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실로(하나님의 진리말씀과 하나되어...assuredly and, most solemnly)...영(심령, 내적 자아로)과 진리로(하나님의 말씀 바로 그대로) ...really and truely ##전파된 복음, 곧 믿음의 말씀<the word of faith :: 그리스도께서 구주시며(그리스도가 바로 하나님으로서의 권능, 주권, 위엄을 가지신 분임을 깨달아 인식하고 시인함) 하나님이 그를 죽은자 가운데서 살리셨다는 선포된 말씀>을 귀기울여 들음으로써(hear) 바로 그대로 마음에 믿고(believe and trust in : ) <그리스도 예수의 나의 주, 나의 하나님, 나의 구주되심과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마음에 믿으면, 곧 마음에 믿고 구주로 영접한 바 입으로 고백하여 시인하면> 구원을<영생에 이르는 구원> 받으리라. --------------- ::: 신자의 믿음의 상승, 증강 단계 :: 1>[도우시는] 주님을 신뢰, 앙망, 의지하는 믿음 :: belief [ :: believe (trust) in, rely on, cling(adhere) to God]...하나님을 앙망하며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주 이름 불러 하나됨 그 안으로 믿어들어감의 신뢰/앙망하는 믿음 ==>2>[산을 옮기는, 발휘되는] 하나님의 전능한 믿음 :: faith, 내주하시는 하나님이 친히 공급하시는 하나님의 믿음(하나님의 전능한 믿음 = Faith....이것이 그리스도께서 신자안에서 찾으시는 믿음이요 모든 것을 가능케 하는, 산을 옮기는 믿음 faith이다) :: 이를 위해 기도와 금식 통해 <전존재, 목숨 걸고> 주님을 추구하라 하심!! -----------[관련 성구..개역개정/AMP]------- [마17:20] *20. 이르시되 너희 믿음이 작은 까닭이니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에게 믿음이 겨자씨 한 알 만큼만 있어도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겨지라 하면 옮겨질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 * 20 He answered, “Because of your little faith [your lack of trust and confidence in the power of God]; for I assure you and most solemnly say to you, [c]if you have [living] faith the size of a mustard seed, you will say to this mountain, ‘Move from here to there,’ and [if it is God’s will] it will move; and nothing will be impossible for you. [요4:23-24] *23.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24.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23. But a time is coming and is already here when the true worshipers will worship the Father in spirit [from the heart, the inner self] and in truth; for the Father seeks such people to be His worshipers. *24. God is spirit [the Source of life, yet invisible to mankind], and those who worship Him must worship in spirit and truth.” [요5:24, 25] *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25.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 *24 “I assure you and most solemnly say to you, the person who hears My word [the one who heeds My message], and believes and trusts in Him who sent Me, has (possesses now) eternal life [that is, eternal life actually begins—the believer is transformed], and does not come into judgment and condemnation, but has passed [over] from death into life. *25. I assure you and most solemnly say to you, a time is coming and is [here] now, when the dead will hear the voice of the Son of God, and those who hear it will live. [롬10:8-15 *]8. 그러면 무엇을 말하느냐 말씀이 네게 가까워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다 하였으니 곧 우리가 전파하는 믿음의 말씀이라 *9.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10.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11. 성경에 이르되 누구든지 그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니 *12.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이 없음이라 한 분이신 주께서 모든 사람의 주가 되사 그를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부요하시도다 *13.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14. 그런즉 그들이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15.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 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과 같으니라 *8 But what does it say? “The word is near you, in your mouth and in your heart”—that is, the word [the message, the basis] of faith which we preach— *9. because if you acknowledge and confess with your mouth that Jesus is Lord [recognizing His power, authority, and majesty as God], and believe in your heart that God raised Him from the dead, you will be saved. *10. For with the heart a person believes [in Christ as Savior] resulting in his justification [that is, being made righteous—being freed of the guilt of sin and made acceptable to God]; and with the mouth he acknowledges and confesses [his faith openly], resulting in and confirming [his] salvation. *11. For the Scripture says, “Whoever believes in Him [whoever adheres to, trusts in, and relies on Him] will not be disappointed [in his expectations].” *12. For there is no distinction between Jew and Gentile; for the same Lord is Lord over all [of us], and [He is] abounding in riches (blessings) for all who call on Him [in faith and prayer]. *13. For “whoever calls on the name of the Lord [in prayer] will be saved.” *14. But how will people call on Him in whom they have not believed? And how will they believe in Him of whom they have not heard? And how will they hear without a preacher (messenger)? *15. And how will they preach unless they are commissioned and sent [for that purpose]? Just as it is written and forever remains written, “How beautiful are the feet of those who bring good news of good things!”
그리스도는 교회의 머리시라!!,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말씀이시며, 만물의 처음과 나중이시며 창조주시며 운행자-주관자요, 만물/만유를 작동시키시는 모든 에너지의 근원자시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형상이시요 그 영광의 광채시라, 만물과 만유가 그안에<종으로서 봉사하기 위해>서 있으며 만물/만유를 품으시며, 동시에 만물/만유안에 계시사(Jesus is all and in all... 존재하는 모든 것 창조하시고 껴안아 붙드시며 모든 존재안에, 상천하지에 충만하신 분, 여호와이심) 당신의 무한한 능력으로 친히 채우시는 분이시다.
[[병자를 위한 기도]] .... 신유의 기도, 그 궁극 목적은 [[내주하시는 임마누엘, 전능하신 예수그리스도]]를 참되게 믿고 영접함 통해 그분의 <전능한 믿음>으로 살 수 있도록 부활생명능력의 창조주 하나님, 곧 JC께 [산 경험 통해]접붙여 주려 함... 바로 기도자가 먼저 참된 기독자로서, 주님을 온전히 신뢰하기를 배우고 그분의 공급하심따라, 이 땅에서 진정한 자유자-전도자로서 사는 바, 주 뜻하심 그대로 실행함 통해 그리스도를 빼어닮아가게 하심을 인식함 그 안에서, 그리스도의 전능한 믿음에 자신을 완전히 열고 그분의 통로로서 자신을 온전히 맡겨드려 주께서 친히 공급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 자신>의 능력을 살며 공급하심 실행하는 것을 배우는 것이다... 상호거함의 믿음으로 사는 것은, 바로 그리스도와 그리스도의 전능한 믿음, 그로 인한 신유를 공급함의 바탕이 된다!!. ... [주 보시기에] 세상 모든 사람마다 세상에 보내심 받은 자이며 그에 대한 하나님의 뜻이 있으니, 먼저 하나님을 믿음 통해서 내주하시는 하나님의 <전능한> 믿음으로 살면서 그분의 뜻 이룸 구하기를 바라신다. 곧 구주의 구원의 은혜에 접붙임 받아 살면서 주님이 온전한 뜻 이룸을 추구하기를 바라신다. ...따라서, 신유의 기도는 [내주하시는 그리스도를 모시고 연합한 한 영된] JC께 순종하는, 신자의 <그리스도의 통로됨을 실행하는>고귀한 특권임을 깨달으라!!
