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20.11.19 작성자 : 양시영
제   목 : 시123.예수기도...주여우리를긍휼히여기소서. 여호와의손(지시_공급_도움_고침_보호_보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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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역개정]시123성전에 올라가는 노래...인간의7가지갈망!!(Q의 고백!!)

***주께서 내맘에 두신 7가지 갈망 이루소서***
하나님의 열납하심, 거듭나고 회복된 내가 또한 바로 그분의 아가페요, 기쁨과 즐거움--Q의 영원한 누림/즐거움의 대상임을 참되게 알기 원하는 갈망
영광체험 통해 그 경이로운 아름다움을 날마다 경험 ---넘치는 경이감에 매혹되고 싶은 갈망
하나님의 [올인]하시는 무한한 사랑의 열정 바로 그대로 반응---전심으로 열정을 쏟아 붓고 싶은 갈망
하나님의 어떠하심에 합당한 파트너로서의 아름다움---아름다움을 소유하려는 갈망
하나님과 완전한, 친밀한 연합 이룸 --부끄러움 없는 친밀함
바로 그렇게 그 비밀한 사랑을 전파하여 참여케 함---땅끝까지 타인/만물에 지고지선의 유익(구원영생복락의 증거자 : 복음전파)을 끼치려는 갈망
하나님의 뜻 온전히 이룸 ---참된 의미의 성공을 향한 갈망


나주의도움받고자214..주예수님내맘에오사286..주예수내맘에들어와계신후289..하나님은우리를긍휼히여기사.너의가는길에주의축복..하늘의나는새도..주내맘에오신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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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 구속자, 구속하시는 여호와===@구속[무름(속량)/자유]회복---속전(지속적으로 정결케 하는 보혈의 능력)--보수./보응/심판

la'G:(1350, 가알) 되 사다, 속량하다, 구속하다, 근친의 역할을 행하다 [구속자 redeemer..근친/근족/혈연자 =고엘]

가알(동사)은 기본어근이며, '되사다, 도로 찾다, 속량하다, 구속하다 redeem, 근친 역할(권리, 의무)을 행하다'를 의미한다. 

따라서 이 어근은 '자기 친족을 어려움이나 위험에서 구하다'는 의미를 지니게 된다. 

이 어근과 매우 유사한 어근 파다([d"P; , 6308): 구속하다 redeem) 사이의 한 가지 차이점은, 일반적으로 가알(la'G: , 1350)의 강조점이 구속자의 자격과 행함에 있는데, 반드시 근친이어야 하며, 근친의 특권이나 의무는 다름아닌 속량에 있다는 것이다.((JC가 바로 그러하시다..그는 태초이전부터 아버지와 함께 계신 아들 하나님이시지만 동시에 이미 예고된 대로, 참사람으로서 성육신하셨고 인성을 가지셨기에 [죄로 인해 자기의 모든 것을 사탄에게 넘겨주고 파산한 자들인]우리의 피를 나눈 근친/근족으로서 모든 면에서  참된 자격과 능력을 갖추신 유일무이한 고엘이시다!!))

구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약 100회 이상 나오며, 칼형과 니팔형으로만 사용되었다.

가알은 착하고 진실한 사람이 자기의 친족을 위해 할 수 있는 일들을 포함하는 4개의 기본적인 상황에서 사용되었다.

(a)  첫째로, 가알은 오경의 법령에서 궁핍한 때에 판 밭을 되사는 것이나 가난할 때 자신을 판 이스라엘인 노예를 자유롭게 하는 것을 언급하기 위해 사용되었다. 

[합당한 대가를 치르고 되사서 본래 하나님이 창조하신 바로 그대로 각 사람에게 배정/배분된 대로 모든 것을 돌려주고 모든 권리를 회복시켜 지고지선의 진복 누림의 바탕을 제공하여 주는 구속의 일]로서 이런 매입과 무르는 일은 근친의 의무였다(레 25:25-54).

레 25:25에서 "만일 너희 형제가 가난하여 그 기업 얼마를 팔았으면 그 근족이 와서 동족의 판 것을 무를 것이요"라고 하였다. 

물론, 만약에 자신이 부유하게 되면 그 사람 자신이 그것을 '무를' 것이다(레 25:26). 

한편, 가난한 자는 기업만이아니라 자기 자신을 동족 이스라엘인에게나(레 25:39) 이스라엘에 살고 있는 타국인(레 25:47)에게 팔기도 하였다. 

그를 속량할 책임은 가장 가까운 친척 - 형제, 삼촌, 사촌들, 가족의 혈족 - 에게 있었다(레 25:25, 레 25:48, 레 25:49). 

경제적인 어려움에 처한 친척을 속량한 redeemed 자(혈연자)는 '근족 - 구속자'로 알려져 있었다. (참조: EDBW).

---가난한 자의 구제에 관한 가장 유명한 실례는 수혼법에 대한 구약성경의 증거가 가장 광범위하게 미치는 룻기에 있는 것 같다. 

신 25:5-10에 의하면, 남편의 형제는 후사 없는 과부를 취하여서 씨를 영속시키고, 남자 후손과 결부되어 있는 땅의 계승을 보증해야 했다. 

여기 [수혼법의 실행 의무]에서 그것을 실행하는 근친은 야밤이라고 불리어지며, 어근 가알은 사용되지 않는다.

....룻의 상황에서는 두 가지 것들, 즉 밭을 되사는 것과 수혼이 언급된다. 근친은 밭을 사는 것을 기꺼워했지만, 룻과 결혼하는 것은 기꺼워하지 않았다.

....그러나, 문제의 요지는 나오미가 가난하여 밭을 팔 수 밖에 없었을 때, 근친은 그녀를 위해 그 밭을 되사야 했다는 데 있다. 그는 후사 없는 형제의 과부를 위해서 이 일을 기꺼이 하려 했지만, 그가 [스스로 생각하기에는 그 근본을 모르는] 룻과 결혼하여 그들의 기업을 지속시킬 자손을 일으켜야 한다는 것을 알고는, 그는 거부하였으며 여기에 보아스가 개입하였다. 

....그러나 이 두 가지 것, 즉 친족과 수혼은 구별되어야 한다. 고엘(구속자)이란 단어는 후자의 제도를 가리키지 않는다. 

....레게트(Leggett)는 룻기에 구속적이고 메시야적인 유형론의 주제가 들어있다고 보았다. 

...."고엘(goel)로서의 보아스의 행동들에서 우리는 보아스의 후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 역사가 예시되어 있음을 보았다. 보아스가 구속의 권리를 소유하였으면서도 분명히 룻을 위하여 개입할 의무(까지)는 없었던 것처럼 그리스도께서도 그러하다. ((그러나, 보라...룻은 나오미의 견해를 따라서 겸손하게 자신을 신부로 취하여 후사를 낳도록 해 달라는 뜻으로 보아스의 이불을 들추고 눕는다!!...겸손과 순종의 극치이다!!))

....보아스가 이 가난한 과부들의 곤경을 보았을 때 그의 생애가 여호와와 여호와의 율법에 의해 지배를 받고 있었으므로 그들을 구원하러 왔던 것과 같이 메시야의 경우도 그의 생애가 하나님의 법에 의해 지배되고 또한 그가 가난한 자들과 억압 받는 자들을 공정하고 정당하게 대우하실 것이라는 사실이 예언되었다(시 72:2, 시 72:4, 시 72:12, 시 72:13, 사 11:4).

(b)  둘째로, 가알은 재산이나 여호와께 바쳐진 희생제물 아닌 짐승들을 무르는 것, 혹은 부정한 짐승들의 첫 소산을 무르는 것과 관련하여 사용되었다(레 27:11-33). 

이 [속전!!]사상은 인간이 교환물로 그에 상응하는 것을 여호와께 바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속전은 부정직한 교환을 피하기 위해 약간의 추가 몫이 제공되었다. 이런 경우에 무르는 자는 친족이 아니라 재산의 주인이었다.

(c)  셋째로, 가알은 살해당한 사람을 대신하여 "피의 보수자"(RSV '보복자' revenger)가 되는 가장 가까운 친족을 언급하는데 사용되며, 칼 분사 고엘로 나타난다. 

고엘은 구속자이며, 이 구속자는 '피의 보수자'로 불리우는데, 그의 임무는 자신의 친척을 살해한 자를 처벌하는 것이다(신 19:6). 

