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지말고 산 믿음으로 주님을 끝까지 붙들어야 한다 = [가시적, 비가시적 영역]을 아우르는, 형상-원형과 질료, 모든 차원과 우주-천지-만물-만유의 창조주 여호와이시다!!...죽은 자 살리시고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불러내시며, <필요하다면> 새로 만들어서라도 주시는 분, 점차적으로 새로이 당신의 영원무궁불변무한하심을 알고 깨닫도록 열어주시는 분이시다.
우리가 알고 있는 바 대로 우리는 3차원 공간과 시간의 1차원이 더하여진 4차원의 시공간에서 산다는 것이 알려져 있다.
이 4차원 시공간은 휘어져 있는데 그것은 시공간 안에 물질이 놓여져 있음으로써 그렇게 되어진다고 알려져 있으며 우리가 전혀 의식하지 못하고 보지 못하지만 수많은 파동과 파장이 대기속에 충만하게 움직이고 있다.
사실 우리의 지각하는 시공간의 4차원의 세상은 이미 18세기 이전에 인지되었으나, 믿지 않는 세상은 그것을 넘어선 보이지 않는 영역에까지의 것을 잘 인정하지 아니하려고 한다. 그것이 어쩌면 획일화된 교육의 문제점이리라.
현재 수학적으로 알려진 바로는, (아직 실험으로 확증된 바는 아니지만) 스티븐 호킹과 초끈이론의 주창자인 파인만에 의하면 11차원까지 존재한다고 한다.((초끈이론에 대해 개요는 알아두세요.))
믿는 이들을 제외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가 보고 느끼는 것만을 믿으려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실제적인 측면에서 볼 때, 우리가 보는 그 어떤 것에 대해서도 보는 그것이 바로 그자체라는 확실성은 전혀 없다.
자 그럼, 우리 머리를 잠깐 새롭게 해 보자. 고등학교 시절에 배운 <뫼비우스의 띠>를 기억하는가? 안과 밖은 연결되어 있다.
이것은 안은 안이요 밖은 밖이라는 고정관념을 깨뜨리는 아주 작은 예에 속한다.
또한 우리가 보는 상은 실제로는 사진기의 원리처럼 거꾸로 된 상이 망막에 맺힌다. 결국 실제로는 거꾸로 맺힌 상을 보며 살아가는 셈이다.
실제로 존재하는 어떤 사물을 가지고 예를 들어 보자. 미시계의 영역으로 내려가 보면, 물체가 아주 작게 나뉘어 -->분자-->원자(물질의 최소단위)-->미립자의세계(양성자, 중성자, 전자, 중간자)-->물질의 기본입자라 칭하는 쿼크, 렙톤 까지 내려가고 거기에서 특수 상대성 이론을 적용하면 (E=MC2) 결국 오직 에너지만 남고 실체는 사라져 버린다. (한편 쿼크구조를 자세하게 풀어보면 string이기에 초끈이론이라 했다.)
즉 <좀 억지라고 느껴질지 모르겠으나!!> 지각을 통해 감각되는 가시적 존재의 비존재성, 또는 존재적 불완전성(?)이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는데, 여기까지 오게 되면 우리의 감각과 느낌의 불완전성에 대해 비로소 깨달음이 열리게 되는 것이다.
이는 양자현상을 다루는 양자역학에서도 어렴풋이 그 의미를 찾아 볼 수 있다.
이른바 불확정성 원리(위치와 운동량은 반비례.....운동량이 클수록 위치를 특정하기 어렵다) + 에너지-시간 관계의 변동(질량변화는 에너지 양의 변화를 일으키지만 동시에 중력장 변화를 유발하여 그 주변에 영향을 끼쳐서 변화를 유도함)에서 보듯이 3차원 공간+시간차원의 4차원을 사는 사람은 <스스로 4차원에서만 생각할 때는>진정 참되게 알고 있다고는 단정할 수 없음을 드러내며, 오직 차원을 달리해야, 곧 더 높은 차원에서 이해하기를 배워야 한다는 의미이다.
