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20.07.16 작성자 : 양시영
제   목 : 성결과 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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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d,qo(6944, 코데쉬) 분리됨, 거룩함, 신성함

코데쉬(명남)는 카다쉬(vd'q; , 6942)에서 유래했으며, '분리됨, 거룩함, 신성함'을 의미한다.

구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약 470회 나온다.

명사 코데쉬는 '거룩함'의 개념을 내포한다. 즉 이것은 거룩한 영역에 속하는 사물, 따라서 범속한 것과는 구별되는 사물의 본질적 특성이다. ...이러한 구분이 레 10:10과 겔 22:26에서 명백히 드러난다. 여기에서 코데쉬가 홀(불경스러운, 세속적인, 범속한)의 반의어로 등장한 것이다.

---"거룩한"이라는 단어가 '두려운 신비'(mysterium tremendum)를 시사한다는 오토(R. Otto, 참고문헌을 보라)의 견해는 일리가 있다. 즉 그것은 어느 정도의 경외를 가지고 하나님에 대해 말하는 것이다. 이 단어는 신격과 거의 같은 동의어로 사용될 수 있다...... "그의 거룩한 이름"은 하나님의 이름이다..... 하나님이 거주하시는 내실을 거룩한 곳들 중의 거룩한 곳이라 부른다. 곧 지성소라는 뜻이다.

---그러나 성경적 관점은 하나님의 거룩한 속성을 그의 능력의 신비성과 관련시킬 뿐만 아니라 전적으로 선하고 전혀 악이 없는 그의 속성에로도 귀착 시킨다. 그러므로 거룩한 객체들은 제의적 불결성이 전혀 없는 객체들이며, 이러한 제의적 불결성은 도덕적 불결성도 의미한다. 이 거룩한 객체들은 단순히 바쳐졌을 뿐만 아니라 선한 것에로 바쳐졌으며 악한 것과 분리되었다는 뜻이다. .....제사 의식상으로, 더럽히는 것으로부터 인간을 분리시킨다는 것은 진정 영적 도덕적 성결을 의미한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라는 말씀이 구약성경으로부터 신약에 인용되었다(벧전 1:16, 레 19:1, 레 20:7 등등).

---그리고 소위 성결 법전이라는 것은 윤리적 색체가 강하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았으며 하나님의 모습을 반향할 수 있다. 그리고 하나님은 자신을 윤리적으로 거룩한 분으로 계시하면서, 하나님 자신을 닮은 거룩한 속성에로 인간을 부르고 계신다(ISBE, "Holiness").

이스라엘 종교의 기본 요소 중 하나는 신성의 영역과 범속의 영역 간의 상호 불가침적 구별을 유지시키는 것이었다(민 18:32).

고유적으로 거룩한 것, 또한 하나님의 법률이나 종교 의식에 의해 거룩하다고 명명된 대상은 범속한 것으로 취급하면 안되었다.

안식일은 거룩하였다. 그리고 그 날과 관련된 금지 사항들은, 그날의 독특한 성격을 유지시켜 주고 그 날이 범속한 날로 취급되지 못하도록 지켜주는 역할을 하였다(출 16:23-26, 사 58:13, 사 58:14).

제사장들에게는 그 거룩한 신분을 더럽히지 않도록 조심하라는 특별 제한이 가해졌다(레 21:6이하).

---성교는 구약성경에서 부도덕한 것으로 간주되지 않았다. 그러나 성교는 레위기 율법상의 불결 상태를 초래하는 한 요소였으며(레 15:18) 이로써 거룩한 것과의 접촉이 금지되었다(삼상 21:4). 이와 동일한 원리가 화목 제물(레 19:5-8), 거룩한 기름(출 30:32-33), 그리고 거룩한 향(출 30:37)에도 적용되었다.

---하나님께 드린 것은 '거룩한' 영역에 들어가는 것으로 생각하였다. 레 5:15-16에서 "성물"이라 불리는 레위기적 예배의 여러 요소들 즉 그 땅의 소산물(레 19:24), 사유 재산(레 27:28), 군사 행동으로써 획득한 전리품(수 6:19) 등이 이에 포함되었다. 오직 제사장들만이 먹을 수 있는 희생 제물은 '거룩하다'고 명명되었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제사장직에 의해 묘사된 바로서 거룩한 영역에 절대적으로 바쳐진 것이기 때문이다(레 19:18).