(골3:11.하) *11. 거기에는 헬라인이나 유대인이나 할례파나 무할례파나 야만인이나 스구디아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 차별이 있을 수 없나니 ..[[오직 그리스도는 만유시요 만유 안에 계시니라]] *11.Where [[there is neither]] Greek nor Jew, circumcision nor uncircumcision, Barbarian, Scythian, [[bond nor free: but Christ is all, and in all.]] (마21:21, 22) *21.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가 믿음이 있고 의심하지 아니하면 이 무화과나무에게 된 이런 일만 할 뿐 아니라 이 산더러 들려 바다에 던져지라 하여도 될 것이요 *22.너희가 기도할 때에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 하시니라 *21. And Jesus answered and said to them, "Truly I say to you, if you have faith and do not doubt, you will not only do what was done to the fig tree, but even if you say to this mountain, 'Be taken up and cast into the sea,' it will happen. *21."And all things you ask in prayer, believing, you will receive." [막16:15-18] *또 이르시되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16.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 *17.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그들이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18. 뱀을 집어올리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시더라 *15. nd He said to them, "Go into all the world and preach the gospel to all creation. *16. "He who has believed and has been baptized shall be saved; but he who has disbelieved shall be condemned. *17. These signs will accompany those who have believed: in My name they will cast out demons, they will speak with new tongues; *18. they will pick up serpents, and if they drink any deadly poison, it will not hurt them; they will lay hands on the sick, and they will recover." [약5:13-16] *13. 너희 중에 고난 당하는 자가 있느냐 그는 기도할 것이요 즐거워하는 자가 있느냐 그는 찬송할지니라 *14. 너희 중에 병든 자가 있느냐 그는 교회의 장로들을 청할 것이요 그들은 주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르며 그를 위하여 기도할지니라 *15.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그를 일으키시리라 혹시 죄를 범하였을지라도 사하심을 받으리라 *16. 그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백하며 병이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큼이니라 *13. Is anyone among you suffering? Then he must pray Is anyone cheerful? He is to sing praises. *14. Is anyone among you sick? Then he must call for the elders of the church and they are to pray over him, anointing him with oil in the name of the Lord; *15. and the prayer offered in faith will restore the one who is sick, and the Lord will raise him up, and if he has committed sins, they will be forgiven him. *16. Therefore, confess your sins to one another, and pray for one another so that you may be healed The effective prayer of a righteous man can accomplish much. ----------- 당신 앞에 서 있는 모든 존재하는 것들, 곧 만유와 만물을 창조하시어 그 품에 품으시는 분(Christ is All), 모든 만유안에 친히 내주하여 계신 분(Christ in in All)을 생각합니다... 성경에 믿는 자가 병든 자를 위해 주께 드리는 바 "믿음의 기도와 간구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라, 믿는 자의 기도는 역사하는 힘이 무한풍성하다" 하셨는데, 이 기도에서 믿음이란 내안에 친히 내주하사 살아계시는 그리스도, 바로 그분의 믿음임을 바르게 깨닫고 명심하고 신뢰하고 주님 뜻따라 적용하고 발휘하라 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의 믿음은 단순한 지적동의가 아닌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믿음 Faith입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와 만물, 곧 세상을 창조하실 때 말씀으로 창조하신 바로 그 창조주하나님의 믿음, 지금도 죽은 자를 살리시며 <지금 육체의 눈에는 보이지 않기에 없는 것 같아 보이는 바>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불러내어 자녀들의 필요대로 공급하시는 하나님의 믿음으로서, 주님은 바로 그 믿음을 공급하고 계십니다. 창조주 하나님은 말하여진 그대로 이루실 것을 추호도 의심하지 않으시며, 또한 그 Faith<하나님의 전능한 믿음>을 믿는 내안에서 친히 공급하고 계십니다. 또한, 나는 오직 주님의 말씀이 바로 진리라는 것을 믿고 주님의 뜻 이루시기를 진실로 원합니다. 특별히 믿는 이 가운데 병든 신체로 인한 고난 받는 이에 대해 말씀하신대로 "너희가 서로 병낫기를 위하여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많으니라" 하셨습니다. 또한, 그리스도와 제자들은 전도하면서 친히 안수와 기도, 또는 말씀 선포를 통해 하나님을 믿고 돌이킴이 무엇인지를 일깨우시고 그리스도를 믿고 영접함으로써 죄사함 받으며, 동시에 바로 하나님의 전능한 그 믿음을 믿는 자마다에게 임하는 영혼몸의 치유를 구원의 표적으로 허락하셨습니다, 진정 영혼 구원과 함께 몸의 모든 질병조차 낫게 하심을 선포자가 먼저 마음에 믿고 붙들어 선포할 때 그것을 [아멘으로] 믿고 붙드는 자에게 오늘도 그리스도의 전능한 믿음, 치유하는 신유의 믿음은 그대로 작동함을 믿습니다... 주여 이제 구하오니, 임마누엘이신 주를 앙망하며 주의 종이 주께 올려드리며 위하여 기도하는 이마다 그 영혼몸을 낫게 하사 구주 예수 그리스도 당신의 이름을 오늘 영화롭게 하옵소서. "이제 내안에 내주하여 계신 그리스도를 믿는 내가 주 예수이름으로 명하노니, 온전케 될찌어다" === === *[신유와 치유, 병낫기를 구함의 기도]에 대한 포괄적 영적 이해....결코 그리스도의 전능한 믿음을 포기하지 말라, 자기연민에 자신을 두지 말라.. 궁극 목표 : 그리스도의 세상을 창조-운행하시는 전능한 믿음으로 살아가며 주와 하나됨으로써 전존재의 구원 , 그 회복 완성 이룸 위한 살아계신, 전능하신 JC공급에 있음.. ...더불어 세상에 전능하신 주님을 극도로 얻고 의지함의 참된 믿음 공급의 통로로 삼으시려 함임. ...곧, 주님의 지고지선의 뜻 이룸이 가장 중요한 바, 뜻하신 바로 그대로 이루시기를 구함이 전제되어야 함. . ...먼저 기도/안수하는 이가 먼저 주 임재 앞에서 자신을 돌아보고 자기안의 그리스도의 보혈을 의지하여 회개하고, 전심으로 주께서 친히 나타내 주시기를 구하고, 주 이름 불러 하나됨의 생동하는 산 믿음 발휘 위한 준비를 갖추고 있어야 함..... -------------- ...[[특히 불신자의 전도현장에서 볼 수 있는 바, 주께서 원하시고 또 기도자가 주와 합한 믿음으로 선포하며, 그 믿음안으로 병자가 믿어 들어가는 경우]]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죽은 자가 살아나며 [당장] 그 자리에서 ]낫게 하사 일으키실 수도 있고, ...[만성적 질병으로 고생하고 있는 바울의 경우처럼] 더 깊은 기도로 이끄셔서 병약함의 의미를 깨우쳐 주심으로써 병약함 그 안에서 <주님 자신을 더욱 더 추구하고 얻도록, 임재 충만의 진복으로 이끄실 수도 있고, 즉 <주 부르실 그 때까지, 깨달은 자로서 비록 육체는 병약한 상태에 있으나 주안에서 질병권세에서 자유함으로>살게 하실 수도 있음 ...주를 전적으로 의지하면서 전지전능하신 주께서 미리 예비해 두신, 주께서 이미 세상에 베푸신 바 <일반 은총으로서의, 의료나 이미 알려져 있는 의료지식들>을 통해서 도움 받으면서 주님 충만을 추구케 하실 수도 있음.... 위의 두가지는 즉 <주 부르실 그 때까지, 깨달은 자로서 비록 육체는 병약한 상태에 있으나 주안에서 질병권세에서 자유함으로>살게 하실 수도 있음 (((디모데의 예))) ...이미 달려갈 길 거의 다 달렸다면 그것을 깨닫게 하사, 끝까지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최종적 승자>로서 합당하게 준비 시키시고 주품에 안기게 하실 수도 있음.
[ 믿음 ]....그 본래적 의미 ‘믿음’을 의미하는 히브리어 단어는 바로 '에무나(אמונה)'이다. '에무나'는 '확고함', '안전', '신뢰성', '정직’, '진리’, '영구적인 의무’, '성실하다', '평안하다’ 등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에무나(אמונה)’는 ‘아만’이란 기본어근에서 나왔고 ‘아만'은 '지속하다’, ‘지탱하다’, 확고해지다’ ‘성실하다', ‘견고하다’, ‘부양하다', '팔로 나르다' '아이를 운반하다’, ‘영구적인', ‘끊임없는', '마르지 않는’, ‘확실하다', ‘신뢰하다', ‘믿다’ 등의 의미를 갖는다. ‘아만’에서 ‘참되다', ‘진리이다' 라는 뜻의 우리가 잘 아는 '아멘’이 나왔고 '진리'를 의미하는 '에메트’란 단어가 나왔다. ----------- ===== 그 손이 해가 지도록 내려오지 아니하니라(출17:12)==== hn:Wma?(530, 에무나) ....내려오지않음.... 에무나(명여)는 아만(@m'a; , 539: 지지하다, 신실하다)에서 유래했으며, 견고함, 확고부동, 신실함, 충실, 성실'을 의미한다. 구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약 50회 나온다. 70인역본에서는 이 용어를 알레데이아(진실, 신뢰, 정직, 진리)와 피스토스(신뢰, 신실성, 신빙성, 안식 신뢰, 신앙)로 번역했으며 KJV는 '신실'faithfulness, '진리'truth, '직무이행'setffice, '신실함=성실하심=미쁘심=참되심'faithfulness, '신실한=미쁘신=참되신=성실하신'faithful 등으로 번역한다. (a) 에무나는 '견고함, 확고함'이란 의미를 나타낸다: "모세의 팔이 피곤하매 그들이 돌을 가져다가 모세의 아래에 놓아 그로 그 위에 앉게 하고 아론과 훌이 하나는 이편에서, 하나는 저편에서 모세의 손을 붙들어 올렸더니 그 손이 해가 지도록 내려오지 아니한지라(안정하다 stady)"(출 17:12). (b) 에무나는 '신실성'을 의미한다. ...