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님을 기념하는 만찬(고전 11:24-25) -- 고린도전서 라이프 스타디 메시지 54, 55, 56 주님의 만찬을 다룸(Ⅰ) 고린도전서 10장에서 바울은 주님의 상에 대하여 말한다. 10장 16절에서 그는 『우리가 축복하는바 축복의 잔은 그리스도의 피에 참여함이 아니며 우리가 떼는 떡은 그리스도의 몸에 참여함이 아니냐?』고 묻는다. 21절에서 그는 계속하여 『너희가 주의 잔과 귀신의 잔을 겸하여 마시지 못하고 주의 상과 귀신의 상에 겸하여 참예치 못하리라』고 말한다. 바울은 이미 주님의 상에 대하여 말하기를 시작했으면서 왜 계속해서 직접 주님의 만찬에 대하여 말하지 않는가? 왜 그는 주의 상에 대해 말한 후에 또한 주님의 만찬에 대해 말하기 전에 머리 됨이나 머리 수건 쓰는 문제를 다루는가? 이것은 논리적이거나 합당해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이렇게 중단한 데는 이유가 있다. 바울은 이 서신의 처음 열 장에서 그리스도인의 생활에 관계된 문제들을 다루고 하나님의 행정을 다루지 않는다. 그러나 11장에서 그는 하나님의 행정과 관계된 문제들을 다루기 시작한다. 거룩한 행정에 있어서 첫 번째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머리되심이다. 하나님의 머리되심이 존귀케 될 때마다 하나님의 행정에 관계된 모든 것들은 합당할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머리되심이 무시될 때 이 모든 문제들은 합당치 못할 것이다. 이것이 바로 바울이 계속해서 주의 만찬을 다루기 전에 머리됨의 문제를 다룬 이유이다. 주의 상(床)과 주의 만찬 주님을 기념함에 관하여 바울은 10장 21절에서 「주의 상」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며, 11장 20절에서는 「주의 만찬」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주의 상과 주의 만찬에는 중요한 차이가 있다. 우리는 이러한 용어들을 지나쳐 버려서는 안 된다. 그 대신 우리는 왜 바울이 10장에서는 주의 상을 말하고 11장에서는 주의 만찬을 말하는가를 물어 보아야 한다. 주의 상은 교통 안에서 주님에 대한 누림과 관계있다. 그러므로 주의 상의 의미는 참여를 위한 누림 곧 교통을 위한 누림이다. 우리가 주의 상을 대한다고 말할 때 이것은 우리가 그분의 교통 안에서 주를 누리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우리의 누림과 만족을 위한 것이다. 그러나 주의 만찬은 그분의 만족을 위한 것이요 그분을 기념하기 위한 것이다. 주의 상과 주의 만찬에는 상호관계가 있다. 주의 상은 우리의 누림을 위한 것이지만 주의 만찬은 그분의 누림을 위한 것이다. 때때로 우리는 『주여 우리는 당신의 상에 나와서 이 상에 참여합니다.』라고 말할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주님을 누리고 있다는 것을 가리킨다. 어떤 때에 우리는 『우리가 당신의 만찬을 가질 수 있음을 감사합니다.』라고 말할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그분의 누림과 만족을 위하여 주님을 기념하고 있음을 가리킨다. 물질적인 몸과 비밀한 몸 11 장 29절에서 바울은 「몸」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신약에서 이 몸은 성령 안에서 그리스도의 비밀한 몸을 암시한다. 그러나 바울이 주님의 만찬에 대하여 말하고 있는 이 부분에서의 몸은 또한 예수의 몸을 암시한다. 24절에서 바울은 주 예수의 말씀을 인용한다.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이것은 그의 물질적인 몸을 가리키는가 아니면 비밀한 몸을 가리키는가? 「너희를 위하는」이라는 말은 여기의 몸이 주님의 물질적인 몸을 암시하고 있음을 가리킨다. 그의 물질적인 몸은 우리를 위한 것인 반면에 그리스도의 비밀한 몸은 그분을 위한 것이다. 오늘날 비밀한 몸인 교회는 우리를 위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위한 것이다. 그러나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의 물질적인 몸은 우리를 위한 것이다. 그러므로 주님을 기념함에 있어서 우리가 참예하는 떡은 그분의 물질적인 몸을 상징한다. 고린도전서 11장 25절은 『식후에 또한 이와 같이 잔을 가지시고 가라사대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고 말한다. 여기서의 피는 틀림없이 물질적인 피를 말하는 것이지 비밀한 피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참예하는 잔 또한 주님을 기념하는 것이다. 11 장 24절에서의 몸이 예수의 물질적인 몸을 암시하지만 바울은 29절에서 비밀한 몸을 암시하는 「분변치 못하고」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어떤 이들은 아마 이 절에 있는 몸을 분변한다는 것이 단지 일반적인 음식과 예수의 물질적인 몸을 분변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따질지 모른다. 이 절에서 바울은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을 언급한다. 먹는 것은 물질적인 몸과 관계가 있고 마시는 것은 물질적인 피와 관계가 있다. 그러나 29절의 마지막에서 바울은 피와 몸을 분변치 못한다거나 몸과 피를 분변치 못하는 것에 대하여 말하지 않고 있다. 그 대신 그는 단지 몸을 분변치 못하는 것에 대하여 말한다. 그러므로 이 분변은 단지 예수의 물질적인 몸과 피를 일반적인 음식과 음료로부터 분변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여기서 몸을 분변한다는 의미는 무언가를 더 포함하고 있다. 예수의 물질적인 몸은 우리를 위한 구속을 성취하기 위하여 십자가위에서 드려졌다. 그러나 그 몸은 현재 하나님의 행정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오늘날 하나님의 행정은 온전히 그리고 전적으로 그리스도의 비밀한 몸과 관계있다. 그리스도의 비밀한 몸을 떠나서는 하나님에게 그의 행정을 수행할 길도 수단도 없으시다. 이것은 하나님의 행정이 그리스도의 비밀한 몸을 통하여 수행되어짐을 의미한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비밀한 몸으로서 땅 위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 우리는 분명히 구속의 성취를 위하여 일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구속은 주 예수님에 의해 영 단번에 성취되었기 때문이다. 구속은 십자가 위에서 예수의 물질적인 몸이 드려짐으로 완전히 성취되었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오늘 비밀의 몸을 가지고 계시며 이 몸은 하나님의 행정을 수행하기 위한 것이다. 우리가 주의 상에 나올 때 우리의 관심은 구속이나 거룩한 행정에 있지 않고 누림에 있다. 우리는 모두 교통 안에서 주님을 누리기 위하여 주의 상에 나와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행정에 대한 어떤 생각도 거의 갖지 않는다. 그러나 주의 만찬은 주님의 누림과 만족에 관계된다. 우리는 상(床)에서 우리의 누림을 주의할 뿐 아니라 또한 만찬에서 주님의 누림을 주의해야 한다. 우리는 상(床), 곧 잔치에서 우리의 누림을 위한 마음은 있지만 주님을 기념하는 마음은 그다지 없을 수 있다. 우리는 우리의 만족은 주의하지만 주님의 만족은 주의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주의 만찬에 관한 주님으로부터의 빛이 더 필요하다. 이것은 그의 상(床)을 둘러싼 우리의 집회를 진보시킬 것이다. 만찬은 그분의 기념과 누림과 만족을 위한 것이므로 우리는 주님을 찬양해야 한다. 우리는 우리의 만족을 위할 뿐 아니라 더더욱 그분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만족하시기 위한 것임을 깨달아야 한다. 만일 우리가 주님의 만찬에서 주 예수님이 만족하시기 원한다면 우리는 단지 그분을 기념할 뿐만 아니라 또한 그분에 의해 수행된 하나님의 경륜을 주의해야 한다. 오늘날 주님을 가장 만족시키는 것은 거룩한 경륜이다. 만일 우리가 거룩한 경륜을 주의하지 않으면서 그를 기념한다면 그분은 기쁘지 않으실 것이다. 만일 우리가 그를 기쁘시게 하고 만족케 하려면 우리는 『주여, 우리는 당신을 기념하며 당신에 의해 수행된 하나님의 행정을 위한 당신의 몸을 분변합니다. 우리가 당신을 기념할 때, 우리는 당신께서 하늘에서 행하고 계신 것을 잊지 않습니다. 당신은 하나님의 경륜을 수행하시기 위하여 하늘에 앉아 계십니다.』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그가 오실 때까지 10 장에서 바울은 그가 오실 때까지 주의 상에 참예함에 대하여 아무 것도 말하지 않는다. 