이 사상은 가까운 친족이 생명에는 생명으로 지불해야 한다는 것임에 틀림없다. 

돈을 지불함으로서 집을 재매입하거나 노예를 속량할 수 있는 것처럼, 친족의 잃어버린 생명은 마땅히 살인자의 그에 상응하는 생명으로 지불되어야 한다. 

친족은 피의 보수자이다. 이런 사형 제도는 피비린내 나는 숙원과 구별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고엘은 죄없는 사형 집행인이었으며 따라서 살해되어서는 안되었기 때문이다. 

이 단어는 '보수자'라는 의미로 12회 나온다(민 35:12, 민 35:19, 민 35:21, 민 35:24, 민 35:25, 민 35:27, 신 19:6, 신 19:12, 수 20:3, 수 20:5, 수 20:9).(참조: R. L. Harris).

(d)  넷째로, 가알은 하나님께서 '구속자'로서 '구속하시는 행위'에 대해 사용되었다.

....출 6:6에서 "나는 여호와라 내가 애굽 사람의 무거운 짐 밑에서 너희를 빼어 내며 편 팔과 큰 재앙으로 너희를 구속하여"라고 약속하신다(출 6:6, 참조: 시 77:15). 

이스라엘은 다음과 같이 고백한다: "주께서 그 구속하신 백성을 은혜로 인도하시되"(출 15:13). "하나님이 저희의 반석이시요 지존하신 하나님이 저희 구속자이심을 기억하였도다"(시 78:35).

....이사야서에는 '구속자'라는 단어가 하나님을 지칭하여 13회 나오는데 모두 사 41- 63장에서 사용되었다. 가알은 하나님에 대해 9회 사용되었으며, 사 43:1에서 "너는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가알은 애굽으로부터의 구원(사 51:10, 사 63:9)과 바벨론의 포로생활로부터의 구원(사 48:20, 사 52:3, 사 52:9, 사 62:12)을 언급하는데 사용되었다. 

이스라엘의 '구속자'는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사 41:14)이며 '너희의 왕 이스라엘의 창조주'(사 43:14, 사 43:15)이며 '만군의 여호와'(사 44:6)이며 '야곱의 전능자'(사 49:26)이다. 그의 구원에 참예하는 자는 '구속 받은 자'이다(사 35:9).

....시편에는 종종 영적인 구원이 육적인 구원과 병행되어 나온다. 예를 들면 시 69:18., "내 영혼에게 가까이 하사 구속하시며 내 원수를 인하여 나를 속량하소서". 시 103:2, 시 103:4.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며 그 모든 윤택을 잊지 말찌어다...네 생명을 파멸에서 구속하시고 인자와 긍휼로 관을 씌우시며..."이 그러하다(참조: EDBW).

[욥19:25,26,27]   *25. 내가 알기에는 나의 대속자가 살아 계시니 마침내 그가 땅 위에 서실 것이라   *26.내 가죽이 벗김을 당한 뒤에도 내가 육체 밖에서 하나님을 보리라   *27.내가 그를 보리니 내 눈으로 그를 보기를 낯선 사람처럼 하지 않을 것이라  ....*25. "And as for me, I know that my Redeemer lives, And at the last He will take His stand on the earth.   *26. "Even after my skin is destroyed, Yet from my flesh I shall see God;   *27.Whom I myself shall behold, And whom my eyes shall see and not another.  

....유명한 구절, 욥 19:25에서 고엘이란 단어는 흠정역성경에서 '구속자' redeemer로 번역되며 어떤 이들은 이 단어가 속죄의 사역을 하러 오실 그리스도의 오심을 나타내는 것으로 받아들였다. 이것은 히브리어 "파다"에 의해 더욱 특징적으로 표현될 것이다. 

....이제 욥 19:25에 나오는 이 단어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결국에는 욥을 죽음의 먼지에서 구속할 친구이자 친족으로서의 하나님의 사역과 더욱 정확하게 관련된다. 욥 19:26의 난해한 어구, "이 가죽을 벗은 후에"는 다른 모음들과 함께 "내가 깨어난 후에"로 번역할 수 있을 것이다(NIV 각주와 욥 14:12-14을 참조하라. 욥 14:12-14에서 부활에 관한 욥의 질문은 하나님께서 결국에는 그를 돌아보시며 욥은 나무처럼 제 2의 성장을 할 것이라는 그의 소망에 의해 절정에 달하게 된다 - 욥 14:14의 할리파는 욥 14:7의 할랍에 대한 응답이다). 어쨌든 욥은 마침내 자기 자신의 눈으로 자기의 고엘이신 하나님을 볼 것으로 기대한다(참조: R. L. Harris). 


..[[사59:20,21]]..*20.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구속자가 시온에 임하며 야곱의 자손 가운데에서 죄과를 떠나는 자에게 임하리라 *21.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그들과 세운 나의 언약이 이러하니 곧 네 위에 있는 나의 영과 네 입에 둔 나의 말이 이제부터 영원하도록 네 입에서와 네 후손의 입에서와 네 후손의 후손의 입에서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예레미야 9:24]] *23.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지혜로운 자는 그의 지혜를 자랑하지 말라 용사는 그의 용맹을 자랑하지 말라 부자는 그의 부함을 자랑하지 말라 *24.자랑하는 자는 이것으로 자랑할지니 곧 명철하여 나를 아는 것과 나 여호와는 사랑과 정의와 공의를 땅에 행하는 자인 줄 깨닫는 것이라 나는 이 일을 기뻐하노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미가6:8]]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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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120]   *1.  내가 환난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내게 응답하셨도다   *2.  여호와여 거짓된 입술과 속이는 혀에서 내 생명을 건져 주소서   *3.  너 속이는 혀여 무엇을 네게 주며 무엇을 네게 더할꼬   *4.  장사의 날카로운 화살과 로뎀 나무 숯불이리로다   *5.  메섹에 머물며 게달의 장막 중에 머무는 것이 내게 화로다   *6.  내가 화평을 미워하는 자들과 함께 오래 거주하였도다   *7.  나는 화평을 원할지라도 내가 말할 때에 그들은 싸우려 하는도다

-------그러하기에-----

[시121]  *1.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   *2.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3.  ○여호와께서 너를 실족하지 아니하게 하시며 너를 지키시는 이가 졸지 아니하시리로다   *4.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이는 졸지도 아니하시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리로다   *5.  여호와는 너를 지키시는 이시라 여호와께서 네 오른쪽에서 네 그늘이 되시나니   *6.  낮의 해가 너를 상하게 하지 아니하며 밤의 달도 너를 해치지 아니하리로다   *7.  여호와께서 너를 지켜 모든 환난을 면하게 하시며 또 네 영혼을 지키시리로다   *8.  여호와께서 너의 출입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지키시리로다

------그러하기에----

[시122편]  *1.  사람이 내게 말하기를 여호와의 집에 올라가자 할 때에 내가 기뻐하였도다   *2.  예루살렘아 우리 발이 네 성문 안에 섰도다   *3.  예루살렘아 너는 잘 짜여진 성읍과 같이 건설되었도다   *4.  지파들 곧 여호와의 지파들이 여호와의 이름에 감사하려고 이스라엘의 전례대로 그리로 올라가는도다   *5.  거기에 심판의 보좌를 두셨으니 곧 다윗의 집의 보좌로다   *6.  예루살렘을 위하여 평안을 구하라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자는 형통하리로다   *7.  네 성 안에는 평안이 있고 네 궁중에는 형통함이 있을지어다   *8.  내가 내 형제와 친구를 위하여 이제 말하리니 네 가운데에 평안이 있을지어다   *9.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집을 위하여 내가 너를 위하여 복을 구하리로다


