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베드로후서(서론)
-----------*[신의 성품에 참예함..벧후1:4..(결합-연합한 하나...성령안에서, 성령과 함께 Q마음밭 경작=참인성의 인격 회복)] 야덴 헬라크 베토비아 엘로힘
...베드로전서는 하나님 나라의 신성한 통치, 그 아래서 사는 그리스도인이 누구며, 그들의 생활 가운데 완전한 그들의 영생구원 위해 반드시 거치도록 예비하신 삶의 제문제들과 그것들을 어떻게 이해하고 어떤 자세로 극복하기 원하시는 지 그 의미를(특히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겪는 고난/환난, 핍박/박해, 어려움들, 간고, 질고 등 제반 시련들은 다름 아니라 하나님의 집에서부터 시작하는 하나님의 심판<그리스도 닮음 위한 징게/연단 의 다루심>이며, 동시에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함이요, 이것은 그리스도의 재림때에 그 어떠함이 드러날 것인데, 그것을 통해서만 구원영생의 완전함에 도달하게 됨을) 말하고 있으며, 베드로후서는 하나님 나라의 신성한 통치에 협력하며 동역하는 그리스도인들을 위해, 그들이 <하나님의 영광과 덕으로 부르사, 그 안으로 부르심 받은 바 그들을 온전케 하며, 마침내 충만케 될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조금도 흘리지 않고 완전히 소유하고 누림 통해>신적 성품에 참예함 이루시는 하나님이 베푸시는 신성한 공급(신성한 신적 성품, 곧 하나님이 그리스도안에서 계획하고 이루어 나가시는 영생구원을 위해 하나님이 미리 준비하사 공급하시는 God's provision or supply)이 어떤 단계를 거쳐서 이루어지는지, 그것을 위해 조심할 것은 무엇인지를 밝혀준다.
---신약의 참 기독자인 성도들마다에게 할당된 기업/분깃/유업은 바로 영존하시는 하나님 자신, 곧 성육신하시고 이 땅에서 우리 위해 고난-십자가 죽음의 모든 과정 거치사 부활승천하시고 성령으로 오셔서 내주하시는 구주예수그리스도이시니, 그분의 영광과 덕 +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곧, 그분의 이름-인격-영광<능력-부-지혜-힘> 등 모든 소유, 전능한 신적인, 동일한 보배로운 믿음-소망-사랑, 그 모든 것>이 그분과 함께 믿는 이의 분깃에 포함된다...오직 주바라기의 하루하루 매순간마다, 만유안에 만유 위에 충만하신, 존귀하신 분이요 영광과 찬송 받으시기에 합당한 참생명 그리스도를 믿고, 사랑하고 살아내며, 감상-음미-누림 그 가운데서 공급받아 충만케 된 바로 그대로 참생명 그리스도를 공급하라!!
---즉, 신약의 유업은 오직 참되게 믿는이들의 믿음을 통해 그 누림안에 있게 하셨는데, 구주 하나님이 분배하신 바 하나님 자신과 그분께 속한 신성한 (신적)본성/성품을 포함한, 생명<내적 수단과 능력>과 경건<외적 표현>에 관한 모든 것 + 보배로운 믿음 + 보배롭고 지극히 뛰어난 약속들,
^^4가지 종류로서의 의 : 우리의 의(행함)-율법의 의-하나님의 의/구주의 의...신약시대에서 인정되고 적용되는 의란 율법의 의나 타락한 사람의 행위에서 난 의가 아니라 오직구주 하나님의 의라는 것을 잊지말라.... *적용의 측면에서는 공정(justice...베푸심에 차별 없음) *그 원어적 의미는 공의(righteousness...오직 유일하게 의로우신 하나님께 합당함/완전한 하나됨과 완전히 열납됨의 조건....십자가 대속의 행위<구주 하나님 편에서는 완전히 해결하시고 베풀어 놓으셨음...다만 남은 것은 이것을 믿음으로 자기의 것으로 받아들이냐의 여부임>)
@@신앙이란 하나님의 경륜, 곧 분배의 내용이다
.... 하나님의 경륜(오이코노미아 : 분배, 계획, 가정관리)은 하나님 자신을 신자안에 분배함이요, 결국 신약경륜은 신약시대에서 하나님의 친히 행하시는 바 하나님, 곧 구주를 신자안으로 분배함이다.
...., 신약경륜은 그 실제(=성경안에 계시된 객관적 진리의 실제)가 분명하다.
..... 참믿음(the faith, 보배로운 믿음)은 그 실제(진리)를 실지로 체득함, 곧 실체화(주관적 체득 통해 확증함) 시키는 것이며,
..... 영원생명은 신앙의 신성한 실제를 실행 가능하게 하는 수단과 능력이요 ...., 경건은 하나님의 모든 풍성안에서 그분의 영광표현을 그대로 표현해 내는 생활이다.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그가 살아계신 것과 자기를 찾는 자에게 상주시는 이임을 믿어야 할지니라 하신대로) 당신의 영광과 덕으로써 우리를 부르신 이를 < 산 믿음을 발휘하여>참되게 알 때, 그분의 능력이 하나님 자신을 우리의 생명과 경건에 관련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음을 깨달아 알게 됨....하나님에 대한 객관적 지식에서 피상적으로 머무름이 아아니라 바로 그분의 모든 속성, 성품과 이름의 영광 그대로, 실지로 그러하심을 알아가기를 추구함으로써, 길이-너비-높이-깊이에 있어서 철저히,심오하게, 실천적, 체험적인 주관적 깨달음과 앎 ...
즉, 성경에 계시해 주신 바 하나님의 모든 영광과 덕, 곧 이름과 속성(비공유적/공유적)들을 참되게 체득하여 알게 될 때(열린 마음으로 성령의 깨닫게 하심따라 교통함 통해), 연이어 구주하나님이 자신을 우리의 내적 참생명(생활 수단과 능력 근원)과 외적 경건(하나님 경외함, 곧 살아계신 하나님을 살아내며 표현함)에 관련된 모든 것으로 주셨음을 참되게 깨달아 알게됨.....은혜란 바로 이 하나님 자신과 그분의 모든 영광<하나님의 신성의 표현된 광채 : 이것은 목표이다>과 덕<미덕, 그 목표에 도달하게 하는-그 어떤 것도 막지 못하는-탁월한 생명에너지요 힘.하나님의 속성과 본성들>을 누림[=그리할 때, 거기에 마침내 도달함/이르게 됨]이며, 평강은 그분과 온전한 하나됨을 누림통해 이루는 바 하나님과 사람에 대한 화해-화목-화평-평안-안정-안돈인데 이것은 계속 증가하는 것이며 이때, 신적 본성[보좌로부터 흘러나오는 생명수강과 생명나무로 묘사된, 풍성한 생명 특히, 능력-부(풍성부요충만)-지혜-힘]에 참예(참여)함이 된다....이 부르심은 믿는이가 동참할 때 이루어 짐을 명심하라. [[아가서의 도드처럼 상호사랑안에 머물며 그 뜻대로 살기를 실행하라]]
==>은혜와 평강의 증가/증대를 체험하는 길은.....이미 하나님의 영광과 미덕에 이르도록 예정하시고. 당신의 영광과 모든 미덕으로 부르신 바, 생명과 경건에 관한 모든 것을 받아 누리도록,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의 보혈을 믿고 붙들고 생명삼음의 절대기쁨/절대 긍정/절대확신과 신뢰의 보배로운 믿음을 발휘함으로써) 참되게 믿는 이마다에게 열어 공급해 주셨고, 내적 수단이요 능력으로서 참생명을 받았기에, 단순히 말씀을 펴서 [신약안에서 주어진 약속들을] 기도로 읽어나감<기도로 말씀읽기> 통해서 하나님의 신성한 본성에 참여(참예)할 수 있게 되었음..
==>이제 더 나아가 기도하고 구하라, [막 11:22-25] *22. 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을 믿으라 *23.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져지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루어질 줄 믿고 마음에 의심하지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 *24.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25. 서서 기도할 때에 아무에게나 혐의가 있거든 용서하라 그리하여야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허물을 사하여 주시리라 하시니라 :: *22 Jesus replied, “Have faith in God [constantly]. *23 I assure you and most solemnly say to you, whoever says to this mountain, ‘Be lifted up and thrown into the sea!’ and [f]does not doubt in his heart [in God’s unlimited power], but believes that what he says is going to take place, it will be done for him [in accordance with God’s will]. *24 For this reason I am telling you, whatever things you ask for in prayer [in accordance with God’s will], believe [with confident trust] that you have received them, and they will be given to you. *25 Whenever you [g]stand praying, if you have anything against anyone, forgive him [drop the issue, let it go], so that your Father who is in heaven will also forgive you your transgressions and wrongdoings [against Him and others]. *26 [h][But if you do not forgive, neither will your Father in heaven forgive your transgressions.”]