그러나 11장 26절에서는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고 말한다. 주님의 오심은 그분의 행정을 위하여 하나님의 왕국을 가져올 것이다. 그의 첫 번째 오심은 우리의 구속을 위한 것이지만 그의 두 번째 오심은 하나님의 행정을 위한 것이다. 우리는 주의 상에 참예할 때 우리의 누림을 주의한다. 그러나 우리가 주의 만찬에 참예할 때 우리는 그분을 기념하고 하나님의 경륜을 주의한다. 주의 상은 우리의 누림을 위한 것이다. 그러나 주의 만찬은 그분의 누림과 만족을 위한 것이다. 더욱이 그분의 만족은 그분에 의해 수행된 하나님의 경륜에 근거한다. 당신은 주님을 최상으로 기념하기를 원하는가? 만일 그렇다면 당신은 이 땅에서 하나님의 경륜을 수행해 나가기 위한 수단인 비밀의 몸을 주의해야 한다. 우리는 그가 오실 때까지 이러한 방법으로 그분을 기념해야한다. 우리는 그가 다시 오실 때까지 그리고 이 땅에 그의 왕국을 가져오실 때까지 그의 행정을 수행하기 위하여 이것을 행한다. 하나님의 행정을 위하여 몸을 분변함 우리는 우리가 주의 상에 참예할 때 그를 누리고 주의 만찬을 먹을 때 그분을 기념하고 그분의 행정을 주의하므로 만족케 한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그러나 우리는 어떤 방법으로 이 행정을 주의하는가? 그것은 몸을 분변함으로서 이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몸을 분변하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모른다. 몸을 분변한다는 것은 첫째로 그리스도께서 오직 하나의 비밀의 몸을 갖고 계시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그리스도인들 가운데의 상황을 보라. 얼마나 많은 분열이 있는가! 각 교파와 단체가 자신의 떡을 가지고 있다. 어떤 이들은 심지어 만일 그들에 의하여 그들의 물로 침례 받지 않으면 그들의 떡에 참예함을 허락하지 못한다는 것을 주장하는 데까지 멀리 빗나갔다. 우리가 주의 만찬에 올 때 우리는 그 상위에 놓여진 떡이 그리스도의 유일한 비밀의 몸을 대표하는가를 결정하기 위하여 그 몸을 분변해야 한다. 이것은 극히 중요한 문제이다. 이 유일한 그리스도의 비밀의 몸은 하나님께서 그분의 행정을 수행하시는 수단이다. 하나님의 영원한 목적은 그분의 행정을 수행할 하나의 유기적인 몸이 되기 위하여 구원받고 구속되고 거듭난 한 무리의 사람을 소유하시는 것이다. 그러나 사탄의 간교한 술책은 이 몸을 여러 조각내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행정을 좌절시킨다. 우리가 분열 안에 있는 한 우리는 하나님의 행정에서 끝난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오늘날의 기독교는 거룩한 행정을 수행해 나가는 데 관한 한 쓸모없게 되었다. 그리스도인들이 영혼을 구하기 위하여 복음을 전하거나 다른 이들을 도와 말씀을 알도록 성경을 가르칠는지 모른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의 행정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전적으로 적합하지 않다. 거룩한 행정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유일한 몸, 비밀의 몸이 필요하다. 우리는 이것을 깨달았기 때문에 분열을 미워하며 그것을 절대적으로 반대한다. 분열은 하나님의 행정을 수행해 나가는 면과 더불어 그리스도의 비밀의 몸을 손상시킨다. 비록 그리스도인들이 복음을 전하고 성경을 가르칠 수는 있지만 이 땅 위에 하나님의 행정을 수행하기 위한 그리스도의 비밀스런 몸을 주의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가령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이것을 관심한다 하자. 그러한 상황은 얼마나 놀라운 것이겠는가! 하나님께서 이 땅에서 어떠한 행정을 가지실 수 있겠는가! 그러나 그리스도인들 가운데의 분열은 그리스도의 몸을 마비시킬 뿐만 아니라 심지어 그 몸을 여러 개로 조각내고 만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그분의 행정을 수행하시는 데 있어서 이 땅에서 어떤 것을 성취하시기가 극도로 어렵게 만든다. 수세기 동안 하나님은 그분의 행정을 수행하실 수 없었다. 왜냐하면 이를 위한 유일한 수단인 그리스도의 비밀의 몸이 분열로 말미암아 여러 조각났기 때문이다. 수년을 통하여 우리는 주의 상(床)의 중요성에 깊이 감동되었다. 우리는 예수의 물질적인 몸이 우리의 구속의 성취를 위하여 주신 바 되었으며 그로써 우리는 교통 안에서 그를 누릴 수 있게 되었음을 안다. 그러므로 우리는 종종 『주여, 당신의 구속하는 피를 감사합니다. 주여, 우리는 또한 당신께서 우리의 죄들을 담당하기 위하여 십자가 위에서 당신의 몸을 주시고 우리를 위해 죽으시고 옛 창조를 끝내셨음을 감사합니다. 주여, 이제 우리는 여기서 당신의 상을 누리고 있습니다. 당신은 죽음을 통하여 당신 자신을 주셨고 이제 부활 안에서 당신은 우리의 누림을 위하여 상 위에 계십니다.』라고 기도한다. 이제 우리는 또한 주님의 만찬을 먹는 것이 그분을 만족케 하는 것이라는 데 감동되어야 한다. 그것은 그분께 드리기 위한 우리의 기념이다. 이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행정을 수행하기 위하여 여기에 있음을 암시한다. 하나님의 행정이 수행되어지기 위하여 우리는 그리스도의 유일한 비밀의 몸의 하나를 주의해야 한다. 그러한 관심을 가짐으로 우리는 몸 안에서 보존될 것이며 어떤 분열에서도 우리를 지킬 것이다. 만일 우리가 주님의 만찬에 대한 이런 이해를 갖는다면 우리는 어떤 것에 의해서도 분열되지 않을 것이다. 그 대신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거룩한 행정의 성취를 위해 그분의 하늘에 속한 사역을 수행하는 수단인 유일한 비밀의 몸 안에 머물 것이다. 확증과 분변 주님의 만찬에 관하여 바울은 두 가지 중요한 단어, 곧 확증과 분변을 사용한다. 28절은 『그러나 사람이 자신을 확증하고서 이 떡을 먹고 이 잔을 마실지니』라고 말한다. 우리 자신을 확증하는 것은 우리가 떡을 먹고 잔을 마시는 것이 합당한 방법으로인가 합당하지 못한 방법으로인가를 점검하는 것이다. 바울이 이 서신을 썼을 때 어떤 고린도의 믿는 이들은 합당치 못한 방법으로, 즉 그 잔과 그 떡이 일반적인 것이 아니며 보통 음식과는 다르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주님의 만찬을 먹었다. 우리는 그 잔이 우리의 죄들을 위해 주님이 십자가 위에서 흘리신 피를 나타낸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따라서 우리는 그것을 일반적이고 평범한 방법으로 마시지 말아야 하며 그것이 보통 음료와 다르다는 것을 깨닫도록 보여 주는 방법으로 마셔야 한다. 우리는 떡도 같은 방법으로 취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미신적인 천주교의 가르침인 화체설은 거절한다. 이 이단적인 가르침에 따르면 떡과 잔 안에 있는 포도주가 실제로 그리스도의 몸과 피가 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화체설을 거절하지만 우리가 잔을 마시고 떡을 먹을 때 이것이 엄숙하고 거룩하며 신성한 표시임을 깨달아야 한다. 잔은 우리의 죄들을 위하여 십자가 위에서 흘리신 우리의 사랑하는 주님의 보혈을 표시하며, 떡은 그분이 십자가 위에서 우리를 위하여 주신 그 몸을 표시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러한 표시들을 부주의한 방법으로 취급해서는 안 된다. 만일 우리가 부주의하게 먹고 마신다면 우리는 주님의 만찬에 합당치 못한 방법으로 참여하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분명히 주님의 만찬에 참여하는 데 합당치 못한 점이 없다고 자신을 확증할 필요가 있다. 이와 같이 우리 자신을 확증함으로 우리는 주님을 기념하는 데 있어서 합당하게 될 것이다. 바울에 의해 사용된 두 번째 중요한 단어는 「분변하다」이다. 29절은 『주의 몸을 분변치 못하고 먹고 마시는 자는 자신에 대한 심판을 먹고 마시는 것이니』라고 말한다. 우리는 이것이 주님의 물질적인 몸과 또한 하나님의 행정을 수행하기 위한 비밀의 몸 둘 다를 분변하는 것임을 지적했다. 우리 자신을 확증하는 것은 주님을 기념하기 위한 것이며 몸을 분변함은 주로 하나님의 행정을 수행하기 위한 것이다. 우리는 주의 상에 나올 때마다 단지 주님을 누릴 뿐 아니라 또한 자신을 확증함으로 그분을 기념해야 한다. 우리는 우리가 주님의 만찬을 먹기 위해 합당한 방법으로 생활하고 있는가를 물어 보아야 한다. 우리는 결코 부주의한 태도로 주님의 피와 몸을 취해서는 안 된다. 그 대신 우리는 상 위에 놓여 진 표시들이 주님의 보혈과 몸을 표명하는 것임을 깨달아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가 이 만찬을 먹는 데 있어서 합당한 방법으로 생활하고 처신하는지를 물어 보아야 한다. 