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20.07.18 작성자 : 양시영
제   목 : 시30친밀_주바라기.질병고난중부르짖음.치유구원.르호봇.은혜긍휼평강기쁨.찬송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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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30((성전낙성식=또 하나의 영적 수전절 기념...사망에서 건지심 감사...선줄로 아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롬12:1, 2, 11-12..

==[주의음성을내가들으니540];주를앙모하는자...주여호와를앙망하는자.나를알라.전심으로주찬양.재대신화관을.내일일은.주여진실하게하소서.나의마음을정금과같이.오하나님주를찬양하리..거룩하신하나님주께


*1.여호와여 내가 주를 높일 것은 주께서 나를 끌어내사(죽음 임박한 예감/느낌으로 인해 전혀 소망없어 보이는 절망적인 병고로부터) 내 원수로(참소-시험-미혹-훼방-대적자) 하여금 나로 말미암아 기뻐하지 못하게 하심이니이다

*2.여호와 내 하나님이여((비천한 자, 나와 친히 관계맺고 [마침내 고난의 영적 여정 통해]합일과 일치- 지고지선-지복직관의 영생으로 인도하시는 임마누엘) 내가 주께 부르짖으매 나를 고치셨나이다

*3.여호와여 주께서 내 영혼을 스올에서 끌어내어 나를 살리사 무덤으로 내려가지 아니하게 하셨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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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주의 성도들아 여호와를 찬송하며 그의 거룩함을 기억하며 감사하라

*5.그의 노염은 잠깐이요 그의 은총은 평생이로다 저녁에는 울음이 깃들일지라도 아침에는 기쁨이 오리로다

*6.내가 형통할 때에 말하기를 영원히 흔들리지 아니하리라(자기신뢰=영적자부심=방심과 교만=자행자제의 함정!!) 하였도다 --믿는 이 한사람한사람마다 그 모두를, 모든 영광 다 내어주어도 아깝지 않은 사랑하는 자녀인바, 올인하심으로 늘 지고지선의 진복 누리며 살도록 섬기시며  받아주시는 하나님의, 자신을 굽히고 낮춤/겸비하심의 은총을 기억하라...기뻐하라, 감사하며 올인하며 주 뜻이루시도록 동행하라..예배하며 섬기라!!

*7.여호와여 주의 은혜로 나를 산 같이 굳게 세우셨더니 주의 얼굴을 가리시매[모든 환난고통은 (욥의 경우처럼)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겠으나, 대개 자기자랑과 자부심=교만함의 죄로 인해 자초하는 바, 주님은 하나님의 한량없는 지혜와 섭리로, 기독자의 그리스도를 빼어닮음의 계기 삼으심, 곧 영적 정화 위한 영의 어둔밤 = 감각의 밤 + 영의 밤을 통해 정화하는 계기로 삼으심...그로 인해 JC의 십자가 사랑과 무엇으로도 다 표현 못할 큰 희생을 참되게 깨달아 알고  귀히 여기며 감사함, 거꾸로 주앞에서는 모든 인생의 전적인 타락-스스로는 전혀 무력하며 무가치함을 가슴 사무치도록 절절하게 체험적으로 알고 깨달아, 진정한 겸비/비천함을 아는 낮아짐으로 다만 체휼하시는 사랑의 주께 무한 감사드림만이 합당함을 알고, 사랑겨운 자발적 순종으로 주와 동행하는 단독자 되게 하시며, 오직 자신의 모든 것 내어주시며 부어주시는 주님만 바라봄의 지고지선-지복직관 누림안으로 이끄심!!] 내가 근심하였나이다

*8.여호와여 내가 주께 부르짖고(회개!!) 여호와께 간구하기를(특별한 요청!!)

*9.내가 무덤에 내려갈 때에 나의 피가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진토가 어떻게 주를 찬송하며 주의 진리를 선포하리이까

*10.여호와여 들으시고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여호와여 나를 돕는 자가 되소서 하였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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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주께서 나의 슬픔이 변하여 내게 춤이 되게 하시며 나의 베옷을 벗기고 기쁨으로 띠 띠우셨나이다

*12.이는 잠잠하지 아니하고 내 영광으로 주를 찬송하게 하심이니(= 능동적 관상, 조명으로 한걸음 더 나아감 -->온전한 합일 이룸은 사랑의 주께 전존재를 맡겨 따름/거함 = 수동적 관상, 합일!!) 여호와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영원히 감사하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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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MP))Thanksgiving for Deliverance from Death.

A Psalm 30 ; a Song at the Dedication of the House (Temple). A Psalm of David.

1 I will extol and praise You, O Lord, for You have lifted me up, And have not let my enemies rejoice over me.

2 O Lord my God, I cried to You for help, and You have healed me.

3 O Lord, You have brought my life up from Sheol (the nether world, the place of the dead); You have kept me alive, so that I would not go down to the pit (grave).

4 Sing to the Lord, O you His godly ones, And give thanks at the mention of His holy name.

5 For His anger is but for a moment, [a]His favor is for a lifetime. Weeping may endure for a night, But a shout of joy comes in the morning.

6 As for me, in my prosperity I said, “I shall never be moved.”

7 By Your favor and grace, O Lord, you have made my mountain stand strong; You hid Your face, and I was horrified.

8 I called to You, O Lord, And to the Lord I made supplication (specific request).

9 “What profit is there in my blood (death), if I go down to the pit (grave)? Will the dust praise You? Will it declare Your faithfulness [to man]?

10 “Hear, O Lord, be gracious and show favor to me; O Lord, be my helper.”

