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말씀=생명=진리 =그리스도...진리를 살아냄이 그대 삶의 결론이 되게 하라....진실로!! 마음 속에 구주 영접했더라도, <그리스도의 집, 곧 충만-완전한 사랑의 전능자 주님이 진정 그대 마음의 주인으로서 살고 지시하며 일하심이 마땅한데, 그저 한쪽에 서 계시거나 따로 앉아 계신> 손님으로만 계심은 아닌가??...((오, 주로 주 되시게 하라, 정녕 그분으로 유일무이한 주인-남편-머리-목자 되시게 해 드려야만 그대 삶이 완전한 생명 균형의 기적으로 사는 것이 되리라)) .그리하고 있지 못하다면, 그 장면은 요한복음 2장의 <포도주가 다 떨어져서 흥이 께어져버릴 위기에 봉착한> 가나 혼인잔치와 다름 없을 것...그 때, 모친 마리아는 제자들과 함께 초청받은 구주께 <교통하는 산 믿음으로> 나아가서<친척 집, 곧 혼인잔치가 벌어졌으나 딱한 사정이 생긴, 그 집의 문제, 즉 손님 상에 공급할 포도주가 다 떨어졌음을 고하였고> 주님은 친절-상냥하게<여자여, 그것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요, 지금은 내 때가 아니>라고 말씀하셨지만..(그럼에도 불구하고, 겉보기엔 모친이 투정 부리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마리아는 그것이 무슨 의미인지 영적으로 분명히 깨닫고 있었던 바 [즉, 주 그리스도께서 손님으로서가 아니라 분명히 주인으로서 계셔서 그분의 뜻대로 지시하고 지시하는 그대로 순종해야만 그 결핍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음을] 참되게 깨닫고, 오히려 하인들에게 나아가서 <주께서 무엇이라 하든지 그분이 시키는 바로 그대로 하라>고 신신당부하였고... 주님은 하인들을 불러서 거기 있던 정결례에 쓰이는 큰 항아리에 <물을 가득 채우라> 명하셨고, 하인들이 그분의 명령에 순종하여 물을 채운 후에, 그 후에야 곧 이어 <그것을 가져다가 연회장에게 주어라>하심으로써 합당한 누림과 기쁨의 조건을 공급하고 계셨다....그 기적의 진행을 <주님 말씀에 순종하여> 물 떠왔고 포도주를 연회장에게 갖다 준 하인들은 진상을 확실히 알았다!!...."주님의 때"는 주님이 주인되심 = 머리되심 = 곧 주님의 주권자 되심을 인정하며 말씀 드리고 <그분만이 하실 수 있음을 믿고>그 발아래 엎드려 지시하시는 그대로 순종하는 때...이 때에라야 주님은 기적을 보게 하고 계신다. [요2:1-11...*1.사흘째 되는 날에 갈릴리 가나에 혼인 잔치가 있었다. 예수의 어머니가 거기에 계셨고, *2.예수와 그의 제자들도 그 잔치에 초대를 받았다. *3.그런데 포도주가 떨어지니, 예수의 어머니가 예수에게 말하기를 "포도주가 떨어졌다" 하였다. *4.예수께서 어머니에게 말씀하셨다. "여자여, 그것이 나와 당신에게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아직도 내 때가 오지 않았습니다." *5.그 어머니가 일꾼들에게 이르기를 "무엇이든지, 그가 시키는 대로 하세요" 하였다. *6.그런데 유대 사람의 정결 예법을 따라, 거기에는 돌로 만든 물항아리 여섯이 놓여 있었는데, 그것은 물 두세 동이들이 항아리였다. *7.예수께서 일꾼들에게 말씀하셨다. "이 항아리에 물을 채워라." 그래서 그들은 항아리마다 물을 가득 채웠다. *8.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이제는 떠서, 잔치를 맡은 이에게 가져다 주어라" 하시니, 그들이 그대로 하였다. *9.잔치를 맡은 이는, 포도주로 변한 물을 맛보고, 그것이 어디에서 났는지 알지 못하였으나, 물을 떠온 일꾼들은 알았다. 그래서 잔치를 맡은 이는 신랑을 불러서 *10.그에게 말하기를 "누구든지 먼저 좋은 포도주를 내놓고, 손님들이 취한 뒤에 덜 좋은 것을 내놓는데, 그대는 이렇게 좋은 포도주를 지금까지 남겨 두었구려!" 하였다. *11.예수께서 이 첫 번 표징을 갈릴리 가나에서 행하여 자기의 영광을 드러내시니, 그의 제자들이 그를 믿게 되었다.]
**[[갈릴리가나의 혼인잔치]]...JC재림-어린양의 혼인잔치의 모델..
....[약혼식...신부의 집에서 거행]성문앞에 장로들, 마을사람들, 신랑측 사람들(친척들, 친구들) 신랑, 신부, 신부측 사람들(친척들, 친구들. 들러리들)이 함께 모인가운데 신랑의 아버지가 (반드시 ~하게 구체적으로 시행하겠노라고 확정하는) 혼인약속의 서류를 낭독하고 신랑은 포도주를 특별한 잔에 담아서 <자신이 반쯤 마시고>신부에게 건네는데,( 신부는 약혼조건이나 신랑이 마음에 들지 않을 때 그 잔 받기를 거절하면 그 혼약은 취소됨), 그 포도주잔을 마심으로써 혼약은 이루어지고 (결혼준비에 쓰일)신부의 지참금은 지급되며((=성령 내주하심)), 이제 신랑측은 모두 함께 당당히 아버지집으로 돌아가게 됨.[[그리스도의 승귀]]
....혼인식날짜는 전적으로 신랑의 아버지에게 일임하는데((약혼식후 대개 1년이내에 그 언제라도)) 신랑의 아버지가 신부를 데려오는 바로 그날밤에 피로연을 베풂으로서 이루어지게 됨...(대개 밤중에 [신랑집에서] 갑자기 결혼피로연을 열게 됨에 주의하라).
....[신랑과 신부의 결혼준비]이제, 신랑은 아버지 집의 공간을 넓혀서 부부(또한 자녀들이) 함께 거할 공간을 스스로 완비한 채 언제나 심신을 정결하게 가꾸고 스탠바이 상태로 지내게 됨...한편, 신부는 들러리들(항상 넉넉한 등기름과 등을 예비한 슬기로운 5처녀 모델)과 함께 자기집에서 웨딩예복을 마련한 후 매일밤마다 그 옷을 마련해 두고 항상 청결하게 심신을 유지한 채 그옷을 입고 자도록 예비함 ((더불어 신부 및 늘 함께 머무는 들러리는 항상 등과 함께 매일 밤 등불을 밝히는데 쓰일 기름을 각자 넉넉히 준비해 두어야 신랑을 알아 볼 수 있도록 불을 밝힐 수 있게 되며 신부와 함께 혼인피로연이 베풀어지는 신랑의 아버지집까지 동행하며 결혼피로연의 누림까지도 참여할 수 있음))
....[혼인식] :: 신랑의 아버지가 돌연히 가장 적절한 시점이라고 깨닫는 그 시점에 신랑을 갑자기 깨워서 ((자, 이제 네신부를 데려오라))고 하면 신랑은 뿔나팔을 불면서 당당하게, ((마음에 참여하리라고 미리 작정함으로써))이미 초청받은 인근 이웃들과 마을의 모든 사람들에게 {{이제 베풀어 질 혼인잔치에 깨어나 참석하라}}고 일깨우고 신부를 맞으러 나아감.....나팔소리를 들은 신부는 ((보라 신랑이로다라고 외치는))들러리와 함께 이미 모든 것 준비된 채로 자기처소에서 나와 집 문밖에 서 있다가 신랑을 맞고((신랑친구들이 마련한 가마에 앉혀진 채로)) 신랑과 함께 마을거리들을 지나 신랑의 아버지 집 문앞까지 도달한 후 내려서 문안으로 뿔나팔소리와 함께 들어가고 모든 동행자들과 뿔나팔소리를 듣고 깨어난 사람들도 함께 아버지집에 들어간 후((JC재림-신부의 공중영접 ==>어린양의 혼인잔치 개시 조건 완비)) 이윽고 곧 문이 닫히게 되며 향후 7일간((이것은 결혼 누림의 기간임...))은 문을 여는 일이 결코 없게 됨....그 안에 들어가지 못한 이들은 밖에서 [결혼잔치를 누리지 못함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됨]((동일한 표현이 예루살렘 보좌심판<양과 영소의 심판>시에도 나온다..)) :: 이 혼인잔치의 시점은 진행상, 아마겟돈 전쟁으로 성도의 환난이 가장 극심할 바로 그 때, 심판주로서 공중재림 및 공중 영접<잠자는 성도의 부활<첫째 부활>- 살아있는 <주께 합당한>성도의 영광스런 몸의 변화 : 성도는 신부로서 이미 지참금이신 성령으로 살고 있음...성도마다 각자가 신부요 또한 들러리임!! --> 어린양의 혼인잔치 7일, 그후 -- 백마 탄 그리스도께 패한 원수는 무저갱에 갇힘 + 예루살렘보좌 (양과 염소)심판 -->그리스도의 천년왕국 기간 -->사탄이 무저갱에서 일시적 놓임, 미혹 :: 곡과 마곡의 전쟁 을 야기하나,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패망케 함-->백보좌심판(둘째 부활, 주로 불신자들에게 적용 :: 어린양의 생명책에 따라 이루어지는 최후의 심판) :: 사탄과 추종자들, 합당치 못한자는 지옥의 불못에 던져짐-->새하늘과 새땅 : 새예루살렘이 땅에 내려옴
@@ ((천년왕국에서조차)) 적용되는 원칙 -- 사람이 한번 죽는 것은 하나님이 정하신 일, 성도는 누구나 고난을 통한 연단 거쳐 그리스도의 성품으로 변화되어야 주님의 교회, 영적 신부에 참여 가능케 하셨음 ----
@@히브리어에서는 이적, 기적, 기사, 표적이 ‘오트’(תוא(로 통일된다.@@
이적, 기적, 기사, 표적에 대한 이해....이적, 기적, 기사는 표적의 대명사이다.