이것은 주님을 기념하기 위한 것이다. 동시에 우리는 상 위에 놓여 진 그 떡이 그리스도의 유일한 비밀의 몸을 나타내는지 아니면 분열을 나타내는지를 분변해야 한다. 만일 그 떡이 어떤 분열의 단체나 교파를 나타낸다면 우리는 그것을 취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우리는 몸을 분변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방법으로 몸을 분변하는 것은 어떤 분열과는 전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행정을 수행해 나가기 위하여 그와 같은 방법으로 몸을 분변한다. 비록 우리가 아직 수는 적을지라도 천사들과 귀신들은 우리의 입장이 분열적인 기독교와는 다르다는 것을 안다. 더욱이 깊은 속에서 우리는 우리가 이 땅에서 하나님의 행정을 수행하기 위하여 몸을 분변하고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또한 그리스도께서 거룩한 행정을 위하여 하늘에서 행하고 계신 것을 이 땅 위에서 반영하는 하늘에 속한 텔리비젼이다. 다른 이들은 우리를 반대하고 우리와 따지고 그들 자신들을 변명할지 모른다. 그러나 그들의 깊은 속의 양심에서 그들은 그들이 유일한 비밀의 몸을 분변하고 있다는 확신이 없다. 주님을 찬양하자. 우리는 이러한 확신을 가지고 있다! 메시지55 주님의 만찬을 다룸(Ⅱ) Ⅰ. 무질서한 것을 꾸짖음 A. 명하는 이 일에 칭찬하지 않음 11 장 17절부터 22절에서 바울은 주님의 만찬에 관한 그들의 무질서로 인해 고린도 인들을 꾸짖는다. 17절에서 그는 『그러나 내가 명하는 이 일에 너희를 칭찬하지 아니하나니 이는 너희의 모임이 유익이 못 되고 도리어 해로움이라』고 말한다. 여기서 「그러나」라는 말은 『내가 너희를 칭찬하지 않는다』는 것과 2절의 『내가 너희를 칭찬한다』는 것이 대조됨을 가리킨다. 이 구절로부터 이 장의 마지막까지에서 사도는 여덟 번째 문제인 주님의 만찬에 관한 것을 다룬다. 바울은 정직하고 솔직하다. 믿는 이들을 칭찬해야 할 때 그는 그들을 칭찬했다. 그러나 그들을 칭찬해서는 안 될 때 그는 그들을 칭찬하지 않았다. 바울은 17절에서 『내가 너희를 꾸짖는다』고 말하지는 않았지만 꾸짖는 어조로 그들에게 말한다. B. 고린도의 믿는 이들의 모임이 유익이 못 되고 도리어 해로움 바울이 그들을 칭찬하지 않은 이유는 그들의 모임이 유익이 못 되고 도리어 해롭기 때문이었다(17절). 이것은 믿는 이들의 모임이 유익 대신에 손해를 줄 수도 있음을 가리킨다. 『유익이 못 되고 도리어 해로움이라』는 표현은 고린도 인들의 모임의 결과가 유익이 아닌 손실이요 얻음이 아닌 잃음이었음을 의미한다. 어떤 고린도 인들은 약하게 되었고, 다른 이들은 병들었고, 심지어 어떤 이들은 죽었다. 이것은 그들이 상당히 많은 것들을 잃었음을 증명한다. C. 그들의 교회 집회에서 그들 사이에 분열이 있음 18 절에서 바울은 계속해서 말한다. 『첫째는 너희가 교회 안에 모일 때에 너희 중에 분열이 있다 함을 듣고 대강 믿노니』. 바울은 약간 부드러운 방법으로 말했다. 그는 그가 들은 모든 것을 완전히 믿는다고 말하지 않고 오히려 어떤 부분들을 믿었다고 말한다. 이것은 고린도 인들을 꾸짖는 데 있어서 그의 부드러운 어조를 나타낸다. 「교회 안에」라는 표현은 「교회의 모임 안에」를 의미한다(14:34-35). 19 절은 『너희 중에 편당이 있어야 너희 중에 옳다 인정함을 받은 자들이 나타나게 되리라』고 계속한다. 편당이라고 번역된 헬라어 단어는 갈라디아서 5장 20절에 있는 것과 같이 분파 곧 다른 의견들의 학파를 의미한다. 인정되었다는 말은 명세서가 찬성을 얻도록 시험된 것을 의미한다. 이 구절에 따르면 심지어 편당과 분파는 인정받는 사람들, 즉 분파적이지 않은 사람들을 드러내는 데 편리했다. D. 그들은 같은 장소에 함께 모여서 주님의 만찬을 먹을 수 없음 20 절에서 바울은 『그런즉 너희가 같은 장소에 함께 모여서 주의 만찬을 먹을 수 없으니』라고 말한다. 10장 21절에서 바울은 주님의 상에 대하여 말한다. 우리가 본 대로 주님의 상의 강조점은 그분의 피와 그분의 몸의 교통(10:16-17)이요, 주님 안에 참여함이요, 교통 안에서의 주님에 대한 상호 누림인 반면에 주님의 만찬의 강조점은 주님을 기념하는 것이다(11:24-25). 주님의 상에서 우리는 우리의 누림을 위한 그분의 몸과 피를 받아들이며 주님의 만찬에서 우리는 그분의 누림을 위하여 그분께 우리의 기념함을 드린다. 21 절에서 바울은 『이는 먹을 때에 각각 자기의 정찬을 먼저 갖다 먹음으로 어떤 이는 시장하고 어떤 이는 취함이라』고 선포한다. 사도 시대에는 믿는 이들이 상호 누림을 위해 부한 자들은 음식을 보다 많이 좋은 것을 가져오고 가난한 사람은 적게 가져와 그날의 정찬인 저녁 식사를 함께 하곤 했다. 이것은 애찬이라고 불리웠으며(벧후 2:13, 유 12) 유월절의 배경으로부터 온 것이다(눅 22:13-20). 그들은 애찬 끝에 주님을 기념하기 위하여 떡과 잔이 있는 주님의 만찬을 먹었다(고전 11:23-25). 고린도 인들은 이것을 합당하게 행하지 않았다. 그들은 서로 기다리지 않았다(33절을 보라). 각자가 자신의 저녁을 먼저 먹었다. 부자들은 취하게 되었고 가난한 사람들은 배가 고팠다(21절). 이것은 그들 가운데 분열과 편당을 야기 시켰다.(18절). 따라서 그들은 주님의 만찬을 손상시켰다(20절). 22절에서 바울은 그들에게 말한다. 『도대체 무엇을 하느냐! 너희가 먹고 마실 집이 없느냐? 너희가 하나님의 교회를 업신여기고 빈궁한 자들을 부끄럽게 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무슨 말을 하랴? 너희를 칭찬하랴? 이것으로 나는 너희를 칭찬하지 않노라.』 Ⅱ. 주님의 만찬에 대한 정의를 재 조망함 A. 사도가 주님께로부터 받음 주님의 만찬에 대한 정의를 다시 돌이켜 보는 데 있어서 바울은 23절에서 『이는 내가 주님으로부터 받은 것』이라고 말한다. B. 그가 고린도의 믿는 이들에게 전하여 준 것임 바울은 주님께로부터 받은 것을 고린도 인들에게 전하여 주었다. 23절에서 그는 그들에게 『주 예수께서 잡히시던 날 밤에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가라사대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고 말했다. 떡을 뗀 것은 우리로 그것을 먹게 하려 하심이었다(마 26:26). 주님의 만찬을 갖는 것은 주님 자신을 기념하기 위한 것이다. 25 절에서는 『식후에 또한 이와 같이 잔을 가지시고 가라사대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고 하신다. 떡은 생명에 속한 것이며(요 6:35), 잔은 축복에 속한 것이다(고전 10:16). 이 잔은 하나님 자신을 포함한 신약의 모든 풍성한 축복들로 세워진 새 언약이다. 그것은 우리를 구속하기 위해 주님이 십자가에서 흘리신 주님의 피로 세워진 것이다(마 26:28). 주님에 대한 참된 기념은 떡을 먹고 잔을 마시는 것(11:26)으로서 그분의 구속하는 죽음을 통하여 그분 자신을 우리에게 주신 주님께 참여하고 주님을 누리는 것이다. 떡을 먹고 잔을 마시는 것은 구속의 주님을 우리의 분깃과 우리의 생명과 축복으로 취하는 것이다. 이것이 그분을 참된 방법으로 기념하는 것이다. 26 절은 계속해서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그가 오실 때까지 선포하는 것이니라』고 말한다. 여기에서 선포한다는 단어는 포고하다, 알리다, 전시하다 등을 의미한다. 주님의 만찬을 취하는 것은 주님의 죽으심을 기념한다기보다는 주님의 죽으심을 선포하고 전시하는 것이다. 우리는 그의 죽으심을 선포하고 전시함으로써 주님 자신을 기념한다. 우리가 주님의 인격을 기념하지만 그의 죽으심은 선포하고 포고하는 것임을 주의하라. 우리는 온 우주에-귀신들과 천사들과 인류에게-그의 죽으심을 선포함으로 그 인격을 기념한다. 26 절에 의하면 우리는 주님의 죽으심을 그가 오실 때까지 선포해야 한다. 우리는 그가 다시 오실 때까지 끊임없이 그분의 구속하는 죽음을 선포함으로 그분을 기념하기 위해 주님의 만찬을 취해야 한다. Ⅲ. 살핌과 분변함의 필요(결정 907에도 기재됨) A. 주의 떡이나 잔을 합당치 못한 방법으로 먹고 마시는 자는 주의 몸과 피를 범하는 죄가 있음 27절에서 바울은 『그러므로 누구든지 주의 떡이나 잔을 합당치 못한 방법으로 먹고 마시는 자는 주의 몸과 피를 범하는 죄가 있느니라』고 말한다. 합당치 못한 방법으로 먹고 마시는 것은 우리의 구속을 위한 그의 죽으심을 통해 우리를 위해 찢기신 그분의 몸과 우리의 죄들을 위해 흘리신 그분의 피를 상징하는 떡과 잔의 중요성을 잘못 평가하는 것이다. 주의 몸과 피에 죄를 범하는 것은 믿는 이가 스스로 심판을 자초하는 것이다. B. 자신을 살핌 28절에서 바울은 『사람이 자기를 살피고 이 떡을 먹고 이 잔을 마실지니』라고 계속한다. 사람이 자신을 살핀다는 것은 자신을 조사하고, 시험에 자신을 넣고, 규정된 명세에 맞도록 자신을 인정받게 하는 것을 의미한다. C. 몸을 분변치 않고 먹고 마시는 것은 자신을 심판하는 것임 29절은 『주의 몸을 분변치 않고 먹고 마시는 자는 자기에 대한 심판(죄-한글성경)을 먹고 마시는 것이니라』고 말한다. 주님의 떡과 잔을 합당치 못한 방법으로 먹고 마시는 것은 우리에게 심판을 초래한다. 