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개역개정]시139 다윗의 시, 영장으로 한 노래 ...[주안에있는나에게370] ...완전하신나의주의의길로, 살피소서오늘내마음을.. 1.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살펴 보셨으므로(하카르) 나를 아시나이다(야다) 2. 주께서 내가 앉고(야샤브) 일어섬을(쿰) 아시고 멀리서도(라호크) 나의 생각을(레아) 밝히 아시오며(빈..식별/분별/통촉하다) 3. 나의 모든 길과(오라흐...소로/통로) 내가 눕는 것을(레바...눕다) 살펴 보셨으므로(자라..키질하다/까부르다/흩뿌리다..진실을 밝히 드러내다) 나의 모든 행위를(데레크....태도/방식/습관..루틴) 익히 아시오니(샤칸...세밀히 살펴 돌아보다) 4. 여호와여 내 혀의(라숀) 말을(밀라...표현된 말) 알지 못하시는 것이 하나도 없으시니이다 5. 주께서 나의 앞뒤를 둘러싸시고(추르...둘러싸다) 내게 안수하셨나이다(쉬트+카프...<머리에>손을 얹다) 6. 이 지식이(다아트) 내게 너무 기이하니(필리..기이한/경이로운) 높아서(샤가브) 내가 능히 미치지(야콜...도달/정복하다) 못하나이다 7. 내가 주의 영을(루아흐) 떠나 어디로 가며(알라크..오가다) 주의 앞에서 어디로 피하리이까(바라흐) 8. 내가 하늘에 올라갈지라도(나사크) 거기 계시며 스올에 내 자리를 펼지라도(야차) 거기 계시니이다 9. 내가 새벽 날개를 치며 바다 끝에 가서 거주할지라도(샤칸) 10. 거기서도 주의 손이 나를 인도하시며(나하)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드시리이다(아하츠) 11. 내가 혹시 말하기를(아마르) 흑암이(호세크) 반드시 나를 덮고(슈프..분쇄/박살내다) 나를 두른 빛은(오르) 밤이 되리라 할지라도 12. 주에게서는 흑암이 숨기지(하샤크) 못하며 밤이 낮과 같이 비추이나니 주에게는 흑암과 빛이 같음이니이다 13. 주께서 내 내장을(킬야..콩팥) 지으시며(카나..창조하다) 나의 모태에서 나를 만드셨나이다(사카크...엮어짜다) 14. 내가 주께 감사하옴은(야다) 나를 지으심이 심히 기묘하심이라(팔라<명확/성별>+야레...신묘막측) 주께서 하시는 일이 기이함을(팔라) 내 영혼이(네페쉬) 잘 아나이다(야다) 15. 내가 은밀한 데서(세테르) 지음을 받고(아사) 땅의 깊은 곳에서(타흐티...최저심부) 기이하게 지음을(라캄...유일독특하게 형성된) 받은 때에 나의 형체가(오쳄..골격) 주의 앞에 숨겨지지(숨기다/지우다/말살하다) 못하였나이다 16. 내 형질이 이루어지기 전에(골렘....미완성형체/태아) 주의 눈이 보셨으며(라아...돌아보다/조사하다) 나를 위하여 정한(야차르...형성/고안하다, 만들다) 날이 하루도 되기 전에 주의 책에(세페르...문서/기록, 책) 다 기록이 되었나이다(카타브...기록하다) 17. 하나님이여 주의 생각이(레아...의사/목적/뜻) 내게 어찌 그리 보배로우신지요(야카르...진귀하다/값비싸다/고귀하다) 그 수가 어찌 그리 많은지요(아참...셀 수 없고 강대하다) 18. 내가 세려고(사파르..일일이 세며 말하다) 할지라도 그 수가 모래보다(홀...바닷가 모래) 많도소이다 내가 깰 때에도(쿠츠...깨어 일어나다) 여전히 주와 함께 있나이다 19. 하나님이여 주께서 반드시 악인을(라사..범죄한/사악한) 죽이시리이다(카탈...죽여 살해하다/멸절하다) 피 흘리기를 즐기는 자들아 나를 떠날지어다(수르...<주께서 숨기심으로 인해>옆으로 빗나가 닿지 못하고 떠나가다) 20. 그들이 주를 대하여 악하게(메짐마...선재적 의도/계획과 전혀 다르게) 말하며(아마르) 주의 원수들이(아르..대적/원수) 주의 이름으로 헛되이(샤우...거짓/헛됨) 맹세하나이다(나사...나르다/들어올리다..중보 자세) 21. 여호와여 내가 주를 미워하는(사네..미워하다/증오하다) 자들을 미워하지 아니하오며 주를 치러 일어나는 자들을(테코넴...대적자) 미워하지 아니하나이까(쿠트...매우 증오/혐오하다) 22. 내가 그들을 심히 미워하니 그들은 나의 원수들이니이다 23. 하나님이여 나를 살피사(하카르...찾고 조사하다, 시험하다) 내 마음을(레바브) 아시며(야다) 나를 시험하사(바한...검사/시험/입증하다) 내 뜻을(사르아프...<유한하기에>불안한 생각들...그러나, 이것은 JC의 일편단심, 미쁘신 아가페 사랑의 의지로 대치될 것을 대망함) 아옵소서(야다) 24. 내게 무슨 악한(오체브...고통/수고/슬픔) 행위가(데레크) 있나 보시고(라아) 나를 영원한(올람) 길로(데레크) 인도하소서(나하...이끌어 인도/안내하다) ---------- 표준새번역]시139 지휘자를 따라 부르는 다윗의 노래 1. (지휘자를 따라 부르는 다윗의 노래) 주님, 주께서 나를 샅샅이 살펴보셨으니, 나를 환히 알고 계십니다. 2. 내가 앉아 있거나 서 있거나 주께서는 다 아십니다. 멀리서도 내 생각을 다 알고 계십니다. 3. 내가 길을 가거나 누워 있거나, 주께서는 다 살피고 계시니, 내 모든 행실을 다 알고 계십니다. 4. 내가 혀를 놀려 아무 말 하지 않아도 주께서는, 내가 그 혀로 무슨 말을 할지를 미리 다 알고 계십니다. 5. 주께서 앞뒤를 둘러싸 막아 주시고, 내게 주의 손을 얹어 주셨습니다. 6. 이 깨달음이 내게는 너무 놀랍고 너무 높아서, 내가 감히 측량할 수조차 없습니다. 7. 내가 주의 영을 피해서 어디로 가며, 주의 얼굴을 피해서 어디로 도망 치겠습니까? 8. 내가 하늘로 올라가더라도 주께서는 거기에 계시고, 스올에다 자리를 펴더라도 주님은 거기에도 계십니다. 9. 내가 저 동녘 너머로 날아가거나, 바다 끝 서쪽으로 가서 거기에 머무를지라도, 10. 거기에서도 주의 손이 나를 인도하여 주시고, 주의 오른손이 나를 힘있게 붙들어 주십니다. 11. 내가 말하기를 "아, 어둠이 와락 나에게 달려들어서, 나를 비추던 빛이 밤처럼 되어라" 해도, 12. 주님 앞에서는 어둠도 어둠이 아니며, 밤도 대낮처럼 밝으니, 주님 앞에서는 어둠과 빛이 다 같습니다. 13. 주께서 내 속 내장을 창조하시고, 내 모태에서 나를 짜 맞추셨습니다. 14. 내가 이렇게 태어났다는 것이 오묘하고 주께서 하신 일이 놀라워, 이 모든 일로, 내가 주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내 영혼은 이 사실을 너무도 잘 압니다. 15. 은밀한 곳에서 나를 지으셨고, 땅 속 같은 곳에서 나를 조립하셨으니 내 뼈 하나하나도, 주님 앞에서는 숨길 수 없습니다. 16. 나의 형질이 갖추어지기도 전부터, 주께서는 나를 보고 계셨으며, 나에게 정하여진 날들이 아직 시작되기도 전에 이미 주의 책에 다 기록되었습니다. 17. 하나님, 주의 생각이 어찌 그리도 심오한지요? 그 수가 어찌 그렇게도 많은지요? 18. 내가 세려고 하면 모래보다 더 많습니다. 깨어나 보면, 나는 여전히 주님과 함께 있습니다. 19. 하나님, 주님은 분명히 악인을 죽이십니다. "피 흘리게 하기를 좋아하는 자들아, 내게서 물러가거라." 20. 그들은 주님을 모욕하는 말을 하며, 주의 이름을 거슬러 악한 말을 합니다. 21. 주님, 주님을 미워하는 자들을 내가 어찌 미워하지 않으며, 주님께 대항하면서 일어나는 자들을 내가 어찌 미워하지 않겠습니까? 22. 나는 그들을 너무나도 미워합니다. 그들이 바로 나의 원수들이기 때문입니다. 23. 하나님, 나를 샅샅이 살펴보시고, 내 마음을 알아주십시오. 나를 철저히 시험해 보시고, 내가 걱정하는 바를 알아주십시오. 24. 내가 고통받을 길을 가고 있지나 않는지 나를 살펴보시고, 영원한 길로 나를 인도하여 주십시오. ----------- NASB]시139 1. {For the choir director. A Psalm of David.} O LORD, Thou hast searched me and known [me.] 2. Thou dost know when I sit down and when I rise up; Thou dost understand my thought from afar. 3. Thou dost scrutinize my path and my lying down, And art intimately acquainted with all my ways. 4. Even before there is a word on my tongue, Behold, O LORD, Thou dost know it all. 5. Thou hast enclosed me behind and before, And laid Thy hand upon me. 6. [Such] knowledge is too wonderful for me; It is [too] high, I cannot attain to it. 7. Where can I go from Thy Spirit? Or where can I flee from Thy presence? 