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20.11.20 작성자 : 양시영
제   목 : 시124.임마누엘.엘에제르.구주찬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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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역개정]시124....너의가는길에주의축복.내일생다가도록.나비로소이제.나자유얻었네.오우리영혼이벗어났도다.WaitOntheLord..너희마음에슬픔이458.누가주를따라459.[이몸의소망488].

저높은곳을향하여491.만세반석열리니4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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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 구속자, 구속하시는 여호와=====@구속[무름(속량)/자유]회복---속전(지속적으로 정결케 하는 보혈의 능력)--보수./보응/심판

la'G:(1350, 가알) 되 사다, 속량하다, 구속하다, 근친의 역할을 행하다 [구속자 redeemer..근친/근족/혈연자 =고엘]

가알(동사)은 기본어근이며, '되사다, 도로 찾다, 속량하다, 구속하다 redeem, 근친 역할(권리, 의무)을 행하다'를 의미한다. 

따라서 이 어근은 '자기 친족을 어려움이나 위험에서 구하다'는 의미를 지니게 된다. 

이 어근과 매우 유사한 어근 파다([d"P; , 6308): 구속하다 redeem) 사이의 한 가지 차이점은, 일반적으로 가알(la'G: , 1350)의 강조점이 구속자의 자격과 행함에 있는데, 반드시 근친이어야 하며, 근친의 특권이나 의무는 다름아닌 속량에 있다는 것이다.((JC가 바로 그러하시다..그는 태초이전부터 아버지와 함께 계신 아들 하나님이시지만 동시에 이미 예고된 대로, 참사람으로서 성육신하셨고 인성을 가지셨기에 [죄로 인해 자기의 모든 것을 사탄에게 넘겨주고 파산한 자들인]우리의 피를 나눈 근친/근족으로서 모든 면에서  참된 자격과 능력을 갖추신 유일무이한 고엘이시다!!))

구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약 100회 이상 나오며, 칼형과 니팔형으로만 사용되었다.

가알은 착하고 진실한 사람이 자기의 친족을 위해 할 수 있는 일들을 포함하는 4개의 기본적인 상황에서 사용되었다.

(a)  첫째로, 가알은 오경의 법령에서 궁핍한 때에 판 밭을 되사는 것이나 가난할 때 자신을 판 이스라엘인 노예를 자유롭게 하는 것을 언급하기 위해 사용되었다. 

[합당한 대가를 치르고 되사서 본래 하나님이 창조하신 바로 그대로 각 사람에게 배정/배분된 대로 모든 것을 돌려주고 모든 권리를 회복시켜 지고지선의 진복 누림의 바탕을 제공하여 주는 구속의 일]로서 이런 매입과 무르는 일은 근친의 의무였다(레 25:25-54).

레 25:25에서 "만일 너희 형제가 가난하여 그 기업 얼마를 팔았으면 그 근족이 와서 동족의 판 것을 무를 것이요"라고 하였다. 

물론, 만약에 자신이 부유하게 되면 그 사람 자신이 그것을 '무를' 것이다(레 25:26). 

한편, 가난한 자는 기업만이아니라 자기 자신을 동족 이스라엘인에게나(레 25:39) 이스라엘에 살고 있는 타국인(레 25:47)에게 팔기도 하였다. 

그를 속량할 책임은 가장 가까운 친척 - 형제, 삼촌, 사촌들, 가족의 혈족 - 에게 있었다(레 25:25, 레 25:48, 레 25:49). 

경제적인 어려움에 처한 친척을 속량한 redeemed 자(혈연자)는 '근족 - 구속자'로 알려져 있었다. (참조: EDBW).

---가난한 자의 구제에 관한 가장 유명한 실례는 수혼법에 대한 구약성경의 증거가 가장 광범위하게 미치는 룻기에 있는 것 같다. 

신 25:5-10에 의하면, 남편의 형제는 후사 없는 과부를 취하여서 씨를 영속시키고, 남자 후손과 결부되어 있는 땅의 계승을 보증해야 했다. 

여기 [수혼법의 실행 의무]에서 그것을 실행하는 근친은 야밤이라고 불리어지며, 어근 가알은 사용되지 않는다.

....룻의 상황에서는 두 가지 것들, 즉 밭을 되사는 것과 수혼이 언급된다. 근친은 밭을 사는 것을 기꺼워했지만, 룻과 결혼하는 것은 기꺼워하지 않았다.

....그러나, 문제의 요지는 나오미가 가난하여 밭을 팔 수 밖에 없었을 때, 근친은 그녀를 위해 그 밭을 되사야 했다는 데 있다. 그는 후사 없는 형제의 과부를 위해서 이 일을 기꺼이 하려 했지만, 그가 [스스로 생각하기에는 그 근본을 모르는] 룻과 결혼하여 그들의 기업을 지속시킬 자손을 일으켜야 한다는 것을 알고는, 그는 거부하였으며 여기에 보아스가 개입하였다. 

....그러나 이 두 가지 것, 즉 친족과 수혼은 구별되어야 한다. 고엘(구속자)이란 단어는 후자의 제도를 가리키지 않는다. 

....레게트(Leggett)는 룻기에 구속적이고 메시야적인 유형론의 주제가 들어있다고 보았다. 

...."고엘(goel)로서의 보아스의 행동들에서 우리는 보아스의 후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 역사가 예시되어 있음을 보았다. 보아스가 구속의 권리를 소유하였으면서도 분명히 룻을 위하여 개입할 의무(까지)는 없었던 것처럼 그리스도께서도 그러하다. ((그러나, 보라...룻은 나오미의 견해를 따라서 겸손하게 자신을 신부로 취하여 후사를 낳도록 해 달라는 뜻으로 보아스의 이불을 들추고 눕는다!!...겸손과 순종의 극치이다!!))

....보아스가 이 가난한 과부들의 곤경을 보았을 때 그의 생애가 여호와와 여호와의 율법에 의해 지배를 받고 있었으므로 그들을 구원하러 왔던 것과 같이 메시야의 경우도 그의 생애가 하나님의 법에 의해 지배되고 또한 그가 가난한 자들과 억압 받는 자들을 공정하고 정당하게 대우하실 것이라는 사실이 예언되었다(시 72:2, 시 72:4, 시 72:12, 시 72:13, 사 11:4).

(b)  둘째로, 가알은 재산이나 여호와께 바쳐진 희생제물 아닌 짐승들을 무르는 것, 혹은 부정한 짐승들의 첫 소산을 무르는 것과 관련하여 사용되었다(레 27:11-33). 

이 [속전!!]사상은 인간이 교환물로 그에 상응하는 것을 여호와께 바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속전은 부정직한 교환을 피하기 위해 약간의 추가 몫이 제공되었다. 이런 경우에 무르는 자는 친족이 아니라 재산의 주인이었다.

(c)  셋째로, 가알은 살해당한 사람을 대신하여 "피의 보수자"(RSV '보복자' revenger)가 되는 가장 가까운 친족을 언급하는데 사용되며, 칼 분사 고엘로 나타난다. 

고엘은 구속자이며, 이 구속자는 '피의 보수자'로 불리우는데, 그의 임무는 자신의 친척을 살해한 자를 처벌하는 것이다(신 19:6). 

이 사상은 가까운 친족이 생명에는 생명으로 지불해야 한다는 것임에 틀림없다. 

돈을 지불함으로서 집을 재매입하거나 노예를 속량할 수 있는 것처럼, 친족의 잃어버린 생명은 마땅히 살인자의 그에 상응하는 생명으로 지불되어야 한다. 

친족은 피의 보수자이다. 이런 사형 제도는 피비린내 나는 숙원과 구별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고엘은 죄없는 사형 집행인이었으며 따라서 살해되어서는 안되었기 때문이다. 

이 단어는 '보수자'라는 의미로 12회 나온다(민 35:12, 민 35:19, 민 35:21, 민 35:24, 민 35:25, 민 35:27, 신 19:6, 신 19:12, 수 20:3, 수 20:5, 수 20:9).(참조: R. L. Harris).

(d)  넷째로, 가알은 하나님께서 '구속자'로서 '구속하시는 행위'에 대해 사용되었다.

....출 6:6에서 "나는 여호와라 내가 애굽 사람의 무거운 짐 밑에서 너희를 빼어 내며 편 팔과 큰 재앙으로 너희를 구속하여"라고 약속하신다(출 6:6, 참조: 시 77:15). 

이스라엘은 다음과 같이 고백한다: "주께서 그 구속하신 백성을 은혜로 인도하시되"(출 15:13). "하나님이 저희의 반석이시요 지존하신 하나님이 저희 구속자이심을 기억하였도다"(시 78:35).