<“표적”이란 히브리어로 ‘오트’(תוא(이고, 헬라어는 쎄메이온(σημεῖον)이며 영어로는 ‘사인’ (sign)으로 ‘표시’, ‘징조’, ‘증표’ 등의 뜻을 가진다. 표적을 둘로 나누어 본다면 초인간적 행사를 이적 기적이라 하고 초자연적 행사를 이적 기사라고 할 것이다. 그러므로 이적이나 기적이나 기사는 표적(sign, σημεῖον)의 다른 명사들이다>
요한복음에는 예수 그리스도가 메시아라는 일곱 개의 대표적 표적이 나타난다.
① 가나의 혼인 잔치에서 물을 포도주로 바꾸신 표적(요 2:1~11)
② 가버나움에서 죽어가는 고관의 아들을 고치신 표적(요 4:46~54))
③ 베데스다에서 38년 된 병자를 고치신 표적(요 5:1~9)
④ 디베랴 바다 건너편에서 오병이어로 5,000명의 무리를 먹이신 표적(요 6:1~15))
⑤ 디베랴 바다에서 물 위를 걸으신 표적,(요 6:16~21)
⑥ 실로암에서 날 때부터 장님이었던 사람의 눈을 뜨게 해주신 표적(요 9:1~12)
⑦ 베다니에서 죽은 지 사흘 된 나사로를 살리신 표적(요 1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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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표적의 의미가 무엇인가? ...성경에 나타난 구속사적 표적들을 살펴보자.
첫째는 이스라엘 구원의 언약을 성취하시는 하나님의 표적......지팡이로 뱀을 만들어 보이시는 일, 모세의 손에 문둥병을 발하게 하셨다가 다시 치유하시는 일 등이 약속을 이행하시겠다는 하나님의 표적인 것이다. 임마누엘 하나님의 언약은 반드시 성취된다는 사인이다.
둘째는 무흠하신 속죄의 어린 양이신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표적.....메시야가 성령으로 잉태되고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태어나게 하시고 성령세례를 받게 하신 것은 예수님께서 속죄 양으로 오신 메시아이심을 나타내는 표적이다(사 7:14). 예수 그리스도의 무죄하심과 속죄주의 자격을 나타내는 사인이다.
셋째는 기적을 통해 천국을 보이시는 성령님의 능력의 표적.....예수님의 영이신 성령님의 권능을 따라 나타나는 치유사역과 초자연적 기적 등은 바로 구약에 예언된 메시아가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나타내는 표적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성령님을 통해 만물을 회복하고 우리를 천국으로 초대하시는 메시아인 증거의 사인이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주님에 의한(by Jesus), 주님에 대한(of Jesus), 주님을 위한(for Jesus) 표적을 탐욕에 의하여 인간의 욕망을 채우는 표적으로 오인하게 되었다.
오병이어의 표적이 있은 뒤에 유대인들은 예수님께 질문했다. 모세는 만나를 통해 먹을 것을 제공하는 표적을 보였는데 예수는 무슨 표적을 보이겠는가? 라고 질문하게 된다. 유대인들이 주님을 따른 것은 경제적 해결이나 정치적 이슈로 표적을 구했음을 스스로 자인하는 장면이다
그 증거로 주님께서 오병이어의 기적을 행하셨을 때 주님을 따르는 무리가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이때 주님께서 그들을 보면서 말씀하셨다.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나를 증거하는)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이땅의)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요 6:26)라고 하셨다.
주님은 정치적이고 탐욕적인 표적을 추구하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에게 진정한 표적이 무엇인가를 선포하셨다.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선지자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느니라 요나가 밤낮 사흘 동안 큰 물고기 뱃속에 있었던 것 같이 인자도 밤낮 사흘 동안 땅 속에 있으리라.”(마 12:39~40))
주님은 이미 자신에 대한 표적으로 많은 이적 기사를 통해 주님이 구약에 예언된 메시아이심을 나타내보이셨다. 그러나 깨닫지 못하고 육신의 욕망을 채우고자 하며 이 땅의 표적만을 구하는 저들에게 요나의 표적을 통해 종말론적 구속자로 오시는 주님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을 증거하신 것이다. 요나의 표적이 주님 자신을 증거하는 모형으로서의 진정한 표적이라는 것을 알려주신 것이다. 그러나 깨달을 수 있는 귀있는 자만이 알 수 있었다.
바울사도께서는 고린도교회를 향하여 선포했다.
“유대인은 (땅의)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땅의) 지혜를 찾으나 우리는 (표적과 지혜로)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한다”(고전 1:22~23).
성경에 나타나는 이적 기사의 표적의 목적이 예수 그리스도가 구약에 예언한 메시아요 구세주라고 표식인데 이것을 모르는 군중들에게 바울 사도께서는 하나님이 보내신 진정한 표적으로서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죄인을 구원하시는 구세주이심을 선포하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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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역개정]요2장
===가나의 혼례 ..땅, 흙의 헬라어로 humilitas(겸손)...히브리어로는 아다마..
1. 사흘째 (유대광야의 40일금식-시험승리하고 돌아온지) 되던 날 갈릴리 가나(=갈대.흔들리는 연약한 피조물)에 혼례가 있어 예수의 어머니도 거기 계시고
......하부 갈릴리, 갈릴리 나사렛에서 13km뷱북동쪽Kirbet Qana,길벳 가나..갈대Qana가 자라고 있는 `엘 밧두흐'(el-Battuf)라는 평야의 북쪽 구릉지에 있는데, 구릉 위에 있는 폐허는 발굴되어 있지 않으나, 저수조(貯水槽)나 건물의 유구가 남아있고,. 그 부근의 바위에 만들어진 무덤도 있다. 1세기의 것에 속하는 토기편(土器片)이나 화폐도 출토됐다. 가나는 열두 제자의 하나인 나다나엘의 출신지다(요 21:2). 예수가혼인 잔치에 초청되어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최초의 기적을 행하신 곳이요(요2:1-11). 또 예수께서 가버나움에서 사는 왕의 신하의 아들의 병을 고쳐주신 곳이기도 하다(요 4:46-54).
2. 예수와 그 제자들도 혼례에 청함을 받았더니
.....(([빌4:4-9(6, 7)]*4.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5.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 *6.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7.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8.끝으로 형제들아 무엇에든지 참되며 무엇에든지 경건하며 무엇에든지 옳으며 무엇에든지 정결하며 무엇에든지 사랑 받을 만하며 무엇에든지 칭찬 받을 만하며 무슨 덕이 있든지 무슨 기림이 있든지 이것들을 생각하라 *9.너희는 내게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를 행하라 그리하면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 ::: 매사에 먼저 그리스도를 초대하여 네맘의 주인이요, 주님으로 모시라!! --JC께서 가시는 곳 마다 사망에서 벗어나 생명 공급과 누림이 일어남을 기억하라!!
