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세상의 포도주보다 나은 하나님의 사랑 (아 1:2) I. 하나님 말씀의 입맞춤에 대한 이해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 열어주시는 지혜와 계시의 영을 구함===>..Q의 소유, Q께 속한 자<하나님이 누구신지, 나는 누구인지>에 대한 영적정체성..하나님의 <신부에 대한>열망과 사랑의 성육신과 십자가 희생-부활-승천, 지성소에서 사는 JC의 연인-친구-재림예수 오실 길 예비하는 예비자의 삶, 하나님 영광의 아름다움(성품과 미덕)을 주관적으로 알고 경험하여 매혹됨으로 JC께서 아버지께 하셨듯 영과 진리로 사랑 드림, 하나님의 계획(하나님의 연인-전사-이기는 자, 마침내 이루실 그리스도와 함께 보좌에 앉는 신부-새예루살렘)에 동의하며 사랑과 신뢰로 한 영됨을 실행 2내게 (말씀으로) 입맞추기를 원하니 네 사랑이 포도주보다 나음이로구나 (아 1:2) A. 신부는 왕보다 더 큰 권세를 가진 분께 간구한다. “그로 하여금… (영어역)” 다시말해 신부는 직접 왕에게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분께 요청한다.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 예수님이 주님의 말씀으로 제게 입맞추게 해 주세요”라고 기도하는데 이것은 우리가 전심으로 예수님을 사랑할 수 있게 은혜를 부어 달라는 믿음의 기도다.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계명은 우리의 삶의 최우선 순위이기 때문이다. 37예수께서 가라사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38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마 22:37-38) B.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을 말한다. 지난 3000 년 동안, 랍비들은 이 구절에 있는 “입맞춤”을 “토라의 입맞춤”으로 해석해 왔다. 3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너로 알게하려 하심이니라 (신 8:3) C. 아가서의 주제는 ‘하나님 말씀의 입맞춤’이 심령 깊은 곳까지 임하기를 간구하는 신부의 부르짖음으로, 가장 깊고도 친밀하게 주님의 말씀을 경험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주님의 말씀은 신부를 향한 왕이신 예수님의 감정을 보여주며, 우리 안에 하나님의 사랑 3 가지를 깨워준다 (하나님께 받는 사랑, 하나님을 향한 사랑, 다른 이들에게 흘러나가는 사랑). II. 하나님 은혜안에 있는 탁월한 즐거움 A. 주님의 말씀의 입맞춤을 하나님 아버지께 구하면서, 신부는 간구하는 이유를 설명하게 된다. 신부는 삼위일체의 제 2 격이신 예수님께 직접 이렇게 말한다, “주님의 사랑 (애정)이 포도주보다 낫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애정을 경험하는 것이 이 타락한 세상의 포도주 (즐거움)를 경험하는 것보다 더 낫다고 고백하는 것이다. 2내게 입맞추기를 원하니 네 사랑이 포도주보다 나음이로구나 (아 1:2). B. 신부는 포도주를 상징적으로 사용하는 데, 이것은 포도주가 사람의 “기분을 들뜨게” 하기 때문이다. 혼인에서 사용되는 포도주는 “세상의 축하주”를 상징한다. 포도주는 사람을 행복하게 만들어 주는 ‘기쁨’의 술이다. 이것은 세상의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사람들을 ‘취하게’ 만드는 것들을 말한다. 1.하나님의 축복을 말하는 “선한 포도주”가 있는가 하면, 죄악을 말하는 “악한 포도주”도 존재한다. 신부는 “주의 사랑이 죄악 보다 더 낫습니다”라는 것을 넘어선 의미를 전달하고 있다. 주의 사랑이 죄악보다 나은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사실이기 때문이다. 신부는 다음과 같이 고백하는 것이다, “주의 사랑을 경험하는 것은 이 세상에서 누릴 수 있는 최고의 특권들보다도 더 나은 것입니다.” 2. 우리가 사는 환경가운데 부어주시는 하나님의 선한 축복들 중에는 물질의 축복, 인간관계의 축복, 건강의 축복, 사역의 축복 등등이 있다. 여기에 나온 ‘포도주’는 우리가 이 세상에서 (이 시대에) 누릴 수 있는 ‘최고’의 경험을 말한다. C. 하나님이 주시는 세상적 축복들도 좋지만, 그런 것들에만 우리의 마음이 쏠려서는 안된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깊은 사랑보다는 물질이나 명성에서만 하나님의 축복을 경험한다. 환경적인 축복만을 경험한 사람들은 대부분 예수님을 향한 사랑이 점차 식어지게 된다 (계 2:4-5). 3 또 네가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아노라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치 아니하면 내가 네게 임하여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계 2:3-5) D. 신부는 삶에서 복음의 “탁월한 즐거움”이 가지는 우선순위를 소개한다. 이것은 신부의 ‘삶의 신학’과 ‘거룩의 추구’를 드러낸다. 2내게 입맞추기를 원하니 네 사랑이 포도주보다 나음이로구나 (아 1:2)2… 네 사랑이 포도주보다 더 기쁨을 주는 구나 (아 1:2, NIV 역) E. “더 나은,” “보다 우월한” 또는 “더 기쁨을 주는” 하나님 마음 (애정)에 대한 계시를 가지고 자라나는 데서 오는 ‘탁월한 즐거움 (기쁨)’을 지적한다. 이 탁월한 즐거움들은 ‘열등한 죄의 즐거움’과 대조를 이룬다. 하나님은 열등한 죄의 즐거움으로 부터 우리를 자유케 하시기 위해, 더 강력하면서도 탁월한 즐거움을 경험하게 하신다. F. 예수님의 리더십 아래 축하해야 하는 즐거움의 종류는 다양하다. 즐거움에는 육적, 감정적, 정신적 즐거움들이 있다. 이것들을 만드신 분은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은 우리를 만드실 때, 영적으로, 육적으로, 정신적으로 굶주리게, 또는 갈급하게 만드셨다. 우리 모두는 ‘행복’을 갈망하며, 즐거움을 깊이 갈망한다. 하나님이 우리를 그렇게 만드셨기 때문이다. 즐거움 자체가 죄악은 아니다. 불의한 데에서 즐거움을 찾는 것이 죄악인 것이다. G. 우리를 당신께로 가까이 인도하시기 위해 하나님은 주의 영광을 반영하는 ‘7 가지의 갈망하는 마음’을 우리 안에 창조하셨다. 세상의 모든 사람이 이 갈망들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이 갈망들을 통해 하나님이 우리의 영을 어떻게 만드셨는지에 대한 통찰력을 얻을 수 있다. 각각의 갈망은 하나님의 인격을 반영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기에, 이 길망들을 소유한다. 우리가 기쁨을 느끼는 것은 주님이 기쁨으로 가득찬 분이시기 때문이며, 우리가 행복을 느끼는 것은 주님이 행복을 느끼시기 때문이다. (“인간의 7 가지 갈망하는 마음” – 순전한 나드, 참조). ----[회복된 토브(=celebration, Blessing)누림] Q의 자녀/그리스도의 신부됨 :: (=열납하시는 Q의 **기쁨)---영광의 Q체험(**황홀)===>영광의 Q과 하나됨/영생누림 (**아름다움<성화>--수치심 없는<**친밀>)===>Q뜻 이룸 (**자원<헌신>---**위대함---**영향력) 1) 당신의 모든 영광의 모든 풍성과 충만함을 은혜로 조건없이 아낌없이 내어주시는(아가페 : 영적 축복들 : 부활주님의 어떠하심 : 능력-지혜-부-힘-영광-존귀, 평강-치유-회복-, 믿음-소망-사랑, 은사-열매-승리) 하나님께서 우리를 <당신의 소유된 아들/그리스도의 신부로서> 언제나 끝까지 추구하고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열납(사랑/기쁨-용납/자랑/달콤한 누림)하며 누리심 확증 갈망(Be Enjoyed by God) 주님이 질투하시기까지 소원하시는 바는 하나님의 형상(the image of God)대로 지음 받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사랑하며 추구하며 결코 포기않으신다는 사실을 믿는 것이다. 우리는 이를 위해서 창조되었으며 우리 내면의 이 깊은 요구를 피할 수 없다. 하나님은 이 분명한 목적을 위하여 우리의 때와 우리의 날들을 정하셨다(엡3:17~18, 요17:24). 2)(하나님 영광 보고 그분 영광의) 초월적인 아름다움/황홀함에 매료/매혹되고 이끌리며 영원토록 동일하시며 날마다 새로우신 그분의 거룩한 열정에 사로잡혀 날마다 새로운 친밀함의 교통 통해 그분을 새로이 체험적으로 알고<야다> 얻고 누림을 증대시키고자 하는 갈망(Fascination -하나님과, 하나님의 보내신 자 예수그리스도를 아는 것이 영생임-요17:3 <영생>에 대한 갈망, 사도바울의 YADA의 최상가치 고백-빌3:7-12) 황홀하신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황홀한 것을 찾도록 지으셨다. 모든 사람들의 심령은 놀라운 것을 갈망한다. 우리는 끊임없이 무엇인가 (영원하면서도 늘 새로운)초월적인 아름다움이라는 경이로운 것을 채워 보려고 갈망한다. 하나님은 우리를 지으실 때에 경이로운 감각기능을 지으셨다(사6:1~3). 3) (하나님이 계획하사 조성해가시는, 하나님께 합당한, 신부의 영광과 존귀) 매력적 아름다움 온전히 이룸에 대한 갈망(Beauty=안으로부터 시작하여 바깥까지 충만하여 배어남) 아름다워지기 원하는 이 갈망은 우리의 시간과 돈을 어떻게 써야 할 지 원칙을 세우는 데 거대한 영향력을 가진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름다워지는 데 돈을 쓰는 이유는 불안정하고 불행한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우리의 재를 대신한 그 분의 아름다움이 화관(Crown)이 된다고 성경은 말한다(사61:1~3). 