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의 훈련>> - 내 영 안의 그리스도를 해방하기 위해... ##1. 경건에 이르기까지 훈련함 1. 이상과 실행 바울의 열네 서신은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로마서부터 데살로니가 후서까지의 첫째 부분은 교회의 이상 혹은 교회의 생명과 본성을 다룬다. 주로 정의나 계시를 말해준다. 그리고 디모데 전서부터 빌레몬서까지로 되어 있는 둘째 부분은 그리스도인의 생활과 교회 생활의 실행을 다룬다. 계시나 정의가 나온 후, 실행이 주어진다. 사도 바울은 이 원칙을 그의 모든 서신서에서 사용한다. 그는 먼저 우리에게 정의를 준 다음, 정의된 것을 실행할 수 있는 열쇠를 주었다. 2. 경건에 이르기까지 훈련함(딤전4:7-9) 헬리어 원문에서 「훈련(exercise)」이라는 말은 「체육(gymnastics)」이라는 영어와 같다. 그러므로 바울이 사용한 말의 역사적 배경은 신체를 단련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바울의 이 말은 다른 종류의 체육, 즉 신체적인 몸과 관련되지 않은 다른 종류의 훈련이 필요하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사용됐다. 바울이 말한 다른 종류의 훈련은 우리의 신체나 생각이 아닌 영의 훈련을 말한다. 경건이란 무엇인가? 경건이란 하나님 같음을 의미한다. 디모데 전서 3장 16절은 「크도다 경건의 비밀이여, 그렇지 않다 하는 이 없도다. 그는 육신으로 나타나신 바 되시고」라고 말하고 있다. 경건의 비밀은 하나님이 육신으로 나타나신 것이다. 이 원칙이 그리스도에게 적용되었듯이 오늘날 교회에게도 적용된다. 15절의 「…살아계신 하나님의 교회요 진리의 기둥과 터이니라」다음에 세미 콜론(원문 참조)은 교회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집이요 진리와 기둥의 터이며 또한 하나님이 육신 안에서 나타나신 것을 말하는 것이다. 이것이 경건의 비밀이다. 이것은 하나님이 우리 안에 사시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 모두는 경건이 육신 안에 나타나신 하나님을 의미한다는 사실에 분명해야 한다. 그러므로 경건에 이르기까지 우리 자신을 훈련하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 안에서 나타나실 수 있도록 우리 자신을 훈련하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이 그분 자신을 분배함으로 이루어지며 우리가 계속적으로 실행해야 할 하나의 훈련이다. 이 훈련은 신체의 훈련이나 생각의 훈련이 아닌 우리 영을 훈련함으로 이루어진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우리 영 안에 계시기 때문이다. 3. 우리의 영 안에 계신 만유를 포함하신 그리스도 디모데 후서 4장 22절은 「주께서 네 영에 함께 계시시를 바라노니」라고 말하고 있다. 하나님은 우리의 영 안에 계신다. 성육신되신 하나님이신 그리스도께서 인생과 십자가에 못박히심과 부활과 승천을 통과하신 후 생명 주는 영이 되시어 그릇인 우리의 영 안에 계신다. 우리가 경건에 이르기까지 혹은 우리의 육신 안에 하나님이 나타나시기까지 우리 자신을 훈련하고자 한다면, 우리는 우리의 영을 훈련해야 한다. 4. 영을 둘러싼 부분들 디모데 후서 1장 7절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영(마음)-겁내고 위축되고 의기소침하며 환심 사려 아양 떠는-이 아니요 오직 능력-목표를 이룰 때까지 담대한 믿음으로 물러섬 없이 끝까지 환경을 견뎌내는 일편단심의 의지-과 사랑-다정다감하여 함께 울고 웃으며 동시에 자기희생으로 이루는 아가페-과 진지한 생각의 영(절제하는 마음)-하나님의 뜻과 생각을 잘 분별하여 취하는-이니」라고 하고 있다. 바울은 이 구절에서 우리의 영을 말하고 있지만, 또한 영을 둘러싼 생각과 감정과 의지를 포함한 혼을 말하고 있다. 먼저 「능력의 영」은 우리의 의지를 말한다. 왜냐하면 능력은 의지 안에 있기 때문이다. 