8. If I ascend to heaven, Thou art there; If I make my bed in Sheol, behold, Thou art there. 9. If I take the wings of the dawn, If I dwell in the remotest part of the sea, 10. Even there Thy hand will lead me, And Thy right hand will lay hold of me. 11. If I say, "Surely the darkness will overwhelm me, And the light around me will be night," 12. Even the darkness is not dark to Thee, And the night is as bright as the day. Darkness and light are alike [to Thee.] 13. For Thou didst form my inward parts; Thou didst weave me in my mother's womb. 14. I will give thanks to Thee, for I am fearfully and wonderfully made; Wonderful are Thy works, And my soul knows it very well. 15. My frame was not hidden from Thee, When I was made in secret, [And] skillfully wrought in the depths of the earth. 16. Thine eyes have seen my unformed substance; And in Thy book they were all written, The days that were ordained [for me], When as yet there was not one of them. 17. How precious also are Thy thoughts to me, O God! How vast is the sum of them! 18. If I should count them, they would outnumber the sand. When I awake, I am still with Thee. 19. O that Thou wouldst slay the wicked, O God; Depart from me, therefore, men of bloodshed. 20. For they speak against Thee wickedly, And Thine enemies take [Thy name] in vain. 21. Do I not hate those who hate Thee, O LORD? And do I not loathe those who rise up against Thee? 22. I hate them with the utmost hatred; They have become my enemies. 23. Search me, O God, and know my heart; Try me and know my anxious thoughts; 24. And see if there be any hurtful way in me, And lead me in the everlasting way. ===시139개요===== 어떤 유대인 학자들은 이 시편이 다윗의 모든 시편 중 가장 아름다운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이 시편은 하나님의 전능하심에 관한 교의를 기리는, 경건하고 열심 있는 묵상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시편을 노래하면서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의 전능하심에 고정되고, 그것으로 충만하도록 하자. 1. 이러한 교리가 주장되었으며, 완전하게 논의되었다(1-6). 2. 그것은 두 가지 논의로 확정되었다. (1) 하나님은 어디에나 계신다. 그러므로 그는 모든 것을 아신다(7-12). (2) 그는 우리를 지으셨다. 그러므로 우리를 아신다(13-16). 3. 이러한 교리에서 몇 가지 결론이 나온다. (1) 하나님을 기뻐하는 경배로써 우리를 채울 것이다(17-18). (2) 죄와 죄인들에 대한 거룩한 두려움과 혐오로 우리를 채울 것이다(19-22). (3) 우리의 정직에 대한 거룩한 만족으로 우리를 채울 것이다. 우리는 그것에 관해서 하나님께 간구할 수 있다(23-24).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을, 인간의 모든 자녀의 마음을 아신다는 이 위대하고 자명한 진리는, 우리가 그것을 신앙과 결부시켜 진지하게 생각하고 적용한다면, 우리의 경건에 큰 영향을 미치며, 우리의 위로에 큰 감화를 줄 것이다. =========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심(시 139:1-6) 다윗은 우리와 관계를 맺은 하나님이 우리에 대한 완전한 지식을 갖고 계시며, 우리의 속사람과 겉사람의 행동과 동작이 그 앞에 벌거벗은 채 드러나 있다는 이 위대한 교리를 주장하고 있다. Ⅰ. 그는 이러한 교리를 하나님께 말씀드리는 중에 주장한다. 그는 하나님께 감사하고 영광을 돌리면서 말한다. 하나님의 진리는 그것이 논쟁될 때보다 기도되고 설교될 때 완전하게 나타난다. 우리가 하나님께 그에 대해서 말할 때 우리는 가장 큰 차원의 진실과 경애로 말하게 됨을 발견할 것이다. 그것은 아마도 더욱 깊은 감동을 주게 되리라. Ⅱ. 그는 이러한 교리를 자신에 대한 간구 중에서 주장한다. “주께서 모든 것을 아시나이다” 하지 않고 “주께서 나를 아셨나이다” 하고 간구했다. 즉 “그것은 내가 믿기를 가장 원하는 것이며, 그것은 내가 숙고할 가장 유익한 것이 될 것입니다” 하는 말이다. 우리는 그것들이 “우리에게 유익한 줄” 알 때, 이러한 것들이 우리를 위한 것임을 안다(욥 5:27). 우리가 “여호와여, 모든 영이 주의 것입니다” 하고 고백할 때, 우리는 “내 영혼이 주의 것입니다. 모든 죄를 미워하시는 주는 나의 죄를 미워하시나이다. 모든 자에게 선하시고 이스라엘에게 선하신 주는 내게 선하시나이다” 하고 덧붙여야 한다.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감찰하시고 아셨나이다. 우리가 가장 열심히 그리고 정확하게 탐구한 것을 아는 것처럼 철저하게 나를 아셨나이다.” 다윗은 왕이었다. 그리고 백성들은 “왕의 마음을 헤아릴 수 없었다”(잠 25:3). 그러나 그들은 그들의 통치하시는 하나님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았다. Ⅲ. 그는 특정한 자들에게 몸을 굽혀 살피펴 아시며 돌보신다. “주는 내가 어디에 있든지 내가 무엇을 하고 있든지 나를 아시오며, 나와 내게 속한 모든 것을 아시나이다.” 1. “나와 나의 모든 동작을 주께서 아시며, 쉬기 위해 나의 앉음과 일하기 위해 일어섬을 아시나이다. 내가 앉았을 때 쉬며, 일어섰을 때 일어나는 마음의 기질을 아시며, 내 영혼이 쉬는 것을 아시고, 내가 바라며 그 지복과 목표를 향해 도달하려는 것을 아시나이다. 주는 내가 집에 올 때 집 앞에서 어떻게 행하며, 내가 밖에 나갈 때 무슨 일로 가는지를 아시나이다.” 2. “주는 나의 모든 생각을 아시나이다.” 생각보다 정밀하며 빠른 것은 아무것도 없다. 생각은 항상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는 것이다. 그것은 종종 자기 자신에 의해서도 감찰되지 않는다. 그러나 “주께서는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통촉하신다.” 비록 나의 생각이 멀리 있고, 서로 떨어져 있다고 할지라도 주는 일련의 생각으로 통촉하시며, 그 관계를 이해하실 수 있다. 