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10==너예수께 조용히 나가539..눈을들어하늘보라515.변찮는주님의사랑과270..주없이살수없네292..내맘이낙심되며300..자비하신예수여395..어린양들아399.=
***Q의말씀[Q의 생각(Q의 어떠하심의 영광안에서 선재적/초월적/무한한 지혜총명명철과 지식으로 뜻하심 그대로 계획-안배-섭리 = 심사)-선포된 말씀(=증거 : 미슈파트 = 말씀과 행사), 구주께 속한자들!!! ...고립무원의 가련한자들[고난받는자, 고아-과부-나그네, 외로운/압제당하는/겸손한 자]의 왕, 구주. 열납-사랑받는 JC의 연인-신부여(Q자녀,백성-JC의 형제,친구, 제자) 롬5장을 묵상하자!!
***세상/마귀에 속한자들=포학자/악인=거절/거역/반역/경멸/경시+탐욕/탐리/교만+포학(횡포-학대)/박해/잔해(허위사기사악-교활간교-잔인야만) : Q의 교도 배워알고동행하기를 거절/조롱하며 비아냥거림 -->영적우매무지(어리석음+무지+몽매)=영적농맹아(시청각장애)
O Lord, why do you stand so far away? Why do you hide when I am in trouble? 2 The wicked arrogantly hunt down the poor. Let them be caught in the evil they plan for others. 3 For they brag about their evil desires; they praise the greedy and curse the Lord. 4 The wicked are too proud to seek God.They seem to think that God is dead. 5 Yet they succeed in everything they do.They do not see your punishment awaiting them.They sneer at all their enemies. 6 They think, “Nothing bad will ever happen to us! We will be free of trouble forever!” 7 Their mouths are full of cursing, lies, and threats.[a]Trouble and evil are on the tips of their tongues. 8 They lurk in ambush in the villages, waiting to murder innocent people. They are always searching for helpless victims. 9 Like lions crouched in hiding,they wait to pounce on the helpless. Like hunters they capture the helpless and drag them away in nets. 10 Their helpless victims are crushed; they fall beneath the strength of the wicked. 11 The wicked think, “God isn’t watching us! He has closed his eyes and won’t even see what we do!” 12 Arise, O Lord! Punish the wicked, O God! Do not ignore the helpless! 13 Why do the wicked get away with despising God? They think, “God will never call us to account.” 14 But you see the trouble and grief they cause. You take note of it and punish them.The helpless put their trust in you. You defend the orphans. 15 Break the arms of these wicked, evil people! Go after them until the last one is destroyed. 16 The Lord is king forever and ever! The godless nations will vanish from the land. 17 Lord, you know the hopes of the helpless. Surely you will hear their cries and comfort them. 18 You will bring justice to the orphans and the oppressed, so mere people can no longer terrify them.
[[시험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惻隱之心仁之端也측은지심인지단야 = 자비!! ((가련한자를))불쌍히 여기는 마음은 인(仁)의 근본(根本)임....세상을 돕는자, 그리스도인!! ==시10== --- 10:1.라마 예호와 타아모드 베라호크 타아림 레_이토트 바차라 לָמָ֣ה יְ֭הוָה תַּעֲמֹ֣ד בְּרָחֹ֑וק תַּ֝עְלִ֗ים לְעִתֹּ֥ות בַּצָּרָֽה׃ 2.베가아와트 라_샤아 이_드라크 아니 이_타페슈 빔_지모트 주 하샤부 בְּגַאֲוַ֣ת רָ֭שָׁע יִדְלַ֣ק עָנִ֑י יִתָּפְשׂ֓וּ ׀ בִּמְזִמֹּ֖ות ז֣וּ חָשָֽׁבוּ׃ 3.키-힐렐 레_샤아 알-타아와트 나프쇼 우_보체아 베레크 니_에츠 예호와 כִּֽי־הִלֵּ֣ל רָ֭שָׁע עַל־תַּאֲוַ֣ת נַפְשֹׁ֑ו וּבֹצֵ֥עַ בֵּ֝רֵ֗ךְ נִ֘אֵ֥ץ ׀ יְהוָֽה׃ 4.라_샤아 케_고바흐 아포 발-이_드로쉬 엔 엘로힘 콜 메지모타우 רָשָׁ֗ע כְּגֹ֣בַהּ אַ֭פֹּו בַּל־יִדְרֹ֑שׁ אֵ֥ין אֱ֝לֹהִ֗ים כָּל־מְזִמֹּותָֽיו׃ 5.야힐루 다레쿠 데라카우 베콜 에트 마롬 미쉬파테카 미네그도 콜 초레라우 야피아흐 바헴 יָ֘חִ֤ילוּ [דָרְכּו כ] (דְרָכָ֨יו ׀ ק) בְּכָל־עֵ֗ת מָרֹ֣ום מִ֭שְׁפָּטֶיךָ מִנֶּגְדֹּ֑ו כָּל־צֹ֝ורְרָ֗יו יָפִ֥יחַ בָּהֶֽם׃ 6.아마르 베리보 발-엠모트 레_도르 와_도르 아셰르 로-베라 אָמַ֣ר בְּ֭לִבֹּו בַּל־אֶמֹּ֑וט לְדֹ֥ר וָ֝דֹ֗ר אֲשֶׁ֣ר לֹֽא־בְרָֽע׃ 7.알라 피후 말레 우_미레모트 와_토크 타하트 레_쇼노 아말 와아웬 אָלָ֤ה פִּ֣יהוּ מָ֭לֵא וּמִרְמֹ֣ות וָתֹ֑ךְ תַּ֥חַת לְ֝שֹׁונֹ֗ו עָמָ֥ל וָאָֽוֶן׃ 8.예_셰브 베마에라브 하체림 바_미쓰타림 야_하로그 나키 에나우 레_헤레카 이_체포누 יֵשֵׁ֤ב ׀ בְּמַאְרַ֬ב חֲצֵרִ֗ים בַּֽ֭מִּסְתָּרִים יַהֲרֹ֣ג נָקִ֑י עֵ֝ינָ֗יו לְֽחֵלְכָ֥ה יִצְפֹּֽנוּ׃ 9.예-에로브 바_미쓰타르 케_아르예 베쑤코 예_에로브 라_하토프 아니 야_흐토프 아니 베_마쉬코 베리쉬토 יֶאֱרֹ֬ב בַּמִּסְתָּ֨ר ׀ כְּאַרְיֵ֬ה בְסֻכֹּ֗ה יֶ֭אֱרֹב לַחֲטֹ֣וף עָנִ֑י יַחְטֹ֥ף עָ֝נִ֗י בְּמָשְׁכֹ֥ו בְרִשְׁתֹּֽו׃ 10.와_다카 이_드케 야_쇼아흐 웨_나팔레 바_마추마우 헬레_카임 헬레 카임 [וַדָּכַה כ] (יִדְכֶּ֥ה ק) יָשֹׁ֑חַ וְנָפַ֥ל בַּ֝עֲצוּמָ֗יו [חֶלְכָּאִים כ] (חֵ֣יל ק) (כָּאִֽים׃ ק) 11.아마르 벨리뷰 샤커흐 엘 하쎄티르 파나우 발-라아 라_네차흐 אָמַ֣ר בְּ֭לִבֹּו שָׁ֣כַֽח אֵ֑ל הִסְתִּ֥יר פָּ֝נָ֗יו בַּל־רָאָ֥ה לָנֶֽצַח׃ 12.쿠마 예호와 엘 나사 야데카 알 티-쉬카흐 아니임(아나임) קוּמָ֤ה יְהוָ֗ה אֵ֭ל נְשָׂ֣א יָדֶ֑ךָ אַל־תִּשְׁכַּ֥ח [עֲנִיִּים כ] (עֲנָוִֽים׃ ק) 13.알-메 니_에츠 라_샤아 엘로힘 아마르 벨리보 로 티트로쉬 עַל־מֶ֤ה ׀ נִאֵ֖ץ רָשָׁ֥ע ׀ אֱלֹהִ֑ים אָמַ֥ר בְּ֝לִבֹּ֗ו לֹ֣א תִּדְרֹֽשׁ׃ 14.라이타 키-아타 아말 와_카이쓰 타비트 라테트 베_야데카 아레카 야_아조브 헬레카 야톰 아타 하이타 오제르 רָאִ֡תָה כִּֽי־אַתָּ֤ה ׀ עָ֘מָ֤ל וָכַ֨עַס ׀ תַּבִּיט֮ לָתֵ֪ת בְּיָ֫דֶ֥ךָ עָ֭לֶיךָ יַעֲזֹ֣ב חֵלֶ֑כָה יָ֝תֹ֗ום אַתָּ֤ה ׀ הָיִ֬יתָ עֹוזֵֽר׃ 15. 셰보르 제로아 라_샤아 와_라아 티드로쉬-리쉬오 발-티므차 שְׁ֭בֹר זְרֹ֣ועַ רָשָׁ֑ע וָ֝רָ֗ע תִּֽדְרֹושׁ־רִשְׁעֹ֥ו בַל־תִּמְצָֽא׃ 16. 예호와 멜레크 올람 와_예드 아베두 고임 메아르초 יְהוָ֣ה מֶ֭לֶךְ עֹולָ֣ם וָעֶ֑ד אָבְד֥וּ גֹ֝ויִ֗ם מֵֽאַרְצֹֽו׃ 17.