능력의 영은 먼저 의지가 복종되어져야 하고 그런 다음 영에 복종하게 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독립적인 의지는 고집세고 엄격할지는 모르지만 강하거나 능력이 있지는 않다. 순교자는 그의 의지를 전적으로 영에게 복종하기 때문에 강하고 능력있는 의지를 갖게 된다. 독립적인 의지는 우리의 영을 약하게 한다. 그러나 영이 우리의 의지를 복종시키고 우리의 의지를 주님께 복종하게 만들 때, 많은 경우 우리는 아주 냉정해진다. 그러므로 우리는 균형을 갖추기 위해 사랑이 필요하다. 우리는 사랑의 영을 가짐으로써 능력의 영을 균형잡아야 한다. 우리 모두는 사랑이 감정의 문제라는 것을 안다. 만일 우리가 웃거나 눈물을 흘릴 줄 모르는 사람이라면, 우리는 결코 영적인 사람이 될 수 없다. 우리가 영안에 있다면 사랑에 풍부한 사람이 될 것이다. 5. 순수한 마음과 양심 디모데 전서 1장 5절은 「경계의 목적은 청결한 마음과 선한 양심과 거짓이 없는 믿음으로 나는 사랑이거늘」이라고 한다. 여기에 사랑과 마음과 양심과 믿음이 있다. 우리는 우리의 영을 훈련하기 위해 우리의 의지와 감정과 생각을 처리하는 것 이외에도, 우리의 마음과 양심을 처리해야 한다. 양심은 우리의 영을 인도하는 부분이다. 만일 우리의 양심이 잘못되어 있다면, 우리는 결코 합당한 영을 가질 수 없다. 더욱이 우리는 우리의 영을 훈련조차 할 수 없다. 만일 우리의 양심이 잘못되어 있다면, 우리의 영은 죽은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합당하게 영을 훈련하기 전에 우리는 선한 양심(딤전1:19)과 순수한 양심(딤전3:9,딤후1:3)을 가져야 한다. 선한 양심과 순수한 양심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선한 양심은 우리가 잘못 행한 것을 처리하고 주님의 피를 적용함으로 정결케 되어 허물(거리낌)이 없는 양심을 말하며, 정죄함이 없는 양심을 말한다. 순수한 양심은 우리가 오직 하나님과 그분의 뜻만 추구하는 것을 의미한다. 죄가 되는 것이 아니고 심지어 선한 것이라 할지라도 하나님 그분 자신 외의 것을 추구한다면 우리의 양심은 순수하지 않다. 우리는 선한 양심뿐 아니라 순수한 양심도 필요하다. 마음의 혼의 세 부분과 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 순수한 마음은 그것이 주님께로 단순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만일 우리가 순수한 양심을 가지려면, 우리는 먼저 순수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 순수해진다는 것은 하나님에게로 단순해진다는 의미이다. 바꾸어 말하자면 우리의 생각은 주님 외에는 아무 것도 고려치 말아야 하며, 우리의 감정도 주님 외에 어떤 것도 사랑치 말아야 하며, 우리의 의지도 주님 외에 어떤 것도 선택해서는 안된다. 그렇게 될 때, 우리는 주님만을 추구하는 순수한 마음을 가지게 될 것이다. 순수한 양심은 먼저 순수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 ('영의 훈련' 한국복음서원, 위트니스 리) ##2. 영의 훈련 방법들 1. 기도함으로 영을 훈련함 디모데 전서 2장 1절부터 3절까지는 「그러므로 내가 첫째로(무엇보다도) 권하노니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를 하되 …모든 사람을 위하여 하라」고 한다. 이것이 우리의 영을 훈련하는 방법이다. 만일 우리가 우리의 영을 훈련하고자 한다면 우리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기도해야 한다. 왜냐하면 에베소서 6장 18절은 우리에게 간구와 기도는 영 안에 있다고 분명하게 말해주기 때문이다. 8절은 「그러므로 각처에서 남자들이 …거룩한 손을 들어 기도하기를 원하노라」고 말하며, 9절은 「또 이와 같이 여자들도…」라고 하고 있다. 우리는 오직 한 가지만을 알아야 한다. 즉 우리는 어디에서나 기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너무나 많은 질문들은 항상 생각에서 나온다.. 