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섯 번째 고발: 교회의 속성에 대한 무지 엄밀히 말하자면 하나님은 오직 하나의 참종교만 가지고 계십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입니다(세상에서 말하는 바 세속적 기독교 교단이 아닌). 그리고 우리의 궁극적 목표와 부흥의 궁극적 산물은 참된 의미의 성경적 교회들을 심는 일일 것입니다. 나는 또한 우주적 그리스도의 참 지체들인 지역 교회들과 참 목자들이 오늘날 세상으로부터 경멸당하고 있다는 것에 가장 큰 두려움이 있습니다. 누군가에게 당신이 순회 설교자라서 세계적인 사역을 하고 있다고 말해보십시오. 그러면 그들 모두가 절할 것입니다. 누군가에게 당신이 30명의 무리의 목사라고 말해보십시오. 그러면 그들은 집회 중에 당신을 뒷자리에 앉게 만듭니다. 예수그리스도 그분은 순회 설교자들의 왕자가 아니라, 그분은 목사들의 왕자이십니다. 몇 년 전 빌 클린턴이 선거 기간에 이런 슬로건을 내 걸었습니다. “중요한건 경제다, 바보들아.” 나의 목사님, 제프 노블렛, 우리 교회 장로들 중 한분이시고, 주교육자이며 주설교 목사이신 그분이 어느 날 나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기요, 셔츠를 잔뜩 만들었으면 좋겠는데요.” “거기에 뭐라고 쓰시려구요, 제프 형제님?” “중요한건 교회다, 바보들아.” 예수님은 교회, 아름답고 때 묻지 않은 순결한 교회를 위해 그의 생명을 주셨습니다. 여러분이 사역에서 무언가를 위해 생명을 드리고 싶다면, 교회에 드리십시오, 하나의 교회에, 한 몸의 신자들, 지역의 신도들 말입니다. 중요한 것은 교회입니다. 이제 교회에 대해 이것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잘 들으시기 바랍니다. 교회에는 신도들 중 남은 자라는 게 없습니다. 우리 모두는 ‘남은 자’ 신학에 대해 잘 알고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이스라엘의 모든 여정 속에는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과 남은 자인 진짜 신도들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교회에 관해서는 사실이 아닙니다. 남은 자인 신도들, 또는 작은 무리의 신도들이 교회라 불리는 커다란 집단 안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가 바로 남은 자입니다. 그리고 이 말을 하고 싶습니다. 만약 목사들이 신성모독에 가까운 일을 한 적이 있다면 그것은 이것에 관한 것입니다. 나는 신학자들이나, 순회 교육자들, 설교자들이나, 이런 저런 사람들이 이런 종류의 말을 하는 것을 듣습니다. “교회 안에는 교회 밖만큼이나 죄가 많다. 교회 안에는 교회 밖만큼이나 이혼율이 높고, 교회 안에는 교회 밖만큼이나 비윤리성이나 음란물이 많다.” 그런 다음 설교자들은 말합니다. “예, 교회가 창녀처럼 행동합니다.” 그러나 이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를 창녀라고 부르는 것에 대해 아주 조심해야 합니다. 문제가 무엇인지 말씀드리겠습니다. 목사들과 설교자들이 참교회의 정체성에 대해 정말로 모르고 있거나 참교회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에 동의하지 않고 있거나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심과 교회를 향한 그 약속에 동의하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미국에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가 주께는 참으로 아름답다는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현실적으로 볼 때 어떤의미에서는 교회는 때로는 부서질 듯 합니다. 때로는 연약합니다. 괴롭힘을 당하고 있으며, 완벽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심령이 상해있으며, 그 와중에도 자신의 하나님과 겸손하게 동행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참으로 문제가 되는 것은 교회가 무엇인지 교회인 우리가 진정 모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성경적인 설교의 부족함 때문에 참교회를 소위 세속적 기독교와 동일시하는 세속적이고 사악한 사람들이 주위에 가득 차 있습니다. 그리고 양들 가운데 있는 모든 염소들 때문에, 양들은 염소들이 하는 모든 일에 대한 비난을 받고, 우리 때문에 하나님의 이름이 이방인들 가운데 모독받고 있습니다. 이것을 읽어보셨는지… 그냥… 시간이 없다는 것을 압니다만, 빨리 한번 봅시다, 빨리요. 보여 드리고 싶은 게 있습니다. 예레미야 31장을 봅시다. 감사합니다. 예레미야 31장 31절입니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세우리라.” 나는 이스라엘이라 불리는 사람들로부터 아무것도 뺏고 싶지 않지만, 이 본문은 교회에도 적용됩니다. 그것을 참되게 이해하도록 하십시오. 나는 종말론에 관해 논쟁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성경에는, 신약의 히브리서에서는, 이것이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적용하고 있습니다. “또 주께서 가라사대 내가 저희 열조들의 손을 잡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저희와 세운 언약과 같지 아니하도다.” (히 8:9 – 역자 주) 나는 설교자들이 항상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듣습니다. “이스라엘을 돌아보면, 하나님을 믿지 않고 우상숭배 하는 한 무리의 사람들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그 중에는 극소수의 진짜 신도들인 남은 자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신약의 교회에 적용시키지는 마십시오. 왜냐하면 그분이 “뭔가 새로운 일을 하겠다.” 라고 그 후에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또 주께서 가라사대 내가 저희 열조들의 손을 잡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저희와 세운 언약과 같지 아니하도다 저희는 내 언약 안에 머물러 있지 아니하므로 내가 저희를 돌아보지 아니하였노라 또 주께서 가라사대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으로 세울 언약이 이것이니 내 법을 저희 생각에 두고 저희 마음에 이것을 기록하리라” (히 8:9,10 – 역자 주) 이 말씀을 참 교회에 적용해 볼 때, 당신이 진실로 회심했다면, 그분이 당신에게 율법이 적힌 돌 판을 주기만 한 것이 아닙니다. 그분은 초자연적으로, 중생의 교리를 통해, 그 율법들을 당신의 마음에 써 놓으셨습니다. 그리고 그분이 그렇게 하셨기 때문에, “나는 저희에게 하나님이 되고, 저희는 내게 백성이 되리라”. (히 8:10 후반부 – 역자 주) 그리고 뭐라고 써 있는 지 보십시오. “또 각각 자기 나라 사람과 각각 자기 형제를 가르쳐 이르기를 주를 알라 하지 아니할 것은 저희가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나를 앎이니라 내가 저희 불의를 긍휼히 여기고 저희 죄를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히 8:11,12 – 역자 주) 다시 말하지만, 바로 이것이 중생의 교리입니다. 하나님은 지난 2000년 동안 이 새 일을 하고 계십니다. 제가 보기엔 미국에는 참교회가 많지 않은 것 같아 보입니다. 물론 잘 가꾸어진 잔디 위에 지어진 정말 멋진 벽돌 건물들은 많이 있지요. 누가 자신이 교회에 속해 있고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한다고 해서 그 사람이 참된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이 뭐라고 말씀하시는지 중심으로 들어 보십시오. 참 그리스도인이라면 그들은 서로를 가르칠 필요조차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선생들과 설교자들이 없어질 것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들 모두들 가운데에는 하나님을 아는 뛰어난 지식, 특히 그들의 죄가 용서받은 사실에 대한 지식이 있을 것입니다. 빨리 넘어갑시다. 