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21==지휘자의 지휘를 따라 부르는 다윗의 노래. ### 아이타오-에로타오[너희는 먼저 그의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선지자-제사장-왕의 기름부음으로 살아가신 JC는 먼저 [Q말씀으로 복음전파-가르침-고치심의]선지자의 직무를 마치신 후 [자신을 대속제물로 드리심의] 제사장의 직무를 완성하신 다음, [부활승천하사] 왕의 직무로 들어가신다!! ****
@@[오늘, 매순간, 모든 만남에서] 내맘, 내눈과 귀를 열어주소서, 앙망하오니, 주여 나아온 이들 위해 무엇을 주시리이까, 지고지선의 진복, 오직 주님자신! 복음진리생명말씀! 구하오니 성령이시여, 오늘 매순간마다 일깨워 영혼몸 늘 새로이 채우소서 주님마음, 오직 사랑의 감동, 충만한 기쁨, 합치되어 하나된 주님평강, 바로 그 말씀 JC! 나아오는 사람마다 눈 들어 바라볼 때 모든 몸짓마다 친히 만나주소서, 감싸 주소서 새롭게 JC를 발견하고 믿어 영접함과 전적으로 의지함, 그 구원과 동행함안으로 이끄소서 @@
**[[누가 하나님괴 같으랴!! ..하나님은 믿는, 절대긍정-절대신뢰-절대기쁨으로 하나됨을 사는 내게 절대 만족-절대진리-절대진복이요 영생이심 ]] ^^피상적인 허망한 색성향미촉의 오감 중독/상대적 일시적 만족감을 초월한 근원적 절대만족(무한 풍성-부요-충만-능력) * 열납하시며 열어주사 누리게 하시는 바 절대기쁨/절대긍정/절대신뢰의 유일무이한 초월적 근원적 진리 샘(길-진리-생명) * 지고지선의 진복=요동없는 초월적 절대 평강의 하나됨/거함/누림/의지-빼어닮음/행복 **세상에 있는 모든 것, 일시적/파괴적/자멸의 허망함으로 귀결됨 ::: Q불신/배역함의 미혹 도구 := 육신의 정욕-안목의 정욕-이생의 자랑 = 5욕(식성수물명)추구 + 5감만족중독(색성향미촉) << Q 말씀안에는 원하는 바, 이 모든 것에 대한 근원적 만족-기쁨-누림의 무한 풍성충만-영원한 공급, 더 나아가 영생이 있음
@@허물[말씀안의 생명과 성령, 사랑의 뜻을 벗어나 자행자제-치우침]--.죄[말씀안의 주뜻에부합하지 못함 = 말씀안의 참생명과 성령 순종-연합-누림 없음]--악[주님의 말씀을 거부/거절하기에 말씀이 없음]@@
예수는나의힘이요93.[주의친절한팔에405].구주예수의지함이.만입이내게있으면.영광스런주를보라.내게있는모든것을.내구주예수를...보라하나님은, 보라 너희는 두려워말고, 오소서진리의성령님, 주의친절한팔에
*1.여호와여 왕이 주의 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며 주의 구원으로 말미암아 크게 즐거워하리이다 O LORD, in Your strength the king will be glad, And in Your salvation how greatly he will rejoice! *2.그의 마음의 소원을 들어 주셨으며 그의 입술의 요구를 거절하지 아니하셨나이다 (셀라) You have given him his heart's desire, And You have not withheld the request of his lips. Selah. --------십자가, 부활--------- *3.주의 아름다운 복으로 그를 영접하시고 순금 관을 그의 머리에 씌우셨나이다 For You meet him with the blessings of good things; You set a crown of fine gold on his head. *4.그가 생명을 구하매(시22:20) 주께서 그에게 주셨으니 곧 영원한 장수로소이다 He asked life of You, You gave it to him, Length of days forever and ever. ------------------ *5.주의 구원이 그의 영광을 크게 하시고 존귀와 위엄을 그에게 입히시나이다 His glory is great through Your salvation, Splendor and majesty You place upon him. *6.그가 영원토록 지극한 복을 받게 하시며 주 앞에서 기쁘고 즐겁게 하시나이다 For You make him most blessed forever; You make him joyful with gladness in Your presence. --------엡6:13-13영적전쟁.Q와 하나된자녀들-------- *7.왕이 여호와를 의지하오니 지존하신 이의 인자함으로 흔들리지 아니하리이다 For the king trusts in the LORD, And through the lovingkindness of the Most High he will not be shaken. *8.왕의 손이 왕의 모든 원수들을 찾아냄이여 왕의 오른손이 왕을 미워하는 자들을 찾아내리로다 Your hand will find out all your enemies; Your right hand will find out those who hate you. *9.왕이 노하실 때에 그들을 풀무불 같게 할 것이라 여호와께서 진노하사 그들을 삼키시리니 불이 그들을 소멸하리로다 You will make them as a fiery oven in the time of your anger; The LORD will swallow them up in His wrath, And fire will devour them. *10.왕이 그들의 후손을 땅에서 멸함이여 그들의 자손을 사람 중에서 끊으리로다 Their offspring You will destroy from the earth, And their descendants from among the sons of men. *11.비록 그들이 왕을 해하려 하여 음모를 꾸몄으나 이루지 못하도다 Though they intended evil against You And devised a plot, They will not succeed. *12.왕이 그들로 돌아서게 함이여 그들의 얼굴을 향하여 활시위를 당기리로다 For You will make them turn their back; You will aim with Your bowstrings at their faces. -------------- *13.여호와여 주의 능력으로 높임을 받으소서 우리가 주의 권능을 노래하고 찬송하게 하소서 Be exalted, O LORD, in Your strength; We will sing and praise Your power. ========= [표준새번역] 시21. 지휘자의 지휘를 따라 부르는 다윗의 노래 1. 주님, 주께서 왕에게 힘을 주시므로, 주께서 승리하게 하시므로, 왕이 크게 기뻐합니다. 2. 왕이 마음으로 바라는 바를 주께서 들어주시고, 왕이 입술로 청원하는 바를 주께서 물리치지 않으셨습니다. (셀라) 3. 온갖 좋은 복을 왕에게 내려 주시고, 왕의 머리에 순금 면류관을 씌워 주셨습니다. 4. 왕이 주께 장수하기를 빌었을 때, 주께서는 그에게 장수를 허락하셨습니다. 오래오래 살도록 긴긴날을 그에게 허락하셨습니다. 5. 주께서 승리를 안겨 주셔서 왕이 크게 영광을 받게 하셨으며, 위엄과 존귀를 왕에게 입혀 주셨습니다. 6. 주께서 영원한 복을 왕에게 내려 주시고, 그와 함께 계시니, 왕의 기쁨이 넘칩니다. 7. 왕이 오직 주님을 의지하고, 가장 높으신 분의 사랑에 잇닿아 있으므로, 그는 결코 흔들리지 않습니다. 8. 임금님, 임금님의 손이 임금님의 모든 원수를 찾아내며, 임금님의 오른손이 임금님을 미워하는 자를 찾아낼 것입니다. 9. 임금님께서 나타나실 때에, 원수들을 화덕 속에 던지실 것입니다. 주께서도 진노하셔서 그들을 불태우시고 불이 그들을 삼키게 하실 것입니다. 10. 임금님께서는 원수의 자손을 이 땅에서 끊어 버리실 것이며, 그들의 자손을 사람 가운데서 멸종시키실 것입니다. 11. 그들이 임금님께 악한 손을 뻗쳐서 음모를 꾸민다 해도, 결코 이루지 못할 것입니다. 12. 오히려, 임금님께서 그들의 얼굴에 활을 겨누셔서, 그들이 겁에 질려 달아나게 하실 것입니다. 13. 주님, 힘을 떨치시면서 일어나 주십시오. 우리가 주의 힘을 기리며, 노래하겠습니다.