타아와트 아나쉼 샤마타 예호와 타킨 리_밤 타케쉬브 오즈네카 תַּאֲוַ֬ת עֲנָוִ֣ים שָׁמַ֣עְתָּ יְהוָ֑ה תָּכִ֥ין לִ֝בָּ֗ם תַּקְשִׁ֥יב אָזְנֶֽךָ׃ 18.라_쉬포트 야톰 와_다크 발-요시프 오드 라_아로츠 에노쉬 민-하_아레츠 לִשְׁפֹּ֥ט יָתֹ֗ום וָ֫דָ֥ךְ בַּל־יֹוסִ֥יף עֹ֑וד לַעֲרֹ֥ץ אֱ֝נֹ֗ושׁ מִן־הָאָֽרֶץ׃ ------ 1.여호와여 어찌하여 멀리 서시며 어찌하여 환난 때에 숨으시나이까 2.악한 자가 교만하여 가련한 자(고립무원의 질고-간고로 어렵고 힘든, 환난-고통[=고난]당하는 자)를 심히 압박하오니 그들이 자기가 베푼 꾀에 빠지게 하소서 3.악인은 그의 마음의 욕심을 자랑하며 탐욕을 부리는 자(폭력써서 이를 추구)는 여호와를 배반하여 멸시하나이다 4.악인은 그의 교만한 얼굴로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이를 감찰하지 아니하신다 하며 그의 모든 사상에 하나님이 없다 하나이다 5.그의 길은 언제든지 견고하고(승승장구+탄탄대로..번성번영) 주의 심판은 높아서 그에게 미치지 못하오니 그는 그의 모든 대적들을 멸시하며 6.그의 마음에 이르기를 나는 흔들리지 아니하며 대대로 환난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나이다 7.그의 입에는 저주와 거짓(기만, 사기)과 포악(권리침해)이 충만하며 그의 혀 밑에는 잔해(허언/호언장담-개그/말장난)와 죄악이 있나이다 8.그가 마을 구석진 곳(잠복처)에 앉으며 그 은밀한 곳(은신처)에서 무죄한 자를 죽이며 그의 눈은 가련한 자를 엿보나이다 9.사자가 자기의 굴에 엎드림 같이 그가 은밀한 곳에 엎드려 가련한 자를 잡으려고 기다리며 자기 그물을 끌어당겨 가련한 자를 잡나이다 10.그가 구푸려 엎드리니 그의 포악으로 말미암아 가련한 자들이 넘어지나이다 11.그가 그의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잊으셨고 그의 얼굴을 가리셨으니 영원히 보지 아니하시리라 하나이다 12.여호와여 일어나옵소서 하나님이여 손을 드옵소서 가난한 자들을 잊지 마옵소서 13.어찌하여 악인이 하나님을 멸시하여 그의 마음에 이르기를 주는 감찰하지 아니하리라 하나이까 14.주께서는 보셨나이다 주는 재앙과 원한을 감찰하시고 주의 손으로 갚으려 하시오니 외로운 자가 주를 의지하나이다 주는 벌써부터 고아를 도우시는 이시니이다 15.악인의 팔을 꺾으소서 악한 자의 악을 더 이상 찾아낼 수 없을 때까지 찾으소서 16.여호와께서는 영원무궁하도록 왕이시니 이방 나라들이 주의 땅에서 멸망하였나이다 17.여호와여 주는 겸손한 자의 소원을 들으셨사오니 그들의 마음을 준비하시며 귀를 기울여 들으시고 18.고아와 압제 당하는 자를 위하여 심판하사 세상에 속한 자가 다시는 위협하지 못하게 하시리이다
1.Why do You stand afar off, O LORD? Why do You hide Yourself in times of trouble? 2.In pride the wicked hotly pursue the afflicted; Let them be caught in the plots which they have devised. 3.For the wicked boasts of his heart's desire, And the greedy man curses and spurns the LORD. 4.The wicked, in the haughtiness of his countenance, does not seek Him All his thoughts are, "There is no God." 5.His ways prosper at all times; Your judgments are on high, out of his sight; As for all his adversaries, he snorts at them. 6.He says to himself, "I will not be moved; Throughout all generations I will not be in adversity." 7.His mouth is full of curses and deceit and oppression; Under his tongue is mischief and wickedness. 8.He sits in the lurking places of the villages; In the hiding places he kills the innocent; His eyes stealthily watch for the unfortunate. 9.He lurks in a hiding place as a lion in his lair; He lurks to catch the afflicted; He catches the afflicted when he draws him into his net. 10.He crouches, he bows down, And the unfortunate fall by his mighty ones. 11.He says to himself, "God has forgotten; He has hidden His face; He will never see it." 12.Arise, O LORD; O God, lift up Your hand Do not forget the afflicted. 13.Why has the wicked spurned God? He has said to himself, "You will not require it." 14.You have seen it, for You have beheld mischief and vexation to take it into Your hand The unfortunate commits himself to You; You have been the helper of the orphan. 15.Break the arm of the wicked and the evildoer, Seek out his wickedness until You find none. 16.The LORD is King forever and ever; Nations have perished from His land. 17.O LORD, You have heard the desire of the humble; You will strengthen their heart, You will incline Your ear 18.To vindicate the orphan and the oppressed, So that man who is of the earth will no longer cause terror. ===== 주님, 어찌하여 주님께서는 그리도 멀리 계십니까? 어찌하여 우리가 고난을 받을 때에 숨어 계십니까? 악인이 으스대며 약한 자를 괴롭힙니다. 악인은 스스로 쳐 놓은 올가미에 스스로 걸려 들게 해주십시오. 악한 자는 자기 야심을 자랑하고, 탐욕을 부리는 자는 주님을 모독하고 멸시합니다. 악인은 그 얼굴도 뻔뻔스럽게 "벌주는 이가 어디에 있느냐? 하나님이 어디에 있느냐?"고 말합니다. 그들의 생각이란 늘 이러합니다. 그런데도 악인이 하는 일은 언제나 잘 되고, 주님의 심판은 너무 멀어서 그들에게 보이지 않으니, 악인은 오히려 그의 대적을 보고 코웃음만 칩니다. 그는 마음 속으로, "내가 망하는가, 두고 봐라. 나에게는 언제라도 불행과 저주란 없다" 하고 말합니다. 그들의 입은 기만과 폭언으로 가득 차 있고, 그들의 혀 밑에는 욕설과 악담이 가득합니다. 그들은 으슥한 길목에 숨어 있다가 은밀한 곳에서 순진한 사람을 쳐죽입니다. 그들의 두 눈은 언제나 가련한 사람을 노립니다. 굴 속에 웅크리고 있는 사자처럼, 은밀한 곳에서 기다리다가, 때만 만나면, 연약한 사람을 그물로 덮쳐서 끌고갑니다. 불쌍한 사람이 억눌림을 당하고, 가련한 사람이 폭력에 쓰러집니다. 악인은 마음 속으로 이르기를 "하나님은 모든 것에 관심이 없으며, 얼굴도 돌렸으니, 영원히 보지 않으실 것이다" 합니다. 주님, 일어나십시오. 하나님, 손을 들어 악인을 벌하여 주십시오. 고난받는 사람을 잊지 말아 주십시오. 어찌하여 악인이 하나님을 경멸하고, 마음 속으로 "하나님은 벌을 주지 않는다" 하고 말하게 내버려 두십니까? 주님께서는 학대하는 자의 포악함과 학대받는 자의 억울함을 살피시고 손수 갚아 주려 하시니 가련한 사람이 주님께 의지합니다. 주님께서는 일찍부터 고아를 도우시는 분이셨습니다. 악하고 못된 자의 팔을 꺾어 주십시오. 그 악함을 샅샅이 살펴 벌하여 주십시오. 주님은 영원무궁토록 왕이십니다. 이방 나라들은 주님의 땅에서 사라질 것입니다. 주님, 주님께서는 불쌍한 사람의 소원을 들어주십니다. 그들의 마음을 굳게 하여 주시고, 그들의 부르짖음에 귀 기울여 주십니다. 고아와 억눌린 사람을 변호하여 주시고, 다시는 이 땅에 억압하는 자가 없게 하십니다. ===== 그리스 말로 번역된 구약성경(칠십인역)에서는 이 시편을 제9편과 함께 합쳐 놓았다. 