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20.09.01 작성자 : 양시영
제   목 : 히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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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히11==  [191내가매일기쁘게] 내주님없이는못살아.. 내주되신주를참사랑하고.. 보혈을지나.. 은혜로만들어가네.. 내눈주의영광을보네, 내눈여소서.. 거룩한곳에서게하소서.. 주님여내손을꼭잡고.. 사랑의주예수님이.. 서로사랑하라주가말씀하셨네.. 나를사랑하는자들이.. 주예수사랑기쁨내마음속에..  사랑의주예수님이내오른손붙잡고.. 주님께서주시는그사랑.. OhowheLovesYouAndMe..  주님의마음을본받는자.. 귀하신주여.. 주님의뜻을이루소서.. 주님내가여기있사오니나를.. 우리가주목하는것은보이는것이아니요(고후4:18) 너희는먼저그의나라와그의의를구하라그리하면(마6:33:) 구하라찾으라두드리라(마7:7-8) 내은혜가네게족하도다(고후12:9) 약한나로강하게, 나의죄다사하시며, 주님가신길십자가의길.. 거기너있었는가그때에.. 내가그리스도와함께.. 십자가그사랑멀리떠나서.. 주예수오셔서내슬픔아셨네.. 짐이무거우냐홀로지고가기에.. 날마다숨쉬는순간마다.. 오라오라내게오라.. 하나님께로더가까이.. 내주의은혜강가로.. 주음성외에는.. wait on theLord listen to his voice..JesusLovesMeYesIknow.. 주의음성을내가들으니.. 주품에품으소서.. 주의친절한팔에.. 주내소망은주더알기.. 주께가까이날이끄소서.. 우리가지금은나그네되이도.. 내새계명을너희에게주노니.. my peace I give unto you.. 주와같이길가는것..


구주 십자가로 꽃 피우고 그리스도의 성령으로 오셔서 영에 내주하사 임마누엘의 주님- 참 남편이자 참 주인으로서 성령 열매 맺고 익어가게하고 계신, 다함 없는 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주님과, 살갑고 친밀-친근-포근하신(-꿀보다 더 달콤 새콤한-전혀 질림 없는-늘 새로운-늘 열려 계시는 친구이신!!) 그분의 참 사랑을 참되게 배워 참 사람, 참 삶, 참 생활이 무엇인지 주께 친밀함으로 직접 묻는자.. 생생한 in-him reality의 사랑하심의 넘치는 주 사랑에 늘 기쁨-감격-감사-강동-감화되고, 사랑의 주께 이끌림 받아 사랑겨운 순종-동행으로 매 걸음 걷는 자마다 그의 안에 사시는, 참 맛 그대로 지닌 소금 - 비추는 빛이신 주님 살아냄이니, 일하시는 주님의 움직임 따라 하나 되어 계신 주님 찬양-감사-주목-앙망함 안에서, 생명 공급의 impartation위해 구하라 하실 때마다 그분께 구하고 받아 주님 자신을 형제 자매, 영적 후사들에게 나누어 주게 되리라..

결국, 참된 산 소망 안에서 붙좇는 믿음은 [말씀으로 주님 뜻-계획-경륜 안에서 열어주사 약속하신 주님-신랑-주인] 하나 되신 임마누엘 주님을 피난처 삼아 전적으로 거듭난 영혼몸, 전 존재를 그분의 소유이기에 맡겨드림으로 의지하고 신뢰[= 의뢰] 하며 [주님 뜻대로 이루시기를, 잠잠히] 기도하고 [간절히] 기다리는 가운데, 주님 뜻하신 바  말씀 그대로 소망 이룸 볼 것을 확신함의 "아멘이자 헤세드"이신 분을 다바크((하나 되어 결합하다))--하사((피난처))--바타흐((의지..뿌리내림))--<우르쿰>아마드((분발/일어서다..부활 샘명 충전/운행))--나바트(주목/응시)-야할/카와((확신으로 기다림))-할라크((움직여 일하심 따라 2인3각의 동행 이룸))이다


***[고후4:18....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라  보지 못하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지 못하는 것은 영원함이니라] ......[고후 5:7...이는 우리가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행하지 아니함이로라].......[골3"1-10..*1.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의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2.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  *3.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졌음이라  4.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 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나리라  *5.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6.이것들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느니라  *7.너희도 전에 그 가운데 살 때에는 그 가운데서 행하였으나  *8.이제는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벗어 버리라 곧 분함과 노여움과 악의와 비방과 너희 입의 부끄러운 말이라  *9.너희가 서로 거짓말을 하지 말라 옛 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 버리고  *10.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이의 형상을 따라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입은 자니라]

 

.......오직 [위엣것을 구하라...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그대가 믿는 것을, Q이 살아계신 Q이 그분을 믿어 들어가 결합한 하나 된, 거듭난 그대의 남편이시요, 도드이심을 굳게 붙들라] 이미 거듭난 그대의 영에 새 남편이자 주인으로서 그리스도께서 친히 오셔서 거주하고 계시니, 그분은 그대의 거듭난 영과 완전히 하나 되어 참 남편이자 도드로서 그대와 하나 되어 거주하고 계시기에....... 거듭난 그대의 생각을 영에 두라. 마음의 생각, 그 지향을 영에 두고 주님 이름을 부름으로써 그분의 친밀한 사랑을 누릴 수 있으니... 그리스도의 영이신 그 영의 어떠하심으로 그대의 생각을 채우라... 그분의 인도하심, 그 사랑의 이끄심 따라 (성령의 열매로 제시해 주신 그 범주 안에서) 항기쉬기범감누리며 순종하라......[[사희화오자양충온절]의 성령의 열매 그 범주에 속하지 않은] 육에 속한 그 어떠한 느낌들이라도 주 JC 이름으로 꾸짖고 대적하라......결코 그 미혹/유혹/참소/도발에 넘어가지 말라.((타락한 혼적 느낌들은 거절감--부족감--고립감--수치/모욕감--두려움/불안--분노/원한/쓴뿌리/저주/폭언---.....타락한 몸의 불의-부정하고 더럽혀지고 무시 당한 자존감/무의미, 무용지물, 쓰레기로 버려진 느낌이란 전적으로 육신의 속임으로서. 그로 인해 추악하고 자신과 남에게 대해 파괴적인 행실의 악순환으로 귀결된다.....소위 가나안7족속의 [위협/불안/두려움--시기/질투--오만/교만--열등감/염려근심짐짓추정/자의적욕구해소/간교--충동적도발/무방비--쾌락/향락(알콜/마약)중독--정죄/비난/능욕] 등이다.

========그리스도의 심판대========

[고린도후서 5:1-10  ....*1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느니라   *2 참으로 우리가 여기 있어 탄식하며 하늘로부터 오는 우리 처소로 덧입기를 간절히 사모하노라   *3 이렇게 입음은 우리가 벗은 자들로 발견되지 않으려 함이라  *4 참으로 이 장막에 있는 우리가 짐진 것 같이 탄식하는 것은 벗고자 함이 아니요 오히려 덧입고자 함이니 죽을 것이 생명에 삼킨 바 되게 하려 함이라  *5. 곧 이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하시고 보증으로 성령을 우리에게 주신 이는 하나님이시니라  *6 그러므로 우리가 항상 담대하여 몸으로 있을 때에는 주와 따로 있는 줄을 아노니  *7 이는 우리가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행하지 아니함이로라  *8 우리가 담대하여 원하는 바는 차라리 몸을 떠나 주와 함께 있는 그것이라  *9 그런즉 우리는 몸으로 있든지 떠나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가 되기를 힘쓰노라  *10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타나게 되어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

.......대부분의 세상 종교에서는 인간이 죽은 후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천국과 지옥이 결정된다고 보고 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가보기 전까지는 내가 지옥으로 갈지, 천국으로 갈지 알 수 없다고 말합니다. 이슬람의 경우도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섰을 때 하나님의 저울이 선행이 악행보다 많은 것을 가리키면 천국으로 갈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캐톨릭의 경우도 그 누구도 구원의 확신을 가질 수 없으며 오직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가 보아야 그들의 선행으로 천국에 들어갈지, 아니면 연옥 또는 지옥에 들어갈 지 알 수 있다고 가르칩니다.

........하지만 성경은 우리가 지옥으로 가게 될지 아니면 천국으로 가게 될지 그 결정은 하나님의 심판대에서 나는 것이 아니라 지금 바로 오늘, 진실된 믿음 안에서 [=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에 믿고 그대의 구주와 하나님으로 입으로 시인하며 고백한 그대로!! 말씀과 성령을 따라, 날마다 보혈에 씻김 받으며, 거듭난 그대의 생각을 영에 두어 그대의 영에 하나 되사 내주하시는[= 그대인 진정한 주인-남편으로서 그대의 전 존재의 소유자로서 거주하여 살고 계시는] 성령[=성육신-대속의 십자가 고난/죽음-부활 승천 안에서 그 영이 되어 오사 내주하시는 그리스도, TUQ]께서 진실로 그대의 주님이자 참 주인과 남편이시기에 그분을 앙망-주목하고 사랑하는 그분이 친히 일깨워 인도-이끄심 그대로 (자신을 쳐다보지 않고 오직 주만 붙들며) 민감한 영적 감수성의 참 이해와 사랑으로 전심으로 의지하여 하나 됨 이루어 날마다 걸어감을 의미하는 바, 이 땅에서 TUQ, 곧 예수 그리스도와의 관계를 맺는지 아니면 맺지 않는지에 따라 이미 결정된다고 보다 더 분명하게 말합니다. 

