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함께 메지 말라!(14-16(상))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함께 메지 말라.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 하며 빛과 어둠이 어찌 사귀며(14),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되며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찌 상관하며(15),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16(상)." 바울은 (6:11-13)에서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마음을 열고 화해할 것을 요구했다. 이제 그는 계속해서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불의한 세력들과 분리되어 거룩함을 유지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그는 이 부분을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함께 메지 말라!"는 말로 시작하고 있다. 이 말은 (6:14-7:1)의 핵심을 요약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 언급된 '믿지 않는 자'(아피스토이스)가 무엇을 가리키는 지에 대해서 여러 가지 견해들이 제시되어 왔다. 이러한 견해 중에서 중요한 세 가지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첫째 견해는 여기에 나오는 '믿지 않는 자'가 '바울의 적대자들'을 가리킨다는 견해이다. 이 견해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바울이 지금 본문에서 언급하고 있는 내용은 불신자에 대한 것이 아니라 바울을 대적하는 거짓 사도들에 대한 변호라는 점을 강조한다. 그들은 바울이 지금 거짓 말로 고린도교회 성도들을 바울과 이간질을 하는 거짓 교사들과 분리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2) 둘째 견해는 여기에 나오는 '믿지 않는 자"를 문자 그대로 '불신자'를 가리킨다는 견해이다. 이러한 주장을 하는 사람들은 당시 고린도교회 안에는 우상숭배, 음란, 불신자와의 결혼 문제 등으로 부정한 삶을 살도록 강요받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지금 바울이 고린도교회 성도들을 부정으로 이끄는 이러한 불신세력들과 분리될 것을 요구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3) 셋째 견해는 여기에 나오는 '믿지 않는 자'가 '믿음의 순수성을 해치는 세상과의 타협'을 가리킨다는 견해이다. 본문에서 "멍에를 함께 매지 말라"는 말은 (신 22:10)에 나오는 말, 즉 "너는 소와 나귀를 겨리하여 갈지 말며'과 (레 19:19)에 나오는 말, 즉 "네 육축을 다른 종류와 교합하지 말며 네 밭에 두 종자를 섞어 뿌리지 말며'라는 말씀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면 바울이 여기에서 불신자와의 교제를 전면적으로 금하고 있는가?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이미 여러 곳에서 불신자와의 교제를 허용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그는 믿지 않는 사람과 결혼한 경우에 불신자가 이혼을 요구하지 않으면 그대로 살아도 된다고 허용했으며(고전 7:12-15), 불신자들의 초대에 응해도 된다고 허용했다(고전 10:27, 14:22-25). 또한 그는 신자들이 불신자들과 완전히 결별하려면 세상 밖으로 나가야 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고전 5:9-11). 그러면 여기에서 바울이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함께 매지 말라!"고 한 말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어쩌면 이 말은 바울과 고린도교회 성도들을 이간질하는 거짓 교사들로부터 분리할 것을 요구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또한 이 말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을 극단적인 우상숭배와 부정으로 이끄는 불신 세력들로부터의 분리할 것을 요구하는 말일 수도 있다. 고린도교회 성도들은 곳곳에 우상 숭배가 벌어지는 신전에 참석할 유혹을 받고 있었으며, 또한 계모와 동침한 사람들도 있었고, 불신자와의 결혼에 대한 유혹도 있었으며, 또한 여러 가지 점에서 그들을 부정한 행위로 이끄는 사람들과 접촉할 가능성이 많았다. 그러므로 바울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이러한 부정한 세력들과의 관계를 단절함으로 그들의 악한 영향력을 인해 성도의 정체성을 지키지 못하는 상황에 이르지 않도록 권면했을 가능성이 많다. 바울은 성도들이 이러한 부정한 세력들과 함께 하는 것의 부당성을 알리기 위해서 다음과 같은 다섯 가지의 수사적인 질문들을 던지고 있다. 1)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할 수 있는가?