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 예루살렘의 열두 기초석들.....**주촛돌(주초석)이자 주초석 모퉁이돌 [: 맨밑 ] -->그 옆과 위 방향에 기초석 12단 [건물이 클수록 더 튼튼해야 지탱됨] -->그 위에 [다림줄 추를 드리워서 수직축 확인후] 기둥이 세워지고 벽을 쌓아가게 됨 “그 성의 성곽의 기초석은 각색 보석으로 꾸몄는데 첫째 기초석은 벽옥이요 둘째는 남보석이요 세째는 옥수요 네째는 녹보석이요 다섯째는 홍마노요 여섯째는 홍보석이요 일곱째는 황옥이요 여덟째는 녹옥이요 아홉째는 담황옥이요 열째는 비취옥이요 열 한째는 청옥이요 열 둘째는 자정이라” (요한계시록 21:19, 20) **새예루살렘 성곽=12기초석(주초석 모퉁이돌에서 연결됨) + 성벽은 투명한 벽옥 같음(풍성한 생명, 믿음), **보좌에 앉으신 분의 모양은 벽옥(거룩/풍성한 생명-순수한 아름다움)과 홍보석(열정적 사랑-심판) 같고 보좌 주변에 둘린 무지개는 녹보석(정의와 공의, 참됨) 같이 빛남, : 성곽의 12기초석은 결국 모두 7가지색(은혜의 무지개색깔)으로 빛나며 기초석 위의 성곽은 보좌에 계신 이의 광채를 반영하여 벽옥(풍성한 생명, 믿음) 같고 수정(성결과 의) 같음 ::벽옥(자스퍼, 반투명, 농도 옅은 회록색=믿음/풍성한 생명/순수한 아름다움)-남보석(사파이어, 투명, 가장 짙은 군청=일편단심/지조/절개)-옥수(칼케도니, 반투명, 사과빛연녹색>,옅은 청색, 약간옅은 녹색/연두빛 연록색=아낌없이 내어주는 순전한/희생적 사랑)-녹보석(에메랄드, 그린베릴, 투명, 짙푸른 초록= JC살아냄 정의/공의), ::홍마노(홍옥-사르도닉스-오닉스, 흰색줄무늬 있는 반투명 주황=신실 충성)- 홍보석(루비-사르디스-카르넬리언, 투명 진홍-빨강=전존재 붓는 헌신 열정적 사랑)-황옥(귀감람석/크리솔라이트, 감람석/올리빈, 녹색과 황금색 섞어놓은듯한, 반투명 옅은 황록색=관용 자비/용납/용서)-녹옥(녹주석/베릴, 하늘색을 약간 띤 듯한 연한 청록=오래참고 견딤 인내) ::담황옥(토파즈, 반투명 붉은 오렌지=임페리얼토파즈)자주색이 최상품, 그외에 오렌지-레드/핑크도 있음=양선/Q뜻과 일치. 말없는 선한 향기/너그러운 은택)-비취(녹옥수-크리소프라수스, 바다빛청녹색, 반투명 약간 짙은 청록=성령께 절대 순종 절제)-청옥(지르코늄계열인 야신스(보통은 적갈색지르콘을 지칭하나 여기에서는 청색), 히야신스석에는 청색히야신스, 황색시트린, 그외에 암적석류석이 있음, 그 중에 약간 짙은 코발트블루로서, 남보석보다 약간 옅은 투명 청색/쪽빛=JC의 거룩함 성결): 사파이어(남색), 아쿠아마린(담청색/옅은 바다물색)과는 농도와 음양의 정도에서 다른 차이가 있음-자수정(아메티스트, 투명, 청색이 더 강조되는 보라색보다는 오히려 적색이 더 강한 와인색에 가까움=유순 온유) --- http://cafe.naver.com/manmin1717/358 http://blog.daum.net/emqhfk123/528 http://blog.naver.com/0406jini?Redirect=Log&logNo=50189555888 **대제사장 훙패 보석 <대제사장의 금색-청색-홍색-자색-백색의 꼬은 실로 짠 흉패, 그 위의 가로3줄X세로4줄로 보석들 12가지, 보석 주위를 둘러싸는 금테, - 대제사장 가슴의 좌->우방향 배열 : 앞에서 볼때는 우->좌 방향 배열> ---우림(빛,,빛인 교회를 통해 말씀하시는 하나님= 수동적 발광기인 12보석위에 18자 쓰여짐)과 둠밈(완전함,,흉패안에 넣어진 능동적 발광체로서 4자가 그 위에 쓰여짐 = 계시 통해 그 뜻을 완전히 드러내시는 JC)은 항상 판결흉패안에 넣어두어야 하며 제사장이 하나님의 뜻 여쭈려 지성소에 설때에 각 글자의 빛남 통해 하나님의 메세지가 나타남 [동]홍보석( sardius or ruby : 적색- 유다) 황옥(topaz : 금색 - 잇사갈) 녹주옥(carbuncle or beryl :녹색 - 스불론) [남]석류석(emerald : 연녹색-르우벤) 남보석(saphire : 청색 -시므온) 홍마노( diamond :연황색-갓) [서]호박(ligore or jacinth : 오렌지 - 에브라임) 백마노(agate : 연분홍혼합 - 므낫세) 자수정(amethyst :자색 - 베냐민) [북]녹보석(beryl or Crysolite : 연두녹 - 단) 호마노(drnyx : 흑백혼합 - 아셀) 벽옥(jasper : 적황혼합- 납달리) 천국은 이 땅의 어떤 말로도 표현할 수 없이 아름답습니다. 그 중에서도 새 예루살렘은 다른 어떤 처소보다도 아름답고 행복한 곳이지요. 아버지 하나님께서 하나하나에 가장 복되고 온전한 의미를 담아 아름답게 지어놓으셨습니다. 약 2천 년 전, 하나님께서는 사도 요한에게 이것을 보여주고 성경에 기록케 하셨습니다(계 21, 22장). 이는 하나님 자녀들이 새 예루살렘을 사모해 침노(마 11:12)하기를 바라셨기 때문입니다. 퍼즐 맞추기를 할 때 모든 조각이 제자리를 찾아야 그림이 완성되듯이 새 예루살렘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열두 가지 영의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따라서 열두 기초석과 그 열두 보석의 의미를 깨우치고 자신을 점검해 봄으로써 온전한 영의 마음을 이루시길 바랍니다. @@열두 기초석의 의미 새 예루살렘성곽에는 <벽옥색>성벽이 있고 성벽의 맨 밑에 있는 기초석이 열두 개 있습니다. ‘기초석’이란 건축물의 외벽이나 안쪽의 기둥들을 받쳐 주는 돌들인데 기둥을 받치는 돌은 ‘주춧돌’이라고도 합니다.(새예루살렘의 성곽크기를 보면 굉장한데 드넓은 성벽들을 받쳐서 성곽을 쌓아올리려면 열두 기초석은 층으로 겹겹이 쌓아야 하지 않을까요?) 각 성곽들을 받치는 성곽의 기초석에는‘어린 양의 십 이 사도의 열두 이름’(계 21:14) 곧 주님의 열두 제자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가룟 유다 대신에는 맛디아(행 1:15-26)가 기록되어 있겠지요.) 여기서 ‘열두 제자’는‘성결되어 하나님 나라를 위해 생명을 드리기까지 온전히 충성한 사람들’을 상징합니다. 이는 믿음으로 구원받고 성결되어 생명 다해 온전히 충성하면 누구라도 새 예루살렘에 들어갈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열두 기초석, 열두 지파, 열두 제자 등 하나님의 중요한 섭리를 설명할 때에는 ‘12’라는 숫자가 등장합니다. 요한복음 11:9에 “낮이(아침6시-저녁6시) 열두 시가 아니냐 사람이 낮에 다니면 이 세상의 빛을 보므로 실족하지 아니하고” 했습니다. 이처럼 ‘낮 열두 시’는 영적으로 어둠이 조금도 없는 온전한 빛을 뜻합니다. 또한 빛은 어두움이 전혀 없으며 영원하고 온전하신 하나님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12’는 빛의 수로서 완전함과 온전함을 나타내며, 하나님께서는 가장 복된 약속의 증표로 사용하셨습니다. 또한 열두 기초석은 열두 보석으로 이뤄졌는데, 각 보석은 특별한 영의 마음을 상징합니다.