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09.01.25 작성자 : 양시영
제   목 : 시119-생명의 성령의 법/죄와 사망의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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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모든 증거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

...[계명-율례-법도-판단, 곧 근원적 사랑과 생명 충만한 Q의 모든 것인 명령과 규례...JC십자가부활승천-HS내주하심으로 온전/완전/순전케 하신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 기록된 말씀 + 즉각적인 말씀들..

....하나님의 뜻과 어떠하심(성품)-능력-기념이름 그대로 반영하는 (지혜의) 모든 약속/언약말씀의 총체]..

....추구(사모/사랑/간구)함.  = 기쁨과 즐거움 삼음,  + 믿음-소망-인내, 붙들고-묵상-가르침 깨닫고, 기억/새김/충만/변화(노래-찬송), + 주이름부름-누림-인도하심 순복[예비/공급/구원-도움-인도-보호-돌파-이김과 극복, 지족, 평강]

@@@HS과 하나되라

... Q말씀[완전한 방어/공격 겸용의 영적 무장, 동시에 영원한 참생명 하나님의 모든 것]으로 사는 소명과 사명의 영적참자아를 대적하는 모든 극악무도 인식분별대적, 극복하라

== 육신(죄성)-세상(악인)-사탄마귀 == 공격들 [미혹(오해착각)/참소...유혹/조롱/비아냥...핍박/박해/침노/탈취/살해]...선악진위 혼동케 하며 하나님 배역을 부추기기 위해기 위해 주어지는 고통환난역경들임을 자각하라, 회개하고 주와 하나됨으로써 끝까지 주안에 거하고 동행하며 머물라...하나님 말씀따라 JC이름으로 대적하라


<시119>
 행위가 온전하여 여호와의 율법을 따라 행하는 자들은 복이 있음이여
여호와의 증거들을 지키고 전심으로 여호와를 구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참으로 그들은 불의를 행하지 아니하고 주의 도를 행하는도다
주께서 명령하사 주의 법도를 잘 지키게 하셨나이다
내 길을 굳게 정하사 주의 율례를 지키게 하소서
  
  내가 주의 모든 계명에 주의할 때에는 부끄럽지 아니하리이다
내가 주의 의로운 판단을 배울 때에는 정직한 마음으로 주께 감사하리이다
내가 주의 율례들을 지키오리니 나를 아주 버리지 마옵소서
청년이 무엇으로 그의 행실을 깨끗하게 하리이까 주의 말씀만 지킬 따름이니이다
내가 전심으로 주를 찾았사오니 주의 계명에서 떠나지 말게 하소서
  
  내가 주께 범죄하지 아니하려 하여 주의 말씀을 내 마음에 두었나이다
찬송을 받으실 주 여호와여 주의 율례들을 내게 가르치소서
주의 입의 모든 규례들을 나의 입술로 선포하였으며
내가 모든 재물을 즐거워함 같이 주의 증거들의 도를 즐거워하였나이다
내가 주의 법도들을 작은 소리로 읊조리며 주의 길들에 주의하며
  
  주의 율례들을 즐거워하며 주의 말씀을 잊지 아니하리이다
주의 종을 후대하여 살게 하소서 그리하시면 주의 말씀을 지키리이다
내 눈을 열어서 주의 율법에서 놀라운 것을 보게 하소서
나는 땅에서 나그네가 되었사오니 주의 계명들을 내게 숨기지 마소서
주의 규례들을 항상 사모함으로 내 마음이 상하나이다
  
  교만하여 저주를 받으며 주의 계명들에서 떠나는 자들을 주께서 꾸짖으셨나이다
내가 주의 교훈들을 지켰사오니 비방과 멸시를 내게서 떠나게 하소서
고관들도 앉아서 나를 비방하였사오나 주의 종은 주의 율례들을 작은 소리로 읊조렸나이다
주의 증거들은 나의 즐거움이요 나의 충고자니이다
내 영혼이 진토에 붙었사오니 주의 말씀대로 나를 살아나게 하소서
  
  내가 나의 행위를 아뢰매 주께서 내게 응답하셨사오니 주의 율례들을 내게 가르치소서
나에게 주의 법도들의 길을 깨닫게 하여 주소서 그리하시면 내가 주의 기이한 일들을 작은 소리로 읊조리리이다
나의 영혼이 눌림으로 말미암아 녹사오니 주의 말씀대로 나를 세우소서
거짓 행위를 내게서 떠나게 하시고 주의 법을 내게 은혜로이 베푸소서
내가 성실한 길을 택하고 주의 규례들을 내 앞에 두었나이다
  
  내가 주의 증거들에 매달렸사오니 여호와여 내가 수치를 당하지 말게 하소서
주께서 내 마음을 넓히시면 내가 주의 계명들의 길로 달려가리이다
여호와여 주의 율례들의 도를 내게 가르치소서 내가 끝까지 지키리이다
나로 하여금 깨닫게 하여 주소서 내가 주의 법을 준행하며 전심으로 지키리이다
나로 하여금 주의 계명들의 길로 행하게 하소서 내가 이를 즐거워함이니이다
  
  내 마음을 주의 증거들에게 향하게 하시고 탐욕으로 향하지 말게 하소서
내 눈을 돌이켜 허탄한 것을 보지 말게 하시고 주의 길에서 나를 살아나게 하소서
주를 경외하게 하는 주의 말씀을 주의 종에게 세우소서
내가 두려워하는 비방을 내게서 떠나게 하소서 주의 규례들은 선하심이니이다
내가 주의 법도들을 사모하였사오니 주의 의로 나를 살아나게 하소서
  
  여호와여 주의 말씀대로 주의 인자하심과 주의 구원을 내게 임하게 하소서
그리하시면 내가 나를 비방하는 자들에게 대답할 말이 있사오리니 내가 주의 말씀을 의지함이니이다
진리의 말씀이 내 입에서 조금도 떠나지 말게 하소서 내가 주의 규례를 바랐음이니이다
내가 주의 율법을 항상 지키리이다 영원히 지키리이다
내가 주의 법도들을 구하였사오니 자유롭게 걸어갈 것이오며
  
  또 왕들 앞에서 주의 교훈들을 말할 때에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겠사오며
내가 사랑하는 주의 계명들을 스스로 즐거워하며
또 내가 사랑하는 주의 계명들을 향하여 내 손을 들고 주의 율례들을 작은 소리로 읊조리리이다
주의 종에게 하신 말씀을 기억하소서 주께서 내게 소망을 가지게 하셨나이다
이 말씀은 나의 고난 중의 위로라 주의 말씀이 나를 살리셨기 때문이니이다
  
  교만한 자들이 나를 심히 조롱하였어도 나는 주의 법을 떠나지 아니하였나이다
여호와여 주의 옛 규례들을 내가 기억하고 스스로 위로하였나이다
주의 율법을 버린 악인들로 말미암아 내가 맹렬한 분노에 사로잡혔나이다
내가 나그네 된 집에서 주의 율례들이 나의 노래가 되었나이다
여호와여 내가 밤에 주의 이름을 기억하고 주의 법을 지켰나이다
  