3. 포도주((::기쁨과 즐거움, 축제, 생명 누림)가 떨어진지라 예수의 어머니가 예수에게 이르되((사정을 아뢰라!!) 저들에게 포도주가 없다 하니
4.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부드러운 존칭)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내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나이다
......((단순한 추정-염려-근심이 아니라 실제적 사망과 절망, 낙심이 극에 달할 바로 그 때가 하나님이 일하시는 때임!!...구주-그리스도께서 참 주인으로 인정받음이 되셔야만 Q의 기적으로 사는 생명 삶이 전개될 것!!...과연 누가 그렇게 주님으로 그대의 주인=남편-머리=목자=유일하신 전능 Q 되시게 해 드릴 것인가))
5. 그의 어머니가 하인들에게 이르되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길들여짐의 그 온유를 발휘하는 굳센 믿음!! - 순종하도록 신신당부하고 있다!!) 하니라
6. 거기에 유대인의 정결 예식을 따라 두세 통(1통당40리터 : 곧 80-120리터) 드는 돌항아리(천연적, 타고난 죽음) 여섯(피조세계...무려 거의 약 600리터 들이 !!)이 놓였는지라
7.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 하신즉 아귀까지 채우니(=죽음 상태에 사망으로 가득 채워진 상태에 도달)
8. 이제는 떠서 연회장에게 갖다 주라 하시매 갖다 주었더니...전적으로 그대로 순종하고 있다(마리아의 신신당부 그대로!!, 그 하인들은 결코 말씀하시는 이가 누구신지 나름대로 헤아려보며 짐짓 추정하며 게으름-늑장부리지 않았다!!)
9. 연회장은 물로 된 포도주를 맛보고도 어디서 났는지 알지 못하되 물 떠온 하인들은 알더라[모든 영적 체험의 실제나 생명 조성 변화도 오로지 직접 절대 사랑/순종의 주관적 경험 통해서만 참되게 알 수 있음...이는 진흙으로 빚어진 (사망의) 항아리 안에 주의 말씀따라 순종함 퉁해 주의 말씀의 물이 담겨짐 인해 물이 변하여 포도주 됨, 말씀이 생명 능력 됨 입증함인 것...물이 주인을 만나니 얼굴이 붉어졌다(G.고든 바이런)] 연회장이 신랑을 불러
10. 말하되 사람마다 먼저 좋은 포도주를 내고 취한 후에 낮은 것을 내거늘 그대는 지금까지 좋은 포도주를 두었도다 하니라
11. 예수께서 이 첫 표적(<예수는 그리스도, 곧 이 땅에 오신 Q이심>을 증거함의 영적 의미와 교훈이 그 안에 있는 기적)을 갈릴리 가나에서 행하여 그의 영광을 나타내시매 제자들이 그를 믿으니라
12. ○그 후에 예수께서 그 어머니와 형제들과 제자들과 함께 가버나움으로 내려가셨으나 거기에 여러 날 계시지는 아니하시니라
===성전을 깨끗하게 하시다 [341.십자가를 내가 지고]
13. ○유대인의 유월절이 가까운지라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더니
14. 성전 안에서 소와 양과 비둘기 파는 사람들과 돈 바꾸는 사람들이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15. 노끈으로 채찍을 만드사 양이나 소를 다 성전에서 내쫓으시고 돈 바꾸는 사람들의 돈을 쏟으시며 상을 엎으시고
16. 비둘기 파는 사람들에게 이르시되 이것을 여기서 가져가라 내 아버지의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 하시니
17. 제자들이 성경 말씀에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이 나를 삼키리라 한 것을 기억하더라
18. 이에 유대인들이 대답하여 예수께 말하기를 네가 이런 일을 행하니 무슨 표적을 우리에게 보이겠느냐
19.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20. 유대인들이 이르되 이 성전은 사십육 년 동안에 지었거늘 네가 삼 일 동안에 일으키겠느냐 하더라
21. 그러나 예수는 성전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22.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후에야 제자들이 이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고 성경과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믿었더라
===예수는 사람의 마음속을 아신다
23. ○유월절에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계시니 많은 사람이 그의 행하시는 표적을 보고 그의 이름을 믿었으나((생명 말씀 듣고 깨달아 영접함이 아니었음!!))
24. 예수는 그의 몸을 그들에게 의탁하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친히 모든 사람을 아심이요
25. 또 사람에 대하여 누구의 증언도 받으실 필요가 없었으니 이는 그가 친히 사람의 속에 있는 것을 아셨음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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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2장 (개요)
전 장 마지막에서는 예수가 부른 첫 제자들, 즉 안드레, 베드로, 빌립, 나다나엘의 기사를 보았다.
이들은 하나님과 어린양의 첫 열매들이다(계 14:4). 이제 본 장(章)에서는 다음을 살필 수 있다.
Ⅰ. 예수가 갈릴리의 가나에서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첫 표적의 기사(1,2). 그리고 가버나움에 나타나심(12).
Ⅱ. 그의 공생애 시작 이후 예루살렘에 머무르신 첫 유월절 기사.
.....파는 자들과 돈 바꾸는 자들을 성전 밖으로 내어쫓으심(13-17). 그와 다툰 자들에게 주신 표적(18-25).
그러나 예수는 많은 사람들에게 어떤 확신을 주어야 한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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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기적(요 2:1-11)...갈릴리 가나, 혼인잔치...물로 포도주 만드심
우리는 여기서 갈릴리 가나의 혼인 잔치에서 그리스도가 물을 기적적으로 포도주로 변화시킨 기사를 본다.
그를 믿고, 그를 따를 만큼 믿음이 좋은 사람들이 있을 때는 "기적을 행하지 않았다."
"당신은 무슨 표적을 보여 주겠습니까?" 하는 질문을 하는 자들이 생기기까지 많은 것을 행하지 않은 것 같다.
그는 전에도 기적을 나타낼 수 있었으며, 또한 기적을 그의 일상적인 일로 삼아 자기 친구들에게 즐거움을 줄 수도 있었다.
그러나 자기의 교훈을 확증해 주는 거룩하고 귀중한 징표로써의 기적은, 그가 말씀을 가르치기를 선포하면서부터 시작했다.
Ⅰ. 이 기적의 필요성을 보자.
...마이모니드즈( Miamonides)는 모세가 "필요한 경우는" 광야에서 기적을 행했다는 것이 모세의 영예였다고 했다.
즉 그는 무리들이 음식을 요구할 때, 만나를 제공했다. 그리스도도 그렇게 하셨다. 다음을 살펴보자.
1. "때." 예수가 갈릴리에 들어 간 "제3일"이다.
복음서 기자는 그날 그날의 사건을 일지에 기록했다. 어떤 특별한 일이나 말씀이 없이 지낸 날이 없었기 때문이다.
예수는 자기의 종들보다 더 뜻 있는 나날을 지내신다. 그러므로 밤에 로마 황제처럼 "또 하루를 잃었구나!"하는 탄식을 할 필요가 없었다.
2. "장소." 그곳은 아셀 지파가 살고 있는 (삿 19:28) 갈릴리의 가나이다.
... "거기서 기름진 식물이 난다"고 했다(창 49:20).
그리스도는 공개적으로 자기를 드러낼 수 있는 예루살렘에서 멀리 떨어진 벽촌에서 기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이것은 그가 "사람에게서 영광을 취하고자 하지 않음"을 보여 준다(5:41). 그는 오히려 "천한자들을" 높여 왔다.
소박하고 정직한 갈릴리인들이 예루살렘에 있는 오만이 가득 찬 랍비들, 지도자들 그리고 귀족들보다는 훨씬 수월하게 예수의 가르침과 기적들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3. "혼인 잔치"가 계기가 되었다.
...아마도 혼인 당사자 중 어느 한 쪽이 친척이 되는 바(?), "예수의 모친"도 "거기"있었다고 했다. 그러나 그 어머니가 "청함"을 받았다는 말은 없다. 이 사실은 예수의 어머니에게는 그 지방이 고향이거나 고향과 같을만큼 친숙함을 암시하고 있다.
...여기서 그리스도가 혼인 의식을 존중한 것을 보게 된다.
그는 그 의식에 참석했을 뿐만 아니라, 거기서 처음 기적을 나타냄으로써, 그 의미를 더 진지하게 하셨다.
그 의식은 인간이 죄 짓기 이전에 축복으로 제정된 것이며, 또 그것을 통해서 그가 계속 "거룩한 자손을 찾고" 있기 때문이며, 또 의식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로마 카톨릭 교회에서는 혼인 의식을 지나치게 성스럽게 여겨 하나의 성례식으로 발전시킨 반면 약혼식과 결혼 생활에 대해서는 어떠한 성스러움과는 관계없는 것처럼 부당하게 비하하는 경향이 있다.)
...여기에는 "혼인 잔치"가 있었다. 그래서 그 의식을 더욱 뜻 있게 했다. 결혼식날은 흔히 잔치피로연으로 이어지게 되어 있었고(창 29:22; 삿 14:10), 거기에 초청받은 사람들은 예수 그리고 그 제자들이다. "예수의 어머니(이것은 가장 존경스런 그녀의 칭호이다)도 거기에 있었다." 그러나 요셉에 대한 언급이 없는 것으로 보아, 이미 죽은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예수는 "청함을 받고," 초대에 응했다. 그리고 사람들과 즐거움을 나눈다.