내가 할 수 없는 많은 생각을 빠뜨려도 감찰하실 수 있다. “주께서 멀리서도 감찰하시나이다.” 내가 생각하기 전에도, 내가 생각한 지 오래되어 그것을 잊어버렸어도, 주는 감찰하신다. “주는 멀리서도 감찰하시나이다.” “높은 하늘에서 주는 마음의 깊이를 헤아리시나이다”(33:14). 3. “주는 나와 나의 모든 계획과 행위를 아시나이다. 주는 모든 특별한 길을 감찰하시나이다. 주는 나의 길을 체로 치시나이다(혹은 키질하시나이다). 내가 행하는 것에서 선과 악을 철저하게 구별하시기 위해서 그리하시나이다.” 체로 쳐야만 곡식과 쭉정이를 구별할 수 있다. 우리의 모든 행위가 하나님의 심판에 의해서 정화된다(17:3). 하나님은 우리가 걷는 모든 발자국과 모든 옳은 행보와 곁길로 가는 걸음을 아신다. 그는 우리의 “모든 행위를 익히 아신다.” 면밀하게 아신다. 그는 우리가 어떤 규칙으로 걷는지를 아시며, 우리가 향해 걷고 있는 목표를 아시며, 우리가 누구와 함께 걷는지를 아신다. 4. 내가 은거하는 모든 것을 주께서 “감찰하시며, 나의 눕는 것을” 아신다. 내가 모든 친구들에게서 물러나서 하루 종일 지난 일을 생각하고 안식하고자 할 때, 주는 내 마음에 가진 것을 아시며, 내가 자려고 하는 생각까지도 아신다. 5. “주는 나와 내가 말하는 모든 것을 아시나이다(4절). 쓸데없는 말이건 선한 말이건, 내 혀의 말을 알지 못하시는 것이 하나도 없으시니이다.” 주는 그 의미를 아시며, 그것이 어떤 생각에서 나왔는지를 아시고, 그것이 말해진 의도를 아신다. 내 혀끝에 말이 없어도, 말하려 하고 억제되어 남겨져 있어도 주는 그것을 아신다. “여호와는 내 혀에 말이 없을 때에라도 모든 것을 아시나이다”(어떤 이들이 그렇게 읽는다). 생각들이 하나님께는 말이기 때문이다. 6. “주는 나의 모든 측면에서 나를 아시나이다. 주께서 나의 전후를 두르시며, 내가 걷고자 하는 길에 계시나이다. 나는 주의 눈 아래 있으며, 주의 눈을 피할 수 없나이다. 주는 내게 안수하셨나이다. 나는 주께로부터 도망할 수 없나이다.” 우리가 어디에 있을지라도 우리는 하나님의 눈과 손 아래 있게 된다. 아마도 그것은 의사들이 그의 손을 환자의 손에 얹고 맥박이 얼마나 뛰는가를 감정하고 진정시킴에 비유될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보는 것뿐만 아니라 느끼는 것과 우리 손에 있는 것도 아신다. “그의 모든 성도들은 그의 손에 있다.” Ⅳ. 그는 그것에 대해 감탄해 말한다(6절). “이 지식이 내게 너무 기이하고 높으니이다.” 1. “주는 내가 가지고 있지도 않고 가질 수도 없는 나에 관한 지식을 가지고 계시나이다. 나는 내 모든 생각을 이해할 수 없으며, 주께서 내게 하신 대로 나를 판단할 수도 없나이다.” 2. “그것은 내가 이해할 수도 없고, 더군다나 묘사할 수도 없는 지식입니다. 주께서 모든 것을 아심을 내가 확신하나이다.” 그런데 어찌 내가 말할 수 없을까? 우리는 탐구에 의해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어떻게 감찰하시며, 찾으시는지를 알아낼 수 없다. 우리는 어떻게 알려졌는지 알 수 없다. -------- 전능하심의 근거(시 139:7-16) 우리가 가르침 받는 것들에 대한 확실성을 아는 것이 우리에게 유익하다. 그러면 우리는 그것을 믿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우리가 그것을 왜 믿는지를 말할 수 있다. 그리고 우리 안에 있는 소망의 사유를 말할 수 있게 된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그와 그의 모든 행위를 완전하게 아신다는 것을 확신한다. Ⅰ. 그가 항상 그의 눈 아래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편재하신다면 그는 전지한 분이 되신다. 그는 편재하시는 분이다. 이것은 그의 존재의 무한성과 광대함을 나타내주고 있다. 바로 거기에 그의 현존의 편재가 나타난다. 하늘과 땅은 모든 피조물을 포괄하며, 창조주는 그 둘을 충만케 하신다(렘 23:24). 그가 그 둘을 아시며, 지배하실 뿐만 아니라, 충만케 하신다. 피조물의 모든 영역은 하나님의 직관과 감동 아래 있다. 다윗은 간구로 이것을 인정하며, 하나님 앞에 자신이 이와 같이 개방되어 있음을 보고 있다. 1. 어떠한 비약도 우리를 하나님의 현존에서 벗어나게 할 수 없다. “내가 주의 신을 떠나 어디로 가며, 주의 앞에서 어디로 피하리이까?” 즉, 주의 영적인 현존과 성령이신 주를 떠나 어디로 가리이까? “하나님은 영이시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를 볼 수 없기 때문에 그도 우리를 볼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내가 주의 앞에서 어디로 도망하리이까?” 그는 하나님 앞에서 떠나기를 갈망하지 않았다. 아니, 그는 하나님 가까이에 있게 되는 것 이상을 바라지 않았다. 그는 단지 자기 경우를 말할 뿐이다. “내가 주를 경외함을 떠나 주의 얼굴을 피하려고 생각할 정도로 어리석었음을 기억한다. 내가 주께 복종함을 거역하기로 생각하고, 주를 의지함을 떠나 방향을 바꾸려고 했으나, 아아, 내가 어디로 갈 수 있을까?” 한 이방인은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었다. 즉, “네가 스스로 어디로 가든지 너는 너를 만나시는 하나님을 보게 될 것이다”(세네카) 그는 가장 멀고 외딴 장소를 상술하고, 그들을 만나시는 하나님에 대해서 설명한다. (1) 하늘에서. “내가 간단히 피하기를 소망하여 하늘에 올라갈지라도 거기 계시니이다. 거기에서 주와 함께 있는 것이 나의 영원한 행복일 것입니다.” 하늘은 셀 수 없는 교제로 가득 차 있는 광대하게 넓은 장소다. 그러나 그곳의 어떤 모퉁이나 군중 속에서도 하나님의 눈을 피할 자리란 전혀 없다. 저 세상의 거민들은 필연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하며, 이 세상의 거민들과 같이 하나님의 엄격한 정밀조사에 노출되어 있다. (2) “지옥에서”― “음부에.” 그것은 죽음의 깊이, 그 심장부로 이해될 수 있다. 우리가 팔 수 있을 만큼 깊이 땅을 판다고 해도 거기에 우리를 숨길 수 있는가 생각해 보면 실수하게 될 게 틀림없다. 하나님은 독수리의 눈이 보지 못한 구덩이를 아시며, 그에게 땅은 모두 표면과 같다. 그렇지 않으면 그것은 죽은 자의 상태로 이해될 수 있다. 우리가 모든 생명의 눈에서 떠날 때라도, 우리는 아직도 살아 계신 하나님의 눈에서는 벗어나지 못한다. 우리는 무덤에서도 그의 눈으로부터 우리를 숨길 수 없다. 그렇지 않으면 그것은 저주받은 자들의 장소로 이해될 수 있다. “음부에 내 자리를 펼지라도”(잠자리로 삼기에는 불편한 장소며, 낮이나 밤이나 안식처가 될 수 없는 장소지만, 수많은 사람들이 그 화염 속에서 영원히 저희의 자리를 펼 것이다), “거기 계시니이다. 거기에 주의 권능과 정의가 계시니이다.” 하나님의 진노는 영원히 거기에서 타오르는 불이다(계 14:10). (3) 이 세상의 가장 먼 구석에서. “내가 새벽 날개를 치며”, 아침의 햇빛을 받으며(해의 날개라고 불렸다. 말 4:2), “바다 끝에” 또는 땅 끝까지 도망간다고 할지라도(욥 38:12-13), 가장 멀고 이상한 섬(Terra incognita, 세계의 끝)에 도망한다고 할지라도 나는 거기에서 주를 발견할 뿐이다. “곧 거기서도 주의 손이 나를 인도하시며”, 내가 더 멀리 갈 수 없게 하기 위해, 내가 주의 범주에서 나가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주의 손이 나를 붙드시리이다.” 하나님은 요나가 “여호와의 낯을 피하려고 일어나 다시스로 도망하려 할 때” 그를 곧 붙드셨다(욘 1:3). 2. 하나님의 눈에서 우리를 숨길 수 있는 베일이란 아무것도 없다. 아니, 가장 짙은 어두움도 우리를 감추지 못한다(11-12절). “내가 혹시 말하기를 흑암이 정녕 나를 덮고”, 무(無)가 나를 덮어도, 아아! 나는 스스로 속인 것을 발견한다. 밤의 장막은 아침의 날개보다 나를 견고하게 세워주지 못한다. “나를 두른 빛은 밤이 되리라.” 