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4==내안에거하라 나도 너희안에거하리라 --- 1.베카레이 아네니 엘로헤 치드키 바차르 히르하베타 리 힌네니 우셰마 테필라티 לַמְנַצֵּ֥חַ בִּנְגִינֹ֗ות מִזְמֹ֥ור לְדָוִֽד׃ בְּקָרְאִ֡י עֲנֵ֤נִי ׀ אֱלֹ֘הֵ֤י צִדְקִ֗י בַּ֭צָּר הִרְחַ֣בְתָּ לִּ֑י חָ֝נֵּ֗נִי וּשְׁמַ֥ע תְּפִלָּתִֽי׃ 2.베네이 이쉬 아드-메 케보디 리_켈림마 테_에하분 리크 테_바크슈 카자브 쎌라 בְּנֵ֥י אִ֡ישׁ עַד־מֶ֬ה כְבֹודִ֣י לִ֭כְלִמָּה תֶּאֱהָב֣וּן רִ֑יק תְּבַקְשׁ֖וּ כָזָ֣ב סֶֽלָה׃ 3.우_데우 키-하펠라 예호와 하시드 로 예호와 이_쉬마 베_카레이 엘라우 וּדְע֗וּ כִּֽי־הִפְלָ֣ה יְ֭הוָה חָסִ֣יד לֹ֑ו יְהוָ֥ה יִ֝שְׁמַ֗ע בְּקָרְאִ֥י אֵלָֽיו׃ 4.라게주 웨_알-테_헤타우 이메루 비_르바베켐 알-미쉬_카베켐 웨_돔무 쎌라 רִגְז֗וּ וְֽאַל־תֶּ֫חֱטָ֥אוּ אִמְר֣וּ בִ֭לְבַבְכֶם עַֽל־מִשְׁכַּבְכֶ֗ם וְדֹ֣מּוּ סֶֽלָה׃ 5.지브후 지베헤-체데크 우_비테후 엘-예호와 זִבְח֥וּ זִבְחֵי־צֶ֑דֶק וּ֝בִטְח֗וּ אֶל־יְהוָֽה׃ 6.라빔 오메림 미-야르에누 토브 네싸-알레누 오르 파네카 예호와 רַבִּ֥ים אֹמְרִים֮ מִֽי־יַרְאֵ֪נוּ֫ טֹ֥וב נְֽסָה־עָ֭לֵינוּ אֹ֨ור פָּנֶ֬יךָ יְהוָֽה׃ 7.나타타 시므하 베_레비 메_에트 데가남 웨_티로샴 라부 נָתַ֣תָּה שִׂמְחָ֣ה בְלִבִּ֑י מֵעֵ֬ת דְּגָנָ֖ם וְתִֽירֹושָׁ֣ם רָֽבּוּ׃ 8.베_샬롬 야흐다우 에_쉬케바 웨_이샨 키-아타 예호와 레바다드 라_베타흐 토쉬베니 בְּשָׁלֹ֣ום יַחְדָּו֮ אֶשְׁכְּבָ֪ה וְאִ֫ישָׁ֥ן כִּֽי־אַתָּ֣ה יְהוָ֣ה לְבָדָ֑ד לָ֝בֶ֗טַח תֹּושִׁיבֵֽנִי׃ ---- *1.내 의의(체데크...공의-공정, 올바름, 의로움 ::거룩하신 Q임재앞에서 Q과 사람에 대해 돌아보아 거리낌 없음..이는 오직 성육신하여 오신 하나님의 본체, JC께서 말씀하신 바 Q말씀 그대로 살아내셨음( 즉 언행일치의 삶) 그대로 살아내셨고 한영된바 그의 참제자도 그 삶 살아내도 끝까지 도우심..구주, 구세주JC는 십자가보혈통한 구속으로 모든 불의/수건 제하시고 믿는 나의 의가 되셨음...Q의 어떠함 그대로 Q을 공급하며 반사하는 반사경됨) 하나님이여(엘로힘...창조주, 삼위일체, 유일하신 참하나님), 내가 부를 때에(카라) 응답하소서(아나) 곤란 중에(차르...Q허락하에 믿는 나의 궁극적 유익 위해 원수대적으로 사방에서 우겨싸임/핍박받음/외로움) 나를 너그럽게(라하브...넓다, 광대하다..르호봇이 유래됨...넓히심/여유/자유/안위/번영-번성-창대) 하셨사오니 내게 은혜를 베푸사(하난..형>한눈..Q의 자비로우심따라 도우시는[긍휼/은혜]은총/열납의 사랑 베품-도움) 나의 기도를(테필라....주와 하나된 영/전존재의 사정[희노애락애오욕]과 생각-길-자리에 대해 아룀, Q을 구함)들으소서(샤마...귀기울여 듣다) ......[마5:6. 의(righteousness= 로고스, 기록된 말씀 그대로 Q 살아냄, 언행일치 삶 = 참되게 믿고-살고-누림의 은혜!! = 오늘 새롭고 참되게 말씀하시는 Q, 내주하시는 그영, 순종함으로써 그리스도로 살아냄!! 그리스도를 사는자마다, 그리스도 공급할 수 있게 됨 인해 [=긍휼히 여김] 참되게 이룸..오직 코람데오!!)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 ......[살전5:16-28....항상 기뻐하라 ... 쉬지 말고 기도하라 ...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 성령을 소멸하지 말며 ... 예언을 멸시하지 말고 ...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하고 ... 악은 어떤 모양이라도 버리라 ...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를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의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 ... 너희를 부르시는 이는 미쁘시니 그가 또한 이루시리라] [갈5:22-27...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 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또한 성령으로 행할지니 ... 헛된 영광을 구하여 서로 노엽게 하거나 서로 투기하지 말지니라] [골3:12-17...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이 택하사 거룩하고 사랑 받는 자처럼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 입고 ... 누가 누구에게 불만이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 ...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너희는 평강을 위하여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너희는 또한 감사하는 자가 되라 ...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 *2.인생들아 어느 때까지 나의 영광(카보드...그의 명예-존귀-내적 어떠함의 실재 표현...믿는 나와 한영되신 전능하나님의 이름-성품-능력과 풍성-부요-충만함의 실재까지도 의미)을 바꾸어 욕되게 하며(켈림마...수치-모욕, 조롱, 망신, 침뱉고 짓밟음) 헛된 일을(리크...영존못할, 참생명누림/만족 없는 헛되고 무익한 모든 일..바람에 나는 겨!!) 좋아하고(아헤브..이끌리다, 편애하다) 거짓을(카자브....거짓-허위-사기-궤휼) 구하려는가(바카쉬...얻기 위해, 원하는 바를 적극적/자발적으로 묻다-찾다-요구-추구하다) (셀라) *3.여호와께서(야웨...언약에 신실하신 하나님...무한-영생-자존-편재-임마누엘) 자기를 위하여 경건한 자를(하사드...Q의 헤세드[인자하심 =영원불변의 언약적사랑]안에 Q말씀 그대로 믿고 의지함으로 Q을 존숭하며 한영됨 이루며 사는 자, 견고한 심지-신실/충성-친절/온유/겸손이 그 특성 =성도) 택하신 줄(팔라...뚜렷하다/명확하다/구별하다/따로 떼어두다) 너희가 알지어다(야다...알다/깨달아 이해하다) 내가 그를 부를 때에 여호와께서 들으시리로다 *4.너희는 떨며 범죄하지 말지어다 자리에 누워 심중에 말하고(아마르...마음(중심)에 (계신Q께) 이르다..마음의 기도/말로는 결코 다 표현불가능한 깨달음의 직관적 기도...차원을 초월하는 하나님의 임재, 창조주Q의 창조적 말씀과 그 약속들의 전능성을 말할때에도 사용) 잠잠할지어다 (셀라) *5.의의 제사를 드리고 여호와를 의지할지어다(바타흐...믿고 의지하며 신뢰하다..그 결과는 안심/안전/평안/안식) ......[사32:17...공의의 열매는 화평이요 공의의 결과는 영원한 평안과 안전이라[::의의 공효는 화평이요 의의 결과는 영원한 평안(=평온)과 안전(=안심)이라]...And the effect of righteousness will be peace, And the result of righteousness will be quietness and confident trust forever.] *6.여러 사람의 말이 우리에게 선을(토브...Q의 지고지선의 진복 누림/맛봄-체득-참여함의 풍성-부요-충만) 보일(라아...보다) 자 누구뇨 하오니 여호와여 주의 얼굴을(파님...Q임재의 영광, 말씀의 광채...적심/점유/충만/변화/새김[성화]는 파님을 맛봄-누림-체득-참여/교통 통해 이루신다!!) 들어 우리에게 비추소서(나사..빛을 비추다).......[미6:8..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He has told you, O man, what is good; And what does the Lord require of you Except to be just, and to love [and to diligently practice] kindness (compassion), And to walk humbly with your God [setting aside any overblown sense of importance or self-righteousness]? ...He has showed you, O man, what is good. And what does the LORD require of you? To act justly and to love mercy and to walk humbly with your God.] *7.주께서 내 마음에 두신 기쁨은(쉬므하...기쁨-즐거움-유쾌함-만족함) 그들의 곡식과 새 포도주가 풍성할 때보다 더하니이다 *8.내가 평안히(샬롬...평화와 안전..번영/복지/건강/행복의 완전함) 눕고(샤카브..침소에, 드러눕다) 자기도(야센...잠자다, 잠들다) 하리니 나를 안전히(베타흐...영육간 실제적/초월적 안전-안심-염려없음) 살게(야사브...살다/거하다) 하시는 이는 오직 여호와이시니이다