32장을 보십시오, 32장 38절입니다. (렘 – 역자 주) “그들은 내 백성이 되겠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될 것이며” 그분은 “나는 그렇게 되길 소망한다. 어쩌면, 운이 좋으면, 아, 만약 나와 같이 일할 전도자들을 충분히 구할 수 있다면, 어쩌면 이게 제대로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라고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그분은 말씀하십니다. “나는 나를 위해 한 백성, 내가 내 아들에게 줄 한 백성을 이끌어 낼 것이다.” 그리고 또 그분은 말씀하십니다. “그들은 내 백성이 되겠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될 것이며” 이것을 보십시오. “내가 그들에게 한 마음과 한 도를 주어” 자, 나에게 화내지 마십시오, 적어도 지금 화내고 있는 것 보다는 더 화내지 마십시오. 그러지 말고 내 말을 들어 보십시오. 70년대와 80년대와 모든 예수 행진들과 모든 사람들이 울고불고 하면서 “교회는 너무 분열되었다. 교회는 하나가 아니다.” 하는데, 친애하는 친구 여러분들, 이것을 말해 드리죠. 만약 교회가 하나가 아니라면 어디엔가 아버지 하나님께서 그 아들을 위해 빠뜨려 버리고 듣지 않으신 기도가 있다고 말하는 것에 다름아닙니다. 그리고 이 새 언약의 약속은 습격당해 폐기되었다는 것을 뜻하겠지요. 그렇기에 여러분들의 초점을 제가 조금 다시 맞춰드리죠. 나는 여러분들에게 교회는 하나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참으로 그녀는 항상 하나였습니다. 당신은 비행기 안에 앉아 있을 때, 아니면 슈퍼마켓에서, 당신이 알지도 못하는 어떤 이를 만났을 때, 당신이 침례교도이거나 메노파 교도이거나 이것이든 저것이든 간에 진정한 복음주의자이자 진정한 그리스도인으로서, 그 사람과 몇 분도 얘기하지 않았는데 “아, 그 사람 신자구나. 살아있는 신자다.” 라는 것을 발견했던 적이 있었습니까? 그렇다면 그 순간 당신은 그를 위해 당신의 생명을 내어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를 위해 당신의 생명도 내어 줄 것입니다. 한 가지 삽화를 소개해드립니다. 내가 기억하기로 한번은 우리가 페루의 디파르맨또 아르조나스에 있었는데, 그때는 신데로 루미노소의 시대였고 그곳에 한창 내전이 있던 때였습니다. 우리는 검은 방수포를 덮은 곡물 트럭 뒤에 타고 22시간을 달리다가 자정쯤 되어서 그 방수포를 벗겼는데, 그 트럭은 멈추었고 우리는 정글 속으로 뛰어 내렸습니다. 우리는 그날 밤을 정글의 주변에서 보내고, 인해니오 탐블릭이라는 곳을 향해 걸어갔습니다. 다음날 반쯤 갔을 때 우리는 그만 어둠속에서 길을 잃었고, 그래서 나와 나의 친한 친구 파코는 기도하면서 주님의 인도를 구하고 있었습니다. “오, 하나님, 우리에게 어디로 가야할지 알려주십시오. 우리는 길을 잃었습니다. 만약 여기가 테러리스트들이 점령하고 있는 지역이라면, 군인들조차 거기로 들어가려 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부르짖었습니다. “오, 하나님, 우리에게 가야할 방향을 알려주시옵소서. 도와주시옵소서.” 그 때 우리는 어떤 종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리고 누군가 말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처음에는 이상한 대화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당나귀를 데리고 밭에서 돌아오고 있는 한 소년이 당나귀에게 말하고 있는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소년의 뒤로 가서 그를 따라갔습니다. 그러다가 우리는 한 마을, 오두막집과 어도비 진흙집들이 있는 조그마한 마을 주변에 다다랐습니다. “파코.” 내가 말했습니다. “알겠지만, 만약 테러리스트들이 이 마을을 점령하고 있다면 우리는 죽었네.” “맞아, 하지만 어디라도 가긴 가야지.” 그래서 우리는 내려가서 어둠속에서 술에 취해 있는 한 남자에게로 다가가서 남미어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기 형제들이 있습니까?” 왜냐하면 산간지방에서는 그게 무슨 뜻인지 누구나 다 알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진실한 그리스도인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그는 남미어로, “저기 사는 할머니.” 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래서 거기로 갔습니다. 거기에는 한 늙은 나사렛 여자가 있었고 나는 문을 두드렸습니다. 나는, “나는 기독교 목사입니다. 제발 도와주십시오.” 하고 말했습니다. 그 할머니는 등불을 비추고, 나를 잡아채서는 안으로 끌어다 놓았습니다. 그녀는 파코도 잡아챘고, 우리를 아래층으로 데려갔습니다. 그 집은 일종의 진흙 벼랑을 파서 만든 것이었는데, 우리를 건초와 닭과 물건들이 있는 지하실로 데리고 갔습니다. 그녀가 우리를 거기 앉혔고 등불을 켰는데 그때 한 어린 소년이 들어왔고 그녀는 그 아이를 불러다가 “가서 다른 형제들을 데리고 오너라.” 하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닭고기와 유카와 다른 모든 것들을 가져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의 생명을 무릅쓰고 말입니다. 왜 그랬을까요? 왜냐하면 우리는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깊은 생각없이 세상과 함께 교회에 대해 말하고 있는, 그리스도의 몸은 분열되었고 엉망이 되었으며 죄로 가득하다는 그 모든 바보 같은 소리를 이제는 그만 하십시오. 내가 여러분이라면 그리스도의 신부에 대해서 그런 식으로 말하지는 않을 겁니다. 실제로는 여러분들 가운데 있는 것은 양들(에수생명의 성장성숙한 참된 열매들) 가운데 있는 한 무리의 염소들(중생의 체험 없는)과 가라지들(예수 생명으로 성장성숙 열매 맺음 없는)입니다. 그리고 교회내의 지도자들이 제대로 된 성경적 교회 훈련을 단지 그저 조금만 그것도 미미하게 행하고 있기 때문에, 그리고 반면에 많은 긍휼을 베풀고있기에 그 염소와 가라지들은 양들 가운데 살고 있는 것이지요. 그 염소와 가라지들은 참된 양들을 잡아먹고 살면서, 동시에 양들을 파괴하고 있기 때문에, 여러분 중 교회의 지도자들은 그들을 사랑하시는 그분 앞에 설 때에 어쩌면 태만홤과 부주의에 대한 값비싼 죄 값을 치르게 될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여러분은 일어서서 악한 사람들을 대면할 충분한 용기를 발휘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사실을 말하자면, 들어보십시오. 교회에 관한 미국에서의 평균적 시나리오는, 대체로 교회는 민주주의라야 하며 또 그렇게 이끌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에 대한 가정이라든지, 장단점에 대해서는 깊게 말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이런 일이 실제로 미국교회내에서 일어나고 있지요. 그러나 참된 복음은 민주주의가 아닌 하나님중심주의를 말하고 있으며, 교회의 모든 권위는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임을 선포하는 설교는 아주 드물게 들을 수 있을 뿐입니다. 게다가 교회는 기본적으로 참된 영적의미에서가 아니라 세속적 의미에서 잃어버린 사람들이 대다수이며, 또한 교회는 민주주의에 따라 다수결로 움직이기 때문에 바로 그들이 대개 교회의 방향을 결정하게 됩니다. 그리고 목사는 많은 수의 사람들을 잃는 일을 회피하게 되고 전도와 진정한 회심에 대해 근본적으로 오도된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그는 교회의 악한 자들에게 영합하게 됩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에게 속한 소수의 진짜 양들은 그 모든 극장 가운데, 그 모든 세상적인 것 가운데, 그 모든 대충매체 가운데에 주저앉아 “우리는 단지 예수님을 경배하고 싶고, 단지 누군가 우리에게 성경을 좀 제대로 가르쳐 주기를 원합니다.” 라고 부르짖고 있습니다. 그리고 목사들은 그 부르짖음에 대해 무시하고 태만했던 대가를 주님의 그날에 치르게 될 것입니다. 나는… 이것은 사실이며 참으로 그렇다는 것만을 말하고 있을 따름입니다. 그러나 당신은 말합니다. “오, 당신은 그냥 화가 났네요.” 친구 여러분들, 내가 이것을 참되게 말하는 데 어떤 희생이 필요한지 아십니까? 이것은 사실입니다. 오늘날 교회는 많은 수의 염소와 가라지들을 모아 그 체계를 유지하는 반면에 그 가운데 있는 소수의 양떼는 굶어 죽고 있거나 세속적 다수와 함께 섞여 그들이 가고 싶어 하지 않는 방향으로 수동적으로 끌려가고 있는 것이지요. 