추적 당하는 범죄자의 도망과 공격당한 군대의 퇴각을 도와주는 흑암이지만, 주께 피하는 내게는 아무런 친절도 베풀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빛과 어두움을 나누셨을 때, 그것이 그에게는 “어두움과 빛이 둘 다 똑같다는 특권의 보존이었다. 주에게는 흑암이 숨기지 못한다.” 왜냐하면 불법을 행하는 자들이 자신들을 숨길 수 있는 곳은 어두움도 없고, 죽음의 그림자도 없는 곳이기 때문이다. 어떤 위선적인 가면이나 가식, 그것이 아무리 특별하다고 할지라도, 하나님 앞에서 진실한 빛을 나타내는 것으로부터는 어떤 개인이나 행동도 구해 낼 수 없다. 죄를 수반하는 비밀은 가장 확실하게 노출되어 있고, 드러난 악행처럼 하나님 앞에서 노출되어 있다. Ⅱ. 그는 하나님의 손이 지으신 것이기 때문이다. 엔진을 조작하는 자는 그 모든 동작을 안다. 하나님은 우리를 지으셨다. 그러므로 의심할 여지없이 그는 우리를 아신다. 그는 우리가 형체를 갖출 때 우리를 보셨다. 그런데 우리가 완전히 형체를 갖추었다고 그에게서 숨을 수 있을까? 이것이 그가 주장하는 논점이다(13-16절). “주께서 내 장부를 지으셨나이다. 주는 나의 가장 은밀한 생각과 의향의 주이시며, 내 영혼의 가장 깊은 속의 주입니다. 주는 그것들을 아실 뿐만 아니라, 지배하시나이다. 그리고 그것을 소유하듯이 주께서 소유하시나이다. 주께서 내 장부를 소유하심은 올바른 소유입니다. 주께서 나의 모태에서 나를 조직하셨기 때문입니다. 즉, 주께서 나를 만드셨나이다(욥 10:11). 주께서 나를 은밀하게 지으셨나이다.” 영혼은 우리 주위에 있는 모든 것에서 은폐되어 있다. “사람의 사정을 사람의 속에 있는 영 외에는 누가 알리요?”(고전 2:11) 그러므로 우리는 “마음의 감추인 사람”에 대해서 읽는다. 그러나 우리를 이와 같이 덮으신 이는 하나님이었다. 그러므로 그가 기뻐하실 때에 우리를 노출시킬 수 있다. 그가 우리를 온 세상에서 감추실 때 우리를 그에게 감추려 의도하심이 아니었다. 인간의 형성, 즉 우리 각자의 형성에 관하여 다음과 같은 사실을 말하고 있다. 1. 여기에서 그 영광이 하나님께, 전적으로 하나님께 주어졌다. “왜냐하면 우리를 지으신 자가 바로 하나님이시며, 우리 자신이 아니기 때문이다.” 내가 나의 존재를 지으신 “주께 감사하오리다.” 나의 부모는 단지 그 도구일 뿐이다. 그것은 이루어졌다. (1) 하나님의 감찰 아래서. “나의 형체가” 모태에 숨겼을 때, 아니, “형성 중에”(in fieri) 있을 때, 아직 형체를 갖춘 태아가 되지 못했을 때도 “주의 앞에 숨기우지 못하였나이다.” “주의 눈이 내 형질을 보셨나이다.” (2) 하나님의 작용에 의해서. 하나님의 눈이 우리를 보신 것과 같이, 그의 손이 우리를 만드셨다. 우리는 그의 지으신 것이다. (3)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주의 책에 다 기록이 되었나이다.” 영원한 지혜가 계획을 세웠고, 그로 말미암아 전능한 권세가 고귀한 구조를 일으켰다. 2. 그것과 관련하여, 여기에서 영광스러운 일들이 언급되었다. 인간의 생식은 하나님의 처음 창조와 똑같이 경건한 숭배가 되어야 한다. 인간의 생식은 다음과 같이 여겨져야 한다. (1) 크게 놀라운 것으로. 우리가 그것을 놀라운 기적이라고 부를 수 있지만, 그것은 자연의 평범한 과정 속에서 이루어진다. 우리는 “신묘막측하게 지으심을 받았다.” 우리는 이 살아 있는 성전의 놀라운 고안과 모든 부분의 구성과 모든 것의 조화를 보고 놀라워해야 한다. (2) 큰 신비, 자연의 신비로. “그것이 놀라운 것임을 내 영혼이 잘 아나이다. 그러나 다른 사람에게 그것을 표현할 줄을 알지 못하나이다. 왜냐하면 땅의 깊은 곳에서와 같이 비밀리에 시야를 멀리 벗어나서 내가 은밀한 데서 지음을 받고 기이하게 지음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3) 큰 자비로. 하나님의 지혜로우신 뜻이 적힌 책에 따라서, 모든 지체가 “계속적으로 모습을 갖추었다.” “그 지체들 중 아무것도 아직 생겨나지 않았을 때에”(KJV) 그리 되었다. 만일 우리의 지체 중에서 하나라도 하나님의 책에 빠져 있었다면, 그것이 우리 몸에 결핍을 가져왔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인자하심을 통해 우리는 모든 사지와 감각을 가지고 있다. 그중 어떤 것이 결핍되었다면, 우리에게 짐이 되었을 것이다. 우리의 창조에서 무슨 이유로 하나님을 찬양해야 하는지를 이해해야 한다. 우리는 형체를 입지 않은 우리의 본체를 보신 자가 지금 형체를 이룬 우리의 본체를 보신다는 것을 기억하면서 그에게 감사해야 한다. --------- 전지하심(시 139:17-24) 시편 저자는 하나님의 전지하심에 대한 교리를 여러 가지 방법으로 적용한다. Ⅰ. 그는 경이와 감사함으로 그를 일생 동안 돌보신 하나님께 감사한다(17-18절). 그를 아신 하나님과 그에 대한 하나님의 생각은 사랑하려는 생각이었고 “재앙이 아니라, 소망을 주려하는 생각”(렘 29:11)이었다. 우리를 멸하시려고, 우리를 공평하게 감찰하셨던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심은 우리를 위해서 일했고, 우리에게 유익을 끼치려고 우리를 감찰하셨다(렘 31:28). 우리와 우리의 복지에 대한 하나님의 뜻이 어떠한지 살펴보자. 1. 감탄할 만큼 보배로웠다. “어찌 그리 보배로운지요.” 그것은 추측하고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깊었다. 섭리는 우리에 대한 그 활동에서 광대한 영역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우리의 연구와 통찰을 완전히 초월해 우리의 유익을 위한 것을 가져온다. 그것들은 우리에게 고귀하다. 우리는 커다란 존경으로, 즐거움과 감사함으로 그것을 생각해야 한다. 하나님에 관한 우리의 생각은 다른 모든 생각을 초월해 우리에게 즐거운 일이 될 것이다. 2. 감탄하기에 수가 많았다. “그 수가 어찌 그리 많은지요!” 우리는 하나님의 인자하신 섭리가 우리에게 얼마나 많이 나타났으며, 얼마나 선한 일들을 우리를 위해 행하셨는지를 인식하지 못한다. 그리고 우리가 얼마나 다양한 자비를 그에게서 받았는지를 깨닫지 못한다. 우리가 그것을 “세려고 할지라도” 그 수가 특별히 많아서 “모래보다 많도소이다.” 그리고 모두 다 크고 매우 주목할 만한 것이다(40:5). 우리는 하나님의 긍휼의 크심을 이해할 수 없다. 그것은 매일 아침을 아주 새롭게 한다. 3. 언제나 변함 없는 것이다. 매일 아침 “내가 깰 때에도” 주의 눈과 보살핌 아래 “주와 함께 있나이다.” 그리고 주의 보호하심 아래 안전하고 평온하나이다. 이것은 다윗이 그를 주시하시는 하나님께 대해서 가졌던 지속적인 경건한 감정을 말해 주고 있다는 생각에서 역시 “내가 깰 때에도 주와 함께 있나이다.” 우리가 아침에 깰 때에 우리의 처음 생각이 그에 관한 것이며, 우리 앞에 그를 세운다면 여호와를 경외함이 우리를 지켜주는 데에 도움이 될 것이다. Ⅱ. 그는 이 교리를 죄인들의 결말이 파멸로 초래될 것이라는 내용으로 결론을 맺고 있다. 하나님은 사악한 자들의 모든 사악성을 아신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그것에 대해 갚아주신다. “하나님이여, 주께서 정녕히 악인을 죽이시리라.” 악한 자가 세상의 눈에서 악을 숨기기 위해서 교묘하게 가장하고 위장한다고 할지라도 그들의 모든 사악성이 주 앞에 드러나 있기 때문이다. 주께서 그들이 잠시 번성하는 것을 허용하실지라도, 결국 그들을 “주께서 죽이실 것입니다.” 여기에서 다음과 같은 사실을 관찰해 보자. 1. 하나님께서 그들을 징벌하실 이유. 그들이 감히 그에게 도전하며, 그와 투쟁하기 때문이다(20절). “저희가 주를 대하여 악하게 말합니다.” 그들은 “저희 입을 하늘에 두나이다”(73:9). “주께 거스려 한 모든 강퍅한 말”(유 15)이 고려될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원수들”이다. 그리고 “헛되이 주의 이름을 칭함”으로써 저희의 적대감을 선언한다. 우리가 어떤 사람의 이름을 웃음거리로 만든다면, 우리는 그에 대한 우리의 경멸을 나타내는 것이다. 