---------- Amplified Bible>> Evening Prayer of Trust in God. To the Chief Musician; on stringed instruments. A Psalm of David.4 1 Answer me when I call, O God of my righteousness! You have freed me when I was hemmed in and relieved me when I was in distress; Be gracious to me and hear [and respond to] my prayer. 2 O sons of men, how long will my honor and glory be [turned into] shame? How long will you [my enemies] love worthless (vain, futile) things and seek deception and lies? Selah. 3 But know that the Lord has set apart for Himself [and dealt wonderfully with] the godly man [the one of honorable character and moral courage—the one who does right]. The Lord hears and responds when I call to Him. 4 Tremble [with anger or fear], and do not sin; Meditate in your heart upon your bed and be still [reflect on your sin and repent of your rebellion]. Selah. 5 Offer righteous sacrifices; Trust [confidently] in the Lord. 6 Many are saying, “Oh, that we might see some good!” Lift up the light of Your face upon us, O Lord. 7 You have put joy in my heart, More than [others know] when their wheat and new wine have yielded abundantly. 8 In peace [and with a tranquil heart] I will both lie down and sleep, For You alone, O Lord, make me dwell in safety and confident trust. --------- New Living Translation>> Psalm 4 For the choir director: A psalm of David, to be accompanied by stringed instruments. 1 Answer me when I call to you, O God who declares me innocent. Free me from my troubles. Have mercy on me and hear my prayer. 2 How long will you people ruin my reputation? How long will you make groundless accusations? How long will you continue your lies? Interlude 3 You can be sure of this: The Lord set apart the godly for himself. The Lord will answer when I call to him. 4 Don’t sin by letting anger control you. Think about it overnight and remain silent. Interlude 5 Offer sacrifices in the right spirit, and trust the Lord. 6 Many people say, “Who will show us better times?” Let your face smile on us, Lord. 7 You have given me greater joy than those who have abundant harvests of grain and new wine. 8 In peace I will lie down and sleep, for you alone, O Lord, will keep me safe. ============ 죄인들에 대한 충고(시 4:1-5) 이 시편의 표제는 우리에게 교회에서 사용되도록 신적 영감에 의해 저술한 다윗이 이것을 그 의식을 주관하던 음악부장, 또는 음악의 대가(그는 그의 시대에 만들어진 찬송가의 거룩한 규례대로 그 조직에서 주된 역할을 맡았다)에게 넘겨준 사실을 알려주고 있다. 우리는 역대상 25장에서 노래 부르는 자들을 여러 반열로 만들고, 거기에 각 우두머리를 세우며 그들에게 각자의 몫을 분담해 준 그 조직에 관한 상세한 내용을 볼 수 있다. 어떤 사람들은 “왕의 명령을 좇아 신령한 노래를 하고”(2절), 어떤 사람들은 “수금을 잡아 신령한 노래를 하여 여호와께 감사했다”(3절). 또 어떤 사람들은 “나팔 부는 자”라고 표현되어 있다(5절). 그러나 그들은 모두 “여호와 하나님 전에서 노래하며”(6절) “여호와 찬송하기를 배웠다”(7절). 이 시편은 그 영장들 중에 한 사람에게 맡겨져 손으로 연주하는 “수금”에 맞추게 했다(합 3:19). 이런 종류의 음악과 함께 성가대원들은 이 시편을 노래해야 한다. 그 당시에는 일반인들이 아닌 “그들”만이 노래했던 것 같다. 그러나 신약에서는 모든 그리스도인이 성가를 부르도록 하고 있고(엡 5:19; 골 3:16), 그들은 그것을 기교적이 아니라 거룩하게 불러야 한다. 멜로디는 가슴속에서 만들어져야 한다. 그러므로 지금은 그 당시처럼 악기가 필요한 경우가 많지 않다. 여기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Ⅰ. 다윗은 하나님께 말씀드리고 있다(1절). 그가 이야기를 들려주고자 하는 “인생들이” 듣거나 말거나, 오로지 "내 의의"하나님께서 그의 말을 유의하여 들으시고 평화의 답을 들려주실 것을 바라고 간구하고 있다. “내가 부를 때에 응답하소서. 그리고 나의 경배를 기꺼이 용납하시고 내 탄원을 허락하시며 나의 호소를 판단하소서.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의 기도를 들으소서.” 하나님께서 우리 기도를 들으시기를 기뻐하시며, 거기에 응답 내리시기를 기뻐하시는 까닭은 오직 그의 긍휼하심때문이기에.... 합당한 감사들 드리자. “주의 긍휼하심을 인해 나의 기도를 들으소서” 하는 것이 우리의 가장 훌륭한 간구다. 다윗은 여기에서 다음 두 가지 일을 더 간구하고 있다. 1. “주는 내 의의 하나님이십니다. 의로우신 하나님이실 뿐만 아니라, 내가 의롭게 되도록 하시는 분으로서 내 안에서 주의 은혜로 선하게 역사하시며, 나를 의로운 자로 만드셨나이다. 그러므로 나의 기도를 들으소서. 그리고 내 안에서 주님의 역사를 입증하소서. 주는 또한 나의 의로운 주장을 옹호하시며, 오해받고 있는 나의 결백함을 보호하시는 자입니다. 나는 등불처럼 내 의로움을 밝히시는 주께 내 길을 맡깁니다.” 사람들이 우리를 부당하게 정죄할 때, “의롭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다” 하는 사실은 우리에게 위로가 된다. 그는 믿는 자들이 지닌 의로움의 하나님이시다. 2. “전에도 주께서 곤란 중에 있는 나를 너그럽게 하셨고, 거룩한 기쁨과 위로로 나의 마음을 너그럽게 하셨으며, 나를 그 환난 가운데서 건져내심으로써 나의 형편을 너그럽게 하셨사오니, 이제 여호와여,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의 기도를 들으소서.” 우리가 곤란 중에 있을 때 체험한 바, 우리를 너그럽게 하시는 하나님의 선하심은, 우리의 믿음과 미래에 대한 소망을 크게 격려해 줄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 기도로 탁월하게 간구하도록 해준다.... “주께서 하셨사오니 앞으로도 해주시지 않겠습니까? 당신은 변치않는 하나님이시며, 당신의 역사는 온전하시기 때문입니다.” Ⅱ. 그는 인생들에게 말하고 있다. 그것은, 하나님께 아직 낯선 자들이요 다윗, 다윗의 아들인 메시야의 다스림을 받으려 하지 않는 자들이 확신을 가지고 전향하도록 하기 위함이다. 1. 그는 그들에게 그들의 불경건함으로 인한 어리석음을 납득시키려 하고 있다(2절). “인생들아(이것을 “큰” 자들, 사울이나 압살롬 일당에 속하는 높은 지위에 있는 자들로 해석하기도 한다), 어느 때까지 나와 나의 통치에 대적하고, 내게 화를 미치고자 하는 자들의 그릇되고 터무니없는 꾐에 이끌리어 나의 통치를 못마땅하게 여기겠느냐?” 