이것은 영을 훈련하는 것이 아니다. 오늘날 주님은 우리가 영을 훈련함으로 인해 이와 같은 기도와 방법을 회복하고 계신다. 우리는 논쟁하고 논의하고, 다투고, 의문을 가지고 의심함으로 우리의 생각을 훈련해서는 안된다. 또 화내거나 분을 냄으로 우리의 감정을 훈련해서는 안된다. 우리는 다만 한 가지 일만을 해야 한다. 즉, 더욱 더 많이(무시로 성령안에서) 기도하는 것이며,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간구와 도고와 감사를 하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영을 훈련하는 올바른 방법이다. 2. 하나님의 말씀을 다룸으로써 영을 훈련함 디모데 후서 3장 16절은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호흡으로 된 것으로…」(원문참조)라고 말한다. 그 말씀들은 호흡 자체, 즉 하나님의 신성한 호흡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생각을 훈련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할 수 가 없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하기 위하여 우리의 영을 훈련해야 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은 바로 그분의 호흡이기 때문이다. 성경은 많은 때 건강한 가르침이나 건강한 말씀(딤전1:10, 4:6, 6:3, 딤후1:13, 딛1:9, 2:1)을 말하고 있다. 설교자의 아주 좋은 강연에도 영양 공급과 생명의 공급은 없을 수 있지만, 서툰 말 속에서도 건강하게 하는 생명의 공급이 있을 수 있다. 우리는 우리의 영을 훈련함으로써 바른 말씀이라기보다 건강한 말씀을 받거나 나눠줄 수 있다. 우리는 말씀을 대할 때, 바른 것을 추구하는가 아니면 건강한 것을 추구하는가? 우리는 건강한 말씀을 추구해야 한다. 그러므로 만일 우리가 성경에서 건강한 것을 깨닫고자 한다면, 우리는 우리의 영을 훈련해야 한다. 성경을 읽고 있는 동안에 우리는 기도해야 한다. 읽는 것을 가지고 기도해야 하며, 이해하는 것을 가지고 기도해야 한다. 우리가 이같은 방법으로 기도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접촉할 수 있도록 영을 훈련하고 있는 것이다. 바른 것은 우리의 생각을 위해서 좋은 것이지만, 건강한 것은 우리의 영에 영양 공급을 줄 것이다('영의 훈련' 한국복음서원, 위트니스 리) ##3. 영을 훈련하는데 필요한 세 가지 요구들 1. 피를 적용해야 함 요한 일서 1장 7절에서는 세 가지-교통, 빛, 피-가 있다. 이 세 가지는 서로서로 연결된다. 만일 우리가 교통 안에 있다면, 우리는 그와 동시에 빛 안에 있게 될 것이며, 우리가 빛 아래 있을 때, 우리는 우리를 개끗케 하는 피를 가져야 한다. 만일 우리가 피를 적용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양심은 즉시 더러워지고 정죄 안으로 떨어지게 된다. 그럴 때 양심의 악한 상태가 영을 약화시킨다. 우리가 빛의 드러남 아래 있을 때 우리를 깨끗케 해주는 피를 즉시 적용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양심은 나쁜 양심, 혹은 악한 양심이 될 것이다. 이것은 우리의 영을 훈련하는 것이 불가능해질 때까지 우리의 교통을 손상시킬 것이다. 우리의 영을 훈련하면 할수록, 우리는 피의 필요성을 더 느끼게 된다. 왜냐하면 우리는 교통 안으로 더욱 더 들어가기 때문이다. 우리가 교통 안으로 깊이 들어가면 갈수록, 우리를 드러내는 빛의 정도는 더 커질 것이며, 이것은 우리로 하여금 깨끗케 하는 피가 필요하다는 것을 더 예민하게 느끼도록 할 것이다. 깨끗케 하는 피는 반드시 필요한 것이며 절대적으로 중요하고 필수적인 것이다. 우리가 의로우시고 거룩하신 주님을 접촉하기 위하여 우리의 영을 훈련하지마자, 우리는 양심을 깨끗하게 하는 피가 필요함을 느끼게 될 것이다. 그분은 영광 안에 계시나, 우리는 죄가 있고, 악하고, 더럽고, 세속적이고 정욕적이며, 주님의 영광이 없는 타락한 사람들이다. 그러므로 피는 우리와 주님과의 간격을 메운다. 