---오늘 누리도록 허락하신 주님의 구원-사랑-희락-화평-승리!! 또한, 이미 믿음으로 의지하며 따르는 바로 그 HS통해 그리스도의 고난/부활/승리에 참예한 바, 성도/교회의 모든 고난은 JC의 장성한 분량의 충만, 그분의 어떠하심을 빼어닮기 위한 것!!... 부활-영생-지복누림-재림주JC안에서 참되게 발견되기 위함이니...주님, Q자신을 구하리라!!---
============= 시편 21장 (개요) 앞의 시편이 하나님께서 나라의 왕을 보호해 주시고 번영케 해주시기를 간구하는 기도인 반면에, 이것은 하나님께서 그를 축복하시어 성공케 하심에 대한 감사의 시다. 우리가 감사해야 하는 자들을 위해서도 우리는 중재기도를 드려야 한다. 특히 왕들을 위해 기도해야 하는데, 왜냐하면 우리는 그들과 함께 번영을 누리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가르치고 있는 것은 다음과 같다. 1. 그의 성공에 대하여, 그리고 그가 얻은 영예에 대하여 축하하는 것이다(1-6). 2. 그의 나라를 대적하는 자들을 완전히 멸망시키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신뢰하는 것이다(7-13). ......여기에서는 모든 것이 메시야 왕과 그 나라의 영광에 주목되고 있다. 왜냐하면 이 시편의 여러 구절들이 다윗 자신보다는 그 메시야에게 더욱 적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 신하의 감사(시 21:1-6) 다윗은 여기에서 그의 기쁨이 하나님의 힘과 그의 구원 안에 있었고, 그의 군대의 힘이나 성공에 있지 않았음을 고백하면서 제일 먼저 그 자신에 대해 말하고 있다. 그는 또한 여기에서 그의 신하들에게 하나님을 기뻐하고 그가 얻은 승리의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도록, 또한 모두 그리스도를 주목하도록 명하고 있다. 다윗의 승리는 흑암 권세를 이기신 그리스도의 승리에 비해 그림자에 불과했다. Ⅰ. 그들은 여기에서 왕의 기쁨에 대해 왕에게 축하하고 있으며, 그 속에서 그와 일치/참여하고 있다(1절). ---“왕이 예전에도 그러했듯이 주의 힘을 인하여 기뻐하며, 우리도 그러하니이다. 왕이 무슨 일을 하든지 우리가 다 기뻐하리이다”(삼하 3:36). ---하나님의 힘을 신뢰하며 하나님의 구원을 기쁨으로 삼는 왕, 하나님의 나라가 발전하는 것을 즐거워하며 하나님을 의지하고서 그에 대한 모든 봉사를 감당하는 왕, 그런 왕을 가진 백성들은 행복하다. ---우리 주 예수는 그의 큰 사업을 행할 때 하늘로부터의 도움에 의지했고, 그가 이루어놓으실 큰 구원에 대한 전망으로 기뻐하셨다. Ⅱ. 그들은 그들의 왕을 기쁘게 한 것들에 대한 모든 찬미를 하나님께 돌리고 있다. 1. 하나님께서 그의 기도를 들으셨다(2절). ---“주께서 그 마음의 소원을”, 그를 위해 그들이 하나님께 간구한 바로 그것을 “이루어주셨나이다”(마음의 소원대로 간구한 이외에는 그 어떤 기도도 열납되지 않는다. 20:4). ---우리의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은혜로우신 응답은 특별히 우리로 하여금 겸손한 찬미를 돌려드릴 것을 요구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께 기업으로 이방나라를 주시고, 그로 하여금 그의 후손들을 오게 하시며, 모든 믿는 자들의 허물을 용납하셨을 때 그는 그 마음의 소원을 하나님께 바치셨다. 2. 하나님은 그의 은총으로 그를 놀라게 하셨고, 그가 기대했던 것보다 더욱 많은 것을 이루어주셨다(3절). ---“주께서 주의 아름다운 복으로 그를 영접하셨나이다.” ---우리의 모든 복은 선한 것에 대한 축복으로서 전혀 우리의 공로에 의한 것이 아니고, 단순히 그리고 오직 하나님의 선하심에 의한 것이다. ---그러나 시편 저자는 이 복을 선취적인 방법에 의해 주어진 것으로서 독특하게 간주하고 있다. 어떤 사람의 표현대로 이 복이 그의 눈을 고정시켰고, 그의 영혼을 확대시켰으며, 그의 하나님을 사모하게 했다. ---하나님의 축복이 우리의 예상보다 더 빨리, 또 더욱 풍성하게 올 때, 우리가 기도하기도 전에, 준비하기도 전에 그것이 주어졌을 때, 더구나 우리가 그 반대의 경우를 두려워했을 때, 우리는 그가 그것으로 우리를 앞지르셨다고 진정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실상 그리스도를 앞지른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나 인류에게서는 어떤 은총도 그리스도에 의한 구원과 그의 묵상으로 인한 모든 축복의 열매보다 앞서지 못했다. 3. 하나님은 그를 가장 영화롭게 높이셨고, 그에게 가장 광대한 권세를 주셨다. ---“주께서 정금 면류관을 그의 머리 위에 씌우셨나이다. 그리고 그의 대적들이 빼앗으려 할 때 그것을 지키셨나이다.” ---면류관은 하나님의 시여에 달렸다. 하나님께서 면류관을 씌우시는 자 이외에는 그것을 쓸 수 없으며, 그의 땅을 심판하시는 일이나 긍휼을 베푸시는 일에도 그런 사실을 볼 수 있다. 하나님은 결코 그리스도의 머리 위에 금 면류관을 씌우시지는 않으셨다. 먼저 가시 면류관을 씌우신 다음에 영광의 면류관을 씌우셨다. 4. 하나님은 그의 나라의 영존성을 그에게 확신시켜 주셨고, 그를 위해서 그가 구하거나 생각할 수 있었던 것보다 더 많은 일을 그 속에서 이루어주셨다(4절). ---“그가 위험한 일을 행하게 되어 그의 생명이 경각에 달렸을 때, 그가 생명을 구하매 주께서 주셨을 뿐만 아니라, 그위에 영영한 장수를 주셨습니다. 그의 기대를 훨씬 넘어 그의 생명을 길게 하셨을 뿐만 아니라, 미래의 복된 불멸을, 그리고 그의 혈통에서 나올 메시야 안에서 그의 나라가 지속되리라는 사실을 그에게 확신시켜 주셨습니다.” ---어떻게 하나님께서 흔히 우리의 간구와 기대를 능가해 은혜를 베푸시는가를 보라. 그리고 거기에서 그를 구하는 자들에게 그가 얼마나 풍성한 긍휼을 베푸시는가를 추론해 보라. 또한 그리스도 왕국의 영영함을 보고 기뻐하라. ---그는 우리가 그를 통해 살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실지로 죽으셨다. 그러나 그는 살아 계시며 영원히 사실 것이다. 그리고 “그의 다스리심과 평화에 끝이 없으리라.” 그가 이처럼 살아 계시므로 우리도 또한 그처럼 살 것이다. 5. 하나님께서 그를 가장 영화롭고 존귀하게 높이셨다(5절). ---“주께서 그를 위해, 그리고 그에 의해 역사하신 구원 속에서 모든 이웃 왕들의 영광을 훨씬 능가하도록 그의 영광을 크게 하시나이다.” ---모든 선한 사람들이 열망하고 있는 영광은 주의 구원을 보는 것이다. ---주께서 그가 짊어져야 할 짐으로서, 그가 맡아야 할 책임으로서 “존귀와 위엄으로 그에게 입히시나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존귀와 영광을”(벧후 1:17), 곧 그가 창세 이전에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요 17:5) 영광을 “받으셨다.” 그리고 그에게 만유를 다스릴 책임이 주어졌고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가 맡겨졌다. 6. 하나님께서는 그를 인류에 대한 모든 복의 물줄기가 되게 하심으로써 그를 만족시키셨다(6절). ---“주께서 그로 영영토록 지극한 복이 되게 하시며(난외주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그로 이 세상의 보편적이고 영원한 복이 되게 하셨으니, 그 안에서 세상 사람들은 복을 받고 있으며 또 받을 것입니다. 그리고 주께서 그의 사업을 지지하시고 그것을 수행하는 그를 장려하심으로써 그를 지극히 기쁘게 하셨습니다.” ---그리스도에 관한 특별한 예언의 영이 어떻게 여기에서 점차적으로 일어나고 있는가를 보라. ::: 그것이 특별히 그리스도에 관한 것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은, 그 이외에는 어느 누구도 결코 영원한 복을 받지 못했고, 더욱이 여기에 나타난 것과 같이 탁월하게 영원한 복을 받은 자는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를 지원하심으로써 그를 기쁨으로 충만하게 하셨다고 일컬어지고 있다. 이것을 노래함에 우리는 그의 기쁨으로 즐거워하고 그가 높이 들리심으로 개가를 불러야 한다. -------------- 신하의 소망(시 21:7-13) 그의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 그와 그들을 위해 행하신 것을 기쁨과 찬미로써 되돌아보도록 가르쳤던 시편 저자는 여기에서 하나님께서 그들을 위해 더 행하시리라는 것을 믿음과 소망과 기도로써 내다보도록 가르치고 있다. “왕이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감사드리겠습니다. “왕이 여호와를 의지하오니”(7절), 우리도 힘을 얻을 것입니다. ::: 우리의 왕이신 그리스도의 기쁨과 확신은 우리의 모든 기쁨과 확신의 근거가 된다. Ⅰ. 그들은 다윗 왕국의 굳건함을 확신하고 있다. ---왕은 그 자신의 업적이나 힘이 아닌 “지극히 높으신 자의 인자함으로 요동치 아니하리이다.” ---그의 형통하는 상태는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께 대한 그의 믿음과 소망도 그의 영의 지주로서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지극히 높으신 자의 인자함(하나님의 선하심과 능력과 주권)은 우리의 행복을 안전케 하기에 충분하다. 