‘팔복’(마 5장)과 ‘영적인 사랑’(고전 13장),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갈 5장)가 이 안에 담겨 있고, 열두 보석의 마음을 종합하면 하나님 마음, 예수 그리스도 마음이 됩니다. 그래서 열두 보석이 각각 상징하는 영의 마음 결정체는‘완전한 사랑’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을 이루기 위해서는 믿음이 있어야 하고, 희생, 열정, 충성, 자비도 있어야 하며, 때론 절제도 있어야 합니다. 이처럼 여러 영의 마음의 결정체가 바로 완전한 사랑인 것입니다. 이런 이유에서 하나님께서는 열두 기초석을 한 가지 보석으로 만들지 않고 영의 마음 각 분야를 상징하는 열두 개의 보석으로 만드셨지요. 따라서 이 보석과 같은 영의 마음을 온전히 이루면 새 예루살렘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1. 첫 번째 기초석 ‘벽옥’ ‘벽옥’이 상징하는 영의 마음은 (진주색바탕에 상록색 짙푸름이 깃듦..-석영의 일종, 벽옥의 색깔에는 산화철 함량에 따라 적황, 갈색, 노란색, 녹색이 있음) ‘믿음’(절대믿음-절대순종)입니다. 육적 믿음이 전혀 없는 온전한 영적 믿음으로 모든 하나님 말씀을 중심에서 온전히 믿는 믿음이지요. 영적 믿음은 신앙생활의 기초입니다. 어떤 건축물이든 주춧돌이 튼튼하지 못하면 안전하지 않은 것처럼 믿음을 튼튼히 세우지 않으면 올바른 신앙생활을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영적 믿음을 가진 사람은 한 번 믿은 것은 끝까지 변함없이 믿기 때문에 항상 순종의 행함이 따릅니다.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이라는 명칭답게 말씀을 변함없이 믿고 온전한 순종의 행함을 보인 대표적 인물입니다. 그는 75세에 하나님으로부터 큰 민족을 이루고 복의 근원이 되게 할 것이라 는 축복의 말씀을 받고 믿음으로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납니다. 하지만 대를 이을 아들을 낳지 못한 채 세월이 흘러 급기야 자신과 아내 사라도 나이가 많아 아기를 가질 수 없는 몸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도 아브라함의 믿음은 약해지지 않았고 약속을 의심치 않았지요. 견고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롬 4:19, 20). 이처럼 하나님 말씀을 온전히 믿은 아브라함은 결국 100세에 아들 이삭을 얻습니다. 보석 같은 아브라함의 믿음이 더욱 찬란하게 빛을 냈던 사건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독자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고 명하자 아브라함은 즉시 순종합니다. 독자 이삭을 통해 무수한 후손을 주시겠다 약속하신 하나님 말씀을 의심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삭을 번제로 드린다 해도 하나님께서 다시 살리실 것을 확고하게 믿었지요(히 11:19). 결국 아브라함 후손을 통해 이스라엘 민족이 형성되었고, 그 믿음의 열매는 육으로도 풍성히 맺혔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믿기에 그 말씀을 믿고 순종하는 것이 영적 믿음입니다. 하나님 말씀이 자기 생각에 맞지 않는다 해도, 그대로 행하면 자신에게 불이익이 올 것 같아도 온전히 믿고 행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참 믿음을 내보이는 자녀들에게 반드시 능력을 나타내십니다. 자녀들이 믿고 순종한 하나님 말씀이 참이라는 것을 증명해 주시지요. 베드로가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리라’는 예수님 말씀을 믿고 순종하자 그물이 찢어질 정도로 많은 양의 고기를 잡게 해 주셨고(눅 5:3-6), ‘바다에 가서 고기를 잡아 입을 열어보라’ 하신 예수님 말씀을 믿고 순종할 때에는 성전세로 낼 동전을 구하게 해 주셨습니다(마 17:27). 바로 영적 믿음은 사람의 힘과 지혜로는 불가능한 일도 얼마든지 가능케 하는 놀라운 능력을 발휘합니다. 2. 두 번째 기초석 ‘남보석’ ‘남보석’은 일명 사파이어라고 불리는 투명한 남색(군청색)의 보석입니다. 여기에 담긴 영의 마음은 ‘곧음과 절개(지조=견고한 심지)’입니다. 하나님 안에서 한 번 뜻을 정했으면 세상의 어떤 유혹이나 위협에도 굴하지 않고 결코 흔들리지 않는 진실 자체의 마음입니다. 또한 하나님 뜻이라면 무조건 옳다 여기는 ‘정한 마음’을 의미하지요. 남보석과 같은 진실의 빛이 마음에서부터 곧게 뻗어 나온 대표적 인물은 다니엘과 세 친구입니다. 다니엘은 왕의 명령이라도 그것이 하나님 뜻에 어긋날 때에는 결코 따르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 기도하면 사자 굴에 던져질 것을 알았지만 한 번 정한 마음이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창문을 열고 평소와 다름없이 하루에 세 차례씩 기도했지요.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다니엘의 믿음의 절개를 매우 기쁘게 받으셨습니다. 천사를 보내 사자 입을 봉해 다니엘이 조금도 상하지 않게 지켜 주셨지요. 다니엘의 세 친구는 우상에게 절하라는 왕의 명령을 따르지 않아 붙잡혔습니다. 참 신은 오직 하나님 한 분이며 하나님만이 경배 받을 분이기에 그들은 결코 우상에게 절하지 않았지요. 하나님께서 ‘어떤 우상에게도 절하지 말라’고 율법에 명시하셨기 때문에 순간의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거짓으로라도 결코 우상에게 절할 수는 없었습니다. 극렬히 타는 풀무에 던져질 상황에서도 전혀 마음이 흔들리지 않았지요. 살기등등한 왕의 위협에 조금도 굴하지 않고 오히려 더욱 담대히 믿음의 고백을 합니다. 하나님께서 극렬한 풀무불 가운데서 능히 건져내실 것이며 그리 아니한다 할지라도 결단코 우상에 절하지 않겠고, 왕의 명령이 하나님 말씀에 위배되므로 순종하지 않겠다고 합니다(단 3:17, 18). 자신의 생명을 잃을지라도 하나님을 향한 의는 저버릴 수 없다는 이들의 마음에서 초연하면서도 곧고, 짙푸른 남보석 빛깔처럼 숭고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처럼 생명을 걸고 의를 지킨 이들을 외면하지 않으셨습니다. 풀무불에 던져졌음에도 머리털 하나 그슬리지 않을 정도로 보호해 주셨지요. 다니엘이나 세 친구 모두 왕이 하나님을 인정하고, 하나님 사랑은 물론 왕과 백성의 사랑과 인정을 받으며 하나님께 크게 영광 돌렸습니다. 3.세 번째 기초석 ‘옥수’ ‘옥수’는 회색, 청색, 적색을 띠는 것도 있지만, 보통 반투명한 백색을 띱니다. 이것이 상징하는 영의 마음은‘결백’과 ‘희생적인 사랑’입니다. 