-----그러므로 내가 고하리라---


1.  하늘에(샤마임) 계시는(야샤브) 주여 내가 눈을 들어(나사...고개들어, 마음의 눈을 들어) 주께 향하나이다
2.  상전(아돈)의 손을 바라보는 종들의 눈 같이, 여주인(게베레트)의 손을 바라보는 여종의 눈 같이 우리의 눈이 여호와 우리 하나님을(예호와 엘로힘) 바라보며 우리에게 은혜 베풀어 주시기를(헨=은총..낳은 자식 불쌍히 여기되 단장의 고통 느끼며 동정함의 자비(라훔) + 체휼동행도와 일으키심의 긍휼(한눈)로 구속하심 통해 하나님 자신을 HS으로 부어주사 누리게 하심의 은혜(헨=은총)를 베풀다 = 긍휼히 여기다...생생한 산 경험통한 영광의 감사찬송예배 드리게 하심) 기다리나이다
3.  여호와여 (살아 생동하는 산 믿음을 발휘하는 성도들마다 친히 참되게 연합하여 모든 상황/행로마다 하나되사 주님자신을 부어주시며 주님의 소유-거처-기업-누림-기쁨/자랑-교통안에 두신)우리에게 은혜를(때에 합당한, 때를따라 도우시는, 비천함에서 친히 손잡아 일으켜 세우시는 영적부활생명의 말씀과 그 능력..God's Reward At Christ's Excess) 베푸시고 또 은혜를 베푸소서 심한 멸시가 우리에게 넘치나이다(사바)
4.  안일한 (샤아난...at ease..함부로 제멋대로 사는/방종-부주의-오만불손/거만/정온한-태평한/자긍하는/어려움없이 쉽게 사는/사치-향락에 중독된/안락에 빠진 ...
<육신의 정욕/안목의 정욕/이생의 자랑, 곧  세상가치따라, 세상과 짝한>방심-방만-방탕-방종-세상일락에 잠긴-나태한)자의 조소(라아그..scorn,scorning, scoffing..조롱/조소..제멋대로 함부로 말하며 쥐락펴락하며 비웃다)와 교만한(가아욘...거만/교만한) 자의 멸시(부즈.. contempt  ..경멸, 모욕, 수치..베임당해 시든 잡초처럼 하찮케 여김)가 우리 영혼에(네페쉬...HS을 호흡하는 산혼LivingSoul) 넘치나이다(그러나, 주님 말씀을 믿음으로 붙들어 살아내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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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준새번역]시123장성전에 올라가는 순례자의 노래
1.  (성전에 올라가는 순례자의 노래) 하늘 보좌에 앉아 계시는 주님, 내가 눈을 들어 주님을 우러러봅니다.
2.  상전의 손을 살피는 종의 눈처럼, 여주인의 손을 살피는 몸종의 눈처럼, 우리의 눈도, 주께서 우리에게 자비를 베푸시길 원하여 주 우리 하나님을 바라봅니다.
3.  주님, 우리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우리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너무나도 많은 멸시를 받았습니다.
4.  평안하게 사는 자들의 조롱과 오만한 자들의 멸시가 우리의 심령에 차고 넘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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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JV]시123
1.  Unto thee lift I up mine eyes, O thou that dwellest in the heavens.
2.  Behold, as the eyes of servants look unto the hand of their masters, and as the eyes of a maiden unto the hand of her mistress; so our eyes wait upon the LORD our God, until that he have mercy upon us.
3.  Have mercy upon us, O LORD, have mercy upon us: for we are exceedingly filled with contempt.
4.  Our soul is exceedingly filled with the scorning of those that are at ease, and with the contempt of the proud.
====시123 개요====
이 시편은 하나님의 교회가 낮아지고 짓밟힐 때에 기록되었다. 

어떤 사람들은 이 시편이 기록된 때가 바벨론 포로기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저희가 교만으로 모욕당한 때가 그때만이 아니었다.

시편 저자는 단지 혼자서 말하는 것처럼 이 시편을 시작하지만(1), 곧 그것을 교회의 이름으로 나타내어 말하고 있다.
1.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자비를 기다림(1-2).
2. 하나님께 자비를 간구함(3-4).
---우리는 이 시편을 노래하면서 거룩한 관심으로 하나님의 은총을 바라보아야 하며, 거룩한 경멸로써 인간의 비방을 내려다 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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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로운 감사의 고백(시 123:1-4)
Ⅰ.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에 대한 신앙과 소망으로 형성한 장엄한 고백이 나타나 있다(1-2절).
1. 하나님께 주어진 칭호를 관찰해 보자.

“하늘에 계신 주여.” 

우리 주 예수는 기도에서 하나님을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로 바라볼 것을 가르치셨다. 

그가 하늘에 국한됨은 아니지만, 그는 특히 하늘에서 그의 보좌에 앉은 왕으로서 그의 영광을 나타내신다. 

하늘은 전망의 자리며, 권능의 자리다. 하늘에 계신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의 모든 질고를 보시며, 그들을 구원하기 위해 보내실 수 있다.

고난과 역경의 때에, 때때로 사람의 육적인 눈으로만 보는 이들에게는 마치 하나님이 세상을 저버리신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래서 그러할 때 하나님 백성의 대적자들은 “너희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고 조롱하고 비아냥 거리면서 묻는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 그들은 스스로 위로한다. “우리의 하나님은 하늘에 계시다.” “하늘에 계신 주여, 주는 심판자로서 하늘에 계십니다.”

“여호와께서 하늘에 그 보좌를 예비하셨으므로”, 상처를 입은 무고한 자마다 그 보좌에 직접 호소할 수 있다.
2. 하나님께 대한 존경이 나타나 있다.

시편 저자는 하나님을 향해 그의 “눈을 들었다.” 선한 사람의 눈은 “항상 여호와를 앙망한다”(25:15).

우리는 모든 기도에서 우리의 영혼, 우리 영혼의 눈을 하나님께 들고, 특히 이 경우와 같이, 고난 중에서 더욱 하나님께 향해야 한다.

선한 백성들의 “눈이 여호와를 바란다”(2절). 

우리는 “세상 사람과 이스라엘 모든 지파의 눈이 여호와를 우러러볼 때”(슥 9:1) 백성들에게 자비가 임하는 것을 발견한다.

모든 인간, 직립보행하는 이들마다 그들의 육체의 눈은 하늘을 향하는 바, 마음의 눈이 향해야 할 길을 우리에게 가르치시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똑바로 선 풍채를 주셨다”(Os homini sublime dedit).

“우리 눈이 여호와를 기다리나이다. 갈구와 기도의 눈, 애걸하는 눈, 의지와 소망과 기다림의 눈, 열망하는 눈이 여호와를 기다리나이다.” 

우리 눈은 “여호와”, “우리 하나님“이 우리에게 “긍휼을 베푸실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우리는 그로부터 자비를 갈망하고, 그가 긍휼을 우리에게 보이실 것을 소망하며, 자비가 임할 때까지 [주님이 그러하심처럼] 하나님께 대한 열심을 계속할 것이다. 

이것은 비유로써 묘사되었다(2절). 마땅히 우리 눈은 종의 눈이 그 상전의 손을, 여종의 눈이 그 주모의 손을 바람같이 하나님께로 향해야 한다.
종의 눈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다음에서 살펴보자.
(1) 그 주인의 지시하는 손을 바라보아야 한다.

주인이 종에게 그의 일을 명할 것을 기대하며, 그를 위해 예정한 것을 바라고, 그가 해야 할 것을 어떻게 하라는지 명심해야 한다. 

“여호와여, 주께서 무엇을 내게 하라고 명하실 것입니까?”
(2) 그의 공급하는 손을 바라보아야 한다.

종들은 적당한 시기에 따르는 저희 음식의 몫을 상전과 주모에게 바라고 있다(잠 31:15). 

우리는 하나님께 충분한 은총을 위해 일용할 양식을 바라야 한다. 하나님께로부터 우리는 그것을 감사하게 받아야 한다.
(3) 그의 도우시는 손을 바라보아야 한다.

만일에 종이 그의 일을 혼자서 할 수 없다면, 그의 주인 이외에 어디에 도움을 청해야 하는가?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의 힘을 얻어 전진하며, 계속할 수 있다.
(4) 그의 보호하시는 손을 바라보아야 한다.

만일에 종이 일하는 중에 적과 만나고, 하는 일에 의문을 품게 되며, 혹 잘못하거나 해를 입는다면 그 일을 정해 준 그의 주인 이외에 누가 그를 지원해 주며 올바르게 해줄 것인가? 

하나님의 백성들이 박해를 받게 될 때 그들은 저희의 주인에게 호소할 수 있다. “우리는 주의 것입니다. 우리를 구원하소서.”
(5) 그의 고치시는 손을 바라보아야 한다.

종이 그의 주인을 치기 위해 거역했다면, 그는 그의 주인에게 도움을 요청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를 때리는 것을 볼 때 이렇게 말하는 종도 있다.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내가 영원히 거역하지 아니하겠나이다.”

하나님의 백성은 이제 그의 책망 아래 있다. 