그러므로 그 인자함에 대한 우리의 신뢰는 모든 두려움을 평정시키기에 충분하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고난 중에 그의 우편에 두셨고(16:8), 그는 하나님의 영광 가운데 그 우편에 계셨다. 따라서 우리는 그가 요동하지 않을 것이며, 또 요동할 수도 없고 영원히 확고부동하시리라는 것을 확신할 수 있다. Ⅱ. 그들은 다윗 왕국에 대해 회개하지 않고 무자비한 대적들이 모두 멸망하리라는 것을 확신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다윗의 팔을 축복하시어 얻은 성공은 하나님께서 주위에 있는 대적들로부터 그를 안전케 해주시리라는 전조였다. 그리고 그것은 그리스도의 다스림을 받지 않으려는 그리스도의 모든 대적들에게 임하는 완전한 전멸의 모형이 되고 있다. 여기에서 다음을 주목하자. 1. 그의 대적들에 대한 묘사. 그들은 그를 미워하는 자들이다(8절). ---그들은 하나님께서 다윗을 위해 그를 분리해 놓으셨기 때문에 다윗을 미워했고, 그들이 빛을 미워했기 때문에 그리스도를 미워했다. 이 두 사람은 아무런 타당한 이유 없이 미움을 받았고 그 속에서 하나님도 미움을 받으셨다(요 15:23, 25). 2. 그의 대적들의 계교(11절). ---“저희는 너를 해하려 하여 계교를 품었도다.” 그들은 단지 다윗만을 대항해 싸우는 척했으나, 그들의 적의는 하나님 자신에 대한 것이었다. ::: 다윗을 왕으로 삼지 않으려는 자들은 결국 여호와를 하나님으로 삼지 않으려는 자들이다. ---믿음을 대적하기 위해 계획된 것, 그리고 그것을 돕고 발전시키려고 하나님께서 세우신 도구들을 대적하기 위해 계획된 것은 매우 악하고 해롭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것을 자기 자신을 해하려는 계교로 여기시며, 또 그렇게 간주하실 것이다. 3. 그들의 실망. “그들은 이루지 못할 계교를 품는다”(11절). ---그들의 악의는 무력하며, 그들은 허사를 경영한다(2:1). 4. 그들의 발견(8절). ---“네 오른손이 그들을 발견하리로다. 비록 우정을 고백하고 그것을 구실삼아 매우 공교하게 위장했을지라도, 비록 이 나라의 충성된 신하들과 섞여 그들과 구별하기 어렵게 되었을지라도, 비록 공의에서 피해 그들의 은밀한 곳으로 달아나더라도, 네 손이 그들이 어디 있든지 그들을 발견해 낼 것이다.” ---하나님의 복수하시는 눈을 피할 곳은 없으며, 그의 손이 닿지 않는 곳은 없다. 바위와 산들도 결국은 처음의 무화과 잎사귀보다도 못한 피난처임이 드러날 것이다. 5. 그들의 멸망. 그것은 완전한 멸망이다(눅 19:27). 그들은 삼켜질 것이다(9절). 모든 그리스도 대적들의 몫인 음부가 육신과 영혼을 완전히 비참하게 만든다. ---“저희 후손과 자손이 멸하리로다”(10절). 모든 세대를 통한 하나님 나라의 대적들은 똑같은 저주 아래 놓이게 될 것이며, 모든 대적들은 마침내 근절될 것이다. 그리고 모든 대적하는 교훈과 주권과 권세도 무너질 것이다. 하나님의 진노 화살이 그들의 얼굴을 향해 겨누어질 것이며, 그들은 당황해 도망칠 것이다(12절). 그것은 하나님과 정면으로 맞서는 대담한 대적들의 분깃이 된다. ---또한 하나님의 진노의 불은 그들을 소멸시킬 것이다(9절). ::: 그는 그들을 풀무불에 던지실 뿐만 아니라(마 13:42), 그들 자체를 불을 뿜는 화덕이나 용광로처럼 만드실 것이다. 그들은 그들 자신의 고문대가 될 것이며, 그들 자신의 양심의 비난과 위협이 그들의 지옥이 될 것이다. ---그리스도의 다스림을 받아 구원을 얻을 수도 있었으나, 그를 거절하고 그에게 대항해 싸운 자들은 그 사실을 회고하는 것만으로도 그들을 영원히 맹렬한 화덕으로 만들기에 충분함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것은 죽지 않는 구더기다. Ⅲ. 이런 확신 속에서 그들은 하나님께서, 수단과 도구를 사용하시는 것이 아니라, 만군의 주님이며 영들의 아버지로서 그의 능력을 직접 조종하심으로써 그의 기름부음을 받은 자를 위해 항상 나타나주실 것을(13절), 그의 힘으로 그를 위해 행해 주실 것을 간구하고 있다. 1. 그리고 이것에 의해 그가 그 자신을 높이시고, 그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시기를 청하고 있다. ---“우리는 조금밖에는 힘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 그리고 수치스럽게도, 주를 위해 매우 활동적이 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렇지 못합니다. 여호와여, 이 일을 주의 손으로 맡으시어 우리 없이 그것을 행하소서. 그러면 주의 영광이 될 것입니다.” 2. 여기에서 그들은 그를 찬양하려고 한다. ---“우리가 더욱 의기양양하게 주의 권능을 노래하고 칭송하겠나이다.” ::: 하나님께서 구원의 역사를 이루실 때 우리의 봉사가 적으면 적을수록 그것이 이루어졌을 때 우리는 그를 더욱더 칭송해야 한다. ========== [[하나님의 섭리란 무엇인가?]] ....지고지선-지복직관의 Q, 자유의지로 영원전부터 뜻하사 계획하시고 목적하신 바대로 역사속에 이루시는 바, 세밀히 감찰하고 결정하시며 다스리시는 Q의 손의 나타나심..
---질문: 하나님의 섭리란 무엇인가? ---답변: 하나님의 섭리란 지혜와 사랑으로 우주에서 발생하는 모든 일들을 돌보고 이끄시는 하나님의 통치를 말합니다.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교리는 하나님이 모든 일들을 완전하게 다스리신다고 주장합니다.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은 친히 [[계획하신 바 그 뜻따라 안배하신대로 가장 적절하다고 판단하시는 때에 가장 합당한 방법따라서 역사속에서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도록 , 하나님의 자유의지를 발휘하심으로써]] 만유를 다스리시며 (시편 103:19), 물리적인 세상을 다스리시고 (마태복음 5:45), 나라들의 사건들과 (시편 66:7), 인간의 운명(갈라디아서 1:15), 사람의 성공과 실패 (누가복음 1:52), 자기 백성의 보호 (시편 4:8) 등을 주관하며 다스리십니다. 이 교리는 우주가 우연히 또는 운명에 의해 다스림을 받는다는 사상과는 정반대의 입장에 서 있습니다. 하나님은 섭리를 통해 그분의 뜻을 성취하십니다. 그분의 목적이 확실히 이루어지도록 하기 위하여, 하나님은 인간의 일들을 다스리시며, 만물의 자연 질서를 통해 역사하십니다. 자연의 법칙들은 하나님이 만유 가운데 일하신다는 것을 말해 줍니다. 자연 법칙에 어떤 고유한 힘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만물이 정상적으로 움직이도록 다스리기 위하여 하나님이 정해 놓으신 원칙들이 자연 법칙입니다. 자연 법칙은 단지 하나님이 그것들을 선포하셨기 때문에 존재하는 “법”일 뿐입니다. 하나님의 섭리는 인간의 의지와 어떤 관계가 있습니까? 인간은 자유 의지를 가지고 있음을 우리는 알고 있지만, 그러나 또한 하나님이 주권자라는 것도 우리는 압니다. 이 두 진리가 서로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이해하기는 어렵지만, 성경에서 두 진리의 실례들을 볼 수 있습니다. 다소의 사울은 고의적으로 교회를 박해 하였지만, 그 와중에 그는 하나님의 섭리에 따라 “가시채를 뒷발질” (사도행전 26:14) 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죄를 미워하시며, 죄인들을 심판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죄의 기원자가 아니시며, 아무도 죄를 짓도록 유혹하지 않으십니다 (야고보서 1:13). 그분은 죄를 용납하지 않으십니다. 그러나 동시에, 분명히 하나님은 어느 정도의 죄를 허락하십니다. 그분이 죄를 미워하심에도 불구하고, 일시적으로 그것을 허용하시는 이유가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의 예비하신대로 이루시는 섭리에 대한 명백한 실례를 보십시다 요셉의 이야기에서 발견됩니다. 하나님은 요셉의 형제들이 요셉을 납치하여 노예로 팔아버린 후 수년 동안 그 사실을 아버지에게 속이는 것을 허락하셨습니다. 이것은 악한 일이었고, 하나님은 기뻐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그들의 모든 죄는 도리어 더 큰 선을 이루게 됩니다: 요셉은 결국 애굽으로 끌려가더니, 그곳에서 총리가 되었습니다. 요셉은 그의 지위를 사용하여 7년의 기근 동안 그의 가족을 포함한 방대한 지역의 사람들이 살아남을 수 있도록 도왔습니다. 기근이 시작되기 전에 요셉이 애굽에 없었다면, 이스라엘 백성을 비롯한 수백만의 사람들이 죽게 되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어떻게 요셉을 애굽으로 보내셨습니까? 하나님은 섭리 가운데 그의 형제들에게 죄를 짓는 자유를 허용하셨던 것입니다. 