결백하다는 것은 행동이나 마음씨가 깨끗하고 아무 허물이 없는 상태를 말합니다. 곧 허물없는 깨끗한 마음으로 자신을 희생하는 사랑이 옥수에 담긴 영의 마음이지요. 물론 썩어질 육의 것이 아닌 하나님 나라와 의를 위해 희생하는 것입니다. 희생적인 사랑이란, 내 것을 다 내어주되 돌아올 대가를 기대하지 않는 사랑입니다. 오직 주는 것만으로 만족하는 마음이기 때문에, 줄 때 미련을 갖지 않으며 아낌없이 다 내줍니다. 육의 사랑은 상대를 위해 희생한 만큼 자신도 상대에게 받기를 원하며, 자신이 기대한 만큼 받지 못하면 섭섭해 합니다. 자신의 마음을 몰라주는 상대가 야속해지고 미워져서 점점 상처받고 아파하다가 결국은 허무함만 남지요. 하지만 진정 상대를 위해 희생한다면, 진리 안에서 내 것을 다 내주더라도 돌아올 것을 기대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희생적 사랑을 실천한 대표적 인물은 구약 성경에 등장하는 룻입니다. 룻은 모압 여인으로, 흉년을 피해 이스라엘에서 이주해 온 나오미의 아들과 결혼합니다. 그런데 나오미의 두 아들이 모두 죽고 맙니다. 이스라엘에 흉년이 끝나자 나오미는 고향으로 돌아가려 하면서 룻에게 친정인 모압 지방에 남을 것을 권하지요. 하지만 룻은 나오미를 끝까지 따릅니다. 아무 연고도 없는 낯선 곳에서 전적으로 자신이 섬겨야 하는 시어머니를 위해 희생적인 사랑을 하지요. 이러한 룻의 사랑은 단지 인간의 도리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에 그 믿음 안에서 나온 영적 사랑이었습니다. 결국 룻은 시어머니의 친족 중 기업 무를 자인 보아스를 통해 많은 복을 받습니다(룻 4장). 사람들은 자신을 희생하고 낮추면 자신의 존재 가치가 사라진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아무 허물이 없는 깨끗한 마음, 즉 어떤 사심도 없이 자신을 희생하는 사람은 오히려 하나님과 사람 앞에 드러납니다. 그 마음 안의 선과 사랑이 영적 빛으로 다른 사람에게 비춰지기 때문입니다. 4. 네 번째 기초석 ‘녹보석’ ‘녹보석’은 에메랄드라고 불리는 투명한 초록빛 보석으로‘의와 푸름’, ‘정의롭고 깨끗함’ 인 영의 마음을 상징합니다. 빛의 열매(엡 5:9)인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이 함께 어우러진 빛깔이 바로 녹보석의 영적 빛깔이지요. 선과 의, 진실이 함께 어우러져야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참된 의가 성립됩니다. 어느 하나가 결여되어서도 안 되지요. 참된 의의 빛을 낸 성경 속 인물에는 다윗이 있습니다. 다윗이 백성의 사랑을 받자 시기한 사울 왕은 그를 죽이려 합니다. 오랜 세월 사울을 피해 도망 다니던 다윗에게 사울을 죽일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왔지만, 그를 죽이지 않습니다. 다윗과 함께한 장수들이 사울을 죽이려 할 때에도 만류하지요(삼상 24:6). 아무리 사울이 하나님께 버림받았다 해도, 다윗은 하나님께서 기름 부어 왕으로 세운 그를 임의로 해치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다윗의 마음을 하나님께서는 의롭다 하셨지요. 이 의로움은 바로 선에서 나옵니다. 다윗은 악을 악으로 갚지 않고 선한 말과 행실로 갚았습니다. 사울이 다시 다윗을 죽이려 했지만 다윗은 또 다시 그를 살려줬지요. 만약 다윗이 처음에 사울을 죽였다면 고생도 덜 하고 더 일찍 왕이 될 수 있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다윗은 하나님과 자신과의 사이에서 신뢰를 더 중요하게 생각했기 때문에 설령 어려움을 당한다 해도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의의 편을 택한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 인정받으면 그 이후로는 그분이 보장하시는 차원도 달라집니다. 그래서 사울은 이방인 손에 의해 죽었고, 다윗은 이스라엘 역대 최고의 왕이 되었지요. 유다인으로 바사 제국의 왕후가 된 에스더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정의롭고 깨끗한 마음을 지닌 인물입니다. 하만의 계교로 유다 민족이 멸절 위기에 처했을 때에 그녀는 자기 민족의 구원을 위해 3일 동안 금식과 기도로 하나님께 간구하고 왕에게 담대히 나아갔습니다. 자신에게 화가 미치지 않도록 뒤로 물러나 혼자만 살 길을 찾지 않았지요. 이에 하나님께서는 유다 민족을 구원해 주셨고, 원수 하만 족속과 적들을 멸하셨습니다. 자신의 모든 것을 잃을지라도 끝까지 의를 저버리지 않는 이 같은 마음을 하나님께서도 절대 저버리지 않으십니다. 그러므로 참된 의로 하나님께 인정받는다면 어떤 큰 문제도 해결할 수 있는 것이지요. 하지만 많은 사람이 그 순간을 넘기지 못해 자신에게 불리하면 마음이 바뀌기 때문에 큰 축복과 응답의 기회를 놓치고 맙니다. 의를 지키려던 마음이 약해져 타협하거나 심지어 불의한 길을 택하지요. 따라서 새 예루살렘을 소망하는 하나님 자녀라면 결코 자신의 유익을 위해 악인의 꾀를 좇아서는 안 됩니다. 5. 다섯 번째 기초석 ‘홍마노’ ‘홍마노’는 보통 붉은 줄무늬 마노로 불리는데, 이것이 상징하는 영의 마음은 ‘충성’입니다. 만일 어떤 분야에서 자신이 맡은 것만 딱 해놓고 손을 뗀다면 충성이라 할 수 없습니다. 자신의 일은 물론 시키지 않은 일까지도 마음을 쏟아 성실하게 이뤄 낼 때 비로소 충성했다고 할 수 있지요.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충성은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마음과 뜻과 정성, 목숨을 다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충성이 그가 속한 모든 곳에서 이뤄질 때 온 집에 충성한다고 인정하시지요. 이를 위해서는 먼저 의로운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의로운 마음이란 하나님 나라가 확장되기 원하고, 교회가 부흥하고 발전하기 원하며, 직장이 번창하기 원하는 등 이와 같이 나 자신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 공동체가 잘되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이 의로운 마음 위에 희생하는 마음이 더해질 때 충성이 나옵니다. 또한 이러한 충성이 온 집에 충성으로 되기 위해서는 선한 마음이 더해져야 합니다. 마음이 선한 사람은 한 군데에만 치우치지 않습니다. 마음에 선이 임하면 예전에는 몰랐거나 소홀했던 분야가 마음에 걸리기 때문입니다. 마음에 쌓인 선의 분량에 따라 달라지는데, 선함이 적으면 자신이 소홀히 한 분야가 마음에 걸리지도 않습니다. 또한 조금 마음에 걸리기는 하지만 그냥 지나쳐 버리는 경우도 있지요. 