내 말을 들어보십시오. 만약 내 아내가 어느 늦은 밤에 월마트에 있었는데 남자인 당신이 거기를 지나가다가 두 남자가 그녀를 희롱하고 있는 것을, 셋, 넷, 다섯, 열 명의 남자들이 그녀를 희롱하며 상처 입히고 있는 것을 보고도 자기 보존이라는 이름으로 고개를 숙이고 그냥 못본 체하며 지나갔다면, 나는 당신에게 할 말이 있습니다, 친구. 나는 복수를 위해 그 열 명을 찾아다닐 뿐 아니라, 당신도 찾아낼 것입니다. 이 비유에서 내 아내는 그리스도의 신부를 말하고 있으며 그녀는 그분에게 소중합니다. 예수님을 섬기는 것에는 참으로 희생이 따릅니다. 당신의 교회, 당신의 명성, 당신의 교파, 절대적으로 모든 것을 잃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를 위해서는 그럴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여기 뭐라고 하는지 보십시오. 나는 이 말씀을 사랑합니다. “내가 그들에게 한 마음과 한 도를 주어.” 그러면 그 도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그리스도이고 거룩함입니다. 내가 만났던 모든 진짜 신도들은 그리스도에 대해 많이 말했고, 현재보다 더 거룩해지고 싶다는, 더 그리스도를 닮아가고 싶다는 갈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보십시오. “내가 그들에게 한 마음과 한 도를 주어 자기들과 자기 후손의 복을 위하여 항상 나를 경외하게 하고.” (렘 32:39 -역자 주) 오, 얼마나 훌륭한 본문인지요. 그러나 아주 빨리 다음을 봅시다. “내가 그들에게 복을 주기 위하여 그들을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는 영영한 언약을 그들에게 세우고.” (렘 32:40 전반부 – 역자 주) 자, 우리는 여기까지만 대개 읽습니다. 너무나 많은 악하고도 잃어버려진 사람들이 일요일에 교회에 가서 이 구절을 자기 나름대로 듣습니다. “예, 하나님께서는 나와 영영한 언약을 세우셨습니다. 그분은 결코, 결코 나를 떠나지 않으실 것입니다. 나는 하나님의 은혜 때문에 안전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다음 부분을 읽는 데는 실패합니다. 그 다음에 뭐라고 써 있는가 보십시오. “내가 그들에게 복을 주기 위하여 그들을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는 영영한 언약을 그들에게 세우고 나를 경외함을 그들의 마음에 두어 나를 떠나지 않게 하고.” (렘 32:40 전체구절 – 역자 주) 하나님께서 당신과 영영한 언약을 세우신 증거는, 그분께서 당신의 마음에 하나님을 경외함을 두어서 당신이 그분을 떠나지 않는 것입니다. 만약 당신이 그분을 떠났음에도 그분이 당신을 징계하지 않으셨기 때문에 당신이 계속 그분을 떠나 살고 있다면, 그것은 그분이 당신의 마음에 하나님경외함을 두지 않으신 것이요, 거꾸로 결국 당신은 중생하지 않은 것이요, 하나님과 아무런 언약이 없다는 반증이 되는 것입니다. 오, 그것은 사실입니다. 일곱번째 고발, 사랑과 긍휼이 있는 교회적 훈련의 부족.. 우리는 성경말씀에 절대순복함으로써 엄격한 <자기육체죽임>의 교회 영성-성품 훈련과정을 대부분 그냥 빨리 스쳐 지나가려 합니다. 그렇지만 이 교회적 훈련이 오늘날 오도되고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내가 이것을 다시 정의해 보려고 합니다: 오늘날 미국의 대부분의 기독교 목사들은 마태복음 18장을 그들의 성경에서 마치 찢어버린 것처럼 제게는 느껴집니다. 그러면 안되지요, 선생님. 성경말씀 전체를 다 취해야지요. 많은 목사들은, 사무실과 서재에서 나올 때 신학은 뒷전에 남겨 둡니다. 그들은 대화할 때는 신학적입니다. 그들은 자신의 사무실에서는 신학적입니다. 그러나 밖으로 나서면, 그들은 단지 세속적 수단에 의해 교회를 운영합니다. 나는 내가 다니는 교회의 장로는 아닙니다, 거기에 그렇게 오래 다니지도 않았구요. 그래서 나는 이것을 겸손히 솔직하게 눈치보지 않고 말할 수 있습니다. 내가 다니는 이 교회는 교회적 훈련을 실행하고 있습니다. 이곳은 1000명 정도 되는 아주 큰 교회입니다. 그리고 파문(추방)으로 시작하지 않는, 사랑과 긍휼이 있는 교회적 훈련을 통해 지난 몇 년 동안 30여개의 결혼을 구해냈다고 그들은 자체 추정하고 있습니다. 그 훈련과정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영적인 사람은…” 우리는 말합니다. “오, 사랑이 너무 많기 때문에 우리는 <범죄케 하는 오른 눈을 빼어내버리고, 오른 손을 찍어내버리는>문자 그대로의 영적훈련을 그렇게 엄격히 할 수는 없어요. 우리는 다만… 우리는 다만 너무 사랑이 많아요.” 여러분이 예수님보다 더 사랑이 많으신가요? 사랑이 한량없으신 바로 그분이 경건-생명의 성장성숙함-에 이르도록 엄격한 내적 영적 훈련을 명하신 분이십니다. “엄격한 영적 훈련은 어쩌면 많은 문제를 일으킬 지도 모릅니다.” 예, 맞겠지요. 그러나 어쩌면 교회내 지도자들과 목사의 바로 그런 태도가 오늘날 교회와 세속문화 사이에 그다지 많은 충돌과 갈등 문제가 생기지 않는 이유일 것입니다. 우리가 세속문화에 거룩함과 순결함 가운데 의로움으로 행함으로써 자연스레 세속에 저항하여 맞서지 않고 있기 때문에 말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냥 나가서 헐리우드에게 시위하는 것으로 세속문화를 맞서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순종함으로써 맞섭니다. 노아는 하나님말씀을 믿었고 붙들어 순종함으로써 오랜기간동안 방주를 지었고 그로써 세상을 정죄했습니다. 여러분이 항의 표지판을 가져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단지 하나님말씀에 순종함으로 걸어가면 세상은 자연스레 여러분을 미워할 것입니다. 친구 여러분, 좀 더 봅시다.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가서 너와 그 사람과만 상대하여 권고하라 만일 들으면 네가 네 형제를 얻은 것이요” (마 18:15 – 역자 주). 오, 얼마나 좋은 일입니까. “만일 듣지 않거든 한두 사람을 데리고 가서 두세 증인의 입으로 말마다 확증하게 하라.” (마 18:16 – 역자 주) 죄 범했다고 여겨지는 이 사람들이 여러분의 말에 그냥 순순히 동의한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실제로 그랬는지 들어보고 판단할 것입니다. 당신이 틀렸을 수도 있고, 당신의 형제가 죄를 범한 것이 아닐 수도 있으며, 당신이 과잉반응하고 있고 율법적일 수도 있습니다. 누가 그 마음을 알겠습니까? 그리고 더 들어보십시오. “만일 그들의 말도 듣지 않거든 교회에 말하고 교회의 말도 듣지 않거든 이방인과 세리와 같이 여기라.” (마 18:17 – 역자 주) 친구 여러분, 나는 우리가 이 말을 깊이 새겨 들을 필요가 있다고 믿습니다. 우리는 이런 일에 대한 참된 분별이 하나님께 순종하여 우리 자신을 훈련하기 시작하거나, 아니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그 일을 하게 하실 때,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아마도 때가 가까워 왔고 지금이 그 일이 일어날 때 일수도 있습니다. 나는 지금 비판적이고, 율법적이고, 증오에 가득 찬 사람들에 대해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그런 사람들은 주변에 충분히 많이 있을 수 있지요. 그러나 나는 이것이 게임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자신의 삶을 내어놓을 정도로 충분한 사랑이 있는 사람, 한 무리의 장로들, 지도자들에 관하여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일을 행하는 것은 우리가 단지 이 세상에서의 삶만을 위해서 사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영원>이 위험에 처해 있습니다. <영혼의 구원>이. 이 많은 기독교 서점들을 한번 보십시오. 웨슬리와 휘트필드 등등과, 청교도파와 종교개혁의 시대의 오래된 책들을 보십시오. 그 대부분의 책들은 복음이 무엇인가, 어떻게 그것을 설교할 것인가, 어떻게 사람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할 것인가, 어떻게 진정한 회심을 분별하는가, 어떻게 영혼의 의사가 될 것인가 하는 것들을 다루었습니다. 우리는 <참 그리스도인 됨, 그리고 생명성장성숙열매 맺게 함에 대해 능력 없음> 문제에 대해서는 로마(카톨릭)을 본따르고 있습니다. 로마(카톨릭)에서는 아기가 유아세례를 받습니다. 아기가 이제 명목상 그리스도인입니다. 아기는 로마 카톨릭에 속했습니다. 결코 개종을 다시 다루지 않습니다. 