이 심판은 정죄가 아니라 주님의 잠정적인 징계이다(32절). 분변하지 않는다는 것은 분별하지 않고, 분리하지 않고, 판별하지 않고, 구분을 짓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주님의 몸을 분변하는 데 실패하는 것은 일반 음식과 주님의 몸을 상징하는 떡을 구분 짓는 데 실패하는 것이다. 그것은 주님의 만찬에서 우리가 취하는 떡의 중요성을 평가하는 데 실패하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에게 주님의 징계인 심판을 초래한다. 「주님의 몸」이라고 하지 않고 「몸」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사도의 사상은 주님의 물질적인 몸에다(고전 11:24) 주님의 비밀의 몸을(엡 4:4) 더하여 포함한 것 같다. 그러므로 우리가 주님의 상에 참여할 때 우리는 상 위에 있는 떡이 그리스도의 한 몸을 상징하는 것인지 아니면 어떤 인간의 분열이나 교파를 상징하는지를 분변해야 한다. 그리스도의 몸을 분변함으로써 우리는 어떤 분열 안에서나 어떤 분열적인 영으로 떡에 참여해서는 안 된다. 우리가 주님의 상에 참여하는 것은 실행과 영 안에서 어떤 분열이 없는 그분의 유일한 몸의 유일한 교통이 되어야 한다. 사도가 머리 덮는 문제를 다룬 것은 머리에 관계된 것이고 주님의 만찬(주의 상)을 다룬 것은 몸에 관계된 것이다. 하나님을 대표하고 사람에 의하여 대표되는 그리스도의 머리되심에 관하여 우리는 어떤 무질서함이 없이 하나님에 의하여 정해진 거룩한 통치의 순서를 지켜야 한다. 그리스도의 몸에 관하여 우리는 어떤 혼돈과 분열이 없이 사도의 가르침에 의해 합당하게 조절되어야 한다. 머리는 그리스도요 몸은 교회이다. 그리스도와 교회-이 두 가지가 혼돈되고 무질서한 교회를 다루는 사도의 조정하고 지도하는 요소이다. 그는 1장부터 10장에 있는 교회의 문제들을 하나님의 중심이요 우리의 분깃이신 그리스도를 강조함으로 처리한다. 이어서 그는 11장부터 16장에서 하나님의 목표요 우리의 관심인 교회를 강조한다. 그는 1장부터 10장에서 병든 교회의 질병들을 치료하기 위한 항생제이신 그리스도로 시작한다. 그런 다음 11장으로부터 그는 계속 교회로 나아가며 교회의 무질서에 대한 예방 주사로서 몸인 교회를 사용한다. 그리스도와 교회는 둘 다 하나님의 신약 경륜 안에서 하나님의 행정을 수행하기 위해 필수적인 것이다. Ⅳ. 주님의 징계 A. 살피지 않고 분변하지 않은 결과 30절과 31절에서 바울은 『이를 인하여 너희 중에 약한 자와 병든 자가 많고 잠자는 자도 많으니 만일 우리가 자신을 분변했으면 심판을 받지 않았으리라』고 말한다. 30절의 「이를」이라는 바울의 말은 몸을 분변치 않은 것을 의미한다. 이 구절에서 약하고 병든 것은 주님의 몸에 합당치 못하게 참여한 것에 대한 징계, 즉 주님의 잠정적인 심판이다. 주님은 먼저 그들을 육신적으로 약하게 되도록 그들을 징계하신다. 그런 다음 그들이 그들의 잘못을 회개하지 않으면 그들은 병들게 되는 징계를 더 받게 되었다. 그래도 여전히 그들이 회개하지 않았기 때문에 주님은 그들을 죽음으로 심판하셨다. 이렇게 죽는 것은 10장 5절의 광야에서 엎드러진 것과 동일하다. 30절의 잠들었다는 말은 죽은 것을 의미한다(살전 4:13-16). B. 심판받지 않도록 우리 자신을 분변함 31절에서 바울은 만일 우리가 자신을 분변했으면 심판을 받지 않았으리라고 말한다. 우리 자신을 분변하는 것은 우리 자신에 관한 문제들을 분별하는 것, 즉 우리 자신을 정확히 판단하는 것이다. 심판하는 목적은 우리를 하나님의 행정에 되돌리려는 것이다. 잘못된 사람들은 하나님의 행정 아래로 되돌려지기 위해 하나님께로 부터의 심판이 필요하다. C. 우리가 세상과 함께 정죄되지 않도록 징계됨 32절에서 바울은 『그러나 우리가 주님께 심판받을 때 이것은 우리로 세상과 함께 정죄 받지 않도록 징계 받는 것이니』라고 말한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의 행정 아래서 자신을 지키면 우리는 심판받지 않고 바로 잡아지고 징계되어서 하나님의 행정으로 되돌려질 것이다. 32절에 있는 징계는 또한 하나님의 행정 안에 있는 문제이다. 이 징계는 잠정적인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세상과 함께 영원히 정죄되지 않을 것이다. D. 주님의 만찬을 먹기 위하여 함께 모임 33절부터 34절 상 반절에서 바울은 『그런즉 내 형제들아 너희가 먹으러 모일 때에 서로 기다리라 만일 누구든지 시장하거든 집에서 먹을지니 이는 너희의 모임이 심판을 위한 것이 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고 말한다. 서로 기다리라는 명령은 21절에 묘사된 상태에 기인한 것이다. 기다리는 것은 인내를 요구한다. 서로 기다린다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행정 아래 있음을 가리킨다. E. 남은 문제들은 사도가 갈 때 귀정할 것임 34절 하 반절에서 바울은 『그 남은 문제들은 내가 갈 때에 귀정하리라』고 결론 맺는다. 이것은 사도가 교회 생활의 실행에 관한 모든 것에 대하여 가르침을 주지는 않았음을 가리킨다. 「남은 문제들」을 위해 우리는 신약에 세워진 원칙들에 근거하여, 또한 이 원칙들에 의한 다스림 아래서 주님의 인도를 구해야 한다. 메시지 56 주님의 만찬을 다룸(Ⅲ) 주님을 기념하는 데 이르도록 고린도전서 11장 24절과 25절은 『축사하시고 떼어 가라사대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식후에 또한 이와 같이 잔을 가지시고 가라사대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고 말한다. 이 구절의 「나를 기념하라」는 헬라어 단어에서 「하라」는 「… 에 이르도록」이라고 번역하는 것이 더 낫다. 따라서 그것은 『나를 기념하는 데에 이르도록』이라고 읽어야 한다. 「… 에 이르도록」이라는 단어가 결과를 가리키는 반면에 「하라」는 단어는 목적을 가리킨다. 목적을 갖는 것은 결과를 갖는 것만큼 좋지 못하다. 주님을 기념하기 위하여 만찬을 갖는 것은 우리가 그분을 기념할 목적으로 만찬을 갖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주님을 기념할 목적으로 주님의 만찬에 참여할 수 있지만 우리가 만찬을 먹는 것이 주님을 기념한 결과가 아닐 수도 있다. 주님을 합당하게 기념하는 대신에 그 결과가 우리를 정죄하는 것일 수도 있다. 아마 고린도의 믿는 이들은 주님을 기념하기 위하여 모였을 것이다. 그러나 결과는 전혀 달랐다. 그들의 먹고 마심이 주님을 기념하는 데 이른 것이 아니라 그들 자신을 정죄하는데 이르렀다. 11 장에서 바울은 고린도 인들이 그들을 정죄하는 데 이르는 것이 아닌 주님을 기념하는 데 이르는 방법으로 주님의 만찬을 갖도록 훈계한다. 우리가 주님의 만찬을 먹은 결과가 주님을 기념하는 대신 정죄함이 될 수 있다는 것은 가능한 일이다. 이 구절들에서 「… 에 이르도록」이라는 단어 안에 들어 있는 사상은 깊고 심오하다. 물론 헬라어 전치사를 「… 을 위하여 하라」고 번역하는 것도 틀린 것은 아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이 단어는 목적이 아닌 결과의 의미로 사용된 것이다. 당신이 주님의 만찬을 먹은 결과는 무엇이겠는가? 그 결과가 주님을 기념하는 것인가 아니면 그릇 행함으로 정죄되는 것인가? 이것은 바울이 고린도 인들에게 하는 진지한 말이었다. 주님의 만찬을 먹는 것은 주님을 만족케 하는 것이다. 그러나 고린도 인들은 주님을 만족케 하기 위해 모인 것이 아니라 자신들을 만족케 하고자 구하고 있었다. 어떤 이들은 심지어 취했다는 사실은 그들이 자신들의 만족을 주의했음을 증명한다(21절). 우리 자신의 만족을 얻기 위한 의도로 주님의 만찬에 오는 것은 그분의 만찬의 원칙을 거스르는 것이다. 우리는 그와 같은 의도로 주님의 만찬에 와서는 안 된다. 그 대신 우리는 주님을 만족케 하려는 의도로 와야 한다. 단지 얕은 정도로 주님을 기념하는 것은 주님을 만족케 할 수 없다. 그분은 우리가 그분을 기념하는 데 이르는 결과를 갖는 방법으로 만찬을 가질 때 만족하신다. 단순히 주님을 기념하는 것은 얕은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그분을 기념하는 데 이르는 결과로 주님의 만찬에 참여하는 것은 깊은 것이다. 주님을 기념하는 것은 무언가 일시적인 것이다. 그것은 기껏 우리가 주님의 만찬을 먹는 동안뿐 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주님의 만찬을 먹을 때 그분을 기념한다. 그러나 주님을 기념하는 데 이르는 결과로 만찬을 먹는 것은 우리가 먹는 것을 마친 후에도 계속될 것이다. 따라서 기념하는 것은 우리의 먹는 것의 계속이다. 우리의 먹는 것은 기념함의 결과를 가져오며 우리의 기념은 먹는 것의 계속이다. 기념은 하나님의 행정에 관계됨 11 장의 바울의 말은 마태복음 26장 29절의 주님의 말씀과 관계있다. 『그러나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이제부터 내 아버지의 나라에서 새것으로 너희와 함께 마시는 날까지 마시지 아니하리라』. 이 말은 왕국에 관계된 복음인 마태복음에 나온다. 왕국은 하나님의 행정의 문제이다. 