4) (하나님과) 수치심 없는 친밀한 하나됨에 대한 갈망(Intimacy without Shame= JC께서 나의 의 되어주시기에, 허물투성이의 내모습 그대로 인정하여 주님 손에 주도권 맡겨드림으로 하나됨의 영적 여정 시작, 정화-조명-일치) 시간이 시작되기 전에, 하나님 아버지는 한가족 만들기를 소원하셨으며 깊고 오묘한 방법으로 미리 그 가족을 알고, 또한 하나님 자신이 그들에게 알려지기를 원하셨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인간의 마음속에 하나님과 다른 사람들과 친밀감을 갖고자 하는 소원을 넣어두신 이유이다(요17:21~23). 5) 궁극적 참된 분(신실하신 하나님), <내어주는>자아이신 그분의 사랑을 참되게 알고 또한 그렇게 반응함의, 일편단심/전심으로 사랑/헌신코자 하는 갈망(Be Wholehearted) 우리는 하나님을 전심으로 사랑하기를 갈망하며, 우리의 마음이나 삶을 부패케 하거나 타협하기를 원치 않는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를 전심으로 사랑하도록 갈망함을 주셨다. 우리가 그를 따르고 구할 때, 하나님은 전심전력하는 우리의 마음에 응답하고 우리를 사랑하며 하나님께서도 전심을 다해서 자기 자신을 우리에게 주신다. 6) (부르심의 목적 그대로, 하나님을 통해 함께 아가페의 섬김으로 명하신 사명과 소명 수행 통해 영혼 구원하는 )위대한 일 이루어냄에 대한 갈망(Greatness) 당신이 위대해 지도록 되어있기 때문에 위대하게 되기를 당신 스스로 소원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위대함에 대한 갈망을 회개할 필요는 없다. 우리는 단지 그것을 잘못된 심령으로 추구했던 것을 회개하면 된다. 우리는 위대함과 명예를 위해서 창조되었기 때문이다(고전2~9) 7)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영웅적-기념비적인, 영혼구원함으로써 하늘의 별처럼 찬란히 빛나는, 왕같은 제사장인 성숙한 그리스도의 신부로서)깊고 지속적인 유익한 영향력 끼치는 의미있는 존재됨에 대한 갈망(Make a Deep and Lasting Impact) 우리가 하나님이 보는 앞에서 의미 있는 사람이 되길 갈망하고 있다는 것을 성령님은 우리 안에서 증거하신다. 위대한 일들은 하나님을 온 마음을 다하여 사랑하는 사람들에 의해서 이루어진다(마이크 비클, 데보라 히버트, 인간의 7가지 갈망하는 마음, 순전한 나드, 2009, pp. 39, 65, 87, 113, 137, 169-70, 218 요약인용). H. 하나님이 우리를 기뻐하신다는 확증을 얻고 싶은 갈망, 매혹되고 싶은 갈망, 아름답게 되고 싶은 갈망, 위대하게 되고 싶은 갈망, 부끄럼없이 친밀감을 누리고 싶은 갈망, 마음을 다하고 열정적이고 싶은 갈망, 깊고도 영원한 영향력을 끼치고 싶은 갈망, 이것이 바로 인간의 7 가지 갈망이다. I. 이 갈망들은 하나님이 전략적으로 우리 안에 넣으신 갈망들이기 때문에, 절대 사라지지 않는다. 우리가 음식을 그렇게 좋아하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 안에 ‘굶주림’을 창조하셨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그분의 즐거움으로 우리를 만족시키시는 이유는, 우리안에 즐거움을 위한 ‘굶주림’을 창조하셨기 때문이다. 기쁨과 고통, 아픔의 요소를 포함하고 있는 이 갈망들 하나 하나 모두 우리를 하나님의 임재로 인도한다. 하지만, 원수도 이 갈망들을 사용해 우리를 흑암으로 인도하려 한다.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안에서 찾지 않으면, 이 갈망들은 우리에게 허무함과 고통, 슬픔, 그리고 불만족만을 안겨주게 된다. 하나님은 우리를 창조하실 때, 하나님만이 채우실 수 있는 “공간”을 우리 안에 만드셨다. J. 사단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즐거움의 모조품들로 우리를 하나님에게서 멀어지게 만든다. 죄는 ‘순간적’인 즐거움을 준다. 의무감으로 죄를 짓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죄를 짓는 이유는, 그것이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보다 더 우월한 즐거움을 선사할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유혹의 힘은, 하나님을 위해 사는 것보다 죄가 더 큰 만족을 줄 거라는 ‘거짓 약속’을 주기 때문에, ‘죄의 유혹’ 또는 ‘유혹의 욕심’이라 불린다. 22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엡 4:22) 13누구든지 죄의 유혹으로 강퍅케 됨을 면하라 (히 3:13) K. 우리가 경험할 수 있는 가장 큰 “즐거움”은 ‘영적’ 즐거움이다. 신랑 하나님이신 예수님을 만나게 될 때, 우리는 영적 즐거움의 ‘절정’을 경험할 수 있게 된다. 이것이 우리의 마음을 ‘취하게’ 만들며, ‘사랑앓이’를 하게 만든다. 하나님이 우리를 ‘거룩’의 삶으로 초청하시는 것은, 삶의 즐거움을 없애는 시험을 주시기 위해서가 아니다. 거룩함은 지루하고 따분한 고역이 아니라 완전하고 영원한 즐거움으로의 초대다. 11주의 앞에는 기쁨이 충만하고 주의 우편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 (시 16:11) L. 신부는 아가서를 통해 하나님 안에서 누리는 ‘탁월한 즐거움’이라는 주제를 전개한다. 3내가 그 그늘에 앉아서 심히 기뻐하였고 그 실과는 내 입에 달았구나 (아 2:3) M. 복음의 충만한 진리를 맛보기 전까지는 죄가 최고의 즐거움을 주는 것처럼 보인다. 성령님이 주시는 ‘탁월한 즐거움’은, 열등한 죄의 즐거움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하다. 주님이 재림하시는 세대에 첫계명을 최우선 순위로 회복시키고, 거룩한 백성들을 소유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주요 전략은,‘탁월한 복음의 즐거움’을 맛보게 하시는 것이다. N. 마지막 때 성도들은 주님의 위대함을 보며 예수님에 대한 노래를 부르게 될 것이며, ‘적그리스도’를 이기고 승리하게 될 것이다. 순교자들은 ‘사랑의 승자들’이다. 유혹과 핍박가운데서도 주님을 향한 뜨거운 사랑을 끝까지 지킨 자들이기 때문이다. 2또 내가 보니 … 짐승 (적그리스도)과 그의 우상과 그의 이름의 수를 이기고 벗어난 자들이 유리바다 가에 서서 …3노래를 불러 가로되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이시여 하시는 일이 크고 기이하시도다 (계 15:2-3) O. 하나님의 사랑을 진정 경험하게 될 때, 우리 안에 있는 주님의 사랑은 ‘유혹과 핍박의 물’에 꺼지거나 엄몰될 수 없다는 부분이 아가서 후반부에 나온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할 때, 그 사랑이 ‘죄책감’이나 ‘타협’이라는 ‘홍수’에 꺼지거나 엄몰되서는 않된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할 수 있는 능력이 ‘엄몰’되어, 능력을 상실한 채, 꺼진 심령으로 살아간다. 7이 사랑은 많은 물이 꺼치지 못하겠고 홍수라도 엄몰하지 못하나니 사람이 그 온 가산을 다 주고 사랑과 바꾸려 할찌라도 오히려 멸시를 받으리라 (아 8:7) P. 바울은 이 시대의 모든 특권을 능가하는 경험이 바로 예수님을 경험하는 것이라 말했다. 8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빌 3:8) Q. 하나님의 사랑하는 자 (연인)에게 주어지는 상급은 ‘사랑할 수 있는 능력’ 이다. 연인은 일꾼보다 같은 일을 갑절로 해내면서도 ‘더 사랑할 수 있는 능력’ 이외에는 그 어떠한 보상도 원치 않는다. 일꾼이 연인이 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나게 될까? 업무 목록표를 아예 던져 버리고 쳐다 보지도 않을 것이다! 연인은 스스로 자원하기 때문에 따로 목록표를 일일히 체크할 필요가 없다. 나는 주변에서 이렇게 가끔씩 일꾼이 연인으로 바뀌는 사람들을 보게 되는 데, 정말 영광스러운 일이다. R. 우리는 남은 인생동안 힘을 다하며 다음의 질문에 현명하게 답해야 한다, “하나님의 사랑은 나의 삶에 있어 다른 ‘축복들의 포도주’보다 얼마나 더 나은가?” III. 애정에 기초한 순종: 예수님 한분만으로 만족하며 순종하고자 하는 동기 A. “애정에 기초한 순종”은 예수님의 사랑 (애정)을 경험하면서 흘러나오는 순종이다. 우리를 향한 주님의 사랑을 이해하고, 받은 사랑으로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다. 이것은 가장 강력한 순종의 형태로 ‘가장 깊고도 지속적인 순종’의 결과를 낳는다. ‘사랑앓이’를 하는 사람은 사랑을 위해 그 어떠한 고난도 다 감수하게 되기 때문이다. B. “믿음의 순종,” 또는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지 못한 상태에서 드리는 순종도 필요하다. 하나님 말씀에 잘 나와 있기 때문이다. 다시말해,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다고 할 지라도 우리는 계속 하나님께 순종해야 한다. C. “두려움에 기초한 순종,” 또는 “수치심에 기초한 순종”은 부끄러움을 당할것 같은 두려움, 또는 부정적인 대가를 치를 것 같은 두려움에서 흘러나오는 순종이다. 이것도 성경적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대가를 치를 것 같은 두려움이 죄를 저항하는 동기가 되어서는 안된다. 다시말해, 순종을 위한 가장 효과적인 접근방법은 아니라는 뜻이다. D. ‘하나님을 경험하는 것’이 대가에 대한 두려움보다도 죄를 저항하는 데 더 효과적인 동기를 부여해준다. 이유는? 죄의 순간적인 즐거움을 누리고 싶은 유혹이 징계에 대한 두려움보다 더 강력하기 때문이다. 죄의 대가에 대한 두려움은 죄를 짓고 싶은 우리의 마음을 억누르지 못한다. 오히려, 이 두려움은 우리가 더 다양하고 은밀한 방법으로 죄를 짓게 만든다. 우리가 죄를 짓는 것은 그것이 주는 ‘쾌락’을 즐기기 때문이다. 우리의 심령이 굶주림에도 하나님으로 만족하지 못할 때 우리는 죄를 짓게 된다. ‘거룩한 삶’을 위한 우리의 씨름은 하나님으로 만족하며 살려는 상황 가운데 이루어져야 한다. E. 