그러나 히브리어 역은 그것을 다른 시편으로 다루고 있으며, 이 시편의 범위와 문체는 제9편과 명확히 다르다. 이 시편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다윗은 악인들의 사악함을 호소하고 그들이 다다른 불경건의 끔찍스런 한계(그것은 하나님을 크게 모독하는 것이며, 그의 교회와 백성들을 해하는 것이다)를 묘사하고 있으며, 하나님께서 왜 그들을 멸하시는 데에 지체하시느냐고 호소하고 있다(1-11). 2. 그는 그의 백성들의 위안을 위해 하나님께 나타나시어 그들을 대적하실 것을 간구하고 있으며, 그가 합당한 때에 그렇게 하시리라는 소망으로 그 자신을 위로하고 있다(12-18). ========== 포학자들의 사악함(시 10:1-11) 다윗은 이 구절들 속에서 다음 사실을 깨닫고 있다. Ⅰ. 그는 하나님과 그의 은총을 매우 사모하고 있다. 왜냐하면 환난의 때에 그가 가장 절실하게 원망하고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의 은혜로우신 모습을 감추심에 대한 것이기 때문이다(1절). “어찌하여” 주의 이름에 행해진 모욕과 주의 백성들에게 가해진 재앙에 무관심한 자처럼, “멀리 서 계시니이까?” ...하나님의 물러가심은 어느 때나 그의 백성들에게 매우 걱정스러운 일이며, 특히 환난의 때에는 더욱 걱정스러워진다. 우리는 외적인 구원이 멀어지고 우리로부터 감추어져야 비로소 하나님께서 멀리 계시다고 생각해 내적인 위로를 원한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의 잘못이다. 그것은 우리가 외적인 면으로 판단하기 때문이다...이 때는 먼저 영적 민감성을 점검해 보라. 구후에야 비로소 시인처럼 주님께 채근할 수 있는 친밀함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 ..우리는 불신앙으로 인해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고 나서, 하나님께서 우리로부터 멀리 계신다고 원망한다..(각자는 참되게 믿음안에 서 있는지를 항상 깨어 점검해야 함!!...영적 질병상태, 즉 나병<권위 거역>-더러움<말씀 거역 : 교통의 침체>-유출병<육으로 자행자제>를 처리하자). Ⅱ. 그는 죄악에 대해 크게 분노하고 있다. 그 죄악은 시대를 위험하게 만드는(딤후 3:1) 것이다. 그는 불의를 목격하고 근심하고 있으며, 또한 놀라고 있다. 그리고 그들의 나쁜 평판을 하늘에 계신 그의 하나님께 가져가고 있다. 그것은 헛된 영광 즉, “이 세리”와도 같지 않음을(눅 18:11)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기 위함이 아니었다. 더욱이 그 자신의 개인적인 분노나 언짢음이나 감정을 토로하기 위한 것도 결코 아니었다. 그가 그렇게 한 것은 하나님과 모든 선한 자들이 모욕당하는 것을 가슴 아프게 여기고, 그것이 시정되기를 진심으로 바랐기 때문이었다. ****감정적이고 냉소적으로 악인들을 비난하는 것은 [대놓고 격정과 흥분에 휩싸여 직접 정죄함은] 유익하기보다는 [오히려] 해롭다. ((주님품에 안긴 바 고요하고 안정된 평정심에서 벗어날 위험이 있다!!....그리스도의 신부에게 합당치 않다))...우리가 그들의 사악함을 말하고자 한다면 기도로써 [오직 골방에서] 하나님께 아뢰자. 왜냐하면 하나님 자신만이 그들을 [회개케 하심으로써] 더 낫게 만드실 수 있기 때문이다.**** 악인의 사악함에 대한 긴 묘사가 여기에서 “악한 자가 교만하여 가련한 자를 심히 군박하오니”(2절) 하는 이 첫 번째 구절 속에 요약되어 있다. 그들이 책망을 받게 되는 두 가지 사실은 교만과 핍박인데, 전자는 후자의 원인이 되고 있다. 교만한 자들은 (제일 높아지려 하고 그렇게 대접받기 원하며) 그들 주위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그들과 같은 마음을 갖고, 같은 종교를 갖고, 그들이 말하는 대로 말하게 하고, 그들의 지배에 굴복하고, 그들의 지시에 순종하도록 만들려고 한다. 그리고 그들을 무색하게 하거나 그들에게 굽히려 하지 않는 자들을 뿌리깊은 증오를 품고 헐뜯으며 미워한다. 나라와 교회에서 횡포를 부리는 자들의 그 원인은 그들의 교만에서 찾을 수 있다. 이렇게 묘사하기 시작한 시편 저자는 곧 짧은 기도를 삽입적인 기도로 덧붙이고 있다. 그것은 그 내용을 해치지 않고 이롭게 하고 있다. 교만한 백성들이 흔히 그러하듯이 “저희로 자기가 베푼 꾀에 빠지게 하소서(2절). 그들의 꾀를 거꾸러지게 하시고, 그것에 의해 그들이 패망하게 하소서.” 그들을 책망하는 이 두 가지 항목이 여기에 설명되어 있다. 1. 그들은 교만하며, 매우 교만하다. 그리고 그들 자신에 대해 극단적으로 자만하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곧 나타나시어 그들을 치시지 않는 것을 그가 의아하게 여기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교만을 미워하시며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기 때문이다. (1) 죄인은 자기의 능력과 성공을 교만스럽게 자랑한다. 그는 “그의 마음의 소욕을 자랑하며” 그가 원하는 것을 행할 수 있음을 자랑하고(마치 하나님께서 그를 제어하실 수 없는 것처럼), 그가 원하던 모든 것을 이루고 그 목표를 수행한 것을 자랑한다. 에브라임도 “나는 실로 부자라, 내가 재물을 얻었다”고 말했다(호 12:8). “주여, 사악한 자들이 이처럼 하나님의 주권과 지옥을 사칭하도록 내버려두는 것이 주의 영광을 위한 일입니까?” (2) 죄인은 우리가 진리에 따라 판단하신다고 확신하고 있는 하나님의 심판을 교만하게 반박한다. 따라서 그는 “여호와께서 증오하시는 탐리하는 자들을 오히려 대놓고 찬양한다.” 하나님과 사람의 감정이 얼마나 다른가를 보라. 하나님은 탐리하는 속인들을, 즉 살아계신 참하나님을 버리고 돈을 자기들의 하나님, 만능의 우상으로 삼는 자들을 증오하신다. 그는 그들을 그의 대적으로 간주하신다. 그리고 그들과 교제하지 않으신다. 이런 의미에서 “세상과의 친교는 하나님과는 원수가 된다.” 그러나 교만한 포학자들은 오히려 그들을 축복하며, 그들의 말을 칭찬한다(49:13). 그들은 하나님께서 어리석은 자라고 선포하신 자들을(눅 12:20) 정반대로 지혜로운 자라고 칭찬한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자기 앞에서 큰 죄를 지은 자로 정죄하신 자들을 무죄한 자라고 합리화한다. 그리고 그들은 이 생애에서 자기의 분깃을 가진다는 점에서 그런 자들을 행복한 자들로 존경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반대로 그런 면에서 그들을 진실로 비참한 자라고 선포하셨다. “네가 사는 날 동안 네게 [지고지선 유일, 최상의] 좋은 것을 받으라.” (3) 그는 교만하게도 그의 근원이시요 영존하시는 하나님을 전적으로 무시함, 곧 하나님에 대한 생각을 버리고, 그에게 의지하지 않으며, 그에 대한 추구와 신앙을 버린다(4절). “악인은 그 교만한 얼굴로”, 즉 교만한 마음이 나타나는 얼굴로(잠 6:17), “하나님을 찾지 않을 것이며” 그에 대한 생각도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모든 그의 사상에”, 아니 그들의 모든 사상에 하나님이 없다. 즉, 그의 모든 사상에는 하나님이 안 계시는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점을 볼 수 있다. ① 불경건과 불신앙의 본질. 그것은 “하나님을 구하지 않고 우리의 모든 사상에 하나님을 모시지 않는” 것이다. 거기에는 그를 찾는 일도 없으며(욥 35:10, 렘 2:6), 그를 향한 소망도 없고 그와의 교제도 없다. 단지 거기에는 그에게 의지하지 않고, 그에게 잡히지 않으려는 은밀한 바람이 있을 뿐이다. 악한 백성들은 하나님을 구하려 하지 않는다(즉 그에게 요청하려 하지 않는다). 그들은 기도 없이 살아가는데, 그것은 바로 하나님이 없는 삶이다. 그들은 많은 생각, 많은 계획과 방법 등을 갖고 있으나, 그 어느 것에도 하나님을 염두에 두지 않으며, 그의 뜻에 복종하지 않고 그의 영광을 목표로 삼지도 않는다. ② 이런 불경건과 불신앙의 원인. 그것은 교만이다. 사람들은 하나님이 필요치 않다고 생각하고, 자기 자신의 손으로 충분히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해 그를 구하지 않는다. 그들은 신앙적인 사람들이 소수이며 비천하고 경멸당한다고 해서, 그리고 신앙의 규제가 그들에게 수치가 될 것이기 때문에 신앙을 갖는 것은 그들 자신을 비하시키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4) 그는 하나님의 명령과 심판을 교만하게도 경시한다(5절). “저의 길은 언제든지 견고하나이다.” 