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벧후 1:1-11==((영생=구원=샬롬=. 생명(조에)과 경건(JC를 살아냄)에 속한 모든 것을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으로 믿는 모든 이에게 주신 JC를 친밀히 참되게 알아가며(산 믿음을 발휘하여 JC께서 그리하셨듯이, 하나되어 내주하시는 JC, 곧 HS따라 행함), 또한 JC앎을 힘써 추구함으로써 성숙케 되는 믿음-덕-지식-절제-인내-경건-형제우애-사랑을 통해서 참여케 하시는 바 신성한 성품과 JC의 영원한 나라에 들어감을 이루라!!)) 1.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며 사도인 시몬 베드로는 우리 하나님과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힘입어 동일하게 보배로운 믿음을 우리와 함께 받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Simon Peter, a bond-servant and apostle (special messenger, personally chosen representative) of Jesus Christ, To those who have [b]received and possess [by God’s will] a precious faith of the [c]same kind as ours, by the righteousness of our God and Savior, Jesus Christ: 2.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를 앎으로(=영생)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 Grace and peace [that special sense of spiritual well-being] be multiplied to you in the [true, intimate] knowledge of God and of Jesus our Lord. 3. 그의 신기한 능력으로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으니 이는 자기의 영광과 덕으로써 우리를 부르신 이를 앎으로 말미암음이라 For His divine power has bestowed on us [absolutely] everything necessary for [a dynamic spiritual] life and godliness, through [d]true and personal knowledge of Him who called us by His own glory and excellence 4.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가 정욕 때문에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느니라 For by these He has bestowed on us His precious and magnificent promises [of inexpressible value], so that by them you may escape from the immoral freedom that is in the world because of disreputable desire, and become sharers of the divine nature 5. 그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For this very reason, applying your diligence [to the divine promises, make every effort] in [exercising] your faith to, [e]develop moral excellence, and in moral excellence, knowledge (insight, understanding) 6.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and in your knowledge, self-control, and in your self-control, steadfastness, and in your steadfastness, godliness 7.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더하라 and in your godliness, brotherly affection, and in your brotherly affection, [develop Christian] love [that is, learn to unselfishly seek the best for others and to do things for their benefit]. 8. 이런 것이 너희에게 있어 흡족한즉 너희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에 게으르지 않고 열매 없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니와 For as these qualities are yours and are increasing [in you as you grow toward spiritual maturity], they will keep you from being useless and unproductive in regard to the true knowledge and greater understanding of our Lord Jesus Christ. 9. 이런 것이 없는 자는 맹인이라 멀리 보지 못하고 그의 옛 죄가 깨끗하게 된 것을 잊었느니라 For whoever lacks these qualities is blind—shortsighted [closing his spiritual eyes to the truth], having become oblivious to the fact that he was cleansed from his old sins. 10. 그러므로 형제들아 더욱 힘써 너희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 너희가 이것을 행한즉 언제든지 실족하지 아니하리라 Therefore, believers, be all the more diligent to make certain about His calling and choosing you [be sure that your behavior reflects and confirms your relationship with God]; for by [f]doing these things [actively developing these virtues], you will never stumble [in your spiritual growth and will live a life that leads others away from sin]; 11. 