  내 소유는 이것이니 곧 주의 법도들을 지킨 것이니이다
여호와는 나의 분깃이시니 나는 주의 말씀을 지키리라 하였나이다
내가 전심으로 주께 간구하였사오니 주의 말씀대로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내가 내 행위를 생각하고 주의 증거들을 향하여 내 발길을 돌이켰사오며
주의 계명들을 지키기에 신속히 하고 지체하지 아니하였나이다
  
  악인들의 줄이 내게 두루 얽혔을지라도 나는 주의 법을 잊지 아니하였나이다
내가 주의 의로운 규례들로 말미암아 밤중에 일어나 주께 감사하리이다
나는 주를 경외하는 모든 자들과 주의 법도들을 지키는 자들의 친구라
여호와여 주의 인자하심이 땅에 충만하였사오니 주의 율례들로 나를 가르치소서
여호와여 주의 말씀대로 주의 종을 선대하셨나이다
  
  내가 주의 계명들을 믿었사오니 좋은 명철과 지식을 내게 가르치소서
고난 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
주는 선하사 선을 행하시오니 주의 율례들로 나를 가르치소서
교만한 자들이 거짓을 지어 나를 치려 하였사오나 나는 전심으로 주의 법도들을 지키리이다
그들의 마음은 살져서 기름덩이 같으나 나는 주의 법을 즐거워하나이다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
주의 입의 법이 내게는 천천 금은보다 좋으니이다
주의 손이 나를 만들고 세우셨사오니 내가 깨달아 주의 계명들을 배우게 하소서
주를 경외하는 자들이 나를 보고 기뻐하는 것은 내가 주의 말씀을 바라는 까닭이니이다
여호와여 내가 알거니와 주의 심판은 의로우시고 주께서 나를 괴롭게 하심은 성실하심 때문이니이다
  
  구하오니 주의 종에게 하신 말씀대로 주의 인자하심이 나의 위안이 되게 하시며
주의 긍휼히 여기심이 내게 임하사 내가 살게 하소서 주의 법은 나의 즐거움이니이다
교만한 자들이 거짓으로 나를 엎드러뜨렸으니 그들이 수치를 당하게 하소서 나는 주의 법도들을 작은 소리로 읊조리리이다
주를 경외하는 자들이 내게 돌아오게 하소서 그리하시면 그들이 주의 증거들을 알리이다
내 마음으로 주의 율례들에 완전하게 하사 내가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게 하소서
  
  나의 영혼이 주의 구원을 사모하기에 피곤하오나 나는 주의 말씀을 바라나이다
나의 말이 주께서 언제나 나를 안위하실까 하면서 내 눈이 주의 말씀을 바라기에 피곤하니이다
내가 연기 속의 가죽 부대 같이 되었으나 주의 율례들을 잊지 아니하나이다
주의 종의 날이 얼마나 되나이까 나를 핍박하는 자들을 주께서 언제나 심판하시리이까
주의 법을 따르지 아니하는 교만한 자들이 나를 해하려고 웅덩이를 팠나이다
  
  주의 모든 계명들은 신실하니이다 그들이 이유 없이 나를 핍박하오니 나를 도우소서
그들이 나를 세상에서 거의 멸하였으나 나는 주의 법도들을 버리지 아니하였사오니
주의 인자하심을 따라 나를 살아나게 하소서 그리하시면 주의 입의 교훈들을 내가 지키리이다
여호와여 주의 말씀은 영원히 하늘에 굳게 섰사오며
주의 성실하심은 대대에 이르나이다 주께서 땅을 세우셨으므로 땅이 항상 있사오니
  
  천지가 주의 규례들대로 오늘까지 있음은 만물이 주의 종이 된 까닭이니이다
주의 법이 나의 즐거움이 되지 아니하였더면 내가 내 고난 중에 멸망하였으리이다
내가 주의 법도들을 영원히 잊지 아니하오니 주께서 이것들 때문에 나를 살게 하심이니이다
나는 주의 것이오니 나를 구원하소서 내가 주의 법도들만을 찾았나이다
악인들이 나를 멸하려고 엿보오나 나는 주의 증거들만을 생각하겠나이다
  
  내가 보니 모든 완전한 것이 다 끝이 있어도 주의 계명들은 심히 넓으니이다
내가 주의 법을 어찌 그리 사랑하는지요 내가 그것을 종일 작은 소리로 읊조리나이다
주의 계명들이 항상 나와 함께 하므로 그것들이 나를 원수보다 지혜롭게 하나이다
내가 주의 증거들을 늘 읊조리므로 나의 명철함이 나의 모든 스승보다 나으며
주의 법도들을 지키므로 나의 명철함이 노인보다 나으니이다
  
  내가 주의 말씀을 지키려고 발을 금하여 모든 악한 길로 가지 아니하였사오며
주께서 나를 가르치셨으므로 내가 주의 규례들에서 떠나지 아니하였나이다
주의 말씀의 맛이 내게 어찌 그리 단지요 내 입에 꿀보다 더 다니이다
주의 법도들로 말미암아 내가 명철하게 되었으므로 모든 거짓 행위를 미워하나이다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주의 의로운 규례들을 지키기로 맹세하고 굳게 정하였나이다
나의 고난이 매우 심하오니 여호와여 주의 말씀대로 나를 살아나게 하소서
여호와여 구하오니 내 입이 드리는 자원제물을 받으시고 주의 공의를 내게 가르치소서
나의 생명이 항상 위기에 있사오나 나는 주의 법을 잊지 아니하나이다
악인들이 나를 해하려고 올무를 놓았사오나 나는 주의 법도들에서 떠나지 아니하였나이다
  
  주의 증거들로 내가 영원히 나의 기업을 삼았사오니 이는 내 마음의 즐거움이 됨이니이다
내가 주의 율례들을 영원히 행하려고 내 마음을 기울였나이다
내가 두 마음 품는 자들을 미워하고 주의 법을 사랑하나이다
주는 나의 은신처요 방패시라 내가 주의 말씀을 바라나이다
너희 행악자들이여 나를 떠날지어다 나는 내 하나님의 계명들을 지키리로다
  
  주의 말씀대로 나를 붙들어 살게 하시고 내 소망이 부끄럽지 않게 하소서
나를 붙드소서 그리하시면 내가 구원을 얻고 주의 율례들에 항상 주의하리이다

주의 율례들에서 떠나는 자는 주께서 다 멸시하셨으니 그들의 속임수는 허무함이니이다
주께서 세상의 모든 악인들을 찌꺼기 같이 버리시니 그러므로 내가 주의 증거들을 사랑하나이다
내 육체가 주를 두려워함으로 떨며 내가 또 주의 심판을 두려워하나이다
  
  내가 정의와 공의를 행하였사오니 나를 박해하는 자들에게 나를 넘기지 마옵소서
주의 종을 보증하사 복을 얻게 하시고 교만한 자들이 나를 박해하지 못하게 하소서
내 눈이 주의 구원과 주의 의로운 말씀을 사모하기에 피곤하니이다
주의 인자하심대로 주의 종에게 행하사 내게 주의 율례들을 가르치소서
나는 주의 종이오니 나를 깨닫게 하사 주의 증거들을 알게 하소서