다만, 그들을 교회에 붙들어 놓기 위해 모든 종류의 세상적 수단들을 창조하고 개발합니다. 기독교도 같은 일을 했습니다. 25분은 아주 웃긴 얘기들이고 5분 후에 그물을 끌어당기는 그런 30분의 설교 후에, 2, 3분 동안 상담을 하고, 그들과 함께 약간의 기도를 합니다. 그들과 약간의 상담을 한 후, 그들이 구원받았다고 선언합니다. 그리고 나머지 날들을 그들을 훈련하는데 보내면서 왜 그들이 그리스도생명안에서 저절로 자라가지 않는지 의아해 합니다. 나는 물론 일대일 개인 제자도의 가치를 믿는다는 것을 여러분에게 미리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러나 친구 여러분, 교회는 그것, 모든 책들과 모든 다른 것들과 함께 우리가 지금 일대일 개인 제자도라고 알고 있는 그것 없이도 천년 또는 더 오랫동안 잘 해 왔습니다. 이것에 대해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일대일 제자도는 70년대 후반부터 지금까지 거대하게 되었습니다. 무엇 때문에요? 앞문으로 들어오는 사람들만큼 뒷문으로 많은 사람들이 나가고 있습니다.., 그런 일이 발생하고 있는 이유가 우리가 사람들을 제자화하고 있지 않아서라는 생각에서 때문입니다. 그러나 진실은 그것이 아닙니다. 그런 일이 공공연히 발생하는 까닭은 사람들이 죄를 참을 수 없으신 살아계신 거룩하신 하나님의 엄위하심과 그 말씀, 그 앞에 자신의 깊은 죄성 인식과 죽을 수밖에 없는 자신 인정하며 통회하고 자복함의 참 회개 통해, 자기 위해 십자가에 달려 대속하신 그리스도 예수를 믿고 그분을 참되게 나의 주와 하나님으로 영접함의 믿음으로 구원 받았다는 것을 직접 말씀 낭독하며 숙고하며 깨닫고 인정하여 고백하는 참된 회심에 이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실상은 당신이 그들을 제자화하든 안 하든 간에 참된 그분의 양들은 그분의 음성을 듣고 자원함으로 그분을 따르며 닮아가게 되는 것이지요. 지금 우리는 물론 마땅히 <말씀따라> 제자화를 해야 합니다. 그러나 <제자화 하지 않는>그것이 그들이 교회를 등지고 떠나는 본질적 이유는 아닙니다. 그들은 진실로 우리에게 속해 있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를 떠나갑니다. 그리고 그들은 어쩌면 한 번도 <진정한 복음>의 말씀을 <참되게 중심으로 목숨걸며> 귀기울여 들어본 적이 없고 어쩌면 아무도 그들의 영혼을 그렇게 살아계신 하나님의 생동하는 말씀의 진지함과 엄위함으로 다루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에게 속할 기회가 거의 없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염소들을 제자화하려 많은 돈을 쓰면서 그들이 양이 되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염소를 양이 되도록 가르칠 수 없습니다. 염소는 성령과 더불어 겸손히 민감하게 동역하며 순복하는 전도자, 그를 사용하시며 그를 통해 말씀을 능력있게 사용하시는 내적 기름부음의 열심, 곧 권능의 하나님이신 성령의 초자연적인 역사에 의해서만 양으로 중생하게 되는 것이지요. 다음으로 교회적 훈련… 나는 그들이 교회적 훈련을 나름대로 실천하고 있었기 때문에, 또한 내가 교회적 훈련, 이것을 심각하게 여기는 장로들과 다른 구성원들의 빈틈없는 돌봄 아래에 있을 필요가 있었기 때문에 내 가족들을 이 교회로 옮겼습니다. 나는 내 아이들이, 물론 그들은 지금은 다 아주보잘 것 없지만 만약 그들이 참되게 회심하거나 또는 믿음의 고백을 한 다음에라도 빗나간다면, 그들의 영혼 구원을 위해 기꺼이 이 교회로 내 아이들이 다시 돌아오게 되리라 것을 나는 진실로 발견하게 되기를 원합니다, 어쩌면 여기에 있는 여러분의 일부는, 만약 어떤 목사가 여러분에게 다가가서 “솔직히 말씀드리는데, 내가 당신의 아이에 대해서 여태 기도해 왔는데, 걔들이 참된 회심에 이르지 못한 것 같아 두렵습니다.” 라고 말한다면 아마도 굉장히 화를 낼 것입니다. 그리고 어쩌면 “오, 하나님을 찬양합시다, 여기 하나님의 사람이 있습니다.” 라고 말하는 대신에, 여러분은 너무 화가 나서, 어쩌면 함께 그 목사를 쫓아낼 무리를 모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여덟 번째 고발: 분리(거룩함)를 추구함에 대한 침묵 거룩에 대한 진지한 가르침의 공백이 있습니다. 나의 친구 여러분, 거룩에 관한 일반적인 가르침에는 모두가 동의합니다. 거룩해집시다. 우리는 더 거룩해질 필요가 있습니다. 거룩함에 대한 집회를 합시다. 그러나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해 특정해지면, 그때가 모든 것이 혼란에 빠지는 때입니다.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함과,” 히브리서의 저자는 우리에게 말합니다, “거룩함을 좇으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 (히 12:14 – 역자 주) 이것을 믿는 사람이 있습니까? 여러분은 말합니다. “폴 형제, 나는 행위를 가르친다고 너무나 자주 비난받아왔습니다.” 내 말을 들어보십시오. 들어보세요. 다시 말하지만, 이것은 중생과 하나님의 섭리로 이끌어갑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들 정말로 회심케 하시면, 가르침과 축복과 권고와 훈련을 통해 그분은 그 사람 안에서 계속해서 일하심으로써 거룩케 하실 것입니다. 그분은 자신이 시작하신 일이 끝나는 것을 보실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그 저자가 이렇게 말하는 이유입니다, “성화가 없이는-거룩함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 왜냐구요? 만약 거룩함 가운데 점점 더 증강되는 생명의 성장성숙함이 보이지 않는다면, 하나님이 여러분의 삶 속에 일하시고 계시지 않다는 증거이기 때문이요, 또한 만약 여러분의 삶 속에 하나님이 일하시지 않고 있다면 그것은 여러분이 자녀가 아니기 때문일 것입니다. 야곱과 에서의 차이를 보십시오. “내가 야곱은 사랑하였고 에서는 미워하였다.” (롬 9:13 – 역자 주) 그러나 하나님은 두 사람 모두에게 그의 모든 약속들을 성취하셨습니다. 야곱은 축복받았습니다. 에서도 축복받았습니다. 어떻게 하나님께서 에서를 향한 자신의 심판과 진노와 야곱을 향한 자신의 사랑을 나타내셨습니까? 어떻게 하셨는지 말씀드리죠. 그는 에서는 자기 마음대로 살도록 내버려 두셨습니다. 훈련에 대한 일도 없고, 신령함에 대한 일도 없고,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야곱을 그의 삶 속에 거의 매일 죽을만큼 다루시며 치셨습니다. 우리를 사랑하는 아드님의 거룩함의 정도에 이르도록 이끄시기 위한 사랑의 훈련, 이것이 고난과 시련가운데 행하시는 하나님의 다루심과 바로잡으심입니다. 자 이것에 대해 아주 많은 가르침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만 말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제사로 드리라” 로마서 12장 1절입니다, 그리고 나서 2절로 갑시다. “너희 몸”. 왜 그는 몸이라고 말합니까? 모든 것을 영적으로만 해석함의 이 모든 초영성으로 경도됨을 피하기 위해서라고 생각합니다. “글쎄요, 나는 예수님께 내 마음을 드렸습니다, 당신은 겉표지만 보고서 책을 판단할 수는 없지 않나요?.” 글쎄요, 사실을 말하자면, 표지를 보고서도 책을 판단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표지를 보고 책을 판단할 수 없다고 말씀하신 적은 없습니다. 오히려 그분은 그럴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 열매로 나무를 아느니라.” (마 12:33 후반부 – 역자 주) 그리고 만약 여러분이 그분께 여러분의 마음을 주었다고 생각한다면, 그분은 여러분의 몸도 가지실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이유를 말씀드리겠습니다. 마음은, 친구 여러분, 무슨 피를 퍼 올리는 근육이 아니고 어느 시인의 상상 속에 있는 환상도 아닙니다. 그것은 당신의 존재의 가장 본질이며 핵심을 뜻합니다. 마음 있는 곳에 몸이 따라갑니다. 예수님께서 여러분 존재의 본질과 핵심을 가졌는데 당신의 몸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말하지 마십시오. 그런 일는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합니까? 우리는 성경말씀을 끊임없이 읽고 묵상하고 기도하며 마음에 담아 새기며 나가야 합니다, 뭐, 율법적으로요? 아닙니다. 추론을 이끌어 내면서요? 아닙니다. 단지 생생한 하나님의 얼굴과 행하시는 길-성품-을 구함으로써 성경의 계명들 위에 굳게 서는 것입니다. 무엇에 관해서입니까? 