하지만 매우 선한 사람은 마음에 걸리는 일을 그냥 무시하거나 지나치지 않습니다. 어떻게 하는 것이 선인 줄 알면서 행하지 않고 있으면 스스로 견디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악한 사람이 악을 발할 때 마음이 시원한 것처럼, 선한 사람은 선을 행해야만 마음이 시원하고 평안합니다. 그래서 선한 사람은 자연히 온 집에 충성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온 집에 충성되다 하셨습니다(민 12:7).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은 장정만 60만 명으로서, 어린이와 노인, 여자까지 합하면 2백만 명이 훨씬 넘었습니다. 많은 백성이 마치 철없는 어린 아이처럼 툭하면 모세에게 불평했고, 때론 대들기까지 했지요. 하지만 모세는 끝까지 믿음과 사랑으로 그들을 인도했습니다. 백성들의 범죄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진멸하고 모세의 자손으로 큰 나라를 이루겠다고 하실 때, 모세는 자신의 잘못인양 하나님께 회개하며 용서를 구했고, 자신의 생명을 담보로 하는 간절한 기도를 올렸습니다(출 32:31, 32). 이처럼 모세는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하고 목숨까지 바칠 수 있는 마음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로 이러한 충성의 마음을‘홍마노’라는 보석의 빛깔로 나타내셨습니다. 6.. 여섯 번째 기초석 ‘홍보석’ ‘홍보석’은 홍옥수나 루비처럼 진한 붉은 빛을 내는 투명하고 맑은 보석입니다. 여기에 담긴 영적 의미는 ‘정성’, ‘하나님 나라와 의를 이루기 위한 열정적 사랑’입니다. 성경에서 홍보석 같은 뜨거운 마음으로 하나님 나라에 헌신한 대표적 인물로 사도 바울이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방인의 사도로 부름 받아 1차, 2차, 3차에 걸친 전도 여행을 통해 많은 영혼을 구원하며 여러 교회를 세웠습니다. 로마에서 순교당하기까지 쉼 없이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했지요. 사람으로서 견디기 힘든 많은 고난이 늘 전도 여행 중에 동반됐지만 그 길을 택한 것을 한 번도 후회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항상 교회와 성도들을 위한 염려가 앞섰지요(고후 11:23-29). 이처럼 주님을 향한 뜨거운 사랑으로 영혼 구원을 위해 열심과 정성을 다하는 마음이 바로 홍보석의 붉은 빛으로 표현된 것입니다. 7.일곱 번째 기초석 ‘황옥’ ‘황옥’은 영어로 ‘Chrysolite(크리솔라이트, 귀감람석)’라고 하며, 올리브 빛을 내는 ‘Olivine(올리빈, 감람석)’도 여기에 해당합니다. 이것이 상징하는 영의 마음은 ‘자비’입니다. 사전에서 자비는 ‘남을 깊이 사랑하고 가엾게 여기는 마음’이라고 정의합니다. 그런데 영적으로는 ‘사람으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고 용서할 수 없는 사람도 진리 안에서 능히 이해하고 용서하는 마음’을 뜻합니다. 어떤 사람이라도 선으로 이해하고 사랑으로 포용하는 마음입니다. 이러한 자비가 마음에 임한 사람은 편견이 없습니다. 그래서 싫은 사람도 미운 사람도 없고, 마음에 걸리거나 불편한 사람도 없지요. 모든 것을 아름답게 보고 좋게 생각하기 때문에 넉넉하게 포용합니다. 설령 상대가 큰 죄를 지었다 할지라도 그를 긍휼히 대합니다. 죄가 미운 것이지 사람이 미운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 사람을 도리어 이해하고 포근히 감싸줍니다. 예수님은 가룟 유다가 자신을 팔 자 임을 아셨습니다. 하지만 그를 배척하며 멀리 하지 않으셨고, 싫어하거나 미워하지도 않으셨습니다. 끝까지 사랑하심으로 그가 깨닫고 돌이킬 기회를 주셨지요. 십자가에 못 박혔을 때에도 누구를 원망하거나 미워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자신을 해하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셨습니다(눅 23:34). 이와 같이 도무지 용서할 수 없는 사람도 능히 용서하는 마음이 바로 자비입니다. 초대교회 스데반 집사에게도 이 같은 마음이 있었습니다. 아무 잘못 없이 돌에 맞아 죽어가면서도 그들에게 죄를 돌리지 말라고 기도합니다(행 7:60). 이는 그 마음에 어떤 미움도 없고, 오히려 그들을 불쌍히 여기는 자비의 마음이 온전히 임한 것을 나타냅니다. 이처럼 모든 사람을 이해하며 포용하고 선대하는 마음을 이룬다면 늘 행복할 것입니다. 8. 여덟 번째 기초석 ‘녹옥’ ‘녹옥’은 영어로 ‘Beryl(베릴, 녹주석)’이라고 하는 연한 청록색의 보석입니다. 이것이 상징하는 영의 마음은 하나님 나라와 의를 이루기 위해 범사에 ‘오래 참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오래 참음’이란 힘들게 억지로 눌러 참는 것이 아닙니다. 악이 없고 선만 가득해 ‘참음’이라는 단어 자체가 사실 필요 없는데, 사람 편에서의 이해를 위해 기록된 것이지요.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오래 참음’을 의미합니다(벧후 3:9). 성령의 열매 중 오래 참음(갈 5장)이나 사랑장의 오래 참음(고전 13장)도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차원의 오래 참음에 해당합니다. 하지만 사랑장의 오래 참음은 ‘개인적으로 상대를 사랑하기 위해 참는 것’인 반면, 성령의 열매 중 오래 참음은 개인적 차원을 넘어 ‘하나님 나라와 의를 이루기 위해 범사에 오래 참는 것’입니다. 바로 녹옥에 담긴 ‘오래 참음’과 같습니다. 이러한 오래 참음에는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1)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오래 참음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이 이뤄지기까지 오래 참아야 합니다. 신실하신 하나님께서는 한 번 하신 말씀은 반드시 실행하시며, 변함이 없으십니다. 무엇이든 기도한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막 11:24)고 말씀하십니다. 따라서 하나님께 어떤 약속을 받았다면 그것이 이뤄지기까지 기다릴 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언제 축복을 주어야 가장 좋을지 아시기 때문에 그 때를 기다리며 응답이 올 때까지 오래 참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열심히 철야하고 금식 했는데도 응답을 못 받았다고 불평하는 성도가 있습니다. 