랑하는도다. 즉, 너는 악을 사랑하고 선한 것은 전혀 사랑하지 않는도다. 너는 거짓된 것에서 기쁨을 취하고 옳게 행하는 것을 마음에 두지 않는구나. 너는 진실을 말하여 하나님을 즐겁게 해드리기보다는 거짓을 말하여 사울을 즐겁게 해주기를 원하는도다.” 

....어떤 사람에게(우리의 마땅한 도리로서) 그의 몸이나 재산 또는 훌륭한 평판을 위해 호의를 베풀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고, 그러한 종류의 기회에 가까이 접근하게 되었을 그때에 기뻐하는 자들은, 도엑의 마음을 가진 자들이다. 그것은 선보다 악을 사랑하는 마음이다. 

....삼키는 말을 하는 것은 나쁘다. 그러나 우리들 자신이나 다른 사람들 속에 자리잡고 있는 그런 말을 사랑하는 것은 더욱 나쁘다.

Ⅲ. 다윗은 그러한 자의 파멸을 읽고, 그런 사악함으로 인해 그에게 임할 하나님의 심판을 통고하고 있다(5절). “너는 주의 제사장들을 파멸시키고, 그들을 죽여버렸다, 그런즉 하나님이 영영히 너를 멸하심이라.” 

....능동적으로 지옥의 아들이 된 자들은, 유다와 죄인 도엑처럼, 수동적으로 지옥의 아들이 될 것이다. 파멸하는 자는 파멸당할 것이다.

....여호와의 제사장과 우리 하나님께 제사장이 되는 고귀한 성직자들, 곧 그의 사역자들과 백성들을 미워하고, 핍박하며, 멸하는 자들은 신속하고도 영원한 멸망과 함께 제거당할 것이다.

여기에서 도엑은 다음과 같은 선고를 받는다.

1. 교회에서 추방당하는 선고를 받고 있다.

--- “하나님이 너를 장막에서 뽑아내시리로다.” 즉, 네 장막에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장막에서(이는 매우 타당한 풀이다) 뽑아내시리로다.

--- “너는 하나님의 은총과 그의 존전, 그리고 그와의 모든 교제에서 끊어질 것이며, 지성소나 번제의 혜택을 받지 못할 것이다.” 

....하나님의 종들에게 그처럼 심한 악을 행했던 그는 당연히 하나님 전의 모든 특권을 박탈당했다. 그는 때로 하나님의 장막에 와 그의 전에 참석했으나 그는 거기에서 감금되었다. 그는 하나님의 봉사에 싫증이 났고, 하나님의 가족들을 중상할 기회를 찾았다. 그러므로 그가 거기서 제거되고 뽑힘을 당하리라는 것은 매우 당연한 일이었다. 우리는 우리에게 그렇게 행하는 자는 우리 집에 들어오지 못하게 해야 한다. 우리가 하나님의 규례를 악용할 때는, 그 이득을 박탈당한다.

2. 세상에서 축출당하도록 선고받고 있다. 

---“하나님이 너를 산 자의 땅에서 뿌리뽑으리라. 네가 스스로 깊이 뿌리박고 있다고 생각하는 그 땅에서 네 뿌리를 뽑으시리로다.” 

....선한 사람들은 죽을 때, 세상의 산 자의 땅에서, 곧 의의 나무를 키우는 온상에서 천국으로, 곧 그들이 영원히 거할 주의 동산으로 이식될 것이다. 그러나 악한 사람들은 죽으면, 산 자의 땅에서 뽑혀 거룩한 진노의 불에 대한 연료로서 영원히 멸망할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과 다투는 자들이 받을 몫이다.

---------------

도엑의 멸망 예언(시 52:6-9)

다윗은 당시 큰 환난 가운데 있었다. 도엑이 그에게 행한 악은 그의 슬픔의 시작에 불과했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에서 그가 개가를 부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는 환난 가운데서 즐거워하는 것 이상이다. 축복받은 바울 역시 환난 가운데에서도 승리 중에 있었다(고후 2:14).

Ⅰ. 다윗은 도엑의 멸망 속에서 개가를 부르고 있다. 그러나 개인적인 보복처럼 보이지 않기 위해, 그는 그 일을 그 자신의 행위로서가 아니라 다른 의인들의 언어로 말하고 있다. 그들은 도엑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주시하고, 그에 대해 말하면서, 다음과 같이 한다.

1.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 

---“의인이 보고 두려워하리라”(6절). 즉, 그들은 하나님의 의를 경외할 것이며, 하나님 앞에 경외함으로 설 것이다. 아무리 교만한 죄인이라도 감히 하나님 앞에는 설 수 없다. 따라서 우리 모두도 그 앞에서는 스스로를 낮추어야 하는 전능하신 하나님이다. 악인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은 의인들에게 경종이 되어야 하며, 그들이 하나님을 불쾌하게 하고 그의 진노를 초래함을 두려워하도록 해야 한다(119:120; 계 15:3-4).

2. 도엑을 수치스럽게 하고 있다. 

---그들은 “하늘에 계시어 저를 비웃으시는 자”와 같이 어이없는 웃음으로써가 아니라, 이성적이고 신중한 웃음으로 저를 비웃는다. 그는 비웃을 만한 가치도 없는 우스꽝스러운 존재임이 드러난다. 우리는 그들이 도엑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 속에서 어떻게 개가를 부를 것인가를 읽을 수 있다(7절). “이 사람은 하나님으로 자기 힘을 삼지 아니하던 자라.” 

---부유하고 유력한 자의 몰락과 멸망은 일반적인 주목거리가 되지 않을 수 없으며, 각 사람은 그에 대해 논평하려 한다. 본문은 의인이 도엑의 몰락에 대해 논평해 놓은 것인데, 이보다 더 나은 논평은 나올 수 없었다. 왜냐하면 도엑은 자기의 부귀와 권력 속에다 그 자신을 세우는 그릇된 방법을 택했기 때문이다. 새로 건립된 건물이 무너지면, 모든 사람은 즉시 어디에 결함이 있었는가를 묻는다. 도엑의 형통함을 멸망시킨 원인을 찾아보자.

(1) 집을 반석 위에 짓지 않았다. “그는 하나님으로 자기 힘을 삼지 아니하였다.” 즉, 그는 자기가 계속 형통하는 것은 하나님의 은총에 달린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으므로, 그 은총을 확고히 하거나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하도록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그리고 하나님께 대한 그의 의무를 마음에 두지 않았고, 조금이라도 그를 구하려 하지 않았다. 하나님이나 그에 대한 신앙 없이 자기의 권력과 재물을 지켜나가려고 생각하는 자들은 비참하게도 자신을 속이는 것이다.

(2) 모래 위에다 집을 지었다. “그는 그의 재물이 그 집을 지탱시켜 주리라고 생각했다.” 그는 여러 해 쌓아두었다고 생각한 “그 재물의 풍부함”을 의지했다. 아니, 그는 그의 사악함이 자기의 번영을 지탱해 주리라고 생각했다. 그는 그의 영예와 권력을 안전케 하고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어떤 일도 주저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옳든 그르든, 그는 그가 얻을 수 있는 것을 얻고, 그가 가진 것을 지키며, 그의 길을 방해하는 자는 누구도 멸망시킬 것이었다. 그리고 그는 이러한 결심이 그를 강하게 했으리라고 생각했다. 그러한 자들은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제 어떻게 되는가를 보자. 잘 이기지 않은 회로 집을 지었기 때문에, 그 집이 허물어져 그는 그 속에 파묻혔다.