그는 사악한 길 속에서 매우 대담하고 단호하다. 그는 그의 길이 비록 그 자신에게 아무리 싫증나게 되고 다른 사람들을 괴롭힐지라도 고수할 것이다. 그는 그의 사악한 진로 속에서 고통을 겪으나, 그의 오만은 그를 괴팍스럽고 고집스럽게도 그것을 지속하도록 만든다. 하나님의 심판(그가 명하시고 그 명령을 이행치 않을 때에 대한 그의 위협)은 “높아서 저의 안력에 미치지 못한다.” 그는 하나님의 율법에 의해 그의 의무를 깨닫지도 못하며, 하나님의 진노와 저주에 의해 그의 위험을 깨닫지도 못한다. 그에게 그에 대한 하나님의 권세를 말한다면 그는 자신이 결코 하나님을 보지 못했으므로 하나님이 있는지도 알지 못한다고 해 부인할 것이다. 또한 “그는 하늘 높은 곳에” 계시고 “우리는 우리 위에 있는 것들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다”는 말로써 묵살할 것이다. 그에게 범죄를 계속하는 자들에게 내리는 하나님의 심판에 대해 말해 보라. 그래도 그는 그 속에 어떤 실체가 있음을 납득하지 못할 것이다. 그것은 “높아서 저의 안력이 미치지” 못하므로, 그는 단지 근거 없는 것으로만 여긴다. (5) 죄인은 교만하게 그의 모든 대적들을 경멸하며 그들을 지극히 업신여긴다. 그는 하나님께서 그에게 고난과 파멸을 주기 위해 예비해 두신 자들 앞에서 마치 그가 그것을 모두 좌절시킬 수 있고, 그것으로 그에게 유익하게 만들 수 있는 것처럼 허풍을 친다. 그러나 적을 경멸하는 것이 졸렬한 일이듯 하나님의 진노의 도구를 경멸하는 것은 불경스러운 일이다. (6) 그는 교만하게 도전하며, 그 자신의 계속적인 형통을 확신한다(6절). “저는 그 마음에 이르기를”, 그리고 그 생각으로 즐거워하기를 “나는 요동치 아니하고”, 내 재물은 수년 동안 쌓여 있으며, “대대로 환난을 당치 아니하리라 하나이다.” 즉 바벨론같이 “내가 영영히 주모가 되리라” 한다(사 47:7;계 18:7). 이처럼 파멸을 가장 멀리 여기는 자들은 거기에 가장 가까이 있는 자들이다. 2. 그들은 포학자, 잔인한 포학자들이다. 그들의 교만과 탐욕을 충족시키고 하나님과 믿음에 대적하기 위해 그들은 그들의 손이 미치는 것을 매우 압제한다. 이런 포학자들에 관해 살펴보자. (1) 그들은 매우 가혹하며 사악하다(7절). “그 입에는 저주가 충만하나이다.” 그들에게 실제적인 재앙을 행할 수는 없을지라도 그는 앙심을 품을 것이며, 그가 실행에 옮길 수는 없을지라도 살기를 내뿜을 것이다. 이처럼 충성된 하나님 예배자들은 종과 책과 촛불로써 파문당하고 저주받는다. 마음에 악의가 가득 차 있으면 일반적으로 그 입에도 저주가 가득 차 있다. (2) 그들은 매우 거짓되고 믿을 수 없다. 그들이 계획한 재앙은 들키지 않도록 혀 밑에 감추어져 있다. 왜냐하면 “그 입에는 궤휼과 허탄함이 충만하기” 때문이다. 그는 마귀에게서 속이는 것을 배웠고 또한 파괴하는 것도 배웠다. 그 궤휼로 그의 증오가 감추어진다(잠 26:26). 그는 그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어떤 거짓말을 하든지, 어떤 맹세를 어기든지, 어떤 위장술을 사용하든지 개의치 않는다. (3) 그들은 그들의 계획을 수행함에, 매우 교활하며 간교하다. 그들은 의도했던 바를 더욱 효과적으로 수행할 수 있게 하기 위해 도움이 되는 방법과 수단을 갖고 있다. 교활한 사냥꾼인 에서처럼 “저가 향촌 유벽한 곳에, 그 은밀한 곳에 앉으며, 그 눈은 재앙을 행하기 위해 엿본다”(8절). 그것은 그가 자기가 행한 것을 부끄러워하거나(얼굴을 붉힌다면 아마도 그가 회개하리라는 약간의 기대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하나님의 진노를 두려워하기 때문이 아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결코 그에게 책임을 추궁하시지 않으리라고 생각한다(11절). 그것은 그가 자기 계획이 발각되어 깨어질 것을 염려했기 때문이다. 아마도 이것은 정직한 여행자들과 그들이 갖고 있는 것을 탈취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는 도둑들과 노상강도들을 특별히 언급하고 있는 것 같다. (4) 그들은 매우 잔인하고 야만적이다. 그들의 악의는 결코 그들을 격노케 한 적이 없는 “무죄한 자”, 그들에게 저항할 수도 없고, 또 그들을 이기는 것이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 “외로운(가난한) 자”에 대한 것이다. 그런 자들은 모두 정직과 영예를 완전히 빼앗긴다. 그들의 무죄함이나 궁핍함이 그 해로운 계획으로부터 그들을 안전케 해주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능력을 가진 자는 무죄한 자를 보호해 주어야 하며 궁핍한 자를 도와주어야 한다. 이처럼 그들의 보호자가 되어야 할 자들이 파괴자가 되는 것이다. 그러면 그들이 목표하는 바는 무엇인가? 그것은 “가련한 자를 잡고, 그들을 자기 그물로 끌어들이는” 일이다. 즉 그들을 자기 수하에 끌어들여 알몸이 되게 할 뿐만 아니라, 그들을 “죽이는” 것이다. 그들은 귀한 생명을 사냥한다. 포학자들이 핍박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가련한 백성들로서, 그들이 하나님의 것이고, 또 그의 형상을 지니고 있다는 이유로 그들에 대해 무서운 증오를 품는다. 그러므로 포학자들은 그들을 죽이려고 엎드려 기다린다. 피에 굶주린 “사자가 엎드림같이 저가 엎드려 기다리고”, 그 먹이로 만족하게 배를 불린다. 그를 다루고 있는 마귀는 포효하는 사자에 비교되어 있는데, 사자는 삼키기 위한 대상으로 동물을 찾으나 마귀는 사람을 찾는다. (5) 그들은 비열하고 위선적이다(10절). 거리를 가늠해 먹이를 잡으려 하는 짐승처럼 “저가 굽히고 엎드린다.” 이는 비열한 마음을 가진 포학자들과 압제자들은 그들의 악한 계획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아무리 천한 것에게일지라도 몸을 굽힘을 시사하고 있다. 다윗을 탐색할 때의 사울의 수치스러운 행실이 이것을 증명하고 있다. 또한 이는 그들이 사악한 계획을 감추기 위해 온유하고 겸손한 척하며, 그들이 크게 해하려는 자들에게 친절한 척한다는 것을 시사하고 있다. 그들은 겸손한 척해 가련한 자들을 탐지하고 살핀 후 그 계획대로 그들을 쓰러뜨려 자기들의 희생물로 만든다. (6) 그들은 매우 불경건하며 무신론적이다(11절). 그들이 무엇보다도 먼저 믿음을 버리고 그 가장 거룩하고 자명한 원리의 빛에 대적해 반란을 일으키지 않고서는, 이처럼 인간에 대한 모든 공의와 선함의 법도를 깨뜨릴 수 없었을 것이다. “저희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잊으셨다 하나이다.” 그 자신의 양심이 그의 사악함을 책망하고 그 결과에 대해 그를 위협하며, 의로우신 하늘과 땅의 재판장께 그가 뭐라고 대답할 것인가 물었을 때, 그는 “여호와께서 이 땅을 버리셨다”(겔 8:12, 9:9)고 말하면서 그 답을 회피했다. ① 이것은 하나님의 전능과 섭리에 대한 불경스러운 비방이다. 그것은 마치 하나님께서 이 아래 세상에서 사람들이 행하는 것을 볼 수 없거나 보시지 않은 것처럼 여기기 때문이다. ② 그의 성품의 거룩함과 정직함에 대한 불경스러운 비방이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가장 인도에 어긋나고 비인간적인 악행들을 보셨을지라도 싫어하시지 않고 기꺼이 묵인해 주시는 것처럼 여기기 때문이다. ③ 그의 통치의 공의에 대한 불경스러운 비방이다. 그것은 마치 그가 악인의 사악함을 보시고 싫어하셨을지라도, 그가 할 수 없거나 감히 하려 하지 않으시며, 그렇게 하시기를 싫어한다는 이유로, 결코 그것을 고려하지 않으시고 그들을 벌하시려고도 하지 않는 것처럼 여기기 때문이다. 교만한 압제자들에 의해 괴로움을 당하고 있는 자들은 하나님께서 때가 되면 자기들을 위해 나타나시리라는 소망을 가져야 한다. 그들을 학대하는 자들은 곧 전능자 하나님을 학대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시편을 노래하고 그것을 간구함에 우리는 압제자들의 사악함에 대한 거룩한 분노를 우리 마음에 품어야 하며, 압제당하고 있는 자들의 비참함에 대해 따뜻한 동정을 품어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합당한 때에 해를 당한 자를 구하시고, 그 해를 기억하시리라는 확고한 마음과 함께 하나님의 영광과 영예를 경건히 추구해야 한다. ------------------ 포학자들에 대한 기도(시 10:12-18) 다윗은 여기에서 압제자들의 비인간성과 불경건함에 대한 앞에서의 진술에 근거해 하나님께 간구하고 있다. 다음 사실을 살펴보자. Ⅰ. 그가 간구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1. 