이는 농부가 씨를 심어놓고 곧바로 열매가 맺히지 않는다고 땅을 헤집어 버리는 것과 같습니다. 씨를 심었으면, 싹이 나고 자라나 꽃이 피고 열매를 맺기까지 오래 참아야 합니다. 좋은 열매를 얻기 위해 잡초를 뽑아 주고 해충을 막아주는 등 땀 흘리며 가꾸는 수고를 해야 합니다. 이처럼 우리 편에서도 응답받기 위해서 할 일이 있습니다. 믿음, 기쁨, 기도, 감사, 충성, 계명, 사랑 곧 일곱 영의 합당한 분량을 채우는 것입니다. 각자의 믿음에 맞춰 그 분량을 채우면 하나님께서는 지체 없이 응답해 주십니다. 따라서 하나님께 대한 오래 참음의 시간은 온전한 응답을 받기 위한 시간임으로 더욱 기뻐하고 감사해야 합니다. 2) 사람과 사람 사이의 오래 참음 사람 사이의 모든 관계 속에서 어떤 상대라도 사랑하기 위해서는 오래 참음이 필요합니다(살전 5:14). 믿어 주고, 참아 주며, 잘 될 것을 바라봐 주려면 오래 참아야 합니다. 내가 기대했던 것과 반대로 행동해도 그 모든 것을 견딜 수 있어야 하지요. 이해해 주고, 감싸 주며, 용서해 주고, 양보해 주려면 오래 참아야 합니다. 전도를 잘하는 분들을 보면, 이런 오래 참음이 많이 임해 있습니다. 전도 대상자가 나를 싫어해도, 심지어 욕하고 핍박을 해도 웃으면서 다가갑니다. 영혼이 구원받아야 한다는 사랑의 마음을 가지고 결코 포기하지 않지요. 끊임없이 선과 사랑으로 나아가니 결국 그 빛으로 인해 어둠이 물러가고 전도가 됩니다. 3) 자신의 마음을 개조하기 위한 오래 참음 마음을 개조한다는 것은 마음에서 비진리와 악을 뽑아내고 진리와 선을 심는 것입니다. 마음을 개조할수록 믿음이 성장하는데, 갓난아이의 믿음에서 어린아이, 청년, 아비의 믿음으로 자라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아비의 믿음에 이르기까지 마음을 개조하는 작업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농부가 밭을 개간하는 수고가 따르듯이 마음을 개간할 때도 힘쓰고 애써 간절하게 부르짖어 기도해야 합니다. 그럴 때 성령의 능력을 받아 묵은 땅과 같은 육의 마음이 개간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 과정이 그리 쉽지만은 않기 때문에, 많은 사람이 힘들어하고 때론 낙심하며 좌절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오래 참음이 필요합니다. 자신의 변화가 더디게 보일지라도 낙심하거나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자신을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주님 사랑을 되새기며, 다시 힘을 내어 마음 밭을 개간해 나가야 합니다. 아무 노력 없이 ‘언젠가는 되겠지’ 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 밭을 온전히 개간했을 때 주시는 하나님 사랑과 축복을 바라보며 더욱 감사함으로 일궈 가야 하는 것입니다. 9. 아홉 번째 기초석 ‘담황옥’ ‘담황옥’은 토파즈라 불리는 붉은 오렌지색의 투명한 보석으로 ‘양선’을 상징합니다. 사전적 의미는 ‘어질고 착함’이며, 영적 의미는 ‘성령 안에서 선을 추구하는 마음’입니다. ‘자기 보기에 선’이 아닌 ‘하나님이 보시기에 선’인 것을 추구하는 마음입니다. 따라서 양선이 임한 사람에게는 자연스럽게 선이 배어나오기 때문에(마 12:35), 어디서 누구를 만나든지 선한 말과 행실이 나옵니다. 선한 그리스도 향기를 내며 주변에 덕과 사랑을 베풀지요. 마태복음 12장 19, 20절에는 예수님의 양선에 대해 기록합니다. 다투지도 들레지도 아니하며 그 소리를 길에서 아무도 듣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의 걸음걸이나 몸가짐, 언어 습관은 흠이 없고 교양을 갖춘 온전한 모습입니다. 진리 안에서 선을 추구하는 사람이라면 이러한 예수님 모습을 닮아가며 입술의 말도 달라집니다(잠 22:11). 또한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아니하신다 했습니다. ‘상한 갈대’란 ‘세파에 시달리고, 마음에 상처를 받아 심령이 상한 사람’을 뜻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가난한 심령으로 하나님을 찾는 사람을 결코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꺼져 가는 심지’란 ‘마음이 악으로 심히 물들어 영혼의 등불이 꺼져 가는 사람’을 뜻하며, 꺼져 가는 심지를 끄지 않는 마음은 구원받을 가능성이 아주 조금이라도 있다면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마음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이 연약해 시험 환난에 넘어져 혼자서는 다시 교회에 나올 힘이 없는 사람, 아직 버리지 못한 비진리로 인해 주변에 해를 끼치고 민망해 교회에 나오지 못하는 사람, 사랑과 인정받기 위해 몸부림치는데 잘 안되니 때로는 속상해 악을 발하는 사람 등 그들의 마음을 헤아리고 품을 줄 알아야 합니다. 옳고 그름만을 논해 상대를 꺾으려는 것이 아니라 진실과 사랑으로 선대함으로써 그 마음을 녹이고 감동을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10. 열 번째 기초석 ‘비취옥’ ‘비취옥’은 옥수의 일종으로 반투명하며 청록색 빛이 나는 보석으로 ‘절제’를 상징합니다. 하나님 안에서 모든 것이 풍성하면 좋겠지만, 질서를 따라 아름답게 이루기 위해서는 반드시 절제가 있어야 합니다. 주 안에서는 무엇이든지 진리로 분별하고 매사에 절제하면서 성령의 소욕을 좇아야 합니다. 성령의 음성을 밝히 듣고 행하면 절제해야 할 때 절제할 수 있으므로 만사형통하지만 그렇지 않으면 여러 가지 어려움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절제의 열매는 중요하며 온전함을 이루는 데에 꼭 필요하지요. 성령의 열매도 사랑의 열매가 있는 만큼 희락, 화평, 오래 참음, 자비, 양선, 충성, 온유의 열매를 맺으며 이 모든 것은 절제를 통해 온전해집니다. 사람이 영적으로 절제하지 못하므로 비진리 가운데 살아가며 시험 환난을 당하고 하나님 사랑도 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사명을 위해 철저히 절제된 삶을 산 세례 요한은 세상과 완전히 구별되어 살았습니다. 홀로 광야에서 기도와 말씀으로 무장했으며, 메뚜기와 석청을 먹는 등 절제하며 살았지요. 이러한 삶을 통해, 그는 주의 길을 예비하는 준비된 자로서의 사명을 온전히 감당할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성령 안에서 마음을 절제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 육신의 정욕을 철저히 절제하고 오직 성령의 소욕을 좇아야 하지요. 