Ⅱ. 그 자신의 안전함 속에서 개가를 부르고 있다(8-9절). “이 강대한 자는 뿌리를 뽑힌다. 그러나 오직 나는 심겨져 뿌리를 박고, 견고히 자리잡고 무성하게 된 감람나무 같음이여. 도엑은 하나님의 장막에서 쫓겨나나, 나는 그 속에 견고히 있으며, 그처럼 어떤 것에 의해 감금되지 않고, 거기서 풍성한 만족을 얻으리라.” 

.....믿음과 사랑으로 하나님의 전에 거하는 자들은 무성하게 되는 감람나무 같다. 사악한 자는, 나뭇잎은 크고 무성하나 열매를 못 맺는 월계수 같다고 일컬어지고 있다(37:35). 그러나 의인은 진액이 풍족하고 빛이 청청하며(92:14), 참감람나무 뿌리의 진액을 함께 받아(롬 11:17), “그 기름으로 하나님과 사람을 영화롭게 하는”(삿 9:9) 푸른 감람나무처럼 흥왕한다.

그러면 우리가 푸른 감람나무같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1. 우리는 하나님과 그의 은혜에 대한 믿음과 거룩한 확신의 삶을 살아야 한다. “나는 자기의 풍족한 재물을 의지하는 자가 어떻게 되는가를 알고 있다. 그러므로 나는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영영히 의지하리로다. 이 세상이 아니라 하나님을, 내 자신의 공로가 아니라, 보잘것없는 자에게까지 그 선물을 후하게 내리시며, 그 안에 우리의 소득과 행복이 될 만한 모든 것을 풍족히 가지고 계시는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의지하리로다.” 

....그 인자하심은 영원하다. 그것은 꾸준하고 불변하며, 그 선물은 영원까지 지속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영원히 의지해야 하며, 결코 그 원천을 떠나지 말아야 한다.

2. 우리는 하나님 안에서 감사하고도 거룩한 기쁨의 삶을 살아야 한다(9절). “주께서 이를 행하셨으므로, 주의 제사장들이 피 흘린 것을 그 잔인한 대적들에게 갚으셨고, 그에게 마실 피를 주시어 내게 대한 주의 약속을 이행하셨으므로, 내가 영영히 주께 감사하리다.” 

....그는 그것이 이미 행해진 것과 마찬가지로, 때가 오면 이루어지리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하나님을 크게 찬양하는 일은 우리 고백을 아름답게 해주며, 모든 은혜 가운데서 우리의 결실이 풍성하도록 도와준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결코 감사할 소재가 부족하지 않다는 것이 확실하다.

3. 우리는 하나님을 바라고 그를 겸손히 의지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내가 주의 이름을 의지하리이다. 나에 대한 주의 은총을 발견하기를 바라면서 그리고 그것을 위해 정해진 때까지 기꺼이 기다리면서, 주께서 스스로를 나타내신 그 모든 길에서 주를 섬기겠나이다. 이는 주의 이름이 주의 성도 앞에서 선하기 때문입니다.” 또는 “주의 성도의 뜻과 판단 가운데에서” 선하기 때문이었는데, 다윗은 여기에서 그 성도들과 마음이 일치하고 있다.

“모든 성도는 이러한 마음을 갖고 있다.”

(1) 즉, 하나님의 이름은 그 자체가 선하다. 자기 백성들에게 자신을 나타내신 하나님은 은혜로우며 매우 인자하시다. 우리의 피난처와 강한 망대가 될 수 있는 이름은 그의 이름 이외에는 없다.

(2) 그 이름을 섬김은 우리에게 매우 선한 일이다. 우리 마음이 번민하고 유혹에 빠져 있을 때, “여호와의 구원을 바라고 잠잠히 기다리는” 일보다(애 3:26) 더 좋은 것은 없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를 의무의 길로 인도해 주고 위로를 줄 것이다. 모든 성도들은 이미 그런 은혜를 경험했다. 따라서 그들이 그를 섬긴 일은 결코 헛되지 않았으며, 그의 인도하심이 좋은 결과를 가져오지 않은 적이 결코 없다. 뿐만 아니라 그들이 그를 믿고 바랐던 것은 결코 그들을 부끄럽게 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모든 성도들 앞에 있는 선한 것을 보고, 우리는 이렇게 생각하자. “너의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인애와 공의를 지키며, 항상 너의 하나님을 바라볼지니라”(호 12:6).