기본적으로 이 단어는 하나님 자신에게 사용되어(신 32:4) 그의 완전한 신실성을 나타내고 있다. 이 단어는 자주 하나님의 속성 가운데에 열거되곤 한다(삼상 26:23, 시 36:5[H 6], 시 40:10[H 11], 애 3:23). 이 단어는 하나님의 행사(시 33:4); 그리고 그의 말씀(시 119:86, 시 143:1)을 나타낸다. ...애무나는 또한 하나님에게서 생명을 보증받는 사람들과 관련하여 사용되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서 신실함을 기대 하신다(잠 12:22, 대하 19:9). 실로, 이런 신실성이나 믿음의 생활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의로운 사람들의 특징이다(합 2:4).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은 사람으로 하여금 참되고 신실한 길을 취하게 한다(시 119:30). 이로부터 우리는 신자에게 위임되어 그의 의무(신실한 책임, 대상 9:22, 대하 31:15, 등)나 직무가 된 의무 개념도 볼 수 있다(참조: J. B. Scott). (c) 에무나는 체데크(공의 righteousness, 참조, 사 11:5), 헤세드(hesed: 인자 loving kindness, 참조: NASB, 시 98:3), 미쉬파트(공의 justice, 참조: 렘 5:1)의 동의어이다.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관계는 헤세드(사랑)로 가장 잘 묘사된다. 그러나 동의어인 에무나도 매우 적합한 단어이다. 호세아는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관계를 하나의 결혼으로 묘사했으며,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의 '신실성'을 말하고 있다: "내가 네게 장가들어 영원히 살되 의와 공변됨과 은총과 긍휼히 여김으로 네게 장가들며 진실함으로 네게 장가들리니 네가 여호와를 알리라"(호 2:19-20) 이 구절에서 '의, 심판(공의), 은총, 자비, 진실함'이란 단어들은, 에무나의 동의어들이 하나님의 '신실성'과 '사랑'을 표현하는 언약적 용어들이라는 결론을 확증해준다. 언약과 약속들에 대한 보증은 하나님의 성품에 의해 확립되는 것이다: 그는 '신실'하시다. ...사람의 행동(잠 12:22)과 말(잠 12:17)은 하나님과 더불어 자신의 은총 받은 상태를 반영시켜야 한다. 결혼 관계에 있어서 '신실성'은 임의적인 것이 아니다. 부부관계가 안정되기 위하여 두 당사자는 서로 '신실'하게 대해야 할 것이다. 이사야와 예레미야는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서 '신실하지' 못했음을 다음과 같이 책망한다: "너희는 예루살렘 거리로 빨리 왕래하며 그 넓은 거리에서 찾아보고 알라 너희가 만일 공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자를 한 사람이라도 찾으면 내가 이 성을 사하리라"(렘 5:1; 참조, 사 59:4, 렘 7:28, 렘 9:3). (d) 신실성은 메시야 시대에 이루어질 것이다(사 11:5). 이 선지자적 기대가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성취되었다는 것은, 그의 동시대인들이 그에게서 하나님의 자비(참조: 헤세드)와 진리(참조: 에무나)를 목격했다는 사실에서 알 수 있다: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요 1:18). 요한이 이 두개의 용어를 병행시킨 사실은 의의가 깊다. 이 두 용어는 구약성경에서도 함께 발견된다. (참조: NEDOT).
---[고전 13:13]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pivsti"(4102, 피스티스) 믿음 faith. 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 명사 피스티스(Hes., Hdt.이래)는 다음과 같은 의미를 지닌다. (a) 피스티스는 '신뢰, 확신, 확실성, 확고한 확신'을 의미한다. (b) 피스티스는 사람이 가지는 확신 뿐만 아니라 사람이 향유하는 확신, 즉 '신뢰할 수 있음, 의지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이것은 차이가 있을지라도 확실성이나 신뢰성과 관련되어 있다. (c) 피스티스는 신뢰의 가능성, 의지할 수 있는 것을 보장하는 '보증, 증명, 증거, 신실성'을 의미한다. 2. 70인역본의 용법 명사 피스티스는 70인역본에서 약 55회 나오며, 주로 히브리어 에무나(경고, 충실, 성실, 확고부동의 믿음)의 역어로 사용되었다. 3. 신약성경의 용법 명사 피스티스는 신약성경에서 약 230회 나오며, 다음과 같이 사용되었다. (a) 피스티스는 '신실성, 신뢰성'을 의미한다: 마 23:23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를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의와 인과 신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롬 3:3; 딛 2:10; 갈 5:22; 살후 1:48. (b) 피스티스는 '엄숙한 약속, 서약'을 나타낸다: "처음 [믿음]을 저버렸으므로 심판을 받느니라"(딤전 5:12). (c) 피스티스는 '증거, 보증'을 의미한다: 행 17:31 "이는 정하신 사람으로 하여금 천하를 공의로 심판할 날을 작정하시고 이에 저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것으로 모든 사람에게 [믿을 만한 증거]를 주셨음이니라 하니라"; 딤후 4:7. (d) 피스티스는 '신뢰, 확신, 믿음'을 나타낸다.① 하나님에 대하여, 막 11:22; 벧전 1:21; 히 6:1; 살전 1:8; 롬 4:5; 롬 4:9; 롬 4:11-롬 4:13; 롬 4:16; 롬 4:19이하 등. ② 그리스도에 대하여, 마 8:10; 마 9:2; 마 9:22; 마 9:29; 마 15:28; 막 2:5; 마 4:40; 마 5:34; 마 10:52; 눅 5:20; 눅 7:9; 눅 7:50; 눅 8:25; 눅 8:48; 눅 17:19; 눅 18:42. 롬 3:23; 롬 3:26; 갈 2:16; 갈 2:20; 갈 3:22; 엡 3:12; 빌 3:9; 약 2:1; 계 14:12. (e) 피스티스는 '신앙의 내용, 교리'를 나타낸다: 유 1:3, 유 1:20; 롬 1:5; 갈 1:23; 갈 3:23이하; 딤전 1:19; 딤전 4:1, 딤전 4:6; 딤전 6:10; 딤후 2:18; 롬 12:6; 딤후 4:7. (참조: Walter Bauer; A.Weiser; O.Michel).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창15:6)----- @m'a;(539, 아만) 확실하게 하다, 지지하다, 충실하다, 믿다 아만(동사)은 기본어근이며 '확실하게 하다, comfirm, 지지하다, 기르다 support, 충실하다, 신실하다, 성실하다 be faithful, 믿다, 신뢰하다 believe, trust'를 의미한다. 구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약 110회 나오며, 칼, 니팔, 히필형으로 사용되었다. 성경 교리에서 매우 중요한 이 단어의 개념은, 이 단어에 대한 많은 대중적 개념과 대조 구별되는 '믿음'(faith)의 성경적 의미에 대한 분명한 증거를 제공해 준다. 이 어근의 의미는 핵심에는 '확실성'(certainty)의 개념이 있다. 그리고 이것은 히 11:1 나타나 있는 신약성경의 믿음에 대한 정의에 의해서 확증된다. 이 어근의 기본적인 개념은 '확고함'(firmness)이나 '확실성'(certainty)이다. 1. 칼형에서 이 단어는 '지지하다, 기르다'를 의미한다. 왕하 18:16에서 이 단어는 '버팀 기둥'을 묘사한다. 에 2:7에서 모르드개는 에스더를 자기 딸같이 양육했다. 민 11:12에서 "양육하는 아비", 룻4:16에서 아기의 "양육자"를 묘사한다. 2. 히필형에서 이 단어는 '확실하게 하다' 혹은 '~에 대해 확신하다', '보증되다'라는 의미를 지닌다. 이런 점에서, 히필 동사 변화에서의 이 단어는 '믿다'를 의미하며, 성경에서의 믿음은 '보증' assurance, '확실성' certainty으로서, 이는 믿음을 있음직하고, 아마도 참되긴 하지만 확실치 않은 어떤 것으로 보는 현대의 개념과 대조되는 것임을 보여준다. 이로부터 이 단어는 '확립된 사람' 혹은 '굳혀진 사람' 즉 '충성된 자'(삼하 20:19, 시 12:1, 시 31:23)라는 수동적인 의미로 사용된 칼의 수동 분사형으로 나오는 것을 보게 된다. 3. 니팔형에서 '확립(확정)되다'를 의미한다(삼하 7:16, 대상 17:2, 대상 17:3, 대하 6:17, 사 7:9). '신실하다, 충실하다, 확실하다, 신뢰할만 하다'를 의미하며, 분사형에서 신자들을 나타낸다(민 12:7, 삼상 2:35, 느 9:8). 이 어형은 또한 모든 확실성의 근거가 되는 것, 즉 하나님 자신(신 7:9), 그리고 그의 언약(시 89:28)을 묘사하는데도 사용된다. '믿음'과 '견고한 것' 사이의 관게에 관한 흥미있는 한 가지 실례는 사 7:9에서 발견된다: "대저 아람의 머리는 다메섹이요 다메섹의 머리는 르신이며 에브라임의 머리는 사마리아요 사마리아의 머리는 르말리야의 아들이라도 육십 오년 내에 에브라임이 패하여 다시는 나라를 이루지 못하리라. 만일 너희가 믿지 아니하면 정녕히 굳게 서지 못하리라". 아하스는 만일 그가 믿지(히필형) 않는다면, 그가 견고히 서지(니팔형) 못한다. 즉 믿음이 없이는 그가 안정되지 못한다는 말을 들었다. 이런 파생어들도 확실성과 신빙성에 대한 똑같은 개념을 반영해 준다. 파생어 아멘(진실로 verily)은 신약성경에서 아멘이란 말로 받아들여져서 오늘날의 영어 단어 'amen'이 되었다. 예수님은 어떤 문제의 확실성을 강조하기 위해 이 단어를 자주 사용하셨다(마 5:18, 마 5:26 등). 이 히브리어 어형과 헬라어 어형은 기도와 찬양송의 끝에 온다(시 41:13, 시 106:48, 딤후 4:18, 계 20:20 등). 이것은 우리의 기도에서 이렇게 사용된 이 용어가 우리가 기도드리는 주님에 대한 확신을 표현하는 것임에 틀림없다는 사실을 시사해 준다. (참조: J. B. Scott; BDB). ------------------------------------- [믿음] 예수 그리스도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시다 따라서 진정한 믿음은 그 분의 진리로부터 나오게 된다. 초대교회의 사도인 바울은 믿음은 들음에서 나온다고 말하였다.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롬 10:17) 들음이란, 이스라엘 백성에게 가장 중요한 주제이다. 듣는다는 것은 그냥 표면적으로 듣는 것을 말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의 본질을 듣고 깨닫는 것을 진정한 들음이라고 하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말씀을 표면적으로 듣고 그 본질을 듣고 깨닫지 못한 상태에서 하나님께 드리는 모든 예배와 신앙의 행위를 하나님은 헛된 경배라고 말씀하셨다.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하였느니라 하시고( 마 15:9) ... 따라서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듣는 것 청종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믿음과 관련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롬 10:17) ... 