........이 땅에서 복음을 믿고 붙듦 통해 예수 그리스도와 인격적 관계를 맺어 살고 있는 사람들은 이미 심판에서 옮겨 생명으로 옮겨졌다고 선포합니다. [요5"22-24...*22.아버지께서 아무도 심판하지 아니하시고 심판을 다 아들에게 맡기셨으니 *23.이는 모든 사람으로 아버지를 공경하는 것 같이 아들을 공경하게 하려 하심이라 아들을 공경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를 보내신 아버지도 공경하지 아니하느니라. *24.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그러므로 이 땅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함으로써 이미 예수 그리스도와 관계를 맺은 그리스도인들은 [천국의 실제는 과정 거치고 오셔서 믿는이 안에 살고 계시는 그리스도 자신이기에, 참되게 믿고 그분을 사는 이마다 모두 이미 천국을 소유한 자요, 그 믿는이마다 교회, 곧 우주적 교회 한 새 사람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요] 이 땅에서 죽음을 당하게 되더라도  지옥과 천국을 결정하는 심판에 이르지 않고 곧바로 천국에 들어가는 한편, 주 예수 그리스도와 관계가 없는 자들은 [이미 죄와 사망 가운데서 사탄의 포로로 이 땅을 살아가고 있으며] 자신들이 지은 죄 값을 치르기 위해 고통의 장소인 지옥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그래서 주께서는 [요5:29...*29.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사실을 알리기 위해 거지 나사로의 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 누가복음 16장 19-31절을 보면, 복음을 믿어 아브라함의 자손이 된 거지 나사로는 “죽어 천사들에게 받들려” 낙원((천국의 일부인 즐거운 곳))으로 들어갑니다. 하지만, 복음을 믿지 않은 부자는 장사를 지낸 후에 죽음의 장소인 음부((지옥의 일부로서, 고통 받는 곳))로 내려가 불꽃 속에서 불에 타는 고통 중에 있게 됩니다. 그리고 일단 천국이나 지옥에 들어가면 영원히 그곳에서 나올 수 없다고 알려주십니다. “너희와 우리 사이에 큰 구렁텅이가 놓여 있어 여기서 너희에게 건너가고자 하되 갈 수 없고 거기서 우리에게 건너올 수도 없게 하였느니라”(눅 16:26).

그리스도인이든 불신자든 죽음을 지난 후에는 낙원이나 음부에 들어가고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는 그들 모두가 부활하게 됩니다. 그래서 바울은 “하나님께 향한 소망을 나도 가졌으니 곧 의인과 악인의 부활이 있으리라 함이니이다”(행 24:15)라고 알려주었습니다. 그러나 신자는 영생의 부활(=첫번 째 부활, 영생의 부활))로 부활하고, 불신자는 심판의 부활((=두번 째 부활 = 영멸의 부활))로 나옵니다. 다니엘 선지자 역시 역사 끝에서는 이 땅에 살았던 모든 사람들이 부활할 것을 말합니다. 그러나 영원한 영광으로 부활하는 자들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영원한 수치로 부활하는 자들이 있을 것을 말합니다. [단12:1-3....그 때에 네 민족을 호위하는 큰 군주 미가엘이 일어날 것이요 또 환난이 있으리니 이는 개국 이래로 그 때까지 없던 환난일 것이며 그 때에 네 백성 중 책에 기록된 모든 자가 구원을 받을 것이라. 땅의 티끌 가운데에서 자는 자 중에서 많은 사람이 깨어나 영생을 받는 자도 있겠고 수치를 당하여서 영원히 부끄러움을 당할 자도 있을 것이며 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빛나리라].

또한 성경은 두 종류의 마지막 심판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신자에 대한 심판으로서 그리스도의 심판이 있고 불신자를 향한 심판으로써 하나님의 백보좌 심판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심판에 대해서는 고린도후서 5장 10절이 말합니다.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타나게 되어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고후 5:10). 한편 믿지 않는 자들에게 대한 하나님의 백보좌 심판은 계시록 20장 11-15절에 나와 있습니다. “또 내가 크고 흰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이를 보니 땅과 하늘이 그 앞에서 피하여 간 데 없더라.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큰 자나 작은 자나 그 보좌 앞에 서 있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 바다가 그 가운데에서 죽은 자들을 내주고 또 사망과 음부도 그 가운데에서 죽은 자들을 내주매 각 사람이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고 사망과 음부도 불못에 던져지니 이것은 둘째 사망 곧 불못이라.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져지더라”(계 20:11-15).

........그러면 다시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심판에 대해 살펴 보길 원합니다. 로마서 14장 8-12절을 보면 그리스도의 심판에 대해 바울이 말합니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이를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셨으니 곧 죽은 자와 산 자의 주가 되려 하심이라. 네가 어찌하여 네 형제를 비판하느냐 어찌하여 네 형제를 업신여기느냐 우리가 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리라. 기록되었으되 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살았노니 모든 무릎이 내게 꿇을 것이요 모든 혀가 하나님께 자백하리라 하였느니라. 이러므로 우리 각 사람이 자기 일을 하나님께 직고하리라.” 바울을 통해 주신 계시처럼 우리가 주님 앞에 서게 될 때 우리는 이 땅에서 살았던 모든 삶에 대해 직고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행한 모든 행위의 깊은 동기와 의도까지 정확하게 고백하게 될 것입니다.

바울 당시에 심판대는 운동 경기 시합과 연결되는 개념이었습니다. 경기나 운동이 끝날 때 판정의 권위를 부여 받은 심판자가, 또는 판정이 매우 어려운 때는 황제 자신이 경기 장에 있는 보좌에서 심판을 했습니다. 승리한 사람은 보좌로 나아와 상을 받았는데 일반적으로 나뭇 잎으로 만든 관을 받았습니다.

그리스도인의 경우 우리는 각각 그리스도를 심판자로 하여 그분 앞에서 서서 상을 받거나 상을 받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상급은 단체적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각 사람에게 개인적으로 주어집니다. 그래서 바울은 “우리가 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리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 각 사람은 자신이 행한대로 각각 그리스도의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이때 그리스도인의 심판은 그 사람이 구원을 받을 것인지 아닌지, 천국행인지 지옥행인지에 대한 심판이 아닙니다. 그 이유는 그리스도를 믿어 주님과의 인격적 관계가 맺어진 사람들은 구원과 영생을 이미 얻었으며, 한번 얻은 영생과 구원은 어떤 일이 있어도 절대로 잃어 버릴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신자들은 그들의 구원에 있어서 영원토록 안전합니다. 그 증거로 에베소서 4장 26절은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그 안에서 너희가 구원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느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성도의 심판은 천국과 지옥의 심판이 아니라 상을 받을 것인지 못 받을 것인지에 대한 심판입니다.

성경은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서 많은 성도들이 상을 받지 못함으로 인해 부끄러움을 당할 것을 알려줍니다. 요한일서 2장 28절은 신자들이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 부끄러움을 당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려줍니다. “자녀들아, 이제 그의 안에 거하라. 이는 주께서 나타내신 바 되면 그가 강림하실 때에 우리로 담대함을 얻어 그 앞에서 부끄럽지 않게 하려 함이라.” 실제로 어떤 성도들은 상을 받지 못하는 한편, 다른 성도들은 큰 상을 받게 될 것입니다. 사실 성도들은 믿음의 행위나 봉사나 마음의 동기에 있어서 큰 차이가 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공의로우심 가운데 각 성도에게 가장 공의하게 상을 내리실 것입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요한이서 8절은 “너희는 스스로 삼가 우리가 일한 것을 잃지 말고 오직 온전한 상을 받으라”고 권면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는 우리가 절대 잊어서는 안되는 것은 성도들의 가장 큰 기쁨은 하늘 나라에서 그리스도와 영원히 거하는 것이지 상급 그 자체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즉, 우리의 즐거움은 주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영원히 함께 한다는 사실 때문에 영원할 것입니다. 그래서 찬송가 “내 영혼이 은총입어”는 정확하게 맞는 신앙 고백의 내용입니다.

438(495) 

/ 내 영혼이 은총입어 중한 죄짐 벗고 보니 슬픔 많은 이 세상도 천국으로 화하도다.

/주의 얼굴 뵙기 전에 멀리뵈던 하늘나라 내 맘속에 이뤄지니 날로날로 가깝도다

/높은 산이 거친 들이 초막이나 궁궐이나 내 주 예수 모신 곳이 그 어디나 하늘나라

[* 할렐루야 찬양하세 내 모든 죄 사함받고 주 예수와 동행하니 그 어디나 하늘나라]

.......그렇다면 새하늘과 새 땅이 임하였을 때 하늘 나라에서의 영원한 즐거움과 상을 잃을 때의 비참과 부끄러움을 어떻게 연결할 수 있습니까? 어떻게 비참하고 부끄러우면서 영원한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다는 것입니까? 이에 대해 허만 호이트 라는 분이 가장 멋진 비유로 설명하였습니다.

그 분은 주의 재림 때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서는 성도들의 모습을 졸업식으로 비유합니다. 즉, 졸업식에서 모든 학생이 졸업하면서 마음이 다 즐겁고 가볍기만 합니다. 그러나 다른 학생들이 상을 받는 것을 보면서 더 열심히 성실하게 학교 생활을 하지 못한 점에 아쉬움이 남으며 또한 최선을 다하지 못한 학교 생활에 대하여 후회합니다. 그럼에도 고통이나 비참에 빠지는 것은 아닙니다. 상을 받는 학생들을 향하여 증오와 미움이 생기는 것도 아닙니다. 만일 졸업의 기쁨보다 상을 받지 못한 슬픔이 더 크다면 여러 가지 문제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일은 거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주 예수 그리스도 앞에서 그리스도의 심판을 통해 상을 받거나 잃을 때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나라에 와 있지만 이 세상에서 주께서 주실 상을 바라보며 최선을 다하지 못한 점에 대해 못내 아쉬움을 갖추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의 심판의 기준은 무엇입니까?

고린도전서 3장 11-15절에 신자에 대한 그리스도의 심판의 그림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그곳에는 어떤 자질로 건물을 짓는지를 심판과 결부시키고 있습니다. “이 닦아 둔 것 외에 능히 다른 터를 닦아 둘 자가 없으니 이 터는 곧 예수 그리스도라. 만일 누구든지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나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이 터 위에 세우면 각 사람의 공적이 나타날 터인데 그 날이 공적을 밝히리니 이는 불로 나타내고 그 불이 각 사람의 공적이 어떠한 것을 시험할 것임이라. 만일 누구든지 그 위에 세운 공적이 그대로 있으면 상을 받고 누구든지 그 공적이 불타면 해를 받으리니 그러나 자신은 구원을 받되 불 가운데서 받은 것 같으리라.”

중요한 점은 건물을 짓는 자질이 불에 타는 것과 불에 타지 않는 것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불에 타는 것은 나무, 풀, 지푸라기가 있습니다. 반면 불에 타지 않는 것은 은이나 금이나 보석입니다. 그렇다면 불에 타지 않는 재료들은 무엇을 의미하며, 불에 타는 재료는 과연 무엇이겠습니까? 불에 타지 않는 재료들은 주님께서 우리를 통해 나타내는 열매들로서 소위 성령의 열매 내지 성령으로 인하여 내 삶 가운데 다른 사람에게 나타나는 거룩한 영향력을 말합니다. 즉, 그리스도를 높이려는 동기를 가지고 주의 말씀에 순종하는 모든 것들이 불에 타지 않는 재질들입니다. 반면에 불에 타는 것들은 자신 또는 인간들의 영광을 드러내려는 것들로서 이기적인 동기, 교만한 동기, 우월해지려는 동기 가운데 수고한 것을 말합니다.