우리가 주님의 만찬을 먹는 것은 주님의 행정과 밀접하게 관계있는 기념에 이르는 결과를 낳게 해야 한다. 당신이 주님의 만찬을 먹는 것이 결과적으로 하나님의 행정을 가져오는가? 만일 그렇지 않다면 당신이 주님의 만찬에 참여하는 것은 너무 피상적이다. 어떤 믿는 이가 주님의 만찬에서 자신에게 이렇게 말할지 모른다. 『아, 나는 주님이 나를 위하여 죽으셨음을 깨달았다. 이제 그분의 사랑이 그의 만찬을 먹음으로 그분을 기념하는 이 주일 저녁에 나를 강권한다. 나는 만찬에 참여함으로 그분을 기념한다. 나는 그분의 성육신과 그가 어떻게 베들레헴에서 처녀에게 태어나셨는지를 기념한다. 나는 그가 나사렛에서 자라신 것과 그가 고통 받고 핍박받은 것과 그가 배신당하고 심판받고 정죄 받고 십자가 위에서 죽이기로 판결되었음을 기념한다. 나는 특히 그가 나의 죄들을 위하여 십자가 위에서 죽으셨음을 기념한다.』 주님을 이런 식으로 기념하는 것은 좋지만 그것은 왕국이나 하나님의 행정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주님의 만찬 후에 주님을 기념하는 데 있어서 계속되는 결과가 없다. 만일 우리가 이런 종류의 기념으로 주님의 만찬 먹는 것을 마친다면 우리의 주님의 만찬에 참여함은 너무 피상적일 것이다. 참되게 주님의 만찬을 먹는 것은 그 결과로서 하나님의 행정을 가져와야 하며 왕국을 가져와야 한다. 우리가 주님의 만찬을 먹는 것은 왕국과 관계되어야 한다. 주님의 만찬에 참여한 후에 계속되는 결과가 없이 끝나서는 안 된다. 반대로 그것은 왕국을 가져와야 하며 하나님의 행정을 가져와야 한다. 바꾸어 말해서 우리가 주님의 만찬을 먹는 것은 왕국을 가져옴으로, 우리 자신과 우리에게 관계된 모든 것을 하나님의 행정과의 합당한 관계 안으로 인도함으로 그분을 만족케 하는 결과를 산출해야 한다. 이것은 한 시간 안에 일어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이것은 아직 오지 않은 한 과정에 의하여만 성취될 수 있다. 이러한 오는 과정은 실제적으로 이 땅 위에 하나님의 행정이 실현될 하나님의 왕국이다. 살핌과 분변함 주님의 만찬과 하나님의 행정과의 관계는 매우 엄중한 문제이기 때문에 바울은 고린도 인들에게 그들 자신을 살피고 몸을 분변하라고 명령한다(28절-29절). 만일 우리가 자신을 살피지 않고 또한 몸을 분변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주님을 기념하는 결과가 없이 주님의 만찬을 먹게 될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위치가 합당한지 자신을 살펴야 하며 또한 몸을 분변해야 한다. 그럴 때 우리가 주님의 만찬을 먹는 것이 주님을 충분히 만족케 하며 또한 하나님의 행정을 수행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될 것이다. 이것이 주님의 만찬을 합당하게 먹는 것이다. 아마 당신은 어떻게 주님의 만찬을 먹는 것이 하나님의 행정을 수행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지 의아해 할 것이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는 구원받았고, 하나님의 자녀로 하나님께 로서 났으며, 하나님의 왕국 안으로 인도되었다. 요한복음 3장 3절과 5절에 의하면 거듭남은 우리를 하나님의 왕국 안으로 인도한다. 만일 우리가 그 영으로 나지 않았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왕국으로 들어갈 수 없다. 그러나 거듭남을 통하여 우리는 하나님의 왕국 안으로 인도되었으며 또한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가 되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왕국 안으로 인도되며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가 되기 위하여 거듭났음을 깨달아야 한다. 우리에게 이러한 깨달음이 있다면 우리는 이 모든 것들의 목적을 생각해 보아야 한다. 왜 우리는 왕국 안으로 인도되고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가 되기 위하여 거듭났는가? 그것은 우리가 거듭남으로 하나님의 왕국과 그리스도의 몸을 위한 생명을 살기 위해서이다. 왕국과 몸이 우리 삶의 목표가 되어야 한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는 단지 좋은 생활을 하기 위하여 여기에 있는 것이 아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주님을 사랑하지만 그들은 이 땅 위에서 그들의 생명이 하나님의 왕국과 그리스도의 몸을 위한 것임을 깨닫지 못한다. 하나님의 왕국과 그리스도의 몸을 위하는 것은 하나님의 행정을 위한 것이다. 오늘날 하나님의 행정은 왕국과 몸에 의하여 수행되어진다. 이것이 우리 매일의 생활이어야 한다. 그리고서 우리는 주일의 첫날에 우리의 생명이 하나님의 왕국과 그리스도의 몸을 위한 생명일 것을 기대하면서 주님의 만찬을 먹기 위하여 의도적으로 모인다. 만일 당신이 이것을 이해한다면 당신은 어떻게 주님의 만찬을 먹는 것이 주님을 만족케 하는 그러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지를 알게 될 것이다. 주님의 상과 주님의 만찬에 대한 우리의 이해가 여전히 종교적인 배경의 영향 아래 있을 수 있다. 아마 우리의 생각이 너무 전통적인 사상과 관념으로 적셔져 있어서 우리는 어떤 새로운 것을 취할 능력을 가질 수 없을지 모른다. 이것은 아구까지 가득 채워진 컵과 같아서 거기에는 더 이상 부을 수도, 어떤 것을 더 넣을 여지도 없다. 다른 예를 사용하자면 우리의 생각은 마치 『빈방 없음』이라는 표지가 앞에 나붙은 아파트 건물과도 같다. 무의식적으로 우리는 『빈방 없음-즉 주님의 만찬에 관한 어떤 것을 더 이상 이해할 수 없음』이라는 표지를 걸어놓을지도 모른다. 나는 이것이 거의 모든 성도들의 상황이 아닐지 염려한다. 주님의 죽으심을 선포함 11 장 26절에서 바울은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그가 오실 때까지 선포하는 것이니라』고 말한다. 주님의 상에서 우리가 먹고 마시는 동안 우리는 선포하고 있다. 우리는 주의 죽으심을 그가 오실 때까지 선포한다. 선포하는 것은 포고하고 알리고 또한 전시하는 것이다. 천주교든 개신교든 조직 된 종교 안에서 소위 미사나 성찬식의 목적이 그리스도의 죽음을 선포하고 그의 죽음을 우주에 전시하기 위한 것임을 깨닫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지 의심스럽다. 미사나 성찬식에 참석한 사람들은 자동적으로 그리스도의 죽음을 기념하는 사상을 갖는다. 이것은 천연적인 관념이다. 더욱이 어떤 목사들은 그들의 가르침으로 이 관념을 강조한다. 사람들은 자연히 성찬식에 참여하는 것은 단지 그리스도의 죽음을 기념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우리가 그리스도의 죽음을 기념해야 한다는 것은 사도 바울의 생각도 주 예수의 생각도 아니다. 주 예수께서는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는 데 이르라』고 말씀하셨다. 우리는 어떤 사물이 아닌 사신 인격이신 분을 기념하는 데 이르도록 참여하는 것이다. 우리가 본 대로 이것은 우리의 참여가 그를 기념하는 결과를 낳아야 함을 의미한다. 주님 자신을 기념하는 것은 중요한 문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이 성찬식에서 단지 그분이 우리를 위하여 하신 일을 기념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기념해야 하는 것임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 24절과 25절에서 단지 「나에 대한 기념」이라고 말하지 않고 「나에 대한 그 기념」이라고 말한 것을 주의하라. 정관사를 더하여 사용한 것은 이 표현을 강조하고 강화하기 위함이다. 우리는 다른 것들을 기념해서는 안 되고 단순히 그리스도 그분 자신을 기념해야 한다. 우리가 주님을 기념하지만 그의 죽으심을 기념하라고는 말하지 않았다. 그 대신 26절에서 우리는 우리가 그의 죽으심을 선포해야 함을 본다. 그리스도의 죽으심은 우리가 기념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선포하고 알리고 전시하기 위한 것이다. 우리는 그것을 모든 천사들에게, 귀신들에게, 인류에게, 또한 피조물들에게 전해야 한다. 우리는 그가 오실 때까지 그의 죽으심을 선포하고 알려야 한다. 이 구절에 있는 「때까지」라는 단어는 중요하다. 왜냐하면 그것이 왕국을 가리키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두 번 오심 26 절에서 우리는 주님의 죽으심과 주님의 오심을 본다.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그분의 오심 사이에는 간격이 있으며 이 간격은 교회로 채워진다. 우리는 교회가 주님의 죽으심을 그분의 오심에 연결하는 다리라고 말할 수 있다. 따라서 교회는 한 쪽과 다른 쪽의 깊은 간격에 다리를 놓는다. 