나는 청교도들이 말한 모든 것에 동의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나는 청교도들을 사랑합니다. 내가 그들을 사랑하는 이유 중 하나는, 나는 그들이 그들 삶의 모든 것들을 예수 그리스도의 주되심 아래로 가져 오려는 정직한 시도를 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마음 때문에, 그들이 ‘성경에 따르면 내가 무엇에 대해 생각해야 할까’에 관해 800장짜리 책들을 썼기 때문에. 성경에 따르면 무엇을 내 마음 속에 들여오지 말아야 할 것인가? 내 눈은 어떻게 할 것인가? 이 귀로는 무엇이 들어가야 하며, 무엇이 들어가지 말아야 하는 것인가? 혀는 어떻게 다스려져야 하는가? 내 삶의 방향은 무엇이어야 하는가? 그리고 나는 어쩌면 여러분을 두려움에 압도되어 숨막혀 죽게 하려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옷을 입는 것이 맞는 걸까요? 이제 이 부분에서 나는 신중하려고 합니다. 나는 추론을 끌어내거나 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나의 친구 여러분, 내 아내는 이것에 대해 이런 식으로 이야기 합니다. 만약 당신의 옷차림이 그리스도의 영광이 솟아나오는 당신의 얼굴을 위한 틀이라면, 그것은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러나 만약 당신의 옷차림이 당신의 육신을 위한 틀이라면, 그것은 감각적이고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미워하십니다. 충분히 말했나요? 지금 내가 거룩에 관해 모든 것을 다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거룩이 단지 외적인 표현만은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는 성령님의 내적인 역사를 말하면서도, 외적으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고 말하기 위한 변명으로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일부 젊은 여러분들, 여러분은 하나님의 성령이 여러분에게 충만하고 여러분 안에서 일하시기를 아마도 나보다 더 부르짖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분을 너무나 근심하게 만들어서 그분이 당신으로부터 멀리 떠나시게 하는 데는 오직 30분의 텔레비전 밖에 필요하지 않습니다. 99% 순수한 물에 1%의 하수도 물은 나는 마시지 않을 것입니다. 아홉 번째 고발. 심리학과 사회학이 가정에 관한 성경말씀을 대체함. 이것은 가정을 꾸린지 얼마 되지 않은 나이든 사람으로서의 저에게 아주 중요합니다. 나는 30세가 되어서야 결혼을 했습니다. 내 아내는 처음 8년 동안 약간의 뇌종양 같은 것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아기를 가질 수 없었는데, 오,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아기가 태어났고, 그 다음에 또 하나가 태어났고, 그 다음에 또 하나가 태어났는데, 그 다음에는, 누가 알겠습니다? 심리학과 사회학이 가정에 관한 성경말씀을 대체하였습니다. 친애하는 친구 여러분, 목사님들, 지도자들은 이것에 대해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의 교회는, 더 잘 말하자면, 우리의 주일 아침 예배는 너무 겉치레 같습니다. 아름다운 예배-깔끔한 설교-감동된 것 처럼 보이는 회중들.. 그러나, 그것이 참교회된 증거는 아닙니다. 증거가 무엇인지 말씀드리죠. 그리스도안에 산 믿음으로 굳게 서 있는 가정, 결혼, 가족입니다. 사사기 17:6. “그 때에는 이스라엘에 왕이 없었으므로 사람마다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나는 사람들과 대화하면서, 나는 대화하는 모든 종류의 사람들 가운데서, 독실한 아이들을 길러낸 독실한 사람을 찾고, 가서 그 사람에게 달라붙고 싶어합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에 내가 발견하게 되는 것들은요. 내가 교회에서 대화하게 되는 사람들은 모두, 아줌마들이나 하는 허탄한 이야기들과 사회학과 이것저것과 다른 모든 것들과 자기들이 보기에 좋은 것들뿐이고, 한 구절의 성경 구절도 제게 중심으로부터 주지 못합니다. 그러나 가끔씩 나는 자신의 가정을 성경말씀대로 꾸려 나가려는 남자와 여자를 찾게 되는데, 그 차이는 압도적입니다. 나는 비행기 안에 있을 때 이렇게 하는 것을 아주 좋아합니다. 내 옆자리에 사람들이 앉을 때 그 사람에게 인사마누면, 그들은 이윽고 “무슨 일 하세요?” 라고 묻습니다. 나는, “아, 나는 남편이예요.” 라고 합니다. 그들은, “아, 그 밖에 또 무엇을 하세요?” 라고 묻지요. “아, 나는 아버지예요.” “그 외에는 무엇을 하세요? “음, 시간이 남으면 설교 조금 합니다.” 사람이 전 세계를 얻어도 자신의 가정을 잃으면 무슨 소용입니까? 그것을 그냥 이런 식으로 표현하겠습니다. 무엇에 근거하여 당신의 자녀들을 키우고 있으며 당신의 아내를 사랑하고 있습니까? 무엇을 바탕으로요? 지금 당장 성경말씀으로 가서 말씀들을 끄집어내어 어떻게 당신의 가정이 그 말씀에 바탕을 두고 있는지 나에게 보여주지 못한다면, 당신이 심리학과, 사회학과, 일시적 기분과, 이 시대의 거짓말들의 포로라는 것을 나는 보증할 수 있습니다. 보십시오, 나나 당신은 아무런 권리나 권위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서는 말이죠. 창세기 18:19을 봅시다. “내가 그로 그 자식과 권속에게 명하여 여호와의 도를 지켜 의와 공도를 행하게 하려고 그를 택하였나니 이는 나 여호와가 아브라함에게 대하여 말한 일을 이루려 함이니라.” 얼마나 아름다운 말씀입니까! 그리고 들으십시오. 로마서 12장 1절과 2절, 아니 2절은 하나님의 뜻은 완벽하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만약 당신이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나는 나의 사역을 위해서 내 가정을 희생하고 있습니다.” 라는 생각을 가지게 된다면, 내가 말하겠는데, 당신은 뻔뻔스러운 거짓말쟁이 입니다. 당신은 당신이 세우려고 하는 작은 왕국을 위해서 당신의 가정을 희생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뜻은 완벽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사역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기 위해서 나의 가정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위반할 필요가 없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사역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은 당신이 오직 하나님말씀에 순종하기를 갈망하십니다. 당신이 순종하기를. 여러분에게 두 가지만 예를 드리죠. 이것은 한때 누가 나에게 이렇게 물어보던 때와 같습니다. “폴 형제, 당신은 전도에 반대하십니까?” 나는 대답했습니다.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합니다. 나는 성경적인 전도는 반대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나는 당신이나 대부분이 보통 하고 있는 방식에는 반대합니다.” “당신은 주일학교와 중고등부에 반대하십니까?”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합니다.” 내가 여러분께 무언가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자, 여러분 중 일부에게는 내가 충분치 않을 것이고, 다른 일부에게는 내가 너무 지나치다고 생각하실 수도 있을 것입니다. 나는 우리에게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지적하기 위해서 이 두 가지만 사용하기 원합니다. 주일학교입니다. 당신이 무슨 교파에 속했든 간에, 만일 일종의 조직적인 교파에 속해 있다면, 당신의 교파가 주일학교 교재와, 어떻게 주일학교를 가르칠 것인지 선생들을 가르치는 집회와, 주일학교를 성장시키기 위해 책에 있는 모든 것을 하는데 수십억을 쓴다는 것을 보증할 수 있습니다. 나는 그것이 사실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께 묻겠습니다. 당신의 교파가 얼마나 많은 돈과 얼마나 많은 집회와 노동력을 아버지들이 자기 자녀들을 가르치도록 가르치는데 쓰고 있습니까? 이제 아시겠지요, 안 그렇습니까? 하나님은 두 번째 계획이 없으십니다. 그분은 첫 번째 계획만 있으십니다. 