특히 본문은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불로 나타내기 때문에 하나님의 거룩하심에 위배되는 모든 것은 다 타고 없어진다는 뜻입니다. 마치 소돔과 고모라가 하나님의 진노의 불에 타서 잿더미가 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한 인생은 헛수고입니다. 갈라디아서 6장을 보면 불에 타지 않는 재료와 불에 타는 재료를 정확하게 말해줍니다.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갈 6:6). 따라서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서 주의 거룩한 불을 통과할 수 있는 공적을 쌓으려면 오직 성령에 따라 살며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 외에는 없는 것입니다.

또한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의 심판은 세 가지 면에 대해 내려질 것을 말합니다. 

첫째는 행위입니다. 재능과 은사를 어떻게 사용했는지, 하나님이 주시는 기회를 귀하게 여겼는지, 모든 관계 속에서 주께서 명하신 책임을 제대로 감당했는지를 보십니다. 특히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얼마나 도고기도를 했는지는 주께서 귀하게 평가하시는 행위에 해당합니다. “주여, 인자함은 주께 속하오니 주께서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으심이니다” (시 62:12). 우리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 때에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으리라”(마 16:27). 또한 바울 사도가 말합니다. “기쁜 마음으로 섬기기를 주께 하듯 하고 사람들에게 하듯 하지 말라. 이는 각 사람이 무슨 선을 행하든지 종이나 자유인이나 주께로부터 그대로 받을 줄을 앎이라”(엡 6:7-8). 이로 보건대, 우리의 행위에 대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심판은 분명합니다.

둘째는, 그리스도의 심판은 우리의 생각을 포함합니다. 주께서는 우리의 깊은 마음의 동기를 정확하게 아시기 때문에 그 동기와 생각을 보십니다. “나 여호와는 심장을 살피며 폐부를 시험하고 각각 그의 행위와 그의 행실대로 보응하나니”(렘 17:10). 또한 고린도전서 4장 5절에서는, “그러므로 때가 이르기 전 곧 주께서 오시기까지 아무 것도 판단하지 말라. 그가 어둠에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고 마음의 뜻을 나타내시리니 그 때에 각 사람에게 하나님으로부터 칭찬이 있으리라”(고전 4:5)고 하고, 계시록을 보면 주께서 말씀하시길 “모든 교회가 나는 사람의 뜻과 마음을 살피는 자인 줄 알지라”고 합니다. 따라서 우리의 동기와 마음이 심판의 대상입니다.

셋째는 말입니다. 말은 엄청난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람의 영혼을 살리고 영생을 주는 도구로도 사용되지만, 공동체와 나라와 세상을 파괴할 수도 있는 것이 말입니다. 그래서 야고보 사도는 야고보서 3장 6-8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혀는 곧 불이요 불의의 세계라 혀는 우리 지체 중에서 온 몸을 더럽히고 삶의 수레바퀴를 불사르나니 그 사르는 것이 지옥 불에서 나느니라. 여러 종류의 짐승과 새와 벌레와 바다의 생물은 다 사람이 길들일 수 있고 길들여 왔거니와 혀는 능히 길들일 사람이 없나니 쉬지 아니하는 악이요 죽이는 독이 가득한 것이라.”

사실 말은 행동에 포함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주님께서는 우리가 뱉는 말이 얼마나 엄청난 결과들을 나타내는지 알려 주시면서 말에 대해 따로 심판하실 것을 분명하게 하였습니다. “선한 사람은 그 쌓은 선에서 선한 것을 내고 악한 사람은 그 쌓은 악에서 악한 것을 내느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 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 네 말로 의롭다 함을 받고 네 말로 정죄함을 받으리라”(마 12:35-36). 따라서 우리는 한 마디를 할 때도 주님 앞에서 주의 심판을 생각하며 해야 합니다. 성경은 이렇게 권면합니다. “그런즉 거짓을 버리고 각각 그 이웃과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 이는 우리가 서로 지체가 됨이라.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라. …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 … 너희는 모든 악독과 노함과 분냄과 떠드는 것과 비방하는 것을 모든 악의와 함께 버리고 서로 친절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 (엡 4:25-32).

이제 마지막으로 상급과 면류관에 대해 상고해 봅시다. 성경은 면류관에 대해 말씀합니다. 면류관에는 여러 종류가 있으며, 그리스도인의 삶 가운데서 무엇을 이루었는지에 따라 서로 다른 여러 종류의 상이 주어지는 것을 말합니다. 예를 들어, 사람을 많이 전도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복음의 순수성을 지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선교로 멀리가서 수고하는 사람도 있지만, 학생들과 이웃를 향해 도고 기도로 영혼 구원의 사역을 맡는 자들도 있습니다. 또한 아브라함 카이퍼처럼 모든 문화 속에서 그리스도의 나라를 세운 사람들도 있습니다. 반면에 아사나시우스 처럼 이단을 분별하여 내어 교회에서 쫓아낸 믿음의 영웅도 있습니다. 아무튼 하나님의 나라와 관련한 일들은 무한하게 다양하며 또한 수고한 사람의 정성과 마음 자세가 다 다르기 때문에 면류관에도 여러 종류가 있고 상급도 다양한 것으로 보입니다.

생명의 면류관은 어려운 환난을 인내한 사람들에게 주어집니다. 특히 죽음의 지경까지 견딘 사람들에게 주어집니다. 야고보서 1장 11절의 말씀입니다.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나니 이는 시련을 견디어 낸 자가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이기 때문이라.” 또한 계시록 2장 10절이 말합니다. “너는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라. 볼지어다.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에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너희가 십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관을 네게 주리라.” 한편 하나님의 말씀으로 충성스럽게 양들을 먹이는 자들에게도 면류관이 주어집니다. “그리하면 목자장이 나타나실 때에 시들지 아니하는 영광의 관을 얻으리라”(벧전 5:4). 복음을 위한 뚜렷한 목표를 가지고 삶을 절제하면서 온전한 삶을 사는 자들에게 썩지 않는 면류관이 보장되어 있습니다. “내가 복음을 위하여 모든 것을 행함은 복음에 참여하고자 함이라.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릴지라도 오직 상을 받는 사람은 한 사람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상을 받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그들은 썩을 승리자의 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 그러므로 나는 달음질하기를 향방 없는 것 같이 아니하고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 것 같이 아니하며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함이로다”(고전 9:23-27).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며 주께 순종하는 의로운 삶을 사는 모든 자들에게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어 있다고 합니다.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딤후 4:8). 이 외에도 감추었던 만나, 흰돌 등, 많은 상급들과 면류관이 예비되어 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계시록 4장을 보면, “이십사 장로들이 보좌에 앉으신 이 앞에 엎드려 세세토록 살아 계시는 이에게 경배하고 자기의 관을 보좌 앞에 드리며 이르되 우리 주 하나님이여 영광과 존귀와 권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오니 주께서 만물을 지으신지라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었고 또 지으심을 받았나이다 하더라”(계 4:10-11)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이십사 장로들이 자기의 관을 보좌 앞에 드린다는 것은 주께서 그들에게 상급으로 주신 모든 것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며 예배한다는 뜻입니다. 이 내용은 대단히 중요한 점을 말씀하는데, 주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상급은 결국 우리가 주님을 예배하고 영광을 돌림으로써 하나님께서 한없는 영광을 받으신다는 사실입니다. 이는 하나님께 상급을 받는 자들의 마음 속 가장 깊은 동기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데 있다는 점입니다. 만일 상급이 자기를 위한 영광을 구하는 동기에게 추구한다면 그러한 사람은 하나님이 주실 상급을 받기에 부적절한 마음의 동기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오직 무엇을 하든 주의 영광을 위하여 할 때, 심지어 주께서 주시는 모든 축복과 상급 마저도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돌리는 진심이 있을 때만이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을 영화롭게 하심과 더불어 하나님도 영광을 받으시는 것입니다.

바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 구원함을 얻은 이후에 그의 인생의 목표는 상급이었습니다. 빌립보서 3장 12-14절에서 그는 분명하게 고백합니다.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이미 살펴본 바와 같이 우리가 상급을 추구함은 주께 영광을 돌리기 위함입니다. 히브리서 11장은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히 11:6)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삶이 주께서 주실 상을 바라며 힘차게 나아가고 또한 그 상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려는 마음을 가질 때 주께 무한한 기쁨이 되는 것입니다.

 

이미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죄의 문제, 지옥의 문제, 하나님의 백보좌 심판을 통과한 우리들은 단 한가지를 목표를 향해 달려가야 합니다. 그것은 주께서 주실 상급을 향해 달리는 것입니다. 모든 동기도, 우리의 에너지도, 인생도, 주님 앞에 서게 될 심판대를 기억하며 살아야 합니다. 어느날 갑자기 우리는 그리스도 앞에 서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가장 공의로우신 주 예수 그리스도의 평가에 의해 우리의 영원한 상급과 영광이 결정날 것입니다. 그 영광은 이 세상의 영광과 다릅니다. 즉, 잠깐 있다가 없어지는 영광이 아니라 영원한 영광인 것입니다. 이 귀한 진리를 마음 속에 두시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만을 위해 그리고 그분께서 주실 상급을 바라보면서 남은 여생을 달리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 믿음으로 말씀에 따라 순종하여 떠나 주목-앙망-교통-사랑-따름의 동행(십자가에서부터) ::갈5:16-23

[아2:10...나의 사랑하는 자가 내게 말하여 이르기를 나의 사랑, 내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

[창12:1...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60-75-84-99-130-175)]

[고후4:7...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내주하여 사시는 그리스도의 영(주 예수) = 참 생명, 전능 Q

[마25:14-30..*14.또 (천국은) 어떤 사람이 타국에 갈 때 그 종들을 불러 자기 소유를 맡김과 같으니  *15.각각 그 재능대로 한 사람에게는 금 다섯 달란트를, 한 사람에게는 두 달란트를, 한 사람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고 떠났더니...] ...참되게 믿는, 주 예수와 하나 되어 동행하느냐의 여부에 달렸음,,,세상 관점으로 보지 말라..실지로 주 예수 믿는 이마다 모두 5 달란트 받은 자 :: 책임의 수 5는 지고지선-최상을 만드시는 전지전능의 임마누엘 목자 Q

[막4:30-32..*30.또 이르시되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를 어떻게 비교하며 또 무슨 비유로 나타낼까  *31.겨자씨 한 알과 같으니 땅에 심길 때에는 땅 위의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이로되  *32.심긴 후에는 자라서 모든 풀보다 커지며 큰 가지를 내나니 공중의 새들이 그 그늘에 깃들일 만큼 되느니라]......겉보기에 크기-숫자 문제가 아니라 능력 근원 참 생명 JC를 소유하고 그로 인해 살고 있느냐가 핵심..