11 You have turned my mourning into dancing for me; You have taken off my sackcloth and clothed me with joy,

12 That my soul may sing praise to You and not be silent. O Lord my God, I will give thanks to You forever.

--((NKJV))-------------

The Blessedness of Answered Prayer.....A Psalm30. A Song at the dedication of the house of David.

1 I will extol You, O Lord, for You have lifted me up, And have not let my foes rejoice over me.

2 O Lord my God, I cried out to You, And You healed me.

3 O Lord, You brought my soul up from the grave; You have kept me alive, [a]that I should not go down to the pit.

4 Sing praise to the Lord, you saints of His, And give thanks at the remembrance of [b]His holy name.

5 For His anger is but for a moment, His favor is for life; Weeping may endure for a night,

But [c]joy comes in the morning.

6 Now in my prosperity I said, “I shall never be [d]moved.”

7 Lord, by Your favor You have made my mountain stand strong; You hid Your face, and I was troubled.

8 I cried out to You, O Lord; And to the Lord I made supplication:

9 “What profit is there in my blood, When I go down to the pit? Will the dust praise You? Will it declare Your truth?

10 Hear, O Lord, and have mercy on me; Lord, be my helper!” 

11 You have turned for me my mourning into dancing; You have put off [e]my sackcloth and clothed me with gladness, 

12 To the end that my [f]glory may sing praise to You and not be silent. O Lord my God, I will give thanks to You fore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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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LT))Psalm 30....A psalm of David. A song for the dedication of the Temple.

1 I will exalt you, Lord, for you rescued me.  You refused to let my enemies triumph over me.

2 O Lord my God, I cried to you for help,   and you restored my health.

3 You brought me up from the grave,[a] O Lord.  You kept me from falling into the pit of death.

4 Sing to the Lord, all you godly ones!  Praise his holy name.

5 For his anger lasts only a moment,  but his favor lasts a lifetime!  Weeping may last through the night, but joy comes with the morning.

6 When I was prosperous, I said,  “Nothing can stop me now!”

7 Your favor, O Lord, made me as secure as a mountain. Then you turned away from me, and I was shattered.

8 I cried out to you, O Lord.  I begged the Lord for mercy, saying,

9 “What will you gain if I die, if I sink into the grave? Can my dust praise you?  Can it tell of your faithfulness?

10 Hear me, Lord, and have mercy on me.  Help me, O Lord.”

11 You have turned my mourning into joyful dancing. You have taken away my clothes of mourning and clothed me with joy, 

12 that I might sing praises to you and not be silent. O Lord my God, I will give you thanks fore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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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30장 (개요)

 

이것은 하나님께서 다윗을 위해 역사해 주신 큰 구원에 대해 감사하는 시로서, 비록 그 시기에 대한 특별한 언급은 나타나 있지 않지만, 그의 백향목 집을 낙성할 때에 지어졌고, 그 경건한 의식에서 불리었을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이 시편의 여러 문구를 통해 이것이 그의 병세가 위급한 지경에서 회복되었을 때 지어졌으며, 그 시기는 아마도 그의 집을 낙성할 때와 비슷하게 일치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1. 그는 여기에서 하나님께서 그를 위해 역사하신 구원에 대해 그를 찬미하고 있다(1-3).

2. 다른 사람들도 그를 찬미하도록 청하고 있으며, 그도 그를 의지하도록 격려하고 있다(4-5).

3. 예전에 그가 방심했던 것에 대해 스스로 책망하고 있다(6-7).

4. 그 환난 속에서 했던 기도와 호소를 회상하고 있다(8-10). 그런 환난에 비해, 현재의 편한 상태로 되게 해주신 하나님께 매우 감사하도록 스스로를 선동하고 있다(11-12).

이 시편을 노래함에 우리는 우리를 위해 역사해 주신 모든 구원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기억해야 한다. 또한 그것에 대해 그를 찬미하도록 우리 스스로를 자극해야 하며, 그것에 의해 더욱 그를 의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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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에 대한 감사와 찬미(시 30:1-5)

경건한 유대인들이 새 집을 건축했을 때 하나님께 “낙성식”을 올린 것은(신 20:5) 매우 칭찬할 만한 행실이었으며, 비록 특별히 지시되지는 않았을지라도 그것은 허용되었고 용납되었다. 다윗도 그의 집이 건축되었을 때, 그렇게 하고 나서 집을 소유했다(삼하 5:11). 왜냐하면 궁궐은 일반적인 집들 못지않게 하나님의 보호가 필요하며, 또한 그의 봉사를 행할 의무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거하는 집도 물론 제일 먼저 작은 성소로서 하나님께 봉헌되어야 한다. 우리는 우리 자신과 가족들, 그리고 우리의 모든 가사를 엄숙히 하나님의 인도와 돌보심에 맡겨야 한다. 그의 임재와 축복을 위해 기도해야 하며, 우리 자신과 우리의 모든 것을 그의 영광에 바쳐야 한다. 또한 우리가 우리의 장막에서 불의를 멀리한 것과 우리와 우리 집이 가정예배의 의무를 행하고, 모든 면에서 복음에 순종함으로써 주님을 섬길 것을 결의해야 한다. 

어떤 사람들은 이 시편이 다윗이 근친 성교로써 그 집을 더럽혔던 압살롬에 의해 그곳에서 축출당한 후 다시 그 집에서 낙성식을 행할 때 불렸던 것이며, 그 위험한 반란을 진압시킨 데에 대한 감사를 노래한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다. 이 구절들 속에서 우리는 다음 사항을 볼 수 있다.