그러면 저희가 “자기들을 치시는”(사 9:13) 자 이외에 어디로 돌아올 것인가? 그들이 저희 심판자말고 누구에게 호소할 것인가? 

그들은 자기에게 곤경이 닥쳤을 때 여주인에게서 도망간 하갈과 같이(창 16:6) 행하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그들은 자신들을 복종시키며, 하나님의 전능하신 손에 자신들을 겸손하게 둘 것이다.
(6) 그의 보응하시는 손을 바라보아야 한다.

종은 그의 품삯을 기대하며, 그의 주인으로부터 “잘 했도다” 하는 말을 기대한다. 

위선자들은 저희의 눈을 세상으로 향한다. 그러므로 “저희는 자기 상을 이미 받았다”(마 6:2). 

그러나 진실한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의 상 주시는 분인 하나님께로 저희의 눈을 돌린다.
Ⅱ. 하나님의 백성들이 역경의 상황 가운데서 하나님께 제시한 겸손한 표현이 나타나 있다(3-4절).
1. 그들은 자비를 간청한다.

하나님께서 저희들을 위해 무엇을 해달라고 서술하거나 자비를 받을 만한 그들의 공적을 말하지 않고, “여호와여,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고, 긍휼히 여기소서”라고 기도한다.

우리는 인간들에게서는 거의 자비를 찾지 못한다. 

그들의 인자함은 잔학하다. 거기에는 잔인한 “멸시”가 있다. 

그러나 “여호와께 긍휼이 있다는 것”은 우리의 위로가 된다. 

우리는 하나님의 긍휼 이외의 것에서 우리의 구원과 평안을 갈구할 필요가 없다. 교회의 환난이 어떠할지라도 하나님의 긍휼이 주도적인 치료가 된다.
2. 그들은 저희의 슬픔을 토로한다. 

“심한 멸시가 우리에게 넘치나이다.”

훼방이 바로 그들이 탄식한 상처요 짐이다. 다음의 사실들을 관찰해 보자.
(1) 누가 멸시를 받았나?

“주께 눈을 향한 우리.” 하나님을 고백하는 자들은 때때로 세상에 의해 멸시받고 유린당한다.

어떤 사람들은 “평안한 자”, “교만한 자”라는 말을 비난받고 멸시받는 사람들은 나타내기 위해 다음과 같이 풀이한다. 

“우리의 영혼이 평안한 자들과 빼어난 자들이 비난하고 멸하는 것을 보고 고통하나이다.”

성도들은 평화스러운 백성이지만 능욕을 당하고(35:20), 세상의 우수한 자들도 평안하지만 경시된다(애 4:1-2).
(2) 누가 그들을 멸시했는가?

우리가 읽은 말씀을 볼 때 그들은 평안하게 산 향락주의자며, 육체적이고, 감각적인 사람들이었다(욥 12:5). 

멸시하는 자들은 그들의 정욕에 따라 행하며, 자기 자신들의 배를 섬긴다. 그리고 교만한 자들은 하나님을 대항하며, 자기들을 높이 평가한다.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조롱하고 남을 비방함으로써 자신들을 과장하고자 한다.
(3) 그들이 어느 정도로 멸시를 받았는가?

“우리에게 넘치나이다.” 우리가 멸시로 넌더리가 났나이다. “멸시가 우리 심령에 넘치나이다.” 

적들은 그들을 충분히 조롱하지 못했다고 생각했고, 그들을 충분히 경멸했다고 결코 말하지 않는다. 

그러나, 주의 백성, 그들은 그 멸시를 마음에 새기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것은 저희의 뼈를 찌르는 칼과 같았다(42:10)

① 비난과 멸시는 이 세상에 있는 많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과거에 있었고 현재도 있으며 앞으로도 있을 것이다. 

이스마엘은 이삭을 멸시했다. 그것은 그를 “핍박했다”(갈 4:29)고 일컬어진다. 그리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② 사람들의 비난과 멸시에 비해 하나님께 자비가 있음과 그들이 야만적으로 사용할 때 우리의 선한 이름에 자비가 있음은 위로의 내용이 된다. 

“들으소서. 오, 우리의 하나님이시여, 우리가 멸시를 받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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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w:q;(6960, 카와) 기다리다, 기대하다, 바라다, 바라보다, 소망/앙망하다 [믿음+소망 ,  포기/중단없이 끝까지 소망하며 붙드는 믿음] look unto, look for, hope, wait

1. 카와(동사)는 기본어근이며, '기다리다, 기대하다 wait, look for, 바라다, 소망하다 hope'를  의미한다.

구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약 50회 나오며, 칼형과 피엘형으로만 사용되었다.

카와는 의인의 생명을 파멸시키고자 하는 악인들에 대하여 사용되었다(시 56:6, H7, 시 119:95). 

.....꾸준한 인내의 기다림은 위대한 믿음의 표현이다. 

이 단어는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의 구원을 위해 결정적으로 행동하실 것을 확신 있게 소망하며 끈기 있게 참는다는 의미를 지닌다(창 49:18). 

.....기다림은 인간 존재의 본질, 즉 인간의 혼(nepesh)과 관련된다(시 130:5). 

진실한 믿음으로 기다리는 자들은 새 힘을 얻어 계속하여 여호와를 섬기며 그의 구원 사역을 기대한다(사 40:31). 

하나님께서 약속한 모든 것이 실현되고 성취될 때가 올 것이다(사 49:23, 시 37:9). 

.....한편 신자는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의 의지함으로 자신의 성실과 정직에 의해 생존하게 된다(시 25:21). 

그의 믿음은 시험을 통하여 강화되고 그의 인격이 더욱 개발된다(시 27:14). 

>이스라엘은 사랑과 공의를 굳게 잡으라는 권면을 받는다. 

즉 그들은 충성스럽게 율법에 순종해야 하며 공의의 표준들을 변함없이 유지시키고 동시에 신적 사랑의 자세를 간직해야 하는 것이다(호 12:6, H7, 참조: 시 37:34, 욥 4:6).

>재난과 심판의 때에 의인들은 위대한 믿음을 발휘해야 한다(사 26:8, 애 3:19-33). 

그러므로 이사야는 변함없이 말한다: "이제 야곱 집에 대하여 낯을 가리우시는 여호와를 나는 기다리며 그를 바라보리라"(사 8:17). ...하나님께서 구원의 능력을 가지고 현장에 임하실 때, 기다렸던 자들은 넘치는 기쁨과 커다란 노래로 응대할 것이다(사 25:9).

욥은 극렬한 시험 중에 하나님께서 자기의 소망을 나무와 같이 뽑는다고 말한다(욥 19:10). 아마 이 진술은 다음과 같은 그의 믿음의 단언에 대한 하나의 응답일 것이다: "나무는 소망이 있나니 찍힐지라도 다시 움이 나서 연한 가지가 끊이지 아니하며"(욥 14:7). 그러나 그의 철저한 좌절이 이미 다음의 외침에서 표현되었었다: "나의 날은...소망 없이 보내는구나"(욥 7:6, 참조: 잠 11:7).

.....악인도 역시 소망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것이 잘못된 기초 위에 놓여 있는 이상 그 소망은 그들의 죽음으로 끝날 것이다(잠 11:7, 잠 11:23, 참조: 잠 10:28). 하나님께서 친히 그들을 끊어 버릴 것이다(욥 8:13, 욥 27:8). 욥은 말한다: "그의 소망은 기운이 끊침이리라"(욥 11:20).

.....소망은 인간의 마음 속에 영원한 집을 가진다. 장래가 있는 한 소망이 있다(잠 23:18, 아마 영원한 장래를 뜻할 것이다). 

그러나 오직 신자만이 진정으로 장래에 대한 자기의 소망을 표현할 수 있다. 왜냐하면 소망은 여호와께만 속하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러한 장래를 보장하고 소망을 실체화하기 위해 지혜를 공급하신다(잠 24:14). 

악인에게는 그러한 장래(잠 24:20)도 소망(잠 10:28)도 없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에게 있어서 소망의 원천이다. 그리고 그는 그들에게 한 장래와 한 소망을 약속하셨다(시 62:5, H6, 렘 29:11). 

예레미야는 [바벨론의]포위 공격을 받고 있는 유다를 향해 말한다: "너의 장래(한글개역: "최후")에 소망이 있을 것이라"(렘 31:17). 