우리는 조롱과 희롱의 방법으로 주님께 대해 언급해서는 결코 안 된다. 무례한 불경으로 하나님의 이름을 헛되이 사용함으로써 맹세나 기도의 거룩한 형태를 욕되게 하는 자들은 스스로 하나님께 자신들이 적이 됨을 나타낸다. 어떤 사람들은 그것이 위선자들에 대한 서술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주를 악하게 말하나이다. 그들은 경건을 가장하고, 하나님에 대해서 말하나이다. 그러나 그것은 나쁜 계획으로 된 악독함의 장식이니이다. 그들은 우정을 가장하지만 하나님께 원수로서 헛되이 주의 이름을 칭하나이다. 그들은 거짓으로 맹세하나이다.” 2. 그 악한 자들의 멸망에 대해서 다윗이 사용한 전망. (1) 그는 악한 자들을 거부한다. “피 흘리기를 즐기는 자들아, 나를 떠날지어다. 너희는 나를 해치지 못할 것이다. 내가 너희의 우정이나 관계를 허용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너는 나를 멸망시키지 못할 것이다. 하나님의 보호하심으로 너희를 나에게서 멀리 떼어놓으실 것이기 때문이다.” (2) 그는 그들을 몹시 싫어한다(21-22절). “여호와여, 주는 마음을 아시며, 나를 위해 증거하실 수 있습니다. 내가 저희를 미워하지 아니하나이까? 그것은 그들이 주를 미워하기 때문 아닙니까? 나는 주를 사랑하기 때문에, 그리고 주의 축복된 이름에 대적하며 무례한 행동을 하는 것을 보기 싫어하기 때문에 그들을 미워하나이다. 내가 주를 치러 일어나는 자를 한하지 아니하나이까? 저희의 반역을 보고 슬퍼하며, 저희의 파멸이 확실히 초래될 것을 예견하고서 한하지 아니하나이까?”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에 의해서 죄는 증오되었고, 죄인들은 슬피 통곡하게 되었다. “내가 미워하나이다(즉, 그가 스스로 설명한다. 내가 배도자들의 행위를 미워하나이다. 101:3). 내가 그들을 진실되게 심히 미워하나이다. 나는 하나님께 적인 자들을 내게 적으로 생각하며, 그들과 절대로 친하지 않고자 하나이다”(69:8). Ⅲ. 그는 그의 정직함에 대해서 하나님께 호소한다(23-24절). 1. 그는 자기가 괴로움 중에 있는 동안 하나님께서 그에게 찾아오실 것을 간구한다. 정직한 자들은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저희의 정직함의 증거로 삼고 위로를 취할 수 있다. 그리고 겸손한 확신으로 그들을 찾고 시험하시며, 그들 자신에게 그들을 드러내시며(왜냐하면 선한 사람은 자신의 악함을 알고자 원하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에게 그들을 드러내시기를 간구할 수 있다. 정직한 의도를 가지는 사람은, 누구라도 그의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도록, 마음의 창문을 갖고자 원할 수 있다. “여호와여, 내가 악한 행실에 빠지지 않기를 원하나이다. 그러나 내게 무슨 악한 행위가 있나 보소서. 그리고 부패하게 남아 있는 악한 경향이 있나 보소서. 나로 하여금 그것을 보게 하소서. 나로부터 그것을 뿌리째 뽑아주소서. 내가 그것을 허용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2. 그는 옳은 길에 있는 한, 그것을 더욱 발전시키기를 원한다. 마음을 아는 자는 어떻게 효과 있게 행할 것인가를 안다. “나를 영원한 길로 인도하소서.” (1) 거룩한 길은 영원한 길이다. 영원히 참되고 선한 것이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며, 우리에게 합당한 것이다. 그리고 영생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그것은 태고의 길, 선한 옛길이다”(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해석한다). (2) 모든 성도들이 이 길을 지키며, 그 길로 인도되기를 갈망한다. 그들은 그 길을 벗어나려 하지 않고, 그 길에서 돌아서거나 물러나기를 원하지 않는다. ====== ====[관주성경 시139]======다윗의 시, 영장으로 한 노래 -------------- 1.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살펴 보셨으므로 나를 아시나이다 ----------- 렘12:3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아시고 나를 보시며 내 마음이 주를 향하여 어떠함을 감찰하시오니 양을 잡으려고 끌어 냄과 같이 그들을 끌어 내시되 죽일 날을 위하여 그들을 예비하옵소서 시7:9 악인의 악을 끊고 의인을 세우소서 의로우신 하나님이 사람의 심장을 감찰하시나이다 시17:3 주께서 내 마음을 시험하시고 밤에 나를 권고하시며 나를 감찰하셨으나 흠을 찾지 못하셨으니 내가 결심하고 입으로 범죄치 아니하리이다 시44:21 하나님이 이를 더듬어 내지 아니하셨으리이까 대저 주는 마음의 비밀을 아시나이다 -------------- 2. 주께서 내가 앉고 일어섬을 아시고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밝히 아시오며 ----------------- 왕하19:27 네 거처와 네 출입과 네가 내게 향한 분노를 내가 다 아노니 애3:63 저희가 앉든지 서든지 나를 노래하는 것을 주여, 보옵소서 욥14:16 그러하온데 이제 주께서 나의 걸음을 세시오니 나의 죄를 살피지 아니하시나이까 욥31:4 그가 내 길을 감찰하지 아니하시느냐 내 걸음을 다 세지 아니하시느냐 마9:4 예수께서 그 생각을 아시고 가라사대 너희가 어찌하여 마음에 악한 생각을 하느냐 요2:24 예수는 그 몸을 저희에게 의탁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친히 모든 사람을 아심이요 ----------- 3. 나의 모든 길과 내가 눕는 것을 살펴 보셨으므로 나의 모든 행위를 익히 아시오니 4. 여호와여 내 혀의 말을 알지 못하시는 것이 하나도 없으시니이다 ------------ 히4:13 지으신 것이 하나라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오직 만물이 우리를 상관하시는 자의 눈 앞에 벌거벗은 것같이 드러나느니라 ----------- 5. 주께서 나의 앞뒤를 둘러싸시고 내게 안수하셨나이다 --------- 욥19:8 그가 내 길을 막아 지나지 못하게 하시고 내 첩경에 흑암을 두셨으며 욥9:33 양척 사이에 손을 얹을 판결자도 없구나 ----------- 6. 이 지식이 내게 너무 기이하니 높아서 내가 능히 미치지 못하나이다 --------- 롬11:33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이여 그의 판단은 측량치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 욥42:3 무지한 말로 리치를 가리우는 자가 누구니이까 내가 스스로 깨달을 수 없는 일을 말하였고 스스로 알 수 없고 헤아리기 어려운 일을 말하였나이다 --------- 7. 내가 주의 영을 떠나 어디로 가며 주의 앞에서 어디로 피하리이까 -------- 렘23:24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사람이 내게 보이지 아니하려고 누가 자기를 은밀한 곳에 숨길 수 있겠느냐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는 천지에 충만하지 아니하냐 욘1:3 그러나 요나가 여호와의 낯을 피하려고 일어나 다시스로 도망하려 하여 욥바로 내려갔더니 마침 다시스로 가는 배를 만난지라 여호와의 낯을 피하여 함께 다시스로 가려고 선가를 주고 배에 올랐더라 --------- 8. 내가 하늘에 올라갈지라도 거기 계시며 스올에 내 자리를 펼지라도 거기 계시니이다 --------- 암9:2 저희가 파고 음부로 들어갈찌라도 내 손이 거기서 취하여 낼 것이요 하늘로 올라갈찌라도 내가 거기서 취하여 내리울 것이며 욥26:6 하나님 앞에는 음부도 드러나며 멸망의 웅덩이도 가리움이 없음이니라 ---------- 9. 내가 새벽 날개를 치며 바다 끝에 가서 거주할지라도 10. 