하나님께서 친히 나타나주실 것을 간구하고 있다(12절). “여호와여! 일어나옵소서. 하나님이여, 손을 드옵소서. 이 아랫세상의 일 속에서 주의 임재와 섭리를 나타내소서. 여호와여! 주께서 얼굴을 감추셨다고 말하는 자들이 부끄러워하도록 일어나옵소서. 주의 능력을 나타내소서. 주의 주장을 옹호하기 위해 그것을 발휘하시고, 손을 드시어 이 압제자들에게 치명적인 일격을 가하시옵소서. 주의 영원하신 팔을 보여주옵소서.” 2.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들을 위해 나타나주실 것을 간구하고 있다. “가난한 자, 곤고한 자를, 즉 아주 가난하게 되고 심령이 가난한 자를 잊지 마옵소서. 그들의 압제자들은 외람되게도 주께서 그들을 잊으셨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압제받는 자들도 실의에 차 그들과 같은 말을 하려 합니다. 주여, 그들이 모두 잘못된 생각을 하고 있음을 드러내소서.” 3. 그가 그들의 포학자들을 대적해 나타나실 것을 간구하고 있다(15절). (1) 그가 그들로 하여금 어떤 재앙도 끼치지 못하게 해주실 것을 간구하고 있다. “악인의 팔을 꺾으소서.” 그의 능력을 빼앗으시어 “사특한 자로 권세를 받아 백성들을 함해하지 못하게” 하옵소서(욥 34:30). 우리는 권세를 빼앗겼으나 그 생명은 보존되어 회개할 여유를 얻은 압제자들에 대해 읽을 수 있다. (2) 그가 그들이 행한 재앙에 따라 그들을 다루어주실 것을 간구하고 있다. “악한 자의 악을 찾으소서. 그가 영원히 들키지 않으리라고 생각했던 그 모든 것을 밝혀내소서. 그가 영원히 처벌받음 없이 지나가리라고 생각했던 그 모든 것을 감찰하소서. 악을 ‘없을 때까지’ 끄집어내소서. 즉 악을 행한 자들 중 그 누구도 심문받지 않고 남아 있지 않도록 하시고, 그 악한 계획 중 그 어느 것도 격파되지 않은 채 남아 있지 않게 하소서. 그리고 그의 일파 중 그 누구도 파멸되지 않은 채 남아 있는 일이 없도록 하소서.” Ⅱ. 이 청원에 대한 그 자신의 믿음을 격려하기 위해 그는 무엇을 탄원하고 있는가. 1. 그는 이 교만한 압제자들이 하나님 자신에게 가한 큰 모욕을 탄원하고 있다. “주여, 주께서 나타나실 것을 우리가 간청하는 것은 주님 자신의 송사 때문입니다. 대적들이 그것을 그렇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을 벌하시지 않고 내버려두는 것은 주의 영광을 위한 일이 아닙니다(13절). 어찌하여 악인이 하나님을 멸시하나이까?” 악인은 그를 멸시한다. 그는 “주는 감찰치 아니하리라. 주는 우리가 행한 것을 결코 문책하시지 않으리라”고 말하는 것이다. 이보다 더 의로우신 하나님을 모욕하는 것은 없다. 시편 저자는 여기에서 다음과 같은 사실에 놀라고 있다. (1) 악한 자의 악에 대해. “어찌하여 저들이 그처럼 불경건하게 그리고 그처럼 어리석게 말하나이까?” 선한 자들은 죄인들의 죄로 인해 거룩하신 하나님이, 그의 계명, 약속, 경고, 은총, 그리고 심판 등이 경멸당하는 것을 생각하고 매우 괴로워한다. 즉, 그 모든 것이 얼마나 멸시당하고 소홀히 취급당하는가를 생각하는 것은 그들에게 매우 괴로운 일이다. “어찌하여 악인이 이처럼 하나님을 멸시하나이까?” 그것은 그들이 그를 모르고 있기 때문에 행해지는 일이다. (2) 그들에 대한 하나님의 인내와 관용. “어찌하여 그들이 이처럼 하나님을 멸시하도록 내버려두시나이까? 어찌하여 주께서 즉시 해명하시고 그들을 보복하지 않으시나이까?” 그 이유는 그들의 죄악이 가득 채워졌을 때 그들을 평가하는 날이 올 것이기 때문이다. 2. 그는 하나님께서 이 압제자들의 불경건함과 불의를 보실 것을 탄원하고 있다(14절). “포학자들이 주께서 그것을 결코 보지 않으시리라는 터무니없는 공상으로 자기 자신들을 격려하도록 두시나이까? 핍박당하는 자들로 하여금 주께서 그것을 보셨을 뿐만 아니라, 그것을 감찰하셨다는, 근거가 확실한 믿음으로 격려하도록 해주십시오. 심지어 포학자의 손으로 행해지고 있는 모든 재앙과 그들의 마음속에 감추어져 있는 모든 경멸과 악의까지도 보셨다는 것을 믿게 해주십시오. 그것은 모두 주께 알려져 있으며, 주님에 의해 감찰되고 있습니다. 아니, 주께서 그것을 보시고 감찰하셨을 뿐만 아니라, 주의 의로우신 복수의 손으로써 그것을 그들의 가슴에 갚으실 것입니다.” 3. 그는 압제당하고 있는 자들이 하나님께 의지했음을 탄원하고 있다. “외로운 자가 주를 의지하나이다. 그들 각자가, 그리고 그들 중에 내가 그러하옵나이다. 그들은 후원자이며 보호자이신 주께 의지하며, 그들의 재판장이신 주께 그들 스스로를 의탁합니다. 그 재판장의 결정과 뜻에 기꺼이 순응하려고 하면서 말입니다. 그들은 그들 자신을 주께 맡기나이다(어떤 사람들은 그것을 이렇게 풀이하고 있다). 그들은 거역하려 하지 않고 주의 지혜와 뜻에 동의하고자 하나이다. 그들의 압제자들이 주를 불명예스럽게 하는 반면에 그들은 이처럼 주를 영예롭게 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자발적인 주의 종들로서 그들 스스로를 주의 보호 아래 맡겼나이다. 그러므로 그들을 보호해 주옵소서.” 4. 그는 하나님께서 기꺼이 우리와 맺으셨던 관계를 탄원하고 있다. (1) 위대하신 하나님으로서, “여호와께서는 영원무궁토록 왕이시나이다”(16절). 행악자를 규제하고 두렵게 하며, 선을 행하는 자를 보호하고 칭찬하기 위해 재판하는 것이 왕의 직책이다. 해를 당한 종이 최고의 주권을 가진 자에게가 아니고 누구에게 호소하겠는가? “나의 주, 나의 왕이여! 나를 도우소서. 나의 대적에게 나의 원수를 갚으소서.” “주여, 주를 자신의 왕으로 여겨 경의와 조공을 바치는 모든 자들로 하여금 주의 통치의 유익을 얻게 하시고, 주께서 그들의 피난처를 발견하게 하소서. 주는 이 세상의 왕들과는 달리 영원하신 왕이시므로, 시간이 끝났을 때 영원한 심판으로써 영원한 상과 벌을 내리실 수 있으며, 또 내리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외로운 자들은 그 심판에 그들 자신을 의탁합니다.” (2) 선한 하나님으로서 그는 고아들(14절), 즉 도울 자들은 없으나 해치는 자들은 많은 자들을 도우신다. 그는 “외로운 자와 고아를 위하여” 왕들을 선정하셨다(82:3). 그러므로 그 자신은 더욱 그러하실 것이다. 그는 고아의 아버지시며(68:5), 도움받지 못하는 자의 협력자가 되심을 그의 영예로운 직함 중의 하나로 취하셨다. 5. 그는 하나님의 교회와 백성들이, 하나님께서 그들을 위해 나타나실 준비를 하고 계셨던 것을 경험한 일을 탄원하고 있다(16절). (1)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적들을 흩어지게 하고 근절시키셨다. “열방이 주의 땅에서 멸망하였나이다. 남아 있는 가나안 사람들, 오랫동안 사람들의 눈에 가시가 되어왔고, 이스라엘 편의 곤봉이 되어왔던 저주받은 일곱 민족들이 이제 드디어 완전히 근절되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하나님께서 어떤 면에서는 이교도들보다도 더욱 나빴던 압제적인 이스라엘 사람들의 팔을 꺾으시리라는 것을 우리가 소망할 수 있도록 격려해 주고 있습니다.” (2) 그는 그들의 기도를 들으셨고 응답하셨다(17절). “주는 여러 번 겸손한 자의 소원을 들으셨고, 고통스럽게 애원하는 자에게 구하는 것이 헛되도다 하는 말은 결코 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어찌하여 우리가 우리 조상들에게서 들은 그 이적들, 은총들이 계속되고 반복되리라는 것을 바라지 않겠나이까?” 6. 그는 그들의 경험에 의지해 하나님께 기대 갖는 것을 탄원하고 있다. “주는 들으셨으니(6:9에서와 같이) 귀를 기울여 들으소서. 주는 동일하시므로 주의 능력과 약속, 그리고 주의 백성들에 대한 관계도 똑같습니다. 그리고 그들 속에 있는 역사와 은혜의 역사도 똑같습니다. 그러하오니 우리가 어찌하여 여지껏 기도를 들으셨던 하나님이 앞으로도 여전히 그러하실 것이며, 항상 그러하시리라는 기대를 갖지 않겠나이까?” 그러나 여기에서 다음 사실을 주시하라. (1) 하나님께서는 어떤 방법으로 기도를 들으시는가? 그는 먼저 그의 백성들의 마음을 예비시키신 후 그들에게 화평의 대답을 주신다. 우리는 이런 방법 이외에서는 그의 은혜로우신 대답을 기대할 수 없는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임하시는 하나님의 역사는 그가 우리를 위해 일하신다는 가장 훌륭한 전조다. 그는 거룩한 소망을 불당김으로써 우리의 가장 거룩한 믿음을 강화시킴으로써, 그리고 그 생각을 확고히 하고 감동을 일으킴으로써 기도를 위한 마음을 예비하신다.((JC연인-신부-친구-형제-제자/Q자녀-백성에게 합당한 영적 시력-청력-마음의 민감성을 씻어 깨끗게 하사 주님을 알아보게 만드심!!))그리고 나서 그는 너그럽게 그 기도를 받아주신다. 