로마황제 네로의 통치시기 후반부인 AD 66년경 베드로가 순교하기 직전에 쓴 글
본 서신의 저자는 베드로전서를 쓴 저자와 같은 사람이라는 것은 명백하다.
어떤 학자들이 본 서신의 문체를 전서의 문체와 구분함으로써 다소간의 차이점을 지적하고는 있지만 그것만으로 본 서신이 예루살렘 교회에 있었던 사도 야고보의 후계자인 시몬에 의해 씌어졌다는 것을 논박할 만한 충분한 근거는 되지 못한다.
그 이유는 본 서신을 기록한 저자가 자신을 시몬 베드로 또는 사도라고 하고 있으며(1:1), 또 그리스도께서 변화산 위에서 변화하실 때 거기에 참예하였던 세 사람의 사도들 중의 한 사람이었다고 말한 점(1:18) 그리고 그가 전번 편지를 썼다고 하는 점을 분명히 밝힌 것(3:1) 등을 보아서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본서의 기록 목적은 3장 1절에서 밝힌 바와 같이 전서와 동일하다.
이 구절을 살펴볼 때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 일에 있어서, 교훈에 교훈을 더하고, 경계에 경계를 더하여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것들을 기억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그 교훈의 말씀을 충실하게 기록하고 자주 기억을 되새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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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후서 ◉베드로후서 개관◉
1. 본 서와 유다서의 정경성(正經性)에 관한 문제
유다서와 본 서는 많은 관련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함께 언급하는 것이 좋다.
먼저 신악성경에서 이 두 서신이 차지하고 있는 위치를 상정하는 문제이다.
오늘날에 있어 베드로 후서는 평범한 내용의 전개와 더불어 한쪽으로 치우쳐 강조하며, 유다서는 고발적이며 단조로운 내용으로 전개되어 있기 때문에 독자들이 쉽게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있다. 또한 두 서신서는 묵시 문학으로 종말론을 집중적으로 강조하고 있다고 한다.
16세기에 이르러 성경에 관한 정경성 문제가 대두되었을 때 이 두 서신서 역시 도마 위에 올려지게 되었다.
칼빈(John Calvin:1509-1564)과 에라스무스(Erasmus;1466-1536)는 결론적으로 두 서신서를 정경으로 인정은 하지만, 애매 모호한 입장이다. 특히 루터(Martin Luther;1483-1546)와 같은 경우는 '9월의 언약'(September Testament, 1522)이라는 부록에 유다서를 첨가시키고 있다.
그리고 카제탄(Cajetan)과 외콜람파디우스(Oecoampadius)는 정경에 가까운 제2의 권위에 속한다고 분류하고 있다.
신약성경 중에서 베드로후서만큼 오랜 기간을 두고 정경성 문제에 관한 논쟁이 지속된 것이 없을 정도로 오랜 세월동안 정경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제롬에 의하면 베드로전서에 비교해 볼 때 문체상 많은 상이점이 있는 이유로 인해 정경으로 인정받지 못했다고 한다.
그러나, 본 서는 다른 성경과는 달리 동방에서 먼저 정경으로 받아들였다. 이러한 모습은 초기 콥트 번역과 헬라어 파피루서72에서 찾을 수 있다.
이러한 사실에 대해 오르게네스는 라틴어 번역을 믿을 수 있다면 정경으로 인정할 수 있으나 논란의 여지는 남아있다고 한다.
오르게네스 이외에도 아다나시우스, 그레고리(Gregory), 에피파니우스(Epiphanius) 등은 정경으로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유세비우스, 크리소스톰(John Chrysostom), 몹수에스티아(Mopsuestia), 데오도르(Theodore) 등은 본 서를 정경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A.D.397년 카르타고 회의에서는 정경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지만 수리아 교회등지에서는 6세기 초까지 베드로후서를 정경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이 두 서신에 대해 오늘날에도 많은 의심의 여지를 남겨 놓고 있다. 즉 다른 신약성경과 비교해 볼 때 우수성이 결여되었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겠으나, 초대교회 기독교 신앙을 과소평가해서는 안 될 것이다.
또한 루터는 복음의 메시지가 불분명하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그러나 두 서신서는 영적인 능력과 통찰력을 가지고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이런 비평의 와중에서도 (여전히 !!)두 서신서의 영적 위치에 대한 일정한 의의를 높이 평가할 수 있다.
즉 장차 있을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경고와 재림, 사도들의 가르침에 대한 것들이다.
2. 수신인과 수신지
본 서의 수신인과 수신자는 베드로전서와 동일한 것으로 보인다.
즉 "사랑하는 자들아 내가 이제 이 둘째 편지를 너희에게 쓰노니.…"(벧후3:1)라는 구절에서 엿볼 수 있다.
따라서 "본도,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와 비두니나에 흩어진 나그네"(벧전1:1)이다.
그런데 여기서 흩어진 나그네는 일시적인 체류자나 방랑자들까지도 포함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베드로가 이런 나그네까지 포함한 이유는 이들 역시 하나님 나라의 시민권을 소유한 자이기 때문이며 무엇보다도 아시아 지역에 거주하는 유대인들을 의미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베드로를 사도행전에서는 최초의 교회지도자로 평가하고 있다. 베드로는 주로 팔레스틴 지역을 중심으로 복음의 메시지를 전파함과 아울러 기독교 신앙으로 개종한 유대인들과 타지역에 거주하고 있던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했다.
3. 저술 동기
당시 교회 지도자들은 외압과 내부적인 붕괴가 일어나고 있던 시기이다. 또한 바리새파인들은 기독교를 유대화하는데 전력을 기울이고 있었다.
이러한 시점에서 베드로전서는 옛 계약과 새 계약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베드로후서는 반(反)유대화에 역점을 두고 있다.
뿐만 아니라 구약성경의 인용과 거짓 교사들에 관한 저주를 설명하고 있는 점이 유다서와 대동소이한 점이다.
베드로전서와 후서의 이런 차이점은 바로 역사적인 시대의 변화를 암시한다.
로마의 쇠퇴와 더불어 헬레니즘 사상의 보급은 그리스도의 부활 사건 마저 신비적인 개념으로 받아들이게 되자, 올바른 가르침을 위해 본 서를 기록한 것이다.
1. 서론
2. 저자 문제
1) 가장 의심받는 본 서의 저자
신약성경 중 본 서처럼 저자의 진위 문제에 논란이 많은 정경은 별로 없을 것이다. 본 서는 2,3세기경부터 논란의 대상이었다.
유세비우스(Eusebius)는 베드로전서를 사도 베드로가 쓴 것으로 인정했으나 베드로후서에 대해서는 인정하지 않았다.
오리겐(Origen)도 마찬가지로 제2서신서는 다소 의심스럽다고 했다.
종교 개혁 시대에 이르러서도 루터(Luther)만이 베드로의 저술을 인정했고 칼빈(Calvin)이나 에라스무스(Erasmus)는 부인하는 입장을 보이기도 했었다.
20세기의 학자들(진보적)은 거의가 베드로후서를 위작으로 보며, 신약성경 중 가장 후대에 기록되어 삽입한 것으로 본다.
그렇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 이유는 대략 다음과 같다.
전서와 후서의 전혀 다른 주제의 차이. 또 문제의 차이와 표현이 전서는 매우 고상한 반면 후서는 상대적으로 수준이 낮은 것으로 보이는 점이다.
그 다음 유다서와 내용이 많이 중복되었다는 점과 교회 안에서 많은 성도들이 주님의 재림에 대한 기대를 포기했다고 언급한 점(벧후3:4) 그리고 신앙의 조상들(사도)이 이미 잠들었다고 언급한 점과 교회가 늦게 베드로후서를 정경으로 받아들였다는 점 등의 이유를 들어 본 서가 2세기경 어느 무명인에 의해 위작된 것으로 추정하게 된 것이다.((그러나, 그 의견들은 상당히 가변적이다...오히려 그 생생한 생명의 메세지에 주목하라!!))