이것은 교회가 주님의 죽으심을 계속 이어 그분의 다시 오심을 가져온다는 것을 의미한다. 교회가 없이는 이 간격에 다리가 놓여 질 수 없으며 주님의 죽으심과 그분의 오심을 연결할 길이 없을 것이다. 그리스도의 첫 번째 오심의 목적은 그분의 죽으심이다. 그러나 그분의 두 번째 오심의 목적은 무엇이겠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은 마태복음 26장 29절에 있다. 여기에서 주님은 그의 만찬을 세우실 때 우리에게 그가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그의 아버지의 나라에서 마실 때까지 마시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하신다. 이것은 그의 두 번째 오심의 목표가 왕국임을 가리킨다. 주님의 두 번 오심에는 각각 목표가 있다. 그분의 첫 번째 오심의 목표는 만유를 포함한 구속을 성취하시기 위해 죽는 것이었고 그의 두 번째 오심의 목표는 하나님의 나라(왕국)를 세우는 것이다. 우리는 『주님의 죽으심을 그가 오실 때까지 선포하라』는 바울의 말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되며 그것을 피상적인 방법으로 이해해서도 안 된다. 바울이 이러한 말들을 쓴 것은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그는 그의 의견을 따라 그러한 말들을 적어 넣은 것이 아니다. 23절에서 그는 『내가 너희에게 전한 것은 주께서 받은 것이니』라고 말한다. 바울이 고린도 인들에게 말한 것은 그가 주님께로부터 받은 것이다. 이것이 내가 여러분에게 마태복음 26장을 언급한 이유이다. 주님은 만찬을 세우시면서 아버지의 왕국과 관계된 그의 다시 오심에 대하여 말했다. 그리스도의 두 번 오심을 보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의 첫 번째 오심으로 위대한 일이 성취되었으니 그것은 곧 그의 죽으심이 만유를 포함한 구속을 성취한 것이다. 죽으신 후에 그리스도는 왕국을 받기 위해 가셨다. 이것은 신약뿐만 아니라 또한 다니엘서에도 계시되었다. 다니엘 7장 13절과 14절에서 선지자는 『인자 같은 이가 하늘 구름을 타고 와서 옛적부터 항상 계신 자에게 나아와 그 앞에 인도되매 그에게 권세와 나라와 영광과 나라를 주고 모든 백성과 나라들과 각 방언하는 자로 그를 섬기게 하였으니 그의 권세는 영원한 권세라 옮기지 아니할 것이요 그 나라는 폐하지 아니할 것이니라』는 이상을 보았다. 누가복음 19장 12절에서 주님은 비유로 자기 자신을 『왕위를 받아가지고 돌아오려고 먼 나라로 간』 『어떤 귀인』으로 언급한다(눅 19:12). 더욱이 다니엘서와 복음서에 의하면 주님은 왕국을 받으신 후에 다시 오실 것이다. 그분은 왕국과 더불어 오실 것이며 하나님의 우주적인 행정을 위하여 이 왕국을 세울 것이다. 그리스도의 죽으심의 유일한 산출 품(品) 두 목표를 가진 주님의 두 번 오심 사이에는 긴 기간이 있다. 이 시간의 간격이 교회 시대이다. 주님의 만유를 포함한 구속은 유일한 것-교회-을 산출했다. 요한복음 12장 24절에서 주님은 말씀하신다.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여기에서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시는 듯하다. 『나는 유일한 밀알이다. 만일 내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는다면 나는 홀로 남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의 의도는 땅에 뿌려지고 죽는 것이다. 그런 다음 나는 많은 밀알들을 산출했으며 교회인 한 떡덩이로 형성되었다. 그러므로 교회는 주님의 만유를 포함한 죽으심의 유일한 산출 품(品)이다. 그리스도의 죽으심은 교회를 산출했고 교회는 왕국을 가져올 것이다.』 웟치만 니 형제님은 그의 초기 사역에서 신약은 세 가지 중요한 문제들, 즉 십자가와 교회와 왕국을 가르친다는 것을 강조했다. 그는 우리에게 십자가는 교회를 산출하며 교회는 왕국을 가져온다는 것을 분명히 말했다. 교회를 통하여 하나님의 행정인 왕국은 땅으로 이끌어질 것이다. 십자가는 주님의 첫 번째 오심의 결과이며 왕국은 그의 두 번째 오심과 관계될 것이다. 그러나 이 두 번 오심의 사이에는 그분의 첫 번째 오심으로 산출된 교회가 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두 번째 오심과 함께 왕국을 가져올 것이다. 이제 우리는 26절에서 그가 오실 때까지 그의 죽으심을 선포하는 것은 왕국을 가져오기 위한 교회의 존재를 선포하는 것과 동일하다는 것을 보아야 한다. 11 장 29절에서 바울은 계속해서 몸을 분변함의 문제로 나아간다. 몸을 분변하지 않은 사람들은 자신들에 대한 심판을 먹고 마시는 것이다. 몸을 분변하는 것을 실패하는 것은 교회의 문제를 주의하는 데 실패하는 것을 가리킨다. 교회에 대해 합당하게 주의하지 않은 채 주님의 만찬에 오는 것은 아주 잘못된 것이다. 오늘날 교회는 그리스도의 비밀한 몸이며 그리스도 자신은 머리이다. 그의 승천 안에서 그리스도는 온 우주를 다스리는 머리가 되었다. 그의 죽으심으로 산출된 교회는 이제 이 머리의 비밀한 몸이다. 머리는 몸을 통하여 역사함 우리는 인간이기 때문에 물질적인 몸을 가지고 있으며 많은 것들을 할 수 있다. 만일 우리에게 몸이 없다면 우리는 어떤 행동을 수행할 수 없을 것이다. 같은 원리로 그리스도의 비밀한 몸인 교회는 이 땅 위에서 그리스도의 움직이심을 위하여 있다. 그렇다. 머리는 떠나가셨지만 몸은 여전히 이 땅에 남아 있다. 머리는 지금 몸을 통하여 하나님의 행정을 역사하고 있다. 역사의 사실에서 볼 때 몸은 분열되고 마비되어 왔다. 심지어 바울이 이 서신을 썼을 때에도 고린도에 있는 몸의 표현은 분열되어 있었다. 이것이 11장에서 그가 분열과 편당에 대하여 말한 이유이다(18-19절). 이것은 몸이 병들었다는 것을 가리킨다. 단지 몸이 나누어진 이유로 고린도의 믿는 이들 중 얼마는 병들게 되었고 어떤 이들은 죽었다(30절). 그들은 몸을 분변하는 데 실패했다. 그들은 합당하게 몸을 주의하지 않았다. 이것으로부터 우리는 몸-교회를 주의해야 함을 배워야 한다. 더욱이 교회는 주님의 첫 번째 오심과 두 번째 오심 사이의 간격에 다리를 놓는다. 이 다리는 또한 그리스도의 죽으심으로부터 왕국에 이르는 고속도로이다. 고속도로와 함께 하는 이러한 다리가 없이는 이 간격의 한쪽인 그리스도의 죽음에서 다른 한쪽인 왕국에 이르는 길은 있을 수 없다. 그 유일한 연결은 다리인 교회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몸을 분변해야 한다. 이것은 우리가 결코 다리를 손상시켜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오늘날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다리를 소홀히 했으며 어떤 이들은 그것을 손상시켰다. 주님의 만찬을 먹어야 하는 이유 이제 우리는 왜 우리가 주님의 만찬을 먹어야 하는지를 보기 위해 더 나아가야 한다. 이 메시지에서 우리는 우리가 그분을 기념하는 데 이르는, 즉 주님을 기념하는 결과를 가져오는 주님의 만찬에 참여해야 함을 강조했다. 우리는 어떠한 결과를 낳게 되리라는 기대를 가지고 주님의 만찬에 와야 한다. 우리가 주님의 만찬을 먹는 것은 그분의 두 번 오심 안에서 주님을 기념하는 결과를 낳아야 한다. 우리는 교회를 산출하고자 만유를 포함한 구속을 성취하신 그분의 첫 번째 오심과 또한 왕국을 가져와 하나님과 우리 모두로 하여금 회복을 수행하는 길을 갖게 하는 그의 두 번째 오심 안에서 그분을 기념해야 한다. 왕국을 떠나서는 주님의 회복을 수행해 나갈 길이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의 첫 번째 오심과 두 번째 오심의 양면에서 그분을 기념하는 관점을 가지고 주님의 만찬을 먹는다. 이러한 방법으로 주님을 기념하는 것은 실로 그분을 만족케 하는 것이다. 주님은 교회를 산출하기 위해 오셔서 십자가 위에서 죽으셨다. 그는 그가 성취하신 것과 그가 산출하신 것을 매우 기뻐하신다. 이제 그는 하늘에서 그의 아버지의 왕국을 가지고 땅에 돌아오실 때까지 그의 하늘에 속한 사역을 수행하고 계신다. 그러나 이 땅에서 그와 함께 동역할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인가? 누가 하늘에서의 그리스도의 역사에 응할 수 있는가? 오직 교회만이 그분과 동역할 수 있으며 그분께 응할 수 있다. 만일 주님에게 교회가 없다면 그분은 아마 하늘에서 슬프실 것이다. 왜냐하면 그가 사역하고 계시는 것을 그분과 함께 동역하고 수행해 나갈 사람이 이 땅에 없기 때문이다. 참으로 교회는 그리스도의 만족이다. 우리는 주님의 만찬을 먹기 위하여 올 때마다 그의 죽으심을 선포해야 한다. 우리는 온 우주에 주 예수께서 오신 것과 그가 만유를 포함한 구속을 성취하기 위하여 십자가 위에서 죽으신 것과 그의 죽으심이 교회를 산출한 것을 알린다. 지금 우리는 하늘에서의 그분의 사역에 응하며 그분과 함께 동역하는 그의 몸인 교회이다. 매주 첫날에 그의 만찬을 먹는 것은 그와 같은 선포를 하기 위함이다. 이 땅에 그리스도의 하늘에 속한 사역에 응하는 사람들이 있는 한 그분이 하나님의 왕국을 땅에 가져올 길이 있는 것이다. 