  
  그들이 주의 법을 폐하였사오니 지금은 여호와께서 일하실 때니이다
그러므로 내가 주의 계명들을 금 곧 순금보다 더 사랑하나이다
그러므로 내가 범사에 모든 주의 법도들을 바르게 여기고 모든 거짓 행위를 미워하나이다
주의 증거들은 놀라우므로 내 영혼이 이를 지키나이다
주의 말씀을 열면 빛이 비치어 우둔한 사람들을 깨닫게 하나이다
  
  내가 주의 계명들을 사모하므로 내가 입을 열고 헐떡였나이다
주의 이름을 사랑하는 자들에게 베푸시던 대로 내게 돌이키사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나의 발걸음을 주의 말씀에 굳게 세우시고 어떤 죄악도 나를 주관하지 못하게 하소서

사람의 박해에서 나를 구원하소서 그리하시면 내가 주의 법도들을 지키리이다
주의 얼굴을 주의 종에게 비추시고 주의 율례로 나를 가르치소서
  
  그들이 주의 법을 지키지 아니하므로 내 눈물이 시냇물 같이 흐르나이다
여호와여 주는 의로우시고 주의 판단은 옳으니이다
주께서 명령하신 증거들은 의롭고 지극히 성실하니이다
내 대적들이 주의 말씀을 잊어버렸으므로 내 열정이 나를 삼켰나이다
주의 말씀이 심히 순수하므로 주의 종이 이를 사랑하나이다

  
  내가 미천하여 멸시를 당하나 주의 법도를 잊지 아니하였나이다
주의 의는 영원한 의요 주의 율법은 진리로소이다
환난과 우환이 내게 미쳤으나 주의 계명은 나의 즐거움이니이다
주의 증거들은 영원히 의로우시니 나로 하여금 깨닫게 하사 살게 하소서
여호와여 내가 전심으로 부르짖었사오니 내게 응답하소서 내가 주의 교훈들을 지키리이다
  
  내가 주께 부르짖었사오니 나를 구원하소서 내가 주의 증거들을 지키리이다
내가 날이 밝기 전에 부르짖으며 주의 말씀을 바랐사오며
주의 말씀을 조용히 읊조리려고 내가 새벽녘에 눈을 떴나이다
주의 인자하심을 따라 내 소리를 들으소서 여호와여 주의 규례들을 따라 나를 살리소서
악을 따르는 자들이 가까이 왔사오니 그들은 주의 법에서 머니이다
  
  여호와여 주께서 가까이 계시오니 주의 모든 계명들은 진리니이다
내가 전부터 주의 증거들을 알고 있었으므로 주께서 영원히 세우신 것인 줄을 알았나이다
나의 고난을 보시고 나를 건지소서 내가 주의 율법을 잊지 아니함이니이다
주께서 나를 변호하시고 나를 구하사 주의 말씀대로 나를 살리소서
구원이 악인들에게서 멀어짐은 그들이 주의 율례들을 구하지 아니함이니이다
  
  여호와여 주의 긍휼이 많으오니 주의 규례들에 따라 나를 살리소서
나를 핍박하는 자들과 나의 대적들이 많으나 나는 주의 증거들에서 떠나지 아니하였나이다
주의 말씀을 지키지 아니하는 거짓된 자들을 내가 보고 슬퍼하였나이다
내가 주의 법도들을 사랑함을 보옵소서 여호와여 주의 인자하심을 따라 나를 살리소서
주의 말씀의 강령은 진리이오니 주의 의로운 모든 규례들은 영원하리이다
  
  고관들이 거짓으로 나를 핍박하오나 나의 마음은 주의 말씀만 경외하나이다
사람이 많은 탈취물을 얻은 것처럼 나는 주의 말씀을 즐거워하나이다
나는 거짓을 미워하며 싫어하고 주의 율법을 사랑하나이다
주의 의로운 규례들로 말미암아 내가 하루 일곱 번씩 주를 찬양하나이다
주의 법을 사랑하는 자에게는 큰 평안이 있으니 그들에게 장애물이 없으리이다

  
  여호와여 내가 주의 구원을 바라며 주의 계명들을 행하였나이다
내 영혼이 주의 증거들을 지켰사오며 내가 이를 지극히 사랑하나이다
내가 주의 법도들과 증거들을 지켰사오니 나의 모든 행위가 주 앞에 있음이니이다
여호와여 나의 부르짖음이 주의 앞에 이르게 하시고 주의 말씀대로 나를 깨닫게 하소서
나의 간구가 주의 앞에 이르게 하시고 주의 말씀대로 나를 건지소서
  
  주께서 율례를 내게 가르치시므로 내 입술이 주를 찬양하리이다
주의 모든 계명들이 의로우므로 내 혀가 주의 말씀을 노래하리이다
내가 주의 법도들을 택하였사오니 주의 손이 항상 나의 도움이 되게 하소서
여호와여 내가 주의 구원을 사모하였사오며 주의 율법을 즐거워하나이다
내 영혼을 살게 하소서 그리하시면 주를 찬송하리이다 주의 규례들이 나를 돕게 하소서
  
  잃은 양 같이 내가 방황하오니 주의 종을 찾으소서 내가 주의 계명들을 잊지 아니함이니이다

<마귀의 정죄에서 벗어나게 하며 죄의 유혹을 이기는, 보혈의 능력- 생명의 성령의 법>

#롬7:23-25 8:1-4에서<... 내 속 사람(영혼)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타락한 육신에 대한 애착) 내 마음의(=영과 지성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 (그러나 대속의 보혈을 쏟아 십자가에 죽으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생명의 성령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참되게 심령과)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하나님자녀로 거듭난 사람)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하나님가족에게 적용되는 은혜와 사랑의 법) (거듭나지 못한 옛사람에게 적용되는)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를 인하여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곧, 죄없는 아들의 육신에 모든 인류의 죄를 전가시켜서 십자가죽음을 통과케 하심으로써 죄-마귀 자체를 죽이심) 육신을 좇지 않고 (마음과 생각의 지향을 성령과 그분의 일에 두어 그분의 주되심을 인정하여 순종함으로써 지체(=육신의 정과 욕심)와 자아를 죽이며) 그 영을 좇아 행하는 우리에게 (죄의 삯은 사망, 곧 죄인은 죽어야만 의롭게 되는)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오직 하나님의 자녀로 새롭게 거듭난, 순종하는 내 영이 하나로 연합되어 생명으로 거기에 접붙인 바 된 주 성령과 성령의 일에 마음의 생각을 지향할 때, 곧 <내가 아니라 주님이십니다. 내가 무엇을 어떻게 하기 원하십니까>라고 겸손히 기다리고 그 인도에 따를 때, 바로 그 내주하시는 그리스도의 실재인 생명의 성령만이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 >추구함을 제어할 수 있게 한다. 이 능력이 없이는 참된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수 없다. 갈5:16에서는 <그러므로 성령을 좇아(=성령의 일 곧, 성령이 바라시는 것을 생각하고 그 인도를 따라 순종하여)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육신의 정과 욕심, 곧 육신의 일) 이루지 아니하리라>고 하신다.