Ⅰ. 다윗은 하나님께서 그를 위해 역사해 주신 위대한 구원에 대해 감사드리고 있다(1절). 

“여호와여, 내가 주를 높일 것이옵니다. 주의 이름을 높일 것이며, 높으시고 들리워지신 자로 주를 찬미할 것입니다. 인간들 가운데 있는 주의 나라의 세력을 증진시키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행할 것입니다. 나는 주를 격찬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내가 빠져들어가는 함정으로부터 나를 들어올리셨을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의 보좌까지 들어올리셨기 때문입니다.” ---그는 “가난한 자를 티끌에서 일으키신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들어올리시기 위해 그의 섭리와 은혜로 행하신 위대한 일을 깊이 생각해 볼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매우 보잘것없을지라도 감사한 마음으로 온힘을 기울여 그의 이름을 격찬하지 않을 수 없다. 다음 세 가지 사실이 다윗의 구원을 빛내주고 있다.

1. 그의 대적들이 격파되었다. 

만일 그가 이런 아픔으로 인해 죽거나 이 환난 속에서 멸망했다면, 그들은 그들이 행했던 것처럼(비록 야만스런 일이긴 하지만) 그를 이기기 위해 고생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41:11 참조).

2. 그의 기도가 응답되었다(2절). “내가 주께 부르짖었나이다.” 

우리가 고통 속에서 느끼는 모든 것은 하나님께 상달되어야 하며, 모든 부르짖음은 그를 향한 토로함이 되어야 한다. 그리할 때, 우리의 슬픔은 고통스러운 영혼을 편하게 할 것이다.

“내가 주께 부르짖으매, 내 부르짖음을 들어주셨을 뿐만 아니라 나를 고치셨나이다. 병든 몸을 고치셨고, 불안하며 평정을 잃은 마음은 고치셨고, 나의 잘못되고 혼돈된 모든 일들을 바로 잡아 고치셨습니다.” 

바로 이 부르짖고 간구하며 앙망함속에서 하나님은 영광을 나타내신다.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하나님임이니라”(출 15:26). 그 대, 우리는 그분께 합당한 영광을 돌려야 한다.

3. 그의 생명이 구원되었다. 

즉 그는 음부로 들어갈 정도로 극한상황에 다다랐고 “무덤으로 내려갈” 지경이었으나, 구조되어 살게 되었다(3절). 우리의 위험이 급박하고 긴박할수록 우리의 구원은 더욱 귀하다. 

그 구원은 우리들에게 더욱 큰 위로가 되고, 또한 하나님의 능력과 선하심을 더욱 현저하게 증명한다. 사망에서 건져진 생명은 우리 생명의 하나님을 높이는 데 사용되어야 한다.

Ⅱ. 그는 다른 사람들도 하나님께서 그에게 하사하신 특별한 은총에 대해서뿐만 아니라, 모든 성도에 대한 그의 선하신 의지의 일반적 표징에 대해서 그와 함께 찬미하도록 권고하고 있다(4절).

 “주의 성도들아, 여호와를 찬송하라!” 하나님께서 자기 것으로 인정한 모든 사람들은 진실한 성도들이다. 이 세상에는 이런 남은 자들이 있으며, 그들에게 하나님을 찬송하는 일이 기대된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의 이름과 찬미를 위한 자들이 될 수 있도록 창조되었고 성별케 되었으며, 성도가 되었기 때문이다. 

천국에 있는 성도들이 그를 찬송하는데 하물며 땅에 있는 자들이 어찌 그들과 협력하여 온힘을 기울여 그를 찬송하지 않겠는가?

1. 그들은 그분이 흠 없고 청결한 하나님이시라고 믿는다. 

그러므로 그들로 하나님을 찬송하게 하자. “그들로 그 거룩한 이름에 감사하게 하라. 그의 거룩한 이름을 찬미케 하라. 거룩함은 대대로 그의 기념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은 거룩한 하나님이시다. 그의 거룩함은 그의 영광이다. 그것이 거룩한 천사들이 찬미할 때 매우 중시하는 그의 특성이다(사 6:3, 4:3). 

우리는 하나님의 거룩함을 자주 언급하고 기억해야 한다. 하나님이 거룩하신 하나님이라는 사실은 성도들을 기쁘게 한다. 왜냐하면 그가 그들도 거룩하게, 더욱 거룩하게 해주시리라는 것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악인들에게는 하나님의 완전하심보다 더 큰 두려움을 주는 것이 없으며, 경건한 자들에게는 그의 거룩하심보다 더욱 위로가 되는 것이 없다. 우리가 진심으로 그것을 기억하는 일을 즐거워하고 감사한다면, 그것은 우리가 어느 정도 그의 거룩함의 참여자라는 좋은 표지가 된다.

2. 그들은 그가 은혜롭고 자비하신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체험했다. 그러므로 그들로 하나님을 찬송하게 하라.

(1) 우리는 그의 언짢으신 표정이 매우 짧은 동안으로 국한되어 있다는 것을 알았다. 

비록 우리는 영원히 그의 찌푸리심을 받을 만하고, 그는 우리를 사르실 때까지 우리에게 화를 내실 만하며, 또 결코 화해하시지 않는 것이 마땅함에도 불구하고 “그의 노염도 잠깐이다”(5절). 

우리가 그를 불쾌하게 할 때 그는 노하신다. 그러나 그는 노하기를 더디 하시며 쉽게 분노하시지 않는다. 따라서 그가 노하셨을 때 우리가 회개하고 겸손케 된다면, 그의 노는 곧 풀리고 기꺼이 우리와 화목하고자 하신다. 