우리는 끊임없이 피를 적용하는 것을 배워야 한다. 우리는 피로 말미암아 자유와 평안과 담대함과 승리를 가진다. 이에 반하여, 피가 없다면 우리는 대적으로부터 끊임없는 송사(訟事)를 당하게 된다. 피가 없다면, 대적은 항상 안에서 우리를 송사할 것이다. 피는 우리가 악한 자의 고소들을 이기게 할 것이다. 2. 내적인 기름부음을 따라야 함(요일 2장) 우리의 영을 훈련하기 위해서 우리는 기름부음을 따르는 것을 배워야 하고, 우리의 기억을 잊어야 한다. 기억한다는 것은 생각을 훈련한다는 뜻이다. 우리는 우리의 영 안에 계신 성령의 움직이심과 역사에만 관심하는 것을 배워야 한다. 그것을 느끼지 않는다는 것은 우리가 생각에 주의하는 것을 좋아한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내가 당신의 이마를 만진다면, 당신은 어떤 느낌을 가지게 될 것이다. 마찬가지로, 성령이 우리에게 기름부을 때, 우리는 우리 안의 깊은 곳에서 어떤 느낌이나 감각을 가진다. 우리가 가진 원래 의도가 있었으나, 우리의 영 깊은 곳에서는 다른 것에 대한 느낌을 주는 어떤 움직임이 있다. 이 때 우리는 그 의도를 잊어버리고 다만 기름부음의 내적인 느낌을 따라 가야 한다. 안에서 깊이 느끼는 것이면 무엇이든지, 주님께 올려 드려야 한다. 이것이 참된 기도이다. 왜냐하면 나의 생각을 거절하고 나의 영을 훈련하기 때문이다. 3. 쉬지 않고 기도해야 함 우리는 「각처에서」(딤전 2:8), 「쉬지 말고」(살전 5:17), 「영 안에서」(엡6:18) 기도해야 한다. 만일 우리가 영 안에서 기도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우리가 각처에서 기도할 수 있고 쉬지 않고 기도할 수 있겠는가? 만일 우리가 영 안에 있다면, 우리는 언제든지 어느 곳에서든지 계속하여 기도할 수 있다. 사탄은 간교하게 성도들의 영이 답답하도록 하는 전략적인 급소를 친다. 그가 우리의 영을 답답하게 만들 수 있는 한, 우리는 끝나고 사탄은 성공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전쟁에서 싸워야 한다. 우리는 모든 시간 내내 우리의 영을 해방하는 것을 배워야 하고, 끊임없이 기도할 준비를 갖추어야 한다. 이런 해방은 이 공과들을 실행하는 데 달려 있다. 우리는 피를 적용하는 법과, 내적인 기름부음을 따르는 것과 계속적으로 우리 자신을 열고 기도를 먼저 시작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우리가 어디에 있든지 우리가 지금 어떤 사람이든지 구애받지 말고, 전시간 우리는 우리 자신을 열고 기도할 담대함을 가져야 한다. 기도의 주제를 생각할 필요가 없다. 우리는 다만 우리의 영을 열고 우리의 깊은 속의 내적인 느낌에 따라 주님께 어떤 것을 말해야 한다. 당신의 깊은 속에서 느끼고 감지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단지 기도로 그것을 말하라. 우리는 환경이나 주제를 주의해서는 안 되며, 다만 우리의 영을 열고 안에서 나오는 어떤 것을 주님께 말해야 한다('영의 훈련' 한국복음서원, 위트니스 리) ##4. 범사에 영을 훈련함 1. 범사에 훈련함 「육신을 좇지 않고 그 영을 좇아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라」(롬8:4)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또한 성령으로 행할찌니」(갈5:16, 25)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엡6:18) 「내가 성령에 감동하여」(계1:10)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엡1:17) 「형제들아 사람이 만일 무슨 범죄한 일이 드러나거든 신령한 너희는 온유한 영 안에서 그러한 자를 바로 잡고」(갈6:1)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 무슨 권면이나 사랑의 무슨 위로나 성령의 무슨 교제나 있거든」(빌2:1) 「오직 마음에 숨은 사람 즉 온유하고 안전한 영의 썩지 아니할 것으로 하라 이는 하나님 앞에 값진 것이니라」(벧전3:4) 위 구절에 나온 영은 모두 연합된 영을 말한다. 