 <생명의 성령의 법>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롬 8:1-2)
-로마서 8:1에 있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다 하는 이 말씀이야말로 성경이 설명하는 복음, 구원에 관한 설명에 핵심이 되는 시각입니다.
구원을 복과 기쁨으로 정의하기 전에 정죄라는 시각에서 정의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이 1-2절의 내용은 적지 않은 논란이 되고 있는 본문입니다. 왜냐하면 2절에 있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무엇이며, 죄와 사망의 법은 무엇인가 하는 것 때문입니다. 특별히 이것이 앞에 있었던 7: 22 이하의 말씀 때문에 깊이 오해되는 구절입니다. “내 속 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 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롬 7:22-24)라는 선언과 8:2의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를 잘못 연결하여 틀린 답을 만들어 냅니다. 왜냐하면 7: 22 이하에 있는 신앙의 수준과 8장에 들어와서 보는 신앙의 수준은 다른 것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신자들이 죄와 거룩 사이에서 갈등을 하고, 의와 거룩을 항해 진심은 있지만 마음과 달리 죄를 짓고 실패하는 현실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그런 실패들로부터 어떻게 나올 것이냐 하는 소원이 신자에게는 있는 법입니다. 기도하고 노력하고 여러 가지 말씀을 따라서 어떤 방법이 있겠는가 하고 연구합니다. 바로 8장 2절이 문제를 해결하는 하나의 해결책이 아니겠는가라는 해석과 주장이 널리 퍼져 있습니다. 즉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우리를 해방한다는 이 선언이야말로 우리 속에서 일어나는 죄악된 것과 사망, 모든 것으로부터 우리를 넉넉히 이기게 하는 성령의 감화시키심이라고 주장합니다. 이것을 가리켜서 완전 성화라고 하며 신자들이 살아 생저에 완전 성화가 가능한가라는 문제까지 야기됩니다. 전통적이고 보수적인 시각에서는 완전 성화는 죽기 전에는 일어나지 않는다고 보는 것이 정설입니다. 그러나 이 구절을 근거로 해서 어떤 이들은 완전 성화를 주장합니다. 여기에 있는 생명과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을 온전히 다 해결하는 일이 있을 수 있다고 믿고 그것을 주장합니다. 때문에 7장에 있었던 신앙의 수준과 8장에 있었던 신앙의 수준은 다른 것이며, 구원은 얻었지만 완전한 성화가 되기 위해서는 ‘제 2의 축복이 필요하다’라는 주장들이 실제로 있습니다.
-그러나 로마서 8장은 성화를 다루고 있지 않습니다. 로마서 8장은 구원 자체를 다룰 때 구원을 여러 가지 시각에서 확인하는 관점입니다. 만일 8: 2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다는 이 말이 완전 성화를 가리키는 것이라면 로마서 8: 12, 13을 해결할 길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빚진 자로되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라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라”(롬 8:12-13), 8장 2절이 완전 성화에 관한 선언이라면 그 뒤에 성화를 향한 말이 나올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간단하게 본문 자체를 놓고 보아도 성격 자체 내용에서 완전 성화를 지시하고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우리는 이것이 완전 성화를 가리키지 않는다는 시점에서 더 큰 문제를 봅니다.
-그럼 죄와 사망의 법은 무엇입니까? 이 8장 2절을 완전 성화로 보는 가장 큰 오해의 발단은 죄와 사망의 법을 우리 인간의 내부로부터 끊임없이 솟구쳐 나오는 죄를 향한 욕망, 죄를 지으려는 욕심으로 보고 있는 것입니다. 8: 2의 죄와 사망의 법은 우리 마음속에 있는 죄의 본능도, 죄를 향한 욕심도 아닙니다. 죄와 사망의 법은 오히려 율법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이것은 대단히 어렵고 틀리기 쉬운 부분이라는 의미에서 신자들은 자기의 믿고 얻은바 구원을 잘 정리해야 합니다. 율법이 어떻게 죄와 사망의 법이라는 명칭으로 쓰여질 수 있느냐 하는 것은 우리가 다시 한 번 구원의 성격과 구원에서 사용된 모든 설명들을 되짚어 보면 알 수 있습니다. 7:7에서 율법을 설명할 때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하리요? 율법이 죄냐 그럴 수 없느니라. 율법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내가 죄를 알지 못하였으니 곧 율법이 탐내지 말라 하지 아니하였더라면 내가 탐심을 알지 못하였으리라 그러나 죄가 기회를 타서 계명으로 말미암아 내 속에서 각양 탐심을 이루었나니 이는 법이 없으면 죄가 죽은 것임이니라 전에 법을 깨닫지 못할 때에는 내가 살았더니 계명에 이르매 죄는 살아나고 나는 죽었도다.”(롬 7:7-9).
-율법이 죄냐? 이렇게 물을 수 있다는 것을 놀랍게 생각하셔야 합니다. 율법은 의와 거룩을 가르치기 위해 왔고 죄가 무엇인지 지적하기 위해서 온 것입니다. 그러나 죄가 무엇인지 지적만 할 뿐, 모든 율법은 죄를 면하게 하거나 죄를 안 짓게 하는 가능을 가진 것은 아닙니다. 곧 율법은 ‘이것이 죄다, 이것이 의와 거룩이다’를 가르치지만 그것을 해야 하는 힘과 책임은 나 자신에게 있습니다. 우리가 죄의 노예로 있고 죄의 권세 아래 놓여 있을 때, 율법이 와서 죄를 가르쳐도 스스로 죄의 지배를 벗어날 수 없는 한, 율법은 우리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음을 앞의 설명에서 확인했습니다. 로마서 8: 3은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 율법 자체는 의롭고 선한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육신이 약하고 능력이 없기 때문에 우리가 죄의 권세를 벗어날 힘이 없습니다. 때문에 율법이 죄를 짓지 말라 하여도, 우리가 하는 짓이 죄라고 가르쳐 주어도 그것을 거부할 힘이 없는 것입니다. 율법은 선하지만 육신이 연약하기 때문에, 그리고 육신이 힘이 없기 때문에, 우리가 죄의 지배를 벗어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율법의 거룩함을 실천해 내지 못합니다. 그래서 율법은 그 자체로 죄는 아님에도 불구하고 “생명에 이르게 할 그 계명이 내게 대하여 도리어 사망에 이르게 하는 것이 되었도다.”(롬 7: 10)인 것입니다. 율법은 거룩하고 생명을 가르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죄의 권세 아래 있기 때문에, 죄를 지적하면서 의와 거룩과 생명을 가르치고 이것들을 하라고 합니다. 우리 안에 있는 죄의 욕망과 우리가 가지고 있는 죄를 지적하는 율법과의 차이입니다. 즉 내가 죄를 짓고 싶은 욕심 속에 사로잡혀 있어도 이것이 죄라고 법적인 어떤 기준이 선포되어 있지 않으면 정죄되지 않습니다. 율법이 죄와 사망의 법이 되는 이유는 우리가 행하는 것이 죄라는 선언을 받고도 그것을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율법이 없고, 그 법에 기준이 없었다면 내가 한 죄가 정죄되지 않을 것입니다. 죄가 법적인 어떤 범법 행위로써 정의되고 처벌을 받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율법이 이것을 죄라고 지적한 후 죄를 지으면 반드시 형벌을 받는다고 합니다. 따라서 뒤에 그 죄를 계속하면 우리는 법적인 근거에 의하여 판결을 받고 정죄됩니다. 율법이 지시하는 것을 따를 수 없는 우리에게 법이 주어지자 우리는 그것들을 사망의 판결로 객관적인 처벌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율법은 죄와 사망의 법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성경에서 여러 번 강조하는 부분입니다.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의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고전 15: 55-56).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는 묘한 표현입니다. 이 표현은, 죄 값은 사망이라는 법적 근거에 의해서 죄의 힘이 있다는 것입니다. 죄는 그 죄를 지은 모든 사람에게 사망이라는 형벌을 내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망이라는 형벌을 내릴 수 있는 근거는 법적인 것에 의해서입니다. 죄를 지으면 죽는다는 하나님의 선언에 의해서입니다. 죄가 힘을 발하는 것은 죄가 사망이라는 무시무시한 형벌을 내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즉 힘을 가지는데, 그 힘을 발휘하는 죄의 권능은 율법인 것입니다. 율법을 근거로, 우리가 죄를 지으면 사망이라고 하는 말은 죄에다 힘을 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망에 이르는 죄를 짓지 않도록 하고자 함입니다. 죄를 지으면 죽는다고 경고하려고 준 법임에도 불구하고 죄를 짓지 않을 힘이 없는 한, 율법은 우리에게 죄와 사망의 법일 수밖에 없습니다.
-모세에게 주었던 율법과 이제 그리스도 예수로 말미암아 주었던 복음을 비교하는 다음 대목입니다. “저가 또 우리로 새 언약의 일꾼 되기에 만족케 하셨으니 의문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영으로 함이니 의문의 직분도 영광이 있어 이스라엘 자손들이 모세의 얼굴이 없어질 영광을 인하여 그 얼굴을 주목하지 못하였거든 하물며 영의 직분이 더욱 영광이 있지 아니하겠느냐”(고후 3:6-8).
6절에 있는 말씀에는 ‘새 언약의 일꾼’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럼 옛 언약은 ‘의문으로 한 것’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의문은 글로 쓴 것입니다. 지금 것은 영으로 한 것입니다. 의문은 죽이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의문이라는 것은 대표적으로 모세가 시내산에서 받아온 십계명을 이야기하고, 또 폭넓게 율법 전체를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그 손으로 돌판에 써서 주었던 것이 십계명이요, 친히 모세에게 가르친 것이 율법들입니다. 그런데 ‘율법은 죽이는 것’이라고 합니다. 율법 내용 자체가 ‘죽이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지켜야 하는데 그것을 지킬 힘이 없으므로 결국 죽음을 초래했기 때문에 ‘죽이는 것’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7절에서 돌에 써서 새긴 죽게 하는 의문의 직분, 즉 죽게 하는 직분이라고 합니다. 9절, “정죄의 직분도 영광이 있은즉 의의 직분은 영광이 더욱 있으리라” 정죄의 직분, 죽게 하는 직분, 이제 돌아와서 지금 로마서 8:2절을 보십시오. 죄와 사망의 법, 죽게 하는 직분, 정죄하는 직분 정확히 같은 것 아닙니까? 그래서 우리는 결국 죄와 사망의 법이라는 것은 율법을 가리키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 마음속에서부터 우러나는 본성적인 죄를 향한 우리의 욕망을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다.