----------(배경)------
(삼상21:1-9)다윗이 놉에 가서 제사장 아히멜렉에게 이르니 아히멜렉이 떨며 다윗을 영접하여 그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네가 홀로 있고 함께 하는 자가 아무도 없느냐 하니
다윗이 제사장 아히멜렉에게 이르되 왕이 내게 일을 명령하고 이르시기를 내가 너를 보내는 것과 네게 명령한 일은 아무것도 사람에게 알리지 말라 하시기로 내가 나의 소년들을 이러이러한 곳으로 오라고 말하였나이다
이제 당신의 수중에 무엇이 있나이까 떡 다섯 덩이나 무엇이나 있는 대로 내 손에 주소서 하니
제사장이 다윗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보통 떡은 내 수중에 없으나 거룩한 떡은 있나니 그 소년들이 여자를 가까이만 하지 아니하였으면 주리라 하는지라
다윗이 제사장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우리가 참으로 삼 일 동안이나 여자를 가까이 하지 아니하였나이다 내가 떠난 길이 보통 여행이라도 소년들의 그릇이 성결하겠거든 하물며 오늘 그들의 그릇이 성결하지 아니하겠나이까 하매
제사장이 그 거룩한 떡을 주었으니 거기는 진설병 곧 여호와 앞에서 물려 낸 떡밖에 없었음이라 이 떡은 더운 떡을 드리는 날에 물려 낸 것이더라
그 날에 사울의 신하 한 사람이 여호와 앞에 머물러 있었는데 그는 도엑이라 이름하는 에돔 사람이요 사울의 목자장이었더라
다윗이 아히멜렉에게 이르되 여기 당신의 수중에 창이나 칼이 없나이까 왕의 일이 급하므로 내가 내 칼과 무기를 가지지 못하였나이다 하니
제사장이 이르되 네가 엘라 골짜기에서 죽인 블레셋 사람 골리앗의 칼이 보자기에 싸여 에봇 뒤에 있으니 네가 그것을 가지려거든 가지라 여기는 그것밖에 다른 것이 없느니라 하는지라 다윗이 이르되 그같은 것이 또 없나니 내게 주소서 하더라///
(삼상22:5-23)선지자 갓이 다윗에게 이르되 너는 이 요새에 있지 말고 떠나 유다 땅으로 들어가라 다윗이 떠나 헤렛 수풀에 이르니라
사울이 다윗과 그와 함께 있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함을 들으니라 그 때에 사울이 기브아 높은 곳에서 손에 단창을 들고 에셀 나무 아래에 앉았고 모든 신하들은 그의 곁에 섰더니
사울이 곁에 선 신하들에게 이르되 너희 베냐민 사람들아 들으라 이새의 아들이 너희에게 각기 밭과 포도원을 주며 너희를 천부장, 백부장을 삼겠느냐
너희가 다 공모하여 나를 대적하며 내 아들이 이새의 아들과 맹약하였으되 내게 고발하는 자가 하나도 없고 나를 위하여 슬퍼하거나 내 아들이 내 신하를 선동하여 오늘이라도 매복하였다가 나를 치려 하는 것을 내게 알리는 자가 하나도 없도다 하니
그 때에 에돔 사람 도엑이 사울의 신하 중에 섰더니 대답하여 이르되 이새의 아들이 놉에 와서 아히둡의 아들 아히멜렉에게 이른 것을 내가 보았는데
아히멜렉이 그를 위하여 여호와께 묻고 그에게 음식도 주고 블레셋 사람 골리앗의 칼도 주더이다
왕이 사람을 보내어 아히둡의 아들 제사장 아히멜렉과 그의 아버지의 온 집 곧 놉에 있는 제사장들을 부르매 그들이 다 왕께 이른지라
사울이 이르되 너 아히둡의 아들아 들으라 대답하되 내 주여 내가 여기 있나이다
사울이 그에게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이새의 아들과 공모하여 나를 대적하여 그에게 떡과 칼을 주고 그를 위하여 하나님께 물어서 그에게 오늘이라도 매복하였다가 나를 치게 하려 하였느냐 하니
아히멜렉이 왕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왕의 모든 신하 중에 다윗 같이 충실한 자가 누구인지요 그는 왕의 사위도 되고 왕의 호위대장도 되고 왕실에서 존귀한 자가 아니니이까
내가 그를 위하여 하나님께 물은 것이 오늘이 처음이니이까 결단코 아니니이다 원하건대 왕은 종과 종의 아비의 온 집에 아무것도 돌리지 마옵소서 왕의 종은 이 모든 크고 작은 일에 관하여 아는 것이 없나이다 하니라
왕이 이르되 아히멜렉아 네가 반드시 죽을 것이요 너와 네 아비의 온 집도 그러하리라 하고
왕이 좌우의 호위병에게 이르되 돌아가서 여호와의 제사장들을 죽이라 그들도 다윗과 합력하였고 또 그들이 다윗이 도망한 것을 알고도 내게 알리지 아니하였음이니라 하나 왕의 신하들이 손을 들어 여호와의 제사장들 죽이기를 싫어한지라
왕이 도엑에게 이르되 너는 돌아가서 제사장들을 죽이라 하매 에돔 사람 도엑이 돌아가서 제사장들을 쳐서 그 날에 세마포 에봇 입은 자 팔십오 명을 죽였고
제사장들의 성읍 놉의 남녀와 아이들과 젖 먹는 자들과 소와 나귀와 양을 칼로 쳤더라
아히둡의 아들 아히멜렉의 아들 중 하나가 피하였으니 그의 이름은 아비아달이라 그가 도망하여 다윗에게로 가서
사울이 여호와의 제사장들 죽인 일을 다윗에게 알리매
다윗이 아비아달에게 이르되 그 날에 에돔 사람 도엑이 거기 있기로 그가 반드시 사울에게 말할 줄 내가 알았노라 네 아버지 집의 모든 사람 죽은 것이 나의 탓이로다
두려워하지 말고 내게 있으라 내 생명을 찾는 자가 네 생명도 찾는 자니 네가 나와 함께 있으면 안전하리라 하니라
===========
진설병을 취한 다윗(삼상 21:1-9)
Ⅰ. 다윗은 당시 베냐민 지파의 성읍이라고 추측되는 놉 땅에 설치된 하나님의 성전으로 도망쳤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궤는 여전히 기럇 여아림에 있었지만, 실로가 버림 받았기 때문에 성전은 이리저리로 가끔 옮겨 다녔기 때문이다. 다윗은 사울의 진노를 피하여 여기까지 도망쳐 왔으며(1절), 제사장 아히멜렉의 도움을 요청했다. 선지자 사무엘도 그를 지켜 주지 못했고, 왕자 요나단도 그를 지켜 줄 수 없었다. 그러므로 그는 다음으로 제사장 아히멜렉을 의지했다. 그는 장차 유랑의 몸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예견했다. 그리하여 그는 성전으로 왔다.
1. 다윗은 성전과의 어떤 이별을 고하기 위해 이곳에 왔다. 그는 성전을 다시 볼 수 없는 것은 아닌가 생각했으며,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집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야 하며, 그의 많은 시편에 나타나 있는 바와 같이, 공적인 예배에 참석하지 못하는 것 이상 그를 서글프게 하는 것이 또 없기 때문이었다. 그는 그의 친구 요나단과 감동어린 이별을 고한 일이 있다. 그는 이러한 이별을 성전에 대해서도 고하지 않고는 그대로 갈 수가 없었다.
2. 다윗은 그 자신의 문제가 매우 어렵고 또 위험한 것이기에, 그가 어디로 가야 하며 또 어디로 가는 것이 안전한 길인가를 하나님께 묻기 위해서 성전에 왔다. 그때 아히멜렉은 전에도 그랬던 것처럼(22:15), “그를 위하여 여호와께 물었다”(22:10)고 나타나 있다. 우리가 어려움을 당할 때, 찾아가서 우리의 문제를 털어놓고, 우리가 어떻게 할 것인가를 묻고, 해결의 방향을 지시받을 수 있는 하나님을 우리가 가지고 있다는 것은 우리에게 큰 위로가 된다.
Ⅱ. 제사장 아히멜렉은 그의 몰골이 초라한 것을 보고 놀랐다. 그리고 그가 왕궁의 호감을 잃었다는 말을 들었기에 그를 수상히 여겼다. 온 세상이 눈쌀을 찌푸리는 사람에 대해서는 대부분의 친구들도 그런 식으로 대하게 마련이다. 아히멜렉은 다윗을 환대했다가 사울의 불만을 살까 저으기 두려워했다. 그리고 무엇이 그로 하여금 그런 비참한 몰골을 만들었는가를 알아보고자 했다. 그래서 이렇게 물었다. “네가 어찌하여 홀로 있느냐?”(막 2:26 참조) 그는 몇 사람과 함께 거기 갔었다. 그러나 그들은 그의 몸종에 불과했다. 그는 다른 때 여호와께 물으려고 올 때 데리고 왔던 궁인(宮人)들이나 그의 신분에 알맞은 사람들을 데리고 오지 않았다.