여러분이 첫 번째 계획을 피해가면 두 번째 계획은 효과가 없을 것입니다. 지금 나는 아이들이 그룹으로 모여서 교리문답을 받거나 가르침을 받거나 하지 말아야 한다는 말이 아닙니다. 그러나 만약 그것이 가정에서의 아버지의 사역을 대체한다는 암시를 주기 시작한다면, 그것들을 산산조각 내 버려야 합니다. 내가 하는 말을 이해하겠습니까? 단지 그 조그만 경우 하나를 보십시오. 모든 것을 주일학교를 위해서, 모든 것을 주일학교를 위해서 하고 있지만 이 나라 전체에서, 사람들에게 어떻게 그들의 자녀를 가르칠지를 가르치기 위한 집회는 거의 없습니다. 그리고 주일학교 교사들이 여러분의 아이를 훈련시킬 권위가 없기 때문에 대부분 주일학교는 오락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리고 만약 그들에게 권위가 있다 해도 그들은 훈련의 가치를 믿지 않기 때문에, 그렇게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것은 단지 하나의 작은 예일 뿐입니다. 중고등부를 봅시다. “글쎄요, 청소년들은 함께 할 필요가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그들은 모일 필요가 있습니다.” 좋습니다, 자, 봅시다. 잠언 13:20. “지혜로운 자와 동행하면 지혜를 얻고 미련한 자와 사귀면 해를 받느니라.” 누가 청소년들이 함께 있어야 한다고 했습니까? 누가 그렇게 말했나요? 누가 그렇게 말했는지 말씀드리죠. 1960년대의 심리학자들과 세대차이입니다. 청소년들은, 천진난만한 바보들처럼 행동하는 것을 멈추고 어른스럽게 되고, 파괴로 인도하는 어리석음을 버릴 수 있도록, 어른들과 함께 해야 합니다. 나는 지금 청소년들을 함께 모으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한다면 그들의 모든 부모들도 거기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말합니다. “그럼, 우리 교회에 나오는 부모 잃은 청소년들은 어떻게 합니까?” 글쎄요, 그들이 지금 무엇을 보고 있나요? 부모 잃은 청소년들은 교회의 기독교 청소년들에게로 와서 자기 자신의 집에서 보는 것과 거의 똑같은 것을 봅니다, 부모도 없고, 애들이 애들을 가르치고. 아니면 머리에 무스를 바른 약간 더 나이든 아이가 당신의 애들을 가르칩니다. 그러나 만약 부모 잃은 아이가 당신의 교회로 와서 거기서 아이들을 본다면, 그들의 부모와 총체적으로 사랑의 놀라운 관계를 가지는 청소년들을 본다면 어떨까요? 그들은 “와, 이런 것은 전에는 본적이 없다. 그의 아빠 좀 봐라. 그는… 그는 그의 아빠를 사랑하는구나. 이것 좀 봐라… 그러니까 이게 기독교 정신이라는 건가?” 라고 말할 것입니다. 보십시오, 친구 여러분, 나는 의사는 아닙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이 나에게 이마에 피를 흘리면서 와서 “폴 형제, 나는 다 다녀봤습니다. 아무도 나의 문제를 진단해 주지 못합니다.” 라고 말한다면, 나는 이렇게 말합니다. “글쎄요, 나는 의사는 아니지만, 당신을 24시간 동안 따라다녀 보겠습니다.” 그리고 시계가 정각이 될 때마다, 만약 한시가 되면 그가 벽돌로 자기 이마를 한번 치고, 두시가 되면 벽돌로 자기 이마를 두 번 치고, 열두시가 되면 벽돌로 자기를 열두 번 치는 것을 내가 알아냈다고 합시다. 24시간 동안 기록을 하면서 조심스럽고 주의 깊게 이것을 관찰한 후에, 나는 그에게 가서 말합니다. “저기요, 내가 당신의 문제를 알아냈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의사는 아니지만, 당신의 문제를 알아냈다고 생각합니다.” 교회여, 우리가 그 정도로 측은합니다. 왜 우리 아이들이 그런 일을 하느냐구요? 왜 모든 것이…? 그것은 한 늙은 성도분과 같은데, 그에게 누가 한번은 물어봤습니다. 그는 그의 10대 아들이 젊은 아가씨와 함께 어떤 조용한 장소에 가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는데, 그들이 물었습니다. “당신은 당신의 아들을 못 믿습니까?” 그는 말했습니다. “아니요, 나는 내 아들을 못 믿습니다. 왜 그런 생각을 하셨나요? 나는 그의 아빠도 못 믿습니다. 나는 그의 아버지도 그의 아내가 아닌 다른 여자와 함께 단둘이 있게 놔두지 않을 겁니다. 내가 아이보다 훨씬 더 잃을 수 있는 것이 많은 데도요. 나는 넘치는 호르몬이 있는 10대보다 나의 의지력을 더 잘 통제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무엇이… 무엇이 내가 그렇게 할 거라는 생각을 하게 합니까? 우리는 성경적 원칙들을 하나하나 위반합니다. 그리고는 왜 모든 것이 엉망인지 의아해 합니다. 마지막으로, 믿음의 말씀과 좋은 교훈으로 양육받고 훈련함으로써 경건에 이르는 연습함의 결여 나와 함께 정말 빨리 넘어갑시다. 내가 정말 빨리라고 얘기할 때 무슨 비유 같은걸 말하고 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아실 겁니다. 디모데전서로 갑시다. 나는 두어 달 전에 우리의 –그것을 뭐라고 불러야 되는지 더 이상 모르겠는데, 공화정, 민주주의, 국가, 나는 더 이상 모르겠습니다, 사회주의적 상태 – 그것에 대한 그 모든 끔찍한 일에 대해 듣고 있었고, 거기에 앉아서 듣고 있을 때 나는 너무나 마음에 부담이 되었고, 그래서 하나님께 이렇게 말했습니다. “오, 하나님,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습니까? 나는 지금 당장이라도, 주님, 진심으로 내 안에 있는 모든 걸 걸고, 불속에라도 뛰어들겠습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돌진하는 코뿔소가 있다면 내가 그 앞으로 뛰어들겠습니다. 다만 내게 무엇을 해야 하는지 말씀해 주십시오. 내가 워싱턴에 가서 그냥 백악관 앞에 서서 그들이 나를 감옥에 집어넣을 때까지 설교를 하기 원하십니까? 나는 그리스도인들에게와 교회와 이 모든 것에서만 설교하는 것에 지쳤습니다. 하나님, 제발… 이 나라가 지옥으로 가고 있습니다. 제발 나를 던져주십시오. 내가 무엇을 하기 원하십니까? 나를 그들에게 던지시옵소서.” 4장 1절입니다. “그러나 성령이 밝히 말씀하시기를 후일에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디모데전서 4장1절입니다, “미혹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따르리라 하셨으니” 자, 그는 기본적으로 젊은 디모데에게, 문화 속에 모든 지옥이 풀려나서 모든 것이 그냥 미친 듯이 돌아가고 사람들은 짐승과 같이 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나는 몇 달 전에 콘래드 움베웨이와 함께 있었고 그가 설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사람들은 그를 아프리카의 스펄젼이라고 부르는데, 그 말이 맞습니다. 만약 그의 설교를 들을 기회가 있으면, 들으십시오. 그는 세상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설교자들 중 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프리카에서 우리는 더 이상 짐승들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우리는 짐승들로부터 도망치지 않는다. 우리는 사람을 두려워하고 사람으로부터 도망친다. 그는 물론 타락에 관해서 말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여기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세상이 곧 분리될 것이다, 디모데야.” 이제 그가 또 무슨 말을 합니까? 6절입니다. 그리고 바로 여기 이 본문이 나에게 그냥 풀어지기 시작했습니다. 바울, 예. 세상은 정신을 잃었습니다. 모든 일이 일어날 것입니다. 이것은 섭리 아래에 있습니다. 그러나 내 말을 들으십시오. 모든 지옥이 풀려나는 가운데에서, 배교의 가운데에서, 핍박의 가운데에서 여러분의 반응은 이러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해야 할 일은 이것입니다. 계속해서 믿음의 말씀으로 양육을 받으십시오. 우리는 언제나 나가서 무엇인가 하고 싶어 합니다. 우리는 무엇인가 바로잡고 싶어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연단된, 날선, 검과 같은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무엇보다도 아들아, 믿음의 말씀과 네가 따르는 좋은 교훈으로 양육을 받으라.” 이 “네가 따르는” 은 매우 중요합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머리로만 동의하는 단순한 지적인 성경공부가 결코, 결코, 하나님께서 자신의 사람들을 위해 가지고 계신 목적을 성취하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그것에 순종해야 합니다. 