그는 원하고 갈구하는 마음을 위해 자비를 예비하시며, 우리로 하여금 그것을 받기에 합당하고 그것을 잘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드신다. 그리고 나서 그 자비를 우리에게 주신다. 마음의 준비는 여호와께로부터 나며, 우리는 그것을 위해 그에게 간구해야 한다(잠 16:1). 그리고 그것을 인도하시는 은총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2) 기도의 대답으로 그가 어떻게 행하실 것인가?(18절) ① 그는 핍박당한 자들의 송사를 변호하실 것이며, 고아들과 압제당한 자들을 판단하실 것이고, 그들을 위해 심판하실 것이다. 그들의 무죄함을 밝히실 것이며, 그들의 즐거움을 회복시키실 것이고, 그들이 당한 모든 손상을 보상해 주실 것이다. ② 그는 핍박자들의 횡포를 종식시키실 것이다. 심판의 날까지 그들은 그렇게 행할 것이나, 그후에는 더이상 그렇게 행하지 못할 것이다. 여기에서 그들의 악의의 파도도 멎을 것이다. 즉 “세상에 속한 자로 다시는 위협치 못하게” 하나님께서 적절한 조치를 취하실 것이다. 여기에서 이 시편 저자가 자신이 이 시편에서 묘사하고 있는 교만한 포학자들의 힘을 얼마나 가볍게 여기고 있으며, 이제 하나님의 주권을 깊이 생각해 보고서 그 포학자에 대해 얼마나 경멸적으로 이야기하고 있는가를 보라. a. 그는 “세상에 속한 자”(단어 그대로) 흙에서 “나온” 자, 흙에서 튀어나온 자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그는 천하고 연약하며, 다시 흙이 되기를 서두른다. 그런즉 어찌하여 우리가 “죽은 사람을, 풀같이 될 인자”(사 51:12)에 불과한 사람을 두려워하겠는가? 우리를 보호하시는 자는 하늘의 주님이시며, 우리를 핍박하는 자는 땅의 인간에 지나지 않는다. b. 하나님께서는 그를 사슬 안에 두신다. 그리고 그의 진노를 받을 잔류자를 쉽게 제어하실 수 있다. 그러므로 그는 자기가 원하는 대로 행할 수 없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게 될 때, 사단은 그의 도구에 의해 더이상 미혹하지도(계 20:3), 압제하지도 못하게 될 것이다. 이 구절들을 노래하는 데서 우리는 믿음의 영예와 유익을 위해 진심으로 마음을 기울이는 자로서, 의로우면서도 해를 당하고 있는 믿음의 송사를 하나님께 맡겨야 한다. 그러면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합당한 때에 열심히 변호해 주시리라는 것을 믿어야 한다. =============== ynI[;(6041, 아니) 가난한, 비천한, 억압 받는...[가련한/도울자 없는/고립무원의, 가난한/토지를 강탈당한, 비천한/하루벌이의, 억압/압제받는] 아니(형용사)는 아나(hn:[; , 6031)에서 유래했으며, '가난한 poor, 비천한 humble, 낮은 lowly, 억압(압제) 받는 oppressed'을 의미한다(레 19:10, 삼하 22:28, 욥 29:12, 시 10:9, 사 3:14 등)....구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77회 나온다. 아니는 억압하는 자에 관해 구체적인 언급이 없는 곳에서는 일반적으로 사회적인 입장에서 가난한 자들 즉 토지가 없는 자들과 동의어가 된다. 이와 같은 가난은 상속권 박탈과 불법적인 손해에 의한 것이지 그 사람 자신의 잘못에 의하여 비롯된 것이 아님이 이 단어가 재산이 아니라 폭력과 대조되는 뜻을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나타난다. 따라서 이스라엘 백성은 응당 지불해야 할 임금을 주지 않음으로 고용한 종을 압제하지 말라는 명령을 받는다. 더 나아가서 그가 압제 당할 경우 그는 하나님을 옹호자로 요청할 것이다. '아니'한 자들은 재정상으로 매일매일 벌어서 생계를 꾸려가는 자들이며 사회적으로는 방어할 수 없는 압제 받는 자임을 알 수 있다. 결과적으로 이 단어는 물질적인 소유의 결핍에 따르는 어려움을 경험하는 '에브욘'과 함께 빈번히 사용된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축복 아래서 '아니'한 자들에게 자선을 베풀라고 명령 받는다: "땅에는 언제든지 가난한 자가 그치지 아니하겠으므로 내가 네게 명하여 이르노니 너는 반드시 네 경내 네 형제의 곤란한 자와 궁핍한 자에게 네 손을 펼지니라"(신 15:11).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에게 이스라엘의 '아니'가 심지어 담보물이나 저당물로 삼을 물건이 겉옷 밖에 없다 하더라고 돈을 꾸어 줄 것이며, '아니'한 자는 자신을 따뜻하게 보호하는데 옷이 꼭 필요하므로(이 옷은 그의 유일한 겉옷이다) 그 옷을 밤새도록 돌려주지 않음으로 인하여 그들에게 더 큰 괴로움을 주지 말 것을 명령한다(출 22:25-26). 레 19:10에서 '아니'한 자들은 타국인과 나란히 밭의 이삭을 주울 권리를 지니는 자로 분류되어 있다. 아니는 잠 22:22에서 달(가난한 자[한글개역에는 "약한 자"])과 구별된다. "약한 자(달)를 약하다(달)고 탈취하지 말며 곤고한 자(아니)를 성문에서 압제하지 말라". 하나님은 괴로움을 당하는 자들의 보호자이자 구원자로 묘사되며, 그는 그의 백성들도 마찬가지로 곤고한 자들의 보호자, 구원자가 되라고 요구하신다. 이러한 요구에 응하는 자들은 경건한 자로 간주되고(겔 18:17) 그리하지 아니하는 자들은 사악한 자로 간주된다(욥 24:9, 잠 14:21, 사 58:7). 많은 경우 이러한 가난한 사람들은 불법적으로 가난하게 되었다. 그러나 몇몇 경우에 가난하게 되는 또 다른 요인들도 있다. 그들은 심판 받을 때 차별 대우를 받아서는 안되었다. 하나님은 누구의 잘못으로 과부가 되지 아니한 과부의 보호자이신 것과 같이 가난한 자의 보호자이셨다. 그러나 이 단어가 어떤 사회적 조건을 가리키기보다 특정 사회적 계급을 가리킨다는 주장은 의문의 여지가 있으며 입증하기가 어렵다. 물질적 상실과 그로 인한 어려움은 사회적 압제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사회적 역경은 사 3:14과 겔 18:17에서 분명히 고려되고 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들에게 '아니'한 사람들(사 10:2)을 공정하게 다루라고 명하신다. 특히 왕은 그들의 권리를 영원히 감독할 책임이 있다(시 82:3). 이 단어는 바벨론 포로 생활로 인하여(사 51:12) 혹은 질병으로(시 88:15, H16) 육체적 고통을 받는 자들을 묘사하기도 한다. 시 22:24, H25에서와 같이 종종 육체적 고난은 영적 고난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많은 경우에 외적 고통은 내적 고통을 야기시키고 그 결과 하나님께 도움을 부르짖게 된다(시 25:16, 시 34:6, H7, 시 69:29, H30). 하나님의 백성은 고난 받는 자로 자주 묘사된다(시 68:10, H11). 하나님은 그들을 잊어버리지 아니하신다(시 9:18, H19, 시 74:19). 하나님은 그들을 불쌍히 여기시며(사 49:13) 구원하시며(시 34:6, H7) 건지시며(시 35:10) 그들에게 은총을 베푸신다(시 72:2, 시 72:4). 끝으로 이 단어는 겸손한 (자)이라는 의미로 사용된다. 이 단어는 슥 9:9에서 메시야를 묘사한다. 이 단어는 조롱하는 자(잠 3:34, 참조: 약 4:6), 오만한 자(시 18:27, H28, 삼하 22:28)와 대조된다. 이러한(겸손한) 자는 통회하는 심령을 가지고 있으며(사 66:2), 하나님의 사랑 받는 자이며(시 74:19), 하나님을 신뢰하는 자이며(시 14:6), 구원을 확신하는 자이다(삼하 22:28). 아니(고통 받는)는 종종 아나우(wn:[; , 6035: 겸손)와 혼돈되기도 하며, 이 두 단어는 서로 바뀌어 표기되기도 한다(혹은 ASV와 RSV에서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바뀌어 번역되기도 한다). 아마도 이는 유명한 요드 와우(yod-wow) 상호 교환에 의한 것일 수 있으나(GKC, sec. 17c; Ernst wurthwein, The Text of the Old Testament, p. 72)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다. 이러한 교환 현상은 복수형에서 자주 나타난다. 이사야는 아니와 아나우를 구별하지 않고 사용한 것 같다.(참조: C. BROW; L. J. COPPES). ------------------ hr;x;(6869, 차라) 곤란, 고통, 고난, 경쟁자인 아내 1. 차라(명여)는 차르(rx' , 6862)의 여성형이며, '곤경, 곤란, 궁핍, 고통, 고난, 재난 straits, distress'를 의미한다.