-- 여기에서 우리는 우리의 친척들이 비록 지위가 낮지만, 그들을 "존경하고," "사귀라"는 교훈을 받는다.
그리스도는 세례 요한의 태도와는 달랐다. 세례 요한은 사람들과 같이 "먹지도 마시지도 않았다'(마 11:18, 19).
교제를 "거절하는" 방법보다는 "신용하는" 방법이 더 사려 깊은 생각이다.
(1) 결혼식과 청함을 받은 예수.
① "결혼식"이 있을 때, 예수 그리스도를 청한다는 것, 즉 그의 영적인 은혜의 현현으로 혼인을 인정받고, 축복을 받는다는 것은 매우 바람직한 일이라는 것을 기억하자.
-- 이 때의 결혼식은 참으로 영예로왔다. "주 안에서 혼인하는" 사람들은(고후 7:39) 주를 떠나지 아니한다.
② 결혼식에 주님을 모시려는 사람들은 기도로써 주님을 청해야 한다.
-- 이때의 기도는 주님을 청하는 사자의 역할을 한다. 그러면 주님은 오실 것이다.
"네가 부르라. 내가 대답하리라." 그때 주님은 오셔서 [사망의]물을 포도주로 변화시킬 것이다.
(2) 제자들도 역시 초대받았다.
그 수는 그가 먼저 택하고 부른 다섯이었다. 아직까지는 다른 제자들이 추가되지 않았다. 그들은 예수의 가족이었고, 함께 초대받았다.
...그들은 자신들을 예수의 처분에 맡겼다. 예수께서 돈은 없지만, 자기들의 좋은 친구가 되었음을 그들은 알았다. 이 점을 주의하자.
① 그리스도를 "따르려는"사람들은 그와 함께 "잔치에 참여"해야 하며, 그가 가는 곳에 동행해야 한다(12:26).
-- "내가 어느 곳에 처하든지, 거기에 내 종들도 있으리라."
② 그리스도를 사랑한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사람들을 사랑함으로써 입증되어진다.
-- "우리의 선행이 그에게까지는 못 미치나 성도에게는 미친다."
칼빈은 그 잔치의 주인을 상당히 너그러운 사람으로 보고 있다. 그것은, 그 주인이 비록 초라하게 차린 잔치이지만, 그가 처음 생각했던 사람 외에 낯선 사람 4,5명을 더 청한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또 주인은 그들이 예수를 따르는 사람임을 알고 청했는데, 이것은 지위가 높은 사람들보다는 낮고 평범한 사람들이 보다 자유스럽고, 활발하고, 그러면서도 참다운 우애가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Ⅱ. 기적의 내용을 보자.
1. "포도주가 모자랐다"(3절).
(1) 포도주는 잔치에 소용되는 것으로써 많이 준비해 두었지만 모자랐다.
...이 세상에 있는 동안, 우리가 풍족하다고 여겨질 때에도 가끔은 궁핍을 겪는다. 항상 쓰면 우리가 미처 알기도 전에 모자라게 될 것이다.
(2) 미리 치밀하게 잘 준비했다고 여겨지는 "혼인 잔치" 석상에조차도 부족된 점이 있었다.
..."결혼해서," "세상 것을 염려하며" 사는 자들은 "육체의 어려움"과 실망되는 점들이 있을 것을 각오해야 한다.
(3) (아마도..??)그리스도와 제자들이 이 부족의 원인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것은 그들이 준비하고 기대했던 이상의 손님들을 맞이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수로 인해서 부족하게 된 자는 손해보지 않게 될 것이다.
2. 포도주가 떨어졌을 때 (마음 쓰며 사정을 살피던) "예수의 모친"은 도와 달라고 예수에게 간청했다.
이 때에 예수와 그의 모친과의 대화가 있다(3-5절).
(1) 그녀는 자기들이 처한 곤경을 예수에게 알려왔다. "그녀는 포도주가 떨어졌다고 예수에게 말했다"(3절).
...어떤 사람은 생각하기를, 그의 모친이 예수에게서 어떠한 기적적인 도움(예수는 이제까지 표적을 행사한 적이 없었다)을 바라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본다. 그 여인은 단지, 손님들에게 어떤 "적절한" 양해 구함을 예수가 해 줄 것을 바랐다고 본다. (그것은 신랑의 체면을 살리기 위한 최선의 방법으로 여겼다.) 혹은 칼빈이 생각하는 것처럼, 예수가 어떤 성스러운 방법으로 포도주의 부족을 채울 수 있다는 것을 그의 모친이 미리 알고 청했다고도 본다. 그러나 아마 거의 틀림없이 예수의 모친은 하나의 기적을 기대했으리라. 왜냐하면 그녀는 예수가 모세처럼 시의적절하게 이스라엘의 결핍을 채워 주는 위대한 예언자로 출현하고 있음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비록 이 기적이 예수의 첫 공적 기적으로 기록되어 있지만, 아마도 그리스도는 때때로 자기의 궁핍한 가정 생활을 돕는 일을 했을 수도 있다.)
타인이 보기에는 어쩌면 신랑측에서 포도주를 더 가져 오도록 사람을 보낼 수도 있을지도 모르지만, 예수의 모친은 생수의 근원인 예수에게로 나아왔다.
① 우리는 우리 친구들의 궁핍이나 부족에 대하여 관심을 가져야 하다. --단지 "우리 자신의 것에만 집착해서는 " 안 된다.
② 우리의 소유와 우리 친구들의 곤궁에 대하여는 기도로써 그리스도에게 간청하는 것이 우리의 지혜요 의무이다.
③ 그리스도에게 고할 때, 우리는 그에게 명령할 것이 아니라, 그 앞에 우리의 처지를 겸손하게 내놓음으로써 우리 자신을 완전히 맡겨야 한다.
(2) 자기 모친에 대한 예수의 견책으로 읽어야 마땅한 표현이 나와 있다.
아마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큰 어떤 잘못이 그녀에게 있었기 때문이리라.
① 견책의 내용을 보자.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 그리스도는 많은 사람을 사랑하지만 그만큼 또 견책도 하고 응징하기도 한다.
그는 "어머니"라 부르지 않고 "여자여(여인이여)"라 [그래도 부드럽게!!]부르고 있다.
...우리가 주제넘는다고 생각될 때에는, 자신이 남자인지 여자인지를 막론하고, 연약하고 어리석고 그리고 부패한 자인 것을 자각하고 어떻게 구하여야 할 지를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한다.
-- ‘티 에모이 카이 소이’라는 질문은 "나와 당신에게있어서 그것이 무슨 상관입니까?"로 읽을 수도 있는데, 보통 "어떤 관계가 있습니까?"라고 해석되어 왔다(삿 11:12; 삼하 15:10; 에 4:3; 마 8:29 에서도 볼 수 있다).
따라서 이 질문은 부모를 공경하라(존경과 순종을 나타내야 한다)는 제5계명과는 전혀 무관한 일종의 의로운 분노감정을 나타내고 있다(눅 2:51). 왜냐하면, 레위가 "자기 아버지에게 나는 당신을 모릅니다고 했을" 때도 오히려 칭찬했기 때문이다(신 33:9).
이제 이 질문에서 의도하는 것을 보자.
첫째, 예수의 신성에 속하는 행위 문제에 참견하려는 모친을 견책(질책??)한 것이리라..
-- 그것은 어머니에 의존하지 않으며, 그 문제(신성에 속한 것을 육적 관점에서 참견함)에 대해서는 그녀가 모친이 아니라는 뜻이다.
... 비록 그가 인간으로서는 다윗의 자손이고 여인의 아들이지만, 신으로서는 다윗의 주이며, 여인의 주이며, 이 사실을 자기의 모친에게 알려 주고 싶었던 것이다. ....가장 훌륭한 출세를 했더라도 그것이 우리 자신과 우리의 처지를 잊게 하거나 은혜를 경멸하게 해서는 안 된다.
둘째, 그것은 여기에 참석한 그의 다른 친척들을 향한 교훈을 주는 것이다.
-- 예수와의 혈연관계를 이용하여 기적을 기대하거나 특혜를 바라서는 안 된다 는 것이다.
...하나님의 일에 대해서는 우리가 "얼굴을 대면한 듯이 알 수는" 없다..
세째, (이 장면 부분을 잘못 해석함으로써)후세의 로마 카톨릭 교회는 동정녀 마리아를 지나치게 숭배함의 우상 숭배를 범하게 되었다.