가장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고 온전히 깨닫는 것을 성경은 ‘믿음'이라고 말한다 . #무리를 불러 이르시되 듣고 깨달으라( 마 15:10) # 무리를 다시 불러 이르시되 너희는 다 내 말을 듣고 깨달으라( 막 7:14) #이 복음이 이미 너희에게 이르매 너희가 듣고 참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은 날부터 너희 중에서와 같이 또한 온 천하에서도 열매를 맺어 자라는 도다( 골 1:6).... 들어도 듣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면 그것은 믿음이 없는 것과 같다. 성경이 말하는 ‘믿음(에무나)’이란 우리 자신이 주체가 되어 무엇을 확신하는 것 이전에 하나님의 온전한 진리를 듣고 깨닫는 것으로부터 나오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예수님 당시의 바리새인 서기관, 대제사장들은 지금 우리로 생각하면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었고 열심히 섬기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었다. 들은 자신들이 하나님을 믿는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그러나 예수님의 눈으로 본 그들은 믿음이 없는 자들이었다. 이것은 예수님을 따르던 제자들에게도 해당되는 이야기였다(막16:!4). 왜냐하면 그들이 하나님의 진리를 알지 못하고 그 진리 위에 기초한 믿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구약에서 "아만"이 처음 나타난 곳은 창15:6이다. #창 15:6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에무나’가 성경에 처음 쓰인 곳은 출애굽기 17:12절이다. #모세의 팔이 피곤하매 그들이 돌을 가져다가 모세의 아래에 놓아 그 위에 앉게 하고 아론과 훌이 한 사람은 이쪽에서, 한 사람은 저쪽에서 모세의 손을 붙들어 올렸더니 그 손이 해가 지도록 내려오지 아니한지라( 출 17:12).... '해가 지도록 내려오지 아니하다’라는 구절에 '내려오지 않다'에 '에무나'라는 단어가 사용되었다. 이것은 성경에서 말하는 '믿음(에무나)'이 무엇인지를 자세히 보여주는 그림이다. 성경에서 어떤 단어가 처음 쓰일 때는 그 단어가 가진 가장 본질적인 의미가 담겨져 있는 특징이 있다. 성경은 그냥 일반적인 책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를 담고 있으며 전지 전능한 하나님이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한 것이기 때문에 이런 단어 하나, 순서 하나 몇 번 사용되고 하는 것까지도 하나님의 의도가 있음을 알아야 한다. '에무나'는 무엇인가를 견고하게 지탱하고 지속하는 것인데, 그것은 바로 ‘반석(돌)’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진리 위에 앉아서 하나님의 지팡이를 든 모세의 팔이 내려오지 않게 하는 것이다..... 성경 전체에서 '반석'은 '예수 그리스도'(고전 10:4)를 의미하고 예수님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시겠다고 말씀하셨다. ...지팡이는 '마테'라는 히브리어인데 하나님 나라를 다스리는 통치자의 지팡이 왕의 명령, 가르침, 교훈, 양식을 의미한다. #여호와께서 시온에서부터 주의 권능의 규를 내보내시리니 주는 원수들 중에서 다스리소서( 시 110:2)... 이 '권능의 규'가 바로 모세가 든 지팡이와 같은 히브리어 '마테'인데 시온에서부터 나오는 주의 권능의 규는 메시아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하고 그는 원수를 다스린다. ... 모세와 아론과 훌이 높은 산에 올라가 반석 위에 앉아 이 지팡이를 든 모세의 팔이 올라갈 때 여호수아가 아말렉을 이기는 것은 바로 이런 그림을 보여준다. 여호수아는 구약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대표적인 인물이고, 아말렉은 육신의 소욕, 하나님을 대적하고 이스라엘의 약한 자들을 치고 약탈하는 원수의 모형을 모여준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스라엘을 망하게 하고 약하고 병들게 만드는 아말렉을 진멸시키고 이스라엘의 약하고 병듦을 고치고 싸매시는 진정한 구원자이신 것이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갈릴리 가버나움에서 이스라엘의 약한 자들, 온갓 병자들을 일일히 손을 얹고 고치시는 그림과 닮아있다. # 해 질 무렵에 사람들이 온갖 병자들을 데리고 나아오매 예수께서 일일이 그 위에 손을 얹으사 고치시니 여러 사람에게서 귀신들이 나가며 소리 질러 이르되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니이다( 눅 4:40-41 ).... '귀신'이란 헬라어는 '아가달토스 프뉴마'로 더러운 영, 거룩한 영, 성령(하기오스 프뉴마)과 반대되는 거짓과 불법, 비진리를 의미하고 이스라엘을 약하고 병들게 하는 아말렉과 같은 요소들을 말한다. 그것을 진멸하고 회복하는 것이 여호수아, 곧 예수 그리스도시니, 그 아말렉과의 전쟁은 예수그리스도의 전쟁인 것이다.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믿음'의 그림인 것이다. ...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스라엘의 귀신 들린자, 모든 약한 자와 병든 자들을 고치신 것과 여호수아가 아말렉과 싸우는 그림은 성경이 말하는 ‘믿음'과 관련이 있다. #그러나 성령이 밝히 말씀하시기를 후일에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미혹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따르리라 하셨으니 자기 양심이 화인을 맞아서 외식함으로 거짓말하는 자들이라( 딤전 4:1-2 )... 믿음에서 떠나게 되면 미혹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따르게 된다. 진정한 믿음은 그 안에 거짓, 불법이 없어야 한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랑과 진리로서의 믿음이어야 한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이 인정하시고 찾으시는 믿음이다. 믿지 않는 사람이란 어떤 불신자들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믿는 자들 가운데 진정한 믿음이 없는 자들을 말하는 것이다. #이 교훈의 목적은 청결한 마음과 선한 양심과 거짓이 없는 믿음에서 나오는 사랑이거늘 사람들이 이에서 벗어나 헛된 말에 빠져 율법의 선생이 되려 하나 자기가 말하는 것이나 자기가 확증하는 것도 깨닫지 못하는도다 그러나 율법은 사람이 그것을 적법하게만 쓰면 선한 것임을 우리는 아노라(딤전 1:5-8) ... 이 교훈은 곧 예수 그리스도의 교훈을 말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교훈 안에 거하는 것을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 안에 거하는 것이라고 사도들은 말한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고 사랑은 율법의 완성인데 예수님은 율법을 완전(온전)하게, 적법하게 선을 행하신 거짓 없는 믿음의 주이시다. 그리고 그로부터 진정한 사랑 아버지의 계명을 지키고 그 분의 온전한 뜻을 따르는 사랑을 행하신 분이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 안에 거한다는 것은 바로 그 분의 이 믿음과 사랑을 본받는 것이다. 바울은 그의 제자인 디모데에게 편지하면서 믿음에 대해서 이야기 한다.... #또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 딤후 3:15-17). #이는 네 속에 거짓이 없는 믿음이 있음을 생각함이라 이 믿음은 먼저 네 외조모 로이스와 네 어머니 유니게 속에 있더니 네 속에도 있는 줄을 확신하노라(딤후 1:5) ... '거짓이 없는 믿음’이란 율법을 적법하게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쁘신 뜻을 따라 행한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참된 믿음, 진리의 믿음을 말하는 것이다. 바울이 말한 믿음은 성경(율법, 선지자, 시편)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깨닫는 것인데 그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믿음을 기록하고 있고 그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를 기록한 것이다. 이 교훈과 책망과 의를 깨달을 때 진정한 믿음 안에 거하게 된는 것이 성경이 말하는 믿음의 개념이다. 많은 사람들이 ‘믿음’을 이야기하고 자신이 믿음 위에 서 있다고 확신 할 수 있지만 진리 위에 서지 않으면 그 믿음이 거짓이 되고 헛것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의 믿음이 진리 위에 세워진 믿음인지를 점검해 보아야 한다. #너희는 믿음 안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는 버림 받은 자니라(고후 13:5).... 믿음 안에 있다라는 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예수 그리스도가 소유한 믿음을 말한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믿음이라는 개념을 가지고 있지만 초대교회에는 더 깊고 엄밀한 의미에서 믿는 이 와 한 영으로 연합하여 계신 '예수 그리스도의 가지신 바, 바로 그 믿음'을 가지고 그 믿음을 통해 살아감, 곧 "산을 옮기는 바, 살아 생동하는 예수그리스도의 바로 그 믿음"을 생생하게 발휘함이 진정한 믿음을 가진 것이란 개념을 가지고 있었다. ... #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너희의 믿음과 모든 성도에 대한 사랑을 들었음이요( 골 1:4).. # 집사의 직분을 잘한 자들은 아름다운 지위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에 큰 담력을 얻느니라(딤전 3:13)... # *7.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8.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9.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라 *10.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고자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11.어떻게 해서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12.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14.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15.그러므로 누구든지 우리 온전히 이룬 자들은 이렇게 생각할지니 만일 어떤 일에 너희가 달리 생각하면 하나님이 이것도 너희에게 나타내시리라 *16.오직 우리가 어디까지 이르렀든지 그대로 행할 것이라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라( 빌 3:7-16)... 