2) 베드로 사도가 저자인 증거들
그러나 그와 같은 문제들이 오히려 사도 베드로만이 본 서의 저자임을 대변해 주는 증거가 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다.
베드로는 분명히 '시몬 베드로'(벧후1:1)라고 자신을 밝혔다. 만일 위작이라면 그냥 베드로 사도라고 했을 것이다.
또 생생한 신앙의 경험담, 즉 변화산에서 주님이 변모하신 사건을 말하고 있다(벧후1:16-18). 이는 베드로 자신이 아니면 증거할 수 없는 내용이다.
문체나 어휘가 틀린 것에 대해서는 전편이 실루아노의 대필로 작성된 것이라면 후편은 베드로 스스로 쓴 것이기에 헬라어의 수준이 다르고 문체가 다른 것으로 본다.
또 유다서를 인용했다고 했는데 사실은 베드로후서는 '거짓 교사'들을 앞으로 나타날 존재들로 말하며 미래 시제로 표현했고, 유다서는 현재 시제로 말했음을 볼 수 있다. 오히려 유다서가 베드로후서를 인용한 것이다.
그리고 어휘나 내용이 전서와 1/6이 일치한다. 이는 전서나 후서가 같은 사람이 쓴 것임을 반증한다.
그리고 권위 있고 단호하게 바울 사도가 쓴 서신서의 영감적 권위(정경성)를 인정하는 내용도 있는데(벧후3:16), 이는 사도 베드로 외에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별로 없다. 이와 같은 몇몇 사례만 볼지라도 본 서의 저자는 사도 베드로임이 분명하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많은 것이다.
3. 저작 시기와 장소
만일 본 서가 베드로가 쓴 것이라면 전서의 집필 시기인 주후 63-64년에서 순교한 주후 68년경 사이일 것이다.
벧후1:13에 자신의 죽음이 가까워옴을 암시한 듯한 내용으로 볼 때 본 서는 순교 직전인 67-68년사이에 기록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그 장소도 마지막 활동 무대였던 로마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4. 대상과 목적
이 공동서신 역시 베드로의 첫째 서신과 마찬가지로 특정한 교회나 성도들을 대상으로 한 것이 아니라 로마 제국 판도에 있었던 모든 교회를 대상으로 한 것이다. 벧후1:1에서 "시몬 베드로는 우리 하나님과 구주 예수그리스도의 의를 힘입어 동일하게 보배로운 믿음을 우리와 같이 받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라고 한 것이다.
본 서의 수신자들은 이미 기독교의 모든 진리 체계를 이해하고 믿는 자들이다(벧후1:12). 그들은 베드로 사도의 권위를 이미 알고 있고 그의 가르침에 진지한 열의와 사모심을 지니고 있는 자들이다.
그렇다면 어떤 목적으로 본 서를 기록했을까? 그 목적은 크게 베드로 사도의 개인적인 문제와 당시 세계 교회의 보편적인 당면 문제 때문일 것이다. 즉 사도 베드로는 유언적으로 온 교회에 당부하고 싶은 말을 하고자 했을 것이다. "내가 떠난 후에라도 필요할 때는 이런 것을 생각나게 하려 하노라"(벧후1:15)는 말대로이다.
그 다음 세계 각처에서 성행하는 이단적 종교 사조인 '영지주의 풍조'를 경계하고자 본 서를 쓴 것으로 추정된다(벧후2:1-3).
영혼만 귀한 것이요, 육체는 하찮은 것이니 육체로 어떤 죄를 지어도 구원과는 관계없다는 교설로 교회를 어지럽히는 자들이 일어나기 시작하자 사도 베드로는 종말적인 심판을 염두에 두고 거룩한 생활을 할 것을 강조한다.
5. 주제
'신앙적인 참지식'이 본 서의 큰 주제이다. '앎, 지식'(Know, Knowledge)이라는 말이 16회나 반복된다. 끝 말도 "오직 우리 주 곧 구주예수그리스도의 은혜와 저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벧후3:18)고 했다. 이는 당시 특별한 영적 지시과 지혜로 구원에 이를 수 있다고 미혹하는 영지주의를 염두에 두었기 때문이다.
그 다음으로는 예수그리스도를 닮는 생활을 강조했다(벧후1:5-7). 영지주의에 미혹된 자들이 극단적으로 무도덕한 생활을 했기에 그리스도를 닮아 거룩한 생활을 하는 것이 참지식과 지혜임을 교훈한 것이다. 그리고 그와 같은 생활은 종말에 필히 시행될 하나님의 대심판을 염두에 두고 행해야 함을 강조한다. 신앙의 참 지식, 참지혜가 본 서의 강조점이다.
6. 내용 구성
1. 참된 지식의 의미(1장)
2. 거짓 지식을 전하는 자에 대한 경계(2장)
3. 참지식과 거짓 지식을 따르는 자들의 미래(3장)
◉[연구1] 그리스도인의 성숙(1장)
거짓 선지자에 대하여 경고하기 전에 베드로는 먼저 자신의 권위를 밝히고 자신이 전하는 바가 참임을 전한다.
성도들이 흔들리지 말고 사도가 전해 준 가르침 위에 굳게 서서 게으르지 말고 열심히 성결한 삶을 살아 성숙하여 부르심과 택하심에 굳게 하라고 권면하고 있다.
1. 신의 성품에의 참여(벧후1:1-1)
베드로는 두 번째 서신의 서두에서 특별히 자신이 누구인가를 밝히고 있다. 왜 그는 자신을 밝히고 있는가? 그리고 그리스도인들이 '주 예수를 안다'고 하는데, 이 앎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리고 '신의 성품'은 무슨 의미인가?
1) 그리스도를 아는 삶
시몬이라는 이름은 복음서 외에 행15:14에만 나타난다. 또 시몬이라는 본명과 '게바'의 헬라어 의미인 베드로라는 별칭이 같이 쓰여진 것도 특이하고 '종'이라는 겸비한 호칭과 '사도'라는 존귀한 호칭이 같이 쓰여진 것도 특이하다. 즉 베드로는 이런 호칭들을 통해 자신이 이 서신의 저자임을 밝히고 이 서신의 권위를 드러내 주고 있다.
'앎'이란 단순히 이성적인 것이 아니라 생활 태도까지 포함된다. 따라서 당시 유행하던 영지주의(참지식의 소유와 도덕 무용론을 주장)의 '앎'과 구별된다. '신의 성품에 참예'도 영지주의와 불교에서 주장하는 바와 같이 인간이 신의 본질과 같아진다거나 신이 된다는 의미가 아니다.
오히려 웨슬리(John Wesley)가 주장한 바와 같이 우리가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할 때 하나님의 형상이 새로 나타나게 되고 하나님과 교제하게 된다는 의미이다.
2) 하나님과의 교제
이 서신은 베드로의 권위로 우리 모두에게 쓰여진 것이다. 따라서 여기에는 의심이 있을 수 없다.
우리는 단순히 지식으로 신앙 생활을 할 것이 아니라 생활 가운데서(사회와 가정에서) 주 예수를 아는 지식을 소유하고 실천해야 한다.
그리할 때 우리는 이 세상의 죄악에 물들지 않고 하나님 안에서 새로운 성품으로 태어나 하나님과 교제하게 되는 것이다.
2.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벧후1:5-11)
그리스도를 영접한 자는 구원이 확보되었으므로 나태해져도 되는 것일까? 신앙 생활에 있어서 열매는 어떻게 얻어지는 것인가? 그리고 '부르심'과 '택하심'을 서로 어떻게 조화시킬 수 있겠는가? 칼빈(J. Calvin)의 '예정론'과 웨슬리(J.Wesley)의 '성화론' 가운데 이를 어떻게 조화시킬 수 있겠는가?
1) 성결한 삶
칼빈과 웨슬리 모두 신앙 생활에 나태하지 말 것을 명령한다.
믿음, 덕, 지식, 절제, 인내, 경건, 형제 우애, 사랑 모두를 갖추어야 하며 이를 위해서 신앙이 성장해야 한다.
이러할 때 하나님께 대한 봉사가 가능하고 실질적은 열매를 맺게 된다. 이런 것이 없을 때 소경과 같이 옛 죄를 씻지 못한 자가 된다.