이렇게 영의 마음을 이뤄가면서 때에 따라 절제함으로 각 마음의 강약을 조절해 아름답게 조화를 이뤄가야 하는 것입니다. 11. 열한 번째 기초석 ‘청옥’ ‘청옥’은 청색을 띠는 투명한 보석으로 ‘청결함과 거룩함’을 상징합니다. 사전적 의미의 청결은 ‘맑고 깨끗함’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청결은 ‘마음에 죄가 없는 상태’ 즉 ‘어떤 흠도, 점도, 티도 없는 깨끗한 마음’입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행하는 만큼 깨끗한 참 마음이 됩니다(히 10:22). 우리가 손이나 몸을 청결히 하려면 물로 씻듯이, 마음을 청결하게 하려면 영적인 물 곧 하나님 말씀으로 씻어야 합니다. 말씀에 ‘버리라’, ‘하지 말라’ 하신 대로 순종하면, 점점 마음에서 비진리와 악이 씻겨 나갑니다. ‘하라’, ‘지키라’ 하신 대로 순종하면, 세상 죄악에 다시 물들지 않도록 맑은 물로 계속 공급받으니 늘 깨끗한 마음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마음이 청결한 사람에게는 하나님을 직접 뵐 수 있는 복이 주어져(마 5:8) 내세뿐 아니라 이 땅에서도 하나님과 동행하는 복된 삶을 살게 됩니다. 에녹은 65세 때부터 300년 동안 하나님과 동행했고,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심으로 세상에 있지 않았습니다(창 5:21-24). 죄가 전혀 없는 깨끗한 마음이 되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에녹이 하나님께서는 너무 사랑스러워 아름다운 천국에 있게 하시며 그 곁에 더 가까이 두고 싶으셨던 것입니다. 에녹은 세상을 바라보지 않았고, 세상 어떤 것보다 더욱 하나님을 사랑했습니다. 부모를 사랑하고 순종하며 형제들과도 우애가 깊었지만, 그 누구보다 하나님을 가장 사랑했지요. 또한 하늘과 자연을 바라보면서 하나님을 그리워하며, 하나님과 교통하기를 즐겨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심히 사모하며 찾고 갈망하는 에녹이었기에 하나님께서는 그와 동행해 주셨습니다(잠 8:17). 12. 열두 번째 기초석 ‘자정’ 자수정이라고도 하는 ‘자정’은 보랏빛을 내는 투명한 보석으로 그 빛이 고상하고 아름다우며 ‘온유’를 상징합니다. 사전에서는 온유를 ‘성격이 온화하고 부드러움’이라고 정의합니다. 영적으로 온유는 ‘성격이 온화하고 부드러우면서도 모든 사람을 포용할 수 있는 큰 마음’입니다. 솜털같이 포근하고 부드러워 많은 사람이 깃들여 쉴 수 있는 마음이며, 모든 것을 선으로 이해하고 사랑으로 감싸 주는 너그러운 마음입니다. 그런데 아무리 따뜻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가졌다 해도 그것이 마음속에만 있으면 별 의미가 없습니다. 행함으로 선과 사랑을 나타내야 합니다. 즉 나로 인해 다른 사람이 힘을 얻고 따뜻함을 느끼며, 마음의 쉼을 얻게 해 주는 덕도 함께 필요한 것입니다. 영적으로 온유한 사람은 선입관이나 편견을 가지고 상대를 대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세상에서 얻을 수 없던 평안을 그에게서 느끼고 힘을 얻으면서, 스스로 마음을 굽히고 들어와 그 안에 머물기 원합니다. 마치 더운 여름 날, 시원한 그늘을 제공하는 큰 나무와 같아서 편히 쉴 수 있습니다. 이러한 영적 온유를 이룬 사람을 통해 주변의 영혼들은 쉼을 얻고 행복해지지요.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아름답다 하시며 많은 영혼을 품어 진리로 인도한 상급으로 천국에서 넓은 땅을 주시는 것입니다(마 5:5).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온유함이 승한 모세(민 12:3)는 2백만 명이 넘는 이스라엘 백성을 출애굽 시켰고, 광야에서 약 40년을 인도했습니다. 마치 부모가 자녀를 양육하듯 수많은 백성을 마음에 품고 하나님 뜻대로 인도했지요. 이처럼 영혼들을 갈무리 하는 사명은 물론, 그 어떤 사명이라도 온유한 마음으로 감당하면 못할 것이 없습니다. 사람들은 각각 다른 환경과 성품을 가졌기 때문에 때론 의견이 부딪치기도 합니다. 그래서 자기가 옳다고 주장하는 세상 속에서 나를 비우고 다른 사람을 품을 줄 아는 온유한 마음이야말로 진정 아름다운 것입니다. **새 예루살렘 성벽의 열두 기초석이 상징하는 각각의 영의 마음을 모두 살펴보았습니다. 믿음, 곧음, 희생, 정의, 충성, 열정, 자비, 오래 참음, 양선, 절제, 청결, 온유 등 이 모든 영의 마음을 종합하면 예수 그리스도 마음, 아버지 하나님 마음입니다. 이는 완전한 사랑을 의미하며 당당히 새 예루살렘에 들어갈 수 있는 열쇠가 완성되는 것이지요. 따라서 이러한 영의 마음을 온전히 이루어 새 예루살렘 성에서 영원히 하나님의 기쁨과 위로가 되길 축원합니다.
****우림과 둠밈의 계시 *** 그의 백성을 향한 야웨의 신탁은 시대성을 반영한다. 고대 이스라엘의 신탁은 고대근동의 신탁으로부터 영향을 받았다. 야웨의 신탁도구인 <우림>, <둠밈>은 고대근동의 여러 신탁들과 직간접의 관련성을 지니고 있다. 신정정치 속에서의 야웨의 신탁은 제사장을 통한 <우림>과 <둠밈>으로도 충분했다. 실제로 야웨는 <우림>과 <둠밈>을 대제사장에게 위임하여 통치하셨다(출28:30, 레8:8).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은 야웨의 인도가 필요할 때 대제사장에게 가야 했다(민27:21). 이스라엘의 지도자나 왕은 대제사장을 통하여 신탁을 구하는 형식으로 야웨의 왕권을 인정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통치자들의 직무는 대제사장을 벗어나서는 감당할 수 없었다. 이런 점에 있어서 이스라엘의 지도자, 왕, 제사장들은 야웨의 도구였다. 이들은 야웨의 약속된 안식의 땅(신12:9-10, 수21:44)으로 백성을 인도해야 했다. 그러나 약속된 안식을 얻었을 때(왕상8:56), 이미 새로운 왕정정치의 시대는 도래되고 있었다. 왕정정치는 제도적 통치를 탄생시켰다. 이는 다양한 또 다른 조직을 갖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우림>과 <둠밈>을 통한 대제사장의 신탁은 변화된 세상 즉, 왕권(王權)과의 관계 속에서 연구되어야 한다. 강화된 왕권은 자연히 제사장권의 약화를 초래했기 때문이다. 왕권의 강화와 더불어, 전문적인 모사(Counselor)집단의 등장, 예언자 집단의 등장과 활발한 그들의 활동, 왕들 자신의 야웨와의 직접적인 대면, 제사장 자신들의 불충실성(삼상2:12-17), 그리고 이미 존재하게 된 야웨의 다양한 말씀은 <우림>과 <둠밈>을 통한 제사장의 신탁을 약화시키기에 충분했다. 야웨의 신탁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신탁도구 자체가 아니라 야웨의 의중이 어떻게 정확하게 전달되느냐에 있다. 