창세기 50:15-21은 하나님의 신적인 섭리에 대하여 직접적으로 인정하고 있습니다. 죄를 넘어서는 신적인 섭리의 또 다른 명백한 예는 가룟 유다의 이야기입니다. 유다가 거짓말을 하고, 기만하고, 속이고, 훔치고, 마침내 주 예수님을 적들의 손에 넘겨 주는 것을 하나님은 허락하셨습니다. 이 모든 일은 큰 죄악이었고, 하나님은 기뻐하지 않으셨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유다의 모든 음모와 책략은 인류의 구원이라는 더 큰 선으로 이어졌습니다. 예수께서는 죄를 위한 희생이 되기 위하여 로마인들의 손에 죽으셔야 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지 않으셨다면, 우리는 여전히 우리의 죄 가운데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어떻게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게 하셨습니까? 하나님은 섭리 가운데 유다에게 일련의 사악한 행동을 할 수 있는 자유를 허락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누가복음 22:22에서 이를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인자는 이미 작정된 대로 가거니와 그를 파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리로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주권 (“인자는 이미 작정된 대로 가거니와”)과 사람의 책임 ("그를 파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리로다”)을 둘 다 가르치시는 것을 주목하십시오. 그분의 가르침에는 균형이 있습니다. 로마서 8:28은 하나님의 섭리를 가르칩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모든 것”은 그야말로 “모든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절대로 제어를 놓치지 않으십니다. 사탄은 그의 최악을 행할지라도, 심지어 세상을 뒤엎는 악을 저지를지라도, 그 악까지도 더 큰 최종 목적을 이루는데 쓰이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아직 그것을 볼 수 없지만, 하나님의 섭리에는 이유가 있으며, 그분의 계획은 선하다는 사실을 압니다. 이 사실은 사탄을 좌절시킬 것입니다. 사탄이 무엇을 하든, 그는 자신의 계획이 좌절되고 결국 선한 일들이 발생하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섭리에 관한 교리는 다음과 같이 요약될 수 있습니다 : "창세 전부터 하나님은 자신의 뜻의 경륜에 따라 일어날 모든 일을 정하셨다; 그러나 어떤 의미에서라도 하나님은 결코 죄를 창조한 분이 아니시며, 인간의 책임이 제거되는 것도 아니다." 하나님이 그분의 뜻을 이루시는데 사용하시는 주된 수단은 이차적인 원인들 (예를 들어, 자연 법칙과 인간의 선택) 입니다. 즉, 하나님은 일반적으로 간접적인 방법으로 그분의 뜻을 성취하십니다. 하나님은 때때로 직접 역사하셔서 그분의 뜻을 성취하기도 합니다. 우리는 이러한 사건들을 기적이라고 부릅니다. 기적은 하나님이 그분의 뜻을 이루시기 위하여 잠깐 동안 자연의 질서를 우회하는 것을 말합니다. 다메섹 도상에서 사울에게 임한 강한 빛은 하나님의 직접적인 개입의 한 실례입니다 (사도행전 9:3). 비두니아로 가려는 바울의 계획을 좌절시킨 것은 하나님의 간접적인 인도하심의 예입니다 (사도행전 16:7). 이 둘 모두 하나님의 섭리가 나타난 실례들입니다. 직접적으로든 간접적으로든 하나님이 모든 것을 주관하신다는 개념은 자유의지의 가능성을 파괴한다고 말하는 일부 사람들이 있습니다. 만일 하나님이 완전하게 통제하신다면, 어떻게 우리가 참으로 자유로운 결정을 할 수 있습니까? 다시 말해, 자유 의지가 의미 있는 것이 되기 위해서는 인간 선택의 우발성과 같은 것들이 하나님의 주권적 통제 밖에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논의을 위해서 이것이 사실이라고 잠시 가정해 봅시다. 그러면 어떻게 됩니까? 하나님이 모든 우연한 일들을 완전히 통제하지 못하신다면, 어떻게 그분이 우리의 구원을 보장하실 수 있습니까? 바울은 빌립보서 1:6에서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고 말합니다. 만일 하나님이 모든 것을 통제하지 못하신다면, 이 약속을 포함한 다른 모든 신적인 약속들이 불분명해집니다. 만일 미래가 완전하게 하나님께 속한 것이 아니라면, 우리의 구원이 완성될 것이라는 확실한 보장을 갖지 못하게 됩니다. 더우기, 만일 하나님이 만유를 주관하지 못하신다면, 그분은 주권자가 아니십니다. 만일 주권자가 아니시면, 그분은 하나님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통제를 벗어나는 어떤 우연한 일들이 있다고 주장한다면, 결국은 하나님은 참 하나님이 아니라는 믿음에 이르게 됩니다. 만일 우리의 자유의지가 하나님의 섭리를 능가할 수 있다면, 궁극적으로 누가 하나님입니까? 우리가 하나님입니다. 이러한 결론은 성경적인 세계관을 지닌 사람에게는 용납될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섭리는 우리의 자유를 파괴하지 않습니다. 도리어, 하나님의 섭리는 우리의 자유를 고려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무한한 지혜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길을 결정합니다. ======= [[마6:25-34]] *25.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26.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27.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라도 더할 수 있겠느냐 *28.또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29.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 *30.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31.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32.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33.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34.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니라 ====== 땅(세상)의 염려와 하늘의 염려(도우심)(마 6:25-34) ---우리 주 예수님께서는, "보물"과 그 마음이 "세상"에 있다는 나쁜 징조인 바, 이 세상의 사물들에 관하여 불안하고 괴로워하며 믿지 못하여 염려하는 죄보다 더욱 자세하고 진지하게 그의 제자들에게 경고하고, 또 더욱 다양한 논증으로서 경계시켰던 죄는 거의 없다. 그러므로 그는 자세하게 그 죄를 강조하고 있다. 여기에는, Ⅰ. 규정된 금지가 있다. ---이 세상의 일들에 관해 "염려하지 말라"고 하는 것은 주 예수님의 권고와 명령이다.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는 우리의 율법 수여자와 우리 마음의 지배자로서 이것을 말씀하시며, 우리의 위로자와 우리의 즐거움의 조력자로 말씀하신다. ===그가 말씀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이것이다. 즉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 "네 목숨을 위하여, 네 몸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25절).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하지 말라"(31절). "염려하지 말라"). ===외식과 마찬가지로 세상적인 염려에 대해 세 번씩이나 반복하고 있으며, 이것은 공연한 반복(중언부언)이 아니다. 동일한 취지에서 "교훈에 교훈을," 점층적으로 반복하고 있다. ::: 염려는 "우리를 쉽사리 공격하는 죄"이다. 이것은 염려 없이 사는 것이 그리스도를 얼마나 즐겁게 하며, 또 우리가 얼마나 깊이 관심해야 할 일인가를 나타낸다. 세상에 관한 염려로 자신들의 마음을 나누거나 부숴뜨려서는 안 된다고 하는 것이 제자들에게 대한 주 예수님의 반복된 명령이다. 그러나 이 세상의 사물들에 관한 "보살핌"도 있는데 그것은 정당한 의무이기도 하며, 덕스러운 여인이 해야 하는 것으로 추천되고 있다(잠 27:23). 이 단어는 교회에 대한 바울의 염려나 영혼의 상태에 대한 디모데의 염려에 사용되고 있다(고후 11:28; 빌 2:20). 그러나 여기에서 금지되고 있는 "염려"는, 1. 불안하게 하고 고통을 주는 "염려"이다. --- 마음을 이리저리로 분주하게 재촉하며 불안 속에서 망설이게 한다. 