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13.05.08 작성자 : 양시영
제   목 : <해방된> 영과 <성령따라 행함으로써 체험하여 누린 그리스도 곧> 진리로 예배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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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의 글의 유기적인 공과> 12 메시지 - 내 말을 듣는 자는 영생을 얻음


월요일
요4: 24, 34 5:1-6, 24-26
기도로 읽을 말씀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 할 찌니라"(요4: 24)
       

                    그 영으로 충만 되기 위해 영을 해방함
 

 이번 주의 주제는 "내 말을 듣는 자는 영생을 얻음"(요5: 24-26)이다. 우리는 요한복음을 유기적인 방식, 즉 영과 생명을 강조 하는 방식으로 공부하고 있다. 그러므로 주님께 감사하는 것은, 이 복음은 우리에게 많은 생명공급을 주고 있으며 우리는 영과 생명을 누리고 있다. 교회생활에서 우리가 실행하고 있는 것은 영으로 충만하고 그분이 우리에게서 흘러넘치는 것을 허용하기 위하여 영을 해방하는 것이다. 주님은 우리를 영안에 있고 영안에 머물도록 인도하고 계신다.


지난주에 보았듯이 요한복음 4장은 물에 대해 말한다. 우리는 목마름으로 인해 주님께 가고 주님이 주시는 물을 마시는데 이때 우리 안에는 영생하도록 한 샘이 솟아오른다. 이 물의흐름과 솟는 것은 영이고 하나님 자신인데 왜냐하면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이다. (24절) 따라서 하나님의 영이 우리 안에 거하므로 생명 안에서 자라는 것이 가능하다. 말씀에 의하면,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 그분의 일을 이루는 것도 우리에게 양식공급과 만족을 가져온다. (34절) 이런 방식으로 우리는 생명의 성장을 갖는다.


요한복음 3장과 4장에서 우리는 주님이 접촉한 두 부류의 반대되는 사람들을 보았는데 곧 니고데모와 사마리아 여인이다. 니고데모로 제시된 수준이 높은 사람들은 구원이 필요하다. 사마리아 여인으로 제시된 도덕수준이 낮은 사람들도 역시 구원이 필요하다. 우리는 좋은 사람들, 높은 도덕 수준과 좋은 품행을 가진 자들을 존중하지만 그들이 구원을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다. 반대로 우리는 사마리아 여인처럼 도덕 수준이 낮은 한 사람을 본다. 생명의 빛이 여인에게 도달했을 때 변화가 있었다. 그녀는 사회에서 무시당한 자였고 또 주님이 필요했었다. 주님은 그녀를 영으로 인도하기 위해 물을 사용하셨으며 네가 하나님을 경배하기 원한다면 합당하게 행해야 하는데, 영이신 하나님을 경배하기 위해서는 너의 영을 사용해야한다 라고 말씀하신다.


요한복음 5장에서 우리는 또 주님이 아주 많이 필요했던 한 병든 자를 보게 된다. "그 후에 유대인의 명절이 있어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시니라 예루살렘에 있는 양 문 곁에 히브리말로 베데스다라 하는 못이 있는데 거기 행각 다섯이 있고 그 안에 많은 병자, 소경, 절뚝발이, 혈기 마른 자들이 누워 "물의 동함을 기다리니 이는 천사가 가끔 못에 내려와 물을 동하게 하는데 동한 후에 먼저 들어가는 자는 어떤 병에 걸렸든지 낫게 됨 이러라" (1-4절) 베데스다는 말하자면 긍휼의 집이다 우리는 실제로 이 기적이 어떻게 행해졌는지 알 수 없지만 다섯 행각을 사람들로 가득했고 적은 수가 아니었다.


이 큰 무리 가운데 38년 된 한 병자가 있었다. (5절) 주님이 그를 봤을 때 그에게 물었다. "네가 낫기를 원하느냐?" (6절) 병자가 즉시"예, 주님, 낫기를 원합니다." 라고 대답했다면 빨리 나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누군가가 그를 동한 물에 넣어 낫게 해 주기를 기다리며 설명을 하면서 대답했다. 많은 경우 우리 또한 그렇다. 주님께 설명 드리고 이유를 대면서 우리에게 묻는 것에 즉시 대답하지 않는다.