스가랴는 하나님의 백성을 "소망을 품은 갇혔던 자들" prisoners of hope이라 부른다(슥 9:12). 그리고 그는 그들에게 하나님께서 회복시키는 경험을 기대하라고 촉구한다(슥 9:12).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친히 "이스라엘의 소망"이라 불린다(렘 14:8, 렘 17:13, 렘 50:7, 참조: 시 71:5).

.....하나님도 인간에 대한 소망을 표현하신다. 그는 이스라엘을 심고 잘 가꾸어진 포도원으로 만들었다. 하나님의 소망과 목적은, 이스라엘의 성취 즉 그들이 열매를 맺는 것이었다. 이 점은 포도원 안에 포도즙 짜는 틀(한글개역: "술틀")을 설치하였다고 말함으로써 우회적으로 표현하고 있다(사 5:2이하). 그러나 이스라엘은 들포도만을 맺었을 뿐이다. 그러므로 그는 이스라엘을 준엄하게 심판해야 했다(사 5:5 이하). 

그러나 하나님의 소망은 계속되었다. 왜냐하면 언젠가는 풍성한 열매를 맺을 새 포도원을 계획하였기 때문이다(사 27:2-6).

2. 카와(동사)는 기본어근이며, '모으다, 수집하다 collect'를 의미한다.

구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3회 나오며 니팔형으로 사용되었다(렘 3:17, 창 1:9, 사 60:9).(참조: J. E. HARTLEY; B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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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86:14~17)] 긍휼히 여기소서 주여 *14.  하나님이여 교만한 자가 일어나 나를 치고 강포한 자의 무리가 내 혼을 찾았사오며 자기 앞에 주를 두지 아니하였나이다  *15 . 그러나 주여 주는 긍휼히 여기시며 (라훔...불쌍이 여겨 아픔에 동참/체휼하사 도와 건져내심) 은혜를 베푸시며(한눈.하난..헨...JC구속통해 회복+하나님 누림의 은총 허락) 노하기를 더디하시며(일절 오래참고 기다리사 사유/용서하심) 인자(헤세드...지고지선의 아가페사랑..온유친절자애로 나타남)와 진실(에메트...진리-진실-신실-성실-확고<형>아만...<동>아멘)이 풍성하신(라브) 하나님이시오니  *16 . 내게로 돌이키사 나를 긍휼히 여기소서 주의 종에게 힘을 주시고 주의 여종의 아들을 구원하소서 *17.  은총의 표징을 내게 보이소서 그러면 나를 미워하는 저희가 보고 부끄러워하오리니 여호와여 주는 나를 돕고 위로하심이니이다. 

[사40 : 26-31]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라,,, *26.  너희는 눈을 높이 들어 누가 이 모든 것을 창조하였나 보라 주께서는 수효대로 만상을 이끌어 내시고 그들의 모든 이름을 부르시나니 그의 권세가 크고 그의 능력이 강하므로 하나도 빠짐이 없느니라 *27.  야곱아 어찌하여 네가 말하며 이스라엘아 네가 이르기를 내 길은 여호와께 숨겨졌으며 내 송사는 내 하나님에게서 벗어난다 하느냐 *28.  너는 알지 못하였느냐 듣지 못하였느냐 영원하신 하나님 여호와, 땅 끝까지 창조하신 이는 피곤하지 않으시며 곤비하지 않으시며 명철이 한이 없으시며 *29.  피곤한 자에게는 능력을 주시며 무능한 자에게는 힘을 더하시나니 *30.  소년이라도 피곤하며 곤비하며 장정이라도 넘어지며 쓰러지되 *31.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

===하나님의 지고지선, 완전한 아가페사랑의 3가지 측면===

@@은혜( 십자가로 이루신  구속/회복의 사랑)를 통하여 주님과 화목함(하나됨)의 문을 여시고 하나님자신의 모든 것을 (믿음을 통해) 누리도록 하심으로 평강안으로 이끄심.....

@@긍휼을 통하여 체휼하시는 사랑(환난과 고난, 역경 중, 특히 죄인괴수의 자각가운데 전적으로 무력한 피조물로서 도움없이 살 수 없음 호소할 때, 불쌍히 여겨 친히 아파하며 동감/동정/공감하사 동행/인도하며 일으켜 세우심)으로 평강안으로 이끄심.....

@@평강(임마누엘하나님이 반석-방패-산성/요새-목자 되심 믿고 붙듦으로 인해 조성된 생명의 번성번영창대케 됨, 그것을 통해 생육-번성-충만-정복/다스림의 근원이신 주님 발견하고 그안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발견하여 동행하며, 주뜻 안에 하나되어 살아감)....이 평강으로 인해 참된 형통, 곧 하나님의 지고지선의 진복의 실제의 어떠함이 나타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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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jgavph(26, 아가페) 사랑 love. [아헤브/아하브]

1. 성경 외의 용법. 

명사 아가페는 아가파오(ajgapavw, 25: 사랑하다)에서 유래한 후기 헬라어이며, 성경 외의 문헌에서는 단 한번 발견되는데, 바로 여신 이시스(Isis)에게 아가페라는 칭호가 붙여졌다(P.Oxy. 1380, 109; A. D. 2세기).

--> 아가파오(ajgapavw, 25)

2. 70인역본의 용법. 

명사 아가페는 70인역본에서 19회 나오며 아하바(160: 사랑)의 역어로 사용되어 연애(삼하 13:5), 남녀의 사랑(렘 2:2)에 대하여 주로 사용되었으며, 아가서에서 주로 나타난다(아 2:4 이하; 3:5, 10; 5:8; 7:6; 8:4 이하).

70인역본이 의미가 복잡한 에로스보다는 오히려 보다 단순한 단어인 아가페를 사용하는 것도, 인간의 모든 사상, 감정, 행위 그리고 예배가 하나님의 선행 작용에 대한 하나의 반응이기 때문이다.

3. 신약성경의 용법. 

명사 아가페는 신약성경에서 116회 나오며, '사랑, 애정, 호의, 자비심'이란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 단어는 다음과 같이 사용되었다.

(a)  아가페는 인간의 사랑에 대하여 사용되었다.

① 고전 8:1; 고전 13:4-고전 13:8; 빌 1:9; 롬 13:10; 마 24:12; 롬 12:9; 고후 6:6; 딤전 1:5; 요일 4:16; 고전 13:1-고전 13:3; 빌 2:2; 고전 14:1; 딤전 6:11; 딤후 2:22; 골 3:14; 벧후 1:7; 골 1:8; 살전 1:3; 고후 8:8; 히 10:24; 빌 2:1; 벧전 5:14; 몬 1:7; 롬 14:5; 엡 5:2; 골 4:21; 엡 4:15; 고전 16:14; 엡 3:17; 엡 4:2; 골 2:2; 살전 5:13; 엡 4:16; 갈 5:13; 갈 5:6; 몬 1:9; 살전 3:6; 살전 5:8; 딤전 1:14; 딤후 1:13; 몬 1:5; 엡 6:23; 딤전 2:15; 딤전 4:12; 딤전 6:11; 딤후 2:22; 딤후 3:10; 딛 2:2; 계 2:19; 고전 13:13; 골 1:4 이하; 살전 1:3; 살전 5:8; 딤후 1:7; 롬 12:9; 고전 6:6; 벧전 4:8; 갈 5:22; 롬 15:30; 골 1:8; 살후 2:10; 엡 1:15; 골 1:4; 살전 3:12; 살후 1:3; 고후 2:4; 고후 2:8; 벧전 4:8; 요 13:35; 고후 8:7; 고전 15:24.

② 하나님을 향한 사랑. 눅 11:42; 요 5:42; 요일 2:15; 요일 3:17; 요일 4:12; 요일 5:3; 살후 3:5; 고후 7:1; 히 6:10.

(b)  아가페는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사랑에 대하여 사용되었다.

①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 요일 4:9; 요일 4:16; 롬 5:8; 요일 3:1; 엡 1:4이하; 엡 2:4; 고후 13:13; 요일 4:7; 고후 13:11; 요일 4:8; 요 15:9; 요 15:10; 요 15:13; 롬 8:35; 고후 5:14; 엡 3:19.

②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관계. 요 15:10; 요 17:26; 골 1:13.