거룩한 영역이 불완전한 요소들을 소유한 세계와는 개념상 구별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영역의 완전 무결성이 엄격히 유지되는 한 거룩한 영역도 그 불완전의 세계 내에서 적용할 수 있었다. "거룩함" holy의 완전 무결성 유지는 이스라엘 종교의 한 기능이었다. 거룩한 하나님은 규례와 율례라는 맥락 내에서 구속적 사랑을 가지고 인간에게 접근하였으며 이러한 규례와 율례들은 하나님의 본질적 특성인 성결의 순수성을 유지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레위기적 제도가 성립되기 이전에도 이 원리가 인지되고 있었다(출 3:5을 보라).

제사 의식 역시 거기에 참여한 자들에게 거룩함을 부여했다. 이 점은 구속의 개념에 있어서 본질적 요소였다. 왜냐하면 정의를 내리건대 거룩함이란 죄악적이고 속된 모든 것으로부터의 분리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자신이 거룩하기(v/dq; , 6918) 때문에 인간을 거룩함에로 부르신다(레 19:2, 참조: 벧전 1:15).

그의 거룩한 속성 때문에 하나님은 필멸적(必滅的) 인생들의 연약하고 불완전한 요소들을 초월해 계시며 따라서 자기 백성의 구원을 성취할 수 있다(출 15:11-12). 거룩한 자들만이 하나님의 성산에 거할 수 있다(시 15:1이하). 하나님은 본래 거룩하시며 도덕적 불완전으로부터 떠나 계시기 때문에 그의 약속에 그가 신실하다는 것을 믿을 수 있다(시 33:21). 자기 백성을 영화롭게 함으로써, 그리고 에덴의 저주에 비롯된 불완전성으로부터 피조물을 구속함으로써, 하나님의 거룩함을 궁극적으로 나타내겠다는 약속이, 하나님의 구속 사역에 본질적으로 내재해 있다(롬 8:18-23).(참조: T. E. MCCOMISKEY; B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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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제사장의 예복에 담긴 최고의 사랑

“대제사장의 옷은 최고의 품질, 최고의 기술, 최고의 정성, 최고의 지혜를 총동원하여 제작되었습니다.” 구속사 시리즈 6권 「맹세 언약의 영원한 대제사장」에서는 대제사장의 옷을 이와 같이 소개하고 있다. 성경에 기록된 대제사장의 예복을 통해, 우리의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경륜과 인간 구원을 향한 최고의 사랑을 깨달아 보자.

1. 최고의 품질 (판결 흉패)

흉패는 가슴 부분에 붙이는 큰 패를 가리키는데, 호화롭고 장엄한 모습이 제일 먼저 눈에 띤다. 장광이 한 뼘 길이(반 규빗)인 약 22.5cm로 네모반듯하다. 이는 제사장의 중보 사역이 편파적이지 않고 공평해야 함을 의미한다. 흉패 위에는 한 줄에 세 개씩 네 줄로 12보석이 달려 있고, 12보석에는 이스라엘 12지파의 이름이 각각 새겨져 있다. 대제사장이신 예수님도 우리를 품고 계시고, 그 가슴의 뜨거운 사랑으로 우리를 절대 보호해 주신다. 12보석이 일정한 간격과 모양과 빛깔이 있듯이, 성도는 각자에게 주어진 재능에 따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충성을 다해야 한다. 흉패는 대제사장이 가장 아끼고 사랑하는 것으로, 늘 그것을 살피게 된다. 이는 성도들로 하여금 늘 대제사장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 앞에 있게 하고, 그의 몸에 붙어 있는 지체로 살게 하신다는 뜻이다.

2. 최고의 기술 (에봇 받침 겉옷)

‘에봇 받침 겉옷’은 에봇을 받쳐 주는 겉옷으로 무늬가 없는 순수한 청색이고 위에서 아래까지 한 조각으로 짜여진 통옷이었다. 청색은 대제사장 직분의 위엄과 권위를 상징한다. 측량할 수 없이 높고 푸른 하늘을 볼 때마다 하나님의 크신 사랑과 은혜를 기억나게 하듯이, 대제사장의 청색 겉옷은 대제사장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풍성한 은혜를 예표한다. 옷의 가장 자리에 청색, 자색, 홍색 실로 석류를 놓고 정금 방울을 수 놓은 석류 사이사이에 일정한 간격으로 달았다. 석류는 고대로부터 풍성한 번성을 상징했는데, 우리 인생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만 풍성한 결실을 맺을 수 있다. 수 놓은 석류 열매 사이사이로 금방울의 감미로운 소리가 성소 안에 울려 퍼진다. 대제사장 되신 예수님의 말씀의 소리는 구원의 복된 소식이며, 이 소식이 전해지는 곳마다 생명의 열매가 맺어진다. 우리 역시 하나님의 일을 하는 가운데 끊이지 않고 아름다운 복음의 소리를 내는 금방울이 되어야 한다.