이같이 하면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에 들어감을 넉넉히 너희에게 주시리라 for in this way entry into the eternal kingdom of our Lord and Savior Jesus Christ will be abundantly provided to you. ======= ========= pivsti"(4102, 피스티스) 믿음 faith. 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 명사 피스티스(Hes., Hdt.이래)는 다음과 같은 의미를 지닌다. (a) 피스티스는 '신뢰, 확신, 확실성, 확고한 확신'을 의미한다. (b) 피스티스는 사람이 가지는 확신 뿐만 아니라 사람이 향유하는 확신, 즉 '신뢰할 수 있음, 의지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이것은 차이가 있을지라도 확실성이나 신뢰성과 관련되어 있다. (c) 피스티스는 신뢰의 가능성, 의지할 수 있는 것을 보장하는 '보증, 증명, 증거, 신실성'을 의미한다. 2. 70인역본의 용법 명사 피스티스는 70인역본에서 약 55회 나오며, 주로 히브리어 에무나(경고, 충실, 성실, 확고부동의 믿음)의 역어로 사용되었다. 3. 신약성경의 용법 명사 피스티스는 신약성경에서 약 230회 나오며, 다음과 같이 사용되었다. (a) 피스티스는 '신실성, 신뢰성'을 의미한다: 마 23:23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를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의와 인과 신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롬 3:3; 딛 2:10; 갈 5:22; 살후 1:48. (b) 피스티스는 '엄숙한 약속, 서약'을 나타낸다: "처음 [믿음]을 저버렸으므로 심판을 받느니라"(딤전 5:12). (c) 피스티스는 '증거, 보증'을 의미한다: 행 17:31 "이는 정하신 사람으로 하여금 천하를 공의로 심판할 날을 작정하시고 이에 저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것으로 모든 사람에게 [믿을 만한 증거]를 주셨음이니라 하니라"; 딤후 4:7. (d) 피스티스는 '신뢰, 확신, 믿음'을 나타낸다. ① 하나님에 대하여, 막 11:22; 벧전 1:21; 히 6:1; 살전 1:8; 롬 4:5; 롬 4:9; 롬 4:11-롬 4:13; 롬 4:16; 롬 4:19이하 등. ② 그리스도에 대하여, 마 8:10; 마 9:2; 마 9:22; 마 9:29; 마 15:28; 막 2:5; 마 4:40; 마 5:34; 마 10:52; 눅 5:20; 눅 7:9; 눅 7:50; 눅 8:25; 눅 8:48; 눅 17:19; 눅 18:42. 롬 3:23; 롬 3:26; 갈 2:16; 갈 2:20; 갈 3:22; 엡 3:12; 빌 3:9; 약 2:1; 계 14:12. (e) 피스티스는 '신앙의 내용, 교리'를 나타낸다: 유 1:3, 유 1:20; 롬 1:5; 갈 1:23; 갈 3:23이하; 딤전 1:19; 딤전 4:1, 딤전 4:6; 딤전 6:10; 딤후 2:18; 롬 12:6; 딤후 4:7. (참조: Walter Bauer; A.Weiser; O.Michel). =============== ajrevth(703, 아레테) 덕 virtue. 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 명사 이레테(Homer 이래)는 많은 의미를 지니고 있지만 기본적으로 다음과 같은 의미를 가진다. (a) 업적이나 타고난 재능, 또는 이 둘 모두에서 '탁월, 뛰어남'을 의미한다. (b) '남자다움'이나 용맹 (c) 명예와 관련해서 칭찬받을 만한 '공적'이나 '행사'. (d) 철학에서 '미덕'(virtue ) (e) 신들의 '자기 선포'. 호머는 신들의 아레테와 신들의 권능의 시위의 아레테에 대하여 말하였다. (f) '명성'(참조: O.Bauermfeind). 2. 70인역본의 용법 (a) 아레테는 70인역본에서 약 33회 나오며, 히브리어 테힐라(찬양할만한 행동, 여호와의 찬양, 사42:8,12; 43:21; 63:7)과 호드(위업, 영광, 합 3:3; 슥 6:13, 2회)의 역어로 사용되었다. 이 예문들 중의 어느 한 곳에서도 이 단어를 역사상, 여호와의 사역(여호와의 사역은 특히 이사야서에서 두드러지게 묘사됨)과 관련된 구약적 개념과 다른 의미로 사용하지 않고 있으며, 따라서 헬라적 개념과는 일치하지 않는다. (b) 아레테는 마카베오서들 특히 마카베오사서에서 자주 언급된다. 마카베오이서 6:31에서 엘리아잘(Eleazar)의 순교는, 그의 아레테(arete)를 기념하는 것이라고 지칭된다(참조: 마카베오사서 1:8,10). 마카베오사서에서 아레테는 종종 믿음에 대한 순교자들의 충절을 의미하는데 이 충절을 그들은 고난과 고문에도 불구하고 죽기까지 유지하였던 것이다(마카베오사서 7:22; 9:8,18; 10:10; 11:2; 17:12,17). 동시에 우리는 아레테에 대한 헬라적 개념을, 즉 담대함(마카베오이서 15:17), 용맹스러움(마카베오사서 17:23), 영리함(마카베오사서1:2), 또는 이성(마카베오사서 1:30) 등의 개념으로도 쓰인 예를 발견한다. 헬라적 영향은 솔로몬의 지혜서에서도 발견할 수 있으니 곧 솔로몬의 지혜서 5:13에서 덕이 악과 대조되며, 또한 솔로몬의 지혜서 4:1에서는 덕이 불멸성과 함께 결합되어 있다. 솔로몬의 지혜서8:7에서는 4가지의 플라톤적 기본 미덕들이 지칭되고 있다 (참조: H.-G Lind; A.Ringwald). 3. 신약성경의 용법 아레테는 신약성경에서 5회 나오며, 빌립보서와 베드로전후서에만 사용되었다. (a) 아레테는 빌 4:8에서 인간의 미덕으로써 '탁월, 우수'를 의미한다: "종말로 형제들아 무엇에든지 참되며 무엇에든지 경건하며 무엇에든지 옳으며 무엇에든지 정결하며 무엇에든지 사랑할 만하며 무엇에든지 칭찬할 만하며 무슨 [덕이] 있든지 무슨 기림이 있든지 이것들을 생각하라". 