그는 무리와 동행하여 하나님의 집으로 가는 습관이 있었다(시 42:4)고 말했다. 그런데 그는 지금 단지 두세 사람과 함께 왔으니만큼 아히멜렉이 그에게 “어찌하여 네가 홀로 있느냐?”고 물을 만하다. 목자들의 고적한 생활 속에 파묻혀 있던 그가 갑자기 군대의 진영 속의 궁중과 소용 속에 묻혀 살게 되더니, 다시금 갑자기 유랑의 신세로 전락하여, “지붕의 참새처럼 고독한 몸”이 되었다. 이 세상은 그처럼 변화무쌍하며, 그 웃음도 믿을 수 없다. 오늘 모든 사람으로부터 환대받는 사람도 내일에는 모든 사람으로부터 배척을 받을 수 있다.
Ⅲ. 다윗은 나라의 일을 위해서 사울의 보냄을 받아 왔다고 아히멜렉을 속인 다음, 그에게서 필요한 것들을 공급해 달라고 요청했다(2, 3절).
1. 여기서 다윗은 그답지 않은 행동을 취했다. 다윗은 사울이 자기에게 급한 일을 맡겼다고 커다란 거짓말을 했다. 그리고 자기의 종자들은 여차여차한 곳으로 보냈으며, 비밀로 일처리를 하라고 했기 때문에 비록 제사장에게라도 말을 하지 못하겠노라고 했다. 이것은 모두 새빨간 거짓말이었다. 이에 대해서 우리는 무엇이라고 말하면 좋을까? 성서는 이를 숨기지 않는다. 우리도 이를 정당화할 수 없다. 그것은 전적으로 잘못된 처사였다. 그 결과도 나빴다. 그 때문에 “여호와의 제사장이 죽었다.” 다윗 자신도 나중에는 이 일을 애석하게 생각하고 후회했다(22:22). 그는 이처럼 제사장을 속일 필요가 없었다고 보인다. 그가 만일 사실을 이야기했다면, 사무엘이 그랬던 것처럼 그에게 숨을 곳을 제공해 주고, 그를 구해 주었을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하나님께 물어서 그에게 더 좋은 길을 보여 줄 수 있었을 것이다. 사람들은 그들의 충실한 목사들에게는 모든 것을 탁 털어 놓고 이야기해야 한다.
다윗은 매우 위대한 신앙과 용기가 있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다윗은 이때 두려움과 겁 때문에 실패했고 부정을 저질렀다. 이것은 모두 그의 믿음이 연약했기 때문이다. 그가 하나님을 확실히 믿기만 했다면, 그 자신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그런 죄악된 방법을 사용치 않을 수 있었을 것이다. 이 이야기는 우리도 매우 어려운 처지에 놓이면 그의 행동을 본받으라는 의미에서 여기에 기록해 놓은 것이 결코 아니다. 그것은 오로지 우리를 경고하기 위한 것이다. “스스로 섰다고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그리고 “우리를 시험에 들지 말게 하옵소서”라고 날마다 기도하자.
아래와 같은 일들은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이다.
(1) 의인들의 연약함과 허약함이 우리를 슬프게 한다. 이 세상에서는 아무리 훌륭한 것이라도 완전한 것은 못 된다. 그러나 실수가 많은 곳에서도 참된 은혜가 있을 수 있다.
(2) 의인들을 난국에 처하게 하는 악한 때가 있다는 것이 우리를 슬프게 한다. 그때의 유혹은 그들에게 너무나 강한 유혹이 된다. 심한 고난은 지혜 있는 자도 어리석게 행동하게 한다.
2. 다윗은 아히멜렉에게 두 가지, “떡과 칼”을 구했다.
(1) 다윗은 떡을 요구했는데 “다섯 덩이”를 구했다(3절). 모든 사람들이 자기가 먹을 것을 가지고 다니던 때의 여행은 무척 고생스러운 것이었다. 더욱이 돈도 없던 다윗에게는 더욱 어려운 것이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다윗은 떡을 구하지 않았을 것이다. 다윗은 때로 “의인의 자손도 걸식하지만” 언제나 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시 37:25).
① 그때 제사장은 자기에게 떡이 없고, 다만 거룩한 떡인 “진설병”이 있을 따름이라고 했다. 이 떡은 성전 안에 있는 황금의 젯상에 한 주간 동안 진열되었다가 내려놓은 것으로서 제사장과 그의 가족들이 먹을 수 있는 것이다(4절). 제사장들은 그렇게 호화스럽게 살지는 못했지만, 손님은 친절하게 대해 주고자 했으며, 그만한 자력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아히멜렉은 다윗과 함께한 젊은이들이 한동안 그것이 자기의 아내였다고 할지라도, 여인들과 가까이하지 않았어야 이 떡을 먹을 수 있다고 말했다. 여인을 가까이하지 않아야 된다는 것은 “율법을 주실 때”에 요구되어졌던 일이 있다(출 19:15). 그러나 다른 곳에서는 어떤 의식상의 정결을 위해 이런 일이 요청되었던 것을 볼 수 없다. 따라서 이때 제사장은 지나치게 세심했던 것 같다.
② 다윗은 그와 또 그와 함께한 소년들이 충분히 거룩한 떡을 먹을 수 있다고 해명했다. 그들은 삼일 동안 여자를 가까이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거룩함과 존귀함으로 자기의 그릇을 취할 줄을 알았기에”(살전 4:4, 5), “그들의 그릇(즉 그들의 몸)이 성결하다”고 말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특별히 돌봐 주시며, 필요한 것을 부족함 없이 공급해 주실 것이며, 이 일을 제사장께서 하여 주시도록 원하실 것이라고 했다. 이처럼 거룩하기에 거룩한 것을 그들도 먹을 수 있다고 했다.
가난하고 경건한 이스라엘 사람들은 실제에 있어서는 하나님 앞에 제사장 노릇을 했다. 그들은 굶어 죽기보다는 비록 제사장 몫으로 정해진 것이라도 먹을 수 있었다. 신자들은 영적인 제사장들이다. 여호와께 드린 제물은 그들의 음식이 될 수 있다. 그들은 하나님의 떡을 먹는다.
그는 그 떡이 일반 떡과 같다고 해명했다. 이제 그 떡이 본래 가졌던 종교적 사명은 끝났다. 그 떡은 “더운 떡을 드리는 날에 물려던 것이라”고 밝혀 놓았다. 이것이 다윗의 구실이었고, 다윗의 자손도 이를 뒷받침하여 주셨다. 이 문제에 대해 언급하시면서 예수님은 자비가 제사보다 낫고, 의식적인 절차보다는 먼저 도덕적 의무를 존중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으며, 그러한 일은 달리 해결할 수가 없는 매우 위급한 경우에 처했을 때만 가능한 일임을 보여 주셨다. 예수님은 이 말씀을, 그의 제자들이 안식일에 밀밭 사이로 지나다가 밀 이삭을 잘라 먹은 일에 대해 바리새인들이 비난했으므로, 제자들의 입장을 밝혀 주기 위해 말씀하셨다(마 12:3, 4).
③ 이에 아히멜렉이 다윗에게 떡을 주었다. “그는 거룩한 떡을 그에게 주었다”(6절). 어떤 사람은 이것 때문에 “그가 여호와께 물었다”(22:10)고 생각한다. 그는 충실한 종으로서 주어진 주인의 허락이 없이는 주인의 것을 마음대로 처리하고자 하지 않았다. 이 떡들은 성결된 떡이기에 다윗에게는 더욱 합당한 떡이었다고 생각한다. 그에게서는 모든 청결된 것들이 더욱 가치를 지닐 수 있었다. 진설병은 모두 열 두 덩어리였다. 하지만 그 외에는 다른 떡이 더 없으므로 그는 다윗에게 다섯 덩어리를 주었다(3절). 그는 하나님의 섭리를 믿었다.