이것이 주님을 만족케 하는 것이요 그분을 기쁘게 하는 것이다. 주님의 만찬은 우리가 주님의 만족을 위하여 이 땅에 살고 있음을 다시 생각나게 하는 그러한 역할을 해야 한다. 그렇다. 만찬은 우리가 먹기 위한 것이지만 그것은 우리의 만족을 위한 것이 아니다. 우리는 우리의 만족을 위해서가 아니라 주님의 만족을 위해 만찬을 먹는다. 만찬을 먹는 것은 우리로 하여금 주 예수의 만족을 위한 왕국을 가져오는 교회 안에 생활하고 있음을 상기시킨다. 그러므로 이 만찬은 왕국과 하나님의 행정과 관계있는 주님에게 있어서의 만족이다. <<축복이 오는 소리 들으라 Jesus is All.- 최남수 목사님>> 1.주님의 관심사-절대믿음으로 기도하기(막 5:25-34 ) *JC의 10기둥 - 기도 믿음 순종 사랑 열정 말씀 용서 겸손 인격 역사 *25 열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아 온 한 여자가 있어 *26 많은 의사에게 많은 괴로움을 받았고 가진 것도 다 허비하였으되 아무 효험이 없고 도리어 더 중하여졌던 차에 *27 예수의 소문을 듣고 무리 가운데 끼어 뒤로 와서 그의 옷에 손을 대니 *28 이는 내가 그의 옷에만 손을 대어도 구원을 받으리라 생각함일러라 *29 이에 그의 혈루 근원이 곧 마르매 병이 나은 줄을 몸에 깨달으니라 *30 예수께서 그 능력이 자기에게서 나간 줄을 곧 스스로 아시고 무리 가운데서 돌이켜 말씀하시되 누가 내 옷에 손을 대었느냐 하시니 * 31 제자들이 여짜오되 무리가 에워싸 미는 것을 보시며 누가 내게 손을 대었느냐 물으시나이까 하되 *32예수께서 이 일 행한 여자를 보려고 둘러 보시니 *33 여자가 자기에게 이루어진 일을 알고 두려워하여 떨며 와서 그 앞에 엎드려 모든 사실을 여쭈니 *34 예수께서 이르시되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네 병에서 놓여 건강할지어다 -- 이해 *어떤 원인 있어(혈루 근원 --아마도 하나님에 대한 순전한 믿음/상호거함의 교통에서 떠남이 그 원인?) 결혼한 바 된 여인<교회>안에 일어난 생명(혈액)의 유출과 생명 결핍(이로 인한 정죄감, 여인의 불임에 대한 주위의 멸시/비난-소외감 증대), -->받은 바 가진 것 다 내어주어도 세상 방법으로는 치유 불가함 인식 : 점점 더 중하여지고 치유의 소망 상실-->은혜의 치유의 주님의 소식 듣고 절망에서 일어나 겨우 남은 믿음의 소망을 붙들어 엘레겐의 기도 드리며(믿는 바 그 말씀을 자기에게 반복하여 선포하며 의심의 영 대적함의 불굴의 심지로 이룰 때까지 말씀 붙들어 주께 기도함 ) 더 나아가 마침내 (주위의 모든 멸시-비난 무릅쓰고) 거기에 나아오신 주께 무리가운데 섞여 가까이 나아가 주님 뒤에서(겸손) 그 믿는 바를 실행(JC옷자락만 만져도 구원 받으리라 믿은대로 그 옷을 만짐) -->치유하시는 주의 능력으로 혈루의 근원 치유받음--> JC께서 만인 앞에서 그 믿음 드러내 칭찬코자 그 여인을 주목하시며 회복된 믿음의 평강과 확신 주심 *돌보시는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절대믿음의 불굴의 반복적기도 드리기(엘레겐 - 믿음으로 자기에게 선포하며 주께 올려드림 =당면문제, 죽음문제, 삶터/교회, 성령님 음성듣기/JC영광보기 - 하나님의 뜻 세상에 이루실 것를 갈망함 ==>믿음의 내적증거됨) 2.절대적으로 성령께 순종하기(요2:1-12) *1사흘째 되던 날 갈릴리 가나에 혼례가 있어 예수의 어머니도 거기 계시고 *2 예수와 그 제자들도 혼례에 청함을 받았더니 *3 포도주가 떨어진지라 예수의 어머니가 예수에게 이르되 저들에게 포도주가 없다 하니 *4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내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나이다 *5 그의 어머니가 하인들에게 이르되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 하니라 *6 거기에 유대인의 정결 예식을 따라 두세 통 드는 돌항아리 여섯이 놓였는지라 *7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 하신즉 아귀까지 채우니 *8 이제는 떠서 연회장에게 갖다 주라 하시매 갖다 주었더니 *9 연회장은 물로 된 포도주를 맛보고도 어디서 났는지 알지 못하되 물 떠온 하인들은 알더라 연회장이 신랑을 불러 *10 말하되 사람마다 먼저 좋은 포도주를 내고 취한 후에 낮은 것을 내거늘 그대는 지금까지 좋은 포도주를 두었도다 하니라 *11 예수께서 이 첫 표적을 갈릴리 가나에서 행하여 그의 영광을 나타내시매 제자들이 그를 믿으니라 ---*이해 : (JC와 함께 당신의 모든 것 내어주시며 위하시는. 31Q의 아가페사랑과 그 일편단심의 친밀한 하나됨안으로 믿는 이를 초대하시는 하나님, -- 이 때, 성령의 포도주는 성도로 하여금 주 안에서 친밀한 애정과 아가페사랑안에서 극도로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전존재 드려 헌신케 하는, 반드시 필요로 하는 것임).. 포도주가 떨어진 결혼축하 연회장(이를테면 결신한 초신자들에게 베푸는 세례식장, 또는 주님의 말씀잔치)에서 극상의 포도주 만들어 공급하시는 JC... 주님의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어도(궁극적으로 천국의 어란양혼인잔치에서 쓸 오래된 극상의 포도주를 주님은 미리 예비해 두셨다.) 그 표상인 교회의 천국잔치에 필요한 포도주(성령) 주시기를 여자가 요청할 때 JC는 만들어서라도 주신다. 이 때 필요한 것은 그 결핍을 알아챈 이(여자)의 강청하는 기도와 함께 그가 믿음으로 하는 명령에 (동일한 심령으로) 함께 섬가는 이들이 절대적으로 순종함으로써 항아리(믿는이의 전존재를 점유하도록)어귀까지(말씀 이룰 때까지) 물(기도)을 채울 때, 이윽고 주님은 극상의 포도주로 변화시키시어 공급해 주신다. 강청의 기도 드린 이, 그리고 그와 더불어 동심합의로 절대 순종함으로써 그 일에 참여한 섬김이들은 그 극상의 포도주가 주님의 능하신 손의 선물임을 알며 확신하여 이를 평생의 내적 증거로 삼게 된다. *성령께 절대순종하기(기도와 금식-예배-사역, 영적전쟁, 고난, 사랑-겸손-용서-구제, 장소 등 모든 영역에서. 주로 주되시게 하라..침체 상태라 느끼면 불순종했던 바로 그 시점으로 돌아가서 회개하고 순종하라.) 3.축복이 오는 소리 듣기 (왕상18:41) --여호와 이레<그 다음의 은혜를 미리 계획하고 예비하신 하나님>하나님 마음에 합한, 하나님을 앙망함으로 기다려 잘 들으며, 잘 보며(그대로 그림으로 그려내며 붙듬) 그 마음 알아드리며 그 마음 감동시켜 그분의 손 움직이게 해 드리는, 삶의 현장 속에서 하나님의 비전 보는, 참영성의 예배자요 참된 기도자 (=노동인 기도를 사명 삼고 자발적으로 전심다해 수고하는 사람 - 기도함으로써 우상 멸절하며, 영적 전쟁을 이겨냄으로써 전도/선교하며 부흥 일으키며 민족의 재앙을 막고 부흥을 가져오는, 축복-물체를 끌어당김-유통하는 이들, 결코 승리감에 도취되지 않는, 주 앞에 겸비한 자요 또 다른 단계의 예비하신 축복을 끌어 오며 선포하며 흘려보내는, 하나님의 통로된, 우주적 축복 유통자, Blessing flower ) *41 엘리야가 (갈멜산 대결과 바알선지자들의 기손시내 처형 장면을 지켜보며 긴장함으로 금식중인)아합에게 이르되 올라가서 먹고 마시소서 큰 비(소성케 되는 은혜의 축복 임하는) 소리(목소리)가 있나이다 *42 아합이 먹고 마시러 올라가니라 엘리야가 갈멜 산 꼭대기로 올라가서 땅에 꿇어 엎드려 그의 얼굴을 무릎 사이에 넣고 *43 그의 사환에게 이르되 올라가 바다쪽을 바라보라 그가 올라가 바라보고 말하되 아무것도 없나이다 이르되 일곱 번까지 다시 가라 *44 일곱 번째 이르러서는 그가 말하되 바다에서 사람의 손 만한 작은 구름이 일어나나이다 이르되 올라가 아합에게 말하기를 비에 막히지 아니하도록 마차를 갖추고 내려가소서 하라 하니라 *45 조금 후에 구름과 바람이 일어나서 하늘이 캄캄해지며 큰 비가 내리는지라 아합이 마차를 타고 이스르엘로 가니 *45 여호와의 능력이 엘리야에게 임하매 그가 허리를 동이고 이스르엘로 들어가는 곳까지 아합 앞에서 달려갔더라 *이해 : 하나님은 신뢰하는 바 그 종 선지자에게 당신이 하실 일을 보이지 않고서는 결코 일하시지 않으실 것.. 영광의 주님 만나뵙고 그분의 생생한 음성 들으며 그 영광의 보좌를 체험하고 본 자들, 그 친밀한 임재 앞에 머물러 하나님의 뜻과 심정 알아드리며 존재의 가치를 오직 주님 사랑함에서 우러난 절대적 순종에 두고, 기도와 금식으로 섬기며 중보하는 이들은 주님과 함께 보좌에 이르도록 날아오르는 독수리들.. 주께서 어떤 일을 행하려 임하시는 때와 그 징조를 알고 중보함으로써 그분이 오시며 행하실 길을 예비하는 선두주자의 영으로 행하는 자들.. 산 같은 문제를 해결하고 은혜 주시려 주가 친히 임하시는 그 걸음소리(비의 목소리)를 예민하게 내적인 귀로 듣는 자들이며 듣고 믿음으로 단순히 기다리기만 하는 것 아니라 듣는 바를 온전히 이루심 당장 보게 되기까지 주께 복종(무릎꿇음)과 겸손(머리숙임)으로 외부감각 베제(눈과 귀 가림)하며 더 집중해서 적극적으로 7번까지 기도하며(하나님 마음 알고 그 백성의 상황을 절감하며 구원 위해 절박한 심정으로 주로부터 당장 눈에 보이는 응답을 받아내기 위해 주님과 씨름하는 기도) 주님 주시는 능력으로 세상을 초월하는 이들임. * 한 가지 사안에 대해 3번 거듭 오는 내적 감동/깨달음은 <새 일 이루시려는> 하나님의 명령하심으로 여겨 즉각 순종하여 감당하려 (주님 지혜따라) 애쓸 때<자기생각 내려 놓고 비워, 가진 것 내어드림의 십자가-고난-재물 손실-시간 희생 등의 대가지불하는 순종> 동일한 큰 축복을 순종하는 이에게 이루심...