이 표현은 생명 주는 영이신 그리스도가 우리의 거듭난 사람의 영과 연합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두 영들은 하나로 연합되어 있다(고전6:17). 그러므로 우리는 이 영을 따라 행해야 한다. 위의 구절들은 거듭난 사람들은 연합된 영 안에서 살고 모든 것을 행해야 한다는 것을 핵심적으로 우리에게 계시하고 있다. 이것은 다만 기도하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기도는 우리의 영을 훈련하는 여러 가지 방법들 중의 한 가지일 뿐이다. 다른이들에게 말할 때에도 영을 훈련함으로 말해야 한다. 우리의 사랑이 영밖에 있을 때 그것은 정당하지 않다. 필수적인 문제는 우리가 사랑하거나 미워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옛사람으로 사느냐 아니면 새사람으로 사느냐이다. 우리는 영을 훈련하는 것이 기도에 있어서 뿐 아니라 범사의 일임을 아주 분명히 해야 한다. 우리는 「그것이 좋은가 아니면 좋지 않은가?」라고 고려해서는 안된다. 우리는 오직 「내가 영 안에 있는가 아니면 혼 안에 있는가? 나는 이것을 나 자신으로 하는가 아니면 주님으로 하는가?」만 고려해야 한다. 우리가 「주님으로」라는 표현을 사용할 때, 우리는 객관적으로 주님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아주 주관적으로 주님을 말하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영과 연합된 생명 주는 영이신 그분을 말하고 있다. 우리는 모든 때, 모든 장소에서 우리의 영을 훈련해야 한다. 우리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사람들을 우리가 대할 때라도, 우리는 영을 훈련하는 것을 배워야 한다. 2. 혼이냐 영이냐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항상 옳은가 그른가를 생각하며 그 범주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러나 우리는 다만 우리가 행하고 말하는 모든 것이 영 안에 있는가 아니면 혼 안에 있는가를 분별해야 한다. 그것이 옳고 그르고 혹은 선하고 악한 문제가 아니라 그리스도냐 자아냐, 즉 영이냐 혼이냐의 문제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행하는 모든 것, 우리가 말하는 모든 것, 우리가 접촉하는 모든 사람, 우리가 가는 모든 곳에 있어서의 열쇠는 우리의 영을 훈련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실패한다. 그 이유는 우리는 혼 안에서 태어났고 혼 안에서 양육받았고 혼 안에서 교육받았기 때문이다. 우리가 혼 안에서 사는 것은 얼마나 쉬운지! 우리는 심지어 밤에도 혼 안에서 꿈을 꾼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깨어 있어야 한다. 만일 우리가 지금 이 시간에 깨어 있지 않다면, 우리는 즉시로 혼 안으로 다시 미끄러질 것이다. 잠자는 시간을 포함하여 이십 사 시간 동안 우리가 영 안에 살고 영 안에 거하는 시간은 얼마나 되는가? 이것은 가르침이나 교리의 문제가 아니다. 오늘날의 절박한 필요는 영 안에서 항상 사는 것임을 우리가 깨달아야 하는 것이다. 사복음서에서 주 예수님은 자아를 부인하고 혼적인 생명을 가진 혼에서 벗어나라고 우리에게 되풀이해서 말씀하신다. 서신서들에서는 영 안에서 행하고 살고 기도하고 모든 것을 행하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영 안에 머물러야 한다. 3. 