[고전1:27-31..*27.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28.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29.이는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30.너희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함이 되셨으니  *31.기록된 바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하라 함과 같게 하려 함이라]


@@[성경적 믿음] faith(어원 fides...충성 = 참과 진실/성실)...모든 말씀과 언약 그대로 반드시  이루심, 바로 그 근원적 참 생명<길진리생명-빛, 사랑, 거룩, 의>이신 Q과 결합한 하나 됨(=다바크!!)으로 붙좇고 참되게 교통함 + 동거-동주-동행함 + 참되게 앎(친밀하고도 내밀한 앎)> + belief<신뢰+의지 = 의뢰....거듭난 자신을 (그분의 소유로) 온전히 열어 맡겨드려, 의지하고 순종함(절대적 순종과 섬김)으로써 주관적 경험 통한 체득,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의 충만까지(생명-경건-사랑) Q 아들의 성숙 이룸>


@@붙좇다(목숨 다하기까지, 전심전력 다해 붙좇음/완전한 하나 됨 유지의 교통)..달라붙다, 굳게 결합하다(밀착-접착-고착), 충실히 대하다, 접근하다..qb'D;(1692, 다바크) ,,,다바르!

다바크(동사)는 기본 어근이며, '달라붙다, 집착하다 cling, 굳게 결합하다, 충실히 대하다 cleave, 접근하다 keep close'를 의미한다.cling tp. adhere to.trust. believe in.

구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54회 나오며, 칼, 푸알, 히필, 호팔형으로 사용되었다.

1. 칼형에서

(a)  다바크는 '달라붙다, 집착하다, 굳게 결합하다, 충실히 대하다(충성)'를 의미한다. 

다바크는 서로 달라붙어 있는 물체, 특히 신체의 각 부분에 대해 사용되고 있다. 욥은 자신의 피부와 살이 뼈에 붙어 있으며(욥 19:20), 원래부터 귀인들의 혀는 그가 나타나면 입 천정에 붙어 있었다고 말하고 있다(욥 29:10). 침묵할 때에 혀가 입 천정에 붙어 있다는 그러한 비유는 시 137:6, 욥은 현대 세계에서 잘 알려진 비유로 욥 31:7에서 자기 손에 더러운 어떤 것도 붙지 않았다고 말함으로써, 자신의 무죄를 주장하고 있다. 악어에 대한 하나님의 묘사에서 하나님은 "그 살의 조각들이 서로 연하고"라고 언급하시는데(욥 41:23), 그것은 악어의 살에 붙은 비늘 혹은 뱀의 비늘(?)을 언급하는 것이다.

다바크는 좋지 못한 상황에 관하여 쓰이고 있다: "나의 살이 뼈에 붙었나이다(시 102:5). "젖먹이가 목 말라서 혀가 천장에 붙음이여"(애 4:4).

몸의 지체는 여러 가지 대상물에 달라붙어 있다고 언급되고 있다. 시 44:25은 "우리 몸은 땅에 붙었나이다"라고 언급하며 시 119:25은 "내 영혼이 진토에 붙었사오니"라고 언급한다. 다윗의 용사 중의 한 사람은 그가 "손이 피곤하여 칼에 붙기까지" 블레셋 사람을 살해하였다고 한다(삼하 23:10).

다바크는 애정과 충성으로 어떤 사람에게 굳게 결합되거나 밀착되어 있다는 의미를 지닌다. 남자는 자기 아내에게 굳게 결합하여야 한다. 곧 그녀의 곁을 떠나지 않고 그와 친밀히 지내고 애정과 성실로 그녀에게 밀착되어 있어야 한다(창 2:24). 룻은 나오미에게 밀착하여 충실히 대하였다(룻 1:14). 유다 사람들은 세바의 반란 때에 자신들의 왕인 다윗과 합하였다(삼하 20:2). 세겜은 디나를 사랑하여 그녀에게 연연했고(창 34:3), 솔로몬은 사랑으로 자기의 아내들에게 집착했다(왕상 11:2).

가장 중요한 사실로서, 하나님의 축복이 이스라엘에게 임하기를 원한다면 그들은 애정과 충실히 하나님께 의지하지 않으면 안된다(신 10:20, 신 11:22, 신 13:4, 신 30:20, 수 22:5, 수 23:8).

렘 13:11에서는 사람의 띠가 허리에 밀착하여 있는(칼형) 것 같이 하나님께서 ((사랑하심으로!!))이스라엘 온 집과 유다 온 집으로 자기에게 굳게 결합하게 하였다(히필형) 한다. 

이러한 구절들에서 주님에 대한 적절한 자세를 묘사하고 있다.

(b)  다바크는 '~함께 머무르다, 접근하여 있다'라는 의미를 나타낸다. 

보아스는 룻에게 "나의 소녀들과 함께", 또는 가까이 있을 것을 권고하고 있으며(룻 2:8, 룻 2:21), 그래서 룻 또한 그렇게 했다(룻 2:23).

2. 푸알형에서 다바크는 '굳게 결합 되다'를 의미한다. 악어의 비늘은 서로 굳게 결합되어(달라붙어) 있으며(욥 41:17), 흙덩이 또한 그렇다(욥 38:38).

3. 히필형에서

(a)  다바크는 '달라 붙게 하거나 굳게 결합시키다'를 의미한다. 

고기로 비늘에 붙게 하는 것(겔 3:26, 겔 29:4), 비유적으로 백성으로 하나님께 굳게 결합시키는 것(렘 13:11), 질병이 몸에 달라붙는 것(신 28:21)을 묘사한다.

(b)  다바크는 '접근하여 (바싹) 추적하다'는 의미를 지닌다. 

이스라엘은 베냐민 사람들을 바싹 추적하였으며(삿 20:45), 나중에는 블레셋을 추적하였다(삼상 14:22). 또한 블레셋 사람들이 사울(과 그 아들들)을 바싹 추적하였다(삼상 31:2, 대상 10:2).

(c)  다바크는 '따라 잡다, 따라 붙다'라는 의미를 지닌다. 

라반은 길르앗 산에서 야곱을 따라 잡았으며(창 31:23), 미가는 단의 자손들을 따라 잡았다(삿 18:22).

4. 호팔형에서 다바크는 '[갈망과 갈증의 고통으로] 달라붙게 되어졌다'라는 의미를 지닌다. 

시 22:15, "내 힘이 말라 질그릇 조각 같고 내 혀가 잇틀에 붙었나이다 주께서 또 나를 사망의 진토에 두셨나이다". 

이것은 비유적으로 갈증으로 인한 메시야의 고통을 묘사한다. (참조: BDB; E. S. Kalland). 

[신4:4.  오직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 붙어 떠나지 않은 너희는 오늘까지 다 생존하였느니라]

....다베그(형용사) --달라붙는, 굳게 결합하는, 집착하는, 고수하는'.. 

@@다바크(qb'D; , 1692: 달라붙다, 굳게 결합하다)에서 유래 

[신4:4... 오직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 붙어 떠나지 않은 너희는 오늘까지 다 생존하였느니라] 

[수22:5...크게 삼가 여호와의 종 모세가 너희에게 명한 명령과 율법을 행하여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 모든 길로 행하며 그 계명을 지켜 그에게 친근히 하고 너희의 마음을 다하며 성품을 다하여 그를 섬길찌니라 하고]....히브리어 다바크דבק는 연합, 하나가 되다 달라붙다 가까이 하다의 뜻.... <아교접착풀..가장 강력한 고유접착제.>을 뜻하는 <데베크>에서 왔다.  <다바크דבק<는 그 정도로 붙어 있고 결합되어 있는 불가분리 상태를 의미...<다바크דבק<는 하나님과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 성령 하나님께서 연합하신 삼위일체의 모습에서 왔다. 

하나님의 꿈이 <다바크 연합>에 있다... 사랑하는 영혼과 연합하고 싶어 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이 담겨 있다.. 하나님을 그 정도로 가까이 하고 친근히 여기며 꼭 붙어 있는 모습을 보고 싶어 하신다.... 하나님을 죄로 인해서 떠나간 영혼들에 대한 하나님의 불붙는 마음이 <다바크 연합>에 담겨 있다 ...죄로 인해서 하나님을 배반할 지라도 결코 놓고 싶어 하시지 않은 하나님의 그 마음 <나>를 하나님과 연합-다바크-하게 하시기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의 저주와 하나 되셨다 ... 하나님의 그 마음을 헤아리며 대신 죽으실 수 있는 분은 예수 그리스도밖에 없으셨기 때문이다 ..<나> 하나를 <다바크דבק<하시기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버리셨던 하나님!! ... 오늘도 그 은혜로 예수 그리스도를 간절히 붙잡고 살 수 있다...하나님을 떠나지 않는 <다바크דבק<의 믿음이 <나>를 살게 할 것이요, 다시 일으켜 주실 것이다

##동행....할라크..