온전한 사랑과 헌신의 친밀한 애정의 일편단심으로 하나님 마음 알아드리며 동의하며 그가 기쁘시도록 감동시켜드려 그분이 행하시게 하라 4.예언적 축복 전이하기(딤전4:14-15) : 영적장자권-예언적 축복 붙들어 살며 내적 기름부음 전이하기) : 하나님 주신 예언의 말씀 존중하며 그분의 뜻 이루실 것 확신하며 그분의 사시는 통로로 내어드림. *12 누구든지 네 연소함을 업신여기지 못하게 하고(허영과 미련함 버리고 존경받도록 지혜와 분별력 가운데 위엄있고 신중하게 행함으로써) 오직 말(사적인 말까지도)과 행실과 사랑과 믿음과 정절에(순전한 사랑과 믿음의 일편단심, 하나님과 사람 앞에 순결한 양심)(말씀을 참되게 살아내는 사랑의 삶과 영적 생활=영적예배) 있어서 믿는 자에게 본이 되어 *13 내가 이를 때까지 읽는 것(+깊이있게 말씀 연구 묵상)과 권하는 것과 가르치는 것에 전념하라 *14 네 속에 있는 은사 곧 장로의 회에서 안수 받을 때에 예언을 통하여 받은 것(부여받은 직분과 안수함으로 전이받은 성령의 특별한 은사와 능력들)을 가볍게 여기지 말며(방임 말것) *15 이 모든 일에 전심 전력하여 너의 성숙함(진보)을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게 하라 *16 네가 네 자신과 가르침을 살펴 이 일을 계속하라 이것을 행함으로 네 자신과 네게 듣는 자를 구원하리라 *자신 아닌 주바라기 == 하나님 주신 예언의 말씀 존중(Destiny 이룸 위해 주님이 예비하신 직분과 능력들을 성령안에서 잘 사용함,, 주신 비전을 하나님이 몸소 이루실 것 신뢰하며 지금 무엇하기를 원하시는 지 물어 행하고), 성령에 붙들려, 각 사람에 대해 하늘로부터 보여주시는 예언적 축복을 말해내며 부어주신 기름부음을 예언적 중보와 안수로 전이하는, 예언적 축복의 유통자요, 생명JC(영적후사)를 확장 생산하는 영적 아비로 살기. 5.영성으로 담넘기(창49:22-26) *22 요셉은 무성한 가지 곧 샘 곁의 무성한 가지라 그 가지가 담을 넘었도다 *23 활쏘는 자가 그를 학대하며 적개심을 가지고 그를 쏘았으나 (결코 그를 이기지 못하고)*24 요셉의 활은 도리어 굳세며 그의 팔은 힘이 있으니 이는 야곱의 전능자 이스라엘의 반석인 목자의 손을 힘입음이라 *25 네 아버지의 하나님께로 말미암나니 그가 너를 도우실 것이요 전능자로 말미암나니 그가 네게 복을 주실 것이라 위로 하늘의 복과 아래로 깊은 샘의 복과 젖먹이는 복과 태의 복이리로다 *26 네 아버지의 축복이 내 선조의 축복보다 나아서 영원한 산이 한 없음 같이 이 축복이 요셉의 머리로 돌아오며 그 형제 중 뛰어난 자(나실인)의 정수리로 돌아오리로다 *증거궤 만드는 싯딤나무처럼 영원한 샘JH 곁에 깊이 뿌리내려박음으로<견고한 심지> 영생수 한량없이 공급받음으로써 생명열매 풍성한 가지들이 담장을 넘는 나무 : 나라 민족 살아나게 하는 풍성한 생명 JC 공급케 하는 통로 나실인 됨 ***동행하시는 하나님 앙망하며 하나됨으로써 환경들(담장)-사람들(악한 자들의 쏘는 바 모든 화살들) 견디며 참아 이겨내어 연단 통해 거룩한 성품의 성숙 이루며 JC얻고, 힘과 능력이신 전능 하나님 의지함으로 <임마누엘>과 함께 모든 한계/장애물/문제들을 돌파하여 생명의 성장성숙 이루고 그 열매인 영적후사들을 통해 JC오실길 예비함 ***하늘의 이슬-비 포함한 모든 영적축복, 땅(묻혔던 영생수의 샘들 다시 회복하며, 새로운 샘을 개척-확장)의 형통의 축복 통한, 가족의 증다(영적 후사 잉태하여 낳고 양육) ==>조상의 축복 넘어섬< : 배/영의 샘으로부터 터져나온 생수가 강들이 됨> ***사랑으로 용서하고 기꺼이 연합하는 하나님의 왕자로서 살아감. 6.큰 그림 그리기(슥4:1-5) *1 내게 말하던 천사가 다시 와서 나를 깨우니 마치 자는 사람이 잠에서 깨어난 것 같더라 *2 그가 내게 묻되 네가 무엇을 보느냐 내가 대답하되 내가 보니 순금 등잔대가 있는데 그 위에는 기름 그릇이 있고 또 그 기름 그릇 위에 일곱 등잔(하나님 영광으로 충만하여 세상에 그 영광의 빛 비춰내는 하나님의 거룩하고 완전한 신부인 교회)이 있으며 그 기름 그릇 위에 있는 등잔을 위해서 (기름 공급하는)일곱 관이 있고 *3 그 등잔대 곁에 (기름그릇에 기름 공급하는)두 감람나무가 있는데 하나는 그 기름 그릇 오른쪽에 있고 하나는 그 왼쪽에 있나이다 하고 *4 내게 말하는 천사에게 물어 이르되 내 주여 이것들이 무엇이니이까(스스로의 무지를 안타까이 고백하며 알게 되기를 갈망하며 겸손히 물으라!!) 하니 *5 내게 말하는 천사가 대답하여 이르되 네가 이것들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느냐 하므로 내가 대답하되 내 주여 내가 알지 못하나이다 하니 *6 그가 내게 대답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스룹바벨에게(참스룹바벨 JC와 그 안에 거하는 성도들/교회) 하신 말씀이 이러하니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하나님이 거하실 영광스런 그리스도의 몸 성전/교회의 하나님께 합당한 건축) 힘(단체적 재력, 병력)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력(개인적 열정, 담력, 재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영으로 되느니라 *7 큰 산아(사단의 역사, 성전건축 방해하는 모든 장애물/난관들) 네가 무엇이냐 네가 스룹바벨(성육신하신 JC, 또한 그와 연합하여 하나되고 그 안에서 그로 인해 사는 성도들인 단체적 교회-스룹바벨의 영으로 행함) 앞에서 평지가 되리라 그가 (완성된 건축물의 이름 쓰인 관석인) 머릿돌을 내놓을 때에 무리가 외치기를 은총, 은총이(오직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 한량없는 성령 부어주심이) 그에게(건축이 완성된 JC의 몸) 있을지어다 하리라 하셨고 *8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9 스룹바벨의 손이 이 성전의 기초를 놓았은즉 그의 손이 또한 그 일을 마치리라 하셨나니 만군의 여호와께서 나를 너희에게 보내신 줄을 네가 알리라(이 일이 완결되었을 때) 하셨느니라 *10 작은 일(겉으로 보기에 보잘 것 없어 보이는, 미약한, 미천한 일, 하나님의 일의 시작은 바로 그러하기에 믿음이 필요하다--원수의 방해 끊임 없기에)의 날이라고 멸시하는 자가 누구냐 사람들이(성도들) 스룹바벨의 손에 (성전 재건하는)다림줄이 있음을 보고 (기대하며)기뻐하리라 (여호와의 세우신 바된, 여호수아 앞에 서 있는 새언약의 구속자, 산돌 JC에게 있는 눈-무소부지하신, 감찰하시는 하나님, 엘로이, 슥3:9) 이 일곱은 온 세상에 두루 다니는 여호와의 눈이라 하니라 *11 내가 그에게 물어 이르되 등잔대 좌우의 두 감람나무는 무슨 뜻이니이까 하고 *12 다시 그에게 물어 이르되 금 기름을 흘리는(기름그릇에 기름을 흘려보내 공급하는 통로인) 두 금관 옆에 있는 이 감람나무 두 가지는 무슨 뜻이니이까 하니 *13 그가 내게 대답하여 이르되 네가 이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느냐 하는지라 내가 대답하되 내 주여 알지 못하나이다 하니 *14 이르되 이는 기름 부음 받은 자 둘(Q뜻따라 통치하는 왕이요 사도반열 : 사도-복음전파자/전도자-목사 표상하는 스룹바벨과, Q과의 친밀한 교통안에 거하는 선지자반열: 선지자-예언적중보자-교사 표상하는 대제사장 여호수아 = <신약에서는>왕이요 대제사장인 JC안에서 JC로 인해 산출된, 기름부음 충만하여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에 기도를 통해 , 권능의 성령을 공급하는 왕같은 제사장인 성도들..벧전 2:4-9)이니 온 세상의 주 앞에 (항상 준비하여 대기하고)서 있는 자니라 하더라 *믿는 모든 이들의 Destiny인 참된 기도자(예언적 중보자)로 먼저 주께 자신을 헌신하여 드림이 필요.. --기도로 주 임재 앞에 머물러 그 영광 가운데 살며 한 없이 성령 부어주심을 받아 생명JC공급하는 통로로 내어드리는, 지성소의 제사장된 이들, JC안에서 보여주시는 비전을 따라 구체적인 그림으로 그려보고 주께 물어 그 의미를 깨달으며 확정할 것, -- 하나님이 거히실 처소인 그리스도의 몸, 곧 하나님 임재의 영광의 빛 나타낼 <성전 건축>이룸이 온전케 되도록 그리스도의 몸에 필요한 은혜 끊임없이 부어주시기를 간구하는 외침의 기도 드리며, 주님의 크기로 그 비전을 확대시키실 하나님의 전능하심 신뢰하며 하나님의 지혜를 따라 믿음으로 단계별로 실행함. -- 다윗의 열쇠 가지신 JC께 하늘 창고 열어 주심으로써 땅끝까지 나아가<전도-선교, 무너진 곳 보수, 주 오실 길 수축>함으로써 주님의 비전 온전히 이룰 물질(비전물질) 또한 넘치게 부어주사 그 비전 이룰 통로로 모든 성도가 쓰임받게 되기를 믿음으로 강청하여 구하며 항상 영안에 깨어 있어 주님 명령에 즉각적으로 순종할 것.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