본문은 실상은 결코 그렇게 해석함으로써 우상숭배를 허용할 수는 없음, 곧 바로 그 우상숭배를 유도한 오류에 대해 강력한 반증을 제기하고 있는 셈이다. 그들은 마리아를 "하늘의 여왕," "세상의 구원," 자기들의 "중재자," 또 "생명"과 "소망"이라고 부른다. 더욱이 그녀의 공적과 중재를 의존할 뿐만 아니라, 자기들에게 복을 베풀어 달라고 "그녀의 아들에게 부탁하도록" 그녀에게 간구를 드린다. Monstrate esse mathem-즉 (예수의 모친이시여) 구원주에게 당신의 모성적 부탁을 올리소서, .
... 예수는 기적을 나타내실 때, 심지어는 그가 모욕을 당하실 때에도,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라고 분명히 말하고 있지 않는가? 이 말은 엄청난 우상 즉 무서운 신성 모독을 "예방하며," 따라서 그런 숭배를 더욱 정죄하는 말이라고 하겠다.
...하나님의 아들은 아버지와 함께 우리의 변론자이지만 우리 주의 어머니는 아들과 같이 우리의 변론자가 될 수 없다.
② 이런 책망의 이유를 보자. "내 때가 아직 이르지 못했나이다." 그가 행하는 모든 일에는 그의 때, 즉 적합하고 가장 알맞은 시기가 있기 때문이다. 이제 여기에 대해서 자세히 살펴본다.
첫째, "기적을 행할 나의 때가 아직 이르지 못했나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때가 이르기 전에라도, 제자들의 믿음과 유익을 위해) 기적을 나타내셨는데, 이것은 어린아이와 같은 자기 제자들의 믿음을 확고하게 해 줄 필요를 예견하였기 때문이다(11절).
여기에 그의 모든 기적의 목적이 드러나고 있다. 이것은 그의 때가 이르렀을 때 그가 행한 많은 기적들의 전조였다.
둘째, "공개적으로 기적을 드러낼 수 있는 나의 때가 아직도 이르지 않았나이다. 그러므로 공공연하게 기적에 대해서 말해서는 안됩니다."
세째, "아버지가 허락하여, 예언자로서 행동을 나타내기 시작할 때가 아직 안 왔나이다." 그레고리 니센(Gregory Nyssem)은 그렇게 본다.
네째, "이러한 기적을 나타낼 수 있는 나의 때가 아직 이르지 않았나이다." ..
.... 포도주가 "모자라기 시작하자" 예수의 모친이 저들을 도와 달라고 그에게 왔는데(3절 참고), 그의 때란 포도주가 "완전히 소비"되어, 전혀 없을 때라는 것이다. 이것은 아직도 남아 있는 포도주에 물을 섞었다는 의심을 없앨 뿐만 아니라, 인간의 철저한 궁핍으로 인해 궁지에 몰려 무력/연약함의 극치에 달할 바로 그때가 하나님이 인간을 돕고 구원을 나타낼 수 있는 기회라는 것임을 가르쳐 주고 있다.
그래서 우리가 최악의 궁핍에 이르러 어찌할 바를 모를 때 비로소 그의 때가 이르게 된다.
참된 용자, 용기 있는 사람이란 비록 그의 때가 아직도 이르지 않았지만 반드시 올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사람이다.
-- 여기서 주의해야 할 점은 자비의 지연을 기도의 거절로 해석해서는 결코 안 된다.
(3) 이러한 예수의 대답에도 불구하고, 마리아는 그가 이러한 곤궁에서 [반드시!!] 도와주리라는 기대를 가지고 예수의 모친은 한층 더 용기를 내어, 하인들에게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고 했다(5절).
① 모친은 순종하는 마음으로 그 꾸중을 들었다. 결코 변명하지 않았으며 낙심하지도 않았다.
-- 물론, 그리스도에게 책망 받지 않는 게 최선이겠으나, 꾸중을 들어도 온순해지고, 침착해지며, 그 책망을 친절한 행위로 여기는 것이 차선이다(시 141:5 참조).
② 모친은 자기 소망을 그리스도의 자비에 맡겼고, 그리스도 역시 모친의 소망을 [넉넉히] 채워 주었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자비를 구하러 나아갈 때, 우리에게 용기를 꺾는 두 가지 일이 있다.
첫째, "우리 자신의 어리석음"과 연약함이다.
-- "기도를 해도 이루어질 수 없다고 생각하는 불안전한 기도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둘째, "우리 주의 분노와 책망"에 대한 생각이다.
-- 계속적인 고통과 구원의 지연, 또한 우리의 기도에 화나신 듯한 하나님의 표징 등이다.
...이 두 가지 전부가 예수의 모친에게 해당되는 경우이기도 하다. 그러나 모친은 소망을 가지고 용기를 내었기 때문에... 결국 예수는 안심되도록 하는 대답을 주었다.
-- 여기서 우리에게, (하나님의 선하심에 근거하여 하나님 영광 보기를 구하는 바) 기도는 믿음으로 열렬히 중단없이 이루어짐 볼 때까지, 심지어는 일의 진행이 우리의 기대와 반대되는 방향으로 전개되는 것같이 보일 때라도, 하나님과 믿음으로 붙들어서 끝까지 씨름하라고 가르치고 있다. -- 우리는 희망 할 수 없는 중에서도 희망을 얻어야 한다(롬 4:18).
③ 모친은 즉시 하인들더러 그를 주시하도록 일렀다.
하인들더러 그녀 자신을 주시하라고 하지 않았다. 모친은 이제 예수에 대한 어떤 주장이나 간섭을 포기하고 있다.
-- 이제, 하인들은 예수만 바라보고 있었다(시 62:5 참조).
④ 모친은 하인들에게 논쟁이나 질문도 하지 말고 그가 시키는 대로 하도록 일러두었다.
-- 즉 모친은 예수에게 지시함이 잘못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하인들에게 같은 잘못을 범하지 않도록 그래서 채워 줄 수 있는 그의 때와 방법에 복종하도록 일러두었다.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 비록 그의 말이 부적당하다고 생각되어질지라도 괜찮다. 만약 손님들이 포도주를 청할 때, 그들에게 물을 갖다 주라고 말씀하시더라도 그렇게 하라. 혹은 다 비운 포도주병을 그들에게 부어 주라 하더라도 그렇게 하라. [그는 몇 방울의 포도주로도 많은 포도주를 만들 수 있느니라.]"
....여기서 주의해야 할 점은, 그리스도를 따르려는 사람은 그의 명령에 철저히 복종해야 한다는 점이다.
마땅한 의무의 길에 행할 때 자비를 받게 된다. 그리스도의 방법은 어느 곳에서도 구애받지 않는다.
(4) 그리스도는 결국 기적적으로 그들의 필요를 채워 주셨다.
때때로 그의 말씀 이상의 기적을 행하시기는 하나 결코 말씀에 못미치는 일은 아니한다.
①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킨" 기적.
-- 물의 본질과 형태가 모두 새로운 형태로 바뀌어 포도주가 되었다. 이런 "변형"은 "기적"이다.
((그러나 카톨릭의 "화체설(化體說)" 즉 본질은 변화되나 우연적 성질은 여전히 그대로 남아 있다는 설은 하나의 괴물이다.))
이리하여 그리스도는 자신이 본성적으로 하나님임을 나타내셨다. 하나님만이 땅에서 포도주를 나게 하신다(시 104:14, 15).
매년 기름진 땅에서 포도즙을 짜내는 것도 능력 있는 일이지만, 그러나 자연법칙면에서 볼 때는 이 기적만큼 놀라운 일은 못된다.
--모세가 기적을 베풀기 시작한 것은 물로 피로 만드는 때부터이다(출 4:9; 7:20). 그러나 그리스도의 표적의 시작은 물을 포도주로 만드는 것이다. ... 이것은 모세의 율법과 그리스도의 복음 사이의 차이를 암시하고 있다. 율법의 저주는 물을 피로 되게 하는, 즉 일반적인 즐거움을 고뇌와 공포로 바꾸는 것이지만, 복음의 축복은 물을 포도주로 바꾸는 것이다. .
... 그러므로 그리스도는 믿는 사람 모두에게 삶의 즐거움을 증진시켜서 참 즐거움을 느끼도록 하는 것이 그의 사명임을 보여 주고 있다. 실로는 "포도주로 옷을 빤다"고 했다(창 49:11). 즉 물이 "포도주로 바뀐"것이다. 그리고 복음은 "너희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포도주를 사먹으라"(사 55:1)고 우리들을 부르고 있다.
② 기적의 여건이 거기에 어떤 속임수도 없었음을 보여준다.
첫째, 돌항아리에서 된 일이다. "돌항아리 여섯이 놓여 있었다"고 했다(6절).
[[돌은 죽은 돌이요, 정체된 물도 죽음, 곧 생명이라고는 전혀 없음, 기쁨이나 축제와는 전혀 무관하다!!]