[신31:23...여호와께서 또 눈의 아들 여호수아에게 명하여 가라사대 너는 이스라엘 자손을 인도하여 내가 그들에게 맹세한 땅으로 들어가게 하리니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내가 너와 함께 하리라] 

[시89:21...내 손이 저와 함께하여 견고히 하고 내 팔이 그를 힘이 있게 하리로다]시8921 

[삿6:16...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하리니 네가 미디안 사람 치기를 한 사람을 치듯 하리라] 

.....하나님께서 <나>와 같은 죄인과 함께 하시는 것이 은혜요,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죄인과 함께 길을 걸어 주시는 것은 기적과 같은 축복이다...<동행>의 히브리어는 <할라크הלך<, 즉 함께 걷다, 함께 부둥켜 안으면서 걷다의 의미로서, 그 친밀함으로 인해 닮아 가는 것을 말한다...추상적인 의미가 아니요, 하나님께서 동행하시는 삶을 사는 영혼의 삶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흔적이 나타나게 될 것이요, 하나님의 구체적인 인도를 경험하게 될 것인데,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손길이 여러 영역에서 나타나게 될 것이다

....<할라크הלך<는 영적인 교제의 방법을 보여 주눈데, 하나님과 함께 길을 걷는 것, 인생의 모든 여정을 함께 하는 것,  모든 것을 함께 나누는 것이요, 영적인 Direction을 분명히 열어 보여 주심으로써  [신실과 참이신] 하나님께서 이끄시는 대로 함께 걸어 가는 것을 배우게 될 것... <나> 혼자서 걸어 갈 수 있는 길이 아니요, 비록 그 길이 힘든 것처럼 보여도 결코 힘들지 않을 것인데,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모든 짐을 친히 져 주시기 때문이요, 그 길에서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성령의 은혜와 능력이 함께 하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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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27:8....너희는 내 얼굴을 찾으라 하실 때에 내 마음이 주께 말하되 여호와여 내가 주의 얼굴을 찾으리이다 하였나이다] .....[사55:6...너희는 여호와를 만날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암5:4....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족속에게 이르시기를 너희는 나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  ....[마7:7....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 찾다를 의미하는 히브리어는 <바카르קרַבָּ<.....묻다 요구하다 요청하다의 의미가 있다.... <바카르קרַבָּ<는 하나님의 뜻을 간절히 찾으며 하나님께 묻는 그 태도를 의미한다.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 이루어 지기를 사모하는 것이 <바카르קרַבָּ<인 것....<바카르קרַבָּ<는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고 그 깊은 영적인 의미를 찾아 가는 것을 의미... <내> 자신의 숨어 있는 깊은 모습을 발견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서 <내> 모습을 살펴 보는 것...또한 <바카르קרַבָּ<는 돌보다 친히 가서 살펴 보다의 뜻도 있다. 곧 하나님 앞에서 <내> 자신의 모습을 깊이 들여다보며 하나님 앞에서 회개하려고 하는 영혼을 하나님께서 친히 돌보시며 살펴 보실 것이요, 하나님께 물어 보며 하나님의 마음을 찾아 가려고 할수록 하나님의 은혜는 더 강하게 임할 것, 하나님께서 깊이 볼보시는 은혜를 누리게 될 것이요,.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영혼은 살게 될 것이니.. 정녕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나아가는 영혼은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서 이루어 지는 것을 보게 되며, 하나님의 얼굴을 찾는데 하나님의 깊은 은혜가 여러 영역에 임하시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영혼이 누리는 복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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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할(기도-기대-기다림) ==>하마드(주님 갈망/앙모함)+나바트(주님 주시/응시/바라봄)+ 바카르(추구함) 파님(God's face) +할라크(동행)..
[마11:28-30...*28.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29.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30.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요14장..1.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7.  너희가 나를 알았더라면 내 아버지도 알았으리로다 이제부터는 너희가 그를 알았고 또 보았느니라.....10.  내가 아버지 안에 거하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은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서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라......12.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내가 하는 일을 그도 할 것이요 또한 그보다 큰 일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라....13.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라...14.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행하리라....15.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16.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17.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18.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19.조금 있으면 세상은 다시 나를 보지 못할 것이로되 너희는 나를 보리니 이는 내가 살아 있고 너희도 살아 있겠음이라  *20.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 *21.나의 계명을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23.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그에게 가서 거처를 그와 함께 하리라 *24.나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내 말을 지키지 아니하나니 너희가 듣는 말은 내 말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아버지의 말씀이니라  *25.내가 아직 너희와 함께 있어서 이 말을 너희에게 하였거니와  *26.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27.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28.내가 갔다가 너희에게로 온다 하는 말을 너희가 들었나니 나를 사랑하였더라면 내가 아버지께로 감을 기뻐하였으리라 아버지는 나보다 크심이라]
##근심하다...히브리어 아차브 :: 주님 뜻대로 하는 근심이 아니라면, 주께 나아가 그 품에 안기라
[시55:17...저녁과 아침과 정오에 내가 근심하여 탄식하리니 여호와께서 내 소리를 들으시리로다] [애3:32.. 저가 비록 근심케 하시나 그 풍부한 자비대로 긍휼히 여기실 것임이라] [요14:1..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시25:17... 마음의 근심이 많사오니 나를 곤난에서 끌어 내소서]
.....근심의 히브리어는 <아차브עצב<... 마음이 찢어진다 큰 상처를 입다의 뜻... 아담의 범죄 이후에 죄악이 이 땅에 가득하자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보시면서 가지셨던 마음이었다.. [창6:6..땅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사랑하는 영혼들이 죄악으로 하나님께 등을 돌리자 하나님께서 <근심>하셨으니...하나님께서 마음이 찢어지실 정도로 고통스러워 하셨고, 하나님을 떠나는 영혼들을 바라 보시며 심히 근심<아차브עצב<하셨다...사람에게 근심은 마음의 큰 고통을 의미하며, 야베스는 고통의 아들이라는 뜻으로 <아차브עצב<에서 왔다... 사람에게 마음의 고통만큼 힘든 일은 없으며, 그 고통을 사람의 힘으로 극복할 수 없다.... 마음의 근심 그리고 그 고통을 해결하실 수 있는 힘은 하나님 만이 가지고 계시며, (믿는 우리의 할 일이란, 오직 믿음으로 주 말씀 의지하여, 붙좇는 믿음 안으로 피난처이신 주님 품에서 맡겨 내어드리고 안식하는 것이니), 곤난 근심 고통에서 끌어 낼 수 있는 유일한 이름은 예수 그리스도이시라...마음의 고통이 가득한 자가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을 간절한 마음으로 찾는 것, 하나님 존 전 앞으로 나아 가는 자마다 근심이 아닌 깊은 평안을 허락하실 것이다..하나님 앞에 부르짖는 그 은혜는 하나님을 위한 것이 아닌 <나>를 위한 것이니, 하나님 앞에서 살기 위한 몸부림으로 [ 하나님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하며,그 근심<아차브עצב<을 기도로 하나님께 올려 드릴 때 <나>혼자만의 문제가 아닌 하나님께서 함께 <아차브עצב<해 주시는 복을 누리게 될 것이다.....
[요14:26, 27..26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27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근심하다, 함께 뒤흔들다, 분기시키다, 선동하다, 어지럽히다, 불안하게 하다...헬라어.taravssw(5015, 타랏소) 
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 
동사 타랏소(Homer 이래)는 '함께 흔들다, 분기시키다, 선동하다, 동요시키다, 교란(혼란)시키다, 어지럽히다'. 수동태로는 '혼란(무질서)에 빠뜨리다'를 의미한다.
2. 70인역본의 용법 
타랏소는 70인역본에서 약 120회 나오며, 46개의 히브리어 단어들과 변형들의 역어로 사용되었으며, 고전 헬라어 용법과 같은 의미로 나타난다(겔 32:2,13; 시 46:6[45:7]; 사 8:12등).
3. 신약성경의 용법 
타랏소는 신약성경에서 17회 나오며, 그 의미는 본질적으로 고전 헬라어의 의미와 동일하다.
(a)  요 5:4, 요 5:7에서 타랏소는 물이 '동요하는 것'을 나타낸다: 5 "(...이는 천사가 가끔 못에 내려와 물을 동하게 하는데 동한 후에 먼저 들어가는 자는 어떤 병에 걸렸든지 낫게 됨이러라), 7 병자가 대답하되 주여 물이 동할 때에 나를 못에 넣어 줄 사람이 없어 내가 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가나이다". 베데스다(Bethesda) 연못 속에 있는 그 물은 아마도 간헐천으로써 때때로 휘저어졌을 것이다. 사람들은 물이 동하는 그 시간에 한 천사가 그 물에 치유의 효험을 부여한다고 일반적으로 확신하고 있다. '그 분의 비유적 표현에서 인간의 참된 요구를 충족시키는 데에 율법(유대교)이 얼마나 부적절한가가 여기에 그려져 있다. 인간의 가장 강렬한 투쟁도, 활동을 마비 불능케 하는 죄에서 그를 구해낼 수 없다'(J.H.Mayfield).
(b)  타랏소는 감정적 흥분이나 혼란 같은 동요를 표현하는 비유적 의미로 사용되었다.
① 행 17:8에서 이 단어는 유대인들이 흥분했을 때, 즉 무리를 내적으로 선동했을 때 사용되었다: "무리와 읍장들이 이 말을 듣고 [소동하여]".
② 행 15:24에서 거짓 교사들이 교회 안에서 혼란을 야기시키었을 때, 이 단어가 사용되었다: "들은즉 우리 가운데서 어떤 사람들이 우리의 시킨 것도 없이 나가서 말로 너희를 [괴롭게 하고] 마음을 혹하게 한다 하기로".
③ 갈 1:7,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요란케 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려 함이라". 여기서 분사 호이 타랏손테스는 거짓 교사들이 갈라디아의 교회들을 혼란에 빠뜨리는 것을 그들의 의식적인 목표로 삼고 있었음을 시사해 주는 것 같다. 그러나, 바울은 아마도 단순히 갈라디아의 교회들이 변형된 다른 복음의 결과로 인하여 그들의 이해와 행위들에 있어서 소란을 겪게될 것임을 분명히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혼란은 교회의 활력적인 조직을 파괴하기 때문에 치명적일 수 있는 혼란이다.
④ 갈 5:10의 총칭 단수는 위와 같은 거짓 교사들에 관해 언급하고 있다: "나는 너희가 아무 다른 마음도 품지 아니할 줄을 주 안에서 확신하노라 그러나 너희를 [요동케 하는] 자는 누구든지 심판을 받으리라". 거짓 교사들은 하나님의 심판석 앞에서 그들이 뿌린 혼란에 대해 책임을 져야만 할 것이다.
⑤ 요 11:33, "예수께서 그의 우는 것과 또 함께 온 유대인들의 우는 것을 보시고 심령에 통분히 여기시고 [민망히 여기사]". 타랏소는 엠브리마오마이와 나란히 사용되어서, 생명 그 자체와 사망을 극복하신 주께서 예수님의 인격 안에 현존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믿음과 소망이 그토록 많이 결핍되어 있는 것을 보셨을 때, 그에게 덮쳐왔던 원통하여 일어나는 분하고 노한 분노의 물결을 의미한다.
(c)  타랏소는 수동태에서 항상 부정적 의미로 사용되어 '두려워하다'와 같은 감정적 동요를 함축하고 있다.
① 마 2:3, "헤롯 왕과 온 예루살렘이 듣고 [소동한지라]". 여기서 타랏소의 수동 과거가 사용되어 놀라거나 두려워하는 것과 같은 감정적 동요의 뜻을 지니고 있다. 즉 정신에 두려움이나 공포로 타격이나 충격을 가하는 것과 관련된다. 그들은 유대인의 왕 메시야의 탄생에 관한 소식을 듣고 이런 충격을 받은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행위에 의해서 야기되는 정신적 충격이라 하겠다.
② 타랏소는 신현현에 관한 이야기들에 나타난다는 사실은 주목해 볼 가치가 있다. 이러한 경우에 아무개의 정신에 두려움이나 큰 공포로 타격을 준다.
마 14:26(병행구, 막 6:50)에서 제자들이 물 위로 걸어오시는 예수님을 보았을 때, 눅 1:12에서 제사장 사가랴가 향단 위편에 나타나 선 천사를 보았을 때, 눅 24:38에서, 제자들이 그들 가운데 나타나 서신 예수님을 보았을 때, 이런 타랏소를 경험했다.
③ 타랏소의 다른 뜻은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는 표현에 내포되어 있다.
요 14:1,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여기서 마음이란 '자아'를 의미한다. 제자들은 이제 이 세상의 세력들과 하나님의 계시 사이에 갈등이 야기될 이 세상에 홀로 남겨져 있을 것이기 때문에 세상에서 고립되어서 내적인 충격과 근심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근심은 예수님에 대한 믿음과 동일시되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으로써 극복된다. 왜냐하면, 이 믿음이야말로 사망을 이긴 집(요 14:1 이하)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요 14:27에서 신자는 종말론적인 평화에 대한 약속을 받았으므로, 더 이상 공포와 근심에 머물 필요가 없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벧전 3:14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의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면 복 있는 자니 저희의 두려워함을 두려워 말며 [소동치] 말고".
④ 요 12:27에 나오는 예수님의 말씀, "지금 내 마음이 [민망하니]"라는 말은 단순히 어떤 감정적인 경험을 언급하고 있는 말이 아니다. 하나님으로부터 파송 받으신 자인 그리스도께서 두려움과 근심을 경험했다는 사실은 그가 스스로 인간의 절망적인 상황을 떠맡기 위하여, 그리고 바로 이러한 상황 속에서 아버지를 영광스럽게 하기 위해 그 자신이 극도로 겸손해졌음을 보여주고 있다.(참조: Walter Bauer; J.H.Thayer; H.Muller). 