길거리에서 방황하는 고아에게 멋진 바다가 보이는 리조트 호텔에 머물면서 별미를 즐기고 깨끗한 침대에서 잘 수 있는 휴가 티켓 (쿠폰)을 준다고 상상해보자. 그런데 그 아이가 비와 추위를 피하며 움추리고 자는 판자상자 밑에다 그 티켓을 그냥 아무데나 내던져 놓았다고 가정해 보자. 리조트 호텔과 멋진 바다를 즐기기는 커녕, 그 소년은 계속해서 이곳 저곳 쓰레기통을 뒤적거리며 썩은 음식만 먹고 살게 될 것이다. F. 미국에서 유명한 크리스챤 작가였던 씨에스 루이스 (C. S. Lewis)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 앞에 영원한 기쁨이 주어졌음에도, 우리는 술과 섹스, 야망으로 어리석은 짓을 하는 냉담한 피조물이다. 우리는 이 무지한 아이와 같이 빈민가를 전전 긍긍하며 쓰레기 같은 삶을 살기를 원한다. 멋진 바닷가에서 보낼 수 있는 휴가를 받았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상상조차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G. 우리는 죄의 유혹을 받을 때 어리석은 선택을 한다. 사실은 그것이 ‘썩은 음식’인데도 우리를 만족시켜 줄 것 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주시는 즐거움은 우리앞에 놓인 ‘잔치상’으로, 죄의 헛된 즐거움을 찾는 우리를 건져낼 수 있는 ‘영적 즐거움’의 잔치상이다. 죄의 심령을 자유케 하는 방법은 하나님으로 인해 즐거워하는 것이다. 예수님을 만나는 경험은 죄가 주는 그 어떠한 즐거움도 초월하는 ‘탁월한’ 즐거움이다. H. 그 동안 사람들이 거룩한 삶을 소개할 때, 죄의 대가에 대한 끝도 없는 ‘위협들과 경고들’을 주는 부정적 방법으로 소개해 왔다. 하나님 말씀은 의도적으로 악한 반항 (대적)에 대한 대가를 보여준다. 성경은 ‘하지 말라’ 는 금지로 가득 차 있다. 하지만, 이러한 율법과 규칙들이 우리의 심령을 초자연적으로 변화시키기 위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I. 다수의 목회자들과 리더들은 사람들에게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될 것’들의 목록을 지키게 하기위해, 수치심과 두려움을 사용하는 접근방식을 택한다. 하지만 결국은 순간적인 죄의 즐거움에 대한 유혹이 장기간 치르게 될 대가에 대한 두려움보다 더 강력하게 되어있다. 물론 계속해서 죄의 대가들을 제시해야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모든 것이 해결될 수 없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특별한 무언가가 더 필요하다는 말이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에게 죄로 인한 사회적, 영적 대가를 경고해 준다고 해서 그들이 포르노와 탐욕, 거짓말과 간음등을 멈추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J. 애굽의 왕자였던 모세는 부와 권력을 갖추는 육적 즐거움을 경험했었지만, 결국 그것보다 더 ‘큰 부’를 택하게 된다. 애굽보다 더 즐겁고 아름다우며, 초자연적으로 끌리면서, 모든 것을 만족시켜 주는 특별한 것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모세와 같이 ‘거룩함의 즐거움’을 탐구하면서 우리는 예수님처럼 영혼을 만족 시켜주는 분이 없다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24믿음으로 모세는 …25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26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을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부)로 여겼으니 이는 상주심을 바라봄이라 (히 11:24-26) 18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 (롬 8:18)17우리의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고후 4:17) Iv. 하나님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 같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 A. 최후의 만찬에서, 예수님은 자신을 향한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 (애정)만큼 주의 백성을 사랑하신다는 것을 3 번이나 강조하셨다 (요 14-17 장). 이 진리 하나만으로, 우리 모두에게는 우리 자신을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을 받는자 (총애 받는 자)”로 바라볼 수 있는 권리가 주어진다. 9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 (요 15:9) 23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심 같이 저희도 사랑하신 것을 세상으로 알게 하려 함이로소이다 (요 17:23) 26이는 (아버지가) 나를 사랑하신 사랑이 저희 안에 있고 나도 저희 안에 있게 하려 함이니이다 (요 17:26) B. 우리의 소중함과 가치를 말해주는 궁극적 선언은 바로, 예수님을 향한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 (애정)만큼 예수님도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것이다. C. ‘하나님 아버지가 예수님을 사랑하시는 정도’만이 예수님이 우리를 어떻게 보고 느끼시는 지를 가늠할 수 있는 정확한 ‘척도’가 된다. ‘하나님의 사랑’은 깊은 갈망과 즐거움, 기쁨과 열망을 담은 강력한 실재다. 하나님의 사랑은 열정이 메마르고 차가운 종교적 개념이 절대 아니다. 하나님 아버지가 예수님을 사랑하는 정도가 함축하고 있는 방대한 의미를 잠시 숙고해보자. 이러한 진리가 언급된 적은 없었다. D. 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바다와 같은 사랑의 신비를 보라! 복음이란 방대한 바다와 같은 거룩한 사랑 안에 사는 삶으로의 초대다. 하나님이 하나님을 사랑하시는 만큼 우리가 그 사랑을 받게 될 때, 하나님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만큼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즐거움을 알게 될 것이다. 17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아그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 (엡 3:17-19) E. 예수님의 제자들은 진실한 마음을 지니기는 했지만, 아직 영적으로 미숙한 자들이었다. 예수님은 그 날밤, 제자들이 자신을 배반할 거라는 사실을 미리 아셨음에도, 그 연약한 자들 (제자들)에게 사랑을 확증시켜 주는 말씀을 하셨다 (마 26:31). 제자들은 엄청난 죄책감과 수치심을 겪게 될 참이었다. 그 날밤, 예수님을 배반할 제자들, 미숙하고 어릴뿐만 아니라, 야망이 가득찬 제자들을 보시면서도, 그들을 향한 하나님의 열정은 전혀 식지 않았다. 그 상황가운데서도 그들에게 평안을 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예수님이 그들을 어떻게 바라보고 느끼시는 지를 알려 주는 것이어야 한다는 것을 예수님은 잘 알고 계셨다. 인간을 감동시키는 계시들 중 가장 강력한 계시가 바로 이 계시이다. F. 예수님은 제자들을 향한 당신의 사랑에 대한 계시를 주셔서, 죄책감과 실망, 유혹과 핍박, 그리고 장래의 사역에서 받게 될 압력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게 그들을 준비시키셨다. G. 바리새인들과 로마인들이 침례 (세례)요한과 예수님을 죽이면서 승리한 것처럼 보였을 때, 제자들은 실망감으로 억장이 무너질 거라는 것을 예수님은 미리 알고 계셨다. ‘예수와 그 제자들의 복음 운동’은 마치 끝난 것처럼 보였다. 가까운 장래에 그들은 고문받고 투옥될 상황이었다. 이런 가운데서도 과연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하실 수 있을까? H. ‘유혹과의 싸움’에서 승리하는 최선의 방법은 하나님을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다. 죄를 이길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주님의 사랑이 포도주보다 낫다’는 것을 경험하는 것, 즉, 하나님 한 분만으로 만족하는 것이다. 이것을 경험하기 위해서, 아가서를 경건의 기도로 바꾸어야 한다. I. 우리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마음’을 나타내는 진리의 말씀들의 묵상을 삶의 우선순위로 삼아야한다. ‘마음의 건강’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특별히 연약함이 드러나는 가운데 하나님이 우리를 어떻게 바라보고 느끼시는 지를 바로 알게 될 때, 우리는 가장 큰 변화를 경험하게 된다. 이 계시는 우리가 하나님에게서 달아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달려가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이 계시는 주님의 사랑안에 확신을 갖게 해주며, 연약함 가운데서도 주님께 우리의 심령을 열게 해 준다. 사실, 수많은 진실한 신자들이 죄책감과 굳게 닫힌 마음으로 하나님을 찾고 있다. J. 내가 저술한 책중에 ‘예수님을 향한 열정’이란 책이 있는데, 사람들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많이 받는다. “어떻게 하면, 예수님을 향한 열정을 더 갖을 수 있을까요?” 