이러한 물통은 의식법상의 부정을 율법적으로 점화시키기 위해 쓰여졌다.
"유대인들은 손을 씻기 전에는 먹지를 않는다"(막 7:3). 그래서 그들은 씻는데 많은 물을 사용한다.
그래서 6개의 큰 물항아리가 있었다. 이 물항아리에 대한 속담이 있다. "씻는 데 물을 많이 사용하는 사람은 이 세상에서 많은 재물을 얻을 것이다".
-- 그리스도가 이 돌항아리를 사용함으로써 그들이 의도했던 사용 방법과는 아주 달라졌다. 즉 기적을 드러내는 포도주 항아리로 사용되었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는 하나님과 사람을 기쁘게 하는 "포도주"와 같은(사 9:13). 복음의 은총을 가져 왔다,
"유익하고 빈약한" 성질의 물과 같은 율법의 그림자를 가져 온 것이 아니라 한 번도 포도주 항아리로 사용되지 않은 [돌로 된] 물 항아리가 있었다.
"물"항아리는 향기를 보존하는 데 적합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 이 돌 항아리 하나에 "두세 통"(최소량 기준으로 1통은 1/4배럴...1배럴은 159리터,,,따라서 돌로 된 물항아리 1통은 대략40리터들이...2.5통*6=15통이요 40리터를 곱하면 무려 총 600리터정도가 들어가는 셈이다), 즉 2,3밧 또는 에바 들이였다. 확실치는 않지만 아주 상당한 크기이다.
많은 기름처럼(왕하 4:7), 포도주는 결혼한 새 부부에게 자비를 베풀려는 것이지 잔치에 참석한 모든 사람들을 취하게 만들려는 것은 아니었다.
그리스도는 역시 자기 자신도 이렇게 풍성히 주신다. 풍성한 영광에 어울리도록 주신다.
이 항아리가 두세 통의 크기라는 것은 기록자의 말이다. 성령은 이 항아리의 크기를 아주 정확하게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
...이와 같이(6:19 처럼), 아주 확실하지 않은 물건들에 대해서는 조심스럽게 그리고 확신을 가지지 말고 이야기하도록 할 것을 가르쳐 준다.
둘째, 그리스도의 말씀에 따라 하인들이 항아리의 "아구까지" 채웠다(7).
주의 종의 모세에게 하나님이 명했을 때, 바위로 가서 물을 나오게 한 것처럼, 이 하인들도 그리스도가 명하였을 때, 물을 길어 포도주를 취하였다. 여기서 주의할 점은, 이제까지 어떤 어려움도 하나님의 능력에는 저항할 수가 없는 것처럼, 그리스도의 명령의 말씀에 반대되어지는 것은 일어날 수 없다는 점이다.
세째, 기적이 순식간에 일어났고, 그래서 더 놀랍게 되었다.
a. 하인들이 물항아리를 채우자 즉시 "떠서 갖다 주라"라 했다(8절). 그리고 그대로 행해졌다.
(a) 아무런 의식도 거치지 않고 남들이 보는 중에 했다.
::: 사람들은 생각하기를, 나아만처럼, 예수가 나아와 서서 여호와의 이름이라도 부르길 바랬을 것이다(왕하 5:11). 그러나 그리스도는 말없이, 여전히 앉아 계시면서 기적을 행하셨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그리스도는 "소란을 피우지 않고" 은밀히 기적을 행했다는 점이다.
때때로 그리스도는 기적을 행하시면서 말씀과 표적을 사용하신다. 그러나 그것은"둘러선 무리를 위함이었다"(11:42)
(b) 그리스도의 마음에는 어떤 주저나 불안이 없다. "떠먹어 보고 갖다 주라"고 말하지 않았다. .
...비록 이 기적이 첫 기적이지만, 그는 자기가 해야 할 일을 알았던 것처럼, 자기가 할 수 있는 일도 알았다.
그렇다고 자기의 기적을 시험해 보지도 않았다. 그렇지만, 이 표적은 잘 되었으며, 처음이지만, 아주 잘 되었다.
b. 우리 주 예수가 하인들에 지시한 것을 보자.
(a) "뜨라." 즉 항아리 속에 두지 말고 마실 수 있도록, 떠서 갖다 주라. 마시게 하라.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a] 그리스도의 일들은 모두가 "우리를 위한"것이란 점이다. 그는 어떤 사람에게 묻어두라고 재능을 주진 않았다. 그리스도는 당신에게 지혜와 은혜를 주었는가? 당신의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켰는가? 그것은 "모두를 유익하게" 하기 위해서다. 그러므로 "떠서 갖다 주라."
[b] 그리스도를 알려는 사람들은 그리스도를 시험해 보아야 한다. 보통의 수단을 사용해서 그에게 시중을 들어보면, 특별한 감화를 받게 될 것이다. "주를 두려워하는" 자를 모두를 위하여 "쌓아 두신" 것이 "주를 신뢰하는 자들을 위하여 쓰인다"(시 31:19). 고로 신앙을 발휘하여 "쌓아 둔" 은혜는 "퍼다 써야" 한다.
(b) 포도주를 "연회장에게" 주라 했다.
...어떤 성서학자는 이 연회장이 주빈으로 가장 상석에 앉았다고 생각한다. 만약 그렇다면, 오로지 우리 주님이 주빈으로서 그 좌석을 차지했어야 한다. 그러나 아마도 상좌에는 그 자리를 "좋아하는" 사람(마 23:6), 그래서 그것을 선택한 사람(눅 14:7)이 앉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리스도는 자신의 규율에 의하여 "가장 아랫자리에 앉았다." 그러나 비록 그가 연회의 주빈으로 대우를 받지 못하지만, 자신을 연회에 참석한 사람들과의 친구임을 친히 나타내고 있다. 그는 잔치를 베푼 자는 아니지만 잔치의 최고 후원자였다.
...또 어떤 성서학자는, 이 연회장이 연회의 감시자이고 운영자라고 생각한다. 즉 플루타크(plutarch)의 연회장(symposiarcha)과 같은 것으로써, 그의 직책은 매사가 충분한가, 지나치게 행동하는 사람은 없는가, 음란한 행위자나, 무질서한 자들이 없는가를 감시하는 자라는 것이다. --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연회는 통제자가 필요하다는 점이다. 그것은 연회에는 많은 사람들이 참석해 자체의 통제가 곤란하기 때문이다.
... 또 다른 성서학자는 이 "연회장"을 제사장이나 레위인 같은 "성무 담당자"(chaplain)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들은 축복을 빌고, 감사제를 드린다. 그래서 그리스도는 연회장에게 술잔을 주었고 이 연회장은 술잔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축복을 기원했을 것이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출현과 능력의 독특한 시현이 있었지만, 경건과 헌신의 일반적인 규칙과 방법을 깨거나 무시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네째, 이와 같이 기적으로 만들어진 포도주는 연회장에게 인정받은 가장 최상의 종류이었다.
....즉 과찬이 아니라 실제로 그랬다. 그것은 그 포도주가 어디서 났는지를 그가 모르고 있었기 때문에 그 만큼 사실이다(9,10절).
다시 떠온 술이 포도주임이 확실했다. 비록 연회장은 이 포도주가 어디서 났는지를 모르지만, 그가 맛봄으로써 포도주임을 알았다. 하인들은 이 포도주가 어디서 났는지를 알지만, 아직 맛을 보지는 못했다. 만약 맛본 자가 어디서 가져 왔는지를 알았다면, 혹은 떠다 준 자가 그 맛을 알았다면, 이 사실을 환상으로 돌렸을 것이다. 그러나 이젠 의심의 여지가 없다.
...가장 좋은 포도주였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그리스도의 기적은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에게조차 드러난다는 점이다. 기적의 결과는 항상 최고의 품질이다. 이 포도주는 일반 것보다 더 "강한 밀도"와 더"좋은 맛"을 지녔다. 이 연회장은 더없이 즐거운 기분으로 신랑을 바라보았다.
a. 그것은 흔히 하는 방식과는 달랐기 때문이다. 좋은 포도주는 먼저 손님들의 정신이 맑고, 욕구가 신선할 때 가져다주어, 그 포도주를 칭찬하게 한다. 그리고는 손님들이 적당히 취해 그들의 정신이 몽롱하고 욕구가 침체되었을 때는 좋은 포도주가 아니라 나쁜 포도주를 내온다. 그래서 즐거운 기분이 사라지고, 곧 싫증이 나 불쾌해지며, 더 이상 즐길 수 없게 된다.
b. 이 신랑은 비축해 둔 좋은 포도주로, 손님들에게 호의를 보였다는 찬사를 받았다. "그대는 지금까지 좋은 포도주를 두었도다." 이 연회장은 이 좋은 포도주를 베푼 사람이 누구인지도 모르고. 좌석에 앉아 있는 신랑에게 감사했다. "곡식과 포도주를 내가 저에게 준 것을 저는 알지 못하였다"는 말이 있다(호 2:8).