3. 최고의 정성 (관)

관은 제사장의 성별의 표시이자, 영광과 존귀의 표시이다. 특별히 대제사장은 관 전면에 금으로 만든 패를 붙였는데, 이 패에는 ‘여호와께 성결’이라는 글이 새겨져 있다. 대제사장이 하나님 앞에서 관을 써서 머리를 가리는 것은, 자신의 생각과 뜻을 버리고 철저히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을 의미한다. 예수님도 근본 하나님의 본체이시나 오히려 자기를 비우시고, 사람이 되셨고, 십자가에 죽기까지 하나님 아버지께 온전히 순종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성결의 패가 아론의 이마에 항상 있어야만 그가 드리는 성물을 받으신다고 말씀하셨다(출애굽기 28:38). 이마는 그 사람의 인격을 대표하므로, 대제사장은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늘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한다. 거룩한 삶이 없이는 어떤 제사(예배)도 하나님께 열납되지 않는다는 엄중한 경고이다. 대제사장은 모든 더러운 것으로부터 성별되어 그 자신이 먼저 하나님께 드려져야 하고, 그 후에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온전히 헌신해야 한다. 성결을 잃어버리는 순간 하나님의 능력이 떠나고 생명을 잃어버린 죽은 자와 다름없게 된다. 하나님께서는 철저하게 성결한 사람이 드리는 예배만을 받으신다.

4. 최고의 지혜 (대제사장의 옷을 짓는 자)

하나님께서는 대제사장의 옷을 짓는 자들이 지혜로운 영으로 가득 채워진 자라고 말씀하셨다(출애굽기 28:3). 이를 위해 특별히 부름 받은 자 중 한 사람이 오홀리압이다. 하나님께서는 오홀리압을 감동시키고, 지혜와 총명, 일하고자 하는 마음까지도 흡족하게 부어주셨다. 하나님의 일은 사람의 의지와 감정으로 할 수 없고 오직 하나님께서 주시는 지혜로만 가능하다. 이 지혜를 불어 넣으시는 영이 하나님의 성령이요, 사람이 그 영으로 충만할 때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말씀하신 것을 하나도 빠짐없이 완벽하게 준행할 수 있다.

5. 최고의 사랑 (에봇)

대제사장이 입는 에봇은 앞판과 뒷판이 견대에 의해 단단히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 그리고 호마노 두 개를 깎아 이스라엘 아들들의 이름을 새겼고, 그 두 보석을 어깨 위 에봇 두 견대에 붙였다. 어깨는 책임지기에 넉넉한 힘과 능력을 상징한다. 이는 온 인류의 죄를 사하시기 위해 십자가를 어깨에 짊어지고, 인간의 모든 죄와 연약함까지도 양 어깨에 짊어지고 담당했던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낸다. 예수님께서는 그 어깨에 우리의 이름을 새기시며, 거기에 새겨진 자들은 반드시 구원을 받게 된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에 세 번 옷을 벗기우셨다. 처음에 군병들이 예수님의 옷을 벗기고 홍포를 입힌 후 희롱했다. 희롱을 다한 후에 다시 홍포를 벗기고 도로 입고 계시던 옷을 입혀 십자가로 끌고 나갔다. 십자가에 달리실때 다시 그 옷을 벗긴 후 겉옷은 네 깃으로 나눠 가지고, 속옷은 한 사람이 차지했다. 예수님은 우리 죄인들에게 의의 옷을 입히시기 위해서 우리 대신 벌거벗김을 당하시고 온갖 수치를 당하셨다. 그리고 대제사장으로 십자가에서 고귀한 피를 흘려 속죄제를 드리심으로써, 타락한 사람의 죄와 허물을 완전히 가려 주시고 우리에게 의의 옷을 입혀 주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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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Jsiovth""(3742, 호시오테스) 거룩 holiness, 경건, 신앙심 devoutness, piety

1. 헬라어 문헌의 용법 

호시오테스는 호시오스(o{sio", 3741:거룩한, 경건한)에서 유래했다. 이 단어는 영원한 법령을 생각해서 행동하는, 개인적인 `경건'이나 효심`(piety)을 의미한다. 호시오테스는 부모에 대한 효심(piety)이다. 호시오테스는 내적 성향으로 나타나며, 외적 경건은 신들에 대한 제의적 예배에서 표현된다. 이 단어는 하나님을 향한 경건을 묘사하기도 한다.