또는 이를 좀더 일반적인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하나님은 여기에서 시편 기자를 통해 죄인들을 회개로 이끌기 위해서 그들과 이치를 따지고 있다. “계속 하나님을 무시하고 그를 섬기기를 소홀히 하며, 그리스도의 왕국과 그의 통치를 경멸하는 너희는 너희가 행하고 있는 것을 잘 생각해 보라.” (1) “너희는 인생들임에도 불구하고 너희 스스로를 모욕하고 있다(인생들이라는 단어는 귀한 피조물로서의 사람을 의미한다). 너희 본성의 고귀함과 네가 부여받은 이성의 탁월함을 생각해 보고, 이처럼 너희답지 않게 분별 없이 행하지 말라.” “인생들”은 자기 스스로가 인간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그렇게 행하도록 해야 한다. (2) “너희는 너희 조물주를 영예롭지 못하게 하고, 그의 영광을 변하여 욕되게 한다.” 이것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그르치는 죄인들을 책망하는 하나님 자신의 말씀으로 간주되어야 마땅하다. 또한 만일 이것이 다윗의 말이라면, 영광이라는 단어는 그가 “그의 영광”이라 불렀던(3:3) 하나님의 것으로 간주될 수도 있다. 우상 숭배자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수치스런 것으로 “바꾼다”(롬 1:23). 괴팍스러운 모든 죄인들은 하나님 율법의 명령에 불복종하고, 그의 은총을 멸시하며, 하나님께만 드려야 할 애정과 봉사를 피조물에게 바침으로써 그의 영광을 더럽힌다.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을 더럽히는 자들, 그의 말씀과 의식을 조롱하는 자들, 그를 아노라 고백하면서도 실제로는 그를 부인하는 자들은 그의 영광을 변하여 욕되게 함을 행한다. (3) “너희는 너희 자신을 속인다. 너희는 허사를 좋아하고, 궤휼 즉 거짓말이나 거짓이 되는 것을 구한다. 너희는 스스로 헛되고 거짓되며, 또 그렇게 되기를 사랑한다.” 혹은 “너희는 결국에 가서는 헛되고 거짓된 것에 지나지 않음이 판명될 것에 집착하고 있다”고 해석할 수도 있다. 세상을 사랑하는 자들, 그리고 아래 있는 것들을 구하는 자들은 헛된 것을 사랑하며 거짓을 구함이 된다. 관능적인 즐거움을 누리며, 이 세상의 재물을 취하는 자들도 역시 그러하다. 왜냐하면 이것들은 그들을 속이고, 따라서 그들을 멸망시키기 때문이다. “어느 때까지 이렇게 행하겠느냐? 너는 결코 스스로 지혜로워지거나, 너의 의무와 유익을 생각지 않겠느냐? 네가 얼마나 오랜 후에야 그렇게 되겠느냐?”(렘 13:27) 하늘에 계신 하나님은 죄인들이 그를 영예롭지 못하게 하고, 그들 스스로를 속여 파멸하려고 버티는 시간을 안타까이, 그토록 길게 생각하신다. 2. 그는 그들에게, 하나님께서 선한 백성들에게 주시는 특별한 은총, 그들이 받는 특별한 보호, 그리고 그들에게 부여된 유일한 특권을 보여주고 있다(3절). 이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이다. (1) 그들이 경건한 그를 대적하거나 핍박해서는 안 되고, 그가 멸망한다고 생각해서도 안 되기 때문이다. 만일 그들이 하나님께서 “자기를 위하여 택하신 이 소자 중 하나를 실족케” 하면 그들은 위태롭게 된다(마 18:6). 하나님은 그들을 건드린 자들을 자신의 눈동자를 친 자와 같이 여기신다. 그리고 그는 조만간에 그들을 핍박하는 자들로 하여금 이 사실을 알도록 한다. 그 소자들은 하늘의 신뢰를 얻고 있으며,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기도를 들으실 것이다. 그러므로 그 누구도 그들을 감히 해할 수 없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그들의 사유를 옹호해 주실 것이다(출 22:23). 이 말은 일반적으로 다윗이 자신의 왕위 임명에 대해 말하는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그는 왕위를 찬탈하거나 횡령해 얻지 않았다. 그는 “여호와께서” 그 영화를 위해 “택하신 경건한 자”였다. 따라서 “너희가 그와 그의 승진을 대적한 것은 매우 큰 죄이다. 그것은 바로 너희가 하나님께 도전한 것이 되며, 그것은 헛되고 유명무실한 결과로 나타날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자기 자신을 위해 주 예수, 그 자비로우신 분, 경건한 자를 택하셨다. 따라서 아버지께서 항상 그에게 귀를 기울이시므로, 그의 승진을 방해하려 시도하는 자들은 분명 낭패를 경험할 것이다. (2) 혹은 그들이 스스로 선해지고, 더이상 악인의 꾀를 좇지 않아야 하기 때문이다. “너희는 여지껏 헛된 것을 구해 왔다. 참된 마음을 지닌 자가 되라. 그러면 너희는 여기에서 그리고 영원히 진실로 행복해질 것이다.” ①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네 안에 있는 그의 영광과 능력을 스스로 지켜주실 것이기 때문이다.” “여호와께서는 경건한 자를”, 특히 “자기를 위하여” 경건한 모든 자를 그의 영원한 선택 속에 그의 유효한 부르심 속에, 그의 섭리의 특별한 시여와 그의 은총의 역사 속에서 “택하신다.” 그의 백성들은 “정결케 되어 그에게 특별한 백성이 된다.” 경건한 자는 하나님께서 구별하시고 지정하신 자다. 그는 자신의 백성을 알고 계시며, 그들에게 그의 형상과 표제를 부여해 놓으셨고, 특별한 은총으로써 그들을 구별하신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내가 나의 보석을 다듬는 날 그들은 나의 것이 되리라. 너희는 이것을 알라.” 즉, 경건한 자들은 이것을 알고, 그들을 소유하고 계시는 자로부터 결코 스스로를 떼어놓지 않도록 해야 한다. 또한 악한 백성들도 이것을 알고 하나님이 보호하시는 자를 해치지 않게 주의해야 한다. ② “하나님께서 그 자신 안에 있는 너의 기업을 견고하게 방비해 주실 것이기 때문이다.” 다윗은 이것을 진심으로 말하고 있다. “내가 부를 때에 여호와께서 들으시리로다.” 우리가 세상의 왕들로부터 영접-환대받는다면, 우리는 스스로 행복하다고 생각해야 한다. 그런데 하물며 왕 중의 왕이신 그와 친한 사이가 되어, 특히 이처럼 허물없는 사이가 되어 영접-환대를 받는다는 것은 얼마나 귀한 일이겠는가? 우리는 이것을 알고 거짓된 헛됨을 버리고 우리 자신의 긍휼함을 얻도록 해야 할 것이다. 3. 그는 그들의 죄를 물리치도록 경고하고 있으며, 그들이 그것을 두려워하고 잘 판단해 그것에서 떠나도록 권하고 있다(4절). “너희는 떨며 범죄치 말지어다(칠십인역에는 “노하여 범죄치 말지어다”로 되어 있다. 그리고 어떤 사람들은 사도가 그로부터 그 권고를 인용한 것으로 보고 있다. 엡 4:26). 심중에 말하고 회심할지어다. 그러기 위하여 깊이 생각하고 두려워할지어다.” 여기에서 다음 사실을 명심하도록 하자. (1) 우리는 죄를 지어서는 안 되며, 우리의 길에서 벗어나 우리의 목적을 잃어서도 안 된다. (2) 죄에 대항하는 한 가지 좋은 방책은 두려워하는 것이다. 태만과 세속적인 방심에 대항해(어떤 사람의 견해대로) “움직여라.” “항상 하나님의 영광과 위엄에 대해 거룩한 경외감을 지니고, 그의 진노와 저주에 대해 거룩한 두려움을 품으며, 감히 그를 격노케 하지 말라.” (3) 죄를 막고 거룩한 두려움을 지닐 수 있는 한 가지 좋은 방법은 자주 그리고 신중하게 “심중에 말하는” 것이다. “심중에 말하라. 너희는 심중에 말할 것이 많다. 너희는 그것을 아무 때나 심중과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이야기되지 않은 채로 남겨두지 말라.” 생각하는 사람은 지혜롭고 선한 자가 될 가능성이 많다. “심중에 말하라. 깊이 반성함으로써 그것을 잘 살피고 알아서 잘못된 것을 고치도록 하라. 거룩하고 경건한 묵상에 잠기도록 하라. 선한 것에 너희 생각들을 고정시키고 그것을 견실히 지키도록 하라. 너희 길을 생각하고, 이 일을 훌륭히 그리고 선한 목적에 따라 행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여기에 주어진 지시를 지키도록 하라.” ① “한적한 시간을 택하라. 네가 잠들지 않고 자리에 누워 있을 때 그렇게 하라. 즉(이교도 도덕주의자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이 지시한 것처럼) 밤에 잠들기 전에 그날 너희가 행한 것에 관해, 특히 잘못 행한 것에 관해 너희 양심을 살펴 그것에 대해 회개할 수 있도록 하라. 너희가 밤중에 깨어 있을 때 하나님에 대해, 그리고 너희를 화평케 할 수 있는 것들에 관해 묵상하라.” 다윗 자신은 여기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권유한 것을 실천했다(63:6). “내가 나의 침상에서 주를 기억하오리이다.” 특히 병상에서 우리는 우리의 길을 깊이 생각하고 그것에 관해 심중에 말해야 한다. ② “너희 스스로 진지한 태도를 지니도록 하라. 