칼빈은 믿음만 갖추고 나미지 것들을 등한시 여긴다면 참믿음이 무엇인지 모르는 자라 하였다.
참믿음이란 위의 모든 요소를 갖추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것이라 하였다.
부르심과 택하심의 우선 순위를 놓고 칼빈의 예정론과 웨슬리의 성화론이 대립될 수 있다. 그러나 '택하심'에 신학적 중심을 둔 칼빈이나 하나님의 은총에 대한 인간의 응답에 신학적 중심을 둔 웨슬리에게 있어서의 공통점은 구원받은 자는 성결한 삶이 요구된다는 것이다.
2) 열매 맺는 삶
우리 주변에는 주일만 교인행세 하는 주일 교인들이 많다. 즉 세상 가운데서는 마음놓고 죄를 짓고 주일 교회에서만 그리스도인다운 사람들이 많다. 그러므로 오늘 이 말씀을 토대로 우리는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기 위하여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 즉 평소에도 열매 맺는 삶을 살아야 한다.
택하심에만 의지하여 성결한 삶을 게을리하면 이는 참믿음이 못되며 '부르심'만 의지하여 확신을 갖지 못한다면 이 또한 참믿음이 못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여 실족치 않는 가운데 그리스도의 나라에 들어가야 할 것이다.
3. 친히 본 자라(벧후1:12-21)
본문은 마치 유언장을 읽는 느낌이다. 베드로후서에 대한 긴박함과 강렬함이 느껴진다. 왜 베드로는 유언장과 같은 내용을 기술하였는가? 베드로는 무엇을 남기기를 원하였는가? 예언이란 왜 중요하고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가?
1) 베드로의 증거
이 서신의 저자는 베드로임에 틀림없다. 반화산상 사건의 목격자는 베드로, 요한, 야고보이기 때문이다.
임박한 죽음을 앞두고 베드로는 사도의 권위와 증인으로서 사도가 전해 준 유산을 굳게 지키라고 명령하고 있다. 이 신앙 유산은 영지주의의 것과 같이 공교히 지어낸 이야기가 아니라 눈으로 본 바이기 때문이다.
또한 성경의 자의적 해석을 경고하고 있는데, 사도적 전통에 근거한 해석만이 권위가 있으며, 성경을 자기 마음대로 해석하는 자를 경계해야 함을 말하고 있다.
2) 성경의 중요성
지금 이 시대에는 사도들은 다 잠들어 없고 그들이 남겨 준 신앙 유산만이 있다. 가장 중요한 신앙 유산은 성경이다. 그러나 이 성경을 이단들은 마음대로 풀고 해석하고 오남용하고 있다.
진정 이시대를 살아가는 참 기독자로서 우리가 의지해야 할 사도적 전통은 먼저 성령의 인도하심이고 그 다음으로는 사도신경과 초대 교부들의 가르침일 것이다. '성서만으로'를 주장한 루터도 초대교회의 가르침을 중요시하였다.
그러므로 자의적으로 함부로 성경을 해석하여 이를 취하는 사이비 교주를 조심해야 할 것이다.
베드로는 지금 본서를 통해 유언을 하고 있다. 그것도 자신이 직접 본 바를 전하고 있다. 이는 공교히 지어낸 허황된 이야기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그러므로 성도는 사도들의 가르침에 굳게 서서 성결한 삶으로 성숙해 가야 한다. 이러할 때 열매 맺는 삶을 살게 되고 신의 성품에 참예하고 부르심과 택하심에 굳게 하여 실족치 않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연구2] 거짓교사들에 대한 경고(2장)
당시 교회를 위협하고 있는 거짓 선지자들에 대하여 베드로는 경고하고 있다. 그들이 누구이며 어떤 일을 행하고 있는 가를 보여줌으로써 베드로는 성도들이 가야 할 바를 보여 주고 있다. 악한 자들에게는 심판이 임박해 있다.
베드로는 주의 교회를 지키기 위해 유언의 형식으로 악한자를 구별하여 물리치도록 이 편지를 썼다.
이 내용은 쾌락의 극치를 걷고 있고 사이비 종교가 판을 치는 현대 사회의 우리들에게도 경종이 되는 말씀이다.
1. 거짓 선지자의 나타남(벧후2:1-3)
어느 시대에나 거짓 선지자는 나타나게 마련이다. 그러나 초신자가 교리적으로 이들을 구별하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분별의 영이신, 내주하시는 성령인도따라, 말씀을 기준삼아 살펴 볼 때]그들의 의도와 행동에서 구별할 수가 있다.
그러면 그들의 의도는 무엇인가? 그들은 어떻게 나타나면 어떻게 행동하는가? 또 그들은 무엇을 부인하는가?
1) 사도들의 가르침을 부인
먼저 그들의 가르침은 사도적인 가르침을 부인하는 것으로서, 그것은 예수를 부인하는 것과 같다.
그들의 행동은 정욕적이다. 그들 탐심을 도구로 삼아 사람을 유혹한다. 그리스도가 자신을 희생하였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그리고 양 떼들은 그들의 이익을 위해 존재한다. 즉 그들은 자신들의 호주머니를 위하여 양 떼들을 이용하는 늑대요, 사도들의 가르침을 부인하고 헛된 말로 유혹하는 거짓 선지자들이다.
2) 오늘의 이단자들
이런 거짓 선지자들은 전통적인 신학과 교리를 무시하고 자신의 말과 주변의 철학, 한국 민속 신앙에 흐르고 있는 무속적인 요소를 잘 이용한다.
그들은 세력 확장에 혈안이 되어 있고 '돈'을 추구하고 있다. 간혹 어떤 단체는 '성관계'를 부녀자에게 요구하기도 한다.
이러므로 성도는 그들을 잘 구별하여 조심해야 할 것이다.
2. 심판의 긴박성과 의인의 구원(벧후2:4-9)
거짓 선지자에 내려질 심판을 설명하는데 3가지 예를 들었다. 범죄한 천사들, 노아의 홍수, 소돔과 고모라의 심판.
범죄한 천사의 심판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노아의 홍수와 소돔과 고모라의 심판의 공통점은 무엇인가? 어떻게 하여야 심판에서 구원을 받을 수 있는가?
1) 심판의 경고
심판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죄인은 심판의 그 순간까지 죄를 짓는다. 심판이 잔혹히 진행되지 않을 때 죄인들은 심판 자체를 무시하거나 안일하게 생각한다. 그러나 심판의 긴박성과 무서움을 베드로는 경고하고 있다.
범죄한 천사에 대해서는 성경에 언급되어 있는 바가 거의 없다. 분명한 사실은 천사라도 범죄자는 하나님께서 심판하신다는 것이다.
노아의 홍수와 소돔과 고모라의 심판에서는 사람들이 심판받기 직전까지 먹고 마시고 장가갔다. 심판의 경고를 귀담아 듣지 않았던 것이다.
사회, 정치적으로 번영해도 하나님의 심판은 벗어날 수 없다. 그러나 노아와 롯과 같은 의인은 구원받을 수 있다.
이것을 거울삼아 성도는 더욱 경건해야 할 것이다.
2) 심판의 긴박성을 인식
경제가 발전하고 과학이 발달할수록 많은 사람들이 안일해지고 죄악으로 달려가는 발걸음이 빠르다.
그러나 이럴 때일수록 성도는 심판의 긴박성을 깨달아야 한다. 현대는 고도의 물질 문명을 바탕으로 투기, 섹스, 아편 등의 죄악이 범람해 있다.
그러나 성도는 성결하게 삶으로 마지막 심판 때 구원을 받아야 한다.
3. 저주의 자식(벧후2:10-22)
본문에서는 악인에 대해 적나라하게 묘사하고 있다. 그들은 무슨 죄를 짓고 있는 것인가? 그리고 베드로는 그들을 어떻게 묘사하고 있는가? 개와 돼지의 비유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왜 하나님은 이들을 심판하실 수밖에 없는가?
1) 성도를 미혹케 하는 자
악한 자의 속성에 대하여 베드로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정욕, 담대, 고집, 떨지 않음, 훼방, 낮에 연락, 간사, 음심, 유혹, 탐욕, 허탄한 자랑' 등 지을 수 있는 죄는 다 짓고 있다.
이들에 대해 베드로는 '물 없는 샘, 광품에 밀려가는 안개, 이성 없는 짐승'등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즉 이들은 악한 자이다.