또한 하나님 안에 있는 우리의 즐거움을 혼란시키고 그 안에 있는 우리의 소망을 좌절케 하며, 잠을 깨우며 우리 자신과 친구의 기쁨, 또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기쁨을 방해한다. 2. 불신적이고 믿지 못하는 "염려"이다.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속한 자를 위하여 선과 마찬가지로 "현재의 생명"을 위해 필요한 모든 것들, 즉 양식과 덮개를 마련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 ===맛좋은 진미가 아니라 필요한 것을 주신다고 하셨다. 그는 결코 "그들은 진수성찬을 먹게 될 것이다"라고 말씀하시지 않고, "정녕 그들은 먹게 될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다. 그런데 장차 올 때를 위한 과도한 염려나 그러한 양식의 결핍에 대한 두려움은 이러한 양속에 대한 불신과 신적 섭리의 지혜와 선함에 대한 불신에서 비롯된다. 또한 그것은 악한 것이기도 하다. ===현재의 생존에 관하여 우리는 그것을 얻는 데 있어서 정당한 수단을 사용해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을 시험하게 된다. ===우리는 부르심에 부지런해야 하며, 우리가 가진 용돈을 배당함에 있어서 현명해야 하며, 또한 "일용한 양식"을 위해 기도해야 한다. 또한 만일 그 밖의 모든 수단이 실패한다면 우리는 그것을 줄 수 있는 자들의 구원을 요구할 수 있고 요구해야만 한다. "빌어 멀자니 부끄럽구나"(눅 16:3)라고 말했던 사람은 "부수러기로 배불리려는 사람"(21절)과 마찬가지로 최선의 사람은 못되었다. ===그러나 장래에 대해서는 우리는 "우리의 염려를 하나님께 맡겨버리고 염려하지 말아야 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를 알지 못하는 때에도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어떻게 줄 것인가를 아시는 하나님께 대한 질투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영혼으로 하여금 하나님 안에서 편안히 안주하게 하자! 은혜스러운 태평은 세상의 수고와는 반대요,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자에게 주시는 잠과 같다(시 127:2). 여기에 있는 주의에 대해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네 목숨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목숨은 이 세상에서의 우리의 최대 관심사이다. "그는 사람이 가진 모든 것을 그의 목숨을 위해 주실 것이다." 그러나 그것에 대하여 염려하지 말라. ① 네 목숨의 의 "연장"에 관해 염려하지 말라. .....하나님께 그가 기뻐하시는 대로 목숨을 "연장시키거나 단축시키도록" 말씀드리라. "내 때는 네 손에 있다." 그것들은 "선한손 안에 있다." ② 이 목숨의 "평안"에 관해 염려하지 말라. .....하나님께 그가 기뻐하시는 대로 이생을 쓰라리게 하거나 달콤하게 하시도록 말씀드리라. .....우리는 이 목숨의 필연적인 양식, 즉 "음식"과 "옷"에 관하여 염려하지 말자. 하나님은 이것을 약속하였으며, 따라서 우리는 더욱 확신 있게 기대할 수 있다. "무엇을 먹을까?"라고 말하지 말라. 이것은 안절부절 못하거나 거의 실망하는 사람이하는 말이다. 비록 많은 선한 사람들이 적은 것을 기대하지만, 그러나 현재의 양식은 적게나마 주어진다. (2) "내일," 즉 앞으로 오는 미래를 위해 "염려하지 말라." .....다음 해에 어떻게 살 것인가, 늙었을 때 어떻게 살 것인가, 뒤에 남겨둘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 염려하지 말라. 우리는 내일에 대해 "자만"해서도 안 되지만 내일이나 내일의 사건을 위해 "염려"해서도 안 된다. Ⅱ. 이 금지를 강조하는 이유와 논의. ---어떤 사람은 생각하기를, 그리스도의 명령은 실상 우리와 긴밀하게 관련되어 있는 우리의 영혼의 평안과도 무관하게도 불안과 불신에서 오는 염려라고 하는 이 어리석은 죄를 억제시키기에 충분할 것이라고 할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이 죄에 얼마나 관심이 깊으며, 그의 "자비를 바라는 자들"을 그가 얼마나 "기뻐하시는"가를 보여 주기 위하여 그 명령은 더욱 강력한 논의로 뒷받침되고 있다. 만일 지혜가 우리를 지배하기만 한다면 정녕 우리는 이 가시에서 해방될 것이다. ---근심스러운 생각을 없이하고 제거시키기 위하여 그리스도는 여기에서 우리들에게 "위로하는" 생각을 제시함으로 위로로 채워지기를 바라고 있다. ---그러한 염려를 단념하거나 그것을 우리 자신이 부끄럽게 여기기 위해 우리의 마음으로 애쓰는 것은 값있는 수고일 것이다. 그런 염려는 올바른 지혜를 가지면 약화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극복하는 길은 단지 능동적인 신앙에 의해서이다. 그러면 다음과 같은 것을 생각해 보기로 하자. 1.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25절). ---그렇다, 그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와 같이 예수님은 현재 일에 참된 가치를 두려고 했던 자들에게 말씀하시고 있다. 왜냐하면 그는 그것들을 만드셨고 공급하시며 그것들로 우리를 부양하시기 때문이다. 현실이 스스로 말하고 있다. 여기에서 우리의 할 것은, (1) 우리의 "목숨"은 우리의 "생계"보다 더 큰 축복이라는 사실이다. .....목숨이 생계 없이 이어질 수 없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여기에서 목숨이나 몸보다 못한 것으로 표현되어 있는 음식이나 옷은 장식이나 쾌락을 위한 것들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이것에 대해 염려하기 쉽기 때문이다. .....음식이나 옷은 목숨을 위한 것이며 그 "목적"은 "수단"보다 더 고상하고 탁월하다. 맛있는 음식이나 화려한 옷은 "땅"에서 비롯되지만, 목숨은 "하나님의 숨"에서 비롯된다. .....목숨은 "사람들의 등불"이다. 음식은 그 등불을 밝히게 하는 "기름"이다. 그러므로 부귀와 빈곤의 차이는 아주 하찮은 것이다. 왜냐하면 가장 중대한 문제에 있어서는 그들이 똑같은 수준에서 있으며, 단지 하찮은 문제에 있어서만 서로 다를 뿐이기 때문이다. (2) 이것은 우리에게 "음식"과 "옷"을 위해 하나님을 신뢰할 것과 그렇게 함으로써 그것들에 관한 복잡한 모든 염려에서 안심할 것을 격려하고 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목숨과 몸을 주셨다. 그것은 능력의 행동이었고 은혜의 행동이었으며 우리의 염려 없이 행해졌다. 그것을 행하셨던 그가 우리를 위해 무엇을 못할 것인가?─그가 못할 것이 무엇인가? 만일 우리가 몸이나 그 목숨보다 더 나은 우리의 영혼과 영원성에 관해 염려를 한다면 우리는 보다 못한 음식과 옷을 우리에게 마련해 줄 것을 하나님께 맡길 수 있을 것이다. .....하나님은 지금까지 우리의 목숨을 유지시키셨다. 그는 우리를 보호하셨고 생존케 하셨다. 우리가 직면한 악에서부터 우리를 보호하시는 자는 우리가 필요로 하는 "좋은 것"으로 공급해 주실 것이다. 만일 그가 우리를 죽이거나 굶주리게 하시려고 했다면 우리를 지키기 위해 그렇게 자주 "우리에 관한 책임을 그의 천사들에게 부여하지는" 않으셨을 것이다. 2. "공중의 새를 보라. 들의 백합화를 보라." ---여기에는 섭리에 의거한 기능을 따라서 보다 피조물을 향한 하나님의 일반적인 섭리에서 취한 논의가 있다. ::: 타락한 인간에게 있어서 "공중의 새"들은 그들의 참된 공부를 위해 보내어졌으며, 그 새들이 인간을 "가르쳐야만"했다! (욥 12:7, 8) (1) "공중의 새"를 눈여겨 보라. 그리고 "음식"을 위해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을 배우라(26절). 그리고 "무엇을 먹을까" 불안해하지 말라. ① 그들에 관한 하나님의 섭리를 살펴 보라. 그들을 눈여겨보고 교훈을 받으라. .....새에는 여러 종류가 있다. 그것들은 수 없이 많으며 몹시 굶주리는 새도 있기는 하다. 그러나 그것들은 편리한 음식으로 부양되고 있다. 겨울에도 먹을 것이 없어 죽는 새는 거의 없다. 그들을 먹일 양식은 해마다 모자라지 않는다. 새는 사람에게 봉사를 거의 하지 않는 것처럼 사람의 배려나 염려를 받지도 않는다. 사람은 종종 그것들을 잡아먹기는 하지만 기르지는 않는다. .....우리는 그것들이 어떻게 길러지는가를 알지 못하며, 그것들 중에 어떤 것은 가장 악천후에 가장 잘 길러진다고 한다. "그것들을 기르시는 분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이시다." 그는 네가 잘 길들인 짐승을 아는 것보다 더 "산의 모든 야생 조류들을 아신다"(시 50:11). .....