(14) 성도들은 '의'(디카이오쉬네)'에 속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의인이 된 사람들로서 그리스도 안에서 의롭게 살아가야 할 사람들이다. 그러나 성도들을 부정으로 이끄는 불신 세력들은 불법'(아노미아)에 속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법에 순종하지 않고 자기 뜻을 좇아 불법을 행하며 살아간다. 그러므로 의에 속한 성도들이 불법에 속한 불신 세력들과 함께 하여 불법을 행하며 사는 일은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일이다. 2) 빛과 어두움이 어찌 사귈 수 있는가?(14) 성도들은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속한 '빛의 자녀들'이다. 그들은 성령님께서 인도하시는 진리 안에서 살아가야 한다. 반면에 불신 세력들은 어둠의 영인 사단에게 속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악한 영을 좇아서 어둠과 혼돈 속에서 무질서하게 살아간다. 여기에서 '사귄다'고 번역된 말(코이노니아)은 '교제'를 의미하는 말이다(9:13). 빛과 어두움이 함께 공존할 수 없듯이 진리 안에서 살아가야 할 빛의 자녀들이 어둠의 영을 좇아 혼란과 무실서 속에 살아가는 사단의 자녀들과 함께 교제하며 살아갈 수는 없다. 3) 그리스도와 벨리알(사단)이 어찌 조화가 될 수 있는가?(15) 성도들은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들인 반면 불신 세력들은 '벨리얄'(사단)에 속한 사람들이다. '벨리얄'은 '무가치함', '악함'을 뜻하는 말로 구약성경에서 나쁜 뜻으로 사용되었다. 이 말은 불량하거나 방탕하고 거친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었다(삿 19:22; 삼상 10:27). 이 말은 사해 사본에서 '악마의 왕', 즉 사단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었다. 본문에서는 이 말이 그리스도를 대적하는 '사단'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었다. 그리스도께 속한 성도들은 사단에 속한 불신 세력들과 조화를 이룰 수 없다. 이는 그리스도와 사단은 모든 점에서 서로 반대되기 때문이다. 이 두 세력은 항상 다툴 수밖에 없고 조화를 이루는 일은 불가능하다. 4) 믿는 자와 믿지 않는자가 어찌 상관할 수 있는가?(15)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은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자'(아피스투)들과 함께 일할 수 없다. 여기에서 '상관한다'고 번역된 말은 함께 동업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들은 그리스도를 주인으로 삼고 그 분의 뜻을 따라 살아간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사람들은 그리스도를 거부하고 사단과 자기의 뜻을 좇아 살아간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과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사람들이 함께 동업을 할 수는 없다. 만일이 둘이 동업을 하게 되면 서로 다르는 방향이 완전히 달라서 계속해서 충돌하다가 결국 둘 다 망하게 될 것이다. 5)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될 수 있는가?(16(상))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 하지 말라!'는 바울의 권고는 16절에서 절정을 이루고 있다. 성령이 거하시는 성전인 성도들이 우상이 거하는 신전과 일치할 수는 없다. 본문에서 '일치'로 번역된 말(슁카타데시스)은 '함께 찬성의 표를 던져서 하여 승인하는 것'을 의미한다. 성도들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다. 여기에서 '성전'으로 번역된 말(나오스)은 성전 가운데에서도 하나님께서 임재하신 '지성소'를 가리키는 말이다. 성도들의 몸 안에는 성령님께서 거하신다. 이러한 점에서 성도들의 몸은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는 지성소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나님의 영이 거하는 지성소가 우상을 섬기는 신전에 가서 우상을 섬길 수가 있겠는가?(고전 10:14). ###* 거룩할 것을 요구함(16(하))-7:1)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이르시되 내가 그들 가운데 거하며 두루 행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되리라(16(하)). 그러므로 너희는 그들 중에서 나와서 따로 있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라. 내가 너희를 영접하여(17), 너희에게 아버지가 되고 너희는 내게 자녀가 되리라. 전능하신 주의 말씀이니라 하셨느니라(18). 그런즉 사랑하는 자들아! 이 약속을 가진 우리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하게 하자(7:1)." 