 

열쇠말씀: 즉시 대답함
당신의 열쇠말씀:
질문: 니고데모와 사마리아 여인의 체험은 무엇을 대표하는가?

 

화요일

기도로 읽을 말씀 요5: 7-8, 10-19, 24
"예수께서 가라사대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시니"(요5:8)

 

                             말씀을 듣고 실행에 적용함

 

요한복음 5장 7절과8절을 함께 보자 " 병자가 대답하되 주여 물이 동할 때에 나를 못에 넣어 줄 사람이 없어 내가 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가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시니" 만약 38년 된 이 병자가 그 마음에 어떠한 의심이 있었다면 낫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주님을 믿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곧 그 사람이 나아서 자리를 들고 걸어 가니라. 여기에서 우리는 전혀 의심 없이 주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 얼마나 필요하며 무엇보다 충만한 믿음으로 듣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 준다. 주님께서는 말씀하셨고 그 중풍병자는 즉시 들었다. 듣기만 했을 뿐 아니라 실행에 옮겼다. 그래서 즉시 하나의 반응과 한 움직임이 있었다. 따라서 후에 주님은 "내 말을 듣고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24절) 라고 말씀 하셨다. 비록 그가 38년간 병자로 있으면서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임을 몰랐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순종했고 믿었다. 듣고 반응했으며 그래서 나음을 입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이 병든 자가 나은 것을 매우 불만스러워 했다. 왜냐하면 그것이 안식일에 일어났기 때문이다. "유대인들이 병 나은 사람에게 이르되 안식일인데 네가 자리를 들고 가는 것이 옳지 아니하니라. 대답하되 나를 낫게 한 그가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더라 한대" (10절-11절), 얼마나 놀라운 구원인지! 전에 이 중풍병자는 다른 사람들에 의해 침상에 실렸던 자였으나 이제는 그가 자리를 들고 걸어갈 수 있게 되었다!


유대인들이 그에게 묻기를 " 너더러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한 사람이 누구냐 하되 고침을 받은 사람이 그가 누구인지 알지 못하니 이는 거기 사람이 많으므로 예수께서 이미 피하셨음이라 (12-13). 주님에게 감사하는 것은 중풍병자처럼 많은 사람들이 믿음으로 또한 나음을 얻었다. 그 후에 예수께서 성전에서 그 사람을 만나 이르시되 "보라 네가 나았으니 더 심한 것이 생기지 않게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 (14절) 이것은 그 사람의 질병이 죄로 인해 발생한 것임을 가리킨다.


이제 15절에서 18절로 가보자 "그 사람이 유대인들에게 가서 자기를 고친 이는 예수라 하니라 그러므로 안식일에 이러한 일을 행하신다. 하여 유대인들이 예수를 핍박하게 된지라.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하시매 유대인들이 이를 인하여 더욱 예수를 죽이고자 하니" 종교적인 유대인들에게 주님은 안식일만 범할 뿐 아니라 자기를 하나님과 동등으로 삼으셨다. 이것은 주님을 대적하여 핍박하도록 더 나빠지게 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저들에게 아주 좋은 한 말씀을 하셨다. 주님께서는 저들에게 하신 말씀에서 인내의 마음을 보여 주셨다. 다른 면으로, 교회생활 안에 있는 우리에게도 많은 도움이 되는 아주 효능 있는 한 말씀으로 인식된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들이 아버지의 하시는 일을 보지 않고는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나니 아버지께서 행하시는 그것을 아들도 그와 같이 행하느니라."(19절)


이것은 주님이 먼저 그의 제자들에게 이르시는 것으로 그분은 이 땅에서 제 마음대로 사역하지 않으셨고 하늘의 아버지를 따라 일하셨음을 보여준다. 그분은 아들의 위치에 있었고 아버지의 일을 하고 계셨다. 오늘 교회생활 안에서 우리는 많은 것들을 실행에 적용하지만 하나님의 일을 위하여 어떤 것도 만들어 내거나 고안 해 낼 수 없고 단지 그분께 신실함으로 충분하다는 것을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주님은 아버지께서 하신 일만 행하셨다. 우리도 또한 이렇게(사랑에 의해 유발-자극되고 충전-충만케 되어 역사하는 믿음 자체이신, 내주하시는 주께서 마음에 일깨우시고 시동거시는 바로 그 일을 ) 행해야만 된다.