이들이 구원받을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 주기는 하였으나(벧후2:20) 이는 베드로의 요점이 아니다.
여기에서 베드로의 요점은 성도들을 미혹케 하는 자들의 죄악성과 심판의 메시지이다.
그리고 성도되었다가 이렇게 타락한 자들은 자기가 토한 것을 먹는 개와 자신을 씻은 더러운 구덩이에 도로 눕는 돼지로 비유하였다.
즉 매우 죄악되고 타락한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우리들에게 경고하고 있는 것이다.
2) 말씀으로 사는 삶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을 유혹하는 것은 너무 많다.
그리고 음란 비디오, 뇌물, 돈, 마약 등을 종교의 수단으로 이용하는 사이비 종교 단체도 있다. 이들은 다 거짓의 아비들이다.
마지막 심판날을 기억하며 그리스도인들은 더욱 깨어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이 오늘날 각종 악에 걸려 넘어지는 것을 볼 때 우리는 이 말씀을 거울삼아야 할 것이다.
저들은 자유를 누리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 자유는 자유가 아니라 멸망에 이르는 방종과 방탕일 뿐이다.
당시 영지주의자들에 대한 경고는 사이비 종교가 판을 치고 있는 오늘날 우리에 대한 경고이다.
주 예수를 부인하는 거짓 교리와 더불어 온갖 음란, 방탕으로 우리를 유혹한다.
그러나 성도가 기억해야 할 것은 타락한 천사를 심판하시고 노아의 때를 심판하시며 소돔과 고모라를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공의를 기억해야 하는 것이다. 심판은 긴박하게 온다. 그러므로 성도는 깨어 죄악된 길로 가지 말고 거짓 선지자를 경계하여 살아가야 할 것이다.
◉[연구3] 재림에 대한 소망(3장)
마지막으로 베드로는 종말론적으로 살아갈 것을 명하고 있다. 임박한 재림에 대한 사랑은 구약과 예수님과 사도들의 공통된 가르침이다.
종말론적인 신앙을 갖지 않을 때 이 세상의 삶이 방탕해짐을 베드로는 마지막으로 경고하고 있다.
1. 가르침의 일치(벧후3:1-5)
베드로는 둘째 편지를 쓴 목적을 기술하고 있다. 그러면 첫 번째 편지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리고 반복적으로 쓰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리고 구약과 신약은 어떻게 일치하고 있는가? 그리고 이런 일치된 가르침을 부정하는 자들은 어떤 자들인가?
1) 재림에 대한 가르침
첫째 편지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학자마다 다른 의견을 갖고 있다. 문자적으로 베드로전서를 의미하는지 아니면 여기에는 종말에 대해 거의 언급을 하지 않으므로 지금은 잃어버린 또 다른 베드로의 편지인지 또는 벧후1,2장이 3장과 구별된 편지였는지 지금은 확실치 않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베드로는 [말씀을 읽고 듣고 묵상하며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성령따라 참생명안에서의 실행함(그 증진-증강-확장, 공급을 일편단심, 일심으로 굳게서서 뿌리내리고 개화/생명열매맺음에 이르도록)] 반복의 중요성을 끊임없이 재차 강조하고 있다.
새로운 설교, 새로운 성경 공부보다도 더욱 중요한 것은 매일 밥을 먹듯이 [이미 지식으로 알고, 체험적으로 체득하여 도달한 바 각자에게 이미 있는 것이라 해도, 매일 새롭게 공급받는 참생명안에서, 처음 접하는 것처럼 기대하고 앙망-갈급함으로] 계속해서 [반복적으로] 듣고 배워야 한다.
구약과 신약의 가르침은 사로 일치한다. 선지자, 주님, 사도들의 일치되고 반복적인 가르침 중에 하나가 중의 임박한 재림과 심판이다. 그러나 어리석게도 노아 시대, 롯의 시대 그리고 지금도 임박한 심판을 애써 외면하는 자들이 있으니 그들은 정욕에 사로잡힌 자요, 현실에 안주하는 자요, 주의 가르침을 거부하는 자들이다(벧후3:5)
2) 재림에 대한 인식
귀를 간지럽게 해주는 설교를 따라 움직이는 성도들이 많다. 새로운 성경 공부법과 설교법이 서점가에 쏟아져 나오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스스로 교만을 취하고 드러냄이 아닌가 경계하라...주님은 완전하시다..종래의 말씀 전파 방법을 폐기하고 사람이 나름대로 새로 개발하고 사용할 필요가 있는]해야 할 새 것이 없음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 말씀을 반복적으로 듣고 행하는 길이 최선이다.
특히 풍요로운 세계에 살고 있는 우리들은 성경 여러 곳에 계속해서 반복되어 가르치고 있는 재림을 꼭 기억해야 할 것이다.
2. 주의 날(벧후3:6-13)
심판에 대하여 베드로는 기록하고 있다. 심판이 어떻게 일어나는가? 과거와 미래의 심판에 차이점은 무엇인가? 또 그 근거는 무엇인가? 심판이 늦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에 대한 답변을 베드로는 기록하는 자들에 대한 변증으로 하고 있다.
1) 심판의 날
하나님은 결코 이 땅의 죄악에 대해 무관심하게 여기지 않는다. 그 증거는 노아의 시대 때 있었던 물의 심판이며, 또 미래에는 불의 심판이 있다.
그 근거는 하나님은 약속하신 것을 반드시 지키시기 때문이다.
심판이 더디게 보이는 이유는 두 가지인데, 하나는 하나님의 시간 개념과 우리의 시간 개념이 다르기 때문이고(시90:4 벧후3:8), 또 하나는 죄인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계시기 때문이다(벧후3:9). --셋 셀 동안 잘못 인정하지 않으면 벌 줄거야.. 이제 셀 거야, 하나-둘, 둘반, 둘의 반의 반...이처럼 오래 참으시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반드시 끝이 있음을 기억하라, 돌이키라!!--
진실된 그리스도인들이라면 약속된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아야 할 것이다. 우리의 기대가 약속에 근거하기 때문에 결코 실망하지 않을 것이다.
2) 재림에 대한 올바른 사상
잘못된 재림 운동의 후유증으로 그리스도인들조차도 재림이니 심판이니 하는 용어를 기피하고 이런 용어를 언급하면 이단 보듯이 한다.
또 다른 한편에서는 재림 사상으로 어리석은 양무리를 꾀는 사악한 사이비 집단들이 아직도 있다.
사회가 풍요로와지면서 한쪽에서는 현세의 향락을 즐기고, 경쟁 사회에서 실패한 다른 한편의 사람들은 극단적으로 종말을 바라거나 사회가 전쟁 등으로 뒤집어지는 걸 바라고 있다. 이럴 때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깨어 올바르게 주의 재림에 대하여 가르쳐야 할 것이다.
3. 저를 아는 지식(벧후3:14-18)
임박한 재림의 때에 성도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그리고 예수님에 대한 지식은 어떤 유익이 있고 무엇을 조심해야 하는가? 그리고 베드로가 바울의 편지를 언급한 것에 대한 신학적인 의미가 있는 것인가?
1) 재림의 때에 바른 신앙
베드로는 재림의 때에 우리가 행해야 할 바를 네 가지로 요약하고 있다.
첫째, 성실한 삶이다(벧후3:14). 불신자는 회개하고 돌아와야 하지만 신자는 그리스도의 날까지 성화의 삶을 살아가야 한다.
둘째, 그리스도의 인내가 우리를 구원하셨듯이 우리도 인내로써 구원의 날을 기다려야 한다(벧후3:15).
셋째,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미리 갖추어 악에 대항하여 미혹에 빠지지 말아야 한다(벧후3:17). 호세아는 "내 백성이 지식이 없어 망한다"고 하였다(호4:6).
넷째로는 그리스도의 은혜와 지식에서 자라나야 한다(벧후3:18).
음식은 육체를 강건하게 하지만 영의 양식은 영혼을 살찌우게 한다. 그러나 베드로는 한 가지 주의를 잊지 않고 있다.
당시 바울의 편지는 이미 널리 읽혀지고 있었고 베드로조차도 바울의 편지를 정경의 권위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러나 자신들의 뜻과 욕심대로 바울의 편지를 해석하며 오남용하는 이들을 경계하라고 하였다
2) 재림을 준비하는 신앙
당시에 영지주의는 바울의 편지를 자신들의 정욕대로 해석하여 율법의 무용론을 주장하며 쾌락에 빠진 집단들이었다.