바울은 성전과 우상의 신전이 하나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해서 다음과 같은 구약 성경을 인용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이르시되 내가 그들 가운데 거하며 두루 행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되리라(16)." 이 구절은 (레 26:11-2)이며 이와 비슷한 내용을 가진 구절들은 (출 25:8; 29:43-46; 삼하 7:14,27; 사 52:4,11; 겔20:34) 등이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들 중에 거하시면서 친히 그들의 하나님이 되어 주신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함께 동행하는 성도들이 우상의 신전에 가서 불신 세력들과 함께 우상의 제물을 먹는 일은 전혀 합당하지 않다. 만일 성도들이 이러한 일을 행하면 하나님의 영을 근심하게 하고, 스스로 우상에게 얽매이는 결과를 가져오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인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부정한 자들 중에서 나와서 따로 있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라!"고 권면하셨다(17). 이 말은 이사야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바벨론을 떠나서 그곳의 이교주의와 단절할 것을 권고한 말이다(사 52:11).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께서 함께 동행하신다. 그러므로 그들은 하나님의 임재를 위해서 부정한 것으로부터 분리되어 정결한 상태를 유지할 필요가 있었다. 그러므로 성도들이 부정한 세력들로부터 분리하여 스스로 자신을 지키는 일은 당연한 일이다. 이와 같이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는 지성소가 되기 위해서 음행, 우상숭배, 부정한 혼인 등으로부터 자신들을 자키는 일이 선행되어야 했다(고전 5:1-13). 하나님은 "성도들을 영접하시고 그들과 부자관계를 맺으시겠다고 약속해 주셨다." 이 말은 구약성경의 여러 구절에서 자유롭게 인용한 것으로 보인다(삼하 7:14; 사 43:6; 렘 31:9 참조). 여기서 주목할 만한 것은 바울이 (삼하 7:14)과 (사 43:6)을 나름대로 수정해서 인용을 하고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 믿는 사람들에게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시기로 약속하셨다(요 1;12).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되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의 양자가 되어 하나님 나라의 상속자가 될 것이다(갈 3:28;4:5,6;엡 2:18). 이러한 약속은 "전능하신 주님"께서 친히 하신 약속의 말씀이었다. 바울은 이 말을 본문에서 인용함으로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에 대한 강력한 확신을 표현하고 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된 성도들이 사단과 우상의 전에서 우상의 제물을 먹거나 음란하고 더러운 일을 하는 것은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성도들은 하나님께서 동행하시며 그들의 아버지가 되어 주시겠다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약속을 받은 사람들이다. 하나님께서는 성령님을 통해 우리와 동행하시며 우리를 자신의 성전과 백성과 자녀로 삼아주실 것을 약속하셨다. 이 약속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약속이기 때문에 절대로 변경될 수가 없다. 사도 바울은 (7:1)에서 이러한 약속을 받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해야 될 세 가지 실천 사항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1) 첫째로 하나님의 동행과 아버지 되심의 약속을 받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은 그들 중에 계시는 "하나님을 두려워할 줄 알아야"한다. 여기에서 언급된 '두려움'(포보)은 더러움과 죄악을 심판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 뿐 아니라, 하나님께 대한 경외심을 의미한다. 성도들은 자신과 함께 계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에 대해 경외심을 갖고 살아가야 한다.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은 성도들로 하여금 거룩한 삶을 살게해주는 강력한 동기를 부여한다. 바울 역시 하나님께 대한 두려움이 그의 모든 사역의 동기가 되었다. 하나님 경외는 지혜서에서 가장 중요하게 취급하는 지혜의 근원이며 기초이다(시 2:11;5:7;ㅍ잠 1:7, 29;8:13;ㅍ전 12:13). 2) 둘째로 하나님의 동행과 아버지 되심의 약속을 받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은 "온전히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나가야"한다. 하나님의 성전인 성도에게 요청되는 것은 거룩함이다. 