잠잠할지어다. 너희가 양심에 물었을 땐 침묵을 지키고 대답을 기다려야 한다. 소란한 때일지라도 너희 심령을 평온하고 조용하게 지키도록 하라.” 4. 그는 그들의 의무를 깨닫도록 충고하고 있다(5절). “하나님께 의의 제사를 드릴지어다.” 우리는 악행을 그칠 뿐만 아니라, 선하게 행하는 것을 배워야 한다. 다윗과 그의 통치에 불만을 품고 있던 자들조차도 만일 하나님을 올바로 섬기기만 한다면, 곧 선한 기질로 돌아와 충성된 자가 될 것이다. 그리고 그들과 하나님 사이의 관계를 아는 자들은 다윗의 아들이신 그 중재자를 기뻐할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 각자에게 다음과 같은 것이 요구되고 있다. (1) 우리는 그를 섬겨야 한다. “그에게 제사를 드려라. 제일 먼저 너희 자신을 드리고, 그리고 너희의 가장 훌륭한 제물을 드려라.” 그러나 그것은 “의의 제사”라야 한다. 즉, 그것은 선한 사업, 하나님과 우리 이웃에 대한 사랑의 모든 열매, 어떤 번제와 제물들보다 더 나은 모든 신앙적인 생활 양식이라야 한다. “너희의 모든 예배가 올바른 마음에서 나온 것이 되게 하라. 너희의 헌물이 의의 제사가 되게 하라.” 의롭지 않은 제사는 하나님께 상달되지 않는다. 의롭지 않은 제사는 가증한 것이기 때문이다(사 1:11 이하). (2) 우리는 그를 의지해야 한다. “의의 제사”를 드린 후라야 너희가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 환영받는다. 주저하지 말고, 그로 인해 잃을 것을 두려워하지도 말고, 하나님을 섬기라. 너희 재물이나 육신의 팔을 의지하지 말고, 오직 그만을 의지함으로써 그를 영예롭게 하라. 너희 자신의 명철에 기대하지 말고, 그의 섭리에 의지하라. 또한 네 자신의 의로움이나 풍족함을 세우려 하지 말고, 그의 은총에 의지하라. 이 구절들을 노래함에 우리는 진노를 일으키는 죄의 본질, 세상의 거짓됨과 헛됨, 그리고 하나님 백성들의 말할 수 없는 행복에 대한 교훈을 우리 스스로에게 가르쳐야 한다. 또한 우리는 우리 자신의 심중에 의논하고 영적 제사를 드리면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의무를 행하도록 스스로 촉구해야 한다. 그리고 이 구절들을 간구함에, 이처럼 생각하고 행할 수 있도록 하나님의 은총을 구해야 한다. --------------- 선한 자의 열망(시 4:6-8) 우리는 여기에서 다음과 같은 것을 알 수 있다. Ⅰ. 세상사람들의 어리석은 기대. “여러 사람의 말이 우리에게 선을 보일 자 누구뇨, 우리가 선을 볼 수 있게 할 자 누구뇨, 하옵니다.” 여기에 세상사람들, 그들이 의미하고 있는 선의 개념이 시사되어 있다(7절). 그들에게 선은 그들의 곡식과 포도주가 불어나는 것이었다..... 그들이 바라는 모든 것은 세속적인 기쁨을 풍족히 즐길 수 있도록 이 세상의 재물을 많이 갖는 것이었다. ....이처럼 그들은 의로움에서 멀며, 재물을 갈망하고 그것을 열심히 구한다. 이런 열망 속에는 다음과 같은 잘못이 게재되어 있다. 1. 그들은 일반적으로 “누가 우리를 행복하게 해줄 것인가?”를 묻지만, 그것을 행하실 수 있는 유일한 자인 하나님을 찾아 부탁하지는 않는다. ...따라서 그들은 그릇된 충고를 따르고, 하나님께보다는 오히려 다른 사람들에게서 은혜를 입으려고 한다. 그들은 하나님 없이도 기꺼이 살아가려 한다. 2. 그들은 그럴 듯하게 보이는, 눈에 보이는 선한 것을 찾는다. ...그리고 그들은 눈에 보이지 않고 오직 믿음의 대상물인 선한 것에 대해서는 관심을 표하지 않는다. ...우상숭배의 근원은 그들이 볼 수 있는 신을 가지려는 열망에 있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태양을 숭배했던 것이다. 우리는 보이지 않는 선을 구할 수 있도록,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섬기는 것을 배워야 한다(고후 4:18). 우리는 육신의 눈으로 볼 수 있는 것 이상을 믿음의 눈으로 보아야 한다. 3. 그들은 으뜸 되는 선을 찾지 않고 “보통” 선을 찾는다. ...그들이 원하는 것들은 모두 외면적인 선, 현세적인 선, 편파적인 선, 좋은 음식, 좋은 음료, 좋은 직업, 그리고 좋은 재산이다. 선하신 하나님과 하나되어 교통하며 누리는 복되고 선한 마음이 없다면 이 모든 것은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이런 가시적, 구체적, 상대적, 일시적인 선은 대부분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것에는 도움은 될 지 모르나, 은혜로운 영혼은 그로 인해 그의 마음이 좀처럼 흔들리지는 않을 것이다. 세속적인 것들에 대한 이런 열망은 어리석은 것임에도 불구하고 “여러 사람”이 (썩어가는 더러운 것에 파리가 꼬이듯) 몰려들고 이윽고 그들은 멸망할 것이다. “아들아, 네가 세상에 있을 때 받은 좋은 것들, 즉 동전 한닢이라도 기억하여라.” =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Ⅱ. 경건한 백성들의 지혜로운 선택. 다윗과 그를 따르던 몇 명의 경건한 자들은 그런 열망을 떠나 “여호와여, 주의 얼굴을 들어 우리에게 비취소서” 하고 함께 기도했다. 1. 그는 많은 사람들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았다. 하나님은 자기를 위해 특별한 은혜로써 그를 택하셨으므로, 그도 그 자신을 특별한 인물로써 구별한다. “그들은 보통의 선, 세상적인 유익을 위한 자들이오나, 나는 그렇지 않습니다. 나는 그들처럼 말하지 않겠습니다. 어떤 선도 나를 동요시키지는 못할 것입니다. 세상의 재물은 내 영혼과 결코 관계가 없을 것이므로 나는 그것에 동조할 수 없습니다.” 2. 그와 그의 친구들은 그들의 축복으로서 하나님의 은총을 택하는 데 동의하고 있다. 그렇게 함은, 그들의 생각으로는, 생명이나 인생의 어떤 즐거움보다도 더 나은 것이었다. (1) 이는 그들이 가장 진지하게 바라고 구하는 것이다. 또한 그것은 그들 영혼의 호흡이었다. “여호와여, 주의 얼굴을 들어 우리에게 비취소서. 많은 사람들은 다른 것을 바라나 우리는 이것을 바라나이다.” 선한 백성들이 그들의 행실에 의해 구별되는 것과 같이 그들은 그들의 기도에 의해 구별된다. 기도의 말씨와 길이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 믿음과 열성에 의해 구별된다.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은 스스로 기도드리며, 다른 사람들이 그것에 대해 무슨 말을 하더라도 오직 진심으로 기도할 뿐이다. 그리고서 그들은 모두 그 기도에 “아멘” 하고 말한다. “주여, 주님의 은총을 우리에게 주소서. 우리가 그것을 갖고 있다는 것을 우리로 알게 하시고, 더이상 바라지 않게 하소서. 그것은 우리를 행복하게 하기에 충분합니다. 주여, 우리와 화목하시고 우리를 용납하시며 당신 자신을 우리에게 나타내소서. 주님의 은혜로우신 사랑을 확신케 하소서. 그러면 우리는 만족하게 여길 것입니다.” 비록 다윗이 7-8절에서는 그 자신에 대해서만 말하고 있지만, 이 기도에서 또한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도 이야기하고 있는 점을 볼 수 있다. 즉 그는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우리 아버지”라고 기도하도록 가르치셨던 것같이, “우리에게”라고 기도하고 있다. 모든 성도들은 똑같은 사명으로 은혜의 보좌에 오며, 이 속에서 그들은 모두 하나가 되어 하나님의 은총을 그들의 최상의 선으로서 열망한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위해서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도 그것을 간구해야 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은총은 우리 모두에게 풍족한 것이며, 우리가 가진 것을 다른 사람들과 나눈다고 해서 결코 적어지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2) 이는 그들이 그 무엇보다도 기뻐하는 것이다(7절). “이렇게 함으로써 주께서 자주 내 마음에 두신 기쁨이 나를 부축하고 소생시켜 줄 뿐만 아니라, 말할 수 없는 기쁨으로 나를 채웠나이다. 그러므로 내가 이것을 여전히 추구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내 일생 동안 구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마음속에 은혜를 주실 때는 또한 “그 마음에 기쁨을 두신다.” 은혜로운 영혼이 그 거룩한 교제 속에서 얻는 기쁨은 그 어느 것과도 비교될 수 없으며, 곡식과 포도주를 풍성케 하는 추수의 기쁨과도 비교될 수 없다. 이것은 마음의 기쁨이며, 내적이고 견고한 그리고 참다운 기쁨이다. 그러나 세상적인 사람들의 환락은 일순간뿐이며, 그림자에 불과하다. 