우리가 먼저 알아야 할 것이 있다. 하나님을 사랑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 마음에 임해야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능력을 주사 우리가 주님을 사랑하게 되기를 바라시는 주님은 우리를 사랑하시는 분으로 먼저 자신을 드러내신다. 우리가 주님을 사랑하는 (즐거워하고, 좇는) 것은 주님이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다는 (즐기시고, 좇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19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 (우리를 사랑하신 그 사랑을 우리가 깨달아 아는 정도에 비례하여 우리를 열어드려 그분을 사랑하게 된다) (요일 4:19) @@@ 그리스도 예수를 믿고(영접) 연모함으로 사랑하는 우리 한사람 한사람에 대해 특별한<내 사랑, 내 어여쁜 자-그 무엇보다 소중하며 보배롭고 존귀한 , 벅찬, 끝없는 기쁨과 즐거움의 신부>라 말씀하시며 연모하시는, 사랑앓이의 충만한 사랑의 감정으로 불타오르는 하나님이 품으신 사랑은 그 이름-영광-마음과 뜻, 목숨, 곧 전 존재를 다 기울여 부으시는 결코 포기함-다함 없는 거룩하고 열정적이며 간절한 사랑이요, 우리의 마음을 얻기 위해 성육신하신 아들 안에 함께 오사 목숨까지 내어주는 십자가죽음의 크나큰 대가 치뤄 얻어낸 희생적사랑, 열렬한 연인의 질투(시기)하시기까지 사모하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중심에서 우러난 친밀한 생명-빛-불의 사랑(하나됨의 애정 -죽음보다 강하고 그 어떤 것도 끌 수도 막을 수도 없는)이요, 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하신 정도와 동일한, 아낌없이 무한히 자신을 부어주시는 사랑이요, 믿는 이들이 아들안에서 아들의 장성하신 분량에 이르기까지 성장성숙하여 생명열매 맺는 자들 되도록 미리 예정하시고 이를 위해 배워야 할 공과들을 가르치기 위해 허락하신 삶속의 모든 역경과 시험 중에 함께 하시는(인도하며 이끌며 동행하는)이요 사랑겹고도 친밀한 그리스도 체험을 통해 반드시 돌파해야 할 사랑과 생명 성숙의 매 단계<십자가 구속/거듭남-->그리스도께 매혹/그 품안의 영원한 생명공급과 안아주심, 안식 경험-->부활생명능력을 신뢰함으로써 자기중심의 사탄적 자아로부터 벗어나 영안에서 주와 연합한 한 영됨의 자아파쇄의 십자가 체험-->자아의 잔재를 온전히 처리함 위한 십자가에(하나님의 벗기심과 소모시키심과 헐어내심) 자원함으로 주와 함께 더 깊이 머물러 체득하는 온전한 부활의 경험에서 더 나아가 주께서 이끄시는대로 승천(삼층천, 변화산의 영광스러운 그리스도의 영광 체험)안의 하나된 신부됨 자각-->주님 이끄시는대로 고독 속에서 단절/거절/외면-치욕-혼돈-버려짐의 겟세마네와 골고다까지 주님과 하나됨(감각과 영의 어둔밤 경험, 곧 내적 성소의 휘장을 돌파--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몸에 새김-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자, 복되어라-)을 통해 온전한 일치의 한영됨 이루어 사는 삶, 이는 곧 지성소에 머무는 내적지성소의 사람으로 살아감-화평케 하는 자는 하나님의 아들, 복되어라-을 동시에 살아갈 때 가능>를 자원함으로써 받아들이고 돌파할 때마다 전심으로 한없이 기뻐하며 격려하고 안위하며 기대하시는 사랑이요, 그분의 사랑의 차원을 참되게 경험하여 깨달아 앎을 통해 그분의 사랑-어여쁨 그자체인 신부됨을 자각한 우리가 기쁨과 즐거움으로 사랑이신 그분께 참되게 반응하여 사랑-신뢰-순종-열정으로 추구-헌신함, 그분의 뜻에 자원함(동의하고 순종함)으로 참마음과 진실한 믿음으로 그분과 <한 영됨의 연합>을 삶속에서 실행하고, 주님의 사랑앓이와 동일한 정도에 이르기까지-이세상에서는 결코 거기에 도달할 수는 없을지라도-알기 원하고 추구하는 사랑을 통해 그분의 순결한 신부로 우리자신을 드려 그 사랑에 헌신함으로써 함께 그분의 뜻과 계획, 경륜을 이루는데 참여하고(같이 일해 나감 통해 그분에 대해 더욱 더 알고 사랑하며 섬겨 자신을 내어드릴 수 있다) 그분을 사랑하는 애정과 교통에 기초하여 성령을 따라 그분을 살아냄으로써 맡기신 사명을 함께 수행하기를 원하시며(주님의 포도원을 맡기신 주님은 포도원 지기된 우리로부터 은 천개를 마땅히 받으시며, 팀 사역에서 실과지기로 참여한 동역자 또한 포도원지기된 우리로부터 200개를 받는다), 마침내 상호 거처(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상호 기업-상호 누림 이룸을 바라고 계심에 주목하라. 우리가 하나님 안에서만 비로소 안식을 발견하듯, 하나님도 우리를 온전히 얻으시기까지 안식하실 수 없으시다. 주님을 향한 믿는 이들의 사랑<거듭난 자신을 죽기까지 전제로 부어 드리는 순교자적 사랑>, 그리고 주님이 누구신지를 알고 그분을 연모함의 순결하고 참된 애정에 기초한 자원하는 심령에서 우러난 순종보다 더 예수님을 기쁘고 즐겁게 하는 일은 없다. 그 사랑의 성숙함의 정도가 지금 어떠하든지에 상관 없이 그분을 향한 우리의 중심에서 우러나오는 진실하고 한결같은 사랑에 주님은 깊이 감동 받고 매료되신다. 주님은 우리의 사랑에 주님 자신이 스스로 매이도록 허락하셨다.. 거듭난 우리 각자의 새 생명이시며 신성과 참 인성의 성품을 가진 가장 강한 인격이신 내주하시는 그리스도께 그분만 얻기를 바라는 깊은 열망과 그분을 깊이 신뢰하는 가운데 그분이 모든 것을 주도하시도록 자신을 내려놓고, 자기를 열어 내어드림으로써, 머리되신 그분을 알고 깊은 애정으로 사랑함 안에서 완전히 순복함 통해 <나는 온전히 죽고 곧, 나의 자아와 개성-성품을 내어버리고 자신을 바라보지 않고 주만 바라보며> 조에 생명(Zoe life)이며 인격이신 그분 자체를 나의 인격으로 영접, 곧 그분의 신성-인성의 성품, 그분의 갈망-목적-의지-감정-뜻과 생각을 내것으로 삼아 하나되어 사는 것이(주님 자신과 주님의 모든 것을 내 모든 것으로 원하여 취하며 그 가운데 살아감, 이것이 참된 사랑이며 그분을 누리는 것임) 그분의 갈망과 의도, 부르심에 자발적으로(자원-동의) 순종하여 그분의 인도따라 어디든지 기쁨과 즐거움의 깊은 애정으로 함께<자아파쇄-변화산-겟세마네-그분의 포도원까지> 십자가를 통한 동반자로 살아가는 것이<참 나이신 예수 그리스도, 나를 사랑하사 위해 자기 몸 버리신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참 나로서 주도적으로 사시는 것> 그리스도의 신부로서의 가장 성숙한 사랑의 삶이며 이를 통해서만 그리스도의 단체적 신부인 몸이 온전히 건축되게 된다. 그 때 신부된 자에게서 일어나는 내적변화는 <바로의 준마-세상의 것을 추구하여 끌어 오는 자기신뢰의 천연적 사람>에서 <비둘기의 눈-오로지 주님의 관점에서 바라봄> <샤론의 수선화, 골짜기와 가시나무 가운데 있는 백합화-성육신하신 겸손 그자체이신 예수님처럼, 자기 신뢰함을 내려 놓고 생명 충만함 가운데 주님의 긍휼만 바라며 주님 신뢰함으로만 살아감-심령의 가난함, 애통함,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의 순결한 영> <비둘기-십자가와 부활안에서 온유한 영으로 삶 : 성령님처럼 오로지 주님만 위함> <연기기둥-소멸하는 불인 주님에 의해 연단받아 거듭난 자신의 자유의지를 온전히 주께 드려 굴복되고 주님의 성품으로 조성되어 주님과 언제 어디든지 동행하는, 그리스도의 몸 건축하는 탄력성 있는 기둥> <침상-밤 동안 주님의 안식처 됨> <연-낮 동안 주님 경륜과 계획 따라 주님을 운반하고 공급하는 그릇된 가마>을 거쳐 그리스도의 <면류관- 혼인날의 영광스런 주님의 신부>이 될 것이요. 여기에서 더 나아가 몰약(십자가)의 산과 유향(부활)의 언덕에 주님의 인도하시는 때까지 자원함으로 머무르며 개성과 의지를 온전히 처리함 받음- 미련을 가지고 자신을 돌아보지 않음-통해 주님에 의해 이끌려 그 영은 아마나(진리로 사는자)-스닐(부드러운 갑옷 : 승리자 상징)-헤르몬(파멸시킨 자)에, 곧 사자와 표범인 대적들의 산을 내려다 보며 멸하는 승천의 산 정상(레바논-변화산-삼층천)에 이르러 앉아있게 되고, 이 때 주님의 이끄심에 순종하여 삶의 골짜기로 내려와 주님과 함께 파송받은 자로서 그리스도의 몸의 건축을 위한 남은 고난에 동참하기 위해, 주님의 누림 위한 개인 소유인<봉한 샘-덮은 우물이 있는 잠근 동산>, 다른 이들을 공급하기 위해 산출한 <임마누엘-생명주는 영>이신 그리스도의 어떠하심, 곧 주님의 생명수를 공급하는 <동산의 샘, 생수의 우물, 하나님의 보좌인 레바논으로부터 흐르는 시내>가 되며 동시에 하늘에 속한 하나님의, 띵에 있는 처소이며 마귀에 대해 싸우는 군대인 <새예루살렘>으로, 금(거룩함)-은(구속)-보석(열기와 압력을 견뎌낸 온전한 그리스도의 영광)들로 이루어진 단체적 그리스도로 건축될 것이요. 더 나아가 이윽고 온 우주에 대해 새벽 빛-달-해인 주님의 영광을 그대로 반영하여 나타내는, 긍정적의미에서 승리의 춤을 추는 마하나임의 두 군대로 나타나고 범사에 주와 온전한 하나됨으로 사역하며, 이윽고 몸의 구속을 이땅에서 이루며 재림주님을 만나게 될 것임, "주여, 나에게 긍휼을 베푸사 내 마음 만져주시고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 불타오르는 열정의 참 사랑으로 당신을 연모하며 사랑하게 하소서, 나는 당신외에 어떤 것도, 어떤 사람도 필요치 않습니다. 다만 당신 자신의 영광을 내게 보이사 나로 주님을 알고 사랑하게 하여주소서. 그 임재 가운데 내가 따르도록 나를 인도하소서. 오 주여 내가 당신의 사랑에 의해 강권함받도록 당신의 사랑을 열어 보여주소서. 나는 당신을 위해 스스로 어떤 것을 하기 원치 않습니다. 오직 당신 이끄심 따라 당신을 참으로 사랑하기만을 원합니다. 나는 조에 생명의 인격이신 당신의 성품이 나의 성품이 되기 원하고, 당신의 의지가 나의 의지 되기 원하고, 당신의 갈망이 나의 갈망 되기 원합니다. 나는 당신의 모든 것을 나의 모든 것으로 원합니다. 내게 충만하사 <참 나>로 사소서. 