이는 오늘날에도 성서를 멋대로 해석하는 사이비 집단들이 있다. 정규 신학 공부의 중요성을 일깨워 준다. 신학 대학은 그냥 있는 것이 아니다. 잘못된 해석을 막아 주고 신학의 틀을 잡아 준다. 그러나 이것을 무시하고 계시만을 외치며 양무리를 미혹하는 무리들이 [분명히, 그리고 여전히]있다. 하나님의 말씀은 억지로 풀 것이 아니라 올바로 배워 제대로 가르쳐야 한다. 이러할 때 양무리들이 올바로 배워 성장하는 성결한 삶을 살아 재림을 준비하게 되는 것이다.
종말론적인 신앙은 우리가 결코 피해야 할 주제도 아니며 반대로 너무 편집적으로 집착해야 할 주제도 아니다.
바른 신학적 관점으로 올바른 종말론 신앙을 가져야 한다.
지금은 한국교회가 번영과 평안을 누리고 있다고들 하지만 불과 40여 년 전 순교의 피를 흘렸음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비록 이 세대가 물질 만능주의로 흘러가고 있지만 우리 성도들은 베드로가 일깨워 주었듯이 종말론적 신앙을 갖고 이 땅에 성결된 삶을 살아 주의 날을 대비하며 깨어 있어야 한다
==================[539.너예수께조용히나가]
개역개정]제1장
부르심과 택하심
1.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며 사도인 시몬 베드로는 우리 하나님과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힘입어 동일하게 보배로운 믿음을 우리와 함께 받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2.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를 앎으로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
3. 그의 신기한 능력으로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으니 이는 자기의 영광과 덕으로써 우리를 부르신 이를 앎으로 말미암음이라
4.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가 정욕 때문에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느니라
5. 그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6.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7.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더하라
8. 이런 것이 너희에게 있어 흡족한즉 너희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에 게으르지 않고 열매 없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니와
9. 이런 것이 없는 자는 맹인이라 멀리 보지 못하고 그의 옛 죄가 깨끗하게 된 것을 잊었느니라
10. 그러므로 형제들아 더욱 힘써 너희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 너희가 이것을 행한즉 언제든지 실족하지 아니하리라
11. 이같이 하면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에 들어감을 넉넉히 너희에게 주시리라
그리스도의 영광과 성경의 예언
12. ○그러므로 너희가 이것을 알고 이미 있는 진리에 서 있으나 내가 항상 너희에게 생각나게 하려 하노라
13. 내가 이 장막에 있을 동안에 너희를 일깨워 생각나게 함이 옳은 줄로 여기노니
14. 이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지시하신 것 같이 나도 나의 장막을 벗어날 것이 임박한 줄을 앎이라
15. 내가 힘써 너희로 하여금 내가 떠난 후에라도 어느 때나 이런 것을 생각나게 하려 하노라
16.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과 강림하심을 너희에게 알게 한 것이 교묘히 만든 이야기를 따른 것이 아니요 우리는 그의 크신 위엄을 친히 본 자라
17. 지극히 큰 영광 중에서 이러한 소리가 그에게 나기를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실 때에 그가 하나님 아버지께 존귀와 영광을 받으셨느니라
18. 이 소리는 우리가 그와 함께 거룩한 산에 있을 때에 하늘로부터 난 것을 들은 것이라
19. 또 우리에게는 더 확실한 예언이 있어 어두운 데를 비추는 등불과 같으니 날이 새어 샛별이 너희 마음에 떠오르기까지 너희가 이것을 주의하는 것이 옳으니라
20. 먼저 알 것은 성경의 모든 예언은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니니
21.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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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준새번역]제1장
인사
1.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며 사도인 나 시므온 베드로는, 우리 하나님과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힘입어서, 우리의 믿음과 같은 귀한 믿음을 받은 이들에게 문안합니다.
2.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를 앎으로써, 은혜와 평화가 여러분에게 더욱 풍성해지기를 빕니다.
부르심과 선택하심
3. ○그리스도께서는 신적 권능으로 우리에게 생명과 경건에 이르게 하는 모든 것을 주셨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자기의 영광과 덕으로써 우리를 불러 주신 분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4. 그분은 그 영광과 덕으로, 귀중하고 아주 위대한 약속들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그것은 이 약속들로 말미암아, 여러분이 세상에서 정욕 때문에 부패하는 사람이 아니라 신적 성품에 참여하는 사람이 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5. 그러므로 여러분은 열심을 다하여, 여러분의 믿음에 덕을 더하고, 덕에 지식을 더하고,
6. 지식에 절제를 더하고, 절제에 인내를 더하고, 인내에 경건을 더하고,
7. 경건에 상호 우애를 더하고, 상호 우애에 사랑을 더하도록 하십시오.
8. 이런 것들이 여러분에게 갖추어지고 또 넉넉해지면, 여러분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일에, 게으르거나 열매를 못 맺는 사람이 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9. 그러나 이런 것들을 갖추지 못한 사람은 앞을 못 보는 사람이며, 눈이 근시인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자기의 옛 죄가 깨끗해진 것을 잊어버린 사람입니다.
10.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 더욱더 힘써서, 여러분이 부르심을 받은 것과 택하심을 받은 것을 굳게 하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은 넘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11. 또한 여러분은, 우리의 주님이시며 구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에 들어갈 자격을, 충분히 갖출 것입니다.
12. ○그러므로 비록 여러분이 이런 것들을 알고 있고, 또 스스로가 받은 진리에 굳게 서 있지만, 나는 언제나 이런 것들에 대하여 여러분을 일깨우려 합니다.
13. 이 육신의 장막에 사는 동안, 나는 여러분의 기억을 일깨워서 분발하게 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14.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에게 보여 주신 대로, 내가 육신의 장막을 벗을 때가 멀지 않음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15. 그리고 내가 세상을 떠난 뒤에도 언제든지, 여러분이 이런 일들을 기억할 수 있게 하려고, 힘을 쓰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영광과 예언자의 말
16. ○우리가 여러분에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권능과 재림을 알려 드린 것은, 교묘하게 꾸민 신화를 따라서 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그의 위엄을 눈으로 본 사람들입니다.
17.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에게 존귀와 영광을 주실 때에, 곧 지극히 영광스러운 분께서 그에게 말씀하시기를 "이 사람은 내가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가 기뻐하는 아들이다" 하실 때에, 우리는 거기에 있었습니다.
18. 우리가 그 거룩한 산에서 그분과 함께 있을 때에, 우리는 이 말소리가 하늘로부터 들려 오는 것을 들었습니다.
19. ○여러분의 마음 속에서 날이 새고 샛별이 떠오를 때까지, 여러분은 어둠 속에서 비치는 등불을 대하듯이, 이 예언의 말씀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 좋습니다.
20. 여러분이 무엇보다도 먼저 알아야 할 것은 이것입니다. 성경의 모든 예언은 마음대로 해석되어서는 안 됩니다.
21.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성령에 이끌려서,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말씀을 받아서 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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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Peter 1 Amplified Bible
==Growth in Christian Virtue
1 [a]Simon Peter, a bond-servant and apostle (special messenger, personally chosen representative) of Jesus Christ, To those who have [b]received and possess [by God’s will] a precious faith of the [c]same kind as ours, by the righteousness of our God and Savior, Jesus Christ:
2 Grace and peace [that special sense of spiritual well-being] be multiplied to you in the [true, intimate] knowledge of God and of Jesus our Lord.
3 For His divine power has bestowed on us [absolutely] everything necessary for [a dynamic spiritual] life and godliness, through [d]true and personal knowledge of Him who called us by His own glory and excellence.
4 For by these He has bestowed on us His precious and magnificent promises [of inexpressible value], so that by them you may escape from the immoral freedom that is in the world because of disreputable desire, and become sharers of the divine nature.
5 For this very reason, applying your diligence [to the divine promises, make every effort] in [exercising] your faith to, [e]develop moral excellence, and in moral excellence, knowledge (insight, understanding),
6 and in your knowledge, self-control, and in your self-control, steadfastness, and in your steadfastness, godliness,
7 and in your godliness, brotherly affection, and in your brotherly affection, [develop Christian] love [that is, learn to unselfishly seek the best for others and to do things for their benefit].