바울은 '무엇에든지 참되며'라는 어구 등의 나열에서 이 단어를 '찬양(기림)'이라는 말 옆에 두는데, 만약 여기 나열된 것이 주로 종교적인 의미를 지닌다면, 바울이 마음에 두고 있는 것은 의인이 삶과 죽음에서 유지해야만 하는 '탁월'(excellence)이다. (b) 벧후 1:5에서 아레테는 미덕, 용기, 혹은 도덕적 능력을 의미한다: "이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이것은 그리스도교인의 의무를 행함에 있어서 부차적으로 얻어지는 용기이다. 또한 시험을 견디는 과정에서 발전되는 도덕적 능력이다(E.R.Fuhrman). (c) 벧전 2:9에서 아레테는 하나님의 아레테이다: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벧전 2:9은, 70인역본 사 43:21의 인용이므로 목적격 복수 아레타스(aretas)는 이사야서에 나오는 바와 같이(위의 구약성경 1을 보라) 찬양할 만한 행동들(praiseworthy acts)로 번역되어야 한다. 이것들은 하나님의 과거의 백성들과 또한 새로운 백성들에 의해 선포되어야 하는 것이다. 벧후 1:3에서도 하나님의 아레테를 나타낸다: "그의 신기한 능력으로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으니 이는 자기의 영광과 [덕]으로써 우리를 부르신 자를 앎으로 말미암음이라". 본문에서는 더 많은 헬라 사상들이 나타나는 것 같다. 이곳에서는 아레테와 함께 독사(영광)와 뒤나미스(능력)가 언급된다. 이곳에서 아레테는 하나님의 완전하신 속성을 언급하는데 이 속성은 그 능력(뒤나메이스)의 나타나심으로 말미암아 인간들에게 은사들을 부여하였고, 그럼으로 인하여 그들은 4절에 나타나는 바와 같이 신의 성품(데이아스 퓌세오스), 즉 하나님의 완전하신 덕에 참여하는 자가 되는 것이다(참조: 마 5:48). 여기에 신의 성품과 인간의 성품의 관련성이 있다(참조: 행 17:28). (참조: J.H.Thayer; R.P.Martin; H.-G.Lind; A.Ringwald; O.Bauernfeind). ======================= gnw'si"(1108, 그노시스) 지식 knowledge. 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 명사 그노시스는 기노스코(ginwvskw, 1097: 알게되다, 지각하다, 알다, 깨닫다)에서 유래했다. (a) 그노시스는 '지식의 수단' means of knowing, '사고' thowght, '판단' Judgment, '의견' opinion을 의미한다. (b) 그노시스는 에피스테메(ejpisthvmh: 이해, 지식)와 관련되어 있는 것으로 목적을 나타내는 속격을 필요로 하며, 지식 자체보다는 아는 행위를 암시한다. 이 행위는 사물 뿐만 아니라 사람에 대하여, 모든 지식(인식) 기관 및 방식, 예를 들면 보고 듣고 조사하고 경험함으로 말미암아 아는 모든 지식(인식)기관 및 방식을 포함한다. 그렇지만 지식은 절대로 눈에 의한 확인, 검증을 함축한다. 따라서 지배적인 개념은 객관적 관찰에 의한 지식의 개념이다. 이 개념은 헬라의 현실관(실재관)과 관련된다. 실재는 다양한 형태들과 형상들로, 즉 실재를 형태 지우는 여러 요소들과 원리들로 이루어져 있다. 참된 실체는 모든 변화 속에서도 변치 않는 무시적(timeless)인 실재이다. 이 참된 실체를 보거나 아는 사람들은 이것을 소유하고 통제한다. 그러므로 참된 것을 아는 지식은 인생에서 최고의 가능성을 가져다 준다. 아는 자들은 영원한 것에 참여한다. 따라서 그들은 플라톤이 생각한 것처럼 올바른 정치적 행위를 할 수 있거나 아리스토텔레스가 생각하는 바처럼 무사 무욕한 과학적 성찰의 이상을 성취할 수 있다. (c) 그노시스의 영지주의의 용법. 그노시스에 대한 헬라니즘과 특별히 영지주의의 용법은 어느 정도 고전적 개념 발전에 뒤따르지만, 또한 구원에로 인도하는 은밀한 지식이 명상하는 신비 종교(mysteries)의 신앙과 그 지식이 초자연적 힘을 주는 마법 같은 것들에서 유래된다. ① 그노시스는 아는 행위 뿐만 아니라 지식 그 자체를 의미하며, 따라서 강조점은 일반적으로 아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아는 것에 두고 있다. 하나님은 그노시스의 자명한 대상이며, 생성하는 다른 모든 것과 구별된다. 따라서 이 세상으로부터 돌아섬으로써만이, 즉 특별한 종류의 지식에 의해서만이 하나님을 알 수 있다. ② 영지주의의 지식은 누스(nou'", 3563)나 로고스(lovgo", 3056)의 활동이 아니라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시는 카리스마(cavrisma, 5486)이다. 즉 이 지식은 무아경적 환상이나 신비한 환상에 의한 조명(illumination)이다. 이 지식은 소유할 수 없지만 이 지식에 이르는 길에 대한 지식은 얻을 수 있다. 그러나 참된 영지주의에서 이 예비적 지식은 입교 훈련에 의해 얻게 되는 비교적(esoteric)지식이며, 가르침은 철학적 가르침보다는 입회자에 대한 가르침이다. 따라서 이 지식을 얻는데 요구되는 것은 과학적인 탐구보다는 믿음에 대해 듣는 것이다. 초기 단계에서 신성한 전승에 의해 주어지는 이 지식은 죽음 후에 영혼의 승천을 보증한다. 더 높은 단계에서 입회자의 신생(regeneration)은 효험 있는 신비한 신조와 같은 말을 들음으로 일어난다. 이 교의의 내용은 우주론과 인간론을 포함한다. 그런데 이것은 항상 구원에 이르게 하는 자아, 즉 빛의 세계에서 온 영혼으로서의 자아 - 이 자아는 물질에 얽혀 있기 때문에 이 물질 세계를 외면함으로써 그것의 참된 본향으로 돌아가야 한다 - 에 대한 지식에 관한 것이다. ③ 영지주의의 지식은 신성의 부여를 수반한다. 이 지식은 죽음을 몰아내는 신적 능력이며, 마치 빛이나 생명과 동일시되는 어떤 마술적인 액체처럼 작용하며, 금욕적인 생활 방식에 의해 보장되는 영혼의 신비적 속성을 이루는 것이다. 2. 70인역본의 용법. 명사 그노시스는 70인역본에서 약 60회 나오며, 히브리어 다아트(1841: 지식)의 역어로 사용되었다. 그노시스는 그 창시자가 지식의 하나님이시며(대상 4:10; 지혜서 1:7; 마카베오이서 6:30; 사 40:14), 의인들이 소유하고 있으며(잠 24:26; 잠 16:8; 잠 2:6; 지혜서 7:17), 하나님의 현자나 종이 가르치는(사 53:11) 계시된 지식을 의미한다. 죄인들, 배교자들, 우상숭배자들은 이 지식을 가지고 있지 않다(잠 13:19). 이 지식은 하나님의 계획에 대한 통찰을 의미하기도 한다(단 12:4). 이 지식은 인간의 이해력을 초월하는 것이긴 하지만(시 139:6) 모든 피조물은 신자들에게 이 지식을 선포한다(시 92:2). 