그가 그의 자녀들로부터 얼굴을 숨기시고 그의 은총의 표지가 없는 것처럼 느껴지게 만드시더라도, 그것은 “적은 분노”이며, “잠깐” 동안뿐이다. 반면에 그는 “영원한 자비로 그들을 모으실” 것이다(사 54:7-8). 

“저녁에는 울음이 기숙할지라도”, 그리고 그것이 지겨운 밤일지라도 밤의 암흑 후에는 아침의 광명이 확실히 돌아오는 것같이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는 기쁨과 위로가 합당한 때에 곧 돌아올 것이다. 

이처럼 은혜의 언약은 그날의 언약처럼 확고하다. 이 말씀은 때때로 문자 그대로 우리에게 실현되어 왔다. 저녁에는 울음이 기숙했을지라도 슬픔은 곧 끝나고 한숨은 사라진다.

하나님의 노가 오랫동안 계속되는 한 성도들의 울음은 계속된다. 그러나 그것이 잠시에 불과하다면 그 고통도 잠시뿐일 것이며, 하나님의 안색이 회복될 때 환난은 순간적으로 쉽게 걷히고 빛이 선포될 것이다.

(2) 우리는 그의 미소가 매우 감미롭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 은총은 평생이로다.” 즉 매우 훌륭하다. 고통당하는 영혼에게 돌아오는 그의 은총은 죽음에서 벗어난 생명과도 같다. 그것보다 더 소망을 줄 수 있는 것은 없다. 

우리의 행복은 하나님의 은총 속에 달려 있다. 우리에게 무엇이 부족하든지간에, 그 은총만 가지고 있다면 우리는 충분히 갖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영혼의 생명이고 영적인 생명이며, 영생의 전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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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의 찬미(시 30:6-12)

우리는 이 구절 속에서 다윗이 계속 처해 있었던 세 가지 상황에 대해 알 수 있으며, 각각 그 상황 속에서 하나님께로 향한 그의 마음은 어떻게 역사되었는가. 즉 그가 무엇을 말하고 행했으며 그의 마음이 어떻게 감동되었는가를 알 수 있다. 

이 첫 번째 상태는 우리도 그렇게 되기 쉬운 것이며, 나머지 두 가지 상태는 우리가 어떻게 되어야 하는가를 보여준다.

Ⅰ. 그는 오랫동안 형통함을 누렸으므로 점점 방심하게 되었고, 그런 상태가 지속되리라는 지나친 확신을 가졌다(6-7절).

 “내가 형통할 때에 내 몸이 건강하고 하나님께서 나의 모든 대적들로부터 내게 휴식을 주셨을 때에 말하기를 영영히 요동치 아니하리라 하였도다. 나는 내 몸이 병들거나 나의 정부가 교란되는 것에 대해서는 결코 생각해 보지도 않았고, 그런 위험성을 전혀 깨닫지 못했도다.” 

그는 그를 대적하던 자들에 대해 매우 완전한 승리를 거두었고, 그의 백성들의 매우 확고한 신뢰를 얻고 있었으며, 매우 튼튼한 육신의 상태에 있었기 때문에 그의 형통함이 산처럼 견고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 그는 이것을 그 자신의 지혜나 꿋꿋함의 덕택으로 돌리지 않고, 하나님의 선하심의 덕분으로 돌리고 있다. “여호와께서 주의 은혜로 내 산을 굳게 세우셨도다”(7절). 그는 그것을(형통함을 지복으로 삼는 세속적인 사람들이 그런 것처럼) 그의 “천국”으로 간주하지 않고, 단지 그의 “산”으로 간주하고 있다. 

산은 평지보다 약간 높은 땅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그는 하나님의 은혜로 인해 이런 상태가 영원히 계속되리라고 생각했다. 아마도 그가 초년시절에 매우 많은 환난을 당했으므로 그 몫을 다 겪어 말년에는 아무런 환난도 남아 있지 않을 것이거나, 하나님께서 이처럼 그의 은총의 표징을 주셨으니 이제 결코 그에게 얼굴을 찌푸리지 않으실 것이라고 상상했던 것 같다.

1. 우리는 일들이 잘 되어갈 때 그 상황이 항상 그러할 것이며, 결코 변하지는 않으리라는 공상을 갖기 쉽다. 

“내일도 오늘 같으리라.” 그것은 날씨가 일단 화창해지면 계속 청명하리라고 생각하는 것과도 같다. 그러나 날씨같이 변하기 쉬운 것도 없다.

2. 우리의 기대가 잘못된 것임을 알았을 때 우리는 여기에서의 다윗처럼 우리의 어리석은 방심을 부끄러운 마음으로 반성해야 마땅하다. 

그리하여 우리는 또 다른 경우에 좀더 지혜롭게 대처하고, 우리의 형통함을 즐거워하지 않았던 것처럼 즐거워할 수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그런 시기는 곧 사라지기 때문이다.

Ⅱ. 갑자기 그는 환난에 빠졌고, 그때에 하나님께 기도해 위안과 구조를 간곡히 청했다.

1. 그의 산은 흔들렸고 그도 그것과 함께 흔들렸다. 

그가 점점 방심 상태에 들어갔을 때 그가 조금도 안전하지 않다는 사실이 증명되었다. “주의 얼굴을 가리우시매 내가 마음과 육신, 재물로 근심하였나이다.” 