에너지는 물질이요, 물질은 에너지인 셈이다. 하나님은 우주-천지-만물-만유, 모든 차원들의 창조주이시며, 창조의 능력의 에너지로 충만하신 분이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이 현상 세계는 참으로 에너지로 충만한 다이내믹한 세계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가시적인 현상 세계가 존재하는 유일한 세계요 불변한다는(("만물이 창조된 때부터 지금까지 그대로 있고 나중에도 그러하리라"는 믿음없는 사두개인이나 미혹자들의 견해처럼)) 우리의 오래된 선입견이 단지 허상에 불과함이 드러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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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후서 3:1~7 이 두 편지로 너희의 진실한 마음을 일깨워 생각나게하여..]]
*1. 사랑하는자들아 내가 이제 이 둘째 편지를 너희에게 쓰노니 이 두 편지로 너희의 진실한 마음을 일깨워 생각나게하여 *2. 곧 거룩한 선지자들이 예언한 말씀과 주 되신 구주께서 너희의 사도들로 말마엄아 명하신 것을 기억하게 하려 하노라 *3. 먼저 이것을 알지니 말세에 조롱하는자들이 와서 자기의 정욕을 따라 행하며 조롱하여 *4. 이르되 주께서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있느냐 조상들이 잔 후로부터 만물이 처음 창조될 때와 같이 그냥있다 하니 *5. 이는 하늘이 옛적부터 있는 것과 땅이 물에서 나와 물로 성립된 것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돤것을 그들이 일부러 잊으려 함이로다 *6. 이로 말미암아 그때에 세상은 물이 넘침으로 멸망하였으되 *7. 이제 하늘과 땅은 그 동일한 말씀으로 불사르기 위하여 보호하신 바 되어 경건하지 아니한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까지 보전하여 두신 것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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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파인만에 의하면 물질의 기본 입자란 공간적 측면에서만 본다면 3차원 공간 이상의 세계에서 3차원 공간으로 통하는 입구라고 했다.
즉 입자란 한 차원에서 새로운 차원으로 들어가는 입구와 같다는 것이다.
우리가 사는 시공간의 4차원의 세계에서 어떤 물체가 빠르게 진행하여 빛의 속도에 도달하면 "시간은 사라져버리고 공간은 막처럼 되어버리고 말것이다"로 추측할 수 있음이 알려져 있다.((이것이 특수상대성 이론의 적용이다))
결론적으로 그 너머의 차원의 세계가 있음을 현대의 천체물리학과 수학은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시간의 사라짐, 거기에서는 영원에서 영원까지 단절되지 않은 사건들이 연속적으로 나타나고 과거-현재-미래가 동시성을 띄고 존재하게 된다.
없어지는 과거도 없고 다가올 미래도 없고 오직 한분이신 하나님의 활동만이 있게 된다. 이것이 성경에서 말하는 영의 세계에서의 시간개념이다.
5차원<4개의 공간+시간>은 4차원<공간3+시간>을. 4차원은 3차원<공간3>을 포함한다.
한편, 쿼크는 업쿼크와 다운쿼크로 나뉘고, 이에 더하여 최근엔 천체발생에 있어서 <빅뱅이론>을 신봉하는 천체-양자물리학자들의 계산방정식에 있어서 소위 소립자를 존재케하기 위한 필수요소라 여기고 있는 <힉스>로 생각되는 표준 모형의 기본 입자 중 하나가 초고속입자가속기 상에서 발견되었다고 한다. 그렇다 해도 전능하나님의 선재성과 창조가 조금도 폐기될 수는 없다..