(2) 다윗은 칼을 원했다. 신분이 높은 사람들은 비록 장군이라 할지라도, 그때는 지금과 같이 언제나 칼을 차고 다니지 않았다. 그래서 다윗도 칼이 없었다. 요나단이 왜 전번처럼(18:4) 자기의 칼을 다윗에게 주지 않았는지 이상하다. 하여간 그에게는 현재 무기가 하나도 없었다. 그 까닭을 다윗은 급히 서둘러서 왔기 때문이라고 말했다(8절). 성령의 검과 믿음의 방패를 가진 사람들은 결코 무장을 풀어 놓거나 또는 언제든지 그것을 잃어버려서는 안 된다.
제사장에게는 칼이 없었다. 그들의 무기는 육신을 죽이는 무기가 아니었다. 성전에는 어떤 무기도 없었는데 다만 골리앗의 칼이 있었다. 그것은 다윗이 골리앗을 이긴 영광스러운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에봇 뒤에 놓아 두었던 칼이다. 아마 다윗은 제사장에게 칼이 있으면 달라고 했을 때 그 칼을 생각했는지 모른다. 그 칼이 있다는 말을 들었을 때 다윗은 말하기를 “그같은 것이 또 없나니 내게 주소서”(9절)라고 말했다. 다윗은 사울의 갑옷을 입지 못했다. 왜냐하면 익숙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골리앗의 칼은 그가 사용해 보고 효과를 보았던 일이 있는 칼이다. 이로 미루어 보아서 다윗은 그런 칼을 마음대로 다룰 수 있으리만큼 힘도 세지고 키도 커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나님은 그의 손을 가르쳐 싸우게 하셨다”(시 18:34). 그리하여 그는 놀라운 일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이 칼에 대하여 우리는 두 가지를 생각해 볼 수 있다.
① 하나님은 은혜 가운데서 그 칼을 다윗에게 주셨다. 그것은 놀라운 은혜의표시이다. 그리하여 다윗은 그 칼을 뽑을 때마다, 그리고 그 칼을 볼 때마다, 하나님께서 그를 특별히 보호해 주시고 지켜 주신다는 것을 생각하고 그의 믿음이 크게 도움받을 수 있게 되었다. 경험은 우리에게 용기를 불어넣어 준다.
② 그 칼은 다윗이 하나님께 봉헌했던 것이다. 그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감사의 표시로서 이를 하나님께 바쳤던 것이다. 그런데 그가 지금 어려움을 당할 때 그것이 다시 그에게 수여되었다. 우리가 하나님을 찬양하며 그를 섬기기 위해 봉헌한 것은 우리를 도와주기 위해 여러 가지 방법으로 우리에게 다시 돌아온다. 우리가 하나님께 바친 것은 다시 우리의 것이 된다.
이처럼 다윗은 무장도 갖추고 양식도 장만하게 되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거기에 여호와 앞에 사울의 신하 한 사람이 있었다. 그 사람의 이름은 도역이었고 나중에 사울에게 다윗과 아히멜렉의 일을 고자질했다. 그는 에돔 사람이었다(7절). 그는 비록 사울 밑에서 출세를 하기 위해 유대교로 개종은 했지만 이스라엘에 대한 에돔 사람들의 오래고도 인습적인 적개심은 그대로 지니고 있었다. 그는 목사장이었다. 아마 당시의 그의 직책은 오늘날의 마구 관리인보다 훨씬 더 명예로운 직분이었을 것이다.
어떤 용무 때문이든지 간에 도역은 제사장을 만나기 위해 기다리고 있어야만 했다. 어떤 부정으로부터 정결함을 받기 위함이었든지 아니면 서약을 위한 것이었을 것이다. 아무튼 그의 용무가 어떤 것이었든지 간에 “그는 여호와 앞에 머물러 있었다”고 한다. 그는 성전에 나오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예배와 제사에는 싫증을 느끼고 있었다. 이를 “병폐스럽다고 말하며 코웃음치고” 있었다(말 1:13). 이것은 다른 곳에서라면 몰라도 여호와 앞에서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리하여 그는 자기가 이곳에 온 일을 생각하기보다는 다윗을 해하며, 아히멜렉이 자기를 기다리게 한 것에 대해 보복을 하고자 계획하고 있었다. 하나님의 성전도 이런 양의 가죽을 쓴 이리 앞에서는 안전할 수가 없다(참조, 갈 2:4).
--------------------
여호와의 제사장을 죽인 사울(삼상 22:6-19)
우리는 다윗의 고난의 과정을 살펴보았다. 그런데 여기에서는 사울의 악한 일들을 볼 수 있다. 그는 다른 모든 일들은 온전히 제쳐 놓고 전적으로 다윗을 추격하는 일만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드디어 사울은 다윗과 그와 함께 있는 사람들이 “나타났다”는 말을 들었다(다시 말해서 다윗이 얼굴을 내밀고 여러 사람들이 그를 도왔다는 말이다). 그 말을 듣고 사울은 그의 신하들을 불러 옆에 세우고, 자기는 기브아 높은 곳에 있는 한 나무 아래 앉아 있었다. 그의 손에는 단창이 들려져 있었다. 그것은 그의 통치력을 나타내는 것이었으며, 현재의 그의 불안한 심령을 나타내는 것이기도 했다. 그는 자기의 길에 방해가 되는 자는 모두 죽이고자 하는 마음을 나타내었다.
Ⅰ. 사울은 이런 핏발이 서린 심판대에 앉아서 다윗과 요나단에 대한 정보를 듣고자 했다(7, 8절). 사울은 그의 주변에 있던 가장 훌륭한 두 사람에 대해 자기의 적의를 퍼붓기 위해서 두 가지 사실을 알고 싶었고 또 그것이 사실임이 증명되기를 원했다.
1. 사울은 그의 신하인 다윗이 “매복하였다가” 자기를 “치려 한다”고 했다. 그것은 전적으로 거짓말이다. 사실은 사울이 다윗의 생명을 노렸다. 그리하여 다윗이 자기의 생명을 노린다고 꾸며댔다. 왜냐하면 다윗에게 어떤 혐의를 씌울 만한 다른 허물을 발견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2. 그의 아들 요나단이 다윗으로 하여금 이런 일을 하도록 선동하고 그와 함께 왕을 죽일 음모를 꾸몄다고 말했다. 이것 역시 전적으로 거짓말이다. 다윗과 요나단 사이에 우정의 맹세는 있었다. 그러나 어떤 악을 행하고자 하는 공모는 없었다. 그들이 세운 언약 속에는 사울에 대해 어떤 해를 가하고자 하는 조항이 하나도 없었다. 사울이 죽은 뒤에 다윗이 왕권을 계승하여야 한다고 동의한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섭리에 순종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전혀 사울을 해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왕과 나라에 대해 충성을 다하는 사람이 때로는 원수로 여김을 받는 경우가 많다. 그리스도께서도 그런 혐의를 받으셨다.
사울은 다윗과 요나단이 틀림없이 자기를 죽이고 자기의 왕위와 권위를 찬탈하려는 음모를 꾸몄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의 신하들에게 그들이 틀림없이 그런 사실을 알면서도 아무런 말을 해 주지 않았다고 불평했다. 하지만 그런 일은 전혀 없었던 일이다. 질투의 악독한 본성과 그리고 없는 사실도 있다고 꾸며대려고 하는 그 가련한 술수를 보라. 사울은 자기가 말한 대로 말하지 않는다고 하여 주변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원수처럼 여겼다. 그리고 신하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1) 저들은 지혜롭지 못하여, 그들의 지파와 가족의 이익에 반하는 행동을 한다고 말했다(왜냐하면 그들은 베냐민 지파 사람들인데 만일 다윗이 성공하면, 현재 베냐민 지파가 가지고 있는 영광과 권세가 유다 지파로 넘어가기 때문이다). 다윗은 결코 그들이 다윗에게 해 준 일에 대한 보상을 해 주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즉 다윗은 그들에게 “밭과 포도원을” 주지 않을 것이며, “천부장과 백부장을” 삼지도 않을 것이라고 했다.