3. 신약성경의 용법. 명사 그노스시는 신약성경에서 29회 나오며, 바울 서신에 23회, 누가복음에 2회, 베드로서에 4회 사용되었다. (a) 눅 1:77, "주의 백성에게 그 죄 사함으로 말미암는 구원을 알게 하리니". 여기서 "구원을 알게 하리니"는 '구원의 지식을 주는 것'을 의미한다. (b) 눅 11:52, "화 있을찐저 너희 율법사여 너희가 지식의 열쇠를 가져가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또 들어가고자 하는 자도 막았느니라 하시니라". 여기서 그노시스는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에 관하여 알려진 것을 가리킨다. (c) 그노시스는 고후 4:6에서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것이다: "어두운데서 빛이 비취리라 하시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취셨느니라". (d) 그노시스는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 그리스도를 구주로서 아는 것이다. ① 빌 3:8,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② 벧후 3:18, "오직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저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 가라 영광이 이제와 영원한 날까지 저에게 있을찌어다". (e) 그노시스는 롬 11:33에서 하나님께 속하는 것을 아는 지식이다: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이여, 그의 판단은 측량치 못할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 (f) 그노시스는 엡 3:19에서 그 자체로서 일반적인 '지성, 이해(력)을 의미한다: "그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g) 그노시스는 기독교에 대한 일반적 지식을 가리킨다. ① 롬 15:14, "내 형제들아 너희가 스스로 선함이 가득하고 모든 지식이 차서 능히 서로 권하는 자임을 나도 확신하노라". ② 고전 1:5, "이는 너희가 그의 안에서 모든 일 곧 모든 구변과 모든 지식에 풍족하므로". (h) 그노시스는 보다 더 고등한 것에 속하는 기독교에 대한 더 깊고 완전하고 큰 지식을 가리킨다. ① 고전 12:8, "어떤이에게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말씀을, 어떤이에게는같은 성령을 따라 지식의 말씀을,". ② 고전 13:2, "내가 예언하는 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찌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 ③ 고전 13:8, "사랑은 언제까지든지 떨어지지 아니하나 예언도 폐하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폐하리라". ④ 고전 14:6, "그런즉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서 방언을 말하고 계시나 지식이나 예언이나 가르치는 것이나 말하지 아니하면 너희에게 무엇이 유익하리요". ⑤ 고후 6:6, "깨끗함과 지식과 오래 참음과 자비함과 성령의 감화와 거짓이 없는 사랑과". ⑥ 고후 8:7, "오직 너희는 믿음과 말과 지식과 모든 간절함과 우리를 사랑하는 이 모든 일에 풍성한것 같이 이 은혜에도 풍성하게 할찌니라". ⑦ 고후 11:6, "내가 비록 말에는 졸하나 지식에는 그렇지 아니하니 이것을 우리가 모든 사람 가운데서 모든 일로 너희에게 나타내었노라". (i) 그노시스는 특히 그리스도에게 합당한 것과 합당치 않는 것들에 대한 지식을 가리킨다. ① 고전 8:1, "우상의 제물에 대하여는 우리가 다 지식이 있는 줄을 아나 지식은 교만하게 하며 사랑은 덕을 세우나니". ② 고전 8:7, "그러나 이 지식은 사람마다 가지지 못하여 어떤이들은 지금까지 우상에 대한 습관이 있어 우상의 제물로 알고 먹는고로 그들의 양심이 약하여지고 더러워지느니라". ③ 고전 8:10; 고전 8:11, "10 지식 있는 네가 우상의 집에 앉아 먹는 것을 누구든지 보면 그 약한 자들의 양심이 담력을 얻어 어찌 우상의 제물을 먹게 되지 않겠느냐 11 그러면 네 지식으로 그 약한 자가 멸망하나니 그는 그리스도께서 위하여 죽으신 형제라". (j) 그노시스는 거짓 교사들이 자랑하는 그리스도교와 하나님의 일들에 대한 더 높은 지식을 가리킨다: "디모데야 네게 부탁한 것을 지키고 거짓되이 일컫는 지식의 망령되고 허한 말과 변론을 피하라"(딤전 6:20). (k) 그노시스는 올바른 삶에서 나타나는 영적 지혜를 가리킨다: "이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벧후 1:5). (l) 그노시스는 다른 사람들과 교제에서 나타나는 영적 지혜를 가리킨다: "남편 된 자들아 이와 같이 지식을 따라 너희 아내와 동거하고 저는 더 연약한 그릇이요 또 생명의 은혜를 유업으로 함께 받을 자로 알아 귀히 여기라 이는 너희 기도가 막히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벧전 3:7). (m) 그노시스는 객관적 지식, 즉 하나님의 일들과 사람의 의무에 관하여 알려진 것을 가리킨다. ① 롬 2:19, "네가 율법에 있는 지식과 진리의 규모를 가진 자로서 소경의 길을 인도하는 자요 어두움에 있는 자의 빛이요". ② 골 2:3, "그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취어 있느니라". (n) 그노시스와 소피아(4678: 지혜)가 함께 사용될 때, 전자는 그 자체로 고려되는 지식을, 후자는 행동에서 드러나는 지혜를 암시하는 것 같다: 롬 11:33; 고전 12:8; 골 2:3. 그노시스는 단순히 직관적인 것이고, 소피아는 추론적인 것이다. 또한 그노시스는 주로 진리에 대한 이해에 적용되고, 소피아에는 진리를 추론하는 능력과 그들의 관계를 추적하는 능력이 첨가된다.