(a) 그리스도는 손님들에게 포도주를 풍성하게 제공함으로 특별히 즐거운 시간에는 포도주를 사용하여 건전한 즐거움을 삼을 것을 허용했었지만(느 8:10) 그렇다고 그가 우리의 마음이 어느 때나 심지어 결혼 잔치에서라도 "방탕함과 술 취함"으로 지내서는 안 된다는 자신의 경고의 말씀을(눅 21:34) 무효화시킨 것도 아니요, 그 말씀을 손상시키신 것도 아니다. ---그리스도에게 그들이 마시도록 좋은 포도주를 제공한 것은 그들이 절제할 수 있는가를 시험해 보시려는 의도가 있는 것이었고 "인간의 수단에는 결핍이 따른 수밖에 없으나 하나님의 아들에게는 풍성함이 있음을 보여 주려는 데 뜻이 있었다. 강요된 절제는 칭찬할 만한 덕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신의 섭리로 우리가 충만한 기쁨을 받고 또 신의 은혜로 그것을 절제할 수 있게 된다면, 그것은 칭찬 받을 만한 자기부정(극기)이다.
(b) 그리스도는 자기와 함께 한 사람들과 어울리는 방법의 표본을 보여 주었다. 즉 "끝까지," "좋은" 포도주를 비축해 그들의 봉사와 수고의 보답은 하늘 나라에서 받을 것이다. 장차 드러날 영광이다. 죄의 쾌락은 술잔을 보기 좋게 하지만 "마직막에는 쓰다" 그러나 신앙의 쾌락은 갈수록 더한 즐거움으로 변하게 된다.
Ⅲ. 이 이야기의 결론에서(11절) 다음을 듣게 된다.
1. 예수가 "처음으로 기적"을 나타내셨다.
...예수의 탄생과 세례에서-그러나 그 자신이 바로 가장 큰 기적이다. 많은 기적들이 있었지만. 이 기적은 그가 행하신 첫 기적이었다. 그는 성전에서 율법학자들과 논쟁할 때가 이르지 않았었다. 그는 능력을 가졌지만 그때는 아직도 그의 때가 이르지 않았었다. 그는 능력을 가졌지만 그때는 "능력을 감출 때"였다.
2. 여기서 그는 "그의 영광을 나타냈다"고 했다.
...그는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임을 드러냈고, 하나님의 영광이 독생자이신 예수의 영광임을 증명하였다. 그는 또한 자기 일의 성격과 목적을 나타내셨다. 그의 모든 기적들에서, 특히 이 혼인 잔치의 기적에서 자신이 오랫동안 기대하던 메시야임을 명백히 했다.
3. 그의 제자들이 [기적 나타내심의 영광을 직접 보고!!]그분이 메시야이심을 (이제 확실히 알고) 믿게 되었다....다만 말씀하신 그대로 주께 순종한 하인들은 그 기적이 참됨을 알고(경이롭게 여겼겠지만) 메시야로 믿었다는 기록은 없다!!.
...그가 불렀던 제자들은 아직도 기적을 보지 못하고 그를 따랐는데, 이제 기적을 보고, 그들의 믿음이 더욱 굳어졌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이 있다.
(1) 믿음이 진실하더라도 처음에는 연약하다. --가장 강한 사람도 어린아이였을 때가 있는 것처럼 아주 믿음이 돈독한 사람들도 마찬가지이다.
(2) 그리스도가 영광을 나타냄으로써 그리스도인들은 더 확고한 믿음을 갖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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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 성전 정화(요 2:12-22)...성령세례 받으시고 행하신 바 3년간의 공생애사역 중, 총4번의 유월절 중 첫 유월절
Ⅰ. 그리스도는 가버나움에 잠간 동안 계셨다(12).
--- 이 가버나움은 가나에서 하루 정도 걸리는 크고 잘 알려진 도시이다. 그곳은 "예수의 본 동네"라고 했다(마 9:1). 그 이유는 그가 그 곳을 갈릴리의 사령부로 삼았기 때문이다. 이제 그가 거기에 잠시 머물렀다. 그 곳은 사람이 있는 집합지이므로, 그 곳을 택해서, 그의 설교와 기적의 소문이 퍼져나가게 하려 했다.
1. 그 지역으로 그와 동행한 사람들은, "그의 어머니, 그의 형제, 그리고 그의 제자들"이었다. 그리스도는 가는 곳마다
(1) 혼자가 아니라, 그의 보호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취하사 그들을 가르쳤고 그들은 그의 기적을 증거 했다.
(2) 그는 혼자 "갈 수 없었다." 그들이 그를 따르려 했다. 그들은 그의 가르침, 혹은 포도주의 맛을 좋아했기 때문이다(4:26).
...예수는 자기의 전도 사업에 있어서는 어머니를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생각한다고 알려주었지만, 그의 어머니는 그를 따랐다. 즉 그를 방해하지 않고 그에게 배우려고 따라 다녔다. 역시 혼인 잔치에 참석했던 그의 "형제"들과 친척들도 그가 행한 기적을 보고 따라 다녔으며, 또한 "그의 제자들"도 그가 가는 곳마다 따라 다녔다. 사람들은 그리스도를 거의 낯선 사람으로 여길 때가 오히려 잘 안다고 생각할 때보다 그의 기적에 더 영향을 받는 것 같다.
2. 그는 거기서 "여러 날을 머무르지 않았다." 나중에도 단지 "필요한" 정도로만 친숙해지려 했다.
..."많은" 사람들이 그를 필요로 했기 때문에, 그는 "한" 장소에만 머물 수 없었다. 그는 자기를 따르는 사람들에게, 이 세상의 "나그네"처럼 행동해서 기회가 주어지는 대로, 그리고 섬기도록 인도하시는 분이 이끄는 대로 가라고 가르치곤 했다.
...당시는 그리스도가 회당 안에서 가르친 것이 아닌 것 같다. 단지 개인적으로 자기 친구들에게 가르치면서, "점차적으로" 자기의 사업을 수행하고 있었던 것 같다. -- 젊은 사역자들은 개인적으로 경건하고 덕성을 기르는 일에 익숙해지는 것이 좋다. 그래야 그들은 더 나은 준비와 더 큰 경외심을 가지고 공적인 일에 접근할 수 있다.
...그는 유월절을 앞두고 예루살렘에 가야 하기 때문에 가버나움에 오래 지체할 수 없었다. 만사에 적합한 때가 있는 법이다. 작은 선은 보다 큰 선에게 양보해야 한다. 또 야곱의 모든 거처들은 시온의 문들에게 양보해야 한다.
Ⅱ. 예루살렘에서 유월절을 지켰다.
-- 성령으로 세례 받으신 후 첫 유월절이다. 복음서 기자는 이후 예수가 지키시는 유월절을 주의 깊게 관찰하고 있다. 그리스도는 4번의 유월절을 지키셨는데, "4번째에" 수난을 당하셨으며(3년 이후), 살펴보고자 하는 지금, 이 유월절은 성령으로 세례받으신 후 반년쯤 경과한 때이다.
-- 그리스도는 "율법에 매여" 있으므로 예루살렘에서 유월절을 지켰다(출 23:17 참조). 이와 같이 그는 모범적으로, 거룩한 의식의 철저한 준수와 집회의 열성적인 참석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다. 그는 "유월절을 앞두고" 예루살렘으로 올라가, 그 행사에 먼저 참석하셨다. 이 행사가 유대인들에게만 특별하기 때문에 "유대인의 유월절"이라고 부르고 있다(그리스도는 "우리의" 유월절이시다). 그러나 이제 곧 하나님은 그것을 인정치 않으실 터였다. ...그리스도는 12살 이후부터 율법에 따라, 매년 예루살렘에서 유월절을 맞이하셨는데, 이제는 공적인 임무를 띠고 올라갔다. 우리는 예수가 예루살렘에 머무심에서 두 가지 일을 볼 수가 있다.
1. "성전을 깨끗이 하셨다"(14-17절).
(1) 예루살렘에서 그를 발견할 수 있는 처음 장소는 성전이다.
--이 성전에 나타나기까지는 어떤 공적인 나타남이 없었던 것 같다. 그 곳에서의 그의 나타나심과 가르치심의 사실이 제2 성전의 보다 큰 영광이었다(학 2:9). 또 예언된 말씀을 보면(말 3:11), "내가 내 사자," 곧 세례 요한을 "보내리라."<그는 성전에서 가르치지 않았으나> 너희 구하는 "주가 홀연히 임한다는 것이다. 이 때가 예언되었다. 그 때이며, 성전이 그 장소이며, 그분은 우리가 기대했던 메시야이시다.