(c)  아가페는 초대교회에서, 친교의 입맞춤이라는 형태로 표현되었다. 이 입맞춤은 회중 예배시, 하나의 정규적 순서였었다(예: 롬 16:16; "거룩하게 입 맞춤으로"[엔 휠레마티 하기오]). 벧전 5:14에서 "사랑의 입맞춤"(엔 휠레마티 아가페스)이라는 표현이 나타난다. 사실상 이 의식(rite)의 상세한 사항들은 전혀 알려지지 않고 있다.

(d)  유 1:12에서 복수 아가파이스는 "애찬"(love-feasts)을 의미한다: "저희는 기탄 없이 너희와 함께 먹으니 너의 애찬의 암초요 자기 몸만 기르는 목자요 바람에 불려가는 물 없는 구름이요 죽고 또 죽어 뿌리까지 뽑힌 열매 없는 가을 나무요".

이 애찬은 '초대 기독교인들이 그들의 예배와 관련하여 형제적인 사랑을 북돋우고 표현하기 위해' 함께한 식사를 말한다. 이단자들은 애찬에 참석하는 것을 자기네의 탐욕과 부도덕을 증진시키는 기회로 삼았으며, 심지어 고린도 교회는 이단자들로 인하여 분열되어 파당이 생기고 술취한 자들의 난장판이 되기도 하였다(고전 11:17-고전 11:22).(D. R. Rose).

[아가페는 초대 교회 의식들 중의 하나를 뜻하는 용어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여기에 대해서는 단지 암시적으로 나타나 있을 뿐이다. 고전 11:17이하는 성찬식이 평상의 식사와 함께, 후에 "애찬"(love feast, 아가페)이 주의 만찬 자체로부터 분리되었으며, 그 본연의 위치에서 거행되었다(참조: 유 12; 벧후 2:13; Ign. Smy. 8:3; Clem. Alex., Paedogogus 2, 1).

그 차이점은, 설교가 행해지는 예배나 성찬식 예배의 중심이 기쁨에 찬 신앙의 선포였던 반면, 공동 식사의 주요한 의의는 그들이 아가페 속에서 함께 나눈 특별한 친교의 실시에 있었다는 사실에서,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분명히 이와 같은 예배는 신도들이 사회적 자선 행위를 통해 자기들의 사랑을 표현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을 것이다(참조: 행 6:1이하).

(W. Gunther; H.-G. Link, TBZNT)]

(e)  아가페의 헬라어 의미는 대등한 사람들간의 존경과 호의이다. 기독교의 아가페는 하나님과 그의 자비 앞에서는 모두 똑같이 가치없음을 자각함으로부터 비롯된다. 이 사랑(caritas)의 정신에 의해 형제들에 대한 태도와 교제가 결정된다. 따라서 이 새로운 형제애는 에로스로 인해 타락하고, 승화된 에로스에 의해 스스로를 초월하려고 헛되이 시도하는 세상 안에서 성장하여 간다. 바꾸어 말하면 바라지 않고 주는 사랑을 아는 교회가 성장한다. 감각과 초감각이 혼합된 신비적 사교들이 아 뮈스테리아 아가페스(사랑의 비밀)의 맑고 깨끗함 앞에 굴복한다.(E. Stauffer).

초대 교회에서 형제들과 자매들을 뜻하는 말로 사용되었던 여러가지 이름들은, 아가페(agape)에 기초를 둔 이 새 공동체가 그들 스스로를 하나님의 가족으로 이해했다는 증거이다.(W. Gunther, H.-G. Link). (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E. Stauffer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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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rav(5479, 카라.) 기쁨, 즐거움 Joy. [샤마흐/심한]

1. 고전 헬라어의 용법 

명사 카라(Homer이래로)는 카이로(caivrw, 5463: 기뻐하다, 즐거워 하다)에서 유래했으며,

(a)  문자적으로는 '기쁨, 즐거움',

(b)  환유적으로는 '기쁨의 상태'와 '기쁨의 대상'을 의미한다.

2. 70인역본의 용법 

카라는 70인역본에서 50여회 나오며, 주로 히브리어 심한(기쁨, 즐거움)와 사손(기쁨, 즐거움)의 역어로 사용되었다.

3. 신약성경의 용법 

카라는 신약성경에서 59회 나타나며, 다음과 같은 의미를 가진다.

(a)  문자적으로는 '기쁨, 즐거움'을 의미한다.

① 마 13:20; 병행구, 막 4:16; 눅 8:13에서 카라는 '말씀을 받는 (부정적) 기쁨을 표현한다: "돌밭에 뿌리웠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즉시 기쁨으로 받되".

마 28:8에서 제자들이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만났을 때, 두려움 뿐만 아니라 큰 기쁨에 사로잡히게 되었다.

눅 1:14에서 사가랴에게 카라의 약속이 주어졌다: "너도 기뻐하고 즐거워할 것이요 많은 사람도 그의 남을 기뻐하리니".

눅 10:17에서 70인의 제자는 악령을 제어할 수 있는 예수님의 능력을 공유할 수 있었고 기쁨과 만족이 가득하였다: "칠십 인이 기뻐 돌아와 가로되 주여 주의 이름으로 귀신들도 우리에게 항복하더이다".

눅 15:7; 눅 15:10에서 카라는 잃은 것을 찾은 자의 기쁨을 나타낸다. 하나님께서는 잃은 자를 긍휼히 여기신다; 모든 것은 거기에 달려 있다. 하나의 죄인이 회개할 때 하늘에서 기뻐한다. 진실로, 잃은 양과 잃은 은전, 잃은 아들의 비유를 담고 있는 누가복음 15장 전체가 보여 주는 바는, 아버지께 돌아온 잃은 자에 대해, 예수님께서 인간들에게 자기와 함께 기뻐하라고 촉구하고 계신다는 것이다(눅 15:6, 눅 15:9, 눅 15:32).

눅 24:41, 눅 24:52에서 카라는 놀라움과 넘치는 기쁨을 표현한다: "41 저희가 너무 기쁘므로 오히려 믿지 못하고 기이히 여길 때에 이르시되 여기 무슨 먹을 것이 있느냐 하시니"

"52 저희가 그에게 경배하고 큰 기쁨으로 예루살렘에 돌아가".

② 행 13:52에서 제자들은 성령께서 힘주심을 통해 핍박을 받을지라도 기쁨을 경험하였다: "제자들은 기쁨과 성령이 충만하니라".

박해가 복음의 승리적 진행을 정지시킬 수 없다(행 20:24). 행 8:8에서 보면, 복음이 이방인들에게 전파되고, 그들이 믿을 때, 그리고 이적이 나타날 때 거기에 해당된 사람들은 크게 기뻐하였다.

③ 요 3:29에서 카라는 '기쁨'의 충만이라는 중요한 특징을 표현한다: "신부를 취하는 자는 신랑이나 서서 신랑의 음성을 듣는 친구가 크게 기뻐하나니 나는 이러한 기쁨이 충만하였노라".

세례(침례) 요한은, "신랑" 즉 약속된 하늘의 진리의 계시자로 인하여 지금 기쁨이 충만해 있다(참조: 마 9:14이하).

요 15:11에서 예수님은 완전한 기쁨을 가지고 계셨으며, 이 기쁨은 제자들에게도 부여될 수가 있었다. 이것을 그는 아버지께 요청한다(요 17:13).

요일 1:4에서 카라는 하나님 아버지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사귐으로 가지는 기쁨을 표현한다: "우리가 이것을 씀은 우리의 기쁨이 충만케 하려 함이로라".

요 16:22에서 카라는 장차 슬픔을 대신할 기쁨을 표현한다: "지금은 너희가 근심하나 내가 다시 너희를 보리니 너희 마음이 기쁠 것이요 너희 기쁨을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현재의 슬픔은 기쁨으로 변할 것이다. 이 종말론적 기쁨은, "어떤 황홀한 정신적 상태로 묘사되지 않고, 신자들이 더 이상 아무 것도 바랄 필요가 없는 상황으로 정의된다"(R.Bultmann).

④ 바울 서신들은, 기독교인의 기쁨은 슬픔과 고통과 근심 가운데서만이 얻을 수 있다는 역설적 의미를 증거하고 있다. 진실로 이와 같은 사실이야말로, 이 기쁨의 능력을 확실히 증명해 주는 것이다.