(Bp. Lghtft). ① 롬 11:33,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이여, 그의 판단은 측량치 못할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 ② 고전 12:8, "어떤이에게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말씀을, 어떤이에게는 같은 성령을 따라 지식의 말씀을,". ③ 골 2:3, "그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취어 있느니라". (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R. Bultmann; E. D. Schmitz). ================== ejgkravteia(1466, 엥크라테이아) 자제 self-control. 명사 엥크라테이아(Xen., Pla. 이래)는 엥크라테스(ejgkrathv", 1468: 강한, 지배하는, 억누르는, 자제하는)에서 유래했으며, '확고성'과 '자제'라는 어감을 지닌, 자신이나 어떤 것에 대한 '지배권'을 의미한다. 이 단어는 성적 문제에 관련된 억제, 참을성, 견실이란 의미의 자제(self-control)도 의미한다. 소크라테스는 엥크라테이아를 윤리학에서 중요한 덕목의 하나로 처음으로 소개한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도 이 개념을 채용했다. 플라톤에 있어서 엥크라테이아는 감각적 충동에 대한 통제력을 의미한다. 스토아 학파에서는 엥크라테이아가 인간 자유의 표시로써 간주되었다. 충동, 특히 성적 충동과 음식과 음주의 향락을 삼가는 것은 참된 인간이 되는데 있어서 없어서는 안될 부분이다. 신-피타고라스 학파는 이원론적인 체계를 발전시켰는데 그들에 따르면, 육체는 영혼이 신에게 갈 수 있도록 금욕을 통하여 억제되어야 한다고 했다. 금욕주의는 고대 세계에서 사람들을 제의적인 예배에 적응하도록 함으로써 큰 역할을 하였다. 필로(Philo)는 엥크라테이아를 충동과 열정을 초월하는 덕이라고 격찬하였다(Spec. Leg.). 예수님 당시의 에세네파 사람들(Essenes)은 독신을 권장하였고, 여러가지 다른 방법으로 금욕하며 살았는데, 예를 들면 소유와 음식에 대한 금욕과 철야 등이다(Josephus, War). 2. 70인역본의 용법. 명사 엥크라테이아는 70인역본에서 외경에서 3회 나오며, '억제'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집회서 18:30; 8:21; 마카베오사서 5:34). 3. 신약성경의 용법. 명사 엥크라테이아는 신약성경에서 4회 나오며, 다음과 같이 사용되었다. (a) 행 24:25, "바울이 의와 절제와 장차 오는 심판을 강론하니 벨릭스가 두려워하여 대답하되 시방은 가라 내가 틈이 있으면 너를 부르리라 하고". 바울은 행 24:24 이하에서 첫째로 '그리스도 안에 믿음'에 대하여 그 다음에 의와 '절제'에 대하여 말한다. 이 말씀에서 "절제"는 아마 불의 (간통)의 결과인 지방 행정 장관 벨릭스의 결혼을 암시하는 말일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단순히 누가가 사도행전에서 계속 언급하고 있는 금욕주의적 경향을 표현하는 것일 수도 있다(참조: 행 2:44 이하; 행 4:32). (b) 갈 5:23,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바울은 엥크라테이아를 "성령의 열매"로 묘사한다. 여기에서 자제 혹은 절제는 분명히 간음(포르네이아), 불순, 방탕, 우상숭배(갈 5:19)에 반대되는 긍정적인 행동이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식대로 생활을 꾸려나갈 수 있는 수단인 엥크라테이아는 결코 우리들의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언제나 우리들이 복음에 의탁함으로써 성령의 선물로 새로이 받아야 하는 것이다. 문제는 여기의 엥크라테이아가 단지 성적 측면에만 관련되느냐 혹은 더 포괄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느냐에 있다. 그러나 우리가 파악해야할 것은 바울이 성적 금욕주의에 높은 평가를 내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성적 금욕주의가 결코 이원론적으로 고정되지 않고(위의 고전 문헌) 본유적 가치도 얻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c) 벧후 1:6,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여기서 절제는 지식의 사용에 관여한다. 절제란 모든 행사를 적절(법)하게 행하는 내적이며 외적인 자기 조절을 의미한다(E. R. Fuhrman). 여기서 엥크라테이아를 금욕주의적 의미로 이해하면 안된다. 이 용어는 오히려 자신을 제어하는 능력을 지닌다는 본래의 의미로 사용되어 있으나, 그러나 그 능력은 어떤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 같이 자기 실현을 기반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신앙(벧후 1:5; 벧후 1:6)으로부터 오는 지식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이것은 신자가 곤고를 방지하기 위하여 필요한 인내를 위한 선결 조건이다.(H. Baltensweiler). ================ uJpomonhv(5281, 휘포모네) 견고히 섬, 인내. 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 명사 휘포모네(ps. -pla.)는 휘포메노(uJpomevnw, 5278)에서 유래했으며, (a) '견고히 섬, 확고부동, 인내', (b) '기대, 기다림'를 의미한다. 2. 70인역본의 용법. 명사 휘포모네는 70인역본에서 약 25회 나오며, 히브리어 미크웨(기대, 소망, 에스드라하 10:2; 렘 14:8; 렘 17:13), 티크와(소망, 시 9:19; 시 61:6; 시 70:5; 욥 14:19)의 역어로 사용되었다. 3. 신약성경의 용법. 명사 휘포모네는 신약성경에서 32회 나오며, 다음과 같이 사용되었다. (a) 공관복음. 눅 21:19, "너희의 인내로 너희 영혼을 얻으리라". 누가가 사용한 명사형은 씨뿌리는 자의 비유에도 있다: "좋은 땅에 있다는 것은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지키어 인내로(엔 휘포모네) 결실하는 자니라"(눅 8:15; 참조: 마 13:23; 막 4:20). 