[요15:4-17...*4.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메노...머무르다 cf>페리메노 = (확실한 소망 중에)기다리다)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5.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6.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려져 마르나니 사람들이 그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  *7.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8.너희가 열매를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는 내 제자가 되리라  *9.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  *10.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 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11.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  *12.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  *13.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  *14.너희는 내가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  *15.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종은 주인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라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였음이라  *16.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열매를 맺게 하고 또 너희 열매가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라  *17.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명함은 너희로 서로 사랑하게 하려 함이라]....
@@헬라어  메노(=거하다, 머무르다...성부-성자-성령의 하나 되심 같이 매순간  주 이름 불러 바라고 앙망하여, 항구여일한 상태로 견고하게 흔들림 없이 살며 존속하다)는, 히브리어로는  가장  많이 아마드(서다, 남아있다, 머무르다, 지속하다, 견디다, 살아남다)와 그 다음으로 쿰(일어서다, 일어나다), 야샵(앉아있다, 거하다, 남아있다), 하카(지연하다, 기디리다), 카와(기다리다) 등의 순으로 번역하고 있다..주여, 우르-쿰-아마드 이루소서.

[막11:22-24...*22.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을 믿으라  *23.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져지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루어질 줄 믿고 마음에 의심하지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  *24.그러므로 내가 (Q 믿는..Q과 하나 됭의, 그대의 생명과 주님으로서 내주하시는 그분 안에, 그분과 교통하며 거하며 동행하는 산 믿음 가진)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그대 안에 하나 되어 계신 주님이 움직여 불러 일으키심 따라 구하는 바)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22.And Jesus answered saying to them, "Have faith in God.  *23."Truly I say to you, whoever says to this mountain, 'Be taken up and cast into the sea,' and does not doubt in his heart, but believes that what he says is going to happen, it will be granted him.  *24."Therefore I say to you, all things for which you pray and ask, believe that you have received them, and they will be granted you.]
[창15:6..아브라함이 여호와를 믿으니(=아만)..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믿다...확실하게 하다, 지지하다, 충실하다, 믿다...@m'a;(539, 아만) 
아만(동사)은 기본어근이며 '확실하게 하다, comfirm, 지지하다/ 기르다 support, 충실/신실/성실하다 be faithful, 믿다/신뢰하다 believe, trust'를 의미한다. 
구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약 110회 나오며, 칼, 니팔, 히필형으로 사용되었다.
성경 교리에서 매우 중요한 이 단어의 개념은, 이 단어에 대한 많은 대중적 개념과 대조 구별되는 '믿음'(faith..Q을 믿음 = [Q의 말씀은 그분 자신(=생기/성령이요 그리스도요, 말한 그대로 반드시 이루시는, 확실/신실/충성/성실하신 Q의 전능한 믿음...바로 그분 Q께 결합한(포도나무와 가지처럼), 하나 된 자의, Q을 믿음 = 절대적으로 확실한 Q의 믿음)의 성경적 의미에 대한 분명한 증거를 제공해 준다. 
이 어근의 의미는 핵심에는 '확실성'(certainty)의 개념이 있다. 그리고 이것은 히 11:1 나타나 있는 신약성경의 믿음에 대한 정의에 의해서 확증된다.
이 어근의 기본적인 개념은 '확고함'(firmness)이나 '확실성'(certainty)이다.
1. 칼형에서 이 단어는 '지지하다, 기르다'를 의미한다.
왕하 18:16에서 이 단어는 '버팀 기둥'을 묘사한다. 
에 2:7에서 모르드개는 에스더를 자기 딸같이 양육했다. 민 11:12에서 "양육하는 아비", 룻4:16에서 아기의 "양육자"를 묘사한다.
2. 히필형에서 이 단어는 '확실하게 하다' 혹은 '~에 대해 확신하다', '보증되다'라는 의미를 지닌다. 
이런 점에서, 히필 동사 변화에서의 이 단어는 '믿다'를 의미하며, 성경에서의 믿음은 '보증' assurance, '확실성' certainty이 그 특징이다.
이는 믿음을 있음직하고, 아마도 참되긴 하지만 확실치 않은 어떤 것으로 보는 현대의 개념과 대조되는 것임을 보여준다.
이로부터 이 단어는 '확립된 사람' 혹은 '굳혀진 사람' 즉 '충성된 자'(삼하 20:19, 시 12:1, 시 31:23)라는 수동적인 의미로 사용된 칼의 수동 분사형으로 나오는 것을 보게 된다.
3. 니팔형에서 '확립(확정)되다'를 의미한다(삼하 7:16, 대상 17:2, 대상 17:3, 대하 6:17, 사 7:9).
'신실하다, 충실하다, 확실하다, 신뢰할만 하다'를 의미하며, 분사형에서 신자들을 나타낸다(민 12:7, 삼상 2:35, 느 9:8). 이 어형은 또한 모든 확실성의 근거가 되는 것, 즉 하나님 자신(신 7:9), 그리고 그의 언약(시 89:28)을 묘사하는데도 사용된다.
'믿음'과 '견고한 것' 사이의 관게에 관한 흥미있는 한 가지 실례는 사 7:9에서 발견된다: "대저 아람의 머리는 다메섹이요 다메섹의 머리는 르신이며 에브라임의 머리는 사마리아요 사마리아의 머리는 르말리야의 아들이라도 육십 오년 내에 에브라임이 패하여 다시는 나라를 이루지 못하리라. 만일 너희가 믿지 아니하면 정녕히 굳게 서지 못하리라". 아하스는 만일 그가 믿지(히필형) 않는다면, 그가 견고히 서지(니팔형) 못한다. 즉 믿음이 없이는 그가 안정되지 못한다는 말을 들었다.
이런 파생어들도 확실성과 신빙성에 대한 똑같은 개념을 반영해 준다. 파생어 아멘(진실로 verily)은 신약성경에서 아멘이란 말로 받아들여져서 오늘날의 영어 단어 'amen'이 되었다. 예수님은 어떤 문제의 확실성을 강조하기 위해 이 단어를 자주 사용하셨다(마 5:18, 마 5:26 등). 이 히브리어 어형과 헬라어 어형은 기도와 찬양송의 끝에 온다(시 41:13, 시 106:48, 딤후 4:18, 계 20:20 등). 이것은 우리의 기도에서 이렇게 사용된 이 용어가 우리가 기도드리는 주님에 대한 확신을 표현하는 것임에 틀림없다는 사실을 시사해 준다. (참조: J. B. Scott; BDB). 
[히12:2.상.,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아포라오...단일한 시야로 초점 맞춤))] [엡3:17상..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시옵고 ].
***[신실하신 Q의 약속하심 그대로 반드시 도래케 하실 바, (성령 주심으로써) 보증해 주신 확실한] 산 소망 = (히)티크와 + 세베르 = (헬) 엘피다 조산..