달콤하신 매력 자체이신 주님을 얻고 주안에서 완전히 만족하기까지 주님을 추구하며 따름의 첫 단계에서부터 시작하여(1:2-2:7), 참된 의미에서 자아죽음의 십자가를 거쳐서(2:8-3:5), 부활과 승천 가운데 있는 새창조의 삶 경험을 통해 이미 대적에게 승리했음을 확인하고(3:6-5:1), 마침내 주님과 함께 더 깊은 십자가 체험인 휘장안의 지성소의 삶을 하나님과 함께 살기 원합니다(5:2-6:13). 이를 통해 영적으로 온전히 구비시키신 주님과 함께 늘 그 음성 들으면서 한 영으로 주님을 살며 사역하며 지역교회의 부흥과 주님나라 위해 그리스도의 몸을 온전히 예비케 하며 주님재림을 대망케 하소서.". @주님과 한 영 되어 동역하는 신부의 구비됨에 대한 주님의 최종 평가 땅을 걷되 세속에서 성별된 전도자의 복음의 신발 신은 아름다운 발걸음, 주님의 철저한 훈련과정 통해 생긴 굳건한 지탱력과 강건함, 활동력 충만케 된 구슬꿰미 같은 넓적다리, 영으로 말씀 먹음으로써 영생의 생명수가 넘쳐나는 둥근 잔 같은 배꼽, 순결한 믿음으로만 사는 (백합화)의 추수할 많은 생명의 밀단을 두른 허리, 암사슴의 쌍태 새끼 같은 가슴(그리스도의 믿음과 사랑의 균형잡힘, 그안에 깊이 뿌리 내리고 그리스도의 신장의 충만에 도달한, 숫종려나무 그늘 밑에서만 결실하는 암종려나무와 그의 풍성한 열매, 이는 곧 영적으로 낳은 자녀들을 공급하기에 충분한 생명 충만한 포도송이와 같음), 그리스도께만 순종하는 의지인 죽음거쳐 산출된 부활생명능력의 상아 망대 같은 목, 온 우주를 꿰뚫어 통찰하시는 하나님의 눈처럼 넓은 시야와 흔들림 없는 통찰력을 가지고 그리스도의 몸의 교통을 실행하는 투명하여 빛나는 연못 같은 눈, 승천의 영 가운데서 주님께 합당치 못한 것을 가려내는 영적분별력 가진 레바논 망대 같은 코(성령의 생기를 호흡하는 콧김), 임마누엘 주님의 형언할 수 없는 기쁨과 즐거움의 친밀감을 가져다 주는 좋은 포도주 같은 입, 주님의 머리되심, 왕의 직분과 권위를 인정하며 주님께 온전히 처리되어 묶이고 굴복된 나실인의 삼단같이 드리운 자주색 같은 머리털, MKJV http://www.thewordnotes.com/mkjv/mkjv.htm 그리스도를 추구함으로 그분을 얻음 •빌 3:12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Phil. 3:12 Not as though I had already attained, either were already perfect: but I follow after, if that I may apprehend(붙잡음-체포함-소유함) that for which also I am apprehended of Christ Jesus. [각주] ◆ 아직 온전히 이룬 것이 아니라 여전히 추구함 3장 12절에서 온전히 이룬다는 뜻은 또한 완전하게 되며 생명 안에 성장함을 의미합니다. 여기에서 바울의 의미는, 그는 아직도 그리스도 안에서 자라고 있기 때문에 자신을 성숙한 사람으로 여기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생명이 많이 자라고 그리스도의 체험이 그렇게 많은 바울도 이미 온전하게 되었다고 하거나 이미 얻었다고 하지 않았는데, 우리 자신은 얼마나 더 그러한 태도를 가져야 하겠습니까! 또한 ‘잡힌바 된’으로 번역된 헬라어는 또한 ‘얻음’, ‘붙잡음’, ‘소유를 얻음’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바울은 그리스도 예수님에 의해 얻어진바 된 그것을(그리스도와의 친밀함, 그분의 인격 자체, 그분의 부활로부터 넘쳐나오는 능력, 그리스도의 죽으심에 이르기까지 내적 변화를 가져오는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함, 그로 인해 몸에 있는 동안에라도 영적 도덕적 부활 얻음이 그 내용인 그것을, 그리스도의 온전함에 이르기까지 바울자신이 그리스도를 체험하여) 얻기를 열망했습니다. 바울은 개심했을 때 그리스도 예수님에 의해 얻어진바 되었습니다. 그리스도는 바울로 하여금 그분을 얻게 하려는 의도로 바울을 얻으셨습니다. 신약의 계시에 따르면 어떤 사람이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느냐는 그가 하나님(생명이신 그리스도)을 얼마나 추구하여 얻었느냐에(그리스도를 자신의 생명-본성-심지어 자신의 인격으로 얻음인, 영적생명의 성장성숙 열매맺음의 정도) 근거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우리의 생명과 인격으로 갖는 것은 우리가 그리스도로 조성되는 것을 의미하며, 그리스도로 조성된 결과, 우리는 그리스도-사람, 그리스도인이 됩니다. 그럴 때 우리는 그리스도를 삶으로, 그리스도를 확대함으로, 그리스도를 높임으로 그리스도를 표현하게 됩니다. 우리가 함께 모일 때, 우리가 무엇을 하든―우리가 노래하든, 기도하든, 말하든, 예언하든―그리스도의 표현일 것입니다. 당신은 여러분이 그리스도에 의해 얻어진 바 되었음을 깨달은 적이 있습니까? 당신이 개심할 때 그리스도는 당신을 잡으셨고, 붙잡으셨고, 붙드셨습니다. 당신이 그리스도께로 돌이켰을 때 그분은 당신을 완전히 소유하셨습니다. 이제 당신은 그분의 손에서 도망갈 수 없습니다. 주님은 그분의 손으로 온 땅을 붙잡고 계십니다. 어떻게 당신이 그분에게서 도망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까? 주님은 오래 인내하시는 분이므로 쉽게 마음 상하거나 화내시지 않습니다. 때때로 그리스도인들은 주 예수님을 잘못 대표하여, 다른 사람들에게, 만일 그들이 어떤 것을 옳지 않게 행하면 주님이 즉시 화를 내신다는 인상을 줍니다. 그러나 주님은 당신에 대해 화내시지 않고 아주 오랫동안 짊어지십니다. 그분은 그분에게서 도망가려고 하는 당신의 시도에 괴로워하시지 않습니다. 그분은 그분이 일단 당신을 얻으면 당신이 도망갈 수 없다는 것을 알고 계십니다. 처음에 우리가 주 예수님의 이름을 불러 구원받았을 때 우리는 주님께 ‘낚였습니다.’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것은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그분을 부를 때 그분께 얻어진 바 되기 때문입니다. 일단 주님이 우리를 얻으시면 우리는 그분에게서 도망갈 수 없습니다. 어떤 이들은 수년 동안 주님을 떠나려고 노력했으나 결국 돌아와야 했던 것을 간증합니다. 주님은 우리로 그분을 소유하게 하기 위하여 우리를 소유하셨습니다. 이것이 우리를 붙잡으신 그분의 목적입니다. 그리스도는 우리가 참으로 그분을 얻기를 원하십니다. 주님의 구원의 목적은 우리로 그분을 온전히 소유하게 하기 위하여 우리를 붙잡는 것입니다. 바울은 빌립보인들에게 글을 쓰고 있었을 때조차도 자신이 그리스도를 온전히 얻었다고 여기지 않고, 아직도 그리스도를 얻기 위하여 그분을 추구하고 있었습니다. 빌립보서 3장에서 바울은 ‘얻다’, ‘획득하다’, ‘붙잡다’를 말하는 세 개의 헬라어를 사용합니다. 얻는 것이나 획득하는 것이나 붙잡는 것은 의미가 매우 가깝습니다. 이 표현들 중 가장 강한 것은 ‘붙잡다’입니다. 그리스도는 우리로 하여금 그분을 붙잡게 하려고 우리를 붙잡으셨습니다. 그분은 우리로 하여금 그분을 얻게 하려고 우리를 얻으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의 생활은 그리스도를 얻는 생활입니다. 당신은 그리스도를 얼마나 많이 얻었습니까? 우리는 그리스도를 얻음으로 생명이 자랍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얻은 정도가 그리스도와 함께 자란 정도입니다. 우리는 모두 생명 안에 자라기 위해 그리스도를 얻을 필요가 있습니다. 영적 성장은 우리가 그리스도를 얼마나 많이 얻었는가에 따라 측정됩니다. 또 하나, 어쩌면 윤리도덕적으로 흠 없이 보이는 믿는이의 삶에 나타나는 전형으로서 표현될 수 있는 욥에 대한 두 단계에 걸친 사단의 공격은 하나님이 욥에게 그분의 영광스러운 변화를 성취하시도록, 그리고 욥이 비밀한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비밀한 거래를 체험하도록 비밀하고도 영광스러운 토대, 기초를 놓았습니다. 비밀하고도 영광스러운 완결은 사도 바울의 저서들을 통해 신약에 계시된 대로, 우리를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에 대한 그분의 영원한 경륜의 표준과 수준에 이르게 하는 것입니다(고후 3:18, 엡 3:9). 하나님은 그분의 어떠하심에서뿐 아니라 그분의 목적, 갈망에서도 비밀하십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에게는 신약, 특히 신성한 계시를 완성한 사도 바울의 서신들이 있습니다(골 1:25). 만일 우리가 하나님의 어떠하심과 목적과 갈망에 관해 아무것도 없고 알고 있지도 않다는 것을 인정하면서 하나님 앞에 자신을 낮추고, 자신을 비우며, 우리 영 안에서 가난하여 영과 생명을 주시도록 기도하는 가운데 말씀읽기로 바울 서신들을 대한다면, 우리는 신성한 계시에 관하여 무엇인가를 분명하고, 명백하며, 완전하고, 인상적인 방식으로 보게 될 것입니다. 특히 우리는 하나님께서 그분의 영원한 경륜 안에서 그분 자신을 분배하시는 것에 관하여 뭔가를 보게 될 것입니다. 고대의 책인 욥기는 비밀하며, 우리는 바울 서신의 빛 가운데서 그것을 연구해야 합니다. 욥기의 결론은 하나님이 그분의 백성을 다루시는 목적에 관한 분명한 관점을 주고 있지 않으므로, 바울 서신이 없이는 욥기를 이해하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욥의 경우에서 보듯, 순전-정직-하나님 경외함 가운데 악에서 떠나고 하나님으로부터 세상적인 축복 받고 물질적 윤리적 자기 성취(자산)를 이루는 것이 하나님이 그 택하여 불러내신 사랑하는 자에게 원하시는 모든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더 나아가 당신의 소유된 모든 이들이 새로운 경륜의 영역, 곧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에 대한 그분의 영원한 경륜의 표준과 수준에 이르게 하려 하십니다(고후 3:18, 엡 3:9). 즉 세상적 성취(자기 성취) 거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심지어는 하나님께 받은 모든 축복과 물질적 윤리적 자기 성취(자산)를 벗겨냄-소모시킴-헐어내심의 고난을 통해 오직 하나님이 어떠한 분인지(Big and Great God)와 피조물인 자신의 어떠한 존재인지를(Nothing) 철저히 알고 사랑과 신뢰의 순종안에서 하나님만 추구하여 얻음으로써 그분으로 충만해지기를 원하십니다. 