9절에서 (not having a righteousness of my own derived from the Law, but that which is through faith in Christ, the righteousness which comes from God on the basis of faith, that which is through faith in Christ)를 우리말로는 그리스도를 믿음이라고 번역했지만 원문에는 '그리스도안에 있는(즉, 그리스도의) 바로 그 믿음'이다..... 조금 더 깊이 들어가 보자..마찬가지로 #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갈 2:20)...[킹제임스]*20.I am crucified with Christ: nevertheless I live; yet not I, but Christ liveth in me: and the life which I now live in the flesh I live by the faith of the Son of God, who loved me, and gave himself for me. //[NIV] I have been crucified with Christ and I no longer live, but Christ lives in me. The life I live in the body, I live by faith in the Son of God, who loved me and gave himself for me. ...한글성경들은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이라고 번역했지만 원문은 '그 하나님의 아들의 그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 더 정확한 번역인데, 킹제임스 성경에서는 이 부분을 By the faith of the Son of God 그 하나님의 아들의 (바로) 그 믿음에 의해서 .. 라고 영어로 번역하였다. 성경에서 정관사가 붙으면 그냥 믿음이 아니라 성경 전체에서 가리키는 특정한 믿음, 본질적인 믿음을 가리킨다. '그 믿음'은 '하나님의 아들의 믿음'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을 말하는 것이다 이제 정확하게 표현해서 정리해 보자면, '예수 그리스도'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바로 그 믿음', '믿음 자체'이며 '믿음의 주(창시자)’이시다(히12:2). 성경이 말하는 거짓이 없는 믿음이란 믿음의 창시자이신 그 분의 믿음, 하나님의 진리말씀이신 그 분의 진리 안에 거함, 곧 그분안으로 믿어들어가 하나되어 그분을 내 생명삼고 거하는 것을 진정한 믿음이라고 하는 것이다. #믿음이 오기 전에 우리는 율법 아래에 매인 바 되고 계시될 믿음의 때까지 갇혔느니라(갈 3:23)... #믿음이 온 후로는 우리가 초등교사 아래에 있지 아니하도다 너희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으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갈 3:25-27) ... 이 믿음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이며 좀 더 깊은 의미에서 살아 생동하는 진정한 믿음을 발휘하신 예수그리스도 자신이라 할 수 있고, 진정한 믿음이란 예수 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를 받고 그리스도로 옷입는 것, 오직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 그 교훈과 가르침을 온전히 듣고 깨닫고 순종하는 것이다. =======모세를 도운 아론과 훌 ==== / 출애굽기 17장 8-13절 출 17:8-13, 24:14절, 384.388.391장.* 사람은 혼자서 모든 일을 할 수 없습니다. 곁에서 도움을 베푸는 손길이 필요합니다. 영웅 모세도 출애굽을 단행하고 광야 생활을 하며 백성을 인도할 때 여러 사람들로보터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본문은 아말렉과의 전쟁(戰爭)중에도 모세를 도운 충성(忠誠)스러운 사람들을 성경(聖經)은 보여줍니다. 그들은 여호수아[예호와+아샤....여호와는 구원이시다 =구원하시는 여호와=예수]와 아론[아하론...총명한 : 모세의 형]과 훌[후르...빛남, 고귀, 존귀...전승에 의하면 모세의 누이인 미리암의 남편?]입니다. 그 중에서 훌은 매우 젊은 나이였습니다....그럼에도 모세의 팔을 들어서 기도(祈禱)를 도와 보좌한 사실(事實)은 그가 매우 지위(地位)가 높은 보좌관(輔佐官)이었고 하나님의 신실(信實)한 일꾼이었음을 알게 해줍니다.....즉 훌은 아론과 여호수아 못지 않은 모세의 훌륭한 조력자(助力者)요 보좌자였던 것입니다. 과연 훌은 어떤 인물(人物)이며 또 어떻게 충성(忠誠)했는지 함께 살펴보면서 교훈(敎訓)을 얻도록 하겠습니다. 1.훌은 모세에게 신임받은 젊은이였습니다. 1)모세 가정의 신앙을 본 받은 젊은 이였습니다. "훌"의 원어적인 의미는 "빛남, 고귀, 존귀"입니다.... 마치 잘 다듬은 보석을 뜻하는 이름입니다. 그 이름의 뜻에 걸맞게 훌은 평소에 성실하게 자신을 다듬어 하나님이 쓰실 그릇으로 자신을 준비했습니다....유대 역사가 "요세푸스"에 의하면 훌은 모세의 누이 미리암의 남편이라고 합니다. 어릴때부터 훌은 신앙이 뛰어났던 모세 가정의 영향을 받았을 것입니다. 아말렉의 전쟁에서 모세가 중보 기도의 동역자로 훌을 선택한 사실을 보면 평소에 그의 신앙이 돈독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평소에 자신을 준비하는 사람만이 하나님의 사람으로 사용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평소에 자신을 주님이 쓰실 귀한 그릇으로 예비하는 훈련을 할 것을 교훈합니다. 정직한 신앙을 지닌 이웃과 교제하는 생활이 자신을 훈련시키는 길중 하나입니다. .....딤후2:20-22절에 "큰 집에는 금(金)과 은(銀)의 그릇이 있을 뿐 아니요 나무와 질그릇도 있어 귀(貴)히 쓰는 것도 있고 천히 쓰는 것도 있나니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예비함이 되리라. 또한 네가 청년의 정욕을 피하고 주를 깨끗한 마음으로 부르는 자들과 함께 의와 믿음과 사랑과 화평을 좇으라."고 했습니다. 2)훌은 모세에게 인정받았습니다. 훌이 모세와 함께 아말렉 전쟁을 수행한 사실을 보면 그가 상당한 지도력을 겸비한 사람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중요한 전쟁을 수행하면서 평범한 사람을 모세가 보좌관으로 대동할 리는 만무했기 때문입니다. 이는 모세가 훌을 평소부터 신임하고 있었다는 증거입니다. 하늘 같이 높은 최고 지도자에게 신임을 받기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한 신임은 모세가 여호수아와 함께 시내 산에 올라갈 때 장로들과 아론과 함께 특별히 훌을 지명하여 백성을 다스리라고 한데서 잘 드러납니다.....출24:14절에 "장로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여기서 우리가 너희에게로 돌아오기까지 기다리라 아론과 훌이 너희와 함께하리니 무릇 일이 있는 자는 그들에게로 나아갈 지니라 하고."라고 했습니다. 최고 지도자의 부재 중에 책임자로 임명된 것입니다. 이는 소위 "권한대행"을 말하는데 거기에서 훌은 최고 재판관의 임무를 수행했습니다. 지도자가 자리를 비우면서 성실과 신뢰가 검증되지 않은 사람을 대행자로 세울 리는 만무합니다. 그만큼 훌은 성실성과 지도력이 검증된 탁월한 신앙이었던 것입니다. 2.훌은 모세를 성실하게 도운 사람입니다. 1)이스라엘 군대가 승리하기를 위하여 기도로 도왔습니다. 아말렉의 침공에 대하여 모세와 훌이 산 위에 올라가서 기도(祈禱)합니다. 여호수아는 군대(軍隊)를 이끌고 싸웠습니다. 그런데 전쟁승리을 위해 여호와께 중보기도하는 모세의 한 손은 지팡이를 잡고 한 손은 하늘을 향해 들고서 기도하던 중 한쪽 손이 자꾸만 내려갑니다. 위대한 지도자(指導者)였지만 인간적인 약점은 어찌할 수 없었습니다.....목회자(牧會者)도 인간(人間)이기에 이럴 때에 도움이 필요(必要)합니다.....이 때, 아론과 훌은 모세의 양손을 양쪽에서 받쳐 들어 올려 줌으로써 모세의 수고와 기도의 짐을 분담했습니다. 공동체(共同體)가 바르게 유지되기 위해서는 이런 사람들이 필요합니다. ... 아론과 훌이 수고와 기도를 아끼지 않았을 때 이스라엘 백성은 전쟁(戰爭)에서 승리(勝利)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약하나 하나님은 강하십니다....사40:28-31절에 "너는 알지 못하였느냐 듣지 못하엿느냐 영원하신 하나님 여호와. 땅끝까지 창조하신 자는 피곤치 아니하시며 곤비치 아니하시며,명철이 한이 없으시며 피곤한 자에게는 능력을 주시며 무능한 자에게는 힘을 더하시나니 소년이라도 피곤하며 장정이라도 넘어지며 자빠지되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의 날개치며 올감 같을 것이요. 달음질하여도 곤비치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치 아니하리로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그와 같은 하나님의 권능을 힘입기 위해서는 약한 사람들끼리 서로 돕고 기도해야 합니다. ....주님도 마18:20절에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고 약속하셨습니다. 2)성실한 자세로 조력자의 역할을 합니다. 훌은 일을 주관하는 지도자가 아니었습니다. 자신을 낮추고 겸손히 조력자의 역할을 수행한 사람이었습니다. 조력자는 위로는 지도자를 보좌하고 아래로는 백성에게 지도자의 명령을 정확하게 전달하고 실천하도록 감독하는 책임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 책임의 중요성은 그누구보다도 크다고 하겠습니다. 조력자의 충성과 성실이 결여되면 좋은 공동체가 될 수 없습니다. 훌은 이렇게 어려운 조력자의 직무를 성실과 충성으로서 감당했습니다. 훌의 성실함과 충성심이 드러난 것은 모세가 시내산에 다시 올라갔을 때였습니다. 거기에서 모세는 훌을 이론과 함께 특별히 지명하여 자기의 부재시 권한을 맡겼습니다..... 그때 노인이었던 아론은 백성의 우상 숭배에 함께 휩쓸렸으나 오직 훌은 그와 같은 우매함에 참여하지 않았던 것입니다.(출32:1-6절), 훌은 자기의 본분에 매우 충실했던 것입니다. ....성경은 고전4:2절에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고 했습니다. 맡겨진 본분에 충성을 다하는 진실된 자세가 바로 목회자(牧會者)를 돕는 최선(最善)의 자세(姿勢)입니다. 3.훌은 후손(後孫)에게 신앙(信仰)을 계승시킨 열매(熱媒)를 남긴 신앙(信仰)인입니다. 훌의 손자 중에 브사렐이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브사렐"은 "하나님의 보호 속에" 특별한 은사를 받아서 성막을 건축하였던 사람 중의 하나입니다.(출31:1-11절), 그 브사렐의 아버지는 "우리"였고 할아버지는 "훌"이었습니다. 또한 훌은 갈렙과 에브랏 사이에 태어났습니다.(대상2:18-20절), 족보를 이렇게 언급하는 이유는 정탐꾼 갈렙으로부터 시작된 훌륭한 신앙이 브사렐까지 계승되었다는 사실을 지적하기 위해서입니다. 깨달음을 홀로 얻어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없습니다. 누구나 음으로 양으로 지도를 받게 되며 그 중 부모의 신앙이 가장 영향력이 있습니다. 