@@바라다,기대하다 expect, 소망하다 hope.,,ejlpivzw(1679, 엘피조) 
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 
동사 엘피조(Hdt. 이래)는 엘포(ejlpw: 바라다, 기대하다)에서 유래했으며, '소망(희망)하다' hope, '기대하다' expect, '추측하다' suppose, '생각하다' think를 의미한다.
2. 70인역본의 용법 
엘피조는 70인역본에서 약 100회 이상 나오며, 15개의 히브리어를 번역하는데 주로 히브리어 바타흐(안전감을 느끼다, 의지하다), 하사(피난하다, 숨다), 야할(기다리다), 카와(간절히 온 맘 다해 [확신하며]기다리다)를 번역한다.
3. 신약성경의 용법 
엘피조는 신약성경에서 28회 나오며, 다음과 같이 사용되었다.
(a)  소망에 대한 신약성경의 개념은 본질적으로 구약성경의 소망의 개념에 영향을 받는다. 세속적인 소망을 가리킬 경우에만 이 어군은 (좋은) 기대를 의미한다: 눅 6:34; 눅 23:8; 눅 24:21; 행 24:26; 롬 15:24; 고전 16:7.
소망에 대한 구역성경의 개념의 신뢰의 요소는 고후 1:13; 고후 5:11; 고후 13:6에서 처럼 인간이 고려될 때 강하게 나타난다. 비록 소망은 하나님에 대한 신뢰에 의존하지만 고전 13:7의 요지는 인간에 대한 신뢰이며 사랑의 산물이기도 하다.
(b)  소망이 하나님에 대한 것일 때, 그 소망은 기대, 신뢰 그리고 끈기있게 기다림을 포함한다. 이것은 하나님이 주신 것의 확실성을 강조하는 히 11:1에서 처럼, 믿음과 관련있다. 믿음은 우리의 소망에 "실상"을 부여해 주거나 또는 "바라는 것들에 대한 증거"이다.
롬 8:24 - 롬 8:25은 우리가 눈으로 볼 수 있게 존재하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는 일반적인 점을 지적할 뿐만 아니라 눈으로 볼 수 있게 존재하는 것은 그것이 사르크스(savrx, 4561)의 영역에 속하기 때문에 소망의 기초가 될 수 없다는 구체적인 점도 지적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바랄 수 없는 것을 소망가운데 믿고 인내로 기다려야 한다. 즉 우리가 지배할 수 있는 것들을 더 이상 의지할 수 없고 신적인 미래를 의뢰해야 한다(참조: 롬 4:18).
소망은 기다림으로 단련 받는다. 곧 벧전 1:13에 나오는 "은혜를 온전히 바람"이라는 말씀 앞에 "마음의 허리를 동이라"는 말이 나오는데, 즉 무서운 공격에 대비하라는 것이다. 이 본문에는 미래에 대한 모든 계획들을 근본적으로 포기하고 우리의 제한된 지식을 겸손하게 인정하여 우리의 바라는 바들을 생명을 위하여 받은 전투의 명령들에 복종함이 포함되어 있다. 고전 15:19; 고후 1:10에서 소망은 확고한 확신의 요소를 지닌다. 구약성경의 소망 개념과의 주요 차이점은 구원 사역은 이제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되었으며 따라서 소망 그 자체가 종말론적 축복이며, 바울이 고린도 교인에 대해 가지고 있던 것과 같은 확신을 가질 모든 이유가 있다는 점이다(고후 1:13; 참조: 고후 1:12). 소망은 구원 행동에 대한 믿음에 의존하며(롬 8:24 - 롬 8:25), 이 소망은 성령에 의해 지지된다(참조: 롬 8:26 - 롬 8:27).
딤전 4:10("이를 위하여 우리가 수고하고 진력하는 것은 우리 소망을 살아 계신 하나님께 둠이니 곧 모든 사람 특히 믿는 자들의 구주시라")에서는 종말론적 미래에 대한 기다림의 요소가 지배적이지만, 마 12:21에서는 소망 그 자체가 종말론적 축복이다: "또한 이방들이 그 이름을 바라리라 함을 이루려 하심이니라"(참조: 벧전 1:3) (참조: Walter Bauer; R.Baltman; E.Hoffmann). 

@@[[((그 무엇보다도 최우선적으로 길-진리-생명 JC, 곧 영생 구원의 참 가치를 절대적으로, 죽기까지 붙들라!!...나머지는 상대화 하라, 주로 하여금 주 되시게 하라)) 그대 마음을 잘 지키라.. 오직 지고지선-최상의 선택은 Q과 그분의 말씀을 앙망하며 사모하며(=앙모하다) 소중하고 존귀한 그분만을 사랑하며 극도로 누림이니...히브리어 하마드 야웨!!.....]]
[시19:9, 10...*여호와를 경외하는 도는 정결하여 영원까지 이르고 여호와의 법도 진실하여 다 의로우니  *19.금 곧 많은 순금보다 더 사모할 것이며 꿀과 송이꿀보다 더 달도다]
[신7:25...너는 그들의 조각한 신상들을 불사르고 그것에 입힌 은이나 금을 탐내지 말며 취하지 말라 두렵건대 네가 그것으로 인하여 올무에 들까 하노니 이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가증히 여기시는 것임이니라]....
[눅12:15... 저희에게 이르시되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데 있지 아니하니라 하시고] .
....."탐내다"의 히브리어는 <하마드חמד<.. 자신의 소유가 아닌 것을 바라 보면서 마음에 강한 충동으로 욕심 내는 것을 의미... 그것을 얻고자 자신만의 수단으로 꾀를 내려고 하는 모습을 뜻한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보면서 가졌던 마음이 <하마드חמד<요, 이는 죄의 뿌리이기도 하다... 가나안 정복 전쟁 중에 여리고 성에서 승리한 후 아간이 전리품을 몰래 탐을 내었던 것도 <하마드חמד<이니, 아담의 범죄도 아간의 죄악도 <하마드חמד<에서 시작하고 있었다.
......그런데!! 심히 사모하다의 히브리어도 <하마드חמד<를 사용한다.  하나님을 깊이 앙망하는 마음,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사모하는 심령을 <하마드חמד<의 심령이라고 한다 그 "사모함"에는  "무척 간절하게 원함"이란 뜻을 담고 있다....탐심이 심각한 죄의 뿌리가 되는 이유는 하나님을 떠나게 하기 때문이요,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하기 때문이니, 곧 우상숭배의 원인이 되는 탐심이라 할 수 있다....그런데, 그 탐심을 이길 수 있는 방법은 오직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을 절대적으로 더 깊이 사모하여 그 진가를 누리는 것!!... <하마드-חמד<-탐심은 <하마드חמד<-사모함 으로 이겨내야 한다 아담도 아간도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졌던 것은 하나님을 더 깊이 사모하는 것보다 자신의 욕심을 더 좋아했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심히 사모하는 영혼은 자신을 지키게 할 것이다....일시적-상대적으로 좋은 것을 절대화 해서는 곤란하다