상황의 모든 변화 속에서도 그는 계속 하나님을 주목했다. 그의 형통함을 하나님 은총의 덕택으로 돌렸던 것과 같이, 그는 하나님이 얼굴을 가리시는 것이 곤경의 원인이 되는 사실을 곤경 속에서 관찰했다. 

하나님께서 얼굴을 가리신다면 비록 다른 재앙이 내리지 않을지라도 선한 사람은 곤경에 처하게 된다. 해가 지면 분명 밤이 오며, 달과 뭇 별들은 결코 낮을 이룰 수 없는 것이다.

2. 그 산이 흔들렸을 때 그는 눈을 들어 그 산 너머를 바라보았다. 

기도는 모든 상처를 위한 약이다. 따라서 그는 그것을 사용했다. “환난당하는 자가 있는가?” 괴로워하는 자가 있는가? 그렇다면 “그로 기도하게 하라.” 

하나님께서 그로부터 얼굴을 가리셨을지라도 그는 기도했다. 하나님께서 지혜와 공의 가운데 우리로부터 돌아섰다 하실지라도 우리가 그로부터 돌아서는 것은 가장 큰 어리석음이며, 상상할 수 없을 만한 불의가 될 것이다. 

오히려 어두움 속에서도 기도하는 것을 배우도록 하자(8절). “여호와여, 내가 주께 부르짖었나이다.” 

하나님의 물러가심은 그의 기도를 더욱 격렬하게 만들었던 것 같다. 우리는 여기에서 그가 계속 중요시하고 있는 것같이 보이는 내용을 읽을 수 있다.

(1) 그의 탄원(9절).

① 하나님은 그의 사망으로 얻음이 없으실 것이라는 사실. 

“나의 피가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이것은 그가 죽음으로써 하나님이나 그의 나라에 진실로 봉사할 수 있다면 기꺼이 죽겠으나(빌 2:17), 영예의 침상에서 죽는 것과는 달리 병상에서 죽어가는 것이 무슨 유익이 있는지를 알지 못함을 시사하고 있다. 

그는 “여호와여, 주께서 주의 백성을 무료로 파시어 저희 값으로 이익을 얻지 못하려 하시나이까?”(44:12) 하고 말하고 있다.

② 더구나 그분의 영예를 고려해 볼 때 하나님은 그의 죽음에 의해 손실자가 되는 것처럼 보이신다는 사실.

 “어찌 진토가 주를 찬송하리이까?” 하나님께로 돌아와 성별케 된 영은 그를 찬미할 것이며, 항상 찬미할 것이다. 그러나 흙으로 돌아가는 진토는 그를 찬미하거나 그의 진리를 선포하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 전의 봉사가 티끌에 의해 행해질 수는 없다. 즉 그렇게 해서는 그를 찬미할 수 없는 것이다. 음부는 침묵의 땅이기 때문에 그곳에는 계획이나 일함이 있을 수 없다. 하나님의 언약은 진토에서 이루어질 수 없다. 따라서 다윗은 “여호와여, 만일 내가 지금 죽는다면 내게 대한 약속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누가 그 진리를 선포하리이까?” 하고 말하고 있다.

기도 속에 있는 가장 훌륭한 탄원은 하나님의 영예로부터 발췌된 것들이다. 우리가 이런 관점을 가질 때 우리는 살아서 그를 찬미할 수 있도록 생명을 올바르게 구할 수 있다.

(2) 그의 간구(10절). 

그를 용서하시는 긍휼과(“나를 긍휼히 여기소서”) 곤궁한 때에 도우시는 은혜를(“여호와여, 나의 돕는 자가 되소서”) 간구하고 있다. 이 두 가지 일을 위해 우리는 또한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수 있다(히 4:16).

Ⅲ. 하나님께서 합당한 때에 그를 환난에서 건지시고, 그의 예전의 형통함을 회복시켜 주셨다. 

그의 기도는 응답되었고, 그의 “슬픔이 변하여 춤이 되었다”(11절). 하나님의 진노가 머물렀던 것은 잠시뿐이었고, 다윗의 울음은 단지 하룻밤 동안이었다. 

그가 거룩한 섭리에 겸손히 복종해 입었던 베옷은 벗겨졌다. 그의 슬픔은 평정되었고, 두려움은 진압되었으며, 그의 위로는 되돌아왔다. 또한 그는 기쁨으로 둘러싸였다. 기쁨이 그의 장식물이 되었고 힘이 되었으며, 끈이 사람의 허리에 매이듯, 그에게 꼭 달라붙어 있는 것 같았다. 

다윗이 조금도 예상하지 못했던 때에 번영의 절정에서 환난으로 떨어진 사실이, 환난이 얼마나 우리 가까이에 있는지를 모르기 때문에 우리에게 기뻐하지 않는 것처럼 기뻐하도록 가르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의 번영의 상태가 갑자기 회복된 것은 우리에게 울지 않는 것처럼 울도록 가르치고 있다. 왜냐하면 우리는 얼마나 빨리 폭풍우가 잔잔해지고 엄청난 강풍이 부드러운 미풍으로 바뀔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의 형편이 이처럼 행복하게 바뀌었을 때 그의 마음 상태는 어떠했는가? 그는 지금 뭐라고 말하고 있는가? 그는 우리에게 다음과 같은 것들을 말하고 있다(12절).

1. 그의 원망은 찬미로 변했다. 

그는 그것을 “이스라엘의 노래 잘하는 자”가 될 수 있도록(삼하 23:1), 그의 “영광으로 하나님을 찬송케” 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그를 기쁨으로 띠 띠우신 것으로 간주했다. 