신약의 관점에서는 바울의 경우에서 보듯, 하나님께서 그분의 거룩한 백성을 고난을 통해 다루시는 목적이 분명한데, 그것은 그분은 거룩한 백성이 모든 것을 비우고 그들의 유일무이한 소득으로서 오직 하나님만 받아들이기를 갈망하신다는 것입니다. 그 까닭은 하나님 보시기에 그것이야말로 믿는이에게 있어서 지고지선의 진복이기 때문입니다. 참으로 하나님의 마음의 갈망은 우리가 그분을 생명과 생명 공급과 우리 존재의 모든 것으로 충만하게 얻는 입니다. 더나아가, 오늘날 우리가 얻은바 된 그리스도에 대한 우리의 누림에 대해서도 영원한 한가지 원칙이 있습니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누림을 위한 우리의 분깃으로 우리에게 주어지셨으나 이러한 누림을 소유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충족시켜야할 조건이 있습니다. 이 조건은 우리 안에 있는 하나님과 그리스도 이외의 모든 것을 쫓아내라는 하나님의 정하심과 협력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우리 안의 모든 우상들을 멸해야 함을 의미합니다. 우상이란 우리를 차지하고 있는 하나님 이외의 어떤 것입니다. 학위, 좋은 직업, 근사한 집, 지위, 혹은 계급, 좋은 이름들 이러한 모든 것들이 우리를 차지할 수 있는 우상들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 안에 있을 수 있는 어떠한 우상이라도 반드시 멸해야 하며 우리 안에 우상을 경배할 어떤 근거도 남기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 안의 우상을 처리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참된 그리스도의 누림을 가질 수 없습니다. 어떤이들은 그리스도의 누림에 대하여 말할 지도 모르지만 이것은 그들에게 일종의 표어일 뿐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에 대한 실제적인 누림을 가질 수 있는가 없는가 하는 것은 내적인 존재의 깨끗함이 어느 정도인가에 달려 있습니다. 오늘날 좋은 땅이신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 있지만, 이 좋은 땅에 대한 누림은 우리를 차지하는 하나님 이외의 어떤 것이라도 절대적으로 깨끗케 할 것을 요구합니다. 하나님 이외의 어떤 것을 경배할 약간의 여지라도 주는 것은 그리스도에 대한 우리의 누림을 소멸할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모든 종류의 우상을 깨끗케 함으로 말미암아 좋은 땅이신 그리스도를 누릴 수 있기 바랍니다. **신부의 영성5 http://blog.daum.net/elielyyh/479 **신부의 영성과 패러다임 http://blog.daum.net/elielyyh/479 @@@예수님을 향한 열정(요17장) ##31Q : 아가페 사랑의 , 자기의 모든 것 내어주는 자아로서, 아버지-아들-성령은 모든 것 위임-헌신-순종을 질서가운데 조화롭게 행시며 서로서로 31Q의 온전함과 진복의 충만함 이루는 필요충분조건 되심.. 이 복됨 안에 하나님은 새로 창조하신 한 새사람을 초대하사 JC의 영광 가진 담지자된 사람이 자기와 함께 하나되어 살며 완전한 연합과 일치, 생명과 지혜의 성숙함 통해 하나님을 삶으로 나타내며 대표하게 하시려 함.. 이것이 교회임. === 영광(Glory..엘올람..영생하시는 하나님의 본질(사랑-생명-빛)의 표현인 형언 못할 아름다운 광채..교회는 JC의 영광 직접 보도록 허락되어 있음), 존귀(Honor..엘엘룐, 만유의 주재되심-만왕의 왕, 만주의 주 :모든 권위의 근원자), 능력(Power..엘로힘..창조주하나님으로서의 통치하는 권세) ##부활하신 JC ---내주하시는 성령님은 생명주는 영으로서 변형되신 JC임 === 능력-지혜(Wisdom..만물 창조하시고 경영하시는 하나님의 지혜)-부(Riches..모든 필요 공급의 원천으로서의 다함 없는 풍성과 부요)-힘(Strength..여호와 사바오트..만군의 주하나님, 승리의 용사/엘 깁보르)-존귀-영광-찬송 ##교회 ---점-흠-티-주름 없는 영광스런 JC의 신부 ===: 아버지가 아들을 사랑하신 그 사랑으로(거룩한 열정, 친밀한 애정의 아가페), 신랑JC를 사랑하도록 아버지께서 예비하셨음. 1.하나님이 창조하신 사람에 대한 아버지의 아가페사랑 실천 계획에 아드님이 전적으로 동의하고 자원하여 순종함, 곧 아버지로부터 보냄받은 아들이 성육신하여 사랑의 섬김과 십자가죽으심의 대속적 사랑 실천함 통해 아버지의 이름의 영광과 그 아가페 사랑을 온전히 나타내셨음을 깨닫고 그것을 믿고 그 안에 거함 통해서 2.또한 부활승천하신 JC께서 임마누엘성령으로 오셔서 내주하시면서 당신의 가지신 Q영광의 모든 풍성과 충만을 교회에게 아낌없이 부어주심 깨닫고 그것을 믿고 그 안에 거함으로 진복누림 통해서 (성도는 예수님의 영광-권세를 받은 왕같은 제사장 됨) ===>(이미 하나님은 자신을 교회의 소유로 내어 주사 자신의 가슴과 두 팔에 보증하여 인치셨음) 그 아버지의 이름<인격>을 교회가 체득하여 알게 되고, ===>교회는 또한 주님의 소유로 자신 드리기를 자원함으로써 자신의 가슴과 두 팔에 주님의 소유됨을 인침받아 (거룩한 열정, 친밀한 애정의) 그 아가페사랑으로 참되게 JC를 사랑하게 되며, 그 때 JC는 아버지와 함께 교회안에 거하여 하나되심 10 *내게는 (삶의)뚜렷한 목적이 있습니다. 나는 그리스도 예수를, 점점더 깊이 가깝고도 친밀하게 알게 되고 , 또한 그분의 인격의 신비를 더 강하게 더 분명히 감지하고 인식하고 이해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같은 방식으로 믿는 이에게 -성화시키시는 능력으로-역사하는, 그분의 부활로부터 넘쳐나오는 능력-부활생명능력-을 알게 되며, 영안에서 우리가 끊임없이 그분의 성품안으로 변환되어 가는 것처럼, 그분의 고난에서부터 소망안의 그 죽으심에 이르기까지 동참하기를 원합니다. 또한 가능하다면 지금 생명없는 세상 사는 동안에라도 죽은자들의 부활 경험처럼 온전한 영적 도덕적 부활의 삶에 이르게 되기를 원합니다. 11*그러나 지금은 이 바라는 바를 내가 얻었다거나, 이미 내가 (영적 성숙함에 있어서) 완전해졌다는 것이 아닙니다. 12* 다만 나는 구주예수께서 나를 붙드사 자기의 소유 삼으신 것처럼 주님을 붙잡고 나의 소유로 삼고자 애쓰고 있습니다.(빌 3:10-12) **7*전에 내게 유익하던 모든 것들(학력, 지위, 출신배경 등 자기자산) 잃어버림의 손실을 기꺼이 감내할 뿐 아니라 8*오히려 그것들을 (주를 앎에 방해되는 --하나님 이름은 인격, 곧 그분이 누구며 어떠한 분이신지, 그가 과거에 무엇을 하셨고 지금 하고 계시며 미래에 하실 것인지를 통틀어 말함..) 해로운 쓰레기로 여겨 내어버림은 (그리스도의 부활능력-그리스도의 고난 통해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완전히 빼어닮음의 체득에 대해 배우고 또한 참여함으로써 실제로 체득하는, 또한 그 결과 삶속에서조차 죽음으로부터의 부활 경험 체득케 되는 점증하는 친밀한 앎인)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내게 가장 고귀하기 때문이며, 그리스도를 (알고) 얻고 9*그 안에서 발견되기 위함입니다..이제 (그리스도 안에서 부르신 그 목표 도달 위해 주와 함께 새로이 출발할 수 있게 하는 자격인) 나의 의는 율법(의 행위)에서 난 것 아니라 그리스도 믿는 믿음 통해 믿음에 의해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의입니다, ..10*나는 (전심 전력으로 내 목숨 아끼지 않는 열정으로)그리스도를 (애정 깊은 연인의 친밀감 가운데 친숙하게 알 뿐 아니라 우리안에서 살며 행하시는 JC의 역사를 더 깊고 강력하게 감지-인식하고 그 뜻 여쭈어 잘 깨달아 이해하며 순종함에 이르기까지) 알기 원합니다. 이 체험적 지식의 증대를 위해 (새로운 생명 주며, 소성케하며, 부활케-돌파케 하는) 그분의 부활 권능을 (경험적으로)알며, 그분의 (대속의 고난, 더 나아가 영적후사들을 낳고 그들안에 그리스도의 형상이 새겨지기까지 감내하는 사도적 산고인)고난의 교제(고난에 참예함)를 알게 되며(체득함) 더나아가 (마침내) 그분의 죽으심의 본을 따르기(고난과 죽음 경험에서 완전히 JC를 빼어닮음) 원합니다. 11*또한 어떻게 해서든지 죽은자의 부활(생명없는 이 세상에서 이미 부활 경험한 자로서의 삶의 성숙함을 살아냄)에 이르기를 원합니다. (치명적인 패배와 재앙만이 확실해 보이며, 도울 자 전혀 없는, 완전히 절망적 상황에 처했을 때,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은, 아버지와 그 약속 말씀 붙드는 믿음 발휘하여 아버지의 손에 당신의 영(혼) 맡겨드림으로 죽음을 적극적으로 껴안았고 신실하신 아버지는 당신의 영광의 능력으로 부활케 하셨읍니다. 이처럼, 개인적인 십자가 상황, 곧 짓눌리며 공황감 느끼는 도움이나 소망이 전혀 없는, 다른 길은 전혀 없고 점점 더 심해지는, 마치 <사형선고 받은 듯한 -고후 1:8-10 >고통스런 딜레마에 봉착하게 되는 바로 그때=주님 만이 우리의 유일한 소망 되실 때, 주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는> 주를 신뢰함으로 자기 영혼 맡겨드리며 그 상황을 <죽으면 죽으리다-에스더 4:16,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해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해 죽나니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롬 14:8>의 믿음으로 수용하며 껴안는 우리로 하여금 신실하신 그분의 돌파하시는 부활능력 체험케 하시며 그 때 우리는 다시 JC와 그분의 길에 대한 더 깊은 지식에서 그리고 부활주님과의 깊어가는 연합안에서 자라가게 됩니다.