이는 하나님께서 거룩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성전도 거룩해야 하기 때문이다(레 19:2). 본문에서 '거룩함'으로 번역된 말(하기오쉬넨)은 신약 성경에서 형용사(하기오스)로 229회 나오고, 동사(하기아조)는 29번, 그리고 명사(하기아스모스)는 10번이 나온다. 신약 성경에서 이 말이 이렇게 많이 나오는 이유는 거룩함이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잘 보여준다. 성도들은 거룩하신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계속해서 거룩하신 하나님을 닮아가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3) 셋째로 하나님의 동행과 아버지되심의 약속을 받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은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하게"해야 한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하나님의 자녀들은 육을 더럽게 하는 모든 것들과 또한 영을 더럽게 만드는 모든 것들로부터 자신을 정결하게 지킬줄 알아야 한다. 여기에 언급된 육과 영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이는 만일 이 둘 중에서 어느 한쪽이 더러워지게 되면 다른 한 쪽도 더러워지기 때문이다. 본문에서 바울이 말하는 '온갖 더러운것'은 무엇을 의미하고 있을까? 이것은 어쩌면 우상의 신전에서 음식을 함께 먹고 교제하는 일이나 , 우상 신전에서 열리는 축제나 의식에 참여하는 것, 또는 이교의 특정한 단체에 가입하여 회원이 되는 것 등과 관련이 있다고 할 수 있다(고전 8:10;10:14-22 참조). 바울은 (갈 5:19-21)에서 성도들의 육과 영을 더럽게 하는 것으로 '음행과 호색과 우상숭배와 술수와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짓는 것과 분리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 등을 제시했다. 고린도교회 성도들과 우리들은 자신의 육과 영을 부정하게 만드는 이런 것들로부터 자신을 지켜서 정결하게 함으로 '온전히 거룩함을 이루어 나가야 한다.' ◎ 토론할 문제 ◎ 1.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함께 메지 말라!"는 말의 의미가 무엇인지 설명해보자.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함께 메었다가 낭패를 당한 경험이 있으면 이야기해보자. 2. 성도들이 불신 세력들과 함께 하는 것이 부당함을 강조하기 위해서 바울이 제시한 다섯 가지 비유와 질문은 무엇이며, 그 의미가 무엇인지 설명해보자! 3. 우리 주변에서 성도들이 불신 세력과 하나가 되어 하나님을 거역하고 불법을 행하는 사례들을 제시해보고 그 일로 인해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이야기해보자. 4. 우리가 하나님의 성전과 자녀로서 하나님을 닮아 거룩하게 되기 위해서 우리가 해야 될 일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말해보자. 본문: 고후 6:14-7:1 [14]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 하지 말라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 하며 빛과 어두움이 어찌 사귀며 [15]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되며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찌 상관하며 [16]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 우리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가라사대 내가 저희 가운데 거하며 두루 행하여 나는 저희 하나님이 되고 저희는 나의 백성이 되리라 하셨느니라 [17] 그러므로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저희 중에서 나와서 따로 있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라 내가 너희를 영접하여 [18] 너희에게 아버지가 되고 너희는 내게 자녀가 되리라 전능하신 주의 말씀이니라 하셨느니라 [7:1] 그런즉 사랑하는 자들아 이 약속을 가진 우리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케 하자 14절에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 하지 말라’는 말씀을 우리는 자주 들었습니다. 어떤 이가 불신자와 결혼하려고 할 때 이 말씀을 자주 듣습니다. 신명기 22장 10절을 보면 ‘서로 다른 종류의 두 마리의 짐승에게 한 멍에를 지우지 말라’고 율법에 명시되어 있습니다. 바울 사도도 이 신명기의 말씀을 염두에 두고 편지를 쓴 것 같습니다. 그러면 이 말은 무슨 뜻일까요? 믿지 않는 자와는 상종치 말라는 것입니까? 그들과 담 쌓고 지내라는 겁니까? 사업상 동업해도 안 되는 것입니까? 그렇게 하려면 우리는 산속에 들어가거나 오로지 교회 울타리 안에서만 살아야 할 것입니다. 어떻게 믿는 자들끼리만 인간관계를 맺고 살 수 있습니까? 