<일을 숨기는 것은 하나님의 영화요 일을 살피는 것은 왕의 영화니라-잠 25:2.> 하나님이 열어주시지 않는다면 사람은 그 어떤것도 찾아 발견할 수 없을 것이다. 한편 입자들은 E=mC^2(E-빛에너지, m-질량, C=빛의 속도 :변동되는 것에 빛의 에너지를 공급할 때 입자가 생성된다, 즉 입자는 에너지 자체로 충만한 상태라는 뜻.. 에너지는 하나님의 창조에너지 )로 표현되는 상대성이론에 기초를 두고 그 근원을 말하고 있다.
입자는 동시에 파동의 상태를 가지고 있음이 확인된다. 실험자들은 다음과 같은 실험으로 이를 확인했다. 먼저, 넓적판에 세로로 하나나 두개의 슬릿의 틈을 내고 그 뒤에 막을 설치한 후 작은 공을 앞에서 막을 향해 쏠 때에는, 그 슬릿을 통과한 띠가 후면의 막에 나타나지만 이번에는 공이 아닌 전자를 두 슬릿에 통과시키면( 마치 물에 반쯤 잠겨진 판의 슬릿에 파장을 보냈을 때 두 슬릿을 통과 한 후막에 나타나는 것은 산과 골의 간섭파무늬인 것처럼) 똑같이 산과 골의 간섭파무늬로 나타나고, 한편 관찰카메라를 설치하여 어떻게 그 현상이 일어나는지를 관찰할 때는 오히려 예전의 작은공을 두 슬릿을 통해 쏘아보낸것처럼 두 띠만 나타난다..
이것을 <관찰자효과>라 부르는데, 뉴에이지-포스트모던-범신론자 측에서는 입자가 <의식>을 가지고 있고, 또한 관찰자는 <의식하는 인간>이라 상정하면서 <인간이 마음먹은대로 그대로 이루어지기에 인간 스스로 전능하다>는 명제의 근거로 삼는다.
하지만 실제로 관찰을 멈추면 입자는 다시 파동이 되어버리므로(이것은 엔트로피증대법칙에 따른 것으로 창세기1:2는 이것을 <혼돈과 공허>라고 표현한다. 오직 혼돈과 공허에서 질서있게 보다 더 복잡한 것을 만드셨고 또 그러실 수 있는 이는 오직 창조주 전능하나님 밖에 없지 않는가..), 그래서, 아인슈타인은 그들에게 <내가 달을 볼 때만 달이 존재하는 것인가?>라고 반문하며 <의식하는 인간이 관찰자>라는 전제가 황당함을 고발한다. 하지만 그들은 <당신이 보지 않더라도 다른 사람이 보지 않느냐>고 되묻는다..
실제로 참 관찰자는 <그 창조력으로 미립자들을 만드셨을 뿐 아니라 입자들 간 상호작용하는 힘을 유지하여 그것들을 질서있게 붙들며 존재케 함으로써> 모든 만물을 붙드시는 하나님뿐이며 따라서 <믿는 이들은 그분의 능하심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고백하는 것이 맞다.
또한 우주의 진화를 신봉하는 이들의 허구는 <엔트로피 증대의 법칙>적용을 <일관성 원칙을 무시한 채>제멋대로 하는 것에 있다.
빅뱅이론을 통해 우주의 팽창을 설명할 때는 <엔트로피 증대법칙>에 따라 지금도 우주는 더 팽창하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동시에 무기물에서 유기물을 거쳐 보다 복잡한 단세포생물의 탄생 가설을 말할 때에는 이것이 <엔트로피 증대법칙>에 반하는 것임을 애써 무시하고 있다.
믿는 우리는 이 세상에 살지만 이 세상을 초월한 다른 차원의 세상을 동시에 사는 존재들이다.
왜냐하면 성경에 따르면 우리는 몸을 가지면서 동시에 모든 것을 초월하시는 하나님을 닮은, 영을 가진 영적 존재이기 때문이다.
성경은 장차 다가올 세계가 있다는 것, 다른 차원의 세계가 있다는 것을 말한다.