....이사야서에는 '구속자'라는 단어가 하나님을 지칭하여 13회 나오는데 모두 사 41- 63장에서 사용되었다. 가알은 하나님에 대해 9회 사용되었으며, 사 43:1에서 "너는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가알은 애굽으로부터의 구원(사 51:10, 사 63:9)과 바벨론의 포로생활로부터의 구원(사 48:20, 사 52:3, 사 52:9, 사 62:12)을 언급하는데 사용되었다. 

이스라엘의 '구속자'는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사 41:14)이며 '너희의 왕 이스라엘의 창조주'(사 43:14, 사 43:15)이며 '만군의 여호와'(사 44:6)이며 '야곱의 전능자'(사 49:26)이다. 그의 구원에 참예하는 자는 '구속 받은 자'이다(사 35:9).

....시편에는 종종 영적인 구원이 육적인 구원과 병행되어 나온다. 예를 들면 시 69:18., "내 영혼에게 가까이 하사 구속하시며 내 원수를 인하여 나를 속량하소서". 시 103:2, 시 103:4.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며 그 모든 윤택을 잊지 말찌어다...네 생명을 파멸에서 구속하시고 인자와 긍휼로 관을 씌우시며..."이 그러하다(참조: EDBW).

[욥19:25,26,27]   *25. 내가 알기에는 나의 대속자가 살아 계시니 마침내 그가 땅 위에 서실 것이라   *26.내 가죽이 벗김을 당한 뒤에도 내가 육체 밖에서 하나님을 보리라   *27.내가 그를 보리니 내 눈으로 그를 보기를 낯선 사람처럼 하지 않을 것이라  ....*25. "And as for me, I know that my Redeemer lives, And at the last He will take His stand on the earth.   *26. "Even after my skin is destroyed, Yet from my flesh I shall see God;   *27.Whom I myself shall behold, And whom my eyes shall see and not another.  

....유명한 구절, 욥 19:25에서 고엘이란 단어는 흠정역성경에서 '구속자' redeemer로 번역되며 어떤 이들은 이 단어가 속죄의 사역을 하러 오실 그리스도의 오심을 나타내는 것으로 받아들였다. 이것은 히브리어 "파다"에 의해 더욱 특징적으로 표현될 것이다. 

....이제 욥 19:25에 나오는 이 단어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결국에는 욥을 죽음의 먼지에서 구속할 친구이자 친족으로서의 하나님의 사역과 더욱 정확하게 관련된다. 욥 19:26의 난해한 어구, "이 가죽을 벗은 후에"는 다른 모음들과 함께 "내가 깨어난 후에"로 번역할 수 있을 것이다(NIV 각주와 욥 14:12-14을 참조하라. 욥 14:12-14에서 부활에 관한 욥의 질문은 하나님께서 결국에는 그를 돌아보시며 욥은 나무처럼 제 2의 성장을 할 것이라는 그의 소망에 의해 절정에 달하게 된다 - 욥 14:14의 할리파는 욥 14:7의 할랍에 대한 응답이다). 어쨌든 욥은 마침내 자기 자신의 눈으로 자기의 고엘이신 하나님을 볼 것으로 기대한다(참조: R. L. Harris). 


..[[사59:20,21]]..*20.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구속자가 시온에 임하며 야곱의 자손 가운데에서 죄과를 떠나는 자에게 임하리라 *21.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그들과 세운 나의 언약이 이러하니 곧 네 위에 있는 나의 영과 네 입에 둔 나의 말이 이제부터 영원하도록 네 입에서와 네 후손의 입에서와 네 후손의 후손의 입에서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예레미야 9:24]] *23.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지혜로운 자는 그의 지혜를 자랑하지 말라 용사는 그의 용맹을 자랑하지 말라 부자는 그의 부함을 자랑하지 말라 *24.자랑하는 자는 이것으로 자랑할지니 곧 명철하여 나를 아는 것과 나 여호와는 사랑과 정의와 공의를 땅에 행하는 자인 줄 깨닫는 것이라 나는 이 일을 기뻐하노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미가6:8]]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히브리어  עִמָּ֥נוּאֵֽל(임마누엘) .......헬라어 Ἐμμανουήλ(임마누엘) 은 히브리어  עִמָּ֥נוּאֵֽל(임마누엘)을 음차한 것 .......임마누엘은 '임마누(עִמָּ֥נוּ)'와 '엘(אֵֽל)'이 합해진 말 ....'엘'은 하나님을 의미하고 '임마누'는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것을 의미....עִמָּ֥는 영어의 with에 해당되고, נוּ는 영어의 us에 해당되므로 'עִמָּ֥נוּ(임마누)'는 합해서 영어의 with us.....히브리어는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읽기 때문에  '엘(אֵֽל)'이 왼편에 있고 '임마누(עִמָּ֥נוּ)'가 오른편에 있다.

@@지고지선의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3가지 측면의 완전한 사랑 : 

---은혜(모든 기독신자에게, 구주 JC 빼어닮음과 주님 뜻 이룸 위해  아낌없이 베푸시는, 하나님 자신의 모든 것[성품-기념이름-풍성부요충만<전지전능>]의 실제), 

.......[[1. 롬 3 : 23~25]]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2. 갈 3 :13~14]]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라”

[[3. 고후 8 : 9]]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이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부요하게 하려 하심이라”

[[4.엡 2 : 4~5]]

“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

[[5. 딛 3 : 4~7]]

“우리 구주 하나님의 자비와 사람 사랑하심이 나타날 때에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가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따라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그 성령을 풍성히 부어 주사 우리로 그의 은혜를 힘입어 의롭다 하심을 얻어 영생의 소망을 따라 상속자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6. 히 4 : 16]]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7.딤후 2:1]]

“내 아들아 그러므로 너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은혜 가운데서 강하고”

[[8.벧전4:10]]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여러 가지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하라”

[[9.고전15:10]]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10. 고후12:9]]

“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긍휼(고난-환난-역경 극복 위해 불쌍히 여겨 친히 내주하사 함께 하나되어 체휼하시며 도와 일으키시는 HS, 보혜사 임마누엘 목자됨의 실제), 

.......[[에베소서 4:32]]

서로 인자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

[[시편 145:8]]

여호와는 은혜로우시며, 자비하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자하심이 크시도다

[[마태복음 9:36]]

무리를 보시고 민망히 여기시니 이는 저희가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유리함이라

[[시편 78:38]]

오직 하나님은 자비하심으로 죄악을 사하사 멸하지 아니하시고 그 진노를 여러번 돌이키시며 그 분을 다 발하지 아니하셨으니

[[이사야 49:15]]

여인이 어찌 그 젖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아니할 것이라

[[마가복음 6:34]]

예수께서 나오사 큰 무리를 보시고 그 목자 없는 양 같음을 인하여 불쌍히 여기사 이에 여러 가지로 가르치시더라

[[베드로전서 3:8]]

마지막으로 말하노니 너희가 다 마음을 같이하여 체휼하며 형제를 사랑하며 불쌍히 여기며 겸손하며

[[요한1서 3:17]]

누가 이 세상 재물을 가지고 형제의 궁핍함을 보고도 도와줄 마음을 막으면 하나님의 사랑이 어찌 그 속에 거할까보냐

[[시편 103:8]]

여호와는 자비로우시며 은혜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며 인자하심이 풍부하시도다

[[마태복음 14:14]]

예수께서 나오사 큰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사 그 중에 있는 병인을 고쳐 주시니라

[[마태복음 20:34]]

예수께서 민망히 여기사 저희 눈을 만지시니 곧 보게 되어 저희가 예수를 좇으니라

[[시편 103:13]]

아비가 자식을 불쌍히 여김 같이 여호와께서 자기를 경외하는 자를 불쌍히 여기시나니

[[골로새서 3:12]]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의 택하신 거룩하고 사랑하신 자처럼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입고

[[누가복음 7:13]]

주께서 과부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사 `울지 말라' 하시고

[[예레미야애가 3:32]]

저가 비록 근심케 하시나 그 풍부한 자비대로 긍휼히 여기실 것임이니라

[[시편 116:5]]

여호와는 은혜로우시며 의로우시며 우리 하나님은 자비하시도다

[[고린도후서 1:3]]

찬송하리로다 ! 그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시요 자비의 아버지시요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시며

[[시편 86:15]]

그러나 주여, 주는 긍휼히 여기시며 은혜를 베푸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며 인자와 진실이 풍성하신 하나님이시오니

[[마가복음 1:41]]

예수께서 민망히 여기사 손을 내밀어 저에게 대시며 가라사대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 하신대

[[로마서 9:15]]

모세에게 이르시되 내가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기고 불쌍히 여길 자를 불쌍히 여기리라 하셨으니

[[마가복음 8:2]]

`내가 무리를 불쌍히 여기노라 저희가 나와 함께 있은 지 이미 사흘이매 먹을 것이 없도다

[[긍휼 (그리스도의 긍휼) : 마태복음 11:28-30]]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긍휼 (그리스도인의 긍휼) : 에베소서 4:32]]