(2) 그들은 불실한 신하라고 말했다. “너희가 다 공모하여 나를 대적하였다” 고 사울은 말했다. 질투의 영에게 사로잡힌 자의 끊임없는 동요와 괴로움에 시달리는 모습을 보라! “관원이 거짓말을 신청하면 그 하인은 다 악하다”(잠 29:12). 다시 말해서 관원의 눈에 모든 사람이 악한 사람으로 보인다.
(3) 그들은 친절하지 못하다고 말했다. 사울은 신하들에게 “나를 위하여 슬퍼하는 자”가 없다고 말하면 이 말이 그들의 마음을 움직이리라고 생각한 모양이다. 어떤 사람은 이 말을 “나 위하여 염려하는 자”가 없다는 말로 읽기도 한다. 사울은 이런 말을 가지고 신하들로 하여금 자기의 악의를 실천에 옮겨 줄 도구로 삼고자 했다.
Ⅱ. 사울은 신하들로부터 다윗과 요나단에 관한 아무런 이야기를 듣지는 못했지만, 도엑으로부터 제사장 아히멜렉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1. 도엑이 아히멜렉을 고발했고, 그 자신이 증거를 제시했다(9, 10절). 도엑은 나쁜 사람이었던 만큼 사울이 이를 강요하지 않았다면 그 말을 사울에게 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만일 도엑이 이를 자진해서 사울에게 말하고자 했으면, 벌써 말을 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제 와서는 사울의 신하들이 아무도 다윗과 요나단에 대하여 고발하지 못한다면 그들이 모두 반역자가 된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래서 목격자의 입장에서, 아히멜렉이 다윗에게 행한 일을 고해 바쳤다.
아히멜렉이 “그를 위하여 여호와께 묻고”(보통 제사장은 공적인 일이나, 공적인 일을 하는 사람을 위해서가 아니면 이런 일을 하지 않는다) 그리고 “식물과 칼”을 그에게 주었다고 도엑은 사울에게 말했다. 그의 말은 모두 사실이었다. 그러나 전반적인 사실은 아니었다. 도엑은 다윗이 아히멜렉으로 하여금 그가 왕의 일을 하기 위해 간다고 믿게 만든 사실도 말해야만 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아히멜렉이 다윗을 위해 한 일은 곧 사울의 명예를 인하여 행한 일이었음을 밝혀 주어야 했을 것이다. 그렇게 했다면, 지금 사울의 수중에 들어 있는 아히멜렉의 잘못은 벗겨지고 모든 허물은 사울의 손이 미치지 못하는 다윗에게만 씌워질 수 있었을 것이다.
2. 아히멜렉은 사울의 소환을 받아 그의 앞에서 이 고소의 내용에 관해서 문초를 받았다. 왕은 아히멜렉과 그리고 그때 성전에 있던 모든 제사장들을 전부 데려오게 했다. 왕은 그들이 모두 다윗을 돕는 일을 방조했다고 추측했다. 그들은 조금도 잘못한 생각이 없었으며 따라서 위험이 있으리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하고 “그들이 다 왕께 이르렀으며”(11절), 누구 한 사람 도망치거나 다윗에게로 피하려 하지 않았다.
사울은 가장 그를 멸시하며 분하게 여기는 말로 아히멜렉을 책망하여 말하기를 “너 아히둡의 아들아 들으라”라고 했다(12절). 사울은 그의 이름을 부르지도 않았으며, 그의 높은 직위의 명칭을 부르지도 않았다. 이로써 사울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그의 제사장들을 전혀 존경치 않고, 다만 그들을 멸시하는 데 즐거움을 느끼고 있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아히멜렉은 “내 주여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는 잘못한 일이 없나이다. 내가 책망받아야 할 일이 무엇입니까?”란 말 한마디만 하고 그대로 피고석에 들어섰다. 그는 사울의 재판권에 대해 반대하지도 않았고, 제사장으로서의 면책권도 주장하지 않았다. 그러나 사울은 자기에게 부여된 왕으로서의 통치권을 가지고 비록 대제사장이라도 일반 이스라엘 백성과 마찬가지로 그를 다루고자 했다. “각 사람은 (비록 성직자라도)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롬 13:1).
3. 그에 대한 고소장을 읽어 주었다(13장). 즉 아히멜렉은 반역자로서 이새의 아들과 공모하여 왕을 대적하려고 했다는 것이다. “다윗의 계획은 나를 치려는 것인데 네가 그에게 떡과 칼을 주어 이 일을 도와주었다”고 사울은 말했다. 조금도 잘못이 없는 행동에 대해서 어쩌면 그렇게도 잘못된 해석을 내릴 수 있을까! 폭군의 통치하에 사는 사람들의 불안함이 얼마나 클 것인가! 오늘날 우리는 공정한 헌법의 통치하에 있다는 것을 참으로 다행하게 생각해야 한다.
4. 이러한 고소에 대해 아히멜렉은 죄가 없다고 주장했다(14, 15절). 그는 그러한 행위 자체는 시인했다. 그러나 그 일은 결코 반역적으로, 그리고 적의를 가지고 왕을 해하기 위해 한 행동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아히멜렉은 사울과 다윗의 사이가 불화하게 된 것을 전혀 몰랐으며, 따라서 다윗을 전과 똑같이 대해 주었다고 말했다. 사실 다윗이 아히멜렉을 속였건마는 그는 다윗이 그를 속였으며, 거짓말을 했노라는 말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는 어찌하든지 다윗의 생명을 노리고자 하는 사울 앞에서는, 더욱더 자신의 입장을 변명하기 위하여 의로운 자의 약함을 들어내 줄 수는 없었다. 반면에 다윗의 명성을 추켜세웠으며, 그가 사울의 충실한 신하였음을 말했고, 왕이 그를 자기의 사위로 삼을 정도로 그를 높인 사실도 말해 주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그는 왕의 모신도 되고 왕실에서 존귀한 자니이다. 그러므로 그를 죄인으로 보지 않고 존경을 표시한 것은 왕실에 대해 경의를 표시한 훌륭한 행동으로 누구나 볼 것입니다.”
아히멜렉은 다윗이 사울의 보냄을 받아 왔을 때마다 “그를 위하여 하나님께 물었던 것”과 같이 이번에도 그를 위하여 물은 것은 조금도 잘못이 없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왕을 해치고자 하는 음모에 전혀 가담하지 않았노라고 역설했다. “아무것도 나에게 돌리지 마소서. 나는 다만 나의 일에 충실했을 따름이며, 나라의 일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일입니다.”
아히멜렉은 왕의 자비를 호소했다. “왕은 종에게 아무것도 돌리지 마옵소서”라고 호소했다. 그리고 자기의 무관함을 분명히 밝혔다. “왕의 종은 이 모든 일이 대소 간에 아는 것이 없나이다”라고 했다. 인간이 이 이상 더 확실한 증거를 댈 수 있겠는가? 그가 만일 정직한 이스라엘 사람들을 배심원으로 세워 판결을 받았다면 틀림없이 무죄 방면을 받았을 것이다. 누가 그에게서 잘못을 찾아낼 수 있단 말인가?
5. 그러나 사울은 그에게 해로운 판결을 내렸다(16절). “아히멜렉이여, 너는 반역자로서 반드시 죽을 것이요, 네 아비의 온 집도 그러하리라”고 했다. 이 이상 더 불의한 재판이 또 어디에 있을 것인가? “내가 해 아래서 보건대 재판하는 곳에 악이 있다”(전 3:16).