-로마서 8장이 다루는 것은 우리의 감정 상태가 아니고 주관적인 우리의 위치 또한 아닙니다. 구원이 가져다 준 객관적인 지위를 설명합니다. 즉 앞에 있었던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다’를 설명하는 것입니다. 계속하여 2절에 ‘이는’이라고 표현했는데, 이것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다는 선언입니다. ‘율법에서 너를 해방하였기 때문입니다.’
-무슨 뜻입니까? 우리는 율법의 기준, 율법의 요구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지 않습니다. 복음은 처음부터 이렇게 시작되었던 것을 기억하십시오. 처음부터 복음을 설명할 때 율법을 왜 끌어들였는가를 다시 한 번 봅시다. “우리가 알거니와 무릇 율법이 말하는 바는 율법 아래 있는 자들에게 말하는 것이니 이는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게 하려 함이니라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롬 3:19-20).
-율법은 죄를 우리에게 가르쳐 줍니다. ‘이것은 죄다’, ‘이것은 하면 안 된다’, 너희는 이런 의와 이런 거룩을 좇아야 한다고 가르치지만 그것을 지킬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자는 없습니다. 우리들의 행위로 율법을 지켜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는 없습니다.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롬 3:21). 율법의 기준이 아닙니다.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는 차별이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구원, 율법에 의한 구원이 아니고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롬 3: 24).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얻은 것입니다. 율법이라는 것은 우리에게 기준을 세웁니다. 그 기준에 모자라면 형벌이고, 그 기준을 넘어서면 상입니다. 우리는 이 기준에 넘어설 수 없었습니다. 우리 중 그 누구도 율법의 행위로 그 앞에 의롭다 함을 얻을 자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구원은 우리에게 이 기준을 묻지 않고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주는 선물로 그의 자녀가 되게 했습니다.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일 뿐 결코 우리에게 잘잘못을 따지는 법칙이 아닙니다. 무엇을 하라는 기준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은 ‘너는 내 자녀다’, ‘너는 내 아들이고 내 딸이다’라고 불러내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자기 소유로 불러내셨습니다. 죄인을 어떻게 하나님과 화목 시킬 수 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에게 내 죄를 전가시켜 내 대신 죽게 하시고 그의 피로 깨끗하게 하사 자녀로 부르신 것, 곧 구원입니다.
-구원에 관한 이야기에서 가장 분명하게 알아야 되는 것은 ‘우리는 더 이상 율법적 차원에서 취급되지 않는 자다’라는 것입니다. 잘잘못으로 취급되지 않음은 구원 자체도 그렇고 성화도 그렇습니다. 이것이 구원의 핵심입니다. 그래서 로마서에서 거듭 우리에게 가르치려고 하는 것은 ‘너희는 율법 아래 있지 않다’라는 것이었습니다. “죄가 너희를 주관치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음이니라”(롬 6:14). 왜 죄가 우리를 주관하지 못합니까? 우리는 법을 적용받지 않습니다. 법을 기준으로 해서 잘했느냐 못했느냐를 묻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고린도전서 15: 56에서 보았듯이 사망의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입니다. 죄가 힘을 발휘하기 위한 법적 근거가 율법입니다. 그러나 신자란 율법으로 다스림 받지 않는 자입니다. 죄와 사망의 법이 우리의 근거가 아니고ㅡ 기준이 아니고, 요구 조건이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으로 대접받는 자입니다. 생명의 성령의 법으로 대접받고 취급받는 자들입니다. 죄가 우리를 주관할 수 없습니다. 죄가 무슨 말을 하려면, 죄가 힘을 발휘할 법적 근거를 가져야 되는데 하나님이 우리에게 적용하시고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법은 사랑과 은혜의 법뿐입니다. 곧 율법이 풍선을 포함한<모든 물건은 땅에 떨어진다>는 중력의 법칙이라면 생명의 성령의 법은 예외적으로<공기보다 가벼운 헬륨가스를 풍선에 넣었을 때 그 풍선은 위로 뜬다>는 부력의 법칙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마치 하늘을 나는 새가 중력의 법칙에 대해 들었을 때<글쎄? 금시초문인데, 어쨓든 나는 그것을 넘어서 있어!!>라고 대답하듯이..
-이렇게 생각해 보십시오. 가정에서 자녀를 다루는 법과 회사에서 직원을 쓰는 법은 다릅니다. 회사에서는 직원에게 잘잘못과 능력을 요구해서 쓰기도 하고 처벌을 하기도 하고 혹은 내보낼 수 도 있지만 자녀에게는 그럴 수 없습니다. 자녀도 잘못했을 때에는 매를 들 수 있습니다. 그러나 관계를 단절할 법은 없습니다. “저걸 내가 왜 낳았던고” 때론 불평도 하지만, 결코 버리지 않는 법입니다. 그것이 바로 오늘 본문이 말하는 ‘생명의 성령의 법’ 속에 있다는 뜻입니다. 똑같은 이야기입니다. “이제는 우리가 얽매였던 것에 대하여 죽었으므로 율법에서 벗어났으니 이러므로 우리가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길 것이요 의문의 묵은 것으로 아니할지니라.”(롬 7:6). 영의 새로운 것, 생명의 성령의 법, 같은 맥락들인 것입니다. 의문의 묵은 것, 율법으로는 안한다는 말입니다. 죄와 사망의 법으로 섬기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더 이상 그것으로 취급받고 평가받는 위치에 우리는 서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성경이 이야기하는 구원과 성경이 이야기하는 복음에 대하여 늘 틀리는 이유는 아직도 정죄감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정죄감을 갖는다는 것은 우리의 구원과 성화를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를 법적 차원에서 따지는 것입니다. 결국 남남이라는 생각을 가진 탓입니다. 그러나 구원이란 하나님께서 우리의 아버지가 되기로 하신 것입니다. 아버지와 자녀와의 관계입니다. 우리는 냉랭한 법으로 관계되어 법에 의해서 관계가 호전되었다 멀어졌다 하는 그런 처지에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아버지시요, 우리를 지극히 사랑하는 분이라서 그 아들을 주시기까지 내 편에 서신 분이십니다. 이것이 생명의 성령의 법 아래 있다는 표현입니다. 그래서 모든 신자는 자기 자신을 정죄감에 내버려 두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입니다.
-“율법이 가입한 것은 범죄를 더하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 이는 죄가 사망 안에서 왕노릇 한 것같이 은혜도 또한 의로 말미암아 왕노릇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생에 이르게 하려 함이니라”(롬 5:20-21). 즉 로마서 8: 2이 오늘 우리에게 가르치려고 하는 것은 ‘죄와 사망의 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생명의 성령의 법’ 아래, 하나님의 은혜에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원래 죄 아래 있었기 때문에 죄가 사망 안에서 왕노릇했습니다. 죄를 벗어날 길이 없었고 우리 모두 사망을 벗어날 방법이 없었습니다. 우리는 죄인이었으므로 죄를 벗어날 힘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율법으로 취급하시지 않고 그의 은혜로 취급하는 관계를 맺으셨습니다. 이젠 우리는 법으로 따지지 않고 하나님의 사랑으로 따집니다. 옛날에 율법으로 취급을 받을 때에는 죄가 우리의 왕노릇을 했습니다. 왜냐하면 율법을 지키지 못하면 죄인이요, 죄인이면 사망의 형벌을 벗어날 길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으로 따지기로 했기 때문에 과거에 범법한 자가 이제는 안타까운 자로 바뀌었습니다. ‘안타까운 것’과 ‘범법한 것’과는 성격이 다릅니다. 왜냐하면 정죄에 이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그의 사랑과 은혜로 다스리십니다. 이것은 생명이 성령의 법 아래 있지 죄와 사망의 법 아래 있지 않다는 이야기입니다. 이것이 구원입니다.
-그래서 자녀됨을 이렇게 당연히 생각하셔도 됩니다. 그래야 복음이 제대로 전달될 것입니다. 신자가 거룩으로 부름을 받았는데 여전히 악한 행실을 계속하는 것은 미련한 짓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결단코 다시는 정죄되는 처지에는 가지 않습니다. 그래서 로마서 8장 2절을 이렇게 바꾸어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즉 우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것은 ‘생명의 성령의 법’의 통치를 받는다는 의미입니다.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라는 말은, 생명의 원리 또는 생명의 직분 또는 새 언약의 은혜 이런 것들 속에 있다는 말입니다. ‘죄와 사망의 법’ 속에 내가 있지 않다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구원이며 성경이 가르치는 신자의 위치입니다.
-비록 우리가 잘못을 했을지라도 부끄러워하거나 절망하지 않아야 합니다. 부끄럽기 짝이 없지만 포기하는 마음을 가져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은 절대 우리를 버리지 않습니다. 때문에 우리 자신도 우리를 버려서는 안 됩니다. 버리고 싶은 마음이 들 만큼 부끄러워하는 자세는 좋습니다. 그것이 성경이 가르치는 구원입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우리는 ‘생명의 성령의 법’ 아래와 은혜와 사랑 아래 있기 때문입니다. 이 말은 하나님께서 한 번 구원한 이상 신자의 지위와 운명이 취소되거나 바뀔 수 없음을 성경이 설명한 것입니다. 이것이 번복되지 않기 때문에 신자답게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결국 신자인 우리는 모두 하나님 앞에 갈 것이므로 근신하며 살아야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은혜를 감사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 부름을 받았고 이 복된 우리의 운명이 영원한 것임을 믿습니다. 그러므로 깨어 근신하며 경건을 연습하여 주의 자녀답게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구원을 이루게 하여 주옵소서. 자랑하게 하시되 성실하게 하시고, 근신하게 하시되 믿음 위에 굳게 선 마음으로 우리를 부르신 부름을 항하여 열심히 하루하루를 사는 성실한 신앙생활이 이어지게 하옵소서. 우리의 못난 것을 회개하되 절망하지 말게 하시고, 우리의 운명을 감사하되 하루하루를 인내함으로써 신자 된 도리를 다하는 저희들이 되게 하옵소서. 우리를 정죄할 것이 세상에 없는 줄을 알게 하시고 우리를 사랑하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신자된 것을 감사하며 기뻐하며 충성을 약속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롬8장3절의 해설