서로 인자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

[[역대상 7:22]]

그 아비 에브라임이 위하여 여러 날 슬퍼하므로 그 형제가 와서 위로하였더라

[[하나님 (하나님의 긍휼) :: 고린도후서 1:3]]

찬송하리로다 ! 그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시요 자비의 아버지시요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시며

[[하나님의 긍휼 :: 에베소서 2:4]]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평강( 모든 내적, 외적 갈등과 분쟁, 다툼을 극복하고 넘어서게 하는 바 하나님 경외하는 자의 근심/염려/걱정 없이 감사함의 모든 실제, 곧 지식-지혜-총명-경략-전지전능 하나님과 하나된 요동없는, 상황을 초월한,  영생의 신망애-인내-기쁨 누림)

........[[빌 4:6-9]] *6.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7.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8.끝으로 형제들아 무엇에든지 참되며 무엇에든지 경건하며 무엇에든지 옳으며 무엇에든지 정결하며 무엇에든지 사랑 받을 만하며 무엇에든지 칭찬 받을 만하며 무슨 덕이 있든지 무슨 기림이 있든지 이것들을 생각하라  *9.너희는 내게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를 행하라 그리하면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

[[."이사야 26장 3절"]]

주께서 심지가 견고한 자를 평강에 평강으로 지키시리니, 이는 그가 주를 의뢰함이니이다.   "이사야 26장 3절"

[["베드로전서 5장 7절"]]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겨 버리라, 이는 저가 너희를 권고하심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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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120]   *1.  내가 환난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내게 응답하셨도다   *2.  여호와여 거짓된 입술과 속이는 혀에서 내 생명을 건져 주소서   *3.  너 속이는 혀여 무엇을 네게 주며 무엇을 네게 더할꼬   *4.  장사의 날카로운 화살과 로뎀 나무 숯불이리로다   *5.  메섹에 머물며 게달의 장막 중에 머무는 것이 내게 화로다   *6.  내가 화평을 미워하는 자들과 함께 오래 거주하였도다   *7.  나는 화평을 원할지라도 내가 말할 때에 그들은 싸우려 하는도다

-------그러하기에-----

[시121]  *1.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   *2.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3.  ○여호와께서 너를 실족하지 아니하게 하시며 너를 지키시는 이가 졸지 아니하시리로다   *4.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이는 졸지도 아니하시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리로다   *5.  여호와는 너를 지키시는 이시라 여호와께서 네 오른쪽에서 네 그늘이 되시나니   *6.  낮의 해가 너를 상하게 하지 아니하며 밤의 달도 너를 해치지 아니하리로다   *7.  여호와께서 너를 지켜 모든 환난을 면하게 하시며 또 네 영혼을 지키시리로다   *8.  여호와께서 너의 출입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지키시리로다

------그러하기에----

[시122편]  *1.  사람이 내게 말하기를 여호와의 집에 올라가자 할 때에 내가 기뻐하였도다   *2.  예루살렘아 우리 발이 네 성문 안에 섰도다   *3.  예루살렘아 너는 잘 짜여진 성읍과 같이 건설되었도다   *4.  지파들 곧 여호와의 지파들이 여호와의 이름에 감사하려고 이스라엘의 전례대로 그리로 올라가는도다   *5.  거기에 심판의 보좌를 두셨으니 곧 다윗의 집의 보좌로다   *6.  예루살렘을 위하여 평안을 구하라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자는 형통하리로다   *7.  네 성 안에는 평안이 있고 네 궁중에는 형통함이 있을지어다   *8.  내가 내 형제와 친구를 위하여 이제 말하리니 네 가운데에 평안이 있을지어다   *9.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집을 위하여 내가 너를 위하여 복을 구하리로다

-----그러므로 내가 고하리라---

[시123편]    *1.  하늘에 계시는 주여 내가 눈을 들어 주께 향하나이다   *2.  상전의 손을 바라보는 종들의 눈 같이, 여주인의 손을 바라보는 여종의 눈 같이 우리의 눈이 여호와 우리 하나님을 바라보며 우리에게 은혜 베풀어 주시기를 기다리나이다   *3.  여호와여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시고 또 은혜를 베푸소서 심한 멸시가 우리에게 넘치나이다   *4.  안일한 자의 조소와 교만한 자의 멸시가 우리 영혼에 넘치나이다


-----그러므로 이렇게 고백할찌어다---


다윗의 시 곧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
1.  이스라엘은 이제 말하기를(
아마르...say..말하다-->이야기/생각/의도/선언/명령/약속하다) 여호와께서 우리 편에 계시지(하야..살아계시다....창조주 구주 임마누엘/삼마..에제르) 아니하셨더라면 우리가 어떻게 하였으랴

2.  사람들이(아담..사탄-육신/죄성-세상) 우리를 치러 일어날 때에(쿰 알...rise up against, attack) 여호와께서 우리 편에 계시지 아니하셨더라면
3.  그 때에 그들의 노여움이 우리에게 맹렬하여 우리를 산채로 삼켰을(발라..들이삼키다) 것이며
4.  그 때에 물이 우리를 휩쓸며(샤타프..엄몰하다) 시내가(나할...계곡 와디의 급류) 우리 영혼을(네페쉬) 삼켰을 것이며(아바드..소멸/영멸하다..통과하다/끝내 사라지다)
5.  그 때에 넘치는(제돈..노도같은, 맹렬하여 제동불가한) 물이 우리 영혼을 삼켰을(아바드) 것이라 할 것이로다
6.  우리를 내주어(나탄...<~의 소유로> 넘겨/내어주다) 그들의 이에 씹히지(테레프...씹혀 먹히다) 아니하게 하신 여호와를 찬송할지로다(바라크)
7.  우리의 영혼이(네페쉬) 사냥꾼의 올무(파흐..새덫, 금속판)에서 벗어난(말라트) 새 같이 되었나니 올무가 끊어지므로(샤바르...깨뜨려부수다) 우리가 벗어났도다(말라트..구출/구원/방면/자유케 하다-벗어나 피하다)
8.  우리의 도움은(에제르..파라클레토스..보혜사..단독자/공동체로서 주임재영광안에 거하며 전심으로 기뻐하며 감사로 예배하라!!...에제르= 필수도움/배필 essence, essential)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의 이름에(이름은 그자신의 어떠함!!..항기쉬기범감..Q알고사랑하며섬김누림이 지고지선의 진복) 있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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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물, 죄, 악  ::: 지고지선의 하나님 뜻 이룸을 거스리는 총체적 죄악.... 하나님의 성품(의로움)따라 뜻하신 그대로 이룸(공의와 정의)에 반하여, 육적 자행자제함으로 거역/반역함은 허물, 주님 뜻에서 어긋남이 범죄(죄 범함), 하나님을 무시하기에 말씀이 없음으로 인해 나타나는 피조물에 대한 학대의 모든 실제가 악 ]...대적하여 일어나다 = 봉기하다 : (동)사탄..(명)사탄....지혜의 하나님은 모든 환난/곤고를 성도들의 영적 생명의 성장성숙, JC빼어닮은 [하나님의 모든 말씀따라 기뻐 하나되어 자원/헌신/순복하는 자녀됨] 위해 허락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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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준새번역]시124 다윗의 시, 성전에 올라가는 순례자의 노래
1.  (다윗의 시, 성전에 올라가는 순례자의 노래) 이스라엘아, 대답해 보아라. 주께서 우리 편이 아니셨다면, 우리가 어떠하였겠느냐?
2.  "주께서 우리 편이 아니셨다면, 원수들이 우리를 치러 일어났을 때에,
3.  원수들이 우리에게 큰 분노를 터뜨려서, 우리를 산 채로 집어삼켰을 것이며,
4.  물이 우리를 덮어, 홍수가 우리를 휩쓸어 갔을 것이며,
5.  넘치는 물결이 우리의 영혼을 삼키고 말았을 것이다."
6.  우리를 원수의 이에 찢길 먹이가 되지 않게 하셨다. 주님을 찬송하여라.
7.  새가 사냥꾼의 그물에서 벗어남같이 우리의 목숨을 건져내셨다. 그물은 찢어지고, 우리는 풀려 났다.
8.  우리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주의 이름 안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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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JV]시124
1.  If it had not been the LORD who was on our side, now may Israel say;
2.  If it had not been the LORD who was on our side, when men rose up against us:
3.  Then they had swallowed us up quick, when their wrath was kindled against us:
4.  Then the waters had overwhelmed us, the stream had gone over our soul:
5.  Then the proud waters had gone over our soul.
6.  Blessed be the LORD, who hath not given us as a prey to their teeth.
7.  Our soul is escaped as a bird out of the snare of the fowlers: the snare is broken, and we are escaped.
8.  Our help is in the name of the LORD, who made heaven and earth.
===시124 개요=====
다윗은 이 시편을 하나님께서 그들 모두가 파멸하게 될 많은 무서운 위험으로부터 그와 그의 백성들을 위해 행하신 커다란 구원의 때에 기록했다(우리가 추측하는 바). 