=부활생명의 생활방식 : 성령과 하나되어 삶의 매 상황을 하늘의, 부활하신 JC의 관점-태도-삶의 방식으로 대함 ) 이것을(삶 속에서 체득하는, 점점 더 증가되는 부활생명의 성숙함) 12*내가 이미 얻었거나 그 완전함을 이룬 것도 아닙니다. (나는) 오직 그리스도께서 나를 붙잡으신 그것을(주님은 그리스도께 합당한, 부활생명의 성숙함과 완전함 이룬, 나를 얻고자 하심, 따라서 그분이 나의 삶에 예정하신 천명에 부합하도록 그분이 이끄시는대로 그리스도와 더욱더 친밀하게 하나됨의, 부활생명의 삶을 완전히 온전히 이룸을) 붙잡으려고 (그리스도를)좇아갑니다. 13 *형제 여러분, 나는 그것을 이미 얻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일만은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14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나를 부르신 부름의 상(부르심의 목적 완수 통해 하나님이 주실 상급=하나님과 그의 나라, 더불어 하나님을 더 사랑하는 능력)을 얻으려고 목표(푯대, 소명=JC의 형상 이루며, 주님 더 친밀히 알고 사랑함 통해 이웃 사랑 이루는, 그리스도의 증인됨)를 향해 (모든 것 불사르는 열정으로 추구하며)달려가고 있습니다. (빌 3:7-14) 신약의 계시에 따르면 어떤 사람이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느냐는 그가 하나님(생명이신 그리스도)을 얼마나 추구하여 얻었느냐에(그리스도를 자신의 생명-본성-심지어 자신의 인격으로 얻음인, 영적생명의 성장성숙 열매맺음의 정도) 근거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우리의 생명과 인격으로 갖는 것은 우리가 그리스도로 조성되는 것을 의미하며, 그리스도로 조성된 결과, 우리는 그리스도-사람, 그리스도인이 됩니다. 그럴 때 우리는 그리스도를 삶으로, 그리스도를 확대함으로, 그리스도를 높임으로 그리스도를 표현하게 됩니다. 우리가 함께 모일 때, 우리가 무엇을 하든―우리가 노래하든, 기도하든, 말하든, 예언하든―그리스도의 표현일 것입니다. 당신은 여러분이 그리스도에 의해 얻어진 바 되었음을 깨달은 적이 있습니까? 당신이 개심할 때 그리스도는 당신을 잡으셨고, 붙잡으셨고, 붙드셨습니다. 당신이 그리스도께로 돌이켰을 때 그분은 당신을 완전히 소유하셨습니다. 이제 당신은 그분의 손에서 도망갈 수 없습니다. 주님은 그분의 손으로 온 땅을 붙잡고 계십니다. 어떻게 당신이 그분에게서 도망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까? 주님은 오래 인내하시는 분이므로 쉽게 마음 상하거나 화내시지 않습니다. 때때로 그리스도인들은 주 예수님을 잘못 대표하여, 다른 사람들에게, 만일 그들이 어떤 것을 옳지 않게 행하면 주님이 즉시 화를 내신다는 인상을 줍니다. 그러나 주님은 당신에 대해 화내시지 않고 아주 오랫동안 짊어지십니다. 그분은 그분에게서 도망가려고 하는 당신의 시도에 괴로워하시지 않습니다. 그분은 그분이 일단 당신을 얻으면 당신이 도망갈 수 없다는 것을 알고 계십니다. 처음에 우리가 주 예수님의 이름을 불러 구원받았을 때 우리는 주님께 ‘낚였습니다.’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것은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그분을 부를 때 그분께 얻어진 바 되기 때문입니다. 일단 주님이 우리를 얻으시면 우리는 그분에게서 도망갈 수 없습니다. 어떤 이들은 수년 동안 주님을 떠나려고 노력했으나 결국 돌아와야 했던 것을 간증합니다. 주님은 우리로 그분을 소유하게 하기 위하여 우리를 소유하셨습니다. 이것이 우리를 붙잡으신 그분의 목적입니다. 그리스도는 우리가 참으로 그분을 얻기를 원하십니다. 주님의 구원의 목적은 우리로 그분을 온전히 소유하게 하기 위하여 우리를 붙잡는 것입니다. 바울은 빌립보인들에게 글을 쓰고 있었을 때조차도 자신이 그리스도를 온전히 얻었다고 여기지 않고, 아직도 그리스도를 얻기 위하여 그분을 추구하고 있었습니다. 빌립보서 3장에서 바울은 ‘얻다’, ‘획득하다’, ‘붙잡다’를 말하는 세 개의 헬라어를 사용합니다. 얻는 것이나 획득하는 것이나 붙잡는 것은 의미가 매우 가깝습니다. 이 표현들 중 가장 강한 것은 ‘붙잡다’입니다. 그리스도는 우리로 하여금 그분을 붙잡게 하려고 우리를 붙잡으셨습니다. 그분은 우리로 하여금 그분을 얻게 하려고 우리를 얻으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의 생활은 그리스도를 얻는 생활입니다. 당신은 그리스도를 얼마나 많이 얻었습니까? 우리는 그리스도를 얻음으로 생명이 자랍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얻은 정도가 그리스도와 함께 자란 정도입니다. 우리는 모두 생명 안에 자라기 위해 그리스도를 얻을 필요가 있습니다. 영적 성장은 우리가 그리스도를 얼마나 많이 얻었는가에 따라 측정됩니다. 또 하나, 어쩌면 윤리도덕적으로 흠 없이 보이는 믿는이의 삶에 나타나는 전형으로서 표현될 수 있는 욥에 대한 두 단계에 걸친 사단의 공격은 하나님이 욥에게 그분의 영광스러운 변화를 성취하시도록, 그리고 욥이 비밀한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비밀한 거래를 체험하도록 비밀하고도 영광스러운 토대, 기초를 놓았습니다. 비밀하고도 영광스러운 완결은 사도 바울의 저서들을 통해 신약에 계시된 대로, 우리를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에 대한 그분의 영원한 경륜의 표준과 수준에 이르게 하는 것입니다(고후 3:18, 엡 3:9). 하나님은 그분의 어떠하심에서뿐 아니라 그분의 목적, 갈망에서도 비밀하십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에게는 신약, 특히 신성한 계시를 완성한 사도 바울의 서신들이 있습니다(골 1:25). 만일 우리가 하나님의 어떠하심과 목적과 갈망에 관해 아무것도 없고 알고 있지도 않다는 것을 인정하면서 하나님 앞에 자신을 낮추고, 자신을 비우며, 우리 영 안에서 가난하여 영과 생명을 주시도록 기도하는 가운데 말씀읽기로 바울 서신들을 대한다면, 우리는 신성한 계시에 관하여 무엇인가를 분명하고, 명백하며, 완전하고, 인상적인 방식으로 보게 될 것입니다. 특히 우리는 하나님께서 그분의 영원한 경륜 안에서 그분 자신을 분배하시는 것에 관하여 뭔가를 보게 될 것입니다. 고대의 책인 욥기는 비밀하며, 우리는 바울 서신의 빛 가운데서 그것을 연구해야 합니다. 욥기의 결론은 하나님이 그분의 백성을 다루시는 목적에 관한 분명한 관점을 주고 있지 않으므로, 바울 서신이 없이는 욥기를 이해하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욥의 경우에서 보듯, 순전-정직-하나님 경외함 가운데 악에서 떠나고 하나님으로부터 세상적인 축복 받고 물질적 윤리적 자기 성취(자산)를 이루는 것이 하나님이 그 택하여 불러내신 사랑하는 자에게 원하시는 모든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더 나아가 당신의 소유된 모든 이들이 새로운 경륜의 영역, 곧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에 대한 그분의 영원한 경륜의 표준과 수준에 이르게 하려 하십니다(고후 3:18, 엡 3:9). 즉 세상적 성취(자기 성취) 거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심지어는 하나님께 받은 모든 축복과 물질적 윤리적 자기 성취(자산)를 벗겨냄-소모시킴-헐어내심의 고난을 통해 오직 하나님이 어떠한 분인지(Big and Great God)와 피조물인 자신의 어떠한 존재인지를(Nothing) 철저히 알고 사랑과 신뢰의 순종안에서 하나님만 추구하여 얻음으로써 그분으로 충만해지기를 원하십니다. 신약의 관점에서는 바울의 경우에서 보듯, 하나님께서 그분의 거룩한 백성을 고난을 통해 다루시는 목적이 분명한데, 그것은 그분은 거룩한 백성이 모든 것을 비우고 그들의 유일무이한 소득으로서 오직 하나님만 받아들이기를 갈망하신다는 것입니다. 그 까닭은 하나님 보시기에 그것이야말로 믿는이에게 있어서 지고지선의 진복이기 때문입니다. 참으로 하나님의 마음의 갈망은 우리가 그분을 생명과 생명 공급과 우리 존재의 모든 것으로 충만하게 얻는 입니다. 더나아가, 오늘날 우리가 얻은바 된 그리스도에 대한 우리의 누림에 대해서도 영원한 한가지 원칙이 있습니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누림을 위한 우리의 분깃으로 우리에게 주어지셨으나 이러한 누림을 소유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충족시켜야할 조건이 있습니다. 이 조건은 우리 안에 있는 하나님과 그리스도 이외의 모든 것을 쫓아내라는 하나님의 정하심과 협력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우리 안의 모든 우상들을 멸해야 함을 의미합니다. 우상이란 우리를 차지하고 있는 하나님 이외의 어떤 것입니다. 학위, 좋은 직업, 근사한 집, 지위, 혹은 계급, 좋은 이름들 이러한 모든 것들이 우리를 차지할 수 있는 우상들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 안에 있을 수 있는 어떠한 우상이라도 반드시 멸해야 하며 우리 안에 우상을 경배할 어떤 근거도 남기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 안의 우상을 처리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참된 그리스도의 누림을 가질 수 없습니다. 어떤이들은 그리스도의 누림에 대하여 말할 지도 모르지만 이것은 그들에게 일종의 표어일 뿐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에 대한 실제적인 누림을 가질 수 있는가 없는가 하는 것은 내적인 존재의 깨끗함이 어느 정도인가에 달려 있습니다. 오늘날 좋은 땅이신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 있지만, 이 좋은 땅에 대한 누림은 우리를 차지하는 하나님 이외의 어떤 것이라도 절대적으로 깨끗케 할 것을 요구합니다. 