 로마서 8장 3절은 번역하기가 어렵고 이해하기도 또한 어렵다. 새 미국 표준 성경은, <이는 율법이 (죄를 이겨내도록 계도되기에는 완전히 절망적으로 타락한)육신으로 말미암아 (율법이)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셨나니 곧 자기 아들을 죄있는 육신의 모양 안에서 그리고 죄를 위한 제물로서 보내사 육신 안에서 죄를 정죄하시고> 라고 번역했다. 번역상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하셨나니}라는 단어를 덧붙였다. 율법으로는 불가능한 것을 하나님은 하셨다. 율법으로는 불가능하다는 것은 율법이 할 수 없음을 의미한다. 버클레이(Berkeley) 번역은, <이는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이 그의 아들을 죄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사 하셨고 죄로 인해 사람의 본성 안에 있는 죄를 정죄하셨다>고 말한다. 코니베어(Conybeare)는 이 구절을 <이는 (너무나 타락한 절망적인 육신때문에, 율법이 그를 도와 죄를 이기게 할 능력이 없으므로 율법으로는 불가능했던 일을) 하나님이 자기 아들을 죄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사 죄를 위하여 육신 안에서 죄를 정복하셨으니.>라고, 그는 [정죄했다]는 말 대신에 [정복했다]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웨스트(Wuest)는 그 구절을 <이는 죄 있는 본성으로 말미암아 연약했으므로 율법에게 불가능했던 것을 하나님은 자기 아들을 죄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사 죄에 관하여 죄있는 본성 안에 있는 죄를 정죄하셨나니> 라고 말한다. 이 번역은, 하나님이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사 죄에 관하여 죄 있는 본성 안에 있는 죄를 정죄하셨으니 이는 (몸이 죽어서든지 살아서든지 의롭게 되도록 하는 것이 율법의 본래 의도요, 요구이다--살아서는 불가능하기에 죄의 삯은 사망이라고 했다!) 율법의 의로운 요구가 우리 안에 성취를 가져다 주거나 우리 안에서 이루어지게 하기 위함임을 가리킨다.
-확대역 성경은, <이는 율법이 육신(즉 성령이 없는 사람의 본성)으로 인해 (그 능력이 상대적으로) 약하게 되어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셨으니, 자기 아들을 죄있는 육신의 모습으로 보내사 죄를 위한 제물로서 (주시고 그 아들에게 인류의 모든 죄를 전가시키시고 십자가에 죽게하사, 하나님은) 육신 안에 있는 죄를 정죄하셨다 -진압하고, 정복하고, 그 능력을 빼앗았다(그 희생 제물울 받은 모든 것 위에서)>. 이 번역 또한 율법이 할 수 없었던 것을 하나님이 하셨다고 말한다. 이 구절의 가장 좋은 번역은 다음과 같아야 한다. <이는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불가능하므로 하나님이 자기 아들을 죄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사 죄에 관하여 육신 안에서 정죄하시고.> 이 번역은 헬라어 본문에 아주 가깝다. 이것이 문법적으로 옳으며, 또한 아주 논리적이다. 생명의 영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나를 해방하였는데, 이는 충분한 이유가 있어서 하나님이 육신 안에서 죄를 정죄하셨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불가능하므로 라는 절에서 발견된다. 우리를 해방시키는 그러한 법이 있는 이유는 하나님이 죄를 정죄하셨기 때문이다.