그러나 그 위험이 외부의 침입에 의한 것인지 또는 내부의 반란에 의한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그것이 어떠하든지간에 다윗은 그들을 위해 탈출할 길을 예비하신 하나님의 인자하심에 깊이 감동되어 있는 것같이 보이며, 다른 사람들에게도 감동을 주려고 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는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돌리는 데에 힘쓴다. 일반적으로 정복자들이 행하는 것같이 자신에게는 아무런 영광도 돌리지 않는다.
1. 그는 그들이 처한 위험의 광대함과 아슬아슬한 파멸의 순간에 있다는 사실을 확대시킨다(1-5).
2. 그는 1-2절과 비교하면서 그들의 탈출의 영광을 하나님께 돌린다(6-7).
3. 그로부터 하나님을 신뢰하는 용기를 갖는다(8).
우리는 이 시편을 노래하면서 우리 시대와 조상들의 시대에 우리와 우리 백성들을 위해 시행하신 특별한 구원에 그 마음을 기울여보자. 그렇게 한다면 우리의 생각 중에 예수 그리스도에 의한 우리의 구속의 놀라운 업적, 우리가 어둠의 권세로부터 구출된 구속의 사업을 깨닫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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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백성의 안전(시 124:1-5)
저희의 구원을 인해 하나님을 찬양하도록 부르심 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은 다음 두 가지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
Ⅰ. 파멸의 지경에 몰아넣는 인간들의 악덕에 대해. 이스라엘은 그들과 죽음 사이의 거리가 한 걸음밖에 안 됨을 말한다. 

질병이 절망적인 것으로 나타날수록 의사의 기술은 더욱 효과적인 치료책을 찾게 되는 법이다.
다음과 같은 사실을 살펴보자.
1. 어디로부터 무서운 위험이 왔는가? 

“사람들이 우리를 치러 일어난다.” 

우리의 동류인 피조물도 우리의 파멸을 기대한다. 즉, “인간은 인간에 대해 이리이다”(Homo homini lupus). 

붉은 용과 포효하는 사자를 두려워할 것 없다. 우리를 삼키려고 찾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간들이 인간의 피를 목말라하고, 압살롬이 그의 육친 아버지의 피를 목말라하는 것을 두려워해야 한다. 

여인이 성도들의 피를 마시고자 한다는 사실에 성 요한과 함께 우리는 큰 경탄으로 놀라워한다. 

우리는 인간에게서 인간성을 기대하지만, 자비가 아니라, 오히려 “포악한 자들”이 있다. 

그런데 이러한 사람들에게 무엇이 문제인가? 왜 “저희의 노가 우리를 대하여 맹렬하였는가?”(3절) 

그들은 여러 가지로 노하지만, 그들이 불쾌하게 생각했던 자들의 파멸을 채우기 위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분노는 잔인하며 성냄은 무도한 것이다.” 

그들의 분노는 우리를 태우기 위해 준비된 불같이 맹렬했다. 그들은 교만했다. 

“악한 자들은 그들의 교만으로 가난한 자들을 박해한다.” 

그들은 저희의 계획을 감행한다. 그들은 “우리를 산 채로 삼키려는” 결심으로 “우리를 대하여” 일어났고, 반역적으로 일어났다.
2. 좀더 많이 진척된다면 그 상태는 얼마나 숙명적이며 얼마나 악화되었을 것인가? 

우리는 사자에 의해 살육될 뿐만 아니라, “삼키운 바 된” 어린양과 같이 멸망되었을 것이다. 

우리가 의식하기도 전에 황급히 삼켜져서 우리가 남아 있는 흔적도 없이 되었을 것이다. 

우리는 땅의 홍수로 낮은 지반이 덮임같이 되고, 큰 조수 때의 사막과 같이 엄몰되었을 것이다. 

그는 이와 같은 경험을 했고, 나머지 부분에서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라고 부른 것과 같이 상승되었다. 

“물이 우리를 엄몰하였다.” 우리의 무엇을 엄몰하였는가? 

“시내가 우리의 영을 잠갔을 것이다.” 우리의 생명과 우리의 위로와 우리가 아끼는 모든 것을 잠갔을 것이다. 무슨 물인가? 그것은 바로 “교만의 물이다.” 

하나님은 그의 백성의 적들이 때때로 저들을 누르고 고난을 당하게 하신다. 이는 그의 권세가 저희를 구원함으로써 더욱 분명하게 나타나게 하려는 것이다.

Ⅱ. 파멸의 위기에서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인자하심에 대해. 

“여호와께서 우리 편에 계신다.” “여호와께서 우리 편에 계시지 아니하시면”, 우리는 아무것도 행할 수 없다.
1. 하나님은 우리 편에 계셨다. 

그는 우리의 편을 드시고, 우리의 소송을 지지하시며, 우리를 위해 나타나신다. 

그는 우리의 도우시는 자며, 도움을 주시는 자, 우리 편에서 가까이 해주시는 도움이시다. 

하나님은 우리 편만이 아니라, 우리 가운데 함께 계시고 우리 군대의 총사령관이 되신다.
2. 그 하나님은 여호와가 되셨다. 

거기에는 강조가 들어 있다. 

우리의 구원을 수행하신 자가 여호와, 즉 무한한 권능과 완전하심의 하나님이 아니었다면, 우리 대적들이 우리를 압도했을 것이다. 

저희의 하나님이 여호와며, 모든 일에 흡족한 하나님의 백성들은 복이 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이것을 말해야 하고, 그를 저버리지 않을 것을 결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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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백성의 구원(시 124:6-8)
시편 저자는 하나님께서 그들을 위해 늦게 행하신 커다란 구원을 더욱 확대시킨다.
Ⅰ. 저희의 마음이 하나님께 대한 감사함으로 더욱 크게 열렸다(6절). 

“여호와를 찬송할지로다.”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구원의 창시자이므로 그들의 영광을 받으셔야 한다. 

우리가 하나님께 감사를 돌리지 않는다면, 그에게 당연히 주어져야 할 것을 강탈함이 된다. 

우리가 그렇게 어려운 탈출을 했기 때문에 더욱 그를 찬양할 의무를 가진다.
우리는 구원을 받았다.
1. 맹수의 턱으로부터 구출된 어린양과 같이 구원받았다. 

하나님은 “우리를 저희 이에 주어 씹히지 않게 하신다.” 

그것은 저희가 하나님의 백성을 능가할 권세를 갖지 못했음을 의미한다. 위로부터 저희에게 권세를 주지 않는다면 어려운 일이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포기하시지 않는 한, 그들은 저희의 이에 씹혀 먹이가 될 수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저희가 파멸되는 것을 참으실 수 없기 때문이다.
2. “새가”, 작은 새가(이 말은 참새를 의미한다) “사냥꾼의 올무에서 벗어남같이” 구원받았다. 

적들은 매우 심술궂고 악하다.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죄와 환난에 이르도록 올무를 놓고 그들을 지켜본다. 

그들은 그들의 계략을 행하는 동안 때때로 승리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올무에 걸려 약하고 어리석은 새들처럼 스스로 빠져나올 수 없게 된다. 

그러나 모든 다른 친구들이 실패할 때, 그때가 바로 저희의 구원을 위해 나타나실 하나님의 때인 것이다. 

하나님은 그 올무를 파괴하시며, 적들의 계략을 어리석음으로 돌리신다. 

“올무가 끊어지므로 우리가 벗어났도다.” 

이삭은 그가 희생제사로 바쳐질 즈음에 구원되었다. “여호와 이레―여호와의 산에서 준비되리라.”
Ⅱ. 저희의 마음과 다른 사람들의 마음이 같은 위험 속에서 하나님을 신뢰하도록 격려된다(8절). 

“우리의 도움은 여호와의 이름에 있도다.” 

다윗도 우리의 개인적인 관심사들에 대한 도움을 하나님께 의뢰하도록 지시한다. 

“나의 도움이 여호와의 이름에 있도다”(124:8, 1:2). 

여기에서는 민중의 관심에 관해서 말한다― “우리의 도움이 거기에 있다.” 

저희의 마음 가까이에 하나님의 이스라엘에 관한 관심을 두고,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똑같이 세상을 지으시며, 세상에서 교회를 취하시고, 가장 큰 위험과 곤경의 때에 교회를 구원하실 수 있다는 확신은 모든 자에게 위로가 된다. 그러므로 교회의 형제들이 그들의 확신을 하나님께 두면 그들은 결코 혼동에 빠지지 않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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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why(3068, 예호와) 여호와, 야웨

예호와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나타내는 고유명사이며, '여호와, 야훼'로 음역한다. 우리가 "여호와"라고 부르는 하나님의 명칭은 본래 히브리어 4자음 문자 '요드, 헤, 와우, 헤(YHWH)로 구성되어 있다. 이 신성 4문자(Tetragammaton)는 하나님의 인격적 이름으로 성경에서 창 2:4에 처음으로 나타나며, 구약성경을 일관해서 총 6,000여회(cf. BDB) 나타난다.