즉 “웃을 때에도 마음에 슬픔이 있다”(잠 14:13). “주께서 내 마음에 기쁨을 두셨나이다.” 이와 같이 참된 기쁨은 하나님의 선물로서,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다”(요 14:27). 성도들은 세상적인 정욕에 사로잡힌 자들의 환락과 기쁨을 부러워할 이유가 없고, 오히려 그들을 불쌍히 여겨야 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더 나은 것을 알 수 있을지라도 굳이 알려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3) 그들은 이것에 전적으로 의지하며, 이 확신 가운데서 항상 평온하다(8절). 그는 누워 잤으며(3:5), 앞으로도 여전히 그러할 것이다. “내가(주의 은총을 확신하기 때문에) 평안히 눕고, 곡식과 포도주를 풍성히 거둔 자처럼, 그리고 타작마당에 내려가 마음이 즐거워서 노적가리 곁에 누운 보아스처럼(룻 3:7) 매우 기뻐하나이다. 나를 안전히 거하게 하시는 이는 오직 여호와이시니이다. 내가 홀로 있을지라도 나는 홀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하시기 때문입니다. 나를 돌보는 자가 없다 할지라도 주님 한 분만으로도 나를 돌보시기에 충분합니다. 다른 것들이 방어해 주지 못하더라도 그가 친히 그것을 하실 수 있습니다.” 만일 그가 하나님의 얼굴빛을 얻게 된다면, 그는 다음과 같이 될 것이다. ① 그는 즐거워할 수 있다. 그의 영혼은 하나님께로 향하고, 그의 안식처인 양 그 안에서 휴식을 얻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평안히 누워서 잔다. 그는 갖고자 했던 것을 얻고, 그 어느 것도 그를 해치지 못함을 확신하게 된다. ② 그는 그의 대적들의 훼방을 두려워하지 않고 평안히 잠들 수 있으며, 또 매우 안전하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친히 그를 안전하게 지켜주시기 때문이다. 그가 죽음의 잠을 자고 무덤에 눕게 될 때, 흑암에 그의 침상을 마련하게 될 때 그는 선한 노인 시므온과 함께 “평안히 놓이게” 될 것이다(눅 2:29). 하나님께서 그의 영혼을 받아주시어 안전하게 해주실 것이며, 그의 육신도 안전히 무덤에 거하리라는 것을 확신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③ 그는 그의 모든 일들을 하나님께 맡기고 그 결과를 기꺼이 그에게 의탁할 수 있게 된다. 농부는 “씨를 뿌린” 후에 “밤낮 자고 깨고 하는 중에 씨가 나서 자라되 그 어떻게 된 것을 알지 못한다”(막 4:26-27). 이와 마찬가지로 선한 자도 믿음과 기도로 그의 근심을 하나님께 맡기고서 밤낮 자고 쉰다. 그리고 매우 편한 마음으로 그의 하나님이 그를 위해 모든 것들을 행해 주시도록 맡기고 그의 거룩한 뜻을 환영할 준비를 하고 있다. 이 구절들을 노래하고 간구함으로써, 우리는 이 세상의 재물과 즐거움이 우리를 행복하게 해주기엔 부족한 것임을 알고 그것에 대해 경건한 경멸을 품도록 하자. 하나님의 은총을 열심으로 구하고, 그 은총 안에서 우리 자신을 기쁘게 위로하도록 하고, 우리의 모든 세상일들의 결과에 대해 경건한 무관심을 갖도록 하자. 그리고 거룩한 섭리의 인도와 보호에 우리 자신과 우리의 모든 일들을 맡기고, 우리가 우리 스스로를 하나님의 사랑 안에 두면 모든 것이 우리에게 유익하게 되리라는 사실에 만족하도록 하자. ================= rm'a:(559, 아마르) 말하다 say 아마르(동사)는 기본어근이며, '말하다'를 의미하며 여기서 '이야기하다, 생각하다(마음으로 말하는 것...묵상과 회개/성찰, 감사를 포함하는 Q를 향한 내적 예베), 의도(기도)하다, 선언하다, 명령하다, 약속하다' 등의 의미로 확장되었다. 구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약 5,300회 나온다. 아마르의 가장 일반적인 용법은 직접적인 대화에서 나온다. 이때 주체는 하나님(창 1:3), 에덴동산의 뱀(창 3:1), 두려워서 하나님에게로부터 숨고자 한 아담(창 3:10), 완고한 선지자를 전환시키려고 한 발람의 당나귀(민 22:28), 전쟁을 하고 싶어하는 군마(욥 39:25), 바다 속에 있는 지혜의 거처를 부인하는 바다(욥 28:14), 왕을 찾는 숲의 나무들(삿 9:8)이다. 이 동사가 문자적인 문맥들, 의인법우의, 그리고 엄격한 설화에서 이용된다는 사실을 쉽게 알 수 있다. 이 단어의 대다수의 용례들은 영어의 say와 같이 '말하다'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a) 아마르는 하나님의 창조적인 말씀에 대해 사용되었다. 7일간의 창조사에서 10번 나타난다(창 1:6, 창 1:9, 창 1:11, 창 1:14, 창 1:20, 창 1:24, 창 1:26, 창 1:28, 창 1:29). 여기서 이 단어는 통상적인 것보다 더 함축적인 의미로 사용되었다. 이 단어는 그것이 표현하는 것을 존재케 하는 신적 명령의 말씀, 곧 '창조적 말씀의 전능성'을 보여준다. 이것은 시 33:9에 '저가 말씀하시매 이루었으며, 명하시매 굳게 섰도다'(롬 4:17)라는 말이 증명한다. 더 깊은 의미의 창조적 말씀에 대하여는 시 33:6; 사 40:26; 요 1:1-3; 히 1:2; 히 11:3; 골 1:16등이 증언한다. 하나님의 이런 창조적 말씀은 모든 인간적인 말과 다르다. 그 말씀은 공허하지 않고 (신 32:47; 사 55:11) 강력하며, 전능하며, 최고의 창조적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하나님의 말씀은 미래를 선포하고 그 미래가 실현될 수 있도록 돕는 예언적 말씀이기도 하다. 이 창조 기사에서 이러한 신적 말씀의 특성이 분명히 나타나 있다(참조, Lange, Von Rad). (b) 아마르는 때로 '약속하다 promise'를 의미하기도 하는데, 이렇게 사용되는 경우는 아주 드물다.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영원한 왕조를 주시겠다고 하신 약속(왕하 8:19), 이스라엘에게 약속의 땅을 소유하도록 하신 약속(느 9:15), 혹은 아하수에로 왕이 그의 영토 내에 있는 모든 유대인들을 멸할 기회를 얻으리라고 한 하만의 약속(에 4:7)에 대해 언급하는 구절에서 이 동사의 의미는 이런 것이다. (c) 아마르는 '명령하다 command'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이것은 이 단어가 하나님이나 유능한 어떤 권위 있는 사람에 의해 언급되어지는 경우에 그렇다.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가라고 명령하셨다(창 12:1). 여호와께서는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셨고, 여호수아는 그 말씀을 명령(차와)으로 실행하였다(수 11:9). 그리고 아마르는 성전 정화 이후의 제물에 관한 히스기야의 명령(대하 29:24), 하만과 그의 아들들을 매닮으로써 유대인을 도살하라는 포고를 번복시키라고 한 아하수에로의 서신 명령(에 9:25)에서 발견된다. (d) 아마르는 몇몇 구절에서 다음과 같은 의미로 사용되었다. 신 8:17, 시 14:1에서 '마음에 이르다'라는 표현은 '생각하다'는 의미를 나타낸다. 자주 사용되지는 않지만, 흥미 있는 용법은 '공언하다, 말하게 하다'라는 의미로 사용된 경우이다. 모세는 연설을 끝내면서 이스라엘에게 그들이 그를 통해서 하나님을 그들의 하나님으로 삼기로 맹세했었다는 사실을 상기시켰다(신 26:17-18). 아마르는 '당당하게 행동하다'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저희가 지꺼리며 오만히 말을 하오며 죄악을 행하는 자가 다 자긍하나이다"(시 94:4). 사 61:6에서 이 의미는 좋은 의미의 '자랑하다' boast인 것 같다: "오직 너희는 여호와의 제사장이라 일컬음을 얻을 것이라 사람들이 너희를 우리 하나님의 봉사자라 할 것이며 너희가 열방의 재물을 먹으며 그들의 영광을 얻어 자랑할 것이며".(참조: T. E. Mccomiskey; BDB; KB). =============== !ynIP;(6440, 파님) 얼굴 face 파님(명남)은 파나(hn:P; , 6437)에서 유래했으며, '얼굴 face'를 의미한다. 구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2,100회 이상 나온다. (a) 이 독특한 단어 파님은 항상 복수형으로 등장하는데 아마 얼굴이 수많은 부분들의 결합체라는 사실에서 연유한 듯하다. 파님은 ① 사람의 얼굴(창 31:2), "그의 외모"(창 4:5), 한 인간 전체를 뜻하는 대용어(신 7:10)로 사용되었다. ② 관찰자에게로 향해진 면, 예를 들어 '지면'(창 2:6), ③ 이 단어는 관계를 표현하기 위하여 여러 전치사들과 함께 사용된다. 예를 들면, ~의 면전에서 before the face of, ~앞에서 before, ~속으로 into, ~의 정면에서 in front of, ~의 반대편에 opposite 등이다.