영을 소홀히 함 우리가 기도할 수 없는 까닭은 우리의 영이 너무나 오랜 시간 동안 사용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영은 기능를 발휘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훈련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 의사가 나에게, 만일 우리가 삼 개월 동안 우리의 눈을 가린다면 우리는 볼 수 없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비록 우리가 눈에 가린 것을 벗는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시력을 잃어버리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너무나 오랫동안 눈을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많은 형제들과 자매들은 그들의 영을 사용하는데 실패한다. 영이 아니라, 생각 감정 의지 혹은 신체적인 몸을 사용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영을 계속해서 훈련해야 한다. 이것이 오늘날 우리의 필요이다. 우리는 돌아가야 한다. 지금은 우리의 영으로 돌아갈 때이다. 만일 우리가 언제나 어디에서든지 이것을 실행한다면, 우리는 기도하는 것이 아주 쉬워질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의 영이 강하고, 살아 있고, 활동적이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매일의 행함의 모든 사소한 일에까지 우리의 영을 반복해서 훈련하는 것을 실행해야 한다. 영을 훈련하는 한 가지 열쇠는 항상 준비하고 예비하는 것이다. 만일 우리가 먼저 우리의 영이 예비되는 것을 실행하고자 한다면 우리는 우리가 하는 모든 일에 있어서 아주 간단하고 간결한 사람들이 될 것이다(‘영의 훈련’ 한국복음서원, 위트니스 리) 윈도우7 시작 - 실행창 만들기 포스팅 : http://blog.naver.com/pcset/40194273244 윈도우7 프린터 공유설정법 http://blog.naver.com/pcset?Redirect=Log&logNo=40203313679 ## 서버, 클라이언트 컴퓨터 공히 윈도우7 상태에서의 프린터 공유 1.먼저 서버컴퓨터에서 프린터 공유를 위한 사전작업을 시행할 것 .....제어판에서 <네트워크 및 공유센터>를 클릭해서 미리 설정해 주어야 한다. 좌측두번째줄의<고급 공유 설정변경>을 클릭, 홈/회사(V) 공용(ㅅ), 네트워크검색 켜기(*), 파일 및 프린터 공유 켜기(*), 공용폴더 공유---켜기(*) 미디어스트리밍은 그대로 넘어가고, 암호로 보호된 공유 ---끄기(*)에 클릭 후 빠져나옴 --> 빠져나온 다음에는 시작에서 <장치 및 프린터> 클릭해서 공유 원하는 프린터를 찾고서 마우스를 우클릭 후 나타난 박스에서 프린터 속성을 선택하면 새로운 박스가 나타나는데, <이 프린터 공유>라 쓰인 공유탭을 체크하고서 <적용> 누른 후 다시 <확인> 눌러주면 원하는 프린터에 공유 표식이 나타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음.. 2. 이제는 클라이언트컴퓨터에 먼저 {실행창} 만들기를 수행할 것..... ((작업표시줄에 마우스 위치시키고 우측클릭해서 나온 박스에서 속성 선택 : 작업표시줄 및 시작메뉴 속성 창에서 가운데 있는 <시작메뉴>클릭해보면 바로 우측에 [사용자지정]란이 있음.. 이것을 우측클릭하면 <시작메뉴 사용자 지정>박스가 뜨고 중간정도에 [실행]란이 공백상태로 되어 있는데 이것을 클릭해서 체크해주고 확인 눌러줌.. 시작메뉴 하단의 적용 누른 후 확인 눌러줌. : 이제 빠져나와서 시작을 눌러보면 실행란이 활성되어있음을 알 수 있음..)) ---만들어진 실행창 안에 \\pc1(프린터에 이미 연결된 서버PC이름)\주소(4개조합-1줄)을 써 넣고 엔터 또는 밑의 줄에 있는 <확인> 누르면 클라이언트 프린터 영역에 <공유 프린터 이름>이 뜨게 됨... 이로써 당장 사용가능해짐.. ***한편, IP(주소)를 알려 할 때에는 서버컴퓨터에서 <네트워크연결> 우클릭하면 <로컬영역연결>이 나옴, 그것을 좌클릭하면 <로컬영역상태>가 뜨고 [일반]박스 밑의 <자세히>를 클릭하면 네트워크세부정보가 나옴.. 주소(IP - 4개조합 1줄), 서브넷마스크(4개조합-1줄), 기본게이트웨이(4개조합-1줄), DHCP 서버(4개조합-1줄), DNS서버(4개조합-3줄)을 메모지에 따로 적어둘것..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