그들은 따르기 시작해야 합니다. 당신은 당신이 배우는 그 교훈을 따를 때까지는 교훈을 제대로 배울 수 없습니다. 그런 다음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버리고” 친구 여러분, 여러분에게 할 말이 있습니다. 이 모든 눈에 보이는 교회 일들, 많은 교회 성장에 대한 일들, 모든 문화에 대한 민감함, 성경말씀 아닌 것에 대한 민감함을 창밖으로 던져버리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것들은 단지 한 떼의 어린 아이들이 그들의 삶에 하나님의 능력이 없이 교회 놀이를 하기 원하는 것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나는 미 말을 고수하기 원합니다. 그것들은 진실로 다윗이 사울의 갑옷에 맞추려고 하는 것보다도 못합니다. 갖다 버리십시오. 육신의 팔을 더 신뢰하면 할수록, 당신은 하나님의 능력을 더욱 더 적게 보게 될 것입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경건에 이르도록 네 자신을 연단하라.” 하나님의 사람, 당신은 부흥을 원합니다. 나도 그렇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전신갑주가 필요합니다. 만약 능력의 검들이, 만약 강력한 불타는 파이프와 검들과 무기들이 싸움을 위해 하늘로부터 우리에게 내려진다면, 우리는 그러한 무기들을 잘 쓰고 잘 다루며, 잘 연단된 인격으로 그것들을 가지고 싸울 수 있는 잘 조정된 사람이어야 합니다. 우리는 신령함을 위해 우리 자신을 훈련해야 합니다. 젊은이여, 자신이 기도하도록 훈련하십시오. 여러분이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여러번 계속해서 반복해서 체계적으로 읽는 것을 훈련하십시오. 말하는 것에 대해 자신을 훈련하십시오. 여러분이 교제하는 사람들에 대해 자신을 훈련하십시오. 언제 잠자리에 들고 언제 일어날지에 대해 자신을 훈련하십시오. 이것은 전쟁입니다. 자신을 훈련하십시오. 젊은이 여러분, 내가 여러분에게 이것은 말할 수 있습니다. 당신이 무슨 예외가 아니라면, 여러분이 태어난 그 시대에 태어났기 때문에, 만약 당신이 30세 미만, 아니 40세 미만이라면, 아마도 당신은 한 번도 일할 수 있었던 적이 없었기 때문에 훈련이 부족할 것입니다. 당신은 한 번도 먹을 것을 위해서 일할 필요가 없었고, 당신의 아버지가 당신이 뼈가 빠지도록 일하게 만든 적이 없었을 것입니다. 많은 것을 성취했고 하나님께 사용되었던 사람들은 사역에서 노력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것은 참으로 힘든 일이며 그 사역은 당신의 모든 것을 희생하게 할 것입니다. 그러나 당신이 늙은 사람이 되었을 때, 당신의 육체는 쇠잔하여 있겠지만 속사람은 하나님의 일에 쓰임받을 수 있도록 강해져 있을 것입니다. 신령함을 위해서 당신을 훈련하십시오. “육체의 연단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 오, 나의 친애하는 친구들이여, 지금 가장 좋은 삶을 사는 게 무슨 소용입니까? 영원이 있는데요. 여러분이 영광의 하나님 앞의 화강석 홀에 서는 날, 왕들과 이 세상의 가장 위대한 사람들이 나누어지고 구분되고 따로 모아져서, 어떤 사람들은 영원한 지옥으로 던져지고 어떤 사람들은 영원히 살아있는 영원한 영광으로 초대됩니다. 올림픽 참가자들이 얼마나 위엄이 있습니까만, 잠시 동안 일뿐입니다. 그들은 네 살이나 다섯 살 때부터 훈련을 시작합니다. 그들은 22살이 될 때까지 훈련 말고는 아무것도 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걸어놓을 메달을 따려고 9초 동안의 경기를 하고, 그것으로 끝입니다. 당신은 영원한 것들을 위해서 똑같은 것을 줄 수 없습니까? 일부 가장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들은 그들의 육신에 큰 제약이 있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의 능력에 제약이 너무나 커서 그들은 한가지에만 집중해야 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섬김=사역이었습니다. “육체의 연단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이것은 모든 수용의 가치가 있는 믿을만한 진술입니다. “이를 위하여 우리가 수고하고 힘쓰는 것은 우리 소망을 살아 계신 하나님께 둠이니” (10절 – 역자 주) 이것은 소망 없이 단지 산산조각나기 위하여 우리가 아무것도 아닌 것에 쓸데없이 우리의 생명을 주는 무슨 순교와 같은 것이 아닙니다.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면 하나님은 우리를 명예롭게 하실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소망을 거기에 두고 있고, 그것이 우리에게 힘을 줍니다, 힘을. 오, 이 삶은 수증기입니다. 나는 47살인데, 그제는 21살이었습니다. 그것이 다 어디로 갔습니까? 이것은 수증기입니까? 여러분이 힘이 있을 동안에 설교하십시오. 나는 그분의 섭리 안에서 젊을 때 내 삶을 안데스 산지와 페루의 정글에서 내가 지금은 더 이상 할 힘이 없는 일을 하면서 보냈다는 것에 대해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당신이 아직 젊을 때, 아직 당신에게 힘이 있을 때, 당신의 모든 힘을 다해 노력하십시오. 여러분의 그 모든 바보 같은 비디오 게임들을 여러분의 발로 밟아 부숴 버리십시오. 텔레비전을 창문 밖으로 던져 버리십시오. 당신은 그런 것들보다 더 위대한 일들을 위해서 만들어졌습니다. 만약 당신이 왕의 아들이라면 이 세상의 아무것도 당신을 만족시킬 수 없습니다, 아무것도요. “너는 이것들을 명하고 가르치라.” (11절 – 역자 주) 자, 여기에는 아주 많은 것이 있습니다. 그러나 15절을 보십시오. “이 모든 일에 전심전력하여 너의 성숙함을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게 하라.” 만일 나무 식탁에 내 아이가 한 컵의 물을 쏟았다고 합시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정해 놓으신 자연의 법칙에 따라, 웅덩이로 보일 정도로 물이 식탁에 좀 쌓였다고 합시다. 당신은 지나가면서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식탁에 물이 엎질러졌네.” 그것은 모두에게 명백합니다. 그러나 내가 와서 수건을 가지고 그 물 웅덩이 위에 덮었다가 그것을 집어 올립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더 이상 물이 없네, 어디 있지?” 하고 말할 것입니다. 그 물은 수건에 흡수되었습니다. 사람들이여, 여러분은 신령함과 연단의 일들에 흡수되어야 합니다. 여러분, 내가 간청합니다. 내 말을 들으십시오. 이것은 정말 중요합니다. 여러분은 심부름꾼이 아닙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날들을 속세적 교인들의 콧물이나 닦으면서 보내서는 안 됩니다. 당신의 공부방으로 들어가십시오. 쭉 들이키십시오.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 너무나 흡수되어서 사람들이 “그가 어디에 있지? 그는 동네에 중요한 사람이었는데, 그는 모든 사람에게 친구가 되어주고, 아주 품위 있는 사람이었는데, 그 사람 어디에 있지?” 라고 말하도록 하십시오. 그는 이런 일들에 흡수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지극히 높으신 분의 사역자입니다. 우리에게는 별개의 것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멀리 있는 것을 향해 멀리 바라보는 눈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사람들을 위해서 할 수 있는 가장 위대한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것들에 흡수된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어서 우리가 입을 열 때 하나님의 말씀이 나오게 하는 것입니다. 내가 나가는 교회에는 제프 노블렛이 주 설교 목사입니다. 그는 언제나 공부에 전념해 왔습니다. 그러나 내가 거기에 갔을 때 나는 그에게 말했고 다른 지도자들에게도 말했습니다. 그리고 누가 나에게 무엇을 물어볼 때마다 나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제발 이거 하나만 해 주십시오. 노블렛 형제로부터 우리가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짐을 덜어줍시다. 