훌은 신앙을 유산으로 물려받았고 뿐만 아니라 신앙을 계승시킴으로 참된 신앙의 열매는 무엇인지를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자기만이 아니라 이웃에게 전파하고 후손에게 물려줄 수 있는 신앙이라야 진실된 신앙입니다. 성도 여러분의 신앙은 어떻습니까? 스스로 보기에 자녀들에게 물려줄 수 있는 신앙을 가졌습니까? 많은 사람들이 이웃의 신앙에 대해서는 판단을 잘합니다. ...그러나 정작 자기 신앙의 수준을 검증하는 일은 인색합니다. 참된 신앙상은 훌 처럼 자신부터 공동체에 성실과 충성으로 헌신하고 거기서 더 나아가 자기 가족과 자녀에게 신앙을 계승시켜, 하나님의 귀한 일꾼으로 양육하는 것입니다. 바울의 영적 아들이었던 디모데를 보십시오. 외조모 로이스와 어머니 유니게로부터 거짓이 없는 믿음을 물려 받았습니다.....딤후1:5절에 "이는 네 속에 거짓이 없는 믿음을 생각함이라 이 믿음은 먼저 네 외조모 로이스와 네 어머니 유니게 속에 있더니 네 속에도 있는 줄을 확신하노라."고 했습니다. 위대한 신앙인들은 훌륭한 믿음의 후계자를 그 삶의 열매로 남겨놓기 마련입니다.....마7:17-20절에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좋은 나무가 나쁜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지우느니라 이러므로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고 했습니다. ....딤후2:2절에 "또 네가 많은 증인 앞에서 내게 들은 바를 충성된 사람들에게 부탁하라 저희가 또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으리라."고 했습니다. 모세의 팔을 들고 열심히 최선을 다해서 기도하고 있는 훌을 상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땀을 흘리며 매우 힘든 모습을 히고 있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러한 성실을 보십니다. 그리고 그러한 성실을 통해서 하나님 자신의 역사를 이루어 가십니다. 훌의 성실(誠實)한 신앙(信仰)과 그 삶을.. 오늘 우리들은 귀한 보석처럼 간직하고 본받아야 하겠습니다. 다윗도 아버지 양들을 충실하게 돌보고 있을 때 이스라엘 왕으로 선택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자기가 처한 상황에서 불평하지 않고 최선을 다하며 열심 있는 자를 택하셔서 하나님의 구원계획을 성취하시는 일꾼으로 쓰십니다. 저와 여러분도 하나님의 구원계획에 쓰임받는 일꾼들이 되시기를... ====에무나와 피스티스 === 먼저 "믿음"이라는 단어에 대해서 살펴보자. 어느 학자는 구약에서 "믿는다"라는 "에무나" 동사가 138번 나오지만 명사는 찾기 힘들다고 했다. 또한 어느 학자는 "에무나"가 "버티다", "견고하다"로 49번 사용되었고 "신실한", "성실한", "정직한"으로 44번 사용되었다고 하였다. 결국 "에무나"는 믿음, 신앙, 의지, 성실 등으로 번역됨을 알 수 있다. 예를 들어서 "믿는다"라는 동사는 창세기 15:5에서 "그가 여호와를 믿었다 그래서 여호와께서 그것을 아브라함의 의로 여기셨다"에서 나오는 바 "믿는다"라는 동사는 "아만"의 힢일 형태인 "헤에민"이다. "아만"이라는 동사가 힢일 형태를 취할 때 "믿는다"라는 동사가 된다는 이야기다. "아만(믿는다)"이라는 동사의 명사형은 "에무나"이고 구약에 49번 나오며 하박국 2:4을 빼고는 모두가 "신실함(Faithfulness)이라고 번역된다. 이유는 이 단어 모두가 하나님과 관련하여 나오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믿음의 주인인데 하나님의 믿음이라고 한다면 어울리지 않는다. 따라서 "하나님의 신실함"이라 번역한다. 단지 한 곳 하박국 2:4에서 "그러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라고 번역한다. 믿음을 가지는 주체가 하나님이 아니라 사람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러나 의인은 신실함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라고 번역하여도 하자가 없다. 구약 전체 "에무나"와 일관성이 있기 때문이다. 또한 "성실함"으로 라는 단어는 "버팀으로"의 뜻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이는 출애굽기 17장 12절에서 출애굽하던 이스라엘이 르비딤에서 아말렉과 싸울 때 모세의 손이 올라가면 이스라엘이 이기고 손이 내려오면 아말렉이 이긴 사건에서 모세의 손이 아론과 훌에 의하여 양쪽에서 손을 붙들어 올렸더니 "그 손이 해가 지도록 내려오지 아니한지라 여호수아가 칼날로 아말렉과 그 백성을 쳐서 파하니라"(출 17: 12하- 13)에서 "에무나"가 "끝까지 버틴다"는 의미로 "안정되게 남아있다, 확고하게 남아있다"의"remained steady"로 번역되었음을 볼 수 있다. 하박국 2:4은 로마서 1:17과 갈라디아서 3:11절에서 인용하고 있다. 그러면 "신실함"을 왜 "믿음(faith)"이라고 번역했는가 이다. "에무나"의 대응어는 신약 헬라어 "피스티스"이다. "피스티스"는 신약에서 243번 중 거의가 "믿음"이라고 번역했고, 로마서 3:3에서 "미쁘심"이라고 번역했다. 물론 그 의미도 "에무나"와 같은 "신실하심"인 것이다. 이로써 우리는 "에무나"나 "피스티스"가 하나님과 관련할 때는 "신실하심"으로 사람과 관련할 때는 "믿음"으로 번역됨을 알게 되었다. 갈라디아서 2:16절을 보라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토라)의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아는 고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토라)의 행위에서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토라)의 행위로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 "예수 그리스도의 신실함을 통해"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 "그리스도의 신실함으로" 보는 바와 같이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처럼 그리스도가 목적격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신실함으로"라는 소유격이라는 것이다. 직역하면 "사람은 토라의 행위로 의롭게 되는 것이 아니고 예수 그리스도의 신실함을 통하여 의롭게 되는 것을 우리가 압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은 토라의 행위가 아니고 그리스도의 신실함으로 의롭게 되기 위함입니다. 이는 토라의 행위로는 어떤 육체도 의롭게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이다. 목적격 조사로 번역하느냐? 소유격 조사로 번역하느냐?의 문제다. 왜 이런 소동일 일어났을까? 라틴어 역인 불가타와, 시리아역인 쉐쉬타, 옛날 스페인 번역이나, 종교개혁이전의 영어 번역인 위클맆이나, 그리고 제네바 성경은 소유격으로 번역하였는데 루터가 독일어로 번역할 때 이신칭의의 신학이 그로 하여금 목적격으로 번역하게 했다는 것이다. 그후 영어성경은 이 번역을 따르게 되었고 중국어 성경, 한국어 성경도 그 뒤를 이었다는 연계적 사실이다. 이로써 소유격을 목적격으로 번역하여 믿음과 행위를 분리시키는 우를 범했고 하나님 또는 그리스도의 신실하심을 인간의 믿음으로 대체했다는 것이다.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믿음이라는 단어는 신실함과 동의어라는 것과 하나님께는 신실함으로, 사람에게는 믿음으로 번역하되 믿음은 신실한 행함이 동반된다는 것을 간과하여서는 않될 것이다. ------------------------------------------------- ###에무나가 49번 나오는 구약의 용례 ---Exod. 17:12; Deut. 32:4; 1 Sam. 26:23; 2 Ki. 12:16; 22:7; 1 Chr. 9:22, 26, 31; 2 Chr. 19:9; 31:12, 15, 18; 34:12; Ps. 33:4; 36:6; 37:3; 40:11; 88:12; 89:2f, 6, 9, 25, 34, 50; 92:3; 96:13; 98:3; 100:5; 119:30, 75, 86, 90, 138; 143:1; Prov. 12:17, 22; 28:20; Isa. 11:5; 25:1; 33:6; 59:4; Jer. 5:1, 3; 7:28; 9:2; Lam. 3:23; Hos. 2:22; Hab. 2:4 ###피스티스가 243번 나오는 신약의 용례 ---Matt. 8:10; 9:2, 22, 29; 15:28; 17:20; 21:21; 23:23; Mk. 2:5; 4:40; 5:34; 10:52; 11:22; Lk. 5:20; 7:9, 50; 8:25, 48; 17:5f, 19; 18:8, 42; 22:32; Acts 3:16; 6:5, 7; 11:24; 13:8; 14:9, 22, 27; 15:9; 16:5; 17:31; 20:21; 24:24; 26:18; Rom. 1:5, 8, 12, 17; 3:3, 22, 25ff, 30f; 4:5, 9, 11ff, 16, 19f; 5:1f; 9:30, 32; 10:6, 8, 17; 11:20; 12:3, 6; 14:1, 22f; 16:26; 1 Co. 2:5; 12:9; 13:2, 13; 15:14, 17; 16:13; 2 Co. 1:24; 4:13; 5:7; 8:7; 10:15; 13:5; Gal. 1:23; 2:16, 20; 3:2, 5, 7ff, 11f, 14, 22ff; 5:5f, 22; 6:10; Eph. 1:15; 2:8; 3:12, 17; 4:5, 13; 6:16, 23; Phil. 1:25, 27; 2:17; 3:9; Col. 1:4, 23; 2:5, 7, 12; 1 Thess. 1:3, 8; 3:2, 5ff, 10; 5:8; 2 Thess. 1:3f, 11; 2:13; 3:2; 1 Tim. 1:2, 4f, 14, 19; 2:7, 15; 3:9, 13; 4:1, 6, 12; 5:8, 12; 6:10ff, 21; 2 Tim. 1:5, 13; 2:18, 22; 3:8, 10, 15; 4:7; Tit. 1:1, 4, 13; 2:2, 10; 3:15; Phlm. 1:5f; Heb. 4:2; 6:1, 12; 10:22, 38f; 11:1, 3ff, 11, 13, 17, 20ff, 27ff, 33, 39; 12:2; 13:7; Jas. 1:3, 6; 2:1, 5, 14, 17f, 20, 22, 24, 26; 5:15; 1 Pet. 1:5, 7, 9, 21; 5:9; 2 Pet. 1:1, 5; 1 Jn. 5:4; Jude 1:3, 20; Rev. 2:13, 19; 13:10; 14:12 ========= ====진리====== ----[호4:1 이스라엘 자손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여호와께서 이 땅 주민과 논쟁하시나니 이 땅에는 진실도 없고 인애도 없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도 없고 오직 저주와 속임과 살인과 도둑질과 간음뿐이요 포악하여 피가 피를 뒤이음이라--- tm,a,(571, 에메트) 신실, 성실, 확실함, 진리 에메트(명여)는 아만(@m'a; , 539)에서 유래했으며, '신실(성), 성실(성), 충실함, 확고함, 확실함, 진리, 진실'을 의미한다. 에메트는 헬라어 알레디아에 해당한다. 구약성경에서 에메트는 126회 나오며, 다음의 의미를 나타낸다. (a) 에메트와 의미 에메트는 아멘, 곧 확고한, 확실한, 신실한 것으로 생각되는 사실을 의미한다. 따라서 그것은 진실한 것을 의미한다. 