참새가 곡식을 먹기 위해 땅에 앉는 것은 모든 보잘 것 없는 피조물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섭리에 의한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서 특별히 유의할 것은 이 새들은 그들 자신의 어떤 염려나 계획 없이 길러진다는 사실이다. "그것들은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않는다." ((개미나 벌은 실로 모아들이지만..그렇게 하며, 그것들은 지혜와 근면의 실예로서 우리에게 제시된다.)) 그러나 공중의 새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그것들은 그들 스스로가 미래를 위해 양식을 마련하지 않으며 날마다 먹을 것이 시시때때로 공급된다. 그들의 "눈"은 "모든 육체를 위해 음식을 마련하시는" 위대하고 선한 집주인이신 "하나님을 호위한다"(앙망하며 문안드린다). ② 하나님을 믿는 데 있어서 너희의 격려를 위해 이것을 활용하라.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그렇다. 확실히 너희는 그러하다. .....여기에서 유의할 것은, 하늘의 "상속인"은 하늘의 "새들"보다 더 많이 있다는 사실이다. 보다 더 고상하고 탁월한 존재이며 신앙에 의해 그들은 더 높인 날아다닌다. 그들은 "하늘의 새들보다" 더 나은 특성과 교육을 가지고 있으며 "보다 현명"하다(욥 35:11). .....비록 이 세상의 자녀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심판을 알지 못한다면 학과 반구와 제비와 두루미" 만큼도 지혜롭지 못할 것이다(렘 8:7). 그것들은 열린 창공을 날아다니지만 너는 하나님께 더욱 친근하고 가까이 가는 것이다. 그분은 그들을 지으신 자시요, 주님이시요, 소유자이시요, 주인이시다. 그러나 이 모든 것 이외에 그는 너희의 아버지이시며, 그의 견지에서 "너희는 많은 새들보다 더 가치가 있다." 너는 그의 자녀요 장지이다. 그런데 자기의 새를 먹이시는 지는 정녕 그의 어린아이들을 굶기시지 않을 것이다. 새들은 너희 아버지의 섭리를 믿는다. 그런데 너희는 믿지 않으려는가? .....섭리를 믿기 때문에 새들은 내일을 위해 염려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새들은 모든 피조물들 중에서 가장 행복한 삶을 영위한다. 새들은 "가지에서 노래를 부른다"(시 104:12). 또한 온힘을 다하여 그들의 창조자를 찬미한다. 만일 우리가 믿음에 의하여 새들과 같이 내일에 대해 염려를 갖지 않았다면 우리는 새들과 길이 즐겁게 노래 불러야 한다. 왜냐하면 어느 것보다 더 우리의 기쁨을 손상케 하며 우리의 찬미를 침묵케 하며 우리의 즐거움을 좌절시키는 것은 세상적인 염려이기 때문이다. (2) "백합화"를 눈여겨 보라. 그리고 "옷"을 위해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을 배우라. " .....우리가 무엇을 입을까?"라는 것은 우리의 염려의 또 다른 부분이다. 무엇으로 우리를 가릴까, 무엇으로 따뜻하게 할까? 그밖에도 많이 있다. 위대하고 아름답게 보이기 위하여 무엇으로 꾸밀까? 우리는 옷을 다양하고 맵시 있게 입으려고 많은 염려를 하기 때문에 일용할 양식만큼 종종 이 염려가 생각되고 있다. 그런데 이 염려를 덜기 위하여 "들의 백합화를 생각"하도록 하자. 그것들을 "눈여겨 볼 뿐만" 아니라(모든 눈이 즐거움으로 그렇게 한다) 그것들을 "생각하라." .....여기에서 유의할 것은, 만일 우리가 생각하기만 한다면 우리가 매일 볼 수 있는 것에서 배울 수 있는 많은 좋은 것이 있다(잠 6:6; 24:32). ① 백합화는 얼마나 "연약한 것"인가를 생각해 보라. .....그것들은 한낮 "들풀"에 지나지 않는다. 백합화는 비록 그 색깔에 의해 구별되기는 하지만 역시 "풀"에 불과하다. .....또한 "모든 육체는 풀과 같다." 비록 어떤 사람은 몸과 마음의 타고난 재능에 있어서 백합과 같으며, 많은 칭찬을 받지만 여전히 그것들은 풀이다. 다시 말하면 본질과 구조에 있어서 풀이다. 그들은 다른 사람과 동일한 수준에 위치한다.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이 풀의 꽃과 같다"(벧전 1:24). .....이 풀은 "오늘 있다가 내일은 아궁이에 던짐을 받는다." 얼마 있으면 "우리를 알고 있는" 장소는 "우리를 더 이상 알지" 못할 것이다. 무덤은 우리가 장차 던지우게 될 아궁이 이며, 우리는 거기에서 불 속의 풀과 같이 소멸될 것이다(시 49:14). .....이것은 우리가 무엇을 입을까?라고 내일을 위해 염려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를 나타내고 있다. 왜냐하면 내일 우리가 수의(시체에 입히는 옷)를 입게 될는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② 백합화는 얼마나 "걱정을 하지 않는가"를 생각해 보라. " .....그것들은" 사람들이 하는 것처럼 옷을 얻기 위하여 "수고하지 않는다." 종들처럼 제복을 얻기 위해 노력하지 않는다. "그것들은" 여자들이 하는 것처럼 옷을 만들기 위해 "길쌈도 하지 않는다." .....이것은 우리가 이 때문에 이 세상의 적당한 직무를 무시하거나 소홀히 하라는 것이 아니다. "손으로 솜뭉치를 들고 손가락으로 가락을 잡고 베로 옷을 지어 파는 것'은 덕스러운 여자의 미덕이다(잠 31:19, 24). 게으름은 그를 "신뢰하는" 대신에 하나님을 "시험한다." 그러나 하등적인 피조물을 위해 그들이 수고하지 않아도 양식을 마련하시는 그가 우리의 의무로 삼았던 우리의 수고를 축복함으로써 우리를 위해 더욱 양식을 마련해 주실 것이다. ::: 그렇지만, 만일 우리가 병 때문에 "수고나 길쌈"을 하지 못하게 된다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필요한 것으로 공급하실 수 있다. ③ 백합화는 얼마나 "아름답고," "좋은"가를 생각해 보라. "어떻게 자라는가," "무엇으로부터 자라는가"를 생각해 보라. .....백합화나 튤립의 뿌리는 다른 구근(球根)과 같이 겨울에는 땅 속에 묻히지만 봄이 돌아오면 그 뿌리는 점차로 성장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백합화와 같이" 자라게 될 것이라는 것이 하나님의 이스라엘에게 약속되고 있다(호 14:5). .....또 그들이 무엇을 향해 "자라나는가"를 생각해 보라. 얼마간은 눈에 띄지 않다가도 백합화는 매우 화려하고 피어나기 때문에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으니라."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으니라." .....솔로몬의 성장(盛裝)은 매우 훌륭하고 우아하였다. 여러 왕과 방백들의 특별한 보물을 헌납 받는 솔로몬은 최고의 옷으로 화려하게 치장하고 있었다. 특히 전성기에는 그의 영광이 극도에 달했었다. 그러나 아무리 그를 가장 아름다운 옷으로 입힌다고 할지라도 백합화의 아름다움에는 미치지 못하며, 튤립의 화단은 그를 무색케 한다. 그러므로 백합화에 의해 압도되었던 솔로몬의 "영광"보다 는 오히려 아무 것에 의해서도 압도되지 않았던 솔로몬의 "지혜"(우리가 있는 곳에서 의무를 행하는 지혜)를 열망하도록 하자. ::: 지식과 지혜와 덕이 사람의 완전성이니, 아름다움이나 더우기 훌륭한 옷은 인간 자체를 완성시키지 못한다. [["덕"이란 사람이 마땅히 걸을 바 마음의 참됨과 진실함으로 Q앞에서 행함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여기에서 "들풀을 (친히) 입히신다"고 말해진다. 여기에서 유의할 것은, 피조물들의 모든 탁월성은 그것들의 샘이요, 근원이신 하나님에게서 흘러나온다. 말에게 힘을 부여하시고 백합화에 아름다움을 주시는 분은 바로 그분이시다. 모든 피조물은 하나님이 명령하신 그대로 우리에게 나타나 있다. ④ 이 모든 것들은 우리에게 얼마나 교훈적인가를 생각해 보라(30절). 첫째, "좋은 옷"에 관하여. .....이것은 우리에게 전혀 그것을 위해 염려하지 말 것과 그것을 탐하지 말 것과 그것에 대해 자만하지 말 것과 옷 입는 것을 장심품으로 삼지 말 것을 가르치고 있다. ::: 결국 백합화는 이것에 대한 염려에 있어서 우리보다 나은 것이다. 우리는 그것들이 입는 것만큼 아름답게 치장할 수 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들과 더불어 경쟁해야 할 이유가 무엇인가? 그들의 치장은 곧 쇠퇴할 것이며 우리도 그렇게 될 것이다. 그것들은 "오늘 시들고" 내일은 쓰레기처럼 "아궁이에 던짐을 받을 것이다." ..... 우리가 자랑하는 옷은 닳아 헤어지며 그 광택은 곧 없어지며 그 색깔은 바래지며 그 모양은 낡은 것이 되며 잠시 후에 그 옷은 헤어지게 될 것이다. 사람은 그의 모든 화려함에 있어서 이와 같으며(사 40:6, 7), 특히 부자는 더욱 그러하다(약 1:10). "이는 풀의 꽃과 같이 지나감이라." 둘째, "필요한 옷"에 관하여. .....이것은 그것에 대한 염려를 하나님께 던질 것을 우리들에게 가르치고 있다. 여호와 이레(여호와는 준비하신다, 배려하신다) 의 하나님, 백합화를 (친히) 입히시는 분에게 너희가 입을 것을 마련해 주실 것이라는 신뢰를 두라. .....그가 이러한 훌륭한 옷을 들풀에게 주신다고 하면 하물며 그 자신의 자녀에게 어울리는 옷을 주시지 않겠는가! ::: 진실로, 그들을 따뜻하게 할 옷들을 "남풍으로 하여 땅이 고요할 때" 뿐만 아니라 "북풍으로 하여 그가 그것들을 동요시킬 때"도 주실 것이다(욥 37:17). .....