(1) 이 판결은 사울 자신이, 다만 혼자서 자기 마음대로 판결했기 때문에 공평치 못한 판결이다. 그는 어떤 사사나 선지자에게 물어보지도 않았으며, 자기의 참모들에게 의논하지도 않았다.
(2) 정당한 항변에 대해서는 정당한 이유가 제시되지 못하거나, 이를 반증할 만한 확실한 증거를 제시하지 않고는 도저히 거절될 수 없는 것이다. 그러한 처사는 오직 독단적인 처사일 따름이다.
(3) 그 판결 선고는 사사로 하여금 자세히 검토하며, 사사가 직접 조사를 해 볼 수 있는 시간적 여유를 가질 수가 없을 정도로 성급히 조급하게 선고되었다.
(4) 그 선고는 도엑에 의해 무고를 당한 장본인인 아히멜렉에게만 선고된 것이 아니라, 아무 관련이 없는 “그의 아비의 온 집”이 함께 선고를 받았다. 아버지의 잘못 때문에 자녀들이 죽어야 한단 말인가?
(5) 그 선언은 정당한 법적인 근거도 없이 자기의 감정에서 나온 것이며, 자기의 야만적인 분노를 만족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6. 사울은 그를 즉시 사형하라는 명령을 (다만 구두로만) 내렸다.
(1) 사울은 자기의 시위자에게 사형을 집행하라고 명했다. 그러나 그들은 이를 거절했다(17절). 이 일로 인하여 사울은 제사장들을 더욱 욕되게 하고자 했다. 그들은 군인들의 손에 의해 죽임을 당할 수는 없었다. 만일 사울의 시위자들이 그를 죽였다면 그들은 그들의 손을 제사장들의 피로 물들여야만 했다.
① “여호와의 제사장을 죽이라”고 하는 왕의 명령만큼 잔인한 명령은 또 없다. 그것은 비교할 수 없으리만큼 무자비한 명령이었다. 사울은 제사장들의 성스러운 직무와 하나님과 그들과의 관계를 잊어버렸던 것 같다. 그리고 또 그렇게 말함으로 하나님의 제사장 전체에 대해 자기의 불쾌감을 나타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 것 같다. 한편 그의 시위자들에게 그들의 목을 치라고 명령할 때 그들을 일컬어 “여호와의 제사장들”이라고 한 것은 바로 그렇기 때문에 사울이 그들을 싫어한다는 것을 나타낸 것으로 보인다.
하나님께서 사울을 버리시고, 그의 뒤를 이을 다른 사람을 기름 부으셨다. 그래서 사울은 하나님에게는 손을 댈 수 없기 때문에 그의 제사장들에게 이를 복수하고자 그 기회를 이용한 것으로 보인다. 악령이 인간을 사로잡으면 어떤 악한 일이라도 시키지 못할 것인가! 사울은 그들을 죽이라고 명령하면서 그들이 다윗이 도망친 사실을 알고도 자기에게 고하지 않았다고 엉터리 주장을 되풀이했다. 악독과 살육은 언제나 거짓을 동반하기 마련이다.
② 시위자들이 왕의 명령을 거역한 것은 참으로 명예로운 행동이었다. 시위자들은 그들의 주인보다 더 훌륭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으며 은혜에 대해서 알고 있었다. 만일 그들이 왕의 명령을 거역하고 제사장들을 죽이지 않으면 그들의 지위가 박탈당하리라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 그러나 어떤 결과가 오든지, 제사장의 직분을 존경하며 또 그들이 무죄하다는 것을 확신하면서는 여호와의 제사장들을 죽일 수는 없었다.
(2) 사울은 (고발자인) 도엑에게 사형을 집행하라고 명했고, 도엑은 그 명령을 실행했다. 어떤 사람은 시위자들의 거부가 사울의 양심을 일깨워 주었으며, 그래서 시위자들에게 그 일을 계속 강요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사울의 마음은 맹목적이었으며, 매우 강퍅해졌기 때문에 그들이 하지 못한다면 “증인으로 하여금 먼저 손을 대게 하자”(신 17:7)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피에 굶주린 폭군들은 그 자신처럼 사나운 도구들을 찾아내어 그들의 악독함을 실행시킨다.
도엑은 제사장들을 죽이라는 명령을 받자마자,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그의 손으로 그날에 제사장 팔십오 명을 죽였다. 그들은 “세마포를 입은” 제사장들로서 한창 일할 나이인 25세에서 50세까지의 제사장들이었다. 그들은 습관에 따라 사울 앞에 나왔던 사람들이었다.
이만하면 아무리 피에 굶주렸던 자라도 충분했을 것이다(라고 어떤 사람은 생각한다). 그러나 핍박자의 말거머리는 계속해서 “더, 더 달라”고 소리친다. 도엑은 제사장들을 죽이고 또 사울의 명령을 받아, 제사장들의 성읍인 놉에 가서, “남녀와 아이들”과 그리고 소와 나귀들을 칼로 쳤다. 그 잔악함에 무서워 떨지 않을 수 없다. 어떻게 인간의 마음속에 그처럼 비정스런 마음과 비인간적인 마음이 들어갈 수 있단 말인가! 우리는 여기서 다음의 사실들을 볼 수 있다.
① 여호와의 신이 그에게서 떠나가자, 사울은 매우 악독한 인간이 되었다. 하나님을 노하시게 하여 하나님께서 그들의 욕심대로 하도록 내버려 두시지 않는 한 인간은 이 이상 더 악독해질 수 없다.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면서까지 아각과 그리고 아말렉 사람들의 소떼를 살려 주었던 사울이 여기서는 여호와의 제사장들을 조금도 불쌍히 여기지 않고 그들에게 속한 자들을 하나도 살아 남게 하지 않았다. 그때의 죄 때문에 하나님은 사울을 떠났던 것이며 이러한 결과를 가져 오게 되었다.
② 오래 전에 엘리의 집에 내렸던 형벌에 대한 경고가 이루어졌다. 왜냐하면 아히멜렉은 엘리의 후손이었기 때문이다. 비록 사울은 그의 불의함 때문에 이런 악행을 행했지마는, 하나님은 당신의 정의 속에서 이를 시행하도록 하셨다. 하나님은 엘리에게 “그의 집을 영영히 심판하겠으며” 그것을 듣는 자마다 두 귀가 울리리라고 하셨다(3:11-13). 하나님의 말씀은 결코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
③ 이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내리신 심판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때가 이르면 한 왕을 내려 주시고자 하셨건마는 그것을 기다리지 못하고, 다른 왕을 구했던 그들에 대한 하나님의 의로운 징벌이라고 볼 수 있다. 당시 이스라엘의 종교적인 상태는 얼마나 한심스러운 것이었을까! 비록 하나님의 궤의 존재가 희미한 상태에 있었지만 그래도 다행히 하나님의 제단이 설치되어 있었기에 거기서 제사장들이 하나님을 섬길 수 있었다. 그런데 이제 제사장들과 그들의 후계자들이 그들의 피 위에 뒹굴게 되었고, 제사장의 성읍은 폐허가 되었다. 이제 찾는 자가 없어 하나님의 제단이 다시금 더 버림을 받게 되었다. 그것도 자기의 야만적인 복수심을 만족시키고자 하는 그들의 왕의 가혹한 명령에 의해 그렇게 되었다. 경건한 이스라엘 사람들은 사무엘과 그의 아들들에 의한 통치를 얼마나 그리워했을 것인가? 아무리 그들의 지독한 원수라고 하더라도 이보다 더 가혹한 일을 결코 행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
아비아달이 다윗에게 도망침(삼상 22:20-23)
Ⅰ. 아히멜렉의 아들 아비아달이, 제사장의 성읍을 살육하는 가운데서 도망했다. 아마 그의 아버지가 사울의 부름을 받아 사울에게 갔을 때, 그는 제단을 섬기기 위해 집에 남아 있었기 때문에 첫 번째의 화를 면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도엑과 그의 사냥개들이 놉에 오기 전에 그는 위험을 알고 재빨리 자기 몸을 피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는 왜 다른 곳으로 가지 않고 다윗에게로 갔을까?(20절). 다윗의 자손을 위해 고난을 당하는 자는 “그의 영혼을 미쁘신 조물주께 부탁할 지어다” (벧전 4:19).