인격에 대해 사용될 때 그것은 때때로 주로 그의 말, 행동, 사상의 특징을 나타내는 것을 표현한다. 이쉬 에메트는 그의 행위가 진리의 규범에 지배를 받는 사람이며, 그러므로 성실한 사람이다. 하나님께 적용될 때, 특별히 그의 신실성에 대해 사용된다. 이 단어는 '확고하다'를 뜻하는 어근 'mn에서 파생된 것으로 학자들은 이해한다. 따라서 대부분의 구약성경 학자들은 히브리 저술가들이 말하는 '진리'란 의미상 '불변성'(stability), '확고함'(firmness) 혹은 '확실성'(reliability)이란 개념을 시사해주는 '신실성'(faithfulness)에 가깝다고 주장한다. 예를 들어 예프센(Jepsen) 기록을 요약해서 말한다면, '에메트는 신뢰할만한 것으로 입증되어야 하는 것에 대해 사용되었다. 영어로 이 개념을 전달하는 데에는 'Reliability'(확실성)가 가장 포괄적인 단어일 것이다. 에메트는 다른 사람들이 신뢰할 수 있는 것이다'고 했다. 예프센은 이것을 인간의 진리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진리에 적용시키는 것으로 말을 맺는다. 진리의 하나님으로서 "여호와는 ... 그의 말씀과 사역 안에서 우리가 완전히 신뢰할 수 있는 하나님이시다"(TDOT Ⅰ313). 이런 견해를 근거로 하여 구약성경에서 진리는 단순히 이론적이거나 추상적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신실성에 근거한 것이라는 주장이 종종 있어 왔다. 만일 이 견해를 받아 들인다면, 이것은 진리에 대한 히브리적 개념과 헬라적 개념 사이의 근본적으로 분명한 대조를 보여주는 요인이 될 것이다. 볼트만(R. Bultmann)은 쉽사리 알레데이아의 헬라어 용법이 셈어적 용법과 대조된다고 말한다(TDNT Ⅰ238). 이 이론에 따르면, 고전 헬라어에서 알레데이아는 단순한 현상과 대조되는 '진리'(truth)를 의미하는데 반해, 히브리어에서 이에 병행되는 단어는 '불변성'(stability) 혹은 '신실성'(faithfulness)을 의미한다고 한다. 그렇지만 이런 대조가 어느 점에서는 타당성을 지니는 반면, 이 주장들이 조심스럽게 한정되지 않을 경우에는 잘못될 수도 있고, 지나치게 단순화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고려해야 할 것이다. 구약성경에서 에메트는 그 사용된 문맥에 따라 다양한 의미를 나타낸다. 에메트가 에메트로 간주되고, 에메트에 의해 지적되는 독특한 사실들을 항상 의미하지 않는다. 이러한 경우에 이 단어는 법률적 영역을 넘어가는 불확정한 일반적인 타당성이나 정당성을 지적한다. 그것은 모든 사람이 진실이나 사실(reality)로 인정하기를 항상 요구하는 사실(facts), 신과 인간의 질서에 일치하여, 존중을 받는 정상 상태를 가리키는데, 그것은 유사하게 미쉬파트(fP;v]mi , 4941: 공의, 심판)의 체다카(hq;d;x] , 6666: 의), 샬롬(!/lv; , 7965: 완전, 평화)과 같은 관련 용어에 반영되어 있다. 그 의미와 일치하여 그것은 전혀 일반적으로 진리나 진실(truth)로, 심지어 정상적 개념으로서 '진실성'(veracity)으로 번역할 수 있다. (b) 에메트의 법률적 용법. 에메트는 기본적으로 가장 확실히 법률 용어에서 '사실상의 과정이나 인과의 진실을 묘사한다. 따라서 우리는 신 22:20에 "그 일이 참되어(에메트)..."라는 표현에서 앞의 경우와 같이 "그 일이 비방거리에 근거하지 않고 확실한 사실들, 곧 진실에 근거한다면"이란 의미를 읽는다. 삿 9:16(삿 9:19)의 "너희의 행한 것이 과연 진실하고 의로우냐"라는 말에서 에메트는 의와 관련되며, 그들의 행위의 정당성을 따지고 있는 것이다. 삿 9:15에서는 "참으로"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에메트가 사물에 적용되는 경우에 법률 용어의 비유적 용법을 보게 된다. 창 24:48에 "바른 길"이 데레크 에메트, 즉 제시되는 많은 길들 중에 확실히 성공하는 길이다. 렘 23:28의 "내 말을 받는 자(선지자)는 성실함으로(에메트) 내 말을 말할 것이라"는 말에서, 에메트는 그 자체 꿈으로가 아니라 실제적 역사(operation, 렘 23:29)를 나타내는 사실(a fact)을 가리킨다. 단 8:26에서(이상이 확실하니) 에메트는 그 계시가 실제로 일어날 명백한 것임을 확언하기 위해 사용되었다. 사 59:14, 사 59:15에서 진실이 부족하다는 불평은 사 59:13 상반절에 "배반하는 것"에 관한 언급이 있기 때문에, 언뜻 보기에 이스라엘의 불신실성에 대한 언급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좀 더 세밀하게 검토해 보면, 불평의 참된 원인은 "거짓말"이라는 사실이 분명해진다. 마찬가지로 예레미야도 "그들은 각기 이웃을 속이며 진실을 말하지 아니하며 그 혀로 거짓말 하기를 가르친다"고 불평하였다(렘 9:5). 틀림없이 이런 일 때문에 결국 어느 누구도 자기 형제를 신뢰할 수 없는 것 같다(렘 9:4). 그러나 여기에서 주요 문제는 거짓말 그 자체이다. 스가랴도 이와 같은 관심을 표명하고 있다. "너희는 각기 이웃으로 더불어 진실을 말하며 너희 성문에서 진실하고 화평을 베풀고 거짓 맹세를 좋아하지 말라"고 말한다. 이 구절은 특별히 에메트의 개념에 있는 평결(judical finding)과 재판의 기준 사이의 관계를 나타낸다. 시편의 세 구절들에서 진리는, 많은 학자들이 오로지 헬라 문헌에서만 발견된다고 주장하는 거의 그런 의미에서, 은폐(concealment)와 대조하여 나온다. 시 43:3에서 기자는 "주의 빛과 주의 진리를 보내어"라고 기도한다. 이 기도는 하나님께서 신실하게 계실 것을 바라는 기도가 아니라 "간사한 자"(시 43:1)의 유혹적인 말에 직면하여 하나님께서 그에게 사건의 진상을 보여주기를 원하는 기도이다. 그러므로 그는 진리와 빛을 필요로 한다. 진리란 그를 어둠에서부터 벗어나게 하여 사건들이 있었던 그대로의 모습을 볼 수 있도록 해 줄 수 있다. 마찬가지로 시 45:4에서 왕은 진리의 옹호자가 되어야 한다. 여기에서 염두에 둔 것은 왕의 확실성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의심스럽고, 부정하고, 공정치 못하거나 거짓된 것은 무엇이든지 기꺼이 다 드러낼 그의 마음 자세이다. 왕의 고통 당하는 자들의 고통의 원인을 공공연하게 드러냄으로써 그들을 옹호해 주어야 하는 것이다. 시 51:6의 "중심에 진실함을"이라는 유명한 언급은 그다지 분명하지 않다. 앤더슨(A. A. Anderson)은 여기에서 에메트가 '신실성'(faithfulness)의 의미로 사용되었다고 주장한다(Psalms, Ⅰ, 396). 그러나 이 개념은 시편 기자가 충실함을 간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 기만으로부터의 해방을 간구하기 위해 사용한 개념인 것 같다. 이 시편의 주제는 고백이며, 이 고백은 하나님께서 보신 그대로 사건들의 상태의 진실됨을 시인하는 것이다. 이 해석은, 만일 우리가 "중심"(inward parts)을 계시의 필요와 관련되어 있는 "덮여 있는 것"을 의미하고(E. A. Leslie, The Psalms, 1949, 400), 이 시편의 주제를 여호와께서 공정하시다라는 것으로 이해한다면(S. Mowinckel, The Psalms in Isreal's Worship, 1967,Ⅰ, 214), 훨씬 더 적합할 것이다. 그리고 잠언에서 진리와 거짓말(혹은 속임수) 사이의 대조를 배경으로하여 에메트가 사용된다. 지혜가 "내 입은 진리를 말하며"(잠 8:7)라고 말할 때, 그 요지는 지혜가 지혜를 갖고 있는 사람을 기만하지 않으리라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지혜는 교육과 지식을 통해서 그에게 모든 것을 드러낼 것이다. 잠 22:21에서는 진리가 참된 대답이 행해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즉 그곳에 거짓이나 허위가 없도록 하기 위해 드러내어 진다. (c) 에메트의 종교적 용법. ① 법률적 영역에서 중요한 다른 표현과 같이, 진리의 개념은 특별히 구약성경의 종교적 용어에 그 자리를 잡고 있다. 에메트의 종교적 용법은 항상 비유적으로 이해하지 아니하지만, 종교적 이해(통찰)에서 생겨날 수도 있다. 어쨌든 많은 경우에 그것은 법률적 용법에 의해 설명할 필요가 없는 종교적 사실을 오로지 의미한다. 때때로 사법적으로 의인으로 묘사된 경건한 사람은 하나님에 대한 그의 태도를 명백한 진리의 사실에 근거하며, 진리가 하나님 자신의 행위와 말씀 안에 있는 토대인 것 같이 진리를 행한다. 하나님의 진실함은 인간의 진실함을 요구한다(시 51:6). 여호와의 성산에 거하기에 합당한 자는 그 마음에 에메트("진실")를 말하는 자이며(시 15:2), 따라서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생의 질서라는 의미에서 진리에 전념하는 마음을 가진 자이다. 이 마음은 사회 생활에서 실제적으로 표현된다(참조: 겔 18:8).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 행한다(참조: 18:9). 하나님은 그 길을 삼가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진실히 내 앞에서 행하라고 명하신다(왕상 2:4). 호세아가 호 4:1에서 이 땅에 진실(에메트)이 없다고 불평할 때, 진실은 하나님을 아는 것과 관련되어 있다고 말하였다: 즉 생의 모든 영역에서 진실함은 하나님의 뜻을 틀림없이 아는데서 성장하고, 이러한 앎은 그것에 관한한 진실함의 실현이라는 것이다. 지혜 문학에서 문맥은 셰켈(허위, 거짓)이나 아울라(불의)와 대조시키므로, 진실의 개념을 강조하는 한편(말 2:6, 잠 11:18, 렘 9:4, 참조: 잠 12:19), 악과 대조는 더욱 명확히 종교적 방향으로 이끌어 가는 것이다(느 9:33): "우리의 당한 모든 일에 주는 공의로우시니 우리는 악을 행하였사오나 주는 진실히(에메트: 신실하게) 행하셨음이니이다." ② 에메트는 자주 신실성이란 의미로 특히 하나님에 대하여 사용되었다. 시 31:5에서 하나님을 "진리의 하나님"으로 부른다: "진리의 하나님 여호와여 나를 구속하셨나이다". 이와 같이 하나님은 신실하신 분으로서 일반적으로 의인과 사람의 절대적인 신뢰를 받으실만 하다. 하나님은 의로우신 분으로서 항상 신실하게(에메트) 대하신다. 하나님은 영원히 진실함의 규범을 지키신다(시 146:6). 시내산에서 하나님은 진리를 확립하고 그 자체 진리인 법, 곧 진정한 율법(토로트 에메트)을 수여하셨다(느 9:13).(참조: Quell). 에메트는 보통 "내가 주의 에메트를 찬양하리이다"(시 71:22)와 같은 특징적인 구절들에서 '신실성'이란 의미로 나온다. 하나님의 신실하심은 영원히 지속된다(시 117:2). 앤더슨(A. A. Anderson)은 시 119:43에 나오는 "진리의 말씀"이란 어구조차 자기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신실성에 관한 기록이란 의미로 해석했다(The Book of Psalms). 시 30:9에서 하나님의 에메트에 대한 증거의 개념이 훨씬 더 두드러지게 나오는데, 스올(Sheol)이 하나님의 신실성을 선언하지 못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 이유는 아마도 신자에게 하나님의 신실성을 새롭게 증거해 줄 계속적인 경험이 중단되었기 때문인 것 같다. 뿐만 아니라 거기서 그들에게는 그들이 호소할 수 있는 하나님의 약속이 없기 때문이다(시 30:9, 참조: 사 38:18). ③ 에메트가 '신실성'(faithfulness)이란 의미로 사용될 때 자주 헤세드(변함없는 사랑)와 병행되어 나오다. 이런 경우에 에메트가 '신실성'을 의미하는 문맥과 '진리와 진실'을 의미하는 문맥을 구별해야 한다. 