1. 삼일 하나님
2절 이후의 롬8장 전체가 생명의 영의 법에 대한 완전한 정의이다. 사실상 이 정의는 삼일 하나님 -아버지, 아들, 영-이다. 2절에는 영이 있고, 3절에는 아들이 있고, 15절에는 아버지가 있다. 이 장에는 또한 이 셋이 하나라는 강한 지적이 있다. 9절부터 11절에 걸쳐 하나님의 영, 그리스도의 영,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일으키신 분의 영을 말한다. 이러한 용어들이 서로 바꿔 사용될 수 있으므로, 그것이 셋이 하나임을 강하게 지적한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영이고,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영이고, 그리스도의 영은 그리스도이다. 이처럼 여기에 삼일성이 있다.

2.우리 영 안에 계신 과정을 거친 삼일 하나님
더 나아가, 이 장에는 이 삼일 하나님 -아버지, 아들, 영-이, 아들이 성육신의 형태로 보내심을 받았기 때문에 성육신의 과정을 거쳤다는 분명한 지적이 있다. 이 장은 또한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일으키심을 언급하므로 십자가에 못박히심 또한 지적하거나 암시하고 있다. 또한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일으키신 분의 영을 말하므로 부활도 가리킨다. 더 나아가 이 장은 승천을 포함하는데, 3-4절에서 부활한 그리스도가 이제 하나님 우편에서 우리를 위해 중보기도하고 계시는 것이 언급되기 때문이다. 이 장은 또한 셋이 결국 우리 영 안에 거하는 내주하는 영이 되셨음을 지적한다. 또 과정을 거치신 후에 삼일 하나님이신 내주하는 영이 우리 영과 연합되었음을 가리킨다.그분은 우리 영과 연합되셨다. 10절은 그리스도가 당신 안에 있을 때 영이 생명이라고 말한다. 이는 바로 그리스도가 당신의 영 안에 계심을 가리킨다. 그런 다음 16절은 그 영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증거하신다고 말한다. 이것이 둘이 하나로 연합되었음을 의미한다. 우리가 어떻게 이 두 영이 연합되었다고 말할 수 있는가? 15절은, 너희가 아들의 명분의 영을 받았으므로 그 안에서 우리가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 고 말한다. 로마서는 우리가 부르짖는다고 말하고, 갈라디아서는 그 영이 부르짖는다고 말한다. 분명히 이들은 두 부르짖음이 아닌 하나의 부르짖음이다. 이 두 구절은 연합을 강하게 가리킨다. 그분의 부르짖음이 내 부르짖음이고 내 부르짖음이 그분의 부르짖음임을 의미한다. 내가 내 영 안에서 부르짖을 때, 그분도 부르짖는다. 그분과 내 영이 하나로 연합되어 있다.

3.세 하나님이 아님 - 오직 한분 삼위일체 하나님, 유일한 삼일하나님이시다.
다른 한편으로,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세 분리된 인격 -아버지, 아들, 성령-을 가진 삼일이신 하나님을 믿는 것 같다. 사실상 결국 궁극적이고도 최종적으로 그들은 세 하나님의 오류에 빠질 우려가 있다. 이것이 삼신론이다. 사십 년 이상이나 우리는 삼일성에 관한 진리를 위해 싸워 왔다. 그들 중 많은이가 사실상 삼신론을 믿고 있는 반면에 우리는 삼일성을 믿는다. 우리는 아들이 아버지요 아들이 또한 성령임을 믿는다.  하나님이 영이시므로 아버지, 아들, 성령은 하나이다. 로마서8장은 하나님이 삼일이심을 계시한다. 그러나 이들은 세 하나님이 아닌 한 하나님이시다.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의 하나님은 세 하나님으로서 세 분리된 인격 안에 있는 삼일이시다. 그들은 삼일 하나님이 십자가죽음-부활-승천의 <과정>을 거치셨음을 모른다. 우리가 삼일성에 대해 가르쳐온 것이 약간의 전통적인 누룩도 없는 절대적으로 순수한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이다. 성경의 계시에 따라 아버지, 아들, 성령은 세 하나님으로 분리된 것이 아니라 한 분-유일한 하나님이시다. 그러한 삼일 하나님에 대한 완전하고 온전한 계시는 성육신과 그분의 생명주는 영 되심의 과정을 포함하며 또한 내주하심을 포함한다.  요한복음에 보면 승천하신 아들은 아버지와 함께 계신 성령을 아버지께 요청하여 믿는 이에게 보내주시는 분으로 묘사된다.