즉 그의 혀나(우리의 혀는 우리의 영광이며, 그것이 하나님을 찬미하는 일에 사용될 때는 더욱 그러하다) 영혼(영혼은 모든 짐승들보다 뛰어난 우리의 영광으로서, 주를 찬송하는 데 사용되어야 하고, 그것으로써 우리는 시편에 곡을 넣어 그를 노래해야 한다)은 그를 찬송해야 한다. 

침묵을 지켜야 하는 무덤에 있지 않는 자들은 산 자의 땅에서 침묵을 지키지 말고 열렬하고 꾸준하며, 공개적으로 하나님을 찬미해야 한다. 

2. 이 찬미는 영원히 지속될 것 같았다. 

“내가 주께 영영히 감사하리이다.” 이것은 그가 하나님을 찬미하는 일을 끝까지 지키리라는 은혜로운 결의를 나타내고, 찬미할 새로운 소재가 결코 부족하지 아니할 것이며, 그가 이런 것이 영원한 업이 될 곳으로 곧 가게 되리라는 은혜로운 소망을 나타내고 있다. 

“하나님의 집에 거하는 자는 복되도다. 저희는 항상 그를 찬송하리라.” 이처럼 우리는 우리와 관련된 하나님의 여러 가지 섭리에, 즉 궁핍함과 풍부함, 긍휼과 심판에 대해 노래해야 하며, 이 두 가지를 위해 하나님께 간구해야 하는 것을 배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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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의 소망의 내용(빌 3: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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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3)) *8<하>....그리스도를 얻고 *9.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라  *10.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고자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11.어떻게 해서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12.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13.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14.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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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사도가 무엇을 배격하였나를 살펴 보았다. 이제 그가 붙잡고 집착하기로 결정하기로 무엇인지를 살펴 보자. 그는 주로 그리스도와 하늘나라에 전념을 기울였다. 그는 기독교 신앙의 가장 큰 특색에 유념했다.
Ⅰ. 사도는 그리스도를 자신의 의로써 마음에 모시었다. 그는 이것을 몇 가지 실례를 들어 설명하였다.
1. 그는 그리스도를 얻고자 했다. 그리고 만일 그가 그리스도와 그의 의에만 관심을 쏟고 그리고 그리스도가 그의 주와 구세주가 된다면 이것으로 자신은 큰 승리자가 된 것으로 여겼다. 고로 그는 "내가 그를 얻고자 함이라"고 하였다. 그는 경주자가 상을 얻으려는 것처럼 또한 항해사가 항구가 정착하는 것을 목적 삼는 것처럼 그리스도를 얻으려 하였다. 그 표현은 우리가 그를 위하여, 그리고 그를 좇아 노력할 필요가 있음을 암시한다. 그리고 그를 얻는 데 비하면 모든 것을 하찮은 것이라는 의미이다.
2. 그가 "그의 안에서 발견되고자 하였다"(9절). 이 말은 살인자가 피의 보수자로부터 안전한(민 35:25) 도피성에 정착하듯이 그리스도 안에 정착되고 싶다는 내용의 표현이다. 또는  여기서 발견된다함은 법정에 서게 됨을 나타낸 말로써 우리의 재판관이신 주님 앞에 부끄러움없이 우리가 발견됨을 말한 것이라고도 볼 수 있겠다(벧후 3:14). 우리는 하나님 앞에 나타날 때(그리스도의) 의가 없으면 멸망한다. 왜냐하면 우리가 죄를 지었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는 우리를 위해 마련된 의가 있다. 그리고 그것은 완전한 의다. 자신에 대한 신뢰를 버리고 그리고 진심으로 그를 믿는 자들 이외에 그 누구도 이 의에 의해 혜택을 얻지 못한다. 본문은 다음과 같은 뜻의 말씀이다.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다. 표면적인 율법 준수와 선행들이 나의 악한 것들을 대속할 수 있다거나 혹은 선행으로 악을 누름으로 내가 하나님과 상대할 수 있게 되었노라고 생각지 말라. 오히려 내가 의지하는 의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으로 율법적인 의가 아니라 복음적인 의이다. 믿음으로 하나님께로서 난 의는 하나님이 인정하시고 또 지정해 주신 의이다." 주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의가 되시는 주님이시다(사 45:24; 렘 23:6). 만일 그가 하나님이 아니시라면 그는 우리의 의가 되실 수 없었을 것이었다. 하나님의 초월적인 섭리는 그의 고난에 상당한 가치와 공로를 부여하여 그 고통이 세상의 죄를 대속하기에 충족한 것으로 간주하셨고 또 그를 모든 믿는 자들에게 유효한 의로써 삼으신 것이다. 믿음은 그의 피로 값을 주고 산 모든 것을 실질적으로 소유하고 또 구원의 은혜에 우리로 동참하게 하는 정해진 수단이다. 이 구원은 그의 "피에 대한 믿음으로 말미암아"(롬 3:25) 주어지는 것이다.
3. 그가 그리스도를 알기 위해서였다(10절). 그러므로 본문에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예함을 알려하여"라고 말하였다. 이사야서에서 믿음은 지식이라고 불리워졌다(사 53:11). 따라서 여기서 그를 아는 것은 곧 그것은 그들을 변화시키는 능력과 덕은 느낌으로써 오는 지식을 말하는 것이다. 사도는 그가 의롭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성화된 것을 자랑으로 알았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그는 자기가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의 덕택으로 의롭게 된 사실 뿐만 아니라 그의 안에서 죄를 죽이고 그에게 새로운 생명을 일으킨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의 능력을 알기를 열망했다.
4. 그가 그에게 순응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이것은 또한 그의 성화를 의미하는 것이다. 그리스도가 죄에 대하여 죽은 것 같이 우리도 죄에 대하여 죽을 때 그의 죽음에 순응하는 것이 된다.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힐 때 육과 육에 대한 애착은 극복되어지며  또한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의하여 세상이 우리에게 대해 십자가에 못박히게 되며 우리는 세상에 대하여 십자가에 못박히게 된다." 이것이 그의 죽음에 자신을 순응시키는 것이다.
Ⅱ. 사도는 자기의 마음을 하늘에 두고 있음을 자신의 행복으로 여겼다. 이러한 심정은 "어찌하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라"(11절)는 그의 말 가운데서 나타난다.