Ⅱ. 그 슬픈 소식을 듣고 다윗은 울분에 떨었다. 아비아달은 사울이 시켜서 여호와의 제사장들을 죽인 사실을 다윗에게 말했다(21절). 세례 요한이 목 베임을 당했을 때 그의 제자들이 “예수께 가서 고했던 것”과 같다(마 14:12). 재난의 소식을 듣고 다윗은 크게 한탄했다. 더욱이 자기 때문에 그런 일이 일어난 것을 더욱 안타까워했다. “네 아비 집의 모든 사람 죽은 것이 나의 연고로다”(22절)라고 다윗은 말했다.
의로운 사람이 자기 때문에 교회가 어떤 어려움을 당하게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될 때, 이는 참으로 괴로운 일이다. 다윗은 도엑의 사람됨을 알았기 때문에 그를 성전에서 보았을 때, 그가 이런 잘못을 범하리라는 것을 두려워했다. “그가 반드시 사울에게 고할 줄 알았노라”라고 말했다. 다윗은 “에돔 사람 도엑”이라고 그를 일컬었다. 왜냐하면 그는 비록 이스라엘의 신앙을 고백하고, 이스라엘 사람의 표적을 외모로는 가지고 있으나 여전히 그의 마음속에는 에돔 사람의 기질을 간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Ⅲ. 다윗은 아비아달을 지켜 주겠노라고 약속했다. 다윗은 자기 자신이 그랬던 것처럼 아비아달이 두려워 떨고 있다는 것을 알고 그에게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했다. 다윗은 그를 자기 몸처럼 돌봐 주겠다고 했다. “네가 나와 함께 있으면 보전하리라”(23절)라고 다윗은 말했다. 냉정을 되찾은 다윗은 자기 자신이 안전하다는 것을 자신 있게 말하고, 그가 아비아달도 틀림없이 안전하게 보호해 줄 수 있다고 약속했다. 하나님은 다윗의 자손에게 “그를 자기의 손 그늘에 숨겨 주시겠다”(사 49:2)고 약속하셨으며, 그와 함께 그의 사람들도 모두 안전하리라고 약속하셨다(시 91:1).
다윗은 이제 한 사람의 선지자뿐만 아니라 또 한 사람의 제사장, 그것도 대제사장을 그와 함께 있을 수 있게 했다. 다윗은 그들의 축복이 되었고, 그들 역시 다윗에게 축복이 되었다. 그들은 모두 다윗의 성공을 위한 좋은 징조가 되었다. 그런데 사울에게도 대제사장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28:6에 의해서 볼 때 그렇다). 왜냐하면 우림으로 하나님의 신탁을 구했다고 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울은 엘르아살의 가문인 사독의 아버지 아히둡을 발탁한 것으로 추측된다(대상 6:8). 왜냐하면 아무리 하나님의 능력을 미워할지언정 전혀 형식을 무시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다윗이 이때에 시편 52편을 썼다는 것을 기억하자. 그 시편의 제목에 그 사실이 명기되어 있다. 그 시편에서 다윗은 도엑이 악독한 자이며, 간악한 자일 뿐만 아니라, 거짓된 자요 남을 속이는 자라고도 했다. 왜냐하면 그의 말이 본질적인 면에서는 사실이기는 하나, 남을 해하고자 하여 거기에 거짓된 색깔을 입혔기 때문이다.
다윗은 제사장의 직분이 메마른 가지처럼 되었을 때에도 스스로는 “하나님의 집에 있는 푸른 감람나무 같다”고 보았다(시 52:8). 이런 다급한 소란 속에서도 다윗은 언제나 하나님과 사귐을 가질 수 있는 마음의 여유와 시간적 여유를 가질 수 있었으며, 거기서 크신 위로를 받을 수 있었다.
========
개역개정]시52 ..다윗의 마스길, 인도자를 따라 부르는 노래, 에돔인 도엑이 사울에게 이르러 다윗이 아히멜렉의 집에 왔다고 그에게 말하던 때에
1.  포악한 자여 네가 어찌하여 악한 계획을 스스로 자랑하는가 하나님의 인자하심은 항상 있도다
------
삼상21:7 그 날에 사울의 신하 한 사람이 여호와 앞에 머물러 있었는데 그는 도엑이라 이름하는 에돔 사람이요 사울의 목자장이었더라
------
2.  네 혀가 심한 악을 꾀하여 날카로운 삭도 같이 간사를 행하는도다
------
시50:19 네 입을 악에게 주고 네 혀로 궤사를 지으며
시57:4 내 혼이 사자 중에 처하며 내가 불사르는 자 중에 누웠으니 곧 인생 중에라 저희 이는 창과 살이요 저희 혀는 날카로운 칼 같도다
시101:7 거짓 행하는 자가 내 집안에 거하지 못하며 거짓말하는 자가 내 목전에 서지 못하리로다
-----
3.  네가 선보다 악을 사랑하며 의를 말함보다 거짓을 사랑하는도다 (셀라)
------
렘9:4 너희는 각기 이웃을 삼가며 아무 형제든지 믿지 말라 형제마다 온전히 속이며 이웃마다 다니며 비방함이니라
------
4.  간사한 혀여 너는 남을 해치는 모든 말을 좋아하는도다
------
5.  그런즉 하나님이 영원히 너를 멸하심이여 너를 붙잡아 네 장막에서 뽑아 내며 살아 있는 땅에서 네 뿌리를 빼시리로다 (셀라)
-------
잠2:22 그러나 악인은 땅에서 끊어지겠고 궤휼한 자는 땅에서 뽑히리라
시27:3 군대가 나를 대적하여 진 칠지라도 내 마음이 두렵지 아니하며 전쟁이 일어나 나를 치려 할지라도 내가 오히려 안연하리로다
------
6.  의인이 보고 두려워하며 또 그를 비웃어 말하기를
-----
시40:3 새 노래 곧 우리 하나님께 올릴 찬송을 내 입에 두셨으니 많은 사람이 보고 두려워하여 여호와를 의지하리로다
시2:4 하늘에 계신 자가 웃으심이여 주께서 저희를 비웃으시리로다
-----
7.  이 사람은 하나님을 자기 힘으로 삼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 재물의 풍부함을 의지하며 자기의 악으로 스스로 든든하게 하던 자라 하리로다
-------
시49:6 자기의 재물을 의지하고 풍부함으로 자긍하는 자는
------
8.  그러나 나는 하나님의 집에 있는 푸른 감람나무 같음이여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영원히 의지하리로다
--------
렘11:16 나 여호와가 그 이름을 일컬어 좋은 행실 맺는 아름다운 푸른 감람나무라 하였었으나 큰 소동 중에 그 위에 불을 피웠고 그 가지는 꺾였도다
시1:3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
시37:35 내가 악인의 큰 세력을 본즉 그 본토에 선 푸른나무의 무성함 같으나
시92:12 의인은 종려나무 같이 번성하며 레바논의 백향목같이 발육하리로다
시128:3 네 집 내실에 있는 네 아내는 결실한 포도나무 같으며 네 상에 둘린 자식은 어린 감람나무 같으리로다
시144:12 우리 아들들은 어리다가 장성한 나무 같으며 우리 딸들은 궁전의 식양대로 아름답게 다듬은 모퉁이 돌과 같으며
호14:6 그 가지는 퍼지며 그 아름다움은 감람나무와 같고 그 향기는 레바논 백향목 같으리니
---------
9.  주께서 이를 행하셨으므로 내가 영원히 주께 감사하고 주의 이름이 선하시므로 주의 성도 앞에서 내가 주의 이름을 사모하리이다
------
시54:6 내가 낙헌제로 주께 제사하리이다 여호와여, 주의 이름에 감사하오리니 주의 이름이 선하심이니이다
시50:5 이르시되 나의 성도를 너의 앞에 모으라 곧 제사로 나와 언약한 자니라 하시도다
이전글 : 시51.상하고통회하는심령.날마다매순간주앞에서JC로살기
다음글 : 출16.광야의식탁.JC성분으로조성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