거기서도 주의 손이 나를 인도하시며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드시리이다 ----------- 시139:24 내게 무슨 악한 행위가 있나 보시고 나를 영원한 길로 인도하소서 시23:3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 11. 내가 혹시 말하기를 흑암이 반드시 나를 덮고 나를 두른 빛은 밤이 되리라 할지라도 ----------- 욥22:14 빽빽한 구름이 그를 가리운즉 그가 보지 못하시고 궁창으로 걸어다니실 뿐이라 하는구나 ----------- 12. 주에게서는 흑암이 숨기지 못하며 밤이 낮과 같이 비추이나니 주에게는 흑암과 빛이 같음이니이다 ------------- 욥34:22 악을 행한 자는 숨을 만한 흑암이나 어두운 그늘이 없느니라 단2:22 그는 깊고 은밀한 일을 나타내시고 어두운 데 있는 것을 아시며 또 빛이 그와 함께 있도다 ------------- 13. 주께서 내 내장을 지으시며 나의 모태에서 나를 만드셨나이다 ------------- 신32:6 우매무지한 백성아 여호와께 이같이 보답하느냐 그는 너를 얻으신 너의 아버지가 아니시냐 너를 지으시고 세우셨도다 욥10:11 가죽과 살로 내게 입히시며 뼈와 힘줄로 나를 뭉치시고 ------------- 14. 내가 주께 감사하옴은 나를 지으심이 심히 기묘하심이라 주께서 하시는 일이 기이함을 내 영혼이 잘 아나이다 ---------- 시72:18 홀로 기사를 행하시는 여호와 하나님 곧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찬송하며 --------------- 15. 내가 은밀한 데서 지음을 받고 땅의 깊은 곳에서 기이하게 지음을 받은 때에 나의 형체가 주의 앞에 숨겨지지 못하였나이다 --------------- 시63:9 나의 령혼을 찾아 멸하려 하는 저희는 땅 깊은 곳에 들어가며 욥10:8 주의 손으로 나를 만드사 백체를 이루셨거늘 이제 나를 멸하시나이다 전11:5 바람의 길이 어떠함과 아이 밴 자의 태에서 뼈가 어떻게 자라는 것을 네가 알지 못함같이 만사를 성취하시는 하나님의 일을 네가 알지 못하느니라 ------------- 16. 내 형질이 이루어지기 전에 주의 눈이 보셨으며 나를 위하여 정한 날이 하루도 되기 전에 주의 책에 다 기록이 되었나이다 ------------- 시56:8 나의 유리함을 주께서 계수하셨으니 나의 눈물을 주의 병에 담으소서 이것이 주의 책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나이까 -------------- 17. 하나님이여 주의 생각이 내게 어찌 그리 보배로우신지요 그 수가 어찌 그리 많은지요 --------------- 시92:5 여호와여, 주의 행사가 어찌 그리 크신지요 주의 생각이 심히 깊으시니이다 ------------ 18. 내가 세려고 할지라도 그 수가 모래보다 많도소이다 내가 깰 때에도 여전히 주와 함께 있나이다 -------------- 시40:5 여호와 나의 하나님이여, 주의 행하신 기적이 많고 우리를 향하신 주의 생각도 많도소이다 내가 들어 말하고자 하나 주의 앞에 베풀 수도 없고 그 수를 셀 수도 없나이다 창22:17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로 크게 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문을 얻으리라 -------------- 19. 하나님이여 주께서 반드시 악인을 죽이시리이다 피 흘리기를 즐기는 자들아 나를 떠날지어다 -------------- 사11:4 공의로 빈핍한 자를 심판하며 정직으로 세상의 겸손한 자를 판단할 것이며 그 입의 막대기로 세상을 치며 입술의 기운으로 악인을 죽일 것이며 시9:17 악인이 음부로 돌아감이여 하나님을 잊어버린 모든 열방이 그리하리로다 시5:6 거짓말하는 자를 멸하시리이다 여호와께서는 피 흘리기를 즐기고 속이는 자를 싫어하시나이다 시6:8 행악하는 너희는 다 나를 떠나라 여호와께서 내 곡성을 들으셨도다 ------------ 20. 그들이 주를 대하여 악하게 말하며 주의 원수들이 주의 이름으로 헛되이 맹세하나이다 -------------- 유1:15 이는 뭇사람을 심판하사 모든 경건치 않은 자의 경건치 않게 행한 모든 경건치 않은 일과 또 경건치 않은 죄인의 주께 거스려 한 모든 강퍅한 말을 인하여 저희를 정죄하려 하심이라 하였느니라 출20:7 너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 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자를 죄 없다 하지 아니하리라 --------------- 21. 여호와여 내가 주를 미워하는 자들을 미워하지 아니하오며 주를 치러 일어나는 자들을 미워하지 아니하나이까 -------------- 시26:5 내가 행악자의 집회를 미워하오니 악한 자와 같이 앉지 아니하리이다 시59:1 (다윗의 믹담 시. 영장으로 알다스헷에 맞춘 노래. 사울이 사람을 보내어 다윗을 죽이려고 그 집을 지킨 때에) 나의 하나님이여, 내 원수에게서 나를 건지시고 일어나 치려는 자에게서 나를 높이 드소서 시119:158 주의 말씀을 지키지 아니하는 궤사한 자를 내가 보고 슬퍼하였나이다 --------------- 22. 내가 그들을 심히 미워하니 그들은 나의 원수들이니이다 23. 하나님이여 나를 살피사 내 마음을 아시며 나를 시험하사 내 뜻을 아옵소서 ---------------- 시26:2 여호와여, 나를 살피시고 시험하사 내 뜻과 내 마음을 단련하소서 ---------------- 24. 내게 무슨 악한 행위가 있나 보시고 나를 영원한 길로 인도하소서 ------------- 렘6:16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는 길에 서서 보며 옛적 길 곧 선한 길이 어디인지 알아보고 그리로 행하라 너희 심령이 평강을 얻으리라 하나 그들의 대답이 우리는 그리로 행치 않겠노라 하였으며 렘18:15 대저 내 백성은 나를 잊고 허무한 것에게 분향하거니와 이러한 것들은 그들로 그 길 곧 그 옛길에서 넘어지게 하며 곁길 곧 닦지 아니한 길로 행케 하여 시139:10 곧 거기서도 주의 손이 나를 인도하시며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드시리이다 --------------- ---------- cavri"(5485, 카리스) 은혜 grace, 호의, 친절 favour. 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 명사 카리스(Homer 이래)는 기본어이며, 다음과 같은 의미를 지닌다. (a) 이 단어의 기본적 의미는 '사람들 중에 [전 존재의 실제적 경험적 복됨으로서의 ] 복리를 가져오는 것'을 의미한다. [경험 통한 전존재의 극락의 기쁨으로서] 카라(carav, 5479)는 이 복리에 대한 개인적 경험이나 표현을 의미한다. (b) 이 단어는 (a)의 기본 의미에서 여러가지 의미가 파생되었으며, 좀 더 확장되어 '은혜, 호의, 아름다움(미), 미덕, 사은, 감사, 사의, 친절, 즐거움, 호의의 표현, 돌봄, 감사의 빚, 보답'을 의미한다. (c) 이 단어는 속격과 함께 사용될 때, '~을 위하여, ~에 대한 고려를 해서'를 의미한다. (d) 아이스킬루스는 신들의 호의에 카리스를 사용했다. 플라톤의 문헌들에서 카리스는 '좋은 선물, 좋은 뜻, 호의, 기쁨, 기쁘게 하는 것, 감사' 등의 뜻을 가진다. 2. 70인역본의 용법. 명사 카리스는 70인역본에서 약 190회 나오며 여러 히브리어로 사용되었다 ---그 중 헨이 가장 자주 나오며(61회), 이는 대개 '호의, 좋아함, 의향, 기호', 드물게 '매력, 아름다움, 애교'를 의미한다(시 45:2). ---그리고 이 단어는 라촌(만족스러운 것, 사람들 사이에서, 잠 10:32; 사람이 하나님께 구하는 은총, 잠 11:27; 사람이 '하나님께 얻는 은총'), 헤세드(은총, 에 2:9; 에 2:17), 라함(우애감, 단 1:9; 동정, 창 43:14), 토브(선한 것, 잠 18:22), 게둘라(영예의 표시, 에 6:3)의 역어로 사용되었다. ==>주권적으로 뜻하신 바 지고지선 진복 하나님의 아가페 사랑의 궁극적 구현과 완성의 실제(거듭난 자녀마다 일향 미쁘심으로 대하심으로써 믿음-소망-사랑안에서 구하는 것보다 더 풍성/완전하게 자신의 모든 것 부어주사 영광스러운 소유/기업/자녀/백성 삼으시며, JC를 빼어닮아 아가페 사랑의 거룩함으로 아버지께 반응하며 살게 하시는 은총-자애-우애-친밀-보호-=은혜-가르침의 모든 것) 3. 