@@주목하다, (집중하여 <올인> 초점을 맞추어)바라보다.....ajforavw(872, 아포라오)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히12:2). “바라보자”는 ‘아포’(ἀπό, 으로부터 떠나다, 돌리다) + ‘호라오’(ὁράω, 바라보다)로 구성된 헬라어 ‘아포라오’(ἀφοράω)의 분사형입니다. 경주를 할 때는(1절) 목표만을 “바라보면서” 달려야 한다고 성경의 저자가 말하는 것입니다. 최종 목적지인 예수를 바라보고 달려가기 위해서는, 우리의 시선이 다른 모든 것들에서부터 떠나야 합니다. 곁눈질은 넘어지거나, 또는 자칫 잘못하면 목숨을 잃어버리는 수도 있는 위험한 행위입니다.  당신의 관심과 시선을 사로잡고 있는 것들로부터 ‘아포’하십시오. 그리고 당신과 함께 하시는 그 분만을 ‘호라오’ 하십시오. 예수를 ‘아포라오’하는 것은 당신의 인생을 온전하게 하는 길 입니다.
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 
동사 아포라오(Hdt., Pla. 이래)는 아포(ajpov, 575)와 호라오(oJravw, 3708: 보다, 주의하다)에서 유래했으며,
(a)  '다른 것들로부터 눈을 돌려 또 다른 어떤 것을 주목하다'(Epict. 등). (b)  '보다'를 의미한다.
2. 70인역본의 용법. 
동사 아포라오는 70인역본에서 마카베오사서 17:10에서 한번 (a)의 의미로 사용되었다. 
....야할(기도-기대-기다림) ==>하마드(주님 갈망/앙모함)+나바트(주님 주시/응시/바라봄)+ 바카르(추구함) 파님(God's face)
3. 신약성경의 용법. 
동사 아포라오는 신약성경에서 2회 나오며, 다음과 같이 사용되었다.
(a)  히 12:2에서는 (a)의 의미로 사용되었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b)  빌 2:23에서는 (b)의 의미로 사용되었다: "그러므로 내가 내 일이 어떻게 될 것을 보아서 곧 이 사람을 보내기를 바라고". (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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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42:5..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가 여전히 찬송하리로다..(개역)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하여 하는고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그 얼굴의 도우심을 인하여 내가 오히려 찬송하리로다]
@@주목/주시/응시하다, (초점 맞추고 집중하여) 쳐다보다, 바라보다....fb'n:(5027, 나바트) 
나바트(동사)는 기본어근이며, '보다, 바라보다'를 의미한다.
구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70회 나오며, 피엘형과 히필형으로만 사용되었다.
(a)  피엘형에서 이 동사는 '바라보다'를 의미하며, 사람이 눈으로 행하는 것, 즉 보는 행동을 묘사한다: "그 날에 그들이 바다 물결 소리 같이 백성을 향하여 부르짖으리니 사람이 그 땅을 바라보면 흑암과 고난이 있고 빛은 구름에 가리워져서 어두우리라"(사 5:30).
(b)  히필형에서 이 단어는 '보다, 바라보다'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출 3:6에서 모세는 하나님의 본질을 뵈옵는다고 생각하였다. 나중에 하나님께서는, 다른 모든 참된 선지자들과는 달리 모세는 하나님의 형상을 계속하여 볼 것이라고, 즉 독특한 방식으로 그와 교통할 것이라고 말씀하신다(민 12:8). 그러나 지금까지 하나님의 본질을 본 자는 아무도 없다.
아브라함은 그의 후손이 무수할 것임을 체험하기 위해 하늘을 바라보고 별들을 세어야 했다(창 15:5). 롯과 그 가족이 도망칠 때 뒤돌아 보아서는 안되었다(창 19:17, 창 19:26). 
하나님에 대한 예배의 한가지 전형적인 모습은 백성들이 다 일어나 자기 장막문에 서서 모세를 지켜보는 것이었다. 이것은 시내 광야 시대와 성막이 완성되어 봉헌되기까지의 기간동안 회막이 사용되었을 때 행해졌다(출 33:8). 
모세는 놋뱀을 만들고 그것을 장대 끝에 매달았다. 누구든지 뱀에게 물렸을 때 이 놋뱀을 쳐다보면 살았다(민 21:9). 이리하여 이스라엘은 하나님 안에서 만이 구원이 있다는 것을 배웠다. '보고 살으라'는 이 단순한 요청이 믿음의 시금서이다.
욥 39:29에서 이 동사는 독수리의 능력과 습성을 묘사하면서 그 눈이 멀리 있는 먹이도 본다/간파한다고 한다: "거기서 움킬만한 것을 살피나니 그 눈이 멀리 봄이며". 그리고 이 단어는 여호와의 형상을 보는 것(민 12:8), 언뜻 둘러보는 것(삼상 17:42), 사람을 보지 못하는 것(사 38:11) 등에 대해 사용되었다.
시 94:9에서 이 동사는 눈을 만드신 자가 보지 아니하시랴라고 하는 질문에서 사용되어 창조주자 그의 피조물보다 더 위대하심에 틀림없다는 것, 즉 사람의 마음에 접근할 문을 만드신 이가 들어갈 능력과 권리를 가지고 있음에 틀림없다는 것을 강조한다.
(c)  히필형에서 또한 이 단어는 '주시하다, 눈여겨보다, 관찰하다, 고려하다, 관심을 보이다, 주의를 기울이거나 유의하다, 숙고하다'라는 비유적 의미로 사용되었다.
① 시 119:6, 시 119:15에서 이 동사는 여호와의 명령과 길에 주의 집중하는 것을 가리킨다. 
사무엘은 왕으로 기름부음의 이유로서, 이새의 장남인 엘리압의 외모나 키를 고려하거나 관심을 보여서는 안되는 것이다(삼상 16:7). 
이 동사는 여호와께서 고려하시는/관심을 보이는 매우 순화된 태도, 예컨대 마음의 겸허와 심령의 통회와 관련된다(사 66:2). 이스라엘의 작금의 종교적 행사에 대한 하나님의 거부는 하나님께서 친교의 예물을 돌아보지 않으시는 것으로 표현된다(암 5:22). 하박국 선지자는 왜 이스라엘의 죄를 하나님께서 보지 아니하시는지, 즉 벌하지 아니하시는지, 또 악한 갈대아인들이 왜 하나님의 도구로 사용되는지 불평스럽게 질문 하였다. 본래 악을 결코 참고 보지 않으시는 하나님께서 왜 그리하시는지 물었다(합 1:3, 합 1:13).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고통을 보실뿐만 아니라 감찰하시고 그것들을 떠 맡으실 것이다. 다시 말해 이스라엘의 고통들은 하나님의 행동의 기회가 될 것이다(시 10:14).
② 사람들은 그들의 눈을 고정시키고 그들의 유일한 도움이신 여호와의 뜻에 따라 살아야 한다(사 51:1, 사 22:11, 사 34:5). 
하나님의 방법, 예를들면 언약의 틀(사 51:2, 시 74:20), 그리고 메시야(슥 12:10)를 바라보고 유의하여야 한다.
불경견한 자들은 하나님의 역사(사 5:12)에 주의하거나 유의하지 않으며, 하나님이 세우신 지도자를 주목하지 않는다(시 22:17).
③ 여호와는 하늘에서 땅을 내려다 보시고 모든 인류를 세밀히 살피신다(시 33:13). 하나님은 모든 것을 감찰하신다(욥 28:24, 시 33:13, 시 102:19[20], 시 104:32). 
쬐이는 햇빛 같고 땅 위의 안개같이 여호와께서 조용히 위로부터 내려다 보신다(사 18:4). 시 13:3[4], 시 84:9[10], 애 1:11, 애 2:20, 애 5:1에서는 하나님께 절망적인 역경을 돌아보시기를 호소한다. 참된 메시지를 선포하지 못하는 선지자들과 제사장들은 문둥병자로 취급당하며 하나님께서 더 이상 그들을 고려치/인정치 아니하신다(애 4:16).(참조: BDB; L. J. Coppes; J. A. Naude). 
@@기다리다, 기대하다, 바라다.(신뢰-확신 가운데 믿음으로소망하다)....lj'y:(3176, 야할) 
야할(동사)은 기본어근이며, '기다리다, 기대하다 wait, 바라다, 희망을 하다 hope'를 의미한다.
구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40회 나오며, '니팔, 피엘, 히필형으로 사용되었다. 
70인역본에서 이 단어는 '바라다 hope'를 뜻하는 엘피조와 에펠피조로 번역한다.
야할은 니팔형으로 사용된 세 가지 용례들에서, '짧은 기간동안 기다리다'라는 단순한 개념을 지닌다. 
예를 들면 노아는 비둘기를 보내기까지 "또 칠일을 기다렸다"(창 8:12). 
겔 19:5에서는 "암 사자가 기다리다가 소망이 끊어진 줄을 알고 그 새끼 하나를 또 취하여 젊은 사자가 되게 하니"라고 했다.
이 개념은 또한 피엘형(욥 14:14)과 히필형(삼상 13:8)으로도 표현된다.
그렇지만 야할은 신자들에게 있어 '믿음, 신뢰'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결국 '인내심 강한 기다림'을 야기시키는 '기대' expectation, '소망' hope에 대해 사용되었다. 
기대의 의미는 긍정적인 것이다. 즉 미래에 좋은 일이 있을 것으로 기대하는 것이다.
겔 13:6은 백성들이 거짓 선지자들의 공언에 의지하고 있음을 말해주는 적절한 예이다: "사람으로 그 말이 굳게 이루기를 바라게 하거니와". 
이 문구는 문자적으로 '그들이 그들의 말이 이루어지기를 바란다'이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을 속임으로, 그들이 스스로 속아 실제로 어떤 성취를 기대하고 있다.
시 71:14에서 "나는 항상 소망을 품고"라고 한다.
 야할이 좋은 것을 나타낼 때, 70인역본에서 주로 '엘피조' 즉 '바라다'로 번역되었다.
이 야할(바라다 hope)은 고통을 없애주는 상상의 진정시키는 소망도 아니며(희랍 개념에서처럼) 불확실한 것도 아니다. 
오히려 야할(바라다 hope)은 의인에게 있어 기대의 확고한 근거이다. 이렇게 이것은 하나님께로 향해있다. 
시편기자는 "이스라엘아 여호와를 바랄찌어다 여호와께는 인자하심(히브리어 헤세드)과 풍성한 구속이 있음이라"(시 130:7, 참조: 시 131:3)고 명령한다.
절망의 때에, 시편 기자는 "하나님을 바라라 그 얼굴의 도우심을 인하여 내가 오히려 찬송하리로다"라고 말하면서 자신을 격려한다(시 42:5, H6, 또한 시 42:11, H12, 시 43:5).
그렇지만 이런 확신에 찬 기대에 대해서는, 욥이 "그가 나를 죽이신다 하더라도 내가 그를 바랄 것이다. 그러나 그의 앞에서 내 행위를 변백하리라"고 외치는 대목보다 더 잘 증거해 주는 것은 없다(욥 13:15). 그렇지만 ASV와 RSV는 이 구절을 "보라 그가 나를 죽일 것이니 나는 소망이 없다"(한글개역 - 그가 나를 죽이시리니 내가 소망이 없노라)라고 번역한다. 이것은 70인역본과 다른 역본들에 의해 뒷받침되는 케레(Qere) 대신 마소라본문의 케딥(Kethib) 독법을 따른 것이다. 이 경우에 욥의 성급함은 그가 여호와를 '인내하면서 기다리기를' 거부하였음을 나타내 준다: "내가 무슨 기력이 있관대 기다리겠느냐 내 마지막이 어떠하겠관대 오히려 참겠느냐"(욥 6:11).
그렇지만 야할(바라다 hope)은 바타흐(신뢰하다 trust)나 카와(기다리다 wait for, 바라다 hope for)와 의미가 비슷한 동의어이다. 
예를 들면 미 7:7에서 그것을 알 수 있다. "나는 나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나니 나의 하나님이 나를 들으시리로다". 
마지막 어구는 죄가 심판 당할 때, 하나님의 미래 행동에 대한 의인들의 확신을 분명하게 나타내 준다. 
그러나 더욱이 이 절은 믿음의 근거이신 여호와 자신만을 숙고할 뿐만 아니라 그의 하나님의 구원 활동도 숙고하고 있다. 
짧게 말해서, 바랄 것은 인간의 상상에서 생겨난 어떤 요구 사항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과 그가 이루도록 제안하실 모든 것이다. 
우리는 롬 8:28-29에 표현된 바와 같이, 기독교인의 확신을 상기하게 된다. 즉 경건한 사람은 확신에 차서 하나님의 말씀에 의존할 것이다. 
예를 들면, "주를 경외하는 자가 나를 보고 기뻐할 것은 내가 주의 말씀을 바라는 연고니이다"(시 119:74).
시편기자는 주의 규례(시 119:43), 주의 말씀(시 119:81, 시 119:114, 시 119:147, 시 130:5)을 바란다고 고백한다.
그는 또한 하나님의 신실하신 언약적 사랑에 대해서도 확신할 것이다. 
예를 들면, "여호와는 그 경외하는 자 곧 그 인자하심(헤세드)을 바라는 자를 살피사"(시 33:18), "중심에 회상한즉 오히려 소망이 있사옴은"(애 3:21), "내 심령에 이르기를 여호와는 나의 기업이시니 그러므로 내가 저를 바라리라 하도다"(애 3:24) 등이다.
"소망"은 현재 문제로부터의 구원을 가져올 뿐만 아니라, 종말론적 의미에서 하나님의 도우심과 궁극적인 구원을 "바라는 것"은 모든 고난의 종말을 가져올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그의 전능한 도움을 약속하신 사 51:5을 고찰해 볼 필요가 있다: "내 의가 가깝고 내 구원이 나갔은즉 내 팔이 만민을 심판하리니 섬들이 나를 앙망하여 내 팔에 [의지하리라]". 섬들이 구원자의 오심을 앙망하는 것은 그가 그들을 구속하시고 구원할 능력 있다는 소망의 믿음을 소유하고 있음을 말해준다(참조: G. RAWLINSON).
미 7:7에서는 "오직 나는 여호와를 우러러보며 나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나니 나의 하나님이 나를 들으시리로다"라고 고백한다. 
여기서 야할 즉 "바라보나니"는 간절한 믿음으로 구원의 하나님을 기다릴 것인데, 하나님이 지체하신다 해도 이 믿음은 무너지지 아니할 것이다. 
믿음이 있으면 소망도 있는 것이다(참조: W. J. DEANE). (참조: P. R. GILCHRIST; BDB). 
[잠8:17...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
[삼상2:30하..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하리라]
[잠4:23....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시19:14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속자이신  여호와여 내 입의 말과 마음의 묵상이 주님 앞에 열납되기를 원하나이다]
[롬10:8하-10..*8... 말씀이 네게 가까워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다 하였으니 곧 우리가 전파하는 믿음의 말씀이라  *9.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10.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1 믿음(=아만, 피스티스,faith, belief...그분의 이름-성품-영광-행하심을 들어 알고, 영이신 Q을 영접하여 자신의 근원적-절대적 가치의 참 샘명으로 삼고, 끝까지 견고히 붙좇아 그 사랑 안에  흔들림 없이 하나 되어 살아감)은 바라는(=야할-하마드, 엘피조)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TUQ은 유일무이-근원적-절대적 BONA FIDE이심...BONA(good) + FIDE[fidelis =faithful(충성+진실=충실), true(참), trusty(신뢰), sincere (신실)] = good+trust, (신의+성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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