구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68회 나온다. 차라는 강렬한 내적 혼란을 가리킨다(시 25:17). 이 단어는 적에 의해 포위된 백성의 괴로움을 묘사하였다. 또 이것은 첫 아이를 낳는 여인의 고통에 비유될 수 있다: "내가 소리를 들은즉 여인의 해산하는 소리 같고 초산하는 자의 고통하는 소리 같으니 이는 딸 시온의 소리라 그가 헐떡이며 그 손을 펴고 이르기를 내게 화 있도다 살륙하는 자를 인하여 나의 심령이 피곤하도다 하는도다"(렘 4:31). 이 단어는 강탈하는 적이 가까이 올 때 느끼는 공포심을 의미한다: "우리가 그 소문을 들었으므로 손이 약하여졌고 고통이 우리를 잡았으므로 아픔이 해산하는 여인 같도다"(렘 6:24). 이 단어로써, 유다가 언약을 어김으로 말미암아 극심한 형벌을 받게 되는 그때의 특성을 묘사하였다: "슬프다 그 날이여 비할데 없이 크니 이는 야곱의 환난의 때가 됨이로다마는 그가 이에서 구하여냄을 얻으리로다"(렘 30:7, 시 78:49). 여호와의 말씀을 거부하는 백성의 땅이 환난과 어두움과 고통의 암흑이 가득찬 곳으로 묘사된다: "땅을 굽어보아도 환난과 흑암과 고통의 흑암 뿐이리니 그들이 심한 흑암 중으로 쫓겨 들어가리라"(사 8:22, 사 30:6).....그러한 흑암 속에 여호와께서 구원의 빛을 가져올 것이다(사 9:1-2). 형제는 위급한 때에 도움을 준다(잠 17:17). 마찬가지로 여호와께서도 자기 백성을 도와 환난의 때로부터 건지신다(시 50:15, 시 37:39). 하나님은 은혜롭게도 여호와의 날의 환난으로부터 이스라엘을 구하겠다고 약속하신다(렘 30:7). 적이 이스라엘을 쳐부술 때는 언제나 그들이 여호와를 조롱하였다(시 74:10, 시 74:17, 시 74:23). 그와 마찬가지로 핍박을 받는 신자도 그의 대적들에 의해 조롱을 당한다. 그들은 묻는다: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는냐"(시 42:10, H11, 참조: 시 31:11, H12). 이에 응대하여 백성들은 하나님께 그의 영광과 명예를 위해 자신들을 구해달라고 탄원하였다(시 74편). 그의 자비와 사랑을 토대로 한 그의 도움은 그가 살아계신 하나님임을 예증한다(참조: 시 143:12). 하나님은 또한 그의 적들을 혼란하게 하기 위해 의외의 방법을 사용하신다. 예컨대 심지어 젖먹이의 입의 발설을 이용하기도 한다(시 8:2, H3, 시 105:24). 하나님은 그 땅을 깨끗하게 하기위해 그의 대적들에 대항하여 공의를 시행하신다(신 32:41이하). 이스라엘이, 타 민족에 대한 하나님의 징벌 도구로서, 때로는 그들의 한 적을 대항하여 치라는 명령을 받는다(민 25:17). 여호와의 날은 하나님의 모든 대적들에 대한 그의 복수의 정점을 이루는 날이 될 것이다(렘 46:10). 2. 차라(명여)는 차라르(rr'x; , 6887: 적의를 보이다, 괴롭히다)에서 유래했으며, '괴롭히는(또는 성나게 하는) 자 Vexer, 경쟁자나 대적인 아내 rival wife'를 의미한다. 구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삼상 1:6에서 1회 나온다: "여호와께서 그로 성태치 못하게 하시므로 그 대적 브닌나가 그를 심히 격동하여 번민케 하더라".(참조: J. E. HARTLEY; BDB). ---------------- [x'B;(1214, 바차) 잘라내다, 끊다, 폭력으로 얻다 바차(동사)는 기본어근이며, '잘라내다, 베어버리다 cut off, 끊다, 부셔버리다 break off, 폭력으로 얻다 gain by violence'를 의미한다.구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16회 나온다. 1. 칼형에서 (a) '부셔(꺾어)버리다, 베어버리다, 끊어버리다'. 암 9:1에서 기둥들의 머리를 부셔버리는 것을 묘사한다. 욥 27:8에서 하나님이 그(사곡한 자)의 생명을 '베어버리거나 끊어버리는 것을 묘사한다. 욜 2:8에서는 사람을 '해치는' 것을 나타낸다. (b) 일반적으로 '폭력으로 얻다, 부당하게 얻다'(겔 22:27, 시 10:3) = 탐내어 얻는 자, 약탈자, 강도(잠 1:19, 잠 15:27, 렘 6:13, 렘 8:10, 합 2:9). 2. 피엘형에서 (a) 끊어버리다, 잘라버리다'. 달만(Dalman)은 이것이 베를 짜고 난 후 베틀에 남은 한 조각의 천을 자르는 행동을 나타내기 위해 베짜는 사람들이 사용하던 전문 용어라고 주장했다(참조: KB). 사 38:12은 히스기야가 이런 견지에서 자기 생의 종말을 생각하고 있다고 언급함으로써, 이것을 뒷받침해준다. 욥 6:9에서도 하나님께서 자기 생명을 끊으실 것인지에 대해 물었다. (b) '끝내다(마치다), 완성하다' (사 10:12, 슥 4:9, 애 2:17). (c) '폭력으로 얻게 하다' (겔 22:12).(참조: BDB; TWOT). ---------------- $a'n:(5006, 나아츠) 거부하다, 경멸하다, 업신여기다 나아츠(동사)는 기본어근이며, '거부(절)하다, 일축하다, 경멸(시)하다, 업신여기다'를 의미한다. 구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24회 나오며, 3회는 하나님이 주어이고(칼형), 그 밖에는 모두 사람이 주어로 나타난다. 하나님이 주어인 3회에서는 '경멸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고 '거부하는 것'을 의미한다. (a) 칼형에서 이 단어는 '거부하다, 경멸하다, 업신여기다'를 의미한다. 하나님께서는 광야에서 자기를 격노케한 자기 백성을 거부하셨다(신 32:19). 애 2:6에 보면 선지자 예레미야는 예루살렘의 멸망을 보면서 여호와께서 왕과 제사장을 멸시하셨다고 애곡하였다: "성막을 동산의 초막 같이 헐어 버리시며 공회 처소를 훼파하셨도다 여호와께서 시온 가운데서 절기와 안식일을 잊어버리게 하시며 진노하사 왕과 제사장을 멸시하셨도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거부하거나 멸시하는 것은 자신의 보좌를 불명예롭게 하는 것이고, 사실상 백성들과 맺은 그의 언약을 깨뜨리는 것이다. 렘 14:21에서 백성은 우리를 거절하지 마시기를 기원한다: "주의 이름을 위하여 우리를 미워하지 마옵소서 주의 영광의 위를 욕되게 마옵소서 우리와 세우신 주의 언약을 기억하시고 폐하지 마옵소서". 한편 하나님의 백성들은 그의 뜻을 멸시하고(시 107:11), 그의 충고를 업신여기며(잠 1:30), 교정을 거절한다(잠 5:12). 이것은 그들의 어리석음을 드러내준다. 왜냐하면 어리석은 자만이 아비의 훈계를 업신여기기 때문이다: "아비의 훈계를 업신여기는 자는 미련한 자요 경계를 받는 자는 슬기를 얻을 자니라". (b) 피엘형에서 이 단어는 '무례하게 또는 경멸(멸시)로 대하다'를 의미하며 사실은 어떤 사람이나 사물을 경멸한다고 선언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넘치는 축복을 누리는 중에서도 완전한 배교를 하여 언약을 깨뜨릴 것임을 예언하신다(신 31:20 이하). 이 어근은 언약적 은총에 반대되는 언외(言外)의 뜻을 품고 있으며 경고(민 16:30) 및 성취(사 1:4)로서의 심판에 적용되었다. 하나님은 오래 참으심으로 그의 인격(민 14:11, 시 10:3), 그의 제재(sanctions, 시 10:13), 그의 뜻(시 107:11), 그의 말씀(사 5:24), 여호와의 제사(삼상 2:17)를 되풀이하여 거부하거나 멸시하는 것을 간과하셨다. 광야에서 이러한 행위를 한 자들은 약속에 들어가는 것을 거부당하는 그러한 벌을 초래하게 된다(민 14:23). 종말에 하나님께서 압제자와 조롱하는 자를 정복하는 것을 보게될 것이다(사 60:14). (c) 히필형에서 '멸시나 경멸을 당하다'를 의미한다. 전 12:5에서 70인역본은 "꽃이 필 것이며"라고 번역하는데 문맥상 어울리지 않는다(Gesenius). (d) 히트파엘에서 '모욕을 당하다'라는 의미를 나타낸다. 사 52:5에서 여호와께서 그의 이름이 지속적으로 모욕을 당한다고 불만을 표시하셨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내 백성이 까닭 없이 잡혀갔으니 내가 여기서 어떻게 할꼬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그들을 관할하는 자들이 떠들며 내 이름을 항상 종일 더럽히도다". (참조: L. J. Coppes; E. H. Merrill). ------------------- vr'D;(1875, 다라쉬) 자주가다, 찾다, 구하다, 문의하다, 노력하다 다라쉬(동사)는 기본어근이며, '자주 가다(드나들다), 찾다, 탐구하다, 탐사(조사)하다, 구하다, 요구하다, 문의하다, (~하려고)노력하다, 시도하다'를 의미한다. 구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160회 이상 나오며, 칼형과 니팔형으로만 사용되었다. 