4.생명의 네 층
로마서 8장에는 생명의 네 층이 있다. 이것은 하나님의 성령이 생명임을 의미한다. 그런 다음 그리스도가 우리 영 안에 들어오신 후,  새로워진 우리 영이 생명이다. 새존재인 우리 생각을 영에 둘 때, 우리 생각이 생명이다. 우리가 육신(죄성의 자기)의 생각과 몸의 행실을 죽이기 위해 (성령의 원하시는 일과 생각에 순종함으로써) 내주하는 영과 동역하고 협력하여 말하고 행동할 때, 우리 몸 역시 생명이다. 이 때 생명의성령은 새존재인 우리의 영혼몸을 점유하신다.

5.우리 영 안에 설비된 삼일 하나님
삼일이시고, 과정을 거치시고, 내주하는 영이 되신 바로 그 하나님은 첫째로 우리 영 안에 설비되어 계신다. 그런 다음 우리 영으로부터 우리 생각으로 퍼지시고, 결국 우리 생각으로부터 우리 몸을 적시신다. 우리 안에 설비된 바로 그 하나님이 생명의 영의 법이다. 오늘날 이 하나님은 행동이 아니라 항상 법에 의해 우리를 위해 모든 것을 하신다. 오늘날 우리는 어둠 속에서 손으로 더듬을 필요가 없다. 부르짖을 필요가 없다. 단지 영을 좇아 행하기만 하면 된다. 그것은 우리의 생각을 영에 두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가 영을 좇아 행할 때, 법에 의해 우리 안에서는 많은 놀라운 것들이 계속 일어나게 된다. 그것이 우리 안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이다.

6.죄와 사망의 법(법칙)
로마서 7장에 있는 죄와 사망의 법에 대한 구절들을 생각해 보자. 21절은,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라고 말한다. 바울은 한 법을 발견했다. 이것은 모세를 통해 주어진 하나님의 법이 아니다. 20절은, <그러나 만일 내가 원치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바울은 그가 하기를 원치 않는 것을 했음을 발견했다. 그럴 때 그는 그것을 행하는 이는 더이상 그가 아니라 그 곳에 있는 어떤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것을 행한 것은 그 안에 거하는 죄라고 말했다. 그는 그 안에 역사하는 법이 있음을 발견했다. 그가 선을 행하기 원했을 때, 한 법이 개입하여 좌절시켰다. 22절에서 바울은 그가 하나님의 법을 기뻐한다고 말했다. 이것은 모세를 통해 시내산에서 주어진 법을 말한다. 이 법은 바울 밖에 있었다. 23절에서는 생각 안에 있는 또다른 법을 말한다. 생각은 혼을 대표하고, 혼은 바로 인간 존재이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당신의 존재의 살아있는 부분에(마음의 생각) 선을 행하고 하나님의 법을 지키려하는 또 다른 법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 지체 속에 있는 법은 항상 우리 생각 안에 있는 이 선한 법과 싸워 우리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우리를 사로잡아 온다. 이 한 구절이 우리 지체 속에 있는 죄가 우리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임을 아주 분명하게 해준다. 18절은, <내 속 곧 내 육신 안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이것은 인격화된 죄이며, 21절에서는 또한 악이라고 불리운다. 그는 악이 그와 함께 있다고 말한다. 우리는 온 우주 가운데서 악은 사탄임을 깨달아야 한다. 이 악이 우리 지체 속에, 즉 우리 육신 안에 있는 바로 그 죄이다.

7.악한 체계
창세기 3장에서 마귀는 아담과 하와를 선과 악의 지식나무를 먹도록 유혹했다. 그때 사탄이 사람 안으로 들어왔고, 사탄이 들어왔다는 것은 바로 사탄 자체가 우리 안에서 체계가 되었다는 것이다. 우리 안에 있는 그 체계는 우리 안에서 원칙을 세웠는데, 그것이 곧 죄와 사망의 법이다.

8.악한 설비
사탄은 그 자신을 악한 체계로서 사람 안에 설비했다. 원칙을 세운 그 체계는 죄의 법이다. 그때부터, 사람이 도적질하고 간음하고 사람을 죽이려고 할 때, 그는 행동에 의해 그것을 할 필요없이 법에 의해 행했다.

 9.세워진 두 원칙
우리는 우리 안에 세워진 두 원칙이 있음을 알 수 있다. 하나는 이 타락한 몸의 지체 속에, 즉 우리 육신 안에 세워진 악한 원칙이 있다. 그러나 다른 하나는 우리 영 안에 세워진 놀랍고 좋은 원칙이다. 이것은 하나님과 사탄이 모두 우리 안에 설비되어 있음을 의미한다. 우리가 항상 고통을 받는 것은 이러한 두 가지 설비 때문이다. 그분은 자기 아들을 죄에 관하여 보내셨다. 율법의 불가능성 때문에 하나님은 사람이 되셔야 했다. 그분은 죄있는 육신의 모양 안에서 사람이 되셨다. 문제를 일으키는 죄는 동굴 안에 있는 호랑이처럼 육신 안에 있다. 문제와 골칫거리는 동굴 안에 있는 호랑이이다. 당신이 호랑이를 처리하려면 동굴 안에 있어야 한다. 우리의 육신은 동굴과 같고 죄는 호랑이와 같다. 주 예수님은 아주 담대하게 육신 안에, 호랑이가 있는 동굴 안에 오셨다. 그분은 심지어 동굴의 모양과 형태와 외양과 모습으로 오셨다. 이 문제를 일으키는 죄는 어디에 있는가? 그것은 동굴 안에, 즉 육신 안에 있다. 이 문제를 일으키는 죄는 누구인가? 사탄이다. 이것은 당신의 육신 안에 있는 죄가 사탄임을 의미한다.

10.육신 안에서 덫에 걸린 사탄(여기에서는 대표적 옛사람을 들어 말하고 있음에 주의하라. 실은 불신자 개개인을 주관하는 것은 마귀의 명령을 수행하는 <능력>으로 표현되는 악령임, 마귀는 동시에 여러곳에 있을 수 없는 유한한 존재일 뿐이다. 그는 명령체계를 교묘히 이용하여 마치 자신이 하나님처럼 동시에 모든 곳에 있을 수 있는 것처럼 속인다. 마귀의 현 거처는 제2의 하늘인 공중이다=공중권세 잡은자. ***마귀의 통치 체계:하늘의 악한 영-어둠의 세상의 주관자-정사-권세-능력)
사탄은 그가 지혜로와서 사람의 육신 안으로 들어가 사람을 얻고 소유할 수 있었다고 생각했다. 그는 사실상 그가 어리석게 스스로를 덫에 걸리게 했다는 것을 몰랐다. 그 [호랑이]가 스스로 사람 안에서 덫에 걸렸다. 그는 육신 안에 덫에 걸렸다. 그때 하나님은 육신이 되기 위해 성육신 되심으로 그 육신을 십자가 위로 가져가셨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육신이 십자가에 못 박힐 때 사탄과 죄가 정죄되었다는 것이다. [정죄 되었다]는 이 단어는 [굴복되다], [정복되다], [능력을 빼앗기다]를 함축하고 있다. 이것은 히브리 2장 14절과 부합된다.  <(히2:14-15)*자녀들은 혈과 육에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같은 모양으로 혈과 육을 함께 지니심은 죽음을 통하여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멸하시며*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한평생 매여 종 노릇 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 주려 하심이니> 그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육신과 죄와 사탄이 모두 끝났다. 이것은 우리가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될 수 있었음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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