신약성경의 용법. 명사 카리스는 신약성경에서 155회 나오며, 다음과 같이 사용되었다. (a) 누가의 기록. ① 카리스는 비종교적인 행 24:27; 행 25:3; 행 25:9 등에 나타나며, 좀 더 분명하게는 행 2:47; 행 4:33에 나타난다. ② 구약성경의 영향이 눅 1:30; 행 7:46; 행 7:10; 눅 2:40; 눅 2:52; 눅 6:32 이하의 종교적인 용법에서 나타난다. ③ 카리스는 눅 4:22; 행 14:3에서 복음의 특성으로서의 은혜를 설명해 준다. 이 단어는 행 6:8에서 성령이 충만한 사람을 묘사한다: "스데반이 은혜와 권능이 충만하여 큰 기사와 표적을 민간에 행하니". 행 11:23에서는 교회 성장에 있어서 카리스의 지도적인 역할을 볼 수 있다: "저가 이르러 하나님의 은혜를 보고 기뻐하여 모든 사람에게 굳은 마음으로 주께 붙어 있으라 권하니". 행 14:26; 행 15:40에서 하나님의 은혜에 부탁한다. 행 15:11은 권고 형식의 본문에 나타나는 바울 사상의 표현이다: "우리가 저희와 동일하게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 받는 줄을 믿노라 하니라". (b) 바울 서신. ① 카리스는 바울의 중심 개념으로서 인사말에서 특별한 위치를 차지한다(롬 1:7; 살전 5:28 등). ② 바울에게 있어서는 카리스는 독특하게 구원 사건의 구조를 설명해 준다. 기본적인 사상은 값없이 주신다는 것이다. 여기서의 문제는 카리스가 하나님의 속성만이 아니라, 십자가에서 구체화되고(갈 2:21) 복음으로 선포되었다는 것이다. 우리는 오직 은혜로 구원을 얻는다. 은혜는 죄인들에게 나타났고(롬 3:23-24) 구원의 전부이며(고후 6:1) 모든 신자들이 받은 것이다(고전 1:4). 그리스도 안에서 구체화된 "은혜로만" 구원을 얻는다는 것과 더불어 신자들은 "믿음으로만" 구원을 얻는다(롬 3:24 이하). 이것은 구원의 방법으로서 율법을 배제하는 것이다(롬 4:16). 은혜는 칭의의 기반이며, 그것에서 나타나게 된다(롬 5:20-21). 그래서 은혜는 어떤 의미에서 일종의 상태이다(갈 5:2). 또한 은혜는 항상 선물이다. 은혜는 충분하다(고전 1:29). 우리는 더 요구하거나 더 얻으려고 해서는 안된다. 은혜에는 확신적 요소가 들어있기는 하나 거짓 확신이 아니므로 자랑할만한 여지가 없다(고전 1:29; 참조: 갈 5:4). ③ 죄를 극복하는데 있어서 은혜의 작용은 그 능력을 보여준다(롬 5:20-21). 은혜와 죄와는 구조적으로 다르다. 왜냐하면 은혜는 숙명적인 것이 아니라 자유롭게 선택하신 자들에게 오는 것이기 때문이다(롬 11:5-6). 은혜는 교회 안에서, 보기로 바울의 모금에서(고후 8장) 구체적으로 나타났다. 은혜의 목적은 모든 선행을 하는데 있으며(고후 9:8), 그렇기 때문에 선행을 요구하는 것이지만(고후 6:1), 자원하여 순종하게 만드는 방법으로 할 뿐이다. 은혜는 방종을 허용하는 것이라는 생각은 잘못된 이론이다. 바울은 롬 6:1에서 그런 단순한 생각을 책망하고 있다. ④ 바울의 사도직은 롬 1:23 등에서 특별한 은혜이다. [모든 직분, 특히 성도란 직분자체가 그러하다] 사도직이 바울에게 주어진 것과(롬 12:3), 그것을 수행하는 것은 은혜였다(고후 1:12). 교회를 방문하는 것도 바울에게 있어서는 하나의 은혜였다(고후 1:15). ⑤ 골 1:6에서 카리스는 복음을 뜻한다: "이 복음이 이미 너희에게 이르매 너희가 듣고 참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은 날부터 너희 중에서와 같이 또한 온 천하에서도 열매를 맺어 자라는도다". 골 4:6에서 '매력'을 의미한다: "너희 말을 항상 은혜 가운데서 소금으로 고루게 함같이 하라 그리하면 각 사람에게 마땅히 대답할 것을 알리라". 엡 1:6-7에서 카리스는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호의"를 의미한다: "6 이는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라 7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으니". 특히 엡 2:5 이하가 바울적 특색이다: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 엡 3:2; 엡 3:7-8도 마찬가지다. 엡 4:7; 엡 4:29에서 "주다"라는 단어와 함께 쓰는 것은 상투적인 표현이다. ⑥ 목회서신에서 카리스는 딤전 1:12에서 '감사'를 의미한다: "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함은 나를 충성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심이니". 딤후 2:1에서 직분의 '은혜'를 나타낸다: "내 아들아 그러므로 네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은혜 속에서 강하고". 딤후 1:9에서 은혜가 나타났다는 본문을 통해서 은혜와 행위를 대조시키고 있다(참조: 딛 2:11). 딛 3:4 이하에서 선하심이나 자비 등의 용어가 같은 뜻을 가진 단어들이다. 여기서 다시 한번 행위와의 대조를 보는데 이번에는 세례(침례)를 받는데서 나타난 은혜를 언급하고 있다(딛 3:5 이하). 딤전 1:14에서 믿음, 사랑, 그리고 소망 대신 은혜(카리스)를 둔다: "우리 주의 은혜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과 함께 넘치도록 풍성하였도다". (c) 히 4:16에서 카리스와 엘레오스(e[leo", 1656: 자비, 동정, 불쌍히 여김...긍휼)를 사용한다(참조: 딤전 1:2). 그리스도는 은혜를 구현하시며, 우리는 하나님의 보좌에서 은혜를 받는다(히 7:25). 히 2:9에서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은혜로 고난 받으셨다: "오직 우리가 천사들보다 잠간 동안 못하게 하심을 입은 자 곧 죽음의 고난 받으심을 인하여 영광과 존귀로 관 쓰신 예수를 보니 이를 행하심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음을 맛보려 하심이라". 히 10:29에서 그리스도의 죽으심(또는 피)은 계약과 은혜를 결합하였다. 은혜와 제사에 쓰인 고기를 대조시키는 것은 히 13:9에서 계약에 대한 반대 명제를 언급한 것의 일부분이다. 히 12:15에서 우리가 은혜에서 떨어지지 말아야 할 것을 언급한다: "너희는 돌아보아 하나님 은혜에 이르지 못하는 자가 있는가 두려워하고 또 쓴 뿌리가 나서 괴롭게 하고 많은 사람이 이로 말미암아 더러움을 입을까 두려워하고". (d) 베드로전서에서 고난은 은혜로 이해되고 있다(벧전 2:19-20). 벧후 3:18은 카리스를 그노시스(지식)에 관련시킨다: "오직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저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 가라 영광이 이제와 영원한 날까지 저에게 있을찌어다". 약 4:6, "그러나 더욱 큰 은혜를 주시나니 그러므로 일렀으되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였느니라". (e) 요한의 기록. 카리스는 요이 1:2과 계 1:4; 계 22:21의 인사말에 나온다. 요 1:14; 요 1:16-17에서 은혜는 율법과 반대되고, 진리와 완전함에 결합되어 나타나는 로고스의 계시의 결과를 언급한다. 그럼으로써 이 단어의 독특한 의미가 드러나는 것을 도와주고 있다. (참조: H. -H. Esser; H. Conzelmann). -------------- e[leo"(1656, 엘레오스) 불쌍히 여김, 동정, 자비. =긍휼, 아가페사랑.. 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 명사 엘레오스(Homer 이래)는 '자비, 불쌍히 여김, 동정'을 의미한다. 