그는 더욱 너희를 입히실 것이다. 왜냐하면 너희는 보다 고상한 피조물이요 보다 탁월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만일 그가 그와 같이 수명이 짧은 들풀을 입히신다면 하물며 불멸을 위해 만들어진 너희를 더욱 입히시지 않으랴! 니느웨의 자손들이라 할지라도 박넝쿨보다 더 낫다(욘 4:10, 11). 하물며 하나님과 계약을 맺은 시온의 아들들이랴 ! 그가 그들에게 부여한 칭호, 즉 "믿음이 적은 자들아"에 대해 살펴 보라. 이것은 다음과 같은 것으로 간주될 수 있다. 첫째, 비록 그것이 연약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할지라도 참된 신앙에 대한 격려고 간주될 수 있다. .....그것은 우리에게 신적인 염려와 적당한 공급의 약속에 대한 자격을 부여하고 있다. .....위대한 신앙은 칭찬 받게 될 것이며 위대한 일들을 산출할 것이지만, 적은 신앙도 거절당하지 않고 음식과 의복을 공급받게 될 것이다. "건전한" 신자들은 비록 그들이 "강한"신자는 아니라 할지라도 온갖 공급을 받을 것이다. 가정에 있는 어린 아기들은 성장한 자들처럼 먹여지고 옷 입혀질 것이며, 또한 특별한 염려와 보살핌으로 그렇게 될 것이다. 나는 어린아이와 마른나무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하지 말라(사 56:3, 5). 왜냐하면 비록 "가난하고 궁핍하다고 할지라도 주님은 너를 생각하시기" 때문이다. 둘째, "믿음이 적은 자들아"는 그것이 참이라 할지라도 오히려 연약한 신앙에 대한 비난이다(마 14:31). .....그것은 우리의 모든 지나친 염려와 생각의 근저에 있는 것이 그 정체가 무엇인지를 나타낸다. 그것은 우리의 신앙의 연약성과 우리 안에 있는 불신앙의 잔여물에 기인하고 있다. 만일 우리가 보다 더 신앙을 가진다면 덜 염려하게 될 것이다. 셋째, 그러므로 "너희 중에 누가," 너희들 중에 가장 지혜로운 자나 가장 강한 자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나 더할 수 있느냐?"(27절) ....."그 키"를 어떤 사람은 "그 나이"로 해석하고 있다. 그러나 한 규빗의 단위는 키를 상징하고 있으며, 가장 긴 생애도 손 넓이에 지나지 않는다 했다(시 39:5). 다음과 같은 사실에 대해 생각해 보자. (1) 우리가 현재의 키에 도달한 것은 우리 자신의 염려나 생각에 의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에 의한 것이다. .....손 넓이만큼의 어린 아기는 육척의 성인으로 자라났다. 그런데 그 누가 이 키에 한 규빗이라도 더 하겠는가? 그 자신의 예상이나 계획에 의해 할 수 없다. 사람은 그가 하나님의 능력과 선하심에 의해 어떻게 자랐는가를 알지 못한다. 이제 몸을 만들고 그들을 이러한 크기로 만드신 그분은 정녕 그들의 쓸 것과 먹을 것을 위해 친히 염려할 것이다. .....여기에서 유의할 것은 하나님은 우리의 육체적인 힘과 키의 증가에서 인정되며 필요한 모든 양식을 위해 신뢰된다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그는 그가 몸을 위해 마음을 둔다는 사실을 나타내었기 때문이다. 자라나는 시기는 생각이 없고 염려가 없는 시기이다. 그러나 우리는 자라고 있다. 우리에게 이와 같은 배려로 기르시는 그가 어찌 우리의 모든 것을 준비하시지 않겠는가? (2) 우리는 자신이 원한다고 할지라도 현재 우리의 키를 변경시킬 수 없다. .....낮은 키를 가진 사람이 키를 더하기 위해 그 자신을 어지럽게 하거나 잠을 깨거나 그의 머리를 때리거나 또는 계속적으로 어떻게 하면 한 자라도 더 크게 할 수 있는가를 염려한다는 것은 얼마나 어리석고 우스운 일인가! ::: 결국 그는 자신이 그것을 할 수 없음을 알게 될 것이며 그러므로 현재의 그대로에 만족하고 인정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우리의 키는 모두가 일정하지 않으며 서로의 키가 차이 있는 것은 중요한 문제가 못되며 크게 생각할 것도 못된다. 우리가 우리의 육체적인 키에 관련하여 생각해 본 것처럼 역시 우리의 세상 재물에 대해서도 그런 생각을 해야 한다. ① 우리는 자신의 키를 한 치라도 더하려고 욕심내는 것에 못지 않게 이 세상 부귀의 풍성함에 욕심을 내어서는 안 된다. .....조금씩 자라는 것으로 충분하다. 갑자기 한치가 커지면 그 사람은 주체스럽고 부담스럽게 될 따름이다. ② 우리는 우리의 키에 만족하는 것처럼 우리의 재산에 대해 만족해야 한다. .....우리는 편리한 것을 불편한 것과 비교해 보아야 하며, 그렇게 함으로써 불가피한 일을 먼저 쾌히즐겁게 행해야만 한다. 개선될 수 없는 것은 (함부로 탐내어 얻으려고 하지말고, Q께 맡겨드리고) 최선으로 삼아져야 한다. .....우리는 섭리의 처분을 수정할 수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치 삭개오가 나무 위로 올라가 자신의 키를 돋운 것처럼 할 수 있는 데까지 우리의 불편함을 잠자코 받아들여 그것들에 순응하며 자신을 돋우어 불편을 덜어야만 할 것이다. 4.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32절). ---세상에 관한 염려는 "이방인적인" 죄이며, "기독자들"에게는 어울리지 않는다. "이방인들은 이러한 일들을 구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더 나은 것들"에 대해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 세상에 대해 열심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더 나은 세상에 대해서는 낮선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러한 것들을 염려와 근심으로 갈구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하나님 없이 이 세상에 사는" 자들이며 그의 섭리를 이해하지 못하는 자들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기들의 우상을 경외하고 예배를 드리지만 구원과 양식을 위해 그들을 신뢰하는 방법을 알지 못하며 따라서 그들은 염려로 가득차기 마련이다. 그러나 그것은 기독자에게 있어서는 수치스러운 일이다. ---기독자는 보다 더 고상한 원리 위에 세워져 있으며, 또한 섭리자가 계신다는 것과 또 현재의 생명의 유익을 위해 주어진 약속이 있다는 사실과 하나님을 신뢰하고 세상을 멸시하는 것을 가르치며, 그래야 할 이유를 가르쳐 주고 있는 그런 신앙을 공언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독자가 이방인들이 행하는 것처럼 행하고 자신들의 머리와 마음을 이러한 것들로 채우는 것은 수치스러운 일이다. 5.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32절). 즉 이러한 필수적인 것들, 다시 말하면 음식과 옷이 있어야 할 줄을 아신다. ---그는 우리 자신보다 더 우리의 필요성을 아신다. 비록 그는 하늘에 있지만 땅에 있는 자녀들의 가난하고 어려운 처지를 주시하신다. "내가 네 궁핍을 아노라"(계 2:9). ::: 너희는 만일 이러한 좋은 친구가 너희의 궁핍과 곤란을 알기만 한다면 곧 구원을 얻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너희의 하나님은 그들을 아신다. 또한 그는 너희를 사랑하시며 긍휼히 여기시는 너희의 아버지이시며 너희를 도우려고 하신다. 하늘에 계신 너희의 아버지는 너희의 필요를 공급할 필요한 자금(수단)을 가지고 계시기 때문에 모든 불안한 생각과 염려를 버리라. 네 아버지에게 가라. 그리고 그에게 말씀드려라. "그는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신다." ---그는 "얘들아 너희에게 고기가 있느냐?"(요 21:5)고 말씀하신다. 네가 가지고 있는가의 여부를 그에게 고하라. 그는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는 그것을 우리로부터 아시게 될 것이다. 우리가 그에게 필요한 것들을 공개할 때에는 우리의 공급을 위해 그의 지혜와 능력, 선하심에 기꺼이 임하도록 하자. 그러므로 우리는 무거운 짐을 하나님께 던짐으로써 그것에서 편안함을 얻어야만 할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를 위해 염려하시는 분은 바로 그이시기 때문이다(벧전 5:7). ::: 우리가 야단법석을 떨어야 할 필요가 어디 있는가? 그가 염려하신다면 왜 우리가 염려해야만 하는가? 6.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33절). ---여기에 "염려"의 죄에 대한 이중적인 논법이 있다. 네 목숨, 즉 네 몸의 목숨을 위해 "염려하지 말라." 