이러한 기쁨의 원천은, 단순한 지상적, 인간적 기쁨 너머에 있다. 그것은 엔 퀴리오 즉 주 안에 있는 기쁨이며 따라서 우리의 외부에 있는 것이다. 그것은 빌 1:25; 롬 15:13에서 그것은 "믿음과 기쁨"이다(빌 1:25; 롬 15:13). 그것은 소망, 믿음, 확신에 기초를 두고 있다. 이 믿음은, 모든 싸움과 두려움(고후 7:5)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를 통한 칭의(justification)를 확신하며(롬 8:31이하), 부활하신 주님으로서의 그의 재림을 고대한다. 믿음의 기쁨으로서, 그것은 또한 성령(→ 영 Spirit)의 → 열매 Fruit이기도 하며(갈 5:22), 성령 안에서의 기쁨이라고도 불린다(롬 14:17; 살전 1:6). 이처럼 기쁨은 하나의 영적 은사이며, 이러한 점에서 카리스(charis: → 은혜 Grace)의 개념과 근사하다.

고후 1:14에서 바울은 그는 고린도인들에게 "우리는 너희의 기쁨을 위해 너희와 함께 일한다"고 확언하였다. 고후 2:3에서 바울은 주 안에 있는 기쁨인(참조: 고후 13;11; 빌 3:1) 자기의 기쁨을 모두가 함께 나눠 갖도록 하기 위해 편지를 썼다.

고후 7:13에서 카라는 안심에서 오는 기쁨을 표현한다: "이로 인하여 우리가 위로를 받았고 우리의 받은 위로 위에 디도의 기쁨으로 우리가 더욱 많이 기뻐함은 그의 마음이 너희 무리를 인하여 안심함을 얻었음이니라".

바울은 그들을 이전에 엄히 책망했었으나, 그의 권면이 결국 유익한 효과를 가져왔기 때문에 그들에 대하여 다시 안심하게 되었다.

⑤ 히 10:34에서 카라는 극심한 박해와 위험을 초월하는 기쁨을 표현한다: "너희가 갇힌 자를 동정하고 너희 산업을 빼앗기는 것도 기쁘게 당한 것은 더 낫고 영구한 산업이 있는 줄 앎이라".

당시에 기독교인들에 대한 박해는 이미 극심한 경지에 이르러 교회의 존속 그 자체까지 위협을 받을 정도였다(참조: 벧전 4:13; 롬 8:17). 그러나 비록 물질적 재산을 빼앗겼다 할지라도, 그것이 그들의 기쁨까지 빼앗을 수는 없었다(이것은, 시 46편에 영감을 받은 루터의 찬송가 "견고한 성"(Ein' Feste Burg)의 마지막 몇 행이 잘 예증해 준다:

그리고, 우리의 생명, 재산, 영예, 자녀 아내까지,  그들이 취하여도 그것의 유익은 하찮도다; 이는 모두 사라질 것: 하나님의 도성의 영원함이여.

⑥ 약 1:2은 순교에 대해 기뻐하라는 기독교적인 가르침에 가깝다(참조: 약 5:41). 

그러나 교회사상(敎會史上) 이것은 종종, 사실상 순교 그 자체를 위해 순교를 추구하는 것으로 변질되었다. 

약 4:9이하에 대해서는, 그 말씀을 신약에서 말하는 구원의 믿음과 같은 것으로 잘못 생각하여, 율법주의적으로 해석하면 안 된다. 

부활하신 그리스도께 대한 순종으로써 그와 같은 견해는 배척된다. 

왜냐하면 그러한 견해는 십자가 상에서 이룬 그리스도의 사역의 일회적, 영구적 가치를 부정하기 때문이다.

(b)  환유적으로는 ① 카라는 '기쁨의 대상'을 나타낸다. 

빌 4:1에서 카라는 아무개의 기쁨이 되는 인격체에 대해 사용되었다: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고 사모하는 형제들, 나의 기쁨이요 면류관인 사랑하는 자들아 이와 같이 주 안에 서라".

살전 2:19이하에서 카라는 같은 용법을 나타낸다: "우리의 소망이나 기쁨이나 자랑의 면류관이 무엇이냐 그의 강림하실 때 우리 주 예수 앞에 너희가 아니냐".

② 카라는 '기쁨의 상태'를 나타낸다. 

마 25:21; 마 25:23에서 카라는 "주인의 즐거움" 곧 주께서 누리는 지복을 나타낸다: "그 주인이 이르되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하고"(마 25:21).

히 12:2에서 하늘의 하나님 우편에 있는 지복을 나타낸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그리스도 자신의 기쁨을 기꺼이 버리고 스스로 십자가의 부끄러움을 지셨다. 오직 그를 바라봄으로써 우리는 시험에서의 참음과 인내를 얻을 수 있다(히 12:2).

③ 카라는 '즐거운 잔치'를 나타낸다. 마 25:21; 마 25:23에서 카라는 '잔치',또는 '축하, 회식'이라는 의미도 가진다.

(참조: E. Beyreuther; G. Finkenrath; Walter Bauer's GEL 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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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ijrhvnh(1515, 에이레네) 평화/화평/평강, 복지, 번영/형통 [샬롬/샬와]

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 

에이레네의 기본 개념은 본래 사람들 사이의 관계(relationship)나 태도(attitude)를 의미하지 않고 상태(state), 즉 '평화의 때', 또는 '평화의 상태'를 의미하며, 처음에는 순전히 끊임없이 계속되는 전쟁상태에서의 한 막간(a interlude)으로 생각한 것이다.

이 단어는 전쟁에 반대되는 것, 혹은 전쟁의 종식으로부터 결과하는 상황을 의미한다. 평화는 복된 번영을 가져 오도록 법과 질서가 유지되는 상태이다. "에이레네"는 평화의 상태이며, 평화의 상태에서 땅과 백성을 위한 복이 흘러나온다. 필레몬(Philemon)은 이를 최고의 선(supreme good)으로 격찬했다.

에이레네는 평화 조약이나 평화의 타결과 관련이 있다. 에이레네는 또한 소란, 소요의 정반대를 의미할 수 있다. 에이레네는 평화적인(온화한) 태도, 즉 적의가 없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에픽테투스와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등의 스토아 철학자들의 작품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에이레네는 영적 평안이나 마음의 평안이라는 의미를 띠고 나타나게 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 단어는 이들의 저작에 그리 자주 사용되지 않았다.

특별한 언급으로, 아우구스투(Augustus)가 지중해 세계를 지배한 에이레네를 들 수 있다. 이 시대에서 구속(redemption)을 동경하는 강한 흔적을 찾아볼 수 있는데  황금시대라고 불리워진 이 평화의 상태는 로마 황제가 군대의 힘으로 성취한 법적 또는 정치적 안정이다(Toerster, TDNT).

2. 구약성경 및 70인역본의 용법 

1. 구약성경 및 70인역본의 용법 및 의미들

(a)  구약성경에서 에이레네는 250회 이상 나오는 히브리어 단어 샬롬의 역어로 사용된 경우가 거의 대부분이다. 이에 대하여 예외적인 경우들은 대체로 왕래 및 문안 인사에 관련된 구절들이다. 예컨대 창 26:31; 창 43:23이 이러한 예이다.

그러나 렘 20:10; 사 48:22; 57:21은 이러한 경우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예외를 이루고 있다. 이러한 예외적인 구절에서는 소테리아(구원, 구출), 카이레인(기쁨, 안녕)등을 역어로 사용되었다.

약 15개의 구절에서 에이레네는 안식, 평온, 안전, 염려 없음, 믿음직스러움 등의 광범위한 의미 영역을 포괄하는, 히브리어의 여러 가지 단어들에 해당하는 역어로 사용되었다.

예컨대 대상 4:40에서는 '…로부터 안식을 얻다'를 뜻하는 샤카트(히2453)의 역어로, 욥 11:18; 잠 3:23; 사 14:30; 겔 34:27; 38:8, 11, 14; 39:6, 26에서는 '믿을만함, 안전, 염려없음'을 뜻하는 베타흐(히233a)의 역어로, 삼하 3:24에서는 '가다, 걷다'를 뜻하는 할라크(히498)의 역어로, 사 29:24에서는 '이해'를 뜻하는 레카흐(히1124a)의 역어로, 그리고 잠 17:1; 호 2:18에서는 '평온, 안락'을 뜻하는 샬와(히2392d)의 역어로 사용되었다.

또한 에이레네를 역어로 사용하고 있는 몇몇 구절들은 해당 히브리어 단어가 모호하거나 없다: 에 4:16; 미 2:4; 사 32:4; 겔 34:29; 잠언 8:18.