이 하나님의 이름은 한글 번역본의 개역에서 "여호와", 공동번역에서 "야훼", 영역본에 Jehovah 라고 음역하고 있지만 그 정확한 발음을 알 수가 없다.  중세 어느 때에 그 정확한 발음을 잃어버린 것이다. 그러므로 신성 4문자에 대한 정확한 발음과 기원 및 의미는 상당한 논의의 주제가 되어왔다(Freedman. TDNT).

1. YHWH의 발음과 금기

(1)  마소라 본문에서 YHWH는 영속적 케레(qere perpetuum)의 명칭이다. 하나님의 이름을 구성하는 이 신성 4문자는 너무 거룩하므로, 유대인들은 관습적으로 그 이름을 발음하지 않았다. 사본 필사자들이 신성 4문자를 기록할 때는 매번 완전히 목욕을 하고 완전히 옷을 갈아 입었으며, 그 문자들을 기록하는데 사용한 붓을 부러뜨렸다. 감히 입으로 말하기가 황송한 그 이름에 대한 경외심 때문에 구약성경  시대 이후(B.C. 3세기 경부터), 회당에서 성경을 낭독할 때, 또는 읽는 자들이 성경에서 그 이름을 볼 때마다 명사 아도나이(adonay, 나의 주님)로 발음했다. 이것은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문자적으로, 헛되이, 경솔히) 일컫지 말라”는 계명과 관련된 것이다.

그 후에 마소라 학자들이 자음으로만 기록되어 있는 구약 본문에 모음을 삽입할 때 아도나이(adonay)를 나타내는 마소라 모음을 신성 4문자 YHWH의 모음으로 첨가했다(C. Brown, TDNT). 그렇다면 야호와(yahowah)로 발음 표기되어야 하는데 예호와(yehowah)로 발음 표기되어 있다. 이것은 첫 음절에 a 모음을 가지면 그들이 피해야 하는 바로 그 금기를 위반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언어 구조상 가장 특색이 없는 e를 선택하여 예호와(yehowah)로 표기한 것이다. 이러한 기록은 신성 4문자의 첫 음절이 e 혹은 이와 유사한 모음을 포함하고 있지 않다는 직접적 증거가 된다(C. H. Gordon, Vgaritic TextBook, Anor, 38, 1965; R. Kittel, "Yahweh", Schaff-Herzog).

(2)  구약성경에서 하나님의 이름 예호와(yehowah)와 합성된 인명(人名)을 살펴보면 두 가지 어형을 가지고 있는데 요­(yo-)와 예호­(yeho-)이다. 예를 들면 '여호와께서 주신다'를 의미하는 yonatan(요나탄, 삼상13:3)과 yehonatan(예호나탄, 삼상18:1)이다.

그리고 yehosua(예호수아:여호와는 구원이시다)라는 칭호는 하나님의 이름을 포함하고 있는 아주 오래된 이름이다. 세칼(M. H. Segal)은 이 호칭이 일찍부터 존재했다는 것은  YHWH라는 명칭이 모세에게 계시되기 전에 이미 알려졌음을 나타내 주는 증거로 보았다. 보다 긴 어형이 보다 짧은 어형보다 더 이른 시대에 사용되었다. 그렇다면 보다 긴 어형이 분명히 본래의 어형이다(G.J. Botterweck의TDOT).

그리고 야-(ya-)나 야호-(yaho-)로 부르지 않고 요-(yo-)나 예호­(yeho-)라고 부른 것은 야-(ya-)나 야호-(yaho-)가 금기가 되기 때문에 피한 것이다.

어떤 인명의 끝 부분에서 신성 4문자는 역시 두 가지 어형 형태를 가지는데 '-yahu(-야후)와 -yah(­야)'이다. 예를 들면‘나의 왕은 여호와이시다’를 의미하는 malkiyyahu(말키야후)와 malkiyyah/ya(말키야)이며, 여기서도 보다 긴 어형 ­야후가 우선이다. ­야후나 ­야는 첫음절 이외에는 금기가 되지 않으므로 본래의 발음대로 표기한 것이다.

구약시대 말기(주전 5세기)의 엘레판틴 파피루스(Elephantine papri)의 더 짧은 이름 YHW는 -야후(shemayahu=셰마야후같은 이름에서 처럼)나 야호-(Jehozadek=예호체닥 같은 이름에서 처럼)로 읽어야 한다고 기록하고 있다. 야호(yho)라는 발음은 B. C. 1, 2세기 쿰란의 헬라어 단편들과 1세기의 영지주의 문서에서 발견된 헬라어형 iao(야오)에 의해 확증된다.

2. YHWH의 어원 및 의미와 보다 정확한 발음

(1)  어떤 학자들은 이 이름을 달에 대한 숭배와 관련된 감탄의 소리로 간주되고 있는 원시적인 어형 야(Yah)로부터 유래되었다고 본다(참조, G. R. Driver, ZAW, 46, 1928). 그래서 그 이름이‘오 그 분’을 의미하는 야­후와(Ya -huwa)에서 유래되었다고 암시하는 학자들도 있다(참조, M. Buder, Moses, 「1946」1958. 49f,: S. Mowinckel, "The Name of the God of Moses").

그러나 이러한 이론은 거부되었다. 그 이유는 그 이름을 감탄사의 소리로 간주하게 되면 신앙이 언제나 그 이름에 기초를 두어 왔다는 종교적 내용과 그 이름에 부수되는 계시적 가치를 설명하기 어렵기 때문이다(참조, E. Jacob, Theology of Old Testament).

(2)  보다 적절한 해석은“있다, 존재하다”를 의미하는 동사 haya(하야)와, 그리고 그 동의어 hawa(하와)와 관계되어 있다고 보는 것이다. 출애굽기 3:14에서 하나님은 모세에게“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ehyeh aser ehyeh) 스스로 있는 자(ehyeh)가 나를 보내셨다 하라 나를 너희에게 보내신 이는 하나님 여호와( YHWH)라 하라 이는 나의 영원한 이름이요 대대로 기억할 나의 표효니라”고 말씀하셨다.

R. de Vaux는 에흐혜 아셰르 에흐혜라는 문구의 번역과 의미에 대해서 가장 좋은 번역문은 "I am He who Exists"(나는 존재하는 자[그]이다)라고 주장한다.

NASB, NRSV는 "I AM WHO I AM"으로 번역했다.  이 문구는 그 의미에 있어서 초시간적(omnitemporal)이다. '나는 이미 존재하였고, 이제도 존재하고, 앞으로도 존재할 자, 곧 영원히 존재하는 자이다' 는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그 이름 에흐예(ehyeh)는 칼 미완료 1인칭 단수로“나는 있다”이다. 그러나 사람은 이 이름으로 하나님을 부르지 않는다. 야훼/여호와라는 이름은 사람이 그를 3인칭으로 말할 때 생긴다.

따라서 하야(haya)의 미완료 3인칭(히필형)은 야흐예 또는 야혜(yahyeh)이며, 그 동의어 하와(hawa)의 미완료 3인칭(히필형)은 야흐웨 또는 야훼(yahweh)이다. 여기서 발음상 두 경우에 유사하지만 야훼가 신성 4문자 와 더 근사하다.

혹자는 YHWH가 동사 하와(hawa)에서 유래한 것이 아니라 모세 시대에 하와(hawa)가 발음되었던 소리와 비슷한 소리를 내는 어떤 기원이 불분명한 고대의 단어라고 제시하지만 우리는 출애굽기 3장 내용과  YHWH 를 연관시켜 연구해 본 바 hawa(하와)와  YHWH가 서로 관계가 있다고 생각된다.

또한 N. Walker 등은‘있지도 않은 히필형(사역형)을 만들어 낸다고 비난하지만 W. F. Albright, D. N. Frcedman 등 여러 학자들은 히필형이 남서 셈어에서 알려 지지 않았다고 해도 그것이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이름이었으리라고 시사했다. 따라서 하나님의 이름인 신성 4문자 YHWH는 하와(hawa)의 미완료 야흐웨(yahweh, 보통 야훼로 발음함)와  YHWH의 후기 표기인 헬라어 야웨(iaoue)나 야베(iabe)에서 볼 때, 원래의 발음이 YaHWeH였으리라고 생각된다.

데오도레토스(4세기)는 사마리아인들이 신성 4문자를 iabe(야베)로 발음했다고 말한다.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3세기 초)는 iaoue(야웨)로 발음했다.

YHWH의 셋째 문자인 와우(w)를 사마리아인들은 b(ㅂ)로 발음하고 클레멘트는 ou(우)로 발음한 것이다.