1. 하늘에서의 행복은 본문에서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이라고 불리운다. 그가 이렇게 말한 이유는 믿는 자들의 영혼이 세상을 떠날 때 즉시 그리스도와 함께 거하는 것이 사실이지만 최후의 날에 모든 죽은 자들이 부활할 때까지는 그들의 행복은 완성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ajnavstasi"(부활)은 때때로 장래의 상태를 의미한다. 사도는 바로 이 부활을 목적으로 삼았다. 그는 이 부활을 얻으려고 하였다. 그때에는 불의한 자들도 부활한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부활하여 피하기 위해 조심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성도들이 기쁘고 영광스런 부활은 ‘카트 엑소켄’(2596 1851)-즉 권능에 의지한 부활이라고 불리운다. 왜냐하면 이것은 그들의 머리요 첫 열매로써의 그리스도의 부활의 힘에 의한 것이기 때문이다. 반면에 악한 자들은 오직 그리스도의 그들에 대한 심판의 능력에 의해서만 부활하게 될 것이다. 성도들에게 있어서 부활은 축복과 생명과 영광으로 환원되는 부활이 될 것이다. 반면에 악한 자들의 부활은 무덤에서는 부활하는 것이 되겠지만 그러나 그 부활은 두 번째의 사망을 위한 부활인 뿐이다. 반면 성도들의 부활은 "의로운 자들의 부활" 또는 "생명의 부활"이라고 불리운다(요 5:29). 그리고 이들 성도들은 "저 세상과 및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함을 얻기에 합당히 여김을 입은 자들"로 간주된다(눅 20:35).
2. 이 기쁜 부활을 향하여 사도는 전진하였다. 이 부활은 얻기 위하여 무슨 일이고 기꺼이 행하려 하였고 또 고통이라도 달게 받고자 하였다. 이 부활의 희망과 그것에 대한 기대가 그가 자기 사명을 수행하면서 만난 모든 어려움들을 극복할 수 있도록 그에게 많은 용기와 인내심을 부여해 주었다. 그는 마치 그들이 부활을 잃게 되고 그것에 미치지 못하게 될 위험에 처한 것처럼 두려움으로 말한다. 부활에 미치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거룩한 두려움은 우리로 인내하게 해 주는 최선의 방책이 된다. 다음의 사실을 명심하자. 그가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되고자 세심한 주의를 기울인 것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함을 얻으려는 데 있었다. 바울은 자신의 공로와 의를 통하여 그것에 이르기를 바랐다. 그러므로 그는 이렇게 말한다. "내가 죽은 자의 부활에 이르기 위해 나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에게 관심이 있는 자로 발견되려고 하노라"고 하였다. 다음사실을 명심하자.
(1) 그는 자신을 불완전과 시련의 상태에 있는 것으로 간주한다. 그러므로 본문에서 그는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다"(12절)고 말한다. 다음 사실을 생각해 보자. 이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사람들은 현재의 그들 자신의 상태가 불완전함을 솔직히 인정할 것이다. 우리는 아직 성취하지 못했고 이미 온전히 된 것도 아니다. 우리의 모든 의무와 은혜와 위안에는 아직도 많은 부족이 있다. 만일 바울이 온전함에 이르지 못했다고 하였다면(그는 실상 고도의 거룩함에 이르러 있었다.)  우리는 정말 보잘 것 없는 것이다. 다시 그는 "형제들아 나는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한다"(13절). ‘우 로기조마이’-즉 내가 현재의 입장을 돌이켜 볼 때 나는 자신을 그렇게 여길 수 밖에 없노라는 말이다. 자신은 충분한 은혜를 가졌다고 생각하는 자들은 바로 그러한 생각이 그들이 거의 은혜를 갖지 못하였거나 또는 전혀 갖지 못하였다는 증거가 된다. 왜냐하면 참된 은혜가 있는 곳에서는 어디서나 보다 많은 은혜를 갈망하게 되며 또한 은혜의 완성을 향한 전진이 있기 때문이다.
(2) 이러한 확신에 따른 사도의 생활 태도. 그는 자신이 다 이루지도 않았고 온전히 붙잡지도 못하였음을 살펴 본 후에 한걸음 나아가 "나는 좇아가노라"(12절)고 하였다. ‘디도코’(1377)-즉 나는 경주하는 자처럼 과감하게 좇아간다. 나는 보다 많은 은혜를 얻으려고 그리고 보다 많은 선을 행하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결코 내가 충분한 것을 행했다고 생각지 않는다. 그러기에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간다"고 말한다. 다음 사실을 생각해 보자.
① 그러므로 우리의 은혜는 예수 그리스도에게 잡힌 바 됨에서 온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우리가 그리스도를 먼저 붙잡는데서 오는 것이 아니라 그가 우리를 붙잡으시는 데서 오는 것이다. 그에게 붙잡히는 것이 우리에게 행복이 되며 구원이 된다. 그러므로 "그가 우리를 먼저 사랑하셨기 때문에 우리가 그를 사랑한다"(요일 4:19)고 하였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붙잡는 것이 아니라 그가 우리를 붙잡은 것이 우리에게는 안전하다. 우리는 "구원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입었다"(벧전 1:5).
② 하늘에서의 행복이란 우리가 "그리스도에게 붙잡힌 것을 붙잡으려는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리스도가 우리를 붙잡을 때 우리는 하늘로 인도함을 받게 된다. 그리고 그가 우리를 붙잡은 것은 우리의 온전한 축복을 성취하는 것이다. 나아가서 그는 다음과 같이 부언한다(13절). "오직 한 일(이것이 그의 가장 큰 관심의 대상이다.)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 한다." 과거의 죄들과 과거의 긍휼은 지속적인 회개를 위하여 그리고 하나님께 감사하기 위해 기억되어야 한다. 그러나 바울은 현재의 은혜의 분량만으로는 만족치 않기 위하여 뒤에 있는 것들을 갖기를 원하였다. 그러므로 그는 "그의 목적을 성취하기 위하여 좇아갔다. ‘에페크테이노메노스’-즉 전진하였다로 그의 열렬한 관심을 잘 나타내주고 있다.
(3) 사도의 "좇아 감의 목표." 이에 대하여 그는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 가노라"(14절)고 하였다. 그는 푯대를 향하여 나갔다. 경주하는 자가 목표를 결코 잊어버리지 않고서 그가 할 수 있는  한 빨리 앞으로 뛰어가는 것같이 하늘을 그들의 목표로 바라보는 자들은 거룩한 바람과 희망 그리고 꾸준한 노력과 준비로 그것을 향하여 전진해야 한다. 우리가 하늘에 보다 적절하게 되면 될 수록 우리는 더욱 빨리 그것을 향하여 나아가야 한다. 여기서 하늘은 푯대라고 불려진다. 왜냐하면 그것은 모든 선한 그리스도인들이 목표로 삼아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마치 궁수(弓手)가 자기가 맞히려고 하는 표적에 자기 눈을 고정시키는 것과 같다. 이는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시이다. 그리스도인으로의 부름은 위로부터 부름임을 기억하자. 이 부름은 하늘에 그 기원을 두고 있다. 또한 그 부름은 하늘을 지향한다. 하늘나라는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이다. ‘토 브라베이온’은 우리가 위하여 싸워야 하고 달려야 하며 씨름해야 할 그러한 상을 말한다. 또한  이런  "상"은 우리의 모든 행위에 있어서 목표가 되어야 하며 또 우리의 당한 모든 고통에 대한 보상이 될 것이다. 하늘 나라를 목적으로 삼는 것은 기독자로서의 과정을 추구함에 있어서 대단히 힘이 된다. 이것은 모든 섬김을 감당하도록 우리에게 힘이 되며 우리를 깨우쳐 앞으로 한 걸음 한 걸음 전진하게 해 준다. 하늘나라는 하나님께 속한 것이며 그러기에 하나님에게 우리는 그 나라를 기대하는 것이다. "영생은 하나님의 선물이다"(롬 6:23). 그러나 영생은 오직 그리스도 예수를 통하여 주어진다. 영생이 그에 의해 우리를 위해 확보된 것과 마찬가지로 그의 손을 통하여 그것은 우리에게 와진다. 우리의 길이신 그리스도를 통하지 않고서는 하늘나라를 우리의 집으로 획득할 수는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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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지고지선, 완전한 아가페사랑의 3가지 측면===