8 For as these qualities are yours and are increasing [in you as you grow toward spiritual maturity], they will keep you from being useless and unproductive in regard to the true knowledge and greater understanding of our Lord Jesus Christ.
9 For whoever lacks these qualities is blind—shortsighted [closing his spiritual eyes to the truth], having become oblivious to the fact that he was cleansed from his old sins.
10 Therefore, believers, be all the more diligent to make certain about His calling and choosing you [be sure that your behavior reflects and confirms your relationship with God]; for by [f]doing these things [actively developing these virtues], you will never stumble [in your spiritual growth and will live a life that leads others away from sin];
11 for in this way entry into the eternal kingdom of our Lord and Savior Jesus Christ will be abundantly provided to you.
12 Therefore, I will always be ready to remind you of these things, even though you already know them and are established in the truth which is [g]held firmly in your grasp.
13 I think it right, as long as I am in this earthly tent, to inspire you by reminding you,
14 knowing that the laying aside of this earthly tent of mine is imminent, as our Lord Jesus Christ has made clear to me.
15 Moreover, I will diligently endeavor [to see to it] that even after my departure you will be able, at all times, to call these things to mind.
==Eyewitnesses
16 For we did not follow cleverly devised stories or myths when we made known to you the power and coming of our Lord Jesus Christ, but we were [h]eyewitnesses of His majesty [His grandeur, His authority, His sovereignty].
17 For when He was invested with honor and [the radiance of the [i]Shekinah] glory from God the Father, such a voice as this came to Him from the [splendid] Majestic Glory [in the bright cloud that overshadowed Him, saying], [j]“This is My Son, My Beloved Son in whom I am well-pleased and delighted”—
18 and we [actually] heard this voice made from heaven when we were together with Him on the holy mountain.
19 So we have the prophetic word made more certain. You do well to pay [close] attention to it as to a lamp shining in a dark place, until the day dawns and light breaks through the gloom and the [k]morning star arises in your hearts.
20 [l]But understand this first of all, that no prophecy of Scripture is a matter of or comes from one’s own [personal or special] interpretation,
21 for no prophecy was ever made by an act of human will, but men moved by the Holy Spirit spoke from God.
==Footnotes
2 Peter 1:1 Two early manuscripts read Simeon, the direct transliteration of the Hebrew. The only other place this spelling appears in the NT is in Acts 15:14.
2 Peter 1:1 From a Greek word meaning to obtain by lot, emphasizing the fact that salvation is not something gained because of personal effort, but is received as an undeserved gift because of God’s grace.
2 Peter 1:1 I.e. equal in rank, honor and privilege.
2 Peter 1:3 There is no “secret knowledge” or “better way” or alternative belief system which God has revealed to some unique group or teacher. The truth is available to everyone.
2 Peter 1:5 Lit supply.
2 Peter 1:10 I.e. developing the moral virtues outlined in vv 5-7.
2 Peter 1:12 Lit present with you.
2 Peter 1:16 A reference to the transfiguration (Matt 17:1ff).
2 Peter 1:17 The word “Shekinah” does not appear in Scripture, but has been used by both Christians and Jews to describe the visible divine Presence of God (the brilliant light of the divine), in such things as the burning bush, the cloud and the pillar of fire that led the Hebrews in the wilderness, and the Presence of God that rested between the cherubim over the mercy seat of the ark.
2 Peter 1:17 With these words God affirms the deity of Jesus and His divine essence.
2 Peter 1:19 Lit light-bringer.
2 Peter 1:20 Or For you kn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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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JV]제1장
1. Simon Peter, a servant and an apostle of Jesus Christ, to them that have obtained like precious faith with us through the righteousness of God and our Saviour Jesus Christ:
2. Grace and peace be multiplied unto you through the knowledge of God, and of Jesus our Lord,
3. According as his divine power hath given unto us all things that pertain unto life and godliness, through the knowledge of him that hath called us to glory and virtue:
4. Whereby are given unto us exceeding great and precious promises: that by these ye might be partakers of the divine nature, having escaped the corruption that is in the world through lust.
5. And beside this, giving all diligence, add to your faith virtue; and to virtue knowledge;
6. And to knowledge temperance; and to temperance patience; and to patience godliness;
7. And to godliness brotherly kindness; and to brotherly kindness charity.
8. For if these things be in you, and abound, they make you that ye shall neither be barren nor unfruitful in the knowledge of our Lord Jesus Christ.
9. But he that lacketh these things is blind, and cannot see afar off, and hath forgotten that he was purged from his old sins.
10. Wherefore the rather, brethren, give diligence to make your calling and election sure: for if ye do these things, ye shall never fall:
11. For so an entrance shall be ministered unto you abundantly into the everlasting kingdom of our Lord and Saviour Jesus Christ.
12. Wherefore I will not be negligent to put you always in remembrance of these things, though ye know them, and be established in the present truth.
13. Yea, I think it meet, as long as I am in this tabernacle, to stir you up by putting you in remembrance;
14. Knowing that shortly I must put off this my tabernacle, even as our Lord Jesus Christ hath shewed me.
15. Moreover I will endeavour that ye may be able after my decease to have these things always in remembrance.
16. For we have not followed cunningly devised fables, when we made known unto you the power and coming of our Lord Jesus Christ, but were eyewitnesses of his majesty.
17. For he received from God the Father honour and glory, when there came such a voice to him from the excellent glory, This is my beloved Son, in whom I am well pleased.
18. And this voice which came from heaven we heard, when we were with him in the holy mount.
19. We have also a more sure word of prophecy; whereunto ye do well that ye take heed, as unto a light that shineth in a dark place, until the day dawn, and the day star arise in your hearts:
20. Knowing this first, that no prophecy of the scripture is of any private interpretation.
21. For the prophecy came not in old time by the will of man: but holy men of God spake as they were moved by the Holy Gh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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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장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수록되어 있다.
Ⅰ. 사도 베드로가 본래 의도했던 대로 이끌려고 하는 서론과 개요(1-4).
Ⅱ. 모든 그리스도인의 은사를 불러일으키기 위한 권면(5-7).
Ⅲ. 이 권고를 강조하며,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이 권고에 따라 순응하도록 하기 위한 몇 가지 부언.
1. 이로 인하여 그들에게 주어질 커다란 유익에 대한 설명(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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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심과 택하심
1.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며 사도인 시몬 베드로는 우리 하나님과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힘입어 동일하게 보배로운 믿음을 우리와 함께 받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2.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를 앎으로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
3. 그의 신기한 능력으로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으니 이는 자기의 영광과 덕으로써 우리를 부르신 이를 앎으로 말미암음이라
4.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가 정욕 때문에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느니라
교회의 축복(벧후 1:1-4)
유대인들 가운데서 그리스도인으로 개종한 사람들에게 다시 한 번 편지를 쓰도록 성령의 감동을 받은 사도 베드로는 그 서문에서도 역시 전서에서와 같은 식으로 축복과 인사의 말씀을 나타내고 있다.
그런데 세 가지로 구분할 수 있는 이 서문 가운데서 우리는 약간의 첨가 변경된 부분을 찾아 볼 수 있다.
Ⅰ. 사도는 자기를 나타내는 칭호에 있어서, "베드로"라는 이름과 함께 "시몬"이란 이름을 덧붙였고, "사도"라는 칭호와 함께 "종"이란 칭호도 아울러 사용하였다는 것을 볼 수 있다.
"베드로"란 이름은 두 편지에서 흔히 사용된 이름인데, 이 이름은 "예수께서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다"는 고백으로 말미암아 우리 주님으로부터 수여 받은 이름으로써 아마 그가 즐겨 사용한 <그리스도안의 거듭난>이름이다.
그리고 그것은 모든 사람이 집을 지을 때 반드시 반석을 기초로 해야 한다는 진리의 근거가 되는 이름이기도 하다.
그러나 "시몬"이란 이름은 전서에는 생략되었으나 여기서는 기록되어 있다. 이 이름은 그가 할례를 받을 때 붙여진 <옛사람의>이름이다.
베드로는 그가 그러한 이름을 생략함으로 율법에 대해 열심인 유대인 신자들로부터 그가 할례를 무시하고 거부하는 것으로 알고 질투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 여기서는 <시몬 베드로..라고>이름을 덧붙였다.
베드로는 여기서 자신에 대해(사도라는 호칭과 함께)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호칭하였다.