이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합니다. 14절은 결혼 상대자를 만날 때 해당하는 말씀입니다. ‘의와 불법이 함께 할 수 있느냐’, ‘믿과 어둠이 어찌 사귀며’,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되며’ 이런 말씀은 부부 사이의 다른 신앙에 해당하는 말들입니다. ‘사귄다’, ‘조화되다’, ‘상관하다’, ‘일치하다’등의 단어는 남녀 간의 깊은 관계를 의미합니다. 벨리알은 사탄의 별명입니다. 그리스도와 사탄이 어찌 이상적인 부부의 관계를 대변할 수 있겠습니까? ‘상관하다’는 말은 특별히 부부관계를 의미합니다. 적어도 바울에게서는 그리스도인과 비그리스도인은 부부관계가 불가능합니다. 당시에 헬라는 영과 육이 철저히 이원론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고린도 교회는 하나님은 영으로 섬기고, 육으로는 영적인 것을 해치지 못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교회에 와서는 영으로 하나님께 예배하고, 집으로 돌아갈 때 육으로는 창기의 집을 찾았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창기와 만나는 자는 창기와 하나가 된 줄 알지 못하느냐고 했습니다. 육으로만 창기를 만나는 것이 아니라 전인(全人)으로 만난다는 겁니다. 따라서 바울에게서는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부부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용납될 수 없습니다. 그것은 믿는 자가 불신자로 전락하는 것입니다. 그 결과는 우리 생각 밖이라는 겁니다. 어쨌든 14절의 말씀은 이교도와 결혼하지 말라는 경고입니다. 왜 바울이 여기에서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 하지 말라고 했습니까? 현실적으로 당시 고린도 교회 성도들 가운데 불신자와 결혼하는 일이 다반사였습니다. 그래서 바울이 강경하게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 하지 말라고 경고하는 것입니다. 우선 믿는 자는 하나님의 성전이기 때문입니다. 16절 하반절을 보면, ‘우리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성전’입니다. 구약시대와 신약시대의 성전 개념은 차이가 있습니다. 구약시대에는 예루살렘 성전 하나밖에 없었습니다. 팔레스틴에도 회당 곧 기도처는 많았습니다. 그런데 엄밀하게 의미하면 회당에는 하나님이 안 계십니다. 그래서 회당은 성전이 아닙니다. 예루살렘에만 하나님이 계십니다. 성전에는 성소가 있고, 지성소 안에는 법궤가 있습니다. 언약궤는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공간입니다. 그 지성소에만 하나님이 강림하십니다. 그래서 제사장이 백성을 대표해서 1년에 한 번 지성소에서 하나님을 뵙습니다. 이것이 구약의 성전입니다. 그런데 신약시대는 우리가 하나님의 성전입니다. 지금은 성령시대입니다. 하나님이 성령으로 믿는 자의 중심에 강림해 계시는 시대입니다. 하나님이 계시면 거기가 바로 성전입니다. 따라서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이 걸어다니는 성전입니다. 우리가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함께 하면 안 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가 바로 살아계신 하나님이 계시는 성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을 섬기는 자가 어찌 우상을 섬기는 자와 한 몸을 이룰 수 있겠습니까? 마치 빛과 어둠이 서로 조화하기 어려운 것처럼,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서로 갈등하는 것처럼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의 결혼은 필연적으로 갈등을 유발시킨다는 겁니다. 다음으로 믿는 자는 성도 곧 하나님의 백성이기에 불신자와 멍에를 함께 멜 수 없습니다. 16절 하반절에 보면 ‘나는 저희 하나님이 되고 저희는 나의 백성이 되리라 하셨느니라’고 합니다. 성도는 거룩한 백성이라는 말인데, 구별된 백성이라는 뜻입니다. 거룩은 구별됨이란 뜻과 같습니다. 성스럽다, 거룩하다는 말은 세상과 구별되다는 뜻입니다. 그러니 구별된 백성 곧 성도가 구별되지 못한 사람과 짝을 이룰 수 있느냐는 겁니다. 유유상종입니다. 여기에 조화가 있지, 종(種)이 다른데 어찌 하나가 될 수 있겠습니까? 그러니까 우리 믿는 자들은 구별된 성도들이기에 구별되지 못한 세상 사람들과 짝을 이룰 수 없습니다. 우리의 소속과 세상 백성의 소속이 다릅니다. 하나님의 자녀와 어둠의 자녀의 차이입니다. 가치관이 다르고 정서가 다르기 때문에 한 멍에를 멜 수 없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한 멍에를 메고 함께 나아갈 수가 없습니다. 결혼하기 전에는 장담을 합니다. 결혼해서 믿게 하겠다고 합니다. 그러나 막상 결혼하고 나면 내 뜻대로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열심히 기도하던 사람들도 낙심하게 됩니다. 신앙생활한다고 핍박을 받으며 어렵게 신앙생활의 명맥을 이어가는 분들이 많습니다. 이것은 세상 백성과 멍에를 함께 한 혹독한 댓가입니다. 마지막으로 7장 1절입니다: “그런즉 사랑하는 자들아 이 약속을 가진 우리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케 하자.” ‘거룩함을 온전히 이룬다’는 말은 성화(聖化)를 뜻합니다. 