 

열쇠말씀: 조건 없이 말씀에 순종함
당신의 열쇠말씀:
질문: 요5: 14에서 주님은 무엇을 말하시기 원하시는가?

 

수요일


기도로 읽을 말씀 요5: 20-24
"아버지께서 죽은 자들을 일으켜 살리심 같이 아들도 자기의 원하는 자들을 살리느니라" (요5: 21)

       

                         하나님의 아들이 죽은 자들에게 생명을 줌

 

요한복음 5:20을 읽어보자 "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하사 자기의 행하시는 것을 다 아들에게 보이시고(행하게 하시며) 또 그보다 더 큰 일을 보이사(행하게 하셔서) 너희로 기이히 여기게 하시리라" " 아버지께서 자기의 행하시는 것을 다 아들에게 보이시고" 이 원칙이 그분의 땅의 사역에서 주님의 행함을 이끄셨다. 주님께서 그들에게 행하셨고 말씀 하셨던 모든 것, 그의 기적들과 행위는 아버지로부터 비롯된 것들이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여전히 말씀하시기를 "그 보다. 더 큰 일을 보이사" 즉 아들에게 보이시리라. 이 "큰일들"은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언급하는 것으로 21절을 함께 읽어보자 "아버지께서 죽은 자들을 일으켜 살리심 같이 아들도 자기의 원하는 자들을 살리느니라."


21절은 죽은 자들을 살리고 그들에게 생명을 주는 것보다 더 큰 일이 없는 것에 대해 아주 분명하다. 주님은 죽으셨을 뿐만 아니라 살아나셨다. 이것이 아버지께서 주 예수께 보이셨던, 그가 큰일들을 행하겠고 사람들이 그로 인해 기이히 여기게 될 것이었다. 이 큰 일은 아버지께서 죽은 자들을 살리고 일으키심 같이 아들도 자기의 원하는 자들을 살리는 것과 관계가 있다. 아버지께서 일하시지 않으면 아들 역시 하지 않으며, 아버지께서 일하실 때 아들 또한 일한다.


22절과 23절에서 "아버지께서 아무도 심판하지 아니하시고 심판을 다 아들에게 맡기셨으니 이는 모든 사람으로 아버지를 공경하게 하려 하심이라 아들을 공경치 아니하는 자는 그를 보내신 아버지를 공경치 아니하느니라."


이번 주의 요점은 24절에 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이미 우리가 보았듯이 38년 된 그 중풍병자는 누군가 어느 날 동하던 그 물에 들어가도록 그를 도와준다면 하는 소망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이 사람에게 치료를 가져온 것은 주님의 말씀이었다.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그 중풍병자를 위한 치료는 누군가 동하는 물에 그를 넣어 주는 것에 달려 있었다. 만약 자신을 의존했다면 그것은 불가능 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물이 동했을 때 누군가 그보다 먼저 내려갔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님은 어떤 것을 하는 문제가 아니라 듣고 믿는 문제임을 그에게 보여 주기 원하셨다. 주님께서 그에게 이렇게 말씀 하시는 것 같았다. " 네게 하는 말을 들으라. 그것을 도와 줄 어떤 사람을 얻는 것이 아니라, 네게 생명을 주는 자이다. 어떤 것을 하는 것이 아니라, 듣는 것이다. 내 말을 듣고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주님을 찬양한다!


이 병자는 주님의 말씀을 들었고 또 믿었다. 낫기만 한 것이 아니라 영생을 얻었는데 왜냐하면 주님의 말씀을 들었고 믿었으며 즉시 일어나 자리를 들고 걸어갔기 때문이다. 이 말씀은 매우중요하다. "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24절) 이것은 그 사람이 중풍병자로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죽어 있었음을 가리킨다.


요한복음에 소개된 모든 사건에서 주님은 죽음을 생명으로 변화시켰다. 니고데모와의 관계에서도 주님께서 그를 비추시기 위해 많은 말씀을 하신 것을 우리는 볼 수 있다. 사마리아 여인의 경우에서, 만족의 부족은 생명의 부족을 가리키는 것으로, 여인은 영생이 필요했었다.
열쇠말씀: 주님의 말씀을 듣고 믿음


당신의 열쇠말씀:
질문: 요한복음 5:24절에서의 중풍병자는 어떤 상황에 있었나?