그래서 그가 그 서재에서 하나님과 함께 살도록 내버려 둡시다. 나는 여기에 애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사람이 나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은 자신이 승인받은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공부하고, 성령의 능력으로 그 강단에 나와서 바로잡고 꾸짖고 위대한 약속들과 경고들을 주면서 ‘그러므로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하고 선포하는 것입니다. 제발 나를 위해서 그렇게 해 주십시오.” 목사님, 제발 당신의 사람들을 위해서 그렇게 하십시오. 왜냐하면 그가 이렇게 말하기 때문입니다, “네가 네 자신과 가르침을 살펴 이 일을 계속하라 이것을 행함으로 네 자신과 네게 듣는 자를 구원하리라.” (16절 – 역자 주) 나는… 일단 이것을 끝냅시다. 이 구절은 오늘날 복음주의 기독교 공동체에서 거의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얼마나 많은 목사들과 설교자들이 이것을 심각하게 받아들여서 ‘나는 나 자신을 자세히 살펴서 나 자신과 나에게 듣는 자들을 구원할 필요가 있어.’ 라고 여긴다고 생각하십니까? 나는 질문이 하나 있습니다, 목사님. 당신이 믿음 안에 있는지, 당신이 정말로 그분을 알고 있는지 보기 위해 당신 자신의 삶을 마지막으로 시험하며 살펴본 것이 언제입니까? 보십시오, 나의 친애하는 친구 여러분, 내가 나 자신이 회심했는지를 연구할 때, 내가 다른 사람들과 그것에 대해 논할 때, 내가 20년간의 나의 그리스도와의 순례를 돌아볼 때, 나는 커다란 확신이 있습니다. 나는 그분을 알게 된 것에 대한 커다란 확신이 있습니다. 그러나 만약 지금이라도 내가 믿음에서 떠나가서 멀리 가고, 이단과 세상적인 방향으로 계속해서 가고 있다면, 그것은 내가 그분을 결코 알지 못했었고 그 모든 것이 육신의 일이었다는 것에 대한 가장 큰 증거일수 있습니다. 내가 하는 말이 여러분에게 놀랍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오 세상에, 나는 그런 말은 들어본 적이 없는데. 이건 모두가 다 …” 라고 말합니다. 천로역정을 읽어보십시오. “네가 네 자신과 가르침을 살펴 이 일을 계속하라 이것을 행함으로 네 자신과 네게 듣는 자를 구원하리라.” 하나님께서 그의 교회를 축복하시기를!
***사사시대 요약 http://blog.naver.com/eunsilguaus?Redirect=Log&logNo=1018932596 --편의상 요단서쪽의 에브라임과 바로 북쪽 므낫세반지파(마길)를 중부지역으로 삼고 구획 나눔. ;;; <12지파 지역도> http://blog.naver.com/agapeuni?Redirect=Log&logNo=60113179211 @남-므낫세반지파(마길)와 그 바로 밑에 에브라임을 기준으로 해서, 그 남쪽에 베냐민, 그 밑에 유다가 위치(유다 지역은 단 및 베냐민과 북쪽 경계선 이루고 사해 서부지역 대부분을 포함, 후에 시므온지파 영역까지 흡수), @동(요단 동편)- 최북단에 므낫세(길르앗) 그 아래 (요단강 동부 강변 거의 전 지역)갓, 그 아래(사해 동부지역의 상 1/2영역) 르우벤, @서-에브라임서쪽에서부터 서남쪽 그리고 남쪽 일부까지, 곧 에브라임과 베냐민서쪽에 ㄴ 모양으로 단지파가 위치, @북- 요단서쪽의 최북단에는 아셀(지중해 인접) 납달리(갈릴리호수서안과 그 북쪽지역-헬몬산까지) 단(이주한 일부세력은 메롬호수북쪽의 헬몬산 동남쪽 인근 라이스 지역 곧, 납달리의 북동쪽, 므낫세반지파의 북서쪽 사이 지역에 터전 잡음), 납달리 밑에는 잇사갈이 위치(잇사갈의 동쪽경계는 요단강변의 상1/3에 해당). 스불론은 동북쪽은 아셀, 서북은 납달리, 동쪽은 잇사갈, 남쪽은 므낫세로 경계를 이루는 내륙에 위치(나중에 아셀 영토를 지나 서쪽의 지중해 해변쪽으로 영토를 확장 진출하여 무역업 발달) *남부지역전쟁 : <8년간 메소보다미아왕 구산 리사다임 지배>==>유다의 옷니엘, 40년간 다스림, <18년간 모압왕 에글론 지배-암몬 아말렉 연합 동원>==>베냐민의 에훗, 80년간 다스림 ---아낫의 아들 사사 삼갈 : 아마도 이방인 출신(?) 목자(?), 에훗 생존 말년에 블레셋인600명을 소를 모는 막대기로 죽여 이스라엘 구원, 곧 사망(?). *북부지역전쟁 : <20년간 가나안 하솔-납달리지파지역-왕 야빈 지배>==>에브라임 출신 여사사 드보라 : 납달리지파의 바락과 함께 나아가 야빈/시스라와 전쟁 치름-스불론/납달리/잇사갈의 군대, 옛아말렉지역(에브라임산지와 골짜기)에 거주하는 에브라임족속의 군대, 베냐민 족속(개인 자격으로 참여)들, 므낫세(마길-요단서편)의 군대 거느린 수장들의 연합... 르우벤-갓-길르앗(동편 므낫세), 단, 아셀은 전쟁에 불참 : 다볼산, 므깃도물가, 다아낙/기손강 메롬물가에서 시스라와 전쟁, 40년간 평온, *중부지역전쟁 : <7년간 미디안족속 방백들 오렙 스엡, 왕들 세바 살문나 침략-아말렉과 동방사람들과 연합>==>므낫세지파 아비에셀사람 기드온, 40년간 다스림(+그의 아들 아비멜렉 3년간 다스림), ---잇사갈의 돌라 23년간 다스림, ---(길르앗)므낫세의 야일 22년간 다스림, *동부지역전쟁 : <18년간 블레셋과 암몬족속 침략>==>(길르앗)므낫세의 입다 6년간 다스림, *북부지역 : ---스불론땅 베들레헴 사람 입산의 7년간 다스림, ---스불론의 엘론의 10년간 다스림, ---에브라임 바라돈 사람 압돈 8년간 다스림, *서부지역전쟁 : <40년간 블레셋 침략>==>단의 삼손 20년간 다스림, ------사사들은 이스라엘12지파들의 위기 상태에서 여호와의 급박한 부르심과 인정하심 아래에서(길르앗 입다의 경우도 역시 하나님의 인정하심이 있었다고 보아야 함) 일시적 구원자-통치자로서 한정된 역할을 하였으나 여호와께서는 사사들과는 <족장들-모세-여호수아, 하나님께 순종하며 선정 베푼 몇몇 왕들의 경우에서처럼 이스라엘 위에 당신의 권위를 대행할 지도자로 세우시기 위해> 적극적 언약은 어떠한 것도 세우신 적 없음에 유의할 것. 그 까닭은 하나님의 계명에 이미 반복적으로 불순종하는 이스라엘을 징계-시험-연단하는 암울한 기간이었기 때문임. ------사사기의 배경이 된 시기는 여호수아 사후부터사울왕 즉위까지의 BC1390 - BC1050의 총350년 동안이며, 외부의 침략압제기간은 111년이요, 사사들을 통한 여호와의 구원과 돌보심으로 인해 외침에서 벗어난 시기는 299년으로서 사사들(자기 관할 지역과 그 주변지역에서만 인정받았고 심지어 다른지파와 싸우기도 함) 재임기간 중 서로 겹치는 기간이 있음..그래서 그 기간에 일어난 사건들이 중심이 된다.(사사이면서 선지자-제사장의 특별한 역할까지 3중 역할을 동시에 담당한 사무엘은 사사시대의 마지막사사이긴 하지만 하나님의 마음 알아드린 전국구 사사로 특별한 경우이기에 따로 분류하여 전통적 의미의 사사들에서 제외시키고 있음, 사사기에서는 (스스로 사사가 되었고 왕정건설 시도헸던 아비멜렉을 포함하여)사사의 수를 13명(사무엘서의 사무엘까지 포함하면 사사시대의 사사는 실제로는 총14명)으로 말하고 있지만, 전승적 측면에서는 아비멜렉은 하나님께서 사사로 인정하심도 없었고 스스로 왕정건설을 시도하였기에 제외하여 총12명의 사사만을 인정하며, 이들중에서 4대 사사는-기드온, 바락(여사사-선지자 드보라 대신), 삼손, 입다를 지칭한다) **사사시대 성경지도 http://blog.naver.com/agapeuni?Redirect=Log&logNo=60113179211 **사사시대 연대표 http://www.subkorea.com/bible/study/bibles/history/history05.html **거듭난 그리스도인이 경계하고 버려야할 것들 <골3:5-9> : 옛사람과 그 행실을 벗어버림(땅에 있는 지체 죽임 = 모든 악과 그 행실을 끊음) ---더불어 새사람을 입음 (그리스도와의 온전한 연합을 통해 자기를 창조하신 자의 형상-의와 거룩-을 따라 살아감 위한 영적 통찰과 하나님을 참되게 경험하여 알며 변화됨의 하나님 아는 지식에 이르도록 새롭게 하심 추구 -- 피차간 원망(혐의)이 있을 때 그리스도께서 하셨듯이, 겸손, 온유, 오래참음을 적용하여 <용납>하며, 긍휼과 자비를 적용하여 서로 <용서>할 것. 이 위에 사랑의 매는 띠를 더하여 하나됨을 이루고 그리스도의 평강이 마음을 주장하게 할 것 ===사적 욕망 5가지 : 음행과 탐심, *이중에서 음행은<**음란(성적 방종 : 불법적 성행위) **부정(일체의 불결한 성적 언행) **사욕(오도된 성적 열정) **악한 정욕(합당치 않은 성적 충동)>을 , **탐심은 세상으로부터 온, 우상숭배인<육신의 정욕-안목의 정욕-이생의 자랑>을 지칭. ===공적 죄악 6가지: **분(미움으로 성내는 마음과 격노(**노--성내는 마음의 외부적 표출 : 헬라어원본에는 있음)), **악의(남을 해하려는 독한 마음인 근본적 적대감으로서 훼방, 비방, 속임의 원인), **훼방(중상모략-하나님과 사람), **부끄러운 말(모든 독설, 비방과 음담패설), **거짓말(속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