@@은혜(십자가로 이루신  구속/회복의 사랑, 곧 은총)를 통하여 주님과 화목함(하나됨..하나님의 소유된 영광의 반사, 영광 공급의 통로 삼으심)의 문을 여시고 하나님자신의 모든 것을 (믿음을 통해) 누리도록 하심으로 평강안으로 이끄심.....

@@긍휼을 통하여 체휼하시는 사랑(환난과 고난, 역경 중, 특히 죄인괴수의 자각가운데 전적으로 무력한 피조물로서 주의 도움없이 살 수 없음 호소할 때, 불쌍히 여겨 친히 아파하며 동감/동정/공감하사 동행/인도하며 일으켜 세우심으로 은총 누림안에 머물도록 하심)으로 평강안으로 이끄심.....하나님의 [불쌍히 여기시는 사랑은 자비mercy와 긍휼compassion로 나타남]자비는 십자가대속사건으로 꽃을 피우고 주님말씀 믿고 영접함 통해 자기를 열어드린 이마다 새로운 창조안의 자녀로 삼으심의 은혜를 베푸심!!....은혜를 온전히 이루는 사랑은 하나님의 체휼하시는=오래참으시며 용서하시고 도와 일으키시는 사랑, 인자/긍휼임) 

@@평강(임마누엘하나님이 반석-방패-산성/요새-목자 되심 믿고 붙듦으로 인해 조성된 생명의 번성번영창대케 됨, 그것을 통해 생육-번성-충만-정복/다스림의 근원이신 주님 발견하고 그안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발견하여 동행하며, 주뜻 안에 하나되어 살아감)....이 평강으로 인해 참된 형통, 곧 하나님의 지고지선의 진복의 실제의 어떠함이 나타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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