2. 70인 역본의 용법 

호시오테스는 70인역본 구약성경에서 4회 나오는데, `개인적 경건'에 대하여 사용되었다. 잠 14:32에서 호시오테스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믿는 사람은 누구나 의롭다(잠 14:32)라는 뜻일 수도 있다. 하나님은 호시오테스를 정복할 수 없는 방패로 삼으셨다(참조: 계 l5:4). 이 단어는 신 9:5; 삼상 14:41; 왕상 9:4에서 나타난다.

3. 신약성경의 용법 

호시오테스는 신약성경에서 2회 나타나며, `개인적 경건'을 의미한다. 눅 1:75("성결")에서는 구원의 시대에 의인의 생활에 대하여, 엡 4:24("거룩함")에서는  새 사람의 본성에 대하여 언급한다(참조: Walter Bauer; F. Hau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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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kaiosuvnh(1343, 디카이오쉬네) 의로움, 의

명사 디카이오쉬네(Theognis. Hdt. 이래)는 디카이오스(divkaio", 1342: 의로운)에서 유래했으며, 의로운 사람의 덕, 자질, 상태를 나타낸다. 

70인역본에서 히브리 체테크(올바름, 공정함, 의로움)의 역어로 자주, 헤세드(선함, 친절, 긍휼)의 역어로 드물게 사용되었다.

명사 디카이오쉬네는 신약성경에서 92회 나오며, 다음과 같이 사용되었다.

(a)  넓은 의미에서, '그의 의무를 이행하는 자의 상태, 의로움, 하나님께 받아들여질 수 있는 조건'

===① 일반적으로: "의의 말씀", 인간이 하나님께 옳다고 인정 받는 상태에 도달할 수 있도록 하는 길(way)에 관한 교훈, 히 5:13;

"의의 왕", 하나님께서 시인하신 왕, 그의 백성을 하나님께 용납되게 하는 왕, 히 7:2;

===② '삶의 성실, 미덕, 순결, 정직, 생각, 느낌, 행동이 올바름': 마 3:15; 마 5:6, 마 5:10; 마 6:20; 마 6:1; 행 13:10; 행 24:25; 롬 6:13, 롬 6:16, 롬 6:18-20; 롬 8:10; 고후 6:7, 고후 6:14; 고후 11:15; 엡 5:9; 엡 6:14; 빌 1:11; 딤전 6:11; 딤후 2:22; 딤후 3:16; 딤후 4:8; 딛 3:5; 히 1:9; 히 12:11; 약 3:18; 벧전 3:14; 벧후 2:5, 벧후 2:21; 벧후 3:13,

"의의 도로", 의의 길로 행하는, 즉 정직한, 의로운 사람, 마 21:32;

"그의 의를 구하라",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의, 마 6:33; 약 1:20;

'자선'에서 나타나는 의에 대해: 고후 9:9.

"의와 성결"로 연결되어 나오는 경우, - 눅 1:75; 엡 4:24, - 전자는 인간에게 향한 옳은 행동을, 후자는 하나님께 향한 경건을 나타낸다.

의를 행하는 것, 의롭게 사는 것: 요일 2:29; 요일 3:7; 요일 3:10.

의를 행하는 것, 행 10:35; 히 11:33; 의를 위해 사는 것, 의를 위해 생명을 바치다, 벧전 2:24;

옳은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완전하게 수행하다, 마 3:15.

디카이오쉬네가 그리스도에 대해 증언할 때는, 그의 완전 무결한 도덕성, 고결성, 죄 없으심을 나타낸다: 요 16:8, 요 16:10;

하나님에게 사용될 때는 그의 '거룩성'을 나타낸다: 롬 3:5, 롬 3:25이하.

===③ 바울 문헌에서 헤 디카이오쉬네

----디카오쉬네는 특별한 의미를 지니며 유대인과 유대 기독교인의 견해에 대립된다. 그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서 특히 다음의 사실들이 주목되어야 한다: 

.......한 민족으로서의 유대인과 그들 가운데서 기도교도로 개종하게 된 매우 많은 유대인들은, 모세 율법의 요구사항에 부합하는 행위를 행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총을 받았다 - 마치 공로의 방식으로 - 고 생각하며, 또한 그리하여 영원한 구원에 이를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 율법은 그 가르침 모두에 완전히 복종할 것을 요구하며, 그러한 복종을 이행하지 않는 자들을 정죄한다(갈 3:10, 갈 3:12). 이런 식의 복종은 유대인도 이방인도(롬 1:24-롬11:1) 그 누구도 이행할 수가 없다(롬 3:10) - 이방인에게는 모세 율법 대신 그들의 마음에 새겨진 타고난 올바른 법이 있다(롬 2:14이하). 