도구(우림,둠밈)를 통한 야웨의 신탁은 변화된 시대에는 불충분한 측면을 갖는다.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을 제기한 예언자 그룹은 야웨의 말씀을 백성들에게 직접적으로 전달 할 수 있었다. 그러므로 대제사장을 통한 도구(우림,둠밈) 신탁은 예언자를 통한 언어(예언) 신탁에 자리를 양보할 수밖에 없었다. 이제 야웨의 말씀은 점점 더 전면에 드러나게 되었다. 야웨는 예언자들의 말씀을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을 성숙함으로 인도하셨다. 그리고 마침내 야웨께서는 예언자까지도 보내지 않았던 시대를 허락했다(말3:23, 4:5, 눅1:17, 마11:11-14, 17:0-13 참고). 이방나라들이 계속해서 그들의 선견자나 점쟁이로부터 신탁을 구하는 동안, 야웨는 이스라엘에게 더 이상 예언자를 주지 않았다(마카비상9:27). 이는 이미 그의 백성에게 충분한 말씀이 주어졌음을 의미한다. <우림>과 <둠밈>의 사용 정지는 나중에 예언자들까지도 물러나야 함을 알리는 예시가 되었다. 이것은 이미 충분한 계시의 말씀이 존재함을 의미함과 동시에 불순종하는 백성들을 향한 무언의 암시였다. 그러므로 이미 충분한 야웨의 말씀이 주어진 상황에서는 그의 적용만이 중요해 진다. <우림>과 <둠밈>의 중단은 이와 같은 맥락에서 이해해야 할 것이다. 왕정시대에 있어서 도구를 통한 신탁은 말씀(예언)을 통한 신탁보다 열등한 위치에 있었다. 사람들은 예언자에게로 달려 갔다. 그리고 그들은 예언자를 통해 충분한 말씀을 갖게 됐다. 우리는 제비뽑기 신탁도 이와 같은 관점에서 볼 수 있다. <우림>과 <둠밈>이 제비신탁이냐? 아니냐? 하는 것은 차치하고서라도, 야웨의 신탁에 있어서 단순한 제비신탁보다는 <우림>과 <둠밈>이 야웨의 뜻을 더 잘 전달할 수 있었고, <우림>과 <둠밈>을 통한 제사장 신탁보다는 예언자를 통한 예언의 신탁이 그 시대에 더욱 적절했다. 그러므로 제비신탁과 제사장 신탁은 소멸되고 말았다. 이어서 예언자들도 소멸되었다. 그리고 드디어 예수 그리스도가 오셨다. 예수 그리스도야 말로 <우림>과 <둠밈>, 그리고 모든 예언자의 예언을 포괄하는 계시의 완성이며 모든 신탁도구의 성취였다. 그러므로 정작 예수 자신은 <우림>과 <둠밈> 그리고 제비뽑기를 실천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예수 자신이 또 다른 계시의 도구인 동시에 계시의 완성이 되기 때문이다(히1:1-2). 부분적인 것은 온전한 것이 오면 자리를 내 주어야 한다(고전12:9). 우리는 <우림>과 <둠밈>의 소멸도 그와 같은 관점에서 이해해야 할 것이다. 오늘날 비효율적인 교회 선거문화는 제비뽑기를 대안으로 제시하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는 어떤 판단에 있어서, 도구(제사장) 보다는 예언의 말씀(예언자)을, 그리고 예언의 말씀보다는 그리스도 자체를 향하는 것이 옳다. 오늘의 이 시대는 고대 이스라엘의 시대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도구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도구의 의미이고,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를 통하여 주어진 말씀이고, 그보다 더더욱 중요한 것은 이미 주어진 그 말씀을 실천하는 삶인 것이다. ##부활의 증인들 : ------40일 동안 부활예수님은 하나님나라에 대해 말씀하시며, 권능의 영 부어지기까지 예루살렘 떠나지 말 것과, 당신의 <육안으로는 보이지않는 영원한 임재>에 대한 감각을 배우게 하심. 1>향품을 시신에 바르기 위해 함께 미명에 일어나 나가 동틀녁에 무덤에 당도한 이들 4명의 여인들.. ====1. 막달라마리아(마28:1, 막16:1. 눅24:10, 요20:11-18)...2.야고보와 요세(알패오 또는 글로바의 아들들 - 야고보는 작은 야고보로 불림)의 모친 마리아(=다른 마리아 마28:1, 막16:1 눅24:10 )..3.요안나(헤롯왕의 청지기 구사의 아내)(눅24:10)..4.예수의 이모(세베대의 아들들-야고보와 요한-의 모친) 살로메(막16:1, 눅24:10) ===<마태복음>큰 지진-강림한 천사가 무덤 막은 돌을 굴려내고 그 위에 앉아서 주예수의 부활 고지하고 갈릴리에서 만나실 약속 전함. : 막달라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주님의 부활과 갈릴리에서 보리라>하는 이 소식을 <마가의 다락방으로>전하러 달음질하는 동안 부활예수 만남(막달라마리아가 맨처음으로 주님을 알아봤을 가능성있음 그렇지 않다면 그 때 당시는 그분이 부활하신 주님인지를 제대로 깨닫지 못했을 가능성 있음 : 왜냐하면 마가는 막달라마리아가 최초로 부활예수를 만난 자임을 증언하고 있기 때문..) --천사가 전한 동일한 약속을 재확인시켜주심 --마가의 다락방으로 직행.. ===<요한복음>막달라마리아의 전언(예수님의 시신이 사라졌는데 사람이 어디다 두었는지 모르겠다)을 듣고 베드로와 요한이 막달라마리아와 함께 무덤을 방문, 머리쌌던 수건이 개켜져있음과 세마포는 있는데 시신 없음을 확인, 의아해 하며 그들은 <다락방으로>돌아감,,, ---막달라마리아는 무덤밖에 서서 울면서 구푸려 무덤을 들여다보고 있는데 무덤속의 시신 놓였던 자리의 머리편과 발편에 선 두 천사의 존재 확인, 두 천사가 그녀의 우는 까닭을 물음(반어법적 질문),, <주의 시신을 어디다 두었는지 모르기 때문이라>대답하고 이어서 자기 뒤에 인기척 느껴 뒤돌아 봄.. <우는 이유와 누구를 찾는지 >물으시는 그가 부활예수이심을 즉시 알아보지 못하고 동산지기로 여겨서 <주님의 시신 옮겨간 곳 알려달라>고 요청,, 주님이 그녀의 이름을 친밀한 음성으로 부르실 때 바로 그분이 부활예수임이신 줄 깨달아 알아봄..(부활예수께서 이제 영원한 속죄위해 자기의 피를 하늘성소에 드리려 아버지께로 올라갈 것 얘기 하심) --->막달라마리아가 가서 제자들에게 그 말씀 전함.. 2>베드로(눅 24:34) 3>엠마오도상의 글로바와 다른제자(눅24:13-35) 4>도마가 없는 동안 10명의 사도에게 나타나심(눅24:26, 요20:19 -- 생명의 성령 불어넣어주심) 5>도마 포함한 11사도가 함께 있을 때 나타나심(막16:14, 요 20:26) 6>디베랴바다에서의 어부출신의 7제자들(요21:1-24) 7>갈릴리 산 위에서의 모든 제자들(마28:16) 8>500여형제들(고전15:6) 9>주의 형제 야고보(고전15:7 --회심하고서 예루살렘교회의 기둥 역할.) 10>예루살렘 근처(감람원)에서 11제자들(막16:19, 눅24:50, 행1:3-12, 고전15:7), ##<성경> 마 28: 1 - 10.....예수의 부활 예수께서 장사된 지 3일 만에 부활하시고 무덤을 방문한 여인들이 이를 확인한 사건에 대해 알아보자. 1. 예수의 부활(1-8절) 1) 부활의 날(1절): ‘안식일이 다하여가고’, ‘안식일이 지난 뒤’. 