헬라어에서 엘레오스는 하나의 파도스(pavqo", 3806), 곧 다른 사람들이 부당하게 당하는 고통에 의해 생겨나고 자비 뿐만 아니라 두려움의 요소를 포함하는 감정이다. 이것은 귀족들에게 아주 잘 어울리는 감정이며 재판을 행하는데에 하나의 역할을 한다. 그렇지만 스토아 학자들은 이 감정을 현자들에게 합당하지 않은 건전치 못한 것으로 간주했는데 이는 스토아 학자들이 잔인해서가 아니라, 그들은 도덕적 관계가 파도스(pavqo", 3806)에 의해 지배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2. 70인역본의 용법. 명사 엘레오스는 70인역본에서 약 400회 나오며, 주로 헤세드( 인자, 긍휼, 아가페)의 역어로 사용되었다. (a) 이 단어는 상호 관계, 예를 들면 친척들 간에, 주인과 손님 간에, 주인과 종 간에, 언약 관계에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생겨나는 태도를 나타낸다. 이것은 성벽(disposition)이라기 보다는 행동이며, 신뢰를 근거로 하고 충성을 적절한 태도로 삼는다. 따라서 예를 들어 통치자와 신하 사이에 의무의 요소는 본질적인 것이다. 우월한 자의 편에서, 헤세드에는 또한 은혜도 포함된다. 이것은 특히 하나님의 편에서 그렇다. 하나님은 임의로 자신을 자기 백성과 묶으셨으며, 따라서 의인은 그들 자신이 자비를 보일 때 하나님의 헤세드에 의존하게 된다. 하나님의 헤세드는 비록 우리가 요구할 수는 없다 하더라도 기대할 수는 있으며 또한 약속된 신실하고 자비로운 사랑이다. 그렇지만 우리가 ( 죄인괴수로서 우리는 변덕스럽고 언약<베리트>를 이룰 수 있는 능력이 없는, 전혀 무능한 존재로서 ) 불충실하기 때문에, 이 사랑은 궁극적으로 결정적인 구원을 가져올 용서하는 은혜의 형태를 취하며, 따라서 헤세드는 종말론적인 용어가 된다. 라하밈의 경우에도 일반적으로 동정보다는 사랑의 행위나 표현이 문제가 된다. 그런데 이 단어는 본래 육체적인 의미를 지녔으며 사랑의 관심을 나타내었다. (b) 후기 유대교에서 헤세드는 사랑의 행동에 대해 사용되었지만 이 단어는 특히 하나님의 자비를 가리키는데, 종종 그 자비의 신실성에 강조점을 두며, 또한 진노와 구별되는 자비를 언급한다. 하나님의 엘레오스는 이스라엘이나 그를 사랑하고 경외하는 사람들에게 임한다. 하나님의 엘레오스는 계시되고, 기대되고, 소망되고, 탄원되는 그의 은총의 행동이다. 구원 시대는 엘레오스의 시대이다. 필로는 율법이 엘레오스를 요구한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엘레오스를 하나님의 능한 행사들 중의 세번째 것으로 간주한다. 자비로우신 하나님은 구주이시다. (그렇지만 필로에게 있어 자비는 행동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감정이며, 종말론적인 의미를 지니지 않는다.) 3. 신약성경의 용법. 명사 엘레오스는 신약성경에서 27회 나오며, 다음과 같이 사용되었다. (a) 엘레오스는 종종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태도에 대해 사용되었다. 마 9:13; 마 23:23에서 이 단어는 상호 관계에 있어서의 친절을 나타낸다. 7 0인역본의 "자비를 베풀다"라는 표현이 눅 10:37에서 선한 사마리아인의 행동들에 대해 사용된다. 약 2:13에서 자비에 대한 요구는 우리의 자비에 선행하는 하나님의 자비에 근거한다(참조: 마 18:33). 유대교와 비교해 볼 때, 신약성경에서의 새로운 특징은 하나님의 자비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고 그리스도를 통해서 알려진다는 것이다. 약 3:17에서 엘레오스는 비록 동정을 포함하지만 일반적인 자애(lovingkindness)를 포괄한다. 이 자비는 또한 일시적인 안녕 뿐만 아니라 영원한 안녕에 대한 관심을 의미할 수도 있다(참조: 유 1:22). (b) 신약성경에서 하나님의 엘레오스는 종종 그의 은혜로운 신실성을 가리킨다(눅 1:58; 엡 2:4; 벧전 1:3; 롬 11:30). 바울은 의미심장하게 하나님의 엘레오스를 하나님의 구원과 관련시킨다. 이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구원하시는 종말론적 행동이다(딛 3:5). 롬 9:22-23에서, 하나님의 엘레오스에 반대되는 것은 하나님의 진노이다. 롬 9:15 이하; 롬 15:8-9에서는 종말론적인 의식이 또한 고찰될 수 있다. 하나님을 믿는 이방인들은 이제 하나님의 자비에 사로잡힌 바된다. 심판 때에 자비가 요구된다는 사실은 딤후 1:18; 유 1:21(참조: 마 5:7)에 표현되어 있다. 갈 6:16과 같이 인사말에서 엘레오스는 그리스도를 간접적으로만 언급할 뿐이다. 딤후 1:16에 의하면 바울에게 보여졌다고 하는 자비에서 볼 수 있듯이, 일반적인 것일 수도 있고 개별적인 것일 수도 있다. 이런 경우에 항상 특별히 그리스도 안에서의 하나님의 구원 행동을 언급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참조: H. -H. Essen; R. Bultmann). ---------------- eijrhvnh(1515, 에이레네) 평화, 복지, 번영 [평강] 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 에이레네의 기본 개념은 본래 사람들 사이의 관계(relationship)나 태도(attitude)를 의미하지 않고 상태(state), 즉 '평화의 때', 또는 '평화의 상태'를 의미하며, 처음에는 순전히 끊임없이 계속되는 전쟁상태에서의 한 막간(a interlude)으로 생각한 것이다. 이 단어는 전쟁에 반대되는 것, 혹은 전쟁의 종식으로부터 결과하는 상황을 의미한다. 평화는 복된 번영을 가져 오도록 법과 질서가 유지되는 상태이다. "에이레네"는 평화의 상태이며, 평화의 상태에서 땅과 백성을 위한 복이 흘러나온다. 필레몬(Philemon)은 이를 최고의 선(supreme good)으로 격찬했다. 에이레네는 평화 조약이나 평화의 타결과 관련이 있다. 에이레네는 또한 소란, 소요의 정반대를 의미할 수 있다. 에이레네는 평화적인(온화한) 태도, 즉 적의가 없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에픽테투스와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등의 스토아 철학자들의 작품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에이레네는 영적 평안이나 마음의 평안이라는 의미를 띠고 나타나게 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 단어는 이들의 저작에 그리 자주 사용되지 않았다. 특별한 언급으로, 아우구스투(Augustus)가 지중해 세계를 지배한 에이레네를 들 수 있다. 이 시대에서 구속(redemption)을 동경하는 강한 흔적을 찾아볼 수 있는데 황금시대라고 불리워진 이 평화의 상태는 로마 황제가 군대의 힘으로 성취한 법적 또는 정치적 안정이다(Toerster, TDNT). 2. 구약성경 및 70인역본의 용법 1. 구약성경 및 70인역본의 용법 및 의미들 (a) 구약성경에서 에이레네는 250회 이상 나오는 히브리어 단어 샬롬의 역어로 사용된 경우가 거의 대부분이다. 이에 대하여 예외적인 경우들은 대체로 왕래 및 문안 인사에 관련된 구절들이다. 예컨대 창 26:31; 창 43:23이 이러한 예이다. 그러나 렘 20:10; 사 48:22; 57:21은 이러한 경우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예외를 이루고 있다. 이러한 예외적인 구절에서는 소테리아(구원, 구출), 카이레인(기쁨, 안녕)등을 역어로 사용되었다. 약 15개의 구절에서 에이레네는 안식, 평온, 안전, 염려 없음, 믿음직스러움 등의 광범위한 의미 영역을 포괄하는, 히브리어의 여러 가지 단어들에 해당하는 역어로 사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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