그 세계는 성경에서 <하나님이 계신 하늘>이라고 말해지는 세계, 본질상 시공간적인 4차원세상에 사는, 3차원 공간의 개념에만 길들여진 사람들이, 이상하게 보이고 맞아들어가지 않고 허황되다고 조롱거리를 삼았던 바로 그 세계 , 계시로 나타내어졌고 오직 믿음으로 그것을 붙잡고 믿음으로 의지하여 사는 믿는 이들의 세계이다.
그 첫번째 특징은 우리는 지금 이세상에서는 우리자신이 보는 대로 우리는 각각의 분리된 별개의 인격임과 동시에 그 세계에서는 실제로 하나의 인격(One Person)이라는 점에 있다. 그분-하나님께서 모든 것이 되기에 모든 반대되는 것들은 그분안에서 해체되어버리고 , 그분이 모든 것이 되는 상황 속에서는 전체가 부분을 포함하는 것처럼, 부분도 전체를 포함하고 공유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 연합한, 구원받은 자들은 그 안에 내주하고 계신 그리스도로 인하여 모두가 하나의 그리스도이며, 완전한 그리스도가 각자의 안에서 살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잊지말 것은 구원받은 모든 이들은 피조물이라는 점이다!!! 피조물됨의 자각은 절대로 잊어서는 안된다. 균형이 중요하다!!!
이 개념은 성삼위일체이신 하나님으로부터 이해할 수 있는데, 하나님은 완전히 별개의 세 인격이면서 완전한 하나이시다.
즉 하나이면서 각 인격들은 서로 분리되어 있고 구별된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이시다.
수학적으로 표현하자면 부분이 전체이고 전체가 부분안에 완전히 포함되는 경우이다. 3차원 공간개념으로는 이해 불가능이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에서는 그렇지 않다. 전체가 한 하나님이요, 그 부분들도 각기 그 전체이다.
우리 구원 받은 이들도 이미 이런 관계, 이런 사실 속으로 부름 받았고 거기에 이미 거하고 있다.
우리는 실제로 승천하신 그리스도의 지체들이다. 우리는 이미 승천하신 그리스도와 함께 하늘 보좌에 앉아 있다.
그리스도에 대해 성경은 이렇게 말한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요1:1) "그 안에는 신성의 모든 충만이 육체로 거하시고"(골2:9) "몸은 하나인데 많은 지체가 있고 몸의 지체가 많으나 한 몸임과 같이 그리스도도 그러하니라."(고전12:12)
그 분은 한 분으로 완전하시면서 그 몸에 관한 한 모든 것 안에서 모든 것이 되신다.(엡1:23) 그러나 우리들은 그분안에서 영원히 구별되는 각각의 인격들로 남아 있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각각의 구별된 인격속에 완전한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4차원의 시공간을 초월한 더 높은 차원의 개념인 것이다.
이 사실은 <그리스도와의 연합>의 신비에 대해 새롭게 지평을 열어준다. 바로 이 그리스도를 통하여 믿는 우리 모두는 <하나의 온전한 사람>(엡4:13)임을 깨닫는 데 까지 우리의 지식이 자라나야 한다고 사도바울은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통해 <하나인 사람>이 된 믿는 우리 각자는 물론 서로서로 아주 많이 다를 수는 있지만 근본적으로 연합된 상태가 깨지지는 결코 않는다고 사도는 말한다. 바울이 물었던대로 그리스도의 한 몸인 교회가, 더 나아가 그리스도가 나뉘겠는가?(고전1:13)
우리들은 각각구별된 인격이지만 또 전체로서 하나의 인격이며 우리는 서로를 그리스도의 지체로서 영원히 사랑하고 그리스도는 우리들 각자 속에서 진짜 자아로서 살아가신다.
또 하나 우리의 제한된 흑백논리적 사고 때문에 제기되는 것이 자유의지와 하나님의 선택의 충돌이다.