이 비유에 대한 누가의 진술에만 휘포모네가 언급되어 있고, 반면 마가와 마태는 누가가 빠뜨린 풍성한 결실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이는 그의 복음서를 이방 세계에 소개한다는 성격에서 연유한 것인지도 모른다. 이 비유는 열매 맺는 것을 방해하는 염려와 재물과 향락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 반면, 앞에 언급한 종말론적 강화는 시험과 환난에 연결시키고 있다. 즉 두 경우가 다 인내를 전제 조건으로 하고 있다. 한 경우에는 구원에 대하여, 한 경우에서는 말씀의 열매를 맺는 것에 대해서이다. (b) 바울서신. ① 로마서에서 휘포모네가 나타난다. 인간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생을 영위하고자 한다면, 그에게는 휘포모네가 필요하다: [참고] "선을 행하여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에게는 영생으로 하시고"(롬 2:7). 이 구절은 "선행 중의 꾸준한 인내"(NEB)라는 능동적 의미와 고난 중의 끈질긴 인내라는 수동적 개념, 이 양자 가운데서 어떠한 해석을 하더라도 무방하다(참조: M. Black). 롬 5장에서 바울은, 의롭다 함을 받은 신자가 어떻게 하여 고난까지도 유익한 것으로 삼을 수 있는가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그는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참조: 롬 5:2) 즐거워한다. 나아가서는,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들리프세신)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들리프시스)은 인내(휘포모넨)를, 인내(휘포모네)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소망이 부끄럽게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롬 5:3 이하). 롬 8:25에서 소망은,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인내로써 기다린다는 특징을 띠고 있다: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찌니라". 여기의 문맥상 배경은 피조물의 고통에 대한 언급이다(참조: 롬 8:23).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지니라"(롬 8:25). ② 고린도후서에서 바울은 인내의 문제를, 특히 교회를 위해 자신이 행하는 주의 일과 관련시켜 언급하였다. "우리가 환난 받는 것도 너희의 위로와 구원을 위함이요 혹 위로 받는 것도 너희의 위로를 위함이니 이 위로가 너희 속에 역사하여 우리가 받는 것 같은 고난을 너희도 견디게 하느니라"(고후 1:6). 고후 6:4과 고후 12:12은 바울 자신의 사도적 인내를 언급하고 있다. ③ 바울은 골로새 교인들을 위한 기도에서 인내를 언급한다: "그 영광의 힘을 좇아 모든 능력으로 능하게 하시며 기쁨으로 모든 견딤과 오래 참음에 이르게 하시고"(골 1:11). ④ 살전 1:3에서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소유한 '소망의 인내'가 하나님께 대한 바울의 특별한 감사의 원인으로서 작용한다. 살후 1:4에서 바울은 하나님의 여러 교회에서 그들의 인내와 믿음에 대해 친히 자랑한다고 기록하고 있다. 또 살후 3:5에서 바울은 기도한다: "주께서 너희 마음을 인도하여 하나님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인내에 들어가게 하시기를 원하노라"(참조: 히 12:2 이하). 데살로니가인들은 그들의 주께서 보여 주신 인내를 가지도록 권면을 받고 있다. 주는 그들이 본받아야할 인내의 모범을 보이셨던 것이다.(L. Morris). ⑤ 목회 서신에서 인내는, 기독교 사역자들(딤전 6:11; 딤후 3:10)과 노인들(딛 2:2)에게 필요한 하나의 자질로서 묘사된다. (c) 히브리서에서 휘포모네는 인내에 대한 권면에 나타난다(히 10:36; 히 12:1). 히브리서 기자는 지속적 인내를 강력히 촉구하고 있다. 즉 지난날 세상의 소유물까지 손실하면서 참았으니 지금도 참을 것이며(히 10:32; 참조: 히 10:34),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을 받기 위하여" 참아야 한다(히 10:36). 징계는 하나님의 자녀됨의 증거이니 참아야 한다(히 12:7). (d) 야고보도 시련이 믿음을 굳게 하고 인내를 강화하여 온전함에 이르게 한다고 증거한다(약 1:3-4). 욥은 그에 관한 훌륭한 예이다(참조: 약 5:10). 욥의 경우처럼 만일 신자들이 굳게 인내하면 하나님은 반드시 그들에게 긍휼을 베푸실 것이다(약 1:11; 참조: 약 1:12; 마 5:12). (e) 벧후 1:6에서는 일련의 미덕을 진술하는 가운데 휘포모네를 두번 언급하였다: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롬 5:3 이하, 그리고 약 1:3 이하와 유사한 면이 있는 구절이다. (f) 요한계시록에서 인내는,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의 증거를 인하여"(계 1:9) 밧모섬에 유배당한 요한 자신이 겪어야 했던 것이기도 했다(계 1:9). 성령께서는 두아디라와 에베소의 교회들에 대해, 그들의 인내를 칭찬하신다(계 2:2 이하; 계 2:19). 빌라델비아 교회 역시 유사한 위로의 말씀이 주어진다. "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내가 또한 너를 지키어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니 이는 장차온 세상에 임하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시험할 때라"(계 3:10). 짐승과의 싸움을 위해 다음과 같이 권고한다: "성도들의 인내와 믿음이 여기 있느니라"(계 13:10).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저희는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계 14:12). (참조: U. Falkenroth; C. Brown; F. Hauck). ================ eujsevbeia(2150, 유세베이아) 경건, 신앙심 깊음, 하나님을 두려워함(경외함). 