왜냐하면, (1) 너희는 너희의 영원한 목숨, 영원한 목숨에 대해 염려해야 할 보다 크고 나은 일들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정말 "필요한 것"으로서(눅 10:42) 너희는 그것에 대해 염려해야 하며 , 그런데 또한 그것은 일반적으로 세상적인 염려가 마음에 가득차 있는 사람들에게서 무시되고 있는 것이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거나 우리 자신의 영혼구원을 성취하는 데 보다 더 유의를 하고자 한다면 우리는 우리 자신을 즐겁게 하거나 세상에 있는 재산을 성취하려는 것에는 상대적으로 덜 염려를 해야만 할 것이다. ::: 실은, 우리의 영혼에 대한 참된 염려야말로 세상을 위한 염려에 대해 가장 효과적인 치료제이다. (2) 너희는 이 세상의 필수품을 얻는 데 있어서 그것들에 대해 안달하고 염려하고 초조해 하는 것보다 더 확실하고 용이하며 안전하며 간명한 방법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 방법이란 곧 "먼저 그의 나라를 구하고," 자진하여 그리스도의 진리와 교리를 네 임무로 삼는 것이다. ::: 아니, 이것은 굶게 만드는 방법이라고만 하지 말라. 아니다! 이 방법이야말로 땅에서도 잘 공급받는 방법이다. 2여기에서 다음과 같은 사실에 대해 살펴볼 수 있다. ① 요구된 큰 의무. .....그것은 우리의 모든 의무의 총합이요 본질이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라. 신앙을 너희의 최대의 주요한 관심사로 생각하라." .....우리가 할 일을 최우선순위의 것을 먼저 구하는 것이다. 이러한 것들을 바라고 추구하고 목표로 삼는 것이다. 이 단어는 그 속에 새 계약의 구성에 대한 많은 것을 가지고 있다. "비록 우리가 도달되지 못하고" 여러 많은 일들에서 실패하고 미치지 못한다 할지라도 성실한 추구(신중한 관심과 진지한 갈구)는 받아들여진다. 여기에서 살펴볼 것은, 첫째, 이 찾는 것의 대상(목적)이다. 그것은 곧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이다. .....우리는 하늘 나라를 우리의 목표로, 거룩한 성을 우리의 방법으로 삼고 유의해야 한다. "은혜와 영광의 나라의 위로를 너희의 더 없는 행복으로 구하라. 하늘나라를 목표로 삼으라. 그것을 향하여 돌진하라. 그것을 확실케 하려고 노력하라. 이 영광과 영예, 불멸을 추구하라. 땅과 땅의 즐거움에 앞서 하늘 나라와 그 축복을 선택하라." .....우리가 이 땅을 하늘 나라로 만들지는 못한다 하더라도 우리의 추구해야 할 바, 그리스도교의 진리와 교리를 결코 경멸해서는 안 된다. .....이 나라의 "행복"을 가지고 그 "그 의"를 추구해야만 한다. 그 의는 "하나님의 의," 즉 그가 우리 "안에" 또한 "우리에 의해" 역사 되기를 요구하는 "의"로서, 이와 같은 의는 서기관이나 바리새인의 의를 능가한다. 우리는 마땅히 "화평함과 거룩함을 쫓아야"한다(히 12:14). 둘째, 찾는 순서이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라." .....너희 자신의 영혼과 다른 세상을 위한 염려가 다른 모든 염려에 대신하도록 하라. 이 세상의 목숨에 대한 모든 관심사를 장차 올 생명의 것에 예속시키도록 하라. .....우리는 우리 자신의 일들보다 그리스도의 일들을 더 추구해야 한다. 만일 그들이 이전에 경쟁을 했다면, 우리는 어디에 우선권을 주려고 했는가를 기억해야 한다. "이 일들을 먼저 구하라. 너의 날에 먼저 구하라. 청춘의 아침을 하나님께 드려라. 지혜는 일찌기 추구되어야 한다. 그리스도의 진리를 추구하며 따르는 것은 때를 맞추어 시작하는 것이 좋다. 먼저 이것을 매일 구하라. 하나님에 대해 눈를 떠라." ::: 가장 필요한 것을 먼저 행하는 것을 우리의 원리로 삼으라. 그로 하여금 첫 번(the First)이 되시게 하고 첫번을 가지시도록 하라. ② 부가된 은혜스러운 약속. ....."이 모든 것," 즉 생활의 필수품들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더 많이 주어지게 될"것이다. 이와 같이 그것은 단지 여분으로 있는 것이다. .....너희는 열심히 찾은 것, 즉 "하나님 나라와 그 의"를 찾게 될 것이다. 이 이외에도 너희는 덤으로 먹을 것과 입을 것을 가지게 될 것이다. 이것은 마치 물건을 사는 자가 덤으로(into bargain) 주어진 종이와 포장 끈을 가지고 있는 것과 같다. "경건은 금생에 약속이 있느니라"(딤전 4:8), ::: 솔로몬은 지혜를 구하였더니 그것을 가졌을 뿐만 아니라 다른 것들도 부가되었다(대하 1:11, 12). .....이 세상에서 편안히 먹을 것을 얻게 되는 최상의 방법은 다른 세계에 대해 전념하는 것이라는 사실은 우리가 이 진리를 굳건히 믿기만 한다면, 오 우리의 마음과 생활에 얼마나 축복된 변화를 일으킬 것인가!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시작하는 것은 그 일을 올바른 목적을 가지고 시작한 것이 된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확신케 하려고 열심히 노력한다면 여호와 이레이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좋다고 여기시는 것이나 우리가 원하지 않은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을 더욱 많이 마련해 주실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목표인 "우리 기업의 분량"을 위해 그를 신뢰하였는가? 또는 그 과정에서 "단지 모든 사람에게 선대함으로써 주신바, 우리의 컵의 분량(곧, 분복)"만을 위함으로써 그를 믿지 않을 것인가? .....하나님의 이스라엘은 결국 가나안으로 인도되었을 뿐만 아니라 광야를 통해 떠맡겨진 자기들의 임무를 가지고 있었다. 오, 우리가 보이지 않는 영원한 것들에 대해 더 염려한다면 보이는 일시적인 것에 대해 상대적으로 덜 염려해야 할 필요가 있다! "또 너희의 기구를 아끼지 말라"(창 45:20, 23). 7.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 날 괴로움은 그 날에 족하니라(34절). ---우리는 미래의 사건에 대해 지나치게 동요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매일과 같이 그 자신의 염려와 고통의 무거운 짐이 뒤따르기 때문이다. 따라서 여기에서는 다음과 같이 교훈 되고 있다. (1) 내일을 위해 "염려하는 것"은 불필요하다.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만일 궁핍과 고생이 한 날과 더불어 새로워진다면 이와 같이 새로워진 도움과 준비가 있을 것이다. "긍휼"은 "아침마다 새롭다"(애 3:22, 23). 성도는 "매일 정수대로(스 3:4) 아침마다 그들의 팔이 되시며 신선한 일용할 양식을 제공하시는 친구를 가지고 있다. 이와 같이 그는 그를 언제나 신뢰하는 자기 백성을 지키신다. 그러므로 그것을 내일의 힘에게 맡기고, 내일의 일꾼이 하게 하고, 내일의 짐꾼이 지도록 하자. 내일과 내일의 일은 우리 없이도 준비될 것이다. 우리는 왜 이미 현명하게 배려된 것을 위해 이와 같이 염려할 필요가 있겠는가? .....이것은 신중한 예견과 그에 따를 준비를 금지시키는 말이 아니다. 어쩌면 결코 닥치지도 않거나 닥치더라도 쉽사리 견딜 수 있을 일에 대한 곤란이나 역경, 또는 그 피해를 미리 생각하여 [필요 이상으로] 안달하고 불안에 떠는 것을 금지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 의미는, 현재의 의무에 주의를 기울이도록 하자," 그리고는 "하나님께 결과를 일임시키자," " 한날의 일을 그 날에 하자," 그리고는 "내일로 하여금 그에 따르는 일을 가져오도록 하자"는 것이다. (2) 내일을 위한 염려는 부유하려는 자들이 빠지는 "어리석고 해를 끼치는 정욕들" 중의 하나이며, 그들이 자신을 찌르는 "많은 근심들" 중의 하나이다. "한 날 괴로움은 그 날에 족하니라." .....오늘은 그것에 수반하는 많은 근심을 가지고 있으며 우리는 우리의 고통을 "예견"함으로써 무거운 짐을 "축척"할 필요가 없으며 오늘의 괴로움에 첨가시키기 위해 내일의 괴로움에서부터 혼란을 차용해 올 필요도 없다. 내일의 괴로움이 어떤 것일까, 어떻게 될 것인가는 불확실하며, 그것들이 올 때 염려하는 것만으로도 족하다. 다른 날에 속한 염려와 근심(이것은 장차 그것들이 올 때 결코 가벼워지지는 않을 것이다)으로 오늘 스스로 자신에 대해 염려하는 것은 얼마나 어리석은 짓인가? 섭리하시는 분이 조금씩 견디라고 현명하게 명령한 것을 단번에 끌어내리려고 하지 말자. .....이 모든 사실의 결론은, 주님의 제자들은 그들 자신을 괴롭히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되며, 그들이 이 세상을 사는 동안 하나님이 그들에게 허락하신 고난의 결과보다도 자기들이 생각한 고난 때문에 생을 더 어둡고 불쾌하게 만들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주님 뜻이요. 명령이라는 것이다. .....일상적인 기도에 의해 우리는 매일의 고통을 참을 수 있는 능력을 조달할 수 있으며, 그것들에 수반되는 시험에 대해 우리를 무장시킬 수 있으며, 그때에 이러한 것들이 우리를 움직이지 못하도록 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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