(2) 성전에서 그가 하는 첫 사업은 성전의 "청소"였다.
--이 일은 예언되어진 것이다(말 3:2, 3). "그는 은을 연단하여 깨끗케 하는 자같이 않아서 레위자손을 깨끗케 하리라."
...이제 개혁의 시기들의 방법에 따라서, 그는 먼저 나쁜 것부터"제거했다"(히스기야 시대처럼, 이것이 유월절에 할 일이다. -대하 30:14, 15 - 요시아 시대에도 그렇게 했다- 왕하 23:4). 그후 그들에게 잘 하도록 가르쳤다.
먼저 "묵은 누룩을 치운 다음에야 잔치를 한다." 먼저 세상에 오신 그리스도의 목적은 이 세상의 개혁이었다.
자기에게 오는 사람들의 생활을 바꾸도록 하는 것이 그리스도의 생각이었다(창 35:2). 성전을 청소하심으로써 그리스도는 바로 이것을 가르치셨다.
① 부패한 것들을 청소해야 한다.
--그는 성전의 한 모퉁이가 시장터가 되어있음을 발견했다. 그 장소는 이른 바 "전의 산" 안에 있는 "이방인들의 뜰"이라고 불리웠다.
첫째, 그곳에서 그들은 제물에 쓸 "소와 양과 비둘기"를 팔고 있었다.
...우리가 생각해 볼 때, 이것은 처음에는 일반적인 장사의 용도는 아니었다.
먼 지방에서 온 사람들이 희생 제물을 가져 올 수가 없기 때문에, 그들의 편리를 제공하려는 것이었다(신 14:24-26 참조).
아마 이 "시장"은 원래는 베데스다 연못 곁에 있었으리라(5:2). 그런데 대제사장이 (부정한 이득을 위하여) 성전 안에서 팔도록 허락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의심할 바 없이, 그 안에 설치한 장소사용료(지대地代)와 거기에서 파는 동물들을 검사하는 수수료에, 그리고 흠이 없는 동물로 인증(認證)하기 위한 인증료 등은 그들에게 상당한 수입이 될 것이었기 때문이다. 교회 내의 큰 타락은 개개 사역자들이 돈에 대한 집착을 늘릴 때 온다(딤전 6:5, 10).
둘째, 그들은 "돈을 바꾸었다." ...성전의 사업을 매년 정금(正金)으로 반 세겔을 성전세 형식으로 지불하는 사람들의 편리를 위해서였다(출 30:12)..
[로마화폐를 성전에서 사용하는 전용화폐로 바꾸어주면서 환전료를 징수]
② 우리 주께서 이런 부패들을 일소하신 과정을 보자.
--그는 이전에도 성전 안의 이런 부패를 보아 왔다. 그때는 사적인 신분이었다. 그리고 그때는 성전의 부패를 일소하려 하지 않았었다.
그러나 이제 그는 공적인 예언자로서의 성격을 취했다. 그는 이제 대제사장들이 이런 부정을 암암리에 조장시키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첫째, 그는 장사치들이 "팔고 있는 양과 소들을" 성전 밖으로 추방했다.
--그는 성전 안으로 어떤 것을 끌어들이려고 "힘을" 사용한 것이 아니라, 단지 신성을 더럽히는 것들을 성전밖으로 추방하려고 그랬다.
비록 그는 짐승들이 성전을 모독하는 침입자라는 것을 알지만, 그 짐승들을 직접 붙잡아서 가두어 버리지 않았다.
단지 장사치들과 짐승들을 내쫓으려는 것이었다. 아마도 장사치들이 짐승들을 모는 데 쓰다가 버린 "가느다란 <골풀>줄"로 된 회초리를 집어들었을 것이다.
죄인들을 성전 밖으로 쫓아내려고 채찍을 휘두른 게 아니라(그의 징벌은 전혀 성질이 다르다), 장사치와 짐승들을 단지 성전밖으로 쫓으려는 것이었다.
즉 그의 목적은 오직 개혁이었다(롬 13:3, 4; 고후 10:8 참조).
둘째, 그는 "환전상의 돈을 쏟으셨다."
--돈을 쏟으심으로써 돈에 대한 경멸심을 보이셨다. 돈을 땅에다 던지셨다.
그는 상을 뒤엎으심으로써 종교를 빙자해서 세속적인 이득을 취하려는 자들에게 적대감정을 나타내셨다. 성전 안의 환전상들은 성전의 수치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개혁할 바에는 철저한 개혁이 좋다는 것이다.
그는 가축을 모두 내쫓을 뿐만 아니라, 환전 상인들과 거래자들을 내쫓았으며, 상을 뒤엎어 버렸다.
세째, 비둘기(가난한 자들이 드리는 희생물)를 파는 자들에게는, "여기서 가져가라고 하셨다."
--비록 그들은 소나 양을 파는 장사치들보다 장소를 덜 차지하고, 폐를 덜 끼치기는 하지만, 성전 안에서의 장사행위는 허용할 수 없었다.
참새와 제비는 섭리에 따라서 주의 집에 거할 수 있었지만(시 84:3), 비둘기는 파는 사람에게 이익을 줄 수 있으므로 성전에 사는 것이 허락되지 않았다.
하나님 성전은 비둘기의 집으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그의 열성 속에서도 신중함을 보라.
양과 소들을 내쫓을 때는 주인들이 그 흩어진 가축들을 붙잡아 데리고 나갈 수 있으며, 돈을 쏟아도 주인들이 다시 주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만약 비둘기들을 흩어서 날아가게 한다면, 아마 다시 붙잡을 수 없을 것이므로, 비둘기를 파는 자들에게는 "여기서 가지고 나가라"고 말하셨다. .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신중성이 항상 우리의 열성을 인도하고 통제해서, 우리 자신을 가다듬고, 다른 사람에게 폐를 끼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네째, 그는 자기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한 타당성을 제시하고 있다.
--"나의 아버지 집을 장사하는 집으로 만들지 말라." 개혁하려는 힘은 확신에 근거를 두어야 한다.
a. 여기에는 장사치들이 성전을 더럽힐 수 없는 이유가 있다.
그것은 이 성전이 "하나님의 집"이지, 장사치들의 집이 아니기 때문이다. 장사란 성전 안에서 하는 것이 아니라면 하나의 좋은 일이다.
...[주께서 뒤집어 엎으시기전에 Q말씀앞에서 먼저 정욕과 탐심으로 둔해져 있지 않은지 자신을 돌아보아 회개/토설하여 마음안의 성전을 깨끗하게 하자!!]
(a) 그러나 장사꾼들의 이 행위는 하나님의 위엄을 "저해하는" 신성모독이며, "약탈" 행위이다.
(b) 성전의 신성과 엄숙을 저하시켜서, 천하게 만들었다.
(c) 사람들이 가장 귀중하고 진지하게, 그리고 열성적으로 생겨 야 할 예식들을 혼란시키고 왜곡시켰다.
--특히 양과 소와 함께 떼를 지어 예배를 드림으로써 하나님을 이방인에게서 모욕당하게 했으며, 시장의 소음 속에서 예배를 드림으로써 사람들의 마음을 흩어지게 했다. 왜냐하면 이 시장은 이방인들의 뜰에 있었기 때문이다.
(d) 종교의 업무를 세속적인 이해(利害)에 부수적인 것이 되게 했다.
--왜냐하면 장소의 거룩에 대한 생각은 전혀 없이 매매시장을 번창케 하고, 상품의 판매를 촉진시켰기 때문이다.
이런 것들이 하나님의 집을 장사하는 집으로 만들고 있었다.
[a] 종교 의식에 참석하면서도 그들의 마음은 세상일의 염려로 가득차 있다(암 8:5; 겔 33:31).
[b] 부정한 이득 때문에 하나님의 일을 하며 성령의 은사를 팔았다.(행 8:18).
b "성전은 하나님의 집"이기 때문에, 그것을 청소했다고 했다.
(a) 그는 "아들"이므로 그 집을 청소할 권위를 지녔다(히 3:5, 6). 하나님을 자기 아버지라 부름으로써, 그는 사람들이 말하던 메시야가 자기임을 드러내고 있다. "저는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을 건축할 것이요, 나는 그 아비가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라"(삼하 7:13, 14).
(b) 그러므로 그는 성전을 청소하려는 열심을 가지고 계셨다. 즉 "성전이 내 아버지의 집이므로, 그 집이 더럽혀지고 아버지가 모욕당함을 참을 수가 없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만약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요, 따라서 우리의 소망이 되신다면, 그의 이름이 거룩하게 되기를 바라야지 그의 이름이 망령되이 일컬어지게 해서는 결코 안 된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의 성전 청소는 당연히 놀라운 기적의 하나로 인정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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