1. 고전 헬라어 문헌 유세베스 어군의 단어들(유세베스, 유세베이아, 유세베오)은 다음과 같은 의미를 나타낸다. (a) 이 단어군는 일반적으로 신들과 관련되어 있으며, 신들에게 대한 적절한 태도로서 '경건 piety'이란 의미를 지닌다. (b) 신들과 신전들은 별도로 하고, 존경의 대상은 '죽은 자, 친척, 통치자, 재판관, 맹세, 율법, 선한 자' 등이 될 수 있다. 이 모든 것이 신의 보호를 받고 있기 때문에 이 세 단어들은 끊임없이 신들과 관계를 가지게 된다. (c) 플라톤은 선을 행함으로 신들을 섬기는 것을 경건으로 여기며, 그러나 일반적으로는 경건을 제의적인 예배와 동일한 것으로 보았다. 그러나 거기서도 자주 지식이나 내적 헌신의 태도를 요구하였다. (d) 헬레니즘 시대에 특히 유세베이아의 주요 의미는 예배였지만 여전히 친족, 배우자 혹은 황제에 대한 존경을 의미하기도 하였다. 철학자들은 신들의 뜻에 따라 사는 것을 참된 경건으로 보았다. 플루타르크에게 있어서 미신과 구별되는 참 경건은 신들이 보기에 선한 것을 기대한다는 것이다. 예배는 신과 동일시 될 수 있는 위대하고 고상한 것에 대한 존경을 의미한다. 이 때에 경건은 무조건적인 인격적 위탁이 아니라, 순수하고 숭고한 신성의 세계에 대한 경외, 제의적인 예배 그리고 질서에 대한 존경으로서의 덕인 것이다. 따라서 유세베이아는 유세베스(eujsebhv", 2152)에서 유래했으며, '경건, 신앙심 깊음, 하나님을 두려워함' 이란 의미를 지니며, 앞에서 보인 의미를 함축한다. 2. 70인역본의 용법 유세베이아는 70인역에서 58회 나오며, 정경에서 야레(두려워하다)와 야레 예호와(여호와를 두려워하다)의 역어로 사용되었다. 따라서 이 단어는 정경에서 '경외함'(잠 1:7; 사 33:6), "여호와를 경외함"(사 11:2)이란 의미를 나타낸다. 3. 신약성경의 용법 유세베이아는 신약성경에서 15회, 사도행전, 목회서신, 베드로후서에만 나온다. (a) 행 3:12에서 베드로는 "경건"을 "예수로 말미암마 난 믿음"이라고 주장한다: "우리 개인의 권능과 [경건]으로 이 사람을 걷게 한 것처럼 왜 우리를 주목하느냐… 예수로 말미암아 난 믿음이 너희 모든 사람 앞에서 이같이 완전히 낫게 하였느니라"(행 3:12; 행 3:16). (b) 목회서신에서 유세베이아는 기독교인의 그리스도 안에서의 경건한 삶 또는 그 방식을 나타낸다. 딤전 3:16에 보면, 그리스도인의 경건한 삶은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근거로 하고 있는 것이며, 그 비밀은 육신으로 나타난 하나님의 계시이다. [연합한 한 영으로 내주하시는, 살아계시는 JC를 살아냄!!]이제 신약성경의 경건한 사람은 자기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의 추종자로 이해한다. 결과적으로 그 논리적 귀결로서 경건은 일련의 기독교적 미덕의 하나가 되었다(딤전 6:11). 유세베이아는 거짓 가르침과 관련되어 있는 생활 방식과는 대조적으로, 건전한 가르침과 조화되는 경건이다(딤전 6:3; 딛 1:1). 이것은 거짓 교사들이 그것으로 인해 책망받았던 바, 곧 명백히 잘못된 개념으로서의 공로에 의한 의와는 다른 것이다(딤전 4:7 이하; 딤전 6:5 이하; 딤후 3:5 ). 거짓 교사들은 일종의 유세베이아를 취하지만 그들의 삶이 경건으로 구성되지 않으며, 그들은 이득을 얻기 위해 경건을 이용한다(딤후 3:5; 딤전 6:5-딤전 6:6). 그래서 그들은 참된 경건의 유익을 놓쳐버리고 만다. 그리스도인의 유세베이아는 도덕적인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경건은 그리스도 사건에 근거하고 있기 때문이다(딤전 3:16). 그리스도인의 유세베이아는 외면적인 예배가 아니며 단순한 하나님 개념도, 미덕도, 이상도 아니다. 창조를 악한 것으로 여기며, 창조 질서를 소멸시키는 영지주의적 금욕주의와는 대조적으로, 신앙에서 생겨난 참 유세베이아는 하나님을 창조주이자 구세주로 존경하는 일상적인 행동을 포괄한다. 비록 이로 인하여 경건과 관련되어 있는 바로 그 하나님의 질서로 인하여 박해가 예상된다 하더라도 참 유세베이아는 유지되어야 한다. 유세베이아라는 용어는 저자가 유세베이아를 나타내는 생활 방식이, 이를 중히 여기는 비그리스도인들로부터 좋은 평을 들을 수 있으리라고 기대하고 있기 때문에 여기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같다. 이런 점에서 유세베이아는 내생에 뿐만 아니라 이생에서도 유익한 것이다(딤전 4:8). (c) 벧후 3:11 이하에서 유세베이아는 꾸준히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리며 살아가는 기독교인의 삶의 방식으로 간주되며, 여기서 복수형은 경건한 행동을 전부 포괄한다. 벧후 1:3에 단수형이 나오며, 경건 생활을 의미한다. 그리스도의 은사는 우리가 좀더 경건한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돕기 위해 내려 주신다. 이것은 하나님과 거룩한 것들로 더욱 더 나아가는 삶을 말하는 것이다. 벧후 1:6 - 벧후 1:7에서 자제는 약속에 대한 끊임없는 기다림에 이르게 되고, 이 기다림은 경건에, 그리고 이 경건은 차례로 형제 우애와 사랑에 이르게 된다. (참조: W.Gunther; J.H.Thayer; W.Foerster). ============ filadelfiva(5360, 필라델피아) 형제애 brotherly love 1. 고전 헬라어 문헌 및 70인역본의 용법. 명사 필라델피아(Alexis. Lusian)는 필라델포스(filavdelfo", 5361: 형제를 사랑하는)에서 유래했으며, '형제에 대한 사랑, 형제애'를 의미한다. 70인 역본에서는 마카베오사서 13:23, 26에 나온다. 2. 신약성경의 용법. 명사 필라델피아는 신약성경에서 6회 나오며, 신약성경에서 '그리스도인들이 형제들인 서로를 향하여 품는 사랑'을 가리킨다. ·롬 12:10, "형제를 사랑하여 서로 우애하고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하며" ·살전 4:9, "형제 사랑에 관하여는 너희에게 쓸것이 없음은 너희가 친히 하나님의 가르치심을 받아 서로 사랑함이라" ·히 13:1, "형제 사랑하기를 계속하고" ·벧전 1:22, "너희가 진리를 순종함으로 너희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 거짓이 없이 형제를 사랑하기에 이르렀으니 마음으로 뜨겁게 피차 사랑하라" ·벧후 1:7,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공급하라" (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 ajgavph(26, 아가페) 사랑 love. 1. 