이루가 예수를 믿고 구원을 받았음에도 우리를 이 땅에 두시는 이유는 한 가지입니다. 하나님의 기대하시는 수준으로 우리가 아직 성화가 안 되었기 때문입니다. 군대에서 제대할 때의 계급이 그 사람의 영원한 예비역 계급입니다. 상병 제대면 평생 예비역 상병이고, 병장으로 제대하면 평생 예비역 병장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천국으로 부르시는 순간, 우리의 수준이 그 사람의 영원한 수준입니다. 그래서 성화의 수준이 중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최대한 우리로 하여금 성화되도록 기회를 주시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다 당신처럼 거룩해지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우리의 성화를 기대하시고 우리를 이 땅에 두고 계십니다. 그런데 성화가 지상목표인 믿는 자가 안 믿는 자와 결혼해서 발목을 잡히는 것은 그 사람의 영적인 순례에 치명적입니다. 성화가 아니라 도리어 세속화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 하는 것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자녀를 결혼시킬 때 이 말씀을 기억하시면서 신중하게 결정하셔야 합니다. 조건만 보지 마십시오. 조건만 맞으면 신앙의 유무는 상관없다고 생각하면 오산입니다. 바울의 권면과 당부는 당시 고린도 교회뿐만 아니라 오늘 우리에게도 그대로 적용되어야 옳습니다. 자녀가 우겨도 여러분이 말려야 합니다. 어떤 명분으로도 그리스도인의 결혼조건이 바뀌어서는 안 됩니다 ---------------------------------------------------------------------------------------------------------------------------------------------------------------- 예수 믿는 사람이 이 세상을 살아갈 때 예수 믿지 않는 사람들과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라는 질문에, 성경은 그리스도인은 세상 사람들과 함께 멍에를 같이 매지 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신명기 22:10절에 ‘너는 소와 나귀를 함께 멍에를 매어서 밭을 갈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는데, 소와 나귀는 성격, 걸음걸이, 힘도 다릅니다. 그래서 소와 나귀가 함께 멍에를 쓰면 농사를 제대로 지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믿는 사람들이 알게 모르게 세상 사람들과 멍에를 같이 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을 보면 세속에 너무나 많이 물들어 있기 때문에 그 사람이 정말 그리스도인인지 아닌지 구분하기가 어렵습니다. 이런 우리들의 모습을 향해 성경은 믿지 않는 자들과 멍에를 같이 하지 말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이 세상 사람과 멍에를 같이 할 수 없는 이유는 여기에 있습니다. 첫째,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 하며(14절) 의로운 사람과 불법한 사람이 사귈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한 사람은 하나님 뜻대로 살려고 몸부림 치고 한 사람은 계속해서 육체의 쾌락을 따라 살기를 원하는데 어떻게 두 사람이 친해 질 수 있습니까? 그래서 믿는 사람과 믿지 않는 사람이 멍에를 같이 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둘째, 빛과 어두움이 어찌 사귀며(14절 下) 성경은 그리스도인들에 대하여 ‘빛의 자녀’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빛이 있는 곳에 어두움이 없고, 어두움이 있는 곳에는 빛이 없습니다. 빛 가운데 있는 사람들을 보면 너무나 어리석고, 헛된 것에 그들의 물질과 시간을 투자하는 것이 불쌍하기 짝이 없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빛 가운데 있는 자와 어두움 가운데 있는 자가 친밀한 사귐을 가질 수가 있겠습니까? 셋째,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될 수 있겠느냐?(15절) 여기 벨리알이라고 하는 말은 ‘무가치하다’ ‘사악하다’고 하는 의미로 다른 말로는 사단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리스도와 사단이 절대로 조화될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 한번 생각해 보세요. 사단과 예수님이 나란히 앉아서 ‘이제 우리 서로 화목하자!’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절대로 있을 수 없습니다. 이 말은 그리스도인과 불신자의 결혼문제가 불가하다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안 믿는 사람과 결혼했을 때에 그 심적 고통은 말할 수 없이 큰 것입니다. 