(3)  남부 가나안 언어들(히브리어, 모압어)이 y는 i, w는 u, h는 e, a로 발음되었다고 본다면  YHWH는 iaue(야웨)로 발음될 수 있다(여러 가지 발음이 제시되고 있을지라도). 이 음역은 앞에서 살펴본 바, 후기 헬라어 표기인 iaoue(야웨),  iabe(야베, b를 u로 발음할 때 iaue[야웨〕가 된다)와 일치하며, hawa(하와)의 미완료 3인칭 히필형 yahweh(야흐웨, 야훼)와도 일치한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이름YHWH의 발음은 야웨(yahweh)이라고 거의 확신할 수 있다.

3. YHWH의 번역들

(1)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이 하나님의 이름  YHWH는 마소라 본문에서 금기 때문에 예호와(yehowah)로 나타난다. 우리가 지금 일반적으로 공인하고 있는 70인역본도 이 이름을 유대인들의 읽기(케팁→케레)를 따라 '퀴리오스'로 번역했다.

RSV와 다른 역본들도 이 이름이 본문에 나올 때는 언제나 주(LORD)라는 단어를 대문자로 기록함으로서 이 관계를 따르고 있다. 마찬가지로 라틴어 성경도 도미누스(Dominus:주 Lord)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

현재 세계의 거의 모든 성경 번역본들(극소수를 제외하고)은 '주' 라는 말을 사용하며, 새번역 표준판도 '주' 라고 번역했다. 이것은 하나님의 이름 여호와/야훼란 이름을 세계의 모든 성경에서 제외시키는 무서운 음모라고 할 수 있다.

70인역본에 대해 한마디 하고자 한다. 지금 보유하고 있는 가장 오래된 70인역본의 한 사본 단편들에는 헬라어 본문에 히브리어 문자로 쓰여진 신성 4문자 YHWH가 등장한다. 이 관습은 주후 1세기의 후기 유대인 구약성경 역자들에 의하여 실행되었다. 쿰란에서 발견된 70인역본의 한 사본에는 심지어 신성 4문자가 IAW로 번역되어 있다.

이러한 발견들은 70인역본의 번역자들이 신성 4문자(YHWH)를 '퀴리오스'로 번역했다고 하는 생각에 대해 의심을 갖게 한다. 그렇다면 이것은 70인역본의 본문에 있는 신성 4문자를 철저하게 퀴리오스로 대치시킨 것이 주로 기독교인 서기관들의 짓이라는 이론을 뒷받침해 준다(P. E. Kahle, H. Bietenhard).

그러므로 현재 우리가 70인역본으로 공인하고 있는 70인역본은 본래의 70인역본 을 변개한 것으로 볼 수 있으며, 그렇다면 이 70인역본을 따르는 것은 진정한 70인역본과 다른 길로 행하는 것이 된다.

(2)  그리고 예호바(Jehovah)라는 어형은 마소라 본문의 표기에 근거하여 16세기에 통용되었으며, 갈라티누스(P. Galatinus)의 라틴어 역본에서는 iehoua(예호와)라는 어형으로 나온다(De Arcanis Cath, Veritatis, 1516, 11).

1530년에 틴데일(Tyndale)은 출애굽기 6:3을 번역할 때 Jehouah(예호와)를 사용했다. 그 후 Jehovah는 표준 철자가 되었다(C.Broun:DNTT). 따라서 미국표준역성경(ASV)과 신세계번역본(NWT)는 Jehovah, 한글 개역은“여호와”로 번역했으며, KJV는 일곱개의 구절, 즉 그 이름이 특별히 강조되거나(출 6:3; 시 83:18; 사 12:2; 26:4), 다른 요소와 결합된 구절(창 22:14; 출 17:15; 삿 6:24)에서 Jehovah로 번역했다.

그러나 "Jehovah"나 "여호와" 는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YHWH라는 하나님의 이름에 대한 바른 음역이라고 할 수 없으며, yahweh가 더 바른 음역이다. 예루살렘성경과 공동번역은 야훼로 번역했다.

4. YHWH의 이름의 중요성

이름은 신이든 사람이든 그 인격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어떤 존재의 이름을 아는 자는 누구든지 그 이름에 관한 힘을 행사할 수 있다. 이름은 그 이름을 가진 자와 매우 밀접히 결합되어 그의 본성을 나타내는 하나의 능력이다. 이스라엘에 있어서는 다만 표상 명칭이나 특정인의 인격과 다른 사람의 인격과를 구분짓는 이상으로 그 인격의 전존재성과 본질성 그 자체와 동일시 하고자 했다.

(1)  구약 종교에 있어서 신의 이름을 아는 것은 그와의 교제(혹은 상대)를 위해 특별히 중요한 것이다.

신을 영화롭게 하고 신의 도움을 확보하기 위해 사람은 신의 이름을 알아야 한다. 야곱은 그와 씨름한 강력한 존재에게(창 32:30), 또한 마노아는 신비한 신적 사자에게(삿 13:17이하), 그들의 이름을 알기 위해 물었다.

그러나 구약의 다른 곳에서 하나님은 친히 그 이름을 계시로 알리셨다(창 17:1; 출 3:14; 6:2). 하나님은 모세에게“나는 여호와(YHWH, 야훼)로다”라고 말씀하셨다.

모든 이름 중에 여호와의 이름이 가장 의의가 깊고 중요하다. 성경 계시의 가장 기본적이며 본질적인 특징 중의 하나는 하나님께도 이름이 있다는 사실이다. 그는 인격적인 이름을 가지셨고 그 이름에 의하여 그를 부를 수 있으며 또 불러야 한다. 지정된 전에서 여호와께 호소할 때 그는 가까이 오셔서 복을 주실 것을 약속하셨으며 그 약속을 지키신다. "내가 무릇 내 이름을 기념하는 곳에서 네게 강림하여 복을 주리라”(출 20:24). 제사장들과 레위인들과 심지어 왕까지도 여호와의 이름으로 축복한다(민 6:24­27; 신 10:8; 삼하 6:18).

(2)  신명기는 이스라엘이 어떻게 여호와를 상대하며 그의 임재를 확보할 수 있었는가라는 문제에 대해 답을 한다.

여호와 하나님은 하늘에 거하시지만 그러나 그는 땅에 그의“이름”이 거할 장소를 선택하셨다(신 12:11; 14:23; 참조:삼하 7:13; 왕상 3:2; 5:17). 그의 이름이 성전에 거한다는 점에서 여호와의 임재, 그 자체가 보증된다(왕상 8:13이하). 여호와의 이름은 그 자신과 마찬가지로 주권성을 가진다.

그래서 시편 기자들은 '하나님의 사랑하는 자들이 그 이름으로 기쁨을 누리리라'(시5:11; 7:17; 9:2, 10; 18:49 등등)라고 찬양하고 있다. 이스라엘에 있어 하나님 예배는 바로 그대로 그 성호를 앙청하고 응답하는 행위로써 그 자체가 하나님의 임재 앞에 그 이름의 실체이신 주권 앞에 완전한 헌신을 뜻하는 것이었다.

여호와의 이름은 그 자체의 능력있고 독립된 존재로 생각할 수 있다. 물론 그것은 그의 이름이 여호와 그 자신과 여전히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것을 함축한다. 그 이름 자체의 능력있는 힘을 통하여 경건한 자들은 여호와의 보호와 도움을 경험한다.(참조:잠 18:10; 말 1 :11; 시 54:6).

(3)  여호와의 이름은 때때로 여호와에 대한“찬양”, 여호와의“영광”이란 의미로 사용된다(사 26:8; 55:13; 시 41:10)."여호와의 이름을 위하여”혹은“여호와는 그의 이름이시로다”(출 15:3; 사 51:15; 렘 10:16; 암 4:13; 시 23:3)와 같은 표현상의 변화가 있어도 같은 방향을 가르치며, 세상에서, 그리고 이스라엘이 그 의미를 알리는 모든 국가 중에서의 여호와의 주권과 영광에 대한 그의 주장을 지적해 준다(사 12:4; 시 105:1­3).

진실로 종말에 여호와께서 세상에 계시됨으로서 온갖 우상 숭배가 사라지고 모든 무릎이 홀로 하나이신 그의 이름 앞에 꿇을 것이다'(슥 14:9; 사 45:23, G. Von Rad).

(4)  여호와의 이름과 관련하여, 그의 이름으로 여호와께 요구하고 기원한다는 종교 의식을 통해 그에게 예배드린다는 것이다(참조:창 4:26; 12:8). 이러한 표현을 사용하는 것은 여호와의 권능이 관여하도록 요구하는 것이다. 제사장이 백성을 축복할 때 복을 수여하는 것은 그것과 제사장의 축복 행위와 자유로이 연결시킨 하나님의 처분에 있는 것이다(민 6: 24­26, 27; 참조:신 10:8; 삼하 6:18; 왕하 2:24).