성경 외의 용법. 명사 아가페는 아가파오(ajgapavw, 25: 사랑하다)에서 유래한 후기 헬라어이며, 성경 외의 문헌에서는 단 한번 발견되는데, 바로 여신 이시스(Isis)에게 아가페라는 칭호가 붙여졌다(P.Oxy. 1380, 109; A. D. 2세기). --> 아가파오(ajgapavw, 25) 2. 70인역본의 용법. 명사 아가페는 70인역본에서 19회 나오며 아하바(160: 사랑)의 역어로 사용되어 연애(삼하 13:5), 남녀의 사랑(렘 2:2)에 대하여 주로 사용되었으며, 아가서에서 주로 나타난다(아 2:4 이하; 3:5, 10; 5:8; 7:6; 8:4 이하). 70인역본이 의미가 복잡한 에로스보다는 오히려 보다 단순한 단어인 아가페를 사용하는 것도, 인간의 모든 사상, 감정, 행위 그리고 예배가 하나님의 선행 작용에 대한 하나의 반응이기 때문이다. 3. 신약성경의 용법. 명사 아가페는 신약성경에서 116회 나오며, '사랑, 애정, 호의, 자비심'이란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 단어는 다음과 같이 사용되었다. (a) 아가페는 인간의 사랑에 대하여 사용되었다. ① 고전 8:1; 고전 13:4-고전 13:8; 빌 1:9; 롬 13:10; 마 24:12; 롬 12:9; 고후 6:6; 딤전 1:5; 요일 4:16; 고전 13:1-고전 13:3; 빌 2:2; 고전 14:1; 딤전 6:11; 딤후 2:22; 골 3:14; 벧후 1:7; 골 1:8; 살전 1:3; 고후 8:8; 히 10:24; 빌 2:1; 벧전 5:14; 몬 1:7; 롬 14:5; 엡 5:2; 골 4:21; 엡 4:15; 고전 16:14; 엡 3:17; 엡 4:2; 골 2:2; 살전 5:13; 엡 4:16; 갈 5:13; 갈 5:6; 몬 1:9; 살전 3:6; 살전 5:8; 딤전 1:14; 딤후 1:13; 몬 1:5; 엡 6:23; 딤전 2:15; 딤전 4:12; 딤전 6:11; 딤후 2:22; 딤후 3:10; 딛 2:2; 계 2:19; 고전 13:13; 골 1:4 이하; 살전 1:3; 살전 5:8; 딤후 1:7; 롬 12:9; 고전 6:6; 벧전 4:8; 갈 5:22; 롬 15:30; 골 1:8; 살후 2:10; 엡 1:15; 골 1:4; 살전 3:12; 살후 1:3; 고후 2:4; 고후 2:8; 벧전 4:8; 요 13:35; 고후 8:7; 고전 15:24. ② 하나님을 향한 사랑. 눅 11:42; 요 5:42; 요일 2:15; 요일 3:17; 요일 4:12; 요일 5:3; 살후 3:5; 고후 7:1; 히 6:10. (b) 아가페는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사랑에 대하여 사용되었다. ①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 요일 4:9; 요일 4:16; 롬 5:8; 요일 3:1; 엡 1:4이하; 엡 2:4; 고후 13:13; 요일 4:7; 고후 13:11; 요일 4:8; 요 15:9; 요 15:10; 요 15:13; 롬 8:35; 고후 5:14; 엡 3:19. ②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관계. 요 15:10; 요 17:26; 골 1:13. (c) 아가페는 초대교회에서, 친교의 입맞춤이라는 형태로 표현되었다. 이 입맞춤은 회중 예배시, 하나의 정규적 순서였었다(예: 롬 16:16; "거룩하게 입 맞춤으로"[엔 휠레마티 하기오]). 벧전 5:14에서 "사랑의 입맞춤"(엔 휠레마티 아가페스)이라는 표현이 나타난다. 사실상 이 의식(rite)의 상세한 사항들은 전혀 알려지지 않고 있다. (d) 유 1:12에서 복수 아가파이스는 "애찬"(love-feasts)을 의미한다: "저희는 기탄 없이 너희와 함께 먹으니 너의 애찬의 암초요 자기 몸만 기르는 목자요 바람에 불려가는 물 없는 구름이요 죽고 또 죽어 뿌리까지 뽑힌 열매 없는 가을 나무요". 이 애찬은 '초대 기독교인들이 그들의 예배와 관련하여 형제적인 사랑을 북돋우고 표현하기 위해' 함께한 식사를 말한다. 이단자들은 애찬에 참석하는 것을 자기네의 탐욕과 부도덕을 증진시키는 기회로 삼았으며, 심지어 고린도 교회는 이단자들로 인하여 분열되어 파당이 생기고 술취한 자들의 난장판이 되기도 하였다(고전 11:17-고전 11:22).(D. R. Rose). [아가페는 초대 교회 의식들 중의 하나를 뜻하는 용어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여기에 대해서는 단지 암시적으로 나타나 있을 뿐이다. 고전 11:17이하는 성찬식이 평상의 식사와 함께, 후에 "애찬"(love feast, 아가페)이 주의 만찬 자체로부터 분리되었으며, 그 본연의 위치에서 거행되었다(참조: 유 12; 벧후 2:13; Ign. Smy. 8:3; Clem. Alex., Paedogogus 2, 1). 그 차이점은, 설교가 행해지는 예배나 성찬식 예배의 중심이 기쁨에 찬 신앙의 선포였던 반면, 공동 식사의 주요한 의의는 그들이 아가페 속에서 함께 나눈 특별한 친교의 실시에 있었다는 사실에서,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분명히 이와 같은 예배는 신도들이 사회적 자선 행위를 통해 자기들의 사랑을 표현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을 것이다(참조: 행 6:1이하). (W. Gunther; H.-G. Link, TBZNT)] (e) 아가페의 헬라어 의미는 대등한 사람들간의 존경과 호의이다. 기독교의 아가페는 하나님과 그의 자비 앞에서는 모두 똑같이 가치없음을 자각함으로부터 비롯된다. 이 사랑(caritas)의 정신에 의해 형제들에 대한 태도와 교제가 결정된다. 따라서 이 새로운 형제애는 에로스로 인해 타락하고, 승화된 에로스에 의해 스스로를 초월하려고 헛되이 시도하는 세상 안에서 성장하여 간다. 바꾸어 말하면 바라지 않고 주는 사랑을 아는 교회가 성장한다. 감각과 초감각이 혼합된 신비적 사교들이 아 뮈스테리아 아가페스(사랑의 비밀)의 맑고 깨끗함 앞에 굴복한다.(E. Stauff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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