결국 우리는 하나님의 근본적인 통일성, 즉 분리와 포함이 서로 대립되지않고 서로 충돌없이 공존하게되는 그런 영역에 이르러 문제해결을 볼 수 있다.
하나님의 선택과 인간의 자유의지는 동일한 사실의 두 측면이다. 하나님 안에서의 선택은 인간의 자유의지 안에서 역사하는 것이다.
신자는 그러므로 시간을 초월한, 시간이 없는 세계로 부름을 받았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영원히 한 덩어리이며 현재 순간에 의해 단절되지 않은 채로 연속되어 존재하는 세계로 들어 간다.
신자는 은혜를 통해 자신이 포도나무의 가지처럼 살아계신 그리스도께 연합되어 있고 동시에 다른 가지인 신자들과 나무이신 주님을 통해 함께 연결되어 있음을 안다. 가지와 나무는 구별되지만 가지안에는 포도나무가 충만한 것이다.
((주의해야 할 것은, 제한 받지 않으시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은, 단지 믿는이의 믿음 발휘함의 정도 그안에서만 제한받고 계심을 잊지말자.<다른 말로 표현할 길 없어서 이렇게 표현함을 양해 바란다.> 나사렛에서 예수님은 예수님을 육적으로만 앎을 통해 당신의 전능성을 무시-멸시하는, 믿음없는 사람들로 인해 능력을 발휘할 수 없으셨고 다만 부스러기 은혜라도 얻으려 나아온 병자들만을 안수하여 고치셨다, 반면에 홍해-요단강 도하, 여리고성 함락은 <거룩하게 자신을 주님앞에서 처리하고, 주님 말씀 바로 그대로 행함으로써> 전적으로 믿고 의지함의 순종하는 믿음을 보시고 YHWH하나님이 친히 행하신 결과였다... 오직 그리스도를 신뢰하며 앙망하라, 그분의 전능한 믿음과 합하라..그분을 자유케 해 드리라...주 하나님으로 주와 하나님 되시게 해 드리자... 그리스도의 평강이 주장하시도록 앙망하되 조금이라도 거리낌이 느껴진다면 주님과 독대함 통해 생명 흐름 활력을 회복함이 옳다.))...
위의 시공간의 4차원의 영역에서 그 것을 넘어선 5차원의 영역으로의 의식의 전환은 이 땅에서 하늘의 영역으로, 육의 세계에서 영의 세계로 옮겨 가는데 필요한 도움이 되는 중요한 비유가 될 수 있다. 이것은 거듭남이나 재창조 사역에는 필수적인 의식의 전환이다.
우리의 정상감각으로는 와 닿지 않는 것이지만 실재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과거, 현재, 미래가 동시성을 띄므로 더 이상 시간의 구분이 존재하지 않는 곳, 천년이 하루같고 하루가 천년과 같은 곳, 쉼 없이 회전하며 돌아가는 입자들의 움직임처럼 분주하게 지내는 일상이 마치 움직임이 전혀 없는 자석에 붙은 쇠조각처럼 안정되어 , 압도하는 안식과 평강으로 느껴지는 곳에 대한 비유가 바로 그것이다.