(참조: E. Tiedtke) 사람의 얼굴은 그 사람을 식별하게 해주고 그 사람의 마음 가짐과 감정을 반영해 준다. 따라서 파님은 자아 또는 자아 감정의 대용어가 될 수 있다. 성경에서 얼굴은(신체의 여타 부분들과 함께) 사람의 생리 기능을 담당하는 외적 기관으로 묘사될 뿐만 아니라 어떤 형태의 행동 방식과 관계되는 것으로 기술되었으며 따라서 어떤 인격성에 의해 특정 지어진다. 얼굴이 상대방의 감정, 기분, 성격을 묘하게도 밝혀주는 것으로 생각되었다는 사실은 극히 당연하다. "굳은" 얼굴은 반항(렘 5:3), 뻔뻔스러움(잠 7:13), 무자비함(신 28:50)의 표시이다. "빛나는" 얼굴은 기쁨의 증거이다(욥 29:24). "부끄러워하는" 얼굴은 패배, 좌절, 굴욕을 가리킨다(삼하 19:5). "불꽃같은" 얼굴은 공포에 질린 얼굴이다(사 13:8). "나쁜" 얼굴은 근심 걱정으로 찌든 얼굴이다(창 40:7). "낙담한" 얼굴은 매우 강렬한 분노와 불쾌감에서 연유한다(창 4:5). 누군가의 얼굴을 "부드럽게" 만든다는 것은 그를 달래거나 또는 그의 호의를 구한다는 뜻이다(하나님께 대해, 왕상 13:6, 왕하 13:4). KJV는 이 마지막 문구를 "~가 여호와께 구했다/탄원했다" X sought/entreated the Lord라고 의역하였다(한글개역: "여호와께 간구하매"). 그러나 히브리어 원문은 문자적으로 "~가 여호와의 얼굴을 부드럽게 만들었다"로 된다. 마찬가지로 이 관용구는 사람에 대해서도 사용된다(잠 19:6). "얼굴을 숨기다"라는 문구는 혐오감을 나타낸다는 의미이며(사 53:3) "얼굴을 돌리다"라는 것은 거부한다는 뜻이다(시 132:10). 역으로 타인의 "얼굴을 들어 올리다"는 호의, 존중, 수락을 나타내 보인다는 뜻이거나(삼상 25:35, 한글개역, "청을 허락하노라") 또는 편파성 편애를 드러낸다는 뜻이다(레 19:15, 한글개역, "편을 들지", "두호하지"). 얼굴을 숙인다는 빈번한 표현은 공손하게 인사하는 것을 의미한다. 파님은 동물의 얼굴들에 해당하는 말로 역시 때때로 사용되었다(겔 1:10).(V. P. Hamilton) (b) 파님은 특히 하나님의 얼굴을 뜻하는 말로 사용되었다. ① 위에서 언급한 인간의 얼굴에 관한 관용구들과 문구들의 대부분이 하나님께도 적용되었다. 하나님의 얼굴은 은혜와 신의의 표시로서 "환히 빛난다"(시 4:6). 그의 얼굴이 분노로 "침울해진다"(렘 3:12). 하나님은 그의 얼굴을 "숨기기도" 하신다(시 13:1). 하나님이 얼굴을 드시거나 그의 얼굴을 이스라엘에 비추시면 그로 말미암아 이스라엘은 평강(즉, 구원)을 받는다. 하나님이 그의 얼굴을 감추거나 돌리실 때 은혜를 거두어가심을 시사한다(참조: 시 13:2, 시 104:29). 하나님과의 교제의 행운을 가져오거나 하나님의 진노 하에 머무름을 가져오거나 하는 하나님의 작용과 반작용은, 그러한 신인 동형론적 묘사로 표현되고 있다. 하나님의 얼굴을 볼 수 있는 가능성은 가장 예외적 가능성으로 언급되어 있다(창 32:30, 브니엘: 하나님의 얼굴, 창 16:13, 출 24:9 이하, 신 4:12, 삿 6:22 이하도 역시 참조하라).(참조: E. Tiedtke) "하나님의 얼굴을 뵙다"라는 구절이 5회 발견되는데 아마 종교 예배를 위해 성소를 찾아간다는 뜻의 전문 용어일 것이다. 다섯 구절은 출 23:15, 출 34:20, 신 31:11, 시 42:2, 사 1:12이다. 이 보기들의 각 경우에서 동사 라아('보다' to see)는 니팔형으로 간주된다. 그렇다면 "나타나다" to appear로 번역되는데 이것은 하나님의 얼굴을 뵈옵는다는 개념을 "앞에 나타나다" appearing before라는 개념으로 유화시킨 것이다. 한 용례에서(삼상 1:22) 니팔형이 자음 본문에 의해 명시되어 있다. 여기를 니팔 부정사형 레라오트 파나이(하나님 "앞에 나타나다" to appear before God)로 생각할 수 있으며 또 그것이 당연하기도 하지만 칼 부정사형인 리로트 파나이의 가능성은 출 33:20에 비추어 볼 때 상상할 수 없다. 이에 대한 몇몇 예외가 있는데 예를 들면 야곱(창 32:30)과 모세(출 33:11)의 경우이다. 그들은 하나님을 "대면하여" face to face 보았다....만일 인간이 하나님을 보거나 또는 그 음성을 듣기만해도 그는 죽게 된다(출 19:21)이 통념이자 정설이었기에....하나님 얼굴을 보는 경험이 얼마나 위험스러운지 항상 강조하고 있다. 죄많은 인간이 거룩한 하나님을 본다면 그는 죽어야 하는 것이다(출 33:20, 참조: 사 6:5). 이러한 이유로 모세(출 3:6)와 엘리야(왕상 19:13) 그리고 스랍조차도(사 6:2) 하나님 면전에서 그들의 얼굴을 가렸다. 하나님을 본 후에도 살아있는 사람은 놀람과 감사(창 32:30, 신 5:24), 두려움(삿 6:22, 삿 6:23, 삿 13:22, 사 6:5)으로 압도당하게 된다. 신약성경에서 하나님은 예수님 안에 출현하셨으며 그만이 아버지를 보았다(요 1:18, 요 6:46, 요일 4:12).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는 통로가 되는 말씀일 뿐만 아니라, 그를 통해 하나님을 볼 수 있는, 하나님의 형상이기도 하다.(참조: V. P. Hamilton) 출 33장에서 세가지 세가지 다른 전승들 - 여호와는 인도자로 한 천사를 보내신다. 성막을 통한 여호와와의 유대 - 여호와의 얼굴(파님)이 이스라엘 백성과 동행하신다 - 는 시내산으로부터 떠난 후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하신다는 기본적 사상과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다. 전승의 셋째번 것에서 파님(출 33:14 이하)은 여호와의 이스라엘에게 현현으로 특이하게 인성화된 것 같다. 이것은 해석상에 다양한 시도를 낳았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나의 파님"을 "나 자신"으로, 즉 여호와의 인격적 임재에 대한 강조적 표현으로 이해한다. 또 혹자들은 이 구절이 제사장은 제사 때에 가면을 사용했다는 그네들의 주장을 정당화시켜 준다고 말한다. 또 다른 사람들은 성소에서 제사를 드릴 때에 여호와의 얼굴이 임재하셨음, 즉 하나님의 얼굴이 인간을 향하셨음을 의미한다고 이 구절을 해석한다. 이 구절에는 유일하고도 확실한 해석이 제시될 수 없다. ② 하나님의 얼굴이 성전과 관련하여 언급되어 질 때, 이 용어는 제사와 관련된 것이다. 성경의 범위를 넘어선 이 단어의 용법이 여기에 영향을 주었을 가능성도 있다. 이스라엘 주변의 열방은 신의 얼굴을 성전 우상의 얼굴로 만들어 이를 보고 예배하였다. 이스라엘의 예배에서 사용되어진 우상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이 용어는 예배자가 성전에서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였다고 했을 때 비유적 의미로만 사용될 수 있었다(시 24:6, 시 42:2[마소라 42:3], 슥 8:21[마소라와 70인역본], 말 1:9[마소라]). 하나님의 은혜로우신 임재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돌아보심을 의미했으며 이스라엘 백성들은 성전에서 특히 그것을 추구했던 것이다. 그래서 구약성경에서 하나님의 얼굴을 찾는 것은 기도로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감을 의미한다. 끝으로 제사를 아주 떠나서는 이 단어가 하나님과의 교제를 간구하는 일반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 시편 기자는 시 105:4에서 "계속적으로" 이렇게 할 것을 이스라엘 백성에게 촉구하고 있다. 진설병(출 25:30)의 문자적 의미는 "얼굴의 떡"("임재의 떡" RSV)인 것이다. 이런 떡덩이들이 이교도 제사에도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으며 이들의 제사에서는 이 떡들이 신의 음식 역할을 했던 것이다(참조: 렘 7:18). 이스라엘이 이 관습을 이어받았을 때 떡 Bread(아토스)은 하나님의 얼굴 앞에 음식으로가 아닌 예물로 유향과 함께 특별히 마련된 식탁 위에 놓여졌다. 좀 더 자세히 알기 위하여 출 35:13, 출 39:3, 민 4:11, 삼상 21:6, 왕상 7:48, 대상 9:32, 대상 23:29, 대상 28:16, 대하 2:4, 대하 4:19, 대하 13:11, 대하 29:18, 느 10:33, 마 12:4, 막 2:26, 눅 6:4, 히 9:2, 요세푸스의 저서(Ant., 3, 6, 6; 3, 10, 7)를 보라. ③ 랍비 유대주의에서 사람의 최고의 소망은, 죽음에 임한 시각에와 메시야의 날 후에 다가올 세상에서, 혹은 어떤이의 의견에 따르면, 메시야의 시절 동안에라도, 셰키나의 얼굴 또는 하나님의 얼굴을 보는 것이다. 