다라쉬는 '조심하여 구하다'의 의미(인식의 의미)는 레 10:6에서 나오는데, 여기에서 모세는 속죄물에 어떤 것이 발생하였는가를 상세하게 발견하려고 추구하였으며, 삼하 11:3에서 다윗은 밧세바가 누구인가를 발견하려고 노력한다(신 23:6, 렘 29:7).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장소(신 12:5)와 공의(사 1:17, 사 16:5!)를 조심스럽게 구하도록 명령받았다. 종말에 예루살렘, 즉 어느 누구도 찾지 않는 장소(렘 30:17)는 "찾은 바된" 장소가 될 것이다(사 62:12, 혹은 "권고하시는", 신 11:12). 메시야 왕을 찾는 자들은 이방인들이다(사 11:10). 그분의 안식 장소(민 10:33, 신 12:9)는 영광스러운 것이다. 다라쉬의 '염려하다, 돌보다'라는 의미는 앞에 언급한 내용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시편 기자는 "내 영혼을 돌아보는 자도 없나이다"라고 반박하였다(시 142:4). 이스라엘은 잡혀간 도시의 안녕을 구하라는 명령을 받았다(렘 29:7). 아마도 대상 15:13과 대하 1:5은 법궤와 놋제단을 "돌보는" 것에 대하여 언급하는 것 같다. 다른 신학적 주제는 신 4:29에서 발전되고 있는데(참조: 바카쉬), 여기에서 이스라엘은 미래의 변절에 대하여 경고받고 있으며 전심으로 경배할 것을 권고받고 있다(신 6:6, 마 22:37). 역대기 기자는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구하느냐(대하 22:19, 대하 28:9, 대하 31:21 등) 아니면 우상을 구하느냐에 의하여 이스라엘 역사를 평가하고 있다(대하 25:15). 이사야는 하나님의 징벌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구하기를 거부하는 것을 알리고 있다(사 9:13, 참조: 렘 10:21).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 옛적의 약속을 상기시키고 있다(사 55:6, 렘 29:13, 호 10:12).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계속하여 범죄하는 동안에도 그들에게 자신을 "찾으라"고 타이르시면서(사 58:2) 종말 때에 진실로 자신을 찾는 자들에게 축복하리라고 약속하신다(사 65:10). 흥미롭게도 하나님을 찾지 않던 자들도 하나님을 찾을 것이다(사 65:1, 사 11:10, 롬 10:20). 하나님을 찾는다는 것은 또한 지식, 충고, 통찰력을 추구하여 어떤 특별한 문제에 관해 문의하는 것을 의미한다(창 25:22). 이러한 문의는 선지자 곧 하나님의 대변자를 통하여 이루어지거나(출 7:1, 출 18:15이하, 삼상 9:9, 렘 21:2 등) 혹은 "제비뽑기"를 이용하는 제사장을 통하여 이루어진다(샤알, 신 17:9). 거짓 신의 말을 좇는 것은 간혹 복합적인 의식을 포함하였다(신 12:30, 대하 25:15(?), 삼하 11:3, 겔 21:21). 이와 밀접히 관련된 것으로는 본 동사의 법적 사용인데 그것은 하나님의 권위 있는 "판단"에 문의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재판을 구한다는 것이다(출 18:15, 신 17:4, 신 17:9, 참조: 마 18:5-20, 고전 6장, 딤전 3장). 끝으로 이 단어 어근은 생명을 취한 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복수에 대해 사용된다. 하나님께서는 부지런하게 생명에 대한 생명의 보상을 요구하실 것이다(창 9:5, 참조: 바카쉬). 최소한 한 실례에서 이러한 약속이 제기되며, 거룩하게 시행되었다(대하 24:22, 대하 24:24, 시 9:12, 시 10:4).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지 아니하는 목자는 자신을 이러한 하나님의 심판 선언 아래 두는 것이다(겔 33:6). 하나님의 사자들(선지자)에게서 나온 모든 선포는 그것이 부연하는 경우라 할지라도 이전의 계시와 일치되기만 하면 기적적으로 입증되든지 혹은 그렇지 않든지 간에 인간의 용인과 순종을 요구한다(신 18:22, 욘 7:40, 행 3:22 이하). 궁극적으로 하나님께서는 공의와 자애 그리고 겸손한 자세를 요구하신다(미 6:8, 참조: 겔 20:40).(참조: Coppes; BDB). ----------------- [r'(7451, 라) 나쁜, 악한, 악, 악한 것 1. 라(형용사)는 라아([['r: , 7489)에서 유래했으며, '나쁜, 해로운 bad, 악한 evil'을 의미한다.구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아래서 취급하는 명사 라와 함께 약 666회 나온다. 형용사 라([r' , 7451)는 이 형용사와 관련된 명사들을 수식하여 그 명사의 특성이나 해로운 행동을 나타내 준다. 명사는 가치 기준에 부합하지 못하거나 유익한 역할을 할 수 없는 사물이나 사람의 자질 부족 혹은 열등한 자질을 나타낼 수 있다. 세속적인 의미에서 나쁜 품질에 대한 많은 실례가 있다. 첫째로 바로왕의 꿈에 나타난 보기 흉한 야윈 소(창 41:21, 창 41:27),마시기에 부적합한 물(왕하 2:19), 사는 자가 사기에 부적합하다고 말한 상품(잠 20:14) 등이 있다. 왕하 4:41에서는 솥의 음식물에 들어 있는 어떤 해독을 언급하고 있다. 그것은 위험한 것이었으나 선지자가 곧 제거했다. 형용사 라([r' , 7451)는 사나운 짐승(레 26:6), 재앙을 가져오는 천사들(시 78:49), 기근(겔 5:16), 질병(신 7:15, 신 28:35, 신 28:59, 대하 21:19, 욥 2:7, 전 6:2)을 나타내기도 한다. 형용사 라([r' , 7451)는 사자의 말(출 33:4, 느 6:13)이나 기사(사 6:22)와 같이 재난을 가져오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여겨지는 것들을 가리키기도 한다. 사건들(전 2:17, 전 9:3)이나 시간들(날들)(창 47:9, 잠 15:15, 전 4:8)이 잘못되어 고통으로 가득찰 수도 있다. 이 형용사는 마음의 불쾌(삼상 29:7)나 마음의 슬픔(느 2:1-2, 잠 25:20)을 가리킬 수도 있다. 형용사 라([r' , 7451)은 보다 흔히 도덕적 결함, 즉 자신이나 타인을 해하는 도덕적 특성들, 혹은 좋지 않은 상태를 가리킨다. 이러한 부정적인 특성들에 대한 평가는 하나님이 하신다(잠 15:3). 이러한 하나님의 평가는 종종 "여호와의 보시기에"(in the sight of the Lord)라는 말로 표현된다. 이 표현은 대부분 역사서에 약 55회 나온다. 이 용어는 또한 약 7회 가량 토브(선한)와 대조되는 것으로 정의된다. 따라서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는 사람들은 악하다(약 11회). 특히 우상 숭배로 하나님을 진노케 할 경우 그러하다(왕하 17:11 등). 몇몇 실례에서 라는 그러한 사람들의 내적 상태를 나타내는 것 같다(창 6:5, 잠 26:23, 전 9:3, 렘 3:17, 렘 7:24). 전 9:3에서 사용된 이 단어의 보다 추상적인 어감을 주목하라. 부정적인 태도들, 즉 교만(욥 35:12), 노함(잠 15:10), 반항(느 9:35, 참조: 시 64:5, 겔 13:22)도 악한(ra') 것으로 열거된다. 다른 사람에 대한 난폭한 행위도 라를 평가한다(신 17:5, 삼상 2:23, 왕상 16:7, 겔 20:44, 겔 30:12). 하나님의 반응은 무관심하거나 예측할 수 없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적절한 이유에 근거하여 악한 특징을 지닌 사람에게 심판을 위협하시고 수행하신다(스 9:13, 욥 21:30, 잠 11:21). 그러나 이러한 상황에 대해 보다 밝은 측면이 있다. 하나님은 그의 백성에게 악으로부터 돌이키도록 권고하시며(신 13:12, 왕하 17:13, 대하 7:14, 겔 33:11, 겔 36:31, 슥 1:4) 선지자들의 주된 임무는 이러한 권고를 선언하며 백성들을 하나님에게로 되돌아오게 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신다(렘 23:22). 지혜자는 순종하는 사람은 라에서 자유할 것이라고 약속한다(전 8:5). 여기서도 역시 악한 일로부터 멀리하는 방법에 대한 충고가 제시되어 있다(시 141:4, 잠 4:14, 전 8:3).(G. H. Livingston) 2. 라(명남)는 라아([['r: , 7489)에서 유래했으며, '나쁨, 나쁜 것, 해로운 것 bad, 악, 해악, 악한 것 evil, 불행, 해, 고난, 재난, 참화 misery, injury, calamity'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