따라서 여호와의 이름은 마술의 수단이나 방편이 아니라 계시의 선물이다(Bietenhard). 이것은 야웨의 이름을 언급하거나 부르는 것에 야웨의 능력을 믿는 신앙을 함축한다는 사실을 인정치 않는 것이 아니다.

사람이 '베솀 야웨'즉 야웨의 이름을 언급함으로 맹세(삼상 20:42; 레 19:12), 저주(왕하 2:24), 혹은 축복할 때(삼하 6:18) 이렇게 발언한 그 이름은 야웨의 임재, 배려(attention)와 실제적 간섭(개입)을 보증한다.

(5)  진실로 여호와의 이름은 그의 인격적 통치와 활동의 강력한 표현이기 때문에 여호와 자신을 말함에 있어서 그 이름이 대용될 수 있다(레 18:21; 시 7:17; 미 5:4­5). 여호와께서 인간과 접하시는 면이 바로 그의 이름이며, 이 이름으로 여호와께서는 자신을 계시하신다. 과거(출 3:6, 13, 15)와 현재(출 20:7)와 미래(겔 25:17; 34:50)를 통한 인간에 대한 그의 역사적 다루심은 그의 이름과 불가분의 관계가 있다.

10계명은 분명히 마술이나 주문 혹은 거짓 맹세에서 이 하나님의 이름을 오용하는 것을(맹세가 여호와의 이름을 언급하는 것을 수반하기 때문이다) 금하였다.(출 20:7). 왜냐하면 이미 언급한 바 여호와의 이름은 계시의 선물이며 인간이 마음대로 할 수 없기 때문이다(창 17:1; 출 3:14; 6:2).

거짓 선지자들의 여호와께 대한 호소는 불법이다. 이는 그들이 여호와로부터 고하라는 임무나 말씀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신 18:20; 렘 14:14이하; 23:25; 29:9). 여호와의 이름은 이스라엘을 신용하여 그들에게 맡긴 것이다. 그러므로 이방인들은 그 이름을 모른다(시 79:6).

이스라엘은 그 이름을 거룩하게 하는 임무를 맡았다. 이것은 예배의식, 희생제사, 기도, 축복과 저주 또한 거룩한 전쟁(Holy war, 시 29:8)에서 일어난다. 다시 말해서 여호와를 섬기되, 그 만을 섬기며 그의 계명에 복종함으로써 그 일을 수행할 수 있다. 따라서 다른 신의 예배 의식에 참예하는 것은 여호와의 이름을 더럽힙을 뜻한다(레 19:21).

여호와의 이름으로 예루살렘(렘 25:29), 성전(렘 7:10), 언약궤(삼하 6:2)를 일컬어 이것들을 성별, 여호와와 관련시키는 것은 바로 그러한 신성화의 유일한 기초이다(참조:F.F. Brace, DNTT; Bietenhard, TDNT).

(6)  모세는 하나님께 백성들이 자기를 보낸 자의 이름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내가 무엇이라고 말하리까? 라고 물었다. 하나님은“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 너희에게 보낸 이는 여호와라 하라 이는 나의 영원한 이름이요, 대대로 기념할 나의 표호니라”고 대답하셨다(출 3 :13-15).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백성을 세겜에 모아 놓고 "이제 너희는 여호와를 경외하며 성실과 진정으로 여호와만 섬기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수 24:14-15). 신자에 있어서 여호와는 대대로 기억해야 할 소중하고도 큰 영원한 이름이다. 이 이름을 잊어버리다니 언어도단이다.

어떤 고대 역사에 의하면 의인 시몬(Simon)이 죽은 후에(B.C. 200년경) 제사장들은 축복 행위에서 여호와 이름을 언급하는 것을 중지했다고 한다(T. Sot 138). 성전 예배 의식에서 여호와의 이름은 여전히 대속죄일에 대제사장이 축복할 때 사용되었다.

그러나 교육 행위에서 성경 인용시 여호와라는 단어가 '이름'이라는 '셈'으로 대치되었다. 그래서 신성 4문자 YHWH를 사용하기를 중단했으며, 따라서 그 발음마저 잊어버렸다.

그런데 놀라운 일은 세계의 거의 모든 성경 번역자들은 성경에서 여호와/야웨라는 이름을 없애버린 것이다. 대한성서공회서 번역한 표준 새번역도, 몇 군데를 제외하고는 여호와란 이름을 모두 없앤 것이다. 역사의 하나님 여호와를 최고의 역사 기록에서 삭제해 버리는 이 무리들은 회개해야 할 것이다.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은 그에 대한 관심이 그만큼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여호와, 혹은 야웨라는 이름이 소중한 큰 이름임을 명심해야 한다."내가 여호와의 이름을 찬양하나이다”. - 아멘 -.

(참조: J. B. PAYNE; FREEDMAN; O'CONNOR; RINGGR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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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B;(1288, 바라크) 무릎을 꿇다, 축복하다, 복을 주다, 찬양하다

바라크(동사)는 기본어근이며, '무릎을 꿇다, 축복하다(복을 주다), 찬양하다'를 뜻하며, 다른 의미로는 주로 하나님에 대하여 '저주하다, 욕하다'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왕상 21:10, 왕상 21:13, 욥 1:11, 욥 2:5). 기본적으로 바라크는 '유익한 능력을 부여하다'라는 의미를 지닌다. 구약성경에서 '축복한다'는 것은 '성공, 번영, 생산, 장수 등을 위한 능력을 부여한다'를 의미한다. 이 의미는 부여하는 과정과 부여 받는 상태를 모두 포함하고 있다.

우리는 여기서 진정 하나님이 주시는 복이 어떤 것인지를 알게 된다. 또한 바라크의 의미를 보면 무릎을 꿇는 것과 축복이나 복을 받는 것은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보여준다.

(1)  무릎을 꿇는 것, 곧 기도하는 것은 축복을 받는 비결이다.

대하 6:13(참조: 왕상 8:14, 왕상 8:54)을 보면 솔로몬은 성전 봉헌에서 놋대 위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했다. 하나님의 복은 백성들이 예배가 끝나고 자기 집으로 돌아갈 때 그들에게 내려졌다. 이렇게 하여 이 복은 그들의 일상 생활에 실현된다.

아브라함의 늙은 종은 이삭의 신부를 구해오라는 주인의 부탁을 받고 메소포타미아 나홀의 성에 이르러 낙타를 그 성밖 우물 곁에 무릎을 꿇게 하고 하나님께 기도했다. 그 종의 기도로 주인과 종은 하나님의 은혜로 이삭의 좋은 신부감을 얻는 복을 받은 것이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복을 주신다. 열심히 기도하자.

(2)  무릎을 꿇는, 곧 여호와를 경배하는 것은 복을 받는 비결이다.

시 95:6이하에서 시인은 "오라 우리가 굽혀 경배하며 우리를 지으신 여호와 앞에 무릎을 꿇자 대저 저는 우리 하나님이시요 우리는 그의 기르시는 백성이며 그 손의 양이라 너희가 오늘날 그 음성을 듣기를 원하노라"(빌 2:10, 빌 2:11)라고 말했다.

시인은 시 115:2이하에서 "여호와께서 우리를 생각하사 복을 주시되 이스라엘 집에도 복을 주시고 아론의 집에도 복을 주시며 무론 대소하고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에게 복을 주시리로다... 우리는 이제부터 영원까지 여호와를 송축하리로다 할렐루야"라고 노래했다.

(3)  신앙 공동체는 자기가 받은 복에 대하여 여호와를 찬양함으로서, 곧 "여호와를 찬송할지어다"라는 외침으로 응답했다.

시 28:6, 시 28:7에서 다윗은 "여호와를 찬송함이여 내 간구하는 소리를 들으심이로다. 여호와는 나의 힘과 나의 방패시니 내 마음이 저를 의지하여 도움을 얻었도다. 그러므로 내 마음이 크게 기뻐하며 내 노래로 저를 찬송하리로다"라고 노래했다.

여러분 바라크라는 말을 기억하라.

바라크 -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것이다.

바라크 - 무릎을 꿇고 경배하는 것이다.

바라크 - 하나님이 복을 주시는 것이다.

바라크 - 받는 복을 감사하며 찬양하는 것이다.

(참조: H. -G. LINK; 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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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er:c]yI(3478, 이스라엘) 이스라엘 Israel.

이스라엘은 엘(laE , 410)과 사라(hr;c; , 8280)로 구성되어 있다. 

그에 대한 설명은 창 32:28에서 야곱이 하나님과 씨름한 이야기에 나온다: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사람으로 더불어 겨루어 이기었음이라"(참조: 호 12:4). 

따라서 그 이름은 "하나님과 겨루어 이긴 자"라고 해석되어 왔지만, 그 문구에 대한 정확한 번역에 따르면 '하나님과 더불어 힘을 얻어 강하게 된 자'를 의미한다. 