하나님의 빛의 반사를 받아 의인의 얼굴은 해와 같이 빛날 것이지만(단 12:3) 불신앙인들은 하나님의 얼굴 앞에서 형벌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자카이의 아들 요난(R. Johanan b. Zakkai)이 죽음의 침상에서 두려워 한 것을 대조해 보라(SBI 208; ML 478).(참조: E. Tiedtke). ======== bhea;(157, 아헤브) 사랑하다 love, 좋아하다 like, 사랑스러운 lovely 동사 아헤브는 '사랑하다, 좋아하다'를 의미하며, 그 의미의 강도는 하나님의 자기 백성에 대한 무한한 애정에서부터 게으른 대식가의 육체적인 식욕에까지 이른다. 이 동사는 칼 어간의 모든 법(mood)과 니팔 분사형, 그리고 피엘 분사형으로 나온다. 16회의 피엘형은 강의적인 것이 아니라 대개 부정한 '연인' lover을 가리킨다. 구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약 200회 이상 나온다. 구약성경에서 사랑은 그 사람을 강요하여 그가 좋게, 또는 올바르게 평가하거나 인정하는 사물이나 사람에게로 이끌어 가는 자발적인 힘이다. 사람은 이 사랑의 힘에 제어를 받아 자기 자신을 주거나 혹은 사랑의 원인이 되는 대상을 확고히 붙잡거나 혹은 즐거움을 주는 행동을 하는 것이다. 사랑은 내적 인격에 심은 영혼의 불가해한 힘이다. 사람이 사랑의 대상을 올바로 인정하면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사랑한다(신 6:5). 사랑과 미움은 생의 양극이다(전 3:8, 전 9:6). 사랑은 인간 상호간의 사랑, 하나님의 인간과의 사랑, 사물에 대한 사랑 등을 나타낸다. (a) 이 단어는 남녀의 사랑에 대해 사용되었다. ...아가파오+에로스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남자와 여자로 창조되었다는 것은 인간의 하나님과 관계, 그리고 남녀의 성적 관계를 시사해 준다. 이 남녀의 사랑은 이성(sexes) 상호간의 생명력 넘치는 충동을 의미한다. 선지자 예레미야(렘 2:25)나 호세아(호 3:1, 호 4:18), 그리고 에스겔(겔 16:37)은 사랑의 성적(sexual) 측면을 매우 진하게 묘사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 단어는 남녀의 연애나 열애(창 29:18이하, 창 34:3, 삿 16:4), 합법적인 부부의 행복한 사랑(창 24:67, 삼상 1:5)을 묘사하는데 사용되었다. 창조의 기사는 성의 구별과 부부간의 사랑이 생을 풍요하게 하는 은사임을 설득력 있게 이해시켜 준다(창 2:18이하). 「그러나 이 사랑은 성적 사랑의 범위를 포함하지만 그것으로만 이루어져 있지 않다. 오히려 헌신적/언약적 사랑과 생활의 충실함-상호의존/헌신/협동/책임-이 합쳐져 있다. 구약의 초기 기록에 의하면 이러한 사랑은 일부다처나 일처다부 사상과 부합하지 않는다. 구약성경은 충실(참조: 창 20:13, 삿 14:16, 삿 16:4-5, 겔 16:8, 겔 23:17, 호 3:1), 상호의존(참조: 창 24:67), 책임(참조: 삼하 13:1, 삼하 13:4, 삼하 13:15)과 같은 인간 사랑의 다른 측면을 제외하고 성적인 것에 집중하는 위험을 이해시켜 준다(The interpertreter's D.B).」 더 나아가서 아가서는 "사랑은 죽음같이 강하다"라고 열정적인 사랑의 강력한 힘을 찬양까지 한다. 이 노래는 성적(남녀) 사랑의 기이함과 적극적인 힘을 찬양하지만 그 찬양에는 그 사랑이 근거를 두고 있는 상호의존과 신앙심(헌신)을 강조하고 있다(참조: 아 2:16, 아 3:1-8, 아 7:10, 아 8:6-7). 아가서에서 사랑을 묘사할 때 거의 대부분 아헵(아가파오)과 아하바(아가페)를 사용했다. 그러나 여자가 남자를 부른 칭호는 도드(d/D , 1730, 사랑하는 자)를 사용했다. 이러한 사랑에 반대되는 것으로서, 암논과 다말의 이야기는 성충동의 야수성, 즉 대상자와 성적 관계를 가지려는 무절제한 요구를 보여준다(삼하 13:1-22). 사랑은 성애 또는 성욕적인 영역에서 세상이 알지 못하는 근원, 곧 마귀로부터 기인한 원시적 힘인 미움을 부인함으로 맞서는 적극적인 능력이다. 이 이야기는 이 두 가지 충동의 야수성도 투명하게 보여준다(삼하 13:1-22). 결혼이나 부부 생활은 상대에 대한 사랑 없이도 이루어질 수 있다. 삼손의 신부의 "당신이 나를 미워할 뿐이요 사랑치 아니하는도다"라는 히스테릭한 말에서(삿 14:16, 참조: 삿 16:15, 창 29:31, 창 29:33) 동일한 요소가 표현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 심지어 법까지도 사랑과 미움의 성욕적 증상에 관여하고 있다(신 21:15이하, 신 22:31이하, 신 24:1이하). 아헤브가 '사랑의 행위를 하다'(일반적으로 이것은 야다<알다>나 샤카브<~와 함께 눕다>로 표현된다)라는 뜻을 가지는 경우는 아주 드물다. 그러나 왕상 11:1에서 이 단어는 이러한 부가적인 의미를 가지는 것 같다: "솔로몬 왕이 바로의 딸 외에 이방의 많은 여인을 사랑하였으니…"(참조, 렘 2:25). 호세아는, 하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신 바를 기록할 때, 이러한 의미를 사용하였다: "너는 또 가서 타인에게 연애를 받아 음부된 그 여인을 사랑하라…"(호 3:1). 이 단어의 이런 의미는, 이 동사가 사역동사의 어간(분사로서)으로 나올 때 현저하게 나타난다. (b) 이 단어는 부모와 자식, 가족간의 사랑에 대해 사용되었다....스테르고 아브라함은 독자 이삭을 사랑했으며(창 22:2), 리브가는 아들 야곱을 사랑했다(창 25:28). 야곱은 요셉과 베냐민을 사랑했다(창 37:3, 창 44:20). 잠언은 "자식을 사랑하는 자는 근실히 경계하느니라"고 했다(잠 13:24). 또한 이 단어는 며느리의 시어머니를 향한 사랑과 같은 가족간의 사랑을 표현한다(룻 4:15). 부모에 대한 자식의 사랑은 어느 곳에도 언급되어 있지 않다. 오히려 그들은 부모를 존중하고 존경하며 또 부모에게 복종해야 한다. 「참고 - 창 47:29에 보면 야곱이 그 아들 요셉에게 인애(헤세드: 친절, 자비)란 단어를 사용하여 자기에게 친절을 베풀어 주기를 요청했다. 이것이 부모에 대한 자식의 사랑의 표현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족속이나 가족의 유대는 이스라엘에서 매우 강하였다. 그러므로 '근친' 관계의 중요한 요소인 사랑에 대하여 놀랄 일이 아니다. 그것은 룻 3:10에서 이성 곧 남녀 사랑과 관련되어 있다. 그곳에서 인애(헤세드: 친절, 자비)는 남녀 사랑의 개시와 가까운 친족에 대한 충실, 이 둘을 포함하고 있다.」 성경은 가족적 사랑이 너무 선택적일 때(가족내 배타적 편애) 심각한 문제를 야기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삭은 에서를 사랑하고 리브가는 야곱을 사랑했다(창 25:28). 그 결과로 야곱과 에서가 서로 반목하고 미워하게 되었다. 요셉에 대한 야곱의 편애로 인하여 다른 아들들이 요셉을 미워하고 시기하게 되었다(창 37:4). 배타적인 사랑은 증오가 들어올 수 있는 지점이 될 수 있다. 이는 사랑이 헌신적일 뿐만 아니라 책임을 다 해야 하기 때문이다. (c) 아헤브은 때때로 종이 그 주인의 지배하에 남아 있기를 원하는 주인에 대한 특별하고도 강한 애착심을 나타낸다...필레오?? 출 21:5에 보면 "종이 진정으로 말하기를 내가 상전과 내 처자를 사랑하니 나가서 자유하지 않겠노라…"라고 한다. 아마 여기에는 가족애의 의미가 내포되어 있는지도 모른다: 아들이 그의 아버지를 사랑하듯이 종이 그의 주인을 사랑한다(신 15:16). 이러한 의미가 강조되는 구절로는 삼상 16:21이 있는데 여기에는 사울이 다윗을 크게 사랑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다윗을 사랑하고(삼상 18:16) 심히 존경하게 되어 그의 모든 행동들을 경탄으로 바라보았다. (d) 이 단어는 친구의 특별한 애착을 나타낸다. 다윗과 요나단 사이의 사랑은(삼상 18:1, 삼상 18:3, 삼상 20:17) 여인의 사랑보다 더 깊은 우정의 차원이었다 - "그대가 나를 사랑함이 기이하여 여인의 사랑보다 승하였도다"(삼하 1:26). (e) 아헵은 정치적 의미로 사용되었다: 선대/돌봄/나눔/섬김(이웃간, 공동체내, 공동체간 이타적 상호존중관계...하나님이 그러하심처럼 이념을 넘어선 자비/사랑의 선대) "솔로몬이 기름 부음을 받고 그 부친을 이어 왕이 되었다 함을 두로 왕 히람이 듣고 그 신복을 솔로몬에게 보내었으니 이는 히람이 평일에 다윗을 사랑하였음이라"(왕상 5:1). 다윗에 대한 히람의 "사랑"은 두 사람 사이의 국제적인 우호 관계나 화해 정책을 예증하는 것이다. 후자가 지적하는 바와 같이 그것이 그가 지극히 충성스러웠다는 것을 의미할 수도 있다. (f) 더 나아가 이 사랑은 사회적 공동 생활의 근본과 규범으로 나타난다 -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레 19:18). 이러한 면에서 사랑은 이웃을 위한, 그리고 이웃을 향한 헌신이며, 이웃을 형제로서 받아들이는 것이고 이웃이 당연히 받아야 할 대우를 해주는 것이다. 