이미 우리는 성령께서 히브리서에서 , 은혜의 때 안에 있는 믿는 자에게 약속하신 그런 안식을, 장차 뿐만 아니라 현재의 삶속에서 마땅히 누리는 하나님의 안식을 경험하지 않았는가?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자들은 이미 날마다의 수고로운 일상을 압도하는 하늘 안식과 평강속에서 살아간다. 왜냐하면 믿는 이들 안에 계신, 완전하시며 모든 인생의 길을 이미 완벽하게 알고 계신 운전자이신 주님께서 믿는 이들 각자 안에서 주님의 삶을 살고 계시며 인도하시고 우리는 순종함으로 주도권을 내어드리고 그분께 연합되어 그분과 하나되어 있기 때문이다. 바로 이 말씀이다."...내 멍에는 쉽고 나의 짐은 가벼우니라"
이제 이런 사실들을 바탕으로 기도 사역과 열결시켜보자. 기도는 이 가련한 땅위에 사는 백성들이 저 하늘 높이 계신 하나님께 닿기 위해 하는 것이 아니다. 기도의 응답을 얻을지 못얻을지도 확실하지 않은채 어둠 속에서 아무렇게나 쏘아 대는 그런 행위가 아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이미 새로운 상태에 들어와 있다. 생명나무이신 그분께 붙어있고 그분의 이름을 가졌으며, 그분이 그 안에 계시고 <머리이며 몸이신> 그 <완전한 사람이신 분>에게 우리는 연합되어 있다. 사실 이 관계를 표현하기 위한 꼭 들어 맞는 적당한 말이 없다. 겨우 찾아낸다면 < 안에(in)>란 표현 정도이다. 실은 이것도 부족하다. <너희가 내안에, 내가 너희안에> ... 이 말은 하나님은 하나님됨을 유지하시면서 동시에 우리와, 우리는 우리됨을 유지하면서 하나님과 유기적으로 연합함을 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표현의 강도가 약하다.
그리스도와 우리는 연합하여 한 몸이 되어 한 사람(One Person)의 <하늘의 사람>이 되며 이런 의미에서는 한 분의 그리스도만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엡4;13, 고전12:12, 6:17) 이 연합에 대한 증거의 말씀은 바을이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했을 때 바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만나 본 주님의 말씀- 고난받는 신자들을 자신과 동일시 했던- 바로 그 말씀에서 볼 수 있다.(행26:14)
거듭난 자로서의 우리와 우리의 구원에 필요한 모든 것을 이미 다이루어 놓으신 그리스도와의 유기적 연합, 이것이 바로 기도의 기초이다.
우리는 그분의 죽음과 부활로 성취하신 그리스도의 일부분이요 전체이다, 따라서 우리는 실제로<하늘에서, 전능하신 분의 보좌 우편에, 그리스도와 함께> 앉아 있다. 마귀와 세상은 그러므로 우리 발 밑에 있는 것이다. 더불어 <하늘 처소에>, <하늘의 것들 안에>란 표현은 하나님의 통치 영역이란 뜻이다.
이 땅에서도 <하늘의 처소, 하늘의 것들>은 적용된다. 이 땅 어디에도 그것들은 널려 있다.
인간의 자연적인 시각으로는 보이지 않지만 무한하신 하나님께는 어디나 열려 있다. 그러므로 우리와 연합되어 있는 통치자인 그리스도, 악의 모든 정사와 권세들 위에 계신 그리스도는 바로 우리가 현존하여 있는 바로 그 곳에 임재하여 계시며 우리들 안에, 모든 필요와 현저한 사탄의 공격을 받는 우리의 환경들 안에 임재하여 통치하고 계시다. 그로 말미암아 우리는 그 분과 함께 그 분의 사역- 믿는 자의 수를 날마다 더 하게 하시며, 언제나 우리로 승리하게 하시고 우리를 통해 자신을 나타내셔서 구원받는 자들에게와 멸망당하는 자 들에게 증거가 되는 - 그 사역을 함께 한다. 기도의 근거는 바로 여기에 있다.
기도란 어떤 특정한 상황 속에서 그분의 생각을 함께 나누어 갖는 일, 그리고 우리의 입이 믿음의 말을 함으로써 그분의 입이 되는 일이다.
롬8:26-27에서 보듯이 기도란 단지 우리 마음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나와서 우리 마음에 들어오는 그 무엇이다.
기도하는 주체는 우리 자신이라기보다 우리 안에 거하시는 그분이다.