왜냐하면 한 사람은 빛 가운데 있는 사람이고, 한 사람은 어두움 가운데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보는 게 다르고, 가치관이 다르기 때문에 살아가기가 참으로 어려운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 하지 말라”고 또 불신자와 결혼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또 믿는 사람은 믿지 않는 사람과 사업을 절대로 함께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아니예요. 이 사람은 참 좋은 사람입니다. 어떤 면에서 믿는 사람보다 더 좋은 사람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말하기를 그럴 수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사단을 축복할 수가 없고, 사단의 자녀를 축복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맺는 말) 그리스도인과 세상 사람이 같이 멍에를 멜 수 없는 이유는 16절에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 성경은 우리의 몸을 성전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그리스도의 지체를 가지고 창기의 지체를 만들겠느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고전6:19) 우리 몸은 내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피 값을 치루시고 사신 하나님의 것입니다. 우리의 육체는 썩어 없어질 고깃덩어리가 아니라 거룩한 생령이 되었고 하나님의 성전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결론을 내리려니까 여간 마음이 불편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본문을 전후로 다시 유심히 살펴보니까 왜 사도 바울이 고린도교회 성도들을 향하여 이런 말씀을 하셨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고린도는 가장 타락한 도시, 이단의 도시였기에 성숙하지 못한 이들이 세상과 구별된 삶을 살아라고 권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을 전체적으로 볼 때 그리스도인과 세상의 관계에 대하여 세상과 높은 담을 쌓고, 소극적이고, 세상과 격리된 삶을 살라고 말씀하지 않습니다. 너희는 세상 속으로 들어가서 빛이 되어라! 소금이 되어라! 등대, 밀알, 누룩이 되라고 강력하게 명령하고 있습니다. 나만 예수 믿고 신앙의 절개를 지키고 구원 받는 것으로 끝이 나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세상에 들어가 무언가 남겨야 합니다. 싸워서 이겨야 합니다. 바울을 가리켜 예수에 미친놈, 염병 걸린 놈이라고 합니다. 바울이 가는 곳에는 변화가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직장이 타락하고 부패해서 신앙을 지킬 수 없어 나오려는 사람이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파송하였습니다. 그곳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 가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한 사람이 거룩한 씨앗이 되어 수많은 영혼을 구원하는 믿음의 겨자씨가 되시기 바랍니다. ### 믿는이의 굳건한 확신 <마10:32> 32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시인할 것이요 <사 40 : 15-31> 15 보라 그에게는 열방이 통의 한 방울 물과 같고 저울의 작은 티끌 같으며 섬들은 떠오르는 먼지 같으리니 16 레바논은 땔감에도 부족하겠고 그 짐승들은 번제에도 부족할 것이라 17 그의 앞에는 모든 열방이 아무것도 아니라 그는 그들을 없는 것 같이, 빈 것 같이 여기시느니라 18 그런즉 너희가 하나님을 누구와 같다 하겠으며 무슨 형상을 그에게 비기겠느냐 19 우상은 장인이 부어 만들었고 장색이 금으로 입혔고 또 은 사슬을 만든 것이니라 20 궁핍한 자는 거제를 드릴 때에 썩지 아니하는 나무를 택하고 지혜로운 장인을 구하여 우상을 만들어 흔들리지 아니하도록 세우느니라 21 너희가 알지 못하였느냐 너희가 듣지 못하였느냐 태초부터 너희에게 전하지 아니하였느냐 땅의 기초가 창조될 때부터 너희가 깨닫지 못하였느냐 22 그는 땅 위 궁창에 앉으시나니 땅에 사는 사람들은 메뚜기 같으니라 그가 하늘을 차일 같이 펴셨으며 거주할 천막 같이 치셨고 23 귀인들을 폐하시며 세상의 사사들을 헛되게 하시나니 24 그들은 겨우 심기고 겨우 뿌려졌으며 그 줄기가 겨우 땅에 뿌리를 박자 곧 하나님이 입김을 부시니 그들은 말라 회오리바람에 불려 가는 초개 같도다 25 거룩하신 이가 이르시되 그런즉 너희가 나를 누구에게 비교하여 나를 그와 동등하게 하겠느냐 하시니라 26 너희는 눈을 높이 들어 누가 이 모든 것을 창조하였나 보라 주께서는 수효대로 만상을 이끌어 내시고 그들의 모든 이름을 부르시나니 그의 권세가 크고 그의 능력이 강하므로 하나도 빠짐이 없느니라 27 야곱아 어찌하여 네가 말하며 이스라엘아 네가 이르기를 내 길은 여호와께 숨겨졌으며 내 송사는 내 하나님에게서 벗어난다 하느냐 28 너는 알지 못하였느냐 듣지 못하였느냐 영원하신 하나님 여호와, 땅 끝까지 창조하신 이는 피곤하지 않으시며 곤비하지 않으시며 명철이 한이 없으시며 29 피곤한 자에게는 능력을 주시며 무능한 자에게는 힘을 더하시나니 30 소년이라도 피곤하며 곤비하며 장정이라도 넘어지며 쓰러지되 31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