이러한 측면은 특히 외국인(레 19:34)과 가난한 자(레 25:35)와 고아의 권리와 관련된 사회적 법률에 잘 나타나 있다. 이 이웃 사랑은 단순한 친절이나 호의로 해석할 수 없다. 이것은 편협한 배타주의를 배제한다. - 바로 가까운 곳에 있는 사람은 누구나 이웃이다. 궁극적으로 이것은 인간의 입장에서 볼 때는 적(enemy)으로 생각되는 것 같은 사람들에 대한 사랑도 의미한다. 그 이유로 신 22:1-4이 동포를 도울 의무를 부과하는 것인 반면, 출 23:4-5은 특별히 이 의무를 적대적인 사람에게 적용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이웃은 동료일 수도 있고 적일 수도 있으므로, 그는 사랑의 대상이지 법적 제한의 대상이 아니다. 이것은 인간으로서의 개인은 법적 개인보다 우선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형태에서 출 23:4이하의 요구와 아마도 한층 더 높은 수준인 잠 25:21에 있는 기본적 진술("네 원수가 배고파하거든 식물을 먹이고 목말라하거든 물을 마시우라")은 원수를 향한 성향과 직접적으로 관련되어 있지 않으나 한 특별한 방식의 행위의 의무를 지우는 것으로서, 원수에 대한 사랑을 실천적으로 가르치려고 한 것이다. 요셉은 그의 이야기에서 하나님께서 순종하는 선으로 악을 갚는 그런 실례를 보여준다(창 50:19). 물론 구약성경에는 이러한 원수를 사랑하는 것에 한계가 있다. 시 109편과 잠 14:20 및 적대 국가들에게 향한 일반적인 태도는 이에 대한 예증이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에 의해 부과된 윤리적인 요구의 고결함은 여전히 존재한다. (g) 이 단어는 구체적인 것이나 추상적인 것들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는데 사용되었다. 어떤 사람들은 기름(잠 21:17), 은과 풍부(전 5:10), 뇌물(사 1:23)을 사랑했다. 다른 사람들은 악(시 52:3-5), 사망(잠 8:3), 허사(시 4:2-3), 거짓 맹세(슥 8:17)를 사랑했다. 또 다른 사람은 하나님의 계명(시 119:47), 율법(시 119:97), 증거(시 119:119), 법(119:159), 그리고 그들은 선(암 5:15), 진실과 화평(슥 8:19), 구원(시 40:16-17)을 사랑했다. (h) 하나님은 인간에게 자기를 "사랑하라"고 명하셨다(신 6:5). 그리고 시편에는 이 계명에 대한 순종의 증거들이 포함되어 있다(시 116:1, 시 145:20). 반대로 하나님은 사람들, 특히 자기 백성 이스라엘을 사랑하신다(신 4:37, 사 43:4, 말 1:2). 주님은 또한 시온의 문들(시 87:2), 정의와 공의(시 33:5), 성전(말 2:11)과 같은 것들을 "사랑하신다". 여호수아는 여호와를 사랑하라고 한다(수 22:5). 예레미야는 이 백성이 방황하기를 좋아한다고 질책하였다(렘 14:10). (i) 이 분사형들은 종종 '친구' friend로 변역되곤 한다. 대하 20:7에 보면, 아브라함은 주의 "벗"이라고 한다. (j) 위에서 지적하였듯이 피엘형 분사를 번역한 영어 단어 "lover" (연인)는 종종 매춘을 암시하는 경멸적인 뜻을 함축하고 있다. 선지자 예레미야, 에스겔, 호세아 등은 이스라엘의 부정한 관계를 언급하기 위해서 이 단어를 사용한다. 호 2:7, 호 9:12, 겔 16:33, 겔 16:36-37, 렘 22:20, 렘 22:22, 렘 30:14, 애 1:19, 슥 13:6 등).(참조: R. L. Alden; Nelson's EDOT). ====== @n"j;(2603, 하난) 호의(은혜)를 베풀다, 자비롭다, 불쌍히 여기다 1. 하난(동사)은 기본어근이며, '호의(은혜)를 베풀다, 자비(은혜)롭다, 불쌍히 여기다'를 의미한다. 구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약 80회 나온다. (a) 칼형에서 '호의(은혜)를 베풀다, 자비롭다, 불쌍히 여기다'를 의미한다. 하난은 칼형으로 사용된 용례들 중 압도적으로 많은 수의 용례들, 즉 대략 41회 용례들이 여호와를 주어로 취한다. 청원의 말, '혼네니'(나에게 자비로우소서)는 시편에 19회 나온다. 시편기자는 여호와께 외로움(시 25:16, H17), 고통(시 31:9, H10), 죄과(시 51:1, H3)에 대하여 자기에게 자비를 베풀기를 간청한다. 죄과에 대해서 그가 구하는 은총은 하나님께서 그에 대한 고발을 말소시켜 달라는 것이다. 사 33:2을 참조하라. 여호와는 자비롭게 야곱에게 자녀를 주시고(창 33:5) 그를 번영하게 하셨다(창 33:11). 베냐민에게 내린 요셉의 축복(창 43:29)과 아론의 축복(민 6:25)은 하나님의 자비로운 태도를 필요로 한다. 아모스(암 5:15)는 청중들에게,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긍휼을 베푸시도록 의를 세우라고 촉구한다. 요컨대 여호와는 그가 선택한 사람들에게 자비롭게 행하신다는 점에 있어서 주권자이시다(출 33:19). (b) 니팔형에서 '불쌍히 여기심을 받다, 동정의 대상이 되다'를 의미한다. 렘 22:23, "레바논에 거하여 백향목에 깃들이는 자여 여인의 해산하는 고통 같은 고통이 네게 임할 때에 너의 가련함이 얼마나 심하랴". (c) 피엘형에서 '은혜(자비)롭게 하다'를 의미한다. 잠 26:25에서 말이 외적으로 친절하거나 동정적인 말에 대해 사용되었다. (d) 포엘형에서 '자비를 베풀다, 불쌍히 여기다'를 의미한다(잠 14:21, 시 102:14). (e) 호팔형에서 '은혜 받다(입다)'를 의미한다(사 26:10, 잠 21:10). (f) 히트파엘형에서 '은혜(자비, 은총)를 구하다'를 의미한다. 히트파엘 어간은 약속의 땅을 보게 해 달라고 한 모세(신 3:23)와 성전 봉헌 때의 솔로몬(왕상 8:33, 왕상 8:47, 왕상 8:59, 왕상 9:3, 대하 6:24, 대하 6:37)과 시편기자(시 30:8 H9, 시 142:1 H2) 그리고, 야곱이 더불어 씨름한 천사에게 간구하는 것을 인용한 호세아(호 12:4 H5)가 하나님께 탄원할 때, 사용하였다. 빌닷에게서 하나님께 탄원하라는 충고를 받은 욥(욥 8:5)은 비록 자기가 의롭긴 하지만, 이 방법만이 그가 유일하게 의존할 수 있는 길일 것이라는 점을 시인한다(욥 9:15). 2. 하난(동사)은 기본어근이며, '싫다, 몹시 싫다'를 의미한다. 구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욥 19:17에서 1회 나온다: "내 숨을 내 아내가 싫어하며 내 동포들도 혐의하는구나".(참조: E. YAMAUCHI; BDB). === ===[아가페사랑 (= 자비/하난 --> 긍휼/라함 + 은혜/헨 ), ....인자/인애 (헤세드) = 영원불변의 언약적 아가페사랑]=== Q누림의 참평강을 상실, 곧 지고지선의 진복누림 상실함에 대한, 단장의(곧 친히 낳은 자가 처한 슬픔/비참에 대해 창자가 끊어진 듯 전심으로 불쌍히 여기는) 동감(>공감)/동정심[=자비의 감정]이 북받쳐서 섬기시는 바, 함께 체휼/동행/인도하며 도와 일으키는 사랑[긍휼=자비의 감정따른 자녀의 회복위한 구체적 도움...라함....엘레오스] + 자격없고 무력한 자에게 아무런 대가없이 부어주는 대속하시는 사랑[은혜 = 은총..헨..카리스..JC의 장성한분량의 충만까지 이끄심]....바로 이렇게 나타난 바 아가페사랑의 Q과 그의 말씀을 믿고 붙드는 자마다에게 베푸시는 바, 즉, 영원불변의 언약따른 아가페 사랑을 헤세드(인자/인애)라 할 수 있음 ===하나님의 지고지선, 완전한 아가페사랑의 3가지 측면=== @@은혜(십자가로 이루신 구속/회복의 사랑, 곧 은총)를 통하여 주님과 화목함(하나됨..하나님의 소유된 영광의 반사, 영광 공급의 통로 삼으심)의 문을 여시고 하나님자신의 모든 것을 (믿음을 통해) 누리도록 하심으로 평강안으로 이끄심..... @@긍휼을 통하여 체휼하시는 사랑(환난과 고난, 역경 중, 특히 죄인괴수의 자각가운데 전적으로 무력한 피조물로서 주의 도움없이 살 수 없음 호소할 때, 불쌍히 여겨 친히 아파하며 동감/동정/공감하사 동행/인도하며 일으켜 세우심으로 은총 누림안에 머물도록 하심)으로 평강안으로 이끄심.....하나님의 [불쌍히 여기시는 사랑은 자비mercy와 긍휼compassion로 나타남]자비는 십자가대속사건으로 꽃을 피우고 주님말씀 믿고 영접함 통해 자기를 열어드린 이마다 새로운 창조안의 자녀로 삼으심의 은혜를 베푸심!!....은혜를 온전히 이루는 사랑은 하나님의 체휼하시는=오래참으시며 용서하시고 도와 일으키시는 사랑, 인자/긍휼임) @@평강(임마누엘하나님이 반석-방패-산성/요새-목자 되심 믿고 붙듦으로 인해 조성된 생명의 번성번영창대케 됨, 그것을 통해 생육-번성-충만-정복/다스림의 근원이신 주님 발견하고 그안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발견하여 동행하며, 주뜻 안에 하나되어 살아감)....이 평강으로 인해 참된 형통, 곧 하나님의 지고지선의 진복의 실제의 어떠함이 나타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