(b)  70인역본은 히브리어 단어들, 주로 샬롬의 역어로 사용했기 때문에, 그 히브리어의 의미들이 이 헬라어의 의미에 영향을 미쳤으며, 또한 70인역본의 용법은 헬라어를 사용하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영향을 미쳤을 뿐만 아니라 헬라어는 새로운 풍부한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

히브리어 구약성경의 샬롬과 70인역본의 에이레네를 살펴보면, 에이레네의 여러 가지 의미를 알 수 있다.

이 단어는 '평화 peace'라는 좁은 의미로 제한시켜서는 안된다.  그것은 모든 가능한 형태의 악(evil)과 대조되는, 가장 넓은 의미의 '안녕, 복리' well-being를 의미한다. 만남이나 편지에서(삼하 18:29; 삿 19:20; 단 4:1), 작별 인사에서(삿 18:6; 삼상 20:42) 다른 사람들에게 안녕을 빌며, 대화에서 다른 사람에 관한 안녕을 구한다(삼상16:5).  사람들은 문안 인사를 한다 : "문안하고".

왕하 9:17이하에서와 같이 어떤 사람이 오는 이유에 대한 질문이 있는데, 곧 "평안이냐"는 '도전적인 목적이냐 화평한 목적이냐'라는 질문이다.

왕상 2:13에서 밧세바가 아도니아를 맞이 하면서 "화평한 목적으로 왔는냐"(너의 옴이 화평이냐)라고 말했을 때, 그것은 그녀가 그에게 그의 방문이 '좋은 일'을 뜻하는지를 실제로 묻고 있는 것이다.

시편 기자는 에이레네를 '행운이나 형통'이라는 의미로 사용했는데, 불경한 사람들에 대해서도 적용되고 있다. 의인은 악인의 이런 형통을 봄으로 시험을 받기도 한다(시 73:3). 그러나 이 형통은 외적인 것에 불과하며, 진정한 형통이 아니다(사 48:22).

사 57:18; 시 38:3에서는 육체의 건강을 의미한다.

집회서 38:8에서 의사가 가져오는 에이레네, 즉 건강에 대해 말하고 있다. 전장에서 무사히 안전하게 돌아오는 사람은 건강을 보전한 것으로 볼 수 있다(수 10:21; 왕상 22:17; 대하 19:1; 시 55:18).

또 이 단어는 '만족이나 흡족함' satisfaction을 의미하였는데, 이별에 관하여(창 26:29; 출 18:23; 사 55:12), 잠자리에 드는 것에 관하여(시 4:8), 죽음에 관하여(창 15:15; 렘 34:5) 사용되었다. 여기에서 에이레네는 단순히 안식이나 마음의 평안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폭력이나 재난으로 압도당하지 않은 인간의 전상태로서, 폭력을 당하거나 변사의 정반대를 의미한다(참조: 왕상2:6).

또한 살펴볼 가치가 있는 것은 사 29:24의 내용이다: "원망하던 자도 교훈을 받으라"(70인역-말더듬는 혀들은 평화를 말하는 것을 배울 것이다). 이 구절에는 히브리어 샬롬이 없지만 에이레네가 나온다. 이 문맥에서 에이레네는 그들이 올바르게(에이레네) 말하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이사야 32:4에서도 이와 유사한 의미를 나타낸다.

이 단어는 더욱 보편적으로, 전쟁과 대조되는 평화를 의미한다. 잠 17:1; 호세아 20:18("평안히 눕게하리라")과 사 14:30("평안히 눕게 하려니와")에서 이 의미로 에이레네가 샬롬의 역어로 사용되었다. 잠언에서는 다투는 가정과 대조되는 평화로운 가정의 안락을 의미하며, 호세아와 이사야에서는 이 단어는 평화의 때를 의미한다.

대상 22:9에서 평화의 상태를 의미한다: "내가 저의 생전에 평안과 안정을 이스라엘에게 줄 것임이니라". 히스기야는 평화가 그의 시대에는 계속된다는 기대를 가졌기 때문에 이사야의 중대한 예언을 경솔히 취급했다. 여기에는 번영을 누리는 그룹, 예를들면 국가의 번영이라는 의미도 지닌다.

에이레네는 전 3:8에 전쟁과 대조시킨 "평화"와, 그리고 렘 29:7에 "성읍의 평안", 38:4에 "백성의 평안" 등에서 "평안을 구한다"는 표현에서와 같이 "평화의 상태"보다 더 근본적인 것, 즉 평화 =백성의 안녕에 관련된 것을 의미한다.  여기서 샬롬/ 에이레네는 상태보다 오히려 관계를 암시한다.

많은 구절에서 이 단어는 이러한 의미를 가지는데, 국가나 그룹 간의(왕상 5:12; 삿 4:17; 왕상 5:4; 대상 12:18), 개인 간의(슥 6:13) 우호적 관계를 의미한다.

신 20:10에 '한 백성에 평화를 선언'하는 것은 한 백성의 관계의 수용을 의미하며(참조: 삿 21:13), 그 안으로 들어가는 자들은 평화의 사신들이다(사 33:7).

이 단어는 시편 35:27에서 외적 형통이나 성공에 더하여 인간의 전적인 안녕(well-being)을 의미할 수 있다: "나의 의를 즐거워하는 자로 기꺼이 부르고 즐겁게 하시며 그의 종의 형통을 기뻐하시는 여호와는". 여기서 형통과 안녕은 선(good)과 깊이 관련되어 있다.

시편 122:8에서 시인은 "네 가운데 평강이 있을지어다"라고 말한다. 70인역본에는 '내가 참으로 너를 위하여(에 관하여) 평화를 말했다'고 번역되어 있다. '너를 위하여'는 '예루살렘을 위하여'이다.

시인은 바로 앞에서 이미 안녕과 형통을 원했다. 환언하면 이 용어는 여기서 확고한 '형통'이라는 의미에서 '선(good)'이라는 더 넓은 의미로 쉽게 이동한다.

따라서 잠 3:17에서 "그 길은 즐거운 길이요 그 첩경은 다 평강이니라"고 말한다. 70인역본은 '그녀의 길은 옳은 길이요 그녀의 모든 첩경은 평화에 있느니라'고 번역했다.

시 34:14은 도덕적 선을 의미한다: "악을 버리고 선을 행하며 화평을 찾아 (그를) 따를지어다."

슥 8:19에서 "오직 너희는 진실과 화평을 사랑할지니라."

말 2:6에서 "그가 화평과 정직한 중에서(으로) 나와 동행하며, 많은 사람들을 돌이켜 죄악에서 떠나게 하였느니라." 70인역본은 '그가 그의 길을 에이레네로 똑 바르게하여 내 앞에서 행하게 하며…'라고 번역했다.

잠 12:20에서 "악을 꾀하는 자의 마음에는 궤휼이 있고 화평을 논하는(조장하는) 자들에게는 희락이 있느니라." 70인역본은 '에이레네를 원하는 자들은 즐거워하리라'고 번역했다. 이러한 구절에서 '에이레네'는 도덕적 선을 의미한다.

(c)  이 단어는 두람(J. I. Durham)에 의하면, '완전, 완성, 성공, 성취' 등의 의미로 사용되었다.

샬롬은 '완전'이란 개념은 민 6:24이하에 나오는 축복의 절정을 이루는 대목에 나타난다. 여기에서 이 개념은 다른 모든 축복들을 요약하고 있으며, 여호와의 임재에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이 축복은 모세가 여호와로부터 받아 아론과 그의 자손들에게 이스라엘을 축복하는데 사용하도록 전한 것이다(민 6:22 이하). 이 축복의 내용은,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로 네게 비취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이다(민 6:24이하).

여기에 "그들은 이같이 내 이름으로 이스라엘 자손에게 축복할찌니 내가 그들에게 복을 주리라"(민 6:27)는 구절이 첨가되었다. 두람은 이 구절을 주석하기를 '샬롬은 하나님의 선물이며, 오직 그가 임재하실 때에만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이 축복 속에 샬롬이 사용된 것을 볼 때에도 샬롬은 제의 용어로서 사용되었으며, 여러 가지 번역본이나 많은 주석가들이 일반적으로 이 말에 부여해 온 것보다 횔씬 더 포괄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보다 확실하게 믿게 된다. 왜냐하면 민 6:24-26 에 나오는 샬롬은 하나님께로부터 축복을 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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