하나님 이외의 어떤 것을 경배할 약간의 여지라도 주는 것은 그리스도에 대한 우리의 누림을 소멸할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모든 종류의 우상을 깨끗케 함으로 말미암아 좋은 땅이신 그리스도를 누릴 수 있기 바랍니다. **신부의 영성 http://blog.daum.net/elielyyh/479 @@@예수님을 향한 열정(요17장) ##31Q : 아가페 사랑의 , 자기의 모든 것 내어주는 자아로서, 아버지-아들-성령은 모든 것 위임-헌신-순종을 질서가운데 조화롭게 행시며 서로서로 31Q의 온전함과 진복의 충만함 이루는 필요충분조건 되심.. 이 복됨 안에 하나님은 새로 창조하신 한 새사람을 초대하사 JC의 영광 가진 담지자된 사람이 자기와 함께 하나되어 살며 완전한 연합과 일치, 생명과 지혜의 성숙함 통해 하나님을 삶으로 나타내며 대표하게 하시려 함.. 이것이 교회임. === 영광(Glory..엘올람..영생하시는 하나님의 본질(사랑-생명-빛)의 표현인 형언 못할 아름다운 광채..교회는 JC의 영광 직접 보도록 허락되어 있음), 존귀(Honor..엘엘룐, 만유의 주재되심-만왕의 왕, 만주의 주 :모든 권위의 근원자), 능력(Power..엘로힘..창조주하나님으로서의 통치하는 권세) ##부활하신 JC ---내주하시는 성령님은 생명주는 영으로서 변형되신 JC임 === 능력-지혜(Wisdom..만물 창조하시고 경영하시는 하나님의 지혜)-부(Riches..모든 필요 공급의 원천으로서의 다함 없는 풍성과 부요)-힘(Strength..여호와 사바오트..만군의 주하나님, 승리의 용사/엘 깁보르)-존귀-영광-찬송 ##교회 ---점-흠-티-주름 없는 영광스런 JC의 신부 ===: 아버지가 아들을 사랑하신 그 사랑으로(거룩한 열정, 친밀한 애정의 아가페), 신랑JC를 사랑하도록 아버지께서 예비하셨음. 1.하나님이 창조하신 사람에 대한 아버지의 아가페사랑 실천 계획에 아드님이 전적으로 동의하고 자원하여 순종함, 곧 아버지로부터 보냄받은 아들이 성육신하여 사랑의 섬김과 십자가죽으심의 대속적 사랑 실천함 통해 아버지의 이름의 영광과 그 아가페 사랑을 온전히 나타내셨음을 깨닫고 그것을 믿고 그 안에 거함 통해서 2.또한 부활승천하신 JC께서 임마누엘성령으로 오셔서 내주하시면서 당신의 가지신 Q영광의 모든 풍성과 충만을 교회에게 아낌없이 부어주심 깨닫고 그것을 믿고 그 안에 거함으로 진복누림 통해서 (성도는 예수님의 영광-권세를 받은 왕같은 제사장 됨) ===>(이미 하나님은 자신을 교회의 소유로 내어 주사 자신의 가슴과 두 팔에 보증하여 인치셨음) 그 아버지의 이름<인격>을 교회가 체득하여 알게 되고, ===>교회는 또한 주님의 소유로 자신 드리기를 자원함으로써 자신의 가슴과 두 팔에 주님의 소유됨을 인침받아 (거룩한 열정, 친밀한 애정의) 그 아가페사랑으로 참되게 JC를 사랑하게 되며, 그 때 JC는 아버지와 함께 교회안에 거하여 하나되심 10 *내게는 (삶의)뚜렷한 목적이 있습니다. 나는 그리스도 예수를, 점점더 깊이 가깝고도 친밀하게 알게 되고 , 또한 그분의 인격의 신비를 더 강하게 더 분명히 감지하고 인식하고 이해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같은 방식으로 믿는 이에게 -성화시키시는 능력으로-역사하는, 그분의 부활로부터 넘쳐나오는 능력-부활생명능력-을 알게 되며, 영안에서 우리가 끊임없이 그분의 성품안으로 변환되어 가는 것처럼, 그분의 고난에서부터 소망안의 그 죽으심에 이르기까지 동참하기를 원합니다. 또한 가능하다면 지금 생명없는 세상 사는 동안에라도 죽은자들의 부활 경험처럼 온전한 영적 도덕적 부활의 삶에 이르게 되기를 원합니다. 11*그러나 지금은 이 바라는 바를 내가 얻었다거나, 이미 내가 (영적 성숙함에 있어서) 완전해졌다는 것이 아닙니다. 12* 다만 나는 구주예수께서 나를 붙드사 자기의 소유 삼으신 것처럼 주님을 붙잡고 나의 소유로 삼고자 애쓰고 있습니다.(빌 3:10-12) **7*전에 내게 유익하던 모든 것들(학력, 지위, 출신배경 등 자기자산) 잃어버림의 손실을 기꺼이 감내할 뿐 아니라 8*오히려 그것들을 (주를 앎에 방해되는 --하나님 이름은 인격, 곧 그분이 누구며 어떠한 분이신지, 그가 과거에 무엇을 하셨고 지금 하고 계시며 미래에 하실 것인지를 통틀어 말함..) 해로운 쓰레기로 여겨 내어버림은 (그리스도의 부활능력-그리스도의 고난 통해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완전히 빼어닮음의 체득에 대해 배우고 또한 참여함으로써 실제로 체득하는, 또한 그 결과 삶속에서조차 죽음으로부터의 부활 경험 체득케 되는 점증하는 친밀한 앎인)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내게 가장 고귀하기 때문이며, 그리스도를 (알고) 얻고 9*그 안에서 발견되기 위함입니다..이제 (그리스도 안에서 부르신 그 목표 도달 위해 주와 함께 새로이 출발할 수 있게 하는 자격인) 나의 의는 율법(의 행위)에서 난 것 아니라 그리스도 믿는 믿음 통해 믿음에 의해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의입니다, ..10*나는 (전심 전력으로 내 목숨 아끼지 않는 열정으로)그리스도를 (애정 깊은 연인의 친밀감 가운데 친숙하게 알 뿐 아니라 우리안에서 살며 행하시는 JC의 역사를 더 깊고 강력하게 감지-인식하고 그 뜻 여쭈어 잘 깨달아 이해하며 순종함에 이르기까지) 알기 원합니다. 이 체험적 지식의 증대를 위해 (새로운 생명 주며, 소성케하며, 부활케-돌파케 하는) 그분의 부활 권능을 (경험적으로)알며, 그분의 (대속의 고난, 더 나아가 영적후사들을 낳고 그들안에 그리스도의 형상이 새겨지기까지 감내하는 사도적 산고인)고난의 교제(고난에 참예함)를 알게 되며(체득함) 더나아가 (마침내) 그분의 죽으심의 본을 따르기(고난과 죽음 경험에서 완전히 JC를 빼어닮음) 원합니다. 11*또한 어떻게 해서든지 죽은자의 부활(생명없는 이 세상에서 이미 부활 경험한 자로서의 삶의 성숙함을 살아냄)에 이르기를 원합니다. (치명적인 패배와 재앙만이 확실해 보이며, 도울 자 전혀 없는, 완전히 절망적 상황에 처했을 때,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은, 아버지와 그 약속 말씀 붙드는 믿음 발휘하여 아버지의 손에 당신의 영(혼) 맡겨드림으로 죽음을 적극적으로 껴안았고 신실하신 아버지는 당신의 영광의 능력으로 부활케 하셨읍니다. 이처럼, 개인적인 십자가 상황, 곧 짓눌리며 공황감 느끼는 도움이나 소망이 전혀 없는, 다른 길은 전혀 없고 점점 더 심해지는, 마치 <사형선고 받은 듯한 -고후 1:8-10 >고통스런 딜레마에 봉착하게 되는 바로 그때=주님 만이 우리의 유일한 소망 되실 때, 주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는> 주를 신뢰함으로 자기 영혼 맡겨드리며 그 상황을 <죽으면 죽으리다-에스더 4:16,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해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해 죽나니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롬 14:8>의 믿음으로 수용하며 껴안는 우리로 하여금 신실하신 그분의 돌파하시는 부활능력 체험케 하시며 그 때 우리는 다시 JC와 그분의 길에 대한 더 깊은 지식에서 그리고 부활주님과의 깊어가는 연합안에서 자라가게 됩니다.=부활생명의 생활방식 : 성령과 하나되어 삶의 매 상황을 하늘의, 부활하신 JC의 관점-태도-삶의 방식으로 대함 ) 이것을(삶 속에서 체득하는, 점점 더 증가되는 부활생명의 성숙함) 12*내가 이미 얻었거나 그 완전함을 이룬 것도 아닙니다. (나는) 오직 그리스도께서 나를 붙잡으신 그것을(주님은 그리스도께 합당한, 부활생명의 성숙함과 완전함 이룬, 나를 얻고자 하심, 따라서 그분이 나의 삶에 예정하신 천명에 부합하도록 그분이 이끄시는대로 그리스도와 더욱더 친밀하게 하나됨의, 부활생명의 삶을 완전히 온전히 이룸을) 붙잡으려고 (그리스도를)좇아갑니다. 13 *형제 여러분, 나는 그것을 이미 얻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일만은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14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나를 부르신 부름의 상(부르심의 목적 완수 통해 하나님이 주실 상급=하나님과 그의 나라, 더불어 하나님을 더 사랑하는 능력)을 얻으려고 목표(푯대, 소명=JC의 형상 이루며, 주님 더 친밀히 알고 사랑함 통해 이웃 사랑 이루는, 그리스도의 증인됨)를 향해 (모든 것 불사르는 열정으로 추구하며)달려가고 있습니다. (빌 3:7-14) =====[JC안에서 믿는이 각사람의 위치와 지위]===JC.하나님의 말씀(생각 + 발설된 말씀 그자체..메시아/구원자/그리스도 = memra)======== a beloved =사랑받는/총애하는(특별히 사랑하는) ... a favorite child/friend.(늘)마음에 있고/흐뭇한/마음에 쏙 드는 자녀/절친(필레..목숨까지)/형제(아흐..한태에서 태어난)... a darling.(아헤브-도드....유일한 배필)사랑하는 연인/신부 ...하나님의 품안에 있는 JC처럼 사랑과 기쁨인 총아/기린아/사명자[믿는 이는 각자가 하나님앞에서 단독자로서 그러함을 고백하고 그렇게 살기를 결단해야 함....이들이 바로 하나님나라, 백성, 새예루살렘, 그리스도의 신부, 어린양의 아내인 교회를 이루는 성도임] ...***총아 : 모든 피조물 중에서 하나님으로부터 사랑과 기대[총애...은총]을 받는 자요 마침내 나타나, 자유케 해 주기를 만물이 고대하는 자....하나님자신이 JC의 십자가/부활로 낳으신 바, 특별히 사랑하는 자녀-백성.....***기린아(하나님 경외하기-하나님과 동행하기를 배워 실행함으로써, 곧 JC를 믿는 믿음안에서 하나님이 부어주신 HS을 통해 친히 이루어 가시는 바, 지혜/총명/-슬기/재능/권능이 탁월하여 하나님 뜻하신 바를 십자가의 길을 따라 이룰, 장래가 촉망되는 아이)....***사명자(하나님이 맡기신 시대적 소명을 깨닫고 실행하는자....하나님을 맛봄/누림--하나님을 체득/성장성숙--모든 피조계를 섬기며 다스리시는 하나님께 참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