아브라함의 종 엘리에셀이 아브라함에게 헤세드와 에메트를 보여주기를 브두엘과 라반에게 요청하는 대목에서(창 24:49), 이 두 단어의 의미를 '충성'(loyalty)과 '성실'(fidelity)로 볼 수 있겠지만 개역 표준 성서(RSV)에 따라 정직하고 성실하게 행동하다라는 의미의 "deal loyally and truly"(충성스럽고 진실하게 대하다)로 보는 것이 더 적절할 것이다. 그러나 같은 장(창 24장)의 앞 부분에 나오는 엘리에셀이 리브가를 맨처음 만나는 대목에서 엘리에셀을 "헤세드와 에메트를 끊이지 않으신" 하나님을 찬양한다. 그 뜻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하신 언약의 약속에 충실하고 신실했다는 것이다(창 24:27). 창 32:10에서 야곱은 아주 똑같은 방식으로 그가 하나님의 모든 신실하심(에메트)을 감당할 수 없다고 고백하였다(창 32:10). 그 특징은 시편에서 찬양과 기도가 모두 하나님의 신실성을 기초하고 있다는 것이다. 에메트의 용법 중 반수 이상이 이런 의미를 지닌다. 시편 기자가 "여호와의 모든 길은 ... 인자와 진리로다"(시 25:10)라고 외칠 때, 하나님과 그의 백성의 관계가 언약에 대한 충성으로 특징 지워지기 때문에 아주 신뢰할 만하다고 증거하는 것이다(M. Dahood). 에메트가 시 57:3, 시 57:10, 시 61:7, 시 69:13, 시 108:4, 시 115:1에서 헤세드와 결합되어 나올 때, "신실성"(faithfulness)이 에메트의 의미로 나온다. 흠정역 성서에 나타나 있듯이, 이런 의미에서 "긍휼과 진리가 같이 만난다"(시 85:10)라고 번역된다. 하나님의 변함없는 사랑은 그의 신실성에 대한 하나의 표현으로 명시된다. 그리고 알레데이아는 '충실, 성실'을 뜻하는 에무나(시 88:11-49), '신실한, 신뢰하는'을 뜻하는 에문(시 12:1, 시 31:24), '확실한, 진실한'을 뜻하는 야칩(byXiy' , 3330; 단 2:8), '정직한'을 뜻하는 야샬(rv'y: , 3474; 욥 23:7), '완전, 성실'을 뜻하는 톰(!To , 8537, 잠 28:6), '진실'을 뜻하는 케쇼트(f/vq] , 7187; 단 2:47), '진실로'를 뜻하는 옴나(욥 9:2, 욥 19:4), 우림(신 33:8)의 역어로 사용되었다. ④ 우리가 에메트가 사용된 여러가지 측면들을 고려한다 하더라도, 매우 많은 문맥들에서 진리가 단순히 추상적이고 이론적인 개념이 아니라는 사실을 분명히 한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말씀으로만 아니라 행위로 자기의 진리를 드러내시며, 이 진리는 사실상 그의 백성의 체험 속에서 입증된다. 마찬가지로 사람들도 진리에 대한 존중을 추상적인 이론으로가 아니라 그들의 이웃에 대한, 그리고 그들의 구두상의 상업적 거래에 대한 일상적인 증언으로 나타낸다. 시 119:142에서 "주의 법은 진리로소이다"고 표현한다. 이것은 단순한 실존적인 진리 이상으로서 하나님의 율법을 신자들에게 사건의 진상을 보여줄 등이요 빛이다(시 119:105). 여기에서 그는 사실상 그와 관련될 때의 사건의 진상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이다("내발 ... 내길"). ⑤ 이러한 진리는 신뢰할 만하며 또한 확정적인 것이다. 그러나 이런 통찰이 오로지 신학적 기초 위에서만 도달되는 것이 아니다. 확실히 신자는 하나님의 언약의 신실성(에메트, 헤세드, 에무나) 때문에, 확신을 가지고 그에게 의지할 것이다. 그러나 에메트의 이런 특별한 용법이 이 단어의 모든 용례들의 배후에 있는 것은 아니다. 히브리인들은 다른 사람들도 인정했던 논리적 진리, 곧 참된 말은 그것이 실제와 일치하기 때문에 믿을만하다는 점, 그리고 진리의 하나님에게 있어서나 진실한 사람에게 있어서 언행이 일치한다는 점을 인정하였다(참조: 수 24:14, 시 145:18). 진리를 말과 행동의 일치로 보는 개념이 신약성경에서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할 것이다.(참조: R. Butman; A. C. Thiselton). ----------- [ 진리 ] 히브리어 '에메트(אמת)'는 성경에서 가장 중요한 단어 '진리'를 의미한다. '에메트'는 '아만'이란 히브리어에서 나왔는데 우리가 잘 아는 '아멘'이란 히브리어의 원형이다. '아만'은 '지속하다', '지탱하다', '성실(신실)하다', '영구적인', '마르지 않는', '믿다', '신뢰하다', '확실하다' 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믿음'이라는 단어 '에무나'도 바로 이 '아만'에서 나왔다. 히브리어에서 진리와 믿음, 그리고 변하지 않는 하나님의 영원, 성실(신실)함은 언어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예수님께서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할 때 '진실로 진실로'의 히브리어가 바로 '아만'이다. 이것은 '참이다', 확실한 변함없는 진리다'라는 의미이다. 성경에서 예수님은 자신을 곧 '길이요, 진리요 , 생명(요14:6)'이라고 말씀하셨다. 예수님 자체가 '진리'이며 '에메트'이신 것이다. 따라서 '에메트(אמת)'라는 히브리어를 이해하는 것은 우리의 구원이요 생명이신 예수님을 알고 영생에 이르는(요17: 중요한 기초가 되며 '영'과 '진리(요4:24)'로 예배하기 위한 중요한 기초가 된다. 예수님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아버지의 영광을 이 땅에 가져 오셨는데 그 모든 삶은 '은혜와 진리가 충만'했다고 요한은 기록한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요 1:14) 여기서 '알레데이아'라는 '진리'를 의미하는 단어의 히브리어가 바로 '에메트'이다. 성경에서는 '은혜(헤세드)'와 '진리(에메트)'는 하나님 나라의 기초이며 중요한 본질이다. @공의와 정의가 주의 보좌의 기초라 인자함(헤세드)과 진실함(에메트)이 주 앞에 있나이다(시 89:14)... 여기서 인자는 '헤세드'이고 진리가 바로 '에메트'이다. 요한이 말한 은혜와 진리는 바로 이 '헤세드'와 '에메트'이다. 하나님의 '공의(쩨다카)'는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고 의를 위하여 핍박받는 이들을 구원하고 회복하시는 하나님의 긍휼과 은혜인 '헤세드'와 짝을 이루고 하나님의 '공의(미쉬파트)'는 비진리와 죄, 곧 하나님의 의(법)를 모르고 자기 뜻과 불법을 행하는 구조를 심판하여 회복하는 '진리(에메트)'와 연결되어 있다. (유대교에서는 '쩨다카'를 행하는 자들을 '하시드/헤세드를 행하는 자' 라고 한다) @아침마다 주의 인자(헤세드)를 알리며 밤마다 주의 성실(에메트)을 베풂이 좋으나이다(시 92:1)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시편 92:1에서 주의 '인자'는 '헤세드' 주의 '성실'이 바로 '에메트'이다. 이 시편은 하나님의 변하지 않는 영원하신 성품을 의미하며 하나님 나라의 가장 중요한 본질이다. 성경에서 '아침(보케르)'은 빛이 밝아오는 빛에 거하는 영적인 시간을 의미한다. 그 빛의 시간에는 하나님의 헤세드가 있다. 그리고, '밤'이라는 영적인 어둠의 시기에는 '에메트'를 베푸시는 것이 하나님의 '토브', 선하심, 기쁘신 뜻이다. (토브 : '선하다'는 뜻. 하나님의 기쁘신 뜻을 의미하는 히브리어) '에메트(אמת)'는 히브리 알파벳의 첫 글자인 '알레프(א)'와 알파벳의 중간에 위치하며 생수, 말씀을 의미하는 '멤(מ)' 그리고 알파벳의 마지막 글자인 '타브(ת)'로 이루어져 있다. 이것은 히브리적인 개념에서 하나님의 '진리(에메트)'란 처음(א)과 중간(מ) 그리고 끝(ת)까지 하나님의 진리인 이 생수가 흐르는 것이며, 진리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며 불변하는 것임을 의미한다. 이 생수는 창세기 처음인 에덴에서부터 마지막인 계시록까지 동일하게 흐른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요 시작과 마침이니라(계 22:13) ('알파'와 '오메가'는 히브리어 '알레프'와 '타브'의 개념을 헬라어로 표현한 것이다) @보좌에 앉으신 이가 이르시되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하시고 또 이르시되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되니 기록하라 하시고 또 내게 말씀하시되 이루었도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라 내가 생명수 샘물을 목마른 자에게 값없이 주리니 이기는 자는 이것들을 상속으로 받으리라 나는 그의 하나님이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라(계 21:5-7) ... 요한계시록의 이 말씀은 히브리어 '에메트'가 가진 진리의 개념을 토대로 하고 있다. 하나님의 보좌에서 공의와 정의, '헤세드'와 '에메트'로 다스리시는 진리이신 그 분(예수님)은 알파(알레프)와 오메가(타브) 처음과 마지막이시다. 그 분은 생명수 샘물을 목마른 자에게 값없이 주시는 분이다. @ 명절 끝 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이르시되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 이는 그를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예수께서 아직 영광을 받지 아니하셨으므로 성령이 아직 그들에게 계시지 아니하더라)( 요 7:37-39) 이 생수의 강은 그를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을 가리킨다. 성령님은 '진리의 영(요14:17)'이시다. 그런데 제자들이 예수님을 믿고 따랐지만 성령이 아직 그들에게 계시지 않았다고 말한다. 이것은 그들이 아직 온전한 믿음과 '진리' 가운데 있지 못함을 의미한다. @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요 14:26)... 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예수님이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주시고 생각나게 해 주신다. @ 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요 14:17)....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진리의 가장 중요한 본질이다. 성령님을 통하여 깨달은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이 바로 '진리'이고, 예수님의 말씀 역시 성령께서 우리에게 임하여 주셔야만이 온전히 깨닫게 되는 것이다. 이 진리는 생명수 샘물이고 '알레프(알파)'와 '타브(오메가)'이며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성경 전체에 흐르고 있는 본질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예수님의 말'이 곧 '진리'라는 개념이다. 그 말에 거해야 진리를 알고 진지를 아는 참 제자가 된다. @ 그러므로 예수께서 자기를 믿은 유대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으로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요 8:31-32) 예수님은 이 말씀을 그들을 믿은 유대인들에게 하셨다. 예수님을 믿고 따르고 있지만 '진리'안에 있지는 않을 수 있는데 초대교회에서 다른 복음을 전하고 그리스도의 교훈 안에 거하지 않는 자들은 불신자들이 아니라 예수님을 믿고 따른다고 하는 자들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