그 문구에는 '통치하다'를 뜻하는 동사 사라르나 '다투다, 힘을 가지다'를 뜻하는 사라가 들어 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통치하신다, 하나님이 투쟁하신다'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도 있다.

이스라엘은 사람의 이름으로 사용되었다(예: 창 50:2; 출 1:1; 대상 1:34).

그러나 이스라엘은 또한 부족과 국가의 이름으로도 사용되었다. 예를 들면, "이스라엘 자손"(레 1:2; 삿 2:4), "이스라엘 족속"(출 40:38; 삼상 7:2; 사 46:3)이며, 그것은 특히 북왕국에 해당되는 말이지만(왕상 12:21; 호 5:1; 암 5:1; 미 1:5) 남왕국에게는 명예칭호로 사용되기도 했다(사 5:7; 렘 10:1). 

구약성경 외에서 이스라엘 백성에 대한 최초의 대외적인 언급은 애굽왕 메르넵타(Merneptah)가 주전 1220년경 그의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세운 비석의 비문에 나온다. 그곳에서 그는 "이스라엘은 황폐화되었다. 그 자손은 멸절되었다"라고 자랑하고 있다(참조: D. Winton Thomas, ed. Documents from Old Testament Times). 비롤레오드(C. Virolleaud)의 기록에는 이스라엘은 우가릿에서 사람의 이름으로 등장한다.

이스라엘은 신약성경에서 68회 나오며, 다음과 같이 사용되었다.

① "이스라엘 집", 이스라엘의 가족 또는 자손, 이스라엘 종족, 마 10:6; 마 15:24; 행 7:42.

② "이스라엘 자손", 이스라엘의(아들들 즉 자녀들) 자손, 눅 1:16; 행 5:21; 행 7:23, 행 7:37; 롬 9:27.

③ "이스라엘 지파들", 마 19:28; 눅 22:30; 롬 9:27.

④ 환유법에 의해 '이스라엘의 자손' 즉 '이스라엘 족속'이라는 뜻으로(특별히 영광스러운 이름이다. 왜냐하면 이 이름은 메시야를 통한 구원의 약속과 관련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선택에서 에서가 아닌 야곱에게 주어졌고 훗날 그의 자손에게 성취될 약속이었던 것이다: 마 2:6; 마 8:10; 마 9:33; 눅 1:54, 눅 1:68, 눅 1:80; 행 4:8; 엡 2:12; 롬 11:2, 롬 11:7, 롬 11:26.

⑤ "이스라엘 백성들', 행 4:10, 행 4:27.

⑥ "이스라엘 땅', 즉 팔레스타인, 마 2:20.

⑦ "이스라엘의 왕", 마 27:42; 요 1:49.

⑧ "이스라엘의 소망", 행 28:20.

⑨ "하나님의 이스라엘", 즉 그리스도인들, 갈 6:16.

⑩ "육신을 따라 난 이스라엘", 생래적 이스라엘인들 즉 유대인들, 고전 10:18.

⑪ 강조적 의미에서, "이스라엘에게서 난 그들이 다 이스라엘이 아니요", 육체의 혈통을 이스라엘로부터 받은 자들이 모두 참된 이스라엘인들인 것은 아니다, 롬 9:6.

(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R. May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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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m'a:(559, 아마르) 말하다 say

아마르(동사)는 기본어근이며, '말하다'를 의미하며 여기서 '이야기하다, 생각하다(마음으로 말하는 것), 의도(기도)하다, 선언하다, 명령하다, 약속하다' 등의 의미로 확장되었다.

구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약 5,300회 나온다.

아마르의 가장 일반적인 용법은 직접적인 대화에서 나온다. 이때 주체는 하나님(창 1:3), 에덴동산의 뱀(창 3:1), 두려워서 하나님에게로부터 숨고자 한 아담(창 3:10), 완고한 선지자를 전환시키려고 한 발람의 당나귀(민 22:28), 전쟁을 하고 싶어하는 군마(욥 39:25), 바다 속에 있는 지혜의 거처를 부인하는 바다(욥 28:14), 왕을 찾는 숲의 나무들(삿 9:8)이다. 이 동사가 문자적인 문맥들, 의인법우의, 그리고 엄격한 설화에서 이용된다는 사실을 쉽게 알 수 있다.

이 단어의 대다수의 용례들은 영어의 say와 같이 '말하다'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a)  아마르는 하나님의 창조적인 말씀에 대해 사용되었다. 7일간의 창조사에서 10번 나타난다(창 1:6, 창 1:9, 창 1:11, 창 1:14, 창 1:20, 창 1:24, 창 1:26, 창 1:28, 창 1:29). 여기서 이 단어는 통상적인 것보다 더 함축적인 의미로 사용되었다. 이 단어는 그것이 표현하는 것을 존재케 하는 신적 명령의 말씀, 곧 '창조적 말씀의 전능성'을 보여준다. 이것은 시 33:9에 '저가 말씀하시매 이루었으며, 명하시매 굳게 섰도다'(롬 4:17)라는 말이 증명한다. 더 깊은 의미의 창조적 말씀에 대하여는 시 33:6; 사 40:26; 요 1:1-3; 히 1:2; 히 11:3; 골 1:16등이 증언한다. 하나님의 이런 창조적 말씀은 모든 인간적인 말과 다르다. 그 말씀은 공허하지 않고 (신 32:47; 사 55:11) 강력하며, 전능하며, 최고의 창조적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하나님의 말씀은 미래를 선포하고 그 미래가 실현될 수 있도록 돕는 예언적 말씀이기도 하다. 이 창조 기사에서 이러한 신적 말씀의 특성이 분명히 나타나 있다(참조, Lange, Von Rad).

(b)  아마르는 때로 '약속하다 promise'를 의미하기도 하는데, 이렇게 사용되는 경우는 아주 드물다.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영원한 왕조를 주시겠다고 하신 약속(왕하 8:19), 이스라엘에게 약속의 땅을 소유하도록 하신 약속(느 9:15), 혹은 아하수에로 왕이 그의 영토 내에 있는 모든 유대인들을 멸할 기회를 얻으리라고 한 하만의 약속(에 4:7)에 대해 언급하는 구절에서 이 동사의 의미는 이런 것이다.

(c)  아마르는 '명령하다 command'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이것은 이 단어가 하나님이나 유능한 어떤 권위 있는 사람에 의해 언급되어지는 경우에 그렇다.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가라고 명령하셨다(창 12:1). 여호와께서는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셨고, 여호수아는 그 말씀을 명령(차와)으로 실행하였다(수 11:9).

그리고 아마르는 성전 정화 이후의 제물에 관한 히스기야의 명령(대하 29:24), 하만과 그의 아들들을 매닮으로써 유대인을 도살하라는 포고를 번복시키라고 한 아하수에로의 서신 명령(에 9:25)에서 발견된다.

(d)  아마르는 몇몇 구절에서 다음과 같은 의미로 사용되었다. 신 8:17, 시 14:1에서 '마음에 이르다'라는 표현은 '생각하다'는 의미를 나타낸다.

자주 사용되지는 않지만, 흥미 있는 용법은 '공언하다, 말하게 하다'라는 의미로 사용된 경우이다. 모세는 연설을 끝내면서 이스라엘에게 그들이 그를 통해서 하나님을 그들의 하나님으로 삼기로 맹세했었다는 사실을 상기시켰다(신 26:17-18).

아마르는 '당당하게 행동하다'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저희가 지꺼리며 오만히 말을 하오며 죄악을 행하는 자가 다 자긍하나이다"(시 94:4).

사 61:6에서 이 의미는 좋은 의미의 '자랑하다' boast인 것 같다: "오직 너희는 여호와의 제사장이라 일컬음을 얻을 것이라 사람들이 너희를 우리 하나님의 봉사자라 할 것이며 너희가 열방의 재물을 먹으며 그들의 영광을 얻어 자랑할 것이며".(참조: T. E. Mccomiskey; BDB; K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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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8-10 히브리어 ‘에제르’… 하나님 속성 표현할 때도 사용

...돕는 배필, 하나님의 선물

입력 2020-08-10 00:04

김지연 한국가족보건협회 대표가 지난 5일 부산 수영로교회에서 차별금지법이 공교육에 미친 해외 사례를 설명하고 있다.

한 여학생의 진지한 질문이 생각난다. “선생님, 저는 정말 교회에서마저 페미(페미니즘의 줄임말)가 돋아요. 왜 하나님은 여자를 ‘돕는 배필’로 지으셨나요. 저는 창조 때부터 ‘시다바리’입니까. 시다바리가 뭔지 아시죠. 저는 창세기 읽다 보면 하나님이 남녀 성별에 따라 처음부터 사람을 차별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나를 남자의 하녀로 만드신 하나님인가요.”

사실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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