우리의 무지로 인하여 그분이 우리에게 기도할 말을 넣어주신다.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므로)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이 말은 그 분께서 우리의 어떤 필요를 위하여 대신 간구한다는 뜻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가 위하여 기도해야 할 내용들과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도록 마음을 일으키신다는 의미이다. 심지어 우리는 그 내용이나 사람들을 모를 수도 있지만 하나님은 아시며 이런 중재의 기도를 우리 안에 넣으시며 우리를 통해 하신다.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라"
그렇다면 우리가 하나님의 뜻대로 기도하는 지는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의외로 간단하다.
그분께서 우리의 마음의 열망과 요구를 일으키시는 내용들을 보아서 알 수 있다.
우리는 우리의 <자연스런> 갈망들에 대해 두려워 할 필요가 없다. 이미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새 사람들이다. 더 이상 옛사람이 아니다.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 사신다고 하면 그분은 우리를 통해 우리가 살고 있는 정상적인 모든 활동을 사시는 것이기 때문에 실제로 새 사람이 사는 일상생활은 그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사는 생활인 것이다. 사업, 직장, 가사일, 교회생활, 그 어느것 하나 그리스도의 삶, 그리스도의 일이 아닌 것이 없다는 것이다. 이 모든 생활을 사시는 분이 바로 우리가 아니라 우리 안에 계신 주님이시다. 생활 중의 모든 자극, 갈망, 필요, 좌절, 도전 등 이모든 것 안에 주님이 사신다. 이 모든 일상적인 삶의 사건들이나 갈망들이 바로 우리안에 계신 성령님의 갈망이요 탄식인 것이다.
기도에 대한 응답이 없다고 느껴지는 것은 어떻게 된것일까?
실은 그리스도 안에서 응답되지 않는 기도는 절대로 없다. 신뢰하며 기다려 보라. 가장 큰 유익을 주시려 하는 그 분을 잠잠히 기다리라. 당장 대답이 없는 것 같이 느껴질 때, 그리고 구한 것과 반대가 되는 결과가 나타났을 때 조차도 응답하시는 그 분이 지혜가 무궁하시며 오묘하신 하나님이며 전지전능하신 주재요 <인격>이라는 것을 잊지 말자. 그 분은 참된 분이시다. 우리가 할 것은 단지 그런 약속에 대하여 <아멘>이라고 말하는 것 뿐이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오직 그 분을 믿는 단순한 믿음이다.
아브라함처럼 ..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믿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 그분 자신>을 믿었다.
기도는 어떤 원인적 현상이 아니라 결과이다. 기도 자체가 우리와 그리스도와의 연합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 자신이 우리 안에서 우리를 통해 기도하신다!!!
그래서 기도 생활에서 가장 우선적으로 요구되는 것은 기도하는 일이 아니라,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의식하고 그분의 평강안에 머무르는 일이다.
아주 잠잠히 그리고 자연스럽게 우리 안에 참으로 하나님 그분이 평강 자체로 우리안에 거하시며 동시에 우리를 품고 계심을 깨닫는 일이 먼저이다.
기도를 하려면 먼저 그분의 안식 가운데로 들어가야 한다. 거기에서 우리의 마음을 흔들고 일깨우며 탄식하게 하는 성령의 움직임을 따를 준비를 마쳤을 때 기도할 준비가 된 것이다.
또한 기도의 사람은 믿음의 사람이다. 성경 속의 기도의 사람들은 어떤 방식으로 자신들의 기도를 시작했든지 간에 결국은 믿음으로 기도를 마쳐야 했다. 그들의 기도는 믿음의 기도였다. 그러므로 그들은 기도의 사람이라기 보다는 믿음의 사람으로 불린다.
기도 안에서 만나주신 하나님은 당신의 손 안에 그들을 통해 하시기를 원하는 어떤 것이 들려 있음을 그들에게 말씀하셨고 그 약속을 그들은 믿었기에 닥쳐 오는 그 모든 시련을 거치며 그것들을 이겨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