[사도란 위임받았음을, 종이란 순종하였음을 말함....참 기독자마다 주께 순종할 때, 그분은 또한 무언가를 위임해 주심을 기대해도 좋다!!]
따라서 베드로는 다윗이 행했던 것처럼 영광을 차지할 수 있게 되었다(시 116:16). 그리스도를 섬긴 것은 가장 귀한 영광이다(요 12:26).
그리스도께서는 "왕중의 왕이시며 만 주의 주님"이시다. 또 그는 그의 종들을 "하나님을 위한 왕들과 제사장들"로 삼아 주신다(계 1:6).
이러한 주님의 종이 된다는 것은 얼마나 영광스러운 일인가! 따라서 죄만 없다면 조금도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다.
"그리스도의 종"이 된다는 것은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그리스도를 위한 봉사의 생을 살게 하는 사람이 마땅히 받을 만한 칭호이다.
Ⅱ. 우리는 본 서신을 받을 수신자들에 대한 기록을 찾아 볼 수 있다.
전서에서는 그들이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 택하심을 입은 자들"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여기 후서에는 "우리 하나님과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힘입어 보배로운 믿음을 받은 자들"이라고 묘사되고 있다.
[여기서 우리 하나님과 구주는 곧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을 명심하라]
왜냐하면 여기에서 언급하고 있는 믿음은 이교도들의 허황된 믿음이나, 위선자들의 거짓된 믿음과 그리고 아무리 정통적이라 할지라도 형식주의자들의 열매 없는 믿음과는 매우 거리가 먼 믿음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영에 의하여 부름 받은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의 믿음"이다(딛 1:1).
1. 참으로 구원받을 만한 믿음은 보배로운 은사이다.
그리고 보이는 교회의 많은 믿는 이들 가운데서도 참다운 신앙의 소유자는 그 수가 적고 희귀할 뿐만 아니라(마 22:14), 그러한 믿음은 매우 탁월한 것이며 그러한 믿음의 소유자에게 커다란 이득을 가져다 준다.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산다." 다시 말해서 참으로 경건하고 영적인 삶을 산다.
믿음은 이러한 탁월한 삶에 필요한 모든 도움과 위로를 공급한다.
믿음은 새로운 인간을 양육하는데 필요한 포도와 젖을 사기 위해(사 55:1) 그리스도께 나가게 하여 준다.
믿음은 또 우리를 부요하게 하는 불로 연단된 금과 하늘의 보화를 사가지고 오게 해 준다.
그리고 찬탄과 경배의 대상이 되게 하여 주는 왕의 옷인 흰 옷을 [주 앞에서 겸손한 자에게]입게 하여 준다(계 3:18).
2. 믿음은 일반 그리스도인이나 사도들에게 있어서 마찬가지로 귀한 것이다.
그리고 양자에게 모두 귀한 결과를 가져다준다.
믿음은 강한 그리스도인들을 그리스도와 단단히 결합시켜 주는 것처럼 연약한 그리스도인들도 그리스도에게 단단히 결합시켜 주며, 그들의 마음 역시 모두 깨끗케 하여 준다.
그리고 모든 신실한 신도들은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 보시기에 의롭다하심을 얻으며 모든 죄로부터 깨끗함을 받는다(행 13:39).
믿음을 가진자는 누구든지 다 같이 귀하신 주님을 영접할 수 있으며 다 같이 귀하신 약속을 받아 누릴 수 있다.
3. 이 보배로운 믿음은 하나님께서 주셔야만 우리가 소유할 수 있다. [[이 믿음은 참 기독자라면 누구나 받고 누릴 수 있는 바, 그리스도의 전능한 믿음이요]]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하나님께서 성령을 통하여 주시는 은사이다.
4. 믿음의 귀중함은 우리가 그것을 소유할 수 있게 되는 경우와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의 의로우심을 통해서만 가능한 것이다.
그리스도의 완전하고도 만족할 만한 의와 순종이 믿음에 대하여 그 가치와 귀중함을 부여하여 주신다.
그리고 믿는 자의 의로움은 그것을 받아들임으로 그 무한한 가치가 더욱 인정될 수밖에 없다.
(1)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이시다. "
그렇다. 그는 태초적부터 "우리의" 하나님이시다.
그는 참된 하나님이시며, 무한하신 존재로서, 이러한 의를 이룩하셨기 때문에 무한한 가치를 인정받게 된 분이시다.
(2) "그는 믿는 자들의 구주이시다."
그리고 그는 이러한 완전한 순종을 보여 주셨다.
보증자와 구세주로서 그리스도는 믿는 자들을 대신하여 이러한 의를 가져왔기 때문에 그의 순종은 믿는 자들에게 말할 수 없이 커다란 이익을 가져다주었다.
Ⅲ. 베드로는 사도로서의 축복을 기원하고 있다.
.그 축복에서 그는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축복이 충만할 것과 그들 속에 은혜의 역사가 증진하고 성장할 것 그리고 더 나아가서 하나님과 함께 하며 그들의 양심 안에 충만한 평강이 넘치기를 기원하고 있다. (평강,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가능하지 못하다).
이것은 전서에 나오는 기원과 같은 것이다. 그러나 다음과 같은 몇 가지가 첨가되었다.
1. "은혜와 평강이 넘치게 되는" 방법과 수단이 설명되었다.
그 방법이란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앎으로(야다...참되게 전존재를 경험하여 앎...이때 진실한 참 믿음과 참 사랑, 산 소망으로 반응하게 됨) 말미암는" 것이다.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믿는 것은 영적인 삶에 커다란 증진을 가져다준다.
그리고 그러한 지식과 믿음이 없이는 영생에 이를 수 없다(요 17:3).
2. 충만한 은혜를 구하는 사도 베드로의 믿음과 이를 기대하는 그리스도인들의 소망의 근거를 덧붙여 주고 있다.
우리가 이미 받은 바 은혜가 우리로 하여금 더 많은 것을 구하도록 고무한다.
은혜의 사역을 시작하신 이는 그것을 완성해 주실 것이다.
(1) 이 모든 영적인 축복의 원천은 하나님이시며 동시에 인간이 아니었다면 중보자의 모든 사명을 감당하실 수 없으셨던 예수 그리스도의 신적인 능력이시다.
(2) 진실한 영적인 생활과 거룩한 삶과 능력에 연관되어 있으며, 또한 이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그 모든 것은 모두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그의 안에 모든 충만함이 있으며," 그리고 그로부터 우리가 무든 것을 받으니 곧 "은혜 위에 은혜"이다(요 1:16). [...사도 베드로는 베드로전서에서 생명의 은혜, 증가되는 은혜, 각양(각 방면의) 은혜, 모든 은혜, 참 은혜..라는 표현으로 그안의 하나님 생명의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역동성을 드러내고 있다!!]
그리고 은혜와 평강을 보존하며 증진시키며 완전케 하는데 필요한 모든 것을 그로부터 받는데, 어떤 주석가는 이 구절에서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이 바로 그러한 것을 의미한다고 하고 있다.
(3) 하나님께 대한 지식과 그에 대한 믿음은 모든 영적인 도움과 위로를 우리에게 전달해 주는 수단이다.
그러나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님께 대하여 우리가 여기에 묘사되어 있는 바와 같이 우리를 확실히 부르신 분이라고 고백하며 또 그렇게 인식하여야만 한다. 즉 하나님은 "자기의 영광과 덕으로 우리를 부르신 자"이시다.
인간을 부르사 회심시키시는 하나님의 계획은 그들에게 "영광과 덕"을 가져다주시기 위한 것이다. ((이것은 영원히 살아 생동함으로 작동하는 그리스도의 모든 인격과 신적 성품, 거기에 그분의 모든 영광의 능력-부-지혜-힘-존귀한 은혜를 다 포함한 것이며, 그분과 하나됨안으로, 상호누림-거함-기업-소유됨-닮음을 다 포함한다!!))
말하자면 어떤 사람들이 이해하는 것과 같이 "평강과 은혜"를 주시기 위한 것이다.
그저 많은 사람들은 난외의 주와 같이 "영광과 덕으로써"라고 읽기를 좋아한다.(역주. 한국어 성경은 그렇게 취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영광과 덕의 활동 또는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능력"으로 말미암아 확실하게 부르심을 받았다.(엡 1:19).
죄인을 회개시키는 것은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능력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성소에서 모여지고 경험되어지는 능력과 영광이다(시 63:2).
이 능력과 덕은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