유대인들의 하루는 저녁 6시부터 다음날 저녁 6시까지다. ‘안식 후 첫날’은 현재의 일요일로서, 예수께서 부활하신 날이다. 이 후로 기독교는 안식일(토)을 성일로 지키던 전통에서 벗어나 예수의 부활을 기념하는 의미로 일요일을 성일로 지키게 되었다. ‘미명’은 ‘빛을 내다’, ‘날이 밝다’는 뜻으로 일요일 새벽 해 돋는 시간을 가리킨다.(막16:2) 여기에서 ‘다른 마리아’는 글로바(알패오)의 아내이며 야고보와 요셉(요세)의 어머니인 마리아(27:56, 막16:1)를 말하며, 같이 동행한 여인들로는 일곱 귀신 들었던 막달라 마리아, 예수님의 이모(세베대의 아들들의 모친) 살로메, 헤롯왕의 청지기 구사의 아내 요안나가 함께 했다. 이들은 안식일이 끝나자마자 예수의 무덤을 찾았던 것이다. 예수께서 예언하신 대로 죽으시고 3일만에 부활하셨다.(16:21, 17:23, 20:19) 이로 인해 옛 언약의 안식일(토)을 폐지하고 새 언약의 주인이신 예수님이 부활하신 일요일을 주일로 지키게 된 것이다.(행20:7, 고전16:2, 계1:10) 이 날은 세상의 참 빛 되신(요1:9) 예수께서 어두운 무덤의 권세를 물리치고 온 세상에 생명의 빛을 비추신 날이다. (창1:3) 2) 천사들에 의해 열려진 돌문(2-3절): 예수께서 친히 돌문을 열고 나아오실 수 있는 능력이 있지만 천사들이 이렇게 하도록 하신 것은 예수의 부활이 하늘로부터 임하는 영광이며 하나님의 역사임을 밝히기 위함이었다. 이로 인해 예수님의 대속의 사역이 완전함을 선포하신 것이다(롬6:9.고전15:54-57). 3) 예수의 부활 소식을 확정하는 천사(5-6절): 예수께서 살아나셨다는 것은 그 분을 사랑하는 자들에게는 말할 수 없는 기쁨이다. 그러므로 무덤을 찾아 왔던 여인들에게 무서워하지 말라 위로 하면서 부활하신 예수께서 그 곳에 계시지 않음을 알려주었다. 그의 말씀대로 부활하셨음을 증거하면서 (16:21, 20:19, 막8:31, 눅18:33) 누우셨던 장소를 확인해보라 하신 것이다. 4) 부활의 예수를 전하라고 명하는 천사(7-8절): 여인들에게 빨리 가서 제자들에게 예수의 부활 소식을 알리라고 하셨다. 또한 부활하신 주님께서 제자들보다 먼저 갈릴리에 가시니 그 곳에서 만나자고 하신 것이다. 이 때 주님을 따르던 제자들이 실망과 슬픔에 싸여 있을 때 그들을 위로하고 용기를 주어(고후1:3-7) 그들을 만나 그들에게 귀한 사명을 맡기고자 한 것이다. (마28:16-20. 행1:8-9) * 예수의 부활하심을 믿고 영생의 첫째 부활을 소망하는 성도가 되자. 2. 여인들과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시공을 초월한 부활의 몸 입은 부활예수(9-10절) 1) 여인들을 위로하심(9-10절): *아마도 막달라마리아는 홀로 다락방으로 향하여 달음질 치고 나머지 여인들은 자기들 집으로 갔던것일까? **어떻든간에 부활의 예수께서 막달라 마리아를 포함한 무덤에서 돌아가는 여인들에게 ‘평안하뇨’하시며 도중에 직접 문안하셨다. 이는 유대인들의 일상적인 인사말로서, 기뻐하라는 뜻이다. 즉 근심에서 기쁨으로 바꾸라는 것이다. ‘무서워 말라’는 예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신 것은 바로 그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가진 두려움을 잔잔하게 하시고 평안을 주려 하신 것이다. ‘형제들’은 제자들을 말한다. 사실 제자들은 예수를 고통 가운데 홀로 두고 자기들만 피하여 도망간 자들이다. 그러나 부활의 주님께서는 그들을 형제라 부르시면서 갈릴리 그 곳에서 만나고자 한 것이다. 자신을 버린 제자들을 용서하시고 사랑의 진면목을 보여주셨다. 2) 여러 제자들에게 나타나심: 마가는 막달라마리아가 최초로 부활예수 만났음을, 전승에서는 베드로가 최초로 부활예수 만났음을 기록하고 있다. ---막달라 마리아를 (막16:9, *베드로와 요한이 돌아간 후 동산에서 개인적 만남의 기술 추가 :요20:11-18), :막달라마리아는 2회 만났을 가능성. ---막달라마리아, 다른 마리아, 살로메 요한나를 : 무덤에서 돌아오는 길에서 함께(마28:9-10), ---두 제자를 엠마오 도상에서(눅24:13-32) ---베드로를 예루살렘에서(눅24:34), : *개인적 만남임..제자들이 부활의 날 저녁 다락방에서 모이기 그전에. ---열 제자들을 (도마 제외)다락방에서(눅24:36-43), :부활의 날 저녁에.. ---열 한 제자를 (도마 포함) 마가 다락방에서 (요20:24-29), :7일 지난 두번째 주일 저녁. ---일곱 제자를 갈릴리 디베랴호수에서(요21:1-14), : 베드로를 회복시키심.. ---사도와 오백여 형제를 갈릴리의 다볼산(변화산)에서(마28:16-20) 일시에 만나심 : 마28:19-20의 선교의 대사명 주심.. ====== 10여 차례 나타나시어서(이로 인해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현존하며 동행하는 그분의 임재 경험 통해 내주하는 임마누엘 성령 신뢰하기를 가르치심) 제자들을 위로하셨다. ====== 예루살렘 근처의 베다니의 감람산-감람원에서는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계속 기도한다면 권능의 성령을 보내어 옷입게 하여주실 것 약속하시고 성령이 임하면 권능를 받아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내 증인이 되라 명하셨다.(행1:4-8) 이 말씀을 마치시고 제자들이 보는 앞에서 승천하셨다. * 예수님의 부활하심을 기뻐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증거하는 성도가 되자. ---예수님은 예언한 말씀대로 3일만에 부활하셨고 제자들에게 10여 차례 부활하신 주님으로 나타나 보이셨다. ---예수님의 부활을 확신하는 부활 신앙을 소유하여 주님 재림하실 때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성도가 되자. **<역린>의 중용23장 대사 “작은 일도 무시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야 한다 ----->묵상하듯, 자세히 간곡하게 살핌. 작은 일에도 최선을 다하면 정성스럽게(중심에 온전함을 견지) 된다. --->본질을 깨달음으로 붙듬 정성스럽게 되면 겉에 배어 나오고 --->깨달음 붙들 때 그것은 생명이 되고, 충만케 됨 겉에 배어 나오면 겉으로 드러나고 --->충만케 될 때 안에서부터 밖으로 넘쳐 묻어나며 자연스레 저절로 표현됨 겉으로 드러나면 이내 밝아지고 ----->주위에 선한 영향력 미치며 은혜끼침(빛과 소금) 밝아지면 남을 감동시키고 --------->감동된 주위사람들의 모본이 됨 남을 감동시키면 이내 변하게 되고 --->자신과 이웃의 내적 외적 변화를 일으킴 변하면 생육된다. ---------------->생명의 확대 재생산 그러니 오직 세상에서 (작은 일에도)지극히 정성을 다하는 사람만이 나와 세상을 변하게 할 수 있는 것이다.”(중용 23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