......이러한 이유로 바울은 하나님의 사랑, 즉 그의 독생자 그리스도를 인간의 죄를 속하는 희생제물로 죽게 내어 주심으로 말미암아 인류에게 그의 은총과 선한 뜻을 입증하셨고, 그리하여 인간이 마치 죄를 짓지 않은 양 구원을 소망할 수 있게 한 그 사랑을 선포한다. 

----그러나 이 소망을 얻는 길은 오로지 믿음을 통하는 것 뿐이라고 가르친다. 이 믿음으로 인간은 그리스도 안에 계시되고 보증된 하나님의 그 은총을 전유할 수 있다. 그리고 하나님은 이 믿음을 인간에게 디카이오쉬네로 간주하여 주는 것이다; 

......디카이오쉬네는 '한 죄인이 하나님께서 제공하신 은총을 받아들이는 그 믿음을 통하여 그 죄인의 주인이 되시는 하나님께 용납(열납)될 수 있는 상태'를 나타낸다. 이런 의미에서 디카이오쉬네는 롬 4:5이하, 롬 4:11; 롬 5:17, 롬 5:21; 롬 9:30이하; 롬 14:17; 고전 1:30; 갈 5:5에서 수식어구 없이 사용된다. 하나님으로 인한 의, 하나님께서 의롭다고 선언하신 것, 롬 1:17; 롬 3:21; 롬 10:3.

.....이 단어가 함축적으로 사용되면, 하나님께서 인간을 그에게 받아들여질 만한 상태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나타낸다, 롬 10:4;

.....추상적인 것으로 구체적인 것을 나타내는 용법에서는, 하나님께서 의롭다고 하신 자들을 뜻한다. 고후 5:21; "믿음으로 말미암은 의", 롬 3:22; "믿음으로 된 의", 믿음으로 얻어지는, 믿음에서 나타나는 의, 롬 4:11, 롬 4:13; "하나님께로서 난 의", 즉 하나님께서 부여하신 의, 하나님으로 인하는 의, 빌 3:9(내가 가진 의는 믿음에 기초한 의라는 것이다).

....."믿음에서 난 의", 롬 9:30; 롬 10:6; "내가 가진 의는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 빌 3:9; "믿음을 좇는 의", 롬 9:30; 롬 10:6; "내가 가진 의는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 빌 3:9; "믿음을 쫓는 의", 믿음에 따르는, 믿음에 합당한, 히 11:7(그러나 히브리서에서의 '믿음'의 개념은 바울 문헌에서보다 더 폭 넓다는 사실을 주의해야 한다).

.....그리스도는 그가 없이는 의가 존재할 수 없는 분으로서, 의의 창시자로서로 불리운다, 고전 1:30.

....."의를 이루기 위하여", 결과로서 의에 이르기 위하여, 의를 얻기 위하여, 롬 10:4, 롬 10:10.

.....믿음은 사람에게 의로 간주된다, 즉 의는 믿음에서 기인하고, 믿음에서 인정된다: 롬 4:3, 롬 4:6, 롬 4:9, 롬 4:22; 갈 3:6; 약 2:23.

....."의의 직분", 고후 3:9. 믿음에서 생겨난 "의", 즉 율법 순종의 결과로 생각되는 하나님께 받아들여질 수 있는 상태와 반대된다, 롬 5:5이하;

.....율법에 의존하는, 즉 율법에 대한 가상적 복종에 의존하는 의, 빌 3:6;

.....어떤 사람이 자신의 행위로 스스로 얻었다고 생각하는 것과 같은 그러한 의, 롬 10:3; 빌 3:9;

(b)  더 접근된 의미에서 '공의, 정의', 혹은 '각 개인에게 마땅히 받아야 할 것을 주시는 미덕', 이것은 모든 기독교인에게 "동일하게 보배로운 믿음"을 공평하게 부여하시는 하나님과 그리스도께 속하는 것이라고 한다. 벧후 1:1.

법률상의 정의, 롬 9:28; "공의로 심판", 행 17:31; 계 19:11.

(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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