 

@@@생명 안에서 자라기 위해 영을 해방함 -- 말씀을 듣고 믿고 <잠잠히 신뢰함으로써 마음을 열어 = 생각-감정-의지를 동원하여 믿어 들어가 평강가운데서>  행하라.<하나님의 뜻을>.<주 예수>이름 부름으로써.. 타락한 <혼>이 주도 하지 않도록, 말씀하시는 <그 영>을 응시하여 들으며 따름이 <한 영된> 내 영과 <그 영>을 해방하는 것임.

 

우리 안에 거하는 <그 영>이 우리의 생명이 되어 잠잠히 신뢰 가운데 열어드린 우리의 혼이 완전히 <그 영>에 의해 적셔지고 채워져서 넘쳐 흐르도록 허락해야 한다. 이것이 주님이 마지막으로 우리에게 실행하도록 허락한 것이다. 할렐루야! 이것이 영을 해방하는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창조를 대표하는 것이다. 만물이 그분을 통해 창조되었고 그분 없이 된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그러므로 그분은 모든 것을 준비하셔서 우리로 그분을 받아들이게 했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며 갈망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더 이상 혼 안에서 살아서는 안된다. <그 영>이 우리의 혼안에 스며듬, 곧 <그 영>의 생각-감정-의지가 우리 혼 안에 스며들도록 허락해야 하며 따라서 우리의 생각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고< 그 영의 생각 > 우리의 감정은 하나님의 선한 기쁘심으로 적셔지고 < 그 영의 감정> 우리의 의지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야 한다.< 그 영의 의지에 순복> 이것이 하나님의 목적이다.

 

우리가 <그 영> 안에 살 때에야 혼이 지속적으로 적셔지는 것을 허락하는 것이 된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그렇게 하지 않고 천연적인 혼 자체로 살기를 아직도 원한다. 많은 이들은 육이 우리를 죄로 이끌기 때문에 육만이 우리의 대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유기적인 사역에서 진실로 우리의 최악의 대적은 혼이라고 말 할 수 있다. <그 영>이 우리를<혼을> 적시는 것을 허락하지 않을 때 사탄이 우리 생각 안에 요새를 짓는 기회를 주게 된다. 그러므로 정말 혼은 영적이고자 하는 사람에게 크나큰 대적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 <그 영>이 우리 혼을 적시며 채워 넘쳐 흐르기를 허락함으로써 능력의 영으로 가득 차기를 진실로 원한다.

 

우리가 말하는 능력의 그 영은 오순절 날 같은 <그 영>의 외적 부어짐이 아니다.  우리안에 내주하시는 본질적생명-실재의 영이이요 생명주는 영이 바로 그 능력의 영이시다.  능력의 영이신 <그 영>께서도 우리를 내적으로 적시며 넘쳐 흐를 때까지(요4:14, 요7:37-39) 채워 표현되기를 원하신다. 할렐루야! 이것이 오늘날 우리가 실행하는 <그 영>의 채워짐이다.

 

우리는 <그 영>을 따라 살고 행함으로써, 우리의 영을 해방하되 우리의 혼을 표현하지 않도록 항상 신중해야 한다. 움직이시는 <그 영>이 마땅히 표현되어야 할 주인이시다. 조심하라! 만약 혼의 흥분에 떨어진다면 우리는 신성한 생명의 움직임을 잃게 될 것이다. 우리의 영의 해방은 생명에 의해 추진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그 영>의 해방은 영 안에서 해야 한다. 혼의 흥분과 섞여지도록 해서는 안된다!

 

모든 것이 그분을 통해 창조되었고 그분 없이는 아무 것도 되어진 것이 없다. 그분은 이미 실재의 영이 되셨고 생명주는 영이다. 그분이 우리 안에 들어올 때 <그 영>에 의해 살도록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며 그분에 의해 인도되어 생명 안에서 자라며 언젠가는 하나님의 생명과 신성한 본성으로 완전히 채워질 것이다. 이것은 신격에서는 아니지만 우리가 하나님과 같아지는 것을 의미하며 새예루살렘에서 나타날 것이다. 할렐루야! 하나님의 창조는 얼마나 놀라운지! 모든 것이 그분을 통해 창조되었다. 최종적으로 새예루살렘으로 완료되기 위해 점진적인 과정이 있다. 주님을 찬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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